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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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신종환/ 공무원  누가 어디에 살든 아쉽고 힘든 점 없는 상황은 없을 것이다. 서울에 산다면 고정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 비용과 자가 마련이 어렵다는 현실이 막막할 사람이 많을 것이고, 경기권에 산다면 일생의 1할 이상을 지하철에서 졸거나 사람 사이에 끼어 보내거나 차가 있다면 막힌 도로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지방살이의 아쉬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단 대도시에 비해 동네사람들의 평균나이가 수직상승한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2018년 처음 고향 속초로 돌아왔을 때 관광객이 찾는 장소를 제외하면(때때로는 이를 포함하더라도) 대부분의 장소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적었다. 내 직업인 지방직 공무원은 취업난의 반사효과로 꾸준히 20대와 30대가 들어오지만, 공무원 세계와 이와 유사한 한전 등의 유사 공직, 그리고 극소수의 자영업자를 제외하면 '젊은'이 라고 부를만한 연령대의 사람은 거의 멸종되었다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다. 그래서 수년 전에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는 행정오판의 결과로 옆 동네 지자체에서 청춘남녀 맺어주기라는 계획서가 결재되어 강제로 집단 미팅을 해야만 했던 상황도 있었다. 영화는 현실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마도 사실인 것 같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유관한데, 당연하지만 전반적인 인프라가 수도권에서 생활할 때보다 대단히 아쉬워진다. 주 수요층이 적으니 무언가 생겨도 조용히 망한다. 가끔 지자체 소속의 문화예술회관에서 운영하는 공연이 있지만, 취향에 맞는 공연이 아닐 확률이 높거나 공무원으로서 지원을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되며, 마음에 드는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지방직 공무원의 주말은 통상적으로 출근이 우유에 붙어있는 행사상품처럼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라 한양을 가기란 다소 어렵다. 그렇지 않은 날에는 집 주변을 돌봐야 한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전원생활을 해보면 된다. 우리의 수가 무수하니 우리의 이름은 잡초와 벌레 낙엽 눈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그러나 더 큰 고충은 위의 것들이라기보다는 위의 것들을 제외한 것들은 내 안에서 점차 풍화되어 없어졌다는 것이다. 김수영은 고궁을 나서며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고궁을 나서는 대신 직장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다시 다음 술 약속을 잡거나 잡히고, 세상을 직장, 술, 집 그리고 주가 하락이라는 RGB 값의 조합으로만 이해하는 단순한 사람이 되어간다. 게다가 너무 시시한 고민이라 글로 옮기기에도 민망하다. 하지만 김수영 시인이 '하 그림자가 없다'에서 말한 것처럼 시시한 고민이 크고 강대한 고민보다 때때로 더 큰 문제다.  갈비탕에 비계가 많다고만 평생 불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므로 주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꼬시고 협박해서 영화모임과 책모임을 했다. 다행히 유명한 관광지라 그런지 몇몇 서점은 잘 꾸며지고 운영도 잘 되고 있었고, 모자란 인프라에 비해 갈 만한 술집은 적지 않은 편이라 모임은 계속 번창할 것만 같았다. 서울을 갈망하는 동창들이 순식간에 전출을 가기 전까지는. 좋은 사람들은 다 가버린다.  다음 모임은 지역 선생님들이 오래 운영하던 모임에 내가 들어가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미 오랜 시간 모임을 운영한 구력이 있어서 그런지 토론 거리도 많고 서로 흥미로운 책들을 추천하고 읽고 나누는 즐거움이 컸다. 그리고는 두 분이 육아의 세계로 사라지고 한 분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겠다고 다른 지자체로 가버리셨다. 다시 나만 남은 모임을 운영하다 보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오시고 어느 순간 모든 책의 독서 논의 결론은 신종환 선생님은 결혼을 하지 않아서 삐딱하다는 헤어날 수 없는 논리와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나의 정보수용범위 저편에서는 변함이 없어 많은 투쟁과 좌절과 상실이 있을 거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 공감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언어와 경험과 생각이 여러 갈래로 구성되어있어야 한다는 걸 나날이 느낀다. 생각의 원자가 많아야 마찰열이 발생할 텐데 원자의 수가 적으면 차갑게 침전될 따름이다. 2월이면 친한 동창 하나가 또 강원도에서 제일 큰 도시 원주로 떠난다. 네그리는 '0'이라는 개념이 호명될 수 없기에 가장 혁명성을 품고 있다고 예전 수업에서 들은 것 같은데 고도를 기다리듯 신규회원을 기다리는 이 나날이 혁명의 씨앗이 만들어지는 나날일까. 혁명의 씨앗은 차치하고서라도 열심히 버티고 있으면 누군가 등대처럼 모임을 발견하고 영주하며 같이 발전을 도모하지 않을까.  가상의 시나리오를 쓰고 거기 생각을 애써 비벼 만들어지는 가상의 마찰열로 마음을 애써 덥히며 꾸역꾸역 다음 모임 책을 읽어본다. 지방소멸이란 게 이토록 시시하고 춥다.
