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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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희수(변호사), 설경(변호사),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임아영(경향신문 기자),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2022년 대통령 선거가 난데없이 굿판이 돼 버렸다. 명색이 대통령 후보 부인, 그러니까 영부인을 꿈꾼다는 사람이 “도사”니 “무당”이니 하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라는 게 드러났다. 거기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극도로 친하다는 무슨 법사니 도사니 하는 사람들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보니 개판과 굿판 중 어느 게 더 좋은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로선 그 법사들의 신통력을 검증할 방법도 없고, 王이 될 생각도 없으니 손바닥에 낙서할 일도 없겠다. 더구나 똥침이란 함부로 장난치다 큰일난다(그리고 보복당한다)는 건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법인데 무려 자기한테 했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런 와중에도 매우 걱정되고도 끔찍한 건 따로 있다. 국민의힘이 네트워크본부를 허겁지겁 해산하는 계기가 됐다는 자칭 건진법사가 주변에 만들어준다는 부적에 눈을 의심했다. 한눈에 봐도 ‘천부경(天符經)’ 81글자를 붉은색으로 써놨다. 이것만 봐도 자칭 건진법사가 유사역사학(사이비역사학이라고도 한다)에 깊숙이 치우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겠다. 천부경이란 게 등장한 건 대략 일본 식민지로 떨어졌던 시기였다. 대종교에선 천부경이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세상의 이치를 표현한 신성한 경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나. 정치를 위해 역사를 쪼물딱거리는건 언제나 동티가 나게 돼 있다.  천부경은 유사역사학의 최종 보스 같은 이른바 ‘환단고기’에 실려있다. 환단고기는 1911년에 계연수라는 사람이 편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천부경은 계연수가 1916년 묘향산 암벽에서 찾아내 탁본을 하면서 찾아낸 거란다. 1911년에 편집한 책에 들어있는 걸 어떻게 1916년에 암벽에서 찾아냈다는 것일까. 이미 거기서부터 도대체 앞뒤가 맞질 않는다. (환단고기 신봉자들과 고대사 시각이 가장 유사한 이북 정부가 묘향산에서 천부경을 찾아내 발표하지 않는 건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천부경이란 이미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믿을 수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단재 신채호가 ‘조선사연구초’(1929)에서 “역사를 연구하려면 사적 재료의 수집도 필요하거니와 그 재료에 대한 선택이 더욱 필요한지라… 서적의 진위와 그 내용의 가치를 판정할 안목이 없으면 후인 위조의 《천부경》 등도 단군왕검의 성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때 천부경을 경전으로 떠받드는 대종교에 몸담았던 신채호조차 이 정도였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자칭 건진법사의 천부경 부적이 더 위험한 건 이게 단순히 무당 얘기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천부경이, 그리고 천부경이 수록돼 있는 환단고기에 빠진 이들이 선출되지도 않고 감시받지도 않는 권력을 손에 넣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목격했다. 박근혜는 2013년 광복절 축사에서 환단고기를 인용해 역사학계를 충격과 공포에 빠트린 적이 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올바른 역사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국정교과서 소동이었다.  어떤 분들은 환단고기니 천부경이니 다 ‘논쟁’의 영역에 있는 것이고, 다양한 학설 가운데 하나이니 ‘취향 존중’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유대인들이 세계정복을 꿈꾸고 있다는 괴문서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임나일본부설을 어떤 식으로 퍼뜨렸는지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역사를 조작하는 건 따지고 보면 현실을 조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천부경이나 환단고기는 고대사 연구를 위한 사료가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를 횡행하는 유언비어의 그늘을 연구하는데 유용한 현대사 자료일 뿐이다.  유사역사학 혹은 사이비역사학을 신봉하는 이들이 위험한 건 이들이 단순한 옆길로 새버린 역사매니아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이 지극히 위험하고 퇴행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올바른 역사학이란 이름으로 다양성과 토론조차 인정하지 않는 파시즘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환단고기를 장려했던 게 박정희-전두환처럼 국정교과서를 강요하던 군사독재정부였다.  게다가 환단고기 신봉자들은 부동산에 관심이 너무 많다. 이거 매우 위험하다. 이분들은 헬조선의 근본 원인을 ‘우리나라가 땅이 좁아서’라고 판단한다. 이분들은 한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정도 영토는 가져야 호연지기를 갖는 국민이 된다는 생각을 버리질 못한다.(그러면서도 중국 사대주의를 극렬 규탄한다) 그러다 보니 틈만 나면 드넓은 만주벌판 타령이고 치우천황이니 연개소문이 중국을 박살 내고 중국 땅을 정복했다며 정신승리에 여념이 없다.  이분들의 사고방식은 말 그대로 '지금 우리는 달동네에서 찌질하게 살지만,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는 만석꾼이었다'는 열등감 덩어리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금 기준을 수천 년 전에 그대로 갖다 붙이는 걸 특기로 하기 때문에 2천 년 전 한사군을 현대의 식민지와 등치시키고, 2천 년 전 한사군이 평양에 있다는 걸 지금 현재 평양이 중국의 잠재적 영토라는 식으로 생각해버린다. 그러니 2천 년 전 한사군이 평양에 있다는 건 민족반역자나 할 소리라 생각하고, 한민족 영토확장을 위해 한사군이 요서 지방에 있어야 한다고 우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해외 부동산 투기를 청동기시대까지 확장하는 땅따먹기 놀이를 위해서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반도 구석에 쳐박힌 달동네도 아니고 찌질한 나라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신승리 사관'과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집 크고 땅 넓었다'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굳이 천부경이나 환단고기 같은 짝퉁이 없어도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있는 국민들이다. 물론 선무당이나 똥침도 필요없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2-01-19 | hrights | 조회: 358 | 추천: 5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탈북자 간첩 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이 억울한 수형 생활을 마치고 뒤늦게 상담을 요청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위 간첩 조작 전문변호사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판결문을 읽어보자마자 단번에 단순 탈북자를 간첩으로 조작한 것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탈북자 간첩 조작의 진상을 규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북 악마화와 북맹을 조장하는 국가보안법의 지배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 민중은 국가정보원과 안보경찰 등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날조하고 있는 탈북자 간첩조작을 진실로 믿기 쉽다. 국가보안법의 축적된 세뇌 효과에 기인한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피해자 유우성, 유가려 남매) 및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조작 사건(피해자 홍강철씨)의 국가보안법 무죄 확정판결을 계기로 수많은 탈북자 간첩 조작사건의 진상규명에 유리한 환경과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안이한 판단이었다.  재심 무죄를 위해 큰 기대를 갖고 찾아온 탈북자 간첩 조작의 피해자들에게는 신속한 진상규명과 피해회복의 길은 갈수록 요원한 일이 되고 말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자고 희망을 설파하고 있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지쳐버린 피해자 중에는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에 의한 탄압을 이유로 정치적 망명을 선택한 분도 있다.  재심 무죄를 위한 유리한 국면이 열리기는커녕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을 앞두고 국가정보원과 안보경찰이 합작하여 조작한 가짜 탈북자 간첩 사건이 생기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다.