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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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는 언론계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멘토가 되어, 작성한 칼럼에 대한 글쓰기 지도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로 선정된 김창용, 김치열, 이현종, 이희수, 정진이, 홍세화, 황은성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칼럼니스트를 위해 김도원(YTN), 안영춘(한겨레), 우성규(국민일보), 이오성(시사인), 임아영 (경향신문), 장형우(서울신문), 조일준(한겨레) 기자가 멘토 역할을 맡아 전문적인 도움을 줍니다.

이현종/ 회원 칼럼니스트 얼마 전, 오후 5시쯤 지하철에 탔다. 시간대도 그렇고, 2호선은 사람이 붐비는 노선이기도 해서, 그야말로 ‘지옥철’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숨 쉴 구멍 정도는 있었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1호선 환승을 하려고 내릴 때 ‘그 광경’을 보았다. 바로 옆 칸에서 싸움이 났는지, 누군가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자세히 보니 휠체어 때문이었다. 사실상 만선인 지하철에 휠체어 탄 장애인이 들어가려 하니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장애인에게 자리가 없으니 다음 차를 타라거나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욕을 하고 있었다. 그 장애인은 ‘이미 40분 동안 몇 대나 양보해서 보냈다, 이제는 타겠다’고 했다. 휠체어 전용 석도 마련된 지하철에 왜 자신이 타서는 안 되느냐는 거였다. 그는 전동 휠체어를 억지로 밀어 넣었고, 결국 객차 안 다른 사람의 발을 휠체어 바퀴가 뭉갰다. 발을 다친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휠체어를 발로 찼다. 발길질에 뒤로 밀려난 휠체어가 전철 출입문에 걸린 탓에 출발이 지연되고서야 사람들은 어렵게 자리를 만들었고, 그 장애인은 겨우 전철을 탈 수 있었다. 그 광경을 5분 가까이 지켜보면서 온갖 생각이 들었다. 왜, 휠체어로 이동하는 장애인들은 지하철 이용에 제약을 받는 걸까, 누구나 누려야 할 공공 서비스이고 전용석도 있는 전철에 왜 그들은 탈 수 없을까, 이런 난리가 벌어지는데 역사 직원은 왜 안 보이는 걸까, 저 사람은 어떤 사고를 겪고 장애인이 된 걸까. 이런 질문들 끝에 나를 불쾌하게 하는 앙금으로 남은 것은 ‘이동 방해 요소’인 그 장애인을 향한 사람들의 폭언과 경멸의 언사, 그리고 행동들이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40분 넘게 지하철을 타지 못한다는, 제발 좀 같이 타자는 울먹거림 앞에서 누구 하나 도와주거나 다 같이 뒤로 좀 물러서서 공간을 만들자고 하지 않았다.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휠체어를 향해 욕을 하고, 알 바 아니라고 소리 지르거나 다음 차를 타라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심지어 ‘몸이 그러면 택시를 타던가, 밖에 나오지 말아야지 뭐하러 나와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냐’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 장애인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처럼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려고 했을 뿐이었다. 단지 그런 이유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욕을 듣고, ‘민폐’라는 딱지가 붙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장애인의 나이라든가, 장애를 안고 살게 된 사연이라든가, 저 사람이 가려는 곳이 어떤 곳이며 왜 가야하기에 저렇게 절실할까라든가 하는 것들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 무서워졌다. 운수가 지독히 나쁜 어느 날 내가 큰 사고를 겪는다는 상상을 하니 그랬다. 조금 전 보게 된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상상했다. 저 사람이 겪은 잔인한 대우를 나라고 겪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휠체어에 앉은 그가 나였다. 사회에 적응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쓸모를 증명할 기회를 잃은 사람에게도 가치가 있고 인권이 있다. 아니,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도 각자의 가치와 인권이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그들과 함께할 방법을 고민해야겠다. 이현종 회원은 금형분야에 재직중입니다.
