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한국 대통령은 젠더 불평등에 대한 압박 질문에 불안감을 드러냈다.” 한·미 정상회담 때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 대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제목이다. 관련 동영상을 되풀이해서 보니, 불안해 보인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사실 불편해 보이기는 했다. 기자는 대선 기간 성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도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하는 등 대통령의 오락가락 행보를 지적했다. 한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내각 인선에선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의 답변은 딱 한마디였다. 아직 여성들이 장관이 될 만한 자리(그 직전의 위치)까지 올라오지 못했는데, 앞으로는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말은 예외적인 몇몇 경우에만 해당하는 엉터리 답변이었다. 이를테면 경찰청장은 경찰공무원법의 규정에 따라 ‘바로 아래 하위계급’인 치안정감 중에서 임명할 수 있다. 여성 경찰청장을 임명하고 싶어도 치안정감에 이른 여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익숙한 검찰총장 같은 자리는 이런 규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검찰청법은 검찰총장 임명자격에 대해 15년 이상의 판사, 검사, 변호사 경력 정도를 규정할 뿐이다. 정부조직법도 국무총리, 부총리와 각부 장관의 역할만 규정할 뿐 별도의 임명자격을 정해두지 않았다. 그러니 대선 당시 공약한 것처럼 30대 장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장관 바로 밑의 ‘직전의 자리’라는 건 애초에 없었다. 장관 인사를 해당 부처의 차관을 지냈던 사람 중에서 고른 것도 아니었다. 장관, 차관, 청장, 처장 등 정부 고위직은 대통령이 자유롭게 임명할 수 있는 자리다.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는 참사라 부를 만큼 엉망이었다. 동창, 근무 인연, 같은 아파트 주민 등 주변을 맴도는 인사는 놀라웠다. 윤 대통령이 지금껏 밝힌 인사 배경은 ‘오로지 능력’이었다. 대통령 측근이면 저절로 능력이 출중해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누가 봐도 적임이라 할 만한 인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성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남성들만의 잔치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19명의 국무위원 가운데 여성은 3명뿐이었다. 장관 인사에서 남성 편향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자, 대통령 당선인 시절의 답변은 전향적이었다. 장관급 대상자 중에는 여성이 별로 없지만, 차관급 정도에는 여성 인재들이 ‘굉장히 많다’며 ‘남성 편중’이야기가 안 나오게끔 인선이 이뤄질 거라고 했다. 그런데 차관급 인사 41명 중에서 여성은 2명에 불과했다. 더 나빠졌다. 전체 장차관 60명 가운데 여성은 겨우 5명이다. 5명조차 곧 해체하겠다는 여성가족부 장차관을 포함한 숫자다. 중요 공직자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3%. 여성 비율이 50%를 오가는 나라들에 비하면 참담한 수준이다.  국회의장단과의 만남에서 젠더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자 윤석열 대통령은 매번 그런 것처럼 전향적인 이야기를 반복한다. 여성이어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게 누적되어 어떤 여성에 대한 평가가 다른 사람보다 뒤졌다는 참모의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거다. 그래서 앞으로는 공직 인사에서 여성에게 과감한 기회를 부여하겠단다. 매번 말만 이렇게 한다.  대통령의 말이 뻔한 임기응변이 아니려면, 문재인 정부에서 했던 것처럼 각료의 30%, 또는 40%를 여성으로 임명하겠다는 식으로 기준을 설정하고 지키도록 해야 한다. 목표를 정하고 억지로 노력해야만 겨우 달성할 수 있을 만큼 한국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열악하다. 어제 신임 교육부·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에서처럼 의식적으로 여성 공직자를 임명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대통령이 가진 권한이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잠시 빌려준 권한일 뿐이다. 그러니 더 엄격해야 한다.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최측근 한동훈씨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밀어붙이고, 대통령실 인사도 간첩 조작, 성추행 등 온갖 의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공직자가 모두 적임이며, 오로지 능력으로만 사람을 뽑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 공직자들도 각자 부처에서 대통령식 인사를 남발할 거다. 균형은 무너지고 친소만 남는 이상한 인사가 판치게 될 거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목격했듯이 한국처럼 잘사는 나라가 어떻게 대통령 인사에서는 이렇게 지독한 성차별을 하냐는 외국 기자의 질문이나 받으며 살게 될 거다. 이럴 때 부끄러움은 늘 국민의 몫이다.
