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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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광조(CBS PD),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정재원(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홍미정/ 단국대학교 중동학과 조교수  100년 전 1917년 11월 영국외상 밸푸어는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 고향 건설’을 허락하는 소위 밸푸어 선언을 하였다. 2017년 12월 6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라는 선언을 함으로써, 이스라엘 건국이념인 시온주의를 성취한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선언에 대하여 12월 8일,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은 우리의 수도, 예루살렘과 우리의 영광스런 민족의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트럼프 선언에 맞서 각 도시마다 시위를 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점령 하에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입지를 정립해 가고 있었다. 이에 맞서 트럼프 선언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소위 ‘세기의 협상안’은 이러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구노력을 완전히 무산시키는 것이다. 이스라엘 군 최루탄 피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 사진 출처 - 뉴스1  2011년 10월 31일, 팔레스타인은 UNESCO에 완전한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2012년 11월 29일, 유엔에서 팔레스타인의 지위는 비회원 옵서버 단체에서 비회원국 옵서버 국가로 승격되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은 유엔의 장에서 국가의 지위를 얻었고, 유엔은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The State of Palestine’ 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2015년 4월 팔레스타인은 공식적으로 국제형사 재판소(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의 회원이 되었다.  게다가 2017년 9월 20일에는 서안에 기반을 둔 4개의 인권단체 - 알 하끄, 알 마젠 인권센터, 팔레스타인 인권센터, 알 다미르 인권협회 - 가 ICC에 서안에서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과 가자에서의 범죄 행위를 포함하는 이스라엘 범죄를 조사할 것을 요구하는 700쪽으로 구성된 자료를 ICC에 제출했다. 알 하끄 대표에 따르면, 이 자료들은 4개 단체들이 수집한 사실에 입각한 정보에 토대를 둔 것으로, ICC의 로마규정에 따라 계획적 살인, 주민 추방, 이스라엘 점령촌 건설, 가자에 연안 천연가스 자원 채굴과 파괴 등 광범위한 재산 파괴와 전유 등 광범위한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행위들에 대한 전면 조사를 요구하였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ICC 검사 사무실은 이 자료들을 받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제출된 자료들을 적절하게, 완전히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로마규정에 따라 분석할 것이다. 다음 단계에서 우리가 결정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발송인에게 알리고, 우리의 결정에 대한 근거를 제공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ICC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헤이그 소재 ICC법정에서 재판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11월 미국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스라엘 ICC 제소에 맞서 워싱턴 소재 PLO 사무실을 폐쇄하겠다고 협박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ICC에 이스라엘 기소를 중단하고, ‘무조건적인 평화회담’을 시작하라고 요구하였다. 현재까지 미국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미국에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설립하지 못했고, 1994년 오슬로 협상 과정에서 PLO가 팔레스타인인들을 대표하는 워싱턴 사무실을 개소하였을 뿐이다.  미국이 제안하는 ‘무조건적인 평화 회담’은 트럼프와 사우디가 주도하는 것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을 종식시킬 최종 계획, 소위 ‘세기의 협상’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선언 한 달 전인 11월 6일,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팔레스타인 수반 압바스를 리야드로 초청하여, 이 계획 ‘세기의 협상’을 설명하면서, 압바스에게 “이 계획을 수용하던지, 수반 자리에서 내려오던지 하라”고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바스와 리야드 방문에 동행한 팔레스타인 관리들에 따르면, 2018년 초에 모습을 확실히 드러낼 것으로 예상되는 이 계획은 예루살렘 없이, 1948년과 1967년 전쟁으로 추방당한 난민귀환 없이, 토막 난 서안의 고립된 영토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제한된 자치다. 이것은 국가로서의 최소한의 주권도 갖추지 않은 모습이다.  2017년 11월 18일, PLO 사무총장 사에브 에레카트는 만약 미국이 워싱턴 소재 PLO 사무실을 폐쇄한다면, PA는 미국 행정부와의 모든 접촉을 중단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같은 날 미 국무부가 그에게 보낸 편지에는 ‘2015년 4월 1일 팔레스타인의 ICC가입, 2017년 9월 팔레스타인이 ICC에게 점령촌 건설과 가자에서의 전쟁 범죄행위 등 이스라엘 전쟁범죄 조사 요구에 대한 대답으로 PLO 사무실이 폐쇄될 것이다’고 쓰여 있다. 11월 22일, 하마스는 워싱턴 소재 PLO 사무실 허가 갱신을 위하여 미국이 내놓은 새로운 조건은 이스라엘이 전쟁 범죄자가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하마스는 또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게 이러한 조건들을 거부하라고 요구하였다.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워싱턴 소재 PLO 사무실 허가 갱신을 팔레스타인의 ICC가입이나 시온주의자 전범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과 연계시키는 것은 미국이 완전히 편파적이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2017년 11월 23일, 사우디와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에게 이스라엘 ICC기소를 취소하라고 압력을 가하였으며, 그는 이스라엘 관리들을 기소하는 단계를 밟지 않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이끄는 사우디와 대통령 압델 파타 알 시시가 이끄는 이집트가 팔레스타인 대의를 배반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협력하는 중요한 예다.  트럼프 선언에 맞서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는 새로운 인티파다(민중봉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 공격을 시작하면서, 12월 9일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자는 다시 한 번의 커다란 위기를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2017-12-11 | hrights | 조회: 73 | 추천: 5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1. 수업하러 이층에 올라갔더니 내 학급 앞 복도에 반 아이들이 서 있다.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그 녀석이다. 수업 시작 타종이 울린 지 몇 분이 지난 시각인데, 왜 저러고 있을까? 더군다나 그 녀석은 가방을 들고 있다. 다가갔다. “광제 너, 왜 가방을 싸들고 나왔어?” “무기정학 먹으라고 하면서 싸들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누가?” “학생부 선생님들이요” “그래? 학생부 선생님, 누구?” “xxx 교련 선생님하고, yyy 체육 선생님하고......” “그래?! 들어가서 공부해!” 화가 났다. 