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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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현진, 박선영, 임영훈, 정석완, 조소연, 주만, 주윤아, 최우식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전진식(한겨레),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조소연/ 회원 칼럼니스트 곧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설 연휴가 시작된다. 5일이라는 긴 연휴에 먼 친척까지 다 같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가족도 있을 것이고, 함께 쉬러 여행을 떠나는 가족도 있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가족이라면 소위 말하는 ‘명절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여행을 떠나도 사라지지 않는 스트레스가 있다. 바로 ‘호칭 스트레스’이다. 우리나라의 친족 간 호칭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헷갈리기 때문에, 본인이 결혼하거나 형제자매가 결혼하게 되면 한 번쯤은 네이버에 ‘가족 호칭’을 검색해보게 된다. 그러나 호칭 스트레스는 단순히 호칭이 어렵다는 것에 오는 스트레스는 아니다. 결혼한 여성에게는 호칭의 성차별적인 요소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국립국어원의 2011년 <표준언어예절>에 따르면, 여성이 결혼한 경우 배우자의 동생에게 ‘아가씨’ 또는 ‘도련님’이라는 높임말을 써야하는 반면, 남성이 결혼하면 배우자의 동생에게 ‘처제’ 또는 ‘처남’이라는 호칭을 쓰게 되어있다. 또, 결혼한 여성이 배우자의 친족을 부르는 호칭은 나이 불문 배우자 집안의 서열을 따르게 되어있지만, 결혼한 남성의 경우 나이에 따라 배우자의 친족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다는 점도 많이 지적된다. 계속되는 민원에 여성가족부는 결국 작년 8월 말 성차별적 가족 호칭의 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혔고, 마침 설을 앞둔 1월 22일, 또 한 번 가족 호칭 문제에 대안을 마련해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를 듣고 호칭 하나 바꾼다고 이미 현존하는 성차별적 인식과 문화를 바꿀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만일 언어가 단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반영된 결과물일 뿐이라면 가족 호칭 개선 논의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는 단순히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유지, 강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려고 언어를 사용한 사례는 많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존·비어체계는 조선시대 유교 지식인 지배층이 자신들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강력하게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택한 여러 장치 중 하나였다. 덕분에(?) 조선시대 이후로도 한국의 존·비어체계는 강력한 규범력을 갖고 한국의 수직적 사회구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 몇 년 전부터 IT업계나 스타트업에서는 호칭을 통해 문화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많이 보인다. 카카오에서는 모든 사원이 별명을 만들어 직급 대신 그 별명으로 부르고, 페이스북 코리아에서도 직급 대신 ‘OO님’이라는 호칭을 쓴다. 이윤을 추구한다는 기업이 굳이 추가적인 자원을 들여서까지 사원에게 호칭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 중 결혼 뒤 느끼는 차별 문제를 다룬 수신지 작가의 웹툰 <며느라기>가 최근 여성들의 폭발적 호응을 얻었다. 웹툰의 제목 ‘며느라기’는 며느리를 부르는 ‘며늘아기’를 빗댄 말로 ‘시댁 식구한테 예쁨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라는 의미이다. 결혼한 여성이 ‘며느라기’에 빠져 자신을 ‘참고 희생하는 며늘아기’로 만들어 버리는 이 상황이 어쩌면 배우자의 가족을 ‘아가씨’, ‘도련님’으로 귀하게 모셔야 한다는 무의식으로부터 시작된 건 아닐까? 문화, 전통,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차별적 언어와 행위가 정당화되고 있다. “예(禮)”란 “존경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나타내는 말투나 몸가짐”이라고 한다. 이 존경심이 결혼한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강요되고 있진 않은지, 결혼한 여성은 충분한 존경을 받고 있는지,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 조소연: 프로불편러 대학원생.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나누다 보면 불편할 일들이 점점 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
2019-02-08 | hrights | 조회: 91 | 추천: 0
-2019 겨울 인권교육 직무연수를 마치고- 주윤아/ 회원 칼럼니스트  인권연대의 겨울 인권교육 직무연수를 마쳤다. 이번 연수는 ‘인권, 세계를 이해하다’라는 주제로 ‘인권’의 렌즈로 다른 나라의 모습을 재조명해보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의 문화를 주로 책으로 접하다 강사들의 생생한 현지 경험담을 들을 수 있어 특히 좋았다.  팔레스타인 현대사 강의(홍미정 교수)를 통해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졌던 중동 분쟁의 본질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중동 분쟁은 내부 정치 문제만이 아니라 이 지역 강국들의 경쟁관계와 세계적 열강들의 개입이 얽혀 복합적으로 접근해야 하므로 한 두 번의 강의만으로는 이해가 녹록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몇 가지 선명해진 내용이 있다.  이스라엘 건국과 중동 전쟁, 그리고 반 세기가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탄압에 결정적 구실을 제공한 나라는 영국이다. 그렇지만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가 유대인들의 국가 건국에 대한 결심을 강화하게 한 배경이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 독일의 과거사 사죄 퍼포먼스를 마냥 환영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물론 과거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일본에 비한다면 바람직한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한편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저지르는 범죄에 면죄부를 줄 수도 없다. 강의를 들으며 그동안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만 강조한 우리의 학교 교육에서 유대인에 의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피해와 현재 그들의 처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 또한 비슷한 비중으로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출처 : 장애인권법센터 DRAC 홈페이지(http://www.draclaw.kr/human.html)  독일의 민주시민교육(김누리 교수)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는 부러움이 일었다. 교사이기 이전에 독일의 학생이 되어 교육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다. 독일의 민주시민교육은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교육에 큰 비중을 두고 이루어진다. 정치나 생태교육은 그 수준이나 실용성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학교에서도 다루고 있으나 성교육은 확연히 다르다.  독일은 성교육을 민주주의 교육의 핵심으로 간주하여 초등학교 무렵부터 비중있게 시행한다. 청소년의 성 권리를 인정하되 이에 따른 철저한 책임을 묻고 사회가 그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돕는 인권의 영역으로 성교육 내용을 구조화하였다. 즉 성을 무조건 억압하지 않는 성교육을 통해 불의한 권력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자아’를 지닌 민주시민을 기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독일의 성교육은 우리의 교육 현실에 비추어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분명 참고할 점이 있다. 여태껏 대한민국에서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자도 없고, 정확하고 실질적인 성교육 매뉴얼이 만들어진 적도 없으며, 현재도 이를 교육하고 연수할 전문가나 강사 등의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좌절하고 마냥 미룰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이미 초등학교 전후부터 사랑과 연애를 시작하며, 기성세대의 연애 패턴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어른이나 교사는 거의 없으며, 우리가 혹시 하고 예측하는 다양한 성적 행동을 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성’을 윤리적 영역으로 분류하여 부정하고 억압하거나 유보하라고 협박만 할 수는 없다. 제대로 된 성교육과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서의 성은 음지로 향하고, 약자와 여성을 대상화하며 이들을 소비하고 착취하는 현실의 성문화는 전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연초부터 터져 나온 스포츠계의 미투 운동에서 재확인하듯, 우리 기성세대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고통받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누구도 이러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행동할 때이다. 시기를 묻는다면 바로 지금이다! * 참고자료 : 인권연대 겨울 인권교육 직무연수 ‘인권, 세계를 이해하다(35기) 자료집 중 - (단국대 중동학과 홍미정,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김누리 교수님 강의안) 주윤아: 성평등 민주주의를 꿈꾸는 교육노동자
