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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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창용, 김치열, 이현종, 이희수, 정진이, 홍세화, 황은성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김창용/ 회원칼럼니스트  3명의 20대 여성이 비키니만 입고 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운동을 통해 다져진 몸을 관객을 향해 뽐내듯 포즈를 잡는다. 피트니스 대회 얘기는 아니고 지난해 있었던 ‘비키니 위문공연’ 얘기다.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 또 다른 군 위문공연에서 카메라는 당연하다는 듯 여성 모델들의 특정 신체부위를 클로즈업 해서 화면에 띄웠다. 참석자들은 환호했고 모델은 당황했다.  상위부대인 육군 수도방위사령부가 입장문을 내고 사과를 했음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사과는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지속됐다. 올해 다녀온 예비군 훈련에서 있었던 일이다. 늘 있는 안보교육에는 무슨 상관인지 도저히 가늠 할 수 없는 걸그룹의 ‘위문’ 영상이 등장했다. 헐벗은 여가수가 ‘예비군 오빠들 화이팅하세요!’ 따위의 말을 하는 영상이었다. 도대체 이게 대한민국 안보와 무슨 상관일까 곰곰이 생각도 해봤지만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당연히 비판이 일었고,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위문공연을 폐지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흔히 하는 말로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했다. 으레 남자들끼리만 모여 나누는 대화 중 유난히 이성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는 듣기 불편하다. ‘20대 남성들이 여자와 성에 대해 대화하는 게 뭐가 문제냐’, 혹은 ‘남성은 원래 이렇다 저렇다’라는 말들을 억지로 수용해 ‘그렇다더라’ 하고 이해해보려고 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얘기들이 늘 오간다.  ‘누가 예쁘다’, ‘누구는 어떻다’ 따위의 평가는 기본이다. 심지어 서로 아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몸매가 좋다’, ‘누구랑 잠자리를 했다.’ 등 적나라한 얘기가 끊임없이 오간다. 심지어 그 말들은 훈장이 되고 많은 여성을 만난 남자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 우에노 치즈코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에서도 언급했듯 너도나도 ‘호모 소셜(동성 사회, 남성 연대)’ 속에서 인정받기 위해 남성성을 드러내는 행동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객관화, 타자화되어 일종의 수집품이자 전리품이 된다. 대화에 동조하지 못하거나 불편함을 드러내면 ‘고자’ 혹은 ‘게이’가 되기 십상이다.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여성혐오적 발언에 대한 문제제기가 또 다른 여성혐오로 번지는 식이다. 호모 소셜 속에서 ‘진짜 남자’가 되려면 여성을 타자화해야 한다.  군대 밖에서도 이런데 안은 오죽할까. 군 생활 중 남성만 나오는 TV프로그램은 시청 금지였고 아침에는 인기 있는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를 항상 틀어둬야 했으며 여군에 대한 끊임없는 루머(주로 성적인)는 끝도 없이 생겨났다. 휴가를 나가서 여성을 만나지 않으면 욕을 먹었고, 만나지 않았다면 성매매라도 했어야 했다. 그래야 ‘고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SNS 상 여성 친구들은 ‘누구 친구가 예쁘다’ 식으로 리스트화되어 선임병들에게 전해졌다. 본인들의 마음에 드는 여성 지인이 있으면 A급 병사가 되었고, 그런 지인이 없다면 소위 폐급 병사가 됐다.  뜻하지 않게 ‘고자’가 된 사람으로서 보기에, 남성들의 여성혐오적 시각은 호모 소셜 속에서 소외되기를 두려워하며 발현되기에 그 뿌리가 깊다. 그리고 이는 곧 서로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 남자들끼리 “진한 우정을 나누자”며 가진 술자리에서는 앉자마자 주변 여성 손님들이 앉은 테이블을 둘러보고 서로 평가를 한다. 그리고는 맘에 드는 상대에게 말을 건다. 그런 행동이 불편해 가겠다고 하면 ‘갈 거면 폭탄(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 치우고 가라. 의리 없이 가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등의 대답이 돌아온다.  상황이 이러하니 위문공연을 폐지해 달라는 의견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뻔했다.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카페나 커뮤니티에서는 ‘위문공연 없으면 (군대 안에서) 뭘 보고 사냐’ 등 반대의견이 넘쳐났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의 반발은 더 커서, ‘남자들끼리 갇혀있는데 성적인 시선으로 보는 게 뭐가 문제냐’, ‘추행만 안하면 됐지’, ‘너희 같은 애들은 부르지도 않는다’ 등 성 상품화나 성적 대상화 등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말들을 해댔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타인의, 특히 남성의 필요에 따라 규정되고 있다. 힘을 가진 남성들이 스스로는 오롯이 성적 주체이고자 하고, 객체가 되기 두려워하기에 그렇다. 치즈코는 “군대는 매우 중요한 호모 소셜이다. 한국 남성들은 군대에서 살생과 폭력을 배운다. 문제는 이런 작동원리를 적극적으로 배운 남성들은 평화적 생물로 존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에 더해 군대는 살생과 폭력을 갖추기 위해 다른 것들은 통제하면서, 성적인 해소는 독려한다. 성욕의 노예로 여긴다는 의미다.  비키니를 입고 자신의 몸을 수많은 남자들 앞에서 드러내는 동생뻘 모델들을 대하는 태도는 환호가 아닌 좌절이고 반성이었어야 한다. 위문 공연을 유지하자는 주장은 스스로의 섹슈얼리티를 해침은 물론 두려움 많은 겁쟁이이자 성욕의 노예임을 자백하는 모양이기에 더욱 그렇다. 스스로 겁쟁이나 노예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지는 말자. 김창용: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열심히 공부하고자 노력만 하고 있습니다.