아니, 이 놈들이 담임인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저거들 마음대로.  1-1. 어제였다. 교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학교에서 가장 젊은 지학 담당 정 선생이 씩씩거리며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뒤로 우리 반 학생인 광제 녀석이 입에 피를 묻힌 채 뒤따라 들어왔다. 나는 못 본 채 ‘왜 저러나?’ 하면서 예의 주시했다. 정 선생이 책상에 앉는다. “그래? 내 강의한 것이 뭐가 틀려? 말해 봐” “선생님 강의가 틀렸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혹시 천정 정의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말했을 뿐입니다” “야이! 새끼야! 그게 그거잖아!” 고함을 지르면서 일어선다. 일어서면서 광제 녀석의 뺨을 친다. 맞고도 광제 녀석이 정 선생을 빤히 쳐다본다. 뺨을 맞고 나자 광제 녀석이 입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주변에서 말한다. “야! 조광제. 나가서 얼굴 씻고 와! 빨리 나가!” 그때였다. 광제 녀석이 크게 소리쳤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기 전까지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정 선생도 덩달아 소리쳤다. “너 이 놈의 새끼! 퇴학시키지 못하면 이 학교 관두겠어” 정면충돌이었다. 결국 광제 녀석은 얼굴을 씻고 학급으로 돌아갔다.  문제의 지학 수업이 그날 마지막 수업이었다. 학급 종례를 끝낸 뒤 교장선생님이 특별히 교무회의를 소집했다. “앞으로 학생들을 함부로 구타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정 선생님은 연 이틀 학생을 감정적으로 구타한 것으로 보고가 되고 있으니 자중해 주시고요. 이상입니다”  2. 고3 지학 시간이다. 선생님이 지구에서 하늘의 별들을 관측하는 일에 관해 열심히 설명을 하면서 판서를 해나갔다. 그러다가 뭔가 잘못된 양 강의를 멈추고서 판서 내용을 검토하는 듯 했다. 30초쯤 흘렀을까. 학생인 내가 왠지 불안했다. 그래서 말했다. “선생님!” “왜?” “혹시 저 맨 앞의 천정 정의가 잘못된 거 아닙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선생님의 얼굴이 갑자기 붉게 물들면서 깐깐하게 뭉쳐진 소리를 내뱉었다. “뭐! 뭐가 틀려! 이리 나와 이 새끼!” 나는 엉거주춤 교단 앞으로 나갔다. “이 새끼! 내 선생질 3년 넘게 하면서 니 같은 새끼는 처음 봐. 이리 와!” 교단 위에서 주먹을 냅다 내 얼굴에 내질렀다. 맞으면 별이 번쩍인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다시 한 번 주먹이 날라 왔다. 이번에 다른 쪽 주먹이었다. 나는 그의 두 팔을 잡았다. 말했다. “선생님 교무실에 가서 말합시다” “그래? 이 새끼!” 하면서 이제 뺨을 연거푸 때렸다. 나는 그냥 뺨을 내주었다. 그는 제풀에 지쳤는지 말했다. “들어가 있어” 그의 말대로 들어와 앉았다. 분하기도 하거니와 급우들에게 창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사실 나는 건강이 안 좋아 휴학한 뒤 복학한, 1년 전만 해도 급우들의 한 해 선배였던 것이다.  2-1.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교무실에 가서 끝장을 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씩씩거리며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기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의 책상 앞에 섰다. “그래, 교무실에서 말하자며. 말해봐!” “수업 처음에 천정을 말할 때 관측자의 머리 위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그날 수업을 요약해서 쫙 말한 뒤, “이 대목에서 선생님께서 머뭇거리시기에 혹시 저 맨 앞에 천정 정의가 잘못된 것 아닙” 하고서 아직 말끝을 맺지도 못했는데, “뭐가 틀려!” 소리를 지르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또 내 뺨을 쳤다. 선생님들이 나가서 얼굴을 씻고 오라고 다그쳤다. 그때 나는 크게 말했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그 와중에 조금 멀리 아래 책상을 내려다보고 계시는 담임선생님이 보였다. 그때 그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내, 니놈을 퇴학시키지 못하면, 이 학교 관두겠어”  2.2. 그 다음 날이었다. 두 번째 수업 타종이 울렸는데 반장이 학생부 xxx 선생님이 나보고 교련실로 오라고 한다고 일러주었다. 수업을 하지 않고 교련실로 갔다. 학생부 교사들 5인이 쿠션 의자에 마주 보고 둘러앉았다. 나를 가운데 나무의자에 앉혔다. “너, 어제 정호종 선생님이 강의하는 데 틀렸다고 했다면서” “틀렸다고 한 것이 아니라, 혹시 잘못된 게 아니냐고 했습니다” “야 이 놈아! 그게 그거지” 나는 그들의 윽박지르는 전반적인 분위기에 상당히 압도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완전히 주눅 든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말했다. “저 놈, 저 눈 봐 눈” 예사로 선생에게 덤벼들 수 있는 놈이라는 거였다. “너 때문에 어제 정 선생님이 교장선생님한테 얼마나 창피당한 줄 알아?” “……?” “책임질 거야, 안 질 거야. 너 같은 놈은 무기정학 먹고서 집에서 푹 쉬어 봐야만 선생님 은혜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그들의 허리쯤 높이를 쳐다보면서 빠른 속도로 생각했다. 학교를 그만 두자, 검정고시를 쳐서 대학엘 가자, 등등...... “야 이 놈아. 왜 아무 말이 없어. 책임 질 거야 안 질 거야”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책임지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지금 교실에 들어가서 책가방 싸서 나와!”  2.3. 교실로 돌아와 일단 수업을 마쳤다. 나로서는 마지막 수업이라 여겼다. 끝난 뒤 반장을 불렀다. “교련실에 갔더니 학생부 선생들이 나보고 무기정학 먹으라고 하네. 책 보따리 싸오라고 해서 지금 나가려고” 반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말이 안 된다는 거였다. 선생이 흥분해서 학생을 마음껏 치고 때린 건 데 무슨 무기정학이냐, 가만있으면 안 된다, 데모해야 한다 이거, 그 와중에 다음 수업시간 시작종이 울렸다. 일단 다른 친구들은 교실로 다 들어가고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나 세 사람만 복도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저기 복도 중앙에서 다른 반에 강의하러 가시던 담임선생님께서 우리를 보시고는 우리 쪽으로 오셨다. “광제 너, 왜 가방 들고 있어?” “교련실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학생부 선생님들이 무기정학 먹으라고 하면서 가방 싸들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뭐!? 어떤 새끼가 그래!” “xxx 선생님 하고 yyy 선생님 하고” “그래? 알았어. 일단 들어가서 공부해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3. 그 뒤로 나는 학교를 무사히 잘 다녔고, 졸업도 했다. 지학 담당 정호종 선생은 두 달 쯤 있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어디론가 떠났다. 알고 보니 정식으로 발령이 난 교사가 아니었고 임시 강사였다. 나보고 무기정학 먹으라고 큰소리쳤던 체육선생 yyy와 교련선생 xxx는 나만 보면 못 본 척 피하는 것 같았다.  4. 노망이 들면 오래된 일만 생생하게 남고 최근의 일은 재빨리 지워지는 법인가. 그리고 자꾸 옛일이 생각나는 법인가. 아무튼 43년 전 쯤의 일인데도 그 장면 장면들이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하다. 무엇보다 교련실 학생부 교사들에게 잡혀갔을 때 들었던, “저 놈, 저 눈 봐 눈” 하는 말을 잊을 수 없다.  “혹시 저 맨 앞의 천정 정의가 잘못된 것 아닙니까?” 하고서 질문했을 때, “저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습니다”라고 선언했을 때, 그때 나의 눈빛은 과연 어떠했을까? 나로서는 쉽게 가늠할 수 없지만, 결코 그저 을의 위치에 있는 학생으로 비쳐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학생은 결코 을의 위치에 있는 자가 아니다. 사회적으로는 이해관계 때문에 갑을이 임시로 정해지겠지만, 인간관계의 근본에 있어서 무슨 갑을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 근본은 바로 눈빛에서 드러난다. 눈빛은 결코 양도할 수 없는 인간됨의 타고난 권리를 표현하는 근원적인 위력이다. 바로 바라보는 눈빛에서 나의 존재가 건립된다. 따라서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는 출발은 그의 눈빛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눈 안 깔아!”라고 해서 상대의 눈빛을 지우고자 하는 데서 인권에 반하는 일들이 시작된다. 눈빛이 인권이다. 언제 어디서건 누구에 대해서건 모두의 눈빛이 부드러우면서 깊이 있게 살아있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알짜라 할 것이다.
