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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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송채경화/ 한겨레 정치부 기자 나는 직업 앞에 ‘여’자가 붙는 것을 싫어한다. 남성은 무표, 여성은 늘상 유표인 표현법에 대한 거부감이다. 그러나 이번 글엔 어쩔 수 없이 ‘여기자’라는 단어를 쓴다. 여성 기자로서 겪는 소회와 반성을 담은 까닭이다. 지난 4일 저녁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6층 회의실 앞에서 ‘뻗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날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공천위)는 4·11 총선 공천자 심의를 새벽까지 벌일 기세였다. 오후 5시께 회의실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다른 기자들과 잡담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에 통증이 몰려왔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생리통이 확실했다. 평소 생리통을 심하게 앓았기 때문에 급하게 진통제를 찾았지만 없었다. 일요일이라 주변 약국 문은 모두 닫힌 상태였다. 겨우 동료 여기자에게 진통제 한 알을 얻었지만 약효가 떨어지는 4시간 뒤의 일이 두려워 쉽게 먹을 수가 없었다. 보통 ‘뻗치기’는 말진(막내) 기자의 몫이기에 생리통으로 집에 간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날도 4명의 팀원 가운데 말진인 나와 선배 기자 1명이 새벽까지 공천위 뻗치기를 해야했다. 저녁 7시께 먼저 퇴근하는 선배들에게 “생리통이 심하니 대신 남아줄 수 없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말하지 못 했다. 마침 퇴근하는 선배가 “혹시 저녁에 약속이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면, 난 이날 새벽 1시까지 아픈 배를 움켜쥐고 뻗치기를 해야했을 거다. 굳이 저녁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일찍 퇴근한 것은, 선배들이 ‘생리통’을 ‘여성으로서의 핸디캡’이라고 생각할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정치판에서 여기자들은 좀더 치열해질 것 을 요구받는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불편한 마음으로 집에 오면서 더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3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면서 생리휴가를 써본 기억이 없다. 동료 여기자가 생휴를 써봤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 그동안 힘들 게 얻어낸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계속 마찬가지일 것이 아닌가. 이렇게 마음 먹었지만, 다음 날도 생휴 대신 출근을 했다. 하루하루 피말리는 정치부 생활 속에서 당당하게 “난 오늘 생휴를 쓰겠다”는 말이 차마 안 나왔다. 사실 이런 일들은 고충이랄 것까지도 없는 일상이다. 정치부 여기자로 생활을 하다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특히 정치부에서 남자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하다보면 ‘이건 아니다’싶은 일들을 자주 겪게 된다. 남자 정치인들의 ‘이대 계집애’나 ‘자연산’ 발언 등은 20년 전 얘기가 아닌 현재의 얘기다. 술 한 잔 들어가면 경계가 더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어떤 정치인은 노래방에 가서 여기자들에게 나이순으로 앉아보라는 제안(?)을 하기도 하고, 어떤 정치인은 여기자 한 명 한 명의 외모에 대한 품평을 하기도 한다. ‘사람 장사’라고 불리는 정치부 생활에서는 이런 일들을 적당히 웃어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때로는 정치부 ‘남기자’들이 고충을 토로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너무 여기자들에만 친절하다”는 것이다. 일부 중년 정치인들의 태도를 보면 그 불만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남기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여기자들에게만 얘기하는 정치인들이 가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한 마디 더 듣게 되는 것이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는 거의 못 본 데다, 여기자들은 그런 식의 친절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주로 ‘예쁜 여기자’들을 정치부로 보내는 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난해 7월 정치부로 옮기면서 한 선배가 진지하게 충고했다. “학연, 혈연, 지연 등을 최대한 동원해서 취재원을 만나야 한다. 권력을 가진 남자는 무조건 마초라고 보면 된다. 선을 지키되 너무 튀지 않게 적당히 조절해가며 관리해라.” 이런 한국 정치계의 현실속에서 나는 오늘도 ‘적당한 여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875 | 추천: 0
임아연/ 한밭대 학생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한국전쟁의 끝자락에 태어났다. 포화도 비켜간 충청도 어느 깊은 시골마을에서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하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책가방 대신 지게를 지기 시작했다. 드라마처럼, 6남매 가운데 장남이라는 무게를 어깨에 이고 학교라는 문턱을 넘어 본 적 없이 청년이 됐다. 사람들을 따라 상경했다. 배움이 없는 그에게 주어진 건 온갖 잡일과 궂은 일뿐. 몇 푼 되지도 않는 돈벌이로 가족을 부양했다. 모래알만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삶, 농약도 마셔봤지만 죽는 것조차 그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날들이었다. 결혼을 했다. 배움에 한 맺힌 그에게 서울에서 이름난 상고출신의 여자는 꿈 같은 일이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자란 여자는 가족과 일에 대한 그의 성실함이 좋았다. 딸 셋을 낳았다. 사글세 단칸방에 행복이 생겨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우유배달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서울에서 대구, 대구에서 대전으로 안 가본 곳 없이 십 수 번씩 이사를 다녔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구김 없이 자랐고 드디어 몇 일 전, 막내딸까지 대학공부를 마쳤다. 나는 그의 막내딸이다. 자신을 위한 치장이라곤 로션 하나 바르지 않는 엄마, 그런 ‘아내 바보’ 아빠. 매일같이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일터로 향하는 부모에게 “집이 가난해서 부끄럽다”고 불평할 만큼 철없는 자식들은 아니었다. “돈이 없어도 마음이 부자라야 진짜 부자”라는 말을 가훈처럼, 아니 신앙처럼 믿었다. 다행히 가족은 돈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을지언정 불행하진 않았다.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의 부모는 “우리에겐 자식이 노후 연금”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나는 더럭 겁이 났다. 학위와 함께 내게 쥐어진 건 천 만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 빚이었다. 지금까지 형편이 어렵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피부로 느낄 만큼 구체적인 상황으로 인지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닌 부모의 일로 미루어 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스물 여섯, 막 사회로 접어드는 내가 갚아야 할 빚이 천 만원이 넘는다니. 그나마 사립대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해야 하나. 막막하다. 