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광조(CBS PD),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정재원(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윤영전/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세상을 한 80여년 살아가면서, 많은 인연과의 아름다운 삶을 이어왔다고 자부하며 살아가고 있는 필자다. 그러기에 지난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과 인연이 되어, 자신의 사고를 높이고 자연스럽게 지식까지 습득하면서 공유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많은 인연들과의 삶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만남의 시간을 자주 갖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서로가 인연의 끝자락에 아쉬워하며 부족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즐거움을 갖기도 하고, 여러 가지 사연들을 공유하며, 보다 나은 삶을 살아오기도 하였다.  어느 날이었다. 인연으로 한 세대를 훌쩍 넘겨버린 지 오랜 세월인데, 특별히 만남을 청해왔다. 몇 달에 한번 보는 형편이기에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갔다. 물론 그가 어떤 문제로 나를 찾는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었다. 먼저, 그를 잠깐 소개한다. 우리가 불혹의 나이 언저리에 이르렀을 때에 만학도의 향학열이 높았던 시절이었다. 대학원 경영연수과정에 동문으로 함께하여 오랫동안 주기적으로 모임을 가져왔었기에 상당히 절친한 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류 박사는 자신의 전공이자 전문적 연구학문인 최면심리학의 박사이며 심리학연구소장으로 거침없는 연구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보기드문 유명 학자였다.  그는, 한 5년 전의 만남에서 심리 최면연구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서로가 소통하기 쉬운 시문학에도 접근하면서 이미 유명인사와의 교류도 넓히며 벌써 시집을 상재했다고 하였다.  류 박사는 필자에게 시집 앞면에 멋들어진 축하 서예를 부탁하였고 나는 흔쾌히 붓을 들어 “好書文樂. 人生幸福” ‘祝, 류한평 박사 시집, 인생을 행복하게’  出刊記念 書藝 1점을 써 주었다. 한국최면심리학선구자, 류 박사가 서정 잠언 힐링 시집을 낸다니! 그는 감성을 자극해 마음을 즐겁게! 심신공통을 치유생활에 활력을! 주안점으로 한 내용으로, 얼마 후에 좋은 시들을 게재한 시집을 출간하였다. 사진 출처 - 대한심리연구소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흘러 바로 금년 중반에 류 박사는 나에게 깊이 상의할 일이 있다면서 서초구 반포성당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무슨 일일까? 궁금해 하면서 약속장소에 갔다. 다름 아닌 “고뇌의 결단” 이라며 자신이 심리학 최면술의 대가라고들 하지만, 가톨릭에 영세를 받기로 했다면서 나에게 代者를 서 달라고 했다.  나는 선뜻 “안 그래도 류 박사가 신령 최면 세계에서 신의 존재에 수긍이 어디까지인가 궁금했었는데, 아주 반가운 소식이라”고 대 환영이라 했다. 그리고 보름 후에 성당 영세 미사에서, 그의 등에 손을 얹으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제자가 되기를 간구했었다. 류 박사도 만족해하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함께 느끼는 순간이었다.  올 가을로 접어든 어느 날, 평소 몸에 약간의 질환이 있는 것 같아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에 걱정이었다. 물론 옛 나이로 치면 여든을 몇 년 지났으니 건강이 젊은 날과는 비교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자정능력에 둘째가라면 섭섭해 할 심리학 박사로 최면의 대가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걱정이었다. 얼마 후 들려온 소식은 병원에 입원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소식을 접해 걱정이었다. 아들과의 어려운 통화를 하면서 병세를 물었다. 현재 의사의 소견은 면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금지시키고 있다는 엄격한 말을 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그러기를 1-2개월이 되었다. 다시 병세를 물었지만 호전이 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단 한번, 잠깐이라도 병문안을 가겠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도 제한된다고 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난 인연인데 단 한번 이라도 만날 수 없다니! 야속하기만 했다. 점점 병세가 악화되는 류 박사를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는 충남 청양 출신으로 일본 최면과학원을 졸업했고 국제공인의학 최면치료사 자격증을 따고 명예 교육학 박사도 받았다. 미국, 일본 최면대학 객원교수로 활약하며 당신의 전공인 최면 심리관련에 그 누구보다도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 류 박사는 자기최면, 타인최면, 건강최면 등 21권의 최면 정신건강에 대한 저서가 있다. 국내 다수의 대학과 정부기관, 주요 약품제약회사, 중앙공무원 등 수많은 강의와 실험을 직접 보여주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심리학의 최상지식을 갖고 있는 보기 드문 학자이기도 하다.  심지어 지난날 고인이 되기 전에 육 여사의 치료와 생전 윤보선 전 대통령도 직접 방문해 심리 최면술로 치료를 한 그였다. 국내외는 물론 해외에도 출강하고 국내외 방송에도 자주 출연해 당신의 전문인 최면 심리치료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다. 당신은 자신이 갖고 있는 특수하고 실재적인 전문 최면을 가능한 보다 많이 시술하였다. 나는 그만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연구로, 많은 심리치료가 이루어져 환자들이 즐거움을 갖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들에게서 온 연락은 결국 회생하시지 못하고 운명했다는 비보였다. 나는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지막 단 한번 이라도 만나야 했는데, 그만 그 많은 인연들과 영원히 이별이라니 너무도 아픈 마음이었다. 우리 동기회서 조화를 보내고 빈소를 찾았다.  유족의 슬픔이 얼마나 클까? 아무나 하지 못한 특수한 심령 최면술에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위안을 받았는데, 당신 본인이 이런 비통을 어찌 감당하란 말인가? 통탄뿐이다. 영안실 영정에 온화하고 다정한 류 박사의 모습이 너무도 평안해 보였다. 부디 저승에서도 많은 영혼들에 평안을 돌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류 박사는 평소 나의 분단조국과 평화통일에 대한 운동을 격려해 주었었다. 나는 그 때마다 “전쟁광들 모두심리치료로 허물어 버리면 좋겠다”며 반 농담도 했었다, 류 박사의 아래 시를 상기한다.  “민족이 함께 사는 길” 남북 분단 대치 어언 70년, 왜 단군의 한 핏줄끼리 갈라져서 적대시 하고 싸워야 하나? 남북이 충돌하여 핵전쟁이 나면, 모두 몰살인데, 더러 살아남는다 해도 문명은 파괴되고, 자연은 방사능에 오염. 생존하기 힘들 텐데, 전쟁에서 이긴들 무슨 소용. 우리 민족이 함께 사는 길은 통일뿐. 통일로 어느 한쪽이 손해 본다 해도, 전쟁으로 다 처참해 지는 것 보다 백번 낫지 않을까? 통일의 기본 요건은 먼저 상대 존중 포용 교류, 친화와 신뢰를 구축 하는 일, 남북통일, 적을 동지로 만들 수 있는 지혜와 신념과 용기를 가진 통치자가 나오면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류 박사님 부디 영면하소서! *한국작가회의, 소설회원. 한국문인협회 수필회원. 한국서예 전통서예 통일비림 초대작가.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통일을준비하는사람들 공동대표.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근묵회장.