2022-05-27 | hrights | 조회: 113 | 추천: 4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갇힐 위험에 놓인 가난한 시민을 돕기 위해 만든 장발장은행. 간단한 심사만으로 무담보, 무이자 대출을 해준다. 그러니 벌금 낼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이 쏟아져 들어온다. 최근 대출심사를 하면서 한 통의 약식명령서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여성이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렸지만 갚지 못했고, 이 때문에 ‘사기’죄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사건이었다. 빌린 돈만큼의 벌금을 받았다. 개인 사이의 민사는 이렇게 형사사건으로 둔갑하고, 단순 채무불이행은 사기범죄가 된다. 전과자를 양산하는 이상한 시스템이다. 법원은 피고인이 “빚을 갚을 의지나 능력이 없으면서도 공연히 돈을 빌렸다”며, 피고인의 저 깊은 속내까지 파악해 형사처벌을 한다.  깜짝 놀랄 대목은 따로 있었다. 피고인의 약식명령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피고인은 유흥접객원으로 일하던 사람이다.”  약식명령이든 판결문의 첫머리에는 이런 식의 인정신문 내용이 붙기도 한다. 피고인을 특정할 만한 표지를 꼽거나 범죄와 관련해 꼭 짚어야 할 사항을 적어두기도 한다. 그렇지만 ‘유흥접객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은 범죄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그저 혐오성 낙인에 불과하다. 판사는 왜 이렇게 오금 박듯 적어두었을까. 왜 과거에 종사했던 일이 유독 이 여성에게만 중요한 표지가 되었을까. 그 사람은 40대, 여성, 한부모 가정의 어머니, 어느 지역에서 어떤 직업에 종사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이것 말고도 그를 알려줄 표지는 훨씬 더 많을 거다. 그런데도 ‘유흥접객원’을 유일한 표지로 꼽은 건 왜일까.  만약 그의 과거 이력이 범죄와 연관이 있다면 또 모르겠다. 과거에 전문적인 사기집단의 조직원으로 일했다거나, 돈 떼먹는 일을 직업적으로 했다면 그럴 수 있을 거다. 만약 피고인이 남성이라면 이런 식으로 함부로 낙인찍힐 일은 없었을 거다. 법원이 대놓고 판결문을 통해 인권을 침해하는 이런 식의 사례는 숱하게 많다.  판사들이라고 변명할 말이 없지는 않을 거다. 인력은 적고 일은 많다는 흔한 이야기부터 적용 법률과 양형이 맞는지 살펴보는 게 급선무라 놓쳤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약식명령서를 판사들이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검찰에서 넘겨준 공소장을 그대로 옮긴다. 검사의 이름을 판사의 이름으로 바꾸는 게 전부다. 마찬가지로 검찰은 경찰이 작성한 서류를 그대로 옮긴다. 아무리 그래도 기껏해야 몇 줄 안 되는 약식명령을 쓰면서, 아니 검토하면서, 맨 앞줄에 적힌 ‘유흥접객원’ 운운을 챙기지 않았던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이런 잘못은 서류 작성의 맨 앞에 있었던 경찰관에게서 비롯되었을 거다. 그러나 우리의 형사사법시스템은 수사기관의 잘못을 기소기관이 걸러내고, 기소기관도 챙기지 못한 것은 법원이 바로잡으라는 차원에서 설계되었다. 사법절차는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마치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듯 기계적으로 돌아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밥그릇 싸움을 보면,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는 업자들만의 다툼을 확인할 수 있지만, 사법절차의 진짜배기 핵심은 서로 다른 기관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잡아서 잘못을 줄여보자는 거다.  벌금형 선고가 예상되는 형사사건은 중요하지 않은 사건으로 취급하겠지만, 빌린 돈도 갚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벌금까지 매길 때는 판사의 고민이 담겨야 한다. 매년 수만명의 사람이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가는 현실을 고려하면, 가난한 사람에게 벌금형은 징역형과 별다르지 않다. 법원으로서야 크고 작은 사건이 따로 있는지 모르지만, 당사자 처지에서는 자기 사건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은 검사들이 국민을 위한 호민관 역할은 제쳐두고 오로지 제 잇속만 챙기며 생긴 반작용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틀어쥔 권한의 독점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오로지 국민만 쳐다보고 일해 왔다면, 민주주의 원리에는 맞지 않아도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바탕으로 그 정도 권한은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 높았을 거다.  법원도 마찬가지다. 법원에서 보통의 시민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가를 생각하면 아뜩해질 지경이다. 법원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기 전에 자기 혁신의 노력부터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동안 벌금형에 대해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던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벌금형에 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2022-05-02 | hrights | 조회: 111 | 추천: 2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군대는 불편한 것투성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도 그렇고, 당장 의식주부터 불편하다. 언제나 제복을 입어야 한다. 쉴 때도 똑같은 운동복을 입어야 한다. 머리카락 길이도 스타일도 통제한다. 늘 ‘용모단정’을 요구한다. 여럿이 함께 자는 것도 불편하다. 입고 자는 거야 단체생활이 으레 그렇겠니 싶을 수도 있지만, 먹는 것은 좀체 적응이 어렵다. 세끼를 모두 부대에서 제공하는 급식을 먹어야 한다. 메뉴를 선택할 수도 없고, 먹고 싶을 때를 고를 수도 없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없다.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없다. PX에서 컵라면이나 냉동식품 등 간편식을 먹을 수 있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진짜 곤혹스러운 건 밥을 짓는 일이다. 군인들이 먹는 밥은 군인들이 만든다. 그런 법이 있는 것도, 작전상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래전부터 내려온 관성으로 그리한다. 조리병들은 하루에 세 번씩 전투를 치른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아침밥을 지으려면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야 한다. 보통 6시30분부터 아침을 먹는 군대식 일과에 맞추려면 새벽잠은 포기해야 한다.  군대의 세끼는 사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맞춰져 있다. 