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오창익의 인권이야기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군대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면 늘 비슷한 대응이 뒤따른다. 정권 차원에서 부담스러운 사건이 터지면 달라지는 건 대응 수위가 높아질 뿐이다. 2005년 6월19일, 28사단 휴전선 감시초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당 차원에서 ‘병영문화 개선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6월27일 출범했다. 8명이 죽고 4명이 다친 사건이었으니, 시급히 대책을 마련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와 별개로 7월에는 ‘병영문화 개선 대책위원회’를 민관군 합동으로 구성했다. 국방부 장관과 민간인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위원회 활동을 통해 군대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와 피해자 구조대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고, 독일식 국방 옴부즈맨에서 그 답을 찾았다. 국방부 차관보를 독일에 파견해 실제 운영사례를 배워오기도 했다. 하지만 변한 건 별로 없었다. 2014년 4월, 이번에도 28사단이었다. ‘윤일병 사건’이라 불리게 된 고문살인 사건이 터졌다. 국회는 ‘군 인권 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했다. 행정권과 사법권을 함께 가진 조직은 군이 유일하다며 군사법원 폐지를 권고하고, 성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판사가 아닌 사람을 관할관이란 이름으로 재판관을 시키거나 지휘관이 형의 3분의 1을 깎아줄 수 있는 ‘확인조치권’ 등도 폐지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지만 실제로 달라진 건 없었다. 2021년 5월, 성추행 피해자 공군 부사관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새로운 위원회를 만들었다. 국방부 장관과 민간인이 공동위원장을 맡는 방식은 같은데, 다만 위원회 이름이 좀 더 길어졌다. ‘정의와 인권을 위해 강하고 신뢰받는 군대 육성을 위한 민·관·군 합동위원회’. 6월28일에 출범한 이 위원회도 국방부에선 ‘병영문화 개선위원회’라고 부른다. 위원회 출범에도 불구하고 공군 부사관 사건과 아주 비슷한 사건이 해군에서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격노’했다고 했다. 일종의 비상사태 국면인데도 여군을 상대로 한 성추행 범죄가 반복되는 건 격노해야 할 일이 맞다. 하지만 대통령의 격노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긴급 소집된 지난 17일의 위원회 회의에서 수사 중이라며 사건 경위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적어도 3명의 위원들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거나 “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며 사퇴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 위원회는 또 어떤 결론을 내고 마무리될지 모르겠다. 당장 겪고 있는 파행을 잘 헤쳐나갈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군에서 젊은이들이 죽을 때마다 비슷한 위원회를 만들어 똑같은 대책을 마련하고 그 대책이 제대로 실현되는지 살피지도 않고 또 새로운 비극을 겪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문제는 심각하지만, 답은 대체로 나와 있다. 당장 시급한 과제는 군사법원법을 폐지하는 거다. 문제점 검토나 대안 마련 등은 이미 다 끝냈다. 벌써 공청회만 20년째다. 군사법원은 폐지하고 정 필요하다면 가정법원, 행정법원, 특허법원처럼 사법부에 군사법원을 만들면 된다. 군검찰과 군사경찰도 마찬가지다. 경찰청의 한 부서가 군대 관련 업무를 맡아서 다루면 된다. 수사, 기소, 재판을 부대장이 좌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확보하면, 비로소 신뢰가 생기게 된다. 공정한 사법절차를 기대할 수 없으니 자꾸만 구석으로 몰리게 되고, 극단적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군대만 감시하는 전문 감시기구도 절실하다. 흔히 국방 옴부즈맨이라 부르는 이 기구를 국민권익위원회 국방보훈민원과 정도에 맡겨둘 일은 아니다. 군대의 제반 활동을 감시하고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며 피해자를 돕는 전문적인 일을 하는 독립적 기관이 필요하다. 부사관들이 잇따라 죽어가고 있다. 부사관의 자살률은 병사보다 3배쯤 많다. 그만큼 힘들고 고단하다는 거다. ‘병영문화 개선위원회’에도 불구하고 낮은 계급이 피해자가 되는 악순환은 좀체 고쳐지지 않고 있다. 상급자가 범죄적 일탈마저 서슴지 않는 것은 하위 계급 군인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보통의 직장이라면 노동조합이 있어서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일들이 군대에서 반복되는 거다. 그러니 군대도 노조를 생각해봐야 한다. 노조가 너무 낯설다면, 다른 직역의 공무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직장협의회부터 시작해서 노조로 가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이렇게 새로 만들고 고치는 등의 구조적 접근을 해야만 ‘병영문화’도 고칠 수 있다. 지금 급한 건 군인들에게 실효성 있는 안전장치를 만들어주는 거다. 이런 식으로 군인들의 죽음을 방치하면 안 된다.
