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길주희(인권연대 간사),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라영(문화평론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원영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가족 같았던 개와 고양이의 추억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공통점일 수 있다. 우리 집에서는 개를 키웠다. 목줄 없이 풀어놓고 길렀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동생이 있어서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기도 했었다. 요즘은 애완동물을 반려동물도 바꿔 말하지만, 개와 고양이는 그냥 가축이기도 했고 가족이기도 했다. 경계가 모호했다. 별도의 사료를 구매하지는 않았고 일곱 식구가 먹는 음식, 먹다 남은 음식으로 개와 고양이도 함께 먹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집에서 키우는 개를 팔기도 하고 먹기도 했다. 지금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때는 그랬다. 오래전에는 이른바 잡종, 똥개였지만 어느 날부터 이웃에서 가져온 진돗개, 시베리아허스키, 리트리버 등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개들이 참 똑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개가 팔리거나 죽으면 마음이 가볍지 않고 한동안 그리웠다. 누구나 살면서 동물에 대한 좋은 추억 및 아픔이 함께 존재할 것이다. 인권과 동물권의 공존을 만들어가려는 노력 서울, 도심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텔레비전이 없이 살다가 아버지가 아파서 서울 병원을 오가셔야 해서 우리 집에 머물면서 텔레비전이 생겼고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자주 봤다. 주말 아침에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동물들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다. 시민운동을 오래 하면서 느낀 점은 동물권 시민단체가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는 점이다. 동물 학대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고 영업용 동물 취급 업종에 대한 규제도 까다롭게 변했다. 동물권 단체의 노력으로 공장식 번식장도 사라져 가고 있다. 인권과 동물권이 공존하는 사회는 우리 사회가 나아갈 중요한 가치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동물권 단체의 활약이 커지고 시민들의 전폭적인 호응이 결합해 동물자유연대, 카라, 케어 같은 큰 단체들은 회원 수가 1만 명이 넘고 연간 예산이 수십억에 이른다. 단체가 커지면서 운영 방식을 둘러싸고 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질문이 터져 나왔다.     동물권 단체의 동물복지 훼손과 노동권 탄압 “‘카라 대전환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대표적 동물권 시민단체 ‘동물권행동 카라(이하 카라)’의 바로 서기를 위해 나섰다. 카라는 현임 전진경 대표의 취임 이래 심각한 동물복지 훼손, 후원금 남용, 노동권 침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 조직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동물권 운동의 신뢰와 미래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비대위’는 카라를 바로잡기 위한 첫걸음으로 전진경 대표의 즉각 사퇴를 엄중히 촉구한다. 카라의 정상화는 대한민국 동물권 운동의 질적 도약을 위한 초석이며, 더 나은 미래를 열기 위한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다.” ‘카라 대전환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선언문(2025년 12월8일)은 이렇게 시작한다. 손꼽히는 동물권 단체 내부에서 몇 년 전부터 다수 활동가의 문제 제기가 시작되었다. 높은 벽에 직면한 이들은 단체를 떠났다. 남은 이들은 시민단체 대표의 독단적인 운영에 항의하다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지금은 카라 전진경 대표의 사퇴와 민주적 운영, 후원금 사용과 운영의 투명화 등을 촉구하고 있다. 동물권 운동의 새로운 전환은 가능할까? 카라 대표와 활동가 노동조합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자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최근에 꾸려졌다. 활동가 조합원들은 두 달 가까이 농성을 이어가며 한 달 넘게 파업 중이다. 어떤 단체이든지 다양한 토론과 문제 제기는 피할 수 없고 당연히 발생한다. 카라의 핵심 문제는 기존 운영의 문제에 대한 성찰, 이를 통한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후원금으로 만들어진 수십억짜리 단체 건물을 독단적으로 매각하고 여러 문제를 제기하는 노조 활동가들에 대한 고소와 고발이 눈덩이처럼 쌓이면서 자체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상태다. 단체 갈등의 장기화는 당사자들의 엄청난 고통과 고난을 수반하지만, 한편으로는 동물권 운동 대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위기가 기회로 작용한 사례는 많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민단체는 사유화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대표는 사퇴해야 한다. 회원이 주인인 동물권 단체는 결과가 아니라 가야 할 길,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시민단체는 민주적인 운영, 투명한 공개, 회원의 참여, 끊임없는 혁신이 생명이다. 시민단체의 기본에 충실하면서 세계적인 동물권 운동 흐름에 부응한다면 카라뿐 아니라 동물권 운동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또한, 동물권이 우리 사회의 중심적인 가치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가지 않을까, 기대하고 확신한다.  
2026-01-06 | hrights | 조회: 52 | 추천: 2
윤요왕/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지난 30년 동안 우리 농촌을 지탱해온 학교들이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잣대 아래 속절없이 문을 닫았다. 통계는 냉혹하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폐교된 마을은 인구 감소율이 평균보다 2~3배 빨라지며, 학교가 사라진 지 3년 만에 지역 인구 약 440명이 급감하고 있다는 수치는 읍면 학교가 곧 마을공동체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걸 보여준다. 농촌에서 학교는 단순한 교육 기관이 아니다. 주민들이 땅을 기부하고 울력으로 세운 마을공동체의 심장이자, 재난 대피소이며, 유일한 문화 거점이다. 학교의 폐쇄는 곧 청년 세대의 유입 차단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지역의 소멸, 즉 ‘농촌 사망선고’와 다름없다. 현재 전국 초등학교 3곳 중 1곳이 소규모 학교로 진입했다. 전남(59.1%), 강원(50.7%) 등 농촌 비중이 높은 지역은 이미 과반을 넘겼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교육을 받을 권리와 공동체를 유지할 권리를 포기하라고 강요할 권리가 있는가?   주민주권의 현장, ‘마을교육공동체’가 증명한 희망 하지만 절망의 틈새에서 희망을 일궈낸 곳들이 있다. 충남 홍성의 풀무학교, 아산 송악면, 전북 남원 산내면 그리고 강원 춘천의 별빛마을의 사례는 우리에게 분명한 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주민이 주체가 된 교육자치’가 살아있다는 점이다. 학교가 배출한 인재들이 지역에 정착해 40여 개의 협동조합을 만들고, 유기농업의 성지를 일궈내고 있는 홍성 홍동면의 사례나 마을 공부방에서 시작한 '별빛 사회적협동조합'이 지역아동센터와 농촌 유학센터, 마을 어르신들을 돌보는 활동까지 하면서 학교 살리기와 마을공동체 활성화로 연결한 사례를 살펴보자. 마을주민들의 주체적인 자발성과 헌신에 적절한 행정‧재정적 지원이 결합한다면, 얼마든지 농촌 작은 학교, 공동체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실현해 낼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 마을에서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마을의 일자리를 만들고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는 ‘작은 자치’의 엔진이 되고 있다. 