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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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경기도지역화폐 카드. ⓒ경기도   2022년을 마무리 짓는 마당에 올해 지역화폐와 관련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뭔지 뽑아봤다.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지역화폐 정부 지원 논란’. 특히 하반기에는 주요 정치 이슈이기도 했다. 정부 지원 0원으로 시작된 지원 논란은 여야협의를 거쳐 그 규모가 상당히 회복되어 계묘년 새해를 맞이할 전망이다. 총선이 얼마 안 남았음을 생각하면 내년 추경에서 추가 예산투입도 있을 것이라 개인적으로 예상해 본다. 이미 지난 몇 년 간 되풀이된 패턴이다. 총선? 여기서 총선이 굳이 왜 튀어나오냐고 묻는다면, 지역화폐가 정치적 구호 또는 레토릭이 된지 한참 된 거 아니냐고 눙치려 한다.^^;; 포털 뉴스 검색에서 ‘지역화폐’를 검색하면 제목부터 정치권 정쟁의 화두로 매번 등장한다. 시흥화폐 시루를 처음 만들 때가 생각난다. 조례를 통과시켜야 하는데 시의회에서 막혀 상정도 못한 채 5개월을 묵혀 둬야 했다. 정치적 유불리 판단이 이유였다. 놀면 뭐하겠나. 그렇게 남은 시간 시민홍보에 더 박차를 가해 인지도를 올려놓았다. 어떻게 영차영차 조례를 통과시키고, 시행에 들어가자 뜨거운 호응을 받은 것은 그 덕분으로 볼 수도 있겠다. 여하튼 지역화폐가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올 한해 중앙정치판에서 지역화폐는 뜨거운 감자였다. 언론부터 대결구도를 깔아놓았고 정치권이 작정하고 부딪쳤다. 지역화폐는 법인세 인하, 기초연금 부부수령 감액 폐지 등 최근 동시에 쟁점이 된 현안과 비교할 때 예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하지만 존재감을 드러내기 좋은 쟁점이다. 거의 모든 지자체의, 남녀노소 국민 대부분의 체감도가 큰 정책이니까. 지역화폐 지원 논쟁이 커지면서 주변에서 묻는다. 어떤 입장이 맞냐고.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자. 한쪽은 실효성 없는 퍼주기, 다른 한쪽은 맞춤형 경제 활성화 정책이라고 응수한다. 결론은 언론과 학자들에게 물어보자. 지난 2~3년간 나온 지역화폐 관련 언론보도와 연구 자료, 논문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으니 참조를. 간단히 따져보면, 극심한 부의 서울·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에서만 돈이 도는 지역화폐는 경제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더 어려운 골목상권 소상공인들에게 실익이 돌아간다는 역내 균등발전 측면에서도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실사구시의 관점과 특성을 외면하고 굳이 맞지도 않는 틀인 국가경제 차원에서 지역화폐를 분석하려는 일부의 시도는 역시 너무 정치적이었다. 그렇다면 타 지역이나 온라인 쇼핑몰, 대형마트에서도 못 쓰는 지역화폐를 더 쓰게 하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는 인센티브(선할인, 캐시백 등)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시흥 지역화페 '시루'   시흥화폐 시루는 처음 설계할 때 평시 5%, 명절 등 특별기간에 최대 10% 선할인 인센티브를 부여키로 하고 조례에 그 내용을 담았다. 5% 정도의 인센티브가 불편한 돈인 지역화폐를 사용하면서 가계에도 보탬이 되고 지역 경제도 살리는 소비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적정한 수준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만일 10% 인센티브를 계속 유지한다면? 더 줄수록 좋은 게 인지상정이지만 10% 인센티브는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특별히 추진한 예산투입이었다. 발행액이 100억 원이라면 세금으로 10억 원이 나가야 한다. 물론 나가는 세금보다 지역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더 높을 수 있지만 부작용도 분명 있다. 세세하게는 부정유통을 억제하기 힘들다. 부정유통의 나쁜 욕망을 잠재우기에 10% 차익 실현이라는 유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대체로 부정유통은 혼자가 아닌 결탁이 필요하다. 차익을 나눠야 하므로 적절한 인센티브는 부정유통을 근절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다. 현실적인 난관은 재정 여력이다. 모든 지자체가 정부 지원만 바라보며 언제까지 10%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재정여력이 되고 내수 경기 부양이 반드시 필요한 지자체라면 모를까. 결국 지역화폐 인센티브 정책은 지자체의 특성과 사정에 맞게 적정한 규모를 선택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적절한 범위를 넘어선 인센티브는 자칫 지역화폐의 목적을 잊게 만든다. 「지역사랑상품권법」 제1조(목적)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보다 ‘지역공동체 강화’가 먼저 나온다. 하지만 높은 인센티브만 바라보며 혜택 많은 카드 정도로 인식이 굳어지게 되면 지역화폐는 지역 경제공동체 강화에 복무하기보다 그저 소비 쿠폰 정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지역화폐가 정치의 장에서 필요 이상으로 호명되는 상황은 그래서 불안하다. 중요 민생 이슈임은 분명하지만 정쟁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휘둘리다 방향을 잃은 채 내팽개쳐지진 않을까 싶은 심경이다. 가뜩이나 불경기에 골목상권 자영업은 대책 없이 스러져 가고 있다. 지역화폐라는 도구로 목 좀 축이게 마중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공감하지 않을 정치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 그 도구를 정쟁의 도구로만 다뤄주지 말길. 아, 지역화폐는 특정 정치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 많이 알려졌지만 지난 1996년 충북 괴산에서 처음 시작했다는 사실도 사족처럼 덧붙인다.    
2022-12-14 | hrights | 조회: 255 | 추천: 1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2022년 6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 ‘아프리카박물관(the Africa Museum)’에 갔다. 브뤼셀 근교 테르뷰렌에 있는 이곳으로 가려면 시내에서 트램을 타고 30분쯤 가야 한다. 트램이 시가지를 벗어나면 좁은 길 양옆으로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역에서 내려 숲길을 따라 테르뷰렌 공원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면 웅장한 건물의 박물관이 나온다. 이 박물관의 원래 이름은 ‘왕립중앙아프리카박물관(the Royal Museum for Central Africa)’이었다. 2018년 재개관하면서 ‘아프리카박물관’이 되었다. 2013년 문을 닫기 직전 처음 방문했을 때, 노골적으로 식민지 문명화 사명을 찬양하는 조각상들과 낡은 디오라마 전시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5년 동안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마지막 남은 식민박물관’이라는 오명을 벗고, ‘탈식민화’를 시도한 결과가 현재의 아프리카박물관이다. The Africa Museum ⓒ 염운옥 파리의 케브랑리미술관부터 런던 영국박물관과 옥스퍼드 피트리버스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는 아프리카 유물을 수집·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 많다. 유럽이 수집 대상으로 삼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를 보여주는 곳들이다. 아프리카만을 대상으로 하는 박물관은 네덜란드에도 스위스에도 있다. 네덜란드 니메헨 아프리카박물관과 스위스 취리히 리트베리트 박물관이 그곳이다. ​​테르뷰렌의 아프리카박물관은 그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박물관이다. 굳이 벨기에까지 가서 아프리카박물관을 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 박물관이 식민주의를 제대로 보여주는 박물관이었고, 지금은 탈식민주의 실천의 곤경을 말해주는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박물관이 자리 잡은 테르뷰렌 공원은 브라반트 공작의 사냥터였다. 