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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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석미화(평화활동가),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매년 이맘때가 되면 (재)춘천시 마을자치지원센터(이하 마자센터) 주민자치팀은 연일 팀 회의가 진행되고 시끌벅적 분주해진다. 여기저기 전화 통화 소리에 시끄러워지고, 출장 결재도 끊임없이 올라오고 센터장의 현장 방문 요청도 계속 들어온다. 바야흐로 각 읍면동 주민자치회의 ‘2023년 마을계획 수립’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각 읍면동 주민자치회는 마을의 문제해결,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위한 활동을 기본으로 하는 주민자치 조직이고 ‘마을 의제발굴-원탁토론(숙의)-주민총회’의 과정을 운영하게 된다. 2021년 12월 현재, 전국의 136개 시군구/1,013개 읍면동 주민자치회는 이런 활동을 통해 마을의 문제를 발견하고 토론과 투표를 통해 결정해서 내년도 마을 예산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 우리 마자센터 직원인 마을지원관들은 전 과정에서 현장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현장에 가면 행정복지센터 담당 공무원부터 주민자치회 위원들, 간사 등 협력과 협의를 통해 서로의 역할을 나누고 서로 도우며 마을계획 수립이 원활하고 진정성 있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돌발상황들이 발생되고 갖가지 문제점들이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현장 대응을 해야 함은 물론 사무실로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고 의견을 묻고 나누고 다시 답변해 주는 모습을 매일같이 본다. 비교적 나이가 어리고 상대적으로 직급도 낮다 보니 현장에서는 귀여워해 주고 편안히 대해주는 곳도 있지만, 초기에 관계가 형성되기 전에는 무시당하거나 귀찮은 상급기관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어느 날 20대 젊은 마을지원관이 어깨가 축 처지고 얼굴은 우울한 표정으로 들어오길래 마을에서 무슨 일 있었냐 물으니, “센터장님 주민자치가 아닌 것 같아요. 00 지원사업 예산을 무조건 자치회 맘대로 쓰고 싶어 하셔서 지침에 맞게 써야 한다 하니 큰소리로 왜 그래야 하냐며 혼내고 안 한다 하시고 너무 힘이 드네요”했던 적이 있었다. “나랑 같이 가서 차근차근 설명드리자”하고 팀장과 마을지원관을 데리고 행정복지센터로 가서 해결한 적이 있다. 물론 그림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00동 마을지원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치회 분들이 아들처럼 대해주시고 고생한다며 밥도 사주고 잘 대해주신다며 환한 웃음으로 자랑삼아 얘기하는 사례도 있다.  물론 어렵다. 과거 시민들이 마을에서 자치를 얼마나 경험해 봤겠는가. 내 삶터인 마을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얼마나 실천해 봤겠는가. 주로 민원 해결용으로 주민들의 의견이 행정이나 의원들에게 전달되고 잘 보이고 큰 소리 내면 해결해주는 경우가 만연돼 있는 현실이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정권이 바뀌면서 110대 국정과제를 보니 ‘주민자치’란 단어는 볼 수 없다. 주민자치회는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리도 들려온다. 주민자치가 비록 어려운 점도 있고 다툼과 갈등이 존재하기도 하고 생각처럼 완전한 자치를 지금은 실현시키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치의 멋과 맛을 경험하게 되면 시민들은 국민들은 이전과 다른 이 나라의 주권자로서 주인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지방자치, 자치분권의 성패는 바로 국민이 시민으로 주민으로 거듭나게 됨으로써 완성될 것이다. 새 정부도 겉모습만 보지말고 좀더 세심하게 바라보고 진지하게 검토해 보기를 간곡히 요청한다.  올해 마자센터 마을지원관들은 주민자치회뿐만 아니라 옆 팀인 마을공동체팀을 통해 발굴된 마을공동체, 아파트공동체, 마을교육공동체(우리봄내 동동)들도 들여다보고 관계 맺기를 해야 한다. 또 다른 기관에서 요청하는 협력사업도 고민하며 연결하고 있다. 춘천사회혁신센터와의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새삶스런 벤치), 춘천문화재단과의 탈락된 마을의제 사업(당근책 사업), 춘천인형극제와 진행하는 환상의 인형놀이터(주민참여 인형극) 등 주민자치회의 활성화를 위한 일에 이름 그대로 ‘마을지원관’으로서의 또 동네 홍반장 역할을 해내야 한다.  주민자치니까 중간지원조직이나 마을지원관은 필요 없다고 주장 하시는 분들도 있다. 노골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거북해하는 분들로 마을지원관들이 상처받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결국은 중간지원조직이나 지원관이 필요 없어지는 주민자치회가 오기를 고대하고 기대한다. 그러나 권한과 더불어 의무와 책임의 경험과 노력, 공부도 필요하다. 맘대로 하는 것이 자치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또 주민자치회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협력하면서 진정한 의미로서 ‘민관협치’를 통해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날까지 함께 길을 가면 좋겠다. 사진 출처 - 필자  춘천은 작년에 이어 올해보다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위한 ‘만만(萬滿)한 의제발굴 엽서’를 제작했다. 엽서는 마을에 대한 생각과 제안을 시민들이 직접 써서 주민 의제로 제안하는 아이디어였고 올해는 앞면을 주민들이 직접 도안해 선정했다. 마을 곳곳에서 자치회 위원분들과 마을지원관들이 땀 흘리며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작년은 3400여 명, 올해는 만 명의 춘천시민 참여가 목표다. 이 지면을 통해 전국의 마을지원관님들께 응원을 보낸다. “그대들이 가는 길이 대한민국 주민자치의 험난한 가시밭길을 개척하는 역사의 한 걸음 한 걸음임을 잊지 말고 힘내시길”
2022-05-18 | hrights | 조회: 53 | 추천: 2
이윤/ 경찰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2022. 5. 3.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공포됐다. 언론에 의하면 이로 인해 경찰 수사 지체 현상이 더 심각해지고, 공직자·선거 범죄에 대한 검찰수사가 제한돼 부패한 공직자 등의 보호막이 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한다. 충분히 제기될만한 우려다. 나는 경찰 수사에 인력, 예산, 제도 관련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으며, 그것도 추가되는 비용 없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력과 예산  2021년 수사권 조정 시행 첫해부터 지금까지 경찰 수사관들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수사경험자들은 수사부서를 떠났고, 거의 강제로 발령받아 온 신임 수사관들은 일이 벅찼다. 남아 있거나 새로 온 수사관 중 많은 이들은 다음 기회에 어떻게든 수사부서를 빠져나가려 한다. 일이 손에 익지 않고, 전과 달리 새롭게 해야 할 일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사건처리 시간은 오래 걸렸고, 언론과 변호사협회 등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사 기간이 늘어났다고 기사화하는 등 과거로의 회귀를 원하는 듯했다.  법 시행으로 인한 사건처리 지연은 이미 시행 전부터 명약관화했다. 대통령령인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의해 검사는 경찰 송치 사건에 대해서는 보완 수사요구를 할 수 있고, 불송치 사건에 대해서는 재수사요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검사가 직접 보완 수사했었는데, 이제는 경찰에 요구·요청만 하면 되니 검찰 일은 줄어들고, 경찰 일은 늘어났다. 게다가 경찰은 송치와 불송치가 혼재하는 사건의 두꺼운 사건기록 복사본도 만들게 되었다. 전에 없던 불필요한 일이 생긴 것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 경찰청에서는 부랴부랴 고성능 복사기와 기록관리 인력을 충원했으나 그나마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것으로 충분치도 않았다.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기대했던 것은 범죄혐의를 인정하기 어려운 사건은 경찰이 주체적으로 종결하고, 혐의가 인정되는 사건도 굳이 검사 지휘를 받는 절차가 생략되어 수사기일이 더 짧아지고 간소화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예전 수사지휘를 받을 때와 차이가 없으면서 오히려 불필요한 일이 추가되어 인력과 예산이 더 필요한 상태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애초에 대통령령에서 검사의 요구·요청권을 인정할 때, 그리고 직접 수사 범위를 6대 범죄로 한정할 때 그로 인해 여유가 생긴 검찰 인력과 예산을 경찰로 이전하는 것도 동시에 진행했어야 했다. 현재 검찰청 인력은 약 1만 명가량(검사 2,300명, 검찰 수사관 6,000명 정도)인데, 경찰 수사 인력은 약 3만 명 정도다. 전체 범죄사건의 98%를 수사하는 경찰 인력이 검찰청 인력의 3배밖에 되지 않는다. 이 불균형을 어느 정도는 조정해야 한다.  이번 법 개정으로 검사 직접수사 가능 범죄가 부패와 경제로 축소되었고, 그나마도 나중에는 이른바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 검찰은 명실상부한 기소 및 공소유지 기능을 전담하게 한다고 하니, 일이 줄어든 만큼 검찰 인력과 예산의 절반만 넘겨주더라도 경찰 수사는 지금보다 빠르고 꼼꼼하게 진행되어 언론과 변호사협회를 만족시켜 줄 것이다. 경찰 수사 인력 5,000명이 증원되면 대도시 경찰서에 최소한 25명씩은 추가배치 할 수 있다. 그렇게 해 봐야 수사·형사·여청·교통사고 각 기능 한 팀당 한 명 정도 증원에 그치겠지만,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다. 