교육이 살아나자 인구가 늘고, 마을에 활력이 도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는 교육이 행정의 전유물이 아니라 주민의 권리(주민주권)로 선언될 때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이제는 ‘광역 교육자치’를 넘어 ‘읍면 작은 교육자치’로 가야 한다 현재 우리의 교육자치는 광역 단위에 머물러 있다. 도교육청과 지자체 행정은 이원화되어 있고, 농촌학교 이슈는 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제는 체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 먼저, ‘농촌학교 특별보호구역’ 지정이 시급하다. 도시와의 같은 잣대로 학교 통폐합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최소 3년 이상의 공론화 과정을 의무화하고, 학생 수 이외의 지역사회 기여도를 평가 항목에 넣고 새로운 형태의 특성화학교, 대안학교로의 전환에 대한 논의의 장이 있어야 한다. 학교를 마을 도서관, 평생교육장, 마을 카페로 복합 활용하여 ‘마을 전체가 학교가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읍면 단위 ‘교육자치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교육청은 인사와 교육과정을, 지자체는 주거와 교통을 지원하는 분절적 구조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읍면 단위로 행정-교육-민간 협력 전담기구를 설치하여 예산과 정책을 기획하고 통합 집행해야 한다. 무조건 학교를 유지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통폐합 결정의 논의 과정에 대한 주민참여와 새로운 대안적 교육(학교)을 구상해볼 수 있는 교육주권을 가진 주민들의 교육자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실행법인’과 ‘농산어촌 유학’의 고도화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공무원의 순환 보직에 흔들리지 않는 민간 실행법인이 필요하다. 주민자치회 교육분과를 강화하고, 이를 실무적으로 뒷받침할 사회적경제조직이나 비영리 법인을 육성해야 한다. 이들이 마을 교육과 돌봄, 농촌 유학 등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책임질 때 정책은 비로소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또한, 농산어촌 유학을 국가적 전략으로 격상해야 한다. 그동안 민간과 일부 교육청 차원에서 운영하는 농어촌 유학 사업을 교육부가 2026년 정책에 일부 포함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유학생이 1천 명을 넘어섰고, 유학생 가족의 82가구가 지역에 정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주거와 생활 인프라는 열악하고 마을에 농촌 유학생과 그 가족을 환대하고 맞이하는 플랫폼이 부재하다. 교육부, 농식품부, 행안부, 지방시대위원회 등이 협력하여 ‘국가-지방 매칭 지원정책’을 신설하고, 유학생 가족을 위한 장기 임대주택 공급(가족체류형)과 유학센터(마을공동체형) 지원 등 패키지 지원 사업을 펼쳐야 한다. 도시유학생과 가족이 뜨내기 교육서비스 관광객이 아니라 원주민들과 함께하는 마을주민으로 살아가고 향후 농촌마을의 응원군 ‘관계주민’으로 그리고 나아가 귀촌으로 정주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읍면 단위 주민주도의 교육자치가 학교를 살리고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마지막 보루 읍면 단위의 작은 학교를 살리는 일은 단순히 폐교를 막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결정할 권리 그리고 농촌에 맞는 새로운 대안교육과 평생교육을 설계하고 책임지는 ‘교육자치’를 되찾는 일이다. 중앙집권적 효율성의 논리에 맞서, 읍면 단위의 ‘작은 자치’가 살아 숨 쉴 때 우리 농촌은 비로소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학교가 마을을 살리고, 마을이 학교를 품는 그 따뜻한 선순환의 길에 ‘읍면 교육자치’가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다.  
2025-12-30 | hrights | 조회: 49 | 추천: 4
길주희/ 인권연대 간사   이달 17일에는 고 이태영 박사의 27주기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1952년에 한국 최초로 여성 변호사가 된 인물입니다. 해방 이후 1946년에 32세의 나이로 여성 최초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고, 6년 뒤에는 여성 최초로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해방 전에는 독립운동하던 남편 정일형 전 장관의 뒷바라지를 하며 일제에 저항하고, 해방 후에는 여성법률상담소(현 가정법률상담소)를 세워, 가난하고 소외당한 여성들을 위한 법률 구조 활동을 펼쳤습니다. 참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많이도 가졌고, 그만큼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앞장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여성 최초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마냥 자랑스럽기만 한 건 아닙니다. 이태영 박사가 변호사가 된 당시, 판사 임명권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여자는 아직 판사는 가당치 않다”라는 남녀 차별적인 시각에 더해 야당 국회의원 아내라는 이유로 방해만 받지 않았더라면, 다른 남성 동기들과 함께 판검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홀로 변호사의 길을 가게 된 건, 그의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선택지였기 때문입니다.   이태영 박사의 회고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유일한 선택지가 가슴에 많이 사무쳤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는 시대에 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인권 신장을 위해 일합니다. 변호사 사무실 개업 후 1956년엔 여성법률상담소를 개소하고, 가족법 개정을 위해 활발히 움직입니다. 이태영 박사는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범여성 운동을 일으키며, 1963년에는 가정법원 설치를 주도했습니다. 가족법 개정 운동은 1989년에 이르러 이혼한 여성의 재산분할청구권 등을 인정한 가족법을 입안하고, 상속범위를 남녀 차별 없이, 모계·부계 친족은 8촌, 인척은 4촌까지 확대하도록 하는 결실을 냈습니다. 그는 남녀평등 사회의 기틀을 마련하는 한편, 유신정권에 맞서기도 했습니다. 1974년 11월 민주회복국민선언과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등에 참가해 싸우다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했을 정도입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이태영 박사의 27주기 추모식 플래카드를 발견하고는 문득 생각에 잠겼습니다. 여성 최초 변호사가 탄생한 후 약 73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노동 환경은 어떨까요. “여자는 아직 가당치 않은” 노동은, 직업은, 직책은 여전히 존재할까요. 저는 요즘 특히 건설‧ 건축업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전체 노동자 중 여전히 압도적인 비율이 남성이지만, 2024년 건설근로자공제회의가 발표한 <건설기성‧건설기능인인력 동향>에 따르면, 여성 건설기술인 수는 최근 5년 사이 약 40% 이상 증가해 15만 명을 넘어섰고, 여성 건설근로자 역시 매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 건설 기능인은 6만 7천 명으로 전체의 약 5% 수준까지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증가한 숫자만큼 노동 환경이 바뀌었는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정부와 업계의 조사에 따르면 건설 현장에는 여성 화장실·탈의실·휴게시설이 설치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만 마련돼 있다고 합니다. 남성 샤워실은 있지만, 여성 샤워실은 없어서 여름에 곤욕을 치른다는 거죠. 