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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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권보드래(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창남(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 사내가 죽었다. 향년이라고 하기엔 이른 나이 55세. 김아무개씨였다. 핸드백을 하나 훔쳤다고 했다. 그 죄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았다. 으레 그렇듯이 기초생활 수급자인 그도 벌금을 낼 돈이 없었다. 한 달에 수급비로 받는 70만원으로 그가 물어야 할 벌금의 액수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이었다. 그는 노역형을 선택했다. 그는 심부전증 환자였다. 돈이 없어 병원 진찰도 겨우 받은 그에게 의사는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돈이 없어 퇴원을 요구했던 그에게 의료진은 기초생활 수급자이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긴급지원의 내용을 찾아주었고 그 덕분에 가까스로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며칠 더 요양을 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유를 거부하고 그는 퇴원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돈이 없었다. 퇴원한지 4일째 되는 지난 4월 13일 서울구치소 노역장에 들어갔고 이틀 후 아침 반 시체가 된 그의 몸뚱이를 구치소는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거기서 죽었다. 벌금 150만원을 못내 노역장에 유치된 뒤 이틀 만에 숨진 김아무개씨의 방 사진 출처 - 한겨레  봄날의 추위가 기승을 부렸던 날 이었다. 손님이 떨구고 간 스마트 폰을 사용한 택시운전사가 잡혔다. 술 취한 동료의 지갑에서 현금 40만원을 빼냈던 직장인도 잡혔다. 그들은 벌금 150만원을 선고 받았다. 통상 절도죄에 벌금 150만원 형은 그 정도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받는 벌이다. 그가 훔쳤다는 핸드백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다. 그는 그 죄로 인해 사실상 사형을 선고 받았다.  서울역 광장위에 흡연실에는 출장 가는 직장인들과 휴가 나온 군인들로 늘 북적인다. 그들의 틈에 섞여 담뱃불을 붙일 때 한눈에도 초라해 보이는 청년이 들어왔다. 얼굴은 흙빛으로 추위에 얼은 듯한 표정이었고 옷은 안쓰러울 정도로 얇았으며 왼쪽 손은 없는 듯 소매가 하늘거렸고 오른쪽 다리는 심하게 절었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오물로 인해 다들 일부러 외면하는 쓰레기통위의 담배꽁초를 두리번거렸다. 담배 찾으세요? 라고 내가 물었고 그는 부끄러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봄추위에 언 눈빛만으로는 그가 초췌한 노숙자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맑은 사람이었다. 내가 담뱃갑 하나를 통째로 내밀었을 때 그는 90도에 가까운 인사를 건넸는데 담뱃갑을 뒤적이던 그는 곧 그중에 한 개비를 빼고는 남은 담배를 다시 돌려주었다. 나는 담뱃갑을 다시 돌려받았다. 승차장으로 가는 계단위에서 후회 했다 그걸 돌려받다니.  “무언가 용서를 청해야할 저녁이 있다 맑은 물 한 대야 그 발밑에 놓아 무릎 꿇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 줘야할 저녁이 있다.” – 이면우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중  대전으로 내려가는 차창으로는 오후의 햇볕이 가득했다. 나는 그 담배 갑을 돌려받지 않아도 됐었다. 아무 조건 없이 피어난 봄꽃과 품 하나 안들이고도 내리쬐는 봄볕에 내 얼굴을 들이밀며 담배 갑을 내게 돌려주는 청년의 거친 손에 미안했다. 그게 뭐라고 그게 무슨 재산이라고 그걸 돌려받다니.  맑은 눈빛의 그 청년이 허기질 때면 서울역의 어느 편의점을 어슬렁거리다가 나머지 한손으로 컵라면 따위를 슬쩍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 광장의 의자에 떨어진 지갑을 팔 없는 소매에 숨기고 뒷골목으로 숨어들어 두려운 눈빛으로 지갑의 현금을 셀 수도 있을 것이다. 핸드백에 죽음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훔쳤던 김 아무개 씨처럼. “흰 발과 떨리는 손의 물살 울림”을 싣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그날 오후 눈빛 맑은 그러나 한 팔이 없이 다리를 심하게 저는 청년의 순수함에 답을 해야만 했다. “나지막이, 무언가 고백해야 할 어떤 저녁이 있으나 나는 첫 한마디를 시작하지 못했고 “누군가의 발을 차고 맑은 물로 씻어주지 못했다”고. 55세의 김 아무개씨는 그렇게 죽었다. 심성 고운 맑은 눈빛의 청년 또한 그렇게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8-04-26 | hrights | 조회: 961 | 추천: 15
-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 30년 전 : 엉뚱한 호기심에  30년 전 대학이라는 곳에 처음 발을 디딜 즈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요즘이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 주변은, 산정에 낀 운무처럼 늘 매캐한 최루탄 가스로 그윽할(?) 때가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 ‘백골단’이라고 불리던 사복경찰과 전경이 수시로 학교 주변을 에워싸고 불심검문을 해댔다. 나 같이 선량한(!) 학생들도 괜히 주눅이 들어 지냈던 기억이 지금도 기분 나쁘게 떠오른다. 집회가 있는 날은 학교 건물 곳곳이 가려질 정도로 근처 집이고 사람이고 최루탄을 뒤집어쓰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대입전형에서 가고 싶은 대학을 먼저 정하고 시험을 치르는 ‘선지원 후시험’ 제도가 처음 도입되던 때라, 내가 ‘대학’과 ‘과’를 정하고부터 집안은 물론 주위 어른들의 염려의 말을 적잖이 들어야 했다. ‘그 학교는 어떠니’, ‘그 과는 어떻다’느니, ‘절대 데모하는 근처에도 가지 마라’…. 다녀본 사람들보다 ‘빠싹하다’는 투였다. 그런 말들로 이미 단련된 나였기에 주위의 ‘꼬임’(!)에도 눈과 귀 모두 닫고 도서관과 하숙집만을 오갔다.  아니, 그런데…. 그런 내 눈에 척 들어와 박힌 책 제목이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우리 운동의 절박한 문제들]이란 부제를 눈여겨보았더라면 내 인생항로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지 않았을까 싶다. 사진 출처- yes24  ‘앞으로 무얼 하지….’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걸까’ 한창 고민하던 때여서였을까, 기어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의 책을 펴들고 말았다. 그 한 권의 책이 오늘의 나를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알려진 대로 블라디미르 레닌(본명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랴노프(Vladimir Ilich Ulyanov))의 대표적 저작으로 꼽히는 책이다. 그때는 이런 류의 책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 살아야 했다. 동아리방이나 학생회 사무실에 ‘짱박아’ 두고 읽어야 동티가 나지 않을 법한 책이었다.  놀랍게도 20세기에 막 들어서던 무렵인 1902년 세상에 나온 『무엇을 할 것인가?』는 당시 국제 노동운동에 횡행하고 있던 기회주의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대중에 대한 광범위한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을 ‘학습’하며 이른바 ‘무지가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새겼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 2018년, 오늘을 살며 : 선택하는 삶  30년 전 기억이 되살아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우연’히 다가오는 선택에 따라 앞으로의 삶이 상상도 하지 못할 분수령을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 때문이다. 