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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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시형, 박용석, 방효신, 서동기, 서진석, 정석완, 조동순, 조예진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방효신/ 회원칼럼니스트 초등학교 교실에서 급식실이나 강당으로 이동할 때, 아이들은 복도에 두 줄로 선다. 이 때 선착순이냐, 출석번호 순이냐, 키 순서냐 하는 것으로 따지고, 서로에게 "뒤로 가라" 말하고 담임 교사에게 "저 어디 서요?" 묻고. 이렇게 줄서는 것 자체가 싫어서 줄 밖에 서 있기도 한다. 교사마다 아이들을 줄 세우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거나 위 3가지를 혼용하는데, 학년과 담임이 바뀌어도 똑같은 기준이 있다.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이다. 일 년 동안 바뀌지 않을 기준일테다.  작년 이맘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교사 생활 12년 만에 남녀 구분 없이 준비되는 대로 두 줄이라는 원칙을 세웠다. 그런데 우리 반 아이들은 이 방침에 적응하기까지 반 년이 더 걸렸다. 특정 시간에 다른 교사가 지도할 때, 성별을 구분짓기 때문이다. 남자는 이렇게, 여자는 저렇게 하라는 지시가 종종 있다. 해당 교사가 학생 이름을 못 외웠거나, 효율적인 관리와 통제가 목적이라면 남녀 구분은 쉽게 적용된다. NEIS라는 반별 인적사항 등록에 출석번호가 1번부터 남자, 51번부터 여자인 것도 한 몫 한다. 어제 전교생 음악발표회에서 반 별로 연주하고 관람하는 시간에도, 우리 반은 남녀 구분 없이 도착하는 대로 앉았다. 어느 반이 연주한 뒤 무대에서 내려가는 동안, 이전 반은 재빨리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옆 줄에 앉았던 이전 반 아이들은 '원래' 자기 자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남자 줄을 찾고, 키가 크면 뒤에 앉으라고 했으니 철수 뒤에 영식이, 이런 식으로 두리번거리다가 제 때 앉지 못한다. 비효율적인 성별 구분이라도, 교육적인 의미가 있는 걸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이성 친구보다 동성 친구 옆에 앉으려 한다. 그 이유는 경험이 비슷하고 말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이성이 있어도, 옆자리에 앉으면 "너네 사귀냐?"고 놀림 받을 수 있어서 피하는 게 상식이다. 교사들이 굳이 남녀로 짝지어 앉히거나, 줄을 세우는 이유가 뭘까? 실은 '지금까지 그래와서'겠다.  사회 교과서 2단원 제재 중 양성평등에 대해 수업하면서 물었다. 박물관 앞마당에서 줄다리기를 하는데, 여자 아이의 즉석 제안이 있었다. "여자 대 남자로 대결하자!" 사진 출처- 필자  "내가 여자구나 또는 남자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어?"  (이하 아이들) "화장실 갈 때요." "제 몸을 보잖아요, 그럼 제가 남자인 걸 알겠어요." "앉아서 볼 일 봐요." "수영장 갔을 때, 여자는 저 쪽 가라고 했어요." "선생님, 근데 왜 남자는 치마 못 입어요?" "야, 입어도 돼." "아무도 안 입는데?" "남자는 왜 머리 못 길러요? 저도 머리 기르고 싶은데, 엄마가 자르래요." "아, 군대 가기 싫다! 군대 가면 머리 다 깎아야 돼." "저는 머리 자르고 싶은데, 여자는 머리 길어야 예쁘대요." "근데 우리 중학교 때 상명여중 가죠?" "중학교 가면 교복입어야 돼. 치마 입던데." "남자들은 청운중 가."  성별 이분법으로 가르쳐서, 이 사회에 일찍 적응시키는 편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한국은 성별 구분이 차고 넘친다. 성별을 구분지어 말하는 분위기일수록, 남자답게 여자답게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듯하다. 그 말을 듣는 남녀의(여남의) 스트레스도 높을 것이다. '~답게' 라는 말이 죄여오는 부담감을 생각해보라. (예: 선생답게, 학생답게, 가장답게, 첫째답게) 한국은 성평등지수  118위인 나라(세계 144개국 중,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7.11.1. 발표) 이다. 여자가 여자답게 살아도 취직도 잘 되고, 월급도 똑같이 받고, 임신해도 직위를 유지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자가 남자다움을 보이기 위해 부서 회식을 주도해야 하거나, 승진을 포기한 못난 놈 취급 안 받으려고 육아 휴직을 1개월도 못 써본다면 과연 누구 좋으라고 사는 세상일까? 주어진 성별에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행동해도, 그렇지 않아도 불편한 한국. 2018년에는 성별 구분 당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 성별과 관계없이 행동하고 생각해도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방효신: 초등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세상은 바뀌나요?
