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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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장경욱 / 인권연대 운영위원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전 세계에 걸쳐 해외 미군기지를 설치하고 있는 미국이 일극 패권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쓰며 동분서주하고 있다. 세계의 지정학적 분쟁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발하거나, 한편으로는 군비경쟁이 고조되며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 등 서방진영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 무기지원에도 러시아에 대한 전세 역전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에는 미국의 대 우크라이나 무기지원은 중단되고 현재의 고착된 전선에서 러시아의 점령을 인정하고 휴전협정이 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전쟁은 패권의 몰락을 부추기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에서 미국은 가자 지구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전면 봉쇄로 민간인 집단학살(제노사이드) 범죄를 저지르는 이스라엘을 편파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가자 지구의 민간인 학살과 인도주의적 재난을 초래한 전쟁을 끝내기 위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휴전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대한 전쟁범죄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미국은 가자 지구 민간인에 대한 제노사이드 범죄를 자행 중인 이스라엘에 대한 천문학적 군사적 지원을 하며 집단학살을 묵인, 방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패권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며 정치, 도덕적으로 파산선고를 받고 있다.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에 이스라엘의 대공방어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지난 14일. 이스라엘 아슈켈론. 사진: 로이터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가자 지구 전쟁은 하마스를 지원하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계속적인 교전으로 이어지고 있고, 또한 하마스를 지원하는 예멘 반군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에 대응하여 홍해에서 이스라엘, 미국 등과 관련된 선박을 공격하여 홍해 물류 대란을 낳았다. 급기야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 폭격에 대응하여 이란은 이스라엘 본토에 미사일, 드론 공격을 하였고, 현재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재보복 공격 여하에 따라서는 전면적인 중동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위기상황에 직면하였고 이에 미국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이란에 대한 재보복 공격 계획의 철회를 강요 중이다. 가자 지구의 영구 휴전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 간 평화공존을 위한 정치적, 외교적 해결방안의 마련이 이스라엘의 국내 여론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바람이 되고 있다. 패권국도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다. 힘의 우위를 추구하며 계속되는 군사적 지원과 해외 미군 주둔으로는 분쟁과 갈등, 전쟁을 종식시키기는커녕 더 큰 혼란과 분열, 정세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한 것이 그 예다. 오랜 전쟁의 늪에서 패권국은 탈레반을 정치적 대화의 상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탈레반과 평화협상을 갖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군철수를 합의하고 단행하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패권국은 패퇴는 패권의 쇠퇴와 몰락 과정을 뚜렷이 보여준 계기가 되었다. 전략적 경쟁대상과의 군비경쟁도 패권국의 말로를 앞당기는 중이다. 패권국에 대응하는 군비경쟁국도 증가추세다. 중국, 러시아에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란 등이 중요 군비경쟁국으로 부상 중이다. 세계 제1위의 군사비 지출로도 군비경쟁에서 압도적 승리는커녕 요원한 일이기에 전략적 경쟁대상국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차선책으로 세계적 범위에서 나토와 같은 군사동맹을 강화하며 동맹국들의 군비확장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은 날로 강해지는 중국 억제를 위한 정책에 따라 남중국해 영해 분쟁과 대만 문제, 무역 및 인권 문제 등에서 군사, 경제, 정치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는데 초점을 두는 한편, 조선민주주인인민공화국의 핵, 미사일, 인권 문제 등을 문제 삼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대북적대정책과 대북제재정책을 지속 중이다. 그러나, 패권국의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남중국해, 대만해협, 한반도에서 중국과 조선민주주인민공화국을 억제하기 위한 군비경쟁과 군사적 개입에 전력을 쏟아 붓더라도 자신의 역량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패권 유지를 위해 동맹을 내세운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과거를 잊고 평화헌법을 유린하며 군비경쟁과 해외 군사개입의 폭을 넓히며 군사대국으로 줄달음치고 있는 일본의 방종을 키울 뿐. 한반도 문제에서도 패권의 쇠퇴와 몰락은 현실이 되고 있다. 미 국가정보국 보고서에 의하면 북은 극초음속 무기 개발, 초대형 핵탄두 생산, 1만 5000km 사정권 명중률 제고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개발 등에서 사실상 성공 내지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미 군사적 대결정책이 낳은 후과다. 북 비핵화는 요원해졌다. 강대강 군비경쟁이 지속될 경우 미국에 대응하는 북의 군사적 역량은 더욱 커져갈 것이다. 패권국을 겨냥한 핵과 미사일을 가진 북을 상대로 주적론, 선제공격, 북 지도자 참수작전, 점령과 흡수통일, 즉강끝 등 군사적 대결정책은 군사적 충돌과 전쟁을 초래하는 무책임하고 무대책의 자멸적 망동이다. 극우적 시각의 북맹이 지배하는 반북현실이 패권의 쇠퇴와 몰락을 덮고 있을 뿐, 전 세계와 한반도에서 패권의 쇠퇴는 지금 이 시각도 그 끝을 향해 진행 중이다. 군비경쟁이 낳을 수 있는 우발적 군사적 충돌과 긴장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군사적 수단에서 나오지 않는다. 한반도 문제에서도 군비경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북미 간 정치적, 외교적 해결이 실현되는 길 밖에 없다. 미국의 조야에서 나오는 북미 간 대화재개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달성하지 못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비핵화가 아니라 북미 간 ‘정치적, 군사적 중간지대를 설정’하여 새로운 대화로 군축, 군사적 위협 감소, 관계정상화를 위한 다방면의 상호 관심사 추구로 상호 신뢰와 이해를 구축하여 북미 핵전쟁을 방지하자는 취지의 내용이다. 패권의 쇠퇴와 몰락의 과정이 선명해진 상황에서도 ‘친북 반미 경력’의 국회의원 후보자가 사퇴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북미관계 및 남북관계는 물론 국제정세에 무지한 극우보수시각에 세뇌된 여론이 지배적인 탓이다. 전쟁 통일을 반대하는 누구나 북을 평화공존의 당사자로 인정하고 북미 평화협상을 통한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수 있어야 정상적, 이성적 사회이다. 우리는 동족의 국가를 배척하고 패권국의 이익을 수호하는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야만적 사회에 오늘도 강박당한 채 굴종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4-04-17 | hrights | 조회: 338 | 추천: 8
