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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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김재완(방송대 법학과 교수), 신하영옥(여성활동가), 윤영전(평통서문예원장),  이문영(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이윤(경찰관), 정보배(출판 기획편집자), 정재원(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조광제(철학 아카데미 상임위원), 최정학(방송대 법학과 교수), 홍미정(단국대 중동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김재완/ 방송대 법학과 교수     촛불이 광장을 밝힌 지 1년이 되었다. 그 빛의 열망들로 우리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경험했다. 무수히 많은 남녀노소의 평범한 시민들이 스스로 그 주체가 되어,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타락한 사적권력에 맞서 자연스럽게 헌정질서를 복구해 낸 것이다. 힘없는 자들의 힘(power of the powerless)이 광장과 일상을 관통해 이루어낸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 그러나 광장이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성과는 아직 우리의 일상으로 옮겨오지 않았다. 물론 현실 정치의 세계는 하루아침에 그 공간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다시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지난한 투쟁의 시간이 있어야만 한다.   그동안 비민주적인 정치세력이 만들어 온 반인권적인 법과 제도들의 그물망은 여전히 촘촘하고, 그 일상에서 우리는 정치, 경제, 교육, 노동, 인권 여러 분야에서 극심한 불평등과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노동문제는 적폐청산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가정과 사회의 생산경제 주체로서 노동자의 불안정에 대한 문제는 국가 전체의 문제이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두부를 자르듯 한 칼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옛날 군주처럼 한 마디 명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촛불시민이 만들어 냈던 광장의 이상향과 일상의 모순, 혼동은 당연한 것이다. 이에 노동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광장을 향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떤 정권에서든지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치권력들을 향한 끊임없는 개혁의 목소리만이 평범한 시민들이 가진 무기이고 권리이다. 때문에 광장은 시민들의 일상의 의회가 될 수밖에 없다. 광장에서 우리들은 유대감을 공유하고 같이 부르짖는다. 그 울부짖음에 답하여 의회권력과 행정 권력은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법과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책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 JTBC     우리의 광장과 일상에는 새벽과 해가 지는 어스름한 하루 두 번의 시간이 존재한다. 그 순간은 태양의 붉은 빛과 아직 남아 있는 어둠이 서로 교차한다. 저 언덕 너머에서 다가오는 그림자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아니면 내가 믿고 의지하는 개인지를 분별하기가 쉽지 않은 때, 바로 ‘개와 늑대의 시간(heure entre chien et loup)’이다. 개가 늑대가 될지, 늑대가 개가 될 지는 광장과 일상에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늑대들을 물리치는 무기는 힘없는 자들의 힘, 민주시민의 회초리이다.   탄핵촛불 1년이 지난 지금, 광장과 일상의 모순과 혼동 그 모호한 경계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과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여전히 우리의 시간과 요구는 타는 목마름이다.
2017-11-01 | hrights | 조회: 371 | 추천: 1
윤영전/ 평통서문예원장     오백년 장구한 세월을 효(孝) 지명으로 이어온 빛 고을이 내 고향 효골이다. 고을에 들어서면 대로변에 내 고조부모의 효열비(孝烈碑)가 세워져 있다. 조선조에서부터 광주군 효우(孝友)면에서 효천(孝泉) 효지(孝池)면에서 지금은 효덕(孝德)동이다. 우리 8남매가 일제에서부터 보통학교, 초등학교에 입학 졸업한 광주효덕초등학교다.   매년 2월에 효골 효덕초등학교 졸업식에 수년째 특별 순서가 있었다. 전효당(傳孝堂)의 대표인 필자는 매회 졸업생에서 선발한 9명의 효행장학생을 표창해왔다. 간단한 취지에 “변화무쌍한 현세대에서 효행(孝行)을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하지만, 효는 온고지신 마음가짐에 실천하고 장려, 사회와 가정이 바로 선다”고 강조한 내용이었다.   필자는 “현대 물질문명과 이기 개인주의까지 만연한 세상에, 효는 절대 선이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우리 모두가 효행실천의 효야 말로 혼탁한 사회의 덕목이다. 표창 받는 여러분은 효와 학업에 충실하여 장학생으로 표창되었다.” 고 칭찬하였다.   효행을 강조한 필자는 어려서부터 선대의 효행을 눈여겨보고 자랐다. 대로변의 비문에 7대조 선대가 손자 6형제를 두셨는데 아버지는 셋째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이었다. 마침 넷째 할아버지가 늦은 나이 24살에야 17살의 음성박씨와 혼인을 했다. 그런데 출가 해온지 3개월 만에 할아버지가 후손도 없이 그만 급환으로 운명하시고 말았다.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되신 할머니는 양반가 체면에 재출가하지 않고 효도하면서 망부와 시가에 정성을 다해 3년 상을 모시었다. 10년을 재가하지 않고 청상과부로 살아 문중회의에서 양자를 정해주었다. 내 아버지가 숙모에게 10살의 나이로 양자가 되었다. 서당에 보낸 아들이 공부를 잘해 군 백일장에서 장원해 외로운 양모를 기쁘게 한 효자였다.   어언 19살에 아버지는 나주의 풍산 홍문의 18살 맏딸과 혼인해 양할머니의 소원인 손자 손자를 8남매나 두니 자식농사가 풍성했다. 그때 할머니는 손주를 직접 조산원처럼 척척 받아냈고, 손주는 어머니 젖을 먹은 후에는 할머니의 품에서 나오지 않은 젖을 빨고 만지며 자랐다. 양할머니는 노련한 산모처럼 손 자녀들을 양육하시었다.   효골에서 소문이 난 할머니는 청상과부로 재가도 않고 가문을 지켰다고, 파남함(坡南咸) 윤씨 선대 사당을 모신 서강사(瑞岡祠)종중에서 열부(烈婦)로 열부상을 받으셨다. 양자 아버지와 어머님도 생가와 양가 부모에 대한 효행실천에 효자효부(孝子孝婦)상을 받았다. 이는 선대 조부모의 효행을 이어간 것이었다.     사진 출처 - 경남도민일보     그런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 듯이, 맏형이 해방공간에서 군청과 면에 다니면서 건국준비에 가입, 하나 된 조국을 꿈꾸었다. 부모는 물론 외로운 양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효행을 한 맏형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해 20살에 효손 효자 상을 받았다. 