행인들이 서울역 인근의 한 대부업체 앞을 지나가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뉴스 속 한 꼭지 짜리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우리 집에선 연쇄반응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십 여 년 전부터 해 온 두부장사가 최근 5, 6년 사이 계속해서 늪으로 빠져드는데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터 인근에 대형마트만 세 개다. 작은 틈새까지 비집고 들어온 SSM(슈퍼슈퍼마켓)까지 합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용할 지경이다. 명절 밑이면 줄 서서 두부를 사가던 사람들을 추억할 뿐, 그렇다고 이제 와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용기가 나지 않는다. 빈 몸으로 결혼한 큰언니 부부는 박봉으로 소문난 사회복지사다. 늦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한 그들은 학자금 5천만 원을 빚으로 안고 시작했다. 아이가 둘인데 더 낳고 싶어도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사람들은 지금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아이마저 불행에 빠뜨리는 무책임한 일이라고 했다. 돈으로 행복을 치환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상황이 계속 된다면 아이들도 우리와 같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몇 천 만원의 빚으로 인생을 시작할 것이다. 둘째 언니는 올해 결혼하고 싶어한다. 5년 차 교사인데 모아둔 돈이 없다. 부모의 상황을 외면할 수 없어 언니가 벌어놓은 돈의 상당 부분이 엄마가 빚을 갚는데 쓰였다. 벌어도, 벌어도 모이지 않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만 같았다. 지난 겨울 초입, 함께 백화점에 갔다가 언니는 5년동안 일했는데도 겨울코트 한 벌 못 사 입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돈을 모아 결혼하려면 올 한해, 새 옷은커녕 ‘돌봄 교실’과 같은 업무 외 일을 더 맡아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결혼하는데 이렇게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몰랐다. 허니문 푸어(Honeymoon Poor)가 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때때로 답답할 때가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빚이 우리가족 모두를 이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조여오는지 대상 없는 원망을 할 때가 있다. 가족들 누구 하나 나태하게 살아본 적 없고,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닌데 이자 때문에 다시 빚을 지는 상황이 온 적도 있었다. 물가든, 대형마트 규제든, 대학 등록금이든, 취업이든, 복지이든 사회 어느 한 부분에서 악순환의 고리 하나만 끊어지면 조금이나마 나아질텐데,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이 견고하게 돌아갈 뿐이다. 그리고 힘겨운 상황은 반복되고, 심화되고, 대를 잇는다. 최근 들어 엄마의 입에서 로또와 연금복권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은 일확천금에 대한 꿈으로 옮겨 갔다. 어떤 때는 사주팔자를 탓하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를 찾는다. 나만의 일, 우리 가족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주변의 더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아내고 있다. 정책에 대한 신뢰보다 운명을 믿는 게 차라리 위로가 되는 사회에서 말이다. 곧 총선이다. 우리가 힘겨워 하는 이 현실들이 어찌 보면 우리 손에서 나온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선거만으로 세상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겠지만 사회의 작은 고리 하나를 끊어낼 수 있는 기회일 수 있었으면 한다. 다가오는 4월이 또다시 ‘잔인한 달’이 되지 않았으면 싶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55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 지난 해 10월 15일부터 지금까지 나와 우리센터, 여러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그리고 금융피해자들은 “여의도 점령”이라는 새로운 운동을 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가 요구사항인데, “금융·투기자본 규제”, “금융·투기자본을 위한 정책의 수립, 집행을 한 경제금융관료 처벌”, 마지막이 “금융피해자 구제”이다. 나름 성과도 있다고 평가한다.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 사회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목소리는 작고, 우리를 조롱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할 때, 시민사회 진영의 호응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다. 다만, “월스트리트 점령”과의 국제연대 차원에서 한 차례 할 만한 행사로 취급당했다. 아니면, 반MB를 위한 행동 중의 하나로 규정 당했다. 진보적인 매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취급했다. 오히려, 경제신문, 심지어 “스포츠”신문이나 보수언론에서 자주 다뤄준다. 우리를 거론하지 않지만 금융관료들과 금융자본가들, 심지어 여야의 보수정당들은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 ‘카드 수수료가 과도하다’, ‘은행 고배당을 자제해야 한다’고. 그러나 우리를 지칭할 때는 “미국 점령시위의 짝퉁”이니, “한국(의 금융자본)과 미국(의 금융자본)의 상황은 다르다”라는 식의 조롱을 해왔다. 최근에는 우리 대오에 있는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과 소상공인들을 향해 모욕을 가하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은 흔히 말하는 “금융 투자자”가 아니다. 자신의 노년의 생활자금, 퇴직금 같은 것을 저축은행에 예치한 사람들이다. 국가가 허가해 준대로 저축은행이 정상적인 영업을 했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예금자로, 금융소비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의 주범은 저축은행 대주주와 그들과 결탁해서 사익을 추구한 금융관료들이다. 그리고 그 저축은행의 불법 부당한 영업을 허가해준 정부, 금융당국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들이 공모해서 저축은행의 자산을 횡령했기에 저축은행이 망한 것이지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 때문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피해구제, 자신의 피 같은 예금을 전부 돌려달라는 것이 탐욕인양, 한국의 금융시스템과 관련법을 부정하는 것인 양 취급한다. 카드 수수료도 마찬가지이다. 금융회사들의 카드를 무조건 받아야 하게 법으로 정해 놓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고율로 금융수탈을 하도록 카드 수수료를 소상공인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KIKO사태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KIKO에는 “환헷지” 기능이 없다. 그걸 정확히 알고 만든 미국에서도 사기판매라고 법정판결이 난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르다. 은행과 그들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그리고 사법부가 공모해서 피해 수출업체 모두에게 패소판결이 내려졌다. 사장들은 자살하고,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news1 사실, 처음에는 다른 것은 몰라도 구체적으로 드러난 이 금융피해자들은 어느 정도 구제될 것으로 나는 믿었다. 사안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금융자본과 금융관료, 그들과 한편인 언론은 피해구제가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선거를 앞두고 피해자 환심을 산다는 것이다. 