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인권이란 말은 애초부터 한반도엔 없던 말이다. 기록문화대국이던 조선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인권이란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인권이란 말은 일본 사람들이 번역한 말을 그대로 수입해 쓰는 거다. 일본 사람들은 영어 단어 right를 권리(權利)라 옮겼지만, 썩 좋은 번역은 아니다. 권력(權力), 권세(權勢) 모두 같은 권(權)자를 쓰기에 오해가 적지 않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맘대로 뭐든 해도 될 권리 같은 것은 애초에 없는데도 오해하는 사람이 곧잘 나온다. 인권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고 인권 개념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니다. 삼국유사가 전해주는 고조선의 건국이념 홍익인간, 곧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도 인권이라 바꿔 불러도 무방할 거다. 기원전 2333년의 일로 전해진다. 기원전 1750년경 만들었다는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도 그 서문에 “왕과 권력자들이 약한 백성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태양은 모든 사람 위에 비춘다”라는 멋진 표현을 담고 있다.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억강부약의 정신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명한 동태복수법도 그 이상의 잔혹한 보복은 금지하는 차원이기도 하다. 기원전 1100년경의 기자 조선의 팔조법금도 중요한 인권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살인, 상해, 절도법에 대한 처벌은 각각 생명권, 신체와 관련한 권리, 그리고 재산권을 보장하려는 공동체의 의지를 담고 있다. 기원전 539년에 만든 페르시아의 키루스 실린더는 더 놀랍다. 노예 해방,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 지급, 차별과 억압 금지, 여러 민족의 종교와 전통 존중 등 지금도 여러 나라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인권 쟁점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가 비록 모조품이지만 키루스 실린더를 전시하는 것도 이런 인류의 전통을 잇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게다. 그다음에도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 1628년 권리청원, 1689년 권리장전 등의 역사를 거쳐 1789년 프랑스대혁명에 이르는 인권의 역사가 뒤따른다. 이뿐만 아니라 인권 개념은 흔히 접하는 동네 어른들의 말에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 난다”고 했던 경구에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인권의 역사는 방금 연도별로 살펴본 것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순탄하게 앞으로만 나아갔던 건 아니었다. 프랑스가 대혁명 이후에도 공화정-제정-왕정을 번갈아 겪었던 것처럼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는 어디서든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성공적 민주주의 국가라는 한국만 하더라도 때론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인권 상황이 오락가락하기도 한다. 언제나 공정하고 공평해야 할 법집행조차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범죄라고 보기 어려운 기초질서 위반 행위를 처벌하는 이상한 법률 ‘경범죄처벌법’만 하더라도 그렇다. 노무현 정권 마지막 해였던 2007년 10만3401건이던 단속 건수는 이명박 정권 첫해인 2008년엔 30만7912건으로 3배나 늘었다. 세상이 갑자기 세 배나 무질서해진 게 아니라, 정권과 코드를 맞추려는 경찰이 무리한 때문이었다. 정권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비판이 이어지자 2012년에는 5만8002건으로 부쩍 줄었다. 주로 피해자가 경찰관인 공무집행방해죄도 그렇다. 박근혜 정권 시절이던 2016년 한 해 동안 1565명을 구속했지만, 불과 3년 뒤에는 연간 577명으로 대폭 줄었다. 2.7배나 줄어든 까닭은 하나. 단지 대통령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어떤 정권이냐에 따라 노동조합 가입률이 줄었다 늘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통계는 셀 수 없이 많다. 멀리서 보면 인권은 꾸준하게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의 기본인 형사처벌마저 어떤 정권이냐에 따라 단기간에 두세 배쯤의 차이는 간단하게 만들어 버린다. 당장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의 결과에 따라 형사정책만 아니라 여러 국가정책이 이리저리 요동칠지도 모른다.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그래서 권리라 불렀던 것들마저 돈을 내고 사야 하는 상품이 될 수도 있고, 거꾸로 새로운 권리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전적으로 주권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언제나 그랬듯, 어떤 나라에 살 것인지는 그 나라의 주권자에 달려 있다. 때론 그 주권자가 왕이나 소수 귀족일 때도 있었고 국민 전체일 때도 있었지만, 나라의 운명이 주권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은 언제나 변하지 않았다. 인권의 역사도 주권자의 손에 달려 있다.