2019-12-09 | hrights | 조회: 6 | 추천: 0
김치열/ 회원 칼럼니스트 만일 당신이 취미로 글을 쓰겠다면 권장하겠지만 직업적으로 글을 쓴다면 말리고 싶다, 당신이 원고를 청탁받는다면 써야 할 기간이 촉박할 것이고, 그 기간이 짧다면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자명하다. 내가 글 쓰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등사기로 만든 교회 학생부 연간지에 글을 실린 글을 보고 나서다. 그리고 문학의 밤에 시와 수필이 잔잔한 음악과 함께 낭독될 때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때에는 글에 대한 관심만 가졌다. 나의 본격적인 글쓰기는 고등학교 때 시작되었다. 시화전에 출품할 시를 쓰게 되었는데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와 오마주한 ‘잉태’라는 시였다. 이 시에 미술을 하는 친구가 멋진 그림을 그려주었고 인근 학교 여학생들이 와서 구경하기도 하였다. 후문에 의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의 시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을 지낸 후 교회 청년부에 다니게 되었다.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글을 썼다. 새벽에 글이 잘 나왔다. 꾸준하게 글을 써서 청년부 주보에 게재하였다. 이때는 주로 시와 수필을 썼다. 하지만 고졸인 탓인지 선배들의 힐난(?)을 감내해야 했다. 예쁜 아이를 낳은 어머니의 심정이 이런 것이라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다 20대가 끝나갈 무렵 나는 교도관이라는 공무원이 되었고 일요일에 근무하는 덕분에 교회를 나가지 못하면서 자연스레 글과 멀어졌다. 공직에 들어온 이후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직장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교도소에서도 글과 조우하는 인연이 숙명처럼 다가왔다. 운동권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읽었다. 수감 중인 기업인이나 CEO를 만나면서 경영학이나 경제학 관련 책들을 접하였다. 독서는 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책을 읽을수록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허나 사회적으로 교도관이라는 직업은 그다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으며 근무조건이 열악하여 인터넷으로 직장현안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잃어버렸던 글을 쓰게 되었다. 꾸준한 문제제기로 인하여 나아지는 측면도 있었으나 아직도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는 개선될 사항들이 많다. 이때 법무부 공무원들의 소통공간에서 지식행정부분에서 처음에는 질문과 대답이라는 형식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 소논문 형태의 글을 발표하여, 지식행정활동우수자로 한 번은 2등을 하여 현 자유한국당 대표인 황교안 장관에게 장관표창을 받았다. 그 후 꾸준한 활동을 통하여 1등을 하여 2018년 박상기 장관에게 장관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인권연대가입을 하여 팔자(?)에 없는 칼럼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니 글이 내 마음 같지 않았다. 멘토 분의 지도를 받으면서 많은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글이 간결하지 않고 장황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 번도 내 글에 대해 스스로 그렇게 평가해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엔 쇼크를 받았다. 하지만 내 글의 현주소를 알았다는 점에서 올해의 수확이기도 하다. 출처 - 사진 표기 올해 글을 쓰면서 청탁받고 쓰는 글은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직업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생각이 떠오를 때 쓰는 것이 가장 좋은 글이지만 삶이 사람을 한가롭게 두지 않기 때문이다. 바쁜 와중에 쓴 글이지만 오히려 분주함 속에 보이는 글쓴이의 고뇌가 있다. 전엔 세상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았다면 바쁜 사람들, 특히 분주하게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사람들 속 이면의 고뇌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인권연대 회원 칼럼니스트 활동을 통해 글이라는 도(道)를 알게 되었다 생각하니 감사한 해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김치열 회원은 현재 교도관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9-12-03 | hrights | 조회: 48 | 추천: 1
김창용/ 회원 칼럼니스트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담뱃세 인상을 추진할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절망하고 있다”며 반대했다. 정확히 10년 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담배 가격을 역사상 가장 큰 폭으로(2,500원에서 4,500원으로, 80%) 인상했다. 물론 담배가 건강에 나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담배회사조차도 나쁘다고 광고하고 세계보건기구도 세금을 더 부과해야 한다고 할 정도니 반대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충격적인 인상폭 탓인지 당시에는 전체 판매량이 많이 줄었다. 흡연자 지인 10명 중 9명은 금연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2017년에 펴낸 저서에서 “서민경제로 보면 있을 수 없는 굉장한 횡포”라며 “서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간접세는 내리고 직접세를 적절하게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실상 담뱃세 인하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혔다. 당시 민주당이 ‘꼼수 증세’라고 비판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출처 - 구글 헌데 이번 정부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액상형 전자담배(이하 액상담배)다. 지난 9월 기획재정부는 ‘담배 과세 현황 및 세율 수준의 적정성 검토 계획’을 통해 액상담배에 매겨지는 세금이 일반 담배의 절반 수준인 만큼, ‘형평성’을 위해 세율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기존과 달리 이용률이 급작스럽게 치솟자 형평성을 운운하는 건 의심을 살만하다. 더 문제는 거짓된 정보를 퍼뜨리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게다. 