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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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전국완/ 중학교 교사   16강을 끝으로 우리에게 남아공 월드컵은 아쉽게 끝이 났다. 하지만 지구 반대쪽의 낯선 그라운드에서 혼신을 다해 코리아의 열정을 보여 준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그들이 선물한 환희와 감격을 벅차게 맛보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서 정말이지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지막 경기가 되어버린 우루과이 전에서 종료휘슬이 울리자 장대비 속에서 펑펑 울던 선수들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짠하다. 그리고 월드컵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 동네 닭집도, 피자집도, 호프집도 모처럼 특수를 누린 것 같아 다행이다. 소규모 자본으로 가게를 꾸려가는 우리들의 평범한 이웃들이 월드컵 덕분에 수입을 올렸다니 이 역시 좋은 일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엔 ‘이제 좀 그만! 잘 끝났다.’는 생각도 못지않게 많다. 우리 팀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TV 앞에서 마음을 다해 응원하긴 했지만, 우리가 마음으로 부르는 응원가가 특정기업의 소유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그래서 시청광장에선 특정한 노래만 불러야 된다는 더 황당한 소식이 들리고, 우리 팀이 경기를 할 때마다 중계권을 독점구입한 모방송국이 100억 원씩 수익을 올리고, 덩달아 유명 연예인들이 응원가를 부르며 마트를 광고하고, 아이스크림을 광고하고, 에어컨을 광고하며 돈을 펑펑 벌어들이는 걸 보면 씁쓸하다 못해 슬그머니 역겨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돈으로 귀결되는 듯해서 말이다. 피겨스케이팅도 돈이 되고 축구도 돈이 되고, 응원도 돈이 되고……. 이제는 그 돈벌이에 지나간 아픈 역사인 전쟁도 주요메뉴로 등장한 것 같아 황당함을 넘어서 걱정이 든다. 요즈음 전에 없이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드라마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지난 10년 동안의 대북정책은 폐기되고 점점 남북관계가 험악해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천안함 사태로 남북이 그야말로 극도의 긴장상태에 와 있는 지금, 여기에 화답하듯이 전쟁영화, 드라마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피웅피웅’ 총알이 날아다니고, 무차별 총격에 사람들이 퍽퍽 쓰러지며 피가 낭자하게 흐르고, 귀청을 찢는 듯 한 폭음에 집과 사람이 날아가는 장면들이 안방에서, 극장에서 매일같이 우리들의 눈과 귀를 붙잡는다. 그런데 그 화면 속에서 아주 오래 전 초등학교시절 불렀던 ‘아ㅡ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ㅡ 주먹 붉은 피로 원ㅡ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해 떤 날을....’ 이라는 노래가 떠오르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천안함 사태로 남북이 그야말로 극도의 긴장상태에 와 있는 지금, 여기에 화답하듯이 전쟁영화, 드라마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진 출처 - 뉴스엔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어르신들은 ‘니네가 빨갱이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나 해?’라며 60년 전 기억이 떠오른 듯 부르르 떠신다. ‘전쟁이라면 지긋지긋하다’ 하시면서도 매번 빠뜨리지 않고 챙겨보시는 그 표정에는 은근히 지난날에 대한 향수도 어린 듯하다. 또 아이들은 화면 속에서 ‘전쟁의 참담함’을 읽어내기보다는 재미있고 적당히 스릴도 있는 전쟁놀이를 감상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드라마와 영화의 기획 의도는 도대체 무엇일까? 보수적인 권력층의 입맛에 맞추려는 의도도 분명 깔려 있겠지만, 수백억을 들여서 만든다는 건 그 이상의 수익을 충분히 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창 남북관계가 험악한 지금, 나라의 불안한 안보상황을 기회삼아 ‘전쟁’을 상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난 2000년인가 개봉되었던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개성공단도 없었고, 남북 간의 교류도 많지 않던 그 시절, 남북의 군인들이 우정을 나눈다는 매우 비현실적인 내용이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도 나와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영화가 그려낸 민족분단의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파 울고, 분단문제를 바라보는 영화의 진정어린 시선과 극복에 대한 절절한 열망에 감격해서 울었다. 한참을 눈물범벅이 된 채 앉아 있다가 벅찬 가슴을 안고, 희망을 안고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 때 품었던 희망은 10년이 지난 지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는 우리 인간의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돈을 내고 감상하는 상품이지만, 그것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상품이 아닌 진실이어야 한다. 더욱이 우리 민족의 현대사를 피로 물들인 엄청난 비극이었던 ‘6·25’,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전쟁’과 그 역사를 다룸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하고 진정어린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축구를 응원하는 뜨거운 가슴, ‘전쟁’ 속의 진실 등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이다. 이런 것들까지 ‘돈’으로 환산하려는 천박한 계산 앞에서 휘둘리지 말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가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피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91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웃고 울며 떠들 때,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사무실 앞에는 태극기와 참여연대 OUT이라는 손피켓을 든 다수의 어르신들이 기자회견 및 집회를 개최하며 참여연대는 빨갱이 단체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는 가스통과 기름이 담긴 인화물질을 소지하고 참여연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서 “다 불태워버리겠다”고 위협해서 이를 경찰이 막는 참으로 기이한 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보수단체들의 집회는 계속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진보건 보수건 자신들의 주장과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기에 그 분들의 기자회견과 집회 그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물론 테러에 가까운 물리적 폭력과 언어폭력, 이에 대한 경찰의 뜨뜻미지근한 대응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보수단체의 어르신들을 참여연대 앞으로 보내게 한 이 정부의 비겁하고 치졸한 행위에 있다. 참여연대의 서한이 유엔안보리로 발송이 된 것은 지난 11일(금) 오후이다. 그리고 다음 주인 14일에 국내 주요일간지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 외교부 대변인의 공식 성명을 시작으로, 외교부장관, 대통령 비서실장, 여당의 원내대표도 한 목소리로 참여연대의 서한발송이 “국익에 저해되고”, “안타깝고” “부적절한 행위” 라고 하였다. 특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인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참여연대의 서한 발송은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심스럽다”라고 하며 참여연대의 애국심을 의심했다.