2019-05-29 | hrights | 조회: 161 | 추천: 11
임영훈/ 회원 칼럼니스트  어렵고 포괄적인 글은 쓰지 말자면서도 주제를 찾다 보면 가끔 삼천포로 빠진다. 일상에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통시적으로 파악하고픈 욕심이다. 통찰은 언감생심, 결국 미로에 빠져 헤매고 만다.  결국 경험적, 미시적으로 가깝게 볼 수 있는 일상사를 찾다가, 그만 인간 관계에서 시작한 글이 자아와 사회라는 거시 경제학(?)이 된다.  사람 사이란 뜻의 인간이 그대로 사람이란 뜻으로 쓰일 정도로 사람에게는 관계가 중요하다. ‘인간 관계’란 익숙한 말에는 인간에 관계가 마치 한 단어처럼 따라붙는다. 그만큼, 관계는 선택 같은 필수다.  태어나면 관계의 연속이다. 부모 이외의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몇몇 기억들이 떠오른다. 열 살도 되지 않았던 저학년 때에도 반장을 맡을 리더 어린이가 있었고, 점점 서로의 외모 등을 인식하면서 잘 생기고 예쁜 친구가 누구인지, 공부나 운동은 누가 잘 하는지 구별해갔다. 고학년인 10대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이런 구분과 등급은 점점 명확해지고 부러움과 더불어 시기, 질투 등도 커지기 시작한다. 남학생과 여학생 간 미묘한 분위기도 싹트고, 한 쪽만 마음이 있는 짝사랑 같은 사랑의 짝대기가 생겨난다. 공부를 잘하거나, 패션 감각이 있거나, 주도적이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잘 놀거나 등 내세울 게 있는 아이들은 이성에게 인기를 끌고, 그룹을 만들어 어울리는 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내성적이거나, 자신감이 없다면 무리 짓거나 그룹을 형성하기 쉽지 않다. 결국 ‘inner circle’에 안착하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자신이 어딘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결핍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열 살 전후로 느꼈던 ‘inner circle’의 진입 장벽은 일종의 인간관계의 고비였다.  나는 쉽게 다수에 섞여 어울리는 체질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졸업 문집을 아직도 갖고 있는데, 각자 짧게 자기소개를 하는 란이 있고 몇몇은 그림이나 글재주를 자랑하기도 했다. 모두에게 공통되는 짧은 소개 글에는 공통 질문이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6학년이래봤자 만 12세의 어린이였는데, 많이 나온 답은 이랬다. ‘돈, 여자, 남자, 직업, 가족, 건강, 성적’ 등등. ‘꿈, 희망’ 같은 이상적 단어도 있었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너무 옛날이라 일일이 기억하긴 어렵지만. 무엇보다 아직 어린이였는데도 대부분의 답들이 상당히 (내가 보기엔) 속물적이었다.  나는 ‘아내, 종교, 음악’ 이라고 썼다. 어린이가 적었다니 어색한 감이 있지만, 담임선생님은 입이 닳도록 칭찬하셨다. ‘여자’라고 적은 다른 답들과 ‘아내’라고 적은 것은 다르다면서 그 부분을 강조하시기도 했고, 나머지 둘도 그런 것을 쓴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 청년 성가대를 10년 넘게 한 걸 보면 별 것 같지 않던 문집이 타고난 성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나침반이었다.)  동시에 선생님은 내가 현실 감각이 없다며 걱정을 하기도 하셨다. 수업 시간에 앞으로 뭘 하고 싶냐는 주제가 나와서 다들 이런저런 장래 희망을 말하고 있는데, 내 차례가 오자 문득 낡은 건물들에 페인트칠을 해주고 돌아다니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당시 어린 눈에 비친 서울의 건물들이 전부 낡거나 우중충하고, 지금처럼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건물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게 무슨 미래에 실제 갖게 될 수 있는 직업을 얘기한 것도, 현실적 답도 아니었기에 선생님은 나의 몽환적 답변을 타박하셨다. 그리고 동시에 여기저기서 실소인지 한숨인지 황당해 하는 반응도 있었다. (아직도 동창 모임에 나오는 여자 동창이 그 중 한 명이었다. 뒤를 돌아다보기까지 했었기에 기억이 난다.)  이런 나만의 색깔과 가치관, 주관 덕분인지 친구가 쉽게 생기지 않았다. 더하여 TV를 사회악으로 여기는 집에서 자라 연예인들 신상으로 이어지는 또래들의 수다에 대화 주제가 없다시피 했다. 여러 면에서 어딘가 특이한 애로 인식되었고, 성적이 나오는 편이었지만 온통 성적에 목을 매는 상위권과도 그렇게 통하지는 않았다.  내 안에는 점수에 목을 매는 교육 환경과 더불어, 점수에 목을 매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까지 똑같은 괴물로 그려져 있었다. 비판 정신을 뱃속부터 타고났는지, 교육 현실을 비난하는데 열을 내곤 했다. 입시 교육이 시작되는 중학교에 올라가자 학교가 즐겁지 않았고, 배우고 익힌다는 본연의 공부에는 뜻이 없고 온통 시험 점수에 목을 매는 학교에 호감이 가지 않았다. (실제로는 물론 나 또한 점수가 중요했지만) 결국 나는 어디에도 섞이기 힘든, 회색분자와 같은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환경의 평범한 학생, 나 또한 입시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였음에도, 스스로를 떼어내어 거대한 실패작인 한국의 교실에서 자신을 분리시켰다.  십대 시절 형성된, 관계의 단절이 가져오는 외톨이의 삶은 그 후의 시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물질만능주의와 성적 지상주의를 생각 없이 받아들여봐도, 이미 형성된 ‘나’는 그렇게 쉽게 속물로의 카멜레온과 같은 변색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와 주변의 색은 매번 어딘가 달랐으며, 그럴듯하게 섞여서 숨어 있어도 어느 순간에는 보란 듯이 드러나서 뭐라도 문제를 일으키고는 했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아니면 이익 사회의 영역이든, 다수의 사고는 다수가 맞음을 강변하면서 소수를 돌연변이 취급하고 사사건건 억누르게 마련이다. 그게 다수의 생존 방식이다. ‘길 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봐’라던지, ‘거봐, 니가 틀렸지’라며 다수결을 강요하게 된다. 그렇게 다수는 다수가 지배하는 체계를 공고히 유지하려 한다.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게 된다면 다수가 가지는 우월성은 근거 없이 흔들릴 위험에 처한다. 이것은 또한 관계에 중점을 두는 인간 사회, 특히 동아시아 사회를 이루는 축이 되므로 일종의 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마치 순환 출자와 같이 돌고 도는 자체 순환의 고리가 꽤나 튼튼하게 엮여 있는데, 한 쪽이 끊어져도 결국은 이어져서 계속 돌게 되는 아주 강한 매듭의 반복이다.  내 삶의 방식을 유지하려고만 해도 우군이 필요한데, 대부분이 특정한 생각을 갖고 살아가기에 그게 정답이고 정상이며, 내 편은 없었다. 예를 들어, ‘입을 옷이 있는데 왜 옷을 또 사?’와 같은 질문을 하면 모자란 취급을 받게 된다. 어느 사회이건 기존에 형성된 사고틀이 굳어 있기 때문에, 어떤 질문이던 간에 질문 그 자체로 평가되기 이전에 사회의 관습으로 먼저 재단된다. 공고한 선입견이 그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강한 틀이고, 구성원들은 그 안에서 적절히 따르고 즐기고, 적절히 진보적인 척 반항도 하다가, 대체로는 인정받으면서 안도감을 느낀다.  적어주는 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뭐든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맨날 헤헤 웃으며 맞춰주는 사람이 아닌 자는 이렇게 매사가 힘들고 삶 자체가 버겁게 된다. 좌파 시민단체에 참석해도 주장에 동의가 안 되면 자기 할 말을 하게 되고, 우파 기업인들과의 업무 미팅에서도 자기 색을 버리고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스폰지가 되기는 힘들다. 반대로 스스로를 버리고, 다수에 맞춰가는 이는 관계의 달인이 될 수는 있다. 문제는 정작 그 자신의 정체성인데, 따지고 보면 존재하지 않는다. 꿋꿋이 다수의 횡포에 항거하면 자아를 지키지만 관계의 구성에 걸림돌이 있는 것과 대비된다.  여기에 고민이 싹튼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것인지, 아니면 여기선 이러고 저기선 저러는 카멜레온처럼 살아갈 것인지, 생존의 본능은 무조건 관계를 택해서 후자로 갈아타라고 권한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무리짓기를 하는 동물들의 본능이다. 생물학적으로 무리에서 소외되는 것은 곧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죽음을 의미하기에, 무리를 이루는 동물들에게서 개체를 소외시키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고 한다. 실제로 무리 동물 중 무리에서 어떤 이유로든 떨어져 나간 개체는 혼자서 생존하기보다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에서 무리에 껴주지 않고 왕따를 시키는 것은 그의 영혼의 심장을 떼어내어 길거리에 던져버리는 것과 같다. 이렇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경제적으로는 살 수 있어도 상당수가 자살을 택한다. 명예가 심각하게 실추된 경우,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 관계망이 소실되어, ‘사회적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는 표현도 많이 쓰인다.  그래도,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는 안창호 선생의 말처럼, 나의 신념을 믿고 부러지더라도 혼자 가는 게 옳은 일일까. 나도 사람이기에, 생각에 오류가 있을 것이고, 그것만 고집하는 것은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외부의 생각들에 내가 오염된다고 여길지, 아니면 그런 여러 자극들에 의해서 외골수의 생각이 다듬어진다고 판단할 지는 여전히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그만큼 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고, 복잡의 끝을 달려가는 세상에서 단순히 자신의 입장을 취하는 것조차 갈수록 어려워진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다양한 뉴스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난해한 퀴즈를 매일 풀며 하루하루 넘어가는 줄타기와 같다. 