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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낭만의 시대를 동경하는 우리에게(길주희)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6-07-13 14:37
조회
364

길주희/ 인권연대 연구원


 

일러두기: 단체와 무관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얼마 전 스레드와 유튜브 쇼츠 등을 중심으로 일본 낭만을 담은 영상과 ‘짤’이 유행했다. 교복을 입고 풋풋한 연애 감정을 가득 담아 웃는 아이들, 가족이나 친구들과 장난치는 아이들, 그리고 일본 전국 고교 야구대회인 고시엔(甲子園) 현장에서 승패보다 배움, 축하와 위로가 공존하는 모습들. 댓글 창에는 ‘일본은 그래도 낭만이 있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 지겹다.’ ‘일본 드라마도 그랬다.’ ‘쟤네는 제대로 지고 성장하는 법을 배우네.’라는 부러움으로 가득하다.

물론 일본 사회가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다. 외국인 여성과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일명 ‘어깨빵’을 일삼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국적과 관계없이 의도적으로 타인의 몸을 어깨로 세게 치고 가기에 이르렀다. 이는 부츠카리(ぶつかり)라고 불리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럼에도 피해자를 조롱하는 게, 약자를 혐오하고 갈라치기를 하는 게 ‘놀이’가 되어버린 우리나라 처지에서 보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1990년대 일드를 좋아하던 세대부터 지금의 ‘영크크’ 세대까지 모두 일본 낭만의 시대를 동경하게 된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낭만 대신 혐오 일색

안타까운 이유는 당연히 하나다. 지금 우리의 온라인 공간에는 낭만은커녕 악성 댓글이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나 유튜브 영상의 댓글 창, 심지어 게임마저도 접속하기가 겁날 정도다. 그래도 아직은 ‘폰만 보고 사는 네가 안타깝다, 이불 밖으로 나와라.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라는 대댓글로 온기를 건네는 ‘어른’들이 있다. 마음을 바꿔보자고 내민 손들이다.

그러나 그 대댓글을 단 어른들도 혐오에 대해선 자비롭지 않다. 최근 논란이 된 배재고 야구부처럼 아무리 가해자가 고등학생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물론 제대로 된 교육이 전제겠지만, 적어도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반드시 피해자의 상황에서 생각해야 하고, 관용을 베풀면 안 된다. 근 20여 년 동안 이어진 일베의 ‘놀이’에는 걸리면 사과로 대충 수습하기까지가 하나의 프로세스로 연결되어 있기에 더 그렇다. 타인에 대한 혐오가 어떻게 표현의 자유가 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스포츠 현장이다. FIFA의 반인종차별 및 소셜미디어 보호 규정을 보라. 경기 중 입 모양을 가리는 행위만으로도 즉각 퇴장당할 수 있는 강력한 규제 도입 정도로만 알려졌으나, 한 단계 더 나아가 인종차별 및 혐오 행위 발생 시 최대 경기 몰수패까지 가능한 제재 절차(글로벌 반레이시즘 프로토콜)를 마련했다. 또한 선수와 가족을 향한 온라인 혐오 댓글에 대응하는 ‘소셜미디어 보호 서비스(SMPS)’를 이번 월드컵에 확대 적용했다. 며칠 전 SNS를 통해 프랑스 국가대표 음바페를 향해 “모유 대신 코코넛을 먹고 자란 식민지 짐승(혹은 침팬지)”이라고 최악의 인종차별 발언한 파라과이 상원위원은 파라과이 정부까지 나서 사과했으나 프랑스 검찰이 공식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독일은 네트워크집행법(NetzDG)을 통해 불법 혐오 표현 대응을 강하게 제도화했고, 그 어느 나라보다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미국에서도 학교 및 스포츠 커뮤니티 내 ‘증오 발언’이 괴롭힘이나 협박, 차별적 환경 조성, 학교 운영 방해 등과 이어지는 경우, 해당 학생은 퇴학을 포함한 강력한 징계나 교육적 개입의 대상이 된다. 일본 등 외국에서 놀라워하는 것처럼, 심지어 자국민의 학살 피해나 사회적 참사마저 조롱거리로 삼고 혐오하는 데 이토록 관대한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KBS 뉴스광장 영상 갈무리


 

최근 몇 년 동안 교사(직무)연수에 참석했거나 현직 교사로 일하는 지인들의 입에서 심심치 않게 나왔던 우려 섞인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일부 교실에서는 학급의 남자아이들 거의 다 일베를 재미 삼아 하고, 여성을 ‘제육’이라 부르며 비하(어머니를 포함한 여성을 남성에게 제육볶음을 만들어서 바치고 집안일만 하는 존재로 비하하는 멸칭)하며, 심하면 딥페이크로 디지털 성범죄를 즐긴다는 구체적인 증언들. 그 심각한 경고등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한 나 역시 깊이 반성한다.

 

영웅의 서사는 더는 필요하지 않다

조롱과 혐오가 놀이가 된 시대. 이것이 여성과 만나면 결과는 더욱 처참해진다.

