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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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석미화(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내 지난날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 중에서도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효지초등학교에 우리 8남매가 모두 수학했는데, 맏형이 1회 졸업생이고 3, 4년 사이로 선후배가 되고, 조카까지도 이어간 광주효덕초등학교다. 당시에 오랜 선생님께서 우리 8남매와 조카들까지 담임을 맡아 주셨기에 많은 추억을 안긴 모교였었다.  70년이나 정들어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모교를 우리 형제자매는 자주 찾는다. 오랜 세월이기에 모교 주변들이 많이 변해있었다. 학교에 인접한 도로가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늘어났고, 초기에 하루에 4차례 증기기관차가 다녔는데 오래전에 중단되었다. 교실이 단층에 6학급이었는데, 이제는 60학급으로 4층의 교사가 신축되었다. 재학생도 10배나 증가해 빛고을에서 대단히 크고, 모범적인 초등학교로 발전되고 있었다.  내 학창시절에는 광주의 변두리로 잘 알려지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학교주변에 신규로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살기 좋은 전원마을로 소문이 나면서부터 위상이 달라졌다. 시내 중심 유명세의 그 어느 학교보다 우수 모범학교로 변해 있었다. 광주시의 중심가 학생들이 전학을 해오고, 경쟁이 센 일류 학교가 되어 있었다. 특히 중학교 진학률이 높고,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도 발전된 모교에 큰 자부심을 갖게 되어 어느 사이 이름난 학교가 되었다.  내가 재학 중에 공부하던 그때의 교사와 운동장의 터도 확장되어 지금은 3동의 교사가 늘어났다. 당시 운동장과 교사 주변에 작은 나무들도 이제는 엄청 큰 나무가 되었다. 교목이었던 히아시스 나무도 교사 한 가운데 우뚝 자라나고 있었다. 그때에는 나무들이 내 품안에 쏙 들어왔었는데 이제는 큰 나무로 우뚝 서 있었다. 또한 교사 외에도 대형 강당과 연구실과 실험실도 신축되어 계속 발전하는 학교가 되었다.  모교는 무등산자락에서 남쪽으로는 태봉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금당산이 있었다. 제일 높은 산은 해발 6백 미터의 옥녀봉이었는데, 학창시절 자주 오른 봉우리로 추억이 담긴 곳이다. 그 때는 너무 높아서 오르기가 쉽지 않았었는데도, 자주 오르내렸다. 산위에서 바라보면, 광주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었다. 세월이 흘러서 산에 올라가 보니, 그리 높지도 않았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높게만 보였을까? 아마도 어린 마음의 눈높이였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한 세대 전부터 총동문회에서 가끔 모교를 빛낸 동문에 상을 주었는데 나도 받았었다. 모범 동문으로 거듭나고 모교에 도움을 주는 일을 이어가라는 뜻이었다. 허나 일들이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내가 펴낸 저서와 어린이 도서를 특별 기증하였다. 3년 전에도 모교를 찾아 제16회 졸업생이라 인사하고, 그간 뜻 한 바 생각을 전했다. 비록 작은 성의지만 모교 발전과 후배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참여하겠다고 하니, 교장 선생님과 선생님들이 반가워하시었다.  그동안 총동문회에서 장학금 명목으로 졸업생에게 표창을 해 왔는데 끊겼다며 반가워하였다. 예절바른 효행학생에게 효행장학금을 수여하는데 선발은 학교에 일임했다. 교장선생님은 어느 사이 나의 재학 6년간 학교생활기록표를 보셨는지, 성적도 우수해 모범상을 자주 받았고 학예회서 독창을 하고 시군 음악경연대회에서 독창과 합창으로 입상을 한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졸업식 날에 직접표창과 축하노래까지 부탁하였다. 피아노 반주는 음악선생이 맡아주시겠다고 했다.  몇 년 전 모교의 졸업식 날에 식장에서는 졸업생과 재학생대표 5백여 명에 내외 귀빈과 졸업생가족 등 1천여 명이 참석했었다. 강당이 꽉 차니 밖에서 졸업식 광경을 지켜보는 학부형들도 있었다. 내 순서에 먼저, 교장선생님은 특별히 효행장학생 표창과 축하와 노래까지 불러주실 모교 16회 선배 졸업생이라고 소개를 하시었다. 그동안 졸업식에 정식으로 자주 없었던 순서였다.  장내 외의 큰 박수를 받고 등단하여 간단한 인사를 “내 사랑하고 그리운 효덕초교는 우리 8남매가 총동문이고 내 생애에 많은 추억을 남긴 모교이기에 이렇게 달려왔다” 하고 “60년 전에 학예회 때마다 불렀던 독창을 오늘 후배들에게 들려주려니 감회가 깊다”고 해, 장내에 큰 박수를 받고 식장을 떠나왔다. 지난 모교와의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마치 활동사진처럼 펼쳐지고 있어 감회가 깊었다.  내 만 7살에 아버지를 따라 입학식에 참석해서 교훈이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한다.”였다. 비록 어린나이였지만, 배움에 대한 문구였다. 그리고 1학년 2학기 겨울방학 전, 어느 날 폭풍과 폭설이 몰아쳐, 그만 등교를 하지 못했었다. 오후에 담임선생님이 나를 학교로 불러 교실에 갔다. “아니 이런 정도의 날씨에 학교를 결석하다니! 책상위에 올라가 손을 들라”는 벌을 내렸다. 무려 2시간을 손을 들고 섰었는데 “배움을 게을리 하면 장래가 없다”며 호통도 치셨다. 나는 울면서 자괴하고 다짐하였다. 배움에서 결석이란 절대 자제했던 기억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리고 나에게 크나큰 충격은 1학년 때, 22살의 맏형이 건준에 가입했다가 붙잡혀 조직을 불지 않는다고 재판도 없이 총살을 당한 사실이다. 똑똑한 형을 잃고 방황하였던 어린 시절이었다. 2학년에 올라가 6.25 전쟁으로 인해 아버지와 둘째형이 부역자가 되어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다. 그때 맏형과 모교 1회 동문인 김종길 선생님이, 제자가 상처를 받을까봐 위로해 주셨다. 그때 전쟁과 평화에 마음이 깊어졌던 것 같다. 그러나 지난 세월 나에게 슬픔만이 아닌 기쁨도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줄곧 우등상을 탔다. 학예회 독창과 합창경연에서 입상하고 소풍가면 노래를 불러 상을 탄 공책과 연필이 쓰고도 남았다. 입학 전에 서당에 다녀 습자부장이 되고, 개교기념 글짓기에 뽑혀 전체 조회에서 낭독도 하였었다. 그리고 총학생회장이 되어 전교 전체 조회에서 쩌렁쩌렁한 구령을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또한 비록 가난했지만 야간으로 진학을 계속해 공부를 이어갔다.  당시에 어린 마음에도 우리가정의 형편으로는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지만, ‘배워야 산다,’ 좌우명으로 신문배달을 하며 야간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어서 야간대학에 진학해서 향학열을 불태웠다. 그리고 재학 중에 군에 입대하여 제대말년에 가면 죽는다는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했다. 전쟁이 주는 죽음과 공포와 삶의 아픔을 느끼면서 용케도 무사히 귀국하였다. 만기 제대를 한 후에 부족한 공부를 위해 서울대학교에 근무하면서 공부를 이어갔다.  내가 서울대에 근무했던 시기는 분단국가의 민주화가 절실히 요구되었던 80년대 초였다. 당시 서울대 법대는 민주화의 불길을 당기는 촛불의 근원이었다. 나는 서울법대와 연구소 교직원으로 재직하면서도 열렬한 학생들의 정의의 깃발에 동화되었다. 끝없는 법대생들의 항전에 동화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이 민주화의 길이었다. 박종철을 비롯한 많은 정의 학생들의 죽음은 결국 민주화의 길이었다. 문경새재에서 본 백두대간 사진 출처 - 한겨레  서울대 정년을 하고 자유로운 평화통일 운동가로서 분단조국의 평화통일 대열에 함께 하였다. 너무도 긴 분단 76년, 이제는 우리 8천만 동포들과 함께 평화통일이라는 그 길을 용기 있게 가는 길이 정도임을 알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분단조국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비록 팔순의 노구로 힘이 달리겠지만 그 대열에 당당히 지금까지 함께 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삼천리금수강산에 평화통일이 오는 그날까지 매진할 것이다. *필자 : 작가[소설. 수필. 서예] 칼럼니스트, (사)평화연대이사장, 한국작가회의 소설가 *한국서예, 초대작가, 한국전통서예, 초대작가, 한국미술관, 초대전, 서울미술관.초대작가전. *저서: 소설집(못다핀 꽃) 수필집(도라산의 봄) 에세이(평화)고희문집(인연, 아름다운 만남), 수필선집(강물은 흐른다) 구암애창가곡(CD) 편저(평화의 삶을살다. 한반도 평화통일) *<평화만들기>, 오마이뉴스, 통일신문기자, 공동선, 글의 세계, 실험수필, 문학의 강 필진
2020-06-24 | hrights | 조회: 41 | 추천: 0
: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 “평화를 통한 번영”을 지지하는 사우디와 반대하는 하마스  2020년 1월 28일, 트럼프는 세기의 협상안으로 알려진 “평화를 통한 번영: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의 삶을 증진시키기 위한 비전”을 공표하였다. “평화를 통한 번영”은 1967년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점령한 서안을 공식적인 이스라엘 영토로 합병하고, 이스라엘과 역내 아랍국가들 사이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데에 집중한다. 결국 이 기획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역내 아랍국가들 사이의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이스라엘의 번영을 목표로 한다.  2020년 1월 29일, 트럼프 협상안을 지지하는 사우디 외교부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포괄적 평화계획 수립을 위한 미국 행정부의 노력에 감사하며, 미국이 후원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직접 평화협상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또 사우디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에게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사우디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으며, 모든 아랍인들과 우리는 당신과 함께 있다.”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연대의사를 밝혔다.  현재 표면적으로 또는 체면치레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트럼프의 협상안을 거부하는 듯하다. 그러나 오슬로 협상의 중간 결과물로 창설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결국은 트럼프 협상안을 수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1990년대에 1967년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점령한 지역(동예루살렘, 서안, 가자)을 대상으로 추진된 오슬로 협상은 미국이 중재한 이스라엘-PLO 직접 협상이었으며, 마흐무드 압바스 자신이 이 협상의 주역이었다. 트럼프의 협상안은 오슬로 협상의 마무리 작업인 듯 보인다.  이에 맞서 2020년 1월 30일, 하마스 정치국장 이스마일 하니야는 이슬람 및 아랍국가 통치자들에게 미국의 이른바 '세기의 협상'을 거부할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그는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세기의 협상을 거부하기 위해 긴급하게 행동할 것"을 요청했다. 하마스는 1990년대에도 오슬로 협상에 반대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왔으며, 하마스가 가자를 통치하기 시작한 2007년 이스라엘은 가자를 ‘적지’로 선언했다. □ 팔레스타인의 영토 주권 박탈, 이스라엘의 역내 영향력 강화  “평화를 통한 번영”은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의 관계정상화 추진 배경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스라엘과 대부분의 이슬람 및 아랍국가들 사이의 공식적인 관계의 부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을 악화시킬 뿐이다. 더 많은 이슬람 및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에 대한 정당하고 공정한 해결을 앞당기고, 급진주의자들이 역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데 이 분쟁을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평화를 통한 번영”의 핵심 내용은 1967년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점령한 영토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 수립을 공식화하고, 동시에 이스라엘과 역내 아랍국가들 사이의 경제 통합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화를 통한 번영: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의 삶을 증진시키기 위한 비전] Ⅰ.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점령지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 수립 1.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당사자 간의 합의(UN 및 국제사회 관여 없음) 2. 경계 재설정: 이스라엘은 1967년 전쟁으로 점령한 팔레스타인 영토를 돌려줄 의무 없음, 요르단 계곡은 이스라엘의 주권, 이스라엘 정착촌은 이스라엘 국가로 통합 3. 