귀족의 사유지에서 국왕 레오폴드 2세의 소유지가 되었던 곳이 이제는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내려앉은 구름 탓에 한결 부드러워진 초여름 햇살 아래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즐기고, 달리기하는 시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게 빛났고, 나무 옆을 지날 때마다 풍겨오는 짙은 숲 냄새는 여행의 피로를 달래주었다. 도대체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 식민박물관이 어울리기나 하단 말인가? 하지만 멀리 보이는 박물관 건물을 향해 걸어가다가 만난 어떤 표지판은 이곳이 식민주의의 현장이었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중앙아프리카 콩고를 개인 식민지로 만들고 고무 채취를 위한 노예노동을 강제한 것으로 악명높은 레오폴드 2세는 1897년 브뤼셀 세계박람회 개최 용도로 현재의 아프리카박물관 건물을 건립했다. 레오폴드 2세는 파리의 쁘띠팔레(Petit Palais)를 설계한 건축가 샤를 지로(Charles Girault)에게 설계를 맡겼다. 파사드에는 그리스 신전처럼 열주를 세웠고, 중앙에는 로툰다가 있는 메인 홀을 배치한 왕궁식 건축물이다. 건물 전경이 반사되는 연못과 분수를 둘러싸고는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진다. 레오폴드 2세는 세계박람회를 위해 신축 전시장을 왕궁처럼 건축했을 뿐만 아니라, 267명의 콩고인을 데려와 전시했다. 당시 유행하던 인간동물원(human zoo)의 벨기에 버전을 실현한 것이다. 인간전시에 동원된 콩고인들 중 7명이 이듬해 인플루엔자로 사망했다. 인간전시를 고발하고 7인의 사망자를 추념하기 위해 인간동물원이 있었던 자리에 명판을 세운 것은 2018년 재개관 때였다. 명판에는 사망자 7명의 이름이 쓰여 있다. 1897 Human Zoos in Tervuren Commemoration of the Congolese victims ⓒ염운옥 1897 Human Zoos in Tervuren Commemoration of the Congolese victims (부분확대) ⓒ 염운옥 1910년 레오폴드 2세가 사망한 후 왕령 식민지는 벨기에령 콩고(the Belgian Kongo)가 되었고, 박람회장으로 썼던 이 건물은 식민지박물관이 되었다. 왕립중앙아프리카박물관 시절의 전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식민지배를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2013년 방문했을 때 노골적인 식민주의 서사를 그대로 내보이는 박물관이 21세기에도 존재하는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로툰다 홀에는 콩고인을 원시인으로 묘사하는 동상과 아프리카인을 힘으로 제압하는 백인 동상이 있었고, 벽면에는 벨기에의 자애로운 문명화 사명으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부조가 가득했다. 상설전시도 아프리카 동물 박제와 디오라마가 지겹도록 이어지면서, 아프리카인은 없이 아프리카 유물만 전시되었고, 이로써 아프리카 역사는 ‘자연사’와 동일시되었다. ‘역사 없는 대륙 아프리카’라는 관념을 진심으로 구현한 전시 앞에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악명높은 사례가 레오퍼드맨(Leopard Men)이었다. 표범 가죽을 쓰고 표범 발톱을 양손에 단 레오퍼드맨이 잠들어 있는 남자를 공격하는 모습의 조각상이다. 레오퍼드맨은 콩고 식민지인을 표범으로 재현함으로써 ‘흑인’을 ‘동물화’, ‘비인간화’한다. The Leopard Men, 2013 ⓒ 염운옥 레오퍼드맨은 마블의 영화 〈블랙 팬서〉에 영감을 준 콩고의 남성 비밀결사의 주인공이다. ‘아뇨토(Anioto)’, ‘아뇨토 레오퍼드맨’이라고도 불리는 이 결사는 표범의 신비로운 힘과 상징을 토대로 하고 있었다. 표범은 부족장의 권력과 마술의 힘을 상징했다. 전통적인 부족장지배 관념 속에서 부족장은 자신의 공동체를 보살피는 존재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적이나 같은 공동체 성원을 해칠 수 있는 오컬트적 권력을 소유한 자로 여겨졌다. 1910년대에서 1930년대 벨기에 식민지 시절 콩고에서 식민당국은 표범의 공격을 가장한 콩고인의 저항에 시달렸다. 표범의 움직임을 흉내 내 시신의 사지를 절단하고, 시신에 일부러 표범 발톱 자국을 남겼다. 시신의 머리나 팔을 없앰으로써 신원 확인을 불가능하게 훼손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야만의 관습이 아니라 지역주민을 장악하려는 비밀결사의 힘의 행사인 동시에 벨기에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움직임으로 정치적 기능을 갖는 것이었다. 레오퍼드맨은 벨기에 제국의 종주권 팽창에 대항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 확장하려는 남성 비밀결사의 투쟁 방식이었고, 벨기에는 동물적 폭력을 자행하는 식민지 야만인이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조장하는데 활용했던 것이다. 2018년 12월 8일 재개관한 아프리카박물관의 전시는 얼마나 변했을까? 박물관 측의 설명에 따르면 리노베이션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탈식민화’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주 건물과 떨어진 곳에 출입구 건물을 따로 마련하고 박물관과 지하를 통해 연결되도록 했다. 상설전시는 전면 개편했다. 벨기에 연방 정부가 부담한 리노베이션 비용은 약 6천6백만 유로에 달했다. 탈식민화를 표방하면서 박물관 측은 자문기구 콤라프(Comité de Concertation Musée Royal de L’Afrique Centrale)를 구성했다. 박물관 큐레이터들과 벨기에 거주 콩고인 디아스포라 커뮤니티가 참여한 콤라프는 탈식민화가 무엇인가를 놓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2017년 협의는 결렬되고, 콩고인 디아스포라 참여자들은 침묵 속에 퇴장하고 말았다. 박물관 측은 노골적인 식민지 미화 서사를 중화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벨기에 식민지 역사를 조망하는 것으로 탈식민화를 이해했던 반면, 콩고인 커뮤니티는 식민지 학살과 유물 반환 문제를 거론했고, ‘반성없이 탈식민화 없다’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콤라프에 참여했던 콩고인 인사들이 개관식 행사에서 참여하긴 했으나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고, 더 급진적인 콩고인 활동가들은 항의하는 의미로 앞서 언급한 인간전시 희생자 추념 명판 앞에서 따로 기념식을 거행했다. The Africa Museum New Entrance Building ⓒ 염운옥 지하 출입구로 들어가 화이트 큐브 형태의 긴 연결통로를 지나면 처음 만나는 공간에 과거 로툰다 홀에 있던 낯뜨거운 동상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악명높은 레어퍼드맨도 여기로 옮겨졌다. 로툰다 홀에 있던 문제의 부조는 천으로 가려놓았다. 부조는 정면에서 보면 천가리개에 가려지지만 측면에서 보면 그대로 다 보인다. 가려진 부조는 ‘식민주의의 신전’이었던 이 박물관을 ‘탈식민화’하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한 시도였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무언가를 가리는 방식으로 ‘반성’과 ‘성찰’을 표현할 수 없지 않을까. 물론 상설전시에서 콩고와 아프리카의 현재를 과거와 함께 전시한다는 원칙을 세워 따르고 있고, 악기, 무기, 가면, 의례용품 같은 과거 유물을 맥락 없이 유리 케이스에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 용도와 의미를 현대 콩고인이 설명하는 내레이션 영상을 함께 배치한 것, 관객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시낭송 퍼포먼스가 열리는 등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박물관이 내세운 탈식민화를 이루었다고 하기에는 갈 길이 아직 멀어 보인다. 탈식민화는 ‘가리기’와 ‘균형 잡기’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Sculptures at the Introduction Gallery ⓒ 염운옥 Sculptures at the main rotunda hall ⓒ 염운옥 Birth, Rituals and Ceremonies Gallery ⓒ 염운옥 1) Vicky van Bockhaven, “Leopard-men of the Congo in Literature and Popular Imagination,”Tydskrif Vir Letterunde 46.1(2009), p. 91. 2)Jeremy Cyrier, “Putting a Paw on Power: Anioto Leopard Men of the Eastern Uplands, Belgian Congo, 1911-1936,” Ufahamu: A Journal of African Studies 28.2-3(2000), p. 75. 3)Hugo DeBlock, “The Africa Museum of Tervuren, Belgium: the Reopening of ‘the Last Colonial Museum in the World’: Issues on Decolonization and Repatriation,” Museum & Society 17.2(2019), pp. 272-273.
