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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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창용, 김치열, 이현종, 이희수, 정진이, 홍세화, 황은성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이희수/ 회원 칼럼니스트  몇 달 전 한 정치인이 불교 행사에 참석하면서 합장과 반배 등의 불교 예법을 따르지 않아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자면, 나는 손을 모으고 절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가치를 대변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또 그의 사회적 위치와 행사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배타적이고 무례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다소 불편했다. 그러나 혹자는 자신의 종교적 지향을 밝히기를 몹시 원하며 이와 같은 행위가 자기 신념을 드러내는 절대적인 행동이 된다고 여길 수 있기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할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얼마 후,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하는 기사를 접했다. 같은 정치인이,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보장하는 것이 형평에 어긋나므로 당 차원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조정하는 입법에 나서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모국에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납득하기 힘든 차별을 당할 위기에 처한 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여러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으로 주장하고자 했던 ‘기독교인’ 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아해졌다.  나는 성경도 잘 모르고, 나의 신학적 지식으로는 전도사라는 그분을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상식 수준에서 성경을 떠올려보면 함께 생각나는 단어가 우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 단어가 들어간 성경 구절을 찾아보니 여기에 다 적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 고아와 과부를 공정하게 재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신명기 10:18),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신명기14:29),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지 말고…(스가랴 7:10),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나그네를 지켜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도와…(시편 146:8,9) …’  나그네―외국인에 정확하게 대응한다―와 고아와 과부. 스스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의 대명사다. 성경이 누구에게 마음을 쏟으며, 누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또 생각나는 구절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마태복음 22:39)’ 예수의 가르침은 남과 나를 구별하지 않아 이웃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는 경지의 Com-Passion을 요구하고 있다. 더 직접적으로, 1세기 로마와 유대인 사회에서의 분리와 차별이 예수 안에서 극복되었음을 선포한 구절도 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28)’ 출처 - Daniel W. Erlander  불교 예식 참여를 거부한 그의 행동을 두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어서’라는 설명이 따라붙은 글을 여럿 보았다. 불교 예법을 거부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동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공인임에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특정 집단을 향한 존중과 예의의 표현을 거부할 정도로 ‘기독교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면, 응당 그 정체성의 실체도 보였어야 수긍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신자, 그리스도인 등으로 표현되는, 기독교 신앙을 지닌 사람들의 정체성을 지칭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성경에 260번 이상 언급된 ‘제자’라고 한다. 제자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그를 따르는 사람이 아닌가. 신의 가르침인 성경에서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의 처지를 애달파하며 그들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차별하지 말라는데, 그 가르침을 따르지는 않고 다른 종교를 배척하기만 해도 자신의 종교적인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2019-07-29 | hrights | 조회: 323 | 추천: 11
김치열/ 회원 칼럼니스트  사회는 공동체 합의를 통하여 바람직한 질서 안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에 의하여 공동체는 심각한 위협을 받기도 한다. 이러한 범법자에게 사회는 법적인 여러 과정을 거친 후 이들을 격리된 공간으로 보낸다. 이들을 격리된 공간으로 보내는 기간 동안 사회 공동체는 평화를 누린다고 착각한다. 오늘은 그 착각으로 생기는 일에 대하여 나누고자 한다.  어느 사회이든 범죄가 있다. 범죄에 대한 사회방어의 수단은 형벌이었다. 고대에는 사형 등 신체형을 부과하였다. 형벌은 행위에 대한 하나의 응보의 수단이었다. 중국에서는 이들의 얼굴에 수(囚)라는 글자를 새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사형을 포함한 신체형은 많은 나라에서 사라졌지만 범죄에 대한 응보감정과 그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 것은 여전하다. 근대시대에 이르러 종교에 대한 처벌이 일반형사법 체계에서 분리되고 국가에 대한 모반범죄는 제한적 상황에만 적용되고 있다. 범죄를 처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범죄인의 처벌만 중심이 되고 있고, 범죄인의 사회복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유감이다.  형벌제도에서 대세를 이루는 것은 징역형이다. 징역형은 구금기간 동안 교도소 안에서 근로를 하는 벌이다. 형기를 마치면 사회로 나올 수 있다. 범죄인이 싫다고 하여 영원히 격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일정기간 이후 사회로 돌아오는 현실을 감안하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구금기간 동안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교도소 작업과 직업훈련을 통하여 사회생활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범죄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심리치료에 집중하고 있으며, 집중인성교육을 통하여 사회에 적응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출처- 필자  하지만 언론보도나 사회관계망을 살펴보면 범죄인에 대하여 혐오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부는 미국 등지에서 시행하는 종신형을 구형하기를 바란다. 과거에 장기형을 받는 경우는 살인죄나 강도죄 등 사람에 대한 참혹한 범죄가 발생한 경우였다. 현재는 조두순 사건으로 인하여 성폭력 범죄도 장기형을 받고 있으며, 현재 윤창호 법이 발의됨으로 인하여 교통범죄의 형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교도소 수용자들이 입고, 먹는 것은 모두 국세로 지출된다. 장기수들이 많아질수록, 이러한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나 교도소 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범죄예방교육이다. 교도소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육 중 ‘생각 바꾸기 교육’이라는 게 있다. 생각을 바꿈으로서 범죄에 대한 욕망을 방지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육이다. 국가나 사회는 범죄에 대해 어떠한 적을 대처하는 것보다 단호해야 한다. 그러나 죄를 반성하고, 사회에 나아가 기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이 인권적이지 않을까. 김치열 회원은 현재 교도관으로 재직중입니다.