예루살렘: 분할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수도 4. 난민: 난민지위와 관련된 모든 청구권의 완전한 종료와 해제.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 없음 -> 팔레스타인 난민지위는 사라지고, UNWRA는 종료. 난민촌 해체. 5. 팔레스타인 국가: 비무장 상태로, 보안대를 유지함으로써, 테러리즘과 맞서 싸움 6. 가자: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 등 테러 단체의 무장해제, 완전한 비무장화 7. 협상과정에서 PLO 및 PA는 다음을 수행해야 함   1) 이스라엘 국가의 동의 없이, 국제기구에 가입하려는 모든 시도 중단   2) 국제형사재판소, 국제사법재판소 및 기타 모든 재판소에 이스라엘, 미국 및 그 시민들에 대한 모든 계류 중인 사항들을 모두 취소하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말 것   3) 인터폴이나 비이스라엘 또는 미국법 제도를 통해서 이스라엘 또는 미국시민에 대항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해서는 안 됨   4) 이스라엘 감옥에서 복역하는 테러리스트들뿐만 아니라 사망한 테러리스트들의 가족에 대한 급여 지급 즉시 중단 Ⅱ. 이스라엘-아랍국가들: 지역 경제통합 파트너십 확보 1. 역내 모든 국가들의 이익을 위해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 국가와 완전히 협력해야함. 예를 들어, 교차 관광을 촉진하고,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항공편을 운영할 것 2. 이스라엘 국가, 팔레스타인 국가와 아랍 국가들은 헤즈볼라, IS, 하마스와 다른 모든 테러 단체 및 단체, 그리고 다른 극단주의 단체들에 대항하기 위해 협력할 것 3. 경제적 상황과 이란의 악의적인 활동은 역내의 많은 국가들에게 실존적인 위협임. 역내 국가들과 이스라엘을 통합하는 것은 이란의 위협에 대처하는 것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경제적 도전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됨 4. 이스라엘과 GCC국가들은 긴밀한 유대관계 수립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이집트 아랍 공화국, 요르단 하심 왕국, 이스라엘 국가(역내에서 협력하기를 희망하는 국가들 포함)는 ‘유럽 안보협력기구’와 유사한 ‘중동 안보협력기구’를 구성할 것  아래 그림은 “평화를 통한 번영”에 첨부된 지도다. 이 지도는 1990년대 오슬로 협상이 제시한 지도와 매우 유사하다. 이 지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정착촌과 도로 등으로 둘러싸인 토막 난 영토에 갇혀서, 물, 자원, 군사에 대한 지배권을 모두 박탈당할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주거지 밖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운영하는 농업, 건설 분야 등 저 임금 직종의 노동 시장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이 제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오슬로 협정의 연장이며, 오슬로 협상 과정에서 창출된 현실을 공식화하려는 것이다. 2020년 1월 트럼프 기획  오슬로 협상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1967년 무력 점령지에 대한 이스라엘의 실효적인 지배권을 승인한 것이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안대는 이스라엘 방위군과 안보협력을 하면서, 서안 거주 이스라엘 정착민들을 보호하는 등 이스라엘 안보 지킴이 역할을 해왔다.  이번 트럼프 협상안은 실권 없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국가라는 이름을 붙여주어 서안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을 공식화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안보 지킴이 역할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또 이 협상안은 이스라엘 정착촌을 포함하는 이스라엘 영역을 우회하는 도로와 터널 건설 등을 통해서 토막 난 팔레스타인 영토를 연결시키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협상안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유대민족 국가로 인정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인종분리와 인종차별 정책을 유지하면서, 이스라엘 영역으로 합병된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스라엘 시민권 요구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협상안은 팔레스타인의 영토 주권을 박탈하면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의 긴밀한 경제 및 안보 협력관계를 공식화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역내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 하마스를 강력하게 탄압하는 사우디  1987년 창설된 하마스 지도부는 사우디와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고, 사우디 정부는 하마스를 직접 지원하지는 않았으나, 사우디 내에서 하마스를 위한 모금활동을 허용했다. 그런데 2019년 4월, 20년 이상 사우디와 하마스 관계를 관리해 온 무함마드 알 쿠다리 박사를 비롯한 수 십 명을 하마스 소속이거나 지지자라는 혐의로 체포하여 기소하였다. 사우디는 이들의 자산을 동결하였고, 가자로의 송금을 거의 완전히 차단하였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들은 그 이후 정확한 혐의도 알려지지 않았고, 법적 대리인을 받을 수 없는 상태로 구금됐으며, 일부는 독방 감금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게다가 2019년 5월 11일, 사우디에서 발행된 『메카』 신문은 “무슬림형제단 사상의 영향을 받는 국제 테러리스트 40명”을 발표하였다. 이들 중에는 6명의 하마스 지도자들, 즉 이스라엘이 표적 살해한 하마스 공동 창건자들인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과 압델 아지즈 란티시를 비롯해서, 전임 하마스 정치국장 칼리스 마샬, 현재 하마스 정치국장 이스마엘 하니야, 하마스 군사조직 이즈 앗딘 알 까삼 여단 지휘관 무함마드 데이프, 현재 가자지구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 등이 포함되었다. 이 발표는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 충격을 주었으며, 네티즌들은 이 발표의 배후로,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했다.  2020년 3월 8일 사우디는 2019년 4월 체포 수감된 무함마드 알 쿠다리와 그의 아들 하니를 비롯한 사우디 거주 팔레스타인인인들과 요르단인들 68명을 ‘특별 테러 재판’에 회부했다. 사우디 대학의 IT 교수인 하니와 학생, 학자, 기업인을 포함하는 수감자들은 사실상 정치 활동과는 거의 무관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엠네스티는 “알 쿠다리 부자를 체포 수감한 것은 사우디 당국이 하마스와 연관성이 있다고 파악한 사우디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광범위한 탄압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이에 맞서 2020년 3월 9일 하마스는 성명을 내고, “사우디에서 재판에 직면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혐의는 위조된 것이며, 재판을 불공정하다. 이들은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의 대의와 예루살렘 및 알 아크사 모스크의 수호를 지지했기 때문에 유죄다. 즉각적인 이들의 석방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 하마스의 든든한 후원자 카타르  2019년 12월 17일 알 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하마스를 대표하는 정치국장 이스마일 하니야는 도하에서 타밈 빈 하마드 카타르 국왕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타밈 국왕은 합법적인 민족의 권리를 성취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이들은 12년 동안 계속되는 가자 봉쇄, 예루살렘, 서안의 유대 정착촌, 팔레스타인 난민 지위 및 귀환권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가자를 통치하는 하마스 정부는 카타르 정부로부터 매달 3천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이는 10만 9천 가구의 가난한 가구에게 원조로 제공되는 것이다. 이스마엘 하니야는 타밈 국왕에게 팔레스타인인들을 지지하는 노력에 대한 감사를 표하였다.  2020년 2월 2일 아사르끄 알 아우사트에 따르면, 이스마일 하니야는 2020년 후반이나 2021년까지 카타르에 머물면서 터키, 이란, 오만, 말레이시아, 러시아, 레바논, 모리타니아, 쿠웨이트를 방문하는 등 하마스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기 위한 외교행보를 강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3월 23일, 미들이스트 모니터에 따르면, 이스마엘 하니야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카타르 타밈 국왕이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하여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전폭적인 물질적, 재정적 지원을 약속했으며, 카타르 국왕은 UNRWA원조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팔레스타인인들에게 1억 5천만 달러를 원조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카타르는 무슬림형제단과 제휴하고 있는 하마스의 확고하고,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다. 이러한 카타르의 하마스 지원은 이스라엘의 승인 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및 중동 분할통치전략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와 하마스를 지원하는 카타르라는 역내 대립 구도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분할 통치 전략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2014년 3월 사우디는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2016년 6월에는 무슬림형제단 지원과 친이란 정책을 문제 삼아 카타르에게 단교를 요구하였으며, 2017년 6월 사우디는 카타르를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하면서 외교관계를 단절하였다.  2020년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후원하는 사우디-아랍에미리트-바레인-이집트-요르단과 이에 맞서는 하마스를 후원하는 카타르-터키-이란 역내 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이 대립 구도는 트럼프의 “평화를 통한 번영”을 실현시키기에 매우 활용도가 높다. 팔레스타인 및 역내에서 하마스-카타르-터키-이란 동맹의 영향력이 강할수록,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사우디-아랍에미리트-바레인-이집트-요르단 동맹은 이스라엘 및 미국과 연대를 강화하면서, 트럼프의 협상안을 강력하게 후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타르와 터키가 후원하는 역내 무슬림형제단 분파들은 사우디(알 사흐와), 아랍에미리트(알 이슬라흐), 바레인(알 이슬라흐), 이집트(무슬림형제단), 요르단(이슬람행동전선)에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강력한 정부 반대파로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사우디와 연대한 아랍 국가들은 국내 정부 반대파 및 하마스 등 역내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들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인 알 사흐와 등 국내 반대파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이유로도 무함마드 빈 살만에게 이스라엘과 미국은 정권 유지에 꼭 필요한 정치적 동맹이다. 또 2019년 9월 이란의 사우디 아람코 석유시설 공격은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안보에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일깨워주었다.  이렇게 하마스 등 역내 무슬림형제단 연계세력과 이란의 위협은 이스라엘에게 사우디의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함으로써, 트럼프의 ‘평화를 통한 번영’을 수월하게 진행시키는 촉진제로 작용한다.  2020년 6월 1일 이스라엘 하욤에 따르면, 2019년 12월부터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동 예루살렘 소재 알 아크사 모스크 관리기구인 이슬람 와끄프 위원회에 사우디 대표를 포함시키기 위하여 비밀회담을 개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동 예루살렘과 알 아크사 모스크에 대한 관리권 장악을 시도하는 터키에 맞서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터키는 알 아크사 모스크 관리권을 장악하기 위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서 동 예루살렘에 상당한 투자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위임 통치하던 1924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 요르단 하심 왕가가 누려온 이슬람 성지, 알 아크사 모스크 복합단지 독점 관리권이 위기를 맞이하였다.
