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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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석미화(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2009년 여성학을 배우면서 정대협 운동이 여성주의운동인가? 민족주의운동인가? 에 대해 학습을 한 적이 있다. 위안부 –성노예라는 말을 당사자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할머니들은 여성폭력의 희생자들이지만, 다른 어떤 여성운동단체들과는 달리 남자들의 지지와 지원이 유난했고, 수요 집회에도 남자들의 수가 여자들의 숫자만큼이나 컸었다. 왜 남자들은 유독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심을 보인 걸까? 미군 장갑차에 희생당한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도 남자들은 유독 비슷한 관심을 보였다. 이 두 이슈의 배경에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복선이 깔려있다. 그리고 구식민지든, 신식민지든 민족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일본이나 미국이나 식민 지배국가라는 관점이 존재했고, 따라서 위안부 사건과 미군 장갑차 사건은 식민 지배국이 피 식민국을 대상으로 한 멸시와 혐오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간의 전선이란 배열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국가란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성연대’에 지나지 않았고, 그 국가들은 국경을 초월해서 여성들의 성을 전시에 군인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위안’으로 소모되는 데 기꺼이 합의하였다.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을 제일 먼저 징집한 것도 한국 남자들이고, 끌고 가서 강간의 대상이 되도록 하고 실제 강간한 가해자들도 남자들이다. 그리고 그 남성연대는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한 쪽은 외면하고, 권력에 짓눌렸던 다른 한 쪽은 ‘쪽팔려서’ 할머니들 얘기가 나오면 과장된 반응들을 보인다. 과연 할머니들 문제가 일본과 한국간의 문제가 아닌 전시강간당한 여성들의 인권문제로 정확히 논해진 적이 있던가? UN에서 여성의 전시강간 문제를 여성인권의 주요의제로 다루고 있고 한국의 할머니들도 많이 참석하시고 발언하신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결정되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전시강간 문제도 한국에만 돌아오면 국가와 민족의 문제로 포섭되기 때문이다. 위안부 사건은 정확히 남성지배에 의한 여성의 성적 착취이다. 이 문제는 어디서나 발생되기 쉽고 발생되고 있는 문제이다. 때문에 전시강간, 전시 성 착취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그런 일이 왜 발생되는가? 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여성의 성을 착취와 노리개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남성연대, 가부장제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보여주고, 논의해야 한다. 이용수 할머니의 말씀처럼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하고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동의하는 사람들이 먼저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며 차세대 젊은이들,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동의하고 합의하는 일본인이 많아지고 사과할 줄 아는 일본시민들이 많아질 때, 일본 당국의 사과와 배상이 가능하다고 본다. 일본의 시민들이 모은 기금마저 거부하며, 대화와 타협이 아닌 증오와 혐오로 일본 당국과 일본시민을 대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주장하는 것은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이지 여성에 대한 성 착취와 그 한 방편으로서의 전시강간의 인권침해를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앞 담벼락 사진 출처 - 한겨레  민주당이 윤미향 당선인과 정의기억연대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을 ‘친일파’나 ‘토착왜구’라는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의연의 운동이 이들에게는 여성주의운동이 아니라 민족주의운동 프레임에 갇혀있음을 보여주는 역설적 단서가 된다.  5월 12일 34개 여성단체들은 “국내 최초의 미투운동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분열시키고 훼손하려는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며 정의연 지지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7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후 5일 만에 신속하게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아직 의혹당사자인 윤 당선자의 충분한 입장발표나 사실관계가 확인된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랬다는 것에 여성운동에 몸담았었던 필자로서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여성운동에서 여성들은 여성운동가/활동가, 회원, 피해당사자 등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공간에 기반한 여성조직에서 여성은 대체로 피해당사자, 회원, 활동가/운동가로 구분된다. 여성인권에 기반한 대다수 여성조직들에서 실제로 활동의 주체는 피해당사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문제해결을 위해 기획, 집행하는 활동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회원들은 자발적 동의자이고, 일 년에 한 번 총회를 통해 사업 및 예산의 기획과 집행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것을 통해 의사결정에 참여할 뿐이다. 아니면 세미나 모임이나 다양한 소모임 활동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거나 전달 받고 대다수는 온라인 소식지등을 통해 소식을 전달받을 뿐이다. 여성조직의 정책의 일차적 대상은 피해당사자들이다. 이들의 경험을 여성문제로 일반화하고 정책을 입안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여성조직의 주된 사업이 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객관성’과 ‘합리성’의 영역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폭력은 주로 은밀히 발생함으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관적 주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성피해자들의 입장과 관점, 주장이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피해자 중심주의’였다. 때문에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이들의 경험과 주장을 수용하고 이들이 운동의 당사자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여성조직의 운동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적극 경청하고 개별 피해자들의 의견이 상호간의 의견이나 조직의 의견과 다를 때는 모두가 모여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 피해자를 감싸는 것이 아니며, 피해자들을 소극적이고 두려움에 떨며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관점을 장착해야 가능한 일이다. 피해자들은 ‘남자들의 보호 안에 있어야 하는 미약한 존재로서의 여성’이라는 심신미약자의 위치성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보호만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그 여성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직업과 계층도 다르고, 삶을 대해 온 경험과 피해에 대처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피해자를 일원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임파워먼트를 통해 여성운동의 주체로 변화하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에서는 특히 그러한다. 항간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다시 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하면서 행동은 그렇지 않는 조직들에 대한 성찰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원칙으로써 고수해야 한다. 다만 피해자들끼리, 피해자들과 조직 간의 소통과 대화를 통해 이견이 발생할 때 문제해결 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번 사건은 다양한 고민을 하게 한다. 여성운동 안에서 여성주의운동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가?, 남성들의 민족주의에 기대고 의지하는 방식은 아니었는가? 라는 성찰과, 피해자 중심주의가 다만 구호와 외양으로만 존재하고 실재로는 조직, 단체, 활동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는 않았는가? 라는 고민들. 앞으로 여성운동은 이 문제들을 진지하게 성찰하며 대안을 찾길 바란다.
2020-06-03 | hrights | 조회: 66 | 추천: 2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살며 무당이 되어 본 적이 있다. 진짜 무당을 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무당처럼 억울하게 죽은 넋을 위로하는 일을 했다고 하면 될까?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2007년부터 3년간 ‘대통령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 조사관을 했다. 위원회는 군 사망사건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되었다. 군 사망사고 유가족과 인권단체의 노력으로 설립된 이 위원회에는 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사망한 김훈 중위 사건을 비롯해 600여건에 달하는 사건이 접수되었다. 진정을 제기한 것은 대부분 가족이었다. 유가족이자 피해자인 그들은 자랑스러운 아들이 군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에 대해 국가가 진실을 밝혀주길 바랬다.  그들의 아들들에 대한 사인은 대부분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었다. 사건 당시 작성된 헌병대 수사기록을 보면 자살의 이유는 대개 가족, 애인, 성격문제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당시 군복무와 관련이 없다고 본 그들의 죽음은 국가로부터 명예로운 죽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공상이 아닌 일반사망 ‘사상’으로 처리되었다. 가족들은 억울했다. 사회에서 누구보다 건강하게 생활하다가 나라의 부름으로 군에 갔는데, 자살이라니 웬 말인가. 헌병대의 수사과정도 믿음이 안 갔다. 군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빠르게 사건을 처리하고 종결하는데 급급했다. 사망의 이유도 석연치 않은데, 헌병대의 처리 과정도 의심을 키웠다. 더구나 천편일률적인 사망 동기와 처리방식은 더 그랬다. 군의문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실제로 강한 의혹이 제기된 사건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 외 많은 사건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의문사가 되었다. 유족들은 자식의 죽음이 결코 자살이 아닐 것이라고 믿으며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조사관이 사건을 배당받고 조사계획서를 작성하며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은 진정인, 곧 유가족의 진술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진정인이 조사방향과 결과에 동의하는 지 여부는 사건을 종결하는데 결정적인 열쇠였다. 따라서 사건 관련 문서를 찾고, 관계자를 찾아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사고 현장을 방문해 정황을 살피고 단서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사관이 제일 신경 쓰고 노력해야 할 것은 바로 진정인과의 소통이었다. 그들이 제기하는 의혹에 따라 조사활동은 ‘타살’ 혐의에 방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난관에 봉착했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위원회가 조사한 많은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었다. 비록 사망의 유형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원인에 있어서는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군복무와의 연관성이 상당부분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사망의 유형으로 전공사상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더라도 군복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하면 ‘진상규명’을 결정하였고, 이후 전공사상 심의를 다시 진행해 공상처리 할 것을 국방부에 권고했다. 문제는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진정인이 자식의 사망을 ‘자살’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헌병대 수사를 믿을 수 없어 또다시 국가에 호소하며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유가족에게 다시 자살을 인정하도록 하는 기막힌 상황이 펼쳐졌다. 곳곳에서 고성이 오갔다. 조사관 중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도 생겼다. 유가족 몇몇은 조사결과를 부정하며 위원회 입구에 자리를 깔고 농성에 들어갔다. 어려웠다. 피해자와의 소통은 서로 다른 이해와 요구로 접점을 찾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위원회 사건 중 일부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건은 진정인과 소통하여 조사를 종결하고 잘 마무리되었다. 지금도 역시 피해자와 더불어 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때 경험한 피해자와의 관계는 나에게 많은 배움이 되었다. 피해자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며,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피해자성이나 피해자다움에 갇혀있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바라보는 자들의 편견이라는 것을, 그리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는 존재여야 한다. 지금 이용수 할머니를 둘러싼 위안부 운동 관련 논란을 보며 그 시절 ‘무당’이 되어 피해자를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로 다른 이해와 요구를 가지고 이어온 30년을 부정하는 현실에 마음 무거운 요즘이다. 코로나로 어려운 이때 함께 뭇매를 맞으며 또 한 고개를 넘는다.
