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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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이보라/ 청년 칼럼니스트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 방식을 타인에게 무작정 강요하는 중장년층을 우리는 ‘꼰대’라 부른다. 꼰대는 유행어일 뿐 아니라 사회 문제의 주요 원인이다. 꼰대식 교육은 아이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파괴해버린다. 꼰대식 직장 문화는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며 경직된 조직 분위기를 만든다. 꼰대 같은 아버지는 자식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가정 내 소통을 마비시킨다. 이 같은 현상을 봤을 때 꼰대는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꼰대는 경멸의 대상이 됐다. 반공 독재 시절, “너 빨갱이지?” 라는 말이 널리 쓰였듯 오늘날엔 “너 꼰대지?”라는 말이 통한다. 2016년 ‘반꼰대 시대’에서는 “꼰대가 되지 말라”는 설교를 곧잘 들을 수 있다. 젊은이들도 자기들끼리 꼰대가 되지 말자고 주의하는 분위기다. “나이 따지지마, 꼰대 같아.”, “자기주장 좀 줄여, 그게 꼰대야”라는 말들을 주고 받는다. 꼰대 테스트, 꼰대 퇴치법 등도 인터넷 상에서 떠돌고 있다. 나도 최근 주변에서 ‘꼰대가 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나이가 어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반말을 했을 때, “왜 예의를 안 지키느냐”고 따졌더니 나이를 따지는 꼰대로 몰렸다. “기자는 영향력을 많이 끼치기 때문에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직업윤리를 강요하는 꼰대라 한다. “사람이 태어났으면 남들을 위해서 나누면서 살아야지 왜 자기만 아냐”고 주장하면 ‘진보’ 꼰대 소리를 듣는다.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겠지만 단지 예의와 직업,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주관을 드러낸 것일 뿐이었는데 꼰대로 격하된 것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처음으로 되돌아가보자. 꼰대라는 말은 자신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폭력성을 거부하자는 데서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꼰대가 되지 말라는 주장이 왜곡돼 사람들의 사상과 행동의 자유를 제약하기도 한다. 그동안 꼰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둔감해진 것은 아닐까. 꼰대를 비판하는 스스로가 또 다른 꼰대는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이보라씨는 약자와 소수자에 관심을 갖고 머니투데이에서 인턴기자로 활동하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52 | 추천: -1
전세훈/ 청년 칼럼니스트 “수업 시간에선 비판적 지성을 배우다가, 교양필수(취업관련) 과목에서는 기업에 대한 순종을 말해요.” 얼마 전 모교에 들렸을 때, 후배가 해준 말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진보성’을 내세워왔던 곳이다. 그런 학교도 정부의 구조개혁 평가를 거스르지 못했다. 대학 평가 이후, 학생들이 “잘못된 불의에 저항이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에 총장은 “수도권 변두리에 있는 학교가 교육부에 대항할 힘이 있겠냐”며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비판적 지성과 정의를 가르쳐 왔던 학교는 대학 평가 이후 순종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과 통폐합이 시작이 됐고, 학교가 가지고 있었던 특성은 사라졌다. 학교의 모습은 변했다. 가장 달라진 것은 배우는 내용이다. 철학, 문학 등의 과목들이 사라진 자리에 프레젠테이션 스킬, 엑셀 등의 과목이 자리를 매웠다. 현실적으로 대학 구조평가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볼 수는 있다.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줄어 2018년이면 대입 정원이 고교 졸업자 수를 넘어선다. 8년 후인 2023년이면 고교 졸업생이 39만 명까지 줄어든다. 이 때문에 지금의 대학 정원을 56만 명을 조정해야 한다. 1980년대 교육조치,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 등의 정책으로 인해 별 다른 규제 없이 대학이 늘었다. 여러 해 동안 대학들의 자율 조정을 유도해왔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제 객관적 조정자가 필요하게 된 상황이 됐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대학 구조개혁에 따른 대학 평가 방식은 실패작이다. 지금까지의 대학평가 방식은 정원감축에 대한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었다. 졸속적으로 개발한 평가지표로 300개가 넘는 대학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현재 구조개혁 평가의 방향으로는 대학들이 쉽게 손댈 수 있는 학과 구조조정이나 학사 관리 항목에 중점을 뒀다. 평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대학들은 무리한 학과 통폐합 한 등 급조된 정책을 쏟아냈다. 단기 비정년 전임교원을 많이 채용하고 전임교원확보율을 높여 좋은 평가를 받은 대학들도 있었다. 대학이 기업화가 되어 가치창출 대신에 수익창출이 대학의 목적이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는데, 현재의 대학 평가는 오히려 ‘대학의 기업화’ 현상을 부추기는 듯한 모습이다. 사진 출처 - 서울여대 학보 만평 또 다른 큰 문제는 서울 외 지역에 있는 대학들, 소위 ‘지방대학’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점이다. 