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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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태민, 이서하, 전예원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안동환(서울신문),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조소연/ 회원 칼럼니스트 사진 출처 - 한겨레  세 명의 여성이 청계천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 사진은 1920년대 지식인 사회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사진 속의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가 당시 여성 지식인 중 최초로 단발을 감행하고 여성단발운동을 적극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단발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여러 신문사가 취재했고, 위 사진이 보도된 후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단발운동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심하던 당시 허정숙이 <<신여성>> 잡지와 <<동아일보>>에 여러 칼럼을 기고했는데, 이를 엮은 책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가 최근 발간되었다.  허정숙의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에서 당시 단발운동을 둘러싼 팽팽한 긴장관계를 느낄 수 있다. 단발운동을 비난하던 어떤 기사에서는 신여성들을 “불완전한 준인간”에 비유하고 “미성품”이라고 표현한다. “신여성의 우대를 받는 것만큼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느냐”, “책임을 깨닫고 동시에 철저한 실행이 있느냐”며 여성운동을 하는 ‘신여성’에게만 엄격한 책임감의 잣대를 부여하고, 운동의 크고 작은 실패에 대해서 ‘철저한 실행’이 없다며 맹렬히 공격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때 쓰인 허정숙의 칼럼은 약 100년이 흐른 지금의 페미니즘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글에 나오는 갈등은 최근 한국에서의 페미니스트 운동을 둘러싼 격한 갈등과 겹치는 점이 많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며 여자도 군대나 갔다 와라’는 반박이나, 혜화역 시위에서의 일부 극단적 행위를 빌미로 페미니즘 자체를 부정하는 글, 상의탈의 시위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며 ‘관종’이냐는 반응들. 이렇게 비현실적인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완전무결 흠잡을 데 없는 ‘보기 좋은’ 사회운동을 요구하는 여론은 단지 단발운동이나 지금의 페미니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 많은 시민운동이 겪어왔던 반응이다.  예컨대 1960년대의 미국 시민권 운동을 떠올려보자. 미국 시민권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인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사상이 강조되곤 한다. 그 바람에 1960년대의 흑인인권을 위한 시위들이 언제나 평화로웠던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그가 주도한 시위들에서도 격한 육체적 충돌과 소동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인권운동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흑인인권운동의 반대세력 중에는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물론 있었지만 주로 대결해야 했던 상대는 인종차별을 타파해야 한다는 당위에는 공감하면서도 운동은 지지하지 않는 많은 백인 온건주의자들이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1963년 “버밍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흑인인권운동을 통해 자유를 찾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백인시민위원회도, 쿠 클럭스 클랜(KKK)도 아니다. 바로 정의보다는 질서를 선택한 온건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정의가 구현되는 적극적 평화보다 갈등이 없는 소극적 평화를 선호한다. 그들은 ”너희들 취지는 알겠으나, 시위라는 방법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면 대부분이 진심으로 성차별을 경멸한다.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를 지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혜화역 시위에서의 문구는 너무 극단적이었다고 말한다. 상의 탈의 운동은 보기에 흉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사회를 바꿔온 시민운동들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미국 시민권 운동에서부터 여성 투표권 운동, 그리고 동성혼 합법화 운동까지 우리가 바라는 얌전하기만 한 운동은 없었다.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 시민운동의 바로 그런 면이 주위를 환기시키고 인식을 변화시킴으로써 결국엔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혜화역 시위 중의 일부 위법한 일탈행동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완벽한 시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스트 운동 자체를 계속 부정한다면, 더운 날씨에 몇 시간씩 피켓을 들고 평화롭게 시위하던 2만 명이 넘는 시위자들의 의지는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그들을 시위로까지 뛰쳐나오게 한 장시간 쌓여온 부정의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양성평등을 원하지만 탈코르셋 운동과 상의탈의시위는 왠지 과하다고 느껴지고, 몰카는 나쁘지만 혜화역 시위는 너무 격하다고 하는 우리들 스스로에게 허정숙의 글을 빌어 반문하고 싶다. “우리들이 완전무결하게 다하여 놓은 것은 어디 있느냐” 라고. 조소연: 프로불편러 대학원생.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나누다 보면 불편할 일들이 점점 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
2018-12-19 | hrights | 조회: 1238 | 추천: 5
주윤아/ 회원 칼럼니스트  늦은 밤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았다. 이 영화는 ‘보았다’가 아니라 ‘들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내가 유일하게 밴드의 모든 노래를 알고 있는 ‘퀸’의 음악을 러닝 타임 내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백하자면 학창 시절 몇 년간 ‘퀸’의 노래만 들을 정도로 심취되어 있었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해괴한 무대의상, 사생활 루머까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동안 그간 오해와 편견으로 엉킨 매듭들이 스르륵 풀렸고, 중반부에 이르자 어렴풋한 기시감이 들더니 엔딩 즈음에는 확신까지 들었다. 평행 이론처럼 누군가의 삶과 흡사한 느낌~누구더라? 바로 여름에 보았던 영화 <휘트니>의 휘트니 휴스턴이었다. <휘트니>는 생전 그녀의 활동 영상과 홈비디오를 샅샅이 찾아내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라 좀 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피부색, 국적, 성별, 음악 장르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이들의 삶은 기묘하게 닮아 있다. 휘트니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흑인치고는 하얀 피부색으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흑·백인 모두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파르시(인도에 거주하는 조로아스터교도)의 후손인 이민자 프레디 역시 인종과 종교의 차별을 끊임없이 받았다. 외모면에서도 휘트니가 인기가 절정이던 시기에도 피부색 때문에 흑인과 백인에게 번갈아가며 인신공격을 받아왔듯, 프레디 역시 외모(돌출된 앞니)로 외면당한 경험들 때문에 이 컴플렉스에서 평생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성적 정체성(영화에서 휘트니 역시 동성 연인으로 암시되는 인물이 나옴)을 공식적으로 드러내지 못했기에 내면의 혼란과 고통이 극심하였을 것이다.  설상가상 휘트니는 어릴 때 성적 학대를 당했지만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다. 프레디 역시 이성의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동성 연인들을 만나는 동안 느끼게 되는 혼돈과 억압 등 여러 가지 부정적 감정이 늘 내재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에이즈(AIDS) 환자들은 ‘악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극단적인 지탄을 받는 시대였으므로 결국 프레디는 발병 사실을 숨기며 적극적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요절했다. 