결혼도 미루던 형은 시국을 잘못만나 건국초기에 재판도 없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내 아홉 살에 형을 잃고 어린마음이지만 형이 행한 효행은 물론 분단조국의 평화통일에 다가가는 다짐을 했었다. 이후 서강사 문중에서 생가양가 조부모와 부모에 효행으로 오래전에 아내와 같이 효자효부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내 아래 아우가 3남매를 두고 지병으로 사망해 젊은 제수(弟嫂)역시 재가 않고 3남매 자녀를 육성해 효열 부상을 받았다.   이처럼 일가(一家) 3대(三代)에서 효자 열부 효부가 각각 2명씩 6명이 그리고 돌아가신 맏형까지 7인이 효열․효부로 족보에 기록되었다. 이는 선대의 효행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효골에 살면서 명문가의 유훈인 충효가전(忠孝家傳) 문중과 가훈(家訓)인 효학(孝學)과 당호인 전효당(傳孝堂)가의 정신을 온전히 이어온 효행 정신이리라.   필자는 양할머님 생전에 유언을 여쭈었다. 67년간 떨어져 지낸 양할아버지 영혼과 함께한 쌍분묘에다 작은 비를 말씀하시었다. 할머니의 당당한 뜻으로 아버님과 상의하여 효손으로서 약속하고 할머니의 유언을 실행하였다. 효골윤문 재각 옆에 백부가 비문을 짓고 손자가 글씨를 쓰며 일가친척 모시고 효열비 제막했는데 유언을 따랐다.   그리고 부모가 돌아가시어 문중묘원에 모시면서 효자효부 비를 후손들이 함께 세워드렸다. 과제였던 맏형이 65년 만에 과거사진상위에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했다. 그리고 최종 대법원에서 보상판결이 확정되었다. 가문과 맏형의 전효당 삶과 분단조국 통일의 뜻을 이루는 날을 간절히 기원한다.   또한, 필자는 함안윤씨대종회 종중회장으로 8년째 종중의 효행표창을 매년 정기총회에서 표창하였다. 그리고 지난 5년 전부터 나고 자라고 공부한 효덕초교 모교에 매년 8-9명씩 효행장학생을 선발하여 졸업식에서 직접 장학금과 표창장을 전달함으로써 가훈인 효행을 실천하고 있다.   이는 이 시대에 효정신이 점점 잊혀져가고 물질만능주의 현상을 보면서 효자로서의 효행 실천이기도 하다. 새삼 효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효정신의 근본개념을 영구히 이어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부모님에 대한 효도는 인간의 기본 도리다. 그리고 나라와 사회에 기여하는 마음과 충효정신으로 살아간다면 보다 훈훈한 사랑과 인간성이 높아지는 삶의 터이다. 우리 모두와 이웃들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면 그 어떤 일에도 화해와 평화가 다가올 것이다.   이 땅에 오래전 군사문화가 횡횡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 제일주의가 만연한 것이 사실이다. 권력과 금력이 합세한 세력에게는 효행이 그리 달갑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효를 자랑스럽게 행하고 장려한다면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고 인간적인 정신을 이루어 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 가득하다.   * 윤영전(尹永典) 아호: (九巖 孝崗) 당호: 전호당(傳孝堂) (二歡堂) 효행상 2회 수상   서초문학상. 오마이공모 우수상. 국회민족평화통일상. 서예초대작가. 한국작가회 회원   한국작가회 소설가. 한국문입협회 수필가. 한국서예, 전통서예 초대작가. 칼럼니스트.   저서:소설집 (못다 핀 꽃) 수필집(도라산의 봄) 에세이집(평화, 그 아름다운 말)   수필선 (강물은 흐른다) 고희문집(인연, 아름다운 만남) 애창가곡집 (CD)출간
2017-10-14 | hrights | 조회: 521 | 추천: 1
이문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 누가 질새라, 막말 경쟁이 한창인 이즈음, 북한 노동당 창건일을 바라보는 시선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러시아 국회의원 안톤 모로조프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2주년을 기념해 북한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안 그래도 북미 간 신경전이 최고도에 달한 현재, 과연 그날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걱정하고 긴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시국에 통일이라니, 무슨 물정 모르는 소리냐고 할 사람이 많을 줄 안다. 하지만 그래도, 또는 그래서 한번 점검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마침 관련 조사가 발표된 시점이기도 하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은 2007년부터 매년 한국인 1200명을 대상으로 통일에 대한 인식, 북한 및 대북정책 평가, 주변국 인식 등을 조사해오고 있다. 마침 올해는 조사를 시작한지 꼭 10년이 되는 해고, 10년째 되는 2017년 한국인의 통일의식조사 결과가 얼마 전 나왔다. 가장 주요한 결과로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이 2007년 63.8%에서 2017년 53.8%로 10년 만에 10% 정도 하락했다는 것이 될 것이다. 그 외 10년 사이 주요 설문결과의 차이를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사진 출처 - pixabay       10년 사이, 같은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한다는 사람 역시 10% 줄고, 전쟁 위협을 없애기 위해 통일해야 한다는 사람은 그와 엇비슷하게 늘었다. 아무리 글로벌 시대, 다민족 다문화를 외쳐도 ‘민족동질성에 기반한 통일당위론’이 해체되는 속도와 정도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한편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날로 고조되어온 한반도 긴장 상황을 고려하면, 전쟁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견해의 증가율도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다. 물론 통일을 전쟁방지를 위한 효과적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다시 떠올리기도 싫지만) 지난 정권의 통일대박론 유포에도 불구하고 통일편익에 대한 기대감은 오히려 감소했다.   반면 통일보다 남북이 공존하는 현재의 상태가 좋다는 사람은 10년 사이 두 배가 되었고, 2017년의 딱 그 수치만큼의 사람들이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24.7%). 한국인 4명 중 1명이 통일이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글로벌한 패러다임 변화에도, 1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에도, 그에 따른 상황 변화에도, 그 결과 현재 우리가 직면한 최고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통일에 대한 인식이나 이를 구성하는 요소의 어떤 극적인 변화가 감지되기 보다는 오히려 관성적인 유지가 눈에 띈다. 그 속에서 통일 자체에 대한 인식 자체의 변화가 조용히 진행된다. 이것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어쩌면 이 조사에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통일에 대한 이런저런 견해들이 아니라, 그 통일이 과연 어떤 통일인가여야 하지 않을까.
