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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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황문규 /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최근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정부의 권력기관 개편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상당히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에서 언급된 “허망한 생각”에 이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성취’가 있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검찰국가의 탄생〉의 저자 이춘재가 제기한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에 진심이었나?’라는 질문에 수긍하는 면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검찰을 넘어 경찰, 국정원 등의 개혁에서도 과연 ‘진심’이 있었을까라는 의문도 들기 때문이다. 출처 - MBC뉴스   우선 경찰의 경우를 살펴보자. 검경수사권조정에 따라 확대·강화된 경찰권 통제방안으로 수사경찰에 대한 행정경찰의 관여를 차단하고자 국가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경찰의 개별 사건 수사에 대한 경찰청장의 구체적 지휘·감독권을 제한하는 정도에 불과하고, 수사지휘의 가장 기초가 되는 ‘수사보고’는 원칙적으로 금지 또는 제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경찰청장은 수사보고를 통해 간접적인 수사지휘가 가능하고, 인사·조직·예산 등을 통해 국가수사본부를 장악할 수 있다. 게다가 경찰청장 이외 시도경찰청장, 경찰서장 등 행정경찰의 수사관여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국가수사본부를 통해 수사경찰에 대한 경찰관서장의 (부당한) 개입을 차단한다는 당초 취지가 퇴색된 반면, 종래 치안감급 수사국장이 치안정감급 국가수사본부장으로 한 단계 격상되는 등 경찰조직이 확대되었다. 상명하복의 원칙이 강하게 작용하는 (수사)경찰조직의 국가수사본부장이 경찰수사권을 특정 정치이념이나 정치집단의 영향력에 따라 편파적으로 행사하는 등 궤도를 일탈할 경우의 폐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검경수사권조정의 반대편에서는 수사-기소분리에 이르지 못한채 ‘적당히 검경을 고려한 타협의 산물’에 머물러 검찰권을 견제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정권 말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른바 검수완박을 부랴부랴 추진한 배경이다. 법을 집행할 행정부가 공감하지 않는 입법의 결과는 현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대로다.   지역실정에 맞는 치안서비스 제공과 경찰권의 지역적 분산을 도모한 자치경찰제는 국가경찰사무와 구분되는 생활안전・여성보호・교통 등 자치경찰사무만을 구분해놓고 이를 관장하는 자치경찰위원회를 설치해놓았을 뿐이다. 경찰법에서는 자치경찰위원회에 자치경찰사무와 관련하여 시도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감독권과 자치경찰사무를 담당하는 경찰에 대한 인사권 등을 부여하고 있다. 겉으로는 ‘과도한 권한’을 보유한 기관이어서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올 정도이지만, 실상은 ‘대서방’에 불과할 정도로 유명무실하다. 오히려 자치경찰위원회는 부족한 (국가)경찰예산을 지자체에서 확보·조달해주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경찰은 자치경찰제 시행을 계기로 전국 시도경찰청에 17개 경무관급 자치경찰부장을, 자치경찰위원회에 전국적으로 17개 총경 직급을 신설하였다. 자치경찰제가 경찰권을 분산한 것이 아니라 탄탄한 경찰관료권력으로 성장하는데 일조한 셈이다.   2022년 1월에는 경찰관직무집행법이 개정되어 살인 또는 상해·폭행의 죄, 아동학대범죄 등으로 타인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 발생의 우려가 명백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경찰관이 그 위해를 예방·진압하는 등의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일정한 요건 하에 경찰관의 직무수행에 대한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해주고 있다. 경찰청 인권위원회에서조차 면책 조항이 신설되면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 사용에 따른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속도감있게 법개정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최근 경찰청장이 캡사이신을 활용한 집회 해산 등 (불법)집회·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 방침과 더불어 진압 과정에서의 문제에 대해 ‘적극 면책’을 자신감있게 약속한 배경이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해 행안부 경찰국 설치 논란이 있었을 때, 일선 경찰은 경찰의 중립성 훼손을 우려하면서 국가경찰위원회의 역할 및 위상을 강화하는 실질화를 도모했다. (국가)경찰위원회의 실질화 방안은 이미 2017년 11월에도 제시되었다. 국무총리 소속 경찰위원회가 총경 이상의 승진 인사 및 경무관 이상의 보직 인사에 대해 경찰청장이 제출한 인사안의 심의・의결 및 제청권을 행사한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러한 실질화 방안도 경찰청이 요구한 인사안 등을 경찰위원회가 수동적으로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에 불과하여, 대서방 수준의 자치경찰위원회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지난 정부와 국회는 이마저도 내팽개치고, ‘국가’라는 글자만 추가하여 ‘국가경찰위원회’로 명칭만을 변경했다. 실질화는 없고 “경찰이 언제부터 중립을 지켰죠?”(2022. 8. 5.자 한겨레)라는 질문만 남겼다. 정작 중립성 훼손 우려를 야기했던 행안부 경찰국은 “그럼 행안부가 아닌 청와대가 통제하면 되느냐”(2022. 7. 1.자 중앙일보)는 반문으로 당당하게 출범하였다.   누구나 알 만한 최근 5년 사이 벌어진 (경찰)개혁을 둘러싼 파노라마적 장면들이다. 경찰의 확대로 귀결되었다. 여기서 잠깐 개혁에 대한 집권자의 진심 여부를 떠나 과연 경찰 등 권력기관은 민주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가, 아니 중립적일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보자.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는 선출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권의 철학에 맞춰 법을 집행하면서 행정력을 발휘한다. 그 책임은 (대통령·국회의원 등) 선거로 진다. 대통령의 국정방침에 맞추는 이른바 ‘코드 맞추기’를 한쪽 면에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2015년 11월 14일 발생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의 사인규명 및 책임자 사과에 대해 ‘나 몰라라’하던 당시 경찰은 새 정부가 출범하자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또 달라진 새 정부에서는 경찰의 집회 대응에 다시 ‘강경 대응, 캡사이신, 곤봉’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또 달라졌다. 권력에 따라 춤춘다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중립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그래서 민주적 통제 장치가 필요한 것 아니냐고 주창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다음 장면이 말해준다. 2022년 5월 10일 출범한 새 정부는 같은달 24일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 계급인 치안정감 7명 중 5명을 대거 교체하면서 2021년 12월에 승진한 윤희근 치안감을 치안정감으로 승진시켰다. 윤희근 치안정감은 이후 2022년 6월 21일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 및 그에 대한 책임으로 6월 27일 김창룡 경찰청장 사퇴, 그리고 8월 1일 행안부 경찰국 출범의 과정을 거쳐 8월 10일 경찰청장으로 임명됐다. 새 정부에 코드를 맞출 인물을 찾기 위해 한편으론 과격한, 다른 한편으론 과감한 인사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수뇌부의 정치적 중립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현장 경찰에게 (특별)승진의 당근이 이례적으로 과감하게 주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민주적 통제 장치가 작동하기 어려운 한계를 의미한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역사적 평가 또는 재근대화? 솔직하고 전략적인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2023-06-20 | hrights | 조회: 433 | 추천: 9
김희교 / 광운대학교 동북아문화산업학부 교수   윤석렬 대통령이 대만의 문제가 곧 북한의 문제이자 세계의 문제라고 발언하던 날 저녁, 다시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을 틀었다. 정부가 위기의 한 복판으로 자발적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시점에 역사 속으로 들어가서라도 뭔가 혜안을 찾고 싶었다. 역사는 공시성만큼이나 통시성이 존재한다. 그 때 그 일이 지금 일어날 리는 없지만 이 위기를 우리 힘으로 넘길 수 있을 수 있는 한 올의 실마리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중   지금의 위기는 병자호란 시기와 유사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국면적 위기가 아니라 체제적 위기란 점에서 그렇다. 조선에게 명·청 교체기는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었다. 지배계층의 세계관이었던 사대주의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중화의식의 위기이자 중화체제의 위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가 흔들리고 있고, 한국 주류의 반공·친미주의가 근본적으로 도전받는 시기이다.   떠오르는 세력들을 적대화하고 기존의 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주전파들이 득세하고 있는 점도 그 때와 유사하다. 그때의 주전파들과 지금의 한미일 삼각 동맹파 들은 공통점이 있다. 저무는 세력의 힘을 신성화하거나 과대평가한다. 그들을 따르는 것이 곧 대의라는 주장도 비슷하다. 대의를 위해서는 국익을 희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도 마찬가지이다. 떠오르는 세력과 대화나 타협보다 싸워 이기는 것이 미래를 위하는 길이라는 주장도 매우 유사하다.   지금의 미국의 지위는 그때 명나라의 지위와 유사하다. 미국은 이제 전 세계 GDP의 겨우 25%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패권을 장악하던 시기의 반 정도에도 못 미친다. 올해 예상 경제성장율은 1% 대이다. 이미 구매력기준 실질 GDP는 중국에 뒤졌다. 그들의 핵심 동맹국인 G7을 다 합쳐도 44%에 그친다. 세를 불리고 있는 브릭스(BRICS)에게도 뒤진다. 미국은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동맹국을 동원한다. 그러나 동맹국의 국익을 보전해 줄 여력이 없다. 그러니 핵심동맹국들은 더 이상 미국의 속국이 아님을 선포하고 있다.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중국과 디커플링에 동참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독일이 그렇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의사와 상관없이 미국의 적국인 이란과 손잡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은 것은 또 있다. 대의니 명분과 같은 가치를 떠드는 자들은 백성들의 생명권이나 민생문제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남한산성에 살던 대장장이 날쇠에게는 “전하와 사대부들이 청을 섬기든 명을 섬기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가 아끼는 동생을 살릴 수 있으면 되고,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거두어 겨울을 배곯지 않고 날 수 있는 세상”이면 된다. 미국 편에 서서 일본과 협력하여 중국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외치는 지금 정부의 이념 놀음에는 날쇠의 삶에 대한 걱정이 없다. 지속되는 무역적자에도, 언제 일어나도 이상할 리 없는 전쟁의 위기에도 관심이 없다. 그들의 1970년대 식 이념놀음에 지금 국민들은 남한산성의 갇힌 대장장이 날쇠 꼴이 되어있다.   하기사 이들이 이럴 줄 몰랐던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중국을 적대화하는 신냉전 세력이 단숨에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제도적 민주주의 승리를 만끽하고 있는 와중에도 반공·친미주의는 본질적으로 해체되지 않은 채 대물림되고 있었다. 1970년대 친미반공국가로 회귀하고자 하는 세력들은 꽤 오랜 기간 그들의 시대로 회귀하고자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무시하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다.   추락하는 시대에는 추락한 엘리트들과 몽매한 시민들이 있다. 그것이 독일에서 나치의 등장을 연구한 일상생활사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독일의 평범한 시민들도 나치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침묵하거나 방관했던 결과가 나치의 시대를 열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위기를 대통령만 탄핵하면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런 대통령을 뽑은 사람들이 건재하고 있다. 그런 대통령이 섬기는 미국이 좋다는 사람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순간에 다시 1970년대로 회귀하는 이유 중에는 그런 회귀의 시대를 준비하지 못한 시민들의 안일함이 숨어있었음을 이제 인정해야 한다.   주전파 김상헌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책임을 지고 자결을 택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세상이란 임금과 같은 낡은 것들이 사라지고, 주전파나 주화파가 필요 없는,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었다. 다행히 수백 년이 흘러 이 땅에서 임금은 사라졌다. 전제군주제는 무너지고 공화제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김상헌이 말한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공화제는 그저 1차 층위의 민주주의를 가져다 준 민주주의의 한 부문일 뿐이다. 2차 층위의 주권의 민주주의, 3차 층위의 국가간 평등이라는 민주주의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여전히 우리 주권의 절반쯤은 남에게 맡겨져 있다. 남의 전쟁에 뛰어들라고 하면 뛰어 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처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의식이다. 그런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세력을 쥐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설파한 것처럼 의식은 제도를 초월해서 유전된다. 의식은 의식대로 청산되고 다시 형성되어야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근대의 꿈을 상실했다. 온전한 주권국가에서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 우리 민족의 근대의 꿈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핵을 느끼기 위해서 미국에게 주권을 가져다 바치는 전근대인들이 우리의 주권을 대변하고 있는데도 우리의 일상은 생각보다 평온하다. 수많은 청년들은 소비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마치 더 나은 세상은 필요 없다는 듯 살고 있다. 역사상 가장 보수화된 20대가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말을 맞은 것처럼 등장했다. 다수의 노년들은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전쟁이 북한과 중국을 적대화하기만 하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살고 있다.   또 다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는가? 병자호란 때도, 조선말에도, 한국 전쟁이 끝나고도 한국 민중은 한 번도 제대로 그들의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 동학 농민들의 꿈은 일제와 썩어빠진 지식인들의 야합에 짓밟혔다. 우리는 그렇게 여전히 타율적 역사 속을 걸어오고 있다.   그러나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 위기만 온 것은 아니다. 다시 기회가 왔다. 지금 우리는 우리 힘으로 우리 역사를 만들 힘이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냉전 세력에 편승하여 역사를 거꾸로 걷지 않아도 정치경제적 힘이 있다. 세계정세도 우리의 근대의 꿈을 실현하기에 나쁘지 않다. ‘글로벌사우스’가 G7에 버금가는 힘을 가져 나가고 있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지만 미국의 패권을 대신하여 미국식 패권시대를 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자주의 시대도 열리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만들어 구획지어 주는 대로 살아야 했던 그 때와 다르다.   무엇부터 할 것인가. 이미 이 정부가 우리의 근대의 꿈을 이루어주길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우리 힘으로 날쇠의 시대를 열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일상부터 변혁해야 한다. 지금 여기는 시대의 길을 터야 할 이 땅의 엘리트들마저 일상에 매몰되어 있다. 위기를 말하는 언론인이 없고, 길을 제시하는 교수가 없으며, 새 길을 열고 자 노력하는 정치가가 없다. 중요한 시대마다 나태한 엘리트들에게 길을 열라고 경종을 울려왔던 청년들은 일상에 빠져있다. 소비자의 정체성을 가진 채 아르바이트에 목 매달고 반지성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큰 싸움이 전개되는 지금, 우리는 남한산성에 갇혀있다.   좀 더 많은 근대의 꿈에 매달리는 시민이 등장하지 않는 한 다시 타율적 역사를 걸을 수 있는 시기이다. 세 번 절하고 절할 때마다 세 번 머리를 땅이 울리도록 조아리고 있는 지도자가 두 번 다시는 나와서는 안된다. 윤동주의 시를 빌리면 시대가 살기 어렵다는 데 일상이 이렇게 쉽게 살아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오늘부터 나부터라도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며” 다시 참회록을 써야겠다.  
