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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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이은주/ 청년 칼럼니스트 “죽기 직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 웹툰 <무한동력>의 명대사로 꼽히는 이 말은, 꿈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용기를 주는 메시지로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그런데 최근 강연에서 만난 주호민 작가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8년이 지난 지금, 그는 ‘밥’을 선택하겠노라고 말한다. 밥을 먹어야 꿈도 꿀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짬>이라는 만화를 연재할 당시만 해도 땡전 한 푼 수입 없이 일하면서도 그림 그리는 것이 즐거워 만화를 그려왔던 그다. 그가 ‘꿈보다 밥’이라고 생각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세상이 너무 변해서’다. 경기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생활고로 인한 자살뉴스는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다, 일명 ‘먹고사니즘’은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라고 한다. 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 이후 경제염려증과 함께, 경쟁과 성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구호로 자리해왔다. ‘먹고사니즘’은 한 개인이 자본주의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톱니바퀴의 톱니로 살아가게 한다. 안정성이 보장되는 공무원이 어느새 최고의 꿈이 되어버린 중고생,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취업문을 뚫기 위해 1분을 아끼려고 컵라면으로 밥을 때우는 청년층, 희망퇴직과 권고사직을 피하기 위해 책상을 잡고 버티는 기성세대, 또 ‘절대적 빈곤’상태에 놓여있는 노년층까지. 이렇게 보면 우리 사회 톱니들에게는 ‘생계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을 수가 없다. 꿈을 좇는 ‘낭만’이 있었던 8년 전, 주호민 작가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거다. ‘못 이룬 꿈보다는 당장 못 먹는 밥이 피부에 와 닿는다’는 지금의 그의 말을 미루어보면, ‘먹고사니즘’을 무작정 개인의 윤리적 문제로 비판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사실 ‘먹고사니즘’은 개인의 생존만을 1순위로 생각하는 탓에 정작 공동체가 먹고 사는 문제는 도외시한다는 치명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다. ‘먹고사니즘’의 연관검색어는 곧 ‘각자도생’, ‘적자생존’이기 때문이다. 이 ‘먹고사니즘’이 집단적으로 발현되면 그 효과는 ‘정치적 무관심’으로 나타난다. ‘먹고사니즘’을 신봉하는 시민들은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일에는 침묵하는가 하면, 자신의 밥그릇에 불이익이 될 것을 염려해 사회문제에 의문을 갖거나 비판을 가하는 행위 자체를 삼간다. “내 일이 아니면 상관없어.” 잘게 쪼개져 분자화된 개인들은 밥을 먹고 필요한 것을 사는 본능적 행위에 몰두한 나머지, 이 원초적 본능에 중독된 나머지 사회적 아젠다에는 관심을 쏟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먹고사니즘’으로 인한 밥벌이의 애환은 개별적 감정일 뿐, 내 일이 아니라면 노동과 복지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에는 나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치 자체를 적대시하는 태도나 분위기가 어느 새부터 우리 사회에 만연해졌다. 먹고사는 문제를 챙기는 것은, 따지고 보면 개인 윤리의 문제이기 전에 체제가 낳은 괴물이다. 하지만 ‘생존’과 ‘안정’이라는 가치를 주입시키는 이 ‘먹고사니즘’ 신화는 올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균열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먹고살기 위해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온 수많은 개인적 주체들이 정치적 행위자로서 변태(變態)하게 된 것은, 이번 사태에서 시민들이 느낀 ‘자괴감’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하반기 봇물처럼 터진 국정농단 사태는 이 사회가 노오력과 안간힘이 전혀 통하지 않는, 철저히 기득권층 위주로 돌아가는 전근대적 계급사회였다는 것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사회, 그럼에도 치열하게 살라며 ‘먹고사니즘’을 권하는 사회…. 헬‘조선’의 백성 개개인의 ‘먹고사니즘’ 꿈을 꺾어버린 작금의 사태는 한 나라의 왕과 간신, 그리고 수많은 부역자들이 법률을 유린하고 나랏돈을 횡령한 결과였다. 이는 곧 백성들이 체제의 순응자가 아닌, 체제를 허물 수 있는 정치적 참여 주체로 이행되는 과정이었다. 하루하루 밥벌이의 고됨을 견디어 왔던 2016년 대한민국의 민주 시민들은 이제 ‘먹고사니즘’을 내던지고 횃불보다 더 오래 가는 ‘LED 촛불’을 들고 거리로, 광장으로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한 목소리로 외쳤다. ‘함께 살자’고. 사진 출처 - ytn ‘먹고사니즘’의 반대말은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먹고사니즘’과 ‘함께사니즘’은 서로의 반대편에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먹고사니즘’ 시대에서는 밥그릇이 곧 책임이다. 가장의 책임, 노동자의 책임, 취준생의 책임, 수험생의 책임…. 하지만 대부분 개별적 책임에 머물러있는 탓에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적 유전자가 작동하곤 했다. 두 달여간 이어진 촛불집회는 이 개개인이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금껏 900만 명에 달하는 전국의 시민들은 촛불과 함께 갖가지의 책임을 들고 나왔다. ‘1번 당’과 ‘그 분’의 열성지지자인 60대는 자식세대에게 미안함을 토로했고, 20대 청년은 ‘먹고사니즘’에 눈이 멀어 정치적으로 무관심했던 자신을 책망했다. 자괴감과 미안함,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시민들의 목소리는 ‘이게 나라냐’라는 고함으로 울려퍼졌다. 결국, ‘함께사니즘’은 ‘먹고사니즘’의 반대말이 아니라 확장형이었다. 며칠 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가족,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한 잔하며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XX야, 진실을 밝히고 이 나라가 조금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떳떳한 엄마가 되었을 때, 그 때 널 그리워하고 슬퍼할게. 