2017-10-13 | hrights | 조회: 254 | 추천: 1
①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요리할 줄 아나 정보배/ 출판 기획편집자     엄마는 페미니스트. 맞다. 책 제목이다.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후배가 선물한 책이다.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제목보다 더 이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엄마는 페미니스트>는 아디치에가 친구에게 편지형식으로 쓴 글이다. 자신의 딸을 페미니스트로 키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친구에게 아디치에는 열다섯 가지의 제안을 했다. 제안 하나하나에 공감했고, 인종과 문화가 달라 무척이나 낯설어야 하는 제안마저도 내겐 교집합이 보였다. 밑줄 치고 외우고 싶을 만큼 지금 나에게 필요한 내용들이었다.   처음엔 아디치에가 자신의 딸에게 쓴 편지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딸에게 페미니스트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편지를 쓸까 잠깐 생각하였으나, 그건 너무 어렵다. 아디치에만큼 잘 쓸 자신도 없다. 솔직히 아이를 낳아 키우는 7년 동안 여자로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딸을 ‘한국에서’ 키워야 하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왔다. 어떤 때는 너무 한심해서, 또 어떤 때는 너무 억울해서, 또 어떤 때는 너무 화가 났다. 딸에게 편지를 남기는 것보다 주위의 아빠, 엄마들과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나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고 그러려면 사회 전체가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딸의 어린이집 부모들, 교사들, 내 주위의 또 다른 부모들.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내재된 의식에 대해, 통념과 상식으로 여겨져 온 많은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틈만 나면 이야기하고 써야겠다. 때로는 내 발언으로 분위기가 가라앉더라도, 내가 싸움꾼처럼 여겨진다 해도, 아니 그렇게 여겨지면 뭐 어떤가. 여자들은 지금까지 너무 침묵해왔다. 더 크게 문제제기하고, 스스로든 타인에 의해서든 교묘하게 가리고 숨긴 것들을 신랄하게 까발려야 한다.     사진 출처 - 민음사       나는 요리에 크게 취미가 없다. 맛있는 걸 찾아다니는 행위나 맛집 평가 같은 데 별로 관심이 없다. 당연히 미식가가 아니다. 타고난 미식가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감각은 어릴 때부터 먹어온 음식에 따라 키워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요리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누구든 무슨 음식이든 나 대신 차려주는 음식에 불만이 없다. 불행히도 집에서 (내가 하기 힘들어하는) 요리-반찬과 국, 찌개, 일품요리-를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남편이 할 수 있는 반찬은 계란후라이, 냄비에 물과 밥 넣고 끓이기, 베이컨이나 소세지 굽기이다. 한 가지 과정 이상을 거쳐야 하는 반찬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집에 반찬이 없거나 국이 없는 채로 며칠이 지나면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그것도 몇 중으로. 하나는 왜 나 말고는 이 집에서 반찬을 만들지 않는가, 둘째는 이런 스트레스를 받는 내 마음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데’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나에게 화가 난다. 이 집에 사는 성인 남자 (아이는 빼고) 둘은 반찬이 있건 말건 아무 생각이 없는데, 직장생활로 가장 시간에 얽매어 있는 나만 왜 그 생각을 해야 하는가.   우리 집 남자 중 한 사람은 이십대고 한 사람은 오십대인데, 삼십 년의 격차가 무색하게도 두 사람 다 자라면서 누군가가 해주는 데 익숙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요즘 말하는 심한 한남에 속하지는 않는다. 집안일도 할 만큼 하고, ‘시키면’ 군소리 없이 다 한다. 문제는 ‘시키지 않아도’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 대목에서, 한국 남자들은 ‘도와준다’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같은 공간을 쓰고 같이 밥 먹고 같이 더럽히는 데 누가 누굴 도와준다는 말인가. (여기에 아이의 일까지 엄마가 다 책임져야 한다면, 정말 억소리가 절로 난다) 자신이 먹고 싸고 입는 그 일상을 책임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른이 아니다. 적어도 십대부터는 자신이 놀고 먹고 싸고 입기 때문에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일들을 책임져야 한다.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최근에 딸의 친구와 그 부모가 우리 집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아빠가 자신의 할머니와 얽힌 추억을 꺼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예전 본인이 귀대할 때 골목길까지 따라 나와 용돈을 주머니에 넣어 주시던 장면 등. 그러자 우리 집 오십대의 남자가 엄마는 항상 자신만 보면 구십이 다돼가는 지금도 ‘밥 먹었냐’라고 묻는다며, 엄마들은 언제나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아, 그 엄마로부터 십 년 간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어쨌든 나는 속이 불편했다. “‘당신들’한테 밥 먹었냐고 물으셨겠지. 아마 딸들한테는 그런 소리 안 하셨을 거야. (딸에게도 안 하는 말을 며느리한테 할 리가 없는) 대신 뭐라고 하셨을까? 오빠 (남편 혹은 손주) 밥 차려줬냐고 물으셨겠지. 당신들의 그 낭만 어린 엄마의 밥 이야기는 엄마든 당신의 누이든, 누나든 누군가의 노동이고 희생이라고!” 당연히 분위기 싸해졌다. 싸해지거나 말거나.   누구는 태어나면서 요리할 줄 아나. 대부분의 여자들이 결혼하면서부터 요리를 하게 된다. 타의반 자의반. 그 자의라는 것도 여자가 요리해야 한다(그것도 ‘잘’해야 한다)라는 말을 무슨 사회 규범으로 알고 자라거나 혹은 집에서 엄마만 음식 만드는 걸 보고 자라서 내재화된 여자의 모습에 순응하는 것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것도 나는 타의라고 주장하고 싶다. 하여간 부엌에서 평등이 이루어져야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온 만큼, 내 집 부엌이 그렇지 않다는 것에 나는 또 스트레스다. 스스로 너무나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돌려서 얘기해도 남편은 직접 요리를 시도하지 않고, 갑자기 내가 “왜 나만 반찬을 다 만들어야 해!!!!!”라고 폭발할까 봐 집에 반찬이 일주일 가까이 없으면 얼른 반찬을 사다 놓는다. 심지어 국도. 어쨌든 내가 반찬과 국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나름 신경을 쓰긴 한다. 직접 노동은 안 하고 돈으로. 그렇게 거의 십 년. 얼마 전에 그런 남편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 줄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성산2동 마을공동체에서 ‘요리왔수다’라는 아빠들이 요리도 같이 배우고 이야기도 나누는 교실이 열린 것이다. 두 번 째 수업에 갔다 온 남편은, 그날 잔뜩 받아온 재료들로 그 다음날 드디어, 요리를 했다. (물론 다 준비된 재료를 팬에 다 붓고 섞기만 한 것이지만) 알리오 올리오. 최근엔 태어나 처음으로 생선도 구웠다. 오십 몇 년 만에. 그래,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
