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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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상상력에 권력을!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선거는 바보들의 함정이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열정을 해방하라!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느낌이 오는가? 68혁명 구호들은 다시 보아도 정말 멋지다. 가슴이 두근두근 설렌다. 1968년 전 세계는 혁명의 물결이 넘쳤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시위와 노동자들의 파업은 독일, 이탈리아, 영국, 미국 등으로 확산하였고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투쟁이 벌어졌다. 미국의 학자 윌러스틴은 “이제껏 세계적 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실패로 끝났지만 둘 다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라고 68혁명을 평가했다. 영국의 정치운동가 크리스 하먼은 "68혁명은 세상을 완전히 뒤집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강력하게 뒤흔들었다. 그 충격파는 많은 사람들을 해방으로 이끌었으며, 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68혁명을 왜 이야기할까? 우리 사회가 지금 겪는 비상계엄 내란, 민주주의 투쟁을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바로 68혁명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 진보주의자들의 바람이 뒤섞였을까? 광화문 광장에서 한남동 대로에서 여의도 국회 앞에서 멋진 구호를 만들어 외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꿈틀대었다. 그걸 실행할 준비와 용기는 없었다. 윤석열 탄핵 너머, 정권 교체를 넘어 말장난 같지만 ‘너머’는 공간이고 ‘넘어’는 행위다. 공통점은 무언가 장벽, 경계에 맞서는 방향이다. 행위와 공간이 만나면 항쟁이 되고 역사가 만들어진다. 요즘에 여기저기서 많이 하는 말이 탄핵을 넘어, 정권 교체를 넘어 “사회 대개혁을 만들어가자”라는 주장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윤석열 탄핵운동을 하는 1549개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명칭이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일까? 명칭과 구호만 봐도 대충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챌 수 있다. 2016년 촛불 항쟁은 박근혜 탄핵에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 윤석열 괴물 권력이 탄생했다는 평가가 따랐고 단체 명칭에 사회 대개혁을 두어 투쟁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했다. 시민들의 열망과 기대가 크지만 쉽지 않다. 강한 힘(권력)이 충돌하는 것을 우리는 매일 매일 목격하고 있다. 늙은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걱정과 잔소리 개인적인 이야기를 양념처럼 하나 해보겠다. 1943년생 나의 어머니는 잔소리라고는 여태 한 번도 안 하고 자식이 시민운동을 하던, 노동운동을 하던 그저 ”착한 아들, 정말 고마워“를 남발하는 칭찬 꾼이다. 이런 어머니가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에 연말부터 부쩍 전화하셔서는 잔소리를 하신다. “절대로 데모하는 그런데 가지 마라.” 어머니한테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했다. “안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뻔뻔스러운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따뜻한 외투와 양말을 챙겨입고 광화문, 한남동으로 향했다. 윤석열 탄핵 집회 현장이 얼마나 평화롭고 잔치 같은지 알 도리가 없는 어머니를 매일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계엄이고 내란범죄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안전하지만 평범한 국민은 계엄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폭력적인지를! 2030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많이 나오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세대들이 폭력에 대한 민감성, 감수성이 더 높은 것도 한 요인이지 않을까? 광장에 상상력과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넘치기를 사실 민주주의는 어려운 숙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도 반복되는 길.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광장에는 상상력이 넘쳤으면 좋겠다. 그 상상력과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뜨겁게 어우러졌으면 좋겠다. 실패한 역사가 반복되기도 했지만 우리는 시민들의 저항과 노력으로 놀라운 민주주의를 만들어오기도 했다. 이승만을 끌어내렸고 박근혜를 끌어내렸고 윤석열을 또 끌어내릴 예정이다. 요즘에 읽고 있는 책이 ’헌법의 상상력(심용환 지음)‘이다. 밑줄이 여러 군데 있고 내 글씨로 된 메모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몇 년 전에 읽은 것은 분명한데 내용이 기억이 안 난다. 다만 2016년 촛불혁명 이후 그 책을 읽으면서 내용이 좋고 많은 공감을 했던 것은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과 결의가 매우 높은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여의도에서 남태령에서 한남동에서 희망의 증거를 보았고 만들어가고 있다. 비상계엄을 ’실수‘인 양 표현하고 관저에 꼭꼭 숨어있던 ’손바닥에 왕을 새겼던 작자’를 구속하는 것까지 성사시켰다. 안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도 좋지만 그걸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멈추지 말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성찰하는 한마디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50대 중반의 꼰대 급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일상의 인권 감수성, 민주주의 습관이 내 안에 부족함을 깨닫는 날들이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는 우리가 되지 말자. 나부터 내 안의 파시즘을 돌아보고 바꿔보려 한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 헌재 앞에서 만나요!
