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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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지난 2009년 11월 초 유엔사회권위원회(이하 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비준 가입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이하 사회권규약)에 따라 한국에서의 사회권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심의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회의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었다. 규약에서의 사회권의 범위는 차별, 노동 3권, 노동조건, 여성, 환경, 교육, 주거, 사회복지, 장애, 문화, 과학, 저작권까지 소위 ‘먹고 살기위한 모든 영역에서의 권리를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심의에서 정부는 위원회 위원들도 놀랄 만큼의 인원인 44명의 대표단을 파견하여 위원회 위원들로부터의 질문에 응답 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의 회의가 있기 전에 정부는 종합적인 사회권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심의 회의 때에는 사회권 위원들과 정부관계자와의 질의응답이 약 이틀정도 이어졌다. 이 심의에 대비하여 한국의 사회권 관련 단체들(저자가 활동하는 단체도 포함됨)은 위원회 위원들에게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제공하기 위해서 정부보고서에 대한 엔지오 대안보고서를 작성, 제출하였고 심의 때에도 위원들과의 사전미팅을 통해서 엔지오의 의견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심의과정에서 정부는 각 행정부서가 추진했거나 진행 중인 정책과 법안에 대한 홍보와 그에 대한 긍정적 측면의 평가만을 언급하며, 한국 사회권 관련 이슈 중 어두운 면이나 불평등한 부분에 대한 설명과 파악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미 정부가 제출한 사회권보고서에도 이 부분은 엔지오들이 지적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한국정부의 보고서와 심의과정에서 정부의 답변은 한마디로 한국의 사회권은 잘 보장되어 있고 한국정부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무척이나 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사회권에 대한 최종적 평가와 권고가 담겨있는 위원회 최종견해(Concluding observations)가 11월 24일에 발표되었다.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와 심의과정에서의 정부답변에 대해서 최종견해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한국 사회권의 현실은 갈수록 악화되어가고 있고, 대부분의 사회권 영역에서 규약이 보장하는 권리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정부는 규약의 당사국으로써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고 있고 그 노력 또한 미비하다고 평가하였고 총 36개 항의 권고항목을 발표하였다. 이는 곧 유엔사회권위원회가 정확하게 현재 한국의 사회권의 현실이 새로운 정부와 연동되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음을 인지하였고, 한국의 높은 경제성장에 걸 맞는 사회권보장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권고한 것이다. (한국정부에 대한 유엔사회권위원회 최종견해는 아래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음. http://minbyun.org/?mid=act_02&document_srl=28807&listStyle=&cpage=) 하지만 정부는 위원회의 최종견해가 발표되자마자 성명을 발표하면서, 위원회가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을 언급하면서 이는 관례상 어긋난다고 하면서 위원회의 최종견해를 혹평하였다. 그렇게 글로벌 스탠다드 하면서 국제기준을 외치더니만, 국제기관에서 한국의 사회권 현실을 정부와는 다르게 평가하니 이제 그 기준이 잘못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셈이다. 정부의 눈에는 한국의 사회권 현실은 유엔에서 보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고 판단하고 있나보다. 정부가 뭐가 그리 억울해서 이례적으로(사실 조약기구 최종견해 발표이후 당사국이 의견을 내는 것은 거의 드물다) 성명을 발표하나 싶어 정부의 보도 자료를 보았는데, 역시나 정부보고서나 심의 때의 발언과 비슷한 논리로 억지를 불이고 있는 것이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작년의 국가인권위 조직축소에 대해서 위원회는 21%의 조직 감축은 심각한 우려사항이고 이에 인권전문가를 포함한 인적, 물적 자원을 배정하기를 권고하였는데, 이에 정부의 항변은 국가인권위원회 임원의 임기는 법으로 보장하고 있고 조직축소도 모든 행정기구의 개편과 연관되어 있기에 인권위의 독립성은 충분히 보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무슨 삽질하는 소리도 아니고... 당시 국가인권위를 포함한 대부분의 정부조직들이 개편 되어 감축 된 것은 사실이나 그 폭은 2%에 불과하였고 인권위는 21%를 감축하였다. 사회권위원회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상대적으로 과도한 감축임이 분명하기에 정부가 국가인권위에 인적, 물적 지원을 하여야 한다는 권고인데, 정부는 자꾸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하니... 참... 다른 내용도 그 주제가 다를 뿐 수준은 비슷했다. 그래서 엔지오들은 다시 정부의 성명에 대해서 그 반론을 작성하여 위원회에 제출하였다. (관련 자료는 http://minbyun.org/?mid=act_02&document_srl=29319&listStyle=&cpage= 에서 찾을 수 있음.) 유엔 사회권위원회 권고이행 촉구 기자회견 사진 출처 - 필자 엔지오들은 약 2년에 걸쳐 엔지오 대안보고서와 심의참석을 준비하였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태도를 꾸준히 지켜봐온 결과 정부는 참으로 치사하고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릇 하나의 대상을 어느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그 대상은 판단이 될 텐데, 정부가 보는 한국의 사회권의 현실은 한국의 엔지오와 유엔사회권위원회의 생각과 너무도 다르다. 사실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면도 있을 것이고 그 정도가 어느 정도 비슷해야지 이야기도 통할 텐데, 정부는 한국의 사회권현실을 너무도 좋게만 보고 있으니, 좀 더 노력해야지 하는 위원회의 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고 유엔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형국이 되었다. 엔지오의 의견은 시작 때부터 무시했으니 그렇다하더라도 이제 유엔의 권고도 못 받겠다고 저러니 누가 이야기해야 하나? 딱 하는 짓이 미운 7살 아이의 행동인데 매를 들어야 하나?
