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산책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수요산책

‘수요산책’은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칼럼 공간입니다.

‘수요산책’에는 박록삼(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박상경(인권연대 회원), 서보학(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윤(경찰관), 이재환(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조광제(철학아카데미 대표), 황문규(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윤/ 경찰관    2022. 6. 21.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는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여 법령 발의 제안, 소속청장 지휘, 인사제청, 국가경찰위원회 안건 부의, 수사 규정 개정 협의 등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고, 소속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을 제정하며, 감찰 및 징계제도를 개선함으로써 권한이 비대해진 경찰에 대해 통제하는 방안을 권고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행안부 장관의 경찰 장악력이 막강해진다.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권고안이다.  행안부 자문위원회는 ①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권한 비대→②통제 필요→③경찰국 신설로 통제라는 논리를 펼쳤는데, 이 논리에는 허점이 많다. 첫째, 수사권 조정 이전보다 경찰 권한이 비대해졌다는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비대해진 권한도 없지만, 형소법 개정 이후에도 경찰 수사는 검사로부터 과거와 다름없는 통제를 계속 받고 있다. 둘째,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해진 경찰을 통제한다면서 수사와 관련없는 경찰청장 등에 대한 인사제청 및 소속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을 제정하여 치안업무 전반을 통제하겠다고 하니 ①번은 경찰 장악을 위한 핑계로만 들린다. 셋째, 경찰국을 만들지 않아도 이미 경찰위원회가 인사, 예산, 정책, 장비 등을 통제하고 있는데 굳이 경찰국으로 통제하려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현재의 경찰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일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면 된다.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손상될 우려가 있는 위 권고안의 비민주성, 반역사성, 위법성에 대해서는 많은 분이 의견을 피력하셨으니 여기서는 경찰위원회 실질화와 관련한 첨언을 하겠다.  경찰위원회에 의한 경찰통제 모델로 영국 경찰이 있다. 영국은 과거 전국 지방경찰청 관리를 위해 내무부장관, 지방경찰위원회, 지방경찰청장이 권한과 책임을 분담하는 3원 체계였다. 1980년대 이후 점점 내무부의 권한이 강해져서 중앙정부에만 집중하는 경찰, 관료제적 경찰, 현장에서 동떨어진 경찰이라는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2011년 4원 체계로 전환하여 전국 45개 지방경찰청을 지역치안평의회, 지역치안위원장(주민 직접 선출), 내무부장관, 지방경찰청장의 책임과 권한 하에 중앙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주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치안활동에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다는 방향성이 있다.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여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자문위원회 권고안은 이 방향성에 역행한다. 현대 경찰의 세계적 흐름은 중앙정부를 위한 사회질서 유지보다는 범죄로부터 안전한 주민 생활에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지금 한국의 경찰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경찰국에 두려고 했던 인원과 예산을 경찰위원회에 주면 된다. 지금까지는 위원회 활동을 지원하고 보조할 상근직원이 경찰관 몇 명뿐이어서 본래의 역할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위원 7명이 월 2회 회의에 소집되면 주어진 안건을 토의하고 결정하기에도 바쁘다. 경찰위원회에 경찰관 아닌 40~50명의 공무원으로 구성된 상근 조직이 만들어지면 인사와 감찰만 하더라도 할 일이 참 많다.  치안에 전문성이 있는 인재를 객관적 기준에 의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일을 경찰위원회가 하면 경찰국보다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경찰통제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타당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사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평가는 정량적, 정성적 지표를 근거로 이루어져야 하며 정실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인사에 정실과 외압이 개입하면 인사 정의는 사라지고, 이로 인해 일할 동기와 활력이 없어진 조직은 엉망이 되고, 60년 전의 비극이 되풀이될 것이다(그레샴 법칙 참조). 행안부 장관도 경찰국 신설 목적이 인사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경찰국 신설에 들어갈 비용으로 괜찮은 인사평가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면 잘 쓸 것 같다. 요즘 빅데이터에 AI까지 있으니 돈만 들이면 13만 경찰 디지털 인사평가 자동화 시스템 정도 만드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다.  조직 내 부패와 비리 등 위법·부당한 직무수행을 확인하여 인사권자로 하여금 징계 등 조치를 하게 하는 것이 감찰이다. 감찰은 조직 내에서 수행하기보다 외부에서 하는 것이 더 객관적이고 책임성이 있다. 경찰위원회 상근 조직에 감찰부서를 두면 제3자 입장에서 공정하고 정확하게 감찰활동을 함으로써 경찰을 통제할 수 있다.  이상에서 경찰위원회 실질화로도 경찰통제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에 더하여 제발 정부에서는 비대해진 경찰을 통제하려고만 하지 말고 우선 비대해진 경찰의 살부터 좀 빼주면 좋겠다. 실상은 지금까지 경찰 권한이 비대해진 것이 아니라 업무가 많아진 것일 뿐이다(5. 10.자 ‘경찰수사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참조). 수사업무뿐만이 아니다. 스토킹, 가정폭력, 아동학대, 학교폭력, 정신이상자 등 점점 새로 생기는 범죄예방 업무에, 어금니아빠 사건 이후로는 연락이 안 되는 가족을 찾아주는 일까지 하려니 할 일은 태산같이 쌓여만 가는데 인원은 부족하다. 이런 일은 여성가족부나 교육부 등에 담당 부서를 만들고 특별사법경찰 권한을 주면 경찰 권한도 분산시키고 업무 연계성 및 전문성도 키울 수 있다. 경찰에게 계속 일을 시키려면 일할 수 있는 권한, 인력, 예산도 함께 주면 참 좋겠다. 지금은 적은 인력으로 권한도 없이 힘들게 일만 하다가 큰 사건 터지면 욕만 배터지게 먹고 있다. 이렇게 욕을 많이 먹으니 경찰관이 장수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못한 현실이 서글프다.
2022-07-06 | hrights | 조회: 907 | 추천: 10
이재환/ 시흥시청 지역화폐팀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사는 것, 곧 동네가 되다.’  지난해 중소기업벤처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2021 동네단위 유통채널 구축 시범사업’ 공고를 냈었다. 동네단위 유통채널 구축사업이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소상공인+동네상점+소비자’를 연계하여 지역상품의 소싱·유통·판매 구조를 하나로 통합하는 하이퍼로컬(지역밀착형) 개념의 유통·물류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시범사업 공모결과 시흥시가 선정되었고, 함께 공모한 운영기관 ㈜컬쳐네트워크와 주식회사 빌드가 약 8개월 여 동안 시범사업을 마쳤다. 동네단위 유통채널 구축이라는 사업명 그대로 참여자들과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는 없으므로 ‘동키마켓’이라는 서비스명을 갖추었다. 동키마켓은 ‘동네를 키우는 상점’의 줄임말이다. 맞다. 예상하듯 마스코트는 ‘당나귀(Donkey)’이다. 당나귀는 예부터 소상공인의 친근한 벗이자 일꾼이었다.  처음에 언급한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사는 것, 곧 동네가 되다’는 슬로건은 동키마켓의 지향점을 축약한 내용이다. 동키마켓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는 ‘동네 단위’이다. 동네 주민과 지역 생산품을 연결하여 지역 내 유통과 소비를 지향하고자 한다. 최근 다시 회자되고 있는 ‘지역순환경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뤄내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런 사업을 할까? 나 자신만 하더라도 소비의 절반은 대형 e커머스 플랫폼을 통하고 있다. 없는 물건이 없고, 배송도 빠르면 반나절 만에 이뤄지니 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찜찜하다. 분명 우리 동네 시흥 포도를 주문했는데 나라를 한 바퀴 돌아 저기 옥천hub를 거쳐 오는 것도 그렇고, 겹겹이 쌓인 상품 포장지도 볼 때마다 지구에게 미안하고, 쇼핑몰 입점 판매 수수료도 만만치 않다고 하고, 온라인 쇼핑몰에 밀려 동네 가게와 소규모 생산자들은 점차 힘들어지고...  더 이상 편리함에 취해 더 중요한 가치를 놓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지역순환경제를 생각하는 소비자들에게 맞춤형으로 선보인 공공 유통 서비스가 바로 동키마켓이다.  동키마켓의 사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동키마켓 앱에 시흥시의 생산자들이 상품을 올린다. 마치 ‘당근마켓’에 올리듯 말이다. 