2023-06-12 | hrights | 조회: 1031 | 추천: 14
서보학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5월 8일 국회에서는 국가폭력범죄의 공소시효 배제 입법화를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주최는 고 최종길 서울법대 교수 50주기 추모위원회였고 필자는 토론자로 참여하였다. 고 최종길 교수는 1973년 박정희 유신정권에 항의하는 학생들 편에 섰다가 중앙정보부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목숨을 잃었다. 30년이 지난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최 교수가 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지만 당시 고문과 살인에 관여했던 중앙정보부 및 검찰 관계자들은 15년의 공소시효가 지나 아무도 형사처벌을 할 수가 없었다. 당시 한상범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 및 생명 침해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폭력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법률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권고하였고, 이후 수차례 국가 폭력범죄의 공소시효 배제를 위한 입법안이 제출되었지만 아직까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출처 - 미디어오늘   공소시효제도는 행위가 종료된 형사범죄에 대해 검사가 법에 정해진 일정 기간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 시효기간의 경과와 함께 국가의 소추권이 소멸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공소시효제도는 “시간의 경과가 상처를 치료해 준다”라는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어떤 범죄행위가 오랜 시간 동안 소추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면 범죄행위로 초래된 법질서의 파괴가 이미 상당 부분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범죄자 자신도 형벌에 상응하는 고통을 충분히 받았기 때문에 다시 범죄자를 처벌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형벌필요성의 감소ㆍ탈락). 나아가 오랜 시간의 경과로 증거가 멸실되어 실체적 진실발견이 용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진실발견의 어려움과 오판의 가능성), 한정된 인적ㆍ물적 자원으로 끊임없이 증가하는 사회의 범죄현상에 대처해야 하는 형사사법기관으로서는 묵은 사건은 털어버리고 새로운 사건 해결에 전념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있는 것(형사사법의 경제성 측면)도 공소시효제도를 필요로하는 이유이다.   반면 공소시효제도는 단지 시간이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생명ㆍ인권ㆍ자유ㆍ성적 존엄성ㆍ재산을 침해한 범죄인들을 오히려 정당한 형사처벌로부터 보호하는 결과를 초래해 정의의 요구에 반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 사실이다. ’법은 정의에 봉사하는 법이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법철학적 명제가 지켜지지 않을 때 국민들은 법제도를 불신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공소시효제도가 배제되는 범죄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1995년 제정된 ’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은 형법의 내란죄ㆍ외환죄, 군형법의 반란죄ㆍ이적죄, 국제법이 규정하는 집단살해죄 등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였다.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은 강간등 살인ㆍ치사죄 및 아동ㆍ청소년에 대한 강간ㆍ강제추행 등의 죄에 대해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2015년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였다(속칭 태완이법).   이미 여러 국제법은 소위 반인도적 범죄들에 대해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예컨대 1968년 UN총회에서 채택된 ’전쟁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제정법상의 시효의 부적용에 관한 협약’은 전쟁범죄, 무력공격과 점령에 의한 추방, 인종차별정책으로 인한 반인도적 행위, 집단살해범죄 등에 대해 어떠한 제정법상의 시효규정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은 집단살해를 국제적 범죄라고 규정하고 행위자는 신분과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처벌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51년 이 협약에 가입했다. 1998년 로마회의에서 마련된 ‘국제상설형사재판소를 위한 규정’은 살인, 절멸, 노예화, 강제이주, 국제법의 근본원칙에 위반되는 구금이나 심각한 신체자유의 박탈, 고문, 강간, 성노예화, 강제된 매춘과 임신, 단종, 기타 신체에 심대한 고통을 주기 위해 고의로 범해지는 비인도적 행위 등을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하고, 이러한 범죄가 “국가 또는 조직적 정책에 수반하여 또는 그 연장선에서” 범해졌을 경우 공소시효가 배제됨을 명문화 하였다. 이러한 국제법 규정들은 전쟁범죄ㆍ반인도적범죄ㆍ집단살해범죄들에 대해서는 시간의 경과로 면죄부를 부여하지 않고 범행 후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에 상관없이 반드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 정의의 원칙이나 인류의 보편적인 법감정에 비추어 보아 타당한 것이라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본고에서 문제 삼고 있는 국가공권력에 의한 폭력범죄에 대해서는 아직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입법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컨대 국가공권력에 의한 불법체포ㆍ감금, 상해, 폭행(고문ㆍ성고문), 공갈ㆍ협박을 통한 자백 강요, 사건 조작, 증거 위조, 물리력을 동원한 과도한 집회ㆍ시위 진압, 공안기관의 사찰ㆍ감시, 민간시설에의 불법수용을 부당하게 묵인하거나 방조하는 경우 등 국제법상의 반인도적 범죄에 포함시킬 수는 없지만 시민의 자유ㆍ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국가폭력범죄는 국가권력 자체 또는 국가권력의 용인하에 저질러지고, 국가기관에 의해 그 진실이 조작ㆍ은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범죄를 실효적으로 예방ㆍ처벌하기 위해서는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하는 입법조치를 마땅히 취해야 한다. 판사ㆍ검사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법왜곡 행위(수사ㆍ기소권 및 재판권을 남용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법왜곡죄를 신설해야 하고 이 범죄에 대해서도 당연히 공소시효는 배제되어야 한다. 과거 군사독재ㆍ권위주의 정부하에서 무수히 많은 시민들을 억울하게 옥살이 시켜 인생을 파탄에 이르게 한 판사ㆍ검사ㆍ공안기관원들이 단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받는 현실은 많은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지 않았던가. 우리사회의 민주화가 상당한 정도로 진척되었다고 믿었던 2013년에도 국정원ㆍ검찰에 의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에 대한 간첩조작 사건이 버젓이 벌어졌다. 윤석열 정부에서 노동자단체를 범죄집단과 동일시 하고 여러 방면에서 공안기관에 의한 대대적인 간첩색출 작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매우 불길한 기시감을 들게 한다.   여당이 압도적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폭력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쉽고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ㆍ인권 정치세력이 다시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여 이 문제에 대한 입법을 완성해 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2023-06-07 | hrights | 조회: 329 | 추천: 4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일일초는 기후와 지리가 맞는 곳이면 세계 어디서나 잘 자라는 귀화종 다년생 식물이다. 매일 꽃이 한 송이씩 번갈아 가며 계속 핀다고 해서 한국에서는 ‘일일초(日日草)’, 일본에서는 ‘니치니치소우(日々草, ニチニチソウ)’, 중국에서는 ‘장춘화(長春花)’라고 불린다. 보통 다섯 개의 작은 꽃잎으로 되어 있는데, 꽃잎이 짙은 핑크색을 내는 품종은 꽃의 심이 하얗고 꽃잎이 하얀 경우는 반대로 한가운데가 붉다. 현재는 다양한 품종 개량을 거쳐 100여 종이 번성하고 있다. ‘마다가스카르 핑크’, ‘퍼시픽 펀치’, ‘사하라의 광기 어린 밝은 눈’, ‘사하라 화이트’, ‘트로피카나 블러쉬’처럼 개량종에는 하나같이 이국적인 이름이 붙어 있다. 나 같은 초심자도 씨앗부터 심어 꽃을 피워본 적이 있을 정도로 가드닝 초보자도 쉽게 키울 수 있는 화초이기에 신기할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일일초의 자연사는 다양한 생태계에 적응하며 전 지구적 분포를 이루는 데 ‘성공한’ 식물의 특별한 역사를 보여준다. 식물이 먼 거리를 이동하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일은 오랜 세월에 거쳐 천천히 일어난다. 이동성이 활발하지 않은 식물에 적극적 이동성을 부여하는 건 동물과 인간의 몫이다. 따라서 식물의 분포와 식생에는 인간이 개입한 흔적이 짙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이국식물 열풍 속에서 일일초가 이뤄낸 세계 일주의 배경에는 유럽의 원예와 과학, 그리고 식물 제국주의 기획이 있었다. 마다가스카르 원산의 일일초는 유럽에 전해졌을 때 비슷한 토착식물의 이름을 따라 빙카(vinca) 혹은 페리윙클(periwinkle)이라고 불렸다. 유럽 여러 도시의 온실과 식물원에서 재배에 성공하면서 귀화식물로 정착했다. 일일초에 대한 유럽 측의 첫 기록은 1658년에 등장한다. 1648~1655년 동안 프랑스 동인도회사의 마다가스카르 식민지 총독으로 재임한 에티엔 드 플라쿠르(Etienne de Flacourt)는 일일초에 대해 비누풀이나 자스민과 비슷하고,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심장병 치료에 사용한다고 썼다. 프랑스 동인도회사(La Compagnie Française des Indes Orientales)는 1604년에 설립되어 1664년 장 밥티스트 콜베르에 의한 재편을 거치면서 인도 동해안의 찬데르나고르, 퐁디세리를 근거지로 인도양에서 세력을 확대했으나 인도 플라시 전투에서 영국에 패배하고 1769년에 해산했다. 마다가스카르 총독 플라쿠르에 의해 프랑스에 알려진 이후 일일초는 처음엔 이국적 표본으로, 다음엔 종자나 살아있는 식물의 형태로 유럽에 수입되기 시작했고 호기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18세기 초 영국 식물학자 리처드 브래들리(Richard Bradley)는 이 이국 식물은 잉글랜드의 토착종이나 이미 귀화한 외국 식물과도 다르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썼다. 영국 작가 존 에블린(John Evelyn)도 『정원사의 알마냑(Kalendarium Hortense, or gardener's almanac)』(1706)에서 정원사는 “연약하고, 희귀하고, 이국적이고, 비싼” 식물에 관심을 보이는 게 당연하다며 그 예로 일일초를 들었다. 린네는 1759년 유럽에 이미 있던 빙카와 페리윙클을 참고해 일일초의 학명을 ‘빙카 로지아(vinca rosea)’라고 지었다. 1838년 영국 식물학자 조지 돈(George Don)이 ‘카타란서스 로지우스(Catharanthus roseus)’라고 다시 학명을 붙였지만, 지금도 린네의 학명이 더 널리 통용된다.   화려하진 않지만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이 키 작은 화초는 프랑스 베르사유 정원을 장식한 적도 있었다. 베르사유 궁전과 그 별궁 그랑 트리아농과 쁘띠 트리아농의 정원에서 처음으로 파종과 재배에 성공해 꽃을 피웠다. 영국에서는 필립 밀러(Philip Miller)가 처음 재배에 성공했다. 베르사유에서 일일초 종자를 런던 첼시약용식물원(Chelsea Physic Garden)으로 보냈고, 그곳 원예사 밀러가 꽃을 피우는 데 성공했다. 첼시약용식물원(Chelsea Physic Garden)은 1673년 영국 약제사협회(Society of Apothecaries)가 약용식물 재배를 위해 런던 첼시에 조성한 식물원이다. 19세기 후반까지 의사는 식물에 통달해야 했고, 의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식물학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식물학 시험은 1895년에 가서야 폐지됐다.   밀러는 『가장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귀한 식물들의 형태(Figures of the Most Beautiful, Useful, and Uncommon Plants)』(1760)에 일일초 도판을 실었는데, 이는 유럽 최초의 일일초 그림으로 여겨진다. Vinca 출처: Philip Miller, Figures of the Most Beautiful, Useful, and Uncommon Plants (1760) 열대지방이 원산인 일일초는 난로나 온실 없이는 유럽의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18세기 말은 런던과 파리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온실과 식물원이 만들어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재배 조건을 갖추기는 어렵지 않았다. 또한 밀러는 유럽과 영국 식민지의 여러 식물원과 종자 교환 프로그램을 추진했고 거기에는 일일초도 포함되었다. 19세기가 되면 유럽과 미국에서 종묘회사 광고와 가드닝 카탈로그에 등장할 정도로 관상용으로 사랑받는 식물이 되었다.   열대 원산지에서 일일초는 관상용보다는 주로 약용의 면에서 중요했다. 