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익의 인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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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청이 발표한 권력기관 개혁은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 그리고 국가정보원 명칭 변경이 전부였다. 수사권 조정은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를 ‘반드시 필요한 분야로 한정’한다지만, 막상 그 범위를 정하는 대통령령은 검사들이 원하는 대로 정해둔 상태다. 법으로 줄인 검사의 직접수사를 시행령으로 늘린 거다. 국정원 이름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는 건 전형적인 쇼에 불과하다. 국정원의 정치관여야 법률로 엄격히 금지하는 판이니, 이름만 바꿔서 뭘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김대중 정부 이래 20년 넘게 별 탈 없이 쓰는 이름을 굳이 바꾸자는 까닭은 뭔가. 자치경찰제 도입이 경찰개혁의 핵심인 것은 맞다. 그러나 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률안은 지방경찰청과 경찰서, 지구대, 파출소 등 기존 조직은 그대로 국가경찰인데, 그 소속만 시·도지사로 바꾼 것뿐이다. 실질은 그대로 두고 명목만 조금 바꾼 거다. 지방경찰청의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시·도 자치경찰위원회라는 합의제 행정기관을 두는 것은 진전이지만, 지방경찰청장을 경찰청장이 추천해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근간은 바뀌지 않았다. 하다못해 지방의회의 임명동의나 청문절차조차 없다. 법률 개정안 취지에서 밝힌 것처럼 “현행 조직체제 변화를 최소화”했기에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명령, 인사, 재정 등 조직을 움직이는 핵심은 여전히 국가경찰 시스템과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무늬만 자치경찰일 뿐이다. 실질적인 개혁은 아예 외면했다. 정보경찰이 대표적이다. 정보경찰을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지만, 이번에도 어물쩍 넘어간다. 달라진 건 법률에서 정보경찰의 역할을 ‘치안정보’라 했던 것을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라고 달리 표현한 게 전부다. 어차피 모호한 건 마찬가지다.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공룡이 되었고, 그래서 정보경찰을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은 온당치 않다. 정보경찰 폐지는 경찰의 공룡화에 대한 대책이 아니라, 쓸모가 적으니 없애야 한다는 거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정보경찰이 작성한 보고서를 받아보는 게 유일한 쓸모인데, 3000명 넘는 정보경찰이 청와대 일부 인사들의 호기심 충족에나 동원되고 있다는 건 국가적 낭비다. 정보경찰은 그냥 없애도 아무 문제 없다. 청와대만 결단하면 될 일이다. 경찰위원회도 여전히 있으나 마나 한 유령조직으로 머물러 있다. 고위직 경찰관 출신이 유일한 상임위원을 맡고, 나머지 위원은 모두 비상임, 사무는 경찰청이 담당하는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경찰위원회는 독임제 기구의 폐해를 막기 위한 민주적 통제가 아니라, 거꾸로 경찰청을 보좌하는 거수기 역할에서 멈출 거다. 1991년 설립 이래 지금까지 3298건의 안건을 다뤘지만, 부결은 모두 3건에 불과한 역사와 전통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거다. 경찰에 대한 전문적인 독립 감시기구 설립은 언급조차 없다. 모든 권력에는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상식은 이번에도 외면당했다. 대통령이나 대통령을 배출한 정치세력이야 경찰을 맘대로 부릴 수 있으니 불편할 게 없겠지만, 경찰의 치안서비스를 받아야 할 시민들 입장은 전혀 다르다. 경찰에 불만이 있으면 청문감사관 등 내부 감시 기능에 호소해야 하지만, 이들은 시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데는 영 굼뜨기만 하다. 기관장의 지휘권을 위해 직원들의 기강 확립에나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경찰 외부에서, 경찰과 전혀 다른 독립적인 기구가 일상적으로 경찰에 대한 민원을 처리해주고 일상적으로 경찰활동을 감시한다면, 경찰서비스의 수준은 단박에 높아질 거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경찰활동을 정교화하고, 합리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것이다. 불합리한 명령체계에는 균열이 생기고, 법과 원칙이 우선하게 될 것이다. 경찰의 내부 감사인력은 1800명쯤 되지만, 외부 감시기구라면 300명 정도여도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내부냐 외부냐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영국의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좋은 모델이 있다고 십수년째 호소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집권에 성공한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태만 또는 오만이다. 아쉽다.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은 권력기관이 정권이 아니라 오로지 국민에게만 충성을 다하도록 만드는 거다. 곧 민주주의 일반 원리가 권력기관의 운영에도 어김없이 관철되어야 한다. 모든 권력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고, 시민의 통제를 받아야 하며 오로지 시민을 위해서만 일해야 한다. 대통령만을 위한 권력기관에서 벗어나 국민의 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핵심이다. 촛불정부를 자임하지만, 제대로 된 권력기관 개혁은 지금껏 없었다.
2020-08-07 | hrights | 조회: 11 | 추천: 0
경희대 태권도학과. 역사와 전통에 빛나며 태권도를 이끌어간다는 자부심도 크다. 태권도 시범단을 운영하면서 세계 곳곳을 다니기도 했다. 선망의 대상이었고,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만 단원이 될 수 있었다. 빛이 크다고 꼭 그림자도 클 필요는 없는데, 이 학교 시범단에서 폭력사건이 터졌다. 선배들의 구타를 견디지 못한 피해 학생들이 부모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어지간한 주먹질과 발길질은 참으려 했단다. 하지만 정도가 심했다.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몽둥이로 때리는 구타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때리는 이유도 황당했다. 기강이 해이하다거나 손발이 맞지 않는다고 때렸고, 격파용으로 사온 사과가 예쁘지 않다고 때렸다. ‘선착순 집합’은 보통 2~3㎞씩 달리게 했다. 학교당국은 꿈쩍도 안 했다. 폭행을 훈련 과정에서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처럼 여겼다. 교수들은 선배 학생들의 구타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저 뒤로 물러서 있었다. 문제는 가해 학생들이었다. 뭐라 이유를 대든 폭력은 범죄일 뿐이니, 당장 학사징계와 형사처벌을 받게 될 처지였다. 가해자들은 급했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 앞길까지 막힐 판이었다. 가해자들은 필사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매달렸다. 용서해 달라, 합의해 달라며 피해자와 그 주변을 압박하는 건 전형적인 2차 가해였다. 곤혹스러웠다. 상처를 보듬고 달래기도 힘들었다. 아무리 가해자였지만, 학교 선배들이 청하는 용서를 계속 외면하기도 힘들었다. 잘못은 컸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 학생들이었다. 한 피해 여학생의 아버지가 특히 그랬다. 그는 교사였다. 누구보다 학교폭력의 구조와 양상을 잘 알고 있었다. 옛날 군대가 그랬듯, 학교체육에서도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이었다. 가해 학생들도 지난해까지는 피해자였다. 폭력에 길들여지면서 강도는 점점 세졌고, 때려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을 갖기도 했다. 일정한 실력을 요구하는 교수들의 주문도 무섭기만 했다. 그래서 가해 학생 몇 명을 처벌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다. 교수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뒷전으로 빠져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랬다. 