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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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설경(변호사),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임아영(경향신문 기자),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덕수궁 돌담길 거닐다보면 일제에 의한 대한제국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가 있다. 중명전이다. 중명전은 특사로 파견된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대신들을 불러 모아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한 장소이다. 이곳에 가보면 일제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해간 생생한 역사적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역사박물관으로 잘 꾸려져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중명전을 방문하여 일제의 서슬 퍼런 위협 앞에 속수무책 외교권을 강탈당한 대한제국의 비참한 최후를 보고 분노와 울분을 삼키며 식민의 아픔을 뼈속깊이 새기는 역사학습을 하고 있다.  중명전과 담 하나로 맞닿아있는 장소가 있다. 미국 대사 해리스의 숙소다. 대한제국 시절 미공사관 터에 지금은 미 대사관저가 있다. 미국과 한국이 밤낮이 서로 다르다보니 미 대사관저는 대사의 숙소도 있고, 미 대사의 집무실도 있다. 미 대사관저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미 대사관저를 방문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아무나 그곳을 방문할 수 없다. 왜냐하면 특별경비구역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늘 특별경비를 서고 있다. 어디까지 경비를 서냐면 미 대사관저 곳곳에는 담벼락 위에 철조망이 있고 물샐틈없이 경비초소가 설치되어 한국 경찰이 지키고 서 있다. 한국에 있는 외국 대사관저 중 유일무이한 특별경비구역이다.  미 대사관저를 방문하여 미 대사를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에 한국의 국익을 위해 미 대사에게 할 소리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들어본 기억이 없다. 미 대사관저를 방문한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미 대사는 한국의 대통령이 종북인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지를 확인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고, 방위비분담금 증액 이야기를 스무번 반복해 이야기했다는 이야기들이 넌지시 언론에 흘러나왔다. 망발을 하는 미 대사에게 항의했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온통 꿀먹은 벙어리가 된 모양, 체념한 듯 회피하는 듯하다. 중명전 앞 마당에서 미 대사관저를 경비하는 경찰을 보며 과거와 현재를 곰곰이 씹어보며 미 대사관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추해 본다. 데자뷰랄까 기시감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어느 날 미 대사관저에 한국의 청년들이 떼 지어 월담시위를 하고 미 대사관저에서 농성시위를 하며 미 대사 해리스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강요를 규탄한 적이 있다. 한국의 경찰들이 출동하여 모두 연행하였고 그 중에 네 명은 석 달 가까이 구속되어 있다. 미 대사는 청년들의 월담시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고양이는 안전하다며 한국경찰에 감사인사를 하였다. 미 국무부는 한국 정부에게 한국 내 외교시설에 대한 안전을 위해 더욱 노력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악영향을 끼치는 돌출행동으로 미 대사관저의 안녕을 해한 월담시위 청년들에 대한 엄중한 사법처리를 약속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경비를 실천하고 있다. 지금 미 대사관저는 더욱 강화된 경비를 받으며 그 안에서 도무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민 누구도 볼 수도 알아서도 안 되는 특별구역이 되었다.  미 대사관저의 특별 경비를 뚫고 사다리를 타고 월담시위를 감행하여 미 대사관저 내에서 미 대사의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6조원)을 강요하는 해리스 대사의 망발을 규탄 항의농성을 벌였다는 이유로 구금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네 명의 젊은이들은 지금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판사가 영장실질심사 당시 이들에게 주동자가 누구냐고, 배후가 누구냐고 법정에서 물었다. 성인에게 배후와 주동을 묻는 것이 말이 되냐는 반격이 법정에서 나왔다. 판사의 질문에 진술을 거부하는 이도 있었다. 불구속으로 석방된다면 다시 미 대사관저 등에 진입하는 시위를 할 것이냐는 판사의 질문에 네 명의 구속자들은 응당 해야 할 일을 실천할 것이라고 하기도 하였고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에 진술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이들 네 명의 젊은이들은 공안검사 앞에서 일체의 진술을 거부하였고, 서명날인을 거부하였다. 검찰의 소환 조사 전에 이들은 일체 진술을 거부하는 자신들의 의사를 명백히 알리는 자필진술를 제출하며 검찰의 피의자신문은 아무런 실익도 없고 무용한 수사행위이고 자백 강요에 해당한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불필요한 피의자신문을 하지 말 것과 피의자신문을 강행하는 경우 진술거부권 행사 의사를 확인하는 순간 바로 신속히 조사중단을 요청하였다. 공안검사는 두 명의 오전 조사에서 각 5분 진술거부권 의사를 확인 후 조사를 중단하였고, 나머지 두 명의 오후 소환조사는 조사의 실익과 필요성이 없다는 이유로 예정된 조사를 취소하였다. 이들 젊은이들은 공안검사를 상대로 당당하게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행사하여 검사로 하여금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피의자를 상대로 불필요한 조사를 장시간 진행하는 부당한 수사관행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바로 이들 젊은이들에게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 이들의 선택지, 우리가 감히 생각하기도 어렵고 실천은 더욱 어려운 그것이다. 당당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며 당당하게 처신하며 어떠한 희생에도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있는 그대로 지키며 싸우고 관철해나가는 자신감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고, 우리나라가 현재 갖고 있지 못한 당당함을 우리는 언제,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이들 젊은이들의 미 대사관저 월담시위는 오늘 미국의 횡포 앞에 농락당하는 우리들의 자존심을 세우며 온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며 주권을 당당히 행사한 역사적 장거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한국의 국익을 위해 싸우다 부당하게 구금된 이들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큰 빚을 졌다. 당당히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함에도 이들 양심들을 부당하게 지금껏 구금하는 이 나라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당당하게 사는 것, 이 나라가 당당하게 서는 것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0-01-15 | hrights | 조회: 758 | 추천: 13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봄비  봄빈가? 착각이다. 겨울비다. 예보에 따르면 어제부터 내일까지 비가 온다고 한다. 나들이 하러 나선 길에 차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낯설다. 이맘때면 비 대신 눈이 와야 하니까 절기에 익숙해진 내 몸은 빗소리를 낯설게 느끼는 것이리라. 누군가 자연의 계절조차 겨울이 봄인 줄 착각한 거라고 걱정을 하지만, 나는 봄이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애써 낙천적으로 해석하였다.  며칠 전 학과장인 동료가 신입 대학원생 명단을 보내주었다. 한 달 전 쯤 면접을 마친 박사반에 이어 석사반 신입생들이다. 학부도 신입생 선발을 마쳤다. 이들이 봄의 새싹들이다. 그리고 난 지금 새 학기 대학원/학부 강의 계획을 짜고 있다. 저들이 이 커리큘럼을 마칠 때 “힘들었지만 남는 게 있었다”라는 최고의 칭찬을 남기도록 세심하게. 