2017-12-13 | hrights | 조회: 13 | 추천: 2
박용석 /회원 칼럼니스트  2014년 여름이 끝나갈 즈음, 태어나 25톤 덤프트럭을 처음 탔다.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있는 현장에 몰래 들어가 이 차에서 저 차로 옮겨 타며 이야기를 들었다. 새내기 노동조합 상근자가 조합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직접 보고 들으며 배우라는 배려였다. 1억 원이 넘는 비싼 건설기계장비지만, 움푹 파인 현장을 다닐 때는 차체가 심하게 요동쳤다.  “이 길을 60km가 넘게 달리라고 해, 현장에선 40km를 못 넘도록 하는 게 규정인데 그렇게 일하면 바로 아웃이야. 일하다 보면 허리가 다 나가. 저것 봐, 빨리 안 간다고 뒤에서 하이빔 쏴 대는 거. 이런 거 바꿔야 돼”  “여기는 원래 신호수가 있어야 되는데, 다 인건비잖아. 불법인지 알면서도 안 쓰는 거야. 저기 저 전봇대랑 전선엔 위험 표지판이 있어야 된다고. 봐봐 없잖아. 얼마 전에 저기에 덤프가 걸려 전봇대가 넘어갔거든, 그런데 사업자라고 우리 보고 다 책임지라는 거야”  “내가 사실 차를 두 대 굴려, 노동조합 기조에는 안 맞지. 그런데 어떻게 해. 차 할부금 갚고 보험금 내고, 타이어 한두 짝 갈고 나면 다달이 적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캐피탈 할부로 한 대를 더 사서 기사 고용해 태우는데, 그렇게 하고도 월급쟁이 한 달 월급이 안 나올 때가 많아”  “지난주에 내리 비 왔잖아. 비 오면 우린 죽어나는 거야. 하루하루 할부금은 나가는데, 비와서 일 못하면 돈도 없어. 현장 오기 전에 새벽에 탕뛰기라도 한 번 더 나갈 수밖에 없는 거야. 가면 새벽 4시에 도착했는데도 차들이 수 십대 줄서 있어. 나도 오늘은 허탕 쳤어”  “4대강 때 운전대 잡고 죽은 사람 얘기 들어봤지. 갑자기 일이 생기니까 무리하게 할부 부어서 두 대 세 대 차만 늘려놓고, 죽어라 해봤자 돈이 나한테 스쳐가기만 하는 거야. 그런데 일단 눈앞에 돈은 왔다 갔다 하잖아. 그러니 끊지를 못해. 빚만 잔뜩 쌓이는데. 빚이 쌓이니까 더 벌어야 되고. 그렇게 12시간, 13시간, 15시간 계속 일만하다, 운전대 잡고 잠깐 눈 감았는데 평생 못 일어나는 거지. 남 얘기가 아니야”  노동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 하지만 직접 목격한 현장은 막막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아니, 현장에는 문제만 가득했다. 기본적인 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무법천지 건설현장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해결을 하긴 할 수 있을지, 답이 있기는 할지 알 수 없었다. 거대한 산 같은 흙더미와, 그보다 더 거대한 문제들 앞에 나는 나약하고 초라했다.  “이제 뭘 해야 될지 감이 좀 오냐?” 조금은 껄렁한 말투가 툭하고 날아왔었다. 그때 내가 무어라 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한심하게 우물쭈물했을 게다. 한때 노동조합 사무처장까지 했던 조합원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수더분하다 못해 헐렁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시간이 지나 다시 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됐다.  생각해보니 참 얄미운 사람이다. 본부에서 쏘는 회식이니 수석부위원장님께서 오셔서 좋은 말씀 한마디 해주고 소주 한잔 하고 가라했건만 기어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노동자대회 전야제가 한창이던 11월 11일 밤 11시, 국회 앞 광고탑 위로 출근해버렸다. 전야제 노숙농성장에서 화들짝 깨어 그 광고탑을 지키러 가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뻔히 알면서. 사진출처 - 노동과 세계  반갑지 않은 함박눈이 내린다. 얄미운 그 사람에게 가져갈 김장 김치를 버무리는 손이 바빠진다. 내일 저녁에는 이곳저곳 십시일반한 사람들이 광고탑 위에 있는 그에게, 그리고 그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밥을 지어주겠다고 광고탑 아래로 모이기로 했다. 노래 부르는 사람은 노래로, 춤추는 사람은 춤으로, 시 쓰는 사람은 시로, 밥 짓는 사람은 밥으로 함께 하겠다 한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현장에 정말 답이 있을지. 전 조합원이 똘똘 뭉치고, 조합원이 아니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잠시나마 현장을 멈추는 진짜 총파업이 될 수 있을지. 그래서 하늘로 출근한 사람들을 구해 올 수 있을지를. 모르겠지만 얄미운 그가 가르쳐 준대로 할 수밖에 없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라고 했던. 당장 내일 먹일 김장 김치는 소중히 통에 담고, 그와 건설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졸고일지라도 한 자라도 더 적어내고, 총파업 그날엔 한명이라도 더 붙들고 가야 한다. 이영철 아저씨 안전하게 하늘 아래로 퇴근시키고 소주 한잔 따라주러, 11월 28일 국회로 가야 한다. ※ 덧: 이 글은 11월 23일 밤에 적었습니다. 11월 24일 밤에는 고공농성장 아래에서 연대 문화제가 진행되고, 11월 28일에는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총파업을 합니다. 박용석 : 전국건설노동조합 수도권북부지역본부 조직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11-27 | hrights | 조회: 171 | 추천: 6
