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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설경(변호사),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오항녕(전주대 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연구교수), 임아연(당진시대 기자), 임아영(경향신문 기자),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재승/ 인권연대 운영위원  과거사의 문제로서 제주4.3사건은 2000년 시행된 제주4.3사건법이라는 독자적인 경로를 걸어왔다. 그러나 제주4.3사건법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에 정의의 원칙이나 피해자의 권리에서 보자면 심각하게 미진한 것이었다. 그 후 2007년 법 개정을 통해 4.3평화공원과 평화재단은 제주도민에 대한 집단적 상징적 보상조치로 받아들여졌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정리를 100대 집권공약으로 제시하였고, 당선 이후 2018년 문대통령은 4.3행사에 참석하여 국가책임에 대해 운을 떼었고 2020년 4.3행사의 추념사에서는 희생자 유족에 대한 배보상을 힘주어 약속하였다. 대통령의 확언에 따르면 당정청이 합당한 방침을 정립하기만 한다면 제주4.3사건이 조속히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제주4.3사건 희생자 유족에 대한 보상기준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에 대한 해법으로도 활용되리라고 예상된다.  잘 알다시피 제주4.3사건은 미군정에서 한국정부로 통치권이 이양되는 국면에서 발생한 원형적 국가폭력이다. 제주4.3사건은 친일세력을 이용한 군정당국의 억압정책과 단독정부의 수립에 대한 민중적이고 민족적인 저항의 귀결이었다. 과거 공식적 역사는 1948년 4월 3일 좌익의 봉기만을 대서특필하고 4.3사건을 공산폭동이라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역사는 이와 같이 단순하고 일방적인 규정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마그마가 끓어올라야 화산이 분출하는 법. 군정과 경찰은 1947년 3.1절 행사에 참가한 도민들을 향해 발포하여 6명을 사망케 하였다(3.1사건). 군정당국은 사태의 진정을 위해 책임자를 처벌하거나 사과하기는커녕 항의하는 도민을 검거작전으로 몰아치고 세 건의 고문치사사건을 야기함으로써 도민들의 분노에 불을 질렀다. 군정당국의 억압에 대해 총파업으로 시작된 제주도민의 항의는 해를 넘겨 지속되었고 제주도 남로당 청년당원들은 1948년 4월 3일 단독정부, 단독선거를 반대하며 봉기를 결행하였다. 양측이 무기를 내려놓을 계기들이 없지 않았으나 사태는 점차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948년 10월 이후부터 1949년 여름까지 군경의 대대적인 초토화 작전으로 수 만 명의 민간인이 집단적으로 희생되었다. 제주4.3위원회와 제주4.3평화재단의 공식집계에 의하면 신고된 희생자가 1만 5천명에 육박한다. 신고하지 못한 희생자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제주4.3사건 희생자 중에서 수형자(受刑者)라는 특이한 유형이 존재한다. 한국전쟁에서 군대가 약식재판으로 사람을 자의적으로 처형한 사례는 부지기수였으나 제주4.3사건 군사재판은 그 황당함에 있어서는 급수를 달리 한다. 제주도에서 1948년 12월과 1949년 6-7월에 두 차례 설치된 군법회의가 대규모재판(mega-justice)를 단행하였다. 군사재판은 380여명의 민간인에게 사형을,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1년형에서 무기형까지 징역형을 부과하였다. 징역형을 살던 다수는 한국전쟁 중 무차별적으로 처형되었고 전쟁 전에 석방된 사람들은 예비검속으로 처형당하였다. 1945년 이후 연합국들이 절차적 권리(변호인입회, 변론, 방어권)를 무시하고 졸속적인 재판으로 전쟁포로나 민간인을 처형했다는 사유로 일본군 법무장교와 독일 공직자들을 전쟁범죄로 처벌하던 때에 한국군대는 야만적 사법살인으로 폭주하였다. 오늘날 국제형사재판소 규정은 비국제적인 무력충돌에 대한 규정에서 이와 같은 약식처형을 전쟁범죄(국제관습법)로 규정하고 있다.  제주4.3군사재판의 이러한 실상은 제주4.3위원회의 활동초기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당시 군사재판은 법적인 절차를 전적으로 무시하였고 판결서도 작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수형인명부만이 남아 있어서 어떤 사태의 흔적을 겨우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1963년 김춘배씨 잔형집행 사건(김춘배씨는 1948년 12월 13일 내란죄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나 한국전쟁 중 풀려나 숨어 지내다가 1961년 체포되어 다시 나머지 형기를 정하는 재판을 받게 되었다)에서 증인으로 나온 송요친(제주4.3사건 당시 제주지역 계엄사령관)은 당시에 ‘군사재판은 없었다’고 이미 진술하였다. 이와 같은 군사재판의 실상이 참작되어 2007년 제주4․3사건법 개정과정에서 군사재판의 피해자들이 수형자라는 이름으로 희생자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수형자의 명예가 이 정도에서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하여 이 판결 자체를 입법적으로 극복하려는 방안이 2017년 제주4.3사건법 개정안(20대 국회)으로 가시화되었고, 21대 국회에서도 동일한 취지의 개정안이 곧 발의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과거의 확정판결을 다투는 방식은 재심이다. 재판 자체가 범죄(고문, 증거조작, 위증)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증명되거나 재판의 결론을 바꿀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는 경우에 과거의 유죄판결은 파기된다. 그런데 제주4.3군사재판이 재심을 청구해야할 유효한 판결로 성립하는지(존재하는지)가 우선 문제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입법을 통해 군사재판 전체를 무효화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입법을 통한 판결의 무효화에 대해서는 3권 분립 원칙에 기대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가 법조물신주의의 산물이 아닌가 의심을 갖게 된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유독 강조하는 시대에 한국 사법사 최악의 스캔들을 정상적인 판결로 취급하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입법으로 판결을 무효화하는 방식을 대다수 법률가들은 충격적으로 여길 만하다. 그러나 실상을 알면 입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제주 4·3평화공원에 세워진 희생자 각명비 사진 출처 - 경향신문  2018년 제주4.3군사재판의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 18인의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져서 제주4.3사건에 대한 재판이 새로이 진행되었다. 2019년 새로운 재판부는 제주4.3군사재판에서 적법한 조사절차나 공소제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하고, 공소제기가 없는 사건에 대하여 마땅히 ‘공소기각의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의 공소기각의 결정은 판결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포하므로 군법회의 판결의 ”부존재 확인”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유족들이 제주4.3사건법 개정안에 반영한 군법회의 판결의 “무효 확인”은 부존재 확인보다 온건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재판의 실상으로 직진한다면 제주4.3군사재판은 유효한 재판이 아니라 사법적으로 분식된 자의적 처형 또는 군사적 처분에 불과하다.  국제적으로도 집단적인 사법살인이나 자의적 처형을 가하는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자들처럼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대체로 거추장스러운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치적 반대자들을 강제로 실종시키거나 은밀하게 직접적으로 살해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권력자들은 법절차와 형식을 남용하여 학살을 자행하는 특이한 법애호증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법애호증이란 법원칙을 존중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미구에 닥칠 책임과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법형식에 의존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따라서 적나라한 야만 이외에 법의 얼굴을 한 야만이 한국현대사에서 법조문화로 자리 잡았다. 3권분립론에 입각하여 입법적 무효화방안에 반론을 펴는 분들은 제주4.3군사재판이 적나라한 학살의 눈속임이자 이러한 법애호증의 파생물이라는 점을 외면하는 것이다.  