사진 출처 - 티스토리 블로그  그래도 스스로에게 개인의 신념과, 자기 자신의 사고의 완결성을 믿으라고 하고 싶다. 이 말은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주입되는 일련의 지침들을 무작정 따르지 않고, 어떤 분위기를 타고 휩쓸리는 열풍 등에 무심코 올라타지 않기를 바람이다. 내가 맞다고 믿는다면,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도 꺼내어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바람이 불어 다수가 특정 사안에 휘말려 혈안이 된다 해도 자신은 부러 그 바깥으로 나와 침착하거나 외려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여전히 냄비 끓듯 분위기에 휩쓸리는 사회 현상들을 보면 못내 씁쓸하다. 중국, 일본과 더불어 인간 사회에서도 가장 관계를 중시하는 동아시아 사회여서 그런지, 낡은 동아시아 관념을 타파하려는 이들조차도 실제로는 동아시아적 행동 패턴을 보인다.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개인의 구체적 동의를 구하기보다는, 진영 논리로 세를 모아 반대편을 박살내는데 열을 올리거나, 힘 대 힘으로 밀어붙여서 상대방을 밟고 승리를 쟁취하는데 혈안이 돼있다. 이젠 이게 대세다, 이젠 우리가 다수다, 이젠 우리가 주류다, 이렇게 외치면서 기존의 주류를 비주류로 몰아 힘으로 억누르려고 한다. 모두가 같은 의견인양 세의 확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각 개인의 다양성은 무시 되며, 강성이 아닌 회색분자와 같은 온건파들은 공격 일변도의 전선에 도움이 안 되므로 내부의 적으로 취급된다.  사용자 없는 노동자가 없듯, 남성이 없다면 여성이 없다. 그렇지만 현실의 주장들은 한쪽을 끊임없이 공격해 힘을 못 쓰게 만들어버리면 자신들이 살아날 것처럼 자극한다. 과격한 단체일수록 내부의 이견을 틀어막아 그 순수성?을 유지하겠지만, 다수의 힘을 빌어 관계를 담보로 결집을 유도하는 건 자신들의 비판의 대상과 닮아 있다. 결국은 왜곡된 구조를 바꾸겠다는 이상은 구호에 그치고, 실상은 그 자리를 내가 차지하겠다는 권력 투쟁으로 흘러간다.  물론 맨날 얼굴을 봐야하는 나의 소속 단체 안에서 부딪히지 않고, 순종적으로 인정받는 관계만 고민하는 게 현실적으로 개인에게 무조건 이득이다. 언제 볼지 모르는 외부인이나 전체 사회를 걱정해줄 필요가 없고, 하다못해 외부와 치열하게 부딪히고 싸우면 내부에서 나에 대한 지지와 환호는 늘어간다. 나의 행동반경이 당연하게도 내가 속한 계급과 계층에 한정되기에 이런 맹점이 나온다. 마치 전체 사회를, 인류를, 지구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나와 내 이익집단의 이익을 강변하고, 작은 관계가 큰 관계를 집어삼키는 일들을 반복하다 보면 개인과 사회는 새로운 사고와 물결에 힘을 얻기보다는 병들어 갈 것이다. 세계와 미국을 고치겠다던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로 세계와 자국을 외려 병들게 하듯이, 집단 이기주의는 내 집단에도 결국은 이익이 되지 못한다. 우리 정당과 우리 단체, 우리 가족,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의 이익만을 극도로 추구하게 될 때 파국의 결과는 과거의 당파싸움과 현재의 국회 등을 보면 답이 나온다.  그래서 가급적 많은 이의 자아가 깨어 있으면서도 독립적이었으면 한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면서도 타인과 소통이 되는 것, 어려운 일이다.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지만, 복잡성이 극한으로 치닫는 현대 사회에서 서로 간에 총성 없는 전쟁이 아닌 공존이 되기 위해서는 독립된 자아와 유연한 소통이라는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함을 느낀다.  거대한 사회악이라고 낙인찍은 기득권의 축들, 1등 신문, 만년 여당, 막강한 경제력의 기업 집단, 역사를 독점해왔다는 남성들, 구체적으로 얘기해보면 ‘사기’ 탄핵을 당했다는 전 대통령과 감옥 뒷바라지까지 하며 추종하는 이들, 셀 수 없이 많은 가상의 적들과 기득권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임의로 비정상들을 선정하고 차례로 제거한다고 내가 정상이 되고 사회가 정상이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바로 내가 정상이고 네가 비정상이라는 단순한 전제이다. 상대방이 볼 때는 그대로 거꾸로 국면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열고 고쳐주겠다며 마주 보고 확성기를 튼 채 일장 연설을 하니 적절한 선의 이해라는 건 가능하지 않고, 타도의 대상으로 사사건건 부딪히게 된다.  현실적으로는 세상은 복잡하다. 내가 ‘안티 조선’ 모임에 가입해 있더라도, 조선일보에 다니는 친구가 있을 수 있다. ‘안티 조선’ 모임 안에서도, 생각이 다를 때는 이 건은 그렇게 몰아갈 수는 없다고 조선일보를 변호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집단에 소속돼 있더라도 독립된 꿋꿋한 자아, 당파성이 제외된 바로 그 ‘개인’이 갈수록 아쉽다. 이런 유연함이 자아를 지키면서도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담보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노자의 ‘상선약수’, 유가의 나라에서 물처럼 쉽게 버려져 온 그 한 마디가 절실하다. 위로 올라가 지배하려는 사람만 보일 뿐, 아래로 흘러 바탕이 되려는 사람, 그런 단단하고 우직한 개인의 가치가 갈수록 중요하다고 느낀다.
2019-05-14 | hrights | 조회: 288 | 추천: 16
조소연/ 회원 칼럼니스트  서울의 한 로스쿨에 다니는 김진영씨(26)는 최근 학교수업과제를 위해 법무부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변호사시험 자 료를 찾다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일부 기출문제자료가 한글파일(.hwp 파일형식)이 아닌 사진파일(.jpg 파일형식)으로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전맹 시각장애인인 김진영씨는 평소 시각장애인용 보조기기를 이용하여 공부한다. 공부하고자 하는 내용이 담긴 문서파일을 보조소프트웨어를 통해 음성으로 듣는 방식이다. 이 보조소프트웨어는 문서파일(.txt, hwp, doc 등)에서 문자를 인식해서 다시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방법으로 시각장애인의 학업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사진파일은 음성으로 변환되지 않는다.  김진영씨는 변호사시험 자료를 제공하는 법무부에 전화로 문의하여 사정을 설명한 뒤 한글파일을 요청했으나 담당 공무원은 “저희가 (김진영씨가) 시각장애인인지 어떻게 확인하죠?”라며 터무니없는 반응을 보였다. 김진영씨가 복지카드로 증명할 수 있다고 대응하자 이번엔 사진파일만 제공받는 비장애인과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었다. "공식홈페이지에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올리면 되지 않냐."고 물었지만 담당 공무원은 말꼬리를 흐린채 전화를 끊었다. 며칠 뒤 담당 공무원은 김진영씨에게 전화를 걸어 원본파일을 지워서 제공할 수가 없다는 요상한 변명을 했다. 국가시험 원본파일이 없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하자, 갑자기 말을 바꾸어 파일을 지우진 않았지만 찾는데 오래 걸리니 기다리라고 답했다. 결국 언제까지 한글파일을 줄 수 있다는 확답은 없었다.  법무부는 그 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①문제 내용에 개인식별정보가 포함되어 정부 보안 정책상 홈페이지 업로드가 불가능하다, ②수험용으로 가공, 재생산하여 고시학원화할 우려 때문에 한글파일을 업로드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한 향후계획으로 “법무부 방문 시 한글 파일 열람 후 현장에서 보조기기를 통한 녹음 등 원하는 방법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출처 - 법률신문  물론 법무부가 한글파일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아예 변호사시험 자료를 공부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김진영씨는 여태까지 대학교 및 대학원 수업자료의 문서파일 제공을 거절당하는 경우, 장애학생지원센터 또는 시각장애인복지관 등에 문서화 작업을 맡기곤 했는데, 이 작업은 최소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도 걸린다. 봉사자가 자료를 보며 일일이 타이핑해서 전자문서로 옮기는 고생스러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겐 다운로드 클릭 한 번이면 볼 수 있는 자료. 시각장애인에겐 복지센터에 문의, 봉사자들의 노동, 그리고 최대 6개월간의 기다림 후에야 비로소 사용 가능한 자료가 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0조 1항은 “공공기관은 장애인이 전자정보를 이용하고 접근함에 있어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행위를 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의 차별행위에는 형식적으로는 동일하게 대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장애인에게 불리한 경우도 포함된다. 하지만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 등이 있는 경우는 면책될 수 있다.  법무부 측이 주장하는 보안 및 수험용 가공화의 우려가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에 해당할까? 변호사시험 문제에 있는 개인식별정보는 익명화(별표처리)를 거쳐서 업로드하면 그만이고, 안타깝게도 현재 법무부가 제공하고 있는 이미지 파일들에는 이미 수많은 주소, 연락처, 주민번호, 사건번호가 무방비하게 노출되어있다. 수험가공화가 우려된다면 워터마크를 삽입하거나 수정금지용 문서파일을 제공하면 된다. 둘 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작업이다. 아무리 ‘슈퍼갑’이라지만 잠시만 고민해보면 해결책이 참 많은데,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40대 1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자료가 필요하면 현장에 방문하라는 법무부의 공식 해결책을 들은 김진영씨는 “법무부가 무슨 독서실도 아니고..”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법무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3조에 따라 차별행위를 하는 자에게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차별 시정도 좋지만 “너나 잘하라”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우선 새로운 차별행위나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소연: 프로불편러 대학원생.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나누다 보면 불편할 일들이 점점 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
