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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희수(변호사), 설경(변호사),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임아영(경향신문 기자),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보슬레~이인 노노사운드 이별 새드 부산 스테~셔어언 너도 굿바이 나도 굿바이 티어스 기적이 빵빵”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 국-콩(글리쉬)혼합 버전으로 신나게 울려 퍼진다. 선술집이 즐비한 어느 골목쯤 되겠다. 젓가락 장단이 경쾌허니 아싸아싸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한바탕 왁자지껄한 박수소리가 들리고 이내 잠잠하다. “아줌마 요기 고갈비 하나 더”를 외치는걸 보면 막걸리가 더 고픈 시간인 모양이다. 꽤나 거나한 목소리가 또 울린다 “연분홍 치이마아가 봄 빠람에에~ 휘나알 리드으~라 꽃이 피며언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 이번엔 아예 합창이다. 노래가 끝나면 으레껏 누군가 술잔을 탁자에 “탁”하고 내려놓는 이가 있다 “아~ 씨* 이렇게 또 봄날이 가는 거여” 취한 탄식을 내뱉으면 또 누군가는 “억” 하고 받아 친다. “그렇다 아이가. 뭔 노래를 이따위로 만들어가 사람 속을 이래 뒤집노 말이다”. 음주 가무야 말로 인생 유랑자의 최고 덕목이라고 우겨대는 시 좀 쓰는 이의 넋두리가 뒤따른다. 노래 <봄날은 간다>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사랑하는 노래 1위라는 설문조사 소식을 흘려들은 적은 있다. 그 따위 시인들이라니. 배알도 없는 것들.  트로트의 원조는 엔까다. 演歌의 일본 말이다. 서양의 폭스트로트(fox trot)리듬을 개화기 일본에서 사랑노래로 변화시켰고 일제 강점기 반도에 들여왔다. 1920년대 이후 소위 대중가요라 할 만한 것들은 죄다 엔까였다. 사람들은 그 리듬을 일본식 발음으로는 도롯도. 조선말 식으로는 뽕짝이라 불렀다. 뽕짝은 “황성옛터를” 휘돌며 그리운 고향을 읊기도 하고 “눈물 젖은 두만강”을 건너며 인생의 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해방이후 적어도 60년대까지 뽕짝의 전성시대는 유효하다.  서민들의 애환과 설움을 가장 근접거리에서 표현한 장르라는 평을 하지만 서민들의 눈물이 울분이 되고 분노가 되어 이 구질구질한 세상 한번 바꿔보자는 식의 노래는 한곡도 없었다. 그런 선동 가요는 오히려 일제시대의 군국 가요로 한국전쟁 이후에는 반공 가요, 군가로 더 많이 제작 되었다. 잠깐만 생각해 봐도 <혈서지원>, <결사대의 안해>. <목단강 편지> 따위의 일제 찬양 가요나 <전선야곡>, <전우야 잘자라>, <가거라 삼팔선> 같은 노래들이다. 근대 대중 예술의 초석이자 근간으로, 대한민국 대중 음악사의 뿌리로 칭송 받는 박시춘의 작품이다. 1급 친일 인사인 그는 다시 1급 반공인사가 되어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1982년엔 대중음악인 최초로 금관 문화훈장도 받았다. 시인들이 너도 나도 주정거리 삼아 읊어댄다는 <봄날은 간다>도 박시춘 작곡이다.  미야코부시는 일본 엔까의 장음계이다. 도, 레, 미, 솔, 라로 구성된다. 잘 모르시겠걸랑 당신이 아시는 뽕짝 중에서 살랑살랑 가볍고 신나는 노래를 생각하면 된다. 그게 미야코부시다.  요나누키는 일본 엔까의 단음계이다. 라, 시, 도, 미, 파로 구성된다. 역시 잘 모르시겠걸랑 뽕짝 중에 가슴을 후벼 파는 애절함이 있는 노래 생각하면 된다. 그게 요나누키다. 그래도 잘 모르시겠걸랑 아직도 추앙받는 대통령 박정희 작사, 작곡의 노래를 생각하면 확실하다. 새벽종을 울렸다고 매일같이 틀어댔던 새마을 노래는 전형적인 미야코부시 음계이다.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땅을 지켜왔네”로 시작하는 <나의 조국>은 전형적인 요나누키 음계이다.  이미자, 하춘화 선생, 남진, 나훈아 선생 이후 전두환 시절 쇼 2000 같은 프로그램의 퇴폐적인 춤사위와 영11같은 젊은이들의 허슬. 대학가요제 등에 밀린 트로트는 대부분 tv를 떠나 밤무대로 자리를 옮겼었다. 가요무대를 비롯해 그나마 몇 개 없었던 트로트 방송은 몇몇의 트로트 스타들이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위상이 안타까웠는지는 모르지만 방송은 트로트장르를 “전통가요”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의 이야기다. 사진 출처 - YTN 트로트가 신이 났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 그리 울었던가 싶게 요즘은 그야말로 트로트 대세다. 하루 종일 트로트만 틀어대는 케이블채널이 몇 개며 공중파나 종편 모두 트로트 아니면 노래가 없다는 듯 비스무레한 프로그램들로 도배를 하니 그게 몇 개나 되는지 헤아리기도 힘들다. 눈만 뜨면 트로트고 귀만 열면 트로트다. 가히 트로트 열풍이라 할만하다. 최애하는 개그맨 유재석씨도 류산슬이 되어 트로트 열풍에 직접 칼을 뽑고 나서는 장수가 되어있을 정도다. 그런 류의 프로그램에서 그 옛날 뽕짝의 전사들은 “전통가요”의 수호자가 되었다. 서민들의 설운 삶을 대변하는 존재가 되어 전설, 레전드라 불리우기도하고 국민 음악가가 되기도 한다. 이 열풍을 주도한 곳은 친일과 반공의 최대 수혜자인 조선일보다.  tv조선 “뽕 따러 가세”의 진행자 송가인 씨는 최초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 트롯”의 우승자다. 어머니는 씻김굿의 전수자시고 본인 또한 대학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그가 지켜냈던 판소리는 조선 후기 신재효라는 걸출한 소리꾼에 의해 꽃을 피웠다가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에 의해 숨죽였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의 인간문화재라는 박제화된 시스템 속에서도 꿈틀거림을 잃지 않았던 민중 문화의 보고(寶庫)다. 한국음악(흔히 국악이라 부르는)을 가장 쇠퇴시켰던 일제 강점기 내선일체(内鮮一体)의 시기에 주된 문화적인 무기가 엔까였다. 그 시대 엔까(演歌)라는 칼에 맞아 치명상을 입은 한국음악(국악)은 지금도 병중이다. 엔까가 트로트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그 칼은 명기(名器)가 되어 지금도 우리들 가슴을 헤집어 놓고 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벛꽃 잎이”를 흥얼거리면서 환장할 만큼 아름다운 꽃길을 걷다가도 왜 하필 사꾸라 인가를 물어보는 게 나의 버릇이다. 하고 많은 작자들 중에 왜 하필 친일파의 선두주자가 만든 노래를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가를 묻는 게 나의 상식이다. 그러나 신나는 트로트를 아무데서나 틀어놓는 노인에게 “왜 하필 트로트입니까”를 묻는다면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내가 좋다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만 찾아서 들으며 눈물 흘쩍거리는 이에게 “왜 하필 트로트 입니까”를 묻는다면 다시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애절하잖아요. 대중의 정서를 이렇게 잘 파고드는 노래가 또 있을까요? 당신도 트로트에 도전해 보세요. 요즘 대세잖아요. 혹시 아나요, 노래 하나 뜰지?”.  내가 뽕짝은 어렸을 때부터 곧잘 했다는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 나의 의견을 내 보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터이다.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뻔 할 것이기에.  “요즘 세상에 그런 얘기하면 욕먹어요. 무슨 고래적 스토리를 지금에 와서 쯧쯧. 그리고 당신은 좀 과격한 경향이 있어.”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20-03-11 | hrights | 조회: 1875 | 추천: 52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혈의 누'라는 영화를 꽤 좋아한다. 사극 느낌이 나는 설정 속에 노무현 정부 당시 한창 논쟁이던 과거사청산 문제에 대한 은유를 잔뜩 집어넣었는데 생각할 거리가 꽤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결말 즈음해서 마을 사람들이 '이게 다 너 때문이야'를 외치며 불행한 사태의 원흉에게 개떼처럼 몰려들던 장면이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마음에 평안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내 눈엔 말 그대로 개탄과 혐오 그 자체였을 뿐이다.  책임을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 에게 떠넘기는 건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들의 오래된 행태다. 