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여당의 실세들이 이렇게 발언하며 매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니 보수단체가 참여연대 앞에서 그렇게 극성스럽게 시위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고, 일반 시민들도 참여연대가 대단히 큰 잘못을 한, 옛날 말로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로 비춰질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참여연대 서한의 내용은 논외로 하고, 과연 참여연대가 유엔안보리에 서한을 발송한 것이 문제가 되는지의 여부는 유엔의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고 접해본 사람이라면 참여연대가 지극히 특별할 것 없는 소위 NGO(비정부기구) 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정반대로 정부의 외교에 커다란 어려움을 주었다니, 이즈음 되면 정말이지 “막가자는” 이야기들이라 답답하다 못해 통탄할 노릇이다. 국회에서 참여연대 관련 발언을 하고 있는 정운찬 국무총리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참여연대라는 단체는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가 부여하는 특별협의지위자격(Special Consultative Status with UNECOSOC)이 있는 단체이다. 이러한 협의지위자격이 있는 단체는 유엔의 각 기구에(주로 유엔인권이사회와 경제사회이사회) 단체의 주장과 의견을 제기, 발표하고, 로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권리는 유엔의 결의안으로써 더욱 보장받고 강화를 받고 있는 것이 현재의 추세이다. 국가들 간의 연대체인 유엔에서 NGO의 의견을 중시하고 제도적으로 보장한 역사는 유엔의 탄생 때부터라고 할 만큼 상당히 오래되었다. 특히나 유엔이 갈수록 각 국가들간의 외교적 공간으로 전락하고 강대국의 이익만이 관철된다는 국제적 비판으로 인하여 국가들과 일정정도 다르고 비판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는 NGO들에게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하려 하는 움직임은 갈수록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유엔인권이사회의 UPR 제도 신설 등) 그러하기에 유엔에서 국가와 다른 의견을 가진 엔지오의 존재는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만약 회원국가의 의견과 그 회원국가의 NGO가 의견을 같이 한다고 하면 그것이 유엔차원에서는 이상하게 받아들여지고, 이는 제 3세계 독재국가내의 관변단체들로 인식이 될 뿐이다. 또한 이 서한은 유엔안보리에 Open letter(공개서한) 형식으로 보낸 것이다. Open letter는 특정 수신인에게 비밀리에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공개적으로 보내지는 일종의 낮은 수위의 청원 글인 것이다. 실상 이러한 형식의 서한은 공식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기 힘들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공식적으로 NGO들이 제기한 사항에 대해서 의제화 하거나 NGO들의 공식적 참여를 제한하는 폐쇄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안보리에서 다루는 주제가 대단히 위중한 것들이기에 각각의 주제에 따라 전 세계 수없이 많은 시민단체, 노동단체, NGO, 인권단체들은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들에게 Open letter를 보내고 또한 적극적인 로비도 진행한다. 대표적인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1999년 6월 이후 현재까지 안보리에 50여통 이상의 Open letter를 보냈으며, 인터넷 검색엔진인 구글(Google)을 검색해보면 유엔안보리에 보내진 Open letter는 전 세계적으로 수십 만 건 이상이 검색되어 진다. 아마도 이러한 사실은 외교부에서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정부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거라면 입 닥치고 가만히 있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참여연대는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언성 높여 꾸짖는다. 참나 아무리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며 입 다물고 살아야 하는 요즘이라지만,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한다. 옛 말에 올바른 위정자는 국민을 섬긴다고 하였다. 하지만 요즘의 정부 관료는 국민을 섬기며 국민의 의사를 귀 기울이기는커녕 국민을 자신들의 부속품으로 생각하는가 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정부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하여 애국/매국으로 나눠서 색칠해버리는 놀랄 정도의 무모함을 발휘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유엔에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유엔의 인권이사국인 한국 정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의 정부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다 떠나서 나는 이 정부가 진심으로 창피하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92 | 추천: 0
장윤미/ 국민대 학생 요 며칠 전라남도 강진에 있는 도룡마을이란 곳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친구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친구들은 그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만들고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엔 한 할머니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단편영화로 만든다고 했다. 겨우 며칠 있었을 뿐인데, 밤마다 잠들기 전 친구가 조근조근 해주던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각자 이야기 때문인 건지, 난 금세 그들에게 정이 들었다. 마을에선 60대 노인은 젊은 축에 속한다. 아직 농사를 짓는 분들도 많고 아니면 텃밭을 일구어 먹거리를 장만하신다. 특히 남편을 여의고 혼자서 살아가는 7,80대 할머니들이 참 많더라. 할머니들은 버스 정거장이 있는 마을 입구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신다. 매일 그렇게 보는데도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으신지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도 재밌었다. 작업하다 짬이 좀 나서 막연하게 그들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쓸쓸하기도 하지만 평화로운, 그들의 주름살이 지독해보이면서도 너무나 위대한. 그렇게 바라보다 불현 듯 어떤 이미지가 스쳐갔다. 도시에서 본 노인들의 모습이다. 내 어깨를 세게 부딪치고 악취를 풍기며 지나가는 사람을 신경질적으로 돌아보자, 모자를 눌러 쓴 할아버지가 지하철의 폐휴지를 수거하며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지하철 계단에 쭈그려 앉아 구걸하던 할머니. 사실 도시에선 흔한 풍경들이다. 이곳에 와서야 그동안 내가 노인들에 대해 갖고 있던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왜 난 늘 그들을 그렇게 바라보았던가. 아니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구체적인 공간으로서 특히 도시에선 말이다. 도시에서 내게 노인들은 어떤 존재였는가 하고 물어 본다. 그래, 너무 불편한 존재였다. 보고 싶지 않았다. 연민과 불편함이 뒤섞여 찝찝함과 우울함만을 자아냈다. 호화롭게 사는 노인들이야 내 눈에 잘 비칠 리가 없다. 그들은 저마다 풍요로운 삶을, 내가 접근하기 어려운 그런 공간에서 잘 누리고 있을 것이다. 결국 거리에서 내 눈에 띄는 노인들은 안타까워 보이고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이내 서글픔으로 변한다. 나 역시 그곳을 향해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은 진리. 노인이 된다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노인으로서의 삶이 두려워지는 거다. 대비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노후대비’ 말이다. 이렇게 저렇게 구르고 구르면서 되는대로 늙어가고 싶은데, 늙었을 때 정말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배가 고픈데 돈 벌 데도 없으면 어떡하나 또 그런 내가 싫어지면 어떡하나 싶은 두려움이 뒤따른다. 