2019-05-08 | hrights | 조회: 264 | 추천: 7
박선영 / 회원칼럼니스트   ‘인스타충’을 ‘蟲(벌레 충)’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던데 그렇다면 나도 인스타충이다. 2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을 시작해서 요즘 한창 충실하게 즐기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사생활을 드러내기가 조심스러웠는데 최근에는 내가 교사임을 알 수 있는 사진도 올리고 있다. 인스타에 충실해지니까 인스타에 자주 들어가고 사진을 자주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검색까지 인스타를 통해 하기 시작했다. 인스타에 '#◯◯◯'을 검색하면 내가 알고 싶은 정보에 관한 방대한 사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요즘 핫한 맛집, 감성 충만한 카페,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댕댕이짤(멍멍이+움짤)까지 모두 인스타를 통해 찾아본다.   특히 인스타는 나의 관심사를 찰떡같이 알고 그와 관련된 사진을 계속 제공해준다. 이미 검색창이 내가 좋아할 사진들로 가득 차있고 새로 고치면 또 다른 사진들로 채워진다. 2000년대에 싸이월드에서 파도를 탔던 것처럼 인스타에서 사진을 타고 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개미지옥이 따로 없다. 어김없이 인스타를 탐험하던 어느 날, 우연히 ‘#쌤스타그램(선생님+인스타그램)’의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나와 같은 교사들이 아이들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사진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거의 예술과 같은 판서와 칠판 그림, 매일매일 공개 수업을 하나 싶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학습 자료 등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새 나는 인스타 검색창에 ‘#쌤스타그램’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쌤스타그램’을 검색한 인스타 화면은 교사들의 ‘셀카’ 사진으로 가득 차있었다. 대부분 여성 교사들의, 예쁜 얼굴과 아름다운 몸매를 강조한 사진들이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같은 인물 사진이라도 보는 사람은 그 의도를 구분할 수 있다. 교실을 배경으로, 화장을 진하게 하고,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여성성’을 드러내는 포즈를 취한 ‘교실 셀카’가 한 ‘여성 교사’의 인스타 피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보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물론 인스타는 사진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사진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을 한 명의 ‘인스타충’으로서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교사라면, 획일화된 미의 기준에 맞춘 외모를 전시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학생들의 성장 과정에서 미디어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교사라면 말이다.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갈무리   최근 몇 년 동안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여성에게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강요하는 대중매체의 해악이 얼마나 심각한지가 사회적으로 다시금 환기되었다. 예를 들어, TV에서 재연되는 십대 여성 청소년의 이미지는 청순하냐, 섹시하냐, 아니면 둘 다냐의 차이만 있을 뿐 단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된다. 당신이 지금 떠올리는 ‘객관적으로 예쁜 얼굴과 하얗고 극단적으로 마른 몸’이 바로 그것이다. 그에 비해 남자 연예인의 외모 스펙트럼은 매우 넓고 다양하다. 여성 청소년들은 이러한 여성의 이미지를 기준으로 자신의 몸을 조각조각 나누어 끊임없이 평가한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 청소년들이 긍정적이고 주체적인 자아상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할까?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미용과 성형은 아주 큰 돈이 되는 산업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여성의 꾸밈을 조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꾸미는 자유’가 얼마나 자유로운지 의문이 든다.   특히 요즘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이전의 전통적인 미디어보다 유튜브와 SNS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시대이다. 초등학생이 화장을 가르쳐주는 뷰티 유튜버를 자처하고, 어린이에게 화장을 시키며 어린이 화장품을 소개하는 컨텐츠가 비판을 받는 와중에 일반 SNS 유저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SNS가 비공개 계정이 아니고서는 비밀 일기장이 아니다. 그리고 나의 계정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열어두는 것은 나의 일상, 취향, 생각 등을 알리고 공유하겠다는 의미이다. 특히 인스타는 ‘#(해시태그)’ 기능을 통해 사진을 범주화하면서 사진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준다. 그래서 자신의 사진이 많이 노출되기 바라는 유저들은 자신의 사진과 관련된 수많은 해시태그를 게시물에 달아놓는다. 예를 들어 #쌤스타그램#출근룩#dailylook#일상#피곤#월요병 이런 식이다. 누군가는 ‘좋아요’를 많이 받고 팔로워를 유입할 목적으로 사진과 관계없어 보이지만 접근성이 높은 해시태그를 몇 줄씩 달아놓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개인의 적극적인 SNS 활동이 미디어 컨텐츠 생산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교사들에게 탈코를 강요하며 얼굴 사진을 SNS에 일체 올리지 말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쌤스타그램’을 달고, 프로필에 교사임을 밝혀놓고 게시물을 올리거나 컨텐츠를 만드는 교사라면 그것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쉽게 학생들의 역할 모델이 된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외모, 체형, 라이프스타일, 취미, 재능 등을 가진 교사의 존재만으로도 교육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가 SNS나 미디어 창작 플랫폼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다양한 삶을 상상하는 데에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스트 교사로서 내가 만나는 학생들에게 ‘가장 나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그리고 너무 이쪽만을 봐왔을 학생들에게 ‘저쪽’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선택했다.   내가 학교에서 매고 있는 출입증에는 3년 전 나의 사진이 붙어있다. 머리가 길고 화장을 한 내가 사진 속에서 예쁘게 웃고 있다. 그때 당시에는 ‘선생님 예쁘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 ‘예쁘다’라는 말에는 그것이 사회적으로 여성이 인정받는 방식이고, 여학생 스스로도 그것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의 모습이 은연중에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출입증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학생들이 깜짝 놀란다. 나는 3년 전과 같은 모습을 유지할 때보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나에 가깝고 훨씬 자유롭다고 느낀다. 짧은 머리에 화장을 안 하고, 통바지와 긴 치마를 주로 입으며 축구나 스쿼시 같은 격렬한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이런 유형의 여성 어른을 만나는 경험은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든 여교사들이 나처럼 하고 다닐 필요가, 굳이 축구를 좋아할 필요가 있겠는가. 화장한 나의 얼굴을 예쁘다고 하는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하기보다는 외모 칭찬도 평가가 될 수 있으니 하지 말자고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화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함께 토론해보는 것은 어떨까. 교사의 외모보다 다양한 취향과 재능을 드러내보는 것은 어떨까. ‘#댕댕이’를 검색한 인스타 화면에 종종 음식 사진과 셀카가 끼어있듯이 ‘#페미니스트’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인생을 살게 된 나도 내 말이나 행동이 혹시 페미니스트답지 않은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신한다. 교사로서 나는 더 이상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사회의 가치를 되물림하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페미니스트’를 달고 있는 나의 모습이 나와 나를 만나는 학생들에게 더 큰 자유를 줄 거라는 것을. 박선영: 초등학교 교사 5년차. 페미니스트가 된 후 이전의 삶이 모두 흑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삶을 다시 쓰는 중.