2020-06-17 | hrights | 조회: 207 | 추천: 1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비록 개원에 진통을 겪고 있긴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코로나19’의 위기를 잘 극복한다는 평가를 비롯해 다른 요인들이 긍정적으로 함께 작동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근본적으로는 촛불 혁명의 민주적인 정신이 지난 지방선거에 이어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 총선에까지 힘을 발휘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총선 전 수개월 동안 불안했었다. 속칭 태극기 부대, 광신적인 전광훈 무리, 이에 편승한 보수 우파의 정치꾼들과 언론 집단이 대대적으로 거동하여 만만찮은 세를 과시했다. 그들은 촛불 혁명에 의한 현 정권에 최대한 흠집을 내고 끌어내리기 위해 온갖 극언을 스스럼없이 쏟아내었다. 그 핵심은 문재인 정권이 친북 사회주의적인 정권으로서 나라를 북한의 김정은에게 갖다 바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저들의 본심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저들은 정말 그렇다고 확신하는 걸까, 아니면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면서도 혹세무민의 빌미로 내거는 전술적인 구호에 불과한 걸까? 어느 경우건, 저들이 격렬한 충동적인 감정을 끌어모아 대대적으로 터뜨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광화문을 휩쓰는 저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특히 손수 지어 입은 괴이한 군복을 차려입고서 대오 정렬하여 행진하면서 마치 쿠데타라도 일으켜 세상을 뒤집는 데 성공이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노라면 절망적인 분노가 일었다.  저들이야말로 언론과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의 설립을 부정하고 방해하던 세력이 아니던가. 그런데 애써 길 닦아놓으니까 미친 X가 먼저 지나가는 식이었다. 목숨을 잃어가면서까지 갖은 고초와 희생을 거쳐 겨우 민주주의 체제의 길을 닦아놓았더니 오히려 저들 반동의 세력들이 얼씨구나 광란의 집회를 마음껏 벌이면서 잡아가지 않는다고 안심 놓고 입에 담을 수 없는 극언의 막말을 대명천지에 마음대로 쏟아내면서 기염을 토하는 것이었다. 같은 국민이라는 사실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절망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런데 대다수 국민이 이처럼 대대적인 총선 승리를 가져다주었으니, 얼마나 다행한가. 지나고 보니 그럴 리가 없다고 여겨지지만, 혹시라도 만약 저들 광란의 세력이 지지하는 당이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과연 이 나라가 얼마나 어떻게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면서 퇴행의 길을 재촉하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어질병이 인다. 참으로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보고 싶은 사실을 실제 일어난 사실로 둔갑시키는 데 열을 올려 경쟁하게 될 것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적개심으로 자발성에 의한 평화 대신에 약육강식의 예속만이 살 길이라고 외칠 것이고, 참다운 상호 인격적 삶을 위한 자유 대신에 남을 억누르는 부와 권력에 의한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여겨 추구할 것이고, 가난한 자들은 본래 게으르고 무능력한 자신들의 탓에 그러하니 국가가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강변할 것이고, 일인숭배의 파시즘적인 형태의 종파들이 대세를 이루며 종교 생활을 미신의 늪으로 몰고 갈 것이고, 첨단의 과학기술들을 오로지 경제 성장을 위한 도구로만 여겨 미래의 인간과 지구가 어떻게 되건 상관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달시키고자 할 것이고, 차기 정권을 잡는 일에 몰두하여 불리한 위치에서 차별받는 뭇 소수자들을 인권과 상관없이 내팽개칠 것이고, 민족의 역사와 미래를 걱정하여 과거에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들에 관련해 시비곡직을 제대로 가리고자 하는 노력을 과거에 얽매어 분열을 조장하는 짓이라고 매도하면서 덮어놓고 뭉치자는 파시즘적인 얼빠진 정치놀음을 일삼게 되었을 것이다.  총선 개표의 결과를 지켜보면서 무엇보다 쾌재를 부른 것은 그동안 조금의 양식이라도 있는 자라면 도대체 입에 올릴 수 없는 괴이하기 짝이 없는 말을 예사로 하면서 미쳐 날뛰던 정치꾼들이 하나같이 다 낙선했다는 것이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씻은 듯 내려가는 것 같았고, 심지어 드디어 해방되었구나, 하는 심정에 이르기까지 했다. 국회의원이란 국민을 대표하는 독자적인 헌법 기관일 정도로 그 어떤 개인적인 욕망이나 사특한 짓에 조금의 여지를 주어서도 안 되는 준엄한 책임과 의무를 지는 직무인데도, 그들은 이를 전혀 망각한 채, 마치 막말의 극단적인 정도가 곧 그들 당에 제대로 충성하고 아울러 국민의 원한을 제대로 풀어주고, 따라서 진정한 정치적 행위를 하는 기준인 양 여겨 광분했다. 몇몇 초선 국회의원들은 도무지 창피해서 국회의원을 더는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자진해서 총선 출마를 포기한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는가. 저들 국회의원이라는 명함을 앞세운 정치꾼들이 무작한 광화문 세력과 한통속임은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한통속의 선두에 당 대표라는 자가 나서 지휘를 했다.  당 대표라는 자가 정치인으로서 전혀 자격이 없다는 것은 개표하는 밤에 여실히 드러났다. 명색이 당 대표로서 총선을 지휘했다는 인물이 자신이 출마한 지역구에서 낙선이 확실해지자 간단하게 당 대표직을 사임한다 하고서 그날 밤에 자리를 뜬 뒤 코빼기도 내보이지 않았다. 당 대표직 사임이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니었다. 낙선한 자들을 위로해야 하고, 물러나더라도 대참패에 대한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사과한 뒤 앞으로도 백의종군하듯 당에 계속 충성하겠다고 하고서 물러나야 하지 않는가. 어찌 보면 사필귀정이긴 하나 예상치 못한 참담한 모습이었다. 저런 자가 제1야당의 대표였으니, 어찌 국회를 비롯한 정국이 마비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싶었다. 말로만 앞세운 국민이고 당원 동지 여러분이었지, 실상 그의 내심에는 저 자신뿐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해 보였다. 그의 단식과 삭발의 장면이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함께 떠올랐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충동과 광기다. 설혹 대의명분이 정당한 혁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충동과 광기로 돌변한 원한과 복수심에 의해 수행되면,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 프랑스 혁명이 그랬고, 러시아 혁명도 그랬다. 우리의 촛불 시민혁명은 원한이나 복수심 그에 따른 충동과 광기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고자 하는 냉엄한 조치로써 대중적인 이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이성의 힘이 반동적으로 날뛰는 충동적인 광기를 눌러 이긴 것이 이번 총선이다.  이로써 이제 더는 저 광신의 무리로 출몰하는 충동과 광기에 의한 정치 행위가 시민 정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되었으면 한다. 물론 전혀 낙관할 수는 없다. 이렇게 정치 지형이 유리한 쪽으로 바뀔수록 오히려 더 경계해야 하고, 더 깊은 성찰의 허리끈을 동여매야 한다. 이제 합법적인 강력한 무기를 갖추었으니, 이를 어떻게 현명하게 활용하여 선진적인 민주국가를 이룩하는 데 진심과 성실을 다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해결되었으면 하는 현안들은 많아 복잡하고 그렇기에 마음은 더욱 성급하다. 언제쯤이면 국가 사회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할 정도로 흔쾌한 마음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상존한다. 동서 양쪽에서 북쪽을 향한 평화의 철길이 열려 남북으로 서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가 미국의 간섭에서 확실하게 벗어날 수 있었으면 한다. 그 와중에 분단과 전쟁에서 입은 트라우마와 같은 깊은 상처가 아물어 이데올로기적인 사유가 진취적이고 합리적인 사유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암시되는 반(反)생태적인 경제 성장을 지양하면서 안정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복지국가를 이루어 빈부귀천의 질곡을 벗어났으면 한다. 돈 벌어 부유하게 잘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인문예술적인 교양의 깊이를 더해 서로가 공유하면 할수록 더욱 풍부해지는 정신적인 삶을 목적으로 삼는 일이 아예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그럴 수 있도록, 특히 거대 금융자본이 세계인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크게 완화되었으면 한다. 성별, 인종, 성적 특수성, 계급, 민족 등에 따른 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누구나 타고난 신성한 인권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그리하여 길에서건 카페에서건 어떤 종류의 모임에서건 만나는 사람마다 좋고 힘찬 건강한 긍정적인 기운을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특히 A.I. 기술을 비롯한 NBIC의 기술융합, 즉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정보기술, 인지과학기술 등의 융합이 인간 존재를 무시하고 삭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인간 존재의 신비를 축성하는 쪽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서로 인간임을 더욱 다행스럽게 여길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한다. 그리하여 비관적이고 종말론적인 사념을 불식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런 바람들이 각기 외따로인 것은 아니다. 서로 얽혀 연동한다. 천재일우의 기회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크고 좋은 기회를 맞은 이번 21대 국회의 구성에 크게 기대를 건다. 통속의 정치에 휘둘려 좌고우면하는 일이 더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명하고 성실하고 실천력 있는 국회의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국가와 민족의 책사들로 전면에 나서서 흔쾌히 용기 있게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20-06-10 | hrights | 조회: 137 | 추천: 2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2009년 여성학을 배우면서 정대협 운동이 여성주의운동인가? 민족주의운동인가? 에 대해 학습을 한 적이 있다. 위안부 –성노예라는 말을 당사자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할머니들은 여성폭력의 희생자들이지만, 다른 어떤 여성운동단체들과는 달리 남자들의 지지와 지원이 유난했고, 수요 집회에도 남자들의 수가 여자들의 숫자만큼이나 컸었다. 왜 남자들은 유독 위안부 할머니들에 관심을 보인 걸까? 미군 장갑차에 희생당한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도 남자들은 유독 비슷한 관심을 보였다. 이 두 이슈의 배경에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복선이 깔려있다. 그리고 구식민지든, 신식민지든 민족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일본이나 미국이나 식민 지배국가라는 관점이 존재했고, 따라서 위안부 사건과 미군 장갑차 사건은 식민 지배국이 피 식민국을 대상으로 한 멸시와 혐오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간의 전선이란 배열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국가란 여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성연대’에 지나지 않았고, 그 국가들은 국경을 초월해서 여성들의 성을 전시에 군인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위안’으로 소모되는 데 기꺼이 합의하였다.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을 제일 먼저 징집한 것도 한국 남자들이고, 끌고 가서 강간의 대상이 되도록 하고 실제 강간한 가해자들도 남자들이다. 그리고 그 남성연대는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한 쪽은 외면하고, 권력에 짓눌렸던 다른 한 쪽은 ‘쪽팔려서’ 할머니들 얘기가 나오면 과장된 반응들을 보인다. 