2019-01-23 | hrights | 조회: 157 | 추천: 13
최우식/회원칼럼니스트 지난해를 보내는 아쉬운 마음과 새해를 맞이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이 교차하는 시기다. 새해 소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 꿈은 자기 집이 아닐까. 소박하지 않은 꿈이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몇 년을 모아야 한다느니 하는 계산법도 이제 익숙하다. 송년회를 겸해서 서울에서 자취하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너에게 집은 어떤 곳이냐고. A의 역사 Q. 원룸의 역사가 어떻게 돼? A. 2010년에 올라왔지. 맨 처음에는 광진구. 500에 55. 8개월 살았다. 이때는 혼자 살았어. 8개월 뒤에 군대 갔지. 그리고 전역을 했는데 마침 비슷한 시기에 전역한 친구한테 먼저 연락이 왔어.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같이 올라가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콜! 너랑 살면 괜찮아. 둘이서 어린이대공원에서 2년을 살았지. 1년을 더 살려고 했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5만 원을 더 올린다고 하는 거야. 그게 부담이 돼서 나왔어. 그때 잠깐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고 지금 집으로 오게 됐다. 여전히 친구와는 함께 산다. Q. 좁은 집에서 둘이 사는 게 힘들 것도 같다. A. 지옥이지. 씻는 것, 임무 분담을 하는 것도 문제야. 하지만 이런저런 문제보다도 친구 둘이 사는데도 떠들지 못하는 것이 제일 힘들어. 친구랑 원룸에서 둘이 살면 얼마나 신나냐? 컴퓨터 두 대 놓고 재밌게 살려고 했다. 밤새도록 게임하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점점 옆방에서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아저씨들이 와서 조용히 좀 해줬으면 좋겠다. 이게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노이로제가 왔다. 말을 크게 하지 못하는 노이로제. Q. 학생 때가 아니고 돈을 벌잖아. 지금 같이 사는 이유는 뭐야? A. 돈이야. (Q. 지금도 돈이야?)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월세를 내기 시작하면 돈을 못 모아. 우리는 돈을 반반씩 내면서 돈을 모으고 있어. 그게 되는 거야. 쉽게 말하면, 그게 아니었으면 부모님에게 손을 벌렸을지도 몰라. 아끼는 돈이 30만~40만 원 정도 돼. 그 돈 아끼는 대신 내 개인을 주는 거지. Q. 그럼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해결하나? A: 이거는 다년간 이 친구와 같이 살아서 느낀 건데. 우리는 좌식 의자가 있어. 좌식 의자를 벽 끝까지 밀어붙인 다음에, 벽만 보고 혼자 있어 그냥. 핸드폰 하면서 혼자 있어 그냥. 이어폰 끼고 혼자 있어. 그리고 우리 둘은 에어팟 나오자마자 에어팟을 샀다. 왜냐하면, 서로 이어폰을 끼고 다녀 그냥. 집안에서. 애가 말하는 것도 안 들리고 내가 말하는 것도 안 들리니까. 우리는 그런 식으로 극복을 하고 있어. 근데 지옥 같아. 이어폰 그만 끼고 싶어. 잘 때도 에어팟 끼는 것도 짜증나고. Q. 그 밖에 문제는 뭐가 있을까. A. 나는 책을 사다 갖다 놓는 편이고 친구는 옷을 사다 갖다 놓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책 50권을 딱 정해놔. 50권이 넘어가면 나머지 책은 버려. 친구도 일정량을 사면 버려. 우리는 집에 그게 정해져 있어. 옷걸이가 정해져 있어서 그 이상이 되면 버려. (Q. 너 한 달에 책 20만 원어치 산다며?) 나머지는 다 중고서점에 파는 거지. 그렇게밖에 할 수 없더라고.   B의 역사 Q. 역사가 어떻게 돼? B. 고등학생 때 6인실 기숙사가 시작이었지. 수험시절에는 예민해서 많이도 싸웠다. 2년이 지나자 서로가 알아서 조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서로의 시간이 정반대였다. 저녁 8시에 불을 끄고 새벽 5시에 불을 켜는 친구와 함께 살았다. 게임하는 친구도 만났고 전도하는 친구도 만났다. 나이가 들고 못 살겠다는 생각에 원룸으로 나왔다. Q. 고시원이랑 하숙집은 언제 살았던 거야? B. 둘 다 재수 때. 고시원에서 3개월 살다가 옆집이 너무 무서워서 나왔다. 밤마다 이상한 주문을 외웠다. 고시원을 나와서 하숙집을 들어갔다. 재수생 여자 전용 하숙집이었다. 여기는 좋았다. 1층에 스터디 룸이 있고 도시락 싸주시고 아침에 깨워주시고 좋았다. 120만 원이었다. 삼시 세끼 다 주니까 나쁘지는 않았다. Q. 원룸 살기 시작하고 생긴 문제점은 뭐야? B. 집주인과의 트러블? 예를 들면 보증금을 잘 안 주려고 하든가. (Q. 보증금을 안 주려고 해? A. 안 주려고 하지, 많이) 나는 그래도 학교 앞이니까 소문나니까, 주긴 다 줬어. 근데 그걸 안 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야 막. 계약서 이 조항의 이 조항이 뭐다. 아니면 뒷사람이 안 들어와서 돈을 못 준다. 월세 안 받았다. 막 이런 경우도 있었음. 그런데 장부에 받았다고 적혀 있어서 넘어갔지. 카드 보증금 5000원 못 받은 경우도 있다. 청소 보증금도 있다. 나갈 때 무조건 내야 해. 금액을 빼서 준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다음 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명목이다. 사진출처- 뉴시스(광안리 황금돼지 조형물) 한국개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30세 이하 청년층의 월 소득 평균의 34.2%를 주거비로 부담한다고 한다. 100만 원을 벌면 34만 원을 주거비로 사용한다는 것인데. 실제 주거비는 그에 두 배에 달하는 게 보통이다. 취업한 청년들이 수치를 많이 낮추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다수 청년의 실제 부담률은 훨씬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주거 문제는 청년 문제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식비를 포함해 절대적 빈곤 비용을 정산하면 상대적 빈곤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 통신비와 화장품, 옷값에 술값을 조금 계산에 포함한다. 여기에 다달이 갚고는 싶은 학자금 대출과 취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글쎄 계산이 될지 모르겠다. 결국 이 모든 것을 견디게 만드는 원동력은 취업이다. 하지만 청년 체감실업률을 보여주는 확장실업률은 22.8%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고 한다. 게다가 19년 경제 전망은 하나같이 어둡기만 하다. 내 친구 A가 8평짜리 원룸을 친구와 나누어 사는 행위는 이런 상황을 극복해보려는 나름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가령 창문 없는 고시원을 선택하는 식으로 말이다. 뾰족한 수가 있을까. 나는 인터뷰 마지막 질문으로 어떤 집을 꿈꾸고 있느냐고 친구들에게 물었다. A는 월세를 내지 않는 집으로 가고 싶다고 답했다. B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둘 다 취업이었다. 뭐 그렇다. 이미 이곳은 제로섬의 게임이 지배하는 곳인 것이다. 하지만 윈-윈 게임이 아니라고 절망할 필요가 있을까. 제로섬 게임의 승자가 되고 나서 이 문제를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나만이 아니라 사회가 외면하지 않는다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우리는 그렇게 그날을 보냈다. 어쨌거나 19년 기해년은 꿈에서라도 나오면 복권을 사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영물, 돼지의 해이지 않은가. 적어도 19년은 돈 문제로 덜 걱정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최우식 : 사람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피디 지망생
2019-01-16 | hrights | 조회: 114 | 추천: 3
임영훈/회원 칼럼니스트   갈수록 ‘중용’이 아쉽다. 풀어보면 ‘中’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 ‘庸’이란 평상(平常)을 뜻한다. 극한적 대립을 통해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각계각층,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안타깝다. 길거리에서 싸움이 나도 억울하면 인터넷에 일방적 주장을 올린다. 술에 취해 타인을 비하하는 욕설을 쏟아내며 모르는 사람과 다툰 일로, 청와대 청원까지 해서 ‘내 잘못은 없다’고 강변하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에 살다 보니 더더욱 안타깝다. 어릴 때 회색분자나 비겁한 양비론으로 치부해버렸던 중용의 자세는, 그나마 시간이 갈수록 이런저런 인생 선배의 조언들과 다양한 인간 관계들을 겪으며 더욱 그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종종 잔혹 범죄 뉴스가 들려온다. 잊을 만하면 일상적이지 않은 살인이나 폭행 치사, 강간과 같은 이해하기 힘든 중범죄들이 일어난다. 더하여 이런 뉴스가 퍼질 때마다, 그에 따르는 무수한 댓글들도 상당히 가혹하고 잔혹하다. 신체 훼손 같은 경우에는 똑같이 해주라느니, 저런 놈들을 보면 사형제 폐지는 말이 안 된다라던지, 이런 글들이 넘쳐난다. 이미 한 번 대중에 의해 사회적, 심리적으로 돌에 맞아 죽은 피의자들은 수사와 재판의 단계를 밟아 나갈 때마다 인민재판에 의해서 여러 번 다시 죽고 정신적으로 능지처참 당한다. 어느 한 쪽의 감정에 이입돼 극도의 증오를 쏟아내고, 구약 성경이나 중동 과격 단체에서나 나올 법한 섬뜩한 말들이 쏟아진다. 평상심을 유지하고, 사안의 양면을 보려고 하는 중용이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다. 짚고 넘어가자면, 많은 인권 단체에서 피의자들과, 또 기결수라 할 지라도 수감과 출소를 거치며  나락으로 떨어진 분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권 단체들, 특히 인권연대의 다방면의 노력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한다. 