2022-01-19 | hrights | 조회: 4 | 추천: 0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인천의 ‘층간 소음 흉기 난동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이 총기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실탄을 쏴서 범인을 검거했다고 자랑 삼아 홍보영상을 돌리기도 했다. 국회는 경찰을 뒷받침한다며 경찰관이 직무수행 중 시민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형사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하는 쪽으로 법률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인천 사건은 총 때문이 아니라 엉터리 현장 활동 때문에 생긴 거다. 경찰관이 현장에 나갈 땐 반드시 2인 1조로 움직여야 한다. 적어도 2명은 되어야 현장 대응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범죄 예방과 진압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고 현장 변수도 많다. 층간 소음은 흔한 분쟁이지만, 감정이 쌓이면 자칫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2인 1조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대화’를 위해 1층과 3층으로 나눠졌다. 범행현장이 된 3층은 ‘시보’에게 맡겨두었다. 대응이 어려운 상황을 자초한 거다. 여론의 주문이나 경찰청장의 요구, 또는 국회의 법률 개정 방향이 가리키는 것처럼 현장에서 총기를 사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좁은 실내에서의 사격은 매우 위험하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범죄자의 넓적다리를 조준해 정확히 맞히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백발백중은 영화에나 나오는 상상 속 산물일 뿐이다. 일단 총을 쏘면 총구를 벗어난 총알은 제 맘대로 날아간다. 피해자나 주변 사람에게 닿을 수도 있고, 경찰관을 향할 수도 있다. 1991년 서울 신림동의 늦은 밤. 막 결혼한 아내와 함께 길을 걷던 서울대 박사과정 한국원씨는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맞아 숨졌다. 피할 겨를도 없었다. 학생들의 시위에 분통을 터트린 파출소장이 권총 사격을 했는데 100m 밖에 있던 한씨가 맞은 거다. 한국원씨를 죽이겠다는 고의야 없었겠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당시 책임자였던 서울 관악경찰서장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오히려 승진을 거듭해 해양경찰청장까지 영전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지휘 책임’을 지고 인천경찰청장이 물러난 것과는 크게 달랐다. 2001년 경남 진주에서 꽃집 사장이 자기 집에서 경찰관의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현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경찰은 꽃집 사장이 흉기로 부인과 아들을 죽이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긴박한 상황에서 총을 쐈다고 했다. 그런데 꽃집 사장은 혼자였고 맨손이었다. 지레짐작으로 방아쇠를 당긴 거다. 총을 쏜 경찰관은 며칠째 집에 숨어 있었다. 수소문 끝에 그의 집을 찾아내 만나러 갔다. 그 경찰관은 불문곡직하고 엎드려 절을 했다. 죽을죄를 지었다며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통곡했다. 가해자였지만, 그도 만만치 않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참 지난 다음, 법원이 피해자 가족이 당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지만, 죽은 사람이 돈 몇 푼에 돌아올 리 없다. 유족의 고통은 물론이고 사람을 죽였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찰관이 치러야 할 고통도 만만치 않았을 거다. 총기 사용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범죄자에게 총을 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가장 분명한 해결책은 앞서 확인했던 경찰활동의 원칙을 되짚는 거다. 사실 경찰은 박근혜, 문재인 정권에서 엄청난 인력 혜택을 받았다. 의경이 폐지된다며 선제적으로 증원을 했다. 그렇게 많이 늘렸어도 현장은 늘 인력부족에 시달린다. 경찰의 인력구조는 늘 위쪽을 향한다. 우수한 인력은 경찰청에 집중 배치하고, 그다음 지역경찰청과 경찰서로 이어진다. 상급 부서에는 파견 등을 통해 정원을 훨씬 넘는 인원이 근무한다. 경찰청에서 청장 얼굴이라도 가끔 봐야 승진이나 좋은 보직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니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고, 뭔가 성과를 내고 싶은 기관장도 인력 뽑아 쓰기 유혹을 느낀다. 이런 식으로 현장은 늘 공백이 생긴다. 경찰이야말로 구조조정이 절실한 조직이다. 홍보 등 경무기능이 너무 크고 정보, 보안, 경비 등도 군사정권 시절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승진시험 준비하기 좋은 부서가 되어 버린 경비 분야도 대폭 줄여 일선으로 보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이 위험해지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지금껏 두 명만 출동했다면 서너 명이 출동하면서 경찰의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총을 쏜다는 위험천만한 방법 말고 구조조정을 통해 근원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게 경찰청장, 행정안전부 장관, 그리고 국회 행안위원들의 역할이어야 한다. 경찰청장을 위한 인력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일선 위주의 인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2022-01-19 | hrights | 조회: 2 | 추천: 0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초현실적이었다. 괴상했지만, 그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검찰총장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어쩌면 내년 5월부터 윤석열 대통령 시대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국민의힘 당원들은 26년 동안 당에 ‘헌신’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고, 당심은 민심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정당의 일반원칙마저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윤석열이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정치에 뛰어든 게 지난 3월이었다. 말뿐이었어도 내내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던 검찰총장이 곧바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건 ‘정의와 상식’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그동안 강조했던 ‘정치적 중립’ 운운하는 소리는 선출 권력을 비켜가기 위한 말장난이었고, 자기 정치를 위한 발판이었을 뿐이다. 학살자 전두환을 찬양하고 사과는 개나 주라며 국민을 모독하는 등 망언을 쏟아냈지만, 정치 신인 윤석열은 보란 듯이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이제 웬만한 기관장들은 대통령을 꿈꿔볼 만한 세상이 되었다. 윤석열이 물꼬를 텄고 김동연, 최재형 같은 이들도 대권을 꿈꾸며 몸을 움직였다. 뭐라 변명하든 이제 공직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자기 선거운동을 위한 디딤돌로 전락해버렸다. 이런 현상이 문재인 정부의 인사실패에서 도드라진 건 맞지만, 머슴이 주인 노릇에 익숙해진 탓이 훨씬 크다. 여야보다 관료들의 패거리인 관당이 실질적인 집권세력이 된 오늘의 한국적 민주주의가 낳은 폐해이기도 하다.  대선 후보가 되었어도 윤석열의 태도는 섬뜩하다. 현 정권에 대한 분노에서 멈추지 않고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집념까지 내비친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홍준표의 말처럼 ‘석양의 무법자’처럼 돼가고 있다. 법도 없고, 상식도 통하지 않는 세상, 그저 총을 빨리 쏘는 사람만 살아남는 그 옛날의 무법천지를 닮아간다는 거다. 이기면 대통령이 되지만, 지면 감옥에 가는 ‘처절한 대선’이란다. 경선 패배자의 푸념만은 아니다. 