2017-09-27 | hrights | 조회: 291 | 추천: 1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상임위원     나는 경의중앙선에 속한 풍산역을 이용해서 전철을 타고 다닌다. 주로 철학아카데미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대곡역에서 환승하여 경복궁역에 내린다. 하지만 그 외의 행선지의 경우에는 대체로 승용차를 이용한다. 오랫동안 서서 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는 아예 없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지인이 특히 이 현상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우리 사회가 너무나 이기적으로 변하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그때 갑자기 경로석을 지정해 놓은 탓에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고, 이를 실마리로 삼아 여러모로 분석이 시작됐다.   저녁 늦은 시각 하루 종일 일하고서 아주 힘들 것 같은 데도 비어 있는 경로석에 앉는 젊은이는 거의 없다. 적어도 30분 이상 1시간씩 흔들거리면서 빠른 속도로 달리는 전철에 서 있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래서 승객이 많아 빼곡한 상황에는 아예 자리를 포기하는 것이고, 한두 줄 정도 얼기설기 서 있는 데 자기 앞에 앉은 승객이 일어나 자리가 생겨 앉게 되면 마치 로또 당첨이라도 된 것인 양 심지어 우쭐하기까지 할 정도로 다행이다는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도 경로석의 빈자리에 젊은이가 앉지 않는 것이다. 50대쯤 되는 사람들도 거의 앉지 않는다. 아니, 앉아 있다가 이른바 ‘지공거사’(지하철 공짜로 타는 만 65세 이상의 노인)가 나타나면 일어서면 될 것 아닌가. 그런데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말 왜 그럴까? 서 있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남들의 시선에 의한 인격모독의 심적 고통이 더 크기 때문이겠지, 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무의식적인 경향에 관한 분석마저 제출되었다. 경로석 자체가 늙음과 죽음을 뜻하기 때문에 앉는 것 자체만으로도 재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무튼 힘든데도 경로석의 빈자리를 보전하는 태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는 거의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경로석에 앉는다고 법적으로 잡혀가거나 벌금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관습화된 사회적인 감시와 처벌을 두려워한 나머지 어지간해서는 경로석의 빈자리를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문제는 그 다음이다. 따라서 경로석이 아닌 일반석을 차지했을 경우 그 어떤 노인이 자신 앞에 힘겹게 서 있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내면의 일종의 심보는 무엇일까? ‘서 있더라도 당신네들 지정석인 경로석에 가서 서 있지 않고 하필이면 왜 내 앞에 서 있는 거요. 더군다나 당신네들은 요금도 내지 않고 공짜로 타지 않소’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런 정도의 심보가 아예 체화되어 있으면 거기에서 무슨 체면이니 염치니 하는 등의 여부를 아예 논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도시생활이 복잡해지고 누구에게나 힘겨워지면서 출퇴근 시간에 ‘콩나물시루 버스’에 이어 더 큰 공간에 사람들이 꽉 찬 나머지 숨 쉬기조차 힘든 지경의 ‘지옥철’이 등장한 지 오래다. 이 상황에서 인간다운 인간의 태도와 행동을 기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그래서 강제로 양보를 끌어내기로 한 것이 ‘경로석’ 장치였던 것이다. 태생에서부터 ‘경로석’의 존재는 시민들에게서 자발적인 양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암리에 일러주는 약호로 작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실제로 양보의 미덕이 사라졌다. 양보의 미덕이 사라지니까 경로석의 존재가 더욱 중요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이제 육아임산부석이 만들어졌다. 힘겹게 아기를 안고 업었거나 배가 남산만한 임산부마저 양보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경로석’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도의, 즉 생활도덕이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비극적인 신호지 싶다. 생활도덕마저 법적 강제력을 동원하여 강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그 사회의 뿌리가 썩어 흔들거린다는 것을 뜻한다. 감시와 처벌의 기제가 무의식에 이르기까지 체화됨으로써 시민성을 상실한 순수 본능적인 인간들의 집단으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각종 갑질에 의한 폭력성을 비롯해 어린 여학생들의 잔인한 폭력성이 연일 보도되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은 착시 현상은 아닐 것이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192 | 추천: 1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활동가 네트워크 ‘젠더고물상’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여성건강이 열쇠이다!’ ....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여성건강권 증진을 위하여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에 있어서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있을 수 없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맡겨진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과 위치를 생각할 때 ...... 여성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임신과 출산, 육아 관련 건강지원서비스를 ...... 여성의 건강은 개인의 수준을 넘어 미래세대의 건강을 좌우하는 중요한 가치......”   “특히, 건강한 출산을 위해 소녀기, 청년기의 건강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확산 되고, 노인인구집단에서 여성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애주기별 여성의 건강을 위한 기반 마련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2년 <여성 건강권 확립을 위한 법/제도 토론회> 축사들의 내용이다. 위 글들만을 본다면, 여성의 건강권은 국가존립에 상관관계가 있는 인구의 재생산과 결합되어 논의되며,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노인집단에서 여성비율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노인여성에 대한 국가적 질병치료비용의 증가와 이로부터의 탈출이라는 부담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인간의 건강은 인간의 생명이 중요한 만큼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중요한 인권의 영역이다. 어떤 이유로도 그 권리는 유보되거나 양도되어서는 안 된다. ‘000때문’ 이거나 ‘000하는 조건하에서’ 라는 옵션이 붙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독 여성의 건강권은 ‘임신, 출산, 양육의 주체’ 라는 “조건”이 ‘여성인간’ 이라는 “존재”, 혹은 “실존”의 전제가 된다. 인구의 재생산이라는 전제조건 없는 ‘인간’, ‘시민’, ‘사회정치적 주체’로 불려진 적이 없다.   사진 출처 - 주간경향   ‘생리대 위해성 문제’가 불거지고, 3000여명이 넘는 여성들이 이 문제를 제기한 여성단체에 이상증세를 증명하였다. 이들이 거리로 나와 ‘생리대가 인권이고 내 몸이 증거이다’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역학조사를 하겠다는 대답은 아직 없다. 그동안 인체에 직접 닿는 생리대 안전기준이 변기 세정제보다도 못했다(뉴스1 2017. 9. 12)는 소식을 접하면서, 여성의 몸, 건강, 생명이 남성과 분리된 상황에서 어떻게 취급되는지를 여실히 알게 된다. 가습기 살충제, 달걀 살충제에 이어 생리대 발암물질은 이 물건들이 남성들의 영역에 속해있지 않은, 즉 가사노동 내에 속해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소위 공적영역이 아닌 ‘여성들의 영역’인 사적인 영역 내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사용 및 관리하는 주체가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변기는? 여성과 남성 공용이다. 식약처의 관리대상인 생리대가 환경부가 관리하는 변기보다 안전기준이 미비하다는 것은 환경이 여성인간에 비해 좀 더 공적인 영역에 가깝다는 의미이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가 관리하는 유아용 기저귀보다는 낮은 수준이라는 점 또한 마찬가지이다. 산업/통상/자원은 공적영역으로 남성들의 관리를 받는다. 너무나 이분법적이고 궤변적인가? 그럴지도 모르지만, 여성들에겐 그렇게만 보인다.   또 하나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것은 출산과 여성의 연결성이다. 