용서하되, 교훈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태권도학과 교수와 학생들을 모아놓고 폭력예방, 인권교육이라도 듣게 하고 싶었다.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가 얼마나 큰 잘못인지 생각할 기회라도 주고 싶었다. 폭력의 구조를 본 건 놀라운 직관이었다. 피해자와 그 가족이 모두 이렇게 성숙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건 전혀 아니다. 다만 교육자였던 그 아버지가 그랬다는 거다. 그 아버지가 마련한 인권교육을 맡게 되었다. 체육대학 학장실에 들렀다가 학장과 함께 강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학장이 복도로 나오자, 교수와 학생들이 부지런히 오가던 복도에서는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갈랐다는 것처럼 기적이 일어났다. 모두들 복도 양쪽으로 붙었다. 학장이 가는 길에 거치적거리지 않으려는 몸에 밴 ‘배려’였다. 무슨 신흥종교 교주의 행차를 보는 것 같았다. 2010년 11월25일, 경희대 태권도학과에서 겪은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인권교육은 효과가 있었다. 폭행이 범죄라는 인식을 공유했고, 사람을 때리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 때문인지, 그제라도 교수들이 폭력 단속에 나선 때문인지, 후배들을 때리는 일은 사라졌다고 한다. 경희대 태권도학과의 고질적인 폭력 악순환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이젠 폭력 때문에 고통받는 학생들이 없는지 정말 궁금하다. 10년 세월이 흘렀다. 모세처럼 체육대학 복도를 갈랐던 체육대학 학장은 국기원 원장이 되었다. 대학 총장은 학교법인 이사장이 되었다. 아버지가 닦은 터전이어선지 모두들 자연스럽게 여겼다. 이사장의 형은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다. 학교폭력의 악순환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모두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태권도를 포기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발군의 실력이었다. 시범단에서 활동할 만큼 실력이 뛰어났지만, 실력을 꽃피울 수 없었다. 마치 최숙현 선수가 그랬던 것처럼 피해자가 체육계를 떠나는, 아니 쫓겨나는 상황은 어제오늘이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모든 게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몇 달 동안 호소했지만 귀담아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책임 있는 사람들은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를 호소하는 게 더 큰 피해를 불러오는 것 같았다. 흔히들 ‘극단적 선택’이라지만, 뭐든 꽉 막힌 상태에선 달리 선택할 게 없었을 거다. 쫓겨나듯 그런 선택으로 내몰린 거다. 스물두 살 청년을 극단으로 내몬 건 직접 가해자들만이 아니었다. 경주시와 경상북도, 철인3종협회와 대한체육회,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그리고 경찰까지 그가 피해자로서 도움을 받아야 할 곳들은 모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는 다짐은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해결책도 책임 있는 사람들만 마련할 수 있다. 구타와 가혹행위, 성폭력이 일어나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단호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피해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풍토는 체육계와 체육팀을 운영하는 학교, 기업, 정부가 만들어줘야 한다. 폭력예방교육과 인권교육은 수시로 진행해야 하고, 체육계 폭력에 대한 감시 프로그램도 작동시켜야 한다. 대통령,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교육부 장관과 교육감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대한체육회 회장 등 책임 있는 사람들이 답해야 한다. 이미 나와 있는 답은 챙기고, 부족한 부분도 챙겨야 한다. 어떤 종목이든 폭력이 없어지지 않으면, 그 종목 자체를 영구 추방하겠다는 자세로 폭력 근절에 나서야 한다. 책임자들에게 묻고 싶다. 이제 제2의 피해를 막을 준비는 되었는가. 오늘은 어제와 달라졌는가. 최숙현 선수는 마지막 희생자인가.
2020-07-17 | hrights | 조회: 73 | 추천: 0
소년원은 감옥처럼 보안시설이다. 본래 기능은 보호지만 담벼락은 높다. 닫힌 공간이라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먹고 자는 것은 어떤지, 시설이나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늘 궁금한 곳이기도 하다. 몇 년 전 들렀던 한 소년원은 엉망이었다. 사람 냄새라고 하기에는 무척 고약한 냄새가 났다. 겨울인데도 그랬다. 목욕, 세탁, 청소를 자주 하지 않은 탓이었다. 눈 내린 지 3주가 지났는데도 운동장에는 발자국 하나 없었다. 운동장은 운동하는 곳이 아니라, 그저 관상용이었다. 말로는 학교라면서 도서관조차 없었다. 복도 중간에 책장 몇 개 갖다 놓은 게 전부였다. 소년원에선 극구 부인했지만, 소년들에게서 구타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다. 오래된 건물, 널찍한 방에 10여명을 한꺼번에 가둬놓고 있었다. 엉망진창이었다. 소년보호혁신위원회 활동을 하며 전국의 모든 소년원을 둘러보고 있다. 흔히 말하는 전수조사다. 전국에는 모두 열 곳의 소년원과 한 곳의 분류심사원이 있다. 시설 등이 여전히 엉망진창인 곳이 많았다. 그런데 여름인데도 냄새가 나는 곳은 없었다. 냄새는 눈에 띄지 않지만 감옥, 군대, 소년원 등의 상태를 간명하게 알 수 있는 중요한 표지다. 놀라운 진전은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구소년원장은 전국 소년원을 다니는 소감을 물었다. 늘 비판적으로 보자고 되뇌는데도, 막상 입에서 나온 말은 ‘고군분투’였다. 소년원 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고군분투가 맞다. 매일처럼 전쟁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그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이란 일반적인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사회와 학교, 심지어 가족조차 포기한 소년들이 너무 많다. 가족을 포함해 어떤 관계도 경험하지 못한, 처음부터 배제된 소년도 많다. 정신질환 때문에 또는 도덕적 감수성이 달라서 비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주목할 만한 비행을 저지른 소년들을 한 곳에 모아놓았으니,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비행소년들을 짧게는 한 달, 길게는 2년씩 가둬놓는 곳이 소년원이다. 소년원 직원들은 힘이 세다. 사고를 친 소년은 독방에 가둘 수도 있고, 상점이나 벌점으로 퇴원 시기를 밀고 당길 수 있다. 군대나 감옥 등의 닫힌 공간은 언제나 시간과의 싸움이 중요하다. 소년의 시간이라고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소년들과 함께 사는 일이 힘만 앞세운다고 술술 풀리는 것은 아니다. 질서유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소년원은 모두 ○○학교라 불린다. 한참 성장하고 배워야 할 시기이니 무턱대고 벌만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게 소년원 설립과 운영의 대전제다. 먹이고 재우고, 교과를 가르치고 직업훈련도 시켜야 한다. 그러나 인력과 예산, 사회적 관심은 늘 부족하다. 말만 학교일 뿐, 실제로 교과교육을 하는 진짜 학교는 서울, 안양, 전주 세 곳밖에 없다. 당장 먹는 것만 해도 그렇다. 소년원의 한 끼 급식비는 1893원이다. 누구도 이 돈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없다. 이 정도 돈으로 한참 자라는 소년들에게 고른 영양에다 입맛까지 챙겨주는 건 불가능하다. 우유도 매일 먹이지 못한다. 200㎖ 우유 한 개도 400~500원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두 개쯤 주면 다행이다. 반찬도 국을 빼면 두 가지밖에 차려내지 못하니, 우유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 보통의 고등학생들 학교 급식비는 아무리 적어도 3800원이 넘는다. 4000원이 넘는 곳도 많다. 같은 또래지만, 두 배 넘는 차이다. 이건 곧 차별이기도 하다. 군인들의 급식비는 끼니당 2495원이다. 게다가 군인들에겐 매일 1008원의 증식비가 더 붙는다. 그러니 격차는 더 벌어진다. 군대에는 PX라 불리는 매점이 있고, 교도소 수용자들은 ‘자변’이라고 필요한 간식이나 과일, 우유 등을 구입할 수 있지만, 소년원에서는 오로지 급식밖에 달리 먹을 게 없다. 