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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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권용선(수유너머104 연구원), 석미화(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 윤/ 경찰관  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연합군 항공기가 격추당했다. 격추를 모면하고 간신히 기지로 귀환한 항공기들은 총격에 의해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돌아온 항공기들에서 총구멍이 많은 부분을 확인하여 그곳이 취약한 부분이라고 결론지었고, 그 부분을 보강한 항공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생환율은 높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생환한 항공기들의 총 맞은 부분은 총을 맞더라도 격추될 가능성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총격에 치명적인 곳을 맞은 항공기들은 이미 격추되어 보강이 필요한 곳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하였다. 눈에 보이는 특징과 사례에 편향되어, 보이지 않는 곳을 간과한 오류로 인해 정작 필요한 곳에 대한 정확한 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특징에만 주목하고, 보이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간과함으로써 진실을 바로 알지 못하게 되는 인지 오류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특징 존재 효과(feature positive effect)’라고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힘겨운 요즘, 특징 존재 효과 때문에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인지 오류를 바로 잡아 정확한 진실을 알려주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은 중국, 이탈리아 다음으로 확진자 수가 많다. 확진자 수가 많다는 사실에만 주목하면 한국의 방역체계가 허술하여 초기 중국으로부터 감염자 입국을 막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거나, 정부의 대처능력 부족 때문이라고 비난하기 쉽다. 눈에 보이는 확진자 수에만 주목한 인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특징에 현혹되지 않도록 한꺼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정부가 촘촘한 방역망과 진단체계를 잘 활용하여 확진자 및 감염우려자들의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관리 가능한 감염자들을 모두 찾아내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일부 확진자 수가 적은 나라들은 검사 역량이 부족하거나, 검사를 의도적으로 적게 하거나, 허술한 역학조사로 인해 확진자 수가 과소평가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국가들의 방역체계가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국가들 때문에 통제되지 않은 세계적 감염확산이 우려되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이미 많은 외신과 일부 국내 언론들도 한국에서 공식 발표된 확진자 수가 많은 것이 한국의 개방성과 민주성, 그리고 높은 수준의 방역체계 덕분이라고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도 한 달 이상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빨아 쓰면서 조심은 하고 있지만, 감염 때문에 불안하지는 않다.  여기에 비유하는 것이 다소 억지스러울지 모르겠으나, 99년 이후 여러 차례 경찰과 검찰 간 수사권조정 논의가 있을 때마다 경찰관의 비리나 잘못을 비난한 기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런 기사들을 볼 때에도 특징 존재 효과를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난기사를 접하면 언뜻 상당히 많은 경찰관들이 비위를 저지르고 있어 수사 주체로서의 권한을 맡기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경찰은 내‧외부에 감시와 통제의 눈이 많고, 조직 정화 기제가 잘 작동하기 때문에 비리나 잘못이 있으면 밖으로 자주 노출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런 사례들이 오히려 조직 내 민주화와 투명성, 개방성이 과거보다 많이 개선된 반증이라고 한다면 너무 낙관적인 해석일까? 어쨌거나 잘못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꽁꽁 싸매고 가두어 눈에 보이지만 않게 하는, 그리고 견제와 감시의 수단이 없는 조직보다는 경찰이 더 건전하고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장 취약한 부분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2020-03-17 | hrights | 조회: 503 | 추천: 12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신종 감염병 코로나19의 여파가 길어지고 있다. 역병이 창궐하니 민심도 흉흉하다. 타인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생활 속 깊이 스며들고 있다. 그 뿐 아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소상공·자영업자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크다. 거리는 한산하고 골목가게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시흥시의 지역화폐 ‘시루’ 가맹점 중 가장 결제 건수가 떨어진 업종은 숙박업과 스포츠 및 여가관련서비스업이다. 음식점업이 그 뒤를 따르고 소매업은 큰 변화가 없다. 여행은 안가고 헬스장도 잠시 쉬며 외식은 없되 라면은 쌓아두는 소비패턴이다.  급기야 정부는 경기활성화대책을 세우고 대규모 추경을 편성했다. 얼어붙은 소비를 되살리겠다는 목표로 11조 7천억 원에 달하는 추경안을 제출하며 그 중 2조 4천억 원을 ‘중소기업·소상공인 회복지원’, 8천억 원을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지원’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건물주 임대료 인하 보상처럼 도대체 누가 제안했는지 궁금해지거나 신차 구매 시 소비세 감면처럼 왜 굳이 지금 하는지 도통 모를 방안도 포함되어 있지만 어쨌건 재난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골목경제를 살리는 적극적인 재정투입정책을 펼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니 환영할만하다.  한발 더 나아가 보다 도전적인 재정투입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약탈적 플랫폼 경제 전도사’ 또는 ‘한국적 공유경제의 개척자’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이재웅 쏘카 대표가 쏘아올린 ‘국민들에게 재난 기본소득으로 50만원씩 지급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그것이다.(글을 보내기 직전 경남도지사도 100만 원 재난 기본소득을 공식 제안했다)  비슷한 시기 홍콩 정부도 코로나19 대책으로 모든 영주권자들에게 1만 홍콩달러(약 156만 원)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국내 보수야당 대표가 4월 국회의원 총선거라는 정치이벤트를 앞두고 냅다 ‘그 정도로 과감성 있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한발 얹은 것도 재밌는 관전 포인트이다.  재난 기본소득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도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 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조사 결과 찬성 42.6%, 반대 47.3%로 오차범위 내에서 비슷한 응답률이 나왔다. 무응답/모름은 10.1%였다.  세부결과를 살펴보면, 보수층의 59.0%가 반대, 진보층은 35.0%가 반대 의견을 보였다. 찬성은 광주·전라(반대 30.1% vs 찬성 65.3%)와 경기·인천(38.9% vs 47.5%), 40대(43.0%, vs 49.6%)와 진보층(35.0% vs 57.8%)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33.8% vs 57.4%)에서 많았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다음의 사례들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등의 자료를 가져왔다.)  16세기 초엽에 후안 루이스 비베스는 ‘구빈문제에 관한 견해’에서 빈민에게 최소 소득을 지급하자는 구상을 내놓았다. 몽테스키외는 1748년 ‘법의 정신’에서 “국가는 모든 시민에게 안전한 생활수단, 음식, 적당한 옷과 건강을 해하지 않는 생활 방식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콩도르세는 1795년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관’에서 기본소득이란 사회 전체에 걸쳐 확장한 보험이라는 발상을 꺼냈다.  18세기의 사상가 토머스 페인은 토지가 공공재이므로 지대수입으로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샤를 푸리에는 1836년 ‘잘못된 산업’에서 “기본이 되는 자연권을 누리지 못하는 탓에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기본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적 의미의 기본소득은 조지프 샤를리에의 1848년 ‘사회 문제의 해법 혹은 인도적 헌법’과 존 스튜어트 밀의 1849년 ‘정치경제학의 원리’ 제2판에서 구체화된다. 존 스튜어트 밀은 “분배에서 특정한 최소치는 노동을 할 수 있거나 없거나 간에 공동체 모든 구성원의 생존을 위해 먼저 할당된다. 생산물의 나머지는 노동, 자본 그리고 재능이라는 세 요소 사이에 사전에 결정되는 특정한 비율로 분배된다”라고 서술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1918년 ‘자유로 향하는 길’에서 생계에 충분한 소득을 모든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 다양한 사상가와 정치인들이 국가배당, 사회배당, 사회크레디트, 사회배당, 기본소득(Basic income) 등의 개념이 제시됐다.  재밌는 것은 시장경제의 수호성인과도 같은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음의 소득세’를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음의 소득세는 고소득자에게는 세금을 징수하고 저소득자에게는 보조금을 주는 소득세 또는 그 제도를 말한다  제도의 실행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지역은 알래스카와 핀란드이다. 1976년 알래스카주 당국은 주 헌법을 개정해 알래스카 영구 기금을 설치했다. 1982년 알래스카주 당국은 6개월 이상 알래스카에 거주한 모든 사람에게 나이와 거주 기간에 무관하게 영구 기금에서 매년 균일한 배당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2017년 핀란드 사회보장국(KELA)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장기 실업수당을 받는 시민 중 2,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기본소득 월 560유로(70만 원)를 지급했다.