오항녕 / 인권연대 운영위원 1.  이 글이 실리는 건 10일(수요일) 이후, 선거가 끝난 뒤일 것이다. 칼럼 게재 날짜를 받고 난 뒤 뭔 일이 이렇게 많이 터지는지, 이미 2년 동안 적립한 포인트도 차고 넘치는데, 날씨 1, 대파, 쪽파, 김활란, 삼겹살, 또 선관위 대파, 이제는 복면가왕 9주년까지……. 정말 한국의 개그맨들은 먹고 살기 힘든 지경이다. 하지만 그건 표면의 찰랑거림이다. 우리는 안다. 한국 사회라는 거함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1.  그래도 천하다. 참으로 천하다. 이 말은 신분제 사회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쓰기가 꺼려지지만 달리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고상하길 기대하지 않거늘, 고상하면 좋지만 평범해도 그만이거늘…….  복습 하나. 『동호문답(東湖問答)』에 나오는 율곡의 말을 들어보자. 폭군, 혼군, 용군, 즉 폭압적 군주, 어리석은 군주, 있으나마나한 군주에 대한 율곡의 정의이다. ① 많은 욕심이 마음을 흔들고 온갖 유혹이 밖에서 쳐들어온 결과, 백성의 힘을 다 쥐어짜 자신만 살고자 하고, 충언(忠言)을 물리치고 자신만 성스러운 체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자가 폭군(暴君)이다. ② 정치를 잘하려는 뜻은 있으나 간사한 자를 분별하는 총명함이 없고, 믿는 자는 어질지 못하고 관료들은 실력이 없어서 패망하게 되는 자는 혼군(昏君)이다. ③ 마음이 나약하여 뜻이 확립되지 못하고 과단성이 없어서 어름적거리다가, 정책은 혼선을 빚거나 구태만 되풀이하면서 날로 쇠약해져 가는 자가 용군(庸君)이다. 1.  기억 하나 소환. 2008년 8월 어느 날 MBC뉴스, 퇴임을 몇 달 앞둔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방한했다.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공식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던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에 관해 논의를 했느냐고 기자가 질문했다. 이명박은 즉각 대답했다. “아프가니스탄 뭐, 파견 문제, 이것은 부시 대통령이 답변해야 하잖아요, 내가 할 것이 아니고. 그러나 그런 논의는 없었다는 걸 우선 말씀드립니다. 네, 허허.” (이때 부시는 이명박을 쳐다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으면서 이어폰을 빼고 즉각 반박했다.) “우리는 논의했습니다.[We discussed it!] 한국이 아프가니스탄에 기여한 것에 대해 대통령께 감사드렸습니다.” “We discussed it!” 내가 알아들을 정도였으니 부시가 얼마나 정확히 발음했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이명박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이때 실실 웃으며 책임감을 피해갈 수 있는 인성을 가진 분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것을 안 순간, 나는 많은 것을 접었다. 그런데……. [부시와 기자회견하는 이명박. 오른쪽은 질의응답 없는 51분 담화.] 1.  난 요즘 ‘어색하게 실실 웃었던’ 이명박씨는 그래도 나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에겐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남아 있었다. 이게 중요하다. 이런 마음을 단서로 개과천선, 잘못을 고치고 나은 길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1.  역사를 보면 국왕의 마음가짐에 대한 경계가 많이 나온다. 고려시대 스님들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가르쳤고, 조선시대 학자들은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다[人心唯危]’고 일렀다. 최고권력자의 마음은 ‘속마음’이 아니다. 그것은 물질적인 힘이다. 정책과 행정을 통해 고스란히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힘이다.  그에게 측은지심이 남아 있으면 안타까워하고 슬퍼할 줄 알 것이다. 수오지심이 남아 있으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힐 수 있고 미안해할 줄 알 것이다. 외롭고 막막한 사람들을 위해 눈물까지는 흘리지 않더라도 정책의 이름으로 돌보려고 할 것이고, 자신이나 주변의 탐욕이나 과오로 벌어진 사태에 자존심 상할 것이다. 2024년 4월을 사는 나는 그런 기대가 없다. 1.  반정(反正)이 필요하다. 언제나 일이 되려면 가닥을 잘 타야 하는데, 반정 역시 털컥 판만 벌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반정은 망가진 상황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에 통상의 정권교체보다 복합적이기 마련이다. 반정은 세 방향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폭정(暴政) 또는 혼정(昏政)의 즉각적 중단 : 이는 사회의 자기보존이며 시민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② 폭군 또는 혼군 이전의 시대 상태 회복 : 국민의 삶이 일상을 회복하고, 나라의 재정과 관료제 운영 등이 정해진 제도에 따라 작동해야 한다. ③ 폭정이나 혼정으로 미루어진 사회의 재편, 개혁 수행 : 이는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비전과 정책이므로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반정의 세 과제 : 왕조시대라면 이런 모델이었을 것이다.] 1.  말할 것도 없이 ①, ②, ③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렇지만 섞여서는 안 된다. 또한 논리적으로는 폭정을 멈추고, 회복하고, 개혁하는 순서를 밟을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반정의 순간 ①, ②, ③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③이 특히 중요하다. ①, ②는 반정의 소극적 국면이다. 지금 국면을 멈추고, 이전 상태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반면 ③은 반정의 적극적 국면이다. 누구도 안 해본 국정이 여기서 펼쳐질 것이다. 그러므로 정녕 국정철학이 필요하다. 지독한 학습과 살떨리는 고뇌가 버무려진 헌신적 실천적 철학 말이다.  여기에도 내가 알기에 검찰개혁, 언론개혁 등 대안도 방법이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주저하지 말고 추진하자. 동시에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23년 내놓은 제6차 종합보고서를 보자. 2040년 이전에 지구의 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아들딸들이 전면적인 종족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는 말이다. 지금은 북극곰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4차산업혁명이나 AI 운운하며 당황하지 말고, 산업구조의 변화를 살피고 그 변동의 잦은 주기에 주목하자. 21세기 산업구조는 자주 또는 예상치 못하게 변할 것이다. 이런 변동에서 사회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각자도생이 아니다. 공공성 확대라고 하든, 기본소득이라 하든, 공유제라고 하든, 변동의 사이사이에 우리의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1.  천지(天地)가 어질지 않듯, 역사 또한 그럴 수 있다. 허나 지금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길은 하나이다. 더 나빠지지 않는 것! 그건 반정 밖에 없다. 대파(大破) 이후 새 세상을 짜는 일이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4-09 | hrights | 조회: 323 | 추천: 9
이찬수 / 인권연대 운영위원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공식적 폐지 수거 시간은 매주 수요일 오전 7시부터 목요일 오전 11시까지다. 주민들이 그 시간에 내놓은 폐지를 관리원들이 정리해놓으면 목요일 정오경에 외부 업체가 와서 수거해간다. 수거 장소에는 종이류 배출시간을 알리는 현수막이 큼직하게 걸려있다. 아무 때나 버리면 관리가 힘드니, 반드시 시간을 지켜달라는 당부를 담은... 입주민들은 여러 해 동안 종이류 배출시간을 잘 지켜왔다. 그런데 일 년 몇 개월 전부터인가, 공식 배출시간이 아닌데도 종이를 내놓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로 이사 온 사람이 규정을 몰라서 그랬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현수막에 배출시간도 적혀있으니 곧 이전 질서를 찾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 때나 폐지를 내놓는 이들이 도리어 더 많아졌다. 목요일 점심에 폐지를 수거해갔는데 바로 그날 저녁부터 폐지가 다시 쌓였다. 저마다 사정이 있는 게 현실인데 왜 폐지 배출시간을 획일적으로 규정하느냐며 못마땅해하던 이들이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관리사무소에서는 관리상의 어려움이 있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으니 종이류 배출시간을 지켜달라는 방송을 여러 차례 더 했다. 그런데 아랑곳하지 않고 폐지를 아무 때나 내놓는 이들이 더 늘어났다. 관례를 조금 어기니 자기가 더 편리해지더라는 것을 경험해 본 탓일지도 모른다. 종이류 배출일 안내 방송을 못 들었다거나 집안 사정상 폐지 배출일에 맞추기 힘들다는 변명을 스스로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식적인 종이류 수거일 같은 공동체적 약속에는 아예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자신의 편리함이 우선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바탕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수막 아래로 배출시간이 아닌데도 보란듯이 폐지가 쌓여갔다. 현수막은 완전히 무색해졌다. 아무 때든 종이를 내놓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다시피 했다. 이제는 관리사무실에서 방송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관리원들도 종이를 매일 정돈하는 등 전에 없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종이류를 ‘자유’롭게 배출하는 것이 ‘현실’이니 관리원들이 더 깨끗이 청소해달라는 입주민들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유롭게’ 폐지를 내놓은 이들이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실제로 그런 목소리를 더 높일 공산이 커졌다. 일부 입주민들로 시작된 파행을 정당화하면 안 된다는 반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도 하나의 공동체이자 작은 사회이니 개인의 작은 불편함을 잠시 감수하면 관리원의 노동도 덜고, 공동의 환경도 다시 쾌적해질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무 때든 자유롭게 폐지를 내놓아도 된다는 편리함이 승리해가고 있는 중이다. 