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홍세화/ 대학생  [죽음] :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을 이르는 말.  그저 현생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나는, 최근 단편 단편의 경험들로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얼마 전, 나 또한 ‘손석구 신드롬’을 피해 가지 못하고 한 드라마를 접하게 되었다.  바로, [나의 해방일지]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해방’, ‘추앙’ 등 평소에 잘 활용하지 않던 단어들을 이 드라마에서는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그 의미를 조금 더 명확히 알고자 처음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국어사전도 함께 들여다보게 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여주인공의 대사 중 ‘나를 사랑해줘요’라는 상투적 표현이 아닌, ‘나를 추앙해요’라고 표현한 부분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충격적이고 신선한 표현이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총 네 명의 주요 인물이 나오는데, 주된 주인공으로 비치는 인물은 배우 손석구(극중 ‘구씨’)와 김지원(극중 ‘염미정’)이지만, 내게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끔 하고,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 인물은 배우 이민기가 연기한 ‘염창희’이다.  극중 창희는 살면서 뜻하지 않게 자꾸만 가까운 사람들의 임종을 지키게 된다. 자신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줄 계약까지 포기해가며 홀로 여자사람친구의 전 남자친구 임종까지 지키다 뱉는 대사가 나의 마음을 울렸다. 사진 출처 - JTBC  “형, 내가 세 명 보내봐서 아는 데 갈 때 엄청 편해진다. 얼굴들이 그래... 그러니까 형, 겁먹지 말고 편하게 가. 가볍게... 나 여기 있어.”  한 사람 인생의 마지막을 창희는 손을 꼭 잡아주며 추앙한다. 이 장면에서 문득 죽음이란 뭘까 생각이 들었다. 정말 눈을 감으면 편안해지는 것일까.  지난 4월, 우리 가족 귀촌 생활의 시작부터 오랜 세월 함께했던 강아지 은비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몇 달 전 골수암 선고를 받고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지 않으면 제대로 걷지도 못해 힘겹게 살아가다가 결국 숨을 거두었다. 서울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며칠간 펑펑 울었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함께 산책하던 은비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마냥 슬퍼하던 중 이제는 고통받지 않고, 죽음으로써 無의 상태로 돌아갔으니 오히려 은비에게는 편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겨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앞선 두 가지의 경험을 하고 나니 작년 11월에 아빠가 해주신 말씀도 떠올랐다.  연희동 우리 집 건널목 너머에 살던, 한때 대통령을 역임한 주민이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듣고 저녁에 나와 술 한잔하시던 아빠는 내게 언젠가 자신에게도 죽음이 닥칠 것을 깨닫는 인간은 탐욕을 부리지 않고 살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일깨우는 자는 아등바등하며 부와 권력, 명예 등에 탐욕을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위와 같은 일련의 경험을 통한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을 떠다니다가 깨우친 사실은 ‘죽음을 두려워할 것 없다.’ 와 ‘내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편히 즐기자’이다.  그동안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들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던 내게 이와 같은 깨우침은 삶을 조금은 초연히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2022-06-08 | hrights | 조회: 415 | 추천: 4
박용석/ 책팔이  얼마 전 소속된 노동조합 지부장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다 떨어졌다. 그간 낙선을 사례한다는 어색한 표현만큼이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몰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가 해주었던 옛이야기가 생각났다. 1985년, 내가 태어나던 해의 이야기다.  내가 아직 어머니 배 속에 있을 적, 출판인들의 연이은 구속과 수배에 항의하기 위해 뜻있는 출판사와 서점들이 함께 동맹휴업하고 시위에 나서자 결의했었단다. 그러나 결사 당일, 시위 현장에는 갓 돌 지난 첫째아들을 미리 시댁으로 보내놓고 나온 임산부인 어머니와 몇 명뿐, 함께 결의했던 사람 중에 이름난 사람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제대로 해본 것도 없이 체포되어 며칠의 구류를 살고 나왔다 했다. 그조차도 임산부를 가둔 것에 항의하고자 외신기자들을 이끌고 온 아버지의 기자회견 직후였다고 한다. 이미 수배 중이었던 아버지였지만 다행히 잘 도망쳐 그 자리에서 체포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석방된 다음 날 어머니는 청계 상가에서 예리한 제단 가위를 사 정성스레 포장해 그 자리에 오지 않은 유명한 이들에게 선물로 보냈다고 했다.  