지난 7월 4일, 한 여성단체에서 주관한 다큐멘터리 GV(관객과의 대화) 현장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인 감독이 오롯이 ‘안전하다’라고 느끼는 공간에서만 조심스럽게 상영하고 있는 영상의 이름은 바로 <영웅서사>다. <영웅서사>는 주인공이 남자친구였던 가해자(들)에게 디지털 성범죄를 당하며, 조력자 친구들과 함께 떨리는 몸과 구토를 참아가며 증거를 모으고, 가해자(들)이 다니던 대학교(심지어 피해자와 조력자들과 같은 대학교다.)와 일을 흐리멍덩하게 처리하려고 한 경찰들을 독촉하고, 언론과 SNS를 통해 공론화하며, 연대를 통해 끝내 법적 다툼에서 승리하는 여정을 최대한 유쾌하고 당당하게 담아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감독과 주인공과의 대화를 보는 내내, 한 번도 원하지 않았을 법한 영웅의 길을 억지로 걷게 된 ‘대단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러나 결국 이겨낸 결말과 청춘의 빛깔을 유머러스하게 담기 위해 한 노력을 보며 주제넘게도 기특하다고 생각하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게다가 그 단단함에 나를 포함한 관객들이 오히려 큰 위로를 받으며 끝이 났다. 이 글도 주인공에게 직접 내용을 보여주고 허락을 구해 게재하는 것인데, 기회가 된다면 <영웅서사>에 대해 조금 더 심도 있게 다루고 싶다.

처음 이 다큐멘터리를 보러 갈 ‘결심’을 했을 때만 해도 또 얼마나 화가 치밀어 오르고 울분이 터질지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지인과 상영장 근처에서 점심을 먹을 때도 ‘그냥 보지 말고 포기할까?’ 생각했을 정도다. 현실에서 이렇게 피해 여성이 ‘이기고’ 극복해 내는 스토리는 거의 찾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당시 N번방 사건이 터지며 국민 여론이 매우 뜨거웠기에 겨우 가능했던 일이라 한다.

분명한 건, 우리 사회에 이런 고된 피해자 영웅과 영웅의 서사는 다시 등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학부모 교육 의무화를 제안한다

다시는 이 땅에 ‘영웅’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혐오 ‘도파민’에 중독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구해야 할까. 모든 중독을 치유하는 건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베 중독, 혐오 중독도 마찬가지다. 도파민에 빠진 아이들에게 교과적인 낭만 가득한 이야기는 비웃음거리도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애는 집에서 안 그런다”라거나 “온라인에서 애가 뭘 하는지 모른다”라고 말하며 방치하는 건 이런 끔찍한 결과를 반복 생산할 뿐이다. 이 중독은 SNS 및 게임, 그리고 학급 내 또래 커뮤니티를 통해 공고해졌기에 개선하기 더욱 힘들다. 그러니 결국 교육에 지쳐 아이를 포기하고 학교나 사회로 교육을 ‘외주화’하는 부모와 교사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일을 다들 조심스러워하는 건 안다. 네가 뭘 아느냐고, “우리 애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거냐”라며 욕하는 부모도 있을 거다. 실제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등의 조사에 따르면, 교사들이 아이들의 혐오 ‘놀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2023년 전교조 ‘교권 훼손 실태조사’ 및 ‘아동학대 처벌법 관련 현장 교사 설문조사’와 2024년 전교조 ‘교권보호 5법 개정 이후 현장 실태조사’ 등 참고). 아침에 라이브를 송출하는 거대 유튜브 채널에 나온 패널들이, 배재고 야구부 사태에 대해 잘못은 어른들에게 있으니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한 것도 결국 맥락을 같이 한다. 그래도 어른의 문제라는 데까지는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으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이 사태의 1차 책임은 혐오 ‘놀이’에 빠진, 혹은 빠지고 있는 아이를 방치한 학부모와 교사에게 있고, 2차 책임은 우리 사회 모두에게 있다.

그러니 우선 학부모 교육 의무화를 제안한다. 아이들이 어디에서 이 ‘놀이’에 빠지는지 부모로서, 교사로서, 사회 구성원이자 어른으로서 알아내고, 제대로 지도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다. 혐오가 수치임을 명확히 알고, 이를 지적하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에 동의하는 참된 부모가 되는 교육, 피해자를 존중하는 교육이다. 학부모 교육 의무화를 통해 일대일로 자녀를 교육하는 게 힘들 때 연대하여 극복하고, 성과를 만들 사회적 분위기까지 조성하여야 한다.

언제 어느 시기에 누가 누구에게 교육할지는 당사자들인 학부모와 교사들, 교육 전문가, 입법자 그리고 시민단체 등이 모여 숙의했으면 한다. 그 사회적 합의 이후에는 신속히 제도화하길 희망한다.

 

한 명 한 명 다 귀한 아이다. 그런데 귀한 내 아이가 당장 피해자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그 아이가 국제적인 기준에도 한참 못 따라가는 혐오 가득한 어른으로 자라나도록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이는 비단 지금 10대 이하 자녀를 둔 부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20대, 그리고 이미 혐오 ‘놀이’에 젖은 이 아이들이 주류로 자리 잡은 몇십 년 뒤에도, 설령 지금 자녀가 없더라도 MZ세대라 묶이는 우리 역시 여전히 살아남아 있을 거다. 즉 우리는 혐오 ‘놀이’가 판치는 세상에서 늙어가야 한다. 계엄을 옹호하고 탱크로, 곤봉으로 사람을 처참하게 죽이는 자를 숭배하는 세상, 여성을 혐오하며, 피해자를 비난하고 즐기는 그 끔찍한 혐오 세상에 단 하루라도 살아가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요즘 SNS상에서 다시 회자하는 <무한도전>에서 방송인 박명수가 했던 말 그대로,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진짜 너무 늦은 거”다. 지금이라도 당장 어렵다고 미뤄왔던 ‘뼈를 깎는 노력’을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