국면 자체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사활을 건 거친 싸움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덟 번째 대선인데, 구도와 수준은 유례없는 최악이다.  대선판을 주도하는 건 검찰이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대선판이 요동칠 테고, 결국 대통령은 검찰이 낙점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검찰이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는 뻔하다. 자기들이 모시던 검찰총장이 후보로 출마했으니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닐 거다. 요즘은 말뿐이라도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검찰이 주도하는 대선, 이건 사실상의 쿠데타다.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밑천이 총과 탱크였다면,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 그리고 형집행권이 바탕이다. 형사사법을 좌우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옛날에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은 군복을 벗고 정치를 시작했다. 번거로워도 최소한의 절차는 거쳤다. 요즘의 검사들에게는 그럴 필요조차 없어졌다. 검찰총장에서 대선 후보로 직행한 윤석열에게는 군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 같은 최소한의 절차조차 없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은 무한하다.” 이런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떠돈 지 벌써 수십 년이다. 군인들 세상이 물러가자, 검사들 세상이 왔다. 검찰은 주권자의 선택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도 자기 권력을 영속화하고 있다. 임기 제한조차 없다. 그래서 검찰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기 위한 검찰개혁을 진행했지만, 검찰의 전면적 반발에 혼란이 반복되었고, 마침내 ‘대선 후보 윤석열’이라는 보고도 믿기 힘든 괴상한 현실로 이어졌다.  윤석열은 야심차게 대통령을 꿈꾸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물론 김대중과 노무현까지 계승한단다. 두둑한 배짱이다. 그렇지만 김대중은 검찰에 대해 ‘최대 암적 존재’라 질타했고, 노무현은 검찰 때문에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언젠가 검찰은 집권 초기의 대통령 권력을 빼고는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이라고 쓴 적이 있다. 현직 대통령도 집권 후반기에는 검찰에 밀릴 정도로 검찰의 힘이 세다는 것이었지만, 이젠 바로잡아야겠다. ‘대선 후보 윤석열’에서 보듯 검찰권력이 전면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보수세력과 결탁해 자기 이권을 챙기거나 기껏해야 몇몇이 정치인이 되는 수준이었지만, 이젠 사뭇 달라졌다. 현직 검찰총장이 스스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판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소수의 쿠데타 세력과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싸움을 다시금 펼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비상 상황이다.
2021-11-12 | hrights | 조회: 170 | 추천: 4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대장동 사건의 첫 번째 구속자 유동규씨. 검찰이 압수수색을 나오자 휴대폰을 창밖으로 내던졌단다. 누군가 휴대폰을 집어갔다는 증언도 있었지만, 검찰은 끝내 휴대폰을 찾지 못했다. 피의자가 뭔가 숨기고 싶어한다는 건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압수수색은 강제수사의 핵심이라 인력도 제대로 동원하고 미리 도주로도 확보하는 등의 대비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제일 먼저 챙겨야 할 휴대폰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조국사건처럼’ 했다면 많이 달랐겠지만, 검찰은 일주일 넘게 휴대폰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그 휴대폰을 단박에 찾았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휴대전화 관련 고발장이 제출되자, 곧바로 유동규씨 거주지 부근 CCTV부터 뒤졌고, 하루 만에 휴대폰을 찾아냈다. 전광석화 같았다.  검찰이 일주일 넘게 찾지 못한 휴대폰을 경찰은 하루 만에 찾아냈다는 객관적 사실 앞에서 검찰은 “당시 휴대폰 수색을 위해 모든 CCTV를 철저하게 확인하지 못한 검찰 수사팀의 불찰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언론을 통해 밝혔다. 경찰이 금세 찾아낸 휴대폰을 검찰은 찾지 못했다면, 그건 실력의 문제일까 아니면 의지의 문제일까. 실력부족이든 의지박약이든 희한한 일이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데다 자칫하면 대선판까지 흔들지 모를 사건의 단서를 찾는데 이렇게까지 맹탕이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대장동 사건의 핵심은 누가 얼마나 돈을 챙겼는지에 있다. 아직 드러난 건 별로 없다. 몇몇이 50억원씩 챙겼다는 이른바 ‘50억원 클럽’의 명단이 떠돌긴 하지만, 아직은 조심스럽다. 돈을 준 쪽과 받은 쪽이 모두 인정하는 것은 곽상도 의원 아들이 받은 ‘퇴직금’ 50억원뿐이다. 당사자들이 뭐라 변명하든 간에 50억원이란 거액은 곽상도 의원에게 주는 뇌물일 가능성이 크다. 야당 국회의원에게 뇌물을 주는 까닭은 뭘까. 아무래도 힘이라면 야당보다는 여당 쪽에 쏠려 있기 마련이다. 당장 정부와 경기도, 성남시의 최고 책임자가 모두 여당 출신이다. 얼핏 보면 난제 같아 보이지만, 곽상도 의원이 검찰 출신에다 지난 정권 때 검찰 인사를 좌우했던 대통령 민정수석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 ‘50억원 클럽’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대개 검찰 요직을 지낸 전직 검사, 흔히 ‘전관’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돈이 어떻게 움직였나를 보면 사건의 얼개와 흐름을 알 수 있다. 돈을 굴려본 사람들은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안다. 부동산값 폭등에 따른 결과였다지만, 대장동 개발처럼 턱없이 많은 이문을 남기는 장사에는 아무래도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뒷배가 든든해야만 감당할 수 있다. 김만배씨처럼 법조 기자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이나 그보다 훨씬 작은 권한을 가진 자치단체장이 아니라, 검찰이 든든한 뒷배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거다.  직전 검찰총장이 사퇴와 입당만으로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 변신하는 개별적인 실력도 중요하지만, 검찰의 진짜 힘은 수사권과 기소권이다. 형사사법에 대한 모든 권한을 검찰이 쥐고 있으니, 큰판을 벌이거나 대놓고 불법을 저질러도 검찰의 비호만 받으면 두려울 게 없다는 거다. 검찰이 독자적 수사권에다 기소권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검찰만큼 든든한 뒷배는 없다. 범죄꾼들 입장에서 가장 든든한 비호세력은 오로지 검찰뿐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검찰공화국이다.   수사구조 개혁을 통해 미미하게나마 경찰도 수사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다. 검찰이 찾지 못한 휴대폰을 경찰이 찾아내서 수사의 완성도를 높이는 지금의 상황은 그래서 가능하게 되었다. 당장 대장동 사건만 하더라도 검찰이 마음대로 조작하거나 은폐하는 건 힘들게 되었다. 유동규씨 휴대폰처럼 어떤 기관이 잘못하면 다른 기관이 보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장동의 검은돈이 온통 전직 검사들에게 쏠린 상태이니, 검찰은 언제든 독주할 채비를 갖추고 있을 거다. 전·현직 검사들이 제 잇속만 차리기 위해 국민이 위임해 준 권한을 맘대로 휘두르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를 푸는 답은 민주주의의 원칙, 곧 분권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데 있다. 그래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나누는 분권이 우선해야 한다. 검찰은 국가기소청으로 본래적 임무만 맡고, 별도의 중대범죄수사청을 설립하는 등의 검찰개혁은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대장동 사건이 주는 교훈이다.