물론, 피해구제에 나선 국회의원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바른 해법을 제시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피해액의 100% 보상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55%하겠다는 것을 그토록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저의가 불순하다. 비판의 선봉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자신의 정부의 관료, “금융강도원”이라고 피해자의 비난을 받고 있는 금융감독원과 금융관료에 대해 처벌하는 것이 대통령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불법과 탐욕의 금융자본과 그들과 결탁한 금융관료 집단의 입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비판의 대열에는 한국노총의 금융노조도 있다. 또, 정부가 과도한 카드 수수료 규제에 대해 민주노총의 사무금융연맹도 반대 기자회견을 했다. ‘영업의 자유’를 방해한다나... 그동안 금융피해자들이 여의도 금융가를 다니며 피해구제와 금융규제를 외칠 때는 외면하다가 규제와 보상이 현실화 되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은 금융자본(영업의 자유)과 금융관료(법규정)를 위한 것이다. 아니, 침묵하는 그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영업의 자유”를 위한 앞잡이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투기자본 론스타 먹튀에 5조원을 바친 하나금융의 품에 다시 안겨, 장미 꽃 다발 속에서 환하게 웃는 외환은행노조의 사진이 언론지면을 도배했다. 론스타에게 500%의 위로금인지 상여금인지를 받는다니 참으로 기쁠 것이다. 결국, 금융권 노조라는 것이 금융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고액연봉과 고용보장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니 슬픈 일이다. 금융 피해자는 금융자본주의 시스템, 금융자본의 수탈로 직접 희생된 이들이다. 그들은 노년의 시민이고, 생활하는 노동자이거나 그들을 고용한 소상공인이다. 금융 1번지 여의도 거리에서 만난 그들의 하루하루는 지옥이었다. 이들에 대해서 한국의 금융자본주의는 피해보상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아마도, 금융자본과 관료들은 이들이 소수이고 분노도 조직할 수 없어서 며칠 시끄러워도 곧 사라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 금융 시스템은 평범한 금융 소비자를 피해자로 만들어 거리로 내몰고 있다. 결국, 여의도에는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직 희생되지 않는 다수의 금융 소비자들, 자각하지 못해 행동하지 않는 99%의 처지는 어떨까? 답은 없다. 앞으로도 여전히 금융수탈 시스템 하에서 빚으로 허덕이며 살아가고, 복지 시스템이 부재한 한국에서 노년을 위해 모아 노은 알량한 금융자산도 금융자본에게 잃기 쉽다. 모두가 불안하다. 부디, 불안들 딛고 1% 금융수탈자들, 그들의 금융 시스템을 정확히 인식하고 싸우기를 바랄 뿐이다. 금융피해자들과 함께 여의도를 점령하라!
2017-07-12 | hrights | 조회: 199 | 추천: 0
홍성준/ 투기자본감시센터 사무국장 지난 해 10월 15일부터 지금까지 나와 우리센터, 여러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그리고 금융피해자들은 “여의도 점령”이라는 새로운 운동을 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가 요구사항인데, “금융·투기자본 규제”, “금융·투기자본을 위한 정책의 수립, 집행을 한 경제금융관료 처벌”, 마지막이 “금융피해자 구제”이다. 나름 성과도 있다고 평가한다.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 사회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목소리는 작고, 우리를 조롱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할 때, 시민사회 진영의 호응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다. 다만, “월스트리트 점령”과의 국제연대 차원에서 한 차례 할 만한 행사로 취급당했다. 아니면, 반MB를 위한 행동 중의 하나로 규정 당했다. 진보적인 매체에서도 마찬가지로 취급했다. 오히려, 경제신문, 심지어 “스포츠”신문이나 보수언론에서 자주 다뤄준다. 우리를 거론하지 않지만 금융관료들과 금융자본가들, 심지어 여야의 보수정당들은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 ‘카드 수수료가 과도하다’, ‘은행 고배당을 자제해야 한다’고. 그러나 우리를 지칭할 때는 “미국 점령시위의 짝퉁”이니, “한국(의 금융자본)과 미국(의 금융자본)의 상황은 다르다”라는 식의 조롱을 해왔다. 최근에는 우리 대오에 있는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과 소상공인들을 향해 모욕을 가하고 있다.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은 흔히 말하는 “금융 투자자”가 아니다. 자신의 노년의 생활자금, 퇴직금 같은 것을 저축은행에 예치한 사람들이다. 국가가 허가해 준대로 저축은행이 정상적인 영업을 했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예금자로, 금융소비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의 주범은 저축은행 대주주와 그들과 결탁해서 사익을 추구한 금융관료들이다. 그리고 그 저축은행의 불법 부당한 영업을 허가해준 정부, 금융당국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들이 공모해서 저축은행의 자산을 횡령했기에 저축은행이 망한 것이지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 때문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피해구제, 자신의 피 같은 예금을 전부 돌려달라는 것이 탐욕인양, 한국의 금융시스템과 관련법을 부정하는 것인 양 취급한다. 카드 수수료도 마찬가지이다. 금융회사들의 카드를 무조건 받아야 하게 법으로 정해 놓고,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고율로 금융수탈을 하도록 카드 수수료를 소상공인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KIKO사태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KIKO에는 “환헷지” 기능이 없다. 그걸 정확히 알고 만든 미국에서도 사기판매라고 법정판결이 난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르다. 은행과 그들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그리고 사법부가 공모해서 피해 수출업체 모두에게 패소판결이 내려졌다. 사장들은 자살하고,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출처 - news1 사실, 처음에는 다른 것은 몰라도 구체적으로 드러난 이 금융피해자들은 어느 정도 구제될 것으로 나는 믿었다. 사안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금융자본과 금융관료, 그들과 한편인 언론은 피해구제가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선거를 앞두고 피해자 환심을 산다는 것이다. 물론, 피해구제에 나선 국회의원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바른 해법을 제시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피해액의 100% 보상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55%하겠다는 것을 그토록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저의가 불순하다. 비판의 선봉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자신의 정부의 관료, “금융강도원”이라고 피해자의 비난을 받고 있는 금융감독원과 금융관료에 대해 처벌하는 것이 대통령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불법과 탐욕의 금융자본과 그들과 결탁한 금융관료 집단의 입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비판의 대열에는 한국노총의 금융노조도 있다. 또, 정부가 과도한 카드 수수료 규제에 대해 민주노총의 사무금융연맹도 반대 기자회견을 했다. ‘영업의 자유’를 방해한다나... 