이번 평가 만해도 하위 2개 등급에 속한 대학들이 대부분 지방대였다. <프레시안> 보도에 따르면 인구 1000여 명 정도의 소규모 대학이라고 할 지역에서 창출되는 경제적인 부는 수백억 원에 달한다고 할 정도지만 이러한 지방대학의 장점들을 현재 대학평가는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약한 지방대학들이 정원감축과 재정 지원 제한을 받게 되면 자연히 학교 운영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다음 평가에서도 좋은 결과를 받을 수가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대학평가 이전에 대학이 어떤 교육을 맡을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을 줄인다는 단순한 논리로 대학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영국이나 미국은 ‘학문의 상아탑’ 역할을 강조하고, 그에 비해 북유럽 국가들은 산업과의 연계를 더 강조하는 실용적 경향이 있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대학이 맡을 교육에 대한 철학이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면 그에 맞는 정책을 펼 수가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학이 맡는 교육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래서 사회적 변화에 따라 이리저리 정책을 바꾸고, 그때마다 졸속적으로 만든 대학평가로 학생 수 줄이기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이다. 하버드대의 파우스트 총장은 “대학의 본질은 인생을 만들어가는 가르침, 오래된 유산을 전달하려는 가르침, 미래를 설계하는 가르침”에 있다고 했다. 대학은 인생을 만들어가고, 미래를 설계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맡을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세훈씨는 빈곤과 고용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2 | 추천: 0
오민석/ 청년 칼럼니스트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시위에 참여했다. 집에 돌아오자 폭력시위, 폭동 이런 단어들이 뉴스에 난무했다. 의문이 들었다. 폭력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왜 시위대의 것만 폭력이 되는 것일까? 폭력이라고 부르는 힘의 위치와 역학관계는 현장에서 늘 변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도 힘의 관계는 금방금방 변한다. 전세역전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한 건 누구의 힘이 정당한가이다. 이 정당성을 근거로 힘의 사용은 훨씬 확장되고 그 힘 자체도 강력해진다. 정당성의 프레임을 확보했는지에 따라서 역사의 판단도 송두리째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은 항상 이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11월 14일 힘의 사용(폭력)에 대해서 어떤 단어가 붙여졌는지 보자. 경찰의 물리력은 진압 혹은 과잉진압이라는 반면, 시위대의 물리력은 폭력, 불법폭력 혹은 폭동이라는 말까지 붙여지고 있다. 어감과 의미가 훨씬 거친 느낌을 준다. 어떤 프레임이 감지된다. 시위대의 폭력만 폭력이다. 폭력이 과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모든 논의는 이 프레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장면을 제대로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사진 출처 - 머니투데이 폭력이 피해를 불러온다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사회구조가 훨씬 폭력적이다. 시위현장에 나온 사람들은 한국의 수많은 소수자들이었다. 알바, 농민, 학생, 성소수자, 빈민... 헬조선에서 끊임없이 폭력에 시달리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사회구조의 폭력에 견디지 못해 자기 목숨을 버리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 중 몇몇이 겨우 거리로 삐져나왔다. 그 절망적인 ‘삐져나옴’이 폭력이 되고 있다. 카메라가 주목하는 것은 온통 그것밖에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근대의 폭력은 국가로 수렴한다. 사회학자 기든스는 “근대란 국가에 의한 폭력의 독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안으로는 감시, 밖으로는 군사력을 행사하는 주체로서 국가가 등장함을 뜻한다”고 말했다. 제도적 폭력의 정점에 국가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에 대한 경계의 방향은 시민이 아니라 국가 공권력이어야 한다. 공권력이 혹시 시민들에게 과도하게 사용되지는 않는지,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보호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감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뭔가 대단히 잘못되었다.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에서 공권력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는 데 심각하게 무능했다. 다른 사회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계부채는 100조 원에 달하고 있고, 행정집행은 일방적으로 진행된다.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거대한 힘으로 찍어 누른다. 1차 민중총궐기에 가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민중총궐기 관련으로 경찰로부터 출석 요구를 받는 일도 있었다. 내 주위에도 몇 명 있었다. 해고당한 사람들에게 손배소가 걸렸고 강정과 밀양에서는 공동체가 깨졌다. 이런 공권력 사용은 스스로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수를 두는 거다. 