2020-05-28 | hrights | 조회: 84 | 추천: 4
이윤/ 경찰관  93년 흥행에 성공한 ‘투캅스’라는 영화를 보면 ‘취조실’에서 피의자를 신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안성기 배우가 연기한 조형사는 자해를 했던 피의자를 앞에 놓고 갑자기 타자기에 자신의 머리를 찧어댄다. 이마에 피를 묻힌 채로 ‘아~~ 이자식이 경찰을 때린다!’라고 소리친 후 취조실 벽에 스스로 몸을 부딪치며 계속 ‘으아아~’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구른다. 피의자는 왜 그러시냐며 어쩔 줄 모른다. 결국 조형사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해결한다.  예전에 경찰을 다룬 한국 영화들은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아 현실감이 부족했다. 위 장면의 취조실은 현실 경찰서에는 없는 것이었다. 웃자고 만든 영화를 다큐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타당도가 부족한 장면들은 감상을 위한 몰입을 방해했다. 그 와중에도 실재하지 않는 그 취조실이 나에게는 참으로 부러웠다. ‘우리 경찰서에도 저런 조사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90년대 중반 경찰서에는 조사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없었다. 30명이 넘는 수사관들이 함께 사용하는 널찍한 조사계나 형사계, 또는 5~6명이 사용하는 강력반 사무실에서, 평소 사무용으로 사용하는 책상 앞에 피의자를 앉히고 조사를 했다. 내가 근무한 조사계 사무실은 명절 전날의 재래시장처럼 늘 시끌시끌했고, 베테랑 수사관 분들의 구형 크로바 타자기 소리가 총성처럼 귀를 때리던 곳이었다. 수사관과 조사받는 사람(고소인/피고소인 불문) 간에 난타 공연하듯이 책상을 치며 고성이 오갔다. 큰소리가 아니면 서로 대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사람이 많은 만큼 꾸리꾸리한 냄새는 코를 괴롭혔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던 94년 여름을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 버티면서 땀에 젖은 타자기 자판을 두드려야했다.  고통 받는 나의 오감에 연민을 느끼며 투캅스처럼 타자기를 이용해서라도 그 곳을 피하고 싶었지만, 내 타자기는 사비로 구입한 전동타자기여서 아깝기도 하고 피도 잘 안날 것 같아서 차마 실행을 못했다. 때로 내 앞에 앉은 간통사건 피의자와 민망한 문답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는 신용카드 대금을 못 갚아서 고소된 젊은 여성이 조사를 받기도 하는 등 피조사자 간 비밀도 유지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이런 환경에서 조사받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좀 쾌적하고, 조용하며, 비밀도 유지되는 조사실이 있으면 좋을 텐데...  나의 기도가 통했는지 2006년 전국 경찰관서에 녹음과 녹화(무려 디지털 방식)가 가능한 ‘진술녹화실’이 설치되었다. 녹화가 가능하므로 수사관이 타자기에 자기 머리를 찧어대면 당연히 나중에 탄로가 나고, 폭행, 폭언, 협박, 회유도 어려우며, 조용하고 차분한 대화 속에 상대의 표정과 행동을 관찰하면서 전략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진술녹화실은 피조사자가 거짓으로 수사관에게 맞았다고 하거나, 하지도 않은 욕을 들었다고 생떼 쓰는 것으로부터 수사관을 보호할 수도 있다. 당시에 직접 수사하는 부서에 근무하지 않았던 나는 그런 멋진 조사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수사관들이 부러웠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진술녹화실은 수사관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어서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검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만 좀 이상한 성향인건가? 혼란스러웠다.  2009년 수사관들에게 왜 진술녹화실 사용을 꺼려하는지 설문조사를 해 보았는데, 세 번째로 많은 응답이 ‘참여인 대동 등 준비절차가 번거롭다’였다.(첫 번째는 ‘수사관의 언행이 부자연스러워진다’였다) 진술녹화실에서도 피의자를 신문할 때에는 담당 수사관 외에 다른 수사관이 참여자로서 입회해야 한다. 수사관들은 각자 자신의 사건을 수사하느라 바쁜데, 자기 사건을 놓아두고 녹화실에 참여하고 있으면 그 시간 동안 고스란히 일이 쌓이게 된다. 그래서 차마 내 사건 피의자 신문하는데 참여해 달라고 부탁하기가 매우 어렵다. 서로 품앗이를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녹화실 사용 시점에 참여자에게 다른 일이 없을 때만 가능하다. 참여자를 구하기 어려우니 진술녹화실 사용을 멀리하게 된다.  형사소송법은 제243조에서 피의자 신문 시 담당 수사관 외의 사법경찰관리가 반드시 참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신문 과정에 피의자 진술의 임의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신문하는 장소에 변호인도 아니고 다른 수사관이 참여한다고 해서 임의성이 얼마나 많이 확보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애초 이 조항에서 참여자의 역할은 기록관 내지 수사보조자일 뿐이라는 연구도 있다.  설혹 이로 인해 임의성이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녹화장치에 의한 객관적 감시가 다른 수사관의 참여보다는 훨씬 임의성 보장에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진술녹화실 내 피의자 신문에 대해서는 참여규정의 예외를 둠으로써 되도록 많은 수사관으로 하여금 진술녹화실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피의자 인권을 더욱 보장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조서에는 담기지 않는 진술의 뉘앙스와 분위기, 진술의 세부사항, 수사관과 피의자의 태도 및 표정/말투까지도 녹화기기는 온전히 담아낼 수 있기 때문에 진술녹화실 사용이 많을수록 피의자 인권은 더 많이 보호받게 될 것이다.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중요한 장치인 진술녹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상 피의자 신문 시 참여규정을 삭제하거나, 예외규정을 두거나, 참여가 의무로 되어 있는 조항을 ‘참여하게 할 수 있다’는 재량조항으로 변경하는 법률 개정작업이 필요하다.
