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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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창용, 김치열, 이현종, 이희수, 정진이, 홍세화, 황은성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이희수(회원 칼럼니스트) 지난 8월, 한낮에 휴게실에서 잠들었던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숨졌다. 폭염경보가 내린 무더운 날이었다. 계단 아래 공간에 만든 한 평 남짓한 방에는 창문도 에어컨도 없었다. 폭염은 자연재해다. 적어도 단기간 내에 치솟는 온도를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피해는 사회적이다. 그날,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었지만 쾌적한 실내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존 머터는 『재난 불평등』의 서문에서, 자연과학자인 자신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에서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 지점을 ‘파인만 경계(Feynman line)’라고 명명한다. 자연재해를 단순히 자연현상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과학적으로도 접근할 때, 예방과 복구 과정에서 야기되는 불평등을 간파하고 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지진, 홍수, 가뭄 등 엄청난 수의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영향을 끼치는 일들을 사례로 들지만, 재난 상황에서 파인만 경계에 서게 하는 일이 비단 그런 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비극으로 새삼 확인하게 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존에는 돈으로 거래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사회적 재화에까지 시장논리가 개입하며 그 영역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만큼, 가난한 사람이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일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관계없이 그가 누릴 수 있는 편익을 일률적으로 평준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가장 열악한 극단에 있는 사람들을 기본권의 경계 밖으로 내모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것은 가진 정도에 관계없이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돈이 없어서, 배운 게 없어서, 인맥이 없어서 겪는 불이익이, 그 창고 같은 공간에서만 쉴 수 있고, 쉬다가 너무 더워 숨지는 정도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해야 할 사람은 서울대학교 구성원들만이 아니다.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지만,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그것의 존재를 망각하는”, 조지 오웰이 말한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어떤 의미에서는 역시나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당사자인 동시에, 그런 다른 많은 사람들에 대해 잊고 사는. 그렇기에 이번 참사를 비롯한 사회적 재난과 불평등의 원인을 돌이켜 생각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반성해야 할 대상에 꼭 포함시켜야 할 것 또한 ‘나’다. “당신이 땀 흘리며 닦은 바닥을 무심히 밟고 다닌” 그 캠퍼스의 학생처럼, 나 역시 누군가의 노동에 힘입어 그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또 그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채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잊어버려 부끄럽지만, 그들은 모두 나의 경계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2019-10-10 | hrights | 조회: 26 | 추천: 2
이현종/ 회원 칼럼니스트 추석 전에 태풍이 들이닥쳤다. 뉴스에서는 매일 ‘초대형 태풍이 몰려온다’, ‘농민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유리가 깨지고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고 했다. 언론이 태풍 경로까지 전부 예측해서 보도한 덕인지 인명과 시설 피해는 예상보다 적었다. 하지만 크든 작든 누군가는 피해를 봤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언론과 세상은 태풍으로 사망한 분에게 슬픔과 조의를 표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 죽음은 기억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건물 외벽이 떨어지고 사람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생계 때문에 억지로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알고 기억해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동네 중국집 사장님에게 들은 말이 있다. 이번 태풍에 억지로 배달을 내보냈는데 배달원 세 사람 모두 오토바이가 쓰러져 일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험한 날씨에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놀랐지만, 억지로 태워 내보냈다는 말이 더 놀라웠다. 대체 뭘 위해서, 사람이 죽든 말든 억지로 오토바이를 태워 내보냈을까, 정말 서글퍼지는 일이었다. 오토바이를 타야하는 사람들은 태풍 속 배달을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로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지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결국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억지로 떠밀려서 일을 했을 거다. 이에 대해 아마 누군가는 ‘왜 거부하지 않았느냐, 미련하다’고 하겠지만, 속 편한 소리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을 거부할 경우 고용주로부터 온갖 불이익과 차별, 압박에 놓이게 된다. 노동자에게는 거부권이 없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무엇보다 이런 일이 터졌을 때 국가와 사회가 방관한다는 것이 문제다.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죽어 나갔지만 그들의 뒤를 지켜줄 제도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다. 비단 배달 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회의 3D 직업들, 특히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비극은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다. 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했었는지 주변에 이야기를 안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다. 필자가 하는 일을 안 좋게 보는 시선, 동정하는 시선, 혹은 돈은 많이 벌지 않느냐는 부러움 섞인 시선들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등허리가 휘어지고 아프다는 소리는 아무리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산재 사고가 나도 시설 개선은 없다. 산재를 인정받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원청의 갑질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도 하청업체는 대책 없이 그저 보고 있을 뿐이다. 숙련 노동자들은 이런 현실을 견디지 않는다. 숙련된 노동자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65세 이상의 노인과 초보자들이 대신한다. 손이 부족하니 작업은 매일 점점 늦어진다. 급여도 최저수준에 견준다. 가뭄에 콩 나듯 이런 현실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현실에 누구 하나 그들을 돕지 않는다. 결국 나선 사람들만 손해를 보거나 욕먹고 회사를 그만두기 십상이다. 언론과 세상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비극은 이미 너무 흔한 이야기인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다. 몇 명은 노동부에 신고를 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누가 죽어야지 바뀐다’는 위기감도 느꼈지만 반대로, ‘누가 죽어도 바뀌는 게 없다’는 절망과 무기력으로 귀결된다. 알고 보니 이 분야와 관련한 작업장 전체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고, 내가 일하는 현장은 유독 심각한 편이었다. 가슴이 조여 왔다. 그리고 늘 있었던 문제임에도 관심이 없어 인지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이현종 회원은 현재 금형 분야에 재직 중입니다.