2019-07-24 | hrights | 조회: 128 | 추천: 6
김창용/ 회원칼럼니스트  A(26)는 충북 제천 출신이다. 지금은 동작구 흑석동의 반지하 자취방에서 취업을 준비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제천에서 취업준비를 하고자 했으나, 3개월도 못가 다시 서울로 왔다. 공부하러 가방을 메고 나서면 보이는 건 산 뿐인 소도시이기에 스터디는 물론 취업과 관련된 정보도 구할 수 없고, 애초에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권에서 태어나지 않은 게 죄다. 출발선이 다르다.”고 말했다.  A와는 친한 동향친구다. 더불어 같은 전공을 했기에 여전히 친하게 지낸다. 한번은 그가 “3일 정도 네 방에서 묵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딱히 상관은 없어 이유를 물었고 그는 ‘교육을 받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고향에 있었던 3개월 동안 A는 취업 준비를 위해 10회 이상, 즉 1달에 3회 이상 서울에 다녀갔다. A는 “제천에 교육이 있냐, 뭐가 있냐. 왕복하는 돈이면 (서울에서) 월세도 살 수 있는데... 서울살이 힘들어서 내려갔더니 엄마도 그럴 거면 서울로 올라가라고 닦달하더라.”라며 자조했다.  그렇다고 서울에 올라오면 편해지는 것도 아니다. B(27)는 경남 거창에서 올라와 현재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에서 노무사시험 준비를 한다. 고시촌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5평 남짓한 원룸에서 지내며 월 40만원을 낸다. 식비와 학원비, 교재비 등을 포함하면 월에 나가는 돈이 120만 원 정도다. B의 부모님은 자식의 서울 생활을 위해 최근 소유하고 있던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겼다. 그는 “체류비가 만만치 않아 부모님에게 너무 죄송하지만 시험 준비를 위해 서울에 있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대외활동과 인턴을 하기 위해 고시촌에서 1년 정도 지냈는데, B와는 그때 많이 친해졌다. 그는 어린 동생이 있다. 어림잡아 띠동갑이 넘는 나이차였는데, 그래도 집이 지방이라 다행이라고 했다. ‘중·고등학교 때 학원비 등 교육비가 서울에 비해 적어 부모님이 느끼는 부담이 (서울에 비해)적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헌데 그는 최근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이란다. 힘들어하는 부모님이 계속 눈에 걸렸고 동생도 곧 고등학교에 들어가 본인이 식비를 대폭 줄여가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런 가족을 외면하고 더 이상 서울에서 혼자 버티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지방 출신 청년의 입장에서 서울은 분명히 기회를 넓히기 좋다. 책이나 신문, 뉴스에서나 보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고, 정보는 흘러넘치며 강의를 듣거나 스터디를 하거나 모임 등을 할 때 공간의 제약도 사라진다. 하나마나한 말이겠지만, 지방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들을 위해 지방 청년들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한다.  당장 고향에서 지내는 고등학교 동창들만 봐도, 서울에 한 번 왔다가는 데 드는 비용이 교육비를 포함하면 어림잡아도 최소 15만원은 넘게 든다고 한다. 게다가 면접 등을 포함하면 그 빈도는 잦아질 수밖에 없다. 15만원이면 2주에서 3주치 식비와도 비슷하고, (지방)월세의 반값도 넘는 돈이다. 누구는 쓰지 않아도 될, 혹은 교통비 2,500원만으로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지방 청년들은 그 60배인 15만원이라는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 시간도 배 이상 투자해야 하는 건 덤이다.  지방에서 지내지 않고 서울로 올라와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방 출신이라는 것 자체만으로 힘들다. 다른 동향 친구인 C(25)는 물리치료과를 졸업해 2차병원에서 일하며 2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는다. 그 중 월세(50만원), 보증금 이자(10만원), 집에 보내는 돈(50만원), 저년차 치료사들에게 강제되는 세미나 비용(월 평균 10만원)을 제하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은 90만원이다.  C는 “동기들은 입사 후 모은 돈으로 여름휴가 때 멀리는 못가도 동남아나 일본, 중국 등지를 다녀온다고 하던데, 진짜 속 쓰리지 않냐?”며 “90만원 중 식비, 통신비, 생필품비 등 고정지출을 제외하면 갖고 싶은 것 하나도 사지 않고 아끼고 아껴 월 30만원 저금할 수 있는데 동료들은 갖고 싶은 것 다 사고 저축할 거 다 저축하면서도 ‘돈이 모자라 동남아밖에 못 간다.’고 말하는데 당장 집 한 번 갔다 오기도 힘든 생각 하면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출처 - 대학내일 유튜브 영상 갈무리  ‘서울 공화국’에서 지방 출신 청년들은 이주난민이 되어 배척당하고 쫓겨난다. 대학생 때는 각종 대외활동 등 다양한 활동들이 지원자격 중 거주지를 수도권으로 한정해 하고 싶은 활동을 할 수 없다. 방값이 없어 학교나 직장과 먼 원룸, 반지하, 고시원으로 밀려난다. 취직 후에도 동기들이 먹고 싶은 것 먹고, 갖고 싶은 것 살 때 외식 한 번도 신중히 생각하며 아껴도 늘 더 가난하다.  쫓겨나도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어렵다. 고향에는 기회가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버텨야 한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꿈을 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꿈을 이루기가 힘들다. 같은 노력을 해도 늘 뒤쳐진다. 인구 밀집으로 인한 문제는 전부 청년 개개인이 지고 지방 청년들은 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진다.  A는 만나기만 하면 “야, 우리 제천 가서 학원이나 하자. (제천에는) 학원도 없으니까 너랑 나랑 서울에서 대학 나온 애들 몇 모아서 제천 가면 학원 재벌 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여기서처럼 밥 안 굶고, 월세도 안 살고, 갖고 싶은 것 사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 수 있다.”고 농담 삼아 얘기한다. 반은 진심인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일단 ‘그러자’고 대답은 하는데, 서울에서 자유롭게 꿈을 꿀 수는 없을까. 김창용: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열심히 공부하고자 합니다.
