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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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낯설거나 익숙한(박상경)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3-07-11 09:51
조회
218

박상경 / 인권연대 회원


 


출처 - 대학뉴스


1.


우연한 기회에 운 좋게도 친구들과 사진전을 연 적이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 네 사람이 어울려 벌인 이 작업은, 나의 미숙한 사진을 확인하는 두려운 작업이었지만 무언가를 성취한 것 같은 기대감이 섞인 설레는 작업이기도 하였다. 그때 우리는 각자의 사진을 고르면서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아주 낯선 모습과 익숙한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이기도 했고 머나먼 낯선 이국땅에서 맞닥뜨린 우리와 같은 삶의 모습이기도 했다. 낯설거나 익숙한 이 풍경들은 그대로 우리 사진전의 주제가 되었다.


 

출처 - 프라임경제


2.


어릴 적에는 들판을 가로질러 저 너머 세상은 어떤 걸까를 궁금해했다. 좀 더 커서는 저 산을 넘어가면 무엇이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하고, 어른이 되면 저 너머 세상을 갈 수 있는 건가, 어떤 세상인지 알게 될까, 그런 생각을 하였다.


어른이 되어 환상에 머물던 세계에 들고 나니 무엇인가 시시해졌다. 좀 더 역동적이고 스펙터클한 세상이 있을 것만 같은데 시간은 흐르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에는 나이만 먹어간다는 공허감으로 몸살을 앓던 즈음, 그냥 막연히 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패러글라이딩을 시작했다. 창공을 차오르는 새의 그 거대한 자유를 누려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간이 지나 조마조마한 마음을 누르고 파아란 하늘 위로 내 몸을 띄웠다. 그리고 날아올랐다. 그렇게 날아오르니 땅이 발아래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슴 뻐근한 벅찬 감정이 끓어올랐다. 그러다 나무꼭대기에 불시착하는 사고를 내기도 했지만. 당황한 교관들이 뛰어오고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그러는 동안에도 흥미진진한 모험 가득한 세상에 있는 희열 같은 것을 느꼈다. 물론 무사히 나무꼭대기에서 내려왔다.


 

3.


“화장실 변기 물은 어떻게 내리나요?”


“발로 내리죠.”


“에, 왜 발로~?” 당황한 진행자가 말문을 잇지 못하면서 되물었다.


“더러워서요!”


“그럼 다음 사람은 어떻게 하죠?”


“다들 발로 내리지 않나요?”


뉴스 대신 보고 있는 팟빵 시사 프로그램에서 본 대화이다. 며칠 뒤에 모임이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한테 물어봤다.


“화장실 변기 물은 어떻게 내리나요? 첫째, 손으로 그냥 내린다. 둘째 손에 휴지를 쥐고 내린다. 셋째, 발로 내린다.”


사람들은 “발로 내린다”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손으로 내리고 나와서 물로 닦거나, 손에 휴지를 쥐고 내린다고 대답하였다. “어떻게 발로 내리지?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되묻기도 하였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오십대 중후반의 사람들이었다. 그때 한 사람이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발로 내린다고 하였다.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발로 내리는 걸 목격했다고 하였다.



4.


나는 아이들의 수능을 고민하는 것만큼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교육 정책을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혈기왕성한 시절에 즐길 수 있는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모험과 탐험을 즐기고 미지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을 고민하는 어른들이 아주아주 많아졌으면 한다. 그래서 그때 패러글라이딩 교관이 한 말은 지금도 따끔하게 들린다.


“우리나라는 아이들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패러를 많이 해요. 그래서 외국의 패러하는 사람들과는 아주 달라요. 나이 든 사람들은 아무래도 새로운 걸 한다는 도전 정신보다는 새로운 걸 체험하는 것에 만족하거든요(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도전이라든가 모험심이 덜 하죠. 그런데 패러글라이딩은 비용이 많이 드는 거라 젊은이가 하기가 쉽지 않아요. 외국에서는 학교 동아리라든가 마을 단위의 공동체에서 지원을 해요. 장비를 개인이 마련하기보다는 공동장비로 준비하는 거죠. 그래서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하니까 젊은 사람들도 맘 놓고 즐기는 스포츠가 되는 거죠. 우리와는 다르죠. 우리는 그저 개인적으로 즐기는 고가의 취미라고 생각하니까….”



5.


변기 손잡이를 발로 내리는 것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아주 낯선 풍경이다, 그 명칭이 물 내리는 손잡이라면, 발로 내리는 행위는 손으로 내리는 행위와 다른 게 아니다. 이것은 젊은 사람들과 나이 든 사람들 간의 세대 차이가 아니다. 그건 어느 세대이든 잘못된 행위인 것이다. 변기 물을 발로 내려야 한다면 그 위치를 발로 내릴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힘겹게 발을 들어서 내릴 것이 아니라 손잡이를 발잡이가 되게 옮겨 달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더러워서 발로 내릴 게 아니라 깨끗하게 쓸 수는 없는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손잡이가 더러워서 발로 내린다면 다른 환경은 더 더러워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6.


사진전에서 내가 본 낯설거나 익숙한 세상은 풍경이었다. 이국땅에서 만난 한여름 뙤약볕을 피해 그늘진 나무 아래서 더위를 피하는 할아버지와 손자이거나, 지금은 폐허가 된 어느 마을이거나. 그리고 그 풍경은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그리움 같은 것이다. 오늘 새로운 풍경이 우리에게 펼쳐지고 있다. 그 풍경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더 낯선 풍경을 만들어내는 삶이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