예를 들어 시흥 포도 농부나 시흥 미산동 두부공장 사장님이 직접 상품을 올린다. ‘시흥 포도 100상자 10% 할인해서 팝니다’, ‘당일 생산 두부 3판 팝니다’ 등등. 쇼핑몰에 입점하려면 수십 퍼센트 대 수수료 부담 때문에 엄두를 못 냈던 지역 생산자들이 투박하지만 자유롭게 지역 온라인 쇼핑몰에 상품을 올릴 수 있다.  동키마켓 앱에서 이를 본 소비자가 구매를 결정하면 결제는 시흥시 지역화폐인 ‘모바일시루’로 가능하다. 모바일시루는 현재 10% 인센티브 혜택이 주어지므로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10% 할인 효과를 보게 된다.  지역화폐 결제까지 이뤄지면 소비자는 쇼핑한 물건을 수령할 오프라인 동키마켓을 지정해야 한다. 많은 물류 운송 및 포장비용이 드는 택배송 보다 퇴근길 또는 산책길에 들러 쇼핑한 물건을 픽업해야 한다.(불가피한 경우 별도이용료를 내고 택배송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이 오프라인 동키마켓은 새로운 가게들이 아니라 기존 동네 상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네 입구 슈퍼마켓이나 북카페 등이 ‘동키마켓+**수퍼’, ‘동키마켓+북카페’처럼 기존의 영업을 유지하면서 동키마켓이란 브랜드를 함께 사용한다. 일종의 숍인숍 개념이다.  오프라인 동키마켓은 ‘앵커스토어’를 지향한다. 앵커스토어란 고객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전달하여 꾸준히 발길이 이어질 수 있는 동네 사랑방같은 가게를 말한다. 지역 내 생산품을 지역 내 소비자에게 직접 연결해 전달하는 가치를 키우면서 쇠락해가는 골목상권을 되살려 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물건 픽업해오면서 가게 사장님과 가벼운 정담을 주고받으며 내친 김에 우유 한통, 막걸리 한 병 더 사는 느슨한 공동체 경제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동네단위에서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새로운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려는 시도가 동네단위 유통채널-시흥 동키마켓 시범사업이었다. 현재 1개의 동키마켓 쇼핑앱, 9개의 오프라인 동키마켓 상점, 약 50곳의 생산자 및 상품 구성이 시범사업 기간 내 구축 완료되었다.  시범사업 이후 운영기관인 ㈜컬쳐네트워크와 주식회사 빌드가 동키마켓 참여 상점 및 생산자들과 함께 구축된 시스템을 돌리고 확산하게 된다.  물론 당장 당일직송에 익숙한 지역 소비자의 큰 호응을 기대할 순 없을 터이다. 대신 물류 유통 및 재고처리 비용을 최소화하여 저렴하고 신선하며 특색 있는 지역 생산품을 제공함과 동시에 지역화폐로 결제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스며들 듯 지역 소비자들에게 다가 갈 것이다.  지역 맘카페와 연계하여 소구력을 갖춘 지역 생산품 공동구매와 같은 이벤트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57만 시흥시 인구 가운데 32만 명이 사용하는 지역화폐 모바일시루가 모객과 마케팅의 첨병으로 서게 된다.  지역 소비자들이 대기업 플랫폼에서 소비량 중 다만 10% 만이라도 동키마켓이란 채널을 이용한다면 지금도 시나브로 시들어가는 골목상권과 지역경제를 되살리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분 좋은 소식도 들린다. 오프라인 동키마켓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단속민원을 요청하는 시민이 위치를 묻는 시청 직원에서 ‘동키마켓 건너 편’이라고 일러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9개 오프라인 동키마켓이 간판을 건 지 보름도 안 지났음에도 눈에 띄다 보니 자연스럽게 앵커스토어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키마켓의 PB상품인 동키맥주와 두부도 맛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3차례 걸쳐 보낸 ‘동네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려 한다. 지역화폐 시루를 매개로 시흥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역 경제활성화+공동체 강화 정책을 소개 했다. 과거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제가 어려워지면 지역과 동네로 눈길과 관심을 쏟기 마련이었다. 지역화폐 역시 지난 200여 년 간 경제가 어려워질 때 등장했다.  물가는 오르고 돈은 돌지 않는 스태그플래이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동네에 관심을 가져보자. 파랑새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2022-06-29 | hrights | 조회: 703 | 추천: 6
박상경/ 인권연대 회원   1.  “비 올 것 같은데, 우산 가지고 가요!”  “지금 오는 비는 맞아도 돼. 예전 같으면 이런 날 우산 쓰면 어른들한테 야단 들었어. 가뭄이 너무 길다.”  친구 만나러 마을 가는 엄마가 꾸물거리는 날씨에도 그냥 나가기에 우산 타령을 했더니 돌아온 엄마의 대답이다.  겨울 가뭄이 봄 가뭄으로 이어져 초여름에 들어선 지금도 여전하다. 겨우내 묵은 계단의 먼지를 한바탕 쏟아지는 비에 털어내려고 했으나, 올 듯 올 듯 비를 머금은 먹장구름은 이내 불어오는 바람의 기세에 뚝 뚝 비 몇 방울 뿌리고 만다. 가뭄이 너무 긴데,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런가…. 2.   네팔 겨울 산에 오른 적이 있다. 고도가 4천 미터 되는 마을에서 한 소녀를 만났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는 한낮, 소녀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듯한 물이 가득 담긴 대야가 놓여 있었다. 세수라도 할 모양이지 싶어 가만히 바라보는데, 소녀가 한 가닥으로 질끈 묶은 머리를 풀어 빗으로 곱게 빗어 내린다. 그러더니 대야에 머리를 담그고는 또 정성껏 물을 축이는 것이다. 머리를 감으려는 것인가, 주변을 둘러봐도 물은 대야에 있는 물이 다인데, 어떡하려는 거지 싶어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머리에 물을 다 축이는가 싶더니 이내 머리에 비누칠을 하고 헹구어낸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비눗물을 조심스럽게 대야 한쪽으로 밀어내고 다시 머리를 헹군다. 머리를 감은 그 물은 버리지 않고 옆에 있던 동생의 얼굴을 한 번 쑥 닦아준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그 시간을 나는 숨죽여 바라보았다. 소녀의 머리 감기는 대야에 있는 물, 그 하나로 다 되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먹을 물조차 귀한 이곳에서 살아가는 생존 본능이라고 해야 하나. 겨울 한낮에 내리는 햇살이 마치 조명처럼 소녀만을 비추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하산 길에 나선 나는 2천 미터 고지의 한 로지에서 열흘 만에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떡이 된 긴 머리와 먼지로 뒤엉킨 내게, 주어진 물은 무릎까지 오는 한 양동이뿐. 이 물로 몸도 씻고 머리도 감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되었다. 조심스럽게 머리부터 감고 조금씩 조금씩 물로 몸을 축이며 닦아낸 뒤에 마지막 한 바가지로는 머리에서부터 부어버렸다. 그때 머리를 감고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내다 눈이 마주친 나를 보며 수줍게 웃던 소녀가 내 앞에서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출처 - NEWSIS 3.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수영장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샤워장도 덩달아 붐빈다. 2년여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화로 시끌벅적거린다. 그러자니 쓰지도 않는 샤워기 꼭지는 열린 채로 물을 쏟아낸다. 샤워기는 틀어놓은 채 잠깐 자리를 비우기도 한다. “쓰지 않을 때는 잠깐 잠그면 어때요?” 했더니 혼잣말로 별걸 다 참견한다며 투덜댄다. 슬며시 샤워기를 잠그며 제자리로 돌아와 눈을 흘긴다. 내 물건 왜 맘대로 손대냐 하는 시위 같다. 샤워장의 이 풍경은 사실 거리두기 이전에도 비슷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어서 그렇다고 해도 가뭄 걱정을 경험했을 어른들이 그럴 때는 마음이 편치가 않다.  일본의 온천장 샤워기는 참 불편하다. 예전 우리 목욕탕에도 그런 샤워기가 있었다. 중간 손잡이를 눌러야 물이 나오는. 수영장의 샤워장 입구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다. “샤워기를 쓰지 않을 때는 잠그시기 바랍니다.”  비금도는 물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뭄이 길어지면 씻는 일을 삼간다. 많은 섬들이 그럴 것이다. 어느 해 겨울, 일로 비금도에 갔을 때 숙소를 안내해 주시던 분이 샤워는 짧게 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늘 그런 것은 아닌데 올해는 겨울 가뭄이 길어 물탱크의 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뒤꼍에 있는 물탱크를 가리켰다. 비가 오면 빗물을 담아둔다는 물탱크를 보면서 어릴 적 비가 오면 처마 아래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담아 두던 항아리가 기억났다. 항아리에 받아놓은 물은 다음 날 머리 감는 데 썼다.  한여름 뙤약볕을 받으며 설악산의 용아장성을 갔다. 왼쪽으로는 공룡능선을 마주보면서 오른쪽으로는 구곡담계곡을 끼고 하루 종일 그 능선을 가면서 물이 흘러넘치던 수렴동 계곡의 물소리가 환청으로 들리곤 했다. 고작 1리터의 물은 이미 떨어지고 입은 버캐가 낄 정도로 타들어갔다. 그때 바닥 구덩이에 고인 물이 보였다. 사람이 급하면 얼마나 지혜로워지는지. 잘못 건드리면 곧 흙탕물이 될 그 물을 먹으려고 풀잎에 물을 적셔 입술부터 축였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갈증이 가셨다기보다는 입술이 축축하니 길을 다시 나설 만하였다. 하루를 타는 목마름을 달래며 닿은 봉정암에서 마신 물은 신선의 세계에서 맛보는 그런 꿀맛이었다.  엄마는 계단 청소는 미루자고 했다. 먼지 풀풀 날리는 계단을 비질만 했다. 밖에서 집에 올 때 비가 오면 혹여라도 전화하지 말고 맞고 들어오라고도 한다. 엄마의 기원이 하늘에 닿아 오늘이라도 비가 오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며칠 흐리던 날씨는 다시 화창해졌다.