힘의 행사에 정당성을 확보할 자신이 없고 이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도 없으니 시위대의 요구에 대답하긴 커녕 시선을 다른 곳에 돌리려고 애쓰고 있다. ‘시위대의 폭력만 폭력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비겁한 짓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많은 사람들이 폭력시위를 지적했다. 노동이나 환경 같은 특정 이슈에 대해서 싸우는 것만큼 무엇이 폭력이고 무엇이 정당한 것인지 바라보는 프레임을 만드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 정당하다고 한들 그 프레임을 확보하지 않으면 여론에서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우리에게 유리한 프레임, 정당성의 프레임을 먼저 확보하면 다른 이슈에서의 싸움도 한층 수월해진다. 국가 공권력은 여러 프레임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공권력이 정말 스스로 정당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을 정당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번에도 ‘폭력시위’라는 프레임을 가져가서 여론을 이끌었다. 의경보다 의경 뒤에서 폭력 딱지를 붙이는 공권력이 더 무섭다.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오민석씨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생기는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51 | 추천: 0
남소연/ 청년 칼럼니스트 한 사내가 길 위에 서 있다. 무언가 담겨 있는 묵직한 비닐봉지 두 개를 양손에 쥔 채. 이 남자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탱크다. 한 대의 탱크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광장이라는 천안문 앞의 긴 길을 따라, 족히 열대가 넘는 ‘탱크 무리’를 마주하고 있다. 탱크는 금세라도 사내를 짓밟을 수 있다는 듯 조금씩 앞으로 나선다. 탱크가 나아가는 방향을 따라 그는 악착같이 포신 쪽으로 몸을 옮긴다. 그렇게 사내는 물러서지 않고, 탱크를 막아선다. 그 사내는 ‘Tank Man(탱크 사나이)’이다. 사내가 막고자 한 것은 시민을 짓밟으려 한 군홧발이었다. 중국의 시민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중국의 민주화를 외쳤고, 무장한 군인과 탱크는 시민을 포위했다. 그렇게 광장은 피로 얼룩졌고, 여태껏 정확한 진상조차 밝혀지지 않았다. 사망자만 천 명이 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괜한 억측이 아니다. 탱크를 막아선 사내의 행방 역시 전해지지 않는다. 이른바 천안문 사태다. 이날 탱크맨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영국의 사진작가 스튜어트 프랭클린(Stuart Franklin, 1965-)은 이렇게 회상한다. “인민군 탱크가 인파를 향해 달려오자 한 청년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탱크를 가로 막았다. 탱크가 청년을 피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청년도 오른쪽으로 틀고, 다시 탱크가 방향을 잡으면 청년도 용수철처럼 왼쪽으로 움직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숨을 죽이고 주시했다. 탱크가 무자비하게 청년을 깔아뭉개고 통과하지는 않을지 불안했다.” 천안문 사태 당시 한 청년이 시민을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 농민이 포위하러 온 탱크를 막아서고 있다.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있다. 사진 출처 - 헤럴드경제                                      사진 출처 - 공무원신문 2015년 한국이다. 한 노인이 광화문 광장에 서 있다. 시민 각개의 외침이 광장에 모인 그날,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경찰은 ‘폴리스 라인, 아름다운 질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라는 문구의 띠를 두른 채 차벽을 쳤다. 게 중 몇몇은 광장에 모인 사람을 향해 직사로 물대포를 쏘아댔고, 노인은 자신을 정조준한 물대포를 맞다 쓰러졌다. 농민 백남기 씨다. 의식조차 없는 그에게 더 조준할 것들이 남았는지, 차가운 말들이 날아와 꽂힌다. 한 여당 의원은 “선진국에선 총을 쏴 시민들이 죽어도 정당하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언론에서는 “폭력난동과 평화시위도 분간 못하냐”고 되뇌어 말한다. 이제 폭력시위(불법)냐, 평화시위(합법)냐의 논쟁은 핵심을 벗어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탱크맨과 농민 백남기 두 사내 모두 내 몫을 대신해 광장에 서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수많은 ‘나’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 주고, 수많은 ‘나’들의 자리를 채워 주었다. 조금이나마 나은 역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내 몫을 대신 치러주는 이들의 희생 덕분이다. 대신 터져 나온 희생들이 모여 4.19를 만들고, 5.18을 만들었을 게다. 따져보면 나의 공포와 두려움은 이들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국가의 무자비함은 시공간을 가른 채 존재해왔다. 어쩌면 항시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마다 제2의 탱크맨, 제2의 백남기 역시 시공간을 가른 채 존재해왔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탱크맨과 농민 백남기는 곧 우리들의 또 다른 이름이자, 비어 있으니 앞으로 채워가야 할 이름이다. 밖이 소란스럽다. 탱크도 몰려오고, 최루액 섞인 물대포도 쏟아진다. 우리는 기꺼이 탱크를 막아설 수 있을 것인가. 기꺼이 물대포를 맞을 수 있을 것인가.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남겨진 우리의 도리는 분노와 저항이다. 나부터 차벽을 막아서자. 나부터 차벽을 두고 욕이라도 내뱉자.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하나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듯, 그렇게. 남소연씨는 소수자와 약자를 대하는 언론의 문제점을 느끼고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신문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4 | 추천: 0