2018-12-05 | hrights | 조회: 41 | 추천: 0
김학성/ 전주교도소 의무관  오늘날 교정시설은 교정이념에 따라 수형자의 교정교화와 성공적 재사회화라는 막중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대규모 시설에의 과밀수용 등 교정교화를 위한 기본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또한 교정시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혐오시설 수준에 놓여 있으며, 출소자들에 대한 인식 또한 매우 부정적이다.  국민들은 각종 강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범죄행위의 잔인함과 흉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범인들의 빠른 검거와 강력한 처벌을 기대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교정시설에 수용된 이후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또 소위 교정교화를 위해서 어떠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들이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와 어떠한 과정을 겪으면서 재적응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이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범법행위를 반복하며 소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상상할 수 없는 피해와 사회적 폐해를 생각한다면, 이들의 사회 재적응 과정에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사회공동체적 노력은 필수적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수형자 교정교화와 사회적응, 교정시설을 둘러싼 우리사회 인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수형자 교정교화는 교정시설에만 의존하여 이루어질 수 없다. 교정시설 내 대다수 수용자들은 우리사회로부터 낙인 받고 영구히 격리되어야 할 전과자가 아니라, 언젠가는 건전한 시민사회 일원으로 복귀해야 하는 우리 이웃 주민이다. 이들의 범죄 성향 여부를 떠나 이들이 정작 사회로 돌아가 지역사회에 재적응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그 누구도 범죄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만성적 실업과 심화된 사회양극화의 현실 속에 일반 국민들조차 감내하기 어려운 삶의 현장에서, 이들이 출소 후 지역사회에 재적응하기까지 겪게 되는 수많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은 바로 이웃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이해, 도움에 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교정시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요인에서이다.  첫째,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과거 일제시대 독립군이나 권위주의 시대의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투옥으로 인한 부정적 경험들이 교정시설에 투영되어 있다. 교정교화의 상징이 되어야 할 교정시설이 고문이나 인권탄압이 자행되는 인권침해 시설로 인식되어 있으며 심지어 합리적 여론 형성의 모범이 되어야 할 언론매체에서조차 감옥이나 간수라는 용어가 사라지지 않는 실정이다.  둘째, 교정시설은 그 특성상 사건 사고 위주의 언론보도에 매우 취약한 시설에 속한다. 교정교화를 위한 현실적 토대도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보도내용의 상당수는 도주, 사망사고 내지 인권침해 사례 등 사건, 사고 위주가 주를 이루어 왔다. 이에 따른 교도관의 책임과 자질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고생하는 대다수 교도관과는 상관없이 교정시설이 마치 인권탄압이나 부정비리의 온상으로 인식되어, 결과적으로는 교정행정이 더욱 위축되는 상황이 발생되어 왔다.  셋째, 교정시설 개선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과 수형자들의 실생활에 기반 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인권정책, 관련 정책 당국자들의 책임의식 부재이다. 최근 인권의식의 향상에 따라 교정시설 내 수용자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상당히 높아져 있으면서도, 정작 인권의 근간이 되는 낙후된 시설 개선과 과밀수용의 해결 등 수형자 기본생활권 확립에는 무관심하다. 대규모 시설에의 과밀수용은 그 자체로 수형자간 불필요한 갈등을 증가시켜 정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파괴할 뿐 아니라 교정교화의 기본이 되는 분류처우를 어렵게 하는 등 인권처우와 교정교화의 존립근거를 흔드는 독소적 요소이다. 사실상 수형자 인권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은 수형생활의 기본권 보장의 근간이 되는 교정시설의 현대화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정시설의 현대화를 가로막는 가장 무서운 장벽은 교정시설을 혐오시설로 여겨 자신들의 주거지역내 시설설립을 적극 반대하는 지역사회주민들의 인식이다. 또한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형자들의 생활상과 특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현장 교도관들의 합리적 의견이 교정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  국민이 교정시설을 혐오시설, 인권탄압과 부정비리의 온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 우리 사회가 수형자의 교정교화와 지역사회적응으로부터 멀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아직도 인권탄압의 주체를 교도관으로 잘못 인식시키고 있는 일부 인권단체나 언론매체들은 합리적인 여론 형성의 책임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수형자들의 특성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교도관들의 의견이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현실에 맞는 교정정책이 실현되어야 한다. 최근 일부 언론매체들의 교정시설에 대한 합리적 성찰을 위한 노력들은 시민들의 교정시설 인식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수형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사회공동체적 노력은 수용자 교정교화와 사회 재적응에 있어 핵심적인 요인이다. 교정교화의 궁극적 완성은 교정시설에서가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정시설은 혐오시설이 아니라 시민의 행복한 삶을 지켜가기 위한 사회안전망으로써, 시민사회의 적극적 관심과 연계 속에 이들의 교정교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중요한 시설로 인식이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2018-11-27 | hrights | 조회: 76 | 추천: 6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아홉 달 동안 제주에 살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지금까지 여행 와서 보던 제주와 살고 있는 제주는 완전 별개라는 것이다. 여행 와서 보고 싶은 모습만 보던 제주와 현재 살고 있는 제주는 전혀 다른 층위에 있다. 내가 이곳에서 말하는 제주는 뉴스에 나오는 제주와도, 여행지 제주와도 다르다. 살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여행지에서는 부딪히지 않을 감정들. 어떤 때는 너무나 불편해서 집 안으로 숨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것들.   그것들 중 대부분은 이곳의 오래된 문화와 내가 배우고 누리고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여겼던 것들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지금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이곳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고, 이곳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데서 오는 괴리감. 몇 달 혹은 일 년 정도 살다 다시 육지로 나갈 거라면 무시하고 넘겨 버릴 수 있겠지만, 제주에서 나갈 때를 정하지 않은 나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소화해내야 하는 것들이다. 소화하다, 이 표현이 적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조건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지 알게 되더라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렇다고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지는 않는 상태. 현재까지는 그 상태로 제주에서 나는 살고 있다.  모다들엉 놀게마씸   제주 생활과 함께 시작한 나의 도서관 사서 자원봉사. 처음부터 이렇게 많은 사업과 행사를 치러야 하는 줄 알았다면 선뜻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상가리 마을 작은 축제 도서관에서 모다들엉 놀게마씸 사진 출처 - 필자  '모다들엉 놀게마씸'은 제주말로 "모여서 함께 놀자”라는 뜻이다. 상가리새마을작은도서관에서는 제주시마을만들기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올해 9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유기견을 통해서 생명의 소중함을 아이들과 나눈 <생명은 모두 다 소중해요>, 직접 요리하고 마을 어르신들에게 대접도 했던 <요리 조리 어린이 요리 체험>, <캘리그래피로 만나는 명언>, <조물조물 아이 클레이>, <캐릭터 그리기>, 같이 마을길을 걸으며 구석구석 알게 한 <우리 동네 한바퀴>, 10주간 매주 노인정에서 그림책 읽어드린 <책 읽어주는 사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한 <어린이 게이트볼 교실>, <중국어 동극> 같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이외에도 새마을문고협회의 지원으로 <중국어 그림책>과 <제주어 동요 배우기> 수업도 이루어졌다. 시골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 체험을 이런 기회를 통해 많은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위 수업들 외에도 동네에서 영화 보자는 취지로 영화상영을 네 차례나 열어 아이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이 모든 수업과 행사 참가자가 400명을 넘었으니 시골 마을에서 이런 행사들이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알 수 있다.   지난 11월 17일에는 올해의 모든 프로그램을 끝내고 총정리하면서 도서관축제를 마련했다. 주민들이 기증해준 600여 권의 책을 무료나눔하고, 올해 수업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제주어동요’ 공연, 더럭초 5학년들의 ‘오카리나’ 연주, 4학년들의 ‘중국어 동극’ 등 축하공연도 열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와주어서 행사를 준비한 도서관 사서들 모두 뿌듯해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깔끔하고 아이들이 책읽기에 포근한 마을도서관. 올초 리모델링되기 전에도 도서관이긴 했으나 어둡고 퀴퀴한 냄새 나는 창고 비슷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무료봉사하는 사서들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책들도 제대로 분류가 되고 새 책들도 다수 들어오는 등 살아움직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예전에 편하게 이곳을 드나들던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새단장을 한 후 잘 모르는 얼굴들이 자리를 지키는 도서관이 왠지 불편한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한 모양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몇몇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마을 예산으로 리모델링한 도서관을 제대로 운영해 보자는 취지로 자원봉사자들이 나섰지만, 동네 어르신들에게는 정작 본인들은 소외시키고 마치 이주민들끼리 모이는 아지트처럼 비쳤던 것 같다. 