검사 한 분 고용할 비용으로 경찰 수사관 1.5명은 고용할 수 있으니 그 효과는 더 클 것이다. 인건비 외의 다른 예산 절반도 검찰에서 경찰로 이전하면 높은 가성비가 기대된다. 제도  2년 안에 소위 중대범죄수사청이 설립될 수도 있다. 아마도 현재의 검찰이나 경찰과는 별개 조직이 될 것인데, ‘중대’범죄를 수사할 것이니 대부분의 고소·고발 사건이나 폭행 등 생활 주변 형사사건은 계속 경찰에서 맡을 것으로 여겨진다. 모든 범죄사건을 중대범죄수사청이 다 처리하고, 경찰은 신고된 사건에 대해 초동 조치만 한 후 사건을 인계하는 형태가 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데, 아마 그렇게는 안 될 것 같다.  경찰서 경제팀에 접수되는 전체 고소사건 중 기소되는 사건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고소사건 수가 월등히 많다. 그 이유로는 개인 간 분쟁이 있을 때 변호사 등을 활용하는 다른 법적 해결 방법에 대한 접근성이 낮고 비용이 높아서, 비용이 들지 않고 접근성 좋은 경찰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무차별적 고소에 대해서는 경찰이 초기 수사 결과 더 이상 범죄가 인정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면 자체적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해 줘야 정작 세밀한 수사가 요구되는 사건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는 경찰 수사력 낭비가 너무 심하다. 제도적으로 수사력을 선택과 집중할 수 있도록 마련해주는 것도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이건 돈도 들지 않는다. 투자 효과  범죄 수사는 ‘불법적 작위·부작위와 그에 동반한 정신 상태를 재구성하는 세부 사항을 합법적으로 탐색하는 활동’으로 정의된다. 많은 국민들은 경찰 수사를 통해 자신들에게 불법적 작위·부작위(범죄)를 한 사람이 처벌받고, 자신이 입은 피해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미국 일부 지역처럼 수사관에게 일 년에 100만원 이상 정장값을 지원해 줄 것까지 원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사건의 무게에 짓눌려 정신적·신체적으로 피폐해지지 않도록 인력, 예산, 제도를 배분하는 투자를 함으로써 경찰이 범죄사건 수사에 진력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 땅에서 사기꾼과 파렴치범, 절도범, 강력범으로부터 받는 피해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2022-05-10 | hrights | 조회: 271 | 추천: 10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별다방만 기프티콘? 이젠 동네가게 기프티콘!’  2022년 5월 15일. 경기 시흥시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모바일 플랫폼이 선을 보인다. ‘시루 동네티콘-두구두구’가 그것이다. 시루 동네티콘은 사업명, 두구두구는 서비스명이다. 내용은 위의 슬로건이 간명하게 말해준다. ‘동네가게에서 쓸 수 있는 기프티콘’  기프트+이모티콘의 단어 조합으로 추정되는 신조어 기프티콘의 시작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텔레콤의 자회사 에어크로스에서 처음 ‘기프티콘’을 출시했다고 알려졌다. 당시만 해도 한 달 이용량이 5만여 건에 불과했으나 다음 해인 2007년에는 43만여 건으로 늘면서 범상치 않은 시작을 알렸다.  기프티콘의 성장에 불을 지른 것은 2010년 12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한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등장이었다. 기프티콘이란 메시지로 간편하게 주고받는 선물이라는 개념이 확산된 것이다. 그리고 기프티콘은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지난해 9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국감 자료로 제출받은 온라인 선물하기(기프티콘) 시장 규모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프티콘 시장 규모는 2016년 7,736억 원, 2017년 9,685억 원, 2018년 1조4,243억 원, 2019년 2조846억 원, 2020년 2조9,983억 원으로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약 3조 원에 달하는 기프티콘 시장은 사실상 독과점 시장이다. 전체 거래액 중 84.5%(2조5,341억 원)를 카카오커머스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지인에게 마음을 전하는 선물의 전달 수단으로 기프티콘을 보내는 것은 일종의 문화가 되고 있다. 가장 쉽게 기프티콘을 이용하는 방법은 앞서 말한 것처럼 전 국민의 소통 채널인 카톡의 추가 메뉴인 선물하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카카오커머스가 기프티콘 시장을 장악하는 이유이다.  2022년 올해 기준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재계 15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기업인 카카오의 카톡에서 주로 거래되는 기프티콘은 스타벅스, 배스킨라빈스, 파리바게뜨 등 역시 굴지의 대기업 상품이 주를 이룬다. 동네 골목상권 소상공 자영업 카페, 음식점, 빵집 등이 기프티콘 시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지금까지 언감생심이었다.  거대 플랫폼 유통·소비 구조에서 소외되는 소상공 자영업자들이 골목상권 전용 기프티콘에 대한 요구가 없지 않았다. 다만 이를 연결할 플랫폼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대기업 플랫폼과 대기업 프랜차이즈 기프티콘과 경쟁할 엄두를 쉽게 내진 못할 터)  그런데 한 업체가 용감하게 골목상권 전용 기프티콘 앱(APP)을 출시했다. 내가 좋아하는 동네 단골가게 기프티콘을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에 덜컥 만든 앱의 이름이 ‘두구두구’이란다. 이를 시흥시가 덥석 손을 내밀어 붙잡았다. ‘지역화폐 결제가 가능한 골목상권 동네가게 전용 기프티콘 플랫폼’이 첫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지난 2월 시흥시와 ㈜동네티콘이 제휴를 맺고 지금까지 200여 개의 골목상권 동네가게가 두구두구 앱에 입점했다. 입점 대상은 시흥시 지역화폐인 시흥화폐 시루 사용처(지역화폐 가맹점)이었다.  사용법은 기존 기프티콘과 거의 동일하다. 두구두구 앱에서 동네와 가게, 상품을 검색하여 시흥시 지역화폐인 모바일시루로 결제한 후 선물을 보내면, 선물 받는 사람은 카카오톡으로 받아 해당 가게에서 사용하면 된다.  소비자는 현재 10% 할인 혜택이 제공되는 모바일시루로 동네 단골가게 선물하기 결제가 가능하고 가맹점은 가게 상품과 서비스를 기프티콘으로 만들어 홍보 효과를 누리고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여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가맹점이 부담하는 기프티콘 결제 수수료는 5%이다. 시흥시와 제휴를 통해 기존 기프티콘 시장의 수수료 10~12%의 절반 가격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골목가게에서 홍보를 위해 전단지를 돌리는 비용 정도이다.(더 낮추고 싶지만 이 5%의 수수료에도 PG수수료 등 여러 기본 수수료 빨대가 꽂혀있다)  출시 전이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다. 특히 젊은 동네가게 사장들의 환호가 들린다. 매우 다양한 기프티콘 사용처도 확보했다. 예를 들어 동네 헬스장, 네일숍, 공방, 한의원 등 기존에 보지 못한 기프티콘이 선을 보인다. 동네 단위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사실 시흥시만 하더라도 별다방 기프티콘을 쓰려면 동네에 매장이 없어 대처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천편일률적인 기존 기프티콘에 식상한 소비자도 적지 않다. ‘우리 동네에도 괜찮은 가게와 상품이 있는데 이걸 기프티콘으로 선물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수요가 존재하는 것을 현장에서 듣게 된다. 게다가 지역화폐로 구매한다면 일종의 할인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유인 요소도 만만치 않다.  마침 또 코로나19 시국 동안 열지 못한 지역 맘카페에서 플리마켓을 재개하며 동네티콘 홍보 부스를 마련해 주겠다는 감사한 연락이 왔다. 지역의 관심과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선물 경제(gift economy)란 개념이 있다. 네이버 검색 결과에 따르면, 재화를 선물로 나누어줌으로써 물질적 필요를 충족하는 경제를 뜻한다. 이는 개인 또는 일정한 집단들이 재화를 물물교환하거나 시장에서 가격이라는 메커니즘에 따라 상품을 거래하는 교환경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포틀래치 경제라고도 한다.  이 같은 선물 경제의 적용 사례로 협동조합이나 로컬푸드 매장을 지목하기도 한다. 선물 경제에 의한 교환체계가 협동조합의 운영원리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로컬푸드 매장 또한 일정한 지리적 공간에 사는 사람만이 주고받을 수 있다는 잠재적 조건에서 출발하므로 선물 경제의 개념을 담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로 가치를 인정하고 상호 존중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반으로 선물 경제가 유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지역공동체 강화를 최종 목적으로 두고 있는 지역화폐와 연결하고, 기존 거대 플랫폼의 기프티콘을 차용해 동네단위로 재구성하는 시도가 바로 시루 동네티콘, 두구두구 앱이다.  시루 동네티콘을 준비하다 보니 절로 ‘동네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이야기가 신음처럼 나오게 되지만(세상 쉬운 게 없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공공이 견인하는 새로운 동네기반 소셜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진다는 기대 때문이다.  다음에는 시흥시가 시도하는 또 다른 ‘별난 짓’을 소개한다. ‘시루 동키마켓’이다. ‘동네를 키우는 마켓’의 줄임말이고, 마스코트는 정말 당나귀(donkey)이다. 그 당나귀가 어떻게 동네를 키울지 기대하고 봐주시길.
