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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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길주희(인권연대 간사),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라영(문화평론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길주희/ 인권연대 간사   교정기관 내부에서 무언가 기록하는 건 많은 제약이 따른다. 실무자로서 ‘교정기관 수용자를 위한 평화인문학(이하 평화인문학)’을 진행하기 위해 들어갈 때도 휴대전화를 포함한 전자기기-스마트 워치는 물론이고 이어폰까지-는 반드시 기관에 제출했다가 나갈 때 찾아야 한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온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녹음도 물론이다. 당연히 교정기관의 철저한 관리 방식은 존중하나 오로지 글로 남기는 기록뿐이니 한계가 있다. 그래도 교정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강의 사진 한두 장 정도는 남길 수 있다. 교정기관 담당자가 찍어서 전달하는 저화질이지만, 얻어내기 힘든 기록물이기에 더욱 값지다. 이렇게 어렵게 기록을 남겨도 그 기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크지 않다. ‘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교육을 알리고, 대중의 공감을 얻어내는 일은 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정기관에서의 경험을 공유하여, 인문학 교육이 당사자인 수용자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알리고자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더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어, 더 방대한 수용자 교육 프로그램을 이뤄내고자 한다. 단순히 소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년, 후년 그리고 10년 뒤까지 더 확장하여 자리 잡도록 구체적인 계획을 그려내고 있다. 인권연대에서 2007년에 처음 시작한 수용자 대상 인문학 교육은 2025년 현재 다른 단체나 대학 등으로 확산·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평화인문학이 그러하듯 아직은 전국 55개 교정기관 중 일부 기관에서, 선별된 소수의 인원만이, 일정 기간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예전에는 그래도 여성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아주 일부는 있었는데, 2025년에는 그마저 이뤄내지 못했다. 올해는 남녀의 비율이 14~15:1 정도로 남성 수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교도소·구치소에서만 진행하게 되어, 여성 수용자들을 선별한 클래스를 꾸릴 수 없었다고 한다. 평화인문학을 하다 보면 실무적으로는 늘 아쉬움이 남지만, 올해가 조금 더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분명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 십여 년 동안 평화인문학 과정을 마칠 때마다 수강생(수용자)들을 대상으로 무기명 설문 조사를 진행했더니 이제는 양이 제법 된다. 인문학이기에 답변은 주관식이 많은데, 올해 답변 일부는 인권연대의 월간 소식지를 통해 소개했으니, 이번에는 별도로 다루지 않는다.  *참고 https://hrights.or.kr/play/?uid=596548&mod=document&pageid=1 수강생들의 답변을 살펴보다 보면 반복되는 패턴이 나온다. 대개는 ‘기존에 배우지 못했던, 혹은 관심이 전혀 없던 인문학과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와 타인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달라지겠다’ ‘범죄를 저지른 과거를 반성하며,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달라지겠다’라는 내용이다. 심지어 강의가 끝나고 강의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얻어낸 긍정적인 생각을 공유해 주기도 했다. 수강생들이 촉박한 시간 안에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려 애쓰며 쓴 문장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말 그대로 인문학의 ‘쓸모’를 찾을 수 있다.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오창익 사무국장 강의에 집중한 구치소 수강생들   그런데 이 ‘변하기’를 넘어서는, 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고등 교육이 교정기관 안에서 이뤄질 순 없을까. 실제로 전문성을 쌓고,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고등 교육, ‘회개’나 ‘참회’와 직접 닿아있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합류할 수 있는 지식 습득의 장. 이런 교육 기관이 교도소나 구치소 안에 생겨난다면 어떨까. 종교 사업이나 고등 직업교육, 저소득층과 노숙자 등을 위한 교육 등 다른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일부가 아닌, 오로지 교정기관 수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독자적인 기관 말이다. 물론 이에 대한 다양한 반대 의견과 걱정, 비난이 따를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일리 있는 생각이므로 이 의견 역시 통합하여 잘 다듬어진 교육 기관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에는 없는 새로운 교육 모델로 평화인문학이 ‘진화’하기 위해, 또 예측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먼저 교도소 대학을 설립한 타국의 경험을 살펴보고자 했다. 원론적인 이야기보다는 현장 경험을 우선했더니 『교도소 대학-가장 낮은 곳에서 교양은 사람을 어떻게 높이는가-(이하 『교도소 대학』)』(대니얼 카포위츠 지음, 장상미 역, 유유, 2023.)이라는 책을 찾을 수 있었다. 『교도소 대학』은 뉴욕에서 바드교도소사업단이 처음 시도하고 가장 널리 보급한 교도소 대학 설립 작업을 두루 돌아본 기록이다. 저자 대니얼 카포위츠는 무려 20여 년을 교도소 대학 설립과 교육에 몰두했고, 그곳에서 교수로 일하며 많은 졸업생을 배출해 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검정고시로 자격을 갖춘 수용자 중 논술형 테스트와 면접을 통해 입학하고, 교수에게 배워서 졸업한 사람만이 학위를 얻는 진정한 고등 교육 기관이었다. 저자는 “교도소 안에서 대학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비용이 크게 들지 않고 국가 재정에 미치는 유익은 크다”라고 서술한다. 