2021-08-24 | hrights | 조회: 82 | 추천: 3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몇몇 정치인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제1야당 대표까지 합세했다. 정치적 속내가 있겠지만 사회적 약자, 소수자인 여성들을 위한 핵심 부서를 없애자는 말을 이렇게 함부로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몇몇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남성 청소년이나 청년 중에도 여성가족부 폐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존재 자체가 불쾌하다는 반응도 있다. 이런 반응은 여성혐오로도 연결되곤 한다. 남성도 살기 힘든데, 왜 여성만 챙겨주냐는 볼멘소리, 여성만 챙겨주는 부서가 있다는 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란 말도 자주 들린다. 여성들이 경쟁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많은데, 왜 특혜를 주냐는 거다. 이런 푸념은 먹고사는 문제와 얽혀 제법 큰 목소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한번 따져보자. 한국은 선진국이 되었지만 이해할 수 없는 통계를 여럿 갖고 있다. 자살률에 대한 여러 통계가 그렇고, 노동시간, 산업재해 사망자 숫자 등이 여전히 세계 일등이다. 성별 임금 격차도 제일 심각하다. 2019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남성은 월평균 369만원을 벌고 여성은 237만원을 번다.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4.2% 수준이다. 스웨덴이나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은 격차가 모두 10% 미만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도 13% 남짓일 뿐이다. 임금 격차가 크다는 건 그만큼 여성이 훨씬 더 심각하게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한다는 거다. 이건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도 심각하다. 정규직은 월평균 361만원, 비정규직은 164만원을 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급여는 45.4%. 절반도 안 된다. 그러니 여성 비정규직이라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 된다. 세상이 변했다지만,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할 고통은 한둘이 아니다. 고통은 심각하지만 이를 넘어서기 위한 여성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다. 여성 국회의원은 전체의 19%밖에 안 된다. 광역단체장은 17명 전원이 남성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까 부끄러울 지경이다. 기초단체장은 226명 중에 겨우 8명만이 여성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가는 여성과 비정규직을 위해 보다 역동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남성이나 정규직은 아무래도 좋다는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쪽을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거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약자, 소수자의 지위에 있다. 그러니 최소한의 균형이라도 유지할 수 있게,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바로 그런 일을 한다. 여성 정책을 기획·종합하고, 여성의 사회참여를 확대하는 등 여성 인권을 신장하기 위한 주무 부서다. 세상은 그저 ‘각자도생’의 원리로 돌아갈 뿐이니, 여성들은 먹고살려면 남성들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여성들이 공무원, 교사 등 그나마 차별이 덜한 공공부문에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관리직 등 높은 자리로 올라가긴 힘들겠지만, 그나마 숨통 트고 일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영기업은 사뭇 다르다. 여성은 아예 뽑지 않는 곳도 많고, 남성은 정규직으로, 여성은 비정규직으로 뽑는 곳도 많다. 여성에겐 아예 승진할 기회를 주지 않는 곳도 너무 많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먹고사는 문제에서도 여성들은 약자, 소수자일 뿐이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세계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 여성에게는 먹고살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나라에서 여성가족부를 없앤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문제의 핵심은 여성가족부가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맞춰져야 한다. 부서 폐지는 그저 엉뚱한 소리일 뿐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거나 온갖 성 착취와 성범죄의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주무 부처를 없애자는 건 마치 노동자의 지위가 나아졌다며 노동조합을 해체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긴 어떤 야당 정치인은 귀족노조를 없애야 청년이 산다는 섬뜩한 선동도 서슴지않고 있다. 선거가 다가온 때문인지, 정치인들의 이런저런 선동이 자주 들린다. 문제는 이런 뻔한 선동에 넘어가는 청소년, 청년들이 적지 않다는 거다. 먹고사는 문제 등 당장 풀리지 않는 문제와 힘겹게 씨름하다 보니, 강렬한 선동일수록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야당 일부 인사들의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여성을 그저 남성의 하위 파트너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망언일 뿐이다. 여성 인권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의 구호가 여성혐오로까지 연결되는 상황에도 별 관심이 없다. 이런 극단적 정치인들의 활동 공간을 줄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마침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2021-07-28 | hrights | 조회: 207 | 추천: 4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아무나 직업군인이 될 수 없다. 국가가 보장하는 안정된 일자리인 데다 연금혜택까지 좋으니 직업군인이 되려면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 단박에 시험에 붙기는 어렵고 몇 년씩 준비해야 하는데, 부사관이나 장교를 양성하는 학과가 설치된 대학만 60개가 넘는다. 이런 사정은 남군이나 여군이나 엇비슷하지만 할당받은 소수 인원만 뽑는 여군이 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직업군인이 되었다는 건,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국가가 인정할 만큼의 지적 능력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기본적인 자세도 갖췄다는 거다.  이런 사람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 군대는 모든 출구가 다 막힌 어두운 동굴처럼 변했고 범죄 피해자들은 2차, 3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2013년엔 육군 대위가 죽음으로 내몰렸고 2017년엔 해군 대위, 이번엔 공군 중사가 그랬다. 상관이 저지른 성범죄의 피해자였지만, 고통은 한 번의 범죄 피해로 끝나지 않았다. 군대에 있는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부대의 지휘관부터 군사경찰, 군검찰, 군사법원, 양성평등센터 등 내부의 모든 안전장치가 거꾸로 움직였다.