장병들의 아침 식사가 끝나면 조리병들도 밥을 먹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한숨 돌릴 겨를은 없다. 설거지에다 식당과 주방을 청소하고 음식물쓰레기까지 처리해야 한다. 점심용 재료를 다듬고 나서야 겨우 30분 남짓 짬을 낼 수 있지만, 곧바로 점심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병영식당은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 ‘격전의 공간’이다. 언제나 밥과 국,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 내야 한다. 똑같은 과정을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반복한다. 남들 다 쉬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일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날이든 세끼 밥을 먹는다는 철칙은 바뀌지 않는다. 잠은 늘 부족하고 남들처럼 쉴 수도 없다. 인력은 늘 부족하니 외출과 휴가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일은 고되지만, 보람이나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입맛이 제각각인 데다 선호하는 메뉴도 다른 사람들의 입맛을 다 맞춰줄 수도 없다.  종일 병영식당에서 지내다 보니, 음식물 냄새, 흔히 ‘짬내’라 부르는 고약한 냄새가 몸에 밴다.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고 동료 병사들마저 싫은 티를 낸다. ‘짬내’ 때문에 조리병끼리 생활실을 쓰게 하는 경우도 많다.  병영식당은 모두가 꺼리는 곳이다. 조리병들의 불만은 쌓여만 간다. 그러니 군대와 관련한 가장 빈번한 민원은 바로 병영식당에서 근무하지 않게 해달라는 거다. 이건 의경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병영식당 책임을 맡은 직업군인도 날마다 전전긍긍이다. 오겠다는 사람이 없으니 ‘명령’을 반복해야 한다. 일단 병영식당에 오면 어르고 달래고 때론 윽박지르며 병영식당 인력을 유지하지만, 병영식당은 늘 일촉즉발의 현장이다. 아무리 군인이어도 실시간으로 쌓여만 가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명령만으로 잠재울 수는 없다. 다만 사고만 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싸워서 이기는 게 임무인 군대가 먹는 문제로 온통 몸살을 앓고 있다.  지금의 징병제도를 그대로 운용할 수 없다는 건 명백하다. 청년들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으니 대책이 시급하다. 징병제와 모병제를 섞자거나 복무기간을 늘리자는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어떤 길을 가든 군대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당장 불필요한 인력을 줄이고, 꼭 필요한 곳에 합리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그건 의무 복무를 하는 젊은 국민에 대한 국가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니 당장 조리 인력부터 없애자. 줄이는 게 아니라, 아예 밥하는 군인 자체가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그건 국방부도 이미 알고 있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에는 밥 짓는 군인이 한 명도 없다. 미군 식당은 민간이 운영한다. 대개 뷔페식으로 운영한다. 게다가 부대 안에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 등이 다양하게 들어와 있다. 치킨, 빵, 피자 가게들이다. 뷔페 식사 말고 따로 먹고 싶은 게 있다면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다. 미군이 아주 오래전부터 해온 일을 왜 우리 군대만 하지 않는 걸까. 급식은 경쟁력 있는 급식업체들이 잘 차려내면 되고, 군인들은 오로지 본연의 임무에만 집중해야 한다. 전투상황에는 어떻게 대응하냐고? 그땐 전투식량을 먹으면 된다.  2만명쯤으로 추정되는 조리병 문제를 풀면, 2만명의 군인을 새로 얻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국방개혁은 중단 없이 추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고칠 수 있고, 효과가 분명한 일부터 챙겨보자.
2022-04-01 | hrights | 조회: 244 | 추천: 4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늘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되었다. 바야흐로 국민이 선택할 시간이다. 그동안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당선 가능성이 큰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각각 유능한 일꾼론과 정권교체론으로 맞서고 있다. 집권세력이 제대로 못했다면 바꾸는 게 맞다. 어떤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 정권교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권세력에 책임을 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묻지 마 정권교체’는 곤란하다. 집권세력이 잘한 것과 못한 것을 꼼꼼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정권을 바꿀 까닭을 분명하게 확인했다면, 그다음엔 ‘좋은 정권교체’인지 물어야 한다. 정권을 바꾼 결과가 더 나쁘다면 선거는 그저 단순한 분풀이에 불과하게 될 거다. 5년 만의 대선을 그렇게 허비할 수 없다. 선거 결과에 따라 국민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권교체가 의미가 있으려면, 이전 정권보다 더 잘할 거란 확신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안철수식 ‘묻지 마 정권교체’가 별 반향을 일으키지 않는 거다. 얼마 전 유세에서 “윤석열이 되면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겠는가. (윤석열을 찍은) 내 손가락 자르고 싶어질 것”이라고 비난했던 사람이 갑자기 윤석열 후보를 지지해달라며 사퇴한 것도 ‘정권교체’를 위한 것이란다. 다당제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했던 사람이 결국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윽박지르는 형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권교체의 유력한 대안으로 윤석열 후보가 꼽히지만, 더 좋은 정권교체를 실현할 사람인지 의문이다. 다들 알고 있듯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나 문재인 대통령보다 무엇이든 더 잘할 가능성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윤 후보는 무엇보다 대통령 자질을 갖추지 못했다. 시민으로서의 기본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보인다. 사람들은 열차 좌석에 구둣발을 올려놓은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지만, 그건 몰상식하고 매너 없는 사람이라 여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국정운영은 전혀 다르다. 