2017-11-22 | hrights | 조회: 73 | 추천: 2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 네트워크 ‘젠더고물상’ - “내 아내 성폭행하실 분” 인터넷서 물색한 남편, 모텔에서 술에 취한 아내를 함께 성폭행... 경찰에 체포 - 대법, '여중생 성폭행·임신' 40대 기획사 대표 무죄 확정. "사랑해서 이뤄진 관계" 주장 받아 들여 - 한샘 신입여직원 강간 및 성폭행, 몰카, 성폭행 재시도 - 현대카드 여직원 성폭행 - '장기자랑 논란' 성심병원, 임산부까지 동원? "응원 강요…아스팔트 위에 장시간 방치" - 일선 간호사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임신 순번제' 오늘, 인터넷 검색 3순위가 페미니스트였다. 의아해서 검색해보니 가수지망생 모씨가 발언한 ‘트랜스젠더와 여성혐오’에 대한 sns의 글이 1순위로 오르면서 ‘페미니스트’도 덩달아 검색순위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여기서 트랜스젠더가 여성이냐 아니냐를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가 검색 상위에 오를 정도로 이제 페미니즘, 여성주의는 어쩌면 일상 곁으로 다가온 건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주워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보편화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페미니즘의 확산의 뿌리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꼴페미’, ‘김치녀’ 등의 용어와 더불어 사용되는 예가 많고, 페미니즘 논쟁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여성혐오꾼’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들이 오히려 페미니즘을 일상의 용어로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페미니즘은 사회적 여성이슈나 여성폭력 관련해서 논쟁이 발생하는 곳에서부터 퍼져나오고 있다. 위에 열거한 사건들은 최근에 발생한 여성들에 대한 폭력과 차별, 성희롱 사건들이다.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한 이가 대통령이 되고, ‘진보’를 자처한 이들이 정권을 이루고, ‘야당’을 자처하는 이들이 집권정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들에게는 ‘페미니스트’도, ‘진보’도, ‘야당’도 안 보이는 걸까? 남편은 아내를 윤간 대상으로 보고, 기업들은 여성사원들을 ‘성폭력’과 ‘선정’의 대상으로 보며. 기획사 대표는 연예인 시켜주겠다는 것을 빌미로 수차례 강간을 했는데, 법원은 그걸 ‘사랑’이라 부른다. 그리고 출산율 저하를 우려하는 국가와 사회는 간호사들이 ‘임신’을 위한 순번제를 한다는 것을 모르쇠하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며칠 전 한샘과 현대카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성명을 통해 “여성에겐 모든 기업이 한샘!”이라고 못을 박았다. 드러나지 않았으나 만연한 직장 내 성희롱 및 성폭력 사건을 꼬집는 말이다. 여성들에게 모든 기업은 성희롱과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하는 곳이다. 직장 내 성폭력과 성희롱은 결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때문에 피해여성들은 그곳이 직장이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어렵게 입사한 직장을 그만두고 평생을 우울증과 자폐에 시달리며 살아내는 여성들. 모든 범죄 중에서 유독 성폭력만 피해자가 손가락질 받는 사회문화 속에서 성폭력 피해여성들은 피해자임에도 가해자처럼 숨거나 숨기거나 하는 것이다. 나의 직장이 일터가 아니라 폭력의 현장이라고 느껴질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내를 물건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남편, 연예인 후보생을 성적 노리개로 취급하는 기획사 대표, 그 남편들이 만드는 기업문화, 기획사 대표가 만드는 우리사회 성문화, 몇몇 글만을 보고 성폭력을 사랑이라 인정하는 법제도가 만드는 법의식과 문화...... 가족, 기업, 미디어, 그리고 법과 제도까지, 가부장제는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가부장제도는 여성에겐 굴레이자 억압 그 자체다. 억압과 차별이 만연하고 폭력으로 일상이 두려움과 불안이라면 그것은 민주주의일까? 그리고 그것은 진보일까? 사진 출처 - 여성신문 며칠 전 강의를 하러 간 어떤 여성단체에서 한 여성이 진보주의자인 남편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것을 보았다. 집안일은 전혀 하지 않고, 소통도 않으며, 경제생활도 하지 않고 오로지 ‘진보정당’ 일에만 매진을 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경제생활과 임신/출산/양육에 가사노동까지 전담해야 했던 이 여성은 현재 우울증 치료약을 먹고 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남편의 주장이라고 한다. 무엇이 큰 것이고 무엇이 작은 것인가? 불통을 우린 ‘독재’라 한다.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사람을 우리는 뭐라 불러야 할까? 그 남편은 진보주의자이지만 실상에선 무능력하고 무위하며, 독재자일 뿐이다. 여성에게 그러한 진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정한 진보정권을 자처한다면, 여성문제가 민주주의의 척도라는 생각을 좀 더 진지하게 하길 바란다. 모든 인권은 피해자들의 존재로부터 출발한다. 피해자들에게는 존재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커다란 용기이고 투쟁이다. 인권은 투쟁으로부터 나온다. 성폭력 피해자 여성들이 드러내는 ‘성폭력의 존재함’은 여성인권의 바로미터이고 이로부터 여성인권의 방향이 나오는 것이다. 국가는 이러한 피해자들의 목소리, 폭력의 존재함에 대해 민감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권임을 직시하고 전 사회적인 변화를 위한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한 사회는 결코 진보한 사회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진보한 국가도 정권도 아니다. 고통 받는 이들을 외면하는 정치란 존재할 수 없다. 정치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아니라 ‘소를 위한 대의 헌신’이 필요한 데서 발생한다. 진보란 작은 것, 일상, 생활의 평화를 보장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란 점에서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주장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여성주의에게 현 정권은 결코 진보적이지 않다.
