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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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당신의 노력은 당신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습니다. 지난 3월 22일(토) 광화문 시민대행진의 한 사진이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연세 많은 어르신이 피켓을 들고 있는 장면이었고 그 내용은 이랬습니다. “내 나이 92세. 내 평생 저런 놈 첨 본다. 당장 윤석열 그놈 파면해!” 자주 촛불대행진에 참여할 때마다 답답함도 많지만, 새로운 장면과 발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역사적인 변곡점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일 것입니다. 광장의 촛불이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절대로 꺼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열망이 단순한 순간의 분노가 아니라 역사의 지속적인 변화를 향한 간절한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시민 권력을 한층 확장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가 믿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키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사회대개혁이라는 변화는 우리, 시민들이 만드는 것 물론 쉽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아인슈타인의 이 말처럼, 우리가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면서 변화만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계엄 상황과 대통령 탄핵 국면, 이 격동의 시기는 우리에게 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촛불 대행진이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실질적 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탄핵 이후 사회대개혁이라는 깃발을 절대로 놓아서는 안되는 줄 강조하고 강조하면서 우리가 광장에서 목 놓아 외치는 이유입니다. 그 힘은 역시 시민들에게서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아픔이 깊을수록 희망은 더욱 빛난다. 솔직히 집회를 나가면서 매번 갈등합니다. 지루하기도 하고 비슷한 발언과 공연들이 반복되기에 오늘은 또 누구를 오랜만에 만나게 될까, 오늘은 어떤 흥미로운 광경이 눈에 띌까, 오늘은 어디에서 뒤풀이할까, 오늘은 제발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을 가지고 깃발과 가방을 챙깁니다.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이 생긴다."라는 말을 자주 되뇝니다. 우리 사회가 겪는 고통과 좌절이 깊을수록, 우리가 쟁취할 행복 또한 클 것입니다. 권위주의, 독재 정치가 움켜쥔 손아귀에서 시민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우리가 몸으로 밀고 나가며 만들어가는 실체입니다. 그래서 요즘 헌법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새삼스럽고 놀랍습니다.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오는 헌법 개정 운동은 그래서 시민 권력을 더 넓게 확장하고, 우리가 더 이상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길을 잃어도,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는다 2025년 제가 활동하는 용산시민연대가 지역의 변화를 꿈꾸며 준비하는 22주년 총회 역시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입니다. 총회 주제를 ‘다시 만날 세상을 향해’로 잡았습니다. 광장에서 매번 떼창으로 불리는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에서 따왔습니다. 회원 170명에서 두 배로 확장하겠다는 멋진 비전, 더 많은 시민과 함께하는 더 민주적인 용산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의 문제입니다. 만약 기존의 사업방식만을 생각했다면 이 길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길을 잃었을 때 다른 길이 찾아온다(박노해)’라는 말처럼 두려움을 응원봉으로 극복하는 시민들에게서 지혜를 얻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믿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선택했습니다. 두렵고 무서워도 그래도 하는 게 용기 왜 갑자기 ‘용기’라는 말이 떠올랐는지 모릅니다. 형형색색, 기발한 문구로 깃발을 만들어 열심히 참여해서 노래나 구호가 나올 때마다 멋진 장관을 연출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특히, 단체 활동이 주업인 우리 같은 사람의 고정관념이 많이 부서졌습니다. 변화는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이겨내는 사람들이 결국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이 험난할지라도, 우리에게는 포기하지 않는 시민들의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땀과 열정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용기가, 우리의 연대가, 그리고 우리의 헌신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것입니다. 광장에서 응원봉을 든 우리가, 권력의 복판에서 의사봉을 쥐는 그날을 떠올리면서, 또 광장을 향해 나갈 우리 모두에게 감사하면서. 함께 갑시다. 희망은 우리의 것입니다.
2025-03-26 | hrights | 조회: 232 | 추천: 13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얼마 전 40년 전 초등학교 동창 부모님께서 갑작스럽게 돌아 가셨다는알람이 떴다.  장례식장이 어디인지 확인하고 그 다음 한 일은 신고 벗기 쉬운 검은 신발을 찾는 것이다. 양반다리로 앉아야 하는 장례식장의 문화가 식탁과 의자 중심으로 가구 배치가 변화 되었다지만 1983년 말 경기도 파주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장례식장이 등장한 이후 장례식장에 가서 추모를 하고 상주와 슬픔을 나눌려면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함은 변하지 않았다. 상주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더라도 내가 직접  활동지원사와 동행하지 않는다면 검은 상복의 친구가 장례식장 입구에서 내 신발을 신겨주는 웃픈 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장애인 당사자 조문은 액운 붙은 귀신을 달고 온다며 거부하던 시대는 아득한 옛날 갔지만 신축 종합 병원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의 장애인 접근성 문제는 2000년 초부터 꾸준히 문제제기가 되었다. 작년이 되어서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대구 지역에서부터 공식 차별 사항으로 진정되고 접근성 개선이 권고 되었다. 사실 내가 조문객으로 장례식장을 방문했을 때는 굳이 분향소까지 가지 않거나 입구 앞에서 상주와 위로의 말을 나누고 돌아올 때가 더 많았다. 그나마 그마저도 경제적으로 넉넉함이 허락될 경우다. 수백만원의 장례비용, 장례식장 대여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장애인 당사자 상주는 수많은 장례식장의 계단 앞에서 조문객 응대는 꿈도 못꾸고 입관 절차조차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학 시절 외할머니가 양산 시골 어귀에서 돌아가셨을 때는 아예 나는 서울에서 홀로 집을 지켜야 했다. 올해 달려간 인천 큰 종합 병원의 장례식장에는 생전 처음으로 주저 앉아야 하는 좌식 방식이 아니었다. 모두가 편하게 의자에 앉아서 식사하고 위로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여전히 상주가 내 신발 신기를 지원해야 함은 변함이 없었지만 더 이상 불편한 자세와 상황 때문에 서로가 미안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승강기를 찾아 병원 내부를 돌아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휠씬 오랜 시간 상주를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 마을에도 검색을 해보면 기본적인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큰 장례식장은 제법 검색이 된다. 