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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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조광제 / 철학아카데미 대표   1. 민주 세력에 대한 노골적인 투쟁 선포다. 요즘 한국 정치로 인해 매우 심란하다. 꼭 짚어 말하면, 대통령 윤석열을 비롯한 동조 세력의 발언과 행위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모든 고난과 승리의 역사를 지우는 것도 모자라 능멸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이 무슨 해괴한 발언인가? 제아무리 형벌을 주관하는 검찰 권력을 휘두른다고 해도 이렇듯 오늘날의 민주 국민의 위력을 거스르는 발언을 느닷없이 그 스스로 할 수는 없다. 어디서 어떻게 해서인지 알 수는 없으나 크게 외부에서 사주받았음에 틀림이 없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반공주의의 이념을 노골적으로 정면에 내세우니 그 사주의 배후는 100년 이상 공산주의와 싸운 미국의 신보수주의 내지는 뉴라이트 세력이라 짐작된다. 출처 - 경향신문 역시 100년 전쯤의 일이었던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을 문제 삼아 육군사관학교에 세운 그의 흉상을 철거함으로써 자신이 반공주의의 전사임을 국민에게 확인시키고자 한다. 이는 이중적인 책략이다. 그럼으로써 홍범도 장군의 목숨을 건 반일 독립 투쟁에 서려 있는 정신을 아울러 국민의 뇌리에서 아예 지워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의 85%가 반대하는 일본의 핵 오염 폐수의 무단 해양 방출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자신의 친일 행위와 여지없이 겹친다. 강제징용 배상을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서 제3자 변제 가능성 운운하면서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하는 그의 행위와도 겹치고, 동해를 일본해라고 명기하는 미국에 대해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는 그의 무책임한 행위와도 겹친다. 말하자면, 이 일련의 사건들은 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태도를 여실히 확증한다. 해양 세력인 일본이 제국주의적인 발상으로 조선의 한반도를 침략하여 대륙 진출을 획책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로 인해 우리 민족이 지난한 고통을 치른 일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 윤석열과 그의 정치 집단은 반공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그 배후에 깔린 미국주의와 그 배후가 표면으로 드러난 일본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반도 주민의 삶을 근원적으로 기형적으로 만든 남북 분단 체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그동안의 반전 · 평화를 기반으로 한 정치 외교 문화적인 노력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고자 한다. 이는 어떤 사안이건 전 정권을 탓하며 그 긍정적인 노력조차 아예 부정하고자 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그 대신 반공주의에 입각한 그들만의 자유를 내세워 전쟁 불사의 불안과 공포를 심어 넣고 그리하여 국내에서의 불리한 그의 정치적 입지를 확장하고자 한다. 그뿐만 아니라, 반공주의 이념의 책략으로 그와 그의 가족을 둘러싼 각종 범죄와 비리에 대한 국민의 의혹을 잠재우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라도 동원하겠다는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결의에 찬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보인다. 이는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습니다.”라는 그의 말에 압축되어 있다.   2. 진정한 이념은 고난 극복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우리 각자의 삶은 물론이고 공동체의 삶은 더욱더 수없이 많은 사실로 점철되어 있다. 개인이건 공동체건 간에 이 사실들을 의미로 바꾸어내는 역사를 형성함으로써 그 존재를 유지하고 확장한다. 자기의 삶에 의미 부여를 할 수 없다고 여겨질 때 불안과 절망이 다가든다. 오늘 아침 일찍 발 디딜 틈 없는 전철을 타고 출근하여 일하고 또 마찬가지로 북적대는 인파 사이로 곡예를 하듯 해서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의미 부여를 할 수 없다면 나의 삶을 어떻게 지탱할 수 있겠는가?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에서 또는 유튜브에서 방영되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그 사건들에 긍정적인 의미 부여를 할 수 없을 때 과연 나의 삶이 지탱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의 의미 부여 활동은 개인의 의도와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독의 사실도 없고 단독의 의미도 없다. ‘단독’이란 말은 말 그대로 ‘오직 그것 자체만으로’라는 뜻을 지닌다. ‘오직 나만의 것’이라고 할 때 성립함 직한 단독의 나, 즉 단독의 자아도 없다.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제시한 ‘단독자’는 없다. 만약 있다면, 그건 부정적인 반동에 따라서다. 무엇에 대한 반동인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나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동이다. 말하자면, 자아가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얽히는 가운데서만 성립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동이다. 또 달리 철학적인 품새를 더해 표현하자면, 본질적으로 대타적(對他的)일 수밖에 없는 자아에 대한 부정적인 반동이다. 출처 - 글로벌이코노믹 외부의 사회현실이라는 객관적 장(場)에서건 내부의 심리 현실이라는 주관적 장에서건, 모든 사실은 긍정적 또는 부정적 방향의 의미를 띤다. 일본의 핵 오염 폐수의 무단 해양 방류가 갖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고, 또 그로 인해 내 마음속에서 이는 분노가 갖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외부의 객관적인 장에서 생기는 의미와 내부의 주관적인 장에서 생기는 의미가 연결되어 양쪽 모두에 일정하게 변형이 일어남은 물론이다. 우리는 나의 외부 현실에서 생겨나건 내부 현실에서건 생겨나건 모든 사실이 갖는 부정적인 의미를 부정하고 극복함으로써 최대한 긍정적인 의미를 형성하고자 알게 모르게 죽으라고 노력한다. 긍정적인 의미들이 축적됨으로써 나의 존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설립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의미들이 축적되는 일이 지속하면 그 겹침과 어긋남이 겹겹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겹침의 한가운데서 일정하게 가치가 성립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현실의 객관적인 의미와 개인의 주관적인 의미는 연동해서 성립해서 작동한다. 그래서 각자가 형성하는 주관적인 존재의 가치는 공동체의 객관적인 존재의 가치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주관적인 내 존재의 가치가 지속할 때, 그 가치는 삶의 현실을 바라보는 일정한 관점을 주도한다. 그리하여 가치관, 인생관, 나아가 세계관이 성립한다. 각자가 갖는 가치관 또는 세계관은 다른 사람의 것들과 때로는 조화를 이루기도 하지만 때로는 충돌한다. 이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기나긴 과정을 통해 집단 공동체가 형성된다. 한 집단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치관은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이 가치관을 형성하고 작동시킬 때 공통의 힘을 발휘한다. 그리하여 민족에 따른 공동체 의식도 생겨나고 종교에 따른 공동체 의식도 생겨나고, 나아가 국가에 따른 공동체 의식도 생겨난다. 이 공동체 의식들은 기본적으로는 정치 경제적인 삶을 기반으로 하면서 사회 문화 공동체의 형태를 띤다. 사회 문화는 공동체가 수행하는 의미 부여의 제반 정신적 활동이 목표로 삼아 객관화하고 표현하는 역동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가치관이 공고해지면 신념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관이 공고해지면 이념으로 작동한다. 그러니까 신념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고, 이념은 공동체적이고 객관적이다. 서로 다른 신념이 충동하면 자칫 목숨을 건 투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공동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념의 충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신념 또는 이념의 충돌은 곧 존재의 궁극적인 가치와 의미를 둘러싼 충돌이고, 만약 그 충돌에서 나 또는 우리의 존재 가치와 의미가 무너지면 삶을 위한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되고 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념 또는 이념의 충돌과 투쟁이 일어날 때 과연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패배할 것인가? 핵심 기준은 그러한 신념과 이념을 형성하는 데에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어떻게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성찰하고 반성하며 노력했는가다. 외부에서 주입된 신념 또는 이념은 행위자를 수동적으로 맹종하게 만든다. 그들 행위자가 일순간 감정적인 충동에 따라 미쳐 날뛸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목숨을 건 결정적인 순간에는 두려움으로 인해 패퇴할 수밖에 없다.   3.능동의 민주 진보는 이길 수밖에 없다. 민주 공화국에서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통치자도 아니고 대표자도 아니고 대리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은 자신이 대리하는 국민의 국가적인 삶과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무가 있다. 원리적으로 보아, 그 책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무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들의 삶과 존재에 대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대통령은 모름지기 국민이 역사를 통해 자발적으로 온갖 난관을 뚫고 형성한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를 존중하고 더욱 앙양하는 방향으로 밤낮없이 심혈을 기울여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 윤석열은 ‘반국가세력’ 운운하면서 우리 민족과 자립성과 자율성을 파괴하고자 하고 민주화를 위해 지난하게 싸워 이룩한 국민의 진보적인 이념과 평화 평등에 입각한 자유의 이념을 파괴하고자 한다. 출처 - 가톨릭일꾼 대통령 윤석열은 저 스스로 민주화를 위해 싸운 적도 없고, 민족의 평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싸운 적도 없고, 하다못해 심지어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를 분쇄하기 위해 싸운 적도 없다. 그런 그가 내세우는 반공주의와 그 배후의 힘으로 그가 암암리에 또는 노골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주의와 일본주의는 철저히 외부에서 주입된 수동적인 맹종의 이념에 불과하다. 민주화와 남북 분단의 극복을 위해 오랜 세월 지난하게 싸워 몸소 밴 진보의 이념으로 무장한 민주 국민과의 목숨을 건 투쟁의 결정적인 순간에 그와 그의 세력은 두려움으로 인해 패퇴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이기지 못하는 그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민주 진보의 세력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걱정하지 말자.  