2022-12-07 | hrights | 조회: 446 | 추천: 2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누가 누구의 이름을 지운단 말인가? 누가 그들의 이름을 지우고자 하는가? 누가 그들의 안타까운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위법의 딱지도 모자라 패륜의 딱지를 붙이는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깡그리 지운 채 위선의 분향 나들이에 나선 대통령이란 자의 잔인무도함이야말로 위법한 패륜임을 과연 모른단 말인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황당한 정치술을 믿고 따르는 정치집단과 언론 권력의 패거리야말로 위법에 패륜을 더하는 자들임을 과연 모른단 말인가? <출처 : 시사주간> 정치적인 권력을 움켜쥐는 짓에 온통 사로잡힌 자들, 그 흉악무도한 손으로 선량한 그들의 안타까운 이름을 지운다. 증거인멸, 위선적인 분향, 모든 국민이 추도하는 장소에 황망하게 희생당한 그들 아름답고 꽃다운 청춘들의 이름들을 지웠다. 아울러 분향 추모의 검은 리본에서 추모를 지웠다. 그리하여 어리석게도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고자 하는 자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잘못이 기어코 범죄임을 드러낸다.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하게 죽은 아름다운 청춘의 이름에는 그/녀의 두 눈빛이 형형하게 새겨져 있다. 익명에는 눈빛이 지워지고 없다. 살아있을 때의 생기발랄한 눈빛이 지워지고 만다. 잊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음으로써 죽은 자의 삶은 산 자가 책임진다. 죽은 자들의 이름에는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배 있기 때문이다. 희생자들 한 사람 한 사람 그 이름을 애써 밝히는 일은 살아남은 자들이 희생자들의 삶을 대신 살고자 하는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다. 이를 짐짓 거부하고 무시하면서 재빠른 망각을 획책하는 자들은 공동체의 세상을 함께 살아갈 권리가 없는 자들이다. 참사를 예방해야 할 자들,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은 무지와 무능, 나태함과 무책임함, 무엇보다 유일무이한 생명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는 그 권력의 잔인함에 의한 아집과 독선으로 아직 너무나도 생생한 저 목숨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 지우기에 동분서주, 무작정 바쁠 뿐이다. 가장 강인한 흔적, 결단코 지워질 수 없기에 심지어 흔적이라고 할 수조차 없는 눈을 부릅뜬 흔적인 이름들을 맨 먼저 지웠다. 이는 참사에 참사를 뒤덮는 이중 살인이다. 누군가의 이름은 그의 존재가 그 무엇, 그 누구로도 대신할 수 없음을 밝힌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엄마 몸속의 태아에게 일찍이 태명을 붙여 부르는 까닭은 아무 탈 없이 태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이거니와, 그 존재의 유일무이함의 신비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다. 처음부터 이름에는 부모의 마치 못다 해 안타까운 양 무한한 사랑이 한껏 쟁여져 빛나고 있음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윤석열, 그의 은덕을 입은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 이상민이 자리를 만들어 굳이 앉혀놓은 프락치 의혹의 경찰국장 노순호, 경찰청장 윤희근, 서울경찰청장 김광호 등은 자신들의 이름들만이 빛을 잃고 더럽혀지는 일을 극구 막고자 저 희생자들의 고귀한 이름들을 아예 지우고자 노심초사 안절부절이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자신 속에 간직한 서로의 존재를 불러올리는 것이다. 비명의 외마디가 울려 퍼졌을 그때, 이태원 그 잔인한 골목은 자신의 이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들로 가득 차 있었고, 하지만, 그 절박한 마지막 음성으로 ‘엄마!’, ‘어머니!’라는 영원한 이름을 불렀다. 그랬으리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어머니, 어머니는 혼절의 비명으로 딸의 이름,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른다. 그 부르는 이름이 허공으로 날리고 마는 처절함에도 부르고 또 부른다. 그리하여 기어이 더는 직접 부를 수 없는 그들의 이름이 애써 살아남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가족들의 마음 깊숙이 뚜렷이 새겨져, 매 순간 에밀레종 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저 잔혹한 자들은 일면식도 없는 자들의 이름은 아예 이름이 아니라고, 불러주는 순간 귀신으로 되살아나 자신들의 잔인함을 폭로하여 불면에 시달리게 할 뿐이라고, 대통령실이니 행정안전부 장관실이니, 법무부 장관실이니, 경찰청장실이니 하는 밀실에서, 맨 먼저 그 이름들을 지워버려야 해, 국민의 입에서 그 이름들이 발설되도록 해서는 안 돼, 국민의 귀에 그 이름들이 들리도록 해서는 안 돼, 국민의 눈에 그 이름들이 새겨지도록 해서는 안 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재빠르게 속닥거렸을 것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하다. <출처 : 윈도우포럼>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라고 읊었다. 살아남은 우리는 황망하게 죽어간 희생자들의 이름을 뚜렷이 불러줌으로써 그들의 존재의 빛깔과 그들 삶의 향기를 끝내 기억하고 추념할 것이다. 그렇다면, 희생자들의 이름을 지워버리려는 자들의 이름, 빛깔이나 향기는커녕 칙칙한 악취를 풍기는 그자들의 이름은 아예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버려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아름다운 꽃으로 살아있어야 할 희생자들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려면 그자들의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름을 지우고자 하는 저자들의 잔인함을 비롯한 무지와 무능, 아집과 독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잊지 않고 책임지게 하고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저자들이 지우고자 한 희생자들의 이름들이 오롯이 빛날 것이고, 그 이름들을 죽어라 안타까워하는 우리들의 이름이 살아 오를 것이다. 마지막으로 10.29 이태원 참사 넋들과 유가족들의 참혹한 심정을 대신해 불세출의 민족 시인인 김소월의 시 <초혼>을 삼가 올린다. <출처 : 경북매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2022-11-30 | hrights | 조회: 322 | 추천: 3
윤요왕 /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춘천시 퇴계동주민자치회가 지난 21회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전국 320개 주민자치회가 신청했고 60개 우수사례 선정, 그중 최고 영예의 대상을 받은 것이다. 본선에 오른 지역의 사례발표를 듣고 60여개 지역의 홍보부스를 돌아보면서 느낀 것은 전국에서 주민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발표에 홍보부스에 보이지는 않는 주민들의 애씀과 갈등, 울고 웃었을 민초들의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획기적인 아이템이 아니라 하더라도 과정이 완벽하게 매끄럽지는 못하더라도 ‘주민자치’란 말에 흡족하게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과 방향에서 주민자치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출처 : 작성자 우리센터에서 지원하고 함께하는 춘천시 퇴계동 주민자치회도 그렇다. 대상을 받았다고 주민자치를 완전히 실현했다고 볼 수만은 없다. 부족함도 많고 갈등도 있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렇다고 이를 잘못이라고, 아니다라고 치부하면 안된다. 무언가를 함께 도모하고 숙의하고 결정하고 실행한다는 것은 결사체가 아닌 일반 주민들에게 있어 매우 어려운 일임을 옆에서 지켜보게 된다. 그럼에도 각자의 시간과 에너지와 발걸음을 내어 마을을 위해 무언가 한다는 것은 박수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수상발표가 나고 감격과 애씀의 눈물을 흘리는 자치위원분들의 손을 잡으며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퇴계동 주민자치회의 대표 사례인 ‘새삶스런 벤치’ 사업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그 과정에서 누구하나 무엇하나 빠졌더라면 안되었을 협력,협치의 대표적 사례였음을 느낀다. 출처 : 작성자 춘천사회혁신센터가 이 사업 아이템을 기획하지 않았더라면, 또 마을자치지원센터에 주민들과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면..우리 마을자치지원센터에서 주민자치회와 마을공동체에 사업제안과 홍보를 안했더라면..퇴계동 동장님(현 교육도시과장)이 주민자치회와 자생단체들에게 적극 독려하고 제안하지 않았더라면..퇴계동주민자치회가, 퇴계동통장협의회, 자생단체들이 함께하지 않았더라면..퇴계동주민들이 그 더운날 냄새나고 지저분한 배달용기와 병뚜껑을 그리 열심히 모으지 않았더라면..퇴계동 주무관이 또 사회혁신센터 담당 실무자들이, 마자센터 팀장과 마을지원관들이 그 현장에서 수거하고 옮기고 깨끗하게 닦지 않았더라면..분쇄하고 압축하고 가구로 제작하는 선도적인 업체가 없었더라면..   어찌 생각해보면 그 시작과 과정과 끝 그 어딘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손과 발과 지혜와 마음을 함께 모으지 못했더라면 오늘의 이 결과는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상을 받은 것 보다 더 주목해야하는 건 이 많은 사람들이 협력, 협치했다는 것이다. 웃으며 서로 격려하며 늘 화기애애하기만 했겠는가. 몇 개월 안되는 짧은 시간에 이루말할 수 없는 웃픈 스토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모두가 포기하지 않았고 감당해 냈음에 상을 주고 싶다. 누군가 ‘협치가 잘 되면 자치로 나아간다’고 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도 있다. 여러 가지 힘든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여기저기서 한숨섞인 소리가 들리고 울분의 큰 소리들이 나온다. 늘 이야기하고 다짐한다. 자치는 민원이 아니다. 오늘 바로 내 발걸음을 옮기고 손을 움직이고 사람들과 몸과 마음을 부대끼며 실천적인 땀방울을 흘려야하는 것이다. 또, 느끼고 깨닫는다. 작고 약한 힘들이 모여 협력, 협치하고 자치시대를 열어야 진정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고 행복한 마을을, 도시를 만들 수 있음을. 춘천에서 강원도에서 전국에서 이처럼 미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민자치 시대’를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주민자치회 주민들과 관계공무원,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2022-11-23 | hrights | 조회: 305 | 추천: 1