휘트니는 수년 동안 마약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범죄를 저지르는 남편을 뒤치다꺼리하며 자신도 마약에 중독되어 피폐한 시절을 보내다 어렵게 재기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사망하였다. 성적 다양성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금기시되던 시절이었기에 이들은 성소수자로서의 고민을 혼자 감당하며 고통 속에 살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는 이러한 고민을 의논하거나 의지할 대상이 거의 없었을 것이기에 그들의 삶이 더욱 가슴 아프다.  그런데 나는 휘트니 휴스턴의 다큐 영화를 보면서 프레디에게서 느낀 것의 갑절 이상의 연민으로 내내 눈물을 흘렸다. 물론 <보헤미안 랩소디>가 대중적 상업 영화인 이유도 있겠지만 극영화 속의 프레디는 독실한 파르시의 삶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서 독립할 때도, 이성과 결혼(사실혼) 후 결별하고 또 동성의 연인을 만날 때도, 당시로선 파격적인 음악의 장르와 음반을 발매할 때도 대체로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휘트니는 여느 여성들처럼 가부장제 질서 속에 억압된 여성의 삶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휘트니는 아주 어린 시절 부모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동성 사촌에게 성적 학대라는 충격적 경험까지 하고, 부모의 불화와 이혼으로 불안정한 성장기를 보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혹독한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며 천부적인 가창력과 열정으로 당시 미국인이자 흑인 솔로 여가수로서는 유일무이하게 세계적 명성까지 얻게 되었다. 그러나 각종 범죄를 일삼는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 생활로 인해 음악인으로서의 그녀의 삶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불행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자신이 꾸린 가정만큼은 끝까지 지키려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원인조차 불분명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게다가 그녀가 벌어들인 수입은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관리되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급기야 극심한 생활고까지 겪게 된다. 이렇듯 평생 그녀의 삶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고, 대체로 가족이나 남편, 타인과 언론 등에 종속되거나 결정되는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어떠한 이유로도 마약, 약물 등에 빠진 그들의 선택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영화에서 두 사람 모두 늘 노래를 흥얼거리는 장면들이 많은데 그것을 보며 또 가슴이 아렸다.   사진 출처 - 사단법인 시민과 같이가치 with kakao의 #더불어삶 프로젝트 공모전 이미지  내가 휘트니나 프레디를 칼럼에 소환한 이유는 그들의 주옥같은 음반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은 인종, 성적 정체성, 종교, 경제적 배경, 심지어 외모까지 모든 것이 주변인이었다. 3옥타브를 넘는 천재적인 음악성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는 순간에도 주류 세계의 차별과 혐오에 시달렸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우고, 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적 스타들의 삶도 이러할진대, 우리 주변의 이름 없는 소수자와 약자들의 삶을 새삼 돌아보게 되는 추운 겨울이 또 왔다.  ※ 영화를 보고 작성한 내용이므로 실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주윤아: 성평등 민주주의를 꿈꾸는 교육노동자
2018-12-11 | hrights | 조회: 1057 | 추천: 17
주만/ 회원 칼럼니스트  1. ‘대충 살자’. 케이크를 빵칼 대신 가위로 자르고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도 개의치 않게 식사하는 등. 엉뚱한 이미지와 ‘대충 살자’라는 워딩(단어선택)이 궁합을 이룬다. 요즘 SNS에서 뜨고 있는 이 말은, 소소한 웃음을 유발하는 것으로 시작해 ‘맞아, 대충 살아야 해’라는 댓글로 끝을 맺는다.  자신을 사회의 틀에 끼워 맞추고, 주변의 시선에 갇혀 살 필요는 없다. 이미지 속 인물들처럼 융통성 있게 행동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대충 살자’는 말에는 공감할 수 없다. 문제 상황을 재치 있게 해결하는 것과 “아 몰라, 대충 하자”의 차이는 분명하지 않은가? 융통성과 대충은 엄연히 다르다.  SNS 속, 열정을 지녀야 마땅한 청년들에게 ‘대충 살자’라는 워딩이 와 닿았다는 점도 유감스럽다. 오락적인 표현일 뿐인데,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어에는 힘이 있다. ‘대충 살자’라는 말을 계속해서 입에 담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말이 온몸에 흡수되어 가치관으로 굳어질지도 모른다.  2. ‘관계에 힘쓰지 마라’. 이 말 또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공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있어 보였다. 가정, 회사, 연애 등에서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을 내가 감히 헤아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해서 ‘관계에 힘쓰지 마라’하며 ‘관계의 벽’을 치자는 게 올바른 것일까?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지 결성되는 ‘관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관계 속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에 힘쓰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그 노력을 하지 말라니. 지독한 경쟁 사회에서 관계의 회복이 없다면, 어디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말인가.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곁에 두는 게 좋다는 댓글을 남기는 사람에게, 현실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말은, 공동체라면 꼭 있는 ‘문제아’ 때문에 힘 빼지 말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문제아들은 말을 해도 변하기는커녕, 상황만 어렵게 만들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현실화하는 생명체다. 그렇다고 한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해결책일까?  문제아의 초기행동에 반응하지 않으면, 비행의 도구는 점점 날카로워진다. 공격의 대상이 죽은 듯 반응하지 않게 되면 방향을 돌려 찔러댈 것이고, 무방비상태로 치명상을 입은 다른 피해자는 회복하지 못하거나 비슷한 문제아가 되어버린다. 문제아는 내버려 두면, 괴물이 된다. 힘들더라도 가해 행동에 반드시 애정의 말을 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나열한 예시 말고도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존재한다. 관계로부터 파생된 불편함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경우도 많다. 관계에 실망한 사람이 ‘벽’을 치는 선택을 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하게 굳어지는 그 벽을,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허물 수 있을까. 그리고 벽 뒤에 숨어 몸집을 키운 괴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관계에서 받은 상처에는 위로를 보내주고 싶지만, 좋은 인연과 올바른 사회를 막아버릴 수도 있는 태도를 응원하고 싶지는 않다. 사진 출처 - 한겨레  3. 언제인가부터 우리는, 누군가가 쥐어주는 벽돌로 아무렇지도 않게 벽을 올리고 있다. ‘나는 벽돌이나 쌓으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힘들고 재미도 없는, 벽을 올리는 일에 ‘분노’한다. 벽을 충실히 쌓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분노하면서도 벽돌을 쌓는 삶을 멈추지 않는다. 주변에 나보다 벽을 낮게 쌓은 사람이 있다면 ‘무시’하기도 한다. 심지어 벽돌은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 때문에 벽돌을 얻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그 대상을 ‘혐오’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벽돌을 쥐어주면서 ‘너네는 벽이나 쌓으며 살아’라는 ‘그들’에게 분노해야지, 왜 똑같이 힘들이며 벽을 쌓는 사람을 무시하고 혐오하는가.  빼곡하게 들어선 벽 너머로, 벽돌을 뺏고 빼앗으며 다투는 참혹한 소리가 넘어온다. 그 소리를 들으며 미소 짓는 그들이 보인다. 만족해하는 것을 보니, 그들에겐 이 소음이 그저 아름다운 선율 정도로 들리나 보다.  4.