그동안 금융피해자들이 여의도 금융가를 다니며 피해구제와 금융규제를 외칠 때는 외면하다가 규제와 보상이 현실화 되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은 금융자본(영업의 자유)과 금융관료(법규정)를 위한 것이다. 아니, 침묵하는 그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영업의 자유”를 위한 앞잡이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투기자본 론스타 먹튀에 5조원을 바친 하나금융의 품에 다시 안겨, 장미 꽃 다발 속에서 환하게 웃는 외환은행노조의 사진이 언론지면을 도배했다. 론스타에게 500%의 위로금인지 상여금인지를 받는다니 참으로 기쁠 것이다. 결국, 금융권 노조라는 것이 금융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고액연봉과 고용보장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니 슬픈 일이다. 금융 피해자는 금융자본주의 시스템, 금융자본의 수탈로 직접 희생된 이들이다. 그들은 노년의 시민이고, 생활하는 노동자이거나 그들을 고용한 소상공인이다. 금융 1번지 여의도 거리에서 만난 그들의 하루하루는 지옥이었다. 이들에 대해서 한국의 금융자본주의는 피해보상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아마도, 금융자본과 관료들은 이들이 소수이고 분노도 조직할 수 없어서 며칠 시끄러워도 곧 사라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 금융 시스템은 평범한 금융 소비자를 피해자로 만들어 거리로 내몰고 있다. 결국, 여의도에는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직 희생되지 않는 다수의 금융 소비자들, 자각하지 못해 행동하지 않는 99%의 처지는 어떨까? 답은 없다. 앞으로도 여전히 금융수탈 시스템 하에서 빚으로 허덕이며 살아가고, 복지 시스템이 부재한 한국에서 노년을 위해 모아 노은 알량한 금융자산도 금융자본에게 잃기 쉽다. 모두가 불안하다. 부디, 불안들 딛고 1% 금융수탈자들, 그들의 금융 시스템을 정확히 인식하고 싸우기를 바랄 뿐이다. 금융피해자들과 함께 여의도를 점령하라!
2017-07-12 | hrights | 조회: 198 | 추천: 0
김현진/ 에세이스트   얼마 전 시인이자 르포 작가인 송기역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허세욱 평전 <별이 된 택시운전사>, 요셉 조성만 평전 <사랑 때문이다>와 무너져가는 4대강을 기록한 <흐르는 강물처럼> 등의 책을 썼고, 최근에는 박종철 열사 아버님인 박정기 선생님을 인터뷰해 한겨레신문에 기고하고 있다. 아직 한국에는 생소한 르포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다 르포작가로서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점이 뭐냐고 물으니 그는 ‘인권 감수성’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에서는 인권도 생소하고 감수성도 생소한데, 그 두 가지를 합친 인권 감수성이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 송기역 작가는 평전을 쓰기로 하고 초고까지 다 쓴 다음에 인터뷰이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연락이 왔을 때 그동안의 수고를 생각지 않고 단칼에 인터뷰 원고를 버린 셈 치기로 하고 포기했다고 한다. 어디에 소속된 기자라든가 자기 수고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애써서 쓴 원고를 통째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인터뷰이, 그러니까 인터뷰 당하는 이의 인권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그는 그런 결단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게 그가 말하는 인권 감수성이었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 자칫하면 내가 쓴 글 한 줄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부연 설명이었다. 르포를 쓰지는 않지만 가끔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입장에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나라에 인권감수성이라는 말은 참 낯설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 감수성은 커녕 인권이라는 말도 참 낯설다. 얼마 전 대구에서 있었던 중학생 자살 사건도 그렇고, 꾸준히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 사건도 인권 의식은 커녕 인권 감수성,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 되었을 때 어땠을까 하는 감수성이 없는 것이 근원이지 싶다. 괴롭히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아마 크게 괴롭힌다는 의식이 없었을 것 같다. 괴롭히는 애들 입장은 다 그렇지 싶다. 우리 같이 재미있게 놀았을 뿐인데, 그냥 짓궂게 굴었을 뿐인데, 뭐 그런 것. 인권 감수성이란 게 그럴 때 참 애매하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웬 남자가 특정 부위를 계속 들이밀고 비벼 대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2호선 사당, 교대역을 지나느라 복잡해서 그렇겠지 싶어 읽고 있던 책에 열중하느라 잘 몰랐는데, 흘끗 보니 지하철이 드문드문한데 이 남자가 바짝 붙어서 그러고 있는 거였다. 그런데 이것도 참 뭐라고 하기가 애매한 게 문제다 싶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되는지 내가 잘못 느낀 건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보던 책을 탁 덮고 빤히 봤더니 남자는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튀어나가듯 내렸다. 그 모습을 보자 아, 성추행 맞구나 싶었다. 인권 문제는 너무 이렇게 애매하다. 인터넷에서 남의 이야기를 보고, K양이 어떻고 M군이 어떻고 이니셜 놀이를 할 때 킬킬거리고 재미있어하면 서도 여기에 인권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진 출처 - 스포츠서울   내가 저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연습이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연습인 것 같은데, 우리는 참 남의 입장이 되는 연습을 못 한다. 어려서부터 못 배우고 큰다. 인터넷에서 남의 이야기를 보고, K양이 어떻고 M군이 어떻고 이니셜 놀이를 할 때 킬킬거리고 재미있어하면서도 여기에 인권 생각은 하지 않는다. 쟤들은 공인이니까, 즉 돈을 많이 버니까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이 특별히 이기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냥 남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나는 즐겁게 같이 놀았다고 느꼈지만 저 아이 입장에서는 왕따, 나는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했지만 저 여자 입장에서는 성희롱, 인권 감수성이란 나만 즐거우면 다 즐겁다고 생각해 버리는 거구나, 나만 괜찮으면 다 괜찮은 줄 아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새삼 했다. 그래서 첫 번째 결심으로 남 얘기 하면서 시시덕거리지 않기로 했다. 연예인이든, 아는 사람이든, 일단 그것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남의 뒷말 안하기부터 시작하면 상태가 훨씬 나아질 것 같다. 트위터 같은 SNS가 발달하면서 남의 뒷말 하기가 너무 편하고 좋아져서, 이걸 줄이는 건 사실 꽤나 힘들겠지만. 사실 이것만 안 해도 우리 삶의 저열함이 조금은 나아지지 싶다. 나부터 입 좀 다물어야겠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69 | 추천: -1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상임활동가 올 겨울 어느 때보다 매서운 한파와 폭설이 엄습해온다. 변변한 월동 대책이 없는 서민들은 추운 겨울이 두렵기만 하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신길동 도시 재개발구역도 예외는 아니다. 