이윤 / 경찰관 □ 사후과잉확신 편향 이 글을 쓰는 지금, 키움과 SSG 사이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열리고 있다. 어제까지 시리즈 전적은 2:3. 아마 오늘이나 내일 밤이면 최종 승자가 가려질 것이다. 엊저녁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한 SSG를 보면서 ‘아무래도 SSG가 한 방이 있고 근성있게 승부하니 최후의 승자가 되겠구나.’라는 생각과 ‘그래도 키움에는 바람의 손자가 있고 선발진이 좋으니 최종 우승을 할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지금 내기를 한다면 키움에 천 원 정도 걸어볼 생각은 있다. 만 원까지 걸 확신은 없다. 이틀 후 점심시간을 상상해 보자. 야구 이야기를 화제로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아마도 밥알을 튕기며 이렇게 떠들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5차전을 봤는데, 키움은 수비가 약해. 실책으로 한순간에 무너지더라구. 그때 확신했지. 이번 우승은 SSG가 할 것이라고.’ 출처 : Pixabay 이렇게 이미 일어난 사건을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비해 더 예측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사후과잉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한다. ‘내 그럴 줄 알았어 효과’라고도 불리는 이 심리적 편향은 왜곡된 기억에 의한 잘못된 의사결정을 조장한다. 과거 성수대교 및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나 세월호 참사 직후, 언론에 등장한 전문가가 ‘예견된 인재’라며 몇 가지 사고 원인을 제시하면서 ‘그것만 미리 조치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 것도 사후과잉확신 편향이 발동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책임있는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사고 원인 및 예방 조치 필요사항에 대한 진단도 사후과잉확신 편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 조사가 불충분하여 정보가 제한적임에도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사실만으로 벌써 책임지울 사람을 찾기 바쁘다. 이번 참사로 인한 전국민적 슬픔과 분노의 배출구도 필요하겠지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대비책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책임자 몇 명 처벌하고 파면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면 중대한 사회적 참사의 원인을 몇몇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끝나게 될 것이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게 된다. 지금 특수본이 수사를 하고 있지만, 수사는 범죄 사건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조사 범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와 별도로 독립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장기간 모든 자료와 증거를 면밀히 검토한 후, 새로 만들어야 할 것과 기존 체제 중 고쳐야 할 것을 파악하여 정비해야 한다.   □ 위험관리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위험관리 체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위험관리(risk management)와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는 다르다. 위험관리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고의 위험에 대해 식별, 평가, 대응방안 수립 등을 하는 사전적 개념이고, 위기관리는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할 때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운용하는 사후적 개념이다. 예를 들어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위험발생의 방지 등)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1조(재난예방을 위한 안전조치)에서 위기인 ‘생명, 신체, 재산에 중대한 손해’와 ‘재난 발생’을 예방하기 위하여 ‘극도의 혼잡’과 ‘재난 발생의 위험이 높다고 인정되는 지역’이라는 위험 식별 및 평가 지표를 규정하였으므로 이 조항들은 위험 관리 영역에 속한다. 소방기본법 제16조의3(생활안전활동)에서 ‘방치하면 급박해질 우려있는 위험’도 마찬가지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기 전 다중이 운집하여 위험하다는 신고가 있을 때 혼잡 정도를 평가하고 대응하는 것은 위험관리고, 참사 발생 후 현장 통제 및 사상자 응급조치, 후송은 위기관리다. 그런데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극도의 혼잡’을 단계별로 식별하고 평가하는 척도나 방법, 그리고 위험 인지 후 위기 발생 전까지의 구체적 행동요령이 제시된 지침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위험관리는 오로지 경찰관이나 공무원 개인의 판단과 재량에 맡겨져 있다. 위험관리에 실패한 책임을 물으려면 정해진 식별/평가 기준은 있는지, 징후가 있었음에도 인지 및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사람이 많이 모일 것이 예상되었는데 왜 인력을 더 배치하지 않았나’라며 비난하는 것은 사후과잉확신 편향일 수 있다. 참사 이후 언론과 행정 기관은 책임자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실무자든 관리자든 직책에 주어진 권한과 임무를 방기하거나 부적절하게 행사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만 몇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정도로 종결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관리되지 않는 위험 속에서 불안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헌법 제34조 제6항)
2022-11-16 | hrights | 조회: 339 | 추천: 5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1. 오래전 일이다. 취재 일로 문경새재에 간 적이 있다. 새벽부터 빡빡하게 움직인 덕에 늦은 오후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시절이라 문경새재 버스 정류장에서 충주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올 시간이 한참 지나도 버스는 나타나지를 않았다. 정류장에 붙은 시간표를 보고 또 보고, 그래도 버스는 오지를 않고, 그다음 버스는 한참 뒤에나 있으니 걸어서라도 나가야 할 참이었다. 걸어가다 늦게라도 버스가 지나가면 세워서 타야지 하는 생각으로 충주 시내를 향해 걸어갔다. 인적이라곤 전혀 없는 국도에는 지나는 차량도 드물었다.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는 깊은 숲속에 있는 착각마저 일으켰다. 그렇게, 천지간에 혼자인 것처럼 도로 위를 걷다가 간혹 빵빵 경적이 울리면 좁은 흙길로 내려서서 걸어가곤 했다. 출처 - pixabay   얼마나 걸어야 할지 몰랐지만 걷다 보니, 걷는 게 힘들다기보다는 주변 풍경에 눈길이 가면서 무언가 모를 희열 같은 게 느껴졌다. 아, 세상에 이렇게 고즈넉한 길이 있다니~ 이런 풍경을 어디서 보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 또다시 뒤에서 “빠~앙”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가 지나가면, 비키라는 소리구나 싶어 도로 옆으로 내려서서 걸어갔다. 그런데 “비켜!” 하듯이 바~앙 소리를 내던 자동차가 앞으로 쭈우욱 가더니 서는 게 아닌가. 아, 도로 위에서 걸어간다고 한소리를 하려나 하는 생각으로 천천히 걸어가니, 보조석의 차창을 내린 운전자가 “어디까지 가요?” 한다. “네? 아, 충주시외버스터미널 가려고 하는데요.” “그래요, 그럼 타요. 충주 시내까지 태워다 줄게요.” “네? 아니 괜찮아요.” “뭘 모르시나 본데, 여기서 충주 시내까지 얼마나 되는 줄 알고 그래요? 터미널 가는 거면 더 갈 길이 있나 본데, 타요! 너희는 자리 좀 좁혀!” 차 안에는 가족인 듯한 이들이 타고 있었고 조금씩 좁혀 앉으면 한 사람쯤은 더 타고 시내까지는 갈 만하다고 하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차에 탔다.   “그런데 어디까지 가요?” “네, 서울에요.” “무슨 일로 거길 걸어가고 있었어요?” “아, 네 일 때문에 왔다가 버스가 오지를 않아서 걸어가다가 버스를 만나면 타려고 했어요.” “그동안 지나가는 차가 없었어요?” “아니, 여러 대 지나갔는데….” “그런데 태워주는 차가 없었나요?” “네, 그냥, 경적이 울리면 비키라고 하는 것 같아서 차도 아래로 내려서고….” “하하, 머리가 나쁘면 몸이 좀 고생하면 돼요. 경적을 왜 울렸겠어요, 하하하….” “아하~ 그래서 차들이 멈칫거리며 천천히 갔었구나!”   그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순식간에 충주 시내에 들어섰다. “여기가 충주 시내니까, 터미널은 알아서 갈 수 있죠? 하하하!” “고맙습니다. 저기~” “괜찮아요, 나중에라도 곤란해하는 사람 만나면 도와주면 돼죠~” 그렇지, 그러면 되는 거지!   “내일은 뒷산에 올라 두릅이나 따자!” “그러지 뭐.” 놀러 간 친구네 집, 뒹굴뒹굴하는 내 모습이 탐탁지 않았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온 친구한테 뭐라도 보여 주고 싶었는지 친구가 그랬다, 뒷산에 가자고. 그런데 정선에서 뒷산은 야산이 아니라 먼 데서도 찾아오는 1500고지의 높은 산이다. 나른한 봄날 그 뒷산, 두리봉을 올랐다. 산을 오르면서 보니 산 아랫마을엔 드문드문 빈집이 보였다. 사북 탄광촌이 쇠락하면서 마을에 빈집이 늘어난다고 친구는 말했다. 그러다 한 집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대문 문고리에 숟가락을 걸어놓은 집. 마치 지금은 떠날 수밖에 없어 이곳을 떠나지만 머잖아 곧 돌아올 거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가슴 한쪽이 뭉클해졌다.