2021-10-15 | hrights | 조회: 371 | 추천: 11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군대는 전쟁을 대비하는 조직이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니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높은 정신력과 전투준비태세를 갖춰야 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훈련을 거듭하고 살신성인·멸사봉공의 자세,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하기에 직업군인들은 존경받는 대상이 된다. 군인에 대한 존경은 단순한 마음의 표현에서 그치지 않는다. 직업군인들이 자긍심을 갖고 유사시를 대비할 수 있도록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고용을 안정시키며 각종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급여는 상당한 수준이 되었고, 군인연금은 엄청난 수준이다. 2019년 1인당 월평균 군인연금 수령액은 272만원이었다. 국민연금 수령액이 40만원 남짓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주거 지원에다 각종 면세 혜택 등 사영기업 직원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혜택도 많다. 다치기라도 하면 무상 진료에다 엄청난 액수의 상이연금도 받는다. 상이연금은 군인연금과 무관하게 별도로 받는다. 10년만 근속해도 국립묘지 안장대상자가 된다. 국립묘지는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공헌한 사람을 안장’하는 시설이니, 10년 근속으로 희생과 공헌을 국가적으로 인정받는 거다. 이런 각종 대접이 적당한 건지도 의문이지만, 전투준비태세와 상관없는 집단이기주의, 고급장교들만의 기득권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가령 ‘체력단련장’이란 간판을 내건 군 골프장이 그렇다. 군은 30여개의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진짜로 체력단련을 위해 골프장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부대마다 연병장과 헬스클럽 부럽지 않은 체력단련실을 갖추고 있고, 사영 골프장이 곳곳에 널렸는데도 굳이 군이 직접 골프장을 운영하는 까닭은 뭘까. 땅값 빼고 건설비만으로도 수천억원씩 드는 골프장이 필요한 까닭은 편하게, 남다른 대접을 받으며 값싸게 골프 치고 싶은 장군 등 고급장교들의 욕구 때문이다. 의무복무를 하며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젊음을 빼앗기는 병사들은 빠지고, 직업군인으로 상당한 전문성을 갖춰도 부사관이라고 빼고, 같은 장교라도 하위 계급이라고 뺀 다음에, 스스로 특별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끼리 널찍한 전용시설을 독차지하고 ‘체력단련’을 하는 모습에서 군인의 기본을 찾아볼 수 없다. 고급장교들이 잇속만 챙기니, 전투준비태세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부대 운영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어느 부대나 핵심과제가 ‘부대관리’가 되었다. 그저 사고만 나지 않기를 바라며 사고가 나면 덮어버릴 궁리만 한다. 실제로 전쟁이 나면 전사할 가능성은 계급이 낮을수록 높아진다. 위험을 몸으로 겪어야 할 사람들은 홀대받고, 전시에도 별걱정 없을 사람들은 온갖 대접을 다 누리는 게 군대의 실상이다. 병사들에겐 면세 혜택이 절실하지만, 억대 연봉을 받는 장군들이 면세품까지 꼬박 챙기는 건 적절치 않다. 그래서 진짜 대접은 병사들과 부사관들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국군복지를 위한다며 골프장에다 호텔, 콘도, 컨벤션센터, 쇼핑센터에다 부대마다 ○○회관이라는 연회장까지 운영하며 돈벌이에 골몰하는 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짚어봐야 한다. 국방부가 서울에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각군본부의 계룡대 이전도 30년 세월이 흘렀고, 미군사령부도 평택으로 이전하는데도 국방부는 서울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직업군인들이 서울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욕구와 국방부 차원의 재산 지키기 말고는 다른 까닭이 없다. 국회를 옮기자는 논의도 활발하지만, 국방부 이전은 논의조차 없다. 군은 늘 성역에 머물러 있다. 서울 한복판이 이 지경이니, 전국 곳곳은 말할 것도 없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땅이 많다. 실제로 쓰지도 않으면서 시민들도 쓰지 못하게 묶어둔 땅들도 챙겨봐야 한다. 군인의 헌신과 희생은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다만 근속을 했다고 각종 훈포장에다 국립묘지 안장과 엄청난 연금까지 보장하고, 식구들과 대접받아가며 골프를 치면서도 대외적으로 체력단련한다고 너스레를 떠는 특권까지 용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래서 군대 개혁이 절실하지만, 국방부 셀프개혁으로는 드라마 <D.P.>에 나온 대사처럼 1953년식 수통 하나 바꾸지 못할 거다. 군대도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독일의 국방감독관처럼 군대 밖에 감시와 견제를 위한 별도의 독립적 기구를 설립해서 군대의 일탈을 막아야 한다. 우리 군이 더 망가지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한다.
