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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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방효신/ 회원 칼럼니스트   아무리 더워도 한 달만 지나면 처서(處暑)다. 매년 그랬듯이 방학이 지나고, 오랜만에 만나는 선생님은 서로 비슷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얼굴이 탔네, 좋은 데 다녀왔어? 더 예뻐졌다.” 이런 말은 40대가 시작한다. 20대의 응대도 고만고만한데, 일단 손사래를 친다. “아니에요, 선생님이 더 좋아 보여요. 젊어지신 것 같아요” 기혼 50대와 어린 아이를 둔 30대가 나누는 말은 색깔이 좀 다르다. “한 달 동안 급식을 안 먹어서 살이 빠진 것 같아요. 방학 동안 세 끼 밥 하느라 힘들었어요” 외모 얘기에서 살림이나 가족 여행 여부로 넘어간다. “아유, 그래. 방학이 더 힘들다니까. 집을 탈출하니까 좀 살 것 같아.”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가 평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드러나길 마련이다. 며칠 전 친구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데, 소파에 앉아 있던 아버지께서 딸 얼굴을 보자마자 요구하셨단다. “꿀물 좀 타 와라.” 개인 사정으로 바깥출입을 며칠 안 하시고 하루 종일 집에 계시던 아버지가, 주 5일 출퇴근하는 딸에게 하는 첫 마디가 먹을 것 가져오라는 말이었다. “잘 다녀왔니?” 라던가, “오늘 일찍 왔네, 배고프지?” 같은 말은 드라마에도 나오지 않는다. 배려심 많은 착한 딸이, “집에 계셨네요? 배고프시죠? 저녁 뭐 먹을까요?”라고, 먼저 말을 꺼내야 진부한 TV 드라마라도 전개되는 2017년에, 나는 여자라면 누구나 밥 짓기를 숙명으로 여기는지 궁금해졌다.   영등포구청역 화장실에서 6월 4일 발견한 스티커. 미소지니(여성혐오)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공격적인 미러링을 택한 ‘워마드’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서울 서부 지역 공공장소에서 이런 스티커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사진 출처 - 필자   밥은 누가 하는 걸까? 아내일까? 누나일까? 실생활에서 상차림을 기획하고, 마트에 가거나 인터넷으로 재료를 주문해서, 칼질하고 가스 불 켜서 음식을 익히고, 돈도 안 나오는 그 일은 ‘누구’의 일일까? 사회화된 의무감을 가진, 착한 성품을 타고 난, 살림 파업하지 않는, 육아의 주된 담당자가, 잘 해왔고, 빨리 배우기 때문에, 밥을 하는 건 ‘여성’적 특성인건지, 주로 어머니가 담당해왔다. 그리고 어머니가 없을 때에는 딸이거나, 여동생이다. 당연하다는 듯 가족 중 누군가는 지정 성별이 ‘여성’인 자에게 밥을 요구한다. 자기 배가 고픈데, 남에게 밥을 요구하는 문제해결 태도는 어디서 배운 걸까? 자기 숙제를 엄마에게 미루면 안 된다고 학교에서 가르친다. 밖에 나갈 때 ‘네 신발은 직접 신으라’고 집에서 가르친다. 그런데 왜 목이 마를 때, 물은 자기 손으로 안 떠먹을까? 아직 애라서? 철부지 같은 남자는 평생 보살펴 줘야 한다는 암묵적 룰이라도 있는 마냥 어머니들이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길들여져서인지 점심시간 당연한 듯 식당에서 일행의 수저를, 휴지 깔고 놓는 대다수 여성과 각자의 자리에 물이라도 챙기고 있으면 가정적이라고 칭찬받는 남성을 본다. 사람은 밥을 먹고 산다. 그리고 집에서 해 먹든, 집 밖에서 사 먹든 여자가 밥을 짓는다. 요즘은 직장 다니는 여자도 많고, 승진하는 여자도 많고, 밥은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가자고 남편과 합의한 여자도 많아서, 각자가 해결할 사안인가? 여성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은 예전부터 해왔던 것이고, 승진해봤자 부장급으로 가면 10%도 안 되며, 아이가 있는 집에서 끼니를 항상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50살 이상인 여성 조리 종사원 20여 명이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주 5일 점심을 먹으면서, 여자인 나는 ‘밥 먹기’가 종종 불편하다. ‘아빠! 어디가?’라는 티비 프로그램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밥을 먹이고, 각종 먹방에서 백종원 같은 남성 요리사가 진행을 주도할 때, 미디어가 ‘밥 짓기’를 교묘히 포장하면서 일상을 짓누르고 있음을 재차 확인한다. 변화나 진보라는 게 있다면, 거대한 담론 같은 거 말고 밥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사소하고 개인적이어서 가장 정치적인 ‘밥’말이다. 방효신 : 초등학교 교사, 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세상은 바뀌나요?