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왜냐면, 북중 국경에서 북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되는 범죄(밀무역, 인신매매, 대북송금, 비법도강, 비법통화 등)를 저지른 상습 범죄자를 보위부 비밀공작원으로 조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에서 비법월경이나 비법통화 등 탈북브로커에 종사한 범죄경력자를 북의 경찰이 그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정보원으로 활용한 것에 불과하다. 북에서 단속 경찰에게 범죄정보를 제공하는 범죄자 정보원은 ‘보위부 스파이’, ‘보위부 눈깔’로 불린다. 한국에서 조직폭력, 마약 범죄자 등을 단속하기 위해 범죄 전과자들의 편의를 봐주며 범죄정보를 수집하는 ‘망원’으로 관리하는 것과 같다. 사진 출처 - <뉴스타파> 애니매이션 시사 다큐멘터리 ‘자백 이야기’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조작사건(피해자 홍강철씨)에서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조사관의 증언이 위와 같은 사실을 확인해 준다.  “우리 한국에서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그렇게 정보원을 하다가 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탈북자 조사를 하다 보면 정보원을 하다가 왔다는 사람이 진짜 많습니다. 많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크게 중하게 생각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조작사건(피해자 홍강철씨)을 계기로 그동안 수많은 간첩을 조작해왔던 상투적 수법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보위부 스파이’, ‘보위부 눈깔’을 보위부 비밀공작원으로 조작한 사건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어느 탈북자 간첩 조작사건의 재판장과 피고인의 대화가 웃프다.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문 : 북에서 생계를 어떻게 유지했나요. 답 : 탈북브로커 일을 하면서 탈북하겠다는 사람들을 탈북도 시켜주고 돈 송금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생활했습니다. 문 : 피고인이 보위부로부터 그 당시 부여받은 임무가 국경에서 탈북브로커 일을 하는 사람들을 파악해서 보고하는 임무인데, 오히려 피고인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인가요. 답 : 예, 했습니다.”  피고인은 유죄판결을 받고 수형 생활을 마쳤다. 현재 재심 준비 중이다. 재판장과 피고인 사이의 우픈 대화는 어느 법정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악마와 같은 탈북자 간첩 조작의 메커니즘은 굳건하다. 대명천지에 문명국가에서 존재할 수 없는 가짜 탈북자 간첩이 국가보안법 유죄 판결문에 나온다.  “고난의 행군 이후 재정이 부족해 공작원에게 지원할 공작금이 없어 탈북자로 위장한 여간첩을 중국에 파견해 성매매, 음란 채팅, 유흥업소에 종사시키거나 인신매매로 중국의 농촌에 팔아 공작금을 마련하여 활동케 하였다”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을 통해 중국에서 위조달러와 마약을 유통시키며 외화벌이를 하였고, 중국에서 한국인들과 탈북자들을 납치하여 북송하였다”  “국정원 등의 합동신문을 통과할 목적으로 뇌의 기억을 마비시키는 거짓말 탐지기 회피용 밴드 붙임 약물을 개발하여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을 남파시켜 탈북자 합동신문센터에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 통과 후 한국사회에 정착하여 간첩 활동을 하려고 했다”  한국 민중은 위와 같은 판결문의 뒷배가 되는 파쇼악법 국가보안법의 살기등등한 폭압과 위세에 짓눌려 탈북자 간첩 조작사건의 허위자백을 검증할 의지도, 능력도 상실한 지 오래다.  지금 이 순간도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탈북자 위장 간첩을 파견하는 기괴하고 악마화된 북을 인식하도록 한국 민중은 수시로 강요, 세뇌당하고 있다. 한국 민중은 탈북자 간첩 조작사건의 국가보안법 유죄 판결문 보도내용을 진실로 믿어버리며 동족에 대한 공포와 불신감을 키우며 동족을 혐오하고 증오하도록 내몰리고 있다.  한국 민중이 국가보안법의 지배력 앞에 저항하지 못하고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탈북자 간첩 조작의 진상규명은커녕 가짜 탈북자 간첩은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다. 한국 민중이 국가보안법 노예의 사슬을 끊고 국가보안법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역량을 갖추어 나갈 때 비로소 국가정보원과 안보경찰 등이 날조하는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는 탈북자 간첩 조작은 근절될 것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1-12-29 | hrights | 조회: 343 | 추천: 5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김씨의 결혼 전 사생활은 검증의 대상도 아닐뿐더러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일이다.”  “김씨가 유흥업소 접객원 ‘쥴리’로 일했다는 주장은 여성 혐오가 어떻게 정치적 동력으로 활용되는지를 보여준다.”  지난주 하루이틀사이로 <한겨레>에 실린 사설과 칼럼의 일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의 이른바 ‘쥴리 의혹’은 검증 대상이 아닌 사생활이며, 여성 혐오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 상당히 많은데, 나는 그 배경에 특정한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생활이 아니라 권력형 비리 의혹이다  ‘쥴리 의혹’이 왜 단순한 사생활이 아니라 공적인 주제인지부터 (다소 지겨울 수 있겠지만) 다시 따져 보자. 이른바 쥴리 의혹의 개요는 재벌(조남욱 삼부토건 회장)과 검찰(양재택-윤석열)의 결탁에 여성(김건희)이 동원됐으며, 김건희는 이렇게 소개받은 검찰의 권력을 뒷배 삼아 엄마 최은순(윤석열의 장모)의 사업을 도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대택씨를 비롯한 숱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법률적 다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다. 만약 피해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희대의 권력형 비리가 되는 셈이다. 검찰 권력을 활용한 스캔들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의 주인공들이 대통령 부부가 되겠다는데 이걸 사생활이라고 묻어버려도 될까. 윤석열이 대통령 선거에 나서지 않았더라도, 검찰총장이 아니라 평검사였더라도, 끝까지 파헤쳐 진실을 밝혀야 할 공적 의제임이 분명하다.  양재택 전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와 김건희씨의 특수관계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고, 김건희씨가 양 검사에 이어 윤 검사와 사귀게 되는 과정에 조남욱 회장의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려운 정도로 취재가 이뤄져 있다. 이들의 만남이 시작된 장소가 라마다르네상스호텔 6층에 있었다는 조 회장의 특별연회장인지, 같은 호텔 지하에 있던 나이트클럽 볼케이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 호텔에서 ‘쥴리’라고 불리는 여성을 봤다는 익명과 실명의 인터뷰가 잇따라 나오고 있고, 이들의 기억은 김건희씨의 인상착의나 이력과 거의 일치한다. 물론 김건희가 쥴리였고, 조남욱이 양재택과 윤석열을 소개해준 것이라고 100%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더 묻고 싶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진실을 밝히기 위한 취재에 나서야 할까, 아니면 사생활이라고 보호하고 여성 혐오라고 화를 내야 할까. 나는 당연히 취재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건희가 ‘위조인생’을 살았던 이유  김건희씨는 이른바 ‘쥴리 의혹’에 대해 석사, 박사학위 받느라 바빠서 “쥴리 하려고 해도 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로 번역한 이른바 ‘유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 등 엉터리 박사라는 점이 드러났다. 강사 또는 겸임교수 지원을 위한 각종 이력서는 허위 경력이 워낙 많아서 거짓이 아닌 걸 찾기가 더 힘든 지경이다. 인생 자체가 위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런 거짓말쟁이가 퍼스트레이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내가 말하고 싶은 논점은 아니다. 대통령 부인은 예산이 투입되는 공적인 자리이지만, 이수정 교수 말대로 국모를 뽑는 선거가 아니므로, 백번 양보해서, 거의 완벽한 ‘위조인생’을 살아온 거짓말쟁이도 퍼스트레이디가 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김건희는 무엇을 위해서, 왜 이렇게 여러 차례에 걸쳐 사문서를 위조하면서까지, 경력을 만들고 학위를 따려고 발버둥 쳤을까, 라는 의문은 남는다. 원래 부지런해서였을까? 공부를 좋아했을까? 그렇다면 제대로 공부해서 진짜 경력을 만들지, 왜 공부는 제대로 하지 않고 남을 속이기까지 했을까. 정말 왜 그랬을까?  이것은 쥴리 의혹의 본질과 직결되는 물음이다. 나는 김건희가 어쩌다 접하게 된(그 입구가 조남욱 회장이었을 것이다) 상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학위와 경력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서울법대 출신의 재벌 회장과 역시 서울법대 출신의 잘 나가는 검사들이 어울리는 상류사회에서 내밀 수 있는 명함이 필요했을 것이다. 위조한 경력으로 얻은 명함은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조남욱은 김건희를 ‘김 교수’라고 불렀고, 어느 순간 김 교수는 중앙일간지들과 유명 전시회를 공동 주최하는 반열에 올랐다. 