2020-05-20 | hrights | 조회: 140 | 추천: 1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드디어 지역화폐가 호적에 올랐다. 그동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았던 지역화폐가 지난 5월 1일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국가 차원의 시민권을 획득하게 됐다.  다소 호들갑스럽게 지역사랑상품권 법률안 통과를 경축하는 이유는, 지난 2~3년여 사이 지역사랑상품권이 물밀듯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들에 대응하는 법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지역사랑상품권 관련 법률안은 사실 일찌감치 만들어졌지만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한 채 방치됐었다. 일 안하는 국회의 정석을 구현한 20대 국회의 사정을 떠올려보면 그럴 만도 했지만 아쉬움이 컸었다.  그런데 갑자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전격적으로 통과된 배경에는 코로나19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이 있었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수단 중 하나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이 검토되면서 시행을 앞두고 관련 법 제정의 필요성이 역시 긴급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국회도 일을 할 수 있다! 지자체의 자율 강조한 제정 의미  법률안 원안의 제안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 상권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사랑상품권을 조례에 근거해 발행․유통하여 지역 내 영세․중소상공인의 소득이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하고 있음’으로 명기하며 지역사랑상품권의 경제 활성화 효과를 지목했다.  이어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상품권 사업은 법률의 근거 없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따라 운영되고 있어 상품권 발행, 유통에 대한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바, 상품권을 불법으로 환전(일명 상품권 깡)하거나 무리한 상품권 유통 활성화 정책으로 인해 상품권을 지방공무원 보수로 지급하는 불법행위가 나타나는 등 명확한 법적 근거 및 체계적, 제도적 지원의 부족으로 인해 지역사랑상품권 이용을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존재함’이라고 지적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이 지자체마다 유행처럼 퍼져나가며 특히 언론이 문제로 지적했던 ‘깡’ 행위에 대한 제재를 제정목적에 명확히 명시한 것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의 부정유통은 대형마트, 대기업프랜차이즈점 등 지역 내 소비로 생겨난 부가 외부로 빠져가는 통로에서는 쓰이지 못하게 한 대신, 골목가게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한 소비자 인센티브로 부당 이득을 취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지역사랑상품권을 환금할 수 있는 가맹점주가 친인척을 동원해 물건을 판매하지 않고 바로 환금을 한 후 차익을 나눠 갖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나아가 사업자등록만 한 페이퍼 컴퍼니가 가맹점으로 신청해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깡 행위를 하는 것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마침 과태료 2천만 원이라는 명확한 제재가 법률에 명시됐고,(위반행위 조사 거부, 방해 또는 기피도 500만 원 이하 과태료) 한국 조폐공사의 상품권 관리 프로그램이 구축됨에 따라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 하나가 치워진 셈이다. 앞으로 깡 행위의 유혹거리를 던져준 과다한 인센티브와 범위를 잘 조절한다면 부정유통은 해소될 것이다.  지역상품권이냐 지역화폐냐를 놓고 벌어진 명칭 논란도 해소가 됐다. 법률 제2조(정의) 제1항은 ‘지역사랑상품권이란 지역상품권, 지역화폐 등 그 명칭 또는 형태와 관계없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일정한 금액이나 물품 또는 용역의 수량을 기재(전자적 또는 자기적 방법에 의한 기록을 포함한다)하여 증표를 발행, 판매하고, … 물품 또는 용역을 제공받을 수 있는 유가증권, 선불전자지급수단, 선불카드를 말한다’라고 규정했다. 명칭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이제부터 이 글에서는 지역화폐라고 기술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역화폐 운영의 ‘주체’를 명확히 한 점이다.  법률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발행하는 상품권의 발행, 유통 등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규정하되 그 운영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등에 위임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사랑상품권의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임’을 천명했다.  법률을 정해 지역화폐의 존립 근거를 마련하고 유통질서 교란을 막을 방도를 구축한 뒤, 세부 운영은 지방자치단체에 일임한다는 뜻이다. 본질을 잃는 순간 사라진다  개인적으로 법률의 제안이유 마지막 문장에서 감동이 밀려왔다. 그동안 마치 통화 질서를 혼란케 할 불령선인처럼 취급받기도 한 지역화폐가 당당하게 양지로 나온 것을 넘어 다가올 자치분권시대에 조응하는 자율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내일’(Demain, Tomorrow, 2015)이라는 영화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영화로 알려졌다.(유명한 사람 많이 나온다. 네이버 영화 광고문구가 ‘슬기로운 지구시민을 위한 솔루션’이다^^)  영화에서는 버려진 땅에 농사를 짓는 디트로이트 시민들의 아이디어, 화석연료 없이 전기를 생산하는 코펜하겐의 혁신, 쓰레기 제로에 도전하는 샌프란시스코의 환경 정책, 시민참여로 빈곤을 퇴치한 인도 쿠탐바캄의 기적, 행복한 어른을 키워내는 핀란드식 교육 철학 등 인류가 직면한 농업·에너지·경제·민주주의·교육 문제에 대해 유쾌한 해답을 만날 수 있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몇 번을 볼 때마다 자극을 받는다. 같은 이슈를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접근하는지 영감이 가득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유럽 각지의 지역화폐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영화는 지역화폐를 단일재배를 통해 무너지는 생태계와 접목해 비교한다. 단일재배가 병과 화재에 더 취약하고 그로 인해 생태계 전체에 교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단일화폐 역시 역사적으로 수많은 통화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당시 유럽 각 국가가 입은 타격은 심대했고, 이후 유럽연합 차원에서 지역화폐 도입을 정책적으로 지원했다. 생태계의 종 다양성이 중요한 만큼 통화 역시 단일화폐를 보완하는 지역화폐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영화에서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스위스의 유명한 지역화폐 ‘위어’(WIR) 운영자의 설명이었다. 지역화폐가 단일 법정화폐의 대안이 되면 장점을 잃게 되고 ‘같은 병’에 걸린다는 지적이다. 대체되는 순간 구체제가 되고 본질을 잃으면 결국 사라진다. 만일이라는 가정이 달린 전제이지만 패권적 관점에서 지역화폐를 바라보는 순간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결과일 것이다. 사진 출처 - 영화 '내일' 포스터 지역화폐 발전의 3가지 조건  우리나라의 지자체 주도 지역화폐는 최근 코로나19 정국을 맞아 확산의 바람을 더 세게 타고 있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과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모두 지급 형태 가운데 하나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지역화폐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빠른 확산도 좋지만 동시에 이런 저런 우려를 낳는다. 속도도 좋지만 방향을 잃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름 정리해본 3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ㅇ [지역성] 지역화폐(Local Currency)는 해당 지역 또는 공동체의 특성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ㅇ [거버넌스] 지역화폐의 이해관계자들이 지역화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ㅇ [지속가능성] 지역화폐를 이용하는 참여자들이 지역화폐의 의미를 잘 이해하며 사용해야 한다.  먼저 ‘지역성’은 지역화폐의 도입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지역 내 소비의 부가 역외로 유출하는 것을 막고, 그렇게 남게 된 소비의 부가 지역 내에서 균형 있게 배분되는 순환경제를 이루기 위한 것이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도입한 지역화폐의 최고 목적이다. 때문에 무엇보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모델이 적립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시흥시는 대기업 편의점이 시흥화폐 시루의 대상 가맹점이 아니다. 도농복합도시의 특성상 편의점 수만큼 동네 슈퍼마켓이 많기 때문이다. 또 주유소도 대상이 아니다. 서울 및 수도권 인근도시로 출퇴근하는 시민이 많은 관계로 대기업 계열사이기도 한 주유소로 시루 소비가 쏠릴 것이란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지역과 공동체에 맞는 모델, 부합하는 가맹점 기준은 지역화폐 운영의 핵심이며 지역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지자체의 지역화폐 실적경쟁이 이 원칙을 훼손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지역화폐의 유통 규모보다 실제 지역화폐 결제가 이뤄진 가맹점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두 번째 ‘거버넌스’는 첫 번째 조건을 뒷받침하는 기본 전제이다. 시흥에서 편의점과 주유소가 시루 가맹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 결정은 시루의 이해관계자인 소비자와 가맹점, 행정이 머리를 모아 결정된 것이다. 시흥화폐 시루 운영의 최고 심의, 의결기구인 ‘시흥화폐 발행위원회’는 민간의 위촉위원 19명, 시장 포함 행정의 당연직 위원 10명으로 구성된 민관협의체이다. 시루와 관련한 주요 결정은 발행위에서 이뤄지며 분기 1회 전체회의, 월 1회 분과(공동체분과) 회의를  가진다.  만일 행정이 지역화폐 운영에 관한 전권을 가지고 있다면 다양한 정치적 풍향에 휩쓸려 흔들리다 결국 부러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역화폐 정책이 시장·군수가 바뀌자 바로 ‘일몰사업’이 된 경우가 부지기수다.(그러다 최근 다시 도입 한 지자체도 있다)  세 번째 ‘지속가능성’은 지역화폐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최근의 지역화폐 붐은 지역경제 활성화에만 집중적인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런데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지역에 돈이 돌게 하는 이유가 뭘까?  곳간에서 인심 나듯 지역경제가 살면 동네 이웃 간 웃음꽃이 핀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팔을 걷게 된다. 사회적자본이 구축되고 확산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화폐의 본질이다.  그런데 속도와 성과를 좇다보니 시민들이 높은 인센티브 혜택의 소비쿠폰 정도로 지역화폐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봐야 할 때다. 너무 늦기 전에, 나와 이웃이 모두 웃는 협력적 소비, 공생과 공존을 위한 도구로 지역화폐를 자리매김 시켜야 한다.  현재 약 190여개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를 도입하거나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과연 3년 뒤에는 얼마나 활성화되고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기본적인 전제조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한 번 휩쓸고 지나간 유행이 될 수도 있다. 지역의 자율성은 뒤로 한 채, 패권적 관점에서 휘두르려 한다면 역효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성과의 압박에서 벗어나 본질을 잊지 않고 꾸준히 기반을 닦는다면 무엇보다 든든한 공동체의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속도보다 방향이다.