2017-08-09 | hrights | 조회: 67 | 추천: 1
김시형/ 회원 칼럼니스트 기숙사 생활 6개월째 일이다. 박사 논문 마지막 심사를 앞두던 때였다. 논문 심사에 집중하기도 벅찬데, 기숙사 행정실에서 모든 기숙사생에게 종강일에 맞춰서 퇴사하라는 조치를 내렸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종강일은 학생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다. 학부생은 종강일 전후 5일에 기말고사를 치르고, 대학원생은 종강일 전후 7일에 소논문과 같은 과제를 제출하거나 나처럼 학위 논문 심사를 준비한다. 학점을 관리해야 하는 학생들 처지에서는 피가 마르는 시기다. 대학이 아닌, 보통 임대업자도 이렇게 매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기숙사에 입사한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20대 학생시절에는 얻지 못했던 기숙사 생활 기회가 30대 중반에 생겼다. 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중에 생겨난 기숙사가 처음에는 좋았다. 학교 중앙도서관과 가깝기 때문에 논문 작업을 하다가도 피곤하면 언제든지 기숙사로 돌아와 잠깐씩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기숙사가 학업을 위해서는 최적의 장소가 맞기는 하다. 그런데 종강일에 퇴사를 하라니! 그러면 이사가 하루아침에 끝나는가? 이삿짐을 한 번도 싸보지 않은 사람이 책상에 앉아서 너무 편하게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방학에도 거주하는 사람인데, 순전히 기숙사 행정 편의를 이유로 짐을 싸서 외부에 보관했다가 다시 다른 방으로 옮기는 일을 해야 한다. 그대로 같은 방에 살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텐데 말이다. 또한, 기숙사에는 지방에 사는 학생들이 대다수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몇몇 학생들은 그 기간 동안에 호텔 방을 전전하기도 했단다. 비용을 아끼려고 기숙사에 들어왔다가 시험 및 과제를 마무리할 시기에 낭패를 본 것이다. 새로 지은 기숙사라 행정의 미숙함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행정실도 올해 초에나 겨우 갖춰졌다. 학부생은 ‘사생회’라도 있어서 그나마 이런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지만 대학원생은 사생회도 없다. 학생들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행정상의 편의만 고려하는 그들! 기숙사를 새로 지었으면 직원을 충원해서라도 행정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새로 지은 기숙사 비용은 그다지 저렴하지도 않았다. 가령 고시원 방만한 크기의 1인실은 한 학기에 약 140만 원 정도 한다. 월세로 따지면 대략 월 40만 원 선이다. 왜 기숙사가 학생들의 학사 일정을 보조하는 공간이 아니라 행정 직원의 관리 편의를 도모하는 공간이 된 것일까? 여기서 ‘무엇이 가장 먼저인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듯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학교는 학생의 학업을 방해하는 요소를 철저히 찾아내어 그것을 제거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학생이 가장 학업하기 좋은 학교가 전통 있는 명문학교이지 않을까? 너무 답답한 나머지 총장님께 호소문을 썼다. 설마 답변이 오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 했다. 뜻밖에 이번에 새로 선출된 총장님은 반응을 보이셨고, 기숙사 관장님께서 회신을 주셨다. 답변인즉, 행정상 관리 문제 탓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요지이고 대학원생은 내년부터 안 옮기게 해준단다. 아! 그럼 진즉부터 안 옮기게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행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 때에는 살던 방에 그대로 살게 해서 종강일 즈음에 방을 옮기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생겨난 행정실에서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이다. 아무튼 종심 준비도 벅찬 시기에 행정상의 관리만 믿고 옮겼다. 그런데, 방을 옮겨보니 방청소가 하나도 안 되어있다. 도대체 왜 옮기게 한 것일까? 행정상의 관리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   새로 생긴 기숙사 외관 사진 출처 - 필자   얼마 전, 대학교 주변 임대업자들이 학교를 상대로 기숙사의 신축을 반대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때는 임대업자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비판했다. 그런데, 학생들의 학사 행정을 일체 고려하지 않은 기숙사 행정을 겪고 보면 정말 비판받을 대상은 기숙사 행정이 아닌가 싶다. 학교 주변 임대업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학교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의식을 잊어버린 채 어쩌면 학교가 학생을 상대로 임대업을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김시형 : “생명윤리의 한 분야인 ‘인간대상 연구 윤리’를 성찰하고 있는 연구원”
2017-08-09 | hrights | 조회: 66 | 추천: 2