개인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일이고, 기부 한 기억도 없다. 주변에 이렇게 희생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나는 아직 해외 아동 원조와 같은 먼 나라의 일에 자의반 타의반 가입되어 있을 뿐,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살피는 그런 따스함, 어려운 이웃을 구체적으로 돌보는 세심함에 미치지 못한다. 인권 단체들은 개개인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돌보는 데 있어서는 일종의 사회의 균형 추를 자임하는 중용의 덕을 실천하고 있다. 실패의 나락에서 재기하고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반대편의 밝은 면을 보게 해준다. 잔혹한 범죄는 아니지만 그 전초전이랄까, 학교 다닐 때의 오래된 기억이 있다. 아이의 몸으로 술, 담배에 본드까지 하던 불량아들, 10대로 보기에는 험상궂고, 수업 시간에는 맨 뒷자리로 옮겨 잠만 잤으며, 학교를 안 나오거나 중간에 사라지기 일쑤였다. 가끔 붙들려서 혼나면 만만한 선생님들한테는 눈 앞에서도 대들었다. 아직 체벌이 있을 때였지만, 안 맞으려고 완력을 행사하거나, 점잖은 선생님에게는 말대답을 했다. 잊지 못하는 장면도 있다. 두 명이 종례 시간에 다투어서 시끄러워지자 선생님께서 한 명을 교단 앞으로 불러내셨다.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이 분을 못 참아 의자에서 나무 조각을 뽑아서 앞으로 던졌다. 못이 박힌 채로 그 나무 조각은 애들 머리 위로 날아갔고, 칠판에 맞아 떨어졌다. 그 때 당황하신 선생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속으로는 얼마나 분노하셨을까, 그래도 그 분은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려고 하셨다. 한편 무지막지하게 힘으로 치는 체육 교사와 같은 덩치에게는 애들도 설설 기었다. 중학생 애들이었지만 영악했다. 이런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나에게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있다. “너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애들이야. 니가 이해해야지. 집에서 이미 스트레스를 받고 학교에 오는 애들을 어떻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해결해주니?” 철없는 십 대 시절 그런 말이 와 닿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개인의 환경까지 고려해서 생각하는 배려가 있었다면, 학교 생활이 괴롭지 만은 않았을 것 같다. 중용을 일찍이 깨달았다면,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면서 나와는 다른 사람을 챙겨주는 능력마저 생겼을 것이다. 현실은 선과 악으로, 모범생과 문제아로 나뉜 이분법이 적용되었고, 결과적으로 나의 학창시절은 그렇게 조화롭지 못했다. 사진출처-구글 예를 더 들어본다. 타고난 보수적 성향과도 겹쳐져 (타고난 진보적 성향도 있지만),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행은 어느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일정 부분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점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것은 전체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이며, 인간 사회에 그런 앞뒤 꽉 막힌 시스템이라는 것은 실패한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적어도 경제적 약자에게는 혜택이 될 것만 같았던 최저임금을 올리는 시도마저, 의도하지 않은 뜻밖의 결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 사회의 복잡성, 복합성이다. 무엇보다 최근 가장 큰 이슈가 된 최저임금 인상은, 대기업이 아닌 영세 자영업자에게, 무엇보다도 최저 임금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외려 실직과 근로 시간 감소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실없는 예도 있다. ‘미친 놈’이란 말을 군대나 회사에서 수 없이 듣는다. 심지어 남자들 간에는 허물없이 쓰기도 한다. 남자들은 이런 말을 심심찮게 들어도 참아야 하고, 여자에게 ‘년’이란 말은 쓰면 안 된다는 암묵적 사회적 합의가 있다. 같은 의미이지만 어감의 차이와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만 것에 평등을 좇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체의 차별을 거부하는, 온갖 것에 숨은 차별을 찾아내서 기계적 평등을 이뤄야만 한다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욕설 등에서는 왜 굳이 남녀를 구분하고 일일이 그건 안 되고 다르다고 강조를 할까?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의무건 책임이건 권리건, 가리지 않고 평등을 주장해야 그 주장은 양쪽을 아우르는 중용의 덕을 갖추고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인권 전반, 피의자의, 학교 현장의 인권 문제의 해결점이 무엇일까? 그런 정답이 있다면 이렇게 역사가 돌고 돌지는 않을 것이다.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애들을 구타하거나 착취하는 데에만 관심있던 일부 교사들,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문제아들, 학교 베란다가 떨어져 나가고 무너지는데 돈은 어디로 빼돌리는지 특목고 합격자 수만 늘리려고 했던 재단과 교장…. 중학교를 다닐 때, 또 졸업하고 나서도 그들만 솎아내면, 속칭 ‘적폐 청산’만 하면 이런 지긋지긋한 일들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지 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적폐라는 것들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내가 너 같은 범죄자보다는 훨씬 도덕적이야, 내가 너보다는 약자를 배려해, 난 여성이니까 너보다 당하며 살아 왔어, 난 가난하니까 부자인 니가 그동안 내 몫을 뺏어온 거야.’ ‘교육 현장은 너 같이 이상한 선생과 아이들, 교육부, 부패한 재단들이 망쳐 왔어. 그러니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 밖에.’ 이렇게 외치며 불평하고 투쟁한다. 어떤 면에서 맞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단체건 그 구성원들에게는 나름의 역할과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자신과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갈 수 있는 능력이 또한 중용의 힘이다. 이렇듯 사회 구조를 바꾸고 싶어하는 열망과, 계층이던 성별이던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한 조소와 경멸은 다르다. 구조의 치환은 피비린내 나는 혁명이 아닌,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달성될 수 있다. 종교 전쟁과 같이 서로의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고 인류가 그 동안 흘린 피와 파괴한 도시들, 자연 환경이 셀 수 없다. 역사적으로 퇴행하고 싶지 않다면, 같은 사회 안에서의 갈등을 치유하지 않고 조소와 경멸, 비하와 욕설로 증폭시킬 필요가 없다. 그렇게 타자를 무차별적으로 비난하므로서 헤게모니를 잡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잡은 헤게모니가 그토록 비난하던 권력과 달라질 지의 여부는 거꾸로 자기 반성에 달려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야. 그들은 그렇게 살아 왔어.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단지 그렇게 습관이 든 것일 뿐이야.’ 청년 단체 안에서의 갈등으로 고민하던 때, 모든 일이 습관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대학 시절 아버지께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은 그게 습관이 되어 거뜬하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또한 그게 습관이 되어서, 오후에 일어나다 정오에 깨라고 해도 힘들어한다. 여기서 상호 간의 이해가, 중용이 출발한다. 한때 지나간 과거를 일일이 공부하는 게 싫어서 역사학이 아닌 사회학을 전공했다. 현실이 작동하는 원리만 알면 됐지 미주알고주알 지난 일을 다 알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갈수록 그게 얼마나 근본 없는 생각이었던가 싶다.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 그렇게 기계적 도식으로 맞추어서 어떤 시대를 의미 없고 잘못된 것으로 단순히 뭉개버릴 만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문화, 아이들이 길들여지게 된 폭력,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관습, 이런 것들은 모두 현실 세계를 지탱하는 과거라는 큰 축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현재는, 미래로 나아가려는 발걸음을 ‘중용’으로 맞춰 나갈 수 있다. 과거를 무시하거나 부정하고 현재를 설계할 수는 없다. 과거의 전통적 기반에서 새로움을 모색할 때 현재는 튼튼히 뿌리내리게 된다. 여전히 반복되는 아이들의 폭력성, 갈수록 증폭되는 남녀갈등, 그리고 수시로 불이 지펴지는 계층 갈등에서 인권의 의미를 찾는다면, 케케묵은 ‘중용 사상’이 필시 그 등대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간의 평화도, 남녀 간의 이해도, 노사 간의 협력도 중용에서 출발하지 어떤 일방적인 생각의 노골적 강요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싶다. 하지만 중용의 바운더리를 벗어난 경멸과 무시, 일방적 폄훼와 싸잡아 욕보이기, 배려와 존중 없음을 존중할 만큼 너그럽지는 못하다. 그리고 중용은 나 자신의 인권 뿐만 아니라 모든 단체와 그 구성원들의 인권에도 중요하다. 누구던 ‘인간 답게’ 살 권리가 그들 자신의 인권이기도 하므로. 임영훈: 미국에 실을 팔고 있습니다. 가끔 천도 팔지만 어떻게 해야 팔리는지는 모릅니다.
