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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게 다 검찰 때문인가라는 또다른 생각(황문규)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8-01 10:21
조회
585

황문규 /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이 되고, 그에 의한 1년여의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을 넘어 검사의 나라, 검찰국가, 검찰독재정권 등으로 불리우는 처지에 내몰렸다. 지난 정부의 검찰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도 딱히 반론도, 관심도 없다. 필자는 경찰개혁에 이어 이번에는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하는 내용의 칼럼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문득  무소불위의 검찰은 엄밀히 말해 이미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게 다 검찰 때문이라는 생각은 현 상황에 대한 희생양을 만들어 위안을 줄지는 몰라도 과연 정확한 진단일까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혹시나 싶어 간단히 검색했는데 역시나 비슷한 생각이 있다(이재성, 이게 다 검찰과 언론 때문이라는 생각, 인권연대 세상읽기의 발자국 통신). 그래서 후속 칼럼이라는 생각으로 제목을 정하였다.


 


출처 - YTN뉴스


검찰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첫째, 지금껏 한 번도 드러난 적 없던 검찰의 특수활동비 등 예산집행 내역이 공개되고 있다. 이를 이끈 하승수 변호사는 이번 공개가 “검찰을 '특권적 권력 집단'에서 ‘보통의 행정기관’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한다(시사IN, “검찰 특수활동비, 폐지하거나 줄여야”). 예산의 투명한 집행 여부가 본격적인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특권적 권력 집단이라는 견고한 둑에 구멍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공감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그들만의 둑을 얼마나 견고하게 구축했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이 명백하다.


 

출처 - 국민일보


둘째, 2020년 2월 4일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요건이 달라져 2022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즉,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내가 진술한 대로 기재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진실과 다르다’는 취지의 의견을 표시하면, 판사는 그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법정에서 피고인이 그 내용이 진실과 다르다고 부인해도, (진실 여부에 관계없이) 피고인이 진술하는대로 기재되어 있는지 등의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증거능력이 인정되었다. 검사가 조서를 어떻게 작성하느냐가 재판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약 14시간의 검찰 조사 후 ‘7시간’ 넘게 피의자신문조서를 열람한 이유다. 이제부터는 검찰에서의 진술이 아니라 그 진술이 진실인지 여부에 대한 피고인의 법정 진술에 따라 증거능력이 결정된다. 검찰이 조서로 재판의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이다.


 


출처 - 코람데코닷컴


셋째, 경찰수사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물론 형사소송법은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경찰수사에 대한 검사의 보완수사요구권·시정조치요구권 및 재수사요청권 등으로 대체하여, 경찰수사에 대한 검사의 개입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경찰의 수사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 수사지휘권을 매개로 경찰이 검사의 연장된 팔로서 검사의 수사를 대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제한적이나마 경찰에게 수사종결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제 검사의 수사와 구별되는 경찰의 독자적 수사가 존재하고, 그만큼 경찰수사에 대한 검찰의 영향력이 제한된 것이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한 당시 경찰의 독자적 수사는 2011년 제1차 검경수사권조정 이후였기에 가능했다. 또한 경찰수사에 대해 검찰이 합리적으로 처리하지 않을 때 남는 후폭풍은 결코 간단치 않음을 시사한다.



최근 법무부에서 수사준칙 개정을 통해 경찰수사에 대한 검찰의 직접보완수사의 가능성을 높이는 등 검찰 직접수사의 범위와 권한을 강화하려는 시도에 대한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는 현행 법률을 실무적으로 보완한 정도에 불과하다. 필자가 보기에 2020년 제2차 검경수사권조정으로 낮아진 검사의 낮아진 책임감을 제고하는 차원에 불과할 뿐 본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제2차 검경수사권조정 이후 검찰실무에서는 직접수사 개시 사건의 축소, 경찰수사에 대한 직접보완수사의 축소 등으로 ‘업무적으로 좀 편해진’ 반면, 수사에 ‘책임을 질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있었다. 이를 개선하고자 한 시도에 불과하다. 이른바 시행령 통치의 한계다.


 

출처-한국기자협회


넷째, 그간 검찰의 수사권과 소추권이 검사의 헌법상 권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검찰 입장에서는 검찰조직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심리적 둑으로 작용했던 ‘검사의 헌법상 권리’가 2023년 3월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전면 부정되었다. 헌법에 검사의 영장 신청이 명시되었다는 점만을 근거로 검사의 수사권은 물론 소추권까지도 헌법적 권리라는 (억지) 해석이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형사사법체계를 개편하여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느냐, 그래서 형사사법선진화로 나아가느냐의 문제는 국회 입법에 달렸다.



그럼에도 검찰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검찰의 힘은 대한민국의 현 상황과는 별개로 약화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에는 여전히 제한된 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형집행권 등이 있다. 게다가 견제장치는 불충분하다. 검찰의 수사·기소에 정치편향성이 더해질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있고, 그 폐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설사 지난 정부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개혁까지 나아갔다고 해도, 수사권과 기소권은 누군가 또는 어느 조직에 의해 오남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은 더더욱 검찰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작금의 문제는 미국 예일대 후안 린츠(Juan Linz) 교수가 30여년 전에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자체로 이미 위험성을 안고 있었던 대통령제의 위험성(The perils of presidentialism)이 절제없이 표출되고 있는데서 찾아야 한다. 대통령제의 문제는 정치(학)의 영역에서 적극 다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인권연대 주최 검찰개혁 형사사법선진화 토론회 모습


다시 검찰개혁의 문제로 돌아오면, 우선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을 다시 점진적으로 축소·폐지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되, 경찰의 수사역량을 제고하는 정도를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검찰의 직접수사 영역 축소·폐지는 검찰의 직접수사 인력과 조직, 그리고 예산의 축소·폐지를 수반함과 동시에 검찰의 직접수사를 대신하는 조직(경찰, 공수처 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업무적으로 좀 편해진’ 최근의 검찰과 달리, 누적된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수사부서를 기피하는 수사경찰로 대한민국 전체 수사역량의 저하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수사-기소를 배분하는 법률의 개정은 최근 급격한 제도변화에 따른 미세문제를 조정·보완하는 선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앞서 지적한 바를 고려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수사-기소의 완전 분리이어야 하는가는 재고되어야 한다. 오히려 공수처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 우선이다. 조직과 인력의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제대로 된 공수처장이 임명되어야 한다. 검사 출신을 굳이 배제할 이유가 없다.



한편 검찰개혁은 경찰의 수사역량 제고, 비대해진 경찰권의 실질적 분산 등 경찰개혁과 맞물려 추진되어야 한다. 경찰이 ‘또다른 검찰’이 되지 않으리라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파쇼보다 경찰파쇼를 더 우려해야 했던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와 달리, 지금은 검찰 파쇼를 더 우려하여 수사-기소 분리방향으로 나아가지만 역사는 정반합으로 변증된다고 한 헤겔의 주장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