서진석/ 회원 칼럼니스트  “경찰 되시려고요?”, “동국대 다니세요?”  경찰행정학과를 다닌다고 소개하면 돌아오는 질문이다. 심리학과 학생들이 프로이트도 못할 심리분석을 초면에 요구 받는 것과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내가 다니는 학교는 경찰 실무나 법 지식만큼 범죄학을 중요하게 다룬다. 범죄학은 범죄의 원인을 이루는 사회 경제적 환경, 개인의 유전적 특징 그리고 심리 상태를 분석한다. 범죄학과 더불어 경찰, 검찰, 법원 그리고 교정에 관한 제도와 체계까지 다루니, 경찰행정학은 상당히 포괄적인 학문이다.  경찰이 되려고 경찰행정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학과에 대한 흥미가 뚝 떨어졌다. 그럴 때면 사회학의 한 분야로 범죄학을 받아들이고, 기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을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성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동기부여가 잘 된다. 더 나아가 범죄학으로 현재 사회를 해석하려하면, 경찰행정학은 꽤나 내 적성에 맞는 학문이 된다.  소년사법, 비교경찰제도, 피해자학, 지역사회경찰론 등의 과목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막막하기만 했다. 다행히도 현실에 대입하려는 목적을 갖고 듣게 되자, 책을 집을 때 ‘팍팍’ 내뿜던 한숨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소년법 폐지’와 ‘사형제 부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애완견의 목줄을 채우지 않는 주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도 새로운 관심사다. 안양 초등생 살인범 정씨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사형제 부활 논란을 접하며 수업 내용과 현실이 상당히 다름을 느낀다. “살인마는 이미 인간이 아니야”라는 분노와 적의에 “맞아. 쓰레기 같은 놈들이 많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오랜 기간 쌓여온 학문적 결과물을 생각하면 “근데 미국도 강한 처벌정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보호관찰 정책을 늘리고 있는데?”라고 갸우뚱거리게 된다. 인천 초등생 살해사건에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되죠”라고 언론학 교양 수업 때 들은 교수의 말은 이제는 틀린 말이 됐다. 사람을 문 개의 주인과 개에게 물린 피해자가 화제성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소위 ‘개 목줄 논란’에서 비난의 화력이 목줄을 채우지 않는 견주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이를 보고도 번지수가 틀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양한 이론과 경험에 따르면, 강한 처벌보다 검거율을 늘릴 때 범죄와 비행이 더 크게 감소한다. 그럼에도 법 집행의 책임자인 정부는 충분한 감시와 처벌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반려견에게 목줄을 매지 않는 주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비난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행법을 어기고 목줄을 채우지 않은 주인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가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쉽고 자극적인 것을 취하고, 어렵고 복잡한 건 멀리하는 것 같다. 때문에 잔혹한 범죄 기사에 더 많은 손이 가고, 범죄의 원인에도 “사이코패스니까”처럼 간단한 판결을 내리는 듯하다. 그렇게 거리를 두면 범죄자는 나와는 다른 존재로 선을 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분노가 범죄를 해결해주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시원하게 욕지거리 몇 마디 뱉는 것도 당장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한 번쯤 비행과 범죄의 동기가 나에게는 없는지, 사람보다 제도가 더 잘못된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서진석 : 경찰행정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입니다. 정의가 뭔지 잘 모르기에 정의를 배우고 있습니다.
