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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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희교(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염운옥(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장경욱(변호사), 정범구(전 주독일 대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주석의 소리 2023> -삼천리 금수강산 만세 여기는 환상(幻想)의 상해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가 보내는 주석(主席)의 소리입니다. 주석 각하의 담화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오인영 / 인권연대 운영위원 출처 - 서울신문 후진국에서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정부입니다.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는 헌법에 씌어져 있는 것에 좇아 권한을 행사하라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헌법에, 라고, 말할 때, 한국 사람이며 모두 어떤 감회를 느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헌법에 대해서 그 힘을 번번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괴롭고 환상적인 경험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밖으로 국제 사회에서 민족 국가의 독립을 유지하는 것이 최대의 의무입니다. 그 독립을 유지하고 보다 나은 국제적 지위를 얻기 위하여 국민을 조직하고 지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반세기 전에 가장 악질의 정부에 의하여 민족 국가의 발전에 있어서 치명적으로 중요했던 시절을 적 치하에서 신음해야 하는 처지에 굴러떨어졌었습니다. 자기 국민을 적에게 파는 정부, 그것이 최악의 정부입니다. 그것은 최악의 전제 정치보다도 나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개화기에 있어서 정부가 취한 이 치매적(痴呆的)인 반민족 행위에 대하여 좀더 주의와 분석이 여러 사람에 의해서 가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지적하고 싶은 한 가지 문제점은 저 반역자들의 의심할 수 없는 도덕적 저열성과 악의는 논외로 치고, 그들이 언중유골 식으로 풍기고 있는 어떤 변명에 대해서입니다. 즉, 그들은 마치 주권의 희생하에서 개화를 하는 것이 불가피했던 것 같은 태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객관적으로 허무맹랑한 것이었습니다. 객관적이란, 일본제국주의는 우리를 개화시키기 위하여 그토록 안달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수탈하기 위하여 침략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주관적으로는 반역자들의 변명은 근거가 없습니다. 정권의 담당자로서 주관적 의도를 정당화하는 길은 국민의 뜻을 얼마나 반영했는가 하는 척도 말고는 아무 정당성도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그들의 반역을 한 번도 지지한 적이 없습니다. 자명한 사실에 대해서 이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사회변혁이 급격하게 진행되는 시기에 있어서는 그 사회변혁의 진보성이라는 것과 민족 국가의 주권이라는 것이 마치 서로 양보할 수 있는 성질이거나 한 듯이 착각하고, 그 착각을 이기심의 위장으로 삼는 부류가 흔히 나타난다는 경험을 상기시키기 위해섭니다. (중략) 정부는 그 권력을 헌법에 규정한 대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근대 유럽 국민이 막강한 인습과 권력의 힘에 항거하여 정치 권력을 손에 쥔 역사적 경험은 아마 우리들의 정서적 상상력을 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도 인간인 이상, 그와 완전히 동일한 역사적 세부까지를 추체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그와 동일한 형태의 생명의 경험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가까운 것으로만 보더라도 3·1운동과 4·19에서 나타난 국민의 주권 의사입니다. 정부는 자신이 행사하고 있는 권력이 국민의 주권 행사의 표현인 헌법에서 나온 것임을 매일같이 명심하여야 합니다. 권력의 행사에 있어서 국민의 주도권을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것은 오늘의 세계에서 민족 국가가 대외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입니다.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공인된 원리에 구속시키고 있는 정부가 가장 강한 정부이며, 그 구속을 벗어나 있는 정부가 가장 약한 정부입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가장 강한 정부는 민주적 정부이며, 가장 저항력이 약한 정부는 반민주적 정부입니다. 우리들의 상황은 어떤 정권의 민주성의 정도가 단지 내정에서의 민주주의의 기복을 나타낸다는 태평한 세월이 아닙니다. 그것은 밖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방위력의 궁극적인 기초입니다. 민주주의는 민족 국가의 국방력의 안받침입니다. 이 안받침을 흔드는 자는 국방력을 흔드는 자이며 국방력을 흔드는 자는 반역자입니다. 정부 권력의 민주적 행사 여부의 표준은 정부가 자기 권력을 그 수임자인 국민에게 항상 개방하는 것, 권력의 원천에 의한 계속적인 추인의 기회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도 우리는 쓰라린 경험과 앞으로도 계속될 난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정부는 국민에 의한 비판의 온갖 기회를 스스로 개방하여야 하며, 결과적으로 그것이 그 정권 자체의 득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권력 행사에 대한 국민 참여의 최대 기회가 선거입니다. 민주주의란 선거이다, 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자유로운 선거의 보장, 논리적으로는 정부의 모든 기능은 이 한마디에 그칩니다. 현재 정부가 수행하는 모든 행정 기능은 정부 외의 사회 집단에 이양할 수도 있지만, 선거의 관리만은 사영화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민주 국가의 가장 중대한 공적 행위입니다. 사회의 모든 성원이 자유로운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는 공정한 관리 기관이 정부이며, 우리는 아직도 이 점에서 찬양할 만한 도덕적 자제력을 가진 정부를 가진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 여부가 민족 국가의 독립과 직결돼 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의 버릴 수 없는 꿈이며 양보할 수 없는 요구라고 밝히고 싶습니다. 출처 - KBS뉴스 *덧붙이는 말: <주석의 소리 2023>은 최인훈 선생의 소설 <주석의 소리>의 일부분을 옮긴 것입니다. 최인훈 선생은 <주석의 소리>(1968년 발표)에서 한국의 역사에 실존했다가 사라져버린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이라는 역사적 타자를 불러들여 한국의 민주주의와 건강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방책을 설파합니다. 그리고 그 방책의 주체를 정부, 기업인, 지식인, 국민으로 구분하고, 저마다 수행해야 할 바람직한 행위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 글은 그 중에서 정부에 대해 논한 부분을 옮긴 것으로(단 강조는 인용자가 한 것인데, 그게 <주석의 소리>의 논지를 훼손했다면 책임을 질 것이고),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친일 · 사대 · 매판으로 치닫는 윤석열 정부의 작태가 얼마나 역사 퇴행적이고, 시대착오적인지를 새삼 일깨워주는 비판적이면서도 상식적인 준거가 되리라는 기대에서 여기에 소개합니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3-09-05 | hrights | 조회: 291 | 추천: 6
강국진 / 인권연대 운영위원 검토는 안하지만 필요하면 검토할 것이고, 필요한지 안한지 검토할 건데 아직 결정된 게 없으니까 가정해서 묻지 말아달라. 출처 - 저자 28일 열렸던 국방부 브리핑을 한 마디로 요약해봤다. 이게 말이냐 떡이냐 싶겠지만 그래도 별 수 없다. 발단은 홍범도였다. 육군사관학교가 느닷없이 학교에 있는 홍범도 흉상을 치우겠다고 했다. 소련공산당 관련 활동을 했으니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곧바로 문제제기가 나왔다. 국방부 앞에도 홍범도 흉상이 있는데 그것도 치울거냐. 국방부 브리핑에서 질문이 나왔다. 국방부 대변인은 “국방부가 현재 검토하고 있지만 결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공산당 입당 또는 그와 관련된 활동이 지적되고 있어서 검토하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알기 쉽게 번역해보면 “아직 결정은 안됐지만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답은 정해져 있다” 정도 되겠다. 출처 - 한겨레 국방부 행동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는 곧바로 이어진 다음 질문에서 곧 드러난다. 현재 해군은 1800t급 잠수함 ‘홍범도함’을 운용하고 있다. 홍범도 활동이 문제가 돼 동상을 치워야 한다면 홍범도 이름을 딴 잠수함도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인가. 국방부 대변인은 “필요하면 검토할 수 있다”고 답했다. 곧바로 해군 공보팀장이 “해군에선 그 문제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선을 그으면서 국방부 대변인을 뻘쭘하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함명을 변경하는 건 전세계에서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 브리핑이 끝나고 해군 관계자에게 따로 물어보니 “잠수함 이름은 공식절차를 거쳐 오랜 논의 끝에 정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홍범도 논란은 홍범도함을 거쳐 남조선노동당(남로당) 전력이 있는 전직 대통령으로 이어졌다. ‘남로당 핵심관계자였고, 그런 전력으로 사형 선고까지 받은 적이 있던 전직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입장’을 묻자 국방부 대변인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내친김에 해군이 보유한 3000t급 잠수함 ‘신채호함’은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도 나왔다. 단재 신채호는 아나키스트 활동을 하다 옥사했다. 아나키스트라니, 자유주의에 맞지 않는 분 아닌가. 역시나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방부는 왜 이렇게 일관성이 없는 것일까. 홍범도는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혀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영웅이라는 걸 모르는 한국사람은 없을 것이다. 홍범도는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는데 현재까지 대통령장을 받은 사람은 20명 뿐이다. 그게 1962년이니 박정희 정부 당시다. 김대중 정부 당시인 1998년 10월에는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에는 신형 잠수함을 홍범도함으로 명명했다. 2021년 문재인 정부는 홍범도 유해를 국내로 봉환했고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그랬던 홍범도를 이제 와서 ‘전력에 논란이 있다’며 동상을 치워버리겠다고 하니 모두가 당황스러워한다. 