2022-01-26 | hrights | 조회: 793 | 추천: 9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이야기 하나, 팔레스타인 내 최대 난민촌인 발라타 캠프에서 거주하는 A.H.(여성, 30대 중반)는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긴 출근길에 나선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바르칸’이라는 지역내의 사탕공장, 매일 출퇴근하는 곳이지만 그녀의 마음은 늘 불편하다. 그녀가 일하는 ‘바르칸’은 팔레스타인내 이스라엘 사람들이 집단 거주하는 마을이다. 국제법상 점령국(이스라엘)은 자국의 민간인(이스라엘인)을 점령지(팔레스타인)에 이주시켜서는 안 되지만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팔레스타인 내에서 이스라엘 정착 마을을 건설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정착 마을을 반대하고 지속적으로 항의하지만 난민캠프에서 홀로 세 아이들을 키우는 그녀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그녀는 오늘도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득한 초소를 여러 개 지나야 한다. 가끔 이스라엘 군인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테러 용의자로 몰며 죽이기도 하고 보안상의 이유로 검문소를 닫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녀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때론 검문소를 통과할 때 낯선 사람에게 내 집 출입을 허락받는 듯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들은 팔레스타인 땅을 이스라엘이 빼앗아서 불법으로 지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분리 정책과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매일 더 많은 땅을 빼앗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미래를 낙관하지 않았다. 사진 출처 -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검문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이야기 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를 ‘1948년 영토’라고 칭한다. 이스라엘이 건국했던 1948년 이전에는 팔레스타인 영토였기 때문이다. ‘1948년 영토’에서 일을 하는 A.M.(여성, 50대 중반) 역시 검문소 통과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당신은 우리가 출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하지도 못할 겁니다. 특히 검문소에 들어가고 나갈 때, 노동자들은 긴 줄을 서서 군인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길 기다립니다. 그리고 때때로 노동자 중 누군가가 금속 도구를 소지하고 있다면, 검문소 경고음이 울린다면 그들은 굴욕적인 신체 수색을 당해야 하고, 여성 노동자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때때로 확인을 핑계로 탈의하도록 강요합니다. 또한, 검문소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수 시간 동안 마냥 기다려야 합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한때 우리가 주인이었던 땅에서 노동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 셋, 그나마 그녀들은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노동허가증을 받았다. 히지만 노동허가증을 받지 못한 소위 ‘미등록’ 상태로 이스라엘 정착촌과 ‘1948년 영토’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사정은 더욱 좋지 않았다. 7남매 중 장녀인 L.D.(50대 중반)는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사망하고 남편마저 지병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2년 동안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야만 점령군이 주둔하기 전 울타리 구멍을 통해 국경을 넘을 수 있어요. 처음에는 소형 버스를 타고 우회 도로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까지 가고, 이후 산길을 걸어 국경의 울타리 구멍들 중 하나에 도달 할 때까지 계속 걸어요. 그리고 구멍을 통해 이스라엘 정착마을로 들어가서 다른 버스를 타고 출근합니다. 가끔 점령군에게 발각이 되면 최루탄을 쏘거나 실탄을 발사하기도 합니다. ” 이러한 조건속에서도 그녀가 계속 일을 하는 이유는 가족들의 생계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넷,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더욱 특별하다. 가자지구는 2007년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에 의해 완벽히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거주하는 A.J.(여성, 20대중반)는 살면서 딱 한 번 국경을 넘은 적이 있는데 이는 남동생의 심장 수술 때였다고 한다. “남동생이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가자지구 병원에서는 시행 할 수 없어 이스라엘 정부의 임시허가증을 발급받아서 라파국경(가자지구와 이집트 국경)을 통해 서안지구로 건너갔습니다. 저나 제 가족 중 한 명이 아프지 않고 우리나라(팔레스타인)의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어요. 질병을 가지는 것이 우리 땅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라고 증언하면서 “경계선이나 국경은 감옥과 같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가두는 감옥 말입니다. 저는 꿈도 많고 스스로 잠재력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자지구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상상 속에서만 꿈을 꿉니다. 언젠가는 제가 살고 있는 이 경계를 벗어나 자유와 책임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덧붙임) 해당 이야기들은 사단법인 아디가 이스라엘 점령하에서 살아가는 15명의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2021년 인권보고서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내용 중 일부이다. 아디 홈페이지(https://www.adians.net/issue)를 통해 전체 보고서를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2022-01-12 | hrights | 조회: 594 | 추천: 8
이회림/ 경찰관  #오전 9시경 오징어 중학교 3학년 1반 복도 앞  남학생 네 명이 체구가 작아 보이는 남학생 한 명을 빙 둘러싸고 있다.  “야~~성기훈(가명)~ 너 일로 좀 와 봐”  “왜 뭔데?”  “아니 그냥, 너 잠깐 여기 좀 들어가 보라고~”  “여기? 내가 여길 왜 들어가?”  “야! 애들이 다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여?  들어가라니까 뭔 말이 이렇게 많아? 들어가! 들어가라고!”  “아~ 싫어. 내가 왜 들어가! 밀지 마~”  #한 달 후, 오징어 중학교 상담실 안  cctv 화면 위로 학교전담경찰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자~~ 여러분~ 지금 기훈이를 어디에 밀어 넣고 있는 거죠?”  “청소도구함요.”  “청소도구함에 왜 사람을 밀어 넣고 있는 거죠? 기훈이는 안 들어가려고 버티는 모습이 확연히 보이는데요…. 계속 버 티니 발로 마구 차기도 하고…. 이런….  근데 지금 기훈이한테 로우킥하는 사람, 여러분들 중 누구예요?”  “아~ 그건 전데요. 걍 장난이에요. 장난~~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요? 그냥 장난이면 학생도 기훈이처럼 갇히는 역할을 한번 해보면 어때요? 발로 막 차여가면서요.”  “싫은데요.”  “왜 싫은가요?”  “.....”  “장난이라면서 갇히는 역할은 싫고 때리면서 가두는 건 괜찮나요?”  “아~~ 답답해. 기훈이는 원래 갈굼 당하는 애거든요. 우리만 그러는 거 아니거든요. 1반 애들 다 갈군다고요~~”  “원래 갈굼 당한다...? 도대체 기훈이가 갈굼 당하는 이유가 뭔가요?”  “아~ 이유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처음부터 그랬다고요. 1학년 때부터요.”  위의 내용은 최근 오징어 중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대화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저는 피해 학생 기훈이에 대해 가해 학생들이 입을 모아 ‘원래 갈굼 당하는 애’라고 말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 없이 처음부터 갈굼 당하는 애'라니.. 마치 기훈이는 우리 반 전체가 갖고 놀아도 되는 장난감인데요, 처음부터요' 이러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cctv 화면으로 돌아가 봅니다. 평범한 학교 복도의 풍경이 보입니다. 창문 아래에 붙박이로 붙은 하얀색 청소도구함도 보이구요.  그 앞에서 기훈이에게 헤드락을 건 채 웃으며 계속 무언가를 말하는 학생이 있네요. cctv 화면이라 선명하지는 않아도 웃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구분됩니다. 기훈이를 청소도구함으로 억지로 밀어 넣고 있는 다른 학생 두 명도 보입니다. 가해 학생 중 가까스로 탈출해 나온 기훈이에게 재빨리 로우킥을 날리는 학생이 가장 눈에 띕니다. 