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서동기(대학생),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농부), 이회림(○○경찰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손상훈/ 종교투명성센터 운영위원, 교단자정센터 원장)  답답하다. 20대였던 동국대 학생의 50여일 단식에 이어 88세 노승려가 30여일 째 단식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설조스님이 단식을 하는 이유는 언론에 알려진 설정 총무원장을 비롯한 조계종 최고위층의 공직사퇴, 그리고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철저하게 수사해 달라는 것이다. 바로 자승 전 총무원장을 비롯한 성폭행, 상습도박, 국고보조금 횡령의혹의 고위층 승려들을 말한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오늘 오셨다면 무슨 가르침을 주셨을까. 선이 악을 이기려면, 이토록 벼랑 끝으로 가야만 할 지 의문이다. 1919년 3.1운동 이래 촛불 혁명으로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일구어 가는 민주사회에서 개인이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찾아오길 기대한다. 매년 수백억 원을 갖가지 명목으로 국고보조금을 지원받는 조계종이 투명한 재정공개와 집행을 해 왔다면 상습도박과 공금횡령, 숨겨놓은 처자식(은처자)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학력위조나, 논물표절(글 도둑질)도 아주 드문 일이 되었을 것이다. 최근 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되었다는 10.27법난특별법에 근거한 기념관 건립관련 집행도 문제투성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지 몇 년 만이다. 연간 수 백 억 원의 국민 세금에 더해 국회에서 특별법까지 만들어 추진한 일을 조계종 승려들이 맡으면서 몇 년 째 을 갖가지 핑계와 꼼수로 공적사업을 질질 끌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의 행정 처리는 부끄러워 입이 다물어질 지경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형님동생사이였던 자승 총무원장 시대여서 가능했고 종교권력을 두려워하는 사법당국과 정치권력이 여전히 존재하니 가능한 일이다. 늦었지만 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제대로 된 감사로 재발방지 제도까지 제시하길 기대해본다. 감사원 개원이래 가장 멋진 감사가 이뤄지길 꿈꾼다. 이처럼 자발적인 청렴문화 자정기능이 상실된 조계종을 비롯한 극소수 종교계의 현실은 사법당국의 손에 민주적인 제도개선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긴박한 처지에 놓여있다. 지난 7월14일 조계종적폐청산을 바라는 시민단체가 개최한 집회에서의 구호도 ‘자승 구속, 설정 퇴진’이었다. 종교계 (특히 조계종)의 부정부패를 가볍게 다루는 사법당국은 규탄 받아 마땅하다.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특히, 검찰과 경찰이 종교계 최고위층의 위법사건에 대해 솜방망이 수사를 해왔고 지금도 눈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또 꿈꾼다. 검찰은 지난 2011년 8월 경주 불국사 (경내) 승려들의 상습 도박 사건에 대해서 무혐의 처리했다. 자승 총무원장, 불국사 종상 관장 등 16명이 상습도박을 했다고 자수한 사람은 있었지만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재수사가 시작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면 노스님은 단식을 중단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또한 경찰은 적광승려 납치, 폭행, 감금사건에 대해 재조사 하고, 기자회견을 열지 못하게 한 배후에 총무원장의 지시 여부, 관여 정황을 파악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다면 조계종의 현재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검찰과 경찰이 재조사에 나설 가능성이 없다. 이에 함세웅 신부님을 비롯한 시민 사회 원로와 종교계, 시민사회, 진보 단체가 공동으로 국민기구를 구성하고 의견을 모아 오는 7월19일(목) 오후에 설정 총무원장 면담, 청와대 면담 방문에 나선다고 한다. 설조 스님 단식장을 찾은 시민사회원로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그런데, 조계종 내부의 원로,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모 사찰의 방장이나 개혁승려는 여전히 눈치만보고 잇속만 차리고 있다. 아니 오히려 도박사건으로 유명해진 사찰답게 소속 승려들이 현 총무원의 호법부장, 유명사찰의 부주지를 맡는 등 실세가 되어있다. 차라리 차기 총무원장 후보라도 나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나서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웃지 못 할 처지가 되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1994년 아래로부터 함께 쌓아올린 성과를 극소수 승려들만 배불리고 호위호식하게 만든 결과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성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제 이 땅의 '흥부'들이 답할 차례이다. 어떤 영화에서 '흥부'는 "많은 이의 뜻을 받고 있는 이가 새 길을 열어주길,' 이라 했다. 이 영화에서 놀부는 ‘꿈꾸는 것도 죄다’라고 했던가. 우리 나이 88세의 노승려의 단식을 이용해 또 다른 권력을 차지하려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생명은 살려 놓고 민주주의의 절차에 따라 경쟁해야 옳다. 생명을 장물 삼아 권력을 탐하는 조계종 최고위층에 대해 지금 '흥부' 들은 ‘놀부’들에 맞서 함께 실천하고 더불어 꿈꿔 주길 요청한다.