정치 행위는 여의도나 용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에서도 자기의 견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언행들이 혼재되어 있다. 어차피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배달문화가 확대되면서 종이박스 등 폐지가 많이 생기는 것이 현실이니 매일 폐지를 버릴 수 있도록 공식화하자는 ‘개인 자유 중심의 현실 관리파’, 주변 환경이나 공동의 질서를 위해 개인의 일시적인 불편은 조금씩 감수해 공동의 원리를 세워가자는 ‘공동체 균형 중심의 변화 지향파’ 간 견해 차이가 있다. 이것을 이른바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보수가 대체로 현실주의적이라면 진보는 대체로 변화지향적인 경향이 있다. 이들이 무 자르듯이 분리되는 것도 아니고 이들 간에는 상호 침투적이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그런 경향이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떤 현실이냐, 무엇으로의 지향이냐이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된 주요 원인이나 이유를 제대로 인식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이다. 아파트 단지에서도 누군가 기존 질서나 흐름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언젠가부터 폐지를 수시로 내놓기 시작하고, 배달 문화로 인해 종이박스가 급격히 많아지는 것이 현실이라며 그에 부화뇌동하는 이들이 생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것이 폐지 더미를 아무 대나 배출해서 단지 환경을 훼손하게 된 중요한 이유이다. 그런데도 이런 원인은 보지 않은 채 관리사무소에서 더 잘 관리하면 입주민들이 편리해지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승리해가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좀 멀리 떨어진 원인을 잘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전체를 위한 누군가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인정하곤 한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으니 국가안보(국방력 강화)가 중요하다고 외치는 이들은 왜 북한과 대치하게 되었는지, 그 대치상황이 왜 더 강고해지는지, 어떻게 하면 서로 대립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일본에 의한 피식민 경험, 외세에 의한 분단, 그 과정에 증폭된 이념 갈등과 전쟁 등 주요 원인은 성찰하지 않은 채, 서로 대치 중인 당장의 현실만 중시하고, 당장 북한을 압도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최선이라고만 생각한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내내 골칫거리이니 이 기회에 그들을 몰아내자는 이스라엘의 근시안적 현실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정작 자국이 팔레스타인에 힘으로 정착해온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테러를 일삼는 이들은 멸절시켜야 한다며 당장의 위험 요소에만 집중한다. 집권하자마자 느닷없이 자유를 강조하고, 개인의 현재 능력을 자극하면서, 불평등한 구조에서 이미 역량이 커진 이들을 더 편드는 현 정권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좀 더 희생하면 국가가 더 강해지지 않겠느냐며 특정 부류의 희생, 그것도 힘없는 이들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한다. 한반도의 분열과 불평등의 주요 원인을 생각하지 않은 채, 미래로 나아가자며 현실의 권력을 긍정하려는 데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폐지가 매일 쌓이면 관리원이 매일 치우면 된다는 당장의 현실 관리파와 비슷한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 이르게 된 주요 원인과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서 무엇을 긍정만 할 수 있겠는가. 불평등한 구조를 해소하지 않고서 어찌 미래를 내다볼 것인가. 우리는 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 그 주요한 역사적, 사회적 원인들에 대해 성찰하는 일은 개인의 일상적 삶에서도 중요한데, 정치를 하겠노라 나서는 이들에게야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그러자고 역사도 공부하고 모두를 위한 윤리도 요구하는 것 아닌가. 과거를 기억하고 모두의 균형적 미래를 위해 현실의 부조리를 개혁하는, 그런 원리에 충실한 이들만 정치 현장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레페스포럼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2024-04-03 | hrights | 조회: 188 | 추천: 5
강국진 / 인권연대 운영위원 ‘파묘’ 제작진은 김덕영 감독에게 명절마다 한우선물세트를 보내야 한다. 그가 좌파 어쩌구 저쩌구 흰소리를 한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파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권좌에서 쫓겨난다고 외국으로 도망간 한민족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고권력자였던 이승만을 오구오구 하는 뇌구조를 가진 분이 비난하는 영화라면 틀림없이 괜찮은 영화일 테니까. 그런 연유로 우리 가족도 오랜만에 주말에 극장에 갔다.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고 싶다. “재미있는 영화 소개해줘서 고맙습니다.” ‘파묘’를 본 감상을 말한다면, 충분히 눈을 즐겁게 하는 영화였다. 천만영화가 될만한 자격을 갖췄다고나 할까. 물론 아쉬운 대목도 여럿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근엄과 진지라는 함정 옆으로 위태롭게 발을 들이미는 느낌이었다. 특히 ‘쇠말뚝’ 얘기는 다분히 헛다리였다는 게 솔직한 감상평이다. 영화 첫장면을 보자. 주인공이 미국으로 가는 여객기에서 스튜어디스와 일본어로 대화를 나눈다. 십중팔구 그 여객기는 일본 항공사 소속일텐데, 일본인 스튜어디스가 일본어로 서비스하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주인공은 맥락도 없고 쓸데없이 진지한 얼굴로 “저 한국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 스튜어디스는 ‘아 그러세요(그래서 어쩌라고)’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다. 사실 영화를 시작하자마자 감독의 속내를 너무 일찍 들켰고, 또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약점 역시 노출해 버렸다. 쇠말뚝은 참 오래된 얘깃거리다. 어떤 이들에게 쇠말뚝은 일제강점기의 비극과 분노를 떠올리게 하는 반면, 어떤 이들에겐 감정에 휘둘린 반일감정이라는 허깨비를 보여주는 소재일 뿐이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짚어보자. 일제가 박은 쇠말뚝? ‘파묘’에서도 분명히 언급하지만 그 쇠말뚝 가운데 99%는 가짜다. 그럼 나머지 1%는? 그냥 허깨비다. 일본이 한반도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단다. 애초에 쇠말뚝 몇 개 박는다고 수천년 이어온 민족의 정기가 끊어진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지만 뭐 그렇다고 치자. 만약 일제가 진지하게 쇠말뚝을 박아야 했다면 둘 중 하나겠다. 몰래 했거나 대놓고 했거나. 둘 다 말이 안된다. 몰래? 한반도를 무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마당에 뭐하러 숨어서 민족정기를 끊는단 말인가. 대놓고 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기는 매한가지다. 대놓고 했다면 그에 따른 예산과 인력을 들였을 텐데. 그런 기록이 없다. 동네방네 조선의 정기를 끊었다고 자랑하고 신문에도 싣고 방송도 해야 모욕감을 줄 수 있을텐데 그런 기록은 하나도 없다. 쇠말뚝 박는데 참여했다는 친일파가 단 한 명도 없고, 자발적으로 쇠말뚝 박아서 칭찬들었다는 사람도 없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풍수에 입각해 민족정기를 끊는다면 뭐하러 좀스럽게 쇠말뚝을 박는단 말인가. 그냥 다이너마이트로 산을 폭파시키거나 바위를 깨버리는 게 훨씬 더 확실한데 말이다. 민족정기가 용솟음쳐 특정 마을이나 지역에 독립운동 지도자가 나온다? 그냥 그 마을을 모조리 파괴해 버리고 주민들을 몰살시키는 게 효과적인 것 아닌가?  사실 쇠말뚝 소동에 대해선 이미 1999년 역사학자 이이화가 <이이화의 역사풍속기행>(역사비평)에서 일침을 가한 적이 있다. 그는 “일제 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산수의 기를 꺾어 인물 배출을 막으려고 산마루 등 요지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말이 있지만, (중략) 이는 그들이 지도 작성 과정에서 산마루에 쇠말뚝을 박아 표지를 삼았던 것”이라고 꼬집었는데, 한마디로 일제의 풍수침략이라는 쇠말뚝은 헛소리일 뿐이라는 얘기다. 지리산 옥녀봉서 또 '일제 쇠말뚝' : 경향신문 2005년 6월 26일 기사 산에 오르는 걸 참 좋아한다. 가장 자주 가는 산은 수락산-불암산인데 둘 다 바위산이고 제법 험한 구간이 있다. 안전을 위해 계단도 있고 줄도 걸려 있다. 그 줄을 연결하기 위해 관공서는 무얼 했을까? 쇠말뚝을 박았다. 바위가 워낙 가파른 곳에는 디딤판으로 쓰도록 관공서에선 무얼 했을까? 쇠말뚝을 박았다. 쇠말뚝에 흥분하는 분들은 자신들이 쇠말뚝을 밟고 잡고 산에 올랐다는 건 왜 기억을 못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삼천리 금수강산 곳곳에 쇠말뚝이 박혀 있는데, 그 덕에 대한민국이 물이 마르고 인재가 말라서 국운이 쇠퇴하기라도 했나? 백두대간 곳곳에 송전탑이 솟아있는데 송전탑을 세울 때는 민족정기를 지키기 위해 나무 말뚝을 쓴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고, 송전탑 때문에 국운이 쇠퇴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쇠말뚝’은 존재한다. 민족의 정기를 반토막내고, ‘호랑이의 허리를 끊는’ 쇠말뚝은 분명히 한반도의 허리에 박혀 있다. 그것도 아주 촘촘하게 155마일에 걸쳐 있다. ‘파묘’가 1000만 관객을 향해 흥행을 이어가고 그 덕분에 쇠말뚝이 다시한번 국민들 입에 오르내리는 속에서도 도깨비불에 취하기라도 한 건지 한반도 허리를 끊고 한민족 정기를 누르고 있는 쇠말뚝, 휴전선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파묘’에서 가장 씁쓸한 건 진짜 쇠말뚝은 외면한 채 그저 일본만 비난하며 손쉽게 끝내버린 선무당 사람잡기가 아닐까 싶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4-03-19 | hrights | 조회: 480 | 추천: 13