김건희의 경력 조작은 신분 상승과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가져다준 성공적 사기 행위였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김건희는 ‘스폰’을 받지 않고 베풀었다  나는 일부 진보 인사들이 쥴리 의혹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모르지 않는다. 성형 수술에 대한 언급을 비롯해 여성 혐오적 성격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로 인해 상당히 많은 사람이 쥴리를 술집 접대부와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다. 일부 여당 의원들이 볼썽사나운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당연히 비판할 만하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증거로 확인된 내용을 종합하면, 김건희는 양재택 검사로부터 이른바 스폰(경제적 지원)을 받은 게 아니라 오히려 베풀었다. 해외 유학 중인 양 검사의 처자식에게 돈을 보냈고, 엄마를 대동해 셋이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송금과 여행 모두 2004년에 있었던 일로, 정대택과 최은순이 한창 소송전을 벌일 때다. 일반적인 스폰 관계가 아니라 로비의 대가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조남욱과 김건희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였을 가능성이 크다. 조남욱은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데 김건희를 활용했고, 김건희는 조남욱을 통해 사회적 네트워크를 확장했다. 특히 김건희가 여기서 획득한 검찰 네트워크는 엄마의 비즈니스에 활용된 의혹이 있다. 요컨대 나는 김건희가 일반적인 술집 접대부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술집 접대부를 김 교수라고 부르거나 친구는 왜 같이 오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는다. 사실의 영역, 믿음의 영토  쥴리 의혹이 여성 혐오라고 주장하는 칼럼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른바 ‘쥴리’ 논란의 기저에는 젊은 여성이 ‘육체 자본’을 무기로 삼아 권력자 곁을 차지하고 있다는 편견이 깔려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편견’이라는 단어다. 지금까지 취재된 사실을 ‘사실’이 아니라 ‘편견’이라고 깎아내리는 것이다. 쥴리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거의 예외 없이 이 사안에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앞의 사설이 표현했듯이, 거론하는 것조차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관심이 없으니 내용을 잘 모른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추론의 영역인지 알 턱이 없다. 그런데도 편견이라고 용감하게 주장하는 것은 본인이 편견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무지를 믿음으로 뭉개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의 대부분이 실은 다른 사람의 기억이다. 직접 보거나 겪지 않은 사실은 직접 보고 들은 사람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억이 다를 때 발생한다. 누구의 기억과 주장을 채택할 것이냐에 이르면 사실은 믿음의 차원으로 전환된다. 누구 말이 더 신빙성 있느냐는 것이다. 타인의 말과 기억을 토대로 사실을 확인해 나가는 기자도, 법대에 앉아서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결정하는 판사도 결국 누구 말을 더 믿을 것이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엇갈리는 진술 속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의 결단이다. 자신이 평소 지니고 있는 신념이나 철학, 가치관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행위다. 정대택과 김건희 가운데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역시 마찬가지다.  예의 칼럼은 24년 전 한 번 봤다는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며 의심하지만 <오마이뉴스>의 해당 기사 ‘김건희 “내가 쥴리 아니란 것 증명하겠다”…안해욱 “쥴리와의 만남 사실대로 이야기”(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95017)’에는 80대 체육인 안해욱씨가 이날을 특별히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소상히 나와 있다. 태권도 대회가 서울 역삼동 국기원에서 열렸고, 대회 중 이틀 연속 라마다르네상스호텔 나이트클럽에 갔으며, “나이트클럽에서 술 먹다가 호텔 회장에게 초대받은 것은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어떻게) 기억이 안 나겠나”라는 것이다. 태권도 대회가 열렸던 날짜를 증빙하는 자료도 있다. 사실이라고 믿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최은순과 정대택 중 누구를 믿느냐  결국 ‘정대택 사건’을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정대택씨 말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여럿 있지만 이른바 쥴리 의혹을 처음 제기하고, 관련 증거를 상당 부분 찾아냈으며, 지금까지 줄기차게 싸우고 있는 사람은 정씨가 유일하다. 쥴리 의혹의 신빙성 여부는 정대택의 기억과 주장을 채택할 것이냐의 문제가 된다. 내용을 아는 분들에게는 불필요할 수도 있지만 굳이 거론하는 이유는 생각이 다른 분들과 토론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확인된 사실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잘 아시는 분들은 건너뛰셔도 된다.)  최은순과 정대택의 기나긴 송사는 2003년 ‘송파 스포츠센터’에 투자해 생긴 이익금 53억 원을 절반씩 나누기로 했는데 최씨가 돈을 주지 않는다며 정씨가 가압류를 청구했고, 최씨는 강요와 사기미수로 정씨를 고소하면서 비롯했다. 정씨는 똑같이 나누기로 약정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고, 최씨는 정씨의 강요로 약정서를 작성했다고 맞섰다. 사건의 열쇠를 쥐게 된 사람은 약정서 작성에 참여했다고 정씨가 주장하는 법무사 백아무개씨였다. 정씨와 백씨는 중학교 동창이다. 백씨는 약정서 작성에 참여한 적이 없다며 최씨 편을 들었고, 정씨는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백씨가 나중에 자신의 진술을 뒤집으면서 위증의 대가로 최씨로부터 정씨 몫인 26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13억원을 받기로 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소송이 벌어지던 시기에 최은순은 여러 차례로 나눠 백씨에게 2억원의 현금을 건넸고, 김건희 명의의 2억3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사실상 무상으로 팔았다. 돈으로 매수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13억 원 모두를 받기를 원하는 백씨와 2억 원과 아파트만으로 거래를 끝내려던 최씨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진술 번복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씨가 추가로 가져온 1억원을 백씨가 거부한 적도 있다. 5번 기소당하고 2번 실형을 산 정대택씨  검찰의 개입 의혹은 여기부터다. 검찰은 백씨가 진술을 번복한 지 8일 만인 2005년 9월 30일 백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백씨는 2년의 실형을 살았다. 정대택씨는 5번의 기소를 당하고 2번의 실형을 살았다. 정씨가 최씨를 위증으로 고소한 사건에서 최씨가 일부 혐의를 인정받아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도, 검찰은 정씨의 고소 내용 가운데 일부가 허위라는 이유로 정씨를 무고 혐의로 기소했다. 매우 이례적인 ‘인지 기소’다. 정씨가 두 번째로 실형을 산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뒤인 2017년 10월이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낸 지 한 달 만이었다. 이른바 검찰의 ‘고발사주’ 사건도 이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다.  정대택의 주장이 사실일 거라고 내가 믿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대택과 최은순의 동업 관계다. 송파 스포츠센터에 먼저 관심을 갖고 투자를 준비했던 사람은 정대택이다. 최은순은 정대택이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투자자다. 둘이 함께 투자에 나섰다면 수익금을 나누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최은순은 정대택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재판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준 법무사에게 현금과 아파트를 줬다. 백씨의 위증과 진술 번복 사유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 가능하다. 그런데도 검찰은 일방적으로 최씨 편을 들었다.  정씨는 십수 년 동안 검찰 권력을 상대로 싸웠고 그중 한 명이 검찰총장이 되고 지금은 유력한 대통령 후보까지 되었는데도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단순한 집착이라고 보기엔 통한의 피눈물이 느껴진다. 나는 정대택 사건이 ‘유검무죄 무검유죄’의 전형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검찰을 구워삶아 진실을 왜곡하고 재판부마저 농락한 사건이라는 말이다. 