출처 - 연합뉴스 사실 어느 정도는 예견했던 일이긴 하다. 대통령 윤석열이 목놓아 자유를 외치며 공산적폐주의인지 공산전체주의인지 사전에도 나오지 않고 개념조차 없는 신기한 말을 했을 때부터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설마 그게 홍범도일 줄은 몰랐다. 본인 스스로 친일파라고 인정했던 백선엽은 동상을 세워주고 친일파 아니라고 대신 우기더니,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홍범도는 ‘색깔이 의심스럽다’며 딱지 붙이느라 여념이 없다. 경제는 절딴나고 외교는 살얼음인데 어찌 그리 한가할 수 있는지 두려울 정도다. 우리는 흔히 과거 인물들의 행적과 사고방식, 역사적 사건을 지금 잣대로 손쉽게 재단해버리곤 한다. 물론 무조건 나쁘게 볼 건 아니다. 그때는 그랬지 하는 식으로만 뭉개는 건 역사에서 배울 태도는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당대의 맥락을 무시한 채 지금 잣대만 들이대는 건 역사왜곡과 갈등에 빠지는 길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당대의 맥락과 지금의 잣대 사이에서 긴장감을 놓지 않고 균형을 찾아가는 끊임없는 성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자세라면 홍범도의 ‘논란있는 행적’이 갖는 의미를 좀 더 냉정하고 통찰력있게 살필 수 있지 않을까. 이는 보훈부 장관 박민식이 앞장서고 정부여당이 지원사격하느라 여념이 없는 정율성 역사공원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출처 - 한겨레 용산 대통령실에서 일하는 어떤 공무원이 용산 대통령실을 ‘용궁’으로 지칭하는 걸 듣고 한참 웃었던 적이 있다. 요즘 용궁은 한참 색칠놀이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하지만 잊지 말자. 색칠놀이는 두세살 아이들이 할 때나 귀엽고 예뻐 보이는 법이다. 하다못해 일본은 아베같은 사람조차도 이전 정부에서 공식발표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정과 사과를 담았던 ‘고노 담화’를 부정하지 않고 유지했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5년에 한번씩 ‘건국’을 하며 새 나라의 어린이로 새로 태어나는 나라가 돼 버렸다. 그런 정신으로 무장한 분들이 이끄는 용궁은 오늘도 색칠놀이에 한창이다. 물론 애초에 기대도 없었으니 실망할 것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딱 한가지는 부탁하고 싶다. 색칠놀이를 하더라도 빨간색 하나만 하진 말아줬으면 좋겠다. 빨간색 범벅 색칠한 종이는 정신 사납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3-08-29 | hrights | 조회: 358 | 추천: 11
김희교 / 인권연대 운영위원 80만원. A씨가 장발장은행에서 빌려 간 돈이다. 장발장은행은 벌금을 내지 못해 실형을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다. 대개 어디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는 처지의 분들이 손을 내민다. A씨는 1984년생이다. 아직 젊은 나이다. 최근 그가 명을 달리했다. 왜 그리 짧은 생을 마감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의 죽음이 장발장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그의 처지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내가 A씨에 대해 알게 된 건 A씨의 여동생 때문이었다. A씨가 명을 달리하자 그의 여동생이 장발장은행에 연락을 했다. 오빠의 부채를 갚아야 한다며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인권연대 운영위원의 카톡에 올라 온 이 짧은 사연을 본 날 하루는 나에게 참 길었다. 종일 심사가 복잡했다. 슬프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부끄럽기도 했고, 뿌듯하기도 했다. 출처 - KBS뉴스 부끄럽게도 인권연대 운영위원을 맡고도 나는 장발장은행에 돈을 빌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도 떠 올려본 적이 없다. 시민으로서 장발장은행에 대한 막연한 애정이야 홍세화선생이 은행을 언급하기 시작할 때부터 상당했다. 교수로서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얼굴 없는 돈의 ‘악마의 맷돌’ 같은 속성 비판하며 장발장은행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럴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권연대 운영위원을 맡아달라는 오창익 사무국장의 전화에 망설임 없이 덜컥 수락한 이유 중에도 인권연대가 장발장은행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운영위원을 맡은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운영위원회가 한 번 있었다. 운영위원으로서 장발장은행의 심사 결과를 보고 받았다. 그때도 나는 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지 않았다. 그저 그들을 숫자로만 취급했다. 운영위원으로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출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 심사를 통과해 대출을 받은 사람의 얼굴도, 그 돈조차 대출받지 못한, 그 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사람의 얼굴도 떠 올려본 적이 없다. A씨 여동생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가장 먼저 든 느낌은 검은 비닐봉지 안에 있는 산 낙지를 잡은 듯한 충격이었다. 내가 숫자로 다루고 있었던 그들도 나와 조금도 다름없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산 낙지를 만질 때처럼 그저 숫자로 나열되어 있던 대출자들의 얼굴과 그들 삶의 고뇌가 갑자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A씨 여동생의 오빠이자 누군가의 형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충격 다음에 온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죽으면 내 가족은 저럴 수 있을까. 아니 내 가족이 죽으면 나는 저럴 수 있을까. 솔직히 나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나는 틀림없이 심중팔구 현행법을 들먹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갚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고 스스럼없이 숫자로 정리했거나, 내가 더 좋은 데 쓰자고 자위했을 것이다. 심지어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거품만 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A씨 여동생처럼 아름답지 못하다. 참 아름다웠다. A씨가 장발장은행에 빌려야 될 처지였다면 모르긴 해도 동생에게 이렇게 저렇게 많은 폐를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생은 오빠의 죽음조차 욕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자신이 갚지 않아도 될 돈까지 챙기고 있었다. 아니 이런 생각조차 아름답지 못한 내가 가진 편견일 수 있다. 동생이 이렇게 선하고 오빠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걸 보면 오빠도 동생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을지 모른다. 오빠가 장발장은행에 돈을 빌릴 정도라는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한국사회의 구조를 볼 때 동생도 그리 넉넉한 살림살이를 꾸리고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가난을 죄로 취급하지만 가난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장발장은행에까지 손을 빌릴 정도에 이른 것은 결국 그들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이다. 80만원은 그녀에게도 꽤 큰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돈 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얼굴을 보고 그 얼굴을 외면할 수 없어 전화를 한 것이다. 그녀는 나는 보지 못한 80만원이라는 돈 뒤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본 것이다. 돈에도 얼굴이 있다는 사실은 오래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다. 금강산관광이 가능했던 시절이다. 금강산관광이 개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일하던 계간지 편집위원들이 의기투합하여 금강산 관광을 나선 적이 있다. 도착하고 하루가 지난 저녁이었다. 내 침대보가 헝클어져 바로잡으려는데 침대사이에서 노란 봉투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열어보니 100불짜리 달러 몇 장과 20불짜리 몇 장, 그리고 10불짜리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 후 헤어지는 모습> “헐 정신 빠진 사람들 봤나”라고 생각하고 프론트에 연락해 전날 묵었던 투숙객을 수소문했다. 프론트의 회답은 너무 뜻밖이었다. 그 곳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마친 한 북한쪽 가족이 그 방에 묵고 우리가 오는 날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북한 가족들이 일 년은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놓고 간 것이다. 편집위원 전원이 여행을 팽개치고 그 돈을 돌려줄 방법을 찾았지만 불가능했다. 그 돈을 서울로 가져와 통일부를 통해 그 가족에게 전하는 데는 몇 년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수없이 10불짜리까지 챙겨주고 싶은 가난한 남쪽 가족들의 마음과 그 돈을 챙길 경황조차 없이 북한으로 돌아가 황망하고 죄스러워 할 북쪽 가족을 생각하며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돈에는 얼굴이 있었다. 장발장은행 심사 모습 인권연대 운영위원을 맡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내가 내던 기부금을 조금 늘인 것이었다. 내가 가까이 서 본 오창익 사무국장과 인권연대 사무국 사람들의 얼굴 때문이었다. 존재 그 자체가 싫은 사람이 있다면 존재 그 자체가 좋은 사람도 있다. 그들이 그랬다. 연구를 한답시고 힘든 사회현장에서 거리를 두고 있던 나에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회문제의 현장을 챙기고 계시는 그 분들은 늘 그저 존경과 감사의 대상이다. 돈 안 되는 일을 저렇게 열심히 하는 분들을 나는 본 적이 별로 없다. 이제 A씨 여동생의 아름다운 얼굴을 만났으니 또 어디에선가 돈을 좀 더 짜내야 할 듯하다. 그런 얼굴을 더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기뻤다. 운영위원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부끄럽게도 아직 장발장은행에는 한 푼도 안내고 있다. 내가 딸아이에게 난생 처음 돈 부탁을 한 것도 그 인권연대 일꾼들 얼굴 때문이었다. “봄아 여기 기부 좀 할래?”라는 단 한마디 속에는 “네가 인권연대에 기부금을 내면 너는 아마 네 돈보다 몇 배는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만나게 될거야”라는 메세지가 담겨있었다. 벌써 수년간 같이 점심을 먹어 온 교수님들에게도 “좋은 일 좀 하시죠” 라고 말씀 드렸더니 몇 분이 흔쾌히 들어주셨다. 