2021-10-01 | hrights | 조회: 125 | 추천: 3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군대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면 늘 비슷한 대응이 뒤따른다. 정권 차원에서 부담스러운 사건이 터지면 달라지는 건 대응 수위가 높아질 뿐이다. 2005년 6월19일, 28사단 휴전선 감시초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당 차원에서 ‘병영문화 개선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6월27일 출범했다. 8명이 죽고 4명이 다친 사건이었으니,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와 별개로 7월에는 ‘병영문화 개선 대책위원회’를 민관군 합동으로 구성했다. 국방부 장관과 민간인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위원회 활동을 통해 군대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와 피해자 구조대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고, 독일식 국방 옴부즈맨에서 그 답을 찾았다. 국방부 차관보를 독일에 파견해 실제 운영사례를 배워오기도 했다. 하지만 변한 건 별로 없었다. 2014년 4월, 이번에도 28사단이었다. ‘윤일병 사건’이라 불리게 된 고문살인 사건이 터졌다. 국회는 ‘군 인권 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했다. 행정권과 사법권을 함께 가진 조직은 군이 유일하다며 군사법원 폐지를 권고하고, 성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판사가 아닌 사람을 관할관이란 이름으로 재판관을 시키거나 지휘관이 형의 3분의 1을 깎아줄 수 있는 ‘확인조치권’ 등도 폐지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지만 실제로 달라진 건 없었다. 2021년 5월, 성추행 피해자 공군 부사관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새로운 위원회를 만들었다. 국방부 장관과 민간인이 공동위원장을 맡는 방식은 같은데, 다만 위원회 이름이 좀 더 길어졌다. ‘정의와 인권을 위해 강하고 신뢰받는 군대 육성을 위한 민·관·군 합동위원회’. 6월28일에 출범한 이 위원회도 국방부에선 ‘병영문화 개선위원회’라고 부른다. 위원회 출범에도 불구하고 공군 부사관 사건과 아주 비슷한 사건이 해군에서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격노’했다고 했다. 일종의 비상사태 국면인데도 여군을 상대로 한 성추행 범죄가 반복되는 건 격노해야 할 일이 맞다. 하지만 대통령의 격노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긴급 소집된 지난 17일의 위원회 회의에서 수사 중이라며 사건 경위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적어도 3명의 위원들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거나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며 사퇴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 위원회는 또 어떤 결론을 내고 마무리될지 모르겠다. 당장 겪고 있는 파행을 잘 헤쳐나갈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군에서 젊은이들이 죽을 때마다 비슷한 위원회를 만들어 똑같은 대책을 마련하고 그 대책이 제대로 실현되는지 살피지도 않고 또 새로운 비극을 겪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문제는 심각하지만, 답은 대체로 나와 있다. 당장 시급한 과제는 군사법원법을 폐지하는 거다. 문제점 검토나 대안 마련 등은 이미 다 끝냈다. 벌써 공청회만 20년째다. 군사법원은 폐지하고 정 필요하다면 가정법원, 행정법원, 특허법원처럼 사법부에 군사법원을 만들면 된다. 군검찰과 군사경찰도 마찬가지다. 경찰청의 한 부서가 군대 관련 업무를 맡아서 다루면 된다. 수사, 기소, 재판을 부대장이 좌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확보하면, 비로소 신뢰가 생기게 된다. 공정한 사법절차를 기대할 수 없으니 자꾸만 구석으로 몰리게 되고,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군대만 감시하는 전문 감시기구도 절실하다. 흔히 국방 옴부즈맨이라 부르는 이 기구를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보훈민원과 정도에 맡겨둘 일은 아니다. 군대의 제반 활동을 감시하고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며 피해자를 돕는 전문적인 일을 하는 독립적 기관이 필요하다. 부사관들이 잇따라 죽어가고 있다. 부사관의 자살률은 병사보다 3배쯤 많다. 그만큼 힘들고 고단하다는 거다. ‘병영문화 개선위원회’에도 불구하고 낮은 계급이 피해자가 되는 악순환은 좀체 고쳐지지 않고 있다. 상급자가 범죄적 일탈마저 서슴지 않는 것은 하위 계급 군인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직장이라면 노동조합이 있어서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일들이 군대에서 반복되는 거다. 그러니 군대도 노조를 생각해봐야 한다. 노조가 너무 낯설다면, 다른 직역의 공무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직장협의회부터 시작해서 노조로 가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이렇게 새로 만들고 고치는 등의 구조적 접근을 해야만 ‘병영문화’도 고칠 수 있다. 지금 급한 건 군인들에게 실효성 있는 안전장치를 만들어주는 거다. 이런 식으로 군인들의 죽음을 방치하면 안 된다.