그런 대표적인 사례가 많은 이들이 함께 경험한 ‘촛불집회’였다. 4․19혁명, 5․18광주 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 우리 역사 중요한 고비마다 ‘필연’은 ‘우연’의 모습을 띠고 나타났다.  차가운 광장에서 이글이글 타올랐던 촛불을 경험하며 우리는 지금 또 한 번의 분수령을 맞고 있다.  그 분수령 앞에서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러운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언제 깨어져 꺼질지 모르는 살얼음판 위로 무거운 돌을 던져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살얼음판 같은 역사 현장에 돌을 던져대고 있음에도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게 돌인지 아닌지 제대로 의식하지도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들은 대부분 정권 창출이나 권력 쟁취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른바 ‘공신’(功臣)의 모습이나 예의 최순실과 같은 ‘고마운 분’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현실이기에 예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말을 떠올리게 됐던 모양이다.  이 시대는 레닌이 살았던 시대보다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몇 곱절 확장돼 있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선택하지 말아야 할 ‘무엇’이 더 중요해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나의 ‘우연’적 선택에 따라 역사의 수레바퀴가 10년 전으로, 아니면 더 과거로 미끄러져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안희정, 김기식….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공신’(功臣)들의 궤도이탈에서 그 퇴행적 증후를 본다. 중차대한 역사의 고비 한가운데 서있다는 인식 없이 순전히 ‘개인적인 성취’에 취해 역사 자체를 되돌려버린 뼈아픈 사례를 무수히 보아온 우리들이다.  ‘역사’나 ‘사람’이 아니라 ‘개인’에 갇힐 때, 매몰될 때 그 후과가 얼마나 처절했는지 ‘이명박근혜’ 9년의 역사는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지난 9년의 역사는 30년 전 기억을 떠올리게 할 만큼 ‘제대로’ 짜증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역사적’ 개인으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할 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이라면 모르겠지만…. 서상덕 위원은 현재 가톨릭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8-04-24 | hrights | 조회: 835 | 추천: 14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홀렁 베이(Roland WEYL) 프랑스 변호사. 1939년 변호사가 된 이후 레지스탕스 시절 빼고는 여전히 변호사로 활동 중인 1919년생 100세 할아버지.  지금도 전 세계를 홀로 누비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을 방문한 그를 4월 5일 저녁에 민변의 동료 변호사들과 만난다. 올해는 무슨 이야기보따리를 푸시며 어느 국제회의의 참석을 권하실까 기대 반 걱정 반이다.  그를 만난 건 내 인생의 행운이다. 2013년에 방한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때 홀렁 베이는 200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총회에서 만났던 민변 변호사들과의 만남을 원했다. 국제민주법률가협회와 민변의 국제연대를 한층 높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고 싶다며 민변 변호사들과 간담회를 제안해 왔다. 민변 집행부와 간담회가 성사되었으나 홀렁 베이의 건강문제로 무산되자 대타로 민변 동료 변호사들과 만나게 되었다. 2013년 한국을 방문했던 홀렁 베이 변호사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그는 한국(코리아) 문제에 해박하였다. 정전협정의 조항을 읊었고 유엔헌장 조항까지 설명하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에 대해 진보적 법률가로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해 일본 오사카 평화헌법 9조 세계대회에 참석하라며 그때 보자고 했다.  일본 오사카 평화헌법 9조 세계대회에 참석하였다. 홀렁 베이를 비롯한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집행부와 민변 변호사들과 간담회를 하였다. 2014년 벨기에에서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총회가 있으니 꼭 참관하라고 했다. 그 때 그가 국제민주법률가협회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고자 하는 서한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다. 서한의 내용은 정전협정 제4조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관한 정치회담에 관한 규정에 의거 한국전쟁은 일찌감치 평화적으로 종결되었어야 함에도, 유엔이 미국의 도구화됨으로써 60년 동안 미뤄진 정치회담을 유엔이 나서 진행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유엔군은 더 이상 주둔할 이유가 없고 주한미군 기지는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한국에 돌아가 의견 수렴 후 회신을 드리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보안법에 걸릴까 제 때 제대로 답변을 드리지 못했다. 홀렁 베이는 말했다. 한국 변호사들이 서한의 주체도 아닌데 국제민주법률가협회에서 보내는 서신에 대해서 의견도 말하지 못하냐고 나무랐다. 할 말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우리를 이해하는 사건이 터졌다. 2013년 11월 그도 토론자로 참석하였던 ‘코리아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포츠담 국제컨퍼런스’ 에 참석하였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베트남의 여러 나라에서 참가한 외국인들과 재미, 재캐나다, 재독, 재러 등 해외동포들이 참여했고 남에서는 나와 애기봉등탑반대운동 등 평화활동을 해온 이적 목사가, 북에서는 조국통일연구원의 부원장과 교수 등이 참여했다.  다녀왔더니 난리가 났다. 조선일보는 이석기 사건 변호인, 北 통전부 인사들과 독일서 세미나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하였다. 우익보수단체 활빈단이 고발하였고 통일부는 남북교류법 위반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하였다. 당시 종북몰이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종북몰이에 정면으로 맞대응이 필요했을 때 그가 연대의 서신을 내게 보냈다.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한 변호사에 대한 종북몰이는 유엔인권선언에 보장된 의사, 표현, 결사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침해이다. 이것은 평화롭고 민주적인 정신과 행동 하에 남북 간 대화를 시작하려는 남한의 정책과도 어긋나는 것이다, 판문점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하여, 남북간 대화를 권고한 협정 4조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고 정전협정 4조는 왜 남한의 대통령이 남북간의 대화를 바라는 국제여론에 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 중 하나이다. 