미안해….” 2014년 4월 16일,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세월호 희생자의 어머니는 지금 나라를 규탄하는 촛불들이 뒤덮기 훨씬 전부터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있었다. 삶의 주체였던 평범한 사람들은 죽임에 맞서며 정치적 주체가 되었다. 마찬가지다. 이들이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듯, 정치적 주체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혹은 몇 십 년 후 누군가에게 떳떳해지기 위한 책임감이 광장으로 나오도록 그들의 발을 이끌었다. 광화문의 촛불은 이제 파란 지붕 아래 ‘그 분’을 끌어내리기 위해서만 타오르는 것이 아니다. ‘성과연봉제 폐지하라’, ‘노동개악 저지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사드배치 반대’ 구호는 피해자들의 것만이 아니다. 지금 광장에서는 모두가 ‘먹고사는’ 숭고한 문제를 불러내고 있다. 역사(史)는 사람(人)과 입(口)이 합쳐진 문자와 같다. 사람이 입으로 하는 것 중 먹고 살기 위한 가장 본능적 행위는 역시 밥을 먹는 것이다. 즉 역사는, 사람이 밥을 제대로 먹기 위해 투쟁해온 과정이다. 2016년의 겨울, 우리는 이미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어느새 연말이 다가왔다. ‘함께사니즘’의 온기는 한동안 식지 않을 전망이다. 앞으로도 광화문 광장에는 동그란 밥알 같은 촛불들이 붉은 불빛을 내며 알알이 박혀있을 것이다. 이제, 그 촛불들의 따뜻한 온기로 ‘함께 먹는 밥’을 지을 차례다. 이은주씨는 노동 인권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88 | 추천: 1
강은진/ 청년 칼럼니스트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에는 ‘아젤라스트’(agelaste)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는 “웃지 않은 사람, 유머가 없는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고,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했던 신조어다. 깊은 의미에서 아젤라스트는 우리 개인이 존중받을 수 있는 세계를 위협하는 적이다. 그들은 웃을 줄 모르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와 똑같다는 확신을 가진다. 더해서 통속적인 생각과 ‘키치’(본래 ‘저속하고 유치함’을 뜻하나 쿤데라는 여기에 더해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꾸미려드는 조악함’을 추가함)가 특징이다. 이는 우리 국민이 현재 싸우고 있는 정부의 모습이 아닌가? 세월호 사건 이후, 고통의 값을 돈으로 환산해 유족들에게 선심 쓰듯 미소를 짓는 정부는 진정 웃음을 모르는 아젤라스트들이었다. 지금과 같이 촛불의 열기가 전국을 뒤흔들고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어도 그들은 여전히 돌아볼 줄도 모르고, 자신들의 뜻이 옳다고 고집한다. 국회의 탄핵 결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언젠가 끝나리라” 여기며 뻔뻔스레 버티고 있다. 대국민 담화는 또 어떠한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지층에게나 통할 눈물의 사과는 '키치'의 극치였다. 정부뿐 아니라, 이 사건에 얽힌 부패한 재벌, 검찰, 언론, 관료집단은 명령과 규율뿐인 복종의 세계 속에 머무르며 진실을 가리고 우리를 기만하고 있다. 플로베르는 “현대의 멍청함은 완전한 무지가 아닌, 판에 박힌 언행의 반복”이라 했다. 이 얼마나 멍청한 시스템인지. 이번 사건으로 최근 제일 많이 듣고 스스로도 물었던 질문은 “무엇에 가장 상처받았고 분노하는가?”였다. 아무리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현대사회라지만 나름대로의 개인적 신념이 있어 정의를 믿고 국가를 사랑했다. 우리 국민 모두가 그럴 것이다. 이를 지켜줄 의무가 있는 정부는 사상누각에 불과했고, 심지어 우리 모두의 믿음을 배반하고 조롱했다는 점에 화가 많이 치밀었다. 더 원초적인 분노는 “무언가를 마음 놓고 즐길 여유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최근 시국선언으로 유명했던 한 초등학생이 “한창 게임 레벨업 해야 할 때, 친구들과 노는 얘기, 즐거운 얘기가 아닌, 나라 걱정을 하게 해줘서 참 감사하네요”라고 말한 것처럼 주말마다 벌어지는 아젤라스트와의 전투와 나라 걱정에 지칠 때도 많다. 사진 출처 - 뉴스1 사진 출처 - YGSU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참가하는 우리 국민들의 모습은 정말로 큰 위로가 된다. 심각하게 구호를 외치고 소리를 지르지만, 지치지 않기 위해 웃음을 나누려는 노력도 있다. ‘그만두유’처럼 시국을 반영하여 만든 패러디 상품과 개사한 대중가요가 인기를 끌고, 각종 재치 있는 깃발과 퍼포먼스처럼 긴장과 고단함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정부와 부패 집단들은 시민의 인권을 뭉개고 기계적인 꼭두각시들을 만들고자 했겠지만, 국민은 증명했다. 우리는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인 개인에 대한 존중과 독창적 사고를 그들에게서 잃지 않았고, 지켜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을 원동력으로 싸우고 있다. 본래 아젤라스트들은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과 큰 마찰을 빚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우리 국민들이 집회에서 보여준 앞서 말한 풍자와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꽃차벽이나 1분 소등, 수많은 촛불들을 보면 이미 예술의 영역이다. 쿤데라는 “예술은 항상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간의 실존과 그 정신을 담고 있다”고 했다. 진정으로 즐기고 웃을 줄 모르는 아젤라스트와의 싸움에서 결과는 뻔하다. 항상 승자는 웃는 자이며, 가장 오래 아름답게 웃을 것이다. 강은진씨는 책과 영화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국문학과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65 | 추천: -1