커리큘럼 곳곳에 지뢰를 숨기는 것도 잊지 않고 음흉하게 웃으며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개강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출처 - 민중의 소리  역사학개론  늘 그렇듯이 이번 봄 학기에도 전공필수 ‘역사학개론’을 강의한다. 10년 전, 처음 역사학개론을 맡았을 때, 강의계획서를 본 몇몇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바꾼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때만 해도 역사학개론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었던 것이다. 나는 학과회의를 거쳐 ‘역사학개론’을 필수로 바꾸었고, 수강신청을 정정했던 집나간 어린 양들은, 다음 해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역사학개론은 말 그대로 ‘역사학은 이렇게 공부하는 거다’, ‘이런 걸 배우는 거다’, 라고 학생들에게 일러주는 시간이다. 전공이니까 역사‘학’이 되지만, 삶이 곧 역사이기 때문에 ‘호모 히스토리쿠스’에게는 역사공부가 곧 인생에 대한 탐구가 된다. 나는 역사공부가 제대로 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학생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이란  역사학개론을 가르치면서 그동안 내가 ‘사실’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사학은 ‘사실’을 다루는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리학도가 에너지가 뭔지 모르는 것이나, 문학도가 문장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과 같았다. 나는 뒤늦게 ‘사실’을 조금 이해했다. 아둔한 나는 오랜 노력 끝에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정의를 내렸다.  역사의 사실이란 사회 또는 자연에서 벌어지는(=펼쳐지는) 인간의 행위를 말한다. 사실은 구조(조건), 의지, 우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이 바쁜 나머지 사실 가운데 구조만 생각하면 결정론에 빠지고, 의지만 생각하면 목적론에 빠지며, 우연만 고려하면 상대주의나 불가지론에 빠진다. 그렇다고 구조를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사는 세상, 사회의 변혁을 생각할 수 없고, 의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인간의 책임과 도덕성을 말할 수 없다. 우연을 생각하지 않으면,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이해할 수 없고, 무엇보다 인간의 비극을 이해할 수 없다.  헌데 의지는 종종 구조로 변하고, 구조 역시 의지로 자리바꿈을 한다. 내가 의지로 선택한 전공은 선택이 끝난 순간 나의 조건이 된다. 노예이라는 조건은 자각된 의식을 통해 해방의 의지로 거듭나기도 한다. 게다가 사건, 사실마다 구조, 의지, 우연의 배합비율이 다르다. 같은 인간이 없듯이, 세상에는 같은 사실이 없는 법이다. 그래도 자꾸 다루다 보면 지혜가 생긴다. 지혜는 힘이다.  나의 젊은 벗들이 겪는 낮은 취직률, 불안정한 직장, 무엇보다 연애조차 유보할 정도로 꿈을 삭감당하는 삶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기만하지 않을 수 있는 힘 말이다. 그들의 아픔은 그들이 청춘이거나 성실하지 않아서 겪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만하는 어른들이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포착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문제의 반은 해결된 셈이니, 어찌 지혜가 아니겠는가.  한편 그 사실들은 시간과 함께 흔적도 사라지고, 우리는 기억과 기록을 통해 불완전하게 그 사실들을 붙잡아둔다. 일기를 써도 나의 과거 역사는 일부만 남고, 그나마도 안 쓰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사라져간다. 역사공부는 이렇게 불리한 조건에서 시작된다. 다른 모든 배움이 그렇듯이, 바닷가의 조개를 주워 거기 묻은 모래를 살살 털어내면서 조금씩 나은 지식과 지혜를 찾아가는 것이다. 역사공부를 하면 우리 인생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는 이유이다. 잘 이해하면 잘 살 수 있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미래를 여는 역사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명언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시적 표현 속에 분명히 담겨 있는데, 너무 명언이다 보니 정작 묻혀버리는 진실이 있다. 현재=현대 역시 역사라는 점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유력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지금=현재 역시 그렇게 흘러가는 -때론 흘려보낼 수 있는- 역사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지식은 현재를 지배하는 상식을 상대화한다.  그 상식은 때론 객관성의 외피를, 경우에 따라서는 절대성의 외피를 쓰고 있기에 여간한 통찰로는 상대화하기 어렵다. 그 결과 마치 지난 모든 역사가 현재에 도달하기 위해 진행되어 온 듯 한 착각에 빠진다. 생산력과 기술이 과거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발달한 현대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현실 합리화에 빠지기 훨씬 쉽다. 그런 점에서 역사공부는 보통 사람들이 현재를 비판적으로 상대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솔직히 말하면, 반대로 역사공부는 보통 사람들이 현재를 합리화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현재의 비판적 상대화는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가 있기에 의미를 가진다. 돌아보건대, 역사학개론 시간에 역사의 연구방법, 주제, 언어와 사료, 사학사 등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짜다보니 역사공부를 통해 열게 될 미래에 대해서는 많이 소홀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돌아오는 봄에 만날 새싹들과는 현재에서 훨씬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데 힘이 되는 역사공부를 하고 싶다. 역사공부를 통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언짢은 삶을 고쳐줄 힌트와 대안을 발견하는 데 더 힘쓰고 싶다. 그렇게 될 것이다. 기다려라, 동지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20-01-08 | hrights | 조회: 354 | 추천: 5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국 검찰의 역사는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나뉜다. 목줄을 세게 쥐는 권위주의(또는 독재) 정부에서는 충직한 개였다가, 풀어 놓아주는 리버럴 정부에서는 야생의 늑대가 된다. 개의 시간에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지만, 늑대가 되면 스스로 본능에 따라 살아간다. 생존 본능이라는 새로운 주인을 섬기는 것이다. 생명 유지와 번식을 위해 필사적으로 먹이를 사냥하고 목숨을 건 결투도 피하지 않는다. 친검이냐 반검이냐  윤석열이 이럴 줄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윤석열을 잘못 본 것이다. 윤석열은 개의 시간에도 늑대 유전자를 숨기지 않던 인물이다. 당시 수뇌부가 개처럼 정권에 충성할 때 윤석열은 주인 없는 늑대처럼 행동했다. 그걸 현 정부 지지자들이 자기편이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윤석열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윤석열은 검찰 편이다.  개의 시간에는 늑대가 드물지만, 늑대의 시간이 되면 죄다 늑대가 된다. 늑대의 시간에 늑대가 되는 건 쉬운 일이다. 가히 합법 쿠데타라 할 만한 작금의 검찰 행태를 윤석열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시각은 그래서 근시안적이다.  늑대가 된 검찰의 판단 기준은 여당이냐 야당이냐,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다. 친검이냐 반검이냐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친검이고, 검찰 개혁 의지를 꺾지 않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반검이다. 국회 패스트트랙 폭력 행사를 비롯해 자유한국당에 대한 수사를 검찰이 열심히 하지 않는 이유는 검찰이 보수여서가 아니라 자유한국당이 검찰 편이어서다. 자유한국당과 검찰의 적폐연대는 이미 작동중이다.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수사  늑대가 된 검찰에게 가장 큰 천적은 이른바 ‘검찰개혁 세력’이다. 그대로 뒀다간 검찰이 사냥을 못하게 되거나 번식이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게 조국은 호랑이 새끼 같은 존재였다. 더 크기 전에 물어 죽여야 했다. 조국 하나를 잡기 위해 청와대와 총리실, 기획재정부, 경찰청 등 가리지 않고 들이닥쳤다. 전국의 검찰 조직을 총동원해 넉 달 동안 뒤진 끝에 고작 ‘감찰 무마’ 직권 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채용 비리 혐의를 받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에게는 구속영장의 ㄱ자도 꺼내지 않은 검찰이다. 