과연 할머니들 문제가 일본과 한국간의 문제가 아닌 전시강간당한 여성들의 인권문제로 정확히 논해진 적이 있던가? UN에서 여성의 전시강간 문제를 여성인권의 주요의제로 다루고 있고 한국의 할머니들도 많이 참석하시고 발언하신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결정되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전시강간 문제도 한국에만 돌아오면 국가와 민족의 문제로 포섭되기 때문이다. 위안부 사건은 정확히 남성지배에 의한 여성의 성적 착취이다. 이 문제는 어디서나 발생되기 쉽고 발생되고 있는 문제이다. 때문에 전시강간, 전시 성 착취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그런 일이 왜 발생되는가? 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여성의 성을 착취와 노리개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남성연대, 가부장제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보여주고, 논의해야 한다. 이용수 할머니의 말씀처럼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하고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동의하는 사람들이 먼저 만나 대화하고 소통하며 차세대 젊은이들,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동의하고 합의하는 일본인이 많아지고 사과할 줄 아는 일본시민들이 많아질 때, 일본 당국의 사과와 배상이 가능하다고 본다. 일본의 시민들이 모은 기금마저 거부하며, 대화와 타협이 아닌 증오와 혐오로 일본 당국과 일본시민을 대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주장하는 것은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이지 여성에 대한 성 착취와 그 한 방편으로서의 전시강간의 인권침해를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앞 담벼락 사진 출처 - 한겨레  민주당이 윤미향 당선인과 정의기억연대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을 ‘친일파’나 ‘토착왜구’라는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의연의 운동이 이들에게는 여성주의운동이 아니라 민족주의운동 프레임에 갇혀있음을 보여주는 역설적 단서가 된다.  5월 12일 34개 여성단체들은 “국내 최초의 미투운동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분열시키고 훼손하려는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며 정의연 지지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7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후 5일 만에 신속하게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아직 의혹당사자인 윤 당선자의 충분한 입장발표나 사실관계가 확인된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랬다는 것에 여성운동에 몸담았었던 필자로서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여성운동에서 여성들은 여성운동가/활동가, 회원, 피해당사자 등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공간에 기반한 여성조직에서 여성은 대체로 피해당사자, 회원, 활동가/운동가로 구분된다. 여성인권에 기반한 대다수 여성조직들에서 실제로 활동의 주체는 피해당사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문제해결을 위해 기획, 집행하는 활동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회원들은 자발적 동의자이고, 일 년에 한 번 총회를 통해 사업 및 예산의 기획과 집행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것을 통해 의사결정에 참여할 뿐이다. 아니면 세미나 모임이나 다양한 소모임 활동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거나 전달 받고 대다수는 온라인 소식지등을 통해 소식을 전달받을 뿐이다. 여성조직의 정책의 일차적 대상은 피해당사자들이다. 이들의 경험을 여성문제로 일반화하고 정책을 입안하고 제도화하는 것이 여성조직의 주된 사업이 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객관성’과 ‘합리성’의 영역에서 배제되어 온 –여성폭력은 주로 은밀히 발생함으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관적 주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성피해자들의 입장과 관점, 주장이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피해자 중심주의’였다. 때문에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이들의 경험과 주장을 수용하고 이들이 운동의 당사자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여성조직의 운동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적극 경청하고 개별 피해자들의 의견이 상호간의 의견이나 조직의 의견과 다를 때는 모두가 모여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 피해자를 감싸는 것이 아니며, 피해자들을 소극적이고 두려움에 떨며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연약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관점을 장착해야 가능한 일이다. 피해자들은 ‘남자들의 보호 안에 있어야 하는 미약한 존재로서의 여성’이라는 심신미약자의 위치성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보호만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그 여성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직업과 계층도 다르고, 삶을 대해 온 경험과 피해에 대처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에 피해자를 일원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여성폭력 피해자들이 임파워먼트를 통해 여성운동의 주체로 변화하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에서는 특히 그러한다. 항간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를 다시 봐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하면서 행동은 그렇지 않는 조직들에 대한 성찰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원칙으로써 고수해야 한다. 다만 피해자들끼리, 피해자들과 조직 간의 소통과 대화를 통해 이견이 발생할 때 문제해결 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다.  이번 사건은 다양한 고민을 하게 한다. 여성운동 안에서 여성주의운동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가?, 남성들의 민족주의에 기대고 의지하는 방식은 아니었는가? 라는 성찰과, 피해자 중심주의가 다만 구호와 외양으로만 존재하고 실재로는 조직, 단체, 활동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는 않았는가? 라는 고민들. 앞으로 여성운동은 이 문제들을 진지하게 성찰하며 대안을 찾길 바란다.
2020-06-03 | hrights | 조회: 117 | 추천: 4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살며 무당이 되어 본 적이 있다. 진짜 무당을 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무당처럼 억울하게 죽은 넋을 위로하는 일을 했다고 하면 될까?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2007년부터 3년간 ‘대통령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 조사관을 했다. 위원회는 군 사망사건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되었다. 군 사망사고 유가족과 인권단체의 노력으로 설립된 이 위원회에는 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사망한 김훈 중위 사건을 비롯해 600여건에 달하는 사건이 접수되었다. 진정을 제기한 것은 대부분 가족이었다. 유가족이자 피해자인 그들은 자랑스러운 아들이 군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에 대해 국가가 진실을 밝혀주길 바랬다.  그들의 아들들에 대한 사인은 대부분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었다. 사건 당시 작성된 헌병대 수사기록을 보면 자살의 이유는 대개 가족, 애인, 성격문제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당시 군복무와 관련이 없다고 본 그들의 죽음은 국가로부터 명예로운 죽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공상이 아닌 일반사망 ‘사상’으로 처리되었다. 가족들은 억울했다. 사회에서 누구보다 건강하게 생활하다가 나라의 부름으로 군에 갔는데, 자살이라니 웬 말인가. 헌병대의 수사과정도 믿음이 안 갔다. 군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빠르게 사건을 처리하고 종결하는데 급급했다. 사망의 이유도 석연치 않은데, 헌병대의 처리 과정도 의심을 키웠다. 더구나 천편일률적인 사망 동기와 처리방식은 더 그랬다. 군의문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실제로 강한 의혹이 제기된 사건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 외 많은 사건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의문사가 되었다. 유족들은 자식의 죽음이 결코 자살이 아닐 것이라고 믿으며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조사관이 사건을 배당받고 조사계획서를 작성하며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은 진정인, 곧 유가족의 진술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진정인이 조사방향과 결과에 동의하는 지 여부는 사건을 종결하는데 결정적인 열쇠였다. 따라서 사건 관련 문서를 찾고, 관계자를 찾아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사고 현장을 방문해 정황을 살피고 단서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사관이 제일 신경 쓰고 노력해야 할 것은 바로 진정인과의 소통이었다. 그들이 제기하는 의혹에 따라 조사활동은 ‘타살’ 혐의에 방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곧 난관에 봉착했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위원회가 조사한 많은 사건은 자살로 종결되었다. 비록 사망의 유형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원인에 있어서는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군복무와의 연관성이 상당부분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사망의 유형으로 전공사상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이더라도 군복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하면 ‘진상규명’을 결정하였고, 이후 전공사상 심의를 다시 진행해 공상처리 할 것을 국방부에 권고했다. 문제는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진정인이 자식의 사망을 ‘자살’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헌병대 수사를 믿을 수 없어 또다시 국가에 호소하며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유가족에게 다시 자살을 인정하도록 하는 기막힌 상황이 펼쳐졌다. 곳곳에서 고성이 오갔다. 조사관 중에는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도 생겼다. 유가족 몇몇은 조사결과를 부정하며 위원회 입구에 자리를 깔고 농성에 들어갔다. 어려웠다. 피해자와의 소통은 서로 다른 이해와 요구로 접점을 찾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위원회 사건 중 일부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건은 진정인과 소통하여 조사를 종결하고 잘 마무리되었다. 지금도 역시 피해자와 더불어 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때 경험한 피해자와의 관계는 나에게 많은 배움이 되었다. 피해자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며,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피해자성이나 피해자다움에 갇혀있는 것은 피해자가 아니라 바라보는 자들의 편견이라는 것을, 그리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는 존재여야 한다. 지금 이용수 할머니를 둘러싼 위안부 운동 관련 논란을 보며 그 시절 ‘무당’이 되어 피해자를 만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서로 다른 이해와 요구를 가지고 이어온 30년을 부정하는 현실에 마음 무거운 요즘이다. 코로나로 어려운 이때 함께 뭇매를 맞으며 또 한 고개를 넘는다.