연혜원/ 청년 칼럼니스트 청년실업이 뉴스의 고정소재가 된 지 오래지만, 간간이 주변에서 취업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나도 그 운이 좋은 한 명이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취업이라는 티켓이 엄청 비싼 것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직장을 얻으면서 전부를 잃었으니 말이다. 회사는 당연한 듯이 너의 삶의 전부가 되겠노라 선언했고, 소심하게라도 반항하고자 조심스럽게 가족과 친구라는 이름에 팔짱을 끼면 불같이 화를 냈다. 한 번은 한 선배가 회식자리에서 집에 있는 아내로부터 온 전화를 받느라 장시간 밖에 있다 들어왔다. 부장님이 한 마디 했다. “너만 마누라 있냐!” 다른 선배는 이제 갓 돌 지난 아기가 화요일까지만 자기 얼굴을 기억한다고 했다. 일 때문에 주말에만 제대로 얼굴을 보니 수요일쯤 되면 아빠 얼굴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대학생 땐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고, 취업하면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다던 말은 소름 돋게 맞는 말이었다. 그나마 취업준비 할 땐 손가락 빨면서라도 이따금씩 보던 친구들이 취업을 하기 무섭게 뿔뿔이 흩어졌다. 가족만큼 자주 보던 친구를 이젠 계절에 한 번 보기도 어려워졌다. 같이 사는 가족도 아침 먹을 때 겨우 보니 할 말이 없다.   사진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는 평일엔 밤 11시 전에 귀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회사 방침은 정시 퇴근이지만 회사 방침을 지키는 상사는 없다고 한다. 그렇게 야근은 생활의 일부가 됐다. 공기업은 신의 직장이라 했던가. 그렇지도 않았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친구는 주말마다 회사 사람들과 등산을 가야 한다. 한 중견제과회사에 입사한 친구의 사태는 더 심각하다. 본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적어도 1년 이상은 주 6일 영업지부로 출근해야 한다고 했다. 연봉은 세 전 2천만 원을 간신히 넘지만 목표 영업매출을 채우지 못하면 그마저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 친구는 대부분의 신입사원들이 목표매출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첫 해 월급은 본사로 가기 위해 회사에 바치는 상납 정도로 봐야 한다고 했다. 꿈에도 그리던 취업을 했지만 누구도 행복해지지 못했다. 견디는 사람과 견디지 못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래도 취업준비 할 때가 좋았지’라는 꼰대 같은 말도 하기 싫다. 지옥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된 데 감사하며 가족도 친구도 맘놓고 볼 수 없는 척박한 이 현실에 모두가 굽실거리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삶에 있어 직장과 월급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보다 소중한 것인지 질문하고 싶다. 연혜원씨는 복지와 교육에 관심이 있는 철학과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0 | 추천: 0
이보라/ 청년 칼럼니스트 700개의 공들이 날아다닌다. 투명하고 거대한 유리통 안에서 사방으로 튀겨진다. 각기 다른 색과 숫자를 지닌 공들 중 일부만이 통의 배출구로 빠져나올 수 있다. 제일 강하고 권력이 있어 보이는 누군가가 버튼을 누른다. 비슷비슷한 공들 중 몇 개만이 선택돼 배출구로 나온다. 나온 공의 개수는 단 5개. 숫자는 ‘100234’, ‘100321’, ‘100099’, '100021', '100697'. 복권이 추첨되는 장면일까. 아니다. 우리 회사의 공개채용 전형 모습이다. 현재 우리 회사에서 필요한 인원은 단 5명이다. 올 초 미리 인원을 충원하기도 했고 많은 인원은 필요하지 않아서다. 최근 ‘0명’을 뽑는다는 공채 공지를 보고 700명이 모였다. 이들은 자기소개서에 회사가 원하는 인간이 바로 ‘나’라고 썼다. 곧 치러질 면접 자리에선 자신만의 소신, 신념 따위는 주머니에 넣어둘 것이다. 인상이 좋아보이도록 이를 활짝 내보일지도 모른다. 이후 회사에서 가장 힘이 센 누군가가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버튼을 누를 것이다. 합격자 5명을 제외한 695명은 사회인이 될 수 있는 배출구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복권에 당첨 되지 못한 얼굴을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flicker 난 당첨자였다. 몇 달 전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물론 6개월 간 희망고문이 있었다. “몇 명 전환시켜줄지 모른다”,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두루뭉술한 말만을 믿고 열심히 일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발제 거리를 찾았으며, 취재를 위해 새벽 4시에 스쿠터에 올라 도로를 달린 적도 있다. 최종 면접에서 “인상이 어두워보인다”는 임원의 판단에 탈락할 뻔도 했지만 결국 나는 배출구행 공이 됐다. 하지만 배출구로 나오지 못한 인턴들도 있었다. 나와 거의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수준의 학교를 나와 비슷한 일을 하던 친구들이다. 이들은 정규직 전환 조건이 없는 전형으로 입사했다. 이 때문에 인턴으로 일하는 동시에 회사 공개채용 전형을 거쳐야 정규직이 된다. 700개의 공 중 5개가 돼야 한다. 그들은 나보다 더 오랫동안 유리통 안에 갇혀 숱한 부딪힘을 감내하고 있다. 한 인턴 친구가 회사 공채 면접을 앞둔 날, 이 시가 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 중 이보라씨는 약자와 소수자에 관심을 갖고 머니투데이에서 인턴기자로 활동하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2 | 추천: 0