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탓에 생겨버린 마음의 구멍에 다른 것이 채워진다. ‘더 재미있는 것, 더 자극적인 것.’  ‘진지충’, ‘감성충’. 고민이나 생각을 말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시도 때도 없이 고민이나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진지함과 감성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다. 자극적인 이야기로 재미를 유발하지 못하면 ‘벌레’가 되어버리는 현실에,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욕설과 허세 그리고 서로를 깎아내리는 말들로 가득하다. 저급한 말로밖에 유머 감각을 뽐내지 못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현대인들은 인간성을 잃은 채 심각한 ‘재미 강박’에 빠져 있다.  현대인들은 과거 수준의 키스씬과 살인 장면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키스하면서 서로를 더듬다가 베드씬 정도는 가야지, 칼로 찔렀으면 피도 튀겨주고 죽였으면 토막도 내야지 그제야 흥미를 보인다. 무뎌진 자극을 충족시키기 위해 너도나도 나서서 상위 자극을 만들어 낸 결과, 이제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금만 검색해도 이런 장면들을 손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나온 ‘범죄 도시’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영화의 현실적인 묘사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나를 만족시킬 만큼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특히 ‘장첸’이라는 인물이 작은 칼로 급소를 정확히 공격해 상대를 단번에 쓰러뜨리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이제 막 피어난 꽃이 꺾일 줄은.  10. 공기 중에서 ‘1. + 2. + 3. + 4.’ 합산되어 ‘10.’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인생을 [1. ‘대충 살자’]는 [2. ‘문제아’]가 그저 [3. ‘나보다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거슬리게 했다는 이유로, [1-1. ‘열심히 살자’]는 꽃다운 청년의 목숨을 영화 속 [4. ‘자극적인 장면’]과 유사하게 앗아갔다. 내가 괴물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와 방법의 모티브를 잘못 짚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원한 관계가 없는 사람을 무참히 짓밟고, 젊은이가 노인을 폭행하며, 서로를 자극적인 말로 혐오하는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현주소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벽(관계or물질)을 쌓는 행동을 멈춰야 한다. 실력 있는 의사조차 “무기력함”을 느낄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과 미친 괴물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면.  -강서구 PC방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주만: 서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작가 지망생
2018-12-03 | hrights | 조회: 843 | 추천: 16
임영훈/ 회원 칼럼니스트  막상 칼럼니스트란 그럴듯한 타이틀을 달다 보니, 인권에 대해 글을 쓰기가 너무나 어렵다. ‘우리시대’의 글들을 보면 꼭 인권에 관련된 것만 있는 것도 아닌데, 단체가 단체인 만큼 머릿  속에 계속 인권이란 단어가 맴돌며 한없이 고민으로 빠진다.  돌이켜보니 인권연대에 가입하게 된 것은 기자 수업에서 만난 선배(기자)의 권유(?)때문이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기자를 준비하며 만났던 몇몇이 인권연대 행사에 따라오게 되었다. (당시는 이미 몇은 기자가 되고, 또 나머지는 다른 쪽으로 진로를 바꿨던 이후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절한 강압인지 권유인지, 선배의 손에 이끌려 후원 회원 가입을 하게 되었다. 어쩌다가 하게 되었으므로 아마도 다들 소액으로 가입을 하였고, 그 때 그 친구들도 아직 회원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 확인해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여전히 회원이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인권연대는 주문한 옷처럼 꼭 맞는 단체는 아니었다. 여담이지만 엠네스티도 후원하고 있는데 (가입 경로가 기억이 안 남), 기본 후원 금액부터 비싼 이 단체는 서구적 시각으로, 영국인지 미국인지 그들만의 입맛으로 세상을 보는 게 느껴져서 왠지 모를 이질감이 들었다.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후원을 끊고도 싶지만, 좋은 일이라고는 변변히 하는 게 없어서 기존에 가입한 몇몇 단체들을 포함해 아직은 후원을 유지하고 있다.    인권연대 같은 경우는 소액이고, 연말연시에 회원들에게 소소한 편지 하나라도 보내주는 마음에 정을 느껴 후원을 그만하고 싶은 적은 없었다. 다만 가끔 어떤 프로그램이나 행사가 눈에 띄어서 가보면, 내가 여기 있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있었다. 시민운동가나 사회 개혁가와 같은 길을 걸을 용기를 내거나 결심은 못했지만, 후원하고 지지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할 의향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고민이 적었어야 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실제는 이랬다. 현실적인 친구들 사이에서 있으면 나는 너무 이상적이라 속 깊은 대화를 꺼낼 수 없었다. 반면 온통 이상적인 논리만 앞세우는 분위기에서는 거꾸로 현실적이 되었다. 마치 어디에도 낄 수 없이 겉도는 느낌이다. 심지어 인권연대 모임에서, 전교조 교사나 기자 등 몇몇 특정 직업이 아닌 일반적인 회사원을 만나서 얘기를 나눠본 기억이 없다. 아마도 내가 못 만났겠지만, 그만큼 나는 비슷한 부류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는, 왠지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는 듯한 소수자였다. 길거리에서는 발로 채일 정도로 많은 오피스 워커가, 아무나 올 수 있는 어떤 모임에서는 극히 소수라는 것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다. (실제로는 아무나 오지는 않긴 하다.)    무언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종종 아주 긴 글도 집중해서 자발적으로 쓰기에, 어느 날 눈에 띈 칼럼니스트 모집에 지원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글을 썼고, 한 편 밖에 안 썼는데도 합격이 되었다. 그리고 멘토 기자님은 풍납토성에 관한 얘기를 술자리에서 듣더니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마음 한 구석은 당시에도 인권의 본질에 가 있었지만, 그런 유의 어마어마한 주제가 부담도 되었던 지라 풍납토성의 복원에 관한 담담한 글로 가뿐히 스타트를 끊었다. 두 달이 금방 지나가고, 지난 여름에 다시 나의 차례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주제가 특정되지 않은 채로 두서없이 두 번째 글을 썼는데, 어찌 된 일인지 사무국에서는 가타부타 답이 없었다. 고쳐서 다시 보내 달라는 말도, 주제가 맞지 않으니 바꿔 달라는 말도 없었다. 여러 경로로 글에 대한 회신을 문의해봐도 답을 못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갑자기 연락을 받았는데, 너무 길고 요점이 없으니 글을 줄이고, 기한은 딱히 정해진 것이 없으니 글이 완성이 되면 보내 달라는 전화였다. 기다리다가 받은 답 치고는 맥이 빠졌고, 이런 단순한 답을 주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 후에 글을 다시 써서 보내지 않았다.  그 후, 막연히 페미니즘을 비판한 글의 기조가 문제였다고 지레 짐작만 한 채로 시간이 흘러갔다. 내가 글을 고쳐서 보내지도 않았고, 혼자서 짐작만 하고 놔 버렸으니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치니 글을 쓸 의지가 생기지 않았고, 6개월 만에 다시 글을 써 달라는 문자를 받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은 의욕이 상실된 상태다. (연초에 글을 1년간 쓰겠다고 약속했으니 의무가 있고, 그간의 해태에도 책임이 있으니 지금이라도 써보려 한다.)    길고 긴 서론을 끝내고 본론을 얘기하자면, 어쩌다 보니 나와 같이 회원 활동을 하고 있는 ‘보통 사람’이 인권연대에 기고하는 글에 노동 운동이나 페미니즘 등에 관한 비판적 시각을 자유롭게 드러내기는 상당히 어렵다. 미리 짐작하는 것이지만, 덮어놓고 반인권이라는 딱지가 붙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힌다. 인간의 권리 중 자유롭게 말할 권리(Freedom of speech)는 가장 기본적인, 기본권 중에 기본권인데, 나 스스로 심각하게 검열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자체 검열을 감수하고서 글을 시작하더라도, 그런 글이 무턱대고 받을 비난과 비판을 예상하면 차라리 안 쓰는 게 낫다는 생각에 지레 펜을 놓고 싶은 심정이다.    