모니터링을 해보면 대부분 장례식장은 이동식 경사로와 실내용 휠체어를 비치하고 있다고 하지만 대중적으로 이를 알고 활용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또한 신발을 벗지 않고도 휠체어 바퀴를 닦지 않아도 분향소까지 드나들 수 있는지, 식사는 좀 더 편히 할 수 있는지, 보다 자세한 안내는 찾아 보기 어렵다. 인권위 권고에서도 관련  법률 시행령에 장례식장 빈소에 관한 세부 기준이 없다면서 조문할 때 차별이 없도록 세부 기준을 마련하라고 권고할 정도였다. 점점 장애인 당사자가 상주가 되거나 장례를 진행해야 할 경우도 늘어나는데 이러한 장애인 고객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장례지도사가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계실까? 대부분 나이 들어 돌아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면 당신들 대부분은 이동이 어렵고 버거운 장애를 가지고 계실 텐데 그 분들을 즐겁게 장례식에 함께 할 수는 없을까 상상할 수 있다면 우리 장례식장의 풍경은 한발 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추모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손쉽게 알리는 부고장부터, 각 병원의 장례식장 인터넷 사이트부터 다양한 장애인들이 접근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떤 죽음이 슬프고 서럽지 않지 않을까 마는,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와 추모할 자유마저 차별하지는 말자.
2025-03-21 | hrights | 조회: 134 | 추천: 3
정한별 / 사회복지사 “두루마리 휴지랑 하이타이 사와요!”   얼마 전 지희(가명)씨의 집들이에 다녀왔다. 지희씨는 30년 넘게 장애인거주시설(이하 ‘시설’)에서 살다가 8년 전 시설에서 나와 살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자립생활체험홈에서 살던 지희씨가 LH의 공공임대주택에 당첨되었고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계약한 자신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며 집들이에 나를 초대했다. “영준(가명)오빠랑 같이 와요.”   지희씨가 처음 시설에서 나와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는 적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평생 시설에서만 살다가 낯선 공간을 접했고, 항상 같은 사람을 만나던 단조로운 일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어쩌면 복잡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관계가 그녀에게 스트레스가 되었다. 시설 밖의 일상에 힘들어 할 때, 영준씨를 소개했다.   다른 가족과 모두 관계가 끊어진 채 시설에서 살았던 지희씨와 달리 영준씨는 가족이 모두 있었다. 평일에는 시설에서 지내다 주말에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 가던 영준씨도 시설에서 나와 혼자 살게 되었다. 취업을 하고 직장 근처에 작은 방을 구했다. 영준씨의 동생(정확히는 영준씨의 제수)이 일주일 치의 음식을 만들어 주면 냉장고와 전자렌지, 인덕션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음식을 데워 먹고 버스를 타고 직장에 출근한다. 일을 하다 오후 5시면 퇴근해 저녁식사를 하고 티비를 보다가 잠이 든다. 주말이 되면 동생 가족을 만나는 영준씨는 올해 50세가 되었다.   지희씨는 혼자서 척척 일상을 살아 내는 영준씨의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얻었고 때때로 연락하며 위로 받았다. 둘이 처음 만난 날,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영준씨는 운동화를 선물했고, 지희씨는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희망까지 덤으로 받았다.   지희씨와 영준씨가 만난 지 5년이 넘었다. 시간은 두 남녀에게 전혀 다른 세상을 선물했다. 지희씨는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일이 무색할 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를 끊어내는 법을 배웠다. 식사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며, 가끔 외식 혹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고, 더 멋진 모습으로 변하기 위해 외모도 가꾸기 시작했다. 정기적인 병원 진료로 더욱 건강해졌고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택해 종교 생활도 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자립생활체험홈에서 알게 된 다른 체험홈 입주인과 함께 단둘이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키고 주장하기 위한 인권운동인 ‘피플퍼스트 운동’을 하는 단체에 소속되어 인권운동을 하고 있으며, 이 활동으로 대구, 부산, 일본 등 다양한 지역에 방문해 정기적인 회의와 인권 활동을 하고 있다. 직장에 취업해 임금노동자가 되었고, 생활비를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소비로 문제가 되었던 모습에서 계획적인 소비와 저축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영준오빠 집들이 그냥 온거야? 아무것도 안 가져왔어?” “그게...그게...” “으이구 못살아. 내가 다음에 오빠네 회사 근처에 갈 테니까, 밥 사.”   집들이는 요즘 트렌드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피자와 치킨, 초밥과 음료까지 배달음식으로 잘 차려진 식사에 대비되게 집들이에 초대 받은 영준씨는 빈 손이었다. 자신이 먼저 가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니고, 초대받아서 가는 건데 선물을 왜 준비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영준씨는 결국 아무런 준비 없이 초대에 응했다. 영준씨는 흰 머리가 늘었다는 것 외에 5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었다. 동생이 챙겨주는 음식, 직장과 집.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구내 식당에서 식사하는 일 외에 밥 한번 같이 먹은 일이 없고, 동생 외에 만나는 사람도 연락하는 사람도 없는 일상. 퇴근 시간이면 동생의 전화, 7시 50분이면 드라마가 시작된다는 알람이 울리는 일 외에는 울리지 않는 전화기가 익숙한 일상.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면서도, 조금 더 깊은 관계가 되는 일은 두려워 하는 모습. 앞으로의 계획도, 특별한 목표도 없는 일상은 5년 전 그날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5년 동안 두 사람의 변화를 만들어 낸 것은 옆에 있는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조금 더 경험해 보는 일의 중요성을 믿는 사람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늘과 같은 내일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의 차이. 조금 더 경험해 보는 일은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함께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천천히 적응하고 조금씩 고쳐나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 끝에, 실패의 경험이 성공의 경험으로 바뀔 수 있다. 물론 이 일은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에는 그 짐이 너무 버겁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늘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모든 가족들과 연락이 끊긴 채 시설에 살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돌봄지옥 끝에 자녀살해 후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돌봄의 의무를 가족에게만 요구할 수 없다. 국가와 사회의 개입이 있어야 돌봄을 제공해야 하는 가족은 돌봄 부담을 완화할 수 있으며, 돌봄 서비스를 받는 당사자는 새장을 열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새장 밖의 세상이 조금 더 살만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새장 밖에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기 위한 제도를 만들고 예산을 투자하는 일이 사회의 역할이다.   새장 안에서만 살다가 목숨을 다하는 것보다 새장 밖의 하늘과 새장 밖의 공기를 느끼며 새 답게 사는 삶이 낫지 않을까. 비록 새장 밖이 위험하다고 할지라도...