2020-05-14 | hrights | 조회: 55 | 추천: 1
권용선/ 수유너머104 연구원  감염병 시대. 비대면적 관계의 일상화는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외부활동이 줄어들고, 가계 수입이 감소하고, 학습권이 위축되고, 친밀감에 기반한 사회적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흔쾌히 불편과 고통을 감수한다. 그 어떤 것도 생명 자체보다 우선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 사태 이전의 삶으로 온전히 되돌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자본과 정치권력의 핵심들은 비용과 효율성의 차원에서 이미 시민들의 삶을 새롭게 기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때마침 교육과 경제, 문화 영역의 상당 부분이 온라인 혹은 비대면적 방식으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학습중이다. 특정한 기술과 지식이 주목받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동안, 어떤 일자리는 사라지고 어떤 공간은 폐쇄되고. 사회의 가장 위험한 모서리를 붙잡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소리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디스토피아의 상상력.  하지만 바이러스가 주는 공포와 피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되는 동안, 작은 기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숨죽여 있던 비인간-생명들의 조용한 활기. 베네치아 수로의 물색이 투명해지자 사라졌던 백조들이 돌아왔고, 누렇고 탁하던 서울의 봄 하늘이 몇 해만에 쨍한 푸른빛으로 선명해졌다. 차량의 통행이 끊긴 로키산맥 근방의 고속도로는 순한 야생동물들의 산책로가 되었고, 사라졌던 곤충과 식물들이 다투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로소 지구가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위성에서 본 베네치아 모습.  2020년 4월13일(위)과 2019년 4월19일(아래). 흰점들이 크고 작은 배들이다. 유럽우주국 제공 사진 출처 - 한겨레  돌아보면, 코로나19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출현하기 전에도 지구는 끊임없이 위험의 징후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상고온현상이 지속되면서 빙하가 녹아내리고, 크고 작은 지진이 지구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생태계의 교란으로 특정 생물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거나 감소하고, 거처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인간들의 생활권역 안으로 드물지 않게 끼어들곤 했다. 보다 쾌적하고 풍요로운 문명의 삶을 향한 욕망이 가속화되면서 생명계 전반의 안정성은 급격히 와해되어갔고, 서식지를 잃고 방황하던 어떤 동물들은 바이러스의 매개체 혹은 숙주가 되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개발과 발전, 이윤과 축적, 과시와 폭력을 둘러싼 욕망을 멈추고 돌아보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지금보다 더 진화된 형태로 우리 앞에 되돌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말해야 할 것은 유연한 사회적 거리두기 혹은 거리두기의 해제 이상의 그 무엇이어야만 하는 건 아닐까. 바이러스의 확산과 감염을 막기 위한 방역,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 사회 경제적 활기를 기대하는 국가적 차원의 기금 분배는 오히려 사태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숙고해야 할 것은 오히려 거리두기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비인간-생명들과 거리두기. 그것들이 본래 자신들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기. 훼손되고 위축된 지구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  이런 점에서 나는 지난 4월 15일의 국회의원 선거가 제법 아쉬웠다. 수구파 정치 세력의 축소는 그 자체로 반길 만한 것이었지만, 거대 여당과 불가피함을 핑계로 출현한 위성정당의 협업은 한동안 국회 안에서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를 독점하거나 은폐할 테니까. 만약, 창당준비에서 멈춰버린 동물당이 실제로 정당 등록을 마치고 선거운동 판에 뛰어들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서 유럽의 어떤 나라들처럼 의회에 좌석을 차지한다면, 그들이 동물인지감수성을 주장하고 동물인지정책을 만들고 동물권을 입법화한다면, 나아가 동물들에게도 시민권을 주자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정치에 관한 조금은 유쾌하고 발랄한 상상을 시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저 유명한 68혁명의 구호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근본을 재기획할 수 있는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하는 데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점에서 정치란 무한히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법의 언어로 갈무리하는 능력, 보다 많은 그리고 충분히 다양한 삶들을 함께 살릴 수 있는 상상력의 현행화와 관련된 활동이기 때문이다.
2020-04-29 | hrights | 조회: 84 | 추천: 0
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고희(古稀)를 보낸 지 어언 10년, 올해가 내 팔순(八旬)의 해다. 세월은 참으로 잘도 간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지나간 세월보다 남은 세월이 짧기만 하다. 유종(有終)의 미(美)가 있는 삶을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 자주 반문하곤 한다.  지나온 삶을 과연 후회 없이 살아왔는가? 자문해 보면 후회도 많은 삶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격동의 시대였기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순간들이 많았다. 어찌 보면 기쁘고 즐거움보다, 질곡의 순간들이 더 많았다.  허나 한편으로 궤변도 늘어놓았다. 시대와 조상을 잘못 만나서, 아니 운이 없어서라고 해 보았다. 스스로 게으름을 피우며, 노력도 부족했는데 운 탓이라면, 이는 정도(正道)가 아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에게도 기회와 변화도 있었다. 결국 노력한 만큼 작은 결실을 얻기도 했었다.  해방공간과 6․25 전쟁전후에서, 철부지였던 어린 내가, 맏형의 억울한 죽음을 목도하였었다. 그때 각인되었던 아픔이, 성년이 되어서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조국분단과 과도기에 스물두 살의 장형이 죽임을 당했다. 그 후 60년 만에야 진상규명되고 명예도 회복되었다. 참으로 오랜 슬픔에서 기쁨의 순간이었다.  나는 반백년 전, 가면 죽는다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었다.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나도 모른다. 그때 1965년 2월 해외 최초파병은 두려움에 도전이었다. 참전 13개월 동안 생과 사의 기로에서 깊은 상념에 빠지기도 했었다. 허나 그 와중에도 분단국의 평화와 통일을 더욱 갈망하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또한 나는 부역자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신원 조회에 좌절했었고, 둘째 형이 의용군과 국군에 참전해 부상을 입고 상이 제대를 했다. 그 후 형은 세 번의 선거로 인해 집안이 기울어져, 내 진학의 꿈도 접어야만 했었다. 허나 ‘배우고 아는 게 힘이다’에 주경야독으로 학업을 계속했다.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할 뻔도 했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았기에, 내 삶에 중요한 순간이기도 했다.  한편 열일곱 살에 청상과부가 되신 양할머니가, 우리 8남매 손 자녀를 마치 산모처럼 척척 받아내고 양육하셨다. 이런 연유로 양할머니는 열녀로, 부모님이 효자효부로, 나는 3남이면서 50년이나 조부모님을 모셔 효열 3대가로 이어졌다. 8남매 중에서 내가 기준과 중심을 잡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집안은 어찌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끔찍한 생각이었다. 아마 풍비박산 집안이 되었을지도 모를 처지였다.  이런 사실이 자화자찬으로 비춰질까, 송구한 마음이다. 한편으로 언제나 자성하고 자책하면서 다짐하였다. 과연 남은 생을 어떻게 마무리를 잘해서 온전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을까! 또한 과오를 뉘우칠 수 있었을까?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길밖에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믿음으로 살아왔던 길이 유일한 방법이 된 것이다.  첫 번째가 부족한 글쓰기다. 초등학교에서 글짓기에 흥미가 있었고, 성년에도 더욱 정진하면서 만학의 꿈을 이어갔다. 가방끈이 짧다는 자괴감도 있었지만, 열심히 노력해 배우고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부족하기만 했기에 욕심도 부렸다. 진력하여 여러 권의 책도 펴냈지만, 역시 부족하기만 하다.  나는 다방면의 글을 쓰고 있다. 다양한 문학의 장르 외에 칼럼도 쓰고, 또한 서예도 연마했다. 여러 작품도 있지만 역시 부족하기만 했다. 글쓰기는 끝없는 퇴고와 연마를 거듭해야 하는데, 게으름과 노력부족으로 미진한 작품을 내고 만다. 그러기에 작품이 완성되면 바로 후회를 하곤 하였다.  