일일초 잎은 선원들 사이에서 흥분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일초의 새로운 약효 성분이 1960년대부터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항암제 원료가 되는 약효 성분인 알카로이드가 일일초에 다량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악성림프종과 백혈병에 사용되는 빈클리스틴(vincristine)과 빈블라스틴(vinblastine)은 일일초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북미 재배종은 열대산에 비해 약효 성분이 현저하게 감소하기 때문에 고농축 알카로이드를 얻기 위해서 제약회사들은 해외 생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일일초에서 추출한 항암제 성분으로 화학요법제를 제조하는 엘리 릴리 앤 컴퍼니(Elly Lilly)는 열대지방에서 일일초 플랜테이션 생산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제약회사다. 특히 마다가스카르산 일일초는 다량의 알카로이드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마다가스카르는 최적의 생산지로 떠올랐다. 그 결과 1980, 90년대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일일초 플랜테이션이 성행했고, 이 지역 열대우림의 생물다양성과 생태계를 크게 위협받게 되었다. 일일초는 유럽의 이국식물에 대한 관심과 전파 덕분에 전지구적으로 분포할 수 있게 되었다. 남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아메리카에서 다시 남아프리카로 일일초의 여정과 전 지구적 분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유럽의 제국주의적 기획 속에 포획되어 있다 --------------------------------------------------------------------------------------------------------------------- 1) Etienne de Flacourt and Claude Allibert, Histoire De La Grande Isle Madagascar (Paris: INALCO, 1995), p. 203. Helen Anne Curry, “Naturalising the Exotic and Exoticising the Naturalised: Horticulture, Natural History and the Rosy Periwinkle,” Environment and History 18.3 (2012), p. 348에서 재인용. 2) Helen Anne Curry, “Naturalising the Exotic and Exoticising the Naturalised: Horticulture, Natural History and the Rosy Periwinkle,” Environment and History 18.3 (2012), p. 349. 3) 헬렌 & 윌리엄 바이넘, 김경미 옮김, 이상태 감수, 『세상을 바꾼 경이로운 식물들』 사람의무늬, 2017, 111쪽. 4) 루키 키오, 정지호 옮김,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푸른숲, 2022, 174쪽. 5) Helen Anne Curry, “Naturalising the Exotic and Exoticising the Naturalised,” pp. 351-352. 6) Helen Anne Curry, “Naturalising the Exotic and Exoticising the Naturalised,” pp. 364-365.  
2023-05-30 | hrights | 조회: 247 | 추천: 2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최근 ChatGPT의 출시에 따른, 기계 지능에 의한 인간 권리의 추락 가능성이 예고되면서 논란이 분분하다. 평소 매체 철학에 관심을 두고 여러모로 생각해 온 바를 인권연대 구성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철학을 전공하는 인문학자로서 AI를 중심으로 로봇공학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관련 문헌들을 살핀 내용들을 기초로 해서 어쭙잖게나마 생각을 전하고자 한다. 출처 - decoder   AI 불안 1) ChatGPT 4.0 아노미 현상 매체 환경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ChatGPT 4.0 버전의 출시가 세간의 화두로 등장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동안 AI 부문에서 수십 년간 연구에 몰두해 온 전문가들이 최근에 이 프로그램을 시연해 본 후, 이른바 ‘멘붕’에 빠졌다고 한다. 일반인은 아직 그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인간 능력을 초과하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만 듣고 시연해서 놀라면서 동시에 불안해한다. AI 연구 개발의 역사에서 ChatGPT 4.0이 얼마나 어떻게 충격적인가를 실감하지 못한다. 이 정도로 막강한 AI를 만들어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우선 이 버전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가를 들여다보자. 관련해서 논문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어 적당히 참고해 본다. 이 버전을 소개 · 설명하는 전문가들도 주로 이 논문을 참고하기에 찾아보았다. 우선 버전 3.0/3.5는 ‘텍스트-한정 모델’(text-only model)인데, 버전 4.0은 ‘복합양상 모델’(multimodal model)이다. 이는 텍스트, 소리, 이미지, 심지어 동영상을 입력받아 복합적으로 처리하여 시청각 내용을 생성해 낼 수 있는 모델이라는 이야기다. 이 복합양상 모델의 AI가 발전함에 따라 그야말로 가까운 우리의 미래를 AI 또는 AI 로봇이 더 강하게 지배할 것이다. 우리의 생활 세계가 바로 기본적으로 이 같은 시청각 복합의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2) ChatGPT 4.0의 역량 일단 상식 삼아 논문에 보고된 ChatGPT 4.0의 역량을 간략하게 정돈해 살펴보자. ① 미국 변호사 시험(Bar Exam) 상위 10%의 성적으로 합격했다. ② 생물학 올림피아드에서 상위 1%에 들었다. ③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57개의 주제에 관한 객관식 시험에서 86.4%(3.5버전, 70%) 정답률. 그리고 일상적인 사건에 관한 상식적인 추론에서 95.3%(3.5버전 85.5%) 등 → 이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제시했을 때, 77% 정도의 정확도로 실현한다. 그 외 수없이 많은 언어로 번역해서 제시했고 엇비슷한 정확도를 보였다. ④ 그 외 미국 대학 학점을 선취할 수 있는 AP(advanced Placement) 시험에서 화학 70%, 통계학 82%, 생물학 83%, 물리학 70% 등의 점수를 받았고, SAT 수학에서 90% 점수를, 그리고 GRE(대학원 입학시험)의 수리 논증 80%, 언어 논증 99% 등의 점수를 받았다. ⑤ “신데렐라의 줄거리를 설명하라. 단, 반복되는 글자가 없어야 하고, 다음에 나올 단어는 알파벳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시작해야 한다.”라고 요청했더니, 다음의 문장을 거침없이 만들었다. (일부러 단어마다 대문자로 시작하게끔 바꾸었다. 대문자를 보면 A∼Z 순서로 단어를 골라 쓰는 것을 알 수 있다.) “A Beautiful Cinderella, Dwelling Eagerly, Finally Gains Happiness; Inspiring Jealous Kin, Love Magically Nurtures Opulent Prince; Quietly Rescues, Slipper Triumphs, Uniting Very Wondrously, Xenial Youth Zealously.” (번역) → “아름다운 신데렐라가 열심히 살다 마침내 행복을 얻는다. 사랑은 질투심 많은 친척을 고무시키면서 엄청나게 부유한 왕자를 마술처럼 키운다. 조용히 구출하고, 슬리퍼가 승리하고, 매우 놀랍게도 환대하는 젊은이들을 열심히 단결시킨다.” ⑥ 한꺼번에 50쪽에 달하는 문서를 순식간에 만들어 내는 서술 능력을 지녔다. 주어진 주제에 관해 어지간한 논문보다 훨씬 더 긴 문서를 깊이 있게 만들어 내는 능력을 지닌 것이다. 논문을 쓰는 학생과 지도 교수가 연구 주제를 주고 글을 쓰게 한 뒤, 그 내용을 함께 검토해 수정 · 보완해 논문을 제출하는 일이 성행할 것이다. 말하자면, 학술 영역에서 탁월한 지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기계 논문 대필 및 논문지도 기계 교수가 생긴 셈이다. ⑦ 3.5 버전에서 말썽이었던 정신을 잃은 것인 양 황당한 거짓으로 대답하는, 이른바 ‘환각’(hallucination) 현상이 현격히 줄어들었다. 이는 ChatGPT를 비아냥거리게끔 했던 핵심 문제를 제거했다는 것을 뜻한다. 어쩌면, 한편으로는 가짜 뉴스를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데 악용될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가짜 뉴스나 지식을 판별해 내는 데에 활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⑧ 아래 그림을 주고서 여기에서 뭐가 웃기느냐? 차례대로 말해보라고 했더니, (1) ”스마트폰 충전 포트에 VGA 연결기가 붙어있다. (2) “아이폰 충전케이블”을 담아야 할 포장 패키지에 VGA 연결기가 들어 있다.“ (3) ”VGA 연결기 단말에 작은 아이폰 충전기 연결기가 붙어 있다.“ (4) ”그러므로, 이 그림에서 웃기는 건(humor) 최근의 작은 스마트폰 충전 포트 속에 철 지난 큰 VGA 연결기가 꽂혀 있다는 황당함(absurdity)에서 비롯한다“라고 답했다. 이 능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일단은 인간 못지않게 상당히 고급스러운 형태의 유머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를 추론해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는 데서 놀랍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 이미지와 텍스트를 상황의 맥락에 맞게 연결해서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보인다는 점이 워낙 중요하다. 우리 인간 역시 어떤 장면을 지각하면 알게 모르게 그에 상응하는 언어적인 표현들이 떠올라 결합하고, 언어적인 표현을 읽으면 그에 따라 이미지적인 상념이 함께 떠올라 결합하는데, 이를 통해 이른바 복합양상(multi-modality)의 방식으로 지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AI가 인간과 유사한 지성적인 체계로 성큼 다가와 있음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면, 그동안 특정한 영역, 예컨대 음악의 작곡 능력(예를 들어, 베토벤 제10번 교향곡 작곡), 그림이나 입체적인 개체를 섬세하게 만들어 내는 ‘메타버스’ 능력(예를 들어, 특정한 프로그램 사용법을 설명하는 꼭 진짜 인간 같은 아바타 창조), 음성/텍스트 변환 생성 능력, 자동번역 능력 등을 한꺼번에 결합해서 구사하는 단일 거대 AI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 회사에서 ‘Copilot’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여기에 ChatGPT 4.0과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등을 결합해서 출시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뛰어난 학술, 행정, 사업경영, 친교 등에 관련해서 각종 실감 나는 프레젠테이션 잡무 능력을 두루 갖춘 비서를 가질 수 있게 된 셈이다. 간단히 말해, 하기에 복잡하고 귀찮은 일을 맡기면 어지간한 일은 인간이 직접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고급스럽고 멋지게 만들어 낸다. 사용자가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정 요구를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해당 내용을 새롭게 수정 · 보완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 ChatGPT 4.0에 관한 설명과 충격에 관해 다음의 유튜브들을 보기 바란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처지를 조금이라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ZD5ZWfE89I 정인성 작가 https://www.youtube.com/watch?v=eCKS_etvZyI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wW67o7dbyFk 솔트룩스 이경일 대표   3) 특이점의 통과? ‘괴물’ AI의 출현? 1996년 IBM의 ‘딥 블루’가 세계 챔피언인 카스파로프를 체스 게임에서 이긴 건만 하더라도 충격적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컴퓨터는 무엇을 할 수 없는가』(1972/1992)라는 책을 통해 ”체스 게임에서 컴퓨터가 절대로 인간을 이길 수 없다.“라고 과감하게 선언했던 미국의 유명한 현상학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자인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 1929∼2017)는 컴퓨터과학계로부터 비웃음을 감당해야 했다. 그런 뒤 2016년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과의 대결에서 4승 1패의 성적을 거두었을 때, 전 세계인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이후, 요즘 프로 바둑 해설가들은 항상 여러 바둑 인공지능의 지도를 참고한다. 그 외 2011년에 IBM의 인공지능 ‘왓슨’이 미국의 유명 퀴즈쇼인 Jeopardy!에 출연해 74연승을 거두며 250만 달러의 상금을 거머쥐면서 역대급 챔피언을 제치고 완승했고, 그 이후 암 진단 등의 인공지능으로 활용되면서 한국에서도 수많은 종합병원에서 도입하여 활용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다.