김희교 / 인권연대 운영위원 다시 4월이다. 4월은 “갈아엎는 달”이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 대표적인 시인이었던 신동엽이 그렇게 노래했다. 그의 간절함대로 우리는 4월마다 많은 것을 갈아엎었고, 많은 것을 새로 세웠다. 총칼로 국가를 유린하던 군부세력을 갈아엎었고, 문민정부가 군부를 통제하는 틀을 새로 세웠다. 외세가 독재정부를 내세워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던 틀을 무너뜨렸고, 보다 평등한 국가간 관계의 틀을 새로 일궈왔다. 재벌이 노동을 압도하던 관행을 허물었고, 노동하는 자들도 말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4월은 그렇게 늘 꽃 피울 줄 알았다. 봄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오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그랬다. 놀랍게도 모든 영역의 민주화의 꽃들이 시들고 저무는 데는 2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시 마음에 들지 않는 반대 세력은 언제라도 감옥으로 보내는 군부독재 시절이 재현되고 있다. 광인으로 불렸던 트럼프 대통령조차 눈치 보게 만들었던 한국의 위상은 이제 아무도 고려하지 않는 종속적 국가의 지위로 전락했다. 노동하는 자가 말할 수 있는 시대는 고사하고 재벌 총수들 조차 떡볶이를 먹는데 동원되는 시대가 되었다.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연구소는 3월 초 윤석열 정부를 ‘독재화’ 국가로 분류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급속히 반동의 시기가 왔을까.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고유 명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좀 큰 문제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타율적 해방에 따른 미완의 근대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근대를 완성하지 못했다. 미국이나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 위기가 찾아 올 수밖에 없는 체제에 살고 있었다. 전후체제는 미국이 중심이 된 불평등한 수직적 동맹체제인 샌프란시스코체제와 중국이 들어와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인 키신저시스템이라는 양 축으로 만들어져 있다. 미국은 지금 키신저시스템을 버리고 샌프란시스코체제로 회귀하고자 하고 있다. 미국이 회귀하고자 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미국이 중심이 되는 일방적 불평등 동맹체제이다. 수출로 먹고 살아 온 분단된 한국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반동적 회귀전략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 1970년대 미중 간에 구축된 키신저시스템은 한국에게는 하나의 선물이었다. 반공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한국은 미중수교를 바탕으로 정치적 민주화의 물꼬를 텄다. 미중수교에 이어 단행된 한중수교는 경제성장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키신저시스템은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한계를 해체하고 구축된 것은 아니었다. 불평등한 수직적 동맹체제는 고스란히 살아남아 있었다.  불평등한 국가체제 위에서 한국은 정치는 미국에 기대고 경제는 중국에 기댄 채 모래 위에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회귀전략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선택은 분명했다. 미국을 따라 키신저시스템을 버리고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회귀했다. 그동안 확보해놓았던 전략적 자율성을 버리고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올인하며 미국의 첨병 역할을 자처했다. 모든 것은 다시 1970년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다시 북한을 대화조차 불필요한 적성국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그 틈을 활용해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나아갔고 민족국가 지향을 폐기하고 2국가체제를 선언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을 넘어서서 중국과 러시아까지 적대시 해나갔다. 러시아로부터 모든 사업은 중단되었고, 중국으로부터 흑자로 유지되어 오던 성장은 무너지고 적자경제로 돌아섰다.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우리의 주력산업은 미중 양국으로부터 도전받고 있고, 서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져 가계부채는 GDP의 100%를 넘어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빨리 축배를 들었다. 권력을 휘두르는 야수들은 그저 숨죽이고 있었을 뿐인데 우리는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메카니즘을 확보했다고 믿었다. 국가간 불평등 구조는 해체되지 않았는데 마치 온전한 주권을 확보한 것으로 착각했다. 물대포 하나만 등장해도 위태로운 촛불 시위의 성과를 촛불 혁명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민주화의 동력이었던 청년들이 가장 축제를 즐기는 소비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두고도 위기의 시대라 말하지 않고 신세대의 등장이라고 불렀다. 아직 우리는 겨우 30%의 진보세력만 확보되어 있는 불안정한 민주체제일 뿐인데도 말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은 전후체제가 흔들리고 반동세력이 전쟁과 폭력의 20세기로 회귀하고자 하는 위기의 시기이다. 위기의 크기에 맞는 큰 싸움을 해야 할 때이다. 큰 것부터 갈아엎고 다시 세워야한다. 주권의 온전한 확보와 국가간의 불평등 체제로부터 자유를 얻지 않는 이상 나라 안의 민주화는 하루아침에 사상누각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주권과 영토의 확보라는 근대의 완성 없이 진정한 민주화는 불가능하다. 다시 외세가 민족의 운명을 가로막는 외압으로 작동하는 시대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우리의 민주화를 망가뜨리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다시 우리를 전쟁과 폭력의 시대로 몰아가게 쳐다만 보고 있어서도 안된다. 중국이 부상한 힘을 동아시아를 패권 싸움의 전장으로 만드는 데 사용되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된다. 윤석열 정부의 폭거가 어설프게 보인다고 해서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된다. 그 뒤에는 거세되지 않은 폭력적 권력집단이 틈을 노리고 있고, 미국과 일본의 식민주의 세력들이 언제라도 그들의 뒷배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시 국가의 꿈을 세울 큰 그림을 그리는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이 땅의 엘리트들은 이번 4월 만이라도 각성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국면적 위기가 아니라 체제적 위기이다. 여차하면 나라의 운명이 골짜기로 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기이다. 엘리트들은 대오를 형성하고 있는 반동 세력을 앞에 두고 우리 안의 민주의 차이를 말하는데 몰두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싸워야 할 반동세력에 저항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진보언론이라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묻은 때를 탓하는 일은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시와 때가 있다. 지금은 달을 가리킬 때이다. 진보적 정치인이라면 꼭 나여야 한다고 강변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엘리트라면 자신이 원하는 그 자리가 아니어도 국가를 위해 일할 곳은 많다. 모든 정치인은 국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엘리트라면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은 상식을 가진 시민들의 각성이 중요한 시기이다. 결국 국가의 운명은 그들이 결정한다. 넥타이 색깔이나 아파트 가격으로 정치인을 선택하는 국민들이 다수인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국내 문제야 다음이 또 있지만 국가 간 체제는 한번 무너지면 그것이 시스템으로 고착되어 백년을 간다. 우리가 사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면 우리 시민들이 일어서야 한다. 국가의 꿈에 대해 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4월이다. “그날이 오기 까지는, 4월은 일어서는 달”이다. 반동의 역사를 갈아엎을 시기가 왔다. 그날이 올 때까지 함께 일어서자. 우리가 여기서 분열하여 다시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의 뒤안길을 헤맬 수는 없다.    김희교 위원은 현재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3-13 | hrights | 조회: 309 | 추천: 18
