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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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황문규 /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지난 7월 발생한 신림역 칼부림 사건 등 묻지마 범죄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는 ‘(범죄로부터의) 안전’이다. 묻지마 범죄를 접한 시민들은 ‘언제든 나도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감에 사로잡혔고, 이에 경찰은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시민들의 일상 공간에 경찰장갑차와 경찰특공대까지 배치하는 초강경 대응의 자세를 보였다. 정부는 범정부 차원에서 총력대응하겠다며 ‘살인예고’ 글 게재자 구속수사,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추진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강한 치안’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정책에 반영된 것이다. 이는 범죄로부터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위험한 사람들을 국가가 통제해 주기를 바라는 최근의 현상에 대한 결과이자 반응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 사회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잠재적 위험 중에서 특히 범죄로부터의 위해가 정치적 반응의 대상물로 선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출처: 세계일보 여기에는 물론 범죄의 미디어화와 그를 통한 대중화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즉, 끔찍하다는 느낌을 순간적으로 쏟아붓는 범죄 보도를 통해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고, 이와 동시에 피해자의 고통을 사회화하는 미디어의 묘사를 통해 시민들이 범죄를 경험할 수 있게 되고, 이로써 범죄를 개인적 주제가 아니라 사회적 주제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 순간 범죄위험에 불안한 시민들은 국가에 대해 안전을 책임지라고 아우성치고, 투표권으로 선거에 민감한 정치인과 입법자들에게 압력을 가한다. 그리하여 정치적 견해에 관계없이 범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이라는 한 목소리만이 존재하게 되고, 이는 정부의 안전정책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내게 된다. 이러한 점은 비단 최근의 현상에 대한 반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난 18대 대선 당시 사회이슈가 되었던 묻지마 범죄에 대해 각 정당의 후보자들이 한결같이 강한 치안을 내세우면서 경찰력을 대폭 늘리겠다고 공약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신림역 사건 이후 강남역에 배치된 경찰특공대와 장갑차> 출처: 연합뉴스 이러한 것이 가능하게 된 데에는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미래와 생존에 대한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키는 기폭제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개개인에게는 미래나 생존에 대한 불안이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이는 확실하게 포착하여 처리하기 어려운 반면, 범죄는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강한 치안을 통해 처리할 수 있는 문제로 착각하기 쉬운 영역으로 간주된다. 안전사회에 대한 논의가 쉽게 범죄로부터의 안전에 집중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범죄로부터의 안전을 강조하면 할수록 국가는 안전을 과시함으로써 안전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이는 최근 정부의 대응에서 보듯이 대개 경찰의 역할 강화 요구로 이어진다. 여기서 경찰은 범죄가 발생한 이후 사후적인 진압·수사보다, 범죄위험을 최대한 조기에 인식하고 이를 사전에 제거 또는 차단하는 사전예방적 기능을 강조하게 된다. 사전예방적 기능의 강조는 경찰권이 발동되기 위한 문턱을 낮추고, 안전을 위한 경찰의 대응을 그만큼 사전영역으로 확장하게 만든다. 실제로 국민의힘 이만희 의원은 지난 9월 2일 묻지마 범죄 예방을 위해 경찰관의 불심검문 요건을 완화한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경찰관의 직무수행으로 인한 형의 감면·면제 범위를 현행 ‘살인, 강간, 강도, 가정폭력 등 특정 범죄가 행해지려고 하거나 행해지고 있을 때’에서 ‘범죄가 행해지려고 하거나 행해지고 있을 때’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문제는 문턱이 낮아지는 만큼 경찰권 발동을 제한하는 장치(요건)도 완화되어 자칫 경찰권의 손쉬운(또는 덜 신중한) 발동을 용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제한하는 경찰권 발동의 한계기능을 약화시키면서도 경찰의 활동영역은 그만큼 확대시킬 수 있다는 우려이다. 결국 이러한 경찰의 역할 강화는 안전한 사회 조성에는 긍정적이겠지만, 시민사회에는 하나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범죄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대응이 오히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면 이는 모순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안전’ 또는 ‘안전한 사회’는 국가가 포기할 수 없는 과제라면, 그에 수반되는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자치경찰제처럼 경찰권의 분산을 통한 경찰에 대한 통제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참고문헌 : 토비아스 징엘슈타인/피어 슈톨레(윤재왕 역), 안전사회: 21세기의 사회통제, 2012.
2023-11-07 | hrights | 조회: 203 | 추천: 5
서보학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윤석열 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국 사회는 유래없는 검찰공화국을 경험하고 있다. 정치의 하위파트너로 치부되던 검찰이 이제 정치의 중심세력이 되었고 정치권, 관료사회, 경제계, 언론계, 학계, 문화계, 시민사회 등 전체 한국 사회가 검사들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는 지경이다. 나라의 대소사를 온통 검찰의 압수ㆍ수색을 통해 해결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를 통합하고 영도하는 국가의 지도자인지 아니면 자신의 적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검찰총장인지 헷갈리는 상황이다. 과거 수많은 정치적 사건에서 편파 수사와 기소로 악명이 높았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시민들의 강력한 개혁 요구로 지난 2013년 폐지되었는데 이제는 검찰 특수부가 용산 대통령실의 직접 하명을 받아 궃은 일을 처리하는 ‘용와대 중수부’가 된 형국이다. 출처: 연합뉴스 압권은 역시 야당 대표 이재명 죽이기에 나선 검찰 수사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은 1년 6개월간 야당 대표를 죽이기 위한 표적수사에 몰입해 왔다. 각 검찰청에서 차출되어 투입된 검사만 70여명, 압수ㆍ수색만 376회로 집계되었고 구속영장청구도 2회 있었다. 그 결과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배임ㆍ성남FC 뇌물ㆍ백현동 특혜ㆍ위증교사 의혹 등으로 기소되었고 대북송금 대납의혹 등에 대한 검찰 수사는 여전히 진행중에 있다. 여당은 검찰의 칼춤에 장단 맞춰 야당 대표를 비방ㆍ공격하는 데만 당력을 집중하고 있고 야당은 검찰의 전방위적 공세를 방어하느라 당력을 소비하고 있다. 그 결과 민생의 어려움을 보듬어야 할 국회에서는 정치가 실종되었다. 말로는 “국민이 옳다”고 하면서도 민생의 어려움은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들의 뇌리에 자리하지 않는다. 검찰의 위세에 정치가 질식ㆍ실종된 상황이다. 게다가 적지 않은 검사들이 이재명 수사에 차출ㆍ투입되면서 일선 검찰청에서는 일손 부족으로 사건처리가 심각하게 지연되고 있다는 부작용도 보도되고 있다. 뭐라도 나올 때까지 계속 털어대는 인디언 기우제식 검찰 수사. 우리 정치사에서 협치의 대상인 야당 대표를 죽이기 위해 검찰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무차별적으로 수사에 나섰던 때가 있었던가? 기억에 없다. 총선을 겨냥한 검찰의 전면적인 정치개입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前장관을 치면서 자랑스럽게 떠벌렸던 ‘살권수’, 즉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1년 6개월째 오리무중인 상태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처가가 연루된 ‘양평 공흥지구 개발특혜 의혹’에 대한 수사도 답보 상태이긴 마찬가지이다. 역시 대통령 처가 땅이 연루되어 있고 국토부 장관과 관료들의 직권남용 의혹이 짙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건에 대해서도 검찰은 수사의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매우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검찰의 민낯을 그대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후안무치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단임제라는 것과 벌써 1년 6개월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최근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 이반이 그대로 유지되어 - 희망컨대 - 내년 4월 총선에서 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경우 윤석열 정부는 급속히 식물정부로 전락할 것이다. 반면 반대세력을 향한 검찰의 미치광이 칼춤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차기 22대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법을 개정해 검찰을 개혁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법률안을 거부할 것이 확실하고 국회에서 이를 재의결 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당의 일부 세력이 검찰개혁에 동참해 국회 2/3의 찬성표를 확보하지 않는 한 검찰개혁은 차기 정부의 과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어쨌든 윤석열 정부에서 무도한 검찰권의 횡포를 온 국민이 경험하였던 만큼 차기정부에서 검찰 조직이 맞닥뜨릴 역풍은 토네이도급으로 매우 거셀 것이다. 