교도소에서 대학에 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출소하고, 다시 교도소로 돌아오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를 적절한 데이터와 미국의 정책 변화를 함께 제시하며 “수감 중 대학에 다닌 사람이 재입소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재범률 저감과 대학의 관련성이 꾸준히 확인되었기 때문에, 고등 교육은 미국에서 적정 비용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교정 ‘사업’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라고 한다. 교도소 대학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선택된 사례를 보여주면, 왜 ‘악한’ 사람들을 교육하느냐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답변이 되리라 생각한다. 곱지 않은 시선을 경제적 효과로 설득해 내더라도 이번엔 실무적인 문제가 곳곳에 산적해 있다. 이 역시 지난하게, 그러나 꼼꼼하게 고민하고 협의해야 할 숙제다. 다만 먼저 생각해 볼 것은 경제력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의 의식과 교육 수준 모두 이만큼의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에서 단순히 ‘벌주는’ 시설을 탈피하고, 현실적으로 재사회화를 도울 기관을 설립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지점이다. 혐오시설로 분리되는 교정기관 안에, 보고 싶지 않은 이들을 가두어 보이지 않게 만든다고 우리 사회 문제가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너무 힘들거나 싫은, 혹은 피하고 싶은 ‘문제’는 눈에 띄지 않게 치우는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살인 및 강력 범죄를 저지른 자들 빼고는 이들 모두 언젠가 우리 사회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교정시설 안에 있을 때 고등 교육을 통해 의식적으로, 기술적으로 충분히 성장하여 다시 범죄에 빠져들지 않도록 단단하게 만들어서 재범률을 줄여나가야 한다. 효과가 확실하다면 더더욱 반대할 이유가 없다. 나라에 사람을 가두어 벌주는 국가 시설이 늘어야 할 이유도 없다. 수용자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복귀했을 때, 자신은 물론이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구성원으로 함께한다면 당연히 그것이 우리 사회에 훨씬 득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핀란드 바나야 교도소장의 “우리의 목표는 모범적인 수감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건전한 시민을 만드는 것(노무라 도시아키 지음, 송경원 옮김, 『교도소의 정신과 의사』, 지금이책, 2024.)”이라는 신념처럼 말이다.
2025-09-29 | hrights | 조회: 63 | 추천: 11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활동가   지난 4월, 은평구 315회 임시 의회에서 우리 마을에도 장애인을 위한 미용실이 정책적으로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어 은평구 민간 네트워크 협의체 ‘장애인이 살기 좋은 은평을 만드는 사람들(줄임말 장은사)’에서의 깊은 논의를 거쳤고, 최종적으로 은평구청이 장애인 친화 미용실 8곳을 선정하면서 9월 8일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사전에 장은사는 장애인 편의시설 주민 촉진단 활동으로 직접 현장 조사와 설문 조사를 진행, 관내 343개 미용실 중 326개를 조사했다. 그 결과는 민간의 장애인을 위한 용역과 재화의 제공 및 서비스 부분에서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장애가 있는 고객이 방문한다면 서비스를 제공하실 의향이 있습니까?’란 설문에 절반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15% 넘게 응답하지 않거나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또한 동별 모니터링 자체를 거부한 비율도 수색동을 제외하고 평균적으로 20%를 넘나들었다. 특히 유동인구가 많은 연신내 등의 지역은 장애인 손님에 대한 무관심과 손사래가 유독 도드라졌다. 휠체어 이용자를 포함한 장애인 고객을 경험한 종사자가 절반을 넘었음에도 장애인 손님을 위한 서비스 제공에는 아주 소극적이었다. 내부 인터뷰에서는 바쁘지 않으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 청결하지 않으면 서비스 대응이 어렵다, 장애인 고객이 많을 때 비장애인들이 겪을 불편이 걱정된다는 등, 과거 지향적이면서 장애인 차별과 혐오를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어, 앞으로 많은 교육과 안내를 통해 시급히 개선해야 함을 보여 주었다.  반응 중에는 장애인 고객에게는 ‘예의 있는 태도’를 요구하며, 보호자를 동행하여 다른 전문적인 기관을 이용하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물리적으로 드러난 접근의 어려움이나 휠체어로 이용할 수 있는 미용 의자나 머리를 감을 수 있는 시설 같은 게 아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이런 시설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을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아름답게, 멋있게 만든다는 전문적인 직업적 사명감이 있는 미용사 선생님들의 장애인에 대한 부족한 인식과 편견, 그리고 불안이다.  그들이 정말 직업적으로 지역 주민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인이라면, 아름다움과 품위를 유지하는 데 다른 비장애인에 비해 기회와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본인들의 절실한 고객으로 대우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이번에 드러난 문제와 인식 부족의 문제는 실제로 관련 종사자들이 지역에서 중증 장애인을 ‘비싼 비용을 치르는 손님’으로 만났던 경험이 너무나도 부족한 데서 생긴 문제였다. 이런 접촉 경험 부족과 불안은 그대로 혐오와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인터넷을 하다 보면 이따금 이런 글들이 날아온다. ‘내가 만약 당신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차라리 안락사하겠다’라든가 ‘당신과 같은 장애인이라면 결혼을 감행하는 것은 민폐’라든가 ‘당신이 길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것은 학대일 뿐’ 같은 댓글들. 그 댓글을 남긴 이들이 원하는 건 내가 상처 받고, 좌절하고, 쪼그라드는 것이겠지만, 정작 내가 주목하는 점은 그 댓글들이 품고 있는 ‘장애’와 ‘장애인’이 되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이다. 애당초 태어나는 순간부터 장애가 있는 나는 그런 공포와 불안이 없다. 