이 사건이 역사에는 조금 달리 적혀있다고 했다. 그날 그 자리에 오지도 않은 출판사와 서점 대표들 여럿이 결의하여 시위하였고 그 자리에서 성명을 발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했다. 있지도 않았던 시위와 있지도 않았던 성명이 날조되었다 한다. 그중에 누구는 꽤 높은 관직에 올랐고 유명해진 정치인이 여럿이며, 여전히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출판사들이 끼어있었다. 사오정의 뿅망치1) 같은 거라 했다. 죽을 각오로 9번을 열심히 때렸던 지난 사람들을 기억하지는 않는다고, 마지막 열 번째 망치질로, 어쩌면 운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염치들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 왜 사실을 바로잡지 않느냐 물었다. 그들에 대한 비난은 제 얼굴에 침 뱉기라 우스운 꼴밖에 되지 않는다 했다. 그리고 의리라 했다. 그날 그 자리에 오지 않았음에도 온 척하는 이들에 대한 의리가 아니라 꾸며진 영광이라도 있어야 힘을 낼 사람들에 대한. 그래서 반박하지 않는다 했다. 그러며 당부했다. 염치도 의리도 바닥에 떨어진 지 너무도 오래이니 너무 열심히 하려다 상처받지 말고 적당히 눈치껏 실속도 차릴 줄 알라고.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의리도 지키고 실속도 챙기는 법을. 눈치껏 적당히 하면서 염치도 차리는 법을. 입은 무겁게 지갑은 가볍게 해야 한다는 나이가 되어가면서도 여전히 가벼운 입과 쉽게 열기에는 욕심 많은 지갑밖에 없어서.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역설에 대리만족하기도 하지만 백마 탄 왕자(혹은 공주)님이 데리러 올 날을 고대하며 깃털을 가꾸는 것이 능한 처세라 백화점 명품 매장에 새벽부터 번호표 뽑고 대기하고,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같은 상상력에 갈채하면서도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와 같은 학교에 우리 아이를 보내는 끔찍한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하고, 점점 더워지는 지구에 숙주마저 죽이는 고장 난 바이러스의 창궐로 전 인류가 고통받고 있는 와중에도 전쟁을 벌이는 현실 속에 대체 누구에게 의리를 지키고 누구에게 염치를 차려야 할지, 누구에겐 적당히 눈치껏 실속을 챙겨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사진 출처 - 구글  특권적 관계에 있노라 주장하는 사람들과 역사를 부정당했던 사람들은 결국 공동의 운명과 마주친다2)지만, 그 비어 있는 거대한 행간이 대체 무엇으로 채워질지 여전히 궁금하다. 여전히 그날이 올 때까지 잘 참지를 못해 실수투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넋두리하듯 아무 짝에 쓸모없을지 모를 푸념을 꾸역꾸역 써낸다.  나 역시 알량한 뿅망치질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기 때문이고, 내 손톱 및 가시만 아프다며 헐뜯고 상처 주기에만 바빴던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눈 밝은 이가 이 글과 현실 사이에 공간을 읽어내어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주길 바라면서 재미없는 옛날얘기는 이만하고 염치와 의리와 눈치와 실속의 관계와 균형에 대해 좀 더 고민해야겠다. 죽을 힘을 다해 9번 때린 뿅망치를 넘겨주고 조용히 입 다물고 있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법을, 그러면서도 더 많은 뿅망치를 만들 방법을. 언제가 제대로 10번째 망치질을 해낼 방법을. 덧: 어머니에게 받은 가위를 아직 보관하고 계신 분이 혹여 이 글을 보신다면 제게 그 가위를 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치욕을 주기 위해 보냈던 물건을 제 나이만큼 보관하신 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넓은 마음에 감사하여 저 또한 삿된 마음이 들 때면 바라보며 행실을 다잡고자 합니다. 1) <날아라 슈퍼보드_허영만 원작_KBS 방영>의 사오정 캐릭터는 ‘뿅망치’를 무기로 사용하고, 10번째 공격에만 가공할 폭발 공격이 가해진다는 설정이다. 귀가 잘 들리지 않고 기억력이 좋지 않은 어리숙한 설정의 캐릭터 사오정은 힘겹게 몇 번을 때리고 나자빠지고 또다시 힘겹게 몇 번을 때리고는 몇 번을 때렸는지조차 잊어버려 만화의 재미와 긴장감을 주는 캐릭터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캐릭터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어 따로 주석을 남깁니다.)  2)  Eric Wolf, Europe and the People Without History, 2nd Editio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0. 박광식 역, 『유럽과 역사없는 사람들: 인류학과 정치경제학으로 본 세계사 1400~1980_뿌리와이파리』
2022-05-25 | hrights | 조회: 784 | 추천: 5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작업실이자 사무실 겸 나 홀로 얹혀사는 집은 서울 은평구 구산동 언덕길 끝자락에 인현왕후 서오릉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새로 지어진 곳이다. 맑은 날 북동향 족두리봉을 시작으로 향로봉까지 북한산 자락 응봉능선 전부가 손에 잡힐 정도로 높은 17층 아파트다. 이사 온 것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5월이다.  신촌 마포구 연남동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연희 교차로 좁디좁은 복층 원룸 사무실 건물에서 두어 번의 화재와 소방차 출동을 겪으니 반드시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이 온몸을 가위 눌렀다. 