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는 이유는 군대의 구조 때문이다. 싸워서 이기는 군대를 위해 엄정한 군기를 유지하고 잘 훈련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정확한 지휘체계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휘권은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솔선수범할 때 의미가 있지만, 현실에선 그저 지휘관이 되면 뭐든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특권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외부 감시마저 작동하지 않으니 더욱 그렇다.  그래서 성범죄 피해자들의 절규도 막아버린다. 지휘관의 심기를 살피는 게 우선이라 생각하니, 보고를 왜곡하거나 아예 보고조차 하지 않는 일도 반복한다. 용서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상사의 무서운 협박을 사과 문자로 둔갑시키는 군사경찰의 횡포도 지휘권의 왜곡에서 비롯된 거다.  아무리 지휘관이라도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맘대로 할 수 없는 안전장치, 바로 ‘법의 지배’가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형사사건마저 지휘관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지휘관만의 ‘안전장치’가 너무 많다. ‘군사법원법’이 대표적이다. 군사법원법은 군인이나 군무원, 또는 군대와 관련 지역에 산다거나 군대와 관련한 범죄를 저지른 민간인에 대한 형사사건을 다루는 기관과 절차 등을 망라한 법률이다. 군대에는 군사경찰(얼마 전까지 헌병이라 불렀던), 군검찰, 군사법원이 따로 있다. 이들 기관의 구성원들은 모두 군인이고, 예외 없이 지휘관의 부하들이다. 서울 국방부 보통군사법원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군사법원은 재판관 구성부터 이상하다. 재판관은 군판사와 심판관으로 구성한다. 심판관은 영관급 장교 중에 ‘법에 관한 소양이 있는 사람’이나 ‘인격과 학식이 충분한 사람’을 관할관이라 부르는 지휘관이 임명한다. 소양, 인격, 학식 같은 추상적·주관적 요건을 충족했다고 여기면 영관급 장교라면 누구나 판사처럼 재판관이 되는 거다. 군판사도 지휘관의 부하지만, 법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까지 재판관으로 집어넣어 군사재판을 맘대로 통제할 수 있는 지휘관만의 안전장치를 만든 거다. 2013년 육군 대위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유가족의 분노가 커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집행유예로 풀어주던 군사법원의 엉터리 판결도 이런 구조에서 나온 거다.  관할관의 ‘확인조치권’이란 희한한 권한도 있다. 지휘관이 선고된 형의 3분의 1을 마음대로 깎아줄 수 있는 권한이다. 지휘관이 ‘업무를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라고 규정하면 얼마든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다. 독립되어야 할 사법마저 이런 식으로 지휘관의 통제 아래 두고 있으니, 군사경찰이나 군검찰은 말할 것도 없다.  군사법원을 운영하는 까닭은 사법마저도 지휘관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망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시는 물론이지만, 전시와 같은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조차 군사법원을 운영할 까닭은 없다. 군인이어도 범죄를 저질렀으면 민간경찰에서 조사받고, 민간검찰의 기소를 통해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억울한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다.  지휘권은 아무렇게나 해도 좋은 특권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짊어진 무거운 짐과도 같은 부담이다. 지휘권은 그래서 권리가 아니라 의무에 가깝다. 잘못하면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무서운 자리다. 그렇지만 지휘관의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다. 모든 권력은 법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 그게 민주공화국을 만든 까닭이다. 대한민국 군대도 민주공화국의 군대여야 한다. 국회가 ‘군사법원법’을 폐지하면 바로 해결할 수 있다.
2021-07-07 | hrights | 조회: 291 | 추천: 6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7월1일부터 자치경찰제가 시행된다. 교육자치에 비해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경찰관서와 경찰관은 모두 국가경찰 체제인데 자치 사무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만 자치경찰위원회가 갖고 있다. 부족한 수준이지만, 그럴수록 자치경찰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치경찰위원회는 시·도의회 2명, 국가경찰위원회 1명, 교육감 1명, 위원추천위원회 2명 등 추천받은 6명과 시·도지사가 지명한 1명을 합해 7명으로 구성한다. 법률은 특정 성(性)이 10분의 6을 넘지 않고, 적어도 한 명은 인권전문가를 임명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실상은 크게 다르다. 부산·대전·충남·경남·강원은 위원 전원이 남성이다. 나머지 지역도 구색 맞추기 식으로 여성을 한두 명 끼워넣었을 뿐이다. 유일하게 경북만이 남성 4명, 여성 3명으로 법률의 취지를 살렸다. 인권전문가는 어디서도 찾기 어려웠다. 전직 경찰관과 경찰행정학과 교수 등 경찰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위원회가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자치경찰위원회도 국가경찰위원회처럼 알리바이형 위원회로 전락하게 될까 걱정이다. 경북도 자치경찰위원회 출범식 모습 사진 출처 - 경북도  자치경찰위원회 위원 추천권을 지닌 국가경찰위원회는 지난 3월 경찰청이 준 후보 명단을 ‘원안 의결’로 통과시켜버렸다. 추천 사유는 물론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언론보도를 좇아 한 명씩 찾아 확인한 위원 대부분은 전직 경찰관과 경찰행정학과 교수였다. 대부분 남성이었다. 인천 지역 위원 추천이 특히 그랬다. 국가경찰위원회는 2009년 용산참사의 진압 책임자였고 나중에 인천경찰청장을 지낸 사람을 추천했다. 경찰청장이 사과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추천권을 가진 국가경찰위원회 위원장은 사과는커녕 사안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문제가 불거져 다른 사람을 추천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국가경찰위원회는 다시 전직 경찰관을 추천했다.  1987년 6월항쟁은 대통령직선제만 요구하지 않았다. 경찰개혁의 목소리도 높았다. 경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박종철·이한열 같은 죽음도 막을 수 있고, 주권자에게 함부로 몽둥이를 휘두르는 백골단의 폭력도 멈출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조직이 국가경찰위원회다.  1991년 출범한 국가경찰위원회는 경찰청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기구가 아니라, 경찰청의 요구만 따르는 알리바이형 기구였다. 30년 동안 모두 2345건을 의결했지만, 이 중 부결은 3건에 불과했다. 겨우 0.1%, 곧 순도 99.9%의 어용조직이었다. 지난해 12월 경찰법 전면 개정 때도 국가경찰위원회는 그대로 두었다. 여당 입장에서는 어용위원회가 편할 거다. 6월항쟁의 성과로 출범한 국가경찰위원회가 30년 내내 경찰청의 자문기구만도 못한 엉터리로 전락한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여당 의원 다수가 6월항쟁에 참여했다고 자랑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역설적인 항쟁의 성과는 없었다.  