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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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김성은 / 서울신문 기자 “네가 아무리 콜라겐을 처먹고 처바르고 용을 써도 내 자리는 어림도 없단다. 이 어리기만 한 X야.”  넷플릭스 시리즈 <더글로리>에서 기상캐스터 연진이 후배를 ‘참교육’시키겠다며 얼굴 정면에 대고 퍼부은 말이다. 연진 입장에서는 후배가 먼저 심기를 건드렸으니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사안이 어찌 됐든 사람 면전에 ‘폭언’을 퍼부었다는 점에서 그의 대응은 명백히 선을 넘었다. 이 장면이 드라마에 등장한 뒤 인터넷상에서 다시 화제가 된 걸 보면 현실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해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끌어냈다는 방증일게다.  최근 <더글로리>의 이 장면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직장 동료들로부터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사망한 MBC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사건 때문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2019년 7월 시행된 지 6년여가 흘렀지만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남아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른바 ‘고 오요안나법’이라고 이름 붙인 특별법안을 준비 중이며, ‘중대한’ 직장 내 괴롭힘의 경우 단 1회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처벌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5주년을 맞아 기획한 <빌런 오피스: 나는 오늘도 출근이 괴롭다> 관련 취재를 진행하면서 내린 결론은 법적 처벌 강화만으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실제 적용 사례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관련 기사 2만 894건을 살펴본 결과 법 적용의 한계와 모호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는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가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폭넓게 규정된 데서 비롯된다.  가장 큰 문제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는 점이다. 조사자에 따라 상당히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후배가 상사의 지시에 불만을 느끼더라도 그 지시가 업무상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적정범위 내에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상사가 일을 시키면서 욕설을 퍼붓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등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 지시가 업무 선상에서 정당했느냐의 여부를 두고 설전이 붙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법적인 모호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법안, 즉 ‘중대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경우 1회만으로도 처벌 가능하도록 하는 오요안나법은 현장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대체 어떤 기준으로, 누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중대성을 판단할 것인가? 신고자인 부하직원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사건이 가장 중대하겠지만, 상사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일로 치부할 수 있다. 결국 중대성을 두고 또다시 논란이 불거질 것이 자명하다.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다. 지난해 취재 과정에서 접한 한 제보 사례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법으로 인한 신고와 소송이 난무하면서 한 법인이 완전히 와해된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법인장의 심한 욕설과 부당한 사내 징계로 시작됐다. 이에 따라 한 직원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암 판정을 받은 뒤 패혈증으로 사망했고, 다른 직원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며, 또 다른 직원은 운전 중 법인장이 퍼붓는 폭언에 차량 전복 사고까지 당했다. 직원들이 법인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자 법인장도 이에 대항해 직원들을 끊임없이 징계하고 관련자까지 싸잡아 고소했다. 양측 모두 “법대로 하자”를 외쳤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직이 거의 붕괴하는 상황이 초래됐다. 법으로 맞붙는다 한들 괴롭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고 오요안나 사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 역시 회사에 직장 문화 개선 의지가 있느냐다. 물론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한 오 캐스터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적용받기 위해선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긴 하다. 그러나 직장에서 괴롭힘이 활개 칠 수 있었던 근본적 원인은 그런 행동을 묵인한 조직 문화다. 기상캐스터의 노동자성이라는 법적 쟁점이 직장 문화 개선이라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를 덮어버린다면 또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이 있겠나. 드라마 속 연진처럼 후배에게 폭언을 퍼붓더라도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고 심지어 당연하다는 듯 여긴다면, 괴롭힘이 반복될 여지가 크다.  논점은 더 흐려지는 분위기다. 어느새 기상캐스터의 고용 형태에 있어 정규직이 옳냐, 계약직이 옳냐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물론 계약직 문제 역시 필요하다면 다뤄져야겠지만, 고 오요안나 사건을 계기로 이렇듯 전방위적으로 문제가 제기되는 건 오히려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핵심적인 해결책을 집중 모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이번 사건을 기상캐스터뿐만 아니라 언론사를 비롯한 모든 직장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괴롭힘 가해자를 직장 내에서 몰아내거나 최소한 그들의 행동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괴롭힘 행위 자체를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인식하는 조직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사내 구성원들 사이에서 적어도 ‘괴롭힘 문화는 덜떨어지고 후지다’는 인식이 구축돼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임직원들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괴롭힘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강화하며,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이야말로 고인을 기리는 가장 의미 있는 마지막 배려가 되리라 본다.