연남동 기차길 택시 회사에서 운전을 하는 아버지는 출퇴근 찻삯도 아끼신다면서 이사를 원하지 않으셨다. 바깥에서 햇빛을 보지 않아 대상포진마저 걸렸다. 허나, 지금은 여기를 벗어나야 했다. 연남동을 떠나니 이순희 어머니는 초등학교 그림일기, 개근상 마지막 한 장까지 모두 이사하기 일주일부터 상자에 담아 목록까지 적어 두셨다.  단체 사무실로 쓰는 입구 쪽 작은 방 2개를 하나로 텄다. 온 방을 모두 책들에게 내주었다. 그 작은 책 ‘방’을 위해 더 좋은 대단지도 버렸다. 결국, 200세대도 안 되어 주차조차 부족한 이곳으로 왔다. 예로부터 왕릉 주변은 화재, 지진, 수해 위험도 적고 군부대에 숨어있는 경찰부서도 있으니 내 몸 주위의 불안한 중력 같은 기운들이 조금 가벼워졌다. 새내기 생애 첫 아파트 생활은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일부 주민들은 주차장이 부족하다며 지상 일층의 휠체어 표식이 있는 5개 주차구역 일부를 지우고 일반 주차장으로 쓰자고 주장했다. 관리실 앞 CCTV 모니터 옆에 층간 소음 분쟁 대응법이란 종이 한 장이 붙었다. 17층 거실과 모든 방에 다리를 뻗은 모든 가구에 테니스공과 양말을 신겼다. 고관절이 벌어져서 수각류 공룡처럼 특히 쿵쿵거리는 걷는 소리를 줄이려고 수중 트레킹화를 실내에서 양말까지 신고 다닌다. 왼쪽으로 기울어진 피사의 탑처럼 기울어진 걸음 걸이다.  시골길에서 할매할배들도 타고 다니는 덩치만 큰 네 바퀴 전동 스쿠터가 좁디좁은 아파트 입구를 아슬하게 들락거리고 떡 하니 집 앞 공용 복도를 가로막을 때도 많으니 행여나 소방법 위반으로 신고당할지도 모른다.  한 달 뒤에 들어온 옆집 부부는 아이들의 자전거로 햇빛 드는 공용 공간을 많이 차지해서 미안하다면서 비싼 과일을 주었다. 재활용품과 음식쓰레기를 버리러 일층에 내려갈 때마다 본적도 까무룩 한 저층의 신혼부부들과 어린이들은 껌벅껌벅 인사를 건넨다. 대신 버려주겠다는 동네 어린이들에게서 냄새 가득 찬 음식 쓰레기를 지키느라 진땀을 뺀다.  바로 18층 어르신은 뜬금없이 내려오셔서 초인종도 없이 과일과 야채, 시루떡을 문고리에 걸어 두고 가셨다. 자동차 두기가 너무 어렵다는 수십개의 단체 문자에도 아파트 관리소장은 불법이라며 장애인 주차구역을 지우는 것은 절대 불가라는 전체 공지를 올렸다.  그 일층의 장애인 주차구역에서 1995년에 재건했다는 수국사 황금사찰 대웅보전의 삐친 머리 자락이 보인다. 말 그대로 대웅전을 영원히 보전한다고 몽땅 금박을 입혔단다. 가끔 저층까지 들리는 목탁과 불경 소리는 시끄럽다고 민원이 되었다. 접근성이 좋아서 장차 일본의 황금 절인 금각사보다 유명해 지리라 자랑한다. 전동 스쿠터 충전지를 새것으로 갈고 나서야 아파트 후문에서 사찰로 올라간다. 대웅전에서 아파트의 전신이 다 훑어 보인다. 이렇게 사무실 등 뒤 직선거리로 법당까지 거리 222미터. 그 거리를 오는데 석 달이 넘게 걸렸다. 그래도 수국사는 대웅전 사찰마당 앞까지는 구르는 바퀴를 막는 돌계단이나 문지방 높은 산문(山門)이 없다. 은평구 육아종합지원센터 위쪽의 주택가 뒷길 골목보다 더 야트막하다. 그러나 일본의 금각사처럼 휠체어를 이용해서 대웅전에 들어가서 부처님을 바로 직면할 수는 없다.  이렇게 나 홀로 내 걸음으로 자력으로 갈 수 있는 사찰은 25년 전쯤의 부산 범어사가 있었다. 지옥같이 지겨운 연산동 학원가 로터리의 한샘 학원을 벗어나 가출하듯이 목발 짚고 혼자 재수생은 세속을 떠났다. 당시 지하철 범어사역에 승강기는 없었지만 사찰 셔틀버스 90번이 항상 멈춰서 손님들이 다 찰 때까지 기다렸기 때문에 버스 안에서 엎어지거나 구르지 않았다. 월간 고사를 마치고 대학별 대응반을 옮길 때마다 갔지만 정작 본 것은 범어사의 겹겹이 겹쳐진 처마뿐이었다. 치솟은 산문 앞 두터운 계단에 닿기도 전에 나는 작은 오솔길로 빠졌다. 그렇게 50미터가량을 옆으로 빠지면 여러 개 큰 바위들이 눈에 많이 띄는데 고승께서 수행했을 법한 작은 암자 바위에 목발을 던져놓고 저녁 짓는 내음이 솔솔 날 때까지 걸터앉아 있었다. 수국사도 데자뷔처럼 바투 한 6호선 구산역과 버스 종점이 있어 지금 방황하는 목발잡이 재수생이 있다면, 수국사 법당 옆 북한산 둘레길이 또 다른 시작하는 높다란 나무계단에 기대고 앉아 깨달음을 갈구할 수도 있겠다. 전동 스쿠터의 가벼운 굴림도 둘레길 앞 나무계단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절 마당에 있는 보살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 222미터 속세로 돌아왔다. 왕할머니는 가끔 몰래 커피를 맛보여주시면서도 내 뻣뻣한 다리를 어루만지며 알 수 없는 불경을 읋조리시며 ‘내 업보다, 내 업보다 하셨다.’ 내 몸의 뻣뻣함이 왜 왕할머니의 업보가 되었을까? 이 뻣뻣함을 통해 매일같이 하나하나 작업의 해탈과 부드러움과 유연함에 대한 깨달음을 위한 훌륭한 고행은 왜 되지 못했을까? 사진 출처 - 승가원  위세 높은 계단을 올라야만 성불하고 불끈불끈한 턱을 넘어 서야만 해탈할 수 있으며 꼭 신발을 벗고 문지방을 넘어 한껏 엎드려야 네게 자비를 베풀겠다고 할 만큼 잔인하고 중생들을 차별하는 우리 법당에 들어앉은 우리 부처는 부디 편안하실까? 나는 추앙해 마지않는 목발을 짚고서 석가모니를 대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일생에 딱 한 번 부처님을 1:1로 얼굴을 맞대고 만난 적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경주로 갔던 수학여행 때였다. 호리호리한 키다리 아저씨처럼 키가 기다랗던 우리 교감 선생님께서 나를 업고 반 시간 넘게 계단을 올라 석굴암에 도착했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교감 선생님 등에서 바로 본 석굴암의 석가 여래불보다 온통 진흙으로 범벅이 된 교감샘의 하이얀 교직원 체육복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부처의 길이 있다시던 우리 부처는 어디서 오시는 중이실까? 승강기 없는 구산역에서 20분~30분 리프트를 타면서 매일같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 곁에는 이미 오시지 않았을까? 오다가는 풍경 소리를 불경처럼 안으며 사찰마당에서 휘휘 몇 바퀴 도는 것으로 명상과 수행을 마치고 222미터 떨어진 사무실 아파트 장애인 주차 구역에 가부좌 하시고 누가 함부로 지우지 않도록 지키고 계시지 않을까? ● 본 원고는 은평시민신문에 기고한 글을 추가 첨삭 수정한 것입니다.