관료들만의 행정을 넘어 민주적 정당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위원회 활동이 절실하다. 그러나 국가경찰위원회처럼 위원들이 해당 기관의 요구에만 부응하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관료들이 불편해할 만한 이야기는 삼가고, 위원회 활동을 통해 관료들과 연줄을 만들고, 관료들의 하위파트너가 되려는 사람도 많다. 위원회를 통해 행정관청을 통제하는 모델은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위원회들이 민주주의를 실질화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근사한 시늉을 위한 방편이어선 곤란하다. 국가경찰위원회 같은 법률기구도 30년 내내 엉망이었던 데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위원회 실질화 방안이 제대로 논의되어야 한다. 기관장 맘대로 결정하는 위원 선임권도 시민사회 추천 등으로 다변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어떤 사람을 누가 왜 추천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후원회장을 자치경찰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같은 배짱을 막을 수 있을 거다.  위원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책무성을 요구하고 염치를 알라고 호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염치없는 짓을 하지 못하게 안전한 구조를 만드는 게 더 시급하다. 회의 방청을 통해 공개적으로 위원회를 운영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 등을 위해 부득이하게 회의를 공개하지 못할 때는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고, 그 사안만 비공개로 진행하면 된다. 회의록을 포함한 회의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법률 근거가 있는 위원회는 위원장의 국회 출석과 답변도 의무화해야 한다. 뭐가 되었든 제대로 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위원회 제도 자체에 대한 고민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2021-06-02 | hrights | 조회: 286 | 추천: 5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몇몇 국회의원들이 군대와 관련해 농익지 않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박용진 의원은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자면서도 병역의무를 여성에게까지 확대하는 전 국민 징병제를 시행해야 한단다. 모순이다. 이름은 근사하게 ‘남녀평등복무제’라 붙였지만, 왜 여성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지에 대한 특별한 설명은 없다. 그저 병역 대상이 늘어나고 군가산점제를 둘러싼 논란을 종식할 수 있어 좋단다. 군가산점제 논란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진작에 끝났지만, 일부 정치인이 엉뚱한 논란을 일으켜 문제일 뿐이다. 여성에게도 병역의무를 부담시키는 하향 평준화 방식으로 성평등을 말하는 것도 놀랍다. 이런 식이면 남성도 임신과 출산을 함께해야만 성평등을 이룰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적 함정에 빠지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군대 자체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거다. 우리에게 필요한 군대는 어떤 군대인지, 군대에는 바꿀 게 없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질문조차 없다. 군대는 요지부동인데 젊은 인구가 줄어드니 여성도 징병대상으로 삼으면 된다는 거다. 군대에 의무복무 병사들이 얼마나 필요한지, 복무기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군대는 어떤 규모로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등 핵심적인 질문은 빠져 있다. 군대에서 병사들의 역할은 대개 쓸데없는 일을 반복하는 거다. 불침번이나 외곽 경계근무를 반복하는 게 일상이고, 부대의 허드렛일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각개전투, 유격훈련처럼 효용이 없어진 유물적 행태를 반복하는 교육훈련도 한심하다. 왜 쓸모없는 훈련을 하는지 모르겠다. 군사력은 숫자에 달려 있지 않다. 첨단무기를 얼마나 보유하는가, 무기를 생산하고 운용할 경제력이 있는가 등이 좌우한다. 하지만 한국군은 육군 보병 위주, 숫자 위주의 옛날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 육군 장군 숫자가 미군보다 많다거나 중령 이상 고급장교 숫자가 너무 많다는 지적도 반복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첫 국방부 장관은 ‘국방개혁 2.0’을 통해 “공룡 같은 군대를 표범같이 날쌘 군대로 만들겠다”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예산을 절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말뿐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국방비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의 증가율보다 훨씬 높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장군 숫자도 대폭 줄일 수 있지만, 겨우 몇십 명 줄인다고 발표했을 뿐이다. 국방부와 그 직할부대, 방위사업청 등에 잔뜩 진을 친 장군들이 엄청 많은데도 그런다. 1만명쯤 되는 고급장교도 마찬가지다. 전투력과 상관없는 인력은 절반 이상 줄여도 되는데, 거꾸로 늘어나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직업군인들은 일반 공무원보다 2개 직급이나 높은 대접을 받는다. 5급인데 3급 월급을 받는 거다. 전두환 때 만든 이상한 지침이 근거다. 군인연금에 대한 국가보전금도 지나치게 많다. 직업군인들의 특혜를 위해 쓰이는 세금이 너무 많다. 직업군인들은 누구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국가유공자가 된다. 10년만 근무하면 무조건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가 된다. 유공자와 국립묘지를 관할하는 국가보훈처는 장차관 모두 국방부 출신으로 국방부 뒷마당 역할에만 충실할 뿐이다. 직업군인들이 넘치는 대접을 받는 이면엔 최저임금도 안 되는 용돈 수준의 급여만 받으며 세월을 허비하는 의무복무 병사들이 있다. 직업군인들, 특히 고급장교들의 기득권을 위해 병사들을 강제 동원하는 방식으로 한국군을 운영하는 거다. 온통 낭비적 요소로 가득한 군대는 덩치만 큰 느린 공룡이 되었다. 병사들은 소모적 존재로 그저 숫자만 채우고 있다. 병사들의 숫자가 채워져야 대대-연대-사단으로 이어지는 장교들의 보직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에는 고치고 바로잡을 게 너무 많다. 국가는 국방개혁부터 해야 한다. 국민의 의무를 늘리는 건, 그다음에나 생각해볼 문제다. 혈세를 낭비하면서 세금 더 거둘 생각에만 골몰하는 꼴이어선 곤란하다. 아무 쓸모 없이 그저 국방부 재산 지키겠다는 차원에서 독차지하며 방치하는 군대 땅은 또 얼마나 많은가. 민관군 합동으로 현지조사를 하고 불필요한 땅은 국가에 반납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군대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존재해야 하지만, 그걸 실천할 직업군인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생각은 딴판이고 개혁을 위한 실천은 거의 없다. 오로지 고급장교들의 기득권만을 지키기 위한 군대는 바꿔야 한다. 모병제는 꼼꼼하게 검토할 문제다. 잘못하면 가난한 젊은이들만 군대 가고, 군대 다녀오면 ‘2등 시민’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그러니 제대로 논의하고 충분히 토론해야 한다. 그런 논의 이전에 급한 숙제는 군대를 개혁하는 거다.