2023-09-05 | hrights | 조회: 194 | 추천: 5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출처 - 중앙신문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은 지난 1996년 충북 괴산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이재명 민주당 당 대표가 2010년대에 가장 먼저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지역화폐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반 이후이다. 지자지소(地資地消, 지역의 부는 지역에서 소비)에 입각해 지역 내에서만 쓸 수 있는 돈의 의미를 넘어 복지 수당을 지역화폐로 전달해 복지와 지역 경제 활성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지역화폐 정책발행은 2015년 경기도 성남시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이 ‘성남청년배당’은 이재명 성남시장이 2018년 경기도지사가 되면서 ‘청년수당’이란 이름으로 경기도 31개 시군 모두 시행하게 된다. 지역화폐의 확장성이 정책을 통해 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가장 먼저 시행한 성남시에서는 올해 시의회 조례 개정을 통해 청년수당이 사라지게 됐다.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다. 여하튼 당시 이를 계기로 다양한 지역화폐 정책발행 사업이 확산됐다. 산후조리지원비, 농민기본소득, 교통비 지원 등. 시흥시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30여 개의 정책발행이 있었다. 출처 - 경기도홈페이지 특히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며 지역화폐를 활용한 정책발행이 정점을 찍었다. 국민 대부분이 지역화폐로 재난지원금을 받으며 지역화폐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고, 지역의 소상공인들은 지역화폐의 경기순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지역화폐 정책발행이 순기능만을 수행했다고 하는 것은 오만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지역에서만 쓰는 상품권에서 벗어나 지역화폐라는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더 다양한 정책효과를 수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더 진전한 지역화폐 확장 정책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회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진화 발전한 경우다. 지역화폐 결제가 가능한 경기도 공공배달앱 ‘배달특급’과 군산의 ‘배달의명수’, 인천과 부산의 택시앱, 시민건강권 증진과 탄소중립 실천을 도모하며 만보 걷기 포인트를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시흥의 ‘만보시루’, 페트병과 지역화폐를 교환하는 성남과 안양 등 다양한 지역에서 버전업된 지역화폐 정책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며 지역화폐 성과 평가가 발행량 위주에서 어떤 연계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지로 바뀌는 추세이다. 사실 발행량은 해당 지역의 인구, 가맹점 수, 할인예산의 규모에 따라 좌우되어 객관적인 지표라고 보기 힘들다. 지역화폐 연계 정책의 확산은 지역화폐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기제이기도 하다. 지역화폐 할인율이 정부 지원의 축소에 따라 지난해 10%에서 올해 상반기 6%로 줄어들고 가맹점 기준도 강화되자 발행량이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이 난 지자체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연계 정책사업이 활발한 지자체들은 발행량이 크게 줄지는 않고 있다. 이미 다양하게 접하는 지역화폐 사용 환경에 익숙한 사용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역화폐 지원 중앙 정부 예산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다양한 지역화폐 활용 연계 정책이 중요한 이유이다. 출처 - 서울경제신문 지역화폐 활용 연계 정책은 어쩌면 무궁무진하다. 마치 우리 몸의 혈관을 타고 도는 혈액처럼 지역화폐는 경제·사회의 혈맥을 타고 연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축도 이자도 할 수 없는, 축장과 투기가 아닌 소비만을 위해 존재하는 지역화폐는 즉각적인 경제적 효과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 지역화폐를 지역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라고도 하는데, 연계 정책사업은 지역화폐를 위한 마중물이 되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지역화폐가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대체로 국가 경제 차원의 성과를 말하는 입장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는 당장 부의 집중, 다시 말해 중앙으로만 향하는 소비의 흐름을 조정하는 경제의 지역 균형발전이 시급하다. 지역화폐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부의 중앙집중을 막고 지역의 자산이 지역에서 돌게 하기 위함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현장의 목소리만 들어도 지역화폐의 효과와 부가가치 창출 기능에 대해 쉽게 부정하기는 힘들다. 당장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상인들에게 물어보자. 지역화폐가 정치 테이블에서 자칫 길을 잃어 황금알을 낳다 배가 갈라진 거위처럼 되지 않길 바란다. 아마도 역대 경제 활성화 재정정책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을 지역화폐라는 도구를 어떻게 더 잘 쓸 것인가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간이다.