갓난아기가 아프다고 애꿎은 책상 모서리를 "찌" 때리는 시늉하는 것부터 시작해 죄 없는 어린 양을 잡아 죽이거나, 심지어 다른 부족을 공격해 희생제물 용도로 부족민들을 납치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특히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전 세계가 전전긍긍하는 요즘 같은 재난과 위기 국면에선 이런 못된 버릇이 제대로 도진다.  코로나19 이후 중국인 입국금지 요구가 그칠 줄 모른다. 사실 새누리당의 후신인 어떤 야당만 그런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감염병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설왕설래가 있었다. 가령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3일 입장문에서 “더 늦기 전에 위험지역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해 전방위적인 감염원 차단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2월 하순 31번 환자가 나오고 확진자가 급증한 시점부터는 입국금지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는 쪽으로 대체로 의견이 정리됐다.  물론 의학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중국인 입국금지 같은 이른바 ‘봉쇄전략’이 방역의 1단계로서 의미가 없는건 아니다. 인천국제공항과 국제여객선터미널을 폐쇄하고 모든 국민을 자가격리시켰다면 지역사회 감염을 막는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게다가 중국인 입국자를 전면통제해도 중국에서 귀국하는 내국인을 막을 수는 없다. 국가의 존재이유까지 부정하는 조치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코로나19는 중국인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주요 원인이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조차 방역대책의 초점을 확산차단(봉쇄전략)에서 조기발견과 조기치료, 인명피해 최소화(완화전략)로 바꿨으니 중국인 입국금지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다문화도시인 경기도 안산시에선 여지껏 확진자가 한 명도 안 나왔다. 국내 확진자 가운데 중국국적인 사람들의 동선을 유심히 보면 대림동은 없다.  좀 더 극단적인 비유를 들어보자. 조선시대 말기 강력한 쇄국정책을 폈을 때도 콜레라는 국내로 유입됐다. 콜레라가 조선에 처음 들어온 건 1821년(순조 21년)이었다. 원래 인도 풍토병이었다가 1817년 콜카타에서 본격 발병한 콜레라는 조선에서 100만 명 단위의 인명피해를 입혔다. 냉정히 말하면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콜레라가 들어온게 아니다. 국가의 역량과 책임성이 극도로 떨어져 제대로 대응을 못했을 뿐이다.  취재 때문에 인터뷰했던 전문가 가운데 이 문제에 관해 가장 분명한 입장을 밝힌 김창보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는 이렇게 꼬집었다. “입국제한은 북한이나 몽골처럼 방역에 자신 없는 국가가 취하는 수단이다. 외국인이 들어오는 속에서도 코로나19를 막는 게 일 잘하는 정부다. 음주운전을 막는다고 도로를 봉쇄하는 게 음주단속을 잘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는 똑같은 논리가 우리를 입국 금지시키는 논리가 될 수 있다." 이 우려는 1주일도 안돼 현실이 됐다. 이제 우리는 한국인 입국금지를 걱정하고 있다.  중국인 입국금지를 외치는 분들은 결국 대한민국을 무균실로 만들자고 외치는 꼴이다. 이건 중환자들에게 쓰는 처방일 뿐이다. 그럼 왜 자꾸 이런 허깨비 같은 얘기가 퍼지는 걸까. 먼저, 선거전략 차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정부를 비난하는 것 자체가 목표겠다. 이런 분들은 북한을 모범사례로 들며 따라해야 한다고 한다. 평소 종북척결에 나라의 운명이 걸린 것처럼 핏대를 올리던 분들이 종북발언을 서슴지 않는걸 보니 국가보안법 전문가는 다 어디 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봉쇄가 좋다는 분들이 신천지 발본색원은 얘기하지 않는 것도 신기하기 짝이 없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좀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들'에 대한 경계감을 반영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세계사에는 '그들'이 가져온 재앙을 비난하고 '그들'의 음모를 폭로한다는 각종 헛소리가 차고도 넘친다. 1918년 처음 발병한 '스페인 독감'은 원산지였던 미국에서 “독일인 때문에 생겼다”, “동유럽 이민자 때문에 생겼다”, “흑인 때문”이라는 등 각종 소수자 혐오가 종합선물세트로 등장했던 걸로 유명하다. 일제 강점기 관동대지진 뒤엔 '이게 다 조선인들 때문'이란 유언비어가 퍼졌고 결국 집단학살극으로 번졌다. 19세기 콜레라가 한창일 당시 청나라에선 반체제 성향 신흥종교인 백련교도들이 우물에 독약을 뿌렸다는 식으로 유언비어가 난무했다고 한다.  '이게 다 저들 때문'으로 시작하는 각종 음모론에서 참 재미있는 건, 음모를 꾸미는 주체는 언제나 '그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밀조직'이라는 프리메이슨의 세계정복 음모부터, 유대인의 비밀세계정부, 외계인이 지구인을 납치해 생체실험을 한다는 등등. 구글지도에서 프리메이슨을 검색하면 전 세계 지부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확인할 수 있다거나 외계인 생체실험 피해자는 죄다 미국인이고 UFO는 미국에서만 집중적으로 출몰한다는 등 합리적 의심이 끼어들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중국 어느 연구소에서 생화학무기를 개발하다 코로나19가 시작됐다는 얘기도 새로울 게 하나 없는 똑같은 레퍼토리일 뿐이다.  이게 다 ㅇㅇ 때문이다라고 책임을 떠넘기긴 쉽다. 10여 년 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은 국민생활체육이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입만 열면 '이게 다 미제의 침략책동'이란다. 일부 할배들은 틈만 나면 '이게 다 종북좌파동성애자들 때문'이라고 외친다. 일부 극렬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게 다 적폐기득권세력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그런 짓 한다고 달라질 것도 좋아질 것도 없다는 게 아닐까. 차라리 누구라도 31번이 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조금은 더 겸손해지고, '그들'에게 되도 않는 비난을 퍼부을 시간에 손이나 더 씻자.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0-03-04 | hrights | 조회: 848 | 추천: 15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월요일마다 함께 하는 점심 모임이 있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식당을 찾아서 갔는데 얼마 전 인사발령으로 새로운 멤버가 합류하면서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 동료가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엄격한 채식주의자까지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 했다. 회사 근처의 수많은 식당들이 월요일에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었고 그러다보니 늘 가는 곳이 보리밥집으로 자연스레 정해져 가는 분위기다.  그 동료는, 어린 시절 닭 잡는 광경을 본 적이 있는데 목뼈가 딱하면서 꺾이는 소릴 듣고선 이후로는 닭고기를 먹지 못했고 김치찌개 속 돼지고기에 선명하게 찍힌 보라색 마크를 본 순간 그 고기가 고기가 아닌 마치 살아있는 돼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져 이후로는 고기를 씹는 것이 불편하고 슬퍼지고 괴로워졌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마당에서 돼지를 잡아 선짓국을 끓였고 나는 직접 닭을 잡은 적도 있었다. 내겐 약간의 무용담같은 추억이기도 한데. 누구에겐 식생활을 바꾸는 트라우마로 누구에겐 평범한 일상과 추억으로 남은 것이다. 나는 동료의 얘길 들으면서 감수성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을 뿐 나의 당연하고 일상적인 육식을 심각하게 돌이켜 보진 않았었다.  