2025-02-18 | hrights | 조회: 114 | 추천: 4
신종환 / 공무원 우리 집에는 어르신 강아지가 둘 있다. 13살 먹은 웰시코기 산들이랑 12살 먹은 닥스훈트 다루. 몇주 전 다루가 아팠다. 처음에는 숨을 잘 못 쉬어서 부모님이 자주 가는 동물병원에 갔더니 폐렴이라고 약을 주곤 호전이 안 되면 안락사라고 해서 다들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럭저럭 버티는 것 같다가 어느날에는 숨 넘어갈 것처럼 힘들어하며 어쩔 줄을 몰라해서 밤새 안고 인터넷과 ai에 가능한 원인을 찾아보고 아침 9시가 되자마자 다른 동물병원에 가서 산소방에 넣고 오후에 재방문했다. 아버지의 고등학교 제자인 의사 선생님은 다루의 폐렴이 심하지 않아 치료가능성이 있으며 산소방에서 나온 다루는 다시 멀쩡했다. 하지만 밤이 되자 또다시 원인은 모르지만 다시 숨쉬기 힘들어했다. 보낼 때는 보내더라도 이렇게 힘들게 하면 다루도 힘들고 우리 모두 지칠것 같아 야간에도 문을 여는 동물병원에 다루를 데려가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를 하고 산소방에 넣었다. 피검사 결과 아무런 염증이 없어 폐렴이 아니라는 걸 이 때 알았다. 원인을 모른 채로 둘 수는 없어 엄빠는 다루를 데리고 병원에서 추천한 서울의 큰 병원에 가서 ct를 제외한 거의 모든검사를 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다루는 산소방에만 넣으면 멀쩡하고 밥도 잘 먹으니 우리는 우선 집에 있거나 내 차에 있는 방향제가 문제일까 싶어 엄빠가 다루를 데리고 할매집에 갔다. 그 사이 나는 출근해서 급히 산소방을 주문하고, 며칠간 다루는 하루에 두어번 호흡이 힘들어질 때 즈음이면 잠시 산소방에 들어갔다 괜찮아져서 나왔다. 그 사이 나는 유해성분제거에 제일 효과적이라고 판단된 공기청정기 후보 두 개를 만지작 거리다 하나를 골라 집으로 배송시킨 후 집에 있는 아바이와 동생에게 부탁해 하루종일 풀로 돌리고 다음날 다루를 집에 데려왔다. 다행히 다루는 산소방 없이도 멀쩡했고 나는 기껏 멀쩡한 다루가 나한테 남은 방향제 때문에 아플까봐 보균자처럼 걱정하다 가자마자 샤워를 빡빡하고 다루를 만났는데 여전히 멀쩡했다. 지난 며칠이 힘들었는지 주로 잠만 자서 이제 쇠약해졌나 했는데 이제는 거의 완전히 돌아왔다. 평소에 비해 몇 배의 보살핌과 마음 씀을 필요로 하는 어르신의 곁에 있으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얘는 왜 이렇게 아파서 내일 출근해야 하는 나를 힘들게 하는지, 돈은 왜 이렇게 많이 드는지, 새벽에 숨을 못쉬어서 같이 잠에 들지 못할 때는 차라리 지금이라도 안락사를 시킬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그렇게 아픈 순간에도 나아지는 순간에도 우리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애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빠그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빠그라졌다 안도하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어느 순간 전보다 이 강아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걸 느꼈다. 성인만 있는 다른 가족으로 인해서는 이렇게 마음이 요동친 적이 없었다. 성인은 자기가 자기 첫힌을 할 수 있고, 안되면 말을 하면 되니까... 어떤 대상이 다른 대상에게 중요하게 되기까지는 서로의 세상에 고통스럽게 난입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겪게 됨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난입한 존재가 서로를 견디고 다시 밖으로 나가고, 그 과정이 바느질처럼 촘촘해지면 서로가 대체할 수 없는 서로의 무엇이 된다는 걸. 자식을 낳고 나이자 나 이상인 존재를 나와 강하게 연결하고 키워갈 때에는 아마 그 이전에 연인으로든 부부로든 맺어진 결속이 건강하고 많은 과정을 이전에 서로 견뎌온 만큼 원만하겠지. 나는 생에 다소 지쳤고 내 스스로의 가능성에 회의적이기에 그런 미래가 내게 오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에 알지 못하는 삶의 한 면을 다루를 잃지 않고도 알게 되어 기쁘다. 위기가 지나나고 이제 일상에 산재한 대립이라고 할지, 광기와의 싸움이라고 할지 모호한 현실을 생각하며, 다루와의 관계에서 사랑의 형성방식을 느낀 것과 같이 공동체에 대한 마음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이 필요로 하는 시간을 끝내 견뎌내었을 때, 스스로와 대상을 잊지 않은 이는 공동체를 더욱 사랑하게 될거라고. 터무니없는 행각을 벌인 이와 그리고 그를 당당히 옹호하며 정신 빠진 소리를 수도 한복판에서 소리치는 이들에 대해 왈가왈부 해야 한다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개탄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이 시간을 능동과 피동이 뒤섞여 언젠가 견뎌냈음 이라는 결과가 우리 안에 축적되었을 때 그 공통적 시간을 겪은 사람들도 이와 같이 그것을 민중이라고 부르든 우리나라라고 부르든 민주주의라고 부르든 공동체에 대한 입체적이고 깊은 사랑을 담지하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든다. 마주한 심연에 대해 말하는 이들은 늘 많으므로 나까지 거기 글을 얹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품고 있지만, 심연과 마주할 때 종종 왜 심연과 마주하기로 마음먹었는지를 잊고 싸우는 과정에서 변하곤 하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가 대미궁에서 죽은 이들로 나타내는 은유도 이와 같은 결일 것이다. 같은 뜻을 품었다는 넓은 의미에서의 우리는 형태와 크기는 차이나도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화나고, 고통받고, 좌절하고, 마음 졸이고, 고대하고, 환호하고를 반복하고 있다. 마음의 격랑에서 어쨌든 같은 자리에 서고 같은 방향으로 향하기로 매일 먹은 마음이 쌓이는 이 시간이 사랑의 시간임을 잊지 않는 것이 언젠가 올 건강한 공동체에게 필요한 기억의 양분일 것이다. 응보, 항의 투쟁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이는 불가피 하지만, 그 시발은 어디까지나 사랑이었고 지금도 이를 놓지 않았기에 함께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존재의 내어줌 만큼이 사랑이라면, 사랑의 잊은 만큼이 심연이 될테니까...