2023-08-29 | hrights | 조회: 119 | 추천: 3
박상경 / 인권연대 회원 1.  하영이는 내 수영장 동무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문을 닫았던 수영장이 제한된 인원만으로 문을 열었을 때, 한 레인에 고작 한두 명이 수영하는 아주 넓고 한적한 수영장에서 만난 친구가 하영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하영이는 지적 장애를 가졌다. “안녕!” 하고 인사를 하면 곁은 주지 않으면서도 “엉!” 하고 인사를 한다. 제 쪽에서 먼저 아는 척하는 경우는 없지만, 그렇다고 딴청을 부리면서도 모른 척하지는 않는다. 부족해 보이는 매무새를 바로잡아 주거나, 전세 낸 것 같은 수영장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수영을 하면서 조금씩 낯을 익혀 갔다. 평영을 좋아하는지 늘 평영만을 하는 하영이한테 “하영아, 자유영이나 배영도 하면 어떨까?” 하면 “하영이는 평영이 좋아요!” 하며, 대꾸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출처 - 헤드라인제주  그런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있는 하영이를 봤다. 엄마를 보면서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환하게 웃던 하영이가 “근데 엄마, 수영장에서 아줌마가 나 많이 도와줘요!”라고 하였다. 앞뒤 맥락 없이 아이가 하는 말에 하영이 엄마는 경계하듯이 “하영아,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아이한테 되물었다. 아이가 같은 말을 반복하기에 옆에 있던 내가 “그 아줌마가 이 아줌마예요!” 하자, 그제야 하영이 엄마가 옆에 있던 나를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출처 - KBS뉴스  몇 달이 지나고 하영이가 장애인 수영대회 나간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메달을 땄다는 소식도 들렸다. 대회 나간 뒤여서 그런지 여러 날 하영이는 수영장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하영이와 마주친 날, 인사만 하고 지나치던 여느 날과는 달리 아이가 내 주변을 왔다 갔다 맴돌았다. “하영아, 왜? 무슨 할 말 있어?” 그러자 아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영이 은메달 2개 땄어요! 동메달도 땄어요!” 하고는, 자랑이기보다는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을 다했다는 듯이 자기가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하영이가 요즘 더욱 작은 아이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오랜만에 만난 하영이는 인사도 하지 않고 묻는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피식피식 웃으면서 왔다 갔다 하더니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오랜만에 만나 쑥스러워 그러는가보다 싶었다. 며칠 뒤에 엄마와 함께 온 하영이를 또 만났다. 하영이는 며칠 전에 본 행동을 그대로 했고, 엄마는 요즘 하영이의 행동을 걱정하고 있었다.  하영이는 그렇게 좋아하는 엄마와도 이야기하기를 힘들어했다. 집중력이 떨어진 아이는 엄마가 무언가를 하게 하려고 계속해서 말을 시키면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하다가도 힘든지 짜증을 낸다고 하였다. 아무런 의미 없이 휴대전화의 화면을 계속해서 넘기거나, 한군데 있지를 못하고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한다고도 하였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하였으나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아이의 행동을 지켜보자고 하여 가족들의 걱정이 크다고도 하였다. 지금까지는 아이가 한 시간 거리의 학교를 혼자서 잘 다녔는데 당장 개학을 하면 아이가 제대로 갈 수 있을지…. 2.  그동안 지병 없이 건강하던 엄마의 몸이 한꺼번에 쇠약해지고 있다. 쇠잔해진 몸은 별 충격 없이도 발가락을 부러뜨리고, 오랜 세월을 이겨낸 귀는 쉴새 없이 이명을 실어 나른다. “이 나이 되면 써먹을 만큼 써먹었으니 이러는 거야 당연한 거지!” 하는 엄마를 달래고 달래서 병원에 가니 의사는 “어르신, 한 달은 깁스를 하고 계셔야 해요!” 한다. 이 당치도 않게 무더운 여름에 한 달씩이나 말이다. 그 뒤로도 방문을 약속한 병원은 또 어디이던가?! 출처 - 아시아경제  그런 우리 엄마한테 추억이라는 선물은 저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리는 기억인지, 엄마의 시간은 자꾸만 뒤로 향해 가고 있다. 육남매의 막내인 울 엄마, 이제는 혼자 이승의 삶을 살면서 그 오래 전 시간으로 시간 여행을 가곤 하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좀 전에 들은 이야기는 계속해서 되물으면서도 국민학교 때 배운 동요와 율동은 생생하게 생각난단다. 요즘 그 추억을, 깁스한 채 내게 들려주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닌가 싶은데, 쇠잔해진 울 엄마의 육체에 깃든 애잔한 시절의 추억 여행에 내가 동행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3.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채송화가 화분 가득히 꽃을 피었다. 부추씨도 날아와 화분에 떨어져 싹을 틔워, 봄부터 여름까지 부추를 뜯어 장떡도 부쳐 먹고 부추김치도 담가 먹었다. 지난가을에 씨를 받아 봄에 뿌린 나팔꽃은 지금 층층이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꽁꽁 언 날씨가 풀리는 봄이면 겨우내 실내에 있던 화분들을 밖으로 옮긴다.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꽃샘추위라도 닥치면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 다시 밖으로 옮기는 일이 꽤 부산스럽다. 그렇게 내놓은 화초 가운데 구문초가 있다. 실내에서는 힘없이 처져 보이던 잎새가 밖에 나오니 꽤 튼실해 보이는 중에 누렇게 뜬잎이 있어 솎아 주다, 아뿔싸 새로 나는 가지를 꺾어버렸다. 그러다 문득, 그냥 두면 제시간 되어서 떨어질 잎을 예쁘고 좋은 것만 보려고 하다가 생가지를 꺾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기장장애인복지관  잘나고 똑똑하고 힘 있는 것만이 행세하려고 하는 세상에서, 조금은 어리고 조금은 부족하고 약한 그래서 조금은 못날 수도 있는 우리가 함께하는 세상은 꿈이기만 한 것일까?! 비열하고 저열함을 포장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앞세우는 염치없는 세상에서 꿈꾸기에는 너무도 터무니없는 꿈인 것일까?!  
2023-08-22 | hrights | 조회: 205 | 추천: 5
이윤 / 경찰관 범죄신고는 112, 화재신고는 119, 간첩신고는 111, 학교폭력신고는 117, 기타 등등... 출처 - 전자신문 112는 범죄피해자 또는 범죄를 인지한 사람이 신속한 경찰력 발동을 요청할 때 사용하는 범죄신고 전화번호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은 범죄를 중단시키고, 가해자를 검거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고, 목격자 진술을 듣고, CCTV 영상을 확보하는 등 초동조치를 한다.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언제부턴가 범죄와 관련 없는 불편이나 위험을 겪는 사람도 주로 112로 신고한다. 일단 신고받은 경찰은 우리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못 본 척할 수가 없다. 혹시 그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면 못 본 척한 이유로 비난받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 민원 중 상당수가 경찰과 소방에 집중되며, 24시간 근무체계와 빠른 출동이 목표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가장 말단의 민원처리 부서가 된다. 이제는 어디까지가 경찰의 역할이고 임무인지 명확히 알기 어렵다. 경찰 역할은 역사적으로 점점 축소되어왔다. 대학 시절 ‘경찰학개론’을 수강하면서 경찰 역사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까지 올라간다고 들었다. 동음이의어를 너무 막 갖다 붙이는 억지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도시국가가 주민을 위해 담당하던 국방, 외교, 재정, 치안, 사법 등 모든 사무를 폴리스라고 했단다. 그 후 중세와 근대로 넘어오며 전문성이 요구되는 국방, 독립성이 필요한 사법과 입법이 분리되었다. 절대군주 시대 행정, 재정, 외교, 왕실 수입 관리를 하는 관방이 치안까지 담당하였으니 관방도 경찰조직의 변화과정 중 하나란다. 점점 전문화・분업화가 진행되면서 외교, 재정 등이 별도의 조직으로 분리되고, 마지막으로 1980년대의 한국은 국민 안전을 담당하는 내무부가 치안사무도 함께 하고 있다고 하였다.   출처 - 서울경제   36년 전 기억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흐름이었던 것 같다. 즉 경찰은 원래 굉장히 많은 국가 사무를 담당하였는데, 점점 국가 조직이 전문화, 분업화하면서 80년대 경찰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역할이 축소되었다는 결론이다. 그때부터 36년이 더 지난 지금은 세상 변화의 가속화와 다양화를 고려할 때 역할이 훨씬 축소되고 집중되었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역할 아니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아마도 역사가 정반합 과정을 거치기 때문인 듯하다. 내무부 치안본부 시절 경찰은 부패하고, 무능하고, 폭력적이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었다. 1991년 경찰청으로 독립하고 나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음을 보여주려다 보니 친절과 봉사를 강조했다. 파출소 앞에 우산을 비치하여 빌려주거나, 대학생 등교버스를 제공해 주거나, 소포 심부름을 하거나, 전의경들이 관내 불우한 학생 과외를 해 주는 것이 우수한 특수시책이 되었고, 승진 사유가 되었다. 정작 국민이 원하는 것은 경찰이 필요한 곳에서 공정하고 성의있게 제대로 일해 주는 것이었을 텐데, 그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이벤트가 더 우선하였고, 그 방면에 집중한 경찰관이 승진도 잘했다. 경찰에 대한 인식은 지금까지 30년간 이런 정→반 방향으로 흘러왔다. 게다가 경찰관직무집행법상 경찰의 직무 1호는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 보호’라고 되어 있다. 무엇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지는 규정에 없다. 경찰이 지금의 인력과 장비, 권한만으로 ‘모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특히 기후변화로 자연재해가 증가하는 요즘, 112신고를 받고 가장 먼저 위험한 현장에 출동하고는 있으나 자치단체만큼의 인력과 예산이 없어서 모든 곳을 조치할 수 없고, 소방이 가진 구조장비도 없으며, 경고, 억류, 피난 외에 다른 강제할 수 있는 권한도 없어서 교통 통제 및 주민 대피마저 쉽지 않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거나, 물건이 없어졌다거나, 술 취한 사람이 난동을 부린다거나, 친구가 자살하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연락이 안 되어 경찰이 필요하다는 112신고는 계속된다.   출처 - 연합뉴스   이제는 반→합으로 흐름이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경찰의 과학화, 전문화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할 때가 되기도 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1953년 제정된 이후 큰 틀의 변화 없이 약간씩만 보완적으로 개정되었다. 이제는 경찰의 직무 범위에 대해 다시 고민할 때다. 112가 범죄신고이니 경찰의 제1호 임무를 「‘범죄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보호」로 구체화하여 법을 개정하면 좋겠다.(예: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1조에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한다고 구체화) 경찰의 직무를 ‘범죄로부터’라고 한정해야 경찰력을 정치적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한다. 특히 국민 안전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책임을 규정해야 책임 기관이 집중적으로 성의를 다하여 위험 예방과 대응조치를 하게 된다.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책임질 누군가를 찾아 처벌하는 것으로만 마무리되면 앞으로도 비극은 반복될 것이다. 2023년에도 안전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것에 한숨이 나온다.  