서진석/ 회원 칼럼니스트 큰 주먹을 휘두르며 ‘으리!’를 외치는 사나이, 탈모가 진행 중인 퇴물 헤비메탈을 생각나게 하는 사나이, 특히나 큰 머리만큼 긴 머리카락을 가진 사나이, 바로 김보성이다. 그는 언젠가부터 기약 없이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체중감량과 격투기 수련을 병행하고 있었다. 김보성에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뉴스를 보니 그는 소아암 환자의 가발제작에 기부할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던 것이었다. 말로만 의리를 외치지 않고 몸소 실천하는 그는 내 인생에 쑥, 들어와 버렸다. 무더위가 시작된 작년 7월, 눈을 가릴 듯 말듯 한 머리카락들을 더 이상 자르지 않기로 했다. 숱 많고 굵은 머리카락을 묶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지인들은 땅콩 같은 뇌가 만개할 만한 표현들로 내 장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선배들은 탈모를 가리기 위해 머리를 기르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했고, 친구들은 그 산적 같은 머리를 보고도 애인이 뭐라 안 하냐고 물었고, 친형은 ‘주진우 기자’를 따라서 머리 기르는 거 같은데, ‘현실은 김어준’이라는 등의 코멘트를 남겼다.   머리카락 기부 당시 사진 출처 - 필자   평가와 질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들이 SNS를 통해 “미용실 예약해줄게”라고 말하는가 하면, 엄마는 줄곧 “꼭 사는 것 포기한 애 같아, 너!”라며 머리 자르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치과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꼬마가 내 머리를 빤히 쳐다보면서 엄마에게 “엄마, 저 아저씨는 남자야? 여자야?”라고 묻기도 했다. 아빠는 어느 날부터 나를 ‘잘생긴 이외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남자 화장실에서 머리를 묶다 본의 아니게 남자들을 쫓아낸 적도 있었다. 그래도 ‘장발 남성’의 장점도 있었다. “남자는 여자처럼 머리를 기르면 안 돼” 같은 ‘성역할 강요’를 겪다 보니 소수자성을 피부로 느껴볼 수 있었다. 글과 말로만 배워온 페미니즘 같은 소수자에 관한 학문과 운동을 더 깊게 배울 수 있는 경험이 되기도 했다. 수많은 ‘정상인’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과정이나, 설득할 기회조차 없는 무수한 행인들의 ‘시선’을 감내해야하는 순간들이 그러했다. 소아암 환자 기부금 모금을 위한 종합격투기 행사에서 ‘파이터 김보성’은 ‘1라운드 TKO패’했다. 동시에 남성으로서 35cm를 기른 3년, 50대의 나이에 격투기를 위해 13kg를 감량한 과정, 6급의 시각장애를 안고서 2분 35초를 버틴 링 위의 사투에서 그는 ‘완승’했다. 나 또한 계획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머리카락을 잘랐다. 하지만 30cm를 만들어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머리카락을 기부했고, ‘머리 긴 남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이들과 꾸준히 대화하고 설득해나가고 있다.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처럼 소수자 운동도 조금씩 자라는 일일 테다. 매번 큰 노력을 쏟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쑥, 자라날 것이다. 이런 믿음이 오늘도 머리를 기르게 만든다. 서진석 : 반 제도권적 제도권 수용자. 항상 자퇴와 탈당을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2017-08-09 | hrights | 조회: 89 | 추천: 1
서동기/ 회원 칼럼니스트 매일 전철을 탄다. 출근 시간, 사람들 틈에 끼어 철로 위에 몸을 맡긴다. 출퇴근길 전철에는 몇 가지 암묵적 규칙이 있다. 환승 통로와 연결되는 출입문 근처에서 서성대지 않을 것. 에스컬레이터에서 길을 막으며 서있지 않을 것. 등등. 매일 출퇴근 시간, 거대한 물결이 땅 위와 아래로 만들어진다. 혹시 낯선 지하철역에서 그 흐름을 거슬러본 적이 있는가? 출근길의 규칙을 어기는 자에게는 어김없이 수많은 ‘어깨빵’과 따가운 눈총이 돌아온다. 가끔 첫차도 탄다. 첫차에는 평소에 존재하지 않던 사람들이 나타난다. 가방을 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조금 피곤한 듯 꾸벅 졸기도 하며 새벽부터 분주하게 어디론가, 어디론가 간다. 밤새 술에 취했다 돌아오는 아침 첫차 안에서는 그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묻게 된다. 저 노인들은 왜 아직도 부지런해야하나? 우리는 왜 이렇게 더럽게 피곤하고 바쁘게 살아야만 하는가? 철로 위에는 승객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쁨과 피곤함은 수많은 철도 관련 노동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5월 27일 광운대 역에서 철도 노동자 조영량 씨가 열차를 분리하고, 연결하는 입환 작업을 진행하다 사고로 숨졌다. 입환 작업은 본래 일곱 명이 한 조로 진행하던 것인데 인건비 절감의 명목으로 한 조의 정원이 다섯 명으로 줄어들었고, 사고 당일에는 네 명이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사고 며칠 뒤 사고가 발생한 광운대역(옛 성북역) 육교에서 바라본 승강장과 철로 사진 출처 - 필자 2016년 구의역에서 19살 김 군이 죽었다. 몇 달 뒤, 지진으로 지연 운영되던 KTX 경부선 철로를 보수 중이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두 명이 죽었다. 1년이 지난 올해 숨진 조 씨는 인력감축을 견디고, 격무에 시달리던 정규직 노동자였다. 1년 사이 철로 위의 죽음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번졌다. 오늘도 전철을 탄다. 미어터지는 사람들 속에서 팔을 살짝 움직거리기도 조심스러운 ‘지옥철’ 안에서 우리는 매일 각자의 지옥을 통과한다. 이것은 그저 주어진 일상의 풍경일 뿐일까. 누군가 그랬다. 혁명이란 ‘달리는 열차를 멈춰 세우는 비상브레이크’ 같은 것이라고. 오늘도 바쁜 사람들 속에서 문득 상상한다. 바삐 달리는 열차 안에서 우리의 브레이크란 무엇일까? 하지만 상상이 오래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어느새 우리는 다시 바쁘게 흘러가는 사람들의 물결 속으로 휩쓸린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현실에 대한 복잡한 생각과 분노에 대해서만 은근 슬쩍 브레이크를 당겨오지는 않았던가. 오늘도 열차는 지옥을 싣고 지옥 위를 쉼 없이 달리는 중이다.   주: 글을 마무리 하던 중 노량진역에서 철로를 보수하던 노동자 김창수 씨가 또 숨졌다. 관계자에 따르면 13명이 정원이던 영등포 시설사업소의 정원은 9명으로 축소되었다. 6월 28일 자정, 사고 당시에는 7명이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김창수 씨는 철도노조 지부장과 시설부장까지 역임했고 안전한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던 베테랑 현장 노동자였다. 서동기 :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읽고 묻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13 | 추천: 3
