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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통신’은 인권연대 운영위원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발자국통신’에는 강국진(서울신문 기자), 김녕(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김대원(성공회 서울교구 신부), 김영미(금천문화예술정보학교 교사), 김희수(변호사), 도재형(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상덕(가톨릭신문 기자), 오인영(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 오항녕(연변대 교수), 이재상(CBS PD), 이재성(한겨레신문 기자),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지상(가수 겸 작곡가), 이찬수(서울대 연구교수), 장경욱(변호사), 최낙영(도서출판 밭 주간), 허홍렬(치과의사), 홍승권(삼인출판사 부사장), 황미선(면일초등학교 교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오인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최인훈 추모 1주기에 즈음하여 <달과 소년병>이 출간되었다 하여 구해 읽었다. 최인훈의 단편과 중편 소설들을 모아놓은 그 책에서 제일 눈길이 가는 작품은 <총독의 소리>였다. <구운몽>, <서유기>와 같은 문제작들도 실려 있지만, 텍스트 읽기라는 게 콘텍스트 속에서 이루어진 작업인지라 아베 정권의 경제 도발과 그로 인한 ‘NO 일제(日製)’의 분위기에서는 <총독의 소리>에 먼저 관심이 갔다. 이번에 다시 읽고 나니 소설의 파격적 형식은 물론이고, ‘일제(日帝)’에 대한 최인훈의 풍자적 비판과 통찰을 조금이라도 널리 알리고 싶어졌다. 오늘 나는 내 욕망에 패배했다. 문학의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총독의 소리> ‘광고’에 나선다.  <총독의 소리>는 네 편으로 구성된 연작 소설이다. 1과 2는 1967년, 3은 1968년, 4는 1976년에 각각 발표되었다. 네 편 모두가 서사문학의 기본 요소들인 인물, 배경, 플롯은 극소화되고, ‘총독에 의해 말해지는 소리’라는 담론만이 극대화된 매우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설에서 “총독의 소리”는 “조선총독부 지하부”에서 내보내는 유령해적방송으로, “조선총독부 지하부”는 해방 이후에도 해체되지 않고 지하에 숨어서 한반도의 재식민화를 획책하는 일제로 상정되어 있다. 네 편의 소설에서 “총독의 소리”가 내보내는 담화는 실제 사건을 계기로 전개된다. 1은 박정희가 부정선거 끝에 당선한 6대 대통령선거를, 2는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들의 청와대 침투 사건인 1․21사태를, 3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그리고 4는 미국과 소련간의 데탕트에 대해 방송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연작의 각 소설은 “충용한 제국(帝國) 신민(臣民) 여러분. 제국이 재기하여 반도에 다시 영광을 누릴 그 날을 기다리면서 은인자중 맡은 바 고난의 항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제국 군인과 경찰과 밀정과 낭인(浪人) 여러분”으로 시작하여 “제국의 반도 만세”로 끝남으로써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 야욕의 현재성을 환기시킨다. 비록 총독이 “귀축영미(鬼畜 英美, 영국과 미국)”, 적마호비(赤魔胡匪, 러시아와 중국), “충용한 신민” 등 일제 말기에 쓰인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실감을 자아내지만, 작가는 지하에 숨어 권토중래를 꿈꾸는 총독을 가상(假想)의 담화의 주체로 설정함으로써 독자들이 자유롭게-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반성적으로 “총독의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배려한다. 사진 출처 - 구글  최인훈은 <총독의 소리>가 특히 한일협정에 대한 반응으로 쓴 것이라며 소설의 집필 배경과 형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총독의 소리>는 한일협정이라는 해방 후 정치사화사의 새 장을 여는 사건에 대한 한 지식인의 충격과 혼란과 위기의식을 폭발적으로 내놓기 위해서 소설의 통념적인 형식을 벗어나 보려고” 했다.(「나의 문학, 나의 소설작법」) 그는 표현을 바꿔 이렇게도 설명한다. “첫째는 나는 이 소설에서 문학의 형식을 파괴하면서라도 온몸으로 부딪쳐야 할 위기의식을 느꼈다. 둘째는 그렇다면 정말 문학의 장르의 테두리를 넘었느냐 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형식은 별다를 것 없는 풍자소설의 적통적자다. 적의 입을 빌려 우리를 깨우치는 형식이다. 빙적이아(憑敵利我)이다.” (「원시인이 되기 위한 문명한 의식」, 강조는 인용자)  그렇다. 이 소설은 총독이라는 적(敵)의 입장을 통해, 그것도 여과 없이 내면의식을 드러내기 쉬운 독백형식의 말하기를 통해, 일제의 도착적 사고와 우리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짜여있다. “총독의 소리” 방송은 일제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대동아전쟁’ 전의 영광스럽던 제국으로 회귀할 것을 꿈꾸며, 조선을 다시 제국의 식민지로 만들고자 한다. “총독의 소리”는 말한다. “반도의 영유는 제국의 비밀이었습니다. 영혼의 꿈이었습니다.…오늘날 제국은 이 비밀을 잃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실지회복, 반도의 재영유, 이것이 제국의 꿈입니다.…반도는 제국의 제단이었으며 반도인은 제물이었던 것입니다.”(현재 아베 정권과 일본회의의 주도세력의 꿈도 이런 성질의 것이지 싶다.)  그렇다면 “총독”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민주주의가 점점 확고하게 뿌리를 내고,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교류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를 다시 식민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총독은 그런 움직임에 매우 불안해한다. 그러나 총독은 <총독의 소리1>이 발표된 1967년 당시 남한의 선거과정을 지켜보며 안도한다. 금권 부정선거로 얼룩진 선거가 보여주듯이 ‘반도인’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버거워하고 오히려 제국의 식민지 노예이기를 바란다는 도착적 논리를 펴면서. 그리고 총독은 “반도를 이데올로기의 대립의 형태로 양극화하여 대립 갈등케 하여 피로곤비(疲勞困憊)케 하고 제국은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이쪽저쪽 손보아주면서 실속을 차리는 것만이 반도에 영원한 이해관계를 가진 제국”의 부동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실토한다.  <총독의 소리>에서는 일제의 사고착란(思考錯亂)에 대한 비판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의 중요성도 읽을 수 있다. 일제가 우리를 자신의 우월성을 비춰보는 거울로 상정했듯이, 우리도 인종, 성, 종교, 피부 등의 차이를 내세워 누군가를(/자신을) 열등한 타자로 소외시킬 수 있다. 발화 주체를 총독에서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바꾼 <주석의 소리>에서 최인훈은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는 그 누구를 찾아내고자 노력하십시오.…정치와 직장에서 소외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책임은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있습니다.…우리가 인간일 수 있게 하라고 상황에 요구할 권리를 가짐과 동시에 우리 자신이 인간임을 개인으로서 증명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합시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이 개별적 주체로서 인간임을 증명할 의무가 있다! 총독의 소리보다는 주석의 소리가 옳다. -지금까지 <총독의 소리> 광고방송이었습니다. 오인영 위원은 현재 고려대 역사연구소에 재직 중입니다.
