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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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광조(CBS PD),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정재원(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 국제문제연구소장 (Mahdi Abdul Hadi, Head of PASSIA, http://www.passia.org) □ 1947년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계획이 유대민족고향을 건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국제사회의 역할을 재검토할 때,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사이에 존재하는 오늘날 분쟁의 뿌리를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분쟁은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중동역내 전체 문제이기도 하다. 1914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 미국과 소련은 팔레스타인에 유대민족 고향 건설이라는 시온주의자 운동의 목표를 수용하였다. 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오스만제국의 아랍지역을 다양한 영국과 프랑스 통치 지역들로 나누었다. 1917년 밸푸어 선언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민족 고향 건설을 지지하였고, 1920년 산레모회의는 팔레스타인, 트랜스 요르단, 메소포타미아(이라크)에 대한 위임 통치권을 영국에게 할당하였다. 오스만제국 붕괴 이후, 킹-크레인 위원회는 아랍인들의 희망 사항을 조사하면서, 1919년 팔레스타인으로의 무제한 유대이민과 시온주의자 계획이 끼치는 영향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러나 킹-크레인 위원회 보고서의 권고사항은 실행되지 않았다. ▲ 마흐디 압둘 하디(Mahdi Abdul Hadi) 팔레스타인 국제문제연구소장 반면, 이러한 많은 시도들은 아랍지도자들과 저명인사들로 하여금 시온주의자 운동의 목표를 용인하도록 만들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우회하였다. 영국위임통치 시기에, 팔레스타인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평화롭게 살 수 없었고, 1930년대 필 위원회, 우드헤드 위원회 등 수 많은 위원회들이 팔레스타인을 두 국가로 분할하는 안을 제안하였다. 최종적으로 1947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 분할 계획으로 유엔 총회 결의안 181호가 통과되었다. 이 결의안은 팔레스타인을 유대국가와 아랍국가로 분할하고,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을 특별히 국제 통치를 받는 독립적인 실체로 두면서, 사실상 시온주의자들이 열망해온 유대 민족 고향을 건설하였다. □ 수치스런 50년 점령이후, 이제 국제사회는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건설이후, 1967년 6월 이스라엘이 서안과 가자를 점령할 때까지, 국제사회의 노력들은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이었다. 팔레스타인의 대의는 주변부로 밀려났고, 난민문제, 보상과 재정착으로 해결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은 점차 아랍 국가들로부터 ‘구원’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특히 1964년에 팔레스타인인들의 공식 대표로 PLO를 창설한 이후). 국제사회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내적 국제적 차원을 깨닫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 동안에 느리지만 점차 PLO를 승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냉전의 현실은 많은 국제적인 외교를 허락하지 않았고, 아랍-이스라엘 분쟁은 당시의 양극 체제의 세계질서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소련은 외교적, 군사적으로 아랍인들과 한 편이었고, 서구 국가들은 확고하게 이스라엘로 치우친 정책을 폈다. 공산주의와 소련권의 붕괴는 대체로 제1차 인티파다와 동시에 발생했고, 이 인티파다의 메시지는 “우리는 여기 있을 것이고, 우리는 공존을 원한다”였다. 이러한 상황은 유럽 국가들을 고무시켜서 두 국가 사이의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접촉과 대화를 촉진하는데 연루되도록 만들었다.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창설이후, 국제사회의 주요한 역할은 원조였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금 지원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 원조는 이스라엘이 부과한 무역 제한과 자원에 대한 접근 제한 조치를 감추는 무화과 잎이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접근 제한 조치는 수 년 간에 걸쳐 팔레스타인 경제의 생산 능력을 침식하였다. 국제적인 연구 성과들이 보여 주듯이, 이스라엘의 접근 제한 조치가 없었다면, 원조 필요성은 상당 부분 줄어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팔레스타인에 대한 원조는 개발 지원을 거의 완전히 무시하고, 예산 지원으로 사용된다. 국제사회는 또한 안보분야 발전을 위하여 막대한 양을 투자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과 안보협력을 하도록 압박한다. 이스라엘과의 안보 협력은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매우 논쟁적인 문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도시와 마을에 대한 이스라엘 보안대의 침략이 점점 증대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팔레스타인 안보는 논의에 적절한 요소가 아니라고 간주된다. 특히, 오슬로 협상 이후, 국제 사회의 역할은 원조 산업의 형태를 취했다. 국제사회는 그들 눈앞에서 펼쳐지는 부정의를 이야기하거나, 또 하나의 보고서 이상의 더욱 결정적인 행위와 함께 법률적 도덕적인 책임을 이행하기보다는, 점령을 피해서 일하고 제3국가들의 활동부족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자금과 개발을 활용하였다. 사실상 이것은 점령자에게 계속해서 일을 진행시키고, 모든 이 보고서들을 오만하게 기각하는 허가증을 주었다. 비극은 국제 공동체가 이 사실을 알지만, 더 넓은 지정학적인 환경과 그 자체의 내부적인 이익과 정치 때문에 조치를 취하는데 주저한다는 것이다. 2011년에, 유엔은 팔레스타인 기구들이 국가 지위 획득을 준비한다고 선언하였다. 거의 부전승에 이 방향으로 계속 큰 규모의 자금이 흘러 들어오면서, 국가건설 안은 난국에 봉착하고, 특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기구들에게 완전히 기능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위의 내용에 비추어, 실제적인 점령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나머지 세계라는 인식이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머지 세계의 도덕적 재정적 후원이 없었다면, 점령이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겠는가? □ 국제적인 개입이 없다면, 50년 동안의 점령을 종결시키려는 어떤 시도도 실패할 것이다. 50년이라는 점령 기간 동안, 해외 국가들과 국제기구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으로 바빴고, 기껏해야 이 분쟁을 관리하고, 저지하려고 노력해왔다. 상기할 주요 사건들은 1973년 중동 평화를 위한 제네바 회담을 포함하여 다음과 같다. 1975년 유엔이 PLO에게 영구적인 옵저버 지위를 부여,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1980년 EC의 베니스 선언, 1981년 파흐드 왕자 계획, 1982년 아랍 연맹의 페즈 계획과 레이건 브레즈네프 계획, 1983년 제네바 국제 대회, 1988년 슐츠 평화안, 1991년 마드리드대회와 계속된 양자간, 다자간 회담들, 1993년 임시 자치정부에 관한 원칙 선언, 1994년 오슬로 협정 I, 1995년 오슬로 협정 II, 1998년 와이리버 규약, 1999년 샤름 알 셰이크 협정, 2000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2001년 타바 협정, 2002년 아랍 평화안, 2003년 미국의 로드 맵, 2007년 아나폴리스 회담, 2010년 근거리 회담, 2013년 케리 특사 그리고 2016/17년 프랑스 기획. 아마도 세계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만큼 이렇게 많은 기획들, 제안서들, 회의 개최, UN결의, 국제법 채택과 통과 회의들 및 협정 체결이 이루어진 문제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노력들 중 대부분은 미국의 정책과 관련되는 것이며, 이스라엘에 편향적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분쟁해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거의 결과를 내놓지 못한 지구상의 다른 지역은 없다. 