2025-01-21 | hrights | 조회: 79 | 추천: 3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우리 동네 구산동에서 맞이 하는 네 번째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은평구 마을 사람으로 4년넘어 새해를 맞았다. 그 동안 우리 동네에는 은평구립의 장애인 복지관이 새로 생겨서 장애인복지관이 두 개나 있는 마을이 되었고, 지자체로는 드물게 은평구 인권백서가 처음으로 발간되었으며, 최근에는 6호선 구산역 개통 24년 만에 교통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 1역 1동선 확보하는 승강기가 개통(24년12월27일, 운행 12월31일)되어 휠체어 이용 시민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2023년에는 인권재단 ‘사람’이 인권센터를 새로 세우고 같은 마을에 자리 잡았다.  우리 지역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보다 더 존재감이 있던 은평구인권센터는 기초 지자체 중 인권센터 조례를 강제하고 인력 예산을 정기적으로 집행하는 몇 안되는 곳이었다. 공간에 들어서면 감격스런 공공성과 장애인 및 소수자를 환대하던 은평혁신파크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은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 기업에게 적대적으로 매각될 황야의 위기에 놓여 있다. 지속 가능한 공동체 공간을 꿈꾸었던 구산동 도서관 마을은 아직도 그 희망의 전등을 함부로 끄지 않고 있지만, 각종 지하철과 아파트의 재개발 등은 끈끈한 풀뿌리 운동의 핵심이었던 은평의 수많은 민관 협력의 네트워크를 단절시키고 단종시킬 위협을 가중시키고 있다. 장애인 인권에서도 그 동안 활발하게 참여하고 의견을 경청했던 많은 공무원들이 조직의 구조조정과 예산 부족을 핑계로 잘 해오던 정기적인 회의나 논의들도 취소하거나 내년으로 미루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전경 분명 작년 12월 3일 불법적인 계엄령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12.3 윤석열 내란 사건에 충암고가 아무런 죄 없이 혐오 공격에 시달리고 있을 때, 우리나라 최초의 야간자율학습 실시로 악명 높았던 예일여고 학교 당국이 시국 선언한 학생에게 퇴학 운운할 때에도 독립성을 보장한다던 은평구청장과 같은 층을 쓰고 있는 은평구인권센터의 오랜 침묵은 의아하고 슬펐다.  5.18 당시 가장 먼저 희생당했던 농아인 시민처럼, 또다시 우리의 의사소통이 짓밟힐 두려움에 그 날은 날 새는 게 무섭기만 했다. 겨우 집 밖을 나서며 지역 사회 활동을 시작하는 발달 장애인들이 또다시 계엄군들에게 가택 연금이라도 당할까 봐 동트는게 두려웠으며 겨우겨우 집 밖으로 이동을 허락 받았던 교통약자 장애인들이 통행 금지와 같은 포고령 때문에 또다시 외딴 섬 시설로 끌려가 유폐될까봐 숨죽였었다. 국방부도 보건복지부도 그 어느 곳도 매일 같이 학교를 오고 병원을 가야하는 우리와 같은 장애인을 고려한 계엄과 관련한 지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실제 전쟁이나 사변이 일어나 정말 국가적인 계엄이 떨어졌을 때 과연 우리 장애인들은 안전할 수 있을까?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동네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들의 행동이 있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이 추운 탄핵 시국에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따근따근한 손난로 같았다. 민주주의를 돋세우고 반파시즘과 탈권위주의를 불사지르는 작은 인권 불씨가 되었다. 비록 탄핵 표결 이후 국회도, 시의회도 모든 것이 멈추었고 모든 것이 굳어 버린 듯 하지만 우리는 보았다. 남태령 고개에서 그동안 그 존재를 부정당하고 배척당했던 많은 소수자들의 자유 발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연대하는지를 보았다. 우리 칡고개 갈현동에도, 구릉 많은 박석고개에도, 서오릉 못미쳐 벌고개에도 그이들이 있었다. 그녀들이 있을 것이다. 권력에 온갖 악행으로 우리의 기본권과 우리의 목소리를 틀어 막으며 우리 존재를 지우고 외면하는 무리에 맞서는 응원봉처럼 그들이 있었다. 행진하는 내내 본인의 의자를 내어주고 집회하는 내내 목발 가는 눈 앞을 가릴까봐 휘휘 앞길을 터주는 그들이 있었다. 목발 잡은 손으로 응원봉을 들 수 없으니 본인 스스로 내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빛나는 반딧불이처럼 아침 노을 여명이 다가올 때까지 우리의 응원봉이 되어 주었다. 당신들 덕분에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리. 우리의 사랑과 평화가 목발처럼 세워질 것이다.  그래도 광장에 당신들이 그대들이, 비록 몸은 광장에 나설 수 없는 우리들도 당신들의 따뜻한 은박지 같이 뜨겁게 연대하고 함께하고 참여하고 곁에서 새하얗게 새벽까지 함박눈에 맞고 싶다는 것을 알아주길. 할 수 있는 것은 입으로 눈빛으로 조금이나마 키보드 마우스를 움직여 조금이나마 투쟁 후원금을 보내거나 현장 생중계에 조회수를 늘리는 것 뿐이지만 기흉에 누운 침상에서 불끈 쥔 주먹만큼은 그들과 같을지니. 우리의 광장은 내가 있는 방 한칸, 내가 앉은 휠체어 하나, 내가 누운 침대 하나 밖에 없지만 민주주의 만세를 타는 목마름으로 동트는 새벽까지 조용히 읊조릴 것이다.
