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전임간사),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박용석(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수도권북부지역본부 사무국장), 신종환(공무원),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회림(경찰관), 정한별(사회복지사), 주윤아(교사), 최유라(지구의 방랑자), 홍세화(대학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회림/경찰관  10월 3일 하늘 연 날 아침 6시 침대 머리맡에 둔 파란색 일기장을 꺼내 간단히 아침 일기를 쓰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물을 마시는 동안에만 살짝 읽을 생각으로 소파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매기 넬슨의 ‘블루엣’을 펼쳤습니다. 파란색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그 240편의 연작 에세이라는 긴 부제가 달린 이 수필집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색깔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면서 시작하면 어떨까. 냅킨을 잘게 찢으면서 고백하듯 털어놓으면 어떨까. 천천히 시작된 사랑이야. 어 괜찮은데, 하다가 문득 끌리는 마음. 색깔과 사랑에 빠졌다. 이번에는 블루다. 마법의 주문에 걸린 듯, 마법에서 영영 깨어나기 싫어 발버둥 치다가, 또 빠져나오려 애쓰다가 하고 있다>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 106편 소쉬르의 시안계 이야기가 나오는 장까지 읽어버렸습니다. 240편에서 끝나는 책이니, 이미 절반 가까이 읽은 셈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고대하던 순정 만화책의 완결호가 나온다는 풍문을 듣고 실내화 바람으로 서점으로 달려가던 여고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지요.    당장 해결되지 않은 가슴 답답한 일들을 생각하면 진득진득한 진흙탕에 빠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런 좋은 책을 만나게 되면 순식간에 주변 공기가 청량해지고 덩달아 제 마음도 가벼워지니 저로서는 고마울 따름입니다.    책에 맛이 있다면 ‘블루엣’은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처음 보는 맛인 것 같습니다. 평범한 에세이집이라면 책의 분위기 정도만 느끼느라 휘리릭 넘겨보다가 책장에 꽂아두고 잊어버렸을 텐데, 진한 파란색 표지에 내지 글씨까지 파란색인 온통 파랑파랑, 시푸르딩딩한 이 책이 저를 소파 속으로 더 깊숙이 파묻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집 소파 색도 파란색이네요. 터키 블루. 이런 우연의 일치가!   블루에 대한 사색이 좋은 건 블루가 다가오기 때문이 아니라 블루가 끌어당기기 때문이다-괴테    이 책에서 괴테의 이런 말을 마주치자마자 속으로 ‘오호~~ ’했습니다. 괴테는 내내 심각하고 무거운 글만 쓸 것 같았는데 이렇게나 감각적인 표현도 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구나~하는 그런 발견의 순간이었지요. 괴테는 어느 비평가가 “눈에 띌 만한 업적이 전혀 없는 기나긴 휴지기”라고 표현한 시기에 <색채론>을 썼다고 합니다. 괴테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그때는 “도무지 마음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다스릴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요. 영화감독 데릭 저먼은 시력을 잃고 에이즈로 죽어가면서 <채도 chorom>를 썼고 영화에서도 ‘블루스크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위암 투병을 하던 삶의 마지막 18개월 동안 <색채에 관한 소견들 remarks on colour>을 썼다고 하네요.    괴테의 말처럼 저 또한 수년째 블루가 저를 끌어당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파란색보다는 초록색을 더 좋아했었고 다음으로 보라색을 좋아하던 저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첫 미술 시간에 노란색 크레파스로 바탕 그림을 그리라는 선생님 말을 듣지 않고 보라색으로 그리다가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짙은 물빛의 파란 소파와 쨍한 파란색 일기장뿐만 아니라 흰색과 파랑으로 가득한 산토리니에 여행 다녀오게 된 일이며, 수영도 못하면서 겁도 없이 서핑을 배운 것 등등…. 모두 블루가 저를 끌어당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 얘기를 잘 들어주던 스웨덴 친구 에밀의 눈동자 색깔도 연한 블루였고 말입니다.    “삶은 구슬을 꿰어 만든 목걸이처럼 알알이 엮인 다채로운 기분의 연속이고 차례차례 하나씩 헤쳐나가다 보면 알알의 렌즈가 세상을 각자의 색깔로 칠하고 오로지 그 렌즈로 초점을 맞춰야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책에 소개된 에머슨의 글입니다.    저자 매기 넬슨은 말합니다. “유리구슬 한 알이 세상을 색채로 물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목걸이가 될 수는 없다고. 나는 목걸이를 원했다.” 이 글 앞에서 우뚝 멈춰선 채 제 머릿속은 시간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초등학교 소각장 옆 화장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기억이 그때부터 시작되는 걸 뇌의 기억 중추를 꺼내서 바꿀 수도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 할 수밖에요. 무용수가 되고 싶어 장래희망 란에 줄곧 “고전 무용가”라고 쓰던 아홉살 어린이, 영화감독의 꿈을 꾸느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열아홉 소녀, 세상 속에서 김치처럼 건강하게 발효되어지고 싶어 스물다섯에 선택한 경찰이라는 직업, 그 안에서 겪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일들이 빨리 감기로 눈앞에 휙휙 지나갔습니다.    에머슨의 말처럼 저 또한 다채로운 구슬 렌즈들을 꽤나 많이 수집해 왔던 것 같은데 목걸이로 잘 꿰어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요즘의 저는 파란색으로 칠해진 구슬 하나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가 싶습니다. 용기를 내서 알리고 추진하던 일에 장애가 생긴다고 해서 너무 힘이 빠져서는 안 되는데 혼자 해내기가 벅차다는 기분도 들고…. 이럴 때마다 안전한 블루 속으로 피하고만 싶어집니다.    이런 저에게 얇고 파란 책 '블루엣'은 파란 유리구슬 한 알로는 결코 목걸이가 될 수 없다고…. 조금 더 힘내라며 저의 등짝을 세게 한 번 후려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애정어린 등짝 스매싱은 울 엄마의 전매특허였는데 말이죠….    지금 이대로 바다로 뛰어내리면, 엄마를 다시 만날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텐데…. 그냥, 뛰어내려 버릴까? 하던 저에게 구름에 걷힌 달빛이 발트해를 비추어 주던 그때 그 순간처럼,   개천절 아침에 읽은 이 파랗고 얇은 책 '블루엣'도 저에게는 그런 의미로 남은 것 같습니다.