2025-02-12 | hrights | 조회: 83 | 추천: 9
김태형 / 프리랜서 방송작가 12.3 비상 계엄 54일 만에 불안감을 내려놓다 불안감에 속보를 찾아보며 지낸 날이 54일이었나 봅니다. 지난 1월 26일 저녁,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54일 만에 현직 대통령이 첫 구속 기소 됐다는 속보가 들려왔습니다. 얼마나 듣고 싶었던 소식일까? 내란 우두머리 혐의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부터 검찰의 구속 기소까지 하루도 불안하지 않은 날은 없었습니다. 비상 계엄날 밤, 급하게 소식을 접하고 스픽스 대표님과 예정에 없던 방송을 하면서도 암울한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가 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2, 3차 계엄 시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는 불안감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문을 걸어잠그고 관저에 숨어든 때에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속보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희망은 숨지 않는 시민의 목소리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의 질문이 많아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어떻게 될지? 여당에서는 이탈표가 나올지? 헌법재판소 재판관 추가임명은 어떻게 되는 건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는 질문들이었지만 그저 희망을 담아서 이야기할 뿐이었습니다. 방송 작가로 일하면서 매일 나오는 속보들을 챙겨 보고 전문가들의 예측을 들었지만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커다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봉쇄된 국회 담을 넘은 국회의원과 보좌진, 비상 계엄 소식을 듣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저는 이번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처음 느꼈습니다. 때로는 나 한사람의 목소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의 한 표가 어떤 영향을 줄까? 부끄럽지만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를 경험하면서 시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처음 알게 됐습니다. 탄핵 소추 결과가 어떻게 될지? 체포영장을 발부되는 것인지? 1차 체포 이후 2차에는 정말 체포가 될 것인지? 검찰은 구속 기소를 할 것인지? 한번이라도 어긋나면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가 돌아올 거라는 불안감이 컸지만 시민들의 집회를 보면서 희망을 가졌습니다. 이번에 체포가 안 돼도 이번에 구속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의 지치지 않는 곧은 목소리를 이길 어둠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침묵하지 않으렵니다 혼란스런 상황, 제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동료는 저에게 ‘엘리 위젤’의 한 인터뷰를 보내줬습니다. 엘리 위젤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소년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담은 소설을 냈고 인종차별과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면서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입니다. 엘리 위젤 “중립은 가해자만 도울 뿐입니다,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자 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나의 침묵과 나의 외면이 나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간다는 것을 왜 더 빨리 알지 못했을까요. 이제는 침묵하지 않으려 합니다.
2025-01-31 | hrights | 조회: 85 | 추천: 4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상상력에 권력을!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선거는 바보들의 함정이다.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열정을 해방하라! 사랑할수록 더 많이 혁명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느낌이 오는가? 68혁명 구호들은 다시 보아도 정말 멋지다. 가슴이 두근두근 설렌다. 1968년 전 세계는 혁명의 물결이 넘쳤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학생들의 시위와 노동자들의 파업은 독일, 이탈리아, 영국, 미국 등으로 확산하였고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투쟁이 벌어졌다. 미국의 학자 윌러스틴은 “이제껏 세계적 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실패로 끝났지만 둘 다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라고 68혁명을 평가했다. 영국의 정치운동가 크리스 하먼은 "68혁명은 세상을 완전히 뒤집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강력하게 뒤흔들었다. 그 충격파는 많은 사람들을 해방으로 이끌었으며, 세상이 완전히 바뀔 수 있고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68혁명을 왜 이야기할까? 우리 사회가 지금 겪는 비상계엄 내란, 민주주의 투쟁을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바로 68혁명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 사회 진보주의자들의 바람이 뒤섞였을까? 광화문 광장에서 한남동 대로에서 여의도 국회 앞에서 멋진 구호를 만들어 외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꿈틀대었다. 그걸 실행할 준비와 용기는 없었다. 윤석열 탄핵 너머, 정권 교체를 넘어 말장난 같지만 ‘너머’는 공간이고 ‘넘어’는 행위다. 공통점은 무언가 장벽, 경계에 맞서는 방향이다. 행위와 공간이 만나면 항쟁이 되고 역사가 만들어진다. 요즘에 여기저기서 많이 하는 말이 탄핵을 넘어, 정권 교체를 넘어 “사회 대개혁을 만들어가자”라는 주장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윤석열 탄핵운동을 하는 1549개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명칭이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일까? 명칭과 구호만 봐도 대충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챌 수 있다. 2016년 촛불 항쟁은 박근혜 탄핵에는 성공했지만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 윤석열 괴물 권력이 탄생했다는 평가가 따랐고 단체 명칭에 사회 대개혁을 두어 투쟁 방향과 목표를 분명히 했다. 시민들의 열망과 기대가 크지만 쉽지 않다. 강한 힘(권력)이 충돌하는 것을 우리는 매일 매일 목격하고 있다. 늙은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걱정과 잔소리 개인적인 이야기를 양념처럼 하나 해보겠다. 1943년생 나의 어머니는 잔소리라고는 여태 한 번도 안 하고 자식이 시민운동을 하던, 노동운동을 하던 그저 ”착한 아들, 정말 고마워“를 남발하는 칭찬 꾼이다. 이런 어머니가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에 연말부터 부쩍 전화하셔서는 잔소리를 하신다. “절대로 데모하는 그런데 가지 마라.” 어머니한테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했다. “안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뻔뻔스러운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따뜻한 외투와 양말을 챙겨입고 광화문, 한남동으로 향했다. 윤석열 탄핵 집회 현장이 얼마나 평화롭고 잔치 같은지 알 도리가 없는 어머니를 매일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계엄이고 내란범죄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안전하지만 평범한 국민은 계엄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폭력적인지를! 2030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많이 나오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세대들이 폭력에 대한 민감성, 감수성이 더 높은 것도 한 요인이지 않을까? 광장에 상상력과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넘치기를 사실 민주주의는 어려운 숙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도 반복되는 길. 그래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광장에는 상상력이 넘쳤으면 좋겠다. 그 상상력과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뜨겁게 어우러졌으면 좋겠다. 실패한 역사가 반복되기도 했지만 우리는 시민들의 저항과 노력으로 놀라운 민주주의를 만들어오기도 했다. 이승만을 끌어내렸고 박근혜를 끌어내렸고 윤석열을 또 끌어내릴 예정이다. 요즘에 읽고 있는 책이 ’헌법의 상상력(심용환 지음)‘이다. 밑줄이 여러 군데 있고 내 글씨로 된 메모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몇 년 전에 읽은 것은 분명한데 내용이 기억이 안 난다. 다만 2016년 촛불혁명 이후 그 책을 읽으면서 내용이 좋고 많은 공감을 했던 것은 어렴풋이 생각난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에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과 결의가 매우 높은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여의도에서 남태령에서 한남동에서 희망의 증거를 보았고 만들어가고 있다. 비상계엄을 ’실수‘인 양 표현하고 관저에 꼭꼭 숨어있던 ’손바닥에 왕을 새겼던 작자’를 구속하는 것까지 성사시켰다. 안되는 것을 걱정하는 것도 좋지만 그걸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멈추지 말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성찰하는 한마디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50대 중반의 꼰대 급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일상의 인권 감수성, 민주주의 습관이 내 안에 부족함을 깨닫는 날들이다.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는 우리가 되지 말자. 나부터 내 안의 파시즘을 돌아보고 바꿔보려 한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 헌재 앞에서 만나요!