2023-08-16 | hrights | 조회: 394 | 추천: 7
박록삼 /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폭염의 무서움만큼이나 바늘로 찌르는 듯 콕콕 쏘아대는 햇볕이 매섭다. 집 밖을 걷다가 손바닥만한 그늘이라도 보이면 어떻게든 신세 지며 걸어보려 애쓰기 일쑤다. 이 날씨에 산책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한 주일이 복판인 수요일의 산책이라니…. 여전히 텁텁하나마 조금은 누그러진 여름밤 저물녘 터벅거리는 산책이라면 그나마 낫겠다. 분주한 거리이건, 한강길이건, 북한살 둘레길이건 남다른 시원함이 있다. 왠지 한 걸음 떨어져 사람과 세상 생각할 수 있어 좋고, 부질없는 고민으로 가득한 머리를 조금씩 비워낼 수 있어 나쁘지 않다. 처음으로 수요산책을 서성거리는 이의 쓸데없는 서설이다. 새만금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잼버리 대회를 둘러싼 논란이 무성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 속 4만 5000명의 청소년들이 허허벌판에서 야영을 하며 지내기에 턱없이 열악한 설비, 급식 시설, 위생시설 등 준비 부족에 대한 지적들이다. 온열환자가 수백 명 속출했고, 코로나19 감염자들마저 발생한데다 성범죄 이슈까지 나왔다. 핵심 참가국인 영국, 미국의 참가자들이 연신 대회장을 떠나니 다른 국가의 참가자들 역시 동요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언론을 통제하려 한다는 불만까지 터져 나왔다. 출처 - 민중의 소리   스카우트 자녀를 둔 전세계 학부모들의 걱정거리로 떠오르면서 ‘대한민국 국격 추락 행사’ 등 비난과 불만이 폭주했음은 물론이다. 대통령실에서는 “지금은 책임 문제를 거론하기보다 행사를 잘 끝내야 한다”면서도 “전임 정부에서 5년 동안 준비한 것”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어쨌든 윤석열 대통령이 “현장의 문제점을 모든 정부가 총력을 다해 즉각 해결하라”고 지시하며 한덕수 국무총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체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이 현장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새만금 젬버리 대회 주관방송사인 KBS는 대회 시작 하루 전 6000억원 경제 효과 등을 소개하는 보도를 했고, 이튿날에는 스카우트 출신의 세계적인 생존전문가 베어 그릴스 참가 소식을 전하며 화제성 보도를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운영상 문제점 등에 대해 시설 준비 등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자 비판 보도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출처 - youtube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가 국가적 거대 행사에 그 의미, 정당성, 향후 과제를 꼼꼼히 분석해서 알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게다. 이는 당대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국정홍보를 하는 것과 궤를 달리하는 일이다. ‘김비서(KBS의 별칭)가 알아서 정부에 긴다’는 식의 비난은 억울할 일이다. 물론 이와 더불어 국가와 관련된 이슈에 문제가 드러났을 때, 혹은 구조적 문제를 발견했을 때 그에 대한 지적 및 개선 보완을 위한 취재 보도를 하는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하다. 공영언론이라 함은 언론사 소유 구조 또는 경영 방식에 대한 개념만은 아니다. 언론이 공공성, 시민 책임성, 정치 독립성 등등의 가치와 원칙 속에 국가적 아젠다, 시민적 아젠다를 다룰 때 상업적 이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보장하는 대원칙의 구현 형식인 것이다. 출처 - SBS뉴스   월 2500원 수신료의 법적 의미 또한 그 위에서 존재한다. 영화 티켓 값 혹은 넷플릭스 컨텐츠 이용요금 등과 달리 KBS를 봤기 때문에 내는 시청료가 아님은 자명하다. 하지만 늘 여야간 공수 교대되는 정치적 공격에 의해 이 근본적 개념과 원칙은 헷갈려지기 일쑤며 정서적 반감에 부닥치곤 한다. 41년 동안 제자리 걸음인 수신료 인상은 KBS의 숙원 과제였지만 번번이 좌절됐던 언감생심의 일이었다. 오히려 거꾸로 이번 정부에서는 전기요금과 합산 고지되던 수신료를 아예 분리 징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담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여당 고위관계자는 마치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발언을 하기까지 했다. 출처 - MBC뉴스 youtube   정부 입장에서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추진하는 배경은 분명하다. 입 안의 혀처럼 굴어야 할 KBS의 보도가 영 시원치 않거나 못마땅한 탓이다. KBS 내부의 원인도 명확할 것이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으로서 수행해온 역할과 과제에 대한 성찰 부족 및 평가와 혁신이 부족한 탓일 테다. 언론의 공공성을 제대로 충실히 수행하고 있느냐는 존재 필요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 앞에 국민들을 이해시킬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해온 탓이다. 다시 폭염 속 젬버리. 어떻게든 12일까지 명맥은 이어가겠지만, 파행 자체는 막을 수 없게 됐다. 더 이상의 실질적 피해가 없길,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후진국가의 모습으로 남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역시 국무위원회를 통과한 만큼 현실이 됐고, 향후 수신료 수입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며 현실적 파장이 KBS를 덮치게 됐다. 공영방송의 존립 근거 및 수단이 사실상 없어지는 일임에도, 그래서 공영방송의 공적 책임이 형해화할 위기임에도 졸솔적인 준비로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젬버리 대회가 그랬던 것처럼 공영방송의 망가짐 역시 책임과 탓을 논하기 전에 공영방송의 필요성과 역할, 그리고 운영 근거와 방법에 대한 차분한 사회적 논의를 진행해야 할 때다. 엎질러진 물이라도 주워 담을 수 있다면 주워 담아야 한다.  