또 임신·출산·육아와 관련한 제도가 법적으로 존재함에도, 현장 배치에서의 불이익이나 ‘현장에 맞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사실상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한 10년 차 건축기사는 현장 관리자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줌마’라 불리며, 업무 능력을 반복적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게다가 모두의 안전과 편의에 대한 요구조차 ‘특별한 배려’로 취급되곤 합니다. 안전모, 안전화 등 안전 보호를 위한 장비를 체형과 사이즈를 고려해서 제작하면, 남녀를 떠나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겁니다. 이들이 원하는 건 특별한 시선과 배려가 아니라 그저 ‘동료’로 함께하고픈 것뿐입니다.   이태영이란 인물이 나오기까지, 정일형이란 남편의 외조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의 아들인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회고할 때 ‘이태영이 정일형을 위해 고생한 게 혼인 이후 9년이었다면, 해방 이후 37년은 정일형이 이태영을 위해 살아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이대학보 https://inews.ewha.ac.kr).”라고 말할 정도니 말입니다. 이들은 그저,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이 서로 필요한 시기에 맞춰 사회적 활동을 지원하고, 보필한 것입니다. 굳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에게도 성별을 이유로 “아직 가당치 않은” 일은 없습니다. 이는 너무도 단순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서로 돌보고, 서로를 위해 연대해야 합니다. 어떤 못된 정치인들의 편 가르기에 넘어가 서로를 적대시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건설 현장의, 노동 환경의 안전과 편의는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제공되어야 할 기본 권리입니다. 우리는 함께하기에 더 좋은 노동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2025-12-23 | hrights | 조회: 95 | 추천: 5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활동가   2023년 경기도 특수교사의 장애인 학생 정서 학대 혐의의 법적 판결 논쟁은 ‘특수교사의 부적절한 학교 수업 시간 발언이 아동 학대 범죄에 해당되느냐, 아니냐’와 ‘발언이 문제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처벌한 충분한 증거 능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다. 사실 이 법적 논쟁에서 장애인 학생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증거를 수집한 '녹음'을 한 것도, '녹음기'를 넣은 것도, 그리고 교사를 신고한 주체도 장애인 학생이 아니다. 백분 양보하여 교사를 힘들게 했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그 학생이 일부러 선택하지 않은 ‘장애’로 생긴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다만 관련 법정 공판마다 나온 학대 피의자의 교육청 변호인 주장대로 “장애로 인하여 학대 발언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란 말에서 보듯, 장애인 학생이 학대에 준하는 발언을 한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   이 판결에 대해 논쟁하려면 장애 아동의 증거 수집 능력과 그 의사 결정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나 사법당국은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 결정과 의사 표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해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당신의 인지 수준이 낮으니 그 어떤 말도 들어 주지 않고 신뢰하지 않을 테야’라는 자세였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해당 판결에서 비동의 녹음조차 증거로 인정해 주지 않을 거라면, 도대체 대안은 무엇이란 말인지 의문이 든다. 동시에 사실상 특수교사가 전권을 가지고 개인적·감정적으로 폐쇄적으로 운영할 위험이 있다는 현실을 확인한 특수학급의 수업을, 어떻게 하면 서로 투명하고 인권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숙제가 생긴다. 또 학부모와의 민원과 갈등을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법적 분쟁이 아닌, 모두가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중재로 가는 길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고민이 남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의무교육 대상자인 장애인 학생의 지속 가능하고 안전한 학교 교육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정작 아무런 피의 혐의가 없는 장애인 학생은 또래가 있는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의 장애가 모든 여론과 논쟁을 혐오적으로 지배하게 했다. 심지어 그 장애 때문에 교사의 부적절한 언어도 정당한 훈육이 되었고, 부모의 문제 제기 권리 역시 '괘씸한 보복 갑질'이 되어버렸다. 오로지 비동의 녹음이 문제라면, 그토록 비동의가 문제라면, 아이의 동의를 받지 않고 녹음기를 넣은 부모 역시 법적으로든 여론적이든 아이의 자기 결정권과 음성권(자기 목소리에 대한 권리) 등을 침해한 행동에 관해 이야기하고, 논쟁했어야 한다. 장애인 학생에게 폭행당했을 때 교사는 녹화나 녹음을 하거나 동료 교사의 증언을 너무나도 받기 쉽지만, 장애인 학생은 지독히도 어렵다. 위치에 위계에 따라 다른 교사의 지지나 다른 장애인 학생 혹은 비장애인 학생의 증언을 구하기가 현실적으로도 권력적으로도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애초에 비대칭적인 권력 구조 속에 있음에도 ‘비동의 녹음이 증거로 인정되면 온당한 교육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일부 교사 집단의 주장은 너무나도 권위적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학대가 의심된다면 오히려 교사가 학생에게 녹음을 요구하거나 체증하는 데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장애인에 대한 정서적 학대가 학교보다 가정에서 더 빈발하게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에 신고자인 양육자가 그 피의자 교사와 똑같이 장시간 아이를 방치하고, 아이에게 짜증 내고, 윽박지른다면 당연히 그 양육자도 신고해야 한다.   그렇게 학대 피의 교사의 2심 무죄 판결을 환영한다면서도 그동안 일부 교사들이나 교수나 언론이 자행해 온 피해 아동 신상과 그 부모의 개인정보를 그렇게 탈탈 턴 것이나 혐오한 것들, 여론 재판으로 안전하게 전학 간 학교조차 등교하지 못하게 한 현실에 대해서는 왜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아니한가? 아무리 학폭위 최고처벌로 강제 전학 간 일반 학생이라도 이렇게 잔인하게 신상을 털지는 않는다. 분명히 법에는 아동 학대의 피해자나 그 신고자에 대하여 그 유무죄 이전에 신상정보를 철저하게 보호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뉴스에서 그 아동에 관한 사항으로 도배되지 않도록, 신고자에 대해 섣불리 비난하는 여론이 조성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교사 집단의 주장대로 비동의 녹음이 그렇게 두렵고 명예롭지 않고 억울할 수 있다면 녹음이나 녹화 CCTV 이외에 증거를 확보나 학대를 예방할 다른 방안을 찾는 노력을 왜 잘 보이지 않는가? 과연 그들이 말하는 대로 비동의 녹음이 없어도 동료 교사들이 학대하는 교사들을 발견하면 이를 막고 저지하면서 처벌을 요구하는 내부고발을 할 수 있는가? 애초부터 신고자의 문의를 받은 교육청이 중재할 노력은 별로 하지 않은 채로 양육자에게 학대 신고밖에 방법이 없다고 안내하였는데, 그 방관적 무책임성은 왜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가? 실무대로라면 그렇게 안내한 교육청이 이 사단을 만든 주범이지 않은가? 처음 이 사실을 접한 그 학교 교장이나 교육청이 조금이라도 양육자를 중재했더라면 그 양육자가 이 문제를 법으로만 해결하고자 했을까? 그런 법마저도 제대로 장애인 학생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실제로 학교 교육 현장에서 장애인 등 특수교육법을 어기는 관리자나 동료 교사들을 내부고발 하거나 신고하는 '특수교사'는 손에 꼽았다. 우리가 이 사건 때문에 감정적으로 외면해서 그렇지 장애인 학대를 일삼은 교사의 사례는 넘치고 넘친다. 