2018-07-18 | hrights | 조회: 53 | 추천: 4
이회림/ 00경찰서  2010~2017 수사기관에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애인 관계에서 폭행, 강간과 같은 5대 범죄의 피해자 수는 한 해 평균 약 7,300건에 달합니다. 2016년 발생한 살인 범죄의 가해자 중 73%가 피해자의 지인 즉 이웃, 애인, 친척 등이었습니다. 이는 골목길에서 만난 수상한 사람보다 귀갓길 집 앞에서 만난 동료가 사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2009년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여성 10명을 연쇄 살인했다 붙잡힌 강호순에 대해 이웃들은 ‘그럴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처럼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항상 겉보기만큼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만약 좋은 사람이 아님을 알리는 위험 신호를 우리가 용케 알아차린다 해도 일단 정서적인 인간관계에 눈이 멀면 문제가 되는 중요한 정보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큰 불이 일어나기 직전에 화재경보기가 연기를 감지하고 쉴 새 없이 울리는데도 귀를 닫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난 수상한 사람은 딱 보면 알아!' 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대개 우리가 보는 건 겉모습일 뿐입니다.  서울시내 모 경찰서에서 악성 사기범 검거 전담팀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50대 왕고참 선배님과 둘이서 팀을 이루어 70대 사기 수배자를 잡으러 다녔습니다. 우리는 수배자의 흔적을 찾아 서울시내 곳곳과 부천, 광주광역시 등을 열심히 돌아다녔습니다. 부천의 모 병원에서 일주일간 잠복수사를 해보기도 했으나 결국은 검거하지 못하였습니다. 타인명의의 휴대폰을 여러 개 사용했다가 버리는 것은 기본이고 절대로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등 사소한 디지털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용의주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스쳐 지나간 거의 모든 장소를 탐문하였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 그 분,, 항상 흰색 옷을 깔끔하게 입고 말도 세련되게 하던 어르신이예요. 그런데 경찰이 왜 그런 분을 찾으세요?”  흰색 수트를 즐겨 입고 ‘신사’라고 불리던 그 어르신이 알고 보면 사기전과가 수 십개이고 입만 열면 거짓말로 자신을 꾸며대는 어둡고 초라한 사람임을 간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기꾼은 숨 쉬는 것 빼고 전부 거짓이라는 말에 딱 맞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  우리가 누군가를 처다볼때 보통 0.1초 만에 상대방의 인상을 결정해 버린다고 합니다. 0.1초는 누군가의 특성을 추론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지만 그렇게 내린 결정은 오래갑니다. 겉모습은 사람을 감정적으로 만들어 눈에 뻔히 보이는 사실을 무시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합니다. 그래서 평생 선량한 사람들을 교묘히 속여 온 사기꾼을  ‘신사’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고, 이런 보통의 심리를 사기꾼들이 잘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순둥이같이 생긴 어떤 20대 남자가 형사과 사무실로 잡혀 왔는데 수갑을 찬 채 조용히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말투가 어눌하고 걸음걸이도 느릿느릿했습니다. 요즘 말로 ‘초식남’ 느낌이 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범죄로 잡혀 왔나? 얼굴 보니 강력범죄는 아닌것 같은데...’ 하는 생각으로 동료에게 물어보니, 길거리에 망치를 들고 나가 지나가는 여고생의 머리를 때렸다는 것입니다. 그 여고생과는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 중에 눈에 띄어서 때렸다고 진술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여고생에게 치명타를 입히기 전에 행인들로부터 제지당하고 잡혀 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첫인상에 폭력의 냄새가 전혀 안 나는 사람조차도 알고 보면 망치를 든 순진한 얼굴의 사이코패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위험한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선량한 가면 뒤에 진짜 얼굴을 숨긴 채 우리들 속에 섞여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이 얼굴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저 또한 스스로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외모는 꾸며낼 수 있고 겉보기에 좋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동기까지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남을 잘 돕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있다면 그 사람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다른 사람을 돕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의 얼굴이 혼자 있을 때의 행동과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람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속모습도 자세히 들여다 봐야하는 것입니다.  