2019-07-12 | hrights | 조회: 322 | 추천: 14
황은성/ 회원 칼럼니스트  6월 13일 오후 전 노들야학 교사이자 지금은 작가가 된 홍은전씨의 강의를 들었다. 슬픔과 고통에 관한 강의였고, 강의 중간쯤엔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고통과 괴로움을 견뎌야하는 슬픔에 시달려 약해진 이들마저 나쁜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운다는 것이 금지된 사회에서 기꺼이 슬픔을 수용하고 더 나아가 그 부조리에 ‘저항’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이 내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이유는 간단했다. 필자인 ‘나’는 아직까지, 여전히 슬픔 속에 살고 있어서 그랬다.  필자의 슬픔을 고백하자면, 10살까지 함께했던 필자의 아버지는 심각한 알코올중독자였다. 알코올에 절여져 전두엽이 쪼그라든 아버지는 실로 무참한 폭력과 악의로 나의 인생을 짓밟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며 지옥 같은 여주를 탈출한 이후에도 필자는 내성적이고 왜소하며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과 세상에 상처받았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상처 준 모든 이들은 단 한 번의 사과 없이 무심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기에, 나에게는 씻을 수 없고 치유될 수 없는 깊은 영혼의 상처가 남았지만 그들은 무심히 웃으라기에…….  악의가 낳은 슬픔 속에서 살아가던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조리한 슬픔에 저항하는 방법 같은 건. 간혹 내게 행해진 과거의 폭력이 너무 아파서 깊은 밤 불면에 시달릴 때면 누구의 손을 부여잡고 과거를 털어놓거나 지난날의 상처를 드러냈지만 어차피 돌아오는 말들은 항상 똑같았다.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어”, “다 그러고들 살아”, “그거 보상심리야”, “잊어, 잊는 게 최고의 복수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언제까지 과거만 돌아보면서 살래” 모두가 그랬으니까. 모두가 그렇게 사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처럼 말했으니까. 나는 홀로 고개를 내저을 용기가 없어 끄덕였다.  그것은 그저 ‘적응’과 ‘순응’이었다. 세상이 그러라고 했기에 그들 모두 그랬고 나 역시 그들과 똑같았다. 원망하고 미워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으며 바꾸려고 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은 계속 굳건하리라 믿었다. 실제로 정해진 관습이나 통념에는 적응이 더 편하니까. 누굴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 보다 내 마음 하나만 추스르고 ‘개인의 불운’이라고 말하며 방 안에서 훌쩍 울면 더 상처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모두 ‘적응’이라는 과제를 두고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있으니까. ‘적응’이라는 과제를 내놓는 세상은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미워하고 폄하 하니. 아스팔트보다 차가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도록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남들만큼 살기위해 성격을 바꾸고 외모를 가꾸며 노력하며 살았지만 상처는 결코 치유는 될 수 없었다. 구멍이 난 마음 안에서 쉴 틈 없이 무엇인가 흘러나가는 영원한 결여에 시달리며 살았고, 추슬렀다. 아픈 가슴을 끌어안고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내게 물었고, 위로에서 위안을 찾으려고 했던 나는 어느 날 기울어지는 배를 보았다.  지옥보다 더한 그 현장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 304명이 덧없이 떠나버린 그 사건 이후로 남은 사람들을. 물가로 올라온 아이를 지퍼 백에 담아놓는 것을 보아도 혹여나 더 심하게 굴진 않을까 겁을 집어먹고 말하는 것 하나 조심하며 살아가는데도 슬프다고 말 할 권리조차, 기억할 수 있는 권리조차 앗아가 버리는 세상에. 애도를 청승이라고 말 하는 세상에. 그만하면 됐다는 세상에. 죽은 아이들을 찜쪄먹고 회쳐먹고 고아먹는다는 세상에. 추모시설을 두고 땅값 떨어뜨리는 혐오시설 납골당이라고 부르는 세상에. 저항을 유별과 유난으로 표기하며 “지겨워죽겠어 그냥.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 많은 보상금 받아놓고 부족하나보지?” 라고 말하는 세상에 상처받음에도 굳건히 두 발로 서고 묵묵히 내딛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들은 어째서 저항할까. 누구 앞에서 슬프다고 말도 못 한 채. “그 이야기는 부끄러우니까 인터뷰에서 빼주세요. 너무 슬픈 이야기니까 빼주세요. 그런 얘기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으니까 빼주세요.” 라고 말하는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광화문에 서고 잊지 말아달라고 촛불을 높이 들며 호소하는 이유를.  나는 내 손을 부여잡으며 울어도 좋다고 말해주는 상담사의 말에도 울 수 없었으니까.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세상에 저항하는 방법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홍은전 작가의 말을 듣던 그 순간. 나는 이내 깨달았다. 나와 그들에게 삶의 흉터를 남긴 그 거대한 발톱은 ‘어쩔 수 없는 사건’ 이나 ‘개인의 불운’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것은 그저 슬픔마저 통제하는 사회의 민낯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6월 13일의 며칠이 더 지나갔고 지금 칼럼을 쓰는 나는 여전히 슬픔 속에서 살지만 알고 있다. 진실을 심연 속에 묻어놓고 외면하며 사막같이 메마르고 있는 세상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남은 누군가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참사를 ‘인간 개인의 슬픔’으로 치부하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 속에서 울지도 못 한 채로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을. 나는 경찰에게 전화를 걸고 아버지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하지 못했던 어머니를 원망하였지만, 어머니가 나쁜 것이 아니라 다만 필자의 어머니가 “가족일은 가족끼리 해결하라”는 세상에 “오빠가 술만 먹으면 저러네, 평소에는 착하잖아. 동서가 좀 참아.”라고 말하는 세상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하였다는 사실을. 사진 출처 - 필자  하여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슬픔을 똑바로 마주하고 적응대신 저항을 선택해야 한다고. 마음을 털어놓고 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세상에서, 누군가 나의 어깨에 기대어 마음 편히 울 수 있도록. 언제인가 아버지가 있을 여주로 돌아간 내가 진심으로 웃을 수 있도록. 그런 참극이나 슬픔이 일어나기 전에, 당신도 같이 저항이라는 이름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고. 나는 말 하고자한다. 황은성 : 동시대인이 되고 싶은 불효자입니다. 배워가며 살아가되 흔들리지 않는 것이 소망입니다.
2019-07-01 | hrights | 조회: 263 | 추천: 6
홍세화/ 회원 칼럼니스트  내가 다니는 상명대학교의 언덕은 높다. 높은 것도 보통 높은 것이 아니다. 학교 수업을 듣기 위해 언덕을 오를 때면 내가 지금 등굣길에 오른 것인지, 등산길에 오른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서울에서 사는 곳은 연립주택의 반지하이다. 반지하 중에서도 매우 허름한 반지하이다. 해가 중천에 떠도 낮과 밤이 분간이 되지 않는, 밤이면 길고양이도 우리 집을 내려다보는, 우리 집은 그런 곳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화제가 된 영화 ‘기생충’에서는 내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던 일상을 대한민국 빈부격차에 따른 ‘계급의 수직구조’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영화에서는 시시각각 영상의 구도를 한없이 내려가거나 한없이 올라가는 식으로 극대화하여 촬영해 등장인물들 사이의 수직구조를 보여준다.  한 번은 동기들과 함께 학교 근처에 위치한 평창동과 부암동, 흔히들 ‘부촌’이라 불리는 곳의 집들은 왜 그렇게 높은 곳에 집을 지었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 끝에 우리는 “그들은 그렇게 살아도 불편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지었다. 그들은 집 앞까지 모셔다 주는 운전기사가 있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장을 봐주는 가정부가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언덕’은 일상생활에 있어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부를 과시할 수 있는 상징으로까지 작용할 수 있다. 출처 - <기생충> 스틸컷 (다음 영화)  반면, 같은 산비탈에 살지만 앞의 사례와는 정반대로 고단하고 처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달동네’라고 알려진 불량 주택 밀집 지역에는 아직 많은 사람이 집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높은 산비탈을 오르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다.  기생충에서는 이러한 계급의 간극을 다양한 요소를 통해 표현한다. 부자인 박 사장네 가족은 어린 아들이 폭우가 내리는 와중에도 마당에 미제 텐트를 치고 그 속에서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채 즐겁게 놀지만, 가난한 서민인 기택네 가족은 폭우 아래 빗물과 오물에 집이 모두 잠겨버리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교차하며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 예시이다.  2015년경 대한민국에는 ‘수저 계급론’이라는 신조어가 떠올랐다. 날 때부터 금수저 혹은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은 성장 이후에도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따위보다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는 대한민국 현실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이다. 기생충에서 기택은 이러한 한국 사회를 꼬집기라도 하듯 “무계획이 계획이다.”라는 말을 되뇐다. 그들이 어떠한 노력을 바탕으로 계획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더라도 결국 그들의 계급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저 계급론 열풍,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떠할까. 영화 기생충의 끝맺음은 기택의 아들인 기우가 아버지께 쓰는 편지로 끝이 난다. 멀끔한 차림새를 하고 어머니와 함께 자신이 꿈에 그리던 박사장네 저택을 구입한 기우가 아버지 기택과 재회하는 장면을 보며 나는 뻔한 해피엔딩에 ‘역시 영화는 영화로 끝이 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기우의 상상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을 때는 씁쓸함과 함께 너무나도 현실적인 영화 내용에 찝찝한 기분마저 남았다.  빈부격차 문제는 비단 대한민국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세계인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에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빈부격차는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좀처럼 나아지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은 그들이 쥐고 있는 것을 놓으려 하지 않고, 이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는 심화되었으며 중산층은 몰락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더욱 심화된다면 언젠가 모든 서민들이 몰락하여 기득권층에 ‘기생’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홍세화 : 한창 놀고싶은 대학교 3학년 홍세화입니다.