2022-06-22 | hrights | 조회: 365 | 추천: 4
석미화/ 평화활동가  날이 뜨겁다. 경복궁역에서 나와 청운동사무소 방향으로 가는 길은 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자 나오는 보도블록은 중간에 지하철 환기구가 떡하니 자리차지를 하고 있어 더 좁게 느껴진다. 오늘따라 그 길을 따라 걸으려니 도착지까지 길이 더 멀게만 보인다.  갤러리 류가헌으로 향하는 길, 여권법 개선을 위한 ‘세계 분쟁지역’ 사진전 <금지된 현장> 심포지엄을 찾았다. 시작 시간을 넘겨 도착하니 토론이 한창이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분쟁지역을 사진에 담아 온 작가, 기자가 모여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취재제한을 비롯해 그간 ‘여권법’이 규정하는 취재허가절차가 실질적으로 언론자유를 통제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나눴다. 성명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여권 사용 허가 제도를 개정하여 여행금지 국가의 취재 및 보도를 보장하라!’는 제목 아래 “여권법 제17조로 인한 지나친 제한과 절차가 사실상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므로 여행금지 국가에 대한 언론의 취재와 보도를 보장해야한다.”  이에 대한 반응인지 며칠 후 외교부가 취재 목적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한 기존 방침을 변경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취재지역을 확대하고 방문기간과 인원을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변화라고 보기에는 허용 범위를 약간 늘린 수준이었다. 또 복잡한 서류와 허가절차를 거쳐야하는 문제 등은 여전히 남아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내내 전장(戰場)에 가지 못하는 문제가 전쟁보도의 총체적 원인인 것처럼 비춰지는 모습이 다소 불편했다. 그것이 해결해야하는 과제임은 분명하나 현재 한국 언론의 부실하고 무능한 전쟁보도는 단지 거기에서만 이유를 찾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전반적으로 우리 언론이 갖고 있는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취재보도의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을 포함해 저널리즘의 실종을 목격하는 일은 분초 단위로 뉴스를 보는 시대에 시시때때로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정처 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을 볼 땐 심지어 이것이 종이에 찍혀 나오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전쟁보도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자리에서 뉴스를 생산하는 이들 사이에 적어도 책임을 통감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출처-뉴스프로  평화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전쟁 보도에 관심이 많다.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의 현장들, 그곳의 상황을 주시하고 평화의 눈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연대할 것인지 고민한다. 그래서 전쟁 보도를 주의 깊게 본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전쟁 보도는 이러한 관심과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보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외신이나 현지 SNS를 받아쓰는 상황에서 팩트 체크, 출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는 사례는 부지기수고, 현장에서 취재할 수 없는 다양한 분석과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제시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닌 상황에서 알고자 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우리 언론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전쟁보도라는 것이 누군가를 편드는 일에만 매몰되어선 안 될 텐데, 전적으로 서방 언론을 받아쓰기하며 우리의 관점은 실종되고 없다. 전쟁의 이면을 살피는 일에 대해서도 게으르다. 1년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할 때의 보도는 그저 긴박했던 철수장면을 보여주기에 바빴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오사마빈라덴과 대량인명살상무기를 찾으러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간 미국, 전쟁은 끝났지만 20여 년 동안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 깊이 있게 살피는 기사를 찾기는 어려웠다. 한국으로 온 아프간 사람들을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로 부르는 것에 대해 질문할 줄도 몰랐다. 한국 언론은 그들을 ‘특별기여자’로 부름으로써 ‘난민’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재생산했다. 한국 언론은 파괴되고 무너져 내린 전장(戰場) 넘어 종합적이고 분석적인 시각을 제시하지 못했고, 전쟁이 낳은 비극에는 관심 갖지 않았다.  한국이 최초로 해외에 특파원을 보낸 것은 베트남 전쟁 때부터다. 1965년 비둘기부대와 함께 종군기자 13명이 전쟁취재를 위해 월남에 간 것이 시작이다. 국가와 군의 주도아래 월남으로 간 기자들은 파병을 홍보하는 전쟁 나팔수로 역할 했다. 당시 열악한 취재환경과 보도지침이라는 통제 속에 소영웅주의, 전과중심의 보도, 정부의 조치나 발표 등이 보도의 주를 이루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미군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 500여명이 희생된 밀라이 학살은 미국의 종군기자 세이모어 허쉬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가 촬영해 공개한 사진들은 지금도 밀라이박물관과 호치민시전쟁증적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한 기자의 빛나는 특종은 그의 노력과 더불어 그것을 가능케 한 여러 조건들의 창조물이다. 비록 정부의 보도통제 아래 한국의 전쟁보도가 시작되었지만 이제 세상은 바뀌었고 적어도 ‘보도지침’과 같은 것들은 없어졌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언론에 세이모어 허쉬와 같은 이의 활약이나 보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때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얼마나 나아간 것일까? 혹은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한국 언론이 지금처럼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하고 기존의 전쟁 보도 관행을 버리지 않는다면 50년 후에도 우리는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지 않을까? [참고자료] <베트남전쟁과 평화교육>, 한베평화재단 창립 5주년 기념 웨비나, 2021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로 드러난 외신 기사의 문제점, 임영호, 신문과방송 2022년 4월호https://www.kpf.or.kr/front/news/articleDetail/592562.do <우크라이나 전쟁과 언론보도> 세미나, 한국언론진흥재단, 2022.4.27. ‘우크라 2박3일 취재’ 제한 변경… 2주간 11개주 취재 가능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4222 우크라이나-러시아 상반된 전쟁범죄 주장에 대한 언론의 고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3306
2022-06-15 | hrights | 조회: 769 | 추천: 4