위의 70대 사기꾼, 망치 든 순둥이 청년, 그리고 연쇄살인마 강호순의 사례처럼 누구든 겉모습은 꾸며 낼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판단해야 안전합니다. 반대로 겉모습이 비호감일지라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 수 있으니 첫인상이 나쁜 사람에 대해서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첫인상이 호감형이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을 잘 하는 듯한 말을 하더라도 만나면 만날수록 물음표를 그리게 되고 신뢰가 떨어지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호감이 가고 타인을 기분 좋게 만듭니다. 긍정적 감정은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들은 자석처럼 사람들을 잡아끄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사람들만 주변에 많이 있다면 좋겠지만 인생은 오로지 달콤하기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쓴맛을 선사해 주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할 확률 보다 범죄 피해를 입을 피해가 더 많다고 합니다. 혹시 나의 주변에도 겉모습만 호감형인 사람이 있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무언가 위험한 기운을 내뿜는 사람이 있는지 잘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일상속에서 직관력을 키우다보면 누군가로부터 범죄의 기미가 스멀스멀 피어날때,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18-07-11 | hrights | 조회: 38 | 추천: 1
국정농단 공범인 이재용의 유죄 판결을 기대한다! 이현정/ 꽃씨네농작물 농부  지난 3일 국민연금공단의 삼성 합병 감사결과보고가 있었다. 예상대로였다. 이재용 재산을 늘려주는데, 국민 노후 자금을 다루는 국민연금공단이 적극적으로 조작 개입했다. 어라? 그런데 언론에 별로 나오지 않는다. 네이버 같은 압도적 주류 포탈도 마찬가지다. 사실 지금 시기만 그런 게 아니다. 오랫동안 삼성과 관계된 것은 다 감춰졌다. 불법 경영권 승계, 노동자 백혈병 사망, 노조 탄압, 박근혜-이재용 국정농단, 인수 합병 조작 등. 우울하지만, 대한민국은 삼성 은폐 공화국이기도 하다.  최근 몇 달 동안 대기업 갑질로 대한항공 집안이 떠들썩하다. 물론 잘 못한 게 있다. 그러나 한진 가족 일탈과 삼성의 구조적 갑질은 비할 바가 못 된다. 역시 주요 언론과 포탈은 한진 얘기만으로 국민 분노를 자극한다. 역시 삼성은 노출되지 않는다. 지난 3월부터 SBS 방송국이 줄기차게 삼성 문제를 노출해도 그냥 여기까지다.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는다. 반면 이재용은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재산 국외 도피 혐의에 “단지 장소가 외국”이라는 씁쓸한 코미디 판결을 남겼다.  삼성의 추악한 노조 와해 공작이 드러나고 있다. 물론 이명박근혜 정권과의 결탁까지. 2014년 경찰의 삼성전자서비스노조 분회장 시신 탈취도 한 사례다. 삼성의 노동조합 탄압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은 36세 청년 염호석. 노조 가담으로 일감도 못 받고, 갖은 탄압을 받았다. 자신의 희생으로 노조가 꼭 승리하길 바란다며 노조장 유언을 남겼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경찰 병력 300명이 들어와 강제로 시신을 탈취했다. 이를 제지하는 유가족과 노조 조합원들에게 캡사이신을 뿌리고 강제 연행까지 하면서. 이후 밝혀진 것은 부친이 삼성에 6억 원에 회유돼 삼성이 경찰 공권력과 결탁해 시신을 탈취해 간 것이다. 경찰의 삼성 노조원 시신 강제 탈취 사진 출처 - SBS <그것이 알고싶다>  당시 염호석 죽음에 따른 삼성 내부 보고에는 ‘노조원 1명 탈퇴 실적’으로 처리됐다. 하청 직원의 죽음을 대하는 삼성의 자세다. 삼성 노조 와해 문건이 나왔다. 이걸 보면 노조 파괴 전문가들과 계약을 맺은 삼성이 매우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노조를 말살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노조원 불법 사찰은 기본이고, 당사자가 버티면 주변 동료들을 힘들게 해 다시 당사자를 괴롭혔다. 또 동료에게 사찰 지시를 내리고, 특이사항을 찾을 때까지 압박을 가했다. 하청 지점장과 뒷거래를 통해 작업장 고의 폐업도 불사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 고용노동부는 삼성 불법파견 회피 전략까지 짜주고, 합법 도급 결론을 내줬다. 당시 검찰은 수사하지 않았고, 또 대법원에서 유독 노동 관련 판결이 뒤집혔었다. 오늘(5일) 전직 경찰 간부가 삼성 노조 와해 관련 뇌물죄로 구속심사를 받는다. 그 결과를 지켜봐야겠다.  다시 국민연금공단 삼성 합병 감사결과보고로 돌아오자. 공단이 두 달 여 내부감사를 펼쳤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국민들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에 막대한 손해를 끼칠 것을 인지함에도 결국 삼성에 유리하게 보고서를 조작했다. 이재용의 경영권 불법 승계를 위해 소중한 국민연금에 큰 손실을 가져왔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삼성(이재용)이 원하는 합병 비율을 맞추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삼성물산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그러면서 제일모직에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 가치와 에버랜드 땅값을 부풀려 조작했다. 제일모직의 최대 주주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초 평가금액이 4조 8천억이었는데, 공단이 11조 6천억 원까지 조작했다. 