누가 지도자가 되느냐에 따라, 그 지도자의 역할에 따라 국민은 생사 갈림길에 서기도 하고 나라의 운명이 뒤바뀌기도 한다. 국민 앞에서 진행한 텔레비전 토론에서 보여준 윤석열 후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윤석열 후보는 국정 운영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했다. 기본적인 용어도 모르고 정책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모르고 있었다. 상대가 질문하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데 아예 아무런 답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잦았다. 때론 두루뭉술하게 말하거나 동문서답을 했다. 토론의 규칙도 자주 무시했다. 검사 시절 피의자를 두고 호통치던 모습이 저렇겠구나 싶었다. 토론 내내 이재명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에만 집중했다. 기회만 있으면 대장동에 대해 공격했지만, 막상 이재명 후보가 선거 이후라도 대장동 특검을 도입해서 끝까지 책임을 묻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이것 보세요”만 반복했다. 다섯 번을 물어도 끝내 답하지 않았다. 토론에 임하는 윤석열 후보는 상대 후보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었다. 토론을 엉망으로 만들어 미래의 정책과제를 챙겨야 할 귀한 시간을 날려버리고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이는 상대 후보만이 아니라 텔레비전을 보는 국민마저 우습게 여기는 태도다. 후보 시절에도 저렇게 행동하는데,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할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 토론을 처음 시작한 1997년 대통령 선거부터 지금까지 어떤 선거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렇게까지 무례한 후보는 일찍이 없었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벼락공부로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후보로 나섰으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한다. 자기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 아무 말이나 하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의도가 잘못 전달되었다며 주워 담는 건 너무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검사 시절의 일탈, 명백한 범죄를 짐짓 모른 척 봐주거나 거꾸로 결론을 정해놓고 사람을 집요하게 괴롭혔다는 의혹도 많다. 대장동과 부산저축은행, 삼부토건, 고발사주, 판사사찰 등의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부인과 장모의 주가 조작 의혹 등 여러 범죄혐의도 만만치 않다. 일부러 병역을 피했다는 의혹도 해소되지 않았다. 남들이 써준 것을 읽기만 할 정도로 실력도 형편없다. 국정 과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부족한 사람이, 무엇보다 기본적인 태도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정권교체론에 기대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그건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2022-03-04 | hrights | 조회: 350 | 추천: 9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설연휴가 한창이던 지난 일요일. 윤석열 후보는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 해결”이라는 새로운 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외국인 직장가입자 중 다수 피부양자 등록 상위 10인은 무려 7~10명을 등록했다”라고 지적하며 외국인 건강보험 급여 지급 상위 10명 중 8명은 중국이며, 이 중 6명이 피부양자라고 했다. 또한 “어떤 중국인은 피부양자 자격으로 약 33억원의 건보급여를 받았지만, 약 10%만 본인이 부담”했다며 “우리 국민이 느끼는 불공정과 허탈감을 해소할 방안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국민이 애써 만든 건강보험 체계가 중국인들의 ‘숟가락 얹기’ 때문에 허물어지고 있으니 바로잡겠다는 거다. 윤 후보는 대놓고 중국인 등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비난했지만, 실제 내용은 왜곡하거나 극단적으로 과장했다. 먼저 외국인 보험가입자의 피부양자가 많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2019년 12월 기준으로 내국인 직장 가입자는 1812만명에 피부양자가 1910만명으로 1인당 피부양자 수는 1.05명이다. 외국인 직장 가입자는 51만명에 피부양자가 20만명으로 1인당 피부양자는 0.39명이다. 외국인 피부양자가 내국인보다 2.7배나 적다. 그런데 피부양자를 많이 등록한 10명만 꼽아서 일반적인 사실인 것처럼 왜곡했다. 중국인을 꼽은 것도 지나친 과장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 중에서 절반쯤은 예전에 ‘조선족’이라 부르던 중국 교포를 포함한 중국인들이다. 다른 어느나라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게다가 중국 교포들은 50대 이상이 많기에 병원 진료가 잦을 수밖에 없다. 50세 이상 전체 외국인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65%나 된다. 건강보험 지급 순위에서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혈우병이라는 희소병을 앓아 많은 급여를 지급했던 사례를 두드러지게 보여주면서 외국인이 건강보험 재정을 축내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사실은 온통 거꾸로다. 외국인 처지에선 건강보험 가입이 불리하기 짝이 없다. 내국인보다 더 많은 보험금을 내야 하고 자격도 까다롭게 따진다. 내국인을 상대로 한 건강보험은 늘 적자투성이지만, 외국인 대상 건강보험은 언제나 엄청난 흑자를 기록했다. 흑자 폭은 2019년 7월부터 외국인 건강보험 의무가입제도를 시행하면서 부쩍 늘어났다. 2018년엔 2251억원이던 흑자가 2020년엔 5715억원으로 늘었다. 2020년 한 해 동안 외국인들은 1조4915억원의 보험료를 냈지만, 이들에게 지급한 급여는 9200억원뿐이었다. 2015년부터 6년 동안에만 외국인 상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거둔 흑자가 2조원이 넘는다. 엄청나게 수지맞는 장사를 한 셈이다. 2020년 국민건강보험의 적자는 2531억원이었다. 외국인이 아니었다면, 적자는 9000억원대가 되었을 거다. 외국인의 곤궁한 처지를 악용해 떼돈을 벌었다고, 내국인에게 쓰는 급여비용을 외국인에게 떠넘긴 셈이다. 숟가락을 얹은 건, 외국인이 아니라 내국인이라고 비난해도 뭐라 변명할 말이 없다. 사실 윤 후보가 제기한 문제는 국회에서도 논란이 되었던 사안이라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나 기사 검색만으로 간단하게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적자를 외국인들이 메워주고 있는데도, 아주 극단적인 단 하나의 사례, 또는 10명의 사례만을 꼽아서 국내 거주 중국인들 때문에 우리 국민이 불공정한 상황에서 불이익을 당해 허탈하다고 선동을 했다. 