2019-06-24 | hrights | 조회: 501 | 추천: 21
이희수/ 회원 칼럼니스트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소유하려는 일이 익숙한 세상이다.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건강, 명예, 재물 따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것들까지 가지려 한다. 행복한 순간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다며 곳곳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방대한 정보를 '담아'두기 위한 외장하드나 웹하드 역시 흔히 쓰인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지만, 이런 방식으로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 돌아보게 된다. 사진은 기억을 불러올 뿐 기억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나부터가 종종 사진을 남겨두는 것이 기억해야 할 어떤 순간을 대체한다고 여겨버린다.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저장해 둔 파일과 읽지도 못하고 책장에 채워놓은 책. 거기 담긴 지식이 내 것이 된 양 느끼기도 하지만 그 역시 실제와는 다르다.  내 것이 아닌데도 마치 내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또 있다. 그것은 '진리'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입장을, 나는 으레 보편타당한 법칙으로 생각해버리곤 한다. 다름을 인정하자,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교과서 속 문구에 고개를 끄덕이긴 쉽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건이나 누군가의 행동을 평가하는 기준은 전혀 별개로 작동한다. 그것이 주관적인 틀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당연한 것인 양 확고하게 말이다. 내가 그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은 진리가 되고, 나는 진리를 가진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나의 관점과 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나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나에게 있어 종종 '모자란 사람', '이상한 사람', 나아가 '사람도 아닌 자'가 되기도 한다. 사진 출처 - 필자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진리의 소유자가 아니라 탐구자일 뿐이다. 내가 지금 진리로 여기는 것은 최종적으로 진리라고 판명난 것이 아니라, 진리를 찾는 도중에 도달한 잠정적인 결론에 불과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평생을 공부한 지식인이나 많은 이들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사람이라고 자기 생각의 완전무결한 무오를 주장할 수 있으랴마는, 피상적인 지식을 접해도 가장 먼저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게 되는 나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심정적으로 너무나 진리임에 틀림없다고 여기게 되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 정치, 종교적 신념이나 삶의 방향처럼 내 가치관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조차 옳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명한 사실을 일상에 적용하려 들면 새로운 어려움을 겪는다. 진리를 가진 게 아니라, 찾고 있을 뿐인 상태를 자각할수록 입을 열기가 망설여진다. 거칠게 말하면, 뭣도 모르고 떠들었다가 부끄러워질까봐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겠다 싶은 거다. 그래서 이미 내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생각들로 나도 모르게 성급한 결론을 내리려고 할 때, 또 그런 결론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저어하게 될 때마다 생각하려고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새로운 경험과 지식들을 더 많이 접한 뒤에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이 무엇일지.  많은 사람들이 자기 편에 서주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 애쓰기. 가질 수 없는 진리를 구하는 나의 오늘자 임시 결론이다. 이 생각을 곱씹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열심을 다해 행동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노력의 일환으로 이 열린 인터넷 공간에 주절주절 글을 적게 되었다. 끄적여 둔 꼴을 되돌아보며 가까운 미래에 머리를 쥐어뜯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올리는 건 현재 나의 지향이 보편타당함을 확신해서가 아니라, 본성을 거슬러 노력하는 과정들이 모여 더 진리에 가까워져 가는 삶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2019-06-17 | hrights | 조회: 425 | 추천: 9
이현종/ 회원 칼럼니스트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이 문구를 정말 지겹게 많이 들었다. 지금은 후반부가 바뀌었다. 현재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이다. 물론 어떤 조국이든 상관없이 몸과 마음을 바치는 전체주의 혹은 군국주의 색채는 약해졌다. 현재의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자유롭고 정의롭지 않을 때 충성을 하지 않아도 되고, 여차하면 그걸 뜯어고치도록 모두가 나서 저항권을 행사하는 게 정당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올해가 임시정부 100주년이라서 온 나라와 정부가 나서서 100주년임을 강조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내세우는 가운데 누구도 이에 대한 반론과 의심을 제기하지도 않고, 허용하지도 않는 분위기 때문이다. 애국이 강조되면서 거리에서는 어렵지 않게 나부끼는 태극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태극기는 때때로 자유를 짓누르고, 정의 구현을 가로막는 국가의 상징으로 활용돼왔다. 늘 자랑스럽지만은 않았다는 뜻이다. 출처 - 뉴스1 이렇듯 때때로 자랑스럽지 않았던 태극기를 훼손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 형법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105조(국기, 국장의 모독)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하지만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이 가능하다. 첫째, 국가가 모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현행법과 법원의 명예훼손에 관한 해석을 보면 개인이 아닌 단체 혹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모욕은 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례도 있다. 대한민국을 모욕한다고 하면 단체 혹은 불특정 다수인데 이것을 과연 모욕의 죄로 처벌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둘째, 그 자랑스러운 국기 또는 국장이 오욕 내지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국가의 상징으로 전락했기에 이에 대한 충성을 거부했다면 그것을 과연 죄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헌법이 정한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할 행위가 아닌가. 셋째, 또 지금까지 이 죄의 책임을 물어 누군가를 처벌한 경우가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쥔 이들이 평등과 정의를 목청껏 외치는 울분과 한이 맺힌 사람들을 가둬두기 위한 꼬투리를 잡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14년 4월 세월호 집회 때 침몰 책임을 물으며 집회 도중 20대 청년이 태극기에 불을 붙여 태웠을 때, 경찰은 그를 잡아 조사했지만 2017년 탄핵 반대 집회에서 태극기가 관리부실로 훼손이 됐을 때 당사자를 잡아다 조사했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앞서 미국에서도 ‘국기 훼손이 죄인가’에 대해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토론 도중 한 명이 “우리는 저 국기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하니 미국의 코미디언 빌 힉스가 이렇게 답했다. “너희 아버지는 깃발을 위해 죽은 게 아냐. 천조각을 위해 죽는 사람은 없어. 너희 아버지는 국기가 나타내는 가치를 위해 죽은 거지. 그리고 그 가치에는 국기를 불태울 수 있는 자유도 포함돼” 우리의 국가가 불평등과 부조리의 근원이 되고, 국가의 상징인 국기가 탄압의 도구로 이용될 경우 우리는 그 때도 그것을 존중하고 충성해야할까. 아니면 본래의 의미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고 싸워서 뜯어고쳐야 할까. 그런 점에서 볼 때 국기 모욕죄는 과연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어긋난 것은 아닐까. 이현종 :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20대 청년입니다.