2025-03-04 | hrights | 조회: 96 | 추천: 5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사무국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4일(현지시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가자지구를 점령(Take-over)하여 휴양지로 개발(development)하겠다고 발표했다. 충격적이고 황당한 발표였다. 15개월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기간동안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무기 지원국이자 학살 공범 국가인건 맞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소유권을 공식적으로 주장한 적은 없었다. 또한 외교적 수사라고 하더라도 미국은 그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해왔다. 그렇다면 그동안 미국의 중동외교정책을 모를 일 없는 트럼프가 이토록 황당한 발표를 한 속내는 무엇일까? 정확한 속내는 트럼프만 알겠지만 그동안의 트럼프의 대이스라엘 정책과 태도 그리고 트럼프 발표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을 살펴보면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먼저 네타냐후 총리는 같은 날 회견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는 미국의 승리이고, 트럼프의 리더십으로 평화를 이룰 것”이라고 하며 “(트럼프의 계획은) 역사를 바꿀 결단”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이자 재무장관인 베잘렐 스모트리히는 트럼프의 발표에 대해 “가자지구 주민들이 새롭고 더 나은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다른 터전을 찾도록 돕자는 것은 훌륭한 견해”라고 했고, 또 다른 극우 정치인이자 국방장관인 이스라엘 카츠는 “가자지구 주민들이 세계 여러 곳으로 떠날 수 있게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담한 계획을 환영한다”고 하며 “가자 주민 이주 준비”를 군에 지시했다. 또한 트럼프 1기 시절(2017~2021년) 취했던 대이스라엘 정책을 보면 트럼프에게 이스라엘은 다른 동맹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국가였다. 당선인 신분이었던 2016년 12월에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취했던 정책은 서안지구에 대규모 정착촌 건설을 승인하는 것이었다. 이는 트럼프가 오바마 시절 서안지구 정착촌이 불법이며 제동을 걸었던 모든 정책을 되돌려놨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2017년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을 이전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분노케 했고, 2019년 국제법상 점령지인 골란고원을 트럼프는 이스라엘 영토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1기 임기후반 2020년에 제안한 ‘중동평화구상안’ 역시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이렇듯 트럼프에게 이스라엘은 동맹국을 넘어 쌍둥이와 같은 국가이고, 이번 가자지구의 개발도 ‘땅’에 대한 계획인 듯 보여 지지만 실상은 ‘땅’에 거주하고 있는 가자지구 ‘사람’에 대한 계획이고, 나아가 서안지구를 포함한 전체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계획으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겠다는 이스라엘의 계획에 트럼프는 가자 개발 계획으로 확고한 지지를 선언하고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신으로부터 자기 민족이 독점적으로 부여받은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시오니즘’이라고 일컫고 이를 믿고 지지하는 이들을 ‘시오니스트’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시오니스트들이 이스라엘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존재를 지우고, 권리를 부정하는 시오니스트들 중에는 이스라엘과 조약을 맺어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켰던 중동아랍국가 지도자들도 있고, 미국의 권력자들도 있으며, 국내에서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동시에 흔들고 있는 이들도 시오니스트들이다. 트럼프 취임시기에 맞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학살을 임시 중단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는 이스라엘의 인종청소는 지금도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디와 연대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활동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미 이스라엘 건국으로 강제추방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세상은 트럼프의 발표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가자는 다시 생명을 원합니다.” * 해당 보고서는 아디 홈페이지 www.adians.net 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2025-02-25 | hrights | 조회: 98 | 추천: 9