정범구/인권연대 운영위원 예전에 비해 시간 여유가 많은 생활을 하다 보니 옛날 일들을 종종 생각하게 된다. 아마 1994년 5월초 즈음이었으니 벌써 30년 전 일이다. 당시 나는 2년여 몸담고 있던 어느 대기업 산하 연구소를 나와 정처 없는 프리랜서의 길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지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각오도 다질 겸 며칠 시간을 내어 동해안을 찾았었다. 돌아오는 길은 설악산 미시령을 넘는 길을 택했는데, 지금은 미시령 밑으로 터널이 뚫렸지만 그 때는 편도 1차선, 왕복 2차선의 좁고 구불구불한 구간을 넘어야 했다. 돌아오는 날은 마침 주말, 토요일이었다. 서울로 가는 차선은 텅텅 비었지만 속초 쪽으로 들어오는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고개 중턱쯤 이르렀을 때 거의 서 있다시피 하는 반대 차선에서 차 한 대가 갑자기 삐져 나왔다. 피하고 말고 할 겨를도 없이 내 차와 정면 충돌했다. 내 차가 한바퀴 빙그르르 돌더니 멈추었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내가 오르막 차선이어서 속도를 내지 못했고, 상대 차도 정체구간에서 튀어나온 것이라서 충돌 강도가 약했다는 것인데 어쨌든 내 차는 엔진룸이 완전히 망가졌다. 상대방 차에서는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어정쩡한 표정으로 나왔다. 추월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앙선을 넘어 와 낸, 이해불가한 사고였지만 막상 사고를 낸 당사자는 멀뚱멀뚱 서 있을 뿐, 뭘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도 모르는 듯 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사과도, 사고처리를 위한 대책도 없이 그냥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차에서 부인인 듯한 여인이 내렸다. 그 여인은 나를 붙잡고 사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친구 부부와 넷이 주말 동해안에 놀러오는 길이다. 이 차는 친구에게 빌려 온 차다. 자기네들에게는 보험이 없다. 그러니 경찰은 부르지 말고 해결하자. 차 수리비는 지불하겠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대포차"에 걸린 셈이었다. 사고로 차량통행이 완전히 막히고, 양 방향에서 울려대는 경적 소리에 정신이 없었지만 그 와중에 사정을 살펴보았다. 먼저 그 여인의 처지가 딱해보였다. 남편은 그야말로 대책이 없는 사람같이 보였다. 특별한 직업도 없는 것 같고 부인의 노력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놀러 온답시고, 그것도 남의 차를 빌려 나섰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안되었다. 보험도 없으면서. 거기다가 말도 안되는 중앙선 침범까지 하고. 정말 아무 대책 없이 사는 사람 같아 보였다. 문제는 그 부인이었다. 부인이 거의 사색이 되어 경찰을 부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해결하셨을지 묻고 싶다. 나는 그 부인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 보여 그녀의 요청대로 하기로 했다. 그녀가 대책 없는 남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을까 하는 오지랖 넓은 걱정까지 보태서 말이다. 그래서 내 차는 다시 속초 시내로 견인되어 가고 정비소에 수리를 맡긴 후 나는 고속버스 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수리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버스 편으로 속초에 가서 차를 찾아왔다. 정비소에 지불한 수리비는 그 부인에게 나중에 돌려 받았다. 그러나 차를 찾으러 다시 속초를 오가며 지불한 시간이나 비용은 그냥 내가 부담하였다. 그런데 정비소에서 에어컨 수리비용을 누락했다고 10여만원 정도를 추가로 요구해 왔다. 돈을 부쳐 주고 나서 그 부인에게 이야기하니 부쳐 주겠다고 하고는 끝내 종무소식이었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쯤에서 그 일은 잊어버리기로 하였다. 돈이 거짓말하는 거지 사람이 거짓말 하겠는가라고 생각하면서. 반전은 6년 후에 일어났다. 그 일은 새카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정확히 말한다면 내가 처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2000년 4월의 어느 날이었다. 하루 종일 선거운동을 하다가 사무실로 들어오니 운동원들이 계란 파티를 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에 삶은 훈제달걀이 널려 있고 사무실 안은 그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여성분이 계란을 몇 십 판 싣고 와서 주고 갔다고 했다. 열성지지자께서 그런 후원을 했나 싶어 바쁜 유세 와중에 계란상자에 적혀 있는 주소로 찾아갔다. 훈제달걀을 취급하는 도매상 같은 곳이었다. 주인을 찾아 인사룰 하려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얼굴이었다. 알고 보니 6년전 미시령 고개 위에서의 그 여인이었다. 그녀는 그사이 일산에 들어와 계란 사업을 시작했었고, 어느 날 길을 지나다 선거벽보에 붙어있는 내 사진을 보고는 사무실을 수소문하여 찾아왔던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잠시 스치듯 지나쳐 봤을 사람인데도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그 여인 역시 미시령에서의 일이 가슴에 오래토록 부담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 모두 참 희한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게 된 일에 감개무량해 하였던 기억이 난다. 이 일은 두고두고 나에게도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원론적 질문에서부터, 손해 보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까지. 어쨌든 그 만남은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말 보다는 훨씬 훈훈한 만남이었다.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까지 떠올렸다면 그건 너무 오버하는 것일테고. 지혜로운 어른들께 들은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이날 이때껏 살아오는 동안 나 모르게 내 목숨 구해주고 도와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바람의 딸’ 한비야가 해남 땅끝마을에서 DMZ까지 도보여행을 하다가 충북 괴산 어느 산골에서 만났던 할머니 이야기다. 6.25때 후퇴하는 어린 인민군 병사를 숨겨주고 치료해 보내줬다는 할머니에게 한비야가 물었다. “그러다가 걸리면 바로 총살인데 무섭지 않았어요?” 이 질문에 대한 할머니의 대답이 바로 위의 말이다. 나 모르는 새에 내 목숨 구해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올해로 창립 9주년을 맞는 장발장은행 사업이 성황(?)이다. 지난 2015년 2월 25일, 돈이 없어서 감옥에 가는 현대판 장발장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설립된 장발장은행은 그동안 1만 5194명의 후원자들로부터 16억 가까운 성금을 모아 1300여명의 장발장들에게 22억 6천여만원을 대출해 줬다. 벌금을 못내 감옥에 가야 했을 사람들 중 1300명을 구했다는 말이다. 모금액보다 대출액이 더 많은 것은 그사이 대출을 갚은 장발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출을 받은 사람 가운데는 대출 신청자에서 후원자가 된 경우들도 있다. 장발장은행이 성황을 이루는 것은 비극이다 장발장은행은 하루빨리 은행문을 닫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다. 특히 윤석열 정권 들어 벌금을 내지 못해 몸으로 때우는 노역장 환형유치는 2021년 2만 2천명에서 2023년 11월 기준 4만 1800명 까지, 불과 2년새에 두 배 가까이 폭증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장발장은행에 대출을 신청해 온 우리 시대 장발장들의 사연은 눈물겹다. 200여년 전 배고픔에 빵 한 조각을 훔쳐 범죄자의 나락으로 떨어진, 소설 속 장발장 이야기가, ‘눈떠보니 선진국’이라던 202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한 논픽션의 현실이다. 후원자들의 사연도 하나하나가 감동적이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넘어 그들의 연대하는 정신이 감동이다. 그들이야 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더불어 숲’을 만들어가는 이들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깊게 연결되어 있다.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내미는 연대와 선행의 몸짓은 내가 모르게 받았던 어느 누군가의 도움과 선행에 대한 답장일 것이다. 정범구 위원은 전 독일대사입니다.