진부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거래처 중에 비교적 큰 회사가 있는데, 그곳의 70대 사장님은 종종 정치적 얘기를 꺼내며 타 회사 직원인 나의 의견을 물어보시곤 한다. 다른 회사 직원일 뿐인 나의 의견을 강압하거나 하지는 않으시지만, 요새의 젊은이들과 자신의 의견이 전혀 다르다는 점은 명백히 하시는 편이다.  그런데 한번은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 바이어와 동석해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한국의 미래가 걱정’이라며 어설픈 영어로 바이어에게 말씀하시다가, 그 얘기를 애써 못 들은 체하고 있는 나를 보셨던 건지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시더니 나를 보고 한 번 더 말씀하셨다. (기분이 상하신 것인지 꾸짖는 듯 했음.) 마치 정치적 의견조차 상거래의 갑을 관계에 종속되는 듯한 압박을 받는 듯했다. 당시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 못하고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자격지심일 수 있지만, 회원 칼럼니스트가 된 이후에도 스스로 압박을 받는다. 나에게 말할 자격이나 권리는 없는 것 같고, 방향과 정답은 정해져 있으니 그에 따른 지침을 벗어난 글은 쓰면 안 된다는 무언의 분위기를 느낀다. 노동자나 여성이 사용자나 남성을 공격하고 폄하하는 글은 가능해도, 그 반대는 반인권적이라는 딱지가 붙을 것만 같은 압박을 느낀다.    이것이 나만의 편견이기를 바란다. 사용자도 사람이며, 남성도 사람이다. 동물 복지까지 운운하는 마당에, 어느 누구도 처한 입장이나 사상이 다르다고 일방적으로 비난 받거나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가 존중 받아야 하듯 사용자도 존중 받아야 하고, 이슬람이 존중 받아야 하듯 개신교도 존중 받아야 한다. 일례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저질러 대중의 단죄를 받았던 대한항공 조현아 전 사장의 경우, 그 자신이 재벌가로서 특권층이면서 동시에 여성으로서 미디어나 대중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인권 또한 있었다. 하지만 마녀 사냥 당하듯, 이런 측면은 분노의 광풍에 휩쓸려버렸다.  21세기에 동성애에 대한 포용이 강조되듯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 가치관도 그 반대편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우열이 없다. 어떤 것을 취하고 그 반대편은 버리거나 짓밟아야 한다는 극단적 사고는 사회적으로 합의될 수도 없으며, 폭력적 방법이 아니고서는 쟁취될 수도 없다. 더 크게 보면, 현재의 가치 판단으로 진보적이고 최첨단을 걷는 듯한 사고도, 마치 우리가 구한말을 보듯 한 세기가 지난 사람들이 보면 한참 구식으로 보일 수 있다. 좀 더 멀리서 봤으면 좋겠다. 당신의 생각과 주장은 그토록 절대 진리인가?    해가 지날수록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이 더더욱 와 닿는다. 마치 자신이 정의이고 미래인 것처럼 목소리를 드높이지만, 타자를 공격하고 비난하며 스스로의 입장만을 목소리 높일 뿐 전체 구성원의 조화에 대해서는 이만큼의 배려나 고려도 없는 특정 단체들은 오히려 더 많아지고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 정답이 없이 각기 자기 계층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고 쟁취할 뿐, 암묵적 양보와 신의 같은 것은 가족 사이에도 존재하지 않는 듯 소멸하고 있다. 때로는 인권 단체도 부지불식 간에 단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까지 있다. 인권에 좌와 우가 있는가, 우파는 인권이 없는지, 아니면 우파는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지, 많은 의문과 생각이 꼬리를 문다.    개인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각개 전투가 발생하는 사회 현실이 못내 피로하다. 이런 갈등들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시민 단체들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인권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필요하듯, 혼돈의 시대에 대한 자각, 그리고 인권 단체들 스스로의 끊임없는 변화를 바라게 된다. 물론 그 누구라도 답을 찾기 어려운 주문이다.  전대협 의장이었던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제는 민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오늘의 세상은 결코 어제의 세상과 같지 않다. 오늘의 약자는 어제의 약자가 아니며, 침묵하는 다수가 약자가 되어 속으로 분개하고 있는 현실을 보는 눈도 인권단체에 필요해졌다고 느낀다. 강자와 약자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구분되지 않을 만큼,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졌고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임영훈: 미국에 실을 팔고 있습니다. 가끔 천도 팔지만 어떻게 해야 팔리는지는 모릅니다.
2018-11-21 | hrights | 조회: 1075 | 추천: -3
박선영/ 회원 칼럼니스트  인간은 그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자의 위치가 정해진다. 이 사회에서 나의 위치는 여성이고, 무산계급의 딸이고, 교육 노동자이고,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주의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문제를 생각한다.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하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권력과/돈과/착취와/형무소와/폐허와/공해와/농약과/억압과/통계가 남을 뿐이다. 김광규, <생각의 사이> 사진 출처 - 필자  나는 무엇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을까? 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사회에서 정해지는 그 사람의 위치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우리 사회가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여러 정체성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이고, 무산계급의 딸이고, 교육 노동자이고,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주의자인 내가 서 있는 위치, 그 자리에서 내가 경험하는 것들은 타인과 구분되는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상대적인 힘의 차이로 인해 억압과 차별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문제 앞에서는 여성으로서 성평등을 생각했고, 또 노동자로서는 노동권을 생각했다.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 많은 가운데 붙잡을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권리’일 것이다. 인간이 지난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쟁취한 ‘인권’이라는 발명은 한 인간이 빼앗긴 힘을 되찾아준다. 그래서 세상이 고통스러울수록 인권을 말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너도 나도 거리로 나와서 모이고, 외치고, 길을 막고, 관심과 연대를 요청한다. 누구나 자신이 당면한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각자의 권리는 경합하고 갈등한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불편하다. 세상에는 문제가 너무 많고, 오늘은 어떤 이가,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어려움을 말한다. 권리는 항상 침해당할 때 호명된다. 인권은 인간이 고통 받을 때 소환된다. 인권은 안 좋은 사건과 함께 나타난다. 인권이 자꾸 등장할수록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그래서 관심을 갖기가 부담스럽고, 마음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의 힘듦을 듣고 있는 것은 더 고통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만을 생각하게 된다.  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한 가지 이유만이 아니다. 사회가 만든 여성, 20대, 무산계급 노동자, 비혼주의자의 위치는 나를 힘들게 하는 다양한 이유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많다고 해서 고통이 단순히 커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동자여서 겪는 문제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또 다른 성격의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는 고통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 교사로서의 나는 학생들에게 상대적으로 힘의 우위에 서서 권력을 행사한다.   이 사회가 여성에게 정해준 자리는 교육 노동자로서의 나의 위치를 재조정 했다. 여교사는 교사와는 또 다른 위치에 있는 존재였다. 한 교사가 학생과의 사이에서 겪는 문제는 ‘여교사라서 애들을 잘 못 잡기’ 때문이다. 