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여 아예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린 음성 인식 대화형 내비게이션은 물론이고, 실용화된 자율 주행 자동차의 인공지능, 쌍방향 대화형 스피커, 자동 회화 번역기 등은 상식이 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러한 AI는 인간보다 월등한 역량을 발휘하더라도 그 자체로 사유한다거나 수시로 변화하는 상황이나 맥락을 이해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비록 스스로 학습해서 계속 역량을 향상한다고 해도 뭔가 여전히 원천적으로 인간의 주도적인 개입이 없이는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말하자면, 흔히 ‘기계’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는 수동성, 인과적인 결정, 맹목성, 타성 등의 성격을 제대로 벗어난 게 아니라는 우리의 인식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데, ChatGPT3.5 버전에 곧이어 4.0 버전이 나와 위에서 대략 열거한 역량을 발휘하게 되자 다들 충격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정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지만, 그동안 인간만이, 즉 인간의 두뇌만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범용의 사유 능력’(general thinking capability)을 발휘한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법적이거나 경영학적인 사유와 같은 실용적인 지식과 활용뿐만 아니라 수학 · 물리학 · 생물학 등의 순수자연과학과 나아가 문학 · 역사 · 심리학 · 미술사 등의 인문 예술적 사유 영역마저 대학생 내지는 대학원생 이상의 높은 지적인 능력을 동시에 이른바 ‘범용적으로’ 발휘한다는 게 입증되고 만 것이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의 코딩은 물론이고 시, 소설, 시나리오, 디자인 등의 창작에도 동시에 실용성이 상당한 수준으로 능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위 유머 관련의 질문과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맥락의 가변성이 높은 일상적인 대화에까지 끼어들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요컨대, 드디어 복합양상의 범용 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을 현실화했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는 일종의 ‘괴물’이 등장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괴물’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거대 괴물’이 출현하리라는 예고는 수도 없이 제시되었다. 각종 SF 영화나 소설 등은 물론이고, 전문 과학기술자들 사이에서 마치 모르면 시대착오적인 인물에 불과할 뿐이라는 식의 장밋빛 전망과 치명적인 경고성 발언이 있었다. 그중 가장 선풍적인 관심을 끌어모은 것은 2000년 초에 「미래에 왜 우리는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 하는 글을 통해, 2030년대쯤이면 로봇들이 모여 이 열등한 인간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를 진행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빌 조이의 음울한 경고였다. 그런 뒤, 빌 조이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던 커즈와일(Ray Kurzweil, 1948∼ )이 2005년에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김명남 · 장시형 옮김, 김영사, 2007)라는, 국역본으로 840쪽에 달하는 엄청난 불량의 책을 출간했다. 여기에서 저 유명한 ‘특이점’(singularity) 개념이 제시되었다. 이는 컴퓨터 AI의 능력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기 시작하는 시점을 지시한다. 초인간적인 AI가 등장하면 그 위력이 초고도의 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한 여러 다른 첨단의 고도 과학 기술과 결합함으로써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고, 따라서 특이점의 도래는 인류의 미래는 물론이고 세계 자체의 존재 방식을 일변해버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말하자면, 인권이 기계에 의해 근본적으로 추락하는 ‘존재론적인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이다. 분자 나노로봇은 물론이고 온갖 화학물질을 물리학적으로 만들어 내는 나노기술; 뇌를 비롯한 온갖 형태의 생물학적-유기체의 기관을 만들어 내는 유전공학; 결국에는 실제 지각의 현실과 꾸며낸 가상의 현실 사이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릴 가상현실 기술; 인간의 실제 신경과 뇌에 각종 컴퓨터 칩을 삽입해 결합 · 호환되도록 하여 유기체와 기계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릴 사이보그 기술; 주변의 뭇 사물들이 정보를 생성 · 전달함으로써 전반적인 연결망을 통해 기능하도록 하는 사물 인터넷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과 함께 당당하게 시민권을 요구하면서 길거리를 활보하게 될 각종 개체 구현의 로봇을 만들어 내는 로봇공학 기술; 그 와중에 핵융합 발전에 의한 초고도 용량의 발전 기술 등이 머지않은 미래를 향해 경쟁적으로 질주하고 있다. 사이보그 기술에 관련한 담론 중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2016년 로빈 핸슨(Robin Hanson, 1959∼ )은 『뇌 복제와 인공지능 시대The Age of EM: Work, Love and Life When Robots rule the Earth』(최순덕 · 최종적 옮김, 씨아이알, 2019)라는 책을 발간했다. 핸슨은 이 책에서 ”전뇌(全腦) 에뮬레이션(whole brain emulation)의 문제는 그 가능성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의 문제인 듯하다“라고(67쪽) 말한다. 그는 컴퓨터 기계와 인간 뇌 사이에, 하나의 컴퓨터 시스템이 다른 컴퓨터 시스템을 모방 · 복제하여 똑같이 따라서 행동하듯이, 컴퓨터-로봇과 인간 뇌 사이에 모방 · 복제가 가능함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 결과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제대로 작동하는 에뮬레이션은 자신이, 스캔 된 원본 뇌 소유자와 똑같은 방식으로 대화, 사고, 사고방식, 감정, 카리스마, 정신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체리파이의 맛을 느끼고, 힘든 운동이나 성적 쾌감과 같은 유사 경험을 에뮬레이션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에뮬레이션은 마치 우리와 똑같이 자연스럽게 에뮬레이션 자신이 의식과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가정하려 들 것이다.“(69쪽) 외삽법(extrapolation)이라는 사유 기법이 있다. 이는 원래의 사실에 대한 관찰 범위를 넘어 다른 변수들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그 이상의 값을 얻는 방법이다. 위 ChatGPT 4.0이 발휘한 역량을 외삽법에 따라 적용하게 되면, 이제 방금 열거한 여러 첨단 고도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에 인간보다 AI가 더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그동안의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에 다가드는 불안의 핵심은 ‘인간 존재의 몰락’ 내지는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 존재 자체의 대변형’이다. 쉽게 알 수 있듯이, 분명 급진적인 도약이 있겠지만 특이점이 순식간에 확 들이닥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확실한 시작 단계가 확인될 것인데, 이번 ChatGPT 4.0의 출현이 그 시작 단계라 해야 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ChatGPT만 준비된 범용 AI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외에 구글, 페이스북, 우리나라의 네이버에서도 범용 AI 시스템을 내놓고 있다. 나라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아마도 강력한 범용 AI 체계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ChatGPT 4.0의 출시를 신호로 범용 AI 들이 쇄도하여 전 세계를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본래 ‘충격적이니’ 어쩌니 하면서 요동치게 마련이고, 그러다가 적응 과정을 거쳐 안정적인 상태로 습관화되기 마련이니, 이번 ChatGPT 4.0을 비롯한 범용 AI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낙관적인 견해를 펼칠 것이다. 1427년 마사초가 완벽하게 원근법을 활용해 그린 거대한 벽화 <성 삼위일체>(세로 6.67미터, 가로 3.17미터)를 덮었던 천을 벗겼을 때, 사람들은 아니 언제 이렇게 벽에 조각을 했단 말인가? 하고서 놀라운 반응을 보이면서 놀라 기겁하였다고 전해진다. 1839년 처음 다게르의 사진술 전시회가 열렸을 때, 사진이 화가보다 훨씬 더 세밀하게 사건의 장면을 묘사할 수 있음이 판명되다니 어찌 이런 일이? 하면서 구경꾼 중 누군가가 ”이제 회화는 죽었다“라고 했다. 하지만, 사진이 표현할 수 없는 그림을 모색해 인상파 회화가 탄생하고 그래서 오히려 현대 미술이 화려하게 만개했다. 그런가 하면, 1895년 12월 뤼미에르 형제가 르 그랑 카페에서 <라 시오타 역에서의 열차의 도착>이라는 50초짜리 짧은 영화를 처음 틀었을 때, 앉아있던 사람들이 달려오는 기차에 치일까 봐 일어나 도망쳤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등이 환하게 켜지고, 다양한 형태와 기능의 전기 모터가 돌아가고, 고속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지고, X-레이 촬영기, 라디오, 텔레비전, 원자력 발전소, 인공위성, 컴퓨터, 인터넷, fMRI 촬영술, 스마트폰, 원자력 현미경, 제임스-웹 망원경, 자율 주행 자동차 등 온갖 놀라운 기술들이 우리의 삶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아무런 문제도 없는 양 결국 습관화된다. ChatGPT AI가 출현한 것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거야. 물론 특별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 인간들이 슬기롭게 잘 대처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 전 세계가 발 벗고 나서서 관련한 윤리 강령을 제시하고 강력한 법을 만들어 부작용을 방지하게 될 것이니 그다지 걱정할 일은 아니야,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 방향으로 온 인류가 ‘인간 존재의 몰락’을 막아내는 일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핵폭탄 기술이 핵발전 기술로 전환되는 것과 같은 방향으로 과연 나아갈 수 있을까? 『로봇의 부상, 인공지능의 진화와 미래의 실직 위협Rise of the Robots: Technology and the Threat of a Jobless Future, 2015』(이창희 옮김, 세종서적, 2016)을 쓴 유명한 미래학자인 마틴 포드(Martin Ford)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사람들이 ‘와해성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는다. 몇몇 산업을 완벽히 파괴하거나 특정 분야를 교란할 능력이 기술 속에 숨어 있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21쪽) 말한다. 그러면서 “기술 발전이 사회 시스템 전체를 와해시킨 뒤에도 인류가 지속해서 번영을 누리려면 근본적으로 모든 것을 재편성하는 상황까지 가야 하는가?”라는(같은 곳) 물음을 던진다. 2014년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진정으로 사고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한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될 것“이라 경고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그는 ‘특이점’에 대해 ”지능 폭발“이란 개념을 내놓는다. 지능 폭발의 결과, 어떤 인간보다도 수백만 배 더 현명한 기계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356쪽 참조) 암튼, 스티븐 호킹의 경고가 있은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 ChatGPT의 등장을 계기로 과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여부를 판가름해야 할 상황에 직면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범용 AI의 기본 원리 그렇다면, 우리 인류는 어떻게 해서 이러한 전대미문의 기술을 착착 준비해 왔을까? 철학 공부도 겨우 할까 말까 한 필자로서는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긴 세월에 걸쳐 무수히 많은 천재적 인물들이 달려들어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다가 급기야 ChatGPT 4.0에 이르기까지 달려온 그 전문적인 원리를 제대로 알 길은 없다. 수박 겉핥기 정도로 이해한 두 가지만 상식 삼아 소개하고자 한다.   1) 심층 기계학습 예컨대 기계가 언어를 ‘이해하고’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할까? 이에 관한 핵심 아이디어는 자연스럽게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 두뇌의 구조와 기능 발휘의 방식을 따르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만든 프로그램 작성 방식을 인공 신경망(ANN, artificial neural network)이라고 한다. 다 알다시피, 인간 두뇌에는 1,000억 개에 이르는 뉴런들이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연결망을 구성해 작동한다. 그 연결망을 이루는 기본은 시냅스 연결이다. 하나의 뉴런은 약 5,000개의 시냅스 연결 지점들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의 뉴런에 정보가 전달되면 원칙적으로 최대한 5,000개의 다른 뉴런들에 그 정보를 한꺼번에 전달할 수 있다. 인공 신경망은 이를 흉내 내어 만든 것이다. 언어 처리를 원만하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한 1980년대에는 프로그램에 언어의 문법들을 미리 집어넣고 그 문법들을 기본 규칙으로 해서 외부에서 주어진 언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언어를 생성하게끔 하려 했다. 이를 ‘규칙 기반 인공지능’(rules based AI)이라 부른다. 이것은 현대 최고의 언어학자인 촘스키(Noam Chomsky, 1928∼ )가 정신-뇌(mind-brain) 속에 언어 습득을 위한 보편문법 장치를 타고난다는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실패였다. 타고난 보편문법 장치를 제대로 알 수도 없거니와 문법의 규칙들이 낱말들이 쓰이는 맥락에 따라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른바 ‘인공지능의 겨울’이 들이닥쳤다. 