앞으로 시간은 빨리 흐르고 조만간 우리 사회는 현정부에서 대통령을 뒷배 삼아 온갖 횡포를 저지르며 초거대 권력으로 자리 잡은 ‘검찰을 과연 어찌해야 할 것인가’하는 고민에 다시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근본적인 검찰개혁의 방안은 무엇인가? 정답은 수사와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데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은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지만 검찰에 수사권을 남겨 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각각이 막강한 권한이다. 잘못 사용될 경우 한 사람의 삶을 억울하게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고 거악 앞에 눈을 감아 사회 전체를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선진 외국은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을 분리하여 상호 감시ㆍ견제하게 함으로써 권력 남용과 부패를 방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쥐고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의 수사개시권이 제한되기는 하였지만 검찰은 여전히 정치인 및 관료들의 부패범죄ㆍ경제범죄ㆍ기업범죄 등 중요한 사건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사실상 독점하고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검찰의 감시와 칼날 앞에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기관이, 단체가 과연 있을까? 그동안 검찰은 이런 독점권력을 가지고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 4명, 총리 등을 비롯한 수많은 고위 관료, 수많은 정치인,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을 감옥에 보내거나 법정에 세웠기 때문에 가히 하늘을 찌를 듯한 검사들의 위세와 자신감은 짐작하는 것 조차 어렵다. 아마 검찰은 야당 대표 이재명을 감옥에 보내는 것은 여반장(如反掌)처럼 쉬운 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 1년 6개월간 지속되고 있는 이재명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진짜 범죄의 실체가 있어서 수사하고 기소한 것인지 아니면 아무 실체가 없는데 수사를 통해 사건을 조작하고 가짜 시나리오에 기초해 기소를 한 것인지 외부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수사와 기소를 검사가 독점하고 있고 외부에서는 구체적인 경과와 내부 정보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에서 검찰이 조작된 증거를 법정에서 사용한 범죄가 드러난 바 있고, 지난 2015년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유죄가 확정되어 옥살이를 한 한명숙 前총리에 대해서는 검사가 허위 증언을 교사하는 등 조작에 가까운 검찰 수사가 이루어졌다는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지난 제17대 이명박 대선 후보의 BBK 의혹에서는 온 국민이 검사들의 거짓말 농단에 놀아나지 않았던가. 일단 기소가 되면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검찰은 항상 법원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며 판사들을 비난하며 빠져나간다. 청부 수사ㆍ기소를 한 검사는 승진으로 보답받고 억울한 피해자에게는 악전고투 끝에 상처뿐인 승리가 남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항상 검찰의 몫이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한 손에 쥐고 있는 한 모든 시민, 모든 단체, 모든 기관은 언제든지 검사들의 횡포와 거짓된 혀에 놀아날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 출처: 법률신문 검찰개혁의 방향은 분명하다. 더 이상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검찰을 고쳐 쓰려해서는 안 된다. 일단 검찰을 죽여야 한다. 검찰청법과 검찰조직을 폐지하여야 한다. 그런 뒤 기소청을 새로 설립하고 엄격한 재임용 절차를 거쳐 손이 깨끗한 검사들을 채용한 뒤 기소업무만을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 영어로 검사를 Prosecutor, 검찰을 Prosecutor‘s Office로 표현하는데 이는 기소관, 기소청이라는 뜻이다. 향후 기소청 소속 검사들은 기소권으로 경찰 및 기타 수사기관의 수사권 남용을 감시ㆍ견제하고 법원의 재판권 남용을 감시ㆍ견제하는 역할에만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쥐고 사회를 입맛대로 쥐락펴락하는 검찰을 없애지 않는 한 조만간 이 땅의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후퇴할 것이고 부패가 온 사회를 뒤덮게 될 것이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라고 말했다. 아니다. 이제는 검찰이 죽어야 나라가 살 것이다.
2023-11-01 | hrights | 조회: 167 | 추천: 6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1. 이해 불가한 최고 권력자의 행태 최근의 정치 평론계를 보면, 누가 대통령 윤석열의 정치를 최대한 상식적이면서도 합리적으로 이해 · 해석할 수 있는가를 놓고 경쟁이라도 벌이는 것 같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정치적인 발언과 행보가 워낙 잦기 때문이다. 국가 최고의 권력을 쥔 자가 이처럼 우왕좌왕, 어리둥절, 오리무중, 좌충우돌의 면모를 보이니 국민 모두는 불안할 수밖에 없고, 국가의 명운이 아슬아슬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우리나라에 치명적인 해를 끼침에 틀림이 없는 일본 핵 오염폐수의 해양 방출에 관해 국가 예산을 들여 그 무해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까지 했다. 지난 9월에는 대한민국을 반도체를 위시한 각종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세계적인 국가로 발돋움하게 만든 기반인 R&D 예산을 20% 가까이 삭감했다. 정치사회평론가인 김어준 씨는 <겸손은 힘들다>와 <다스뵈이다>에서 대통령의 조치가 과연 누굴 위한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전자는 분명 일본을 위한 조치임을 알겠는데, 후자는 도대체 누굴 위한 조치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어 이해할 수 없음을 누차 토로하면서 심지어 박장대소까지 했다. 출처: 딴지방송국 최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더욱더 가관이라 어리둥절함이 도를 넘었다. 보궐선거를 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인 김태우 씨가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되긴 했으나 1년 징역의 범죄자임이 확정되고 두세 달도 지나지 않아 8·15 광복절을 맞아 그를 사면 복권해 결국 보궐선거 ‘후보자로 내세웠다.’ 물론 국힘당이 알아서 한 짓이라고 하겠지만, 그걸 누가 믿겠는가. 무공천을 심각하게 고려했던 국힘당은 모르지만, 당사자인 대통령 윤석열 씨는 이길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제아무리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분명 국민을 ‘바보’로 아는 처사임에 틀림이 없다. 왜 그랬을까? 뭔가 정신이 이상한 게 아닐까? 하는 분석마저 있었다. 그런데 그 나름으로 복안이 있었던 모양이다. 법무부 장관 한동훈 씨를 내세워 민주당 대표 이재명 씨를 구속할 수 있고 그러면 민주당의 이른바 ‘사법 리스크’가 현실적으로 극대화될 것이고 그 여세로 몰아 자신이 내세운 김태우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세간의 논평이다. 물론 이러한 논평에 따르면, ‘국회에서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가결됨으로써 동의안을 제출했으나 구속 인용에 자신이 없었던 한동훈이 오히려 난감했을 것이다.’라는 일각의 분석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된다. 암튼 문제는 그다음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보궐선거 참패 이후, 대통령 윤석열 씨가 “어떤 선거 결과든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거나 “보궐선거 결과에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라거나 또는 “선거 결과에 대해 각계각층의 민심과 의견을 가감 없이 수렴할 예정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대통령이 “국민은 늘 무조건 옳아. 저와 내각 반성하겠다. 어떤 비판에도 변명 안 된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민생 현장으로 더 들어가서 챙겨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깜짝 놀랄 일이다. 국민의 80%가 일본 핵 오염수 해양 방출을 반대했을 때, 그런 국민을 심지어 ‘괴담을 퍼뜨리는’ 자들로 몰아세우지 않았던가. 민생 현장을 챙겨야 한다? 이 또한 놀랄 일이다. 