그리고 그들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또 다른 많은 아이들도요.  “저는 여러분들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요. 자~~먼저 이 장면에서 기훈이에게 헤드락 걸면서 웃고 있는 이 학생이 누구죠?”  cctv 영상을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멈춰가며 각자의 행동을 직접 말로 설명해 달라고 하자 가해 학생 모두 반색을 합니다. 헤드락을 걸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어깨동무’를 한 것이라고 항변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요? 제가 보기엔 헤드락인데요...”  “그럼 학생이 말하는 어깨동무를 나한테 한번 해 봐 줄래요? 여기 녹화된 것처럼요. 어깨동무는 쉽게 풀 수 있지만 헤드락은 푸는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거든요. 저는 태권도, 유도, 합기도를 배우면서 헤드락 푸는 법을 제대로 배웠으니 맘껏 해봐도 됩니다. 자~~”  헤드락을 어깨동무라고 우기던 학생에게 다가가 어깨를 내밀었더니 마지못해 어깨동무를 합니다.  “잠깐! 이 상태로 여기 영상 다시 보세요. 다시 물을게요. 이거 어깨동무인가요? 헤드락인가요”  “헤..헤드,,락이요...”  “그런데 조금 전에는 왜 어깨동무라고 말한 거죠?”  “......”  학생은 책상 위로 고개를 떨군 채 대답이 없습니다.  십 수년간 경찰 일을 해 오면서 잔인한 범죄 현장을 적지 않게 봐 왔음에도 저는 이날 본 cctv 영상이 가장 자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네 명이 한 명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많은 아이들이 무심하게 지나쳐 가는 모습이 너무나 잔인해 보이고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가해 학생들을 말린다거나 선생님을 부르러 뛰어가는 학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2021년 학교폭력실태조사(※조사 기간 :2020학년도 2학기부터 2021년 4월)에 따르면 피해 경험 장소는 교실> 복도> 운동장 순, 학교 내> 학교 밖 피해 시간은 쉬는 시간> 하교 이후> 점심시간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오징어 중학교의 학교폭력 사안은, 112나 117 즉 경찰에 신고된 건이 아니었고 피해 학생이 직접 담임선생님에게 알린 경우입니다. 통계 결과에서 보이듯이 피해가 빈번히 일어나는 장소인 ‘학교 내’, ‘복도’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시간상으로도 가장 빈도가 높은 ‘쉬는 시간’에 범행이 이루어졌습니다.  피해 학생 기훈이는 그날 괴롭힘을 당한 직후 담임교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고 담임교사는 지체없이 cctv를 확보했습니다. 기훈이의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해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 수 있고, 경찰에 신고도 가능함을 안내하였습니다. 기훈이가 경찰에 신고는 원치 않는다고 하자 학교장께서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학교전담경찰관의 자문을 받아 재차 신고 의사를 확인해보라고 조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상담실에서 가•피해 학생 전부와 장시간 대면 면담을 한 결과, 이 사건을 여성청소년 수사팀에 사건 의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 피해 학생의 가족분들과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가족분들은 지금이라도 경찰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고 기훈이의 마음도 같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바로 다음 날 기훈이와 부모님이 함께 경찰서를 방문해 부모님과 함께 피해자 진술조서를 작성하였고 이로써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학교폭력 피해가 3학년이 되어서 그 고리를 끊어내는 첫발을 떼게 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pngtree  피해 학생 기훈이는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보육시설에 맡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중1 때부터 복싱을 배웠다는 얘기를 하길래 기훈이 눈앞에 펀치를 날리면서 ‘“이게 잽인 거지? 이건 훅이고?” 하면서 어쭙잖게 아는 척을 해 보았습니다.  “아뇨~ 그건 원투예요. 잽은 이거구요.”하면서 허공에 제대로 한 방 날려 주었습니다.  “아니~ 너는 마음만 먹으면 네 명 모두 충분히 날려버릴 수 있었겠는데. 혹시 그동안 그 네 명 때리고 싶어도 참은 거 아냐?"  기훈이가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CCTV 영상을 보며 서늘해졌던 제 마음이 기훈이 얼굴에 피어난 옅은 미소 덕분에 온기를 되찾는 듯했습니다.  상담실에서 기훈이와 단둘이 편안하게 앉아 서로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을 추천해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이유 없이 원래 갈굼 당하는 애’로 낙인찍혀 괴롭힘당하던 기훈이가 알고 보니 복싱을 되게 잘 하는데도 과시하지 않는 ‘짱 멋진 애’로 불리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
2022-01-06 | hrights | 조회: 623 | 추천: 7
홍세화/ 대학생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이제는 말로만 듣던 취업 시장에 몸을 던져야 할 때가 왔다. 더 이상 숨을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부모님께서 취업과 관련하여 걱정 어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실 때면 나는 덩달아 불안해지는 마음을 감추려 괜스레 짜증 섞인 어투로 “알아서 할게.” 하고 대꾸만 할 따름이다.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도 자연스레 달라졌다. 대학 1, 2학년 당시에는 대학 캠퍼스 내에서 벌어진 사랑과 전쟁, 다양한 행사와 인근 대학의 이번 축제 연예인 라인업, 미팅과 과팅에 다녀온 가슴 떨리는 이야기 등이 대화 내용의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서는 코로나로 인한 취업 시장의 변화와 위축, 꿈꿔왔던 ‘워라밸’ 실현의 어려움, 불분명한 미래로 인한 진로 걱정 등이 주로 하는 이야기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어린 시절과 달리 취준을 목전에 둔 지금은 꿈이고 뭐고, 그냥 나를 써주겠다는 회사만 있으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앞구르기를 세 번 하며 그 회사에 들어가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친구들과 이야기하기도 한다.  취업 준비에 발을 담그며 느낀 또 한 가지는 돈이 없으면 취업 준비를 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갖추고 있다는 스펙을 쌓으려 해도 학원비, 교재비, 시험응시 비용 등이 만만치 않았고,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각 기업의 인적성검사, NCS 등을 공부해야 하는데 이 또한 모두 돈이다. 때문에, 취업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가 필수이다. 이러한 와중에 최근 유력한 대선후보 한 명은 ‘최저임금제를 폐지하겠다’, ‘구직앱을 제작하여 청년들의 취업난을 해결하겠다.’라는 등의 망언을 듣고 ‘정말 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어쩌지...’ 하는 암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최근엔 민정수석의 아들이 입사지원서에 본인이 민정수석의 아들이며, 자신을 채용하면 아버지께서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내용만을 써넣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일었다. 민정수석의 아들도 취업난에 저런 행동을 저지르는구나 하는 안타까움과 동질감을 찰나에 느꼈으나, 이는 곧 상대적 박탈감으로 바뀌며 이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혹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몇몇 사람들은 실제로 이러한 경로로 편히 취업을 했겠다는 씁쓸함과 화가 치밀었다.  현재 취업 시장의 취준생들은 90년대생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IMF 이전 경기 호황에 태어난 90년대생들은 해마다 그 인구만 60~70만을 훌쩍훌쩍 뛰어넘었었다. 그들이 자라나 지금 흔히 말하는 ‘청년’세대가 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경기 호황 때와는 정반대인 저성장 시대 속에서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을 일삼으며 바늘구멍의 취업 시장을 통과해야 한다. 이와 함께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옛말로 바꿔버렸다.  한국 역사를 통틀어 힘들지 않았던 세대가 어디 있겠느냐만, 본디 인간이란 ‘남이 칼에 찔린 고통보다 내 손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다고 느낀다’라는 말이 있는 만큼, 취준생이 된 지금의 나는 같은 90년대생 취준생들의 고통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글을 마무리 지은 후, 난 또다시 OPIc과 토익 책을 펼치고 인강을 재생한다.