수구보수세력들에 의한 공격은 당신에 대한 범죄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고 이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만약 향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당신은 전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법률가들과 시민들의 연대가 당신과 함께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2013년 홀렁 베이와 인연을 맺은 이후 거의 매년 언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그와 만남을 하고 있다. 그가 권하는 어느 국제회의든 무조건 참석하고 있다. 일본, 벨기에, 프랑스, 네팔, 베트남에서 강대국에 의한 민족 및 인종의 생존권이, 국가에 의해 시민들의 생존권이, 자본에 의해 노동자의 생존권이 침해되는 현장에서 집단과 개인의 생존권, 시민과 노동자의 생존권을 논하고 있다.  그가 오라는 곳에 가면 따라다니기만 해도 배우고 성큼 성큼 성장하게 된다. 그를 닮고 싶다. 장수하고 싶다. 홀로 전 세계를 누비며 인권과 평화를 논하고 싶다. 이번에는 국제민주법률가협회에서 팔레스타인 라말라 회의를 한다는데 내게 참석을 권할 것이 분명하다. 국제민주법률가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민중과 함께 평화를 위해 싸우는 길에 무조건 참여하고 싶다. 1. 홀렁 베이(Roland WEYL) <약력> 1919년 프랑스 파리 출생 1939년~현재 프랑스변호사 1954~1991 「현대법리뷰」 편집장 유엔 산하 국제민주법률가협회(AIJD) 수석부위원장 프랑스 권리연대 명예대표 프랑스 평화운동단체 라빼(La Paix) 중앙위원 프랑스변호사협회원로 노동자, 평화활동가, 알제리전쟁시기 알제리인 등의 권익보호에 헌신 법학박사이자 투쟁하는 변호사인 부인 모니끄 피꺄흐 베이와 함께 다수의 법학이론 저서 집필 <주요저서> 『정의와 인간』(1961), 『혁명과 권리의 전망: 계급사회에서 무계급사회까지』(1974), 『이혼, 자유주의와 자유』(1975), 『투쟁을 위한 의복』(1989), 『마스트리히트조약(유럽연합조약)으로부터의 해방』(1998), 『민주주의, 민중의 권리』(1996), 『시장의 독재에 대항하여』(공동저술) 2. 국제민주법률가협회(IADL,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Democratic Lawyers) <소개> 1946년 파리에서 창립. 국제연합경제사회이사회(ECOSOC)와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의 자문기구. 초대대표 흐네 까썽(Ren Cassin)은 세계인권선언 작성에 참여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법률가. <창립목적> 전 세계의 법률가, 법률가단체들간의 교류를 촉진하고 상호 이해 도모, 국제연합(UN)헌장의 실행을 위한 공동 사업 전개, 국가 간 법적 차원의 민주주의원칙의 실현과 평화유지, 입법과 실천에서 민주주의적 권리와 자유 재정립 및 수호 발전, 법률과 현실에서 모든 이들의 제한 없는 독립성 증진, 인류와 인권의 수호와 증진, 생태와 환경 보호, 적법성에 대한 엄격한 일치와 사법기구와 법률가들의 독립성을 위한 투쟁, 평등한 경제체제와 과학적 발전, 천연자원의 성립과 발전을 위한 인권 수호 <조직체계> 명예대표 : Nelson Mandela(남아프리카) 대표 : Jeanne Mirer (미국) 부대표 : Roland WEYL (프랑스), Cla Carpi da Rocha (브라질), Gavril Iosif Chiuzbaian (루마니아), Ibrahim Essamlali (카이로) 영국, 벨기에, 필리핀, 팔레스타인에 지부를 두고 있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8-04-10 | hrights | 조회: 692 | 추천: 7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나이를 먹을수록 이 말의 다정함이 절대적으로 실감된다. 추위가 유난히도 길고 깊었던 겨울의 끝에서 맞이한 봄은 더욱 반갑다. 특히 올 봄은 자연만이 젊음을 되찾는 계절이 아니라 우리 사회도 활력을 되찾는 시절이 되리라는 기대까지 더해져서 희망차게 기쁘다. 자연이 부활하는 계절에 한껏 부풀어 오른 희망을 따라 두서도, 정처도 없이 생각의 길을 거닌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을 기대하고 희망하며 그것을 지향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의식의 기본형태”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을 떠올리면서.  마침내 그가 수인번호 716이 되었다. 기쁘다! 구속 직전 “지난 10개월간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고 토로했다는 데, 검찰이 진즉에 그의 고통을 줄여주지 않은 건 아쉽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후련하다. 물론, 구속이 곧 처벌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구속이 정의의 구현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거니까 부귀권세에 상관없이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 사회가 존속되려면 이런 최소한의 정의가 있어야 한다.  기실, 부귀와 권세를 누리는 사람이 악을 행하면 더 크게 벌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살만한 처지에서 덕을 베풀진 못할망정 죄를 범하였으므로. 716은 수십 년에 걸쳐 그런 범죄행각을 벌여왔다. 상습적이다. 그래서 더 악질적이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자신이 평생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살아왔는데 정치적 탄압에 의해 불의하게 구속된 것인 양 군다. 웃기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정직”이라는 가훈. “정직”이 정녕 가훈으로 내걸었다면, 아마도 그것은 가족 모두가 ‘탐욕 앞에 정직하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형제들, 아내, 아들, 사위 할 거 없이 거의 가족 모두가 범죄 혐의자라는 사실이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 단군 이래 이만한 가족은 없었지 싶다. 아니, 어쩌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래 초유의 가족일지도 모르겠다. 만일 716이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 직을 거치는 동안에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불법적 혜택을 받지 않았다면 몰라도, 특혜는 한껏 누렸으면서 이제와 가족이라는 관계를 내세워 슬쩍 면죄부를 받으려 든다면, 인정사정없이 오직 법대로 엄정하게 처리해야 할 줄로 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가장 완벽한 정부”라는 자평. 이 표현은 “도둑적으로 가장 완벽한 정부”의 오기로 보인다. 증거가 없는 악은 악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증거는 자기다. 정신이 어긋난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설사 남은 모를 지라도 자기는 안다. 이건 380여 년 전에 데카르트 형님이 사고실험을 통해 논리적으로 뒷받침을 해 놓은 사실이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이에도 내가 이렇게 의심하고 있다는 것. 내가 이렇게 의심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 스스로 의식하는 나는 여기에 분명히 있다는 것. 바로 그것만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가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716이 자기네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하는 말을 어떤 식으로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사진 출처 - SBS  게다가 아직까지는 716이 헌법을 유린한 반국가 사범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드러나지도 않았다. 