2025-01-21 | hrights | 조회: 222 | 추천: 7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우리 동네 구산동에서 맞이 하는 네 번째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은평구 마을 사람으로 4년넘어 새해를 맞았다. 그 동안 우리 동네에는 은평구립의 장애인 복지관이 새로 생겨서 장애인복지관이 두 개나 있는 마을이 되었고, 지자체로는 드물게 은평구 인권백서가 처음으로 발간되었으며, 최근에는 6호선 구산역 개통 24년 만에 교통약자를 위한 엘리베이터 1역 1동선 확보하는 승강기가 개통(24년12월27일, 운행 12월31일)되어 휠체어 이용 시민의 접근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2023년에는 인권재단 ‘사람’이 인권센터를 새로 세우고 같은 마을에 자리 잡았다.  우리 지역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보다 더 존재감이 있던 은평구인권센터는 기초 지자체 중 인권센터 조례를 강제하고 인력 예산을 정기적으로 집행하는 몇 안되는 곳이었다. 공간에 들어서면 감격스런 공공성과 장애인 및 소수자를 환대하던 은평혁신파크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은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 기업에게 적대적으로 매각될 황야의 위기에 놓여 있다. 지속 가능한 공동체 공간을 꿈꾸었던 구산동 도서관 마을은 아직도 그 희망의 전등을 함부로 끄지 않고 있지만, 각종 지하철과 아파트의 재개발 등은 끈끈한 풀뿌리 운동의 핵심이었던 은평의 수많은 민관 협력의 네트워크를 단절시키고 단종시킬 위협을 가중시키고 있다. 장애인 인권에서도 그 동안 활발하게 참여하고 의견을 경청했던 많은 공무원들이 조직의 구조조정과 예산 부족을 핑계로 잘 해오던 정기적인 회의나 논의들도 취소하거나 내년으로 미루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전경 분명 작년 12월 3일 불법적인 계엄령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그러했다. 12.3 윤석열 내란 사건에 충암고가 아무런 죄 없이 혐오 공격에 시달리고 있을 때, 우리나라 최초의 야간자율학습 실시로 악명 높았던 예일여고 학교 당국이 시국 선언한 학생에게 퇴학 운운할 때에도 독립성을 보장한다던 은평구청장과 같은 층을 쓰고 있는 은평구인권센터의 오랜 침묵은 의아하고 슬펐다.  5.18 당시 가장 먼저 희생당했던 농아인 시민처럼, 또다시 우리의 의사소통이 짓밟힐 두려움에 그 날은 날 새는 게 무섭기만 했다. 겨우 집 밖을 나서며 지역 사회 활동을 시작하는 발달 장애인들이 또다시 계엄군들에게 가택 연금이라도 당할까 봐 동트는게 두려웠으며 겨우겨우 집 밖으로 이동을 허락 받았던 교통약자 장애인들이 통행 금지와 같은 포고령 때문에 또다시 외딴 섬 시설로 끌려가 유폐될까봐 숨죽였었다. 국방부도 보건복지부도 그 어느 곳도 매일 같이 학교를 오고 병원을 가야하는 우리와 같은 장애인을 고려한 계엄과 관련한 지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실제 전쟁이나 사변이 일어나 정말 국가적인 계엄이 떨어졌을 때 과연 우리 장애인들은 안전할 수 있을까?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동네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들의 행동이 있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이 추운 탄핵 시국에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따근따근한 손난로 같았다. 민주주의를 돋세우고 반파시즘과 탈권위주의를 불사지르는 작은 인권 불씨가 되었다. 비록 탄핵 표결 이후 국회도, 시의회도 모든 것이 멈추었고 모든 것이 굳어 버린 듯 하지만 우리는 보았다. 남태령 고개에서 그동안 그 존재를 부정당하고 배척당했던 많은 소수자들의 자유 발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연대하는지를 보았다. 우리 칡고개 갈현동에도, 구릉 많은 박석고개에도, 서오릉 못미쳐 벌고개에도 그이들이 있었다. 그녀들이 있을 것이다. 권력에 온갖 악행으로 우리의 기본권과 우리의 목소리를 틀어 막으며 우리 존재를 지우고 외면하는 무리에 맞서는 응원봉처럼 그들이 있었다. 행진하는 내내 본인의 의자를 내어주고 집회하는 내내 목발 가는 눈 앞을 가릴까봐 휘휘 앞길을 터주는 그들이 있었다. 목발 잡은 손으로 응원봉을 들 수 없으니 본인 스스로 내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빛나는 반딧불이처럼 아침 노을 여명이 다가올 때까지 우리의 응원봉이 되어 주었다. 당신들 덕분에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리. 우리의 사랑과 평화가 목발처럼 세워질 것이다.  그래도 광장에 당신들이 그대들이, 비록 몸은 광장에 나설 수 없는 우리들도 당신들의 따뜻한 은박지 같이 뜨겁게 연대하고 함께하고 참여하고 곁에서 새하얗게 새벽까지 함박눈에 맞고 싶다는 것을 알아주길. 할 수 있는 것은 입으로 눈빛으로 조금이나마 키보드 마우스를 움직여 조금이나마 투쟁 후원금을 보내거나 현장 생중계에 조회수를 늘리는 것 뿐이지만 기흉에 누운 침상에서 불끈 쥔 주먹만큼은 그들과 같을지니. 우리의 광장은 내가 있는 방 한칸, 내가 앉은 휠체어 하나, 내가 누운 침대 하나 밖에 없지만 민주주의 만세를 타는 목마름으로 동트는 새벽까지 조용히 읊조릴 것이다.