2017-07-12 | hrights | 조회: 216 | 추천: 0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퇴행하듯 하는 세상일에 신경 쓰다 다시 병이 도질 것 같아서 뉴스고 신문이고 외면하고 산지도 꽤 되었다. 이렇게 눈과 귀를 틀어막고 사느라고 했지만, 너무도 엄청나고 황당한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니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세상 소식이 조금씩 새어들어 왔다. 용산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 동료교사들의 잇단 징계와 구속……. 그럼에도 나는 적당히 슬퍼하고, 적당히 분노하며 또 적당히 잊어버리며 오늘까지 살아왔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정말 돌아버리지 않고 내 밥벌이를 지키기 위해 ‘불편한 사건’들에 적당히 외면하며 살아왔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스스로를 힘없는 백성이라고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매주 열리는 교직원회의 시간,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 일방적인 전달시간도 더 이상 불편해하지 않는다. 매일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각종 공문에 대한 처리도 순순히 한다. 매일같이 강조되는 ‘방과 후 수업 강화’ 방침에도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 며칠 전까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홍보하던 ‘고교선택제’가 교육청의 한 마디 사과발표도 없이 ‘공문’ 한 장으로 하루아침에 ‘사실상 폐기’ 되었음에도 모멸감에 잠시 분개하다가는 그냥 넘어간다. 또 ‘학교의 자율’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포장된 교장의 교사초빙 및 유임권한 확대에도 그저 ‘학교가 무슨 사조직이냐?’고 몇 마디 궁시렁거리고는 끝이다. 얼마 전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치러진 일제고사에도 별 저항 없이 순순히 응한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가족끼리 체험학습을 신청한 학생에게, 일제고사 당일엔 허가해 주지 말라는 교육청 지시를 전하며 ‘무단결석’임을 경고한다. 뭐라 따져볼라 치면 무슨 금과옥조나 되는 것처럼 ‘공문’을 들이대며 ‘공문=원칙’의 공식을 신봉하는, 그 어떤 고민이나 이견도 허용치 않는 학교 관리자들 앞에서 이제 그냥 손을 들고 싶어진다. 이렇게 살다보니 그동안 나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던 영혼이 거추장스러워진다. 말로는 교육의 주체라고 하지만, 모든 교육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현장교사로서 의견을 말할라치면 하는 족족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 모가지를 댕강 잘라버리는 이 황당무계한 시대에, 높으신 분들이 짜놓은 교육과정에 주어진 교과서대로 가르쳐서 특목고나 대학에 잘 보내는 것만이 교사가 할 일이 되어 버린 지금, 우리에게 무슨 영혼이 필요한가? 초ㆍ중ㆍ고교생들의 학업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지난 10월 13일 전국 1만1천496개 초ㆍ중ㆍ고교에서 실시됐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리고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원 평가'를 통해 교사도 본격적으로 경쟁을 시킨단다. 우리 공교육의 왜곡과 실패, 사교육에 잠식당하게 된 원인이 교사들이 경쟁을 거부하고 ‘철밥통’을 차고 앉아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 정부 들어 더욱 가속이 붙어 내년쯤이면 이빨 뿐 아니라 손톱, 발톱 다 빠진 호랑이처럼 영혼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우리 교사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지금도 매년 이루어지는 학교평가에서 각 단위학교가 경쟁적으로 하고 있는 ‘실적 부풀리기’가 교사들 간에도 일어날 게 뻔하지 않을까? 나아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돌진하는 로봇이 되어가지는 않을까? 결국 로봇들이 가르치는 학교가 사교육을 이길 수는 있을까? 사교육을 이긴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로봇들이 가르친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그 아이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일까?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 과정이나 방법보다는 결과, 경제적인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천박한 사고방식이 만연해 가고 있는 지금, 그 물길을 더욱 거세게 부추기는 일련의 교육정책들을 보며 내가 교사로서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점점 거추장스러워지는 영혼을 과감히 내던져 버려야 하는 것인지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해 본다. 이런 황당한 고민을 하는 지금, 먼 옛날 흐릿한 기억 속 서부영화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백인들과 한바탕 추격전을 벌이던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달리다가 잠시 멈추고 자신이 내달려온 길을 한참동안 돌아보던 장면이 말이다. 그들이 멈춰 선 것은 미처 따라오지 못한 자신들의 영혼을 기다리는 것이라는데…….
2017-07-12 | hrights | 조회: 228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지난 7월26일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www.betulo.co.kr)에 <“북한에 퍼줬더니 핵개발”이라는 편견 혹은 거짓말>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7월7일(현지시간) 외신과 인터뷰하면서 밝힌 “북한에게 많은 돈을 지원했지만 북한은 결과적으로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대북지원 예산 현황자료를 분석해 밝힌 글이었다. 그 글은 다음뷰(Daum View)와 믹시(Mixsh)에도 올라갔다. (다음뷰와 믹시는 쉽게 말해 블로그 글을 모아서 한눈에 볼 수 있게 서비스해주는 곳이다.) 뜻하지 않은 상황은 11월30일 블로그 주소를 바꾼 뒤 <편견 혹은 거짓말>을 12월1일 아침에 다음뷰와 믹시에 다시 올리면서 일어났다. 뜻하지 않게 인기 글이 됐다. 이틀 동안 댓글이 29개가 달렸다. 믹시를 통해 내 글을 본 사람이 이틀 동안 2436명이었다. 다음뷰를 통해 읽은 사람은 13일 밤 10시 현재 3333명이고 148명이 내 글을 ‘추천’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인 ‘대북 퍼주기’ 논쟁을 다루고 있고 방문자수도 웬만큼 되고 댓글도 통틀어 54개나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댓글도 속내를 꽤나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이 많다. 이 정도면 최근 인터넷문화에서 시작해 우리 사회의 토론문화의 한 단면을 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뷰로 내 글 읽은 33%가 50대 이상 가장 우선 눈에 들어온 건 인터넷은 더 이상 젊은이 전유물이 아니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이다. 다음뷰를 통해 어떤 사람들이 내 글을 봤는지 확인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40대 이상, 수도권 거주 남성’이 대다수였다. 3333명 가운데 50대 이상이 33%나 됐고 40대도 28%나 됐다. 30대는 24%, 20대는 13%였다. 한국이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일극 패권사회’라는 점은 내 글을 읽은 사람 중 서울이 44%, 경기가 26%, 인천 7%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수도권이 77%나 된다. 부산이 7%, 광주 6%라는 점과 극명한 차이다. 나 자신 서울시민이지만 정말 무서운 ‘서울 제국’이다. 댓글을 하나씩 다시 읽어봤다. 뭐라고 해야 할까. 한숨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지금도 최고의 사설로 꼽는 게 1992년 대선 직후 한겨레신문 사설이었는데 그 글은 “국민들은 그 수준에 맞는 민주주의를 가진다.”였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정부가 보여주는 민주주의 수준은 딱 우리 수준이라는, 다소 뼈아픈 결론이 가능하다. 그 점은 댓글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절실히 느낀 점이기도 하다. ●여전히 강고한 ‘퍼주기’ 프레임 댓글 54개 중에 29개가 내 글에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건 좋다. 나를 실망시킨 건 욕이 난무하고 아전인수 격인 비방이 넘쳐난다는 점이었다. 그런 글들의 또 다른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건강한 대화를 이어갈 만한 글은 참 적다. 나를 가장 실망시킨 건 ‘식량을 퍼줬으니까 식량 걱정 없이 무기 개발했다’ 혹은 ‘북한은 빨리 망해야 한다’같은 도대체 깊은 생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장들이었다. 