2024-03-06 | hrights | 조회: 790 | 추천: 24
염운옥 / 인권연대 운영위원 <플랜 75>는 죽음 권하는 사회라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일본 영화다. 영화는 삶만큼이나 죽음도 평등하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을 직시한다. 75세가 되면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자격을 주는 법이 통과되고,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어르신들은 알아서 죽어달라는 플랜 75 정책에 아무도 ‘노’라고 외치지 않는다. 죽음을 다루지만 극적인 폭력은 없다. 아무 일 없는 듯 잔잔한 일상이 흐르는 가운데 노인들은 조용히 플랜 75를 상담하고 죽을 날을 정해놓고 위로금을 받아 온천여행을 간다. 다큐가 아니라 픽션이라 다행이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생각한다. 영화의 배경을 이루는 초고령화, 노년 빈곤, 노년 고독, 돌봄노동의 이주화 같은 현상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곧 현실이 될 수도 있겠는데, 아니 일부는 이미 현실이 아닌가, 불안과 우려가 엄습한다.                               영화 <플랜 75> 포스터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75’라는 숫자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일본에서는 ‘75세 이상’을 후기고령자(後期高齡者)라고 부른다. 단지 그렇게 부르기만 하는 게 아니다. 따로 분류되고 다른 제도에 편입된다. 75세가 되면 국민건강보험에서 탈퇴 처리되고, 75세 이상만을 위한 후기고령자의료보험제도에 자동 가입된다. 이 제도는 2008년에 4월부터 도입되었는데 기존 제도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던 본인 부담이 새로 생겼다. 후기고령자의료보험제도에서는 10%를 본인이 부담하고 부양가족 개념도 적용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후기고령자가 일정액(월 1만엔) 이상의 보험금을 새로 부담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초고령화로 증가하는 노년층 의료비 부담을 본인 부담을 늘려 충당하겠다는 제도이다. 감독은 정부에서 처음 후기고령자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 75세를 기준으로 인생이 마지막이라고 단정하는 것 같아 매우 불쾌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특정한 나이부터 후기고령자라고 부르는 것은 비인간적이라고 반대의견도 있었는데 지금은 정착되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마저 없다고 전했다. 만일 초고령화사회 대책으로 극적인 전환을 꾀하는 정책이 생긴다면 75세를 기점으로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감독은 말했다. 영화 <플랜 75>는 잔인한 정책에 익숙해지고 마비되어가는 과정의 무서움을 그리기 위해 시민들의 저항은 일부러 배제하고 순응하는 모습으로만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주인공 미치는 국가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죽어주지 않고 살아 돌아온다. 평생 순응하며 살아온 미치가 국가와의 약속을 어기고 제 발로 걸어 나와 언덕을 오르고 산에 올라서 해를 맞이한다. 허위적 허위적 걸어 산을 오르는 후기고령자 여성 미치의 모습은 우아하고 강단이 있다. 합법적 살인의 현장에서 살아 나오는 미치에게서 일말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면, 히로무의 행동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삶에 대한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일깨운다. 영화는 플랜 75 정책의 대상이 되는 노년층뿐만 아니라 국가에 의해 이 정책의 실행자로 내몰리는 청년세대의 심적 동요와 고뇌를 함께 그린다. 후생성 인구관리국에 근무하는 히로무는 이 정책을 실행하는 일선 상담 공무원이다. 오랫동안 소식을 몰랐던 삼촌 유키오가 플랜 75를 신청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말리지 않는다. 친족 상담은 껄끄러우니 담당자를 바꾸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실행 당일 삼촌을 차로 배웅할 때까지도 담담했던 히로무는 결국 차를 돌려 삼촌에게로 향한다. 이미 사망한 삼촌의 시신을 빼내오는 히로무. 삼촌은 이미 죽었으니 포기하고 다시 나올 수도 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시신을 꺼내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플랜 75 죽음 이후 시신 처리 과정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정부는 예를 갖춰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 모신다고 선전했지만 히로무가 우연히 본 서류에는 시신이 폐기물로 처리되는 정황이 적혀 있었다. 쓰레기가 되는 시신이라는 사실은 만남이 거듭되면서 조금씩 삼촌과 가까워져 가던 조카의 마음이 일렁이다 범람하게 만든 마지막 한 방울이 되지 않았을까? 삼촌과 함께 살아갈 수는 없어도 죽음 이후 시신은 거둬야겠다는 마음이 히로무를 움직이지 않았을까? 묵묵히 제도를 실행하던 말단 공무원의 뒤늦은 저항은 죽음 이후 존엄해야 할 권리를 일깨운다. 하찮은 죽음은 함부로 취급받은 삶의 결과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죽음을 존엄히 여기지 않는 사회는 삶도 함부로 대한다. 인간은 모두 죽지만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고 죽음 이후에 존엄할 권리가 있다. 영화 <플랜 75>가 건네는 말이다. 염운옥 위원은 경희대학교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2-29 | hrights | 조회: 520 | 추천: 11
장경욱 / 인권연대 운영위원 북에 대한 위협은 전혀 알지 못하고 감각조차 없는 곳이 있다. 북으로부터의 위협은 시도 때도 없이 세뇌된 사람들이 즐비한 이 곳에서 최근 북 최고인민회의에서 한 북 지도자의 새 대남정책에 대한 시정연설에서 특별한 위기나 변화를 느끼기는 사실 어렵다. 북의 새 대남정책의 핵심은 대한민국은 동족이 아니라 제1의 주적에 해당하는 타국이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무력으로 점령, 편입(통일)하겠다는 것이다. 사진: Vehicles carry missiles during a military parade in Pyongyang. Sue-Lin Wong/Reuters 이곳에서 북이란 존재는 늘 기습남침으로 무력 적화통일을 기도하는 주적이었기에 기실 달리 느껴질 만한 게 없어야 정상이다. 북의 입장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관련단체들을 폐쇄하고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하였다고 한들 이곳에서야 북의 평화통일 정책은 단 한 번도 존재한 적도 없고, 오로지 통일전선전술에 따른 평화협정 체결,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철수를 위한 대남선전선동 공세요, 한반도 적화통일을 위한 기만형 위장평화공세로 치부되어 왔을 뿐이다. 혹시라도 이곳에서 북의 대남정책이 새롭다고 여겨지는 이들이 있다면 국가보안법의 먹잇감이 될 소지가 다분하기에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존에는 북이 대한민국을 동족관계, 동질관계에서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규정하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대화와 협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자 노력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북의 새 대남정책에 특별한 반응이 없는 반면, 제국의 비둘기파들 사이에서는 올해 한반도 핵전쟁 위기의 목소리가 드높다. 북미 핵협상의 고비마다 북을 수시로 오가며 북과 협상에 임했던 로버트 갈루치(1994년 북미제네바 합의 당시 핵협상 담당), 시그프리드 헤커(세계적 핵물리학자로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 소장 역임, 총 일곱 차례 북 영변 핵시설 방문), 로버트 칼린(미CIA 동북아 담당 국장, 대북 협상 수석 고문, 30회가량 북 방문) 등이 올해 한반도 상황이 6·25전쟁 직전만큼이나 위험하다며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외교안보전문매체 또는 북 전문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이구동성으로 올해 한반도 핵전쟁 발발 가능성이 심상치 않다며 북미관계정상화 추구를 통해 한반도 핵전쟁 발발 위험 수위를 낮추기 위해 진지한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 최고의 대북전문가로 통하는 미 대북협상파들의 한반도 핵 전쟁위기 경고에도 이곳에서의 파장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극우보수세력을 대표하는 국방장관은 미 대북협상파의 ‘한반도 전쟁 위기설’은 지나치게 과장된 반응이라고 일축한다. 