내 평생 나에게 제일 크게 다가왔던 과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조국,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하느냐? 하는 무거운 과제였다.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말로만 노래만 하지 말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실천운동에 적극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보다 큰 노력과 실행들이 부족하기만 했다.  그간 실천을 위해 평화통일에 다가가는 여러 단체의 일원이 되고, 간부가 되기도 했다. 분단의 현실, 여기에는 일제에 36년을 지배당하고도 진정 해방이 아닌 분단이, 외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에 우리 8천만 동포들이 분단을 외면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라 잃은 설움에 32세 안중근 의사와 24세 윤봉길 의사가 처자식을 두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정신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윤 의사는 나의 집안 윤문의 형제항렬이기도 하다. 8․15 광복이 분단으로 이어져, 75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갔다. 지구촌에서 가장 오랜 분단국, 언제 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룰지 난망하기만 하다. 허나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을 이겨내야 하는 우리의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의 소원인 평화통일조국을 기필코 이뤄내야 한다. 이는 그 어떤 일보다 절박하다. 나는 그간 통일교육위원으로, 평화연대의 회원간부로, 평화만들기, 희망연대, 통준사의 공동대표로 매진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기만 하다. 아무리 통일을 원하지 않는 동포나 주변 외세가 존재한다 해도, 이를 극복해 내야만 하지 않을까.  지구상에 너무도 오랜 분단조국의 통일을 위해서는, 존경하는 안중근 윤봉길 두 의사와 선현들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다짐한다. 사실 오래전 나는 최초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남루한 후회를 했었다. 분단 조국의 통일도 이루지 못하면서, 남의 나라 통일을 방해하는 용병군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한없는 자괴감을 갖게 되었다.  그 베트남 인민들은 17도선을 평정하여 세계최강대국인 미국을 이겨내고, 당당히 남북베트남 통일을 이뤄냈었다. 진실로 베트남 통일을 부러워하고, 우리가 용병으로 참전해 지은 잘못을 다시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베트남은 이미 남북이 통일되어 날로 발전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당당히 이겨낸, 위대한 민족임을 세계 만방에 보여주어, 한편으로 부럽기만 하다.  나는 통일된 베트남을 몇 차례 다녀오면서, 그들에게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다. 그들은 지나간 원한을 모두 용서한다고 했다. 그들은 당당히 외세인 강대국을 물리치고 세계 만방에 통일된 나라로 발전에 진력하고 자부심도 강했다. 나는 과거 용병으로 참전해 그들에게 아픔과 슬픔을 안겨준 사실에 대해 진정으로 사죄하였다. 그들은 지난 우리의 잘못을 용서를 하고 수교도 이루어졌다. 사진 출처 - tvn "디어마이프렌즈"  필자는 올해로, 팔순을 맞이하면서, 지난 파란만장한 삶을 돌아보았다. 내 스스로는 지난 삶을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하고 싶지만, 허나 부족하고 미진한 일들도 많기만 하다. 그러기에 언제나 과거를 되돌아보며 반성하면서 살아왔다. 비록 나이는 들어가지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행하고 스스로 반성을 하곤 한다.  나는 먼저 가신 안중근, 윤봉길 의사(義士)들처럼 비록 젊지 않은 팔순의 나이에 들었지만, 두 분의 삶을 본받아 살아왔고, 살아가려 다짐해 본다. 앞으로 생애를 ‘마무리 잘하는 삶’으로 정의와 평화통일을 위한 길을 가고자 더욱 진력하련다.  그동안 좌우명으로 삼았던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왔는가? 자문하며 그간 나와 맺은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한다. 한반도에 평화통일은, 우리 8천만 동포들의 꿈이요, 소원이다. 평화통일의 그날까지 최선을 다한 삶을 살고자 재삼 다짐해 본다. * 한국작가회의 소설분과회원. 한국문인협회원. 산영수필문학회장. 서예초대작가. 소설집(못다 핀 꽃) 수필집(도라산의 봄) “고희기념문집” ‘희수 유감’ 등 다수 산영수필문학회 회장역임 근묵회, 구암서문예원장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2020-04-22 | hrights | 조회: 144 | 추천: 2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불길한 사태들이 줄을 잇고 있다. 죽음의 불안과 공포로 유례없는 경제적 재앙을 몰고 온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위성 정당들의 등장으로 조삼모사 국민적 사기행각이 되고 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총선, 첨단 뉴미디어를 악용한 대대적인 성 착취 동영상 n번방 사건 등이 국민 모두의 심정을 한껏 짓밟는다. 일련의 사건들이, 주어진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인격적 감정의 방어선을 여지없이 뚫고 들어온 셈이다.  그 과정에서 신천지 운운하는 30만 명에 달하는 반사회적 · 비상식적인 거대한 종교 집단의 존재가 드러나고, 실제의 성 착취 동영상을 즐기면서 26만 명에 이르는 가학적 정신병적 증상의 이른바 ‘n번방 회원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이들과 함께 묶어 거론할 수는 없지만, 아울러 무엇을 위한 투쟁인지 알 수 없는 국회의원 선거와 후보 공천을 둘러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이랬다저랬다 원칙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전투구의 양상이 특히 제1야당을 중심으로 격화되어 국민의 신성한 정치 참여권인 투표권을 농락하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련의 사태들이 엎친 데 덮치는 식으로 연발한 것이다. 게다가 현직 검찰총장의 장모라는 인물이 수백억의 은행 잔액 증명서를 위조한 행위로 공소시효를 겨우 며칠 앞두고 뒤늦게 기소되었다. 고소에도 불구하고 수개월 동안 전혀 미동도 하지 않다가 검찰은 언론의 강인한 보도에 밀려 뒤늦게 소환 조사하고 울며 겨자 먹듯이 공소시효 만기를 앞두고 막판에 기소했다. 이러한 검찰의 모습은 불과 몇 개월 전 검찰의 수사력을 총동원하다시피 해서 강제 압수수색과 조사로 전국을 들끓게 한 ‘조국 사태’에서의 검찰의 모습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중첩됨으로써 비극적인 희극이 되었다. 만약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검찰총장 장모 사태’는 공권력 행사의 자의성과 정당성을 둘러싸고서 사회정치적인 담론을 들끓게 했을 것이다.  그나마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의료인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영웅적인 희생’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모범 운운할 정도로 국민 공동성을 발휘해 대처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조차 여전히 준동하는 바이러스에 대처하느라 전 국민의 일상적인 삶이 전면 중단되다시피해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위안 수준에 그치고 있다.  불안과 공포, 허탈감과 무력감, 원한과 분노, 자탄과 자괴감 등이 뒤범벅되어 집단 전체로 확산하면서 각자의 개성적인 삶을 유지하는 감정의 인격적 방어선이 무너져 내린다. 우리 사회의 하부가 어떤 괴이한 욕망으로 어떻게 조성되어 흘러가고 있었는가, 흔히 하는 말로 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영생 운운하는 생명욕이 종교라는 왜곡된 탈을 쓰고 하부의 집단적 무의식을 파시즘적인 방식으로 암암리에 분출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미성년의 여자아이들을 오히려 선호하면서 악마적으로 돌변한 성욕을 채우기 위한 집단적인 범죄가 자행되고 있었다. 최첨단의 복합동영상 기술 매체가 주는 편의를 십분 활용하여 공갈과 협박의 폭력을 통해 이루어진 성 착취를 수십 만의 ‘멀쩡한’ 인간들이 경쟁하듯 흥분의 먹이로 삼았던 게다. 이러한 사회 하부의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집단 무의식의 발호를 거울삼아 사회의 최상부를 점하고 있는 정치 권력자들의 집단 무의식의 모습이 무슨 유령처럼 비치기조차 한다면, 사회 전체가 비극적인 운명을 실현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2.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하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지만, 그런 인간들이 수십 만에 이른다는 사실은 인간 존재의 근본을 의심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하고, 나 자신 역시 그런 근본에서 출발한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무력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저 인간은 혹시 코로나 감염자가 아닐까?’, ‘저 인간은 혹시 신천지 교도가 아닐까?’, ‘저 인간은 혹시 n번방을 드나드는 자가 아닐까?’, ‘저 인간은 혹시 인간이 아닌 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역병 바이러스처럼 암암리에 퍼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마침내 ‘나 역시 얼마든지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도 저 인간일 수 있다.’ 