구속영장에 나타난 그의 혐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 국고손실 · 조세포탈,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수뢰 후 부정처사, 정치자금 부정수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정도다. 이것만 보면 그는 정치사범이 아니라 경제 사범처럼 보인다.  716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헌법 제69조에 따라 다음과 같은 선서를 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그러나 716은 국가를 보위하기는커녕 보란 듯이 국고(國庫)를 탈탈 털어가려고 온갖 궤변과 꼼수를 다 동원했다. 조 단위로 나랏돈을 해먹은 언필칭 자원외교의 사기극과 멀쩡한 강을 살리겠다며 4대강과 그 주변 생명들을 해친 반(反)생태적 범죄에 대해서도 철저히 따져서 죗값을 물게 해야 한다.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716이 대선에서 내걸었던 747공약은, 당시 풍자적으로 회자되었던바 그대로였다. (대통령이 되기만 해봐라, 내가) ‘칠(7) 수 있는 사(4)기는 다 칠(7)꺼다.’  더 나쁜 것은 그런 불의와 파괴에 국가적 사업이라는 이름을 들이대면서 합법적인 정책으로 만든 것이다. 사악하게 얻은 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협잡(挾雜)과 비리를 저지르면서도 마치 그것에 옳은 일인 양 치장했다. 사익을 공익으로, 불의를 정의로, 악을 선으로 탈바꿈시켰을 뿐만 아니라 제도화시켰던 것이다. 같은 정파에 나온 그의 후임자가 503이 된 것은-비록 수인번호는 먼저 달았지만- 일견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해먹어도 탈나지 않는데 나도 이쯤이야 뭐,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는가. 법률적으로는 716에게도 마땅히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겠지만, 양의 탈을 쓰기만 하면 탐욕스런 늑대들이 우화의 세계가 아니라 공적 현실에서 활개 치게 만든 역사적 유죄를 벗어날 순 없을 것이다.  최소한 공적 영역에서만큼은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을 몰아내자는 것, 그게 적폐청산의 한 축일 것이다. 비리나 부정, 불의와 탐욕 같은 악습을 깨끗하게 씻어내지 않고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 수는 없는 노력이다. 불의한 현실세계를 비판하고, 그런 현실과 다른 현실을 만들기를 꿈꿨던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주인공 히슬로다에우스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정실과 탐욕이라는 이 두 가지 악이 인간의 마음에 뿌리 내리면 곧 모든 정의의 파괴자가 된다. 사회의 가장 강력한 접합제인 정의가 파괴되는 것이다.” ⌈신국론 De Civitate Dei⌋의 저자로 초기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교부(敎父)였던 성(聖)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의를 없애버린다면 국가는 도둑집단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설파한 바 있다. 과연 그렇다! 만백성의 십시일반으로 채운 나라 곳간을 터는 일을 본업으로 삼은 자들은 도둑놈들이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 부를 것인가? 그런 자들을 ‘발본색원’하여 엄벌하여 아예 뿌리를 뽑자는 적폐청산을 정의구현이 아니라 한사코 정치보복이라고 읽는 자들도 있다. 십중팔구, 제 발이 저린 자들이거나 탈이 벗겨질 것을 두려워하는 이리 같은 무리들이다.  그들이 뭐라 하든, 만인이 만인에 대해 이리 같이 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갖게 하는 봄이다. 비단 적폐청산의 움직임만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해빙과 미투(Me too)운동의 전개도 긍정적 기대를 마음을 밝고 환하고 따뜻하게 해준다. 흔히 봄을 희망에, 여름은 실행에, 가을을 결실에, 겨울을 휴식과 준비에 비유해 왔다. 사계절의 변화를 농사짓는 일에 연결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때의 기본 감각이다. 물론 인생은 곡식이 자라듯이 그렇게 철따라 매듭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자연의 계절과 인생의 계절이 꼭 일치한달 수는 없다.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봄에만 좋은 일이 있고, 가을에 꼭 풍성한 결실을 거두리란 법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봄은 봄에 즐겨야 한다는 마음을 거두고 싶지 않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18-04-04 | hrights | 조회: 465 | 추천: 4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발단은 지인 두 명과 나눈 대화였다. 한 여성 교수 얘기가 나왔는데 한 지인이 그 교수를 일컬어 “그 교수는 페미니스트”라고 했다. 다른 지인은 “전투적인 건 아니고 합리적인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했다. “메갈리아 같은 이상한 쪽은 아니다”는 말도 등장했다.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그 구분법은 며칠 전 읽은 한 기사를 계기로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워 버렸다.  ‘레드벨벳’이라는 걸그룹에서 활동하는 아이린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3월 18일 팬 미팅에서 누군가 최근에 읽은 책이 뭐냐고 물었다. 아이린은 두 권을 말했는데 그 중 하나가 ‘82년생 김지영’이라고 한다. 그 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이린을 비난하는 글이 폭주했다고 한다. 이유는 아이린이 그 책을 읽은 것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선언했다는 의미라는 거다. 심지어 어떤 팬은 아이린 사진 화형식을 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기사를 보니 지난 2월에는 ‘에이핑크’라는 걸그룹에서 활동하는 손나은이라는 사람이 “여자는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적힌 휴대전화 케이스를 든 사진을 올렸고, 일부 팬들한테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여성 연예인이 영문으로 ‘여자에게 왕자님은 필요없다’는 말이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가 격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둘 다 페미니스트를 연상시킨다는 게 이유였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솔직히 말해 레드벨벳과 아이린, 에이핑크와 손나은 모두 그 기사를 보고 처음 알았다. 별반 관심도 없다. 굳이 어떤 그룹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찾아볼 생각도 없다. 다만 두 가지 면에서 그 기사가 내게 충격을 줬다. 일단, 어떤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자칭 ‘팬’이라는 사람들이 다 큰 성인한테 ‘이런 책을 읽어라’ ‘이런 책은 읽으면 안 된다’고 타박하는 꼴이라니. 그 ‘일부’ 팬들 발상대로라면 아이린이 ‘나의 투쟁’을 읽으면 순식간에 나치가 되고,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 느닷없이 게이라도 된단 말인가.  두 번째로 놀랍고도 충격적인 건 그들이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짐작하건데 그들은 ‘페미니스트’를 사회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배척해야 하는 부도덕한 어떤 것으로 구성하는 듯하다. 어줍잖게 페미니스트가 좋으니 나쁘니 하는걸 따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이 페미니스트를 낙인찍는 방식은 얘기를 하고 싶다. 