나보다 몇 년씩 먼저 제주에 온 다른 사서들은 이미 이주민과 토박이들 사이의 거리감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와 갈등들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다들엉 놀게마씸’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의도적으로 많이 만들었다고 했다. 자꾸 만나고 부딪혀야 서로에 대해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상가리마을도서관 사진 출처 - 필자  도서관 사서들이 2인 1조로 10주간 노인정에서 그림책을 읽어드렸다. 나는 첫 책으로 <할머니에겐 뭔가 있어!>를 읽었는데, 읽으면서 책을 잘못 골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에 나오는 곶감은 제주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땅콩도 잘 재배하지 않고, 겨울은 쉬는 시기가 아닌 귤 수확철이라는....어르신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부랴부랴 책읽기를 끝내니 진땀이 났다. 책읽기가 끝나면 다른 사서가 민요를 몇 가락 불러드렸는데, 역시 책보다는 민요!   이주민들이 늘면서 그들이 제주로 데리고 들어오는 애완견들도 늘었다. 시골에서 가장 눈에 띄게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집에서 키우는 개에 대한 인식인 듯하다. 시골에서도 개를 많이들 키운다. 마당에 개집을 두고 집 안에 들이지는 않는다. 여름 한 날 도서관 뒤에서 어르신들에게 수박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큰소리가 났다. 대접하는 부부 중 부인이 애완견을 안고 수박 근처에 온 것이다. 할머니가 먹을 것 옆에 개를 데리고 왔다며 노발대발 화를 내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신이 먹을 음식 옆에 개를 데리고 왔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이신 것 같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키우는 것과 같이 산다는 개념의 차이만큼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제주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할머니가 밭에서 쭈그려 일하고 할아버지는 밭두렁에서 담배 피면서 쉬는 풍경이다. 할아버지는 경운기 옆에서 쉬고 할머니가 농약통을 짊어지고 농약을 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모든 할아버지가 다 그런 것은 아니길 바라지만). 제주의 할망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 년 내내 바쁘게 움직인다. 할머니들이 보기에 집에만 있는 여자들(대부분 이주민 엄마들)은 놀고먹는 팔자 좋은 인간들이다. 이곳에서 내가 만난 토박이 딸, 며느리 중에 집에서 살림만 하는 사람은 없다. 집에 있는 아들과 아버지들은 봤어도.  내가 사는 집은 주변이 다 새로 지은 집들이라 마을 한가운데 있는 농가주택처럼 옆집 할머니가 안 계신다. 그래서 생활하면서 특별히 눈치를 많이 보거나 하지는 않지만, 시골살이는 언제 어느 때든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상가리마을도서관과  리사무소는 출입문을 서로 마주보고 있다. 오후 5시 리사무소 사무장이 퇴근하면서 도서관 문도 잠근다. 가끔 그러지 않을 때 마을 주민 누군가가 도서관에 들렀다 불이라도 켜두고 가는 날이면, 어르신 누군가가 저녁 늦게라도 사무장에게 전화해 알려주신다고 한다. 도서관 운영한답시고 마을 비용을 헤프게 쓴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어서, 뭐라도 꼬투리를 잡으면 도서관에 대한 불만을 함께 얘기하신다는 것이다. 도서관이 본인들에게는 어떤 이득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의 자식들은 대부분 다 제주 시내나 육지에 살고 있고, 막상 같은 동네에 사는 젊은 사람들과 아이들은 모두 이주민이다. 젊은 이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와서 이런저런 활기가 생기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평생 가꾸고 일구고 살아온 동네가 본인들 자식들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자식들에게 이 시골로 들어와 살라고 말은 못해도 심정적으로는 같이 살고 싶은 것인가. 그 감정을 이주민들에게 투사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2018-11-21 | hrights | 조회: 118 | 추천: 2
: 온건 이슬람과 극단주의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 왕세자 무함마드의 영구집권 기획   2018년 9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창설 기념사에서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관용적이고, 온건한 이슬람’의 원칙을 지키고, ‘극단주의, 테러리즘과의 싸움’에서 확고한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지난 해 10월 24일 왕세자로 등극한지 4개 월 만에 “사우디아라비아는 ‘극단주의를 종식’시킬 것이며, ‘온건하고 개방적인 이슬람을 회복’할 것이라고 약속한다.”고 밝힌 정책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살만 왕세자가 되풀이해서 주장하는 이 ‘온건하고, 개방적인 이슬람’은 사형 제도를 폐지하고,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며, 이슬람정부의 특성, 세습통치, 군주제 등에 대한 종교적 토론을 허용하는가? 시민사회와 노조가 활성화되는 것을 허용하는가? 선출된 의회, 대표자들로 구성되는 정부 설립을 의미하는가?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2018년 9월 16일자 사우디 인권 상황 보고에 따르면, 유명한 법률가, 판사, 학자, 과학자, 언론인 등 양심수 2,613명이 수감되어있다. 사실 왕세자 무함마드가 제창한 ‘온건하고 개방적인 이슬람’은 국내 반대파의 목소리를 침묵시키고, 역내 경쟁자들이나 카타르와 이란 등 외부의 적에 맞서고, 권력을 영구적으로 유지,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기획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왕세자 무함마드는 올해 3월 미국 방문 하루 전날 미국 CBS TV와의 인터뷰에서 영구집권의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오직 죽음’만이 자신의 사우디아라비아 통치를 중단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 출처 - 로이터=연합뉴스 □  친정부 종교기구 활용, 국내의 반대파 알 사흐와 잠재우기   왕세자 무함마드가 제창한 ‘온건 이슬람’은 왕세자 자신의 집권에 장애물로 판단되는 무슬림형제단(2014년 사우디내무부가 테러단체로 지정)과 연계된 단체 알 사흐와를 겨냥한 것이다. 알 사흐와는 입헌군주제 등 선거를 통한 민주적인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2011년 2월 28일 알 사흐와 운동 소속 셰이크 살만 알 아우다를 포함한 1,550명이  [제도와 권리의 국가를 향하여] 청원을 압둘라 왕에게 제출하면서, ‘완전한 입법권을 가진 선출된 국민의회, 왕과 총리 직위 분리(현재는 국왕이 총리 겸직), 정치범 석방, 행정상의 부패종결, 언론의 자유, 인권 활동가들의 여행 금지 철회’ 등을 요구하였다. 이것은 현재까지 계속되는 알 사흐와의 정치적 요구사항이다. 이러한 알 사흐와의 요구는 영구집권을 꾀하는 왕세자 무함마드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이에 맞서 왕세자 무함마드는 자신의 권위를 강화시키기 위하여 친정부 종교기구를 활용한다. 대표적인 친정부 종교기구인 고위급 울라마위원회의 활동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종교가 어떻게 정치에 활용되는 지를 잘 보여준다. 왕이 고위급 울라마위원회 위원장과 21명의 위원들을 임명하고, 정부는 이들에게 각각 월급을 지급한다. 현재 이 위원회가 파트와를 내리는 독점권을 가지고 있으며, 보수적인 와하비 성직자이며 친정부 인사인 그랜드 무프티 압둘 아지즈 알 셰이크가 위원장이다.  2017년 6월 21일 고위급 울라마위원회는 알 사흐와의 요구에 맞서 정당 금지, 신정정치와 독재정치를 의미하는 파트와를 내놓았다. “무슬림형제단은 옳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아니다. 무슬림형제단 구성원들은 권력을 장악하려는 도당들이다. 이들은 올바른 신앙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코란과 하디스에는 다수의 정당과 단체들을 허락하는 것이 전혀 없다. 반대로, 코란과 하디스는 이것들을 비난한다.” 이와 같은 고위급 울라마위원회의 활동은 왕이 종교를 정치에 적극 활용하는 적절한 예다.  앞서 2017년 6월 5일 사우디아라비아는 역내에서 카타르가 테러 단체들을 지원한다고 비난하면서, 카타르와 외교적, 경제적 관계를 단절하였다. 9월 9일 1천 4백 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가진 알 사흐와 소속 성직자 살만 알 아우다는 트위터에 사우디와 카타르의 화해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신이여 국민들을 위하여 그들(사우디와 카타르)의 마음을 합치게 하소서”라고 썼다. 1만 5천 명이 좋아요, 1만 3천 명이 리트윗, 약 2천명이 대답했다. 이 글을 게시한 몇 시간 후에 살만 알 아우다가 체포 수감되면서 강경 탄압에 불을 붙였다. 이후 며칠 동안 무슬림형제단 동조자들과 왕세자를 비난한 혐의를 받은 인사들이 30명 이상 검거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사우디 내에서 미디어 등을 통하여 매우 대중적인 인기를 누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거 사건 이후, 고위급 울라마위원회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코란과 하디스를 토대로 창설되었다. 코란과 하디스에 정당이나 정치이념에 대한 근거는 없다.”고 트위터에 썼다. 사우디 보안대는 살만 알 아우다, 아와드 알 카르니, 알리 알 오마리를 비롯한 체포된 인사들을 스파이조직 구성원들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무슬림형제단이 운영하는 센터 등에서 강의하면서, 카타르를 비난하지 않았고, 청년들을 혁명적인 활동에 동원하기 위하여 자금을 불법적으로 지원하는 등 은밀하게 대중들을 조직하여 시위를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9월 5일, 사우디 특별 형사법정은 비밀회의를 열고, 알리 알 오마리에게 사형을 구형하면서 30가지 이상의 테러리즘 죄목을 붙였다. 지난해 9월 체포될 당시 알 오마리는 유명한 성직자이며, 인권 운동가이고, 메카 개방 대학총장으로 매우 대중적인 인기를 누려왔다. □ 알 사흐와를 후원하는 외부세력: 카타르, 무슬림형제단,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   사우디의 알 사흐와 탄압 정책에 맞서, 카타르에 기반을 둔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IUMS)은 2017년 9월 11일 내놓은 성명에서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 이사회 구성원인 살만 알 아우다와 아와드 알 카르니, 알리 알 오마리 등의 체포와 구금 행위를 비난하고 살만 왕에게 이들의 석방을 요청하였다. 특히 이 성명에서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은 “구금된 학자들이 정치적 논쟁에서 인질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살만 알 아우다는 GCC형제국가들 사이의 통합을 요구하였을 뿐이다. 그의 마지막 트윗은 GCC국가들이 국민의 안전을 위하여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은 의장 유스프 알 까르다위가 이끄는 수니와 시아의 경계를 넘어 9만 명의 무슬림학자들로 구성된 세계적인 조직이며, 특히 국제 무슬림형제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이 조직의 가장 큰 후원자는 카타르다. 이것이 바로 사우디가 카타르를 적대시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사우디는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의 구금자 석방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2017년 10월 8일 사우디 외무장관 아델 알 주바이르는 “사우디는 극단주의를 퍼뜨리는 수 천 명의 모스크 이맘들을 해고했다. 카타르가 다른 나라들의 국내 문제에 개입하려는 기도로 테러리즘에 자금을 댄다. 모든 나라는 테러리즘, 테러리즘에 자금지원, 극단주의, 증오 선전하기, 다른 나라의 국내 문제에 간섭하려는 시도 등에 분명하게 ‘NO’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카타르를 거세게 비난하였다.  