2019-06-10 | hrights | 조회: 257 | 추천: 3
김치열/ 회원 칼럼니스트  많은 사람들은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각종 사건 사고를 보고 불안하게 생각한다. 만일 가까운 곳에 조현병 환자가 거주하고 있다면 더욱 무섭게 느낄 것이다. 우리가 조현병 환자를 왜 두려워하며 과연 조현병 환자에 의해 일어나는 각종 사건들을 해결할 대책이 있기나 한 것인가? 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불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란 명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이다. 우리가 조현병에 대하여 올바로 알고 대처한다면 조현병으로 인한 위험성에 보다 더 잘 대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현병(調絃炳) 환자는 과거에는 정신분열병 환자라 불리었다. 이에 관계당국과 학계에서는 2011년 이 병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고자 조현병으로 변경하였다. 조현병은 영어로 ‘Schizophrenia’로 불린다. 본래 조현은 ‘현을 고르는 것’으로써, 그 현이 어그러진 상태로서 기타연주로 비유하면 정신의 불협화음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의 증상은 잘못된 믿음(망상), 실재 존재하지 않는 자극을 느끼는 것(환각/환청), 알아들을 수 없는 엉뚱한 말(와해된 언어), 기이하고 움직임 없는 특정 자세의 장시간 유지(와해된 혹은 긴장소환), 대인관계 회피, 삶에 대한 의욕 상실 등의 증상이다. 우리는 증상을 보고 이들 환자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조현병 환자들이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오해다. 다만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강서구 PC방 사건의 경우는 꾸준하게 약물을 통한 치료를 거부했거나 주변 사람들이 이 사람들에 대해서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식은 하고 있었으나 제도상의 한계로 직접 치료까지 연결하지 못해서 일어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출처 - KBS 추적60분  조현병 환자에 의한 강력 범죄는 사회적 위해가 크다고 생각한다. 음주상태에서 범죄행동은 일반적인 폭력사건이나 강력사건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마약을 복용한 상태에서 벌어진 범죄 또한 사회를 불안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술이나 마약은 대체적으로 본인이 자발적으로 과다하게 복용하여 문제가 되고 유발 물질을 끊으면 문제가 해결 된다. 그러나 조현병 환자에 의한 사건 사고는 본인 의지로 되는 문제가 아닌 뇌의 이상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정신보건센터나 정신과 병원의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조현병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여기 소개하는 사람은 조현병 환자들에게는 드문 사례가 아니다.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법대 교수 엘린 삭스(Elyn Sacks)는 젊은 시절에 망각, 환각, 와해된 인지로 인하여 의사에게 회복가능성이 낮은 조현병 환자로 진단받았으나 꾸준한 치료와 주위 사람들의 돌봄을 통하여 회복되어 학교에서 형법과 심리학을 전공하여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은 자신과 같은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연구하고 있다.  어떤 조현병 환자는 장기간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사람에 대한 공격성이 커져서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먼저 조현병 환자 처리에 대하여 고민하여야 한다. 이들에게 치료를 위한 격리를 할 것인가 아니면 촘촘하게 짜여진 사회망을 통하여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적응하도록 사회적응 프로그램이 있듯이 치료를 끝마친 환자든지 치료중인 환자든지 사회적응 프로그램이 지금 보다 훨씬 많아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사회구성원간의 경쟁은 격화 되고 일부는 경쟁에서 패배하여 도태되기도 한다. 조현병 환자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어떤 면에서는 약자인 이들을 공동체가 품고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며 국가가 나서서 일반인들을 여러 방법으로 계몽하여 이런 환자들과도 서로 거리낌 없이 어우러져 살도록 나서야 한다. 김치열 회원은 현재 교도관으로 재직중입니다.