그럴 때, 교사 집단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그 양육자가 어떤 비난과 혐오에도 그 녹음 파일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 그게 어떤 내용이든 사실상 법정에서만 다루어지는 게 모두의 기본적인 이익과 인권에 합당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비동의 녹음이 무작위로 근거 없이 장기간 반복되었다면 당연히 법적 정당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비동의 녹음의 문제는 바로 학대 정황이 없을 때도 그 녹음을 중지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학대 상황 외에도 매 순간 녹음되고 공개될 수 있는 게 교사들이 가진 두려움일 것이다. 한편, 재판부는 가해자의 장애인 학생의 장애 특성과 한계를 자신 가해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악용하는 변호 논리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논리 안에서 의도되거나 향후 발생할 장애인 학생의 피해는 전혀 파악하지 않은 채로 기계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것은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사법부의 장애인 혐오 감수성에 기반한 반응이다. UN장애인권리협약, 아동권리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복지법의 취지를 위배한 전근대적인 판결이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에서도 이 장애인 학생의 개인정보와 인권은 철저하게 열외였다. 이런 이슈몰이가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위반 사항임을 이야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진 출처     이번 사건이 가해자의 생계까지 박탈하는 것은 과도한 처벌이라는 데 동의하더라도 -그래서 피의자는 계속 근무하고 있고, 많은 후원금과 지지세력도 얻었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유사 사건에서 일부 여론과 상황이 유리했을 때 가해자는 끝까지 피해자에게는 직접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사과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는 걸 알고 있다. 학대 피의자는 전형적인 방어적인 가해자의 모습을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안기는- 보였고, 피해자 측은 그동안 전형적인 '약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학교로부터 이 정도 해준 것도 고마운 줄 모른다며 손가락질받았다. 과거에도 유사한 많은 학대와 차별 사건에도 피해자의 장애를 이유로 교사의 열악한 현실을 근거로 가해자를 선처하고, 그들의 생계를 계속 유지하도록 용서해 왔다. 그러나 종국에 은평대영학교 사례에서 보듯이 그런 온정적인 처벌과 용서가 어떻게 더 심한 학대와 차별로 재발하여 상습 범죄화되어 왔는지도 재판부는 살펴보아야 했다, 해당 피의자 교사는 법적으로 받아야 할 공무원으로서 받아야 할 장애인권교육마저 셀프 교육으로 끝내고, 온당히 학부모들에게 안내해야 할 행정 구제 정책이나 인권교육도 하지 않았다. 피의자도 스스로 배워야 할 인권 감수성과 학대 예방 기회를 놓쳤다. 그 책임이 교사 당사자에게 있는지, 관리·감독해야 하는 관리자에게 있는지, 예산을 지원해야 할 교육청에 있는지도 반드시 규명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정작 그 당사자 학생은 온전한 교육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인격권도 여론에 의해 박탈당했다. 기존에 상호 비동의 녹음을 증거로 인정하여 판결했던 많은 인권침해 사건이 다시 재심을 요구하거나 무죄를 주장하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이번 판결이 법적 안정성과 지속성이 주는 신뢰의 근간을 훼손한 것이다. 이렇게 가해자에게 유리한 판결들이 어떠한 결과를 낳고 있는지는 신안 염전 장애인 노동자 착취사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국제 사회는 이를 장애인 학대 사건으로 인정하여 수출까지 금지했으나 우리 사법부의 약한 처벌로 말미암아 국내에서 벌어지는 학대는 지금도 계속 자행되고 있음을 보고 있지 않은가? 재판부는 오히려 아동 학대와 장애인 복지를 위한 기소 근거 법률의 근본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유사 사건에 대해서는 제삼자 또는 책임을 져야 할 책임 주체들조차 –교육청이나 교육감들- 조용히 재판부의 판결을 기다려 보자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장애인 학생을 학교로 돌아오게 해야 할 교육 총책임자가 “장애인 학생은 집에 데리고 교육하라”라는 장애인 혐오 차별 발언을 서슴없이 언론에 대고 하고 있다. 이 역시 관련 사건에 대한 2심 재판부의 기계적 판결이 주는 혐오 효과일 것이다. 이번 경기도 교육감 인터뷰가 장애인 학생에 대한 분명한 혐오이자 차별인 것을 우리는 모두 알지만, 자신의 노동권의 주체인 학생을 집안에 가두라고 주장하는 최고 관리자에 대하여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양육자를 공격하고자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이 선택적 침묵과 방관이 문제의 악화시키는 걸 알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최고 책임자인 경기도 교육감이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를 등교하여 양육자를 안심시키고 교사에게 충분한 지원 인력을 약속하면서 잘 중재했다면, 이 일이 여기까지 왔을 일일까? 흥분한 두 사람이 서로 불덩이를 던지며 다투고 있는데, 누구 하나 불을 끄려고 하는 이는 없고, 가운데 기름통을 놓아주고는 싸움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미 이 판결은 피의자의 유무죄 여부가 아니라 녹음기가 가지는 무고죄의 책임을 장애인 학생에게 물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특수교사가 힘든 것과 교사들이 녹음기의 공포의 시달리다는 것과 저 교사가 학대적 발언을 일삼았다는 건 별개의 문제인데도 그 장애인 학생의 교육권을 이야기하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저 정도의 발언도 특수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이라고, 훈육이라고 합리화한다면, 그나마 어렵게 쌓아 두었던 특수교사의 법적, 사회적 지위는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아동 학대 신고의 남발이 문제라면 악의적인 학대 신고나 교사의 불이익에 대하여 대응할 제도를 만들면 된다. 현실적으로 이번 판결이 가해자 측의 승리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 판결이 교사들의 전문적·인권적 권위를 높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학교가 학생의 장애만을 문제 삼고, 그것을 여전히 피곤한 일로 여기며, 사랑과 배려라는 말 따위로, 온정주의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사람들은 비동의 녹음 말고 또 다른 증거를 찾을 방법을 갈구할 것이다. 장애인 학생의 권리를 누구보다도 옹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 그래서 학폭위가 열려도 같은 학교 관계자이지만 특수교사를 배석하게 하고 법에서도 특수교사를 진술 조력인으로 인정해 왔으나, 이제 그 누구도 특수교사들이 인권이나 학대 문제에 다른 누구보다도 민감하다는 이야기를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의 피의자 특수교사 개인은 법적 이익을 얻었으나 특수교사 전체는 도리어 법적 권위를 상실할지도 모른다. 진실로 비동의 녹음이 문제라면, 첫째로 장애인 학생에게 어떻게 하면 동의를 얻을 것인가에 대해 법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이어 ‘녹음’ 자체가 문제라면 장애인의 학대 문제에서 어떻게 하면 학대를 예방하도록 교실에서 증거 수집하고 예방할 것인가에 대해 사법부와 우리 사회가 먼저 답해야 할 것이다.   누가 뭐라든 장애인 학생은 언제든 안전한 학교로 즐겁게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어떤 특수교사도 그 어떤 학교도 그 어떤 교육청도 그 장애인 학생을 환영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어느 유명인의 자녀이기 때문에’라고 한다면, 그만큼 유치한 연좌제가 없다. 그만큼 졸렬한 차별이 없다.     *본 원고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2025년도 장애인 인권 디딤돌⋅걸림돌 판결 선정 보고회 토론문을 수정 추가 정리한 것입니다.    