어느 댓글에서 지적했듯이 ‘돈 줬다고 하다가 돈 안줬다고 하니까 이제는 식량걱정 없어 무기 개발했다’는 식이다. “차라리 전쟁이라도 나야 한다”거나 “북한은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면 한숨만 나온다. 박자와 대구도 잘 맞지 않는 욕설은 그나마 언급할 가치도 없겠다. ●예산은 숫자가 아니다 누구처럼 인터넷실명제를 하면 사이버문화가 발달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인터넷 익명성 보장은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이버세상에서 우리의 수준이 딱 이 정도라는 점은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할 듯하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난 애초 대통령이 말한 ‘퍼줬더니 핵개발’이란 말이 근거가 없고, 북한에 지원한 건 현물이었고, 현물의 액수도 퍼줬다고 하기에 민망하다는 점을 무척이나 건조하게 통계수치를 인용해 밝혔다. 그런데 왜 내 글을 문제 삼는 그 많은 댓글 가운데 내가 지적한 세 가지를 재반박하는 글은 왜 하나도 없는 걸까. 왜 ‘그래도 퍼주기’ ‘그 돈 아껴 핵개발’ ‘북한에 굽신굽신’ 같은 내 글 주제와 상관없는 비난만 넘쳐날까. 난 ‘건조’하게 ‘예산수치’만 말했을 뿐인데. 여기서 댓글을 들여다보며 새삼 깨닫는 가장 큰 교훈. ‘예산’은 ‘숫자’가 아니다. 예산은 ‘정치의 최전선’이며 ‘정책의 최전방’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99 | 추천: 0
장윤미/ 국민대 학생   대학을 졸업한다.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다 서울엘 왔고 휴학도 했고 전과하느라 놓친 이수학점을 위해 한 학기를 더 다녔다. 드디어 졸업한다. (사실 아직 기말시험을 보지 않은 터라 약간 불안은 하다만) 어쨌든 어떻게든 이번엔 졸업해야 한다. 하긴 요즘은 대학을 졸업해도 졸업한 게 아니라더라. 기본 1년은 취업준비생으로 살아야 한단다. 대학생활 남은 건 빚뿐이라, 라고 말하기는 싫다. 빚지는 대학생 얘기야 이미 흔하지 않은가. 대학생활이야 후회는 없지만 그에 비해 감당해야 할 등록금이 너무 크니까, 대학생활마저 그만한 값어치를 했나 하고 따져보게 된다. 그래도, 내게 대학생활은 소중한 시절이었다. 2년 전, 제 때 대학 들어가고 휴학 없이 4년을 깔끔하게 다니고 졸업한 내 친구는, 취업이 안 되니 영어공부를 한답시고 상경을 했다. 만날 때마다, 소화도 안 되고 잘 체한다고 말했었다. 취업 때문에 심적 부담이 크구나 싶었지 내 일 같진 않았다. 사실 오만했다. 그게 ‘나는 잘 취업할 거니까’가 아니라, ‘취업에 목매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규정하는 88만원 세대 담론에 휩쓸리기도 싫었고, 내몰리듯 대학 왔고 거기에 목매어서 다시 수능을 친 스스로에게도 속상한데, 떠밀리듯 취업 준비하고 싶진 않았다. 살아가는 게 게임하듯 스테이지가 있는 게 싫었다. 학생으로 살아가다 직장인이 되고 다음 단계는 결혼, 이런 뻔 한 시나리오 말이다. 영어공부를 하고 싶었지 토익준비를 하고 싶진 않았고, 기업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땐 엄마와 싸워도 당당했고 내 소신에 대해 떵떵대며 말했다. 시각을 더 넓히자 싶어 내가 못 보는 것들을 쫓아서 여기저기 쏘다니고 사람들과 일을 꾸미며 살았다. 그게 결국은 내 취업에까지 도움이 될 거라고도 믿었다, 솔직히 그랬다. 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사는 게 결국은 더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 5월 2일 보라매 공원에서 '등록금 인하와 청년실업 해결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이제 졸업한다. 지금 내 심정이 어떠냐 하면, 사실 갈팡질팡하는 내가 좀 속상하다. 후회는 없지만, 한편으론 내가 다른 방식으로 맹목적이었다는 생각도 한다. 이미 먹어버린 빨간 약을 어쩔 수는 없고 그렇다고 자신감은 떨어지고. 믿었던 것들이 흔들리고 자꾸만 편하고 안정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새록새록 자란다. 자기 합리화 해버리고 싶고 그래서 자책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확신은 없더라도 내가 좀 더 믿고 끌리는 쪽으로 살다보면 뭐든 확신할 수 있을 거라고, 적어도 나를 배반하며 살진 말자고 생각했건만. 살아가는 거 어차피 ‘불안’한 거라면 나는 안정에 반대되는 뻔한 ‘불안’말고 다른 질감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리라 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뻔하게 불안해진다. 불안하고 불안해하다 늙고 병들어서 힘들지 않기 위해 지금 이러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문제야 사회를 탓하고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일이라고 외치고 싶지만, 또 그건 아주 허무해지는 일이다. 쉽게 허무해지지 않는 사람이야 사회운동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만큼의 뚝심도 사회제도를 바꾸는 일에 대한 큰 열정도 없는 것 같다. 정말 현실적인 일에 부딪치면 어디 원망도 누구 탓도 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니까 당장 몇 달 후면 학자금 대출 상환이 시작되는데 말이다. 자꾸 그걸 외면하려고만 하다보면 생각과 현실과의 괴리만 커지고 더 무기력해지는 법이다. 차라리 몸을 굴려 알바라도 해서 돈을 버는 게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 내 삶에 후회해? 또 그건 아니다. 대학 졸업 앞에서, 지금 이 문턱을 어떻게 넘느냐가 내겐 너무 절실하다. 어정쩡하게 흘러가다 보면 서른이 되었을 때 지금과 똑같은 불안으로 고민할 게 뻔하니까. 아마 그땐 결혼 문제가 더해지려나. 십 년이 지나도 지금과 같은 불안을 느끼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현실적으로 닥친 이 문턱을 어떻게 넘느냐가 절박한 내 문제다. 빚은 천 만 원이 넘고 당장 원금상환은 시작될 거고, 이러다가 안락한 집하나 못 갖고 살 건데, 나는 자꾸 칭얼대고 탓 하고 서글퍼지기만 하다만, 그렇다고 모두가 말하는 그런 현실적인 어른이 되기는 싫고, 무력한 청춘도 되기 싫은데, 그렇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라고 되뇌일 수밖에. 아주 좋아하는 말이 있다. “타인의 행복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부디 너의 행복을 거머쥘 수 있도록 보람찬 나날이 되어야 해. 꼭.” 처음 서울에 와서 사회에 비판적인 시선도 갖고 인생에 대한 고민도 많을 때 아주 많은 힘이 됐던 말이다. 오랜만에 되뇌어 본다. 그때와는 또 다르게, 더 영리하고 지혜로운 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2017-07-12 | hrights | 조회: 207 | 추천: 0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10년 동안 다섯 번이나 구속되어 7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의 나이 벌써 오십이 넘었다. 체포와 구속이 난무하는 노동 현장이지만 이렇게 한 사람이 연달아 다섯 번이나 구속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그는 유명한 재야인사도, 영향력 있는 노조의 위원장 출신도 아니다. 얼마 전 너무나 배고픈 나머지 경로당에 들어가 냉장고에서 멸치 한 웅큼 꺼내먹은 30세 청년에게 징역4월이 선고되었다. 동종전과로 3차례나 구속된 전력이 있고 ‘누범기간’에 범행을 했지만 정상을 참작해서 많이 봐 준게 이 정도라고 한다. 흉악한 파렴치범도 아닌데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누범에 대해 이렇게 엄격하게 처벌을 해도 재범율은 늘상 50%를 상회한다. 강성철 씨 또한 누범기간이라는 이유로 무리하게 구속시켰다. 내가 처음 그를 만난 건 2003년, 한성여객 파업을 지원했고 화물연대 파업 당시 민주노총 앞에서 불심검문을 하던 경찰에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였다. 그는 밖에서도 하기 힘든 단식투쟁을 감옥에서 60일 가까이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영등포구치소에서 한 해 동안 다섯 명의 재소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파장을 염려한 소 측은 쉬쉬하면서 적당히 덮어 버리려 했다. 밥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는 등 위생상태도 엉망이었다. 