2021-10-12 | hrights | 조회: 34 | 추천: 2
홍세화/대학생    최근 한달 반 정도는 심심할 틈이 없었다. 넷플릭스의 두 작품 <D.P.>와 <오징어 게임> 덕택이다. 국내에서 D.P.의 흥행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등장한 오징어게임은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의 흥행까지 성공했으며, 오징어 게임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유튜브와 OTT 등 다양한 미디어 채널의 발달로 근래 들어서는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를 보지 못해 월요일 아침의 대화에 끼지 못하던 학창 시절의 추억과 같은 일들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D.P.와 오징어 게임의 경우 인터넷과 일상생활 곳곳에서 회자되며 두 작품을 보지 않는다면 대화에 끼지 못하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주었다.  사실 두 작품 모두 잔혹하며 충격적인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뜻 시청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호평에 ‘도대체 얼마나 재밌길래...’라는 맘을 갖고 시청하게 된 두 작품은 단순히 내게 재미만을 선사한 것이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상기시켜주었고, 한국의 현 세태를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오징어 게임>은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거액의 상금을 두고 목숨을 걸어 게임을 진행하는 내용이다.  시종일관 밝은 색채와 디자인의 공간과 평화로운 클래식의 BGM, 아이들의 놀이 등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목숨을 건 게임이 진행된다는 점은 아이러니와 함께 기괴함 마저 자아낸다.  이 드라마에서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모들을 생각해 보게끔 하는데 빈부격차, 노인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이주노동자와 탈북민의 현실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빈부격차와 이에 따른 계급·계층 발생의 표현과 이를 통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은 영화 <기생충>의 주제의식과 궤를 같이하며 세계적으로 흥행한 작품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며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위와 같은 우리 사회의 굵직굵직한 문제점을 다룬다는 것도 오징어 게임에서 주목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내게 오징어 게임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따로 있다.  서두에서 말했듯, 두 작품은 내게 21세기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상기시켜주었는데, 오징어게임이 상기시켜준 아픈 역사는 2009년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과잉진압 사태’이다.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은 10여 년 전 자동차 공장의 조립 노동자로 일했지만 구조조정에 따른 부당 해고에 맞서 파업 투쟁을 하다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동료를 잃은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스토리는 2009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과잉진압 사태를 연상케 하고, 나에겐 이와 더불어 남일당 건물에서 벌어진 ‘용산 참사’ 또한 떠올리게 하였다. 2009년 당시 나는 11살의 나이였지만 희미하게 뉴스에서 두 사건을 접했던 것을 기억했고, 오징어게임을 통해 그때 당시의 뉴스를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국가가 소시민을 상대로 폭력을 자행한 말도 안 되는 사건이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남일당 철거민들에 대한 처우가 조금은 나아졌을까 하고 최근 소식을 찾아보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복직은 이뤄졌지만, 손해배상과 가압류가 여전히 노동자들의 목을 옥죄고 있었고, 용산 참사 철거민들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올해 초까지도 DNA 채취를 받아야 했다.  오징어게임에서 ‘깍두기’ 규칙을 적용하며 ‘소외된 약자를 버리지 않는 게 옛날 아이들이 놀이할 때 지키던 아름다운 규칙’이라고 소개하는데, 어른들의 사회는 아이들의 놀이 규칙보다 형편없고 더욱 악랄하여 씁쓸했다.  <D.P.>는 ‘군대’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는 작품으로, 각종 군 관련 사고가 크게 일어났던 2014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2014년은 ‘윤일병 사건’과 ‘임병장 사건’이 발생하며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와 부조리에 관해 많은 논란이 일었다. 한 시민은 뉴스 인터뷰에서 “참으면 윤일병 되는 거고, 못 참으면 임병장 되는 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군대에 보내겠습니까?”라고 그 당시 대한민국 군대의 현실을 꼬집었다.  이러한 군대 속 가혹행위와 부조리는 2014년에만 벌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D.P.를 시청할 때 엄마와 나는 가슴 아파하고,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면서도 극에 몰입되어 이틀 만에 여섯 개의 에피소드를 모두 시청했지만, 아빠는 어째서인지 초반 1, 2회까지만 우리와 함께 시청하시곤 이후 에피소드는 지금까지도 시청하지 않으셨다.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여쭤보니 군 생활을 떠올리고 싶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시며, 아빠도 군 생활 당시 위험한 상상을 한 적이 있다는 과거의 일을 알려주셨다. 인터넷을 보니 군 생활을 극 사실주의로 표현한 D.P.는 우리 아빠뿐만이 아니라 많은 군필 남성들에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안겨준듯했다.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어림짐작과 함께 이러한 일들이 수십 년간 반복되어 왔지만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훨씬 많을 것이란 생각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마음 아파하는 와중에도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요즘엔 저런 일 없겠지...’라고 혼자 위안 삼으며 현실을 외면하려 했지만, 이 드라마의 원작 웹툰 ‘D.P. 개의 날’의 작가 김보통씨가 D.P.의 흥행 이후 자신의 SNS에 올린 내용은 나의 뼈를 때렸다.  “디피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어디선가 홀로 울고 있을 누군가에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줄 수 있길 바란다.”  글을 읽고 잠시나마 ‘이제는 좋아졌다’라는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현실을 돌아보니 최근 공군에서의 성추행과 집단폭행, 전기드릴 가혹행위와 해군 일병의 자살 사건 등이 변화하지 않은 군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드라마 말미에 나오는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라는 말은 병사들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 우리 사회와 군 당국에서 나와야 할 말과 행동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D.P.의 흥행이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오징어 게임이 등장하여 D.P.가 반짝하고 사라지는듯하여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과 D.P.는 흥미진진한 극의 전개와, 뛰어난 연출 등도 흥행에 한몫 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아픈 현실을 다뤄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흥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작품들의 흥행이 단순히 한때의 화젯거리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한 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21-10-06 | hrights | 조회: 195 | 추천: 5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얼마 전 장애 학생의 돌봄교실 참여를 거부하는 노동조합과 인천시교육청의 교섭요구안이 노조 소식지를 통해 공개되어 비판이 일었다. 일면 어느 노조의 일탈로 볼 수 있으나 이것은 어떤 차별과 혐오의 역사가 코로나 시대라는 배경에서 구체적인 사건으로 터져 나온 어느 특이점일 수도 있다.  코로나 시대 이전부터 대학교를 제외한 유.초.중.