매점조차 없다.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이니 덜 먹여도, 아무렇게나 먹여도 된다고 믿는 게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다. 예산이 아주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1000명 조금 넘는 소년들이 살고 있으니, 파격적으로 한 끼에 500원을 더 올려준다 하더라도 추가예산은 1년에 6억원이면 된다. 그러니 실제로 없는 것은 예산이 아니라 관심일 뿐이다. 사람들이 소년원에 관심을 갖는 건, 뭔가 사고가 터졌을 때뿐이다. 언론은 이례적 사건을 두고 여론을 부채질하곤 한다. 소년범죄가 갈수록 지능화, 흉포화, 조직화한다고 선동하지만, 통계는 거꾸로다. 소년범죄는 갈수록 줄어든다. 이른바 흉악범죄도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범죄자가 소년이라도 심각한 범죄라면 형사처벌을 통해 엄한 벌을 준다. 소년이라고 모두 소년원에 가는 게 아니다. 다만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른 성장기니 비행의 책임을 소년들에게만 물어선 안 된다는 게 소년보호의 핵심이다. 소년의 범죄는 범죄자 본인은 물론 어른들과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공동체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거다. 해서 소년원은 비행을 저지른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하는 곳이다. 이를 통해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소년법’이 정한 소년보호의 목적이다. 그러려면 잘 가르치고, 무엇보다 잘, 그리고 제대로 먹여야 한다. 부산소년원에서 만난 영양사는 돌아가려는 발길을 잡아 세웠다. 그러곤 호소하듯 말했다. 우유는 칼슘 등이 풍부해 성장기의 소년에겐 꼭 필요한 완전식품이라며, 25세 이전에 우유를 많이 먹어야 나중에 골다공증에 걸리지 않을 거라 했다. 그저 인권단체 실무자에 불과한 나에게라도 호소하고 싶은 그 마음, 그 마음에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부디 화답하길 바란다. 제발, 제대로 먹이는 것부터라도 시작하자.
2020-06-22 | hrights | 조회: 205 | 추천: 0
그의 이름은 차마 적지 못하겠다. 이런 글을 쓴다고 동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고, 또 보통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내내 아들 아무개의 어머니로 불렸다. 딸과 아들을 두었지만, 유독 아들의 어머니로 기억되는 건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다. 군에 간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 1998년 7월이었다. 군 당국은 사고라 했다. 황망 중에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직접 본 현장은 군 당국의 설명과 달랐다. 아들과 함께 있었다던 선임 병사의 말도 달랐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군 당국은 아들이 실수로 배전반에 감전되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현장을 목격했다던 선임 병사는 평소 아들이 자기를 괴롭히는 이상한 사람으로 꼽던 자였다. 그는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배전반에서 떼어놓는 등 노력을 했단다. 단박에 거짓말인지 알았다. 인체도 전기가 통하는 도체이기에 살리려고 팔을 잡았다면 그 선임병도 감전되었을 터였다. 어머니의 추궁에 진실이 밝혀졌다. 사고사는 과실치사로 또 폭행치사로 바뀌었다. 아들은 국가유공자로 현충원에 안장되었고, 가해자는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는 혼자서 아들 죽음의 진실을 밝혀냈다. 놀라운 일이다. 그의 아들의 억울함은 풀었지만, 비슷한 죽음은 멈추지 않았다. 1998년 한 해에만 248명의 군인이 죽었다. 매일처럼 그의 아들과 비슷한 죽음이 반복되었다. 의문의 죽음들이다. 김훈 중위처럼 아버지가 육군 중장이고 자신은 육사 출신 장교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 내가 일하던 인권단체에는 군의문사 가족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작은 인권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수백명의 죽음을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었다. 몇 군데를 빼고는 현장을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때 그가 나타났다. 그는 금세 군 사망 가족들의 구심이 되었다. 군 폭력 희생자 유가족 단체도 만들었다. 자식 잃은 부모들은 열심히 싸웠다. 국가 차원에서 군 의문사 사건위원회를 만들고 조사활동을 벌였던 것도 이런 싸움 덕분에 가능했다. 자식을 군에서 잃은 부모들은 기본적인 정보조차 알 수 없었다. 책임자를 만날 수도 없었다. 장군은커녕 연대장이나 대대장조차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단체를 만든 유족들은 달랐다. 이들은 국방부 장관도 만났다. 비록 국방부 앞에서 9일이나 단식투쟁을 벌인 다음이었지만, 아무튼 군대도 세상도 그렇게 변해갔다. 군 사망사건 유족들의 가장 큰 공로는 군 사망사건 자체를 현저하게 줄인 것이다. 지난해 군 사망자는 모두 86명이다. 이것도 적지 않은 숫자지만, 지난 20년 동안 3분의 1 가까이로 줄어든 거다. 박정희 정권 시절, 매년 1300~1500명씩 죽어나가던 것과 비교하면, 정말이지 극적 변화다. 스무 살 남짓의 동년배에 비해 군에 간 젊은이들의 자살률은 낮다. 군에 가면 자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거꾸로 낮아진다. 군대가 사회보다 목숨 보전이란 측면에서는 더 안전한 곳이 되었다. 사회는 나빠졌고, 군대는 더 좋아진 거다. 그와 군 사망 유가족들의 여러 모임이 함께 일궈낸 성과였다. 대신, 그의 집안은 엉망이 되었다. 아들의 죽음은 시작일 뿐이었다. 아들은 손주를 안겨주었지만, 손주는 장애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조차 못했다. 가족들에게는 손주가 아들의 무덤 앞에서 “아빠!”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 불안정한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딸도 내내 편치 못했다. 그는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참극이 벌어졌다. 지난해 말, 아니면 연초였을까. 왜 일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아들의 죽음부터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거다. 참극은 더 큰 참극으로 이어졌다. 그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일까. 죽음을 선택한 자신의 책임만은 아닐 거다. 국가와 군대는 그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무릇 모든 죽음이 그렇다. 자연사가 아닌 죽음에는 누군가의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무턱대고 책임만 지라는 게 아니다. 자연사가 아니라면, 공동체와 지도자들의 노력에 따라 관리도 통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군의 노력, 시민사회, 특히 유족들의 노력으로 군 사망사건 자체가 줄어든 것이 유력한 근거가 된다. 반면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말하는 자살은 1990년 3251명에서 2018년 1만3670명으로 네 배 이상 늘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6.6명이 되었다. 나라가 망했던, 그래서 국치로 기억하는 경술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8명이었다. 우리는 나라 망하던 때보다 열 배쯤 더 험한 세상에 살고 있는 거다. 특히 10대, 20대, 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통계는 너무 끔찍하다. 자살도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군대에서도 가능했던 일을 국가 차원에서 못할 일은 없다. 아무개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꾸준히 노력한다면, 자살률 감소를 국정과제의 앞머리에 놓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탈출구에 의지하게 하면 안 된다. 자살의 책임을 자살자에게만 물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하지만 어떻게 노력하는가에 따라 어떻게 죽는지는 달라질 수 있다. 애써 노력한 끝에 군 사망사건을 줄이고,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인 것처럼, 자살자도 줄일 수 있다.