2021-08-24 | hrights | 조회: 184 | 추천: 4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몇몇 정치인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제1야당 대표까지 합세했다. 정치적 속내가 있겠지만 사회적 약자, 소수자인 여성들을 위한 핵심 부서를 없애자는 말을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몇몇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남성 청소년이나 청년 중에도 여성가족부 폐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존재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도 있다. 이런 반응은 여성혐오로도 연결되곤 한다. 남성도 살기 힘든데, 왜 여성만 챙겨주냐는 볼멘소리, 여성만 챙겨주는 부서가 있다는 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란 말도 자주 들린다. 여성들이 경쟁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은데, 왜 특혜를 주냐는 거다. 이런 푸념은 먹고사는 문제와 얽혀 제법 큰 목소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한번 따져보자.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통계를 여럿 갖고 있다. 자살률에 대한 여러 통계가 그렇고, 노동시간, 산업재해 사망자 숫자 등이 여전히 세계 일등이다. 성별 임금 격차도 제일 심각하다. 2019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남성은 월평균 369만원을 벌고 여성은 237만원을 번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4.2% 수준이다. 스웨덴이나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은 격차가 모두 10% 미만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도 13% 남짓일 뿐이다. 임금 격차가 크다는 건 그만큼 여성이 훨씬 더 심각하게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건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도 심각하다. 정규직은 월평균 361만원, 비정규직은 164만원을 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급여는 45.4%. 절반도 안 된다. 그러니 여성 비정규직이라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된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할 고통은 한둘이 아니다. 고통은 심각하지만 이를 넘어서기 위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다. 여성 국회의원은 전체의 19%밖에 안 된다. 광역단체장은 17명 전원이 남성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까 부끄러울 지경이다. 기초단체장은 226명 중에 겨우 8명만이 여성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가는 여성과 비정규직을 위해 보다 역동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남성이나 정규직은 아무래도 좋다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쪽을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거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약자, 소수자의 지위에 있다. 그러니 최소한의 균형이라도 유지할 수 있게,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바로 그런 일을 한다. 여성 정책을 기획·종합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확대하는 등 여성 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주무 부서다. 세상은 그저 ‘각자도생’의 원리로 돌아갈 뿐이니, 여성들은 먹고살려면 남성들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여성들이 공무원, 교사 등 그나마 차별이 덜한 공공부문에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관리직 등 높은 자리로 올라가긴 힘들겠지만, 그나마 숨통 트고 일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영기업은 사뭇 다르다. 여성은 아예 뽑지 않는 곳도 많고, 남성은 정규직으로, 여성은 비정규직으로 뽑는 곳도 많다. 여성에겐 아예 승진할 기회를 주지 않는 곳도 너무 많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먹고사는 문제에서도 여성들은 약자, 소수자일 뿐이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세계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 여성에게는 먹고살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나라에서 여성가족부를 없앤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여성가족부가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맞춰져야 한다. 부서 폐지는 그저 엉뚱한 소리일 뿐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거나 온갖 성 착취와 성범죄의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주무 부처를 없애자는 건 마치 노동자의 지위가 나아졌다며 노동조합을 해체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긴 어떤 야당 정치인은 귀족노조를 없애야 청년이 산다는 섬뜩한 선동도 서슴지않고 있다. 선거가 다가온 때문인지, 정치인들의 이런저런 선동이 자주 들린다. 문제는 이런 뻔한 선동에 넘어가는 청소년, 청년들이 적지 않다는 거다. 먹고사는 문제 등 당장 풀리지 않는 문제와 힘겹게 씨름하다 보니, 강렬한 선동일수록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야당 일부 인사들의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여성을 그저 남성의 하위 파트너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망언일 뿐이다. 여성 인권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의 구호가 여성혐오로까지 연결되는 상황에도 별 관심이 없다. 이런 극단적 정치인들의 활동 공간을 줄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마침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2021-07-28 | hrights | 조회: 295 | 추천: 7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아무나 직업군인이 될 수 없다. 국가가 보장하는 안정된 일자리인 데다 연금혜택까지 좋으니 직업군인이 되려면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단박에 시험에 붙기는 어렵고 몇 년씩 준비해야 하는데, 부사관이나 장교를 양성하는 학과가 설치된 대학만 60개가 넘는다. 이런 사정은 남군이나 여군이나 엇비슷하지만 할당받은 소수 인원만 뽑는 여군이 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직업군인이 되었다는 건,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국가가 인정할 만큼의 지적 능력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기본적인 자세도 갖췄다는 거다.  이런 사람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 군대는 모든 출구가 다 막힌 어두운 동굴처럼 변했고 범죄 피해자들은 2차, 3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2013년엔 육군 대위가 죽음으로 내몰렸고 2017년엔 해군 대위, 이번엔 공군 중사가 그랬다. 상관이 저지른 성범죄의 피해자였지만, 고통은 한 번의 범죄 피해로 끝나지 않았다. 