2025-01-09 | hrights | 조회: 61 | 추천: 2
정한별 / 사회복지사 “기후위기,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 정말 진부한 표현이지만,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기후 위기는 정말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기후위기와 장애인차별 2022년,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주택에서 발달장애인 일가족 3명이 폭우로 고립돼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폭우로 반지하 집에 물이 차올랐고, 문을 열고 집밖으로 대피하고자 했지만 신속하게 탈출하지 못했다. 결국 가족은 모두 익사했다. 반지하에 살고 있던 다른 비장애 거주인들은 모두 대피했지만, 이 가족들만은 신속하게 대피하는 일이 어려웠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안전했을까? 폭우가 내려 도로가 약간만 침수돼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장애인은 이동이 불가능하다. 수동휠체어를 이용해 이동하는 일 역시 어렵다. 목발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럼 이동에 어려움이 없는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기후위기로 자연재해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부분은 재난과 관련한 정보에 접근하는 일이다.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은 이 부분에서 충분히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재해 수준의 폭우는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폭우로 인한 어려움은 비장애인도 마찬가지 아니냐! 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 청각장애인은 10년 넘게 보청기를 사용했는데, 이번 여름에 처음으로 갑자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 보청기 고장을 겪었다고 한다. 습한 날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습기에 예민한 보청기가 고장이 난 것이다. 이렇게 고장 난 보청기를 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일상생활에 지장이 컸다. 폭염은 어떨까? 휠체어나 침대에서 오랜 생활을 하는 장애인의 경우, 피부염증 질환에 매우 취약하다. 심각한 경우, 욕창에 시달리기도 한다. 폭염이 길어지고 열대야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요즘, 피부염증 질환은 장애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그림: “I need to breathe(숨을 쉬어야 해)”: 탄 쿠안 아와(Tan Kuan Aw)의 자화상 ⓒ www.disabilitydebrief.org 재난과 장애인차별 우리나라 화재 사고에서 장애인의 사망 비율은 비장애인의 약 5배인 57.4%라고 한다. 유엔환경계획(2023)도 기후변화로 인해 화재의 빈도가 증가되고 대형화되고 있다고 발표했으며, 우리나라의 올해 상반기(1~6월) 간 자연재해로 인한 화재 빈도가 전년 대비 63% 증가되기도 했다는 뉴스가 있기도 했다. 잦은 자연재해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 특히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연재해에 취약한 원인이 개인의 장애 때문인 것인가?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안전대책 수립 때문인 것인가? 2016년 경주와 2017년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인근에 대피소가 설치되었으나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이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흔히 이용하고 있는 건물들만 생각해 봐도 재난 대책에 장애가 고려되지 않는 현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화재로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을 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어떻게 화재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완강기를 이용해 탈출하는 일이 가능할까? 완강기를 이용해서 탈출하는 일은 비장애인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은 화재 시 충분히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을까? 이 역시 쉽게 장담할 수 없다. 화재 시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비상경보장치가 충분히 설치된 시설을 찾아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최신의 공공건축물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까. 기후위기의 대안과 장애인차별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지구의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 고민들과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에너지를 사용하는 일 등 일상 속에서의 다양한 실천들이 제안되고 실제로 지켜지기도 한다. 그런데 환경을 생각하는 다양한 대책들이 때로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를 에코에이블리즘(친환경 장애차별주의)라고 한다. 환경을 고려하여 빨대 사용을 자제하자는 캠페인이 있다. 이는 빨대 없이는 물이나 음료를 마실 수 없는 장애인을 배제시킨다. 플라스틱 빨대쓰기 금지 정책은 손에 강직이 있는 뇌병변장애인, 손의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지체장애인, 소근육 발달에 어려움이 있는 다양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부러지지 않는 종이 빨대, 쉽게 눅눅해지는 종이 빨대만을 사용하게 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장애인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탄소세 등 자가용 이용에 대한 비용을 증가시키고, 대중교통 이용을 강화하는 정책 역시, 대중교통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환경을 고려하면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친환경저상버스가 도입되고 있는 부분은 환영할만하나, 이 역시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23년 2월 기준, 경기도 31개 시군 중 3개 시군은 심지어 저상버스 노선도 없다. 내연기관을 대신해 친환경에너지라 불리는 전기자동차도 장애를 포용하고 있지 못하다. 대개의 전기자동차 충전구역은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등 다소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는 충전설비를 스스로 이용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제한적인 공간이다. 보통의 주유소는 인적서비스를 제공해 스스로 주유를 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도 차량에 주유를 하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전기자동차 충전구역은 인적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비약을 조금 붙여서 생각해 본다면, 환경을 생각한 일회용품 사용 제한도 의도치 않게 장애인의 일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일회용품(종이컵 등) 생산 시설 중 중증장애인이 물품을 생산하는 시설들이 있는데 특히 이들 시설의 생산품은 공공기관 우선구매대상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기관 등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일환으로 종이컵 사용을 하지 않다 보니 일회용품을 생산하는 중증장애인 고용 사업체는 매출에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이는 장애인의 고용상황에 악영향을 끼친다. 