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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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길주희(인권연대 간사),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라영(문화평론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길주희/ 인권연대 간사   이달 17일에는 고 이태영 박사의 27주기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1952년에 한국 최초로 여성 변호사가 된 인물입니다. 해방 이후 1946년에 32세의 나이로 여성 최초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고, 6년 뒤에는 여성 최초로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해방 전에는 독립운동하던 남편 정일형 전 장관의 뒷바라지를 하며 일제에 저항하고, 해방 후에는 여성법률상담소(현 가정법률상담소)를 세워, 가난하고 소외당한 여성들을 위한 법률 구조 활동을 펼쳤습니다. 참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도 가졌고, 그만큼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앞장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여성 최초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마냥 자랑스럽기만 한 건 아닙니다. 이태영 박사가 변호사가 된 당시, 판사 임명권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여자는 아직 판사는 가당치 않다”라는 남녀 차별적인 시각에 더해 야당 국회의원 아내라는 이유로 방해만 받지 않았더라면, 다른 남성 동기들과 함께 판검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홀로 변호사의 길을 가게 된 건, 그의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선택지였기 때문입니다.   이태영 박사의 회고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유일한 선택지가 가슴에 많이 사무쳤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는 시대에 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인권 신장을 위해 일합니다. 변호사 사무실 개업 후 1956년엔 여성법률상담소를 개소하고, 가족법 개정을 위해 활발히 움직입니다. 이태영 박사는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범여성 운동을 일으키며, 1963년에는 가정법원 설치를 주도했습니다. 가족법 개정 운동은 1989년에 이르러 이혼한 여성의 재산분할청구권 등을 인정한 가족법을 입안하고, 상속범위를 남녀 차별 없이, 모계·부계 친족은 8촌, 인척은 4촌까지 확대하도록 하는 결실을 냈습니다. 그는 남녀평등 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는 한편, 유신정권에 맞서기도 했습니다. 1974년 11월 민주회복국민선언과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등에 참가해 싸우다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했을 정도입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이태영 박사의 27주기 추모식 플래카드를 발견하고는 문득 생각에 잠겼습니다. 여성 최초 변호사가 탄생한 후 약 73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노동 환경은 어떨까요. “여자는 아직 가당치 않은” 노동은, 직업은, 직책은 여전히 존재할까요. 저는 요즘 특히 건설‧ 건축업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전체 노동자 중 여전히 압도적인 비율이 남성이지만, 2024년 건설근로자공제회의가 발표한 <건설기성‧건설기능인인력 동향>에 따르면, 여성 건설기술인 수는 최근 5년 사이 약 40% 이상 증가해 15만 명을 넘어섰고, 여성 건설근로자 역시 매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 건설 기능인은 6만 7천 명으로 전체의 약 5% 수준까지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증가한 숫자만큼 노동 환경이 바뀌었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정부와 업계의 조사에 따르면 건설 현장에는 여성 화장실·탈의실·휴게시설이 설치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마련돼 있다고 합니다. 남성 샤워실은 있지만, 여성 샤워실은 없어서 여름에 곤욕을 치른다는 거죠. 또 임신·출산·육아와 관련한 제도가 법적으로 존재함에도, 현장 배치에서의 불이익이나 ‘현장에 맞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사실상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한 10년 차 건축기사는 현장 관리자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줌마’라 불리며, 업무 능력을 반복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게다가 모두의 안전과 편의에 대한 요구조차 ‘특별한 배려’로 취급되곤 합니다. 안전모, 안전화 등 안전 보호를 위한 장비를 체형과 사이즈를 고려해서 제작하면, 남녀를 떠나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겁니다. 이들이 원하는 건 특별한 시선과 배려가 아니라 그저 ‘동료’로 함께하고픈 것뿐입니다.   이태영이란 인물이 나오기까지, 정일형이란 남편의 외조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의 아들인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회고할 때 ‘이태영이 정일형을 위해 고생한 게 혼인 이후 9년이었다면, 해방 이후 37년은 정일형이 이태영을 위해 살아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이대학보 https://inews.ewha.ac.kr).”라고 말할 정도니 말입니다. 이들은 그저,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이 서로 필요한 시기에 맞춰 사회적 활동을 지원하고, 보필한 것입니다.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에게도 성별을 이유로 “아직 가당치 않은” 일은 없습니다. 이는 너무도 단순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서로 돌보고, 서로를 위해 연대해야 합니다. 어떤 못된 정치인들의 편 가르기에 넘어가 서로를 적대시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건설 현장의, 노동 환경의 안전과 편의는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제공되어야 할 기본 권리입니다. 우리는 함께하기에 더 좋은 노동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2025-12-23 | hrights | 조회: 41 | 추천: 3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활동가   2023년 경기도 특수교사의 장애인 학생 정서 학대 혐의의 법적 판결 논쟁은 ‘특수교사의 부적절한 학교 수업 시간 발언이 아동 학대 범죄에 해당되느냐, 아니냐’와 ‘발언이 문제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처벌한 충분한 증거 능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다. 사실 이 법적 논쟁에서 장애인 학생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증거를 수집한 '녹음'을 한 것도, '녹음기'를 넣은 것도, 그리고 교사를 신고한 주체도 장애인 학생이 아니다. 백분 양보하여 교사를 힘들게 했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그 학생이 일부러 선택하지 않은 ‘장애’로 생긴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다만 관련 법정 공판마다 나온 학대 피의자의 교육청 변호인 주장대로 “장애로 인하여 학대 발언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란 말에서 보듯, 장애인 학생이 학대에 준하는 발언을 한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   이 판결에 대해 논쟁하려면 장애 아동의 증거 수집 능력과 그 의사 결정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나 사법당국은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 결정과 의사 표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해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당신의 인지 수준이 낮으니 그 어떤 말도 들어 주지 않고 신뢰하지 않을 테야’라는 자세였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해당 판결에서 비동의 녹음조차 증거로 인정해 주지 않을 거라면, 도대체 대안은 무엇이란 말인지 의문이 든다. 