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국가가 주도해 시행한 세계 최초의 사례이다.  2019년 KELA는 기본소득 실험의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기본소득 수령 여부와 취업률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나 기본소득 대상자들의 삶의 질은 향상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핀란드 정부는 좀 더 면밀히 기본 소득의 결과를 분석해 2020년에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만약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면 핀란드는 국가 주도로 기본소득을 입법화하는 첫 국가가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기본소득연합이 발족되고 같은 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기본소득 의제를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활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국내 기본소득 논의를 이끌며 시민사회와 정치권 일각에서 확산되었다. 특히 녹색당에서 활발한 내부 논의가 있어왔고 이와 별도로 2019년 9월에는 기본소득당이 창당됐다. 변종으로는 허경영 씨의 국가혁명배당금당이 있다.  점차 확산되던 기본소득 화두가 코로나19 창궐 국면에서 또 한발 나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코로나19 추경 세부안에 기존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정부는 한시적으로 아동수당 지급 대상자에게 월 10만 원, 기초생계수급자들에게 최대 22만 원,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되 현금(법정화폐)이 아닌 온누리상품권 또는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으로 전달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 방안은 국가재난 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써왔기 때문에 큰 틀에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현금이 아니라 지역화폐 등으로 전달하겠다는 점은 새롭다. 이럴 경우 현금 지금에 따른 퍼주기 논란과 소비가 아닌 저축으로 이어져 기대한 효과를 볼 수 없었던 전례를 극복할 수 있다. 지역화폐는 애당초 저축이 불가능하고 해당 지역 골목상권 가맹점에서만 쓸 수 있어 골목상권에 온기를 불어넣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소비처가 한정되어 있어 경기부양 효과가 낮을 것이란 지적도 있지만 시흥시만 하더라도 가맹점이 6천 곳이 넘고, 온라인쇼핑몰과 대형마트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대신 대부분 가맹점이 생활밀착형 소비처라 사용에 큰 불편함이 없다. 무엇보다 지역화폐의 가맹점은 골목상권이란 점에서 재난 상황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계층과 부문에 대한 집중적인 투입 효과를 볼 수 있다.  기존의 기본소득 논의에서도 지급수단을 지역화폐로 하는 방안이 있어왔다.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은 경기도이다. 사진 출처 - 구글  경기도는 2019년부터 경기도 거주 3년 이상 만24세 청년에게 분기에 25만 원씩 1년 동안 100만 원의 청년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지급수단은 경기도 31개 시군에서 각각 시행하는 지역화폐이다.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A씨는 시흥화폐 시루로, 안산시에 사는 B씨는 안산화폐 다온으로 받는 식이다. 이 돈은 소비의 부가 외부로 유출되는 주요 통로인 온라인쇼핑몰, 백화점, 대형마트, SSM 등에서는 쓸 수 없고 지역에서만 순환된다. 산후조리지원비 50만 원도 동일한 방식으로 지급된다.  만일 청년기본소득을 현금으로 지급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포퓰리즘의 극치, 퍼주기의 끝판왕 또는 빨갱이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을 것이다.(유럽 쪽 좌파에서는 지역화폐를 우파 정책이라고 본다) OECD 국가 중 GDP 대비 복지비 최하위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청년기본소득이라는 도전적 정책이 건재한 것은 ‘복지+지역화폐 지급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패키지 때문이었다.  경기도는 지난해 1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역화폐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지역화폐와 복지정책을 연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65세 이상 노인에게 주는 기초연금의 30%를 지역화폐로 전달하면 생산유발효과가 연간 13.3% 증가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지역화폐 연계를 통한 복지전달체계와 지역경제 활성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이 완전한 형태의 기본소득은 아니다. 기본소득은 보편성을 가져야 하지만 청년 기본소득은 24세 청년에게만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없었던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기본소득임은 틀림없다.  핵심은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전달한다는 점이다. 경기도의 시도는 전 세계 3,000여개의 지역화폐 중에서도 전례가 없던 실험이다.  물론 보편적 기본소득 적용이 현실화된다면 그 모두를 지역화폐로 전달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이다. 지역화폐는 말 그대로 지역 내 소비의 순환을 목적으로 하므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소비에 모두 대응할 수 없다. 기본소득 전체 비중에서 일부를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등의 보완책이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19는 꿈틀거리던 기본소득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미래 사회는 근로소득자와 기본소득자로 나뉠 것이라는,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모를 전망도 나온다. 기본소득 그리고 지역화폐와 결합한 기본소득 논의가 향후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결과물로 나올지 주목된다.
2020-03-11 | hrights | 조회: 363 | 추천: 1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 카타르 외교적 고립과 알 바시르 정권의 위기  2020년 1월 13일, 수단을 방문한 UAE 외무장관 안와르 가르가쉬는 과도 정부인 수단 통치위원회(2019.08.20-현재) 부의장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 장군 및 관리들을 만난 자리에서 수단 개발 프로젝트를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수단 방문을 마친 후에, 가르가쉬 외무장관은 “무슬림형제단이 2019년 4월 11일 군부 쿠데타로 축출당한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 통치를 후원함으로써 수단이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불안정해졌다.”고 주장하면서 현재 수단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무슬림형제단의 탓으로 돌렸다.  사실, 1989년 6월 30일 알 바시르는 이슬람주의자 장교들을 앞세운 무혈 쿠데타를 주도하여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았고, 2019년 4월 11일 축출당할 때까지 30년간 수단을 통치하였다. 알 바시르는 정당을 금지하고, 국가 차원에서 이슬람법을 도입해 실행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이슬람주의자들의 지배가 강화되었고, 수단은 독재, 가난, 무장 세력들의 근거지로 변했다. 게다가 무슬림형제단 연계 세력인 이슬람전선이 국가기구들을 통제했다. 이 때 알 바시르는 15명의 이슬람주의자 지휘관들로 구성된 군사통치위원회를 설립하고, 수단의 이슬람화에 착수하여 세속주의자들을 공무원에서 몰아내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통치하에서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주의자들이 힘을 발휘하였다.  그런데 2017년 6월 5일, 사우디, UAE, 이집트는 테러단체로 규정한 무슬림형제단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카타르와 외교관계를 끊었다. 이 상황에서, 알 바시르는 무슬림형제단 및 카타르와 대립각을 세우는 사우디, UAE, 이집트와 연대를 거부했다. 수단 이슬람주의자 정치인들이 카타르 편을 들도록 사실상 알 바시르에게 압력을 가하였다. 뿐만 아니라, 알 바시르에게 카타르는 사우디나 UAE를 능가하는 핵심적인 재정적, 정치적 후원자였다. 수단 이슬람주의자들 대부분은 카타르가 후원하는 무슬림형제단과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타르의 역내 고립이 수단 무슬림형제단의 세력 약화와 알 바시르 정권의 위기를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 알 바시르 축출과 신군부 정권 수립  2018년 12월 민주화시위 발발 이후, 통치위원회가 구성된 2019년 8월까지 시위과정에서 250명 이상의 시민들이 사망하였다. 수단 전역으로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면서 2019년 4월 11일 군부 쿠데타가 발발하였다. 쿠데타 세력은 같은 날 과도군사위원회(2019.04.11-2019.08.20)를 구성하였다. 10명으로 구성된 과도군사위원회는 4월 12일 의장에 압델 파타 압델라흐만 부르한 장군, 4월 13일 부의장에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 장군을 임명하였다.  그러나 과도군사위원회 설립 이후에도, 군부정권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는 계속되었다. 정권을 장악한 과도군사위원회 세력은 다갈로 장군이 이끄는 민병대 신속지원군(2013년 창설, 일명: 잔자위드)을 동원해 민주화요구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특히 2019년 6월 3일 신속지원군은 군부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공격해 100명 이상 사망한 하르툼 대학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위대 주검들 40구가 나일 강에서 건져 올려졌다. 이 6월 5일 학살 사건에 대하여, 과도군사위원회 의장 부르한이 사과하고, 과도군사위원회와 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 연합이 양자 협상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7월 17일 정치 합의안이 나왔다.  이 합의에 따라 2019년 8월 20일 과도정부 성격을 띤 통치위원회가 창설되었고, 과도군사위원회는 이 통치위원회에게 권력을 이양하였다. 39개월 동안 활동하기로 기획된 통치위원회는 최고 권력기관으로, 과도군사위원회가 선정한 5명, 시민단체 연합이 선정한 5명과 양 측이 합의한 민간인 1명 등 총 11명의 군부와 시민단체 연합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이 합의안은 과도군사위원회 구성원이 21개월, 시민단체 대표가 나머지 18개월 동안 통치위원회 의장을 맡기로 규정하였다.  사실 시민단체 연합이 한 축을 담당한 이 양자 합의는 격렬한 시위를 무력화시키고, 군부통치를 합법화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합의에 따라, 통치위원회 의장은 과도군사위원회 의장이었던 부르한 장군, 부의장은 다갈로 장군이 맡았다. 