물론 이는 사업체 운영진의 사업 다각화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재난 대응 시 장애포용적 접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부터 직업과 소득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와 재난은 장애인에게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정책은 장애인을 고려한 접근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기후위기 및 재난 대응을 위한 논의 테이블에 장애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정책이 장애인의 삶과 권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고려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2025-01-02 | hrights | 조회: 90 | 추천: 4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사무국장 “(인신매매)브로커들은 우리를 시트웨(방글라데시 도시명)에서 배에 태우고는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브로커와 선원이 타지 않고 우리만 탄 상태에서, 선원들은 배를 바다로 차버렸고 우리가 탄 배는 8일 동안 음식과 물 없이 바다를 떠다녔어요. 그곳에서 구호를 받을 방법은 전혀 없었고 배는 물속으로 가라앉았어요.” 로힝야 인신매매 피해생존자 S.R씨 증언 중 “(그는) ‘만약 나랑 결혼하지 않으면, 가장 먼저 너를 죽이고 그 다음으로 너의 언니네 식구들을 죽이고, 너의 가족 모두를 파괴할 것이다’라고 했어요.” 무장세력과 강제결혼하게 된 로힝야 여성 A.M씨 증언 중 “저는 배에서 3번 의식을 잃고 토했어요. 그들(인신매매범)은 제가 기절해 있을 때 저를 바다에 던져버리려고 했어요. 그때 제 친구 중 한명이 제가 그저 의식을 잃었을 뿐이라고 말해줬어요. 그들은 저희에게 음식과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았어요. 저희는 썩은 밥을 받았고 음식 없이 보내야 했던 날도 많았어요. 그 배에서 저만 성폭행 당한 건 아니에요. 그 배에는 젊은 여성들이 많았고, 인신매매범들은 원할 때마다 타고 있던 여성들을 성폭행했어요.” 로힝야 인신매매 피해생존자 H.B씨 증언 중 사진 1. 아디 로힝야 여성과 여아의 인신매매 실태보고서 표지 사진 세상은 로힝야 사람들을 세계에서 가장 박해 받는 집단이라고 한다. 100만 명의 로힝야 난민은 미얀마 군부의 집단학살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모였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서의 삶도 절망적이다. 이들은 캠프에서 합법적으로 노동할 수 없고, 교육권과 이동의 자유는 제한됐다. 국제사회의 구호물품이 없으면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캠프 내 무장세력은 활개치고 여성들을 납치했다. 치안을 책임지는 방글라데시 경찰은 부패하거나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특히 여성들에게 결혼과 육아가 의무라고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 거액의 결혼 지참금은 신부가족의 몫이었다. 이러한 빈곤과 실업, 폭력과 부당한 결혼 문화로 인해 많은 로힝야 난민들은 또 한 번의 이주를 계획할 수밖에 없고, 인신매매 조직에게 로힝야 여성과 여아는 쉬운 표적이었다. 아디는 ‘로힝야인권센터 RHRC’와 함께 ‘로힝야 여성과 여아 인신매매 실태보고서 <죽음과 착취의 여정에 내몰리는 로힝야 여성들>’ 지난 12월 23일 발간했다. 3개월간의 문헌조사, 779건의 설문조사, 그리고 18명의 피해생존자와 1명의 인신매매 가해자와의 현장 심층인터뷰를 수행했다. 마지막 2개월은 집필에 전념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너무도 처절했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혹했다. 보고서는 18명의 인신매매 피해생존여성과 여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담고 있다. 인신매매 과정에서 폭행과 구타, 욕설, 협박, 강제노동, 강간 및 성폭행, 살해 위협은 계속 이어졌고 짧게는 수십일 길게는 수개월 동안 이어진 여정 속에서 그녀들은 숲을 헤치고 산을 넘고 국경을 건넜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배에 올라 배고픔과 목마름, 동료의 죽음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중간에 해당 국가의 주민이나 경찰에 잡혀 수개월 이상 구금시설에 갇혀있기도 했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계속되는 협박과 몸값요구, 강간과 성폭행, 강제결혼을 당해야 했다. 그녀들은 모두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이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시급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인신매매범들은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해요. 그들은 소녀들을 착취하고 캠프에서 소녀들을 납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은 돈을 벌 남자 형제도 없고 아버지도 편찮으시기 때문에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매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시민단체(NGO)는 자수 작업, 손바느질, 마스크 만들기로 수입을 창출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거에요” 인신매매 해결방안에 대한 로힝야 인신매매 피해 생존여성 S.R씨 답변 * 해당 보고서는 아디 홈페이지 www.adians.net 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2024-12-26 | hrights | 조회: 95 | 추천: 5
김성은 / 서울신문 기자 1950년대 중국에서는 참새, 모기, 파리, 들쥐 등 4가지 해로운 동물을 제거하는 제사해운동(除四害運動)이 펼쳐졌다. 이 정책은 마오쩌둥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그는 어느 날 참새를 보더니 “저 새는 해로운 새”라고 지적했다. 참새가 곡식 낱알을 먹으면서 인민들에게서 노동의 결실을 도둑질한다는 단순한 이유를 댔다. 이후 중국 전역에서 인민이 동원돼 ‘참새 때려잡기’가 시작됐다. 결과는 참혹했다. 마오쩌둥의 의도대로 참새는 사라졌지만 2년이 흐른 뒤 중국 공산당은 참새가 곡식만 먹는 게 아니라 해충도 잡아먹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새가 사라져 생태계가 교란되자 메뚜기 떼가 중국 전역을 뒤덮었다. 쌀 생산량이 급락했고 대기근이 촉발돼 수천만 명의 인민이 굶어 죽었다. 지난 3년여간 윤석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을 돌이켜보면 영락없이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대통령의 단순하고 즉흥적인 발언이 정책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혼란이 야기되는 일이 빈번했다. 5살 조기 입학 논란, 연장근로시간 한도 변경, 수능 난이도 조정, 의대 정원 증원, 공매도 금지 연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022년 5살 조기 입학 논란은 윤 대통령이 교육부 업무보고를 받은 뒤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하면서 시작됐다. 곧 교육계와 학부모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같은 해 6월, 고용노동부가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월 단위로 바꾸는 방안을 발표했는데, 하루 만에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뒤집는 일도 있었다. 2023년에는 윤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언급한 뒤, 현장에서 ‘물수능’ 논란이 벌어졌다.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은 경질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감사 대상이 됐다. 