동시에 사실상 특수교사가 전권을 가지고 개인적·감정적으로 폐쇄적으로 운영할 위험이 있다는 현실을 확인한 특수학급의 수업을, 어떻게 하면 서로 투명하고 인권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숙제가 생긴다. 또 학부모와의 민원과 갈등을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법적 분쟁이 아닌, 모두가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중재로 가는 길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고민이 남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의무교육 대상자인 장애인 학생의 지속 가능하고 안전한 학교 교육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정작 아무런 피의 혐의가 없는 장애인 학생은 또래가 있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의 장애가 모든 여론과 논쟁을 혐오적으로 지배하게 했다. 심지어 그 장애 때문에 교사의 부적절한 언어도 정당한 훈육이 되었고, 부모의 문제 제기 권리 역시 '괘씸한 보복 갑질'이 되어버렸다. 오로지 비동의 녹음이 문제라면, 그토록 비동의가 문제라면, 아이의 동의를 받지 않고 녹음기를 넣은 부모 역시 법적으로든 여론적이든 아이의 자기 결정권과 음성권(자기 목소리에 대한 권리) 등을 침해한 행동에 관해 이야기하고, 논쟁했어야 한다. 장애인 학생에게 폭행당했을 때 교사는 녹화나 녹음을 하거나 동료 교사의 증언을 너무나도 받기 쉽지만, 장애인 학생은 지독히도 어렵다. 위치에 위계에 따라 다른 교사의 지지나 다른 장애인 학생 혹은 비장애인 학생의 증언을 구하기가 현실적으로도 권력적으로도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애초에 비대칭적인 권력 구조 속에 있음에도 ‘비동의 녹음이 증거로 인정되면 온당한 교육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일부 교사 집단의 주장은 너무나도 권위적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학대가 의심된다면 오히려 교사가 학생에게 녹음을 요구하거나 체증하는 데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장애인에 대한 정서적 학대가 학교보다 가정에서 더 빈발하게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에 신고자인 양육자가 그 피의자 교사와 똑같이 장시간 아이를 방치하고, 아이에게 짜증 내고, 윽박지른다면 당연히 그 양육자도 신고해야 한다.   그렇게 학대 피의 교사의 2심 무죄 판결을 환영한다면서도 그동안 일부 교사들이나 교수나 언론이 자행해 온 피해 아동 신상과 그 부모의 개인정보를 그렇게 탈탈 턴 것이나 혐오한 것들, 여론 재판으로 안전하게 전학 간 학교조차 등교하지 못하게 한 현실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아니한가? 아무리 학폭위 최고처벌로 강제 전학 간 일반 학생이라도 이렇게 잔인하게 신상을 털지는 않는다. 분명히 법에는 아동 학대의 피해자나 그 신고자에 대하여 그 유무죄 이전에 신상정보를 철저하게 보호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뉴스에서 그 아동에 관한 사항으로 도배되지 않도록, 신고자에 대해 섣불리 비난하는 여론이 조성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교사 집단의 주장대로 비동의 녹음이 그렇게 두렵고 명예롭지 않고 억울할 수 있다면 녹음이나 녹화 CCTV 이외에 증거를 확보나 학대를 예방할 다른 방안을 찾는 노력을 왜 잘 보이지 않는가? 과연 그들이 말하는 대로 비동의 녹음이 없어도 동료 교사들이 학대하는 교사들을 발견하면 이를 막고 저지하면서 처벌을 요구하는 내부고발을 할 수 있는가? 애초부터 신고자의 문의를 받은 교육청이 중재할 노력은 별로 하지 않은 채로 양육자에게 학대 신고밖에 방법이 없다고 안내하였는데, 그 방관적 무책임성은 왜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가? 실무대로라면 그렇게 안내한 교육청이 이 사단을 만든 주범이지 않은가? 처음 이 사실을 접한 그 학교 교장이나 교육청이 조금이라도 양육자를 중재했더라면 그 양육자가 이 문제를 법으로만 해결하고자 했을까? 그런 법마저도 제대로 장애인 학생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실제로 학교 교육 현장에서 장애인 등 특수교육법을 어기는 관리자나 동료 교사들을 내부고발 하거나 신고하는 '특수교사'는 손에 꼽았다. 우리가 이 사건 때문에 감정적으로 외면해서 그렇지 장애인 학대를 일삼은 교사의 사례는 넘치고 넘친다. 그럴 때, 교사 집단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그 양육자가 어떤 비난과 혐오에도 그 녹음 파일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 그게 어떤 내용이든 사실상 법정에서만 다루어지는 게 모두의 기본적인 이익과 인권에 합당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비동의 녹음이 무작위로 근거 없이 장기간 반복되었다면 당연히 법적 정당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비동의 녹음의 문제는 바로 학대 정황이 없을 때도 그 녹음을 중지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학대 상황 외에도 매 순간 녹음되고 공개될 수 있는 게 교사들이 가진 두려움일 것이다. 한편, 재판부는 가해자의 장애인 학생의 장애 특성과 한계를 자신 가해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악용하는 변호 논리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논리 안에서 의도되거나 향후 발생할 장애인 학생의 피해는 전혀 파악하지 않은 채로 기계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것은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사법부의 장애인 혐오 감수성에 기반한 반응이다. UN장애인권리협약, 아동권리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의 취지를 위배한 전근대적인 판결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에서도 이 장애인 학생의 개인정보와 인권은 철저하게 열외였다. 이런 이슈몰이가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위반 사항임을 이야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진 출처     이번 사건이 가해자의 생계까지 박탈하는 것은 과도한 처벌이라는 데 동의하더라도 -그래서 피의자는 계속 근무하고 있고, 많은 후원금과 지지세력도 얻었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유사 사건에서 일부 여론과 상황이 유리했을 때 가해자는 끝까지 피해자에게는 직접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사과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는 걸 알고 있다. 학대 피의자는 전형적인 방어적인 가해자의 모습을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안기는- 보였고, 피해자 측은 그동안 전형적인 '약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학교로부터 이 정도 해준 것도 고마운 줄 모른다며 손가락질받았다. 과거에도 유사한 많은 학대와 차별 사건에도 피해자의 장애를 이유로 교사의 열악한 현실을 근거로 가해자를 선처하고, 그들의 생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용서해 왔다. 그러나 종국에 은평대영학교 사례에서 보듯이 그런 온정적인 처벌과 용서가 어떻게 더 심한 학대와 차별로 재발하여 상습 범죄화되어 왔는지도 재판부는 살펴보아야 했다, 해당 피의자 교사는 법적으로 받아야 할 공무원으로서 받아야 할 장애인권교육마저 셀프 교육으로 끝내고, 온당히 학부모들에게 안내해야 할 행정 구제 정책이나 인권교육도 하지 않았다. 피의자도 스스로 배워야 할 인권 감수성과 학대 예방 기회를 놓쳤다. 그 책임이 교사 당사자에게 있는지, 관리·감독해야 하는 관리자에게 있는지, 예산을 지원해야 할 교육청에 있는지도 반드시 규명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정작 그 당사자 학생은 온전한 교육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인격권도 여론에 의해 박탈당했다. 기존에 상호 비동의 녹음을 증거로 인정하여 판결했던 많은 인권침해 사건이 다시 재심을 요구하거나 무죄를 주장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이번 판결이 법적 안정성과 지속성이 주는 신뢰의 근간을 훼손한 것이다. 이렇게 가해자에게 유리한 판결들이 어떠한 결과를 낳고 있는지는 신안 염전 장애인 노동자 착취사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국제 사회는 이를 장애인 학대 사건으로 인정하여 수출까지 금지했으나 우리 사법부의 약한 처벌로 말미암아 국내에서 벌어지는 학대는 지금도 계속 자행되고 있음을 보고 있지 않은가? 재판부는 오히려 아동 학대와 장애인 복지를 위한 기소 근거 법률의 근본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유사 사건에 대해서는 제삼자 또는 책임을 져야 할 책임 주체들조차 –교육청이나 교육감들- 조용히 재판부의 판결을 기다려 보자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장애인 학생을 학교로 돌아오게 해야 할 교육 총책임자가 “장애인 학생은 집에 데리고 교육하라”라는 장애인 혐오 차별 발언을 서슴없이 언론에 대고 하고 있다. 