군대에 있는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부대의 지휘관부터 군사경찰, 군검찰, 군사법원, 양성평등센터 등 내부의 모든 안전장치가 거꾸로 움직였다.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는 이유는 군대의 구조 때문이다. 싸워서 이기는 군대를 위해 엄정한 군기를 유지하고 잘 훈련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정확한 지휘체계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휘권은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솔선수범할 때 의미가 있지만, 현실에선 그저 지휘관이 되면 뭐든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특권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외부 감시마저 작동하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성범죄 피해자들의 절규도 막아버린다. 지휘관의 심기를 살피는 게 우선이라 생각하니, 보고를 왜곡하거나 아예 보고조차 하지 않는 일도 반복한다. 용서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상사의 무서운 협박을 사과 문자로 둔갑시키는 군사경찰의 횡포도 지휘권의 왜곡에서 비롯된 거다.  아무리 지휘관이라도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맘대로 할 수 없는 안전장치, 바로 ‘법의 지배’가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형사사건마저 지휘관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지휘관만의 ‘안전장치’가 너무 많다. ‘군사법원법’이 대표적이다. 군사법원법은 군인이나 군무원, 또는 군대와 관련 지역에 산다거나 군대와 관련한 범죄를 저지른 민간인에 대한 형사사건을 다루는 기관과 절차 등을 망라한 법률이다. 군대에는 군사경찰(얼마 전까지 헌병이라 불렀던), 군검찰, 군사법원이 따로 있다. 이들 기관의 구성원들은 모두 군인이고, 예외 없이 지휘관의 부하들이다. 서울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군사법원은 재판관 구성부터 이상하다. 재판관은 군판사와 심판관으로 구성한다. 심판관은 영관급 장교 중에 ‘법에 관한 소양이 있는 사람’이나 ‘인격과 학식이 충분한 사람’을 관할관이라 부르는 지휘관이 임명한다. 소양, 인격, 학식 같은 추상적·주관적 요건을 충족했다고 여기면 영관급 장교라면 누구나 판사처럼 재판관이 되는 거다. 군판사도 지휘관의 부하지만, 법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까지 재판관으로 집어넣어 군사재판을 맘대로 통제할 수 있는 지휘관만의 안전장치를 만든 거다. 2013년 육군 대위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유가족의 분노가 커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집행유예로 풀어주던 군사법원의 엉터리 판결도 이런 구조에서 나온 거다.  관할관의 ‘확인조치권’이란 희한한 권한도 있다. 지휘관이 선고된 형의 3분의 1을 마음대로 깎아줄 수 있는 권한이다. 지휘관이 ‘업무를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라고 규정하면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독립되어야 할 사법마저 이런 식으로 지휘관의 통제 아래 두고 있으니, 군사경찰이나 군검찰은 말할 것도 없다.  군사법원을 운영하는 까닭은 사법마저도 지휘관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시는 물론이지만, 전시와 같은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조차 군사법원을 운영할 까닭은 없다. 군인이어도 범죄를 저질렀으면 민간경찰에서 조사받고, 민간검찰의 기소를 통해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억울한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다.  지휘권은 아무렇게나 해도 좋은 특권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짊어진 무거운 짐과도 같은 부담이다. 지휘권은 그래서 권리가 아니라 의무에 가깝다. 잘못하면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무서운 자리다. 그렇지만 지휘관의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다. 모든 권력은 법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 그게 민주공화국을 만든 까닭이다. 대한민국 군대도 민주공화국의 군대여야 한다. 국회가 ‘군사법원법’을 폐지하면 바로 해결할 수 있다.
2021-07-07 | hrights | 조회: 387 | 추천: 8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7월1일부터 자치경찰제가 시행된다. 교육자치에 비해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경찰관서와 경찰관은 모두 국가경찰 체제인데 자치 사무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만 자치경찰위원회가 갖고 있다. 부족한 수준이지만, 그럴수록 자치경찰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치경찰위원회는 시·도의회 2명, 국가경찰위원회 1명, 교육감 1명, 위원추천위원회 2명 등 추천받은 6명과 시·도지사가 지명한 1명을 합해 7명으로 구성한다. 법률은 특정 성(性)이 10분의 6을 넘지 않고, 적어도 한 명은 인권전문가를 임명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실상은 크게 다르다. 부산·대전·충남·경남·강원은 위원 전원이 남성이다. 나머지 지역도 구색 맞추기 식으로 여성을 한두 명 끼워넣었을 뿐이다. 유일하게 경북만이 남성 4명, 여성 3명으로 법률의 취지를 살렸다. 인권전문가는 어디서도 찾기 어려웠다. 전직 경찰관과 경찰행정학과 교수 등 경찰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위원회가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자치경찰위원회도 국가경찰위원회처럼 알리바이형 위원회로 전락하게 될까 걱정이다. 경북도 자치경찰위원회 출범식 모습 사진 출처 - 경북도  자치경찰위원회 위원 추천권을 지닌 국가경찰위원회는 지난 3월 경찰청이 준 후보 명단을 ‘원안 의결’로 통과시켜버렸다. 추천 사유는 물론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언론보도를 좇아 한 명씩 찾아 확인한 위원 대부분은 전직 경찰관과 경찰행정학과 교수였다. 대부분 남성이었다. 인천 지역 위원 추천이 특히 그랬다. 국가경찰위원회는 2009년 용산참사의 진압 책임자였고 나중에 인천경찰청장을 지낸 사람을 추천했다. 경찰청장이 사과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추천권을 가진 국가경찰위원회 위원장은 사과는커녕 사안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문제가 불거져 다른 사람을 추천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국가경찰위원회는 다시 전직 경찰관을 추천했다.  1987년 6월항쟁은 대통령직선제만 요구하지 않았다. 경찰개혁의 목소리도 높았다. 경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박종철·이한열 같은 죽음도 막을 수 있고, 주권자에게 함부로 몽둥이를 휘두르는 백골단의 폭력도 멈출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조직이 국가경찰위원회다.  1991년 출범한 국가경찰위원회는 경찰청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기구가 아니라, 경찰청의 요구만 따르는 알리바이형 기구였다. 30년 동안 모두 2345건을 의결했지만, 이 중 부결은 3건에 불과했다. 겨우 0.1%, 곧 순도 99.9%의 어용조직이었다. 지난해 12월 경찰법 전면 개정 때도 국가경찰위원회는 그대로 두었다. 여당 입장에서는 어용위원회가 편할 거다. 6월항쟁의 성과로 출범한 국가경찰위원회가 30년 내내 경찰청의 자문기구만도 못한 엉터리로 전락한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여당 의원 다수가 6월항쟁에 참여했다고 자랑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역설적인 항쟁의 성과는 없었다.  