2018년 3월 초에,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은 CBS 인터뷰에서, “무슬림 형제단의 요소들이 사우디 학교를 침공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알카에다와 IS 같은 다른 무장조직들과 마찬가지로 무슬림형제단을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규정하였다.”고 밝혔다. 곧이어 3월 20일 사우디 교육부 장관 아흐마드 알 이사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무슬림형제단 영향을 근절하기 위하여 교육 과정을 개편하고 있고, 금지된 무슬림형제단이나 그 이념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해고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사우디 교육부의 조치는 작년 9월 사우디 국립대학이 무슬림형제단과 연대 혐의가 있는 고용인들을 해고시킬 것이라고 선언한 이후 계속되는 무슬림형제단 탄압정책이다.  무슬림형제단원들은 1950년대 중반 이후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에서 사회주의-아랍민족주의 정부들의 탄압을 피해 사우디로 들어왔다. 사우디왕국은 사회주의-아랍민족주의자들에 맞서는 대항마로서 피난민 무슬림형제단을 수용하였다. 이후 무슬림형제단은 사우디왕국의 교육제도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알 사흐와 조직을 창설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초 이라크의 쿠웨이트와 사우디 침공 당시, 살만 알 아우다 등으로 대표되는 사흐와 운동은 입헌군주제 등 정치개혁을 주장하면서, 강력한 정부 반대파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2011년 아랍봉기 이후, 이들은 입헌군주제 등 정치개혁 요구를 다시 제기하였다.  현재 왕세자 무함마드의 강력한 탄압 정책으로 사흐와 운동은 숨을 죽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불안정한 사우디 내부와 역내 정치상황을 고려해 볼 때, 카타르의 후원을 받는 거대 국제 조직인 무슬림형제단과 국제 무슬림학자 연합과 연계된 사흐와 운동의 폭발적 잠재력은 적당한 시기가 도래한다면 언제든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2018-11-07 | hrights | 조회: 173 | 추천: 6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9월 11일 인천의 B여중에서 교사에 의한 성희롱, 성차별 행위들에 대한 “스쿨(School) 미투(me too)”가 있었다. 인천지역의 여러 중, 고등학교에서도 제보들이 이어졌다. B중학교의 사건이 발생하고 인천지역 여성단체들은 발 빠르게 대응하여, 교육청 방문과 교육감 면담, 관련기관 및 학부모와 여성단체 등이 참여한 ‘집단 간담회’, 해당 학교들에 성교육 실시와 가해교사 분리, 교육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등을 요구하였다. 이에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합의하였고 B중학교의 피해학생 전수조사를 교육청과 경찰청이 진행하였다. 그러나 장학사들과 학생이 마주앉아 피해사실을 종이에 적는 방식이나 “책임질 수 있는 것만 써라”, “정확하게 ‘미투’인 것만 써라”, “이걸 쓰면 너는 경찰 조사를 받아 피곤해질 수 있다.”는 등의 언행은 학생들을 더욱 불안하고 위축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러한 방식과 언행 자체가 2차가해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없는 것, 피해자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방식이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또한 학부모와 여성단체들은 학교장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교육감을 위원장으로 대책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결국 부교육감을 위원장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교육과정에서 발생한 학생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교육감이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는 매우 실망스럽게도 정치적인 행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교육청의 이 같은 처사는 인권감수성이 엉망임을 보여준다.  인천 경찰서도 제법 빠르게 피해학생들을 무기명으로 전수조사하고,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하였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를 피해자와 분리조사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특정’해야 하므로 기명으로 다시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이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위계관계, 성폭력 피해자들의 심리상태를 외면한 교육청과 마찬가지의 무지하고 몽매한 대응, 인권감수성 제로의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경찰청에 질의서를 통해 피해자들의 신원보장, 무기명조사를 통해 가해자로 판명된 경우 인지수사를 하라는 등의 의견을 전달하고 이에 대한 계획을 묻자, 기명수사 대신 ‘가명조서제도’를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해당 학교들은 제보 학생을 색출하는 것에만 집중하였고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를 학생들로부터 격리하는데 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는 반드시 격리되어야 하지만 “교사의 경우 학생들과 분리하면서 교원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수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해자를 봐야하는 학생들의 괴로움이 지속되고, 교사들의 협박성 발언으로 인한 2차 가해가 발생하고 있다. 전남 광주에서 ‘스쿨 미투’ 발생이후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와 학생들을 바로 격리하고 가해지목인 전원을 경찰조사 의뢰하여 처벌하게 한 것과 대조적이다. 나아가 B중학교의 경우는 성폭력예방을 위한 가정통신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성폭력 예방책’을 나열함으로써 마치 성폭력을 피해자가 예방 가능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또 다른 인천의 스쿨 미투 학교에서는 영어시험에 성폭력 피해자인 연예인을 사례로 제시하는 등, ‘여성폭력’에 대한 저열한 수준의 인권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다. 스쿨 미투 제기된 학교서 보낸 '성폭력 예방법' 가정통신문 사진 출처 - 연합뉴스(트위터 캡처)  인천의 ‘스쿨 미투’ 운동은 이처럼 학교 내 교사에 의한 성폭력이 만연하다는 사실과 더불어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교육청, 경찰청, 해당 학교들의 저급한 인권감수성 및 여성폭력 감수성을 낱낱이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인천의 여성들은 싸움을 통해 여성운동의 과제를 발견하면서 모두 함께 성장 중이다.  ‘스쿨 미투’는 어쩌면 성인 여성들의 개인적인 ‘미투’ 운동보다 더 어려운 싸움이기도 하다. 여자와 남자라는 위계, 교사와 학생이라는 위계, 어른과 청소년이라는 위계 등 여러 가지 위계구조가 중층적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이던 학내의 교사 성폭력을 사회적 이슈로 불러내고 ‘스쿨 미투’를 확산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다층적인 위계를 뚫고 나온 피해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우리는 불꽃이다”라는 포스트잇을 교무실 문과 게시판에 붙여가며 싸우고 있다. 이들은 불편/부당 -> 인지 -> 각성 -> 실천/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 중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어머니들’ 역시 딸들의 성장에 힘입어 각성하고 실천하는 과정에 있다.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여성단체들과 연대하여 교내 성폭력의 근절을 위한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단체들’도 그동안 분명히 존재하여 왔었고, 어쩌면 여성운동가인 자신들도 당했을 법한, 그러나 각성하지 못해 지나쳤던 교내 성폭력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며, 이것이 여성운동의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여성운동은 그 세대가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면서 재구성, 재생산되고 있다.  ‘미러링’을 통해 남성들의 여성 혐오를 밝혀내고, 강간사이트를 밝혀 조사 및 폐쇄하게 하고, ‘불편한 용기’라는 ‘붉은 시위’를 통해 디지털 성폭력이 여성들을 성적 대상물로 전락시킴은 물론 그 자체가 이미 ‘성폭력’임을 알려왔다. 이와 같은 새로운 급진적 여성운동은 사회전반적인 성폭력 반대분위기를 형성하게 하였다. 이를 통해 여성운동과 상관없던 많은 여성들의 ‘미투’ 운동을 촉발했다. 그리고 이 ‘미투’ 운동은 ‘스쿨 미투’로 발전하면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을 대상으로도 발생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한 개인의 남성이 여성들을 집단적으로 성폭력 할 수 있다는 점은 여럿의 여성들보다도 남자 하나의 권력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성과 여성의 비대칭적 권력관계의 투명한 반영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밝히고 진위를 가리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상처를 입을 수 있지만 결국 여성들의 ‘힘 갖추기(empowerment)’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의 인권은 한 발짝 더 나아갈 기회가 된다. 시련은 굴복이 아니라 저항을 가져오고 있다. 그것도 점점 더 많은 세대들을 통해서 그렇다. 여성운동은 세대 간 연대하면서 또 다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2018-10-24 | hrights | 조회: 99 | 추천: 3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모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한지 7년 정도 되었다. 현재 세 곳에서 하고 있는데, 수강생을 다 합치면 30명 쯤 된다. 그 중에 남자 수강생은 단 한 명뿐이다. 7년 동안의 수강생들을 모두 감안해도 생각나는 남자는 네 명 정도뿐이다.  그래서 평소에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한국의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더 행복한 것 같다,  남자들은 직업 전선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일 하기에 바쁜데, 여자들은 남자들이 제공해 주는 재정적인 여유를 통해 이렇게 철학, 문학, 예술 및 다른 여러 주제들에 관한 강의를 듣는다, 인간으로서 그 특유한 인문 예술적 교양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로 여자들이 누린다, 그러니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행복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들은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도 자신의 존재를 다듬고 가꾸는 데 열심이고, 그녀들 나름의 여성적 공동성을 함께 나누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강의하는 나보다 강의를 듣는 그녀들이 더 행복하다는 묘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녀들에게서는 왠지 그동안 살아온 긴 세월에서 묻어나는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의 분위기가 풍긴다. 나는 강의를 통해 그녀들에게 들려 줄 이야기들을 매주 준비하느라 시간에 쫓기기 예사다. 물론 강의하는 데서 심지어 뿌듯한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그녀들을 매주 한 번씩 만나는 것만으로도 즐겁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 강의는 의무고, 그녀들에게 수강은 자유다.     