보건복지부는 미국에서 액상담배로 인해 천 건이 넘는 중증 폐손상 사례가 발생했다는 발표를 예로 들며 사용을 즉각 중단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이와 더불어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한 18세 소년의 폐가 검사 결과 70살 노인의 폐(수준)”라는 기사 등 수많은 피해사례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허나 복지부는 해당 환자들이 불법 액상을 사용한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물질에 대해 알아듣지도 못하는 용어를 사용하며 모든 액상담배가 나쁜 듯 보이게 했으나 이미 법률로 금지되어 수입조차 되지 않는 물질(대마 등)이었다. 일반 국민들이 취급할 수 있는 액상이 아니라는 걸 의도적으로 은폐한 모양새다. 또 위 브리핑에서 복지부 관계자는 미국 전자담배 폐질환 환자 중 10%가 니코틴만을 사용한 액상담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관리 사각지대’를 향해 예방적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니코틴에 대한 예방 차원이었으면 일반 담배나 궐련형 전자담배에도 사용 중지 권고를 내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 국민들의 건강을 위한다면 아예 담배를 팔지 않는 게 맞다. 차라리 솔직해졌으면 한다.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를 통해 실질적 원인은 감추고, 오히려 건강에 더 나쁜 일반 담배를 피우게끔 유도하는 건 이상하다. 무리한 규제는 목적을 의심하게 만든다.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는 정부인지,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정부인지 묻고 싶다. 김창용: 아는 게 없어 열심히 공부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2019-12-03 | hrights | 조회: 9 | 추천: 1
홍세화/ 회원 칼럼니스트  학교를 다니다보면 무리지어 다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곤 한다. 흔히 전자의 경우를 ‘인싸’, 후자의 경우를 ‘아싸’라고 부른다. 인싸는 ‘인사이더’의 줄임말로 어느 자리에서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친화력이 좋은 사람을 의미한다. 반대로 아싸는 ‘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모임에서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을 말한다.  몇 년 전부터 생겨난 이러한 신조어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아싸보다는 인싸가 되고 싶어 하고, 인싸의 잣대가 되는 언어, 행동 등을 다룬 매뉴얼까지 만들어냈다. 사진 출처 - 브런치  예를 들어 인싸는 대화의 흐름을 이어가려는 화법을 쓰고, 아싸는 대화의 흐름보단 정답을 말하려는 화법을 쓰려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소한 잣대를 만들어가며 사람들은 인싸와 아싸를 구분 짓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아싸로서 ‘도태’ 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레 인싸의 기준에 맞지 않는 아싸들은 소외되고, 인싸들 중에서도 친화력이 매우 좋은 사람을 ‘핵인싸’라는 새로운 범주 안에 집어넣으며 또 하나의 구분 짓기를 시도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인싸와 아싸의 구분 짓기는 주로 성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는데, 성격이 외향적인 사람들은 인싸로, 내향적인 사람들은 아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인싸와 아싸를 구분 짓는 기준에는 개개인의 성향에 대한 고려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도 없는 그들만의 기준에 맞추어 가야 한다는 군중심리마저 생겨난다.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할 때 발생하는 역차별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가 생각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러한 신조어를 접하거나 사용할 때 이 말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언어와 구분 짓기가 우리 삶을 옥죄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홍세화 : 한창 놀고싶은 대학교 3학년 홍세화입니다.
2019-11-05 | hrights | 조회: 138 | 추천: 8
황은성/ 회원 칼럼니스트 아이들을 처음 만나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떤 시대적 참사에 대한 진실규명과 청소년의 자율권을 호소하며 서명 부스를 운영하던 아이들을 낯설고 어색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녹아들지 못하고 무르춤히 서 있는 나를, 아이들이 ‘선생님’ 하고 불렀다. 나는 그대로 얼어버린다.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거라고 상상해보지 못한 탓이다. 좀 오버 같지만 나는 정말 그랬다. 어렸을 때 나는 꼴통으로 불렸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데 자기주장은 강해서 그랬던 것 같다. 공부와 거리가 멀어진 건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좋지 못한 교우관계 때문이었다고, 자기주장이 강해진 건 반복된 폭력에 억압된 마음의 해소를 위한 사소한 저항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런 개인의 사정까지 알 바 없는 어른들은 그저 날 ‘꼴통’이나 ‘구제불능’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나는 그렇게 불리었다. 나는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 소리 듣다 보면 정말 나 자신이 그런가 생각하게 됐으니까. 반복된 의심은 확신을 부르니까. 나조차도 꼴통 소리를 듣는 내가 꼴통인 것 같았고, 꼴통인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그날 아이들은 처음 보는 나를 당연한 듯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이 ‘선생님’ 이라고 부르면 목덜미까지 붉어진 채로, 그 모습을 숨기려고 노력하며 짐짓 대수롭지 않게 “응?”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은 맥이 다 빠질 만큼 힘들었다. 고졸 출신에 청바지, 나이키 운동화, 편한 점퍼 차림을 한 선생님은 교단에서 본 적 없었고, 내 스스로가 인격적으로 그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명의 화음이 화랑유원지에서 울려 퍼지던 행사가 있던 날, 리더인 아이를 곁에 앉혀두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부담스러우니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아줘.” 