2025-01-09 | hrights | 조회: 32 | 추천: 1
정한별 / 사회복지사 “기후위기,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 정말 진부한 표현이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기후 위기는 정말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기후위기와 장애인차별 2022년,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주택에서 발달장애인 일가족 3명이 폭우로 고립돼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폭우로 반지하 집에 물이 차올랐고, 문을 열고 집밖으로 대피하고자 했지만 신속하게 탈출하지 못했다. 결국 가족은 모두 익사했다. 반지하에 살고 있던 다른 비장애 거주인들은 모두 대피했지만, 이 가족들만은 신속하게 대피하는 일이 어려웠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안전했을까? 폭우가 내려 도로가 약간만 침수돼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장애인은 이동이 불가능하다. 수동휠체어를 이용해 이동하는 일 역시 어렵다. 목발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이동에 어려움이 없는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기후위기로 자연재해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부분은 재난과 관련한 정보에 접근하는 일이다.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은 이 부분에서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재해 수준의 폭우는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폭우로 인한 어려움은 비장애인도 마찬가지 아니냐! 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 청각장애인은 10년 넘게 보청기를 사용했는데, 이번 여름에 처음으로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보청기 고장을 겪었다고 한다. 습한 날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습기에 예민한 보청기가 고장이 난 것이다. 이렇게 고장 난 보청기를 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일상생활에 지장이 컸다. 폭염은 어떨까? 휠체어나 침대에서 오랜 생활을 하는 장애인의 경우, 피부염증 질환에 매우 취약하다. 심각한 경우, 욕창에 시달리기도 한다. 폭염이 길어지고 열대야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요즘, 피부염증 질환은 장애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그림: “I need to breathe(숨을 쉬어야 해)”: 탄 쿠안 아와(Tan Kuan Aw)의 자화상 ⓒ www.disabilitydebrief.org 재난과 장애인차별 우리나라 화재 사고에서 장애인의 사망 비율은 비장애인의 약 5배인 57.4%라고 한다. 유엔환경계획(2023)도 기후변화로 인해 화재의 빈도가 증가되고 대형화되고 있다고 발표했으며, 우리나라의 올해 상반기(1~6월) 간 자연재해로 인한 화재 빈도가 전년 대비 63% 증가되기도 했다는 뉴스가 있기도 했다. 잦은 자연재해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특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연재해에 취약한 원인이 개인의 장애 때문인 것인가?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안전대책 수립 때문인 것인가? 2016년 경주와 2017년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인근에 대피소가 설치되었으나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고 있는 건물들만 생각해 봐도 재난 대책에 장애가 고려되지 않는 현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화재로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을 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어떻게 화재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완강기를 이용해 탈출하는 일이 가능할까? 완강기를 이용해서 탈출하는 일은 비장애인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은 화재 시 충분히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을까? 이 역시 쉽게 장담할 수 없다. 화재 시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비상경보장치가 충분히 설치된 시설을 찾아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최신의 공공건축물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까. 기후위기의 대안과 장애인차별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 고민들과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에너지를 사용하는 일 등 일상 속에서의 다양한 실천들이 제안되고 실제로 지켜지기도 한다. 그런데 환경을 생각하는 다양한 대책들이 때로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를 에코에이블리즘(친환경 장애차별주의)라고 한다. 환경을 고려하여 빨대 사용을 자제하자는 캠페인이 있다. 이는 빨대 없이는 물이나 음료를 마실 수 없는 장애인을 배제시킨다. 플라스틱 빨대쓰기 금지 정책은 손에 강직이 있는 뇌병변장애인, 손의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지체장애인, 소근육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다양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부러지지 않는 종이 빨대, 쉽게 눅눅해지는 종이 빨대만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장애인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탄소세 등 자가용 이용에 대한 비용을 증가시키고, 대중교통 이용을 강화하는 정책 역시, 대중교통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환경을 고려하면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친환경저상버스가 도입되고 있는 부분은 환영할만하나, 이 역시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23년 2월 기준, 경기도 31개 시군 중 3개 시군은 심지어 저상버스 노선도 없다. 내연기관을 대신해 친환경에너지라 불리는 전기자동차도 장애를 포용하고 있지 못하다. 대개의 전기자동차 충전구역은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등 다소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는 충전설비를 스스로 이용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제한적인 공간이다. 보통의 주유소는 인적서비스를 제공해 스스로 주유를 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도 차량에 주유를 하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전기자동차 충전구역은 인적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비약을 조금 붙여서 생각해 본다면, 환경을 생각한 일회용품 사용 제한도 의도치 않게 장애인의 일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일회용품(종이컵 등) 생산 시설 중 중증장애인이 물품을 생산하는 시설들이 있는데 특히 이들 시설의 생산품은 공공기관 우선구매대상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기관 등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일환으로 종이컵 사용을 하지 않다 보니 일회용품을 생산하는 중증장애인 고용 사업체는 매출에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이는 장애인의 고용상황에 악영향을 끼친다. 물론 이는 사업체 운영진의 사업 다각화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재난 대응 시 장애포용적 접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부터 직업과 소득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와 재난은 장애인에게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책은 장애인을 고려한 접근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기후위기 및 재난 대응을 위한 논의 테이블에 장애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정책이 장애인의 삶과 권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고려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2025-01-02 | hrights | 조회: 62 | 추천: 4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사무국장 “(인신매매)브로커들은 우리를 시트웨(방글라데시 도시명)에서 배에 태우고는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브로커와 선원이 타지 않고 우리만 탄 상태에서, 선원들은 배를 바다로 차버렸고 우리가 탄 배는 8일 동안 음식과 물 없이 바다를 떠다녔어요. 그곳에서 구호를 받을 방법은 전혀 없었고 배는 물속으로 가라앉았어요.” 로힝야 인신매매 피해생존자 S.R씨 증언 중 “(그는) ‘만약 나랑 결혼하지 않으면, 가장 먼저 너를 죽이고 그 다음으로 너의 언니네 식구들을 죽이고, 너의 가족 모두를 파괴할 것이다’라고 했어요.” 무장세력과 강제결혼하게 된 로힝야 여성 A.M씨 증언 중 “저는 배에서 3번 의식을 잃고 토했어요. 그들(인신매매범)은 제가 기절해 있을 때 저를 바다에 던져버리려고 했어요. 그때 제 친구 중 한명이 제가 그저 의식을 잃었을 뿐이라고 말해줬어요. 그들은 저희에게 음식과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았어요. 저희는 썩은 밥을 받았고 음식 없이 보내야 했던 날도 많았어요. 그 배에서 저만 성폭행 당한 건 아니에요. 그 배에는 젊은 여성들이 많았고, 인신매매범들은 원할 때마다 타고 있던 여성들을 성폭행했어요.” 