강성철 씨를 비롯 당시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양심수들은 이 사실을 알려내면서 집단단식에 들어갔고, 여러 인권단체들이 가세해 끈질기게 투쟁한 결과 법무부 장관이 직접 사과를 했고 교정행정에도 일대 변화가 오게 된다. 하지만 곧 기관의 보복이 뒤따랐다. 단식투쟁이 길어지면서 포기하거나 실신하여 병원으로 실려가는 사람도 생겨났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투쟁을 사수했다. 그러다 소 측의 미움을 사 얼토당토않게 “교도관 폭행혐의”로 고소를 당해 형량이 추가되었다. 언제나 운동의 원칙에 충실하고자 했고 비타협적인 투사로 알려진 그였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정이 많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 그가 노동운동을 시작한 건 13년 전 한 택시회사에 취업하면서부터였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병약했던 형님이 목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자, 중학교를 다니던 그는 집안형편을 생각해 학교를 그만두고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워 정비업체에 취직했다. 그런데 사고가 나 한쪽 다리를 다치게 되었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택시 운전을 하게 된 것이다.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택시업체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비리의 온상이다. 경영 능력도 없는 지역 토호, 심지어 조폭 두목들까지 업체를 차려서 투자는 하지 않은 채 정부 보조금과 노동자들의 등골을 뽑아내면서 이윤을 챙겨 간다. 노동조합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장들과 한 통속이 돼 있어 상황은 좀체 달라지지 않는다. 강성철 씨는 이런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꾸기 위해 활동하다 결국 해고를 당했다. 명백하게 노조활동을 빌미로 한 부당해고였지만 법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해고된 이후 다른 회사로 가 보려고도 했지만 업계에 만연돼있는 ‘블랙 리스트’ 때문에 갈 곳이 없었다. 그는 이후 해고노동자들의 모임인 민주노총전국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약칭 전해투)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장기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해 왔다. 2006년 9월에는 “노사관계로드맵” 국회통과에 야합한 한국노총을 항의 방문했다가 네 번 째로 구속되어 1년6개월의 실형을 살고 지난 해 4월 출소하였다. 출소한 후 건설현장에 나가 일하면서 구속기간 동안 인연을 맺어온 구속노동자후원회(약칭 구노회) 사무실에 나와 틈나는 대로 자원 활동을 했다. 올해 6월부터는 인권팀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상근활동을 시작했다. 오랜 감옥 경험 때문에 교도소(구치소)의 문제점이나 구속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적절한 조언들을 많이 해주었다. 컴퓨터를 잘 다룰 줄 몰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강성철 씨는 구노회 활동을 신명나게 했다. 틈틈이 시간을 내서 야간학교도 다니면서 미래에 대한 꿈도 새롭게 다져갔다.   구속노동자후원회 강성철 인권팀장 사진 출처 - 구속노동자후원회 험난한 투쟁 현장에서 몇 발 떨어져 구속노동자들을 후원하는 인권활동에 전념하게 되었으니 구속과의 인연도 이젠 끝 일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쌍용차 점거파업에 대한 정부의 살인적인 진압이 시작되고 연행자가 속출하면서 바쁘게 면회를 다니던 그는 평택경찰서에서 주차문제로 경찰과 시비가 붙었고, 금속노조 집회현장에서 사복을 입고 채증하던 경찰에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구속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사소한 이유로 구속을 시키다니....... 변호사는 ‘누범기간’이라 보석도 집행유예도 어려울 거라고 한다. 게다가 1심을 맡은 담당 판사는 너무나 노골적으로 반노동자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쌍용차 파업 관련 재판에서 공소장에 나와 있는 혐의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서 구속시키고 실형을 선고한 사례도 여러 차례 있다. 강성철 씨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위해를 가한 적이 없다. 단지 인권을 무시하는 경찰과 기업주들의 횡포에 분노할 줄 아는 남다른 감수성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따뜻한 마음-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생활신조-이 있었기에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걸 마다하지 않았고 다섯 번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사람은 “오직 정의감에 어긋날 때만 분노로 반응하며 모든 혁명의 역사에서 입증되었듯이....... 상층 계급의 사람들이 발단이 되어 억압받는 자와 짓밟히는 자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녀의 진단에 따르면 “참을 수 없는 비극”에 대해 “초연함과 냉정함”을 유지하는 사회야말로 병이 들었거나 위험한 사회다.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선 강성철 씨와 같은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의 격리를 원하는 사람은 비리에 쪄든 이명박 정부와 기업주들밖에는 없는 것 같다. (강성철 팀장이 하루 빨리 석방될 수 있도록 뜻있는 여러분들의 힘을 모아주십시오!)
2017-07-12 | hrights | 조회: 276 | 추천: 0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세종시 논란이 뜨겁다. 정부와 지방 정부, 해당 주민들, 국민 여론, 정부 여당 내부, 정당 간 등 나라가 들썩거린다. 세종시와 관련해서는 참여정부 시절 수도권 집중 억제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신행정수도 정책으로 처음 등장했고, 이후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 판결로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 정책으로 수정되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이 정책을 대폭 수정하려고 한다. 이러면서 시끄러워졌다. 나는 세종시 정책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런데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말 바꾸기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현 대통령은 행복도시 정책을 계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행복도시가 안 될 거라고 하는데 자신은 ‘꼭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역설했다. 공식 석상에서 약 열 다섯 차례의 세종시 공약 이행 발언을 해 왔음에도 최근 말을 뒤집었다. 그리고 행동대장으로 정운찬 신임 총리를 내세우고 뒤에 숨어 있다. 더불어 작년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 때도 느꼈지만, 역시 이번에도 해당 정부기관에서는 정책변경에 대한 근거 자료를 확 바꿨다. 현 정부 들어와 세종시 공약만 수정, 폐기된 것은 아니다. 대학 등록금 반 값, 통신비 인하, 신혼부부 아파트 공급, 저소득층 복지예산 감소 등 하나 둘이 아니다. 더불어 경제성장률 7%, 임기 내 국민소득 4만 불과 7대 강국 진입, 주가 5,000포인트, 300만 명 일자리 창출도 결과적으로 헛공약 남발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미국에서 느닷없이 서울-평양 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쇼도 씁쓸한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렇게 공약 폐기와 헛공약 남발을 일삼는 이명박 정부는 ‘나들섬 프로젝트’ 또한 올 해 슬그머니 간판을 내렸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은 강화도 북서쪽 한강하구에 약 900만평(여의도의 10배) 크기로 복토하여 인구 20만 명 규모의 국제 비즈니스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밝혔다. 