사람들은 당연히 국제사회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50년간의 점령을 종식시키는데 실패한 이유를 물어볼 수 있다. 1967년 11월 유엔 안보리 결의 242호가 이미 이스라엘에게 점령지로부터의 철수, 상호 인정, 난민 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였다. 1977년 10월 미국-소련 공동 성명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합법적 권리를 인정하였다. 매우 간단히, 끝내야만 할 모든 일은 이 분쟁에 국제법과 판결을 적용시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미 자신들의 역사적인 고향 땅 중 단지 22%에 대한 협상에 합의하고, ‘땅과 평화의 교환 방식’을 수용함으로써 역사적인 양보를 하였다. 오늘날 외관상 처리하기 힘든 문제는 모두 새로운 것이 아니며, 부끄럽게도 점령 초기부터 협상 테이블에 있었던 것이다. 국제사회가 ‘협상’에 매달려 있는 척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협상과정’을 사용해서 효과적으로 시간을 벌고, 팔레스타인 땅에 더 많은 현실들을 만들어 갔다. 두 가지 예들, 즉 정착촌과 예루살렘문제가 이것을 설명한다. 1978년 세계시온주의자기구(WZO)는 정착촌 개발에 관한 종합 기본계획을 출판하였다. 당시 소련 및 유럽과 나란히 하고 있던 미 국무장관 반스는 이스라엘에게 정착촌 건설 활동을 중단하도록 요구하였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영토에 거의 60만 명의 정착민들이 있다. 1)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약 52%를 구성하는 유대인들은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체 영토의 85% 이상 사용하고 있으며,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체 인구의 48%를 구성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체 영토의15%이하의 땅을 사용하고 있다. 2) 1980년 8월 20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 478호가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이 결의안은 동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의 합병 시도를 비난하는 7개의 유엔 안보리 결의들 중 하나이며, “성지 예루살렘의 지위와 특성을 변경시키거나, 변경시키려는 점령세력 이스라엘이 취한 모든 법률적 행정적인 조치들과 행위들은 무효이며, 당장 폐기되어야한다”고 결정하였다. 수많은 유네스코 결의들도 예루살렘의 역사적 문화적 상태를 유대화시키려는 이스라엘의 시도들을 비난하였다. 오늘날, 동예루살렘은 사실상 합병되었고, 이스라엘은 충분히 입증되는 차별적인 조치들과 정책들을 방해받지 않고 유지한다. 이제 국제사회는 국제법 준수를 반드시 보장하고, 회유, 모호한 시도들과 공모문화를 의미 있는 압력으로 대체시키고, 면책 특권을 폐지시켜야한다. 정치적 담력과 강력한 개입으로 이스라엘에게 책임을 지우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도록 해야 할 때다. 분쟁뿐만 아니라 불법점령을 종식해야한다.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이 똑같은 공범자들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점령당한 사람들이 점령자의 안보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유럽 및 비동맹운동, 이슬람 협력기구(OIC), 아랍연맹 등과 같은 국제단체들을 포함하는 전 세계는 초강대국 미국을 따르고 있다. 오슬로 협상 과정이 실패 한 이후, 이제 두 국가 해결안은 국제사회의 책임이다. 1) CBS, Statistical Abstract of Israel 2016 2) PCBS, Press Release on the Occasion of Land Day, March 2017
2017-08-07 | hrights | 조회: 87 | 추천: -1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드디어 미국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시진핑도 함부로 그렇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독일의 메르켈이 갑자기 ‘이제 때가 된 것 같다.’는 투로, 미국에 대해 “NO!”라고 일갈하고 나섰다. ‘탈미국의 유럽’에 대한 신호탄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한때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반도가 통일이 되더라도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정확한 의중을 알 길이 없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지정학적인 균형이 요구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서 대략 짐작할 뿐이다. 일본의 혐한 분위기가 광풍을 방불케 할 정도인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종북반일 대통령이라는 전 주한일본대사의 발언이 공공연히 발표되는 가운데 아베 총리의 대미종속을 외관으로 한 동북하에서의 호전적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미국과의 충돌을 애써 피하려는 중국의 시진핑의 입장을 무시하는 듯 미사일 개발과 시험 발사를 계속함으로써 미국과 일본에게 군사적 행보의 강화를 위한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미일이 군사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도록 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아울러 북한이 2000킬로미터 상공으로 미사일을 쏘아 올려 얼마 전에 군사공격의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던 미국의 국무장관의 입에서 자기 주변에 북한에 투자를 원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말이 나오도록 했다. 이 와중에 우리 한국에는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대 평화의 시민혁명으로 부패무능한 대통령을 탄핵 수감시킨 뒤 민주 대통령을 당선시켜 새 정권을 탄생시켰다. 한 나라의 새로운 역사의 건립은 대내적인 변화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하다. 세계사적인 흐름의 종속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주도적인 입장에 서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나름의 균형추를 확립해야 한다. 그동안 크게 요동쳤던 세계사적인 대변화들이 있었다. 1990년의 독일통일과 1991년의 소련해체가 대표적인 사건이다. 그 바탕 위에 중국의 대대적인 경제대국으로 부상이 있었고 유럽에서의 독일의 주도권 장악이 이루어지고 아울러 트럼프와 같은 해괴한 인물이 대통령이 선출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상대적인 쇠퇴와 혼란이 겹쳐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면, 세계체제적인 격변이 심화되면서 그로 인한 전쟁 발발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평화신문 우리 한국의 새 정권이 한창 구성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대체로 내치에 집중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외치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후보 시절 “내 모든 것을 걸고서 전쟁을 막겠다.”라고 했던 그의 진지한 발언이 “내 모든 것을 걸고서 한민족의 평화로운 대약진의 역사를 전개하는 계기를 확립하겠다.”라는 내용이 함축된 것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76 | 추천: 0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자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새 대통령의 ‘파격’행보에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산적한 수많은 질문들 -무엇을, 어떻게, 언제, 누가 할 것이고 어떤 가치와 관점, 즉 어떤 왜?를 가지고 진전해갈 지에 대한- 은 기대 속에서 묻히는 듯 보인다. 과거 두 번의 대선결과에 비해 암울함과 암담함이 걷힌 것은 사실이지만, 개운치는 않다. 여성들이 바라는 대통령을 검색해봤다. ‘성 평등’, ‘페미니스트’, ‘젠더의식, 감수성’을 가진 대통령이 되어, ‘소통’을 통해 ‘여성폭력’, ‘젠더폭력’, ‘차별’, ‘혐오문화’를 극복하고 ‘안전’을 보장하고, 나아가 ‘낙태죄 폐지’, ‘차별금지법’, ‘여성장애인 정책’, ‘일자리’, ‘정규직’, ‘공/보육’ ‘여성대표성확대’ 등의 구체적 정책을 통해 실현했으면 하는 기대들이 보인다. 대통령은 내각 30%에 여성을 등용하겠으며, 점차로 남녀동수내각을 공약화했다. ‘민주주의가 성평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여성들의 주장을 적극 반영해 ‘성평등이 보장되는 민주주의’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아닐까 싶다. 그동안 여성들은 ‘할당제’ 등을 통해 ‘성 평등’이 구현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요구 및 실천해왔다. 그 결과 지난 총선에서는 전례 없이 많은 여성들이 국회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할당제 이후 국회의 정치문화나 국가의 성정책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정치문화와 구조를 조금씩 성평등하게 바꾸어내고 있고 ‘페미니스트 대통령’에의 의지는 그 연장선에 가능한 긍정적인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개운치가 않다. 