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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치경제학에서 ‘교환가치’(exchange value)니 ‘사용가치’(use value)니 하는 말을 한다. 교환가치는 일정한 비율로 교환되는 상품들 간의 속성이다. 배추 한 포기와 과자 한 봉지를 바꾼다면, 배추 한 포기의 교환가치는 과자 한 봉지 정도에 해당한다. 한 시간 노동한 대가로 만 원을 받는다면 노동의 ‘사용가치’가 만 원이라는 뜻이다. ‘교환가치’는 대등하게 계량화한 주고받기로 나타나고, ‘사용가치’는 내심 더 많은 것을 받으려는 전략적 시도로 이어진다. 가치를 더 많이 확보할수록 부를 더 축적하게 된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상상을 하게 해주었다. 그는 원시 부족사회의 포틀래치(증여행위)를 연구한 『증여론』이라는 명작을 남겼다. 이 책에 의하면, 교환은 증여(gift)로부터 이루어진다. 누군가 증여하면, 받은 만큼, 아니 받은 것 이상으로 내어줌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규정된다. 모든 교환행위는 증여로부터 시작되고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 때 주고받기는 단순히 물질적 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명예와 지위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아가 영적(spiritual) 차원까지 교감하는 행위이다.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받았다면 받은 것 이상으로 상대방에게 갚는 행위가 상호 순환하면서 사회가 운영된다. 받기와 갚기가 순환할 때 차별과 불평등은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증여가 한 사회를 운영하는 근본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모스의 증여론을 ‘호수성’(互酬性, 서로 갚음)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는 최근작 『유동론』에서 호수성이 특정인의 과도한 축적과 그로 인한 차별을 극복하는 동력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의 생각을 빌려오면서, 호수성은 재물과 힘의 불균형을 정당화하는 ‘국가라는 원부(元父)’를 살해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증여와 수증이라는 교환양식은 물건을 축적하며 사는 인간의 정주 생활에서 생겨났지만, 정주 생활이 낳은 계급과 차별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호수성은 그저 계량화된 계약 관계에 따라서만 살지 않는 인간의 원초적 지향성을 보여준다. 가라타니는 이것을 ‘유목적 유동성’이라고 말한다.  다소 종교적 언어로 하면, 증여는 ‘초월’의 세계, 특정 권력을 넘어서는 ‘보편종교’를 열어주는 동력이다. 가라타니에 의하면 주고, 받고, 갚는 관계의 지속은 근대 국민국가 체계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낳은 자본 중심의 ‘세계제국’을 넘어 자유와 평등이라는 원천 관계를 고차원적으로 회복시킨다. 증여론에 담긴 호수성은 과거의 원시 부족에게만 나타나는 특정 사례가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아니 도래시켜야 할 ‘오래된 미래’이다.  그런데 이런 사유가 딱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선입견 없이 보면, 수천 년 이상 된 불교나 기독교 같은 종교의 메시지도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세상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주어져 있다. 누구든 거저 받은 데서 삶이 시작된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신의 은총 혹은 선물이라 말한다. 그렇기에 인간도 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종교 윤리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기, 이것이 자연 혹은 신적 원리에 어울리는 삶이라는 것이다. 졸저 『인간은 신의 암호』에서 이러한 은총의 원리와 윤리를 신학적으로 정리한 바 있다. 사진 출처 - 구글  인류의 문제는 주어져 있는 것을 저마다 소유하려고만 하는 데서 발생한다. 사용가치를 높이기 위한 부의 축적 경쟁에서 승패가 나뉘고 차별과 아픔으로 이어진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먼저 ‘주기’이다. 그리고 그만큼, 아니 그 이상 갚기이다. 주기와 그 이상의 갚기가 순환하는 곳에서는 재물이 특정인이나 세력에 쏠리지 않는다. 모스의 ‘증여론’이 이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게 먼저 주면 안 될까? 난민을 더 수용하면 안 될까? 검찰은 수사권을 내려놓으면 안 될까? 서울‘광역시’ 정도로 바꾸면 안 될까? 증여론, 호수성과 같은 언어를 접하다 보면 갖은 생각이 다 떠오른다. 현실이라는 이유로 체념하고, 종교의 이름으로 배제하고, 외연을 확장한다며 내면을 파괴하고, 나를 위해 남을 몰아내고, 온갖 차별, 소외, 억압, 갈등이 지속되고... 이런 폭력을 언제까지 지속시켜야 할까. 주고, 받고, 갚고, 주고, 받고, 갚는... ‘서로 갚기’의 순환 고리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누구든지 원래 받은 데서 시작하는 데 말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9-11-13 | hrights | 조회: 127 | 추천: 9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이 말은 버지니아의 식민지의회 의원이면서 변호사였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가 1775년 주 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온 유명한 말이다. 당시 북아메리카 내의 여러 식민지들은 영국에 대항하여 독립을 추진하고 있었고, 버지니아 역시 독립혁명에 가담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헨리는 영국과 타협이나 협상을 모색할 때는 이미 지났고, 이제는 분연히 일어나 싸워야 할 때라는 요지의 연설을 하면서 자유가 죽고 사는 문제에 버금갈 만큼 인간에게 소중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위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문지영, ⌈자유⌋)  여기서 자유는 국가의 모든 통치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대표를 통해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릴 자유를 의미한다. 내가 동의하지 않은 정치적 결정의 영향 하에 놓인다는 것은 노예상태에 있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인식한 정치적 자유를 말한다.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가 주권재민(主權在民)으로 표상되는 인민의 자기통치이므로 우리가 정치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이유도 일차적으로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는 데 있다. 군주의 자의적 권력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항상 나쁜 결과를 초래해서가 아니라 내 운명이 내 의사와 무관하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어질고 현명한 군주의 통치는 민주주의보다 더 효율적으로 인민의 이익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운명이 전적으로 군주의 호의와 배려에 달려 있다면 지금 당장의 상황이 내게 유리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근심과 걱정을 거둘 수 없다. 그런 호의가 계속될 지도 불확실하고(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지만 인간의 마음도 갈대와 같다고 하지 않던가!), <통치DNA> 같은 것은 없으니 대대로 훌륭한 군주가 계속 나온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자유의 핵심은 자율성에 있다. 우리가 자유를 꿈꾸는 것도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적 자기결정권을 갖기 위해서다. 민주주의는 원칙적으로 그런 자율권을 보장하는 정치체제이다. 물론 이때의 자율적 자기결정권은 공동체를 전제로 한 것으로 다른 구성원들의 자유에 대한 고려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나의 자유는 너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춰야 한다. 따라서 사회 밖에서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오늘날, 자율권으로서의 자유는 단지 개인적 자유가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자유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민주주의에 의해 자기통치=자율성이 보장된다고 해서 누구라도 저절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율성은 자유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의 자의성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조건만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느끼고 생각하는 내적 능력이 필요하다. 정치적 속박의 부재만이 아니라 훔볼트와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빌자면, “개체성(individuality)”의 확립이 필요하다. 근대 민주주의는 정치권력의 자의적 행사와 같은 외적 속박에서 인간을 해방시켰다. 