안정적으로 살라는 말의 근거 중에서 가장 나를 약하게 만드는 말은 나이 들어서 고생한다는 것이다. ‘노후대비’라는 말로 내 삶을 저당 잡히고 싶진 않은데, 살라는 대로 살지 않으면 노후를 대비하기란 어렵다. 아니, 생각해보면 아주 열심히 산다 해도 노후를 대비하긴 어렵지 않은가. 이미 사회는 열심히 산다고 해서 그만큼의 대가를 주는 곳이 아니란 걸 알아버렸으니까. 사진 출처 - 노컷뉴스 나이가 든다는 건 육체가 소멸하면서도 그 안에 경험을 더 많이 축적하는 일이라는 데, 그래서 영원하지 않은 것에 영원한 것을 채워가는 것이라는데, 그동안 내 눈에 보였던 노인의 몸뚱이는 부정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내게 ‘노인’과 ‘할아버지, 할머니’는 전혀 다른 말이리라. 내가 강진의 도룡마을에서 기분이 좋아졌던 건, 열심히 살아온 한 분, 한 분의 삶을 내 나름대로 상상하고 존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처럼 가진 내 여유 덕분이기도 할 것이고 마을에서는 가능한 자생능력과 이웃 관계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도시가 훨씬 비인간적이고 비인권적인 풍경이 많이 드러나는 건 당연하다. 도시 지하철 계단 한켠에 쪼그리고 앉아 마른 손을 내밀고 있는 노인을 보고 싶지 않다. 마주할 때 느끼는 찰나의 찝찝함을 재빨리 비껴가고 싶을 뿐이다. 내 마음이라도 편하고 싶다면 돈이라도 바구니에 넣어드리면 될 텐데, 매 순간 줄까 말까 고민하는 나도 싫다. 굽어진 허리로 병이나 폐휴지를 주우러 다니는 노인들을 보면 정말이지 나이 드는 게 두렵다. 정말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맞다 싶어 어서 돈을 모으고 결혼도 해서 자식도 낳아야 하나 싶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왜 꼭 그래야 하나 하는 무력한 분노가 치민다. 그냥 이 모든 걸 그저 긍정하고 싶다가도 내가 국가와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속상해진다. 내가 이 안에서 당연하게 보장받고 싶은 것들에 대한 욕심이 생기니까. 또 그게 당연하다고 믿으니까. 가장 나를 절망하게 하는 건, 죽을 때도 돈이 없으면 장례를 치르지 못 한다는 ‘현실’이다. 이 말이 얼마나 절망스러운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사람들은 그저 절망스럽게 말만 할 뿐이다. 이미 당연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죽음의 권리는 나 혼자서 보장해야만 하는 것일까. 물론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하지만 결코 혼자서 가능하지 않다. 취업이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서로 간의 관계성이 기본이 되고, 생활의 토대인 정책이 뒷받침해주어야 할 것이다. 두려워하고 싶지 않다, 나이 드는 것을.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어야지 하다가도 진짜 현실의 맨얼굴을 떠올리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늙음이 아름다운 사회에서 살고 싶다, 만들고 싶다. 소멸해가는 몸을 긍정하고 싶고, 몸 안에 축적되어갈 삶의 경험을 존중하고 싶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13 | 추천: 0
임아연/한밭대 학생   ‘모르는 게 약’이었을까, ‘아는 게 힘’이었을까. 결과적으로 나는 ‘앎’으로 인해서 병이 났고 더는 견디지 못했다. 필자는 얼마 전 고심 끝에 난생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쥐꼬리만 한 돈이었지만 대학 신문사에서 일하는 대가로 원고료와 취재비 명목의 월급을 조금씩 받아왔다.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을 하자 그야말로 ‘학생백수’가 됐다. 두어 달 동안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았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더는 부모님께 손 벌리기가 송구스러웠다. 며칠을 알아 본 끝에 학교와 집의 중간 즈음에 있는 수제 삼각김밥집에서 일하기로 마음을 먹고 이력서를 만들었다. 처음 써보는 이력서에는 인상 좋게 나온 사진을 붙여야 하는 공간과, 주민등록번호를 써넣어야 할 칸도 있었다. 게다가 내가 다운 받은 이력서가 옛날 것이었는지 지금은 폐지되어 있지도 않은 호주와 호주와의 관계 기입란도 있었다. 시작부터가 꺼림칙했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을 슬며시 지워버린 이력서를 들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게를 찾았다. 무뚝뚝해 보이는 사장이 이력서를 대충 훑어보더니 앞치마부터 입힌다. 손에 비닐장갑을 씌우고는 다짜고짜 삼각김밥 만드는 법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수저는 테이블 당 몇 개씩 놔라” 등등 온갖 사소한 것까지 잔소리를 하는 탓에 짜증이 날 지경이다. ‘나도 그렇게 일 못하는 사람은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배움과 동시에 삼각김밥을 정신없이 만들어 팔며 한창 바쁜 저녁시간대가 다 지났다. 8시 반쯤 돼서 좀 한가해지자 사장은 대뜸 “네가 할 만하면 하고, 아니면 말고”란다. 당장 일이, 아니 돈벌이가 급했던 나는 엉겁결에 “알겠다”고 하고 다음 날부터 하루 6시간씩 일을 하게 됐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도 반나절을 맡으면 밥맛이 뚝 떨어진다. 더구나 6시간을 사장 눈치 보며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뜨거운 밥과 씨름하다보면 가게 문을 닫을 때 즈음엔 빗자루질도 못할 만큼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살면서 내 허리에 고스란히 느껴지는 중력의 무게를 그렇게 절감해 본 적이 있었던가. 허리 통증을 참고 비닐장갑 안에서 퉁퉁 불은 손을 겨우 꺼내 놓을 수 있는 시간은 9시가 다 될 무렵이었다. 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건 틈만 나면 의자에 걸터앉아 인터넷을 하던 사장이 손님이 많아질 시간이면 “기계적으로 일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것이었다. 사람을 보고 ‘기계’처럼 일하라는 그 말이 왜 그렇게 마음에 가시처럼 박히던지….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하는 그 앞에서 ‘근로계약서’ 따위의 단어를 꺼내는 일이란 쉽지 않다. 취재하고 기사 쓰던 일을 대학생활의 주된 업으로 삼고 지내던 시절, 노동자들이 왜 바보같이 자기 권리도 못 찾냐며 답답해하던 때가 있었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고도 가벼운 입놀림이었는지 그땐 몰랐다. ‘사장’ 혹은 ‘고용주’라는 이름 앞에서 일하는 내내 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난 한낱 ‘알바생’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은 여전히 최저임금제 등에서 소외되어 있다(위 사진은 특정 업체와 관련 없음)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시급 4200원. 사장은 그 돈을 주고 얼마나 나의 일손을 뽑아 먹을까 궁리하고, 나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돈 벌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그 두 가지 생각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내 노동의 양이 결정된다면 좋으련만 역시나 나는 한시도 일거리에서 눈을 떼면 안 될 피고용자였다. 가게엔 하루 종일 라디오가 계속 흘러 나왔는데 DJ가 무슨 사연을 읽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노랠 틀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아주 가끔, ‘다음엔 무슨 일을 해야 하지’라고 생각할 때만 부분적으로 들렸을 뿐. 결국 허리통증으로 '임아연의 노동OTL'은 사흘 만에 막을 내렸다. 적어도 악으로 깡으로 한 달은 버텨보려 했건만 내 연약한 의지력 탓인지, 몰랐으면 ‘약’이었을 노동인권에 대한 불편한 고민 때문이었는지 몸이 쉽게 축나버린 것이다. 그동안 일한 사흘 치 일당은 고사하고 “일찍 고만두게 되어 죄송하다”며 사장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고, 집에서는 “돈을 벌기는커녕 병원비로 외려 돈이 나갔다”는 꾸중 아닌 꾸중만 들었다. 하지만 나야 아직 등이라도 비벼댈 부모가 있어 이렇게 쉽게 그만 둘 수 있었으나 매일매일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우리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또 나의 친구들이 생각나 많이 서글펐다. 이제는 너무도 쉽게 그들을 향해 ‘아무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피고용자’라고 비난하지 못할 것 같다. ‘권리’라는 것이 나 혼자 들기엔 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 백 번의 취재와 인터뷰보다 내게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넸던 사흘이 그렇게 지나갔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88 | 추천: 0