따라서 통치위원회는 과도군사위원회 권력구도를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신군부정권 수립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다갈로 장군은 악명 높은 신속지원군의 지휘관으로, 부르한 장군을 넘어서는 최고 실권자로 평가되며, 북부 다르프르 지역 소재 금광을 소유한 갑부다. 그는 2003년 시작된 다르푸르 내전에서 알 바시르 대통령을 위해 싸우면서, 신속지원군 전신인 잔자위드 민병대를 지휘하여 민간인 살해, 강간, 집 불태우기 등 전쟁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다. 게다가 그는 2019년 4월 11일 쿠데타에서도 신속지원군을 동원하여 알 바시르 대통령을 축출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최근 신속지원군은 예멘 내전에 파견되어 후티와 싸우고 있으며, 리비아 내전에 파견되어 동부의 칼리파 하프타르 장군과 협력하면서 서부의 통합정부와 싸우고 있다. 사우디와 UAE는 예멘과 리비아에 파견된 신속지원군에 대하여 현금으로 보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신속지원군은 예멘과 리비아 내전에서 사우디와 UAE 용병으로 참가하고 있다. 수단군이 2019년 6월 3일(현지시간) 수도 하르툼 군사령부 주변에서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AFP연합뉴스 □ 사우디, UAE 및 이스라엘의 지원과 신군부 영향력 강화  2019년 4월 21일, 사우디와 UAE는 2020년 말까지 30억 달러를 쿠데타 세력에게 지원하기로 약속하였고, 이 중 15억 달러는 2019년 10월에 이미 집행되었다. 이는 수단에서 카타르와 이슬람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사우디와 UAE 및 신군부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9년 5월 과도군사위원회 의장 부르한 장군과 부의장 다갈로 장군은 이집트, 사우디, UAE 등을 차례로 방문하여 상호간의 우의를 다졌다. 이에 맞서 시민단체들은 이집트, 사우디, UAE의 수단 정치 개입을 반대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조직하였다. 이 상황에서 2019년 6월 3일 신속지원군이 저지른 하르툼 참극이 발생하였다. 사우디와 UAE는 예멘과 리비아 내전에 수단 용병들을 활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르툼 시위대 학살을 저지른 신속지원군에게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다갈로 장군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다갈로 장군은 2019년 5월 사우디를 방문하여,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을 만난 자리에서 “수단은 이란과 후티 민병대의 모든 위협과 공격에 맞서 사우디 왕국과 함께 서 있다”고 밝혔다. 그는 쿠데타 성공 이후 첫 해외 순방으로 사우디를 방문함으로써, 왕세자 빈 살만과 굳건한 연대를 표시하였다. 44세의 비교적 젊고 야심찬 다갈로 장군을, 사우디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와 닮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2020년 2월, UAE가 중재한 것으로 알려진 수단 통치위원회 의장 부르한과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가 우간다에서 만나 국교 정상화를 논의하였다. 이 때 네타냐후는 수단을 미국의 블랙리스트에서 빼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사우디와 UAE, 이스라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수단의 새로운 군사정권이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민주화를 성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며, 정치적 안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도 매우 불투명하다. 특히 사우디의 지원을 받으면서, 사실상 최고 실권자로 인정받는 통치위원회 부의장 다갈로 장군은 정규군을 능가하는 신속지원군을 사용한 무자비한 시민 탄압과 학살 전력이 있고, 통치위원회 의장 부르한 장군과의 권력투쟁 가능성도 열려있다. 게다가 많은 수단의 엘리트들은 다갈로 장군의 초등학교 3학년 중퇴 학력 때문에 최고 통치권자로서 내세우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또 예멘과 리비아에 수단의 젊은이들을 용병으로 파견한다든지, 이스라엘과 국교 정상화를 시도하는 부르한 장군과 다갈로 장군의 행위들은 시민 사회의 반대에 직면하였다. 수단의 앞날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 있다.
2020-03-04 | hrights | 조회: 391 | 추천: 1
권용선/ 수유너머104 연구원  전염병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지만, 현미경으로 미생물의 형태를 관찰하고, 이름을 붙이고, 특정한 병원균에 대한 백신을 만들고, 예방과 치료를 위한 지식을 전파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제너와 파스퇴르의 이름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전까지 인류는 전염병에 대해 대체로 속수무책이었다.  전염병은 인간의 일상적 활동과 권력의 배치, 전쟁의 승패와 경제구조의 변화에도 일정하게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로마제국의 몰락에는 말라리아가 개입했고, 중세의 암울함과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실패의 배후에는 페스트가 있었다. 19세기 들어 전 세계를 강타했던 콜레라는 20세기 들어서도 완전히 장악되지 않았지만, 그 기간 동안 위생과 공중보건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었고, 도로를 포장하고 하수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제도적 정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과학의 힘은 바이러스가 움직이는 속도만큼 빠르게 그것의 정체를 밝히고, 치료법을 축적해왔으며, 인간의 신체 역시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면역체계를 강화해 왔다. 하지만 의학은 변종과 진화의 방식으로 여전히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병원체와 지금도 여전히 싸우고 있다.  과학적 지식과 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생명 자체를 연장하는 데 기여해왔지만, 바이러스의 전염과 확산의 속도에 의도치 않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리시대의 바이러스는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프리패스하거나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대도시의 교회, 병원, 식당, 장례식장, 유흥가 주위를 배회한다. 누구도 그것의 정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비가시성의 존재라는 이유로, 그것을 완벽하게 절멸시킬 수 있는 무기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바이러스와 그것의 숙주로 지명된 자는 공포와 불안 그리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최신의 의학 정보와 위생준칙으로부터 소외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가장 먼저 빠르게 바이러스의, 바이러스의 감염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 노인들, 장애인들, 환자들 그리고 국경을 넘어온 이방인들과 가난한 사람들, 돌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가장 먼저 희생되거나 고통 받는다. 자주, 바이러스의 이동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포와 불안과 혐오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고 교란하고 해체시킨다. 바이러스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숙주의 생명을 치명적인 상태로까지 몰고 가는 대신, 빠른 속도로 무자비하게 이 모든 일을 해나간다.  바이러스는 개별 인간의 신체적인 항상성을 깨뜨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제도적 법률과 의료적 체계와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관계까지 뒤흔든다. 그것은 변이하고 진화하는 방식으로 매번 다시 되돌아온다. 바이러스는 멈추는 법을 모른다. 인류의 위기는 어쩌면 핵전쟁이나 온난화보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지치지 않고 찾아오는 바이러스의 효과, 그것이 촉발하는 사건들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지금 바이러스와 공생하는 중이다. 사진 출처 - SBS  코로나19가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지속되면서 시민들의 삶이 달라지고 있다. 공포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혐오의 타깃을 찾거나 심리적 위축이 극대화되면서 과도한 보신의 태도를 취한다. 자가 격리가 요구되는 상황이 아님에도 자발적으로 외출을 삼가고 사회적 활동을 정지시키며 서로가 서로를 감염의 매체로 의심한다. 바이러스의 활동양상은 독감보다 덜 치명적이고 확장성도 떨어지지만, 그것에 대한 완벽한 지식과 치료법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 일상의 비일상화를 수락하고 감당한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의 위축이 생명의 위축에 다름 아니라면, 병에 걸리기 전에 이미 의사환자의 역할 속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고정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이러스의 창궐이 만들어낸 일종의 예외상태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삶의 환경이 더 이상 예외적인 것으로 마감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예감한다. 코로나19는 코로나22, 코로나26, 코로나32의 형태로 조금씩 변이, 진화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되돌아와 우리의 일상에 파고들고 자리 잡게 되리라는 걸. 바이러스는 숙주를 절멸시키지도, 스스로가 절멸되지도 않는 방식으로 우리와 공생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단지 어두운 디스토피아적 전망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시민사회의 풍경은 생각보다 다채롭다. 마스크를 매점매석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사재를 털어 시민들에게 마스크를 선물하는 누군가도 있고, 공익의 관점에서 바이러스 상황 앱을 만들어 공유하는 누군가도 있으며, 음식이 되지 못한 식재료를 앞에 두고 고심하는 상인들과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을 이어주는 플랫폼을 자청하는 누군가도 있고, 사명감 속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방역의 체계를 세우고 실행하는 누군가들도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불편함을 딛고 더 많은 지혜를 모으고 상상하고 실천하고 연대하는 활동들 속에서만 미생물의 진화와는 다른 인간의 진보라는 이름이 빛을 발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020-02-26 | hrights | 조회: 227 | 추천: 11