김정웅/ 청년 칼럼니스트 올해 하반기 드러난 부끄러운 이 나라의 민낯은 차마 일일이 거론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민중 혁명과 민주화, 평화적 정권교체까지 이뤄낸 위대한 역사를 기억하는 국민들이 고생스럽게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는 모습에서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 나 역시 이 20대 청년으로서 가까운 친구들과 시국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일이 많았다. 그러던 와중에 한 친구가 던진 다소 되새겨볼만한 질문 하나에 며칠을 고민했다. “그 시위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애들도 있던데... 걔네도 이 사태에 대해 알고 나오는 걸까?” 필자는 이것이 의미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이런 생각을 하는 시민들이 그 친구 이외에도 상당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원숙하지 못한 초·중·고등학생들이 시위에 나오는 것은 단순히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에 대해 우리 사회가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사안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존중하는 것은 민주 사회에서 꼭 지켜야할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니까. 사진 출처 - 비디오머그 하지만 필자는 조심스럽게 그만한 학생이면 시위 나오기 충분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내고 싶다. 4.19 혁명 당시 한성여중 2학년이던 진영숙 학생은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는 유서를 남긴 채 혁명에 참여했고, 결국 날아온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다. 또 수송국민학교 학생들은 ‘부모 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지말라’며 시위에 나섰고, 이후 수없이 많은 고등학생들이 혁명에 참여해, 결국 하야를 이끌어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때의 초·중·고등학생이라고해서 지금과 다르게 월등히 우수한 학생이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 역시 지금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이해한 범위 안에서 지금의 정권이 불의하다고 판단해 혁명에 뛰어든 것이며, 그렇게 정권 퇴진에 기여한 것이다. 역사는 이들에 대해 ‘휩쓸려 나온 아이들’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우리 현행 헌법 11조에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며 … 누구든지 사회적 신분 등에 의하여 정치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21조에는 ‘모든 국민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력에 관계없이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자신의 판단 하에 집회 결사를 통해 정치에 참여할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받는다. 주말마다 서울 한가운데서 촛불을 밝히러 오는 전국의 초·중·고등학생들을 응원한다. 김정웅씨는 사회와 정치의 소통을 통한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63 | 추천: 0
박서현/ 청년 칼럼니스트 돌이켜 보면 내 정치적 자각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되었다. 우리 반의 실세 권 아무개가 “너 그 머리 끈 이상하다”라며 이유 없이 시비를 걸었을 때였다. 보통 친구였다면 “난 좋은데?”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것은 하나의 신호 같은 것이었다. 중학교 진학 이후 더 많은 부조리함을 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 막히던 잔인한 학교폭력, 친구들끼리의 눈치싸움, 만만한 선생님을 조롱하는 학생들. 그리고 담임선생님의 차별... 나는 많은 일들이 너무나 부당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변명하자면, 나는 내가 너무나 작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창시절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그저 그대로 끝나버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이제서야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사회 활동은 가능한 참여했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낸다면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교 2학년 때 학교는 대대적인 학과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학교 곳곳에는 대자보가 붙었고, 나도 시위에 참여했다. 학교 구성원의 격렬한 반대 탓에 학과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듬해 결국 소수 과는 통폐합되었다. 비슷한 상황은 반복되었다. 간절한 바람과 달리 정권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세월호 사건은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용돈을 털어 후원했던 위안부 소녀상도 아직 건립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여중생 시절 조그만 나로 돌아오게 되었다. 약자들이 강자에 대항하여 승리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 그 때의 나로. 10월 29일 광화문 시위에 참여했을 때 역시 그랬다. 입으로는 하야하라, 퇴진하라를 외치고 있었지만, 내심 무거운 현실은 꿈쩍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시위 규모는 점차 커졌다. 11월 12일 민중총궐기 이후 분명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시위에 참가한 적 없는 친구가 시위에 동행했고,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여겼던 주변인들이 최순실 게이트를 화제로 올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가능할까. 희망의 싹이 트는 걸까.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한다면 이는 내 생애 처음으로 보는 장면이 된다. 그리고 그 의미는 대통령 심판 그 이상이다. 100만 명이 참여한 사회적 저항이 성공하는 경험은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성공한 시위의 경험은 이제 시민운동이 사회를 직접적으로 변혁할 수 있는 가능성, 대학생들이 학교 구조조정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 중학생들이 스스로 학교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대중에게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패한 권력자에게는 부정은 결국 처벌받을 것이라는 공포감이 덧씌워질 것이다. 100만 명의 시민이 시위 경험을 공유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100만 시민에게 시위의 결과가 성공으로 각인되기 위해서는 그 결과가 다른 형태가 아닌 시민들이 말하는 그대로, 하야 혹은 퇴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권한 이양, 2선 후퇴, 거국중립내각 같은 해법이 결과적으로는 정치적 실익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그저 복잡한 셈법의 정치적 타협으로 비칠 뿐이다. 권한을 일부 내려놓은 대통령이 여전히 대통령직에 있는 모습은, 학교폭력 가해자가 고작 몇 주 봉사활동 처분만 받은 채 끝나버린 결과와 다를 바 없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 우리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번 주 주말도 시위에 나선다. 더 큰 변화의 도화선이 되기를, 보다 정의를 목격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조금 더 커진 희망을 갖고 “퇴진”, “하야”를 외칠 것이다. 박서현씨는 노동과 정치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경제학과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56 | 추천: 0