그 분들도 A씨 여동생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시리라. 유일하게 내가 기부를 권유했는데 망설인 사람이 나의 제자인 B였다. B는 다양한 얼굴을 가진 친구이다. 대구 출신의 보수 집안 출신임에도 나 같은 반골선생의 제자가 되겠다고 자청하며 나의 모든 수업을 듣기도 한다. 해외여행 다니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은 집안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회활동에도 돈을 쓰지 않는 이상한 나의 제자이기도 했다. B가 인권연대 회원이 된 것은 진보당 당원인 또 다른 나의 학생 C 때문이었다. 둘은 나랑 같이 하는 다른 활동 때문에 여러 번 같이 만났다. 만날 때마다 C는 B에게 진보당 가입원서를 내밀었다. 계속 거절당하자 C는 B에게 “니가 입진보에서 벗어나려면 인권연대 회원이라도 되라”고 다그쳤다. 브라보 C여! 옆에서 나는 그저 한마디 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네가 쓰는 돈을 보면 안다”. 결국 B는 지금 인권연대회원이다. 학생들에게 인권연대를 권유하지는 않는다. 강압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B도 마찬가지이다. 하기사 그는 강압한다고 들을 학생도 아니다. 그가 얼마나 나에게 덤비는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인권연대 회원인 그도 그가 내는 얼마간의 회비를 통해 수많은 아름다운 얼굴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선생인 나도 오늘도 인권연대를 통해 수많은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워가고 있다. 이 이야기는 B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선생인 내가 학생인 그에게 가장 주고 싶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김희교 위원은 현재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3-08-22 | hrights | 조회: 455 | 추천: 14
정범구 /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 때 현실정치에 몸 담았었다. 처음 국회의원이 된게 2000년이었으니 벌써 23년이 지났다. 당시 상황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치판에 휩쓸리게 되었다. 보람보다는 회의와 좌절을 더 많이 경험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정치도 하나의 직업으로, 사회 분업상 누군가는 맡아야 한다는 생각, “공익근무”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울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대접 받는” 재미에 살짝 익숙해져 가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나를 짓누르는 생각은 “이게 과연 가성비 있는 직업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지역구(경기도 일산) 관리와 상임위 활동, 또 당직을 맡아 당의 일 까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정신없이 움직이고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드는 회의는 “과연 나의 노력으로 세상은 조금씩이라도 좋아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출처 - KBS뉴스 정치는 비용도 많이 드는 것이어서 나는 당시 하루에도 3개의 사무실(국회의원 회관, 지구당 사무실, 당사 사무실)을 전전하며 뭐라도 하는 것처럼 바삐 지냈다. 일상은 번잡하고, 세상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러나 큰 틀에서 세상은 여전히 쉽게 바뀌지 않았고, 기득권과 관습은 완고하였다. 직장이랍시고 출근해야 하는 국회는 그때나 지금이나 “상시 전쟁터”였다.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상임위는 문화관광위였는데 방송을 관할하는 위원회였기 때문에 방송 주도권 장악을 위한 여야간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의 트집잡기도 지겨웠지만 여당 “친위대”의 날선 대응도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전쟁터인 곳을 직장삼아 출근하는 심정은 무거웠다. 출처 - 경향신문 정치인으로서 나의 회의가 극한에 다다랐던 것은 2003년 초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대립이었다. 명색이 진보정부라는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되던 이라크 파병은 명분상으로도, 실리상으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었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 후 곧바로 드러난 사실이지만 부시 행정부가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후세인 정부의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이 대량살상무기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보고서는 이미 유엔 안보리 조사단 보고를 통해 나와 있었고, 이 문제를 나와, 당시 국회에 결성되어 있던 “반전평화의원모임”이 주장했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전투부대 파병을 밀어부쳤다. 미국이라는 “큰 형님”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다는 논조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18번이었는데 기대를 걸었던 노무현 정부도 이 문제에서는 별 수가 없었다. 참고로 당시 슈뢰더 총리가 이끌던 독일 정부는 끝내 부시의 파병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NATO의 굳건한 동맹 당사자였고 독일에 아직도 수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부시의 침공 놀음에 응하기에는 명분이 약했을 것이다. 반면 노동당 출신 총리로 “부시의 푸들” 소리를 들어가면서 까지 영국군을 파견했던 토니 블레어는 이 전쟁 책임으로 내내 시달렸다. 그는 2015년 10월, 미 CN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지만 영국군은 179명의 전사자를 내고서야 이라크전의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의원들의 노력으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전원위원회”까지 열며 이라크 파병을 막아보려 하였지만, 이미 정해진 각본 따라 진행되는 파병 계획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국회의원으로서 무력감이 밀려왔다.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워 현실정치에 참여했던 나의 지난 행적이 모두 무화되는 것 같았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국회의원이라는 ‘빳찌’를 달고서도 결국 아무 일도 못해 내는 것 아닌가?“,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내내 내게 던졌던 것 같다. 무기력감과 회의에 빠져 보내는 하루하루가 무척 힘들었다. 매일매일 닥쳐오는 정치인으로서의 일상을 감내하면서 이런 무기력증과도 싸워야 하니 힘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한줄기 생각이 광명처럼 스쳐갔다. “어제 오늘만 보지 말고 좀 긴 호흡으로 과거를 돌아보자.” “그래도 역사는 꾸준히 앞으로 진보해 왔지 않는가? 20년 전(1980) 광주의 학살에 절망하고, 전두환 군부의 폭압에 좌절하던 그때를 돌아보면 세상은 그래도 얼마나 앞으로 나아 왔는가?” “군부정권이라는 노태우 정부에서도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고, 중국, 러시아와도 국교를 개설하지 않았는가?” “불가능할 것 같은 수평적 정권교체(1998)도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등등의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제 오늘의 현실만 보면 답답하지만 그래도 5년 전, 10년 전을 생각해 보면 역사는 꾸준히 앞으로 나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요새 이런 믿음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공산당 언론”이라고 말하는 인사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앉히고, “극우 유튜버” 논란을 빚은 인물을 통일부 장관, 전직 대통령을 “간첩”이라고 공공연히 지칭한 인물을 경찰제도발전위원장이란 직책에 임명하는 윤석열 정부. 엄청난 사람들이 안전사고로 죽어가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거나 전 정권 책임으로 돌리는 이런 전대미문의 뻔뻔한 정부, 어렵게 쌓아온 한반도 평화외교의 기조를 하루 아침에 뒤집어 버리고 대북강경발언만 뻥뻥 쳐대면서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로 몰아가는 이 정부를 보면서 기가 막히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나훈아 말대로 정말 “세상이 왜 이래?”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이게 위안거리가 될지 모르겠으나 이런 “반동”이 우리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포퓰리즘에 호소하며, 집권 4년 동안 미국과 세계를 혼란 속에 몰아넣은, 그리고 미국 사상 초유의 의회난입사건을 부추긴 트럼프가 여전히 유력한 미국 차기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나치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독일에서 최근 극우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이 집권당인 사민당(SPD), 녹색당 등을 제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제 2당으로 부상하고 있는 현실 등은 과연 그동안 역사가 꾸준히 진보해 왔던 것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 본다. “그래 역시 겪을 것은 다 겪고 가야 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다. 한 때 민주화와 산업화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모범국가, 촛불혁명이란 유례없는 비폭력혁명으로 정부를 바꾼 나라, 그 성공 스토리 이면에 자리잡은 허구들을 바로잡지 않고는 이런 “역진”, 이런 “반동”은 예고됐던 것이 아닌가? 산업화에는 성공했지만 재벌 중심, 투기세력 중심 양극화는 더 심해졌고, 정치적 민주화에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경제적, 사회적 민주화의 많은 과제들은 아직 의제 설정도 제대로 안되어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성장 일변도 사고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에게 전세계적 기후위기는 새로운 성찰을 요구한다. 출처 - 위키백과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은 1789년 7월 14일 끝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바스티유를 점령한 민중들에 의해 구체제(ancien regime)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 반동과 혁명의 반복이 있었다. 겪어야 할 것은 결국 다 겪어야 했던 것이다 다이내믹 코리아의 에너지를 믿으며 내일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본다. 정범구 위원은 전 독일대사입니다.