김성은 / 서울신문 기자 “네가 아무리 콜라겐을 처먹고 처바르고 용을 써도 내 자리는 어림도 없단다. 이 어리기만 한 X야.”  넷플릭스 시리즈 <더글로리>에서 기상캐스터 연진이 후배를 ‘참교육’시키겠다며 얼굴 정면에 대고 퍼부은 말이다. 연진 입장에서는 후배가 먼저 심기를 건드렸으니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사안이 어찌 됐든 사람 면전에 ‘폭언’을 퍼부었다는 점에서 그의 대응은 명백히 선을 넘었다. 이 장면이 드라마에 등장한 뒤 인터넷상에서 다시 화제가 된 걸 보면 현실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끌어냈다는 방증일게다.  최근 <더글로리>의 이 장면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직장 동료들로부터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사망한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사건 때문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9년 7월 시행된 지 6년여가 흘렀지만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남아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른바 ‘고 오요안나법’이라고 이름 붙인 특별법안을 준비 중이며, ‘중대한’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단 1회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처벌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5주년을 맞아 기획한 <빌런 오피스: 나는 오늘도 출근이 괴롭다> 관련 취재를 진행하면서 내린 결론은 법적 처벌 강화만으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제 적용 사례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관련 기사 2만 894건을 살펴본 결과 법 적용의 한계와 모호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는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폭넓게 규정된 데서 비롯된다.  가장 큰 문제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는 점이다. 조사자에 따라 상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후배가 상사의 지시에 불만을 느끼더라도 그 지시가 업무상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적정범위 내에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상사가 일을 시키면서 욕설을 퍼붓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 지시가 업무 선상에서 정당했느냐의 여부를 두고 설전이 붙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법적인 모호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법안, 즉 ‘중대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경우 1회만으로도 처벌 가능하도록 하는 오요안나법은 현장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대체 어떤 기준으로, 누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중대성을 판단할 것인가? 신고자인 부하직원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사건이 가장 중대하겠지만, 상사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일로 치부할 수 있다. 결국 중대성을 두고 또다시 논란이 불거질 것이 자명하다.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다. 지난해 취재 과정에서 접한 한 제보 사례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법으로 인한 신고와 소송이 난무하면서 한 법인이 완전히 와해된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법인장의 심한 욕설과 부당한 사내 징계로 시작됐다. 이에 따라 한 직원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암 판정을 받은 뒤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다른 직원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며, 또 다른 직원은 운전 중 법인장이 퍼붓는 폭언에 차량 전복 사고까지 당했다. 직원들이 법인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자 법인장도 이에 대항해 직원들을 끊임없이 징계하고 관련자까지 싸잡아 고소했다. 양측 모두 “법대로 하자”를 외쳤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직이 거의 붕괴하는 상황이 초래됐다. 법으로 맞붙는다 한들 괴롭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고 오요안나 사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 역시 회사에 직장 문화 개선 의지가 있느냐다. 물론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한 오 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받기 위해선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직장에서 괴롭힘이 활개 칠 수 있었던 근본적 원인은 그런 행동을 묵인한 조직 문화다. 기상캐스터의 노동자성이라는 법적 쟁점이 직장 문화 개선이라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를 덮어버린다면 또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이 있겠나. 드라마 속 연진처럼 후배에게 폭언을 퍼붓더라도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고 심지어 당연하다는 듯 여긴다면, 괴롭힘이 반복될 여지가 크다.  논점은 더 흐려지는 분위기다. 어느새 기상캐스터의 고용 형태에 있어 정규직이 옳냐, 계약직이 옳냐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물론 계약직 문제 역시 필요하다면 다뤄져야겠지만, 고 오요안나 사건을 계기로 이렇듯 전방위적으로 문제가 제기되는 건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핵심적인 해결책을 집중 모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 사건을 기상캐스터뿐만 아니라 언론사를 비롯한 모든 직장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괴롭힘 가해자를 직장 내에서 몰아내거나 최소한 그들의 행동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괴롭힘 행위 자체를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인식하는 조직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사내 구성원들 사이에서 적어도 ‘괴롭힘 문화는 덜떨어지고 후지다’는 인식이 구축돼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임직원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괴롭힘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강화하며,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고인을 기리는 가장 의미 있는 마지막 배려가 되리라 본다.