여기에 에버랜드 땅값도 조작해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 이렇게 거짓 보고서를 작성하고, 공단이 위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소중한 노후 자금 증발이었다.      결국 큰 그림은 이렇다. 이 모든 불법승계행위는 이건희가 갑자기 쓰러지고, 지배력이 약한 이재용이 거대한 삼성그룹을 강제로 가져가려는데 있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을 다루는 공공기관이 이재용 개인 재산 증식을 위해 앞장선 것이다. 삼성의 박근혜, 최순실을 향한 구애 행위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결국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이재용은 국정농단의 주범이자 공범이다. 이러함에도 지난 2심에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아니라고 하는 판결은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었다.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사진 출처 - 이데일리   이제 이재용의 대법원 판결만이 남았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상고심이 아직 진행되지 않아, 뇌물공여자인 이재용 재판도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 올 2월 이재용 2심 재판을 보면 박근혜-최순실과는 달리 이재용에게만 관대한 판결이었다. 이재용 뇌물 공여 액수가 박근혜 재판보다 유리했다. 결정적 증거인 안종범 수첩을 오로지 이재용 재판에서만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또 재산 국외 도피 혐의도 단지 장소가 외국이었다며 억지스러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솔직히 우려스럽다. 이번 2심 재판에서 보여준 이재용 특혜 연장선이 될 것 같다. 삼성이 수 십 년 동안 보여준 권력 다루기 능력 재판이 될 수도 있겠다. 정치권력보다 위에 놓여있는 저 삼성 능력 말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양심과 정의를 기대한다. 삼성을 바라보는 민심도 이제 많이 바뀌었다. 삼성 이재용은 박근혜-최순실과 국정농단의 주범이자 공범이었다. 결국 삼성 불법행위 종착점은 대법원의 이재용 유죄 판결이다. 국정농단 공범인 이재용의 유죄 판결을 기대한다. 정치권력 교체는 촛불혁명의 시작이고, 그 위에 있던 삼성 권력 교체 또한 촛불혁명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2018-07-05 | hrights | 조회: 40 | 추천: 2
이동화/ 아디(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활동가  이라크에서의 경험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40일 만에 사담정권은 무너졌고 1년도 채 흐르지 않아 이라크 내부는 정치적, 지역적, 종파적 무장 세력에 의해 심각한 내전을 겪었다. 당시 현장에서 반전평화활동을 펼친 나는 현지인들마저 위험한 상황에서 활동 철수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와중에서 현지인들에게 일어났던 폭력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함께 겪었다. 학교도, 시장도, 집도, 어느 한 곳 안전하지 않았던 바그다드에서 사람들은 수십 년간 일구었던 삶의 터전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이라크 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또는 주변국으로 이동하여 난민이 되었다.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힘겨운 난민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과 같이 남북으로 분단되어 오랜 기간 내전을 겪었던 예멘은 냉전시기를 거쳐 1994년 통일을 이뤘지만 내부의 다양한 무장 세력간 충돌로 끝없는 갈등과 폭력이 이어졌다. 2010년 중동에 불어 닥친 ‘아랍의 봄’의 여파로 수많은 예멘 민중들이 거리로 나와 투쟁했고 그 결과 33년간 이어온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예멘 내부의 정치적, 지역적, 종파적 무장 세력들이 득세하며 독재정권 이후의 예멘 과도정부를 위협했고 과도정부는 무능력했다. 2015년 이슬람 쉬아파 무장세력의 쿠데타로 예멘은 다시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고, 이후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에서 사우디와 이란정부의 개입, 아랍 주변국, 미국, 거기에 토착 무장 세력과 테러집단까지 가세하여 예멘 민중들에게 예멘은 말 그대로 생지옥의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예멘의 한 부자가 사우디 폭격기가 파괴한 건물 잔해를 지나고 있다.@Khaled Abdullah 사진 출처 - 나눔문화  시리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예멘 상황이지만 국제사회와 국제구호단체에 따르면 예멘 내전으로 인해 2015년 3월부터 2017년 말까지 민간인 13600명이 사망했고, 그 중 수천 명은 아이와 여성이다. 또한 예멘 전체 2800만 인구 중 2000만 명이 긴급식량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며 2017년 창궐한 콜레라로 90만 명이 감염되어 2100명이 사망했다. 예멘 내부의 난민은 200만 명에 달하고 해외로 탈출한 난민은 19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외부의 구호물품과 의약품 보급은 무장 세력에 의해 빈번히 가로막혀 최악의 인도주의 재앙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멘인 500여명이 말레이시아를 거쳐 최근 제주도에 도착했다. 중동에서의 한국의 이미지는 경제적으로 발전됐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룬 소위 ‘잘 사는 나라’이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예상치 못한 게 있다. 