2017-11-22 | hrights | 조회: 16 | 추천: 0
서동기/ 회원 칼럼니스트     며칠 전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습니다. 훈련장은 최신식으로 개선되어 있더군요. 최신식 전자알림판이 각 훈련교장마다 설치되어 있고, 동영상 시청과 간단한 실습을 하며 훈련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입소할 때 나눠준 전자팔찌로는 훈련 수료 여부가 각 훈련 종료 즉시 통보되었습니다. ‘전자팔찌로 각 예비군의 위치가 바로 파악 가능하여 사고를 예방하고, 훈련들을 빠짐없이 성실하게 수료하도록 예비군을 지원하는 첨단 시스템’이라고 교관이 설명했습니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서영교 의원께서 예비군 개혁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을 접했습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예비군 처우 개선을 위한 실질적 훈련비 지급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고, “예비군을 위험한 시기를 대비한 정예군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하여 제대로 된 무기와 장비를 제공하고, 훈련을 개선하자고 강하게 주장하셨지요.   한편으로는 예비군들의 ‘횡포’를 막기 위한 ‘예비군 기강 강화’에 관한 법안도 함께 준비하셨습니다. 불성실한 훈련과 지휘관에 대한 반항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대대장에게 대들었던 예비군이 최근 처벌된 사건을 염두에 두셨지요. 하지만, 너무나 관성적인 대응으로 보입니다. 마치 ‘여중생 폭행 사건’이 일어나자 너도 나도 청소년보호법 폐지를 외쳤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저 사건이 벌어진 뒤 강력한 처벌만 말하는 것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보고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임무 아닐까요?   예비군 제도는 ‘1.21 사태’라고 불리는 ‘김신조 사건’ 이후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안보드라이브를 통해 탄생했습니다. 주민등록증, 주민등록번호제도와 함께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것입니다. 정작 전쟁 직후인 50년대, 60년대에는 필요치 않았던 예비군이 1968년에 창설되었고, 그에 따른 여러 훈련과 제도들이 마련되어 왔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예비군이 과연 필요한가? ‘무장공비’라는 희대의 사건과 함께 탄생해 기형적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어 왔던 예비군 제도의 본질에 대해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군은 언제든 싸울 수 있는 전투형, 야전형 군대를 목표로 개혁 중입니다. 예비군 제도도 이에 발맞춰 실제 전투와 같은 전자 서바이벌 게임 등을 훈련에 추가해 실질적 훈련의 개선이라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정말 21세기의 전투가 시가전, 고지전, 백병전으로 이뤄지는지 의문입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수많은 포와 대량살상무기로 이뤄질 것이 자명한데 백병전을 준비하며 전투형 개혁을 한다? 그것이 과연 국방개혁의 과제일 수 있는지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의원님의 역할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도 정치인의 소중한 덕목 중 하나일 테니 말입니다.   마침 올해 국군의 날을 목표로 했던 동원전력사령부 창설 작업이 10여 일을 앞두고, 중단되었습니다. 이미 314명에 달해 미 육군의 장군 수보다도 많은 우리 군대의 장군 수를 더 늘리려는 군의 욕망에 새 정권이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권에서 예비군 개혁에 관한 이슈들이 재검토되는 지금이 의원님께서 적절한 목소리를 내실 수 있는 타이밍이라 생각됩니다.   플라톤은 존경 받는 정치인을 위한 덕목으로 지혜와 절제, 그리고 용기를 꼽았습니다. 예비군 지원의 현실화에 관심을 가지고 말씀해주시는 것도 좋지만, 예비군 제도 자체의 필요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고 추진하는 용기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하고 싶습니다. ‘예비군 기강 강화’ 같은 주장은 절제하고, ‘예비군 제도 폐지’와 같은, 이제는 말할 수 있고 반드시 누군가 말해야 하는, 새롭고 명확한 전망을 만들어낼 지혜와 용기를 기대합니다.   서동기 :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읽고 묻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2017-11-15 | hrights | 조회: 8 | 추천: 0
조예진/ 회원 칼럼니스트     보통 5년을 기준으로 공립학교 교사는 학교를 옮긴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대중 교통이 조금 불편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한 번 환승한 다음 광역 버스를 타고 난 후 10분 정도 걷는 것이 일반적이다. 광역 버스의 배차 간격이 넓어 25분 이상 기다리는 날이 종종 있는데, 이럴 때는 여러 번 환승하더라도 최대한 지하철로 학교 가까이 내린 후 일반 버스로 갈아탄다. 환승 정류장이 멀고 학교까지 20분 넘게 걸어야 하는 날은 아침부터 진을 빼기도 하지만 왕복 2시간 남짓의 출퇴근길에 많은 사람과 풍경을 만난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가게들이 있다. 아침 일찍은 대부분 닫혀 있지만 몇 군데 문을 연 가게들이 있다. 떡볶이 집 사장님은 반조리된 튀김을 상자에서 꺼내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튀기신다. 퇴근길에 한 번 사먹어 봐야지 하는데, 저녁이 되면 학생들이 많아 늘 지나치게 된다. 경비원 옷을 입은 인상 좋은 남자 분은 월세가 비싸 보이는 오피스텔 건물의 앞마당을 긴 빗자루로 날마다 쓰신다. 오피스텔 바로 앞뿐만 아니라 도로 저편의 쓰레기까지 치우신다. 맡은 일은 얼마나 많을까, 쓰레기 때문에 민원에라도 시달리시는 것은 아닐까.   광역 버스에 오를 때는 긴장을 한다. 자리에 앉지 못하면 30분 넘게 서서 가야 하므로 아침 7시가 좀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리 다툼이 치열하다. 안전 문제로 광역 버스에 대한 말은 많지만,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전철이나 버스나 일단 한 번 자리에 앉은 사람은 대부분 눈을 바로 감는다. 그 얼굴에서 전날의 피로가 묻어난다. 일주일에 두 세 번 아침마다 만나는 어느 남자분은 한 번도 눈을 뜬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꽤 장거리를 타고 가시는데 깊은 잠에 빠져 늘 코를 고신다. 퇴근길일까, 출근길일까.   학교에 가까운 전철역 근처에는 패스트푸드 가게가 있다. 한동안 학생이나 직장인이 아침을 가볍게 때우는 장소의 느낌이 컸다. 최근에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들어가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무슨 메뉴를 시키실까 슬쩍 보다가 다시 거리로 시선을 돌리면 리모델링하는 가게가 눈에 띈다. 새로운 가게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다. 어? 여기가 원래 무슨 가게였지? 빵집 옆이고 신발 가게 앞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장님은 왜 가게를 그만두었을까? 좋은 가게터로 옮기는 것이면 다행인데, 눈물 꽤나 쏟으며 가게를 접으신 것은 아닐까. 자녀들의 학비는 해결되었을까. 요즘 부쩍 폐점하는 가게가 많다. 단골 가게가 문을 닫으면 내 추억까지 가져가는 기분이다.   사진 출처 - 필자     학교 가는 길, 사람과 풍경을 만난다. 물론 내 고객인 학생들도 만난다. “쌤!!” 하고 거리에서, 버스, 지하철에서 나를 부른다. 거리에서 인사를 하면 근처의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기 때문에 조금 창피하다. 종종 거리에서 교복을 입은 발랄한 그들을 볼 때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다. 살아 있는 그들이 고맙다. 얘들아, 밖에서 샘 보면 그렇게 큰 소리로 인사 안 해도 돼. 그리고 학교에서 반갑게 보자.   조예진 :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사는 좋아하지만 수능 필수 한국사는 싫어합니다.