2025-02-18 | hrights | 조회: 178 | 추천: 6
신종환 / 공무원 우리 집에는 어르신 강아지가 둘 있다. 13살 먹은 웰시코기 산들이랑 12살 먹은 닥스훈트 다루. 몇주 전 다루가 아팠다. 처음에는 숨을 잘 못 쉬어서 부모님이 자주 가는 동물병원에 갔더니 폐렴이라고 약을 주곤 호전이 안 되면 안락사라고 해서 다들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럭저럭 버티는 것 같다가 어느날에는 숨 넘어갈 것처럼 힘들어하며 어쩔 줄을 몰라해서 밤새 안고 인터넷과 ai에 가능한 원인을 찾아보고 아침 9시가 되자마자 다른 동물병원에 가서 산소방에 넣고 오후에 재방문했다. 아버지의 고등학교 제자인 의사 선생님은 다루의 폐렴이 심하지 않아 치료가능성이 있으며 산소방에서 나온 다루는 다시 멀쩡했다. 하지만 밤이 되자 또다시 원인은 모르지만 다시 숨쉬기 힘들어했다. 보낼 때는 보내더라도 이렇게 힘들게 하면 다루도 힘들고 우리 모두 지칠것 같아 야간에도 문을 여는 동물병원에 다루를 데려가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를 하고 산소방에 넣었다. 피검사 결과 아무런 염증이 없어 폐렴이 아니라는 걸 이 때 알았다. 원인을 모른 채로 둘 수는 없어 엄빠는 다루를 데리고 병원에서 추천한 서울의 큰 병원에 가서 ct를 제외한 거의 모든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다루는 산소방에만 넣으면 멀쩡하고 밥도 잘 먹으니 우리는 우선 집에 있거나 내 차에 있는 방향제가 문제일까 싶어 엄빠가 다루를 데리고 할매집에 갔다. 그 사이 나는 출근해서 급히 산소방을 주문하고, 며칠간 다루는 하루에 두어번 호흡이 힘들어질 때 즈음이면 잠시 산소방에 들어갔다 괜찮아져서 나왔다. 그 사이 나는 유해성분제거에 제일 효과적이라고 판단된 공기청정기 후보 두 개를 만지작 거리다 하나를 골라 집으로 배송시킨 후 집에 있는 아바이와 동생에게 부탁해 하루종일 풀로 돌리고 다음날 다루를 집에 데려왔다. 다행히 다루는 산소방 없이도 멀쩡했고 나는 기껏 멀쩡한 다루가 나한테 남은 방향제 때문에 아플까봐 보균자처럼 걱정하다 가자마자 샤워를 빡빡하고 다루를 만났는데 여전히 멀쩡했다. 지난 며칠이 힘들었는지 주로 잠만 자서 이제 쇠약해졌나 했는데 이제는 거의 완전히 돌아왔다. 평소에 비해 몇 배의 보살핌과 마음 씀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의 곁에 있으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얘는 왜 이렇게 아파서 내일 출근해야 하는 나를 힘들게 하는지, 돈은 왜 이렇게 많이 드는지, 새벽에 숨을 못쉬어서 같이 잠에 들지 못할 때는 차라리 지금이라도 안락사를 시킬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그렇게 아픈 순간에도 나아지는 순간에도 우리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애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빠그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빠그라졌다 안도하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어느 순간 전보다 이 강아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걸 느꼈다. 성인만 있는 다른 가족으로 인해서는 이렇게 마음이 요동친 적이 없었다. 성인은 자기가 자기 첫힌을 할 수 있고, 안되면 말을 하면 되니까... 어떤 대상이 다른 대상에게 중요하게 되기까지는 서로의 세상에 고통스럽게 난입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겪게 됨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난입한 존재가 서로를 견디고 다시 밖으로 나가고, 그 과정이 바느질처럼 촘촘해지면 서로가 대체할 수 없는 서로의 무엇이 된다는 걸. 자식을 낳고 나이자 나 이상인 존재를 나와 강하게 연결하고 키워갈 때에는 아마 그 이전에 연인으로든 부부로든 맺어진 결속이 건강하고 많은 과정을 이전에 서로 견뎌온 만큼 원만하겠지. 나는 생에 다소 지쳤고 내 스스로의 가능성에 회의적이기에 그런 미래가 내게 오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에 알지 못하는 삶의 한 면을 다루를 잃지 않고도 알게 되어 기쁘다. 위기가 지나나고 이제 일상에 산재한 대립이라고 할지, 광기와의 싸움이라고 할지 모호한 현실을 생각하며, 다루와의 관계에서 사랑의 형성방식을 느낀 것과 같이 공동체에 대한 마음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이 필요로 하는 시간을 끝내 견뎌내었을 때, 스스로와 대상을 잊지 않은 이는 공동체를 더욱 사랑하게 될거라고. 터무니없는 행각을 벌인 이와 그리고 그를 당당히 옹호하며 정신 빠진 소리를 수도 한복판에서 소리치는 이들에 대해 왈가왈부 해야 한다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개탄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이 시간을 능동과 피동이 뒤섞여 언젠가 견뎌냈음 이라는 결과가 우리 안에 축적되었을 때 그 공통적 시간을 겪은 사람들도 이와 같이 그것을 민중이라고 부르든 우리나라라고 부르든 민주주의라고 부르든 공동체에 대한 입체적이고 깊은 사랑을 담지하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든다. 마주한 심연에 대해 말하는 이들은 늘 많으므로 나까지 거기 글을 얹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품고 있지만, 심연과 마주할 때 종종 왜 심연과 마주하기로 마음먹었는지를 잊고 싸우는 과정에서 변하곤 하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가 대미궁에서 죽은 이들로 나타내는 은유도 이와 같은 결일 것이다. 같은 뜻을 품었다는 넓은 의미에서의 우리는 형태와 크기는 차이나도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화나고, 고통받고, 좌절하고, 마음 졸이고, 고대하고, 환호하고를 반복하고 있다. 마음의 격랑에서 어쨌든 같은 자리에 서고 같은 방향으로 향하기로 매일 먹은 마음이 쌓이는 이 시간이 사랑의 시간임을 잊지 않는 것이 언젠가 올 건강한 공동체에게 필요한 기억의 양분일 것이다. 응보, 항의 투쟁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이는 불가피 하지만, 그 시발은 어디까지나 사랑이었고 지금도 이를 놓지 않았기에 함께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존재의 내어줌 만큼이 사랑이라면, 사랑의 잊은 만큼이 심연이 될테니까...