윤영전/ (사)평화통일연대 이사장  고희(古稀)를 보낸 지 10년, 올해는 내 팔순(八旬)의 해다. 세월은 참으로 잘도 간다. 남은 생을 어찌 살아 갈 수 있을까? 지나간 세월보다 남은 짧은 세월을 최선을 다해 유종(有終)의 미(美)의 삶을 거둘 수 있을까? 자문해 본다.  지나온 삶을 과연 후회 없이 살아왔는가 묻는다면, 후회 많은 삶이었다고 하고 싶다. 그간 살아온 세월들이 격동의 시대였기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순간들이 많았다. 어쩌면 기쁘고 즐거움 보다, 질곡의 순간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허나 한편으로 궤변도 늘어놓는다. 시대와 조상을 잘못 만나서, 아니 운이 없어서라고 자위도 해 보았다. 허나 스스로 게으름을 피우며 노력도 않으면서 남 탓이라고 한다면, 이는 정도(正道)가 아니기에 반성하기도 했다. 한편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기회와 변화도 있었기에, 노력한 만큼 작은 결실을 거두기도 하였다.  해방공간과 6․25 전쟁 전후에서, 철부지였던 어린 내가 맏형의 억울한 죽음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때 각인되었던 아픔이 성년이 되어서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조국분단 과도기에 스물두 살의, 장형이 죽임을 당한 후, 육십년 만에야 진상이 규명되고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 참으로 슬프고도 기쁜 순간이었다.  반백년 전, 나 또한 ‘가면 죽는다’던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용기는 어디서 났는지 나도 모른다. 그때 1965년 파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도전이었다. 참전 13개월 동안 전쟁에서 생과 사를 바라보면서 깊은 상념에 빠지기도 했었다. 생명의 중요함에도 분단국의 평화와 통일을 더욱 갈망하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또한 부역자로 신원 조회의 대상이 되어 좌절했고, 둘째 형이 의용군과 국군에 참전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상이 제대를 했다. 그 후 세 번의 선거로 집안이 기울어져, 진학의 꿈도 접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배우고 아는 게 힘이다’ 생각하며 주경야독으로 학업에 임하였다. 모든 것을 포기할 뻔도 했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았던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기로이기도 했었다.  또한 슬픔은 열일곱 살에 청상과부가 되신, 양할머니가 우리 8남매 손 자녀를 마치 산모처럼 척척 받아내고 양육하신 것이다. 이런 연유로 양할머니가 열녀로, 부모님이 효자효부로, 3남이면서 50년이나 부모님을 모신 효열 3대가로 이어 왔었다. 8남매 중에서 내가, 기준과 중심을 잡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집안은 어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어쩌면 풍비박산의 집안이 되었을지도 모를 처지였었다.  이런 사실이 자화자찬으로 비추어질까 송구한 마음이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나 자성하고 자책하면서 다짐했다. 과연 남은 세월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지나온 삶을 잘 마무리하고 과오를 뉘우칠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 성실히 노력하는 길을 걸어왔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믿음으로 사는 길이, 하나의 방법이 된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부족한 글쓰기다. 초등학교에서 글짓기에 흥미가 있어 성년에 더욱 살아나면서 결국 만학의 꿈을 갖게 되었다. 가방끈이 짧다는 자괴감도 있었지만, 열심히 노력해 배우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언제나 부족하기만 했었기에 욕심도 부렸다. 진력하여 여러 권의 책을 펴냈지만, 한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나는 다방면의 글을 쓰고 있다. 다양한 문학의 장르 외에 칼럼도 쓰고, 또한 붓글씨도 쓰고 있어 서예로 쓴 작품을 자주 선보이기도 하지만 부족하기만 하다. 글은 수없는 퇴고와 연마를 거듭해야 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진한 작품을 내고 만다. 결국 미진한 작품이 나오면, 바로 후회를 하곤 했었다.  후회는 스스로 게으름과 여유 없는 시간을 활용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에게 제일 크게 다가온 과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조국,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어찌 치유하느냐 하는 무거운 과제다.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원한다면 말로만 노래하지 말고, 바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실천운동에 앞장서 펴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실행을 위해 평화통일에 진력하는 여러 단체에 일원이 되고, 간부가 되고 단체에 책임을 맡아야 했다. 분단의 현실, 여기에는 일제에 36년을 지배당하고 해방 아닌 분단이, 분명 외세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 8천만 동포들이 모두 분단을 외면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나라 잃은 설움에도 31세 안중근 의사와 24세 윤봉길 의사가 처자식을 두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정신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윤봉길 의사는 우리 윤문의 형제항렬이기도 하시다. 8․15 광복이 바로 분단으로 이어져, 74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갔다. 지구촌에서 가장 오랜 분단국, 언제 조국의 평화통일을 이룰지 난망하기만 하다. 허나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을 이겨내는 우리 정신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 freepik  우리의 소원은 평화통일 조국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는 그 어떤 일보다 더 절박하기만 하다. 나는 통일교육위원으로, 평화연대회원 간부로, 평화만들기, 희망연대, 통준사 공동대표로 매진하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하기만 하다. 아무리 통일을 원하지 않는 동포나 주변 외세가 존재해도, 이를 극복해 내야만 한다고 다짐한다.  지구상에 너무도 오랜 분단조국에 통일을 위해서는, 존경하는 안중근, 윤봉길 두 의사와 선현들의 뜻을 따라가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사실 오래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면서 남루한 후회를 했었다. 분단 조국의 통일도 이루지 못하면서 남의 나라 통일을 방해하는 용병군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한없는 자괴감을 느끼곤 했었다.  베트남 인민들은 17도선을 평정하여 세계최강대국인 미국을 이겨내고, 당당히 남북베트남이 통일을 이뤄냈었다. 진실로 베트남 통일을 축하하고, 우리가 용병으로 참전해 저지른 잘못을 다시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오래전 베트남은 남북통일 평화를 이루어 냈다. 베트남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당당히 이겨낸 위대한 민족임을 세계만방에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만 했다.  통일된 베트남을 몇 차례 다녀오면서 그들에게 우리가 지은 죄과를 용서해 달라고 했었다. 그들은 지난 원한을 모두 용서한다고 했다. 그들은 당당히 외세 강대국을 물리치고 세계만방에 통일된 베트남의 발전을 위해 진력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강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지난 용병 참전으로 그들 아픔과 슬픔을 안겨준 사실에 진정으로 사죄하였다. 이에 그들은 우리의 지난 잘못을 용서 해주었다.  필자는 올해 팔순을 맞이하면서 지난 파란만장한 삶을 돌아보았다. 스스로 지난 삶을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나 부족하고 미진한 일들도 많기만 하다. 그러기에 항상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비록 늙어간 나이지만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기를 재촉하기도 하고 있다.  비록 두 분 안중근, 윤봉길 의사(義士)들처럼 젊지 않은 팔순의 나이지만, 그 분 의사님의 뜻을 따라 행하기를 다짐하며, 내 생애를 ‘마무리 잘하는 삶’으로 정의·평화·통일의 길을 과감하게 가는 길이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좌우명으로 삼았던 최선을 다한 삶을 살면서, 나와 맺은 아름다운 인연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다. 한반도에 평화통일을 이루려는 8천만 동포와 후손들이 꿈이요 소원을 이루는 그날까지 진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 한국작가회의 소설분과 회원. 한국문인협회 수필회원. 서예초대작가
2020-02-19 | hrights | 조회: 249 | 추천: 0
신하영옥/ 여성활동가  2005년 여성조직에서 활동하면서 맡은 분야는 ‘지역여성운동’ 분야였고 그 안에서 지방선거와 관련한 ‘여성정치세력화’ 방안도 함께 모색했다. 여성연합 차원에서 지역의 여성정치 주체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임파워먼트를 통해 당선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물론 당선이 최종목표는 아니었다. 지역정치의 한 복판에서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여성의 지위와 인권을 향상하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정치세력화는 정체되었다. 현재 지역차원, 특히 기초단위 차원에서의 여성의원들의 높은 참여율과 비교할 때 한 참 뒤지는 수준이었다. 국회 역시 마찬가지로 지금도 겨우 두 자리(17%)의 참여 비율을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한 자리 비율도 겨우 유지할 정도였다. 그 당시 ‘왜 여성들이 정당을 초월해서 뭉치고 여성정치인을 발굴, 당선시키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여성정치인들이 여성주의적 관점 없이 자신들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건 아닌가 하는 것으로 정치구조보다는 개인들의 행위만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그러나 정당 및 선거제도 등 한국의 정치제도는 주류 기득권정당을 위한 체계로써, 이로 인해 다양한 정당의 원내진입을 차단함으로써 여성을 비롯한 정치소외집단의 목소리도 함께 차단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당체계뿐 아니라, 정당내부 구조도 수직적이고 권위적으로 작동하고 있어서 신입국회의원들이 당대표 및 다선의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정치에 진입한 신입국회의원들은 자신이 대표성을 가진 집단보다는 당의 입장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이 여성정치 활성화의 가장 큰 딜레마였던 것이다. 