표적수사이자 문어발식 별건 수사일 뿐 아니라 친검 편파 수사로서 검찰 흑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사건의 경우 잘만 하면 ‘검찰개혁 사령부’에 해당하는 청와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다고 검찰은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경찰이라는 잠재적 경쟁자를 노린 다목적 수사다. 경찰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별건에 별건의 가지를 쳐가며 두고두고 관련자들을 괴롭힐 것이다. 각각의 유죄 여부는 검찰에게 중요하지 않다. 한국 검찰은 수사 착수만으로 유죄 심증을 갖게 하는 언론 환경을 갖고 있다. 의혹 제기만으로 목적의 절반을 이룬다. 물어뜯기도 전에 먹잇감은 만신창이가 된다.  이렇게 탈탈 털면 먼지 하나라도 나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문제는 이 모든 검찰의 무리한 행위가 합법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제어할 수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검찰의 의도는 불순하지만 입증하기 어렵고, 합법적 수사를 통해 불법행위를 밝힌다는 결과만 남는다. 검찰은 이렇게 국민을 ‘합법 딜레마’에 빠뜨려 놓고 제 밥그릇 챙기는 데 국민이 위임한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나쁜 악덕은 검찰 수사가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이건 지금까지 우리가 숱하게 봐왔던 검찰의 제식구 봐주기나 내로남불과는 차원이 다른 최악의 상황이다. 검찰이 이렇게 대놓고 조직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수사를 무리하게 할 수 있는 빈틈이 우리 민주주의에 존재하는 것이다. ‘상당성의 원칙’ 현저히 위배한 수사  나는 윤석열과 검찰을 이 시대의 난신(亂臣)으로 규정한다. 윤석열 검찰은 조선시대 예송논쟁에 비견할만한 디테일을 들이대며 나라를 어지럽히고 국정을 무력화하고 있다. 유재수 전 금융위 국장 감찰 중단이 청와대 업무상 정당한 판단인지 직권남용인지가 이렇게 떠들썩하게 나라를 뒤흔들어야 할 대단한 권력형 비리인가. 검찰도 감히 그렇게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은 또 어떤가. 경찰은 지역 사회에 파다하던 비리 혐의를 수사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울산지검이 김기현 쪽 편을 들어준 것 아닌가라는 의심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제기된 의혹도 아닌 검찰발 인지수사를 남발하며, 형사소송법의 ‘상당성의 원칙’에 어긋난 무리한 수사를 통해 끊임없이 정치적 소음을 양산하고 있다. ‘수사의 수단은 추구하는 목적에 적합해야 한다’는 수사비례의 원칙에 비춰 최근 검찰의 행태는 과도하고 무리하다는 의미에서 상당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예송논쟁이 조선의 국력을 낭비하게 하고 재난을 초래했듯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 또한 그러하다. 승냥이 같은 주변 열강들과 떼쟁이 같은 북한, 역대 최강의 갈등 증폭기라 할 자유한국당 때문에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나라의 운명은 검찰의 관심 밖이다. 오로지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만 혈안이 된 파렴치한 이기적 집단이 바로 윤석열 검찰이다. 조국 수사의 실무 책임을 진 자는 마치 조폭처럼 휘하 검사들을 떼로 몰고 법정에 나가 재판장을 겁박하는 작태를 벌이더니, 재판부를 상대로 고발장이 제출되자 정식 배당하고 수사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정경심 기소장 변경을 불허했다고 보복 수사를 예고한 것이다. 갈 데까지 간 수사권 남용 실태가 여기 있다. 선출 권력인 대통령도 무시하는데 그깟 법원이 무서울까. 오만방자하고 안하무인의 검찰 행태가 극을 달리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파탄난 검찰 중립(독립) 주장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검찰 독립’ 주장이 유행했다. 주로 검찰(지상)주의자들 입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그런데 법무부의 일개 외청에 불과한 검찰이 독립한다면, 검찰을 누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반문이 생겼다. 결국 선출 권력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는 반론이었다. 그러자 말을 바꿔 정치적 중립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유사 이래 최상급의 독립성을 누리고 있는 윤석열 검찰은 역설적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얼마나 허구적인 개념인지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중립이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검찰은 중립을 보장하는 정부를 향해 칼끝을 겨누는 일이 중립성을 지키는 것인 양 으스대지만, 이건 중립이 아니다. 중립을 보장하는 정부에서만 가능한 ‘시한부’ 중립이다. 결과적으로 중립을 보장할 생각이 없는 자유한국당 세력에게만 편파적으로 유리한 ‘반쪽’ 중립이다.  윤석열 검찰이 최대치로 키우는 건 중립성이 아니라 편파성이다. 이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구호는 시효가 끝나 버렸다. 중립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은 스스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더구나 검찰이 검찰을 위해서 칼을 드는 친검 편파적 수사는 검찰 중립이라는 가치의 재구성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국민 통제라는 목줄  일명 ‘개통령’으로 불리는 강형욱씨가 출연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주인을 위협하고 물기까지 하는 삽살개가 문제견으로 등장한 적이 있다. 덩치가 워낙 크고 사나워서 개가 방문을 막고 있으면 엄마아빠도 드나들 수 없었고, 고등학생 자녀들은 으르렁거리며 몸 주위를 도는 개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강형욱씨는 이 개가 주인들을 존중하지 않고 자신이 이 집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형욱씨가 제시한 해법은 목줄을 세게 쥐는 것이다. 주인보다 앞서서 달리려고 하거나 입마개를 벗으려고 할 때마다 강씨는 목줄을 세게 낚아채 개를 제지했다. 이 행동을 반복하니 개가 얌전해졌다. 주인의 통제가 먹히기 시작했다.  과거 정부들처럼 검찰 출신 청와대 민정수석을 내세워 검찰을 장악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만악의 근원에 해당하는 검찰의 권력 독점을 깨고 국민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는 얘기다. 검찰의 수사권 박탈은 물론이고, 기소배심제(대배심) 등 여러 가능한 대안을 중층적으로 고안해야 한다.  강형욱씨에 따르면, 주인 행세하는 개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주인의 자세가 하나 더 있다. 개가 으르렁거려도 겁먹지 않는 것이다. 검찰은 기형적으로 발전해온 우리 민주주의의 빈틈이다. 국민의 힘으로 비뚤어지고 터진 곳들을 바로 잡고 메워왔듯이 검찰이라는 빈틈도 메울 수 있다. 으르렁거려도 겁먹지 말자. 늑대는 집안에서 키울 수 없다. 검찰의 새로운 주인은 검찰 자신이 아니고 국민이어야 한다.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9-12-26 | hrights | 조회: 25053 | 추천: 1040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쯤으로 기억됩니다.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저에게 외할머니께서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어떤 선비가 이웃 마을에 볼일이 있어 길을 나섰습니다. 선비는 불어난 개울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 전날 비가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에는 징검돌 몇 개만 밟으면 건널 수 있는 작은 개울이었지만 물이 불어 징검다리는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니 개울을 건너려면 신발을 벗고 바지를 허리춤까지 걷어 올려야만 했습니다. 선비는 신발과 버선까지 벗고 바지를 올리리가 영 귀찮기만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는 중에 좋은 꾀가 떠올랐습니다.  개울 옆 길 끝에 장승 두 개가 서 있었습니다. 선비는 장승을 발로 넘어뜨렸습니다. 그러고는 장승을 나무다리로 삼아 밟고 개울을 건넜습니다.   잠시 후에 역시 이웃 마을에 볼일이 있어 길을 나선 이가 있었으니 어느 부잣집의 머슴 돌쇠였습니다. 물이 불어난 개울을 건너려던 돌쇠는 기가 막혔습니다. 어떤 못된 인간이 겁도 없이 마을을 지키는 장승을 통나무다리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돌쇠는 서둘러 장승을 개울에서 들어 올린 후 원래 있던 자리에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신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린 채 개울을 건넜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가야 할 길을 갔습니다.    