중국 교포를 포함한 국내 거주 중국인 대다수는 내국인이 피하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에 종사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도 못하며 살고 있다. 게다가 외국인이란 이유만으로 건강보험료도 훨씬 많이 내야 하는데, 거꾸로 유력 대선 후보에 의해 이런 모략까지 당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의 이번 공약은 누군가를 미워하라고 손가락질하며 나머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뻔한 행태다. 그 누군가는 매번 약자 또는 소수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약한 사람들을 골라 갈라치기를 하면서 혐오를 선동하는 거다. 고전적인 파시스트 수법이다. 문제는 이런 메시지가 반복적이라는 거다. 여성가족부 해체, 멸공 놀이, 죽창가 운운하는 것도 비슷한 차원이다. 선거전략으로 일부러 그러는 거다. 2022년 대선에서 인종차별적 혐오를 선동하는 후보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세상은 이렇게 만만하지 않다. 아무리 대선 승리가 중요해도 거짓말을 반복하며 반인권적 인종차별을 부추겨선 안 된다. 정말이지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2022-02-07 | hrights | 조회: 366 | 추천: 6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인권이란 말은 애초부터 한반도엔 없던 말이다. 기록문화대국이던 조선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인권이란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인권이란 말은 일본 사람들이 번역한 말을 그대로 수입해 쓰는 거다. 일본 사람들은 영어 단어 right를 권리(權利)라 옮겼지만, 썩 좋은 번역은 아니다. 권력(權力), 권세(權勢) 모두 같은 권(權)자를 쓰기에 오해가 적지 않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맘대로 뭐든 해도 될 권리 같은 것은 애초에 없는데도 오해하는 사람이 곧잘 나온다. 인권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고 인권 개념 자체가 없었던 건 아니다. 삼국유사가 전해주는 고조선의 건국이념 홍익인간, 곧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것도 인권이라 바꿔 불러도 무방할 거다. 기원전 2333년의 일로 전해진다. 기원전 1750년경 만들었다는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도 그 서문에 “왕과 권력자들이 약한 백성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태양은 모든 사람 위에 비춘다”라는 멋진 표현을 담고 있다.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억강부약의 정신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유명한 동태복수법도 그 이상의 잔혹한 보복은 금지하는 차원이기도 하다. 기원전 1100년경의 기자 조선의 팔조법금도 중요한 인권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살인, 상해, 절도법에 대한 처벌은 각각 생명권, 신체와 관련한 권리, 그리고 재산권을 보장하려는 공동체의 의지를 담고 있다. 기원전 539년에 만든 페르시아의 키루스 실린더는 더 놀랍다. 노예 해방,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 지급, 차별과 억압 금지, 여러 민족의 종교와 전통 존중 등 지금도 여러 나라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인권 쟁점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가 비록 모조품이지만 키루스 실린더를 전시하는 것도 이런 인류의 전통을 잇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게다. 그다음에도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 1628년 권리청원, 1689년 권리장전 등의 역사를 거쳐 1789년 프랑스대혁명에 이르는 인권의 역사가 뒤따른다. 이뿐만 아니라 인권 개념은 흔히 접하는 동네 어른들의 말에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자기 눈에는 피눈물 난다”고 했던 경구에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인권의 역사는 방금 연도별로 살펴본 것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순탄하게 앞으로만 나아갔던 건 아니었다. 프랑스가 대혁명 이후에도 공화정-제정-왕정을 번갈아 겪었던 것처럼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는 어디서든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성공적 민주주의 국가라는 한국만 하더라도 때론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인권 상황이 오락가락하기도 한다. 언제나 공정하고 공평해야 할 법집행조차 뒤죽박죽이 되는 경우가 많다. 범죄라고 보기 어려운 기초질서 위반 행위를 처벌하는 이상한 법률 ‘경범죄처벌법’만 하더라도 그렇다. 노무현 정권 마지막 해였던 2007년 10만3401건이던 단속 건수는 이명박 정권 첫해인 2008년엔 30만7912건으로 3배나 늘었다. 세상이 갑자기 세 배나 무질서해진 게 아니라, 정권과 코드를 맞추려는 경찰이 무리한 때문이었다. 정권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비판이 이어지자 2012년에는 5만8002건으로 부쩍 줄었다. 주로 피해자가 경찰관인 공무집행방해죄도 그렇다. 박근혜 정권 시절이던 2016년 한 해 동안 1565명을 구속했지만, 불과 3년 뒤에는 연간 577명으로 대폭 줄었다. 2.7배나 줄어든 까닭은 하나. 단지 대통령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어떤 정권이냐에 따라 노동조합 가입률이 줄었다 늘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통계는 셀 수 없이 많다. 멀리서 보면 인권은 꾸준하게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의 기본인 형사처벌마저 어떤 정권이냐에 따라 단기간에 두세 배쯤의 차이는 간단하게 만들어 버린다. 당장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의 결과에 따라 형사정책만 아니라 여러 국가정책이 이리저리 요동칠지도 모른다.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그래서 권리라 불렀던 것들마저 돈을 내고 사야 하는 상품이 될 수도 있고, 거꾸로 새로운 권리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전적으로 주권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언제나 그랬듯, 어떤 나라에 살 것인지는 그 나라의 주권자에 달려 있다. 때론 그 주권자가 왕이나 소수 귀족일 때도 있었고 국민 전체일 때도 있었지만, 나라의 운명이 주권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은 언제나 변하지 않았다. 인권의 역사도 주권자의 손에 달려 있다.