2019-01-15 | hrights | 조회: 120 | 추천: 3
박선영 / 회원칼럼니스트  아직도 어떤 장면이 눈에 선하다. 길목에 널브러져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수많은 아기 돼지들과 한 손에 망치를 들고 그 사이를 걸어가며 돼지의 머리를 내리치는 노동자의 뒷모습이. 얼마 전에 경남 사천의 한 축산 돼지 농장에서 아기 돼지를 망치로 때려죽이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2만 마리 규모의 돼지를 사육하여 도축하는 전형적인 공장식 축산 농장이었다. 그 농장에서는 아기 돼지들을 임의 선별하여 비숙련자로 하여금 잔인하게 때려죽이게 하고 있었다. 느리게 자라거나 아파서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잔인무도한 살해의 이유였다.  인간은 어떻게 하면 자연과 동물을 더 잘 이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놀랍도록 발전시켜왔다. 동물을 인간에게 종속시키는 철학적 논리는 ‘이원론적 세계관’이다. 이원론은 육체와 정신을 서로 대립된 성질을 지닌 것으로 쪼개는 것이고, 나아가 그 둘 사이에 위계를 설정해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신을 제외하면 정신의 대표자는 인간이고, 물질적인 것의 대표는 자연이니,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 그런데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은 비인간 존재에 대한 억압과 착취만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 약자에게로 향하는 모든 폭력과 지배는 이원론적 세계관으로부터 비롯된다.  에코페미니스트인 발 플럼우드는 이원론을 통해서 특정한 인간 집단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논리적 장치를 분석했다. 여성의 재생산 노동이 무가치화되고 잘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동물의 재생산 노동이나 사육, 도살 과정은 의도적으로 감춰지고, 우리는 동물로부터 얻은 생산물을 부채감 없이 소비한다. 또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본능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동물적인 열등한 속성을 가진 것으로 정형화된다. 여성은 감성적이고 임신, 출산 기능을 갖고 있음에 따라 모성애가 있기 때문에 사적 영역에서의 노동에 적합하다고 하는 것이 이와 같은 논리이다. 이렇게 권력을 가진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여 특정 집단을 사회의 중요한 영역과 결정과정에서 배제하고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 - 걷는사람  인간은 삶의 전 과정에서 이러한 지배 논리와 구조를 맹신하고 이것에 공모하도록 지속적으로 주입 당해왔다. 오래 전에 동물, 유색인종,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상황과 조건은 지금보다 훨씬 처참했다. 그러나 인간은 역사적으로 이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계속 향상되었다. 이때 인간의 경직된 사고와 감정을 유연하고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이야기’이다. <무민은 채식주의자>의 단편 소설들은 인간과 동물이 교감한다는 것을 넘어 인간과 동물의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쟁터에서 탱크 폭발 작전에 이용되는 개를 훈련시키던 사람, 동물 보호소에서 버려진 반려동물들을 안락사시키는 일을 하던 수의사, 구제역 살처분에 참여했던 사람. 이들은 소설 속에서 극심한 슬픔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야기’는 나와 상관없는 존재에 귀 기울이고 집중하게 만든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고, 문학과 예술이 우리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다. 물론 인간의 공감 능력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겪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감 능력은 단순히 ‘착하고 배려하는’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들을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내는 구조를 이해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변화를 위한 움직임과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들이 더 많은 존재들을 연결시켜 주길 기대한다. 사진출처 - 걷는사람  그래서 내가 채식주의자가 되었냐고? 아니다. 어제의 나는 카레집에서 수많은 토핑 중에 돈까스를 선택했다. 오늘의 나는 요즘 즐겨보는 <밥블레스유>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출연진들이 새끼 돼지로 만든 ‘애저’ 요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나도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질문에 ‘아직’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여전히 돈까스 카레를 맛있게 먹는 나이지만, 이런 내가 <무민은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동물의 죽음 앞에서 펑펑 울기도 한다. 아기 돼지를 망치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구조에 분노하기도 한다. 비인간 존재와 나와 다른 인간 존재의 고통이 연결되어 있기에 나도 언젠가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박선영: 초등학교 교사 5년차. 페미니스트가 된 후 이전의 삶이 모두 흑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삶을 다시 쓰는 중.