2023-08-10 | hrights | 조회: 378 | 추천: 5
황문규 /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그에 의한 1년여의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을 넘어 검사의 나라, 검찰국가, 검찰독재정권 등으로 불리우는 처지에 내몰렸다. 지난 정부의 검찰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도 딱히 반론도, 관심도 없다. 필자는 경찰개혁에 이어 이번에는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하는 내용의 칼럼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문득  무소불위의 검찰은 엄밀히 말해 이미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게 다 검찰 때문이라는 생각은 현 상황에 대한 희생양을 만들어 위안을 줄지는 몰라도 과연 정확한 진단일까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혹시나 싶어 간단히 검색했는데 역시나 비슷한 생각이 있다(이재성, 이게 다 검찰과 언론 때문이라는 생각, 인권연대 세상읽기의 발자국 통신). 그래서 후속 칼럼이라는 생각으로 제목을 정하였다.   출처 - YTN뉴스 검찰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첫째, 지금껏 한 번도 드러난 적 없던 검찰의 특수활동비 등 예산집행 내역이 공개되고 있다. 이를 이끈 하승수 변호사는 이번 공개가 “검찰을 '특권적 권력 집단'에서 ‘보통의 행정기관’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한다(시사IN, “검찰 특수활동비, 폐지하거나 줄여야”). 예산의 투명한 집행 여부가 본격적인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특권적 권력 집단이라는 견고한 둑에 구멍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공감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그들만의 둑을 얼마나 견고하게 구축했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이 명백하다.   출처 - 국민일보 둘째, 2020년 2월 4일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요건이 달라져 2022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즉,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내가 진술한 대로 기재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진실과 다르다’는 취지의 의견을 표시하면, 판사는 그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법정에서 피고인이 그 내용이 진실과 다르다고 부인해도, (진실 여부에 관계없이) 피고인이 진술하는대로 기재되어 있는지 등의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증거능력이 인정되었다. 검사가 조서를 어떻게 작성하느냐가 재판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약 14시간의 검찰 조사 후 ‘7시간’ 넘게 피의자신문조서를 열람한 이유다. 이제부터는 검찰에서의 진술이 아니라 그 진술이 진실인지 여부에 대한 피고인의 법정 진술에 따라 증거능력이 결정된다. 검찰이 조서로 재판의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이다.   출처 - 코람데코닷컴 셋째, 경찰수사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물론 형사소송법은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경찰수사에 대한 검사의 보완수사요구권·시정조치요구권 및 재수사요청권 등으로 대체하여, 경찰수사에 대한 검사의 개입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경찰의 수사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 수사지휘권을 매개로 경찰이 검사의 연장된 팔로서 검사의 수사를 대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제한적이나마 경찰에게 수사종결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제 검사의 수사와 구별되는 경찰의 독자적 수사가 존재하고, 그만큼 경찰수사에 대한 검찰의 영향력이 제한된 것이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한 당시 경찰의 독자적 수사는 2011년 제1차 검경수사권조정 이후였기에 가능했다. 또한 경찰수사에 대해 검찰이 합리적으로 처리하지 않을 때 남는 후폭풍은 결코 간단치 않음을 시사한다. 최근 법무부에서 수사준칙 개정을 통해 경찰수사에 대한 검찰의 직접보완수사의 가능성을 높이는 등 검찰 직접수사의 범위와 권한을 강화하려는 시도에 대한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는 현행 법률을 실무적으로 보완한 정도에 불과하다. 필자가 보기에 2020년 제2차 검경수사권조정으로 낮아진 검사의 낮아진 책임감을 제고하는 차원에 불과할 뿐 본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제2차 검경수사권조정 이후 검찰실무에서는 직접수사 개시 사건의 축소, 경찰수사에 대한 직접보완수사의 축소 등으로 ‘업무적으로 좀 편해진’ 반면, 수사에 ‘책임을 질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있었다. 이를 개선하고자 한 시도에 불과하다. 이른바 시행령 통치의 한계다.   출처-한국기자협회 넷째, 그간 검찰의 수사권과 소추권이 검사의 헌법상 권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검찰 입장에서는 검찰조직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심리적 둑으로 작용했던 ‘검사의 헌법상 권리’가 2023년 3월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전면 부정되었다. 헌법에 검사의 영장 신청이 명시되었다는 점만을 근거로 검사의 수사권은 물론 소추권까지도 헌법적 권리라는 (억지) 해석이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형사사법체계를 개편하여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느냐, 그래서 형사사법선진화로 나아가느냐의 문제는 국회 입법에 달렸다. 그럼에도 검찰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검찰의 힘은 대한민국의 현 상황과는 별개로 약화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에는 여전히 제한된 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형집행권 등이 있다. 게다가 견제장치는 불충분하다. 검찰의 수사·기소에 정치편향성이 더해질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있고, 그 폐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설사 지난 정부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개혁까지 나아갔다고 해도, 수사권과 기소권은 누군가 또는 어느 조직에 의해 오남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더더욱 검찰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작금의 문제는 미국 예일대 후안 린츠(Juan Linz) 교수가 30여년 전에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자체로 이미 위험성을 안고 있었던 대통령제의 위험성(The perils of presidentialism)이 절제없이 표출되고 있는데서 찾아야 한다. 대통령제의 문제는 정치(학)의 영역에서 적극 다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인권연대 주최 검찰개혁 형사사법선진화 토론회 모습 다시 검찰개혁의 문제로 돌아오면, 우선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을 다시 점진적으로 축소·폐지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되, 경찰의 수사역량을 제고하는 정도를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 축소·폐지는 검찰의 직접수사 인력과 조직, 그리고 예산의 축소·폐지를 수반함과 동시에 검찰의 직접수사를 대신하는 조직(경찰, 공수처 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업무적으로 좀 편해진’ 최근의 검찰과 달리, 누적된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수사부서를 기피하는 수사경찰로 대한민국 전체 수사역량의 저하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수사-기소를 배분하는 법률의 개정은 최근 급격한 제도변화에 따른 미세문제를 조정·보완하는 선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앞서 지적한 바를 고려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수사-기소의 완전 분리이어야 하는가는 재고되어야 한다. 오히려 공수처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 우선이다. 조직과 인력의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제대로 된 공수처장이 임명되어야 한다. 검사 출신을 굳이 배제할 이유가 없다. 한편 검찰개혁은 경찰의 수사역량 제고, 비대해진 경찰권의 실질적 분산 등 경찰개혁과 맞물려 추진되어야 한다. 경찰이 ‘또다른 검찰’이 되지 않으리라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파쇼보다 경찰파쇼를 더 우려해야 했던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와 달리, 지금은 검찰 파쇼를 더 우려하여 수사-기소 분리방향으로 나아가지만 역사는 정반합으로 변증된다고 한 헤겔의 주장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2023-08-01 | hrights | 조회: 579 | 추천: 8