그건 ‘이슬람혐오’이다. 전체 예멘 난민 19만 명 중 0.02%인 500여명이 선택한 한국은 ‘피부와 문화가 다르고, 무슬림이고, 남자이며, 제주도까지 오는 비용이 있다’는 이유로 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국민의 세금을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찍었다. 물론 이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적진 않지만 다수는 아니다.  저 멀리 한국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현재의 우리에게도 ‘인종차별’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를 통해 방문한 타국에서 동양인이기 때문에 영어나 현지어를 모르기 때문에 피부색과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에 경험한 현지인의 차가운 시선과 무시의 언행, 심한 경우 차별까지, 굳이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 입장에 놓인다면 불쾌한 느낌을 떨치긴 어렵다. 현재 한국사회가 예멘 난민 500명을 대하는 태도와, 우리가 느꼈고 앞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인종차별의 태도가 무엇이 다른가?  우리사회의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한국 정부는 난민심사를 서두른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정부의 결정을 미루어 보건데 이들이 난민으로 인정될 확률은 극히 낮다. 한국정부는 그동안 난민신청인들에게 자신들의 박해와 공포를 스스로 증명하기를 강요하고 그게 안 될 경우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이의신청과 행정소송의 단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 단계를 통해 난민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나마 한국정부는 그동안 인도적 체류허가라는 옹색한 조치를 취하기도 하지만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정부가 그 결정을 내릴 리 만무하다. 한마디로 예멘에서 온 500여명의 난민신청자는 대부분 강제 추방되거나 자진출국을 종용당할 것이다.  내전의 참상 속에서 삶을 찾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을 찾아온 예멘인들에게 현재의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비춰질까? 많은 한국인들은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지만 이들은 우리와 똑같은 존엄성을 가진 존재이다. 우리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폭력과 공포 속에서 삶을 선택하여 여기까지 온 난민들이다. 우리에겐 이들을 조롱하고 차별할 자유와 권리 따윈 없다. 우리가 이들을 쫓아내고 안도감속에 만세를 외칠지 두려움과 공포를 피해 온 이들에게 희망의 존재가 될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2018-06-27 | hrights | 조회: 227 | 추천: 7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는 사회 곳곳에서 오랫동안 같은 사건으로 고통 받던 여성들에게 연대와 희망, 용기를 심어준 현재진행형 대한민국판 미투 운동이라는데 이견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서 검사가 일하고 있던 ‘통영지청’ 부임이 인사 불이익의 결과라는 언론의 단순 보도는 서 검사의 정의로운 싸움 과는 별개로 그곳이 고향인 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실제로 안태근 전 검사장이 인사 원칙과 기준에 반해 서 검사를 부당하게 전보하도록 한 것이 서지현 검사의 주장인데도 불구하고 언론과 다수의 네티즌은 단순히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도 여주에서 머나먼(?) 경남 통영으로 전보한 사실이 부당하다는 의견들입니다.  다른 정부조직도 그렇지만 검찰 역시 서울을 기점으로 근무지가 가깝고 멀리 있음에 대한 거리 차이가 개인의 지위와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남해안의 작은 도시라고 법의 보호가 필요한 시민이 왜 필요하지 않고, 법의 준엄한 잣대를 제대로 적용해야 할 사건이 왜 없겠습니까?  현재의 사법 구조상 서울과 수도권에 더 많은 인재가 근무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서울에서 먼 지역 근무를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것 같습니다. 그런 서울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역사람은 영원한 2등 시민쯤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지난 지방 자치선거 막판 최대 이슈 중의 하나는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현재는 탈당해서 무소속)의 이른바 ‘이부망천’ 발언이었습니다. 그럴듯한 한자성어처럼 보이는 이 말은 정태옥 의원이 지방선거 기간 중 한 보도 채널에 나와서 “서울 사람들이 양천구 목동 같은 데서 잘 살다가 이혼 한 번 하거나 하면 부천 정도로 가고, 부천에 갔다가 살기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 이런 쪽으로 간다”는 발언을 줄여서 표현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사담을 하는 자리가 아닌 선거기간 방송사에 출연한 국회의원이 발언한 내용이라는 데서 ‘이부망천’ 표현은 정 의원의 평소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더 충격적입니다. 