그들이 ‘너 페미니스트냐’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폭력행사로 비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에 인권연대에서 주최하는 ‘홍세화 초청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그는 한국에서 “너 전라도 사람이냐”는 질문과 “너 경상도 사람이냐”는 질문이 갖는 차이를 들어 차별과 낙인을 설명했다. 한국이라는 맥락에서 “너 전라도 사람이냐”는 질문은 그 자체로 구별짓기와 낙인찍기를 내포하는 반면 “너 경상도 사람이냐”는 질문에는 그런 맥락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 마치 미국에서 “너 기독교도냐”와 “너 무슬림이냐”라는 질문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그런 고민에서 우리는 “너 페미니스트냐”라는 질문이 갖는 폭력성을 확인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인지 묻는 것 자체가 폭력으로써 작동하는 건 페미니스트라는 용어 자체에 사회적 낙인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낙인을 숱하게 봐왔다. 당장 앞에서 예로 든 ‘전라도’가 그렇다. 한때 ‘빨갱이’에 집중하던 ‘일부’ 목사님들과 독실한 ‘일부’ 신도들께선 요즘 ‘동성애자’ 때려잡기에 여념이 없다.(이분들이 낸 신문광고에 동성애 옹호하는 드라마 보고 자기 자식 동성애자 되면 책임질 거냐는 말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바쁜 일상으로 지쳐가던 내게 큰 웃음을 주신 목사님들께 이 글을 빌어 허천나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한반도 남쪽에서 반세기 넘게 이어온 ‘빨갱이-친북-종북’은 말 그대로 낙인찍기의 정석이다. 자사고 폐지와 고교평준화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너 빨갱이냐’ 혹은 ‘너 종북이냐’라고 묻는다면 그들이 원하는 건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예 저를 죽여주시옵소서’라고 엎드리거나 ‘전 빨갱이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옹색한 변명을 하거나. 대화와 토론, 소통과 공감이 들어갈 자리는 어디에도 없다.  멀리 볼 것 없다. 생각해보면 박근혜가 청와대를 깔고 앉아 하던 짓이 딱 그랬다. 박근혜가 세월호를, 야당을, 시민단체를, 그리고 국민들을 어떻게 낙인찍고 배제하고 감시했는지 기억하자. 그리고 그짓꺼리 따라하지 말자. ‘나쁜 동성애자’가 있고 ‘좋은 동성애자’가 있는게 아니라 그냥 동성애자가 있을 뿐인 것처럼, ‘좋은 페미니스트’가 있고 ‘나쁜 페미니스트’가 있는게 아니라 그저 차별에 반대하고 (양)성평등을 (온건하게 혹은 전투적으로) 촉구하는 페미니스트가 있을 뿐이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8-03-21 | hrights | 조회: 982 | 추천: 22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1. 일본 교토부(京都府) 북단에 마이즈루(舞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한국으로 치면 동해에 인접한 마이즈루만을 끼고 있는 항구도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일본의 군항이었고, 패전 이후에는 ‘전력불보유’를 명기한 헌법에 따라 그저 그런 항구의 하나였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이후 슬슬 군함들이 들어섰고, 1954년 이후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해상자위대 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2. 패전 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일본인들이 1945년부터 56년 사이에 마이즈루항을 통해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소련의 강제수용소에 억류되어있던 60여만 명의 일본군 및 민간인들 상당수가 송환되면서 어떤 이들은 억류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증언해줄만한 각종 기록물들과 물품들을 가져왔다. 이 유물들을 전시해둔 건물이 "마이즈루히키아게(引揚)기념관"이다. 이 기록물들은 2015년 ‘유네스코세계기억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인류의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집단 기록물이라는 이유에서다. 일본에서는 이 기념관의 각종 전시물들을 반전(反戰) 및 평화를 전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평화를 꿈꾼다니 좋은 일이다.  3. 그런데 일본인 억류자의 참상을 기억하게 해주는 그 현장 아래에 가려져 있는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고, 왜 한국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싶은...  1945년 8월 24일,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 수천 명(5~6천명?)을 태우고 일본 동북부 센다이 인근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일본 해군 송환선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가 의문의 폭발로 마이즈루만에서 수장되다시피 한 사건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시신 524구와 일본 해군 승무원 시신 24구를 수습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조난자 대부분을 구조하지 않았다. 추정컨대 최소 3천명에서 최대 5천명은 바다 속에 고스란히 가라앉았다. 일본 정부는 미군이 매설한 기뢰 때문에 폭발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생존자의 증언 및 사후 실험 결과는 누군가에 의한 고의적인 폭발 사건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누가 그랬던 것일까.  끔찍한 것은 침몰 9년이 지나도록 뱃머리는 수면 위로 솟아 있었고, 강제수용소에서 귀환하는 일본인 송환선은 그 위 또는 그 주변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마이즈루항을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수천의 시신이 형체도 없이 삭아가고 있었을 그 바다 위로 어떤 이는 환영을 받으며 귀환하는 현장을 어떤 말로 형언해낼 수 있을까.  배는 9년 동안 수면 위로 머리를 내민 채 흉물스럽게 녹슬어갔고, 그 사이 한국 정부도 이 사건을 규명하지 않았다. 그러던 1954년 일본 정부는 선체를 인양해 고철로 팔아넘겼다. 사건을 규명할 증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사람을 구조하지 않기는커녕 어쩌면 의도적으로 수장시켰을지도 모를 사건 자체도 개탄스럽지만, 5천에 가까운 조선인 시신들이 가라앉아있을 그 바다 위로 일본인 송환선이 수도 없이 자연스럽게 드나들었을 장면을 상상하면 소름마저 돋는다. 조총련에서 일부 일본인의 협조를 받고 마이즈루시의 허락을 얻어 1978년 수장지가 바라다 보이는 근처 뭍에 기념비를 세워놓지 않았더라면, 기억에서조차 완전히 잊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 출처 - 필자 우키시마마루호가 침몰한 지 9년 동안 기관총, 레이더 등 배의 상부가 수면 위로 드러나 있었다.  4. 한국 정부는 2005년이 되어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려 했지만, 결국은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유야무야되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에서 이를 다룬 영화(“살아있는 령혼들”, 2000년)를 제작하기도 했고, 기뢰로 인한 우연한 폭발인지 살인에 가까운 계획적인 침몰인지 모의실험을 한 바도 있다 한다. 그 마저 없었다면 수천 명의 목숨이 기억에서조차 증발해버리는 희대의 아이러니가 되고 말 뻔 했다. 아비규환 속에서 외쳤을 비명 소리, 삭아가는 시신, 그 위로 설레며 귀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교차시키노라면, 그 이상의 희극 같은 비극을 상상한다는 것을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싶다. 