염운옥/ 경희대 글로컬역사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코로나 팬데믹 동안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반려식물, 식물집사라는 말도 이제 낯설지 않다. 한국인 4명 중의 1명이 반려동물을 기른다는 통계도 나와 있지만, 자그만 식물 화분 하나라도 집에 두고 있는 경우를 센다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외로움을 달래줄 비인간 존재로 동물보다는 식물이 선택하기 쉬운 탓도 있을 것이다. 식물은 돌아다니며 집안을 어질러 놓지도 않고, 놀아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귀찮게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에 내가 필요할 때만 위로를 구할 수 있다는 게 식물 반려의 장점이라고들 말한다. 식물 반려도 반려이기에 물과 거름주기, 햇빛 보이기, 벌레 잡아주기, 통풍과 환기 등 집사로서의 노동이 따르는 건 물론이지만.  우리 집 베란다에서 해마다 3월이면 선명한 오렌지색 꽃을 피우는 군자란은 원산지가 남아프리카다. 군자란은 8월의 시드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곁에 있는 많은 식물이 외래종이다. 외래식물이라도 이미 적응을 거쳤기에 원산지가 어딘지 따지는 건 이제 무의미한지도 모르겠다. 발이 달리지 않은 식물이 먼 거리를 이동하고 새로운 생태를 만드는 일은 자연스럽게 생겨나지 않는다. 이동성이 없는 식물에 이동성을 부여하는 건 우리 인간이다. 특정 식물의 분포와 식생에는 인간이 자연에 개입한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자연은 순수한 자연이 아니라 인공 자연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식물의 이동에는 다양한 욕망과 정치가 개입해 있다. 근대 초 유럽인들의 이국식물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식물수집과 식물사냥을 부추겼다. 이국식물 열풍은 튤립에서 양치류에 이르기까지 여러 식물을 거쳐 불었다. 몇몇 식물은 씨앗이나 꺽꽂이로 들여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식물표본으로 수집됐다.  식물의 이동성에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발명이 바로 워디안 케이스(Wardian Case)다. 워디안 케이스는 영국인 나다니엘 백쇼 워드(Nathaniel Bagshaw Ward, 1791~1868)​가 만든 일종의 휴대용 테라리움 장치를 말한다. 이 덕분에 전 세계 식물 종을 수집해 ‘살아있는 채로’ 유럽으로 운반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워디안 케이스는 한편으로는 ‘집안의 수정궁’이라 불리며 중산층 가정의 거실을 장식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와 고무 같은 상업작물의 지리적 독점을 돌파하는 역할을 했다.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이자 식물사냥꾼인 로버트 포춘(Robert Fortune)은 1849년 중국 상하이에서 차를 워디안 케이스에 넣어 영국령 인도로 운송해 아삼지방에 차 플랜테이션의 길을 열었다. 브라질에서 수입된 고무나무 씨앗은 큐가든(Kew Gardens)이라 불리는 런던 왕립식물원(Royal Botanical Gardens)에서 발아한 다음 워디안 케이스에 담겨 말라야와 실론으로 운송되어 고무 농장에서 대량 재배되었다. 더비셔에서 개발된 캐번디시 바나나를 소모사로 옮겨 심을 때도 워디안 케이스가 쓰였다. 그림1. Portrait of Nathaniel Bagshaw Ward, 1859. Lithograph by R. J. Lane after the portrait by J. P. Knight. Courtesy Wellcome Collection, CC BY. 출처: Luke Keogh, The Wardian Case: How a Simple Box Moved Plants and Changed the Worl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20, p. 16. 그림2. Traveling-style Wardian case, as described by Nathaniel Ward. From N. B. Ward, On the Growth of Plants in Closely Glazed Cases (London: John Van Voorst, 1852). 출처: Luke Keogh, The Wardian Case: How a Simple Box Moved Plants and Changed the Worl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20, p. 22.  워드는 어떻게 이 대단한 상자를 만들 수 있었을까? 워드는 이스트엔드라고 불리는 런던 동쪽의 화이트채플의 내과 개업의였다. 이스트엔드는 19세기 산업화 시대 불결한 도시의 대명사였던 지역이다.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계승한 의사 워드는 아마추어 식물학자이자 원예가였다. 어릴 때부터 식물을 좋아해 열세 살 때 자메이카로 식물 탐험을 다녀오기도 했다. 워드는 당시 대기오염이 인간과 원예에 끼치는 악영향을 개탄했다. 템즈 강변의 공장에서 나오는 시커먼 재가 식물의 성장을 저해하고 말라 죽게 하는 일이 반복되자 워드는 얼마 전의 우연한 발견을 떠올리고, 뚜껑 달린 유리병에 고사리를 심었다. 1829년 어느 날, 워드는 스핑크스 나방 번데기를 흙에 묻어 밀폐된 유리 용기에 넣었다. 원래 목적은 스핑크스 나방 번데기의 변태를 관찰하는 것이었는데 예상 밖의 발견을 하게 됐다. 흙 속에서 양치류 식물의 싹이 올라오더니 잎사귀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고 물을 주지 않았는데도 계속 자라났던 것이다. 사실 비슷한 생각을 했던 동시대인은 워드 말고도 여럿 있었지만, 워드의 혁신에서 핵심은 밀폐 시스템이었다. 식물이 호흡할 때 내는 증기가 일정 기간 식물에 필요한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기 때문에 워드가 실험한 식물은 밀폐된 공간에서 생존할 뿐만 아니라 풀은 꽃을 피웠고, 고사리는 잎을 피웠다. 워디안 케이스는 밀봉된 미니어처 정원인 셈이었다. 1) 의사로서 워드는 식물 가꾸기 취미를 노동계급에까지 널리 전파하고 싶어했으나 값이 싸졌다고는 하지만 유리는 사치품이었고, 가난한 노동자들은 워디안 케이스를 사기보다는 집세를 내야 했다. 워드의 이상은 모두에게 공유되지 못하고, 중간계급 거실 장식품으로 안착했다.2)  또 한편으로 워디안 케이스는 영국과 외부 세계 사이의 식물 교류의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했다. 워드는 1833년 밀폐 유리 상자에 고사리, 이끼, 풀을 넣어 배에 실어 런던에서 시드니로 보냈다. 몇 달 후인 1833년 11월 23일에 워드는 선장 찰스 말라드(Charles Mallard)로부터 실험이 성공했다는 편지를 받았다. 20개의 상자 중에서 19개 상자의 식물이 살아남았던 것이다. 말라드 선장의 배는 1834년 2월 오스트레일리아의 식물을 싣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항해는 시드니에서 케이프혼, 리우데자네이로를 거치는 항로였는데, 식물들은 영상 30~40도까지 오르고, 영하 7도까지 내려가는 극심한 온도 차를 무사히 견뎌냈다. 그 결과 워드와 친구들은 영국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오스트레일리아산 풀고사리(coral fern. 학명 Gleichenia microphylla)를 관찰할 수 있었다. 1851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The Great Exhibition)에도 장식용 양치류 식물을 키우는 워디안 케이스와 18년 동안 물을 주지 않은 밀폐 유리병이 출품되었다. 3)  휴대용으로 개량을 거듭한 워디안 케이스는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의 식물원들이 식민지와 식물을 주고받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도구로 활용되었다. 영국에서는 큐가든이 중심이었고, 독일에서는 베를린식물원(Berlin Botanical Gardens), 프랑스에서는 열대농경식물원(Jardin d'agronomie tropicale),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식물원(Amsterdam Botanical Gardens)과 라이덴식물원(Leiden Gardens)이 워디안 케이스로 식물을 운반했다. 제국주의 중심국가들의 식물원과 식민지 식물원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에서 워디안 케이스는 핵심적 매듭으로서 식물의 이식과 정착에 관여했다. 전지구적 식물 이동을 가져온 제국주의 팽창과 식민지 정복, 노예제와 플랜테이션을 성립시킨 이음새로서 현재의 생태계를 만드는 역할을 다했던 것이다. 그림3. Specially crafted Wardian cases made by local Indonesian workers were used to send plants from the Buitenzorg Botanic Gardens, Java, in 1904. 출처: Luke Keogh, “The Wardian Case: How a Simple Box Moved the Plant Kingdom,” Arnoldia 74/4(May 2017), p. 12 그림4. Wardian cases preparing to leave the Royal Botanic Gardens, Kew, ca. 1940. © The Board of Trustees of the Royal Botanic Gardens, Kew. 출처: Luke Keogh, The Wardian Case: How a Simple Box Moved Plants and Changed the Worl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20, p. 9. 1) Margaret Flanders Darby, “Unnatural History: Ward’s Glass Cases,” Victorian Literature and Culture, 35(2007), pp. 635-636. 2) Ibid., p. 639. 3) Luke Keogh, “The Wardian Case: How a Simple Box Moved the Plant Kingdom,” Arnoldia 74/4(May 2017), pp. 6-7.