지영의/ 청년 칼럼니스트 무료 급식권 받아야 하는 학생은 조례 끝나고 교무실로 오세요. 조례를 마친 담임선생님이 무심하게 던진 말에, 교실이 일순간 술렁거렸다. 무료 급식권을 줘? 왜? 호기심에 수군거리는 아이들 틈에서, 나 혼자 얼어붙었다. 주변의 공기가 확 다르게 느껴지던 그 순간. 교무실로 가기까지는 무던히도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결국 죄인 아닌 죄인 같은 기분으로 교무실 문 앞에 섰다. 교무실에 들어가서 무료 급식권을 받는 순간, 모든 선생님들이 알게 될 것만 같았다. 우리 집의 사업이 망했다는 걸. 친한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을 들추어내야 하는 발걸음이 천근이었다. 내가 용기를 끌어 모아 교무실에 들어섰을 때, 담임선생님의 자리에는 나보다 먼저 온 아이가 있었다. 내 짝꿍이었다. 그 아이의 손에 쥐어지는 노란 급식권. 그 애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교무실을 뛰쳐나왔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던 내 뒤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있잖아. 나는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뻣뻣하게 돌아섰다. 나 본거 모른 척 해주라. 친구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비겁하지만 안도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나 너 뭐하는지 못 봤는데. 열네 살. 한 끼의 배고픔보다 자존감이 더 중요했던 시기의 나는, 몇 달의 점심시간을 그냥 잠으로 보내고는 했다. 인간적인 배고픔이 자존감의 바닥까지 긁게 만드는 수치심을 이기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교무실에서 마주한, 그 친구의 표정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그게 바로 내가 부끄러워서 직시하지 못한, 열네 살의 내 표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난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배어나는 표정. 인격체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간신히 만들어 썼던 가면이, 강제로 벗겨질 위기를 마주한 열네 살의 표정을.   사진 출처 - pixabay.com 한 언론사의 기사에서 정부의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 사업을 보았다. 정부는 인권을 위한 사업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의 복지를 위해 생리대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생리대를 받기 위해 보건소에 자신의 신상 정보를 기재하고,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입증할 서류를 줄줄이 제출하고 나서야 생리대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자신을 노출하느니 차라리 생리대를 포기하겠다는 기사 속 인터뷰 한 줄 한 줄에서 그 아이들이 느꼈을 감정이, 지었을 표정이 묻어났다. 아이들이 생리대를 받는 것을 포기하는 이유는, 비록 숨어서 곤란함을 겪을지라도, 그 선택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으려면, 직접 증명하라는 것은 ‘가난하다는 것’을 강제로 인정하고, 학습하는 경험이다. 생리대 지원사업에서 정부가 복지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 ‘동정’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내는 방식의 복지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서라는 그럴싸한 명목을 내걸면서 말이다. 복지는 수혜자를 고려하는 체계와 배려가 필요한데, 불쌍하니 챙겨주겠다는 동정에는 그런 것이 없다. 정부는 자신들이 자선단체가 아니라 국민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국민에게는 조건부 자선이 아니라 진정한 복지가 필요하다. 복지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한 삶’이다. 정부의 복지 정책이 국민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복지를 누리고자 자신의 결핍과 괴로움을 인정하고, 또 인증해야 한다면 과연 그 어떤 국민이 행복할 수 있을까. 국민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손을 뻗는 복지, 국민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복지여야 한다. 지영의씨는 KTV 국민방송에서 인턴기자로 활동 중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57 | 추천: 0
박꽃/ 청년 칼럼니스트 이현주 감독의 <연애담>은 대중들에게는 아직 개봉조차 하지 않은 낯선 작품이지만, 독립영화 매니아와 일부 관객층 사이에서는 꽤 입소문을 탄 영화다. 올 봄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서 대상을 탔고 뒤이은 6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는 예매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표가 동났다. 이 영화가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동성애물, 그중에서도 레즈비언의 연애를 아주 사실감 있게 다뤄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정식 개봉을 앞둔 요즘은 뭇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홍보 목적의 유료 시사회를 진행하는 중이다. <연애담>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무비스트 이 영화에 훼방꾼이 등장했다. 유료 시사회 좌석을 대거 예약한 뒤 상영 직전에 취소를 해버리는 누군가다. 지난 12일 토요일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관객과의 대화(GV)와 함께 상영될 예정이던 <연애담>은 영화 시작 직전 32석이 일괄 취소되는 ‘사건’을 겪었다. 