2019-08-21 | hrights | 조회: 63 | 추천: 1
김영미/ 인권연대 운영위원  나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거나, 차별받거나 혹은 낙오시키는 등의 편견을 없애는 것은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일이다.  고 3인 준수(가명)는 왼쪽 목덜미와 양팔에 타투를 하고 학교를 다닌다. 타투를 한 것 외에는 문제가 없는 준수는 교사들의 관심과 시선을 불편해 했다. 타투에 대한 폭력성, 일탈, 혐오감 등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는 학교에서 교사들은 단지, 타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편견을 갖고 ‘불량아’ 취급을 했었고, 나 역시 이런 편견과 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준수는 시간이 갈수록 팔에 대한 노출을 당당히 했고 “타투도 머리 염색처럼 개인의 취향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라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탈모 증상을 겪었을 때가 있었고, 지금도 이 문제로 늘 가슴을 졸이며 사람들의 시선이 머리로 향할 때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 속에서 얼마 전 TV 프로그램 ‘다큐 공감‘의 '힘내요, 빛나는 그대' 편에서 배우 윤사비나 씨를 만났다. 20대에 교통사고를 당한 그녀에게 갑자기 찾아온 탈모는 단 2주 만에 전신탈모로 진행됐고, 배우로서 꿈 많던 청춘의 시간을 빼앗았고, 삶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무대 위에 서기 위해 가발을 썼지만, 벗겨지는 돌발 상황들이 자주 벌어지면서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그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머리카락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자존감은 늘 바닥이었던 그녀가 편견 없이 바라봐 주던 동료 배우인 남편을 만나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가발을 벗고 당당히 대중들 앞에 나섰지만 탈모인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편견의 시선은 늘 그녀를 따라붙는다. 전신탈모 환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탈모인에 대한 편견과 맞서기 위해 10년째 가발을 쓰지 않는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도 큰아이가 학교와 학원에 다니면서부터 친구들이 머리카락이 없는 사비나 씨의 모습을 보고 놀리기 시작 하자, 강하던 사비나씨 역시 흔들린다. 아이를 위해 가발을 써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을 하다 그녀는 결국 가발을 쓰지 않기로 했다. 엄마의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 속에 아이들이 또 다른 사회적 편견과 예기치 않은 장벽을 만났을 때 이겨낼 힘이 생긴다고 믿는 그녀는 머리카락이 없어도 행복하고 멋져 보였다. 사진 출처 - KBS 1TV '다큐 공감'  탈모는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일 뿐이며,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충분히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와 당당한 모습으로 편견과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부정적인 경험으로 다른 시선으로 혹은 편견으로 먼저 바라봐야 했던 타투도 개인의 취향이라 여기는 준수의 시선이 맞지는 않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사회가 눈부신 변화와 발전이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보는 눈도 변화가 되어 차이를 인정하고 관용하는 사회로 변해가기를 바란다. 또한 생각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고 받아들일지는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김영미 위원은 현재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9-08-07 | hrights | 조회: 187 | 추천: 5
김창남/ 인권연대 운영위원  축구를 시작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와는 담을 쌓고 살던 내가 나이 40이 다 되어 처음 축구화를 신고 공을 차기 시작한 게 90년대 말이다. 운동장 사정으로, 혹은 안식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쉰 기간도 있지만 대체로 주 1회 축구라는 리듬을 거의 지켜왔다. 요즘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해진 시간에 운동장에 나간다. 몸으로 하는 모든 일에 게으르고 무능한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축구를 놓지 않고 있다는 건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이유는 단 하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축구하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축구를 하는 사람들은 우리 학교 교수와 강사,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이다. 학기 중에는 젊은 학생들과도 자주 함께 한다. 축구 실력은 들쑥날쑥 개인차가 많지만 그래봤자 동네축구다. 축구인지 농구인지 헷갈릴 정도의 스코어가 예사로 나온다. 그러다 보니 나 같은 몸치도 가끔은 슛을 하고 골을 넣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그 옛날 동네 형들과 놀 때 어느 팀도 원하지 않는 깍두기 신세를 면치 못하던 입장에서 이건 엄청난 변화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건강에도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걸 느낀다. 이렇게 좋은 걸 한창 젊을 때는 왜 안 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다.  운동장 밖의 구경꾼으로 보는 세계와 직접 몸으로 뛰면서 느끼는 세계는 다르다. 당연히 운동장 밖의 일상에서 형성된 관계와 운동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만들어지는 관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가령 학생들과 함께 뛸 때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는 선수와 선수라는 좀 더 대등한 관계로 바뀐다. 적어도 몸과 몸을 부딪치며 운동을 할 때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에 의해 부여된 권력 관계는, 물론 완전히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희석되게 마련이다. 이렇게 운동장에서 생성되는 관계는 일상 속에서 규정되는 관계를 새롭게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는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며 민주적인 사회관계를 연습할 수 있는 장이다. 게다가 직접 축구를 하게 되면서 월드컵이나 프로 축구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그저 구경꾼의 눈으로 보던 때에 비해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더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사진 출처 - 구글  최근 문화부의 스포츠혁신위원회가 발표한 스포츠 혁신 권고안 가운데 스포츠클럽 활성화가 포함되어 있는 건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역과 세대를 넘어 어디서나 스포츠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고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각종 스포츠클럽이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이 권고안의 요지다. 이 권고안은 또한 그동안 학교 체육을 통해 스포츠 엘리트를 육성해 오던 데서 벗어나 스포츠클럽과 학교 체육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엘리트 선수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 발표된 스포츠 혁신위의 권고안에는 이 외에도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 성폭력 등 인권 침해 대응 시스템 혁신 등 여러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모두 진작 실행되었어야 할 당연한 일들이다. 그런데 스포츠 혁신위의 이런 권고들에 대해 반발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당장 눈에 띄는 반발이 ‘그러다가 국제 대회 성적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올림픽에서 메달 못 따면 어떡하나’ 같은 소리들이다. 