그가 김태우를 사면 복권한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의 강제 침탈과 민족 압살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임을 강조하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음”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민생은 뒷전이었고 오로지 이념을 앞세웠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처한 가장 큰 위기는 현재에도 여전히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는 ‘진보 민주 인사’와 그 세력들의 활약이고, 이들 세력을 척결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급선무인 것처럼 주장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법치를 내세우고 검찰 권력을 대대적으로 앞세워 무수한 압수수색과 구속으로 나라 전체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세우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가 비록 야당에서 ‘정권 심판’을 구호로 내걸긴 했으나 그저 구청장 보궐선거의 참패 하나를 계기로 국민이 무조건 옳다고 믿고 현장에 깊숙이 들어가 민생을 챙기겠다고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국민 대다수가 그런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정말 그가 개과천선하는 모습을 보일까 봐 우려하기까지 하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국가의 최고 권력자의 정치적인 발언과 행보에서 우왕좌왕하고 좌충우돌하는 모습에서 국민 대다수는 오히려 어리둥절, 오리무중의 정세를 감지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여러모로 다반사로 벌어지는 데서 오히려 어처구니가 없는 가운데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최대한 이해해 본 최고 권력자의 행태 과연 대통령 윤석열 씨의 이러한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인가? 과연 그의 행위는 비일관적이고 임기응변적이고 마치 미친 자처럼 자신의 행위에서 모순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자인가? 그러니까 완전히 이중적인 내지는 다중적인 인격자로서 자기의 인격적인 정체성을 온전히 지니지 못한 자인가? 과연 그는 인격적 다중성을 견뎌낼 정도로 특이하고 강인한 정신을 소유한 자인가? 제기할 수도 없고, 제기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물음들을 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는 국민이 무조건 옳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깨닫고 있었다. 다만, 그 뜻이 특이했을 뿐이고 그러한 뜻을 확인하게 된 경험이 다를 뿐이다. 그는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해 수십 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럴 때 자신의 행위에 국민이 환호했음을 경험했다. 법무부 장관인 조국을 ‘멸문지화’에 이르도록 몰아세웠을 때 이른바 ‘태극기 부대’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대대적으로 자신을 지지했음을 경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국민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을 경험했다. 그때마다 그는 국민이 무조건 옳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출처: YTN “국민은 무조건 옳다.” 그런데 그는 왜 하필이면 ‘무조건’이라는 단서마저 붙였을까? 어차피 임기응변의 입발림을 하는 것이니 아예 크게 인심을 쓰는 차원에서였을까?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국민은 자신이 옳다고 지지하고 옹호하고 심지어 환호하는 국민이었고, 그런 국민이라면 ‘무조건’ 옳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흔히 정치권에서 ‘국민’이란 말을 그 참뜻과 상관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가져다 붙여 쓴다. 말은 같지만, 정치 진영에 따라 그 뜻이 다르고, 맥락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그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의 경우, 이러한 오용이 극단적으로 자의적이다.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는” 사람들은 제아무리 그 수가 많다고 할지라도 그가 생각하는 국민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국민이 아니고 “공산 전체주의 세력”이고 “반국가 세력”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하필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참패하고 난 뒤 “국민은 무조건 옳다”라는 말을 했을까? “저와 내각이 반성하겠다”라고 그가 말한 것이 ‘과이불개’(過而不改), 즉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그간에 지탱했던 그의 태도를 진정 반성하겠다는 것일까? 이제까지 민주나 인권이나 진보로 위장하고서 패륜적 공작을 일삼은 자들이 잔뜩 포진하고 있을 야당과 그 지지자들을 갑자기 국민으로 인정하게 된 것일까? 그래서 “각계각층의 민심과 의견을 가감 없이 수렴할 예정이다”라고 한 그의 말이 “패륜적 공작을 일삼은 자들”의 의견도 수렴하겠다는 것일까? 만약 진정 그렇다고 한다면, 과연 그의 내면의 심정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고 해야 한다. 그는 오랜 세월 형성한, 그 누구도 조금이라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캠프 대변인을 지냈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그를 겨냥했음에 틀림이 없을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화부터 낸다”라는 글을 통해 충분히 입증된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반성하여 “각계각층”에 “패륜적 공작을 일삼은 자들”마저 포함하는 쪽으로 반성했다면, 오랜 세월 굳혀 시시때때로 실현하고 확인해온 강철같은 그의 자존심이 물처럼 녹아내리는, 보통 사람에게는 아예 불가능한 대대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민주와 인권과 진보를 예사로 입에 올리는 자들은 그가 말한 “각계각층”에 속하지 않는다고 여전히 확신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그가 쓴 ‘각계각층’이란 말의 뜻은 대다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뜻과 다르다. ‘국민’이란 말뜻을 극단적으로 자의적으로 오용해 쓰듯이, 그는 ‘각계각층’이란 말뜻조차 다르게 적용해 그 자신만의 언어로 쓴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또 그는 쓴 ‘무조건’이란 말뜻조차 다르게 적용해 그 자신만의 언어로 쓴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에 묘한 동어반복의 논리를 생각하게 된다. ‘무조건 자기의 뜻에 동조하는 국민’만이 진짜 국민이고, 따라서 ‘국민은 무조건 옳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그 자신은 무조건 옳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번 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그가 발언한 ‘무조건’은 ‘현재 당면한 전체의 상황에 적용되는 무조건’이 아니라, 지금은 잘못 판단하여 자기를 지지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자기를 옳다고 지지할 수밖에 없을 국민에 대한 ‘미래의 무조건’이다. 이번 강서구청 보궐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참패함에 따른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귀한’ 발언들에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는 말뜻과 그에 따른 진정성이 담겨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진정 그럴까 봐 오히려 걱정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인데, 그런 정도로 비참하게 생각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불행히도 정치평론가들은 물론이고 대다수 국민은 그런 희망이 실현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가 새 마음 새 뜻으로 개과천선하여 통합 민생과 평화를 목표로 삼고, 검찰을 대대적으로 앞세운 그동안의 가짜 법치를 일절 중지하고, 야당과 머리를 맞대어 국익을 위해 국론을 조정해 나가고, 그럼으로써 경제 파탄으로 인해 힘겨워하는 약자들을 보듬는 정치를 수행해나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마찬가지라고 여기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그의 말을 믿지 못할까? 답은 간단하다. 그의 언행이 전혀 일관되지 못하고 이번의 ‘반성’ 운운함이 그동안 그가 일관되게 보여온 안하무인, 쇠귀에 경 읽기의 권력 일변도의 아집에 찬 태도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로서는 과연 그가 어떻게 이같이 앞뒤 아귀가 전혀 맞지 않은 태도를 보일 수 있는가를 최대한 이해함으로써 해결 방안을 모색해 보려 애쓰지 않을 수 없다. 이해의 열쇠는 전대미문의 대통령이 오랜 세월 형성한 그만의 언어, 즉 자기만의 고유한 체험에 따른 자기만의 언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자기만의 언어에는 공동의 소통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모순이란 게 없다. 공동의 소통을 원하는 대다수 국민으로서는 어리둥절 기가 찰 수밖에 없다. 언어가 다른 자는 서로 소통할 수 없다. 보통 사람들끼리는 소통이 안 될 때 만나지 않고 말을 섞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국민이 대통령을 만나지 않을 방도가 없다. 일국의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오로지 자기만의 언어에 사로잡혀 있으면 국민 모두와 소통이 안 된다. 만날 수밖에 없는데도 소통이 안 되면, 공통의 이익을 도모할 수 없고 오로지 분란과 대립 그리고 고통과 불행이 가중될 뿐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은 누구나 쓰는 방법이다. 만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민이 만나지 않는 길은 어렵지만 간단하다. 같은 말을 같은 뜻으로 쓰는 줄 알고 대통령으로 뽑아 늘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전혀 아니다. 자기만의 언어에 온전히 빠져 있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더는 만나지 않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2023-10-24 | hrights | 조회: 149 | 추천: 5