2021-12-24 | hrights | 조회: 653 | 추천: 6
주윤아/ 교사 Ⅰ ‘안물안궁’인데 가장 많은 기사류 김나영, 패피의 완성은 몸매! 화려한 올그린룩 前 미스코리아의 위엄 ㄷㄷ; 45세 ‘역주행 몸매’ 송가인, 흰색 스키니진에도 굴욕 없는 44kg 초슬림 몸매 51세 박소현, 30년간 44사이즈 옷 입는 건강 비법은? '이다인 언니' 이유비, 얼굴+몸매+패션 3박자  이 정도의 기사 제목은 양호한 축에 속한다. 여성 연예인의 몸을 부위별로 나누어 ‘아찔, 탄탄, 잘록, 명품, 콜라병, 숨멎, 미친’ 등의 저속한 수식어로 평가하는 기사는 넘치고 넘쳐난다. 물론 남성 연예인도 ‘식스팩·11자·초콜릿 복근, 벌크업, 성난 근육, 만찢남’ 등 외모 품평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물론 대중에게 연예인은 일거수일투족을 평가받으며 대상화되기 십상이지만 미디어들은 이들의 남다른 능력이나 숨은 노력보다는 오직 얼굴과 몸매만이 전부인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기사를 마치 붕어빵 찍어내듯 쉼 없이 생산하며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특히 갓 데뷔하여 언론 노출이 절실한 신인 아이돌, 그중에서도 걸그룹이 성적 대상화 기사의 집중 표적이 되는 듯하다. 사진 출처 - 한겨레 Ⅱ 맥락 없는 ‘♥’ 남발하는 기사류 이혜성 아나, 전현무와 결혼하면 매일 빵 만들어 줄 것 같은 빵순이 '검사♥' 한지혜, 럭셔리 숲뷰 집에 으리으리한 트리.."설치만 3시간 걸려" 노홍철, ‘이효리♥’ 이상순 만났다…제주 스쿠터 여행 "좋아, 가는 거야“ 장영란, '병원장 사모님' 열일하더니 쓰러졌네…신지 "뻗을 만했지"  제목 속의 ♥ 때문에 가끔 헷갈린다. 누가 기사의 당사자인지. 기사 주인공을 언제나 파트너와 연결지어 그들의 언행과 일상은 언제나 상대를 향해 있고, 또 그럴 때만이 본연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처럼 제목을 만든다. 하루이틀새 나타난 현상은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맥락은 무시되고 제목과 기사 내용과의 개연성도 떨어진다.  마치 그 사람이 00의 배우자이거나 00의 연인으로서만 존재 의미가 있는 것처럼 어느 새부터인가 이런 황당한 기사의 제목을 당연하게 작문한다. 물론 사이버 언론들이 조회 건수를 늘려 광고비를 많이 받기 위해 남발하는 어뷰징 낚시 기사의 본질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는 독자들의 성(역할)고정관념을 강화시키기도 하고, 더군다나 연예인 당사자의 정체성을 서서히 삭제해가므로 가히 문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류의 제목을 만드는 것에도 대략 몇 가지 패턴이 있는데 연인과 나이차가 많이 나는 나이가 적은 여자 아나운서의 경우는 기사 내용과는 무관하게 그의 유명한 중년 남자 친구의 이름을 빠뜨리는 법이 없다. 좀 더 예뻐졌다거나 다이어트에 성공이라도 하면 그는 또 분명 홀딱 반할 것이며,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여자의 그이는 복 받은 남자고, 그녀가 잘 나가는 이유는 그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기 때문으로 스토리 하나가 뚝딱 만들어진다. 또 다른 패턴으로는 상대적으로 더 유명한 파트너의 이름은 반드시 언급하거나 파트너가 대중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진 경우는 아예 이름이 아니라 직업으로만 호명되기도 한다. Ⅲ ‘그들이 사는 세상’ 기사류 ‘사업가♥’ 이혜영, 한남동 사모님은 패션도 남달라.. 과감한 컬러 조합 진재영, 수영장 딸린 제주 집서 티타임…200억 CEO답게 럭셔리 "대문만 집 한 채 값"…'편스토랑' 한다감, 개인 산책로 갖춘 '1천평 한옥집 "163억 한강뷰" 고소영, ♥장동건과 사는 '으리으리한 전국 1위 집’ ‘100억 CEO’ 김준희, 사업 진짜 잘 되나봐.. C사 매장을 쓸어 왔네 설현, 명품에 파묻힌 근황..수백만원대 원피스+가방 '영앤 리치 정석’  성적 대상화 기사 제목 못지않게 최근 이런 류의 기사 제목도 쏟아진다. 특히나 결혼 잘?하기로 유명한 연예인들의 경우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그들의 일상이 부지런히 소개되고 있다. 수천 평의 대지에 수백 평의 대저택에서 수백 수천억의 연봉을 벌면서도 건물을 매각하여 시세 차익으로 수십억을 또 벌었다느니 하는 저세상 이야기로 24시간이 모자라게 밥벌이하며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박탈감과 우울감을 하루에도 수차례 안겨주고 있다. 설상가상 명품 하나 갖지 못한 우리네 삶의 서사까지 은근히 폄하하고 모욕하는 경우까지 있다. 왜 더 부지런히 살지 못했는지, 왜 고작 지금의 능력밖에 갖고 있지 못한 건지, 그보다 왜 더 잘 태어나지 못한 것인지를 말이다.  이런 기사들 따위 혹 읽게 되어도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한참 자아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이들에게 해악이고, 성인이 된 우리들의 무의식마저도 서서히 잠식해 간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무수한 관계 속에 놓여있는 데다 때로는 사회생활을 위한 가면을 1~2개씩 번갈아 쓰기도 하다 보니 나의 본래 성향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자기 자신도 긴가민가하게 된다. 그런 우리를 사회와 언론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점점 왜곡되고 굴절된 시각을 갖도록 오히려 부추기고 있으니 그저 손 놓고 마냥 빨려 들어갈 수만은 없는 일. 건강하고 객관적인 기사를 늘려 세상을 점점 살 만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눈에 봐도 나를 낚는 무가치한 제목은 아예 클릭하지 말자. 아무도 읽지 않아 스스로 도태되게 만들자. 대신 그 시간에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곁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건강한 소통을 통해 다시 눈을 밝게 만들고 귀를 정화하여 원칙을 지키는 멋진 제목을 찾아 클릭하자! 있는 그대로를 볼 줄 아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공과 시간을 들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기억할지어다.