그러다가 2010년에 들어서면서 위에서 말한 뇌를 모방한 ‘심층학습 기반 인공지능’(deep learning based AI)을 개발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문법부터 배운 뒤에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실제의 현상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치 ‘알파고 제로’가 ‘알파고’와는 달리 바둑의 규칙을 미리 인간에게 배우지 않고 수많은 기보들을 검토하여 스스로 바둑의 규칙을 알아내고 그에 따라 바둑을 둠으로써 ‘알파고’에게 백전백승한 것처럼, 언어학습 프로그램이 어마어마한 언어 데이터들을 검토하여 저 스스로 언어의 문법을 맥락에 따라 찾아내어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첫째, www(world wide web) 인터넷의 개발로 1990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해 거의 20년에 걸쳐 축적된 무진장한 빅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었고, 둘째, NVIDIA 회사에서 GPU 병렬 프로세스를 개발함으로써 선형적인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하는 계산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동시적인 병렬 계산(convolution)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셋째, 반도체 기술이 크게 향상됨으로써 1초에 수경( ) 번씩 초고속도로 연산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인공 신경망의 간단한 원리를 보기로 하자. 인공 신경망은 입력층(input layer)→은닉층(hidden layer)→출력층(output layer)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각 층(layer)은 수없이 많은 인공 뉴런인 노드(node)로 구성된다. 그 구성을 아주 간단하게 도해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 1>과 그림 2>는 중간의 은닉층이 하나이고, 그림 3>은 은닉층이 두 개다. 그리고 하나의 은닉층은 네 개의 인공 뉴런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인공 신경망 심층학습 프로그램은 은닉층이 어마어마하게 많을뿐더러 하나의 은닉층을 구성하는 인공 뉴런의 수도 엄청나다. 그림 3>을 보면 입력층을 구성하는 세 개의 뉴런마다 은닉층 1을 구성하는 네 개의 뉴런 각각에 모두 정보를 전달한다. 그러니까, 은닉층의 각 뉴런은 입력층의 세 군데에서 정보를 받는다. 그리하여 각 뉴런은 그렇게 세 군데에서 온 정보를 나름으로 종합한다. 그리고 은닉층 1을 구성하는 네 개의 뉴런마다 은닉층 2를 구성하는 네 개의 인공 뉴런 각각에 자신이 종합한 정보를 보낸다. 그러니까 은닉층 2의 각 뉴런은 은닉층 1에서 네 개의 정보를 받아 종합한다. 그리고 마지막 출력층의 뉴런에 그 모든 정보가 전달된다. 간단하게 계산하면 마지막 출력층에서 처리되는 정보는 3x4x4=48개의 정보가 하나로 종합된 것이다. 그림 3>에서 은닉층은 수학으로 치면 두 개의 함수로 구성되어 있고, 출력층은 두 개 함수의 값이 복합적으로 결합해서 나온 최종적인 값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은닉층의 함수에는 매개 변수들이 복잡한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여기에서는 각 은닉층의 뉴런이 매개변수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이해는 아니다. 이보다 훨씬 복잡할 것이다. 함수의 종류도 많거니와 매개변수의 종류도 많기 때문이다) 매개변수는 함숫값을 결정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각 층의 뉴런들을 연결하는 링크의 선들이다. 이 선은 주어지는 정보 자극의 강도를 나타낸다. 그림 1>을 보면 링크의 선의 굵기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입력층의 뉴런들 각각에서 은닉층의 뉴런에 주어지는 정보 자극의 정도가 다름을 나타낸다. 정보 자극의 강도가 약하면 그 자극을 받은 뉴런이 전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즉, 주어지는 자극의 강도가 어느 정도 이상이라야만 자극받은 뉴런이 반응하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해당 뉴런의 역치(threshold)라고 한다. 매개변수의 역할을 하는 뉴런마다 역치가 다를 수 있고, 그에 따라 최종적으로 출력되는 값이 다르게 조정되어 출력된다. 이는 인간 두뇌의 뉴런이 정보를 처리 · 전달하는 기본 원리다. 이를 그대로 본떠 만든 것이 인공 뉴런이다. 만약 ”아빠는 엄마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이를 그림 3>에 적용해 보자. 입력층의 세 뉴런 각각에 위에서부터 ‘아빠’, ‘엄마’, ‘사랑’이라는 내용이 할당되고, 은닉층 1의 네 뉴런 각각에 위에서부터 ‘…는’, ‘…를’, ‘…한다’, ‘…이다’라는 내용이 할당된다고 해 보자. ”아빠를 사랑은 사랑를“이라는 엉터리 문장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문장, 예를 들어 ”영철이는 개를 좋아한다“와 같은 문장을 10만 개 넣어 훈련한 뒤, 마지막 출력층에 ”아빠는 엄마를 사랑한다“라는 정상적인 문장이 나오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는’, ‘…를’, ‘…한다’, ‘…이다’ 등은 10만 번 가까이 반복될 것이다. 이때 ‘…는’이라는 매개 뉴런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 뉴런이 사랑하다, 일하다, 쓰다, 뛰다 등의 동사가 주는 자극에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이에 대해서는 역치가 높아 정보 전달이 안 된다. 그 대신 명사가 주는 자극에 더 쉽게 반응해서, 말하자면 이에 대해서는 역치가 낮게 반응해서 작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은닉층의 뉴런마다 상황의 맥락에 따라 역치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출력 값이 잘못되었을 때마다, 잘못되었음을 계속 되돌려 알려주면 이러한 역치를 조정해 나가는 과정을 계속 반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이러한 알고리듬을 ‘역전파 알고리듬’(backpropagation)이라고 한다. 이 알고리듬을 통해 역치 조정의 과정을 많이 거치면 거칠수록 점점 더 정확한 출력 값, 즉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문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러한 역전파 알고리듬을 통해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이 이루어진다. 이때 중요하게 작동하는 기능이 ‘주의 집중’(attention)이다. 즉, 입력된 데이터의 낱말들이나 조사 또는 전치사 등에서 무시해야 할 것과 중시해야만 할 것을 점점 더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알고리듬을 함께 집어넣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인류가 만들어 낸 온갖 문장들에서 특정한 단어들끼리 결합할 확률, 그리고 특정한 구절이나 문장들끼리 연결될 확률을 계산해 나가는 과정이고, 그 확률의 현실 적합성의 정도를 높여 나가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어마어마한 언어 사용 예의 전체적인 확률 분포도를 만들어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무한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sec의 속도로 제공하고, 이러한 역전파 수정 · 보완 작업을 역시 /sec의 속도로 반복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어마어마한 장소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병렬적으로 수행한다면, 사전 훈련을 계속할수록(pre-training) 저 스스로 더 깊이 있게 변형해나가는(transforming) 학습을 해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외부에서 주어진 자극, 예컨대 대화자가 ”철학 공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하고서 질문을 했을 때, ”철학 공부에는 지름길이 특별히 없습니다. “라는 대답을 생성해(generation) 출력하는 것이다.   2) 적대적 생성의 연결망 한편에는 입력된 내용을 처리함으로써 뭔가를 만들어 내는 ‘생성 장치’(Generators)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생성 장치의 결과를 최대한 잘못되었다고 판별해 내는 ‘식별 장치’(Discriminators)가 있어 ‘생성 장치’는 ‘식별 장치’의 힘을 무너뜨리고자 하고, ‘식별 장치’는 ‘생성 장치’의 힘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경쟁을 붙이는 이른바 ‘적대적 생성의 연결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의 알고리듬을 만들어 쓰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이 연결망 알고리듬이 바로 앞에서 말한 ‘역전파’ 알고리듬이 아닌가 짐작한다.   AI 기계의 욕망과 의식 1) 컴퓨터의 기본 구조와 기능 제아무리 발달한 AI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반도체 기반의 하드웨어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 작동을 명령하는 것이 AI 알고리듬들의 복합인 ChatGPT 4.0과 같은 프로그램이다. 반도체의 작동은 잘 알다시피 3〜5V 정도의 전류를 통하거나(ON) 차단하거나(OFF)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를 수학적으로 흔히 1과 0이라 말하면서, 정보의 값을 32비트니 64비트니 하면서 2진법으로, 즉 디지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낱말이건 문장이건 문서건, 그리고 이미지건 이미지들이 변화하는 동작이건 간에 입력층을 통해 그것들에 의한 자극을 받을 때, 그 자극은 결국 극미한 트랜지스터에 3〜5V의 전류를 통하거나 차단함으로써 수로 표기되는 정보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터 언어로 된 알고리듬들 역시 결국은 수로 표기된다. 그리고 그 수들은 결국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크기의 2진법의 수들로 환원되어 표기되고, 그 2진법의 수들은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트랜지스터로 된 칩들이 결합한 하드웨어 장치를 통해 전기적인 방식으로 처리되는 것이다. 발광체를 통한 빛이나 레이저 빔 등을 통해 자극이 주어지더라도, 결국 그 자극들은 전기적인 방식으로 입력되어 전기적으로 처리된다. 빅 데이터도 전기적인 방식으로 저장되고, 출력될 때도 전기적인 방식으로 출력된다. 요컨대 전반적으로 환원해서 말하면 AI 로봇은 오로지 전기적인 자극에서 시작해서 전기적인 반응을 나타낼 뿐이다. 그 중간 과정에서, 음성 카드, 그래픽 카드, 동영상 카드, 가상현실 카드, 또는 인공위성과 광섬유와 증폭기 등의 하드웨어 등을 거쳐 아날로그적인 형태로 변환하는 것이다.   2) 컴퓨터-기계 뇌는 감각 능력이 없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기계 뇌(이하 AI 로봇이라 지칭)가 인간의 두뇌와 전격적으로 다른 것은, 실제로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고 할 때 의식의 대상으로 얻어 향유 하는 감각적인 질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이 두뇌를 중심으로 한 신경 작용에서 전기화학적인 과정을 거치는 건 AI 로봇과 같다. 그러나, 우리 두뇌는 그 처리 과정에서 감각적인 질을 산출해 내고 아울러 지각과 사유 및 상상 등의 의식을 산출해 내고, 그에 따른 감정과 의지 등을 발휘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제 특이점 운운할 정도로 AI 로봇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 낌새를 차리는 가운데, 이 AI 로봇이 우리처럼 색을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 맡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고 여긴다. 과연 그런가? 방금 말한 바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비록 AI 로봇이 순전히 전기적인 방식으로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를 대하는 나에게는 전기적인 방식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마치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처럼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만 확인하면서 내가 그에 따른 감각적인 질을 추정 · 투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의식도 직접 경험할 수 없고, 그 사람이 느끼고 대하는 감각적인 질을 직접 경험할 수 없다. 오로지 그 사람이 나타내면서 나에게 주어지는 아날로그적인 내용들을 확인하면서 그에 따른 감각적인 질을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내가 파악할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AI 로봇을 대하는 것이건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이건 외부에서 그 내용을 파악할 뿐이기 때문에 둘이 겉으로 내보이는 내용은 똑같다. 말하자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과 표정과 행동을 보고서 그가 의식을 지녔고, 욕망을 지녔고, 의지를 발휘하면서 목적을 실현하고자 한다고 하듯이, AI 로봇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그 나름으로 감각적인 질을 향유 한다는 사실, 그리고 AI 로봇은 원리상 다른 사람과 달리 결코 감각적인 질을 향유 할 수 없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하다. 과연 이러한 차이가 실제 삶에 있어서 어느 정도로 의미가 있을지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실제를 통해 확인해야 하겠지만, 아마도 쉽게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차이에서 기계를 상대로 한 인권에 관련한 여러 문제를 창의적으로 생각해서 그 해결 방안들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예상해 본다. (보충) ChatGPT 3.5에서는 대화에서 어떤 질문이 주어질 때, 그 질문에 어떤 답을 최종 결과를 생성해 제공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1,750억 개의 매개변수를 활용한다고 발표되었다. 