전세훈/ 청년 칼럼니스트 “한 끼 3,000원짜리 식사도 충분히 행복하다.” <조선일보> 시리즈에 등장한 ‘달관세대’는 ‘사토리(さとり)세대’의 조선일보식 표현이다. 사토리 세대는 일본의 장기 불황 속에서 출세 등을 고려치 않고 안분지족하는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조선일보> 논리에 의하면 일본청년들과 달리 한국청년들은 불평이 많다. 기사는 월급 100만 원 가량을 받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청년 몇 명의 생활을 다룬다. 한 끼에 3,000원짜리 식사이지만 황제의 밥상처럼 여기고, 영화관에 가지 못해도 IPTV를 통해서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어 행복하다는 식이다. 행복은 ‘내면’에 있으니 ‘적게 벌어 적게 써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이 ‘달관세대 시리즈’의 결론이다. “내가 노력해봐야 비정규직이지, 좋은 직장은 포기하려고” 이전에 지인과 술자리에서 나눴던 말 중에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말이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정규직으로 취업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이 친구는 본래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며 일명 ‘고시촌’으로 들어갔다가 결국에는 실패를 했다. 취업을 다시 준비하니 어학시험료, 자격증 시험료 등도 만만치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했다. 고시촌에 들어갔을 때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서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가 없어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휴대폰으로 ‘행복은 내면에 있으니 달관하라’는 조선일보의 ‘달관세대’ 시리즈를 보여주었더니 쓴 웃음을 지었다. 현재 한국의 청년들은 달관할 수 있는 여건에 살지 못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대졸 실업자 50만 명, 청년 취업준비생 60만 명이다. 일명 ‘좋은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웬만한 대기업 입사경쟁률이 100대 1을 넘긴 지 오래고, 공무원 시험은 이미 포화상태다. 그럼에도 그나마 안정적인 게 공무원이라며 고시촌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청년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취업 이후도 문제다. 나쁜 근로여건과 저임금뿐 아니라,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성이 청년들을 괴롭히고 있다. 부동산 값은 청년들의 소득에 비해 너무 높아 정착은 불가능에 가깝다. 결혼과 취업관문을 뚫은 청년들도 사교육비가 워낙 비싼데다가 맞벌이가 많아서 육아도 포기했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상태는 ‘안분지족’이 아니라, ‘자포자기’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에서는 달관에 대한 청년들의 조사를 실시했다. 자신이 ‘달관하고 살고 있다’는 응답은 85% 가량이었지만 그 원인은 ‘더 잘살 것이란 생각이 없어서’가 가장 많았다. 어린 시절 치열한 입시 교육 전쟁을 치르고 나면, 취업 전쟁이 기다리고, 취업 후에는 나쁜 노동 여건이, 일생 끝에는 불안한 노후가 기다린다. 어린 시절부터 노력을 해도 해도 계속되는 압박에 이제 스스로를 놓아버린 것이다. 한동안은 ‘꿈과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지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오르지 못할 나무’를 오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 인천일보 현재 청년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OECD 평균의 2배 정도다. 거기다가 정규직 전환율은 10% 안팎이다. 청년들은 저임금-실직-빈곤이라고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다. 이런 여건에서 “청년들 스스로 정치적 지위를 얻어야 한다”는 말도 공허하게 들린다. 정치 참여도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으면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일자리의 문제의 악순환은 신자유주의적 처방으로 풀 수 없다. 일각에서는 ‘정규직 과보호’, ‘퍼주기’ 등 때문에 경제가 어렵고, 일자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하기 편한 국가’를 만들어서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낸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동의 유연성과 기업의 자율성을 높였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몇 년간 기업의 투자는 줄었고, 사내 유보금만 늘었다. 기업 내에 쌓이는 돈이 투자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았다. 최근 대기업은 3만여 명의 채용인원을 줄였다.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 이상의 신자유주의적 처방의 결과는 신빈곤과 양극화의 심화였다. 일자리는 노동시장 보호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 독일은 2005년에 맞은 경제 위기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풀어나갔다. 초기에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유연화를 권고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사회적 협의를 통해 노동시장 보호에 나섰다. 