2019-06-03 | hrights | 조회: 235 | 추천: 7
김창용/ 회원칼럼니스트  3명의 20대 여성이 비키니만 입고 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운동을 통해 다져진 몸을 관객을 향해 뽐내듯 포즈를 잡는다. 피트니스 대회 얘기는 아니고 지난해 있었던 ‘비키니 위문공연’ 얘기다.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 또 다른 군 위문공연에서 카메라는 당연하다는 듯 여성 모델들의 특정 신체부위를 클로즈업 해서 화면에 띄웠다. 참석자들은 환호했고 모델은 당황했다.  상위부대인 육군 수도방위사령부가 입장문을 내고 사과를 했음에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사과는 차치하더라도 문제는 지속됐다. 올해 다녀온 예비군 훈련에서 있었던 일이다. 늘 있는 안보교육에는 무슨 상관인지 도저히 가늠 할 수 없는 걸그룹의 ‘위문’ 영상이 등장했다. 헐벗은 여가수가 ‘예비군 오빠들 화이팅하세요!’ 따위의 말을 하는 영상이었다. 도대체 이게 대한민국 안보와 무슨 상관일까 곰곰이 생각도 해봤지만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당연히 비판이 일었고,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위문공연을 폐지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흔히 하는 말로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했다. 으레 남자들끼리만 모여 나누는 대화 중 유난히 이성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는 듣기 불편하다. ‘20대 남성들이 여자와 성에 대해 대화하는 게 뭐가 문제냐’, 혹은 ‘남성은 원래 이렇다 저렇다’라는 말들을 억지로 수용해 ‘그렇다더라’ 하고 이해해보려고 해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얘기들이 늘 오간다.  ‘누가 예쁘다’, ‘누구는 어떻다’ 따위의 평가는 기본이다. 심지어 서로 아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몸매가 좋다’, ‘누구랑 잠자리를 했다.’ 등 적나라한 얘기가 끊임없이 오간다. 심지어 그 말들은 훈장이 되고 많은 여성을 만난 남자는 부러움의 대상이자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 우에노 치즈코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에서도 언급했듯 너도나도 ‘호모 소셜(동성 사회, 남성 연대)’ 속에서 인정받기 위해 남성성을 드러내는 행동이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객관화, 타자화되어 일종의 수집품이자 전리품이 된다. 대화에 동조하지 못하거나 불편함을 드러내면 ‘고자’ 혹은 ‘게이’가 되기 십상이다.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여성혐오적 발언에 대한 문제제기가 또 다른 여성혐오로 번지는 식이다. 호모 소셜 속에서 ‘진짜 남자’가 되려면 여성을 타자화해야 한다.  군대 밖에서도 이런데 안은 오죽할까. 군 생활 중 남성만 나오는 TV프로그램은 시청 금지였고 아침에는 인기 있는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를 항상 틀어둬야 했으며 여군에 대한 끊임없는 루머(주로 성적인)는 끝도 없이 생겨났다. 휴가를 나가서 여성을 만나지 않으면 욕을 먹었고, 만나지 않았다면 성매매라도 했어야 했다. 그래야 ‘고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SNS 상 여성 친구들은 ‘누구 친구가 예쁘다’ 식으로 리스트화되어 선임병들에게 전해졌다. 본인들의 마음에 드는 여성 지인이 있으면 A급 병사가 되었고, 그런 지인이 없다면 소위 폐급 병사가 됐다.  뜻하지 않게 ‘고자’가 된 사람으로서 보기에, 남성들의 여성혐오적 시각은 호모 소셜 속에서 소외되기를 두려워하며 발현되기에 그 뿌리가 깊다. 그리고 이는 곧 서로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 남자들끼리 “진한 우정을 나누자”며 가진 술자리에서는 앉자마자 주변 여성 손님들이 앉은 테이블을 둘러보고 서로 평가를 한다. 그리고는 맘에 드는 상대에게 말을 건다. 그런 행동이 불편해 가겠다고 하면 ‘갈 거면 폭탄(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 치우고 가라. 의리 없이 가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등의 대답이 돌아온다.  상황이 이러하니 위문공연을 폐지해 달라는 의견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뻔했다.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카페나 커뮤니티에서는 ‘위문공연 없으면 (군대 안에서) 뭘 보고 사냐’ 등 반대의견이 넘쳐났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의 반발은 더 커서, ‘남자들끼리 갇혀있는데 성적인 시선으로 보는 게 뭐가 문제냐’, ‘추행만 안하면 됐지’, ‘너희 같은 애들은 부르지도 않는다’ 등 성 상품화나 성적 대상화 등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말들을 해댔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타인의, 특히 남성의 필요에 따라 규정되고 있다. 힘을 가진 남성들이 스스로는 오롯이 성적 주체이고자 하고, 객체가 되기 두려워하기에 그렇다. 치즈코는 “군대는 매우 중요한 호모 소셜이다. 한국 남성들은 군대에서 살생과 폭력을 배운다. 문제는 이런 작동원리를 적극적으로 배운 남성들은 평화적 생물로 존재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에 더해 군대는 살생과 폭력을 갖추기 위해 다른 것들은 통제하면서, 성적인 해소는 독려한다. 성욕의 노예로 여긴다는 의미다.  비키니를 입고 자신의 몸을 수많은 남자들 앞에서 드러내는 동생뻘 모델들을 대하는 태도는 환호가 아닌 좌절이고 반성이었어야 한다. 위문 공연을 유지하자는 주장은 스스로의 섹슈얼리티를 해침은 물론 두려움 많은 겁쟁이이자 성욕의 노예임을 자백하는 모양이기에 더욱 그렇다. 스스로 겁쟁이나 노예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지는 말자. 김창용: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열심히 공부하고자 노력만 하고 있습니다.
2019-05-29 | hrights | 조회: 199 | 추천: 12