2022-06-08 | hrights | 조회: 1039 | 추천: 2
조광제/ 철학아카데미 대표 1. 놀랄 수밖에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해치고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윤석열 신출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나온 말이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내 후보 경선에서부터 후보 확정 이후 유세 기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입에서 ‘지성주의’는 물론이고 ‘지성’이란 말조차 들어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점술이니 법사니 사이비 스님 등에 현혹되어 지성과 정확하게 대립하는 미신에 의존한다는 소문과 의혹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당내 경선이 있을 당시 상대 예비 후보인 유승민 씨와 ‘천공 스님’ 운운하면서 크게 대립각을 세운 것이 언론을 통해 공공연히 알려지기도 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겨 제왕적 대통령의 통치를 벗어나 국민과의 소통을 한껏 높이는 ‘탈-청와대’ 시대를 열겠다고 하면서 “청와대에는 한 발짝도 들이지 않겠다.”라고 말을 했을 때, 그 결과 전혀 이야기된 바 없는 용산 국방부 청사에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뜬금없는 결심을 내보였을 때, 청와대 ‘입성’을 그렇게까지 두려워하듯 기피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중론이 일었고, 마침내 법사 운운하는 모 배후의 인사가 청와대에 들어가면 급살당할 수 있다는 점술에 따른 조언을 했고 대통령 당선인이 이를 맹목적으로 믿은 탓이라는 식의 뒷이야기가 무성했다.  그런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질타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지성주의를 합리주의와 연결하면서 그것이 미신을 타파하면서 발전해 온 과학과 그에 따른 진실을 전제로 한 것임을 강조했으니 어찌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선에서 상대 후보인 이재명 씨는 국민의 집단지성을 믿는다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이에 대한 찬동도 반대도 전혀 없었던 그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마치 지성의 화신이기라도 한 양 기염을 토하니 더더욱 놀랄 수밖에. 그런데 그 놀라움은 놀라움으로 그치지 않았다. 사십여 년 명색 이성을 바탕으로 한 철학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으로서 그동안의 정황을 떠올리며 심지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하는 심경에 더해 국민을 우롱한다는 분노의 감정으로 이어졌다. 2. 다수결의 원칙과 반지성주의  하지만 놀람에서 벗어나고 분노를 자제하며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 결과,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말을 취임사에 담게 된 것은 그의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고 취임사를 작성하는 데 도움을 준 누군가가 정략적으로 삽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을 신출 대통령인 자신이 받아들인 결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정황을 감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정략의 대상은 무엇이며 그 저의는 무엇인가?  정치적 판단력이 미숙한 탓일지는 모르지만, 나로서는 이 취임사의 대목이 국회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한 민주당이 검찰 정상화를 위해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취임사 작성을 돕는 누군가가 그럴듯한 말로 포장할 수 있는 언어적 장치를 권유하여 관철했으리라 짐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해석이 충분히 일방적이고 편협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관련한 취임사의 대목을 인용해서 그 앞뒤 문맥을 살펴보기로 한다.  다양한 위기가 복합적으로 인류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국내적으로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입니다.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풀이해 요약하자면 이렇다: (1) 다양한 위기가 인류 사회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2) 공동체의 결속을 통해서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3)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공동체의 결속을 이룰 수 있다. (4) 민주주의 기능이 상실되고 있다. 그 원인은 반지성주의다. (5) 견해를 달리하는 집단들이 과학과 진실을 전제로 조정과 타협을 이루는 것이 지성주의고, 지성주의를 통해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5)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는 반지성주의의 대표적인 현상은 (5-1) 집단 이기주의에 따른 외눈으로써 사실을 선택적으로 왜곡하는 것이고, (5-2) 다수의 힘으로써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1)∼(4)는 일반적인 내용으로서 대다수가 인정하는 것들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5)에 담겨있다. 이중 (5-1) 역시 대체로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5-2)는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논란의 여지가 많고,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공동생활을 할 때 갈등과 대립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다. 또 여러 이유로 국민이 모두 정치 행위에 일일이 직접 참여할 수 없기에 편의상 채택한 것이 의회민주주의고, 갈등과 대립에 관련하여 민주주의가 채택한 원칙이 다수결의 원칙이다.  그런데 (5-2)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의회민주주의와 다수결의 원칙에 위배 된다. 취임사를 하는 대통령 자신도 1639만 표를 얻어 겨우 전체로 보아 +0.73%의 더 많은 득표율에 그쳤다. –0.73%의 차이의 1614만 명이 그가 대통령직을 맡기에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도, 민주주의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대통령으로 인정되어 그 직을 맡게 되었다. (5-2)에 따르면, 그는 다수의 힘으로써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여 대통령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 자신은 상대의 의견을 억압했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왜 그는 취임사에서 굳이 (5-2)를 주장한 것일까? 그 주장이 겨냥하는 구체적인 대상은 과연 무엇일까? 국제사회에서 다수의 힘으로써 소수의 의견을 억압하는 예를 찾을 수는 없고, 설사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주장의 실효성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그 예를 찾을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라 할지라도 그 구체적인 예를 적시하기는 전혀 쉽지 않다. 가장 적실한 예는 그가 취임하기 직전,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점유한 민주당이 검찰 정상화를 위해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를 굳이 반지성주의적인 정치적인 행위로 지목한 것인가? 취임 전에서부터 기획하여 실행한 정부 고위급 인사들의 임명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대통령부터 법무부 장관과 차관, 법제처장, 공직기강비서관, 법률비서관, 인사비서관, 총무비서관까지 검찰 출신으로 채워졌다. 더욱이 그의 가장 가까운 ‘수족’으로 알려진 한동훈 씨를 ‘많은 상대편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법무부 장관으로 밀어붙여 임명했고, 국가 전체의 경영에서 법무부 장관보다 훨씬 높고 중요한 직책의 인물들마저 검증하는 ‘공직자 인사검증관리단’을 신설하여 법무부 산하에 두는 것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가 공직을 맡을 수 있는가에 관한 판단을 위한 모든 정보를 검찰이라는 강압적인 공권력으로써 수시로 비밀스럽게 수집 · 축적 · 관리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공권력에 의한 민간 사찰과 그에 따른 국민 인권 침해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국가 조직의 정책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만약 검찰 출신 대통령이 검찰 권력의 핵심으로 평가되어 온 수사권을 ‘박탈’하는 법을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다수 의석의 민주당이 통과시킨 것을 향후 자신의 통치 행위를 요약해 제시하는 취임사를 통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지성주의로 몰아붙인 것이라면, 이야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할 것이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3. 권력과 반지성주의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말한 “상대편 소수의 의견을 억압하는 다수의 힘”이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비일비재했었다. 그것은 파시즘적인 독재에 따른 다수의 힘이 국가의 현실을 지배한 것이다.  파시즘은 언론을 비롯해 각종 억압적인 장치를 통해 대다수 국민의 욕망과 그에 따른 감정 그리고 사유를 왜곡하여 집단적인 광기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 집단적인 광기를 바탕으로 법을 제정하고 그 법을 여지없이 가혹하게 집행하는 데서 파시즘이 작동한다. 다수가 집단적인 광기로 무장하고 통치 권력이 이를 법으로 제정하고 그 법을 명분으로 내세워, 이성적인 판단으로 이에 저항하는 소수의 의견을 국가 또는 민족의 적으로 규정하고 억압하는 것이 파시즘적인 독재다. 히틀러나 무솔리니나 일본 군사 제국주의의 천황은 물론이고,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차우셰스쿠, 폴 포트 등의 공산주의 일인 독재 역시 파시즘으로 보아야 한다. 일인 지상의 우상화된 통치로 대다수 국민의 의식과 무의식을 장악하여 조종 관리하는 파시즘이야말로 반지성주의다.  여러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 일어난 ‘자발적인’ 대다수 민중의 광기야말로 반지성주의를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고 1950년대 미국에서 대중적인 광풍을 일으킨 매카시즘 역시 반지성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의 경우, 박정희 군사독재 아래에서 국민 다수에 의해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고 그에 따른 긴급조치니 해서 얼마나 반지성주의에 시달렸는가. 삼청교육대로 상징되는 전두환 체제는 또 얼마나 반지성주의였는가.  반지성주의의 핵심 기반은 바로 권력이다. 민주공화국의 이념적인 기반은 국민이 비지배의 자유를 향유 하는 데 있다. 그런데도 민주공화국이라 할지라도 권력을 장악한 자는 그 권력으로써 국민을 지배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정치 욕망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자신이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한 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정확하게 오인할 때, 그 권력에 의한 개인의 지배 욕망은 저 자신마저 속인다. 그리하여 국민 다수의 이름으로 자신의 권력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온갖 술책을 고안하여 실행하고자 한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거기는 무사하지 못할 거야. 권력이라는 게, 우리가 안 시켜도 알아서 경찰들이 알아서 입건해요. 그게 무서운 거지.” 현재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여사라 불리는 인물이 자신의 남편이 대통령이 되기 한참 전에 비밀스레 내뱉은 말이다. 당시 이 말이 폭로되었을 때 긴가민가하면서도 정말 무섭다고들 했다. 결국, ‘내가 정권을 잡고’ 말았다. 