독일은 이 기간에 노동시장에 모든 것을 투자했다. 재훈련, 재취업 교육을 받으며, 기존 임금의 90%를 취업비용으로 받았다. 시간이 흐르자 노동시장은 안정화가 되었고, 양질의 일자리들이 생겨났다. 그 결과 소비시장이 살아났고, 독일의 시장경제는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유럽연합의 맹주자리를 굳건히 했다. 물론 독일과 우리는 다르지만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법은 배워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만족하며 살라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빈곤운동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신》에서 ‘무한 긍정은 흔히 쓰는 이데올로기 덮기 수법’이라고 했다. 잘못된 방향에 대해서 ‘남들도 만족하며 살고 있다. 만족하며 살면 괜찮다’는 말로 청년을 속일 수 없다. 현재 청년세대는 달관이 아니라, 행복이 필요하다.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노력하면 될 것 같아”라는 말을 듣는 날이 언제 올까. 전세훈씨는 빈곤과 고용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50 | 추천: 0
오민석/ 청년 칼럼니스트 ‘세계사 속 혁명’이라는 강의를 수강하면서 어느 날 문득 든 생각. 왜 서양의 혁명만 세계사 속 혁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 영국, 미국, 프랑스……. 수업의 거의 90%가 서양의 혁명을 가르치고 있었다. 한창 <파농>이라는 책을 읽고 있어서 서구가 만든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런 의문은 커져갔다. 대학 강의뿐인가?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혁명은 서양의 것이었고, 그 외의 혁명을 본 기억이 없다. 왜 서양이 아닌 곳의 혁명은, 이를테면 <파농>에 나오는 알제리 혁명은, 또 수많은 독립전쟁은 나오지 않는 걸까? 왜 서양의 혁명만 혁명으로서 우리 교과서에 쓰여 있는 것일까? 서양의 혁명만 ‘혁명’으로 취급하겠다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그대로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것이 우리에게 내면화된 것이다. 서양의 혁명만을 혁명으로 박제하고 그것을 전시함으로써 그 외 것을 테러로 만들어버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은 그들이 기억하고 싶은 것들일 때가 많다. 항상 우리에게 혁명은 서양의 것이었고 제 3세계에서 어떤 민족이, 어떤 나라가 무슨 혁명을 일으켰는지는 알지 못한다. 서양의 합리적인 시민들은 혁명으로 인해 형성되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이 혁명의 주체가 되면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객체가 되었다. 이들은 곧 식민지 시장을 개척했고 독립하겠다는 나라들을 탄압했다. 혁명의 국가 프랑스가 알제리 독립혁명의 진압과정에서 100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민주주의 국가 미국이 베트남에서 30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들의 저항만 혁명이었고 저들의 저항은 테러이고 진압해야하는 것이었다. 알제리 독립혁명 사진 출처 - 인터파크   ‘혁명의 박제’는 서양 이외 다른 국가들에게 폭력적으로 작용하지만 그들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더 이상 미국은 초기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혁명을 서술하고 역사화하고 보물처럼 숨겨두느라 그 정신과 역동성을 잃어버렸다. 일부는 그렇게 혁명이 빛을 잃기를 바랐다. 혁명정신은 이제 위험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새로운 혁명정신을 탐구하는 것보다 독립혁명 당시의 정신은 되살리는 것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미국의 독립혁명을 촉발시켰던 중요한 문건인 <상식>에서 당대의 지식인 토머스 페인은 ‘가장 중요한 것은 평등이고 이러한 평등을 깨 부시는 것을 빈부차별’이라고 말했다. 그에 준하는 차별이 영국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신하처럼 대하는 차별이기 때문에 거기에 저항해야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평등을 가장 중요하게, 빈부차별을 가장 나쁜 것으로 여겼던 사람이 투쟁으로 만든 국가에서 호위 호식하는 지금의 신자유주의자들에게는 뼈아픈 소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혁명의 정신을 박제시키지 않고 이어가려고 몇몇 리버럴한 진보주의자들은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혁명정신 발굴은 어디까지나 국내적인 것이다. 그들 역시 서구의 혁명만 혁명이라는 제국주의적 사고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은 박제는 깨부술지 모르지만 그것만을 혁명이요 하고 ‘전시함’으로써 여전히 다른 모든 것들을 테러의 위치로 규정한다. 사르트르 등을 제외한 프랑스의 진보주의자들이 알제리 독립전쟁 때 냉담했는가. 그들뿐 아니다. 우리도 그들의 사고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이웃나라의 살아 있는 혁명을 접하지 못하고 언제나 지구 반 바퀴를 돌아야하는 나라들의 혁명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게 마치 우리 것인 줄 안다. 그들이 용인하는 몇 가지의 투쟁만 겨우 인권운동에 반열에 오른다. 제도 밖에서 흑인해방을 부르짖었던 말컴 엑스보다 제도 안에서 조금 덜 급진적인 주장들을 펼쳤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훨씬 더 많이 기억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알제리 독립투사 파농은 덜 기억될 뿐더러 ‘테러의 사도’로 불리기까지 했다. 100만 명을 희생시킨 프랑스 군인들은 이렇게 불리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교과서 밖에서 혁명을 찾아야한다. 