정권이 바뀌고 새 대통령이 여성 친화적 인사와 정책을 펼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지난 대선토론 과정에서 심상정 후보를 보면서 ‘여성(주의)정치’와 ‘여성(주의)정치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반여성적, 여성차별적인 인사나 언행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당당함, 거침없이 비판하는 솔직함, 필요하면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는 근성, 이미지에 연연하지 않은 원칙주의 등을 표출하는 심 후보를 보면서 적어도 저런 모습을 갖춰야 여성정치와 여성정치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당의 대표이자 당선권 밖에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은 일면의 평가일 뿐이다. 다른 여성들도 그러한 처지에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러 연구들에서 여성들이 할당제 등의 제도변화를 통해 수적인 확대는 이뤄냈지만 ‘질적인 확대’는 아직 미흡하다는 여성정치연구 결과는 ‘여성정치’와 ‘여성정치인’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게 한다. ‘민주주의가 저절로 성평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여성주의적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즉 ‘어떤 민주주의?’라는 질문과 그것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질문은 ‘성평등이 보장되는 민주주의를 실현해라!’ 가 아닌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여성정치’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변화에 좌지우지되는 여성정치참여는 바람 앞의 등불일수 밖에 없다. 여성들이 스스로 창출할 수 있을 때, 스스로 정치권력의 주인이 될 수 있을 때 (남성)정권의 변화에 휘둘리는 여성정치참여가 아닌 ‘민주주의를 한발 더 견인하는 여성주의정치’로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가진 남성(화된)정치인들 눈치 보기, 그들의 간택을 바라는 방식이 아닌, 여성주의라는 신념, 여성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와 비전, 그 실천과정에 대한 원칙, 원칙을 고수하려는 고집과 투쟁성이 어쩌면 정치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자질과 참여경로가 되어야 한다. 신입 정치인, 특히 여성 등 소수자의 정치입문은 보통 ‘비례’건 아니건 당의 권력집단의 승인인 ‘경선’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이 ‘민주주의적’ 과정이 아니라는 건 다 알고 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같은 어려운 관문을 뚫고 재/다선에 성공한 여성정치인들, 정치구조 안에서 여성주의정치를 펼치고자 하는 여성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주의정치가 그러한 위계적, 비민주적인 남성정치문화를 개혁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왜 여성정치가 그러한 경로를 당연시 하면서 정치참여를 확대하고자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원칙, 여성주의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정치진입경로는 이후 여성정치를 그 정치구조에 종속되게 만든다. 여성들-여성정치인, 당원, 여성단체, 여성 집단 등-의 힘으로 여성들이 정치에 진입 및 참여하게 만드는 주체적인 방법이 뭐가 있을지 지금부터라도 고민이 필요하다. 정권의 변화가 여성들에게 개운한 결론이 안 되는 이유다. 사진 출처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내일이 벌써 강남역 사건 1주년이다. 여전히 고려대의 ‘난파’사건은 진행 중이고, 디지털 성폭력도 기승중이고, 이들에 대한 피해여성들은 정신적 심리적 충격에 갇혀있고, 대다수 여성들은 불안해한다. 일베들이 자신들의 게시글을 삭제해달라고 한다지만, 그들의 글이 삭제된다고 그들이 삭제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정치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대통령만 소통할 것이 아니라, 여성정치도 수많은 여성현장들과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연대하고 지원할 때 양 쪽 다 권력을 창출할 힘을 가질 수 있다. 여성정치참여를 ‘내’가 아닌 ‘여성들’이란 관점에서 볼 때 앞으로 30%든 50%든 여성주의정치를 펼쳐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조현옥 인사수석의 위치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앞으로 5년, 문재인 정권의 가능성보다는 정권이 열어놓은 틈을 여성정치가 얼마나 더 활짝 열어내고 굳건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으로서 지켜봐야 할 것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73 | 추천: 0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사상 초유의 심각한 범죄적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됨으로써 곧바로 대선 정국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 각 정당들에서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으로 돌입하면서 바로 그 직전까지의 소위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거리 정치는 갑작스럽게 정당 정치에게 무대를 내 주게 되었다. 그리고 촛불 시민들의 정치가 무색하게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정당, 그것도 인물 중심의 정치로 전환되는 상황을 보며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한국 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소위 보수 정당 후보의 약세 속에 주요 두 야당 후보의 양강 구도가 전개되면서 많은 이들이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인물 중심의 정치에 과도하게 빠져들고 있는 상황이다. 제대로 된 검증이 필요한 사안조차 전반적으로 네거티브 전략이나 폭로전 정도로 취급되는 상황 속에서 인물 자체에 대해서조차 판단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치 정책 선거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전 세계의 칭송을 받았던 숭고한 거리의 직접 민주주의의 가치와 의미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당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대의제를 완전히 대체하는 대안이 없는 이상 현재의 이러한 국면을 과도하게 폄하할 필요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반대로 거리의 직접 정치에 대해서도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사실 강고했던 영남 중심의 보수 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약화된 것 자체가 촛불 시민들의 의지의 발현이며 수개월 동안의 시위의 결과인 것이다. 물론 현재의 한국 대의제 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들이 도입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촛불 시민들의 의지는 거기까지 도달하지 않았다. 냉철하게 되돌아보자. 촛불 시위 이전에도 이후에도 시민들의 요구는 급진적이지 않았다. 대규모 촛불 시위는 박근혜-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 자체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었지 항간에서 주장하듯 팍팍한 삶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언제나 그러했듯, 시민들은 ‘직위도 없는 일개 여성’이 막대한 이득을 취한 것도 문제지만, 대통령을 쥐고 흔들었다는 것 자체에 더 큰 분노를 느꼈다. 따라서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는 지배 집단의 공격에 대한 분노는 크지 않았다. 게다가 촛불 시위 자체도 야당이나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아닌 보수층 내부의 분열로 인해 흘러나온 정보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이는 단순히 시작이 그러하니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1905년 가퐁 신부의 관제 시위가 1차 러시아혁명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역사에서는 누가 주도를 했든지 간에 얼마든지 진보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따라서 그러한 의미가 아니라, 시민의 의식과 행동을 통제해 온 보수언론들이 박근혜 일파로 인한 정권재창출 불가능에 대한 우려로 인해 적극적으로 반정권적 보도를 함으로써 보수적 성향의 시민들까지도 정권에 반대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또한 촛불 시위가 대규모화될 수 있는 데에는 경찰이 집회를 허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상황이란 바로 최하 4% 정도로까지 추락했던 박근혜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었다. 