이재환 /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올해도 국회에서는 지역화폐 지원 예산 논란이 뜨거워질 전망이다. 2022년에 이어 2023년에도 정부 지원은 0원으로 국회에 올라갔다. 여야 공방 끝에 결국 3,525억원이 편성됐으나 어떻게 될지 미지수이다. 출처 - 한국경제 지역화폐 지원은 이미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간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당초 목표대로 진행되었는지 등의 측정의 영역을 거치지 않은 채 누구의 정책, 어느 당이 미는 것으로 지원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역화폐 국비 지원 중단의 근거로 ‘지역화폐는 지자체 고유사무이므로 별도의 국비 지원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지역화폐는 대표적 재정 중독 사업’이라는 입장을 밝혀 온 것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정치권과 행정부의 입장을 떠나 지역화폐 지원 정책의 성과부터 제대로 측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크다. 출처 - 한국경제 지역화폐 지원 효과에 관해 가장 부정적인 연구 결과는 지난 2020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표한 '지역화폐의 도입이 지역 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모든 지역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할 경우 역외소비 유출 차단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상쇄돼 사라지며 특정 지역에 소비가 몰릴 경우 인접 지역은 피해를 본다는 내용이었다.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역화폐의 발행으로 소비지출을 특정 지역에 가두는 것은 중앙정부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나왔다. 2023년 올해 경기연구원이 발표한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 에 관한 연구’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지역화폐 효과의 지역 간 소비전환 경로와 관련하여 전국의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하게 되면 지역화폐 발행으로 인한 역외 소비유출 억제 효과가 외부로부터의 소비유입 감소로 서로 상쇄되어 제로섬(zero sum)이 된다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주장에 대해, 지역화폐 도입 이전의 지역 간 소비 유출입 구조가 균형(balanced)이었더라면 이 주장은 타당할 수 있으나 지역화폐 도입 이전에 소비유출이 심각했던 지역과 소비유입이 컸던 지역이 나누어져 있었다면, 지역화폐 도입은 소비유출이 심각했던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출처 - 매일신문 지역화폐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는 부정적인 내용보다 양적인 측면에서 더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2022년 행정안전부의 의뢰로 한국행정안전연구원이 발표한 '지역사랑상품권 정책의 효과 분석 및 발전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은 매출 증대, 종사자 증가, 지역 균형 발전 등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르면, 예컨대 기초 지자체에서 발행한 상품권 공급액 비율이 1%p 증가하면 적용 대상으로 분류한 업종들의 평균 매출액이 8.33% 증가했다. 또 상품권 공급액 비율이 1%p 증가할 때 적용 업종의 평균 종사자 수가 2.10% 증가하기도 했다. 이는 업종별로 고용이 약 6.0명 늘어난 셈이다. 지역 균형 측면에서도 지역상품권의 효과가 명시됐다. 인구 밀도가 낮고 면적이 작은 지역일수록 상품권 공급 비율 증가에 따른 추가적인 매출액 증대 효과가 높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국비 지원 과정에서 인구 감소 지역 등 소규모의 열악한 지자체에 대한 적극적 지원이 상품권의 효과성 제고 측면에서도 긍정적일 것으로 판단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긍정 평가에 대해 기재부와 행정안전부는 ‘긍정 평가와 별도로 재정 지원은 지자체의 몫’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산업경제 이와 별도로 앞서 지역화폐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화폐 대신 전통시장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 활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실제로 정부의 지역화폐는 예산 전액 삼각, 온누리상품권은 집중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온누리상품권의 올해 1~8월 발행 실적은 연간 목표 발행액의 20%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의 도입 목적은 사실상 같다. 좀 더 면밀한 정책 평가와 역량 투입의 적정성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2023-10-18 | hrights | 조회: 110 | 추천: 0
동네를 한 바퀴 돌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추억- 박상경 / 인권연대 회원 시작은 만둣집이었다. 동네 한 바퀴 돌아보자고 생각한 것은. 1.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만둣집, 찜통에서는 늘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두세 명이 앉을 만한 가게 안에서 출출한 배를 채우는 사람보다는, 뜨거운 만두를 봉투에 담아 들고 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집이었다. 출처 - 브런치스토리 아주 오래된 만둣집이었다. 처음은 서툴러 보이던 아주머니의 장사도 시간이 지나면서 제법 단골도 생기고, 어느 날은 헬멧을 쓰고 스쿠터를 타고 배달을 나갈 정도로 번창(?)했다. 수줍어하던 웃음이 이제는 여유가 느껴졌고, 뜨거운 찜통에서 만두를 꺼내는 손놀림은 더욱 능숙했다. 늦은 시간 가게 문을 닫을 때면 혼자서도 밖에 내놓은 찜통 위에 덮개를 덮고 주변을 정리할 정도로 씩씩하였다. 아주머니의 만둣집은 그렇게 추운 겨울에도 뜨거운 햇살이 내리는 여름에도 변함없이, 오랜 세월을 한자리에서 배고픈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 주었다. 그렇게 지나치던 만둣집이 문을 닫았다. 밖에 놓여 있던 화덕이며 찜통이 모두 사라졌다. 셔터가 내려진 입구에는 “이제 가게 문을 닫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간결한 인사말이 붙어 있었다. 그 인사를 보는 순간 아주머니가 가게 문을 처음 열었을 때며, 손님들과 이야기 나누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며, 헬멧을 쓰고 스쿠터를 타고 달려가던 모습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2. 만둣집에 앞서 문을 닫은 것은 철물점이었다. 만물상 같은 철물점은 더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를 전기상회에서 구할 전구들, 자물쇠, 경첩 등 온갖 자질구레한 것부터 건축에 필요한 온갖 공구까지 철물점에 가면 없는 게 없었다. 젊은 시절을 거쳐 초로의 나이에 들어서서도 아저씨는 철물점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1년에 한 번 아니 몇 년 만에 한 번 가는 철물점이 있어 소소하게 필요한 것을 찾아 먼 대형 마트까지 가거나 인터넷을 뒤지지 않아도 되었다. 출처 - 브런치 그 철물점 주인아저씨는 급하고 욱하는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과 곧잘 다투곤 하여 쌈쟁이로 통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한쪽 팔과 다리를 잘 못 쓰는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순정남이기도 하였다. 하도 오래전부터 있어서였을까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철물점이 철거되고 3층 건물이 올라갔다. 그리고 그 건물에는 아이들의 영어 학원이 들어섰다. 마치 오랜 친구가 이역만리로 떠나 생전에는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서운한 감정이 내내 그 주변을 겉돌게 하였다. 3. 찻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면 마당이 넓은 단층집이 있었다. 주변의 집들이 2층, 3층을 올려도 그 집은 그냥 단층집으로 있었다. 그 마당에는 고목인 목련나무가 두 그루 있었는데, 봄날 저녁이면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는 목련꽃이 흐드러지게 피곤 하였다. 꽃 구경을 하려고 일부러 그 집 앞에서 서성이거나 담장 아래 떨어진 꽃잎으로 풍선을 불기도 하였다. 출처 - 도시건축 주변의 집들이 헐리고 빌라가 들어서도 목련나무 집은 봄이면 목련꽃을 피워 냈다. 그렇게 요지부동이던 집이 지난해 헐리고 올 봄에는 10층이 넘는 홀로 아파트가 들어섰다. 밤에 본 그 아파트는 아직 불이 들어오는 곳이 없다. 4. 찻길 건너 골목길을 따라 죽 내려가다 보면 맛나기로 소문난 오래된 중국집이 있었다. 어쩌다 주문해 먹는 짜장면은 정말 ‘진짜 짜장면’ 맛이 났다. 원래 그 중국집은 철물점 주변에 있다가 이사를 갔는데 ‘자금성’에서 ‘금룡’으로 상호가 바뀌었을 뿐, 맛은 동네 사람들이 인정하는 데였다. 자금성 주인은 중국인으로 오래전에 타계하였는데, 그이한테 주방일을 배운 금룡의 주인이 그 맛을 이어받은 것이다. 출처 - 연합뉴스 조그만 가게보다는 배달이 주인지라 배달 앱이 만능인 시절에도 중국집 앞에는 여러 대의 배달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곤 했다. 전화번호만 기억하면 주문할 수 있어서 어르신들이 좋아하였다. 그런 중국집이 문을 닫았다. 유리문에는 “임대문의 000-0000-0000”이 적힌 글자가 불빛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진짜 짜장면’은 어디 가야 먹을 수 있을까? 출처 - 헝그리보더 짜장면 맞은편에는 옷가게가 있었다. 가게 안팎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사서 가볍게 입을 수 있는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옷가게가 있을 만한 데가 아닌 골목에 옷가게가 있으니 처음에는 떴다방인가 싶었다. 그런 옷가게가 한 해 두 해 10여 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장사를 하였다. 오늘 들어선 카페가 불과 몇 달 뒤에 문을 닫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10여 년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신통방통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당연하게 여기던 옷가게가 문을 닫았다. 언제 그랬지? 그동안 왜 몰랐지?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이 개발에 밀리고 경제에 밀려 전혀 다른 일상으로 휩쓸려 가고 있다. 오래된 동네에 오래된 일상이 없다. 값싼 새로움에 전통은 자리 잡을 수 없는 세상인 것을.    