해당 극장의 좌석 수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두 자리를 포함해 98석이다. 1/3에 해당하는 자리가 누군가에 의해 미리 선점됐다가, 다른 사람이 다시 그 자리를 구매 할 여유도 없을 만큼 촉박한 시간만 남겨두고 돌연 전부 취소 된 것이다. 영화 배급사 인디플러그 관계자는 “극장 측에 확인한 결과 해당 취소는 모두 한 사람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일명 ‘티켓테러’다. 물론 영화계에 아예 없던 일은 아니다. <변호인>(2013)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런 주장은 명확한 근거 없이 떠도는 인터넷 루머에 불과한 수준이어서, 영화가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부터는 거의 대부분 수그러들었다. 물론 사람들은 당시에도 그런 논란이 불거진 원인만큼은 명료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영화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다룬 만큼 그에 대한 정치적 호오에 따라 반응이 갈릴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것이 ‘티켓테러’를 정당화 할 빌미는 못 되었지만, 어쨌든 그런 행동의 동기만큼은 충분히 납득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인간의 정치적 호오는 합리의 영역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연애담> 트위터 공식 계정에 올라온 이현주 감독의 호소문 <연애담>의 문제는 조금 다르다. 이 영화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의 성 정체성의 영역에서 논의 될 만한 작품이다. 정치는 호오를 따질 수 있지만 누군가의 성 정체성은 타인이 함부로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것은 한 인간이 타고난, 바꿀 수 없는 어떤 조건이기 때문이다. <연애담>은 그런 조건을 안고 살아가는 두 여자의 연애를 담담한 화법으로 그려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 ‘티켓테러’를 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혐오’행위의 일환이다. 그것이 고의든, 고의가 아니었든 말이다. 바꿀 수 없는 누군가의 어떤 조건을 ‘반대’하거나, 차별하거나, 공동체와 격리시키려고 하는 모든 행위를 우리 사회는 혐오라고 부른다. 한국 사회에서는 내놓기 쉽지 않은 레즈비언의 사랑을 소재로 정식 개봉까지 하게 된 <연애담>은 동성을 좋아하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대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기 드물게 자신, 혹은 자기 주변의 이야기를 다뤄준 작품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보고 싶어 한 예비 관객의 마음에 찬물을 뿌린 ‘티켓테러’도, 우리 공동체 곳곳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혐오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다. 박꽃씨는 현재 무비스트 기자로 재직 중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57 | 추천: 0
- 11월 5일 광화문 광장에서- 이빛나/ 청년 칼럼니스트 광장에 나왔다. 서울 시청 앞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버스 안에서 벨을 누르고 거리를 살폈다.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잰걸음에 나도 마음이 바빠졌다. 4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간인데도 광화문 광장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행진을 시작하자 사람은 더 불어났다. 많은 인파의 이동으로 도로에 갇힌 차들도 눈에 띄었다. 운전자들은 짜증내기는커녕 집회 참가자들의 구호에 맞춰 경적을 울리며 응원을 보냈다. 분노보다 슬픔이, 질문보다 염증이 커지려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주문을 걸듯 되뇌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나와라_최순실’을 외치던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대답 없는 정부를 향해 직접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지난 29일에 이어 일주일 만에 인파는 엄청나게 불어났다. (주최 측 추산 20만 명, 경찰 추산 4만5000명)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부터 아이와 함께 나온 부부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세대를 가로질러 청계 광장으로 쏟아졌다. 쌀쌀해진 날씨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피켓과 촛불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피켓에 적힌 글귀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글귀가 있었다. ‘이게_나라냐’ 사진 출처 - 필자 국가란 무엇인가? 세월호 사건 이후로 반복돼 온 물음이다. 비선 실세라 불리는 최순실이 등장하면서 이 질문은 조금 달라졌다. 이전에는 국가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총체적인 물음이었다면 이제는 국가라는 시스템이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됐다. 사전 집회 성격이었던 지난 10월 29일, 세월호 유가족들의 외침이 오늘도 계속됐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던 국가의 구조를 바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각종 비리 스캔들과 국회의 충돌을 지켜보면서도 국민은 옳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많은 사람의 피로 이룬 민주주의 체제 국가라는 전제 때문이었다. 의견이 다르고 인물이 바뀌어도 자유와 평등을 가치로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국가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 체제를 통하지 않고 자신의 친구와 국정을 결정해왔음이 드러났다. 대통령에게 국민의 뜻을 전하고 권력의 남용을 감시 견제 해야 하는 국회는 이를 묵인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최 씨가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이전에 언론 보도에서 보았던 사진과는 달리 부스스한 모습이었다. 