이에 대해 ‘우리보다 앞선 스포츠 강국들이 이미 이렇게 하고 있고 오히려 이렇게 바꾸어야 장기적으로 국제 수준의 엘리트 선수들을 육성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한국은 국가 주도의 산업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엘리트 체육에 집중적인 투자와 지원을 해왔고 그 결과 어떤 의미에서는 국력에 비해 과도한 스포츠 강국이 되었다. 올림픽을 봐도 미국과 러시아, 중국, 그리고 유럽의 몇 개 나라를 제외하면 우리만큼 메달 많이 따는 나라도 없다. 월드컵 16강은 충분히 실현가능한 목표가 되었고 심지어 4강에 오른 적도 있다. LPGA의 상위권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국가 인지도와 위상이 높아지고 국민적 자부심은 커졌는지 모르지만 국민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과 삶의 질이 그만큼 높아졌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스포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산업화 시대이래 1인당 GDP니 경제성장률이니 하는 수치들은 국민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주술적 힘을 발휘해 왔다. 국민소득이 얼마가 되고 경제성장률이 얼마가 된들 나 자신의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국가 대표 선수들이 국제 경기에서 금메달을 얼마나 따는가 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얼마나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 메달 수에 연연하기보다 차라리 동네 축구의 묘미를 느껴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요한 건 우리들 각자의 삶의 질과 건강이 아닌가 말이다. 김창남 위원은 현재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9-07-24 | hrights | 조회: 311 | 추천: 8
장경욱/ 인권연대 운영위원  지난 6월 30일 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은 휴일 오후 내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29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 만남 제안은 비현실적이었다. 한국 방문 기간 중 비무장지대에서 북의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는 트위터 메시지가 뉴스 속보로 떴다. 그때까지 누구도 SNS 번개 정상회담을 상상할 수 없었다. 2분간의 판문점 만남도 괜찮다는 애원의 트위터가 이어지자 북은 5시간 만에 전례없이 신속한 화답을 내놨다. 분단선의 북미정상의 만남이 흥미로운 제안으로 북미관계 진전에서 또 하나의 의미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공식제안을 하면 응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세기의 숙적 북미 간 번개 정상회담을 위해 경호, 의전, 취재에 대한 실무조율이 두터운 냉전의 벽을 허물고 삽시간에 이뤄졌다. 상상도 하지 못한 놀라운 일들이 판문점에서 벌어졌다. 파격과 반전의 연속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비무장지대 관할권을 가진 북미 양국의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적지를 자유롭게 오가며 워싱턴과 평양으로 상대를 초대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전쟁과 적대를 마감할 북미관계의 해빙의 순간이었다. 새로운 북미관계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의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이벤트였다.  2분 정도의 만남 제안은 싱가포르나 하노이보다도 길어진 약 48분 동안의 판문점 자유의 집 단독 정상회담으로 발전하였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간 협상에 돌파구가 열렸다. 워싱턴과 평양에서 다시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을 기약하는, 향후 재개되는 실무협상에서는 밝은 전망을 마련할 수 있는 역사에 길이 남을 만남이었다.  6월 30일 판문점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북은 “전례 없는 신뢰를 창조한 놀라운 사변”으로 평가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대단한 일이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하였다. 오늘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정확한 평가임에 틀림없다.  향후 북미 간 대등한 실무협상은 패권의 쇠퇴를 증명할 것이다. 강경한 접근법은 유연한 접근법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선핵포기의 일방적 요구는 후퇴하고 6.12 싱가포르 북미공동선언에서 이행을 약속한 공약을 동시적, 병행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건설적 논의가 다뤄지게 된다. 새로운 계산법에 따른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의 과정은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세계사적 혁명으로 평가될 것이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군사분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남북미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자유롭게 오가는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에서 국내외 정세는 탈냉전과 탈분단의 역사적 흐름 속으로 급변하고 있다. 기적과 같은 역사적 현실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시청자로서 관전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탈냉전과 탈분단의 당사자로서 우리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찾아 개입하여야 한다. 전쟁과 적대를 끝장내는 판갈이 싸움에서 우리는 역사의 정방향에 함께 해야 한다. 동족의 편에 합류해야 한다.  우리가 합류할 역사의 정방향은 분단냉전체제의 해체다. 동족과 함께 힘을 모아 실현해 나가야 할 역사적 격변기를 맞아, 패권국과 대등한 협상을 실현한 동족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더는 국가보안법에 겁먹은 찌든 나약한 모습으로 한미동맹을 예찬하며 패권국에 굴종하는 자세로 살 수는 없다. 더는 동족의 희생으로 마련된 해빙의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며 거짓과 자기합리화의 궤변에 익숙한 나머지 정상과 비정상을 분간하지 못하는 분단정신병 환자로 지낼 수는 없다.  굴종과 무기력의 잠에서 깨어나 동족과 한목소리로 외치는 분단냉전체제 해체의 구호가 세계인의 심장을 흔들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으며 어깃장을 놓을 국내외 어둠의 세력들에 당당히 맞서 우리의 힘으로 더욱 더 거대한 역사적 사변을 이뤄내야 한다. 장경욱 위원은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2019-07-10 | hrights | 조회: 349 | 추천: 12
오항녕/ 인권연대 운영위원 비판이 어려웠던 비판  전공이 그렇다보니, 사학사나 조선시대사 강의를 주로 맡았던 나는 한동안 기말고사 때 꼭 내는 시험문제가 있었다. 학기 초에 강의계획서를 설명하면서, 미리 기말고사 문제의 하나를 제시하여, 학기 중에 고민했다가 답안을 작성하라는 취지였다. 시험문제는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비판하라"였다.  얼핏 보면 충분히 비판이 가능할 것 같았는데도, 학생들의 답안은 심정적인 비판 쪽에 가까웠지 논리적, 사실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나로서는 자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만길(姜萬吉) 선생님을 모시고 식사자리가 있었을 때 기말고사의 경험을 선생님께 털어놓았다. 좋은 문제라는 데 동감하시면서, 다음에는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와 비교하여 서술하라는 방식으로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하셨다. 역사학자이면서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감옥에서 일생을 마친 인물과 이광수를 비교하면 설득력 있는 답안이 가능할 듯도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시도해보지는 못하였다. “내 탓이다”  이광수는 파리 평화회의(1919) 이후 국제연맹이 조직된 시대를 ‘개조(改造)의 시대’라고 규정하였다. 제국주의 세계의 개조, 생존경쟁 세계의 개조, 남존여비 세계의 개조. 