설사 충격적인 폭로가 있었더라도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지 않고 적절한 수준을 유지했었더라면, 경찰은 여전히 강경하게 진압을 했을 것이고, 쉽게 대중적 항쟁으로 이어지지 못 했을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지지율의 급락은 정권재창출을 염려하는 지배 집단 일부의 언론을 이용한 적극적 반대행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결국 연인원 1600 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직접적 거리 항쟁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은 바로 정권에 대한 지지율에 있었다. 이 지지율의 변동에 따라 이후의 정치 사회에서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결국 안타깝게도 선거 정치의 틀 속에서 모든 것이 정해질 수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 채 이 모든 것들이 진행되어 왔지만, 많은 이들이 촛불에 과도하게 흥분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권도 정당도 아닌 개인에 대한 지지의 문제로 축소되면서 박근혜 개인에 대한 지지율 및 그가 속했던 정당에 대한 지지는 어느 정도 줄었지만, 그와 별도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당으로의 지지율로는 연결되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쉽게 말하자면, 박근혜 개인이나 집권여당 관련 정당들에게는 일단 반대해도 결단코 그 대안으로 더민주 혹은 그보다 더 왼쪽에 위치한 정당들을 선택하지 않는 기존의 보수정당 지지자들의 지지 성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두고 세대 간 대립의 구도나 지역 정당 구도가 파괴되는 것과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사실 국정농단 폭로 이전과 비교해 볼 때, 현재 시민들의 정치적 성향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답답하고 한심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가에 의해 만들어져 온 것이나 다름없는 소위 ‘가짜 뉴스’들을 동원한 세뇌공작으로 인해 정권 교체가 저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패한 정권은 심판을 받고 다른 정권으로 교체되어야 하는 것이 정당정치의 기본이다. 그러나 현재 여전히 적폐 세력을 포함한 스스로를 보수적이라 착각하는 시민들은 가짜 정보들에 기반하여 정권을 교체하는 것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존의 보수정당들을 지지하지 않고 야당들 중에서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따라서 우리는 난무하는 인물 중심의 정치쇼에서 벗어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먼저 보수정치정당을 자임하는 당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보수적인 철학을 갖는 보수적인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기득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특권과 두집단들과 이들에게 세뇌되어 스스로 보수주의자인 양 착각하는 대중들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인물과 정당을 완전히 대체할 정치는 아직 없지만, 정당정치 이면에서 실제 권력을 행사하는 세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진정한 정권 교체는 물론 나아가 세력 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대선을 바라 봐야 하며, 그럴 때만이 적폐가 청산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정권 교체, 세력 교체를 위해서는 대통령 선거가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정권 교체 일정과는 무관하게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특권과 두동맹세력들, 즉 재벌은 물론 국가관료기구와 언론, 그리고 종교와 사학, 전문가 집단, 이익단체 등등 사회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개혁과 세력 교체를 방해하고 있는 사회기득권세력들은 차기 정권이 곧바로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 할 경우 혹은 북한의 위협 등이 고조될 경우 적폐 청산과 사회개혁 시도에 이데올로기 기관들을 총동원해 반격을 가해 올 것이다. 진정한 개혁은 이제 시작이다. 그 첫 단추는 현 시국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적폐 세력이 지지하는 프로그램을 저지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71 | 추천: 0
윤영전/ 평통서문예원장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아간다면, 당연히 사회나 나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터이다. 여기에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며 더불어 살아간다면 더욱 찬사를 받으며 보람된 인생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인권이란 무엇일까? 일반적인 해석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갖는 기본적 권리라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 많은 세상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행동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 그리 살아간다지만 상당수가 인권탄압을 당하고 있어 국내외서 인권선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인권을 탄압하고 유린해 말살에 이른다면 인권선언을 통하여 더욱 인간의 평등을 옹호하고 인권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되어 인권개선에 진력했다. 공공기관 인권단체와 더불어 사회단체인 “인권연대”가 일찍이 발족하였다. 오 국장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인권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결실을 보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필자도 회원이 되면서 주변의 인권문제에 더욱 관심이었다. 돌아보면 조국 분단 72년 전, 일제시대 1941년 12월, 내가 태어난 해에 미일 태평양 전쟁이었다. 그리고 1945년 8월12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투하의 엄청난 사태로 일본은 미국에 항복을 선언하고 패전국이 되었다. 미. 소는 연합전선 3개월 만에 전쟁 승리자가 되었다. 그들은 한반도에 원한의 38도선을 그어, 남북을 미소가 점령했었다. 그리고 1948년 4.3 제주 항쟁이 일어나 3만5천 주민이 학살을 당했다. 전쟁도 아닌 그들만의 패권을 위해 민간인들의 인권을 말살한 대형사건이었다. 일제 36년 침략도 서러운데 인권이 무시되고 귀한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5.10 선거에 7.17 제헌으로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섰다. 북은 조선인민정권이 9월에 세워졌다. 분단의 단초가 된 미소의 연합군 승리로 그들은 남북을 전리품처럼 38선을 경계로 나누어 통한의 분단선이었다. 대한조선이 일본의 36년간 압제에서 해방이 되었으면, 미소가 한반도 남북이 아닌 일본을 나누어 관리를 했어야지 왜? 무엇 때문에 남북을 분할 관리했는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였고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사실에 통분한다. 더구나 38선에 북은 소련이 1년 안에 북을 떠났고, 남의 미국은 잠깐 어느 순간 에치슨라인 선으로 물러났었다. 그 후 6.25를 빌미로 다시 남측에 진주하여 결국 72년을 대한민국에 미군이 상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형평성도 일반관례로도 맞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어진 1948년 8월15일 정부가 들어서고 10월 중순에, 제주 4.3 항쟁이 계속된다며 소탕을 군14연대에 명령 했다. 허나 박 소령 등 지하 남로당측 군인들이 여수순천에서 정부군에 항전했다. 여순 사태로 수천 명이 가담하고 박 소령도 함께하여 결국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다. 그들이 사형 등 중죄를 받았다는 사실을 한국전쟁전후학살규명에서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필자의 맏형이 광주군청 효지면사무소 근무 중 건국준비위에 활동하다 그만 재판도 없이 총살을 당하고 말았다. 내 나이 9살 때의 사실이다. 아버지는 22살 형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고 50년 만에야 고향으로 이장했었다. 그리고 65년 만에 진실규명을 신청하여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로 명예를 회복하여 일부 보상도 받았다. 나의 형만이 아니라 전국 백만에 가까운 억울한 죽음이 있었다. 이처럼 고귀한 인간생명이 무시된 사실에 분노한다. 백만 희생자 중에서 겨우 1만5천명만이 진실규명이 되었고 아직도 억울한 죽음들이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분단이 몰고 온 사상논쟁과 전쟁이 몰고 온 민간인 학살이, 결국 우리가 주장하는 인권회복이 한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지구상에 72년이란 분단국 한반도에 남쪽 정부는 60여년을 보수가, 10여년을 진보가 집권을 했었다. 그간 반공 멸공 승공 흡수 통일을 주장했지만 현실은 평화통일의 길밖에 없다. 현재 미중이 한반도를 그들만의 패권구도라 하지만 남북이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이룬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한반도는 미중 러일 4강구도, 특히 미중의 고래싸움에서 새우 등 터지는 꼴이지만 고래싸움을 무시로 조정하는 현실구도를 만들어 내려면 남북이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이 길이 인권이 존중되는 평화세상이 아닐까!