2019-04-25 | hrights | 조회: 415 | 추천: 19
주윤아/ 회원 칼럼니스트  화창한 봄날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한반도를 덮친 초미세먼지는 2015년 측정을 시작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며 7일 연속 비상저감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등 대한민국의 봄 풍경이 달라졌다. 올해는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정부는 이를 대한민국 100주년으로 선언하면서 독립유공자 전수 조사 및 신규 유공자 발굴 사업도 대대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행 교과서 등에 여성독립운동가나 여성 위인을 찾아보면 아직도 손에 꼽을 정도다. 유관순 열사 등 7명이 수감됐던 여옥사 8호 감방이나 이윤옥씨가 발행한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등을 일례로 볼 때 수많은 여성 위인들이 시대의 억압 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아직도 어둠 속에 묻혀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제라도 청소년들에게 여성 위인이 없었던 게 아니라 우리가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부디 대한민국 100주년의 경축과 동시에 여성 위인 발굴의 원년이 되길 바란다.  스포츠계의 미투는 언제든 터질 일이 터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만큼 성폭력은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작년 12월 빙상계에서 시작되어 유도, 태권도 등 다른 종목까지 연이어 성폭력이 폭로되면서 오래전부터 루머나 의혹으로 떠돌던 대한민국 체육계의, 특히 청소년 선수들에 대한 성인권 유린 실태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체육·시민단체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코치와 감독, 외부 시선에서 차단된 폐쇄적인 합숙소와 훈련장, 사고가 났을 때 묵인, 방조, 심지어 공조하는 침묵의 카르텔까지 이런 사건에 최적화한 체육계 관행과 성문화가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므로 빙산의 일각일 뿐인 가해자 몇 명에 대한 보여주기식 처벌이 아니라 이번 사건들의 진상규명과 성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만들어지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개입이 절실하다.  최근 연예계에서는 상상 속에나 있을법한 영화 같은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다. 클럽 버닝썬 폭행 사건으로 시작해 거대한 나비효과가 일어나면서 연예계와 고위층의 온갖 추악한 범죄가 그 민낯을 드러냈다. 일명 ‘버닝썬 게이트’로 불릴 만큼 뇌물, 탈세, 마약 유통, 성상납, 디지털 성범죄, 권력층과의 유착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범죄들이 고구마 줄기 캐듯 줄줄이 달려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만으로는 진실의 뿌리를 찾기 어렵지만 우리는 그 실체를 어렴풋이 알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엄숙주의로 무장한 채 뒤에선 온갖 성범죄를 일삼고 ‘친목도모’를 명목으로 이를 공유하는 대한민국의 이중적 성문화와 일명 VIP로 불리는 고위층과 공권력의 불법 유착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게다가 선정성만 부각하여 몇 연예인의 성범죄로만 프레임을 변질시키는 언론도 결국 공범이 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적절한 처벌에 주목하기보다는 이 사건의 (불특정 다수) 여성 피해자들 찾기 놀이를 하는 무분별하고 어긋난 호기심이다. 이것은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를 당하는 이른바 ‘2차 가해’의 명백한 범죄 행위다. 피해자를 추측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그 모든 행위는 지금 당장 멈춰야만 한다.  학교 안팎에도 4월의 봄꽃이 형형색색 피었다. 그러나 학교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살갗을 에는 한겨울 북풍 한파 같은 스쿨 미투는 끝나지 않았다. 수원의 00여고에서 이 학교 교사는 담요를 두른 학생에게 ‘여기가 수원역 집창촌이냐’고 희롱했고, 화장을 하고 다니는 여학생에게 ‘창녀 같다’고 말하는 등 수년 간 학생들을 상대로 성희롱성 발언을 일삼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청 신고가 이뤄지는 등 여러 차례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학교는 해당 교사에게 언행을 조심하고 주의하라는 ‘구두 경고’ 정도로 안일하게 대처했음이 드러났다. 학교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 미투가 이어진 지 1년이 됐지만,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폭로가 계속되고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해 스쿨 미투 운동이 벌어진 학교는 전국적으로 70여 곳이라고 한다. 이 중 실제 교육청 감사를 받은 건 6건 정도이며 징계 현황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는 스쿨 미투 집회 현장에 걸린 피켓처럼 학교 역시 안전하고 성평등한 공간이 아니다. 이제 지난 1년 동안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용기 내어 준 스쿨 미투 고발 학생들의 목소리에 어른들이 즉각 응답할 때다. 출처 - 세월호도봉모임  그리고 4·16……5주기가 되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납득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완수하여 보다 안전한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촛불시민들과 현 촛불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대한민국에도, 학교에도 2014년 4월 16일 이전보다 분명 안전하고, 스쿨 미투 이후에는 진정 성평등한 진짜 ‘봄’이 오기를 소망한다. 주윤아: 성평등 민주주의를 꿈꾸는 교육노동자
2019-04-18 | hrights | 조회: 270 | 추천: 6
주만/ 회원 칼럼니스트  100년 전 어느 날. 일본 유학 중이던 조선인 학생이 고국 땅을 밟았다. 칠흑같은 바다를 헤치고 조선에 도착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모자를 벗는 것이었다. 모자 속에는 일제의 심장에서 유학생들이 준비하고 있던 독립선언서 초안이 숨겨져 있었다. 독립을 향한 의지가 또렷이 박힌 선언서. 청년들의 결의에 조선의 어른들은 부끄러워했고, 그것이 결국 우리의 위대한 역사 ‘3.1 운동’으로 피어났다. 공의에 대한 열의로 가득 찬 학생. 그런 청년을 보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주지 못했다며 부끄러움을 느낀 어른. 그들이 하나가 되어 힘차게 태극기를 흔들었던 그 날. 우리는 이토록 아름다웠다.  독립운동부터 그 숭고함을 이은 민주화운동까지, 대한민국의 주요 사회운동은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의 주인공, 송계백 선생님의 당시 나이 24세였다. 미국과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전달하고, 3.1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한 독립운동 단체 신한청년당의 창당 발기인 6명의 나이는 평균 29세였다. 민주화운동에서 목숨을 잃어가며 활동했던 열사들도 모두 창창한 젊은이들이었다.  이러한 역사를 겪으며, 누군가 ‘청년 정신’의 힘을 무서워하게 된 것 같다. 그는 청년이 청년답게 행동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려 했고, 결과는 성공적인 듯 보인다. 100년 전 그들과 오늘날 우리 모습의 차이를 보면 말이다.  20대로서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가 생각해보자면, 내가 자라온 환경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학문적인 가르침에 있어서라면, 어쩌면 그 시절 젊은이들보다 더 양질의 교육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 환경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학생이 공부하는 이유는 ‘성공자’라는 간판 혹은 ‘먹고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함이 되어버렸다. 그러기 위해서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에, 주입되는 지식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고, 옆에 앉아 있는 학우를 있는 힘껏 딛고 올라서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경쟁은 끝이 없다. 성인이 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빠른 시일 내에 빠져 나오지 못하면 잉여인간, 그야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나의 이야기이자, 현 시대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민족정신과 같은 공의가 우습게 되어버린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민족이니 공의니 거창한 말을 썼지만, 핵심은 우리가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마땅하다 여기는 ‘인간성’이다. 