2022-05-04 | hrights | 조회: 123 | 추천: 2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봄, 생명의 시작  봄이다. 긴 겨울의 끝에서 생명이 움트는 소식을 전하는 봄이다. 옥상에 올라 바라보는 산은 하루가 다르게 초록으로 물들어간다.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지는 곁에서 조팝나무의 하얀 물결이 눈이 부시다. 산매화며 벚꽃이 피는가 하더니 목련꽃이 진다. 그 자리에 연둣빛 잎이 달린다. 이제 올라온 가녀린 잎새는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돌돌 말려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돌돌 말린 잎새는 생명의 기지개를 펴듯 스스로 제 몸 가누어 쭉 펴 올리더니 봄바람에 살랑인다. 신기하다. 여린 잎을 단 나무들이 하나 둘 어린 초록빛으로 물들더니 이제는 좀 더 진한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초록의 향연이다. 눈이 부시다.  봄, 움터오는 생명의 탄생, 문득 아주 오래전 홍도에서 새 생명의 탄생을 눈앞에서 지켜본 기억이 났다. 해산일이 가까운 임신부가 때마침 불어온 태풍으로 미처 뭍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아이를 낳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공소회장님 댁이 산파를 자처하였다. 회장님댁은 “아이를 받아본 게 10년도 넘었는디….”하시면서도 차근차근 아이 받을 준비를 하였다. 나도 곁에서 물 끓여 가져와라 하면 물 들여가고, 소독한 가위 가져오라면 방에 들여놓고 안절부절못하면서 잔심부름을 하였다.  그렇게 방 밖에서 숨죽여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찰싹하는 소리에 이어 세상에 첫소리를 내는 갓난아기의 “응애~” 하는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들이랑게! 산모도 아도 모두 건강허요!” 순간 나는 알 듯 모를 듯한 조심스러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부서질 것만 같은 연약한 생명에 대해 본능적으로 느낀 두려움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었을까?! 죽은 것만 같던 나뭇가지에 움터 나오는 잎새를 보며 새삼 생명의 시작은 작고 여리고 연약한 것이었다는 걸 생각하는, 봄이다. 나이 듦, 느려지는 시간  “어쩌면 가사가 저리도 곱냐….” 고운 봄볕 길게 드는 마루에서 화투장을 만지던 엄마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가 탄식하듯 혼잣말을 한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이다.  울 엄마 올해 여든셋, 행동거지도 기억력도 많이 느려지고 있다.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고, 좀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오늘이 며칠인지 알려면 몇 번씩 달력을 들여다봐야 하고, 전날 만나 인사 나누던 앞집 사는 이가 며칠째 안 보인다며 걱정하고~. “자꾸만 기억이 안 난다! 왜 그러지! 걱정이다!” 철없는 딸내미는 “나이 들면 다 그렇지 뭐, 젊을 때하고 같아? 뭔 그런 걸 걱정해!” 하며 타박이나 한다. “그럼, 오늘은 저 웃소사 복숭아꽃 활짝 폈으니 그리로 꽃구경 갑시다!” “싫다! 걷는 것도 그렇고, 모양도 그렇고….” “봄볕도 좋고, 복사꽃이 활짝 펴서 장관이야! 천천히 걸어보지 뭐!”  어린애 달래듯 하여 느릿느릿 산책길에 나서자니, “지팽이는 싫다! 그냥 걸을란다!”며 딸내미한테 손을 내민다. “니 손 잡고 걷는 게 더 좋다!”  그렇게 딸내미 손 붙들고 느릿느릿 걷다 보면 복사꽃 화사하게 핀 저 무릉도원에 도착할진저, 그 그늘 아래서 한숨 졸다 보면 서녘으로 기우는 해를 배웅하는 시간이 올 것을. 굽이굽이 돌아왔을 엄마의 삶의 길을 천천히 동행하자니 “힘들구나!” 하면서 잠시 숨을 고른다. “좀 쉬었다 가자!” 그러지 뭐, 느릿느릿 걸어도 우리는 저 무릉도원에 닿을 것을. 죽음, 기억하는 삶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늘 부고를 들으며 산다. 비록 그 부고가 오늘은 몇 명이라는 통계 수치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만성적으로 들리는 것이지만.  가까운 지인의 부고를 받았다. 육십 초반의 지인의 죽음은 뜬금없는 소식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것도,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먼 이국땅에서의 교통사고! 작별의 징조란 것도 없이 그저 황망하였다. 꼭 한 달 전에 “미국 다녀와서 다시 보자고!” 하던 그이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 울리며 되살아나곤 한다.  생로병사,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는 삶이지만, 우리의 의식은 늘 삶에 방점을 찍고 살아간다. 그러다 가까운 그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그제야 죽음이란 걸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삶의 종착역이 죽음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지만 우리의 삶은 죽음에 이르러 끝이 난다.  한 달 뒤, 사십 후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배가 안치된 봉안당을 찾았다. 말기암이던 그니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죽을 것 같지 않다고 하였다. 하염없이 착한 웃음으로 맞아주던 생전의 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며칠 뒤, 속절없이 파릇한 생명을 잃은 세월호 참사 8주기를 맞았다.  칙칙한 옷을 벗은 세상을 화사하고 싱그러운 빛으로 물들이는 봄에, 죽음을 생각한다. 마치 죽은 것 같던 고사목에 움터 오른 잎새들이 넓게 퍼져 그늘을 만드는 걸 보면서 새삼 죽음과 마주한다. 내 친구들은 죽음으로 죽은 걸까? 파릇한 아이들은 죽음으로 끝인 삶인 걸까, 생명이 소생하는 봄에 기억으로 삶이 시작되는 이들, 죽음은 기억 속에 시작하는 삶이 아닐까 싶은데….  마치 우리에 갇힌 것 같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마주한 죽음은 어떤 모습이었던 걸까?