그러다 환경캠페인 녹음을 하면서 전 세계 교통수단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13%)보다 축산업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18%)의 양이 더 많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예전에도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나 메탄가스의 양이 지구온난화의 양이 상당하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흘려들었다. ‘소가 방귀를 뀌어봤자 얼마나 뀐다고 너무 허무맹랑한데?’라고 말이다. 내가 고길 먹어봤자 얼마나 먹는다고... 그런데 육식이라는 일상을 위한 공장식 축산업이 환경오염, 온실 가스배출,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일회용품, 자동차와 비행기 매연, 석탄발전 탓이라고만 믿었던 내게 적잖은 당혹감과 불편함이 밀려왔다. 적당한 위안과 핑계거리가 사라져 버린 셈이다. 내 동료가 어린 시절 고기를 씹으며 느꼈던 괴로움과 불편을 나도 이제야 조금씩 느끼는 중이라고나 할까. 사진 출처 - pixabay  “뭘 먹는지 말해보시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겠소” 프랑스의 법률가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의 얘기다. 이 말이 나는 이렇게 들린다.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라고. 내가 생각 없이 먹어온 고기가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를 가져오고 있었다니... 내가 바로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아닌가.  익숙한 것과의 결별. 아주 작은 일이지만 습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늘 만만치가 않다. 이건 마치 신앙과 같은 것이다. 단순히 신을 믿는다는 말이나 생각이 신앙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삶의 방식 전체를 바꾸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막연한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고 실천하는 일에 맞닥뜨리면 나의 신념은 너무 쉽게 흔들리고 무너져 내린다.  스웨덴의 환경운동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정치지도자들에게 “어떻게 감히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하나도 바꾸지 않고 몇몇 기술적 해결책만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척 할 수 있나”라고 일갈했다. 이것은 정치지도자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 던져진 질타이기도 하다.  ps. 나의 이런 결심을 아내에게 말한 적 있다. “우리도 이제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해볼까?”라고. 하지만 이 결심은 아직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대신 저녁마다 족발과 삼겹살을 찾는 나를 향한 아내의 비아냥거림만이 들릴 뿐... “남편님, 채식 하신다면서요!”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20-02-19 | hrights | 조회: 843 | 추천: 9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우리는 같이 행복해지기 위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산업정보학교(일반고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업에 필요한 자격증- 조리사, 제빵사, 미용사 등 -을 취득할 수 있는 교육을 3학년의 1년 동안 실시하는 학교)에서 제빵사 과정을 수료한 정일(가명)이는 건강에 대한 강박과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처음 학교에서 만난 정일이는 주의를 주거나 야단을 치는 교사가 있으면 얼굴과 손, 발에 경련을 일으켰고, 하루에 6번 이상 “열이 나는 것 같아요, 심장이 마구 뛰는 것 같아요”라면서 체온과 혈압을 재고, “괜찮아”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안심하고 교실로 들어가 수업을 들었다. 이에 담임을 비롯한 많은 교사들은 어렵지만 지치지 않고 정일이에게 따뜻한 어른이 되려고 노력했다. 이에 답하듯이 여름방학 무렵부터 정일이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찍 등교해 정문에서부터 모두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학교가 너무 좋다며 행복한 얼굴로 학교를 환하게 해주었다. 교사들도 행복할 수 있는 학교를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습니다)”을 말하며 절망과 불안한 감정의 사춘기 속에 어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생각이나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노래- 대박자(대가리 박고 자살하자 등)-, 조절되지 않는 아이들의 감정폭발, 자해, 은둔, 생각보다 너무 많은 무기력한 아이들로 인해 부모들의 불안은 높아지고 학교 교사들의 당황스러움은 커지고 있다. 정일이가 학교에 왔을 때도 당황스럽고 힘겨웠지만, 교사회의를 통해 정일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며 지적, 훈계보다는 잘 들어주는 따뜻한 교사가 되고자 노력했다. 사진 출처 - 해냄출판사  아이들의 “이생망”은 사실 어른들로부터 시작 되었다. 아이들에게 정신 차리라는 의도로 “네 싹수가 노랗다. 네 인생은 글러먹었다. 네 인생은 망한 것 같다. 넌 이번 생애에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말을 했겠지만 아이들에게 미래가 없다며 상처를 주고, 포기하고 내버린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내뱉은 이 말들을 아이들이 가져다 쓰기 시작한 것이다.  고등학교를 마치는 한 학생은 크면서 배운 것은 여러 아픔들뿐이라면서 “초등학생 때는 수치심을 배웠고, 중학생 때에는 외로움에 시달렸고, 고등학생 때는 온갖 불안에 휩싸였어요.” 라고 하면서 서글프게 소리 없이 울던 날들이 많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아파하며 괴로워하는 문제들을 들을 때마다 어른으로서 더 나아진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마음이 아프다.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을 더 많이 격려하고 손을 내밀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 희망을 꿈꾸는 아이들이 바라는 10가지 점화술 -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는 어른이 되기 위해 아이들이 바라는 지금 삶의 고통에 응급조치 및 진통제 그리고 안정제에 대한 이야기다) 1. 그만 상처주세요! 2. 삶의 여유와 주도성을 되돌려 주세요. 3. 다양한 가능성으로 우리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더 만들어 주세요. 4. 금지하고 통제하고 막고 못하게 하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 없나요? 5. 투표권을 포함하여 청소년들의 권한을 주세요. 6. 봉사도 하고 우리가 사는 마을 일도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7. 칭찬, 격려를 더 해주세요. 8. 마음을 보아주세요. 9. 어른들이 먼저 행복한 삶을 살아주세요. 10. 의미 있게 시간을 쓰면서 살게 해주세요.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중 -   김영미 위원은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0-01-29 | hrights | 조회: 763 | 추천: 6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덕수궁 돌담길 거닐다보면 일제에 의한 대한제국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있다. 중명전이다. 중명전은 특사로 파견된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대신들을 불러 모아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한 장소이다. 이곳에 가보면 일제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해간 생생한 역사적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역사박물관으로 잘 꾸려져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중명전을 방문하여 일제의 서슬 퍼런 위협 앞에 속수무책 외교권을 강탈당한 대한제국의 비참한 최후를 보고 분노와 울분을 삼키며 식민의 아픔을 뼈속깊이 새기는 역사학습을 하고 있다.  