관료들만의 행정을 넘어 민주적 정당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위원회 활동이 절실하다. 그러나 국가경찰위원회처럼 위원들이 해당 기관의 요구에만 부응하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관료들이 불편해할 만한 이야기는 삼가고, 위원회 활동을 통해 관료들과 연줄을 만들고, 관료들의 하위파트너가 되려는 사람도 많다. 위원회를 통해 행정관청을 통제하는 모델은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위원회들이 민주주의를 실질화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근사한 시늉을 위한 방편이어선 곤란하다. 국가경찰위원회 같은 법률기구도 30년 내내 엉망이었던 데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위원회 실질화 방안이 제대로 논의되어야 한다. 기관장 맘대로 결정하는 위원 선임권도 시민사회 추천 등으로 다변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어떤 사람을 누가 왜 추천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후원회장을 자치경찰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같은 배짱을 막을 수 있을 거다.  위원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책무성을 요구하고 염치를 알라고 호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염치없는 짓을 하지 못하게 안전한 구조를 만드는 게 더 시급하다. 회의 방청을 통해 공개적으로 위원회를 운영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 등을 위해 부득이하게 회의를 공개하지 못할 때는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고, 그 사안만 비공개로 진행하면 된다. 회의록을 포함한 회의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법률 근거가 있는 위원회는 위원장의 국회 출석과 답변도 의무화해야 한다. 뭐가 되었든 제대로 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위원회 제도 자체에 대한 고민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2021-06-02 | hrights | 조회: 358 | 추천: 6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몇몇 국회의원들이 군대와 관련해 농익지 않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박용진 의원은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자면서도 병역의무를 여성에게까지 확대하는 전 국민 징병제를 시행해야 한단다. 모순이다. 이름은 근사하게 ‘남녀평등복무제’라 붙였지만, 왜 여성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지에 대한 특별한 설명은 없다. 그저 병역 대상이 늘어나고 군가산점제를 둘러싼 논란을 종식할 수 있어 좋단다. 군가산점제 논란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진작에 끝났지만, 일부 정치인이 엉뚱한 논란을 일으켜 문제일 뿐이다. 여성에게도 병역의무를 부담시키는 하향 평준화 방식으로 성평등을 말하는 것도 놀랍다. 이런 식이면 남성도 임신과 출산을 함께해야만 성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적 함정에 빠지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군대 자체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거다. 우리에게 필요한 군대는 어떤 군대인지, 군대에는 바꿀 게 없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조차 없다. 군대는 요지부동인데 젊은 인구가 줄어드니 여성도 징병대상으로 삼으면 된다는 거다. 군대에 의무복무 병사들이 얼마나 필요한지, 복무기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군대는 어떤 규모로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등 핵심적인 질문은 빠져 있다. 군대에서 병사들의 역할은 대개 쓸데없는 일을 반복하는 거다. 불침번이나 외곽 경계근무를 반복하는 게 일상이고, 부대의 허드렛일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각개전투, 유격훈련처럼 효용이 없어진 유물적 행태를 반복하는 교육훈련도 한심하다. 왜 쓸모없는 훈련을 하는지 모르겠다. 군사력은 숫자에 달려 있지 않다. 첨단무기를 얼마나 보유하는가, 무기를 생산하고 운용할 경제력이 있는가 등이 좌우한다. 하지만 한국군은 육군 보병 위주, 숫자 위주의 옛날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 육군 장군 숫자가 미군보다 많다거나 중령 이상 고급장교 숫자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반복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첫 국방부 장관은 ‘국방개혁 2.0’을 통해 “공룡 같은 군대를 표범같이 날쌘 군대로 만들겠다”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예산을 절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비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의 증가율보다 훨씬 높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장군 숫자도 대폭 줄일 수 있지만, 겨우 몇십 명 줄인다고 발표했을 뿐이다. 국방부와 그 직할부대, 방위사업청 등에 잔뜩 진을 친 장군들이 엄청 많은데도 그런다. 1만명쯤 되는 고급장교도 마찬가지다. 전투력과 상관없는 인력은 절반 이상 줄여도 되는데, 거꾸로 늘어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직업군인들은 일반 공무원보다 2개 직급이나 높은 대접을 받는다. 5급인데 3급 월급을 받는 거다. 전두환 때 만든 이상한 지침이 근거다. 군인연금에 대한 국가보전금도 지나치게 많다. 직업군인들의 특혜를 위해 쓰이는 세금이 너무 많다. 직업군인들은 누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국가유공자가 된다. 10년만 근무하면 무조건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가 된다. 유공자와 국립묘지를 관할하는 국가보훈처는 장차관 모두 국방부 출신으로 국방부 뒷마당 역할에만 충실할 뿐이다. 직업군인들이 넘치는 대접을 받는 이면엔 최저임금도 안 되는 용돈 수준의 급여만 받으며 세월을 허비하는 의무복무 병사들이 있다. 직업군인들, 특히 고급장교들의 기득권을 위해 병사들을 강제 동원하는 방식으로 한국군을 운영하는 거다. 온통 낭비적 요소로 가득한 군대는 덩치만 큰 느린 공룡이 되었다. 병사들은 소모적 존재로 그저 숫자만 채우고 있다. 병사들의 숫자가 채워져야 대대-연대-사단으로 이어지는 장교들의 보직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에는 고치고 바로잡을 게 너무 많다. 국가는 국방개혁부터 해야 한다. 국민의 의무를 늘리는 건, 그다음에나 생각해볼 문제다. 혈세를 낭비하면서 세금 더 거둘 생각에만 골몰하는 꼴이어선 곤란하다. 아무 쓸모 없이 그저 국방부 재산 지키겠다는 차원에서 독차지하며 방치하는 군대 땅은 또 얼마나 많은가. 민관군 합동으로 현지조사를 하고 불필요한 땅은 국가에 반납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군대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하지만, 그걸 실천할 직업군인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생각은 딴판이고 개혁을 위한 실천은 거의 없다. 오로지 고급장교들의 기득권만을 지키기 위한 군대는 바꿔야 한다. 모병제는 꼼꼼하게 검토할 문제다. 잘못하면 가난한 젊은이들만 군대 가고, 군대 다녀오면 ‘2등 시민’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그러니 제대로 논의하고 충분히 토론해야 한다. 그런 논의 이전에 급한 숙제는 군대를 개혁하는 거다.
2021-05-04 | hrights | 조회: 546 | 추천: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