그녀들이라고 해서 나름의 고민이나 심지어 불행이라 불러야 하는 힘겨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주로 중년에 이른 그녀들에게서 자녀들을 보살피고 늙은 부모들을 봉양하느라 힘겹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 와중에 그녀들만을 위해 시간을 내어 강의를 듣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다고들 한다. 다행이다. 누구나 의지만 있으면 그녀들처럼 자신의 존재를 가꾸는 일에 시간을 낼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꼭 강의를 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바람직하고 그래서 더 행복한 삶의 방식이 얼마나 많겠는가. 2.  그런데 요즈음 그녀들에게 ‘여자, 너의 여성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열 번의 강의를 하기로 한 뒤, 여섯 번의 강의를 하고 네 번이 남았다. 이 주제를 놓고서 강의를 하려고 계획할 때부터 무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백컨대, 이 주제로 강의를 하려 한 것은 나를 위해서였다.  남자인 나로서는 여성에 대해 모를 뿐만 아니라 여성의 느낌을 공감할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사랑했던 어머니도 여자였고, 내 누이들도 여자다. 때로는 대책 없이 열정적으로 사랑했다고 여겼던 그녀들도 여자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도 여자다. 게다가 앞서 말한 내가 아끼는 열성적인 수강생들도 여자다. 그러고 보면 사회적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반 정도가 여자다. 그녀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녀들의 느낌을 잘 느낄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그녀들을 사랑하고 또는 사랑해야 하고, 하다못해 이해해야 한다. 과연 그 사랑과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일까, 그리고 이루어질 수 있을까? 혹시 근본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가부장적인 사회문화 체제가 여전히 강하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정말이지 많은 여자들이 나의 삶에 여러모로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남자인 나는 그녀들에 대해, 그러니까 그녀들의 말과 행동과 표정이 지닌 그 미묘한 의미의 세계에 대해 과연 한 발짝이라도 제대로 가까이 들어갈 수 있었을까? 때로는 투정을 부리고, 때로는 윽박지르고, 때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때로는 짐짓 망각했던 것 같다. 논리적으로 따지기만 한 것은 물론이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리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대하고, 풍경을 바라보고, 또 사물을 느끼는 것일까? 어떤 방식으로? 궁금하다. 나는 이른바 모태에서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신의 존재가 절대적이라 믿고 심지어 신학교를 다니기까지 했다. 어릴 때부터 정말 궁금한 것이 있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친구들 또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느낌으로 살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서른이 되면서 결정적으로 신을 버리게 되었고 그 이후로 교회를 가지 않았다. 그렇게 신을 버리기로 결단하고 신 없이 살기 시작하면서 느꼈다. ‘아! 그렇구나. 신을 믿지 않는 자들은 이처럼 자유로운 감정으로 살고 있었구나!’  신을 믿다가 버리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남자로서 살다가 남성을 버리고 여자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 성전환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 이는 마치 내가 나임을 버리고 너로서 사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여성인 여자와 남성인 남자 두 사람 사이에 과연 상호주관적인 소통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달리 말해, 성 의식 사이에 소통은 가능한가? 하고서 묻게 된다. 영화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몸과 영혼> 사진 출처 - 경향신문 3.  하지만 이성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 하고 나아가 더 느끼려고 할 수는 있다. 그러려는 자세와 마음가짐만으로도 이미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여자라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가! 그러나 여자의 진짜 불행은, 그것이 불행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 말은 그때는 맞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틀렸다. 어쨌든 만약 여자가 여성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남자들을 대하면, 남자들은 그녀와 소통이 된다고 여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소통은 일방적인 포섭에 의한 폭력일 가능성이 높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49년 당시 “오늘날 여자들은 ‘여성스러움’의 신화를 뒤엎고, 자신들의 독립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들이 인간 존재로서의 조건을 완전히 살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이 말은 그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자와 남자 사이에 소통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다르게 생긴 몸의 생물학적인 차이와 그 기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양성 사이의 소통에서 생물학적인 근본 차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그 차이는 동성 간의 소통과는 다른 새로운 소통의 영역을 만드는 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성 간의 소통에서 문제는 사회경제적인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구조 때문에 생겨나는 양성 사이의 일반적인 격차와 그에 따른 차별일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물학적인 차이마저 차별의 근거가 된다고 여기는 일반적으로 체화된 의식일 것이다.  성 관계와 관련해 나의 의식을 반성해 본다. 남성에 속한 나는 여성에 속한 여자들을 만난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두려워하지도 않고 위협으로 느끼거나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물어본 적도 없고 명백한 근거도 없지만, 나 말고 다른 남자들도 대개 그럴 것이다. 과연 여자들도 남자들에 대해 그럴까? 이 역시 정확하게 알려고 노력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녀들은 남자들을 만날 때 일반적으로 왠지 모르게 위협을 느껴 불안해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경계할 것 같다. 이런 나의 추정이 틀리기를 바란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보부아르 말 중에 ‘인간 존재로서의 조건을 완전히 살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대목은 이런 나의 추정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도록 한다. ‘인간 존재로서의 조건’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미 잠재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어서도 안 되고, 그 잠재적인 불이익이 현실화될까봐 불안해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강력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여성은 연약하고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남성은 용감하고 직설적이고 진솔하다, 여성은 겁이 많고 우회적이고 음모적이다, 남성은 주체적이고 여성은 대상적이다. 이러한 차별을 수반한 편견이 집단 무의식에 의해 암암리에 또는 경우에 따라 노골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나만의 착각일까? 그렇기를 바란다.  이런 편견은 남성은 이성적이고 여성은 감정적이다, 남성은 논리적이고 여성은 직관적이다, 남성은 사건 중심적이고 여성은 감각 중심적이다, 남성은 집중적이고 여성은 다각적이다, 남성은 단기적이고 여성은 장기적이다, 등의 비교적 비차별적인 일반적인 차이마저 차별의 구도 속에 집어넣도록 한다. 그래서 여성이 지닌 특성들은 남성이 지닌 특성보다 열등하다고 여기게 한다.  오랜 세월동안 견고하게 유지되어 온 남성 지배적인 가부장적 제도와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인 차별의 체제가 편견 형성의 원인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편견들이 체제와 제도에 따라 작동하기 때문에 누구건 벗어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역시 쉽게 알 수 있다.  사실이 어떠하다는 것을 아는 것과 어떤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다르다. 남성 체계에 의해 여성이 억압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매사에 그런 지배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벗어나 느끼고 행동할 줄 안다는 것은 다르다. 내가 여성을 이해하고자 여러 여자 이론가들이 제시하고 있는 혁신적인 담론들에 동의한다고 해서 남녀 관계에서 이미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남성으로서의 나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였을까? 일전에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제자뻘 되는 어느 한 여성을 만났다. 이야기 중에 내가 요즘 여성에 관한 강의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아니! 선생님마저 그런 강의를 하면 어떡합니까?”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힐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순간적으로, ‘남자인 선생님이 여성 이론을 연구하는 것은 여성주의 담론마저 남성 지배적인 구도 속에 집어넣으려는 것 아닙니까?’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녀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이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남자인 내가 여성주의를 이해하려 하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동의하고자 하고 그래서 심지어 그것에 관한 강의를 시도하는 것마저 거기에 이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성 차별의 심사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 남자인 개인으로서 무척 난감한 입장에 처한 것이다.       
2018-10-17 | hrights | 조회: 121 | 추천: 4