2017-11-17 | hrights | 조회: 26 | 추천: 1
  : 에너지 강국으로 부상하는 이스라엘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 강화되는 가자지구 해안 봉쇄   올해는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고향 창설을 목표’로 내세운 세계시온주의자기구 창설(1897) 120년,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고향 창설’를 지지한 밸푸어 선언(1917) 100년,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유대국가, 아랍국가, 예루살렘 국제지구로 분할에 합의’한 유엔총회 181호 결의(1947) 70년,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켜서 동예루살렘, 서안, 가자와 골란고원을 불법점령(1967)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점령한지 50년이 된다.   2017년 현재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요원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추진함으로써, 천연가스 수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1998년 이후, 팔레스타인 가자를 포함하는 동지중해 연안에 천연가스가 대량 매장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천연가스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서 가자 봉쇄의 고삐를 점차 조인다고 믿는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유전탐사 및 개발뿐만 아니라, 어업활동을 할 수 있는 한계를 다음과 같이 계속 줄여왔다.   1995년 오슬로Ⅱ 협정은 팔레스타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가자 연안 경계를 20해리(37.04㎞)로 한정하였다. 2002년 베르티니 협정은 그 경계를 12해리(22.22㎞)로 대폭 줄였고, 2006년 10월, 이스라엘군이 허용한 어업한계는 6해리(11.1㎞), 2009년 1월, 이스라엘군이 허용한 어업한계는 그 절반인 3해리(5.5㎞)로 줄었다.   현재 이스라엘은 가자 지역에서 발견된 석유와 가스자원을 독점적으로 탐사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스전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가자지구 해안을 봉쇄하고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가자를 포위하고 공격하는 진정한 이유를, 가자 연안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를 강탈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동지중해 연안에서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천연가스 탐사와 개발 및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은 이스라엘의 가자 해상 봉쇄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가자 지구 해안 봉쇄     □ 가자 마린 가스전 개발차단 및 노아 가스전 개발   : 팔레스타인의 에너지 독립을 저지하는 이스라엘   1998년 동지중해에서는 처음으로, 가자지구 연안에 위치하는 가자 마린(Gaza Marine) 가스전이 발견되었다. 이 가스전은 가자 해안으로부터 19.43해리(36㎞) 해상에 위치하고, 0.32해리(610m) 깊이에 위치해서 비교적 개발이 용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 가스전은 팔레스타인 전역에 공급할 충분한 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출할 여력이 있고, 팔레스타인을 에너지 독립국가로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9년 팔레스타인자치정부는 BG(British Gas Group)에게 가자 연안 전역에 대한 25년 동안의 탐사 허가권을 내주면서, 가스전들을 개발하고 필요한 기반시설을 건설할 권리를 부여하였다. 2000년 BG는 가자 마린에서 두 개의 유정을 굴착하여 매장량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2000년 9월 28일 제2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알 아크사 인티파다) 발발을 빌미로, 이스라엘은 가자 마린 가스전에 대한 접근을 금지하고, 이 전으로부터 가스를 추출하려는 시도를 완전히 차단하였다.   가자와 이스라엘 연안 가스전      2016년 4월 8일 로얄-더치 쉘이 BG를 인수하면서, 가자 마린의 운영권을 가져갔다. 2017년 현재 로얄-더치 쉘이 가자마린 지분 55%, 통합 시공사(CCC)가 27.5%. 팔레스타인 투자 기금(PIF) 17.5%, 지분을 갖고 있다. 그러나 2017년 현재 가자 마린은 여전히 개발되지 않은 채로 방치되어 있다.   반면 1999년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 회사들은 가자와 이스라엘 경계지역의 가스 자원을 탐사하고 채굴하고 있다. 2012년 이스라엘의 승인을 받아서, 미국회사 노블 에너지와 이스라엘 회사 델렉시추는 가자 인근에 위치한 노아 가스전을 급하게 개발함으로써, 주변지역의 전체 자원을 손상시킬 위험을 촉발시켰다. 가자와 이스라엘 경계지역에서 진행되는 이스라엘의 가스자원 탐사와 개발에 대하여, 팔레스타인 인권단체 알 하끄(Al-Haq) 사무총장 샤완 자바린은 “점령당한 팔레스타인에서 행해지는 이스라엘의 가스 자원 채굴과 파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고, 강탈행위이며, 전쟁범죄다. 재산파괴는 제네바 협정의 심각한 위반이다. 이스라엘 가스전 개발을 모색하고 있는 국제기업들이 팔레스타인 해역을 통해 가스를 수출한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적대 행위를 강화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 마리B 가스전 개발과 아쉬켈론-엘 아리시 파이프라인 건설   : 팔레스타인인들 가자 연안 접근금지   2000년 이스라엘이 가자연안에서 발견한 마리B 가스전과 2005년 가자 연안 전역을 가로지르며 건설한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연결하는 아쉬켈론-엘 아리시 파이프라인은 가자연안 유전지대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주요한 전략적인 수단이다. 이스라엘은 이 주변 지역들을 어업금지 구역으로 선언하였다.   마리B 유전은 가자 해안으로부터 11.29해리(20.92㎞) 해상에 위치해서 팔레스타인 소유인 가자 마린보다 가자 해안에 더 가까이에 위치한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마리B 가스전이 가자 연안에 있으므로, 팔레스타인인들 소유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가자로부터 11.29해리(20.92㎞) 해상에 건설된 아쉬켈론-엘 아리시 파이프라인은 가자 연안 전역을 가로지르며, 이스라엘의 아쉬켈론과 이집트의 엘 아리시를 연결한다.   2002년 베르티니 협정에서 팔레스타인인들 활동 한계는 12해리(22.22㎞)였으나, 2005년 아쉬켈론-엘 아리시 파이프라인이 건설되면서, 2006년 이스라엘군이 허용한 어업한계는 6해리(11.1㎞)로 줄었다.     가자 연안 가스전과 아쉬켈론-엘 아리시파이프라인 http://www.joabbess.com/2011/07/08/natural-gaza-4/      2009년 1월, 이스라엘군이 허용한 어업한계는 그 절반인 3해리(5.5㎞)로 줄었다. 이로써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자 해상 가스전 등에 접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 가자와 이스라엘 연안 가스전 현황   다음 표에서 보는 것처럼, 가자와 이스라엘 연안 전역이 가스전 위에 존재한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현재 미국 회사 노블 에너지가 이스라엘 회사들과 공동으로 이 유전들 대부분을 개발하고, 운영한다.     □ 수출용 가스파이프라인 건설과 팔레스타인의 주권박탈   이 가자와 이스라엘 연안 유역의 천연가스는 결국 국제 시장에 나올 것이고, 그 주요한 시장은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집트, 터키 등 주변 국가들과 유럽이 될 것이다.   2014년 이스라엘은 레비아탄과 타마르유전에서 나오는 가스판매 계약을 팔레스타인과 요르단과 체결하면서, 2019년 초에 가동 예정인 팔레스타인 제닌 발전소에 20년 동안 4.75 Bcm를 수출하고, 사해의 요르단 공장에 15년간 1.8 Bcm를 수출하기로 결정하였다. 게다가 2017년 현재 이스라엘은 터키와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협의 중이다.   이스라엘의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 Graphic: Israel Ministry of Water & Energy     2017년 6월 15일, 이스라엘, 이탈리아, 그리스, 키프로스는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동지중해 가스전들로부터 가스를 유럽으로 운송하는 파이프라인 개발계획을 가속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유럽은 에너지 공급을 다변화시키려고 애쓰고 있으며, 그리스는 동지중해로부터 유럽으로 운송되는 가스의 통관 허브가 되기를 원한다. 그리스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우리는 동 지중해에서 경제 협력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 건설에 대한 합의를 실천하기로 합의하였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이스라엘, 이탈리아, 그리스, 키프로스 사이의 파이프라인건설 협정은 유럽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해안봉쇄를 묵시적으로 승인하는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천연가스 수출국으로 탈바꿈하게 됨으로써 역내 에너지 강국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된 가자 연안에 대한 지배권을 더욱 확장하고, 팔레스타인인 출입금지정책과 영해와 영토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권박탈 정책을 한층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7-11-09 | hrights | 조회: 37 | 추천: 2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2000년대 초중반 유학 시절의 일이다. 