조예진/ 회원 칼럼니스트 “쌤, 엄마가 기숙사 다시 들어가래요.” 우리 반 여학생 하나가 청소 시간에 슬쩍 와서 말한다. 기숙사 생활이 힘들다며 기숙사를 나와 편도 40km 거리의 대중교통 통학을 선택한 아이였다. 농담으로 집에서 불효(?)하지 말고 효도하라고 몇 마디 던졌다. 우리 학교는 98%의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특수목적고등학교다. 소위 ‘특목고’라고 하면 아주아주 똑똑한 학생들이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특목고에도 계급(?)이 있다. 우리 학교는 성실한 학생이 주로 온다. 성적은 조금 떨어지지만, 기숙사 생활을 버티고 대학 입시의 성공을 위해 3년간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아이들이다. 어른들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아이들이 많다. 나중에 커서 사장님의 말에도 순종할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많은 인문계 고등학교가 그렇겠지만, 학교는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이다. 대입에서 수시가 강화되면서 학교생활은 더욱 중요해졌다. 9등급으로 나눠지는 교과 성적뿐만이 아니다. 수시의 학생부 종합 전형에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 수많은 교내 대회와 동아리 봉사활동, 독서까지 학생들은 쉴 틈이 없다. 여기에 인성까지 갖추어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착하고, 창의적인 인재로 기록되어야 한다. 학교는 언제 어디서 표범이 뛰쳐나올지 모르는 세렝게티이다. 게다가 기숙사가 있는 학교는 잠깐의 쉼을 위한 집으로의 귀환이 불가능하다. 4년 전 우리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학교 옆 작은 5층 건물에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사는 줄 몰랐다. 적게는 10분, 많게는 5시간 거리의 집을 떠나 기숙사에 산다. 월 2회 의무 귀가를 제외하면 한 달에 20일 이상을 머문다. 하루 종일 정글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다닌 그들에게는 학교가 곧 집이다. 체육대회 사진 출처 - 필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 오겠다고 결심한 아이들은 기숙사가 있기 때문에 온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 학교의 학부모님은 상당수가 맞벌이시다. 부모들은 회사에서 야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한다. 야근으로 돌볼 수 없는 아이의 삶은 학교에 맡겨진다. 부모님이 일하시는 동안 아이들을 맡아 밥 먹이고 재우는 공간, 그곳이 학교다. 요즘에는 기숙사가 있는 학교가 인기가 많아 기숙사 신축을 하는 학교가 늘어난다고 한다. 학교의 목적은 교육이 아니라 보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학교가 싫었다. 고3 때에는 하루에 한 번씩 자퇴를 꿈꾸었다. 실행은 못했고, 야간자율학습(야자)를 꼬박꼬박했으며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았다. 하지만 난 학교가 정말 싫었다. 그래서인지 너무 성실한 우리 아이들을 볼 때 가끔 울컥한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나중에 우리나라 어디선가 맡은 일을 묵묵히 성실하게 노동할 아이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내 탓’을 하며 눈물 흘릴 아이들, 이래도 괜찮을까? 의식적으로 말한다. 괜찮다고. 지금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안 해도 되고 못해도 된다고. 부모님께 말한다. 안아주고 격려해주시라고. 집에서 멍 때릴 때 공부하라고 하지 말고 잠깐의 휴식을 허락하라고. 꿈꾼다. 저녁에는, 휴일에는 집에 좀 가고, 놀고 쉬자고. 조에진 :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사는 좋아하지만 수능 필수 한국사는 싫어합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91 | 추천: 1
정석완/ 회원 칼럼니스트 오늘도 흔히 보게 되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은 바로 ‘여성 전용 주차장, 장애인 지정 주차 공간, 노약자석, 어린이 보호 구역’ 등으로 불리는 ‘지정석, 지정 공간’입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곳곳에 ‘지정석’과 ‘지정 공간’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노약자석에 대한 뉴스 검색을 해 보면, 노약자석이 생긴 것은 1979년 10월 26일 보건사회부장관에 취임한 진의종 장관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1980년부터 지하철과 버스에 ‘경로석’이라는 명칭으로 처음 생겼다고 합니다. 그럼 이 공간을 왜 만들었을까요? 당시 진의종 장관이 내세운 이유는 경노효친 즉, 노인에 대한 공경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배려한다, 편의를 제공한다’입니다.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그들을 배려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인가?’입니다. 물론, 그런 이유도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모두가 하나하나 배려하면서 살아가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생겨나는 ‘지정석’을 보면서 ‘지금 우리 사회가 무엇을 보호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노약자석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이를 담은 기사들은 많이 있습니다. 1982년 경향신문 ‘노약자석 얌체승객 없길’이라는 기사나 1999년 동아일보 ‘서있는 노인-앉은 젊은이 지하철 노약자석 이름뿐’이라는 기사 등을 보면 노약자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필요성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2016년 12월 14일자 아시아경제 ‘[카드뉴스]노약자석 폐지하면 어떻게 되나 봤더니..’