문제는 화가 난 장승이었습니다. 스스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쯤으로 생각하고 있던 장승이었는데, 감히 자기 몸을 넘어뜨려 밟고 지나가는 통나무다리로 전락해버렸으니 그 화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승은 인간에게 벌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인간에게 무서운 벌을 내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본을 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온몸에 고칠 수 없는 종기가 나서 평생을 고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벌을 받은 사람은 앞서 갔던 선비가 아니라 뒤에 개울을 건넌 돌쇠였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외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나자마나 저는 당연히 따졌습니다.   "할머니, 선비가 나쁜 놈이고 돌쇠는 착한 사람인데 왜 돌쇠가 벌을 받아?"   당시 저는 외할머니가 이야기를 잘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당한 결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 그게 아닐 거라고 할머니에게 대들었습니다. 끝없이 왜? 왜? 왜? 하고 따지는 저에게, 할머니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나도 몰라 이놈아. 이야기가 본디 그래!"   '이야기가 본디 그렇다'는 말인즉슨, 외할머니는 당신이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었다는 말입니다. 원래 이야기에서 보태거나 빼거나 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그 이야기는 오랫동안 저의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결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저는 그 이야기가 문득 떠오를 때마다 선비는 벌을 받아야 할 나쁜 사람이고 그 때문에 돌쇠는 애꿎은 일을 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선비는 가해자, 돌쇠는 피해자쯤으로 정리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둘의 신분이 양반과 노비로 대비되는 만큼 이야기의 결말은 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올해 고등학생이 된 조카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조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장승이 나쁜 놈이네요, 지가 뭔데 벌을 주고 말고 해요?" 
2019-12-19 | hrights | 조회: 354 | 추천: 4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벚꽃이 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다. 방송은 물론 모든 언론은 벚꽃의 개화일지를 상세히 보도할 것이고 그 친절한 안내에 따라 전국의 도로란 도로, 산이란 산은 벚꽃 천지가 될 것이다. 진해군항제에 쌍계사 벚꽃 길은 인산인해의 시작에 불과할 것이며 조선신궁이 있던 남산이나 심지어 대한민국 정치 1번지라는 윤중로도 벚꽃 터널의 황홀함에 비틀거리는 인파로 가득할 것이다. 라디오나 tv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으라”고 분초를 다투어 읊어댈 것이고 몇몇은 일본의 아베가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든 축제를 만들어 사람들의 넋을 홀릴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든 벚꽃축제가 200개가 넘어(행정구역상 시, 군의 개수가 161개이니 각 지자체당 1개 이상) 차고 넘치지만 또 만들 것이다. “사쿠라”가 도대체 뭐가 좋다고 저 난리들인가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을지도 모르나 이 여린 빛깔의 향연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죄라는 연인들의 깔깔거림 속에 묻힐 것이다. 조선의 꽃이나 일본의 꽃이나 다 같으니 꽃에게 무슨 이념이 있겠는가를 따지는 이도 있겠고 심지어는 벚꽃은 이 땅에서 난 토종인데 무슨 무식한 소리냐며 핏대를 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박중양이나 윤치호 일가가 한반도 근대화에 앞장선 개화파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도 봤고 심지어 박정희가 독립운동도 했다더라고 우기는 사람도 봤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도 한 사회를 살아간다. 그러니 벚꽃에 관한 해석은 서로 상반되는 이해관계의 몫으로 묻어두고 벚꽃 축제는 영원하다.  일본 메이지 유신 시절에 만든 교육칙어(教育勅語 교이쿠초쿠고)를 그대로 본뜬 국민교육 헌장을 달달 외웠다거나 친일파 박정희가 2차 대전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에게 대한민국 1급 훈장(수교훈장 광화대장)을 수여했다거나 1980년대 이전 육군 참모총장 대부분이 일본군 출신이었다거나 하는 철지난 친일청산 미흡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고백컨대 일본 자위대가 서울의 한복판에서 창설 5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을 때(2004.6.18. 신라호텔) 축하하러 간 한국의 국회의원이 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 중에 재선에 재선을 거쳐 중진 정치인이 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허탈하다. 친일 인맥도가 돌아다니고 누구누구는 친일 거두의 일가라는 말이 낭설이 아님에도 끝끝내 선거에서 살아나 사선, 오선을 하고 수구야당의 깃발을 드는 모습에선 아예 귀를 닫고 만다. 그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일가의 반민족적 과오를 시대를 앞서간 탁견으로 받아들이는 백성들이 그들의 지역구에선 절반이 넘는다는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더 이상 “겐세이” 놓지 말라고 “야지”를 퍼붓는 국회의 모습은 낯설지도 않다.  844,729:7,031 전체 보훈대상자 대비 독립 유공자의 숫자(국가보훈처 2018년 통계) 를 보면 더욱 참담하다. 유관순 선생이나 김구 선생 같은 분들이 일제와 싸워 세운 나라라는 국가 정체성이 고작 0.8%만 인정을 받는 국가기관의 통계 속에서 반공의 깃발은 더욱 드세 지고 그들의 근간이 친일이라는 공식은 더욱 선명해진다. 우리는 이미 황국신민(國民)이란 말을 대치불가의 용어로 사용하고 있고 친일파 윤치호의 작품이라는 의심을 받는 작사와 일제 만주국을 찬양한 작곡가의 음악을 애국가로 부르고 있다. 그리고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 욱일기의 모태가 된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꽃(경희대 강효백 교수의 주장)이라는 무궁화를 국화로 추앙하는 것은 물론, 어떤 의미인 줄도 모른 채 친일 음악인의 친일가요 ‘희망의 나라로’에 환호한다.  사라진 줄 알았지만 여전히 서울대 음악대학 앞에는 현제명의 동상이 버젓하고 중앙대에는 임영신, 연세대 백낙준, 추계대의 황신덕, 고려대의 김성수, 이화여대 김활란 등 좋다는 대학의 교육철학을 설파하는 친일 거두들의 동상은 찬란하다. 식민지 수탈의 아버지, 경부철도 주식회사의 주역 시부사와 에이치(渋沢栄一)는 이미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탈바꿈하여 한국에서 추앙 받은 지가 꽤 되고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은 소리 없이 올해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그나마 NO아베를 외치며 들불처럼 번진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애들도 안하는 정신병 같은 장난 혹은 북한만 이롭게 한다는 신문사설로 화려한 조명을 받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의미가 세탁된 친일은 이미 우리 사회에 내재되어 비중을 늘려간다.  그리고 현 정부의 지소미아 효력정지 해제. 국회의장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1+1+a). 외교, 정치적 함의는 있을 수 있겠으나 내 할아버지가 울분을 토했던(외증조부는 1907년 의병에 가담했고 옥고를 치룬 몇 안되는 독립 유공자이다) 민족적 · 자주 독립적 함의는 전혀 없다.  하여 그들은 다시 온다. 일본 A급 전범 사사가와 료이치의 돈을 받은 연세대학의 아시아 연구기금처럼, 소리 없이 온다. 도요타 재단 지원금을 받은 학자들의 반민족적 연구로 온다. 세련된 디자인의 욱일기로 오기도 하고 화려한 올림픽의 관객석에서 휘날리는 욱일기로도 온다. 당연히 미국을 등에 업고 온다.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가당치 않은 사건으로도. 지소미아 지속이라는, 주한미군 방위비 6조원 인상이라는 압박으로도 온다. 주한미국 대사의 호출에 득달같이 달려가는 국회의원 나리들의 발걸음으로도,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도 모자라 일장기까지 흔들어대는 광화문 노인네들의 외침으로도 온다.  