법률적 야만으로서 사법적 살해나 박해는 20세기에 전체주의적인 독일이나 일본, 권위주의적인 한국에서 특히 번성하였다. 실제로 재판의 무효화 관행은 전쟁법(국제인도법)에서 기원하며 연합국이 독일을 청산하는 데에 집중적으로 활용하였다. 2차세계대전후에 연합국은 나치불법판결청산법(Unrechtsurteilsaufhebungsgesetz)을 제정하여 나치독일의 허다한 정치 재판과 사법살인을 무효화하였다. 나아가 독일정부는 입법을 통해 1998년 이후에도 59개의 악법이나 법조항에 입각한 형사법원의 유죄판결을 무효화하였고, 동시에 악명 높은 정치재판소(친위대 즉결처형재판소 및 인민재판소 등)의 판결 전체를 무효화하였다.  제주4.3군사재판은 앞서 말한 법절차의 위배라는 내재적인 약점뿐만 아니라 헌법적이고 구조적인 약점도 안고 있다. 첫째로 1948년 군사재판에서는 계엄선포의 법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가운데 계엄을 선포하고 군 당국이 계엄을 빌미로 군사재판을 감행하였다는 점, 둘째로 1949년 군사재판에서는 계엄령이 해제된 다음에 민간인에 대하여 군사재판을 계속하였다는 점, 셋째로 1949년 군사재판의 법적 기초가 된 국방경비법이 유효한 방식으로 공포되었는지에 대해서 여전히 다투어지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1954년 헌법개정시점까지 군사재판 자체가 헌법상 근거를 갖지 못했고 또한 상고심으로서 대법원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 제주4.3군사재판은 헌법적 불법에 해당한다. 따라서 제주4.3군사재판은 법치국가적인 의미에서의 재판이라기보다는 불법국가에서의 군사적 처분이라고 할 만하다.  2020년 현재 380여명의 수형자들(대다수 사망한 희생자이다)과 유족이 추가적으로 재심을 청구하였다. 일각에서 이와 같이 개별적인 재심청구를 진행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2530명 수형자들의 유족 다수는 여전히 재심을 청구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 경우 국가에 의한 일괄적인 시정조치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될 것이다. 제주4.3군사재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국회가 입법을 통해 판결의 불성립 또는 부존재에 준하는 의미에서 무효 확인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러한 무효화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동안에 법무부나 검찰이 긴급조치판결에 대한 직권재심청구처럼 제주4.3군사재판에 대한 재심을 직권으로 청구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4.3군사재판은 군검사나 군판사의 개인적인 업무상 과오도 아니고, 국방부나 법무부, 법원의 이해관계사항이 아니라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차원에서 자행된 초헌법적 국가범죄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3권 분립을 운위하면서 개별적인 재심만이 합당한 해법인양 강변하는 것은 초헌법적 국가범죄를 정상화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초헌법적 범죄의 해결주체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적임자이다. 이재승 위원은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20-07-08 | hrights | 조회: 102 | 추천: 9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고등학교 3학년 동안 직업교육을 원하는 학생들만 있는 학교도 세 차례 개학연기와 순차적 온라인 개학 등 전례 없는 비상 상황이다. 불안과 초조함으로 새 학년을 맞이했고, 개학하면서는 코로나로부터 학생들을 지키기 위한 많은 고민과 방역활동 및 코로나 대응 모의 훈련도 여러 번 실시했다. 풍경 1  5월20일 개학날.  필수와 어머니가 같이 등교했다. 열화상카메라를 통과하여 교무실을 거쳐서 교실로 가 수업을 받던 중에 필수의 체온이 38도가 넘었다. 담임교사와 학생이 일시적 관찰실로 왔다. 관찰실에서 필수는 담임교사에게 “사실은 새벽에 열이 40도를 넘고, 목이 아팠으며 설사를 했어요.” 라고 고백했다. 학교에 가길 원한 엄마가 해열제를 먹이고 체온이 떨어진 필수와 같이 등교하며 무사히(?) 교실로 들어가는 필수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너무 놀란 교사들은 코로나 증세와 유사한 학생을 바로 선별진료소로 보내 검사를 받게 했다. 필수와 같은 공간에 있었던 교사는 어린 자녀를 근처의 친척집에 맡겼고, 연로하신 부모가 있는 교사는 집으로 귀가를 못하고 지인의 집에서 머무르며 필수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마음을 졸이면서 자가 격리를 해야만 했다. 다음날 오후 필수의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지만 그 불안했던 마음과 공포는 우리를 늘 긴장하도록 했다. 아픈 몸을 숨기며 학교에 나온 학생에게 나쁜 감정을 가졌고, 가능하면 학생들을 안 만났고, 학생들을 만날 때에는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을까 의심하며 멀리했다. 풍경 2  6월 중순 수동이가 등교했다.  집 근처의 교회를 다니던 수동이가 2주 전 주일예배 후 형과 함께 교회에 머물렀는데 그곳에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교우가 있었다. 곧바로 코로나 진단검사를 받았고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 이틀간 학교에 등교했는데 뒤늦게 보건소에서 2주간의 격리를 해야 한다는 연락이 왔다. 수동이는 형과 함께 둘이 눕기에도 빠듯한 작은방에 격리돼 방에서 나갈 수도 없고, 음식도 일회용 그릇으로, 화장실도 가족들이 없을 때 쓰며 소독약품을 뿌렸으며, 빨리 이 좁은 방안에서 나갈 날만 기다렸다고 했다. 그럼에도 수동이는 격리 후 학교에 와서는 자기 때문에 코로나에 감염 될 뻔 한 교사와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면서 괴로워했다. 이러한 수동이의 마음과 같이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감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외식과 외출을 하지 않고 학교와 집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학교와 교사들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내가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도 큰 문제지만 사회적인 지탄을 받으며 내가 속한 학교에 되돌릴 수 없는 큰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은 학생, 교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일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여론조사기관 글로벌리서치가 6월에 실시한 ‘포스트 코로나 관련 인식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창궐하는 감염병 앞에서 우리의 근심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닌 주변 모두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감염될까’(87.3%), ‘내가 코로나에 걸릴까봐’(85.1%), ‘코로나로 나와 가족이 고용 위기에 처할까봐’(83.8%), ‘코로나에 감염돼 동선이 공개될까’(64%)를 사람들은 걱정하고 있었다. - 한겨레신문(6.25.)에서 -  속절없이 확산되는 감염병 앞에서 일상에 금이 가고, 당연시되던 삶의 양식의 변화로 인해 불안과 불확실성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코로나19가 몰고 올 변화의 파고가 앞으로 얼마나 될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0-07-01 | hrights | 조회: 72 | 추천: 1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필자는 국가보안법 사건의 변론과정에서 끊임없이 종북몰이 공격을 받았다. 90년대 말 이후 수많은 탈북자 간첩조작 사건이 행해졌다. 그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유우성, 홍강철에 대한 간첩조작 사건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무죄선고를 받기까지 종북몰이 공세는 더욱 심해졌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정권은 총선 승리용 북풍 여론몰이를 위해 북 해외식당 종업원들을 집단유인 납치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 추악한 해외공작의 진상은 언젠가는 세상에 소상히 드러날 것이다. 납치유인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납치유인 피해자들의 인권옹호를 위한 북 해외식당 종업원 납치유인범죄의 진상규명과정에서도 필자에게는 수많은 종북몰이 딱지가 붙고 있다.  