제목의 기사를 보면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일본 지하철 내의 청년과 노인 간의 노약자석 말다툼 영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철에서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 남성에게 노인분이 손가락질을 하며 말다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기사에서는 일본에서 1999년 한큐전철과 노세·고베전철에서 노약자석을 폐지하는 실험적 시도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그 이유는 ‘노인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의 결론은 노약자석은 인간의 윤리적 가치를 보고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상징이라는 것과 고생한 이들에 대한 ‘존경’, 고생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한해 출생아 수가 줄고 있다’는 언론기사와 함께 이런 추세라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없어질 나라’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임산부에 대한 지원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부터 우리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임산부 지정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임산부 지정석’에 대한 찬반 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2015년 8월 23일자 ‘더 팩트’의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기사를 보면, ‘디자인이 화려해 알아보기도 쉽고,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여성이면 앉아 있는 사람이 비켜주는 효과가 있을 것 같다’라는 긍정적인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초기 임산부일 경우는 태가 안나 양보하고 싶어도 못할 것 같다. 특별히 임산부석을 마련하지 않아도 일반 시민들이 노인이나 임산부를 보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우리나라 문화다. 초기 임산부는 임신 사실을 잘 알 수 없으며, 임산부 자신이 임신 사실을 알리는 것이 난처하여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는 시민들도 있다’라는 부정적인 의견들도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서울시 제공 무언가를 강요한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에는 일정부분 동의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만 이런 의견을 수용해도 지정석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 그만큼 보호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고, 이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해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들을 배려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공간으로써 ‘지정석, 지정 공간’은 좋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해봅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그들을 배려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인가?’ 저의 답은 이렇습니다. ‘예 맞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배려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피곤하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눈 돌리고 고개 숙였던 것에 반성하게 만듭니다. 지금 제가 말하고 있는 지정석에 관한 이야기는 누구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언젠가 우리도 ‘아이를 가질 것이고, 노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고로 인해 장애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정석은 특정 사람들의 공간이 아닌 미래의 나를 위한 배려 공간인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지정석을 만듦으로써 그분들을 특별하게 만들고, 지정석 이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노약자 분들에 대한 배려나 양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정석은 우리 사회가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공간일 뿐이고, 이러한 배려는 모든 좌석에 적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금 생각합니다. ‘지정석에는 우리 사회의 배려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정석완 : 민주 사회를 위해 사회 문제를 시민사회와 정치에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102 | 추천: 1