동북아 물류거점 확보와 남북경제협력의 터전으로 만든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지난 정부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는 개성공단의 확대·발전을 경계하였다. 그러나 통일부의 2008년 계획에도 존재했던 나들섬 구상이 2009년에는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현인택 현 통일부장관이 나들섬 구상의 핵심 인물이었음에도 말이다. 열흘 전에 강화도 평화전망대를 다녀왔다. 한강하구를 건너 정면으로 북한 황해남도 당두포가 자리하고, 북서쪽으로는 정부가 구상했던 나들섬이 보였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섬 가운데가 잘려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는 서해 바닷물로 인한 조수 간만의 차와 한강하구 유역의 물살 흐름이 유동적인 것에서 기인한다. 정부가 기존 섬에 엄청난 토사를 쏟아 부어 900만평의 섬으로 만든다 해도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의도적으로 개성공단 2단계 발전을 축소하고, 현 남북관계의 냉랭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정책이었기에 폐기되었다고 보여진다. 한강하구의 조수 간만 차이로 나들섬이 두 섬으로 나뉘어졌음 사진 출처 - 필자 이렇게 ‘빚 좋은 개살구’ 대북정책을 일삼는 이명박 정부가 지난 9월, 미국에서 ‘그랜드 바겐’ 정책을 제시했다. 결국 북핵 폐기와 북한 체제 보장을 동시에 일괄적으로 타결하자는 정책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책이 과연 현실성이 있냐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두 비현실적이거나 정치적 위장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조차 정운찬 총리와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그랜드 바겐 정책에 대해 엇갈린 해석을 내놓을 정도로 다듬어진 정책이 아니다. 남한 정부는 최근 북한의 대남 유화적 태도를 엄격한 상호주의를 펼친 대북정책의 치적이라고 홍보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남북 교류협력사업 진행에 대한 승인을 불허하면서 기다림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그랜드 바겐 정책을 ‘비현실적이며 얼빠진 제안’이라고 부정적으로 일축하였다. 결국 행동 대 행동 원칙 해법이 아닌 그랜드 바겐이라는 ‘한 방 해법’은 지난 정부와 다른 대북정책을 내놓겠다는 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한미 간에 아프간 파병, 그랜드 바겐, FTA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그랜드 바겐이 미국 대북정책과 유사성을 갖추고 있다고 수사적 발언으로 대국민 홍보를 하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다음 달 보즈워스 미국 대북 특사의 평양 방문으로 개최되는 북미회담의 결과는 그랜드 바겐 원칙과는 멀어 보인다. 일괄 타결이 아니라 행동 대 행동 원칙 속에서 북미관계의 진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더불어 일본 하토야마 총리도 곧 방북하겠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결국 북핵해결에 있어 남북관계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소외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분명하다. 이명박 정부는 ‘one shot deal’이라는 그랜드 바겐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남북관계를 조금씩 진전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남북이 주도해가는 분위기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남북이 미국, 중국, 일본 등과 공동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결국 그랜드 바겐 정책으로는 더 이상 한국이 설 자리가 없다.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 쇼는 멈춰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07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나는 기아 타이거즈의 팬이다. 지금은 기아 타이거즈가 됐지만, 그 이전인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의 팬이었다. 순천이 고향인 탓이 크긴 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타이거즈 소속 야구선수들은 늘 우상으로 존재해왔다. 더구나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절, 호남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던 시절 타이거즈는 전성기를 누렸으니 더 그랬을 법도 하다. 해태 타이거즈를 5월 광주와 연관 짓는 묵시록적 경향은 비단 황지우 시인 세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열광하게 하는 무언의 힘이 분명 존재했다. 야구장에서 타이거즈 선수들이 날리던 한방은 그야말로 카타르시스였다. 그러던 타이거즈의 야구가 기아로 넘어가면서 영 맥을 못 추었으니 팬들은 무언가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정치적으로는 해빙기가 아니었던가. 때문에 타이거즈 팬들에게 올해는 최고의 해였다. 그토록 열망하던 열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V10’을 기어코 달성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나지완의 역전 홈런이 있고 나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것은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해태 시절부터 선수로 뛰었던 이종범의 눈물은 팬들의 가슴 속에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하필 또 다시 정치적 상황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광주에서 근무하고 있는 터라 올해 야구장을 여러 번 찾았다. 기억 속 저편에 자리 잡고 있던 카타르시스의 열망도 있었다. 올해 유난히 잘 나가는 타이거즈의 야구를 보며 소주 한 잔 하는 즐거움은 서거정국의 암울함을 잊게 하는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내 정치적 지향과는 거리가 있는 얘기지만 ‘야당이 되니까 타이거즈 야구가 살아난다’는 말은 올해 내내 술자리의 좋은 안주였다. 다만 이러한 흥겨움 속에서도 늘 불만이었던 것은 타이거즈가 홈구장으로 쓰고 있는 무등야구장의 형편없는 열악함이었다. 만 5,000석밖에 안 되는 관중석은 너무 비좁고 불편하다. 좁은 복도에 편의시설도 제대로 없다. 그라운드 사정은 최악이고 선수들은 부상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지은 지 40년이 넘는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열 번의 우승이라는 대단한 역사를 썼으니 그저 신기한 일이다. 이런 타이거즈의 선수와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바로 새로운 야구장을 짓겠다는 박광태 시장의 약속이다. 타이거즈가 페넌트레이스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부터 슬슬 나오기 시작하더니 한국시리즈 직행이 확실시되자 기정사실처럼 소문이 흘러나왔다. 급기야 한국시리즈 우승 소식이 전해지자 광주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운 야구장을 짓겠다고 공언하고 나왔다. 포스코와의 돔구장 건설에 대한 양해각서 체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광주 시민들과 타이거즈의 팬들도 소원하는 것이었으니 문제될 것은 없다.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돔구장’이어야 하는 것일까? 새로운 야구장이 돔구장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이는 내년에 있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 둔 ‘정치쇼’라는 지적들이 일고 있다. 3선을 노리는 박광태 시장과 새롭게 출사표를 준비 중인 인사들과의 정치적 공방은 분명 가열될 것이다. 