2023-08-16 | hrights | 조회: 1052 | 추천: 23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지난 6월 말 열대박물관(Tropenmuseum)을 보기 위해 암스테르담에 다녀왔다. 열대박물관은 식민주의 탈피를 표방하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유럽 박물관들 가운데 한 곳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파리의 인간박물관(Musée de l'Homme)과 케브랑리 미술관(Musée du quai Branly), 벨기에 테르뷰렌의 아프리카박물관(the Africa Museum)을 꼽을 수 있다. 식민주의라는 ‘원죄’를 의식하고 씻어내기 위해 기존 박물관 전시 구성을 대폭 개편하거나 새로 박물관을 건립하는 유럽 박물관들의 노력이 탈식민주의를 향해 조금이나마 나아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식민주의의 재탕이나 회피의 교묘한 전략에 불과한 건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식민주의에 기원을 둔 유럽 박물관들은 좋든 싫든 변화의 압박에 반응하고 있으며, 상설전시와 특별전시에 그리고 신설 박물관에 이런 변화가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열대박물관은 암스테르담 도심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린네우스스트라트(Linnaeusstraat)에 위치하고 있다. 트램을 내려 오스터파크(Oosterpark)를 따라 조금 걷다 보면 밝은 벽돌색의 단정한 건물을 만나게 된다. 열대박물관 파사드는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폭이 좁고 높다란 삼각형 지붕의 건물들과 닮았지만 육중한 부피감이 남다르다. 열대박물관과 이어진 건물에는 왕립열대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하를렘에서 시작한 이 박물관이 현재 위치로 옮겨온 것은 1926년이었다. 원래 오스터파크 자리에 있던 공동묘지가 시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비게 된 공간에 새 건물을 지어 식민지연구소와 그 부속 박물관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당시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다고 하니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야심차게 새출발한 박물관이었다.   열대박물관 @염운옥   열대박물관 건물 축소 모형 Image of the scale model of the Koninklijk Instituut voor de Tropen https://www.tropenmuseum.nl/en/zien-en-doen/tentoonstellingen/whats-the-story   열대박물관의 역사는 160년에 가깝다. 명칭도 원래 열대박물관이 아니었다. 원래 이름은 식민지박물관(the Colonial Museum)이었고, 1949년 열대박물관으로 개칭했다. 식민지박물관의 토대가 되는 유물 수집을 시작한 계기는 네덜란드 산업진흥협회의 해외영토에 대한 관심이었다. 1864년 아마추어 식물학자 프레데릭 반 에덴(Frederik van Eeden)는 고용주인 산업진흥협회를 설득해 본격적인 수집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네덜란드 해외영토의 천연자원, 생산품, 공예 등의 수집이 식민지 이익을 위해 중요하다고 본 것이었다. 하를렘에 있는 그의 저택은 곧 수집품으로 가득 찼고, 1871년 하를렘에 식민지박물관을 열게 되었다. 1910년대에는 암스테르담으로의 이전 논의가 시작된 한편 암스테르담 아티스 동물원(Artis Zoo)의 인류학 유물을 양도받아 소장품이 크게 늘었다. 아티스 동물원은 동물 포획과 사육 이외에도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뉴기니의 유물을 수집해왔는데 동물원을 이전하면서 인류학 유물은 식민지박물관로 보낸 것이다. 따라서 현재 열대박물관 컬렉션은 크게 하를렘 식민지박물관 기원(목록에서 H로 구분)과 아티스 동물원 인류학 컬렉션 기원(목록에서 A로 구분)으로 구분된다. 2014년 열대박물관은 레이덴의 민족문화박물관(Museum Volkenkunde), 베르그엔달의 아프리카박물관(Afrika Museum), 로테르담의 세계박물관(Wereldmuseum)과 함께 문화부 세계문화박물관(the National Museum of World Cultures) 산하의 한 기관으로 통합되었다. 세계문화박물관을 총괄하는 물질문화연구센터(the Research Center for Material Culture) 소장은 열대박물관의 임무는 “세계시민 양성에 공헌하는 도구로서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에서 책임감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타인에 대한 공감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물관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올라오면 전시실이 시작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정면 방향으로 맨 먼저 시선이 닿는 벽에 영상 전시물이 걸려 있다. 세 개의 스크린을 가득 채운 글자들이 쉴새 없이 움직이며 이름을 만들고 이름과 이름을 연결하는 선을 긋는다. 생명을 얻은 이름들이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풍경 같다. 글자들은 네덜란드에 의해 카리브해와 아시아에서 노예가 된 사람들의 이름이다. 인도네시아, 퀴라소, 수리남에서 노예등록과 노예해방 기록을 토대로 수집한 이름들로 앞에 놓인 터치스크린을 클릭하면 해당 이름과 관련된 더 많은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노예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상히 밝히는 것은 어렵더라도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이 맺은 인간관계를 기억하는 일은 노예를 인간의 자리로 되돌리는 첫걸음이다. 터치스크린 옆의 설명문에는 1863년 네덜란드에서 노예해방이 이뤄졌지만 실제로는 주인 밑에서 수년간 강제노동해야만 했다는 사실, 반면 노예주는 국가로부터 노예 노동력 상실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는 사실도 쓰여있다. 노예제 역사에 대한 반성의 문제가 유럽 사회에 대두되면서 프랑스 보르도에 노예제 희생자 동상에 세워졌고, 영국 리버풀에는 국제노예제박물관이 개관했다. 네덜란드에도 2002년 오스터파크에 중간항로의 고난을 형상화한 수리남 예술가 에르윈 드 드브리스(Erwin de Vries)의 청동상 작품이 세워졌다. 열대박물관의 노예 이름 영상 전시는 이러한 성찰과 기억의 노력과 같은 흐름 속에 놓인 것으로 박물관 감상의 시작 지점부터 강렬한 인상을 전해주었다.   노예 이름 영상 전시 @염운옥   전시실은 노예 이름 영상 전시를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진다. 중앙에 아트리움 그레이트홀(Great Hall)을 두고 양편으로 위아래 두 개 층에 전시실이 펼쳐져 있다. 전시는 ‘인종의 창조’, ‘흑인성이라는 산물’, ‘저항’, ‘자유’, ‘창조성과 저항’의 다섯 개 주제로 이뤄져 있다. 본격적인 전시 감상을 시작하면서 먼저 눈길을 끈 점은 이 박물관이 분명하게 반인종주의 반식민주의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종은 인종주의의 아들이지, 아버지가 아니다(Race is the child of racism, not the father)”라는 미국 작가 타네히시 폴 코츠(Ta-Nehisi Coates)의 말을 내걸고 ‘인종의 창조’ 전시를 시작한다. 인종은 생물학적 토대를 갖는 개념이 아니라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된 개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종적 스테레오타입을 구성하는데 동원됐던 두개측정기, 두개고정기, 두개골 스탠드, 인체측정기, 피부색 판별 차트, 눈 색깔 판별 모형 같은 소위 ‘과학’의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사용됐던 형질인류학 강의용 교재에 실린 세계인의 신체적 차이를 보여주는 도판은 인종이 존재하고 이는 피부색, 머리카락, 눈, 안면과 두개골의 신체적 차이에 나타난다는 관념을 뒷받침했던 예로 등장한다. 형질인류학이 만들어내는 인간 신체의 차이는 인종적 차이로 단순화되고 스테레오타입이 되어 포스터, 교재, 엽서, 광고, 영화 속에서 반복되면서 인종주의를 생성한다.   형질인류학 교재 도판 @염운옥   1883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 식민지 무역 박람회에서는 인간 전시가 있었다. 수리남과 인도네시아인이 보여지기 위해 앉아서 포즈를 취하거나 공연을 하면서 전시되었다. 열대박물관은 1883년 박람회 유물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이 사실은 열대박물관과 식민주의의 관계를 또렷이 증명한다. 전시실에는 인간전시에 동원된 수리남인 네 사람 엘리자베스 모엔디(Elisabeth Moendi), 재클린 리켓(Jacqueline Ricket), 요하네스 코조(Johannes Kojo), 코조 아 슬렌 그리(Kojo-A-Slen-Gri)의 초상사진이 걸려 있고 이름과 약력이 적혀 있었다. 그들은 박람회에 온 28명의 수리남인 중에 속해 있었다. 설명문에 의하면, 코조 아 슬렌 그리의 이름은 원주민어로 ‘활기차게 걷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1838년생으로 네덜란드 탐험가를 도와 수리남에서 탐험로를 개척했다고 한다. 코조는 1883년 박람회에 데려올 수리남인을 모집하는 데 조력했고, 조카 요하네스 코조를 함께 데려왔다. 이러한 설명은 19세기 말 인간전시에 자발성과 강제성, 상업주의와 인종주의가 복잡하게 착종되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코조 아 슬렌 그리 @염운옥   박물관의 역사에 관한 전시에서는 “여기 있는 모든 것들은 훔친 것인가?”라는 도발적 질문을 제기하고, 박물관의 유물이 매매, 기부, 때로는 절도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수집되었다고 답하고 있다. 그리고 유물의 수집이 식민지에 대한 억압, 무역, 군사 행동, 과학 프로젝트, 선교 사업의 맥락에서 일어났으며, 소장품 대부분이 식민지 시대에서 유래한다고 고백하고, 원산국이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았거나 원산국에서 문화적 가치가 더 높은 유물을 배상과 반환의 대상으로 간주한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이런 문구는 예상되는 유물 반환 논쟁을 의식한 원론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부끄러운 식민주의 과거를 박물관 역사의 일부로 명시적으로 밝힌다는 면에서는 평가해줄 면이 있다고 본다.   현재 열대박물관의 상설전시는 탈식민주의적 개입의 결과물이다. 1990년대부터 박물관의 식민주의 유산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15년부터였다. 열대박물관은 박물관의 중립성을 다시 묻고, 신자유주의적 다양성 담론을 비판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박물관을 탈식민화하자(Decolonize the Museum)’라는 시민단체와 협력해 전시에 내재한 식민주의와 인종주의에 대해 검토하고 성찰했다. ‘박물관을 탈식민화하자’는 20~35세의 아프리카계 네덜란드인으로 구성된 단체로 인종뿐만 아니라 젠더와 장애의 관점에서 접근성을 결여한 박물관에 대해 비판하고 교차적 관점을 박물관에 요구했다. 이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전시 내용을 바꾸고 설명문을 다시 쓰는 작업이 이뤄졌다. 2017년 열대박물관이 주최한 노예제 역사에 관한 학술회의에는 미국 워싱턴의 아프로아메리칸역사문화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an American History & Culture) 로니 번치(Lonnie Bunch) 관장을 초청하기도 했다. 큐레이터 마틴 버거(Martin Berger)와 리처드 코피(Richard Kofi)는 개편과정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박물관으로 이곳을 꼽았다. 약 2시간 넘게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아트리움에서는 수리남 문화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객석을 가득 메웠고 흥겨운 노래와 춤이 무대에서 펼쳐졌다. 관람하는 발걸음이 둥둥 울리는 북소리에 가벼워졌고, 어깨가 들썩이기도 했다. 유물에서 눈을 돌려 자꾸 아트리움 쪽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노래하며 즐기고 있었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박물관에 가득했다. 공간을 완성하는 건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날 열대박물관의 주인공은 단연코 수리남 예술가들과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네덜란드는 좀 더 열린 곳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리남 음악과 춤 공연 @염운옥   1) Iris van Huis, “Contesting Cultural Heritage: Decolonizing the Tropenmuseum as an Intervention in the Dutch/European Memory Complex,” T. Lähdesmäki et al. eds., Dissonant Heritages and Memories in Contemporary Europe (Palgrave, 2019). pp. 226-237.