2020-05-28 | hrights | 조회: 106 | 추천: 4
이윤/ 경찰관  93년 흥행에 성공한 ‘투캅스’라는 영화를 보면 ‘취조실’에서 피의자를 신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안성기 배우가 연기한 조형사는 자해를 했던 피의자를 앞에 놓고 갑자기 타자기에 자신의 머리를 찧어댄다. 이마에 피를 묻힌 채로 ‘아~~ 이자식이 경찰을 때린다!’라고 소리친 후 취조실 벽에 스스로 몸을 부딪치며 계속 ‘으아아~’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구른다. 피의자는 왜 그러시냐며 어쩔 줄 모른다. 결국 조형사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해결한다.  예전에 경찰을 다룬 한국 영화들은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아 현실감이 부족했다. 위 장면의 취조실은 현실 경찰서에는 없는 것이었다. 웃자고 만든 영화를 다큐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타당도가 부족한 장면들은 감상을 위한 몰입을 방해했다. 그 와중에도 실재하지 않는 그 취조실이 나에게는 참으로 부러웠다. ‘우리 경찰서에도 저런 조사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90년대 중반 경찰서에는 조사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없었다. 30명이 넘는 수사관들이 함께 사용하는 널찍한 조사계나 형사계, 또는 5~6명이 사용하는 강력반 사무실에서, 평소 사무용으로 사용하는 책상 앞에 피의자를 앉히고 조사를 했다. 내가 근무한 조사계 사무실은 명절 전날의 재래시장처럼 늘 시끌시끌했고, 베테랑 수사관 분들의 구형 크로바 타자기 소리가 총성처럼 귀를 때리던 곳이었다. 수사관과 조사받는 사람(고소인/피고소인 불문) 간에 난타 공연하듯이 책상을 치며 고성이 오갔다. 큰소리가 아니면 서로 대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사람이 많은 만큼 꾸리꾸리한 냄새는 코를 괴롭혔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던 94년 여름을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 버티면서 땀에 젖은 타자기 자판을 두드려야했다.  고통 받는 나의 오감에 연민을 느끼며 투캅스처럼 타자기를 이용해서라도 그 곳을 피하고 싶었지만, 내 타자기는 사비로 구입한 전동타자기여서 아깝기도 하고 피도 잘 안날 것 같아서 차마 실행을 못했다. 때로 내 앞에 앉은 간통사건 피의자와 민망한 문답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는 신용카드 대금을 못 갚아서 고소된 젊은 여성이 조사를 받기도 하는 등 피조사자 간 비밀도 유지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이런 환경에서 조사받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좀 쾌적하고, 조용하며, 비밀도 유지되는 조사실이 있으면 좋을 텐데...  나의 기도가 통했는지 2006년 전국 경찰관서에 녹음과 녹화(무려 디지털 방식)가 가능한 ‘진술녹화실’이 설치되었다. 녹화가 가능하므로 수사관이 타자기에 자기 머리를 찧어대면 당연히 나중에 탄로가 나고, 폭행, 폭언, 협박, 회유도 어려우며, 조용하고 차분한 대화 속에 상대의 표정과 행동을 관찰하면서 전략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진술녹화실은 피조사자가 거짓으로 수사관에게 맞았다고 하거나, 하지도 않은 욕을 들었다고 생떼 쓰는 것으로부터 수사관을 보호할 수도 있다. 당시에 직접 수사하는 부서에 근무하지 않았던 나는 그런 멋진 조사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수사관들이 부러웠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진술녹화실은 수사관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어서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검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만 좀 이상한 성향인건가? 혼란스러웠다.  2009년 수사관들에게 왜 진술녹화실 사용을 꺼려하는지 설문조사를 해 보았는데, 세 번째로 많은 응답이 ‘참여인 대동 등 준비절차가 번거롭다’였다.(첫 번째는 ‘수사관의 언행이 부자연스러워진다’였다) 진술녹화실에서도 피의자를 신문할 때에는 담당 수사관 외에 다른 수사관이 참여자로서 입회해야 한다. 수사관들은 각자 자신의 사건을 수사하느라 바쁜데, 자기 사건을 놓아두고 녹화실에 참여하고 있으면 그 시간 동안 고스란히 일이 쌓이게 된다. 그래서 차마 내 사건 피의자 신문하는데 참여해 달라고 부탁하기가 매우 어렵다. 서로 품앗이를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녹화실 사용 시점에 참여자에게 다른 일이 없을 때만 가능하다. 참여자를 구하기 어려우니 진술녹화실 사용을 멀리하게 된다.  형사소송법은 제243조에서 피의자 신문 시 담당 수사관 외의 사법경찰관리가 반드시 참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신문 과정에 피의자 진술의 임의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신문하는 장소에 변호인도 아니고 다른 수사관이 참여한다고 해서 임의성이 얼마나 많이 확보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애초 이 조항에서 참여자의 역할은 기록관 내지 수사보조자일 뿐이라는 연구도 있다.  설혹 이로 인해 임의성이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녹화장치에 의한 객관적 감시가 다른 수사관의 참여보다는 훨씬 임의성 보장에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진술녹화실 내 피의자 신문에 대해서는 참여규정의 예외를 둠으로써 되도록 많은 수사관으로 하여금 진술녹화실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피의자 인권을 더욱 보장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조서에는 담기지 않는 진술의 뉘앙스와 분위기, 진술의 세부사항, 수사관과 피의자의 태도 및 표정/말투까지도 녹화기기는 온전히 담아낼 수 있기 때문에 진술녹화실 사용이 많을수록 피의자 인권은 더 많이 보호받게 될 것이다.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중요한 장치인 진술녹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형사소송법상 피의자 신문 시 참여규정을 삭제하거나, 예외규정을 두거나, 참여가 의무로 되어 있는 조항을 ‘참여하게 할 수 있다’는 재량조항으로 변경하는 법률 개정작업이 필요하다.