최근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과 반북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은 납치유인 피해자 지원을 위한 필자의 후원 활동에 시비를 걸며 자유를 찾아 귀순한 북 해외식당 종업원들에게 재월북을 회유하며 돈을 줬고 거부하자 돈을 끊었다고 왜곡하는 보도를 수시로 하고 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종북몰이 피해자가 사회적 생매장을 당하지 않을까 공포에 시달리는 형국이 여전하다. 종북몰이 공세에 이제는 이골이 날 때도 되었건만, 그 표적이 될 때마다 쫄기 십상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무장을 하고 용기를 내어 정면으로 싸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하지만, 종북몰이를 당하는 표적이 된 입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종북몰이 공세가 심해질수록 그에 정면으로 맞서 함께 힘을 모아 맞서나가지 못하는 현실이다. 필자의 언행에 괜히 종북몰이를 자초한 빌미가 된 것이 없는지 의구심을 표하며 심지어 해명을 요구한다. 종북몰이 피해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필자로 말미암아 종북몰이를 불러오지 않을까 위축된 주변의 반응에서 종북몰이에 취약한 우리사회의 현실을 발견한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토록 종북몰이에 취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악마화된 북과 연결되는 반북분단적대구조 때문이다. 북에 대해서는 악마화, 기괴화, 혐오, 증오, 불신, 조롱, 저주, 폄훼, 의구심, 공포심 이외의 정상적 감정과 이성적 사고는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악마와도 같은 매카시즘에 저항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극우보수세력의 종북몰이 표적이 될까봐 쫄아 호흡조차 가다듬지 못하기 때문이다. 용기 내어 종북몰이 피해자와 함께 연대하여 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단적대구조에 익숙하게 되면 비정상이 정상이 되도록 뇌가 세탁이 되어 궤변이 합리적 이성으로 포장되어 일상이 된다. 어중이떠중이들이 문제의 본질에 접근조차 해보지 못한 채 행세하기가 쉬워 도처에 넘쳐난다. 분단적대구조에 젖어 이성이 사라진 야만의 세상에서 동족에 대한 허위의 우월의식은 자기안위에 급급한 기회주의적 속성을 가리는 무기가 된다. 정의와 진리, 상식과 도덕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진다. 피장파장, 내로남불, 오십보백보 같은 단어가 인생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는다.  분단적대구조에 길들여져 종북몰이에 취약하고 비정상이 판을 치는 그 틈에 인륜을 내던지고 양심을 포기한 인간 추물들의 반북 악행은 그 누구도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반북 삐라 살포 망동은 북한 인권 운동이 되어 미국의 민주주의기금(NED)의 지원을 받고 국제인권상을 수상하는 기괴한 일이 공공연히 세계의 면전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 통탄할 종북몰이와 반북적대행위가 횡행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장 시급하게 우리 사회에 필요한 처방전은 무엇일까.  북에 대해 바로 알고서 북에 대해 혐오와 증오, 불신과 조롱 등 동족대결의 적대감과 의구심에서 벗어나 동족과 화합하고 협력하기 위한 신뢰의 감정을 갖기 위해 우리의 인식을 이성적으로 정상화하는 자각이 필요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동족을 비방하고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종북몰이와 반북 악행이 거침없이 표출되는 동족대결의 어두운 터널에 가두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자각이 절실하다.  동족대결의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종북몰이를 타파할 수 있고, 반북 삐라 살포와 같은 반북 망동을 단호히 처벌하며 모든 반북적대행위를 근절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분단적대구조 하에서 한반도 전쟁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반북 삐라 망동을 근절시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언감생심의 일이다. 북 지도자에 대한 모독과 북 체제에 대한 비방이 자유와 인권을 위한 일로 둔갑되는 사회에서 반북 삐라 망동을 금지시킬 수 없다. 반북 삐라 망동을 부추기는 상전의 나라가 이를 가만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서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십여 차례, 올해 현재 세차례나 대북전단이 살포된 사실이 동족대결의 터널을 벗어나기 위한 우리의 앞길이 얼마나 험난한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반북 삐라 망동 사태에서 빚어진 작금의 한반도 군사적 충돌의 위기상황을 맞아, 우리는 외세와 극우보수세력이 국가보안법으로 가둬놓은 어둠의 동굴에서 탈출할 비상한 노력을 가속화할 때이다. 동족의 편에 서서 동족을 알고 동족과 힘을 합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외세의 지배와 간섭에서 벗어나 극우보수세력을 우리 사회에서 영구히 퇴장시킬 수 있다. 그 길에 한반도 평화번영과 통일, 미래세대의 행복이 있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20-06-17 | hrights | 조회: 239 | 추천: 4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혁신했던 보훈처  국립묘지나 군인이 떠오르던 국가보훈처가 내 관심의 언저리에 들어온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2017년, 5.18 하루 전날, 피우진 중령이 장관급으로 격상된 보훈처 처장으로 임명될 때였다. 대위 시절, 여군 부사관을 술자리로 불러낸 상관의 명령을 받자, 전투복을 입혀 보냈다는 일화로 알게 된 분이었다. 그 일로 피우진 중령은 내게 대장 같은 중령으로 다가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조차 부르지 못하게 했던 일을 기억하기에 피우진 중령의 보훈처장 임명은 시대 변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국가보훈처는 시대에 걸맞은 변화를 위해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2018년, 안팎의 힘을 모으기 위해 조직된 것이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였고, 거기 참여하여 부족한 역량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 보훈처의 혁신 과제를 정리하고 그걸 보훈처 담당자들과 협의하여 개선 방향을 찾아나가는 자리였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외부의 시선을 가진 혁신위원들은 전임 보훈처장이었던 박승춘으로 대표되는 보훈처의 이미지를 아직 씻지 못하였고, 보훈처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혁신위원들에게 경계심이 역력했다. 하지만 혁신위원들은 한 나라에서 보훈이 사회적 가치와 비전을 담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직원들은 보훈처 혁신이 그들의 자긍심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국방부 소속기관 같은 환경에서 꾸준히 개혁을 위해 노력했던 분들과의 결합도 긍정적 에너지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곪은 부분을 도려낼 계획을 세우고 방향을 잡아나갔다.  혁신위원들과 내부 직원들의 노력으로 1) 보훈처 위법 및 부당행위 재발 방지, 2) 독립운동 보상과 예우, 3) 공정성과 형평성 강화, 4) 보훈처 위상과 역량이라는 4부문에서 권고안을 만들 수 있었다. 보훈처 혁신위가 가졌던 비전은, 역사, 기억, 나라, 독립, 민주, 사회공헌 등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그 권고안에 따라 국가보훈처에서는 자체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실현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2018년 12월이니, 혁신위원회 출범 6개월 만에 이끌어낸 협치의 결과였다.  그 무렵 나는 중국 연변대학으로 갔다. 혁신위원회도 권고안을 낸 뒤, 전문성을 강화한 정책자문위원회로 바뀌었다. 이어 2019년 8월, 보훈처 장관은 피우진 처장에서 박삼득 처장으로 바뀌었다. 고민 없는 발언이 뭉갠 기념사  지난 6월 6일 현충일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군 한 분 한 분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국가의 책무임과 동시에 후손들에게 미래를 열어갈 힘을 주는 일”이라며 “코로나 때문에 늦어졌지만, 정부는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신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올 것이다. 