비장애에 대한 경험없이, 장애가 내 인생의 출발점부터 기본 장착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그 공포와 불안이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만들고, 혐오와 차별이란 행위를 표현함으로써 지금 자신이 비장애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안심과 안전함을 느낀다. 장애는 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다시 비장애로 돌아갈 수 없기에 회복할 수 없는 좌절이 되기도 하고, 절대적인 존재로부터 넘겨받은 죄로 여겨지기도 하며, 대대손손 부덕한 업보의 결과로 인식되기도 한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어떤 법정 드라마에서 결혼 제안을 받고 청각 장애 가족력과 유전 상황을 고백하는 애인을 마주한 상대방의 당황하는 장면의 연출은 1969년 신상옥 감독 영화 <만종>에 나온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청각 장애인 집안과 결혼을 막으려 ‘장애가 유전된다’는 거짓말로 훼방을 놓는 등장인물과 묘하게 겹친 것이다.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에도 바뀌지 않은, 장애가 기본 장착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유전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 이에 대한 관념의 뿌리가 너무나도 깊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도구로도 ‘불구’라는 표현이 동원되고,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유명 연예인조차 공공연히 장애 비하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만큼 우리 사회는 장애가 빚어내는 부정적 감정에 대해 한없이 너그럽다. 장애에 대한 묘사와 표현들은 그 부조리와 모순을 드러내는 소재와 더 깊은 애정과 사랑의 발판으로 위 두 작품처럼 자주 애용되지만, 동시에 그 진보적 드러냄조차 장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미디어의 장애에 대한 긍정 묘사조차 아직은 조심스럽다. 여전히 많은 지자체와 공공기관 관련 법령을 보면 <타인에게 혐오할 만한 결함이 있는 자>는 입장을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이 버젓이 남아 있다. 법적으로는 장애인을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감정적으로 혐오를 일으키는 존재는 입장을 제한하고 싶은 강한 의지마저 느껴지는 지경이다. 예술을 관장하는 기관들이 이와 같은 규정을 여전히 남겨 놓은 걸 보면 장애는 추하기만 하다는 말을 외치고 싶은 것일까? 다가오는 어두컴컴함을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지나치다 보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으나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이 어두운 마음을 가지고 자꾸만 그 어두움에 신경 쓰면, 그 어스름은 감정의 실체화되어, 무섭기 짝이 없는 ‘어둑시니’로 커져서 사람들을 덮친다. 혐오와 차별은 바로 그 어둑시니 마냥 우리를 오염시키고, 전염시킨다.    
2025-09-26 | hrights | 조회: 40 | 추천: 4
                                                                                               이라영/ 문화평론가   지난 9월 2일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가 처음으로 순직을 인정받았다. 정부가 급식노동자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작년 9월 사망한 이영미씨로 그는 충북에 있는 학교에서 10여 년간 급식노동자로 일했다. 성실하게 밥을 짓다가 그에게 찾아온 결과는 폐암 3기였다. 3년간 투병하다 그는 사망했다. 밥하는 노동이 얼마나 중노동인지 알 수 있다. 급식노동자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 공무직 중에서 순직이 인정된 첫 사례다. 학교에는 교사 외에도 경비직, 미화, 관리 조리실무사 등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들이 있다. 어쩌다 보니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뒷감당’의 무게를 느끼는 책이 <정치적인 식탁>이다. 밥하는 노동에 대한 몰인식과 차별적 대우에 대해 비판해 놓고 혹시 나조차 이 노동을 소홀히 대할까 봐 주의하게 된다. 밥하기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노동이기 때문이다. 특히 직업적으로 밥을 하는 식당노동자나 급식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자료를 통해서만 접한 채 글을 쓴다는 게 스스로 늘 불편했다. 마침, 집 근처 학교에서 급식노동자를 모집하길래 지원해 볼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작년에 한 시사주간지에서 기자가 직접 급식노동 체험을 한 르포기사를 읽고 이내 마음을 접었다. 부끄럽지만 ‘체험’하러 갔다가 괜히 방해꾼이 되겠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사진 출처   급식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질환은 기본이고 화상이나 절단 사고도 잦다. 기름이 튀어 미끄러운 조리실 바닥에 넘어져 머리를 다쳐도 병원에 가기보다 시간 맞춰 밥 짓는 일이 우선이다. 지난 5년 동안에만 폐암으로 산재를 신청한 급식노동자가 200명이 넘는다. 이 중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다. 폐암 발생을 줄이기 위해 무엇보다 환기 시설 개선이 시급하다. 사람 살리는 먹거리를 만드는 급식실이 사람 죽이는 곳이 된다는 건 모순이다. 이번에 순직으로 인정받은 것이 반갑지만, 그보다는 밥하다 죽고 다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급식조리사들은 평균 1인당 100~150명의 식사를 담당한다. 영양가 있으면서 맛도 있어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이 많은 인원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치우기까지 수많은 노동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게 아니다.”(이언주, 2017)라는 희대의 망언이 생산될 정도로 밥하는 노동에 대한 몰인식이 팽배하다. 더구나 학교급식법에서 학교급식은 ‘수업일 점심시간’으로 규정하고 있어 급식이 제공되지 않는 방학 기간에 조리 종사자는 비근무자가 된다. 관련 종사자들은 1년에 9개월만 받는 급여체계 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일부 지역에서는 상시전일제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아이들의 식사도 교육의 일부다. 교사만이 아니라 급식 노동자들도 중요한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노동자가 안전한 학교가 아이들에게도 안전하다. 맛있는 밥은 안전한 노동에서 나온다.    