중명전과 담 하나로 맞닿아있는 장소가 있다. 미국 대사 해리스의 숙소다. 대한제국 시절 미공사관 터에 지금은 미 대사관저가 있다. 미국과 한국이 밤낮이 서로 다르다보니 미 대사관저는 대사의 숙소도 있고, 미 대사의 집무실도 있다. 미 대사관저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미 대사관저를 방문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아무나 그곳을 방문할 수 없다. 왜냐하면 특별경비구역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늘 특별경비를 서고 있다. 어디까지 경비를 서냐면 미 대사관저 곳곳에는 담벼락 위에 철조망이 있고 물샐틈없이 경비초소가 설치되어 한국 경찰이 지키고 서 있다. 한국에 있는 외국 대사관저 중 유일무이한 특별경비구역이다.  미 대사관저를 방문하여 미 대사를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에 한국의 국익을 위해 미 대사에게 할 소리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들어본 기억이 없다. 미 대사관저를 방문한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미 대사는 한국의 대통령이 종북인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지를 확인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고, 방위비분담금 증액 이야기를 스무번 반복해 이야기했다는 이야기들이 넌지시 언론에 흘러나왔다. 망발을 하는 미 대사에게 항의했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온통 꿀먹은 벙어리가 된 모양, 체념한 듯 회피하는 듯하다. 중명전 앞 마당에서 미 대사관저를 경비하는 경찰을 보며 과거와 현재를 곰곰이 씹어보며 미 대사관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추해 본다. 데자뷰랄까 기시감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어느 날 미 대사관저에 한국의 청년들이 떼 지어 월담시위를 하고 미 대사관저에서 농성시위를 하며 미 대사 해리스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강요를 규탄한 적이 있다. 한국의 경찰들이 출동하여 모두 연행하였고 그 중에 네 명은 석 달 가까이 구속되어 있다. 미 대사는 청년들의 월담시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고양이는 안전하다며 한국경찰에 감사인사를 하였다. 미 국무부는 한국 정부에게 한국 내 외교시설에 대한 안전을 위해 더욱 노력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악영향을 끼치는 돌출행동으로 미 대사관저의 안녕을 해한 월담시위 청년들에 대한 엄중한 사법처리를 약속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경비를 실천하고 있다. 지금 미 대사관저는 더욱 강화된 경비를 받으며 그 안에서 도무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민 누구도 볼 수도 알아서도 안 되는 특별구역이 되었다.  미 대사관저의 특별 경비를 뚫고 사다리를 타고 월담시위를 감행하여 미 대사관저 내에서 미 대사의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6조원)을 강요하는 해리스 대사의 망발을 규탄 항의농성을 벌였다는 이유로 구금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네 명의 젊은이들은 지금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판사가 영장실질심사 당시 이들에게 주동자가 누구냐고, 배후가 누구냐고 법정에서 물었다. 성인에게 배후와 주동을 묻는 것이 말이 되냐는 반격이 법정에서 나왔다. 판사의 질문에 진술을 거부하는 이도 있었다. 불구속으로 석방된다면 다시 미 대사관저 등에 진입하는 시위를 할 것이냐는 판사의 질문에 네 명의 구속자들은 응당 해야 할 일을 실천할 것이라고 하기도 하였고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에 진술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이들 네 명의 젊은이들은 공안검사 앞에서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였고, 서명날인을 거부하였다. 검찰의 소환 조사 전에 이들은 일체 진술을 거부하는 자신들의 의사를 명백히 알리는 자필진술를 제출하며 검찰의 피의자신문은 아무런 실익도 없고 무용한 수사행위이고 자백 강요에 해당한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불필요한 피의자신문을 하지 말 것과 피의자신문을 강행하는 경우 진술거부권 행사 의사를 확인하는 순간 바로 신속히 조사중단을 요청하였다. 공안검사는 두 명의 오전 조사에서 각 5분 진술거부권 의사를 확인 후 조사를 중단하였고, 나머지 두 명의 오후 소환조사는 조사의 실익과 필요성이 없다는 이유로 예정된 조사를 취소하였다. 이들 젊은이들은 공안검사를 상대로 당당하게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행사하여 검사로 하여금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피의자를 상대로 불필요한 조사를 장시간 진행하는 부당한 수사관행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바로 이들 젊은이들에게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이들의 선택지, 우리가 감히 생각하기도 어렵고 실천은 더욱 어려운 그것이다. 당당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며 당당하게 처신하며 어떠한 희생에도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있는 그대로 지키며 싸우고 관철해나가는 자신감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고, 우리나라가 현재 갖고 있지 못한 당당함을 우리는 언제,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이들 젊은이들의 미 대사관저 월담시위는 오늘 미국의 횡포 앞에 농락당하는 우리들의 자존심을 세우며 온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며 주권을 당당히 행사한 역사적 장거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한국의 국익을 위해 싸우다 부당하게 구금된 이들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큰 빚을 졌다. 당당히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함에도 이들 양심들을 부당하게 지금껏 구금하는 이 나라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당당하게 사는 것, 이 나라가 당당하게 서는 것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0-01-15 | hrights | 조회: 1165 | 추천: 13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봄비  봄빈가? 착각이다. 겨울비다. 예보에 따르면 어제부터 내일까지 비가 온다고 한다. 나들이 하러 나선 길에 차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낯설다. 이맘때면 비 대신 눈이 와야 하니까 절기에 익숙해진 내 몸은 빗소리를 낯설게 느끼는 것이리라. 누군가 자연의 계절조차 겨울이 봄인 줄 착각한 거라고 걱정을 하지만, 나는 봄이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애써 낙천적으로 해석하였다.  며칠 전 학과장인 동료가 신입 대학원생 명단을 보내주었다. 한 달 전 쯤 면접을 마친 박사반에 이어 석사반 신입생들이다. 학부도 신입생 선발을 마쳤다. 이들이 봄의 새싹들이다. 그리고 난 지금 새 학기 대학원/학부 강의 계획을 짜고 있다. 저들이 이 커리큘럼을 마칠 때 “힘들었지만 남는 게 있었다”라는 최고의 칭찬을 남기도록 세심하게. 커리큘럼 곳곳에 지뢰를 숨기는 것도 잊지 않고 음흉하게 웃으며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개강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출처 - 민중의 소리  역사학개론  늘 그렇듯이 이번 봄 학기에도 전공필수 ‘역사학개론’을 강의한다. 10년 전, 처음 역사학개론을 맡았을 때, 강의계획서를 본 몇몇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바꾼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때만 해도 역사학개론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었던 것이다. 