하는 생각에 이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저들과 다르다고 분명하게 확신할 수 없게 된다. 나도 얼마든지 악하거나, 악한 쪽으로 욕망을 몰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숨겨져 있고 노골적으로 드러나 실현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불미스럽기 짝이 없는 악의 폭력이 집단을 통해 대대적으로 실현되면, 그 기화로 숨겨져 있던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예감에 불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저들, 아니 저것들을 불길하기 짝이 없는 놈들로 판단하고 평가하게 된다. 아울러 저놈들, 저것들의 불길함이 나에게 옮겨붙으면 나 역시 아예 불길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바이러스에 빗대게 된다. 바이러스는 비록 자연이긴 하나 나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악의 폭력을 나에게 행사한다. 정말이지 불길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겨붙도록 하는 수단이 된다. 불길한 존재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 수단인 나도 덩달아 불길한 존재가 된다. 우연의 주사위가 짝을 맞추게 되면 나도 자칫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 나도 언제든지 남에게 불길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 속에 불길함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소질이 있음을 뜻한다. 더군다나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도 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도 나 자신도 내가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기침과 발열과 숨 가쁨의 증상을 보이면, 내 속에 숨겨져 있고 드러나서는 안 되는 바이러스가 노골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길함이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자연적인 폭력에 전염되면 안 되듯이, 사회적인 악의 인위적인 폭력에 전염되면 안 된다. 바이러스에 전염되지 않으려면 전염된 자를 나로부터 격리해야 한다. 그래서 ‘저 사람이 전염된 자다. 저 사람을 격리해야 한다.’라고 크게 외쳐야 한다. 그리하여 전염된 사람을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격리하고 최대한 힘을 모아 치료해야 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와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 어느 곳에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발생하면 그곳을 폐쇄하고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최대한 샅샅이 뒤져 접촉자들을 검진하고, 결과에 따라 격리조치와 치료를 해 나간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두에 서서 총지휘를 하다시피 하면서 말 그대로 발본색원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어쨌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단 한 명에게라도 들러붙지 못하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국민 대부분은 이러한 국가의 노력에 최대한 협조함으로써 바이러스가 가하는 자연적인 악의 폭력을 근절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이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방역 및 의료 체계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사재기 등이 전혀 없는 합리적인 국민으로 칭송을 얻고 있다.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n번방 성 착취 사건이 드러났다. 그러자 청와대 민원 게시판에 이른바 ‘박사방’의 운영자와 참여자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신상 공개를 요청하는 500만 명에 달하는 민원이 순식간에 쇄도했다. 성인에 속한 약 1/6의 사람들이 청원을 했으니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주모자뿐만 아니라 26만 명에 달하는 유료 이용자들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청원이 2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많은 국민이 이번 성 착취 동영상의 불법적인 촬영과 유포의 범죄 유형이 악질적이고 유료 가입자들의 의사가 적극적이라고 판단했고 그만큼 강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런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통령, 주무장관, 국회의원들, 여성단체들, 관련 범죄 분석 전문가들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관용의 엄정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했고, 경찰과 검찰은 이에 즉각 호응하고 나섰다. ‘조주빈’이라는 주모자의 이름과 얼굴 및 신상이 공개되었고, 검찰에 의해 12,000쪽에 달하는 수사기록물이 즉각적인 분석에 들어갔다. 사진 출처 - freepik 3.  성 문제에 이렇게 ‘폭넓게, 아주 민감하게, 모두가’ 반응한 적은 없었다. 한편으로 이러한 반응 자체가 나로서는 충격이다. 충격적이라고 해서 잘못된 측면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 현상에 뭔가 독특한 원리와 그에 따른 실제가 작동하는 것 아닐까, 하는 묘한 불안을 수반한 궁금함이 크게 앞선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한 자연의 폭력 사태와 n번방 성 착취 동영상 촬영과 유포에 의한 인위적인 폭력 사태는 뉴스의 머리를 앞다투다시피 하면서 심지어 며칠 남지 않은 총선에 관련한 소식들을 뒤로 밀어내고 있다. 앞의 사태는 생명에 대한 자연의 폭력이고, 뒤의 사태는 성에 대한 인위의 폭력이다. 생명과 성은 워낙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명이 생겨날 수 없고, 생명을 통하지 않고서는 성이 성립할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의 위협에 대한 반응은 성의 위협에 대한 반응과 연결된다. 생명을 천시하면 성도 천시된다. 전쟁이 일어나 생명을 한갓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게 되면, 성 역시 한갓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평화와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생명이 고급스럽게 한껏 발휘되면, 그에 따라 성도 고급스럽다 못해 신성해진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마침 생명이 절대적으로 소중하다는 인식이 전국적인 수준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확산하는 와중에, 공갈과 협박 및 회유를 통해 강압적으로 성을 험악하게 노출하도록 하는 자들과 그러한 노출이 폭력적인 착취에 의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폭력적인 착취에 의한 것이기에 오히려 탐닉하는 자들이 집단적으로 성을 천박한 수준으로 끌어내려 파괴한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명과 성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본능적일 정도로 암암리에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누구 할 것 없이 생명이 절대적으로 소중하다는 인식을 실감하는 상황에서 성을 크게 집단으로 전락시킨 자들을 적발하게 된 것이다. 이에 그들이 자행한 성폭력의 악행이 상대적으로 더욱 심중하게 다가와 견딜 수 없는 분노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생명에 빗댄 성 착취의 폭력 사태에 대한 이러한 대대적인 반응을 보면서 왠지 불길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전락해버린 성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불안한 절망 때문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또 그런 불가능성이 첨단의 자본주의적인 기술 문명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어차피 자본주의 문명을 벗어나 살 수 없는 나로서 그러한 공모에 미필적으로 이미 가담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범죄자들을 인지하여 조사하고 재판에 넘겨 처벌을 책임진 공권력을 담당한 자들을 믿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일거하여 직접 범죄자들을 법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까지 처벌하자고 하는 것이,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에 의해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그 감염된 자들을 철저히 격리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그들뿐만 아니라 바이러스와 무관한 자임을 스스로 확신하고자 하듯이, 그들 자신에게 숨겨져 있고 드러나서는 안 되는 뭔가가 현실화되지 못하도록 하려는 무의식적인 심사가 강화되면서 분노한 나머지 그렇게 대대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은 아닐까?