  윤영전/ (사)평화연대 이사장  멀리보이는 서석산 자락으로 이어진 분적 산봉우리 아래, 효골이란 마을이 있다. 선대로부터 오백 년이나 자자일촌하며 살아온 6형제 중 셋째 할아버지 둘째 아들로, 아호(雅號)가 동강(東崗)이신 아버지의 참적(慘迹)의 삶을 돌아본다. 치욕적인 을사 늑약의 해에 나시고 분단조국 46년 동안에 그렇게도 소원하시던 조국의 통일도 못 보시고 82세에 사세((辭世)하셨다.    어버이날, 일 년 사이 몰라보게 자란 증손자손녀가 앙증맞은 손으로 만든 빨간 종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준다. 그리고 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어버이 은혜』 노래까지 불러 흐뭇하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 지셨다. 아마 지난날 험한 세상을 살아오셨던 세월이 생각나시었을 터다.  이렇게 자식과 손자녀들에게 효도를 받고 있으려니, 한 세대를 넘게 모셨던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허전해 지면서 과거의 일들이 눈앞에 아롱거린다. 나를 세상에 나게 하시어 자식을 얻고 손자까지 두어 대를 이어가고 있으니, 부모님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게 당연지사다.  부모님을 모시는 동안, 아버지는 깊은 밤이면 여러 얘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가 팔순을 넘기실 때 나는 넌지시 “기록을 남기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이 나이에 무슨 글이냐”고 하시면서도 노심초사 기억을 더듬어 몇 개월 만에 원고지 5장 분량의 글을 달필로 써놓으셨다. 여러 차례 당신의 기지(機智)로 사선을 넘나들던 사연과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일들도 적혀 있었다.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는 내가 ‘아버지께 못할 일을 해 드렸구나’ 하는 죄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아버지는 열아홉 살에 청상과부가 되신 숙모님의 양자가 되었다. 그러고는 성년이 되어 딸 많은 홍 씨 가문의 맏딸에게 장가를 드셨다. 아들을 많이 낳으시어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고 집안과 주위로부터 부러움도 샀다. 맏아들이 똑똑해 군청과 면사무소 호적 서기로 근무하여 장차 면장과 군수까지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부모님 사진 사진 출처 - 필자  그런데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 봄 어느 날, 친구인 김 면장이 집을 찾아왔다.  “자네 아들이 근간에 자리 비우고 서에서 요주의 인물이라는 통보까지 받아 걱정돼 찾아왔네.”  아버지는 요즘 똑똑한 젊은이들이 좌편에 서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당신 아들이 그러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청천벽력과 같은 심정이었다.  그 후 맏형은 피해 다니다 결국 붙들렸다. 좌익 활동에 관여한 조직을 불라고 한 달 남짓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재판도 없이 스물두 살의 나이로 진외가 앞산에서 총탄에 숨지고 말았다. 우리 집은 형의 죽음으로 몇 년 동안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칠월 어느 날,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섰다.  “이 댁이 영철 동지의 집입니까? 아드님의 투철한 조국애를 높이 평가합니다. 오늘부터 아버지께서는 효지면의 위원장이 되십니다.”  “아니 당신들은 누군데 내 아들을 알고 나더러 위원장이 되라는 거요? 나는 무식한 농부일 뿐이오. 유식한 사람을 찾아 시키시오. 나는 못합니다.”  “못 하신다고요? 그러면 반동입니다. 그냥 맡으시면 됩니다.”  아버지는 ‘반동’이라는 위협적인 언사에 그만 말문을 닫고 말았다. 1년 전에는 아들을 잃었는데 이번에는 당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은 아버지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고 심란하게 했다. 좌우익으로 갈린 친척과 면민들의 갈등은 어쩌면 희생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그러기에 법이 없이도 살아갈 아버지는 선의의 관리자로 중립을 지키며 희생을 막았다.  국군의 9․28수복으로 인민군은 물러갔다. 아버지는 무등산으로 일단 피신해 가는데 삼거리가 나왔다. 과연 어느 길을 가야 하나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산으로 들어가면 영원히 빨치산이 될 것이고 시내로 나가면 집으로 가는 길이지만 부역자가 된다. 아버지는 노모와 처자식을 생각하여 시내로 가는 길을 택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군경 합동으로 벌이는 토벌대의 검문을 어찌 통과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궁리 끝에 초가집에 걸려 있는 호미와 약초 망태를 둘러멨다.  한참을 가자 완전무장한 토벌대가 아버지를 향해 총을 들이댔다. “누구냐? 멈추어라.” “나는 노모가 위독해 약초 캐러 갔다 오는 길이오.”  그들은 의심을 하면서도 효자라면서, 위험하니 빨리 가라고 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증명서를 하나 해주시오.” 아버지는 간청을 통해 얻은 확인서로 세 번씩이나 검문을 무사히 통과하였다. 아버지는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부역자는 신고하라’는 공고를 보고 ‘살기 위해 부역을 했노라’고 자진신고를 했다.  추수를 끝내고 의용군에서 자수한 19살의 둘째아들을 국군에 입대시킨 후 1․4후퇴가 있던 날 밤이었다.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마을의 적막을 깼다. 이윽고 누군가 담을 넘어 안방 문을 와락 열었다. “석천이가 개새끼들에게 자수를 해? 우리를 배반했어!” 하며 집안 곳곳을 뒤졌다. 아버지는 마침 진외가에 출타 중이었다. 한참 후 뒷산에서 난 수발의 총성에 부역자 수명이 쓰러졌다.  어느 날 아버지와 내가 울타리를 엮고 있을 때였다. 남루한 차림의 두 사람이 집 앞으로 다가왔다. 아버지가 피할 사이가 없이 그들은 다가왔다. 이제 틀림없이 붙들릴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아버지 앞에 선 그들이 불쑥 말을 던졌다.  “말 좀 물읍시다. 이 마을에 윤석천이란 사람이 어느 집에 사나요?”  “나는 다른 마을에서 일하러 와서 모릅니다. 저 안쪽에 가서 물어 보시오.”  아버지의 위기의 순간을 지켜보던 나는 어찌 이 순간을 모면할까 마음이 몹시 탔었는데, 아버지는 태연하게 대답하시고는 곧바로 자리를 피하셨다. 나도 바로 육모정자로 가서 그들의 동정을 살폈다. 그 날도 두 명이 붙들렸는데 뒷산에서 총살을 당했다.  전쟁이 휴전에 임박했을 때였다. 꽃샘추위로 함박눈이 내리던 날 밤, 집안의 귀염둥이 막내가 고열이 심해 단방약을 썼지만 열이 내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주에서 한의원을 하는 친구에게 약을 지으러 갔다. 식구들이 애타게 기다렸어도 아버지는 폭설 때문에 그날 밤 돌아오지 못했다.  한밤중에 막내가 몹시 보채며 울고 있을 때, 사복차림의 두 사람이 들이닥쳐 이불을 걷어차며 아버지를 찾았다. 할머니가 “아들은 없소. 손녀딸이 아파 약을 지으러 갔소. 제발 돌아가시오.”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벽장까지 뒤졌다. 나는 이불 속에서 막내를 껴안고 떨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에 깨어나서 보니 아이의 몸이 싸늘했다. 숙이가 숨을 쉬지 않는 것 같다고 했으나 어머니는 눈물만 흘리고 계셨다. 어머니는 동생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침 일찍 한약을 지어가지고 돌아오셨다. 그러나 당신이 늦게 오는 바람에 막내가 죽었다며 자책을 하셨다. 그래도 할머니는 “막내가 아비를 살렸다. 이 험한 세상에서 차라리 잘 갔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그 말씀이 야속하게만 들렸다. “오빠, 오빠!” 하던 귀여운 다섯 살 배기 동생이 아니었던가.  숨진 막내에게 예쁜 옷을 입히고 옹기 항아리 관에 묻었다. 그 자리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꽂았다. 하늘나라에서 큰오빠도 만나고 부디 평안히 잠들라며 빌었다. 4년 전 맏형을 죽관(竹棺)으로 진외가 앞산에 묻었던 기억까지 되살아나 한없이 울면서 산을 내려왔다.  휴전 협정으로 이제는 부역자들이 생사의 기로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효골 들판에서 일을 끝내고 집에 오셨는데 서 정보과에서 “잠시 조사할 일이 있으니 함께 가자”며 연행해 갔다.  이제 모두가 끝난 줄만 알았는데 또 무슨 일인가. 일주일이 지나고 3주가 되었는데도 아버지는 풀려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무슨 일로 조사를 받고 있는지 어머니는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마침 맏형이 하숙할 때 이웃의 정미소 집 아들이 서에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머니는 그를 찾아가 아버지의 그간 사정을 알렸는데 다음날 상세한 내용을 전해왔다.  인공 기간에 피해를 당한 사람이 고발을 했는데 ‘자신이 아니고 아버지가 지시했다고’ 해서 조사 받고 고문도 당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온갖 고문을 버티다가 견디기 어려워 그들의 요구대로 거짓 자백을 해버릴까 했으나 결국 아무 잘못이 없음이 밝혀져 누명을 벗고 풀려났다. 고문 후유증에 심지어는 똥물까지 마시면서 차츰 기력을 회복하셨다.  험한 세상에서 아버지는 목숨을 부지했지만 처남과 아랫동서와 사촌형제들, 그리고 조카들도 전쟁 와중에 죽어갔다. 그러나 단순히 부역자라고 해서 죽어간 사람들도 분단과 전쟁으로 희생된 영혼들이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달래고 이제는 해원(解寃)하자고 아버지는 적어 놓으셨다.  아버지의 비망록에는 사선을 넘는 부분이 소설보다 더 리얼하게 그려져 있었다. 여러 번 위험한 고비에서 기지를 발휘해 번번이 위기를 넘기셨다. 이순에 이르러서는 한 많은 지난 세월을 시조창으로 여일하시며 세월을 보내셨다. 구월에 나시어 시월 스무날, 여든두 살에 사세(辭世)하셨다.  나는 당신의 혼이 담겨 있는 기록을 대하면서 오래 전에 고향 선산에 잠들어 계시는 아버지께 다시 한 번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드린다. 아버지, 부디 영면하소서. *한국작가회의, 소설회원. 한국문인협회 수필회원. 한국서예 전통서예 통일비림 초대작가. *(사)평화통일시민연대 이사장. 통일을준비하는사람들 공동대표.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근묵회장.  
2018-10-10 | hrights | 조회: 123 | 추천: 4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올 초부터 1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여성화를 강요하는 ‘꾸밈노동’ 일체를 거부하는 ‘탈 코르셋’ 운동이 일고 있다. 이들은 머리를 자르거나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인증샷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고, 남학생 교복을 입고, 화장품을 버리는 등의 행동들을 sns를 통해 공유하면서 이 운동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빠르면 초등학교 4학년, 느려도 6학년쯤에는 다들 화장을 시작한다.", "결막염 걸려서 눈이 빨간색이어도 렌즈를 낀다. ... 안 끼면 안 되냐고 물어봤더니 그럼 ... 못생겨진다...", "무슨 행사가 있을 때는 화장을 해야 한다는 ... 학교는 엄청난 코르셋 집단이 됐다."(BBC. 2018. 6.1)  초등학생부터 화장을 하고, 학교는 화장을 강요한다. 언젠가부터 길에서, 학교에서 마주치는 여학생들은 모두가 ‘실제로’ 화장한 차림이다. 빨간 입술, 하얀 얼굴, 긴 머리, 달라붙는 교복 등. 화장이 처벌의 대상이었던 세대인 나는 그 모습이 오히려 낯설어 왜 처벌하지 않느냐고 딸에게 물었다가 오히려 몰상식한 구시대 유물 취급받았다. 나의 학창시절은 교복치마는 말할 것도 없고 머리카락, 손톱길이 마저 규격화하고 통제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화장으로 대표되는 ‘여학생 되기’라는 담론과 실천은 통제와는 다른 자유이고 선택일까?  푸코는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통치방식이 위계와 폭력에 기반한 신체형벌사회에서 규율, 감옥 등이 대신하는 규율사회로 변모하면서 어떻게 흩어진 개인들이 규율에 복종하고 살아가는지를 규명한다. 근대사회는 커다란 ‘판옵티콘’ 사회이다. 이는 감옥으로, 간수 한 사람이 모든 재소자들을 감시할 수 있는 체계로 설계되어 있다. 때문에 재소자들은 간수의 감시를 일상화, 내면화하여 스스로 감옥의 규율에 복종하는 데 이것이 ‘규율사회’이다. 나아가 보이지 않지만 일상화된 감시의 존재를 내면화하고 복종하는 것을 주체적 선택이라 여기게 만드는 것 또한 규율사회의 특징이다. 그리고 여기서 규율권력은 각 개인의 몸을 통해 구현된다. 스스로 몸과 행동을 통제하면서 작동한다. 내면화는 이렇게 스스로 규제에 복종하도록 하기 때문에 ‘선택’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구조적인 이데올로기, 담론, 규율 등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나의 세대가 체벌이라는 형태가 몸에 행해졌다면, 현재는 ‘화장’=‘여성’이라는 담론을 ‘소비’와 ‘노력’을 통해 행해지고 있을 뿐이다. 몸은 또한 권력을 행사하는 장이기도 하다. 지하철에서 여자와 남자가 앉는 모습은 단적으로 누가 권력의 주체인지 드러낸다. 남자는 주체이고 여성은 대상이다. 여아=분홍색, 남아=파랑색으로 출산준비물이 구분되고 장난감도 여아와 남아가 구분되는 젠더화가 점점 더 고착되고 있다. 그리고 문제는 여성성이 남성성에 비해 열등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인식된다는 데 있다. 