2023-08-10 | hrights | 조회: 736 | 추천: 7
정전 70년을 맞아   장경욱 / 인권연대 운영위원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전쟁 정전일이 다가왔건만, 한반도의 현실은 핵 전쟁 발의 위기가 급속도로 고조되고 있다. 정전협정은 항구적 평화협정을 지향하고 있다. 평화협정은 한반도에 주둔하는 외국군대의 철수를 담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극우보수정권은 빈껍데기의 종전선언조차 반국가세력으로 호도하고 있다. 출처 - 기독교한국신문 정전협정은 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정치군사회담의 개최를 명문화하고 있건만, 분쟁의 평화적 해결은 요원해지고 정전협정 당사자 사이의 ‘핵 대 핵’ 대치의 악순환이 세계대전으로 급격히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외국군대의 주둔을 항구화하는 군사동맹은 군사적 긴장을 더욱 고조시킨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지향하는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정신에도 반한다. 그러나, 극우보수정권은 핵 전쟁, 세계대전의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외국군대와의 군사동맹을 날로 강화하며 외국군대의 항구적 주둔을 꾀한다. 동족을 주적으로 간주하며 동족에 대한 선제공격과 정권 종말을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허구의 동족 악마화로 동족을 탓하며 동족대결에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가공할 한반도 핵 전쟁의 위기를 불러와 민족의 평화적 생존권을 무참히 짓밟을 뿐이다. 출처 - 경향신문 북핵 위협 증가에 대비하여 핵 확장 억제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한미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워싱턴 선언’에 따라 42년 만에 미국의 핵탄두 장착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전략 핵잠수함이 부산항에 기항하였다. 이에 북의 국방상은 미 전략자산 전개의 가시성 증대가 국가핵무력정책 법령에 밝혀진 핵무기 사용 조건에 해당될 수 있다는 담화로 대응하였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군사적 ‘강 대 강’ 국면이 장기화되어 오는 가운데 그 대결 국면이 최고조로 달해가는 상황이다. 북미 사이의 ‘강 대 강’ 정치군사적 대결 추세에 편승한 극우보수정권의 외세 의존의 동족대결 정책은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와 함께 국가보안법에 의한 공안탄압의 전면화로 그 막무가내의 도를 더해가고 있다.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를 위해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까지 옹호하고,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를 막고 이를 되살리기 위해 국가정보원을 전면에 내세워 공안탄압을 강화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의 극우보수정권의 동족대결이 언제까지나 마구잡이로 지속될 수는 없다. 이판사판의 공안탄압도 마찬가지로 끝간데 없이 자행될 수 없다. 극우보수정권이 추종하는 북미 간 ‘강 대 강’ 국면의 지속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전쟁 위기를 격화시키며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갈수록 명백해지고 있다. 결국 북미 간 군사적 대결상태와 전쟁 위기를 끝내기 위한 평화협상에 의한 정치적, 외교적 , 군사적 해법이 모색될 수밖에 없다. 정전 70년을 맞아, 바야흐로 북미 간 ‘강 대 강’ 대결의 악순환을 지양하는 비등점이 다가오고 있다. 외세 추종의 동족대결 발상이 언제까지나 만능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를 알 리 없는 극우보수정권은 자멸을 재촉하고 있다. 한계수명에 도달한 극우보수정권의 통치위기 수습용 공안탄압도 약발이 다해가고 있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3-07-25 | hrights | 조회: 733 | 추천: 8
하지 않아야 하는 게 있다 - 술 좋아 하는 시민이 올리는 충언 - 오항녕 / 인권연대 운영위원 사람에게는 체력이든 시간이든 스스로 감당할 총량이 있으니, 애당초 ‘하면 된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해도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대개 ‘하면 된다’고 말하는 자들은 누구를 부려 먹으려는 자들이거나, 게을러서 전혀 뭔가를 해보지 않은 자들이라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 그래서 철이 좀 든 이후 남들이 ‘〇〇〇을 하자’고 다짐할 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찾았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알았다. 첫째, 하지 않는 것도 하는 것만큼 힘들면서도 뿌듯하다는 사실이었다. 뭘 하지 않는데 왜 힘이 드는가? 화 안 내고 참는 게 쉬우면 누구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물론 화가 날 때 슬기롭게 살펴 해소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둘째, 할 걸 먼저 하는 것보다 안 할 걸 먼저 안 하고 할 걸 하는 편이 훨씬 안정감과 집중력이 높인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테지만 나는 그렇다. 생각건대, 세상 일에는 나중에 도움 되는 게 있다. 도둑질도, 싸움도, 사기당하는 것도 뭔가 남는 게 있다. 그러나 흡연은 아니다. 백해무익(百害無益)이란 말이 담배처럼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는 없다. 불행하게도 난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친구네 집 사랑방에서 시작된 흡연은 지독하게 나를 따라붙었다. 흡연자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도 12시간, 하루, 사흘, 1주일, 2주일, 한 달, 두 달, 석 달, 심지어 1년도 끊어보았다. 그러다 다시 피고 말았다. 담배는 요물(妖物)처럼 마음에 틈만 생기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잖아! 다시 피워. 지금 힘들잖아?’라고 유혹하며 나의 여리고 허한 마음을 파고들었다. 물론 담배 끊기는 내 의지의 영역만이 아니다. 당초 담배를 파는 세상이 더 문제다. 마약보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담배를 버젓이 편의점, 수퍼에서 팔고 있는 세상이라니! 그걸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흡연공간까지 마련해주는 사회라니! 더더구나 담배를 팔아 거두는 세금 때문에 담배 판매를 합법화하는 국가라니! 나는 국가가 늘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로 담배 판매의 합법화를 든다. [금연 표지 : 작은아이가 일곱 살 때 그려서 내 서재, 마루, 화초가 있는 마당. 대문에 붙여놓았던 그림이다. 그놈 등쌀에 나는 담배를 끊어야 했다.] 나는 담배를 끊는 데 무려 25년 이상 걸렸다. 2004년 12월, 해골바가지 금연 그림을 그려서 방과 거실은 물론, 마당까지 따라다니던 작은 아이의 사랑스러운 성화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서툰 포스터를 들고 ‘아빠, 담배 피웠지!’하고 심문하던 녀석의 표정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더하여 그때 시작한 마라톤은 흡연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스포츠였다. 그렇게 담배로부터 멀어진 지 20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나는 가끔 담배 피는 꿈을 꾸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잠을 깬다. 휴~ 꿈이었구나…… 하면서. 군대 다시 가는 꿈은 안 꾼 지 이미 오래인데 말이다. 신혼 시절 안방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웠던 나의 행동에 대해 뒤늦게 진심으로 통렬히 참회한다. 내가 담배 피우던 입으로 아내와 키스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 무슨 야만이란 말인가! 나는 시험을 보면 피드백을 한다. 피드백을 하다 보면 담배 냄새를 풍기는 학생도 있는데, 나는 피드백 이전에 조근조근 왜 담배를 지금 젊을 때 끊지 않으면 안 되는지 설명한다. 그때 꼭 빼놓지 않고 말한다. “키스할 때 너무 더러운 냄새가 나거든! 너는 모르지만…….” 난 뭔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 열심히, 성실히 하는 건 잘하지 못하고 또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냥 이렇게 나는 안 해도 될 일을 먼저 쳐나가는 방식으로 내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뭔가 할 때는 슬렁슬렁한다. 다만 안 해도 되는 건 안 한다. 무슨 일을 열심히 하지 못하니까 예방책으로 안 할 일은 안 하는 전략을 취하는 게다. 내일 산에 가기로 되어 있거나 내일 강의 준비를 채 하지 못했으면, 오늘 저녁에 술을 마시지 않는 거다. 마셔도 컨디션 조절용으로 조금만 마시고. 특히 마라톤 대회가 있으면 적어도 넉 달 동안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실제로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뛸 때 그렇게 했다. 다른 말로 하면, 술을 마시고 칼럼, 논문을 쓰지 못하거나 토론을 포함하여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면 술은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절대 담배처럼 술을 끊을 자신도 없고, 생각도 없다. 그 좋은 술을 왜 끊겠는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만큼 술을 좋아하는 분이 용산에도 계신 듯하다. 주량도 제법 되시는 듯하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랏일을 하고 계시니까, 내가 하는 방법 한 번 써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해야 할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전제에서 드리는 말이다. 국무회의가 있거나 외국순방이 있거나 안전보장회의가 있거나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사안이 있을 때는 전날 술을 안 하시는 거다. 그런 일이 없을 때가 있느냐고? 그건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자리인 줄도 모르고 맡으신 건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나도 할 줄 아는 걸 당신이 못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 외에도 안 할 일을 하다 보니 할 일을 못하시는 건 없는지 두루 살펴보셨으면 한다. 사실 이 전략은 내 발명품이 아니다. 2천 년 전에 이미 맹자(孟子)께서도 말씀하셨다. “사람이란 하지 않는 일이 있어야 뭔가 이룰 수 있다.[人有不爲也而後可以有爲]” 달리 말하면, 하지 않을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겠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3-07-25 | hrights | 조회: 299 | 추천: 12