이 역시 관련 사건에 대한 2심 재판부의 기계적 판결이 주는 혐오 효과일 것이다. 이번 경기도 교육감 인터뷰가 장애인 학생에 대한 분명한 혐오이자 차별인 것을 우리는 모두 알지만, 자신의 노동권의 주체인 학생을 집안에 가두라고 주장하는 최고 관리자에 대하여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양육자를 공격하고자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이 선택적 침묵과 방관이 문제의 악화시키는 걸 알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최고 책임자인 경기도 교육감이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를 등교하여 양육자를 안심시키고 교사에게 충분한 지원 인력을 약속하면서 잘 중재했다면, 이 일이 여기까지 왔을 일일까? 흥분한 두 사람이 서로 불덩이를 던지며 다투고 있는데, 누구 하나 불을 끄려고 하는 이는 없고, 가운데 기름통을 놓아주고는 싸움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미 이 판결은 피의자의 유무죄 여부가 아니라 녹음기가 가지는 무고죄의 책임을 장애인 학생에게 물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특수교사가 힘든 것과 교사들이 녹음기의 공포의 시달리다는 것과 저 교사가 학대적 발언을 일삼았다는 건 별개의 문제인데도 그 장애인 학생의 교육권을 이야기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저 정도의 발언도 특수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이라고, 훈육이라고 합리화한다면, 그나마 어렵게 쌓아 두었던 특수교사의 법적, 사회적 지위는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아동 학대 신고의 남발이 문제라면 악의적인 학대 신고나 교사의 불이익에 대하여 대응할 제도를 만들면 된다. 현실적으로 이번 판결이 가해자 측의 승리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 판결이 교사들의 전문적·인권적 권위를 높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학교가 학생의 장애만을 문제 삼고, 그것을 여전히 피곤한 일로 여기며, 사랑과 배려라는 말 따위로, 온정주의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사람들은 비동의 녹음 말고 또 다른 증거를 찾을 방법을 갈구할 것이다. 장애인 학생의 권리를 누구보다도 옹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 학폭위가 열려도 같은 학교 관계자이지만 특수교사를 배석하게 하고 법에서도 특수교사를 진술 조력인으로 인정해 왔으나, 이제 그 누구도 특수교사들이 인권이나 학대 문제에 다른 누구보다도 민감하다는 이야기를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의 피의자 특수교사 개인은 법적 이익을 얻었으나 특수교사 전체는 도리어 법적 권위를 상실할지도 모른다. 진실로 비동의 녹음이 문제라면, 첫째로 장애인 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동의를 얻을 것인가에 대해 법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이어 ‘녹음’ 자체가 문제라면 장애인의 학대 문제에서 어떻게 하면 학대를 예방하도록 교실에서 증거 수집하고 예방할 것인가에 대해 사법부와 우리 사회가 먼저 답해야 할 것이다.   누가 뭐라든 장애인 학생은 언제든 안전한 학교로 즐겁게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어떤 특수교사도 그 어떤 학교도 그 어떤 교육청도 그 장애인 학생을 환영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어느 유명인의 자녀이기 때문에’라고 한다면, 그만큼 유치한 연좌제가 없다. 그만큼 졸렬한 차별이 없다.     *본 원고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2025년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 토론문을 수정 추가 정리한 것입니다.    
2025-12-16 | hrights | 조회: 52 | 추천: 2
이라영/ 문화평론가   지난 6월 30일 삼척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았다. 작년에는 태백 장성 광업소가, 재작년에는 화순 광업소가 문을 닫았다. 석탄공사의 탄광이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75년을 이어온 석탄공사도 영업을 종료했다. 1950년 설립된 석탄공사는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공기업이었다. 이제 민영 탄광 두 곳이 남았다. 민영 탄광도 2030년까지 문을 닫을 계획이다. 탈석탄 정책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석탄광은 문을 닫는 순서로 간다. 광산이 문을 닫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그에 대한 대책 마련이 미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도계는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의 배경마을이다. 영화에서 도계중학교 관악부 학생들이 퇴근하는 광부들을 위해 갱구 앞에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있다. 도계 광업소 광산 노동자들은 퇴사 직전 이제 더는 석탄을 캐지 않을 그 갱구 앞에서 6월 30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제 이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어디로 갈까. 폐광 직전 도계에 방문했을 때 전통시장은 한산함을 넘어 폐허에 가까웠다. 쉬는 날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문 앞에 붙어있는 ‘임대’를 보고 대부분 폐업한 가게임을 알 수 있었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시장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시장을 구경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60여 개의 점포 가운데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10여 년 전부터 이미 차츰차츰 손님이 줄었다고 한다. 도계광업소 직원들이 살던 도계새마을 아파트에는460가구 규모로 한때 많은 주민이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80세대만 남았다. 높은 산에 둘러싸인 도계에 한때는 5만 명 정도가 모여 살았다. 지금은 8000여명 정도에 머문다.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은 후 석 달 동안에만 300명 아까운 주민들이 도계를 떠났다. 지역 주민이 떠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떠나는 속도는 가속화될 것이다. 탄광이 문을 닫으면 노동자와 가족들 외에도 주변 상권이 붕괴되면서 큰 타격을 받는다. 폐광이 예정되어 있었음에도 폐광 직전까지 대책 마련이 되지 않아 도계광업소 노동자들이 세종시까지 가서 투쟁을 해야 했다. 삼척시를 비롯해 도계광업소 노동자들은 폐광 후 대체산업으로 중입자 암치료센터를 유치하길 원했다. 삭발과 단식 등의 투쟁을 이어갔지만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이 잘 알려지지도 않거니와 1년 전 내란 사태로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사소화되었다.   사진 출처   8월 20일 중입자 암치료센터에 대한 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했다. 직원들이 떠난 도계새마을 아파트 부지에 2030년까지 중입자 암치료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문제는 의료산업 클러스터 조성이 된다고 해도 최소 5년 정도는 걸린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 폐광지의 소멸은 가속화될 것이다. 대체산업 조성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도계지역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석탄과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은 없다. 도계나 삼척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광산 문화를 성급히 매몰시켜서도 곤란하다. 과거의 기억을 남기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들의 미래를 위한 일자리 고민까지 함께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탄광촌 바깥에 있는 시민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탈석탄 시대에 노동자들의 일자리 전환과 지역 상권 붕괴는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광산은 닫혀도 사람은 살아간다.    