비공개로 올린 한인 불법 성매매 업소에 대한 민원을, 해외에서의 사안이라며 전 공관 직원들이 공유하는 바람에 주요 당사자였던 공관 직원들이 필자의 연락처까지 공유하게 되었다. 한인 업주들은 물론 이들을 보호해 주는 현지 마피아들에게까지 신상이 알려지게 되어 심각한 위협을 당한 일이 있었다.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모아 운동을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공관에서 불법 성매매업소 주인, 그리고 업소를 출입하는 기업인 등 다수의 남성들이 똘똘 뭉쳐 공격을 해 왔다. 성매매 업소를 갖고 있던 당시 한인 회장 주도로 마치 한인이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철없는 자들의 행동인 양, 거짓으로 점철된 성명서를 버젓이 교민 신문에 싣기도 했다.   전체 교민 수 약 3000 여명, 그 중 절반 정도는 학생이거나 여성이니 성인 남성은 대략 1000 명도 안 되는 사회인데도 사실상 성매매 업소인 한국식 가라오케는 대략 10 군데가 넘게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유출입이 많았지만 대략 한 업소 당 적게는 30 여명에서 많게는 50 여명 정도의 여성들이 있었으니 엄청난 수의 성매매 업소와 여성들이 존재했다. 이들 업소들은 현지법상으로도 불법이라 지역의 부패 관료들과 경찰, 그리고 마피아들에게 엄청난 돈을 갖다 바쳐가면서 창고와 같은 공간들을 개조해서 운영하는 등 철저하게 현지의 법과 도덕을 파괴하면서 영업을 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컸다.   이러한 업소들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주로 우즈베키스탄 등 한인 성매매 업소가 먼저 생겼던 국가 출신으로, 대부분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태에 있는 여성들이었다. 민족적 구성은 우즈베키스탄 출신 러시아인 등 매우 다양한데, 그 중 고려인들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인 동포인 고려인의 아픈 역사, 원조와 교육의 필요성 운운하면서 뒤에서는 이들 여성들을 쾌락의 도구로 삼는 극단적인 모순의 현장이기도 했다. 현지 러시아인 남성들은 이러한 형태의 성매매 업소에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국 여성들을 성매매 여성으로 만드는 한인들에게 분노하여 종종 당국에 고발을 하기도 했기에 러시아인 남성은 잘 받지 않았다. 반면 이윤을 위해서라면 평소에는 경멸해 마지않는 중국인 남성들은 물론, 한인 여성과 성매매를 할 수 있다는 홍보까지 해가며 일본인 남성들을 끌어들이는 만행을 자행하기도 했다.   이들 중앙아시아 출신 여성들은 한인 성매매 업소 네트워크를 통해 조금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러시아로 불법적으로 송출되어 왔다. 현지 경찰 등에 적발될 경우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기에 성매수 남성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아무런 항의를 할 수 없었다. 인터뷰를 통해 들은 사례들은 충격적이었다. 몰래 성기 등의 사진을 찍다가 들켜서 폭력을 행사한 경우, 집단 성매매를 반 강제적으로 시켰으나 제대로 항의도 못 한 경우, 월경 중이라 성매매를 나갈 수 없는 여성에게 성매매를 강요해 거절하자 욕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경우, 강간을 당해 부상당했으나 병원에도 제대로 가지 못 한 경우, 머리 색깔이 희한하다며 잡아당기거나 오랜만이라며 툭툭 때리는 일, 그리고 이들과 동거하다가 임신할 경우 도주하는 짓 등등 끔찍한 사례들이 넘치고 넘쳤다.   이들 여성들은 한국 욕도 많이 알고 있었는데, 도대체 이러한 욕은 한국 남성들이 왜 어떤 상황에서 썼기에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알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러한 욕설과 폭력들은 소수의 깡패 같은 이들이 저지르는 만행이 아니었다. 최고 학벌을 자랑하는 고위 전문직이나 사장들이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만행들이라는 데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욕설과 폭력 문제 이전에 현지법상으로도 이러한 업소 자체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남성들은 현지 교민, 관광객, 출장자 등은 물론 공관 직원과 기업인 등 현지법을 철저히 무시하고 여성들을 유린하는 국제적 범죄 행위를 태연하게 자행하고 있었다.   불법인 이러한 업소들에서 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해서 이들 여성들은 여러 명이 사는 좁은 거주지에서도 난방도 하지 못하고 소리도 제대로 못 내며 최소한의 물품만으로 살아가곤 한다. 경찰에게 걸릴 경우 어마어마한 뇌물을 주거나 때로는 이들에게 성을 상납해야 한다. 한국인 업주들은 강제로 소위 2차까지 강요는 하지 않지만,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결국 성매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거주비, 의상비, 항공료 등등 초기 정착 비용을 갚지 못 하면 안 되는데, 결국 이를 갚기 위해 성매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성매매와 관련된 비용은 50% 이상을 업소가 가져가고 소위 2차, 즉 성매매를 하지 못 하는 경우 그 날의 임금은 0원이다. 이러한 일들이 어느 정도 폭로되자 돌연 업주들과 이들을 대변하는 교민 사회 성인 남성들은 여성들의 생존권을 내세우며 이런 업소가 사라지면 특별한 기술이나 학력이 없기 때문에 가족부양도 못 하게 된다며 여성들의 생존권의 대변자인 양 행동한다. 동시에 그녀들은 원래 섹스 없이는 살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여성들이라며 어차피 그런 여성들 섹스도 다양한 남성들과 하면서 돈도 버니 일석삼조인 셈이라며 성산업을 옹호한다. 심지어 이러한 성산업을 비판하는 이들이 성적으로 보수적이라며 성적 자유의 문제와 성매매를 일부러 혼동하며 성매매가 마치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제도인 양 호도하기도 한다. 철저하게 남성 중심적, 아니 남성성욕중심적 논리로 성매매 합법화를 옹호하는 이들의 논리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버젓이 주류적인 목소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범죄행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는 자들이나 한국의 유명한 기업에서 근무하는 자들은 물론 범죄를 단죄하는 국가 기관, 사회의 비리를 폭로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언론인 등등 다수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따라서 좀처럼 이 침묵의 카르텔 구조를 깨기 어려웠고 그 실체가 드러나기 어려웠다. 만나기 힘든 고위 공관원들은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폭로자들을 적극 회유했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라며 성매매 여성들 대표들과의 만남을 친절하게 성사시키고자 했으며, 부패한 현지 관료들과 연결되어 있는 업소 주인들이 돈으로 매수하여 폭로자에게 테러리스트의 혐의를 씌워 추방하겠다고 한 협박을 그대로 전해주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성산업 구조들과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이들, 그리고 이를 은폐하고 옹호하는 카르텔의 구조는 러시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곳곳, 중국 전역, 중앙아시아 등등 한국인들이 있는 곳, 그 중에서도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고통 받는 여성들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그러한 고통을 극단적으로 한국인들이 악용하는 상황이 구조화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지의 부패한 권력과 경찰, 마피아 등과 함께 바지 사장을 내세워 업소를 등록한 후 한국인이 한국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국가를 막론하고 매우 유사했다. 바로 이러한 한국식 성매매 업소야 말로 남성의 쾌락을 위한 여성 비하와 멸시, 도구화가 진행되는 곳이기 때문에 유독 해외에서까지도 한국식 성매매 업소를 선호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 SBS     미 국무성 보고서 등 여러 보고서들에 의하면, 한국은 현재 주요한 해외 원정 성매매 국가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 여성들이 성매매 여성화되어 받는 고통도 심각하지만, 그 동안 본질이 다른 한국 남성들의 해외 성매매 문제는 거의 은폐되어 온 것이나 다름없다. 일부 관광객들의 현지 업소에서의 일탈 행위가 아니다. 한국인들이 사실상 주인인 한국식 성매매 업소를 통한 항시적인 성매매 구조의 고착은 그 어느 누구도 제대로 폭로한 적이 없다.   소위 ‘십상시’ 수사를 진행하다 역공격을 당해 구속되고 옷을 벗게 된 한 전직 수사관이 당시 러시아로 파견되어 수사를 진행했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온갖 방해 책동에도 불구하고 모조리 다 물리치고 이 수사관을 파견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경제적 이유로 고통 받는 국가들에서, 그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인 빈곤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무형의 착취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중에서도 현지법까지 위반해 가며 부패한 구조를 이용하여 자행되는 성적 착취행위를 국가가 방기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적폐 청산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까지 이루어져야 완성되는 것이다.