어찌 선거와 관련성이 없겠는가마는 사실 이는 정치권의 관심사일 뿐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돔구장이 합리적인 결정인가이다. 광주시가 포스코 건설측과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돔야구장 신축문제가 지역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낡고 오래돼 원성을 사고 있는 무등경기장 야구장. 사진 출처 - 광주드림 우선 결정과정에서 광주 시민들과 타이거즈의 팬들, 구단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양해각서가 체결되기까지 광주시의 일방적인 결정이 있었을 뿐 사업설명회나 공청회는 있지도 않았다. 그 흔한 여론조사조차 없었다. 시민들의 염원, 팬들의 하소연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업이 철저한 밀실행정에서 이루어졌다. 새로운 야구장에 대한 소문에서 돔구장으로의 확정까지 걸린 시간은 검토조차 이루어졌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러한 행태는 야당이 그렇게도 비난하던 현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꼭 닮았다. 또한 돔구장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업이다. 일반구장이 1,000억이면 가능하지만, 돔구장은 4,000억 정도가 소요된다. 물론 민간에 의한 기부체납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반구장으로 지을 경우 광주시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3-400억의 재정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단순 계산일뿐이다. 개발업체는 ‘공’으로 기부체납을 하는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대형 상업시설의 입주와 주변 상권에 대한 권리행사로 광주시의 소상공인에게는 오히려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연간 100억 원의 유지비도 문제다. 그런데도 시, 시민, 지역기업, 소상공인 공동출자 등 다른 방식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개발방식도 문제다. 돔구장 주변을 스포츠·레저 중심의 신도시로 개발하겠다고 한다. 또 부대시설을 짓고 경기장에서 일 년 내내 문화이벤트를 해서 관광자원으로 쓰겠다고 한다. 인구 140만에 불과한 광주시는 이미 주택공급이 넘쳐나고 있다. 새롭게 조성된 신도시 지역의 미분양 사례는 속출하고 있고, 지난해는 아파트 분양시장이 최악의 불황을 겪어야 했다.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돔구장을 위한 신도시라니 이것 또한 ‘삽질’하고 보자는 현 정부의 모습을 빼다 박았다. 또 인구 규모나, 야구장이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 들어서 접근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수익성에도 의문이다. 외곽도 아닌 광주월드컵경기장과 일본 돔구장의 적자운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야구장을 환경과 바꾸어야 하는지도 회의적이다. 시민들의 숙원이었고, 나를 포함한 타이거즈 팬들의 염원이지만 자연녹지를 훼손하면서까지 추진할 일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광주에 야구돔구장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 인천 문학구장 정도의 일반야구장이면 훌륭하다. 좀 더 나은 환경의 야구장에서 타이거즈 팬임을 긍지로 느끼며 야구를 즐기고 싶다는 광주 시민들과 팬들의 소박한 꿈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양해각서라는 것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아닌가. 오히려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는 ‘정치쇼’이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이지 도시락이나 싸야겠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27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 뤼(Frank La Rue, 이하 특별보고관)는 지난 10월 13~14일 동안 한국에서 열린 “동아시아 지역의 사이버 표현의 자유 현황과 과제”의 국제심포지엄과 “한국의 표현의 자유 현황과 유엔특별절차 활용방안” 국제 워크샵 참석차 한국을 방문하였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제도)는 유엔인권메커니즘 중 하나로써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인권침해사항이 발생하였을 때 피해 당사자 또는 피해 당사자와 연관된 개인이나 단체에서 특별보고관에게 관련 사항을 알리고 이에 대해서 개입을 요청하면, 특별보고관은 그 사항에 대해서 당사국에 관련 사항을 질의하고, 필요시 당사국에 방문하여 조사방문을 수행할 수도 있고, 이에 대해서 유엔차원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번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한국 방문은 한국의 표현의 자유 침해사실에 대한 보고관으로서의 조사방문이 아니라, 아시아 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와 민변을 포함한 인권시민단체들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한국의 표현의 자유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하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표현의 자유 사례에 대해서 언급을 하거나 한국 정부에 대한 어떠한 코멘트도 할 수 없는 순수 학술차원의 방문이었다는 점에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사진 출처 - 필자 그런데, 10월 13일자 동아일보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떴다. "4박5일간 진보단체들만 접촉, 일정 안맞아 정부면담 거절, "한국 인권상황 왜곡전달" 우려" 그리고 이어 조선일보에서는 이 기사를 받아서 "좌파단체들만 면담… 한국 인권상황 왜곡 우려" (역시 조선이 한수 위, 동아는 진보인데 그대로 받아 베낀 조선은 헤드라인에 좌파, 이 미세한 차이가 어쩌면 조선과 동아의 차이일수도 ^^)를 내보냈다. 내용은 간단하다. 특별보고관이 한국 진보단체만 만나고, 법무부 면담을 거절했고, 그러니까 진보이야기만 들으면 편향될 수 있다라는 이야기이다. 어처구니없는 보도와 관련해 주최측은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였으나, 다음날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서 "유엔 표현자유 특별報告官과 자유 대한민국의 명예" 를 통해서 "좌파 이념에 입각해 민주질서를 흔드는 불법·폭력 집회를 주도하거나 옹호한 사람들의 얘기만 듣고 대한민국의 인권상황을 세계에 전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우리는 유엔 특별보고관으로서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특별보고관의 자격도 인정할 수 없고, 이 초청을 추진한 세력은 한국국민의 명예를 실추시킨 반국민집단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하지만 프랭크 라 뤼 보고관이 만난 개인과 단체는 소위 동아, 조선이 찍고 싶은 진보, 좌파단체 뿐만 아니라 외교통상부 관계자와 국가인권위 관계자들, 고려대학교 로스쿨 관계자들도 있었다. 아주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된 기사이기에 좀 더 멋진 논리로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른 이유를 찾자면, 설령 고려대학교와 외교통상부, 국가인권위 담당자들을 만나지 않았다고하여도 이 심포지엄이 특별보고관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그리고 아시아 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가 추진했던 행사임에도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신문사와 반대편에 있는 단체들의 행사를 진보 또는 좌파로 맞추고 싶은 그들의 비합리적, 비상식적 과도한 의미부여에 있다는 것이다. 