2025-12-09 | hrights | 조회: 51 | 추천: 5
정한별/ 사회복지사   장애인학대 현황 보건복지부와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장애인학대 전담기관)은 2018년부터 매년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2018년 전국의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에 접수된 신고건수는 3,658건이었다. 2024년 신고접수는 6,031건으로 전년 대비 9.7% 증가하였고, 이 중 학대 의심사례는 3,033건(50.3%)로 전년 대비 2.2% 증가하였다. 학대피해 장애인의 장애유형은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이 71.1%로 피해자의 대다수가 발달장애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이 주로 당하는 학대의 유형은 신체적 학대 33.6%, 정서적 학대 26.5%, 경제적 착취 18.6%, 성적 학대 13.0% 순으로 나타났다. 학대 행위자와 피해 장애인의 관계로는 가족 및 친인척 38.0%(부 10.4%, 모 7.9%, 배우자 7.8%), 타인 37.4%(지인 22.6%), 신고의무자인 기관종사자 20.6%(사회복지시설 종사자 15.7%) 순으로 나타났다. 학대 발생 장소는 피해 장애인 거주지 45.0%, 장애인 거주시설 12.7%, 학대행위자 거주지 7.4% 순으로 나타났다.1)   장애인학대의 특이점 장애인학대는 몇 가지 특이점이 있다. 가장 먼저 피해자의 대다수가 현재 15가지 장애유형 중(2026년 5월부터 췌장장애가 포함되어 장애유형이 16개로 늘어날 예정) 발달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피해을 외부로 드러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특히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러한 장애 특성이 장애인학대의 다양한 현실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려온다.   두 번째, 학대 피해유형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신체적 학대라는 것이다. 아동학대의 경우 정서적 학대 피해가 가장 많이 신고되고 있으며, 노인학대의 경우에도 신체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의 비율이 비슷하다. 장애인학대가 특이하게 신체적 학대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장애인학대의 경우는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신체 피해가 있는 정도가 되어야 신고가 이뤄지는 것으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즉, 학대에 대한 민감성이 다른 유형의 학대에 비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경제적 착취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경제적 착취 중 노동력 착취의 비율이 가장 높다. 염전노예, 사찰노예, 고물상노예, 식당노예 등 노동의 다양한 현장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모습. 장애인의 노동은 비장애인의 노동보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은 노동현장뿐만 아니라 학대 피해를 심판하는 법원도 가진 차별적 인식이다. 보험사기, 휴대전화 사기 등 다양한 사기 피해자로 발달장애인이 등장하는 뉴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네 번째, 학대 행위자가 다양하게 있다는 점이다. 아동학대는 학대행위자의 80% 이상이 부모이고, 노인학대도 학대행위자의 80%에 근접한 비율이 가족인 것에 비춰 보았을 때, 장애인학대는 가족, 타인, 신고의무자인 기관의 종사자 등 피해자와 다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학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매우 특이한 지점이다. 이에 따라 피해 발생지도 다양하다. 아동학대나 노인학대는 피해 발생지의 대다수가 가정이다. 대개 언론에서 자극적으로 다뤄지는 장애인학대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거주시설 직원에 의해 발생한 학대이다 보니,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장애인 거주시설 안에서 발생한 학대가 가장 심각하다고 여겨질 수 있겠으나, 사실 학대 자체는 재가(장애인 거주시설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설의 직원들도 왕왕 있다. 그러나 장애인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법적, 직업적 의무가 있는 서비스제공자가 서비스 제공 대상에게 가하는 학대라는 점에서 재가에서 발생하는 학대보다 비난 가능성이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우리 법체계도 신고의무자인 기관 종사자(거주시설 종사자 등을 포함)에 의한 학대를 가중처벌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갈무리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실태와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강화 방안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월 28일, 2024년 울산 태연재활원 학대 사건을 계기로 올해 실시한 ‘50인 이상 대규모 거주시설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동안 인권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던 보건복지부가 인권실태 조사의 결과를 발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인권실태 조사 결과, 시설 대다수가 3인실 이상의 다인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대부분 자율적으로 CCTV를 설치‧운영하고 있었다. 입소장애인은 대다수가 지적장애인이며, 시설에 입소한 기간은 평균 20년 이상이고, 대부분 상시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학대 예방을 위해 시설 대다수에서 인권교육을 이수하고 있었으며, 인권지킴이단도 법에서 정한 인원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또한 일부 인권침해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인권실태 조사 결과, 장애인 거주시설 학대 예방 및 인권강화 방안으로 외부전문가 활용 인권교육 독려, 인권지킴이단의 내실화를 위한 외부단원 직종 다양화 및 외부단원 비중 확대, 공용공간 CCTV 설치 및 운영 의무화, 대규모 거주시설의 30인 이하 소규모 시설 전환을 위한 지역사회 공동주택 활용, 다인실 생활공간을 1~2인실로 단계적 전환, 입소장애인 맞춤형 개별서비스 지원, 공공후견 강화 등 지역사회 연계 강화, 의료집중형 장애인 거주시설 단계적 확대, 종사자 근무 여건 개선,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 인력의 확충 및 지역기관 추가 설치, 피해 장애인 쉼터 종사자 처우개선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였다.2)   보건복지부의 인권강화 방안은 인권침해를 줄일 수 있을까 거주시설의 직원들은 의무적으로 인권교육을 들어야 한다. 보통 8시간을 듣도록 정해 두고, 이 중 4시간 이상은 외부 인력에 의한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실제 외부 인력에게 인권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재정지원이 열악하고 인력 부족이 심각한 소규모 개인시설을 제외하고는 인권교육 수료기준은 이미 준수하고 있다. 인권지킴이단의 경우, 인권감수성이 풍부한 외부단원을 구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인권지킴이단이 형식적인 조직이 아닌 실질적 기능을 하게 하려면, 예산 투입은 필연적이다. 비용까지 희생하면서 정기적인 인권지킴이단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외부 전문가들이 얼마나 있을까. 공용공간 CCTV 역시 이미 많이 설치되어 있으나, 계속해서 학대하는 직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또 CCTV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 학대하는 직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역의 공동주택을 매입하고, 1~2인실을 확보하고, 맞춤형 개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인 거주시설 근로자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장애인학대 전담기관인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을 추가로 설치하고, 학대 피해 장애인 쉼터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는 일이 이뤄지면 좋겠다. 이 방안들은 거주시설 이용장애인의 인권상황을 증진하고 학대 등 인권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형 거주시설의 소규모화 정책(30인 미만 시설로의 소규모화)을 추진하면서 시설의 규모가 작아진 만큼 지원을 줄였던 정부, 2017년 17개로 시작한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을 2025년 현재 고작 2개밖에 더 늘리지 못한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게 과도한 비판인지 묻고 싶다.   지난 9월 16일 ‘장애인의 주거 선택권을 보장하고 지역사회로의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라고 한 보건복지부의 입장과 ‘장애인 거주시설을 믿고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개선 추진’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보건복지부의 입장이 서로 맥을 같이 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시설의 환경이 개선되면 인권침해는 정말 사라질까.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강화 방안은 시설이 아닌 곳에서 살 수 있는 주거 선택권을 보장하는 조치의 선제적 고려 위에서 시설 환경개선이 함께 논의될 때 빛날 것이다.     1) 2024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 보건복지부, 중앙장애인 권익옹호 기관, 2025. 2) “장애인 거주시설을 믿고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개선 추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2025.11.28.)  