독립운동의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2018년 3월 육군사관학교에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세워졌다. 이는 애국이라는 가치를 친일-반공에 뿌리를 둔 수구세력의 독점에서 독립-민주 세력의 손으로 넘겨온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그 의미와 비전을 이어 문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 유해의 귀환을 언급한 것이었다.  그 며칠 전인 5월 28일. 박삼득 보훈처장은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를 찾았다. 백선엽의 국립묘지 안장을 주장하는 주호영 대표에게 박삼득 처장은 “백 전 장군의 일은 서울 동작동 현충원이냐 대전현충원이냐 이런 것인데, 서울현충원 묘역은 만장 상태다. 우리는 서울현충원 간다, 못 간다 이게 아니라 대전현충원에 모실 수도 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여기서 백선엽의 안장 여부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촛불혁명으로 취임한 대통령이 취임 당시부터 보훈의 개념을 ‘독립-호국-민주’로 확장하였다면, 보훈처장의 발언 역시 그 연장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위에 인용한 대통령 기념사와 박 처장의 발언 사이에 심각한 괴리를 느끼는 게 나 혼자만의 불안감일까? 65회 현충일 추념식 모습 사진 출처 - KBS 간신(奸臣)이 있다  박삼득 처장은 취임 이후 정책자문위원회를 무시했다. 정책자문위원회가 전직 처장이 만든 임시조직이었으니 그대로 둘 필요가 없다고 여겼던 걸까? 겨우 중령 따위, 혹은 여자가 만든 자문위원회니까 별 셋 출신인 남자로서 구속받고 싶지 않았던 걸까? 나아가 박삼득 처장은 전임 피우진 처장이 불법조직으로 규정한 ‘나라사랑공제회’에 대한 해산절차를 밟기는커녕 나서서 사업설명회를 하고 다녔다. 재향군인회의 투명성과 민주성 제고를 위한 혁신방안을 실행하기는커녕 상조회 부실 매각을 승인하였다. 그리고 혁신위와 보훈처가 합의한 권고안의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코로나19 탓이라고 했다.  누구는 보훈처장이 아니라 재향군인회장 같다고 말한다. 누구는 국가보훈처라고 부르지 말고 국방부 보훈국이 좋겠다고 말한다. 혁신위원의 말이 아니라 보훈처 직원의 말이다. 혁신에 희망을 가졌던, 앞으로 오래 보훈처에 근무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싶은 직원들 말이다. 국민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사회에 떳떳하고 싶은 직원들 말이다.  국가보훈처에는 할 일이 쌓여있다. 새로운 시대의 보훈 개념에 따른 정책이론과 조직 구성 재편, 복잡한 보훈체계의 주도적 정비, 그에 따른 국내외 자료 조사, 민주사회에 걸맞은 보훈교육의 개발, 사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에 동원되었던 산하 기관의 정비와 정상화,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국가보훈처가 우리 사회의 가치와 정의를 상징하는 기관으로 우뚝 서는 것이 그것이다.  중앙행정기관의 기관장은, 한 정부의 장관급 각료는 책임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어떤 분은 말한다. 이런 국가보훈처의 현실은 사리사욕에 오염되지 않은 보훈 정책, 촛불로 탄생한 공정-민주 지향의 정부에 불길한 조짐이라고. 일리가 있다. 능력과 비전이 없이 장관급 보훈처장을 맡으면 안 되며, 그런 사람이 자리를 넘보아도 맡겨서는 안 된다. 선거캠프의 자문위원이라는 경력을 빌미로 삼아 능력과 비전이 없는 사람에게 중책을 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구나 보훈의 미래에 대해 대통령과 상반되는 가치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수레바퀴에 깔리는 건  이런 인사가 걸러지지 못했다는 사실은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운영에 긴장감이 풀어진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부패나 불의보다 나라와 사회에 해로운 것은 긴장감 없는 해이함이다. 해이함이야말로 모든 해악이 들어오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대개 그 통로를 만드는 것이 간신(奸臣)이다. 그런 점에서 현 보훈처장을 대통령에게 천거한 측근이야말로 간신이다.  조선시대 상소문에서 그토록 ‘상벌을 신중히 하라[愼賞罰]’고 강조한 뜻을 몰랐다. 이것이 한 나라의 기강을 세우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는 것인데, 그동안 나는 국가보훈처와 ‘신상벌’을 연결시키지 못했다. 어리석었다.  그렇다고 국가보훈처의 비틀거림과 해이함이 현 정부의 ‘불길한 조짐’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보훈처 혁신위, 정책자문위에 참여했던 분들은 보훈처장의 무관심과 상관없이 포럼을 만들어 보훈 혁신 과제를 탐구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사회의 흐름으로 보아도, 이 땅의 시민들은 이미 그런 해이함을 두고 보지 않기 시작했다. 명실상부하게, 시민이 주인인 시대가 왔다. 이 말은 나라를 시민들이 이끌어간다는 뜻이다. 이 나라, 이 역사, 우리가 이끌어갈 것이다. 도도한 수레바퀴에 깔리는 건 사마귀만이 아니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20-06-10 | hrights | 조회: 780 | 추천: 31
임아연/ 인권연대 운영위원  당진에서 일한 지 어느덧 9년 차에 접어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자라면서 줄곧 대도시만 경험했던 내게 당진이라는 작은 소도시는 낯선 곳이었다. 아무 연고 없이 처음 와본 곳이라 낯설기도 했지만 ‘지역’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어 대도시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읍·면, 리’ 등의 행정구역조차 처음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당진에서 보낸 시간 동안 적지 않게 들었던 말은 “여기서 경력 쌓고 더 큰 곳으로 가야지”라는 말이었다. ‘지역’의 가치를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역은 벗어나야 할 공간으로 여겨졌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 때문인지,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인천으로, 부산으로 떠났다. 7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경제성장 정책이 성장거점 개발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사람들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인구밀집 현상이 기형적일 정도로 심각하다고 얘기하면서, 정작 지역은 떠나야 할 곳으로 여기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울과 대도시는 좋은 곳, 지역은 안 좋은 곳이라는 인식은 지역주민들이 서울·수도권에 대해 갖는 열등감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서울이나 인천에 올라가 자리 잡은 고향 동창들은 성공한 인물로 그려지고, 고향으로 낙향한 친구들은 타지에서 실패한 뒤에 돌아온 패배자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에서 뜻을 펼치고자 다시 돌아온 사람들도 많다.  이곳에서 지역신문 기자로 살면서는 중앙언론(상당히 중앙집권적 표현이다. 전국언론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은 대단한 곳, 지역언론은 하찮은 곳이라는 인식들이 불편했다. 전국언론과 지역언론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인데, 지역신문은 영향력도 별로 없는 그렇고 그런 매체로 여기는 것에 대해선 지역신문 기자로서 자존심이 상한다. 사진 출처 - istockphoto  당진에 지역신문이 없었다면 1조 원에 달하는 지자체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제대로 감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립박물관과 시립극단, 특정인을 위한 문학관 추진과 같이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예산과 사업을 무산시키는 역할을 수도 없이 해왔다.  또한 시민들에게 지역의 이슈를 알리고 여론을 형성하며 공론화의 장으로서 역할도 한다. 이렇게 형성된 지역 이슈는 주민들의 집단화된 목소리로 이어졌고, 중부권 특정폐기물 처리장 설치 문제나 당진항 지정, 가축보험 제도 개선 등 국가의 정책을 바꾸기도 했다.  전국언론에서는 지역신문을 모니터해 지역에 사는 화제의 인물 등에 대해 재취재해 보도하고 있다. 당진시대 기자들은 우리가 보도한 인물들의 연락처를 묻는 방송사 작가의 연락을 수시로 받는다. 지역공동체의 활동을 확대하고 자치역량을 강화하는 것 또한 지역신문의 역할이다. 실제로 지역신문이 잘 자리 잡은 지역과 그렇지 않은 곳의 주민들의 인식은 큰 차이를 보인다.  