2025-12-16 | hrights | 조회: 67 | 추천: 3
이라영/ 문화평론가   지난 6월 30일 삼척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았다. 작년에는 태백 장성 광업소가, 재작년에는 화순 광업소가 문을 닫았다. 석탄공사의 탄광이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75년을 이어온 석탄공사도 영업을 종료했다. 1950년 설립된 석탄공사는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공기업이었다. 이제 민영 탄광 두 곳이 남았다. 민영 탄광도 2030년까지 문을 닫을 계획이다. 탈석탄 정책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석탄광은 문을 닫는 순서로 간다. 광산이 문을 닫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그에 대한 대책 마련이 미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도계는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의 배경마을이다. 영화에서 도계중학교 관악부 학생들이 퇴근하는 광부들을 위해 갱구 앞에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있다. 도계 광업소 광산 노동자들은 퇴사 직전 이제 더는 석탄을 캐지 않을 그 갱구 앞에서 6월 30일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제 이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어디로 갈까. 폐광 직전 도계에 방문했을 때 전통시장은 한산함을 넘어 폐허에 가까웠다. 쉬는 날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문 앞에 붙어있는 ‘임대’를 보고 대부분 폐업한 가게임을 알 수 있었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 시장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시장을 구경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60여 개의 점포 가운데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10여 년 전부터 이미 차츰차츰 손님이 줄었다고 한다. 도계광업소 직원들이 살던 도계새마을 아파트에는460가구 규모로 한때 많은 주민이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80세대만 남았다. 높은 산에 둘러싸인 도계에 한때는 5만 명 정도가 모여 살았다. 지금은 8000여명 정도에 머문다. 도계광업소가 문을 닫은 후 석 달 동안에만 300명 아까운 주민들이 도계를 떠났다. 지역 주민이 떠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떠나는 속도는 가속화될 것이다. 탄광이 문을 닫으면 노동자와 가족들 외에도 주변 상권이 붕괴되면서 큰 타격을 받는다. 폐광이 예정되어 있었음에도 폐광 직전까지 대책 마련이 되지 않아 도계광업소 노동자들이 세종시까지 가서 투쟁을 해야 했다. 삼척시를 비롯해 도계광업소 노동자들은 폐광 후 대체산업으로 중입자 암치료센터를 유치하길 원했다. 삭발과 단식 등의 투쟁을 이어갔지만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이 잘 알려지지도 않거니와 1년 전 내란 사태로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사소화되었다.   사진 출처   8월 20일 중입자 암치료센터에 대한 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했다. 직원들이 떠난 도계새마을 아파트 부지에 2030년까지 중입자 암치료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문제는 의료산업 클러스터 조성이 된다고 해도 최소 5년 정도는 걸린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 폐광지의 소멸은 가속화될 것이다. 대체산업 조성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도계지역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석탄과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은 없다. 도계나 삼척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광산 문화를 성급히 매몰시켜서도 곤란하다. 과거의 기억을 남기면서도 현재를 살아가는 주민들의 미래를 위한 일자리 고민까지 함께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탄광촌 바깥에 있는 시민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탈석탄 시대에 노동자들의 일자리 전환과 지역 상권 붕괴는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광산은 닫혀도 사람은 살아간다.    
2025-12-09 | hrights | 조회: 64 | 추천: 5
정한별/ 사회복지사   장애인학대 현황 보건복지부와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장애인학대 전담기관)은 2018년부터 매년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2018년 전국의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에 접수된 신고건수는 3,658건이었다. 2024년 신고접수는 6,031건으로 전년 대비 9.7% 증가하였고, 이 중 학대 의심사례는 3,033건(50.3%)로 전년 대비 2.2% 증가하였다. 학대피해 장애인의 장애유형은 발달장애인(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이 71.1%로 피해자의 대다수가 발달장애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이 주로 당하는 학대의 유형은 신체적 학대 33.6%, 정서적 학대 26.5%, 경제적 착취 18.6%, 성적 학대 13.0% 순으로 나타났다. 학대 행위자와 피해 장애인의 관계로는 가족 및 친인척 38.0%(부 10.4%, 모 7.9%, 배우자 7.8%), 타인 37.4%(지인 22.6%), 신고의무자인 기관종사자 20.6%(사회복지시설 종사자 15.7%) 순으로 나타났다. 학대 발생 장소는 피해 장애인 거주지 45.0%, 장애인 거주시설 12.7%, 학대행위자 거주지 7.4% 순으로 나타났다.1)   장애인학대의 특이점 장애인학대는 몇 가지 특이점이 있다. 가장 먼저 피해자의 대다수가 현재 15가지 장애유형 중(2026년 5월부터 췌장장애가 포함되어 장애유형이 16개로 늘어날 예정) 발달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피해을 외부로 드러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특히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러한 장애 특성이 장애인학대의 다양한 현실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려온다.   두 번째, 학대 피해유형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신체적 학대라는 것이다. 아동학대의 경우 정서적 학대 피해가 가장 많이 신고되고 있으며, 노인학대의 경우에도 신체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의 비율이 비슷하다. 장애인학대가 특이하게 신체적 학대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장애인학대의 경우는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신체 피해가 있는 정도가 되어야 신고가 이뤄지는 것으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즉, 학대에 대한 민감성이 다른 유형의 학대에 비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경제적 착취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경제적 착취 중 노동력 착취의 비율이 가장 높다. 