2021-12-17 | hrights | 조회: 709 | 추천: 12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얼마 전 장애 학생의 돌봄교실 참여를 거부하는 노동조합과 인천시교육청의 교섭요구안이 노조 소식지를 통해 공개되어 비판이 일었다. 일면 어느 노조의 일탈로 볼 수 있으나 이것은 어떤 차별과 혐오의 역사가 코로나 시대라는 배경에서 교섭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의 구체적인 사건으로 터져 나온 어느 특이점일 수도 있다.  코로나 시대 이전부터 대학교를 제외한 유.초.중.고등학교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의무화한 체계적이고 공적인 사회화와 교류를 위한 사람들이 모이는 유일한 강제 공동체이다. 한국은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전통적인 사회 공동체가 무자비한 신자유주의 경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혈연 중심의 공동체 문화도 엄청난 속도로 사라지게 되었다.  초저출산과 초노령화, 이런 요인과 잔인한 개인 능력주의 경쟁은 결과적으로 늦은 출산과 노인 인구의 증가를 가져왔고 그것은 장애인 인구의 비율이 높아지고 장애 상태는 심하고 중복되게 만들었다.  UN과 OECD의 가입으로 한국의 장애인 교육은 통합 교육에 대한 국제 기준을 따르고 UN의 장애인 권리협약에도 참여함으로써, 관련 예산과 제도는 비약적으로 개선되었으나 장애인의 통합 교육을 통해서 장애인의 사회 통합을 만들고자 하는 사회 정책과 사회 구성의 인식 변화의 효과를 보기도 전에 급격한 인구 변화의 추세 속에서 학교 공동체가 물리적으로 해체되고 있고 코로나는 이 학교 공동체의 해체속도를 몇 배로 증가시킨 나쁜 촉매였다.  한국 정부가 장애인 교육을 통합 교육으로 방향을 정했으면 특수교육을 지원하는 학급 설치와 전문 교원의 확보와 같은 물리적 인프라의 확충과 함께 통합 교육을 완성하는 근본적인 교육 ‘차별의 철폐’와 ‘혐오 금지’를 위한 기존 교육 사회의 철학과 문화를 꾸준히 창달해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동안 한국의 교육 사회구성원, 관료들이 통합 교육의 제도와 철학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주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학교의 방과후 돌봄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관련 노동자와 노조들이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장애인 학생의 배제를 단체 협약에서 요구하고 소식지를 통해 이런 혐오와 차별 인식을 구성원들이 공유한 사건은 주류 사회와 언론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한국은 이미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형식적으로는 특히 장애인 교육 차별을 강력히 금지하고 있고 적어도 교육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를 반드시 인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할 교육 공무원들과 교육 공무직 노조와 단체 협약이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문서에 장애인 학생을 어떻게 하면 교실에서 내쫓을 것인가? 전문가들이 어떻게 하면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인가를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인권 유린 문제이다. 이것은 개인의 실수나 해프닝이 아니다. 교섭요구안에는‘돌봄교실에 특수지도가 필요한 학생의 입반을 지양하고, 부득이 입반할 경우 정원을 1/2로 축소하고 상시 지원인력을 교육청 예산으로 채용한다’는 문구가 실렸다. 이에 대한 인천시교육청의 답변은 일부 수정된 내용으로 ‘수용’한다고 실려 있다. 초등돌봄전담사 소식지 캡처  이미 이런 노동 협약을 요구하는 노조는 이미 과거에 장애인 학생을 지원하는 일은 ‘더럽고 위험하다’라고 표현하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되었고 공개적인 사과도 반복되었었다.  오히려 이런 장애인 학생을 배제하는 요구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워진 노동자의 지지를 얻는 정치적 수단이 되었고 장애인 학생의 권리는 교섭 도구의 인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무도 이러한 장애인 학생의 차별과 혐오를 막지 않고 교육 관료들이 방치하고 회의록에 기록함으로써 교육 당국과 정부가 이런 장애인 학생의 배제를 동의한다는 메시지를 우리 전체에게 퍼뜨리고 있다.  장애인 학생이 학교와 교실에서 필요하고 함께 해야 할 소중한 학생이 아니라 귀찮고 위험하다는 인식을 사회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이런 장애인 혐오와 차별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공적인 요구와 의견으로 표출되고 국가와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기는커녕 이를 조장하고 동의하는 모습을 보인다.  앞에 언급한 인구 변화와 장애의 중증화, 장애인 차별금지법으로도 근절 못 한 교육 사회의 심한 장애인 차별과 혐오를 이유로 교육 당국은 그동안의 통합 교육 방향을 버리고 많은 수의 특수 학교 설립을 발표하여 결국 한국도 분리교육으로 방향 전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왜냐하면, 코로나로 시작된 비대면 교육과 장애인 학생만 일방적으로 대면 교육을 시작한 상황에서 물리적인 조건의 통합 교육조차도 장애인 학생은 완전히 배제되어 지역 사회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없는 심각한 상태이다.  IT를 활용한 비대면 교육은 그동안 무시되던 장애인 학생의 IT 접근권을 이슈화하고 일부 투자를 끌어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비대면 수업에서도 증증의 장애인 학생을 위한 인적 지원은 여전히 필요했고 인터넷 환경이 어려운 장애인 학생도 많았다. 이런 문제는 소수의 장애인 학생이 학교 공동체에 참가할 수 있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비대면으로 각자의 집에서 개별화되었을 때는 문제가 심각하다.  왜냐하면, 공적인 영역에서 학교는 부족했지만, 장애인 학생에게 교육에서의 이용과 참여, 지원을 보장했지만 정작 장애인 학생이 사는 집 주위에 사적인 학원, 도서실, 체육관 등은 대부분은 장애인 차별금지법 적용도 받지 않아 기본적인 접근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한국 통합 교육이 진정한 장애인 사회 통합에 실패했다는 것을 증거가 된다.  특히 교사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역사적으로 교사로 진입하는 장애인 거부와 차별이 심해서 의무적으로 10년 넘게 국립 교육 대학에서 장애인 교원을 선발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음에도 학생 선발 권력을 가진 담당자가 조직적으로 오랫동안 교사를 지원하는 장애인 학생의 성적을 의도적으로 조작하여 탈락시켜 온 사건이 내부 고발로 드러났다.  사실 한국은 1994년 OECD 가입 당시 장애인 고등교육의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서 1995년부터 장애인 학생의 대학 입학을 우대하는 제도를 시행했으나 대부분 사립 대학 위주였고 특히 국공립 교육 대학은 장애인은 금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한국은 1995년부터 장애인을 의무교육으로 받아들이고 특수교육 대상자 제도를 만드는 등 형식적으로는 교육 사회가 학생으로서 장애인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교육 사회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는 전혀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교육 사회에서 고위직이나 실무직, 교사조차도 장애인 그 수가 아주 극소수이며 대학 교수진출은 더욱더 어렵다. 특히나 의학이나 법학에서 전문가로 진출하기 위해 교육계가 더욱 교육 과정을 대학원 중심으로 고도화하면서 장애인 학생에 대한 진입 장벽을 더욱 높여 버렸다.  요컨대 코로나 사태는 그동안 숨어 있던 통합 교육의 실패, 오랫동안 이어져 온 차별과 혐오가 개인 영역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으로 드러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학생 중 한 명으로서 당연한 권리와 지원과 참여를 누려야 할 장애인을 ‘학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위험하고 귀찮은 존재로서 코로나 위기를 가중 시키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폭로했다. 코로나 위기는 장애인 학생의 교육권을 교육 관료들이, 구성원들이 자기 이익, 감정, 윤리에 따라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만든 것에 있다. 이에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장애인 교육권이 필수로 보호받고 지원받아야 함에 불구하고 한국은 정책 결정에서 늘 장애인 학생 문제를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가 장애인 단체의 거센 항의를 받고서야 뒤늦게 이루어졌다.  정부는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사회적 거리를 두게 함으로써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릴 위험을 줄이는 대신 감염의 위험은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코로나는 한국이 장애인 교육 문제에 있어 얼마나 시혜적이며 단지 교육권을 정부의 윤리 악세사리처럼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장애인 교육권 침해에 대한 징벌의 강화와 인권교육이 필요하고 코로나 관련 정책을 결정하고 진행하는데 통합 교육의 원칙을 최우선 원칙으로 하는 기준을 국가와 정부가 사회구성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서 통합 교육의 가치를 사회적 가치로 세우는 게 중요하다. * 본 원고는 2021 한국DPI,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교육‘ 국제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 편집한 원고입니다.