한 교사가 선배 교사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것은 ‘어리고 경험이 없는 여교사라 단지 챙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때 결혼과 출산 유무는 여교사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재조정한다. 한 교사가 일등 배우자감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는 ‘엄마인 여교사라서 일찍 퇴근하여 가사와 육아를 전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교사가 학생들을 잘 이해하지 못 한다는 말을 듣는 이유는 ‘애를 안 키워본 여교사라 아이의 마음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을 힘들게 하는 것들 중 내가 여성 노동자여서 힘든 점이 있었으나, 정규직 노동자여서 피해가는 것이 있었다. 비혼주의자여서 힘든 점이 있었으나, 비장애인이어서 피해가는 것이 있었다. 같은 여성이어도 나는 피할 수 있고, 어떤 여성은 겪어야 하는 고통이 있었다. 사람들이 서있는 다양한 위치에서 나는 어떤 누군가보다 더 힘을 가지고 특권을 누리고 있기도 했다. 나를 설명하는 그 많은 정체성들이 만들어 낸 지금 나의 위치를, 그 위치로 인해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나를 관통하는 억압의 축이 교차하고, 동시에 타인을 억압하는 상황에서 내가 당장 무엇을 해야 하고,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여성의 자리에서 교육 노동자의 자리에서 나의 고통을 호소하고 권리를 주장하기에도 바쁘고 벅차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교사로서 학생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규직 교사로서 비정규직 교사들이 겪는 부당함의 문제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 그러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약자에 대한 시혜적 태도였을까.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을까.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자리에 서있는 사람들과 연대할 방법을 몰랐고 그러한 역량도 없었다. 단지 그냥 잠깐의 연민이나 공감으로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난민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보냈던 것 같다. 진정한 연대가 무엇인지,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런데 우리가 연대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드니까 서로 도와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만으로는 연대의 힘을 발휘할 수 없고, 끝까지 지속할 수도 없다.  여성이 겪는 문제를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만 이해할 때 그 사이로 많은 것들이 빠져나간다. 일회용 생리대의 발암 물질이 문제가 되었을 때 여성의 건강만을 생각했기에 여성 소비자들이 대안 생리대를 이용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듯 보였다. 하지만 수많은 일회용 생리대의 사용으로 오염된 환경, 일회용 생리대를 생산하며 발암 물질에 노출되는-거의 대부분이 여성일- 노동자들, 대안 생리대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 여성은 그 사이로 빠져나갔다. ‘여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어떤 여성들은 그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  다 너 때문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쉽다. 사실 하나만 생각하기도 벅차다. 하지만 우리를 고통 받게 만드는 사회 구조는 일부의 의도와 이익을 위해 다층적인 위계를 만들어 유지된다. 그리고 ‘우리’와 ‘적’을 이분법적으로 규정하여 억압의 구조를 보이지 않게 한다. 가려진 구조를 제대로 보려면 ‘우리’만 생각해서는 역부족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언어로 말하고 싸워가야겠지만 ‘우리’에 대해서 질문하고 관점을 확장해야 한다. 관점을 확장하면 나와 연결된 타자가 보인다. 이때 우리는 도와주어야 한다는 책무성을 띤 부담스러운 연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연대가 시작된다.    여성만 살기 좋은 세상이 있을까? 노동자만 살기 좋은 세상이 있을까? 그런 세상을 상상한다면 여성 안의 수많은 차이, 노동자 안의 수많은 차이가 빠져나간다. 그렇다고 한 개인이 세상의 모든 차이를 감당할 필요는 없다. 나는 모든 자리에 있을 수 없다. 노동 운동만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페미니즘만으로도 세상을 구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사이를 메워줄 타인의 존재가 절실하다. 처음에 페미니즘을 막 만났을 때는 페미니즘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페미니즘의 완전하지 않음 덕분에, 내 경험과 지식의 한계 덕분에 타자와 더 잘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통해 ‘생각의 사이’를 채워갈 것이다. 박선영: 초등학교 교사 5년차. 페미니스트가 된 후 이전의 삶이 모두 흑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삶을 다시 쓰는 중.
2018-11-12 | hrights | 조회: 1277 | 추천: 38
조소연/ 회원 칼럼니스트  올해 3월 대학원에 입학해서 새로운 학생증이 나왔다. 그동안 직장인으로서는 받지 못했던 각종 학생 할인 생각에 들떠서 학생증을 보다가 내 사진과 이름, 그 아래에 적힌 열 자리 학번이 눈에 띄었다. 첫 네 자리 숫자는 2018 나의 입학연도이고, 그다음 세 자리는 학과 고유번호, 그리고 마지막 세 자리 숫자는 친구들과 비교해보니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정해진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내 학생증을 길에서 발견했을 경우를 상상해보았다. 사진이 있으니 내 얼굴과 이름은 물론이고 입학 연도로 내 나이대도 대충 추측할 수 있고, 학과번호를 보면 내가 주로 학교 내 어떤 건물에서 생활하는지도 다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학생증에 있는 이 정도 정보 노출로 학교에 문제를 제기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미 이것보다 더 심한 정보 노출이 국가적으로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출생신고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주민등록번호라는 고유번호를 강제적으로 부여받는다. 주민등록번호 첫 여섯 자리는 생년월일이고 그다음 한 자리가 성별인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 다음 세 자리가 출생지 고유번호인 것은 최근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매일같이 들려오는 개인정보 유출 뉴스에 ‘개나 소나’ 다 안다는 주민등록번호이지만,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의 나이, 생일, 성별 그리고 출생지까지 알 수 있다는 게 썩 유쾌하진 않다.  웹사이트에 가입할 때, 술집에서 나이 검사를 할 때, 학교 도서관을 이용할 때. 우린 거의 매일 고유번호 공개를 강요받는다. 내 나이, 고향, 전공이 너무나 당연히 낯선 사람들에게 까발려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당연히 심각한 정보권 침해이다.  우리에게 붙여지는 고유번호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정보유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도입부분이 기억이 나는가? 죄수들 몇천명이 밧줄로 프랑스 전열함을 끌고 있다. 교도관 자베르는 “죄수 24601, 고개를 숙여”라며 장 발장에게 노역을 강요한다. 장 발장은 “내 이름은 장 발장이에요”라고 거듭 말한다. 하지만 자베르는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이렇게 사람을 번호로 지칭하는 장면은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보잘것없이 취급되는지를 보여준다. ‘번호’라는 단어의 한자 뜻을 풀이하면 ‘차례로 외친다’가 된다. 번호는 아무 의미 없이 1번 다음엔 2번, 그 다음엔 3번, 이렇게 기계적으로 차례차례 붙여진다. 그래서 번호는 그 사람의 삶과 개성을 하나도 담아내지 못한다. 사진 출처 -  YTN  우리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자주 번호를 부여받았다. 태어나자마자 주민등록번호를 받고 초, 중, 고등학교 시절 12년 내내 ‘몇 학년 몇 반 몇 번 누구’라고 불리었고 그리고 대학교 학번까지. 우리는 매년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고유번호를 부여받으면서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었다. 번호가 붙는 일이 너무 잦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 이름의 일부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오늘도 나는 내 학생증만 여러 곳에 보여주고 다니면서 ‘00대학교 00학과의 00번째 학생’으로 살고 있다. 조소연: 프로불편러 대학원생.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나누다 보면 불편할 일들이 점점 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