내 말에 아이가 외려 웃으면서 물었다. “그럼 선생님을 선생님 말고 뭐라고 불러야 해요?” 생각해본 적 없던 질문이 난감하기만 했다. 해맑게 웃으면서 선생님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니 어쩐지 더 저항할 수 없어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말했지만 계속 속으로 끙끙 앓았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그런 사람 아니니까, 그런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나는 그 뒤로도 아이들을 만나서 선생님 소리를 듣는 게 늘 힘들었다. 누군가는 쓸데없는 고민이라고 말을 하겠지만 정말 그랬다. 선생님이라는 한 단어가 특별한 노력 없이 그저 얻을 수 있는 호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나 자신의 어딜 들여다봐도 자격 미달이었다. 옷차림만 봐도, 학벌만 봐도, 장난기 많은 성격만 봐도. 덕택에 괴리감이 날로 깊어졌다. 한편 그것들을 그다지 바꾸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바꾸기 싫다며 떼를 쓰는 아이와 뭐가 다를까.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참다 못한 나는 말했다. 평가회의 내내 ‘쌤쌤쌤’하고 나를 장난스럽게 부르던 아이들에게. “부탁이니까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아줘.” 행사 소감을 간단히 나누고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 어떤 설명도 없이. 무안함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들릴랑 말랑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아니라 부끄럽게도 몹시 진지하게. 뜬금없는 내 말에 떡볶이를 먹던 아이들은 나보다 배는 당황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이들은 난처하게 웃으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그다음 모임부터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대신 내 눈치를 봐가면서 ‘저기’라고 부르거나 손짓하며 ‘여기요’라고 불렀다. “저기 건의할 게 있는데요. 여기요, 할 말 있대요.” 그 역시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나는 자격 미달의 선생님보다는 그 호칭이 낫다고 생각했고, 왠지 눈치 없이 상심한 마음을 품고 있는 스스로에게는 ‘내게는 이 정도가 딱 맞아’라는 위안을 건넸는데……. 그렇게 다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아이들에게 문자 몇 통을 받았다. 아이들이 보낸 문자의 내용은 간단했다. “선생님이 ‘내가 진정한 쌤이 아닌데 무슨 쌤이냐’고 말해도 선생님은 선생님이예요.” 그러면서 이상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포함해 네트워크 친구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연대에 어떤 활동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자기들을 보필하는데 어째서 선생님이 아니냐고. 왜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거냐고. 선생님은 모든 일을 열심히 하고, 또 어떤 의견이든 자기보다 우리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걸 아는데. 왜 우리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냐고. 너무 이상하다고. 눈치 보게 된다고. 우리들 생각엔 내게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것 같으니, 우리들이 내 자존감을 높여주겠다고. 너무 고민하지 말라고, 쌤은 생각이 너무 많다고. 자신들을 그대로 바라보는 선생님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자신들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선생님이야 말로 진정한 선생님이라고. 집으로 돌아와 많은 것을 생각했다. 아이들의 문자는 내 생각과 삶을 전반적으로 되짚어보게 했다. 연대의 활동가가 되고 싶어 했던 이유와 청소년 사업에 자꾸 욕심을 내고 열정을 가지는 이유까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청소년기에 내게 생겨났던 결여를 메우고 싶었던 거였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아름답게 꽃 피웠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이없는 모순에 웃음이 픽 나왔다. 아이들의 말이 맞았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미달’과 ‘자격지심’은 꼴통 소리를 듣던 어린 시절 이후 스스로가 내게 짊어지운 맹신이었다. 아이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듣고 싶어 하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그런 사람 아니라고,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다니.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있다니. 어쩐지 눈물이 나와서. 나는 그날 밤 맥주를 몇 캔 마시며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아이들은 나를 ‘은성쌤’이나 ‘쌤’이라고 부른다. 연대에 상근한 지 7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그 호칭이 부담스럽고 낯설다. 그렇지만 사실 나는 아이들이 나를 그렇게 불러주는 것이 너무 좋다. 마치 진짜 선생님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희들이랑 있으면 내가 마치 선생님이 된 것 같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다시 말한다. 오글거린다고. 앞으로도 신세질 테니까 미리 고맙다고. 그때 마다 나는 낯이 뜨거워져 그저 웃고 말았지만……사실. 사진 출처 - 필자 사실 꼭 말하고 싶었다. 나야말로 너희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청소년 참정권을 위해서 피켓을 들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너희들을 보면서. 이제는 지겹다며 마주해야 할 사회적 참사를 불행이라 부르며 회피하는 어른들과 시대 사이에서 노란 리본을 달고 팔찌를 차는 너희들을 보면서. 나이와 학업 성적,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거친 비난 없이 포옹하는 자세로 경청하는 너희들을 보면서. 더 나은 내일을 꽃피우기 위해서 시험 기간에도, 주말에도 시간을 내는 너희들을 보면서. 이 못난 사회 초년생을 믿고 의지하며 좋은 사람이라고,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너희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너희들 덕분에 내가 더 나은 사람이, 선생님이 될 수 있었다고. 그러니까 나야말로 고맙다고. 선생님이 고맙다는 너희에게 외려 선생님이 고맙다고. 내가 너희의 선생님이 아니라, 너희들이야말로 나의 참된 스승이자 선생님이라고. 그 옛날 나를 무심히 상처주던 그들이 선생님이 아니라. 너희야말로 내 참된 스승이라고. 그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 황은성 : 동시대인이 되고 싶은 불효자입니다.