2021-12-08 | hrights | 조회: 590 | 추천: 2
정한별/ 사회복지사  2021년 여름이 끝나갈 즈음 시연(가명)씨가 돌아가셨다. 그의 60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내가 그를 알고 지낸 고작 1년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 그의 삶은 이전보다는 평안했을까.  그를 처음 만난 건 작년 봄이었다.  장애인 거주시설. 시설신고조차 하지 않아 사람이 일상을 보내는 데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 썩은 내 진동하는 은행처럼 귀찮은 존재로 대우받던 곳. 그곳에서 시연씨는 살아왔다. 사랑으로 삶을 밝혀야 할 시설장은 돈을 밝혔고,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시연씨와 시설의 거주인들은 돈보다도 대우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짧은 스포츠형의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선택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짓밟혀왔다.  1987년 1월 서울 남영동에선 한 남자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린 무수히 많은 박종철을 만난다.  2020년 봄. 또 한 명의 박종철이 있었다. 한 남자가 아침 예배를 드리기 위해 거실로 기어 나오다가 머리를 문에 부딪혔고 수술 끝에 죽었다. 이상했다. 기어가기도 힘든 사람이 머리를 문에 부딪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경찰 수사 끝에 밝혀진 진실은, ‘아침 예배를 보기 싫어하던 그를 한 남자가 때려죽였다’ 였다.  시연씨를 처음 만난 건 2020년 또 한 명의 박종철이 살았던 그곳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꾹꾹 눌러 걷고, 말없이 빤히 사람을 쳐다보던 그는 내 아버질 닮았다. 나를 빤히 들여다보다 내 눈이 마주치면 멋쩍은 듯 웃는 모습이 내 아버질 닮았다. 야위고 하얀 손, 쭈글쭈글 한 그 손, 가는 다리, 좁은 어깨가 아버질 닮았다.  그와 옷을 사러 갔다. 긴 시간을 살아왔던 시설에서 세상으로 함께 나온 그의 물건은 작은 가방 하나에 모두 담길 정도로 적었다. 봄의 끄트머리에서 함께 여름을 준비했다. 속옷과 편한 옷들을 고르고, 외출할 때 입을 셔츠와 바지를 샀다. 동주민센터에 가서 신분증을 다시 발급받고, 은행에 함께 가서 은행 업무를 봤다. 은행에서 통장을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시연씨가 천천히 고개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커피믹스 한 봉지를 꺼내면서, 정말 작은 목소리로 이야길 시작했다. “뭐라구요? 죄송해요. 제가 못 알아들었어요. 한 번만 더 말씀해주세요.” 시연씨가 한 걸음 한 걸음을 꾹꾹 눌러 걷듯이,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말을 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곤 그 하얗고 야윈 손으로 커피믹스를 내게 건냈다.  건강이 아주 좋지 않던 시연씨를 오래 만날 순 없었다. 병원에서의 생활이 싫다며 물을 마시는 일조차 힘겹고, 눕기조차 힘겨워 소파가 헤질 때까지 앉아만 계시다 결국 병원으로 가셨던 아버지와는 달리, 시연씨는 병원에서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사진 출처 - adobe stock  2021년 어느 날 아침,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시연씨가 돌아가실 것 같은데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연락 가능한 가족들을 더 알고 있냐고. 얼마 뒤 다시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시연씨는 돌아가셨고, 가족들이 오지 않으면 가족들의 인수거부에 따른 무연고자 처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무연고자 처리의 경우 망인을 추모하는 별도의 예식 없이 말 그대로 ‘처리’가 된다는 것이 가장 슬픈 점이다. 평생을 외롭게 살았던 시연씨를 마지막 여행마저 혼자 떠나게 하기는 싫었다. 이곳저곳 연락을 하고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는 와중에, 다행스럽게도 가족들에게 연락이 닿았다.  시연씨의 장례식에는 가족들이 함께했다.  생을 혼자 마감하는 고립사는 현재 공식적인 통계가 없다. 비슷한 통계인 무연고자 시신 처리 현황으로 갈음하는 분위기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20년 무연고 시신 처리 현황’에 따르면 작년 무연고 사망자는 2,880명이었다. 무연고 사망자는 2016년에는 1,820명, 2017년 2,008명, 2018년 2,447명, 2019년 2,536명, 2020년 2,880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분명 우리 주변엔 지금도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다. 추모받지 못한 죽음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평생을 지옥 속에 몰아넣은 그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11월 23일 아침, 시연씨가 다시금 떠오른다.