2025-09-15 | hrights | 조회: 76 | 추천: 10
김성은/ 서울신문 기자 갑질의 가장 무서운 특성은 대물림된다는 점이다. 권력의 위계질서 속에서 갑질을 당한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받았던 대우를 자신보다 권력 서열이 낮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재현하곤 한다. 권위 있는 인물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갑질을 마치 '조직 내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기 위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탓이다. 권력자의 갑질을 침묵하고 방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아예 동조하는 단계에 이르면 갑질은 더 이상 일탈이 아닌 조직의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국회는 바로 이런 조직이다. 내부의 위계질서는 바깥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견고하다. 선배 의원들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자칫 정치적 경력에 타격을 줄 수도 있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모 다선 의원이 신참 후배 의원을 사적으로 자택으로 불러들여 '설거지'를 시켰다는 일화는 종종 회자된다. 사실 여부를 떠나 국회에서는 "이 바닥이 워낙 그런 곳이지"라며 어깨를 으쓱하는 게 현실이다. 국회의원 간에도 이럴진대 보좌진은 말할 것도 없다. 입법부 소속 국가 최고위직인 국회의원과 그에게 전적으로 종속되는 보좌진의 지위 격차는 극심하다. 보좌진 인사에 대한 전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과의 권력 격차로 인해 보좌진은 부당한 행위를 당하더라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부당함이 일상처럼 반복되다 보니 문제 제기 자체가 의미 없는 일로 여겨진다. 고립될까 봐 입을 꾹 다무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갑질 문제는 잠깐 잠잠해지나 싶으면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모두 당내 성비위와 갑질 문제로 여러 차례 논란을 겪었다. 2022년 박완주 당시 민주당 의원은 보좌관을 강제추행했다는 의혹으로 제명됐고, 최근 2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2021년 당 행사에서 자신이 앉을 자리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직자의 정강이를 차는 등 폭행을 저질렀다. 당직자들은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송 위원장은 형식적 사과 후 탈당했다가 4개월 만에 복당했다. 사진 출처 최근 강미정 전 조국혁신당 대변인 사태는 정치권의 고질병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강 전 대변인은 성비위 사건 접수 후 5개월이 지나도록 피해자 지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동지라 믿었던 이들의 성희롱, 성추행,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초년생 당직자들도 비슷한 피해를 겪었다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혁신당은 가해자 2명에게 '제명'과 '당원권 정지 1년'의 중징계를 내렸지만, 강 전 대변인은 결국 탈당을 선언하고 말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2차 가해 양상이었다. 강 전 대변인에 따르면 피해자를 도운 조력자는 '품위유지 위반' 징계를 받고 사직서를 냈으며, 성비위 문제를 여성위 안건으로 올렸던 의원실 비서관은 당직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조직과 완전히 결별할 각오를 한 사람뿐이다. 자신의 커리어나 미래를 포기하고 그야말로 무덤을 팔 각오 없이는 권력에 맞서기 어렵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우의 시체'를 밟고서라도 한 걸음씩 전진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수십 년째 되풀이되는 정치권 갑질을 언제까지 개인의 '희생 정신'에만 맡겨둘 것인가. 국회의 갑질 문화를 뿌리째 뽑아내려면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해자 한두 명 솜방망이 처벌하고 끝내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시스템 자체를 갈아엎어야 한다. 일회성 처벌을 넘어 투명성과 견제 장치를 강화하고,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낸 내부 고발자들을 제대로 보호하는 제도를 구축하지 않는 한, 갑질의 악순환은 끊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침묵의 벽에 갇혀 신음하는 약자들의 목소리다. 권력이 소용돌이치는 입법부 한복판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입을 열지 못하는 이들의 소리 없는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아우성이 메아리 없이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2025-09-09 | hrights | 조회: 111 | 추천: 6
정한별/ 사회복지사   지난 7월 24일, 울산의 대형 장애인 거주시설 태연재활원의 전 종사자 4명이 시설에 거주하는 이용인(시설거주장애인)들을 학대한 죄로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법원은 이들의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해 검사가 구형한 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올해 2월부터 장애인 거주시설 태연재활원 학대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입소자 정원 185명의 대형 장애인 거주시설 울산 태연재활원의 직원 20여 명이 30여 명의 장애인들을 수백 차례 폭행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작년 10월 골절 진료를 받은 입소자의 가족이 시설에 항의했고, CCTV 확인 결과 시설의 직원이 시설 이용장애인을 질질 끌고 가는 일, 이용장애인의 양쪽 뺨을 손으로 때리는 일, 머리를 때리고 발로 차는 일 등의 모습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학대행위자 중 4명이 구속기소 돼 재판이 진행되었다. 법원은 자신의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자신의 집안 사정이 힘들고 업무 스트레스가 많다는 이유 등 특별한 이유도 없이 행위자들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증의 장애인들을 습관적으로 학대했다고 판단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울산 태연재활원 장애인 학대 사건이 연일 보도되자, 지난 4월 이용인 50명 이상의 장애인 거주시설 109곳에 대하여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 인권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정부 차원의 인권침해 예방 조치를 시행한 것이다.   사진 출처    학대 등 인권침해가 일어난 뒤에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것보다, 인권침해 예방이 더욱 중요하고 효과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정부의 조치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제도가 있다. 첫 번째는 인권실태조사이다. 정부는 지난 2011년부터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인권실태조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인권실태조사는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거주시설의 대표, 종사자, 전체 이용장애인 면담을 통해 인권상황 및 인권침해 사례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해당 실태조사의 근거 법령으로 장애인복지법 제57조(장애인복지시설의 이용 등) 제2항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실제 해당 법령은 인권실태조사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장애인복지법」 제57조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제58조에 따른 장애인복지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정책을 마련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여야 한다.   