북이 진짜 전쟁을 하려 한다면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을 대량 수출할 수 있겠냐며 북의 허세성 공갈위협에 불과한 대남심리전에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한반도 전쟁 위기설’을 부인한다. 한편으로 ‘한반도 전쟁위기설’을 부인하는 이곳의 극우보수세력의 심리 근저에는 한반도 전쟁 위기가 도래하더라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믿는 구석이 있다. 한미일 군사동맹의 철통같은 억지력이 구축되어 가일층 강화되고 있고, 나아가 올해 하반기부터는 한반도 유사 시 미국의 핵을 활용하는 방안을 포함한 한미연합연습을 시행할 정도로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실질적으로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힘의 확고한 우위를 믿는 극우보수세력은 연일 한반도 유사 시 즉(즉각), 강(강력히), 끝(끝까지) 응징을 외치며 적 지도부를 제거하고 정권의 종말을 고하겠다고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 그 자신만만함에 기반한 극우보수정권의 강경대응 노선이 북의 새 대남정책과 맞닿아 갈등과 충돌을 불러와 끝내 한반도 전쟁위기를 기어이 몰아오지 않을까 제일 두렵다. 북의 핵미사일 무력의 급속한 성장과 고도화가 지속되고 이러한 성장세가 우리 눈앞에 현실이 된 상황에서도 비공식적 핵보유국을 상대로 오로지 ‘즉, 강, 끝’을 외치는 극우보수세력의 인식과 태도야말로 아둔함 내지 허장성세 아닐까 매우 우려스럽다. 미국의 대북협상파들의 경고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여 보기를 바란다. ‘한반도 전쟁 위기설’ 경고에 대응해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올해 한반도 전면전의 위기를 상정하고 북미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책 모색을 주장하는 미국의 대북대화파의 합리적 견해를 수용하는 자세로 우발적 충돌과 국지전을 미연에 방지할 국내외 여론 조성이 시급하다. 서해의 영해경계선을 둘러싼 국지전 발생의 우려가 크게 대두된다. 북의 새 대남정책에 따라 북이 헌법에 영토조항을 명시할 경우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과의 충돌은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영해로 고수하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는 북과의 갈등은 물리적 충돌과 국지전 발생으로 이어지고 한반도 전면전을 불러오는 뇌관과 같다. 평화적 해법은 요원하다. 이곳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영해선이 아니므로 대화와 협상에 의해 명백히 경계선을 확정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조차도 이적시되고 종북몰이의 대상이나 국가보안법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한반도 핵전쟁 발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의 금기를 넘어서, 국지전과 전면전의 뇌관이 될 수 있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해법이 절실하다. 강대강의 대결로 충돌을 불러오기 전에 그 해법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하므로 방법은 오로지 대화와 협상 밖에 없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무수한 평화적 해법의 선택지를 창출하는 것이 한국 민중의 당면 사활적 과제임에도 국가보안법은 한국민중으로 하여금 이러한 평화적 문제 해결을 위한 가능성에 접근조차 할 엄두도 낼 수 없도록 억압하고 있다. 한반도 전쟁 위기설을 잦아들게 해서 전쟁의 참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민중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한반도 전쟁 위기 문제의 당사국의 주권자로서 남과 북 또는 국제적 회담을 통한 평화적 해법 마련에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에 짓눌려 한반도 전쟁의 위기가 시시각각 엄습함에도 언제까지 북맹과 사대에 최면이 걸린 극우보수세력의 아둔함과 허세에 맞장구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4-02-14 | hrights | 조회: 637 | 추천: 3
오항녕 / 인권연대 운영위원 적금도 갯바닥에서 돌아오는 길, 박동심(78) 어매가 그 집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발길을 멈춘다. 마치 내 집처럼 들어서서 주인을 부를 것도 없이 마당가에 놓인 바구리에 반지락을 가만 덜어낸다. 그 기척에 방문이 열린다. “오매, 함씨야! 그 고생을 하고 나헌티 갈라주러 왔소?” “오매, 함씨야! 배고파겄소.” “오매, 함씨야! 안 추왔소.” 함씨야를 연발하는 남춘임(71) 어매의 말속엔 고마움과 안쓰러움이 실린다. “어짜쓰까. 허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헌 함씨가 하리내(하루종일) 이걸 파갖고 날 갖다주네.” “많애 많애, 이것도 많애”라고 덜어내는 손과, “아녀 아녀”라며 한 주먹이라도 더 보태주려 안달하는 손이 반지락 바구니 위에서 부딪친다. “내가 짝대기 짚고 걸어댕긴께 갯것(갯벌 일)을 못해. 나이 조까 덜 묵어서는 그래도 팠어. 3년 전까지는 팠는디 인자 못가. 꿀땡이가 쪼빗쪼빗 질어갖고 있어.(굴이 뾰족뽀족 길어) 자빠져서 손 짚어불깨비(짚어버릴까봐) 못가.” “요 사람은 바닥에 못 가. 그런께 주제. 나 혼차 묵으문 안 넘어가. 사람은 갈라 묵고 살아야제. 우리 친정 어무니도 그러코 살았어. 그런께 나도 보고 절로 배우고.” “오매오매 이 함씨야. 바람도 찬디 언능 가서 푹 눕소. 잘 묵을라요.” 전라도닷컴 2023년 5월호 위 내용은 구독 중인 《전라도닷컴》 2023년 5월호에 실린 내용이다. 두 할머니가 사는 적금도는 여수 아래 남해 바다에 있는 섬이다. 유명한 여자만 초입에 있다. 다 알겠지만 여자만은 ‘Lady only’가 아니라 ‘여자만(汝自灣)’이라는 해역을 말한다. 적금도는 이제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니 섬이 아니라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사람이 다리 놓는다고 섬이 섬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적금도 오른편이 여수시인데, 돌산도 아래 금오도가 있다.  앞서 소개한 함씨들, 그러니까 할매, 할머니들이 나누는 대화에 나오는 반지락은 바지라기, 바지락이라 해서 칼국수나 봉골레 파스타에 넣어먹는 그 조개를 말한다. 거의 국민조개가 아닐까 싶다. 반지락, 빤지락이라고 현지에서 부른다. 반지락은 2~4월이 제철이라고 한다. 지금이 2월, 위 함씨들 인터뷰를 딴 것이 바로 4월 17일이었다. 곧 지금이 한창 제철이라는 것이다. 남춘임 할머니가 거동이 쉽지 않아 반지락을 캐지 못하나보다. 박동심 할머니는 캐오던 반지락을 남 할머니에게 나누어주는 모습이다. 반지락 조개와 반지락탕 2011년, 당시 이명박 정부의 농림수산식품부는 어촌 지역주민에게만 허용된 맨손 어업에 대기업도 진출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갯벌 양식 어업을 육성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그동안 어촌 지역민이 해왔던 바지락 채취 등을 대기업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농림수산식품부는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로 바뀌었고, 수산 부문은 해양수산부로 이관되었다. 이 법령은 의원입법으로 추진되었지만, 농림수산식품부가 발주한 연구보고서에 기초하고 있었다. 어업 전문가들은 기업의 골목상권 장악에 빗대며 갯벌 민영화로 어촌도 어장도 망가질 거라고 우려했다. 그동안 금지됐던 어업회사 법인에 임대차를 허용하고 지역 주민이 참여한 기업에는 지분참여율을 최대 90%까지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한마디로 기업의 진입장벽 완화가 목적이었던 셈이다. 갯벌 개발 법령 폐기 농촌이나 어촌에 고령화로 심화되고 있고, 어업 인력난 역시 과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이 갯벌 사유화의 방향이어야 할까? 지역주민의 맨손 어업 중심이었던 어촌이 소수의 법인 기업에 의해 독점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공유수면이라는 공공자산, 공유지의 사유화를 의미한다. 정부는 자율관리 어업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어자원 남획, 과잉시설 설치, 경쟁조업을 막지 못한 정부가 어민 스스로 공동체적 규제를 통해 어업자원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민간기업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니 결국 정부 자체가 정책 혼선을 초래한 셈이었다. 적금도 갯벌 굴따기 헌데 이 법령과 사안을 살펴보던 중에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여수 적금도 어민들은 이미 지난 1960년대 민간회사와 마을어장 관리 위탁 계약을 맺었다가 낭패를 당했던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임대료를 받고 민간회사에 어업권을 양도한 적이 있었다. 근데 위탁관리업체는 임차료 회수와 수익창출을 위해 남획을 서슴지 않았다. 결국 어장 훼손으로 이어져 주민들은 10년간의 법정 소송을 거쳐 2006년에야 다시 어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다 2011년 다시 이명박 정부에 의한 갯벌 사유화가 추진된 것이다. 국회의원 임기 만료로 이 법은 폐지되었지만, 아마 이 소식을 접안 여수, 남해 어민들은 악몽이 떠올랐을 것이다. 지금은 2022년 제정되어 2023년 시행된 ‘갯벌 및 그 주변지역의 지속가능한 관리와 복원에 관한 법률(약칭 갯벌법)’으로 갯벌의 관리, 복원, 생물다양성 유지를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막 봄이 오기 시작하는 2월이면, 적금도 가까이 있는 금오도가 참 좋아서 몇 번 비렁길(해안절벽길)을 다녀온 적이 있다. 올해는 적금도에 가서 두 함씨 댁을 가보려고 했는데 못 갈 듯하다. 다만 두 함씨의 지난해 인터뷰를 통해서 이 땅을, 이 사회를 지탱하는 작지만 단단한 ‘서로 돕는 삶’을 기억한다. 함씨들, 오래 사십시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4-02-07 | hrights | 조회: 228 | 추천: 8