2021-11-30 | hrights | 조회: 919 | 추천: 13
신종환/ 공무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한 이용자가 맛있는 소고기집을 다녀온 후기를 게시했다. 댓글에는 눈물을 흘리는 황소 사진이 이어졌고 그 아래에는 하나하나 열거할 수는 없지만, 소의 감정을 가능한 거칠게 무시하고 소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댓글들이 이어졌다. 유머화 할 수 없는 대상을 침범하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느껴지는 파격을 가능한 새롭게 표현하여 성립되는 커뮤니티 사이트의 유머구조에 기반한 댓글문화의 한 풍경이었다.  다음은 사육되던 소가 도살 직전 구매희망자에게 구매되어 넓은 사유지에 방목되어 한참을 뛰어오르곤 붉게 상기된 눈으로 구매자에게 얼굴을 부비는 영상이 게시되었다. 뒤따라서는 자신이 받은 감동을 서술하거나 감정이 있는 소를 가둔다는 것이 불쌍하다는 댓글들이 몇 개, 그 뒤에는 처음 본 게시물의 댓글처럼 무시를 기반한 유머가 몇줄 적히고 호응을 받았지만 바로 뒤이어 이렇게 유머화 하지 않으면 너무 슬프지 않냐는 변명 반 설명 반의 부연이 이어졌다.  다음 글은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이 본인의 SNS 계정에 올린 음식 게시글에 딸린 글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귀에서 고의로 차용하여 조롱조로 올렸다는 내용이었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그의 언행과 행보가 옳지 못하다며 비난했다.  온라인상의 의사 교환을 넘어 현실적 만남이 없다는 대전제로 이루어진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큰 가치관과 감정의 낙차가 자주 보인다. 커뮤니티 사이트별로 관찰‧통계를 내지는 않았지만 가벼운 목적의 사이트에서는 대체로 윤리관, 도덕관과 그 표현방식이 마치 다른 집단이 쓴 것처럼 빠르게 돌변하고 순식간에 적대감과 동질감이 교차한다. 게시글마다 나타나는 표현 양상이 그들의 일상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할 수는 없다. 종종 들곤 하는 이질감은 그들이 악인이거나 선인이나 어리숙하다 등이 아니라 가치판단의 기준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자신의 의견이 어디서 나왔으며 어떤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지 등의 구조를 형성하기보다는 피아를 식별하고 난 후 적대 대상으로 판별되면 높은 수위의 조롱과 비난을 가한다는 느낌. 좀 더 말하자면 삶을 가르는 가치관이 자랄 곳이 소거되어 표현의 기준이 피아, 고통과 기쁨의 이진법적 기준으로 나뉘고 그 느낌이 웹에서든 현실에서든 강화된다는 느낌을 나날이 받는다.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복잡하고 자주 고통스럽고 타인은 물론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의 연속이다. 그러나 너와 나의 고통을 비교하며 더 작은 고통을 겪었다고 판단되는 이를 비난하고 나의 고통을 훈장 삼아 그의 고통을 멸시하는 것은 비난하는 사람에게도 비난받는 사람에게도 고통의 결을 이해하는 시선을 앗아갈 거란 짐작은 어렵지 않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 명의 동기는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며 공직을 그만두었고, 한 명은 폭언을 날리는 민원인들을 대하다 못해 휴직에 들어갔다. 다른 한 명은 더 이상 지자체 공무원으로서는 살 수 없다며 도청 전출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의 동기이자 친구로서 같이 생활했기에 그들이 겪었을 고통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수급비를 받지 못해 악에 받친 민원인이 혐오스러워지는 것도 안다. 하지만 끝내 지울 수 없는 건 고통이 적다고 여겨지는 곳으로 가면 거기서는 그들의 어려움과 고통이 없어질까 하는 의구심이다.  앞에서 나열한 커뮤니티 사이트의 이용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삶이 버거운 것도 타인의 악에 받친 목소리와 악의와 비명이 모두 피아 식별의 기호로 들려서 그들을 향한 적대감으로만 보이진 않았을까. 아침에 일터의 문을 열고 자신을 찾아올 사람들이 모두 적개심에 가득 찬 사람인 풍경이라면 더욱 견디기 힘들 테니. 사진 출처 - adobe stock  임용 후 초반에 동 주민센터 사회복지 업무를 보면서 선배들이 하지 말란 일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거동할 수 없는 어르신이 장애진단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얼핏 봐도 여건이 되지 않았다. 선배들 몰래 주말에 연락드리겠다고 하고 몰래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을 드리고 주말에 차로 병원에 모시고 갔다. 아픈 사람이 어찌나 많고 장애진단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어르신과 3시간 정도 얘기를 나누었다. 말귀 어두운 할아버지가 한때는 목사를 꿈꾸는 신학생이었고 지금 타고 있는 전동차량은 실은 친구가 죽으며 준 것이라 장애 서류는 필요 없지만 구비하면 보조금을 친구 부인에게라도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는 건 그때 처음 알았다. 잠재적 진상이 복잡한 사람으로 전환되는 그 하루는 지금도 기억난다. 어르신에게도 맨날 “안 돼요. 다시 하세요. 여기로 가세요.”만 반복하던 공무원이 손주뻘 청년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좋으셨던지 점심을 같이 먹고 싶어하셨지만 어쩐지 마지막 선을 넘는 것 같아 음료수만 얻어 마시고 댁으로 모셔다 드렸다. 그 때와 그 이후의 몇 번의 순간으로 사회복지 업무를 고통스럽지만은 않게 담당했었다.  도축되는 소의 운명을 조롱하는 사람들을 째려보면서 탕수육을 씹는 것이 삶을 사는 모순의 연속이지만 그 염치 없음과 미안함이 마음의 흔들림을 잡아주는 닻이기도 하지 않을까. 수급자를 떠올리며 육두문자를 쏟아내고 자기 집 강아지를 자랑하고는 도축될 소의 눈물에 군침을 비추는 사람들은 어디서 닻을 얻을 수 있을까. 그들과 그들이 남기고 간 것들이 눈에 밟히며 밤이 간다.
2021-11-24 | hrights | 조회: 645 | 추천: 4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매년 많은 한국인들이 이스라엘을 방문한다.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2019년의 경우 이스라엘 통계청이 밝힌 이스라엘 방문 한국인은 61,200명이다. 이는 아시아국가 중에서는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방문객 수이고 전체 국가를 대상으로 하면 17위에 해당된다. 방문객 중에는 사업과 학업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하는 관광객들이다. 이들은 예수 탄생과 부활의 장소인 베들레헴과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하지만 이 도시들이 팔레스타인지역에 위치함에도 한국 방문객들 중 자신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방문하고 그 곳 사람들을 만났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별도의 비자나 입국절차가 요구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팔레스타인 영토로 알려진 서안지구,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중 완벽하게 통제된 가자지구를 제외하고는 예루살렘과 서안지구 내 C 지역을 이동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물론 이스라엘 법령으로 서안지구 내 A 지역과 B 지역의 출입이 제한되지만 두 지역은 서안지구의 40%에 불과하고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사람의 출입을 막지는 않는다. 더욱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도로를 통해 더욱 빠르게 왕래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현실이 펼쳐진다. 이스라엘 점령전만 해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자지구의 서쪽 끝부터 서안지구의 동쪽 끝까지 차량으로 2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었고, 서안지구, 가자지구, 예루살렘 상관없이 모든 도시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스라엘이 설치한 수많은 검문소와 장벽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동은 가로막혔다. 지중해 바닷길을 포함하여 사방이 가로막힌 가자지구, 이스라엘과 서안지구 간 국경 길이가 330km(1949년 휴전협정기준)이지만 전체 700km가 넘는 장벽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서안지구, 어디가 장벽의 안이고 밖인지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뱀처럼 휘감은 장벽에 둘러싸인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이곳에서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이동은 꿈과도 같은 일이다. 분리장벽에 가로막힌 길을 돌아가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사진 출처 - 사단법인 아디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이동의 제약을 받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팔레스타인 여성들, 이들에게 장벽은 이중적 차별이자 폭력 그 자체다. 