2017-11-07 | hrights | 조회: 23 | 추천: 0
김재완/ 방송대 법학과 교수     촛불이 광장을 밝힌 지 1년이 되었다. 그 빛의 열망들로 우리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경험했다. 무수히 많은 남녀노소의 평범한 시민들이 스스로 그 주체가 되어,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타락한 사적권력에 맞서 자연스럽게 헌정질서를 복구해 낸 것이다. 힘없는 자들의 힘(power of the powerless)이 광장과 일상을 관통해 이루어낸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그러나 광장이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성과는 아직 우리의 일상으로 옮겨오지 않았다. 물론 현실 정치의 세계는 하루아침에 그 공간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다시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지난한 투쟁의 시간이 있어야만 한다.   그동안 비민주적인 정치세력이 만들어 온 반인권적인 법과 제도들의 그물망은 여전히 촘촘하고, 그 일상에서 우리는 정치, 경제, 교육, 노동, 인권 여러 분야에서 극심한 불평등과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노동문제는 적폐청산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가정과 사회의 생산경제 주체로서 노동자의 불안정에 대한 문제는 국가 전체의 문제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두부를 자르듯 한 칼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옛날 군주처럼 한 마디 명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시민이 만들어 냈던 광장의 이상향과 일상의 모순, 혼동은 당연한 것이다. 이에 노동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광장을 향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떤 정권에서든지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치권력들을 향한 끊임없는 개혁의 목소리만이 평범한 시민들이 가진 무기이고 권리이다. 때문에 광장은 시민들의 일상의 의회가 될 수밖에 없다. 광장에서 우리들은 유대감을 공유하고 같이 부르짖는다. 그 울부짖음에 답하여 의회권력과 행정 권력은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책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 JTBC     우리의 광장과 일상에는 새벽과 해가 지는 어스름한 하루 두 번의 시간이 존재한다. 그 순간은 태양의 붉은 빛과 아직 남아 있는 어둠이 서로 교차한다. 저 언덕 너머에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아니면 내가 믿고 의지하는 개인지를 분별하기가 쉽지 않은 때, 바로 ‘개와 늑대의 시간(heure entre chien et loup)’이다. 개가 늑대가 될지, 늑대가 개가 될 지는 광장과 일상에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늑대들을 물리치는 무기는 힘없는 자들의 힘, 민주시민의 회초리이다.   탄핵촛불 1년이 지난 지금, 광장과 일상의 모순과 혼동 그 모호한 경계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과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여전히 우리의 시간과 요구는 타는 목마름이다.
2017-11-01 | hrights | 조회: 24 | 추천: 0
윤영전/ 평통서문예원장     오백년 장구한 세월을 효(孝) 지명으로 이어온 빛 고을이 내 고향 효골이다. 고을에 들어서면 대로변에 내 고조부모의 효열비(孝烈碑)가 세워져 있다. 조선조에서부터 광주군 효우(孝友)면에서 효천(孝泉) 효지(孝池)면에서 지금은 효덕(孝德)동이다. 우리 8남매가 일제에서부터 보통학교, 초등학교에 입학 졸업한 광주효덕초등학교다.   매년 2월에 효골 효덕초등학교 졸업식에 수년째 특별 순서가 있었다. 전효당(傳孝堂)의 대표인 필자는 매회 졸업생에서 선발한 9명의 효행장학생을 표창해왔다. 간단한 취지에 “변화무쌍한 현세대에서 효행(孝行)을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하지만, 효는 온고지신 마음가짐에 실천하고 장려, 사회와 가정이 바로 선다”고 강조한 내용이었다.   필자는 “현대 물질문명과 이기 개인주의까지 만연한 세상에, 효는 절대 선이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우리 모두가 효행실천의 효야 말로 혼탁한 사회의 덕목이다. 표창 받는 여러분은 효와 학업에 충실하여 장학생으로 표창되었다.” 고 칭찬하였다.   효행을 강조한 필자는 어려서부터 선대의 효행을 눈여겨보고 자랐다. 대로변의 비문에 7대조 선대가 손자 6형제를 두셨는데 아버지는 셋째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이었다. 마침 넷째 할아버지가 늦은 나이 24살에야 17살의 음성박씨와 혼인을 했다. 그런데 출가 해온지 3개월 만에 할아버지가 후손도 없이 그만 급환으로 운명하시고 말았다.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되신 할머니는 양반가 체면에 재출가하지 않고 효도하면서 망부와 시가에 정성을 다해 3년 상을 모시었다. 10년을 재가하지 않고 청상과부로 살아 문중회의에서 양자를 정해주었다. 내 아버지가 숙모에게 10살의 나이로 양자가 되었다. 서당에 보낸 아들이 공부를 잘해 군 백일장에서 장원해 외로운 양모를 기쁘게 한 효자였다.   어언 19살에 아버지는 나주의 풍산 홍문의 18살 맏딸과 혼인해 양할머니의 소원인 손자 손자를 8남매나 두니 자식농사가 풍성했다. 그때 할머니는 손주를 직접 조산원처럼 척척 받아냈고, 손주는 어머니 젖을 먹은 후에는 할머니의 품에서 나오지 않은 젖을 빨고 만지며 자랐다. 양할머니는 노련한 산모처럼 손 자녀들을 양육하시었다.   효골에서 소문이 난 할머니는 청상과부로 재가도 않고 가문을 지켰다고, 파남함(坡南咸) 윤씨 선대 사당을 모신 서강사(瑞岡祠)종중에서 열부(烈婦)로 열부상을 받으셨다. 양자 아버지와 어머님도 생가와 양가 부모에 대한 효행실천에 효자효부(孝子孝婦)상을 받았다. 이는 선대 조부모의 효행을 이어간 것이었다.     사진 출처 - 경남도민일보     그런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 듯이, 맏형이 해방공간에서 군청과 면에 다니면서 건국준비에 가입, 하나 된 조국을 꿈꾸었다. 부모는 물론 외로운 양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효행을 한 맏형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해 20살에 효손 효자 상을 받았다. 결혼도 미루던 형은 시국을 잘못만나 건국초기에 재판도 없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내 아홉 살에 형을 잃고 어린마음이지만 형이 행한 효행은 물론 분단조국의 평화통일에 다가가는 다짐을 했었다. 이후 서강사 문중에서 생가양가 조부모와 부모에 효행으로 오래전에 아내와 같이 효자효부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내 아래 아우가 3남매를 두고 지병으로 사망해 젊은 제수(弟嫂)역시 재가 않고 3남매 자녀를 육성해 효열 부상을 받았다.   이처럼 일가(一家) 3대(三代)에서 효자 열부 효부가 각각 2명씩 6명이 그리고 돌아가신 맏형까지 7인이 효열․효부로 족보에 기록되었다. 이는 선대의 효행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효골에 살면서 명문가의 유훈인 충효가전(忠孝家傳) 문중과 가훈(家訓)인 효학(孝學)과 당호인 전효당(傳孝堂)가의 정신을 온전히 이어온 효행 정신이리라.   필자는 양할머님 생전에 유언을 여쭈었다. 67년간 떨어져 지낸 양할아버지 영혼과 함께한 쌍분묘에다 작은 비를 말씀하시었다. 할머니의 당당한 뜻으로 아버님과 상의하여 효손으로서 약속하고 할머니의 유언을 실행하였다. 효골윤문 재각 옆에 백부가 비문을 짓고 손자가 글씨를 쓰며 일가친척 모시고 효열비 제막했는데 유언을 따랐다.   그리고 부모가 돌아가시어 문중묘원에 모시면서 효자효부 비를 후손들이 함께 세워드렸다. 과제였던 맏형이 65년 만에 과거사진상위에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했다. 그리고 최종 대법원에서 보상판결이 확정되었다. 가문과 맏형의 전효당 삶과 분단조국 통일의 뜻을 이루는 날을 간절히 기원한다.   또한, 필자는 함안윤씨대종회 종중회장으로 8년째 종중의 효행표창을 매년 정기총회에서 표창하였다. 그리고 지난 5년 전부터 나고 자라고 공부한 효덕초교 모교에 매년 8-9명씩 효행장학생을 선발하여 졸업식에서 직접 장학금과 표창장을 전달함으로써 가훈인 효행을 실천하고 있다.   이는 이 시대에 효정신이 점점 잊혀져가고 물질만능주의 현상을 보면서 효자로서의 효행 실천이기도 하다. 새삼 효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효정신의 근본개념을 영구히 이어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인간의 기본 도리다. 그리고 나라와 사회에 기여하는 마음과 충효정신으로 살아간다면 보다 훈훈한 사랑과 인간성이 높아지는 삶의 터이다. 우리 모두와 이웃들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면 그 어떤 일에도 화해와 평화가 다가올 것이다.   이 땅에 오래전 군사문화가 횡횡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 제일주의가 만연한 것이 사실이다. 권력과 금력이 합세한 세력에게는 효행이 그리 달갑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효를 자랑스럽게 행하고 장려한다면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고 인간적인 정신을 이루어 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 가득하다.   * 윤영전(尹永典) 아호: (九巖 孝崗) 당호: 전호당(傳孝堂) (二歡堂) 효행상 2회 수상   서초문학상. 오마이공모 우수상. 국회민족평화통일상. 서예초대작가. 한국작가회 회원   한국작가회 소설가. 한국문입협회 수필가. 한국서예, 전통서예 초대작가. 칼럼니스트.   저서:소설집 (못다 핀 꽃) 수필집(도라산의 봄) 에세이집(평화, 그 아름다운 말)   수필선 (강물은 흐른다) 고희문집(인연, 아름다운 만남) 애창가곡집 (CD)출간