2023-10-10 | hrights | 조회: 158 | 추천: 3
이윤 / 경찰관 출처 - 경찰대학 35년 전 수강한 범죄학 수업 중에 지금은 딱 두 개가 기억난다. 당시 교수님께서 늘 흰색 와이셔츠 주머니에 빨간 솔 담배 한 갑을 넣고 계셨던 것과 ‘범죄포화이론’이다. 범죄포화이론이란 20세기 초 ‘페리’라는 범죄학자가 주장한 것으로 ‘범죄유발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사회환경이라서 특정 사회환경에서는 일정 수준으로 범죄가 발생하기 마련이며, 경찰이나 국가가 엄청나게 노력해 범죄를 감소시켜도 다시 그 수준으로 돌아오고, 어느 순간 범죄가 증가했다가도 다시 원래 수준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가 현저히 늘거나 줄어들려면 교육, 언론, 정치, 경제, 과학기술 등 사회환경이 변해야 한다고 하였다. 요즘 각종 미디어에서 세상이 흉흉하다고 난리다. 소위 ‘무차별 흉기난동’과 ‘등산로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누구라도 언제든지 예상치 못한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졌다. 한국 사회에 갑자기 흉악범죄가 많아진 느낌이다. 그런데 최근 사회환경이 그렇게 급격히 변한 것 같지는 않고, 따라서 흉악범죄가 갑자기 증가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전과 비교하여 정말 흉악범죄가 많아진 건지 확인을 위해 통계를 찾아봤다. 살인과 강력범죄를 기준으로 10년 전과 현재를 비교했다. 살인사건(기수, 미수 등 포함)은 2011년 1,249건 ➜ 2022년 702건으로 약 절반가량 줄었다. 강도는 2011년 3,994건 ➜ 2022년 516건으로 1/8 수준으로 엄청나게 감소했다. 다만 강력범죄(살인, 강도, 강간, 강제추행, 방화) 전체는 2011년 26,699건 ➜ 2022년 24,954건으로 약간만 줄었다. 살인과 강도에 비해 전체 강력범죄 감소 정도가 미미한 것은 주요 암수범죄였던 성폭력 범죄가 10년간 공식 통계에 많이 반영되어 증가한 영향으로 보인다. 출처 - 노컷뉴스 이렇게 통계상으로는 살인, 강도 범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경찰이 잘한 덕분인 것도 있겠지만 그것이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범죄포화이론에 의하면 과학기술 및 경제 발전 등 범죄 감소 요인을 포함한 여러 사회환경 변화가 주요 원인이다. 과거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던 가정폭력, 아동학대, 스토킹, 학교폭력 등에 경찰이 개입하면서 일부 범죄 발생 건수가 증가하긴 했지만, 과거보다 흉악범죄가 줄어든 것은 명확하다. 그리고 내 기억으로도 요즘보다 옛날이 더 무서웠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중학교 진학하는 것이 무서웠을 정도다. 중학교에는 해골파, 백사파, 녹색파 등 폭력서클이 있어서 얻어맞고 다니기 십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실제로 중학교 2학년 때 녹색파였던 우리 반 아이 하나가 여학생 윤간 사건의 공범이어서 퇴학당했다. 신문 배달하던 내 절친도 수금한 신문 대금을 깡패에게 다 빼앗겼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팔다리에 멍이 들도록 쌍절곤을 부지런히 연습했다. 출처 - 루리웹 70~80년대에는 유괴, 토막살인, 연쇄살인, 인신매매 등 굳이 납량특집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무서운 뉴스가 많았다. 94년에 지존파는 부자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아지트에 사체 소각장과 각종 무기를 준비한 후 알지도 못하는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했다. 조직폭력배와 소매치기, 소소한 동네 깡패는 또 얼마나 많았는가. 그때와 비교하면 나는 지금이 훨씬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예전보다 더 불안해하고, 범죄가 더 흉폭해졌다고 느끼는 걸까. 거리마다 많아진 CCTV와 스마트폰에 의해 범죄현장 영상이 여과없이 생산된 후 그대로 미디어에 노출되어 이를 본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심과 분노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문제는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다. 실제 범죄 증감여부와 상관없이 주민의 범죄 불안감이 커지면 치안이 불안한 사회가 된다. 출처 - 경향신문 최근 경찰청은 불필요한 내근인력을 줄여 현장으로 보내겠다는 조직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실제로 세상이 더 흉악해진 것은 아니지만 국민 불안감은 높아졌다. 국민이 안심하려면 경찰이 눈에 더 띄어야 하는데, 활용할 경찰관이 부족하다」는 진단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 조직구조 개편 방향성은 부분적으로 바람직하다. 경찰청이나 시도경찰청에서 근무하는 취합⋅정리⋅검토⋅보고⋅지시에 종사하는 인원을 모두 현장으로 보내는 방향성 말이다. 따라서 조직구조 개편을 하려면 경찰청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단순히 관리 인원 몇 명 줄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경찰청이나 시도청이 현장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보고받거나, 현장에 너무 많은 것을 지시하는 업무 자체를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는 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현장 조직을 만들기 위해 일선 현장의 기존 부서에서 마른걸레 쥐어짜듯 인원을 끌어모으려고만 한다면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는 격이 되어 조직개편 시늉만 한 꼴이 될 것이다. 그리고 불안감 감소라는 기대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현장 경찰관들만 피곤하게 될 것이다.  