고등학교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의무화한 체계적이고 공적인 사회화와 교류를 위한 사람들이 모이는 유일한 공동체이다. 한국은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전통적인 사회 공동체가 무자비한 신자유주의 경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혈연 중심의 공동체 문화도 엄청난 속도로 사라지게 되었다.  초저출산과 초노령화, 이런 요인과 잔인한 개인 능력주의 경쟁은 결과적으로 늦은 출산과 노인 인구의 증가를 가져왔고 그것은 장애인 인구의 비율이 높이고 장애 상태를 심화시켰다.  UN과 OECD의 가입으로 한국의 장애인 교육은 통합 교육에 대한 국제 기준을 따르고 UN의 장애인 권리협약에도 참여함으로써, 관련 예산과 제도가 비약적으로 개선되었으나 장애인의 통합 교육을 통해서 장애인의 사회 통합을 만들고자 하는 사회 정책과 사회 구성의 인식 변화의 효과를 보기도 전에 급격한 인구 변화의 추세 속에서 학교 공동체가 물리적으로 해체되고 코로나는 학교 공동체의 해체속도를 몇 배로 증가시킨 나쁜 촉매였다. 교섭요구안에는‘돌봄교실에 특수지도가 필요한 학생의 입반을 지양하고, 부득이 입반할 경우 정원을 1/2로 축소하고 상시 지원인력을 교육청 예산으로 채용한다’는 문구가 실렸다. 이에 대한 인천시교육청의 답변은 일부 수정된 내용으로 ‘수용’한다고 실려 있다. 초등돌봄전담사 소식지 캡처  한국 정부가 장애인 교육을 통합 교육으로 방향을 정했으면 특수교육을 지원하는 학급 설치와 전문 교원의 확보와 같은 물리적 인프라의 확충과 함께 통합 교육을 완성하는 근본적인 교육 ‘차별의 철폐’와 ‘혐오 금지’를 위한 기존 교육 사회의 철학과 문화를 꾸준히 창달해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동안 한국의 교육 사회 구성원, 관료들이 통합 교육의 제도와 철학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주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학교의 방과 후 돌봄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교사를 제외한 관련 노동자와 노조들이 공식적으로 장애인 학생의 배제를 단체 협약에서 요구하고 소식지를 통해 이런 혐오와 차별 인식을 구성원들이 공유한 사건은 주류 사회와 언론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한국은 이미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형식적으로는 특히 장애인 교육 차별을 강력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할 교육 공무원들과 교육 공무직 노조과 단체 협약이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문서에 장애인 학생을 어떻게 하면 교실에서 내쫓을 것인가? 전문가들이 어떻게 하면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인가를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인권 유린 문제이다. 이것은 개인의 실수나 해프닝이 아니다.  이미 이런 노동 협약을 요구하는 노조는 이미 과거에 장애인 학생을 지원하는 일은 ‘더럽고 위험하다’고 표현하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되었고 공개적인 사과도 반복되었었다.  오히려 장애인 학생을 배제하는 요구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워진 노동자의 지지를 얻는 정치적 수단이 되었고 장애인 학생의 권리는 교섭 도구의 인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무도 이러한 장애인 학생의 차별과 혐오를 막지 않고 교육 관료들이 방치하고 회의록에 기록함으로써 교육 당국과 정부가 장애인 학생의 배제를 동의한다는 메시지를 우리 전체에게 퍼뜨리고 있다. 장애인 학생이 학교와 교실에서 필요하고 함께 해야 할 소중한 학생이 아니라 귀찮고 위험하다는 인식을 사회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이런 장애인 혐오와 차별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공적인 요구와 의견으로 표출되고 국가와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기는커녕 이를 조장하고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앞에 언급한 인구 변화와 장애의 중증화, 장애인 차별금지법으로도 근절 못 한 교육 사회의 심한 장애인 차별과 혐오를 이유로 교육 당국은 그동안의 통합 교육 방향을 버리고 많은 수의 특수 학교 설립을 발표하여 결국 한국도 분리교육으로 방향 전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왜냐하면 코로나로 시작된 비대면 교육과 장애인 학생만 일방적으로 대면 교육을 시작한 상황에서 물리적인 조건의 통합 교육조차도 장애인 학생은 완전히 배제되어 지역 사회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없는 심각한 상태이다.  IT를 활용한 비대면 교육은 그동안 무시되던 장애인 학생의 IT 접근권을 이슈화하고 일부 투자를 이끌어 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비대면 수업에서도 증증의 장애인 학생을 위한 인적 지원은 여전히 필요했고 인터넷 환경이 어려운 장애인 학생도 많았다. 이런 문제는 소수의 장애인 학생이 학교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비대면으로 각자의 집에서 개별화 되었을 때는 문제가 심각하다.  왜냐하면 공적인 영역에서 학교는 부족했지만, 장애인 학생에게 교육에서의 이용과 참여, 지원을 보장했지만 정작 장애인 학생이 사는 집 주위에 사적인 학원, 도서실, 체육관 등은 대부분은 장애인 차별금지법 적용도 받지 않아 기본적인 접근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한국 통합 교육이 진정한 장애인 사회 통합에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특히 교사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역사적으로 교사로 진입하는 장애인 거부와 차별이 심해서 의무적으로 10년 넘게 국립 교육 대학에서 장애인 교원을 선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음에도 학생 선발 권력을 가진 담당자가 조직적으로 오랫동안 교사를 지원하는 장애인 학생의 성적을 의도적으로 조작하여 탈락시켜 온 사건이 내부 고발로 드러났다.  사실 한국은 1994년 OECD 가입 당시 장애인 고등교육의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서 1995년부터 장애인 학생의 대학 입학을 우대하는 제도를 시행했으나 대부분 사립 대학 위주였고 특히 국공립 교육 대학에서 장애인은 금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한국은 1995년부터 장애인을 의무교육으로 받아들이고 특수교육 대상자 제도를 만드는 등 형식적으로는 교육 사회가 학생으로서 장애인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교육 사회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는 전혀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교육 사회에서 고위직이나 실무직, 교사조차도 장애인 수가 아주 극소수이며 대학 교수진출은 더욱더 어렵다. 특히나 의학이나 법학에서 전문가로 진출하기 위해 교육계가 교육 과정을 대학원 중심으로 더욱 고도화하면서 장애인 학생에 대한 진입 장벽을 더욱 높여 버렸다.  요컨대 코로나 사태는 그동안 숨어 있던 통합 교육의 실패, 오랫동안 이어져 온 차별과 혐오가 개인 영역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으로 드러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학생 중 한 명으로서 당연한 권리, 지원과 참여를 누려워할 장애인을 ‘학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위험하고 귀찮은 존재로서 코로나 위기를 가중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코로나 위기는 장애인 학생의 교육권을 교육 관료들이, 구성원들이 자기 이익, 감정, 윤리에 따라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만든 것에 있다. 이에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장애인 교육권이 필수로 보호받고 지원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정책 결정에서 늘 장애인 학생 문제를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가 장애인 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고서야 뒤늦게 이루어졌다.  정부는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사회적 거리를 두게 함으로써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릴 위험은 줄이는 대신 감염의 위험은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코로나는 한국이 장애인 교육 문제에 있어 얼마나 시혜적이며 단지 교육권을 정부의 윤리 악세사리처럼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장애인 교육권 침해에 대한 징벌의 강화와 인권교육이 필요하고 코로나 관련 정책을 결정하고 진행하는데 통합 교육의 원칙을 최우선 원칙으로 하는 기준을 국가와 정부가 사회구성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서 통합 교육의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세우는 게 중요하다.