무한경쟁의 사회 속에서 시민의식 같은 인간성이 자리 잡을 리 없다.  하지만 현실을 대하는 청년들의 태도 또한 참담하다. “취업하기 힘들다”, “살기 힘들다” 어쩐다 하다가도 ‘먹고 살 수 있는 기회’를 잡으면 입을 싹 씻는 게, 나를 포함한 우리의 현주소 아닌가. 젊은이들은 생각해야 한다. 현실이 이러하다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외쳐야 한다.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화 운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청년이라면 청년답게. 정의를 위해 죽어간 이들의 무덤을 발판삼아 딛고 있는 우리는 당장의 안락함에 기대어, 현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과 거기로부터 오는 고난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회의 어른들에게도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사실 앞서 말한 환경은 어른들이 만들었고,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경쟁을 당연하게 여기는 건 물론, 지금도 계속 부추기고 있다. 내가 어른들을 겪으며 느낀 문제는,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을 은근히 무시한다는 점이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에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은 어리석은 생각으로, 정당한 권리 요구는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된다.  이와 반면, 한때 한가닥 하셨거나 현재도 한가닥 하시는 어른들은 뭘 하던 쉬이 높게 치켜세워진다. 때문에, 높으신 분들이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는 모습은 여느 회사나 단체의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나름의 업적이 있으시지만, 대부분 지나치게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가치관만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단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이런 행동들은 멈추시고, 3.1 운동과 민주화운동 속 젊은이의 열의를 인정해주었던, 그 시대 깨어있는 어른들의 모습을 떠올려 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젊은이가 어른을 이해해줘야 하는 세상이 아닌, 존중할 줄 아는 세상이 온다. 사회에 나와 있는 우리가, 성공을 위해서든 생계를 위해서든 부당한 것에 타협하며 살아간다면, 그 대가는 다음 세대가 치르게 된다. 어른이 희생하지 않으면, 아이가 희생당한다. 만약 지금껏 공의와 정의를 위해 살아오신 분이시라면,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젊은이건 어른이건 상관없이, 당신의 노력과 희생이 세상을 밝게 만들고 있음을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3.1 운동 100주년을 기리며, 광화문 광장에 당시 쓰였던 태극기들이 걸렸다. 건, 곤, 감, 리는 물론 태극 모양까지도 가지각색인 태극기들을 보며 “태극기가 왜 저렇지?”하고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현대인들. 하지만, 그때 그분들이 제각각 그린 태극기들은 하나 되어 세상을 바꿨다.  그렇게 바뀐 세상에 우리가 서 있다. 3.1 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금. 자신만을 위한, 자신에 의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공의를 위한 태극기를 가슴 속에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작고 서툴러도 상관없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태극기는 이렇게 그려야 한다는 규칙이나 지식을 따지는 것보다, 민족을 위한 정신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처럼. 주만: 서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작가 지망생
2019-03-28 | hrights | 조회: 389 | 추천: 22
김현진/ 회원 칼럼니스트  학교에서 한해의 시작은 3월이다. 그래서 새 학년의 개학은 3월 2일이고 교사나 학생들 대부분은 3월 1일 밤에 설레면서 또 긴장도 하면서 잠을 청한다. 학생들은 ‘어떤 친구 혹은 어떤 선생님을 새롭게 만날까?’를 걱정하면서, 교사들은 ‘어떤 학생, 어떤 동료교사를 만날까?’를 기대하면서 3월 1일 밤을 보낸다.  교사들은 새 학년을 맞이하기 위해 겨울 방학을 이용해 여러 가지 연수도 받는다, 행복하게 학급을 이끌어가는 법이나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잘 정리할 수 있는 평가방법에 대한 연수를 받기도 한다. 요즘이야 교사들이 이렇게 3월을 준비하지만 내가 초임교사였을 때 선배 교사들이 가장 많이 알려준 3월을 맞이하는 법은 ‘3월 내내 웃지 않기’와 ‘3월 첫날 수업에 들어갔을 때, 까불거나 개기는 놈은 보기 좋게 정리하기’였다. 정리하기는 좀 순화한 표현일 뿐이다. 3월에 저 두 가지를 못 하면 1년을 고생한다는 것이다. 순진한 나는 선배들 말을 믿고, 그대로 했다. 3월 내내 웃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까부는 놈은 앞으로 불러내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했다. 나는 그런 교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교사들이 이런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교사가 만나는 학생 수는 도서벽지 학교를 제외하면 적지 않다. 나는 장학사로 전직하기 전에 중등 국어교사로 살았는데, 2017년 마지막으로 근무한 학교에서는 한 학급에 35명씩 있는 세 학급의 수업을 했다. 100명이 넘는 학생과 수업을 하고 또 그 학생들의 평가도 해야 하는 것이다. “1년간 100명을 만나는 것이 무엇이 힘드냐?”라고 학교 밖 사람들은 말하겠지만 그 100명과 온전히 인격적으로 만나려면 교사가 감당해야할 감정노동의 강도는 매우 세다. 학생은 100명이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개성과 그리고 각각의 삶들이 모이면 세 개의 교실엔 100개의 우주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들은 아주 편하거나 아주 고단한 방법 사이에서 고민한다. 물론, 고단한 길로 방향을 잡는 교사들이 더 많으니 걱정 마시길.  교사가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학생도 교사를 인격적으로 대해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학교의 물리적 환경은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하기엔 아직도 한계가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지만 여전히 차갑고 딱딱한 교실, 들어가기에 조금 망설여지는 교무실, 그리고 나 스스로의 존엄성을 확인하며 한 끼 밥을 먹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급식소, 위생상의 문제와 관리의 편리함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스테인리스 식판. 이 모든 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오랫동안 익숙한 것이지만, 학교에서의 익숙함은 어쩌면 교사와 학생을 인격적 만남을 방해하는 디테일한 악마였을지 모른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학교 공간이 더 따뜻해지면 좋겠다. 직선을 곡선으로 회색은 봄빛으로, 급식소는 줄을 서서 흘리지 않고 먹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갖고 친구들과 재잘재잘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잘 들릴 만큼의 쾌적한 곳으로 바뀌면 좋겠다.  학교를 떠나 교육지원청 장학사로 생활한 지 17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맞이한 이번 3월, 교육청에서도 학교의 새 학년 시작을 돕기 위한 어마어마한 업무로 폭풍 같은 첫 주를 보내고 나니 학교의 3월은 학교 구성원 모두가 수고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3월이 끝날 무렵엔 서로에게 이 시를 읽어주면 좋겠다. 수고했습니다 / 박 노 해 3월에는 수고했습니다 라고 말하자 풀꽃에게도 새싹에게도 이웃에게도 수고는 고통을 받아 안는 것 고통을 안고 새 힘을 선물받는 것 수고했습니다 겨울 속에서 새롭게 피어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힘겨움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느라   김현진 : 18년 간 국어교사로 살다가 더 많은 사람들과 행복해지고 싶어서 직업을 바꾼 철들기 싫은 어른
2019-03-20 | hrights | 조회: 266 | 추천: 4