정태옥 의원은 대한민국 부의 상징적인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강남을 기준으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가난하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혼 가정에 대한 인권침해와 함께 전혀 통계학적 근거도 없이 비서울권 지역을 심각하게 비하한 말입니다. 사진 출처 - JTBC 좋은 대학 나와서 고위관료로 지내다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된 분들의 생각이 서울이 중심이고 거기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권력과 재산도 적어지고, 사회적 신분도 낮아진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니 분노보다는 허탈한 마음이 앞섭니다.  원고를 쓰는 중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새로운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선출을 위한 후보추천위원회가 출범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위원장을 지명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시민사회, 법조계 인사 7명을 위원장 후보 추천위원으로 지명한 것은 독립적인 국가인권기구로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재정립할 기회라는 점에서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쁜 마음은 후보추천위원회 명단을 확인하고 나서는 곧 씁쓸한 기분으로 바뀌었습니다.  위원들 면면은 훌륭한 분들인 것 같은데 제 눈에는 일곱 명 전부가 서울에서 활동하는 분들인 것이 불편했습니다. 게다가 그중 세 분은 서울시 인권위원회 전, 현직 위원들이었습니다.  전국 15개 광역시도에서 인권조례와 함께 인권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유독 전, 현직 서울시 인권위원만 세 분이 지명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전원이 서울 사람인 추천위원회에서 어느 지역 인사를 위원장으로 추천할지 예측이 쉽게 되는 건 저 만의 짧은 생각일까요?  국가인권위원회라면 장애, 여성계처럼 지역도 배려해서 다양성을 보장해 줬으면 좋겠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다른 정부 기관의 위원회 역시 지역의 전문가는 찾아보기가 힘들고 간혹 있다고 해도 구색 맞추기 수준으로 극히 소수일 뿐입니다.  6.13 지방선거 이후 당선결과를 보여주는 전국 지도를 보면 일부 지역의 빨간색을 제외하고는 온통 파란색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이를 두고 한국 사회의 철옹성 같던 지역주의가 드디어 극복되었다는 평가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 부산과 울산 경북 구미를 비롯한 영남의 많은 도시에서 그동안의 공고했던 보수 지역주의를 무너뜨린 의미 있는 선거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동서 지역주의는 완화되었지만 모든 것이 서울이 중심이 되고 지역은 하부 체계가 되는 서울 중심의 수직적 지역주의는 여전히 완고합니다.  대한민국이 지역 연방제 체제도 아니고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도 절반의 인구가 거주하는 건 엄연한 현실입니다. ‘지방’이란 단어가 차별이 아닌 공생과 평등의 메시지로 우리에게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2018-06-20 | hrights | 조회: 64 | 추천: 4
김아현/ 인권연대 연구원  어쩌다 다행히도 저는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분들과 인연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비정상적으로 기운 운동장도 합법이고 질서로 여겨야 하는 세상입니다. 여기서 애를 써가며 하루하루 살아내시고 인권연대에 후원을 하시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를테면 '읽거나 말하는' 분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적어도 자기에게 닥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거나, 해결하는 방법을 알거나, 타자에게 연대를 요청할 마이크가 주어진 셈이겠지요. 하다하다 안 되면 짱돌을 드는 방법도 있겠지만 요즘은 다이소에서 짱돌이 아니라 LED 촛불을 팔더라고요. 자본의 촉이란 이렇게 정교하고 무섭습니다.  읽고 말하고 듣고 쓰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지 10년이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저는 '나도 자료를 읽고, 정책과 예산이나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내고, 내 말에 대한 반론의 요지를 듣고, 그에 대한 반박을 문서로 만들 줄 아는' 사람임을, 매번 최선을 다해 증명해야 합니다. 주로 외부에 나가서이지요. 시민운동을 하면서 이러저러한 각종 위원회 같은 곳에 참여할 기회가 종종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회의에 가 보면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의지가 읽히기보다는, 적당히 균형 잡혀 보이는 논의구조를 구성하기 위해 시민사회라든가 여성이라든가 젊은이가 습관적인 악세사리가 된 것은 아닌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늘 찬반을 공히 비슷한 비율로 구성해 진행되는 토론회처럼요.  알고 갔지만 기대하는 바-이왕이면 가만히 있어줄 것-에 충실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되든 안 되든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회의 전에 자료를 숙지하고, 문제제기를 하고, 개선방안 마련과 자료 제출 요구를 합니다. 수차례의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 마디의 의견도 내지 않는 고령의 남성, 전문직 위원도 있지만 공직사회는 그분들에게 늘 깍듯하고 서로간의 예의를 주고받습니다. 