2017-08-07 | hrights | 조회: 70 | 추천: 0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 SCI급 논문이란?  현재 중동 및 소외지역을 연구하는 한국학자들은 평가점수가 높이 책정된 SCI급 학술지들에 논문 게재를 위하여, 고군분투하지만 너무 힘들다.  미국회사 톰슨로이터가 ‘인용지수’ 조사대상으로 선정한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SCI급(SCI, SCIE, SSCI, A&HCI)논문이라고 부른다. SCI는 톰슨로이터가 평가하여 만들어 낸 과학논문 인용색인을 수록한 데이터베이스다. 인용색인 사업은 1961년 과학분야(SCI)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과학논문 인용색인 확장판(SCIE), 사회과학논문 인용색인(SSCI), 예술&인문학논문 인용색인(A&HCI)으로 확대되었다.  현재 한국에서, 이 인용색인에 따른 인용지수는 특정 논문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제공되며, 인용지수가 높은 학술지가 좋은 학술지로 평가 받는다. 톰슨로이터 회사가 인용색인 데이터베이스를 만든 가장 큰 목적은 각 분야 논문의 인용지수를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여 또 다른 영향력 있는 정보들을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2017년 1월 현재, SCI 학술지 3,743종, SCIE 학술지 8,896종, SSCI 학술지 3,250종, A&HCI학술지 1,781종으로 공시되었다. □ 미국과 영국 및 서유럽에 편중된 SCI급 학술지  2017년 1월 현재 국가별 SCIE(SCI 학술지 대부분은 SCIE에 포함)학술지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에 다음과 같이 편중되어있다; SCIE 학술지 전체 8,896종 중, 미국 학술지 42.1%, 영국 학술지 19.8%, 영국과 미국 학술지를 합치면 61.9%이고,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등 상위 5개국 학술지를 합치면 78.4%를 차지한다. 이 상위 5개국은 미국과 서유럽 4개 국가들이다.  다음 표와 같이 2017년 1월 현재 국가별 A&HCI 학술지도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에 편중되어 있다; A&HCI 학술지 전체 1,781종 중, 미국 학술지 34.5%, 영국 학술지 24.6%, 미국과 영국 학술지를 합치면 59.1%이고,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캐나다의 학술지까지 합치면 86.2%다. 한국에는 A&HCI 학술지가 7종, 일본과 러시아에는 6종 있고, 중국에는 없다. 중동국가들 중에는 터키에 A&HCI 학술지가 6종 있고, 아랍 국가들과 이란에는 없다.  따라서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동남아 등을 연구하는 한국학자들은 이 SCI급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서, 현지 학자들과 협력연구를 통하여 현지 연구 자료에 직접 접근하기보다는, 미국이나 영국 및 유럽국가 학자들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표. 국가별 A&HCI 학술지 수: 1,781종(2017년 1월 현재) 순위 국가 학술지 수 순위 국가 학술지 수 1 미국 614(34.5%)   터키 6 2 영국(잉글랜드-416+스코틀랜드-19+웨일즈-3, UK-1) 439(24.6%) 27 오스트리아 5 3 독일 133(7.5%) 인도 5 4 네덜란드 118(6.6%) 슬로바키아 5 5 프랑스 68(3.8%) 대만 5 6 이탈리아 64(3.6%) 31 홍콩 4 7 스페인 58(3.3%) 포르투갈 4 8 캐나다 41(2.3%) 33 콜롬비아 3 9 벨기에 30 핀란드 3 10 칠레 18 아일랜드 3 11 체코 공화국 14 노르웨이 3 12 브라질 13 라투아니아 3 스위스 13 뉴질랜드 3 14 크로아티아 12 39 아르헨티나 2 15 남아프리카 공화국 11 이스라엘 2 16 오스트레일리아 10 멕시코 2 17 대한민국 7 필리핀 2 폴란드 7 43 불가리아 1 슬로베니아 7 덴마크 1 에스토니아 7 아이슬란드 1 스웨덴 7 말레이시아 1 22 일본 6 말타 1 러시아 6 세르비아 1 헝가리 6 베네수엘라 1 루마니아 6 50     □ 엘스비어 회사의 스코푸스란?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엘스비어 회사가 제공하는 스코푸스(SCOPUS)는 세계 최대의 국제학술지 인용 색인 데이터베이스다. 2017년 1월 현재 전 세계 5천개 이상의 출판사에서 출판되는 2만 2천 종 이상의 학술지 및 과학, 기술, 의학, 사회과학 및 인문·예술 등 전 학문분야의 타이틀 초록, 참고문헌, 피인용 건수 등의 학술정보를 담고 있다. 2013년 현재, 국내에서 발간되는 국제학술지 171종이 스코푸스에 등재돼 있다. 스코푸스는 톰슨로이터사가 제공하는 SCI, SSCI, A&HCI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인용색인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출처 - 구글 □ 소외 분야와 소외 지역 연구에 장애  미국의 톰슨로이터사와 네덜란드의 엘스비어사는 SCI, SCIE, SSCI, A&HCI와 스코푸스를 통하여 인용지수를 따라 학술지 혹은 논문을 평가한다. 그러나 특정 논문의 인용지수가 높다는 뜻은 해당 분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반면, 인용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인용지수를 논문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소외 지역이나 소외 분야에 대한 연구를 가로 막는 장애가 될 수 있다.  이 데이터베이스 회사들의 사업목표는 정보를 수집하고,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는 정보망을 구축하여, 지식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확장함으로써 최대의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소외 지역 연구자들이나 인문학자들에게 A&HCI와 스코푸스 기준의 유명 외국 학술지 게재를 요구하는 평가기준은 한국의 소외 지역 연구와 인문학 발전에 커다란 장애로 작용한다. 왜냐하면, 이 학술지들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한국 연구자들은 이 외국 유명 학술지들이 요구하는 연구방향에 맞추어 편향적인 주제를 연구할 수밖에 없다. 이제 각 대학들은 이 데이터베이스 회사들이 내놓은 스코푸스나 SCI급 위주의 연구업적 평가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05 | 추천: 0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밤하늘에 별이 부족한 양, 북한에서는 하늘을 향해 미사일들이 수직으로 날아오르고, 그 미사일을 폭죽처럼 공중에서 터뜨려 한반도의 밤하늘을 핵 분진으로써 밝게 빛나게 하겠다고 미국이 성주의 사드 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재인 진영의 대선 총괄책임자인 송영길 국회의원이 얼마 전 YTN 라디오의 인터뷰에서 성주의 사드 배치가 이미 일본에 설치되어 있는 두 군데의 사드와 함께 삼각 편대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고,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며, 그 삼각 편대의 사드를 미국의 안방에서 조종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반가웠다. 내가 항간의 소문만으로 대략 짐작하고 있던 내용을 어느 국회의원으로부터 들어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동안 ‘쉬쉬’ 하면서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 한국의 미국에 대한 군사외교적인 종속에 대한 분노를 일정하게 드러낸 것으로 여겨지면서, ‘아, 이제 정치권에서도 미국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 가능한 때가 왔는가?’ 하는 기대를 갖도록 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에서 한국으로 급히 날아온 미 국무부 장관이 이를 암암리에 확인해 주었다. 그는 한국을 방문하여 북한에 대해 군사적 조처를 포함해 모든 조처를 검토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에게는 한국의 유력 대선 주자에게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말조심 몸조심 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것으로 들렸다. 