임영훈/ 회원 칼럼니스트   3·1운동 100주년이 대대적인 기념행사와 함께 지나갔다. 백세까지 바라보시는, 가족 중 가장 장수하시는 외할머니께서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유일하게 일제시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이다. 구순이 넘으셨고, 1929년생이시니 광복이 되던 1945년에는 만 16살이셨다.   최근 2-3년 사이로 동생들이 결혼하면서 집안에 처음으로 며느리라는 여자 사람이 생겼다. 명절 등 모일 일이 있을 때마다 만나지만, 며느리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눌 만큼 가까워지긴 힘드니 할머니의 대화 상대가 전보다 늘어나지는 않았다.   작년인가 할머니께서 마루에 가족들이 있을 때 혼잣말하시듯 입을 여신 적이 있었다. “옛날에는 여자들이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힘들게 종일 집안일, 애 키우며 살다 보면 40 정도에는완전히 폭삭 늙어서 말 그대로 할머니가 됐어...” 여럿이 있으니 애매했지만 아무래도 눈 앞에 있는 손주 며느리한테 하신 말씀인 것 같았다. 그런데 제수씨는 못 들었는지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원래 하던 일을 하며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그런 말들이 요새 사람들에게는 무척 듣기 싫은 말이었을 것이다. 나도 오래전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살아계실 때에는 아주 가끔 듣던 옛날 얘기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전래 동화 속의 타령들로 여겨졌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돌 때 돌아가셨으니, 품 안의 그 애기에게 뭐라고 하셨을지는 짐작만 할 뿐이다.   하여튼 그러고 보면 이해도 된다. 아버지, 어머니가 '옛날에는 말이지,' 이렇게 얘기만 꺼내도 '벌써 잔소리 듣겠구나'하는 생각에 귀가 무거워지는데 무려 두 세대 이전인 할머니, 그것도 평생 모르고 살던 시댁 할머니께서 옛날 얘기를 하시면 누가 듣고 싶겠나 싶다.   다만 어릴 때부터 출근하시는 어머니 대신 나와 동생들, 더하여 사촌들까지 도맡다시피 있는 정 없는 정 다 쏟아 부어 키우시고 심지어 몸이 많이 불편해지신 아직까지도 내리 사랑을 매일같이 보여주시는 할머니시기에 가끔씩 다른 사람들이 할머니의 사소한 말이라도 무심코 지나치는 느낌이면 마음이 아프다. 평생 고생만 하신 할머니께는 응당 공경과 보답이 당연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주말에 찾아 뵈면 나는 식탁 근처에 도와드리러 가도 쉬라고 하시면서 뭐라도 더 먹고 입게 하실 생각에 마음과 몸이 바쁘시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할머니는 고등학교까지 졸업하셨다. 그 옛날에 학교를 졸업한 사람 자체가 귀했을 것이고, 졸업 후에 시골 우체국에서 일하셨다고 한다. 그 때 우체국에서 당시 육군 장교셨던 할아버지의 눈에 띄어 혼사까지 이르게 되셨다고 한다. “너희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보시고는 마음에 드셨는지 저 처자가 뉘 집 딸인지 알아봤단다!” 이 얘기를 하실 때의 할머니 얼굴은, 만면에 퍼지는 흐뭇한 미소가 내 마음도 무척 밝게 하는 그런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예전에 여성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에 대해서도 가끔 얘기하신다. “예전에는 여자들이 며느리로 살기가 너무나 고달팠다. 같은 동네에서 어느 집 새댁이 두부를 부치다가 갑자기 젊은 나이에 죽었다. 두부가 귀해서 힘들게 부쳐 봤자 자기는 먹을 수가 없으니, 내가기 전에 얼른 하나 삼키려다가 그 뜨거운 것이 그만 목구멍을 막았다지 뭐냐…” 이 얘기는 아마 열 살 때쯤 처음 들었다. 이 말을 들을 때 내가 느꼈던 비애와 비통은 어린 아이의 감수성과 맞물려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많이 무뎌졌는데도 이 얘기를 다시 떠올리면 당시 여성들의 삶이 사무치게 안쓰러워 공감이 되다 못해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남성, 여성과는 상관없이 배고팠던 시절의 어려움도 가끔 말씀하셨다. 할머니와 드라마를 같이 볼 때였는데, 전쟁 통에 군인들이 민가로 들어가 밥을 달라고 하는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없이 부엌에 몰래 들어가 솥에서 밥을 퍼 먹으려다 배가 너무나 고픈 나머지 급하게 손으로 허겁지겁 집는 통에 시커먼 옛날 부엌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드라마 속 군인들은 그걸 도로 손으로 밥풀까지 주워서 허겁지겁 먹었다. “예전에는 저렇게 배가 고팠다. 다들 살기가 너무나 어려웠어.” 하면서 안쓰럽게 혀를 끌끌 차시던 할머니, 그 표정까지 생생하다.   할머니의 삶 자체가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제시대를 관통하며 지내신 어린 시절, 해방과 함께 끝났을 학창시절, 짧게 우체국에서 일하셨던 시절과 이른 나이에 결혼해 네 명의 아이와 열 명 가까운 손주를 수십년 동안 키워 내신 할머니의 삶. 아직까지 혼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 사진작가 최민식   어머니, 그리고 외삼촌들과 이모는 할머니의 희생으로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번듯한 직장을 얻으셨다. 고도 성장기와 더불어 다들 20대에 결혼하셔서 아들 딸 낳고, 시집, 장가까지 보낸 뒤 노년을 바라보고 계신다. 어머니만 생각해보면, 중고교 시절부터 서울에서 유학하고 대학까지 나오셨다. 가끔 내가 현대식 교육의 근거 없는 우월감, 박정희 시대의 옛날식 교육을 받으셨다는 편견으로 어머니를 무시하려 해도 쉽게 제압당하지 않으신다. 반면 할머니는 가끔 종이에 뭔가 써서 보여주실 때, 한글 문법이나 맞춤법에 자신 없어 하시는 듯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역사의 깊은 질곡만큼, 한 세대차이지만 그분들의 세대는 나에게는 그만큼 대비된다.   당시 여성으로서는 많은 교육을 받으신 편이지만, 지금 기준으로 할머니는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셨다. 구순에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매일 이런저런 일을 하실 만큼 성실하신 할머니가 공부를 원없이 하셨다면 얼마나 잘 하셨을까. 그런 할머니의 희생을 바탕으로 대학까지 나와 남부럽지 않게 사는 다른 가족들과 나를 생각해보면 이게 과연 당연한 나의 권리일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뭔가 허전한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때로는 조금 다른 생각도 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시고, 책을 많이 보셔서 생각이 많으신 어머니, 또 비슷한 걸 공부하고 (문과대학 다녔으니) 역시나 (책은 안 봤지만) 신문 잡지를 하도 봐서 잡생각에 하루가 다 가는 나, 이런 사람들, 소위 먹물이라는 사람들이 과연 할머니보다 행복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평생 희생하신 것만 같지만, 가족들로부터 항상 감사와 공경, 사랑을 받으셨고, 아직은 건강하셨던 환갑 즈음에는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부채춤도 배워서 공연도 하셨었다. 평생 헌신 하셨기에,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일구실 수 있었고 가끔은 작은 여유나 문화 생활도 덤으로 여성적인 취미로 가지실 수 있었다. 다만 현대 여성들처럼 스키도 타고, 스쿠바 다이빙을 하는 등의 전폭적 자유는 동시대 남성들에게도 쉽지 않았듯 할머니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10년 넘은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DJ의 첫 정권 교체 이후 노무현 후보가 혜성 같이 나타났던 시절, 할머니는 대법관 출신 이회창 후보한테 호감을 보이셨다. 서울 살이 한 지 오래 되셨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은 오롯이 호남에서 보내신 할머니의 선택은 나로서는 의외였다. 화려한 대법관과 총리 경력을 자랑하는 이 후보가 안정감 있게 국정을 수행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던 할머니, 나는 그 말이 또렷이 기억난다. 오히려 당시 젊은 층에 지역 감정이 더한 것만 같아 속했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당시의 소회를 짧게 적은 것도 같다. 하긴 할머니는 일제 시대는 적어도 안정적이었고, 일본 사람들은 적어도 원칙이 있었다는, 그런 말도 하셨었다. 구한말 이후의 삶을 사셨으니, 할머니가 일제 시대와 비교하시는 것은 해방 후의 혼란상일 것이다. 극심한 혼란과 난리 (6/25), 이런 시기가 일제 시대보다 일반 민중들에게 살기 좋았을 리가 없다. 그 때 그 시절을 살아 보신 분의 말씀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분단으로 내몬 외세의 폭압과 망동 탓이겠지만 한국전쟁 후의 참상이야 여기서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일제 시대에도 그늘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는 것을 ‘가정 교육’으로 알게 된 계기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각종 설이나 주장들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었기에 그 한 마디는 있는 그대로 와 닿았었다.   할머니는 자본주의, 공산주의에도 관심이 없으시고 당연히 페미니즘이나 마초이즘에도 신경 쓸 여력이 없으시다. 아마 시간이 주어져도 관심을 갖고 싶어하지도, 고민할 이유도 찾지 못하실 것이다. 이 점이 과연 할머니의 결핍이나 부재일까? 아직도 누군가의 삶을 이래야만 한다고 규정하고, 나는 이렇게 깨이고 배운 사람이니 못 배운 사람들을 계몽하려는 교조주의로 가득 찬 사람들이 오히려 강압적이고 탄압적인 사람들은 아닐까? 이제, 너무나 많은 생각들과 주장들에 지친 나는 이런 생각에 머문다. 임영훈: 미국에 실을 팔고 있습니다. 가끔 천도 팔지만 어떻게 해야 팔리는지는 모릅니다.