핵발전소, 방사성 물질, 그리고 자연권에 대하여     이찬수 / 인권연대 운영위원   환경 자체의 권리 지구가 위기에 처했다. 인류와 생명체들의 생존이 경각에 달렸다. 지구에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되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 근거인 자연을 수단화하며, 인간의 욕망을 위해 끝없이 지구를 채굴하고 생명을 살상하며 땅을 소비해온 결과이다. 그동안 인간을 위해 환경을 사용할 권리(환경에 대한 인간의 권리)를 내세웠다면, 이제는 ‘환경 자체의 권리’(right of the environment)를 확산시켜나가야 할 때다. 자유권과 사회권 같은 인권도 생태적 한계 안에서 조건부로 인정하는 자연 친화적 인권 의식을 확립해가야 한다. 동물들도 “살아있고 지각하는 존재로서 법인격을 가진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각자의 종에 적합한 환경에서 나서 살고 자라고 죽을 기본적인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데이비드 보이드, 『자연의 권리』, 93-94)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가야 한다.     이익의 사유화 물론 현실은 그에 턱없이 못 미친다. 오늘날 지구촌의 문제는 “이익의 사유화에 관해서는 자본주의적이면서 환경 훼손이라는 비용에 관해서는 사회주의적”인 이중성에 있다. “공정한 시장경제라면 환경 비용을 유발한 자가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디르크 슈테펜스, 『인간의 종말』, 214), 탄소 배출에 가격을 매기는 ‘탄소가격제’의 적극 도입도 필요한 상황이지만(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293), 현실은 그 비용을 피해자들까지 떠안은 채 오던 대로 직진하고 있다. 소수가 공적 환경을 더 많이 훼손하고 비용은 다수가 부담하는 불공정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공정성을 확보해야 할 정치도 지구를 소비하기만 하는 자본주의적 확장을 지원하고 추구하며, 그 와중에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골몰한다. 인간의 욕망이 양극화되지 않도록 공정하게 관리하려는 정치적 노력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에콰도르 헌법의 자연권 자연을 훼손하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헌법적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헌법에 ‘자연권’을 담아내야 한다. 실제로 남미의 에콰도르가 헌법에 자연권을 명시한 바 있다: “생명이 재창조되고 존재하는 곳인 자연 또는 파차마마(Pachamama, 대지의 여신)는 존재와 생명의 순환과 구조, 기능 및 진화 과정을 유지하고 재생을 존중받을 불가결한 권리를 가진다. 모든 개인과 공동체, 인민과 민족은 당국에 청원을 통해 자연의 권리를 집행할 수 있다.”(제71조) 미국 석유회사인 텍사코가 에콰도르 열대우림에서 유전을 개발하면서 오랫동안 엄청난 환경파괴를 자행했다. 이 때문에 피해를 본 에콰도르 원주민 3만 명이 텍사코를 인수한 쉐브론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고, 미국과 에콰도르 법원 등을 오가며 결국 승소했다. 그 과정에 환경에 대한 의식이 커졌고, 헌법에 자연권을 담는 성과로 이어졌다. 2011년에는 볼리비아에서도 자연을 법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어머니 대지법’을 제정했다. 출처 - 오미아뉴스 인권의 근간, 자연권 자연권을 지킬 의무는 물론 인간에게 있다. 자연권은 “자연의 관점에서 자연을 대리 또는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의 권리로서, (그런 사람들이) 자연을 훼손하고 착취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하고 자연의 권리를 옹호할 수 있는 권리”이다.(오동석 외, 『지구를 위한 법학』, 179) 이 자연권은 기본적인 인권 보호장치로 작용한다. “자연의 권리를 파괴하는 세력은 자연의 권리를 옹호하는 인간도 억압하기 때문”에 자연의 권리를 대리할 의무를 위해서라도 인권이 더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조효제,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211-213) 자연에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인간의 생존권도 두루 강화된다. 자연권은 생태 위기 시대의 인권을 위한 근간이다. ‘비인간존재’도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내재적 가치와 존재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생태통합성의 원칙이 모든 법규범을 평가하는 최종 심급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조효제, 205) 환경권과 민주적인 에너지 다행히도 대한민국헌법에서는 ‘환경권’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제35조 1항)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제30조)는 규정도 두고 있다. 타인/타국의 범죄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해 국가가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면 국가를 상대로 헌법을 준수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환경보전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권은 이 환경권 개념의 확장판으로서, 자연 파괴적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법적 근거가 된다. 당연히 자연권은 모든 인간의 생존권도 두루 강화시킨다. 소수가 권력을 독점한 독재정치가 위험하듯이, 소수 기술자에 맡겨져 있는 핵발전 기술은 반자연적이고 반민주적이며, 그만큼 인간의 생존권을 위협한다. 소수 전문가의 손에 맡겨진 특권은 여차하면 다수에게 원치 않는 피해를 줄 가능성도 크다. 권력도 기술도 여럿이 함께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한 한 개인이 통제하고 조율할 수 있는 에너지의 생산, 보급,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핵발전보다는 가령 햇빛발전 같은 더 민주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여럿이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을 때 파괴적 가능성이 덜해지기 때문이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ALPS가 ‘다핵종제거설비’인가 일본(도쿄전력)이 후쿠시마 바닷가에서 1km 길이의 해저터널을 통해 방사성 물질 132만 톤을 방류하기 일보 직전이다. 나름의 처리를 거쳤다지만, 그 처리를 위한 설비는 일본 기업 도시바가 개발한 장치이다. 이른바 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 우리말로 하면 ‘고급액체처리시스템’쯤 되는데, 희한하게도 이 장치를 왜 ‘다핵종제거설비’라고 의역해서 쓰고 있다. 다핵종(多核種), 즉 모든 원자핵들을 다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한 의도적 표기법으로 보인다. ‘알프스’(ALPS)라는 약자도 알프스산맥의 청정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적 조어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조차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를 태평양으로 방출하는 행위에 별 문제의식을 못느끼는 이들이 많다. 과학자들도 그런 목소리가 내기도 한다. 물론 오염수 방류는 ‘위험하다’는 과학자들의 목소리가 더 많아 보인다. 그런데 정치가 과학의 언어를 진영논리로 몰아가면서 과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은 그 사이에서 부화뇌동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에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게 된다. 과학도 어떤 척도에서 주장하느냐에 따라 다른 입장을 지닌다는 사실이다. 과학도 절대적이지 않다. 과학도 어떤 전제와 입장을 가지고 실험하느냐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지고, 어떤 실험이든 특정한 맥락 안에서 진행되고 진술되는 한, 어느 정도 정치성을 띠고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상대적 입장 가운데 하나다.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는 행위가 왜 문제인지는 사실 간단하다. 그것은 인간과 생명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을 ‘증가’시키는 행위라는 사실이다. 위험한 ‘정도’와 ‘농도’를 따지기 이전에, 위험물을 ‘확산’시키는 행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핵발전소를 가진 다른 나라도 방사성 물질을 방출하고 있지 않느냐는 항변은 그저 물타기 수법이다. 대기 중에도 방사능이 일정 부분 존재한다는 주장도 방사성 물질을 바다로 방출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기존의 방사능 수치보다 ‘더 높이는’ 행위 자체를 엄단해야 한다. 오염의 ‘농도’가 아니라 오염의 ‘총량’으로 판단해야 한다. 오염의 총량을 늘리는 행위는 명백한 범죄다. 이현령비현령, 국제.안전.기준 물론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한다고 해도 바다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오염의 농도가 눈에 띄게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오염수 방류가 마치 정당한 행위라도 되는 양 일본 편을 들며 세계를 향해 의도적 여론몰이를 한다 - 실제로 일본은 IAEA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낸다. 친일적인 한국의 대통령실과 여당은 희한할 정도로 그에 부화뇌동한다. 농도가 살짝 높아진 것이 인간에게 무슨 대수냐는 식이다. 가장 그럴듯한 말은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제’ ‘안전’ ‘기준’이라는 것이 오염의 농도를 전보다 좀 더 높이는 정도를 허용할 수 있다는 뜻일 뿐, 그것이 옳다거나 바람직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 조금 높은 오염이 계속되면서 지금까지 지구상의 무수한 미생물들을 죽이고, 먹이사슬로 연결된 모든 생명체들에 측정할 수 없을 위해를 끼쳐오지 않았던가. 방사능 측정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어마어마한 생물학적 피해와 미시적 세계에 가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늘 외면하거나 무시했다. 