그럼에도 많은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이를 낳기 위해, 면회를 가기 위해서 오늘도 국경과 장벽을 넘어야 한다. 때로는 이스라엘 정부가 발급한 비자를 소지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자신들의 빼앗긴 땅 위에 세워진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에 들어가 가정부 역할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한다.  사단법인 아디는 매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권 이슈에 관련한 인권보고서를 제작했다. 올해 아디는 작년에 이어 또 한 번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삶에 집중하기로 했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조사와 연구를 통해 아디는 2021년 팔레스타인 인권보고서로 이스라엘의 국경과 장벽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제작 중이고 11월 말 발간 예정이다. 이 보고서를 위해 아디는 총 15명의 여성들과의 심도있는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들에게 ‘선’이 가진 의미와 제약들, ‘선’ 안에서 또 ‘선’ 밖에서의 삶을 물어보았다. 15명의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본인들의 삶에 대해 담담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아디는 이야기들을 통해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갖는 ‘점령’이라는 특이성과 ‘여성의 삶’이라는 보편성을 동시에 들을 수 있었다.  분쟁지역에서 인권기록 활동을 하는 단체의 활동가로서 많은 이들에게 기록물이 전달되기를 바라지만 경험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 의해 36년간 점령통치를 경험했고 여전히 휴전선에 의해 남북이 가로막힌 곳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일 것이다. 그리고 ‘점령과 평화’라는 주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팔레스타인과 여성의 삶에 관심있는 독자들은 11월말에 출간되는 보고서를 시간 내서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심지어 무료이다. ^^
2021-10-27 | hrights | 조회: 640 | 추천: 7
이회림/경찰관  10월 3일 하늘 연 날 아침 6시 침대 머리맡에 둔 파란색 일기장을 꺼내 간단히 아침 일기를 쓰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물을 마시는 동안에만 살짝 읽을 생각으로 소파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매기 넬슨의 ‘블루엣’을 펼쳤습니다. 파란색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그 240편의 연작 에세이라는 긴 부제가 달린 이 수필집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색깔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면서 시작하면 어떨까. 냅킨을 잘게 찢으면서 고백하듯 털어놓으면 어떨까. 천천히 시작된 사랑이야. 어 괜찮은데, 하다가 문득 끌리는 마음. 색깔과 사랑에 빠졌다. 이번에는 블루다. 마법의 주문에 걸린 듯, 마법에서 영영 깨어나기 싫어 발버둥 치다가, 또 빠져나오려 애쓰다가 하고 있다>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 106편 소쉬르의 시안계 이야기가 나오는 장까지 읽어버렸습니다. 240편에서 끝나는 책이니, 이미 절반 가까이 읽은 셈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고대하던 순정 만화책의 완결호가 나온다는 풍문을 듣고 실내화 바람으로 서점으로 달려가던 여고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지요.    당장 해결되지 않은 가슴 답답한 일들을 생각하면 진득진득한 진흙탕에 빠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런 좋은 책을 만나게 되면 순식간에 주변 공기가 청량해지고 덩달아 제 마음도 가벼워지니 저로서는 고마울 따름입니다.    책에 맛이 있다면 ‘블루엣’은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처음 보는 맛인 것 같습니다. 평범한 에세이집이라면 책의 분위기 정도만 느끼느라 휘리릭 넘겨보다가 책장에 꽂아두고 잊어버렸을 텐데, 진한 파란색 표지에 내지 글씨까지 파란색인 온통 파랑파랑, 시푸르딩딩한 이 책이 저를 소파 속으로 더 깊숙이 파묻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집 소파 색도 파란색이네요. 터키 블루. 이런 우연의 일치가!   블루에 대한 사색이 좋은 건 블루가 다가오기 때문이 아니라 블루가 끌어당기기 때문이다-괴테    이 책에서 괴테의 이런 말을 마주치자마자 속으로 ‘오호~~ ’했습니다. 괴테는 내내 심각하고 무거운 글만 쓸 것 같았는데 이렇게나 감각적인 표현도 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구나~하는 그런 발견의 순간이었지요. 괴테는 어느 비평가가 “눈에 띌 만한 업적이 전혀 없는 기나긴 휴지기”라고 표현한 시기에 <색채론>을 썼다고 합니다. 괴테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그때는 “도무지 마음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다스릴 수가 없었다”고 하면서요. 영화감독 데릭 저먼은 시력을 잃고 에이즈로 죽어가면서 <채도 chorom>를 썼고 영화에서도 ‘블루스크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고 합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위암 투병을 하던 삶의 마지막 18개월 동안 <색채에 관한 소견들 remarks on colour>을 썼다고 하네요.    괴테의 말처럼 저 또한 수년째 블루가 저를 끌어당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파란색보다는 초록색을 더 좋아했었고 다음으로 보라색을 좋아하던 저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첫 미술 시간에 노란색 크레파스로 바탕 그림을 그리라는 선생님 말을 듣지 않고 보라색으로 그리다가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짙은 물빛의 파란 소파와 쨍한 파란색 일기장뿐만 아니라 흰색과 파랑으로 가득한 산토리니에 여행 다녀오게 된 일이며, 수영도 못하면서 겁도 없이 서핑을 배운 것 등등…. 모두 블루가 저를 끌어당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 얘기를 잘 들어주던 스웨덴 친구 에밀의 눈동자 색깔도 연한 블루였고 말입니다.    “삶은 구슬을 꿰어 만든 목걸이처럼 알알이 엮인 다채로운 기분의 연속이고 차례차례 하나씩 헤쳐나가다 보면 알알의 렌즈가 세상을 각자의 색깔로 칠하고 오로지 그 렌즈로 초점을 맞춰야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책에 소개된 에머슨의 글입니다.    저자 매기 넬슨은 말합니다. “유리구슬 한 알이 세상을 색채로 물들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목걸이가 될 수는 없다고. 나는 목걸이를 원했다.” 이 글 앞에서 우뚝 멈춰선 채 제 머릿속은 시간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초등학교 소각장 옆 화장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기억이 그때부터 시작되는 걸 뇌의 기억 중추를 꺼내서 바꿀 수도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 할 수밖에요. 무용수가 되고 싶어 장래희망 란에 줄곧 “고전 무용가”라고 쓰던 아홉살 어린이, 영화감독의 꿈을 꾸느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열아홉 소녀, 세상 속에서 김치처럼 건강하게 발효되어지고 싶어 스물다섯에 선택한 경찰이라는 직업, 그 안에서 겪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일들이 빨리 감기로 눈앞에 휙휙 지나갔습니다.    에머슨의 말처럼 저 또한 다채로운 구슬 렌즈들을 꽤나 많이 수집해 왔던 것 같은데 목걸이로 잘 꿰어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요즘의 저는 파란색으로 칠해진 구슬 하나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가 싶습니다. 용기를 내서 알리고 추진하던 일에 장애가 생긴다고 해서 너무 힘이 빠져서는 안 되는데 혼자 해내기가 벅차다는 기분도 들고…. 이럴 때마다 안전한 블루 속으로 피하고만 싶어집니다.    이런 저에게 얇고 파란 책 '블루엣'은 파란 유리구슬 한 알로는 결코 목걸이가 될 수 없다고…. 조금 더 힘내라며 저의 등짝을 세게 한 번 후려쳐 주고 있습니다. 이런 애정어린 등짝 스매싱은 울 엄마의 전매특허였는데 말이죠….    지금 이대로 바다로 뛰어내리면, 엄마를 다시 만날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텐데…. 그냥, 뛰어내려 버릴까? 하던 저에게 구름에 걷힌 달빛이 발트해를 비추어 주던 그때 그 순간처럼,   개천절 아침에 읽은 이 파랗고 얇은 책 '블루엣'도 저에게는 그런 의미로 남은 것 같습니다.
2021-10-12 | hrights | 조회: 673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