2018-12-31 | hrights | 조회: 197 | 추천: 6
  조소연/ 회원 칼럼니스트 사진 출처 - 한겨레  세 명의 여성이 청계천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 사진은 1920년대 지식인 사회에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사진 속의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가 당시 여성 지식인 중 최초로 단발을 감행하고 여성단발운동을 적극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단발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여러 신문사가 취재했고, 위 사진이 보도된 후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단발운동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심하던 당시 허정숙이 <<신여성>> 잡지와 <<동아일보>>에 여러 칼럼을 기고했는데, 이를 엮은 책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가 최근 발간되었다.  허정숙의 <나의 단발과 단발 전후>에서 당시 단발운동을 둘러싼 팽팽한 긴장관계를 느낄 수 있다. 단발운동을 비난하던 어떤 기사에서는 신여성들을 “불완전한 준인간”에 비유하고 “미성품”이라고 표현한다. “신여성의 우대를 받는 것만큼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느냐”, “책임을 깨닫고 동시에 철저한 실행이 있느냐”며 여성운동을 하는 ‘신여성’에게만 엄격한 책임감의 잣대를 부여하고, 운동의 크고 작은 실패에 대해서 ‘철저한 실행’이 없다며 맹렬히 공격하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때 쓰인 허정숙의 칼럼은 약 100년이 흐른 지금의 페미니즘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글에 나오는 갈등은 최근 한국에서의 페미니스트 운동을 둘러싼 격한 갈등과 겹치는 점이 많다. ‘권리에는 의무가 따른다며 여자도 군대나 갔다 와라’는 반박이나, 혜화역 시위에서의 일부 극단적 행위를 빌미로 페미니즘 자체를 부정하는 글, 상의탈의 시위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며 ‘관종’이냐는 반응들. 이렇게 비현실적인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완전무결 흠잡을 데 없는 ‘보기 좋은’ 사회운동을 요구하는 여론은 단지 단발운동이나 지금의 페미니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 많은 시민운동이 겪어왔던 반응이다.  예컨대 1960년대의 미국 시민권 운동을 떠올려보자. 미국 시민권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인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사상이 강조되곤 한다. 그 바람에 1960년대의 흑인인권을 위한 시위들이 언제나 평화로웠던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그가 주도한 시위들에서도 격한 육체적 충돌과 소동이 있었다. 그리고 당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인권운동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흑인인권운동의 반대세력 중에는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물론 있었지만 주로 대결해야 했던 상대는 인종차별을 타파해야 한다는 당위에는 공감하면서도 운동은 지지하지 않는 많은 백인 온건주의자들이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1963년 “버밍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흑인인권운동을 통해 자유를 찾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백인시민위원회도, 쿠 클럭스 클랜(KKK)도 아니다. 바로 정의보다는 질서를 선택한 온건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정의가 구현되는 적극적 평화보다 갈등이 없는 소극적 평화를 선호한다. 그들은 ”너희들 취지는 알겠으나, 시위라는 방법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면 대부분이 진심으로 성차별을 경멸한다.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표를 지지한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혜화역 시위에서의 문구는 너무 극단적이었다고 말한다. 상의 탈의 운동은 보기에 흉하지 않으냐고 묻는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사회를 바꿔온 시민운동들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미국 시민권 운동에서부터 여성 투표권 운동, 그리고 동성혼 합법화 운동까지 우리가 바라는 얌전하기만 한 운동은 없었다.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 시민운동의 바로 그런 면이 주위를 환기시키고 인식을 변화시킴으로써 결국엔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혜화역 시위 중의 일부 위법한 일탈행동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완벽한 시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스트 운동 자체를 계속 부정한다면, 더운 날씨에 몇 시간씩 피켓을 들고 평화롭게 시위하던 2만 명이 넘는 시위자들의 의지는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는 그들을 시위로까지 뛰쳐나오게 한 장시간 쌓여온 부정의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양성평등을 원하지만 탈코르셋 운동과 상의탈의시위는 왠지 과하다고 느껴지고, 몰카는 나쁘지만 혜화역 시위는 너무 격하다고 하는 우리들 스스로에게 허정숙의 글을 빌어 반문하고 싶다. “우리들이 완전무결하게 다하여 놓은 것은 어디 있느냐” 라고. 조소연: 프로불편러 대학원생. 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나누다 보면 불편할 일들이 점점 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
2018-12-19 | hrights | 조회: 180 | 추천: 2
주윤아/ 회원 칼럼니스트  늦은 밤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았다. 이 영화는 ‘보았다’가 아니라 ‘들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내가 유일하게 밴드의 모든 노래를 알고 있는 ‘퀸’의 음악을 러닝 타임 내내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백하자면 학창 시절 몇 년간 ‘퀸’의 노래만 들을 정도로 심취되어 있었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해괴한 무대의상, 사생활 루머까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동안 그간 오해와 편견으로 엉킨 매듭들이 스르륵 풀렸고, 중반부에 이르자 어렴풋한 기시감이 들더니 엔딩 즈음에는 확신까지 들었다. 평행 이론처럼 누군가의 삶과 흡사한 느낌~누구더라? 바로 여름에 보았던 영화 <휘트니>의 휘트니 휴스턴이었다. <휘트니>는 생전 그녀의 활동 영상과 홈비디오를 샅샅이 찾아내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라 좀 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피부색, 국적, 성별, 음악 장르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이들의 삶은 기묘하게 닮아 있다. 휘트니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흑인치고는 하얀 피부색으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흑·백인 모두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파르시(인도에 거주하는 조로아스터교도)의 후손인 이민자 프레디 역시 인종과 종교의 차별을 끊임없이 받았다. 외모면에서도 휘트니가 인기가 절정이던 시기에도 피부색 때문에 흑인과 백인에게 번갈아가며 인신공격을 받아왔듯, 프레디 역시 외모(돌출된 앞니)로 외면당한 경험들 때문에 이 컴플렉스에서 평생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성적 정체성(영화에서 휘트니 역시 동성 연인으로 암시되는 인물이 나옴)을 공식적으로 드러내지 못했기에 내면의 혼란과 고통이 극심하였을 것이다.  설상가상 휘트니는 어릴 때 성적 학대를 당했지만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다. 프레디 역시 이성의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동성 연인들을 만나는 동안 느끼게 되는 혼돈과 억압 등 여러 가지 부정적 감정이 늘 내재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에이즈(AIDS) 환자들은 ‘악마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극단적인 지탄을 받는 시대였으므로 결국 프레디는 발병 사실을 숨기며 적극적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요절했다. 휘트니는 수년 동안 마약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범죄를 저지르는 남편을 뒤치다꺼리하며 자신도 마약에 중독되어 피폐한 시절을 보내다 어렵게 재기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사망하였다. 성적 다양성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금기시되던 시절이었기에 이들은 성소수자로서의 고민을 혼자 감당하며 고통 속에 살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는 이러한 고민을 의논하거나 의지할 대상이 거의 없었을 것이기에 그들의 삶이 더욱 가슴 아프다.  그런데 나는 휘트니 휴스턴의 다큐 영화를 보면서 프레디에게서 느낀 것의 갑절 이상의 연민으로 내내 눈물을 흘렸다. 물론 <보헤미안 랩소디>가 대중적 상업 영화인 이유도 있겠지만 극영화 속의 프레디는 독실한 파르시의 삶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서 독립할 때도, 이성과 결혼(사실혼) 후 결별하고 또 동성의 연인을 만날 때도, 당시로선 파격적인 음악의 장르와 음반을 발매할 때도 대체로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휘트니는 여느 여성들처럼 가부장제 질서 속에 억압된 여성의 삶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휘트니는 아주 어린 시절 부모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동성 사촌에게 성적 학대라는 충격적 경험까지 하고, 부모의 불화와 이혼으로 불안정한 성장기를 보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혹독한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며 천부적인 가창력과 열정으로 당시 미국인이자 흑인 솔로 여가수로서는 유일무이하게 세계적 명성까지 얻게 되었다. 