현재의 정부를 구한말 오갈 데 없던 고종의 무능에 비유하는 일부 정치인의 야유로도 오고,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 소확행을 목표로 삼는 청년들의 무관심으로도 온다.  내년 4월 벚꽃난장이 펼쳐질 대한민국에서 고작 표 하나 달랑 들고 투표장으로 향해야 하는 나의 민주주의가 두려운 이유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9-12-04 | hrights | 조회: 600 | 추천: 14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언제나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어제의 흔적이 오늘을 제약하고 오늘의 흔적은 내일을 규정한다. 올해 하반기 뉴스의 중심을 차지하는 한일갈등과 검찰개혁 역시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두 가지는 일제잔재청산이라는 주제와 연관된다. 애초에 검찰이 기소독점과 기소편의 등 각종 특권을 갖게 된 것도 경찰이 친일파 소굴이라는 현실에서 적잖이 기인했다. 많은 국민들이 친일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다고 인식하고, ‘정치인·고위공무원·재벌 등에 친일파 후손들이 많다’는 걸 원인으로 진단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식 경축사에서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고 말했을 정도다.  제2공화국 국무총리를 지냈던 장면의 아들인 장순이 어린 시절 경찰서를 지날 때마다 들었다는 “고문 피해자들의 비명 소리”야말로 친일잔재청산과 좌절된 해방을 보여주는 예리한 단면이 아닐까 싶다. 당시 경찰은 곧 친일파 집합소나 다름없었고 평범한 장삼이사들을 좌경화시키는 교과서였다.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해방 직후 경찰 고위직에 몸담았던 최능진은 “이러한 정세가 계속되면 한인의 80%가 공산주의 쪽으로 돌아설 것이다”라는 보고서를 제출했을 정도다. 물론 최능진은 그 직후 경찰에서 짤렸다.  우리가 기억하는 해방 혹은 일재잔재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들의 기억이란 썩 믿을게 못된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많은 이들이 조선총독부 앞에 일장기가 1945년 9월 9일까지 걸려있었으며,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그 전날 인천에 상륙했던 미군이 항복 조인식을 한 뒤 일장기를 내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일장기를 내린 미군이 곧바로 성조기를 게양했다는 사실은 더더욱 기억 속에서 사라져 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 민중들이 패전 소식을 들으면 일본군과 일본 민간인을 공격할까 걱정했다. 결국 몽양 여운형에게 행정권을 이양하겠다고 제안했다. 여운형은 정치범·경제범 즉시 석방, 경성에 3개월 치 식량 확보, 치안유지와 건설사업·학생훈련과 청년 조직화에 간섭하지 말 것 등 5개 항을 요구했고 수락을 받아냈다. 여운형은 그날 저녁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했다. 16일에는 오전 10시를 기해 전국 형무소에서 정치범과 경제범 약 1만 6000여명이 풀려났다. 17일에는 건준 부서 결정을 완료했다. 치안유지 권한과 방송국 등 언론기관도 조선총독부한테서 이양 받았다. 총독부 건물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총독부에게 오키나와 주둔 미군이 “정식 항복할 때 일본 통치기구를 그대로 미군에게 인계하라”고 통고하자 총독부는 8월 18일 오후에 여운형에 대한 행정권 이양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태극기도 다시 일장기로 바꿔 달았다.  조선총독부는 미 군정청(MG)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일괄 사퇴한 총독부 일본인 관리들은 비공식 고문이 됐다. 이들은 한국인 '인재'들을 미군정에 추천했다. 그리하여 조병옥 경무국장, 장택상 수도경찰국장을 비롯해 노덕술 같은 이들이 경찰 핵심부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일본 군대는 “심지어 ‘미군정’이라고 쓰인 완장을 차고 신나게 거리로 나와서… 미군정의 권위하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하는 한국인들 앞에서 보란 듯이 무리지어 활보하고 다녔다. 무장한 일본 군인들은 ‘미군이 재가한 일본군 파견대’라고 쓴 트럭을 타고 시내를 오갔다.” 사진 출처 - JTBC  친일잔재는 살아남았다. 청산?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진실의 반쪽을 놓치고 있는건 아닐까.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않고 오히려 육성한 건 누구였는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친일잔재를 살려낸 건 미군정이었다. 그 이유는 경찰을 감독하던 윌리엄 매글린 대령이 “우리는 만일 [일제하 한국 경찰이] 일본인들을 위해서 일을 잘했다면 우리를 위해서도 일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큰 그림에서 보자면 미국의 세계전략은 일본부터 파키스탄에 이르는 반공 방벽을 만들려 했다. 한반도 남부는 미국과 '일본'의 하위 파트너가 되어야 했다.  이승만이 그 유명한 ‘정읍발언’에서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선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라며 분단을 공식화한 게 1946년 6월 3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두 달 전인 그 해 4월 6일 "미 점령군 당국은 남조선에 한하여 조선 정부 수립에 착수하였다"는 AP통신 보도가 나왔다. 요즘은 한미동맹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 사람들이 부쩍 줄어든 것 같다. 한일갈등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은 전혀 줄어든 것 같지 않다. 하지만 한일관계와 한미관계, 그리고 미일관계를 종합적인 차원에서 보지 못하는 건 반쪽짜리 인식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혹시 한일갈등 혹은 한중갈등이야말로 미국이 구사하는 현대판 '이이제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9-11-27 | hrights | 조회: 333 | 추천: 1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치경제학에서 ‘교환가치’(exchange value)니 ‘사용가치’(use value)니 하는 말을 한다. 교환가치는 일정한 비율로 교환되는 상품들 간의 속성이다. 배추 한 포기와 과자 한 봉지를 바꾼다면, 배추 한 포기의 교환가치는 과자 한 봉지 정도에 해당한다. 한 시간 노동한 대가로 만 원을 받는다면 노동의 ‘사용가치’가 만 원이라는 뜻이다. ‘교환가치’는 대등하게 계량화한 주고받기로 나타나고, ‘사용가치’는 내심 더 많은 것을 받으려는 전략적 시도로 이어진다. 가치를 더 많이 확보할수록 부를 더 축적하게 된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상상을 하게 해주었다. 그는 원시 부족사회의 포틀래치(증여행위)를 연구한 『증여론』이라는 명작을 남겼다. 이 책에 의하면, 교환은 증여(gift)로부터 이루어진다. 누군가 증여하면, 받은 만큼, 아니 받은 것 이상으로 내어줌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규정된다. 모든 교환행위는 증여로부터 시작되고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 때 주고받기는 단순히 물질적 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명예와 지위의 문제이기도 하다. 나아가 영적(spiritual) 차원까지 교감하는 행위이다.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받았다면 받은 것 이상으로 상대방에게 갚는 행위가 상호 순환하면서 사회가 운영된다. 받기와 갚기가 순환할 때 차별과 불평등은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증여가 한 사회를 운영하는 근본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모스의 증여론을 ‘호수성’(互酬性, 서로 갚음)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는 최근작 『유동론』에서 호수성이 특정인의 과도한 축적과 그로 인한 차별을 극복하는 동력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의 생각을 빌려오면서, 호수성은 재물과 힘의 불균형을 정당화하는 ‘국가라는 원부(元父)’를 살해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증여와 수증이라는 교환양식은 물건을 축적하며 사는 인간의 정주 생활에서 생겨났지만, 정주 생활이 낳은 계급과 차별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호수성은 그저 계량화된 계약 관계에 따라서만 살지 않는 인간의 원초적 지향성을 보여준다. 가라타니는 이것을 ‘유목적 유동성’이라고 말한다.  다소 종교적 언어로 하면, 증여는 ‘초월’의 세계, 특정 권력을 넘어서는 ‘보편종교’를 열어주는 동력이다. 가라타니에 의하면 주고, 받고, 갚는 관계의 지속은 근대 국민국가 체계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낳은 자본 중심의 ‘세계제국’을 넘어 자유와 평등이라는 원천 관계를 고차원적으로 회복시킨다. 