나는 학과회의를 거쳐 ‘역사학개론’을 필수로 바꾸었고, 수강신청을 정정했던 집나간 어린 양들은, 다음 해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역사학개론은 말 그대로 ‘역사학은 이렇게 공부하는 거다’, ‘이런 걸 배우는 거다’, 라고 학생들에게 일러주는 시간이다. 전공이니까 역사‘학’이 되지만, 삶이 곧 역사이기 때문에 ‘호모 히스토리쿠스’에게는 역사공부가 곧 인생에 대한 탐구가 된다. 나는 역사공부가 제대로 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학생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이란  역사학개론을 가르치면서 그동안 내가 ‘사실’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사학은 ‘사실’을 다루는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리학도가 에너지가 뭔지 모르는 것이나, 문학도가 문장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과 같았다. 나는 뒤늦게 ‘사실’을 조금 이해했다. 아둔한 나는 오랜 노력 끝에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정의를 내렸다.  역사의 사실이란 사회 또는 자연에서 벌어지는(=펼쳐지는) 인간의 행위를 말한다. 사실은 구조(조건), 의지, 우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이 바쁜 나머지 사실 가운데 구조만 생각하면 결정론에 빠지고, 의지만 생각하면 목적론에 빠지며, 우연만 고려하면 상대주의나 불가지론에 빠진다. 그렇다고 구조를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사는 세상, 사회의 변혁을 생각할 수 없고, 의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인간의 책임과 도덕성을 말할 수 없다. 우연을 생각하지 않으면,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이해할 수 없고, 무엇보다 인간의 비극을 이해할 수 없다.  헌데 의지는 종종 구조로 변하고, 구조 역시 의지로 자리바꿈을 한다. 내가 의지로 선택한 전공은 선택이 끝난 순간 나의 조건이 된다. 노예이라는 조건은 자각된 의식을 통해 해방의 의지로 거듭나기도 한다. 게다가 사건, 사실마다 구조, 의지, 우연의 배합비율이 다르다. 같은 인간이 없듯이, 세상에는 같은 사실이 없는 법이다. 그래도 자꾸 다루다 보면 지혜가 생긴다. 지혜는 힘이다.  나의 젊은 벗들이 겪는 낮은 취직률, 불안정한 직장, 무엇보다 연애조차 유보할 정도로 꿈을 삭감당하는 삶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기만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말이다. 그들의 아픔은 그들이 청춘이거나 성실하지 않아서 겪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만하는 어른들이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포착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문제의 반은 해결된 셈이니, 어찌 지혜가 아니겠는가.  한편 그 사실들은 시간과 함께 흔적도 사라지고, 우리는 기억과 기록을 통해 불완전하게 그 사실들을 붙잡아둔다. 일기를 써도 나의 과거 역사는 일부만 남고, 그나마도 안 쓰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사라져간다. 역사공부는 이렇게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된다. 다른 모든 배움이 그렇듯이, 바닷가의 조개를 주워 거기 묻은 모래를 살살 털어내면서 조금씩 나은 지식과 지혜를 찾아가는 것이다. 역사공부를 하면 우리 인생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는 이유이다. 잘 이해하면 잘 살 수 있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명언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시적 표현 속에 분명히 담겨 있는데, 너무 명언이다 보니 정작 묻혀버리는 진실이 있다. 현재=현대 역시 역사라는 점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유력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지금=현재 역시 그렇게 흘러가는 -때론 흘려보낼 수 있는- 역사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지식은 현재를 지배하는 상식을 상대화한다.  그 상식은 때론 객관성의 외피를, 경우에 따라서는 절대성의 외피를 쓰고 있기에 여간한 통찰로는 상대화하기 어렵다. 그 결과 마치 지난 모든 역사가 현재에 도달하기 위해 진행되어 온 듯 한 착각에 빠진다. 생산력과 기술이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발달한 현대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현실 합리화에 빠지기 훨씬 쉽다. 그런 점에서 역사공부는 보통 사람들이 현재를 비판적으로 상대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솔직히 말하면, 반대로 역사공부는 보통 사람들이 현재를 합리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현재의 비판적 상대화는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가 있기에 의미를 가진다. 돌아보건대, 역사학개론 시간에 역사의 연구방법, 주제, 언어와 사료, 사학사 등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짜다보니 역사공부를 통해 열게 될 미래에 대해서는 많이 소홀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돌아오는 봄에 만날 새싹들과는 현재에서 훨씬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데 힘이 되는 역사공부를 하고 싶다. 역사공부를 통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언짢은 삶을 고쳐줄 힌트와 대안을 발견하는 데 더 힘쓰고 싶다. 그렇게 될 것이다. 기다려라, 동지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20-01-08 | hrights | 조회: 776 | 추천: 6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국 검찰의 역사는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나뉜다. 목줄을 세게 쥐는 권위주의(또는 독재) 정부에서는 충직한 개였다가, 풀어 놓아주는 리버럴 정부에서는 야생의 늑대가 된다. 개의 시간에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지만, 늑대가 되면 스스로 본능에 따라 살아간다. 생존 본능이라는 새로운 주인을 섬기는 것이다. 생명 유지와 번식을 위해 필사적으로 먹이를 사냥하고 목숨을 건 결투도 피하지 않는다. 친검이냐 반검이냐  윤석열이 이럴 줄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윤석열을 잘못 본 것이다. 윤석열은 개의 시간에도 늑대 유전자를 숨기지 않던 인물이다. 당시 수뇌부가 개처럼 정권에 충성할 때 윤석열은 주인 없는 늑대처럼 행동했다. 그걸 현 정부 지지자들이 자기편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윤석열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윤석열은 검찰 편이다.  개의 시간에는 늑대가 드물지만, 늑대의 시간이 되면 죄다 늑대가 된다. 늑대의 시간에 늑대가 되는 건 쉬운 일이다. 가히 합법 쿠데타라 할 만한 작금의 검찰 행태를 윤석열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시각은 그래서 근시안적이다.  늑대가 된 검찰의 판단 기준은 여당이냐 야당이냐,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다. 친검이냐 반검이냐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친검이고, 검찰 개혁 의지를 꺾지 않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반검이다. 국회 패스트트랙 폭력 행사를 비롯해 자유한국당에 대한 수사를 검찰이 열심히 하지 않는 이유는 검찰이 보수여서가 아니라 자유한국당이 검찰 편이어서다. 자유한국당과 검찰의 적폐연대는 이미 작동중이다.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수사  늑대가 된 검찰에게 가장 큰 천적은 이른바 ‘검찰개혁 세력’이다. 그대로 뒀다간 검찰이 사냥을 못하게 되거나 번식이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게 조국은 호랑이 새끼 같은 존재였다. 더 크기 전에 물어 죽여야 했다. 조국 하나를 잡기 위해 청와대와 총리실, 기획재정부, 경찰청 등 가리지 않고 들이닥쳤다. 