엊그제는 부엌의 수도관이 얼어붙더니 오늘은 방안에 있던 산세베리아-몇 년째 애지중지 키워 온-가 매서운 웃풍 탓에 얼어 죽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심난하지만 그래도 구속노동자들이 있는 ‘감옥보다는 낫다’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지난 2월 6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양심수 강의석 씨를 면회하고 돌아 왔다. 그는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이 때문에 ‘공익 근무’마저도 거부한 채 감옥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그를 ‘몽상가’ 또는 ‘철없는 이상주의자’라고 부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지금 감옥 안에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절실한 요구를 내걸고 13일째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추운 날 감옥에서 일체의 음식을 끊은 채 물과 소금만으로 버틴다는 건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벌이는 사투다. 접견실에서 만난 그의 표정엔 핏기가 거의 없었다. 나를 보자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그는 손에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검지 부분이 잘려나가 있었다. 그 안으로 흰 목장갑이 드러나 보였다. 왜 그런 거냐고 물으니, 거실 안이 너무 추워서 책을 볼 때도 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이 얼 지경이라 책장을 넘기기 위해 검지 부분을 잘랐다는 것이다. 온도계로 실내 온도를 재봤더니 아주 추울 때는 8℃, 평상시에는 10℃ 정도 나온다고 했다. 그런 방에서 운동 시간(평일 1시간, 토요일 격주 30분)을 제외하고는 하루 23시간 이상 갇혀 지내야 한다. 대부분의 교도소(구치소)들이 30년 이상 된 낡은 건물이라 웃풍이 심하고, 바닥은 난방이 되지 않는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다. 이런 곳에서 겨울을 나야하는 재소자들의 처지는 눈물겹다. ‘동상에 걸려서 고생 한다’는 구속노동자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한국에서 가장 큰 시설인 서울구치소는 그래도 바닥에 전자 매트를 깔아 놓아 다른 곳보다는 나은 편이다. 시설과 직원에 따르면 서울구치소는 심야 전기를 이용해 밤 11시부터 다음 날 6시까지 전자매트를 가동해서 바닥온도를 25℃에 맞춰 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재소자들한테서) 춥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다”며 의아해 한다.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 구치소 7인실 내부 모습 사진 출처 - 네이버 문제는 웃풍이다. 재소자들이 생활하는 거실엔 식구통 같이 뚫려진 구멍들이 많아 열을 빼앗기고, 헐거운 창문 틈에서 찬바람이 밀려든다. 게다가 ‘자살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촘촘한 쇠철망을 창틀에 설치해 놓아서 햇빛이 제대로 투과하지 못한다. 그러니 바닥 난방이 된다 해도 열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소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서울구치소는 1회용 ‘핫 팩’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개에 1,400원이나 하는데다 한 번밖에 쓸 수가 없다. 강의석 씨는 추위를 이겨내느라 매일 그걸 사서 썼는데, 한 달에 42,000원, 웬만한 가정집 가스비에 해당하는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난방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감옥에 가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보안을 이유로 밤에도 불을 켜 놓기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법무시설기준규칙’에는 인공조명과 관련해서 낮에는 300LUX이상, 밤에는 별도의 취침등을 설치해서 60LUX이하로 낮추도록 돼 있는데, 대부분의 교도소(구치소)들이 이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 형광등 램프 두 개 가운데 하나를 꺼 주는 게 고작이다. 강의석 씨는 도무지잠을 이룰 수 없어 까만색 칠한 종이로 전등을 가려 버린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규율 위반’이라며 10여명의 교도관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를 징벌조사방으로 끌고 갔었다. 하루 종일 거실 안에 갇혀 있는 재소자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일인데, 안전사고를 우려해 책상도 의자도 지급되지 않는다. 종이 박스로 짠 상이 지급되긴 하지만, 쓸모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래 생활한 사람들은 허리에 이상이 올 수밖에 없다. 강의석 씨도 허리가 아파 구치소 의료과에 다녀왔다. 의사는 엉뚱하게도 그에게 “살을 빼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런 재소자들이 SOFA(한미 행정협정)에 따라 같은 소내에 설치된 ‘미군 범죄자’ 사동을 바라볼 때마다 울화통을 터뜨리는 건 당연하다. 그 곳엔 침대와 냉장고, 샤워시설, 헬스시설까지 설치되어 있고 음식도 외부에서 조달해다 먹는다. 가끔 고위급 정·재계 인사들이 구속되면 이곳에서 생활할 때도 있다고 한다.(구치소에선 이런 사실을 부인한다) ‘SOFA 사동’과 한국인 재소자들이 생활하는 사동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이런 차별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SOFA 사동’이 미국 내 다른 구금 시설의 환경 수준과 비교해 특별히 나은 것도 아닐 것이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에 근접한 경제대국이란 소리를 들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감옥의 사정은 20년 전에 비해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추운 겨울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재소자들은 생명 유지를 걱정해야 한다. 이런 곳에서 정부가 말하는 ‘교정 행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리 없다.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사람을 가둬 놓고 가축처럼 사육하는 행정 시스템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 강의석 씨가 단식을 계속하자, 서울구치소는 온갖 협박과 꼼수로 투쟁을 멈추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단호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라!” 이것은 강의석 뿐만 아니라 전국 감옥에 수감 돼 있는 모든 재소자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하루 빨리 그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져, 단식을 중단하고 밥을 먹게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지를 촉구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10 | 추천: 1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민선 자치단체장을 투표로 선출하기 시작한 게 1995년이니 벌써 22년이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지방자치에 대한 회의감이 높아졌던 기억이 난다. 감당 안 되는 막개발 경쟁에 상습적으로 되풀이되는 비리와 예산낭비에 지방자치 무용론까지 나왔다. 지역 토호들은 지방자치를 풀뿌리 보수주의의 든든한 토대로 만들어버리면서 지방자치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다는 과격한 비판까지 받았다. 