2022-05-20 | hrights | 조회: 572 | 추천: 5
이회림/ 경찰관  저는 저희 관내 50개 학교 중 25개를 담당하는 학교전담경찰관입니다. 여학생이 피해자인 경우는 여성 경찰인 제가 맡게 되어 있어서 사실상 50개 학교 전부가 제 담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2022년 4월, 2명의 아이들로 부터 자살 관련 신고가 있었습니다. 여중생 A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자살 시도 직전에 1388로 전화를 해서 가까스로 구조되었고 여중생 B는 가정불화로 인해 죽고 싶다는 문자를 선생님에게 남기고 소재 불명이 되었다가 스스로 마음을 돌리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여중생 A는 3학년이 되면서부터 친했던 친구 두 명과 반이 나누어졌습니다. 두 명은 같은 반이고 A 혼자 다른 반이 되다 보니, 쉬는 시간만 되면 그 친구들이 있는 반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3월이 지나고 4월 초에 이르니 둘 사이에 A가 들어갈 틈을 더이상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개학한 지 2개월 차에 들어서면서 셋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공유했던 관계에 그만 단절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 어른들은 “반이 나뉘었으니 당연한 것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네가 이해를 하렴..새로운 친구를 사귀도록 노력해 보렴.” 하고 쉽게 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는 ‘친구들과 싸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지? 그럼 앞으로도 새 학기마다 계속 이런 식일 텐데..나는 이런 식으로는 살기가 힘들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A는 친했던 여학생 무리에서 느낀 이같은 소외감에 학업 스트레스가 더해져 등굣길 아침에 학교 대신 아파트 옥상으로 향하였던 것입니다.  3~4월은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계절.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 한편으로 긴장이 공존하는 시기입니다. 낯선 선생님과 급우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구요. 그러나 여중생 A처럼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쉬는 시간만 되면 친했던 친구의 교실로 찾아가 새로운 친구와 친해지지 못하는 현상이 생깁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새 학기 증후군(new semester blues)”이라고 부릅니다. 사진 출처 - pixtastock 새 학기 증후군을 극복하려면?  부모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새로 배정받은 반 분위기는 어떤지,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이고, 학교생활에서 답답한 점은 무엇인지. 학교 이외에 다른 활동을 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아이의 새로운 흥밋거리나 어려움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합니다. 부모의 유사한 경험이 있다면 요즘 말로 ‘격하게’ 공감대를 형성해주면서 자신의 청소년 시절의 마음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잘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여중생 A는 그 일 이후로 잠시 학교를 쉬었다가 다시 등교하였고, 요즘은 중간고사 공부를 하느라 바쁩니다. 관내 청소년 문화센터에도 등록하여 바리스타 자격증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를 못 사귀어도 여기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시시 웃으면서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문화센터에 잘 등록하였고 시설이 좋더라고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약간은 안도하게 됩니다. 문화센터에서 집으로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BTS의 노래 ‘Magic Shop’을 틀었더니, 반가워하며 “선생님도,,혹시 아미.세요?”라고 묻습니다. 이어 자연스럽게 함께 BTS의 노래를 들으며 이어진 대화는 이렇습니다. “선생님 최애 누구예요” “7명 다 최애지..하하. 딱 한명 꼽으라면,,누구게~? 맞춰볼래?” “뷔? 진?” “아니...아니...난 ,,,, 지민님~~” “악~~저도 지민님이 최애예요.” “악~~그래?? 넘 반갑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맘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 곳이 기다릴 거야 믿어도 괜찮아 널 위로해 줄 Magic Shop’  A에게 유난히 잔인했던 2022년 4월이 BTS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 속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새 학기 증후군은 아이의 적응력과 면역력 상태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호전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일부 증상이 심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다음 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학교생활 내내 학업 부진을 포함한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주의 깊은 관찰과 격려가 필요하다.  이 시기는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 주고 긍정적인 정서를 가지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부모의 역할과 태도가 학교에 대한 아이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 아이와 산책을 하거나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함께 하면서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는 것이 좋다.
2022-05-16 | hrights | 조회: 467 | 추천: 5
사람은 못 되더라도, 우리 괴물은 되지 맙시다 1) 정한별/ 사회복지사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으로 구설에 올랐던 이씨가 비문명을 운운하는 요즘 시대. “뉴스 보셨어요? 저는 이씨가 합리적인 이야길 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장애가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라고 이씨를 두둔하는 문명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글을 쓰려고 생각을 가다듬는데 전화기 진동이 울렸다. “집 계약 써야 해요”  매일 같이 실없는 이야길 문자메시지로 보내는 남자가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메시지를 보내는 통에 “아침 일찍 이랑 저녁 늦게, 그리고 휴일에는 문자메시지 보내지 마요. 어차피 문자메시지 보지도 않고, 답문도 안해요” 라고 경고 아닌 경고를 한다. 말해 놓고 나니, 걱정이 돼서, 그래도 중요한 일은 꼭 연락을 달라고 다시 당부를 한다.  혼자 살고 있는 그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공주택의 재계약을 해야 한단다. 계약 갱신을 위한 서류를 같이 준비하고, 서울에서 계약서를 쓰고 경기도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를 처음 만난 날을 생각했다.  엄마는 할머니랑 같이 시골에 살고 있다고 했다. 스물이 넘어 나온 도시는 그다지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삼촌의 주먹을 피해 도망가다 잡히면 정신병원으로 가길 반복하는 것보단 할 일 없고, 친구도 없는 도시가 나았다. 사실 맞는 일은 이골이 나 있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살며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맞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냐고 맞고, 말을 알아들으면서 모르는 척한다고 맞다 보면 맞는 건 그래도 견딜만했는데, 그 자그마한 방에 갇혀 마음대로 걷지 못하게 하는 일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걷는 일을 좋아했다.  도시에는 식당을 하는 친척이 살았다. 친척 집에 얹혀살면서 식당 일을 도왔다. 친척은 그의 이름으로 원룸을 구해 줬다. 싱크대 밑 축축한 곳이 그의 방이었다. 친척은 방안 침대에서 잠을 잤고, 그는 싱크대 밑에서 잠을 잤다.  친척은 그에게 천사였다. 그가 심심할까 봐 내내 일을 하게 해줬다. 식당 문을 열기 전에는 장사 준비를, 영업이 시작되면 서빙을 했다. 휴일 없이 내내 일을 하다가 추석과 설이면 하루씩이나 쉴 수 있게 해줬다. 그를 때리지도 않았다. 그가 말을 잘 안 들을 때마다 병원에 입원시키겠다고 따뜻하게 말해 줬을 뿐이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동주민센터에서 돈을 받았다. 돈을 본 일은 없지만, 친척은 돈을 저축하고 있다고 했다. 