2019-10-04 | hrights | 조회: 58 | 추천: 3
김치열/ 회원 칼럼니스트  사람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동양사상가 맹자는 인간의 성품이 본래 선하다고 보았다. 반면 순자의 경우, 인간은 악한 존재지만 교육을 통하여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정신분석학의 권위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런 질문에 대해 뭐라고 답했을까? 사람의 성격은 유아기에 형성되어 변할 수 없다고 답하지 않을까? 수형자를 상대하는 교도관들이 프로이트의 답을 듣는다면 아마 대부분 무릎을 칠 것이다. 반면, 범죄자들이라도 습관과 행동양식을 고쳐주면 미세하게나마 변화할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잘못된 습관과 나쁜 행동 양식 때문에 범죄를 일으키는 경우라면, 일상 속 훈련을 통해 범죄자가 되는 것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를 반복해 수차례 교도소에 드나든 수형자가 교화되거나 변화를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릴 때부터 인권교육이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어린 시절부터 주도권을 잡으려는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주도권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어른들을 통해 나쁜 사회성을 습득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감내할 수준의 농담이나 장난이라면 쉽게 용인 받지만, 간혹 이러한 현상은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농담이나 장난이 오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학교와 직장 등의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때로는 상식적인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자녀의 응석을 지나치게 받아 주다보니 자녀가 사회 생활하는 방법을 모르는 지경에 이르고, 심지어 직장생활까지도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학습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인권교육이 필요하다. 타자의 입장과 마음에 대한 상상력을 길러주는 인권교육은 범죄를 예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영화 “패치 아담스”의 주인공 패치 아담스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경험을 계기로 환자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유머나 놀이를 통하여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의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결국 환자들의 아픔에 주목하는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영화  "패치 아담스" 사진 출처 - 구글  타자의 아픔에 주목하는 것,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이해하고 공감능력을 갖는 것이 인권인식의 출발점이다. 인권의식을 갖춘다는 것은,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패치 아담스는 환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삶의 굴레를 돌아보며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범죄예방도 이러한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장난이라고 해도 상황에 맞게 절제해야 하고,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아픔을 줄 수도 있음을 아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자세가 필요하다.  교정시설에서의 범죄예방은,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지혜롭게 이겨내도록 교정당국과 수용자들이 함께 훈련하는 것을 말한다. 아름다운 인생후반전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치열 회원은 현재 교도관으로 재직중입니다.
2019-09-25 | hrights | 조회: 59 | 추천: 3
황은성/ 회원 칼럼니스트  다리를 다쳤다. 무릎 뼈 복합골절에 전치8주 상해였다.  빗길에 미끄러진 것 치고는 큰 불운이었다. 곧장 병원에 입원한 다음 관절 경으로 연골 안에 부서진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의사는 수술경과가 좋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한 달 동안 걷지 못할 것이고 그 이후에도 몇 달 정도 목발을 짚고 다녀야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의사에게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알았다’고 말했다. 불편해봐야 얼마나 불편하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걷지 못한다는 사실은 내 생각보다 불편했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불편한 것을 넘어서 ‘다리 다친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라는 걸까?’ 라는 회의적인 생각까지 더해졌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다치기 전 까지는 당연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았다. 먼저 병원의 문부터 그랬다. 흡연 장소에 가려면 병원의 후문 쪽을 이용했는데 지나치는 문은 안으로 당겨야 하는 여닫이 문이었고,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게 계단 옆으로 난 언덕은 경사는 너무나 가파르고 바로 앞이 도로였다. 