만시지탄, 영아살해죄 폐지 서보학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주 국회에서 형법의 영아살해죄를 폐지하는 형법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최근 줄을 잇고 있는 영아살해 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대응이라 할 수 있다. 형법에서 영아살해죄 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앞으로 영아살해죄를 일반 살인죄로 취급하겠다는 의미이다(새로운 법의 시행은 공포 6개월 후이다. 또한 이번에 영아유기죄도 함께 폐지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영아유기도 일반유기죄로 처벌된다). 그동안 형법은 영아의 목숨을 일반인의 목숨과는 달리 취급하고 있었다. 생명은 형법의 모든 법익 중 최상위의 법익이다. 사람 각자의 생명은 고유한 존재가치가 있어서 상하귀천이 있을 수 없고 타인의 생명과 비교교량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생명의 가치는 그 자체로 귀하고 독보적이기 때문에 인종, 국적, 나이, 성별, 빈부, 사회적 지위나 역할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없고 건강한 사람과 병약한 사람의 생명에도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당연히 영아와 성인의 생명에도 차이가 있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형법은 일반 살인죄의 경우 5년 이상의 유기형, 무기, 사형으로 처벌함에 반하여 영아살해죄의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훨씬 가볍게 처벌하고 있었다.   출처 - 모두서치뉴스  영아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생명의 가치는 똑같은데 왜 이렇게 달리 취급하였던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영아살해죄 규정이 존재하였다. 외국에서는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이 영아살해죄 감경규정을 두고 있었으나 90년대 들어 폐지하였고, 마비키라는 영아살해의 풍습이 있었던 일본 형법도 영아살해에 대해 별도의 감경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다. 반면 오스트리아 및 스위스 형법은 여전히 영아살해를 일반 살인에 비해 경하게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영아살해를 일반 살인에 비해 가볍게 처벌하는 이유는 산모를 포함한 직계 존속이 처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환경 및 영아의 개인적 특성과 연결되어 있다. 즉 영아살해죄는 사생아, 혼외자,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 질환·장애를 가진 생명, 극심한 경제적 곤란 등의 사유 때문에 영아의 정상적인 양육이 어렵다고 판단되어 출산 직후 어린 생명을 살해하는 경우에는 성립하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시간 유지되었던 남아 선호 사상 때문에 여아를 살해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러한 사유 때문에 영아를 살해하는 경우에는 산모와 직계존속에게 특별히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보아 가볍게 처벌할 수 있는 별도의 감경규정을 입법자가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영아를 독립된 객체가 아닌 부모의 부속물로 보았던 권위주의 사회의 시각이 입법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출처 - 노컷뉴스  생각해 보자. 영아는 부모의 보호와 보살핌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이다. 스스로는 반대의사나 저항의 몸짓 한번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이런 영아를 보호자가 살해하는 것은 비난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중하게 처벌되어야 마땅하다. 직계존속에 대한 범죄를 패륜범죄로 보아 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면 성인의 보호 없이는 일순간도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영아를 살해하는 것 역시 패륜범죄로 보아 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형법은 영아의 생명가치를 낮게 보고 영아살해를 가볍게 처벌하여 왔던 것이다. 순전히 성인의 사정 때문에 영아의 목숨을 뺏는 것을 일정 부분 정당화 시키는 것이 과연 용납할 수 있는 일인가?  이렇듯 지난 70년간 존치되어 왔던 영아살해죄 규정이 우리 사회에서 영아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성인의 곤란한 형편에 따라서는 빼앗아도 된다는 왜곡된 법의식과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여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실제 최근 5년 법원의 재판에서도 영아살해ㆍ살해미수 사건에서 가해자의 절반이 집행유예로 풀렸났고 유기형도 대부분 3년 이하의 가벼운 형이 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살인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관대한 처벌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영아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면 이는 필연적으로 영아유기 및 아동 학대의 증가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매년 로스쿨에서 형법각론의 영아살해죄를 강의할 때마다 학자로서, 성인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만 했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의 생명에 대한 침해를 가볍게 여기면서 과연 우리 사회가 인간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생명 존중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시지탄이지만 영아살해죄의 폐지에 백번 찬성한다.  다만 영아살해죄의 폐지는 현시점에서 국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비용이 들지 않는 저렴한 조치에 불과하다. 예상컨대 국회는 이것으로 자기의 할 일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고 더 이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영아살해죄의 폐지는 영아들의 생명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은 것에 불과하다. 후속조치가 계속 이뤄져야 한다. 만약 여기서 멈춘다면 그것은 국회의 심각한 직무해태, 직무유기에 해당할 것이다. 출처 - 의협신문  우선 국회에서 낙태죄에 대한 후속 입법이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9년 기존의 낙태죄 규정이 태아 보호에만 치우쳐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까지 낙태죄 규정을 개정하도록 요구하였다. 그러나 국회는 현재까지 이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다. 미국의 낙태죄 논쟁에서 보듯이 새로운 낙태죄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매우 격렬한 사회적 논쟁이 예상되기 때문에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낙태죄 규정은 효력을 상실하였고 낙태는 불법도 합법도 아닌 상황에 놓여 있다. 낙태는 처벌도 받지 않지만 합법적인 의료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임부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많은 사비를 들여 낙태하거나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임부들을 비의료적인 방법으로 위험한 낙태를 시도하고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낙태를 포기하여 영아를 출산한 뒤에 살해 및 유기로 나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의 직무유기가 임부들을 위험한 낙태, 원치 않는 영아 출산과 영아살해ㆍ유기로 내몰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국회는 하루빨리 공론화 과정을 거쳐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균형 있게 보호할 수 있는 낙태죄 규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정부와 국회는 임부들이 가능한 한 태아의 생명을 지키고 영아를 출산해 건강하게 키울 수 있도록 사회적ㆍ문화적ㆍ경제적 기반을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임부들이 태아ㆍ영아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용감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출산과 양육에 따른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누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출생통보제ㆍ보호출산제의 도입 논의도 장단점을 고려해 적정한 방법으로 도입을 서둘러야 하고 위탁가정제도의 활성화 방안 등도 마련되어야 한다. 강한 처벌만으로는 영아의 생명을 보호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한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사회 전체, 사회 구성원 전체가 나서야 한다. 영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키우는 것은 하늘이 우리 어른들에게 내린 신성한 의무이다. 이번 형법 개정이 그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끝.  
2023-07-24 | hrights | 조회: 572 | 추천: 10
조광제 / 철학아카데미 대표     출처 - 뉴스핌 1. 과학적 사실의 정치적인 오염 일본 핵 오염수 해양 방출 문제를 놓고서 ‘과학적’이라는 용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가만히 그 담론을 살펴보면, 방출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도 방출에 관한 판단과 실행이 진정으로 과학에 근거한다면, 방출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논쟁의 핵심은 (1) ALPS 즉 다핵종제거장치가 과연 핵 오염수의 모든 독성을 제대로 정화할 수 있는가? (2) 그 여부를 과연 과학적으로 확증할 수 있는가? (3) 그 여부의 과학적인 확증을 과연 IAEA 즉 국제원자력기구가 수행할 수 있는가? 등이다. 해양 방출을 강행하려는 일본을 위시한 IAEA의 입장은 이러한 논쟁점들에 관해 모두 긍정적이다. 말하자면, 이 논쟁점들에 대해 과학적인 사실로써 ‘그렇다’라고 입증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해양 방출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이 논쟁점들에 관해 모두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말하자면, 과학적인 검증을 위한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절차가 객관적으로 공개된 바가 없고, 결과의 보고 과정에 의문점들이 많아 위 논쟁점들에 대해 ‘그렇다’라고 확언할 수 있는 ‘과학적인 사실’이 확보된 바가 없다고 주장한다. 양쪽 모두 ‘과학적 사실’이 지닌 실천적인 위력을 인정하고 있다. 즉, 진정 과학적으로 사실이 그러하다면, 핵 오염수가 충분히 정화되었으니 해양에 방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렇다고 할지라도 해양에 방출하지 않고 국제적으로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육지에서 처리해도 아무 상관이 없지 않으냐, 하는 반대하는 쪽의 대안 제시는 해양에 방출하고자 하는 일본의 입장을 배척하지 못한다. 만약 위 논쟁점들에 대해 객관적인 과학적 사실로써 충분히 긍정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해양 방출은 일본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위 논쟁점들에 대해 과연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인 과학적 사실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결정적으로 의혹을 일으키는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과학적 사실이 순수하게 성립하려면 정치적인 개입이 아예 충분히 배제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러하냐, 하는 것이다. 