그러나 각종 범죄를 일삼는 남편과의 불행한 결혼 생활로 인해 음악인으로서의 그녀의 삶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불행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자신이 꾸린 가정만큼은 끝까지 지키려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원인조차 불분명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게다가 그녀가 벌어들인 수입은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관리되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급기야 극심한 생활고까지 겪게 된다. 이렇듯 평생 그녀의 삶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고, 대체로 가족이나 남편, 타인과 언론 등에 종속되거나 결정되는 일들이 많았을 것이다. 물론 어떠한 이유로도 마약, 약물 등에 빠진 그들의 선택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영화에서 두 사람 모두 늘 노래를 흥얼거리는 장면들이 많은데 그것을 보며 또 가슴이 아렸다.   사진 출처 - 사단법인 시민과 같이가치 with kakao의 #더불어삶 프로젝트 공모전 이미지  내가 휘트니나 프레디를 칼럼에 소환한 이유는 그들의 주옥같은 음반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은 인종, 성적 정체성, 종교, 경제적 배경, 심지어 외모까지 모든 것이 주변인이었다. 3옥타브를 넘는 천재적인 음악성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는 순간에도 주류 세계의 차별과 혐오에 시달렸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우고, 또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적 스타들의 삶도 이러할진대, 우리 주변의 이름 없는 소수자와 약자들의 삶을 새삼 돌아보게 되는 추운 겨울이 또 왔다.  ※ 영화를 보고 작성한 내용이므로 실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주윤아: 성평등 민주주의를 꿈꾸는 교육노동자
2018-12-11 | hrights | 조회: 201 | 추천: 16
주만/ 회원 칼럼니스트  1. ‘대충 살자’. 케이크를 빵칼 대신 가위로 자르고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도 개의치 않게 식사하는 등. 엉뚱한 이미지와 ‘대충 살자’라는 워딩(단어선택)이 궁합을 이룬다. 요즘 SNS에서 뜨고 있는 이 말은, 소소한 웃음을 유발하는 것으로 시작해 ‘맞아, 대충 살아야 해’라는 댓글로 끝을 맺는다.  자신을 사회의 틀에 끼워 맞추고, 주변의 시선에 갇혀 살 필요는 없다. 이미지 속 인물들처럼 융통성 있게 행동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대충 살자’는 말에는 공감할 수 없다. 문제 상황을 재치 있게 해결하는 것과 “아 몰라, 대충 하자”의 차이는 분명하지 않은가? 융통성과 대충은 엄연히 다르다.  SNS 속, 열정을 지녀야 마땅한 청년들에게 ‘대충 살자’라는 워딩이 와 닿았다는 점도 유감스럽다. 오락적인 표현일 뿐인데, 내가 너무 예민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어에는 힘이 있다. ‘대충 살자’라는 말을 계속해서 입에 담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말이 온몸에 흡수되어 가치관으로 굳어질지도 모른다.  2. ‘관계에 힘쓰지 마라’. 이 말 또한, SNS에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공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있어 보였다. 가정, 회사, 연애 등에서 상처받은 그들의 마음을 내가 감히 헤아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해서 ‘관계에 힘쓰지 마라’하며 ‘관계의 벽’을 치자는 게 올바른 것일까?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지 결성되는 ‘관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관계 속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에 힘쓰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그 노력을 하지 말라니. 지독한 경쟁 사회에서 관계의 회복이 없다면, 어디서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말인가. 입맛에 맞는 사람들만 곁에 두는 게 좋다는 댓글을 남기는 사람에게, 현실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말은, 공동체라면 꼭 있는 ‘문제아’ 때문에 힘 빼지 말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문제아들은 말을 해도 변하기는커녕, 상황만 어렵게 만들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현실화하는 생명체다. 그렇다고 한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해결책일까?  문제아의 초기행동에 반응하지 않으면, 비행의 도구는 점점 날카로워진다. 공격의 대상이 죽은 듯 반응하지 않게 되면 방향을 돌려 찔러댈 것이고, 무방비상태로 치명상을 입은 다른 피해자는 회복하지 못하거나 비슷한 문제아가 되어버린다. 문제아는 내버려 두면, 괴물이 된다. 힘들더라도 가해 행동에 반드시 애정의 말을 해주어야 하는 이유다.  나열한 예시 말고도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존재한다. 관계로부터 파생된 불편함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경우도 많다. 관계에 실망한 사람이 ‘벽’을 치는 선택을 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하게 굳어지는 그 벽을,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허물 수 있을까. 그리고 벽 뒤에 숨어 몸집을 키운 괴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관계에서 받은 상처에는 위로를 보내주고 싶지만, 좋은 인연과 올바른 사회를 막아버릴 수도 있는 태도를 응원하고 싶지는 않다. 사진 출처 - 한겨레  3. 언제인가부터 우리는, 누군가가 쥐어주는 벽돌로 아무렇지도 않게 벽을 올리고 있다. ‘나는 벽돌이나 쌓으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힘들고 재미도 없는, 벽을 올리는 일에 ‘분노’한다. 벽을 충실히 쌓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분노하면서도 벽돌을 쌓는 삶을 멈추지 않는다. 주변에 나보다 벽을 낮게 쌓은 사람이 있다면 ‘무시’하기도 한다. 심지어 벽돌은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 때문에 벽돌을 얻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그 대상을 ‘혐오’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벽돌을 쥐어주면서 ‘너네는 벽이나 쌓으며 살아’라는 ‘그들’에게 분노해야지, 왜 똑같이 힘들이며 벽을 쌓는 사람을 무시하고 혐오하는가.  빼곡하게 들어선 벽 너머로, 벽돌을 뺏고 빼앗으며 다투는 참혹한 소리가 넘어온다. 그 소리를 들으며 미소 짓는 그들이 보인다. 만족해하는 것을 보니, 그들에겐 이 소음이 그저 아름다운 선율 정도로 들리나 보다.  4.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탓에 생겨버린 마음의 구멍에 다른 것이 채워진다. ‘더 재미있는 것, 더 자극적인 것.’  ‘진지충’, ‘감성충’. 고민이나 생각을 말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시도 때도 없이 고민이나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진지함과 감성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다. 자극적인 이야기로 재미를 유발하지 못하면 ‘벌레’가 되어버리는 현실에,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는 욕설과 허세 그리고 서로를 깎아내리는 말들로 가득하다. 저급한 말로밖에 유머 감각을 뽐내지 못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현대인들은 인간성을 잃은 채 심각한 ‘재미 강박’에 빠져 있다.  현대인들은 과거 수준의 키스씬과 살인 장면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키스하면서 서로를 더듬다가 베드씬 정도는 가야지, 칼로 찔렀으면 피도 튀겨주고 죽였으면 토막도 내야지 그제야 흥미를 보인다. 무뎌진 자극을 충족시키기 위해 너도나도 나서서 상위 자극을 만들어 낸 결과, 이제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조금만 검색해도 이런 장면들을 손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나온 ‘범죄 도시’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 영화의 현실적인 묘사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나를 만족시킬 만큼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특히 ‘장첸’이라는 인물이 작은 칼로 급소를 정확히 공격해 상대를 단번에 쓰러뜨리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이제 막 피어난 꽃이 꺾일 줄은.  10. 공기 중에서 ‘1. + 2. + 3. + 4.’ 합산되어 ‘10.’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인생을 [1. ‘대충 살자’]는 [2. ‘문제아’]가 그저 [3. ‘나보다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거슬리게 했다는 이유로, [1-1. ‘열심히 살자’]는 꽃다운 청년의 목숨을 영화 속 [4. ‘자극적인 장면’]과 유사하게 앗아갔다. 내가 괴물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와 방법의 모티브를 잘못 짚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원한 관계가 없는 사람을 무참히 짓밟고, 젊은이가 노인을 폭행하며, 서로를 자극적인 말로 혐오하는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현주소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벽(관계or물질)을 쌓는 행동을 멈춰야 한다. 실력 있는 의사조차 “무기력함”을 느낄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과 미친 괴물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면.  -강서구 PC방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주만: 서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작가 지망생
2018-12-03 | hrights | 조회: 221 | 추천: 16