이런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근대 사상의 비전을 기조로 “이 시대 사조는 우리 땅에도 들어와 각 방면으로 개조의 부르짖음이 들립니다. 그러나 오늘날 조선 사람으로서 시급히 하여야 할 것 개조는 실로 조선민족의 개조외다.”라고 선언하였다.  그는 조선 민족이 변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과거에 숱하게 변하였으되, 그 변천은 자연적이고 우연한 변천이지 목적의식적이고 통일적인 계획을 가진 변천이 아니었다고 주장하였다. 곧 원시 민족의 그것이었지, 문명을 가진 민족의 변천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3・1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아직 감옥에 있었던 1921년 봄, 임시정부의 대변인이었던 이광수가 귀국했다. 이광수는 수백만 명이 참가했던 3・1운동을 체험하지 못하였다. 바야흐로 흔히 ‘문화 정치’라고 불리는 일제의 고등 술책이 작동하던 시기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던가. 한마디로 그것은 ‘민족개조론’을 주장하는 일이었다. ‘내가 아니면 이 민족을 구할 자 없다’는 명제보다도 ‘나만한 민족적 경륜을 가진 자는 없다’는 명제가 그에겐 너무도 크고 집요하였다.(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2》, 솔, 2008, pp.28~29) ‘괴벨스’의 양자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 도쿠토미 소호(德富蘇峰). 1910년 8월 강제 합방 이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만 남기고 나머지 조선 언론을 통폐합한 장본인이다.(정일성, 《일본 군국주의의 괴벨스, 도쿠토미 소호》, 지식산업사, 2005)  그는 이른바 민족동화 정책을 입안하여 실행하였는데, 이는 이광수의 ‘민족개조’와 식민지 ‘민족말살’이라는 사안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조선 정치사를 음모의 역사라고 불렀다. 음모에는 정쟁이 따르게 마련이었고, 조선의 정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악정으로 묘사된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일본은 조선에 대한 통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첫째, 조선인에게 일본의 통치가 불가피함을 마음에 새기도록 해야 한다. 둘째, 자기에게 이익이 따른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셋째, 통치에 만족하여 기꺼이 복종하게 하고 즐겁도록 하는 데 있다."  도쿠토미는 그렇지 않아도 좌절에 빠져 있는(《술 권하는 사회》를 보라.) 조선 지식인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이광수는 보통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 8권을 선별하였는데, 도쿠토미의 《소호 문선》이 포함되어 있다.  1936년 이광수를 만났을 때 도쿠토미는 자기의 아들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후 이광수는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안창호와 함께 검거되었다가 재판을 받는 도중 가야마 미쓰로로 창씨 개명하였다. 그리고 도쿠토미에게 편지를 보내 말했다. “내 자식이 되어달라는 선생의 말씀을 들은 지 5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에야 선생의 간곡한 부탁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 조선인은 앞으로 텐노오의 신민(臣民)으로서 일본 제국의 안락과 근심 걱정을 떠맡고 나아가 그 광영을 함께 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국민 수업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조선이야말로 텐노오 중심주의로 나아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왼쪽은 잡지 「개벽」에 실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오른쪽은 그가 동인으로 참여했던 잡지 여명.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짓눌린 자존감  이광수는 과거에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조선인도 스스로 이룬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전등, 수도, 전신, 철도, 윤선(증기선), 도로, 학교 ……. 즉 근대를 표상하는 문물을 이룩하는 데 기여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조선인이 세운 교육기관이라야 고등보통학교 몇 개에 불과하고, 산업기관이라야 자본 1천만 원도 못 되는 구멍가게 같은 은행 몇 개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이 문제의식에 그가 무실, 역행을 주장했던 목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를 지배하던 제국들은 이렇게 자신들이 근대 문명을 이루어갔다. 그 문명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었다. 식민지 조선은 달랐다. ‘문명’의 탄생과 발전에 기여는커녕 그 문명의 주인들에게 종속되어 버렸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문명의 주인들과 대등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어깨를 겨룰 수 있어야 했다. 이광수가 전등, 수도, 전신, 철도 등등 쭉 열거하는 것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이 아니다. 바로 근대 ‘문명’이고 식민지의 ‘주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식민지는 그렇게 생존을 위해 확보해야할 조건을 만들어가는 데도 결단을 요구하였다. 제국과 식민지는 결코 대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문명의 차이이며, 지배-피지배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노동은 제국의 자본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등하기 위해서는 선택해야 한다. 투항할 것인가, 투쟁할 것인가? 투쟁을 선택하는 순간 대등해질 것이지만 위험하며, 그래서 투쟁하고 싶지만 마음뿐인 경우도 많다. 투항하면 실제로 대등해지지는 않겠지만 대등해졌다고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은 후자였다. 투항할 때는 대들지 않는다. 《민족개조론》에 일제의 침략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투항이든 투쟁이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얘기하다 보면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 왜 지금 이렇게 되었는가를 묻고,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사정을 점검하는 일이다. 이광수도 《민족개조론》에서 그리하였다. 그 기억과 기억하는 방식이 곧 이광수의 역사론이 된다. 이 부분이 정교해야 투항이 투항처럼 보이지 않는다. 거꾸로 일본 제국의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정교해야 침략과 지배가 침략이나 지배로 보이지 않는다. 배운 자의 함정, 냉소  이광수는 식민지 상황의 원인을 악정(惡政)이라고 했다. ‘조선민족의 쇠퇴의 책임은 그 치자계급―즉, 국왕과 양반에게 있다.’ 정치를 문란할 것, 산업을 쇠잔케 한 것, 국민교육을 힘쓰지 아니한 것, 사회의 풍기와 인민의 정신을 타락케 한 직접의 책임이다. 자기 일신의 권세, 자기의 친척 붕우의 출세, 자기와 운명을 같이 하는 당파를 위해서만 행동하는 공직자들, 이것이 조선의 악정이었다는 것이다. “허위, 비사회적 이기심, 나타, 무신, 겁나, 사회성의 결핍”, 조선 민족이 ‘금일의 쇠퇴’에 빠지게 한 원인이며, 그는 이런 견해를 자신의 ‘사론(史論)’이라고 했다.  그는 민족성이 원인이라고 했다. 여기서 국왕과 양반에 국한되었던 패망의 원인은 민족 전체의 책임이 된다. 투항하면서 침략이 빠지듯, 도덕을 말하면서 역사현실이 민족성으로 환원된 것이다. 그에게 조선은 역사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개혁정책, 민생정책, 문화와 사상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조선시대 이해는 역사에 대한 이해, 사론이 아니라 도덕론이다. 그 도덕론의 기조는 냉소이다.  "멀리는 말 말고 이조사(李朝史)를 보건대 서로 속이고, 서로 의심하고, 시기하고 모함한 역사라 하겠습니다. 이조사와 같이 완인(完人)이 없는 역사는 아마 드물 것이니, 명망 있는 인물 중에 와석 종신한 사람이 몇 사람이 못 됩니다. …… 이를 민족적으로 보더라도 조선민족은 적어도 과거 오백 년간은 공상(空想)과 공론(空論)의 민족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오백 년 민족생활에 아무 것도 남겨 놓은 것이 없음을 보아 알 것이외다."  이게 어리석은 천재(?) 이광수의 조선시대사 인식의 결말이다. 투항의 논리, 《민족개조론》은 그의 창씨개명과 청년들에 대한 참전 선동으로 귀결되었다. 투항을 합리화한 지식인은 이렇게 역사의 간신이 되었다. 오항녕 위원은 현재 전주대에 재직 중에 있습니다.