민주 사회의 시민은 국가에 종속된 객체나 국가에 의해 동원되는 대상이 아니라 주권자로서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생각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는, 우선 우리가 고유하고 개성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갖고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프롬의 분석에 의하면, 근대인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 속에 살지만 실제론 <바라도록 되어 있는 것>을 바라는 존재에 가깝다.(라캉의 표현을 빌자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할까.) 예전부터도 자기가 진정 무엇을 바라는지를 아는 것은 쉽지 않았다. 쉬웠다면, 소크라테스 선생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될 리가 없었을 거다.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아는 것, 그것은 해결하기 가장 곤란한 문제에 속한다. 근대인은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고 원하기로 되어 있다고 믿는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원한다. 프롬의 탄식에 가까운 표현을 빌자면, 자아를 상실한 이런 근대인은 “스스로의 생각을 가진 개인이라는 환상 속에 사는 자동인간”이 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즉 내가 <(남들이) 되도록 기대한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면,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내면적 질문은 철학적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자유의 문제로서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프롬에 의하면, <나>란 존재가 <타자가 나에게 바라는 그대로의 것>이라면, 그래서 <남이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의 반영(反映)>을 제외하면 자아라고 할 만한 것조차 없다면, 자기 외부의 새롭고 힘센 생각이나 집단의 권위에 기꺼이 동화되려고 한다. 외부의(제국/교회/총통/민족 등의) 거대한 권위에 쉽사리 투항하여 자기 것이 아닌 자기를 받아들이는 무력감에 빠질 위험이 있다. 주입된 욕망의 프로그램을 맹목적으로(아니,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로봇이 될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존재가 되려면 어찌해야 할까? 프롬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활동의 가치와 필요성을, 즉 자발적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사랑이야말로 자발성의 사례가 아니라 자발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서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사랑은 자아를 상대 속에 용해시키는 것도 아니고, 상대를 소유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를 자발적으로 긍정하며, 개인적 자아의 보존을 바탕으로 그 개인을 다른 사람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사랑의 역학적 성질은 바로 이런 양면성 속에 있다.”(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랑을 해봐야 자유를 실감할 수 있다고나 할까. 물론 사랑만이 아니라 일도 자발적 활동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이때의 일은 강박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넓게 말하면, 인간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창조적 활동을 뜻한다. 요컨대 자유를 실현하는 존재가 되려면, 자신의 삶과 사회의 삶을 결정하는 데 자발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자발성이 단지 선거 때의 투표행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일과 일상에서, 또 타인과의 관계에서-특히 ‘인간관계의 꽃 중의 꽃’인 사랑에서 자발성을 실현해야 한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19-11-06 | hrights | 조회: 109 | 추천: 5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북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미국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북이 우주에 쏜 인공위성마저도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하였다는 이유로 유엔 제재를 받았던 전례에 비추면 격세지감이다. 국가보안법의 어두운 장막에 묻혀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반도 아닌 섬으로 전락한 남단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세상사다. 새로운 대북제재가 나오기는커녕 미국은 뒤로 숨어버렸다. 그렇다면, 유엔 대북제재를 각오한 북의 벼랑 끝 전술로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여전히 미국을 상대로 한 북의 벼랑 끝 전술로 각색하기에 바쁜 머저리들이 주인 잃은 개마냥 제정신을 잃고 짖고 있기는 어제나 오늘이나 매 한가지다.  친미 사대주의자들은 지금 북의 맹공을 보며 자못 놀라면서도 점잖게 미국이 북을 봐주고 있는 거라고 위안하고 있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용 정책의 일환으로 북을 대화상대로 인정해 치적을 쌓으려 했으나 북이 SLBM 발사로 도발하며 트럼프의 화를 돋구었으므로 머지않아 미국의 군사적 응징을 받을 것이다’라고.  동족 혐오와 폄훼에 길들여진 친미사대주의자들은 깨몽하시라.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구인 줄로만 알았던 유엔안보리가 새로운 대북제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책임을 팽개치고 회피한 채 일관성을 상실해 버린 몰골을 드러내는 현재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게다.  유엔을 독무대로 마음껏 세상일에 간섭하며 호령하고 좌지우지하던 어느 패권국은 사라지고 소수의 동료들만 남아 아무런 의미도 효과도 없는 SLBM 발사 규탄과 함께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을 애걸하는 넋두리를 펼치는 유엔안보리의 이 상황을 말이다.  식민의 충실한 노복들이 인정하든, 않든지 간에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역관계는 변했다. 미국이 시한부로 벼랑 끝 처지에 몰렸다.  북에 대한 미국의 핵전쟁위협과 제재가 무용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북에 대해 ‘화염과 분노’,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언급을 정점으로 미국의 한반도 핵 전쟁위협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분위기로 국내외정세가 변했다.  수십만 명이 동원되는 최강대국 장성 지휘 하의 핵전쟁 연습을 중단하겠다고 그 나라의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그 이행을 위한 대화와 협상이 중요한 쟁점으로 되었으니 말이다.  국가보안법에 세뇌된 나머지 동족대결과 친미 사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의 눈에는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는 미국의 핵 항공모함, 핵 폭격기, 핵 잠수함이 한반도에 오지 않게 되는 그 날은 적화통일의 악몽을 꾸기에 딱 좋은, 그야말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처럼 느껴질게다.  세상이 미치듯 변하고 있을 때 이에 저항만 하며 적화통일의 악몽과 공포에 휩싸여 살기보다는, 그래도 왜 변하는지에 대해 이치만큼은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깨몽과 정신건강에 아주 좋다. 국가보안법에서 벗어나 동족을 대하게 되면 북미 간 누가 공정하고 바른 소리를 하고 있는지 잘 살펴볼 수 있을 텐데... 국가보안법 폐지 없이는 외세의존 동족혐오 분단정신병의 치유는 어림없고, 분단정신병의 치유없이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민족통일은 요원하다.  국가보안법의 힘에 압도당한 나머지 저항력을 거세당한 이들이 너무나 많은 행세를 해 오고 있다. 정의와 진리 앞에 용기 내어 맞짱뜨며 상식과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돈키호테처럼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세상으로 물들어 갔다. 국가보안법은 기회주의자와 변절자를 양산하는 저수지로 우리사회의 기강을 흐트러뜨렸다. 국가보안법 앞에 정의도, 진실도, 이성도, 도덕도 모두 사라져가고 있지만 국가보안법의 테두리 안에서 도토리 키재기 식의 백가쟁명만 찻잔 속 태풍처럼 일어나는 형국이다.  국가보안법이 그려놓은 현실이 다 거짓에 다름 아님을 알아야 세상이 변하는 이치를 쉽게 꿰뚫어 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틀지워져 같은 동족으로서 외세의 힘을 빌려 동족을 적대하며 외세의 편에 선 자기를 아무리 합리화해봤자 그건 정의가 아니다.  1000기 이상의 핵병기를 미군기지 곳곳에 배치해 두고 지상, 해상, 공중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훈련에 몰입해 동족의 적화통일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성조기에 열광하며 안도하고 있을 때 또 하나의 조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역지사지로 생각할 힘을 길러야 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렇게 이해하면 좋겠다. 