2025-12-02 | hrights | 조회: 90 | 추천: 3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파키스탄을 떠나기 전날 저녁, 다시 만난 아리안나(가명)와 남동생, 어머니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묻어났다. 아디는 지난 8월과 9월, 파키스탄에서 난민 생활을 하는 13가족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그중 아리안나 가족은 유일하게 두 번 인터뷰할 수 있었던 가족이었다.  첫 만남에서 아리안나는 자신을 아프가니스탄 여성 활동가라고 소개하며 당차게 말을 이어갔다. 2021년 8월 탈레반이 재집권한 이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학교와 대학을 폐쇄했고, 여성의 고등교육을 금지했다. 당시 의대생이었던 그녀는 탈레반에 저항하며 여성 교육권을 위한 시위를 조직하고 참여했다. 탈레반은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을 향해 ‘정숙하지 못한 나쁜 여성’이라고 조롱하고, 살해 협박과 함께 몽둥이로 구타하며 잔혹하게 탄압했다.   사진 1. 2021년 9월 7일 카불의 시위 사진 (출처: 알 자지라 보도, Hoshang Hashimi/AFP)    탈레반의 시위 탄압을 묻자, 아리안나는 2021년 9월 7일의 시위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시위는 수도 카불 시내 킬라 파툴라(Qala-e-Fatullah)에서 출발해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여성에게 자유와 일자리, 교육권을 허하라”는 요구가 담긴 시위였고,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합류해 인파가 빠르게 늘어났다. 그러자 탈레반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며 폭력적으로 해산을 시도했다. 총성이 울리자 아리안나를 비롯한 여성 시위대는 인근 병원 지하로 몸을 숨겼고, 탈레반은 그곳을 봉쇄하고, 한 시간가량 그들을 가두고 협박했다. 이후 가족들의 간절한 요청 끝에 봉쇄가 풀려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지인들과 함께 온라인으로 시위를 조직하며 2022년 3월까지 저항을 이어갔다. 탈레반은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을 체포해 감금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는 실종됐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리안나는 해외 언론에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인권 탄압을 꾸준히 알렸다. 결국 탈레반은 그녀의 집을 급습했고 이미 피신한 그녀 대신 남동생(당시 14세)을 체포해 가족을 위협했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더는 아프가니스탄에 머물 수 없게 된 그녀는 단신으로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피신했고, 이후 어머니와 남동생도 어렵게 합류했다.  파키스탄으로 피신한 뒤에도 아리안나는 탈레반의 여성 인권 탄압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2023년 이후 파키스탄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불법 이민자’로 규정하고 강제추방 정책을 펼치면서 그녀의 활동은 크게 위축됐다. 아디가 난민들을 만났던 시기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자진 출국’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고, 아리안나는 언제든 체포·추방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지내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게 되면 탈레반에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며, 단속을 피해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며 활동을 계속할 이유를 설명했다.  “탈레반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교육과 외출, 직업을 제한합니다. 하지만 이슬람은 여성이 학교에 가고 교육받는 것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성이 없는 사회, 여성이 침묵하는 사회를 만들려 합니다. 제가 여기서 추방되면 감옥에 가거나 살해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이 저의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문제에 대해 제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가 살아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는 이전에도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일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할 것입니다.”   사진 2. 아리안나 가족과의 두 번째 만남, 아리안나 집으로 초대받아 함께 한 저녁 모임 (출처: 사단법인 아디)    두 번째 저녁 모임에서 그녀의 개인적인 꿈을 물었다. 아리안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도 의사였고, 저 역시 의대생이었기에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아프가니스탄이 자유로워지고, 제가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하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2021년 8월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은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해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다. 당시 언론은 카불공항에서 탈레반을 피해 떠나는 시민들의 절박한 모습을 집중 조명했고, 한국 언론 역시 한국에 피신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의 사연을 널리 보도했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 4년이 지난 지금, 아리안나처럼 여전히 저항하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점점 보도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녀를 포함해 아디가 만난 적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은, 세상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뿐,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며, 자신들의 언어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침묵을 강요받는 현실 속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이 곧 살아있음’임을 증명하듯, 그들은 오늘도 멈추지 않고 있다.    