최 씨의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는 각종 특혜 비리에 연루된 최 씨의 딸 정유라 씨가 ‘풍파를 견딜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며 옹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 씨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과거 힘들었을 때 알게 된 인연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사과에도 논란이 커지자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외롭고 슬픈 대통령을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혐의에 대해 변호하는 것은 모든 이의 권리다. 최 씨나 이경재 변호사가 자신들의 입장을 방어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법적인 절차나 증거가 아니라 ‘어린 나이’를 운운하고, ‘과거 힘들었을 때’를 강조하며 사람들의 온정에 기대려는 행동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두 번째 사과문에서 박 대통령의 ‘이러려고 대통령됐나 자괴감 들어’라는 표현은 온 국민의 조롱거리가 됐다. 모든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만이 이게 나라냐고 묻는 질문에 답하는 길이다. 미국 닉슨 대통령이 하야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판결문에서 미 연방대법원은 이렇게 적었다. “대통령은 법 위에 있지 않다.” 행진이 끝나고 다시 시작된 2차 집회에서는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인터넷 기사를 보니 집회가 시작되기 전 오후 2시, 중고생들이 모여 시국선언을 했단다. 기사 사진 속 학생은 ‘시험이 대수냐! 나라가 미쳤다’라는 글귀를 적은 팻말을 들고 있었다. 나라가 미쳤다. 미쳐버린 국가를 심폐소생하기 위해 모두가 광화문에 모였다.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진실과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괴감을 느낄 때가 아니라, 자기반성을 할 때다. 이빛나씨는 청년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고 대학교 학보사에서 편집장으로 활동 중인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51 | 추천: 0
이은주/ 청년 칼럼니스트 무대 위 눈부신 조명 아래, 정갈하게 단복을 맞춰 입은 합창단이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입을 모아 노래하고 있다. 그 사이로 다소 낯선 차림이 눈에 띈다. 형형색색의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그들의 합창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퍼져나갔다. 서울의 한 아트센터에서 열린 이소선어머니 합창 공연에 다녀왔다. 여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파업과 쟁의를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도 함께 모였다. 쌍용자동차, 동양시멘트, 콜트·콜텍, 철도노조 등 각계에서 모인 노동자들은 무대 위로 깜짝 등장해 ‘연대의 광장으로 모이자’, ‘해방을 향한 진군’ 등 노동가를 경쾌히 합창했다.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에 맞춰 아름다운 하모니로 재탄생한 노동가의 완벽한 변신에 연신 감탄하는 도중, 사회자의 긴급지령(?)이 들려왔다. “지금 극장 측에서 무슨 얘기가 들어왔는데, ‘투쟁’이나 ‘싸움’ 이런 얘기를 조심해달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사회자의 너털웃음과 함께 나를 포함한 관객석은 순간 웃음바다가 됐다. 그런데 어째 웃음의 뒷맛이 씁쓸했다. 2016년에, 그것도 표현의 자유가 십분 보장되어야 할 공연장에서 특정 단어를 언급하지 말라니. 지금으로부터 50여년은 회귀한 듯한 구시대적 문법에 다들 어처구니가 없어서 기가 찬 웃음을 내뱉었으리라, 생각했다. 극장 측의 의중을 추측해보자면 노동자들의 바람과 열망을 담은 이 합창이, 문화시민이 즐기는 공연의 ‘고상함’을 해치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아트센터’라는 이 문화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의 단어라고 생각했다던가. 그들에게 노동자들의 노래는 왜 예술이 될 수 없었을까. ‘투쟁’, ‘해방’, ‘단결’…. 공연장에서 이런 말들이 들리는 것조차 ‘조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 극장 직원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운동을 다소 왜곡되게 인식한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과격한’, ‘급진적인’, ‘폭력적인’이다. 우리나라의 산업화·근대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문제를 함께 논의해나가야 할 ‘대화의 대상’이 아닌, 어떻게 해서든 반기를 들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탄압의 대상’으로 그려져 왔다. 이들은 ‘투쟁’이나 ‘쟁취’라는 단어로,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회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한다. 아트센터의 ‘고상함’을 해칠까 우려했던 극장 직원처럼, 많은 사람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노동문제에 대한 각종 잡음들을 편집하고 싶어 한다. 이 정도 되면 노동자의 노래가 예술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를 걱정하기 이전에,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찾기를 위한 의사결정 과정인 노동운동도 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행위’가 맞는지에 대한 걱정부터 해야 할 판이다. 역설적이게도, 노동문제를 사회 밖으로 밀어내려고 하는 ‘편집증’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작동되기도 한다. 이는 다수의 노동자들이 자기부정을 하는 식의 시도로 이어진다.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블루칼라 노동자와 구별되고 싶어 하는 의식이나, 우리나라의 많은 사무직 노동자와 고임금노동자들이 ‘노동자’보다는 ‘근로자’에 귀속되고 싶어 하는 의식(아마도 ‘노동자’는 과격한 이미지, ‘근로자’는 근면성실한 이미지로 표현돼 보다 더 고상하고 귀한 뜻으로 여겼을 테다)은 노동자 스스로의 계급에 대한 자기부정과 함께, 자신들로부터 노동문제를 ‘타자화’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대형마트 비정규직의 부당 해고 문제를 그린 영화 <카트>에서 한 등장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정규직이 뭐가 아쉬워서 노조를 만듭니까?” 이 장면은,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에게 정규직이란 ‘오르지 못할 벽’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육체노동, 사내하청 노동, 비정규직 노동 등 하층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 시선을 어렴풋이 느끼게 한다.