이현정/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 차장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간다. 전쟁 발발, 전면적 대결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 천안함 사고로 불거진 남북 대결 국면은 마치 치킨게임처럼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와 같다. 94년 한반도 전쟁 위기와 달리 이번에는 출구 전략도 없어 보인다. 지난 20일 허울뿐인 민군합동조사단에서 천안함 침몰 사고에 대해 북한 어뢰 소행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24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가 아닌 전쟁기념관에서 남북교류 중단과 자위권 발동 기조의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물기둥 시뮬레이션이 7월에 완료되고, 어뢰 공격을 입증할 가스터빈실도 조사가 되지 않았는데, 정부가 이렇게 서둘러 최종 발표를 하는 것은 그 결과가 지방선거용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되었다. 의문점이 이 뿐만이 아니다. 침몰 직전의 TOD 영상만 없다는 - 군은 사고 초기에 영상이 없다고 거짓 발표를 하였음 - 것과 보안상의 이유로 교신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발표 5일 전에야 쌍끌이 어선 그물로 낚여 파란 매직으로 ‘1번’이라고 적힌 어뢰는 공개하면서, 이보다 더 확실하게 북한 소행 증거가 될 수 있는 침몰 영상과 교신 기록은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북한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이명박 정부 동안 남북관계의 중단, 남한의 보복론에 대비한 전쟁 태세, 그리고 확성기 조준 격파사격 등 강경 자세이다. 이러한 것이 맞물려서였을까. 최근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한반도 리스크를 인정하고 있다. 결국 북한에 고통을 준다는 것이 우리한테 고통으로 되돌아온 꼴이 되었다. 북한의 지난 두 번의 핵실험 등이 있었을 때에도 이처럼 타격을 입지 않았는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는 남북 간에 대화 채널이 사라진 상황 속에서는 한반도 위기가 통제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결국 남북 간 대화 채널을 만들고, 협력 체제를 가져온 6.15공동선언의 정신이 천안함과 더불어 완전히 침몰해 버렸다.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한 2000년 6.15공동선언이 곧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러나 10주년의 반가움보다는 슬프게도 한반도에서 그 정신은 사라져버렸다. 어쩌면 이번 천안함 사건과 같은 남북 간 전면적 대결 구도는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공격으로 드러난 천안함 침몰 사태와 관련, 지난 24일 오전 서울 용산동 전쟁기념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현 정부의 비핵개방3000정책, 무조건 기다리겠다는 전략, 6.15와 10.4선언 이행 유보, 맹목적 인권문제 접근, 북한의 구조적 변화 강조 정책 등은 결국 대북공세정책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지난 2월 개성실무회담에서의 남한 대표단의 강경 자세로 남북 간의 지렛대는 사라져버렸고, 이러한 정세 가운데 천안함 사고 발발은 남북 간에 돌이킬 수 없는 대결 구도를 양산해버렸다. 결국 수 년 동안 중국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방중을 애타게 요청했으나, 미국과 남한과의 외교 등에서 줄타기를 해오면서 거절했지만, 지난 5월 초에 중국을 방문하고 중국의 비호를 받게 됨으로써 한미와 북중 구조라는 냉전의 산물도 남겨버렸다. 6.15공동선언은 북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 발전의 규범적 지위 확보, 분야별 대화의 제도화 실현, 교류협력 확대, 한반도 긴장완화 및 평화정착 계기 마련 등을 통해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왔다. 이는 남한에도 전쟁의 공포가 아닌 평화 공존 확립, 외세의 영향보다는 자주성 확립, 한반도 리스크 감소와 안정적 경제 성장, 대륙 진출로의 가능성 등의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 것이다. 결국 풍전등화와 같은 한반도 대결 상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6.15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출구 전략도 없이,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남북 대결 구도의 지속이 아니라, 남북 간에 현 상황을 대화와 만남으로 이어가야 한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있고, 계속해서 대북강경정책을 펼치는 남한과, 이명박 정부 임기 동안에는 남북관계의 단절을 선언한 북한과의 전면적인 대화와 협력은 현실 불가능하다. 6.15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상대방 체제를 존중하면서 대화의 자세를 취하자는 것이고, 당장 천안함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조사단과 중국 등의 국제조사단 등을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전히 남한 정부가 선거용 북풍으로 몰아가기 위해 북한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우리 국민들이 선거 투표나 직접행동을 통해 압력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중심은 어디일까? 가슴, 머리, 손과 발일 수 있겠지만, 중심은 바로 가장 아픈 곳이다. 세상 이치 또한 그러하다. 지금 우리 한반도의 가장 아픈 곳은 전쟁 불안과 남북 간 신뢰이다. 그로 인해 그 동안 추진해온 남북경협사업,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등이 문을 닫았고, 그러할 위기에 처해있다. 이번 남북교류중단 발표에서 현인택 통일부장관이 개성공단을 북한지원사업 범주에 넣었던데, 개성공단은 평화와 경제 차원에서 철저하게 남한에 더 큰 도움이 되고, 그래서 우리가 원했던 사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남북 간 협력이 사라지면서 미국과 중국의 외세 영향력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구조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는 자주적 외교력 차원과 다자적 안보협력체제에도 매우 부정적인 우려를 낳을 수 있다. 지난 미국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와 후세인 축출에 있었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 존재는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더불어 미국의 7년의 대북 강경책이 성공하지 못해 오히려 북핵 위기만을 불러왔고, 더불어 정권 말기에 온건책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우리 또한 설득력이 부족한 정권의 안보불안 정책, 대북 강경책으로만은 변화보다는 오히려 위기를 맞는다는 역사를 똑똑히 기억해야만 한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우리의 경제도 발전시키고, 한반도 안정을 관리하고, 6자회담 등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남북 간 소통과 신뢰 구축 회복, 바로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78 | 추천: 0