이찬수 / 인권연대 운영위원 팽목항(진도항)의 노란 리본과 빨간등대가 시야에 들어오기 직전, 마음은 기대감에서 긴장감으로 바뀌었다. 어여 가서 보고 싶다는 기대감과 단박에 대면해도 되나 하는 머뭇거림이 교차했다. 마음보다는 몸이 빨랐다. 발걸음은 저절로 빨간등대로 향했다. 벌써 10년... ‘가만히 있으라’, ‘움직이지 말고 객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을 믿고 기다리던 304명의 심장이 처절하게 할퀴어진 곳, 그곳이 저 섬들 너머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조여오는 곳, 긴 세월에 낡은 노란 리본들이 매서운 바람에 휘날리는 곳, 한겨울 진도 팽목항이었다. 팽목항 등대 선착장에서 자동차 여러 대를 싣고 제주로 떠날 채비를 하는 대형 페리호와 그 옆에서 녹슬어가는 허름한 컨테이너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0416 팽목기억관’... 녹슨 컨테이너 앞에서 잠시 주저했다. 가라앉아가는 세월호를 TV로 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당시 ‘대통령의 7시간’으로 분노하던 10년 전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그때 현장으로 달려가지 못한 부끄러움이 겹쳐서였다. 작은 용기를 내어 살며시 두 번의 문을 열었다. 눈에 들어온 304명 청춘들의 사진... 그 앞에서 또 울컥했다. 상주하는 이 없어 더 허름해졌지만, 컨테이너 ‘기억관’ 내부의 마음은 그때 그대로인 듯했다. 팽목항에 있는 0416팽목기억관 팽목항에 소규모나마 기억의 공간을 공식적으로 만들어달라는 유가족과 시민의 호소를 정부는 외면해왔다. 낡고 작은 컨테이너 기억관은 시민이 가까스로 지켜오고 있었다. 그 대신 정부는 팽목항 도보 10분 거리에 화려하고 깨끗한 ‘진도국민해양안전관’과 유스호스텔을 지어놓았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의미를 지닌 사람 형상의 거대 조형물과 함께... 각종 해양 관련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훈련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안전관 정면에 설치된 야외수영장에는 아연실색했다. 유스호스텔 단체 이용자나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물놀이 시설 같았고, 안전훈련과는 상관없어 보였다. 도보 10분 거리에서 비바람에 삭아가는 컨테이너 ‘0416 팽목기념관’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전승해온 상징적인 장소 바로 옆의 물놀이장은 생뚱맞은 정도를 넘어 거의 ‘만행’처럼 여겨졌다. 국가가 참사를 기억하는 방식이 그 수준에 머문다는 것은 부끄럽고 화나는 일이었다. 팽목항에서 도보 10분거리에 있는 진도국민해양안전관. 건물 앞에 수영장이 설치되어있다 이런 씁쓸한 느낌을 가슴에 담고 목포신항만으로 향했다. 차가운 바닷속에서 3년, 지상에서 비바람을 받으며 7년을 버티고 있는 세월호 선체가 궁금해서였다. 세월호를 직접 보려면 ‘세월호 목포신항만 거치소’에서 신분증을 제출하고, 정보공유 동의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기에 ‘거치소’의 위치 파악차 휴대전화 ‘네이버 지도’를 검색했다. ‘네이버 지도’에서는 ‘세월호 목포신항만 거치소’가 아닌 ‘세월호 목포신항만 거치안내소’가 나왔다. 같은 곳이려니 했다. 그런데 운전하며 지도의 방향을 자세히 보니 온라인 지도가 가리키는 곳은 목포시청 내 안내 시설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이번엔 ‘카카오맵’에서 ‘세월호 목포신항만 거치소’를 검색해 주소를 확인한 뒤 핸들을 돌려 ‘거치소’로 향했다. 가며 생각했다. ‘네이버 지도’에 ‘거치소’가 아닌 ‘거치 안내소’만 검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알고리즘에 따른 안내라고 하기에는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세월호의 기억을 지우려는 숨은 전략이 일부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렇게 방향을 돌려 ‘세월호 목포신항만 거치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첫인상은 씁쓸했다. 자동차 없이는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인데, 임시주차장이나 간이주차장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거치소 입구에 잠시 주차하고 철제 컨테이너 형태의 거치소에 문의하려는 찰나, “정문 근처에는 차대면 안 된다”, “다른 곳에 대라”는 큰 소리부터 들려왔다. 한적한 곳이기는 했지만 대로변에 사실상 ‘불법 주차’를 하게 만들었다. 내가 문의한 시간이 12시 58분, 출입은 1시부터 가능했으니, 불과 2분 전이었다. 그런데 거치소에서는 ‘시간 지켜 오라’는 타박부터 했다. 2분을 기다려 1시에 신분증을 맡기고 전화번호 등 정보공유에 동의를 하고 낡은 노란 리본이 줄줄이 매여있는 연두색 펜스를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는 임시주차장을 만들 공간이 충분했다. 그러나 주차장 같은 것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이것을 보면서도, 시민의 접근을 가능한 제한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닐까, 세월호의 기억을 흐릿하게 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의구심을 키우게 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세월호는 거치소 입구에서 먼발치에 떨어져 있었다. 접근 가능한 곳까지 다가가 보니 세월호는 ‘기억’이나 ‘기념’은커녕 ‘전시’의 대상도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놓여있었다. 세월호에서 뜯어져 나온 온갖 부품들이 하나같이 고철이 되어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목포신항만에 있는 세월호와 그 파편들 세월호는 펜스에 막혀 몇십 미터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는 거대한 고철처럼 삭아가고 있었다. 왜 이리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빨리 녹슬고 삭아서 더 이상 지상에 두기 곤란하다고 말하고 싶을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것일까. 갑자기 ‘우키시마마루호’ 사건이 생각났다. 1945년, 고향인 조선으로 돌아가려던 수천 명의 조선인을 수장시킨 ‘우키시마마루호’를 진상조사는커녕 바닷속에 9년간 방치했다가 분해해 고철로 팔아넘긴 70년 전 일본 정부처럼 하려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저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그렇게 세 번째 의심이 들었다. 세월호. 녹색표시 위와 뒤에 있는 것은 TMC(심해광물탐사 회사)의 배이다. 세월호 관련한 어떤 작업을 하는지 멀리서 보면 한 배처럼 보인다. 목포신항 주변에는 드넓은 땅이 많았다. 그곳에 ‘세월호 기억공원’을 제대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누워있는 세월호에 지붕이라도 씌워 부식을 늦추면서 아픈 야만의 역사를 기억하도록 개방형 공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가슴 아픈 폭력과 무책임의 역사인 세월호 침몰 사건을 두고두고 기록하고 기억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진도의 팽목항에는 작은 기억관이라도 공식적으로 만들어 4.16연대 같은 곳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국가 차원에서의 해양안전문화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계기였던 세월호 사건을 희생자, 피해자, 함께 아파하는 시민의 눈높이에서 기억하는 일이 비할 수 없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징적 공간인 팽목항에 설치한 물놀이장은 철거해 마땅하다. 해양안전관이 행여라도 세월호 사건을 외면하는 야만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민이 기억하고 체험해야 할 4월 16일의 아픔을 그저 안전시설로 대체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레페스포럼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2024-01-30 | hrights | 조회: 392 | 추천: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