이런 문제를 떠올려보지도 얘기해보지도 못한 채 한일 간의 미래와 인류의 평화를 이야기하려니, 그저 공허할 뿐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8-03-14 | hrights | 조회: 745 | 추천: 6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미투 이야기가 한창입니다. 별 다른 목적 없이 만난 사소한 술자리에서도, 일 때문에 만난 사람들도 한마디씩 합니다. 어떤 친구는 제가 출판 쪽 일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화로 시인 아무개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물어보기도 합니다.  문단이나 영화, 공연 쪽에서 일해 왔던 사람들을 만나면 사뭇 심각한 이야기가 오갑니다. 한 번쯤 들어봤거나 만났었던 사람들의 이름이 심심찮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견해들은 제각각입니다. 요즘 뉴스에 오르내리는 어떤 문화계 인사를 두고 A는 그럴 줄 알았다고 얘기하고, B는 과장되었다고 하고, C는 ‘그 개XX!’ 라고 욕설을 합니다.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80년대에 대학들을 다녔으니 이른바 ‘아재’들입니다. 역시 화제는 #미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가해자로 지목받고 있는 유명인들의 이야기들이 중구난방으로 펼쳐집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한 친구가 정리를 합니다. 항상 우쭐대기를 좋아하는 그 아재는 할리우드 미투운동의 시작부터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네이버 지식인 답변만큼이나 사태의 추이를 잘 정리해서 브리핑합니다.  그동안의 사건과 사실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음에도 아재들은 개념이 잘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또 뒤섞입니다.  ‘OOO 씨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면 ‘근거를 대라’ 하는 둥 가해자의 이미지에 따라 이편저편이 나뉘는가 하면 진짜 이야기는 연예계 정치계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거쳐,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옮겨 갑니다. 결국 연예인 가십거리에 다름없는 수다가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말 그대로 ‘아재 개그’가 휙 지나갑니다.  “사장님, 여기 오백 한 잔이요!”  “미 투!”  “미 쓰리!”  그런 분위기를 타고, 자신의 마초 기질을 자랑스러워하던 아재가 이야기를 정리하려 합니다.  “좌우간 이제는 여자를 만나려면 녹음기가 필요하다는 거야, 오늘 얘기 끝!”  그러자 맞은편에 앉았던 샌님 같은 아재가 벌컥 화를 냈습니다.  “네놈들 머릿속엔 똥만 들었냐?”  마초와 샌님은 그동안 번번이 의견이 갈렸었습니다. 그 둘은 어떤 자리에서도 서로 대립했었으니까요. 그런데 샌님은 오늘 ‘마초, 네놈’이라고 하지 않고 ‘네놈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초만이 아닌 ‘마초를 포함한 이 자리의 아재들 전부’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한마디는 이전까지의 분위기를 단번에 바꾸어버렸습니다. 이미 여섯 아재들은,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미투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누군가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주었으면 하고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아재가 되기까지 겪었던 일상 속 기억 한편에는 나 역시 가해자였을 수도, 최소한 방관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 않았을까요?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아무튼 그때부터 남들 이야기가 아닌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해와 피해의 근본적인 문제와 정도의 차이 그리고 남자의 입장과 여자의 입장. 취지는 인정하나 또 다른 피해의 위험이 있고 그래서 혼란이 계속될 거라는 의견, 다소의 혼란이 있어도 한번은 뒤집어져야 할 문제라는 의견 등등 나름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투에 대해 여섯 명 아재들의 견해는 조금씩 달라도 이야기는 점점 진지해졌습니다. 적어도 아재들에게는 자기 자신과 주변의 환경 그리고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었음은 틀림없었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의 모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딱히 특출난 게 없는 평범한 아재들이니 명료한 결론은 없었습니다. 진지해질수록 또 다시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혼란은 더해만 갔습니다. 그리고 누구의 말이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상황이 되었을 때, 비교적 말을 아꼈던 한 아재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어쨌든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었습니다. 한때는 빛나는 청춘이었을지도 모를 여섯 아재의 #미투 이야기 자리는 그렇게 정리되었습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8-03-07 | hrights | 조회: 651 | 추천: 0
김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흠동풍(只欠東風) : 단 부족한 것은 동풍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한 말이다. 조조가 중국 통일을 위해 유비의 촉나라에 진격하자 조조의 군인들이 탄 전함에 불을 질러 공격하는 화공(火攻)으로 군대를 물리치려 하였는데 동풍이 불지 않아 화공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갈량이 한 말이다.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갖추었으나 중요한 핵심 조건을 구비하지 못함을 일컫는 말로 회자되는 사자성어다.  부패하고, 무능한 수구 기득권 세력에 항거한 촛불로부터 시대적 소명을 부여받고 출발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통해 재조산하(再造山河) 개혁의 깃발을 꽂으려고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의 깃발은 산하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적대적 야당의 철벽을 넘지 못한 채 개혁 입법은 중단되었다. 가히 지흠동풍 형국으로 보인다.  권력의 칼춤으로 미친 굿판은 반복될 수 있다.  시민이 무너뜨리고자 하였던 구악의 폐습. 그토록 간절하게 단절하고 싶었던 무능하고 부패한 권력. 헌법과 법치주의를 유린한 자들을 도려내는 적폐청산은 무너진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타락한 가짜 보수에 대한 적폐청산 필요성은 두말 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처벌만으로 새로운 세상을 다시 만드는 재조산하가 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를 질식시킨 적폐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검찰·국정원·재벌 등에 대한 제도적 입법 개혁과 혁신이 뿌리내리지 못하면 언제든지 권력의 칼춤으로 미친 굿판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은 검증된 역사적 사실이다. 4·19 혁명은 5·16 군사쿠데타에 짓밟혔고,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 항쟁은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에 학살당했고, 1987년의 6월 혁명은 속된 말로 ‘죽 쒀서 x 준' 꼴이 되어버린 변형된 반쪽짜리였다. 