소처럼 일만 했던 그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뭘 할지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식당 일을 해서 버는 돈과 동주민센터에서 나오는 돈을 친척이 잘 저축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친척은 일자리도 주고, 밥도 주고, 옷도 주고, 잠을 잘 수 있는 곳도 마련해 준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사람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비웃고 이용해도, 친척만은 그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결국,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친척은 「장애인복지법」 위반,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수년 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싱크대 밑이 아닌 싱크대가 딸린 집을 구해 침대에서 잘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출처 - freepik  계약 갱신을 위한 서류를 모두 준비하고, 그를 데리러 가기 전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점심 먹고 은성씨(가명) 집으로 갈게요. 은성씨도 밥 먹고 준비하고 기다리세요” “음...바빠요?”  가족도 친구도, 마땅히 만날 사람도 없는 그를 만날 때면 항상 식사 시간 전에 만나서 밥을 같이 먹었다. 그의 바쁘냐는 질문이, 단순히 밥을 같이 먹자는 의미가 아닌 것을 알기에 아주 잠깐 고민했다. “안 바빠요, 12시까지 갈게요. 밥 같이 먹어요”  그와 같이 서울로 올라가서 계약서를 쓰고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 서둘러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물었다. “바빠요? 라면 같이 먹어요” “아니요, 안 바빠요. 라면 끓여 주세요”  외롭다는 말, 궁금한 게 있다는 말 대신 하루에 수십 개가 넘는 ‘실없는 문자메시지’를 시도 때도 없이 보내는 남자가 있다. 조금 더 이야기 하고 싶다는 말을 “바빠요?”라고 표현하는 남자가 있다. 자신의 집에서 밥을 같이 먹었으니, 이제는 ‘형’이라고 부르겠다는 남자가 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 냈는지 알지 못한다면, 그의 말과 행동의 행간을 알아챌 길이 없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나라는 존재로 실존할 뿐이다. 아무리 타인을 생각한들 내가 타인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조금 더 이해하려고 노력할 따름이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과거를 거쳐 오늘을 마주하고 있고, 어떤 내일을 꿈꾸고자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일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쉽게 그 사람의 현재를 재단해선 안 된다.  복잡한 일을 쉽게 생각하라고 간단한 문제라고 원칙은 오히려 명료하다고 치부해버려선 안 된다. “그러니까 시민들에게 피해를 줬어요, 안 줬어요?”라고 맥락을 거세한 채 답변을 강요해선 안 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쭙잖은 참견은 안 된다.  문명의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비문명을 운운해선 안 된다. 내내 양보만 해왔던 사람이 자신을 빼고 모든 사람이 당연히 누리는 권리를 요구한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세상에 분명 존재하고 있는 그의 존재를 부정해선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무능은, 말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한나 아렌트)” 1) 영화 “생활의 발견” 중에서
2022-05-11 | hrights | 조회: 631 | 추천: 10
신종환/ 공무원  쓰기에 앞에 지선이 다가옴에 따라 정당에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을 제한하는 공문이 매주 접수됨에 따라 글에서 인물과 그 발언 등의 구체적 언급이 제한됨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알려드린다.  대선이 지나고 다시 지선을 앞두면서 지나간 몇몇 선거들이 생각난다. 하지만 어떤 선거도 교체가 완료되기 전에 지금처럼 많은 소음을 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문이든 텔레비전이든 보도되는 내용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저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나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연이어 보도된다.  하지만 매체에 나서 말하는 사람들을 제도정치권과 직접 얽힌 사람들을 생각했을 때 그들은 그릇된 가치관을 가졌을지언정 국민 일각의 의향을 파악하는 감각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감각이 그들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토론회에서 특정 행위가 비문명이라고 당당하게 칭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그런 말이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해줄 거란 확신을 느끼게 했을 거란 근거 없는 생각이 들면 두려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몇 년간 힘들었고, 이제 불편 속에서 옆자리 사람의 고통을 더듬어내기보다는 자기가 겪어온 고통에 몰두하는 게 더 편하다는 걸 상기하는 사람들이 느는 것 같다. 2015년 1월에 개봉한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의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동료들은 주인공 산드라가 해고되면 1,000유로를 받을 것이며 보너스를 거절하면 산드라가 복직하니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 산드라는 그런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복직을 선택해달라고 하는데 의외로 적지 않은 동료들이 고민하거나 거절하고, 결과적으로는 진다. 1,000유로는 당시나 지금이나 대략 130만 원 정도로 환산된다. 당시로서는 마음속에 똘레랑스라는 단어의 발생지이며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프랑스 사람들이 매년도 아니고 한번 지급되는 130만 원에 동료를 자를지 말지 고민하는 식으로 나타나는 연출에 충격을 받았었다.  그런데 또 동료들의 명암을 보고 결국 잘리고 마는 산드라는 좀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내일을 기약한다. 같이 영화를 보고 논하시던 선생님은 그래서 ‘내일을 위한 시간’은 ‘내 일을 위한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나름 풀어보면 자살을 시도할 만큼 현실에서 낙관적인 면을 발견하지 못하고, 또 발견하고 싶지도 않았던 산드라의 마음에 현실은 완전히 나쁘다고도 좋지도, 사람들도 전부 악인도 선인도 아니며, 그 사실을 자신이 스스로를 위해 보낸 시간 속에서 선명하게 발견되었다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안 좋은 예감은 안 좋을 일을 크게 보게 하고 좋은 일이나 징조를 가려버리고 어느 정도는 맞지만 그것 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게 우울한 징조에 포섭되지 않을 경험과 상상력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진 출처 - pixabay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고 했지만, 그 작동방식이 이진법처럼 죽거나 강해지거나 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친절하게 말해주지는 않았다. 실제로는 고통이 나를 대부분 죽이고, 간혹 죽은 줄 알았는데 기진맥진 살아서 강한 건지 강해져서 산 건지 모호한 상태로 살아남아 강해질 가능성을 붙는다. 산드라가 마음속에서 겪을 일이 그렇지 않을까 나의 삶의 부분과 비교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견뎌낸 고통에 한 점 한 점 살을 발라가고 또 한 점 한 점 잃음을 반복하면서 단단함을 얻을 수도 있겠지.  앞서 말한 것처럼 당분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견뎌낼 수 있는 고통보다는 견뎌낼 수 없는 고통이 더 많이 찾아올 거란 예감이 들고 그 예감이 우울을 부른다. 우울한 전망을 버티기 위해서는 작은 기쁨을 발굴하고 품을 수 있어야 하고 그 도구 중 하나는 별것 아닌 일에 기뻐하고 떠벌이는 것이다. 실제로 별것 아니고 창피하기까지 해서 대부분 하지 않기에 내가 먼저 떠들어 본다. 이미 매번 인권연대에 글을 써서 보낼 때 크게 민망하고 미안하고 부끄럽기에.  작년 말부터 공무원노조 속초시지부에서는 청년부원 둘에게 청년 사업을 하라고 채근했다. 배운 게 풀칠이라고 할 줄 아는 건 모임을 만드는 일이라 주변 동료들에게 영화 모임을 하자고 찾아가 애걸복걸했다. 술 생각 날 때는 종환아 형님 주사님 오빠 하며 찾아오던 사람들이 으악 노조원이다! 를 외치며 전부 도망가서 모임 명단은 구멍 난 잠자리 채집통처럼 비어 있었다. 그러나 매 기수 신규직원들이 교육을 받을 때마다 신문지 사이 광고지처럼 끼어 노조 교육을 하고 작년에 이어 올해도 또 온 각설이 같은 마음으로 채근하여 5월에 십여 명의 노조원이 노조사무실에서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를 본 소감을 나누고 뒤풀이를 하기로 동의했다. 이런 이끼 같은 작은 일이 앞으로의 날들에 습기를 붙잡고 자라 힘들 때 비빌 언덕이 되기를 기원한다. 작은 일을 크게 떠들고 세세하게 기억해야지.