감현진/ 에세이스트 항상 전라도 남자가 좋았다. 물론 여자도 좋다. 아마도 대구에서 태어나서 평생 경상도 사투리로 박정희 때문에 우리가 잘살게 된 거 아이가, 전두환이 그래도 참 화끈했다 아이가, 현철이 그거 뭐 김영삼이 그래도 참 깨끗하다 저거 아들한테만 몰아 줬다 아이가, 뭐 이런 소리만 듣고 커서 그런 것 같다. 훌륭하고 공정한 경상도 남자 분들께 죄송하지만 혈족 여부를 막론하고 내 주위의 아저씨들은 죄다 저런 말을 했다. 그리고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박근혜를 매우 사랑하는데 그들은 다행히 혈족이 아니다. 물론 그들이 누군가의 칭찬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김대중이 빨갱이라는 것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것처럼 당연했고, 그를 따르는 전라도 ‘놈’들도 빨갱이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금마들은 김대중 선생님이라고 안 하면 잡아물라칸다 안카나, 하며 혀를 차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는 셀 필요도 없다. 한겨레신문이 창간되었을 때도 저거 완전 빨갱이 신문 아이가, 하며 혀를 차는 소리는 열렬히 계속되었다. 빨갱이가 뭔지는 몰랐지만 나쁜 거라는 건 알았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던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토록 미움 받는 사람들에게 호감이 간 것은 그렇게 자연스러웠다. 그들에게 들어 온 80년의 광주 시민들은 당연히 ‘폭도’였고 그게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 하고 턱 하고 알아챈 것은 머리보다 혓바닥이었다. 요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머리보다 짤막한 세 치 혀가 훨씬 더 정직했다. 오랫동안 가마솥 안에서 끓인 순대국과 젓갈을 가득 넣은 전라도 김치를 처음으로 맛보았을 때 머리로 생각할 틈도 없이 혀가 먼저 탄식했다. 얘, 네가 태어나서 스무 해 동안 먹어 온 김치는 김치가 아니라 잔디 뜯어다 대강 양념한 거였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분지의 지역적 특성상 일단 신선하고 다양한 식재료 조달이 어렵고, 늘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씨 때문에 맛이 얼른 가 버리거나 혹은 맛이 제대로 들지 않는 음식을 먹는 우리에게 끼니란, 음식이란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아무거나 먹고 치우자, 우리는 종종 그렇게 말했고 빠른 시간 안에 후딱 먹어 치워버렸다. 하지만 절대 ‘아무거나’ 먹자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먹어 ‘치우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 이후 <광주집>이나 <나주순대국>같은 곳에서 막걸리와 각종 안주를 탐하면서 간혹 80년의 광주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했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살아 온 사람들은, 세상에 맛있는 게 있다는 걸 알면서 살아 온 사람들은 보다 용감하고 너그러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몇 년 전 광주 출장을 갔을 때 들른 식당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는 두 아이들과 고기를 구워 먹고 있던 그 부모는 먹어 ‘치울’ 생각을 않고 끝없이 먹는 얘기를 했다. 내가 처음 순대국을 먹어 봤을 때 이렇더라, 내가 처음 부대찌개를 먹어 봤을 때 그 맛이 저렇더라, 우리 집에서 만들었던 최고의 송편이 언제 적 그 때 그 송편이었는데 비결은 거기에 넣은 이것이 이러저러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까 이번 주에 비가 오면 만두 빚어 먹고 싶다 저번에 비올 때 해 먹은 그 맛을 낼 수 있을까, 어린 아이들도 풋고추에 된장을 잘도 찍어 먹으며 쉬지도 않고 조근조근 먹는 이야기를 하던 그 가족은 고기를 다 구워 먹고 나자 살뜰하고도 노련하게 누른밥 한 공기와 냉면, 동치미국물에 만 국수를 청해서 바지런히 마지막 젓가락까지 꼴깍 넘기고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이 공수부대와 대치한 가운데 집회를 갖고 ‘전두환 퇴진’을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5·18기념재단 산해진미의 문제가 아니다. 김치 한 그릇을 먹더라도 양념 사이에 좀 눕혀 뒀던 배추조각이 아니라 온갖 오묘한 맛을 내는, 말 그대로 ‘김치’를 먹으며 살아 온 사람들은 앞으로 남은 인생에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할까. 먹고 ‘치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아직 먹어보지 못한 ‘맛’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기대하는 사람들은 인생에도 보다 많은 맛을 기대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란, 어차피 더 많은 ‘맛’의 문제가 아닐까. 니 맛도 있고 내 맛도 있어야 하고 이 맛도 있고 저 맛도 있어야 하고 그게 이상할 것 없이 저마다 제 맛이 있고 제 입맛이 있는 게 당연한 것이 ‘민주주의’란 것이 아닐까. 그래서 80년 광주의 도청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꼭 먹는 생각이다. 아무도 장사를 치러 주지 않을 것을 알고 삼십 년 전 오늘 새벽 깨끗이 씻고 속옷까지 새 것으로 갈아입은 채 꾸벅꾸벅 졸며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도청에 남았던 그 사람들이 투사로서 생각했던 것은 물론 역사의 장엄한 부름과 민주주의의 승리였겠지만 ‘사람’으로서 생각한 것은 어쩔 수 없이 따뜻한 밥 한 공기 아니었을까. 살아서 내일도 맛있는 밥을 먹어야지, 열심히 싸워서 후세에게는 뜨거운 자유를 먹여야지, 민주주의의 참된 ‘맛’을 보아야지, 그것이야말로 영웅들의 ‘밥심’이 아니었나 생각하면 번번이 눈물이 난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삼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끼니를 그들에게 빚졌는가. 그 빚진 끼니, 앞으로도 빚지고 살아갈 끼니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서 해마다 5월이면 고인들의 영전에 뜨끈한 순대국과 막걸리 한 사발 올리고 싶다. 앞으로도 주신 끼니 소중히 하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면서.
2017-07-12 | hrights | 조회: 188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현 정부 들어 많은 부분이 후퇴하고 있다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87년 이후 눈물겹게 쌓아왔던 민주주의의 성과가 ‘좌빨들의 편향’으로 공격받으며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촛불세력의 반성’ 운운하는 대통령의 한심한 발언은 불의의 시대라는 진단에 힘을 더해 주고 있다. 일련의 후퇴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경찰이다. 경찰의 후퇴는 한심한 수준을 넘어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미 촛불국면에서 보여주었던 경찰의 대응은 군사정권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국치안에 힘쓰지 말고 민생치안에 힘쓰라는 국민의 요구는 물대포 직사로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또한 촛불 관련자들에 대한 검거열풍도 군사정권이 보여주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찰 활동에 국민은 없고 정권의 요구만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그런 경찰 활동이 최근 들어 공안경찰로 굳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4월 일부언론에서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경찰청이 진보성향 교육감 후보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정보과 형사들에게 좌파 후보들의 선거 전략과 지원세력, 자금 및 조직 현황 등을 파악하라고 되어 있다. 반대로 우파 후보들에 대해서는 우파 후보 승리를 위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나 가능했을 법한 일이 벌어지자 소위 진보후보들은 “경찰의 선거개입”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악할 일은 또 있다.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던 전남대 학생을 벌건 대낮에 학교 안까지 들어와 강제 연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봉고차를 대동한 사복경찰들이 몸싸움까지 벌이며 강제 연행했고, 경찰을 깡패로 오인한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헤프닝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연행된 학생은 2008년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는 한총련의 의장 대행을 한 이후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수배를 받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 혐의라고 하는 것이 실익이 불분명한 국가보안법 위반이었고, 고작해야 학교에 숨어 지내야 하는 연약한 존재였다. 