2025-11-24 | hrights | 조회: 81 | 추천: 9
김성은/ 서울신문 기자   제임스 배리의 <피터팬>은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1911년 출간돼 10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 작품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함의는 여전히 크다. 배리는 주인공 피터에게 잔혹하고 이기적인 성격을 의도적으로 심었다. 날카롭고, 불편하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 조직과 사회의 윤리적 단면을 충실히 비추는 거울이 된다. 피터는 네버랜드에서 함께 사는 아이들이 자라면 주저 없이 솎아 낸다. 어른들을 향한 분노는 더욱 섬뜩하다. 혼자 있을 때 그는 의도적으로 1초에 다섯 번씩 숨을 내뱉는다. 네버랜드의 전설에 따르면 아이가 숨을 한 번 내뱉을 때마다 어른 한 명이 죽기 때문이다. 피터는 이를 즐긴다. 천진난만한 미소 뒤에 숨은 잔혹성과 순수해 보이는 눈빛 속 깊이 자리한 이기심. 피터팬은 묻는다. '순함'과 '선함'은 같은 것인가? 피터는 폭군이다. 자기애로 가득 찬 냉혹한 지배자다. 그런데도 네버랜드의 질서가 유지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피터가 아닌 주변 인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네버랜드의 아이들은 피터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생존과 안정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문 그들은 폭력 앞에서 입을 닫는다. 웬디 달링도 다르지 않다. 피터의 이기심을 견디며 어머니 역할에 몰두할 뿐, 폭력에 맞서지 않는다. 이것이 '순함'이다. 순종적이고 소극적이다. 조용하고 안정적이기에 겉으로는 평화롭다. 그러나 이는 기만적인 평화다. 순함은 잔혹한 리더가 득세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한다. 이는 조직 이론에서 말하는 파괴적인 리더십의 작동 방식과 일치한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고 팀원의 의견을 무시하며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파괴적인 리더는 비인격적 감독과 역량 과신, 왜곡된 인간관 등의 특징을 보인다. 결국 조직에 상처를 남기고 자신도 무너진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그를 허용하는 순응적이고 맹목적인 사람들이다. 조직과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에 대한 침묵과 방조야말로 파괴적인 리더십을 낳는 최악의 행위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의 발언이 이 현실을 관통한다. “불의의 상황에서 중립적인 사람이라면 당신은 압제자의 편을 선택한 것과 같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한국어판 표지   주장의 정당성과 무관하게 순응하는 태도는 민주주의의 적이기도 하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경고한다. 민주주의는 합법적 제도 안에서도 권력을 남용하는 리더에 의해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무너진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침묵과 순응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순한 이들이야말로 조직과 사회의 '숨은 적'인 셈이다. 이들은 성장하지 않는 네버랜드의 아이들과 같다. 순진한 낙관주의에 빠진 구성원, 무저항을 미덕으로 여기는 공동체는 결국 집단적 참사를 부른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흔히 '순함'을 '선함'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순응하는 태도를 마치 덕목처럼 여긴다.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가 조직 전체를 지배하면 갈등을 피하고 현상 유지를 택한다. 그러나 선함은 다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불의에 맞선다. 파괴적인 리더를 견제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일터에서, 사회에서 큰소리를 치는 소수에게 맹목적으로 순응하지 않아야 한다. 폭군 없는 세상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적어도 불의 앞에서 침묵하고는 "순함의 미덕 때문"이라는 자기기만으로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비판과 이의 제기를 하는 '불편한' 이들을 향해 불온하다고 치부해서도 안 된다. 피터팬의 네버랜드가 경고하지 않았나.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들의 세상은 결국 폭군들의 놀이터가 될 뿐이다.  
2025-11-18 | hrights | 조회: 197 | 추천: 8
신종환/ 공무원   며칠 전 이전에 근무하던 부서가 소란스러웠다. 우리 지자체는 업무효율 상승을 위해서 부서별로 GPT-Team 요금제를 적용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나는 로그인을 반복할 때마다 특정 담당자의 휴대전화 번호나 메일을 경유해야 하는 알림이 비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 번거로워서 내 번호로 인증받도록 수정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여가 지나고, 나는 타 부서로 이동한 후에도 여전히 해당 부서의 GPT를 사용하는데, 요 며칠 사이 해당 부서원들의 모든 로그인 시도가 나의 휴대전화를 경유하게 되어 대단히 불편해진 것이다.  해당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의 제보로 나는 부서원들의 분노와 원성이 들끓어 그 원흉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의도치 않게 범인이 된 나는 적발되기 전에 타지 출장 중 휴대전화로 부랴부랴 아이디 연동을 해제하다 그만 휴대전화를 초기화해 버렸다. 순식간에 세상에서 나를 증명하는 여러 데이터가 휘발되어 황망한 와중에도 그 친구에게 사건의 추이를 묻자, 아무도 분노와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걸로 미루어 볼 때 상황은 일단락된 것 같다. 새삼 몇 년 사이에 GPT 없이는 일하기 힘들어졌다는 걸 의도치 않게 느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경찰은 불송치 결정문에서 AI가 발언한 허위 판례를 그대로 인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부서에서 AI를 가장 많이 쓰는 나는 저런 중요한 업무에 AI가 보고한 내용을 검토 없이 사용했다는 사실에 기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여과조차 생략할 정도로 일이 싫었나 싶기도 했다. 게다가 그런 의식적인 영역까지 양도한다면, 대체 노동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우리의 의의는 각자에게 어떻게 자리 잡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에 자아를 전적으로 의탁하는 일도 지향할 바는 아니지만, 노동 전체가 소거해야 할 고통이 된다면 그에 비치는 우리는 무엇이 되나.  한편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시험 응시 과정에서 GPT를 사용한 사실이 적발되어 여러 명이 처벌받은 사례가 등장했다. 뉴스에는 유명 대학만 언급되었지만, 더 많은 사례가 있을 것이고 적발되지 않은 경우까지 생각하면 더욱 광범위하고 일상적일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커닝이 예전에 없던 것은 아니나, 요는 커닝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능하다면 망설임 없이 커닝을 선택하는 상황에 학문은 어떤 의의가 있고, 스스로는 학도로서 어떤 의의를 지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의의가 없다면, 좀 더 나아가 의미가 필요 없다면, 학문과 노동은 고통이고 커닝과 위임은 해방이다.       우리와는 직접적인 접점은 없으나, 여러 직종이 AI의 영향으로 사라진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끼리 공직도 없어지지 않을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를 나눌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확신에 차서 우리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왜냐는 동료들의 질문에 “AI는 욕을 대신 먹어줄 수가 없기 때문이죠.”라고 하면서. 반쯤은 농담이지만 우리보다 상급의 위치에서 공직의 의미 중 하나가 책임을 지는 것이고, 그 책임이 파편화된 업무에 적용되면 욕을 먹고 비난받는 것도 있다는 걸 체감하곤 한다. 뉴스에는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나오지만, 일상에서 대부분은 자잘한 실수와 가역적인 잘못이고, 그에 대한 책임은 깎아내리는 인격을 감내하는 것이다. 반쯤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이 자리의 이유가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의 가치는 대상화할 수 있는 존재 그 자체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된다.  존재를 형성하거나 영위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오히려 그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어느 정도의 입체성을 지니느냐를 포괄적으로 칭하는 말이 ‘어른’이나 ‘지혜’ 등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고통과 고충을 피할 방법이 적었기에 어쩔 수 없이 맞서면서 어떤 이들은 죽거나 망가지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언어적으로나 비언어적으로 지혜를 체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고통을 피할 방도가 늘어난 요즘에는, 사람들은 고통의 소거를 희망하고 그에 따라 부수적으로 존재와 의미도 희미해진다.   과거 여러 창작물에서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본질이 가짜라는 데에 좌절하는 인물들을 보여주지만, 이제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고통과 소거와 충족감으로 단순화되는 모습이 더 자주 더 많이 보인다.  모두에게 그런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쿠팡 새벽 배송 노동자가 자꾸 발생하는 아픈 예시들을 통해, 고통을 대신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난다는 건 어떤 이들의 고통의 가치가 줄어들어서 살기 위해서는 더 큰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간단한 결과, 그리고 당연히 그런 이들이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는 결론 대신 새벽 배송의 편리성을 당당히 응원하는 괴물들이 되기 전보다 쉽다.  하지만 (근거는 없지만) 영원한 운동은 없듯이 지금과 같은 가치관이 만연하면 어느 순간 사람들이 존재의 허기를 느끼는 순간이 올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렇기에 그날이 올 거라는 근거 없는 생각 자체에 힘을 불어넣고, 읽고 쓰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발굴하고 끊임없이 보여주는, 늘 하던 일에 새롭게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하는 일이 머지않은 미래에 도래할 AGI 시대를 준비하는 태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2025-11-12 | hrights | 조회: 92 | 추천: 4