2018-10-29 | hrights | 조회: 835 | 추천: 6
김현진/ 회원 칼럼니스트  특수교육보조원으로 일하던 공익요원이 지속적으로 장애학생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통합교육에 대한 수요증가로 특수학교에 필요한 인력에 비하여 예산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던 교육부가 병무청에 인력 지원을 요청하면서 2006년부터 공익요원을 특수교육보조원으로 배치한 것이 그 시작이다. 원래 특수학교에 배치된 공익요원들은 일반 행정업무만 담당했는데 이후 이들은 특수교육 보조원으로도 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장애학생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거나 생활하는 동안 신변처리와 급식지원, 교내외 활동 및 등하교 등을 지원했는데 문제는 이들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인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를 할 수 있어야 전문적인 인력이냐고 묻는다면,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장애학생의 수업 및 활동을 보조하는 데에 있어서 물리적 보조는 물론 학생에 대한 정서적인 보조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특수교육보조원의 장애정도나 특수교육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예산부족으로 인하여 임시방편으로 투입하기 시작한 인력이기에, 이러한 사건은 늘 발생 가능성이 잠재해 있었을지 모른다.  특수교육보조원은 단독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교사의 지시에 따라 장애 학생을 보조해야 한다. 즉 ‘교수학습 활동, 신변처리, 급식, 교내외 활동, 등하교 등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 및 학교 활동에 대하여 보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교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특수교육보조원은 장애학생과 거의 밀착하여 생활하는데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이기 때문에, 장애학생을 위한 수업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교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해 둔 것 같다.  나는 장학사로 전직을 하고 작년 9월 1일부터 올해 2월 말까지, 한 학기 동안 특수교육업무를 담당했었다. 그 때 늘 하던 생각은 특수교육은 고도의 전문성 그 이상을 요하는 분야라는 것이다. 특수교사는 사명감만으로 일하기는 힘들다. 이는 특수교육보조원도 마찬가지이다. 언어로만 봤을 때 그저 ‘보조역할’이지 법령에 나와 있는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 및 학교 활동에 대한 보조 역할’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장애학생의 신변처리 문제의 경우나 성인 학생이 많은 경우엔 특수교사에게도 혹은 활동보조원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특수교사나 혹은 공익요원을 포함한 활동보조원들은 장애학생에 맞는 일도 가끔 있다. 심지어 얼굴에 침을 뱉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하는 장애학생도 있다.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장애학생을 힘으로 제압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위험하다. 왜냐하면 앞뒤 맥락을 모르고 그 장면만 봤을 때 교사나 활동보조원이 학생을 학대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특수교사나 보조원 모두 녹록지 않은 조건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단순히 성품이 나쁜 어느 공익요원에 의한 일로 규정된다면, 이런 일은 또 일어날 것이다. 제도가 사람을 통제할 수 있도록 특수교육보조원 제도를 재검토 할 시점이다.  한 가지 더, 이번 사건이 일어난 학교를 검색해 보니, 사립학교다. 올해 스쿨 미투 운동이나 장애학생 (성)폭행 관련 사건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보면 ‘역시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립학교법과 사립학교의 특성상, 이 일은 다른 사립특수학교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기회에 사립학교법에 대한 개정여론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이번 사건의 핵심은 이런 일이 지속되는 동안 도대체 교사는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특수교육 보조원은 특수교사 혹은 ‘교사의 지시’에 따라 ‘교수학습 활동, 신변처리, 급식, 교내외 활동, 등하교 등 특수교육대상자의 교육 및 학교 활동에 대하여 보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인데, 도대체 그 ‘지시’를 하는 교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갑자기 목이 확 메어온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장애학생에 대한 폭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면 교사가 몰랐다고 하는 것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까?  나는 이번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태도를 재건축했으면 좋겠다. 장애인을 인격체가 아닌 그저 교육의 대상으로 보는 태도가, 더 좋은 특수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 하에 장애학생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물론 특수교육 보조원으로서의 전문성도 없는 공익요원들을 인력으로 ‘활용’하는 것에 그쳤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장애학생도 특수교육보조원 공익요원도 그저 교육의 대상, 활용할 인력으로 대상화된 것이 이번 참사를 낳은 것은 아닌가 한다.  이번만큼은 잠깐 소란스럽다가 장애학생 보호자들의 눈물겨운 인터뷰가 몇 번 나오고, 전수 조사한다면서 교실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이벤트로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가 이 사건을 보면서 그저 장애학생이 안됐다는 연민정도나 보내고, “저 공익요원이란 놈은 어쩜 저럴 수 있냐, 천하에 인간쓰레기” 같은 분노만 쏟아내고 마는 것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분노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라, 문제 인식의 출발점이다. 그저 분노만 한다면 그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분노하지 말고, 냉정하게 다시 나는, 우리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서정주 시인의 시 ‘신선(神仙) 재곤(在坤)이’에서처럼, 마을의 앉은뱅이였던 재곤이에게 [‘재곤이가 만일에 목숨대로 다 살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罰)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오고 있] 던 공감과 연대가 상식이 되는 시대를 꿈꿔본다. 김현진 : 18년 간 국어교사로 살다가 더 많은 사람들과 행복해지고 싶어서 직업을 바꾼 철들기 싫은 어른
2018-10-23 | hrights | 조회: 819 | 추천: 6
  주윤아/ 회원 칼럼니스트  여자들에게 여행이 좋은 이유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삼시 세끼 밥을 차리지 않아도 되니까” 라고 이구동성 답할 것이다. 밥 중에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 준 밥’이라는 명언(?)도 있듯, 여자들에게 매 끼니를 마련하는 일이란 중노동이자 일상이다. 어릴 때는 엄마의 부엌일을 돕고, 청소년기에는 남자 형제들의 간식까지 챙기고, 독립해서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소박하게 자신의 밥상을 차린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어느덧 자신도 엄마가 되어 가족의 밥상을 차리고 이 정도로는 부족한 건지 어떤 경우에는 자녀의 자녀, 즉 손주들의 밥상까지 또 차려 올리는 것이 여자의 일생이다. 우리는 이것을 여자의 ‘팔자’라고 불렀다.  알고 보면 식사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지 않는 나라가 꽤 많다. 이는 부엌이 아예 없거나 최소의 조리 공간만 있는 주거 형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모두가 바쁜 아침 식사는 간편식으로 각자 해결하거나 집이나 직장 근처의 식당에서 가볍게 사먹는 문화가 흔하다. 물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다. 우리도 이렇게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는 문화가 (엄마들의 마음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연스럽게 확대되어 정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집 밥, 그것도 엄마가 손수 해 주는 일명 ‘엄마표 집 밥’을 이리도 애정하는 것일까?  