전국의 검찰 조직을 총동원해 넉 달 동안 뒤진 끝에 고작 ‘감찰 무마’ 직권 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채용 비리 혐의를 받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에게는 구속영장의 ㄱ자도 꺼내지 않은 검찰이다. 표적수사이자 문어발식 별건 수사일 뿐 아니라 친검 편파 수사로서 검찰 흑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사건의 경우 잘만 하면 ‘검찰개혁 사령부’에 해당하는 청와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다고 검찰은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경찰이라는 잠재적 경쟁자를 노린 다목적 수사다. 경찰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별건에 별건의 가지를 쳐가며 두고두고 관련자들을 괴롭힐 것이다. 각각의 유죄 여부는 검찰에게 중요하지 않다. 한국 검찰은 수사 착수만으로 유죄 심증을 갖게 하는 언론 환경을 갖고 있다. 의혹 제기만으로 목적의 절반을 이룬다. 물어뜯기도 전에 먹잇감은 만신창이가 된다.  이렇게 탈탈 털면 먼지 하나라도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문제는 이 모든 검찰의 무리한 행위가 합법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제어할 수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검찰의 의도는 불순하지만 입증하기 어렵고, 합법적 수사를 통해 불법행위를 밝힌다는 결과만 남는다. 검찰은 이렇게 국민을 ‘합법 딜레마’에 빠뜨려 놓고 제 밥그릇 챙기는 데 국민이 위임한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나쁜 악덕은 검찰 수사가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이건 지금까지 우리가 숱하게 봐왔던 검찰의 제식구 봐주기나 내로남불과는 차원이 다른 최악의 상황이다. 검찰이 이렇게 대놓고 조직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수사를 무리하게 할 수 있는 빈틈이 우리 민주주의에 존재하는 것이다. ‘상당성의 원칙’ 현저히 위배한 수사  나는 윤석열과 검찰을 이 시대의 난신(亂臣)으로 규정한다. 윤석열 검찰은 조선시대 예송논쟁에 비견할만한 디테일을 들이대며 나라를 어지럽히고 국정을 무력화하고 있다. 유재수 전 금융위 국장 감찰 중단이 청와대 업무상 정당한 판단인지 직권남용인지가 이렇게 떠들썩하게 나라를 뒤흔들어야 할 대단한 권력형 비리인가. 검찰도 감히 그렇게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은 또 어떤가. 경찰은 지역 사회에 파다하던 비리 혐의를 수사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울산지검이 김기현 쪽 편을 들어준 것 아닌가라는 의심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제기된 의혹도 아닌 검찰발 인지수사를 남발하며, 형사소송법의 ‘상당성의 원칙’에 어긋난 무리한 수사를 통해 끊임없이 정치적 소음을 양산하고 있다. ‘수사의 수단은 추구하는 목적에 적합해야 한다’는 수사비례의 원칙에 비춰 최근 검찰의 행태는 과도하고 무리하다는 의미에서 상당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예송논쟁이 조선의 국력을 낭비하게 하고 재난을 초래했듯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 또한 그러하다. 승냥이 같은 주변 열강들과 떼쟁이 같은 북한, 역대 최강의 갈등 증폭기라 할 자유한국당 때문에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나라의 운명은 검찰의 관심 밖이다. 오로지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만 혈안이 된 파렴치한 이기적 집단이 바로 윤석열 검찰이다. 조국 수사의 실무 책임을 진 자는 마치 조폭처럼 휘하 검사들을 떼로 몰고 법정에 나가 재판장을 겁박하는 작태를 벌이더니, 재판부를 상대로 고발장이 제출되자 정식 배당하고 수사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정경심 기소장 변경을 불허했다고 보복 수사를 예고한 것이다. 갈 데까지 간 수사권 남용 실태가 여기 있다. 선출 권력인 대통령도 무시하는데 그깟 법원이 무서울까. 오만방자하고 안하무인의 검찰 행태가 극을 달리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파탄난 검찰 중립(독립) 주장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검찰 독립’ 주장이 유행했다. 주로 검찰(지상)주의자들 입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그런데 법무부의 일개 외청에 불과한 검찰이 독립한다면, 검찰을 누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반문이 생겼다. 결국 선출 권력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는 반론이었다. 그러자 말을 바꿔 정치적 중립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유사 이래 최상급의 독립성을 누리고 있는 윤석열 검찰은 역설적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얼마나 허구적인 개념인지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중립이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검찰은 중립을 보장하는 정부를 향해 칼끝을 겨누는 일이 중립성을 지키는 것인 양 으스대지만, 이건 중립이 아니다. 중립을 보장하는 정부에서만 가능한 ‘시한부’ 중립이다. 결과적으로 중립을 보장할 생각이 없는 자유한국당 세력에게만 편파적으로 유리한 ‘반쪽’ 중립이다.  윤석열 검찰이 최대치로 키우는 건 중립성이 아니라 편파성이다. 이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구호는 시효가 끝나 버렸다. 중립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은 스스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더구나 검찰이 검찰을 위해서 칼을 드는 친검 편파적 수사는 검찰 중립이라는 가치의 재구성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국민 통제라는 목줄  일명 ‘개통령’으로 불리는 강형욱씨가 출연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주인을 위협하고 물기까지 하는 삽살개가 문제견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덩치가 워낙 크고 사나워서 개가 방문을 막고 있으면 엄마아빠도 드나들 수 없었고, 고등학생 자녀들은 으르렁거리며 몸 주위를 도는 개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강형욱씨는 이 개가 주인들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이 이 집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형욱씨가 제시한 해법은 목줄을 세게 쥐는 것이다. 주인보다 앞서서 달리려고 하거나 입마개를 벗으려고 할 때마다 강씨는 목줄을 세게 낚아채 개를 제지했다. 이 행동을 반복하니 개가 얌전해졌다. 주인의 통제가 먹히기 시작했다.  과거 정부들처럼 검찰 출신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세워 검찰을 장악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만악의 근원에 해당하는 검찰의 권력 독점을 깨고 국민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얘기다. 검찰의 수사권 박탈은 물론이고, 기소배심제(대배심) 등 여러 가능한 대안을 중층적으로 고안해야 한다.  강형욱씨에 따르면, 주인 행세하는 개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주인의 자세가 하나 더 있다. 개가 으르렁거려도 겁먹지 않는 것이다. 검찰은 기형적으로 발전해온 우리 민주주의의 빈틈이다. 국민의 힘으로 비뚤어지고 터진 곳들을 바로 잡고 메워왔듯이 검찰이라는 빈틈도 메울 수 있다. 으르렁거려도 겁먹지 말자. 늑대는 집안에서 키울 수 없다. 검찰의 새로운 주인은 검찰 자신이 아니고 국민이어야 한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9-12-26 | hrights | 조회: 30111 | 추천: 1140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쯤으로 기억됩니다.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저에게 외할머니께서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어떤 선비가 이웃 마을에 볼일이 있어 길을 나섰습니다. 