또한 최은순-김건희 모녀가 법을 이용해 재산을 불린 방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내용은 <뉴스타파>의 보도 ‘윤석열 장모 사건…김건희 씨도 깊숙이 개입’(http://newstapa.org/article/_qx4L)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진보 언론의 고의적 태만  이상의 내용은 <MBC>를 제외하면 모두 비제도권 또는 신생 매체가 취재한 내용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비롯한 기성 진보 언론은 무시로 일관했다. 이들 신문은 김건희 허위 경력 의혹에 대해서도 타사가 보도하면 수동적으로 따라갔을 뿐 새로운 사실 취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쥴리 의혹은 말할 것도 없다. 언론의 가치 지향은 무엇을 보도(취재)하는가만이 아니라 무엇을 보도(취재)하지 않는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특정 정당에 유리한 사실은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 (역)정파성이 그 배경에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당지 아님’이라는 알리바이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여 사실 취재와 진실 추구조차 게을리하는 고의적 태만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중도강박증이 유력 대통령 후보와 가족의 권력형 비리 의혹 자체를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생활이 검증 대상이라니  <한겨레>의 중도강박증은 심각한 상태다. 기계적 균형을 지키려다 선을 넘기도 한다. 혼외자 문제로 민주당 선대위에서 사퇴한 조동연씨 관련 기사와 사설이 대표적이다.  “이번 조 위원장 사태가 벌어진 근본 원인이 민주당의 ‘부실한 시스템’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영입 이벤트에만 몰입하다 보니 논란의 여지가 될 수 있는 사안도 검증하지 못해, 결국 당사자에게도 피해를 줬다는 것이다. (…)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이날 성명을 내어 “대선을 앞두고 마음이 급한 민주당이 외부 엘리트들을 영입해 상임선대위원장이라는 허울뿐인 자리에 앉히려다 사달이 났다”며 “부실한 시스템의 문제를 여성 혐오의 피해인 것인 양 어물쩍 넘어간다면 그것 또한 여성을 도구로 쓰는 것”이라며 민주당의 ‘검증 미비’를 비판했다.”  “무엇보다 조 교수의 ‘스토리’가 선거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기본적인 검증도 거치지 않고 요직에 발탁한 민주당 책임이 막대하다.”  (위의 기사가 인용한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의 대표가 며칠 전 국민의힘이 영입한 페미니스트 신지예씨였다. 본인은 얼마나 치밀한 사전 검증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독재와 권위주의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중시해온 한겨레가 사생활을 검증하지 못했다고 정당을 비판하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정치와 사생활을 섞지 말라고 앞장서 싸우기는커녕 여야 모두를 비판하기 위해 (민주당 비판을 끼워 넣으려고) 최소한의 자유주의적 가치조차 던져버렸다. 이 기사와 사설은 조씨가 성폭행 피해를 밝히기 전에 보도한 것이다. 약간의 비약을 무릅쓰고 말하면, 결과적으로 한겨레는 성폭행 사실을 사전에 검증하지 못했다고 민주당을 비판한 셈이 되어버렸다. 성폭력 사건에서 원칙으로 적용되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르면 한겨레는 이 보도에 대해 대오각성하고 공개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슬쩍 넘어갔다. 나를 제외하고는 내부에서 문제제기도 없었다. 이 글을 굳이 공개적으로 쓰는 이유다. 온 국민의 비난에 직면해 막다른 길에 몰린 여성이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자녀의 인생을 걸고 폭로한 진실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인가. 민주당 정치인이 될 뻔 한 자의 인권은 짓밟혀도 되는 것인가.  김건희의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사생활이라고 눈감고, 조동연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검증 미비라고 비판하는 이중성은 보수적이고 퇴행적이며 기회주의적이다. 독자들은 묻고 있다. 한겨레는 여전히 진보 언론인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1-12-22 | hrights | 조회: 3230 | 추천: 65
임아연/ 인권연대 운영위원  서울 중심의 사회에서 지역은 늘 소외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지역은 없다. 처음으로 기초자치단체장 출신의 후보가 여당의 대선 후보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이전투구 속에 정책은 실종됐고, 지역에 대한 담론은 아예 사라졌다.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 이르는 동안에는 균형발전, 지방자치, 지방분권, 자치분권 등과 같은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했는데, 이번 대선에서는 아예 지역이라는 말이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전국엔 243개(광역 17개, 기초 226개) 지방자치단체가 있고 이 가운데 서울(25개)·인천(10개)·경기(31개) 등 수도권을 제외하면 177곳의 ‘지방’이 있다. 인구의 절반인 2,570만여 명이 ‘지방’에 살고 있으나 대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지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나왔던 홍준표 의원은 경남 창녕 출신으로 경남도지사를 지낸 바 있다. 대선 당시 자신의 고향에서 ‘경남의 아들’이라고 유세하던 그의 홍보 현수막을 우연히 전주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전북사위”  그의 아내가 전북 부안군 출신이었던 것이다. ‘경남의 아들’이 ‘전북사위’가 되어 지역주민들에게 표를 구했던 모습은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모양을 바꿔 다시 등장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윤석열 후보는 충남 공주 출신인 아버지를 등에 업고 ‘충청의 아들’이라며 실체 모를 ‘충청대망론’을 외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이 등장하는 때는 고작 이럴 때 뿐이다. 연고주의를 조장하며 지역주민들을 수단화할 뿐 대부분의 정책에 있어서는 지역을 소외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권한은 물론 자율성과 독립성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 조례를 제정하더라도 상위법이 우선시 돼 조례가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난 2015년 당진시는 주민자치를 추진하면서 조례를 제정해 모든 읍·면·동에 ‘주민자치회’를 구성하고 권한을 강화했다. 하지만 당시 ‘주민자치회’에 대한 법률이 제정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출범 1년도 채 안 돼 ‘주민자치위원회’로 이름을 바꿔야 했다. 그러다 상위법령이 마련되자 다시 주민자치회로 전환했다. 지역에서 주민자치회를 운영하든, 주민자치위원회를 운영하든, 국정을 혼란스럽게 할 일이 전혀 없는대도,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자치 모임에 대해 정부가 개입할 일이 전혀 없음에도 지역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보장받지 못한다. 사진 출처 - freepik  지역의 인구와 예산 규모가 늘고 행정 서비스의 범위도 넓어짐에 따라 지역의 공무원을 증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더라도, 이를 결정하는 것 역시 정부다. 매년 행정안전부에서는 각 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인건비 총액 기준을 제시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인건비를 사용토록 하고 있다. 총액인건비를 초과하면 다음 총액인건비 인상에 제약을 받는 등 정부로부터 불이익이 따른다.  방만한 인력 운영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각 지자체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급격히 도시가 확대되는 지역은 총액인건비에 묶여 인력난에 허덕이고, 인구가 줄어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에서는 이미 정해진 총액인건비에 따라 인력을 운영해 인구 대비 공무원 수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도시에 비해 치안 및 소방 인력이 부족한 읍·면 시골 단위에서 사고가 나면 골든타임을 놓쳐 사고가 커지거나 사망에 이르는 일이 적지 않고, 집배원 인력 또한 부족해 월요일에 받아야 할 신문을 목요일에 받는 일이 지역에선 일상이 되어 버렸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내세웠지만, 여전히 지역은 정부에 종속돼 있고, 서울과 수도권의 변방에 불과하다.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행정부 수장과 의회를 손수 선출하고 있음에도 지역은 ‘(지방)정부’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전히 ‘(자치)단체’에 머물러 있다.  언제쯤 지역주민이 ‘~의 아들’을 말할 때나 이용되는 게 아니라, 국가를 구성하는 주체적 주인이 될까. 지방자치와 균형발전을 말한 지 30년이 지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대선 후보들 지역, 자치, 분권에 대해 어떠한 메시지와 비전을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임아연 위원은 현재 당진시대 부국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21-12-17 | hrights | 조회: 185 | 추천: 4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길씨는 1937년 수원에서 오남매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위로는 언니가 하나, 오빠가 둘이 있었고 6년 후 여동생이 태어났다.  