세계에서 핵무기가 제일 많은 나라가 매년 방어훈련을 너무 오랫동안 지나치게 하다보니 때때로 북 점령과 정권 격멸 및 지도자 참수작전도 작전계획에 포함되는 지경에 이르러, 북에서도 도저히 방어훈련으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처음에는 한반도 비핵지대화와 평화협정을 통한 미군철수로 맞서 왔으나 세계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져 혼자 힘으로 사회주의를 지키다 보니 도저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사회주의 경제발전을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경제제재가 너무 심하고 동족마저도 편들기는커녕 외세의 편을 들어 북의 붕괴에 가담하는 상황에서 자위적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북에 대해 온갖 쓰잘데기 없는 외세와 극우보수세력의 종북몰이 여론에 가담하기 보다는 동족의 편에서 착오 없는 올바른 판단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정의와 진리 앞에 두려움 없이 국가보안법을 극복하고 우리사회를 정상화하여 이성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바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첩경이다.  결자해지다. 미국의 이익과 패권을 위해 같은 동족을 앞세워 너무나 오랫동안 북을 악마화하고 적대하며 붕괴시키려 했던 미국의 정책을 바로 잡을 때가 도래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안에 새로운 대북정책을 갖고 평양 방문을 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보장하는 실질적 조치에 합의하기를 바란다. 그런다고 유엔 등 국제사회 앞에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횡포가 다 발가벗겨지거나 망하지는 않는다. 패권의 지위에서 내려와 보통국으로 정상화의 길을 나아가는 그 길이 유일무이한 대화와 협상에 의한 평화적 문제해결책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9-10-16 | hrights | 조회: 337 | 추천: 6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법과 믿음  지금부터 약 2천 5백 년 전, 진시황의 진(秦)나라가 통일 제국이 될 수 있도록 터를 닦았던 사람이 있었다. 상앙(商鞅)이다. 그는 진 효공의 신임을 바탕으로 재상에 올라 10년 넘게 집권하며 법치(法治)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법이 뭔지도 몰랐다. 상앙은 5미터 정도 되는 나무를 남대문에 세우고 말하였다. “이 나무를 동대문에 옮겨놓는 사람에게는 1백만 원을 주겠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고 아무도 옮기지 않았다. 다시 말했다. “이것을 옮기는 자에게는 5백만 원을 주겠다.” 어떤 사람이 속는 셈치고 옮겨놓자, 그는 5백만 원을 주었다.  상앙의 법이 시행된 뒤, 진나라 백성들은 처음에는 만족스러워했다.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 가는 사람이 없었고, 산에는 도적이 없었다. 집집마다 풍족하였고,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하였다.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서 용감히 싸웠고, 사사로운 싸움은 조심하였다. 도시든 시골이든 편안했다. 법을 어기면 코를 베고, 죽이고, 이마에 죄를 새겼기 때문이다. 비극의 남자  10년이 지나며 차츰 법이 법을 낳고, 인심은 각박해졌다. 상앙이 외출할 때는 무장한 병사들이 경호차를 타고 따라야했다. 천하장사 같은 사람들이 경호를 맡았다. 그러다 진 효공이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주변에서 상앙이 반란을 꾀한다며 밀고하였고 새로 즉위한 혜문왕은 상앙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상앙은 달아나 서안(西安) 함곡관 근처 호텔에 투숙하려고 했다. 그러나 호텔 지배인은 투숙을 거부했다. “상앙의 법에 의하면 여행증이 없는 손님을 묵게 하면 관련법에 의해 처벌 받습니다.”  상앙은 법을 만든 폐해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탄식했으나 달리 방법이 없어 위나라로 갔다. 그러나 상앙은 다시 진나라로 돌려보내지는 신세가 되었고, 수레에 몸을 찢기는 거열형(車裂刑)을 받아 죽었다. 공자(孔子)의 걱정  사마천(司馬遷)이 길지 않게 기록한 상앙의 일화는 각박한 법률가의 최후를 인용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되었다. 그런데 사마천의 말을 빌지 않아도 상앙으로부터 근 2백 년 전에 이미 공자가 법치(法治)의 함정을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사람들을 법령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사람들은 처벌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덕성으로 이끌고 예의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부끄러움도 알고 반듯해질 것이다.”  공자의 방점은 부끄러움에 놓여있다. 외부의 강제가 거꾸로 자성의 계기를 잃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를 알고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훈련이 된 인격의 확보가 먼저라는 말이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질서를 유지하려면 응당 객관적 기준,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바로 반론이 들어올 것이다. 당연한 반응이다. 여기서 유가(儒家) 역시 한 번도 덕성과 법치를 분리한 적은 없다는 점을 언급해 두어야겠다. 사진 출처 - freepik 내가 겪고 있는 소송  3년 전 고속도로에서 후방 추돌을 당하여 폐차해야 했다. M보험사에서 보상 문제로 전화가 왔다. 매매가 1천 3백만 원, 보험가 1천만 원인 차에 대한 보상금으로 4백만 원을 제시하였다. 내가 웃으며 “4백만 원을 내가 줄 테니, 그런 차를 사와 보시구려!” 했더니, 보험사 직원은 5백만 원으로 올렸다. 난 이 사람들이 장난하는구나, 느꼈다.  사정을 들은 법률가 친구가 분노했다. 그는 소송을 해서 합당한 판결을 받자고 했다. 나는 이런 얘기를 들어 줄 친구라도 있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서민들은 보험사에서 저렇게 버티면 결국 손해를 본 채 합의하고 말 것이었다. 실제로 그렇단다. 보험사는 그렇게 먹고 산단다. 이런 게 그들의 일이고, 관행이란다.  소송이 들어간 뒤 M보험사의 다른 직원, 우리 학교를 담당하는 직원이 찾아왔다. 1천만 원을 채워드릴 테니 그냥 합의하자는 것이었다. 친구는 반대했다. 바로 그 돈이 필요한 게 아니면 소송해서 판결을 받아 관행을 바로 잡자고. 나 또한 괘씸해서 그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M보험사는 처음에 말로 해결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보상해야 할 것이다. 법률가인 내 친구의 판단에 따르면 말이다. 이해는 가는데  나는 원래 공자의 말에 통찰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또한 일상의 경험에서 ‘법대로’는 곧 인간관계의 종말임을 잘 알고 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듯이, 이웃과 싸울 때 “법대로 해!” 소리가 나오는 순간이 파탄의 출발 아니던가?  하지만 보험사의 관행화된 횡포를 바로잡겠다며 소송을 맡고나선 친구의 입장 역시 이해한다. 친구에게는 판결이 정의다. 그는 M보험사를 두고 바보란다. 줄 거 주면 되는데, 비용만 늘린다고. 친구는 판결을 받아놔야 그런 횡포가 줄어든다고 사명감에 차 있다.  어리석음. 이 소송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다. M보험사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보험사의 횡포를 막을 판례를 남기겠다는 친구를 두고 하는 말은 더욱 아니다. 나야 남의 일처럼 놔두고 있으니 어리석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직관적으로 어리석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법 없이 산다는 것  요즘 우리는 법 공부를 톡톡히 하고 있다. 기소권, 수사권, 구속영장, 구속적부심, 소환, 기소편의주의, 기소독점주의, 자본~법, 뭔 법, 뭔 법. 전 국민의 법률가화(化) 상황에 돌입한 느낌이다.  실제로 텔레비전 토론회를 볼라치면 패널로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변호사다. 현재 직업이 뭐든 법 전문가라고 자칭하면서 시시콜콜 따지고 있다. 이건 구속사유가 되느니 안 되느니, 증거가 되느니 안 되느니.  국회의원들은 지들 일을 국회에서 해결 못해서 결국 서로 고발하고, 주택 수백 채를 가진 갭 투기꾼은 법적으로 문제없으니 고소하려면 하라고 하고, 한 학생 대입자료 조사를 위해 검사 수십 명이 들러붙고 등등. 이루 셀 수 없는 만성화된 법에의 호소, 뒤따르는 법의 능멸이다.  계속 이렇게 법으로만 풀어가려 해도 괜찮을까? 나는 불안하다. 단,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식상한 말에서 이 법치 과잉의 사회를 탈출할 희망을 본다. 법 없이 산다는 것은 알아서 한다는 것이고, 잘못해도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에는 법 없이, 혹은 최소한의 법으로 사는 사람이 참 많다.  이런 삶이 법치를 가장한 어리석음을 넘어설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연대와 우정보다 단절과 소외를 낳는 외마디, “법대로 해!” 