2019-07-03 | hrights | 조회: 393 | 추천: 8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있는 겁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배심원들>에서 사상 첫 국민참여재판을 이끌게 된 부장판사(배우 문소리)는 법을 전혀 모르는 배심원들과의 첫 만남을 이 전복적인 대사로 시작한다. 법은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일반인의 상식을 뒤집는 이 대사는 영화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다. 이 멋진 말은 나중에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또 다른 대사와 만나고, 영화의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판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확신할 수 없을 때는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이 원칙은 아름답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자를 벌할 수는 없다”는 인권 우선의 전통에 확고히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이 아름다운 문장을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했다. 며칠 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의 판결문.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견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피고인의 이익”에 복무하기로 작심한 판사들은 권 의원의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직접 청탁을 받았다는 최흥집 강원랜드 사장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권 의원이 직접 청탁했는지 입증이 부족하다고 했고, 권 의원이 실제 최흥집 사장에게 채용 청탁을 했더라도(!), 당시 상당한 재량권을 행사하며 ‘알아서’ 점수 조작 등을 한 강원랜드 인사팀에 대한 업무방해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최 사장한테서 ‘감사원 감사를 신경써 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받고, 그 대가로 자신의 의원실에서 비서관으로 일했던 인사를 강원랜드 경력 직원으로 채용하게 한 혐의에 대해서도 “청탁은 있었지만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채용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모든 쟁점들에 대해 사실관계를 가리고 법리를 다툴 시간도 능력도 내겐 없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아름다운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은 권성동 같은 유력자들에게만 적용되는가.  멀리 갈 것 없이 채용 비리 사건만을 예로 들어보자. 내가 기억하기에 박근혜 정부 이후 채용 비리 사건에 연루된 자유한국당 인사는 네 명이다.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 권성동·염동열 의원, 김성태 전 원내대표가 그들이다.(이 사회의 진정한 주류 기득권으로서 자유한국당 인사들의 채용 비리는 일종의 관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대학생들 앞에서 아들의 채용비리 의혹을 셀프 제기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황 대표 아들의 케이티 입사 시점은 김성태 전 원내대표 딸의 정규직 입사 때와 같다.) 왼쪽부터 권성동, 김성태, 최경환, 염동열 의원 사진 출처 - 한겨레  자유한국당 인사들의 채용비리 사건에서 눈여겨 봐야할 공통점은, 채용을 청탁하거나 압박한 쪽은 한 명도 구속되지 않았지만, 청탁을 들어준 쪽은 예외 없이 모두 구속됐다는 점이다. 박철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최경환), 최흥집 강원랜드 사장(권성동·염동열), 이석채 케이티 회장·서유열 사장(김성태) 등이 모두 구속된 적이 있거나 구속된 상태다. 뇌물 사건의 경우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동시에 구속하거나 한 쪽만 구속할 경우 받은 사람만 구속하는 게 일반적인데(김정주 넥슨 회장 불구속, 진경준 검사장 구속), 이와 비교해 봐도 형평에 맞지 않는다. 최근 끝난 드라마 <국민 여러분!>이 정확히 묘사했듯이 현역 국회의원은 아무리 파렴치한 짓을 해도 끝까지 부인하고 감옥에 가지 않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일단 검찰부터 관대하다. 최경환, 권성동, 염동열 모두 불구속 기소했다. 김성태의 경우 <한겨레>가 딸의 케이티 특혜채용 기사를 처음 쓴 게 지난해 12월이었는데, 여섯 달 뒤인 지난주에야 비밀리에 소환조사를 했다고 한다. 검찰의 숱한 권력 중 하나가 바로 이 비공개 소환조사다. 누구를 망신 주고 누구를 숨겨줄지 오로지 검찰이 정한다.(최경환은 구속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데 최경환이 구속된 것은 채용 비리가 아니라 국정원 특활비 수수, 즉 뇌물 때문이다.)  권성동 1심 무죄는 예견된 것이었다. 최경환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 받았다. 특히 2심 판사는 직권남용죄와 강요죄 모두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산하기관에 채용을 요구한 행위가 국회의원의 일반적 직무에 해당하지 않아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했고, 강요죄에 대해서도 최경환이 중진공 이사장의 의사 결정의 자유를 방해했다고 보기 어려워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이현령비현령 논리다. 청탁을 받은 직원들이 업무 자율성이 있어서 업무 방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권성동 1심 재판부와 닮은 데가 많다. “피고인의 이익으로!”  최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됐다. 네 차례 집회에서 폭력 행위를 주도한 혐의라는데, 이미 구속된 민주노총 간부 3명 등과 함께 폭력 행위를 사전에 공모했다는 경찰의 주장이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신에 이를 만큼 입증이 되었는지 묻고 싶다. 물론 나는 집회에서의 폭력 행사에 반대한다. 물리적 충돌을 피하는 게 달라진 시대에 걸맞는 성숙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주노총 위원장이 폭력행사를 사전에 모의했다는 경찰 주장은 믿지 않는다. 그럴 만한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전에 모의했다면 여론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일 텐데, 그건 모든 언로가 막혀 있던 80년대에나 통하던 얘기다. 민주노총이 그런 저차원적인 전략을 갖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경찰과의 몸싸움 과정에서 화가 난 일부 참가자가 폭력을 휘둘렀거나 무리한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체로 집회에서의 폭력은 경찰과의 쌍방 폭행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찰은 관행대로 영장을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발부한 판사에게 묻고 싶다. 채용 비리와 집회에서의 폭력행사 중 어느 것이 더 위중한 범죄인가. 권력과 지위가 있는 자들이 인맥을 동원해 반칙을 일삼는 것만큼 반사회적인 범죄가 또 있을까. 숱한 젊은이들에게 사회에 대한 불신과 박탈감을 심어준 채용 비리보다, 국부적인 장소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와 경찰의 다툼이 사회를 더 불안하게 한다고 판사는 생각하는 것일까.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아름다운 원칙은 왜 권력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9-06-26 | hrights | 조회: 569 | 추천: 11
최낙영/ 인권연대 운영위원  황 전도사님, 제가 제1 야당 대표이신 분에게 이렇게 전도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례는 아니겠지요? 스스로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전도사임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얼마 전,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에서도 굽히지 않고 꼿꼿한 태도를 보이신 것만 봐도, 한 정당의 대표임에도 개신교 전도사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그 내면의 신앙이 얼마나 강건한 분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불자도, 무슬림도 아니고, 학창시절 잠시 교회를 다녀봤을 정도의 제가 전도사님께 감히 종교적인 문제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낱 필부인 제가 이 나라의 공안검사, 법무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 대행까지 지내신 분에게 무슨 국가 대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제가 전도사님께 이렇게 말씀을 올리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어렵게 금연에 성공한 사람이 다시 담배를 입에 댈 뻔했다는, 뭐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각설하고, 제 얘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악플러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주 작은, 그것도 개점휴업에 가까운 업장에서 일하고 있던 터라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나면 조용히 앉아 미래를 위한 공부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고백하건대, 당시 저는 이명박 관련 기사가 보일 때마다 그를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그 졸렬하고, 파렴치하며,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후안무치한, 천박한, 기만적인 등등의 수식어를 붙여야만 마땅한 행태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뭐가 그렇게 졸렬~기만 등등이었냐고 물으신다면, 저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이라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여러 모로 바쁘신 분이니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인터넷 기사에 처음 댓글을 달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그저 눈에 띄는 기사에 점잖게 한마디 붙이곤 했습니다. “어허 당신들이 그러면 안 되지, 인간이라면…” 정도의 수위였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잖아. 