참가자들과 초청자는 조선과 동아가 믿고 싶어 하는 단체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법무부의 태도도 정말 우습다. 법무부는 이 사실이 언론에 의해 조금 이슈화되자 보도자료를 통해 법무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빠져나가려 했다. 보도자료의 내용을 보면 “1개월 이상의 지속적 면담 요청에도 면담 일정 조정 무산” 또한 “'09년 10월 7일 특별보고관을 법무부 차원에서 면담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 외교통상부에 관련 사실을 전달함”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외교통상부에서는 덜컥 특별보고관과 15일에 면담을 하였다. 이건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이는 법무부가 일정조정하다가 특별보고관측과의 면담이 무산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말 못할 또는 말 할 필요도 없는 이유 때문에 일정이 안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왜 동아와 조선에게는 특별보고관이 정부 측은 안 만나고 진보, 좌파단체만 만나려고 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지 도통 모르겠다. 사실 그 특별보고관이 누구를 만날지는 특별보고관이 결정을 한다. 특별보고관이 이 행사를 주최하는 주최측의 꼭두각시가 아닌 이상 법무부의 아무개를 만날지 외교부의 누구를 만날지는 자신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고, 주변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았던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특별보고관 한국 방문일정 조율 중에 특별보고관이 가능하다고 제시한 날짜에 법무부측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외교부는 가능하다고 했기에 면담이 되었던 것이고 이는 그 자체가 특별보고관이 동아와 조선이 말하는 진보좌파단체만 만나려는 의도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건 기본적인 사실관계일텐데, 법무부는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자신들은 노력했지만 특별보고관이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전체행사의 코디 중 한 명으로 활동했던 개인이 지켜본 프랑크 라 뤼 특별보고관은 한국 방문동안 거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고, 동아와 조선이 걱정하는 좌파 빨갱이만 만난 게 아니고, 외교통상부, 국가인권위, 고려대학교, 심포지엄에 참석한 정부담당자, 심포지엄과 워크샵에 참석한 수많은 개인, 학자, 엔지오활동가, 정부관계자, 국경없는 기자회 관계자, 국제앰네스티, 포럼아시아, 심지어 동향인 과테말라 유학생도 만났다. 사진 출처 - 필자 일정 중 특별보고관도 동아와 조선의 기사를 접했다. 그랬더니 한국 기자들과의 기자간담회를 자청하면서, 그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기사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하면서 “나는 누구하고도 만날 수 있고, 만나고 싶다. 심지어 그 기사를 썼던 (동아, 조선) 기자들도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내년 즈음에 한국에 정식으로 조사방문을 희망한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사실 내가 보는 한국의 표현의 자유는 인권적인 측면에서 전 정권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후퇴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그런데 특별보고관은 동아, 조선일보를 통해서 한국의 표현의 자유 현황에 대해서 우리가 이야기 하고 싶어 했지만, 학술방문이라는 한계 때문에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진정한 표현의 자유 실상과 한국 메이저 언론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정 중 자신의 방문이 조사방문이 아님을 무던히 강조하던 특별보고관에게 이번 일이 한국이라는 외형적 인권 발전국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를 알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한편으로 동아와 조선이 없었다면 내년의 한국 조사방문 희망사항도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2017-07-12 | hrights | 조회: 218 | 추천: 0
- 연극 ‘완득이’를 관람하며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신종플루의 확산에 대한 우려로 학교행사가 취소되고, 학급단위로 체험학습을 하기로 결정된 순간 선생님은 지난 여름 가족들과 함께 봤던 연극 ‘완득이’를 떠올렸단다. 지방공연 중이라는 극단 측과 협의 끝에 결국 우리 학교 학생들만을 위한 공연을 약속받았고, 너희들의 의견은 한 마디도 물어보지도 않은 채, 덜컥 예약까지 마쳐 버렸다. 놀이공원 타령을 하며 입이 한 뼘이나 나와 있던 너희들의 불만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이렇게 대학로에 입성하게 되었더랬지. 공연 예약을 해놓고도 걱정이 많았단다. 대부분 유복한 집안에서 왕자님 공주님으로 자라온 너희들이 협소하고 어두침침한 지하의 소극장 연극을 잘 감상할 수 있을까? 너희와는 많이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 사회 약자들의 삶을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이런 염려를 뒤집어 보면, 사실 그것이 바로 선생님이 이 연극관람을 굳이 밀어붙인 이유였단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거의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는 천진한 너희들, ‘글로벌 시대’에 뒤지지 않기 위해 세계지도를 가슴에 품고 교과공부 외에도 텝스와 토플을 공부하느라 주변을 돌아 볼 여유조차 없는 너희들에게 도심 한 구석 가난한 달동네 옥탑방에 사는 우리 이웃의 삶을 보여 주고 싶었다. 지하철에서 단속원을 피해가며 천 원짜리 스타킹을 파는 난쟁이 아버지와, 가난한 외국인에게 인심 사나운 한국 땅에서 ‘그 짝 사람’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식당 종업원으로 살아가는 베트남인 엄마의 일상을 통해 장애인, 이주노동자들의 팍팍한 삶과 우리 사회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고 싶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움츠리고 있었던 주인공이 주변 인물들과 좌충우돌하며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은, 상황은 다르겠지만 가족 또는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과 아픔(성장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을 겪고 있을 너희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완득이는 친구들의 놀림감인 난쟁이 아버지를 자신이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또 ‘쪽팔리고 창피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베트남 엄마의 존재도 결국은 받아들이게 된다. 킥복싱에서도 3전 3패를 당하지만, ‘아유, 쪽팔려!’하고는 금세 다시 일어선다. 완득이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감동은 자신을 움츠려들게 했던 비루한 현실과 패배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실망하고 아파하지만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건강함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당당하고 세상에 당당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연극 <완득이> 스틸 모음. 완득이는 현실을 긍정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쳐 나가는 건강한 청소년의 표상이다. 사진 출처 - 김동수 컴퍼니 이 세상에 혼자 커가는 사람은 없단다. 