2017-11-09 | hrights | 조회: 3 | 추천: 0
정석완/ 회원 칼럼니스트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이용합니다.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위해 또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이용하는 지하철 안에는 언론, 파업, 임금 등 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포스터들이 붙어 있습니다.   사진 출처 - 필자     바쁜 일상 가운데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이러한 포스터들을 무심코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던 중 제 눈길을 사로잡은 포스터가 하나 있었습니다. 취업준비생인 제게 ‘취업’, ‘채용’, ‘인재’ 등의 단어는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채용’이라는 단어가 적힌 포스터 안 근무 조건은 이랬습니다. ‘근로기준법 59조에 따른 무제한 근무라는 조건과 함께 버스기사는 하루 18시간씩 3일 연속으로 일해도 졸음운전 하면 안 됨, 우체국 집배원은 하루 평균 2만4천보, 밤 10시까지 마라톤을 하며 뛰어다님, 지상조 업체는 한번 출근하면 공항 활주로 컨테이너에서 자면서 나흘째 되는 날에 퇴근함, 영화나 방송은 하루 18시간 이상 서서 졸아가며 촬영 끝날 때까지 일함, 병원 노동자는 밥 못 먹고 화장실 갈 시간 없어도 친절해야 함.’     사진 출처 - 필자     그렇습니다. 이 포스터의 제목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자 공개채용’이었습니다. 우리는 생활하면서 알게 모르게 앞에서 소개한 분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받는 처우나 생활에 대해서는 무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뉴스에 화물차 고속도로 추돌 사고, 우체국 집배원 과로사, 버스기사 폭행 사건 등이 나오면서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처우나 근무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처한 불합리한 환경의 원인은 ‘한국 사회의 노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 수입 배분의 불공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보도를 했듯이 우리나라 노동자의 평균 근로 시간 대비 임금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매년 최저임금 결정할 때면 노동자와 경영자 간에 의견 대립이 생깁니다. 경영자들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최저임금 인상 반대의 이유로 듭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수입에 대한 배분의 불공정성 때문 아닐까요. 상위 노동자가 너무 많이 가지고 감으로써 하위 노동자에게 가는 배분이 적어지니 자연히 하위 노동자의 소득은 낮아지게 됩니다. 이는 하위 노동자들의 생활과 처우가 좋아지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상위 노동자의 배분을 낮추고, 하위 노동자의 배분을 높여서 하위 노동자들의 생활과 처우를 높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노동에 대한 인식의 불균형 문제’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연말이 되면 ‘누가 한해 얼마를 벌었는지’를 다룬 통계가 뉴스 소재가 되고, 취업 사이트에는 회사별 연봉을 일부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인식의 불균형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물론, 노동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대학 진학률이 높은 상황에서 이러한 불균형은 노동에 대한 인식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직 노동자와 육체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를 비롯해 사회적 인식이 차이 나는 상황에서는 노동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는 것이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사무직 노동자와 육체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처우 개선이 필요한 것입니다. 더불어 청소년 때부터 노동법 등 노동 교육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노동자로서 살아가게 될 청소년들에게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제 짧은 해외 경험에 비춰 보면, 외국의 경우 사무직 노동자와 육체 노동자에 대한 인식 격차가 크지 않고, 사회적 처우도 다르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노동 교육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청소 노동자를 가리키며 아이에게 ‘공부 안 하면 저런 일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왜곡된 노동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글귀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저임금 장시간 노동자 공개채용’ 포스터로 돌아가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육체 노동자와 사무직 노동자 간의 임금과 처우 격차를 개선하고, 노동 교육을 통한 노동 인식 개선을 통해 이 같은 포스터가 다시 붙여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직업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소망도 가져봅니다. 지금까지의 노동 인식과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스스로 되돌아보고, 반성해봅니다.   정석완 : 민주 사회를 위해 사회 문제를 시민사회와 정치에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입니다.