2019-03-15 | hrights | 조회: 274 | 추천: 15
최우식/회원 칼럼니스트  2011년, 병역 거부에 대해서 잠시나마 심각하게 고민했다. 나는 무교다. 따라서 종교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였으므로 질문은 단순했다. 나 살자고 다른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과연 정당한 것인가.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정말 전쟁이 발발한다면 나는 전투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발목만 잡는 것은 아닐까.  당시 나는 전쟁을 몇몇 위정자들의 욕심이 낳은 강요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역사책에서 배운 전쟁이란 으레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대다수 시민의 의지와는 동떨어진 그런 것 말이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의사결정과정을 거처, 알지도 못하는 공간으로 끌려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총을 겨눠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비폭력 불복종으로 저항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도 나는 군대에 갔다. 솔직한 말로 전쟁이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군대에 가서 얻게 될 이익과 가지 않으므로 받게 될 불이익을 견주어 봤다. 내 목숨이 희생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했지만 내가 병역거부로 받을 불이익은 벌써 눈에 보였다. 졸업하면 취업도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내 고민은 그 성격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손쉽게 해결되었다.  2년을 무사히 마치고 예비군 훈련에서 반복적으로 교육을 받은 탓일까. 우리나라를 수호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본분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나를 바꿔놓은 것이다. 물론 달라진 내 모습을 인정해달라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2011년 어쩌면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었던 그 순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다.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반전 평화주의자 존 레논 (출처: 존 레논 페이스북)  나는 지금까지 자신을 반전주의자, 평화주의자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여기에는 군 복무를 정상적으로 마치지 않으면 ‘이상한 애’로 낙인찍는 사회의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이다. ‘의무를 방기하는 자신만 아는 애’라는 사회적 시선이 그 분위기 저변에 깔려있다. 국내 기업 입사지원서 대부분에는 복무기록 입력란이 있다. 군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가 업무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혹시나 있을 병역거부자를 걸러내기 위한 장치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자신을 반전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구 오천만의, 세계 경제순위 10위권의 국가에서 반전주의자 한 명을 보기 힘들다는 것은 어딘지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마르크스가 노동자 해방을 외쳤던 것처럼 작금의 현실에서도 반전주의나 평화주의를 꿈꾸는 사람은 어딘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2001년 오태양 씨의 양심적 병역 거부 선언은 그것의 똑똑한 증언이다.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획일적인 평화관은 과연 ‘평화’라는 가치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을까. 오히려 평화라는 가치의 다양한 해석을 막고 다양한 논의의 싹을 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획일성은 휴전 상황에서 단일 대오로 국민들을 뭉치게 하는 힘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근현대사를 겪은 우리나라의 아픔은 평화라는 가치에 꽃을 피울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휘발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기존의 명칭을 ‘종교적 병역거부자’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병역거부자들의 신념을 검증하기 위해 총을 쏘는 FPS 게임의 접속 여부를 확인한다고 하니 그들의 상상력에 기가 찬다. 이제는 선천적 평화주의자와 후천적 평화주의자를 갈라서 전자만을 인정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요즘 들어 ‘한 전장에서의 승리는 다른 전장에서의 패배로 수포가 된다.’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헌법재판소의 역사적인 판결 이후 우리는 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후퇴하는 것일까. 일부는 병역을 피하는 영악함을 걱정하지만 정말로 영악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회적 편견을 감당하려고 할까? 어불성설이다.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끝에 일보를 전진했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공간을 이만큼 열어줬으니 어디 한번 이용해봐 라며 몽둥이를 들고 있는 사회가 아니라, 이만큼 문이 열렸으니 그대가 해당한다면 지켜주겠다고 방패를 들어주는 사회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방패를 들자. 최우식 :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피디 지망생
2019-02-26 | hrights | 조회: 286 | 추천: 4
조소연/ 회원 칼럼니스트  곧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설 연휴가 시작된다. 5일이라는 긴 연휴에 먼 친척까지 다 같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가족도 있을 것이고, 함께 쉬러 여행을 떠나는 가족도 있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가족이라면 소위 말하는 ‘명절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여행을 떠나도 사라지지 않는 스트레스가 있다. 바로 ‘호칭 스트레스’이다.  우리나라의 친족 간 호칭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헷갈리기 때문에, 본인이 결혼하거나 형제자매가 결혼하게 되면 한 번쯤은 네이버에 ‘가족 호칭’을 검색해보게 된다. 그러나 호칭 스트레스는 단순히 호칭이 어렵다는 것에 오는 스트레스는 아니다. 결혼한 여성에게는 호칭의 성차별적인 요소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국립국어원의 2011년 <표준언어예절>에 따르면, 여성이 결혼한 경우 배우자의 동생에게 ‘아가씨’ 또는 ‘도련님’이라는 높임말을 써야하는 반면, 남성이 결혼하면 배우자의 동생에게 ‘처제’ 또는 ‘처남’이라는 호칭을 쓰게 되어있다. 또, 결혼한 여성이 배우자의 친족을 부르는 호칭은 나이 불문 배우자 집안의 서열을 따르게 되어있지만, 결혼한 남성의 경우 나이에 따라 배우자의 친족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다는 점도 많이 지적된다. 계속되는 민원에 여성가족부는 결국 작년 8월 말 성차별적 가족 호칭의 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혔고, 마침 설을 앞둔 1월 22일, 또 한 번 가족 호칭 문제에 대안을 마련해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를 듣고 호칭 하나 바꾼다고 이미 현존하는 성차별적 인식과 문화를 바꿀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만일 언어가 단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반영된 결과물일 뿐이라면 가족 호칭 개선 논의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는 단순히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유지, 강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려고 언어를 사용한 사례는 많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존·비어체계는 조선시대 유교 지식인 지배층이 자신들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강력하게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택한 여러 장치 중 하나였다. 덕분에(?) 조선시대 이후로도 한국의 존·비어체계는 강력한 규범력을 갖고 한국의 수직적 사회구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몇 년 전부터 IT업계나 스타트업에서는 호칭을 통해 문화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많이 보인다. 카카오에서는 모든 사원이 별명을 만들어 직급 대신 그 별명으로 부르고, 페이스북 코리아에서도 직급 대신 ‘OO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이윤을 추구한다는 기업이 굳이 추가적인 자원을 들여서까지 사원에게 호칭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 중  결혼 뒤 느끼는 차별 문제를 다룬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가 최근 여성들의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웹툰의 제목 ‘며느라기’는 며느리를 부르는 ‘며늘아기’를 빗댄 말로 ‘시댁 식구한테 예쁨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라는 의미이다. 결혼한 여성이 ‘며느라기’에 빠져 자신을 ‘참고 희생하는 며늘아기’로 만들어 버리는 이 상황이 어쩌면 배우자의 가족을 ‘아가씨’, ‘도련님’으로 귀하게 모셔야 한다는 무의식으로부터 시작된 건 아닐까?  문화, 전통,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차별적 언어와 행위가 정당화되고 있다. “예(禮)”란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이라고 한다. 이 존경심이 결혼한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강요되고 있진 않은지, 결혼한 여성은 충분한 존경을 받고 있는지,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 조소연: 프로불편러 대학원생.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나누다 보면 불편할 일들이 점점 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
2019-02-08 | hrights | 조회: 282 | 추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