2022-01-19 | hrights | 조회: 270 | 추천: 3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인천의 ‘층간 소음 흉기 난동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이 총기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실탄을 쏴서 범인을 검거했다고 자랑 삼아 홍보영상을 돌리기도 했다. 국회는 경찰을 뒷받침한다며 경찰관이 직무수행 중 시민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형사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하는 쪽으로 법률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인천 사건은 총 때문이 아니라 엉터리 현장 활동 때문에 생긴 거다. 경찰관이 현장에 나갈 땐 반드시 2인 1조로 움직여야 한다. 적어도 2명은 되어야 현장 대응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범죄 예방과 진압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고 현장 변수도 많다. 층간 소음은 흔한 분쟁이지만, 감정이 쌓이면 자칫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2인 1조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대화’를 위해 1층과 3층으로 나눠졌다. 범행현장이 된 3층은 ‘시보’에게 맡겨두었다. 대응이 어려운 상황을 자초한 거다. 여론의 주문이나 경찰청장의 요구, 또는 국회의 법률 개정 방향이 가리키는 것처럼 현장에서 총기를 사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좁은 실내에서의 사격은 매우 위험하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범죄자의 넓적다리를 조준해 정확히 맞히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백발백중은 영화에나 나오는 상상 속 산물일 뿐이다. 일단 총을 쏘면 총구를 벗어난 총알은 제 맘대로 날아간다. 피해자나 주변 사람에게 닿을 수도 있고, 경찰관을 향할 수도 있다. 1991년 서울 신림동의 늦은 밤. 막 결혼한 아내와 함께 길을 걷던 서울대 박사과정 한국원씨는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맞아 숨졌다. 피할 겨를도 없었다. 학생들의 시위에 분통을 터트린 파출소장이 권총 사격을 했는데 100m 밖에 있던 한씨가 맞은 거다. 한국원씨를 죽이겠다는 고의야 없었겠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당시 책임자였던 서울 관악경찰서장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오히려 승진을 거듭해 해양경찰청장까지 영전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지휘 책임’을 지고 인천경찰청장이 물러난 것과는 크게 달랐다. 2001년 경남 진주에서 꽃집 사장이 자기 집에서 경찰관의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현장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경찰은 꽃집 사장이 흉기로 부인과 아들을 죽이려 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긴박한 상황에서 총을 쐈다고 했다. 그런데 꽃집 사장은 혼자였고 맨손이었다. 지레짐작으로 방아쇠를 당긴 거다. 총을 쏜 경찰관은 며칠째 집에 숨어 있었다. 수소문 끝에 그의 집을 찾아내 만나러 갔다. 그 경찰관은 불문곡직하고 엎드려 절을 했다. 죽을죄를 지었다며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통곡했다. 가해자였지만, 그도 만만치 않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참 지난 다음, 법원이 피해자 가족이 당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지만, 죽은 사람이 돈 몇 푼에 돌아올 리 없다. 유족의 고통은 물론이고 사람을 죽였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찰관이 치러야 할 고통도 만만치 않았을 거다. 총기 사용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범죄자에게 총을 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가장 분명한 해결책은 앞서 확인했던 경찰활동의 원칙을 되짚는 거다. 사실 경찰은 박근혜, 문재인 정권에서 엄청난 인력 혜택을 받았다. 의경이 폐지된다며 선제적으로 증원을 했다. 그렇게 많이 늘렸어도 현장은 늘 인력부족에 시달린다. 경찰의 인력구조는 늘 위쪽을 향한다. 우수한 인력은 경찰청에 집중 배치하고, 그다음 지역경찰청과 경찰서로 이어진다. 상급 부서에는 파견 등을 통해 정원을 훨씬 넘는 인원이 근무한다. 경찰청에서 청장 얼굴이라도 가끔 봐야 승진이나 좋은 보직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니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고, 뭔가 성과를 내고 싶은 기관장도 인력 뽑아 쓰기 유혹을 느낀다. 이런 식으로 현장은 늘 공백이 생긴다. 경찰이야말로 구조조정이 절실한 조직이다. 홍보 등 경무기능이 너무 크고 정보, 보안, 경비 등도 군사정권 시절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승진시험 준비하기 좋은 부서가 되어 버린 경비 분야도 대폭 줄여 일선으로 보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이 위험해지면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지금껏 두 명만 출동했다면 서너 명이 출동하면서 경찰의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총을 쏜다는 위험천만한 방법 말고 구조조정을 통해 근원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게 경찰청장, 행정안전부 장관, 그리고 국회 행안위원들의 역할이어야 한다. 경찰청장을 위한 인력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일선 위주의 인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2022-01-19 | hrights | 조회: 245 | 추천: 3
오창익/인권연대 사무국장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초현실적이었다. 괴상했지만, 그건 엄연한 현실이었다. 검찰총장이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어쩌면 내년 5월부터 윤석열 대통령 시대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국민의힘 당원들은 26년 동안 당에 ‘헌신’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고, 당심은 민심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정당의 일반원칙마저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윤석열이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정치에 뛰어든 게 지난 3월이었다. 말뿐이었어도 내내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던 검찰총장이 곧바로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건 ‘정의와 상식’을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그동안 강조했던 ‘정치적 중립’ 운운하는 소리는 선출 권력을 비켜가기 위한 말장난이었고, 자기 정치를 위한 발판이었을 뿐이다. 학살자 전두환을 찬양하고 사과는 개나 주라며 국민을 모독하는 등 망언을 쏟아냈지만, 정치 신인 윤석열은 보란 듯이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이제 웬만한 기관장들은 대통령을 꿈꿔볼 만한 세상이 되었다. 윤석열이 물꼬를 텄고 김동연, 최재형 같은 이들도 대권을 꿈꾸며 몸을 움직였다. 뭐라 변명하든 이제 공직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자기 선거운동을 위한 디딤돌로 전락해버렸다. 이런 현상이 문재인 정부의 인사실패에서 도드라진 건 맞지만, 머슴이 주인 노릇에 익숙해진 탓이 훨씬 크다. 여야보다 관료들의 패거리인 관당이 실질적인 집권세력이 된 오늘의 한국적 민주주의가 낳은 폐해이기도 하다.  대선 후보가 되었어도 윤석열의 태도는 섬뜩하다. 현 정권에 대한 분노에서 멈추지 않고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집념까지 내비친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홍준표의 말처럼 ‘석양의 무법자’처럼 돼가고 있다. 법도 없고, 상식도 통하지 않는 세상, 그저 총을 빨리 쏘는 사람만 살아남는 그 옛날의 무법천지를 닮아간다는 거다. 이기면 대통령이 되지만, 지면 감옥에 가는 ‘처절한 대선’이란다. 경선 패배자의 푸념만은 아니다. 국면 자체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사활을 건 거친 싸움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덟 번째 대선인데, 구도와 수준은 유례없는 최악이다.  