2017-11-01 | hrights | 조회: 26 | 추천: 0
방효신/ 회원 칼럼니스트     "선생님, 화장실 다녀와도 되요?" 수업 시간에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거절하기 어려운 요구이기도 하다. 쉬는 시간 10분이 끝났는데도, 아이가 눈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 '조용히 다녀오라'고 잔소리가 절로 나온다. 작년 말에 복도 반대편 화장실 공사를 할 적에는 나부터 수업 시간을 종종 못 지켰는데, 겨울이기도 하고 줄을 서느라 일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학생 기준으로 30명이 화장실 1칸을 쓴 셈이다. 멀리 있는 화장실까지 오고 가느라 휴식 시간이 줄어들고 보니 그동안 불편했지만 참고 살았던 것을 입 밖으로 꺼내고, 학교 행정실에도 몇 가지 건의한 적이 있다.   첫째, 여자 화장실 갯수가 부족하다. 학교는 여성용과 남성용 화장실의 갯수가 같다. 양적 평등이다. 학생 중에는 남자가 약간 더 많고, 교직원 중에는 여자가 많다. 그러나 여자 화장실 칸이 더 많아야 한다. 여자는 한 칸에 한 명 들어가서 볼 일을 더 오래 본다. 변기 갯수가 같거나, 오히려 남자 화장실의 경우 소변기를 포함하면 더 많다. 집 밖에서 화장실을 사용할 때면 항상 느끼는 점이기도 하고, 오래 된 학교라면 새 화장실로 바꿀 때 깨끗한 변기만큼이나 신경 쓸 부분이다.   둘째, 여성 화장실 칸에는 생리대 수거함과 선반이 설치되어야 한다. 생리컵 판매가 시작되면, 이용한 생리컵을 씻는 작은 세면대가 칸 안에 설치되면 금상첨화겠다. 관련 시설물이 화장실 안에 없어서 생리대를 턱에 괴고 볼 일을 보거나, 다 쓴 생리대를 들고 나오는 것은 고역이다. 남자들은 한 달에 3일 이상 팬티 속에 생리대를 착용하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새 것으로 바꾸어 봤는가? 당장 시험삼아 생리대를 한 번 차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여자로 태어나서 생리를 선택한 적이 없는데, 여성의 몸을 숙명처럼 여기고 사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셋째, 학교 화장실은 8살부터 60살까지 이용하는데, 좌변기의 크기와 높이는 큰 차이가 없다. 그래도 우리 학교는 저학년이 주로 있는 2, 3층은 좌변기가 작고 낮은 편이다. 외부 출장을 다녀보면 화장실 공사가 최근에 진행되지 않은 학교일수록 어른의 몸을 기준으로 한 좌변기만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는 쪼그려앉는 변기가 많은 걸까? 작던 크던 쪼그려 앉아 볼 일을 보는 것은 위생 문제만 아니라면 불편한 경험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화장실을 청소하는 할머니가 쉬는 장소   - 한여름 더위에도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좁고 답답한 휴게 공간이다.   누군가 창고에 물건을 가지러 가면 벌떡 일어나신다. 그 누군가는 초등교사고, 초등학생이다.   사진 출처 - 동료 교사     넷째,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의 성별이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은 대부분 용역 업체 직원이고, 학교 직접 고용이 아닌 듯 한데 50살 이상의 여성이 담당해왔다. 남자 화장실도 여자가 청소한다. 기간제 노동자의 성별은 전국 통계에 잡히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화장실 청소 여사님은 마땅히 쉬는 장소를 확보하지 못한 채, 여기 저기서 '알아서' 쉬는 것을 종종 보았다. 어느 학교에서는 창고 앞 빈 공간에 장판을 작게 깔고 가끔 누워 계시더라고 동료 교사가 알려왔다. 화장실과 청소, 여자에 대한 무의식적 이미지는 객관적인 노동 조건을 통해 만들어진다.   유치원 최고 나이 7살 아이들에게 학교 적응 훈련을 시킬 때, 주변 초등학교의 화장실 구조와 상태를 고려하여 '쉬는 시간에 화장실 이용하기'를 가르친다고 들었다. 1학년 아이들은 바지에 가끔 실례를 하고, 고학년이 되더라도 아이들이 이용하는 화장실 변기는 자주 더러워진다. 위생 관념이 없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기술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쉬는 시간은 짧고, 학교 화장실 구조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음을 탓해본다.   방효신 : 초등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세상은 바뀌나요?