똑바로 해, 이놈들아!” 같은 말투가 되어갔습니다. 일과의 대부분을 인터넷 기사에 댓글 다는 일에 허비하게 되면서 저는 점점 감정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제 말투는 더욱 거칠어졌습니다. 나중에는 “야이, 개@@! 이런 씨%%%! 카악 퉤!” 같은 욕설 반, 배설 반인 댓글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지인 한 분이 저에게 ‘왜 그렇게 화가 많은 얼굴을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분노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제 자신을 보았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며칠 후, 저는 제가 쓴 댓글들을 하나하나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6개월 가까이 미친 듯이 써 붙인 댓글들을 하나하나 지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추천수가 많은 댓글을 지우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까운 것은 악플을 다는 시간과 그걸 지우는 시간, 제가 홀리듯이 허비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일 이후로 저는 맹세코, 단 한 번도 인터넷상에 댓글을 달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가 이명박 정권 초기였으니까 대략 10년 가까이 댓글을 달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이명박 대통령이 구속될 때에도 저는 댓글을 달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 로그인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어제 부산발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그만 애써 쌓아온 10년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질 뻔했습니다. … 특히 황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 임금과 관련해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기본가치는 옳지만, 형평에 맞지 않는 차별금지가 돼선 안 된다”며 “내국인은 국가에 세금을 내는 등 우리나라에 기여한 분들로, 이들을 위해 일정 임금을 유지하고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은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왔고 앞으로 다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  기사를 읽자마자 저도 모르게 로그인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댓글로 한마디 해야겠다고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기사에 댓글은 달지 않았지만 제가 다시 악플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2년 반 동안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온 다음 날 아침, 전날 입었던 점퍼 안에 담배 두 갑이 편의점 영수증과 함께 들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는 친구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황교안 전도사님,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제가 다시는 악플러가 되지 않도록, 더 이상 쓸데없는 일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비록 제가 아무 종교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전도사님께서는 분명 기도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것은 제가 기독교에 대해 거의 무지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신: 만약 댓글을 달았다면 어떤 내용이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형평, 차별, 노동, 임금 등의 이야기 끝에 결국 세금 이야기했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황교안 전도사님께서 만났던 전광훈 목사님은 종교인과세법에 의거 얼마나 세금을 내고 계신지 그에 따라 얼마나 ‘국민의 의무를 다해 왔고 앞으로 다할 것’인지…. 하마터면 욕설까지 섞어가며 악플을 달 뻔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최낙영 위원은 현재 도서출판 '밭' 주간으로 재직 중입니다.
2019-06-20 | hrights | 조회: 215 | 추천: 6
강국진/ 인권연대 운영위원  매우 자랑스럽게도, 나는 시사IN을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정기구독하고 있다. 시사IN을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책을 읽듯이 정독한다. 그동안 내가 읽은 시사IN이 최소 5만 쪽은 넘을 것이다. 그런 시사IN이 이번 주엔 처음으로 나를 실망시켰다. 난민 문제를 다룬 최신호 내용은 아주 훌륭했다. 인포그래픽도 정성이 느껴졌다. 하지만 인포그래픽에 실린 세계지도가 문제였다. 사할린을 일본 영토로 표시해 놨다. 북방 4개섬도 아니고 제주도보다 무려 30배 가량 큰 섬을 통째로 일본에 넘겨줬다.  지도를 통해 우리는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지도를 통해 우리는 세계를 더 넓게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론 지도가 우리의 인식을 왜곡시킨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는 딱 우리 인식만한 지도를 갖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지도에 집착한다. 신문이나 책에 실린 지도에서 조그만 착오라도 발견하면 무척이나 불편하다. 성의 없는 영토표기는 특히나 화가 난다.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드는 ‘이코노미 인사이트’라는 경제 월간지가 있다. 이 잡지를 5년 넘게 정기 구독하다가 끊었다. 이유는 단 하나. 상습적으로 엉터리 지도를 내놓는데 질렸기 때문이다. 특히 영토표기가 압권이다. 타이완 섬을 중국에 병합하는 대신 하이난 섬을 중국에서 떼어놓는 건 약과라고 할 수 있다. 하이난을 홍콩으로 둔갑시키기도 하고 사할린을 일본에 붙이기도 한다. 심지어 알레스카를 미국에서 분리독립시키는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브렉시트를 몇 년 앞서 예견했는지 북아일랜드를 영국 영토로 표기하지 않는 선견지명을 보여주기도 했다. 시칠리아와 사르데냐가 주인 없는 땅이 되는 건 놀랍지도 않다.  사실 지도 문제만 아니면 ‘이코노미 인사이트’를 지금도 계속 구독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겨레에서 일하는 지인들을 통해 ‘상냥하게’ 알려줬지만 달라지는게 없었다. 페이스북에 ‘준엄하게’ 비판도 해봤지만 감감 무소식. 결국 구독을 취소하는 것으로 내 소심한 지도사랑을 표현할 수밖에.  최근에는 지정학을 다룬 책을 읽다 기겁을 하기도 했다. 명색이 국제정치를 다룬 책이고 심지어 제목도 ‘지정학’인데 알래스카를 미국에서 분리 독립시켰다. 북극해에 있는 러시아와 캐나다 영토를 모조리 빼먹은 것까지 감안하면 저자는 국가체제를 부정하는 아나키스트가 아닐까 의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사할린을 일본에 넘겨준 걸 보니 서양을 싫어하는 것일까 싶다가도 하이난 섬을 베트남 영토로 표시해놓은 걸 보면 저자의 정치성향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시시때때로 지도를 들여다보며 지도에 집착하는 내 모습을 보고 어떤 언론계 선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도 오따꾸’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일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외국 정부 홈페이지를 뒤지며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자는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도 있는 마당에 “사할린은 일본 땅이 아니라 러시아 땅입니다”라고 하는게 크게 지나쳐 보이진 않는다. 사진 출처 - MBC  일본 언론에 실린 사진이 제주도를 중국 영토로 표기했다거나, 미국 언론에서 울릉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한 지도를 사용했을때 우리나라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역지사지야말로 인권의 기본원칙이라는데 동의한다면, 그리고 이제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 외국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는게 흔하게 됐다는 걸 고려한다면, 멀쩡한 나라를 분단시키거나 분리 독립시키는 행태는 자중해주길 바란다. 강국진 위원은 현재 서울신문사에 재직 중입니다.