2021-05-04 | hrights | 조회: 451 | 추천: 8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20여년에 걸친 검경 수사권 조정 끝에 태어났다.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을 주면서 일종의 안전장치로 만들었다. 그러나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같은 경찰관들이 똑같은 일을 한다. 경찰청 수사책임자 계급을 한 단계 올리고 국가수사본부장을 개방직으로 임명한다는 것 말고 눈에 띄는 건 없다. 부서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다. 경찰청 수사국이 하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하든 같은 경찰일 뿐이다.  달라진 건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경찰이 명실상부 수사의 주체로 거듭났다는 거다. 권한이 없다며 억울하면 검찰에 가서 말하라는 식의 뻔한 변명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경찰로서는 2021년이 책임 수사 원년이 되는 거다. 국가수사본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경찰의 명운이 달려 있다. 사진 출처 - 경찰청  범죄 수사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경찰만을 위한 수사다. 2015년 1만4556건이던 공무집행방해죄 사건은 2019년 1만1654건으로 20%나 줄었다. 공무집행방해죄 사건 피해자의 다수는 경찰관이다. 구속 건수 감소폭은 훨씬 크다. 같은 기간 1437건에서 577건으로 60%나 줄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문재인 정권으로 바뀐 것이 경찰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경찰관을 피해자로 하는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적용도 정권에 따라 급격하게 변한다. 이런 식의 자의적 법집행, 경찰만을 위한 수사는 없어져야 한다.  한국은 치안여건이 좋은 나라다. 이를테면 가장 끔찍한 범죄, 살인을 보자. 2015년 919건이던 것이 2019년엔 775건으로 줄었다. 4년 만에 16%나 감소했다. 그러나 연간 775건도 살인미수를 포함한 거다. 살인이 자행된 기수사건만 친다면 297건으로 줄어드는데, 여기에도 자살교사·자살방조 등이 포함되었으니, 실제 살인사건은 연간 225건에 불과하다. 일본 다음으로 살인사건 발생률이 낮고, 검거율은 늘 세계 최고다. 강도사건은 2015년의 1445건이 2019년엔 798건이 되었다. 4년 만에 45%나 줄었다. 믿기지 않는 놀라운 감소폭이다. 폭력·절도 등 다른 강력범죄들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범죄 자체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치안 상황이 매우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 시민들은 세계 최고의 치안 현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꼭 필요한 수사가 제때 진행된다는 믿음, 경찰의 수사역량이 정확하게 발휘된다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야말로 경찰의 명운을 걸 때다.  여전히 검찰개혁 요구가 거센 것은 검찰이 자초한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기 조직만을 위해 휘두르는 행태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거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으로 끝난 게 아니라,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한 분리가 검찰개혁의 핵심이 되었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경찰의 수사역량을 온전히 증명해내야 할 첫 시험대에 올랐다”고 했다. 지난 월요일 경찰지휘부 회의에서 했던 말이다. LH 임직원들의 투기 의혹 사건은 국가수사본부 설립 이후 처음 떠맡은 국민적 사건이다. 성역 없는 수사, 부패와 비리의 뿌리까지 뽑아내는 철저한 수사를 하면 경찰은 국민의 신뢰라는 엄청난 자산을 얻게 될 것이다. 수사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가수사본부는 시작부터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수십년 동안 경찰 주변을 맴돌았던 ‘자질미달론’이 틀리지 않았다며 수사권을 다시 조정하자는 목소리도 나올 거다. 말에 대한 책임은 무섭다. 경찰청장의 말이 수사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엄청난 후폭풍이 불 거다. 모처럼 경찰에 주어진 새로운 권한도 얼마든지 거둬들일 수 있다. 제도는 늘 변하기 마련이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들이 경찰 수사를 주시하고 있다. 인권 보장을 위한 적법절차를 잘 지키면서도, 증거를 충실하게 모아 악랄한 투기세력의 뿌리까지 파헤쳐 들어가야 한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여야, 지위 고하 등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LH 사태 수사를 통해 과감하게 성과를 내야 한다. 우리 사회에 공정한 원칙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범죄자들에게는 확실한 법률적 응징을 통해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공무원이나 LH 직원들의 불법적 욕심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보여줘야 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시작부터 중요한 시험대에 서게 되었다. 조직 출범부터 유명무실한 조직이 되어 곧 문을 닫을지, 국민의 사랑과 신뢰로 거듭나는 탄탄한 조직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어떻게 되든 그건 모두 경찰청의 의지에 달려 있다.