과연 이 학생에게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대학 안에서의 연행을 할 만큼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본관 건물 사진출처 - 문화일보 이 뿐만이 아니다. 곳곳에서 공안경찰로 급격하게 후진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수사권 조정’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활발하게 논의되다가 좌절되었던 것이 검찰의 일탈을 기회로 해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수처 설치, 중수부 폐지 등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주장도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수사권 조정은 검찰에게만 인정되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게도 일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안이 있지만 수사의 개시와 진행은 경찰이 하고, 종결은 검찰이 하도록 하자는 식이다. 그런데 수사권 조정은 경찰 활동이 완전하게 민생치안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과거 경찰은 정보와 보안 등 소위 공안부서가 밥을 먹여주는 꼴이었다. 그러던 것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사와 생활안전부서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시국치안에서 민생치안으로 조금씩 이동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의 수사권 조정 요구도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고, 시민사회와 국민의 지지 또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경찰 스스로는 실력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경찰 활동의 변화 없이는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경찰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수사권 조정이 경찰에게는 검찰과의 자존심 문제를 넘어 사활의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보와 보안에 무게가 실린 공안경찰에게 수사권이라는 무기까지 주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정권의 입만을 바라보는 경찰활동에 날개를 달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사권과 공안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으나 국민의 감정은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찰이 진심으로 수사권 조정을 하고 싶다면 공안의 탈을 벗어야 한다. 정치인들의 수사가 아니라 국민의 힘을 얻어야 가능한 일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88 | 추천: 0
허창영/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 전임 간사   현 정부 들어 많은 부분이 후퇴하고 있다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87년 이후 눈물겹게 쌓아왔던 민주주의의 성과가 ‘좌빨들의 편향’으로 공격받으며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촛불세력의 반성’ 운운하는 대통령의 한심한 발언은 불의의 시대라는 진단에 힘을 더해 주고 있다. 일련의 후퇴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경찰이다. 경찰의 후퇴는 한심한 수준을 넘어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미 촛불국면에서 보여주었던 경찰의 대응은 군사정권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시국치안에 힘쓰지 말고 민생치안에 힘쓰라는 국민의 요구는 물대포 직사로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또한 촛불 관련자들에 대한 검거열풍도 군사정권이 보여주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찰 활동에 국민은 없고 정권의 요구만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그런 경찰 활동이 최근 들어 공안경찰로 굳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4월 일부언론에서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경찰청이 진보성향 교육감 후보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문건을 공개했다. 문건에 따르면 경찰은 정보과 형사들에게 좌파 후보들의 선거 전략과 지원세력, 자금 및 조직 현황 등을 파악하라고 되어 있다. 반대로 우파 후보들에 대해서는 우파 후보 승리를 위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나 가능했을 법한 일이 벌어지자 소위 진보후보들은 “경찰의 선거개입”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악할 일은 또 있다.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던 전남대 학생을 벌건 대낮에 학교 안까지 들어와 강제 연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봉고차를 대동한 사복경찰들이 몸싸움까지 벌이며 강제 연행했고, 경찰을 깡패로 오인한 시민들이 경찰에 신고하는 헤프닝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연행된 학생은 2008년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는 한총련의 의장 대행을 한 이후로 경찰의 수배를 받아왔다. 수배를 받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 혐의라고 하는 것이 실익이 불분명한 국가보안법 위반이었고, 고작해야 학교에 숨어 지내야 하는 연약한 존재였다. 과연 이 학생에게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대학 안에서의 연행을 할 만큼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본관 건물 사진출처 - 문화일보 이 뿐만이 아니다. 곳곳에서 공안경찰로 급격하게 후진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수사권 조정’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활발하게 논의되다가 좌절되었던 것이 검찰의 일탈을 기회로 해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수처 설치, 중수부 폐지 등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주장도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수사권 조정은 검찰에게만 인정되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게도 일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안이 있지만 수사의 개시와 진행은 경찰이 하고, 종결은 검찰이 하도록 하자는 식이다. 그런데 수사권 조정은 경찰 활동이 완전하게 민생치안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과거 경찰은 정보와 보안 등 소위 공안부서가 밥을 먹여주는 꼴이었다. 그러던 것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수사와 생활안전부서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다. 시국치안에서 민생치안으로 조금씩 이동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의 수사권 조정 요구도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고, 시민사회와 국민의 지지 또한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경찰 스스로는 실력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경찰 활동의 변화 없이는 동의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경찰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수사권 조정이 경찰에게는 검찰과의 자존심 문제를 넘어 사활의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정보와 보안에 무게가 실린 공안경찰에게 수사권이라는 무기까지 주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정권의 입만을 바라보는 경찰활동에 날개를 달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사권과 공안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으나 국민의 감정은 논리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찰이 진심으로 수사권 조정을 하고 싶다면 공안의 탈을 벗어야 한다. 