인권실태조사는 민간기관에 실태조사를 위탁하여 전체 거주시설에 대해 3년 단위의 전수조사가 실시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태조사를 수탁받은 기관은 면담원을 선발하고 교육한 뒤, 실태조사를 실시하며 조사결과를 분석하고 필요에 따라 조사대상 시설을 관할하는 시·도에 통보하여 시정조치, 재조사, 수사의뢰 등을 실시하고 있다. 다만, 인권실태조사 결과의 세부적인 내용을 공개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 보니, 실태조사 결과를 활용하여 정책을 수립하는 일에도 어려움이 있으며, 인권실태조사를 받은 거주시설은 자신이 받은 실태조사의 결과가 장애인 거주시설의 인권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왔는지 알 수가 없다. 즉, 불명확한 인권실태조사의 실시근거와 인권실태조사의 결과가 장애인 거주시설, 나아가 이용장애인의 인권증진에 어떤 이바지를 했는지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인권실태조사를 받는 거주시설은 조사에 협조할 의의도 조사를 통해 장애인의 인권이 증진될 것이라는 동기부여도 잃은 지 오래다. 인권실태조사가 일시적인 이벤트 성의 인권침해 예방체계라고 한다면,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지킴이단은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상시체계이다.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지킴이단은 2012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하였으며, 장애인복지법 제60조의4 제4항에 근거하여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인권침해 발생 시 확인과 필요한 조치를 통해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설치 운영되고 있는 기구이다. 인권지킴이단의 단원은 시설과 관계없는 외부단원 50% 이상으로 지정되도록 정하고 있으며 외부단원으로는 변호사, 공공후견인, 인권전문가, 지역 주민, 이용장애인보호자 등이 해당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한 시설 내부단원으로 시설장은 포함될 수 없게 하고 있다. 인권지킴이단은 정기회의를 기반으로 이용장애인 및 직원 대상 인권상황 점검(학대 피해 등을 포함하여 인권 전반에 대한 면담)을 실시하고, 인권침해에 대한 처리 및 조치를 실시한다. 또한 인권 인식 개선, 인권교육 등도 논의하게끔 하고 있다. 인권지킴이단이 생겨난 지 10년이 넘은 지금, 인권지킴이단은 인권실태조사처럼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외부단원을 구성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으며 외부단원 중 변호사, 공공후견인, 인권전문가 등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특히 장애인 인권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인권전문가를 찾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인권지킴이단 구성이 이렇다 보니, 인권지킴이단 정기회의를 통한 시설 내 인권증진을 위한 논의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권지킴이단이 다양한 시설 내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인권적 소양이 부족한 경우, 인권에 대한 논의나 기획보다는 시설의 사업계획을 보고받고 인권적 관점이 아닌 시설 운영의 관점에서만 상황을 검토하게 되는 또 다른 운영위원회 기능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인권기구가 아닌 시설 운영기구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권지킴이단의 한계는 장애인거주시설만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장애인거주시설 외부에서 인권지킴이단을 구성하고 관리할 수 있게끔 체계와 예산이 마련되어 있어야 시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인권상황을 보다 책임감 있게 점검하고 지원할 수 있는데, 외부의 구조는 전혀 준비해 두지 않은 채로 거주시설에게만 인권지킴이단의 운영을 맡기고 책임을 묻는 일은 과한 요구이다. 그렇다면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실태조사와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지킴이단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특히 장애인학대)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주목받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 장애인 학대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만 일어나는 것인가. 다음 ‘목에가시’ 칼럼에서 이에 대한 답을 다루겠다.        
2025-09-02 | hrights | 조회: 110 | 추천: 8
신종환/ 공무원   이육사 시인의 시 ‘청포도’에 등장하는 고장에서는 7월에 청포도가 익어간다면 우리 과의 7월은 초목이 우거진다. 초목이 우거진다는 것은 국민신문고도 같이 우거진다는 것.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다 허벅지를 찔러오는 남의 집 소유의 나무에서 국민 신문고를 떠올리는 창의성은 어디서 오는가. 문학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듯, 공무원의 적극 행정은 사람들의 창의성 앞에서는 아담할 따름이다. 7월에서 8월, 사무실의 시작은 민원부서와 유무선으로 민원의 책임소재를 가늠하며 시작한다. 이것은 도로에 난 풀이니 교통과, 이것은 가로수가 아닌 골목에 자생하는 나무이니 주민센터 자체 해결. 하루의 시작과 끝을 퍼즐로 된 현실과 마주하고 퇴근하는 일상이 쌓이면 결국 퍼즐이 현실이 된다. 맞닥뜨리는 것이 현실인데, 실제 존재하는 어떤 사람들의 심경과 불편함과 이가 해소되었을 때의 어떤 것,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자생하는 것들과 이를 마주하는 사람 사이의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한다는 문장은 쌓여가는 퍼즐들 너머에서 흐릿하다 이윽고 사라진다. 수년 전에 SNS를 통해 팔로잉한 모 시인이 거주하는 곳의 가로수를 너무 난폭하게 전정(가지치기)해 두어서 해당 사무실에 전화해서 항의하셨다는 글을 쓰신 적이 있다. 그가 올린 사진의 나무들은 앙상하다 못해 몸통만 있는 느낌이었고, 나는 담당자가 왜 그렇게 업무를 처리했는지 의아했는데, 올해 해당 부서로 오면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특정 금액 이상의 계약을 체결하려면 관내에 해당 요건이 있는 업체 중 하나를 지자체의 회계과가 선정하고 우리에게 통보하게 되어있다. 이는 투명한 회계와 부패방지를 위한 것이나, 어느 업체가 가로수 전정을 담당할지는 지역 상황과 무작위에 의해 결정되므로, 업체를 향한 공무원의 당부는 종종 공염불이 된다. 전정에 어느 정도 전문성이 있는 업체가 선정되면 나무들은 적절한 전정을 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삭발을 넘어 해리포터에 나오는 '목이 달랑달랑 닉'처럼 몇몇 가지만 몸에 붙어있게 된다.     사진 출처   가로수를 관리하는 이에게는 그 외 대여섯 가지의 업무가 더 있고, 각 업무는 그에 따른 절차가 있어 이를 처리하다 보면 행정의 구현에 대해 입체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점점 요원해진다. 사업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정해진 절차를 이행했는지, 사후 감사 등에서 문제가 될 소지는 없는지에 대한 고민이 행정행위의 최초 목적보다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사람이 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피로와 고충은 일단 괜찮다. 공무원으로서의 소명감이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대부분의 밥벌이는 어떤 식으로든 애로사항이 있으니까. 하지만 행정에 대해 다양해지고 커진 바람들이 제도가 되었을 때, 효율을 위한 도구였던 서류와 절차들이 목적 자체가 되는 일이 적지 않은 공직자들에게 나타난다. 소명의식을 품은 공직자들조차 기본적으로 판단할 때 근거를 자신의 공직 생활에서 습득한 여러 절차와 성과지표에서 찾기 때문에 행정정책은 종종 왜곡된 방식으로 현실에 구현된다. 전보다 많은 공직자가 세상에 알려지고, 새 정부가 들어서 전체적인 행정 방향이 바뀌며 그 결과로 많은 것이 기대되기도 하지만, 일선 공무원이 책임질 수 있는 부품이 되어가는 일과는 다른 결 같다. 많은 이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적재에 필요한 도움을 주려는 공직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나 맞는 말이지만 그들은 어떻게 배양될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다.       