공천에서 진입까지 수 많은 절벽을 헤치고 나왔지만 그 과정이 반복될 것이란 압박은 여성정치인들의 발목을 잡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할당제는 강제력이 없었고, 17%로 전환점을 만들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고, 이러한 좌절과 절망은 결국 여성유권자들의 ‘여성정당 창당’의 요구로 모아지게 하였다. 지난 2월 1일 ‘여성의당’ 창당을 위한 포럼이후 창당주비위원회 기획단을 구성하여 8일 워크숍을 열고 할당제 대신 여성대표성을 높일 방법으로서의 여성정당의 필요성 확인과 여성의제 발굴, 실무단 구성 등을 진행하였다. 오는 15일엔 중앙당 발기인 대회를 진행하고 3월 중 창당대회를 여는 등 차근차근 총선을 대비해나가고 있고 이 과정을 온/오프라인을 통해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성의당' 창당주비위원회 기획단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워크숍을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이러한 여성정당의 결성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여성들의 삶, 생존, 생활에 대한 무력감과 무능한 정부 및 정치권에 대한 절망이 존재한다. 할당제로도 해결될 수 없는 여전한 여성 차별적이고 여성외면적인 정책과 정치문화, 여성 혐오적 사회풍토의 확산, 디지털여성범죄의 확산과 강화, 노동시장으로부터 파생된 생존에의 절망 등등. 어쩌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절박함과 분노가 여성정당으로 뭉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여성정당은 있어왔다. 한국은 1945년 ‘대한여자국민당’이 있었으나 한 명의 의원도 배출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2007년엔 인도와 호주에서, 2015년 이후 노르웨이, 핀란드, 브라질, 영국 등에서 여성당을 만들었지만 원내진출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다만 스웨덴에서는 2005년 FI(Feminist Initiotive)가 창당 된 후 의회에 진출하지 못하다가 2010년 지방의회와 2014년 유럽의회 진출에 성공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여성의 당이 성공하기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성의 대표성을 인정받고 할당제를 확보하기까지 또한 쉽지 않은 시간이었음을 상기해 봤을 때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갈 길이 멀 수도, 험난할 수도 있지만 지난 2-3년간 한국의 여성운동 지형은 급진적으로 변화해왔다. 그 속에서 성장하고 단련된 젊은 여성들과, 기성 여성운동 선배들의 결집이 어렵기는 하지만 결국엔 서로의 용기와 지혜를 나누며 성공하리라 기대한다. 여성의당 창당 과정자체가 새로운 정치문화와 정당문화, 정당조직구조를 구성해내고 민주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기회, 기성정치 문화와 구조를 전복하는, 과정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20-02-12 | hrights | 조회: 287 | 추천: 4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말 그대로 피땀 흘려 나라를 일구었다. 과학기술에서도 여러 선진국에 못지않은 수준을 달성했고, 1인당 GDP가 3만 2천 달러에 육박한다.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재외동포의 수가 750만 명에 달하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이 250만 명에 달한다. 대학에 강의하러 가면 외국인 유학생들을 너무나 쉽게 만난다. 무엇보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민주주의를 올곧게 실현하려는 많은 투쟁을 거쳐 왔다. 그리고 현재에는 이른바 ‘촛불 혁명 정권’을 일구었다. 그런데 미완의 ‘촛불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촛불 혁명의 완성은 과연 무엇을 목표로 한 것일까? 여러 견해와 그에 따른 담론들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되도록 실제에 근거한 견해를 확립하고 그에 따른 담론들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2018년 벽두부터 전대미문의 사건들을 연이어서 경험했다. 남북의 최고 지도자들이 원한과 복수의 투쟁을 상징하는 휴전선을 넘나들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했다. 그리고 비록 실패의 길을 걷긴 했지만 북쪽 지역의 비핵화 또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 정상회담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남북 평화 체제가 조만간 구축되리라 기대했고 자유로운 남북 왕래라는 꿈에 부풀기도 했다.  남북 간에 평화 체제를 앞당기기 위해 남북 정상은 비무장지대(DMZ)를 평화 지대로 바꾸어 나가고, 서해 5도를 중심으로 NLL 주변 구역을 평화수역으로 지정해 비무장 공동순찰대를 형성해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런가 하면, 군사 당국자들 간의 회담을 정례적으로 개최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이에 휴전선 비무장지대인 DMZ를 실질적인 비무장지대로 만들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남북 쌍방 최전방 초소인 GP의 병력과 화기를 일부 시범적으로 폐기하고 철수했다. 모두 2018년의 일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한국의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반도 평화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한 국제적인 동조와 협력을 곳곳에서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최근 한반도의 역사는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기적 같은 일이다. 남북 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 사업을 일방적으로 순식간에 철폐하다시피 중지시켜 버린 지난 정권의 수장을 촛불 혁명을 통해 탄핵하고 감옥에 가두어버렸다. ‘촛불 혁명’을 이른바 혁명이라 일컬을 수 있으려면 그야말로 기존의 체제를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그저 정권을 교체하는 것만으로는 혁명이라 일컬을 수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가장 무서운 체제는 바로 적대적인 분단 체제다. 이를 극복하고 분쇄하는 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촛불 혁명’은 명실상부 혁명다운 혁명이 된다. 새로운 민주 정권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협력과 함께 그 징조가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 2.  문제는 한반도 분단 체제를 만드는 데 주역이었던 미국과 소련의 관계,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크게 격돌한 미국과 중국의 관계, 무엇보다 북한과 미국의 관계다. 그리고 이 관계들과 연동된 한국과 미국의 관계다. 우리의 ‘촛불 혁명’이 제대로 된 혁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강대한 주변국들, 특히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규정력을 극복해야 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이른바 자유 진영의 예외적인 경찰국가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전후 한반도에서 남북 분단 체제를 형성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그런 뒤, 소련을 위시한 공산 진영과의 극단적인 대립에서 벌어진 한국전쟁을 기화로 남북 분단 체제를 더없이 공고히 하면서, 남쪽의 한국의 역대 정권들을 동북아 지역의 패권을 위한 대리자로 내세워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급성장한 중국과의 세계 체제적인 다방면의 경쟁을 거듭하면서 여전히 한국 정권을 방패 역할을 하는 대리자로 삼아 활용하고 있다. 그럴 수 있는 한반도의 근본 구도는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남북 분단 체제와 그에 따른 적대적 관계다.  그런데 2018년을 기화로 분단된 한반도에 오랜 세월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 관계를 정착시킴으로써 분단 체제의 성격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갑자기 강화된 것이다. 이를 위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사안이 북미 관계의 정상화였다.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해 있기 때문이다.  남북 간에 평화 프로세스가 전격적으로 이루어짐과 더불어 북미 간에도 여러 차례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면서 비핵화를 의제로 한 화해를 향한 바람이 급물살을 탔다. 남북미의 정치 지도자들이 다각적으로 만나 의사를 타진하고 제대로 된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급하게 움직였다. 남북 인민들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가 흥분하면서 환호했다. 그 과정에서 북에서는 핵실험과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의 발사 실험을 멈추었고, 몇몇 핵 관련 시설들을 폭파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미 간 각종 연합훈련이 연기되거나 축소되기도 했다. 꿈에 부풀지 않을 수 없는 과정이었다.  물론 오랜 세월에 걸친 불신과 반목, 그에 따른 여러 무력적인 도발이 있었기에 바라마지 않는 평화 체제의 구축이 쉽게 실현될 것은 아니었다. 2018년 해빙 분위기가 도래하기 직전만 해도 한반도는 세계 전체에서 가장 위험한 전쟁 후보지로 꼽혔다. 북한의 ‘호전적인’ 핵무장과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과 실험은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를 거론케 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국가 안위를 위한 궁여지책이었으나, 이를 두고 미국은 국제적으로 관리 불가능한 핵 지대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미국은 유엔을 기반으로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했고, 북한을 경제적으로 최대한 압박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더욱 불안해진 북한은 핵무장과 미사일 능력을 더욱 강화했다. 치킨 게임을 연상케 하는 완전한 악순환이었다. 양국의 정치 지도자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없거니와 나선다고 해도 이를 일거에 해결한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여러 번의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원하는 미국 주도의 국제적인 제재는 단 하나도 풀리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려는 추세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2020년 신년 벽두 현재 비핵화를 둘러싼 북미 관계는 교착 상태에 빠져 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2년에 걸친 희망의 시간은 과연 막을 내리는가 하는 불안감이 확대되고 있다.  2017년 전쟁 이야기가 무르익어 불안감을 증폭시킬 때였다. 