호주에서는 2013년 바이크갱단을 효과적으로 처벌하기 위해 분홍색 죄수복을 입혔다. 굴욕감을 주기 위해서다. 여자들은 분홍색=무력함이라는 정치적 함의에 무지한채로 분홍 옷을 입도록 기대되고 있다.  코르셋은 과거 여성들이 잘록한 허리와 불룩한 가슴 및 엉덩이를 강조하기 위해 착용하던 체형보정물이다. 그것이 현재에는 날씬한 몸, 화장, 하이힐, 성형수술 등 온갖 꾸밈노동으로 남아있다. 남자들은 전문성으로 평가받지만 여자들은 언론에 의해 어떤 옷, 신발, 가방-코르셋-을 들었는지 외모에 주목한다. 혹자는 ‘몸’, ‘외모’는 ‘선택’이고 ‘주체성의 발현’ 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푸코의 권력형태의 변화와 그에 적응하는 인간/몸을 보면 사회적으로 권력담론에 의해 몸/신체가 구성됨을 알 수 있다. 가부장제 권력구조에서 몸은 철저히 여성화, 남성화 담론에 의해 구성된다. 남성성, 여성성은 일종의 정치적 산물이며 권력집단인 남성들에 의해 구성된, 사실은 강제이다. 모든 지배체제에서 지배계층은 인위적인 분리를 자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당화한다. 노예제도가 자연스러운 인종적 우열의 결과라고 주장했듯이. 여성의 외모 가꾸기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주장은 꾸밈이 사실은 여성임을 한눈에 드러내고, 나아가 성적흥분을 느끼기 위한 남자들의 각본이자 요구라는 사실. 남성성은 지배를, 여성성은 굴종을 의미-여성해방을 통해 사라질 의미체계-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구글  최근 국내 출간된 『탈 코르셋』에서 페미니즘 심리학자 디 그레이엄은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이 증후군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인질들이 보이는 행동인데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폭력으로 위협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친절을 내보인다면 두 집단 사이에는 애착이 형성”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한 마디로 여자와 남자 간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화장, 성형수술, 제모 및 왁싱, 하이힐, 갑갑한 복장’ 등 해로운 미용관습을 제시한다. 즉 “여성성이란 적의 마음을 사로잡아 적과 잘 지내기 위한 청사진”인 것이고 여성적인 행동들인 ‘지력, 조심성, 눈치, 대인관계 능력, 매력, 섹슈얼리티, 속임수, 회피’등은 전형적인 피지배계층의 행동들이 된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은 꾸밈행위가 강요된 코르셋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생각하는가? 여자들의 꾸밈노동이 남자의 물리력과 위협 대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두렵고 너무나 정교하게 이데올로기/담론/규율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이데올로기적 규율을 수용함으로써 ‘내면의 식민화-가부장적 질서의 체화-’를 통해 ‘여성성’=‘성적대상화’=‘꾸미기’라는 신화에 갇혀버리게 된다.  원래 화장은 성매매업의 여성들에서 나타났다. 붉은 립스틱은 자신의 직업을 드러내고 남자들을 유혹하는 매개였다. 그러던 것이 1920-30년대 여성들의 공적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미용 산업이 등장하고 화장이 일반여성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아랍의 예로 보면 아랍 여성들이 서구식 복장과 화장에서 다시 베일을 쓴 것은 1980-90년대 들어서인데 이는 이곳 여성들이 사회활동이 활발해진 때이기도 하다. 전통적 여성영역이던 가정 밖에서 외부남성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였던 것으로, 자신이 아랍의 전통과 종교-그 사회 남성들의 가치관-를 존중하고 그에 복종함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화장도 마찬가지다. 베일도 화장도 감춘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가지며, 화장 역시도 성적대상, 성적흥분을 느끼기 위한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역할-가부장적 전통이자 종교-을 수용/복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는 감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만큼 뻔뻔하지 않음–피지배자로서의 예의-을 보일 때에야 안전할 수 있고 그래서 공적진출 후에도 인간으로보다는 성적대상임을 드러내야 하는 화장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그 이데올로기/규율/담론의 재생산에는 권력의 연결고리들이 존재한다. 성매매산업과 대부업, 미용 산업(의료계포함)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성매매를 통해 축적된 자본이 대부업체로, 화장품과 옷을 사기위해 여자들이 대부업체에 돈을 빌리고, 다시 빚을 갚기 위해 성매매 하는-은 여성과 화장, 성매매와 자본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드러낸다.   ‘탈 코르셋’ 운동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여성의 성적대상화인 꾸밈노동에 더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을 것을 부추기며 남성 성애화의 소비대상으로 존재하길 거부하는 실천운동이다. 나아가 이 운동의 일환인 “소비 총파업”은 매월 첫 주 일요일에 일체의 소비를 금하고 38-3·8여성의 날-이 포함된 액수만큼 저축해 자신과 여성해방을 위해 사용하자는 것이다. ‘탈 코르셋’은 개인수준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혹은 ‘선택’으로 보이는 여자들의 꾸미기가 사실은 강요 및 강제된 규율로서 구조적 억압이었음을 각성하고 고발하는 운동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라는 페미니즘의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최근 홍대 남자모델 영상 유포자인 여성에게 ‘실형’이 선고되고, 워마드 운영자에게 국제적인 수배령이 내려지고, 성폭력으로 기소된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해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여기서도 여전한 ‘코르셋’을 발견한다. 남자와 여자의 ‘놀이’의 범주에 대한 코르셋, 성폭력피해자가 내면화해야하는 규율로 작동하는 코르셋이다. 남성지배체제로서의 가부장 권력의 공공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권력은 언젠가는 대체된다. 여성들이 현재의 분노를 힘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애써 흥분하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탈 코르셋’은 부정의하고 불평등하며, 전제적인 남성규율에 대한 저항이자 해방운동이다.  “모든 여자가 화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화장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예뻐 보이기 위해 한다는 것”,  “예쁜 것만이 정답인 사회가 아니라 모든 얼굴이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사회를 원한다.”(경향신문 인터뷰 중에서)
2018-08-30 | hrights | 조회: 368 | 추천: 12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1.  다들 알다시피, 습관으로 정착된 행동의 내용과 방향 그리고 그 방식은 고치기 힘들다. 왜 그럴까?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습관을 왜 어떻게 형성하게 되는가? 하는 물음에 먼저 답했으면 한다. 2.  습관은 생명 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데 필요한 기초다. 모든 생물체들은 환경에 잘 적응해야만 살아남는다. 환경은 시시때때로 매번 다르게 주어진다. 그런데 개별 생명체는 늘 다르게 주어지는 환경의 내용에 일일이 특별하게 대응할 수도 없고 대응할 필요도 없다. 생명체는 지금 당장 주어진 환경에 ‘전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유지한다.  이때 ‘전형’(典型)은 흔히 ‘패턴’이라 부르는 것인데, 생물체와 환경 간의 오래된 접촉에 의해 형성된다. 생물체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작동하는 전형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장구한 진화의 과정을 통해 유전되는 종적(種的)인 전형이고, 다른 하나는 개체로서의 생물체가 자신의 삶을 살면서 변이를 이루어 형성하는 개별적인 전형이다. 후자는 전자의 바탕 위에서 형성될 뿐만 아니라, 달리 보면 전자를 활용해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종의 생물체들 간에 각기 나름의 다른 행동 방식이 전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러한 행동 방식의 전형은 각 생물체의 행동을 통해 표현된다. 그런데 행동을 통한 표현의 바탕에는 각 생물체의 일반화된 유기적인 구조 ― 행동의 표현이 그때마다 특수한데 비해 일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가 있어 그 힘을 발휘한다. 말하자면, 각 생물체의 유기적인 구조가 어떤가에 따라 그 생물체의 행동을 통한 표현이 달라지는데, 양쪽을 매개하는 것이 전형인 것이다.  생명체는 구조-전형-표현이 마치 삼발의 솥처럼 작동하면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 이에 생명체를 ‘전형에 따른 구조의 체계’라 부를 수도 있고, ‘전형에 따른 표현의 체계’라 부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중적 형태의 체계인 생명체는 자신이 한 순간도 빠뜨리지 않고 그 속에 살면서 접속하는 환경을 그 나름으로 구성하는 힘을 발휘한다. 말하자면, 관찰자인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각 생물체들에게 주어지는 환경이 동일한 것 같지만, 각 생물체 자신에게 주어지는 환경은 자신의 체계에 따라 이미 달리 구성된 환경인 것이다. 각 생물체에게 있어서 체계-환경의 쌍은 이원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동되어 구성함과 구성됨을 주고받는 또 다른 상위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각 생물체에게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른 생물체들이 자신의 환경을 구성하는 요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각 생물체들은 다른 생물체들을 자신의 환경으로 구성하되, 기존에 자신이 형성한 환경에 원만하게 편입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환경 구성이 생물체들 간에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공존이 잘 이루어지고, 그렇지 못하면 생물체들 간의 적대적 관계로 인해 체계가 심하게 위협을 받거나 심지어 붕괴되기도 한다.  3.  인간 역시 각자가 나름의 생명적인 체계를 이루고 있어 구조-전형-표현의 활동을 계속해서 해 나간다. 인간 생명은 자신의 환경 구성적 체계적인 위력을 그 어떤 다른 종들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 결과, 급기야 기묘한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제 자신마저 특이한 방식으로 환경으로 삼게 되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생명 활동을 제 스스로 뒤돌아보아 자신의 생명 활동 자체를 또 다시 새로운 생명 활동을 해 나가는 데 필요한 환경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소 어렵게 말하면, 인간 생명은 ‘재귀적인 환경 구성적 활동’을 발휘하는 데서 그 특유성을 갖는다.  이러한 재귀적인 환경 구성적 활동 덕분에 자신이 지닌 생명의 힘을 발휘해서 환경에 대한 행동으로 표현할 때, 인간은 그 표현에 자신의 생명활동과 그 결과에 대한 앎을 담아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생명의 힘을 발휘해서 행동으로 표현할 때, 그 표현에 자신의 생명에 대한 앎을 담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앎은 인간 특유의 앎으로써 여느 다른 일반적인 생물체들이 갖는 앎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반 생물체들의 앎은 자신의 생명 체계 속에 닫혀버린 앎이고 그래서 사실 연계에 포섭된 앎이지만, 인간 고유의 앎은 자신의 생명 체계로부터 열려 있는 앎 ― 물론 이 열림의 정도는 인간 생명 체계 내에서 볼 때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실현될 것이다. ― 이고 사실 연계를 넘어선 의미 상황에서의 앎이다.       