김태형/ 프리랜서 방송작가   마왕 신해철의 질문, 이재명 대통령의 답변 이재명 대통령이 고(故) 신해철의 11주기를 맞아 SNS에 추모 글을 남겼다. 이재명 대통령은 ‘시대의 음악인이자 양심이었던 신해철은 청년들에게는 생각하는 힘을, 기성세대에게는 성찰할 용기를 일깨운 상징적 존재였다’고 적었다. 단순한 애도가 아니었다.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신해철의 질문을 다시 꺼내 든 성찰의 언어였다.   신해철은 사회와 정면으로 맞선 예술가였다. 그의 노래는 단순한 감성이 아닌, 시대의 부조리를 향한 선언이었다. 그는 <민물 장어의 꿈>에서 무너지는 세계 속 인간의 고독을 노래했고, <그대에게>에서는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도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청춘을 노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는 불완전한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며 우리에게 두려움 대신 용기를 택하자고 말했다’라고 적었다. 신해철의 음악은 단지 청춘의 노래가 아니라, 시대의 양심으로 해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추모 글에서 ‘그가 꿈꾸던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동체는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라고 말했다. 정치의 언어로 들리지만, 동시에 신해철의 예술이 지향하는 방향과도 같다. 신해철이 남긴 질문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는 결국 ‘정치는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가’로 이어진다. 이 대통령은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말을 인용해 “정치가 아닌 예술이 치유의 힘”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와 예술, 권력과 감성의 경계를 넘어선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 이재명 대통령 SNS 갈무리   ‘마왕’ 신해철과 이재명 대통령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을 잇는 상징은 곳곳에 존재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 신해철의 작업실이 있던 수내동에 ‘신해철 거리’를 조성했고, 대통령 임명식에서는 신해철의 노래 ‘그대에게’가 울려 퍼졌다. 2022년 대선 포스터 촬영 당시, 그는 신해철의 무대의상을 입고 촬영했다. 당시 사진작가 강영호는 “정치인에게 전혀 쓸데없어 보이는 예술적 제안을 기꺼이 수락한 그는 이미 있는 길뿐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보였다”라고 회상했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신해철을 떠올린 이유는 단순한 존경이 아닐 것이다. 예술로 세상을 바꾸려 한 음악가와, 정치로 세상을 바꾸려는 정치인의 마음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왕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할까?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추모를 통해서 그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 ‘그의 삶이 우리 앞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리라 믿는다.’    
2025-10-27 | hrights | 조회: 146 | 추천: 6
이원영/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안정과 불안정 사이의 고됨 요즘 세대는 한 직장에서 평생을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선택에 의해서든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이든. 직업의 안정성이 무너진 시대다. 좋은 점도 있겠지만, 안 좋은 게 더 많아 보인다. 불안정한 직업으로 안정적인 삶이 흔들리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봐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내가 선택한 면도 크다. 그런데도 힘들었다. 성인이 된 후 서울살이를 하면서 20번 이상을 이사 다녔다. 전세와 월세를 전전하면서 이사를 할 때마다 그 불안감과 고됨을 감수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 것처럼, 직업도 마찬가지였다. 교육단체에서 시작해 지역시민단체, 그리고 현재는 노동조합 활동가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지나고 보니 후회가 많이 된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계속 일하고 싶은데 잘렸을 때의 서글픔 용산시민연대 활동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다. 망했다. 그러다가 숙박업 청소일과 식당 주방장, 매니저로도 일했다.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이 안정적으로 나오니 마음이 편안했다. 1년 반 이상을 다니다가 올해 초여름 불황으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서글프고 마음이 아팠다. 식당에서 같이 재밌게 일하던 젊은 외국인노동자들도 새로운 직장을 찾아갔다. 그런데 문제는 내 탓을 하게 되더라는 점이었다. 내가 무능해서 그런가, 회의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해고자들이 겪는 아픔은 제각각이겠지만 자신에 대한 책망이 제일 무서운 게 아닌가 그런 깨달음도 얻었다. 그래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는데, 그것도 한 번 받고 나니 도저히 안 되겠기에 직장을 알아봤고, 이 노동조합에 상근자로 취업했다. 운이 좋았다. 내 경험이 어딘가에서 쓸모가 있다는 점이 뿌듯했다.   사진 출처    노동조합에서 일하면서 만난 해고 청소노동자 나는 해고의 고통을 잘 안다. 어쩌면 잘 모를 수도 있다. 저마다 경우도 다르다. 하지만 예상은 가능하다. 노동조합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해고노동자 복직 촉구 집회에 참여했다. 도봉구에서 정규직 청소노동자로 채용되어 일하던 두 사람이 올해 초에 해고되었다. 겨울, 봄, 여름, 가을, 네 개의 계절이 흘러가도록 복직 투쟁을 했지만, 해고자 신분은 여전하다. 예산을 내리는 도봉구청과 해고의 당사자인 경일환경이라는 청소업체 대표는 해고자와의 만남도 복직을 위한 노력도 외면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두루뭉술한 이유로 너무 손쉽게 해고하는 문화가 횡행한다. 죄 없는 노동자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부당해고를 법적으로 다투다 중앙노동위원회 주심은 ‘결원이 발생할 시 우선 채용’이라는 권고안을 해고노동자와 업체 대표에게 던졌다. 당장 복직도 아니고 빈자리가 생기면 복직하는 것인데도 사용자는 단칼에 거절했다. 이런 양심도 없는 몰상식한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도봉구청에 더욱 화가 나는 이유는 이런 문제를 계속 나 몰라라 한다는 점이다. 억울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은 복직될 때까지 계속 싸우겠다고 한다. 해고를 왜 살인이라고 하는가? 해고는 살인이다. 이런 구호가 자주 등장한다. 과한 표현일까? 밥줄을 끊는 행위여서 당연한가? 실제로 그 사회에 해고로 인한 직간접적인 자살, 죽음의 통계와 법칙이 존재한다. 물론 좋은 사회는 법적인 해고 요건도 까다롭고 불가피하게 해고되어도 새로운 직업과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해고는 경제적 파탄뿐 아니라 심한 자책, 우울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전 쌍용자동차 노동자 대량 정리해고 이후 30명이 넘는 노동자와 가족이 연쇄 자살로 이어진 아픔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80년대 후반에 철도를 민영화하면서 대량 해고가 발생했고, 200여 명이 자살한 믿기 어려운 끔찍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해고는 사회적 타살이라 부를만하다. 지난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두고 도봉구청 청소노동자 복직 집회가 구청 앞에서 열렸다. 당연히 참여자가 적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노동자가 참여했다. 연대의 마음이 고마웠다. 여기저기 사업장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질긴 투쟁을 하고 있다. 한 건 한 건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쉽게 해고되는 이런 사회적, 구조적 문제를 반드시 함께 풀어야 한다.    