2020-05-22 | hrights | 조회: 70 | 추천: 0
  유권자들이 만들어 준 결과만 뺀다면, 이번 총선은 엉망진창이었다. 무엇보다 기억할 만한 공약이 없었다. 이 당이든 저 당이든 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건지, 다수당 또는 과반수가 되면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세상은 다만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둘로 쪼개지는 것처럼 보였다. 대통령이 일할 수 있으려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정부를 심판하려면 미래통합당을 찍으라는 게 전부였다. 둘로 쪼개진 세상에서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의 자리는 찾을 수 없었다. 민주당은 통합당만큼 엉망은 아니었지만, 변변하게 내세울 게 없었다는 점은 같았다. 둘 중 하나만 강요하는 게 선거판의 속성이라지만, 내일을 위한 건설적인 대안 제시는 온통 MB식 개발공약에만 머물렀다. 막말은 차고 넘쳤다. 김대호, 차명진의 이름을 다시 거명하는 건 뜨악하다. 차명진의 막말도 문제였지만, 통합당의 대응은 한심했다. ‘자진 탈당’이란 뜨뜻미지근한 조치를 했다가 여론에 밀려 제명을 했다. 막말을 이유로 김대호를 제명한 직후인데도 그랬다. 아마 길거리 태극기를 의식한 탓일 게다. 황교안이 그랬던 것처럼 통합당이 길거리 태극기로 기울어질수록 민주당의 승리는 더 확실해졌다. 차명진의 막말이 도드라졌지만, 도대체 저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면 어떡하나 싶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입신양명 말고는 어떤 가치도 찾아볼 수 없는 후보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 전 국민에게 1억원씩 주겠다는 등 선거판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일도 적지 않았다. 비례용 위성정당이라는 부끄러운 짓도 서슴지 않았다. 통합당은 선거법 개정 국면에서도 몽니를 부린 터라 그러려니 하지만, 원칙을 지키겠다던 민주당마저 ‘꼼수와 편법’을 쓴 것은 실망스러웠다. 적어도 국정운영을 책임진 정당으로서, 특히 지난해 선거법 개정을 이끈 정당으로서 지켜야 할 원칙은 지켰어야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러지 않았다. 역사적 압승이지만, 색이 바랬다. 그나마 민주당이 뭘 잘해서 얻은 성적이 아니라, 상대의 자멸로 얻은 반사이익이었다. 표를 달라면서도 수준 낮은 정당과 자격 미달의 후보들도 많았지만, 유권자들은 현명했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그것도 아니면 최악은 면해야 한다는 주권자의 지혜로운 판단을 직접 표로 보여줬다. 집권 3년째 정권이 아니라, 시대착오적 수구세력을 심판한 것도 놀라웠다. 통합당을 심판하되, 환골탈태하면 다시 도약할 수 있을 정도의 여지는 남겨 두었다. 바꿔 말하면, 앞으로도 이런 식이라면 다음 선거 때는 아예 소멸시켜버릴지 모른다는 경고도 함께 보여주었다. 정의당 대표는 울었지만, 정의당의 비례 득표율은 지난 총선에 비해 2.4%포인트 이상 늘었다. 제3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것도 바로 유권자의 선택이었다. 다들 아는 것처럼 문제는 지금부터다. 적폐를 어느 정도 청산했다지만, 21대 국회라고 녹록지는 않을 거다. 국회의원 당사자들은 대개 엇비슷하다. 다양한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 50대 중반의 직업 정치인 아니면 법조인이고, 재산도 엇비슷하다. 너무 한결같다. 세대를 아우르지도 못하고, 다양한 직업을 대표하지도 않는다. 남성은 너무 많고, 여성은 너무 적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관료들을 견제하며 뭔가를 바꾼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 정치는 지독한 정체 상태다. 그저 직업이 정치인인 사람,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 출세 한번 하고 싶은 사람들만 잔뜩 모였으니, 새로운 기대 자체가 무망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의 관심은 온통 국회로 쏠릴 수밖에 없다. 직면한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민주주의와 인권, 다양성의 측면에서 한국적 해법은 세계 각국의 찬사를 받았다. 어깨가 으쓱해질 정도였다. 민주당의 총선 승리도 코로나19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한국은 불과 몇 년 전까지 헬조선이라 불렸다. 긍정적인 변화도 제법 있지만, 요지부동인 것도 아주 많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 가장 낮은 출산율은 한국이 어떤 상황인지를 알려준다. 자살이라는 사회적 바이러스는 젊은이와 늙은이를 가리지 않는다. 김용균의 비극에도 산업재해는 끝없이 반복된다. 현대중공업 같은 대기업에서도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상황은 참담한데 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 박용진의 말처럼 지금 여당이 할 일은 대선공약집을 꺼내 보는 것이다. 당선 인사는 이제 그만하고 일을 해야 한다. 모여서 공부도 하고 어떤 상임위원회에서 일할지, 4년을 어떻게 보낼지 구체적으로 가늠해야 한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만큼 헌법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 그리고 전체 투표율은 4년을 기다린 유권자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어느 때보다 절실한 마음으로 21대 국회 개원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도 엉터리라면, 그때는 심판 대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민주당이 야당 복 때문에 누리는 호사도 이번이 마지막일 수 있다. 이제는 자기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코로나19 대응으로 세계적 모범국가가 된 것처럼, 한국 정치의 수준도 달라지면 좋겠다. 오로지 국민을 위한 정치, 국민에게 인정받는 정치를 하자. 새로운 국회에 거는 시민들의 여망이다.