2017-10-14 | hrights | 조회: 18 | 추천: 0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 누가 질새라, 막말 경쟁이 한창인 이즈음, 북한 노동당 창건일을 바라보는 시선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러시아 국회의원 안톤 모로조프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2주년을 기념해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안 그래도 북미 간 신경전이 최고도에 달한 현재, 과연 그날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걱정하고 긴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시국에 통일이라니, 무슨 물정 모르는 소리냐고 할 사람이 많을 줄 안다. 하지만 그래도, 또는 그래서 한번 점검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마침 관련 조사가 발표된 시점이기도 하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은 2007년부터 매년 한국인 1200명을 대상으로 통일에 대한 인식, 북한 및 대북정책 평가, 주변국 인식 등을 조사해오고 있다. 마침 올해는 조사를 시작한지 꼭 10년이 되는 해고, 10년째 되는 2017년 한국인의 통일의식조사 결과가 얼마 전 나왔다. 가장 주요한 결과로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2007년 63.8%에서 2017년 53.8%로 10년 만에 10% 정도 하락했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 외 10년 사이 주요 설문결과의 차이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사진 출처 - pixabay       10년 사이,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는 사람 역시 10% 줄고, 전쟁 위협을 없애기 위해 통일해야 한다는 사람은 그와 엇비슷하게 늘었다. 아무리 글로벌 시대, 다민족 다문화를 외쳐도 ‘민족동질성에 기반한 통일당위론’이 해체되는 속도와 정도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한편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날로 고조되어온 한반도 긴장 상황을 고려하면, 전쟁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견해의 증가율도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다. 물론 통일을 전쟁방지를 위한 효과적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다시 떠올리기도 싫지만) 지난 정권의 통일대박론 유포에도 불구하고 통일편익에 대한 기대감은 오히려 감소했다.   반면 통일보다 남북이 공존하는 현재의 상태가 좋다는 사람은 10년 사이 두 배가 되었고, 2017년의 딱 그 수치만큼의 사람들이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24.7%). 한국인 4명 중 1명이 통일이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글로벌한 패러다임 변화에도, 1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에도, 그에 따른 상황 변화에도, 그 결과 현재 우리가 직면한 최고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통일에 대한 인식이나 이를 구성하는 요소의 어떤 극적인 변화가 감지되기 보다는 오히려 관성적인 유지가 눈에 띈다. 그 속에서 통일 자체에 대한 인식 자체의 변화가 조용히 진행된다. 이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어쩌면 이 조사에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통일에 대한 이런저런 견해들이 아니라, 그 통일이 과연 어떤 통일인가여야 하지 않을까.
2017-10-13 | hrights | 조회: 18 | 추천: 0
①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요리할 줄 아나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엄마는 페미니스트. 맞다. 책 제목이다.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후배가 선물한 책이다.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제목보다 더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엄마는 페미니스트>는 아디치에가 친구에게 편지형식으로 쓴 글이다. 자신의 딸을 페미니스트로 키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친구에게 아디치에는 열다섯 가지의 제안을 했다. 제안 하나하나에 공감했고, 인종과 문화가 달라 무척이나 낯설어야 하는 제안마저도 내겐 교집합이 보였다. 밑줄 치고 외우고 싶을 만큼 지금 나에게 필요한 내용들이었다.   처음엔 아디치에가 자신의 딸에게 쓴 편지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딸에게 페미니스트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편지를 쓸까 잠깐 생각하였으나, 그건 너무 어렵다. 아디치에만큼 잘 쓸 자신도 없다. 솔직히 아이를 낳아 키우는 7년 동안 여자로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딸을 ‘한국에서’ 키워야 하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왔다. 어떤 때는 너무 한심해서, 또 어떤 때는 너무 억울해서, 또 어떤 때는 너무 화가 났다. 딸에게 편지를 남기는 것보다 주위의 아빠, 엄마들과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나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고 그러려면 사회 전체가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딸의 어린이집 부모들, 교사들, 내 주위의 또 다른 부모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내재된 의식에 대해, 통념과 상식으로 여겨져 온 많은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틈만 나면 이야기하고 써야겠다. 때로는 내 발언으로 분위기가 가라앉더라도, 내가 싸움꾼처럼 여겨진다 해도, 아니 그렇게 여겨지면 뭐 어떤가. 여자들은 지금까지 너무 침묵해왔다. 더 크게 문제제기하고, 스스로든 타인에 의해서든 교묘하게 가리고 숨긴 것들을 신랄하게 까발려야 한다.     사진 출처 - 민음사       나는 요리에 크게 취미가 없다. 맛있는 걸 찾아다니는 행위나 맛집 평가 같은 데 별로 관심이 없다. 당연히 미식가가 아니다. 타고난 미식가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감각은 어릴 때부터 먹어온 음식에 따라 키워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요리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누구든 무슨 음식이든 나 대신 차려주는 음식에 불만이 없다. 불행히도 집에서 (내가 하기 힘들어하는) 요리-반찬과 국, 찌개, 일품요리-를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남편이 할 수 있는 반찬은 계란후라이, 냄비에 물과 밥 넣고 끓이기, 베이컨이나 소세지 굽기이다. 한 가지 과정 이상을 거쳐야 하는 반찬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집에 반찬이 없거나 국이 없는 채로 며칠이 지나면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그것도 몇 중으로. 하나는 왜 나 말고는 이 집에서 반찬을 만들지 않는가, 둘째는 이런 스트레스를 받는 내 마음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데’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나에게 화가 난다. 이 집에 사는 성인 남자 (아이는 빼고) 둘은 반찬이 있건 말건 아무 생각이 없는데, 직장생활로 가장 시간에 얽매어 있는 나만 왜 그 생각을 해야 하는가.   우리 집 남자 중 한 사람은 이십대고 한 사람은 오십대인데, 삼십 년의 격차가 무색하게도 두 사람 다 자라면서 누군가가 해주는 데 익숙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요즘 말하는 심한 한남에 속하지는 않는다. 집안일도 할 만큼 하고, ‘시키면’ 군소리 없이 다 한다. 