그러면서, 비록 미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카터가 북한의 김일성과 만나 단판을 지움으로써 그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제2차 한반도 전쟁을 막아내긴 했지만, 1994년 김영삼 정권 때 미국이 북한을 치기 위해 한국의 미국인들에게 날짜를 정해놓고 소개령을 내렸다는 첩보를 접하고서 대통령 김영삼이 너무 놀란 나머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떠올랐다. 또한 미 국무부 장관은 일본은 미국의 굳건한 동맹국이고 한국은 미국의 파트너라고 말했다.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싶었다.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마치 북 · 중 · 러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방어하기 위한,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카드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성주의 사드 배치가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을 위한 것임을 은근히 실토한 것이 아닌가. 그 와중에 미국 대통령이 지난 수 년 동안 미국이 북한에 의해 놀아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건 또 무슨 뜻인가? 더 이상 놀아나지 않겠다는 이야기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동안 놀아난 형국이란 이전 미 정권의 ‘전략적 인내’였는데 그것은 대책 없이 당하고만 있었던 것일 뿐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대북정책에 불과했다는 이야기고 보면, 앞으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인내’ 운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인내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하는 사실이다. 1994년 때처럼 북한을 무력으로 공격하고자 작심을 하고서 실행에 옮길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면, 남북한 한민족의 운명은 마치 선무당이 작두를 타듯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일인가. 지난 18일 오후 경북 성주에서 열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반대 평화발걸음대회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자본주의 역사에서 헤게모니 국가가 변경될 때마다 전쟁이 있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주도권이 네덜란드로 넘어갈 때 30년 전쟁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갈 때 워털루 전투의 패배로 끝을 맺은 나폴레옹에 의한 전쟁이 있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갈 때 1차 세계대전과 특히 2차 세계대전이 있었다. 세계체제론자들이 역설하듯 제시하는 예감에 따르면, 이제 미국으로부터 중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려는 시기가 도래했다. 과연 아무런 전쟁도 없이 이러한 주도권 이관이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유력한 지대는 어디며 그 빌미는 무엇일까? 필자는 온 존재의 절대적인 우연성,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그에 따른 역동적인 존재의 구조를 어떻게 전반적으로 그리고 가능하면 미세하게 분석하여 나름의 존재론을 펼칠 수 있을까에 골몰하는 이른바 책상물림의 소소한 철학자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국내외 정치 및 군사외교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장삼이사에 불과한 무지렁이다. 이런 필자의 평범한 판단으로도 이같이 한반도 거주민 전체에 대한 주변 강대국들에 의한 노골적인 위협과 그에 따라 즉발을 예고하는 것 같은 전반적인 대대적인 위기가 닥친 것 같으니 그저 터무니없는 판단이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이러한 대대적인 위기가 한반도를 내리누르고 있다면, 오히려 이 위기를 역이용하여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②항을 최고도로 곧추세워 대한민국의 주권이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있음을 만천하에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기 위해, 다시 한 번 촛불시민혁명의 위력을 더 높여 일단은 사드 배치의 ‘퇴진’을 외쳐야 할 것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70 | 추천: 0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 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소위 일류 사립대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고대와 연대에서 최근 ‘성 평등’은 되고, ‘여성주의’는 안 되는, 그래서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모임에 대한 부당한 처우와 탄압이 발생하고 있다. 이 두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고대 지리교육과의 여성주의 소모임 <난·파>는 ‘난교파티’의 준말이자 ‘어지러운 물결’이라는 중의적인 의미로서 ‘일대일 이성애 중심주의’와 ‘여성들의 섹슈얼리티 발현에 대한 억압’에 저항한다는 여성주의적 함의를 담은 이름이다. 지난해 11월 모임이 결성된 후 같은 과 대학원생의 소모임명 수정요청이 있었고, <난·파>측은 대자보로 거부하였으며, 대학원생은 자신의 페북에 <난·파>의 자보에 반박하는 글을 썼고 이에 비난과 조롱의 댓글들이 달리면서 그 댓글을 <난·파>가 주도한 것으로 추측, 단정됨으로서 <난·파>회원들은 과내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난·파>측은 오히려 댓글을 다는 이들에게 자제를 부탁했다. 집단 괴롭힘은 수시로 오는 카톡과 전화로 번호 바꾸기, 단톡방에서의 언어폭력, 수업시간에 대인기피증으로 울고 있는 <난·파>회원을 비웃기, 맥락 없이 수업 중에 <난·파>사건 언급하기 등이다. 4개월째 장기화되고 있는 학과 내 이러한 탄압으로 인해 소모임원들은 우울, 대인기피, 이명, 자살 충동으로 고통 받고 있다. 그러나 가장 극심한 탄압은 지난 3일, <난·파> 일부 회원들이 지리교육과 졸업 요건 중 하나인 <야외지리조사> 과목 수강이 불허된 것이었다. 그것도 고대 지리교육과 공개 페이스북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되었다는 점이다. <난·파> 회원들은 현재 양성평등센터에 제소되어 있고 조사위원회가 소집되지 않았고, 사건이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로 규정되어 징계를 받은 것이다(고대 여성위원회, 2017. 3. 6.). <모드>는 연대 정치외교학과 학생회 내에 ‘특별위원회’로서 ‘여성주의위원회’를 지향하는 모임이다. 이 이름 역시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하나는 ‘여성참정권운동’을 영화화한, <서프러제트, 2016>의 주인공 이름으로 여성운동의 시작을 의미하고, 하나는 ‘특정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어떠한 상태’라는 의미로, 정치외교학과여성위원회(이하 정여위)(준)가 여성주의 모드로 활동을 시작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즉, 연대 정외과 내에서의 여성주의 담론의 확산과 성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여성주의 모드로 학과 내 여성운동을 시작’하고자 하는 단체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곧바로 정외과 학생총회에서 인준을 거부당한다. 이유는 이들의 방향 및 정책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이름’ 때문이었다. “왜 ‘성평등위원회’가 아닌, ‘여성주의위원회’이어야만 합니까?” 이것이 인준거부의 원인으로 ‘여성주의’가 남성배제와 차별을 함의함으로써 ‘정치적 편향성’을 갖고 있으며, 특별위원회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반대논리였다. 때문에 표결은 인준을 거부하기 위한 부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출석인원에 비해 투표인원이 더 많았다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연대 정외과 여성주의위원회(준), 2017.3. 13.). 이 두 사건은 흡사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단체의 ‘이름’, ‘명칭’이 문제가 된 점. 그리고 이 사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 부당한 절차들의 개입을 통해서라도 이 여성주의를 지향하는 조직들을 배제하고 탄압하고자 하는 의도들이 드러나는 점이 그렇다. ‘성평등’ 이라는 말은 남성과 여성을 포함하여 다양한 성적지향을 가진 모든 성적주체로서의 인간의 평등이라는 이상향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은 요즘에 와서 ‘폐기처분’될 처지에 있기도 하다. 평등이라는 것은 어떤 기준점이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치적 평등은 1인1표라는 형식적 기준점과 모든 국민들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실질적 기준점이 존재한다. 경제적 평등도 마찬가지다. 