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은 가장 어두운 곳으로 밀려난다. 고대 로마에는 ‘사회로부터의 배제’라는 형벌을 받은 죄인을 가리키는 사람들, ‘호모 사케르’가 있었다. 이들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들을 죽인 자는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마치 영화 <설국열차>의 꼬리 칸 사람들처럼, 그들은 사회공동체의 바깥 테두리에서 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희생양으로 바쳐지기도 한다. 또한 죽음을 통한 대속(代贖)조차도 금지된 존재였다. 올해 인천의 한 지하철역에서 50대 청소 노동자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안전모만 썼어도 살 수 있었지만, 계약직이었던 고인에게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안전모가 지급되지 않았다. 같은 사회공동체 속에서 살면서 구성원들 사이에서 배제를 당하는 호모 사케르처럼, 이들은 노동자 층 내에서도 철저한 소외와 고립을 느끼며 살아간다. 노동자들을 호모 사케르, 즉 희생양으로 고립시키는 인식체계는 이 사회를 공존의 사회가 아닌 차별의 사회로 만든다. 호모 사케르에 대한 외면과 무관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회의 병폐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진 출처 - 필자   우리는 가방 속에 공구통과 컵라면만을 남기고 떠나간 구의역의 비정규직 청년을 기억한다. 청년은 끼니를 때울 수조차 없도록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 비인간적인 노동 시스템에 희생양으로 올라타야 했다. 이번 이소선합창단 공연의 이름은 ‘종이담쟁이’였다. 구의역 청년에게 전하는 미안함과 슬픔과 분노를 담은 포스트잇 종이가 스크린도어를 넘어 담쟁이넝쿨을 드리웠듯, 우리 사회 소외된 자들을 위로하는 마음을 널리 퍼뜨리자는 의미이다. “바람이 분다 모두가 숨죽인 오늘 밤 / 건물 사이 쫓기는 피하는 눈길들 /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버릴 수 없어 놓을 수 없어 / 바람보다 드세게 숨소리 내어본다 / 내어본다 숨소리” -이소선합창단 창작곡 <바람보다 드세게> 中 합창단은 시대의 아픔을 노래했다. 바람 잘 날 없는 비정규직의 아픈 삶을 노래하고 ‘바람보다 드세게’ 숨소리를 내자며 이 시대의 ‘호모 사케르’들을 응원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소외된 자들과 공존하고자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바람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밥 딜런은 이 고통이 끝나는 시기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려, 입 밖에 꺼내어본다. “친구여, 그건 바람(hope)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대답을 알고 있지.” 이은주씨는 노동 인권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59 | 추천: 0
김정웅/ 청년 칼럼니스트 지하철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구도심을 관통하는 1호선이다. 가정용 스탠드부터 셀카봉, 어깨결림용 파스, 팔토시 같이 특별한 공통점도 없는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판매하는 이동상인이나, 척 봐도 불편해 보이는 몸을 이끌고 모 복지관의 비참한 상황을 삐뚤빼뚤한 글씨로 빼곡히 적은 메모를 돌리는 사람 등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다양한 군상들 중에는 한국에서 기독교에 대해 나쁜 인식을 갖게 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주 예수를 믿으라”를 끊임없이 외치는 그들. 말하자면 현대 한국에 나타난 ‘순교자’들이다. ‘순교자’의 유형은 다양하다. 옆구리에 성경을 끼고 목청 크게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 일갈하는 ‘마르틴 루터’형, 건강이 염려되는 외양을 가진 가녀린 노파가 한 사람씩 아이컨택을 시도하며 조곤조곤히 그리스도를 믿길 당부하는 ‘마더 테레사’형, 어떻게 저 많은 레파토리를 외웠는지 성경구절과 그 시사점을 쉬지 않고 쏟아내며 주위를 감탄하게 만드는 ‘수다맨’형 등……. 유형은 다르지만 이들 순교자들에겐 한 가지 공통점도 있다. 공격적 선교에 익숙지 않은 대다수의 비교인들에겐 거부감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들을 마주하면 보통은 시선을 피하거나, 심한 경우엔 혀를 차거나 면전에서 비난을 하기도 한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밤중에 높은 곳에 올라가면 수없이 많은 붉은 십자가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나라. 세계 순위권의 대형교회가 다수 모여 있다는 이 나라. 종교 중 기독교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이 나라에, 이 열렬한 ‘순교자’들의 포교는 무엇을 이루기 위함인가? 도대체 누가 이들을 보냈단 말인가? 역시 이 나라에 그릇되게 정착한 일부 기독교회가 사회 각지로 조직적인 포교망을 갖추고 파견하는, 소위 ‘개독교’의 하수인들이었던 걸까? 뜻밖에도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연히 만났던 어느 목회자는 ‘순교자’들이 한국 기독교회에도 부담이 되는 존재들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한국 교회에서 그런 거부감 드는 포교방식으로 기독교의 교세가 확장된다고 판단했을 리가 없다. 그 목회자는 교회가 그들에게 일정 비용을 지불해가며 “여기여기 가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6시간 하고 오세요.”라며 조직적인 파견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의 순교 상당수는 자발적인 행위라는 얘기였다. 조직적인 파견체계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순교자’들의 신비. 그럼 이들은 왜 누가 시키지도 않은 그런 수고를 도맡아 한단 말인가? 그 실마리 중 하나는 이들이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마주한 ‘순교자’들은 대체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태라거나 하는 식의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 이가 많았다. 원만한 경제활동이 어렵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버린 사람들을 받아주는 우리 사회 몇 군데 안 되는 곳 중 하나가 교회다.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 교회는 오는 사람을 마다하는 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무겁고 짐진 자들이 교회에 보금자리를 트는 일이라면 더더욱. 