2019-10-25 | hrights | 조회: 53 | 추천: 3
이희수/ 회원 칼럼니스트  지난 8월, 한낮에 휴게실에서 잠들었던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숨졌다. 폭염경보가 내린 무더운 날이었다. 계단 아래 공간에 만든 한 평 남짓한 방에는 창문도 에어컨도 없었다.  폭염은 자연재해다. 적어도 단기간 내에 치솟는 온도를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피해는 사회적이다. 그날,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있었지만 쾌적한 실내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존 머터는 『재난 불평등』의 서문에서, 자연과학자인 자신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에서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 지점을 ‘파인만 경계(Feynman line)’라고 명명한다. 자연재해를 단순히 자연현상으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과학적으로도 접근할 때, 예방과 복구 과정에서 야기되는 불평등을 간파하고 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지진, 홍수, 가뭄 등 엄청난 수의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영향을 끼치는 일들을 사례로 들지만, 재난 상황에서 파인만 경계에 서게 하는 일이 비단 그런 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비극으로 새삼 확인하게 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존에는 돈으로 거래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사회적 재화에까지 시장논리가 개입하며 그 영역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만큼, 가난한 사람이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일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에 관계없이 그가 누릴 수 있는 편익을 일률적으로 평준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가장 열악한 극단에 있는 사람들을 기본권의 경계 밖으로 내모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것은 가진 정도에 관계없이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돈이 없어서, 배운 게 없어서, 인맥이 없어서 겪는 불이익이, 그 창고 같은 공간에서만 쉴 수 있고, 쉬다가 너무 더워 숨지는 정도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해야 할 사람은 서울대학교 구성원들만이 아니다.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 것”이지만,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그것의 존재를 망각하는”, 조지 오웰이 말한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어떤 의미에서는 역시나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당사자인 동시에, 그런 다른 많은 사람들에 대해 잊고 사는.  그렇기에 이번 참사를 비롯한 사회적 재난과 불평등의 원인을 돌이켜 생각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반성해야 할 대상에 꼭 포함시켜야 할 것 또한 ‘나’다. “당신이 땀 흘리며 닦은 바닥을 무심히 밟고 다닌” 그 캠퍼스의 학생처럼, 나 역시 누군가의 노동에 힘입어 그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또 그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채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 자주 잊어버려 부끄럽지만, 그들은 모두 나의 경계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희수 : 저는 산책과 하얀색과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2019-10-10 | hrights | 조회: 139 | 추천: 6
이현종/ 회원 칼럼니스트 추석 전에 태풍이 들이닥쳤다. 뉴스에서는 매일 ‘초대형 태풍이 몰려온다’, ‘농민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유리가 깨지고 사람들이 다칠 수 있다’고 했다. 언론이 태풍 경로까지 전부 예측해서 보도한 덕인지 인명과 시설 피해는 예상보다 적었다. 하지만 크든 작든 누군가는 피해를 봤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언론과 세상은 태풍으로 사망한 분에게 슬픔과 조의를 표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 죽음은 기억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건물 외벽이 떨어지고 사람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생계 때문에 억지로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알고 기억해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동네 중국집 사장님에게 들은 말이 있다. 이번 태풍에 억지로 배달을 내보냈는데 배달원 세 사람 모두 오토바이가 쓰러져 일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험한 날씨에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놀랐지만, 억지로 태워 내보냈다는 말이 더 놀라웠다. 대체 뭘 위해서, 사람이 죽든 말든 억지로 오토바이를 태워 내보냈을까, 정말 서글퍼지는 일이었다. 오토바이를 타야하는 사람들은 태풍 속 배달을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근로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지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결국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억지로 떠밀려서 일을 했을 거다. 이에 대해 아마 누군가는 ‘왜 거부하지 않았느냐, 미련하다’고 하겠지만, 속 편한 소리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을 거부할 경우 고용주로부터 온갖 불이익과 차별, 압박에 놓이게 된다. 노동자에게는 거부권이 없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무엇보다 이런 일이 터졌을 때 국가와 사회가 방관한다는 것이 문제다.