2025-02-12 | hrights | 조회: 126 | 추천: 9
김태형 / 프리랜서 방송작가 12.3 비상 계엄 54일 만에 불안감을 내려놓다 불안감에 속보를 찾아보며 지낸 날이 54일이었나 봅니다. 지난 1월 26일 저녁,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54일 만에 현직 대통령이 첫 구속 기소 됐다는 속보가 들려왔습니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소식일까?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부터 검찰의 구속 기소까지 하루도 불안하지 않은 날은 없었습니다. 비상 계엄날 밤, 급하게 소식을 접하고 스픽스 대표님과 예정에 없던 방송을 하면서도 암울한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가 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2, 3차 계엄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는 불안감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문을 걸어잠그고 관저에 숨어든 때에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속보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희망은 숨지 않는 시민의 목소리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의 질문이 많아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어떻게 될지? 여당에서는 이탈표가 나올지? 헌법재판소 재판관 추가임명은 어떻게 되는 건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는 질문들이었지만 그저 희망을 담아서 이야기할 뿐이었습니다. 방송 작가로 일하면서 매일 나오는 속보들을 챙겨 보고 전문가들의 예측을 들었지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커다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봉쇄된 국회 담을 넘은 국회의원과 보좌진, 비상 계엄 소식을 듣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저는 이번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처음 느꼈습니다. 때로는 나 한사람의 목소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의 한 표가 어떤 영향을 줄까? 부끄럽지만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를 경험하면서 시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처음 알게 됐습니다. 탄핵 소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체포영장을 발부되는 것인지? 1차 체포 이후 2차에는 정말 체포가 될 것인지? 검찰은 구속 기소를 할 것인지? 한번이라도 어긋나면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가 돌아올 거라는 불안감이 컸지만 시민들의 집회를 보면서 희망을 가졌습니다. 이번에 체포가 안 돼도 이번에 구속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의 지치지 않는 곧은 목소리를 이길 어둠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침묵하지 않으렵니다 혼란스런 상황, 제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동료는 저에게 ‘엘리 위젤’의 한 인터뷰를 보내줬습니다. 엘리 위젤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소년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담은 소설을 냈고 인종차별과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면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입니다. 엘리 위젤 “중립은 가해자만 도울 뿐입니다,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자 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나의 침묵과 나의 외면이 나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간다는 것을 왜 더 빨리 알지 못했을까요. 이제는 침묵하지 않으려 합니다.
2025-01-31 | hrights | 조회: 121 | 추천: 4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상상력에 권력을!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선거는 바보들의 함정이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열정을 해방하라!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느낌이 오는가? 68혁명 구호들은 다시 보아도 정말 멋지다. 가슴이 두근두근 설렌다. 1968년 전 세계는 혁명의 물결이 넘쳤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시위와 노동자들의 파업은 독일, 이탈리아, 영국, 미국 등으로 확산하였고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투쟁이 벌어졌다. 미국의 학자 윌러스틴은 “이제껏 세계적 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실패로 끝났지만 둘 다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라고 68혁명을 평가했다. 영국의 정치운동가 크리스 하먼은 "68혁명은 세상을 완전히 뒤집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강력하게 뒤흔들었다. 그 충격파는 많은 사람들을 해방으로 이끌었으며, 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68혁명을 왜 이야기할까? 우리 사회가 지금 겪는 비상계엄 내란, 민주주의 투쟁을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바로 68혁명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 진보주의자들의 바람이 뒤섞였을까? 광화문 광장에서 한남동 대로에서 여의도 국회 앞에서 멋진 구호를 만들어 외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꿈틀대었다. 그걸 실행할 준비와 용기는 없었다. 윤석열 탄핵 너머, 정권 교체를 넘어 말장난 같지만 ‘너머’는 공간이고 ‘넘어’는 행위다. 공통점은 무언가 장벽, 경계에 맞서는 방향이다. 행위와 공간이 만나면 항쟁이 되고 역사가 만들어진다. 요즘에 여기저기서 많이 하는 말이 탄핵을 넘어, 정권 교체를 넘어 “사회 대개혁을 만들어가자”라는 주장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윤석열 탄핵운동을 하는 1549개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명칭이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일까? 명칭과 구호만 봐도 대충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챌 수 있다. 2016년 촛불 항쟁은 박근혜 탄핵에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 윤석열 괴물 권력이 탄생했다는 평가가 따랐고 단체 명칭에 사회 대개혁을 두어 투쟁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했다. 시민들의 열망과 기대가 크지만 쉽지 않다. 강한 힘(권력)이 충돌하는 것을 우리는 매일 매일 목격하고 있다. 늙은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걱정과 잔소리 개인적인 이야기를 양념처럼 하나 해보겠다. 1943년생 나의 어머니는 잔소리라고는 여태 한 번도 안 하고 자식이 시민운동을 하던, 노동운동을 하던 그저 ”착한 아들, 정말 고마워“를 남발하는 칭찬 꾼이다. 이런 어머니가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에 연말부터 부쩍 전화하셔서는 잔소리를 하신다. “절대로 데모하는 그런데 가지 마라.” 어머니한테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했다. “안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뻔뻔스러운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따뜻한 외투와 양말을 챙겨입고 광화문, 한남동으로 향했다. 윤석열 탄핵 집회 현장이 얼마나 평화롭고 잔치 같은지 알 도리가 없는 어머니를 매일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계엄이고 내란범죄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안전하지만 평범한 국민은 계엄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폭력적인지를! 2030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많이 나오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세대들이 폭력에 대한 민감성, 감수성이 더 높은 것도 한 요인이지 않을까? 광장에 상상력과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넘치기를 사실 민주주의는 어려운 숙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도 반복되는 길.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광장에는 상상력이 넘쳤으면 좋겠다. 그 상상력과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뜨겁게 어우러졌으면 좋겠다. 실패한 역사가 반복되기도 했지만 우리는 시민들의 저항과 노력으로 놀라운 민주주의를 만들어오기도 했다. 이승만을 끌어내렸고 박근혜를 끌어내렸고 윤석열을 또 끌어내릴 예정이다. 요즘에 읽고 있는 책이 ’헌법의 상상력(심용환 지음)‘이다. 밑줄이 여러 군데 있고 내 글씨로 된 메모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몇 년 전에 읽은 것은 분명한데 내용이 기억이 안 난다. 다만 2016년 촛불혁명 이후 그 책을 읽으면서 내용이 좋고 많은 공감을 했던 것은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과 결의가 매우 높은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여의도에서 남태령에서 한남동에서 희망의 증거를 보았고 만들어가고 있다. 비상계엄을 ’실수‘인 양 표현하고 관저에 꼭꼭 숨어있던 ’손바닥에 왕을 새겼던 작자’를 구속하는 것까지 성사시켰다. 안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도 좋지만 그걸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멈추지 말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성찰하는 한마디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50대 중반의 꼰대 급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일상의 인권 감수성, 민주주의 습관이 내 안에 부족함을 깨닫는 날들이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는 우리가 되지 말자. 나부터 내 안의 파시즘을 돌아보고 바꿔보려 한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 헌재 앞에서 만나요!