2022-04-27 | hrights | 조회: 468 | 추천: 3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원인이 땅?  최근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 프로그램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사를 다뤘다. 기원전 수십 세기를 거슬러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왜 싸우는지를 역사적으로 되짚으며 그 이유를 결국 ‘땅’이라고 결론지었다. 이-팔 분쟁의 원인이 양측이 믿는 종교 때문이거나 하마스(Hamas)의 테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인 국내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방송의 결론은 분명 진일보하고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방송을 보고 난 후 마음 한켠에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7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분쟁원인이 ‘땅’이라는 결론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폭력과 차별을 감춘 채 분쟁의 종식을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사실관계를 희석했다. 다분히 강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풀어내고 승자의 논리로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을 해석하는 오류를 낳게 했다.  #1976년 3월 30일  1976년 3월 11일, 3차 중동 전쟁(1967년)을 통해 팔레스타인 전역과 골론고원, 시나이반도까지 삼킨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 정착지 확장을 위해 팔레스타인 북부 갈릴리 지역의 아랍인 토지 약 2000 헥타(ha)를 강제수용하겠다고 발표한다.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거주지역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거주민들은 크게 반발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스라엘 점령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의 주민들, 해외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총파업과 함께 시위에 합류하였다. 위기감을 느낀 이스라엘 정부는 수천 명의 경찰과 군 헬기를 동원하여 주민들의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하였다. 3월 30일 시위대를 향한 이스라엘의 발포로 시위대 6명이 숨졌고, 100여 명이 부상당했으며 수백 명이 연행당했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따랐지만 다양한 지역에서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최초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점령에 맞서 한마음으로 저항하였기에 이날을 ‘팔레스타인 땅의 날(Palestine Land Day)’로 지정하였고, 국제적으로 최초의 ‘인티파다(민중봉기)’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매년 3월 30일에는 이스라엘의 불법점령에 항의하는 크고 작은 시위가 점령지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유대 정착민에 의해 방화된 차량, 나블루스 자루드 마을, 사진출처: Middle East Monitor, Nedal Eshtayah- Anadolu Agency  #2022년 3월 30일  아디의 여성지원센터가 위치한 팔레스타인 중북부의 대표적인 도시 나블루스(Nablus), 이 도시 주변 마을주민들은 수천 년 전부터 올리브나무를 재배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2년 3월 30일 나블루스 남부의 알 루반 마을(Al-Lubban ash-Sharqiya)의 170그루의 올리브 나무는 인근에 거주하는 유대인 정착촌(국제사회는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의 유대인 정착촌을 불법이라 규정함) 주민에 의해 파헤쳐 졌다. 또한, 같은 날 나블루스의 자루드(Jalud) 마을에서는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에 의해 4대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차가 불에 탔고, 주민들 집 담벼락에 혐오 글귀가 남겨졌다. 근처의 부린(Burin), 부르카(Burqa)마을에서 유사한 일이 발생하여 수십 대의 차량이 파괴되었다. 이 피해 마을들의 공통점은 모두 마을 인근에 유대인 정착 마을이 있고 지속적으로 정착촌 주민들과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 물리적 언어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대인 정착촌의 폭력을 단속하고 처벌하는 기관은 없다. 이스라엘 군인은 유대 정착촌 주민들의 폭력을 방조하거나 폭력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연행하고 처벌한다. 이것이 2022년 ‘땅의 날’ 팔레스타인의 현실이다.  #‘아파르트헤이트’와 ‘반인도적 범죄’  올해 2월 국제적인 인권단체인 ‘국제 앰네스티’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관련 대응은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분리정책)에 해당한다”는 280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한, 미국의 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 역시 작년 4월 보고서를 발표하며 이스라엘 정책이 국제법상 아파르트헤이트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러한 주장을 ‘반유대주의(Anti-semitism)’라고 하며 강력하게 반발하지만, 현지에 여러 차례 방문한 개인적인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아주 정확한 지적이다. 현재의 이-팔 분쟁의 원인은 ‘땅’에서 시작하지만, 현실 분쟁의 원인은 그 땅을 불법적이고 부정의하게 빼앗기 위한 폭력이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차별하기 위해 만든 이스라엘의 법과 제도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법과 제도를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정만 할 뿐 별다른 제재나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국제적인 언론 역시 이스라엘 정부의 일상적 차별과 범죄에는 시선을 두지 않은 채 팔레스타인 측에 의한 범죄와 폭력에 대해서는 대서특필한다. 그리고 지금도 ‘현재’의 이-팔 분쟁의 원인을 설명할 때 기원전 수십 세기 전 유대 민족의 역사 속 이야기들로 인용하며 결국에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두 민족과 종교’라며 현실을 퉁친다. 현재의 이-팔 분쟁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기원전 수 세기 전부터 살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원주민의 역사에는 관심이 없는지? 오늘도 벌어지는 유대 정착촌 주민들과 이스라엘 군인들의 폭력이 이-팔 분쟁의 원인은 아닌지?