정치인들의 수사가 아니라 국민의 힘을 얻어야 가능한 일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74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김정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 중이다. 일부에선 ‘이러다 조선이 동북4성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정부는 2008년부터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며 2년 이상 강경자세를 유지해 왔다. 대북 인도적지원도 끊겼다. 그렇게 강하게 나가면 조선도 더 못 버틸 것이고 그러면 남북관계가 ‘정상화’된다고 했다. 그렇게 ‘마냥’ 기다리기만 했다. 상식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 평양에 있는 정책담당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뭐하러 자존심 굽히며 한국에 무릎을 꿇겠는가. 60년을 이어온 ‘혈맹’ 중국이 있는데 말이다. 해마다 대규모 인도적 지원도 해주고 경제지원도 해준다. 대접은 또 얼마나 극진한가. 결국 기다리며 압박한 결과가 동북4성인 셈이다. 남북관계에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11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논설실장단 오찬간담회 자리에서 처음 썼다고 한다. 정석구 한겨레 선임논설위원이 5월4일자 칼럼에 쓴 증언을 들어보자. “이 대통령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자신 있는 말투로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했다. ‘남북문제는 김대중 정권 초기에도 8개월, 노무현 정권 초기에도 10개월(?)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런 (대화 중단) 전략을 써왔다. 대화 중단하고 이대로 있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정권은) 북한과 색깔이 다르니 (다른 정권에 비해 대화 중단 기간이) 몇 달 더 걸릴 것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정 위원도 지적했듯이 기다리기 전략의 결과를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다. 바로 조선이 경제와 정치 안보 모든 면에서 갈수록 중국의존도가 심해진다는 점이다. 이제는 거의 생명줄이나 다름없을 정도다. 10년 전인 2000년 조선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일본과 비슷한 25% 수준이었지만 2008년에는 73%가 됐다. 교역액은 10년 사이에 5배 넘게 증가했다. 조선에 대한 총투자액의 90%를 중국이 차지하고 석유는 이미 사실상 100% 중국에서 수입한다. 중국은 꾸준하고 ‘통 큰’ 대북지원을 통해 명분과 실속을 동시에 챙기고 있다. 지난 2007년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신압록강대교 건설을 제안하면서 공사비 전액(약 2200억 원)을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집행한 대북지원예산 2조 366억 원(식량차관 8715억 원 포함)의 10%가 넘는 액수다. 북중교역은 최근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조선의 대중 주력 수출품은 2000년대 초반 어패류 등 동식물성 식품(38.51%)이었지만 최근에는 철광석, 석탄, 아연 등 광물성자원(41.3%)으로 바뀌었다. 중국은 대북 총투자액의 70%도 지하자원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06년 1월 17일 중국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지난해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조선을 방문해 중국 훈춘과 조선 함경북도 나선항을 잇는 93㎞ 도로를 건설해주는 대가로 나선항 부두 개발권을 확보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북지역 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있는 중국은 북·중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대북 인프라(SOC)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북중 경협 확대가 곧 동북지역 개발인 셈이다. 북중교역과 남북교역은 반비례관계다. 남북교역이 약화되면 북중교역이 늘어났다. 북중교역은 2001년과 2008년 증가세가 두드러졌고, 2002년과 2006년, 2007년에는 증가세가 둔화되었다. 다시 말해, 최근 급격히 증가한 북중교역은 지난 2년간 ‘관계’ 자체가 없어져 버린 남북 간 갈등의 산물이다. 미국이 이란을 경제 제재하는 사이에 중국이 어부지리 챙기는 것과 닮은꼴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정권은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 말고 전략이 없다’는 말이 더 맞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무대뽀’였고 천안함 사고 이후엔 거의 정신줄 놨다고 보면 너무 심한 말인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모두 말을 아끼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는데 한국 혼자만 난리치는 것을 보면 뒷감당 어찌하려 그러는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조선(=북한) 연계”를 자꾸 흘리는 것과 검찰이 즐겨 쓰는 ‘피의사실 공표’가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은 나 혼자 드는 망상일까?) 이와 관련 에이던 포스터 카터 영국 리즈대 연구원은 지난달 15일 미국 주간 뉴스위크에 기고한 ‘조선을 잃어버리고 있다: 한국은 북방정책 펴야’라는 글은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이 대통령을 G20 정상회의 의장이 아니라 조선을 잃은 남한의 대통령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는 “한국의 우파들은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이 된다고 비판하지만 그것은 제 얼굴에 침 뱉기”라면서 “한국의 근시안적 보수파들은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게 쌀을 보내는데 필요한 적은 돈에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역시 귀담아 들을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생각한 화두는 “조선이 중국에 팔려가고 있다”였다. 거기서 나오는 질문을 던져보자. “조선을 중국에 팔아버린 자는 누구인가.” ‘퍼주기’라는 조악한 유언비어를 유포했던 자들과 거기에 고개 끄덕거렸던 이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눈물 흘리며 반성할지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82 | 추천: 0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사무국장 옛말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 상황을 보면 죄보다 사람을 더 미워하게 만드는 것 같다.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 사건’ 같은 흉악 범죄 사건이 벌어지면 정부와 언론은 범인의 잔혹성을 최대한 부각시킴으로써 재판도 받기 전에 ‘그놈은 죽일 놈’이라는 여론 판결을 이끌어 낸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가 전보다 안전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잃는 게 더 많다. 정부는 ‘범죄 예방’을 핑계로 감시와 통제를 확대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누려야 할 자유들을 하나 둘 빼앗아 가고 있다. 곳곳에 CCTV가 설치되고 불심검문이 강화된다. 인터넷에 마음대로 글을 올릴 수도 없고 거리에서 조금이라도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은 ‘예비 범죄자’로 간주돼 잡혀가는 일도 벌어진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스스로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어간다는 것일 게다. 연쇄살인범, 성추행범이 어디서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세상이라며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고, 이웃에게 호의를 베푸는 건 미덕이 아니라 범죄 예비 행위 내지는 범죄에 노출당하는 ‘바보짓’으로 폄하된다. 