2025-01-21 | hrights | 조회: 256 | 추천: 7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우리 동네 구산동에서 맞이 하는 네 번째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은평구 마을 사람으로 4년넘어 새해를 맞았다. 그 동안 우리 동네에는 은평구립의 장애인 복지관이 새로 생겨서 장애인복지관이 두 개나 있는 마을이 되었고, 지자체로는 드물게 은평구 인권백서가 처음으로 발간되었으며, 최근에는 6호선 구산역 개통 24년 만에 교통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 1역 1동선 확보하는 승강기가 개통(24년12월27일, 운행 12월31일)되어 휠체어 이용 시민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2023년에는 인권재단 ‘사람’이 인권센터를 새로 세우고 같은 마을에 자리 잡았다.  우리 지역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보다 더 존재감이 있던 은평구인권센터는 기초 지자체 중 인권센터 조례를 강제하고 인력 예산을 정기적으로 집행하는 몇 안되는 곳이었다. 공간에 들어서면 감격스런 공공성과 장애인 및 소수자를 환대하던 은평혁신파크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은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 기업에게 적대적으로 매각될 황야의 위기에 놓여 있다. 지속 가능한 공동체 공간을 꿈꾸었던 구산동 도서관 마을은 아직도 그 희망의 전등을 함부로 끄지 않고 있지만, 각종 지하철과 아파트의 재개발 등은 끈끈한 풀뿌리 운동의 핵심이었던 은평의 수많은 민관 협력의 네트워크를 단절시키고 단종시킬 위협을 가중시키고 있다. 장애인 인권에서도 그 동안 활발하게 참여하고 의견을 경청했던 많은 공무원들이 조직의 구조조정과 예산 부족을 핑계로 잘 해오던 정기적인 회의나 논의들도 취소하거나 내년으로 미루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전경 분명 작년 12월 3일 불법적인 계엄령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12.3 윤석열 내란 사건에 충암고가 아무런 죄 없이 혐오 공격에 시달리고 있을 때, 우리나라 최초의 야간자율학습 실시로 악명 높았던 예일여고 학교 당국이 시국 선언한 학생에게 퇴학 운운할 때에도 독립성을 보장한다던 은평구청장과 같은 층을 쓰고 있는 은평구인권센터의 오랜 침묵은 의아하고 슬펐다.  5.18 당시 가장 먼저 희생당했던 농아인 시민처럼, 또다시 우리의 의사소통이 짓밟힐 두려움에 그 날은 날 새는 게 무섭기만 했다. 겨우 집 밖을 나서며 지역 사회 활동을 시작하는 발달 장애인들이 또다시 계엄군들에게 가택 연금이라도 당할까 봐 동트는게 두려웠으며 겨우겨우 집 밖으로 이동을 허락 받았던 교통약자 장애인들이 통행 금지와 같은 포고령 때문에 또다시 외딴 섬 시설로 끌려가 유폐될까봐 숨죽였었다. 국방부도 보건복지부도 그 어느 곳도 매일 같이 학교를 오고 병원을 가야하는 우리와 같은 장애인을 고려한 계엄과 관련한 지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실제 전쟁이나 사변이 일어나 정말 국가적인 계엄이 떨어졌을 때 과연 우리 장애인들은 안전할 수 있을까?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동네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들의 행동이 있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이 추운 탄핵 시국에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따근따근한 손난로 같았다. 민주주의를 돋세우고 반파시즘과 탈권위주의를 불사지르는 작은 인권 불씨가 되었다. 비록 탄핵 표결 이후 국회도, 시의회도 모든 것이 멈추었고 모든 것이 굳어 버린 듯 하지만 우리는 보았다. 남태령 고개에서 그동안 그 존재를 부정당하고 배척당했던 많은 소수자들의 자유 발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연대하는지를 보았다. 우리 칡고개 갈현동에도, 구릉 많은 박석고개에도, 서오릉 못미쳐 벌고개에도 그이들이 있었다. 그녀들이 있을 것이다. 권력에 온갖 악행으로 우리의 기본권과 우리의 목소리를 틀어 막으며 우리 존재를 지우고 외면하는 무리에 맞서는 응원봉처럼 그들이 있었다. 행진하는 내내 본인의 의자를 내어주고 집회하는 내내 목발 가는 눈 앞을 가릴까봐 휘휘 앞길을 터주는 그들이 있었다. 목발 잡은 손으로 응원봉을 들 수 없으니 본인 스스로 내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빛나는 반딧불이처럼 아침 노을 여명이 다가올 때까지 우리의 응원봉이 되어 주었다. 당신들 덕분에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리. 우리의 사랑과 평화가 목발처럼 세워질 것이다.  그래도 광장에 당신들이 그대들이, 비록 몸은 광장에 나설 수 없는 우리들도 당신들의 따뜻한 은박지 같이 뜨겁게 연대하고 함께하고 참여하고 곁에서 새하얗게 새벽까지 함박눈에 맞고 싶다는 것을 알아주길. 할 수 있는 것은 입으로 눈빛으로 조금이나마 키보드 마우스를 움직여 조금이나마 투쟁 후원금을 보내거나 현장 생중계에 조회수를 늘리는 것 뿐이지만 기흉에 누운 침상에서 불끈 쥔 주먹만큼은 그들과 같을지니. 우리의 광장은 내가 있는 방 한칸, 내가 앉은 휠체어 하나, 내가 누운 침대 하나 밖에 없지만 민주주의 만세를 타는 목마름으로 동트는 새벽까지 조용히 읊조릴 것이다.