같은 해 말, 윤석열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의사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전 정부들의 의대 정원 증원 시도가 번번이 실패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 정부는 이렇다 할 근거 없이 훨씬 더 큰 규모의 증원을 발표해 혼란이 가중됐다. 2024년 1월 4일, 윤 대통령은 새해 첫 업무보고에서 “공매도는 부작용을 완벽하게 해소할 수 있는 전자 시스템이 확실하게 구축될 때까지 계속 금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애초 금융당국이 밝힌 한시적 금지 방침과 달랐다. 또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방침을 언급하며 정책 혼선을 야기했다. 즉흥적인 정책 결정과 번복의 연속은 마침내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정점을 찍었다. 윤 대통령은 야권의 정치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극단적인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이를 수긍하는 국민들은 적었다. 물론 독재 체제하에서 정책을 시행한 마오쩌둥과 윤 대통령의 정치적 환경이 같진 않지만, 적어도 독선적이고 즉흥적인 결정으로 국민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는 점에선 두 지도자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압도적인 군사력을 토대로 대중을 대규모 동원해 정책을 추진한 마오쩌둥의 강력한 리더십을 윤 대통령이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사라졌다고 해서 국민들의 고통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윤 정부의 후과는 오롯이 우리 국민들이 떠안게 됐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윤 대통령 재임 동안 한국이 규제 개혁과 산업 혁신에서 한층 뒤처졌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규제 혁신 정책 방향은 긍정적으로 평가됐지만 실제 개선 속도가 느리고 체감 효과가 낮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신산업 규제와 여러 부처에 걸친 복잡한 규제들이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국들이 빠르게 제도를 정비하는 동안, 한국은 복잡한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서 관련 법안과 규제 마련이 복잡하고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신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상화폐 관련 제도 정비도 지연돼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을 가상화폐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천명하며 가상자산 산업 규제 철폐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투자자 보호와 시장 활성화를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에 늦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모든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무감각하진 않은지 우려스럽다. 글로벌 트렌드에 어둡고, 심지어 패스트팔로워 전략마저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굼뜬 행보를 보인다. 정치적 혼란을 핑계로 모든 것을 제쳐두고 쉬운 해결책만을 찾는 안일한 태도도 문제다. 윤 대통령 재임 기간 ‘참새 때려잡기’ 식 정책으로 혼란이 커졌다면 현재의 탄핵 정국에선 정치권에서 난무하는 정쟁이 모든 중요한 사회·경제적 의제를 집어삼키고 있다. 이미 윤 정부 3년 동안 우리는 규제 철폐와 개혁에서 뒤처지며 경제를 일으킬 골든타임을 상당 부분 놓치지 않았나. 마오쩌둥의 사망이 중국에 과거의 실패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기회를 제공했듯, 우리도 윤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경제와 사회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철저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은 축제를 벌일 때가 아니다.
2024-12-18 | hrights | 조회: 539 | 추천: 8
신종환/공무원 언제나처럼 인권연대 글 마감일이 다가오면서 마음속으로 ‘글감이 생기게 해주시고, 습한 화장실에 자고 일어나면 끼는 곰팡이처럼 눈 뜨면 탁해지는 자아를 성찰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고 바라고 있던 차에 단톡방에 누군가 ‘계엄령 선포’라길래 무슨 시시껄렁한 농담인가 하며 주안상을 마저 차리고 TV를 켰는데,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었다. 소설 원숭이 손에서 소원을 빈 주인공의 심정이 이랬을까. 너무 충격적인 일을 맞으면 놀란다는 감정도 들지 않고, 어찌할 바도 몰라 연극을 하듯이 으레 그래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삐걱삐걱 움직여 어색하고 어정쩡한 큰소리로 가족들을 불렀다. 미국 영화를 보면 종종 등장인물들이 진정하려고 양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며 ‘저게 뭐하는 건가’ 싶었는데 우리 가족들이 그러고 있었다. 상황은 우리가 반응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 있어서 우리는 흥분하려는 건지 진정하려는 건지, 애매한 상태로 빠르게 잔을 비우며 뉴스를 봤다. 자정즈음 국회를 비추는 화면에 잡히는 군인들을 보고 망치에 맞은 부위가 0.2초 정도 후에 통증을 인식하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계엄이구나!’하는 실감과 충격이 나를 둘러쌓았다. 그런데 40분이 지났을까 국회 본회의가 개의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1시즈음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이게 말이 되나’라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같은 생각으로 끝난 몇 시간. 출근하고 나니 직장 사람들은 놀람을 토로했고 업무상 만난 아재들은 계엄을 농담 삼아 민주당만 좋게 되었다며 애매모호한 감정을 섞어 웃음을 돌렸다. 계엄은 너무 두드러지고 커서 빼둘 수는 없고 어딘가에 끼워넣기는 해야하는데 어디에도 맞지 않는 퍼즐 같았다. 목요일에 지부장은 사내 메신저로 3차 범국민 대회를 다같이 출발하니 참석할 사람은 알려달라는 쪽지를 돌렸다. 나는 사무국장이라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자리를 권유받던 차라 지부장을 비롯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부담스러워 혼자 집회에 참석하려다가 만에 하나 내 또래의 조합원이 그 사이에 끼면 처음 맞이할 집회 현장이 당황스러우리라는 생각에 참석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역시 아무도 가지 않을 거라고 되뇌이고는 평소에 친분 있는 조합원들이 있는 단톡방에서 토요일에 서울 갈 의향이 있는 이가 있는지 물었고 친한 동생은 자기는 성수동 팝업스토어에 가며 굳이 이 방에 집회가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라는 이모콘티로 답했더니 다소 뻘쭘했는지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어쩌구하는 소리를 주워섬겼다. 응원이라니? 내가 어디 프로야구팀을 응원하러 가나? 당신은 타국 사람인데 잠시 휴양을 왔단 말인가? 윤석열과 그 일당들이 개소리하는 건 사실 화가 나지만 그들에게는 일말의 기대가 없기에 배신감이나 슬픈 마음이 들 까닭은 없지만 평소에 온갖 자리에서 나와 민주주의가 어쩌니 시대가 어쩌니 하는 얘기를 나누다가 동참을 권유하는 내게 사람들은 가지 않을거란 걸 가르치려는 걸 보며 마음 한구석이 빠그라지면서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빠그라지며 고통스러워하는 나와 그런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겹치면서 나름대로 팽팽히 유지한다고 생각했던 이성적 비관을 놓고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낙관에 몸을 기대고 있었음을 알았다. 