문제는 ‘시키지 않아도’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 대목에서, 한국 남자들은 ‘도와준다’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같은 공간을 쓰고 같이 밥 먹고 같이 더럽히는 데 누가 누굴 도와준다는 말인가. (여기에 아이의 일까지 엄마가 다 책임져야 한다면, 정말 억소리가 절로 난다) 자신이 먹고 싸고 입는 그 일상을 책임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른이 아니다. 적어도 십대부터는 자신이 놀고 먹고 싸고 입기 때문에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일들을 책임져야 한다.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최근에 딸의 친구와 그 부모가 우리 집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아빠가 자신의 할머니와 얽힌 추억을 꺼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예전 본인이 귀대할 때 골목길까지 따라 나와 용돈을 주머니에 넣어 주시던 장면 등. 그러자 우리 집 오십대의 남자가 엄마는 항상 자신만 보면 구십이 다돼가는 지금도 ‘밥 먹었냐’라고 묻는다며, 엄마들은 언제나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아, 그 엄마로부터 십 년 간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어쨌든 나는 속이 불편했다. “‘당신들’한테 밥 먹었냐고 물으셨겠지. 아마 딸들한테는 그런 소리 안 하셨을 거야. (딸에게도 안 하는 말을 며느리한테 할 리가 없는) 대신 뭐라고 하셨을까? 오빠 (남편 혹은 손주) 밥 차려줬냐고 물으셨겠지. 당신들의 그 낭만 어린 엄마의 밥 이야기는 엄마든 당신의 누이든, 누나든 누군가의 노동이고 희생이라고!” 당연히 분위기 싸해졌다. 싸해지거나 말거나.   누구는 태어나면서 요리할 줄 아나. 대부분의 여자들이 결혼하면서부터 요리를 하게 된다. 타의반 자의반. 그 자의라는 것도 여자가 요리해야 한다(그것도 ‘잘’해야 한다)라는 말을 무슨 사회 규범으로 알고 자라거나 혹은 집에서 엄마만 음식 만드는 걸 보고 자라서 내재화된 여자의 모습에 순응하는 것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것도 나는 타의라고 주장하고 싶다. 하여간 부엌에서 평등이 이루어져야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온 만큼, 내 집 부엌이 그렇지 않다는 것에 나는 또 스트레스다. 스스로 너무나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돌려서 얘기해도 남편은 직접 요리를 시도하지 않고, 갑자기 내가 “왜 나만 반찬을 다 만들어야 해!!!!!”라고 폭발할까 봐 집에 반찬이 일주일 가까이 없으면 얼른 반찬을 사다 놓는다. 심지어 국도. 어쨌든 내가 반찬과 국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나름 신경을 쓰긴 한다. 직접 노동은 안 하고 돈으로. 그렇게 거의 십 년. 얼마 전에 그런 남편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 줄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성산2동 마을공동체에서 ‘요리왔수다’라는 아빠들이 요리도 같이 배우고 이야기도 나누는 교실이 열린 것이다. 두 번 째 수업에 갔다 온 남편은, 그날 잔뜩 받아온 재료들로 그 다음날 드디어, 요리를 했다. (물론 다 준비된 재료를 팬에 다 붓고 섞기만 한 것이지만) 알리오 올리오. 최근엔 태어나 처음으로 생선도 구웠다. 오십 몇 년 만에. 그래,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
2017-09-27 | hrights | 조회: 21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나는 경의중앙선에 속한 풍산역을 이용해서 전철을 타고 다닌다. 주로 철학아카데미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대곡역에서 환승하여 경복궁역에 내린다. 하지만 그 외의 행선지의 경우에는 대체로 승용차를 이용한다. 오랫동안 서서 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는 아예 없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지인이 특히 이 현상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우리 사회가 너무나 이기적으로 변하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그때 갑자기 경로석을 지정해 놓은 탓에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고, 이를 실마리로 삼아 여러모로 분석이 시작됐다.   저녁 늦은 시각 하루 종일 일하고서 아주 힘들 것 같은 데도 비어 있는 경로석에 앉는 젊은이는 거의 없다. 적어도 30분 이상 1시간씩 흔들거리면서 빠른 속도로 달리는 전철에 서 있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래서 승객이 많아 빼곡한 상황에는 아예 자리를 포기하는 것이고, 한두 줄 정도 얼기설기 서 있는 데 자기 앞에 앉은 승객이 일어나 자리가 생겨 앉게 되면 마치 로또 당첨이라도 된 것인 양 심지어 우쭐하기까지 할 정도로 다행이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도 경로석의 빈자리에 젊은이가 앉지 않는 것이다. 50대쯤 되는 사람들도 거의 앉지 않는다. 아니, 앉아 있다가 이른바 ‘지공거사’(지하철 공짜로 타는 만 65세 이상의 노인)가 나타나면 일어서면 될 것 아닌가. 그런데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말 왜 그럴까? 서 있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남들의 시선에 의한 인격모독의 심적 고통이 더 크기 때문이겠지, 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무의식적인 경향에 관한 분석마저 제출되었다. 경로석 자체가 늙음과 죽음을 뜻하기 때문에 앉는 것 자체만으로도 재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힘든데도 경로석의 빈자리를 보전하는 태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는 거의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경로석에 앉는다고 법적으로 잡혀가거나 벌금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관습화된 사회적인 감시와 처벌을 두려워한 나머지 어지간해서는 경로석의 빈자리를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문제는 그 다음이다. 따라서 경로석이 아닌 일반석을 차지했을 경우 그 어떤 노인이 자신 앞에 힘겹게 서 있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내면의 일종의 심보는 무엇일까? ‘서 있더라도 당신네들 지정석인 경로석에 가서 서 있지 않고 하필이면 왜 내 앞에 서 있는 거요. 더군다나 당신네들은 요금도 내지 않고 공짜로 타지 않소’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런 정도의 심보가 아예 체화되어 있으면 거기에서 무슨 체면이니 염치니 하는 등의 여부를 아예 논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도시생활이 복잡해지고 누구에게나 힘겨워지면서 출퇴근 시간에 ‘콩나물시루 버스’에 이어 더 큰 공간에 사람들이 꽉 찬 나머지 숨 쉬기조차 힘든 지경의 ‘지옥철’이 등장한 지 오래다. 이 상황에서 인간다운 인간의 태도와 행동을 기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그래서 강제로 양보를 끌어내기로 한 것이 ‘경로석’ 장치였던 것이다. 태생에서부터 ‘경로석’의 존재는 시민들에게서 자발적인 양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암리에 일러주는 약호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실제로 양보의 미덕이 사라졌다. 양보의 미덕이 사라지니까 경로석의 존재가 더욱 중요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이제 육아임산부석이 만들어졌다. 힘겹게 아기를 안고 업었거나 배가 남산만한 임산부마저 양보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경로석’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도의, 즉 생활도덕이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비극적인 신호지 싶다. 생활도덕마저 법적 강제력을 동원하여 강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그 사회의 뿌리가 썩어 흔들거린다는 것을 뜻한다. 감시와 처벌의 기제가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체화됨으로써 시민성을 상실한 순수 본능적인 인간들의 집단으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각종 갑질에 의한 폭력성을 비롯해 어린 여학생들의 잔인한 폭력성이 연일 보도되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은 착시 현상은 아닐 것이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22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