그분들은 공무원들에게 문제제기를 해서 불편하게 하지도, 자료제출 요구를 해서 야근을 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문제제기가 필요할 때는 예의바르게 합니다. 웃으며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습니다. 존재 자체로 존중받으니, 저처럼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말도 많이 하고 요구도 많이 하는 저는 불편한 존재, 소위 ‘싸가지 없는 젊은 여자’로 여겨질 거라 예상해봅니다. 사진 출처 - Freephoto  최저임금 개악안을 두고 투쟁이 한창입니다. 세월호 유족들도 여전히 싸우고 있고, 강정의 해군기지 앞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는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기 위해 길 한복판에서 옷을 벗는 방법을 택한 여성들도 있습니다. 한국에는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보다 그 영향에서 아슬하게 빗겨간 노동자가 더 많습니다. 세월호 유족이나 강정주민이 아닌 사람들이 더 많기도 합니다. 임금이나 사회적 위상은 아직 남성에게 더 많이 주어졌지요. 해서, 싸우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소수이고 약자이고 관찰과 평가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싸우면서 예의바르기란 힘든 일입니다. 좋게 말로 해도 될 일이었으면 애초 싸우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요. 예의와 매너를 갖춘 약자에게 강자는, 그만큼의 예의와 매너를 돌려주지 않습니다. 설득과 관철의 수단이 말과 글밖에 없는 약자들에게는 싸우는 과정에서 요구받는 예의가 마치 줄타기의 기술과 같습니다. 아슬하고 위태하게 균형 잡기 위해 잔뜩 긴장해봐야 겨우 중심잡고 서 있을까 말까입니다.  그러나 힘 있는 사람의 매너와 예의는 다른 차원입니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인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인기나 인지도 같은 상징자본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대개의 경우 상징자본은 실제 자본으로 이어지기도 쉬워서, 이 글에서는 그냥 ‘가진 사람’으로 퉁치겠습니다. ‘가진 사람’은 예의바를 수 있습니다. 좋게 말하고 웃으며 대해도, 화자의 의도대로 결과가 생깁니다. 싸울 필요가 많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가진 사람’이 뭔가 요구하기 전에 이미 다 갖춰진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가진 사람’일수록 더 예의와 매너를 갖춰야 한다는 역설은 여기서 생깁니다. 이미 다 갖췄거나, 품을 덜 들여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유무형의 자산에 대해 긴장해야 합니다. 세상에 당연히 주어지는 자산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자산이 권력, 예컨대 선거에서의 득표와 같은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득표는 권력이라는 유형의 자산을 만들어냈지만, 득표를 형성하는 지지는 엄밀히 말해 무형의 자산이고, 형태가 없기 때문에 잃기도 쉽습니다.  지방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당선증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아니, 당선증을 받기도 전에 공중파를 비롯한 방송에서조차 유권자를 대하는 태도가 유별났던 몇 정치인을 떠올리며 이 글을 씁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하루하루 싸워내며 호소하고 항의하는 ‘무례한’ 민원인들 앞에서, 비슷한 강도의 비매너로 일관하던 숱한 의원님들도 떠올립니다. 당신들은 틀렸고, 더 예의바를 필요가 있습니다. 예의바를 마음이 없어도 연기라도 해야 합니다. 그게 예의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도 질서로 여겨야 하는 세상에서 이런 요구라도 하지 않으면 숨통 트고 살 도리가 없습니다.
2018-06-14 | hrights | 조회: 393 | 추천: 23
밥도, 식판도, 필기도 다 우리에겐 인권이었다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민주 광장에 모였다 하면 일만 명이 족히 되었던 한총련 그들, 저들, 저들 중 백 명만 있으면, 아니 50명만 있으면 당장 경사로를 만들 수 있는데, 당장 점자책이라도 구비할 텐데. 수화 통역을 부를 수 있을 텐데... 저들은 일만 명이나 모였다면서 힘없이 경찰에 걸려 내가 탈출시켜야 하는 걸까? 정말 궁금했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와 주장은 참 궁금했지만 언제나 나를 만날 때마다 그들은 밥을 챙겨 주었고 내 식판을 제일 먼저 들어 주었고 늘 강의 노트를 빌려 주었다. 나는 그들을 미워할 수 없었다. 그 때는 밥이 ‘인권’이었고 식판 들어주는 사람이 ‘인권’이었고 강의노트를 빌려 주는 사람이 ‘인권’이었다. 그들은 통일을 위해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그래도 나에게 그런 선배들 밖에 없었다.   대학입학 때부터 유난히 나를 챙겨주고 신경써준 과선배가 있었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하얀 얼굴이었고 하얗다 못해 창백했었고 목소리는 자주 쉬고 갈라졌으며 자주 세브란스에 입원했다. 어느 날 어디가 아파 세브란스를 다니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동문이라서 병원비가 싸다고.  그는 과에서 '천재'소리를 들었고 국문과면서도 특이하게 독일어를 잘했다. 제 2 외국어 독일어 수업을 버거워 하는 나에게 그는 병원복을 입은 채로 슬리퍼를 끌며 나에게 몇 시간이고 문과대 안터 나무의자에 앉아 공짜 과외를 해 주곤 했다. 