2022-04-26 | hrights | 조회: 128 | 추천: 4
석미화/ 평화활동가  내게 4월은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달이다. 해마다 4월이 되면 기자회견을 준비한다. 4월을 위해 여러 행사를 기획하고, 4월에 베트남전쟁 한국군 피해자를 만나고, 4월에 피켓을 든다. 언제나 4월은 바빴다. 4월을 중심으로 1년이 돌아왔다.  왜 베트남전쟁을 4월에 기억하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야 베트남전쟁이 4월 30일에 끝났으니까. 하지만 왜 베트남전쟁을 기억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그 전쟁을 왜 4월 30일에 기억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난 다시 반문하게 될 것이다. 그럼 언제로 기억하는 게 좋을까요? 이건 절대로 시비를 걸거나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정말 진지하게 우리가 이 전쟁을 기억하는 날을 언제로 하면 좋을지 묻는 것이다.  20세기 한국이 치렀던 두 개의 전쟁,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대개의 나라가 전쟁이 끝난 날을 기억하는데 비해 한국전쟁은 발발일로 기억되고 있다. 또 하나의 전쟁, 베트남전쟁은 기억하기 위한 ‘날’이 없다. 이 전쟁을 추념해야 할지 기념해야 할지, 적어도 현재 국가의 기억 안에는 자리하고 있지 않다. 어쨌거나 국가보훈처가 예우하는 보훈 대상 중 참전유공자는 이 두 개의 전쟁 참전자를 대상으로 한다. 유공의 범위에는 포함이 되었지만 6.25전쟁이 각각의 수많은 전투와 참전자에 대한 추도식과 위령제가 열리는 것에 비하면 베트남전쟁 관련된 국가의 공식적인 ‘날’은 없다.  사회와 국가, 그리고 대부분의 무관심 속에서 이 전쟁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가해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시민사회와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기억. 그리고 4월의 현장에서 ‘성찰’과 ‘기념’의 기억이 부딪힐 때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만날 수 없는 각자의 주장 속에 때로는 그들의 소리에 귀를 닫고 행사를 열어야 했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살펴야 했다. 참전군인들은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고발하는 전시장 앞에 천막을 치고 항의 농성을 했고, 분노를 담은 현수막을 달았다. 광주에서는 그들 여러 명과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 설득을 해야 했는데, 난 그냥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수차례의 경험 속에서 분노한 그들의 주장과 내 이야기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무력감을 느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위안하기에는 자기변명이라 느껴졌다. 참전군인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점점 고민이 깊어졌다.  운동의 과제와 고민 속에 <참전군인의 평화 활동에 대한 연구>(2021, NPO지원센터, 하단 링크 참조)를 펴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참전군인’과 ‘평화 활동’이라는 말은 썩 어울리거나 관련 있는 단어가 아니다. 나는 이 연구를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참전군인의 평화 활동과 그들의 생각을 알리고 싶었고, 그 가능성을 통해 참전군인과 평화 활동의 동료로 만날 것을 제안했다. 모든 집단이 그 안에 다양성을 가지고 있듯 참전 단체로 대표될 수 없는 그들 사이의 다양성에 주목하였으며 우리가 참전군인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을 성찰하고자 했다. 그리고 참전군인을 역사적 사건에 대상화된 존재,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 고엽제나 PTSD와 같은 치료 대상으로서 ‘비운의 자리’에 위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사진 출처 - 필자  이 책에는 평화 활동을 하는 네 명의 참전군인 이야기를 담았다. 평화재향군인회 창립자이자 1965년 맹호부대 1진으로 월남에 간 전투소대장 표명렬, 1971년 맹호부대 포병 하사관으로 파병되어 귀국 직전 안케패스 전투에 참전한 김낙영, 1969년과 1971년 남들 한 번 가기도 힘든 월남전을 두 번이나 경험한 백마부대 전투병 양정석, 1967년 청룡부대 전투병으로 참전해 크게 부상당한 뒤 귀국한 상이군인 류진성. 그들이 겪은 참혹한 전장의 경험은 평화에 대한 깊은 성찰과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연구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4월 말에는 웨비나를 준비하고 있다.  ‘참전군인의 평화 활동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참전군인의 평화 활동은 가능하다’는 결론을 맺고 있는 연구는 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을 모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그 실천을 위해 늘 4월이면 해왔던 활동을 올해는 좀 다르게 해보려 한다. 참전군인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촉구하는 활동에 나서는 것, 그들과 평화 활동의 동료가 되어 함께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모여 언젠가 참전군인의 이름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촉구하는 성명서가 나올 날을 기대하며, 그렇게 나의 4월은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며 흐른다. <참전군인의 평화 활동에 대한 연구> https://blog.naver.com/snpo2013/222599870490 (연구보고서 바로가기) http://www.snpo.kr/data//file/npo_aca/1893498642_PR5WyjEL_01_ED999CEBA0A5ED96A5EC97B0_ECB0B8ECA084EA B5B0EC9DB8EC9D98_ED8F89ED9994ED999CEB8F99EC9790_EB8C80ED959C_EC97B0EAB5AC_EBAFB8EBAFB8EC8B9C EC8AA4ED84B0ECA688.pdf
2022-04-14 | hrights | 조회: 145 | 추천: 2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일해야 하고 싸워야 하고 놀아야 한다. 그래서 인간사치고 일과 싸움과 놀이의 성격을 동시에 갖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그 비중이 어떻게 다른가에 따라 중심이 되는 성격과 주변이 되는 성격이 다를 뿐이다. 회사에서의 일도 싸움과 놀이의 성격을 아예 결여할 수 없다. 퇴근한 뒤 이루어지는 회사의 회식은 기본적으로는 놀이지만, 암암리에 일과 싸움의 성격을 수반한다. 정치적인 투쟁의 일환인 대대적인 시위는 한편으로 축제와 같은 놀이의 성격을 지니기 일쑤다. 시위 진압을 위해 경찰이 폭력을 행사하게 되면 놀이의 성격은 한껏 줄어들고 싸움의 성격이 전격적으로 강화될 것이다.  일 즉 노동은 가치를 생산하는 기초다. 싸움 즉 투쟁은 궁극적으로 노동을 통해 생겨난 가치 생산물을 과연 정당하게 배분하는가를 둘러싸고서 일어난다. 놀이 즉 유희는 노동과 투쟁이 결합하여 일군 최종적인 가치 생산물을 다수건 소수건 함께 소비하면서 살아있음을 즐기고 향유 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드높이는 최종의 행위다.  이를 사회적 삶의 영역에 비추어 보면, 노동은 경제 영역에, 투쟁은 정치 영역에, 유희는 문화 영역에 각각 할당된다. 인간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드높일 수 있는 계기는 문화 영역에서의 유희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동은 대상적인 가치를 지닌 재화를 생산해 문화 영역에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투쟁은 노동을 통해 생산된 대상적인 가치를 가능하면 최대 다수가 공정하고 평등하게 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경제가 발전하면 그만큼 유희할 수 있는 사회 전체의 가치 생산물의 양이 늘어나고, 정치가 발전하면 그만큼 모두가 함께 유희함으로써 각자가 더 넓고 깊은 환경에서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향유 하는 문화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문화를 통한 유희의 폭과 깊이가 인간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척도가 되고, 그래서 유희 즉 놀이는 인간 됨의 출발이자 완성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 노동을 통해 경제 활동과 투쟁을 통한 정치 활동은 유희를 통한 문화 활동을 위한 수단이고, 문화 활동은 경제 활동과 정치 활동의 목적이다.  한 사회의 경제력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정치의 수준이 낮으면 양극화의 폭이 커지면서 소수의 유희를 위해 다수가 노동에 집중하는 일이 강화된다. 정치의 수준을 가늠하는 데는 모두가 열심히 일해 사회적 가치의 총생산량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회적 가치의 총생산량을 최대 다수가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은 아주 잘 알려져 있다. 이는 그저 사람들이 협력함으로써 노동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각자의 존재 가치가 공동의 활동을 통하지 않고서는 성립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동의 활동에 얼마나 더 넓게 더 깊게 참여하는가에 따라 각자의 존재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 존재에 관련한 이 원칙에서 공동의 활동은 궁극적으로 문화 활동이다. 문화의 향유야말로 인간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를 기준으로 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제반 영역에서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른 정치가 요구되고, 그 누구도 다른 누구를 자의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는 이른바 비(非)지배의 자유에 바탕을 둔 공화주의의 원칙에 따른 정치가 요구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이 다름 아니라 국민의 최대 다수가 참여할수록 더욱 역동적으로 활성화되고, 그럼으로써 모두가 모두를 통해 인간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실현하는 것을 나라의 기초로 삼는다는 선언이다. 