대선판을 주도하는 건 검찰이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대선판이 요동칠 테고, 결국 대통령은 검찰이 낙점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검찰이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움직일지는 뻔하다. 자기들이 모시던 검찰총장이 후보로 출마했으니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닐 거다. 요즘은 말뿐이라도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검찰이 주도하는 대선, 이건 사실상의 쿠데타다.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밑천이 총과 탱크였다면,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 그리고 형집행권이 바탕이다. 형사사법을 좌우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옛날에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은 군복을 벗고 정치를 시작했다. 번거로워도 최소한의 절차는 거쳤다. 요즘의 검사들에게는 그럴 필요조차 없어졌다. 검찰총장에서 대선 후보로 직행한 윤석열에게는 군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 같은 최소한의 절차조차 없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은 무한하다.” 이런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가 떠돈 지 벌써 수십 년이다. 군인들 세상이 물러가자, 검사들 세상이 왔다. 검찰은 주권자의 선택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도 자기 권력을 영속화하고 있다. 임기 제한조차 없다. 그래서 검찰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기 위한 검찰개혁을 진행했지만, 검찰의 전면적 반발에 혼란이 반복되었고, 마침내 ‘대선 후보 윤석열’이라는 보고도 믿기 힘든 괴상한 현실로 이어졌다.  윤석열은 야심차게 대통령을 꿈꾸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물론 김대중과 노무현까지 계승한단다. 두둑한 배짱이다. 그렇지만 김대중은 검찰에 대해 ‘최대 암적 존재’라 질타했고, 노무현은 검찰 때문에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언젠가 검찰은 집권 초기의 대통령 권력을 빼고는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이라고 쓴 적이 있다. 현직 대통령도 집권 후반기에는 검찰에 밀릴 정도로 검찰의 힘이 세다는 것이었지만, 이젠 바로잡아야겠다. ‘대선 후보 윤석열’에서 보듯 검찰권력이 전면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보수세력과 결탁해 자기 이권을 챙기거나 기껏해야 몇몇이 정치인이 되는 수준이었지만, 이젠 사뭇 달라졌다. 현직 검찰총장이 스스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판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소수의 쿠데타 세력과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싸움을 다시금 펼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비상 상황이다.
2021-11-12 | hrights | 조회: 354 | 추천: 5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대장동 사건의 첫 번째 구속자 유동규씨. 검찰이 압수수색을 나오자 휴대폰을 창밖으로 내던졌단다. 누군가 휴대폰을 집어갔다는 증언도 있었지만, 검찰은 끝내 휴대폰을 찾지 못했다. 피의자가 뭔가 숨기고 싶어한다는 건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압수수색은 강제수사의 핵심이라 인력도 제대로 동원하고 미리 도주로도 확보하는 등의 대비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제일 먼저 챙겨야 할 휴대폰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조국사건처럼’ 했다면 많이 달랐겠지만, 검찰은 일주일 넘게 휴대폰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그 휴대폰을 단박에 찾았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휴대전화 관련 고발장이 제출되자, 곧바로 유동규씨 거주지 부근 CCTV부터 뒤졌고, 하루 만에 휴대폰을 찾아냈다. 전광석화 같았다.  검찰이 일주일 넘게 찾지 못한 휴대폰을 경찰은 하루 만에 찾아냈다는 객관적 사실 앞에서 검찰은 “당시 휴대폰 수색을 위해 모든 CCTV를 철저하게 확인하지 못한 검찰 수사팀의 불찰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언론을 통해 밝혔다. 경찰이 금세 찾아낸 휴대폰을 검찰은 찾지 못했다면, 그건 실력의 문제일까 아니면 의지의 문제일까. 실력부족이든 의지박약이든 희한한 일이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데다 자칫하면 대선판까지 흔들지 모를 사건의 단서를 찾는데 이렇게까지 맹탕이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대장동 사건의 핵심은 누가 얼마나 돈을 챙겼는지에 있다. 아직 드러난 건 별로 없다. 몇몇이 50억원씩 챙겼다는 이른바 ‘50억원 클럽’의 명단이 떠돌긴 하지만, 아직은 조심스럽다. 돈을 준 쪽과 받은 쪽이 모두 인정하는 것은 곽상도 의원 아들이 받은 ‘퇴직금’ 50억원뿐이다. 당사자들이 뭐라 변명하든 간에 50억원이란 거액은 곽상도 의원에게 주는 뇌물일 가능성이 크다. 야당 국회의원에게 뇌물을 주는 까닭은 뭘까. 아무래도 힘이라면 야당보다는 여당 쪽에 쏠려 있기 마련이다. 당장 정부와 경기도, 성남시의 최고 책임자가 모두 여당 출신이다. 얼핏 보면 난제 같아 보이지만, 곽상도 의원이 검찰 출신에다 지난 정권 때 검찰 인사를 좌우했던 대통령 민정수석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 ‘50억원 클럽’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대개 검찰 요직을 지낸 전직 검사, 흔히 ‘전관’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돈이 어떻게 움직였나를 보면 사건의 얼개와 흐름을 알 수 있다. 돈을 굴려본 사람들은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안다. 부동산값 폭등에 따른 결과였다지만, 대장동 개발처럼 턱없이 많은 이문을 남기는 장사에는 아무래도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뒷배가 든든해야만 감당할 수 있다. 김만배씨처럼 법조 기자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은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이나 그보다 훨씬 작은 권한을 가진 자치단체장이 아니라, 검찰이 든든한 뒷배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거다.  직전 검찰총장이 사퇴와 입당만으로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로 변신하는 개별적인 실력도 중요하지만, 검찰의 진짜 힘은 수사권과 기소권이다. 형사사법에 대한 모든 권한을 검찰이 쥐고 있으니, 큰판을 벌이거나 대놓고 불법을 저질러도 검찰의 비호만 받으면 두려울 게 없다는 거다. 검찰이 독자적 수사권에다 기소권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검찰만큼 든든한 뒷배는 없다. 범죄꾼들 입장에서 가장 든든한 비호세력은 오로지 검찰뿐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검찰공화국이다.   수사구조 개혁을 통해 미미하게나마 경찰도 수사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다. 검찰이 찾지 못한 휴대폰을 경찰이 찾아내서 수사의 완성도를 높이는 지금의 상황은 그래서 가능하게 되었다. 당장 대장동 사건만 하더라도 검찰이 마음대로 조작하거나 은폐하는 건 힘들게 되었다. 유동규씨 휴대폰처럼 어떤 기관이 잘못하면 다른 기관이 보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장동의 검은돈이 온통 전직 검사들에게 쏠린 상태이니, 검찰은 언제든 독주할 채비를 갖추고 있을 거다. 전·현직 검사들이 제 잇속만 차리기 위해 국민이 위임해 준 권한을 맘대로 휘두르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를 푸는 답은 민주주의의 원칙, 곧 분권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데 있다. 그래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나누는 분권이 우선해야 한다. 검찰은 국가기소청으로 본래적 임무만 맡고, 별도의 중대범죄수사청을 설립하는 등의 검찰개혁은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대장동 사건이 주는 교훈이다.