박용석/ 회원 칼럼니스트 목숨의 값은 얼마일까. 세상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시대니 이런 물음을 불경하다 탓하지 마시라. 진정 불경한 것은 목숨에 정당한 가격이 책정되지 않음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나라에서는 목숨 값을 놓고 한해 1,777번 넘게 흥정이 벌어진다. 1년에 1,777명, 하루에 4명 꼴, 한국에서 2016년 한해 일하다 죽은 ‘노동자’의 수다. 정부 공식 통계다. 2015년 1,815명, 2014년 1,850명이었다. 인구 10만명 당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OECD 1위를 지키고 있는 수치 중 하나다. 그 중 사연 없는, 억울하지 않은 죽음이 어느 하나라도 있겠는가. 얼마 전 1주기를 맞은 구의역 김 군처럼 말이다. 굳이 그의 죽음을 예로 드는 것은 하나의 전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다. 일을 하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어떤 전형 말이다. 지난 약 20년 동안, 고용의 안정성과 근로계약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층위의 비정규직이 생겨났다. 연봉계약제 정규직(무기계약직, 또는 중규직으로 불린다), 기간제 계약직, 일용직, 법적으론 노동자로서 보호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까지. 여기에 기업 간의 하청, 도급관계 어느 지점에 존재하느냐에 따라 다시 1차 하청(1차 밴드), 2차 하청(2차 밴드)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건설업이나 물류운송업, 유통서비스업, 제조업 일부의 경우 도급 단계가 적게는 3단계, 많게는 7~8단계까지 된다하니, 얼마나 많은 종류의 비정규직이 있는 것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사진 출처 -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구의역 김 군의 경우 이중에 사내하청 기간제 계약직에 해당된다. 앞서 언급한 비정규직의 분류 중 생각보다 높은 층위의 비정규직인 셈이다. 7차, 혹은 8차까지 내려간 마지막 단계의 하도급사에서 일하는 일용직, 혹은 특수고용직에 비한다면 말이다. 그런데도 그는 목숨을 걸고 일해야 했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위험한, 그래서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일은 보다 낮은 층위의 비정규직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볼 때, 김 군보다 더 낮은 층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얼마나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런 전형은 사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신분제 사회가 그랬고, 그만큼 멀리 갈 것도 없이 일제강점기 이후 지독히 사라지지 않는 ‘노가다’란 말에 내포된 전형이 그랬다. 이렇게 차별이 신분제처럼 굳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면, 그것은 비약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층적 차별이 고착화되며 노동자들 간에도 차별적 의식이 움트고 있다는 우려를 비약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단적으로 건설노동자를 낮추어 부르는 ‘노가다’란 말이 지독히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많은 노동자들의 처지가 ‘노가다’의 언저리로 추락하고 있는데, 우리의 인식도 그 말이 내재하고 있는 경멸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도 1,777명의 노동자 중 절반가량이 건설현장에서 목숨을 잃고 있고, 또 목숨을 잃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 숫자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특수고용직’이나 일용직 노동의 특성상 근로계약이 불분명해 산업재해 사망자 통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산업재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적당한 목숨 값’을 선 지불하고, 사고를 은폐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체 노동자 중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겠다’는 헌법 전문을 가진 나라에서 지속적으로 노동유연성을 강제한 결과다. 지난 20년간 개혁정권, 보수정권을 막론하고 일관되게 ‘강성귀족노조’가 문제라며 유연한 노동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유연한 노동은 기업의 수익은 극대화 시켜주었지만, 노동자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했다. 이제는 그 허리띠를 목에 걸고 있다고 한다. 비정규직과 실업을 반복하는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희망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말이다. 이 나라는 자살률도 세계 최고다. 노동자 중 절반이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를 만든 제1의 책임은 정부에 있을 것이다. 출범한지 겨우 2달째인 ‘새정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절반은 책임져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묻는다. 우리의 목숨 값은 대체 얼마인가. 박용석 : 전국건설노동조합에서 일했었고, 지금은 서울시 노사정 협의 기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94 | 추천: 1