2025-08-20 | hrights | 조회: 258 | 추천: 9
김태형/ 프리랜서 방송작가    실패하면 내란, 성공하면 혁명? 요즘 우리 가족은 다행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12.3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난 것에 대해 다행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저희 형은 군인이고 본적은 전라도, 문재인 정부 행정관 출신입니다. ‘내란 민간인’ 노상원 수첩에 따르면 수거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진보 매체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하는 방송작가입니다. 내란세력이 저까지 신경 쓸 일은 없었겠지만, 상상조차 못 할 일을 벌인 그들을 보면서 잡혀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다행입니다. 12.3 비상계엄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깨어있는 국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상계엄 소식을 듣자마자 국회로 달려간 국민과 정치인이 있었고, 불법 계엄 명령을 거부한 군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하다 저는 요즘 KBC 광주방송에서 제작하는 5.18 민주화운동 다큐멘터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MAY I>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가짜뉴스의 생산과 확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제작은 마무리에 들어갔고 그동안 많은 분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분들 중 문재학 열사의 엄마, 김길자 여사도 있습니다. 문재학 열사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속 실존 인물입니다. 5.18 당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전남도청 최후의 항전을 함께하며 산화했습니다. 김길자 여사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도 내란 세력과 끝없는 싸움을 이어온 분입니다.    KBC 광주방송 5.18 다큐멘터리 <MAY I> 타이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김길자 여사와 5.18 유공자, 전문가분들을 인터뷰하면서 들었던 이야기 중 한 가지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죽은 자가 산자를 구했다”라는 말입니다. 5.18 민주화운동이 있었기에 12.3 내란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겁니다.    5.18 민주화운동이 없었다면...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순간, 많은 분이 5.18 광주를 떠올렸을 겁니다. 비상계엄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경험하지 않았어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12월 3일 밤, 우린 다시 1980년의 암울한 시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을 행동하게 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1980년,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분들, 죽음의 결말을 알면서도 침묵하지 않은 분들,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있는 분들,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깨어있는 분들.... 수많은 분이 있었기에 12.3 내란을 막아낼 수 있었고 희망으로 내일을 생각할 수 있는 오늘을 사는 것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입니다. 의로운 분들이 만든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동력이고, 미래의 희망입니다.    
2025-08-04 | hrights | 조회: 227 | 추천: 8
이원영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남원 사과 농부의 어떤 상담 용산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면서, 그리고 진보정당 구의원 후보로 출마한 경험자로서 동네에서 여러 가지 억울한 일 상담을 한다. 제법 간단한 상담 거리도 있지만, 내 능력 밖에 있는 일들도 자주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힘깨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매우 뜨거운 여름날, 남원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한 농부를 용산역에서 만났다. 전화로 여러 차례 소통했는데, 이분 역시 10년 전에 불편부당한 일을 겪고 남원시청, 농식품부, 국민권익위 등 해볼 수 있는 모든 곳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싸웠다.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이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금 느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할 수 없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분명한데도 넘을 수 없는 부조리의 벽, 사법제도의 벽은 곳곳에 강력했다. 이재명 정부의 특징 섬세함에 강하다. 이재명 정부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이 비슷하게 느끼는 바가 아닐까? 노동부 장관이 고공농성을 하는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한국옵티컬 노동자를 만나고 환경부 장관이 보 철거를 촉구하는 환경운동가를 만나며, 국무총리가 농림부장관 임명철회를 촉구하는 농민단체 대표를 찾아가 만나는 모습도 보기는 좋다. 국민주권 정치의 효능감을 충족해 보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해마다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한 SPC그룹 회장과 회사 대표에게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세부적으로 송곳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노조 파괴 공작으로 감옥까지 갔다 온 허영인 SPC 회장에게 장시간 야근 문제를 제기했을 때는 묘한 전율이 일었다. 사회적 약자에게 법은 보호 수단이 아닌 경우가 많다. 정치의 영역은 이렇게 억울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렇게 구조화되어야 한다. 사진 출처 규칙보다 사람이 먼저인 사회 그런데 막상 제삼자가 아닌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외롭고 고통스럽다. 법률이 그럴듯해 보여도 해석의 영역으로 한 발 깊숙이 들어가면 강자의 편이기 때문이다. 소송에 들어가면 더욱 갑갑해진다. 소송비용도 걸리고, 겨우 소송해도 결과는 내 생각과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민들은 단체를 만들어 힘을 키워보려고 애썼다. 