도로에 차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성한 발에 온 힘을 지지해 언덕을 내려왔고 내려 온 다음에는 흡연실로 향하기 위해 다시 죽을힘을 다해서 주차장 옆 흡연실로 들어가는 경사 높은 길을 타고 들어갔다. 그렇게 흡연장에 가다 체중을 이기지 못해 휠체어가 뒤집어질 뻔 한 적도 몇 번 이었기에 나중에는 ‘담배 피러 나갈 때 마다 이런 고생을 해야 할까. 그냥 나가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다는 것과 불편하지 않다는 것은 판이했다. 병문안을 오신 어머니나 친구와 산책을 한 번 나가려면 무수히 많은 방지턱을 넘어야했다. 발이 성할 때는 아무생각 없이 넘어 다니던 대부분의 방지턱은 너무 높아서 휠체어 앞바퀴를 끌어다 놓아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 또 그렇게 올라갔다 하더라도 인도가 너무 울퉁불퉁해서 휠체어가 잘 구르지 않았다. 난데없이 심어진 가로수들도 길을 막았다. 자주 이용하는 편의점이나 슈퍼의 문도 대부분이 여닫이 문이었다. 내부 공간도 무척 협소해서 휠체어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카페도 식당도 마찬가지였으며 생리현상이 찾아와도 장애인 화장실이 아닌 일반 화장실을 이용하면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일반적인 자동차엔 휠체어를 실을 수 없어 병원 인근의 시설물만 이용해야했다. 그렇게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소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모든 것들이 불편해졌다. 사진 출처 - 필자  인도보다 도로가 편해졌다. 외출보다는 그저 병실에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됐다. 친구들은 말했다. “나가면 같이 고생하니까 그냥 참아. 아픈데 무슨 외출이야? 그냥 병실 안에 가만히 있어.” 상태가 호전되어 통증은 없다는 말에도, 병실에 갇혀 있기 갑갑하다는 말에도 “요양이나 하라”는 말이 돌아왔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병실 밖 세상’을 나갈 수 없는 세상이 원망스러웠지만 별 다른 수가 없었기에 ‘아픈 내가 죄인이지, 얼른 나아야지’ 생각했다.  그러다 병실에서 노트북으로 어떤 기사를 보게되었다. 부산 영도구에서 벌어진 어떤 장애인 모자 중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루고 있던 그 기사가 내 피부에 와 닿았다. 남 일 같지 않았다. 내가 더 크게 다쳤더라면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의 일면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곤 그 날 모자에게 벌어진 그 비극을 상상해보았다.  내게 그 이야기의 시작은 그저 효심(孝心)이었다. 밤늦게까지 일한 몸 불편한 엄마를 마중 나가는 몸 불편한 아들의 효심. 아들은 어머니를 얼른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동 휠체어를 몰았을 것이고 그 전동휠체어가 다니는 길은 다만 인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인도에 느닷없이 자리한 저 가로수가 그의 앞을 막았으니까. 또 소화전이. 또 횡단보도 너머로 보이는 다음 인도의 방지턱이. 또 너무 울퉁불퉁한 탓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휠체어를 휘청이게 보도블록이 그를 막아 세웠으니까. 그렇게 인도를 포기한 채 차가 다니는 차도로 전동휠체어를 몰고 간 그는 그의 엄마를 만났고. 그들은 보지 못하고 이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버스 안의 출퇴근 풍경을, 훌쩍 여행을 떠난 다음 바라본 바닷가와 산 정상 국내 어디, 외국 어딘가의 풍경. 커피 한잔을 먹을 수 있는 카페, 배가 고프면 들어서는 식당, 생필품을 사기위해 들려야만 하는 마켓. 몸이 불편한 그들을 위한 ‘전용시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또 몸이 불편한 그들이 이용해야할 도로와 교통이 그들에게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꿋꿋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어느 봄 날.  깊은 밤 퇴근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수고했다고 말하며 듬뿍 사랑을 나눠주던 아들과 그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담고 환하게 웃던 어머니.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손 꼭 잡고 그토록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은 결코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울퉁불퉁한 보도를 놔두고 도로를 통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들에게 찾아올 죽음을. 그것은 라이트 불빛의 의지해 왕복 2차선 도로를 내달리던 택시기사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사를 읽고 난 다음 나는 가만히 소리 내었다. “아.” 라고.  그 다음 속절없이 탄식이 흘러나온 까닭을 가만히 생각했다.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다. 몸으로 체험했으니까. 살 수 있는 방법들이 정비되지 못한 탓에, 죽을 수도 있는 길로 내몰린다는 것. 그것이 몸이 불편한 채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일상이었다. 나는 아프기 전에는 몰랐다. 나는 아프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아프기 전에는 그들에게서 등 돌린 채 살았다. 내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그 사실이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었다. 황은성: 동시대인이 되고 싶은 불효자입니다.