지역 또한 대도시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 똑같은 사회다. 정부와 국회가 있듯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있고, 예산부터 조직과 인사, 그리고 각종 용역과 계약, 건설 등 곳곳에 부조리가 존재한다. 그래서 반드시 지역언론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지역이 서울·수도권의 변방이 아닌, 똑같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한 사회로 여겨지길 바란다. 이는 곧 대한민국의 지방자치 발전 수준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임아연 위원은 현재 당진시대 편집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2020-06-03 | hrights | 조회: 283 | 추천: 10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역사가 두 번 반복된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나폴레옹 1세의 비극과 나폴레옹 3세의 희극, 박정희의 비극과 박근혜의 희극처럼 일정한 시차를 두고 두 번 반복되는 역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역사는 ‘특이점’이 올 때까지 ‘무한 반복’된다고 하는 게 진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정대협)에 대한 언론의 과잉 왜곡 보도와 검찰의 수사 착수, 그리고 진보의 분열은 리버럴이 집권하면 ‘무한 반복’되는 낯익은 풍경이 됐다. 11년 전 노무현 서거 사건부터, 정연주 KBS 전 사장에 대한 억지 기소, ‘조국 사태’와 윤미향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진보 죽이기’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발화점이 정권의 보복이든 내부자의 폭로든 상관없이 기름을 붓는 건 언론이며, 처음에는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둔 의혹 제기의 성격을 띠다가, 보도 경쟁이 심해질수록 사실과 거짓이 뒤섞이고, 표적이 된 사람을 악마화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 검찰이 등장한다. 이것은 현대판 조리돌림이다  윤미향과 정의연대가 30년 동안 해온 일이 있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시민단체도 회계 처리는 제대로 해야 한다. 시민들의 기부금은 더욱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비리가 있다면 합당한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언론의 과도한 보도 행태다. 윤미향 아버지에게 안성 쉼터 관리를 맡긴 행위 자체는 부적절했지만, 한 달에 100만원 안팎의 수고비 받은 걸 마치 연봉 7천만 원이 넘는 것처럼 10년 치를 합쳐서 제목을 뽑거나, 특정한 의도를 가진 사기꾼의 말을 인용해 거짓 보도(BTS 팬클럽 협찬품, 할머니들 못 받았다)를 일삼는다. 정의연대 활동가의 연봉이 경실련보다 몇 백만 원 많다는 둥 기부금 낭비 프레임을 부각하려 애쓰기도 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연봉 3천만 원이 넘으면 안 된다는 건지, 기사를 쓴 <문화일보>에 묻고 싶다. 문화일보의 평균 연봉은 그 두 배가 넘을 것이다. 사회적 가치를 따져보면, 문화일보와 정의연대 활동가의 연봉 숫자는 서로 맞바꾸는 게 정의롭다고 나는 생각한다.  홍위병들의 조리돌림처럼 모욕적으로 자행되는 언론의 양아치 행태는 손을 써볼 도리가 없다. 일단 언론의 표적이 되면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진다. 도덕적인 척했던 부도덕한 인간이 되어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 해명해봐야 소용없다. 비틀어서 다시 공격할 재료로 삼기 때문이다. 사후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이미 집은 불타버린 뒤라서 사람이 상하거나 지붕은 무너진 상태다. 언론은 정정보도나 명예훼손 소송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다. 기이한 침묵 vs 과도한 마녀사냥  탐사에디터로 일하면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대표 딸의 KT 취업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김성태가 반박했고, 우리는 재반박했다. 김성태의 반박은 거짓말로 가득차 있어서 대응하기 쉬웠다. 우리를 힘든 게 한 건 다른 언론들의 냉담한 무관심이었다. 새로운 의혹을 추가 보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신문사 내부에서조차 “무리한 기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믿을만한 복수의 취재원 증언이 있었고, 여러 차례 교차 검증했으며, 딸과의 통화(처음에 멋모르고 받은 전화였는데, 우리에게 확신을 준 통화였다) 등 충분히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언론사들이 따라오지 않으니 맥이 빠졌다. 외로웠다. ‘기이한 침묵’의 시간이 석 달이나 지나고, 검찰 수사가 진전되고 나서야 ‘이달의 기자상’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아주 천천히 수사를 진행하며 김을 뺐고, 소환은 철저히 비공개로 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 이전이어서 주요 사건은 공개 소환이 원칙이던 시절이었다. 검찰이 좋아하는 구속영장도 이때는 청구하지 않았다. 언론은 딸의 사생활을 파헤치지 않았다. 김성태는 지금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으며 티브이 정치 토크쇼 패널로 출연하고, 윤미향의 재산 형성 의혹을 제기한다. 똥 묻은 개가 따로 없다. 미통당 계열 인사들의 경우 이런 예는 너무 많아서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예를 들어 이혜훈은 바른정당 대표가 된 뒤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되자 대표를 사퇴했고, 언론은 더 이상 취재하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이혜훈도 요즘 티브이에 나와 합리적 보수 행세를 한다. 누구도 그의 티브이 출연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지 않는다. 보수의 파렴치와 진보의 염치  왜 언론은 보수인사들의 부정과 비리에 이토록 관대한가. 왜 진보인사는 배우자와 자녀는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털려가며 조리돌림을 당하는가. 진보는 보수의 부패를 비판해 왔으니까 스스로 부패하면 죄가 더 무거워지나?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의 비대칭은 훨씬 더 심각하다. 이 비대칭의 비밀을 쥐고 있는 열쇳말이 바로 ‘염치’다.  언론들이 보도 경쟁을 하며 전국적인 사안이 되는 경우는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가릴 것 없이 다 함께 뛰어들 때다. 그런데 보수언론은 진영논리라는 개념조차 없어서 보수인사의 부정비리에는 쉽게 눈감고, 진보인사의 부정비리에는 사력을 다해 달려든다. 진보언론은 진보인사의 부정비리를 보수인사의 그것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진보인사의 부정비리는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합세해 금세 전국적 사안이 되지만, 보수인사의 그것은 묻혀 버린다. 족보를 뒤지는 연좌제 성격의 추국(推鞫)형 보도는 보수언론의 전매특허이므로 보수인사에게는 적용될 일이 없다. 보수언론의 파렴치와 진보언론의 염치가 언론 보도 불균형의 주요 원인이다. 뻔뻔한 보수보다는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진보가 때렸을 때의 타격 효능감도 더 클 것이다. 사진 출처 - MBC 진보언론 비난하는 시민의 마음  진보언론이 염치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진영논리를 경계하며 엄정한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다만 진보언론을 비난하는 시민의 마음은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시민들은 진보언론에 이렇게 묻고 있다. ‘왜 진보를 비판할 때의 열정과 의지가 보수를 비판할 때는 보이지 않는가?’ ‘왜 윤미향의 재산 형성 의혹은 파헤치면서 윤석열 처가의 재산 형성 의혹은 파헤치지 않는가?’ 이들의 요구가 진영논리로 보이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언론 보도에서 최소한의 균형과 공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역차별을 해소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파렴치한 보수언론에는 기대할 게 없으니 욕을 해서라도 진보언론의 변화를 요청하는 것이다. 윤미향 관련 취재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윤석열 처가 관련 의혹도 같은 비중으로 취재하란 얘기다. 지금 최고 권력은 누구인가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 때만 해도 정권이 바뀌면 언론들은 청와대가 ‘사정의 칼’을 휘두른다고 보도하곤 했다. 