2020-04-01 | hrights | 조회: 149 | 추천: 1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처음엔 몰랐다. 그것이 내 삶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발 보도로 접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그때만 해도 ‘우한 폐렴’으로 통하던 이 바이러스성 질환이 우한을 넘어 중국 전체로, 중국을 넘어 세계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2020년 2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편견을 유도할 수 있는 특정 지명이나 동물 이름을 피하도록 한 원칙에 따라 'Corona Virus Disease 2019'를 줄인 'COVID-19', 즉 ‘코로나19’로 이름을 바꾼 후 부쩍 그것이 내게 가까이 왔다. 어쩌면 선후가 바뀐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 확산이 그 이름을 불러왔는지, 그 이름을 달고 바이러스가 더 퍼졌는지 말이다.  시작은 베트남 평화기행 참가자의 문의부터였다.  내가 일하는 한베평화재단은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 민간인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각종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해마다 평화교육 프로그램으로 베트남 호치민시와 한국군 주둔지였던 다낭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평화기행을 진행하고 있는데, 2월 말에 출발예정이던 평화기행 참가자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며 베트남은 안전한 지 전화를 해 온 것이다. 비상이 걸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사업과 코로나19를 연결하지 못했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서 배포하는 일일공지를 체크하고, 베트남 언론사 기자와 베트남 당국의 정보를 입수하여 코로나19에 대한 베트남의 대응을 매일 살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라 당국의 강력한 통제 아래 1월 24일 중국 우한과 베트남 간 항공기 운항을 전면 중단하고, 이어 28일엔 중국 내 감염 지역에서 입국하는 중국인 여행객의 비자발급을 중단했다. 안전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평화기행을 강행할 순 없었다. 허가, 수속, 일정 조율을 마치고 출발을 기다리던 2월 평화기행 두 건이 취소됐다.  그때만 해도 바이러스의 파장은 거기까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2월말 대구지역 신천지 집회로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제 통제 대상은 ‘중국’이 아닌 ‘한국’이 되었다. 2월 25일 베트남은 대구·경북지역 거주자 또는 14일 이내 이 지역을 다녀온 자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를 내놨다. 곧이어 증상을 불문하고 대구·경북 지역 체류가 확인된 입국자에 대해 무조건적인 시설격리에 들어갔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이 시기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세계 곳곳이 한국인에 대한 입국절차를 강화하거나 금지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학교들이 휴교에 들어갔다. 베트남 대학생들이 참여해 중부 한국군 피해 마을 어린이들에게 놀이터를 선물하는 ‘V프로젝트’ 개장식이 무기한 연기됐다. 평화 활동가 양성을 위해 지난해 3월 베트남으로 갔던 한베평화재단 장학생은 코로나19로 학교가 휴업에 들어가자 1년의 장학기간을 마치지 못한 채 귀국 일정을 앞당겼다. 미리 비행기 표를 예매해두었으나 그마저 취소되고, 한국행 비행기를 간신히 잡아타고 부랴부랴 들어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함께했던 친구들에게 제대로 작별인사조차 못 나누고, 상상했던 귀국길과는 다른 정신없는 야반도주였다나. 1년의 마무리가 코로나19로 엉망이 되었다. 원래는 베트남에서 진행해야할 인턴 활동은 기약 없이 한국에서 시작됐다. 지난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영국 런던에서 여객기를 타고 입국한 승객들이 진단 검사를 받는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장학생이 전한 베트남의 분위기는 또 다른 국면이었다.  베트남이 대구·경북 입국자에 대해 강화된 조치를 시행한 시기, YTN은 ‘다낭에서 격리된 우리 국민들’(2월 25일자)이라는 제목으로 현지 상황을 보도했다. 이 보도는 현지 교민의 감정적 주장을 여과없이 담아 베트남 문화를 비하하고 현지 상황을 과장 왜곡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재단의 장학생은 한국인에 대해 달라진 베트남 분위기와 이 기사로 폭발한 베트남 사람들의 분노를 전했다. 그에 따르면 “기사가 나오고 며칠 동안 한국과 베트남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혐오하는 댓글이 수백 개씩 달렸다. 검증되지 않은 악의적인 뉴스와 글들이 빠르게 퍼졌다. 나는 한국과 베트남 양쪽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베트남 친구들의 SNS에는 한국인들이 베트남을 향해 단 악플이 하나씩 베트남어로 번역되어 올라왔다”고 한다. 이것이 앞으로 재단의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 감조차 잡을 수 없다.  19일 0시부터 해외입국자에 대한 특별입국절차가 시작됐다. 앞으로 해외입국자에 대해 자가격리 의무화 등 강화된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현재 브라질에 있는 가족이 조만간 입국을 앞두고 있어 이 조치를 따르게 될 텐데, 그렇다면 나도 함께 자가격리 대상이 될 것이다. 이번 코로나19의 교훈은 한마디로 코로‘나’라는 사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역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했다. 바이러스의 역설이다.
2020-03-25 | hrights | 조회: 203 | 추천: 4
이 윤/ 경찰관  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연합군 항공기가 격추당했다. 격추를 모면하고 간신히 기지로 귀환한 항공기들은 총격에 의해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돌아온 항공기들에서 총구멍이 많은 부분을 확인하여 그곳이 취약한 부분이라고 결론지었고, 그 부분을 보강한 항공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생환율은 높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생환한 항공기들의 총 맞은 부분은 총을 맞더라도 격추될 가능성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총격에 치명적인 곳을 맞은 항공기들은 이미 격추되어 보강이 필요한 곳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하였다. 눈에 보이는 특징과 사례에 편향되어, 보이지 않는 곳을 간과한 오류로 인해 정작 필요한 곳에 대한 정확한 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특징에만 주목하고, 보이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간과함으로써 진실을 바로 알지 못하게 되는 인지 오류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특징 존재 효과(feature positive effect)’라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힘겨운 요즘, 특징 존재 효과 때문에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인지 오류를 바로 잡아 정확한 진실을 알려주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은 중국, 이탈리아 다음으로 확진자 수가 많다. 확진자 수가 많다는 사실에만 주목하면 한국의 방역체계가 허술하여 초기 중국으로부터 감염자 입국을 막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거나, 정부의 대처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비난하기 쉽다. 눈에 보이는 확진자 수에만 주목한 인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특징에 현혹되지 않도록 한꺼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정부가 촘촘한 방역망과 진단체계를 잘 활용하여 확진자 및 감염우려자들의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관리 가능한 감염자들을 모두 찾아내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일부 확진자 수가 적은 나라들은 검사 역량이 부족하거나, 검사를 의도적으로 적게 하거나, 허술한 역학조사로 인해 확진자 수가 과소평가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국가들의 방역체계가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국가들 때문에 통제되지 않은 세계적 감염확산이 우려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이미 많은 외신과 일부 국내 언론들도 한국에서 공식 발표된 확진자 수가 많은 것이 한국의 개방성과 민주성, 그리고 높은 수준의 방역체계 덕분이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도 한 달 이상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빨아 쓰면서 조심은 하고 있지만, 감염 때문에 불안하지는 않다.  여기에 비유하는 것이 다소 억지스러울지 모르겠으나, 99년 이후 여러 차례 경찰과 검찰 간 수사권조정 논의가 있을 때마다 경찰관의 비리나 잘못을 비난한 기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런 기사들을 볼 때에도 특징 존재 효과를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난기사를 접하면 언뜻 상당히 많은 경찰관들이 비위를 저지르고 있어 수사 주체로서의 권한을 맡기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경찰은 내‧외부에 감시와 통제의 눈이 많고, 조직 정화 기제가 잘 작동하기 때문에 비리나 잘못이 있으면 밖으로 자주 노출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런 사례들이 오히려 조직 내 민주화와 투명성, 개방성이 과거보다 많이 개선된 반증이라고 한다면 너무 낙관적인 해석일까? 어쨌거나 잘못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꽁꽁 싸매고 가두어 눈에 보이지만 않게 하는, 그리고 견제와 감시의 수단이 없는 조직보다는 경찰이 더 건전하고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장 취약한 부분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2020-03-17 | hrights | 조회: 400 | 추천: 12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신종 감염병 코로나19의 여파가 길어지고 있다. 역병이 창궐하니 민심도 흉흉하다. 타인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생활 속 깊이 스며들고 있다. 그 뿐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소상공·자영업자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크다. 거리는 한산하고 골목가게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시흥시의 지역화폐 ‘시루’ 가맹점 중 가장 결제 건수가 떨어진 업종은 숙박업과 스포츠 및 여가관련서비스업이다. 음식점업이 그 뒤를 따르고 소매업은 큰 변화가 없다. 여행은 안가고 헬스장도 잠시 쉬며 외식은 없되 라면은 쌓아두는 소비패턴이다.  급기야 정부는 경기활성화대책을 세우고 대규모 추경을 편성했다. 