2019-06-13 | hrights | 조회: 301 | 추천: 4
이찬수/ 인권연대 운영위원  정체성(identity)은 일정 기간 변하지 않고 지속된다고 여겨지는 자신만의 지속적이고 고유한 성질이다. 나를 나 되게 해준다고 여겨지는 어떤 정신적 특성이다. 정체성은 본래 타자와 지속적으로 공유하며 형성되는 가변적인 것이지만, ‘이것이 나의 정체성’이라고 규정된 이후에는 변화 보다는 유지와 강화를 위한 투자를 더 한다.  정체성을 형성하고 강화시키는 배후의 하나가 종교다. 브루스 링컨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종교에는 내적 신앙과 관련한 담론, 의례와 관련한 실천 행위, 담론과 행위에 공감하는 이들의 공동체, 공동체를 제어하는 제도의 네 영역이 있다. 이들 네 영역이 중층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각 영역을 변화 또는 강화시켜나간다.  이 때 중요한 영역은 ‘내적 신앙과 관련한 담론’이다. 종교학적으로 ‘신앙’은 현실 너머 혹은 근원을 상상하며 추구할 줄 아는 인간의 내적 능력을 일컫는 말이지만, 그 내적 능력이 언어와 같은 외적 표현과 단순 동일시되면서, 내적 역동성은 사라지고 경직된 언어만 남는 경우가 많다. 언어화된 교리나 도그마들이 내적 신앙의 모든 것인 양 획일화하면서 다른 표현들에 대해서는 배타하는 흐름도 형성된다.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표현할 줄 아는 인간의 내적 능력은 쇠퇴하고, 외적 형식이 지배하는 일방적 사태가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곤 한다. 내적 신앙이 폭력적으로 외화하지 않도록 하는 종교 교육과 훈련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앙의 표현 방식에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3,28) 인종이나 민족차별, 계급차별, 성차별을 당연시하던 시절에 나온 혁명적인 선언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서, 인류는 본래 하나이니 민족, 성, 계급에 차별을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모두 하나’라는 근본적인 사실이 이 문장의 핵심인 것이다. 그렇다면 차별받는 사람을 도리어 포용하면서 사회적 죄인에게서 무죄를 선언했던 예수의 삶과 사상을 새롭게 본 뒤 자신의 삶과 세계관도 예수처럼 변화되었을 때, 그 때가 내적 신앙의 올바른 기독교적 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모두가 하나’라는 원천적 사실, 따라서 계급, 인종, 성별에 따른 차별은 있을 수 없다는 근본적 실천은 외면하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예수라는 말을 모르거나 쓰지 않는 사람은 자기들과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차별한다. 자신만의 경계를 세우고, 자신과 종교적 표현 방식이 다른 사람은 자기들이 세운 경계 밖으로 몰아낸다. 종교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차별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그렇게 정당화하면서 자신의 얄팍한 종교적 정체성도 강화시켜나간다. ‘모두 하나’라는 혁명적 선언은 사라지고, 타자에 대한 배타성을 동력으로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 및 강화시켜 나가는 현실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뿐이던가. ‘하나님은 한 분’이라면서 사실상 그 하나님을 다신교적 최고신처럼 만들어놓는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불교의 부처님이나 이슬람의 알라보다 우월하다는 정서에 휘둘린다. ‘하나’라는 말의 속뜻을 새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신이 하나’라는 말은 사실상 ‘신이 모든 것’이라는 뜻이다. 신은 있지 않은 곳이 없다는, 즉 무소부재하다는 뜻이다. 벽돌 건물로 만든 예배당 밖에는 신이 없다는 말인가. 불교는 신이 없는 허무한 공간이라는 말인가. 내 안에만 신이 있고, 네 안에는 없다는 말인가. 내적 신앙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데도 합리적이고 건강한 훈련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미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부처님오신날 한 사찰의 봉축법요식에 초청받아 참석하고는 법회 중 수도 없이 했어야 했을 합장 한 번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자, 결국 자유한국당 내부 방송에 출연해 “미숙하고 잘 몰라서 그랬다”며 불교계에 사과했다. “불교 등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이에 따른 행동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표’를 의식해서 그랬던 뭐든, 그저 버티던 지난 며칠간의 태도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과란 무엇이던가. 사과란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빈 뒤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거나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은 정도로 변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황 대표가 정말 자신의 행동을 잘못이라고 생각했을지는 여전히 의심스럽다.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계를 정말 존중할 줄 아는 태도가 갖추어져 있는지 그동안 황 대표가 보여준 바가 없기 때문이다.  사과의 진정성은 황 대표의 종교관, 신앙관이 성숙해질 때 확보된다. 그의 신앙관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는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오늘의 표현대로 하자면 한국인도 이슬람계 외국인 노동자도,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따로 없이, 모두가 귀하다는 사실을 마음으로부터 깨닫고, 실제로 차별 없이,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대할 줄 알 때 입증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변화가 과연 가능할지는 물론 대단히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 대표가 야당 원외 대표에서 그 다음 단계로 나가고 싶으면, 이제부터라도 정말 자신과 다른 이, 특히 다른 종교인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 존중할 줄 아는 훈련을 해야 한다. 변절한 것 아니냐며 욕먹을 각오로 자신의 경직된 종교적 정체성을 바꿔나가야 한다. 황 대표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렇지 못한 채 개인의 정치적 야망만을 따른다면, 기독교계는 물론 한국 사회 모두에 불행한 사태로 이어질 것이다. 오랫동안 신학과 불교학을 공부하고 이제는 평화학의 길에 들어선 이의 진심어린 조언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민중의 소리>에도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이찬수 위원은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2019-06-05 | hrights | 조회: 331 | 추천: 11