자연권의 제정은 바로 이러한 범죄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본적인 근간이 된다. 출처 - 환경재단 피해의 공유화라니, 안 된다 개인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듯이, 국가를 위해 쓰이던 핵발전소의 책임은 해당 국가가 져야 한다. 그로 인한 피해는 원칙적으로 당사자가 해결해야 한다. 일본이 자기들의 기준을 정당화하며 방사능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려는 것은 오로지 돈 때문이다. 오염수를 고체화해 보관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처리한 안전한 물이라며 홍보 중인만큼 일본 안에 호수를 만들어 보존하는 것도 논리적이고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일본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 비용이 수십 배 혹은 수백 배 더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비용만의 문제인가. 일본이 핵발전의 이익을 세계와 나눈 적이 있던가. 차라리 자국 내 보관을 할 테니 일본의 당면한 어려움을 도와달라며 세계에 호소하는 편이 더 낳지 않을까. 오염수의 방류는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은 공유화하는 전형적인 경제 및 환경 범죄다. 일본의 위험과 비용을 전 세계와 인류에 전가하는 행위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일본의 로비 탓에 오염수 방류가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뻔한 외교적 발언을 이어가면서도, 정작 종합보고서에는 “IAEA와 그 회원국은 보고서 사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모순된 단서를 달아놓았다. 연구결과 방류는 정당하다고 판단하지만, 그로 인한 피해에는 책임질 수 없다니, 모순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IAEA는 유엔 산하 기구이다. IAEA의 입장은 유엔의 이전 입장과 너무나 모순된다. 가령 유엔총회에서는 이미 41년 전에 “세계자연헌장”을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모든 형태의 생명은 독특하고, 인간에게 가치가 있느냐와 관계없이 존중해야 하며, 그런 인식을 다른 유기체에게도 부여하기 위해 인간은 도덕적인 행동 규범으로 인도되어야 한다.”(취지문) 너무나 상반되는 두 목소리를 모두 정당한 듯 내보내고 있으니, 유엔도 우습기 짝이 없는 조직이다. 출처 - 시사인 오염의 총량이 문제다 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데이터에 대한 ‘해석’에 기반한다. 그리고 해석에는 늘 정치, 경제, 이해관계 등이 들어있다. 순수한 과학이라는 것은 없다. 전체 농도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 일부 데이터에 기반한 의도적 해석이 지구를 대멸종의 위기로 몰아오지 않았던가. 오염의 ‘농도’가 아니라 오염의 ‘총량’이 문제다.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인류와 전체 생명의 근원인 공해상으로 방류하는 것은 거대한 범죄다. 원전의 혜택을 누려온 일본 안에서 해결을 해야 한다. 정말 어려우면 전 세계를 향해 도와달라고 솔직한 고백을 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런 것 없이 일방적으로 자행하는 데서 오는 모든 피해에 대해서는 일본이 책임져야 한다. 헌법상 자연권이 확장되면 자연을 조금이라도 더 파괴시키는 행위에 대한 국내외적 여러 처벌들이 가능할 것이다. 기후위기 및 생물종의 급감 같은 오늘의 총체적 위기가 좀 더디 오도록 하는데도 좀 더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023-07-12 | hrights | 조회: 596 | 추천: 10
이재성 /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른바 ‘조국 사태’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2019년 겨울이었다. 문화부 학술담당 기자였던 나는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세대 담론’을 주제로 쓴 논문(‘386’ 담론의 계보와 정치적 의미론, 1990-2019)을 보고 기꺼운 마음으로 기사를 썼다. 거칠게 요약하면, 세대론은 마치 인종주의나 섹시즘(성차별주의)처럼 겉으로 드러난 말초적 지표(나이)로 계급 갈등을 비롯한 다른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은폐한다는 내용이었다. 신 교수는 조국 사태를 거치며 386 담론이 일베화했다며(민주화‧평등‧진보에 대한 조롱 및 공격), ‘386 말하지 않기’를 제안했다. 세대 차이는 있다 2021년 늦가을 무렵에는 고 정태인 박사가 생애 마지막 <한겨레> 인터뷰에서 “민주화 세대는 실패했다, 청년에게 자리라도 내주자”고 주장했는데, 그의 충심을 이해하면서도 논지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마치 이 나라의 모든 문제가 민주화 세대 때문인 것처럼 주장하는 <조선일보>류의 프레임을 차용한 듯한 인식에 저항감이 들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나의 정의감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검찰정권이 출범하여,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무능과 독선으로 나라를 망가뜨리는 과정을 괴로운 심정으로 지켜보며, 오히려 세대 담론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세대 담론을 무기로 민주화 세대를 폄훼하는 우파의 정치적 의도와 별개로, 진보 안에서도 역사와 세계에 대한 관점의 ‘세대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이 윤석열 정부의 압도적 실정에도 불구하고 야권에 대한 전폭적 지지가 생기지 않는 이유가 아닌지 따져보게 된 것이다. 국민들이 몰라서 문제일까? 윤석열 정부가 노동혐오와 정적탄압, 불통정치와 편향외교로 일관하며 역대급 무역적자와 세수펑크로 경제 또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데도 주류 언론은 마치 태평성대인 것처럼 윤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다. 최근만 해도 국민의힘 의원 두 명이 공천을 대가로 돈을 받은 사실이 잇따라 드러났는데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이나 김남국 코인 투자 논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조용히 넘어가고 있다. 같은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인데도 민주당 돈봉투 사건은 검찰이 직접 수사하며 언론을 통해 혐의가 중계되지만, 경찰이 수사 중인 김현아·황보승희 의원의 공천 대가 금품 수수 의혹은 수사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취재가 빈약하다. 검찰의 편파 수사와 피의 사실 유포, 언론의 선택적 집중 보도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기울어진 정치 지형의 세부 항목은 모두 진실이다. 그러나 그뿐일까? 이게 다 검찰과 언론 때문인데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어서 정권 심판 여론이 미약한 것일까? 출처 - 강원도민일보   급격히 노화한 386 한국 정치는 똥 묻은 개(국힘)와 겨 묻은 개(민주)의 싸움이다. 30%가량 되는 국민의힘 콘크리트 지지층을 제외하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보다 더 나쁘고, 1차 개혁 대상이라는 데 동의하는 국민이 훨씬 많다. 검찰이 대통령의 충직한 사냥개로서 수사를 통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많은 국민이 알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주류 언론이 보수 지배권력의 일원으로서 매파 이데올로그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다. 그 종합적 결과로서 한국이 보수 헤게모니 사회라는 것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한 번도 변치 않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세 번의 정권 교체를 돌아보면, 두 번은 나라가 망할 지경의 실책(IMF와 국정농단)으로 보수가 자멸한 경우였고, 한 번의 예외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었다. 당시는 이른바 386세대가 30~40대로서 사회의 중추 세력으로 성장하던 때이며, 나라의 미래 또한 이들에게 달려있었다. 나는 이들의 역동성이 한국을 아이티 강국으로 밀어올렸고, 한류 문화의 꽃을 피웠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386 출신 정치인은 특별한 업적이나 성취 없이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급격히 노쇠하고 부패했다. 송영길 의원이 연루된 돈봉투 사건이 대표적이다. 최근엔 민주당의 국제감각과 시대정신의 노화를 의심하게 하는 사건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편을 드는 듯한 이래경씨 혁신위원장 임명이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주한중국대사 싱하이밍을 대사관저로 찾아가 선을 넘는 발언에 판을 깔아준 사례, 중국의 티베트 점령 및 인권 탄압에 대한 도종환 의원의 발언(“그건 1951년, 1959년에 있었던 일”)은 민주당이 중국과 러시아에 편향돼 있다는 의심을 불렀다. 윤석열 정부의 미·일 편향만큼이나 위험하고 시대착오적인 편향이다. 이런 낡은 인식이 윤 정부와 국힘을 지지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선뜻 민주당을 지지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일 것이다. 전면적 세대교체밖에 세 번이나 집권한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이면서도 젊은 세대의 이반을 보수화라고 손가락질한 것은 아닌지 민주당은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민주화 세대와 함께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겪은 지금의 40대는 이게 다 검찰과 언론 때문이라고 같이 분노해 주지만(그마저 돈봉투와 김남국 코인 사태를 지나며 약해졌다), 그 아랫세대는 생각이 다르다. 그런데 미래는 이 아랫세대에게 있다. 이들과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 되어야 한다. 세대 차이를 극복하려면 젊은 세대를 전면에 세우는 수밖에 없다. 인적 혁신만이 늙고 낡은 민주당을 개혁할 수 있는 길이다. 386을 포함한 민주화 세대는 억울할 수 있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어떻게 만든 나란데’)은 태극기 세대의 특징이다. 민주화 세대 역시 계속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진보 태극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억울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세 번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검찰과 언론의 편파성은 이미 입증된 상태다. 더 이상 검찰과 언론 탓을 해봐야 확장 변수는 생기지 않는다. 상수를 변수로 놓고 이차방정식을 풀려고 하니 답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재창당 수준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를 젊은 세대의 진보적 시각으로 재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태인 박사의 지적은 절반만 옳다. 민주화 세대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다만 늙었을 뿐이다. 그걸 인정하는 게 혁신의 시작이다. “청년에게 자리라도 내주자.”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3-06-28 | hrights | 조회: 722 | 추천: 13