2020-04-24 | hrights | 조회: 66 | 추천: 0
많은 젊은이가 공무원을 꿈꾼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 문은 닫았지만, 공무원 고시학원은 여전하다. 수험생들 열기는 늘 뜨겁다. 다들 열심이다. 공무원의 높은 인기는 신분 보장 때문이다. 공무원의 신분 보장은 헌법 사항이다. 최고위 규범이 가장 높은 수준에서 고용 안전을 보장한다. 게다가 급여도 안정적이다. 연금도 꽤 쏠쏠하다. 사회복지 분야처럼 힘든 업무를 반복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직사회가 업무 효율을 주로 따지는 곳은 아니어서 노동조건은 대개 안정적이다. ‘격무와 박봉’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공무원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고 먹고살 만한 급여에다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연금까지 두루 보장하는 건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헌법 제7조의 규정처럼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하며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거다. 지금 당장의 사태가 그렇다. 공무원들이 없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진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가야 했을 거다. 해외가 주목하고 칭찬할 정도로 한국의 공무원들은 제대로 대응하고 있다. 이게 바로 공무원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가끔은 대한민국의 주인이 국민이기보다는 공무원들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 오로지 자신의 잇속만 챙길 때는 특히 그렇다. 국가보훈처 공무원들은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독립기념관, 88관광개발(골프장) 등 보훈처 관할 기관 종사자들과 함께 ‘나라사랑공제회’를 만들었다. 2012년, 보훈처 설립 50주년을 기념했단다. 정관에 밝힌 설립 목적이다. “국가보훈 업무에 헌신하는 소속 회원들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도모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일깨우는 사회공헌과 보훈행정에 기여함.” 얼핏 보면 나라 사랑, 곧 국가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된 분들을 위한 조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독립, 호국, 민주화 분야의 국가유공자들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그냥 보훈처와 공단 직원들의 잇속을 챙기는 게 전부다. 설립 과정도 부적절했다. 행사 기획사, 여행사, 인쇄업체 등 보훈처 납품업체들에서 재단 출연금을 거뒀다. 출연금을 낸 업체들은 그만큼 혜택을 받았다. 2011년 보훈처 관련 매출이 전혀 없던 여행사는 2012년에만 2억2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출연금만이 아니다. 보훈처는 업체들과 사업을 하면서 얻은 수익의 일정 비율을 공제회에 납부하게 했다. 이렇게 거둬들인 돈은 모두 3억5000만원이었다. 나라사랑공제회가 집중한 사업은 부동산 투자였다. 2015년 11월엔 경기도 성남, 다음해 3월엔 강원도 춘천에 있는 빌딩을 샀다. 각각 86억원, 128억원짜리였다. 공제회의 투자, 곧 보훈처 공무원들의 욕망은 촛불에도 정권교체에도 굴하지 않았다. 2017년 9월에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으로 진출해 170억원짜리 빌딩을 샀다. 건물 매입비용은 모두 은행 대출을 통해 조달했다. 땅을 담보로 빚을 내어 건물을 사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런 투자를 바탕으로 회원들에게는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 사실상 제로금리시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퇴직급여 이자율은 4.25%다. 2016년 12월까지는 연 5.75%의 확정금리를 적용했다. 회원 자격이 없는 퇴직자에게도 자금 예탁을 통한 재산 증식의 기회를 준다. 5000만원까지 연복리 2.75%의 이자를 준다. 2018년 ‘국민중심보훈혁신위원회’는 보훈처장에게 나라사랑공제회 해산을 권고했다. 보훈처장이 설립 허가를 취소하라는 거다. 보훈처 공무원과 공단 직원들은 사영기업 노동자나 자영업자에 비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 보훈섬김이 같은 무기계약직은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지만 회원 자격도 주지 않았다. 정작 복지가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정규직끼리만 혜택을 누리겠다는 폐쇄적 운영이다. 수익의 일부라도 국가유공자를 위해 내놓거나 국가의 기억사업이나 돌봄사업에 보태는 일도 전혀 없었다. 기부활동도 공적인 역할도 지금껏 전혀 없었다. 나라사랑공제회는 정부의 설립 허가권을 악용한 대표적 사례다. 이익을 내겠다며 부동산 투자만 반복하는 것도 이상하다.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을 매입하는 게 이익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무원들의 조직이라면 달랐어야 했다. 보훈처장은 권고를 수용했지만, 공무원들은 재산 처리를 위해 말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말미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공제회 해산은 유야무야된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이사장도 새로 뽑고 전국의 보훈청을 돌면서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해산은커녕 몸집을 더 키우고 있다. 부동산 투자도 잘해서 이윤을 크게 내고 있으니 회원으로 참여해달라고 독려하고 있다. 사실 부동산 투자는 보훈처 직원들만 벌인 일은 아니다. 법무부 직원들인 교정공무원들의 교정공제회는 아예 ‘부동산투자부’란 부서를 신설하고 매년 1000억원 안팎의 매물을 사겠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빌딩을 798억8000만원에 사들였다. 교정공제회는 교도관들의 회비만이 아니라 교도소 물품 납품을 독점해 수익을 올리는데, 역시 귀결은 부동산이었다. 경찰공제회, 군인공제회, 행정공제회 등도 마찬가지였다. 콘도나 호텔, 또는 골프장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각광받는 투자처는 역시 부동산이었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공직사회라고 다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나 관련 장관들이 부동산을 안정시키겠다고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는 건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공무원 이익단체들은 수익용 부동산을 사들이면서 시민들에게만 자제를 호소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공무원이라고 희생만 강요당할 수는 없다. 그들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이 가진 권한을 이용해 오로지 제 잇속만 차린다면 큰 문제가 아닌가. 민주적 통제가 절실한 상황이다.