2023-10-04 | hrights | 조회: 134 | 추천: 5
박록삼 /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출처 - 위키백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각 부처 차관 임명자들에게 “나한테 충성하지 말고, 헌법 정신에 충성하라”고 한 말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진의와 배경을 다 떠나서라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헌법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테지만 그 울림은 조금 달랐다. 10년 전 검사 시절 국회 국감장에서 던져 그를 스타로 만들었던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란 말을 떠올리게 했기에 더욱 귀에 쏙 들어왔다. 주권재민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통한 질서의 확립은 헌법적 가치의 요체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모여 조화롭게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근거는 모두 헌법에서 찾을 수 있다. 헌법 제21조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제21조 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 한다’고 더 구체적으로 규정했음은 물론이다. 윤 대통령이 고위 공무원들에게 강조했던 그 헌법정신은 아마도 윤 대통령 스스로 다짐하는 내용이기도 했을 테다. 그 헌법 가치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 출처 - 아트인사이트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 가장 공신력 있는 지표는 세계 언론자유지수다. 국경없는기자회가 2002년 조사, 발표를 시작했다. 세계 180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다. 명칭 그대로 각 국가들의 언론 및 표현의 자유 정도를 드러내는 대표적 지수로 통용된다. 특히 언론 자유의 중요성 자체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등수 매기는 데 익숙한 한국사회에서 더더욱 주목을 받는다. 매년 4월말 또는 5월 초순 발표되는 언론자유지수 순위 변동은 늘 그맘때 우리 언론에서 단골 뉴스로 다뤄져왔음은 물론이다. 올해 언론자유지수는 지난해 43위보다 4계단 하락한 47위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출근길 약식 문답, ‘도어스테핑’을 도입하며 언론과 소통을 꾀하긴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고 사실상 영구 중단됐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기자들과 대면하는 일은 사실상 없어진 것과 다름없게 됐고, 신년 기자회견 역시 전체 기자들을 만나는 대신 특정 언론과 인터뷰로 대체되고 말았다.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태’ 이후 언론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언론자유지수 하락은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에 대한 필연적 결과로 해석된다. 출처 - 미디어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문제는 2024년 언론자유지수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69위,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70위가 최하위 기록이었다. 불명예 신기록을 경신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최근 불과 두세 달 사이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해서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강행했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과 KBS 이사회 의장 등을 모두 해임시켰다. 현역 기자들 85%의 반대 의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명된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은 가짜뉴스 생산 언론사의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주장하면서 폐간시킬 수 있다는 일성을 내놓았다. 나아가 대장동 관련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녹취록 관련해서는 "가짜뉴스에 그치는 게 아니라 중대범죄 행위, 즉 국기문란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여당은 관련 내용을 보도한 기자 6명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에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서울시 역시 뉴스타파 제재 검토에 들어갔다. 국민의힘도 8일 ‘대선 공작 게이트 진상조사단’을 발족했다. 그리고 검찰은 15일 뉴스타파와 JTBC 및 기자의 집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출처 - 민플러스 차마 대명한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일들이 숨쉴 틈 없이 몰아치고 있다. 무엇보다 직접적 탄압을 받는 언론으로서는 공포와 두려움을 충분히 느낄 만하기에 위축 효과로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 한다. 차라리 1980년대였다면, 군사독재정권이었다면 국민이 맞서 싸우는 식으로 대응하기라도 할 텐데 내년 총선을 앞둔 야당은 정치적 셈법에만 바쁘고, 시민들은 몇 년 전 정치적 혼란을 겪었던 탄핵 등을 요구하기에 부담스러워만 하고 있다. 제 목소리를 내는 이는 없고 낼 수 없는 환경은 커져가니 대한민국 언론자유지수의 급전직하는 불을 보듯 뻔하게 됐다. 하지만 언론자유지수 등수는 그저 현상과 결과가 되는 숫자에 불과하다. 진짜 문제는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 헌법가치의 붕괴에 있다는 사실이다. 1년 뒤건 4년 뒤건 나중에 이를 복원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사회적 에너지를 들여야 할까 그것이 진짜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2023-09-25 | hrights | 조회: 108 | 추천: 4
황문규 /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출처 - 광주드림 한때 갑질은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사안이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개 ‘을’로 살고 있기 때문에 ‘나는 갑질이 아니라 갑질을 당할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도로에서 운전자는 결코 ‘을’이 아니라 (보행자와의 관계에서) ‘갑’이다. 실제로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어쩌다 사람이 지나가도록 일시정지한 차량을 마주친 보행자는 고맙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횡단보도를 (조금이라도 차량의 일시정지 시간을 줄여주기 위해) 뛰어 지나가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을 정도이다. 보행자를 배려하는 차량의 일시정지 풍경이 그만큼 일상적으로 익숙치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해말 기준 대한민국의 차량등록 대수가 2550만 3000대이니까 대부분의 성인 남여는 운전자에 해당하고, 도로에서 ‘갑’일 확률도 높다. 운전자도 때로는 보행자가 될 수 있을진대 일단 운전자가 되면 차량이 우선이고, ‘사고나면 사람만 손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보행자에게 ‘갑질’을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가장 신뢰할 공간이 되어야 할 횡단보도가 보통사람을 갑질의 주체로 만드는 공간이 되고 있다. 필자가 지난해 경남 창원 소재 경남자치경찰위원회 재직시 경남신문 촉석루 필진으로 참여하여 ‘횡단보도’를 기고(2022. 9. 22.자)한 이유다. 출처 - 뉴스데일리 도로교통법에서는 보행자가 도로를 횡단할 수 있도록 안전표지로 표시한 도로의 부분을 ‘횡단보도’라고 정의한다. 보행자가 길 건너편으로 안전하고 최단 거리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횡단보도는 보행자의 안전한 차도 횡단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에서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거나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는 그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할 것을 운전자에게 강제하는 이유다. 그런데 필자가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으면 그에 아랑곳없이 무섭게 달려오는 차량으로 인해 죽을까 겁이 날 정도이다. 실제로 보행자 교통사고는 2021년 기준 전체 교통사고의 17.6%인 35,665건이고, 사망자는 전체의 34.9%인 1,018명에 달한다. 또한 (무단횡단을 포함한) 횡단 중 사고는 전체의 36.9%에 이른다. 가해운전자는 안전운전의무불이행(66.6%), 보행자보호의무위반(17.4%) 순으로 법규를 위반한다는 통계다. 이러한 통계는 횡단보도가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상호 신뢰하는 공간이 아니라 동상이몽의 공간임을 말해준다. 사실 자동차로 인한 교통사고의 영역에서는 신뢰원칙을 전제로 처벌을 제한하고 있다. 내가 교통규칙을 준수하면 다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교통규칙을 준수하리라는 것을 신뢰한다는 것이 신뢰원칙이다. 이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고속도로에서 무단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듯이,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차량이 일시정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특히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행자 앞에서 차량이 당연히 일시정지할 것으로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주는 편익 못지않게 수반하는 위험도 크다. 그러나 그 편익을 외면한 채 살아가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신뢰원칙을 전제로 일정한 위험을 허용하게 하자는 일종의 타협책이 이른바 ‘허용된 위험’ 이론이다. 사람의 안전보다 교통을 더 중시하는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상기해야 할 이론이다. 횡단보도를 신뢰의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운전자는 엄히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출처 - KBS뉴스 최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어린이를 상해·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가중처벌한다는 이른바 ‘민식이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합헌 결정을 했다.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아직도 보행자보다 차량을 우선시하는 후진적인 차량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서슴치 않았다. 대한민국이 적어도 교통문화 분야에서는 아직도 저신뢰 사회임을 말해주고 있다. 미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1995년 ‘트러스트’(신뢰)라는 명저를 내놓으면서, 대한민국을 대표적인 ‘저신뢰 국가’로 분류했다. 대한민국은 사람과 사람 간의 믿음인 신뢰가 부족한 사회라는 지적이다. 25년이 지난 2020년경 코로나19(COVID-19)에 대한 방역상황을 본 후쿠야마 교수는 대한민국을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갖춘 국가로 평가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국가의 방역을 신뢰했기 때문에 나온 평가일 것이다. 출처 - 뉴스핌 대한민국 도로 위에서는 아직도 사람의 안전보다 차량의 흐름이 더 우선시되고 있다. 끔찍한 (어린이) 교통사고를 경험한 시민들이 사람의 안전을 울부짖을 정도로 강조하고, 도로교통법도 이를 반영하려고 노력하지만, 도로 위의 ‘갑질’에 익숙한 운전자들에게 이는 오히려 갑질을 누릴 수 없게 하는 불편함으로 인식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속과 처벌도 필요하지만, 사람들의 인식 전환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이유다. 이미 도로 위의 갑질에 익숙한 운전자들의 인식을 전환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로 위의 ‘을’의 지위에 있는 어린이 때부터 체험교육을 통해 사람의 안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하는 경험을 쌓게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독일에서처럼 교통안전교육 차원의 어린이 자전거 운전면허시험, 경남자치경찰위원회의 어린이 자전거면허시험, 또는 전동 킥보드(바이크) 운전시험 등등. 건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한 대한민국의 신뢰자본을 쌓기 위해서.