2021-04-05 | hrights | 조회: 343 | 추천: 3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하자마자 검찰은 반발했다. 검찰총장이 포문을 열었고, 일선 검사들도 통신망에 글을 쓰거나 언론을 부추기며 반발하고 있다. 여차하면 집회라도 열 태세다. 일부는 사표를 내면서 의지를 불태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행태는 반복적이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국제회의가 열리는 중이라 당장 그만두지 못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그래도 언성은 높았다. 이번에도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야 100번이라도 걸겠”단다. 역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총장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자는 입법 움직임에 대해 “검찰총장이 미워서 추진되는 일”이라 규정하나, 서너 달만 있으면 임기가 끝나는 검찰총장 때문에 수사구조의 근간을 다시 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검찰총장이 미워서라면, 잠자코 시간을 보낸 다음, 코드에 맞는 사람을 임명하면 그만이다. 검찰총장에 대한 호불호는 쟁점 축에도 못 낀다. 핵심은 검찰개혁이다.  개혁이 필요한 까닭은 간단하다. 검찰의 힘이 너무 세기 때문이다. 한국 검찰은 태어날 때부터 힘센 조직이었지만, 총칼을 들고 설쳤던 경찰과 군대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았을 뿐이다. 민주화 이후 검찰은 본격적으로 무소불위의 자리에 올라섰다. 벌써 30년이 넘었다. 검찰의 힘은 국가형벌권을 좌우한다는 데 있다. 수사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형집행권을 독점하고 있으니, 형사사법은 검찰사법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지경이다. 죄 많은 사람을 봐주는 일도,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히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처럼 손봐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가공할 만한 수사권을 동원할 수도 있지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처럼 별장 성폭력이라는 사건 자체보다 출국금지라는 엉뚱한 사안을 키우기도 한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구속하겠다 벼르며 사건 자체를 호도하고 있다. 같은 검사들이라면 희한한 셈법을 동원해 룸살롱 접대 비용을 100만원 이하로 맞춰줄 수도 있다. 힘이 센 탓인지 남들 시선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스스로 부패했으면서도 검찰만이 유일한 반부패기관이라는 착각 속에 산다. 사진 출처 - 구글  검찰은 명칭부터 이상한 조직이다. 영어(Prosecution)로는 ‘기소’ 기관인데, 한자(檢察)는 잡도리하고 살핀다는 ‘수사’를 뜻한다. 수사와 기소는 각각으로도 엄청난 권한인데, 이걸 모두 쥐고 있으니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었다. 그러니 개혁의 핵심은 독점 권한을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견제와 균형’이 작동할 수 있도록 쪼개는 데 있다.  왜 맨날 검찰개혁이냐는 사람도 있다. 개혁과제가 쌓여 있는데 검찰개혁에만 골몰하냐는 거다. 요란했을지 모르지만, 검찰개혁은 별로 진행되지 않았다. 중요한 성과라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1년에 서너 건 정도밖에 수사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게 설정되었다. 대통령령 개정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 간 의견 충돌이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검찰의 완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지금의 논의과정도 그렇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중대범죄수사청’과 ‘국가기소청’을 신설하는 법안을 만들고 있는 게 전부다. 법률안을 발의한 것도 아니다. 이제 막 공청회를 열어 논의를 시작한 수준이다. 개혁안이 여당 내부에서 힘을 받을지도 의문이다. 당장 서울·부산 시장 선거가 급할 텐데 굳이 검찰의 반발을 무릅써가며 전면적 개혁에 나설 것 같지 않다. 자체로 막강한 데다 법조기자단이란 특별한 우군을 지닌 검찰과 싸워봐야 득될 게 없다고 판단할 것이 뻔하다. 검찰총장의 언행도 4월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행위로 보인다. 일단 이번만 막으면 다음엔 개혁동력을 상실할 것이란 계산을 했을 거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여태껏 진행한 개혁은 겨우 반 발짝 내디딘 것에 불과하다는 건 명백하다. 검찰의 독점을 깨지 않으면 검사였던 사람들이 전관 특혜를 받고 떼돈을 벌고, 검찰권이 국민이 아니라 오로지 전·현직 검사들만을 위해 쓰이는 부패구조는 바뀌지 않을 거다. 검찰은 거악을 일소한다며 반부패 수사역량을 강조하지만, 부패의 핵심고리에 전·현직 검사들이 자리하는 경우는 너무 많다. 검찰이 한 손에 쥔 권한을 쪼개는 것 말고는 어떤 대책도 검찰의 부패를 막을 수 없다. 수사와 기소를 각각 서로 다른 독립기관이 나눠 맡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견제와 균형이야말로 부패를 없앨 가장 실효적인 처방이다. 부패는 독점에서 나온다.
2021-03-10 | hrights | 조회: 461 | 추천: 14
출처 - 서울신문 소년원 출신. 이건 낙인 아니면 철없는 훈장이다. 소년원 출신이라면 골목에서 놀기 편할 수도 있다. 남다른 경험을 했다며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다. 그래 봤자 잠깐, 철없는 시절의 골목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소년원 출신이라는 건 대개 낙인이다. 소년원은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소년법’ 제1조) 곳이다. 소년의 잘못은 소년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부모의 잘못이고 교사 등 어른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아직 성장 중이니 기회를 주자는 뜻도 있다. 비행 때문에 소년원에 간다지만, 같은 비행을 저질러도 가난하거나 한부모 또는 조손 가정 아이라면 소년원에 갈 확률이 엄청나게 높다. 그러니 일반적인 형사처분과는 다른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거다. 2년 동안 소년원에 가두든, 수강명령이나 사회봉사명령을 내리거나 보호관찰을 하든 모든 소년보호 활동은 법률의 요구처럼 건전한 성장을 돕는 차원에서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소년원은 감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감옥보다 훨씬 큰 고통을 견뎌야 한다. 소년원 한 끼 급식비는 고작 2080원에 불과하다. 간식도 없고 매점도 없는 소년원에서 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 밥만 잔뜩 먹어야 하는 현실, 청소년들이 탄수화물 과다섭취로 인한 고도비만으로 내몰리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감옥에서는 돈만 있으면 과일, 달걀, 반찬에다 과자까지 사 먹을 수 있다. 가난해도 강제노역으로 받는 작업보상금으로 반찬 정도는 마련할 수 있다. 당장 고통도 심각하지만, 소년원에서 나간 다음도 문제다. 어떤 보호처분을 받아도 “소년의 장래 신상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소년법’ 제32조) 않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소년에 대한 낙인은 청년이 된 다음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소년원에 갔다 왔어도 장교가 될 수 있어요.” 법무부 공식 블로그에 실린 기사다. 소년원 출신이라고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하면 안 된다며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겠단다. ‘임용결격 사유’가 아니면 누구나 시험 볼 자격이 있다는 거다. 여기까지는 맞다. 소년원 출신도 누구나 시험을 볼 자격을 준다. 