경찰이 이렇다면 검찰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속된 말로 ‘알아서 긴다’라는 것인데, 이야말로 권력이 어떻게 쉽게 반지성주의와 결합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이를 위해 국가 공권력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언론을 비롯한 여러 장치를 암암리에 조종하고, 그럼으로써 국민 다수가 국가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러한 자의적인 국가 공권력의 발동에 반대하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전반적인 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리라 믿는 자야말로 파시즘적인 반지성주의를 체화한 자라 해야 한다.  미신이 지성과 전격적으로 대립한다고 하지만, 정작 지성과 전격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집단적인 광기다. 집단적인 광기의 배후에는 일방적인 통치 권력이 작동한다. 이를 근본적으로 막아내기 위해 인류가 고안한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고안된 이후의 역사를 보아 알 수 있듯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달리 말하면, 국민 모두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지성주의적 태도를 익히고 견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국민 모두의 보통 교육은 지성에 바탕을 둔 정치적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면서 발달한 자본주의는 교육을 오로지 반지성적인 기능적인 인간을 키우는 쪽으로 왜곡하기 일쑤다.  자본주의를 지성주의와 맞추기는 힘들다. 만약 자본주의와 일치하는 지성주의라면, 그 지성주의는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계산적인 합리성을 따른 것일 뿐이다. 그러한 계산 일변도의 지성주의가 권력과 결합한다면, 기실 그 지성주의의 본질은 반지성주의일 것이다.  참다운 지성주의는 보편적인 가치를 도모하고자 하고, 이를 발견하거나 조성하고자 하는 이성적인 성찰을 지속할 수 있고, 이성적인 성찰에 따른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존중하여 실행하고, 이를 저해하거나 방해하는 일체의 관행이나 관습 심지어 법에 대해서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을 때 성립한다. 이로써 참된 공화주의 정신에 입각한 참된 공동체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윤석열 신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사회적 갈등을 넘어선 공동체의 결속을 민주주의 정치의 목표로 내세웠다. 놀랍긴 하나,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반지성주의를 몰아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대략 예상한 대로 검찰 공권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치 권력의 구도를 짰다. 과연 이 두 가지가 일치할 수 있을까? 전자를 위해서는 분명 제대로 된 지성주의가 관철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후자의 정부 조직이 과연 제대로 된 지성주의에 의거한 것일까? 아무래도 동의하기가 어렵다. 권력은 본성상 반지성주의로 치닫는 경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윤석열 새 정부가 제대로 된 지성주의에 따른 민주주의 정치를 겸허하게 실행해 줄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2022-06-03 | hrights | 조회: 823 | 추천: 10
신하영옥/ 여성운동연구네트워크 젠더고물상  6월 1일은 제8대 동시지방선거일이다. 선거를 앞두고 1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치영역에서의 성별 불균형 해소를 위해 여성 공천할당제를 확대하고 이를 의무화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는 현행 공직선거법이 성별 불균형 해소에 기여하지 못함에 기인한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국회 및 지방의회의원 선거 후보자 추천 시, 비례대표에 대해서는 여성 50% 이상 할당제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지역구 후보 추천 시에는 ‘전국지역구 총수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 조항만 두고 있다. 이로 인해 21대 국회의원 중 여성 비례대표 의원은 59.6%였지만, 지역구 의원은 11.5%에 그쳤다. 전국 지역구 총수의 30% 이상을 여성후보로 추천한 정당에 여성추천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유인책을 두고 있었지만, 이나마 4월 15일 “전국 지역구 총수의 10% 이상”으로 개악하여 사실상 30%가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그나마 의원의 경우는 나은 편이다.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장의 경우는 후보 공천 시 여성 비율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는 형편이다. 이로 인해 역대 광역자치단체장 중 여성은 한 명도 없었고, 기초자치단체장도 7대에서 3.5%에 그치고 말았다.  두 거대정당도 자체 권고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은 기초자치단체장에 50% 이상을 청년과 여성으로 구성하도록 하였는데, 국민의힘은 지방선거 후보 전체에 정치신인과 여성, 청년을 50% 이상 배치하겠다고 하였으나 공천결과를 보면 지역구 광역의원에 정치신인이 33.8%, 여성 12.16%, 청년 10.36%이고, 지역구 기초의원은 정치신인 42.8% 여성 21.44%, 청년이 7.72%로서 실제로는 여성과 청년보다는 정치신인 배치에 주력한 것을 볼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한 성이 60%를 넘지 않도록 성별 균형을 맞추라고 권고하였지만, 여성은 정치신인 및 청년에 끼워져 있을 뿐이다. 선관위 후보 등록 현황을 보면 정치에서 여성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여실히 볼 수 있다. 여성 할당제 30% 이상의 권고 조항만 있는 광역의원은 23.6%에 불과하다. 그리고 규정이 아예 없는 광역단체장의 경우, 17개 시도 32명 중 9명(28%)만이 여성 후보이다. 기초자치단체장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226곳 580명의 후보 중 31명(5.3%)만이 여성으로 후보 100명 중 5명만이 여성이다. 또한,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지방선거 참여 정당의 10대 정책 및 공약 공개’에 따르면 지방선거에 등록한 12개 정당 중 5개 정당만이 성평등 정책이 포함되어 있을 뿐, 나머지 7개 정당(기본소득당, 코리아당, 녹색당, 대한당, 자유통일당, 통일한국당, 한류연합당)은 그 비슷한 정책이나 공약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여성의 정치참여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관점과 정치공학으로 인해 진입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남성에 편중된 내각에 대한 질문에 “지금 공직 사회에서 내각의 장관이라고 그러면 그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를 못했다.” “아마 이게 우리가 각 지역에서 여성의 공정한 기회가 더 적극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한 지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현 정부의 19명 국무위원 중 여성은 3명이다. 이 중 1명은 여성가족부의 폐지로 인해 사라질 예정이고, 차관급 41명 중 여성은 2명으로 더욱 열악한데, 차관과 차관급 인사는 대통령의 임명 권한이기 때문에, “직전 위치까지...” 운운하는 것은 본인의 책임을 ‘여성 인력 풀의 부족’에 전가하는 것이다. 이는 인과관계의 전치이고 후안무치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지역에서 중앙까지 촌부에서 대통령까지 여성은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존재, 남성에 뒤처지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고, 정치영역에서 정당 보조금을 위한 보험수단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정치환경은 여성들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거나,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떠오르도록 하거나 양자택일하도록 만들게 한다. 현실에도 여성 정치인들은 존재하지만,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대해서는 어떤 대안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여성 세력화를 위해서는 정당을 떠나 힘을 모아내고 목소리를 내어야 하건만, 참담한 여성공천결과에 대해 그 과정에 대해 누구도 힘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도 단일한 목소리는커녕 개개인의 입장조차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기존정치인들에 대해 기대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것이 여성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사진 출처 - 청주페미니스트연대   “가진 자의 무기로 가진 자를 이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무기가 필요하다. 무기는 만들어지고 있다. 청주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걔네’에서는 7명의 후보를 내고 ‘무소속 연대’로 선거에 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대선 전후로 여성 혐오정치와 여가부 폐지에 대응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예비후보 운동을 해보자고 뭉친 이들로, “누군가의 표심으로만 치부되는 게 아니라 주체가 되”는 “우리의 페미니즘 정치를 우리의 손으로 이루”기 위해 선거를 운동으로 펼치고 있다. 7명 중 한 명만이 노동당 소속이고 나머지는 무소속으로서 ‘무소속 연대’로 출범하여 선거구와 공약이 겹치지 않도록 구성하였다. 이들의 문제의식에는 “계속 사람들을 분절시키고, 모든 삶의 책임과 위기를 개인으로 수렴해 버리는 이 시스템에서 필요한 건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의 문제야’를 얘기하는 거”가 깔려있고,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를 얘기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다 다다른 곳이 페미니즘이었다고 한다. “노인여성은 노인 플러스 여성이 아니고, 장애여성은 장애 플러스 여성이 아니”라는, “한 주체를 온전히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는 것이다. 정치가 가진 한계 역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결합이 만들어낸 시스템의 문제로 접근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은 페미니즘 정치뿐이라는 결론에서 출발하고 있다. 페미니즘 정치가 쉽게 성공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믿음, 선거운동을 통한 지역 현황에 대한 파악은 정치 운동을 시작하기에 좋은 토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이들에게 선거는 끝이 아니라 진짜 페미니즘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온다. 이들이 힘든 점은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아니라 정치진입장벽이 너무 높다는 데 있다고 한다. 이의 해결을 위해서도 유권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정치에 도전하는 모습을 통해 누구나 다 도전해 보고 싶은, 쉽고 낮은 정치를 꿈꾸고 있다. 이들은 또 성추행 전력이 있는 전 충주시장 공천 규탄 운동에도 동참하고 있다. 이들에게 정치란 “어렵지만, 여자로 태어나서 한 번쯤 해볼만 한” 것이고, 너무나 잘 만들어 다른 사람들이 베껴 갈 정도의 공약을 만들고 나누는 대범함을 실천하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들이 형성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도전들이 모여 기존의 낡은 정치가 아니라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사회적 약자와 평범한 이들이 중심이 되는 그러한 정치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들의 도전에 응원을 보내며, 여성정치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페미니즘 정치의 싹이 형성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이러한 도전과 기대나마 없다면 삶은 얼마나 숨이 막힐까? 정당보조금의 수단으로서의 여성, 남성보다 정치력이 떨어지는 여성이라는 정치판에서의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정치를 바라보고 실천하는 새로운 관점과 방식을 통해 조금씩 발전할 것이라 희망해본다.