당시 대통령 후보로 나선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은 “저의 모든 것을 걸고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막겠습니다”라고 했다. 그의 생명마저 걸겠다는 이야기다. 그의 이 말은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그해 광복절 기념사에서도 반복되었다.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은 안 됩니다.” ―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 이후 그는 한반도의 민족 평화 체제의 구축을 위해 동분서주 나름 최대한으로 노력했다. 지금에 와서 볼 때, 그 결과 이룬 가장 중요한 성과는 무엇일까?  우리 국민이 미국에 대한 의식 · 무의식적인 두려움에서 상당 정도 벗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작금에 미국이 우리 한국이 담당해야 할 주한미군 주둔비를 다섯 배씩이나 한꺼번에 인상할 것을 강압하고 있다. 이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우리 국민은 거의 드물지 싶다. ‘미국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트럼프라는 대통령이 비상식적인 이상한 행보를 보인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란 봉쇄를 위한 호르무즈 해협의 파병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궁여지책의 타협책을 구사했다고 할지라도 그 결정에서 우리 국민이 특별히 격렬한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독자적으로 남북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북한 개별 관광’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요컨대, 이제 우리는 대미 관계에서 우리의 당연한 국가 주권과 그에 따른 자주권을 주장하는 셈이고, 그에 따라 일방적인 미국의 규정력을 의식 · 무의식적으로 벗어나는 과정을 겪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 힘의 기반은 무엇보다 지난 2년간 남북 평화 체제의 중요성을 직접 목격하면서 학습한 데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한 2017년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는 한국 및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규정력이 강력하다는 것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고백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의 그 고백의 심중에 어떤 느낌이 들어 있을까? ‘전략적인 자괴감’이라는 모순 어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느낌이 들어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전략적인’이라는 말에 ‘자괴감’을 자신감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작동할 것이다.  역사는 현실과 소망의 두 축으로 움직인다. 두 축이 일치하면 다행이겠으나, 예사로 어긋나기에 최대한 전략적인 절충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절충이 그저 중간이어서는 안 되고, 그렇게 그저 중간일 수도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덕목으로 제시된 중용의 덕과 지혜를 정치 외교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실천적인 현명함을 대통령과 남북 평화 체제를 위한 입안자들에게 한껏 기대하게 되는 까닭이다. 우리의 주권이 최대한 발휘되어 남북 평화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길을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는 길을 더 활짝 열어나갈 수 있길 기대한다. 그리하여 명실상부한 촛불 혁명을 완성했으면 한다.
2020-01-29 | hrights | 조회: 240 | 추천: 3
석미화/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뿌연 미세먼지마저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운치를 더하는 강변의 풍경을 보며 강원도로 향했다. 춘천과 화천을 잇는 배후령 터널을 지나 북으로 길을 따라 굽이굽이 이른 곳은 강원도 화천 오음리. 터널이 뚫린 후 인적이 뜸한 배후령 고갯길에는 한국전쟁 이전까지 그곳이 분단선이었음을 알리는 표석이 있다. ‘여기가 3.8선입니다’ 한때는 이북 땅이었던 이곳 화천 땅과 그 일대는 한국 전쟁 시기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자 지금도 휴전선에 인접해 군부대와 군시설이 대거 들어서 있는 곳이다.  2020년 새해 들어 베트남 전쟁을 공부하는 사람들과 첫 일정으로 오음리를 찾았다. 우리끼리는 모임 이름을 ‘베공모임’이라 줄여 말하기도 하는데 베트남 전쟁의 역사에 관심 갖는 교사, 활동가가 함께하고 있다. 오음리로 가는 편도 2차선 도로로 군트럭과 장갑차 행렬이 끝없이 지나갔다. 군사훈련 중인 장갑차가 넘어와 비좁은 길을 아슬아슬 지나 목적지로 향했다. 여전히 한국사회에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느끼며, 그리고 또 다른 전쟁의 기억을 만나기 위해.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는 베트남 전쟁 참전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장소다. 한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8년 6개월 동안 32만여 명의 병력을 베트남 전쟁에 파병했다. 전투부대가 파병된 첫 해를 제외하고, 1966년부터 이곳 오음리는 월남파병 훈련소로 자리 잡게 된다. 지금은 파병 당시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이곳에 2008년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이 조성되고 ‘월남참전기념관’이 들어섰다. 야외에는 월남파병용사추모비와 당시를 재현해 놓은 취사반 막사, 조악하지만 월남의 집들과 구찌 땅굴 모형도 조성되어 있다. 월남참전기념관은 두 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시의 구성과 내용은 용산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에 전시해 놓은 것과 대동소이하다. 박정희 정부 시기 파병 결정과 과정, 그로 인한 한국의 경제 발전, 한국군의 활약과 전쟁무기, 1973년 철군까지 전쟁에 대한 ‘기념’과 ‘국가주의’ ‘영웅주의’가 넘쳐난다. 필요한 정보만으로 서사를 만들어 역사를 취사선택하고 있다.  최근 읽은 책 비엣 타인 응우옌(Viet Thanh Nguyen)의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_베트남과 전쟁의 기억>은 이 전쟁에 참전한 한국에 대해 극명하게 엇갈린 타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1975년 남베트남이 패망하고, 보트피플로 미국에 건너가 성장한 그는 베트남 전쟁이야말로 한국이 아제국주의(Subimperialism)의 강국으로 떠오르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그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미합중국을 비난하기도 한다. 한국이 처해 있던 복잡한 상황을 감안하면서, 한국인들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범죄도 너그럽게 보려 한다. 이러한 서사로 기억을 세탁하면서, 돈이 기억을 지배하고 기억이 돈을 지배하는 지본주의의 세계에서 한국은 새로운 역할을 기꺼이 맡는다. (중략) 한국은 스스로를 일본이나 미국 혹은 북한에 대해 피해자로 생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한국은 피해자에 머무른 적이 없다. 냉전시대나 그 이후에 한국인들은 측근, 용역 혹은 대리인 역할을 하면서, 그들의 주인에게 잘 배웠다. 우수한 학생인 한국은 인간 이하의 자리에서 졸업하여 아제국주의자의 지위에 올랐다.’ 그의 주장은 국가주의로 위장된 우리의 기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무엇으로 포장하든 전쟁은 한낱 전쟁에 불과했음을 말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베트남에서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그래서 한국은 얼굴성형 말고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자본주의와 산업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수술하는 외과 의사들이 잔혹성을 제거하고 인간성을 이식한 전쟁 기억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서울에 있는 전쟁기념관은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가 어떻게 함께 작동하는지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며, ‘해외파병’ 전시실은 베트남, 캄보디아 혹은 방글라데시라는 알쏭달쏭한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그 명칭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으로 메이드인 코리아임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돌아오는 길, 춘천역 옆에 있는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을 들렀다. 한국전쟁 시기 격전이 벌어졌던 이곳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무공탑과 육이오참전학도병기념탑, 기념 조각이 서 있다. 2017년 10월, 이곳에 월남참전기념탑이 들어섰다. 오음리에서 훈련받고 이곳 춘천역에 집결해 부산항으로 떠나는 출발지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전국 도처에 이런 베트남 전쟁 기념비가 넘쳐난다. 사진 출처 - 필자  1월 22일, 정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란과 미국 간 긴장이 잦아들면서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회 동의 절차도 없이 한국 정부는 청해부대의 작전지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독자 활동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의 결정에 이란 정부는 반발하고 미국은 환영입장을 밝혔다. 프랑스가 주도한 유럽 7개국도 ’호르무즈 호위작전‘을 별도로 꾸렸다고 하니 이 일대 군사적 긴장은 갈수록 더해만 간다.  나는 ‘독자적 활동’이라는 모호함과 그것이 열어갈 전쟁의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국익과 실리적 판단이라는 파병의 명분에 분노한다.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에서 나는 전쟁의 고통 속에 살아야했던 사람들의 삶을 만나지 못했다. 기념의 공간엔 영웅과 애국만이 있다. 그러나 개인의 삶 속에서 만난 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비통함으로 남는다. 어떤 명분으로 포장해도 전쟁은 전쟁이다. 국익을 위한 전쟁이란 없다. 베트남전참전기념탑 옆에 호르무즈참전기념탑이 들어서는 기막힌 장면을 상상해 보았는가.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에 메이드인 코리아 꼬리표를 더 이상 추가하지 말자. 