증여론에 담긴 호수성은 과거의 원시 부족에게만 나타나는 특정 사례가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아니 도래시켜야 할 ‘오래된 미래’이다.  그런데 이런 사유가 딱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선입견 없이 보면, 수천 년 이상 된 불교나 기독교 같은 종교의 메시지도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세상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주어져 있다. 누구든 거저 받은 데서 삶이 시작된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신의 은총 혹은 선물이라 말한다. 그렇기에 인간도 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종교 윤리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기, 이것이 자연 혹은 신적 원리에 어울리는 삶이라는 것이다. 졸저 『인간은 신의 암호』에서 이러한 은총의 원리와 윤리를 신학적으로 정리한 바 있다. 사진 출처 - 구글  인류의 문제는 주어져 있는 것을 저마다 소유하려고만 하는 데서 발생한다. 사용가치를 높이기 위한 부의 축적 경쟁에서 승패가 나뉘고 차별과 아픔으로 이어진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먼저 ‘주기’이다. 그리고 그만큼, 아니 그 이상 갚기이다. 주기와 그 이상의 갚기가 순환하는 곳에서는 재물이 특정인이나 세력에 쏠리지 않는다. 모스의 ‘증여론’이 이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게 먼저 주면 안 될까? 난민을 더 수용하면 안 될까? 검찰은 수사권을 내려놓으면 안 될까? 서울‘광역시’ 정도로 바꾸면 안 될까? 증여론, 호수성과 같은 언어를 접하다 보면 갖은 생각이 다 떠오른다. 현실이라는 이유로 체념하고, 종교의 이름으로 배제하고, 외연을 확장한다며 내면을 파괴하고, 나를 위해 남을 몰아내고, 온갖 차별, 소외, 억압, 갈등이 지속되고... 이런 폭력을 언제까지 지속시켜야 할까. 주고, 받고, 갚고, 주고, 받고, 갚는... ‘서로 갚기’의 순환 고리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누구든지 원래 받은 데서 시작하는 데 말이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9-11-13 | hrights | 조회: 1035 | 추천: 12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이 말은 버지니아의 식민지의회 의원이면서 변호사였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가 1775년 주 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온 유명한 말이다. 당시 북아메리카 내의 여러 식민지들은 영국에 대항하여 독립을 추진하고 있었고, 버지니아 역시 독립혁명에 가담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헨리는 영국과 타협이나 협상을 모색할 때는 이미 지났고, 이제는 분연히 일어나 싸워야 할 때라는 요지의 연설을 하면서 자유가 죽고 사는 문제에 버금갈 만큼 인간에게 소중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위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문지영, ⌈자유⌋)  여기서 자유는 국가의 모든 통치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대표를 통해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릴 자유를 의미한다. 내가 동의하지 않은 정치적 결정의 영향 하에 놓인다는 것은 노예상태에 있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인식한 정치적 자유를 말한다.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가 주권재민(主權在民)으로 표상되는 인민의 자기통치이므로 우리가 정치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이유도 일차적으로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하는 데 있다. 군주의 자의적 권력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항상 나쁜 결과를 초래해서가 아니라 내 운명이 내 의사와 무관하게 결정되기 때문이다. 어질고 현명한 군주의 통치는 민주주의보다 더 효율적으로 인민의 이익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운명이 전적으로 군주의 호의와 배려에 달려 있다면 지금 당장의 상황이 내게 유리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근심과 걱정을 거둘 수 없다. 그런 호의가 계속될 지도 불확실하고(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지만 인간의 마음도 갈대와 같다고 하지 않던가!), <통치DNA> 같은 것은 없으니 대대로 훌륭한 군주가 계속 나온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자유의 핵심은 자율성에 있다. 우리가 자유를 꿈꾸는 것도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적 자기결정권을 갖기 위해서다. 민주주의는 원칙적으로 그런 자율권을 보장하는 정치체제이다. 물론 이때의 자율적 자기결정권은 공동체를 전제로 한 것으로 다른 구성원들의 자유에 대한 고려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나의 자유는 너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춰야 한다. 따라서 사회 밖에서 삶을 영위하기 어려운 오늘날, 자율권으로서의 자유는 단지 개인적 자유가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자유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민주주의에 의해 자기통치=자율성이 보장된다고 해서 누구라도 저절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율성은 자유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의 자의성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조건만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느끼고 생각하는 내적 능력이 필요하다. 정치적 속박의 부재만이 아니라 훔볼트와 존 스튜어트 밀의 표현을 빌자면, “개체성(individuality)”의 확립이 필요하다. 근대 민주주의는 정치권력의 자의적 행사와 같은 외적 속박에서 인간을 해방시켰다. 민주 사회의 시민은 국가에 종속된 객체나 국가에 의해 동원되는 대상이 아니라 주권자로서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러나 생각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는, 우선 우리가 고유하고 개성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고, 갖고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프롬의 분석에 의하면, 근대인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 속에 살지만 실제론 <바라도록 되어 있는 것>을 바라는 존재에 가깝다.(라캉의 표현을 빌자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할까.) 예전부터도 자기가 진정 무엇을 바라는지를 아는 것은 쉽지 않았다. 쉬웠다면, 소크라테스 선생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될 리가 없었을 거다.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아는 것, 그것은 해결하기 가장 곤란한 문제에 속한다. 근대인은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고 원하기로 되어 있다고 믿는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원한다. 프롬의 탄식에 가까운 표현을 빌자면, 자아를 상실한 이런 근대인은 “스스로의 생각을 가진 개인이라는 환상 속에 사는 자동인간”이 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즉 내가 <(남들이) 되도록 기대한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면,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내면적 질문은 철학적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자유의 문제로서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프롬에 의하면, <나>란 존재가 <타자가 나에게 바라는 그대로의 것>이라면, 그래서 <남이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의 반영(反映)>을 제외하면 자아라고 할 만한 것조차 없다면, 자기 외부의 새롭고 힘센 생각이나 집단의 권위에 기꺼이 동화되려고 한다. 외부의(제국/교회/총통/민족 등의) 거대한 권위에 쉽사리 투항하여 자기 것이 아닌 자기를 받아들이는 무력감에 빠질 위험이 있다. 주입된 욕망의 프로그램을 맹목적으로(아니,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로봇이 될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존재가 되려면 어찌해야 할까? 