백번 양보해서 인구재생산을 여성이 없으면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더욱 더 여성의 생리대는 임신, 출산, 양육을 위해 엄격하고 엄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건강한 재생산을 위한 전제가 건강한 모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건강 따로, 출생아의 건강 따로인 정책과 관념은 어떻게 가능한 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재생산, 즉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여성에 대한 존재에 대한 존엄성(?)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 <출산을 위한 여성의 건강권>이라는 것도 듣기 좋고, 보기 좋은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애초에 여성의 건강권은 국가정책자들이 머릿속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생리대의 위해성이 자녀의 건강, 나아가 여성들과 성관계를 하는 남성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역학조사가 나온다면 아마도 생리대 문제는 단박에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여성들은 언제까지 임신, 출산, 양육의 주체로만 규정되어야 할까? 페미니즘이 극성이라고 욕을 먹는 이면에는 ‘엄마들처럼 면 생리대를 써라!’ 라는 석기시대식 답변이나 ‘소변이나 대변처럼 참았다가 한꺼번에 해결하라!’는 무식의 도를 넘는 남성들의 댓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과연 페미니즘 전성시대가 맞을까? 여성들은 똑똑해지고 남성들은 아둔해지고 있을까? 아니면 아둔했던가? 부디 이 간극이 더 커지길 바라지 않는다. 연애, 결혼, 출산 파업은 이 간극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해결은 요원하다. 지금이라도 생리대 위해물질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표기, 역학조사를 전면 실시하여야 한다. 여성의 권리는 모든 이의 권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193 | 추천: 1
정재원/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올해는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 지 100 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사실상 거의 모두 다 붕괴된 현재 러시아 혁명을 기리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없거나 심지어 정신이 나간 사람들끼리의 말장난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학술적인 차원에서든 운동적인 차원에서든 러시아 혁명은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은 논쟁과 토론의 주제로 남아 있다. 특히 100년을 맞는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 혁명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의 장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혁명의 현재적 의의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다른 국가들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다양한 학술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정설에 문제제기를 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여전히 새로울 것이 없는 주장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나마 학술적 논쟁의 자리에서는 새로운 주장들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특히 운동사회에서는 기존의 논의의 틀에서 벗어난 문제제기는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새로운 비판적 주장들은 진지한 논의 없이 기존의 사고의 틀에 의한 공격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 혁명과 그 혁명이 낳은 체제 자체에 대한 논의는 말 할 것도 없지만, 러시아 혁명의 현재적 의의를 찾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스탈린 이후 전 세계에 수립되었던 현실사회주의체제는 원래 우리가 꿈꿨던 사회주의체제와 아무런 상관없다며 마르크스로 돌아가거나 레닌으로 돌아가거나 트로츠키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그 수와는 상관없이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혁명에서 찾아야 할 의의일까?   또 다른 이들은 사회주의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과거 존재했던 사회주의체제는 별도의 영역인 양 사고하고, 또 어떤 이들은 현실사회주의체제에 대한 비판적 연구와 진지한 고민 없이 무조건 노동해방, 자본주의체제 철폐를 외친다. 양자 모두 너무 역사와 민중 앞에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반대로 서구에서 발달되었던 화려하지만 도무지 일반인들은 알아들을 수도 없는 각종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관념적 논의들로 비판과 반성의 자리를 메우는 이들의 행위 역시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1917년 11월 8일 소비에트총회에서 연설하는 레닌   사진 출처 - 위키미디아     국가사회주의체제의 국유화와 관료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소유와 노동자 생산 통제, 생산자 직접민주주의, 민중자치권력과 노동자자주경영 등의 원칙들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가 단위도 아닌 일부 국가 내 일부 지역들에서의 성공만으로 현재의 국가와 시장을 넘는 대안체제를 건설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원칙의 확인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이제 철저하게 사적 소유와 시장체제를 철폐한 완벽한 대안체제를 구상하는 것, 나아가 그를 위해 싸우는 것은 더 이상 러시아 혁명의 현재적 의의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베네수엘라는 바로 이러한 주장이 타당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베네수엘라의 소위 ‘21세기 사회주의’에 대해 환호했던 많은 이들이 베네수엘라 모델의 위기에 대해 미국의 노골적 개입과 자본과 우파 정치 세력들의 사보타지, 그리고 에너지 가격의 폭락이 현재 위기의 주범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혹은 과도한 민영화나 해외 자본 투자 유치 등 좌파 정권 하 관료들의 우파적 정책 채택이나 부패 문제도 위기의 한 중요한 원인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반만이 사실이다.   사적 소유와 시장은 인정하면서도 국가가 개입하되, 과거 현실 사회주의에서 폐기되었던 사회적 소유의 실험과 생산 과정에의 노동자 통제, 작업장 뿐 아니라 거주 단위에서의 직접민주주의 등을 통해 사회로 하여금 정치와 경제를 이끌어가도록 설계되었던 이 실험은 생산성 문제와 결합되지 않을 경우 치명적인 위기로 치달을 수 있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즉 소유의 사회화가 달성되고 노동자들의 직접 민주주의가 확보되며 재분배 정책이 고도로 발달하더라도 생산성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위기는 곧바로 발생한다. 계획 경제의 문제점을 명확히 인식해서 시장의 장점을 이용하려는 방향은 옳았지만, ‘사회적인 것’이 ‘사적인 것’을 대체하려는 것 자체에만 관심이 있다 보니 가장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적인 부분에서의 경제 권력에 대한 융통성 있는 개혁 실험에는 실패함으로써 위기가 발생한 측면이 크게 된 것이다.   이렇듯 현실 사회주의에서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인식한 위에서의 실험과 같이 러시아 혁명을 현재에 되살리려 했던 매우 중요한 변혁조차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흥미로운 내용이 있는 실험들도 여러 요인으로 인해 현재 좌초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가장 사회주의의 원칙에 가까웠던 가장 최근의 사회변혁의 대실험조차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 속에서 러시아 혁명의 의의를 찾는다는 것은 힘든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서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베네수엘라에서는 좌파들이 무조건 대공장 노동자 계급을 혁명의 주체라고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베네수엘라에서의 새로운 실험의 주체는 계급적으로 단일하게 규정하기 어려웠던 기층 대중들이었다.