2021-09-15 | hrights | 조회: 262 | 추천: 2
정한별/ 사회복지사  밤 11시 불닭볶음면이 먹고 싶어 편의점에 가서 불닭볶음면과 피자치즈, 맥주를 사서 먹으며 ‘시설’이라는 곳으로 처음 자원봉사를 갔던 때의 일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봉사 시간도 채우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1주일 동안의 봉사활동을 떠났다. 중학교 때 부모님과 같이 가봤던 장애인 시설에 혼자 갔다.  안산 터미널에서 충청북도의 한 지역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점심을 먹을 즈음 터미널에 도착했고,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 아저씨는 “학생이 가는 곳은 들어가도 태우고 나갈 손님이 없어서 왕복요금을 내야 돼. 나갈 때도 전화해”라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과 친절 같지 않은 친절을 베풀었다. 열일곱, 난생처음 혼자 타본 택시는 편도로 이용했을 뿐인데 왕복요금을 내야 하는 이상한 택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속에 있는 시설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가서 자원봉사자 등록을 하고, 점심을 먹었다. 식당은 뭔가 묘한 냄새가 났는데, 처음 맡아보는 독특한 냄새에, 워낙 냄새에 예민해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1주일 동안 봉사활동을 하게 될 건물로 갔다. 그곳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도와주는 곳이라고 했다. 병실에는 8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 누워 있었고, 병실은 말소리 대신 숨소리만 가득했다. 나는 주로 한 중년 남자를 돕는 일에 배정되었다. 그곳 역시 독특한 냄새가 났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없었다. 아침 일찍 병실에 가서, 아침 식사를 돕는 일부터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 식사를 돕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개고, 소변통을 치우고, 대변을 닦고, 누워만 있는 그에게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누워 있는 자세를 변경하고, 세수와 면도, 목욕, 그리고 산책을 하다 보면 저녁식사가 나오곤 했다. 그러면 내 하루는 끝이 났다. 숙소는 거동이 가능한 장애인들(이제 돌이켜보니,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들이 대다수였던 것 같다)이 생활하는 다른 건물이었다. 그곳은 참 특이했다. 여러 명이 들어차 있던 자그만 방에는 텔레비전 1대가 있었고, 그 방은 개인적인 공간의 구분이 없었다. 화장실은 문 대신 커튼만이 있었고, 그곳 역시 식당에서 나던 독특한 냄새가 아주 강하게 났다.  1주일 동안 그곳에서 살면서 내가 담당하던 중년의 남자와 자연스레 친해졌다. 그는 20대 때 교통사고가 났고 턱밑으로 모든 신체가 마비되어, 지금처럼 누워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누워서 음식을 씹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 지금의 시설에 있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가족들 역시 그를 찾아오지 않은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했다. 그는 무연고자였다.  그는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를 밀고 끌어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특히 우린 침대 커버를 널어놓는 빨래 건조장 부근을 자주 나가곤 했는데,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물었다. “만약 아저씨가 다시 걷게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가 있어요?” 그러자 그는 살짝 미소를 짓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꼬마야, 난 걷게 되는 것을 바라지도 않아. 내가 바라는 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내가 먹고 싶을 때 먹는 거야”  그가 말한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먹는다’라는 게 어떤 의미일까를 봉사활동을 마치고 바가지요금을 내야 하는 택시를 부르기 전까지 내내 생각했다. 그의 답 덕분인지 난 그곳에 몇 년을 더 갔고, 갈 때마다 그를 만났다. 그가 있는 곳은 분명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만 있을 수 있는 병동이라고 했는데, 그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꽤 오랜 기간 그 병동에 있었다. 사진 출처 - freepik  경기도 어느 시에 한 뇌병변장애인이 살고 있다. 그는 몸이 강직되어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식사도 대소변을 처리하는 일도 어려운 사람이다. 그는 내내 누워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며 혼자 살고 있다.  몇 달 전 그의 집에 그를 만나러 갔다. 너무 피곤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어젯밤에 뭐했어요?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요?” 그러자 그가 답했다. “어젯밤에 치킨에 소주 한 병 먹고 잤더니만 엄청 힘드네”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먹는 것이 소원이라던 충청북도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하던 그 남자는 결국 소원을 이뤘을까?
2021-08-19 | hrights | 조회: 304 | 추천: 11
신종환/ 공무원  지자체 공무원으로서 코로나19에 대한 첫 기억은 2만 개가 넘는 KF94 마스크를 지역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개별포장을 하며 밤을 새던 날로 시작한다. 마스크 포장을 해야 하는 날이 줄어들 때 즈음에는 방역복을 입고 관할 동을 여기저기 소독했다. 물탱크에 물이 그렇게 많이 들어간다는 것과 몇 통 안 되는 소독약을 섞었는데도 토할 만큼 독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마스크값이 폭등했을 때는 주민센터에 마스크를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직원용 마스크를 꽁꽁 숨겨야 했고, 지내다 문득 핸드폰을 보니 일주일에 몇 명씩 담당해야 할 자가격리자 명단이 업로드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나나 어떤 이들은 늘어난 업무의 고충을 느꼈고, 어떤 이들은 시시각각 줄어가는 터전과 벌이에서 위기를 느꼈다.  매체에선 지금 겪는 이 어려움이 얼마나 더 길고 힘들어질지를 말하거나 지원을 위해 선을 어디까지 그을지를 얘기하거나, 누가 누구를 얼마나 잔인하게 죽였는지에 대한 소식들이 이어졌다. 듣고 나서 얼마나 더 우울하고 화나고 슬픈지의 차이만이 남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소식들도 있지만 점차로 눈에 잘 띄지 않게 되었다. 머리에는 어려움의 증가를 알리는 것 같은 람다, 델타, 델타플러스와 같은 변이 바이러스의 이름과 더 강해진 그들의 특성들만 남았다.  지인들과 정서를 교류하는 폭도 점점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생계의 고충이나 직업상의 고민, 사회적 사건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서로가 처한 상황이 달라도 서로를 생각하려는 시도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지인들은 일상적으로 생활의 불안함이, 또 나는 가중된 업무가 대화의 고정된 주제가 되다 보니, 감정과 대화의 흐름은 다소 일방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자가격리 키트와 식료품 키트를 만들기 위해 새벽에 퇴근하고 일찍 출근하는 일이 잦아진 일을 지인과의 통화 중 말했다. 지인은 그 말을 듣고는 “그래도 넌 다행이다, 잘릴 일은 없잖아”라는 말을 하고, 나는 “그렇지 뭐 내가 무슨 고생을 아나”하며 서로의 안부를 마무리했다.  