김시형/ 회원 칼럼니스트 30대 중반이 넘어서 20대와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는 내가 행운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더욱이 내가 주로 있는 자리는 여학교의 학교도서관이다. 여성 혐오 발언이 난무하는 요즘 이 또한 행운인지도 모른다. 20대 내내 돈을 못 벌면 죽는다는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30대 초반에 겨우 자리가 생겨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내 자리는 오직 업무를 위해서 존재했다. 내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새로운 탐색이 시작되었다.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로서 살아갈 수 없는 자리에서 벗어나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게 어떨까. 이러한 바람으로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학교생활은 20대와는 달라졌다. 우선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 굳이 집착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자리는 이런 눈에 보이는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학교도서관에서도 선호하는 자리가 있으면 앉고 없으면 다른 자리에 앉는다. 점점 깨닫게 되는 것은 20대가 놓인 각박한 경쟁상황이 예나 지금이나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비인간적인 경쟁을 하도록 부추기는 현실을 경험했다. 그 날은 사람들이 별로 없는 일요일 오전이었다. 30대 학생 한 명이 먼저 좌석발급기에서 자리를 발급받아 앉아 있었다. 그런데 늦게 온 20대 학생이 그 옆자리에 바싹 붙어 앉았다. 30대는 20대에게 좌석을 발급 받을 때 먼저 온 사람 바로 옆 자리에 앉지 말아달라고 말한 것 같다. 그런데 그 20대는 “전 좌석발급기로 자리 발급 받았는데요”라고 말했다. 이 대답에 기가 막힌, 30대 학생은 “사람이 공부를 잘하면 뭐해. 먼저 인간이 되어야지!”라고 말하면서 내 옆옆 자리로 옮겼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 20대 학생의 인성에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나도 학교도서관에서 종종 내가 먼저 앉아있는 데도 늦게 와서 내 옆에 바싹 앉는 여러 20대 학생들을 목격했다. 시험 때라 학교도서관에 사람이 많으면 옆에 바싹 붙어 앉는 것을 이해하겠다. 이럴 때에는 ‘한 사람당 한 자리’라는 기본 원칙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휴일에 도서관에 나와서 옆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에 무턱대고 앉는 학생들을 만날 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그 다툼도 눈여겨보게 된 것 같다. 학교 도서관의 매점 자리 사진 출처 - 필자 무엇이 내 연령대의 사람들과 다르게 20대 학생들의 심리를 조장하고 있는지 그 배경이 마침 궁금했다. 그리고 이 배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는 많은 이유 중에서 지나친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분위기가 이와 같이 자기 자신만 챙기기 급급한 20대를 낳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싶다. 이런 분위기라면 좌석발급기는 먼저 온 사람을 배려해서 자신의 자리를 결정하는 기계가 아닌, 늦게 오더라도 먼저 자리 잡은 사람에 대한 고려 없이 오로지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를 결정할 수 있는 기계가 되어버린다. 다시 말해서, 이기적인 사람이 기계를 이용해서 대다수 사람의 편리를 해치는, 효율적인 근거로 사용될 수 있겠구나 싶다.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 “좌석발급기로 발급받았어요.” 생기발랄한 20대를 기대했다가 뜻하지 않은 광경에 슬프기 시작했는데, 어느 새 시간이 흘러서 학교에 시험 때가 다가왔다. 학교도서관은 터질 듯이 사람이 많아지고 당연히 매점에도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밥 먹을 자리도 없는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 식사를 할까’하며 자리를 찾다가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비어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운이 좋았다. 사람이 꽉 들어찬 매점에서 혼자서 4명 테이블에 앉기가 불편했다. 일단 나도 식사를 해야 하니 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1인 테이블에 자리가 생겼는데, 3명의 학생이 그 1인석이라도 잡자는 식으로 빠르게 그 자리를 잡았다. 나는 원래 소심한 성격이라서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잘 건네지 못한다. 나이가 낯짝을 두껍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지, 그 20대 학생들 3명에게 조심히 말을 건넸다. “우리 자리 바꿀까요?” 그러자 그 20대 학생들의 반응이 어찌나 감사해 하는지, 일제히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깍듯이 한다. 몇 달 전일로 20대 학생들의 인성을 걱정하다가 뜻밖의 감사인사로 이 걱정이 쓸데없음을 알아차리는 순간이었다. 자리 바꾼 것이 감사 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매점에도 좌석발급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난 20대 학생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체험하는 기회는 고사하고 매사에 기계에 근거하여 사고하는 비인간적인 삶의 태도를 또 한 번 몸에 익혀야 했을 것이다. 김시형 : “생명윤리의 한 분야인 ‘인간대상 연구 윤리’를 성찰하고 있는 연구원”
2017-06-28 | hrights | 조회: 65 | 추천: 1
서진석/ 회원 칼럼니스트 2011년, 크로스핏(Cross-Fit)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로스핏을 하고 있던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게 무슨 운동이야?”라는 질문을 종종 받아왔다. 그럴 때면 ‘단기간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는 운동’으로 설명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쾌한 설명을 들었다. 크로스핏은 ‘아령 들고 달리기’라는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신체 능력을 골고루 향상시키는 운동이라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었다. 예를 들어 크로스핏은 턱걸이 세 개, 100미터 달리기, 팔굽혀 펴기 열 개를 3회 반복하는 식이다. 