그래서 이 헌법 조항은 그 실내용을 고려하면 “대한민국은 문화의 민주공화국이다.”로 바꾸어 읽어야 한다. 그러니까 특히 통치자인 대통령과 국민을 대신해 입법행위를 하는 국회의원 그리고 검찰 일을 하는 검사들과 재판 일을 하는 법원의 판사들 등, 정치 엘리트들이 최대 다수의 동등한 참여를 통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는 민주 공화의 문화적 가치를 저해하거나 방해하는 쪽으로 행위 하는 것은 곧 헌법, 그것도 최상의 준엄한 헌법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다. 2.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날 숨죽이고서 텔레비전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충분히 이기겠구나 하는 희망이 현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아뿔싸 자정이 넘어서부터 충분하다고 여겼던 그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새벽 두 시쯤이었지 싶다. 이윽고 돌을 삼킨 듯 가슴 어딘가에서 내뱉을 수 없는 먹먹함이 더해지더니 얼마 가지 않아 암울함에 이어 절망이었다. 결국은 0.73% 차이의 패배였다. 눈을 뜨고 있었으나 시야가 어둠에 휩싸였다.  후보 윤석열 씨가 이른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후보 이재명 씨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텔레비전을 차마 보지 못했다. 그동안 수시로 드나들던 유튜브도 끊었다. 며칠 그냥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베란다 바깥을 하릴없이 내다보곤 했다. 우울이었다. 벗어나야 한다는 각오를 억지로라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은 다시 유튜브를 뒤적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사람이 마찬가지로 납덩이 같은 심정을 겨우 버티어냈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쏟아냈다. 보기 싫은 그 얼굴이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등장하는 것이 두려워 한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고들 했다. 패배한 자들 간의 격한 공감이었다. 다들 향후 5년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하는 황망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 내면의 진상은 무엇일까? 정확하게 짚을 수는 없다.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이다, 남북의 평화와 자주적인 나라의 도래가 물 건너갔다,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양극화의 해소는커녕 더욱 심화할 것이다, 검찰 권력이 강화되어 이른바 ‘검찰 공화국’이 도래하여 죄 없이도 누구나 불안에 사로잡힐 것이다, 보수 언론의 권력과 부패한 금융 세력과 재벌 세력들이 불공정한 자의를 휘두르는 검찰 권력과 결탁한 기득권 카르텔의 위세가 더욱 등등해질 것이다, 심지어 합리성을 내팽개치고 손바닥에 새긴 ‘王’자가 여실히 말해 주듯 무속이니 신내림이니 하는 영기(靈氣)를 맹신한 가운데 말도 안 되는 어이없는 일방통행의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통치자의 무식과 무능함에 그의 주변에 호가호위하는 자들이 몰려들어 그네들만의 이익을 위해 설쳐댈 것이다, 여러 기준의 갈라치기에 의한 갈등과 대립이 판을 칠 것이다, 첨단고도과학기술에 의한 대전환의 위기를 헤쳐나가지 못해 정치가 사회경제의 거대한 물결에 휘청대면서 국가의 명운을 전혀 가늠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등등이지 싶다.  소위 대통령 당선인인 윤석열 씨는 대선 경쟁을 하던 중에 주당 120시간까지라도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로 많은 사람들을 아연실색게 했다. 주 5일을 근무한다면 하루 24시간, 아예 잠도 자지 않고 오로지 일하기만 하는 인간으로 산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는 식의 발언이다. 반발이 심해지자, 마치 창조적인 노동을 하는 인간은 자발적으로 그렇게 아예 잠도 자지 않고 일하고자 하니 허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변명으로 바꾸었다. 노동을 최소화하고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을 때 인간다운 인간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아예 어떤 실마리조차 없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참다운 인간의 삶인가에 관한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 후보였던 이재명이 “정치는 종합예술입니다. 정치를 통해 내가 아닌 국민이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그래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한 김구 선생의 말을 인용하면서 제시한 문화인으로서의 국민 개개인의 삶을 지향하는 일종의 예술로서의 정치를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틀림없이 대통령 당선인인 윤석열 씨는 오로지 기업활동의 자유만을, 잘 먹고 잘사는 강자들의 편에 서서 통치를 할 것이다. 그가 혹시 국민 모두의 삶을 윤택하게 하겠다고 말하더라도 입에 발린 겉치레에 불과하고, 그는 본능적으로 기득권 카르텔을 중심으로 한 강자들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다. 그러니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의 정치로 모두 함께 잘 사는 대동 세상을 열어가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상대 후보였던 이재명의 애민(愛民) 통치의 바람을 상상할 수도 없거니와 그 의의의 실마리조차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로지 검찰 권력이 무소불위의 권력임을 믿고 살아온 현재 대통령 당선인인 윤석열 씨는 드디어 그 자신 패거리 권력 투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을 ‘정치판’에서 가장 유리한 우두머리의 지위를 차지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힘을 정확하게 의식한 탓임에 틀림이 없는 대통령 당선인으로서의 기이한 첫 행보를 보인다. 무슨 이유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조차 없는 “청와대에는 단 한 발짝도 들이지 않겠다.”라는 발언을 하고, 전혀 들먹이지 않았던 용산 국방부 건물을 접수해 대통령 집무실로 쓰겠다는 고집을 고수하여 관철하는 행보를 계속한다. 그러니, 상대 후보였던 이재명이 “국민이 역사의 주체이고 대한민국의 주인입니다. 국민이 결정해준 대로 따르겠습니다.”라고 발언을 왜 했는지, 그 배경과 의의 및 취지를 어떻게 조금이라도 알겠으며, 무엇보다도 동학 혁명의 정신을 들먹이면서 국민을 향해 여러분이 ‘역사의 주체’라고 한 이재명의 말에 담긴 처절한 애국의 심정에 어찌 조금이라도 공감하겠는가.  현 대통령 당선인인 윤석열 씨는 대선 후보 때 핵을 탑재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있을 경우를 가정해 “선제타격 말고는 방법이 없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아울러 북한을 일러 주적임을 명시적으로 내세웠다. 남북 간의 평화 공존을 지향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안보 불안을 부추긴다. 그뿐만 아니라, 남북 분단과 대치 상황을 빌미로 미국이라는 국제적인 예외국가가 어떻게 우리를 강압해 반(半)-종속국으로 만들어 자주 국가로서의 위상을 훼손해 왔는가에 대한 의식이 조금도 없다. 오히려 그러한 우리의 처지가 얼마나 다행한가, 하는 내심을 전혀 감추지 않고 강하게 내세운다. 어떻게든 남북의 평화를 이루고자 노력해 온 문재인 정권을 ‘빨갱이 정권’ 운운하면서 꽉 막힌 반공적 냉전 의식에 사로잡힌 세력에 힘을 싣는다. 그러니 “3.1운동 당시에 만세를 부르던 우리 선조들의 뜻을 이어서 평화로운 나라, 진정 독립되고 자주의 나라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여러분?”이라고 외치는 상대 후보인 이재명의 말에 실린 미래를 향한 긍정적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의사가 전혀 없거니와 심지어 그 뜻이 무엇인가를 깊이 새겨볼 한순간의 겨를조차 있겠는가.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나라가 어떤 상태를 지향해야 하는가에 관련해 이처럼 가치가 충돌하는 전격적인 투쟁에서 패배해 버렸으니, 어찌 크나큰 희망에서 더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출구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갱 속에 갇히고 말았다는 심경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3.  그러나, 포기할 겨를도 이유도 없다. 대선 패배 직후 등장한 <재명이네 마을>에 몰려든 십 수만의 이른바 MZ 세대의 젊은이들이 벌이고 있는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크게 힘을 북돋우고 있다.  이 기회에, 일하기 위해 노는 것이 아니라 놀기 위해 일한다는 사실, 싸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놀기 위해 싸운다는 사실, 모두가 제대로 놀기 위해서는 모두가 일군 일의 성과를 제대로 배분하여 양극화를 극복하고 이를 통해 배타적인 소유 의식을 떨쳐버리고 놀이의 기초 조건인 열린 평등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사실, 아울러 놀이의 재료이자 목적이 되는 문화 예술을 비롯해 학문의 성과를 창의적으로 드높여야 한다는 사실, 인류의 공존공영을 위한 창의적인 기술 개발에 힘써 전 세계적으로 놀이의 다채로운 방식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 무엇보다 전쟁의 가능성과 위협을 미리 방지하고 소멸함으로써 놀이의 동의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평화와 자유가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 등을 떠올려 강조하게 된다. * 워낙 중차대한 국가적인 사태를 맞이한 탓에 흥분한 어조로 중언부언 깜냥에 넘치는 원칙적인 이야기들을 뇌까린 것 같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양해하시기 바란다.