이는 가장 적절한 답을 제시하는 데에 그만큼 관련한 많은 요건을 여러모로 고려한다는 뜻이다. ChatGPT 4.0에서는 매개변수의 수가 1조 개 이상 될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OpenAI에서 숨기고 짐짓 발표하지 않는다고 한다. 매개변수의 수는 워낙 중요하다. 매개변수는 낱말이건 구절이건 문장이건, 또는 각종 이미지건 간에 그것들의 다양한 쓰임새의 맥락에서 패턴을 이루는 특성들을 찾아내어 그것들이 구체적인 개별 대상으로서 주어질 때 그 본성을 파악하고 식별하는 데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매개변수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언어의 온갖 종류의 문서들에 따른 낱말과 문장들을 더 섬세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식별할 수 있고, 또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동식물과 사물들을 그 각종 특성과 그것들이 나타나는 패턴들에 따라 더 섬세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식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인간 얼굴의 표현 방식은 엄청 다양하다. 감정에 따라 얼굴을 구성하는 눈빛, 눈매, 입 모양, 코의 실룩거림, 광대뼈 주변의 피부 근육 등의 형태가 전반적으로 달라진다. 감정에 따른 그 모든 특성과 패턴을 일일이 파악하여 실제 얼굴에 적용하게 되면, 그 얼굴의 주인공이 어떤 감정 상태에 놓여있는가를 파악하여 식별할 수 있을 것인데, 여기에 필요한 매개변수가 과연 몇 개이겠는가? 앞서 말한 것처럼, 매개변수를 담당하는 인공 뉴런은 각기 나름의 역치를 지니고서 작동하며 그 역치는 특히 역전파 알고리듬에 의해 조정 가능하다고 했다. 이는 ‘주의 집중’과 연결된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입력의 자극들에서 어떤 것들을 어느 정도로 중시/무시할 것인가를 결정하여 각각의 강도(영향 값)를 자동으로 조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사전 훈련된 어마어마한 학습 내용을 초고도의 속도로 검색하여 가장 적합한 답을 순식간에 제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철학적 사유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했을 때, ‘이성’, ‘감각’, ‘상상’, ‘논리’, ‘정합성’, ‘모순’, ‘사물’ 등의 낱말이 쓰이는 맥락이나 패턴에 대해서는 주의 집중(attention)의 강도를 높이는 대신, ‘매매’, ‘타협’, ‘놀이’, ‘도시’ 등의 낱말이 쓰이는 맥락이나 패턴에 대서는 주의의 강도를 낮추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이나 패턴을 담당하는 것이 매개변수다. 그 외, 어떤 이미지를 보고 개인지 고양이인지를 구별하려면, 눈동자가 둥근지 세로인지(일종의 패턴으로서 매개변수)를 주의하는 강도가 높은 데 반해, 다리가 네 개인가(역시 일종의 패턴으로서의 매개변수)를 주의하는 강도는 제로일 정도로 낮아야 할 것이다. 개개 대상들을 그 종류별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1) 하나의 대상이 갖는 특성들을 다른 대상이 갖는 특성들과 비교해 그 동일성과 차이를 찾아내고, (2) 그 대상들이 정지했을 때나 움직일 때 변화하면서 나타내는 특성들의 패턴들이 갖는 동일성과 차이를 찾아내고, (3) 그것들의 동일성과 차이들을 통합해서 최종적으로 그 정체를 결과로 제시해야 한다. 이때 특성들과 패턴들을 담당하는 게 매개변수로 작동하는 은닉층의 인공 뉴런이다. 1. 이 논문은 OpenAI에서 <GPT-4 Technical Report>란 제목으로 작성해 보고문 형태로 https://arxiv.org/abs/2303.08774에 올라와 있다. 2. ‘매개변수’(parameter): 원인과 결과의 인과 관계에서 원인이 독립 변수라면, 결과는 종속 변수다. 그리고 이를 매개하는 제3의 변수가 매개변수다. 그러니까 매개변수는 독립 변수에 대해서는 결과로 나타나지만, 종속 변수에 대해서는 원인으로 작동한다. 매개변수가 많을수록 결과를 생성해내는 데에 더 많은 경우를 고려하기 때문에, 원하는 바 더 정확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매개변수가 작동하는 정도, 달리 말해 그 강도는 경우에 맞춰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내일 비가 올 확률과 그 강수량이 어느 정도 될 것인가를 예측하고자 할 때, 오늘 상공에 모인 비구름의 두께와 너비는 중요한 매개변수가 된다. 그리고 바람이 어느 정도로 강하게 불고 있는가도 중요한 매개변수다. 한편 오늘 기온이나 습도가 어느 정도인가도 충분히 중요한 매개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매개변수 들이 내일 비가 어느 정도로 올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각각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가는, 예를 들어 계절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이러한 각각의 매개변수의 영향의 값을 어느 정도로 매기는가에 따라 최종적인 결과의 값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2023-05-24 | hrights | 조회: 211 | 추천: 2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물가는 치솟는데, 월급은 그대로... ’ 지청구같은 푸념이 아니다. 아주 실감나는 자료가 공개됐다. 최근 국세청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2021년 귀속 근로소득 자료'에 따르면, 전체 근로소득자 1천995만9천148명의 1인당 평균 급여는 4천24만원이었다. 상위 1%의 1인당 평균 급여는 3억1천730만원, 중간 지점인 상위 50%의 1인당 평균 급여는 3천4만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최상위 0.1% 구간에 속하는 1만9천959명의 총 급여는 1인당 평균 9억5천615만원이었다. 상·하위 소득 격차를 나타내는 지표인 근로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근로소득/하위 20% 근로소득)은 지난 2021년 기준 15.1배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급여생활자 가운데 상위 20% 구간에 속한 고소득자들이 하위 20%의 15배에 달하는 소득을 벌어 들였다는 것이다. 근로소득 5분위 배율은 2019년 14.6배에서 2020∼2021년에 15.1배로 벌어졌다. 우리 사회 근로소득격차가 그 폭을 넓혀가며 전반적으로 저소득 시대가 고착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전반적인 물가 상승세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만만한 한 끼 식사의 대명사였던 국밥이 어느 순간 가격표를 보고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한번 해야 할 메뉴가 되었다. 소비의 한계상황에 다다르고 있다. 소득격차의 심화와 급격한 고물가 시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없이 사는 서민들과 골목상권 자영업자이다. 아예 규모가 다른 부유층의 ‘그들만의 소비시장’은 변화가 없거나 활황을 맞지만 다수의 소비는 줄고 그에 따른 경기침체는 공식처럼 이어진다. 출처 - 경향신문 최근 지역사랑상품권 부정유통 일제단속이 있었다. 현장 점검을 나가 의심되는 가게에 찾아가면 다른 처벌을 받더라도 지역화폐를 받을 수 있는 가맹점 지위 취소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행여 부정유통 행위를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현실로 닥쳐온 소비침체를 실감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지역화폐 소비가 늘고, 지역화폐를 취급하지 못하면 장사에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소상공인들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지역화폐 활성화의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센티브 재정지원은 크게 줄고 있다. 올해는 작년의 절반 수준, 내년은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지자체 고유사무인 만큼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경기불황의 늪을 지나는 현장을 대면하는 지자체들은 지역화폐가 가진 순기능을 그냥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역화폐의 골목상권 소비촉진·경기진작 효과는 현장 검증을 마친 상태인데 아직도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해 투입되는 재정을 ‘세금 낭비, ’돈 살포’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이 많다. 세금은 아끼는 게 아니라 잘 쓰는 게 능사임을 잘 아는 사람들도 정치적 입맛에 맞춰 호도하고 있다. 마치 1960~70년대 산업화 시기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이야기하던 시절이 떠올려 진다. 자본주의 대한민국을 사는 시민들에게 소비가 늘어야 경제도 산다는 이야기는 정언명제와도 같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동참하기 위해 동네가게를 이용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가. 마중물이 없으면 물 구경은 할 수가 없다. 중하위 소득자가 소비의 주축을 이룬다는 실증적 증거는 차고 넘친다. 소득이 낮을수록 본인이 지출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의 대부분 또는 그 이상을 소비한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쓰는 돈을 아끼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저축을 못하는 한계소비성향은 당연히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낮고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높게 나타난다. 한계소비성향이 높을수록 정부는 재정을 투입하여 소득재분배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 현재 재정정책 중 지역화폐 만큼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어디 있을까? 근로소득 격차 해소라는 근원적 대책과 함께 지역화폐를 적절히 운용하는 것은 코로나19 이후 경기침체의 터널을 지나는 한국경제에 든든한 등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역화폐 활성화를 위한 과도한 인센티브 재정 투입 역시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골목상권을 벗어난 가맹점 허용 범위, 정치적 목적에 의한 조삼모사식 혜택 제공, 과도한 홍보 등도 그렇다.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가 적정 수준이라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아주 축소되지는 않을 것 같다. 지난해 10% 할인 혜택을 제공했던 시흥시가 올해 6% 할인을 제공한 이후 현재까지 지난해 동기 대비 10~15% 정도 발행액이 줄었을 뿐이다. 지역화폐는 생각보다 지역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2023-05-18 | hrights | 조회: 227 | 추천: 1
  박상경  / 인권연대 회원  1.  퇴근길, 전철에서 쏟아져 내린 사람들로 북적이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때, 아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저 무언가를 해달라고 떼를 쓰는 울음소리라기 보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사력을 다해 우는 것 같은 소리였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우는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너덧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뜻밖에도 경찰차 안에 있었다. 미아인 듯한 아이를 경관이 집에 데려다 주려고 차에 태운 듯하였다. 경관이 계속 전화를 하였으나 받지 않는지 답답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전화를 거는 경관과 운전석에 있는 경관의 대화가 이어졌다.  “집에 가도 애 엄마는 없을 것 같아. 지난번에도 집에 가니 엄마는 클럽에 가고 없다고 했거든. 전화를 안 받는 걸 보니 지금도 그런 것 같은데….”  “그럼, 집에 다른 사람은 없어?”   “글쎄, 지난번에 갔을 때는 외할머니라고 하면서 애를 받았는데, 오늘은 전화를 다 안 받네…. 엄마가 고딩이야.” “…….”   경관의 대화가 이어지도록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인생의 대물림이 뻔해 보여 가슴이 먹먹한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살려 달라는 비명처럼 가슴을 후벼팠다.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느끼며 살아가는 인생의 무거운 추를 아이는 이미 매단 채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출처 - 연합뉴스 2.  “숨진 아내가 불륜으로 낳은 아이를 출생신고할 수 없다.”는 뉴스가 한동안 이어졌다. 불륜 아내, 출생신고를 거부한 남편, 이에 대한 법률적 해석을 다룬 기사들이 쏟아졌다. 사망한 엄마, 나타나지 않는 친부, 법적 친부로 불리는 이가 모두 아이를 거부하였다. 지금 태어난 아이는 어디에서도 축복을 받지 못했다. “나를 버리지 마세요!” 하고 지르는 아이의 비명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세상을 축복이 아닌 굴레로 시작하는 아이의 뉴스는 파출소 앞 경찰차 안에서 공포에 휩싸여 울던 아이를 생각나게 했다. 그때 그 아이는 경관의 손에 이끌려 엄마 손을, 할머니 손을 잡았을까? 그때 그 아이는 철없는 엄마지만 엄마도 있고 할머니도 있지만, 지금 이 아이는 잡을 수 있는 손이 어디에도 없다는 게 가슴 아팠다. 그저 태어난 순간 꼭 쥔 주먹을 풀지 못한 채 “나를 잊지 마세요!” 하고 작은 가슴을 파닥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얼마 뒤, 아이는 지자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하고 양육 시설이나 위탁 가정에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그저 아이의 주변에 따스한 맘을 가진 좋은 어른이 많이 있기를, 그래서 아이가 꼭 쥔 주먹을 풀고 인생이라는 걸음마를 할 수 있기를 마음 다해 기도했다. 