물론 인간에게 먹거리는 매우 중요하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을 절대적으로 부정하기도 어렵다. ‘밥이 보약’이라거나 ‘밥심으로 산다’는 말들도 있듯,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노동하기 위해, 그리고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건강한 음식을 선별하여 거르지 않고 잘 먹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런데 왜 꼭 집에서 만든, 그 중에서도 엄마가 지어준 밥을 최상의 가치로 꼽고 예찬하느냔 말이다. 반면 유명 셰프(chef)들 중 남성들만 주로 조명 받는 현실도 아이러니하다. 맛과 간의 조합에 대해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엄마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음식이 원산지도 불분명한 식당 음식보다 몸에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오롯이 엄마 혼자만의 희생으로 차려진 밥을 먹으며 나머지 가족들만 행복에 겨워한다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앞으로도 지속되는 것이 맞는가? 명절 음식도 꼭 엄마와 여자들이 손수 만드는 것이 조상에 대한 예의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대목 또한 같은 맥락이다. 어쩌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남편의 조상들에게 공감은커녕 유체이탈의 상태로 그저 작년처럼 올해도 쭈그리고 앉아 전을 부치고 있을 뿐이다. 하루도 모자라 시댁 가족과 친지들이 시간차 공격으로 방문하는 며칠 동안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여성들은 손님상 차리는 중노동을 반복한다.  결국 너도나도 ‘엄마표 집 밥’을 극찬하는 논리는 엄마에게 가사노동을 전가하며 가부장제를 공고히 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간혹 엄마가 부재할 때나 가족에 대한 이벤트로 아빠나 다른 가족이 차린 밥상은 대체로 간편식이거나 배달 음식이기 십상이다. 물론 가족 중에 요리 솜씨가 있는 이가 있다면 좀 더 근사한 밥상일 수는 있겠지만 어쨌거나 일회성이다. 그래서 동서고금 엄마가 그립고 엄마가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훈훈한 결론으로 미화되어 왔다. 동화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돼지책>을 보면 비슷한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가사와 돌봄 노동을 전담하고 있는 이름조차 소개되지 않는 엄마가 아무런 말도 없이 가출(?)하고 난 후 아빠와 자식들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일상 속에서 결국 엄마(사실은 엄마의 노동력)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엄마가 돌아온 뒤 나름대로 가사 노동을 분담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가사와 돌봄 노동을 공평하게 나눈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누구나 무신경하게 이야기하듯 원래 엄마의 일은 가족들이 잠시잠깐 ‘돕는’ 시혜일 뿐이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책을 읽고도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엄마가 전업주부가 아니라 워킹맘이라는 점이다. 집안일을 전담하면서 직장까지 다니는 엄마는 오직 ‘중요한’ 회사와 학교에서만 일하고 공부하는 아버지와 자식들과 존중은커녕 소통도 불가능했던 것이다. 1986년에 발행된 이 그림책을 2018년 대한민국 엄마들이 깊이 공감하는 이유를 가족 모두 성찰해 볼 때다.  30년 전과 지금의 엄마들의 모습을 비교하며 읽어 보세요. 앤서니 브라운의 명작 ‘돼지책’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지금은 남녀의 노동과 역할의 구분이 무의미한 시대이다. 시시각각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가족 형태들도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엄마표 집 밥’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이제 사양한다. 엄마들더러 이제 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밥은 엄마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의 해법을 ‘대한민국 출산지도’(이 지도는 마치 중세시대 유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같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할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가장 현실적인 부담과 고통을 덜어주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아파트 단지마다 공동 식당을 의무로 조성하거나 저렴하고 안전한 외식 업체들을 안착시켜, 삼시 세끼 집 밥이 아니라 외식도 전혀 거리낌없이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를 촉구한다. 직장에서 오후 시간 과중한 업무에 치이면서도 ‘오늘 저녁 뭐 해먹지?’하는 고민, 이제 그만 좀 하고 싶다. 주윤아: 성평등 민주주의를 꿈꾸는 교육노동자
2018-10-16 | hrights | 조회: 1200 | 추천: 47
주만/ 회원 칼럼니스트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  해방에 이은 분단과 전쟁, 지금까지 이어온 남북 대치. 한반도의 지난 70년은 갈등 그 자체였다.  TV 생중계로 지켜본 15만 평양 시민 앞 남한 대통령의 연설 현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고 존엄’에게만 충성해야 하는 줄 알았던 북한 인민들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었던 남한의 지도자에게 갈채를 보냈다. 남북이 상투적으로 보여 왔던 치열한 기싸움도 없었다. 현장의 분위기는 남북이 대치 중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였다.  어느 한쪽이 승리해야만 끝날 것 같았던 길고도 깊은 갈등. 하지만 능라도에는 의기양양한 승자도, 비참한 패자도 없었다.  대통령을 찬양하거나 이념 대립을 원하는 글은 아니다. 그저 그날, 갈등이 해소되어 가는 현장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 삶은 갈등의 연속이다.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범답안도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논리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총과 칼을 들지 않았을 뿐, 갈등의 현장은 입으로 싸우는 전쟁터와 다름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인권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갈등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였다. 인간답게 존중받으며 살고 싶다는 나의 소망에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 인권이었다.  ‘나는 특별하고 귀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사회적 갈등과 막막한 나의 삶의 탈출구가 되리라 여겼다.  갈등 상황을 마주하면 인권으로 포장한 나의 신념을 외쳤다. 잘못된 것이라 판단되면 공격적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나 때문에 누군가 불편한 상황에 놓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가 나처럼 자신의 신념을 마음껏 외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그럴수록 주변은 힘들어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긴장된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예민해진 분위기에 대부분 피곤해 했다. 어차피 내 생각이 바뀌지 않을 거라 짐작하고는 화제를 돌리거나 말을 아끼는 사람도 있었다.  나 또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불만스러웠다. 나의 신념에 동의하지 않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고민이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하기도 했다.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욕심. 은근한 우월감. 어느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불편한, 그리고 누군가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념끼리 대결해 한쪽이 승리하면 갈등이 해소될 거라는 생각은 잘 들어맞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인권이라는 좋은 가치로 오히려 불편함을 만들어내고 있는 내 모습에 절망했다. 무엇이 나를 갈등 해소는커녕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으로 만든 것일까. 좌절했던 나에게 그날 연설은 말하고 있었다. 사진 출처 - 폴리뉴스  “동포 여러분, 우리 민족은 우수합니다. 우리 민족은 강인합니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의 연설에 ‘나’는 없었다. 