침묵을 피하려는 자조적인 농담은 서로의 연결이 약해지고 감각을 환기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 악순환되는 지표처럼 느껴졌다. 신경이 하나하나 무뎌지면서 그들에게 삶은 고통이 늘어나는 과정이 되다가 삶=고통이라는 등식으로 인식될까 무서웠다. 하지만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상황에 오래 처해 있는 이에게 이런 말과 생각이 배부르고 한가한 소리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무서움에 입 밖에 내지 못했고 고립을 해소하기 위한 징검다리를 놓는 시도를 하지 못했다. 사진 출처 - freepik  거두어진 어휘와 시선을 다시 살펴보는 일은 잊어간 명도만 남은 삶에서 채도를 측정할 시선들도 다시 생각해보는 일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2012년 출간된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나 각각 2014, 2015년 출간된 ‘섬과 섬을 잇다’ 1, 2권 같은 서적 또한 같은 취지의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관심을 환기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시도이기도 했지만, 책을 읽은 독자들은 책으로 만난 그들에게서 비치는 자신이 소중히 여겨야 할 것들을 느꼈을 것이다. 건강한 연대와 사랑은 상호적인 형태로 나타나므로. 다만 그때는 사회에서 특정 사람들만이 고립되어 있고 우리는 그렇지 않은 다수로서 다가서는 형태였기에 모두가 고립되어 가는 지금과 비슷한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 뿐.  니체는 선악의 피안에서 “도덕적 현상은 없다. 그 현상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여러 의미로 받아들여질 문장이지만 요즘은 그 말이 살면서 견지한 여러 시선이 삶을 고통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도록 해준다고 읽힌다. 어떤 시선을 견지하는가가 삶을 지키는 건강성과 연관이 된다면 삶의 채도를 다시금 닦는 일이 잊은 건강성에 대한 감각을 제고 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같은 고통과 방황이라도 어디로 가야 하고 얼마나 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가의 유무의 차이는 적지 않으니까.  인권연대에 기고하기 위한 글을 고민하면서 의도적으로 무례하게 위로와 연대를 시도하던 예전 일들을 떠올린다. 때때로 어떤 무례함은 그만큼 내가 당신을 알고 다가가고 싶으며, 나아가 다가가는 스스로의 잊고 있는 소중한 부분을 다시금 느끼게 하려는 용기였다는 것을 그때는 알았는데 어느 순간 잊고 있었다. 신영복 선생님은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하셨다. 고난을 줄여주기보다 같이 겪어주는 일을 더 중요시하는 까닭은 ‘있어 줌’이라는 존재의 증여가 구체적이고 퇴색되지 않는 굳건한 마음의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기고하며 내 주변 일부터 세계적인 일까지 곱씹으며 ‘있어 줌’의 흔적을 찾아내고 닦아보는 한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한가한 말을 쓰는 이 무례함이 우리의 삶의 터전만큼 상실해가는 감각의 터전을 다지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라며.
2021-08-12 | hrights | 조회: 249 | 추천: 4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아디의 평화도서관이 위치한 미얀마 중부도시 메이크틸라는 6월 중순부터 장마철이 시작되어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작년 이맘때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았지만, 올해는 폭우가 이어지고 있고, 대부분 날이 흐리다고 합니다. 최근 한국도 습도가 높고 폭염이 계속 되었는데 미얀마도 찜통 안에 있는 것처럼 덥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디의 평화도서관 활동가들은 ‘우리 마음속의 날씨는 그것보다 더 나쁜 상태’ 라고 표현하며 최근의 미얀마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최근 미얀마의 COVID-19 상황은 심각함을 넘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올해 2월 군부의 쿠데타 이후 COVID-19 확진자에 대한 정보는 한동안 거의 발표가 되지 않다가, 6월 중순부터 빠르게 확진자가 늘어 7월 4일 2318명의 확진자가 발견되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대 확진자였던 작년 10월 10일의 2158명을 넘어섰고, 7월 14일에는 7083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최근까지 5~6천 명대의 확진자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사망자 역시 급증하여 최근 2달간의 사망자(7월 25일 기준 3921명)가 팬데믹 이후 1년 2개월 동안 발생한 사망자수(2020년 3월부터 2021년 5월 말 기준 3216명)보다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미얀마 군부정권은 COVID-19를 통제하기보다는 이 상황을 정권 유지에 악용하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군부 쿠데타 이후 공공의료체계가 붕괴되었고 COVID-19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역시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마저도 군부가 운영하는 병원이거나 비싼 사설 병원 정도여서 일반인들이 입원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COVID-19 확진자들은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군부에 저항하는 의료진들 역시 자원봉사 방식으로 확진자들이 집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무료로 도움을 주고 있는데 군부는 이러한 의료진들을 구속하고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또한, 군부는 COVID-19 응급상황에서 필수인 의료용 산소통과 산소공급을 개인들에게 판매하지 못하게 금지했고 군부에 의해 운영되는 병원이나 치료센터에서만 산소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7월 12일에는 양곤의 산소 공장 앞에 줄 서 있던 시민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군이 공중에 총을 발포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고령층 사망자가 더욱 많이 발생하고 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산소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미얀마 사람들은 군부가 미얀마 사람들에게 생물 무기로서 COVID-19를 사용하고 있다고까지 추측하는 상황입니다. 산소통 충전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양곤 주민들 사진 출처 - Ye Aung Thu/Agence France-Presse-Getty Images  군부 쿠데타 이전에도 미얀마에는 1차와 2차 COVID-19 유행 시기가 있었지만, 아디의 평화도서관 활동가에 따르면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과 치료시설이 도시마다 운영이 되었고, 자원봉사자와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로 격리조치와 치료를 받아 버텨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2월의 쿠데타가 시작된 이후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다고 합니다. 최근 메이크틸라를 포함한 미얀마 전역은 봉쇄조치가 내려져 학교와 관공서를 포함한 대부분의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고, 오후 1시 이후로는 이동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은행 창구는 문을 열지 않아 미얀마인들은 은행에 돈이 있어도 찾지 못하고 상인들에게 6~7%에 달하는 수수료를 지급하면서 자신들의 예금을 현금과 맞바꾸어 이용하는 등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군부의 봉쇄조치로 아디의 평화도서관도 한시적으로 문을 닫았지만, 현지활동가들은 오늘도 도서관에 나가 조만간 다시 찾아올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의 책을 정비하고 9월부터 아이들과 함께 인권과 평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독서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군부 쿠데타와 COVID-19라는 최악의 이중고 속에서도 현지활동가들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여전히 또 묵묵하게 꽉 채운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2021-07-28 | hrights | 조회: 314 | 추천: 5