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중심부가 아닌 비서구 주변부 지역들에서는 조직화되기 어려운 수많은 비노동자계급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가난한 기층 대중들이 비공식 영역, 반범죄화된 집단과의 구별이 어려운 상태로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었던 베네수엘라 좌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혁명을 위한 노동자 계급 조직화’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혁명으로 이르는 고전적인 길은 더 이상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맞지 않으며, 그러한 결과로 낳은 현실 사회주의의 실패는 필연적인 결과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종말이나 현재 자본주의의 위기에 환호하고 궁극적으로 체제변혁을 부르짖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이제는 변혁이나 혁명으로의 과정 자체나 그 필연성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거대 담론적 변혁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거나 확실한 대안 체제 모델이 없으면 아무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모순과 문제는 있으되 그 근본적 해결방법이 모호한 현재 오랜 원론들을 되풀이하는 데에만 집중하거나 무책임한 급진적 관념적 주장들만 나열하는 것은 역사와 민중 앞에 무책임하다. 아님 말고 하고 포기하거나 버리면 되는 실험 대상이 바로 사물이 아니라 노동 대중,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러시아 혁명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던 사회 변혁의 진정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시의 개념으로 소위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분이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수많은 혁명가들은 거지, 부랑자, 사기꾼, 깡패, 각종 범죄자, 성매매 여성 등등 이들 ‘불건전한’ 하층 계급에 대해 안타까움보다는 혁명을 방해하는 경멸적인 존재로 규정했기에 조직화의 대상이 아님은 물론, 부르주아지들에 의해 동원되기도 하는 심지어 반혁명 세력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러시아 혁명은 바로 이러한 집단의 혁명적 전환에도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그 비중이 적었다고 할 수 있는 주변화된 집단들은 자본주의체제가 발달하면서 점차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크게 변화를 겪어 왔다. 일반 노동 대중들이 빈곤한 국가나 복지가 취약한 국가들에서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이러한 주변화된 비공식 구조로 흘러들어가 반사회적 활동을 하게 된다. 특히 이들의 구조 내에서 최하층을 이루는 집단은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까지 혁명 이후, 깔끔하게 정돈된 지식인들의 담론들 속에서 그 어떤 사회변혁이나 사회개혁의 이론도 전혀 이러한 부분의 변혁을 다루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주변화된 집단들, 특히 이들이 집약되어 있는 성산업 등 비공식 경제 영역들과 그곳에서 암약하는 집단들의 축소 없이 이루어지는 그럴싸한 논의들은 모두 수면 위의 깔끔한 세상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혁명은 수면 아래의 모든 것들을 뒤집어엎는 것이다. 추상적인 체제 혁명이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진정한 혁명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러시아 혁명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164 | 추천: 1
윤영전/ 평통서문예원장  내 서재에는 그리운 아버지가 언제나 나를 내려다보신다. 비록 사진으로 보시지만 한 세대 전, 한 많은 세상을 사시다가 그리운 가족을 두고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아버지 영정을 서재에 모시면서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비록 무언의 대화였지만 부자간 정겨운 대화다.  “아들아! 오늘도 무사히 살아가고 있느냐?”  “예, 아버님,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습니다. 너무 염려 마십시오.”  “염려는 무슨 염려! 내 믿고 사랑하는 아들이 언제나 열심히 살고 있을 터인데...” 무언의 대화는 계속된다. 아버지가 팔순을 넘겨 사시면서 마지막 응급실에 입원하신 그때에 위급한 순간을 넘기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방금 이 애비는 저승에 갔다 왔었다. 그곳은 엄청난 꿈에도 보지 못한 기기묘묘하고 호화찬란한 곳이었는데 아직은 올 때가 아니라며 나를 돌려보냈다.”  “아버님도 어찌 저승에 가셨단 말씀이십니까? 잠깐 정신이 혼미하신 순간이셨겠지요!”  “아니다, 네가 이 애비를 살렸다. 너 아니었으면 애비는 벌써 죽었을 터이다. 고맙다.”  “자식에게 고맙다니요! 당연히 위급하신 아버님을 성모병원 응급실로 모셨지요” 아버지가 세상을 하세하시기 3개월 전에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그리운 아버님과 작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을사늑약 해에 태어나 일제하 젊은시절에 나라 잃은 한을 달래시며 살아오셨다. 당시 아버지 10살, 숙모가 17살에 시집오셔 단 3개월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숙모의 양자가 되어 한학과 한글을 공부하셨고 아들딸을 8남매나 두신 다복한 가장이셨다. 맏아들이 해방공간에서 중학을 졸업하고 군청과 면사무소에 근무해 배급도 타면서 생활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외로운 청상 양모에 효도하고 결혼해서 자식들 양육에 최선을 다하시고 해방이 되었는데, 미.소에 의해 남북이 38선 분단이 되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처럼 22살 된 맏아들이 하나 된 조국을 위해 지하 건국준비위원회에 가입하였다. 단란한 가정에서 효도하며 군청과 면에 근무했는데 요주의자가 되었다. 착실해 장차 면장과 군수감이라고 했었다. 건준 요원들이 좌익으로 몰리면서 밤 사람이 되고, 보도연맹에 끝내 가입하지 않고 조국이 하나 된 해방세상의 꿈을 꾸었다. 1948년 건준과 여순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되어 피해 다녔다. 1949년 1월 하순에 붙잡혀 한 달 이상 모진 고문을 받았다. 조직원을 불라며 이곳저곳 대질신문을 벌이다가 3월 24일 그만 3발의 총탄에 숨을 거두고 그곳에 묻히고 말았다. 22살에 재판도 없이 운명했다. 우리 집의 희망이요 기둥이 무너진 후 을씨년스러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1년이 넘는 세월 후에 한여름 날이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6.25전쟁 중 서울이 점령되고 7월 중순에는 빛고을에 인민군이 들어왔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형이 죽지 않았다면서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려 통곡했다. 어린 내가 ‘죽은 형이 어찌 살아온단 말이냐’고 항변도 했으나 철없는 말로 치부되고, 밥상차림은 계속되었다. 그런 여름날 대문을 박차고 들어선 군관동무와 위원장이 들어섰다. “이 댁이 윤영철 동지의 집입니까? 우리는 윤 동지가 조국통일에 혁혁한 투쟁을 하다 운명하심에 심심한 위로를 드리며, 저희가 그 일을 완수하기위해 왔습니다.”  “아니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신데 내 아들을 안다고 합니까?”  “네, 다 알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아버님이 효지면 당위원장을 맡으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씀이요? 나는 일자무식에 농사짓는 농사꾼이요. 똑똑한 사람 시키시오.”  “위원장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맡으시면 됩니다. 밑에서 다 알아서 합니다.”  “정말 부탁입니다. 제발 다른 똑똑한 사람을 시키세요.”  “자꾸 그러시면 반동입니다. 걱정 마시고 맡으시면 됩니다. 위원장님!” 