나 역시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달 들어 서울시청과 몇 개 구청들을 담당하는 기자가 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현장에서 느껴본 지방자치는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야 워낙 잘 알려져 있지만 많은 서울 시민들이 구청에서 어떤 노력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구청장들이 벌이는 활동 가운데 널리 알릴만한 것들을 몇 개만 소개해본다. (편의상 가나다순으로 구를 소개하니 오해 없으시길)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북한산을 활용한 역사문화관광 벨트 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몽양 여운형 선생이나 이준 열사 묘 등 근현대 역사인물 관련 유적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근현대사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다양한 대기질 개선 활동을 통해 강북구는 서울시에서 가장 대기질이 좋은 자치구로 선정됐다. 대기질만 놓고 보면 제주도보다도 청정한 곳으로 공인받았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세계 1위 자살률을 기록 중인 한국에서 주민밀착형 자살예방활동을 펼쳐 노원구 자살률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노원구에선 2009년 한 해에만 18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자살의 근본 원인이 빈곤과 고독인데 빈곤까진 아니더라도 고독 문제는 자치구가 나설 수 있겠다 싶어 그쪽에 초점을 맞췄다.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과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실직자, 비정규직, 학생 등 자살 위험성이 높은 이들을 분류하고 분석하고 지원하는 밀착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들 5987명을 대상으로 우울증 테스트를 실시했다. 통반장들이 적극 나서줬고, 자원봉사자도 모아서 자살위험군과 1대1로 연계해 고독감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도시농업 기반을 확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만㎡(3000평)가량 도시텃밭을 분양한데 이어 올해에도 8300㎡(2500평) 규모로 도시농업공원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분양할 계획이다. 텃밭을 분양받아 연말 김장 담그기 행사에 무와 배추를 기증하는 등 도시농업이 공동체 복원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1일에는 친환경 무상급식과 우수 식재료 공급을 위한 ‘학교급식용 김치 품평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7개 김치 공급업체가 내놓은 김치를 학생과 영양교사, 학교운영위원 등 품평단 120여명이 직접 시식하고 평가해서 구청과 함께 납품업체 두세곳을 선정한다. 공동 구매를 통해 품질도 높이고 구매 예산도 절약할 수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이 먹을거리를 직접 고르니까 급식 신뢰성과 만족도도 높아졌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구청 안에 인권팀을 만들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국가인권위가 있는 것처럼 성북구청에선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인권 향상을 위해 ‘인권도시 성북 추진위원회’도 구성해 인권 향상에 나서고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도 이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성북구청은 지난해에는 관내 사회복지시설 운영 실태를 점검한데 이어 올해에는 인권기본조례 제정, 인권교육, 인권기본계획 수립, 인권지킴이 활동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우선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보궐선거로 쓸 만한 일꾼들을 단체장으로 많이 선출했기에 가능한 노릇이라는 건 분명하다. 서울시와 시의회, 구청과 구의회까지 모조리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했을 때는 개혁은 고사하고 견제기능조차 제대로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는 막개발 경쟁이 아니라 복지경쟁과 삶의 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지금도 어떤 구청장은 입만 열면 랜드마크고 대규모 개발 사업이다. 솔직히 그런 구청장한테서는 어떠한 감흥도 느낄 수가 없다. 그 자치구 주민들은 구청장을 욕하기 이전에 그런 사람을 구청장으로 뽑아준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선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야 한다. 좋은 정부는 우리의 삶을 바꾼다. 그리고 좋은 정부를 만드는 힘은 우리에게 있다. 꼭 선거 아니더라도 자그마한 참여를 할 수 있는 길은 아주 많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05 | 추천: 0
이상재/ 대전시민아카데미 운영위원 굳이 인권연대 오모국장이 틈만 나면 내게 했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나는 ‘시골사람’이다. 전국지도에는 나오지 않은 남해안의 작은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난날도 그렇지만 특히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낯설어 하는 나를 확인할 때마다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내가 3-4년 전에는 대학원을 다닌답시고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서울을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서울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인천방향으로 20여분을 가야 도착하는 대학이었다. 처음에야 시골사람의 정체성에 맞게 지하철의 종착역도 두 세 번씩 확인하고 두리번거리며 긴장했지만 차츰 시간이 가면서 전철 밖의 풍경도 살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러다 가끔씩은 자연스레 지나쳐가는 역 이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동네이름의 유래 같은걸 궁금해 하는 수준도 아니었다. 노량진역이면 수산시장, 신도림역이면 밴드 자우림의 노래가사가 생각나는 그야말로 시골에서 올라온 무료한 지하철승객의 심심풀이였다. 용산도 마찬가지였다. 시골사람이 서울의 ‘용산’ 지명 뒤에 쉽게 붙일 수 있는 단어라고는 ‘상가商街’나 ‘미군기지’정도였다. 적어도 2009년 1월 20일 새벽 이전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나는 용산역을 지나칠 때마다 용산에 이어서 생각나는 단어는 ‘참사慘事’ 이 말 하나뿐이었다. 악명 높았던 대공분실이 있었던 남영동은 서울역 바로 다음역이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지나가는 적이 대부분이었다. 책에서만 ‘87년항쟁’ ‘박종철’ 등을 배운 세대이기 때문에 현실감이 떨어져서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별 생각 없이 그냥 지나갔다. 그 생각 없음은 그 이후로도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작년 여름 인권연대에서 진행하는 교사 직무연수 때 남영동 대공분실(현재는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을 직접 보고 나서는 남영역 역시 지나갈 때면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고문하다’라는 말의 뜻을 검색해보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어떤 것을 자백시키거나 원하는 일을 시키기 위하여 인권을 유린하면서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다.”라고 나온다. 