2020-03-27 | hrights | 조회: 93 | 추천: 0
당사자들은 절박했다. 그제 국가인권위원회 앞.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구제조치를 요구했다. 폐쇄병동에서 집단 격리, 집단 치료는 곤란하다는 거다. 시설 수용자도 다른 환자들처럼 안전한 치료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거다. 상황은 엄중하고 요구는 절박했지만 인권위는 아직까지 입장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건강권’에 대한 중요한 현안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주문은 많았지만 인권위는 능동적 대처, 원활한 해결과는 거리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가를 빌리면 “침체하고 존재감이 없었다”. 그럼에도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리는 건, 인권위가 뭔가 해줄 수 있는 법률적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긴급구제조치 권고를 통해 수용자의 구금 또는 수용 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사항을 권고할 수 있다. 인권위는 김대중 정부 시기였던 2001년 11월 출범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논란의 한복판에서 주가를 올리기도 했다. 이라크 파병 반대 의견 표명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입장에선 성가신 존재였다. “정부의 인권 침해 사례를 적시하고, 시정을 촉구하는 결정이 빈번했다. 그 호통이 때로는 날카롭고, 자못 난감한 경우가 있었지만 나는 싫지 않았다.” <김대중 자서전>의 한 대목이다. 김대중 대통령다운 말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는 조직 축소와 위상 격하를 겪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금 기지개를 켤 수 있게 되었다. 당장 인력과 예산이 부쩍 늘었다. 예산은 2018년 314억원에서 2019년 366억원으로 늘었다. 16.8% 급증이다. 인건비도 14.4% 늘었고, 주요 사업비는 무려 38.3% 증가했다. 국가기관의 예산이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늘어난 사례가 또 있을까. 호시절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인권위 위상을 제고하라고 지시했다. 이전 정부의 인권 경시 태도와 결별하고, 국가의 인권 경시 및 침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고 인권이 실현되는 국정운영을 도모하라는 거다. 이명박 정부 때 형식화되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 건도 없었던 인권위 특별보고도 정례화하겠다고 했다. 국가기관이 인권위 권고를 잘 따를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도 모색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약속은 대체로 지켜지고 있다. 비록 정례화는 아니지만, 2017년 12월, 2019년 4월에 대통령 특별업무보고가 있었다. 무엇보다 인력과 예산을 늘려 인권위의 힘을 키운 게 중요했다. 인권위는 모처럼 중흥기를 맞았지만, 좋은 기회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호시절이 허송세월이 되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고, 내부는 온통 어수선하다. 직원들은 기운 빠져 보이고 고위직은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인다. 앞서의 기자회견이 이례적일 정도로 인권위가 여론의 주목을 받는 경우도 별로 없다. 인권위의 답답한 모습은 웹사이트만 찾아봐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위원장 활동’은 2019년 9월에 멈춰 있다. 그날 종교인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는 게 마지막이다. 다른 기관도 이럴까. 국민권익위원회를 봤다. 권익위 웹사이트는 위원장 동정을 아예 달력으로 보여준다. 2월 일정은 여백이 별로 없을 정도로 빽빽했다. 이게 공직자의 도리고 기관의 기본이다. 인권위원장의 활동이 5개월 동안 멈춰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신호다. 국가기관에서 인력과 예산, 그리고 권한이 늘어나는 것처럼 신명 나는 소식은 없다. 그런데도 왜 인권위는 이전 정권 때처럼 침체하고 존재감이 없는 걸까. 내부 평가는 최영애 위원장의 자질을 주목하고 있다. 인권위 노조의 설문에 따르면 직원의 64.2%는 최 위원장이 핵심과제에서의 성과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긍정평가는 겨우 4.9%였다. 인권위가 핵심과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로 ‘위원장의 역량 등 리더십 부족’을 꼽은 사람은 54.1%였다. 최영애 위원장은 인권위의 요직을 두루 거친 사람이다. 설립준비단 시절부터 사무처 준비단장을 맡았고, 초대 사무총장을 거쳐 상임위원으로 영전했다. 설립 초기 6년 동안 인권위의 정점에 있었다. 2018년 9월 위원장에 취임했다. 사무총장, 상임위원, 위원장 등 핵심 요직을 모두 거친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최 위원장에 대해 자질이 없다고 박한 평가를 하고 있다. 구체적인 쟁점으로 들어가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인권위는 최근 법무부 교정본부로부터 기동순찰팀 대원들의 명찰 패용 권고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원들이 수용자로부터 협박, 진정, 고소·고발을 당하기 때문이란다. 교정본부가 책임행정의 기본도 지키지 않겠다는데, 인권위는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다. 진짜 문제는 명찰 패용이 아니다. 무술 유단자 등으로 구성된 기동순찰팀은 2009년 ‘수용질서 확립’을 위해 만들어졌다. 정권 환경과 인권에 관심 없는 법무부 교정본부장의 일탈이 만들어낸 권위주의적 산물이다. 기동순찰팀의 역할은 일상적 무력 과시가 전부다. 인권위라면 마땅히 기동순찰팀 해체를 권고했어야 했다. 하지만 지엽적인 명찰 문제에만 매달렸고, 그마저 퇴짜를 당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퇴짜를 당하고도 아무 반응이 없다는 거다. 권위가 땅에 떨어진 엄중한 상황이지만 인권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토론회를 열 수도 있고, 언론 기고를 하거나 기자간담회를 통해 여론에 호소할 수도 있다. 법무부 장관을 만나 자초지종을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뭐가 되었든 인권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반복되고 있다. 위원장이 조직 장악도 못한다는 평가가 따르는데, 사무총장에도 낙하산 인사를 강행했다. 위원장과 사무총장은 고위직으로 근사한 대접을 받아서 좋겠지만, 그들에게 좋은 게 인권위에도 좋은지, 나아가 국민들에게도 좋은지는 의문이다. 최영애 위원장의 임기 절반이 훌쩍 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오늘도 어제처럼 별일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다.
2020-02-28 | hrights | 조회: 119 | 추천: 0
수사권 조정 법률안이 통과되자 곳곳에서 경찰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당장 대통령부터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이원화하고, 국가경찰은 행정경찰과 수사경찰로 분리하자며 관련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주문하고 있다. 검찰개혁과 경찰개혁은 하나의 세트로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전혀 다른 차원의 목소리도 있다. “국민에게는 검찰개혁이라고 속이고 결국 도착한 곳은 경찰공화국”이란 악담이 그렇다. 물론 검사의 말이다. 그래도 “경찰개혁안은 어디로 사라졌냐”는 질문에는 답변이 필요하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따져보자.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권한은 줄어들고, 경찰 권한은 더 커졌을까?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사의 수사 지휘를 없애고, 검사와 경찰관이 ‘서로 협력한다’고 바뀌는 건 맞지만, 이는 명목에 불과할 뿐, 수사의 실질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을 거다. 명칭만 협력적 동반자 관계라고 부른다고 검사와 경찰관의 상하관계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예전 형사소송법 표현을 빌리면 검사는 여전히 ‘수사의 주재자’다. 수사의 핵심은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등 강제수사다. 피의자가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갖다 바칠 리 없으니 강제수사를 통해서 증거를 확보하는 게 중요한데, 이게 전적으로 검사만의 권한이다. 형사소송법 이전에 헌법부터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제12조)고 규정하고 있다. 검사만이 영장청구권을 갖고 있으니, 검사가 움직이지 않으면 영장 발부도 없고, 강제수사도 없다. 검사의 직접 수사권도 여전하다. 지금도 전체 사건의 1~2%만 검사가 직접 수사할 뿐이지만, ‘검찰공화국’을 만들고 지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 검찰청법 개정을 통해 직접수사 범위를 제한한다지만, 이건 ‘특수수사 등’이라는 식의 말장난만으로도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에서 보듯, 하나도 특수하지 않아도 자기들이 특수수사라 규정하면 그만이고, 여기에 덧붙여 ‘등’자 하나만 넣어도 얼마든지 무엇이든 확장할 수 있다.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달라진 것인가. 우리는 드디어 검찰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에 살게 된 것인가. 검찰개혁은 최소한 일단락이라도 된 것인가. 그게 아니라도 경찰개혁은 절실하다. 경찰이 공룡이 되었다거나 검사들의 조롱처럼 ‘경찰공화국’이 되어서가 아니다. 경찰이든 어디든 국가기관은 모두 개혁과제를 갖고 있다. 경찰에도 묵은 숙제가 많다. 경찰개혁은 늘 절실한 과제였다. 그렇지만 지금 논의되거나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정도라면, 이 역시 검찰개혁처럼 구호만 요란하고 실속은 전혀 없는 엉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자치경찰제도 그렇다. 국가경찰의 지구대, 파출소를 그냥 두고 제주도 모델을 전국화한다고 그게 자치경찰일 수는 없다. 