이른바 권리를 누리기 위한 투쟁의 힘.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농민들은 농민회를, 장애인들은 장애인단체를 만들어 싸웠다. 함께 싸우면 개인의 억울한 민원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는 법률이 국민의 삶을 지키고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착각 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그 법률이 억압과 차별의 도구가 되었기에 민주주의는 헌법, 법률을 인간(시민)의 아래에 두기 위한 투쟁의 역사다. 유토피아 사회, 헛된 망상이라도 좋아 1500년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00년도 전에 토머스 모어라는 사람이 유토피아라는 이상사회를 꿈꿨다. 인류의 역사는 이런 유토피아를 꿈꿔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공자도 맹자도, 예수도, 그 밖에 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이 그렇지 않은가? 작년에 읽은 『집단의 힘』(저자 박귀현)이라는 조직심리학 책이 떠오른다. 부제는 ‘조직심리학이 밝혀낸 현명한 선택과 협력을 이끄는 핵심 도구’였다. 책 내용 중에 다수가 보기에는 소수집단의 다소 엉뚱한 생각이 사회(집단)의 변화를 만들기에, 소수의견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한 이야기가 매우 인상 깊었다. 주변 사람들과 가끔 정치나 사회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건 현실과 맞지 않아” 그런 말이 종종 튀어나온다. 현실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넘어서는 일도 중요하다. 남원에서 사과 농사를 짓다가 억울한 일을 경험해 10년 넘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그래도 좋아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2025-07-29 | hrights | 조회: 282 | 추천: 8
윤요왕/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진 출처    하나. 에어컨 수리해 보셨나요? 지난해 집 거실 밖의 데크를 수리하면서 에어컨 실외기의 배관을 분리했다가 무더워지고 있어 실외기에 배관을 연결하고 냉매 가스도 점검해 보고자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예약했다. 배관 두 줄과 전원선 연결이라 비교적 간단한 작업이라 생각했는데, 콜센터 안내자분의 설명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작업량, 시간과 상관없이 출장은 무조건 19만 원을 내야 한단다. 5분이 걸리든 몇 시간이 걸리든 무조건 19만 원의 출장비! 시골 동네라 그런 건가. 그래도 비상식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콜센터 직원분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몇 가지 묻고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옹색한 답변에 규정이 그러니 하고 예약했다. 며칠 후 출장 기사님의 전화 출장비 19만 원에 더해, 배관을 교체해야 한단다. 교체할 게 없다고 말했더니 무조건 1m에 만 육천 원하는 배관 두 줄을 교체해야 한단다. 보통 3m 정도 하니 두 줄이면 구만 육천 원이 추가로 든다는 얘기다. 매뉴얼이 그런 걸 어쩌냐며 짜증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매뉴얼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교육받아서 아는 것이지 확인해 줄 건 없다고 한다. 정중하게 대화하다 언성이 높아졌고, 수리 취소하겠다고 하고 끊었다. 그리고 그날 밤 5분 만에 배관과 전원선을 직접 연결하자 에어컨이 정상적으로 가동했다. 나는 그래도 귀농해 집도 직접 지었고, 갖가지 고생을 하며 이런 작업을 해 봤으니 가능했겠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또 농촌의 에어컨 수리가 필요한 어르신들은 어떠하겠는가 생각해 보니 그냥 감수하고 넘어갈 수 없어졌다. 바로 서비스 홈페이지에 가서 확인해 수리기사의 이야기와는 전혀 달리 설명하고 있었다. ‘목에 가시’로 변신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둘. 기업과 행정의 오묘한 무책임 내 차는 친환경 차다. 얼마 전 차 하부에 달린 수소 통 3개를 점검받았고(4년에 한 번은 필수) 누수가 네 군데에 생겼기 때문에 불합격 판정을 받아 정비소를 갔다(우리 시에 이걸 수리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이란다). 정비소에 신청하니 직원분 말씀하시길, 내 차 앞으로 100대 정도가 밀려있고, 일주일에 한두 차량만 가능하다고 한다. 어쩌면 2년 후에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위험할 수 있냐는 내 물음에는 정확한 답변을 하기 어렵단다. 너무 무책임한 대기업의 안일한 대처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수소차라 친환경이라고 하면서 팔 때만 그럴싸하게 홍보해 놓고, 수소충전소도 부족하고 정비는 더 어려운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답답했다. 그리고, 바로 수리할 수 없으니 차량등록사업소에 가서 점검 수리 기한을 연장해야 과태료를 내지 않는다는 설명도 들었다. 이어 차량등록사업소를 갔더니 한 달만 연장할 수 있고, 그 기간 안에 수리할 수 없으면, 또 정비소-사업소를 가서 서류를 갖춰 연장 신청을 해야 한단다. 자칫하면 2년간 24번 이상, 그것도 매월 연장 신청하러 가야 하는 꼴이 된 것이다. 정비소의 수리 가능 일정을 확인받아 2달이든 2년이든 기한 연장을 한 번에 해 주면 안 되는 것일까? 이날은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 연장신청서만 제출하고 왔다. 조만간 이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따져야 하는 수고로움을 자처할 생각이다.     이 글로 누구 한 명의 책임을 탓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매뉴얼화하고, 필요하다면 바꿔야 하는 게 일반 시민, 즉 소비자를 위한 그들의 책무이지 않은가.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많은 부분에서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상의 골목길 곳곳에는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비상식과 불합리가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국민주권정부’를 얘기하는 새 정부는 소소하고 하찮게 여길 수 있는 국민의 일상생활에 대한 세심한 살핌이 우선되었으면 좋겠다. 기업이나 행정은 국민이 있기에 존재한다. 언제까지 당연한 최소한의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싸워야 지킬 수 있는 대한민국으로 남을 것인가. 