2020-05-20 | hrights | 조회: 178 | 추천: 1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드디어 지역화폐가 호적에 올랐다. 그동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같았던 지역화폐가 지난 5월 1일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국가 차원의 시민권을 획득하게 됐다.  다소 호들갑스럽게 지역사랑상품권 법률안 통과를 경축하는 이유는, 지난 2~3년여 사이 지역사랑상품권이 물밀듯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들에 대응하는 법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지역사랑상품권 관련 법률안은 사실 일찌감치 만들어졌지만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한 채 방치됐었다. 일 안하는 국회의 정석을 구현한 20대 국회의 사정을 떠올려보면 그럴 만도 했지만 아쉬움이 컸었다.  그런데 갑자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전격적으로 통과된 배경에는 코로나19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이 있었다.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수단 중 하나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이 검토되면서 시행을 앞두고 관련 법 제정의 필요성이 역시 긴급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국회도 일을 할 수 있다! 지자체의 자율 강조한 제정 의미  법률안 원안의 제안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 상권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사랑상품권을 조례에 근거해 발행․유통하여 지역 내 영세․중소상공인의 소득이 증가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하고 있음’으로 명기하며 지역사랑상품권의 경제 활성화 효과를 지목했다.  이어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상품권 사업은 법률의 근거 없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따라 운영되고 있어 상품권 발행, 유통에 대한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바, 상품권을 불법으로 환전(일명 상품권 깡)하거나 무리한 상품권 유통 활성화 정책으로 인해 상품권을 지방공무원 보수로 지급하는 불법행위가 나타나는 등 명확한 법적 근거 및 체계적, 제도적 지원의 부족으로 인해 지역사랑상품권 이용을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존재함’이라고 지적했다.  지역사랑상품권이 지자체마다 유행처럼 퍼져나가며 특히 언론이 문제로 지적했던 ‘깡’ 행위에 대한 제재를 제정목적에 명확히 명시한 것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의 부정유통은 대형마트, 대기업프랜차이즈점 등 지역 내 소비로 생겨난 부가 외부로 빠져가는 통로에서는 쓰이지 못하게 한 대신, 골목가게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한 소비자 인센티브로 부당 이득을 취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지역사랑상품권을 환금할 수 있는 가맹점주가 친인척을 동원해 물건을 판매하지 않고 바로 환금을 한 후 차익을 나눠 갖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나아가 사업자등록만 한 페이퍼 컴퍼니가 가맹점으로 신청해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깡 행위를 하는 것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마침 과태료 2천만 원이라는 명확한 제재가 법률에 명시됐고,(위반행위 조사 거부, 방해 또는 기피도 500만 원 이하 과태료) 한국 조폐공사의 상품권 관리 프로그램이 구축됨에 따라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 하나가 치워진 셈이다. 앞으로 깡 행위의 유혹거리를 던져준 과다한 인센티브와 범위를 잘 조절한다면 부정유통은 해소될 것이다.  지역상품권이냐 지역화폐냐를 놓고 벌어진 명칭 논란도 해소가 됐다. 법률 제2조(정의) 제1항은 ‘지역사랑상품권이란 지역상품권, 지역화폐 등 그 명칭 또는 형태와 관계없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일정한 금액이나 물품 또는 용역의 수량을 기재(전자적 또는 자기적 방법에 의한 기록을 포함한다)하여 증표를 발행, 판매하고, … 물품 또는 용역을 제공받을 수 있는 유가증권, 선불전자지급수단, 선불카드를 말한다’라고 규정했다. 명칭은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이제부터 이 글에서는 지역화폐라고 기술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역화폐 운영의 ‘주체’를 명확히 한 점이다.  법률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발행하는 상품권의 발행, 유통 등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규정하되 그 운영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등에 위임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사랑상품권의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임’을 천명했다.  법률을 정해 지역화폐의 존립 근거를 마련하고 유통질서 교란을 막을 방도를 구축한 뒤, 세부 운영은 지방자치단체에 일임한다는 뜻이다. 본질을 잃는 순간 사라진다  개인적으로 법률의 제안이유 마지막 문장에서 감동이 밀려왔다. 그동안 마치 통화 질서를 혼란케 할 불령선인처럼 취급받기도 한 지역화폐가 당당하게 양지로 나온 것을 넘어 다가올 자치분권시대에 조응하는 자율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내일’(Demain, Tomorrow, 2015)이라는 영화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대안을 모색하는 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영화로 알려졌다.(유명한 사람 많이 나온다. 네이버 영화 광고문구가 ‘슬기로운 지구시민을 위한 솔루션’이다^^)  영화에서는 버려진 땅에 농사를 짓는 디트로이트 시민들의 아이디어, 화석연료 없이 전기를 생산하는 코펜하겐의 혁신, 쓰레기 제로에 도전하는 샌프란시스코의 환경 정책, 시민참여로 빈곤을 퇴치한 인도 쿠탐바캄의 기적, 행복한 어른을 키워내는 핀란드식 교육 철학 등 인류가 직면한 농업·에너지·경제·민주주의·교육 문제에 대해 유쾌한 해답을 만날 수 있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몇 번을 볼 때마다 자극을 받는다. 같은 이슈를 다른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접근하는지 영감이 가득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는 유럽 각지의 지역화폐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영화는 지역화폐를 단일재배를 통해 무너지는 생태계와 접목해 비교한다. 단일재배가 병과 화재에 더 취약하고 그로 인해 생태계 전체에 교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단일화폐 역시 역사적으로 수많은 통화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당시 유럽 각 국가가 입은 타격은 심대했고, 이후 유럽연합 차원에서 지역화폐 도입을 정책적으로 지원했다. 생태계의 종 다양성이 중요한 만큼 통화 역시 단일화폐를 보완하는 지역화폐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영화에서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은 스위스의 유명한 지역화폐 ‘위어’(WIR) 운영자의 설명이었다. 지역화폐가 단일 법정화폐의 대안이 되면 장점을 잃게 되고 ‘같은 병’에 걸린다는 지적이다. 대체되는 순간 구체제가 되고 본질을 잃으면 결국 사라진다. 만일이라는 가정이 달린 전제이지만 패권적 관점에서 지역화폐를 바라보는 순간에도 비슷하게 적용될 결과일 것이다. 사진 출처 - 영화 '내일' 포스터 지역화폐 발전의 3가지 조건  우리나라의 지자체 주도 지역화폐는 최근 코로나19 정국을 맞아 확산의 바람을 더 세게 타고 있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과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모두 지급 형태 가운데 하나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지역화폐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빠른 확산도 좋지만 동시에 이런 저런 우려를 낳는다. 속도도 좋지만 방향을 잃는 것은 아닌지 수시로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름 정리해본 3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ㅇ [지역성] 지역화폐(Local Currency)는 해당 지역 또는 공동체의 특성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ㅇ [거버넌스] 지역화폐의 이해관계자들이 지역화폐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ㅇ [지속가능성] 지역화폐를 이용하는 참여자들이 지역화폐의 의미를 잘 이해하며 사용해야 한다.  먼저 ‘지역성’은 지역화폐의 도입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지역 내 소비의 부가 역외로 유출하는 것을 막고, 그렇게 남게 된 소비의 부가 지역 내에서 균형 있게 배분되는 순환경제를 이루기 위한 것이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도입한 지역화폐의 최고 목적이다. 때문에 무엇보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모델이 적립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시흥시는 대기업 편의점이 시흥화폐 시루의 대상 가맹점이 아니다. 도농복합도시의 특성상 편의점 수만큼 동네 슈퍼마켓이 많기 때문이다. 또 주유소도 대상이 아니다. 서울 및 수도권 인근도시로 출퇴근하는 시민이 많은 관계로 대기업 계열사이기도 한 주유소로 시루 소비가 쏠릴 것이란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지역과 공동체에 맞는 모델, 부합하는 가맹점 기준은 지역화폐 운영의 핵심이며 지역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지자체의 지역화폐 실적경쟁이 이 원칙을 훼손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지역화폐의 유통 규모보다 실제 지역화폐 결제가 이뤄진 가맹점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두 번째 ‘거버넌스’는 첫 번째 조건을 뒷받침하는 기본 전제이다. 시흥에서 편의점과 주유소가 시루 가맹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 결정은 시루의 이해관계자인 소비자와 가맹점, 행정이 머리를 모아 결정된 것이다. 시흥화폐 시루 운영의 최고 심의, 의결기구인 ‘시흥화폐 발행위원회’는 민간의 위촉위원 19명, 시장 포함 행정의 당연직 위원 10명으로 구성된 민관협의체이다. 시루와 관련한 주요 결정은 발행위에서 이뤄지며 분기 1회 전체회의, 월 1회 분과(공동체분과) 회의를  가진다.  만일 행정이 지역화폐 운영에 관한 전권을 가지고 있다면 다양한 정치적 풍향에 휩쓸려 흔들리다 결국 부러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역화폐 정책이 시장·군수가 바뀌자 바로 ‘일몰사업’이 된 경우가 부지기수다.(그러다 최근 다시 도입 한 지자체도 있다)  세 번째 ‘지속가능성’은 지역화폐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최근의 지역화폐 붐은 지역경제 활성화에만 집중적인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런데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지역에 돈이 돌게 하는 이유가 뭘까?  곳간에서 인심 나듯 지역경제가 살면 동네 이웃 간 웃음꽃이 핀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팔을 걷게 된다. 사회적자본이 구축되고 확산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역화폐의 본질이다.  그런데 속도와 성과를 좇다보니 시민들이 높은 인센티브 혜택의 소비쿠폰 정도로 지역화폐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봐야 할 때다. 너무 늦기 전에, 나와 이웃이 모두 웃는 협력적 소비, 공생과 공존을 위한 도구로 지역화폐를 자리매김 시켜야 한다.  현재 약 190여개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를 도입하거나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과연 3년 뒤에는 얼마나 활성화되고 있는지 지켜볼 일이다. 기본적인 전제조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한 번 휩쓸고 지나간 유행이 될 수도 있다. 지역의 자율성은 뒤로 한 채, 패권적 관점에서 휘두르려 한다면 역효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성과의 압박에서 벗어나 본질을 잊지 않고 꾸준히 기반을 닦는다면 무엇보다 든든한 공동체의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속도보다 방향이다.
2020-05-14 | hrights | 조회: 67 | 추천: 1
권용선/ 수유너머104 연구원  감염병 시대. 비대면적 관계의 일상화는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외부활동이 줄어들고, 가계 수입이 감소하고, 학습권이 위축되고, 친밀감에 기반한 사회적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흔쾌히 불편과 고통을 감수한다. 그 어떤 것도 생명 자체보다 우선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 사태 이전의 삶으로 온전히 되돌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자본과 정치권력의 핵심들은 비용과 효율성의 차원에서 이미 시민들의 삶을 새롭게 기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때마침 교육과 경제, 문화 영역의 상당 부분이 온라인 혹은 비대면적 방식으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학습중이다. 특정한 기술과 지식이 주목받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동안, 어떤 일자리는 사라지고 어떤 공간은 폐쇄되고. 사회의 가장 위험한 모서리를 붙잡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소리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디스토피아의 상상력.  하지만 바이러스가 주는 공포와 피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행되는 동안, 작은 기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숨죽여 있던 비인간-생명들의 조용한 활기. 베네치아 수로의 물색이 투명해지자 사라졌던 백조들이 돌아왔고, 누렇고 탁하던 서울의 봄 하늘이 몇 해만에 쨍한 푸른빛으로 선명해졌다. 차량의 통행이 끊긴 로키산맥 근방의 고속도로는 순한 야생동물들의 산책로가 되었고, 사라졌던 곤충과 식물들이 다투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로소 지구가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위성에서 본 베네치아 모습.  2020년 4월13일(위)과 2019년 4월19일(아래). 흰점들이 크고 작은 배들이다. 유럽우주국 제공 사진 출처 - 한겨레  돌아보면, 코로나19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출현하기 전에도 지구는 끊임없이 위험의 징후를 발산하고 있었다. 이상고온현상이 지속되면서 빙하가 녹아내리고, 크고 작은 지진이 지구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생태계의 교란으로 특정 생물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거나 감소하고, 거처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인간들의 생활권역 안으로 드물지 않게 끼어들곤 했다. 보다 쾌적하고 풍요로운 문명의 삶을 향한 욕망이 가속화되면서 생명계 전반의 안정성은 급격히 와해되어갔고, 서식지를 잃고 방황하던 어떤 동물들은 바이러스의 매개체 혹은 숙주가 되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개발과 발전, 이윤과 축적, 과시와 폭력을 둘러싼 욕망을 멈추고 돌아보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지금보다 더 진화된 형태로 우리 앞에 되돌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말해야 할 것은 유연한 사회적 거리두기 혹은 거리두기의 해제 이상의 그 무엇이어야만 하는 건 아닐까. 바이러스의 확산과 감염을 막기 위한 방역,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 사회 경제적 활기를 기대하는 국가적 차원의 기금 분배는 오히려 사태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숙고해야 할 것은 오히려 거리두기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비인간-생명들과 거리두기. 그것들이 본래 자신들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기. 훼손되고 위축된 지구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  이런 점에서 나는 지난 4월 15일의 국회의원 선거가 제법 아쉬웠다. 수구파 정치 세력의 축소는 그 자체로 반길 만한 것이었지만, 거대 여당과 불가피함을 핑계로 출현한 위성정당의 협업은 한동안 국회 안에서 ‘다양한 소수의 목소리’를 독점하거나 은폐할 테니까. 만약, 창당준비에서 멈춰버린 동물당이 실제로 정당 등록을 마치고 선거운동 판에 뛰어들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래서 유럽의 어떤 나라들처럼 의회에 좌석을 차지한다면, 그들이 동물인지감수성을 주장하고 동물인지정책을 만들고 동물권을 입법화한다면, 나아가 동물들에게도 시민권을 주자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정치에 관한 조금은 유쾌하고 발랄한 상상을 시작하게 되지 않았을까. 저 유명한 68혁명의 구호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근본을 재기획할 수 있는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하는 데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점에서 정치란 무한히 뻗어나가는 상상력을 법의 언어로 갈무리하는 능력, 보다 많은 그리고 충분히 다양한 삶들을 함께 살릴 수 있는 상상력의 현행화와 관련된 활동이기 때문이다.