하지만 소년원 이력을 문제 삼아 탈락시키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해병대 부사관 시험에 응시한 청년도 그랬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필기시험, 신체검사, 인성검사까지 통과했지만 소년원 출신이라는 낙인은 피하지 못했다. 소년보호 처분을 이유로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소년법’ 규정과 달리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은 “각 군 사관생도의 입학 및 장교·준사관·부사관·군무원의 임용과 그 후보자의 선발에 필요한 경우” 소년보호 처분 이력을 조회하고 회보할 수 있도록 규정(제7조)하고 있다. 소년보호처분을 받은 사람은 걸러내겠다는 거다. 지원자에게 소년보호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거나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 동의서’를 받아 관련 정보를 들여다보는 방법도 있다. 제출하라는 서류를 내지 않을 취업준비생은 없다. 서류를 내지 않으면 탈락할 것이 뻔한데, 달라는 서류를 내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정보 이용에 동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로만 동의일 뿐 강제와 다를 바 없다. 법률끼리 서로 충돌하고, 법무부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사실상의 거짓말을 홍보하고, 국방부는 소년보호 처분을 받았다고 낙인을 찍으며, 젊은이들의 직업선택 자유는 물론 생계마저 박탈하고 있다. 앞뒤도 맞지 않고 법률 원칙도 저버리는 이상한 행태다. 마치 무정부 상태에서나 가능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소년원 출신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오히려 사회생활에 적응하도록 도와야 한다. 누구라도 소년보호 처분 기록을 들여다볼 수 없게 법률을 바꿔야 한다. 본인 동의를 받았다고 해도 본인이 아니면 기록을 볼 수 없게 해야 한다. 또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아예 기록을 삭제해야 한다. 앞길이 막힌, 그래서 희망을 빼앗긴 삶은 비참하다. 청소년 시기의 잘못 때문에 젊은이의 앞길을 막는 건 가혹하다. 그 젊은이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할지 걱정이다. 사람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소년 시절의 잘못을 반성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사람을 돕지는 못할망정, 자기 실력으로 취업하려는 걸 막으면 안 된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 소년원 경력을 이유로 차별받으면 안 된다.
2021-01-29 | hrights | 조회: 444 | 추천: 13
사진 출처 - 한겨레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은 소득과 재산에 따라 달리 낸다. 부자는 좀 더 많이 내고 가난한 자는 적게 낸다. 공평하게 내는 거다. 1993년 금융실명제, 1995년 부동산실명제 도입으로 세상은 투명해졌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제대로 운영할 만한 틀도 이미 마련했다. 그런데 유독 벌금만은 소득이나 재산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매긴다. 빈부의 차이가 엄연한 세상에서 무차별은 더 노골적인 차별과 다름없다. 소득과 재산에 따라 다른 액수의 건강보험료를 내는 게 당연하다면, 벌금도 그래야 한다. 형벌은 고통을 주어 죗값을 치르는 거다. 벌금형은 돈을 빼앗는 고통으로 죗값을 치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은 액수의 벌금을 매기면, 형벌로서의 효과는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누군가에겐 벌금형이 아무런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선처가 되기도 하고, 다른 어떤 이에겐 무거운 형벌이 된다.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가는 사람은 매년 4만명 이상으로 여전히 많다. 형벌은 대부분 벌금형이다. 그러니 벌금형이 공평하지 못하면 형벌 자체의 근간이 흔들리는 거다. 오랫동안 소득이나 재산과 연동해 벌금을 정하는 재산비례 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이런 까닭이었다. 학계 논의는 30년이 넘었고 인권운동가들에겐 좀체 풀리지 않는 숙원사업이었다. 인권연대가 장발장은행을 만든 건 벌금제 개혁활동의 일환으로 일종의 궁여지책이었다. 벌금을 못내 감옥에 갇힐 위기에 놓인 우리 시대의 장발장들을 위해 무담보, 무이자 대출을 6년째 계속하고 있지만, 장발장은행의 목표는 얼른 문을 닫는 거다. 벌금제를 고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독 가혹한 형벌을 강요하지 않고, 빈부의 차이를 떠나 모두에게 공평한 형벌이 적용되는 세상을 위한 작은 디딤돌 역할일 뿐이다. 재산비례 벌금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지금의 총액 벌금제를 재산비례 벌금제로 바꾸는 것은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절실한 과제였다. 법이 정의를 위한 도구가 되려면 무엇보다 공평해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비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혁은 지지부진했다. 집권세력은 별 관심이 없었다. 국가의 형벌만큼은 공평해야 한다는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차에 반가운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달 22일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형사정책연구원이 함께 연 ‘자산(재산)비례 벌금제의 입법 방안’ 정책토론회였다. 새로운 제도에 대한 시민 일반과 전문가들에 대한 의식 조사도 했고, 챙겨야 할 여러 쟁점도 함께 다뤘다. 이름이 낯설어서 그렇지 설명을 들은 대다수 시민들은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을 찬성했다. 소병철 의원은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을 위한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터였다. 법무부 소속 검사만이 유일한 반대론자였다. 반대라고 꼭 집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재산비례 벌금제를 도입하면 재판이 지연되어 피고인 인권침해 등의 우려가 있다고 했다. 정확한 소득과 재산을 조사하려면 시일이 꽤 걸릴 테니 그만큼 재판이 지연될 거란 말이다. 또한 형법만이 아니라 개별 법률들을 모두 찾아서 고쳐야 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도 필요하니 시간을 갖고 더 많이 연구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했다. 흔한 ‘시기상조론’이었다. 다들 공평한 세상을 바란다고 말하지만, 실질은 이렇게 많이 다르다. 한국은 역동적인 나라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처럼 힘센 사람들의 이익이 걸리면 유독 뜸을 들인다. 세상에 존재하는 형사정책 중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연구하고 논의했던 주제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농익혔지만, 검사는 시기상조란다. 재산비례 벌금제를 도입한 나라들도 꽤 많아서 참고할 모델이 차고 넘치는데도 딴소리다. 핀란드는 1921년에 이 제도를 도입했다. 정확히 100년 전이다. 스웨덴 1931년, 덴마크 1939년, 꽤 늦었다는 독일(연방공화국)도 1975년에 도입했다. 2021년의 대한민국이 1975년의 독일, 심지어 1921년의 핀란드만큼도 못하다는 걸까. 재산이나 소득을 파악하는 데 별도의 예산이나 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건강보험료 기준 소득 분위를 그대로 활용해도 된다. 국가장학금처럼 보건복지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활용해도 된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부족한 것은 정확한 소득과 재산을 파악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공평한 형벌을 집행하겠다는, 나아가 공평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정책의지다. 새해다. 코로나19도 잘 극복하고, 한국 사회가 보다 공평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재산비례 벌금제가 그 시작이다.