이지상/ 인권연대 운영위원  매화꽃 좋은데 뭐 하냐고 남쪽에서 전화가 왔더랬다. 내가 사는 동네의 언덕바리에 잔설이 녹지 않았을 때였다. 꼭 한번 다녀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냥 말만 그렇게 전했었다. 벚꽃 천지라고 전화가 온 적도 있었다. 벚꽃은 우리 동네에도 많으니 이만하면 여기도 봐 줄만은 하다고 답을 드렸었다. 그 뒤로는 꽃이 좋다고 연락이 온 적은 없다. 그래도 꽃은 알아서 다 피었다. 진달래 개나리가 피더니 간간히 라일락 향기가 풍기고 조팝 이팝 뿌리다가 이제는 아카시아와 장미다. 누구의 감시나 통제를 받았다거나 혹은 누구의 사주를 받은 흔적은 전혀 없다. 다 알아서 피고 알아서 진다.  대개 뿌리가 있는 것들은 다 그렇게 알아서 산다. 꽃필 철이 되면 한껏 부풀어 올랐다가 제 자랑 실컷 해놓고는 때가 되면 조용히 사라진다. 누가 더 이쁘게 봐준다고 기를 쓰고 오래 핀 적도 없고 누구의 손가락질에 실망해서 먼저 진적도 없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산다. 누구도 그런 존재를 속칭 “독꼬다이”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편의 찬사가 계절마다 쏟아진다.  주지하다시피 노래의 생명력은 대중들의 입을 타면서 유지된다. 그 귀한 자양분을 확보하는 통로를 모르는 가수는 없다. 그러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시대적 사고를 노래로 풀어 내는데만 급급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대중이라는 막연한 존재에 노래의 생존을 맡길 생각은 하지 않고, 대중의 기호를 고려할 용량을 확대시킬 의사도 없이 그저 아픈 일만 생기면 달려가 노래를 한다. 하찮은 위로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심정으로 부르는 그들의 노래는 험한 일을 당해 생사의 귀로에 선 사람들의 가슴에 뿌리를 내려 가끔은 꽃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찾는 노래의 길은 일반적인 대중문화가 닦아놓은 길과는 달라서 들려오는 노래나 듣는 “아무나” 대중들이 알 길은 없다. 적어도 이들의 노래를 알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의 품을 들여야 한다. 아무데서나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회에 나가 서툰 구호라도 함께 외쳐야 할 때도 있지만 시민단체의 행사에 얼굴을 디밀거나 아니면 아주 작은 소규모 공연에 후원금이라도 챙겨가야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런 노래를 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이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 할 때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흔히 생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시장(市場)을 형성하지도 못한 채 시장의 주변이나 헛도는 부류들로 치부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의 노래는 시장으로부터 소외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시장을 소외시킨 것이다. 지금은 존재조차 희미한 소위 “민중가요”에 관한 이야기다.  한때 민중가요는 부당한 정치권력과 탐욕스런 자본권력에 대항하는 몇 안 되는 문화적 수단이었다. 민중가요의 전성기는 스멀스멀 어둠의 기운이 사람들의 오감을 마비시키고 지배자의 손끝 하나에 수천수만의 밥줄이 오락가락 했던 반민주적 작태의 시기였다. 물론 시대에 대한 관심이 전무하거나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던 “아무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다. 어진 의사가 아픈 환자를 치유하며 아파하듯이. 정의로운 검찰이나 경찰이 불의한 범죄자를 잡아들이며 분노하듯이 –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는 전제로 - 민중가요 속에는 불의한 역사와 아픈 시대를 살았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이명박근혜 시대의 국정농단에 생떼 같은 세월호의 안타까운 목숨까지, 참담했던 그 시절의 반민주적 행태가 쌓이고 쌓여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숱한 분노가 있었다. 그때의 촛불은 화려했다.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서면 200만 명이 넘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고 그 흔한 전깃불 하나 없어도 200만개의 촛불만 있으면 어떤 어둠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그때 얻었다. 촛불혁명이라 불리는 그때의 현장에도 민중가요가 있었다. 광화문 앞에 대형무대가 세워졌고 매주 격정적인 공연이 열렸다. 다만 그 곳에서 민중가요가 울려 퍼진 적은 별로 없었다. 그 무대는 이름만 대면 “아무나” 알 수 있는 가수들과 그 “아무나” 아는 노래를 좋아했던 대중들의 특별한 교감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청계천이나 세월호 농성장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 등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민중가요가 불려 졌고 촛불과 함께 분노하고 환호하고 위로 받았다. 사진 출처 - 한겨레  한때 등잔불이 귀했던 시기가 있었다. 전기불이 들어오면서부터 등잔은 꺼졌다. 등잔의 기름 냄새와 하롱하롱 흔들리던 불빛은 이제 추억의 한 자락으로도 자리하지 못한 채 속담에서나 가끔 언급될 만큼 골동품이 되었다. 촛불이 꺼진지도 2년이 지났다. 어두운 시대 촛불이었다고 자부했던 그 노래들도 점점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목소리도 가끔 들린다. 필요할 때 찾다가 필요 없을 때 치워버리는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터이다. 그러나 민중가요가 시장으로부터 소외된 것이 아니라 시장을 소외시킨 주체였다고 믿는 것처럼 소위 “아무나” 알 수 없는 민중가요는 삶의 고통을 안고 사는 “아무나”가 아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지속적으로 생산될 것이다. 흔한 대중들이 읊어대는 “독꼬다이” 인생 이라는 비아냥거림도 훈장으로 여기는 민중가수들도 여전히 노래를 부를 것이다.  동백꽃이 언제 피었었던가 기억하기는 쉽지 않지만 사라졌어도 사라지지 않는 동백이 다시 꽃피울 날을 기약하는 것처럼, 알아서 피고 알아서 지고 또 다시 꽃피우는 뿌리 있는 생물의 일생처럼 소위 “아무나” 대중들과 무관하게 철저한 자신만의 대지 위에 뿌리 내릴 것이다. 적어도 양복 손에 들고 흔들면서 흔들면 흔들리는 존재라는 하찮은 인생의 넋두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지상 위원은 현재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 중입니다.
2019-05-30 | hrights | 조회: 390 | 추천: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