검찰을 동원해 정권 안팎의 정적을 쳐내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사정의 칼을 휘두르는 건 대통령이 아니라 검찰총장이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은 대통령 위의 권력이다. 그런데 그 최고 권력자가 처가의 수상한 재산 형성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이 있다. 피해자가 여럿 존재하고 아직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진보언론은 취재하지 않는가, 시민들은 묻고 있다. 권력 감시가 언론의 본령이라면 검찰 권력이야말로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묻고 있는 것이다. 검찰총장이 정의연대 회계부정 의혹 사건을 신속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는 오늘, 나는 해시태그를 달고 싶어졌다. #그런데 윤석열 장모와 부인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0-05-28 | hrights | 조회: 1831 | 추천: 68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가벼운 교통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만 가까워져도 앞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 산 자도 아닌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운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 <죽고 난 뒤의 팬티>, 오규원  20년 넘게 방송되었던 <개그콘서트>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폐지된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평소 TV를 잘 보지 않지만 그나마 코미디 프로그램만큼은 자주 챙겨 보았습니다. 혹시, 없는 주변머리가 좀 생길까 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총선이 끝나자마자 <개콘>이 폐지된다고 하니 섭섭하고, 왠지 공교롭기까지 합니다. 수년 동안 현실 정치인들과 그 주변의 사건들이 너무 우스워서 <개콘> 시청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KBS  제가 아직도 떠올리곤 하는 오래된 코미디의 한 장면은 부끄러운 기억과 겹쳐 있습니다. 전두환 군부정권 당시의 일입니다.  “어이!”  지하철 출구로 나오자마자 낯선 이가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저를 불러 세웁니다.  “신분증!”  저는 신분증을 보여줍니다.  “가방 열어 봐!”  저는 가방을 열어 보입니다. 그는 제 가방 속을 이리저리 휘젓습니다. 저는 감히 그에게 누구냐고, 왜 그러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등등한 서슬에 잔뜩 겁을 먹어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끽소리 한번 제대로 내보지도 못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보았던 어느 TV 코미디의 한 장면은 저에게 코미디가 아니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얼추 이렇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바보 분장을 한 심형래 씨가 골목 한쪽에서 거들먹거리며 특유의 어투로 행인을 불러 세웁니다.  심형래: 어이!  행인 1: 네?  심형래: 주민등록증 내놔 봐!  행인 1: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여... 여기요.  심형래: (주민등록증을 거꾸로 받아 들고) 너, 왜 사진을 거꾸로 찍었나?  행인 1: (겁에 질려서) 거... 거꾸로 보고 계시잖아요.  심형래: (주민등록증을 바로 세우며) 이거 당신 거 맞어?  행인 1: 예.  심형래: 통과! (뒷사람을 가리키며) 다음 너, 주민등록증 내놔 봐!  행인 2: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여... 여기요.  심형래: (주민등록증을 뒤집어 들고) 이건 왜 사진이 없나?  행인 2: 뒤집어 보면 있는데요.  심형래: (뒤집어 보며) 그렇군, 가 봐!  행인 2: (조심스럽게) 그...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  심형래: (바보처럼 웃으며) 내가 어제 여기서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거들랑요.  광주항쟁 40년. 군복 차림으로 무릎이 꿇려지고 뒤로 포박당한 채, 인상을 찌푸린 전두환 조형물이 트럭에 실려 연희동으로 가는 영상을 보았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전두환 조형물을 볼수록 우습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부끄러워지는 것은 왜일까요. 뜬금없이 여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한 21대 국회는 어떤 모양이 될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개콘>은 완전 폐지되는 것인지, 다른 형식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재탄생되는 것인지도 궁금해집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20-05-20 | hrights | 조회: 103 | 추천: 3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그때 세상은 고요했었다. 80년 오월 이후 참혹한 민주주의의 학살 현장을 고발했던 사람들은 등사원지 위에 철필이 닳도록 분노를 적었고 가리방 등사기에 롤러를 밀어 찌라시를 만들었으나 고요했다. 새벽이면 충무로 인쇄소 골목 어디쯤을 두리번거렸던 또 다른 사내들은 찌라시 뭉치를 허리춤에 걸고 다시 새벽 쪽으로 사라졌으나 고요했다. 이른바 거사가 있는 날엔 그랬다. 모든 것이 비밀이어야 했다. 속삭이는 대화나 데모일정을 잡기위한 공중전화기의 다이얼 소리마저 은밀해야 했다. 해가 중천으로 자리를 옮길 즈음 어느 대학가 건물 옥상위에서는 어느 청년이 구호를 외쳤고 찌라시가 뿌려졌고 몇몇의 학생들이 집회를 가졌으나 그 시간은 아주 짧았다. 구호를 외쳤던 학생들은 상주하는 경찰들에 의해 그 순간 죽지 않을 만큼 얻어터지며 닭장차에 실려 갔고 몇 날 밤을 새워 누군가 써내려간 분노의 찌라시는 학교 직원들이 목숨을 걸 듯 수거해 갔다. 정의에 목마른 청춘이 꿈틀대던 대학에서는 간간이 벌어지는 풍경이었는데 그 시간은 10여분을 족히 넘지 못했다. 광주의 그날 이후 몇 년간 적어도 民主라는 말 앞에서 우리의 세상은 지나치게 고요했었다.  80년대 중반엔 학교 직원들이 미쳐 수거해 가지 못했던 찌라시 한 장을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갔던 신입생이 있었다. 그가 본 가장 큰 글씨는 “살인마 전두환을 처단하라”였고 그가 중얼거렸던 말은 “이 빨갱이 새끼들” 이었다. 찌라시를 만들고 옮기고 집회에서 구호를 외쳤던 청년들 중 몇몇은 감옥에 갔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 찌라시를 뿌린 청년들 중 또 몇몇은 건물에서 스스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그 신입생은 나중에야 알았다. 신입생이 봐왔던 언론에서 그런류의 사실들은 뉴스거리로 취급받지도 못했다. 뉴스에는 주로 전두환 대통령이 민족의 영도자로 묘사되었고 시시때때로 간첩이 출몰했다. 어쩌다 등장하는 시위장면은 폭도들의 난동만 나왔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간첩혐의자도 있었다. 칼라 테레비에 신기해하고 지금은 별것도 아닌 청소년 축구 4강 진출에 환호하며 애마부인 류의 영화 포스터에 심장 두근거렸던 시절이기도 했다. 세상은 냉정하게도 고요했으나 대학가 술집 중에 몇 군데에서는 그래도 간간이 분노가 터져 나왔었다. 밤낮으로 최루탄 연기가 가시지 않은 오월의 거리에서 최루탄을 뒤집어썼던 청년들은 고작 막걸리 한잔에 취해 울부짖듯 노래를 불러댔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피! 피!” “왜 쏘았지 총! 왜 찔렀진 칼!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그 노래를 주워듣는 소위 기성세대라는 이들은 그게 어디 청춘이 부를만한 노래냐고 비아냥댔지만 왜 청춘들이 그런 노래를 부르는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었다.  87년 유월의 외침을 그리고 91년 봄부터 스스로 사라졌던 뭇 이름들을 민주주의를 만들어간 몸뚱이라고 여겼던 청춘들 중에는 80년 오월의 아픔을 민주주의의 영혼으로 삼았던 이들이 많았다. 한때는 오월의 붉은 장미에게 조차 미안해서 골목길 나서기를 주저했던 청춘들이 많았다.  듣자하니 요즘은 광주가 시끄러운 모양이다. 이른바 보수단체라는 사람들이 금남로 차선을 막고 집회를 여는데 그 내용이 모두 광주 오월을 폄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내용으로 집회를 여는지 관심이 없다. 뽕짝을 크게 틀고 춤 난장을 벌이든 특정인을 개새끼 쇠새끼라고 욕하든, 공수부대나 해병대 군복을 입고 짙은 썬그라스를 쓰고 패션을 자랑하든 크게 상관은 없다. “내가 어떤 놈이 맘에 안 들면 그 새끼 개새끼라고 욕 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 입니다 여러분” 외치는 연사에게도 “옳소”하고 박수치는 참가자에게도 관심은 없다. 