제주도 모델의 전국 확대는 경찰권 분산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그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행정경찰과 수사경찰의 분리도 그렇다. 교과서적으로야 의미가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구분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국가수사본부장을 경찰관이 아닌 사람으로 임명한다는 것은 약간의 진전일지 모르지만, 경찰청 감사관에 경찰관 아닌 사람이 임명된다고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처럼 부서 책임자 한 사람의 신분만으로 독립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자치경찰이든 국가수사본부든 훨씬 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게다가 핵심은 모두 빠져 있다. 경찰개혁위원회가 권고했던 ‘시민에 의한 민주적 외부 통제 기구 신설’은 아예 언급조차 없다. 기존의 경찰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로는 한계가 있으니, 위법·부당한 경찰권 행사를 통제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독립기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오로지 경찰만 감시하는 별도 기구이다. 영국에서 오랫동안 운영하고 있는 ‘독립적 경찰감시기구(IOPC, Independent Office for Police Conduct)’를 모델로 제시했다. 최하 100명 이상의 직원을 두고, 경찰관에 대한 감찰, 경찰 관련 민원에 대한 조사 등을 하고, 특별히 경찰관의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보장한다면, 경찰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두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 될 거란 판단이었다. 경찰서마다 두는 청문감사관실 인력의 일부 규모만으로도 더 큰 효과를 볼 것이다. 물론 경찰 입장에서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그 부담 때문인지 이 개혁안은 종적을 감춰버렸다. 어디서도 누구도 말이 없다. 외부 감시만큼 내부 감시도 중요하다. 가장 실효성 있는 답은 경찰관 노조에 있다. 경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 있을까. 경찰관이라고 헌법상 노동기본권을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찰관 노조는 헌법상 원칙을 확인하는 일이며, 국민들 입장에서는 아주 훌륭한 경찰 내부 감시자를 얻는 별도의 소득도 있다. 여기에다 정보경찰 폐지까지 더하면, 지금 단계에서의 경찰개혁은 마무리할 수 있다. 경찰에게도 정보활동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건 범죄 관련 정보여야 한다. 범죄정보는 수사나 형사에서 따로 챙기고, 정보경찰은 ‘치안정보’라는 특수수사만큼 모호한 개념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정보경찰이 수집한 정보는 재가공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구시대적 작태다. 정보경찰은 지금 당장 없애도 아무 문제가 없다. 청와대 직원들만 증권가 소식지보다 재미있다는 보고서를 공짜로 보는 특권을 포기하면 된다. 그러면 수천 명의 정보경찰을 일선 치안현장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경찰전담 감시기구 설립, 경찰관 노동조합 설립, 그리고 정보경찰 폐지만 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경찰을 만들 수 있다. 경찰청의 구호 “국민과 소통하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경찰, 국민과 함께하는 경찰”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2020-01-31 | hrights | 조회: 287 | 추천: 0
   새해를 맞아 금연을 한다, 술을 끊거나 줄이겠다, 운동을 하겠다는 등의 결심을 한다. 올해는 꼭 지키겠다며 떠오르는 해를 보며 다짐하기도 한다. 새해를 맞아 하는 다짐들은 대개 건강하게 살자는 거다. 물론 건강이 최고다. 한국인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세계 최고다. ‘건강염려증’을 앓고 있나 싶을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본인 건강이 양호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국인은 29.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88.5%가 스스로 건강하다고 응답한 캐나다는 물론, OECD 가입국 평균인 65.7%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한국 사람들은 병원에 세계에서 가장 자주 간다. 국민 1인당 연간 16.6회로 OECD 평균 7.1회의 두 배가 넘는다. 병원에 입원하는 기간도 세계 최장이다. 한국인의 평균 입원일수는 연간 18.5일로, OECD 평균인 8.2일에 비하면 두 배 이상 길다.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병원에 자주 가고, 입원도 오래 한다면, 그건 한국인이 다른 나라 국민보다 두 배 이상 더 많이 아프다는 확실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건강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심각하다는 근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술·담배를 하는 비율, 비만 정도, 영아사망률과 평균수명 등이 모두 OECD 평균보다 훨씬 좋은 상태다. 특별히 많이 아픈 것도 아닌데 환자들이 왜 넘쳐나는 걸까. 호들갑에 가까운 건강염려증은 어디서 온 것일까. 연대와 나눔을 찾아보기 어려운 각자도생의 사회이니, 제 몸부터 챙겨야겠다는 생존본능이 강하게 작동한 탓일까, 아니면 의료계에 대한 불신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의사들이 돈벌이를 위해 건강염려증을 조장하기 때문일까. 유감스럽게도 정부 차원의 정확한 진단은 없다. 그래도 다들 아는 게 있다. 환자는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만 취급되고, 과잉진료가 남발되고 있다. 세계에서 MRI와 CT가 가장 많이 보급된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환자들은 돈만 밝히는 병원과 의사를 믿지 못하니, 진단과 진료를 위해 병원을 옮겨 다닌다. 결국 브랜드 파워에 따라 대형병원으로 사람이 몰리고 있다. 믿을 만한 의사, 나아가 존경할 만한 의사는 모두 위인전에 갇혀 버렸다. 의대생들 중에 슈바이처나 장기려를 꿈꾸는 사람이 있을까. 녹색병원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성수의원 양길승이나 사당의원 김록호 같은 의사를 현실에서 만나는 것도 힘들어졌다. 아픈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그가 누구든, 어디든 달려가야 한다는 원칙, 세상이 아프면 의사도 아프다는 상식에 동의하는 의사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병원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상황을 바꿔야 한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에 공공성을 확보하는 게 과잉진료를 막고, 더 이상 한국사람들이 건강염려증에 시달리지 않게 할 유일한 대안이다. 하지만 이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며 기득권 세력의 눈치나 보는 형국이다. 돈벌이 의료행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그나마 공공의료기관이다. 그러나 전체의 5% 남짓이다. 전체 병상 비율은 10% 정도라 좀 더 낫지만, 둘 다 OECD 최하위 수준이다. 문제는 병상 기준으로 전체의 10% 남짓한 공공병원마저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국가나 지방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많다. 서울대학교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은 12개, 종합병원은 49개다. 국립중앙의료원, 국립암센터처럼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는 병원도 있고, 국방부의 국군수도병원, 국가보훈처의 보훈병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한국원자력병원,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병원, 지방정부가 관할하는 병원에다 경찰청의 경찰병원까지 있다. 여기에다 병원이 46개, 요양병원 84개, 치과병원 5개, 한방병원과 의원이 각각 1개씩이다. 합하면 모두 198개다. 이 통계에는 2018년 8월 문을 연 인천보훈병원은 빠져 있으니, 실제로는 200개가 넘을 게다. 아무튼 200개쯤 되는 공공의료기관들이 한국 보건의료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이며, 오로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영리의료기관을 제대로 견인할 수 있는 선도기관이지만, 실상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공의료기관들 사이에 어떤 협력체계도 없다는 거다. 기관별로, 또는 관할하는 부처에 따라 각자도생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아무 상관없이 각자의 길만 가고 있다. 함께 모여 의논하는 일조차 없다. 그러니 효율성도 떨어지고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담보할 실력도 뒤처지게 된다. 보훈병원은 군병원이나 경찰병원과 아무 연관도 없다. 국가가 예산을 투입해 운영하는 병원인 데다 주요 고객이 겹치는데도 그렇다. 만약 6개의 보훈병원과 19개의 군병원, 그리고 1개의 경찰병원을 통합하면 어떨까. 엄청난 규모의 공공의료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군인들이 군병원을 이용하듯 경찰병원이나 보훈병원도 자유롭게 이용하면 더 좋지 않을까. 이를 국가돌봄병원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거다. 부처 간 칸막이만 뛰어넘는다면,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를 재편할 수 있는 대안도 만들 수 있다. 공공성을 강화하면 환자들의 신뢰도 확보할 수 있다. 과잉진료는 설 곳이 없어진다. 믿을 수 있고, 가격도 합리적인 데다 실력까지 갖춘 최고의 병원을 만들 수 있다. 대개의 국공립 유치원이 사립유치원보다 훨씬 좋은 것과 마찬가지다. 개별 병원 차원에서 해결하기 힘든 교육기관과의 연계나 유능한 의료진의 확보도 수월해진다. 게다가 국가유공자, 상이군경, 군인, 경찰관과 소방관 등 국가가 챙겨야 할 분들은 더 확실하게 챙길 수 있다. 지금만큼의 예산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새로 국무총리가 되는 분이 이런 일을 맡아주면 좋겠다. 당장 복지부, 교육부, 국방부, 노동부, 보훈처 장관들을 불러 논의라도 시작해보자. 새해이니 새로운 꿈으로 적당하지 않은가.