임영훈/ 회원 칼럼니스트  막상 칼럼니스트란 그럴듯한 타이틀을 달다 보니, 인권에 대해 글을 쓰기가 너무나 어렵다. ‘우리시대’의 글들을 보면 꼭 인권에 관련된 것만 있는 것도 아닌데, 단체가 단체인 만큼 머릿  속에 계속 인권이란 단어가 맴돌며 한없이 고민으로 빠진다.  돌이켜보니 인권연대에 가입하게 된 것은 기자 수업에서 만난 선배(기자)의 권유(?)때문이었다.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기자를 준비하며 만났던 몇몇이 인권연대 행사에 따라오게 되었다. (당시는 이미 몇은 기자가 되고, 또 나머지는 다른 쪽으로 진로를 바꿨던 이후로 기억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절한 강압인지 권유인지, 선배의 손에 이끌려 후원 회원 가입을 하게 되었다. 어쩌다가 하게 되었으므로 아마도 다들 소액으로 가입을 하였고, 그 때 그 친구들도 아직 회원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 확인해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여전히 회원이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인권연대는 주문한 옷처럼 꼭 맞는 단체는 아니었다. 여담이지만 엠네스티도 후원하고 있는데 (가입 경로가 기억이 안 남), 기본 후원 금액부터 비싼 이 단체는 서구적 시각으로, 영국인지 미국인지 그들만의 입맛으로 세상을 보는 게 느껴져서 왠지 모를 이질감이 들었다.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후원을 끊고도 싶지만, 좋은 일이라고는 변변히 하는 게 없어서 기존에 가입한 몇몇 단체들을 포함해 아직은 후원을 유지하고 있다.    인권연대 같은 경우는 소액이고, 연말연시에 회원들에게 소소한 편지 하나라도 보내주는 마음에 정을 느껴 후원을 그만하고 싶은 적은 없었다. 다만 가끔 어떤 프로그램이나 행사가 눈에 띄어서 가보면, 내가 여기 있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있었다. 시민운동가나 사회 개혁가와 같은 길을 걸을 용기를 내거나 결심은 못했지만, 후원하고 지지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할 의향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런 고민이 적었어야 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실제는 이랬다. 현실적인 친구들 사이에서 있으면 나는 너무 이상적이라 속 깊은 대화를 꺼낼 수 없었다. 반면 온통 이상적인 논리만 앞세우는 분위기에서는 거꾸로 현실적이 되었다. 마치 어디에도 낄 수 없이 겉도는 느낌이다. 심지어 인권연대 모임에서, 전교조 교사나 기자 등 몇몇 특정 직업이 아닌 일반적인 회사원을 만나서 얘기를 나눠본 기억이 없다. 아마도 내가 못 만났겠지만, 그만큼 나는 비슷한 부류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는, 왠지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있는 듯한 소수자였다. 길거리에서는 발로 채일 정도로 많은 오피스 워커가, 아무나 올 수 있는 어떤 모임에서는 극히 소수라는 것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다. (실제로는 아무나 오지는 않긴 하다.)    무언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종종 아주 긴 글도 집중해서 자발적으로 쓰기에, 어느 날 눈에 띈 칼럼니스트 모집에 지원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글을 썼고, 한 편 밖에 안 썼는데도 합격이 되었다. 그리고 멘토 기자님은 풍납토성에 관한 얘기를 술자리에서 듣더니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마음 한 구석은 당시에도 인권의 본질에 가 있었지만, 그런 유의 어마어마한 주제가 부담도 되었던 지라 풍납토성의 복원에 관한 담담한 글로 가뿐히 스타트를 끊었다. 두 달이 금방 지나가고, 지난 여름에 다시 나의 차례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주제가 특정되지 않은 채로 두서없이 두 번째 글을 썼는데, 어찌 된 일인지 사무국에서는 가타부타 답이 없었다. 고쳐서 다시 보내 달라는 말도, 주제가 맞지 않으니 바꿔 달라는 말도 없었다. 여러 경로로 글에 대한 회신을 문의해봐도 답을 못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갑자기 연락을 받았는데, 너무 길고 요점이 없으니 글을 줄이고, 기한은 딱히 정해진 것이 없으니 글이 완성이 되면 보내 달라는 전화였다. 기다리다가 받은 답 치고는 맥이 빠졌고, 이런 단순한 답을 주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 후에 글을 다시 써서 보내지 않았다.  그 후, 막연히 페미니즘을 비판한 글의 기조가 문제였다고 지레 짐작만 한 채로 시간이 흘러갔다. 내가 글을 고쳐서 보내지도 않았고, 혼자서 짐작만 하고 놔 버렸으니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치니 글을 쓸 의지가 생기지 않았고, 6개월 만에 다시 글을 써 달라는 문자를 받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은 의욕이 상실된 상태다. (연초에 글을 1년간 쓰겠다고 약속했으니 의무가 있고, 그간의 해태에도 책임이 있으니 지금이라도 써보려 한다.)    길고 긴 서론을 끝내고 본론을 얘기하자면, 어쩌다 보니 나와 같이 회원 활동을 하고 있는 ‘보통 사람’이 인권연대에 기고하는 글에 노동 운동이나 페미니즘 등에 관한 비판적 시각을 자유롭게 드러내기는 상당히 어렵다. 미리 짐작하는 것이지만, 덮어놓고 반인권이라는 딱지가 붙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힌다. 인간의 권리 중 자유롭게 말할 권리(Freedom of speech)는 가장 기본적인, 기본권 중에 기본권인데, 나 스스로 심각하게 검열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자체 검열을 감수하고서 글을 시작하더라도, 그런 글이 무턱대고 받을 비난과 비판을 예상하면 차라리 안 쓰는 게 낫다는 생각에 지레 펜을 놓고 싶은 심정이다.    진부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거래처 중에 비교적 큰 회사가 있는데, 그곳의 70대 사장님은 종종 정치적 얘기를 꺼내며 타 회사 직원인 나의 의견을 물어보시곤 한다. 다른 회사 직원일 뿐인 나의 의견을 강압하거나 하지는 않으시지만, 요새의 젊은이들과 자신의 의견이 전혀 다르다는 점은 명백히 하시는 편이다.  그런데 한번은 촛불 시위가 한창일 때, 바이어와 동석해서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한국의 미래가 걱정’이라며 어설픈 영어로 바이어에게 말씀하시다가, 그 얘기를 애써 못 들은 체하고 있는 나를 보셨던 건지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시더니 나를 보고 한 번 더 말씀하셨다. (기분이 상하신 것인지 꾸짖는 듯 했음.) 마치 정치적 의견조차 상거래의 갑을 관계에 종속되는 듯한 압박을 받는 듯했다. 당시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 못하고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자격지심일 수 있지만, 회원 칼럼니스트가 된 이후에도 스스로 압박을 받는다. 나에게 말할 자격이나 권리는 없는 것 같고, 방향과 정답은 정해져 있으니 그에 따른 지침을 벗어난 글은 쓰면 안 된다는 무언의 분위기를 느낀다. 노동자나 여성이 사용자나 남성을 공격하고 폄하하는 글은 가능해도, 그 반대는 반인권적이라는 딱지가 붙을 것만 같은 압박을 느낀다.    이것이 나만의 편견이기를 바란다. 사용자도 사람이며, 남성도 사람이다. 동물 복지까지 운운하는 마당에, 어느 누구도 처한 입장이나 사상이 다르다고 일방적으로 비난 받거나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가 존중 받아야 하듯 사용자도 존중 받아야 하고, 이슬람이 존중 받아야 하듯 개신교도 존중 받아야 한다. 일례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저질러 대중의 단죄를 받았던 대한항공 조현아 전 사장의 경우, 그 자신이 재벌가로서 특권층이면서 동시에 여성으로서 미디어나 대중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인권 또한 있었다. 하지만 마녀 사냥 당하듯, 이런 측면은 분노의 광풍에 휩쓸려버렸다.  21세기에 동성애에 대한 포용이 강조되듯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적 가치관도 그 반대편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우열이 없다. 어떤 것을 취하고 그 반대편은 버리거나 짓밟아야 한다는 극단적 사고는 사회적으로 합의될 수도 없으며, 폭력적 방법이 아니고서는 쟁취될 수도 없다. 더 크게 보면, 현재의 가치 판단으로 진보적이고 최첨단을 걷는 듯한 사고도, 마치 우리가 구한말을 보듯 한 세기가 지난 사람들이 보면 한참 구식으로 보일 수 있다. 좀 더 멀리서 봤으면 좋겠다. 당신의 생각과 주장은 그토록 절대 진리인가?    해가 지날수록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이 더더욱 와 닿는다. 마치 자신이 정의이고 미래인 것처럼 목소리를 드높이지만, 타자를 공격하고 비난하며 스스로의 입장만을 목소리 높일 뿐 전체 구성원의 조화에 대해서는 이만큼의 배려나 고려도 없는 특정 단체들은 오히려 더 많아지고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 정답이 없이 각기 자기 계층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고 쟁취할 뿐, 암묵적 양보와 신의 같은 것은 가족 사이에도 존재하지 않는 듯 소멸하고 있다. 때로는 인권 단체도 부지불식 간에 단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까지 있다. 인권에 좌와 우가 있는가, 우파는 인권이 없는지, 아니면 우파는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지, 많은 의문과 생각이 꼬리를 문다.    개인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각개 전투가 발생하는 사회 현실이 못내 피로하다. 이런 갈등들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시민 단체들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 인권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필요하듯, 혼돈의 시대에 대한 자각, 그리고 인권 단체들 스스로의 끊임없는 변화를 바라게 된다. 물론 그 누구라도 답을 찾기 어려운 주문이다.  전대협 의장이었던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제는 민주노총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오늘의 세상은 결코 어제의 세상과 같지 않다. 오늘의 약자는 어제의 약자가 아니며, 침묵하는 다수가 약자가 되어 속으로 분개하고 있는 현실을 보는 눈도 인권단체에 필요해졌다고 느낀다. 강자와 약자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구분되지 않을 만큼,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졌고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임영훈: 미국에 실을 팔고 있습니다. 가끔 천도 팔지만 어떻게 해야 팔리는지는 모릅니다.