소위 사람답게 살기위해서는 어떤 한계, 즉 기준점이 존재하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였을 때 ‘복지’라는 시스템을 통해 기준을 충족시키려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논리적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성평등도 마찬가지다. 성이 평등하기 위해서는 어떤 ‘성’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가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성?, 남성?,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무성애? 등등. ‘양성평등’의 담론에서는 더 많은 권력을 가진 ‘남성’이 기준점이 된다. ‘성평등’에서는 ‘남성’과 ‘이성애’가 권력을 갖고 있음으로 그 둘이 기준점이 될 것이다. 이러한 기준점을 중심으로 차별과 억압받는 다양한 성들이 이 둘이 누리는 것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획득하자는 것이 ‘성평등’담론이다. 그렇다면 성평등은 어떻게 생산, 재생산 되고 있는가? 이는 ‘남성’과 ‘이성애’중심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구조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영역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즉 시스템과 관습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토록 주장하고 교육하고 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성불평등’이 재생되게 된다.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남성배제’적인 사상이 아니다. 억압당하는 대상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여성들이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실천하는 과정에서, 전 방위적으로 억압이 발현되는 ‘사회적 구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문화와 시스템으로 굳어있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 남성과 이성애 중심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구조에 균열을 내어야 한다는 것, 그러자면 완전히 새로운 사상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모든 구조가 ‘남성주의적’이라는 것에 저항하는 의미로 ‘여성주의’라는 용어를 선택해왔던 것이다. 때문에 여성주의는 모든 억압받고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존재들의 해방을 지향하고 있고, 특히 성별이분법으로 고통 받는 성적 소수자의 문제에도 민감히 반응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 국민일보 여성주의는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역사적, 사회적 차이로 재생산하는 젠더질서체계를 문제시 하는 것이다. ‘사회역사적으로 구성된 여성과 남성’이라는 프레임은 여성과 남성이 다르게 기호화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여기엔 ‘의도성’이 개입되어 있으며, 때문에 그 ‘사회역사적 의도성’이 전복되어야 ‘성평등’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며, 나아가 ‘같아지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평등’ 이라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어떻게 한 날 한 시에 여성과 남성, 이성애와 다른 성애가 똑같아 질 수 있는가? 따라서 성평등이란 애초에 가부장적 질서를 부수지 않는 한에서는 소수의 성에 대한 ‘재량’이자 ‘아량’의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난·파>와 <모드>라는 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외과 학생회나 지리학과 학생회는 고민은커녕, ‘성평등’한 관점조차 없이 ‘감히 남성들만의 발화영역’에 도전한 여성들에게 'Mansplain'하는 것으로, ‘재량과 아량의 범위를 초월’하고자 한 여성 집단에게 부당한 방법으로 서둘러 ‘징계’함으로써 이들의 활동을 ‘긴급히 꺼야 할 불’로 간주했던 것이다. 이들이 왜 그런 단체명을 사용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감히, <난교파티>라니?”, “감히, 남성을 지배하려는 <여성주의>라니?” 정도로 보여 질 뿐이다. 'Mansplain'은 여성을 멸시하고 혐오하며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보는 man과 explain의 합성어다. 전문가는 남성이어야 한다는 것, 여성은 정치를 모른다는 것, 여기에는 성 및 그에 관한 담론은 남성이 주도하여야 한다는 것 역시 포함된다. 여성은 수동적으로 남성의 성을 수용하는 존재여야 하며, 성적 욕망을 드러내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담론 역시 포함된다. <난·파>는 이러한 현상을 대표하는 사건이다. 또한 여성은 남성이 주도하고 구축한 영역에 그저 얹혀살면 될 뿐 새로운 무엇을 지향하거나 바꿔 보려 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생각 역시 포함된다. <여성주의위원회>사건은 이 연장선에 있다. Homosocial(남성연대)는 남성이 아닌 존재를 대상화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남성이 아닌 여성과 동성애자남성을 대상화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대상화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주체에서 대상으로 추락하는 것에 대한 공포는 남성이 아닌 존재를 극렬히 거부하는 것으로서 남성임을 인정받으려는 심리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고 이것이 ‘여성혐오’와 ‘호모포비아’인 것이다(우에노 치즈코, 2012). 위 두 사건은 ‘남성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여성혐오’라는 구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왜 이 여성들의 의도와 단체명의 의미에 대해 함께 고민하지 않는가? 아니 하려하지 않는가? 왜 ‘이름’이 갖는 의미를 ‘실천’으로 왜곡하는가? 왜 서둘러 권력을 휘둘러 ‘보이지 않게’하려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두려움’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려는, 가부장적 구조를 해체하려는 시도에 대한 두려움으로밖에 볼 수 없다. Homosocial은 Homosexual을 내장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성애가 배제된)남성연대가 사실은 성애를 내장한 연대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 민낯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다. 여성주의와 성 담론은 궁극에는 그 비밀에 도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미래이기 때문에 서둘러 탄압하여 없는 존재, 비가시화된 존재로 만들어 내려고 했던 것, 이것이 이 두 사건의 본질이다. 그러나 이 두 여성단체는 지속적으로 싸워나갈 것을 천명하고 있다. 여성주의는 언제나 그래왔기 때문이고, 그렇게 밖에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고, 사회를 재구성하는 실천은 언제나 투쟁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고군분투에 연대하며, 지지를 보낸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76 | 추천: 0
김재완/ 방송대 법학과 교수 그동안 정부 고등교육정책(대학구조개혁 등 일련의 정부정책) 방향은 전반적인 재정 감축을 통해, 각 대학이 스스로 필요한 재원을 확충하도록 시장경쟁성을 강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곧 대학의 기업화와 상업화를 촉진한다. 기업의 최고 목표는 이윤창출/추구이다. 이러한 경영목표 아래 기업 및 상업형 대학은 필연적으로 돈이 되는 교육서비스를 확충하고 강화하며, 반대로 적자를 내는 교육서비스부문은 통합 및 퇴출시키고 있다. 오늘날 대학구조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실질적인 대학구조조정의 모습이다. 기업화된 대학은 input은 최소화하고 output을 최대화한다.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는 교육과 교육행정서비스를 담당하는 교수와 교직원 등의 저비용, 불완전 고용은 심화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교육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학생과 학부모 등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교육비용은 상승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의 대학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고급인력과 시설을 이용해 이윤만을 고스란히 앗아가는 기업들의 좋은 먹잇감으로만 전락하고 있다. 때문에 교육이라는 공적부문에 대한 재투자는 아주 소극적이며, 정부의 재정지원 마저도 불안정하다. 