그 척박함 때문에라도, 법 없이 산다 함은 이 사회와 문명에 대해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 자체이다. 감히 예언한다. 법의 능멸을 극복하는 이는 법기술자가 아니라, 법 없이 사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이 글이 인권연대 발자국통신에 올라간 뒤, 칼럼의 우려를 증명하듯이 두 가지 사태가 또 벌어졌다. 유시민 이사장은 알릴레오에서 김경록 PB와의 인터뷰를 발표했고, 거기서 KBS 보도의 왜곡을 지적했다. 지적이 타당한지 어떤지는 일단 놔두자. KBS 사회부장이 보직을 사퇴할 수도, 경영진이 무슨 조치를 취할 수도, 기자들이 의견을 낼 수도 있다. 여기서 예의 빠지지 않은 말이, 가장 먼저 나온 말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KBS가 언론으로서, 하나의 거대 공영조직으로서 취할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법적 대응’인가?  또 하나. 한겨레21에서 윤석렬 검찰총장이 김학의가 성접대를 받았다던 윤중천 소유의 별장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기사를 냈다. 이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대검찰청도 대뜸 ‘법적 대응’을 꺼냈고, 당사자 윤석렬은 고소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검찰은 수사, 조사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해명,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고소, 고발을 해야 할까? ‘법적 대응’이 이 사회의 무조건반사가 된 듯하다.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19-10-10 | hrights | 조회: 228 | 추천: 7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주말 서초동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대해 적지 않은 사람이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한편으론 놀랍고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검찰 개혁’에 동의하는 마음은 이미 촛불과 함께 있지만 ‘조국 수호’ 슬로건에는 반대하거나, ‘공수처 설립’이 곧 검찰 개혁을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들이다. 누군가는 촛불 연합의 붕괴를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박근혜 탄핵 촛불 때 잠재했던 차이들이 드러나고 경쟁하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건 차이가 드러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차이를 넘어 연대하는 것이다. 연대하려면 최상위 슬로건에 합의해야 할 텐데, 그것이 ‘검찰 개혁’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조국은 조연에 불과하다  문제는 지금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세력이 ‘조국 수호’를 ‘검찰 개혁’과 등가로 내걸고 있다는 점이다. 김민웅 교수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나는 김민웅 교수를 좋아한다. 그가 지난여름 <프레시안>에 연재한 ‘한일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시리즈를 보면, 그가 얼마나 해박하고 매력적인 지식인인지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지난 주말 촛불집회 연단에 서서 “지금은 조국이 검찰 개혁”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행태가 과도하기 때문에 이제 조국은 사퇴할 수 없고, 조국을 내어주면 대통령까지 위험하다. 그러므로 조국을 지키는 게 검찰 개혁으로 가는 길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조국 장관의 인사검증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나, 행정가로서 능력에 대한 평가를 떠나 이 주장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무엇보다 현 정세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 지금 벌어진 ‘검찰 개혁 정국’을 만든 건 조국이 아니라 검찰이라는 점이다. 검찰이 ‘오버’하지 않았다면 촛불집회도 없었을 것이다. 검찰의 오만함이 ‘조국 논란’을 ‘윤석열 사태’로 바꾼 것이지, 조국이 특별히 무엇을 한 결과가 아니다. 지금 무대에 오른 연극에서 조국은 전개상 필수적인 에피소드를 제공한 조연에 불과하다. 굳이 조국이 아니어도 된다는 말이다. 오히려 새로운 주연, ‘촛불’이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극의 결말이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검찰이 조기 참전하지 않았다면 ‘조국 법무부 장관’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의 적절성에 대해서는 이미 여론이 돌아선 상황이었다. 최근 <한겨레> 보도를 보면, 고심하던 대통령으로 하여금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하게 한 주된 이유가 윤석열의 ‘조국 불가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도 조국은 조연에 그친다.  물론 지금은 사퇴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면 거기서 그쳐야 한다. 최소한 촛불집회의 메인 슬로건에서는 ‘조국 수호’를 빼야 한다. 그것이 외연을 넓히는 길이고 촛불집회가 성공하는 길이다. 조국 수호에 갇히면 민주당원들만의 잔치가 되고 만다. 진정한 검찰 개혁도 어려워질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공수처 설립은 철 지난 과도기적 방안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참여연대가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일종의 과도기적 개혁안이다.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원천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데는 다들 동의하지만 이걸 단번에 분리하기는 쉽지 않으니 일단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또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 검찰을 견제하자는 논리다. 나는 공수처가 언제든 대통령의 칼로 변할 수 있으며 최소한 또 하나의 대검 중수부(지금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될 가능성이 크고, 궁극적으로 국가의 수사 총량이 늘어나므로 인권 신장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반대해 왔다. 결정적으로 이 방안은 검찰의 부패나 비리 등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선민의식에 빠져 선출권력까지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행태를 막는 데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오히려 공수처와 선명성 경쟁을 한답시고 더 전방위적이고 무리한 수사를 벌일 가능성도 농후하다.  요컨대 공수처는 검찰 개혁의 전망이 어둡던 시절에 만들어낸 고육지책에 불과하다. 견제에 초점을 맞추느라 권력 축소에 소홀했던 과도기적 방안이다. 더 이상 매달릴 이유가 없다. 박근혜 탄핵 촛불 이후에도 검찰 개혁이 제1의 과제로 꼽혔지만 지금처럼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는 어려웠다. 각론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조국 사태’를 겪으며 국민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진 검찰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무서운 사회적 흉기인지 소상히 알게 됐다. 둘을 분리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어두운 소식이 들린다. 조 장관이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를 만들었는데(이탄희 판사 같은 훌륭한 분을 모셨다고 한다) 주요 논의 과제가 검찰의 직접수사 축소 방안이라고 한다. 또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이다. 검찰의 직접수사는 축소해야 할 게 아니라 아예 폐지해야 한다. 지금이 평시도 아닌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래서 그가 검찰의 분탕질 없이 무난하게 법무부 장관이 되었더라도 검찰 개혁을 잘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검찰이 10월 1일 특수부 축소 방안을 발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직접수사 축소는 검찰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어차피 얘기 되는, 그래서 문제 되는 직접수사는 과거의 중수부, 지금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수사이기 때문이다. 일단 특수부를 유지하기만 하면 나중에 필요할 때(이번 조국 일가 수사처럼) 얼마든지 인력을 늘릴 수 있다. 대검 중수부를 폐지할 때도 서울 특수부가 그 역할을 대신 하게 될 거라는 우려가 있었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깜짝 놀란 듯 하루 만에 내놓은 대책이지만, 나는 검찰이 여전히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검찰 수사권 박탈하고 기소법정주의 도입해야  공수처 설립과 검경수사권 조정 등은 어차피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타 있다. 