2017-09-27 | hrights | 조회: 21 | 추천: 0
김시형/ 회원 칼럼니스트     얼마 전 박기영 교수가 과학혁신본부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에 과학계가 들고 나섰다. 이 반대 여론은 일파만파 번져 급기야 박기영 교수가 SNS에 자진 사퇴의 변을 올리고 중도하차했다. 그런데 나는 그 글이 석연치 않았다. 바로 “11년 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사건은 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였습니다”라는 대목에서였다. ‘주홍글씨’라는 말을 박기영 교수가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은유적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말인 것처럼 보여도 아무나 사용하면 안 되는 말이 주홍글씨라고 생각한다.   ‘주홍글씨’는 흔히 알려진 의미로는 ‘낙인’이다.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유명한 소설,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에서 유래한다. 여주인공인 헤스터 프린은 간통죄로 ‘간통 (adultery)’을 상징하는 ‘A' 문장을 가슴에 달고 산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주홍글씨의 효과는 정상적인 인간관계에서 그녀를 분리시켜 그녀만의 세계에 고립시키는 마력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낙인을 당하는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이다. 곰곰이 살펴보면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만 하는 헤스터 프린은 진실로 결백한 사람이다. 종교적 위선에 저항하는 소수자이자, 그 당시 남성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여성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헤스터 프린은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했으며 어디에서도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수 없었다. 오직 선행으로 침묵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하고픈 말은 정작 낙인찍힌 피해자들은 ‘나 낙인 찍혔소’와 같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박기영 교수의 사퇴의 글과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사진 출처 - 필자     소설『주홍글씨』뿐만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낙인찍히기 쉬운 환경에 처한 ‘사회적 약자’가 많다. 낙인은 다수가 합리적 이유 없이 소수자를 억누른다. 예를 들어 요즘 우리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성소수자들, 여성을 향한 ‘혐오 표현’도 결국 낙인찍는 행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다수의 힘에 의해 아무런 이유 없이 장기간 배제를 당한 피해자라면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박기영 교수가, 당신께서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내가 껄끄러웠던 이유는 진실로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박기영 교수가 사회적 약자인가? 아니다. 12년 전 황우석 사태 당시 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역임했다. 그리고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하려면 낙인을 찍는 가해자 집단이 문제가 있어야 하는데, 박기영 교수 임명을 비판한 연구 윤리를 추구하는 과학자 집단 또는 시민 단체들이 문제 집단이란 말인가?   정작 주홍글씨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피해자들은 이 말을 사용하기는커녕 이 사회 어딘가에서 숨죽이며 ‘끽’ 소리도 못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진실로 주홍글씨를 당하며 힘겹게 사는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서글픈 마음에 울컥한다.   김시형 : “생명윤리의 한 분야인 ‘인간대상 연구 윤리’를 성찰하고 있는 연구원”
2017-09-27 | hrights | 조회: 4 | 추천: 0
서진석/ 회원 칼럼니스트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가출을 했다. 이어진 방황으로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별다른 준비 없이 한 중퇴였기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당시 유행하던 ‘스타크래프트2’라는 게임에 빠져 도서관을 간다며 피시방으로 출근하기 일쑤였다. 검정고시 학원에서는 한 살 형과 주먹다짐까지 하기도 했으니, 술·담배까지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군대 전역하고는 치킨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십대 때 체육관 관장님이 “공부 안 하면 짜장면 배달이나 하고, 그러다 사고 나서 다른 사람들한테 신선한 장기 배달까지하게 되는 거야”라는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넉넉한 시급을 포기할 순 없었다. 눈비가 오는 날에는 목숨을 걸고 배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삼십 분 이상의 노동과 위험수당으로 만들어진 ‘치맥’에 대부분 굉장히 무미건조하게 “수고하세요”라는 말 뿐이었다. “조심히 가세요”라는 한마디 듣는 날에는 퇴근 때까지 힘이 났다.   사실 고등학교 때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그 덕에 부모님과 선생님을 설득할 수도 있었다. 학교를 그만둔 이유도 노무현 대통령을 보며 “나도 고졸 출신 인권 변호사가 될 거야!”라며 사법시험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막상 수험공부를 해보니 내 길이 아니라고 확신이 들었다. 진로를 바꿔 경찰행정학과에 진학했다. 다행히 영어에 소질이 있었던지, 영어특기자 전형으로 경찰을 희망하는 청소년들이 대부분 가고 싶어하는 학교에 열아홉 살에 입학할 수 있었다.   돈 욕심이 있어서인지, 치킨배달과 함께 대기업에서 알바도 시작했다. 총수가 구속되거나 말거나 매출액·영업이익 1위를 지키는 그 기업이다. 그곳에서 나는 한국어와 영어로 내·외국인들에게 홍보와 안내를 담당하는 일을 한다. 치킨배달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낮은 강도의 노동에도 사람들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말한다. 