2020-04-29 | hrights | 조회: 101 | 추천: 0
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고희(古稀)를 보낸 지 어언 10년, 올해가 내 팔순(八旬)의 해다. 세월은 참으로 잘도 간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까? 지나간 세월보다 남은 세월이 짧기만 하다. 유종(有終)의 미(美)가 있는 삶을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 자주 반문하곤 한다.  지나온 삶을 과연 후회 없이 살아왔는가? 자문해 보면 후회도 많은 삶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격동의 시대였기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순간들이 많았다. 어찌 보면 기쁘고 즐거움보다, 질곡의 순간들이 더 많았다.  허나 한편으로 궤변도 늘어놓았다. 시대와 조상을 잘못 만나서, 아니 운이 없어서라고 해 보았다. 스스로 게으름을 피우며, 노력도 부족했는데 운 탓이라면, 이는 정도(正道)가 아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에게도 기회와 변화도 있었다. 결국 노력한 만큼 작은 결실을 얻기도 했었다.  해방공간과 6․25 전쟁전후에서, 철부지였던 어린 내가, 맏형의 억울한 죽음을 목도하였었다. 그때 각인되었던 아픔이, 성년이 되어서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조국분단과 과도기에 스물두 살의 장형이 죽임을 당했다. 그 후 60년 만에야 진상규명되고 명예도 회복되었다. 참으로 오랜 슬픔에서 기쁨의 순간이었다.  나는 반백년 전, 가면 죽는다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었다.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나도 모른다. 그때 1965년 2월 해외 최초파병은 두려움에 도전이었다. 참전 13개월 동안 생과 사의 기로에서 깊은 상념에 빠지기도 했었다. 허나 그 와중에도 분단국의 평화와 통일을 더욱 갈망하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또한 나는 부역자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신원 조회에 좌절했었고, 둘째 형이 의용군과 국군에 참전해 부상을 입고 상이 제대를 했다. 그 후 형은 세 번의 선거로 인해 집안이 기울어져, 내 진학의 꿈도 접어야만 했었다. 허나 ‘배우고 아는 게 힘이다’에 주경야독으로 학업을 계속했다. 그때 모든 것을 포기할 뻔도 했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았기에, 내 삶에 중요한 순간이기도 했다.  한편 열일곱 살에 청상과부가 되신 양할머니가, 우리 8남매 손 자녀를 마치 산모처럼 척척 받아내고 양육하셨다. 이런 연유로 양할머니는 열녀로, 부모님이 효자효부로, 나는 3남이면서 50년이나 조부모님을 모셔 효열 3대가로 이어졌다. 8남매 중에서 내가 기준과 중심을 잡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집안은 어찌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끔찍한 생각이었다. 아마 풍비박산 집안이 되었을지도 모를 처지였다.  이런 사실이 자화자찬으로 비춰질까, 송구한 마음이다. 한편으로 언제나 자성하고 자책하면서 다짐하였다. 과연 남은 생을 어떻게 마무리를 잘해서 온전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을까! 또한 과오를 뉘우칠 수 있었을까?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길밖에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믿음으로 살아왔던 길이 유일한 방법이 된 것이다.  첫 번째가 부족한 글쓰기다. 초등학교에서 글짓기에 흥미가 있었고, 성년에도 더욱 정진하면서 만학의 꿈을 이어갔다. 가방끈이 짧다는 자괴감도 있었지만, 열심히 노력해 배우고 실천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부족하기만 했기에 욕심도 부렸다. 진력하여 여러 권의 책도 펴냈지만, 역시 부족하기만 하다.  나는 다방면의 글을 쓰고 있다. 다양한 문학의 장르 외에 칼럼도 쓰고, 또한 서예도 연마했다. 여러 작품도 있지만 역시 부족하기만 했다. 글쓰기는 끝없는 퇴고와 연마를 거듭해야 하는데, 게으름과 노력부족으로 미진한 작품을 내고 만다. 그러기에 작품이 완성되면 바로 후회를 하곤 하였다.  내 평생 나에게 제일 크게 다가왔던 과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조국,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하느냐? 하는 무거운 과제였다.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말로만 노래만 하지 말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실천운동에 적극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보다 큰 노력과 실행들이 부족하기만 했다.  그간 실천을 위해 평화통일에 다가가는 여러 단체의 일원이 되고, 간부가 되기도 했다. 분단의 현실, 여기에는 일제에 36년을 지배당하고도 진정 해방이 아닌 분단이, 외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에 우리 8천만 동포들이 분단을 외면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라 잃은 설움에 32세 안중근 의사와 24세 윤봉길 의사가 처자식을 두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정신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윤 의사는 나의 집안 윤문의 형제항렬이기도 하다. 8․15 광복이 분단으로 이어져, 75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갔다. 지구촌에서 가장 오랜 분단국, 언제 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룰지 난망하기만 하다. 허나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을 이겨내야 하는 우리의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의 소원인 평화통일조국을 기필코 이뤄내야 한다. 이는 그 어떤 일보다 절박하다. 나는 그간 통일교육위원으로, 평화연대의 회원간부로, 평화만들기, 희망연대, 통준사의 공동대표로 매진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기만 하다. 아무리 통일을 원하지 않는 동포나 주변 외세가 존재한다 해도, 이를 극복해 내야만 하지 않을까.  지구상에 너무도 오랜 분단조국의 통일을 위해서는, 존경하는 안중근 윤봉길 두 의사와 선현들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다짐한다. 사실 오래전 나는 최초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남루한 후회를 했었다. 분단 조국의 통일도 이루지 못하면서, 남의 나라 통일을 방해하는 용병군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한없는 자괴감을 갖게 되었다.  그 베트남 인민들은 17도선을 평정하여 세계최강대국인 미국을 이겨내고, 당당히 남북베트남 통일을 이뤄냈었다. 진실로 베트남 통일을 부러워하고, 우리가 용병으로 참전해 지은 잘못을 다시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베트남은 이미 남북이 통일되어 날로 발전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당당히 이겨낸, 위대한 민족임을 세계 만방에 보여주어, 한편으로 부럽기만 하다.  나는 통일된 베트남을 몇 차례 다녀오면서, 그들에게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다. 그들은 지나간 원한을 모두 용서한다고 했다. 그들은 당당히 외세인 강대국을 물리치고 세계 만방에 통일된 나라로 발전에 진력하고 자부심도 강했다. 나는 과거 용병으로 참전해 그들에게 아픔과 슬픔을 안겨준 사실에 대해 진정으로 사죄하였다. 그들은 지난 우리의 잘못을 용서를 하고 수교도 이루어졌다. 사진 출처 - tvn "디어마이프렌즈"  필자는 올해로, 팔순을 맞이하면서, 지난 파란만장한 삶을 돌아보았다. 내 스스로는 지난 삶을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하고 싶지만, 허나 부족하고 미진한 일들도 많기만 하다. 그러기에 언제나 과거를 되돌아보며 반성하면서 살아왔다. 비록 나이는 들어가지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행하고 스스로 반성을 하곤 한다.  나는 먼저 가신 안중근, 윤봉길 의사(義士)들처럼 비록 젊지 않은 팔순의 나이에 들었지만, 두 분의 삶을 본받아 살아왔고, 살아가려 다짐해 본다. 앞으로 생애를 ‘마무리 잘하는 삶’으로 정의와 평화통일을 위한 길을 가고자 더욱 진력하련다.  그동안 좌우명으로 삼았던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왔는가? 자문하며 그간 나와 맺은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한다. 한반도에 평화통일은, 우리 8천만 동포들의 꿈이요, 소원이다. 평화통일의 그날까지 최선을 다한 삶을 살고자 재삼 다짐해 본다. * 한국작가회의 소설분과회원. 한국문인협회원. 산영수필문학회장. 서예초대작가. 소설집(못다 핀 꽃) 수필집(도라산의 봄) “고희기념문집” ‘희수 유감’ 등 다수 산영수필문학회 회장역임 근묵회, 구암서문예원장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2020-04-22 | hrights | 조회: 177 | 추천: 2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불길한 사태들이 줄을 잇고 있다. 죽음의 불안과 공포로 유례없는 경제적 재앙을 몰고 온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위성 정당들의 등장으로 조삼모사 국민적 사기행각이 되고 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총선, 첨단 뉴미디어를 악용한 대대적인 성 착취 동영상 n번방 사건 등이 국민 모두의 심정을 한껏 짓밟는다. 일련의 사건들이, 주어진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인격적 감정의 방어선을 여지없이 뚫고 들어온 셈이다.  그 과정에서 신천지 운운하는 30만 명에 달하는 반사회적 · 비상식적인 거대한 종교 집단의 존재가 드러나고, 실제의 성 착취 동영상을 즐기면서 26만 명에 이르는 가학적 정신병적 증상의 이른바 ‘n번방 회원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이들과 함께 묶어 거론할 수는 없지만, 아울러 무엇을 위한 투쟁인지 알 수 없는 국회의원 선거와 후보 공천을 둘러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이랬다저랬다 원칙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전투구의 양상이 특히 제1야당을 중심으로 격화되어 국민의 신성한 정치 참여권인 투표권을 농락하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련의 사태들이 엎친 데 덮치는 식으로 연발한 것이다. 게다가 현직 검찰총장의 장모라는 인물이 수백억의 은행 잔액 증명서를 위조한 행위로 공소시효를 겨우 며칠 앞두고 뒤늦게 기소되었다. 고소에도 불구하고 수개월 동안 전혀 미동도 하지 않다가 검찰은 언론의 강인한 보도에 밀려 뒤늦게 소환 조사하고 울며 겨자 먹듯이 공소시효 만기를 앞두고 막판에 기소했다. 이러한 검찰의 모습은 불과 몇 개월 전 검찰의 수사력을 총동원하다시피 해서 강제 압수수색과 조사로 전국을 들끓게 한 ‘조국 사태’에서의 검찰의 모습과 정면으로 배치되고 중첩됨으로써 비극적인 희극이 되었다. 만약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검찰총장 장모 사태’는 공권력 행사의 자의성과 정당성을 둘러싸고서 사회정치적인 담론을 들끓게 했을 것이다.  그나마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의료인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영웅적인 희생’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모범 운운할 정도로 국민 공동성을 발휘해 대처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조차 여전히 준동하는 바이러스에 대처하느라 전 국민의 일상적인 삶이 전면 중단되다시피해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위안 수준에 그치고 있다.  불안과 공포, 허탈감과 무력감, 원한과 분노, 자탄과 자괴감 등이 뒤범벅되어 집단 전체로 확산하면서 각자의 개성적인 삶을 유지하는 감정의 인격적 방어선이 무너져 내린다. 