2022-04-07 | hrights | 조회: 623 | 추천: 10
홍세화/ 대학생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이번 대선을 치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다. 대선 결과에 따른 반응이 아니다. 대선의 과정 속에서 여실히 느낀 것은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혐오가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이다.  우리 사회에 혐오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몇 년 전부터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정해둔 선을 기준으로 그 선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네 편 내 편을 가르며 서로를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것 같았다. 혐오는 구분 짓기를 만들어내고, 구분 짓기는 언어를 통해 고착화되었다. ‘맘충’, ‘급식충(잼민이)’, ‘틀딱’, ‘김치녀’, ‘한남충’ 등 다양한 혐오 표현은 인터넷의 많은 곳에서 자연스레 ‘그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무분별한 혐오 표현의 생성과 사용이 문제라고 느낀 것은 재작년부터이다. 2020년에 청소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동아리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청소년들이 관심이 많은 ‘유튜브’를 활용하여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업로드까지 해보는 유튜브 동아리를 작년까지 운영했다. 청소년들과 함께 동아리를 운영하며 알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혐오 표현이 기존에는 커뮤니티 등 온라인상에서만 사용되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유튜브, 틱톡 등의 발달로 인해 청소년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혐오 표현이 생겨난 배경 등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혐오 표현을 자연스레 내뱉으며 그저 자신보다 연장자인 사람들, 심지어는 자신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형 누나들에게도 ‘틀딱’이라 표현하는 등 혐오 아닌 혐오를 일삼고 있었다.  혐오 표현을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은 청소년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인터넷상에서 시작된 ‘여혐’, ‘남혐’은 내 또래 친구들에게는 이미 많이 스며들어 일상생활에서도 단순히 ‘밥을 사지 않는다’, ‘얻어먹는다’ 등의 사소한 이유들로 “쟤는 한남충이다”, “쟤는 김치다” 등의 표현을 서슴없이 입 밖으로 내뱉는다. 이러한 혐오 표현들이 온라인을 넘어 일상생활 속으로까지 스며드는 것에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 뱅크 혐오와 갈등은 예부터 정치적 도구의 일환으로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는 호남지역과 영남지역 간의 지역감정을 조성하여 두 지역민들 사이 갈등을 부추겨 정치의 판으로 이용해왔었다면, 이번 대선에서는 그에 한술 더하여 이른바 ‘성별 갈라치기’로 대선이 전개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실제로, 대선이 가까워질 때 즈음 대학생들의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 타임(에타)’에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바탕으로 여성과 남성, 서로를 향한 혐오 글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 진절머리가 나 그 앱을 대선 기간 동안 삭제해두기도 했다. 최근 들어 혐오의 시대라고 느낄 만큼 혐오가 만연한 이유는 어쩌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이 사회 구성원인 개개인들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이에 대한 분노 표출 대상은 실체가 없는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 표출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분노로 표출을 함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번 대통령 당선인께서는 0.73%의 표차로 신승을 거두며 당선 소감으로 ‘국민 대통합’을 이뤄내겠다고 하셨다. 대선의 성별 갈라치기 양상을 만들어낸 장본인께서 그런 말씀을 하셔서 그 말의 진실성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부디 본인 말씀대로 국민 통합을 이뤄내어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이 잦아드는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하시길 빌어본다.
2022-03-16 | hrights | 조회: 679 | 추천: 5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악당과 영웅의 다른 점은 그들이 인간 방패를 사용하느냐, 아니면 그들 스스로를 인간 방패로 세우느냐다. (The difference between the good guys and the bad guys is whether they use human shields or make themselves human shields)  2000년대 중동에서 전쟁이 났을 때 국제 인권시민단체는 인간 방패를 자처하는 운동을 했다. 한국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있어 나도 어린 치기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결과는 지원서도 내지 못했다. 단체의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독자적으로 전쟁터에서 피하거나 보호할 수 없다. 당신을 지원하려고 두 세 명이 같이 움직이면 모두가 위험해진다는 것에 나는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작년부터 예고된 전쟁이었다. 소련 해체 당시 핵무기 반납으로 우크라이나 보호를 약속했던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침략을 인지하고도 실질적으로 아무런 전쟁 방지 실천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참전 불가를 외치면서도 무기와 전쟁물자만 팔아먹는 형국이다. 90년대 걸프전 때는 CNN의 걸프전 실황중계를 보다가 웬만한 우리나라 방송국은 다들 우크라이나 포격을 실시간 유튜브로 라이브를 진행한다. 야만적인 관음증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불구하고 접속자는 날로 폭증한다.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대선의 손익 계산에 따라 침략자 러시아를 비난하기보다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의 무능력함을 평가하는 어정쩡한 능력주의의 관점에 있다. 러시아의 푸틴 장기집권 이후 그들은 주변국의 많은 자주와 독립을 무자비하게 탄압해 왔으나 국제 사회는 침묵했고 우리는 무관심했다. 러시아의 이런 제국주의 부활은 이미 코로나 시국에서 충분히 경고되어 왔다. 코로나에 각국의 폐쇄정책과 보호주의는 거악의 국가주의 출현을 예상할 수 있었고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라는 군사주의로 표출되었다. 이에 비해 국제 사회의 전쟁 억제 예방 목소리는 멀어져 버린 사회적 거리만큼 들리지 않는다. 홍콩의 민주화 운동과 미얀마의 쿠데타 저항 운동에 이어 국내의 인권시민단체 역시 이에 적극적인 대응과 국제 연대를 하지 못한 채로 안타까움에 그 주변만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 써야 할 원고 앞에서 단 한 글자도 더 쓰지 못하고 몇 시간째 모니터만 보고 있다. 원래 이 지면에 쓰고자 하는 주제도 전쟁이 아니었다. 알고도 막지 않은 거대 국가의 손익 계산 앞에, 러시아의 침략전쟁으로 자국 기업의 자동차와 사발면 피해를 따지는 지금의 국내 작태에 한 줄 장애인 이동권, 장애인 교육권 따위가 무슨 의미인가? 하루종일 커피를 마시고 핫초코를 마시고 생강차를 마시고 등 뒤 창밖으로 새벽 동이 터 올 때까지 날을 지새워도 몰려오는 무력감을 어찌할 방법이 없다. 러시아군 공격으로 초토화된 우크라 하리코프 거리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우연히 보게 된 아침 방송에서 우크라이나 전쟁터를 가지고 증권이 더 폭락하라면서 희희낙락하는 밈을 돌리는 것을 보고 증권 방송의 어느 애널리스트가 3만 명이 접속한 라이브에서 전쟁이,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이 재미있으시냐 화를 내고 꾸짖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꾸짖음이 미국 대통령이나 유엔이나 나토 사령관이 러시아를 비난하는 것보다 더 준엄하게 들렸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얼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본의 최전선에서도 인간은 있어 보였다. 실제 전쟁에서는 아이언 맨 같은 히어로는 없었다. 미션 임파서블 에단 헌트처럼 크램린 궁을 폭파 시키는 특수요원도 없었다. 어벤저스 어셈블처럼 눈물 나게 하는 연대도 공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시민들이 자국의 군인들을 멈추고 유럽 주변국이 함께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함께 보호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전쟁은 명분이 무엇이든 모든 것을 파괴한다. 특히 장애인들은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다. 심지어 그 거대한 미사일과 탱크를 향해 맞서 싸우라 하기도 어렵다.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숨 쉴 수 없는 무력감에도 절대로 러시아의 침략전쟁에 침묵해서는 안 된다. 외면해서도 안 된다. 포기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 러시아의 침략은 그동안 러시아의 독재에, 반인권에 우리가 모두 침묵하고 외면한 결과이다.  이제 우크라이나로 들어가서 날아오는 포탄에 평화의 인권 방패를 자처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러시아 대사관을 둘러싸고 그들의 침략행위를 규탄하고 공격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지원하고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 다른 나라 전쟁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다.