선비는 불어난 개울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 전날 비가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징검돌 몇 개만 밟으면 건널 수 있는 작은 개울이었지만 물이 불어 징검다리는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니 개울을 건너려면 신발을 벗고 바지를 허리춤까지 걷어 올려야만 했습니다. 선비는 신발과 버선까지 벗고 바지를 올리리가 영 귀찮기만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중에 좋은 꾀가 떠올랐습니다.  개울 옆 길 끝에 장승 두 개가 서 있었습니다. 선비는 장승을 발로 넘어뜨렸습니다. 그러고는 장승을 나무다리로 삼아 밟고 개울을 건넜습니다.   잠시 후에 역시 이웃 마을에 볼일이 있어 길을 나선 이가 있었으니 어느 부잣집의 머슴 돌쇠였습니다. 물이 불어난 개울을 건너려던 돌쇠는 기가 막혔습니다. 어떤 못된 인간이 겁도 없이 마을을 지키는 장승을 통나무다리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돌쇠는 서둘러 장승을 개울에서 들어 올린 후 원래 있던 자리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신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린 채 개울을 건넜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가야 할 길을 갔습니다.    문제는 화가 난 장승이었습니다. 스스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쯤으로 생각하고 있던 장승이었는데, 감히 자기 몸을 넘어뜨려 밟고 지나가는 통나무다리로 전락해버렸으니 그 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승은 인간에게 벌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인간에게 무서운 벌을 내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본을 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온몸에 고칠 수 없는 종기가 나서 평생을 고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벌을 받은 사람은 앞서 갔던 선비가 아니라 뒤에 개울을 건넌 돌쇠였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마나 저는 당연히 따졌습니다.   "할머니, 선비가 나쁜 놈이고 돌쇠는 착한 사람인데 왜 돌쇠가 벌을 받아?"   당시 저는 외할머니가 이야기를 잘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당한 결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 그게 아닐 거라고 할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끝없이 왜? 왜? 왜? 하고 따지는 저에게, 할머니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나도 몰라 이놈아. 이야기가 본디 그래!"   '이야기가 본디 그렇다'는 말인즉슨, 외할머니는 당신이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었다는 말입니다. 원래 이야기에서 보태거나 빼거나 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 이야기는 오랫동안 저의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결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저는 그 이야기가 문득 떠오를 때마다 선비는 벌을 받아야 할 나쁜 사람이고 그 때문에 돌쇠는 애꿎은 일을 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선비는 가해자, 돌쇠는 피해자쯤으로 정리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둘의 신분이 양반과 노비로 대비되는 만큼 이야기의 결말은 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올해 고등학생이 된 조카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조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장승이 나쁜 놈이네요, 지가 뭔데 벌을 주고 말고 해요?" 
2019-12-19 | hrights | 조회: 709 | 추천: 5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벚꽃이 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다. 방송은 물론 모든 언론은 벚꽃의 개화일지를 상세히 보도할 것이고 그 친절한 안내에 따라 전국의 도로란 도로, 산이란 산은 벚꽃 천지가 될 것이다. 진해군항제에 쌍계사 벚꽃 길은 인산인해의 시작에 불과할 것이며 조선신궁이 있던 남산이나 심지어 대한민국 정치 1번지라는 윤중로도 벚꽃 터널의 황홀함에 비틀거리는 인파로 가득할 것이다. 라디오나 tv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으라”고 분초를 다투어 읊어댈 것이고 몇몇은 일본의 아베가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든 축제를 만들어 사람들의 넋을 홀릴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든 벚꽃축제가 200개가 넘어(행정구역상 시, 군의 개수가 161개이니 각 지자체당 1개 이상) 차고 넘치지만 또 만들 것이다. “사쿠라”가 도대체 뭐가 좋다고 저 난리들인가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을지도 모르나 이 여린 빛깔의 향연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죄라는 연인들의 깔깔거림 속에 묻힐 것이다. 조선의 꽃이나 일본의 꽃이나 다 같으니 꽃에게 무슨 이념이 있겠는가를 따지는 이도 있겠고 심지어는 벚꽃은 이 땅에서 난 토종인데 무슨 무식한 소리냐며 핏대를 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박중양이나 윤치호 일가가 한반도 근대화에 앞장선 개화파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도 봤고 심지어 박정희가 독립운동도 했다더라고 우기는 사람도 봤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도 한 사회를 살아간다. 그러니 벚꽃에 관한 해석은 서로 상반되는 이해관계의 몫으로 묻어두고 벚꽃 축제는 영원하다.  일본 메이지 유신 시절에 만든 교육칙어(教育勅語 교이쿠초쿠고)를 그대로 본뜬 국민교육 헌장을 달달 외웠다거나 친일파 박정희가 2차 대전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에게 대한민국 1급 훈장(수교훈장 광화대장)을 수여했다거나 1980년대 이전 육군 참모총장 대부분이 일본군 출신이었다거나 하는 철지난 친일청산 미흡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고백컨대 일본 자위대가 서울의 한복판에서 창설 5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을 때(2004.6.18. 신라호텔) 축하하러 간 한국의 국회의원이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 중에 재선에 재선을 거쳐 중진 정치인이 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허탈하다. 친일 인맥도가 돌아다니고 누구누구는 친일 거두의 일가라는 말이 낭설이 아님에도 끝끝내 선거에서 살아나 사선, 오선을 하고 수구야당의 깃발을 드는 모습에선 아예 귀를 닫고 만다. 그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일가의 반민족적 과오를 시대를 앞서간 탁견으로 받아들이는 백성들이 그들의 지역구에선 절반이 넘는다는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더 이상 “겐세이” 놓지 말라고 “야지”를 퍼붓는 국회의 모습은 낯설지도 않다.  844,729:7,031 전체 보훈대상자 대비 독립 유공자의 숫자(국가보훈처 2018년 통계) 를 보면 더욱 참담하다. 유관순 선생이나 김구 선생 같은 분들이 일제와 싸워 세운 나라라는 국가 정체성이 고작 0.8%만 인정을 받는 국가기관의 통계 속에서 반공의 깃발은 더욱 드세 지고 그들의 근간이 친일이라는 공식은 더욱 선명해진다. 우리는 이미 황국신민(國民)이란 말을 대치불가의 용어로 사용하고 있고 친일파 윤치호의 작품이라는 의심을 받는 작사와 일제 만주국을 찬양한 작곡가의 음악을 애국가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 욱일기의 모태가 된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꽃(경희대 강효백 교수의 주장)이라는 무궁화를 국화로 추앙하는 것은 물론, 어떤 의미인 줄도 모른 채 친일 음악인의 친일가요 ‘희망의 나라로’에 환호한다.  