프롬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활동의 가치와 필요성을, 즉 자발적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그는 사랑이야말로 자발성의 사례가 아니라 자발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서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사랑은 자아를 상대 속에 용해시키는 것도 아니고, 상대를 소유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를 자발적으로 긍정하며, 개인적 자아의 보존을 바탕으로 그 개인을 다른 사람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사랑의 역학적 성질은 바로 이런 양면성 속에 있다.”(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랑을 해봐야 자유를 실감할 수 있다고나 할까. 물론 사랑만이 아니라 일도 자발적 활동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이때의 일은 강박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넓게 말하면, 인간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창조적 활동을 뜻한다. 요컨대 자유를 실현하는 존재가 되려면, 자신의 삶과 사회의 삶을 결정하는 데 자발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자발성이 단지 선거 때의 투표행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일과 일상에서, 또 타인과의 관계에서-특히 ‘인간관계의 꽃 중의 꽃’인 사랑에서 자발성을 실현해야 한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19-11-06 | hrights | 조회: 421 | 추천: 8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북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미국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북이 우주에 쏜 인공위성마저도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하였다는 이유로 유엔 제재를 받았던 전례에 비추면 격세지감이다. 국가보안법의 어두운 장막에 묻혀 우물 안 개구리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반도 아닌 섬으로 전락한 남단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세상사다. 새로운 대북제재가 나오기는커녕 미국은 뒤로 숨어버렸다. 그렇다면, 유엔 대북제재를 각오한 북의 벼랑 끝 전술로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여전히 미국을 상대로 한 북의 벼랑 끝 전술로 각색하기에 바쁜 머저리들이 주인 잃은 개마냥 제정신을 잃고 짖고 있기는 어제나 오늘이나 매 한가지다.  친미 사대주의자들은 지금 북의 맹공을 보며 자못 놀라면서도 점잖게 미국이 북을 봐주고 있는 거라고 위안하고 있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용 정책의 일환으로 북을 대화상대로 인정해 치적을 쌓으려 했으나 북이 SLBM 발사로 도발하며 트럼프의 화를 돋구었으므로 머지않아 미국의 군사적 응징을 받을 것이다’라고.  동족 혐오와 폄훼에 길들여진 친미사대주의자들은 깨몽하시라.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구인 줄로만 알았던 유엔안보리가 새로운 대북제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책임을 팽개치고 회피한 채 일관성을 상실해 버린 몰골을 드러내는 현재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게다.  유엔을 독무대로 마음껏 세상일에 간섭하며 호령하고 좌지우지하던 어느 패권국은 사라지고 소수의 동료들만 남아 아무런 의미도 효과도 없는 SLBM 발사 규탄과 함께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을 애걸하는 넋두리를 펼치는 유엔안보리의 이 상황을 말이다.  식민의 충실한 노복들이 인정하든, 않든지 간에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역관계는 변했다. 미국이 시한부로 벼랑 끝 처지에 몰렸다.  북에 대한 미국의 핵전쟁위협과 제재가 무용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북에 대해 ‘화염과 분노’,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언급을 정점으로 미국의 한반도 핵 전쟁위협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분위기로 국내외정세가 변했다.  수십만 명이 동원되는 최강대국 장성 지휘 하의 핵전쟁 연습을 중단하겠다고 그 나라의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그 이행을 위한 대화와 협상이 중요한 쟁점으로 되었으니 말이다.  국가보안법에 세뇌된 나머지 동족대결과 친미 사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들의 눈에는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그토록 믿어 의심치 않는 미국의 핵 항공모함, 핵 폭격기, 핵 잠수함이 한반도에 오지 않게 되는 그 날은 적화통일의 악몽을 꾸기에 딱 좋은, 그야말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처럼 느껴질게다.  세상이 미치듯 변하고 있을 때 이에 저항만 하며 적화통일의 악몽과 공포에 휩싸여 살기보다는, 그래도 왜 변하는지에 대해 이치만큼은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깨몽과 정신건강에 아주 좋다. 국가보안법에서 벗어나 동족을 대하게 되면 북미 간 누가 공정하고 바른 소리를 하고 있는지 잘 살펴볼 수 있을 텐데... 국가보안법 폐지 없이는 외세의존 동족혐오 분단정신병의 치유는 어림없고, 분단정신병의 치유없이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민족통일은 요원하다.  국가보안법의 힘에 압도당한 나머지 저항력을 거세당한 이들이 너무나 많은 행세를 해 오고 있다. 정의와 진리 앞에 용기 내어 맞짱뜨며 상식과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돈키호테처럼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세상으로 물들어 갔다. 국가보안법은 기회주의자와 변절자를 양산하는 저수지로 우리사회의 기강을 흐트러뜨렸다. 국가보안법 앞에 정의도, 진실도, 이성도, 도덕도 모두 사라져가고 있지만 국가보안법의 테두리 안에서 도토리 키재기 식의 백가쟁명만 찻잔 속 태풍처럼 일어나는 형국이다.  국가보안법이 그려놓은 현실이 다 거짓에 다름 아님을 알아야 세상이 변하는 이치를 쉽게 꿰뚫어 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틀지워져 같은 동족으로서 외세의 힘을 빌려 동족을 적대하며 외세의 편에 선 자기를 아무리 합리화해봤자 그건 정의가 아니다.  1000기 이상의 핵병기를 미군기지 곳곳에 배치해 두고 지상, 해상, 공중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훈련에 몰입해 동족의 적화통일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성조기에 열광하며 안도하고 있을 때 또 하나의 조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역지사지로 생각할 힘을 길러야 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렇게 이해하면 좋겠다. 세계에서 핵무기가 제일 많은 나라가 매년 방어훈련을 너무 오랫동안 지나치게 하다보니 때때로 북 점령과 정권 격멸 및 지도자 참수작전도 작전계획에 포함되는 지경에 이르러, 북에서도 도저히 방어훈련으로 보이지 않았나 보다. 처음에는 한반도 비핵지대화와 평화협정을 통한 미군철수로 맞서 왔으나 세계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져 혼자 힘으로 사회주의를 지키다 보니 도저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사회주의 경제발전을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경제제재가 너무 심하고 동족마저도 편들기는커녕 외세의 편을 들어 북의 붕괴에 가담하는 상황에서 자위적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북에 대해 온갖 쓰잘데기 없는 외세와 극우보수세력의 종북몰이 여론에 가담하기 보다는 동족의 편에서 착오 없는 올바른 판단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정의와 진리 앞에 두려움 없이 국가보안법을 극복하고 우리사회를 정상화하여 이성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바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첩경이다.  결자해지다. 미국의 이익과 패권을 위해 같은 동족을 앞세워 너무나 오랫동안 북을 악마화하고 적대하며 붕괴시키려 했던 미국의 정책을 바로 잡을 때가 도래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안에 새로운 대북정책을 갖고 평양 방문을 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보장하는 실질적 조치에 합의하기를 바란다. 그런다고 유엔 등 국제사회 앞에서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횡포가 다 발가벗겨지거나 망하지는 않는다. 