2022-04-05 | hrights | 조회: 185 | 추천: 3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유인원(類人猿)은 사람을 닮은 대형 원숭이를 말한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보노보 등이 유인원에 속한다. 전통적 동물원이든 사파리라 불리는 개방형 동물원이든 동물을 서식지로부터 분리해 가두어 사육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갇혀 있는 동물을 구경하러 가는 일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지만, 기린 같은 이국 동물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열광했다. 하지만 원숭이 우리 앞에서는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쳐다보기 민망하고 불편했다. 유인원이라는 이름처럼, 사람과 닮아도 너무 닮은 비인간 동물이 나를 쳐다본다. 특히 침팬지의 손, 특히 손바닥은 사람 손바닥과 똑 닮았다. 그 응시 앞에서 내 눈은 어디를 응시해야 할지 모르고 흔들렸다.  가둔 자와 갇힌 자의 위치가 역전되는 착시현상은 사람과 닮은 동물일 때 더 극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갇힌 쪽이고 갇힌 나를 고릴라가 바라보는 것이라면? 털 없는 원숭이 사람을 고릴라가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이라면? 으스스하고 묘한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원숭이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은 발달이 늦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동물이다. 타잔을 보는 원숭이 엄마 카라의 눈길이 그러했다. 타잔은 미국 소설가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Edgar Rice Burroughs)가 창조한 인물이다. 소설 『타잔(Tarzan of the Apes)』이 1914년 출간되고 모두 26권의 시리즈가 나왔고, 수많은 영화와 TV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타잔의 부모는 아프리카 식민지에 부임한 영국 귀족이었다. 부모를 잃은 타잔을 카라는 정성으로 돌보지만 1년이 지나도 제대로 걷지도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털도 나지 않는 하얀 피부라니! 원숭이 형제들과 물을 마시러 간 호수에서 처음으로 자기 얼굴을 본 타잔은 충격에 휩싸였다. “어째서 내게는 굳센 입술과 날카로운 송곳니가 없는가, 형제들의 넓적한 코에 비해 내 코는 어딘가 뜯겨나간 것처럼 작았다. … 그들의 코가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고 부러웠다.” 1) 타잔의 독백이다.  으스스한 기분을 억누르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본다. 그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이빨을 드러내고 웃기도 하고, 입술을 주욱 내밀고 먼 곳을 보기도 한다. 끽끽 소리를 내고 머리통을 두드리며 항의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누구보다도 자연을 사랑하고 관찰하기를 좋아했다. 따개비, 지렁이, 비둘기, 개는 다윈이 특별히 사랑했던 동물들이다. 다윈은 동물원에 가서 유인원을 관찰하는 일에도 열심이었는데, 1872년 출판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The Expres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에서 원숭이의 감정 표현에 대해 썼다. 다윈은 다양한 종과 속의 원숭이들의 감정 표현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인간의 감정 표현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쁨, 즐거움, 애정을 표현할 때면 인간도 원숭이도 입술을 내밀고, 웃는 소리 내고 눈이 반짝인다. 고통, 슬픔, 고민, 질투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의 표현도 유사하다고 했다. 회색손올빼미원숭이가 슬픔에 빠졌을 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는 주인과 사육사의 증언에 대해서는 자신이 동물원에서 동종의 원숭이를 면밀히 관찰했지만, 비명은 질러도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도 원숭이도 사람처럼 슬픔을 느끼는 것은 틀림없다고 했다.  다윈은 “어린 오랑우탄과 침팬지가 건강이 좋지 않아 실의에 빠진 모습은 아이들 못지않게 뚜렷하고, 아이들과 거의 다를 바 없이 애처롭다. 그들이 이와 같은 심신 상태에 놓여 있음은 그들의 힘없는 동작, 낙담한 표정, 흐린 눈, 그리고 변한 안색 등을 통해 드러난다” 2) 면서 어린 원숭이와 사람 아이의 감정 표현의 공통점을 찾아내 서술했다. 또한 “그림 18은 오렌지를 받았다가 빼앗긴 침팬지가 부루퉁해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침팬지와 유사한 입 내밀기 혹은 입술 샐쭉거리기를 부루퉁한 아이들에게서도 살펴볼 수 있다” 3) 고 적기도 했다. 오늘날 동물학자들은 인간의 감정을 동물에 곧바로 적용하는 지나친 의인화를 비판할지 모르지만, 다윈의 시대에 동물이 느끼는 감정을 인간과 같은 수준에서 논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시도였다. 다윈은 인간을 동물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이 아니라 동물을 인간과 같은 존재로 끌어 올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림1: 실망해서 부루퉁해진 침팬지, 우드 씨의 그림 출처: Darwin, C. R. 1872. The expression of the emotions in man and animals. London: John Murray. First edition. (darwin-online.org.uk)​  유인원은 사람과 유전자가 거의 같다. 사람과 침팬지는 98%, 오랑우탄은 97%의 DNA를 공유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지능이 높고, 사람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있고 자아가 있는 유인원의 동물실험을 2015년부터 금지하고 있다. 유인원의 실험은 금기시되고 있지만, 영장류는 여전히 실험에 쓰이고 있다. 신약 개발에서 쥐나 돼지가 아니라 영장류를 쓰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유혹 때문에 금지법이 없는 중국에서 실험용 영장류의 90% 이상을 사육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8년 11월 6일 전북 정읍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가 준공됐다. 원숭이 3천여 마리를 집단사육할 수 있는 규모로 필리핀원숭이·붉은털원숭이 590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난치병 치료 임상 연구에 활용할 실험용 원숭이 집단 사육시설이다. 준공식 당일 중국 윈난성이 고향인 붉은털원숭이 한 마리가 높이 7m, 상단에 최대 1만2000V의 전류가 1초 간격으로 흐르는 울타리를 넘어 사라졌다. 나이는 4살. 무게 4~5㎏, 키 60~70㎝의 이 원숭이는 탈출 13일 만에 생포됐다. 4)  최근에는 유인원에게 비인간 인격체의 지위를 부여하는 판결이 아르헨티나에서 나와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2014년 오랑우탄 산드라에게 비인간 인격체로서의 지위를 인정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동물원에서 20년간 갇혀 지낸 수마트라 오랑우탄 산드라를 대리해 아르헨티나동물권변호사협회(AFDA)가 인신보호영장을 청구했고 승소했다. 두 번째 사례가 멘도사 동물원의 침팬지 세실리아였다. 세실리아는 동물원의 작은 콘크리트 우리에서 브라질의 소로카바 침팬지 보호구역으로 이주했다. 세실리아의 승소에 힘을 실어주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의 영장류학자 알도 히우디세는 “인간과의 엄청난 유사성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 그들이 억류돼 있다는 사실은 부조리하다” 5)고 말했다. 그림2: 오랑우탄 산드라 출처: Orangutan Granted Legal Personhood, Moves to Florida, Becomes Florida Woman (newsweek.com) 그림3: 침팬지 세실리아 출처: Cecilia, first chimpanzee released by Habeas Corpus - GAP Project (projetogap.org.br)  동물의 법적 인격성을 인정한 두 판례는 동물은 단지 동물복지법 같은 보호법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동등하게 보통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제기한다. 이런 소송들이 동물이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인간이고, 동물은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 사회가 다양한 종의 생명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동물은 비인간 외계 영토의 ‘저쪽’에 사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권력 행사가 불가피한 다종 공동체 안에 살고 있다. 6) 인간은 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다종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동물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를 물어야 하고,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는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2021년 7월 19일, 동물권에 관한 주목할만한 법 개정안이 발표된 것이다. 