다만 그들에게 당신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민주주의를 누가 가져 왔는가?’를 질문하는 것이 사치임은 안다. 80년 그해. 오월의 장밋빛처럼 흩뿌려진 피의 금남로에서 오월과 민주주의를 통째로 유린하는 그들의 집회엔 백골단의 곤봉도 없고 지랄탄, 페퍼포그 연기도 없고 닭장차도 없고 강제연행, 수배나 고문 같은 끔찍한 단어도 없고 오직 그들의 시끄러운 난장과 인면수심의 억지가 있다는 것도 안다. 샤먼바위 사진 출처 - pixabay  술 한 잔에 불콰해지면 노래 한 자락에 정드는 게 사람이다 도서관에 가면 책을 보는 것이, 사찰이나 성당 같은 곳에 가면 스스로 경건해 지려고 노력 하는 게 사람이다. 추모공간에 들어서면 두 손을 모으고 침묵할 줄 아는 것 또한 사람의 일이다.  바이칼 호수의 항구 리스트뱐카 입구에는 샤먼바위가 있다. 태고 적부터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브리야트족에겐 샤먼바위에 얽힌 전설이 하나있다.  인근마을의 죄인이 있으면 샤먼바위 꼭대기위에 몸을 묶어 하룻밤을 지내게 했다고 했다. 죽을 만큼의 원한을 샀다면 누군가 한 밤중이라도 찾아와 죄인의 목숨도 빼앗았을 것이지만 아침까지 살아있으면 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풀어 줬단다. 지나치게 관대한 듯도 하지만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죽는 자든 죽이는 자든. 법전이나 정치적 이익에 갇혀 무고한 인사들을 가두거나 처형했던 우리의 현대 사법사(司法史)를 비춰볼 때 오히려 합리적이지 않을까 - 스파시바 시베리아 중에서-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들의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지금은 1000억 원이 넘는 추징금도 내지도 않고 법전에도 없는 전직 대통령 예우까지 받으면서도 여전히 광주학살의 책임을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자, 지금은 광주 민주화 운동 폄훼의 수장, 80년대 중반 갓 대학 신입생이 보았던 찌라시의 주인공 “살인마 전두환”을 브리야트족의 전통대로 샤먼바위 위에 하루 묶어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해 본다. 5.18이후 40년, 대한민국의 법체계에서 해 내지 못했던 일을 브리야트족의 전통을 빌어 그저 상상만 해보는 것이다. 전두환의 시절에는 상상하는 것조차 죄였으나 지금은 아니지 않는가.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20-05-15 | hrights | 조회: 676 | 추천: 15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우여곡절 끝에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쟁이 일단락됐다. 모두가 처음 겪어보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껏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정책이 현실화됐다. 그 과정에서 심각한 논쟁이 발생했다. 대체로 더불어민주당과 일부 광역자치단체장, 총선 전 미래통합당이 논쟁의 한 축이었다. 기획재정부와 총선 뒤 미래통합당이 또 한 축이었다. (청와대는 어느 쪽이었는지 모르겠다. 뭐,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다양하게 벌어진 논쟁은 하나같이 국가운영의 방향에 대한 철학, 더 깊게는 세계관을 바닥에 깔고 있는 주제였다. 특히 재정건전성은 두고두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듯 하다. 기획재정부가 얼마나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것도 두고두고 생각할 주제다. 그에 덧붙여 하나 더, 지출구조조정이라는 마술방망이를 거론해보고 싶다.  지출구조조정은 중요하다. 현재 한국 예산운용에는 낭비 요소도 많고 불합리한 점도 많다. 구조조정이란 게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워낙 강해서 그렇지, 필요 없는 거 덜어내고 필요한 거 더하는 과정이다. 구조조정은 언제나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지출구조조정은 긴축과 재정건전성 담론을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점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보다는 1997~98년 벌어졌던 구조조정에 훨씬 더 가까운 게, 정부에서 입만 열면 얘기하는 지출구조조정이다.  지출구조조정이란 사실 역대 정부마다 강조했던 오래된 유행가였다. 그 시작을 열었던 건 물론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1974년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소비 절약에는 정부가 앞장을 서야 되겠다. 그래서 정부는 이번에 세출 예산서에 약 500억 원을 절감하여 유보하기로 했다”고 했다. 전두환은 “만성적으로 팽창되어 온 예산구조를 영점 기준에 의하여 재점검하겠다”(1982년 10월 4일)고 했다.  김영삼은 “모두 고통을 분담해 주십시오. 정부가 앞장서겠습니다. 청와대 예산을 먼저 줄이겠습니다. 각종 행사는 물론 청와대의 식탁까지도 낭비요소를 철저히 없애도록 하겠습니다. 작고 생산적인 정부가 되겠습니다. 올해는 공무원 봉급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정원도 늘리지 않겠습니다(1993년 3월 19일 신경제 관련 특별담화문)”라고 말했다. 박정희와 전두환, 김영삼은 시바스 리갈과 백담사와 외환위기로 임기를 마무리했다. 우리는 그들 임기에 정부 지출이 줄었다는 어떤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당연한 것 아닌가. 1년에 10%를 바라볼 정도로 경제가 성장하고 물가가 급증하고, 인구는 나날이 늘어나는데 정부지출이 줄어든다는 발상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지출구조조정에 이명박과 박근혜가 빠질 수 없다. 이명박은 2010년 제11차 라디오연설에서 “10% 예산 절약을 목표로 정부 조직도 줄이고 씀씀이도 더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근혜도 취임 초기에는 증세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박근혜는 2013년 2월 27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공약재원 마련을 위해) 요즘 증세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국민세금을 거둘 것부터 생각하지 말라. 먼저 최대한 낭비를 줄이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등의 노력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산업화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지 ‘허리띠 졸라매기’는 국민들한테도 칭찬받기 좋은 소재다. 틈만 나면 보도 자료가 쏟아지는 ‘복지 부정수급 척결’은 저비용 고효율 홍보마케팅의 교과서다. 하지만 복지 부정수급을 막겠다며 심사를 철저히 하고 사용처 하나하나 따지는 동안 시급한 복지혜택이 필요한 이들이 도움을 못 받는 기회비용은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보면 ‘마른 수건 쥐어짜기’ 담론은 돈 쓸 곳은 많은데 세금 인상은 피하려는, 욕먹는 일을 피하는 걸 최우선으로 하는 정신개혁운동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3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속하게 집행하도록 정부는 뼈를 깎는 세출 구조조정으로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밝힌 것부터가 혼란을 부른 첫 단추, 메시지 실패가 아니었나 싶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긴축을 주문함으로써 재정건전성이라는 금송아지 말고 다른 신은 모르는 기획재정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기재부가 지출구조조정을 위해 질병관리본부와 지방 국립병원 소속 공무원들의 연가보상비를 삭감하는 걸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때문에 주말에도 일하는 사람들에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욕을 푸짐하게 먹었다. 그러자 기재부는 형평성을 맞춘 후속대책을 내놨다. 4월 21일 해명자료에서 “금번 추경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신속한 국회 심사 및 통과가 불가피한 상황임을 고려해 연가보상비 감액 부처를 최소화하였다”던 기재부는 하루 뒤 해명자료에선 “공공부문의 고통분담 차원에서 올해 모든 부처와 헌법기관의 연가보상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단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두고두고 곱씹어야할 건 2006년 1월 18일 노무현 신년연설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 구조를 바꾸더라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해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면, 어디선가 이 재원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감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론조사를 해보아도 세금을 올리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껴 쓰고, 다른 예산을 깎아서 쓰라고 합니다. (중략)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상상력에 제한을 두지 말라”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노릇이다. 천재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그래서 책을 읽는다. 대통령에게 <노무현 대통령 연설문집>을 읽고 상상력을 키우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20-05-06 | hrights | 조회: 273 | 추천: 2