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말끔하게 비질이 된 마당 이곳저곳에는 살림살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사람 기운이 아직 남은 집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허망하게도 봄 햇살이 찬란하게 쏟아졌다. 헉헉거리며 산 중턱쯤 올라가니 친구가 여기서 따면 되겠단다. 두릅나무 끝에 올라온 새순을 땄다. 가지고 간 바구니에 반쯤 채우자 친구가 이제는 내려가자고 했다. “아직 딸 만한데….” 내가 그랬더니 “이만하면 오늘 저녁 거리는 돼. 그만 가자.” 그러자고 했다. 해도 뉘엿거리고,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도 나고 내려가는 길이 여간 긴 게 아니다. 그때 뒤에서 커다란 차가 산길을 돌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커다란 화물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려오고 있었다.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한쪽으로 비켜 서 있자니 화물차가 천천히 내려가다 선다. 고장이라도 났나 생각하며 지나가려는데 트럭 기사가 고개를 내밀고 “타세요!” 한다. 친구를 보니 고개를 흔든다. “타세요. 짐 부리고 나가는 길인데 저 아랫마을까지는….” “괜찮아요, 그냥 걸을 만하네요? 어차피 산행하는 건데….” “늦었어요. 어차피 시내 나가는 거니까.” 못마땅해하는 친구를 눈짓으로 달래서 트럭에 올라탔다. 처음 올라탄 트럭은 다른 세상이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이 그렇게 멀리 보일 줄이야.   우리 또래로 보이기도 하고 어려 보이기도 하던 트럭 기사는 말은 많지 않았지만, 돈을 벌면 부모님을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내릴 때가 되자, 저녁 맛있게 먹으라는 인사도 했다. 산 아랫마을의 대문에 꽂아둔 숟가락과 수줍은 듯 선한 표정의 기사가 부모님 호강시켜 주고 싶다는 말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도 가끔 생각나곤 한다.   3. 지리산 토끼봉에서 내려와, 산 아랫마을에서 하동으로 나가려면 하루 몇 대 다니지 않는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오전에 나가고 없는 차를 오후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버스 정류장 주변에서 하릴없이 버스를 기다리는데, 깊은 산골 마을에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트럭 가득 생필품을 가득 실은 상인이 들어온 것이다. 지난번에 왔을 때 부탁한 물건을 찾으러 온 아주머니, 엄마 치마꼬리 붙잡고 나온 꼬마들이 무언가를 사 달라고 조르는 소리, 살 만한 물건이 있나 싶어 나온 아저씨들로 왁자지껄하면서 마을에 활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여,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다음에 올 때 가져올 물건을 주문하거나 볼일을 다 본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갔다. 그 와중에 한 아주머니가 상인 아저씨한테 부탁을 한다. “저 아가씨 하동 읍내에 내려줘요! 하동 가는 버스가 아직 안 들어와서….” “예, 그러죠!” 하고 아저씨가 선선히 응대를 한다. 덕분에 나는 흥겨운 트로트가 흐르는 트럭을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고돌아 나올 수 있었다.   “하동 송림은 가보셨소?” “아뇨.” “하동서 하동 송림을 못 보다니, 괜찮으면 구경 한번 하시죠!” 그렇게 가게 된 하동 송림에서 연신 감탄하는 나를 보며, 아저씨는 하동 송림의 역사까지 멋들어지게 들려주었다. “그럼, 다음에 와서 찬찬히 둘러보시고 오늘은 갈 길도 먼데 그만 가죠!” 아저씨의 따뜻한 호의에 나는 그저 고맙다는 인사만 하였다.  
2022-10-26 | hrights | 조회: 362 | 추천: 3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지역화폐 또는 지역사랑상품권은 원래 ‘고향’사랑상품권이 될 뻔했다.  지난 2018년 즈음 정부의 지역화폐, 지역사랑상품권(명칭은 다르지만 하나의 정책이며 법적으로 두 명칭 다 써도 된다) 활성화를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되면서 초기 관련 문서에 고향사랑상품권이란 명칭이 나타났다.  이전부터 지역화폐 또는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불렸던 것을 갑자기 고향사랑상품권이란 명칭으로 대체하려니 적이 당황스러웠다.  고향의 발전을 기원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지역=지방=고향’이라고 인식이 되니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슨 이유이건 중앙 중심적 사고가 깊숙이 자리 잡은 명칭이 아닐 수 없었다.  이후 결국 지역사랑상품권이 관련 법률(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법)에 정식 명칭으로 올라갔다. 만일 고향사랑상품권으로 결정됐다면 현재 수많은 지자체에서 ‘왜 내 고향은 다른 곳인데 지금 사는 이곳에서 고향사랑상품권을 사용해야 하는가’라거나, ‘고향사랑상품권이라면 진짜 내 고향에서 사용해야하는가’라는 원성과 의문이 속출했을 것이다.    출처-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이 소극을 기억에서 다시 꺼낸 이유는 최근 동향의 데자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론에 따르면, 내년부터 지역화폐 정부지원 예산은 전면 삭감될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전통시장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은 올해 3조5,000억원인 발행규모를 4조원까지 늘릴 계획이다. ‘지역화폐는 원래 지자체가 각자 시행하던 고유 사업인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역경제 지원 차원에서 중앙정부가 지원을 해준 것’으로 ‘지자체가 지역경제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자체적으로 진행하면 된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적으로 통용되므로 내년에 증액해서 시행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나 지역화폐는 현재 전국 243개 지자체 중 10여 곳을 제외하고 모두 통용되고 있다.  이 같은 방침의 배경에는 언론과 학계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지역화폐 대체재=온누리상품권’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은 비슷해보여도 완전히 다르다.  우선 사용범위와 사용처가 다르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범위) 전통시장 및 등록 상점가(사용처)에서 쓰인다. 지역화폐는 해당 지자체(범위)의 전통시장과 등록 상점가를 포함한 다양한 골목상권(사용처)에서 쓰인다. 이게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 실 사례에서 보자.  내가 만일 친절 공무원으로 선정돼 부상으로 온누리상품권을 받았다. 이 상품권은 시흥시 전통시장에서도 쓸 수 있지만 서울 광장시장에서도 쓸 수 있다. 만일 시흥화폐 시루로 받았다. 시루는 시흥시에서만 써야 하지만 전통시장 뿐 아니라 미장원, 식당, 동네마트 등에서 쓸 수 있다.  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지난 2006년부터 중기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운영 중인 정책이다. 지역화폐는 지난 1996년부터 충북 괴산에서 시작해 대략 지난 2016~2018년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확산의 핵심계기는 ‘소비의 부가 지역에 남지 않고 밖으로 너무 빠져 나간다’(소비의 역외유출)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2018년 발표한 '지역소득 역외유출의 결정요인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경기·부산·대구·대전·광주·인천 등 7개 광역시도를 제외한 모든 지자체에서 소득이 역외로 유출되었다. 특히 전체 유출된 소득의 과반수 가까이는 서울로 유입 된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의 역외유출률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였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소득유출 완화를 위해 지역화폐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렇게 두 정책은 핵심 목적이 다르다. 온누리상품권은 ‘전국 전통시장 소상공인 활성화’이고 지역화폐는 ‘지역 내 전통시장을 포함한 골목상권 소상공인 활성화와 지역 소비의 역외유출 방지’이다.  이렇다보니 지역화폐의 핵심 특성인 ‘역외유출 방지’와 ‘지역성’을 간과한 채 온누리상품권이 지역화폐의 대체재로 떠오른 것은 대체로 뜬금이 없다.  역할이 이렇게 다름에도 대체재 논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자연스럽게 고향사랑상품권 소극이 떠올려졌다. 그 때 느꼈던 중앙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결과물은 아닌가 하는. 앞서 산업연구원의 보고서에도 나타난 ‘집중’ 현상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큰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10월 통화 및 유동성’ 자료에 따르면 광의통화(유동성 현금)는 2,874조 원이다. 올해 유통될 지역화폐는 약 25조 원이다. 고작 한 모금의 지역화폐가 중앙으로 몰리는 소비의 길목을 지역으로 돌리며 목마른 지역경제에 숨통을 틔우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지역화폐의 시작은 소박했다. 지역의 자금은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지자지소'(地資地消)의 정신을 실천해보자는 것이었다. 여전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도구로 지역화폐는 역할을 다할 것이다.  한편 지난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국감자료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전통시장의 온누리상품권 가맹점 비율은 61.6%에 머물렀다.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은 대체재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경북 포항시의 경우 포항사랑상품권이 도입되면 온누리상품권의 유통량이 하락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실제로는 유통량이 동반 상승한 결과를 나타냈다. 결국 소상공인 활성화와 역외유출 방지를 동시에 해결한 셈이었다.