2020-01-03 | hrights | 조회: 128 | 추천: 0
정확한 진상이야 알 수 없다. 쏟아지는 언론보도를 좇는 것도 힘들다. 싸움은 여러 전선에서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복잡하지만 양상은 대개 두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부산시 경제부시장 유재수가 뇌물을 받는 등 범죄 혐의가 짙은데도 그에 대한 감찰이 청와대에 의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 축은 청와대로부터 관련 첩보를 받은 경찰이 무리한 수사 끝에 자유한국당 울산시장 후보를 낙선시켰다는 것이다. 다들 아는 것처럼 의혹의 핵심은 모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겨냥하고 있다. 이건 물론 검찰이 짜놓은 판이다. 공방이 오가는 중에 청와대에 파견 나와 일했던 검찰 수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무거운 부담을 느낀 탓이겠지만, 그 실체가 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죄송하고 가족을 잘 부탁한다고 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전해질 뿐이다. 게다가 검찰과 경찰은 죽은 자의 휴대전화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희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비밀번호를 걸어둔 최신형 아이폰이라 들여다볼 수 없다면서도 그런다. 아무튼 검찰 수사로 시국은 난국이 되었다. 윤석열 총장이 취임한 건 지난 7월 말이었다. 겨우 넉 달 남짓 지났을 뿐인데, 검찰은 빠르게 ‘윤석열 검찰’로 재편되었다. 그동안 했던 일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거악의 핵심인 것처럼 수사력을 집중하는 거였다. 청와대가 가장 심각한 부패집단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대통령에 대한 충정으로 주변의 부패세력을 내치기 위해서인지 아무튼 검찰은 청와대 주변만 맴돌고 있다. 당장 청와대 압수수색만 해도 그렇다. 유재수에 대한 감찰을 무마했다고 폭로한 사람은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이다. 그는 자신이 소속되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이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그 때문에 지난해 12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사결과는 별게 없었다. 검찰은 이번에도 김태우의 입에 기대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다. 청와대 직원들도 범죄를 저지르면 수사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정 최고책임자의 집무실이 이렇게 쉽게 털리는 건 차원이 다르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마구잡이로 휘둘러도 되는 칼이 아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 물론 합리적인 판단도 거쳐야 하고 다른 방법이 있는지도 충분히 살펴야 한다. 아무 때나 영장을 통한 강제수사를 해선 안된다. 증거인멸 우려 때문에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앞뒤를 살펴야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와 관련해 검찰은 여러 대학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검찰의 주장을 따르더라도 대학들은 조국 일가 때문에 업무방해 등의 피해를 입은 기관들이었다. 그래도 그냥 영장 들고 쳐들어가는 방식을 반복했다. 대학들은 범죄기관 취급을 당했지만, 가장 힘센 기관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영장을 통한 강제수사 이전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먼저다. 검찰에서는 학문의 전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피해 기관에 대한 도리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들에 관련 자료를 임의 제출받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때 가서 강제수사를 해도 된다. 강제수사는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그렇다. 이미 지난해 12월 엇비슷한 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던 청와대 민정수석실이다. 게다가 지난 몇 달 동안 ‘조국 사태’의 한복판에서 검찰을 예의주시했던 터였다. 검찰이 지목하는 것처럼 어떤 청와대 직원이 범죄와 관련되었다면 수사의 단서, 그것도 자신의 감옥 문을 열게 될 자료들을 컴퓨터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지는 않을 거다. 유재수, 김기현에 조국까지 세상을 매일처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들을 그대로 방치하지는 않았을 게다. 그러니 청와대 압수수색은 형사법상 증거 확보를 위한 법률행위가 아니라, 고도로 계산된 정치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정치에 개입하고, 나아가 직접 정치를 하는 행위는 심각한 일탈이다. 문제는 그런 일탈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거다. 검찰이 왜 난리를 치는지, 왜 나라를 어지럽히는지 짐작하는 건 쉽다. 당장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올라 있으니, 이 판을 흔들고 싶을 게다.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의 지적처럼 지난 1년6개월 동안 전화 한 통화 없던 검찰이 갑자기 청와대 하명 사건 운운하고 나서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참 지난 다음에 법원 판결을 통해 검찰의 의혹 제기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 밝혀져도, 검찰로서는 손해 볼 게 전혀 없다. 수사과정에서 특히 검찰이 흘리는 온갖 이야기들이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되는 지금의 언론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 인권의 수호자, 법률 전문가로서의 역할은 다 제쳐두고 자기 조직의 기득권을 위해 정치적 퍼포먼스를 남발하고 있다. 록히드 사건의 주임검사로 검사들의 상징처럼 존경받았으며 일본 검사총장(한국의 검찰총장)을 지낸 요시나가 유스케가 평소 강조했던 말이다. “검사는 수사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하면 안된다.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하면 검찰 파쇼가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은 오물이 고여 있는 도랑을 청소할 뿐이지 그곳에 맑은 물을 흐르게 할 수는 없다.” 한국 검찰, 특히 ‘윤석열 검찰’은 온통 거꾸로다. 청와대와 법무부의 일개 외청에 불과한 검찰청이 매일처럼 싸우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사실 청와대가 만든 것이다. 구체적으로 꼽으라면 얼마 전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이었고, 또 법무부 장관이었던 조국에게 무거운 책임이 있다. ‘윤석열 검찰’을 낳은 것은 청와대였고, 지금 ‘윤석열 검찰’ 문제를 풀 수 있는 것도 유일하게 청와대뿐이다.
2019-12-06 | hrights | 조회: 15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