로힝야 인신매매 피해생존자 H.B씨 증언 중 사진 1. 아디 로힝야 여성과 여아의 인신매매 실태보고서 표지 사진 세상은 로힝야 사람들을 세계에서 가장 박해 받는 집단이라고 한다. 100만 명의 로힝야 난민은 미얀마 군부의 집단학살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모였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서의 삶도 절망적이다. 이들은 캠프에서 합법적으로 노동할 수 없고, 교육권과 이동의 자유는 제한됐다. 국제사회의 구호물품이 없으면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캠프 내 무장세력은 활개치고 여성들을 납치했다. 치안을 책임지는 방글라데시 경찰은 부패하거나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특히 여성들에게 결혼과 육아가 의무라고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 거액의 결혼 지참금은 신부가족의 몫이었다. 이러한 빈곤과 실업, 폭력과 부당한 결혼 문화로 인해 많은 로힝야 난민들은 또 한 번의 이주를 계획할 수밖에 없고, 인신매매 조직에게 로힝야 여성과 여아는 쉬운 표적이었다. 아디는 ‘로힝야인권센터 RHRC’와 함께 ‘로힝야 여성과 여아 인신매매 실태보고서 <죽음과 착취의 여정에 내몰리는 로힝야 여성들>’ 지난 12월 23일 발간했다. 3개월간의 문헌조사, 779건의 설문조사, 그리고 18명의 피해생존자와 1명의 인신매매 가해자와의 현장 심층인터뷰를 수행했다. 마지막 2개월은 집필에 전념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너무도 처절했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혹했다. 보고서는 18명의 인신매매 피해생존여성과 여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담고 있다. 인신매매 과정에서 폭행과 구타, 욕설, 협박, 강제노동, 강간 및 성폭행, 살해 위협은 계속 이어졌고 짧게는 수십일 길게는 수개월 동안 이어진 여정 속에서 그녀들은 숲을 헤치고 산을 넘고 국경을 건넜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배에 올라 배고픔과 목마름, 동료의 죽음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중간에 해당 국가의 주민이나 경찰에 잡혀 수개월 이상 구금시설에 갇혀있기도 했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계속되는 협박과 몸값요구, 강간과 성폭행, 강제결혼을 당해야 했다. 그녀들은 모두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이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시급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인신매매범들은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해요. 그들은 소녀들을 착취하고 캠프에서 소녀들을 납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은 돈을 벌 남자 형제도 없고 아버지도 편찮으시기 때문에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매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시민단체(NGO)는 자수 작업, 손바느질, 마스크 만들기로 수입을 창출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거에요” 인신매매 해결방안에 대한 로힝야 인신매매 피해 생존여성 S.R씨 답변 * 해당 보고서는 아디 홈페이지 www.adians.net 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2024-12-26 | hrights | 조회: 77 | 추천: 3
김성은 / 서울신문 기자 1950년대 중국에서는 참새, 모기, 파리, 들쥐 등 4가지 해로운 동물을 제거하는 제사해운동(除四害運動)이 펼쳐졌다. 이 정책은 마오쩌둥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그는 어느 날 참새를 보더니 “저 새는 해로운 새”라고 지적했다. 참새가 곡식 낱알을 먹으면서 인민들에게서 노동의 결실을 도둑질한다는 단순한 이유를 댔다. 이후 중국 전역에서 인민이 동원돼 ‘참새 때려잡기’가 시작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마오쩌둥의 의도대로 참새는 사라졌지만 2년이 흐른 뒤 중국 공산당은 참새가 곡식만 먹는 게 아니라 해충도 잡아먹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새가 사라져 생태계가 교란되자 메뚜기 떼가 중국 전역을 뒤덮었다. 쌀 생산량이 급락했고 대기근이 촉발돼 수천만 명의 인민이 굶어 죽었다. 지난 3년여간 윤석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돌이켜보면 영락없이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대통령의 단순하고 즉흥적인 발언이 정책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혼란이 야기되는 일이 빈번했다. 5살 조기 입학 논란, 연장근로시간 한도 변경, 수능 난이도 조정, 의대 정원 증원, 공매도 금지 연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022년 5살 조기 입학 논란은 윤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하면서 시작됐다. 곧 교육계와 학부모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같은 해 6월, 고용노동부가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월 단위로 바꾸는 방안을 발표했는데, 하루 만에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뒤집는 일도 있었다. 2023년에는 윤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언급한 뒤, 현장에서 ‘물수능’ 논란이 벌어졌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은 경질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감사 대상이 됐다. 같은 해 말, 윤석열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의사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전 정부들의 의대 정원 증원 시도가 번번이 실패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 정부는 이렇다 할 근거 없이 훨씬 더 큰 규모의 증원을 발표해 혼란이 가중됐다. 2024년 1월 4일, 윤 대통령은 새해 첫 업무보고에서 “공매도는 부작용을 완벽하게 해소할 수 있는 전자 시스템이 확실하게 구축될 때까지 계속 금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애초 금융당국이 밝힌 한시적 금지 방침과 달랐다. 또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방침을 언급하며 정책 혼선을 야기했다. 즉흥적인 정책 결정과 번복의 연속은 마침내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정점을 찍었다. 윤 대통령은 야권의 정치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극단적인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이를 수긍하는 국민들은 적었다. 물론 독재 체제하에서 정책을 시행한 마오쩌둥과 윤 대통령의 정치적 환경이 같진 않지만, 적어도 독선적이고 즉흥적인 결정으로 국민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는 점에선 두 지도자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압도적인 군사력을 토대로 대중을 대규모 동원해 정책을 추진한 마오쩌둥의 강력한 리더십을 윤 대통령이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사라졌다고 해서 국민들의 고통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윤 정부의 후과는 오롯이 우리 국민들이 떠안게 됐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윤 대통령 재임 동안 한국이 규제 개혁과 산업 혁신에서 한층 뒤처졌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규제 혁신 정책 방향은 긍정적으로 평가됐지만 실제 개선 속도가 느리고 체감 효과가 낮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신산업 규제와 여러 부처에 걸친 복잡한 규제들이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국들이 빠르게 제도를 정비하는 동안, 한국은 복잡한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서 관련 법안과 규제 마련이 복잡하고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신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상화폐 관련 제도 정비도 지연돼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을 가상화폐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천명하며 가상자산 산업 규제 철폐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투자자 보호와 시장 활성화를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에 늦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모든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무감각하진 않은지 우려스럽다. 글로벌 트렌드에 어둡고, 심지어 패스트팔로워 전략마저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굼뜬 행보를 보인다. 정치적 혼란을 핑계로 모든 것을 제쳐두고 쉬운 해결책만을 찾는 안일한 태도도 문제다. 윤 대통령 재임 기간 ‘참새 때려잡기’ 식 정책으로 혼란이 커졌다면 현재의 탄핵 정국에선 정치권에서 난무하는 정쟁이 모든 중요한 사회·경제적 의제를 집어삼키고 있다. 이미 윤 정부 3년 동안 우리는 규제 철폐와 개혁에서 뒤처지며 경제를 일으킬 골든타임을 상당 부분 놓치지 않았나. 마오쩌둥의 사망이 중국에 과거의 실패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기회를 제공했듯, 우리도 윤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경제와 사회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철저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은 축제를 벌일 때가 아니다.