2025-10-21 | hrights | 조회: 133 | 추천: 9
윤요왕/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2003년 1월. 귀농에 대한 고민과 실행까지 어찌 보면 후다닥, 어찌 보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춘천의 작은 시골 마을로 들어오게 되었다. 도시의 일상에서 농촌으로의 이주는 직업, 직장을 바꾸는 것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낯설고 어색하고 또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마음 설레는 ‘삶의 전환’이었다. 많은 분의 우려와 안타까움 그리고 응원의 인사를 뒤로하고 결단이었던 듯하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살아온 지난 농촌에서 20여 년이 흘렀다. 귀농 초기 마을과 사람, 농사를 만나고 배우고 익히느라 정신없이 흘러갔다. 하루하루 낯선 이방인은 조금씩 농촌 마을 사람으로 또 농부로 ‘꼴’을 갖춰가게 되었고 자연과 생명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천성이었을까 본성이었을까. 조금 삶의 여유가 생길 즈음 농촌사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권의 사각지대가 농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물 스물 올라올 때쯤, 마을의 8살 아이가 마을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였지만 그 안타까운 죽음은 나를 농사만 짓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의 서명을 받고, 항의도 해보고, 읍소도 해보았만 다 소용이 없었다. 나 자신도, 농촌 마을도 힘이 없었다. 방과 후 아이의 돌봄이 부재했던 현실, 학원 차도 들어오지 않는 농촌, 인도도 제대로 없었던 마을 길 등, 어쩌면 이 사고는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게 ‘사회적 타살’이라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었다.   그렇게 열게 된 마을 공부방이 지금의 ‘별빛 사회적협동조합’의 시작이었는데, 올해로 20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부모들이 십시일반 뜻을 모아 시작한 작은 농촌 마을의 공부방이 도시아이들의 시골살이 ‘농촌 유학’, 어르신들 돌봄과 청년들을 위한 쉼터로 확대되면서 지역아동센터, 마을기업,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으로 한 발 한 발 느리지만 지치지 않고 확장되어 왔다. 지난 20여 년 세상도 변하고 농촌 마을도 변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불편한 현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정치와 행정이 사회를 지배하는 현실에서 소멸해가는 농촌 마을은 찬밥이다. 시내버스는 아직도 6번밖에 들어오지 않고, 응급상황에서도 최소한의 병원 치료를 받기도 어렵다. 도시에서는 당연히 누리고 사는 문화적 혜택과 생활편의시설은 전무하다. 어쩌면 국가와 사회는 훨씬 오래전부터 농촌 마을을 포기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계엄과 내란, 탄핵 그리고 대선.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지만, 농촌 마을의 희망과 기대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암울하기까지 하다. 단순 면적으로만 보면 약 16.5%(2024년 「도시계획현황 통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도시에 약 92.1%의 인구가 살고 있다고 하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그동안 한국 사회의 불균형적이고 모순된 국가정책의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농촌 살기 어려워요, 해결해 주세요’라는 볼멘소리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런 기이한 사회적 구조가 우리네 삶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 농촌(자연)은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혹시 이런 현실의 뒤에 자본 권력의 음흉한 계획이 있는 건 않은지, 정치 권력의 유지와 달콤함에 취해 있지는 않은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우리는 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사진 출처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온 ‘별빛 20년’의 오늘 우리 마을에는 더불어 함께 행복한 풍경이 있다. 벌써 없어져야 했을 마을의 초등학교에 도시에서 유학을 오고, 시내에서 기꺼이 등하교하는 아이들과 교육귀촌한 아이들로 북적대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또, 마을 주민들이 돌봄하는 이웃 복지사의 안부를 묻는 시스템을 갖췄고, 매주 운영되는 무료 미용실과 무료 반찬 나눔, 교통약자 이동서비스가 그나마 나이 들어 살기도 좋은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도시 삶에 지친 청년들을 위한 쉼터 ‘춘천휘게소 고탄’도 마을 호텔로 만들어 편안한 환대를 준비했다. 뒤돌아보니 수많은 사람의 노고와 도움, 응원이 있었기에 지난 20년을 버텨오고, 지켜온 거 같다.   새 정부 국정기획에서는 농촌, 교육, 자치에 대한 정책을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국가와 사회의 정상화를 위해 시급히 해결하고 전환해야 할 당면 과제들이 많아 밀렸는지 모르겠다. 다만, 국민의 전체적인 삶과 국가의 전체적인 아젠다를 전환을 넘어 미래로 가는 혁신을 위한 근본적인 정책적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기후위기, 암울한 청년세대, 인구감소와 삶의 질 최저, 발전성장의 한계 등 이루 헤아리기도 힘든 경제성장과 발전 이면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바본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전하고 행복한 오늘 하루’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미래여야 하지 않을까. 그 제일 앞에 작고 힘없는 사람이, 그리고 소외된 농촌 마을이 있으면 좋겠다.      
2025-10-14 | hrights | 조회: 96 | 추천: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