혁명은 간 곳 없고, 미친 권력의 굿판이 횡횡하였다.  시민이 환호하고 감격하였던 승리의 달콤함은 짧았고, 패배의 쓰라림은 길고 긴 상흔으로 가슴에 저리게 남아있다. 촛불이 들불처럼 일어나 시대의 경계를 넘고자 하나 한결같이 지뢰밭이다. 2016, 2017년 최신판 박근혜의 헌정문란을 넘어서기 위한 입법 열차가 국회 안에서 멈추어 서있다. 열차가 언제 출발할지, 목적지가 어딘지도 불확실하다. 촛불이 또다시 지울 수 없는 상처만 입을 수 있다는 우려를 감출 수 없는 이유다.  촛불 승리의 기억은 개인적 유전자로 체화되고, 이를 넘어서 사회적 유전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촛불 시민이 공유한 소중한 가치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초석이 되겠지만, 한걸음 더 나가지 못하면 우리는 또다시 패배의 쓰라림에 아파하다 산화할지 모른다. 또다시 상처입고 울지 않기 위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아직 촛불을 거둘 때가 아니다. 촛불 개혁이 완수 될 때까지 촛불을 칼집에 넣어서는 안 된다.  촛불혁명의 화룡점정은 OO다.  개혁의 성공을 위한 정치적·사회적 조건은 무엇인가. 끊고자 하였던 패악스런 제도에 기대여 악을 쓰고 반대하는 무리들을 돌파할 방법은 있는가. 물론 의심의 여지없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보편적 방정식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백만대군을 추풍낙엽처럼 침몰시킨 제갈량의 동풍을 찾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사진 출처 - 선거연수원  촛불은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과 목표를 이미 만천하에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정신만으로는 단 1센티미터도 양보·타협하지 않는 수구세력을 넘어설 수 없다. 하여 촛불은 어둠을 여전히 밝힐 것이며, 나라의 주인이 시민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올해 6월 13일 지방자체단체 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개혁의 견고한 디딤돌로 만드는 것. 막말 대왕, 무능하고 부패한 자, 시민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자들을 모두 집으로 보내는 것. ‘백수 만들기 운동’을 통해 용의 그림에 마지막 눈동자를 그리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어야 한다. 마지막 눈을 찍을 수 있는 궁극적 주체는 주권자인 촛불 시민임을 다시 만천하에 계속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제갈량이 말한 이 시대 지흠동풍이 아닐까.  문재인 정부도 촛불 혁명의 화룡점정을 찍을 매우 중요한 주체임을 자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디게 밝아 온 아침에 할 일을 모두 마쳐야 한다. 또다시 찾아 올 수 있는 어두운 밤도 대비해야 한다. 하여, 깨어있는 촛불 시민은 문재인 정부가 국회의 개혁 저지 세력을 넘기 위해 과거의 원한과 대결 등을 넘어 오월동주(吳越同舟)도 마다하지 않고, 쥐 잡는 것이 중요하지 흰 고양인지 검은 고양이인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등소평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의 묘수도 발휘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정권 획득의 달콤함에 취해 헛발질하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는 타락한 가짜 보수 세력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실수·실책을 할까 조마조마 하기도 하다. 촛불 혁명의 고귀한 씨앗을 발아시켜 미완의 1987년을 넘어설 소중한 기회가 없어져 버릴까 두렵기도 하다. ‘촛불혁명의 화룡점정은 OO이다.’라는 집단 지성을 모아야 할 이유다. 김희수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입니다.
2018-02-07 | hrights | 조회: 820 | 추천: 5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2015년 말의 한일위안부 합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정부가 외교적 보호권을 발동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낳은 파장이었다. 외교의 상대인 일본정부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 합의는 국제인권기준과 동떨어져 있고, 더구나 피해자들의 견해와 입장은 거의 반영되지 않아 대단히 부실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새로운 정부는 고심 끝에 이 합의를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무효(사실상 무효)로 만들었다. 그러나 외교적 보호책임은 인권침해에 대해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조치가 성취될 때까지 존속하는 것이므로 이 상태에서 체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이 자리에서는 식민청산과 관련하여 또 다른 외교적 사안으로서 야스쿠니 신사 조선인 합사문제를 거론해야겠다. 다수의 국가들이 독립전쟁이나 해방전쟁에서 사망한 전몰자를 위한 추도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무명용사를 기리는 것은 어느 나라나 공통된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국가는 이러한 추도문제에서 원칙적으로 문화적 자율성을 가지므로 이웃나라가 감놓아라 배놓아라 할 수 없다. 야스쿠니 신사는 국립묘지처럼 유해봉안소나 묘지가 아니라 넋의 보관소에 가깝다. 그런데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를 전몰자 추도시설로 좋게 해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곳은 죽은 자를 애도하는 시설이 아니라 현창(顯彰)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즉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의 감정을 표하는 곳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태도를 찬양하는 공간이다. 침략전쟁의 수괴들(A급전범)을 합사하는 신사라면 침략전쟁과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시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 수상이나 일본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군국주의적인 전쟁선동에 해당한다. 이러한 이유로 아시아의 주변민족은 그들의 참배에 크게 우려하며 이를 일본의 국내문제로 용인하지 않으려 한다.  침략주의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일본인 희생자 유족들이 몇 차례 합사철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모두 패소하였다. 신사측은 신으로 영구적으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희한한 논리를 펼쳤다. 사람이 하는 일을 불가역적, 최종적, 신성한 조치라고 우기고 있다. 오로지 전쟁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모아 군국주의 일본을 위한 전쟁신을 집단적으로 창작하는 기만술이라고 생각한다.  야스쿠니 신사는 또 다른 충격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조선인들이 2만 여명도 넘게 강제로 합사되어 있다. 일본정부가 패전 후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한 다음에 비로소 대다수 조선인 전사자를 야스쿠니에 합사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도의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사망자들의 유해는 전장터에 방치해두고 그 영혼을 탈취하여 군국주의적 국혼을 날조한 것이다. 심지어 생존한 조선인을 야스쿠니에 합사한 사례까지 발견되었다. 