사라진 줄 알았지만 여전히 서울대 음악대학 앞에는 현제명의 동상이 버젓하고 중앙대에는 임영신, 연세대 백낙준, 추계대의 황신덕, 고려대의 김성수, 이화여대 김활란 등 좋다는 대학의 교육철학을 설파하는 친일 거두들의 동상은 찬란하다. 식민지 수탈의 아버지, 경부철도 주식회사의 주역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는 이미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탈바꿈하여 한국에서 추앙 받은 지가 꽤 되고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은 소리 없이 올해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그나마 NO아베를 외치며 들불처럼 번진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애들도 안하는 정신병 같은 장난 혹은 북한만 이롭게 한다는 신문사설로 화려한 조명을 받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의미가 세탁된 친일은 이미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비중을 늘려간다.  그리고 현 정부의 지소미아 효력정지 해제. 국회의장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1+1+a). 외교, 정치적 함의는 있을 수 있겠으나 내 할아버지가 울분을 토했던(외증조부는 1907년 의병에 가담했고 옥고를 치룬 몇 안되는 독립 유공자이다) 민족적 · 자주 독립적 함의는 전혀 없다.  하여 그들은 다시 온다. 일본 A급 전범 사사가와 료이치의 돈을 받은 연세대학의 아시아 연구기금처럼, 소리 없이 온다. 도요타 재단 지원금을 받은 학자들의 반민족적 연구로 온다. 세련된 디자인의 욱일기로 오기도 하고 화려한 올림픽의 관객석에서 휘날리는 욱일기로도 온다. 당연히 미국을 등에 업고 온다.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가당치 않은 사건으로도. 지소미아 지속이라는, 주한미군 방위비 6조원 인상이라는 압박으로도 온다. 주한미국 대사의 호출에 득달같이 달려가는 국회의원 나리들의 발걸음으로도,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도 모자라 일장기까지 흔들어대는 광화문 노인네들의 외침으로도 온다.  현재의 정부를 구한말 오갈 데 없던 고종의 무능에 비유하는 일부 정치인의 야유로도 오고,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소확행을 목표로 삼는 청년들의 무관심으로도 온다.  내년 4월 벚꽃난장이 펼쳐질 대한민국에서 고작 표 하나 달랑 들고 투표장으로 향해야 하는 나의 민주주의가 두려운 이유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9-12-04 | hrights | 조회: 901 | 추천: 14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어제의 흔적이 오늘을 제약하고 오늘의 흔적은 내일을 규정한다. 올해 하반기 뉴스의 중심을 차지하는 한일갈등과 검찰개혁 역시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두 가지는 일제잔재청산이라는 주제와 연관된다. 애초에 검찰이 기소독점과 기소편의 등 각종 특권을 갖게 된 것도 경찰이 친일파 소굴이라는 현실에서 적잖이 기인했다. 많은 국민들이 친일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고 인식하고, ‘정치인·고위공무원·재벌 등에 친일파 후손들이 많다’는 걸 원인으로 진단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경축사에서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고 말했을 정도다.  제2공화국 국무총리를 지냈던 장면의 아들인 장순이 어린 시절 경찰서를 지날 때마다 들었다는 “고문 피해자들의 비명 소리”야말로 친일잔재청산과 좌절된 해방을 보여주는 예리한 단면이 아닐까 싶다. 당시 경찰은 곧 친일파 집합소나 다름없었고 평범한 장삼이사들을 좌경화시키는 교과서였다.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해방 직후 경찰 고위직에 몸담았던 최능진은 “이러한 정세가 계속되면 한인의 80%가 공산주의 쪽으로 돌아설 것이다”라는 보고서를 제출했을 정도다. 물론 최능진은 그 직후 경찰에서 짤렸다.  우리가 기억하는 해방 혹은 일재잔재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들의 기억이란 썩 믿을게 못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많은 이들이 조선총독부 앞에 일장기가 1945년 9월 9일까지 걸려있었으며,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그 전날 인천에 상륙했던 미군이 항복 조인식을 한 뒤 일장기를 내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일장기를 내린 미군이 곧바로 성조기를 게양했다는 사실은 더더욱 기억 속에서 사라져 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 민중들이 패전 소식을 들으면 일본군과 일본 민간인을 공격할까 걱정했다. 결국 몽양 여운형에게 행정권을 이양하겠다고 제안했다. 여운형은 정치범·경제범 즉시 석방, 경성에 3개월 치 식량 확보, 치안유지와 건설사업·학생훈련과 청년 조직화에 간섭하지 말 것 등 5개 항을 요구했고 수락을 받아냈다. 여운형은 그날 저녁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했다. 16일에는 오전 10시를 기해 전국 형무소에서 정치범과 경제범 약 1만 6000여명이 풀려났다. 17일에는 건준 부서 결정을 완료했다. 치안유지 권한과 방송국 등 언론기관도 조선총독부한테서 이양 받았다. 총독부 건물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총독부에게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 “정식 항복할 때 일본 통치기구를 그대로 미군에게 인계하라”고 통고하자 총독부는 8월 18일 오후에 여운형에 대한 행정권 이양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태극기도 다시 일장기로 바꿔 달았다.  조선총독부는 미 군정청(MG)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일괄 사퇴한 총독부 일본인 관리들은 비공식 고문이 됐다. 이들은 한국인 '인재'들을 미군정에 추천했다. 그리하여 조병옥 경무국장, 장택상 수도경찰국장을 비롯해 노덕술 같은 이들이 경찰 핵심부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일본 군대는 “심지어 ‘미군정’이라고 쓰인 완장을 차고 신나게 거리로 나와서… 미군정의 권위하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하는 한국인들 앞에서 보란 듯이 무리지어 활보하고 다녔다. 무장한 일본 군인들은 ‘미군이 재가한 일본군 파견대’라고 쓴 트럭을 타고 시내를 오갔다.” 사진 출처 - JTBC  친일잔재는 살아남았다. 청산?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진실의 반쪽을 놓치고 있는건 아닐까.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않고 오히려 육성한 건 누구였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친일잔재를 살려낸 건 미군정이었다. 그 이유는 경찰을 감독하던 윌리엄 매글린 대령이 “우리는 만일 [일제하 한국 경찰이] 일본인들을 위해서 일을 잘했다면 우리를 위해서도 일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큰 그림에서 보자면 미국의 세계전략은 일본부터 파키스탄에 이르는 반공 방벽을 만들려 했다. 한반도 남부는 미국과 '일본'의 하위 파트너가 되어야 했다.  이승만이 그 유명한 ‘정읍발언’에서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선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라며 분단을 공식화한 게 1946년 6월 3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두 달 전인 그 해 4월 6일 "미 점령군 당국은 남조선에 한하여 조선 정부 수립에 착수하였다"는 AP통신 보도가 나왔다. 요즘은 한미동맹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 사람들이 부쩍 줄어든 것 같다. 한일갈등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은 전혀 줄어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한일관계와 한미관계, 그리고 미일관계를 종합적인 차원에서 보지 못하는 건 반쪽짜리 인식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혹시 한일갈등 혹은 한중갈등이야말로 미국이 구사하는 현대판 '이이제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9-11-27 | hrights | 조회: 565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