윤씨 성을 가진 아버지는 딸의 이름을 ‘정자(貞子)’라고 지으려 했다.  그런데 면사무소 서기가 딸에게 왜 ‘아들 자(子)’ 자를 붙이느냐며 ‘길할 길(吉)’ 자가 어떠냐 제안했다. 그렇게 출생신고 중 이름이 정길(貞吉)이가 되어버렸다. 남자 이름 같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모나지 않은 정길씨는 그게 뭐 어떠냐며 자랐다.  열세 살 때 전쟁이 났다. 온통 뒤숭숭했다.  아군이라지만, 마을에 미군이 들어오면 젊은 처자들은 장롱이든 어디든 집안 제일 깊숙한 곳으로 꼭꼭 숨었다. 미군이 젊은 여자에게 몹쓸 짓 한다는 소문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정길씨도 무서워 장롱 속에 숨었다. 미군이 물러갔다. 그런데도 정길씨는, 동시대 사람들이 그렇듯, 미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미국이 없으면 한국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성실하고 얼굴도 반듯하고 공부도 잘했던 고등학생 정길씨는 대학에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둘째(아들)도 대학을 못 보냈는데 셋째(딸)가 대학이라니 안 된다고 손사래 쳤다. 담임교사가 집까지 찾아와 정길이는 대학에 보내는 게 좋겠다고 설득했으나, 부모는 어렵다며 반대했다. 정길씨는 대학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다. (그래서일까, 나중에 자식들이 죄다 대학원 가겠다고 했을 때도 부담스러운 내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 스물두 살 때 다섯 살 위 수원 남자와 결혼했다. 마당이 널찍했고 한켠에는 벽돌식 이 층 건물이 있는, 제법 큰 집의 장남이었다. 집안이 괜찮다는 소리를 정길씨도 몇 차례 들은 바 있었다. 시어머니 자리가 결핵을 앓고 있어서 고생스럽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지만, 남자가 나름 괜찮았고, 양쪽 집안에서 얘기도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혼인의 길로 들어섰다.  정길씨를 기다린 건 시집살이였다. 시어머니가 환자인 것은 이미 알았지만, 환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시아버지는 깐깐했다. 큰 집 살림 뒤치다꺼리는 정길씨 몫이었지만, 으레 그래야 하는 거려니 했다. 말기 결핵 환자인 시어머니 입에서 피까지 받아내며 정성껏 간호했다.  결혼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아이 키우며 시부모와 남편을 봉양했고, 둘째 아들도 보았다. 첫째에 이어 둘째도 아들이라고 시어머니가 좋아했다. 그 시어머니는 결혼 후 6년쯤 뒤에 타계했다.  시원섭섭할 새도 없었다. 세무서 근무하던 시아버지가 간장 공장을 해보겠다며 사업에 나섰다가 전 재산을 탕진했다.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는 사건이었다.  그즈음 수원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남편이 산림 공무원이 되는 바람에 서울로 이사했다. 방 두 칸, 부엌 하나가 딸린 종암동 전셋집이었다.  전 재산을 날리고도 며느리 앞에서 아들 뺨을 때릴 정도로 당당하던 시아버지가 몸뚱어리 하나만 가지고 정길씨네 전셋집으로 찾아 들어왔다. 성실한 정길씨는 시아버지를 환영했고, 그 뒤 딱히 하는 일 없는 시아버지를 돌아가실 때까지 22년여 모시고 살았다.  서울에서 셋째 아들이 태어났다. 이번에는 은근히 딸이기를 바랐는데 또 아들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정길씨는 성실하면서 억척스럽기도 했다.  공무원 남편의 박봉 월급을 관리하며 전세살이 4년 만에 작은 집을 마련했다. 1960년대 후반 월곡동에 들어서기 시작한 8평짜리 서민아파트였다. 각층에 공중화장실이 있는 아파트였다. 그래도 내 집이니 좋았다. 직장을 찾아 상경한 남편의 제자까지 들여, 좁은 집에 일곱 식구가 복닥거리며 여러 달을 지내기도 했다.  예전 기억 때문이었을까, 기왕이면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잠실이냐 상계동이냐 고민하다가, 남편 직장이 있는 청량리까지 버스 한 번에 갈 수 있는 상계동을 선택했다. 훗날 자식들은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했다며 웃으며 투덜대곤 했다.  아이들은 커가는데 공무원 남편 월급은 내내 박봉이라 정길씨도 돈벌이에 나섰다.  양손에 큰 가방을 들고 상계동 달동네를 가가호호 다녔다. 화장품 방문판매사원이었다. 수금해온 돈이 모두 엄마 몫인 줄 알던 자식들은 ‘오늘도 엄마가 돈 많이 벌었다’며 흐뭇해했다. 정길씨는 그저 웃었다. 화장품 판매사원으로 삼사 년 정도 지냈다. 정길씨는 훗날 ‘아모레 가방’을 들던 시절을 즐겁게 회상하곤 했다.  정길씨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병중에 기독교인이 되신 시어머니가 가족 모두 교회 나가면 좋겠다며 남긴 유언을 받들기 위해서였다. 서울로 이사 오자마자 바로 근처 교회를 찾았고, 그 뒤 이곳저곳으로 이사 다니면서도 교회를 떠나거나 예배를 거른 적이 없었다. 그 영향으로 자식들도 어렸을 적부터 교회 분위기, 기독교적 세계관에 익숙해졌다. 정길씨는 무엇에든 열심인 데다 현명하기도 해서 교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많이 했다.  성실한 기질에 신앙까지 가미되면서 정길씨는 이 정도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입맛 까다롭고 무정한 남편에 대한 푸념을 자식들에게 늘어놓기도 했지만, 남편이 정말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더 컸다.  정길씨는 누구를, 무엇을 딱히 싫어하거나 하지 않았다.  좋지 않을 어떤 일을 맞닥뜨려도 딱히 ‘싫다’며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무언가 집안에 벌어진 어려운 일은 자신이 지고 가면 된다는 긍정적인 정서가 컸다.  정길씨는 현명하고 꾸준했다.  집도 한 칸씩 한 칸씩 늘려갔다. 이사할 때마다 마당도 건물도 조금씩 커졌다. 40대 중반에 상계동에서 50여 평 되는 마당집을 마련한 뒤 내내 그 집에서 살았다.  정길씨는 자식 자랑을 자주 했다.  아들들이 알아서 공부도 잘하고 부모 속 안 썩여서 행복하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 오십에 큰 며느리를 본 이후 둘째, 셋째에 이르기까지 며느리들 모두 착해서 좋다고 그랬다. 한 아들에 둘씩 손주 여섯을 두었는데, 온 식구라도 모이면 아들 며느리 앞에서 손주 자랑을 했다. 그런 말 너무 마시라는 자식들의 말은 잘 듣지 않았다. 소소하나마 자식에게 문제가 있어도 특히 남들에게는 자식들 좋은 얘기를 주로 했다. 설령 속으로는 불편한 느낌이 있었어도, 싫어하는 것이 일부 있었어도, 별로 내색하지 않았다. 뭐든 딱히 거절할 정도로 싫은 것이 없었다. 할 수 있으면 자신이 감당하면 된다 생각했고 무엇에든 큰 불만을 갖지 않았다.  정길씨의 팔자였는지, 남편도 몸이 약한 편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병치레를 많이 했다. 시어머니에게 이골이 났을 법도 했지만, 남편의 뒷수발도 정길씨 몫이었다. 그래도 정길씨는 남편이 병치레를 하면서도 평생 공무원으로 큰 탈 없이 지낸 데 대해 감사했다. 남편이 술을 줄였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면서도 식사 때는 남편을 위해 늘 술과 반주거리를 대령했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정길씨는 늙도록, 아니 늙을수록 남편 뒷바라지하는 데 활동의 대부분을 쏟아부었다.  정길씨의 사회적 능력과 개인적 역량을 집안에 가두어버린 남편이 불만스럽지 않냐는 주변의 핀잔도 있었지만, 정길씨는 그게 자신의 몫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정길씨는 평생을 가족, 특히 남편 중심으로 살았다. ‘이 나이에 뭘’, ‘팔십 노인이 뭘...’ 하는 체념조의 말을 종종 했다.  정길씨는 2018년 7월, 남편을 87세로 떠나보냈다.  평생 몸고생을 시킨 남편이 없으니 일견 편안할 수도 있겠다는 주변의 예상과는 달리, 정길씨는 인생의 중심이라도 잃은 냥 다소 무력해졌다. 전에는 남편의 행동거지나 까다로운 입맛을 두고 쓴소리도 하더니, 생전의 남편과 생활방식이 비슷해졌다. 심지어 입맛도 비슷해졌다. 생전에 남편은 먼지 들어온다며 창문을 꼭꼭 닫고, 정길씨는 답답하다며 문을 열자고 티격태격하기도 했는데, 남편이 죽자 정길씨도 문단속을 열심히 했다. 에어콘을 켤지언정 여름에도 거실 창문을 자꾸 닫았다. 남편을 먼저 보냈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였을까, 남편과 운동 겸 다니던 산책도 거의 하지 않았다. 남편 입맛에 맞추던 음식 솜씨는 어디로 갔는지, 남편이 떠나자 식사는 대충 때우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늘 되뇌었다. 어렵게 사는 노인 이야기, 자식에게 용돈 받아 겨우 사는 친구 이야기를 하며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늘그막에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살 수 있도록 연금을 남겨준 남편을 매우 고마워했다. 그런 남편이 먼저 떠나 외롭고 때로는 무섭기도 하던 차에 외국 살던 큰아들이 코로나19를 피해 정길씨 집으로 들어오자 정길씨는 매우 든든해 했다.  정길씨는 자다가 죽으면 제일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죽는 게 두렵지 않냐는 물음에 “전~혀 두렵지 않다”며 단호하고 여유 있게 답하곤 했다. 죽으면 자식들이 화장해서 남편 곁에 묻어주는 정도는 하지 않겠냐며 체념과 초탈 사이 어디쯤 되는 발언을 종종 했다. 집 한 채는 자식들이 서로 나눠 가지면 된다는 무덤덤한 말과 함께...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일요일 예배를 드리고, 노인반 모임도 하고, 다음 날에는 50년 지기 친구와 긴 통화도 하고, 저녁도 잘 먹고, 양치도 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방에 들어가 TV를 켜놓고, 방바닥에 누운 채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몸뚱어리만 남겨놓고 호흡을 거두었다. 2021년 11월 8일 자정 직전이었다. 병원에서는 심정지로 인한 사망이라고 진단했다.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는 특별한 삶을 혼자 마감했다.  