2019-08-26 | hrights | 조회: 172 | 추천: 7
홍세화/ 회원 칼럼니스트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에 입학한 것이 어제 일 같은데 벌써 대학교 3학년이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진로를 아직 정하지 못해 취업에 대한 뚜렷한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학교에서 수업 중 교수님들께서 넌지시 던지시는 취업 이야기나, 필수 교양 과목에 진로·취업과 관련된 수업이 커리큘럼으로 등록돼 있는 틈바구니에서 마냥 모른척하고 지나갈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공무원이나 공기업 취업과 같이 안정적이고, 주변에서 좋다고 여기는 직업을 떠밀리듯 결정하여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그 직업을 택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할 수 있는지 고민할 겨를 없이 진로를 설정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지, 그저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일을 하며 살아갈지 매번 고민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쪽에 마음이 더욱 기울어 있었다.  하루는 유튜브에서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고등학생 친구들이 학교를 벗어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배우며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삶’에 대해 말하는 영상이었다. 그 영상 속에서 학생들은 좋은 삶에 대해 ‘나를 돌볼 수 있는 삶’, ‘복잡한 생각이 들지 않는 평온한 삶’, ‘목표가 있는 삶’ 등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학교 밖에서 경험하고 얻은 배움을 토대로 각자 자신만의 길을 생각해두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영상을 보고 난 후 이른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앞서 이 친구들이 말한 좋은 삶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년에는 휴학을 하기로. 예전의 나였다면 다른 친구들과 같이 안정적인 직장으로의 취업을 목표로 대학생활과 자격증 학원 등에 옭매여 정신없이 달려갔겠지만, 생각이 바뀐 지금의 나는 한 해 간의 휴학을 통해 반년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벌고, 나머지 반년은 내가 번 돈으로 해외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어쩌면 현재 내가 목표하는 직장으로의 취업에는 영양가가 없을 수도 있는 경험을 하러 떠나리라 다짐한 것이다.  이런 나의 선택을 두고 어떤 사람은 죽기 살기로 더욱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속 편한 소리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기업에 합격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나, 훌쩍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나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은 피차일반이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여행을 통한 경험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그 길로 나아갈 수도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청년실업이 10%대에 도달한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다른 청년들 역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故 유재하의 노래 ‘가리워진 길’을 가만히 불러본다. 나, 그리고 그 청년들을 응원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어떤 길을 가든. 홍세화 : 한창 놀고싶은 대학교 3학년 홍세화입니다.
2019-08-14 | hrights | 조회: 224 | 추천: 6
이현종/ 회원 칼럼니스트  일본 아베 정권은 2018년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에 대한 개인의 소송권은 살아있고 청구가 가능하다”고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하여 크게 반발을 하며 여러 차례 항의를 하다 2019년 7월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 한국에 대한 무역 보복을 감행했다.  아베 정권의 속이 뻔히 보이는 얄팍한 수작에 많은 국민과 한국, 일본 기업들이 황당해하고 무역 보복을 중지할 것을 촉구하며 성명을 내고 걱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본인들의 선거 승리와 대내 결속을 위해 그 어떤 짓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을 외부에 공표하였다.  그들의 논리는 ‘한일 기본조약 체결로 이미 모든 분쟁은 합의가 끝났다. 배상은 완료되었고 그렇기에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무효이며 이로 인해 일본 기업들에게 피해가 된다면 그것은 부당하다. 그 이후 일본의 대응 조치는 매우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한국 정부의 잘못이며 판결은 무효이고 한국 정부에 철회를 요구한다’는 거다.  여기서 일본의 논리에 허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로 한국은 민주주의를 근본으로 한 삼권분립의 국가이며 사법부, 행정부, 입법부로 나뉘어 있다. 사법부는 법과 양심에 따라 누구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고 원칙에 따라 판결을 내림이 기본 상식인데 일본은 ‘행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간섭해서 무효로 돌리라’고 하는 것이기에 이는 내정간섭이며 비상식적이다.  삼권분립이라는 개념은 각 기관의 감시와 견제를 위해서 만들어졌고 어느 하나가 일방적으로 간섭하거나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일본은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이 이뤄진 국가라고 하면서 정작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상황이 민주주의나 삼권분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일당 독재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사실로 보이게끔 하는 발언이다.  