아버지는 군관동무의 반동이라는 한마디에 그만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즉 아들이 1년 전에 재판도 없이 운명했듯이 어쩌면 당신도 그리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주변을 살피던 군관장교는 옆에 있던 둘째형(영선)의 나이를 물었다. 19살이라고 하니 “그러면 바로 우리 의용군에 들어와야지! 나와 함께 갑시다.” 그 후 형은 군관부관을 맡았었다. 집안은 이미 운명한 맏형뿐이 아니라 위원장이 되신 아버지와 의용군에 간 둘째형의 안위가 걱정이었다. 10살이던 나는 철이 약간은 들었지만 원두막에서 북의 애국가 김일성 장군노래 ‘전우에 시체를 넘고 넘어...’라는 군가도 배우고 있었다. 어느 사이 인공기가 면사무소, 학교에 게양되고 집에는 인민군들이 오다가다 쉬어가고, 밥을 해내는 부역을 감수해야 했다. 인민위원장이 된 아버지에게 면민들이 수 없는 탄원 청원서를 제출하고 있었다. 평소에 감정상했던 이웃 일가 등, 세상이 바뀌었으니 처벌을 해 달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논에 물을 밤에 몰래 빼갔다 고발했다. 케케묵은 오랜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허나 아버지는 이런 세상이 오래갈 것 갖지도 않은데, 서로 원수가 되면 안 된다고 설득해 해결했다. 9.28 인천상륙작전 이후 중앙청에 태극기가 게양되었다. 그 후 9월 말에는 인민군이 후퇴했다. 초등학교 교실마다 쌀과 광목,  솜털, 설탕 등이 교실마다 빼꼭히 쌓여있었는데 면민들이 창문을 부수고 훔쳐가고 있었다. 아버지와 면 간부는 주민들의 행동을 말리고 있었다.  “면민들이여! 이것은 모두 나라의 것이니 함부로 가져가면 안 됩니다. 자제해 주세요?”  “뭐라고? 당신은 보아하니 인민위원장인데, 군인과 경찰이 오고 있는데, 당신은 총살이요. 여기서 이러지 말고 빨리 피하시오.” 어린 나는 방금 그 면민의 충고의 말이 옳다고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말씀드렸다.  “방금 저분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아버지! 빨리 피하세요. 어서요.” 아버지는 순간 바람과 같이 사라지셨다. 그러나 교실에 있는 군량 물품은 지게와 심지에는 수레를 동원해서 가져가, 난리 통이었다. 이제 그 누구도 막는 사람이 없으니 힘이 센 사람이 장땡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와 어머니께 아버지가 피신을 진외가로 가셨다고 안심을 시켜드렸지만, 정작 나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의용군에 간 둘째형 걱정뿐이었다. 무사해야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9월 말에 경찰과 국군이 효지면에 복귀했다. 그동안 마구잡이 난리를 치며 가져갔던 쌀 설탕 등 물건들을 반납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순수하게 남북을 그저 같은 의미, 공권력으로 생각했다. 아버지는 안전한 광산군 서창면의 진외가가 아니라, 오히려 무등산을 택하였다. 지산면을 지나 무등산 입구를 한참 가다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지금 일시 피난을 무등산에 가고 있지만 과연 안전한 곳일까? 어쩌면 무등산은 군경의 토벌 대상이 되어 영원히 산을 내려오지 못하고 빨치산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 열 식구를 생각했다. 17살에 시집와 남편과 단 3개월 만에 사별, 청상과부로 살아오신 양모님, 손자손녀를 손수 받으시며 살아오신 불쌍한 모친을 생각했다. 또한 결혼하여 양시부모를 모시며 8남매를 낳아 친정과 시가에서 칭찬을 받은 아내를 생각했다. 비록 맏아들을 잃었으나 남은7남매 자식들의 장례를 생각하면서 하산하기로 중대 결정을 내렸다. 허나 무등산에서 광주를 거쳐 진외가 광산까지 과연 갈 수 있을까? 지혜를 짜보기로 했다. 우선 군경합동 무등산 토벌대의 검문검색을 피해야 했다. ‘인민위원장’이 아닌 순수 민간인 약초 캐는 사람으로 행세했다. 산자락에 허름한 초가집에서 약초 캐는 꼴망태와 호미를 잠시 둘러메었다. 한참을 내려오니 군경합동수색대를 만났다. 허나 담대하게 행동했다.  “누구냐? 손들어! 산에 좌익 빨치산과 내통한 자가 아닌가?”  “아닙니다. 보시다 시피 저희 노환의 어머니 병에 쓸 약초를 캐러갔다 옵니다.”  “이름이 뭐야?”  “네, 저는 광주에 사는 박석천이라고 합니다.”  “보아하니 효자네. 이곳에 잘 못 왔다 갔다 하다 걸리면 죽을 수도 있소”  “저 대장님, 대단히 죄송하지만 증명 하나 써 주시오. 앞으로 또 검문이 있으면...”  “거 참 귀찮게 하네. 효자니 써 주리다. 지구토벌대장 000 싸인 했소”  “대장님 고맙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기지는 대단했다. 당시에는 주민증이니 도민증도 없을 때였다. 시내로 나오는 동안 3번이나 검문을 받았지만 그 증명서로 통과해 무사히 시내를 거쳐 광산군 서창면 만호리 진외가에 도착하였다. 그곳에 양자로 가서 서당을 다녔기에 외지인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허나 걱정은 계속이었다. 과연 집안은 무고 할까? 특히 둘째 아들 영선이 북으로 넘어갔는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틀 후에 둘째 아들이 바람처럼 진외가에 나타났다.  “아니 아들 영선아! 무사히 살아 만날 수가 있구나. 그간 고생이 많았지?”  “아버지 절 받으세요! 진외할아버지 할머니도 진외삼촌도 절 받으세요.”  “아니 의용군에 함께 했던 홍 군관은 어찌 되었나. 북으로 넘어갔나.”  “사실 저와 함께 북으로 가다 군관이 그랬어요. 분단조국에 형을 나라에 바쳤으니 부관은 형 대신해 할머니 부모님 동생들을 잘 보살펴야 하니 귀향해 효도하라며 명령을 했지요.”  “참으로 좋은 군관이다. 어찌 그런 상관을 만났단 말이냐! 고마운 동포다” 전쟁은 계속되어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 평양에 입성했다. 이 대통령은 북진통일 완수라도 한 듯 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를 해야 했다. 약 3개월 동안 인민군 수중에서 부역한 많은 인사들이 자수를 했다. 많은 부역자들이 자수했지만 붙잡히면 처형을 당했다. 둘째형은 군관동무의 배려로 남으로 내려와 자수를 했다. 허나 부역자 수배에 둘째형은 국군에 자원입대하였다. 하나의 조국에서 국군과 인민의용군으로 복무를 한 형이었다. 중부전선에서 중상을 입고 울산병원으로 후송되어 6개월 치료에 전방에 투입되지 않고 상이제대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도 자수를 하고 난 후였는데 위원장직에서 있을 때 월권했다는 모략으로 온갖 고문을 받으며 감옥생활을 하다 무고죄로 풀려나서 시조로 여일하시다 82세로 운명하시었다. 둘째형은 의용군과 국군에서 제대 후 통일조국을 꿈꾸었다. 정당생활 50년을 고하고 지난 7월에 86세로 운명해 국립묘지에 잠들고 있다. 필자 또한 국군에 입대 후 제대 말년에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쟁과 평화를 직접 체험하였다. 오직 분단조국의 소망인 평화통일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희수를 맞이한 필자는 72년이란 너무도 긴 분단국에서 과연 한반도 통일은 요원한가? 자문하고 우리의 소원인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남은 생을 살려고 한다. 반백년 조국분단으로 얼룩진 이념과 사상에도 금강산에 5회, 개성공단에 3회 다녀오면서 ‘조국이 통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꾸는 필자다. 부친의 “빨치산을 접은 결단”으로 우리 가족은 그나마 살아왔다. 지구촌 유일한 72년 분단조국에 평화통일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지구촌에 평화, 아니 시급한 한반도에 평화통일이 오는 그날이 오길 기원한다. 상을 입고 울산병원으로 후송되어 6개월 치료에 전방에 투입되지 않고 상이제대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도 자수를 하고 난 후였는데 위원장직에서 있을 때 월권했다는 모략으로 온갖 고문을 받으며 감옥생활을 하다 무고죄로 풀려나서 시조로 여일하시다 82세로 운명하시었다. 둘째형은 의용군과 국군에서 제대 후 통일조국을 꿈꾸었다. 정당생활 50년을 고하고 지난 7월에 86세로 운명해 국립묘지에 잠들고 있다. 필자 또한 국군에 입대 후 제대 말년에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쟁과 평화를 직접 체험하였다. 오직 분단조국의 소망인 평화통일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희수를 맞이한 필자는 72년이란 너무도 긴 분단국에서 과연 한반도 통일은 요원한가? 자문하고 우리의 소원인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남은 생을 살려고 한다. 반백년 조국분단으로 얼룩진 이념과 사상에도 금강산에 5회, 개성공단에 3회 다녀오면서 ‘조국이 통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꿈을 꾸는 필자다. 부친의 “빨치산을 접은 결단”으로 우리 가족은 그나마 살아왔다. 지구촌 유일한 72년 분단조국에 평화통일 운동을 계속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지구촌에 평화, 아니 시급한 한반도에 평화통일이 오는 그날이 오길 기원한다.