만약 일본이 핵 오염수 해양 방출을 결정한 바가 정치적인 의도에 따른 것이라면, 그 정치적인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과학자 집단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혹을 잠재우기는 결단코 쉽지 않다. 하필이면 핵 오염수 해양 방출이 실행되면 가장 피해를 많이 보리라 예상되는 한국의 대통령과 여당이 한국민의 80% 이상이 반대하는데도 일본의 결정이 충분히 순수한 과학적 사실에 따른 것이니 허용해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방출에 반대하는 한국민의 80% 이상의 국민이 비과학적인 이른바 ‘괴담’에 잘못 휩쓸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한국 정부와 여당의 태도는 과학적 사실의 순수성을 오염시키는바 자기 공격적 · 자가당착이다. 최고의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정부와 여당이 미리 위 논쟁점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정치적인 선전과 공격을 가하는 상황에서는 힘없는 전문 과학자들이 학문적인 양심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고, 그래서 심지어 국내의 과학자들이 긍정의 의견을 주장하더라도 그 주장이 갖는 학문적 실효성이 현저히 저하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IAEA를 대표하는 사무총장이 검증 보고서를 조용하게 일본 당국에 보내야만 할 것인데, 특별히 일본을 방문하여 보란 듯이 보고서를 일본 총리에게 정중하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건넸다. 그리고 여러 언론을 통해 보란 듯이 대서특필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으로 건너오기까지 하여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행보를 보였다. 이 모든 행위는 철저히 정치적이고, 따라서 과학적 사실을 충분히 오염시킨다. 결과적으로, 과학에 전문적이지 않은 사람들조차 대다수가 IAEA 검증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순수한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핵 오염수가 충분히 정화되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마셔도 해가 없고 그 물에서 수영해도 괜찮다고 역설하는 IAEA 사무총장이 힘주어 강변할수록 그 강변 자체가 아예 정치적이기 때문에, 그 발언 역시 자기 공격적 · 자가당착이다.   출처 - 환경운동연합 2. 과학의 한계와 불완전성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그것은 과학 내지는 과학적 사실에 대한 맹신이다. 이는 ‘순수한 과학적 사실’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과학은 과연 본래부터 진리 내지는 진실을 제대로 산출하는 역량을 갖춘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진실을 규명하는 데에 과학이 갖는 한계를 무시하는 과학자는 얼마나 될까?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과학이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역량을 더욱 많이 갖추게 될 거라고 믿는 과학자들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궁극적으로 진실을 완전히 규명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자들은 없다. 본래부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반 대중에게 필요한 진실 정도는 과학이 만족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할 뿐이다. 예를 들어, 기상학의 발달로 인해 기상 예보의 정확성이 이전보다 상당히 높아지긴 했지만, 전혀 어긋남이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의학의 발달로 인해 많은 질병에 관해 그 원인을 상당 정도 파악하긴 하지만 그 원인의 전모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학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핵 과학의 영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핵 과학은 근본적으로 극미한 소립자의 세계를 다룬다. 당연히 상대성 이론뿐만 아니라 양자역학이라는 과학을 통해 그 세계를 탐색하여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극미한 사건들의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고 예측하고자 한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방사능물질의 종류 즉 핵종들을 발견했고 그것들의 특성과 위력을 나름대로 파악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내용을 완전하게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바 관련한 순수한 과학적 사실을 확보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모르긴 해도 양자역학의 기초인 불확정성의 원리,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의 원리 등은 원자핵의 구성과 운동에 직접 적용된다. 이에 관한 과학적 연구의 결과는 확률적인 진실일 뿐 완전한 진실은 결코 아니다. 어떠한 돌발변수가 발생해서 지금까지 알지 못한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비록 분자생물학이나 유전과학 그리고 두뇌 과학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생명체를 관통하는 생명의 원리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못한 상태다. 다만, 유전인자가 생물체의 세포들의 짜임과 배치를 반복적으로 안정되게 결정하는 과정이 분자 이하의 수준에서 특히 미세 물질의 화학 작용과 각종 미세한 전자적인 이온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 여기에 원자핵의 분열에 의한 소립자 물질들이 극미량이라도 결합해 작동하면 돌연변이가 일어나 세포들의 짜임과 배치가 생물체의 항상성을 유지함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일어남으로써 각종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중요한 사실은 원자 이하 수준의 극미한 세계가 생명체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아직 대처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 개발되어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출처 - 동아일보   3. ‘순수한 과학적 사실’의 허구성 요컨대 과학이 전능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건 과학적인 상식이다. 이를 철학적으로 접근해 설명하는 여러 이론이 있다. 하나는 철학자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주장이다. 과학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생활세계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생활세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각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문화로 이루어진다. 이는 문화에 따라 과학이 다른 방식으로 체계화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은 근본적으로 모든 사태를 철저하게 양화(量化)하기 때문에, 생활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질적인 내용들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또 하나는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S. Kuhn, 1922∼1996)의 ‘패러다임’ 이론이다. 과학은 각 시대의 과학적인 환경에 따라 이른바 한 시대를 지배하는 정상과학을 규정하는 체계 자체 즉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를 들어, 뉴턴의 물리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중 어느 쪽이 더 옳은가를 본래 결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다른 하나는 과학학자인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1947∼2022)의 행위자-연결망 이론이다. 라투르는 순수한 과학적 사실은 허구라고 말한다. 과학적 사실의 확립에는 반드시 정치적인 측면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 논거로 제시한다. 그는 과학 역사를 보면, 어느 과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과학적 사실로 정착하는 데는 논문 발표를 둘러싼 제도, 실험실의 구성과 운영 방식, 과학자 집단 내의 동맹관계, 이해관계의 그룹의 정치 경제적인 영향, 환경의 시급성에 따른 비인간적인 대상들의 동맹 등이 긴요하게 작동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순수한 과학적 사실은 원리상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순수한 과학적 사실의 존재를 맹신하는 태도를 과학주의라고 부른다. 과학주의는 우리 인간들의 구체적인 생활세계를 오히려 착각에 의한 허구 ― 요즘 유행하는 ‘괴담’ ― 라고 몰아붙인다. 그리하여 건전한 합리적인 상식조차 무시하면서 진실 싸움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고자 한다. 이러한 과학주의는 오늘날 첨단 고도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더 크게 동력을 얻고 있다. 과학주의는 과학은 전능하고, 과학에 따라 만든 기술은 완전하고, 이를 부정하면서 인간 고유의 영역을 주장하는 자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소멸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그런데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과학기술로 대처할 수 없는 대재앙의 도래를 목도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핵 과학기술의 오남용으로 인한 파국이고, 그 파국의 예가 원자탄의 투하, 체르노빌 원자로의 폭발, 그리고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폭발이다. 그 부작용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근본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은, 그나마 노골적으로 정치적으로 오염된 과학적 사실을 순수한 과학적 사실로 내세워 그야말로 일부 집단의 정치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핵 오염수 해양 방출을 결정해 강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출처 - 오마이뉴스 결국은 정치적인 투쟁으로 귀결된다. 과학주의로 무장한 일부 정치 세력과 건전한 합리적인 과학과 상식으로 무장한 다수의 정치 세력 간의 투쟁이다. 이러한 투쟁을 마치 과학과 괴담의 투쟁인 양 프레임을 만들어 그 속에 건전한 상식을 가두려고 하는 정치적인 술책이야말로 무지와 이익이 결탁하여 만들어낸 괴담임에 틀림이 없다.  