서양의 혁명이라고 할지라도 지금도 어딘가에서 박제되지 않은 채 흐르고 있는 게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수많은 장소에서 일어났던 혁명도 마찬가지다. 이는 굉장히 주체적인 일이다. 그리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교과서를 볼 것이고(지루해서 그것마저 안 보는 사람도 많겠지만.) 죽은 것들에 매달릴 것이다. 결국 나도 강의실로 돌아왔고 그 수업을 또 들으며 학점을 위해 하나라도 더 외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 강의실에 편안히 앉아 서양의 박제된 그리고 전시된 혁명을 들을 때, 혁명이 되지 못한 그 많은 투쟁들이 조용히 내는 울음소리에 마음 한 구석에서 콕콕 이상한 소리가 난다. 오민석씨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생기는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7 | 추천: 0
남소연/ 청년 칼럼니스트 K가 학교에 천막을 쳤다. 때는 학교 가을 축제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캠퍼스 한 가운데 서는 디스코 팡팡과 바이킹이 떠들썩하게 운행됐다. 학생들은 축제를 즐기기 위해 거리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바로 그때다. 삼겹살 굽는 연기가 시야를 방해하는 천막 옆에서, 에이드 값 흥정하는 소리가 쟁쟁한 천막 옆에서, K는 자리를 펴고 앉았다. 어느덧 한 달이 넘어섰다. K가 쓴 대자보 몇 장이 발단이다. 올해 초부터 학교 건물에 대자보가 붙여졌다가 떼어지곤 했는데 일이 제법 커진 모양이다. 세월호 참사부터 시작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생각을 몇 자 글로 풀어 쓴 게 전부지만, 게시 자체를 거부당한 적도 있다. 붙이고, 거부당하고, 또다시 붙이기를 수차례. K는 대자보를 붙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선, 승인도장이다. 게시물 관리를 담당하는 학생회의 승인도장이 없으면 대자보는 떼어진다. 둘째, 분량이다. 그 어떤 생각도 전지 한 장을 넘어서는 안 된다. 게시판이 협소하기 때문에 전지 한 장 이상의 대자보는 타 학생들의 표현할 자유를 빼앗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셋째, 정치적이거나 학교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서는 안 된다. 학내 구성원들이 불편해한다는 것이 학생회의 입장이다. 마지막, 학생증을 제시해야 하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대자보에 명시해야 한다. 소개팅에서나 요구할 법한 개인 정보를 무슨 이유로 꼬치꼬치 캐묻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실제로 학생회가 내뱉은 말들이다. 비록, 불법일지라도. 후배 K는 학교 도서관 앞에 천막과 간이 게시판을 세웠다. 사진 출처 - 필자 학생(학생회)이 학생(K)을 검열하는 아이러니는 학교의 교칙에서 태동한다. 학생들이 게시물을 부착할 땐, 학교의 권한을 위임받은 학생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행여 무분별한 게시물이 학교의 미관을 해칠지도 모르니, 최소한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리’라는 이름이 K의 입을 가로 막았다. 어찌됐든 그 관리 덕에 학교 게시판에는 기업의 홍보 게시물만 덕지덕지 남아 있다. 대기업 신입사원 모집 게시물부터 새로 출시된 자동차 광고물, 학원 홍보물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그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학교는 언제나, 참으로 조용하다. K는 사실, 학교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자보가 떼어지는 순간에도, 천막을 치는 순간에도 학교의 눈치보다는 학생들 사이의 눈총이 따가웠을 터다. 악의적인 비난과 불편한 시선 가운데서 K는 묵묵히 천막을 지켰다. 다만, 서로 제 할 말 조금씩 내뱉으면서 시끄러워 지자고, 적어도 말하는 사람을 불편해하지 말자고 외칠 뿐이다. 주장하고, 반박하고 또다시 반박하는, 그 엎치락뒤치락 하는 과정 속에서 배움이 있다고 믿는 듯 했다. K는 나와 같은 수업을 들으며, 인간의 절반은 표현이라는 한 교수의 말을 곱씹었다. 자신의 절반을 찾기 위해 오늘도 K는 천막 행이다. 며칠 전에는 직접 나무판대기로 간이 게시판을 만들기도 했다. 이제는 대자보의 크기도 내용도 가로막는 이 없다. K는 단과대학 게시판에 대자보를 붙일 적 보다 몸과 마음이 수월하다며 너스레 떤다. 간이 게시판이 하나 둘 늘어나자 그곳에 다른 학생들의 대자보가 더해지고 있다. 조용한 학교에 별안간 K의 천막이 들어섰다. 남소연씨는 소수자와 약자를 대하는 언론의 문제점을 느끼고 민주언론시민연합에서 신문 모니터링을 하고 있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3 | 추천: 0
안상현/ 청년 칼럼니스트 그때는 틀렸다: 나는 내 표와 싸우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다. 교사 두 명이 각 반에 명함을 놓고 다녔는데 명함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오전 수업 때 뿌려진 명함은 오후 수업 땐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다른 교사들에 의해 수거됐기 때문이다. 얼마 안 있어 두 교사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징계를 당했다. 해당 교사들이 미쳤다고 폄하하는 담임선생님을 보며 교사들 간에도 큰 견해차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전교조가 무엇인지, 왜 저런 명함을 뿌리고 다니는지 궁금해졌다. 아마 그때였을 거다. 현실 속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처음 느낀 건. 그만큼 학교는 ‘정치 제한구역’이었다. 초·중·고 12년간 정치적 중립을 미덕이라 여기는 교육을 받았고 정치적 입장과 표현에 대해 무의식적 거부감을 길러왔다. 당시 명함 사건에 대한 친구들 반응 역시 사회부적응 교사들의 일탈로 여기는데 그쳤다. 우리가 받은 교육은 사회적 갈등보단 사회적 합의를 가르치는데 치중했고, 졸업 후 우리가 마주할 세계는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곳처럼 느껴졌다. 