2022-05-25 | hrights | 조회: 580 | 추천: 3
윤요왕/ 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매년 이맘때가 되면 (재)춘천시 마을자치지원센터(이하 마자센터) 주민자치팀은 연일 팀 회의가 진행되고 시끌벅적 분주해진다. 여기저기 전화 통화 소리에 시끄러워지고, 출장 결재도 끊임없이 올라오고 센터장의 현장 방문 요청도 계속 들어온다. 바야흐로 각 읍면동 주민자치회의 ‘2023년 마을계획 수립’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각 읍면동 주민자치회는 마을의 문제해결,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위한 활동을 기본으로 하는 주민자치 조직이고 ‘마을 의제발굴-원탁토론(숙의)-주민총회’의 과정을 운영하게 된다. 2021년 12월 현재, 전국의 136개 시군구/1,013개 읍면동 주민자치회는 이런 활동을 통해 마을의 문제를 발견하고 토론과 투표를 통해 결정해서 내년도 마을 예산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 우리 마자센터 직원인 마을지원관들은 전 과정에서 현장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현장에 가면 행정복지센터 담당 공무원부터 주민자치회 위원들, 간사 등 협력과 협의를 통해 서로의 역할을 나누고 서로 도우며 마을계획 수립이 원활하고 진정성 있게 진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돌발상황들이 발생되고 갖가지 문제점들이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현장 대응을 해야 함은 물론 사무실로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고 의견을 묻고 나누고 다시 답변해 주는 모습을 매일같이 본다. 비교적 나이가 어리고 상대적으로 직급도 낮다 보니 현장에서는 귀여워해 주고 편안히 대해주는 곳도 있지만, 초기에 관계가 형성되기 전에는 무시당하거나 귀찮은 상급기관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어느 날 20대 젊은 마을지원관이 어깨가 축 처지고 얼굴은 우울한 표정으로 들어오길래 마을에서 무슨 일 있었냐 물으니, “센터장님 주민자치가 아닌 것 같아요. 00 지원사업 예산을 무조건 자치회 맘대로 쓰고 싶어 하셔서 지침에 맞게 써야 한다 하니 큰소리로 왜 그래야 하냐며 혼내고 안 한다 하시고 너무 힘이 드네요”했던 적이 있었다. “나랑 같이 가서 차근차근 설명드리자”하고 팀장과 마을지원관을 데리고 행정복지센터로 가서 해결한 적이 있다. 물론 그림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00동 마을지원관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치회 분들이 아들처럼 대해주시고 고생한다며 밥도 사주고 잘 대해주신다며 환한 웃음으로 자랑삼아 얘기하는 사례도 있다.  물론 어렵다. 과거 시민들이 마을에서 자치를 얼마나 경험해 봤겠는가. 내 삶터인 마을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얼마나 실천해 봤겠는가. 주로 민원 해결용으로 주민들의 의견이 행정이나 의원들에게 전달되고 잘 보이고 큰 소리 내면 해결해주는 경우가 만연돼 있는 현실이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정권이 바뀌면서 110대 국정과제를 보니 ‘주민자치’란 단어는 볼 수 없다. 주민자치회는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리도 들려온다. 주민자치가 비록 어려운 점도 있고 다툼과 갈등이 존재하기도 하고 생각처럼 완전한 자치를 지금은 실현시키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치의 멋과 맛을 경험하게 되면 시민들은 국민들은 이전과 다른 이 나라의 주권자로서 주인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지방자치, 자치분권의 성패는 바로 국민이 시민으로 주민으로 거듭나게 됨으로써 완성될 것이다. 새 정부도 겉모습만 보지말고 좀더 세심하게 바라보고 진지하게 검토해 보기를 간곡히 요청한다.  올해 마자센터 마을지원관들은 주민자치회뿐만 아니라 옆 팀인 마을공동체팀을 통해 발굴된 마을공동체, 아파트공동체, 마을교육공동체(우리봄내 동동)들도 들여다보고 관계 맺기를 해야 한다. 또 다른 기관에서 요청하는 협력사업도 고민하며 연결하고 있다. 춘천사회혁신센터와의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새삶스런 벤치), 춘천문화재단과의 탈락된 마을의제 사업(당근책 사업), 춘천인형극제와 진행하는 환상의 인형놀이터(주민참여 인형극) 등 주민자치회의 활성화를 위한 일에 이름 그대로 ‘마을지원관’으로서의 또 동네 홍반장 역할을 해내야 한다.  주민자치니까 중간지원조직이나 마을지원관은 필요 없다고 주장 하시는 분들도 있다. 노골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거북해하는 분들로 마을지원관들이 상처받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결국은 중간지원조직이나 지원관이 필요 없어지는 주민자치회가 오기를 고대하고 기대한다. 그러나 권한과 더불어 의무와 책임의 경험과 노력, 공부도 필요하다. 맘대로 하는 것이 자치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또 주민자치회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협력하면서 진정한 의미로서 ‘민관협치’를 통해 ‘주민자치’를 실현하는 날까지 함께 길을 가면 좋겠다. 사진 출처 - 필자  춘천은 작년에 이어 올해보다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위한 ‘만만(萬滿)한 의제발굴 엽서’를 제작했다. 엽서는 마을에 대한 생각과 제안을 시민들이 직접 써서 주민 의제로 제안하는 아이디어였고 올해는 앞면을 주민들이 직접 도안해 선정했다. 마을 곳곳에서 자치회 위원분들과 마을지원관들이 땀 흘리며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작년은 3400여 명, 올해는 만 명의 춘천시민 참여가 목표다. 이 지면을 통해 전국의 마을지원관님들께 응원을 보낸다. “그대들이 가는 길이 대한민국 주민자치의 험난한 가시밭길을 개척하는 역사의 한 걸음 한 걸음임을 잊지 말고 힘내시길”
2022-05-18 | hrights | 조회: 589 | 추천: 6
이윤/ 경찰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2022. 5. 3.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공포됐다. 언론에 의하면 이로 인해 경찰 수사 지체 현상이 더 심각해지고, 공직자·선거 범죄에 대한 검찰수사가 제한돼 부패한 공직자 등의 보호막이 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한다. 충분히 제기될만한 우려다. 나는 경찰 수사에 인력, 예산, 제도 관련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으며, 그것도 추가되는 비용 없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력과 예산  2021년 수사권 조정 시행 첫해부터 지금까지 경찰 수사관들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수사경험자들은 수사부서를 떠났고, 거의 강제로 발령받아 온 신임 수사관들은 일이 벅찼다. 남아 있거나 새로 온 수사관 중 많은 이들은 다음 기회에 어떻게든 수사부서를 빠져나가려 한다. 일이 손에 익지 않고, 전과 달리 새롭게 해야 할 일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사건처리 시간은 오래 걸렸고, 언론과 변호사협회 등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사 기간이 늘어났다고 기사화하는 등 과거로의 회귀를 원하는 듯했다.  법 시행으로 인한 사건처리 지연은 이미 시행 전부터 명약관화했다. 대통령령인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의해 검사는 경찰 송치 사건에 대해서는 보완 수사요구를 할 수 있고, 불송치 사건에 대해서는 재수사요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검사가 직접 보완 수사했었는데, 이제는 경찰에 요구·요청만 하면 되니 검찰 일은 줄어들고, 경찰 일은 늘어났다. 게다가 경찰은 송치와 불송치가 혼재하는 사건의 두꺼운 사건기록 복사본도 만들게 되었다. 전에 없던 불필요한 일이 생긴 것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았던 경찰청에서는 부랴부랴 고성능 복사기와 기록관리 인력을 충원했으나 그나마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것으로 충분치도 않았다.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기대했던 것은 범죄혐의를 인정하기 어려운 사건은 경찰이 주체적으로 종결하고, 혐의가 인정되는 사건도 굳이 검사 지휘를 받는 절차가 생략되어 수사기일이 더 짧아지고 간소화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혀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예전 수사지휘를 받을 때와 차이가 없으면서 오히려 불필요한 일이 추가되어 인력과 예산이 더 필요한 상태다. 사진 출처 - 노컷뉴스  애초에 대통령령에서 검사의 요구·요청권을 인정할 때, 그리고 직접 수사 범위를 6대 범죄로 한정할 때 그로 인해 여유가 생긴 검찰 인력과 예산을 경찰로 이전하는 것도 동시에 진행했어야 했다. 현재 검찰청 인력은 약 1만 명가량(검사 2,300명, 검찰 수사관 6,000명 정도)인데, 경찰 수사 인력은 약 3만 명 정도다. 전체 범죄사건의 98%를 수사하는 경찰 인력이 검찰청 인력의 3배밖에 되지 않는다. 이 불균형을 어느 정도는 조정해야 한다.  이번 법 개정으로 검사 직접수사 가능 범죄가 부패와 경제로 축소되었고, 그나마도 나중에는 이른바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 검찰은 명실상부한 기소 및 공소유지 기능을 전담하게 한다고 하니, 일이 줄어든 만큼 검찰 인력과 예산의 절반만 넘겨주더라도 경찰 수사는 지금보다 빠르고 꼼꼼하게 진행되어 언론과 변호사협회를 만족시켜 줄 것이다. 경찰 수사 인력 5,000명이 증원되면 대도시 경찰서에 최소한 25명씩은 추가배치 할 수 있다. 그렇게 해 봐야 수사·형사·여청·교통사고 각 기능 한 팀당 한 명 정도 증원에 그치겠지만,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다. 검사 한 분 고용할 비용으로 경찰 수사관 1.5명은 고용할 수 있으니 그 효과는 더 클 것이다. 인건비 외의 다른 예산 절반도 검찰에서 경찰로 이전하면 높은 가성비가 기대된다. 