민법 98조 물건의 정의를 다룬 조항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명시하는 법 개정안이 발표된 것이다. 민법 98조 개정안이 확정되면, 앞으로 관련 법이 개정될 예정이고 여러 변화가 예상된다. 동물보호법은 30년 전에 제정되었지만 7) , 현재 반려동물은 민법상 물건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상해를 입혀도 주민의 물건에 대한 재물손괴가 되고, 사체는 재활용 불가 폐기물로 취급되어 쓰레기봉투에 담겨 버려진다. 법 개정안은 동물을 생명체로 존중하고 공생해야 한다는 사회적 감수성이 어느 정도 높아진 것의 반영이 틀림없지만, 4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다는 한국의 현실에 비춰보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다윈 진화론 이후 인간은 다른 생명체에 비해 특별함을 주장할 근거를 상실했다. 진화론은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로서 다른 생명을 활용하도록 신으로부터 허락받았다는 기독교 사상의 오랜 도그마에 균열을 가져왔다.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뒤얽힌 강둑(Entangled Bank)’의 묘사에서 함축적으로 말해 주듯이, 인간은 다양한 종들이 이루는 생태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연의 요소에 의해 가지치기하듯 생물 종이 변형하고 분화되고, 그렇게 변화한 종들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생태계를 다윈은 뒤얽힌 강둑이라고 표현했다. 다윈의 혜안은 인간종(種)중심주의(Anthropocetrism)를 넘어서, 인간-비인간동물이 이루는 다종 공동체를 어떻게 일궈나가야 하는지 실마리를 제시해 준다. 1)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 안재진 옮김, 『타잔』 (다우, 2002), 58쪽. 2) 찰스 다윈, 김성한 옮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사이언스북스, 2020), 206쪽. 3) 위의 책, 210~211쪽. 4) 허정원, 「1만2000V 넘어 탈출한 원숭이, 살아 있다는데...일주일째 행방 묘연」, 『중앙일보』, 2018년 11월 13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119015#home ; 송경은, 「실험용원숭이는 왜 고압전류 위험 무릅쓰고 사육장을 탈출했나」, 『동아사이언스』, 2018년 11월 21일.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25212 5) 데이비드 보이드, 이지원 옮김, 『자연의 권리: 세계의 운명이 걸린 법률 혁명』 (교유서가, 2020), 94쪽. 6) 앨러스데어 코르런 지음, 박진영, 오창룡 옮김,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창비, 2021), 11쪽 7) 시사기획 창, 개는 죄가 없다. https://news.v.daum.net/v/20210829225327190 2021년 8월 29일 방영. ‘시사기획 창’은 동물보호법 제정 30주년을 맞아 학대와 방치의 대상이 된 동물, 특히 그중에서도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 개가 처한 현실을 취재했다.​
2022-03-30 | hrights | 조회: 218 | 추천: 5
: 외국인 우크라이나 유대인 수용, 원주민 팔레스타인 배우자 거부 홍미정/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교수  2022년 3월 10일, 이스라엘 총리 나프탈리 베네트는 이민 흡수부 각료회의를 시작하면서 “오늘 우리는 위험에 처한 우크라이나의 유대인들과 그 주변 지역 유대인들을 구출하기 위한 귀향작전(Operation Returning Home)을 개시한다.”라고 밝혔다. 3월 10일 현재 이민 흡수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 이민을 희망하는 러시아인 1만 4천 건, 우크라이나인 7천 건의 신청서가 접수되었다. 유대기구(The Jewish Agency)는 올해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들 수만 명이 이스라엘로 이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외국인 유대인 이주 정책은 1950년에 제정된 귀환법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귀환법은 ‘약 2천 년 전 로마에 의해서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유대인들이 추방되었다. 현대 유대인들은 로마에 의해서 추방된 고대 유대인들의 후손들이며, 독점적인 상속인들이다’라는 신화를 토대로, 전 세계 유대인들에게 조상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할 권리를 부여한다. 귀환법에 따라, 이스라엘 정부는 전 세계로부터 팔레스타인으로 유대 이민자들을 데려오고, 귀환 유대인은 이스라엘에 도착한 날부터 이스라엘 시민이 된다. 귀환법은 유대인을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거나, 유대교로 개종하고 다른 종교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귀환법은 1970년에 수정되면서 유대인의 자식들과 증손들, 유대인 자식의 배우자와 유대인 증손의 배우자에게까지 귀환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역사 연구 성과들은 ‘고대 유대인들과 그 후손들 다수는 기독교, 이슬람교 등 타종교로 개종을 했으며, 현대 유대인들 대다수는 유대교로 개종함으로써 형성되었다.’라는 것을 밝혀준다. 게다가 현재까지 진행된 언어학, 인구학, 민속학 등의 연구 성과들은 수천 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여 유대 종족의 혈통적 연속성이 유지되었다는 주장을 부정하며, 현대 유대인의 혈통이 투르크인, 쿠르드인, 아랍인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따라서 서로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유대교로 개종한 다양한 종족들과 관련된 현대 유대인들의 고향이 팔레스타인 땅이라는 주장은 신화다. 사진 출처 - istock  인류학자인 로셀레 테키너는 “이스라엘의 귀환법은 사실상 이스라엘 국적법이다.”라고 지적하였다. 귀환법은 이스라엘에 이민 오는 외국인 유대인들에게 자동으로 주어지는 이스라엘 국적 취득권을 원주민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부여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국가 수립과 함께 추방되어 난민이 된 다수의 팔레스타인인 원주민들은 이스라엘 국가로의 입국이 금지당하고, 무국적자로 살아가고 있다. 귀환법은 원주민 팔레스타인인을 배제하고, 외국인 유대인을 수용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인종차별적인 국민 국가로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 총리 베네트가 우크라이나와 주변 지역 유대인 귀향작전 개시를 발표한 2022년 3월 10일, 이스라엘 의회는 2003년 처음 제정되어 1년마다 갱신되는 임시법 ‘이스라엘 시민권과 입국법’을 45대 15로 통과시켰다. 이 임시법은 이스라엘 시민과 결혼한 이스라엘 점령지, 서안이나 가자지구 출신 팔레스타인 배우자들의 이스라엘 영주권이나 시민권 취득을 금지하였다.  3월 10일, 임시법 ‘이스라엘 시민권과 입국법’이 이스라엘 의회를 통과한 이후, 이스라엘 내무장관 아옐레트 샤케드는 “이 법은 포기해서는 안 될 우리 국가의 안보를 위한 시온주의 법이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민주주의 국가이며 모든 시민을 위한 국가이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이스라엘 의회는 “이 법의 목적은 이스라엘 점령지 서안과 가자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적대 국가들, 이란,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시민들의 이스라엘 시민권이나 영주권 취득을 차단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유대인의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과 이스라엘 안보를 위해 필수적인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동명부 소속 아랍계 아이만 오데 의원은 “이 법은 이스라엘 안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법이다.”라고 비난하였다.  사실 1952년 제정된 ‘이스라엘 시민권법’ 7조는 “이스라엘 국적자의 배우자는 귀화를 통하여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라고 명시함으로써 이스라엘 시민권자와 결혼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2003년 제정된 임시법 ‘이스라엘 시민권과 입국법’은 1952년 제정된 ‘이스라엘 시민권법’을 무력화시키면서 서안과 가자 출신의 팔레스타인 배우자들이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닫아버렸다. 2003년 임시법은 “내무부 장관은 1952년 제정된 ‘이스라엘 시민권법’에 근거해서 서안과 가자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이 법은 시행 시작일로부터 1년간 유효한 임시법이며, 정부는 1년 이내에 의회의 승인을 받아 그 효력을 연장할 수 있다.”라고 분명하게 규정하였다.  이번 달에 이스라엘은 임시법 ‘이스라엘 시민권과 입국법’을 갱신함으로써 이스라엘 시민권을 소유한 팔레스타인인들과 결혼한 서안과 가자 출신의 원주민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였다. 반면 현재 이스라엘 정부는 수만 명에 이르는 외국인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이주시키기 위한 귀향작전을 추진하고 있다.