현실은 순응의 대상이었지 저항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갈등과 딜레마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는 채로 성인이 되었다. 대학에서도 정치를 배울 순 없었다. 교수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아이들 수준에 반어적 감탄을 하거나 자기 지식을 자랑하기 바빴고 전공 너머의 것들은 알려주지 않았다. 운동권 선배들의 구호는 점잖은 교육만 받은 나에게 지나치게 과격했고 세련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입시에서 벗어난 고등학생에 불과했고 내게 정치란 단순히 선거제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투표를 할 때도 어디서 많이 들어봄직한 이름이나 TV나 인터넷을 통해 스쳐본 이미지에 표를 던졌다. 심지어 선거 날, 아는 후보가 없다는 핑계로 놀러간 친구도 있었다. 예능을 좋아하던 우리에게 정치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뉴스에 가까웠다. 본격적으로 정치를 배운 건 오히려 거리에서였다. 2008년 촛불시위에 나서는 친구들을 보며 우리가 이 사회에 얼마나 속해있는지 그리고 이 사회가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처음으로 느꼈다. 사람들은 일어나 소리치고 부딪쳤으며 갈등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을 떠나 뜨거운 공기가 흐르는 그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때까지 느끼지 못했던 정치적 감수성이 깨어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내가 뽑은 대통령과 싸우고 있었다는 걸. 홍상수 감독의 17번째 장편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지금은 맞을 줄 알았지만 나의 답은 여전히 틀려 있다. 사진 출처 - 미디어스 지금도 틀리다: 나는 달라졌지만 내 표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적 감수성이 깨어난 후 바라본 세계는 지금까지와 너무 달랐다. 내가 없이도 잘 흘러간다고 느꼈던 사회는 사실 나와는 다른 수많은 내가 만들어낸 사회였다. 던지는 표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를 절감한 순간부터 좀 더 많은 게 알고 싶어졌고 다른 선택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선택지는 좁았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영남과 호남 등 늘 선택지는 2개였다. 고심해 던진 표가 ‘죽은 표(死票)’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2번의 대선과 2번의 총선밖에 못 겪었지만 그중 단 한 번도 뿌듯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19대 총선 때는 기호 17번으로 등장한 청년당에 투표했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로 원내진출에 실패했고 당은 해산됐다. 청년이 직접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의기를 높게 봤지만 현실정치의 벽이 더 높은 게 문제였다. 거대양당이 독점하고 있는 한국정치판에서 청년당 같은 군소정당이 살아남을 확률은 극히 낮았다. 최다득표자만 당선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때문에 군소정당에게 보내는 표는 모두 사표(死票)가 돼버렸다. 단순히 낮은 지지율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 거대 지역정당과 군소정당이 가지는 표 가치는 불평등했다. 2008년과 2012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받은 표에 비해 5~20% 많은 의석수를 차지한 반면 군소정당은 2008년과 2012년 모두 득표율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의석을 얻었다. 기성양당은 과다대표 되는 반면 군소정당은 과소대표 되고 있다. 처음 정치의 모든 것이라 여겼던 선거제도는 정말 정치의 모든 것이 돼 가고 있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무지개였지만 이를 대변한다는 정치는 빨강과 파랑뿐이었다. 양자택일의 강요된 선택을 할 때 마다 정치에 대한 감수성은 다시 마모돼 간다. 투표로는 제대로 된 의사를 전할 수 없었다. 당장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다는 노동개혁만 하더라도 청년을 대변할만한 정치적 채널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 영역에서 청년은 증인이나 피고일 뿐 원고가 될 수 없었다. 그저 여론조사의 대상이다. 정당 정치에서 지분을 갖지 못한 우리들의 목소리는 징징거림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대, 환경, 페미니즘, 다문화, 동성애 등 사회에 대변되고 논의해야할 사회적 이해관계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반영할 정치적 채널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보완책으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제 확대가 주장되지만 실현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논의는 진척이 없고 여당인 새누리당은 되레 농·어촌지역 대표성을 명분으로 지역구 의석을 지켜야 한다며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길 원한다. 이대로 간다면 퇴보나 현상유지다. 내년 총선에도 아마 강요된 선택지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죽음의 표를 던질 것이다. 분명 나는 달라졌건만 내 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나의 답은 여전히 틀려 있다. 안상현씨는 다문화 사회에 관심을 갖고 문제점을 고민하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4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