두 번째로 한일 기본조약은 일본의 주장대로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일본은 당시 합의한 금액 안에 배상금이 다 들어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 또한 굴욕적이고 억울하지만 사실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을 위해 징용 피해자들과 국민 정서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한일 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당시 일본 GDP에 비교해서도 막대한 양의 배상금을 받았다.  일본의 두 가지 주장 중 첫 번째는 억지지만 두 번째는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 국민정서와 피해자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국가 간에 밀실협약을 맺은 것이기에 문제가 있다. 일본의 말대로라면 국가 간의 문제는 그 당시 다 끝났다. 하지만 당시 조약 내용을 보면 개인 청구권에 대한 발언은 정확히 명시가 되어있지 않으며, 2018년 대법원의 판결은 이에 근거한다.  일본은 배상금을 다 지불했다고 하는데 개인의 배상 청구와 보상금에 대한 행방은 어떻고 왜 피해자들은 한 푼도 받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기가 힘들다. 그 막대한 돈은 당시 박정희 정권이 경제 개발 자금으로 썼다고 한다만 그마저도 전부는 아니고 정치자금으로도 흘러 들어갔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그 돈을 기반으로 경부고속도로, 제철소를 비롯한 국가 경제 기반을 일으켜 세웠고 포스코 박태준 회장은 ‘(경부고속도로는) 조상들의 핏값으로 세운 것’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논리가 지배적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피해자들이 거기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2019년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도 사과도 없다. 출처 - 뉴시스  이는 비유하자면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밀린 월급 받아서 집으로 가져가는데 사장이 갑자기 가던 길을 막아서고 ‘지금 그 돈이면 기계랑 땅 사서 회사가 더 성장할 수 있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나중에 다 같이 잘살고 성공할 뿐만 아니라 돈도 갚고 이자도 줄 테니 빌려 달라.’고 해서 어쩔 수없이 준 후 사정이 좋아져 돈을 돌려 달라고 하자 ‘배 째’ 라고 하는 격이다.  하지만 이제는 피와 한이 맺힌 돈을 기반으로 성장한 국가와 기업이 일제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보상을 할 때도 되었다. 이는 지금 일본의 보복성 수출 규제 등 외부 상황이 해결되고 나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전처럼 조용히 넘어갈 것이 아니라 당시 그 돈을 쓴 기업들이 피해자들이 살아있을 때 한시라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 이현종 회원은 현재 금형 분야에 재직 중입니다.
2019-08-05 | hrights | 조회: 173 | 추천: 7
이희수/ 회원 칼럼니스트  몇 달 전 한 정치인이 불교 행사에 참석하면서 합장과 반배 등의 불교 예법을 따르지 않아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자면, 나는 손을 모으고 절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가치를 대변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또 그의 사회적 위치와 행사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배타적이고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다소 불편했다. 그러나 혹자는 자신의 종교적 지향을 밝히기를 몹시 원하며 이와 같은 행위가 자기 신념을 드러내는 절대적인 행동이 된다고 여길 수 있기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할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얼마 후,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하는 기사를 접했다. 같은 정치인이,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보장하는 것이 형평에 어긋나므로 당 차원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조정하는 입법에 나서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모국에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납득하기 힘든 차별을 당할 위기에 처한 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여러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으로 주장하고자 했던 ‘기독교인’ 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아해졌다.  나는 성경도 잘 모르고, 나의 신학적 지식으로는 전도사라는 그분을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상식 수준에서 성경을 떠올려보면 함께 생각나는 단어가 우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 단어가 들어간 성경 구절을 찾아보니 여기에 다 적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 고아와 과부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신명기 10:18),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신명기14:29),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지 말고…(스가랴 7:10),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나그네를 지켜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시편 146:8,9) …’  나그네―외국인에 정확하게 대응한다―와 고아와 과부. 스스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의 대명사다. 성경이 누구에게 마음을 쏟으며, 누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또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마태복음 22:39)’ 예수의 가르침은 남과 나를 구별하지 않아 이웃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는 경지의 Com-Passion을 요구하고 있다. 