2025-01-09 | hrights | 조회: 93 | 추천: 3
정한별 / 사회복지사 “기후위기,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 정말 진부한 표현이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기후 위기는 정말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기후위기와 장애인차별 2022년,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주택에서 발달장애인 일가족 3명이 폭우로 고립돼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폭우로 반지하 집에 물이 차올랐고, 문을 열고 집밖으로 대피하고자 했지만 신속하게 탈출하지 못했다. 결국 가족은 모두 익사했다. 반지하에 살고 있던 다른 비장애 거주인들은 모두 대피했지만, 이 가족들만은 신속하게 대피하는 일이 어려웠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안전했을까? 폭우가 내려 도로가 약간만 침수돼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장애인은 이동이 불가능하다. 수동휠체어를 이용해 이동하는 일 역시 어렵다. 목발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이동에 어려움이 없는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기후위기로 자연재해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부분은 재난과 관련한 정보에 접근하는 일이다.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은 이 부분에서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재해 수준의 폭우는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폭우로 인한 어려움은 비장애인도 마찬가지 아니냐! 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 청각장애인은 10년 넘게 보청기를 사용했는데, 이번 여름에 처음으로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보청기 고장을 겪었다고 한다. 습한 날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습기에 예민한 보청기가 고장이 난 것이다. 이렇게 고장 난 보청기를 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일상생활에 지장이 컸다. 폭염은 어떨까? 휠체어나 침대에서 오랜 생활을 하는 장애인의 경우, 피부염증 질환에 매우 취약하다. 심각한 경우, 욕창에 시달리기도 한다. 폭염이 길어지고 열대야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요즘, 피부염증 질환은 장애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그림: “I need to breathe(숨을 쉬어야 해)”: 탄 쿠안 아와(Tan Kuan Aw)의 자화상 ⓒ www.disabilitydebrief.org 재난과 장애인차별 우리나라 화재 사고에서 장애인의 사망 비율은 비장애인의 약 5배인 57.4%라고 한다. 유엔환경계획(2023)도 기후변화로 인해 화재의 빈도가 증가되고 대형화되고 있다고 발표했으며, 우리나라의 올해 상반기(1~6월) 간 자연재해로 인한 화재 빈도가 전년 대비 63% 증가되기도 했다는 뉴스가 있기도 했다. 잦은 자연재해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특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연재해에 취약한 원인이 개인의 장애 때문인 것인가?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안전대책 수립 때문인 것인가? 2016년 경주와 2017년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인근에 대피소가 설치되었으나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고 있는 건물들만 생각해 봐도 재난 대책에 장애가 고려되지 않는 현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화재로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을 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어떻게 화재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완강기를 이용해 탈출하는 일이 가능할까? 완강기를 이용해서 탈출하는 일은 비장애인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은 화재 시 충분히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을까? 이 역시 쉽게 장담할 수 없다. 화재 시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비상경보장치가 충분히 설치된 시설을 찾아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최신의 공공건축물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까. 기후위기의 대안과 장애인차별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 고민들과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에너지를 사용하는 일 등 일상 속에서의 다양한 실천들이 제안되고 실제로 지켜지기도 한다. 그런데 환경을 생각하는 다양한 대책들이 때로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를 에코에이블리즘(친환경 장애차별주의)라고 한다. 환경을 고려하여 빨대 사용을 자제하자는 캠페인이 있다. 이는 빨대 없이는 물이나 음료를 마실 수 없는 장애인을 배제시킨다. 플라스틱 빨대쓰기 금지 정책은 손에 강직이 있는 뇌병변장애인, 손의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지체장애인, 소근육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다양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부러지지 않는 종이 빨대, 쉽게 눅눅해지는 종이 빨대만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장애인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탄소세 등 자가용 이용에 대한 비용을 증가시키고, 대중교통 이용을 강화하는 정책 역시, 대중교통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환경을 고려하면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친환경저상버스가 도입되고 있는 부분은 환영할만하나, 이 역시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23년 2월 기준, 경기도 31개 시군 중 3개 시군은 심지어 저상버스 노선도 없다. 내연기관을 대신해 친환경에너지라 불리는 전기자동차도 장애를 포용하고 있지 못하다. 대개의 전기자동차 충전구역은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등 다소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는 충전설비를 스스로 이용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제한적인 공간이다. 보통의 주유소는 인적서비스를 제공해 스스로 주유를 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도 차량에 주유를 하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전기자동차 충전구역은 인적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비약을 조금 붙여서 생각해 본다면, 환경을 생각한 일회용품 사용 제한도 의도치 않게 장애인의 일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일회용품(종이컵 등) 생산 시설 중 중증장애인이 물품을 생산하는 시설들이 있는데 특히 이들 시설의 생산품은 공공기관 우선구매대상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기관 등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일환으로 종이컵 사용을 하지 않다 보니 일회용품을 생산하는 중증장애인 고용 사업체는 매출에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이는 장애인의 고용상황에 악영향을 끼친다. 물론 이는 사업체 운영진의 사업 다각화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재난 대응 시 장애포용적 접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부터 직업과 소득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와 재난은 장애인에게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책은 장애인을 고려한 접근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기후위기 및 재난 대응을 위한 논의 테이블에 장애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정책이 장애인의 삶과 권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고려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2025-01-02 | hrights | 조회: 132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