남들은 정길씨의 죽음이 복된 죽음이라고 이구동성으로 그랬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레페스포럼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2021-12-08 | hrights | 조회: 247 | 추천: 11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침 출근길에 바람이 차다 보니 눈가에 눈물이 흐릅니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봅니다. 죄송합니다. 일흔 넘은 형님 앞에서 갓 환갑 지난 제가 외람되이…. 요즘 저는 젊은 사람들을 집 안팎에서 보면서 나이 든다는 게 뭔지, 자식이나 학생들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자꾸 묻게 됩니다. 1.  학과 강의는 지금 막 19세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과 대혁명을 거친 시기인데, 실은 가장 전쟁이 많은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셈입니다. 형이 잘 알다시피 20세기는 1, 2차 제국주의 전쟁(세계대전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으로 현대 문명은 말 그대로 좌절과 회의를 던졌지요. 6.25도 그 연장에서 벌어진 참극이었고.  형님 어머니도 피난 다니셨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진저리난다고 하셨다지요. 제 장모님께서도 황해도에서 인천-서산-전주-남원-진주를 홑옷으로 신발 바닥이 닳아 없어지도록 걸어 피난 갔다고 하셨어요. 장모님은 영화로라도 전쟁을 다루는 걸 싫어하세요. 사내아이들이 대개 총쌈, 칼쌈 좋아하게 길들여지지 않습니까? 저도 전쟁 영화를 좋아했는데, 조금 달라졌습니다.  입대한 작은 아이 훈련소를 마쳤을 때 면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한 달 여 만에 얼굴을 보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훈련소 청년들의 뽀송뽀송한 얼굴에는 고유의 생명이 느껴지는 발그레함이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영화 ‘고지전’이든 ‘1917’에 나오는 군인들이 바로 저 청년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뒤로 군대는 나이 든 사람들이 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젊은 사람은 공부하고 일하고 말이지요. 찰리 채플린이 군대는 40대 이상으로 보내자고 했다고 합니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 자기들은 전쟁에 안 가니까 쉽게 전쟁을 결정해서 젊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는 겁니다. 저는 50대 이상이 갔으면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저는 현대의 장군들이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트로이 전쟁의 아킬레스, 적벽대전의 관우, 장비는 모두 자기들이 앞장서서 싸우잖아요? 요즘 장군들은 뒤에서 입만 벙긋거리지요. 평소에도 사병들과 구보는커녕, 골프나 치고. 정작 군 사기와 전력에 영향을 미치는 성폭력 사건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아마 인류가 아무리 선해진다고 해도 우리 같은 늙은이를 군대로 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단 늙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있을 겁니다. 자식, 손주 생각해서 전쟁을 결정하지 않는 것, 전쟁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가능한 전쟁으로부터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 말입니다. 적어도 그런 노력에 어깃장 놓는 늙은이는 되지 않는 것이 제 소박한 바램입니다. 1.  노쇠를 경험하고 죽음을 앞두면 꼭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도 두렵고 무거운 마음을 갖지 않을까요? 키케로가 지혜와 체력의 증진, 마음의 즐거움 추구, 죽음의 평범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슬기로운 노인 생활’을 충고했지만, 이 말은 사실 노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닙니다. 키케로의 충고는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적합합니다. 슬기로운 청년 생활을 위해서 말입니다. 1.  큰아이 혼인으로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 요즘은 아이들이 결혼하겠다고 하는 것만도 복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사회와 문명이 복잡해지면서 혼인 연령이 지체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의 지체 현상은 그보다 단기적, 정책적 차원의 오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富)의 편중을 낳게 방치하는 정책 말입니다. 그것도 부당한 편중입니다. 최근 확인된 화천대유라는 회사가 추진한 공공용지의 민간개발이 그 증거입니다. 공공용지가 민간회사의 손으로 넘어가 몇몇 개인이 이익을 독식하는 구조가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비싼 아파트를 산 겁니다. 몇몇 법조-언론-정치꾼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면서 우리 주머니를 털어간 토건업자들의 거품 낀 아파트 말입니다.  제 친구도 그 아파트 샀지 않습니까? 아파트값 올랐다고 좋아하면서 제게 술까지 샀거든요. 그러면서 자식 걱정이랍시고 요즘 애들은 10년을 모아도 못 산다며, 무슨 정부 정책이 이러냐고 짐짓 개탄하였고. 좋아하면서 개탄하는 이중성 사이에서 토건업자들과 그 커넥션들은 챙길 거 다 챙겨가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실은 저희 동네 재개발된다고 좋아했어요. 이렇게 현혹되지 않고 늙는 게 저의 바램 중 하나입니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1.  오늘은 유난히 외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저에게 깡통 들리고 당신은 그물 들고 동네 개천으로 붕어 잡으러 다니시던 때가 딱 지금 제 나이셨습니다. 평범한 농사꾼이셨던 당신의 말씀은 늘 손자가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정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술 드시고 자꾸 볼을 비비셔서 그게 싫었지만요. 장날이면 약주에 취하신 채 동네 방죽에 누워계시곤 해서 동네 형들과 저희가 어렵게 모셔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저희가 할아버지께 도움 되는 게 있다는 게 좋았으니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외할아버지의 말씀은 ‘그럼 못써’입니다. 제게 했던 유일한 금지-명령어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무슨 대단한 잘못을 했겠어요? 기껏해야 동생들 괴롭히는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유독 당신의 ‘그럼 못써’는 단순한 금지가 아니라, 제게 제 속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혼날까 봐 하는 반성이 아니라, 제 마음을 돌아보게 하는 힘 말입니다. 형도 손주들에게 그런 권위가 있나요?  한번은 외할아버지가 당신 따님, 그러니까 저의 어머니와 다투신 적이 있어요.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도 없고 알 수도 없었지만, 외할아버지의 말씀만은 기억이 남아요. “내가 호랭이 새끼 데려다가 사람 새끼 만들어 놨어!” 우리 형제들을 가리키며 하신 말씀입니다. 철없는 야만의 어린이들을 문명화시켰다는 주장이신데, 그런 점이 있었지요. 그 응축이 ‘그럼 못써’의 교육학인 듯합니다. 그런 마음과 권위를 조금이나마 갖는 것이 제 바램 중 하나입니다.  저의 희망 사항이 너무 많은가요? 형님은 도움을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도 저보다 몇 살은 더 먹었잖습니까. 어떤 어르신이 “늙은이가 할 게 칭찬밖에 더 있나!” 하며 껄껄 웃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지갑 열고 입 닫으라는 속언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열 지갑 없고 입 열어도 보기 좋은 괜찮은 늙은이로 살게끔, 이미 괜찮은 노인네이신 형님이 살펴주세요.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21-11-24 | hrights | 조회: 362 | 추천: 8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는 아이들의 품위를 지켜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품위 있는 어른들이 많아져서 서로가 보고 배우며 살아가고 싶다.  최근에 읽은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작가는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고등학생인 동이(가명), 명이(가명)와 친구 3명은 대화방에서 하루 일상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동이가 학업을 이유로 대화방에 잘 들어가지 못했고 대화방에서도 명이가 건네는 말에 대답을 빨리하지 못했고, 간단하게 답을 하자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을 한 명이는 대화방에서 동이에게 갑자기 폭탄처럼 심한 언어로 단순한 욕설이 아닌 부모의 욕과 “사지를 00 죽여서 피부를 00고 00에 버린다”는 등을 여러번에 걸쳐 썼다. 충격받은 동이와 부모는 담임교사에게 알리며 처벌을 해달라고 했다. 단지 대답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분노의 감정을 표현했다는 이유이다. 