그건 그것대로 흘러가게 두고 근본적인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마치 공수처가 설립되면 검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것은 명백한 기만이다. 촛불집회 구호에서 ‘공수처 설립’을 빼야 하는 이유다. 그냥 검찰 개혁이면 충분하다. 세부 내용은 국회가 채우면 된다. 굳이 법무부가 나서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검찰을 국가기소청으로 축소해 기소와 공소유지만을 담당하게 할 수 있다. 기소편의주의는 기소법정주의로 반드시 바꿔야 한다. 검찰 마음대로 기소와 불기소를 결정하는 기소편의주의가 얼마나 많은 부정과 비리의 원천인지 알만한 사람은 안다. 미국의 연방수사국 FBI 같은 국가수사청을 만들어 수사 기능을 맡기는 방안도 가능한데 제2의 검찰 특수부가 되지 않도록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사실 기소권만 없어도 지금의 검찰 같은 패악질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각계의 여론을 모아 근본적인 검찰 개혁 방안을 마련해 보면 어떨까. 개혁방안논의 과정 자체를 축제처럼 기획한다면. 그렇게 해서 나온 방안을 내년 총선 공약으로 발표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 다수당이 된다면 입법을 통해 그대로 실행하면 된다.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마련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는 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9-10-02 | hrights | 조회: 3144 | 추천: 58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 주변의 애국자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 징후가 감지된 것은 추석 연휴 때부터입니다.  가족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 연휴, 지난해까지만 해도 스스로 노빠라고 말하는 형과 박정희를 신으로 알고 살아오신 어머니는 빨갱이와 매국노 사이를 오가며 사뭇 심각한 사태를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새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삭발하고 검찰의 칼질이 시작되자 뻔 한 언론들이 게거품을 물고 난장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머니와 형은 이번 조국 사태(?)를 놓고 누가 더 진정한 애국자인가를 놓고 한바탕 소란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역시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전략’으로 대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제가 적당히 술에 물 타고 물에 술을 탔다가는 정말 큰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온 가족이 점심을 먹고 상을 물린 다음에도 두 애국자는 별 다른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TV에서 추석 민심 어쩌고 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는데도 어머니와 형은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습니다. 그저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 막 고등학생이 된 막내 조카의 여자 친구 이야기, 암투병 중인 작은아버지 걱정 등등 그야 말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추석이었습니다. 그 뜨거운 애국심만 빼면 이렇게 평화로운 가족 모임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두 사람의 열렬한 애국심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저는 한편으로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며칠 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일곱 명의, 초등학교 아니면 중학교 시절 친구들이었으니 다양한 직업만큼이나 다른 생각들을 가졌습니다. 그 중에는 저에게 ‘종북’이라고 화를 냈던 친구도 있고 늘 뜨뜻미지근한 제 태도를 타박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월수입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지만 대부분 애국자들입니다. 그래서 번번이 크고 작은 애국 논쟁이 벌어집니다. 술잔이 깨질 정도의 큰 다툼이 일어나 원수처럼 지내다가도 이렇게 또 만나곤 했습니다. 조국 사태는 점점 어디가 어디인지를 모를 만큼 거의 미쳐가는 지경으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대학총장, 표창장, 사모펀드, 5촌 조카, 반대 시위 또 다른 반대 시위 등등 수많은 애국자들이 여기저기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는데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습니다. 역시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저는 애국적 견해가 특히 다른 두 친구의 싸움이 걱정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또 술잔이 날아다는 지경에 이를까 불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예상은 또 빗나가고 있었습니다. 술잔이 여러 번 돌았음에도 약속이나 한 듯이 그저 그런 소소한 자기 사는 이야기만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요즘 경기가 너무 좋지 않다거나, 몸이 좋지 않아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친구 걱정, 아이들 자랑 등등이 주된 화제였습니다. 그렇게 조금 더 술잔이 돌고 잠시 아무 말도 없을 때, 저에게 종북이라고 비난했던 친구가 황교안 씨의 삭발 사진이 있는 기사를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드디어 시작되나 싶었는데 그 친구의 표정은 무척 덤덤했습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습니다.  “어휴... 이런 한심한 새끼를...”  그러자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습니다. 잠시 후, 저에게 뜨뜻미지근하다고 타박해온 친구가 그에 답이라도 하듯이 한마디를 했습니다.  “조국이 말고는... 사람이 그렇게 없나?” 무슨 선문답 같은 대화를 끝으로 그날 술자리는 그렇게 마무리되어 갔습니다. 우려했던 애국적 싸움이 없었던 것 때문일까요, 갑자기 피곤이 몰려 왔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술자리에 둘러앉은 모두가 너무 피곤해서 입조차 떼기 힘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9월 25일 오전 충남 천안시 대전지검 천안지청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을 응원하는 지지자와 사퇴를 촉구하는 보수단체가 팻말을 들고 각각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혼란하다 혼란해...’  이쪽 애국자도, 저쪽 애국자도, 이쪽도 저쪽도 아닌 애국자도 정말 피곤하기만 합니다. 그러는 동안 검찰 개혁은 이렇게, 이런 식으로 물 건너가는 것일까요?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9-09-25 | hrights | 조회: 209 | 추천: 5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들과 얘길 하다가 해외여행 얘기가 나왔다.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다 좋다고 한다. 넌지시 물어봤다. “일본은 어때? 온천 좋아하잖아.” 대답이 걸작이다. “에~이. 이 시국에 일본은 좀 그렇잖아?” 딱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웃고 말았다. 초등학생이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최근 한일관계는 확실히 좋지 않다.  정밀한 분석을 할 만한 식견은 없지만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국가전략 차원에서 ‘일본판 햇볕정책’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전략의 패러다임 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질적으로 바꿨듯이 그 대상을 일본으로 바꿔서 대입해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일본과 전쟁할 것도 아니고 일본을 통째로 대서양으로 옮길 것도 아니라면 미우나 고우나 이웃으로서 ‘함께’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만든 정책”이라는 걸 최대한 돋보이게 해서라도 반대 여론을 일으키고 싶은 정책이 있다. 많은 이들이 고향사랑기부제, 속칭 고향세를 처음 들어봤을 줄 안다. 하지만 무려 국정개혁 100대과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문재인 정부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법률만 14개나 된다. 그리고 나는, 이 정책을 열렬히 반대한다.  고향사랑기부제란 ‘개인이 특정 지방자치단체에 일정액을 기부하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부금 일부에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정부가 이 제도를 도입하려는 명분은 수도권·대도시와 비수도권·농어촌 지역 간의 재정 격차를 완화하고 농어촌 지자체의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지역균형 발전 대안이라는 이유다.  