이와 같은 상업화 논리에 따른 교육지배구조의 심화는 그나마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지탱해 온 국립대학마저도 점차 온존할 수 없는 엄혹한 교육자본시장으로 몰아냄으로써 교육기회의 평등마저도 박탈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스1 이로써 국가의 사회적, 문화적, 산업적 발전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선순환적인 고등교육의 다양한 인재양성체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고, 극히 일부의 지엽적이고 기술전문적인 사람들만을 양산해 내는 획일적이고 자본중심형적인 양성시스템으로 구축될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오히려 경쟁력 강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다양하고 미래지향적인 세계적, 국가적, 사회적, 문화적, 산업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인재양성체계를 갖춘 대학이 될 수 없는 구조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업과 경제의 급변화에 따른 제반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발전과 성공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지원이 충분하게 뒷받침 되는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가 가장 최우선적인 과제이다. 또한 학령인구의 감소가 국가 재정지원의 대폭적인 감소를 축으로 한 고등교육의 공공성 폐기와 대학의 인위적인 구조조정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학령인구의 감소는 근본적으로 고비용구조의 고등교육시장구조에 기인한다. 이 시대 우리나라의 대학은 더 이상 자유로운 공기가 넘쳐나는 엘리트 지성의 전당이 아니라 우골탑이라고 불리는 고비용의 교육시설로 전락하고 말았다. 수도권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1천만 원에 육박하고, 이것은 2015년 OECD 교육지표 조사 결과 세계 2위의 수준에 이를 만큼 높은 수준이다. 더 이상 고등교육을 고비용의 시장경제에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분명 고등교육은 공공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지원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확충되고 투하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정부의 고등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의 강화와 대학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의 구축을 통한 자치의 강화가 이루어질 때에만 고비용구조로 인한 교육 불평등과 왜곡된 교육노동의 현실을 해소할 수 있으며, 아울러 양질의 학령인구를 증가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탄핵 이후 대선 주자들이 제시해야 할 교육정책의 방향은 공공성의 강화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85 | 추천: 0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가 취임 후 발표한 ‘반(反)이민 행정명령’으로 2017년 벽두부터 온 세계가 시끄럽다. 이 행정조치로 이란, 이라크, 시리아, 소말리아, 수단, 예멘, 리비아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이 90일간 금지되고, 난민 입국 프로그램이 120일 동안 중단됐다. 그 결과, 망명, 신병치료 등을 위해 미국 입국을 허락받은 7개국 출신 난민이나 국민은 물론, 휴가나 외유 등으로 잠시 해외로 떠났던, 7개국 출신 미국 영주권자조차 공항에서 발이 묶였다. 이 조치는 ‘이민자의 나라’라는 미국의 정체성에 정면으로 배치될 뿐더러, 이동과 거주의 자유를 보장하는 보편적 인권의 심대한 침해라는 점에서 문제이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이 행정명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각 주 법원은 물론 연방법원조차 이 행정명령의 잠정중단과 효력정지를 선언했고, 트럼프 탄핵청원 웹사이트에는 현재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서명을 마친 상태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지리한 법정 싸움 대신, 새로운 반이민 수정명령 발효로 자기 뜻을 관철하고자 한다. 이민자와 난민을 겨냥한 이 반인권적 조치를 트럼프라는 괴물의 돌출적 행동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행정명령으로 대표되는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을 지지하는 미국 내 여론이 약 40%에 달한다. 또 이 조치에 대해 영국, 독일 등 유럽 정부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지만, 유럽에서조차 反이민자, 反난민 정서가 하나의 뚜렷한 정치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프랑스에서 마린 르펜으로 대표되는 극우정당이 누리는 높은 대중적 인기가 이를 잘 보여주며, 이러한 현상이 단지 프랑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민자나 난민이 겪고 있는 이 곤경 속에는 근대 국민국가 체제가 기반한 근본 모순이 숨겨져 있다. 일찍이 한나 아렌트가 ‘인권의 역설’이란 개념으로 통찰해낸 이 모순의 본질은 저 유명한 프랑스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부터 구조화된 ‘인권과 시민권의 분리’에 놓여 있다. 국민국가 체제에서 강력하게 작동해온 ‘국적=시민권=인권’ 사이의 동일화 기제는 인권이 시민권의 일부가 되게 함으로써, 시민권의 상실이 인권의 상실로 이어지도록 했다. 바로 여기서 ‘인권의 역설’이 발생하는 바, 국적과 시민권을 갖지 못함으로써 국민도, 시민도 아닌, 오로지 인간으로 남은 사람들에게 바로 그 인간을 위한 권리, 즉 인권이 송두리째 박탈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시민권과 인권의 동일시가 시민권과 인권의 원천적 분리로 결과 지어진다. 그녀 자신이 나치에 의해 국적을 박탈당한 무국적자이기도 했던 아렌트는 ‘문명의 한 가운데서 산출되는 이 야만’ 속에 ‘인권의 종말’을 예언했다. 사진 출처 - afpbbnews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이나, 유럽의 반난민, 반이민 정서 속에는 국적과 시민권의 동일시, 시민권과 인권의 동일시가 초래할 수 있는 ‘반인권’의 위기, ‘문명 속의 야만’이 도사리고 있다. 국적에 의해서만 보장되는 시민의 권리, 또 시민임으로써만 보장되는 인간의 권리는 소속되지 않은 자, 그럼으로써 시민일 수 없는 자를 인간의 경계 밖으로 내몬다. 첨단의 문명 속 사람, 노동, 자본의 이동이 일상화된 지구화 시대, 날로 증가하는 난민, 불법체류자, 무국적자의 존재와 그들의 열악한 현실은 이 문명 속의 야만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사실 지구화 시대 근대를 떠받쳐온 국민국가(nation-state)의 두 요소, 즉 nation과 state의 조화로운 일치가 깨어진지 오래다. 자연히 nation이 함축하는 ‘국민’으로서의 소속, state가 함축하는 그 정치적 권리, 즉 국적(nationality)과 시민권(citizenship)의 일치 역시 현재 빈번하게 위반되며 근본적인 재고를 요청받고 있다. 지구화 시대 일반화된 소속의 복수성(複數性)은 시민권의 탈국가화를 요구하며, 시민권으로 대표되는 권리의무가 국적이나 소속이 아닌 ‘거주’에 기반해야 함이 강력히 요청되기도 한다. 국적이나 소속이 함축하는 동질적 정체성의 허구성에 대한 탈신화화도 상당부분 진척되었다. 유럽 시민권, 글로벌 시민권, 트랜스/포스트내셔널 시민권 등으로 대표되는 최근 담론은 이와 밀접히 관련된다. 이에 비한다면 트럼프가 대변하는 국가주의의 소환, 그에 기반한 반이민, 반난민 정책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 얼마 전 신문지상에 러시아의 탈북노동자 최명복씨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러시아 극동 연해주 벌목공 출신의 최명복씨는 이미 20년 가까이 러시아에 거주하며 현지인과 결혼해 두 명의 자녀까지 둔 상태다. 그런 그가 현재 불법체류자로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될 위기에 처해있다. 북한으로의 귀환은 그에게 가족과의 생이별은 물론, 죽음을 뜻한다. 이에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Memorial)이 그를 도와 유럽인권재판소에 보호신청을 하는 등 구명활동에 나서고 있다. 이런 인도주의적 노력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국가다. 즉, 러시아와 북한이 1년 전 맺은 ‘불법입국자 및 불법체류자 송환ㆍ수용에 관한 정부 간 협정’이 그것이다. 국민 외 모든 예외적 존재들을 가차 없이 내몰아버리는 국가는 인간을 인간의 경계 밖으로 내모는 역할을 앞장서 하고 있다.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작동시키는 강력한 국가주의, 그 지지자들을 하나로 모으는 국가 재건의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그 위험성은 표면의 배타성이나 반인간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문명의 발전에 따른 인식의 발전, 관점과 가치관의 발전적 재구성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김정남의 피살 이후 오로지 그 사건에로 향하는 국내 관심의 1/10 만이라도 최명복씨를 향하길 바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90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