2023-07-18 | hrights | 조회: 370 | 추천: 5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요사이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에 대한 문의와 함께 전통시장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에 대한 질문도 늘고 있다. 지역화폐의 효능감을 인지한 소비자와 소상공인 가맹점들이 온누리상품권 이용 방법이나 가맹점 신청 방법을 묻는 것이다. 지역화폐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전에는 지역화폐를 설명하며 온누리상품권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은 한 때 경쟁관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특히 온누리상품권의 주요 사용처인 전통시장에서 지역화폐 도입을 크게 반발하였다. 온누리상품권 사용자들이 지역화폐로 갈아타 전통시장이 아닌 곳에서 소비하면 어떻게 하냐는 우려였다.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   그럴 법한 우려였지만 반전이 벌어졌다. 포항시가 지난 2019년 연구용역을 통해 포항사랑상품권 유통 대비 온누리상품권 발행량을 조사해 보니 온누리상품권 사용량도 크게 늘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열자 우려는 사라지고 지금은 지역화폐가 온누리상품권 활성화의 걸림돌이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이렇듯 지역화폐와 전통시장상품권은 각각 지역경제 활성화와 전통시장 및 골목상권 살리기라는 목적에서 교집합을 이루며 서로 번영할 수 있다는 실증을 거친 상태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해부터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한 지원은 전액 삭감을, 온누리상품권에 대한 지원은 대폭 확대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지자체 고유사무이며 경제 활성화에 대한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반면 온누리상품권은 골목상권 활성화란 목적으로 지원 규모를 대폭 늘렸다. 지역화폐는 안되고 온누리상품권은 도움이 된다? 정부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근거는 제각각이다. 이를테면 모 국책기관에서는 지역화폐가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한 광역지자체 연구용역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서로 상반된 결과를 내놀고 있다. 온누리상품권은 구체적인 성과분석 자료가 잘 안 보인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현장에 집중해야 한다. 지난 7월 9일자 경기일보 기사 <예산 줄자 지역화폐 인기 '시들'… 정부가 밀어준 온누리상품권은 실적 저조>에 따르면, 지역화폐는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인센티브율이 줄자 올 1~5월 경기지역 31개 시군의 지역화폐 발행액이 전년 동기 대비 평균 13.7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부가 예산을 늘려 활성화를 시도한 온누리상품권은 판매 실적이 저조해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실정이며 지역화폐·온누리상품권의 사용처인 전통시장 상인들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많이 쓰이는 지역화폐는 예산을 줄여 주춤해지고, 반대로 예산을 늘린 온누리상품권은 소비 진작 효과가 적어 상인들을 중심으로 볼멘소리가 나온다. 고물가·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운영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실효성 없는 정책을 내놨다는 게 주된 이유다. 더군다나 정부가 내년도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상인들의 불만은 이어질 전망이다”라고 설명했다. 온누리상품권이 생각만큼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용처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의 전통시장 및 등록 상점가 중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으로 신청·등록된 곳이 사용처이다. 현재 전국 전통시장 가게 중 절반 정도는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 아니다. 지역화폐가 전국적인 활성화 움직임에 힘입어 전통시장은 물론 골목상권 곳곳에서 가맹점을 가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는 과연 온누리상품권이 지역화폐를 대신해 골목상권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을까? 비슷한 목적을 가졌지만 지역화폐는 안되고 온누리상품권은 된다는 근거는 무엇이었을까? 굳이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동시에 온누리상품권 지원은 대대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큰 의문이다. 지역화폐 지원 중단을 ‘정치적 목적의 무용론 전파’라는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이다. 그런데 재밌는 현상은 정부의 시그널이 지역화폐 활성화와는 반대의 지점에 있음에도 지자체 차원에서 반대의 길을 걷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예산이 줄어든 만큼 자체예산을 투입하거나 더 많은 예산을 들어 인센티브를 늘리는 지자체가 속속 나오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들 상당수가 여당 소속 단체장이 재임 중인 지자체란 점이다. 지자체의 입장에선 민생 현장의 이해와 요구를 정책과제라고 그냥 외면하기 힘들다. 사용자야 말할 것도 없고 정책의 최우선 대상인 소상공인들이 입을 모아 지역화폐 활성화 요구를 쏟아내는 현실에서 정부의 방침은 속 답답한 이야기일 수 있다. 당장 내년에는 총선도 맞아야 한다. 현장에 답이 있다. 지역화폐든 온누리상품권이든 골목상권 활성화라는 목적은 같다. 때로는 적절히 혼합하고 때로는 집중하면서 그 쓰임에 맞게 활용하면 된다. 지금처럼 중구난방의 지역화폐 효과분석을 넘어 객관적인 연구결과를 도출하여 적절한 정책 지원을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화폐를 정치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재단하는 어떤 시도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지역화폐가 현장의 신뢰를 받으며 묵묵하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2023-07-11 | hrights | 조회: 250 | 추천: 1
박상경 / 인권연대 회원   출처 - 대학뉴스 1. 우연한 기회에 운 좋게도 친구들과 사진전을 연 적이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 네 사람이 어울려 벌인 이 작업은, 나의 미숙한 사진을 확인하는 두려운 작업이었지만 무언가를 성취한 것 같은 기대감이 섞인 설레는 작업이기도 하였다. 그때 우리는 각자의 사진을 고르면서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아주 낯선 모습과 익숙한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이기도 했고 머나먼 낯선 이국땅에서 맞닥뜨린 우리와 같은 삶의 모습이기도 했다. 낯설거나 익숙한 이 풍경들은 그대로 우리 사진전의 주제가 되었다.   출처 - 프라임경제 2. 어릴 적에는 들판을 가로질러 저 너머 세상은 어떤 걸까를 궁금해했다. 좀 더 커서는 저 산을 넘어가면 무엇이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하고, 어른이 되면 저 너머 세상을 갈 수 있는 건가, 어떤 세상인지 알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였다. 어른이 되어 환상에 머물던 세계에 들고 나니 무엇인가 시시해졌다. 좀 더 역동적이고 스펙터클한 세상이 있을 것만 같은데 시간은 흐르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에는 나이만 먹어간다는 공허감으로 몸살을 앓던 즈음, 그냥 막연히 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패러글라이딩을 시작했다. 창공을 차오르는 새의 그 거대한 자유를 누려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간이 지나 조마조마한 마음을 누르고 파아란 하늘 위로 내 몸을 띄웠다. 그리고 날아올랐다. 그렇게 날아오르니 땅이 발아래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슴 뻐근한 벅찬 감정이 끓어올랐다. 그러다 나무꼭대기에 불시착하는 사고를 내기도 했지만. 당황한 교관들이 뛰어오고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그러는 동안에도 흥미진진한 모험 가득한 세상에 있는 희열 같은 것을 느꼈다. 물론 무사히 나무꼭대기에서 내려왔다.   3. “화장실 변기 물은 어떻게 내리나요?” “발로 내리죠.” “에, 왜 발로~?” 당황한 진행자가 말문을 잇지 못하면서 되물었다. “더러워서요!” “그럼 다음 사람은 어떻게 하죠?” “다들 발로 내리지 않나요?” 뉴스 대신 보고 있는 팟빵 시사 프로그램에서 본 대화이다. 며칠 뒤에 모임이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한테 물어봤다. “화장실 변기 물은 어떻게 내리나요? 첫째, 손으로 그냥 내린다. 둘째 손에 휴지를 쥐고 내린다. 셋째, 발로 내린다.” 사람들은 “발로 내린다”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손으로 내리고 나와서 물로 닦거나, 손에 휴지를 쥐고 내린다고 대답하였다. “어떻게 발로 내리지?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되묻기도 하였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오십대 중후반의 사람들이었다. 그때 한 사람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발로 내린다고 하였다.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발로 내리는 걸 목격했다고 하였다. 4. 나는 아이들의 수능을 고민하는 것만큼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교육 정책을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혈기왕성한 시절에 즐길 수 있는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모험과 탐험을 즐기고 미지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을 고민하는 어른들이 아주아주 많아졌으면 한다. 그래서 그때 패러글라이딩 교관이 한 말은 지금도 따끔하게 들린다. “우리나라는 아이들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패러를 많이 해요. 그래서 외국의 패러하는 사람들과는 아주 달라요. 나이 든 사람들은 아무래도 새로운 걸 한다는 도전 정신보다는 새로운 걸 체험하는 것에 만족하거든요(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도전이라든가 모험심이 덜 하죠. 그런데 패러글라이딩은 비용이 많이 드는 거라 젊은이가 하기가 쉽지 않아요. 외국에서는 학교 동아리라든가 마을 단위의 공동체에서 지원을 해요. 장비를 개인이 마련하기보다는 공동장비로 준비하는 거죠. 그래서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하니까 젊은 사람들도 맘 놓고 즐기는 스포츠가 되는 거죠. 우리와는 다르죠. 우리는 그저 개인적으로 즐기는 고가의 취미라고 생각하니까….” 5. 변기 손잡이를 발로 내리는 것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아주 낯선 풍경이다, 그 명칭이 물 내리는 손잡이라면, 발로 내리는 행위는 손으로 내리는 행위와 다른 게 아니다. 이것은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 간의 세대 차이가 아니다. 그건 어느 세대이든 잘못된 행위인 것이다. 변기 물을 발로 내려야 한다면 그 위치를 발로 내릴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힘겹게 발을 들어서 내릴 것이 아니라 손잡이를 발잡이가 되게 옮겨 달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더러워서 발로 내릴 게 아니라 깨끗하게 쓸 수는 없는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손잡이가 더러워서 발로 내린다면 다른 환경은 더 더러워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6. 사진전에서 내가 본 낯설거나 익숙한 세상은 풍경이었다. 이국땅에서 만난 한여름 뙤약볕을 피해 그늘진 나무 아래서 더위를 피하는 할아버지와 손자이거나, 지금은 폐허가 된 어느 마을이거나. 그리고 그 풍경은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그리움 같은 것이다. 오늘 새로운 풍경이 우리에게 펼쳐지고 있다. 그 풍경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더 낯선 풍경을 만들어내는 삶이 아니기를….
2023-07-11 | hrights | 조회: 212 | 추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