이 제도의 원조인 아베 총리는 2008년 총선을 앞두고 ‘고향납세제도’를 발표한다. 자유민주당의 핵심 기반인 농어촌 지자체의 지지표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게 정설이다. 국내에서는 2007년 대선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공약으로 제안했다.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도 2007년 대선과 2010년 지방선거 공약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다가 부작용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중도 폐기했다. 그랬던 걸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에 포함시키면서 수면 위로 올라와 버렸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을 돕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방재정 악화와 격차확대라는 오랜 현안까지 감안하면 고향에 일정액을 기부하고 세액공제 혜택도 받는 고향사랑기부제도는 뭔가 좋은 제도인 듯 보일 법도 하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라는 법은 없다. 결국 정치는 결과로 말하게 돼 있다. (그래서 내가 정치를 바라볼 때 가장 싫어하는 말 두 가지가 ‘진정성’과 ‘아름다운 패배’다.) 그런 면에서 고향세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이 제도에 대해선 이미 많은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이 문제를 취재하면서 지방재정 전문가 십여 명을 인터뷰했다. 찬성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반대 이유는 대체로 일치한다. 정책목표 달성의 불확실성, 세수안정성 훼손 가능성 등이다. 정책목표 달성의 불확실성은 한마디로 이런 거다.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제도를 도입한들 기부금이 쥐꼬리만큼밖에 안된다면 뭐하러 하느냐. 오히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자체마다 기부금 액수를 늘리려 하면서 과열경쟁과 부정부패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미 일본에서 고향세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기부금에 대한 인센티브 차원에서 지자체가 기부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답례품이다. 일본에선 답례품 제공 비용이 고향납세 수입액의 80~90%에 이르는 곳도 있다. 아예 기부금으로 호객행위를 하는 답례품 쇼핑몰도 등장했다. 지자체간 경쟁이 격화되면서 노트북이나 골프용품, 심지어 부동산(토지)까지 답례품으로 등장해 중앙정부가 규제에 나서는 실정이다. 이미 일본 서점가에는 답례품을 재테크와 절세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수십 종이나 된다.  더 암울한 시나리오도 예상할 수 있다. 향우회를 동원한다거나 지자체 공무원을 동원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고향사랑기부금 실적과 답례품을 미끼로 활동하는 브로커가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기부금 액수보다 관련 공무원 인건비가 더 나올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자신 있게 말하는데, 이 제도 도입하면 몇 년 안에 전국 시군마다 고향사랑기부제도를 담당하는 전담부서가 생기고 승진이나 성과평가와 연계될테다.  고향사랑기부금 실적을 올리기 위해 답례품과 함께 등장하는 게 세액공제다. 하지만 이는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절세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일본에서 그렇게 됐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방세 비중 확대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 재정분권 정책의 특성이 압축돼 있다. 대선 공약으로 등장하면서 공론화 과정이 생략됐다. 이제 답은 정해져 있다. 관료들은 그저 직진할 뿐이다. 지방자치단체, 특히 비수도권 농어촌 지자체는 제도 도입에 적극 호응하지만 수도권 지자체는 시큰둥하다. 이게 국가 차원에서 좋은 일일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들은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나에겐 내 고향보다 아들의 고향이 더 중요하니까 나는 서울에 기부하고 싶다. 5000만 인구 중에 서울 등 수도권이 고향인 사람이 못해서 수천만은 될 텐데 그들이 고향사랑 정신으로 ‘고향’에 기부한다고 해보자. 그럼 이 제도는 정책 목표를 달성한 것일까 아닐까. 관련 법률안들은 대부분 기부대상에 수도권 지자체는 빼버렸다. 그럼 이게 무슨 ‘고향사랑’인가. 고향사랑기부금 역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흘러가다가 나중엔 왜 출항했는지도 잊어버리게 생겼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9-09-19 | hrights | 조회: 528 | 추천: 4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사마천의 필생의 저작 사기(史記)의 화식열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대개 인간들이란 자기보다 재산이 열배 많은 사람은 그저 돈 많다고 자랑질이나 하는 하찮은 놈으로 시기하고 백배 많은 사람은 재산관리 잘한 분이 되어 두려워 하지만 천배나 많은 사람은 그 밑에서 일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존경하는 사장님이 되고 만 배나 많으면 아예 내 생명 책임지소서 외치는 종이 된다”  “[凡編戶之民 富相什則卑下之 伯則畏憚之 千則役 萬則僕 物之理也] 무릇 호적에 편입된 서민이라면 상대의 부가 열배면 자신을 비하하고 백배면 두려워하고 천배면 노역을 하려 들고 만배면 종이 되는게 사물의 이치다 - 사마천의 史記 중 화식열전 중에서”  “감히”라는 말이 있다. 한때 유행했던 대만 드라마 판관 포청천이 죄를 짓고도 딴소리하는 범인을 향해 네 놈이 다 드러난 죄를 보고도 이 판관을 능멸하느냐며 어디서 “감히”라는 말을 쓴 뒤 “여봐라 개작두를 대령하라”라고 호통 칠 때에 어울리는 말이다. 요즘 한국의 역사물에서도 이 말은 자주 등장한다. 도망갔다가 잡혔거나 말을 지독히 안 듣는 종놈을 꿇어앉히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양반님 네의 주요 레파토리이다. 네놈이 “감히” 어느 안전(案前) 이라고 어쩌구 저쩌구, 다음코스는 주리를 틀거나 멍석을 말거나 사약을 내리거나 아니면 능지처참을 하거나.  시대를 거슬러갈 이유도 없이 21세기를 사는 지금도 “감히”라는 말은 차고 넘친다. 잘 알려진바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회항시킨 그 사람도, 수틀리면 아무 놈한테나 쌍욕을 처붓고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던 그 사람의 엄마도 그렇다, 말대꾸한다고 또는 대답 제대로 안한다고 길 잘못 들어섰다고 운전기사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던 유명회사 회장님도 제 딴엔 거룩한 분노의 표출을 감행하며 내뱉은 말이 어디서 “감히”였을 것이다. “감히”의 백미를 제대로 극대화 시킨 자가 따로 있으니 위디스크 회장 양 뭐시기라는 자이다. 부하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맘껏 싸대기를 후리질 않나, 니뽄도 쥐어주고 생닭의 모가지를 후리라고 시키질 않나. 우리안의 닭들을 표적삼아 석궁 놀이를 시키지 않나. 그야말로 “감히”를 주억거리는 상전 놈의 위세를 단단히 드러냈는데. 사진 출처 - 구글  화식열전으로 다시 돌아가자. 재산이 열배 많은 놈이 누구한테라도 “감히”라는 말을 썼다가는 귀가길 뒤통수가 온전치 못할 것이고 백배쯤 많은 사람이라도 뒷구녕으로 수군대는 소리에 귀가 간지러울 테지만 천배나 만배쯤 많으신 분들이라면 ‘채찍이든 돌멩이든 선택하시는 대로 맞아드리겠습니다’ 하는 게 인간의 심성이라는 것이니 목구녕이 포도청이라고 이렇게 얻어맞고서라도 살아야 하는 2000년 전의 시절엔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21세기 로봇이 종놈이 되는 시대에 명색이 사람인데 그렇게 얻어맞고도 사는 저 불쌍한 중생들은 도대체 어느 소산인가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가도.  돈 많은 게 자랑을 넘어 神이 되는 시대이기도 하니 어쨌든 제로섬 게임의 사회, 의사는 환자의 돈을, 판사 검사 변호사 나으리들은 범죄자나 그에 피해를 본 아픈 사람들의 돈을, 이른바 사장님들은 노동자의 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니 남의 것 더 많이 빼앗았으면 염치라는 것도 좀 챙겨야 할텐데, 너도 나도 “감히” “감히” 외치면 돈 많고 염치도 없는 그들의 하찮은 분노는 누가 다 맞아줄 것인가.  바야흐로 21세기는 민주주의를 꽃 피워야할 시기. 정당한 시민의 감성이라면 꽃 피워야할 의무가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감히” 라는 말을 썼던 혹은 쓰는 자들은 민주주의를 몰랐거나 민주주의의 땅에 뿌리내릴 자격이 없는 자들일 터다. 당연히 민주주의자가 아닌 것이다.  바로 그제 민주주의의 시대에는 누구도 들어서는 안 되는 “감히”라는 말을 들었다. 청문회를 무산시킨 국회를 직접 찾아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향해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감히”라는 표현을 쓰며 국회를 무시했다는 논평을 냈고 그 당의 원내대표도 “감히”라는 말을 쓰며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의 표현은 이렇다.  “사학 투기 게이트, 사기와 불법의 조국 펀드, 그리고 특권과 반칙의 민생에도 모자라서 이제는 감히 이곳 국회를 .....” 