2024-12-18 | hrights | 조회: 506 | 추천: 8
신종환/공무원 언제나처럼 인권연대 글 마감일이 다가오면서 마음속으로 ‘글감이 생기게 해주시고, 습한 화장실에 자고 일어나면 끼는 곰팡이처럼 눈 뜨면 탁해지는 자아를 성찰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바라고 있던 차에 단톡방에 누군가 ‘계엄령 선포’라길래 무슨 시시껄렁한 농담인가 하며 주안상을 마저 차리고 TV를 켰는데,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었다. 소설 원숭이 손에서 소원을 빈 주인공의 심정이 이랬을까. 너무 충격적인 일을 맞으면 놀란다는 감정도 들지 않고, 어찌할 바도 몰라 연극을 하듯이 으레 그래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삐걱삐걱 움직여 어색하고 어정쩡한 큰소리로 가족들을 불렀다. 미국 영화를 보면 종종 등장인물들이 진정하려고 양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며 ‘저게 뭐하는 건가’ 싶었는데 우리 가족들이 그러고 있었다. 상황은 우리가 반응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 있어서 우리는 흥분하려는 건지 진정하려는 건지, 애매한 상태로 빠르게 잔을 비우며 뉴스를 봤다. 자정즈음 국회를 비추는 화면에 잡히는 군인들을 보고 망치에 맞은 부위가 0.2초 정도 후에 통증을 인식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계엄이구나!’하는 실감과 충격이 나를 둘러쌓았다. 그런데 40분이 지났을까 국회 본회의가 개의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1시즈음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이게 말이 되나’라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같은 생각으로 끝난 몇 시간. 출근하고 나니 직장 사람들은 놀람을 토로했고 업무상 만난 아재들은 계엄을 농담 삼아 민주당만 좋게 되었다며 애매모호한 감정을 섞어 웃음을 돌렸다. 계엄은 너무 두드러지고 커서 빼둘 수는 없고 어딘가에 끼워넣기는 해야하는데 어디에도 맞지 않는 퍼즐 같았다. 목요일에 지부장은 사내 메신저로 3차 범국민 대회를 다같이 출발하니 참석할 사람은 알려달라는 쪽지를 돌렸다. 나는 사무국장이라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자리를 권유받던 차라 지부장을 비롯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부담스러워 혼자 집회에 참석하려다가 만에 하나 내 또래의 조합원이 그 사이에 끼면 처음 맞이할 집회 현장이 당황스러우리라는 생각에 참석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역시 아무도 가지 않을 거라고 되뇌이고는 평소에 친분 있는 조합원들이 있는 단톡방에서 토요일에 서울 갈 의향이 있는 이가 있는지 물었고 친한 동생은 자기는 성수동 팝업스토어에 가며 굳이 이 방에 집회가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라는 이모콘티로 답했더니 다소 뻘쭘했는지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어쩌구하는 소리를 주워섬겼다. 응원이라니? 내가 어디 프로야구팀을 응원하러 가나? 당신은 타국 사람인데 잠시 휴양을 왔단 말인가? 윤석열과 그 일당들이 개소리하는 건 사실 화가 나지만 그들에게는 일말의 기대가 없기에 배신감이나 슬픈 마음이 들 까닭은 없지만 평소에 온갖 자리에서 나와 민주주의가 어쩌니 시대가 어쩌니 하는 얘기를 나누다가 동참을 권유하는 내게 사람들은 가지 않을거란 걸 가르치려는 걸 보며 마음 한구석이 빠그라지면서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빠그라지며 고통스러워하는 나와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겹치면서 나름대로 팽팽히 유지한다고 생각했던 이성적 비관을 놓고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낙관에 몸을 기대고 있었음을 알았다. 토요일 집회는 어느 정도 규모인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광화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도로 앞뒤로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모여있고 통신이 잘되지 않는 상황에 미루어 수십만이 모였으리라 짐작만 할 뿐. 마침 우리 앞에 있는 공무원 노조 서울시 본부 깃발 아래에선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모여있었다. 나랑 같이 노조 할 사람은 없는 처지가 부각되어서 부럽고 앞날을 생각하니 우울했다. 시간은 지나 국회가 개의하고 멀리서 김건희 특검 투표가 부결되었다는 소리가 들리고 국민의 힘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나가는 풍경이 멀리 스크린에서 보였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열패감보다는 분노에 휩싸여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들 돌아오는 주에 두고보자는 마음이었으리라 짐작한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너울성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마음 속을 내내 들여다보았다. 다른 대오에는 젊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는 마음과 내 주변사람들이 온·오프라인으로 하는 농담들을 나는 대문짝만하게 확대해서 보고 또 보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내가 알던 사람들에서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나도 모르게 공무원을 하며 날카롭게 벼려야 하는 비관을 농담과 같이 엮어 이불처럼 덮고 현실을 피하고 싶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공통성이 많이 줄어들어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십대 중반 즈음의 내가 비록 모순을 안고 있었지만 말의 무게를 감당하고자 했던 것도 아프게 다가왔다. 퇴직을 앞둔 노조 선배들은 예전부터 그런 마음으로 앞에 서 있었으리라는 생각과 내가 읽고 늘 주워 섬긴 많은 사람들, 유배지에서 다리가 절단되고 사랑하는 부인도 없지만 굳건히 글을 쓴 바흐찐부터 엄혹한 나날에도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당겨와 피워낸 루쉰 등을 인용하며 젠 체 할 때는 좋았지만 이제 그 말의 무게를 약간씩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잦아들지 않는 파도에 한참 마음을 담그고 있자 드러났다. 집회의 현장에서 처음 마주한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응원봉들과 그 새로운 몸짓들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고양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기 안의 맥동에 이름을 붙이지 못해 방황하고 받아들이고 이름붙이기를 꺼리겠지. 그렇게 내가 믿고 방향과 형태를 갖추지 못한 마음들을 바라보고 불러주어야 그들이 형태를 갖출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올라갈 것임을 잊지 말고 그런 이가 있을 거라 늘 물 때 끼는 세면대처럼 탁해지는 마음을 닦아가며 서 있어야 하는 게 원치 않지만 해야하는 내 일이라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 일은 생각보다 쉽지도 않지만 생각만큼 어렵지도 않겠지. 변방에 있으며 좋은 점은 스펙타클이 적어서 왕도란 쉽게 오지 않거나 허위인 경우가 많음을 잊지 않고 목적지보다는 출발지를 상기하기 좋다는 거니까. 단박에 나라의 주인 노릇할 마음의 준비를 마친 수십만의 사람들이 자아내는 모습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나까지 말을 보탤 필요는 없다. 그런 글은 훌륭한 사람들이 더 의미 있게 쓸 것이고 읽는 사람들은 이미 주인의식이 새겨져 있어 읽을 필요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기에 나의 마음과 글은 언제나 이도저도 아닌 이들과 나를 상정하고 있다. 마음이 더러워지면 그러려니하고 또 닦고 청소하고 새겨야지 하며 속초시에 있는 많은 조합원들의 마음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사금 같은 마음이 있으리라 믿고 목적지보다는 출발지를 잊지 말자고 예전에 내가 출발했던 것 같은 마음자리에서 다시 새긴다.