2018-11-21 | hrights | 조회: 303 | 추천: -5
박선영/ 회원 칼럼니스트  인간은 그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각자의 위치가 정해진다. 이 사회에서 나의 위치는 여성이고, 무산계급의 딸이고, 교육 노동자이고,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주의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문제를 생각한다. 시인은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정치가는 오로지 정치만을 생각하고 경제인은 오로지 경제만을 생각하고/근로자는 오로지 노동만을 생각하고 법관은 오로지 법만을 생각하고/군인은 오로지 전쟁만을 생각하고 기사는 오로지 공장만을 생각하고/농민은 오로지 농사만을 생각하고 관리는 오로지 관청만을 생각하고/학자는 오로지 학문만을 생각하면 이 세상이 낙원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시와 정치의 사이/정치와 경제의 사이 경제와 노동의 사이/노동과 법의 사이 법과 전쟁의 사이/전쟁과 공장의 사이 공장과 농사의 사이/농사와 관청의 사이 관청과 학문의 사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만 휴지와/권력과/돈과/착취와/형무소와/폐허와/공해와/농약과/억압과/통계가 남을 뿐이다. 김광규, <생각의 사이> 사진 출처 - 필자  나는 무엇만을 생각하며 살아왔을까? 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사회에서 정해지는 그 사람의 위치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우리 사회가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여러 정체성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이고, 무산계급의 딸이고, 교육 노동자이고,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주의자인 내가 서 있는 위치, 그 자리에서 내가 경험하는 것들은 타인과 구분되는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상대적인 힘의 차이로 인해 억압과 차별을 겪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떤 문제 앞에서는 여성으로서 성평등을 생각했고, 또 노동자로서는 노동권을 생각했다.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 많은 가운데 붙잡을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권리’일 것이다. 인간이 지난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쟁취한 ‘인권’이라는 발명은 한 인간이 빼앗긴 힘을 되찾아준다. 그래서 세상이 고통스러울수록 인권을 말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너도 나도 거리로 나와서 모이고, 외치고, 길을 막고, 관심과 연대를 요청한다. 누구나 자신이 당면한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각자의 권리는 경합하고 갈등한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불편하다. 세상에는 문제가 너무 많고, 오늘은 어떤 이가,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어려움을 말한다. 권리는 항상 침해당할 때 호명된다. 인권은 인간이 고통 받을 때 소환된다. 인권은 안 좋은 사건과 함께 나타난다. 인권이 자꾸 등장할수록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그래서 관심을 갖기가 부담스럽고, 마음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다. 나도 힘든데 다른 사람의 힘듦을 듣고 있는 것은 더 고통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만을 생각하게 된다.  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한 가지 이유만이 아니다. 사회가 만든 여성, 20대, 무산계급 노동자, 비혼주의자의 위치는 나를 힘들게 하는 다양한 이유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많다고 해서 고통이 단순히 커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노동자여서 겪는 문제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또 다른 성격의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는 고통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다. 교사로서의 나는 학생들에게 상대적으로 힘의 우위에 서서 권력을 행사한다.   이 사회가 여성에게 정해준 자리는 교육 노동자로서의 나의 위치를 재조정 했다. 여교사는 교사와는 또 다른 위치에 있는 존재였다. 한 교사가 학생과의 사이에서 겪는 문제는 ‘여교사라서 애들을 잘 못 잡기’ 때문이다. 한 교사가 선배 교사에게 성희롱을 당하는 것은 ‘어리고 경험이 없는 여교사라 단지 챙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때 결혼과 출산 유무는 여교사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재조정한다. 한 교사가 일등 배우자감이라는 말을 듣는 이유는 ‘엄마인 여교사라서 일찍 퇴근하여 가사와 육아를 전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교사가 학생들을 잘 이해하지 못 한다는 말을 듣는 이유는 ‘애를 안 키워본 여교사라 아이의 마음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을 힘들게 하는 것들 중 내가 여성 노동자여서 힘든 점이 있었으나, 정규직 노동자여서 피해가는 것이 있었다. 비혼주의자여서 힘든 점이 있었으나, 비장애인이어서 피해가는 것이 있었다. 같은 여성이어도 나는 피할 수 있고, 어떤 여성은 겪어야 하는 고통이 있었다. 사람들이 서있는 다양한 위치에서 나는 어떤 누군가보다 더 힘을 가지고 특권을 누리고 있기도 했다. 나를 설명하는 그 많은 정체성들이 만들어 낸 지금 나의 위치를, 그 위치로 인해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나를 관통하는 억압의 축이 교차하고, 동시에 타인을 억압하는 상황에서 내가 당장 무엇을 해야 하고,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여성의 자리에서 교육 노동자의 자리에서 나의 고통을 호소하고 권리를 주장하기에도 바쁘고 벅차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교사로서 학생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규직 교사로서 비정규직 교사들이 겪는 부당함의 문제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 그러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약자에 대한 시혜적 태도였을까.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을까.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자리에 서있는 사람들과 연대할 방법을 몰랐고 그러한 역량도 없었다. 단지 그냥 잠깐의 연민이나 공감으로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난민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머릿속에서 계속 떠나보냈던 것 같다. 진정한 연대가 무엇인지, 그것이 가능하기는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런데 우리가 연대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드니까 서로 도와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만으로는 연대의 힘을 발휘할 수 없고, 끝까지 지속할 수도 없다.  여성이 겪는 문제를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만 이해할 때 그 사이로 많은 것들이 빠져나간다. 일회용 생리대의 발암 물질이 문제가 되었을 때 여성의 건강만을 생각했기에 여성 소비자들이 대안 생리대를 이용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듯 보였다. 하지만 수많은 일회용 생리대의 사용으로 오염된 환경, 일회용 생리대를 생산하며 발암 물질에 노출되는-거의 대부분이 여성일- 노동자들, 대안 생리대를 사용할 수 없는 장애 여성은 그 사이로 빠져나갔다. ‘여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어떤 여성들은 그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  다 너 때문이라고 생각해버리면 쉽다. 사실 하나만 생각하기도 벅차다. 하지만 우리를 고통 받게 만드는 사회 구조는 일부의 의도와 이익을 위해 다층적인 위계를 만들어 유지된다. 그리고 ‘우리’와 ‘적’을 이분법적으로 규정하여 억압의 구조를 보이지 않게 한다. 가려진 구조를 제대로 보려면 ‘우리’만 생각해서는 역부족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언어로 말하고 싸워가야겠지만 ‘우리’에 대해서 질문하고 관점을 확장해야 한다. 관점을 확장하면 나와 연결된 타자가 보인다. 이때 우리는 도와주어야 한다는 책무성을 띤 부담스러운 연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연대가 시작된다.    여성만 살기 좋은 세상이 있을까? 노동자만 살기 좋은 세상이 있을까? 그런 세상을 상상한다면 여성 안의 수많은 차이, 노동자 안의 수많은 차이가 빠져나간다. 그렇다고 한 개인이 세상의 모든 차이를 감당할 필요는 없다. 나는 모든 자리에 있을 수 없다. 노동 운동만으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페미니즘만으로도 세상을 구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사이를 메워줄 타인의 존재가 절실하다. 처음에 페미니즘을 막 만났을 때는 페미니즘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페미니즘의 완전하지 않음 덕분에, 내 경험과 지식의 한계 덕분에 타자와 더 잘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통해 ‘생각의 사이’를 채워갈 것이다. 박선영: 초등학교 교사 5년차. 페미니스트가 된 후 이전의 삶이 모두 흑역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삶을 다시 쓰는 중.
2018-11-12 | hrights | 조회: 449 | 추천: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