얼어붙은 소비를 되살리겠다는 목표로 11조 7천억 원에 달하는 추경안을 제출하며 그 중 2조 4천억 원을 ‘중소기업·소상공인 회복지원’, 8천억 원을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지원’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건물주 임대료 인하 보상처럼 도대체 누가 제안했는지 궁금해지거나 신차 구매 시 소비세 감면처럼 왜 굳이 지금 하는지 도통 모를 방안도 포함되어 있지만 어쨌건 재난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골목경제를 살리는 적극적인 재정투입정책을 펼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니 환영할만하다.  한발 더 나아가 보다 도전적인 재정투입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약탈적 플랫폼 경제 전도사’ 또는 ‘한국적 공유경제의 개척자’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이재웅 쏘카 대표가 쏘아올린 ‘국민들에게 재난 기본소득으로 50만원씩 지급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그것이다.(글을 보내기 직전 경남도지사도 100만 원 재난 기본소득을 공식 제안했다)  비슷한 시기 홍콩 정부도 코로나19 대책으로 모든 영주권자들에게 1만 홍콩달러(약 156만 원)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내 보수야당 대표가 4월 국회의원 총선거라는 정치이벤트를 앞두고 냅다 ‘그 정도로 과감성 있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한발 얹은 것도 재밌는 관전 포인트이다.  재난 기본소득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도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 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조사 결과 찬성 42.6%, 반대 47.3%로 오차범위 내에서 비슷한 응답률이 나왔다. 무응답/모름은 10.1%였다.  세부결과를 살펴보면, 보수층의 59.0%가 반대, 진보층은 35.0%가 반대 의견을 보였다. 찬성은 광주·전라(반대 30.1% vs 찬성 65.3%)와 경기·인천(38.9% vs 47.5%), 40대(43.0%, vs 49.6%)와 진보층(35.0% vs 57.8%)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33.8% vs 57.4%)에서 많았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다음의 사례들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등의 자료를 가져왔다.)  16세기 초엽에 후안 루이스 비베스는 ‘구빈문제에 관한 견해’에서 빈민에게 최소 소득을 지급하자는 구상을 내놓았다. 몽테스키외는 1748년 ‘법의 정신’에서 “국가는 모든 시민에게 안전한 생활수단, 음식, 적당한 옷과 건강을 해하지 않는 생활 방식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콩도르세는 1795년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관’에서 기본소득이란 사회 전체에 걸쳐 확장한 보험이라는 발상을 꺼냈다.  18세기의 사상가 토머스 페인은 토지가 공공재이므로 지대수입으로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샤를 푸리에는 1836년 ‘잘못된 산업’에서 “기본이 되는 자연권을 누리지 못하는 탓에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기본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적 의미의 기본소득은 조지프 샤를리에의 1848년 ‘사회 문제의 해법 혹은 인도적 헌법’과 존 스튜어트 밀의 1849년 ‘정치경제학의 원리’ 제2판에서 구체화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분배에서 특정한 최소치는 노동을 할 수 있거나 없거나 간에 공동체 모든 구성원의 생존을 위해 먼저 할당된다. 생산물의 나머지는 노동, 자본 그리고 재능이라는 세 요소 사이에 사전에 결정되는 특정한 비율로 분배된다”라고 서술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1918년 ‘자유로 향하는 길’에서 생계에 충분한 소득을 모든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 다양한 사상가와 정치인들이 국가배당, 사회배당, 사회크레디트, 사회배당, 기본소득(Basic income) 등의 개념이 제시됐다.  재밌는 것은 시장경제의 수호성인과도 같은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음의 소득세’를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음의 소득세는 고소득자에게는 세금을 징수하고 저소득자에게는 보조금을 주는 소득세 또는 그 제도를 말한다  제도의 실행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지역은 알래스카와 핀란드이다. 1976년 알래스카주 당국은 주 헌법을 개정해 알래스카 영구 기금을 설치했다. 1982년 알래스카주 당국은 6개월 이상 알래스카에 거주한 모든 사람에게 나이와 거주 기간에 무관하게 영구 기금에서 매년 균일한 배당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2017년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장기 실업수당을 받는 시민 중 2,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기본소득 월 560유로(70만 원)를 지급했다.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국가가 주도해 시행한 세계 최초의 사례이다.  2019년 KELA는 기본소득 실험의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기본소득 수령 여부와 취업률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나 기본소득 대상자들의 삶의 질은 향상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핀란드 정부는 좀 더 면밀히 기본 소득의 결과를 분석해 2020년에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만약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면 핀란드는 국가 주도로 기본소득을 입법화하는 첫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기본소득연합이 발족되고 같은 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기본소득 의제를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국내 기본소득 논의를 이끌며 시민사회와 정치권 일각에서 확산되었다. 특히 녹색당에서 활발한 내부 논의가 있어왔고 이와 별도로 2019년 9월에는 기본소득당이 창당됐다. 변종으로는 허경영 씨의 국가혁명배당금당이 있다.  점차 확산되던 기본소득 화두가 코로나19 창궐 국면에서 또 한발 나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코로나19 추경 세부안에 기존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정부는 한시적으로 아동수당 지급 대상자에게 월 10만 원, 기초생계수급자들에게 최대 22만 원,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되 현금(법정화폐)이 아닌 온누리상품권 또는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으로 전달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은 국가재난 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써왔기 때문에 큰 틀에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현금이 아니라 지역화폐 등으로 전달하겠다는 점은 새롭다. 이럴 경우 현금 지금에 따른 퍼주기 논란과 소비가 아닌 저축으로 이어져 기대한 효과를 볼 수 없었던 전례를 극복할 수 있다. 지역화폐는 애당초 저축이 불가능하고 해당 지역 골목상권 가맹점에서만 쓸 수 있어 골목상권에 온기를 불어넣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소비처가 한정되어 있어 경기부양 효과가 낮을 것이란 지적도 있지만 시흥시만 하더라도 가맹점이 6천 곳이 넘고, 온라인쇼핑몰과 대형마트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대신 대부분 가맹점이 생활밀착형 소비처라 사용에 큰 불편함이 없다. 무엇보다 지역화폐의 가맹점은 골목상권이란 점에서 재난 상황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계층과 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투입 효과를 볼 수 있다.  기존의 기본소득 논의에서도 지급수단을 지역화폐로 하는 방안이 있어왔다.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은 경기도이다. 사진 출처 - 구글  경기도는 2019년부터 경기도 거주 3년 이상 만24세 청년에게 분기에 25만 원씩 1년 동안 100만 원의 청년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지급수단은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각각 시행하는 지역화폐이다.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A씨는 시흥화폐 시루로, 안산시에 사는 B씨는 안산화폐 다온으로 받는 식이다. 이 돈은 소비의 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주요 통로인 온라인쇼핑몰, 백화점, 대형마트, SSM 등에서는 쓸 수 없고 지역에서만 순환된다. 산후조리지원비 50만 원도 동일한 방식으로 지급된다.  만일 청년기본소득을 현금으로 지급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포퓰리즘의 극치, 퍼주기의 끝판왕 또는 빨갱이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을 것이다.(유럽 쪽 좌파에서는 지역화폐를 우파 정책이라고 본다) OECD 국가 중 GDP 대비 복지비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청년기본소득이라는 도전적 정책이 건재한 것은 ‘복지+지역화폐 지급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패키지 때문이었다.  경기도는 지난해 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역화폐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지역화폐와 복지정책을 연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65세 이상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의 30%를 지역화폐로 전달하면 생산유발효과가 연간 13.3% 증가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지역화폐 연계를 통한 복지전달체계와 지역경제 활성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이 완전한 형태의 기본소득은 아니다. 기본소득은 보편성을 가져야 하지만 청년 기본소득은 24세 청년에게만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없었던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기본소득임은 틀림없다.  핵심은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전달한다는 점이다. 경기도의 시도는 전 세계 3,000여개의 지역화폐 중에서도 전례가 없던 실험이다.  물론 보편적 기본소득 적용이 현실화된다면 그 모두를 지역화폐로 전달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이다. 지역화폐는 말 그대로 지역 내 소비의 순환을 목적으로 하므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소비에 모두 대응할 수 없다. 기본소득 전체 비중에서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19는 꿈틀거리던 기본소득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미래 사회는 근로소득자와 기본소득자로 나뉠 것이라는,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모를 전망도 나온다. 기본소득 그리고 지역화폐와 결합한 기본소득 논의가 향후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결과물로 나올지 주목된다.
2020-03-11 | hrights | 조회: 280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