더 직접적으로, 1세기 로마와 유대인 사회에서의 분리와 차별이 예수 안에서 극복되었음을 선포한 구절도 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28)’ 출처 - Daniel W. Erlander  불교 예식 참여를 거부한 그의 행동을 두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라는 설명이 따라붙은 글을 여럿 보았다. 불교 예법을 거부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동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공인임에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특정 집단을 향한 존중과 예의의 표현을 거부할 정도로 ‘기독교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면, 응당 그 정체성의 실체도 보였어야 수긍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신자, 그리스도인 등으로 표현되는, 기독교 신앙을 지닌 사람들의 정체성을 지칭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성경에 260번 이상 언급된 ‘제자’라고 한다. 제자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그를 따르는 사람이 아닌가. 신의 가르침인 성경에서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의 처지를 애달파하며 그들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차별하지 말라는데, 그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고 다른 종교를 배척하기만 해도 자신의 종교적인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2019-07-29 | hrights | 조회: 264 | 추천: 10
김치열/ 회원 칼럼니스트  사회는 공동체 합의를 통하여 바람직한 질서 안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에 의하여 공동체는 심각한 위협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범법자에게 사회는 법적인 여러 과정을 거친 후 이들을 격리된 공간으로 보낸다. 이들을 격리된 공간으로 보내는 기간 동안 사회 공동체는 평화를 누린다고 착각한다. 오늘은 그 착각으로 생기는 일에 대하여 나누고자 한다.  어느 사회이든 범죄가 있다. 범죄에 대한 사회방어의 수단은 형벌이었다. 고대에는 사형 등 신체형을 부과하였다. 형벌은 행위에 대한 하나의 응보의 수단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들의 얼굴에 수(囚)라는 글자를 새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사형을 포함한 신체형은 많은 나라에서 사라졌지만 범죄에 대한 응보감정과 그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것은 여전하다. 근대시대에 이르러 종교에 대한 처벌이 일반형사법 체계에서 분리되고 국가에 대한 모반범죄는 제한적 상황에만 적용되고 있다. 범죄를 처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범죄인의 처벌만 중심이 되고 있고, 범죄인의 사회복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유감이다.  형벌제도에서 대세를 이루는 것은 징역형이다. 징역형은 구금기간 동안 교도소 안에서 근로를 하는 벌이다. 형기를 마치면 사회로 나올 수 있다. 범죄인이 싫다고 하여 영원히 격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일정기간 이후 사회로 돌아오는 현실을 감안하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구금기간 동안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교도소 작업과 직업훈련을 통하여 사회생활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범죄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심리치료에 집중하고 있으며, 집중인성교육을 통하여 사회에 적응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출처- 필자  하지만 언론보도나 사회관계망을 살펴보면 범죄인에 대하여 혐오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미국 등지에서 시행하는 종신형을 구형하기를 바란다. 과거에 장기형을 받는 경우는 살인죄나 강도죄 등 사람에 대한 참혹한 범죄가 발생한 경우였다. 현재는 조두순 사건으로 인하여 성폭력 범죄도 장기형을 받고 있으며, 현재 윤창호 법이 발의됨으로 인하여 교통범죄의 형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도소 수용자들이 입고, 먹는 것은 모두 국세로 지출된다. 장기수들이 많아질수록, 이러한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나 교도소 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범죄예방교육이다. 교도소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육 중 ‘생각 바꾸기 교육’이라는 게 있다. 생각을 바꿈으로서 범죄에 대한 욕망을 방지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육이다. 국가나 사회는 범죄에 대해 어떠한 적을 대처하는 것보다 단호해야 한다. 그러나 죄를 반성하고, 사회에 나아가 기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이 인권적이지 않을까. 김치열 회원은 현재 교도관으로 재직중입니다.
2019-07-24 | hrights | 조회: 90 | 추천: 6
김창용/ 회원칼럼니스트  A(26)는 충북 제천 출신이다. 지금은 동작구 흑석동의 반지하 자취방에서 취업을 준비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제천에서 취업준비를 하고자 했으나, 3개월도 못가 다시 서울로 왔다. 공부하러 가방을 메고 나서면 보이는 건 산 뿐인 소도시이기에 스터디는 물론 취업과 관련된 정보도 구할 수 없고, 애초에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권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죄다. 출발선이 다르다.”고 말했다.  A와는 친한 동향친구다. 더불어 같은 전공을 했기에 여전히 친하게 지낸다. 한번은 그가 “3일 정도 네 방에서 묵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딱히 상관은 없어 이유를 물었고 그는 ‘교육을 받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고향에 있었던 3개월 동안 A는 취업 준비를 위해 10회 이상, 즉 1달에 3회 이상 서울에 다녀갔다. A는 “제천에 교육이 있냐, 뭐가 있냐. 왕복하는 돈이면 (서울에서) 월세도 살 수 있는데... 