명이는 초등학교부터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늘 야단과 지적을 받아서 교사와 친구들에게 불만이 있는 생활을 보냈지만 지금은 담임교사와 친구들이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존중해주는 학교생활을 하게되어 좋아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대화방에서 자신의 감정 표현이 서툴렀고 학교생활에서 가지고 있던 극단적인 분노의 감정을 그대로 대화방에 쓰곤 했다. 글로 화난 감정을 쓰기보다는 얼굴을 맞대는 대화로써 서로의 감정을 이야기했다면 오해를 풀어가며 서투른 감정표현을 발전해, 조금은 더 존중하는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두 아이는 시간이 지난 뒤 동이의 용서로 화해를 했다. 사진 출처 - freepik  어린이라는 의미는 사회에서 가장 약자로서 잘 보이지도 않고, 몸도 작고, 목소리도 작아서, 아마도 무례에 가까운 시선과 태도로 대해 왔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수십 년을 사는데도 인생의 많은 부분이 이 어린 시절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어려서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았던 명이는 남들에게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어떤 것일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아이들)에게 품위 있는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품위 있는 세상이고. 그것이 결국 품위 있는 어른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어린이(아이들)을 더 잘 이해해 보려는 노력은 나 자신을, 우리 이웃을, 나아가 사회 구석구석까지 살피려는 마음과 같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1-11-03 | hrights | 조회: 261 | 추천: 2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기린이 온다’라는 일본 드라마는 전국시대였던 16세기 중반에 처음 전래된 조총에 대한 꽤 흥미로운 시대상을 보여준다. 비싸고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전쟁으로 밥 먹고 사는 무사들은 “너구리 사냥할 때는 쓸모가 있으려나” 하며 조총에 시큰둥하다. 하지만 불과 한세대도 되기 전에 조총은 일본에서 전쟁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명작 ‘가케무샤’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지휘하는 조총부대가 일제사격으로 적군을 궤멸시켜버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배경이 된 나가시노 전투가 1575년 일이었다. 임진왜란 즈음에 이르면 일본군이 보유한 조총이 전 세계 조총의 절반가량이 됐을 정도라고 한다. 당시 일본군은 군사기술 혁신의 최첨단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아깝지 않을 듯하다.  정말 충격적인 건 그다음이다. 전국시대가 끝나고 에도막부가 들어선 뒤 조총이라는 첨단무기는 조용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개항과 근대화를 두고 혼란이 극심했던 19세기 주력 무기는 칼이었다. ‘바람의 검심’ 주인공들은 죄다 칼싸움만 한다. ‘레이더스’에서 칼 들고 덤비는 상대방을 권총 한 방으로 끝내버리는 다소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이 들어설 틈이 없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됐을까. 총이란 손가락 움직일 힘만 있어도 쓸 수 있다. 그 말은 비천한 머슴이나 노예라도 고귀한 금수저 사무라이를 죽이는데 1초도 안 걸린다는 의미도 된다. 기술혁신이 기존 사회질서를 흔든다. 일본 에도막부는 기술발달보다 그냥 기득권 질서 수호를 선택해버렸다. ‘가케무샤’에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던 농민 출신 조총병들이 설 자리는 더이상 없다. 그 조총병들이 몰살시킨게 지배계급이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18세기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추신구라’에서 사무라이 46명은 자신들이 모시던 영주의 복수를 위해 총이 아니라 칼을 들었다. ‘가케무샤’와 ‘추신구라’를 비교해보면 어느 영화가 더 앞선 시대를 다룬 것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나는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이 장밋빛 미래를 가져올 것처럼 흥분하는 분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기술진보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건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다. <전쟁교본>이라는 시집을 통해 전쟁과 파시즘으로 인한 절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던 브레히트는 1930년 무렵 당시 새로 등장한 신기술을 혁명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고 한다. 그 신기술만 있으면 전 세계 각지의 프롤레타리아들에게 혁명의 대의를 전파할 수 있으니 혁명이 당장 눈앞에 온 것처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933년 브레히트는 그 신기술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망명을 해야 했다. 이미 독일에선 정권을 장악한 나치가 그 신기술을 활용해 파시즘의 대의를 세계 각지에 퍼뜨리고 있었다. 그 신기술은 라디오였다. 사진 출처 - pixabay  1990년대 초 이현세 작가가 그린 공상과학 만화를 떠올릴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잿빛 디스토피아를 다룬 그 만화에서 거대한 기득권층에 맞선 쿠데타를 일으키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딱 48시간만 버티면 승리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기득권층이 은폐한 진실을 모조리 폭로해서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쎄 세상이 그리 단순하면 얼마나 좋을까.  쿠데타가 실패한 뒤 저항을 꿈꾸는 이들이 모이는 해방구는, 인터넷이고 가상공간이었다. 만화 속 가상공간에선 아바타로 자신을 표현하며 토론하고 거짓이 아닌 진실된 정보를 공유하고 자유롭게 발언한다. 요즘 떠오르는 메타버스와 무척이나 닮았다. 2021년 현재 인터넷이야말로 저항과 해방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공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10년쯤 전에는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나 UCC가 민주주의의 미래인양 떠드는 분들이 넘쳐났었다. 그리고 나서 1년도 안돼 우리가 목격한건 국정원 정규직들이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선거운동하는 꼬라지였다.  기술? 중요하다. 기술혁신? 말해 뭐하랴. 기술은 전쟁의 문법을 바꾸고, 권력의 작동방식을 변화시키고 의사소통의 문법을 전복한다. 하지만 기술이 요술 램프는 아니다. 최첨단 기술 역시 현실을 구성하는 여러 공식·비공식 제도라는 제약 속에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기술에 취하다 보면 감염내과 전문의가 부족한 현실을 ‘감염내과 전문의를 확충하겠다’가 아니라 ‘감염내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 전문의가 없는 병원과 디지털로 협진하겠다’는 한국판 뉴딜이라는 블랙코미디가 튀어나온다.  기후위기가 화두다. 탄소 중립이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는 정책은 자꾸 기술발전을 통한 해법에 쏠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술발전 이전에 삶의 방식과 제도를 바꾸는 게 먼저 아닐까. 기술이 발전한들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지 않으면 탄소 중립이 가당키나 할까.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1-10-21 | hrights | 조회: 229 | 추천: 4
최낙영/인권연대 운영위원 #1. 사오정과 오징어 사오정이 편의점에 들어갔다 사오정 : 아줌마, 햄버거 하나하고 콜라 주세요. 아줌마 : 햄버거 없어. 사오정 : 그러면 햄버거하고 사이다 주세요. 아줌마 : 햄버거가 없다니까! 사오정 : 아, 그러면 햄버거하고 생수 주세요. 아줌마 : 이 사람이 정말, 햄버거 없다니까 자꾸 왜 그래? 사오정 : 이 가게에는 없는 게 왜 그렇게 많아요. 그럼 햄버거만 주세요.  오랫동안 적막강산 같았던 사무실에 어느 새부터인가 지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2차 백신 접종을 완료한, 소위 ‘투명인간’ 지위를 득한 사람들입니다.  며칠 전, 옛 동료 두 사람이 점심을 같이하자고 왔습니다. 식사 후 차를 한잔하면서 그동안 어떻게들 지냈나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서로 별 볼일 없이 지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요즘 장안의 화제인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는 여야 대선 후보들의 이야기가 주가 되었습니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은 A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어느 당의 대선 주자들을 욕하기 시작했고, 평소에도 가급적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던 B는 A를 무시하고 ‘오징어 게임’ 분석에 열을 올렸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A의 대선정국 열변-잠시 휴식-B의 오징어 게임에 대한 분석-잠시 휴식-또다시 A의 대선정국-휴식-B의 오징어게 임…. 식의 이야기가 경쟁하듯 이어지다가 결국 B가 A의 이야기에 말려들었습니다. 이제 대화는 A의 정치적 견해-B의 정치적 견해-A의 정치-B의 정치-A의...-B의... 