임영훈/ 회원 칼럼니스트  어렵고 포괄적인 글은 쓰지 말자면서도 주제를 찾다 보면 가끔 삼천포로 빠진다. 일상에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통시적으로 파악하고픈 욕심이다. 통찰은 언감생심, 결국 미로에 빠져 헤매고 만다.  결국 경험적, 미시적으로 가깝게 볼 수 있는 일상사를 찾다가, 그만 인간 관계에서 시작한 글이 자아와 사회라는 거시 경제학(?)이 된다.  사람 사이란 뜻의 인간이 그대로 사람이란 뜻으로 쓰일 정도로 사람에게는 관계가 중요하다. ‘인간 관계’란 익숙한 말에는 인간에 관계가 마치 한 단어처럼 따라붙는다. 그만큼, 관계는 선택 같은 필수다.  태어나면 관계의 연속이다. 부모 이외의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몇몇 기억들이 떠오른다. 열 살도 되지 않았던 저학년 때에도 반장을 맡을 리더 어린이가 있었고, 점점 서로의 외모 등을 인식하면서 잘 생기고 예쁜 친구가 누구인지, 공부나 운동은 누가 잘 하는지 구별해갔다. 고학년인 10대로 접어들기 시작하면 이런 구분과 등급은 점점 명확해지고 부러움과 더불어 시기, 질투 등도 커지기 시작한다. 남학생과 여학생 간 미묘한 분위기도 싹트고, 한 쪽만 마음이 있는 짝사랑 같은 사랑의 짝대기가 생겨난다. 공부를 잘하거나, 패션 감각이 있거나, 주도적이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잘 놀거나 등 내세울 게 있는 아이들은 이성에게 인기를 끌고, 그룹을 만들어 어울리는 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내성적이거나, 자신감이 없다면 무리 짓거나 그룹을 형성하기 쉽지 않다. 결국 ‘inner circle’에 안착하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고, 자신이 어딘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결핍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열 살 전후로 느꼈던 ‘inner circle’의 진입 장벽은 일종의 인간관계의 고비였다.  나는 쉽게 다수에 섞여 어울리는 체질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졸업 문집을 아직도 갖고 있는데, 각자 짧게 자기소개를 하는 란이 있고 몇몇은 그림이나 글재주를 자랑하기도 했다. 모두에게 공통되는 짧은 소개 글에는 공통 질문이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6학년이래봤자 만 12세의 어린이였는데, 많이 나온 답은 이랬다. ‘돈, 여자, 남자, 직업, 가족, 건강, 성적’ 등등. ‘꿈, 희망’ 같은 이상적 단어도 있었지만 그다지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너무 옛날이라 일일이 기억하긴 어렵지만. 무엇보다 아직 어린이였는데도 대부분의 답들이 상당히 (내가 보기엔) 속물적이었다.  나는 ‘아내, 종교, 음악’ 이라고 썼다. 어린이가 적었다니 어색한 감이 있지만, 담임선생님은 입이 닳도록 칭찬하셨다. ‘여자’라고 적은 다른 답들과 ‘아내’라고 적은 것은 다르다면서 그 부분을 강조하시기도 했고, 나머지 둘도 그런 것을 쓴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 청년 성가대를 10년 넘게 한 걸 보면 별 것 같지 않던 문집이 타고난 성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나침반이었다.)  동시에 선생님은 내가 현실 감각이 없다며 걱정을 하기도 하셨다. 수업 시간에 앞으로 뭘 하고 싶냐는 주제가 나와서 다들 이런저런 장래 희망을 말하고 있는데, 내 차례가 오자 문득 낡은 건물들에 페인트칠을 해주고 돌아다니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당시 어린 눈에 비친 서울의 건물들이 전부 낡거나 우중충하고, 지금처럼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건물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게 무슨 미래에 실제 갖게 될 수 있는 직업을 얘기한 것도, 현실적 답도 아니었기에 선생님은 나의 몽환적 답변을 타박하셨다. 그리고 동시에 여기저기서 실소인지 한숨인지 황당해 하는 반응도 있었다. (아직도 동창 모임에 나오는 여자 동창이 그 중 한 명이었다. 뒤를 돌아다보기까지 했었기에 기억이 난다.)  이런 나만의 색깔과 가치관, 주관 덕분인지 친구가 쉽게 생기지 않았다. 더하여 TV를 사회악으로 여기는 집에서 자라 연예인들 신상으로 이어지는 또래들의 수다에 대화 주제가 없다시피 했다. 여러 면에서 어딘가 특이한 애로 인식되었고, 성적이 나오는 편이었지만 온통 성적에 목을 매는 상위권과도 그렇게 통하지는 않았다.  내 안에는 점수에 목을 매는 교육 환경과 더불어, 점수에 목을 매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까지 똑같은 괴물로 그려져 있었다. 비판 정신을 뱃속부터 타고났는지, 교육 현실을 비난하는데 열을 내곤 했다. 입시 교육이 시작되는 중학교에 올라가자 학교가 즐겁지 않았고, 배우고 익힌다는 본연의 공부에는 뜻이 없고 온통 시험 점수에 목을 매는 학교에 호감이 가지 않았다. (실제로는 물론 나 또한 점수가 중요했지만) 결국 나는 어디에도 섞이기 힘든, 회색분자와 같은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환경의 평범한 학생, 나 또한 입시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였음에도, 스스로를 떼어내어 거대한 실패작인 한국의 교실에서 자신을 분리시켰다.  십대 시절 형성된, 관계의 단절이 가져오는 외톨이의 삶은 그 후의 시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물질만능주의와 성적 지상주의를 생각 없이 받아들여봐도, 이미 형성된 ‘나’는 그렇게 쉽게 속물로의 카멜레온과 같은 변색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와 주변의 색은 매번 어딘가 달랐으며, 그럴듯하게 섞여서 숨어 있어도 어느 순간에는 보란 듯이 드러나서 뭐라도 문제를 일으키고는 했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 그게 가족이든 친구든, 아니면 이익 사회의 영역이든, 다수의 사고는 다수가 맞음을 강변하면서 소수를 돌연변이 취급하고 사사건건 억누르게 마련이다. 그게 다수의 생존 방식이다. ‘길 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봐’라던지, ‘거봐, 니가 틀렸지’라며 다수결을 강요하게 된다. 그렇게 다수는 다수가 지배하는 체계를 공고히 유지하려 한다.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게 된다면 다수가 가지는 우월성은 근거 없이 흔들릴 위험에 처한다. 이것은 또한 관계에 중점을 두는 인간 사회, 특히 동아시아 사회를 이루는 축이 되므로 일종의 순환 고리가 만들어진다. 마치 순환 출자와 같이 돌고 도는 자체 순환의 고리가 꽤나 튼튼하게 엮여 있는데, 한 쪽이 끊어져도 결국은 이어져서 계속 돌게 되는 아주 강한 매듭의 반복이다.  내 삶의 방식을 유지하려고만 해도 우군이 필요한데, 대부분이 특정한 생각을 갖고 살아가기에 그게 정답이고 정상이며, 내 편은 없었다. 예를 들어, ‘입을 옷이 있는데 왜 옷을 또 사?’와 같은 질문을 하면 모자란 취급을 받게 된다. 어느 사회이건 기존에 형성된 사고틀이 굳어 있기 때문에, 어떤 질문이던 간에 질문 그 자체로 평가되기 이전에 사회의 관습으로 먼저 재단된다. 공고한 선입견이 그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강한 틀이고, 구성원들은 그 안에서 적절히 따르고 즐기고, 적절히 진보적인 척 반항도 하다가, 대체로는 인정받으면서 안도감을 느낀다.  적어주는 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뭐든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맨날 헤헤 웃으며 맞춰주는 사람이 아닌 자는 이렇게 매사가 힘들고 삶 자체가 버겁게 된다. 좌파 시민단체에 참석해도 주장에 동의가 안 되면 자기 할 말을 하게 되고, 우파 기업인들과의 업무 미팅에서도 자기 색을 버리고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스폰지가 되기는 힘들다. 반대로 스스로를 버리고, 다수에 맞춰가는 이는 관계의 달인이 될 수는 있다. 문제는 정작 그 자신의 정체성인데, 따지고 보면 존재하지 않는다. 꿋꿋이 다수의 횡포에 항거하면 자아를 지키지만 관계의 구성에 걸림돌이 있는 것과 대비된다.  여기에 고민이 싹튼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것인지, 아니면 여기선 이러고 저기선 저러는 카멜레온처럼 살아갈 것인지, 생존의 본능은 무조건 관계를 택해서 후자로 갈아타라고 권한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무리짓기를 하는 동물들의 본능이다. 