이 정의에 충실히 따른다면 1976년 만들어진 남영동 대공분실의 역할은 정권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시민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했던 곳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집권과정의 정당성은 물론 지배과정의 정당성도 상실한 국가 지배세력과 그 주구들은 악마의 건물에서 민청련의장 김근태와 대학생 박종철을 비롯한 수많은 민주 인사들을 고문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5층 조사실 복도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의 고문은 대체로 부당한 국가권력의 유지를 위해 행해졌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2009년의 용산 참사는 개발주체인 재벌과 부동산 주인들의 이익을 위해 행해진 국가폭력이란 점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의 그것과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럼에도 용산 참사는 국가가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거리로 내몰리게 된 세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가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행해진 고문의 작동기제와 여러 가지 점에서 닮아있다. 우선 용산 참사가 일어난 이후 경찰의 무혐의 발표와 검찰의 수사기록요청 거부는 김근태 전의원이 고문을 당했다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으로 죽었다고 폭로 했을 때, 경찰이 즉각적으로 보인 후안무치한 발뺌과 일치한다. 또한 용산 참사 당시 진압작전을 진두지휘했던 당시 서울경찰청장 김석기의 오사카 총영사 영전과 올해 4월 국회의원 출마소식과 같은 화려한 변신은, 수배되고도 무려 12년의 유유자적한 도피생활과 징역살이 이후 목사로서의 변신을 보여주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더구나 두 사람은 자기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는 점 또한 비슷하다 할 것이다. 세밑에 고문후유증으로 운명을 달리한 김근태 전의원과 같은 수많은 고문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은 고통의 세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대사의 아픔이었다. 용산 참사 유가족들과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 역시 쉽게 치유되지 않을 성질의 아픔이라는 점에서 고문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일치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현재 공식명칭은 ‘경찰청인권보호센터’이다. 비록 잔인한 고문의 현장이었던 건물이 인권보호센터의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고 해도 국가권력의 잔인함과 무책임함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불과 3년 전에 일어난 용산 참사의 전후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비단 용산 참사뿐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용산 참사와 같은 고문의 작동기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평택의 대추리와 쌍용차 공장에서, 촛불시위의 현장에서, 전국의 4대강 공사현장에서, 부산의 영도 85호 크레인에서, 제주도의 강정마을 등에서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국가의 정책과 너무나 확실히 알 수 있는 시장의 이익만을 위해 민중의 삶에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국가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오직 국가와 시장만의 이익을 위해 민중들에게 가해진 고문에 다름 아니었다. 21세기의 초입인 현재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남영동 대공분실과 같이 국가가 운영하는 고문전문 기관에서 개인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고문은 사라진 것 같다. 하지만 용산 참사 같이 국가권력이 물리적 힘에 의존해 시민들과 마주하는 사례는 점차 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힘없는 개인과 압도적인 힘을 가진 권력과의 일방적인 관계라는 점에서 그것은 국가권력에 의해 확장된 고문이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대표되는 야만스러운 고문의 시대로부터 우리는 꽤 멀리 지나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용산 참사를 겪으며 실상은 그간 국가에 의해서, 시장에 의해서, 이러저러한 권위에 의해서 다른 형태와 다른 이름의 고문이 진행되고 있다는 자각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남영동 대공분실과 용산 참사의 거리는 확실히 그리 멀지 않았던 것 같다. 나와 같은 시골사람들을 위해 한 가지 더 설명하자면 지하철 1호선의 남영역과 용산역은 한 정거장 사이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64 | 추천: 0
전국완/ 중학교 교사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가 남한의 중학생 아이들이 두려워서’라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가 그냥 우스갯소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무서워져 있었던 것이다. 요즘 연속적으로 터지는 아이들의 자살소식을 접하며 나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돌아보면 하마터면 그런 일이 내 반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내가 맡았던 학급에서도 거의 매해 일어났던 ‘왕따’ 사건들, 그리고 폭행사건, 이런 저런 사유로 가출했다 돌아 온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이런 사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그 정도도 심각해지고 있음을 학교 현장에 있는 우리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이 무서워지고 있음을. 시험 때가 되면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못 이겨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고는 급기야 피를 보는 일이 빈번해지고, 소풍 때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친구가 미워서 교실 컴퓨터 책상유리를 깨 친구 목에 들이대는 일이 생기고, 아래학년 아이들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교실에서 친구가 집단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걸 보면서도 말리거나 선생님을 부르러 갈 생각을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고……. 물론 교실붕괴 및 학교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그 강도나 빈도수가 심각한 수준으로, 위험수위에 와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 있는 우리 교사들이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호소해 왔고, 수많은 지표들을 통해 아이들이 지쳐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단발성 처방이 내려졌다가는 여론이 잠잠해지면 묻혀버리는 식으로 대응해오다가 사태는 결국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몇 가지 짚어 보았다. 그 하나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진정한 해결의지의 결여이다. 최근 빈번해진 자살사건, 폭력사건이 드러나고 나서야 어른들은 학교와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늉을 하고 있다. 기실 아이들은 오랫동안 힘들다고 소리치고 있었고,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조여 오는 현실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망가져가는 이유를 우리 어른들 대부분은 알고 있다. 