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죽어 나갔지만 그들의 뒤를 지켜줄 제도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다. 비단 배달 노동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사회의 3D 직업들, 특히 비정규직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비극은 대부분 비슷한 이야기다. 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했었다. 하지만 어떤 일을 했었는지 주변에 이야기를 안했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다. 필자가 하는 일을 안 좋게 보는 시선, 동정하는 시선, 혹은 돈은 많이 벌지 않느냐는 부러움 섞인 시선들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등허리가 휘어지고 아프다는 소리는 아무리 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 산재 사고가 나도 시설 개선은 없다. 산재를 인정받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원청의 갑질로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도 하청업체는 대책 없이 그저 보고 있을 뿐이다. 숙련 노동자들은 이런 현실을 견디지 않는다. 숙련된 노동자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65세 이상의 노인과 초보자들이 대신한다. 손이 부족하니 작업은 매일 점점 늦어진다. 급여도 최저수준에 견준다. 가뭄에 콩 나듯 이런 현실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현실에 누구 하나 그들을 돕지 않는다. 결국 나선 사람들만 손해를 보거나 욕먹고 회사를 그만두기 십상이다. 언론과 세상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비극은 이미 너무 흔한 이야기인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다. 몇 명은 노동부에 신고를 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누가 죽어야지 바뀐다’는 위기감도 느꼈지만 반대로, ‘누가 죽어도 바뀌는 게 없다’는 절망과 무기력으로 귀결된다. 알고 보니 이 분야와 관련한 작업장 전체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고, 내가 일하는 현장은 유독 심각한 편이었다. 가슴이 조여 왔다. 그리고 늘 있었던 문제임에도 관심이 없어 인지하지 못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한심하게도 느껴졌다. 이현종 회원은 현재 금형 분야에 재직 중입니다.
2019-10-04 | hrights | 조회: 117 | 추천: 5
김치열/ 회원 칼럼니스트  사람은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동양사상가 맹자는 인간의 성품이 본래 선하다고 보았다. 반면 순자의 경우, 인간은 악한 존재지만 교육을 통하여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정신분석학의 권위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런 질문에 대해 뭐라고 답했을까? 사람의 성격은 유아기에 형성되어 변할 수 없다고 답하지 않을까? 수형자를 상대하는 교도관들이 프로이트의 답을 듣는다면 아마 대부분 무릎을 칠 것이다. 반면, 범죄자들이라도 습관과 행동양식을 고쳐주면 미세하게나마 변화할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잘못된 습관과 나쁜 행동 양식 때문에 범죄를 일으키는 경우라면, 일상 속 훈련을 통해 범죄자가 되는 것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범죄를 반복해 수차례 교도소에 드나든 수형자가 교화되거나 변화를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릴 때부터 인권교육이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어린 시절부터 주도권을 잡으려는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주도권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어른들을 통해 나쁜 사회성을 습득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감내할 수준의 농담이나 장난이라면 쉽게 용인 받지만, 간혹 이러한 현상은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농담이나 장난이 오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학교와 직장 등의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때로는 상식적인 사회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자녀의 응석을 지나치게 받아 주다보니 자녀가 사회 생활하는 방법을 모르는 지경에 이르고, 심지어 직장생활까지도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학습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인권교육이 필요하다. 타자의 입장과 마음에 대한 상상력을 길러주는 인권교육은 범죄를 예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영화 “패치 아담스”의 주인공 패치 아담스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경험을 계기로 환자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유머나 놀이를 통하여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의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결국 환자들의 아픔에 주목하는 훌륭한 의사가 되었다. 영화  "패치 아담스" 사진 출처 - 구글  타자의 아픔에 주목하는 것,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이해하고 공감능력을 갖는 것이 인권인식의 출발점이다. 인권의식을 갖춘다는 것은,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패치 아담스는 환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삶의 굴레를 돌아보며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범죄예방도 이러한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장난이라고 해도 상황에 맞게 절제해야 하고,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아픔을 줄 수도 있음을 아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자세가 필요하다.  교정시설에서의 범죄예방은,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지혜롭게 이겨내도록 교정당국과 수용자들이 함께 훈련하는 것을 말한다. 아름다운 인생후반전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치열 회원은 현재 교도관으로 재직중입니다.