서울살이 힘들어서 내려갔더니 엄마도 그럴 거면 서울로 올라가라고 닦달하더라.”라며 자조했다.  그렇다고 서울에 올라오면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B(27)는 경남 거창에서 올라와 현재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에서 노무사시험 준비를 한다. 고시촌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5평 남짓한 원룸에서 지내며 월 40만원을 낸다. 식비와 학원비, 교재비 등을 포함하면 월에 나가는 돈이 120만 원 정도다. B의 부모님은 자식의 서울 생활을 위해 최근 소유하고 있던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겼다. 그는 “체류비가 만만치 않아 부모님에게 너무 죄송하지만 시험 준비를 위해 서울에 있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대외활동과 인턴을 하기 위해 고시촌에서 1년 정도 지냈는데, B와는 그때 많이 친해졌다. 그는 어린 동생이 있다. 어림잡아 띠동갑이 넘는 나이차였는데, 그래도 집이 지방이라 다행이라고 했다. ‘중·고등학교 때 학원비 등 교육비가 서울에 비해 적어 부모님이 느끼는 부담이 (서울에 비해)적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헌데 그는 최근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이란다. 힘들어하는 부모님이 계속 눈에 걸렸고 동생도 곧 고등학교에 들어가 본인이 식비를 대폭 줄여가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런 가족을 외면하고 더 이상 서울에서 혼자 버티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지방 출신 청년의 입장에서 서울은 분명히 기회를 넓히기 좋다. 책이나 신문, 뉴스에서나 보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고, 정보는 흘러넘치며 강의를 듣거나 스터디를 하거나 모임 등을 할 때 공간의 제약도 사라진다. 하나마나한 말이겠지만, 지방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들을 위해 지방 청년들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당장 고향에서 지내는 고등학교 동창들만 봐도, 서울에 한 번 왔다가는 데 드는 비용이 교육비를 포함하면 어림잡아도 최소 15만원은 넘게 든다고 한다. 게다가 면접 등을 포함하면 그 빈도는 잦아질 수밖에 없다. 15만원이면 2주에서 3주치 식비와도 비슷하고, (지방)월세의 반값도 넘는 돈이다. 누구는 쓰지 않아도 될, 혹은 교통비 2,500원만으로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지방 청년들은 그 60배인 15만원이라는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 시간도 배 이상 투자해야 하는 건 덤이다.  지방에서 지내지 않고 서울로 올라와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방 출신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힘들다. 다른 동향 친구인 C(25)는 물리치료과를 졸업해 2차병원에서 일하며 2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는다. 그 중 월세(50만원), 보증금 이자(10만원), 집에 보내는 돈(50만원), 저년차 치료사들에게 강제되는 세미나 비용(월 평균 10만원)을 제하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은 90만원이다.  C는 “동기들은 입사 후 모은 돈으로 여름휴가 때 멀리는 못가도 동남아나 일본, 중국 등지를 다녀온다고 하던데, 진짜 속 쓰리지 않냐?”며 “90만원 중 식비, 통신비, 생필품비 등 고정지출을 제외하면 갖고 싶은 것 하나도 사지 않고 아끼고 아껴 월 30만원 저금할 수 있는데 동료들은 갖고 싶은 것 다 사고 저축할 거 다 저축하면서도 ‘돈이 모자라 동남아밖에 못 간다.’고 말하는데 당장 집 한 번 갔다 오기도 힘든 생각 하면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출처 - 대학내일 유튜브 영상 갈무리  ‘서울 공화국’에서 지방 출신 청년들은 이주난민이 되어 배척당하고 쫓겨난다. 대학생 때는 각종 대외활동 등 다양한 활동들이 지원자격 중 거주지를 수도권으로 한정해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없다. 방값이 없어 학교나 직장과 먼 원룸, 반지하, 고시원으로 밀려난다. 취직 후에도 동기들이 먹고 싶은 것 먹고, 갖고 싶은 것 살 때 외식 한 번도 신중히 생각하며 아껴도 늘 더 가난하다.  쫓겨나도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어렵다. 고향에는 기회가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버텨야 한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꿈을 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꿈을 이루기가 힘들다. 같은 노력을 해도 늘 뒤쳐진다. 인구 밀집으로 인한 문제는 전부 청년 개개인이 지고 지방 청년들은 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진다.  A는 만나기만 하면 “야, 우리 제천 가서 학원이나 하자. (제천에는) 학원도 없으니까 너랑 나랑 서울에서 대학 나온 애들 몇 모아서 제천 가면 학원 재벌 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여기서처럼 밥 안 굶고, 월세도 안 살고, 갖고 싶은 것 사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 수 있다.”고 농담 삼아 얘기한다. 반은 진심인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일단 ‘그러자’고 대답은 하는데, 서울에서 자유롭게 꿈을 꿀 수는 없을까. 김창용: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열심히 공부하고자 합니다.
2019-07-12 | hrights | 조회: 267 | 추천: 13