사람이름만 바꾸면 그 말의 화살이 어디로 향할지를 모르면서 하는 언사였을까. 자랑스런 독립항쟁의 전통을 건국절 논란으로 희석시키고 평화의 목소리를 반공으로 몰아붙여 독재의 칼날로 사용했던 지도자를 숭배하며 숭고한 5.18과 6월 항쟁의 민주적 성과마저 훼손시키면서 급기야는 이명박 박근혜 시대의 찬란한 주역으로 국정농단을 서슴지 않았던 그 집단의 이력을 망각한 채 스스로의 과거를 고백한 것일까.  그런 사람들에게 “감히”라는 말을 들으니 내가 다 기분 나쁜 것이다. 군사독재 시절 치열한 민주화의 투쟁 과정 속에서 공권력에 의해 알게 모르게 사라진 이들의 죽음에 눈과 귀를 막고 7.8.90년대 그 흔한 데모대의 행렬에 발길도 주지 않고 자기만 위했던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흔적은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감히”라는 말로 민주주의자들을 우롱하는 처사에 더 기분 나쁜 것이다. 그것도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 한자리들씩 차고앉아 찢기고 피 흘리고 죽은 자들이 만들어놓은 현재의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이용해서 상전 놈의 위세를 떨고 있으니 그저 오싹하고 또 오싹하기만 한 것이다. 돈이 천배 만배 많은 놈이나 땅콩 비행기 회사의 일가들이나 위디스크 양 뭐시기는 월급이라도 주면서 상전 노릇했지만 이 사람들은 내 돈을 국민 돈을 받아가면서 “감히”, “감히”를 외치고 있으니 참기 어려운 모욕을 느끼는 것이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9-09-06 | hrights | 조회: 363 | 추천: 6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1. ‘일본국헌법’  일본은 ‘평화’라는 말을 많이 하는 나라다. 현재의 ‘일본국헌법’도 이른바 ‘평화헌법’이라고 불린다. 헌법의 제9조와 전문(前文)의 아래 내용 때문이다. 제9조 1항.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제9조 2항.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 외 전력은 이를 보유하지 아니한다.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아니한다.  ‘전문(前文)’에서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우리는 전 세계의 국민이 모두 공포와 결핍을 면하고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를 가짐을 확인한다.”  ‘전쟁 포기’, ‘군대 비보유’, ‘교전권 부인’, 나아가 인류의 ‘평화적 생존권’까지 헌법에 명시해놓았으니, 평화에 대해 더 선언할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런데 아베 신조 총리는 이 헌법을 바꾸려 한다. 왜 그러는 것일까. 사진 출처 - MBC 2. 미국이 만든 일본헌법  사실상 현재의 헌법은 이차대전의 승리자 연합군(사실상 미군)이 전범국 일본에 부과한 징벌의 대가나 다름없었다. 1945년 10월 이후 잠시 수상을 맡았던 시데하라 기주로는 천황을 상징적 존재로 천명하고 - 천황의 정치적 권위와 종교적 신격의 포기는 당시 일본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 헌법에 ‘전쟁 포기’ 선언을 담을 테니 천황에게는 전쟁 책임을 묻지 말아 달라며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에게 제안했다. 맥아더가 이 안을 수용하면서 오늘의 일본국헌법(1946)이 만들어졌다. 전범 국가 일본을 비군사화시켜 동북아 군사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의도의 반영이었다.  미국은 교전 상대국 일본을 친미국가로 만들고, 당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던 한반도를 분단시켜 남쪽을 미군 점령 하에 두었다. 연합군으로 전쟁에 참여한 소련 역시 같은 의도로 북한을 점령해 미국을 견제하는 접경지대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미국-일본-남한’과 ‘중국-소련-북한’이라는 대립구도가 만들어졌다. 대립구도는 형성되었지만, 세계사적 차원에서 보면, 이차대전이라는 거대 폭력 사건은 그런대로 마무리되는 모양새였다. 그 대신 안타깝고 안타깝게도 무력했던 한반도는 분단이라는 불행과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는 희생물이 되었다. 3. 평화라는 이름의 전쟁  일본은 전 세계의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거창한 표현까지 헌법정신 안에 담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었다. 평화를 내세워야 일단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의 주체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모든 일본인의 희망이 아니었다. 진짜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수는 전쟁 패배, 원폭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어 했다. 일본인에게 헌법은 패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불가피한 징표와도 같았다. 그러다가 기회가 왔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전쟁 참여를 위해 주일 미군 상당수가 한반도로 옮겨가자 일본의 안보도 중요하다며 미국의 허락 하에 ‘경찰예비대’를 창설했다. 이것이 나중에 ‘보안대’를 거쳐 1954년 ‘자위대’로 이어졌다. 자위대는 유사시 자신을[自] 지키는[衛] 부대[隊]일 뿐, 다른 나라를 대상으로 전쟁까지 할 수 있는 군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패전 후 불과 십년도 안 되어 자위대가 창설되었고, 이것은 일본인에게 위안이 되었다.  그 뒤 일본은 미국과 각종 평화조약(미일안전보장조약)을 맺어 일본에 대규모 내란이 일어나거나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을 명문화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보장받으며 자체 군사력도 슬금슬금 키워왔다. 그럴수록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 체제가 굳어져갔다.  미국과 일본이 서로를 끌어들이면 들일수록 동아시아에서의 냉전 구도는 더 공고해졌다. 미일 중심의 평화는 중소 중심의 평화와 대립했다. 일본의 ‘반공주의적 평화주의’가 ‘미일’과 ‘중소’를 축으로 하는 냉전 체제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물론 한국의 이승만 정권도 강력한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대립적 냉전 구도의 일부를 담당했다. 그러면서 그 거대한 냉전 체제에 다시 휘말리는 모순에 시달렸다. 4. ‘책임 없는 평화주의’  냉전 체제는 물리적 힘을 숭상하는 이들의 작품이다. 아베 정권이 현재의 일본국헌법을 개정해 군대를 정상화하고 유사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는 데에는 힘으로 아시아를 제패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짙게 깔려있다. 현재의 헌법은 일본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패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픈 상처이기도 했다. 아베 같은 이들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그래도 이 헌법 덕에 일본의 재무장화를 반대하는 운동도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일본에 ‘헌법 9조를 지키는 모임’, 약칭 ‘구조회(九條会)’는 일본의 대표적인 평화운동 단체이다. 이 단체에서는 평화헌법을 지키고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화를 저지하기 위한 운동을 펼친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있다. 평화헌법이 일본 평화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 측면도 제법 있지만, 이들조차 평화헌법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의식도 크다. 평화헌법이 패전의 산물이고, 패전은 자신들이 전쟁을 벌인 결과라면, 일본의 평화운동은 자신들의 전쟁 책임을 고백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지만, 전쟁의 원인을 공론화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는 약하다. 평화헌법만 지키면 된다는 식의 ‘책임 없는 평화주의’가 전후 일본 평화운동계의 주류를 형성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전반적인 한계이다. 5. 군사화는 아베의 꿈  그 극단에 있는 인물이 아베 신조와 같은 사람이다. 아베는 패전의 상징과도 같은 평화헌법을 개정해 자신들의 주체성을(사실은 욕망을) 담은 헌법을 만들고 싶어 한다. 정상국가라면 군대를 보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군대 비보유’를 천명한 헌법을 개정하려 끝없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에 경제대국 2위 자리를 진작에 내어주고, 옛 식민지 한국과의 격차도 급격히 줄어들어가고 있는데다가, 세계사적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불안감이 군대의 확보를 위한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실리주의자 트럼프 시대를 맞아 중국-러시아-북한의 전선에 맞설 수 있는 군사비를 더 지출할 만반의 준비를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실리주의적이고 자국 중심적 정책을 펼치는 트럼프는 대표적인 친미국가 일본의 군사력에 좀 더 융통성을 부여해주면 아시아권의 방위비를 줄이면서도 그 일본을 통해 동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이때를 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은 욕망 표출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버금가는 일본의 정치, 경제, 특히 군사적 재부상을 꿈꾸면서, 힘의 우위에 기반한 일본중심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6. 