염전노예, 사찰노예, 고물상노예, 식당노예 등 노동의 다양한 현장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모습. 장애인의 노동은 비장애인의 노동보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은 노동현장뿐만 아니라 학대 피해를 심판하는 법원도 가진 차별적 인식이다. 보험사기, 휴대전화 사기 등 다양한 사기 피해자로 발달장애인이 등장하는 뉴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네 번째, 학대 행위자가 다양하게 있다는 점이다. 아동학대는 학대행위자의 80% 이상이 부모이고, 노인학대도 학대행위자의 80%에 근접한 비율이 가족인 것에 비춰 보았을 때, 장애인학대는 가족, 타인, 신고의무자인 기관의 종사자 등 피해자와 다양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학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게 매우 특이한 지점이다. 이에 따라 피해 발생지도 다양하다. 아동학대나 노인학대는 피해 발생지의 대다수가 가정이다. 대개 언론에서 자극적으로 다뤄지는 장애인학대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거주시설 직원에 의해 발생한 학대이다 보니,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장애인 거주시설 안에서 발생한 학대가 가장 심각하다고 여겨질 수 있겠으나, 사실 학대 자체는 재가(장애인 거주시설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설의 직원들도 왕왕 있다. 그러나 장애인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법적, 직업적 의무가 있는 서비스제공자가 서비스 제공 대상에게 가하는 학대라는 점에서 재가에서 발생하는 학대보다 비난 가능성이 큰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우리 법체계도 신고의무자인 기관 종사자(거주시설 종사자 등을 포함)에 의한 학대를 가중처벌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홈페이지 갈무리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실태와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강화 방안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월 28일, 2024년 울산 태연재활원 학대 사건을 계기로 올해 실시한 ‘50인 이상 대규모 거주시설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동안 인권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던 보건복지부가 인권실태 조사의 결과를 발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인권실태 조사 결과, 시설 대다수가 3인실 이상의 다인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대부분 자율적으로 CCTV를 설치‧운영하고 있었다. 입소장애인은 대다수가 지적장애인이며, 시설에 입소한 기간은 평균 20년 이상이고, 대부분 상시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학대 예방을 위해 시설 대다수에서 인권교육을 이수하고 있었으며, 인권지킴이단도 법에서 정한 인원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또한 일부 인권침해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인권실태 조사 결과, 장애인 거주시설 학대 예방 및 인권강화 방안으로 외부전문가 활용 인권교육 독려, 인권지킴이단의 내실화를 위한 외부단원 직종 다양화 및 외부단원 비중 확대, 공용공간 CCTV 설치 및 운영 의무화, 대규모 거주시설의 30인 이하 소규모 시설 전환을 위한 지역사회 공동주택 활용, 다인실 생활공간을 1~2인실로 단계적 전환, 입소장애인 맞춤형 개별서비스 지원, 공공후견 강화 등 지역사회 연계 강화, 의료집중형 장애인 거주시설 단계적 확대, 종사자 근무 여건 개선,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 인력의 확충 및 지역기관 추가 설치, 피해 장애인 쉼터 종사자 처우개선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였다.2)   보건복지부의 인권강화 방안은 인권침해를 줄일 수 있을까 거주시설의 직원들은 의무적으로 인권교육을 들어야 한다. 보통 8시간을 듣도록 정해 두고, 이 중 4시간 이상은 외부 인력에 의한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실제 외부 인력에게 인권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재정지원이 열악하고 인력 부족이 심각한 소규모 개인시설을 제외하고는 인권교육 수료기준은 이미 준수하고 있다. 인권지킴이단의 경우, 인권감수성이 풍부한 외부단원을 구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인권지킴이단이 형식적인 조직이 아닌 실질적 기능을 하게 하려면, 예산 투입은 필연적이다. 비용까지 희생하면서 정기적인 인권지킴이단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외부 전문가들이 얼마나 있을까. 공용공간 CCTV 역시 이미 많이 설치되어 있으나, 계속해서 학대하는 직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또 CCTV가 비추지 않는 곳에서 학대하는 직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역의 공동주택을 매입하고, 1~2인실을 확보하고, 맞춤형 개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장애인 거주시설 근로자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장애인학대 전담기관인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을 추가로 설치하고, 학대 피해 장애인 쉼터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는 일이 이뤄지면 좋겠다. 이 방안들은 거주시설 이용장애인의 인권상황을 증진하고 학대 등 인권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형 거주시설의 소규모화 정책(30인 미만 시설로의 소규모화)을 추진하면서 시설의 규모가 작아진 만큼 지원을 줄였던 정부, 2017년 17개로 시작한 장애인 권익옹호 기관을 2025년 현재 고작 2개밖에 더 늘리지 못한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하는 게 과도한 비판인지 묻고 싶다.   지난 9월 16일 ‘장애인의 주거 선택권을 보장하고 지역사회로의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라고 한 보건복지부의 입장과 ‘장애인 거주시설을 믿고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개선 추진’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보건복지부의 입장이 서로 맥을 같이 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시설의 환경이 개선되면 인권침해는 정말 사라질까.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강화 방안은 시설이 아닌 곳에서 살 수 있는 주거 선택권을 보장하는 조치의 선제적 고려 위에서 시설 환경개선이 함께 논의될 때 빛날 것이다.     1) 2024 장애인학대 현황보고서, 보건복지부, 중앙장애인 권익옹호 기관, 2025. 2) “장애인 거주시설을 믿고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개선 추진”, 보건복지부 보도자료(2025.11.28.)  