우리 사회의 하부가 어떤 괴이한 욕망으로 어떻게 조성되어 흘러가고 있었는가, 흔히 하는 말로 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영생 운운하는 생명욕이 종교라는 왜곡된 탈을 쓰고 하부의 집단적 무의식을 파시즘적인 방식으로 암암리에 분출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미성년의 여자아이들을 오히려 선호하면서 악마적으로 돌변한 성욕을 채우기 위한 집단적인 범죄가 자행되고 있었다. 최첨단의 복합동영상 기술 매체가 주는 편의를 십분 활용하여 공갈과 협박의 폭력을 통해 이루어진 성 착취를 수십 만의 ‘멀쩡한’ 인간들이 경쟁하듯 흥분의 먹이로 삼았던 게다. 이러한 사회 하부의 혐오스럽기 짝이 없는 집단 무의식의 발호를 거울삼아 사회의 최상부를 점하고 있는 정치 권력자들의 집단 무의식의 모습이 무슨 유령처럼 비치기조차 한다면, 사회 전체가 비극적인 운명을 실현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2.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가? 하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지만, 그런 인간들이 수십 만에 이른다는 사실은 인간 존재의 근본을 의심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도록 하고, 나 자신 역시 그런 근본에서 출발한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무력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저 인간은 혹시 코로나 감염자가 아닐까?’, ‘저 인간은 혹시 신천지 교도가 아닐까?’, ‘저 인간은 혹시 n번방을 드나드는 자가 아닐까?’, ‘저 인간은 혹시 인간이 아닌 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역병 바이러스처럼 암암리에 퍼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마침내 ‘나 역시 얼마든지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도 저 인간일 수 있다.’ 하는 생각에 이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저들과 다르다고 분명하게 확신할 수 없게 된다. 나도 얼마든지 악하거나, 악한 쪽으로 욕망을 몰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숨겨져 있고 노골적으로 드러나 실현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불미스럽기 짝이 없는 악의 폭력이 집단을 통해 대대적으로 실현되면, 그 기화로 숨겨져 있던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나도 저들처럼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예감에 불길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저들, 아니 저것들을 불길하기 짝이 없는 놈들로 판단하고 평가하게 된다. 아울러 저놈들, 저것들의 불길함이 나에게 옮겨붙으면 나 역시 아예 불길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이러한 생각을 바이러스에 빗대게 된다. 바이러스는 비록 자연이긴 하나 나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악의 폭력을 나에게 행사한다. 정말이지 불길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겨붙도록 하는 수단이 된다. 불길한 존재인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 수단인 나도 덩달아 불길한 존재가 된다. 우연의 주사위가 짝을 맞추게 되면 나도 자칫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 나도 언제든지 남에게 불길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 속에 불길함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소질이 있음을 뜻한다. 더군다나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도 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도 나 자신도 내가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수 있다. 기침과 발열과 숨 가쁨의 증상을 보이면, 내 속에 숨겨져 있고 드러나서는 안 되는 바이러스가 노골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길함이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자연적인 폭력에 전염되면 안 되듯이, 사회적인 악의 인위적인 폭력에 전염되면 안 된다. 바이러스에 전염되지 않으려면 전염된 자를 나로부터 격리해야 한다. 그래서 ‘저 사람이 전염된 자다. 저 사람을 격리해야 한다.’라고 크게 외쳐야 한다. 그리하여 전염된 사람을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격리하고 최대한 힘을 모아 치료해야 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와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가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 어느 곳에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발생하면 그곳을 폐쇄하고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최대한 샅샅이 뒤져 접촉자들을 검진하고, 결과에 따라 격리조치와 치료를 해 나간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두에 서서 총지휘를 하다시피 하면서 말 그대로 발본색원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어쨌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단 한 명에게라도 들러붙지 못하도록 심혈을 기울인다. 국민 대부분은 이러한 국가의 노력에 최대한 협조함으로써 바이러스가 가하는 자연적인 악의 폭력을 근절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이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방역 및 의료 체계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사재기 등이 전혀 없는 합리적인 국민으로 칭송을 얻고 있다.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n번방 성 착취 사건이 드러났다. 그러자 청와대 민원 게시판에 이른바 ‘박사방’의 운영자와 참여자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신상 공개를 요청하는 500만 명에 달하는 민원이 순식간에 쇄도했다. 성인에 속한 약 1/6의 사람들이 청원을 했으니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주모자뿐만 아니라 26만 명에 달하는 유료 이용자들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청원이 20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많은 국민이 이번 성 착취 동영상의 불법적인 촬영과 유포의 범죄 유형이 악질적이고 유료 가입자들의 의사가 적극적이라고 판단했고 그만큼 강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런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통령, 주무장관, 국회의원들, 여성단체들, 관련 범죄 분석 전문가들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관용의 엄정한 조사와 처벌을 요구했고, 경찰과 검찰은 이에 즉각 호응하고 나섰다. ‘조주빈’이라는 주모자의 이름과 얼굴 및 신상이 공개되었고, 검찰에 의해 12,000쪽에 달하는 수사기록물이 즉각적인 분석에 들어갔다. 사진 출처 - freepik 3.  성 문제에 이렇게 ‘폭넓게, 아주 민감하게, 모두가’ 반응한 적은 없었다. 한편으로 이러한 반응 자체가 나로서는 충격이다. 충격적이라고 해서 잘못된 측면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 현상에 뭔가 독특한 원리와 그에 따른 실제가 작동하는 것 아닐까, 하는 묘한 불안을 수반한 궁금함이 크게 앞선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한 자연의 폭력 사태와 n번방 성 착취 동영상 촬영과 유포에 의한 인위적인 폭력 사태는 뉴스의 머리를 앞다투다시피 하면서 심지어 며칠 남지 않은 총선에 관련한 소식들을 뒤로 밀어내고 있다. 앞의 사태는 생명에 대한 자연의 폭력이고, 뒤의 사태는 성에 대한 인위의 폭력이다. 생명과 성은 워낙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명이 생겨날 수 없고, 생명을 통하지 않고서는 성이 성립할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의 위협에 대한 반응은 성의 위협에 대한 반응과 연결된다. 생명을 천시하면 성도 천시된다. 전쟁이 일어나 생명을 한갓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게 되면, 성 역시 한갓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평화와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생명이 고급스럽게 한껏 발휘되면, 그에 따라 성도 고급스럽다 못해 신성해진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마침 생명이 절대적으로 소중하다는 인식이 전국적인 수준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확산하는 와중에, 공갈과 협박 및 회유를 통해 강압적으로 성을 험악하게 노출하도록 하는 자들과 그러한 노출이 폭력적인 착취에 의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폭력적인 착취에 의한 것이기에 오히려 탐닉하는 자들이 집단적으로 성을 천박한 수준으로 끌어내려 파괴한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명과 성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본능적일 정도로 암암리에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누구 할 것 없이 생명이 절대적으로 소중하다는 인식을 실감하는 상황에서 성을 크게 집단으로 전락시킨 자들을 적발하게 된 것이다. 이에 그들이 자행한 성폭력의 악행이 상대적으로 더욱 심중하게 다가와 견딜 수 없는 분노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생명에 빗댄 성 착취의 폭력 사태에 대한 이러한 대대적인 반응을 보면서 왠지 불길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전락해버린 성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불안한 절망 때문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또 그런 불가능성이 첨단의 자본주의적인 기술 문명에 따른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어차피 자본주의 문명을 벗어나 살 수 없는 나로서 그러한 공모에 미필적으로 이미 가담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일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범죄자들을 인지하여 조사하고 재판에 넘겨 처벌을 책임진 공권력을 담당한 자들을 믿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일거하여 직접 범죄자들을 법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까지 처벌하자고 하는 것이,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자들에 의해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그 감염된 자들을 철저히 격리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그들뿐만 아니라 바이러스와 무관한 자임을 스스로 확신하고자 하듯이, 그들 자신에게 숨겨져 있고 드러나서는 안 되는 뭔가가 현실화되지 못하도록 하려는 무의식적인 심사가 강화되면서 분노한 나머지 그렇게 대대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은 아닐까?
2020-04-01 | hrights | 조회: 173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