이재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코로나19 시대의 화두는 ‘새로운 일상’이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했고, 실업이 증가하고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일상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새삼 뼈저리게 느껴지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픈 마음 간절하다. 하, 어쩌랴.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건 인정하든 안하든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잘 버티고 견디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기대마저 무너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낯선 단어가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일상을 규정하는 단어가 됐다. ‘넥스트 노멀’이라고 불리는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는 소비도 교육도 온라인 중심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비대면 접촉의 시대가 될 거라 한다. 온라인 개강, 재택근무, 화상회의 등 여기저기 혼란은 있지만 이런 ‘넥스트 노멀’한 삶도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넥스트 노멀한 시대에도 우리의 일상은 계속 될 수 있는 걸까. 최근에 나온 한 책 제목은 가히 충격적이다. <2050 거주불능 지구>. 2050년이면 겨우 30년이고 한 세대 밖에 안 되는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지구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고? 그게 말이 돼?  책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지구온난화는 산업혁명 이후 수 백 년에 걸쳐 배출해온 온실가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기 중 탄소의 절반은 불과 지난 30년 동안에 폭발적으로 배출된 것이다. 30년 전이면 1990년대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는 등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시작되던 시기인데 인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나서도 문제를 몰랐을 때만큼이나 자연을 파괴해왔다는 지적이다. 97년 교토의정서, 2016년 파리기후협약 등 기후재난을 멈추기 위한 수많은 협약이 있었지만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했고 트럼프 같은 정치인은 이를 노골적으로 폐기했다. 기업들은 공장을 계속 가동했고 우리는 신나게 자동차를 몰았고 맛있는 고기를 마음껏 즐겼다. 이렇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는 동안 기온상승을 2도 안에서 멈춰야 한다는 경고는 잊혀졌다.  만약 기적이 일어나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멈추더라도 이미 배출한 양 때문에 추가적인 기온상승은 피할 수 없다. 호주산불, 미국의 허리케인, 유럽의 폭염, 베네치아의 침수 등 우리가 재난이라고 부르는 기상이변은 앞으로 닥칠 상황에 비한다면 그나마 최선의 상태다. 살인적인 폭염, 치솟는 산불, 갈증과 가뭄, 빈곤과 굶주림, 오염된 공기... 이런 재난은 ‘일상’이 될 것이고 앞으로도 탄소배출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21세기가 끝날 즈음 기온은 4도 이상 오를 것이고 지구상에 사람이 살만한 지역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 사진 출처 - freepik  불과 석 달 전만해도 아무도 코로나19가 가져올 일상의 변화를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그것이 초래할 일상의 위기에 대한 경고는 30년 전부터 있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위기 가능성에 대해 지금도 우린 애써 외면하고 있다. 유엔은 2050년 기후난민이 2억 명에 달하고, 싸움을 벌이거나 도망치는 것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취약한 빈민층이 10억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2011년 이후 시리아 난민 1백만 명이 유럽에 가져온 쇼크를 생각하면 2억 명이란 수치는 엄청난 수치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상 자체의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내 살아생전 그럴 일이 있겠어? 평균수명 80세, 100세 시대라고 하니 30년 뒤는 내 살아생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린 사회적 거리두기로 멈췄던 일상으로 돌아가길 오매불망 기다린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선 선수처럼 언제든 튀어나갈 기세로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떼기 전에 어느 방향으로 갈지 깊이 성찰해 볼 일이다. 코로나19는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과연 이 일상 자체가 지속가능한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연파괴, 대량소비와 과잉생산으로 점철된 이 사회가 과연 지속가능한 지, 더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지 아니면 멈추고 공존과 생존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소비의 방식만 비대면으로 바뀔 뿐 소비나 욕망 자체는 그대로라면 ‘넥스트 노멀’한 일상이 지속가능한지 묻고 있다.  코로나19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공장을 멈추게 했고, 거미줄처럼 하늘을 누비던 비행기의 운행도 감축시켰다. 한국에선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하늘을 더 많이 볼 수 있었고 인도에선 대기오염에 가리어있던 에베레스트산맥의 풍광이 드러나기도 했다. 전 세계 지도자들이 하지 못한 일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해낸 것이다. 세계화는 전염병의 세계화를 가능케 했고 전염병의 세계화는 세계화 자체를 불능상태로 되돌리는 역설, 어쩌면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리고 앞으로의 지속가능한 일상을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김호기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준 세 가지 교훈을 이렇게 얘기했다. “하나는 여전히 믿어야 할 것은 과학과 이성이라는 것. 또 하나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동체 간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줬다. 마지막은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다. 자연 파괴, 대량 소비, 기후 위기,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빠른 삶, 이제까지 현대문명이라고 칭했던 것에 대한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코로나19 이후에 우리가 조금 더 다른 사람들과 협력적인 삶을 추구하게 된다면, 우리가 과거와는 달리 느린 삶을 살려고 한다면, 그리고 기후위기에 대한 신문기사들을 꼼꼼하게 읽는다면 그것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긍정적인 결과들일 것이다.” 이재상 위원은 현재 CBS방송국 PD로 재직 중입니다.
2020-04-29 | hrights | 조회: 290 | 추천: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