2023-09-20 | hrights | 조회: 155 | 추천: 7
서보학 /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처 - 노컷뉴스 법무부는 최근 한국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묻지마 범죄에 대한 대책으로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998년 이후 사형 집행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함부로 인명을 살상하는 중범죄자들에 대한 형벌의 엄위성(嚴威性)이 떨어진다고 생각한 법무부는 사형 못지않은 위하력(威嚇力)을 가진 대체 형벌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지금 사회와 국회의 분위기로 봐서는 입법이 실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많은 형법학자ㆍ범죄학자들이 연구에서 언명한 것처럼 사형ㆍ무기형과 같은 중형은 일반인들의 믿음과는 달리 강한 범죄억지력을 갖지 않는다. 사형제를 폐지한 많은 나라에서 중범죄가 급증하였다거나 반대로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서 중범죄가 의미 있는 수치로 감소하였다는 증거가 통계로 확인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경향신문 전문가들은 최근의 묻지마 범죄의 근본 원인이 사회적 단절에 있다고 지적한다. 현대사회가 경제적으로는 풍요해졌지만 심각한 부의 불평등, 배금주의 만연과 인간성 상실, 극심한 경쟁관계에서 오는 실패와 좌절, 사회적 관계의 소외ㆍ단절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증가 등 다양한 사회적 병폐가 극단적 분노와 증오 표출의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폭넓은 사회안전망을 갖추기 위한 범국가적ㆍ사회적 대처가 필요한 상황에서 단순한 처벌의 강화는 단편적이고 부정확한 대응이라고 지적한다. 묻지마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처벌 강화에 매달리는 것은 잘못된 처방과 대응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유명한 형법학자 프란츠 폰 리스트가 남긴 “형사정책은 사회정책의 최후 수단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왕 논의의 물꼬가 터진 상황이니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도입이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현재 사형 집행이 중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20년의 형기를 살면 가석방이 될 수 있는 무기형은 연쇄살인ㆍ잔혹한 살인과 같은 중범죄에 대응하기에는 미흡한 형벌이라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가석방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잔혹한 생명 침해 범죄를 저지르고 개선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중범죄자를 영원히 사회와 분리하는 것은 악행에 대한 응보(應報)의 관점과 선량한 시민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관점에서는 적정하고 필요한 형벌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전문가들은 가석방 없는 무기형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출처 - 연합티비뉴스 앞서 언급한 형법학자 리스트가 형법에 있어서 목적형 사상을 주장한 이래, 오늘날 국가 형벌의 근본 목적이 단순히 응보와 위하(威嚇)라는 일반예방의 목적을 넘어 범죄인을 개선ㆍ교화시키는데 있다는 특별예방주의가 확고한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범죄인의 개선ㆍ교화를 위해서는 교정당국의 노력ㆍ지원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동인(動因)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겠다는 재소자 스스로의 의지일 것이다. 그런데 형법상 재소자에게 갱생의 의지와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결정적인 장치가 바로 가석방제도이다. 수감기간 모범수로 생활하고 교정의 의지를 보인다면 정해진 형기보다 일찍 석방되어 가족과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을 주는 제도이다. 이렇게 희망이 주는 교정효과는 가장 중한 범죄를 짓고 무기형에 처해진 재소자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다. 20년 동안 모범수로 살면서 교정의 의지를 보인다면 남은 생은 사회에서 가족ㆍ친구들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이 무기수에게도 개선ㆍ교화의 강력한 동기가 되는 것이다. 반면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도 영영 가족ㆍ친구의 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희망이 차단된 재소자는 갱생의 의지를 갖기가 어려울 것이고 평생 교정기관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골칫덩어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사회와 격리 시켜 응보와 위하라는 일반예방의 목적만을 수행하는 종신형이 과연 현대 형벌 제도의 이념에 부합하는 형벌일까에 대해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나치 집권 하에서 사형제도의 폐해를 수없이 경험한 독일은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사형을 폐지하고 가석방 없는 무기형(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하였으나, 1978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종신형을 선고받은 자도 근본적으로 다시 자유를 찾을 가능성이 있어야 하며, 특별사면 가능성 하나만으로 불충분하다”고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가석방이 인정되는 상대적 무기형으로 변경하였다. 또한 2013년 유럽인권재판소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유럽인권보호협약에 어긋난다며 여러 나라에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같은 이유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등도 사형제 폐지 후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도입하였다가 인권침해 논란으로 폐지한 바 있다. 이같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의 경험은 석방의 가능성이 차단 된 무기형이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헌법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출처 - 한국일보 다만, 현시점에서 우리나라에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도입할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사형을 대신하는 대체형벌로서 도입될 경우이다. 현재 법무부는 사형을 그대로 존치하면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여기에 대해서는 최근 대법원이 사형을 대체하는 경우에만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도입을 찬성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1998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어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참고로 한국 정부는 지난 2020년 유엔 제75차 총회의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사형집행정지선언) 결의안에 찬성한 바 있고, 2010년 유럽연합과의 FTA 협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는 유럽평의회에 사형불집행 약속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사형불집행의 약속이 지켜지고 있으나 형법에 사형제도가 존치되고 있는 한 언제까지 사형불집행이 계속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정치적 환경ㆍ사회적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불시에 사형집행이 재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통합을 이뤄내야 내야 할 일국의 대통령인지 아니면 강력부 검사인지 아직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윤석열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통치 철학과 국정 운영 스타일을 고려하면 어느 날 갑작스럽게 사형집행이 재개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불안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전국 교도소 내 사형 집행 시설의 점검을 지시해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 1997년 12월 김영삼 정부도 23명에 대해 한꺼번에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던가. 공포정치를 노리면서 치안 확립을 핑계로 사형대기자 58명에 대한 사형 집행 명령이 전격적으로 내려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출처 - 가톨릭평화신문 아무 대책 없이 사형을 폐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반 시민들의 반대의견이 높은 것이 현실인 만큼 이번 기회에 사형을 폐지하는 대신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도입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사형을 대체할 수 있는 적절한 형벌을 도입하면 사형폐지에 찬성한다는 시민들의 의견이 3분의 2에 가까웠다. 지난 17대 국회 때인 2004년에는 여ㆍ야 의원 157명의 서명으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대체 입법으로 하는 사형제 폐지 법안이 발의된 바도 있었다. 이 법안은 당시 재적 국회의원 과반이 서명해 통과 가능성이 컸었으나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 등 잔혹 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결국 입법이 무산되었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여러 중범죄와 시민들의 불안감을 생각할 때 사형의 전격적 폐지가 쉽지 않은 만큼 사형을 대체하는 형벌로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의 도입은 고려할 수 있다. 다만 가석방 없는 무기형은 다수의 인명을 살해하고 살해 방법이 매우 잔혹한 사건에 한해 한정적으로 선고될 수 있도록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은 가석방 없는 무기형이 우리 헌법 이념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기면 될 것이다.    