2025-12-02 | hrights | 조회: 108 | 추천: 3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파키스탄을 떠나기 전날 저녁, 다시 만난 아리안나(가명)와 남동생, 어머니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묻어났다. 아디는 지난 8월과 9월, 파키스탄에서 난민 생활을 하는 13가족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그중 아리안나 가족은 유일하게 두 번 인터뷰할 수 있었던 가족이었다.  첫 만남에서 아리안나는 자신을 아프가니스탄 여성 활동가라고 소개하며 당차게 말을 이어갔다. 2021년 8월 탈레반이 재집권한 이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학교와 대학을 폐쇄했고, 여성의 고등교육을 금지했다. 당시 의대생이었던 그녀는 탈레반에 저항하며 여성 교육권을 위한 시위를 조직하고 참여했다. 탈레반은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을 향해 ‘정숙하지 못한 나쁜 여성’이라고 조롱하고, 살해 협박과 함께 몽둥이로 구타하며 잔혹하게 탄압했다.   사진 1. 2021년 9월 7일 카불의 시위 사진 (출처: 알 자지라 보도, Hoshang Hashimi/AFP)    탈레반의 시위 탄압을 묻자, 아리안나는 2021년 9월 7일의 시위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시위는 수도 카불 시내 킬라 파툴라(Qala-e-Fatullah)에서 출발해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여성에게 자유와 일자리, 교육권을 허하라”는 요구가 담긴 시위였고,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합류해 인파가 빠르게 늘어났다. 그러자 탈레반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며 폭력적으로 해산을 시도했다. 총성이 울리자 아리안나를 비롯한 여성 시위대는 인근 병원 지하로 몸을 숨겼고, 탈레반은 그곳을 봉쇄하고, 한 시간가량 그들을 가두고 협박했다. 이후 가족들의 간절한 요청 끝에 봉쇄가 풀려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지인들과 함께 온라인으로 시위를 조직하며 2022년 3월까지 저항을 이어갔다. 탈레반은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을 체포해 감금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는 실종됐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리안나는 해외 언론에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인권 탄압을 꾸준히 알렸다. 결국 탈레반은 그녀의 집을 급습했고 이미 피신한 그녀 대신 남동생(당시 14세)을 체포해 가족을 위협했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더는 아프가니스탄에 머물 수 없게 된 그녀는 단신으로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피신했고, 이후 어머니와 남동생도 어렵게 합류했다.  파키스탄으로 피신한 뒤에도 아리안나는 탈레반의 여성 인권 탄압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2023년 이후 파키스탄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불법 이민자’로 규정하고 강제추방 정책을 펼치면서 그녀의 활동은 크게 위축됐다. 아디가 난민들을 만났던 시기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자진 출국’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고, 아리안나는 언제든 체포·추방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지내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게 되면 탈레반에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며, 단속을 피해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며 활동을 계속할 이유를 설명했다.  “탈레반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교육과 외출, 직업을 제한합니다. 하지만 이슬람은 여성이 학교에 가고 교육받는 것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성이 없는 사회, 여성이 침묵하는 사회를 만들려 합니다. 제가 여기서 추방되면 감옥에 가거나 살해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이 저의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문제에 대해 제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가 살아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는 이전에도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일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할 것입니다.”   사진 2. 아리안나 가족과의 두 번째 만남, 아리안나 집으로 초대받아 함께 한 저녁 모임 (출처: 사단법인 아디)    두 번째 저녁 모임에서 그녀의 개인적인 꿈을 물었다. 아리안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도 의사였고, 저 역시 의대생이었기에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아프가니스탄이 자유로워지고, 제가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하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2021년 8월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은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해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다. 당시 언론은 카불공항에서 탈레반을 피해 떠나는 시민들의 절박한 모습을 집중 조명했고, 한국 언론 역시 한국에 피신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의 사연을 널리 보도했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 4년이 지난 지금, 아리안나처럼 여전히 저항하며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점점 보도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녀를 포함해 아디가 만난 적지 않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은, 세상이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뿐,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며, 자신들의 언어로 계속해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침묵을 강요받는 현실 속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이 곧 살아있음’임을 증명하듯, 그들은 오늘도 멈추지 않고 있다.    
2025-11-24 | hrights | 조회: 91 | 추천: 9
김성은/ 서울신문 기자   제임스 배리의 <피터팬>은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1911년 출간돼 10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 작품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함의는 여전히 크다. 배리는 주인공 피터에게 잔혹하고 이기적인 성격을 의도적으로 심었다. 날카롭고, 불편하다. 바로 그 때문에 우리 조직과 사회의 윤리적 단면을 충실히 비추는 거울이 된다. 피터는 네버랜드에서 함께 사는 아이들이 자라면 주저 없이 솎아 낸다. 어른들을 향한 분노는 더욱 섬뜩하다. 혼자 있을 때 그는 의도적으로 1초에 다섯 번씩 숨을 내뱉는다. 네버랜드의 전설에 따르면 아이가 숨을 한 번 내뱉을 때마다 어른 한 명이 죽기 때문이다. 피터는 이를 즐긴다. 천진난만한 미소 뒤에 숨은 잔혹성과 순수해 보이는 눈빛 속 깊이 자리한 이기심. 피터팬은 묻는다. '순함'과 '선함'은 같은 것인가? 피터는 폭군이다. 자기애로 가득 찬 냉혹한 지배자다. 그런데도 네버랜드의 질서가 유지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피터가 아닌 주변 인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네버랜드의 아이들은 피터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생존과 안정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문 그들은 폭력 앞에서 입을 닫는다. 웬디 달링도 다르지 않다. 피터의 이기심을 견디며 어머니 역할에 몰두할 뿐, 폭력에 맞서지 않는다. 이것이 '순함'이다. 순종적이고 소극적이다. 조용하고 안정적이기에 겉으로는 평화롭다. 그러나 이는 기만적인 평화다. 순함은 잔혹한 리더가 득세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한다. 이는 조직 이론에서 말하는 파괴적인 리더십의 작동 방식과 일치한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고 팀원의 의견을 무시하며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파괴적인 리더는 비인격적 감독과 역량 과신, 왜곡된 인간관 등의 특징을 보인다. 결국 조직에 상처를 남기고 자신도 무너진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그를 허용하는 순응적이고 맹목적인 사람들이다. 조직과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에 대한 침묵과 방조야말로 파괴적인 리더십을 낳는 최악의 행위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의 발언이 이 현실을 관통한다. “불의의 상황에서 중립적인 사람이라면 당신은 압제자의 편을 선택한 것과 같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한국어판 표지   주장의 정당성과 무관하게 순응하는 태도는 민주주의의 적이기도 하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경고한다. 민주주의는 합법적 제도 안에서도 권력을 남용하는 리더에 의해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무너진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침묵과 순응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순한 이들이야말로 조직과 사회의 '숨은 적'인 셈이다. 이들은 성장하지 않는 네버랜드의 아이들과 같다. 순진한 낙관주의에 빠진 구성원, 무저항을 미덕으로 여기는 공동체는 결국 집단적 참사를 부른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흔히 '순함'을 '선함'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순응하는 태도를 마치 덕목처럼 여긴다. 착한 어린이 콤플렉스가 조직 전체를 지배하면 갈등을 피하고 현상 유지를 택한다. 그러나 선함은 다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불의에 맞선다. 파괴적인 리더를 견제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일터에서, 사회에서 큰소리를 치는 소수에게 맹목적으로 순응하지 않아야 한다. 폭군 없는 세상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적어도 불의 앞에서 침묵하고는 "순함의 미덕 때문"이라는 자기기만으로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비판과 이의 제기를 하는 '불편한' 이들을 향해 불온하다고 치부해서도 안 된다. 피터팬의 네버랜드가 경고하지 않았나.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들의 세상은 결국 폭군들의 놀이터가 될 뿐이다.  