2022-10-19 | hrights | 조회: 259 | 추천: 1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 지하층 세인즈버리 갤러리에는 베닌 조각이 있다. 베닌 조각은 흔히 베닌 브론즈(Benin Bronze)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청동뿐만이 아니라 황동, 상아 등을 재료로 한 베닌 왕국의 왕실 예술품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영국박물관 지하에서 만나는 베닌 조각은 ‘역사 없는 대륙 아프리카, 역사 없는 아프리카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편견인가를 단번에 일깨워준다. 유려하게 흐르는 청동제 두상의 아름다운 곡선, 얇은 황동판에 섬세하게 새긴 부조 솜씨는 이 유물의 주인 베닌 왕국의 문명이 얼마나 화려하게 꽃피었던가를 웅변한다. Head of a Queen Mother, British Museum ⓒ 염운옥 Cast brass plaques, British Museum ⓒ 염운옥  그런데 서아프리카 베닌의 유물이 왜 런던 영국박물관에 있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약탈 유물이기 때문이다. 베닌 조각은 대표적인 약탈 유물이다. 1897년 1월 13일 베닌을 급습한 영국군이 베닌 왕국의 지도자 오바(Oba)를 축출하고 고무와 야자유를 손에 넣기 위해 서부 나이지리아를 보호령으로 삼으면서 전리품으로 획득한 것이다. 동인도회사 같은 특허회사의 아프리카 버전인 왕립나이저회사와 영국 식민성, 육군, 해군의 합작품인 베닌 시티 공격은 온전한 맥락을 갖추고 존재하던 왕궁 예술품을 산산이 흩어놓았다. 공격 작전의 목적은 베닌을 보호령으로 만드는데 방해되는 존재인 오바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베닌 시티 공격이 끝난 후 오바는 약식 재판을 받고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베닌 시티 원정에 대한 영국의 자기 정당화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노예제가 활용되었다. 1807년 대서양 노예무역을 폐지하고, 1834년 노예제를 폐지한 영국은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해군력을 이용해 노예무역을 단속하고 나섰다. 아프리카에 대한 영국의 정책이 노예매매에서 내륙 개발과 자유무역으로 전환하면서, 한때 영국에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던 노예제는 악의 근원으로 규정되었다. 이런 사정은 베닌 왕국의 노예제를 비판할 수 있는 근거와 권능을 영국에게 부여했다. 베닌의 오바를 신민을 노예화하고, 야만적인 인신공양을 자행하는 악의 화신으로 몰아붙이고, 베닌인을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으로써 영국은 베닌 공격을 합리화했다. 하지만 원정의 실상은 베닌인에 대한 철저한 유린이었다. 원정에 참여한 군인들은 도시를 파괴하고, 민간인을 학살하고, 유물은 약탈해 팔아치웠다.*  영국 군인들이 약탈한 수백 점의 베닌 조각은 유럽과 미국의 박물관으로 팔려나갔다. 일찍이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이 수준 높은 조각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그 결과 베닌 조각은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미국, 러시아, 스웨덴 등으로 흩어져 있다. 현재 약 868점의 베닌 조각이 베를린 민족학 박물관, 런던 영국박물관, 옥스퍼드 피트리버스 박물관, 빈 세계 박물관, 라이덴 민족학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민족학 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스톡홀름 세계문화 박물관 등에 많게는 수백 점부터 적게는 수십 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 소장은 파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외 소장 베닌 조각의 규모는 사실 정확히 모르는 셈이다.  베닌 조각 중에서 가장 많고 대표적인 황동 장식판은 매우 독특한 기록 문화유산이다. 크기는 A3 종이 정도이고, 황동에 부조로 베닌 왕국 오바의 치적을 새겼다. 오바는 정치와 종교를 모두 관장하는 최고 지도자를 말한다. 베닌 사람들은 왕실의 궁중의례와 외교, 교역, 전쟁 등의 주요 사건을 문자로 남기는 대신 황동판에 부조로 새겨 남겼던 것이다. 황동 부조판은 태피스트리처럼 왕궁 벽을 가득 메워 장식되어 있었다. 오바의 왕궁을 방문한 적이 있는 한 네덜란드인은 “왕의 궁정은 장방형 회랑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각 회랑의 면적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무역소 사무실만큼 크고, 천장에서 밑바닥까지 전쟁의 공적과 전투 장면을 새긴 구리판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매우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 댄 힉스, 『대약탈박물관: 제국주의는 어떻게 식민지 문화를 말살시켰나』 (책과함께, 2022), 70쪽. **댄 힉스, 『대약탈박물관』, 322-323쪽. ***닐 맥그리거, 강미경 옮김, 『대영박물관과 BBC가 펴낸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파주: 다산북스, 2014), 543-544쪽.  베닌 조각이 처음 유럽에 소개되었을 때 고대 이집트나 유럽의 영향을 받은 조각이라는 등 억측이 난무했다. 유럽 문명과 접촉하기 이전의 아프리카에서 이토록 수준 높은 부조 기술과 기록 문화가 존재할 리 없다는 오만에서 나온 평가였다. 하지만 곧 베닌 조각은 유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서아프리카 전통의 예술임이 밝혀졌다. 또 베닌 조각에 재료로 쓰인 황동은 유럽산으로 포르투갈과의 무역을 통해 베닌으로 수입된 것이다. 유럽산 황동은 마닐라스(manillas)라 불리는 금속제 반지와 팔찌의 형태로 베닌산 상아와 금과 교환되었다. 유럽산 재료에 베닌 장인의 솜씨가 합쳐 탄생한 베닌 조각은 ‘아프리카는 원료의 생산지, 유럽은 예술의 생산지’라는 또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을 전복한다.*  약탈 유물 베닌 조각의 반환 문제는 현재 진행형의 뜨거운 이슈다. 영국박물관은 2018년 나이지리아에 베닌 조각을 대여 전시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약탈 유물을 반환이 아니라 대여하겠다는 발상에 위선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나이지리아가 이를 받아들이며 성사됐다. 2022년 여름에는 호니먼박물관이 소장 베닌 조각 72점을 반환하는 결정을 내렸다. 호니먼박물관은 런던 동남부 포레스트힐에 있는 사립 인류학 박물관이다. 슈트르가르트 린덴 박물관 등 독일 박물관들도 반환 의사가 있고 협상 중에 있다고 밝혔다. 2021년 4월 독일 문화부 장관은 독일 박물관들이 소장한 베닌 조각을 장기적으로 나이지리아 정부에 반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약탈 유물 반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박물관들은 소위 ‘보편박물관(universal museum)’을 자임하는 런던 영국박물관, 옥스퍼드 피트리버스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파리 케브랑리미술관 같은 서구의 대형 박물관들이다. 약탈 유물을 계속 갖고있는 한 박물관은 식민주의 폭력의 결과물을 보유하고 전시한다는 죄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보편’이라 칭하는 서구 박물관들은 ‘문화적 보호’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냥 두면 지붕도 제대로 없는 먼지 풀풀 날리는 황무지에 방치되었을 유물을 번듯한 박물관 건물 안에 고이 모셔놓고 전 세계 시민들이 그 가치를 향유할 수 있도록 공들인 서구 박물관들의 노력을 약탈과 폭력이라는 평가로 다 덮어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변명의 말을 전면 부정할 수도 없기에 마음은 복잡해진다.  하지만 방치되었던 유물을 소중히 보존하고 전시한다는 논리는 적어도 베닌 조각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베닌 조각은 폐허에 방치되어 있던 잔존물이나 잔재가 아니었다. 베닌 조각은 처음부터 흩어진 형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물을 원산국의 맥락에서 뜯어내고 사방으로 흩어지게 한 건 바로 영국의 베닌 시티 공격과 학살과 약탈이었다. 그 결과 베닌 조각은 유럽과 미국의 여러 박물관으로 흩어져 어디에 몇 점이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조차 어렵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피트리버스 박물관 큐레이터 댄 힉스(Dan Hicks)는 베닌 조각들이 흩어진 과정을 추적하고, 폭력적 약탈과 의도적 망각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네크로그라피(necrography)’라고 부르자고 주장한다. ‘네크로그라피’는 삶을 기록하는 ‘바이오그래피(biography)’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유물의 죽음의 기록을 말한다. 힉스는 박물관학에서 전개된 기존의 개념과 사고방식, 예컨대 유물의 이주(migration of objects), 유물의 생애사(biography of objects) 같은 개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약탈과 파괴의 책임 소재를 얼버무리고 폭력 행위를 모호하게 포장하는데 이런 개념들이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힉스는 베닌 조각의 약탈과 산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죽은 백인 남성’ 17명의 경력을 추적한다. 예를 들어, 로버트 올맨(Robert Allman, 1854~1917)이란 인물은 베닌 공격 당시 나이지리아 보호령 군의관이었고, 상당량의 약탈 유물을 소지하고 귀국했다. 그는 1953년 경매에 소더비 경매에 베닌 조각을 내놓았고, 신설 나이지리아 박물관은 이를 구매했다.***  베닌 조각을 비롯한 약탈 유물을 반환하는 것의 의미는 유럽과 비유럽,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무기의 역할을 해왔던 박물관이 스스로 무기의 역할을 내려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물의 약탈사, 유물의 네크로그래피는 해당 유물 생산자들의 인권 유린의 역사다. 원산지로부터 뜯겨져 나와 타지의 낯선 박물관에 ‘원시예술’이나 ‘민속품’ 같은 생경한 이름을 달고 망명해 있는 유물들을 원산국으로 돌려주는 일은 베닌 왕국을 파괴하고 살아있는 베닌의 문명을 폐허로 만들고, 동시대 문명이 아니라 고고학의 영역으로 머나먼 과거의 시간대로 쫓아 보냈던 과정을 되짚고 되돌리는 것이다. *닐 맥그리거, 『대영박물관과 BBC가 펴낸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544쪽. **Philip Oltermann, “Germany first to hand back Benin bronzes looted by British,” The Guardian, April 30, 2021.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1/apr/30/germany-first-to-hand-back-benin-bronzes-looted-by-british?CMP=fb_gu&utm_medium=Social&utm_source=Facebook#Echobox=1619779467 ***댄 힉스, 『대약탈박물관』 (책과함께, 2022), 209-210쪽. Cast brass plaques from Benin City Nigeria, 16th Century, British Museum ⓒ 염운옥