2023-09-11 | hrights | 조회: 140 | 추천: 3
조광제 / 철학아카데미 대표   1. 민주 세력에 대한 노골적인 투쟁 선포다. 요즘 한국 정치로 인해 매우 심란하다. 꼭 짚어 말하면, 대통령 윤석열을 비롯한 동조 세력의 발언과 행위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모든 고난과 승리의 역사를 지우는 것도 모자라 능멸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이 무슨 해괴한 발언인가? 제아무리 형벌을 주관하는 검찰 권력을 휘두른다고 해도 이렇듯 오늘날의 민주 국민의 위력을 거스르는 발언을 느닷없이 그 스스로 할 수는 없다. 어디서 어떻게 해서인지 알 수는 없으나 크게 외부에서 사주받았음에 틀림이 없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반공주의의 이념을 노골적으로 정면에 내세우니 그 사주의 배후는 100년 이상 공산주의와 싸운 미국의 신보수주의 내지는 뉴라이트 세력이라 짐작된다. 출처 - 경향신문 역시 100년 전쯤의 일이었던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을 문제 삼아 육군사관학교에 세운 그의 흉상을 철거함으로써 자신이 반공주의의 전사임을 국민에게 확인시키고자 한다. 이는 이중적인 책략이다. 그럼으로써 홍범도 장군의 목숨을 건 반일 독립 투쟁에 서려 있는 정신을 아울러 국민의 뇌리에서 아예 지워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의 85%가 반대하는 일본의 핵 오염 폐수의 무단 해양 방출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자신의 친일 행위와 여지없이 겹친다. 강제징용 배상을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서 제3자 변제 가능성 운운하면서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하는 그의 행위와도 겹치고, 동해를 일본해라고 명기하는 미국에 대해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는 그의 무책임한 행위와도 겹친다. 말하자면, 이 일련의 사건들은 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태도를 여실히 확증한다. 해양 세력인 일본이 제국주의적인 발상으로 조선의 한반도를 침략하여 대륙 진출을 획책한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로 인해 우리 민족이 지난한 고통을 치른 일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 윤석열과 그의 정치 집단은 반공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그 배후에 깔린 미국주의와 그 배후가 표면으로 드러난 일본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반도 주민의 삶을 근원적으로 기형적으로 만든 남북 분단 체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그동안의 반전 · 평화를 기반으로 한 정치 외교 문화적인 노력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고자 한다. 이는 어떤 사안이건 전 정권을 탓하며 그 긍정적인 노력조차 아예 부정하고자 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그 대신 반공주의에 입각한 그들만의 자유를 내세워 전쟁 불사의 불안과 공포를 심어 넣고 그리하여 국내에서의 불리한 그의 정치적 입지를 확장하고자 한다. 그뿐만 아니라, 반공주의 이념의 책략으로 그와 그의 가족을 둘러싼 각종 범죄와 비리에 대한 국민의 의혹을 잠재우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라도 동원하겠다는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결의에 찬 의도를 노골적으로 내보인다. 이는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습니다.”라는 그의 말에 압축되어 있다.   2. 진정한 이념은 고난 극복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우리 각자의 삶은 물론이고 공동체의 삶은 더욱더 수없이 많은 사실로 점철되어 있다. 개인이건 공동체건 간에 이 사실들을 의미로 바꾸어내는 역사를 형성함으로써 그 존재를 유지하고 확장한다. 자기의 삶에 의미 부여를 할 수 없다고 여겨질 때 불안과 절망이 다가든다. 오늘 아침 일찍 발 디딜 틈 없는 전철을 타고 출근하여 일하고 또 마찬가지로 북적대는 인파 사이로 곡예를 하듯 해서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의미 부여를 할 수 없다면 나의 삶을 어떻게 지탱할 수 있겠는가?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에서 또는 유튜브에서 방영되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그 사건들에 긍정적인 의미 부여를 할 수 없을 때 과연 나의 삶이 지탱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의 의미 부여 활동은 개인의 의도와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독의 사실도 없고 단독의 의미도 없다. ‘단독’이란 말은 말 그대로 ‘오직 그것 자체만으로’라는 뜻을 지닌다. ‘오직 나만의 것’이라고 할 때 성립함 직한 단독의 나, 즉 단독의 자아도 없다.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제시한 ‘단독자’는 없다. 만약 있다면, 그건 부정적인 반동에 따라서다. 무엇에 대한 반동인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나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동이다. 말하자면, 자아가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얽히는 가운데서만 성립한다는 사실에 대한 반동이다. 또 달리 철학적인 품새를 더해 표현하자면, 본질적으로 대타적(對他的)일 수밖에 없는 자아에 대한 부정적인 반동이다. 출처 - 글로벌이코노믹 외부의 사회현실이라는 객관적 장(場)에서건 내부의 심리 현실이라는 주관적 장에서건, 모든 사실은 긍정적 또는 부정적 방향의 의미를 띤다. 일본의 핵 오염 폐수의 무단 해양 방류가 갖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고, 또 그로 인해 내 마음속에서 이는 분노가 갖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외부의 객관적인 장에서 생기는 의미와 내부의 주관적인 장에서 생기는 의미가 연결되어 양쪽 모두에 일정하게 변형이 일어남은 물론이다. 우리는 나의 외부 현실에서 생겨나건 내부 현실에서건 생겨나건 모든 사실이 갖는 부정적인 의미를 부정하고 극복함으로써 최대한 긍정적인 의미를 형성하고자 알게 모르게 죽으라고 노력한다. 긍정적인 의미들이 축적됨으로써 나의 존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설립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의미들이 축적되는 일이 지속하면 그 겹침과 어긋남이 겹겹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겹침의 한가운데서 일정하게 가치가 성립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현실의 객관적인 의미와 개인의 주관적인 의미는 연동해서 성립해서 작동한다. 그래서 각자가 형성하는 주관적인 존재의 가치는 공동체의 객관적인 존재의 가치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주관적인 내 존재의 가치가 지속할 때, 그 가치는 삶의 현실을 바라보는 일정한 관점을 주도한다. 그리하여 가치관, 인생관, 나아가 세계관이 성립한다. 각자가 갖는 가치관 또는 세계관은 다른 사람의 것들과 때로는 조화를 이루기도 하지만 때로는 충돌한다. 이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기나긴 과정을 통해 집단 공동체가 형성된다. 한 집단 공동체를 지탱하는 가치관은 공동체에 속한 개인들이 가치관을 형성하고 작동시킬 때 공통의 힘을 발휘한다. 그리하여 민족에 따른 공동체 의식도 생겨나고 종교에 따른 공동체 의식도 생겨나고, 나아가 국가에 따른 공동체 의식도 생겨난다. 이 공동체 의식들은 기본적으로는 정치 경제적인 삶을 기반으로 하면서 사회 문화 공동체의 형태를 띤다. 사회 문화는 공동체가 수행하는 의미 부여의 제반 정신적 활동이 목표로 삼아 객관화하고 표현하는 역동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가치관이 공고해지면 신념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관이 공고해지면 이념으로 작동한다. 그러니까 신념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고, 이념은 공동체적이고 객관적이다. 서로 다른 신념이 충동하면 자칫 목숨을 건 투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공동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념의 충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신념 또는 이념의 충돌은 곧 존재의 궁극적인 가치와 의미를 둘러싼 충돌이고, 만약 그 충돌에서 나 또는 우리의 존재 가치와 의미가 무너지면 삶을 위한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되고 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신념 또는 이념의 충돌과 투쟁이 일어날 때 과연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패배할 것인가? 핵심 기준은 그러한 신념과 이념을 형성하는 데에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어떻게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성찰하고 반성하며 노력했는가다. 외부에서 주입된 신념 또는 이념은 행위자를 수동적으로 맹종하게 만든다. 그들 행위자가 일순간 감정적인 충동에 따라 미쳐 날뛸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목숨을 건 결정적인 순간에는 두려움으로 인해 패퇴할 수밖에 없다.   3.능동의 민주 진보는 이길 수밖에 없다. 민주 공화국에서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통치자도 아니고 대표자도 아니고 대리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은 자신이 대리하는 국민의 국가적인 삶과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무가 있다. 원리적으로 보아, 그 책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무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들의 삶과 존재에 대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이고 자율적으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대통령은 모름지기 국민이 역사를 통해 자발적으로 온갖 난관을 뚫고 형성한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를 존중하고 더욱 앙양하는 방향으로 밤낮없이 심혈을 기울여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 윤석열은 ‘반국가세력’ 운운하면서 우리 민족과 자립성과 자율성을 파괴하고자 하고 민주화를 위해 지난하게 싸워 이룩한 국민의 진보적인 이념과 평화 평등에 입각한 자유의 이념을 파괴하고자 한다. 출처 - 가톨릭일꾼 대통령 윤석열은 저 스스로 민주화를 위해 싸운 적도 없고, 민족의 평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싸운 적도 없고, 하다못해 심지어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를 분쇄하기 위해 싸운 적도 없다. 그런 그가 내세우는 반공주의와 그 배후의 힘으로 그가 암암리에 또는 노골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미국주의와 일본주의는 철저히 외부에서 주입된 수동적인 맹종의 이념에 불과하다. 민주화와 남북 분단의 극복을 위해 오랜 세월 지난하게 싸워 몸소 밴 진보의 이념으로 무장한 민주 국민과의 목숨을 건 투쟁의 결정적인 순간에 그와 그의 세력은 두려움으로 인해 패퇴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이기지 못하는 그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민주 진보의 세력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걱정하지 말자.  
2023-09-05 | hrights | 조회: 189 | 추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