사진 출처 - EBS  2007년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인 이희자 선생과 일부 유족들이 합사철회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였다. 유족들은 당시 합사제신명부에서 희생자 이름 말소, 원고 1인당 위자료 500만 엔 지급, 언론을 통한 무단 합사 사과문 게재 등이었다. 2018년 현재 도쿄지방재판소에서 다른 유족들이 2차로 합사철회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유족측 변호인들이 소송에서 ‘민족적 인격권’을 주장하였다. 일본정부는 야스쿠니 합사를 국내 문제나 종교문제(야스쿠니신사의 자율권)로 강변하지만 이는 희생자와 유족의 권리를 침해하는 사안으로서 국제 문제이다. 죽음을 국가화 하는 것, 더구나 희생자와 유족의 의사에 반해서 국가화하는 조치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민족의 차원에서 심각한 권리침해이다. 전쟁법은 사망한 적에 대해서도 인도적으로 처우해줄 것을 요구한다. 1907년 제네바 협약들은 사망한 적을 그의 종교 관례에 따라 매장하고 분묘등록소를 설치하고 희망에 따라 유해의 송환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제17조 제2항 및 제3항). 1977년 제네바협약 제1추가의정서도 묘지의 보호와 유해송환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제34조 제2항). 죽은 자의 고유한 인격권과 가족의 애도의 권리가 전사자에게 중요하다. 인권피해자권리장전(2005)도 죽은 자에 대한 의례에서 유족의 문화적 전통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제22조). 이러한 국제관례를 보더라도 민족적 정체성을 존중하는 선에서 일본정부가 합사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해방과 동시에 조선민중들이 전국각지에서 취한 최초의 정치행동은 신사소각이었다. 조선민중은 신사를 종교적인 사적 공간이 아니라 조선인의 정신과 의례를 부정하는 식민잔재로 이해한 것이다. 강제동원위원회가 B.C급 조선인 전범을 민족적 견지에서 식민지강제동원의 피해자로 규정한 사정에 비추어보면 조선인 합사문제를 한국정부가 묵인하는 것은 조화로운 태도가 아니다. 한국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문제에 대한 부실한 합의로 인해 쓰디쓴 외교적 실패와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죽은 후에도 민족적 성원성에 반해서 전쟁과 일본국가주의의 불쏘시개로 활용되는 것은 참으로 치욕스러운 일이다. 합사철회는 피해자와 그 유족의 개별적 소송을 통해서 합사 철회 문제를 해결하도록 방치하기보다는 한국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통해 시정해야 한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8-01-24 | hrights | 조회: 914 | 추천: 7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1월 15일은 신영복 선생이 세상을 뜨신지 꼭 2년이 된 날이다. 하루 전인 1월 14일에 성공회대학교 교내 성당에서 2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유력한 정치인들부터 무명의 노동자들까지 많은 분들이 함께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신영복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가르침이 얼마나 깊고 너른 의미의 자장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은 생전에 다양한 지식을 섭렵했고 수많은 지혜들을 남겼지만 만년에 유독 강조한 메시지가 있다. 바로 ‘변방이 가진 창조성’에 관한 것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그 중심지가 끊임없이 변방으로 이동해 온 역사이다. 중심부가 쇠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곳이 변화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변방은 지리적이거나 공간적인 개념이기보다는 의식의 변방성, 즉 변방 의식을 의미한다. 변방은 성찰의 공간이다. 문명이든 국가든 혹은 집단이든 개인이든 성찰하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고 변화하지 않으면 그 생명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게 성찰하는 변방만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신영복 선생이 말씀하신 변방의 창조성에 관해 생각하다보니 문득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한국대중음악상도 이와 유사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대중음악상은 내가 15년째 선정위원장을 맡아 진행하고 있는 시상식이다. 한 해 동안 한국 대중음악 씬에 등장한 새 작품들 가운데 음악적으로 높은 수준의 성취를 달성한 작품과 뮤지션들을 골라 상을 준다. 상업적 성공이나 대중적 인지도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직 음악적 성취만이 시상의 기준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이 상의 수상작들은 대부분 이른바 주류 씬이 아니라 주로 비주류 혹은 인디 씬에서 나온다. 그렇다고 주류 씬의 음악이 상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실제로 적지 않은 아이돌 그룹과 스타급 음악인들이 이 상을 받았다) 다양한 장르 부문을 배려하는 상의 특성 상 아무래도 비주류 음악인들이 상대적으로 상을 많이 받게 된다. 지금 우리 대중음악 문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주류 음악은 대체로 일부의 장르와 양식에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비주류 음악 씬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생산되며 늘 신선한 창의적 역동성이 꿈틀거린다. 바로 변방의 창조성이다. 사진 출처 - 한국대중음악상 트위터  문제는 이렇게 창조적인 변방의 음악들이 최소한의 물적 토대를 가지지 못한 채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그들이 생존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TV에 출연하고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것, 요컨대 중심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될 뿐이다. 결국 중요한 건 비주류 음악이 최소한의 독자적 생존과 재생산이 가능한 물적 토대를 확보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대중이 변방의 다양한 음악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대중음악상은 바로 그런 접점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 지금까지 그 역할을 얼마나 제대로 수행해 왔는지 정밀하게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한국 대중음악 씬의 창조성을 북돋우고 대중의 음악 환경을 다양화하는 데 나름의 기여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신영복 선생은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결정적인 전제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중심에 대한 콤플렉스와 열등의식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에 대한 허망한 환상을 없애지 못한다면 변방은 그저 변방으로 남을 뿐이며 아류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변방이 진정 창조적 공간이 되려면 중심부를 향한 환상을 버리고 스스로 자신의 논리와 이유로 설 수 있어야 한다. 인디 음악을 포함한 모든 비주류의 문화적 실천이 그럴 것이고 한국대중음악상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8-01-17 | hrights | 조회: 815 | 추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