박용석/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수도권북부지역본부 사무국장  궁금하다. 새파랗게 젊다는 게 밑천이 될 수 있을까?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지만, 가슴을 펴고 사는 전제조건이 단지 젊음일 수 있을까? 1985년생, 따지자면 얼마 전 당선된 제1야당의 당대표와 동갑이지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청년 담론의 홍수라는 생각이다. 익지 않아 고개 숙일 필요 없는 것이 청년의 전제조건이 아니라면, 근래 청년이란 꼬리표로 한데 묶이는 것이 꺼려지고 부끄러울 지경이다.  세대 담론이나, 그 세대 담론과의 상호작용으로 발명된 ‘청년 정치’라는 담론이나, 혹은 그에 대한 제각각의 주장과 해석 대부분은 괴상망측하다. 저따위 담론들 안에 얼추 나이가 같다는 것만으로 묶이지 않기를 바란다. “발톱 때 속 박테리아 계보도의 미적 감각을 토론한다”는 포스트 포스트 포스트……포스트 모더니즘. 같지도 않은, 같잖은 담론 실종의 시대라지만. 제발 적당히 할 일이다. “니가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노래하던 누군가도, 이제는 고인이 된 이 시대에. 이제 우리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을 ‘꼰대스럽다’ 이야기하는 우습지도 않은 시대를 창조해 버린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짐승의 썩은 고기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린다는 하이에나’마냥 여의도는 물론, 각종 관공서 언저리를 떠돌아다니는 젊은이들을 안다. 그네들이 건네는 명함에는 최소 다섯 개의 직함을 적은 경력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곤 한다. 그렇게 나타나 적혀있기로만 화려한 경력 같지 않은 경력으로 경쟁자를 제치고 자리를 차지한다. 몇 개월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나선, 다른 곳에서 다시 출몰하고, 또다시 다른 곳에 출몰하길 반복한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청년팔이 소년’의 카르텔을 꾸려 정계를 포위하고 나선다. 역설적인 것은 게 중에 잘 풀려 높은 자리에 간 사람은 또 별로 없어 보이긴 한다.  그래서 ‘청년팔이 소년’ 중에 현시점 가장 성공한 자가 이준석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텐데,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이 이준석보다 나은지를 도통 모르겠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싶다. 어차피 직업정치가 특정한 집단이나 세력의 이익과 목적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이준석이야말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점은 그래서 우습고, 그래서 무섭다.  청년 할 때 청이 푸르다는 뜻 외에 조용하고 잠잠하다는 뜻도 있다는데. 근천스럽게 즉자적 욕구를 떠들어대는 그저 나이만 젊은것들의 악다구니 속에 조용히, 잠잠히 제 자리에서 세상을 개척하고 있는 청년들은 그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될까 봐 무섭고 우습다. 착하고 예쁘고 말 잘 듣는 청년’임을 증명해내는 자만이 간택되어 청년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증명이. 청년 없는 청년 정치 전성시대가.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를 고민해 본다. 세태에 찌들어 그 색이 바래 구차하다는, 소위 ‘꼰대’보다 맑고 푸른 이들은 존재하는지를. 존재하긴 한다면 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아파야 하고, 절망해야 하고, 그러면서 희망도 가지고, 짱돌도 들고, 분노도 하라고 주문받는 이 시대의 청년들은 청년이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청년이 필요한 시공간에 실종된 청년을. 정도를 넘은 젊은이들의 홍수를.  “그딴 게 청년이면 나는 청년 안 할란다. 배울 점이 한두 가지쯤은 있는 꼰대라도 될 수 있게 내 자리나 잘 지키고 있어야겠다. 그마저도 어려워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언젠가 다음에 올 청년에게, 그나마 덜 부끄러울 것 같다.” 내 마음은 이런데, 이 시대, ‘착하고 예쁘고 말 잘 듣는 청년’이길 거부한 우리들. 그대들도 아마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청년이기 전에 사람부터 되자고. 꼰대라도 되자고.
2021-07-14 | hrights | 조회: 623 | 추천: 19
- 유명한 경찰관 A의 민낯 이회림/ 00경찰서  ‘의리’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남자 경찰 선배가 한 명 있었습니다. 편의상 A선배라고 부르겠습니다.  2017년 겨울, 경찰청 모 부서를 통해 A선배를 처음 알게 되었고 제가 만든 홍보 컨텐츠에 등장하여 형사 시절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기도 하였습니다. A선배와 저희 부서는 녹음이 다 끝난 후 서대문구 미근동 모 족발집에 모여 회식을 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부터 A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보다도 ‘의리’라는 썰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그날 A선배에 대한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조폭, 양아치 느낌이었고 회식 자리에서 ‘의리’ 외에는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매우 가벼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첫인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말을 진중하게 하나 언행일치가 안 되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한 경험이 수 차례 있었던 터라 섣부른 판단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A선배와 저는 인맥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와 오랜 인연이 있던 남자 형사 선배들뿐만 아니라 여성 형사 선배들과도 친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 경찰 사이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존경받던 1세대 여형사 선배님들을 ‘누나’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A선배는 그 ‘누나 선배’와 술자리 중에 저에게 전화를 걸어 친히 ‘누나 선배’를 바꿔주기도 했습니다.  A선배는 2018년부터 소위 ‘잘 나가는’ 모습이 되어 눈썹 문신과 안면윤곽술 등을 시술받았다며 저에게도 권하는 등 마치 준 연예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하였습니다. 탑클래스 연예인들도 출연하기 힘든 인기 있는 예능 방송에 등장해 출연할 때마다 우호적인 댓글을 몰고 다니며 큰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씨가 말랐다 싶은 정의로운, 의리파 형사의 모습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입니다. 