나는 자칭 평화주의자이며 합리적인 사람임을 자처하며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큰일이든 소소한 일이든 회피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회피하지 않고 맞서야 세상은 작은 것에서부터 바뀌고,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조금은 평안을 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목에 가시’로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5-07-24 | hrights | 조회: 158 | 추천: 6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활동가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1년 5월, 신민당 영등포 지역 지원 유세를 하러 가던 중 박정희 독재 정권 사주로 의심되는 교통사고로 장애를 가졌다. 처음에는 지팡이를 짚으면서 걷었으나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휠체어를 이용했다. 그는 정당 총재 시절부터 장애인 당사자로서 주목을 받았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월간지 <함께걸음>은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 그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1996년 12월에 일산 자택에서 "나 자신도 장애인라는 사실을 먼저 밝히고 싶습니다. 나도 고관절을 다친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에게 동병상련의 심정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이 직접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좀 더 적극적으로 "그런 점에서 나는 나 자신이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활동을 하는 것이 장애인에게 격려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라고 장애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래서 장애인단체는 그를 국내 최초 장애인 당사자 대통령이라 인정하고, 여러 경로로 지속해서 장애인복지카드를 발급받으시라 권유하고, 압박했다. 그러나 끝까지 공식적으로 장애인 등록을 하지는 않았다. 그의 장남 김홍일 씨 역시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 중증 언어장애를 가진 장애인 가구가 되었어도 공식적으로 당국에 장애인 등록을 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 또한 소뇌위축증 희귀병으로 중증‧중복장애인이 되었으나 국가 통계 장애인이 되지는 않았다. 다들 국가의 지원을 받을 만큼 어렵지 않아서라고 에둘러 변명하기는 했으나, 과거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나 권력층들이 다른 것에 비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또는 더욱 폐쇄적으로 자신이나 가족이나 가문의 장애인과 장애를 열심히 감추거나 은폐하려 했다는 점에서 몹시 씁쓸함을 남겼다. 이 문제는 이른바 ‘권력층’이 장애인임을 밝히는 것은 장애인 등록의 뜻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일반 대중들과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장애인의 차별과 혐오에 대하여 더욱 민감하고, 저항한다는 정치적 상징과 장애인에 대한 시민권의 의미를 가장 강력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했다. 권력의 후광효과이자 ‘배경 보호’가 되는 것이다. 장애와 장애인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더는 부끄럽거나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제21대 대통령 이재명 정부가 시작했다.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아마 최초로 이미 한참 전에 장애인 등록(지체장애 6급)을 한 현역 대통령일 것이다. 본인 스스로 2022년 대선 유세 때부터 장애인 당사자임을 자부하며 죽을 때까지 장애인으로 살아가겠노라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소년 노동자 시절에 왼쪽 팔에 장애를 얻었다. 일하는 동안 여러 번 다쳤고, 산재 처리는 물론,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다. 행정 분류상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대한민국에 등록되어 장애인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현직 대통령이다, 과연 이재명 정부는 단 한 명이라도 장애인 장관을, 차관이라도 임명할 수 있을까? 희망적으로 보면 장애인 차별과 분리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소록도를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자격으로 방문했다고 하니, 역사적으로 자행되었던 한센인에 대한 강제 이주 및 불임 수술 등에 공식 사과라도 하지 않을까 기대를 높이는 것도 사실이다. 겨우겨우 생존을 이어가던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장애인 부모 강선우 의원을 임명한 것도 놀랍도록 고무적이다. 그 정권보다는 복지와 인권, 인식은 나아지겠지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장애인 당사자도 이재명 대통령이 천명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시민의 권리를 동등하게 누릴 수 있을지는 현재로는 알 수 없다. 관심이나 의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상대적으로 분명하지만, 그 입장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고 배려하는 아주 보수적이고 시혜적인 태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구나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에 현장 투쟁하는 장애인의 활동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면서 일부 관변 장애인 단체를 일방적으로 편든다는 비판을 많이 받은 적이 있다. 대통령 신분으로 단 한 번이라도 장애인 당사자로서 정체성을 밝히고 장애인들의 투쟁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면, 그래도 대중들의 장애인 혐오와 차별은 많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장애인으로 등록하고 살아가고 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더는 불행한 것도, 희생하는 것도 아니라 이번 정부의 가장 우선일 되기를 바란다. 장애인 당사자임이 자랑스럽고 자긍심 높은 모델로서 대통령이 앞서 주기를 희망한다. 대한민국의 가장 외진 곳에서 살아가는 중한 장애인들에게도 정책 제안을 달라며 개인 번호를 줄 수 있는 장애인 당사자 대통령을 보기를 꿈꾼다. 더 많은 중한 장애인이 대통령과 함께 정부와 같이 일할 기회와 마당이 이번 정권을 시작으로, 영속적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그가 말한 ‘모두의 대통령’에, 장애인을 위한 대통령도 포함되길, 그가 선언한 국민 주권 정부에, 장애인 주권과 시민권도 꼭 약속되어 있기를 진정으로 바라본다.   * 본 원고는 <은평시민신문>에 실린 원고에 내용을 더하고, 수정하여 게재했습니다.    
2025-07-16 | hrights | 조회: 276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