2024-12-11 | hrights | 조회: 90 | 추천: 5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 경희대학교 교수, 연구자들의 시국선언이 눈길을 확 끌었다. 많은 분량이지만 옮겨본다.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듣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의 안녕을 예전처럼 즐거움과 기대를 섞어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안타까운 젊은 청년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부조리와 아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군휴학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학생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지 못한다. 나는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졸업생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번쩍 들려 끌려나가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우리의 강의실이 어떠한 완력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 자유와 비판적 토론의 장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중략) 나는 하루하루 인간성을 상실한 절망을 보고 있고, 나 역시 그 절망을 닮아간다. 어느 시인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의 앞자락에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리라는 미약한 소망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두었다.(중략)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말과 현실을 발명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 2024.11.13. 경희대학교 ·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 이 시국선언문을 읽는데 가슴이 갑자기 뜨거워지고 깊은 울림이 머릿속을 채웠다. 놀랄 만치 잘 쓴 글이어서이기도 하지만 길지 않은 시국선언문에 절망과 분노를 비롯하여 시민들이 바라는 새로운 길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도 정확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제공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이 각종 언론에 보도되고 소통 방에 회자되는 이유는 교수라는 직업이 갖는 특성이 반영되어서 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연구자, 교육자, 지식인 집단이어서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영향력이 크다. 특히, 사회의 문제에 대한 비판,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은 때론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경희대 교수, 연구자들의 시국선언문을 읽다가 이태원 참사와 채상병의 죽음을 언급하는 장면에서는 제자를 넘어선 보편적 인류애와 깊고 어두운 성찰이 느껴져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경희대 교수의 시국선언문은 나의 시국선언문으로 각인되었고 습관처럼 여기저기 퍼 나르는 실천의 무기가 되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2024-11-19 | hrights | 조회: 202 | 추천: 14
윤요왕 /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최근 여기저기서 그동안 민-관을 연결하는 소위 중간지원조직 조례안이 폐지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춘천도 필자가 몸담았던 곳이 조례개정을 하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아예 조례 자체를 폐지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의회가 바뀌는 과정에서 전임권자가 시작했던 정책, 사업을 폐기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새로운 조례가 만들어지고 예산과 사업이 세워지고 그 조직의 구성원들을 구축해서 본 궤도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노력과 시간, 에너지가 들어간다. 민간 조직도 그럴진대 하물며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 승인까지 받아 만들어내는 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4년에 한 번 있는 지방선거로 정권이 바뀌면 하루아침에 폐기처분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방자치, ‘단체자치’와 ‘주민자치’ 사이   2025년은 1987년 제9차 개헌을 통해 지방자치가 부활한 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였던 제1회 동시지방선거(1995년)가 실시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란 주민이 스스로 지역의 사무를 처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라고 지방자치법에 나와 있는 그 본래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 혹시 지방자치가 ‘단체자치’(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만 남아있고 ‘주민자치’는 허울뿐인 건 아닌지 씁쓸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결국,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국민, 시민, 주민들의 권한과 의견은 종종 무시되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주민을 위한 조직, 기관들의 폐지과정에서 시민들과 진지한 공론장이나 의견수렴을 하는 시간이 있었던가 짚어봐야 한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마을 ‘히가시카와정’을 다섯 번이나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설명을 들으며 놀라운 점 하나는 12명의 지방의원들 정당이 모두 무소속이었다는 것이었다. 자기 지역을 위해 일하는 게 중요한 것이지 중앙정치의 정당이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방자치 30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중앙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많은 정당의 정강정책이 지역에 도움이 되고 중앙정부의 지원을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에서 바라보는 현실은 무조건 표대결로 가게 되고 의원 개개인의 가치와 신념은 정당주의로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민주적 공론장을 통해 의견을 듣고 결정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 체제 속에 그 허점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고자 지방자치 시대를 열어 풀뿌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를 도모하고자 했던 숭고한 가치를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중요한 정책결정에 있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막무가내식이 아닌 시민들의 민주적 공론장을 통해 의견을 듣고 결정해야 한다. 한마디 더 첨부하자면 진정한 민의의 지방자치가 주민자치로 가기 위해서는 유럽이나 일본 등 지방분권, 지방자치 선진국들처럼 더 작은 단위로 권력과 권한이 분산되어야 한다. 