2020-01-22 | hrights | 조회: 312 | 추천: 6
이윤/ 경찰관  DNA 대조에 의해 30년 전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이춘재라는 사람으로 밝혀졌다. 이춘재의 DNA가 당시 3건(5, 7, 9차 사건)의 현장 증거물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하였다. 이에 경찰은 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이춘재를 상대로 면담하여 14건의 살인사건과 30건의 성범죄에 대한 자백을 받았다.  DNA가 일치해도 자백은 필요하다. DNA 증거는 범행현장에 그 사람이 있었다거나 범행과 관련된 물건이나 사람과 접촉했음을 입증하는 간접증거일 뿐 범행의 동기, 고의, 방법, 범행 전후의 행적까지 알려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사건의 재구성을 위해서는 행위자나 목격자의 기억에 의한 정확하고 진실한 진술이 필요하다.  이춘재는 계속 범인이 아니라고 부인하다가 9차에 걸친 면담 끝에 모두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하였다. 언론에서는 어떻게 이춘재의 자백을 이끌어냈는지에 관심을 보였고, 일부 전문가들은 프로파일러들의 ‘라포형성’이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라포형성(rapport building)’은 간단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대단하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의사소통에서 상대방과 형성되는 친밀감이나 신뢰관계’를 의미하는 라포형성은 교육이나 상담, 그 밖의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기본이고 필수이다. 라포가 형성되면 긴장과 불안이 감소하고 의사소통의 장벽이 제거되기 때문에 정확하고 풍부한 기억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범죄처럼 남들에게 감추고 싶은 것까지 말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 라포를 형성하는 구체적 방법은 언어적/비언어적 경청, 공감하기, 동작 따라하기(미러링), 상대 배려하기 등이 있다. 이런 방법들은 기법이라기보다는 태도에 더 가깝다.  ‘겨우 이런 것으로 자백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당연하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수사면담 교육을 받은 많은 수사관들이 라포라는 생소한 외국어와, 조사할 때 꼭 라포를 형성하라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의 실증연구에 의하면, (고문이 없다는 전제하에) 라포형성이 포함된 인간적(humanitarian) 면담방법이 많이 사용될수록 자백 가능성이 높아지고, 적을수록 자백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한다. 또 범죄자의 60%는 다른 기술 없이 라포형성만 잘 되어도 자백을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물론 라포형성이 된 모든 사례에서 꼭 자백을 하는 것은 아니다. 즉, 라포형성은 자백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춘재와의 사이에 라포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자백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이 유일하고 핵심적인 요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진 출처 - 구글  1990년대 이후 심리학자들은 수사 피의자를 상대로 범죄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신문’이나 ‘조사’ ・ ‘취조’라는 용어보다 ‘수사면담(investigative interview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전 세계의 수사면담기법들 모두 라포형성을 강조한다. 인간적 면담방법에 해당하는 인지면담, 영국의 PEACE 모델, 스웨덴의 SUE(전략적 증거 사용), 노르웨이의 TIM(전략적 면담 모델), 네덜란드의 GIS(일반적 면담 전략)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강압적 면담방법으로 분류되는 미국의 리드(Reid) 테크닉도 면담을 시작할 때부터 피면담자와의 사이에 라포를 형성하라고 한다.  만일 화성 8차 사건 수사관들이 라포형성에 의한 인간적 면담방법을 알았더라면 무고한 윤 모 씨가 허위자백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억울한 옥살이도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한국 경찰도 2007년부터 수사연수원에 ‘수사면담 전문과정’을 신설하여 수사관들에게 라포형성을 포함한 인간적 면담방법을 교육시키고 있다. 문제는 교육받은 수사관의 수가 너무 적어서 당시에도 1년에 280명뿐이었지만, 최근에는 1년 동안 100여명(1회 35명씩 1년 3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 수사경찰관의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많은 수사관들이 피의자와 라포형성을 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꾸짖고, 호통치고, 비난하고, 비웃고, 경멸하고, 창피 주는 방법으로 상대를 굴복시킨 수사를 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수사를 포함한 모든 경찰활동은 사람을 상대로 한다. 현장에서 분노, 불안, 두려움의 정서가 각성된 사람과 처음 만났을 때 단도직입적으로 신고나 업무 관련 대화를 하기 전에 라포를 형성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도 더욱 수월해질 것이고, 경찰관에 대한 불신도 줄어들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라포형성을 하면 경찰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과 ‘억울한 피해를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라포형성과 인간적 면담에 대해 영국처럼 수사 분야를 넘어 모든 경찰관에게 교육·훈련시킨다면, 인권경찰, 유능한 경찰, 공정한 경찰에 한층 더 가까워질 것이다.
2020-01-15 | hrights | 조회: 425 | 추천: 9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주무관  지역화폐1)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동네 이웃들과 만날 기회가 생긴다. 특히 어르신들이 왜 지역화폐가 필요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 배경에는 왜 멀쩡한 돈을 두고 또 다른 돈을 만드냐는 힐난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럴 때면 ‘그러니까 예전에 어른들이 돌고 돌아 돈이라고 하셨지 않겠습니까…’로 일단 말문을 연다. 그런 후 ‘그런데 돈이 이름값을 못하고 제대로 안 도니 우리가 돈을 만들어 돌려보자는 것이지요’라고 답을 한다.  대부분 고개를 끄떡이지만 그래도 ‘나라에서 만든 돈은 어쩌라고 무슨 돈을 또 만드냐’는 표정을 읽을 수 있다.  2단계 심층 질문이 오는 경우도 있다. 국가 경제가 어려운데 지역마다 따로 돈을 만들어 지역에서만 돌리면 지역 간 자원의 순환을 막는다는 이른바 폐쇄경제론과 돈을 많이 찍어내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보수·진보를 떠나 공히 나오는 이 같은 지적들은 사실 현황자료만 살펴봐도 그리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업연구원이 2018년 11월 발표한 ‘지역소득 역외유출의 결정 요인과 시사점’ 자료에 따르면, 1년에 전국에서 서울·수도권으로 빠져 들어가는 지역소득은 62조3271억 원(서울 40조3807억원, 수도권 21조9464억원)에 달한다.  좀 더 실감나는 데이터를 살펴보자. 2016년 한국은행이 신용카드 빅데이터를 활용해 조사한 결과, 서울을 제외한 전국 평균 역외소비율은 45.5%이었다. 100만원을 소비하면 45만5천원은 지역 외로 빠져나간 셈이다. 어디로 갔을까?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저녁이면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하는 나와 대형마트에서 1+1 상품이면 묻지도 않고 집어서 후불(외상) 신용카드로 긁는 당신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사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돈이 한 곳으로 쏠려 ‘돈맥경화’를 일으키는 것이다.(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지역사랑을 운운하며 서울사랑상품권을 내놓은 것은 참으로 괴이하다)  소위 정통 경제학자는 물론, 지역화폐를 엥겔스가 비트코인하는 소리 정도로 치부하며 일종의 보호무역처럼 보는 쪽에서는 먼저 이 같은 현실에 답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마구 찍어내 인플레가 발생한다는 것도 공허한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10월 통화 및 유동성’ 자료에 따르면 광의통화(유동성 현금)는 2,874조원이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0년 전국 지자체 지역화폐 발행목표는 3조원이다. 지역화폐가 인플레를 유발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규모이다.  무엇보다 지자체 발행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와 일대일 태환하는 구조이다. 지자체장이 마구 찍어내는 돈이 아니니 문제제기 자체가 문제다. 지역화폐가 법정화폐의 통화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불안에서 나온 이야기일 텐데, 지역화폐는 법정화폐의 대안화폐가 아닌 보완화폐이다.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EU)의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은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보완하기 위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영국 브리스톨, 프랑스 낭트, 네덜란드 마키 등 6개의 지역화폐 시범사업을 완료하고 2050년까지 지역화폐를 유럽연합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상한 돈이 도처에 많다  시야를 좀 넓혀 보자. 