2021-10-15 | hrights | 조회: 588 | 추천: 12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군대는 전쟁을 대비하는 조직이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니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높은 정신력과 전투준비태세를 갖춰야 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훈련을 거듭하고 살신성인·멸사봉공의 자세,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을 가야 하기에 직업군인들은 존경받는 대상이 된다. 군인에 대한 존경은 단순한 마음의 표현에서 그치지 않는다. 직업군인들이 자긍심을 갖고 유사시를 대비할 수 있도록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고용을 안정시키며 각종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급여는 상당한 수준이 되었고, 군인연금은 엄청난 수준이다. 2019년 1인당 월평균 군인연금 수령액은 272만원이었다. 국민연금 수령액이 40만원 남짓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주거 지원에다 각종 면세 혜택 등 사영기업 직원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혜택도 많다. 다치기라도 하면 무상 진료에다 엄청난 액수의 상이연금도 받는다. 상이연금은 군인연금과 무관하게 별도로 받는다. 10년만 근속해도 국립묘지 안장대상자가 된다. 국립묘지는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공헌한 사람을 안장’하는 시설이니, 10년 근속으로 희생과 공헌을 국가적으로 인정받는 거다. 이런 각종 대접이 적당한 건지도 의문이지만, 전투준비태세와 상관없는 집단이기주의, 고급장교들만의 기득권화 경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가령 ‘체력단련장’이란 간판을 내건 군 골프장이 그렇다. 군은 30여개의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진짜로 체력단련을 위해 골프장을 운영하는 건 아니다. 부대마다 연병장과 헬스클럽 부럽지 않은 체력단련실을 갖추고 있고, 사영 골프장이 곳곳에 널렸는데도 굳이 군이 직접 골프장을 운영하는 까닭은 뭘까. 땅값 빼고 건설비만으로도 수천억원씩 드는 골프장이 필요한 까닭은 편하게, 남다른 대접을 받으며 값싸게 골프 치고 싶은 장군 등 고급장교들의 욕구 때문이다. 의무복무를 하며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젊음을 빼앗기는 병사들은 빠지고, 직업군인으로 상당한 전문성을 갖춰도 부사관이라고 빼고, 같은 장교라도 하위 계급이라고 뺀 다음에, 스스로 특별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끼리 널찍한 전용시설을 독차지하고 ‘체력단련’을 하는 모습에서 군인의 기본을 찾아볼 수 없다. 고급장교들이 잇속만 챙기니, 전투준비태세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부대 운영조차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어느 부대나 핵심과제가 ‘부대관리’가 되었다. 그저 사고만 나지 않기를 바라며 사고가 나면 덮어버릴 궁리만 한다. 실제로 전쟁이 나면 전사할 가능성은 계급이 낮을수록 높아진다. 위험을 몸으로 겪어야 할 사람들은 홀대받고, 전시에도 별걱정 없을 사람들은 온갖 대접을 다 누리는 게 군대의 실상이다. 병사들에겐 면세 혜택이 절실하지만, 억대 연봉을 받는 장군들이 면세품까지 꼬박 챙기는 건 적절치 않다. 그래서 진짜 대접은 병사들과 부사관들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국군복지를 위한다며 골프장에다 호텔, 콘도, 컨벤션센터, 쇼핑센터에다 부대마다 ○○회관이라는 연회장까지 운영하며 돈벌이에 골몰하는 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짚어봐야 한다. 국방부가 서울에 있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각군본부의 계룡대 이전도 30년 세월이 흘렀고, 미군사령부도 평택으로 이전하는데도 국방부는 서울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직업군인들이 서울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욕구와 국방부 차원의 재산 지키기 말고는 다른 까닭이 없다. 국회를 옮기자는 논의도 활발하지만, 국방부 이전은 논의조차 없다. 군은 늘 성역에 머물러 있다. 서울 한복판이 이 지경이니, 전국 곳곳은 말할 것도 없다.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땅이 많다. 실제로 쓰지도 않으면서 시민들도 쓰지 못하게 묶어둔 땅들도 챙겨봐야 한다. 군인의 헌신과 희생은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다만 근속을 했다고 각종 훈포장에다 국립묘지 안장과 엄청난 연금까지 보장하고, 식구들과 대접받아가며 골프를 치면서도 대외적으로 체력단련한다고 너스레를 떠는 특권까지 용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래서 군대 개혁이 절실하지만, 국방부 셀프개혁으로는 드라마 <D.P.>에 나온 대사처럼 1953년식 수통 하나 바꾸지 못할 거다. 군대도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독일의 국방감독관처럼 군대 밖에 감시와 견제를 위한 별도의 독립적 기구를 설립해서 군대의 일탈을 막아야 한다. 우리 군이 더 망가지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한다.
2021-10-01 | hrights | 조회: 285 | 추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