2022-03-02 | hrights | 조회: 604 | 추천: 4
정한별/ 사회복지사  말이 더해질수록 감정은 과잉된다.  2018년 여름, 홍성수가 쓴 ‘말이 칼이 될 때’를 읽었다. 책의 맨 첫 장에 “나의 말이 칼이 돼서 누군가에게 꽂히지 않길”이라고 적어 뒀다. 끄적거린 다짐이 무색하게도 지난 한 해는 말이 칼이 된 기억들이 제법 많았다. 다른 사람의 말이 칼이 되어 내 가슴에 꽂히기도 했고, 내가 뱉은 말 역시 칼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꽂히기도 했다. 고작 세치 혀로 꼬일 대로 꼬인 인간관계를 풀 수 있을 거라 믿었고, 말을 통해 진심이 전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으며, 비밀은 지켜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말이란 게 참 묘한 게, 꼬인 관계를 풀기 위해 했던 말은 되려 관계를 끊어버렸고, 진심은 왜곡되었으며, 전해져선 안 되는 말들은 과장된 채로 오해를 더욱 키웠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같이 대화하며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내가, 말을 하는 일도 말을 듣는 일도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말이 가진 힘, 말이 가진 무서움이 마음에 사무쳤다.  일본의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는 「차별 감정의 철학(2019, 김희은 역)」에서 “불쾌는 수동적 감정인 데 반해, 혐오는 능동적 감정이며,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말은 내가 누군가에게 ‘싫어할 만한 대상’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불쾌한 마음을 위로하고자 말을 하면 할수록 처음에는 단순히 불쾌하다는 수준에 머물렀던 감정이 타인에 대한 혐오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뉴스를 통해, 한 배구선수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론들은 일제히 고인이 생전에 SNS에 남긴, ‘자신에 대한 악플을 멈춰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고인이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이유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던져대던 사람들의 말이 고인을 얼마나 괴롭혀왔을까.  말을 하는 일은 쉽다.  큰 아이는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식사할 때가 지나도록 아이에게 밥을 주지 않아도 밥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간식을 즐겨 먹는 편도 아니다. 대개 그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아이는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부모가 도와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밥을 먹는 일 빼고는...  얼마 전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네가 먹을 수 있는 만큼, 먹고 싶은 만큼 밥솥에서 밥을 퍼. 대신 네가 푼 밥은 꼭 다 먹어야 돼”  내가 쉽게 뱉은 말이 불러온 결과는 매우 컸다. 처음 며칠 아이는 밥을 정말 잘 먹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스스로 먹을 수 있고, 먹고 싶은 만큼 밥을 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며칠 전부터 아이는 밥을 정말 조금씩 푸기 시작했다. 아이를 그대로 둬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딸, 너무 조금 푸는 거 아니야. 그것보단 더 먹어야지”  “아빠, 아빠가 먹을 만큼만 푸고, 그것만 먹어도 된다며. 약속을 지켜야지!”  말을 하는 일은 쉬웠는데, 그 말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가볍게 던진 말이 결코 가벼운 무게로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사진 출처 - istock photo  한 대선후보는 지난 12월 8일 ‘장애인’의 반대개념으로 ‘정상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지적을 당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표현하여 다시 한번 지적을 받았다. 장애가 없는 사람을 정상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마치 장애인이 '비정상'인 것처럼 읽힐 수 있는 옳지 못한 표현이며, ‘장애우’라는 표현 역시 장애인 스스로가 자신을 표현할 수 없으며 실제 친구가 아닌 장애인을 ‘친구’라고 부르는 것 역시 옳지 않기 때문에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다.  말에는 말을 하는 사람의 생각이 담겨 있다. 미국의 철학자 랄프 에머슨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에 의해 평가를 받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 한마디가 남 앞에 자기의 초상을 그려놓는다"라고 했다.  아이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쉽게 한 아빠, 가볍게 뱉은 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려준 유치원생 딸, 잘못된 표현을 사용해 지적을 받은 뒤 같은 실수를 저지른 유력 대선후보. 말을 제대로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말이 넘치는 요즘이다. 넘치는 말 중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는 말, 갈등을 줄이는 말, 관계를 회복하는 말, 위로를 주는 말, 지킬 수 있는 말이 어떤 말일지 여느 때보다 더욱 신중히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은 힘이 크다.
2022-02-10 | hrights | 조회: 745 | 추천: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