아베와 문재인의 다른 길  그러면서 내세우는 모토가 ‘적극적 평화주의’이다. 평화학에서 말하는 ‘일체의 폭력이 없는 상태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일본 중심의 평화를 선도적으로 이루겠다는 의미에서, 영어로는 proactive peace strategy 또는 proactive contribution to peace로 적는다. 물론 현재의 정권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내심이 더 크다, 추측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평화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차가운 전쟁’은 계속된다.  현재의 한·일 간 갈등의 근본 원인도 일본의 이런 명백한 자국중심주의 때문이다. 당분간 아베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은 적고, 일본의 대외 정치적 태도도 비슷하거나 더 강력하게 지속될 것이다. 이른바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것은 미·일 및 중·소와의 관계성 속에서만 가능한데, 미·일과 중·소가 서로 새로운 냉전 구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이중, 삼중의 난관에 봉착해있는 형국이다. 남북이 좀 더 주체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자체적으로 적대성을 청산해가는 길만이 이러한 대립 구도를 타파하는 최선의 길이다. 그런데 김정은마저 자신의 체제를 보장해줄 수 있을 더 큰 세력, 즉 미국과의 접촉을 남한보다 우선시한다.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남아있다. 그 길은 과연 가능할까.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간 경협으로 일본을 이기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난제 중의 난제인 것도 분명하다. 이것은 과연 가능할지 다음 기회에 좀 더 정리해보련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9-08-28 | hrights | 조회: 410 | 추천: 13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인훈 추모 1주기에 즈음하여 <달과 소년병>이 출간되었다 하여 구해 읽었다. 최인훈의 단편과 중편 소설들을 모아놓은 그 책에서 제일 눈길이 가는 작품은 <총독의 소리>였다. <구운몽>, <서유기>와 같은 문제작들도 실려 있지만, 텍스트 읽기라는 게 콘텍스트 속에서 이루어진 작업인지라 아베 정권의 경제 도발과 그로 인한 ‘NO 일제(日製)’의 분위기에서는 <총독의 소리>에 먼저 관심이 갔다. 이번에 다시 읽고 나니 소설의 파격적 형식은 물론이고, ‘일제(日帝)’에 대한 최인훈의 풍자적 비판과 통찰을 조금이라도 널리 알리고 싶어졌다. 오늘 나는 내 욕망에 패배했다. 문학의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총독의 소리> ‘광고’에 나선다.  <총독의 소리>는 네 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이다. 1과 2는 1967년, 3은 1968년, 4는 1976년에 각각 발표되었다. 네 편 모두가 서사문학의 기본 요소들인 인물, 배경, 플롯은 극소화되고, ‘총독에 의해 말해지는 소리’라는 담론만이 극대화된 매우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설에서 “총독의 소리”는 “조선총독부 지하부”에서 내보내는 유령해적방송으로, “조선총독부 지하부”는 해방 이후에도 해체되지 않고 지하에 숨어서 한반도의 재식민화를 획책하는 일제로 상정되어 있다. 네 편의 소설에서 “총독의 소리”가 내보내는 담화는 실제 사건을 계기로 전개된다. 1은 박정희가 부정선거 끝에 당선한 6대 대통령선거를, 2는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들의 청와대 침투 사건인 1․21사태를, 3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그리고 4는 미국과 소련간의 데탕트에 대해 방송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연작의 각 소설은 “충용한 제국(帝國) 신민(臣民)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 날을 기다리면서 은인자중 맡은 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浪人) 여러분”으로 시작하여 “제국의 반도 만세”로 끝남으로써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 야욕의 현재성을 환기시킨다. 비록 총독이 “귀축영미(鬼畜 英美, 영국과 미국)”, 적마호비(赤魔胡匪, 러시아와 중국), “충용한 신민” 등 일제 말기에 쓰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실감을 자아내지만, 작가는 지하에 숨어 권토중래를 꿈꾸는 총독을 가상(假想)의 담화의 주체로 설정함으로써 독자들이 자유롭게-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반성적으로 “총독의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배려한다. 사진 출처 - 구글  최인훈은 <총독의 소리>가 특히 한일협정에 대한 반응으로 쓴 것이라며 소설의 집필 배경과 형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총독의 소리>는 한일협정이라는 해방 후 정치사화사의 새 장을 여는 사건에 대한 한 지식인의 충격과 혼란과 위기의식을 폭발적으로 내놓기 위해서 소설의 통념적인 형식을 벗어나 보려고” 했다.(「나의 문학, 나의 소설작법」) 그는 표현을 바꿔 이렇게도 설명한다. “첫째는 나는 이 소설에서 문학의 형식을 파괴하면서라도 온몸으로 부딪쳐야 할 위기의식을 느꼈다. 둘째는 그렇다면 정말 문학의 장르의 테두리를 넘었느냐 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형식은 별다를 것 없는 풍자소설의 적통적자다. 적의 입을 빌려 우리를 깨우치는 형식이다. 빙적이아(憑敵利我)이다.” (「원시인이 되기 위한 문명한 의식」, 강조는 인용자)  그렇다. 이 소설은 총독이라는 적(敵)의 입장을 통해, 그것도 여과 없이 내면의식을 드러내기 쉬운 독백형식의 말하기를 통해, 일제의 도착적 사고와 우리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짜여있다. “총독의 소리” 방송은 일제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대동아전쟁’ 전의 영광스럽던 제국으로 회귀할 것을 꿈꾸며, 조선을 다시 제국의 식민지로 만들고자 한다. “총독의 소리”는 말한다. “반도의 영유는 제국의 비밀이었습니다. 영혼의 꿈이었습니다.…오늘날 제국은 이 비밀을 잃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실지회복, 반도의 재영유, 이것이 제국의 꿈입니다.…반도는 제국의 제단이었으며 반도인은 제물이었던 것입니다.”(현재 아베 정권과 일본회의의 주도세력의 꿈도 이런 성질의 것이지 싶다.)  그렇다면 “총독”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민주주의가 점점 확고하게 뿌리를 내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교류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를 다시 식민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총독은 그런 움직임에 매우 불안해한다. 그러나 총독은 <총독의 소리1>이 발표된 1967년 당시 남한의 선거과정을 지켜보며 안도한다. 금권 부정선거로 얼룩진 선거가 보여주듯이 ‘반도인’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버거워하고 오히려 제국의 식민지 노예이기를 바란다는 도착적 논리를 펴면서. 그리고 총독은 “반도를 이데올로기의 대립의 형태로 양극화하여 대립 갈등케 하여 피로곤비(疲勞困憊)케 하고 제국은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이쪽저쪽 손보아주면서 실속을 차리는 것만이 반도에 영원한 이해관계를 가진 제국”의 부동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실토한다.  <총독의 소리>에서는 일제의 사고착란(思考錯亂)에 대한 비판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의 중요성도 읽을 수 있다. 일제가 우리를 자신의 우월성을 비춰보는 거울로 상정했듯이, 우리도 인종, 성, 종교, 피부 등의 차이를 내세워 누군가를(/자신을) 열등한 타자로 소외시킬 수 있다. 발화 주체를 총독에서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바꾼 <주석의 소리>에서 최인훈은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는 그 누구를 찾아내고자 노력하십시오.…정치와 직장에서 소외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책임은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있습니다.…우리가 인간일 수 있게 하라고 상황에 요구할 권리를 가짐과 동시에 우리 자신이 인간임을 개인으로서 증명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합시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이 개별적 주체로서 인간임을 증명할 의무가 있다! 총독의 소리보다는 주석의 소리가 옳다. -지금까지 <총독의 소리> 광고방송이었습니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19-08-21 | hrights | 조회: 339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