적어도 읍면동 단위까지는 작아져야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지방자치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써 지방자치   11월은 행사가 많은 달이다. 그중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일들이 있는데 모두 현장의 민의 활동가들이 직접 준비하고 기획하는 전국 행사들이다. ‘전국 읍면 실천 사례 공유회-옥천 청성대회’(11/15~16) 그리고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풀뿌리교육자치 국제포럼-장수’(11/29~30) 행사가 그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고민하고 움직이고 대안을 만들어 실천하는 의미있는 행사들이다. 서로가 토닥이며 응원하고 함께 살아가는 힘을 나누는 그것이 지방자치이며 주민자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故 노무현 대통령님의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지난 8월부터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성인 인생학교 : 학위도 자격증도 없는 시민교육, 삶전환교육)에 6개월 과정으로 공부하고 배우고 생활하고 있는 딸내미의 행복한 글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다 같이 다양한 사람과 관계 맺고 이것이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건강한 삶,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 같다”
2024-11-13 | hrights | 조회: 82 | 추천: 3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꿈을 찾아가는 사람들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는 서울에 몇 안 되는 재활치료를 전담하는 서울 재활병원이 있다. 몇 년 전 보건복지부 수도권 공공어린이 재활병원 운영까지 도맡으면서 10년 가까이 이어온 뇌병변 장애인 청소년 캠프가 있었다. 이른바 ‘꿈을 찾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당사자나 부모들이 너무 자신에 장애에 대한 치료나 재활에 매몰되지만 말고 다른 비장애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취업이나, 연애나, 대학 진로 등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탐구와 모험을 하기를 희망하는 캠프였다. 처음에는 여행이나 진로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장애’를 무조건 감추거나 치료하기만을 원하는 학부모를 설득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 캠프에서 배출한 유명한 이가 바로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이다. 우리 장애인 청소년들은 지난 10년 동안 송암스페이스 천문대에서 머나먼 은하수 밤바다 사이로 길고 긴 레이저도 발사했다. 그것은 송암천문대의 놀라운 장애인 접근성과 직원들의 높은 인권 감수성 덕분이었다. 영국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의 장애인 참여 프로그램 부럽지 아니하다. 부모님 장애와 관련한 잔소리 일절 없이, 활동 지원사의 일방적인 의존 없이 당사자들이 기획하고 병원 사람들과 실습 대학생의 지원만으로 코로나 전에는 제주도도 다녀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작년에는 3년 만에 재개한 강화도 캠프가 여름 태풍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송암스페이스도 더 이상 숙박을 지원하지 않아 하룻밤 머물며서 별을 볼 수는 없게 되었다. 남들이 다가는 외국 체험 캠프는 정부 돈 쓰기가 너무 어려웠다. 강릉으로 가는 휠체어 10대   그래서 우리는 올해 마지막 여름, 지난 9월 4일부터 2박 3일 나름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강릉 앞바다로 가기로 결정했다. 병원 프로그램으로 병원 앞에서 우리끼리만 가는 셔틀버스 여행이 아니라 남들이 설레며 타는, 철도청 KTX 강릉 가는 복작이는 기차를 타고 모두 다 함께 단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휠체어 10대와 함께 정동진 일출도 맞이하고 레일바이크도 모두가 빠짐없이 발을 굴렸다. 인터넷에서 인기 높은 도슨트가 계신 참소리 축음기·에디슨 과학박물관은 편의시설도 해설도 너무 훌륭했다. 해설사 선생님은 당사자들이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도록 한 명 한 명 모두 챙기셨고 장애인 청소년들을 모두 숨넘어 가게 웃겨 주셨다.   또한 사전 답사에는 문조차 열지 않았던 강릉역 역사 무장애 관광 지원센터에서 전동 휠체어도 무료로 빌릴 수 있었다. 물론 평창 올림픽 덕에 경사로와 장애인 화장실 있는 식당도 많았지만 강릉 역시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점에 당사자는 접근하기 어려웠다. 무조건 단체 손님을 거부하는 식당도 많았다. KTX를 타기 위한 노력   숨겨진 이야기지만 이에 뇌병변 장애인이란 이유만으로 필자는, 서울 병원 관계자와 함께 강릉 사전 답사를 두 번이나 가야 했다. 식당이나 레일바이크를 이용할 때 큰 위험은 없는지 접근은 가능한지 특별한 차별은 없는지 나를 통해서 먼저 모두 확인해야 했다. 나같은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 스스로 여행할수 있다면 1:1 조력자가 있는 우리 청소년들은 다들 안전하고 신나는 경험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투쟁하기 위하여 여행하는 것은 아니니까 미리 차별이 있거나 배재당하는 상황과 조건을 만들면 아니되었다. 사실 예상치 못한 일은 KTX 기차에서 일어났다. 기차에 있는 휠체어 좌석과 함께 기차 한 칸 한량에 모두 함께 같이 가야하는 원칙이 중요 했다. 적어도 휠체어 이용자 당사자들은 그래야 했다. 당사자들을 위한 캠프이고 안전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비장애인 청소년들의 단체 여행은 그 존재 자체가 위험하다고 두명만 기차 한량에 따로 타라고 아예 예약 자체를 막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KTX는 강릉으로 다닌 이제껏 한량이든 두 량이든 휠체어를 이용하는 승객을 5명 이상 태워 본 적이 없단다. 그런 손님을 받은 적이 없단다. 아니 아예 예약 자체를 안받아 주는데 어찌 도전을 하냐고. 휠체어를 캐리어나 택배 보관하는 공간에 두고 자체 인력 지원만으로도 옆에서 합석하겠다고 했음에도, KTX측은 처음에 휠체어를 이용학생들이 왜 10명이나 넘게 단체 여행을 하느냐고 반문할 정도였다. 언론이나 인권위의 힘을 빌리지 않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설득하는데 두 달 이란 시간이 걸렸다.   서울역에서 승강기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우리는 출발 시간 두 시간 전에 모였다.   사전 답사 당시에는 짐많은 승객들이 승강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몰려 들어 제 때에 플랫폼에 당도 하는 것도 걱정스러웠다. 캠프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우리 청소년들이 행여 차별 앞에 홀로 서지 않도록 많은 준비를 했지만 캠프 여행 매 순간 우리는 역사에서 기차에서 행여나 거부당하지 않을까 긴장했고 전투력을 모아야 했다. 그래도 강릉역에서 만난 리프트 버스 운전사 선생님은 너무나도 당사자들을 즐겁게 하셨고 막상 현장에서 모두 친절했다. 여행, 도전이 아닌, 일상이 되는 그날까지   특히 우리 휠체어 때문에 비좁게 불편을 감수하셨던 다른 장애인 승객에게 감사드린다. 캠프 참가한 학생은 “이번 캠프에서 휠체어로 기차를 타는 것을 포함해 평소에 하지 못했던 다양한 활동들을 체험하고 도전하는 좋은 기회였다."라고 말했다. 정작 중요한 건 우리와 함께 기차를 타고 우리를 만나고 우리를 지원했던 다른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체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여행을 떠날 것이다. 우리의 여행이 특별한 도전기가 아니라 그 어떤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이 되는 그날까지.