황은성/ 회원 칼럼니스트  6월 13일 오후 전 노들야학 교사이자 지금은 작가가 된 홍은전씨의 강의를 들었다. 슬픔과 고통에 관한 강의였고, 강의 중간쯤엔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고통과 괴로움을 견뎌야하는 슬픔에 시달려 약해진 이들마저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운다는 것이 금지된 사회에서 기꺼이 슬픔을 수용하고 더 나아가 그 부조리에 ‘저항’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이 내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이유는 간단했다. 필자인 ‘나’는 아직까지, 여전히 슬픔 속에 살고 있어서 그랬다.  필자의 슬픔을 고백하자면, 10살까지 함께했던 필자의 아버지는 심각한 알코올중독자였다. 알코올에 절여져 전두엽이 쪼그라든 아버지는 실로 무참한 폭력과 악의로 나의 인생을 짓밟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며 지옥 같은 여주를 탈출한 이후에도 필자는 내성적이고 왜소하며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과 세상에 상처받았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상처 준 모든 이들은 단 한 번의 사과 없이 무심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기에, 나에게는 씻을 수 없고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영혼의 상처가 남았지만 그들은 무심히 웃으라기에…….  악의가 낳은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조리한 슬픔에 저항하는 방법 같은 건. 간혹 내게 행해진 과거의 폭력이 너무 아파서 깊은 밤 불면에 시달릴 때면 누구의 손을 부여잡고 과거를 털어놓거나 지난날의 상처를 드러냈지만 어차피 돌아오는 말들은 항상 똑같았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어”, “다 그러고들 살아”, “그거 보상심리야”, “잊어, 잊는 게 최고의 복수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언제까지 과거만 돌아보면서 살래” 모두가 그랬으니까.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처럼 말했으니까. 나는 홀로 고개를 내저을 용기가 없어 끄덕였다.  그것은 그저 ‘적응’과 ‘순응’이었다. 세상이 그러라고 했기에 그들 모두 그랬고 나 역시 그들과 똑같았다. 원망하고 미워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으며 바꾸려고 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은 계속 굳건하리라 믿었다. 실제로 정해진 관습이나 통념에는 적응이 더 편하니까. 누굴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 보다 내 마음 하나만 추스르고 ‘개인의 불운’이라고 말하며 방 안에서 훌쩍 울면 더 상처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모두 ‘적응’이라는 과제를 두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있으니까. ‘적응’이라는 과제를 내놓는 세상은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미워하고 폄하 하니. 아스팔트보다 차가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도록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남들만큼 살기위해 성격을 바꾸고 외모를 가꾸며 노력하며 살았지만 상처는 결코 치유는 될 수 없었다. 구멍이 난 마음 안에서 쉴 틈 없이 무엇인가 흘러나가는 영원한 결여에 시달리며 살았고, 추슬렀다. 아픈 가슴을 끌어안고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내게 물었고, 위로에서 위안을 찾으려고 했던 나는 어느 날 기울어지는 배를 보았다.  지옥보다 더한 그 현장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304명이 덧없이 떠나버린 그 사건 이후로 남은 사람들을. 물가로 올라온 아이를 지퍼 백에 담아놓는 것을 보아도 혹여나 더 심하게 굴진 않을까 겁을 집어먹고 말하는 것 하나 조심하며 살아가는데도 슬프다고 말 할 권리조차, 기억할 수 있는 권리조차 앗아가 버리는 세상에. 애도를 청승이라고 말 하는 세상에. 그만하면 됐다는 세상에. 죽은 아이들을 찜쪄먹고 회쳐먹고 고아먹는다는 세상에. 추모시설을 두고 땅값 떨어뜨리는 혐오시설 납골당이라고 부르는 세상에. 저항을 유별과 유난으로 표기하며 “지겨워죽겠어 그냥.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 많은 보상금 받아놓고 부족하나보지?” 라고 말하는 세상에 상처받음에도 굳건히 두 발로 서고 묵묵히 내딛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들은 어째서 저항할까. 누구 앞에서 슬프다고 말도 못 한 채. “그 이야기는 부끄러우니까 인터뷰에서 빼주세요. 너무 슬픈 이야기니까 빼주세요. 그런 얘기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으니까 빼주세요.” 라고 말하는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광화문에 서고 잊지 말아달라고 촛불을 높이 들며 호소하는 이유를.  나는 내 손을 부여잡으며 울어도 좋다고 말해주는 상담사의 말에도 울 수 없었으니까.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세상에 저항하는 방법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홍은전 작가의 말을 듣던 그 순간. 나는 이내 깨달았다. 나와 그들에게 삶의 흉터를 남긴 그 거대한 발톱은 ‘어쩔 수 없는 사건’ 이나 ‘개인의 불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그저 슬픔마저 통제하는 사회의 민낯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6월 13일의 며칠이 더 지나갔고 지금 칼럼을 쓰는 나는 여전히 슬픔 속에서 살지만 알고 있다. 진실을 심연 속에 묻어놓고 외면하며 사막같이 메마르고 있는 세상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남은 누군가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참사를 ‘인간 개인의 슬픔’으로 치부하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 속에서 울지도 못 한 채로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을. 나는 경찰에게 전화를 걸고 아버지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원망하였지만, 어머니가 나쁜 것이 아니라 다만 필자의 어머니가 “가족일은 가족끼리 해결하라”는 세상에 “오빠가 술만 먹으면 저러네, 평소에는 착하잖아. 동서가 좀 참아.”라고 말하는 세상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하였다는 사실을. 사진 출처 - 필자  하여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슬픔을 똑바로 마주하고 적응대신 저항을 선택해야 한다고. 마음을 털어놓고 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세상에서, 누군가 나의 어깨에 기대어 마음 편히 울 수 있도록. 언제인가 아버지가 있을 여주로 돌아간 내가 진심으로 웃을 수 있도록. 그런 참극이나 슬픔이 일어나기 전에, 당신도 같이 저항이라는 이름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고. 나는 말 하고자한다. 황은성 : 동시대인이 되고 싶은 불효자입니다. 배워가며 살아가되 흔들리지 않는 것이 소망입니다.
2019-07-01 | hrights | 조회: 231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