수사 형사를 그만둔 지 수년이었지만 방송에서는 계속 형사로 불리고 있었고 주변에 저런 형사 한 명 있으면 범죄가 정말 사라질 것 같은 그런 믿음직한 인상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모 예능에 출연하고 싶으시다며 저를 작가에게 추천한다고 했지만 저는 당시 감찰관으로 근무 중이라 곤란하다고 사양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A선배를 알면 알수록 그 선배가 즐겨 말하던 ‘의리’와는 거리가 먼 언행을 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특히 본인이 싫어하는 여성에 대해서 뒷담화를 할 때, 입에 담기도 힘든 쌍욕을 즐기는 것이 저에게는 늘 공해였습니다. A선배가 그 여성을 욕하는 이유에는 공감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욕설이 매번 너무 저속하고 지나쳤습니다. 이러다 보니 1년에 많이 봐야 한 두 번, 그것도 지인들과 함께 만나게 되었고, 가끔 전화가 오면 대중교통 안이라 통화가 힘들다고 핑계를 대고 끊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제 슬슬 경조사만 챙기는 정도로 멀고 느슨한 관계가 되고 싶었지만 어떤 명확한 계기가 생기지 않고는 딱 잘라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런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계기를 통해서라도 진실하지 못한 인간관계를 정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작은 모 영화의 시나리오였습니다. 2020년 7월경, A선배는 저에게 모 영화의 시나리오를 좀 써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합니다.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경찰에 들어온 후 가끔 취미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저였기에 이런 제안이 반가웠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상업 영화의 시나리오 초고를 쓰게 된 것 자체가 영광이었기에 돈은 중요하지 않아 원고료도 사양하고 말 그대로 10원도 받지 않고 시나리오를 완성하였습니다. 정확히 2020년 8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자투리 시간 혹은 주말에 시간을 내어 시나리오를 썼고 9월 15일에 A선배의 이메일로 1차 완성 시나리오를 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전달하고 6개월이 훨씬 지난 시점에서도 A선배는 영화감독에게 시나리오를 전달했는지 어쨌는지 명확한 말이 없었습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짧은 경제팀 수사관 경험이지만 관악서와 종로서에서 경제팀 업무를 배우면서 크고 작은 사기꾼들을 여럿 보아 왔기에 A선배의 수법 정도는 훤히 보였습니다. A선배는 가장 낮은 레벨의 사기꾼들이나 하던 수법으로 후배 경찰인 저에게 버젓이 사기를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A선배는 저와 카톡으로 대화하던 중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저에게 부주의하게 전송하는 실수를 하였고 저는 그 카톡 덕분에 명백한 증거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팩트를 들이대며 따져 물으면, “그건 너의 오해야~~”라며 증거 앞에서도 확증편향에 빠져 있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세상엔 A선배처럼 사실을 들이대도 ‘오해야~’ 라고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는 사람들이 적잖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이때부터는 화도 나지 않고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A선배에게 더이상 문자와 연락을 받지 않을 것이니 연락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자 뒤늦은 사과와 읍소가 이어졌습니다. 자신의 번호가 차단된 후로는 다른 번호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그 번호마저 차단하며 더이상 연락하면 ‘스토킹’이라고 재차 경고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출근길, 제가 다니는 경찰서 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A선배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00야..얘기 좀 하자.”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기가 막혀 “뭐하시는 겁니까?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 명백히 스토킹입니다. 더 이상 다가오면 112신고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자리를 피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A가 이미 팀장과 팀원들에게 저를 찾아왔다며 인사를 하고 간 후라 저는 이 일을 숨길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팀장님은 저에게 “서울에서 손님 왔던데요~ TV에 나왔던 분 같던데요”라고 친절히 말씀해주셨고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냥 이대로 두었다가는 큰 오해와 소문에 휩싸일 것 같아 제가 당한 일에 대해 팀장님께 알리고 상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저희 서 감찰직원에게도 A선배와의 일에 대해 알렸습니다.  잘못된 인간관계를 정리할 때는 확실히 깨끗하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일단 저의 직장 내에서는 팀장과 감찰직원께 얘기를 해 놨으니 A선배의 진실에 대해 알아야 될 다른 사람, 아마도 저처럼 피해를 입은 것이 명백해보이는 영화감독 K에게도 연락을 하였습니다. K의 연락처는 A선배가 끝까지 알려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K가 소속된 일터에 저의 연락처와 메모를 남겼습니다. 운 좋게도 그날 오후에 K로부터 바로 연락이 와 그간의 일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혹시 시나리오 비용은 어떻게 되었는지 아나요?” 저는 10원도 받지 않은 시나리오 비용에 대해 이렇게 K감독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K감독이 저에게 해 준 말을 모두 옮겨 쓸 수는 없지만, K감독은 그동안 저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저에게 확인해주었습니다.  평소에 입으로만 ‘의리’, ‘의리’ 찾던 못난 A선배, 선배 덕분에 저는 표준국어대사전을 다시 열어봅니다. 의리 義理 [의ː리] 1. 명사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2. 명사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 사람으로서, 마땅히, 사람 관계에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  A선배가 저와 K감독에게 한 언행은 전혀 ‘의리’와는 거리가 먼 모습일진대 A선배는 자신이 어떤 바르지 않은 행동을 하더라도 무조건 이해하고 감추어 주는 것을 ‘의리’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느라 2018년부터 A선배와 주고받은 카톡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니 그동안 꼼꼼히 보지 않은 징글징글한 글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의리가... 술 마니 마시고 있네. ㅋ 짐 텐프로 왔네 ㅋ”  위의 문자는 제가 해외에서 장기간 여행 중일 때 보낸 문자로 보이는데 그때 당시에 제대로 못 읽어봤나 봅니다. 이제는 3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지만 저 괴상한 문자에 답글을 한 번 달아보며 이 글을 마쳐보겠습니다.  “어이구, A선배님, 그놈의 ‘의리’ 입으로만 ‘의리의리’ 거리시더니 결국은 후배 여경한테 이런 짓을 다 하시네요. 근데 텐프로를 가든 영프로를 가든 어디 가서 경찰이다, 형사 출신이다. 소리 좀 하지 마세요. 그러다 훅 갑니다.”