2023-05-18 | hrights | 조회: 195 | 추천: 2
이윤 / 경찰관 어떤 영화에서 범죄 현장에 온 검사에게 경찰이 거수경례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검사가 범죄 현장에 나오는 것이나 그 검사에게 경찰이 거수경례하는 것이 생소한 모습이라서, 나에겐 햄버거 가게에서 숭늉을 본 것 같은 위화감이 느껴졌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궁금했다. 웃자고 만든 작품을 다큐로 받아들이는 꽉 막힌 사람으로 여겨질까 봐 묻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러나 드라마 속 고부 관계를 보고서 모든 시어머니가 그렇다고 착각 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검사를 경찰의 상급자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테니, 소속과 기능상 차이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겠다.     ○ 소속 검사와 경찰 모두 행정부 소속 공무원이다. 이때 행정부란 입법부, 사법부와 대비되는 행정부다. 검사 소속이 사법부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사법부는 재판하는 기관이고, 검사는 행정부 공무원으로서 국가를 대신하여 법원에 형사재판을 청구하는 사람이다. 검사를 ‘준사법기관’이라고도 하던데 아마도 한국 검사는 기소할 것인지 불기소할 것인지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고(기소편의주의), 영장을 법원에 청구할 것인지 결정하는 권한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미에서는 선발된 시민이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기소대배심을 운영함으로써 정부의 기소재량권 남용을 제한한다. 독일에서는 충분한 범죄혐의가 있으면 반드시 기소해야(기소법정주의)한다.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해야 하는데, 한국 검사는 기소 여부 결정 과정을 공개하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오히려 ‘초사법기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검사는 법무부 외청인 검찰청 소속 국가공무원이고, 경찰은 행정안전부 외청인 경찰청 소속 국가공무원이다. 즉 엄연히 다른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검사는 경찰의 상급자가 아니다. 다만 2021년 이전에는 형사소송법이 검사에게 ‘수사’업무에 관하여 경찰을 지휘할 수 있었으므로 마치 상급자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그때의 지휘도 범죄 사건에 대한 지휘일 뿐이고, 군대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지휘하는 것과는 달랐다. 현실 세계에서 검사에게 거수경례하는 경찰관은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지금은 수사에 관해서도 협력관계이니 더욱 그러하다.   ○ 기능 검찰청법에 규정된 검사의 직무는 일정 범위의 수사, 공소 제기 및 유지, 재판 집행 지휘·감독 등이다. 즉 범죄에 대해 증거를 수집하고, 범인을 검거하고, 법원에 재판을 청구한 후 유지하고, 선고된 형을 집행하는 등 형사절차 전반에 권한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한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규정된 경찰의 직무는 범죄 예방·진압 및 수사, 범죄 피해자 보호, 경비·경호, 대간첩·대테러, 교통 단속과 위해 방지 등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 보호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앞에 가는 사람 도둑~놈, 뒤에 가는 사람 경~찰”이라고 부른 노래는 경찰이 도둑 잡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경찰은 도둑 잡는 것 외에도 도둑질을 미리 예방하는 일과 기타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에 필요한 일을 더 많이 한다.   검사는 수사, 기소, 재판, 형집행이 직무이므로 이미 발생한 범죄 사건에 관여한다. 경찰은 수사 외에도 범죄 및 기타 위험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순찰, 홍보, 정보수집과 제공, 경고, 억류, 피난, 보호조치 등 사전 예방 활동을 한다. 그런데 수사가 아닌 예방을 위한 조치임에도 검사가 관여하는 부분이 있다. 가정폭력·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임시조치와 스토킹 범죄자에 대한 잠정조치는 재판을 위해 신병을 확보하는 체포나 구속과는 다르다. 장래에 다시 범행을 저지를 위험성이 높아서 이를 예방하여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해자를 분리하는 예방조치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방적 조치까지도 경찰은 검사에게 신청만 할 수 있고, 법원에는 검사만이 청구하게 해 놓은 것은 수사를 포함한 모든 경찰 활동에 검사가 관여하고 싶어 하기 때문은 아닌지 의문이 생긴다. 그 과정에 결정이 늦어짐으로 인한 피해는 국민 몫이다. 관련 업계에 종사하거나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검찰과 경찰을 같은 조직인 줄 헛갈리기도 한다. 무슨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려면 우선 그 대상을 잘 알아야 한다. 21년 이전에 검사에게 전적으로 수사권과 지휘권이 있었음에도, 잘못된 수사에 대한 책임과 비난이 오롯이 경찰 몫이었던 이유에는 이런 관계에 대한 무지도 포함될 것이다.    
2023-05-01 | hrights | 조회: 245 | 추천: 6
염운옥 /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지상최대의 동물 코끼리에 대한 권력자들의 사랑은 유난했다. 사랑의 감정이 종종 그러하듯 대상에 대한 애호는 소유욕이나 지배욕과 분리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권력이 미치는 땅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진귀한 동물에 대한 사랑은 커졌다. 전설이나 전언에 만족하지 못하고 기어이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는 강박적 호기심 밑바닥에 꿈틀거리는 욕망 중 가장 큰 것은 권력욕이었을 것이다. 사나운 맹수와 대형동물을 굴복시키고 길들이는 것은 왕과 귀족이 지배할 자격을 타고났다는 증명이 될 테니까.   유럽에 알려진 코끼리 이야기는 로마 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진 동물쇼와 살육전에서 가장 많이 죽어 나간 동물은 북아프리카 코끼리였다. 사하라사막 이북에 살던 이 작은 체구의 코끼리는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과 함께 알프스를 넘었던 코끼리와 같은 종이다. 카르타고를 제압한 로마가 제국으로 팽창하면서 본토와 속주에는 수많은 원형경기장이 건설되었고, 동물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끼리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북아프리카 코끼리는 로마 시대에 이미 멸종하고 말았다.   북아프리카 코끼리가 사라진 이후 한참 동안 유럽에서는 코끼리를 직접 볼 수 없었다. 수 세기 만에 이탈리아에 코끼리가 다시 등장한 때는 르네상스 시대였다. 교황 레오 10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1세가 보낸 선물에 보석, 중국의 책, 황금 잔, 코뿔소와 함께 인도산 흰 코끼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리스본을 1514년 1월 말에 출발한 이 코끼리는 3월 12일 로마에 도착해 4년을 살고, 일곱 살이 되던 1516년에 죽었다. 교황 레오 10세와 조카 로렌초 메디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교황의 코끼리’는 하노(Hanno)라 불렸다. 하노의 모습은 라파엘로의 스케치에 남아있다. 프레스코화 제작을 위해 밑그림인 이 스케치에서 라파엘로는 조련사와 안내인에게 이끌려 로마로 입성하는 하노의 모습을 사실주의적으로 묘사했다. 아시아코끼리의 특징인 솟은 이마와 작은 귀 작은 어금니를 실제로 보고 정밀하게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 하노를 기리는 비문에 레오 10세는 “동양을 정복한 마누엘 왕이 포로로 보낸 하노를 여기 묻는다. … 자연이 빼앗아간 것을 우르비노의 라파엘로가 복원했다”고 애도했다.   라파엘로의 코끼리 출처: wikimedia 17세기 무역의 강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동물 무역에도 열을 올렸다. 1630년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네덜란드 왕가에 선물한 아시아코끼리는 한스켄(Hansken)이라 불렸다. 렘브란트가 그린 스케치도 남아있다. 총독 프레데릭 헨드릭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선물로 받은 한스켄을 사촌 요한 마우리츠 반 나사우-지겐에게 선물했다. 네덜란드령 브라질 식민지 총독으로 파견가게 된 요한 마우리츠는 코끼리를 서커스단에 팔았다. 한스켄은 이후 20년간 유럽을 순회하며 서커스에 동원됐고 1655년 11월 9일에 죽은 후 골격 표본이 되어 피렌체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다음으로 코끼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린네와 관련된다. 1753년 봄, 린네는 스웨덴의 아돌프 프레데릭 국왕을 설득해 알코올에 담긴 코끼리 태아 표본을 사들이는 데 성공했다. 국왕이 사들인 표본은 원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유였는데 나중에 네덜란드의 동물학자이자 수집가 알베르투스 세바의 자연사 컬렉션에 포함됐던 것이다. 린네는 이 표본을 아시아코끼리로 판단하고 엘레파스 막시무스(Elephas maximus)라고 명명했다. 린네를 따라 분류학자들은 아프리카코끼리와 아시아코끼리를 다른 종으로 분류한다. 아프리카코끼리의 학명은 록소돈타 아프리카나(Loxodonta africana)로 팔랑거리는 큰 귀가 특징이다. 아시아코끼리는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몸집이 작고 온순하다.   그런데 린네가 아시아코끼리의 기준표본으로 삼은 이 코끼리 태아가 아시아코끼리가 아니라 아프리카코끼리였음이 250여 년 만에 밝혀졌다. 2013년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의 포유동물학예사인 앤시어 젠트리 박사와 덴마크 코펜하겐대학의 탐 길버트 교수와 엔리코 카펠리니 박사는 알코올에 너무 오래 담겨있어서 채취할 수 없었던 DNA 대신 단백질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표본이 아프리카코끼리임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스웨덴 왕실 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표본의 코끼리 태아는 귀가 유난히 컸기 때문에 19세기부터 아프리카코끼리가 아닌가는 의심이 있었으나 누구도 정식으로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이로써 피렌체 국립자연사박물관 소장 한스켄이 아시아코끼리의 새로운 기준표본이 되었다.   19세기가 되면 유럽에는 일반 대중들이 이국 동물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왕과 귀족을 위해 조성된 동물원 메나주리(menagerie)는 점차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혁명으로 국민이 탄생한 프랑스에서는 동물원도 국민의 소유가 되었다. 한 사람의 권력자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속한 동물이 사육되는 곳이 근대 동물원이다. 동물 사육과 전시 공간이 메나주리에서 동물원으로 변해가는 현상은 헤이그, 빈, 마드리드, 파리, 런던 등 유럽 여러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목격할 수 있다. 도시 안으로 들어온 동물원은 시민을 위한 오락과 여가의 공간으로 인기를 끌었다. 1828년 개장한 런던동물원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런던동물원에 살았던 점보(Jumbo)는 수컷 아프리카코끼리이다. 수단에서 태어나 파리와 런던의 동물원을 거쳐 뉴욕의 서커스로 팔려간 사례다. 점보의 여정은 동물원 사육과 전시, 상업적 동물쇼에 코끼리가 동원됐던 역사의 일부였다. 1882년 1월 25일 『더타임스』에 런던동물원이 바넘쇼(Barnum’s Show)로 유명한 미국의 서커스 업자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에게 점보를 2천 파운드에 팔기로 했다는 기사가 게재되자 전국에서 반대 운동이 불붙었다. 런던동물원에서 16년 동안이나 사랑받았던 점보를 미국에 판다는 소식에 대중들은 분노했다. 점보 소식이 뉴스 지면을 도배해버려 아일랜드 자치법안 논의나 빅토리아 여왕 암살 미수사건 같은 뉴스가 묻혀버릴 정도였다. 노트, 벽지, 의자, 패션 등 도시의 일상 어디에나 점보가 있었다. 동물원 측은 청년기에 이른 점보가 발정기 특유의 공격성을 보이기 시작해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고 설득했으나 반대 여론은 식을 줄 몰랐다.   점보 열풍은 코끼리의 적응과 순화가 점보의 고향 아프리카에 대한 영국의 상징적 지배와 연결됐다는 점, 미국에 대한 영국의 열등감과 반감이 점보 수출 반대에 얽혀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동물원 사육 동물은 유럽에 적응을 완료한 존재이며 다른 곳에 가서는 살 수 없는 동화된 존재로 여겨졌다. 점보는 1866년 런던에 도착했다. 파리 식물원에서 런던동물원으로 왔다. 영국으로서는 첫 아프리카코끼리였다. 왕실 가족들에게 무릎을 굽혀 절하기를 배웠고, 10만 번 이상 등에 하우다를 얹고 관람하러 온 사람들을 태웠다. 윈스턴 처칠도 어린 시절 점보의 등에 올랐던 경험을 즐거운 추억으로 회상했다. 이미 ‘런던의 애완동물’, ‘국민의 애완동물’로 불리며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1882년 스캔들로 인해 점보를 보기 위해 런던동물원의 관람객은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881년 21,333명이던 연간 관람객은 1882년에는 151,158명으로 급증했다. 태생은 아프리카이지만 영국으로 ‘귀화’한 동물로 점보를 받아들인 대중들은 좁은 수송용 상자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점보의 몸짓을 정든 영국을 떠나기 싫어 눈물 흘리는 행위라고 의인화해 해석했다. 이로써 점보는 비록 짐승이지만 영국의 신민으로 거듭난 존재가 되었다. 영국문화에 동화된 존재가 사슬에 묶여 대서양을 건넌다는 사실은 한 세기 전의 노예무역을 떠올리게 하며 미국의 서커스 상업문화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A Farewell Ride on Jumbo’ (1882) 출처: wikimedia 하지만 점보는 결국 미국으로 팔렸다. 1882년 3월 20일 런던을 출발해 4월 9일 뉴욕에 도착했고 바넘 서커스의 주역으로 ‘지상 최대의 코끼리쇼’에 동원됐다. 3년 후 불의의 기차 사고로 사망함으로써 수단, 파리, 런던, 뉴욕으로 비자발적 이주를 거듭해야 했던 점보의 생은 끝나게 되었다. 점보는 ‘지상최대의 동물’, ‘최초의 비인간 셀렙’으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점보를 수단에서 뉴욕까지 데려간 과정, 즉 잔인한 코끼리 사냥과 부적절한 사육환경, 어미를 죽이고 새끼를 포획하는 역겨운 동물거래의 현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바넘 서커스 포스터 출처: wikimedia 1882년 점보 열풍은 빅토리아 시대 대중의 일상에 스며든 제국주의와 애국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 코끼리는 빅토리아 여왕의 인도 여황제 대관식에도 등장할 정도로 제국의 위신과 동일시되었다. 아프리카코끼리 점보 길들이기는 아프리카 ‘미개인’의 통제와 ‘문명화 사명’의 은유로 작용했다. 야생동물의 순화는 그 동물이 태어난 땅과 그 땅의 사람에 지배와 동일시되었다. 수백 종의 동물 사육과 전시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종의 생물에게까지 미치는 여왕의 통치를 감각할 수 있는 제국을 런던에 구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로마 시대부터 빅토리아시대에 이르기까지 코끼리는 권력과 동일시되었고, 대중의 제국의식을 자극하는 상징이었다. 모두 코끼리의 의사에 반해 인간이 벌인 일이었다. --------------------------------------------------------------------------------------------------------------------- 1) 남종영, 『동물권력: 매혹하고 행동하고 저항하는 동물의 힘』 (북트리거, 2022), 60-66쪽. 2) 전한호, 「뒤러의 코뿔소, 라파엘로의 코끼리」,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56 (2022), 165-167쪽. 3) George Ryan, “The Pope’s Elephant: The Story of the Papal Elephant Buried Underneath the Vatican,” Jan. 7, 2019. https://ucatholic.com/blog/the-popes-elephant-the-story-of-the-papal-pet-elephant-that-was-buried-underneath-the-vatican/ 4) Ria Winters,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and the Transport of Live Exotic Animals in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M. Chaiklin, Philip Gooding, and Gwyn Campbell, eds., Animal Trade Histories in the Indian Ocean World, Cham, Switzerland: Palgrave Macmillan, 2020, p. 36. 5) Ewen Callaway, “Linnaeus’s Asian Elephant Was Wrong,” Nature, 04 November, 2013. species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2013.14063 ; Joeri Wittenveen and Staffan Mueller-Wille, “Of Elephants and Errors: Naming and Identity in Linnaean Taxonomy,”Mueller-Wille, “Of Elephants and Errors: Naming and Identity in Linnaean Taxonomy,” History and Philosophy of the Life Sciences 42 (2020).https://doi.org/10.1007/s40656-020-00340-z 6)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Phineas Taylor Barnum)의 생애는 2017년 미국에서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이라는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7) Peter Yeandle, “‘Jumboism Is Akin to Jingoism’ : Race, Nation, and Empire in the Elephant Craze of 1882,” Stephanie Barczewski and Martin Farr, eds. The MacKenzie Moment and Imperial History, Cham, Switzerland: Palgrave Macmillan, 2019. pp. 47-55. 8) howdah. 코끼리나 낙타 위에 얹는 좌석. 9) Peter Yeandle, “‘Jumboism Is Akin to Jingoism’,” pp. 54-58.