온통 ‘우리’로 가득했다. 반대로 나의 신념에는 ‘우리’가 없었다. 오직 ‘나’만이 가득했다. 승자가 되려는 싸움 없이, ‘우리’라는 말과 함께 갈등이 해소되어가는 현장을 보고 알게 되었다. 갈등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잘못되었음을.  이미 읽었던 인권 관련 서적들을 다시 펼쳐보았다. 그제야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가 보였다. 인권 안에서 ‘우리’는 ‘나’만큼 소중했다.  분명 모든 사람의 신념은 존중받아야 한다. 올바른 원칙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때로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싸워야 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남과 북이 서로 승자가 되길 원하며 갈등을 지속했다면, 그날과 같은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나는 나의 신념이 반드시 승리하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접어두려 한다. 어느 한쪽의 소신이 승리해야 하는 전쟁 같은 세상보다는, 나의 소신과 다른 이의 소신이 화합할 수 있는 감동적인 세상을 추구할 것이다. 풀릴 것 같지 않던 남북 간의 갈등이 ‘우리’라는 가치를 통해 해소되어가는 것처럼, 내 주변의 갈등들도 ‘우리’라는 가치로 해소되길 기대하며. 주만: 서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작가 지망생
2018-10-10 | hrights | 조회: 819 | 추천: 17
박선영/ 회원 칼럼니스트  여자 고등학생의 일상을 1인칭 게임으로 체험해본다면? 아침에 일어난 학생에게 퀘스트(게임 캐릭터가 해결해야 할 임무)가 주어진다. 첫 퀘스트 ‘무슨 속옷/양말을 입을까?’에서 학생은 검은색 브래지어와 페이크 삭스를 선택한다. 학교에 도착하자 교사는 ‘여학생이 발목을 가려야지, 남자 꼬시려고 검은색 브래지어 입었니?’라고 말하지만 ‘선생님의 말에 반박할까?’에서 학생은 ‘아니오’를 선택한다. 다음 퀘스트에서 하복을 착용한 학생은 같은 사이즈지만 기지개를 켜도 넉넉한 남학생의 하복과 손을 들면 허리가 훤히 보이는 자신의 하복을 비교한다. 복장뿐만이 아니다. 동아리 신청 퀘스트에서 축구 동아리를 신청한 학생은 체육 선생님에게 “여학생은 매니저만 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수업 시간에는 더 어려운 퀘스트가 이어진다. 국어 시간에 교사가 문학 작품을 해석하면서 여성적 어조와 남성적 어조로 구분하여 설명하자 학생은 이에 의문을 품는다. 사회 시간, 저출산 고령화를 설명하던 교사는 여자가 애를 안 낳아서 나라가 망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퀘스트 ‘교사에게 반박할까?’에서 ‘예’를 선택한 학생은 “여자는 애 낳는 기계가 아니에요”라고 교사에게 말했다가 혼이 난다. 학교 복도에 붙어있던 포스트잇을 매일 그냥 지나치던 학생은 퀘스트 ‘나도 붙일까?’에서 ‘예’를 선택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뉴 룰즈(New Rules)팀의 십대 에디터들이 제작한 영상의 내용이다. 이 영상의 제목은 ‘이상한 학교의 앨리스’. 사진 출처 - 하자센터X닷페이스 미디어 캠프 <뉴-뉴놈>에 참가한 뉴 룰스(New Rules)팀의 십대 에디터들이 제작한 영상 <이상한 학교의 앨리스>  게임 속 이상한 학교보다 현실의 학교는 더 심각하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스쿨미투’가 이를 증명한다. 얼마 전 서울 노원구 한 여고의 미투로 징계를 받은 교사는 무려 18명이었다. 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스쿨미투의 힘과 학생들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스쿨미투는 단지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해당 여고 졸업생들이 ‘OO여고 성폭력 뿌리뽑기 위원회’를 조직했던 것처럼, ‘성폭력을 뿌리 뽑는 것’이 스쿨미투 운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의지다. 최근의 스쿨미투 운동은 트위터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주도하고 있다.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는 지역별, 학교별 스쿨미투 계정을 통해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성차별, 성희롱, 성추행 등이 공론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교사들은 난색을 표한다. 스쿨미투 때문에 ‘교육적 신념을 지킬 수 없으며 무기력해진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일찍부터 성교육을 받아와서 자신의 동의 없는 신체 접촉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 그것을 표현하거나 신고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고 말한다. 교사들은 단지 그 동안 해오던 방식대로 학생과 소통하겠다는 것일 뿐인데, 예민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학생들이 교사의 의도를 왜곡하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교육열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일부 교사들의 일탈행위를 일반화한다고도 말한다. 더 나아가 교사 불신이 확산되어 교권이 추락한다고 걱정한다. 나는 교사들의 이러한 태도를 ‘남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요즘 아이들이 예민한 걸까? 그래서 교사의 언행에 대해서 성차별 혹은 성희롱이라고 쉽게 문제제기 하는 것일까? 현재 미투를 공론화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다. 학교에서는 미투 제보자를 색출하고, 트위터 계정 삭제를 종용하며, 학생들의 입을 단속하고 있다. ‘양쪽 말을 들어봐야 된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져야 한다’, ‘부모님을 부르겠다’는 식의 회유성 협박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미투 제보자는 예민하고, 자존감이 낮고, 학교에 적응을 못 하는 학생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씌우고 있다. 경향신문이 인터뷰한 한 학생에 따르면 교사가 수업시간에 ‘이런 미투 운동을 일으키는 사람은 심적으로 약하거나 자존감이 낮은 친구들이며, 사소한 행동을 오해한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미투를 제보하거나 지지한 학생들은 최근 사회적 낙인이 된 ‘메갈’로 찍히기도 한다. 일부 교사와 학생들은 ‘미투’의 의미를 전유하여 폄하와 조롱의 언어로 사용한다.  ‘스쿨미투’는 교권을 추락시킬까? 일부 교사의 일탈행위가 전체 교사의 교육 활동을 소극적으로 만들고 교사에 대한 불신을 키울까? 교권은 교사의 직무에 대한 권위이지 학생을 찍소리 못하게 하는 권력이 아니다. 교사가 학생과의 소통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 앞에서 학생 탓을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교권’이 아니라 ‘권력’이다. 스쿨미투는 교사가 학생에 대해 가지는 ‘위력’의 문제이다. 스쿨미투는 우리 사회에서 더 약자인 ‘청소년’, ‘학생’의 말하기이기에 반격에 더 취약하다. 최근 어떤 학교 교사들이 미투 포스트잇을 떼어 오는 학생은 벌점을 깎아준다고 하여 포스트잇을 붙이려는 학생과 떼려는 학생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다. 이것이 교사가 학생에 가지는 위력이다. 교사는 위력을 이용해 학생 간의 갈등을 부추겼다. 정말 단지 ‘일부 교사’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들의 편을 들지 말고 학생들의 편을 드는 것이 상식적이다. 교사가 학생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교권’이다.  스쿨미투는 요즘 학생과 옛날 교사의 세대 차이 문제가 아니다. 세대 간의 문화가 달라서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여성 혐오 문화를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그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공식적인 문제 해결 루트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누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미투를 말하겠는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미투에 대해 취한 태도는 미투의 불씨를 꺼뜨리는 것이었지 키우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럼에도 말하려는 학생들을 의심의 눈으로 먼저 보는 교사들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교사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침묵과 방관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 지금까지 맞다고 믿어왔던 것을 부정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교사라면 학생 탓은 하지 말자.  박선영: 초등학교 교사 5년차. 페미니스트가 된 후 이전의 삶이 모두 흑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삶을 다시 쓰는 중.
2018-09-28 | hrights | 조회: 1248 | 추천: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