생물학적으로 무리에서 소외되는 것은 곧 생존 자체가 어려워지는 죽음을 의미하기에, 무리를 이루는 동물들에게서 개체를 소외시키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고 한다. 실제로 무리 동물 중 무리에서 어떤 이유로든 떨어져 나간 개체는 혼자서 생존하기보다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인간 사회에서 무리에 껴주지 않고 왕따를 시키는 것은 그의 영혼의 심장을 떼어내어 길거리에 던져버리는 것과 같다. 이렇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경제적으로는 살 수 있어도 상당수가 자살을 택한다. 명예가 심각하게 실추된 경우,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 관계망이 소실되어, ‘사회적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는 표현도 많이 쓰인다.  그래도,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는 안창호 선생의 말처럼, 나의 신념을 믿고 부러지더라도 혼자 가는 게 옳은 일일까. 나도 사람이기에, 생각에 오류가 있을 것이고, 그것만 고집하는 것은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외부의 생각들에 내가 오염된다고 여길지, 아니면 그런 여러 자극들에 의해서 외골수의 생각이 다듬어진다고 판단할 지는 여전히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그만큼 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고, 복잡의 끝을 달려가는 세상에서 단순히 자신의 입장을 취하는 것조차 갈수록 어려워진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다양한 뉴스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난해한 퀴즈를 매일 풀며 하루하루 넘어가는 줄타기와 같다. 사진 출처 - 티스토리 블로그  그래도 스스로에게 개인의 신념과, 자기 자신의 사고의 완결성을 믿으라고 하고 싶다. 이 말은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주입되는 일련의 지침들을 무작정 따르지 않고, 어떤 분위기를 타고 휩쓸리는 열풍 등에 무심코 올라타지 않기를 바람이다. 내가 맞다고 믿는다면,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도 꺼내어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바람이 불어 다수가 특정 사안에 휘말려 혈안이 된다 해도 자신은 부러 그 바깥으로 나와 침착하거나 외려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여전히 냄비 끓듯 분위기에 휩쓸리는 사회 현상들을 보면 못내 씁쓸하다. 중국, 일본과 더불어 인간 사회에서도 가장 관계를 중시하는 동아시아 사회여서 그런지, 낡은 동아시아 관념을 타파하려는 이들조차도 실제로는 동아시아적 행동 패턴을 보인다.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개인의 구체적 동의를 구하기보다는, 진영 논리로 세를 모아 반대편을 박살내는데 열을 올리거나, 힘 대 힘으로 밀어붙여서 상대방을 밟고 승리를 쟁취하는데 혈안이 돼있다. 이젠 이게 대세다, 이젠 우리가 다수다, 이젠 우리가 주류다, 이렇게 외치면서 기존의 주류를 비주류로 몰아 힘으로 억누르려고 한다. 모두가 같은 의견인양 세의 확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각 개인의 다양성은 무시 되며, 강성이 아닌 회색분자와 같은 온건파들은 공격 일변도의 전선에 도움이 안 되므로 내부의 적으로 취급된다.  사용자 없는 노동자가 없듯, 남성이 없다면 여성이 없다. 그렇지만 현실의 주장들은 한쪽을 끊임없이 공격해 힘을 못 쓰게 만들어버리면 자신들이 살아날 것처럼 자극한다. 과격한 단체일수록 내부의 이견을 틀어막아 그 순수성?을 유지하겠지만, 다수의 힘을 빌어 관계를 담보로 결집을 유도하는 건 자신들의 비판의 대상과 닮아 있다. 결국은 왜곡된 구조를 바꾸겠다는 이상은 구호에 그치고, 실상은 그 자리를 내가 차지하겠다는 권력 투쟁으로 흘러간다.  물론 맨날 얼굴을 봐야하는 나의 소속 단체 안에서 부딪히지 않고, 순종적으로 인정받는 관계만 고민하는 게 현실적으로 개인에게 무조건 이득이다. 언제 볼지 모르는 외부인이나 전체 사회를 걱정해줄 필요가 없고, 하다못해 외부와 치열하게 부딪히고 싸우면 내부에서 나에 대한 지지와 환호는 늘어간다. 나의 행동반경이 당연하게도 내가 속한 계급과 계층에 한정되기에 이런 맹점이 나온다. 마치 전체 사회를, 인류를, 지구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나와 내 이익집단의 이익을 강변하고, 작은 관계가 큰 관계를 집어삼키는 일들을 반복하다 보면 개인과 사회는 새로운 사고와 물결에 힘을 얻기보다는 병들어 갈 것이다. 세계와 미국을 고치겠다던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로 세계와 자국을 외려 병들게 하듯이, 집단 이기주의는 내 집단에도 결국은 이익이 되지 못한다. 우리 정당과 우리 단체, 우리 가족,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의 이익만을 극도로 추구하게 될 때 파국의 결과는 과거의 당파싸움과 현재의 국회 등을 보면 답이 나온다.  그래서 가급적 많은 이의 자아가 깨어 있으면서도 독립적이었으면 한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면서도 타인과 소통이 되는 것, 어려운 일이다.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지만, 복잡성이 극한으로 치닫는 현대 사회에서 서로 간에 총성 없는 전쟁이 아닌 공존이 되기 위해서는 독립된 자아와 유연한 소통이라는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함을 느낀다.  거대한 사회악이라고 낙인찍은 기득권의 축들, 1등 신문, 만년 여당, 막강한 경제력의 기업 집단, 역사를 독점해왔다는 남성들, 구체적으로 얘기해보면 ‘사기’ 탄핵을 당했다는 전 대통령과 감옥 뒷바라지까지 하며 추종하는 이들, 셀 수 없이 많은 가상의 적들과 기득권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임의로 비정상들을 선정하고 차례로 제거한다고 내가 정상이 되고 사회가 정상이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바로 내가 정상이고 네가 비정상이라는 단순한 전제이다. 상대방이 볼 때는 그대로 거꾸로 국면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열고 고쳐주겠다며 마주 보고 확성기를 튼 채 일장 연설을 하니 적절한 선의 이해라는 건 가능하지 않고, 타도의 대상으로 사사건건 부딪히게 된다.  현실적으로는 세상은 복잡하다. 내가 ‘안티 조선’ 모임에 가입해 있더라도, 조선일보에 다니는 친구가 있을 수 있다. ‘안티 조선’ 모임 안에서도, 생각이 다를 때는 이 건은 그렇게 몰아갈 수는 없다고 조선일보를 변호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집단에 소속돼 있더라도 독립된 꿋꿋한 자아, 당파성이 제외된 바로 그 ‘개인’이 갈수록 아쉽다. 이런 유연함이 자아를 지키면서도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담보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노자의 ‘상선약수’, 유가의 나라에서 물처럼 쉽게 버려져 온 그 한 마디가 절실하다. 위로 올라가 지배하려는 사람만 보일 뿐, 아래로 흘러 바탕이 되려는 사람, 그런 단단하고 우직한 개인의 가치가 갈수록 중요하다고 느낀다.
2019-05-14 | hrights | 조회: 360 | 추천: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