2022-10-12 | hrights | 조회: 469 | 추천: 2
조광제 / 철학아카데미 대표 1.정치인과 정치 역량의 체화  2022년 9월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단체교섭 대표로서 첫 연설을 했다. 필자는 유튜브를 통해 보고 들었다. 그는 대선 때 더불어민주당 후보로서 많은 연설을 했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연설을 했다. 내일이면 대통령 선거가 있는 2022년 3월 8일 청계 광장에서, 그는 운집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마지막 유세 연설을 했다. 동학혁명을 거론하면서 대동 세상을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때 현장에 있었던 필자의 눈에서 눈물이 고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양극화로 현실화한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을 바로 잡겠다는 그의 주장에는 ‘대동 사회 건설’이라는 역사적인 혁명의 정치 이념이 그 기초로 작동하고 있었음이다. ‘보국안민’과 ‘부정부패 일소’ 그리고 ‘배양배일’을 기치로 내세운 동학군들이 지향한 인민 중심의 평등한 세상의 건립과 외세 배격의 독립정신이 작동하고 있었다 할 것이다.  정치인은 모름지기 정치의 비전을 마련해 갖추어야 한다. 그때 정치의 비전이 개개 국민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국가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것임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이 제시하는 정치의 비전은 사회 역사적인 보편성을 지녀야 하고, 그래서 원리 원칙적인 이념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편적인 이념은 추상적이어서 자칫 현실이 갖는 실재성과 동떨어지기 쉽고 현실이 갖춘 그 실현 가능성과 괴리되기 쉽다. 그래서 정치의 비전은 분명 미래를 향한 것이나 철저하게 현실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이때 현실은 그저 당면한 현재만을 시제로 한 것이 아니다. 현재는 항상 과거와 미래와 결합함으로써만 살아있는 시간으로 작동한다. 현재를 중심으로 한 공시성(共時性)과 과거와 미래를 관통한 통시성(通時性)이 두 축으로 작동함으로써 현실의 시간이 구성된다. 이러한 현실적 시간의 특성을 넓혀 사회 역사성이라고 한다.  정치의 비전이 미래를 향한 사회 역사성을 기반으로 해서 성립할 때, 그 설정의 동력은 국가의 현실을 인식하는 능력과 정치적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인간을 진정 인간이게끔 하는 근본 역량이다. 감각이나 정서 그리고 지성이 제대로 유의미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상력과 결합해야 한다. 상상력은 주어진 것을 모티브로 삼아 주어지지 않은 것을 꾸려내는 능력이다. 상상력이 현저하게 힘을 발휘하는 영역은 예술과 문학이지만, 가장 광범위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역은 바로 정치다. 국가의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기본으로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상상력은 통치를 통해 국가 공동체를 이끌겠다는 정치인에게 특별히 요구되는 덕목이다.  정치적 상상력이 부재한 자는 정치에서 항상 과거를 향한다. 과거는 이미 사실로 주어진 것으로 채워져 있기에 과거를 다루는 일에는 정치적 상상력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에 집착하는 정치인은 국가 공동체를 망치기 일쑤다. 미래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에 대한 전체적인 안목이 부재하고 당연히 모험과 도전을 멀리한다. 또 예속을 두려워하지 않고 가장 편하고 안정된 길이라 여겨 기존의 강한 세력에 들러붙는다. 무엇보다 공적으로 주어진 권한을 무식하고 무능하게도 자신의 탁월한 능력에 의해 획득한 사적인 권력으로 여겨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존재를 더욱 공고히 하는 일에 활용한다. 그러니까, 정치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통치자는 아예 정치인이 아니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정치 모리배일 뿐이다.  국가 현실을 폭넓게 핵심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과 국가의 미래를 향한 정치적 상상력이 제대로 결합했을 때, 현실화 가능성이 강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체화되지 않고서는 자칫 공허한 이념의 발로에 그치고 만다. 필자로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국회 단체교섭 대표 연설에서 그러한 체화된 정치적 비전을 보았다. 그의 기본사회론이다. 출처- pixabay 2.기본사회론에 대한 하나의 해석  한 국가 공동체를 이끄는 보편적인 이념은 그 나라의 헌법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우리의 헌법 제10조다. 우리는 이 헌법 제10조를 정치를 통해 사회 역사적인 현실로 실현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공동의 권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우리의 헌법 제1조 ②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국가 공동체의 이념을 현실로 실현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진 자는 국민 자신이다. 이에 기반하여 대선 때 이재명 후보자는 “정치의 주체는 국민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런데, 원리적으로는 그 책임과 의무를 진 자는 국민 자신이지만, 실제로는 선출 과정을 통해 선택된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행정을 통한 통치를 책임지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입법 활동으로써 통치의 현실성을 담보하는 국회의원들이 바로 그러한 정치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원칙적으로, 정치인이란 모름지기 국가 공동체에 대한 정치적 비전과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 또는 덕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실제에서 보면 그러한 정치인을 찾기는 건초 더미에서 바늘 찾기 정도로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렵다. 그런데, 이번 대선 과정과 그 이후 전개된 정치 상황을 통해 그런 면모를 보이는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을 얻게 되었다. 비록 0.73%라는 근소한 차로 대통령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우선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나아가 절대다수의 국회의원을 확보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되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그 이유는 기본사회에 대한 다음과 같은 그의 주장에서 드러난다.  첫째, 그는 “이제 산업화 30년, 민주화 30년을 넘어서서 기본사회 30년을 새롭게 준비할 때입니다.”라고 역설했다. 이는 우선 그의 국가 공동체를 향한 비전에 대해 ‘기본사회’라는 명칭을 붙여 정립함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정치 사회적인 담론의 얼개를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얼개의 구축이 그저 일면적인 착상에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의 현대사를 기반으로 향후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 축을 제시한 것이다. 한편으로 사회 사상가로서의 면모마저 보인다.  둘째, 그는 “소득, 주거, 금융, 의료, 복지, 에너지, 통신 같은 모든 영역에서 국민의 기본적 삶이 보장되도록 사회 시스템을 바꿔가야 합니다.”라고 역설했다.  이는, (1) 대선 과정에서 그가 제시한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금융에 의료, 복지, 에너지, 통신이라는 네 항목을 보탠 것이다. 이 일곱 항목 중 소득과 금융을 뺀 다섯 항목은 국민 각자가 비용을 지불해야만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 다섯 항목 중 한 가지라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 오늘날의 기술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일자리를 통한 소득과 소득을 위한 편의를 도모하는 데 필요한 금융이다. 하지만 자유시장 제도의 자본주의적 경쟁에 맡겨서는 소득과 금융의 영역에서 뒤처져 인간 이하의 삶으로 전락하는 다수의 국민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방책으로서 모두 일곱 항목의 기본 충족을 통한 기본사회의 건설을 역설한 것이다. (2) ‘사회 시스템의 전환’은 달리 말하면 사회 전체의 구조 개편이다. 기본사회의 구축과 영위가 다수이건 소수이건 개개인의 선의에 의존하고 악의를 막아내는 것으로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기본사회 체제로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암암리에 이를 위해 국민 전체의 총의를 결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그는 “노동이 생산의 주역이 되는 것이 합당했던 사회제도는 기술이 생산의 주력이 되는 시대에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삶이 아니라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 사회로의 대전환을 고민해야 합니다.”라고 역설했다. 이는 앞서 말한 둘째의 (2)에 관한 근거를 제시하는 대목이다. 