2021-01-05 | hrights | 조회: 601 | 추천: 5
언론은 ‘추·윤 갈등’이라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 갈등에 주목하지만, 그건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핵심은 ‘검찰개혁’이다. 법무부 장관과 여당 모두 검찰개혁을 말한다. “검찰개혁이 일부의 저항이나 정쟁으로 지체된다면 국민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 여당 대표의 말이다. 검사들의 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검 차장이 장관에게 한발 뒤로 물러나라며 내건 명분도 검찰개혁이다. 전체 검찰 구성원의 마음을 얻어야만 검찰개혁이 가능하니, 검찰총장을 징계하지 말라는 거다. 말이 같다고 뜻마저 같지는 않다. 검찰개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각기 다르고, 개혁을 추진하려는 쪽과 저항세력이 뒤섞여 있기도 하다. 언론은 그저 중계방송식 보도를 하거나 검찰 쪽으로 기울어진 편파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정치적 셈법에 따른 보도도 적지 않다. 그래서 뭐가 검찰개혁인지 다시금 꼽아봐야 한다. 핵심은 간단하다. 문제가 있으니 고쳐야 한다는 거다.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다. 오랫동안 살펴본 결과, 집권 초기의 대통령을 제외하곤 언제나 검찰권력이 가장 막강했다. 경찰이 득세하던 건국 초기나 군인들이 총칼을 휘두르던 군부독재 시기 정도만 예외일 뿐, 민주화 이후엔 언제나 검찰이 최강이었다. 검찰개혁은 검찰이 지닌 막강하면서도 독점적인 권한을 민주적 원리에 따라 나누고,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거다. 검사들만 누리는 엄청난 특권을 폐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진 힘을 빼앗길 판이니 검사들이 개혁에 저항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속내는 민주적 통제 없이 자기들만의 세상을 유지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검찰 구성원의 마음을 얻고 동의를 구하며 검찰개혁을 하라는 건, 개혁 시늉만 내라는 거다. 재벌이 동의하는 재벌개혁, 검찰이 동의하는 검찰개혁은 모두 말장난이다.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은 이런 차원에서 진행한 개혁과제였다. 하지만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완승으로 끝났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검찰의 수사권을 빼앗는 것은 고사하고 검찰은 자기들이 원하는 사건들에 대한 직접 수사권도 그대로 틀어쥐게 되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엄격하게 분리해 검찰이 지닌 수사권을 박탈하는 게 개혁의 핵심이지만, 어슬렁거리다 만 격이다. 공수처는 출발선에 서보지도 못했다. 검찰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논의조차 별로 없었다. 일본의 검찰심사회, 미국의 기소배심 같은 안전장치는 여전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검사의 영장청구권을 헌법으로 규정한 것도 바로잡아야 하고, 오로지 국가검찰 제도만 운용하는 것도 살펴봐야 한다. 공룡경찰이 걱정되어 자치경찰이 필요하다면, 자치검찰도 챙겨봐야 할 중요한 대목이다. 검사들이 누리는 특권도 그대로다. 당장의 사태만 해도 그렇다. 국가공무원 중 유일하게 검사들에 대한 징계만 별도의 법률에 따른다. 법관의 독립이 곧 재판의 독립으로 이어지기에 행정부 소속 공무원들과 달리 ‘법관징계법’이란 별도의 법률을 두고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법무부 소속 외청의 공무원들만을 위한 특별한 징계법은 내용은 물론 행정조직 구조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사들은 임용부터 3급 고위공무원 행세를 한다. 조직 안에는 차관급이 차고 넘친다. 대검찰청과 고등검찰청이 마치 대법원과 고등법원에 비견하듯,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과도하고도 이상하다. 검사였던 사람들이 전관예우를 받으며 형사사법 전반을 왜곡하는 악질 관행도 뿌리 뽑아야 한다. 평생 검사를 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검사를 했던 사람은 변호사 개업 자체를 못하도록 하는 등의 전관예우 방지장치도 챙겨봐야 한다. 집단행동을 하거나 사표를 던지는 등 일반 공무원들은 상상하기 힘든 검사들의 대응이 이어지고 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강도 높은 반발을 이렇게 쉽게 하는 건, 검사가 아니면 누구도 처벌할 수 없는 지금의 형사사법 시스템 때문이다. 불법적 집단행동마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우국충정이라 둔갑시켜버리면 그만이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했거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분노한다는 이유로, 또는 야당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검찰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제법 있단다.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검찰개혁이 좌초할 수는 없다. 언론의 편파적인 과잉보도를 넘어, 정치쟁점화를 넘어 검찰개혁의 본령을 논의하고 또 추진해야 한다.
2020-12-04 | hrights | 조회: 461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