식으로 이어지다가 논리적으로 약간 밀리기 시작한 A가 B에게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야 이, 사오정 같은 B놈아!” B도 똑같이 응수했습니다. “사오정은 네가 사오정이지, A놈아!” 그렇게 이야기가 얼추 마무리되어 가고 있을 때, 제가 킬킬대며 한마디를 거들었습니다. “너희 두 놈들이나, 대선 경쟁하는 그놈들이나 다 사오정들인 건 마찬가지!” 그러자 A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네 놈은 간신 같은 사오정!” B 역시 기가 막힌다는 듯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너 잘났다. 너는 사오정 말고 오징어 해라, 오징어!” #2. 오징어의 손바닥  두 사오정이 돌아가고 나서 퇴근 무렵, 또 다른 사오정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서울 근교의 개인 작업실에서 서각을 하는 그는 하루의 작업을 마친 후 작업실 근처 술집에서 한잔하고 퇴근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알고 있는 사오정입니다. 이런저런 문자로 이야기가 오가던 중 그가 이만 퇴근해야겠다며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제 정리하고 오랜만에 집에서 가볍게 한잔하려고 함.’ 집에서 술상을 보겠다는 그에게 저는 부럽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부럽네. 나는 마나님 눈치 보느라 말도 못 꺼냄. ㅜㅜ’ 얼마 후, 그는 집 식탁에 먹음직스러운 안주와 술병이 올려진 사진과 함께 이런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부러우면 손바닥에 酒라고 써서 슬그머니 아내에게 보여줘 보든가. ㅎㅎ’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에 재직 중입니다.
2021-10-06 | hrights | 조회: 356 | 추천: -1
오인영/인권연대 운영위원  ‘1일 1논란’이라는 조어가 나올 정도로 언행(言行)이 문제인 사람이 있다. 고개를 연신 좌우로 돌리는 행동은 버릇이거니 하고 넘어간다고 척하니 다리를 벌리고 앉은 자세는 그냥 봐주기 어렵다. 공공장소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아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쩍벌남’ 자세 그대로다. 국민의 선택(/심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공중 앞에서 몸가짐을 단정히 하거나 행동거지를 조심할 법도 한데, 내 사전에 그런 법 따위는 없다는 식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민폐가 될 수 있는 행동을 공개석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 안하무인. 사석에서 우연히라도 상종하고 싶지 않다.  언행 가운데 볼썽사납기로는 ‘언(言)’이 더하다. “없는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주 120시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쉴 수도 있어야 한다”, “페미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를 막는다”, “사람이 이렇게 손발 노동으로, 그렇게 해 가지곤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이제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 등등, 그가 내뱉은 해괴한 주장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가 9월 13일 경상북도 소재 국립안동대에서 대학생들을 만나서 했다는, ‘인문학이라는 것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며 병행해도 되는 것이며 많은 학생들이 대학 4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좀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천학비재(淺學菲材)이지만 그래도 근 30년 인문학 서당에서 풍월을 읊으며 살아온 처지에서 ‘인문학 부수론’을 그냥 실언이나 망언이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찜찜했다. 그래서 일단 발언의 전체 맥락을 살펴보려고 당시 영상을 찾아봤다.  문제의 발언은, 대학의 존재 이유가 “실제 기업에 필요한 맞춤형 인재를 양산”하는 것이라는 주장 다음에 나온다. “인문학의 중요성이라는 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립서비스’(왜냐면,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니까!)를 한 뒤 “그러나 인문학을, 여러분이 무슨 지금 세상에서는 공학이라든가 이런 자연과학 분야가 취업하기 좋고 일자리를 찾는 데 굉장히 필요한데, 기업이 그걸 원하니까, 그러면 인문학이라는 거는, 그런 걸 공부하면서 병행해도 되는 것이지, 그렇게 많은 학생을 갖다가, 4년 뭐 대학원 과정까지 그렇게, 그건 소수면 되는 거지 그럴 필요가 과연 있느냐, 그래서 그런, 기업 필요에 따라서 학과의 재조정도 있어야 되는데, 그것도 현실적으로 교육 당국이 추진하려고 그러면 반발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생각의 두서도, 마침표도 없는 그의 말을 분절하면 이렇다. 1) 대학의 역할은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에 유용한 인재를 “양산”하는 것이다. 2) 기업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 3) 인문학은 취업에 유용한 공부를 하다가 짬이 날 때 부차적으로 하면 된다. 4) 그러므로 인문학 공부라는 건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할 필요가 없다. 5) 인문학은 소수의 전공자만으로도 충분하다. 6) 기존의 인문 분야 학과들은 기업의 요구에 맞춰 통폐합해야 한다. 7) 그러나 내부 반발로 그렇지 못하고 있다. 아, 이렇게 쪼개놓고 보니 그의 ‘인문학 부수론’ 발언을 접했을 때의 찜찜함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겠다. 그가 인문학을 슬렁슬렁해도 되는 취미-교양이나 어쩌다 짬 나면 접하는 특강쯤으로 경시하는 이유는,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라고 영역하고도 무탈하게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을 가까이서 목격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9년 동안 인문학 관련 책 따위와는 아예 담을 쌓고 고시 낭인으로 지낸 세월 때문도 아니었겠다. 인문학을 오로지 경제적 유용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비단 인문학만이 아니다. 대학과 학문 일반의 존재 이유까지도 “기업의 필요”에서 찾는다.  이런 사람에게, 이런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인문학의 범주가 얼마나 넓은지 잘 알려주면 그네들 생각이 바뀔까? 인문학(Humanities)은 종교, 문학, 예술, 철학, 역사학, 고고학, 고전학, 인류학 등의 분야로 구성된다.(법학도 광의의 인문학으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 이토록 광활한 인문학의 세계를 많은 사람이 따로, 더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그것은 인문학에 무지한 사람의 생각인 동시에 편견을 지닌 사람의 생각이다. 무지하면,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자기기만에 빠지기 쉽다. 편견에 사로잡히면, 바로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범하기 쉽다. 자기기만과 편견은 아예 알지 못하는 것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마녀사냥은 마녀로 인해 생겨난 사건이 아니라 마녀를 식별할 줄 안다고 과신한 자들이 저지른 범죄였다.  기만이나 착각과 같은 잘못된 생각-앎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한 대표적인 인문학의 철인(哲人)이 ‘테스 형’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통해 소크라테스가 강조한 것은 ‘없는 지식 채우기’가 아니라 ‘잘못된 지식 비우기’였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신이 실제로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칠 때, 비로소 거짓된 앎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런 자유를 경험한 사람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이런 사실을 깨닫도록 도왔다. 그렇다! 올바른 생각(앎-지식)은 ‘깨달은 사람’이 안겨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철부지(哲不知)임을 깨닫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런 깨달음의 과정을 교습(敎習)하는 게 인문학인데, 이런 게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다가 잠시 들려서 엿본다고 과연 가능할까?  그렇다! 경제적 효용가치로 보면 인문학은 정치적 출세, 경제적 성공,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문학은 바로 그 쓸모없음을 써먹는다. 고(故) 김현 선생의 사유에 기생하여 말하자면, 통속적으로 유용한 것들-돈, 권력, 힘 등은 인간을 억압한다. 그러나 인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고,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세계에는 인간을 억누르는 것이 있고, 그것들은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적 유용성의 눈으로만 사람과 사물과 세계를 재단할 때의 위험성을 일깨워준다. 물화(物化)된 의식에 사로잡힌 시장 전체주의자(market totalitarian)의 무지와 편견을 깨닫게 해준다. 남이야 피눈물을 흘리건 말건 끝없이 권세와 부를 쫓는 삶이 과연 가치 있는 삶일 수 있는지 자문하게 한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21-09-29 | hrights | 조회: 390 | 추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