패권의 지위에서 내려와 보통국으로 정상화의 길을 나아가는 그 길이 유일무이한 대화와 협상에 의한 평화적 문제해결책이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9-10-16 | hrights | 조회: 612 | 추천: 6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법과 믿음  지금부터 약 2천 5백 년 전, 진시황의 진(秦)나라가 통일 제국이 될 수 있도록 터를 닦았던 사람이 있었다. 상앙(商鞅)이다. 그는 진 효공의 신임을 바탕으로 재상에 올라 10년 넘게 집권하며 법치(法治)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법이 뭔지도 몰랐다. 상앙은 5미터 정도 되는 나무를 남대문에 세우고 말하였다. “이 나무를 동대문에 옮겨놓는 사람에게는 1백만 원을 주겠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고 아무도 옮기지 않았다. 다시 말했다. “이것을 옮기는 자에게는 5백만 원을 주겠다.” 어떤 사람이 속는 셈치고 옮겨놓자, 그는 5백만 원을 주었다.  상앙의 법이 시행된 뒤, 진나라 백성들은 처음에는 만족스러워했다.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 가는 사람이 없었고, 산에는 도적이 없었다. 집집마다 풍족하였고,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하였다.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서 용감히 싸웠고, 사사로운 싸움은 조심하였다. 도시든 시골이든 편안했다. 법을 어기면 코를 베고, 죽이고, 이마에 죄를 새겼기 때문이다. 비극의 남자  10년이 지나며 차츰 법이 법을 낳고, 인심은 각박해졌다. 상앙이 외출할 때는 무장한 병사들이 경호차를 타고 따라야했다. 천하장사 같은 사람들이 경호를 맡았다. 그러다 진 효공이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주변에서 상앙이 반란을 꾀한다며 밀고하였고 새로 즉위한 혜문왕은 상앙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상앙은 달아나 서안(西安) 함곡관 근처 호텔에 투숙하려고 했다. 그러나 호텔 지배인은 투숙을 거부했다. “상앙의 법에 의하면 여행증이 없는 손님을 묵게 하면 관련법에 의해 처벌 받습니다.”  상앙은 법을 만든 폐해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탄식했으나 달리 방법이 없어 위나라로 갔다. 그러나 상앙은 다시 진나라로 돌려보내지는 신세가 되었고, 수레에 몸을 찢기는 거열형(車裂刑)을 받아 죽었다. 공자(孔子)의 걱정  사마천(司馬遷)이 길지 않게 기록한 상앙의 일화는 각박한 법률가의 최후를 인용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되었다. 그런데 사마천의 말을 빌지 않아도 상앙으로부터 근 2백 년 전에 이미 공자가 법치(法治)의 함정을 가르쳐준 적이 있었다. “사람들을 법령으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사람들은 처벌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덕성으로 이끌고 예의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부끄러움도 알고 반듯해질 것이다.”  공자의 방점은 부끄러움에 놓여있다. 외부의 강제가 거꾸로 자성의 계기를 잃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를 알고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훈련이 된 인격의 확보가 먼저라는 말이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질서를 유지하려면 응당 객관적 기준,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바로 반론이 들어올 것이다. 당연한 반응이다. 여기서 유가(儒家) 역시 한 번도 덕성과 법치를 분리한 적은 없다는 점을 언급해 두어야겠다. 사진 출처 - freepik 내가 겪고 있는 소송  3년 전 고속도로에서 후방 추돌을 당하여 폐차해야 했다. M보험사에서 보상 문제로 전화가 왔다. 매매가 1천 3백만 원, 보험가 1천만 원인 차에 대한 보상금으로 4백만 원을 제시하였다. 내가 웃으며 “4백만 원을 내가 줄 테니, 그런 차를 사와 보시구려!” 했더니, 보험사 직원은 5백만 원으로 올렸다. 난 이 사람들이 장난하는구나, 느꼈다.  사정을 들은 법률가 친구가 분노했다. 그는 소송을 해서 합당한 판결을 받자고 했다. 나는 이런 얘기를 들어 줄 친구라도 있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서민들은 보험사에서 저렇게 버티면 결국 손해를 본 채 합의하고 말 것이었다. 실제로 그렇단다. 보험사는 그렇게 먹고 산단다. 이런 게 그들의 일이고, 관행이란다.  소송이 들어간 뒤 M보험사의 다른 직원, 우리 학교를 담당하는 직원이 찾아왔다. 1천만 원을 채워드릴 테니 그냥 합의하자는 것이었다. 친구는 반대했다. 바로 그 돈이 필요한 게 아니면 소송해서 판결을 받아 관행을 바로 잡자고. 나 또한 괘씸해서 그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M보험사는 처음에 말로 해결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보상해야 할 것이다. 법률가인 내 친구의 판단에 따르면 말이다. 이해는 가는데  나는 원래 공자의 말에 통찰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또한 일상의 경험에서 ‘법대로’는 곧 인간관계의 종말임을 잘 알고 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듯이, 이웃과 싸울 때 “법대로 해!” 소리가 나오는 순간이 파탄의 출발 아니던가?  하지만 보험사의 관행화된 횡포를 바로잡겠다며 소송을 맡고나선 친구의 입장 역시 이해한다. 친구에게는 판결이 정의다. 그는 M보험사를 두고 바보란다. 줄 거 주면 되는데, 비용만 늘린다고. 친구는 판결을 받아놔야 그런 횡포가 줄어든다고 사명감에 차 있다.  어리석음. 이 소송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이다. M보험사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보험사의 횡포를 막을 판례를 남기겠다는 친구를 두고 하는 말은 더욱 아니다. 나야 남의 일처럼 놔두고 있으니 어리석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직관적으로 어리석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법 없이 산다는 것  요즘 우리는 법 공부를 톡톡히 하고 있다. 기소권, 수사권, 구속영장, 구속적부심, 소환, 기소편의주의, 기소독점주의, 자본~법, 뭔 법, 뭔 법. 전 국민의 법률가화(化) 상황에 돌입한 느낌이다.  실제로 텔레비전 토론회를 볼라치면 패널로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변호사다. 현재 직업이 뭐든 법 전문가라고 자칭하면서 시시콜콜 따지고 있다. 이건 구속사유가 되느니 안 되느니, 증거가 되느니 안 되느니.  국회의원들은 지들 일을 국회에서 해결 못해서 결국 서로 고발하고, 주택 수백 채를 가진 갭 투기꾼은 법적으로 문제없으니 고소하려면 하라고 하고, 한 학생 대입자료 조사를 위해 검사 수십 명이 들러붙고 등등. 이루 셀 수 없는 만성화된 법에의 호소, 뒤따르는 법의 능멸이다.  계속 이렇게 법으로만 풀어가려 해도 괜찮을까? 나는 불안하다. 단,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식상한 말에서 이 법치 과잉의 사회를 탈출할 희망을 본다. 법 없이 산다는 것은 알아서 한다는 것이고, 잘못해도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에는 법 없이, 혹은 최소한의 법으로 사는 사람이 참 많다.  이런 삶이 법치를 가장한 어리석음을 넘어설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연대와 우정보다 단절과 소외를 낳는 외마디, “법대로 해!” 그 척박함 때문에라도, 법 없이 산다 함은 이 사회와 문명에 대해 던지는 근원적인 질문 자체이다. 감히 예언한다. 법의 능멸을 극복하는 이는 법기술자가 아니라, 법 없이 사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이 글이 인권연대 발자국통신에 올라간 뒤, 칼럼의 우려를 증명하듯이 두 가지 사태가 또 벌어졌다. 유시민 이사장은 알릴레오에서 김경록 PB와의 인터뷰를 발표했고, 거기서 KBS 보도의 왜곡을 지적했다. 지적이 타당한지 어떤지는 일단 놔두자. KBS 사회부장이 보직을 사퇴할 수도, 경영진이 무슨 조치를 취할 수도, 기자들이 의견을 낼 수도 있다. 여기서 예의 빠지지 않은 말이, 가장 먼저 나온 말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KBS가 언론으로서, 하나의 거대 공영조직으로서 취할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법적 대응’인가?  또 하나. 한겨레21에서 윤석렬 검찰총장이 김학의가 성접대를 받았다던 윤중천 소유의 별장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기사를 냈다. 이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대검찰청도 대뜸 ‘법적 대응’을 꺼냈고, 당사자 윤석렬은 고소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검찰은 수사, 조사할 수 있는 능력과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해명,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고소, 고발을 해야 할까? ‘법적 대응’이 이 사회의 무조건반사가 된 듯하다.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19-10-10 | hrights | 조회: 454 | 추천: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