오인영 / 인권연대 운영위원 작년 대선에서 1번을 찍은 사람이 내 주위에 별로 없는 탓인지, 어쩌다 모여서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도대체 뭘 알기나 하고 그러는 것인지’ 갑갑하다는 장탄식을 듣게 된다. 심지어 국정 전반에 대해 ‘타블라 로사(tabula rosa, 백지상태)’여서 남이 일러준 대로 하거나 써준 대로 읽거나 아니면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말하기 때문에, 그의 말과 글에 괜한 의미를 둘 필요조차 없다는 소리도 그럴싸하게 귀에 걸린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가의 안위 및 이익과 직결된 정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의구심과는 달리, 윤 대통령 스스로는 국정 전반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듯하다.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대변인을 역임한 이의 전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나 때문에 이긴 거야, 나는 하늘이 낸 사람이야”라고 자부하며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웬만한 건 내가 다 알아, 누구 앞에서 주름을 잡아’라며 장광설을 늘어놓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관점이나 입장과 다른 사람들-정권에 비판적인 국민과 야당의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나 주의를 기울일 것 같지는 않다. 출처 - 경향신문   윤 대통령의 주변에서도 그를 남다른 식견의 소유자로 믿는 것 같다. 교육 문제를 잘 모르는 대통령이 즉흥 발언으로 교육 현장의 불안감을 키웠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을 “수능 전문가”라고 치켜세우며 “저도 전문가이지만 (대통령에게) 제가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입시 관련 수사를 한 경험이 있다”며 “(대통령이) 입시에 대해 수도 없이 연구하고 깊이 있게 고민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토로했다. 또한, 경남 진주갑을 지역구로 둔 3선 의원인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인 박대출 의원도 “윤 대통령은 검찰 초년생인 시보 때부터 수십 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면서 입시 비리 사건을 수도 없이 다뤄봤고, 특히 조국(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대입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의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로서 “대학 제도의 사회악적인 부분, 입시 제도 전반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면서 윤 대통령을 거의 ‘최고 존엄’처럼 떠받들었다. 윤 대통령의 말과 행태를 두고서, 적지 않은 국민은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런다고 의구심을 품고 있는 반면에, 본인은 내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고 있는데 ‘검사도 아닌 것들이’ 주제넘게 심통을 부린다고 믿는 것 같다. 국민은 모른다고 하고, 본인은 안다고 하는 이 괴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단, 어쩌다 ‘일국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나라 안팎의 큰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그건 ‘윤핵관(호소인)들’에게 맡기고 나는 그저 대통령 놀음이나 즐기자는 심사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자기가 어지간한 세상사와 나랏일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자부(누구의 눈에게는 자만)하므로, 분명한 생각을 지닌 채 말하고 행동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윤 대통령이 구사하는 말과 행태와 정책은 그가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고 보아야, 사실에 맞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예컨대 올해 신년사에서의 ‘노사 법치주의’ 발언을 보자. 윤 대통령은 ‘노사 법치주의’가 노동 개혁의 출발점이라면서 공공질서를 무너뜨리는 집회와 시위를 바로 잡는 게 법치주의인 양 말했다. 그러나 법치주의는 국민이 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게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즉,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때는 반드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로써 해야 하고, 국가 행정도 법률에 근거를 둬야 한다는 원칙이 법치주의다. 그렇다면 법대를 나오고 검사 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람이 법치주의가 뭔지 몰라서 그렇게 말한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집회와 시위에 대한 강경일변도 대응을 정당화하고 독려하기 위해” 일부러 “우리에게 익숙해 거부할 수 없는 원리인 법치주의로 포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시위노동자나 국민에 대한 규범이 아니라 역사발전을 거스르는 ‘퇴행’이 벌어지지 않도록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의 권한 남용을 통제하는 원리”인 법치주의를 몰라서 오용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악용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법치주의 관련 내용과 인용의 출처는 구창모 대전지법 부장판사, <원래, 법치주의는 ‘권력’을 ‘통제’하는 원리이다>, <<대전일보>>(23.06.12)) 윤 대통령은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기는커녕 자기 생각이 확고한 사람이다. 지구사적 문제인 기후 위기, 세계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투쟁,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근대화’를 했다지만 극우적 정치문화가 득세한 일본 모델과 식민지였지만 민주적 시민의 활력이 살아있는 한국 모델의 역사적 경쟁, 그리고 남북의 갈등과 대결 등과 같은 절체절명의 중차대한 문제들에서 그는 자신이 취한 입장과 정책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재생에너지 대신에 핵에너지를, 중국과 러시아에 맞서 미국과 일본 편을 그리고 평화적 대화를 접고 군사적 대결의 위험을 높이는 쪽을 선택했다. 그 선택도 아무렇게나 이루어진 게 아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재생에너지 사업 전체가 비리 덩어리인 양 만들고, 중국과 러시아는 상종 못 할 가치 없는 국가로 몰아가는 반면에 일본은 배워야 할 아름다운 나라로 치켜세우고, 북한은 불구대천의 원수로 낙인찍는 일들이 ‘사용언론들’의 대대적인 협조 속에서 착착 이루어지고 있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뭔지 모르는 무지한 사람도 아니고 무능한 사람도 아니다. 그에게 매우 비판적인 나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정치문화나 경제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를 유능하게 퇴행시킨 사상 초유의 인물이다. (역사적 선을 이루려면 선한 다수의 힘이 필요하지만, 역사적 악을 실행하는 데는 악한 소수의 힘만으로 충분하다는 깨달음이라니, 쓰리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은 알기는 아는데,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나 할까. 지난 1년 동안의 나라 간의 관계나 나라의 운영과 살림은, 여러 방향에서 논의되고 종합적으로 검토되지 못하고 하나의 관점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나라의 이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제 관계에서조차 미국과 일본은 선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악이라는 ‘가치(?)’의 관점으로만 본다. 집권 세력이 바뀌었어도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식의 실리외교가 30년이 넘게 유지돼왔다는 사실은 보지 않는다. 아예 무시한다. 내정에서도 검사 출신들의 정부 요직 독식, 입법부를 무시한 행정부의 독주, 편파적인 부자 감세 정책, 원전 하나에 ‘올인’하는 에너지 정책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집단과 방향(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문제를 조감하려는 시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평생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보다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이 더 위험하다고 한다. 무지보다 편향이 더 문제라는 뜻이다. 사람은 자기가 두루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문제의 일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일면적이 아니라 다면적(many-sided)일 때 실체에, 진리에 더 근접할 수 있다. 나만이, 한쪽의 이익만이, 한 관점만이 옳다는 독선에 사로잡히면, 문제가 생겼을 때 자성이 아니라 남의 탓만 하게 된다. 몰라서가 아니라 어설픈 자기 생각=확증편향에 빠져 독불장군처럼 독주(아니, 폭주)하면, 국민은 그에게 요구해야 한다. 일부러 제멋대로 하지 말고 법대로 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퇴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준엄하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3-06-20 | hrights | 조회: 346 | 추천: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