2025-11-18 | hrights | 조회: 220 | 추천: 9
신종환/ 공무원   며칠 전 이전에 근무하던 부서가 소란스러웠다. 우리 지자체는 업무효율 상승을 위해서 부서별로 GPT-Team 요금제를 적용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나는 로그인을 반복할 때마다 특정 담당자의 휴대전화 번호나 메일을 경유해야 하는 알림이 비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 번거로워서 내 번호로 인증받도록 수정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여가 지나고, 나는 타 부서로 이동한 후에도 여전히 해당 부서의 GPT를 사용하는데, 요 며칠 사이 해당 부서원들의 모든 로그인 시도가 나의 휴대전화를 경유하게 되어 대단히 불편해진 것이다.  해당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의 제보로 나는 부서원들의 분노와 원성이 들끓어 그 원흉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의도치 않게 범인이 된 나는 적발되기 전에 타지 출장 중 휴대전화로 부랴부랴 아이디 연동을 해제하다 그만 휴대전화를 초기화해 버렸다. 순식간에 세상에서 나를 증명하는 여러 데이터가 휘발되어 황망한 와중에도 그 친구에게 사건의 추이를 묻자, 아무도 분노와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걸로 미루어 볼 때 상황은 일단락된 것 같다. 새삼 몇 년 사이에 GPT 없이는 일하기 힘들어졌다는 걸 의도치 않게 느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경찰은 불송치 결정문에서 AI가 발언한 허위 판례를 그대로 인용한 사실을 인정했다. 부서에서 AI를 가장 많이 쓰는 나는 저런 중요한 업무에 AI가 보고한 내용을 검토 없이 사용했다는 사실에 기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여과조차 생략할 정도로 일이 싫었나 싶기도 했다. 게다가 그런 의식적인 영역까지 양도한다면, 대체 노동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우리의 의의는 각자에게 어떻게 자리 잡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에 자아를 전적으로 의탁하는 일도 지향할 바는 아니지만, 노동 전체가 소거해야 할 고통이 된다면 그에 비치는 우리는 무엇이 되나.  한편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시험 응시 과정에서 GPT를 사용한 사실이 적발되어 여러 명이 처벌받은 사례가 등장했다. 뉴스에는 유명 대학만 언급되었지만, 더 많은 사례가 있을 것이고 적발되지 않은 경우까지 생각하면 더욱 광범위하고 일상적일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커닝이 예전에 없던 것은 아니나, 요는 커닝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능하다면 망설임 없이 커닝을 선택하는 상황에 학문은 어떤 의의가 있고, 스스로는 학도로서 어떤 의의를 지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의의가 없다면, 좀 더 나아가 의미가 필요 없다면, 학문과 노동은 고통이고 커닝과 위임은 해방이다.       우리와는 직접적인 접점은 없으나, 여러 직종이 AI의 영향으로 사라진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끼리 공직도 없어지지 않을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를 나눌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확신에 차서 우리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왜냐는 동료들의 질문에 “AI는 욕을 대신 먹어줄 수가 없기 때문이죠.”라고 하면서. 반쯤은 농담이지만 우리보다 상급의 위치에서 공직의 의미 중 하나가 책임을 지는 것이고, 그 책임이 파편화된 업무에 적용되면 욕을 먹고 비난받는 것도 있다는 걸 체감하곤 한다. 뉴스에는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나오지만, 일상에서 대부분은 자잘한 실수와 가역적인 잘못이고, 그에 대한 책임은 깎아내리는 인격을 감내하는 것이다. 반쯤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이 자리의 이유가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의 가치는 대상화할 수 있는 존재 그 자체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된다.  존재를 형성하거나 영위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오히려 그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어느 정도의 입체성을 지니느냐를 포괄적으로 칭하는 말이 ‘어른’이나 ‘지혜’ 등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고통과 고충을 피할 방법이 적었기에 어쩔 수 없이 맞서면서 어떤 이들은 죽거나 망가지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언어적으로나 비언어적으로 지혜를 체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고통을 피할 방도가 늘어난 요즘에는, 사람들은 고통의 소거를 희망하고 그에 따라 부수적으로 존재와 의미도 희미해진다.   과거 여러 창작물에서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본질이 가짜라는 데에 좌절하는 인물들을 보여주지만, 이제는 스스로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고통과 소거와 충족감으로 단순화되는 모습이 더 자주 더 많이 보인다.  모두에게 그런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쿠팡 새벽 배송 노동자가 자꾸 발생하는 아픈 예시들을 통해, 고통을 대신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난다는 건 어떤 이들의 고통의 가치가 줄어들어서 살기 위해서는 더 큰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간단한 결과, 그리고 당연히 그런 이들이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는 결론 대신 새벽 배송의 편리성을 당당히 응원하는 괴물들이 되기 전보다 쉽다.  하지만 (근거는 없지만) 영원한 운동은 없듯이 지금과 같은 가치관이 만연하면 어느 순간 사람들이 존재의 허기를 느끼는 순간이 올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렇기에 그날이 올 거라는 근거 없는 생각 자체에 힘을 불어넣고, 읽고 쓰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발굴하고 끊임없이 보여주는, 늘 하던 일에 새롭게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하는 일이 머지않은 미래에 도래할 AGI 시대를 준비하는 태도 중 하나가 될 것이다.    
2025-11-12 | hrights | 조회: 100 | 추천: 4
김태형/ 프리랜서 방송작가   마왕 신해철의 질문, 이재명 대통령의 답변 이재명 대통령이 고(故) 신해철의 11주기를 맞아 SNS에 추모 글을 남겼다. 이재명 대통령은 ‘시대의 음악인이자 양심이었던 신해철은 청년들에게는 생각하는 힘을, 기성세대에게는 성찰할 용기를 일깨운 상징적 존재였다’고 적었다. 단순한 애도가 아니었다. ‘예술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신해철의 질문을 다시 꺼내 든 성찰의 언어였다.   신해철은 사회와 정면으로 맞선 예술가였다. 그의 노래는 단순한 감성이 아닌, 시대의 부조리를 향한 선언이었다. 그는 <민물 장어의 꿈>에서 무너지는 세계 속 인간의 고독을 노래했고, <그대에게>에서는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도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청춘을 노래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는 불완전한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며 우리에게 두려움 대신 용기를 택하자고 말했다’라고 적었다. 신해철의 음악은 단지 청춘의 노래가 아니라, 시대의 양심으로 해석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추모 글에서 ‘그가 꿈꾸던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동체는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라고 말했다. 정치의 언어로 들리지만, 동시에 신해철의 예술이 지향하는 방향과도 같다. 신해철이 남긴 질문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는 결국 ‘정치는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가’로 이어진다. 이 대통령은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말을 인용해 “정치가 아닌 예술이 치유의 힘”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와 예술, 권력과 감성의 경계를 넘어선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 이재명 대통령 SNS 갈무리   ‘마왕’ 신해철과 이재명 대통령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을 잇는 상징은 곳곳에 존재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 신해철의 작업실이 있던 수내동에 ‘신해철 거리’를 조성했고, 대통령 임명식에서는 신해철의 노래 ‘그대에게’가 울려 퍼졌다. 2022년 대선 포스터 촬영 당시, 그는 신해철의 무대의상을 입고 촬영했다. 당시 사진작가 강영호는 “정치인에게 전혀 쓸데없어 보이는 예술적 제안을 기꺼이 수락한 그는 이미 있는 길뿐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보였다”라고 회상했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이 신해철을 떠올린 이유는 단순한 존경이 아닐 것이다. 예술로 세상을 바꾸려 한 음악가와, 정치로 세상을 바꾸려는 정치인의 마음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왕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할까?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추모를 통해서 그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 ‘그의 삶이 우리 앞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리라 믿는다.’    
2025-10-27 | hrights | 조회: 153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