토요일 집회는 어느 정도 규모인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광화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도로 앞뒤로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모여있고 통신이 잘되지 않는 상황에 미루어 수십만이 모였으리라 짐작만 할 뿐. 마침 우리 앞에 있는 공무원 노조 서울시 본부 깃발 아래에선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모여있었다. 나랑 같이 노조 할 사람은 없는 처지가 부각되어서 부럽고 앞날을 생각하니 우울했다. 시간은 지나 국회가 개의하고 멀리서 김건희 특검 투표가 부결되었다는 소리가 들리고 국민의 힘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나가는 풍경이 멀리 스크린에서 보였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열패감보다는 분노에 휩싸여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들 돌아오는 주에 두고보자는 마음이었으리라 짐작한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너울성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마음 속을 내내 들여다보았다. 다른 대오에는 젊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하는 마음과 내 주변사람들이 온·오프라인으로 하는 농담들을 나는 대문짝만하게 확대해서 보고 또 보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내가 알던 사람들에서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나도 모르게 공무원을 하며 날카롭게 벼려야 하는 비관을 농담과 같이 엮어 이불처럼 덮고 현실을 피하고 싶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공통성이 많이 줄어들어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십대 중반 즈음의 내가 비록 모순을 안고 있었지만 말의 무게를 감당하고자 했던 것도 아프게 다가왔다. 퇴직을 앞둔 노조 선배들은 예전부터 그런 마음으로 앞에 서 있었으리라는 생각과 내가 읽고 늘 주워 섬긴 많은 사람들, 유배지에서 다리가 절단되고 사랑하는 부인도 없지만 굳건히 글을 쓴 바흐찐부터 엄혹한 나날에도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당겨와 피워낸 루쉰 등을 인용하며 젠 체 할 때는 좋았지만 이제 그 말의 무게를 약간씩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잦아들지 않는 파도에 한참 마음을 담그고 있자 드러났다. 집회의 현장에서 처음 마주한 형형색색으로 반짝이는 응원봉들과 그 새로운 몸짓들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고양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기 안의 맥동에 이름을 붙이지 못해 방황하고 받아들이고 이름붙이기를 꺼리겠지. 그렇게 내가 믿고 방향과 형태를 갖추지 못한 마음들을 바라보고 불러주어야 그들이 형태를 갖출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올라갈 것임을 잊지 말고 그런 이가 있을 거라 늘 물 때 끼는 세면대처럼 탁해지는 마음을 닦아가며 서 있어야 하는 게 원치 않지만 해야하는 내 일이라는 걸 느낀다. 그리고 그 일은 생각보다 쉽지도 않지만 생각만큼 어렵지도 않겠지. 변방에 있으며 좋은 점은 스펙타클이 적어서 왕도란 쉽게 오지 않거나 허위인 경우가 많음을 잊지 않고 목적지보다는 출발지를 상기하기 좋다는 거니까. 단박에 나라의 주인 노릇할 마음의 준비를 마친 수십만의 사람들이 자아내는 모습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나까지 말을 보탤 필요는 없다. 그런 글은 훌륭한 사람들이 더 의미 있게 쓸 것이고 읽는 사람들은 이미 주인의식이 새겨져 있어 읽을 필요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기에 나의 마음과 글은 언제나 이도저도 아닌 이들과 나를 상정하고 있다. 마음이 더러워지면 그러려니하고 또 닦고 청소하고 새겨야지 하며 속초시에 있는 많은 조합원들의 마음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사금 같은 마음이 있으리라 믿고 목적지보다는 출발지를 잊지 말자고 예전에 내가 출발했던 것 같은 마음자리에서 다시 새긴다.
2024-12-11 | hrights | 조회: 115 | 추천: 5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 경희대학교 교수, 연구자들의 시국선언이 눈길을 확 끌었다. 많은 분량이지만 옮겨본다.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듣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의 안녕을 예전처럼 즐거움과 기대를 섞어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안타까운 젊은 청년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부조리와 아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군휴학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학생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지 못한다. 나는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졸업생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번쩍 들려 끌려나가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우리의 강의실이 어떠한 완력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 자유와 비판적 토론의 장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중략) 나는 하루하루 인간성을 상실한 절망을 보고 있고, 나 역시 그 절망을 닮아간다. 어느 시인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의 앞자락에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리라는 미약한 소망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두었다.(중략)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말과 현실을 발명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 2024.11.13. 경희대학교 ·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 이 시국선언문을 읽는데 가슴이 갑자기 뜨거워지고 깊은 울림이 머릿속을 채웠다. 놀랄 만치 잘 쓴 글이어서이기도 하지만 길지 않은 시국선언문에 절망과 분노를 비롯하여 시민들이 바라는 새로운 길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도 정확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제공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이 각종 언론에 보도되고 소통 방에 회자되는 이유는 교수라는 직업이 갖는 특성이 반영되어서 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연구자, 교육자, 지식인 집단이어서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영향력이 크다. 특히, 사회의 문제에 대한 비판, 불의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은 때론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경희대 교수, 연구자들의 시국선언문을 읽다가 이태원 참사와 채상병의 죽음을 언급하는 장면에서는 제자를 넘어선 보편적 인류애와 깊고 어두운 성찰이 느껴져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경희대 교수의 시국선언문은 나의 시국선언문으로 각인되었고 습관처럼 여기저기 퍼 나르는 실천의 무기가 되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2024-11-19 | hrights | 조회: 224 | 추천: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