힘든 현실 속에서도 상처 난 가슴을 보듬어 주고 온정을 나누어 주는 가족과 친구, 이웃이 있기에 우리는 삶을 지탱하고, 꿈도 가꿀 수 있는 것이란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완득이의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은, 조폭선생처럼 굴지만 가슴가득 완득이를 사랑하는 담임 ‘똥주’와 베트남 엄마, 난쟁이 아버지의 진정어린 노력, 또 여자친구 윤하의 관심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것은 ‘똥주’선생님처럼 자신의 안락과 풍요로운 삶은 접어둔 채, 어려운 이웃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꽃보다 아름다운’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란다. 끝으로, 어찌 보면 초라할 수도 있는 소극장에서 혼신의 연기로 우리를 웃기고 울리는 배우들의 뜨거운 열정을 보여 주고 싶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있단다. 물질적인 안락함과 풍요와는 상관없이, 각기 다른 자신들의 ‘꿈’을 가꾸기 위해 땀을 흘리면서 행복을 만들어 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나의 이런 바람이 과한 욕심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것들 중 하나만이라도 들어맞았다면 선생님은 대만족이란다. 막상 연극이 시작되면서 너희들은 놀라울 정도로 빨려 들어갔지. 열정적인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었겠지만, 관람하는 내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암전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도 많이 행복했다. 연극이 끝나고, 재잘거리며 극장을 나오는 너희들 얼굴마다에 피어오른 환한 미소는 가을햇살보다 더 눈부시고 예뻤단다. 애초에 가졌던 걱정들이 기우였음을 확인하면서 너희들이 가진 가능성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나의 편협함을 잠시 반성해 본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좀 더 가지게 된다면 학업에 대한 중압감에 짓눌려 있는 너희들의 몸과 마음도 크게 기지개를 켤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아! 우리가 대학로 소극장에서 만났던 완득이를 세상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거든, 친구 윤하처럼 믿어주고 좋아해 줄 수 있겠지? 그리고 너희가 가는 길에 무수히 맞닥뜨리게 될 장애물 앞에서 완득이처럼 잠시 동안 무릎이 꺾일지언정 영영 엎어지지는 않을 거지? 금세 털고 일어날 거지? 누가 뭐래도 너희 스스로를 사랑하며 당당할 수 있겠지? 주변의 이웃과 벗들의 시린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속 깊은 어른으로 자라줄 거지?
2017-07-12 | hrights | 조회: 212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아내가 결혼했다? 출근을 할 때 문 앞에서 나를 배웅하는 건 이제 아내가 아니라 갓 두 돌이 된 아들 몫이다. 아들은 처음엔 가지 말라며 울기도 하고 했지만 요샌 인사를 꾸벅 한 다음 내가 집어 온 조간신문을 받아들고 엄마에게 간다. 그 틈에 얼른 현관문을 닫고 출근을 한다. 아내가 잠에서 깨는 시간은 아들이 눈을 뜨는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아내는 곧바로 아들을 위해 아침을 준비한다. 아들은 아내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아침을 먹는다. 내 것까지 신경을 쓰게 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시간대가 맞질 않기도 해서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지 꽤 됐다. 아내와 나는 문자메시지를 자주 주고받는 편이다. 내용은? 절반 이상은 아들에 관한 얘기다. 퇴근 후 아내와 나누는 대화는? 역시 절반 이상은 아들이 주제다. 그 중에서도 아내는 어쩌면 꺼내는 거의 모든 얘기가 아들과 연관될 거다. 우리는 오늘 아들이 뭘 하고 놀았는지, 낮잠을 몇 시간이나 잤는지, 어떤 이쁜짓을 했는지, 뭘 얼마나 먹었는지 하며 대화를 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나 할까. 아들은 제 엄마 아빠가 가까이 붙어 있는 걸 꽤나 싫어한다. 특히 자기 전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 장난삼아 아내 옆에 꼭 붙어 있어 봤는데 아들은 고개를 처박고 울먹인다. 결국 아내 옆자리는 아들 차지가 된 지 오래다. 갓난아기 때는 아들을 따로 재우도록 버릇을 들이려 했다. 하지만 새벽마다 일어나야 하는 게 너무 힘들어 결국 셋이서 자게 됐고 어느새 아들이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솔직히 불만스럽다. 나는 지금도 아들을 따로 재우는, 2+1을 아내에게 주장하지만 아내는 내가 한쪽에서 자는 2+1로 응수할 뿐이다. 유명한 소설이자 영화인 <아내가 결혼했다>를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주인공 남편이 느꼈을 당혹감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좀 더 현실감 있게 말한다면, 자식을 낳는 순간 세상의 모든 아내는 결혼한다. 나는 그런 현실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가끔은 아들이 부럽다. 아내가 이젠 내게 신경을 안써주는 것 같아 섭섭하다. 아내와 멀어지는 것 같아 두렵다. ‘가족한테서 고립된 중년 가장’ 얘기가 예전처럼 먼 나라 얘기로 느껴지질 않는다. 나는 날마다 아들에게 버림받는다 갓 두 돌이 된 우리 아들은 내가 문을 여는 소리만 들리면 냉큼 뛰어와서 온 집안이 들썩일 정도로 반갑게 나를 맞는다. 놀아달라며 나를 애타게 쳐다본다. 오로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이 순간을 1초라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이 내 손을 잡아끈다. 나 역시 아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둘도 없이 소중하다. 아들 수준에 맞는, 남이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놀이를 한다. 요샌 날씨가 추워져서 힘들지만 목욕도 같이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내 삶의 초창기를 복습하고 되새김질한다. 아들과 함께하는 순간은 영혼의 정화의식같은 시간이다. 나는 아들과 일체감을 느낀다. 그리고 파국이 찾아온다. 한참을 뛰어놀다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그 즉시 아들은 나를 외면한다. 얼굴 들이밀지 말라며 나를 밀친다. 내가 장난으로 삐진 것처럼 하면 재미난 구경꺼리인양 입으로 손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는다. 하루 종일 행복한 데이트를 즐기고 나서 다음날이면 전혀 기억을 못하는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는 여성을 소재로 한 로맨틱코미디 영화가 있다. 그래도 그 영화에선 잠들 때까지는 기억을 하는데. 우리 아들은 잠이 오면 나를 밀쳐낸다. 아들은 취침 시간에 내가 팔베개를 하거나 품에 안으려 하면 화를 낸다. 그리고는 엄마 옆으로 기어들어간다. 갓난아기 티를 벗고 나서 한 번도 아들을 품에 안고 자본 적이 없다. 팔베개를 하고 자 본 적이 없다. 내가 날마다 “잊혀진 여인”이 되어야만 우리 식구들에게 행복한 잠자리가 찾아온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아빠는 질투중 가끔은 나 자신도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나는 아내의 관심과 사랑을 모조리 빼앗아간 아들놈을 질투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내를 질투하는 것일까? 내가 가끔 섭섭한 건 아들에게 배웅을 맡기고 아들의 아침을 준비하느라 바쁜 아내일까, 아니면 내가 건네주는 조간신문을 받자마자 그걸 엄마에게 전해주느라 뒤도 안 돌아보고 냉큼 고개를 돌려버리는 아들일까. 아들이 잠들어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혼자만 듣는 아내가 나를 서운하게 하는 건가, 아니면 다만 아내 옆자리를 돌려달라는 내 간절한 외침을 모른 척하는 무심한 아들놈이 나를 서운하게 하는 건가. 아빠는 오늘도 질투하며 잠이 든다. 그리고 남편은 샘을 내며 아침에 눈을 뜬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94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