2021-07-13 | hrights | 조회: 334 | 추천: 20
홍세화/ 대학생  지난 6월 9일 광주에서 건물이 붕괴되어 희생자들이 생겨난 참사가 벌어졌다. 이 소식을 뉴스로 접하면서도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2021년에 벌어진 사건이 맞는지 몇 번을 확인했다. 멍하니 뉴스를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러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하청의 하청의 하청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는 뿌리를 내려 무고한 이들을 해치는 재앙으로 자라나고 있다. 이번 참사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떠오르는 비슷한 참사가 있었다.  1995년 6월,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을 때 역시 그 원인은 부실 공사를 진행한 삼풍건설과 이를 알면서도 뇌물을 받아 눈감아주고, 용인해 준 강남구청 공무원들의 합작이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와 관련된 이야기를 방영해 주어 시청하였는데, 시청하는 내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건축 과정에서부터 설계도를 무시하고 경제적 이윤에만 치중하여 부실 공사를 한 것은 물론이고, 붕괴 이전에 붕괴 전조 현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킬 생각보다 먼저 한 것이 백화점 4층에서 진행되었던 보석전의 보석들을 옮기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삼풍백화점 붕괴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모여 만들어낸 인재(人災)였다.  이번 광주 건물 붕괴 참사도 마찬가지이다. 싼값에 빨리 건물을 해체하겠다는 생각으로 건설업체는 해체계획서를 무시한 채 공사를 진행했다. 한눈에 봐도 위험천만한 건물 철거 광경에 광주 시민들은 몇 차례 시청과 구청 등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그에 대한 조치는 적절히 취해지지 않았고, 건물 붕괴 전조 현상이 나타나자 공사현장의 사람들은 모두 대피하고 약 20분간 건물이 붕괴될 때까지 지켜만 보았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사진 출처 - 게티 이미지 뱅크  안전불감증과 부조리의 컬래버레이션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많은 재앙을 가져왔다. 그러나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앞서 말한 컬래버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곪아가며 좀먹고 있다.  그 무엇도 생명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종종 ‘돈’과 같이 생명보다도 우선시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故 김광석 님께서는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삼풍백화점 참사와 관련하여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 상식화되어가는 그런 모습들이 많습니다. 주변에.”라며 말씀을 꺼내셨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다지 변한 것 없어 보이는 우리 사회가 안타깝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대한민국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일 처리가 아닌, 소를 잃었을 때 외양간을 제대로 고칠 줄이라도 아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2021-06-30 | hrights | 조회: 331 | 추천: 3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존중되는 권리를 출생하면서부터 갖고 있다. 장애인은 그 장애의 원인 또는 정도에 관계없이 같은 나이의 시민과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 -장애인의 권리선언 제3항(1975년 12월 9일 제30차 UN 총회에서 결의) ■ 누가 ‘발달’된 인간인가?  필자는 올해 발달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연구와 교육 활동을 다섯 가지나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지적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특수교육 전문가도 아니요, 가족이나 친지 중에 당신들 당사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그들과 연관성을 찾자면 본인의 공식 아이큐가 발달장애 판정이 가능한 경계선 급(?)이란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작년에 이어 계속 지적 자폐성 장애인 청년들, 성인들과 교류하는 것은 기존의 특수교육이나 신경 정신과 관련 전문가 부모들과 전혀 다른 목표를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의 목적은 그들을 교육하거나 재활하게하는 것에 있지 않다. 나의 목표는 지적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고 그들의 표현을 수용하고 그래서 그들을 이해하며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나’를 이해시키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위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분들의 생각과 의견 그리고 그분들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그분들과 필자 사이에 원활한 의사소통 코드와 기제를 아직 충분히 ‘발견’하지 못했다. 마치 컴퓨터란 기계와 내가 직접 소통하기 위해서는 도스나 윈도우,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 등의 ‘인터페이스’ 등이 손쉽게 개발 발달되어 내가 충분히 숙련되어야 하는 것처럼. 나는 아직 그분들과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만큼 나의 직관과 감각과 인터페이스를 발달시키지 못했고 숙련되지 못했다. 누구의 책임이자 능력인가? 그들을 위한 민주주의는 아직 없다.  그래서 나와 세미나를 하는 지적 자폐성 장애인들은 나와 소통할 의무와 책임이 없다. 나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오로지 세미나 진행자인 내가, 그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나는 그들의 강의 평가에 따라 강의료를 지급받고 고용 계약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 위치에 있는 내가 실질적으로 갑의 관계에 있는 ‘그들’에게 장애 등급을 이유로, 주관적이고 비과학적인 아이큐 검사의 결과로, 언어 사용과 정서적인 유대감이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발달’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교육하고 주입하고 강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그들을 발달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지적 자폐성 장애인이라 부르는 것도, 발달이 지체된 사람이라고, 심지어 영혼이 맑디 맑은 사람이라고 부른 것도 나는 그분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갑의 관계인 그들에게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지 을의 관계인 필자는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 장애인복지법에 발달장애인이란 낱말이 지적 자폐성 장애인이란 말로 개정되었을 때도 당사자인 그분들에게 그 말이 어떤 느낌인지, 좋은지 싫은지 어떤지 당사자에게 인터뷰를 해보거나 설문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가까운 시일 내에 발달장애인 분들이 우리의 입회 없이, 우리의 참여 없이 우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름 붙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대사회적으로 표명하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와 우리는 모두 발달장애인에게는 제국주의이며 파시즘이다. 요즈음 장애계의 가장 큰 화두가 발달장애인법 제정인데 그 과정에 전문가, 교수, 부모, 시설 운영자들은 적극 참여하고 있지만 정작 시설에서 생활하시는 발달장애인분들에게 어떤 법이 얼마나 필요한지, 그들의 언어와 의사소통 방법으로 의견을 구해 본 적이 있는가?  그럴 생각이나 의지라도 있는가? 이 글은 읽고 있는 독자들이 어떻게 발달장애인들이 법을 이해하고 의견을 표명하느냐며 의구심을 갖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해 주고 싶다. 그럴 의심할 시간에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설문지나 법 해설서나 개발하셔요.라고.  사실 발달장애인분들의 직접 참여 없이 이루어지는 작금의 법 논의나 보건복지부의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설립 연구들은 그 가치와 이념에 비해 실천과정은 그래서 퇴행적이고 모순적이다. 발달장애인의 지적 능력이 그렇게 의심스럽다면, 발달장애인 중에서도 상위 1%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 비장애인 모두가 서울대를 가지 못한다고 우리는 모두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사진 출처- freepik 지적 자폐성 장애, 발달 장애는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발달장애인은 없다.  발달장애인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인터페이스와 능력이 없는 우리와 필자와 우리 사회가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자폐 스펙트럼 진단체계로 보면 과거 뉴튼이나 아인슈타인은 모두 자폐성 장애인으로 분류되었을 테고, 학교 부적응 학생들도 바로 학교라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태초부터 지적 자폐성 장애인은 애초부터 발달이 지체되고 소통이 부재된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인간의 발전속도 인간의 적응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한 것뿐이다. 그래서 발달 장애는 앓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준일 뿐이다. 그들의 기준에서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가지고 있을 뿐이다. 지금 필자의 지면에서도 그들이 발달장애인이었다가, 지적 자폐성 장애인이었다가 그들이라 불리기도 한다. 내가,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이름이 좋은지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엑셀도 못하고 카카오톡도 못하는 대학교수는 이 스마트 시대에 발달 지체, 학습 부진이라 부르면 안 되는가? 필자는 문자를 잘 보내지 못하는 아버지와 나날이 소통의 부재와 단락을 느낀다. 상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절대적인 학력 평가를 일삼고 사람을 평가하고 한계 짓는 것이 정말 非발달스런 일이다.  다시 한번 묻자. 인간 대뇌의 2%도 그 비밀을 못 밝혀내면서 아이큐 지수 하나로, 산업화 이후 학교 시스템 하나로 인간을 평가하는 것이 정말 발달된 판단인가? 누가 발달장애인인가?
2021-06-30 | hrights | 조회: 231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