한 사람은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다. 나는 남성, 학생, 이성애자, 노동자 따위의 정체성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런 정체성을 느끼며 달려오던 내가, 정당을 만나 선거를 치르게 됐다. 아령을 들게 된 것이다. 아령을 드는 것은 무거웠지만 중독성이 있었다. 비로소 사회의 일원으로서, 시민으로서의 하루를 사는 것 같았다. 사진 출처 - ‘The Identity Issue, 2017’, <WINDMILL> 청년정당을 표방하는 정당이었기에 기존의 춤, 연설 위주의 선거운동을 지양했다. 촛불이 만든 대선인 만큼, 촛불정국에서 등장했던 적폐 내용을 피켓에 담고 물풍선을 던져서 맞추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내가 속한 경기도의 부천, 의정부, 평택, 수원 등을 돌아다니며 청년 당원들과 ‘물풍선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어린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고, 덩달아 따라온 부모들에게 우리의 정책을 홍보할 수 있었다. 언론사의 취재 요청이 들어올 만큼 반응도 좋았다. 그러나 장미대선을 향해 뜨겁게 달렸던 열정의 순간들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처음 맡아보는 대표 역할에 좌충우돌하기도 했다. 대표로서 ‘역할’을 배분했어야 했는데 무턱대고 내가 맡아서 모든 걸 하려했던 점이나, 대표로서 처음으로 정당 체계에 적응하고 소통하는 모습이나, 대표성을 가진 기구의 장으로서 감당해야하는 최소한의 희생 등 많은 부분에서 부족했다. 학생으로서, 연인으로서의 모습에서도 충실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렇게 생애 첫 선거가 끝났다. 다시, 일상이다. 돌이키면 부족했던 나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아령을 들고 오랫동안 달린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의 사회적, 경제적 정체성이 ‘진보’를 추구하기에 부족했음에도, 진보를 추구하는 집단에서 활동했던 것이 내겐 ‘아령’이었던 것도 같다. 아령을 내려놓고 짧지만, 격렬했던 ‘아령 들고 달리기’를 천천히 돌이켜볼 때가 왔음을 느꼈다. 크로스핏에는 ‘테스트 데이(Test Day)’가 있다. 한 달 전 나의 기록과 비교하는 날을 말한다. 부족했던 모습을 부여잡고 있는 대신, 맨몸이 아닌 아령을 들고 달리려했다는 사실을 느끼며 하루를 살아간다면, 다음 테스트 데이에 나는 더 성장해 있지 않을까? 서진석 : 반 제도권적 제도권 수용자. 항상 자퇴와 탈당을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101 | 추천: 1
서동기/ 회원 칼럼니스트 촛불의 파도를 떠올린다. 청각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해 함께 손으로 이야기 나누던 광장. 나이, 성별, 지역 등 우리를 가르던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어둠에 대항하던 작은 불빛들.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각자의 꿈을 나누던 광장. 하지만 과연 촛불이 이겼나? 지난 대선의 장면들을 복기해본다. 대선기간 한 신문사에서 비극적 죽음이 있었다. 우리시대의 상식파를 자처하는 ‘합리적’ 시민들이 죽음을 비웃고 신문사를 증오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의 지지후보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들의 광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죽음에 익숙해진 탓일까. 비극 앞에 내뱉어진 그들의 발언들은 끔찍했다. ‘동성애가 싫다,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1등 후보의 실언에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복잡다단한 정치의 현실을 알지 못하는 공상적인 ‘입진보’가 되었다. 시민들의 사과 요구는 지지후보를 흠집 내고 자기 몸집을 키우려는 어떤 세력의 정치 음모가 되었다. 우리시대의 합리적 시민들은 당사자들에게 ‘적폐 혁파의 대의’ 앞에 함부로 끼어든 ‘얼치기’들에게 현실정치의 냉혹함을 가르치고 증오를 퍼부었다. 잠시 상상을 해보자. 성주에서 진행 중인 굴욕에 작은 소설을 하나 더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경찰이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시민의 차량 창문을 깨트리고 미군에게 길을 터준다. 그 모습을 트럭에서 비웃으며 촬영하던 미군이 ‘젠틀’하게 대화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다. “하하, 동양인들은 참 싫지만, 우리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은 반대한다고. 동양인 차별은 반대하지만 동양인과 혼인 합법화는 좀 더 생각해봐야지.” 당시 문제의 발언에 동양인을 대입하여 생각해보면 당사자들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그들은 분노의 항의에 대꾸하지 않는다. 사진 출처 - 필자 촛불의 핵심 정신은 단순히 박근혜 따위의 탄핵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광장의 함성은 누군가 눈앞의 문제들을 대신 해결해줄 것을 요청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광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요구를 말했고 시민들은 서로 귀 기울였다. 하지만 광장의 목소리는 인물들의 정치와 선거에 지워졌다. 촛불의 목소리는 구세주에 과도하게 몰입한 광신도들의 부흥회 소리에 가려졌다. 지난 10년의 적폐에 대항해 ‘대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데 실없는 소리를 던지고 있다고? 그렇다면 감히 말한다. 당신들의 대의 때문에 촛불혁명이 망한 것은 아닐까. 다시 시작이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제 다른 차원의 어둠에 다시 새로운 촛불을 들어야 한다. 서동기 :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읽고 묻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73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