자신의 생명 체계로부터 열려 있는 이 같은 앎을 통해 인간만의 활동인 의미 생산이 발생한다. 따라서 인간이 생산하는 의미는 또 다른 차원에서 그 나름의 구조적인 체계를 형성하되, 자신의 체계 속에 닫혀있지 않고 계속해서 새롭게 열려나가는 구조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의미들을 인간 생명의 체계는 또 다시 자신의 환경으로 재구성하여 편입시킨다.    의미 생산의 과정과 그 결과들의 응축 및 환경 구성에의 재활용 등의 전반적인 과정을 일컬어 역사라 할 것이다. 그래서 인간만이 역사를 지닌 것이다. 재귀적 생명 활동을 통해 제 스스로를 새롭게 재구성해 나가는 힘을 발휘하되, 그 자기 재구성의 과정을 통해 생산되는 의미를 자신 바깥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들이 그 의미를 각자의 환경으로 재구성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역사적 인간’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인간 역사에서 무슨 필연적인 법칙이 존립한다거나 그 법칙을 찾아낸다거나 그 법칙을 모두에게 적용하려 한다거나 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역사적 인간이란 처음부터 역동적으로 열려있는 존재이고, 그 역사적 인간의 삶을 통해 형성될 뿐만 아니라 그런 역사적 삶의 환경으로 주어지는 역사 역시 역동적으로 열려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인간을 가장 적실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언어다. 인간의 언어활동은 반드시 의미의 열린 구조적 체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 언어가 지시하는 의미로서의 환경을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삶을 유지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진 출처 - pixabay 4.   이제 습관으로 되돌아오자. 생물체 일반에 있어서 습관은 행동의 습관이다. 행동은 환경 속에서 환경을 향해 이루어지는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전형에 의거한 표현이다. 거꾸로 보면, 행동의 표현을 일정한 전형에 따라 해 나가는 것이 습관이다. 그래서 습관은 생명 활동을 원활하게 해 나가는 데 필수적이다.   이처럼 애초 생명체들이 자신의 생명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형성 ‧ 발휘하는 습관은 이제 인간의 단계에 이르러 그 내용이 바뀐다. 인간은 생명체로서 기본적으로 형성 ‧ 발휘하는 습관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역사성에 의거해서 의미를 형성 ‧ 발휘하는 습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습관을 통해 자신의 생명활동이 원활하게 유지되면서 발휘되고 또 강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 고유의 역사성에 의거한 의미 영역에서 구조적으로 형성되는 습관 역시 마찬가지다. 개개 인간들은 이 의미 영역에서의 습관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존재가 더 원활하게 유지되면서 발휘되고 또 강화될 수도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여느 생물체들과 달리 의미를 생산해 내어 그것을 자신의 환경으로 삼는 인간 생명의 구조적 체계는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다. 이러한 인간 생명의 특이한 열림은 그 생명의 환경 역시 열려 있어 여느 생물체들의 환경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 융통성과 가변성이 크다는 것을 일러준다. 아울러 가변성이 큰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기존의 생명 활동의 습관을 필요에 따라 바꾸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러준다.     5.  길게는 70년, 짧게는 30년 묵은 적대관계를 청산하려는 모처럼 이루어진 비핵화와 평화를 향한 역사적 기운을 일구어낸 북미 관계가 최근 들어 답보 상태를 보이는 모습이다.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미국에서는 ‘비핵화의 목록과 프로그램’을 먼저 내놓으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종전선언을 통한 체제안정의 기초’를 먼저 보장하라는 주장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호 불신의 바탕에는 그동안 형성되어 온 역사적인 습관들과 그에 따른 투쟁이 작동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환경이 변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데도, 그동안의 환경에서 형성되어 오랫동안 생존에 유리하다고 여겨온 습관이 새로운 환경에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함부로 습관을 바꾸면 생명활동에 지장을 가져올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환경이 크게 바뀌어 기존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기존의 습관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습관의 길을 과감하게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모든 생명체들과 인간생명 공동체들은 파멸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 문명을 일구어온 북반구 온대에서 폭염이 지속되면서 지구 온난화의 거센 파고가 지구적 삶 전체를 위협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공존의 환경 형성을 향한 인간 생명체의 체계적인 구조의 혁신이 요구된다. 겨우 이백 여년에 걸친 생산력 중심의 기술 산업주의의 삶과 그를 둘러싼 제국주의적 지배 중심의 경쟁이 이처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제국주의적인 헤게모니를 통해 역사적 의미의 삶을 구축하고 영위하고자 하는 세력의 그 무서운 습관은 언제쯤 역사의 무대에서 영구히 사라질 것인가? 대대적인 습관의 개변이 요구되는 데도 기존의 삶을 유지해 온 습관의 역습은 강고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역습을 철저히 경계하면서 용기 있게 극복할 수 있는 정치 외교적 실천의 지혜를 짜내야 한다.
2018-08-16 | hrights | 조회: 206 | 추천: 4
윤영전/ (사)평화연대 이사장  한반도(북은 조선반도)는 73년이란 최장기 분단국이다. 해외에서 흔히 “코리아”하면 북이냐, 남이냐를 따져 물을 때에는 언제나 고역스럽다. 세계 210여 개국에서 나의 조국이 가장 오랜 세월동안 분단국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한반도 분단의 근원은 오랜 일제의 조선침략 100년 전, 을사늑약으로부터 그들의 패권주의가 아세아 침략에 이르렀을 때다. 우리 3.1혁명 6.10만세 학생의거 등 숱한 저항도 있었지만 결국은 그들에게 35년이란 압제 하에서 수난을 당해야만 했었다.  나라 잃은 설움에 뜻있는 많은 애국 독립지사들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 던져 조국광복과 해방을 위해 순국하셨다. 32세의 안중근 의사와 24세의 윤봉길 의사는 사랑하는 처자식을 두고, 이등박문과 백천을 대낮 행사장에서 척살하기도 하였다.  돌아보면 필자는 일제 침략으로 이어진 남북분단에 살아와야만 했다. 반백년 전, 65년대 초반에는 제네바협정에 의해 그들은 월남과 월맹으로 17도선 나뉘었다. 당시 통킹만 사건을 일으켜 미국이 동남아 패권을 위한 월남에 파견되었다. 이때 박정희 정권은 한국전쟁에서 5만여 미군이 전사로, 월남전에 지원 파견을 결정하였다. 필자는 제대말년 65년 초에, “가면 다 죽는다.”는 월남전에 미국의 용병으로 7개국이 함께 참전을 했었다.  65년부터 10년간 연인원 총 33만 여명이 참전해 6천여 명의 전사자가 속출했다. 부상자도 1만 5천명, 당시 17도전선 월맹과 월남으로 나뉜 남베트남 전쟁은 한국전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사시사철 우기와 건기로 나뉜, 베트남은 정글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많은 고엽제 전우까지 양산되었다. 소위 월맹 정규군이 아닌 월남 내 베트콩세력에 연전연패를 거듭해, 미국과 참전국이 패전해, 통일되어 평화를 찾았다. 아주 오래전에는 남북 예멘과 동서독도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간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하지만, 바로 외세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었다. 동포들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 노래하지만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필자는 50년대 4월 혁명에도 참여하고 반민주화 투쟁도 했었지만, 군사반란으로 자주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의 꿈인 평화통일을 왜 이루지 못하고 있을까? 국민들은 통일에 얼마나 다가가고 있는가. 남북 8천만 동포가 진정 평화와 통일을 원하고 있는가? 집권한 정부마다 지역과 각 계층에 따라 다른 점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간절한 염원이고 소원인 평화통일은 우리의 절대적인 최대의 과제이고 꿈이기도 했다.  헌법에도 명시한 평화통일은 정부와 국민 모두 부단히 진력해 이뤄내야 한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그동안 보수집권이 반백년이고 진보집권은 겨우 10년이었다. 이제는 지난해 천칠백 만이 뜻을 모은 적폐청산, 드디어 평화통일을 이뤄낸다는 명제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통일은 우리의 절체절명의 기회이고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조상이 물려준 하나 된 조국인데, 일제 35년에서 우리 힘으로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기에 외세가 이 땅에 들어와 전리품처럼 되었다. 남북위정자들의 갈등으로 통일정부를 세우지 못한 게 통한이었다. 오래전에 남북은 각각 유엔의 회원국으로 가입되었으나 여전히 변방이었다.  그간 6.15와 10.4선언으로 평화통일을 선언하기도 했었다. 반세기만에 남북협력이 이뤄지고 올림픽도 함께해냈다. 금강산에 2백만 관광이 이뤄지고 개성공단에 2만5천명이 함께 일하기도 했다. 이산가족상봉이 이뤄지고 남북이 평화통일에 다가가는 모습이 그간 10여 동안 이뤄져, 이대로 가면 통일은 가까운 듯 했었다.  그러나 수구 반통일 세력이 다시 집권해 10년이나 교류가 중단되었다. 이번에 추석을 기해 우여곡절 끝에 재개될 이산가족상봉은 지난 상봉과 같이 눈물드라마를 연출할 것이다. 생전에 단 한번이라도 만나겠다는 이산가족상봉은 인도주의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한 동포와 혈육이 만나지 못할 이유는 궁색하기만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평화연대  고질적인 남북갈등은 물론, 남남갈등에 동서갈등까지의 작태는 분단조국의 아픔을 더해오고 조국의 현실과 미래를 단순히 정권안보에 편승해 간다면 이는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을 터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평화의 기운이 올 것이다. 지구촌에서 최장기 분단국의 너울을 쓰고 있는 한반도, 분단아픔에서 얼마나 더 살아가야 하나! 진정 우리의 소원이고 꿈인 평화통일을 이루어 내야만 한다.   그래도 우리의 조국 남북 한(조선)반도에 드디어 평화통일의 장이 열리고 있다. 전쟁으로 힘겨루기에 열중하던 주변 강대국들이 늦었지만 한반도 평화통일에 많은 합의와 약속을 이뤄내고 있다. 분단 70년 만에 찾아온 한반도에 진정한 봄기운이다.  올 초에 아주 어렵게 이루어진 동계올림픽 성사는 세계평화의 기운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어진 오랜 원한의 갈등 탓에 짐작하기도 어려웠던 정상들의 만남은 세계 평화의 물결로 넘실될 것이다. 소위 세계 패권 대국의 강대국들이 분단국 정상들과 회담은 세계평화에 기여할게 분명할 터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번 찾아온 한반도 평화통일 기운을, 여야 정치권은 물론, 분단조국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한 지도자와 국민들이 다 같이 이뤄내야 한다. 만약에 이에 대한 부조리한 비판의 지도자와 국민들이 있다면 준엄한 심판을 받을 터이다.   기회는 그리 쉽게, 자주 오지 않는다. 분단조국 73년, 내 나이 팔순에 접어든 이때에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2018-08-16 | hrights | 조회: 165 | 추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