2022-03-22 | hrights | 조회: 466 | 추천: 5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봄비가 내리는 산골의 밤이다. 안방 침대에 누워 창문을 여니 일찍 잠에서 깬 앞 논의 개구리들이 수줍은 듯 구슬픈 듯 우는 소리가 들린다. 봄이 오는구나. 매년 어김없이 봄비와 개구리 울음소리로 봄이 찾아온다. 아무리 혹독한 겨울이었을지라도 봄은 어김없이 겨울을 이기고 찾아온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요 우주의 섭리다.  전쟁 같은 하룻밤을 보낸 듯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상할 게 없어 보였던 선거였고 작은 소도시 춘천의 인구만큼도 안 되는 박빙의 표차로 20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나보다는 훨씬 절박했을 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대선과 지방선거가 겹친 올해는 활발한 활동을 하기에 어려운 시기임이 분명하다. 분위기는 어수선하고 온갖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선거소식에 사업의 이슈도 선점하기 어렵다. 선거결과에 따라 조직과 사업이 불투명해지는 불안감에 일도 잘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여전히 정치 권력의 집중과 권한의 절대성으로 인해 국민들의 삶이 급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어찌 보면 4년, 5년의 대리인일 뿐인데 너무나 많은 절대권력으로 흘러가는 국가운영이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선거가 끝나고 내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결과가 나오면 박수쳐 주고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품게 하는 선거문화를 바라는 것은 헛된 꿈인 것일까? 선거국면에서 후보자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목이 터져라 외쳐대던 국민을 섬기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국가와 국민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국민 통합을 이루겠다는 목소리들이 실현되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은 과거 불법과 탈법, 관권선거로 점철된 권위주의 정권 시절과는 달라진 세상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시민들은 깨어있는가 하는 의문점은 남는다. 검증되지 않은 수없이 많은 각종 미디어 천국인 세상에서 바른 정보를 골라내고 선택할 수 있는 우리들의 민주 의식과 정의에 대한 주체적 관점은 얼마나 성장했는지 곰곰이 돌아봐야 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주민자치, 마을공동체 관련 강의, 컨설팅, 간담회를 다니다 보면 “마을 의제를 제안하는 것과 민원을 이야기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게 된다. 이거 해결해 주세요~ 저거는 왜 안 해주나요? 이런 건 민원이다.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요런조런 방법으로 해보자~ 이런 건 마을의 자치의제이다. 직접민주주의의 현실적 가능성을 마을공동체와 주민자치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지방분권, 지방자치를 넘어선 ‘시민이 주인인 도시’ ‘국민이 주인인 나라’의 현실적 실현은 시간과 경험과 노력이 필요함에는 틀림없다. 이런 풀뿌리 민주주의를 통해 선거에 자유로울 수 있는 근본적인 체제전환과 문화혁신이 필요하다. 선거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민들이 각자의 마을에서, 지역에서 스스로 행복한 마을주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뭐 해주세요라는 ‘민원’이 아니라 우리가 자치적 방식으로 직접민주주의를 우리 마을에서부터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시민력과 자치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통령, 시장/군수가 바뀐다고 우리의 삶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정치 권력의 중요성만큼이나 우리 시민들 스스로의 노력과 힘이 점점 더 큰 흐름으로 자리 잡고 흔들리지 않는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 pixabay  봄은 반드시 온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농부님들은 이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는 희망과 생산의 봄맞이를 시작한다. 바야흐로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봄’인 것이다. 어머니의 품 같은 대지 위에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속에 따스하고 포근한 봄이 찾아오길 기대한다. 봄은 으쓱으쓱                                        박노해 겨울은 위로부터 으슬으슬 내려왔지만 봄은 아래로부터 으쓱으쓱 밀어옵니다 겨울은 얇은 자에게 먼저 몰아쳐 왔지만 봄은 많이 떨고 견딘 자에게 먼저 옵니다
2022-03-16 | hrights | 조회: 200 | 추천: 6
이윤/ 경찰관  자치검찰제는 검찰개혁 이슈 중 상대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적게 받고 있다. 검찰로부터 경찰과 공수처에 수사권 일부를 넘겨준 것으로 충분하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불완전하나마 지금의 수사권조정에 이르기까지 험난했던 여정을 감안하면 자치검찰제는 언감생심이긴 하다. 그래도 나는 완전한 형태의 자치경찰제를 바라는 만큼이나 완전한 형태의 자치검찰제가 시행되기를 바란다.  형사소송법을 처음 공부할 때 접한 ‘검사 동일체의 원칙’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웅동체’라는 말도 동물의 왕국에서 달팽이의 연애를 목격하기 전까지는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검사 동일체’는 새로운 생물종도 아니고 뭘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네이버에 검색하니 ‘검찰권의 행사에 있어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하복종 관계에 있다는 원칙’이라고 한다. 상명하복이라면 군인이 끝판왕인데 ‘군인 동일체의 원칙’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단순한 상하복종 관계 외에 뭔가 더 있는 것 같다. 도대체 그 특별한 것이 무엇인지 검사를 안 해봐서 모르겠다. 2003년에 검사 동일체 원칙을 ‘일부’ 폐지하여 '검찰사무에 관한 지휘·감독 관계'로 변경했다고 하는데, 뭐가 달라진 것인지 역시 모르겠다.  수사, 기소, 영장청구, 형집행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조직이 하나의 몸처럼 생각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중앙집권적 조직은 일사불란한 의사결정과 행동력으로 큰 힘을 가진다. 게다가 검사는 선출직이 아니라서 정년까지 권력을 사용할 수 있다. 오죽하면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은 영원하다’는 말을 한 검사 출신 정치인도 있지 않은가. 거대하고 영속적 생명을 가진 리바이어던을 눈앞에 둔 두려움에 몸이 덜덜 떨릴 지경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형사사법기관은 생명, 신체, 재산을 박탈할 수 있는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부여받는다. 국민은 그 권한의 수여자이면서 동시에 대상자인데, 통제 수단이 변변치 않으면 자신이 수여자였음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처분 대상자로만 인식한다. 그래서 리바이어던의 압도적 힘 앞에 굴복하게 된다. 이런 거대한 힘에 대해 국민이 주권자로서 통제할 수단은 분권, 다원화, 민주화다. 이 세 가지는 자치검찰제와 잘 어울린다.  검찰이 굳이 중앙집권적 조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범죄는 각각이 별개의 사건이다. 사건별로 범죄사실이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위법성과 책임성을 검토한 후 실체적 판단 근거인 증거가 충분하고 형식적 요건에 맞으면 기소하고 공소유지하는 것이 검사의 임무다. 전문성을 갖춘 수사관과 검사에게 중앙집권적 조직에 의한 명령체계 및 통일성과 효율성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자치검찰제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외국의 자치검찰 사례를 보자. 독일은 연방대검찰청, 주고등검찰청, 주지방검찰청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연방대검찰청이 주검찰청에 대하여 지휘감독권을 갖고 있지 않아서 16개의 주검찰청이 각기 분리/독립하여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대부분의 형사사건이 주 관할(95%)인데, 주 아래 자치단위인 카운티별로 검찰청이 조직되어 있고, 카운티 검사장(District Attorney)은 대부분 주민이 직접 선출한다. 연방검찰, 주검찰, 지방검찰은 상호 견제를 통해 권력분립의 이상인 ‘견제와 균형’을 실현한다.  2005년 베를린의 한 경찰서에 방문했을 때 마침 그 경찰서 담당 검사도 들렀기에 잠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검사는 거의 매일 경찰서에 방문하여 경찰에서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법률적 자문을 하고, 경찰이 수집한 증거의 증거능력과 증명력에 대해 조언하며, 수사 방향을 논의한다고 했다. 부러웠다. 한국 검사는 개별 사건에 대해 수사관들과 머리를 맞대고 그런 논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지휘권이 있을 때에도 경찰이 보낸 수사서류만 보고 서면으로만 지휘할 뿐이었다. 글로만 하는 의사소통은 일방적이고 얕다. 진정한 협력 관계는 서로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때 가능하다. 자치검찰제를 하면 자치경찰과 함께 지역 주민을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검사업무의 주된 목적이 될 것이다. 그런 검사는 주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영웅이 된다. 배트맨 시리즈 ‘다크나이트’ 속 정의로운 지방검사 하비 덴트처럼.  ‘더 킹’이라는 영화에 보면 1%의 정치검사들이 부정부패에 눈 감고, 수사 정보로 협박하여 부와 권력을 탐하는 모습이 나온다.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긴 하지만 현실로 구현될 위험성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정적을 정치적·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 의혹만으로 많은 검사들이 달려들어 전방위적 수사를 할 위험도 자치검찰제에서는 적어질 것이다. 하이에나가 사자보다 무서운 이유는 상대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쫓아가서 다수 집단의 힘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자치검찰제와 관련된 논의는 이미 여러 번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2016년 검사장 직선제가 포함된 검찰청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적이 있고, 2019년 6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도 미국의 검사장 선출방식이 자치검찰제라며 도입에 찬성한 바 있다. 검찰개혁 과정에 검찰이 요구한 자치경찰제가 2021년에 첫발을 떼었다. 경찰은 엉뚱하게 뒤통수 맞은 격이긴 하나 그래도 자치경찰이 궁극적으로는 바람직한 방향이니 불만은 없다. 이제는 조건이 갖추어졌으니 자치경찰의 파트너가 될 자치검찰제 논의도 본격화되어야 할 때다.
2022-02-23 | hrights | 조회: 486 | 추천: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