제도  2년 안에 소위 중대범죄수사청이 설립될 수도 있다. 아마도 현재의 검찰이나 경찰과는 별개 조직이 될 것인데, ‘중대’범죄를 수사할 것이니 대부분의 고소·고발 사건이나 폭행 등 생활 주변 형사사건은 계속 경찰에서 맡을 것으로 여겨진다. 모든 범죄사건을 중대범죄수사청이 다 처리하고, 경찰은 신고된 사건에 대해 초동 조치만 한 후 사건을 인계하는 형태가 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데, 아마 그렇게는 안 될 것 같다.  경찰서 경제팀에 접수되는 전체 고소사건 중 기소되는 사건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이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고소사건 수가 월등히 많다. 그 이유로는 개인 간 분쟁이 있을 때 변호사 등을 활용하는 다른 법적 해결 방법에 대한 접근성이 낮고 비용이 높아서, 비용이 들지 않고 접근성 좋은 경찰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무차별적 고소에 대해서는 경찰이 초기 수사 결과 더 이상 범죄가 인정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면 자체적으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해 줘야 정작 세밀한 수사가 요구되는 사건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는 경찰 수사력 낭비가 너무 심하다. 제도적으로 수사력을 선택과 집중할 수 있도록 마련해주는 것도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이건 돈도 들지 않는다. 투자 효과  범죄 수사는 ‘불법적 작위·부작위와 그에 동반한 정신 상태를 재구성하는 세부 사항을 합법적으로 탐색하는 활동’으로 정의된다. 많은 국민들은 경찰 수사를 통해 자신들에게 불법적 작위·부작위(범죄)를 한 사람이 처벌받고, 자신이 입은 피해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미국 일부 지역처럼 수사관에게 일 년에 100만원 이상 정장값을 지원해 줄 것까지 원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사건의 무게에 짓눌려 정신적·신체적으로 피폐해지지 않도록 인력, 예산, 제도를 배분하는 투자를 함으로써 경찰이 범죄사건 수사에 진력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 땅에서 사기꾼과 파렴치범, 절도범, 강력범으로부터 받는 피해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2022-05-10 | hrights | 조회: 767 | 추천: 11
이재환/ 시흥시청 소상공인과 지역화폐팀 책임관  ‘별다방만 기프티콘? 이젠 동네가게 기프티콘!’  2022년 5월 15일. 경기 시흥시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모바일 플랫폼이 선을 보인다. ‘시루 동네티콘-두구두구’가 그것이다. 시루 동네티콘은 사업명, 두구두구는 서비스명이다. 내용은 위의 슬로건이 간명하게 말해준다. ‘동네가게에서 쓸 수 있는 기프티콘’  기프트+이모티콘의 단어 조합으로 추정되는 신조어 기프티콘의 시작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텔레콤의 자회사 에어크로스에서 처음 ‘기프티콘’을 출시했다고 알려졌다. 당시만 해도 한 달 이용량이 5만여 건에 불과했으나 다음 해인 2007년에는 43만여 건으로 늘면서 범상치 않은 시작을 알렸다.  기프티콘의 성장에 불을 지른 것은 2010년 12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한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등장이었다. 기프티콘이란 메시지로 간편하게 주고받는 선물이라는 개념이 확산된 것이다. 그리고 기프티콘은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지난해 9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국감 자료로 제출받은 온라인 선물하기(기프티콘) 시장 규모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프티콘 시장 규모는 2016년 7,736억 원, 2017년 9,685억 원, 2018년 1조4,243억 원, 2019년 2조846억 원, 2020년 2조9,983억 원으로 매년 크게 늘고 있다.  약 3조 원에 달하는 기프티콘 시장은 사실상 독과점 시장이다. 전체 거래액 중 84.5%(2조5,341억 원)를 카카오커머스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 지인에게 마음을 전하는 선물의 전달 수단으로 기프티콘을 보내는 것은 일종의 문화가 되고 있다. 가장 쉽게 기프티콘을 이용하는 방법은 앞서 말한 것처럼 전 국민의 소통 채널인 카톡의 추가 메뉴인 선물하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카카오커머스가 기프티콘 시장을 장악하는 이유이다.  2022년 올해 기준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재계 15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기업인 카카오의 카톡에서 주로 거래되는 기프티콘은 스타벅스, 배스킨라빈스, 파리바게뜨 등 역시 굴지의 대기업 상품이 주를 이룬다. 동네 골목상권 소상공 자영업 카페, 음식점, 빵집 등이 기프티콘 시장에 뛰어든다는 것은 지금까지 언감생심이었다.  거대 플랫폼 유통·소비 구조에서 소외되는 소상공 자영업자들이 골목상권 전용 기프티콘에 대한 요구가 없지 않았다. 다만 이를 연결할 플랫폼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대기업 플랫폼과 대기업 프랜차이즈 기프티콘과 경쟁할 엄두를 쉽게 내진 못할 터)  그런데 한 업체가 용감하게 골목상권 전용 기프티콘 앱(APP)을 출시했다. 내가 좋아하는 동네 단골가게 기프티콘을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에 덜컥 만든 앱의 이름이 ‘두구두구’이란다. 이를 시흥시가 덥석 손을 내밀어 붙잡았다. ‘지역화폐 결제가 가능한 골목상권 동네가게 전용 기프티콘 플랫폼’이 첫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지난 2월 시흥시와 ㈜동네티콘이 제휴를 맺고 지금까지 200여 개의 골목상권 동네가게가 두구두구 앱에 입점했다. 입점 대상은 시흥시 지역화폐인 시흥화폐 시루 사용처(지역화폐 가맹점)이었다.  사용법은 기존 기프티콘과 거의 동일하다. 두구두구 앱에서 동네와 가게, 상품을 검색하여 시흥시 지역화폐인 모바일시루로 결제한 후 선물을 보내면, 선물 받는 사람은 카카오톡으로 받아 해당 가게에서 사용하면 된다.  소비자는 현재 10% 할인 혜택이 제공되는 모바일시루로 동네 단골가게 선물하기 결제가 가능하고 가맹점은 가게 상품과 서비스를 기프티콘으로 만들어 홍보 효과를 누리고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여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가맹점이 부담하는 기프티콘 결제 수수료는 5%이다. 시흥시와 제휴를 통해 기존 기프티콘 시장의 수수료 10~12%의 절반 가격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골목가게에서 홍보를 위해 전단지를 돌리는 비용 정도이다.(더 낮추고 싶지만 이 5%의 수수료에도 PG수수료 등 여러 기본 수수료 빨대가 꽂혀있다)  출시 전이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다. 특히 젊은 동네가게 사장들의 환호가 들린다. 매우 다양한 기프티콘 사용처도 확보했다. 예를 들어 동네 헬스장, 네일숍, 공방, 한의원 등 기존에 보지 못한 기프티콘이 선을 보인다. 동네 단위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사실 시흥시만 하더라도 별다방 기프티콘을 쓰려면 동네에 매장이 없어 대처로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천편일률적인 기존 기프티콘에 식상한 소비자도 적지 않다. ‘우리 동네에도 괜찮은 가게와 상품이 있는데 이걸 기프티콘으로 선물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수요가 존재하는 것을 현장에서 듣게 된다. 게다가 지역화폐로 구매한다면 일종의 할인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유인 요소도 만만치 않다.  마침 또 코로나19 시국 동안 열지 못한 지역 맘카페에서 플리마켓을 재개하며 동네티콘 홍보 부스를 마련해 주겠다는 감사한 연락이 왔다. 지역의 관심과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선물 경제(gift economy)란 개념이 있다. 네이버 검색 결과에 따르면, 재화를 선물로 나누어줌으로써 물질적 필요를 충족하는 경제를 뜻한다. 이는 개인 또는 일정한 집단들이 재화를 물물교환하거나 시장에서 가격이라는 메커니즘에 따라 상품을 거래하는 교환경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포틀래치 경제라고도 한다.  이 같은 선물 경제의 적용 사례로 협동조합이나 로컬푸드 매장을 지목하기도 한다. 선물 경제에 의한 교환체계가 협동조합의 운영원리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로컬푸드 매장 또한 일정한 지리적 공간에 사는 사람만이 주고받을 수 있다는 잠재적 조건에서 출발하므로 선물 경제의 개념을 담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로 가치를 인정하고 상호 존중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반으로 선물 경제가 유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지역공동체 강화를 최종 목적으로 두고 있는 지역화폐와 연결하고, 기존 거대 플랫폼의 기프티콘을 차용해 동네단위로 재구성하는 시도가 바로 시루 동네티콘, 두구두구 앱이다.  시루 동네티콘을 준비하다 보니 절로 ‘동네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이야기가 신음처럼 나오게 되지만(세상 쉬운 게 없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공공이 견인하는 새로운 동네기반 소셜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진다는 기대 때문이다.  다음에는 시흥시가 시도하는 또 다른 ‘별난 짓’을 소개한다. ‘시루 동키마켓’이다. ‘동네를 키우는 마켓’의 줄임말이고, 마스코트는 정말 당나귀(donkey)이다. 그 당나귀가 어떻게 동네를 키울지 기대하고 봐주시길.
2022-05-04 | hrights | 조회: 723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