이러니 감옥에 갇힌 재소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위정자들은 ‘국민 정서’를 핑계로 가뜩이나 열악한 감옥 환경이나 재소자 인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않은 채 관련 예산을 줄여 버렸고, 교정 관료들은 ‘사고만 안 터지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법에 규정된 재소자들의 인권마저 무시한 채 감시와 통제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3월 22일 구노회가 전국 교도소(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구속노동자들에게 보낸 편지가 일제히 ‘수신 불허’ 되었다. 지난 15년 동안 책과 영치금을 보낼 때마다 편지를 동봉해 왔는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저지당한 적이 없었다. 비록 광범위한 단서 조항이 달려 있긴 하지만 ‘형집행법’에도 ‘서신 무검열 원칙’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서울구치소에 전화를 했다. 담당 직원은 ‘교정 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으면 예방 차원에서 편지를 교부하지 않을 수 있다’ ‘일부 편지 내용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며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저들이 문제 삼은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죄인’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법에 보장된 권리조차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른 말하는 사람들은 당국에 찍혀 징벌과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억압과 착취로 유지되는 사회다 보니 어디를 가나 투쟁해야 할 문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당히 맞서 투쟁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인간 대우조차 받을 수 없다는 점은 감옥 안이나 밖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소 내에서 부당한 처우나 인권침해 문제가 있을 때는 혼자서 해결하려 마시고 외부로 꼭 알려 주십시오!” 교도관들의 시각에서 보면 불편하고 거슬리는 편지다. 하지만 그동안 구속노동자들과 편지와 면회로 소통하면서 들었던 이야기들이고, 혹시나 부당하게 인권을 유린당하는 일이 없도록 외부에 알려 달라고 한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저들은 이 편지가 ‘교정 질서를 심각하게 해칠만한 우려’가 있다는 걸 입증조차 하지 못하면서 검열과 불허 조치를 정당화했다. 명백한 근거를 대라며 계속 추궁하자, 더 엄청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번 편지는 다른 데(법무부 교정본부로 추정)서 인지해서 지시를 내렸다’ ‘밖에서는 양심수라고 부르지만 어쨌든 사회질서를 해치는 활동을 한 사람들이다. (구노회에서) 일괄적으로 지령을 내리면 (소 내에서) 단체 행동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큰 집’에서 ‘조인트 깐다’는 이야기가 이런 경우에도 적용되는가보다. 정권이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으면, 가당치도 않은 ‘소설’을 써대며 편지 한 장에 호들갑을 떤단 말인가? 2007년 ‘석궁 사건’으로 구속된 김명호 교수는 지난 3월 25일 원주에서 춘천교도소로 이송돼 오자마자,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알몸 검신’을 당했다. 공포에 질린 김 교수가 경찰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며 입방을 거부하자, ‘금치 10일’이라는 첫 징벌이 떨어졌다. 또한 면회 온 가족과 지인들을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되자 이번에는 ‘허위 사실 유포’라는 이유로 더 가혹한 ‘금치 21일’의 징벌을 부과했다. ‘금치’는 규율 위반을 이유로 재소자를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0.75평 크기의 징벌방에 가둬 놓고 면회는 물론 서신 수발, 텔레비전 시청, 운동마저 제한하는 무시무시한 행정 처분이다. '석궁사건'으로 구속된 김명호 교수가 춘천교도소로 이감되는 과정에서 교도소 측으로부터 알몸 신체검사 등 인권유린을 당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알몸 검신’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인권침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투쟁한 덕분에 이제는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 곳곳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춘천교도소는 지난해 3월에도 서울구치소에서 이감 온 촛불양심수 권 아무개 씨의 옷을 벗긴 뒤 항문 검사까지 해서 문제가 됐다. 교도소 측은 ‘알몸 검신’을 한 적이 없다고 발뺌한다. 하지만 형집행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불가피하게 신체검사를 하게 되더라도 재소자가 “불필요한 고통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아니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특히나 “신체를 면밀하게 검사할 필요가 있을 때는 차단된 장소”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 춘천교도소가 어떠한 방식으로 신체검사를 했는지는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김 교수가 수치심을 느낀 건 분명하다. 통상 면밀한 신체검사는 마약, 담배, 흉기 등 반입금지물품 소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게 목적인데 과연 김 교수에게 이런 방식의 신체검사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춘천교도소에서 ‘알몸 검신'으로 인권침해를 당했던 권 씨에 따르면 모든 재소자가 이 같은 ‘알몸 검신’을 받는 건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양심수나 일부 껄끄러운 재소자들을 ‘군기 잡기’ 위해 이런 식의 인권침해를 자행한 것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원주교도소에 있을 때부터 법부부의 자의적인 경비 등급 책정, 교도소의 서신 검열과 통제에 항의하며 소송을 진행하다 갑자기 춘천교도소로 이송되었다. 지금까지 예로 든 단적인 사례들을 통해서도 이명박 정권 이후 구금 시설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 인권적이고 자의적인 ‘법 집행’의 실상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통계를 보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3월부터 2010년 3월까지 구금시설에서 접수된 인권침해 진정 건수가 해마다 15% 이상씩 늘어났다. 하지만 수사 의뢰나 권고 등 인권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치한 사건은 1.6%에 지나지 않는다. 인권침해를 하소연하는 재소자들의 진정은 빗발치고 있지만 국가인권원회가 이런 문제를 제대로 파헤쳐 구제해 줄 능력도, 의지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걸 증명한다. 그런데도 교도관들은 재소자들의 인권 의식도 신장돼 있고, 인권침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절차가 완비되어 있는데 ‘너희 인권 단체가 무엇 때문에 나서냐?’며 볼멘소리를 해 댄다. 민주주의와 담쌓은 독재 정권일수록 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면서, 사회 구성원들을 철저하게 분열시킨다. 입버릇처럼 ‘범죄와의 전쟁’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이 심화되면서 흉악한 범죄는 더욱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안은 무엇인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금언을 되새기며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 그 길에서 툭하면 사람을 잡아 가둔 채 ‘교정’은커녕 ‘죄 값’ 이상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강요하면서 ‘범죄 양성소’로 전락한 감옥을 반드시 혁파해야 한다. 당연히 범죄와는 무관한데도 정치적 탄압에 의해 부당하게 옥살이를 강요당하고 있는 구속노동자, 양심수들은 하루 빨리 전원 석방되어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62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