2023-04-18 | hrights | 조회: 259 | 추천: 2
조광제 / 철학아카데미 대표 출처 - 국제뉴스   미국의 행태가 괴이할 정도로 불편하다. 역사적으로 고착되다시피 한 군사 · 경제적인 압도적 우위를 무기로 내세워 당연하다는 듯 대한민국을 여러 방면에서 압박하고 있다. 우선 다들 염려하다시피 한국의 주력 산업인 첨단의 반도체 기술을 전유하고자 하고 구미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자동차 생산과 판매에 상대적인 불이익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 패권 다툼에서 중국에 밀리는 형세가 뚜렷해지자 미국주의를 내세워 한국이 그네들의 속국이라도 되는 양 일종의 제국주의적인 약탈을 자행하는 꼴이다.   이러한 경제적인 영역에서의 무시와 강압뿐만이 아니다. 다 알다시피,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이란 명목하에 한미일 군사동맹을 향해 뚜렷한 행보를 보이고, 그 수단으로 일본이 유사시 반격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군사력을 배가해 나가는 걸 허용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의 지시에 따라 한국 군대가 일본 군대의 지휘권 아래 들어갈 수도 있음을 염려하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듯, 일본이 수출규제까지 단행하는 등 한일 관계를 교착 상태에 빠뜨렸던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문제를 윤석열 정권이 굴욕적으로 해결하도록 배후 조작한 기미마저 보인다.   급기야 “미국의 중앙정보국 등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한민국 정보의 내부 논의를 감청해 온 정황이 뉴욕 타임스 보도를 통해 드러나, 이에 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라는 보도가 나왔다. 아무리 군사 동맹국이라고는 하나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묵과할 수도 없는 참상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에서는 제3국에 의한 도 · 감청 내용의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는가 하면 “사실관계의 파악이 우선”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사태를 호도하는 것에 불과하다. 뚜렷한 사실 확인은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할 것이고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만약 사실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붙여서라도 동맹국 간에 결단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임을 우선 발표해야 한다. “즉각 미국 정부에 해당 보도의 진위와 기밀문건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요구하라”라는 민주당의 성명이나 “미국 눈치 보기부터 한 모양새다. 즉각 미국 정부를 향해 사실 규명과 사과,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한다.”라는 정의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민의 분노를 내세워 미국 정부의 해명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어떤 상처건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곪도록 방치하면 언젠가는 부풀어 올라 터지기 마련이다. 1945년 이후 3년에 걸친 미군정의 지배와 명령에 따라 일어난 대대적인 양민학살을 낳은 제주 4.3사건에서부터 미군의 허락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1951년의 거창 양민학살 사건, 미국이 배후조정 했다는 혐의가 끊이지 않는 5.18 광주 민주항쟁의 시민을 향한 발포, 그 외 미 중앙정보국의 배후설이 끊이지 않는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살해 사건을 비롯한 한국 정권에 대한 간섭 등은 아무리 6.25 전쟁에 주도적으로 참전해 공산화를 막았다고 할지라도, 또 한국의 경제 건설에 미국이 긍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비인간적이고 반도덕적인 악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자유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공산 진영 사이의 냉전과 그 양극 대립의 과정에서 한반도의 남북 분단이 전략적인 수단으로서건 부산물로서건 고착되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한반도의 분단 체제의 고착이 오랜 세월 한국민에게 극복하기 힘든 집단 무의식적인 분열증과 이데올로기적인 진영 논리를 깊숙이 심어 넣어 어떻게 특히 정치적인 영역에서 불구의 정서에 시달리게 했는가. 오랜 기간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군사독재 정권을 가능하게 했고, 그런 가운데 수없이 많은 인권 유린이 이루어졌고 그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지금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우중들이 모여 백주에 “빨갱이 문재인과 이재명을 찢어 죽여라!”라는 구호를 당당하게 외치고 있다. 그들이 하나같이 오른손에 미국 국기를 쥐고서 흔들고 왼손에 태극기를 쥐고서 흔드는 모습은 한반도 분단 체제의 고착과 전략적인 활용에 있어 미국의 책임이 엄중함을 결과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의 우방국이었고 동맹국이었다. 그리고 속내와는 달리 적어도 겉으로는 마치 형님 국가처럼 한국 사회의 자유와 민주, 평화와 번영을 돕는 형세를 취해왔다. 이러한 미국의 역사적인 행보는 스탈린-모택동-김일성의 공산 독재체제와의 대결,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공산 ‘세습왕조’의 반민주적인 통치 체제 등과 대비됨으로써 그 정당성을 가상적으로 획득했다. 그런데, 이제 ‘미국주의’라는 그네들의 국가 전략 아래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그 동맹국이라는 미명으로 어떤 강압적인 조치라도 취할 수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결국 절대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우리 한국민들에게 예속적인 굴종을 요구하는 셈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미국의 도움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주의 4·3 독립통일 투쟁, 대구의 2·28 학생의거, 마산의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 4·19 혁명에 의한 이승만 독재의 종식과 새 민주헌법의 제정, 부마항쟁을 통한 독재자 박정희의 사살, 5·18 민주항쟁, 6월 항쟁에 의한 전두환 독재정권의 분쇄와 새 민주헌법의 제정, 그리고 촛불혁명을 통한 시민사회의 성숙과 무능한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 등은 어느 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끊임없는 민주사회를 향한 한국민의 도도한 시민 정신에 의한 성취였다.   그런데도 언제나 상층에서 이익 카르텔을 형성한 경제 재벌 · 언론재벌 · 모피아 운운하는 반민주적인 세력이 그림자 정권처럼 사회정치적인 권력을 장악해 발휘해오고 있고, 이에 휩쓸려 많은 수의 국민이 암암리에 군중을 형성하여 반민주적 · 친독재의 성향을 드러내오고 있다. 그 모든 이유라고 할 수 없으나, 상당 부분 분단 체제 때문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으나, 민주주의를 올곧게 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평화 통일 내지는 평화 협력이 절실했다. 이를 위한 한국민의 노력에 미국이 도움을 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설사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어떻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었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암암리에 방해했으리라는 짐작이 옳을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선언마저 담은 박정희-김일성의 7·4 남북 공동성명, 노태우 정권 때 이루어진 남북 화해와 불가침 그리고 교류 협력 및 비핵화를 합의하면서 남측 · 북측이라 부르기로 한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김대중-김정일의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 공동선언, 노무현-김정일의 10·4 남북정상 선언, 문재인-김정은의 남북정상회담과 김정은-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등 남북 평화와 통일을 향한 쉼 없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거의 물거품이 된 것 같아 참담함을 금할 길 없다. 더군다나 남북이 휴지기에 들어서서 그저 냉랭한 대립 상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마치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치닫는 것 같아 참담함에 불안과 두려움이 더한다.   1994년 한때 북핵 위기가 고조되어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한국 내 미국민의 소개령을 내렸다는 첩보에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여 전쟁이 발발할 것을 염려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행히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 내가 80만 대군의 국군 통수권자다. 전쟁에 단 한 명의 국군도 동원하지 않겠다.”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고, 이에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한발 물러섰다고 한다. 그러고는 30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남북 간에 몇몇 총격전이 있긴 했으나 특별히 전쟁이 날 것 같은 기미는 없었다. 그런데 요즈음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너무나 험악하여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형세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의 격돌이 워낙 심상찮다.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한 것이라 하겠지만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 관계가 격화되는 가운데, 북한과의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한미 또는 한미일 군사 훈련이 수시로 대대적인 규모로 이루어지고 그와 동시에 하루가 멀다고 북한에서 중장거리 미사일을 쏟아 올리면서 소형화했다는 핵폭탄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이미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대통령 윤석열의 태도다. 북한이 공격의 기미를 보일 시 선제공격을 가하겠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또 일본의 반격 능력을 위한 군사력 배가에 대해 염려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찬동하는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많은 국민이 염려하는 한미일 군사동맹마저 기꺼이 맺을 기세여서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하여 전쟁을 치르는 것마저 허용하겠다는 기미를 보인다. 간단히 말하면, “어디 붙자면 붙어 보자.”라는 식이다. 정말이지 어쩌려고 이러는가? 국내 정치에서 무지와 무능 그리고 무당이라는 ‘3무 정치’라는 비아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한 ‘3무’가 대미 종속도 모자라 대일 종속마저 번연히 외교의 업적이라고 내세우는 것도 엄청난 문제다.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이러한 ‘3무’가 한반도 민족 전체의 말살을 가져올 수 있는 전쟁을 앞당기는 일에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나 불안하고 두렵다. 대통령 윤석열은 30년 전 김영삼 대통령이 기염을 토하듯 밝힌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 내가 80만 대군의 국군 통수권자다. 전쟁에 단 한 명의 국군도 동원하지 않겠다.”라는 결연한 의지를 곧이곧대로 체화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반전 · 평화의 의지를 발휘하여 곧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로서는 결코 전쟁에 가담할 수 없다는 각오를 밝혀야 한다. 만약 그 반대로 전쟁 발발의 위기를 고조시키는 쪽으로 협상을 단행한다면, 그야말로 그의 정권은 임기를 제대로 채울 수 없을 것이다.
2023-04-17 | hrights | 조회: 157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