아이들의 이상증세는 개발과 성장, 물질만을 향해 치달리던 와중에 내팽개쳐진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들의 결핍에서 온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섭취했어야 할 많은 영양소들 - 소통의 기쁨, 사랑과 존중, 이해와 배려, 공동체의식 등 - 을 우리는 제대로 먹이지 못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의 자리에 ‘돈’을 올려놓은 지 이미 오래고, 그것을 위해선 어떤 방법도 용인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정말 아이들을 치료하고 싶다면, 비뚤어진 이 사회의 시스템을 뜯어고치려는 진정어린 고민과 노력이 혁명처럼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연전의 ‘쇠고기 파동’때 들불처럼 번졌던 촛불집회나 월드컵 응원을 생각하면 가능할 법도 한데…….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별의별 선정적인 문투로 호들갑을 떨던 언론도 어느새 아이들의 이야기 대신 한나라당의 당권경쟁을 톱뉴스로 올려놓고 있고, 이런 언론에 길들여진 탓도 있겠지만 대중의 관심도 식어가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의 문제가 심각한 건 알지만 실상 내 아이의 일이 아니고, 이 시스템 안에서 기득해 누리고 있는 크고 작은 권력들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진단과 처방이 나오면서 ‘강제전출’이니 ‘형사처벌’이니, 급기야 ‘스쿨 폴리스’까지 등장하고 있다. 들여다보면 내실 없는 멘트였음을 당국자들도 다 인정한다. 이런 ‘제스츄어’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KT&G 상상마당 두 번째는 아이들은 죽어나가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는 죽고 없는데, 부모는 담임 멱살 잡아 흔들고, 학교 관리자는 ‘매뉴얼대로 지도했다’는 황당한 멘트로 대응하고, 교육청 당국자는 화살 맞을까 전전긍긍하고. 정당들은 당권경쟁에 바쁘고, 이 정부는 정권이후 대비에 여념이 없으시고……. 그 누구도 이 사태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이고 함께 성찰할 일이지만, 이런 논리 뒤에 숨어서 그 누구도 실질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하긴 이 정부 들어서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이 다반사다 보니, 아이들 몇 명 죽는 건 별 일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가장 엄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이 나라 교육의 수장은 왜 아무 말도 없는가. 현장 교사의 의견이나 생각 같은 것은 아예 안중에도 없이 그저 자신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본과 시장의 원리만을 들이대면서 매해 수백억 씩 들여서 일제고사를 보고, 이 결과를 학교평가에 반영하고, 교사를 ABC로 등급화하고, 학교를 등급화해 사교육을 번창케 하면서 학교황폐화에 속도를 가했던 장본인인데 말이다. 나름대로는 교직과 학생들을 사랑한다고 자부해왔지만, 나도 이제 점점 학교가, 아이들이 버거워지고 있다. 지금 같은 극도의 경쟁시스템에서 시험을 운운하며 수업을 하는 것도 숨 막히고, 일찌감치 포기해 버린 아이들의 초점 없는 눈을 대하는 것도 힘들다. 그리고 더욱 힘든 것은 자기모멸감에 빠진 채 기계적으로 출퇴근하는 동료들을 보는 것, 그리고 나도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새해 첫날 아침에 몇 명의 아이들에게서 새해 인사문자를 받았다. 학기말 일에 치이고, 아이들에 치여, ‘어서 빨리 방학이 되었으면’ 하는 절절한 바람에 방학 하자마자 아이들을 잊고 살다가 이런 인사를 받으니 고맙고 미안했다. 뭉클 하는 마음에 정성껏 답장을 보냈더니, 또 답장이 온다. 그래서 또 답장을 해 줬더니 또 다른 아이가 문자를 보내온다. 아마 자기들끼리 담임한테 온 답장을 자랑이라도 했는지……. 이렇게 한 시간여 동안 문자를 주고받았다. 예쁜 아이들이다. 한 아이, 한 아이 보면 다 이런 모양으로, 저런 모양으로 다 예쁘다. 한 해 동안 교육의 이름으로 이 아이들에게 내뱉은 험악한 말들, 충분히 기다려주지 못했던 점... 반성한다. 개학해서 이 아이들을 만나면 좀 더 환한 얼굴로 이야기해 줘야겠다. 그래도 나에게 너희들이 희망이라고.
2017-07-12 | hrights | 조회: 268 | 추천: 0
임아연/ 한밭대 학생 이른 아침, 뇌파를 감지해 가장 얕은 수면을 하고 있는 때에 잔잔한 음악이 흘러 쉽게 잠을 깬다. 오늘 할 일들을 체크하고 바깥 날씨가 어떤지 알아 본 후, 어떤 옷을 입을 지 알아 본다. 버스 혹은 지하철이 언제 도착하는지 보고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선다. 언론사 별 주요 뉴스를 확인하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SNS를 이용해 지인들과 안부를 묻거나, 틈틈이 내게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사람들과 소통한다. 밥 때가 되면 먹은 음식에 따른 칼로리 계산도 하고, 일정한 시간 마다 알람이 울려 오늘은 무슨 운동을 해야 하는지 체크한다. 지갑은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사용하고 있는 모든 카드는 스마트폰 안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은행을 따로 가지 않아도 손쉽게 일을 처리 할 수 있다.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TV 시청도 한다. 놀랍게도 이 모든 하루의 일상이 손바닥 안에서 펼쳐진다. 그야말로 ‘스마트’한 세상이다.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무궁무진한 일들을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 어플리케이션들을 뒤적이다 보면 별천지, 신세계 발견이 따로 없다. 스마트폰의 기능을 100이라고 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평소에 다루는 건 많아야 30-50 안팎일 테지만, 이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일상을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다. 스마트폰이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에서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두 달 째다. 그 사이 스물다섯 해 동안 없이도 잘 살아 왔던 이 물건이 아주 빠른 속도로 내 삶에 스미어 들고 있다. 특히 지독한 길치인 나에게, 사람들의 잰 발걸음을 멋쩍게 멈춰 세우고 “길 좀 여쭐게요”라고 묻지 않아도 되는 일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궁금한 것들이 머릿속에 떠올라도 ‘뭐더라?’하고 끙끙대거나 참을 일도 없다. 정보가 한층 가까워졌다. 그런데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기계에 대해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는 문외한인 나조차도 이렇게나 빨리 기계에 적응을 하는 게 한편으론 두렵다. 두 달 전 처음 스마트폰을 접했을 때,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것에 내가 휘청거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노력 중이다. 손에 이 네모진 마물을 들고 있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 책을 들고 있겠노라고. 온갖 화려한 기능들에 정신이 팔려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과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지 않겠노라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 각자의 손가락이 바쁘다. 다들 고개를 박고 이 손바닥만 한 네모진 상자를 들여다 보느라 책은커녕 주위를 둘러볼 여력도 없어 보인다. 스마트폰 덕에 편리해진 삶을 외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은 기계에 삶이 점령되는 게 우려스러운 거다. 기계는 갈수록 기능적 영역을 넓혀나가며 ‘스마트’해지는데, 사람은 점차 아둔해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스마트’라는 게 보편화된 세상이다. 큰 어려움이 없는 한, 누구나 손쉽게 스마트폰을 갖고 스마트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기계에 의존하는 멍텅구리가 되기보다 똑똑하게 기계를 사용하는 법을 먼저 생각해 봐야만 한다. 스마트폰의 온갖 기능을 사용할 줄 아는 것과 똑똑한 삶을 사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97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