2024-11-13 | hrights | 조회: 71 | 추천: 5
정한별 / 사회복지사   타인의 인생에 개입해도 되는 것인가? 사회복지사로서 일을 하면서 가장 자주하는 고민이다. 속된 말로, “내가 뭐라고” 식의 고민들이 타인의 인생에 개입할 때마다 브레이크를 걸어주곤 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목적의식 아래 어떤 때는 문제가 아닌 것들을 문제 삼고 지원의 탈을 쓰고는 간섭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사람의 자기결정.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선택권의 존중을 위해선 당사자의 참여, 당사자가 의사표현 할 수 있는 분위기의 조성이 중요하다. 말로는 쉽고 너무 당연한 일인데  때때로 이 간단하고 중요한 사실이 간과되는 일이 있다. 특히, 장애가 있는 당사자의 경우에는 자기결정권이 더욱 쉽게 무시되곤 한다.   30대 남성 A씨는 혼자 지역사회에서 살면서 단시간 동안 회사를 다니고 받는 약간의 급여와 공적급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민간 복지단체에서 제공한 주택에서 살고 있는 그는 보통의 혼자 사는 30대 직장인이 그러하듯 주거비용, 휴대전화 사용료, 식사비, 공공요금, 주말마다 이용하는 찜질방 이용료, 예배헌금 등을 사용하고 나면 저축을 하기에도 빠듯한 상황이다.   A씨는 지적장애가 있다. A씨가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고 생각해 본다면 A씨의 상황이 특별히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데 A씨에게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A씨의 평범한 일상이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 마법에 걸려버린다. 나아가 장애를 이유로 A씨를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고 낙인까지 새겨버리는 일도 일어난다. 특히 이 부분은 경제적인 부분과 관련해서 더욱 큰 편견을 만들어 버린다.   A씨는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을 통칭하는 개념) 재산관리지원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발달장애인 재산관리지원서비스의 제공을 위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재산을 수탁받는 기관과 발달장애인 당사자 또는 부모가 위탁자로서 현금, 부동산 등에 대한 신탁계약을 체결하는데, 이때 신탁재산의 수익자는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된다. 수탁기관은 신탁계약에 근거하여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위해 본인이나 부모의 재산을 관리하게 된다. 한편, 재산관리지원서비스에서는 개별적 수요에 맞는 지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신탁계약 체결 과정에서 개인별 재정지원계획의 수립도 함께 진행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당사자들은 신탁된 재산을 문화생활, 요양, 치료, 직업훈련, 심리상담 등 자신에게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A씨는 갑작스럽게 목돈이 생겼다. 이에, A씨를 돕는 다양한 지원기관과 A씨가 함께 협의하여 재산관리지원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하였다. A씨가 갖고 있는 목돈을 신탁재산으로 설정하여, 재산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매월 생활비를 지급 받는 식의 지원계획을 수립하였고, 1년 전, A씨가 신탁한 재산이 모두 소진되어 더 이상 신탁 계약의 의미는 없어졌다.   몇 달 전, A씨를 지원하는 다양한 복지기관의 직원들과 A씨가 함께 모여 재산관리지원서비스 이용에 대해 논의를 하기로 하였다. A씨는 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고, A씨가 없는 자리에서 A씨를 어떻게 지원하는 게 적절할지 논의가 진행되었다. ‘A씨는 자신이 받는 급여와 공적급여를 저축도 하지 않고 모두 다 써 버리니 문제가 있다, 재산관리지원서비스를 계속 받을 수 있도록 잘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지 않겠냐’라는 의견들이 지배적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가 받는 급여와 공적급여를 다 합쳐도 200만원이 되지 않는데, 저축을 하는 일이 쉬울까요, 주거비, 식사비, 공공요금 등 다양하게 쓰다 보면 결코 풍족하게 쓰는 것도 아닐텐데, 저축을 하지 않는다고 돈을 계획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 역시 지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A씨가 장애가 없었다면, 문제를 삼았을까요? 이렇게 개입하는 게 맞는건가요?”   결국, A씨 없이 논의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고민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고 A씨가 결정하는 방향을 존중하고,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실제 발생했을 때 당사자와 함께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회의는 일단락 되었다. 며칠 뒤, A씨에게 연락이 왔고, 재산관리지원서비스는 종료되었다.  “00에 취직 했어요. 11월부터 다녀요. 11월 20일에 만나요. 신탁(재산관리지원서비스) 필요 없어요. 저 혼자서 잘 해요” 존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자유 가운데서도 가장 소중하고 또 유일하게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이다” 라고 말했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자유.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한 일을 실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2024-10-30 | hrights | 조회: 111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