2017-08-18 | hrights | 조회: 184 | 추천: 1
: 제3자 개입은 없다, 알 아크사 모스크를 수호하라! 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 국제문제연구소장 (Mahdi Abdul Hadi, Head of PASSIA, http://www.passia.org) 2017년 7월 14일(금) 오전 7시경, 예루살렘 성지, 알 아크사 모스크 내부에서 발발한 총격전으로 이스라엘 시민권자인 팔레스타인 무슬림 3명과, 이스라엘 경찰 2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알 아크사 모스크를 폐쇄하고, 모스크 내 금요기도회를 취소하였다. 이 사건으로 유발된 예루살렘 성지 위기에서 드러난 주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제3자의 개입은 없다 : 이스라엘 점령세력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줄다리기 (a)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비폭력 저항(7월 14일-26일) : 이번 위기에서 놀랄만한 특징은 이스라엘 점령군 및 보안대에 맞서 거리로 나선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보인 다음과 같은 시종 일관된 확고함과 기도다. “예루살렘 거리는 알 아크사 모스크를 향한 기도를 위한 나의 카펫이다” 팔레스타인 청년들은 알 무가라비 게이트, 자파 게이트에서 기도하면서 매우 훈련된 모습을 보이고, 수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노래를 합창하며 마밀라 쇼핑센터를 지나 행진하면서 비폭력 저항운동의 모습을 보였다. (b) 비폭력 저항운동의 잠정적 승리(7월 26일-27일) :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비폭력 저항의 결과 이스라엘이 전자 검색대와 카메라를 제거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민족의 존엄성을 강화함으로써, 잠정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맞서 알 하람 앗 샤리프에 대한 주권을 지켜냈다.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 마흐디 압둘 하디  (C) 우리는 이스라엘과 줄다리기 국면에 있다(7월 27일-7월 31일) : 현재 팔레스타인인들과 이스라엘은 각자 자신들의 방향으로 밧줄을 당기려고 한다. 이 밧줄을 자르고, 7월 14일에 있었던 사건과 분리시킬 수 있는 제3자는 없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서 전례가 없었던 보안 조치들을 실행하면서, 공포문화를 조성하고 과도하게 무력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구도시와 예루살렘 인근 마을들에서 젊은 활동가들 대부분을 체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newsweek.com  □ 이스라엘의 기획에 대한 소문확산과 대중여론 (a) 1994년 헤브론 시나리오를 예루살렘에서 재현하기 : 1994년 2월 이스라엘 정착민이 헤브론 소재 아브라함 모스크에 테러 공격을 가한 이후, 이스라엘은 이 아브라함 모스크를 분할하여 유대교 시나고그를 만들었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모스크의 전례를 따라, 예루살렘 알 아크사 모스크도 분할하여 유대교 시나고그를 만들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b)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예루살렘 성지를 공유 및 분할하기 (C) 종교적, 정치적 및 군사적 목적을 가진 유대인들이 계속해서 예루살렘 성지에 출현 현재 당분간 (a)와 (b)는 보류 중이지만, (C)는 진행 중이다.     □  예루살렘 성지의 위기와 7주체들 : 이 7주체들은 현실적으로 정치적 무게와 영향력이 다르지만, 각각 매우 중요하다. (1) 요르단(암만): 이슬람 종교 재단 (2)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라말라): 파타 (3) 예루살렘 구도시 및 예루살렘 인근 마을들: 팔레스타인 청년들 (4) 1948년 팔레스타인인들(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들) : 이슬람 운동, 민족주의 풍조 및 조직화되지 않은 청년 대중들 (5) 단체들: 기독교 교회들과 평온을 추구하는 파벌들, 개인적인 방해꾼들과 폭력배들 (6) 이스라엘의 기획: 부역자들, 소문들, 침투 및 군사적 폐쇄 (7) 예루살렘에서 새롭게 등장한 ‘종교적 명사들’ :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종교적 명사들’이 4개의 이슬람 기구들(이슬람 와끄프, 이슬람 업무부, 이슬람 성지위원회, 이슬람 고등위원회)을 대표하여 발언한다. 현재 이 명사들이 예루살렘 성지의 위기 과정에서 완전한 책임을 떠맡아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부다. 이 명사들의 개성은 서로 다르고,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지만, 사회통합을 유지해야한다는 이들의 대중적 호소는 성공하였다. 왜냐하면 이 ‘종교적 명사들’의 핵심적인 합의는 단 하나의 목표, ‘알 아크사 모스크 수호’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2017-08-18 | hrights | 조회: 148 | 추천: 0
김재완/ 방송대 법학과 교수 정당(政黨)이란 정치에 대한 이념이나 정책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하는 단체를 말한다. 이러한 정당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정당법이라는 법률에 의해 그의 성립, 운영, 조직, 활동을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을 정치단체의 하나라고 보는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은 특별히 정당법을 두고 있지 않다. 대신에 정치단체들 중에서 해당 단체가 국가의 지원을 필요로 할 경우에는 그 범위 내에서만 정치단체와 정당의 요건을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정당법이 있는 독일의 경우에도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지원할 뿐 당원의 수나 지구당 등에 대한 제한 요건을 두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 정당법은 그 존재목적으로 제1조에서,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확보하고 정당의 민주적인 조직과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즉,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이 정당이라는 결사체를 통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그 정치적 이상이 제도와 법으로써 실현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민주정치를 추진해 나아갈 수 있게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간섭하지 않는 것에 정당법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읽혀진다. 그러나 현행 정당법은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규제와 장애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당원자격과 등록요건은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첫째, 정당법은 대한민국 국민 중 국회의원선거권이 있는 자로 한정하며, 또한 공무원과 대학교수를 제외한 교원은 당원이 될 수가 없다고 규정하여 당원의 자격을 지나치게 제한한다. 공무원과 교원의 경우에는 그 업무에 한해서만 중립성과 부당성 금지의무로써 규제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임에도, 그들의 고유한 정치 및 정당 활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을 박탈하고 있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상의 직무수행의 중립과 국민 내지 자연인으로서의 정치활동의 자유는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선거권이 있는 자의 경우에는 선거연령과 연계되어 있으므로, 선거연령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세대가 그 정치의식을 함양하고 발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만, 정당이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존재할 수 있고, 지속가능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정당법은 정당등록요건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하고, 시·도당은 1천인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 즉, 전국정당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제한은 소수나 지역에 기반한 지역정당의 조직을 봉쇄한다. 다양한 정치적 의사형성을 애초에 막는 것이다. 국민의 정치적 자유와 활동의 기본권이 지나친 정당등록요건으로 인해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실질적인 지방자치 및 분권과, 다양한 인권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새로운 정당들의 진입을 막는 것은 기성정당의 특권만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이러한 두 가지 이외에도 국회의원선거에서의 득표에 따른 정당등록취소제도, 공직선거법의 사전선거운동금지를 토대로 한 정당 활동에 대한 지나친 제한 등이 정당을 통한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촛불을 들었던 국민이 바라는 정치체제는 그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고, 그것이 정의와 상식에 합치하는 법과 제도로 실현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체제, 특히 이를 뒷받침하는 정당법을 기초로 한 정당제도 아래에서는 너무도 요원한 신기루의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의 대의제는 그 이름만을 숱하게 변경하면서 유지해온, 그야말로 기성 기득권 정당들의 의원자리 확보를 위한 왕좌의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통해 대다수 불평등을 감내하고 있는 국민의 현실은 외면한 채, 법과 제도도 그 게임의 틀에서 타협의 산물로써만 누더기가 되어 생산되고 있다. 현실에서 고유한 직접민주제의 실현은 어렵지만, 직접민주제의 이상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장치로써의 제도 마련은 가능하다. 정당과 노조(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이 뜬금이 없지만, 노동자의 이익을 정치적 목적으로 한다는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 결사체로 보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므로 언급함)는 결사의 자유로써 충분히 보장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의 자유와 인권, 정의와 상식 등 보편적 인류애가 흐르는 법제도(모든 법들에는 표현은 다르더라도, 결국 이러한 취지로 읽혀지는 목적조항을 가지고 있으나, 개별규정들이 이에 부합하지 않고 있다)를 그 목적에 부합하도록 생산하고 변주도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만 한다. 향후 헌법의 개정에는 인권과 기본권을 중심에 두고서, 이를 현실에서 제대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정치체제를 마련하는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만 할 것이다. 더 이상 우리 국민은 엘리트 국가주의에서의 레밍(Lemming, 나그네쥐)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17-08-07 | hrights | 조회: 168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