밥 한 끼를 위해 외부에서도 찾아오는 식당에서 무료로 식사를 하고, 두 시간을 근무하면 꼬박꼬박 삼십 분을 쉬며 일한다.   많은 사람들이 낯선 사람을 판단할 때 ‘지위’, ‘직장’, ‘학력’ 등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이내 대접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나만해도 고등학교 중퇴생이라고 소개할 때와 대학을 일 년 일찍 간 사람으로 소개할 때 그 대접의 차이가 전혀 달라졌다. 꼭 ‘자퇴생’ 뒤에 ‘조기졸업자’ 같은 불필요하고, 가식적인 표현을 추가해야할 것만 같았다. 치킨 배달을 한다고 말할 때와 대기업에서 계약직으로 일한다고 말할 때도 사람들의 온도차가 달랐다. 종종 “배달은 시급이 쎄요”라는 부연설명을 자연스레 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프랑스 마르세유 보를리 박물관에 소장된 <야누스>   사진 출처 - 미술대사전(인명편)     담배 냄새를 혐오하고 흡연자들을 이해할 수 없던 내가 지금은 애연가가 됐다. 허구한 날 거리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칭했던 내가 진보 정당에 가입하여 선거운동을 했다. 성차별적인 사고를 하고 그런 언어를 즐기던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과거와 내가 달라진 것은 한 가지이다. 나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나의 한계를 어렴풋이 짐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의 야누스를 하나 둘 발견하고, 이방인들의 야누스를 짐작하며 사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아간다.   서진석 : 반 제도권적 제도권 수용자. 항상 자퇴와 탈당을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5 | 추천: 0
박용석/ 회원 칼럼니스트     땅위에 옆으로 누운 배를 봤다. 목포여객선 터미널을 출발한 배는 그 곁을 스치듯 지나고 있었다. 적자생존이라는데, 살아남은 것은 정말 가장 적합한 것일까 생각했다. 계약기간 만료 통보와 포상휴가를 거의 동시에 받은, 본의 아니게 너무 긴 휴가 중이었다. ‘세월호의 슬픔 우리가 함께합니다’라 적힌 목포해양대학교와 목포신항 사이, 8월의 바다는 숨 막히게 뜨거웠다.   답답했다. 노동을 존중하겠다는 서울시의 정책 방향은 아무리 생각해도 전반적으로 옳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 그 일을 함께하고 있음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처한 상황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본말이 전도된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 상황에도 “나는 뭐가 되기 위해서 살아오지 않았다. 늘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인터뷰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레닌처럼, 계급과 사회에 대한 웅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었다.   전의 나는 그렇게 말할 처지가 되지 않아 이렇게 썼었다. ‘천재는 되지 못하지만, 천재들이 인간의 이성을 지키는 데 자신의 재능을 쓰도록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무엇인가 되어야만 했기에 1년 전쯤 쓴 ‘자기소개서’에 그리 적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처지다.     사진 출처 - 필자     “저기 세월호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외쳤다. 조금 전까지 혼자 서있던 난간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고, 누군가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제야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땅위에 옆으로 누운 배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같은 슬픔을 나누었다. 그 순간, 나는 중학생쯤이나 되었을 그 아이에 비해 한심했다. 중요한 어떤 것을 잊고 있었다.   목표를 위한 방향과 속도, 혹은 실익이란 것들 때문에, 그 목표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잊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그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배는 결국 침몰한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 잊지 않겠다. 지난 3년여를 함께 외쳤지 않았나. 침묵하는 자, 침묵을 강요하는 자, ‘적폐’라고.   여전히 서울시의 ‘노동존중’ 정책 전반은 옳고, 많은 점에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의 아주 작은 사례 한 가지를 늘어놓은 것이 그 전부를 매도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은 여전하다. 그래도 나는 말해야겠다. 그것이 다른 누구의 문제가 아닌 바로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신 말해줄 사람은 없다. 게다가 우리가 살아내야 할 앞으로의 몇 년에 비슷한 일을 겪게 될 사람이 많아질지도 모르겠단 생각 때문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당할 것을 고민해야 하는. 슬픈 예감은 좀체 틀리는 적이 없다고 한다.   계약기간 만료 10일 전, 계약기간 만료 통보를. 계약기간 만료 5일 전, 그나마도 엎드려 절 받기로 5일 간의 포상휴가를 주는 건 잘못된 일이다. 적당히 서로를 위하는 척, 입 다물게 만드는 건 더욱 잘못된 일이다. 노동존중특별시란 서울시의 노사정 협의기구에서 그렇게 한다는 건 좀 아니다.   생각해보니 잘된 일이었다. 이젠 잘한 것은 잘했다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됐으니. 그렇게 한다고 더는 계약해지 될 일도 없으니. 여전히 걱정스럽고 답답하지만, 덕분에 무엇도 되지 못한 것이 아픈 청춘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했다는 자랑을 늘어놓는 꼰대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한동안 묻어 놓으려던 어설픈 이야기를 굳이 꺼내놓음으로, 무엇도 되지 못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배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여름의 뜨거운 바다에도 때론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박용석 : 전국건설노동조합에서 일했었고, 서울시 노사정 협의 기구에서 일했고, 여전히 무엇이 될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