로마 시대에 박해받던 이들을 구성원으로 받아준 초대 교회의 정신에 감화된 이들이 순교에 앞장섰던 역사처럼, 현대 한국의 ‘순교자’들은 그렇게 하나 둘씩 시키는 사람 없이도 자발적으로 지하철에, 거리에 나타나 복음을 전파하는데 한 몸 바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사실 소외받는 이들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언제나 존재해 왔다. 시대에 따라 힘든 이들을 품는 주체는 달라져왔고 그 역할을 교회가 맡는 게 꼭 나쁘다고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복지국가’의 개념이 정착된 오늘날 그들을 보듬어야할 1차적인 책임은 국가에게 있다. 국가가 소외 계층을 다시 원만히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게 해주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그 역할의 일부분을 교회가 떠안아 버린 것이다. 이에 감화된 이들 일부가 거리로 지하철로 나서며 국가도, 교회도, 시민들도 원하지 않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에 목청 높이는 ‘순교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말하는 ‘지옥’이란,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이 아니라 이 사회의 빛이 닿지 않아 소외된 곳들을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김정웅씨는 사회와 정치의 소통을 통한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청년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53 | 추천: 0
강은진/ 청년 칼럼니스트 1년간 다녔던 회사를 퇴사했다. 과도한 업무와 근무시간, 그에 반해 적은 월급이 대외적 이유였지만, 날 괴롭힌 가장 큰 이유는 ‘배워온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는 것이었다. 남을 도와야 한다고 배웠기에 동료나 상사가 도움을 요청하면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미뤄진 그들의 일은 모두 내 일이 되어버려 떠안기가 부지기수였다. 퇴사자가 발생하면 그 1인분의 일도 나 또는 다른 누군가의 몫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업무는 늘었다. 나도 좀 편해지고 싶었기에 어느새 그들처럼 뺀질거리며 업무를 피할 줄 아는 능숙한 사회인이 되어갔지만 그는 내가 아니었다. 그런 태도는 내가 배워온 윤리가 아니었다. 지난 9월 방영했던 TV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 은밀하게 과감하게 요즘 젊은것들의 사표>가 한창 젊은이들 사이에 화제였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입사를 위해 학벌과 스펙을 갖춰 결실을 맺었지만 1~3년 차, 심하게는 1년도 못 채우고 끈기 없게 그만둬 버린 청년들이 그 이유를 말해준다. 그들은 이른바 ‘똥군기’, 도가 지나친 회식 문화, 폭언과 폭력, 성차별 등 개인의 인권이 짓밟히는 근무환경에 회의감을 느껴 회사를 박차고 나간다. 어디 대기업뿐일까. 나 뿐 아니라 내 주변 친구들도 대중소기업이나, 학교, 공기관, 매장 영업직 등 다양한 곳에 종사하고 있지만 직장생활에 대해 들어보면 다 똑같다. 내가 이러려고 부모님 고생시키며 몇 년간 공부하며 이 자리에 왔나 싶은 한탄들 천지다. 다큐 속 기업의 인사담당자나 상사들은 “요즘 애들~” 운운하며(신입면접자들이 엄연히 20대 후반 이상의 성인임에도 방송에서 이런 호칭을 쓰는 것도 거슬리지만...) “기본도 모르는 개념 없는 신입들 때문에 업무효율이 떨어져 손해”라고 자기네 사정을 호소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 세대들이 자초한 것 아닌가? 어이없는 신입을 만든 것도 윗세대들의 교육과 사회이지 않은가? 어렸을 때부터 자유와 평등을 배우면서 자라온 우리 젊은 세대들은 어느 정도 머리가 익어가는 나이가 될 때 수능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시작해 경쟁 속으로 끌려간다. 나를 돌아보는 성찰? 인성교육?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는가. “좋은 대학 가야지”, “대기업 가야지”, “연봉이 이 정도 되는 곳은 가야지” 같은 강박에 시달리며 고생 끝에 입사하지만, 이제까지 쌓아온 가치관과 현실 간 괴리가 찾아온다. 한길만 보느라 경험 못한 성장통을 이십대 후반, 서른에 이르러 된통 치르는 것이 현재 서랍 속에 사표를 숨겨둔 젊은 일개미들의 현실이다. 사진 출처 - 양경수 일러스트 <그림왕 양치기 약치기>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다 참고 지내야 해, 지나가는 거야, 다 그런 거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견뎌온 기성세대는 끈기 없는 젊은것들이 심히 못마땅할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났던 그들에게는 한 곳만 파면 드라마틱한 반전이 있었겠지만, 요즘은 금수저, 흙수저 얘기가 괜히 나오겠나. 우린 그런 거 없다. 윗세대들이 열심히 우물을 파던 삽 대신 우린 다양한 길로 연결되는 그물, 네트워크를 가졌다. 사표 쓴 젊은이들은 당당하게 꿈을 찾아, 곧게 뻗은 좋은 길 차 버리고 험한 여정에 나선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해외로 나가거나 알바, 프리랜서로 관계망을 형성해 사업을 벌이려는 사람도 있다. 다큐에는 그런 자식들을 걱정하고, 보기엔 좋은 직장을 때려치운 것을 원망하는 부모들도 나오지만, 씁쓸함을 뒤로 하고 결국 “스스로 선택한 길 후회 없이 살라.”는 응원을 사랑하는 자식에게 보낸다. 나도 퇴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처음엔 앞날이 막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을 저지르고 나서는 두 달 동안 여유 있게 지친 심신을 달랜 후 더 조건이 좋고 궁합이 맞는 곳으로 이직에 성공했다. 어차피 어딜 가나 똑같이 고생하는 회사를 각자 사정대로 그만두고 나오는 청년들을 철없다 손가락질하는 윗세대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하라면 하라는 대로 말 잘 듣는 당신들의 ‘애들’이 아니다. 퇴사 이유가 아주 하찮게 느껴지더라도 그 개인에게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절실한 이유이다. 부당하고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은 어딜 가나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곳을 향해 찾아갈 줄 아는 우리는 어른이다. 앞날이 위험하고 잘 보이지 않더라도, 도전할 줄 아는 우리는 청춘이다. 쯧쯧, 혀를 차기보다 응원해달라. ‘젊은 것’(따옴표)들의 퇴사는 끈기 없음의 결과가 아니라 더 낫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한 시작이다. 강은진씨는 책과 영화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는 국문학과 학생입니다.
2017-06-28 | hrights | 조회: 71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