2019-09-25 | hrights | 조회: 87 | 추천: 5
황은성/ 회원 칼럼니스트  다리를 다쳤다. 무릎 뼈 복합골절에 전치8주 상해였다.  빗길에 미끄러진 것 치고는 큰 불운이었다. 곧장 병원에 입원한 다음 관절 경으로 연골 안에 부서진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의사는 수술경과가 좋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한 달 동안 걷지 못할 것이고 그 이후에도 몇 달 정도 목발을 짚고 다녀야 된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의사에게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알았다’고 말했다. 불편해봐야 얼마나 불편하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걷지 못한다는 사실은 내 생각보다 불편했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불편한 것을 넘어서 ‘다리 다친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라는 걸까?’ 라는 회의적인 생각까지 더해졌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다치기 전 까지는 당연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았다. 먼저 병원의 문부터 그랬다. 흡연 장소에 가려면 병원의 후문 쪽을 이용했는데 지나치는 문은 안으로 당겨야 하는 여닫이 문이었고,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게 계단 옆으로 난 언덕은 경사는 너무나 가파르고 바로 앞이 도로였다. 도로에 차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성한 발에 온 힘을 지지해 언덕을 내려왔고 내려 온 다음에는 흡연실로 향하기 위해 다시 죽을힘을 다해서 주차장 옆 흡연실로 들어가는 경사 높은 길을 타고 들어갔다. 그렇게 흡연장에 가다 체중을 이기지 못해 휠체어가 뒤집어질 뻔 한 적도 몇 번 이었기에 나중에는 ‘담배 피러 나갈 때 마다 이런 고생을 해야 할까. 그냥 나가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다는 것과 불편하지 않다는 것은 판이했다. 병문안을 오신 어머니나 친구와 산책을 한 번 나가려면 무수히 많은 방지턱을 넘어야했다. 발이 성할 때는 아무생각 없이 넘어 다니던 대부분의 방지턱은 너무 높아서 휠체어 앞바퀴를 끌어다 놓아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 또 그렇게 올라갔다 하더라도 인도가 너무 울퉁불퉁해서 휠체어가 잘 구르지 않았다. 난데없이 심어진 가로수들도 길을 막았다. 자주 이용하는 편의점이나 슈퍼의 문도 대부분이 여닫이 문이었다. 내부 공간도 무척 협소해서 휠체어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카페도 식당도 마찬가지였으며 생리현상이 찾아와도 장애인 화장실이 아닌 일반 화장실을 이용하면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일반적인 자동차엔 휠체어를 실을 수 없어 병원 인근의 시설물만 이용해야했다. 그렇게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소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모든 것들이 불편해졌다. 사진 출처 - 필자  인도보다 도로가 편해졌다. 외출보다는 그저 병실에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됐다. 친구들은 말했다. “나가면 같이 고생하니까 그냥 참아. 아픈데 무슨 외출이야? 그냥 병실 안에 가만히 있어.” 상태가 호전되어 통증은 없다는 말에도, 병실에 갇혀 있기 갑갑하다는 말에도 “요양이나 하라”는 말이 돌아왔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병실 밖 세상’을 나갈 수 없는 세상이 원망스러웠지만 별 다른 수가 없었기에 ‘아픈 내가 죄인이지, 얼른 나아야지’ 생각했다.  그러다 병실에서 노트북으로 어떤 기사를 보게되었다. 부산 영도구에서 벌어진 어떤 장애인 모자 중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루고 있던 그 기사가 내 피부에 와 닿았다. 남 일 같지 않았다. 내가 더 크게 다쳤더라면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의 일면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곤 그 날 모자에게 벌어진 그 비극을 상상해보았다.  내게 그 이야기의 시작은 그저 효심(孝心)이었다. 밤늦게까지 일한 몸 불편한 엄마를 마중 나가는 몸 불편한 아들의 효심. 아들은 어머니를 얼른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전동 휠체어를 몰았을 것이고 그 전동휠체어가 다니는 길은 다만 인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인도에 느닷없이 자리한 저 가로수가 그의 앞을 막았으니까. 또 소화전이. 또 횡단보도 너머로 보이는 다음 인도의 방지턱이. 또 너무 울퉁불퉁한 탓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휠체어를 휘청이게 보도블록이 그를 막아 세웠으니까. 그렇게 인도를 포기한 채 차가 다니는 차도로 전동휠체어를 몰고 간 그는 그의 엄마를 만났고. 그들은 보지 못하고 이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버스 안의 출퇴근 풍경을, 훌쩍 여행을 떠난 다음 바라본 바닷가와 산 정상 국내 어디, 외국 어딘가의 풍경. 커피 한잔을 먹을 수 있는 카페, 배가 고프면 들어서는 식당, 생필품을 사기위해 들려야만 하는 마켓. 몸이 불편한 그들을 위한 ‘전용시설’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또 몸이 불편한 그들이 이용해야할 도로와 교통이 그들에게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것들은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꿋꿋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어느 봄 날.  깊은 밤 퇴근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수고했다고 말하며 듬뿍 사랑을 나눠주던 아들과 그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담고 환하게 웃던 어머니.