그는 21세기 세계 전체의 흐름의 대변화를 심중하게 파악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널리 통용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노동의 시대에서 기술의 시대로 급격하고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이를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 사회제도의 대전환을 발상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일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혁명적인 정치의식이 평소의 신념으로 체화되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실질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담보하는 논거와 주장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인을 가진 우리로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넷째, 그는 “국민 여러분 불가능한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하고 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라고 역설했다. 이는 자신이 제시하는 기본사회 정책 및 이론이 일반 국민으로부터 쉽게 동의를 얻을 수 없는 것임을 본인이 충분히 자각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오만하게 일방적으로 윽박지를 성격도 아니고 그럴 뜻이 전혀 없다는 다짐을 내보인다. 한편으로 국민 모두의 이른바 집단지성을 믿고 함께 공적으로 논의해서 국민 다수의 의지를 결집해 나가겠다는 뜻을 내보이고, 다른 한편으로 그리하여 최대한 물샐 틈 없이 계획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인 것이다.  다섯째, 이에 그는 “더 나은 삶과 더 나은 미래 앞에는 여도 야도 그리고 진보도 보수도 없습니다. 불안과 절망이 최소화되는 기본사회를 향해서 함께 준비하고 나아갑시다.”라고 역설함으로써 기본사회의 건설이 국민 모두의 과업임을 강조하고 그 과업의 실행을 위한, 정치인들과 사회세력을 비롯한 국민 모두의 관심과 공동의 노력을 절절하게 호소한다.  이 정도로 이재명 대표가 역설하는 ‘기본사회’라는 대 정치 비전에 대한 필자의 소회를 밝힌다.   3.통감(痛感)  그런데, 작금의 정치 현실은 그야말로 ‘엉망이다.’ 추측건대,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당 대표인 이재명 씨가 제시한 ‘기본사회’에 관한 논의기구가 준비 중이거나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그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심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일에 집중할 여유가 없다.  대통령 윤석열 씨의 통치가 각종 미필적 고의에 의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면서 24%라는 전대미문의 열등한 국민 지지율에 허덕이고 있다. 유시민 작가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차라리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라는 취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절망을 넘어 대통령이라는 자가 대다수 국민에게 아예 조롱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슨 의도에서인지 과거에 집착하여 절체절명의 국가 경제의 위기에 대해 겉치레 말로만 일관한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이를 결단코 좌시할 수 없어 이를 비판적으로 타개하는 일에 집중한 탓에, 모처럼 자당의 대표가 제시한 정치적 비전에 관한 국민적인 여론을 독려하거나 형성할 수 있는 여유를 얻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정치인 이재명 씨가 제시한 ‘기본사회를 향한 대개혁’이 민의의 동력을 얻을 날이 오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가 경제의 위기, 대결로 치닫는 세계적인 신냉전이 복귀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지역의 전쟁 발발의 불안한 정세의 급습, 더불어 백척간두의 위험에 빠진 남북평화의 문제 등이 전격적이고도 시급한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만이라도 심혈을 기울여 최대한의 지혜와 역량을 결집해 분투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22-10-05 | hrights | 조회: 418 | 추천: 3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감히 ‘춘천의 청소년들은 행복하겠다’라고 자신 있게 제목을 적었지만, 사실 아직은 나의 바람이고 희망 사항이다. 다만, 춘천의 시민들이 어른들이 소소하지만 썩 괜찮은 움직임을 시작했음을 알리고 싶어 과한 제목으로 시작한다.  오랫동안 마을교육공동체 정책이 삶과 배움이 일치하는 살아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정책적 아젠다로 부상하면서 청소년들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곳곳에서 실험되고 있다. 춘천도 행복교육지구사업이라는 정책의 일환으로 교육청과 시청이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지역과 마을이 아이들을 돌보는 성장 배움터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마을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나도 몇 년 전부터 춘천의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보통 중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청소년 본인들은 물론 우리 사회 모두가 대입 경쟁을 위한 6년의 길고도 험한 여정을 시작했음을 당연시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미래의 희망이자 나라의 희망이라고 얘기하는 청소년들이 ‘입시생’ ‘수험생’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이 현실이 맞는가 하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중간지원조직으로 이 업무를 맡게 되면서 고민이 들었다. 숨 쉬는 것도 귀찮아하는 청소년들, 입시 준비에 24시간도 모자란 청소년들, 꿈도 희망도 생각해 볼 여유도 없는 청소년들. 이 아이들을 위한 일을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명쾌하게 잡히지가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청소년들의 일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 시대 청소년들에게 지역사회나 어른들의 환대나 보살핌, 지지 응원이 있었나 하는 물음이 들었고 거기서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이리와 얘들아 너희를 응원할게’하는 사업이 아닌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일상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마련해주는 ‘맡겨놓은 카페’라는 청소년 환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출처- 춘천 청소년들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 홈페이지     https://ccycafesospeso.modoo.at/  춘천의 청소년들을 위한 ‘환대’ 프로젝트인 ‘맡겨놓은 카페’는 이탈리아에서 1930~1940년대 벌어졌던 ‘카페 소스페소(Cafe Sospeso)’ 운동에서 착안했다. 이 소스페소 운동은 하루 한 잔 커피를 마시는 것이 일상적인 문화로 형성된 이탈리아에서 경제공황을 겪으면서 경제적 약자, 노숙인들을 위해 조금 여유 있는 시민이 커피 한 잔 값을 미리 지불하고 그들이 무료로 이용하는 나눔 캠페인이다. 춘천도 급격히 카페가 늘어 이 작은 소도시에 450여 개의 카페가 있고 이 공간을 청소년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남는 시간에 우리 청소년들은 공원 벤치나 거리를 배회하게 된다. 친구들과 수다 떨고 놀고 싶은데 우리 사회에서는 갈 곳이 마땅히 없다. 무더운 여름날, 추운 겨울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용돈이 부족해도 편안히 몸을 쉬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으로 카페를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춘천의 시민들이 어른들이 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해 한잔의 음료를 맡겨놓고 응원의 한마디 전해줄 수 있도록 기획했다. 춘천의 6개 중간지원기관들이 TF(사이사이)를 구성하고, 7월부터 시작해 세 달여가 지난 지금 그동안 자발적으로 동참한 카페가 28개, 시민들이 맡겨놓은 음료가 1300여 잔, 이용한 청소년들이 500명을 넘어섰다.  과연 가능할까?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었다. 눈에 보이는 수치를 넘어 그 28개 카페 현장에서 벌어지는 감동스럽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속속 들려온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카페 사장님들이 고맙고, 마음을 나눠주시는 시민들이 고맙고, 카페를 찾아준 청소년들이 고맙다. 우리 사회가 어떤 큰 정책이나 사업으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도 있겠지만 일상에서 누구나가 참여와 동참으로 성숙해지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수준(격)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맡겨놓은 카페’가 단번에 청소년들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해법을 주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춘천의 청소년들에게, 춘천의 어른들이 너희를 생각하고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환대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는 일임은 틀림없다.  다시 꿈을 꾼다.  먼 훗날 지금의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지난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누군지 모를 춘천의 어른이 맡겨놓은 음료 한잔 마시던 때를 생각하며 푸근해졌으면 좋겠다. 또, 제목처럼 ‘춘천의 청소년들은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시대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환대와 지지, 응원의 한마디 말과 토닥토닥해주는 바로 옆의 선한 이웃 어른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022-09-28 | hrights | 조회: 283 | 추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