돈이 가진 본래의 기능인 거래의 매개와 가치의 척도에 집중하고 돈을 숭배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축장과 투기의 기능을 거세한 지역화폐가 많다.(아래 소개하는 전 세계 지역화폐 사례는 인천대학교 지역공공경제연구소 이점순 박사의 최근 정리에서 주로 발췌했다)  지역화폐의 이론적 배경으로 독일의 경제학자인 실비오 게젤의 ‘자유화폐 이론’을 꼽을 수 있다. 게젤은 ‘모든 상품은 시간이 흐르면 부패하거나 가치가 하락하는 반면 화폐는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이자가 붙어 축적을 불러일으키며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킨다’고 보고 화폐를 교환의 도구로 환원시키기 위해 일반 재화처럼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하락하는 화폐의 도입을 주장했다.  이걸 실제로 구현한 사례가 등장한다, 1930년대 대공황기를 겪던 독일의 탄광지역 슈바넨키르헨에서 게젤의 아이디어를 받아 ‘Wear’라는 지역화폐를 발행한다. 이 화폐는 매월 액면가의 2%에 해당하는 인지를 별도로 구입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었다. 쌓아놓지 말고 빨리 쓰라는 것이었다.  지역화폐 또는 대안화폐의 대명사로 익숙한 ‘레츠’(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는 1983년 캐나다 코목스밸리 지역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마이클 린튼이 목재산업 침체로 경기가 나빠진 지역 내 주민 간 노동과 물품을 거래하고 컴퓨터에 거래 내역을 공유하는 형태의 ‘녹색달러’를 만든 것이 시초이다.  두 경우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경제 불황기에 지역화폐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돈이 안돌면 우리가 돈을 만들어 돌려보자는 생각이다. 캐나다에서 처음 시작한 주민 간 노동과 물품의 거래를 위해 만든 지역화폐의 형태는 ‘레츠형’으로 불리며 현재 전 세계에서 2,000여종이 통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츠형과 달리 법정화폐 환전 가능여부, 결제방식, 운영방식 등에서 제각각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는 지역화폐가 전 세계에서 1,000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개인적으로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놀랍게 바라보는 것이 시간화폐이다.  1986년 미국 워싱턴 D.C.에서는 커뮤니티 구성원들 간의 서비스 교환을 통한 공동체적 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타임달러’(Time Dollar)가 등장한다. 개인의 자원봉사 활동에 따라 발생한 가치를 화폐로 환산해 회원 간 계좌에 등록한다. 타 회원에게 1시간 서비스를 제공한 회원은 ‘+1 타임달러’, 서비스를 받은 회원은 ‘-1 타임달러’로 기록되며 순환한다. 시간이 가치의 척도이며 상호간 부조 및 기부도 가능하다.  미국 이타카시에서 1991년부터 시행 중인 ‘이타카 아워’(Ithaca Hours)도 유명하다. 1 이타카 아워는 1시간 노동의 가치를 지니며 1시간 노동은 법정화폐 10달러의 가치를 부여해 실물화폐 형태의 이타카 아워가 회원 간 유통된다. 특히 지역사회 공헌사업 등에는 이타카 아워를 무이자로 융자 해주기도 한다. 이타카 아워로 거래할 수 있는 대상은 1,000여종에 달하며 2015년부터는 전자화폐인 ‘이타캐쉬’(Ithacash)가 주로 통용되고 있다.  이타카 아워는 상당히 성공한 지역화폐 사례이다. 특히 법정화폐가 다국적 기업과 은행에 점점 종속되는데 비해 지역 사회 내 거래를 활성화하고 환경보전 및 사회정의를 고려하는 거래를 확대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는 경북 구미의 사랑고리 화폐가 시간화폐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 아톰이 지역화폐에 등장하는 이유  해당 국가 법정화폐와 호환되는 지역화폐도 많다.  프랑스 낭트에서 유통되는 ‘소낭트’(SoNantes) 화폐는 유로화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분산시키고 지역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했다. 지역의 경제주체들은 시립낭트은행에서 계좌를 만들고 유로화와 소낭트를 일대일로 교환한다. 지역 내 기업에서 지불 및 저축의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며 기업 간 거래 뿐 아니라 최근에는 기업과 개인 간 거래에도 활동된다.  소낭트는 환경 관련 기업과 각종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등 공공이익을 창출하는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대기업은 참여할 수 없다. 낭트 내 약 2만6천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영국 브리스톨 파운드는 최근 국내 지역화폐 도입 주체들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지역화폐이다. 2012년 영국 브리스톨시에서 자금의 역외유출 완화를 통한 지역 내 소매점 및 시장 활성화, 지역고용 유지 등을 위해 도입됐다.  브리스톨 파운드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 시민사회가 주도한 점이다. 비영리단체(공동체이익회사)인 브리스톨 파운드 사무국(CIC)이 지역 은행과 협약을 맺고 시스템을 공동 운영한다. 브리스톨 시는 감사와 홍보 등을 담당한다. 지류권과 ‘Text to Text’ 방식의 전자화폐를 통해 발행하며 소비자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10%의 인센티브를 포인트 방식으로 제공하고 가맹점은 결제와 환금 시 총 4%의 수수료를 낸다. 시장이 월급을 브리스톨 파운드로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역화폐를 ‘에코머니’라고도 부르는 일본의 사례는 더 재미있다. 2004년 일본 와세다 다카다바바(만화 아톰의 주 무대였던 동네)에서는 지역공동체를 육성하고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아톰화폐를 만든다. 아톰화폐 실행위원회 사무국에서 발행하며 지역주민들은 지역사회, 환경, 국제협력, 교육 등 4가지 원칙에 맞는 프로젝트나 이벤트에 참가해 아톰화폐를 획득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지정된 레스토랑에서 개인 젓가락 사용, 지역 제품으로 만든 요리 주문, 쇼핑 시 개인봉투 사용, 공공장소 청소, 지역축제 참여 등이다.  아톰화폐를 받은 사람은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고 가맹점은 아톰화폐 실행위원회 사무국에서 법정화폐로 환금할 수 있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아톰화폐의 연간 발행액은 2,000만 마력(1마력=1엔)이며 대중교통, 체육문화시설, 친환경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법정화폐로 환전하는 비율은 발행액의 50% 정도라고 한다.  우주소년 아톰의 작가 데즈카 오사무가 ‘사람들 간의 연대를 소중히 하여 지구의 미래를 지킨다’라는 이념을 작품에 반영했다고 하니, 그 정신에 딱 맞는 돈이다. 정초부터 돈 이야기라니…  한국에서 최근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는 지자체 주도형 지역화폐가 위에 열거한 지역화폐와 비교할 때 지역화폐 원래의 목적과 가치를 잘 알고 지키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왜 만들었는지 수시로 되새기지 않는 지역화폐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어쨌거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역화폐는 돈이 안돌아서 생겨났다. 돈맥경화를 풀기 위해 공동체 내에서 스스로 만든 돈이다. 최근의 지역화폐 붐도 여기서 기인하는 것은 사실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유동성 현금이 2,874조원이 풀려있고 매월 증가폭이 커지고 있음에도 돈 구경하기 힘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돈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고인 물(요즘은 긍정적인 표현이기도 하더니만 은)은 썩는다. 핏줄에 흐르는 피처럼 순환되어야 할 돈이 고여 있으면 나라는 썩는다. 만일 그렇다면 안도는 돈 대신 도는 돈을 만들어 쓰면 된다.  정초부터 돈 이야기를 꺼내 면구스럽지만 자,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돈은 돌고 돌아야 돈이다. 1) 지역 내 소비의 부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지역 소상공·자영업자들의 매출을 증진시켜 지역순환경제 구축을 도모하기 위해 현재 전국 177개 지자체에서 도입 중이다. 대형마트, SSM,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며 사용자는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불편한 소비’에 대한 보상으로 구매 시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받는다. 전 세계적으로는 약 3,000개의 지역화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대부분 공동체 회원 간 노동력 등 자원을 교환할 때 쓰이는 매개로 법정화폐와 교환이 불가능하지만 한국의 경우 법정화폐와 교환(태환)이 가능하다. 또 민간 영역이 아닌 행정이 중심이 되어 추진되는 경우가 많으며 ‘공동체 복원’의 목적보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지역경제 활성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 복원에 따른 사회적 자본 강화라는 비전을 가진 지자체도 있다.(예를 들어 경기도 시흥시^^)
2020-01-15 | hrights | 조회: 202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