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손 꼭 잡고 그토록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은 결코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울퉁불퉁한 보도를 놔두고 도로를 통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들에게 찾아올 죽음을. 그것은 라이트 불빛의 의지해 왕복 2차선 도로를 내달리던 택시기사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사를 읽고 난 다음 나는 가만히 소리 내었다. “아.” 라고.  그 다음 속절없이 탄식이 흘러나온 까닭을 가만히 생각했다.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다. 몸으로 체험했으니까. 살 수 있는 방법들이 정비되지 못한 탓에, 죽을 수도 있는 길로 내몰린다는 것. 그것이 몸이 불편한 채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일상이었다. 나는 아프기 전에는 몰랐다. 나는 아프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아프기 전에는 그들에게서 등 돌린 채 살았다. 내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그 사실이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었다. 황은성: 동시대인이 되고 싶은 불효자입니다.
2019-08-26 | hrights | 조회: 224 | 추천: 7
홍세화/ 회원 칼럼니스트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에 입학한 것이 어제 일 같은데 벌써 대학교 3학년이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해야 할 시기이다. 진로를 아직 정하지 못해 취업에 대한 뚜렷한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학교에서 수업 중 교수님들께서 넌지시 던지시는 취업 이야기나, 필수 교양 과목에 진로·취업과 관련된 수업이 커리큘럼으로 등록돼 있는 틈바구니에서 마냥 모른척하고 지나갈 수만은 없는 일이다.  내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공무원이나 공기업 취업과 같이 안정적이고, 주변에서 좋다고 여기는 직업을 떠밀리듯 결정하여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그 직업을 택한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할 수 있는지 고민할 겨를 없이 진로를 설정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혹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지, 그저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일을 하며 살아갈지 매번 고민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쪽에 마음이 더욱 기울어 있었다.  하루는 유튜브에서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고등학생 친구들이 학교를 벗어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배우며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삶’에 대해 말하는 영상이었다. 그 영상 속에서 학생들은 좋은 삶에 대해 ‘나를 돌볼 수 있는 삶’, ‘복잡한 생각이 들지 않는 평온한 삶’, ‘목표가 있는 삶’ 등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학교 밖에서 경험하고 얻은 배움을 토대로 각자 자신만의 길을 생각해두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영상을 보고 난 후 이른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앞서 이 친구들이 말한 좋은 삶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년에는 휴학을 하기로. 예전의 나였다면 다른 친구들과 같이 안정적인 직장으로의 취업을 목표로 대학생활과 자격증 학원 등에 옭매여 정신없이 달려갔겠지만, 생각이 바뀐 지금의 나는 한 해 간의 휴학을 통해 반년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돈을 벌고, 나머지 반년은 내가 번 돈으로 해외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어쩌면 현재 내가 목표하는 직장으로의 취업에는 영양가가 없을 수도 있는 경험을 하러 떠나리라 다짐한 것이다.  이런 나의 선택을 두고 어떤 사람은 죽기 살기로 더욱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속 편한 소리를 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기업에 합격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나, 훌쩍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나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은 피차일반이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여행을 통한 경험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그 길로 나아갈 수도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청년실업이 10%대에 도달한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다른 청년들 역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故 유재하의 노래 ‘가리워진 길’을 가만히 불러본다. 나, 그리고 그 청년들을 응원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어떤 길을 가든. 홍세화 : 한창 놀고싶은 대학교 3학년 홍세화입니다.
2019-08-14 | hrights | 조회: 280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