그렇게 1학년 첫 학기 제 2 외국어 수업을 마치기도 전에 그 형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곧 병원갈 일이 없을 거라던 형은 원래 백혈병을 앓고 있었고 함께 세브란스 검진 가자던 약속을 뒤로 하고 급성으로 악화되어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다. 이상하게 최루탄으로 눈물이 날 때마다 그 형의 새하얀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데 자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96년 여름방학 때는 학생회관 3층 적십자회 동아리방에서 한총련 집회가 끝날 무렵 별로 친하지도 않은 과선배 한명이 동아리방을 지나치며 나를 불렀다. 학교 서문 근처 기찻길 옆 옥탑 자취방에 가자고 했다. 동아리방에 쌓아둔 짐을 싸들고 오란다. 방학 때 목발을 사용하는 나를 받아주는 하숙집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형은 학원 강사를 오래 했는데 밤이 되면 오래된 프라이드를 몰고 나를 여의도 등지로 드라이브 시켜 주었다. 그리고 늘 이야기 했다. 건강하라고, 끼니를 챙기라고.,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이번에는 이름을 기억했다. 김. 겸. 손. 언젠가 잘 되면 한우 갈비에 도가니 특으로 저녁을 대접하고 싶었다. 그런데 20여 년 지난 지금도 저녁을 사드리지 못했다. 사진 출처 - dreamstime.com 종합관 5층에서의 결의, 종합관 결의, 장애인인권동아리 게르니카의 탄생.  기숙사에서 문과대를 거쳐 종합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무척 가팔랐고 아침 9시 1교시 수업에 지각하기 일쑤였다. 1학년 여름이 오기 전 어느 늦은 봄날 그 가파른 길을 목발로 쇳소리를 내며 가고 있는데 내 뒤로 95학번 동기 여학생이 따라 올라왔다. 종합관 3층 전공 선택 과목 수업 교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녀는 나를 앞질러 가지 않았다. 보통은 다들 앞서 지나 가는데 의아했다. 교실에 와서 뒤돌아보니 그녀가 훌쩍이고 있었다. 울고 있었다. 눈물을 흘렀다. 왜 우냐고 물었다. 그녀는 언덕길을 오르는 내 뒷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슬퍼서 울었다고 했다. 내 뒷모습을 끝까지 보며  울어주는 여인은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몇 년 뒤 그녀는 결혼하고 외국으로 간다며, 나에게 청첩장을 주면서 밥을 샀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하지만 그때는, 그리고 지금도 그 인사와 그 밥의 의미를 잘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사준 그 밥은 지금도 늘 마음의 굶주림을 사라지게 해준다. 그녀의 이름은 남. 유. 정.  그렇게 전방부대 군대생활 같은 대학 새내기 생활이 끝날 무렵 같은 과의 휠체어를 사용하는 친구가 63빌딩 꼭대기가 내다보이는 캠퍼스 건물 꼭대기로 조용히 날 불렀다. 그는 세무 공무원을 아버지로 둔, 언뜻 보기에는 부르주아적 장애인이었다. 아침마다 기숙사로 와서 자기 차로 기숙사까지 나를 날라다 주곤 했었다. 그는 더 이상 대학 생활을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만 가지고는 버틸 수 없다며 우리들만의 목소리를 내야하지 않겠느냐 했다. 왜 그는 가난한 날 붙잡고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일까? 당시에 나는 대학 내에 장애인 시설로 자원봉사 가는 중앙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었다. 동아리 사람들은 한 달 내내 동아리방에서 기타치고 놀고 술마시면서 한달에 한 번 겨우 재활원에 가서 한 두시간 봉사하고 오는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같은 학교에서 도서관을 못 들어가고, 승강기가 가지 않는 강의실은 수강신청 조차 하지 못하고, 화장실 대신 오줌통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장애인 학생에 대해서는 때때로 개인적으로 도와주기만 할뿐 그들을 위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개인적으로 사람을 구해서 활동보조를 쓰고 있던 그와의 회합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우리끼리 만나고 모이는 동아리를 만들어 보자고 결의하였다. 이른바, ‘종합관 결의’, 95년도에 시행된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장애인 대학생들이 장애인 인권운동을 전면에 내세운 전국 최초의 동아리였다.    얼떨결에 ‘결의’는 했는데 이름이 없었다. 사랑이니 봉사니 이런 낱말이 붙는 이름은 싫었다. 손발이 오그라들 뿐 아니라 사랑이니 봉사니 하는 것들은 일시적이고 미봉책일뿐 우리들에게 필요한 간단한 경사로 하나도 만들어 주지 못했다. 식판과 휠체어를 옮겨 주던 친구들은 군대로 가버리고 졸업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에게 이름은 중요했다. 전동 휠체어와 목발을 쓰는 장애인 두 명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동아리의 활동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름 하나로 고심하며, 등록금 삼백만원 넘게 내는 대학 캠퍼스의 휠체어와 목발이 만나 변변히 회의 할 곳도 찾지 못해 친구 집에서 회의를 해야만 했다. 우리의 애잔한 모습을 보고 있던 미술을 전공했던 친구 동생이 보다 못해 한 가지 이름을 제안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이건 뭐지? 우리가 미술 동아리인가?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할 건데 웬 그림이름? 도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숨겨진 심오한 뜻과 의미가 있는가? 진실을 이야기 하자면 이름을 붙일 때는 아무런 의미도 연관성도 부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 조직의 이름을 듣고 수많은 질문을 해왔고 그 질문을 통해 우리의 존재는 각인되었다. 홍보면에서 대성공이었다. 게르니카가 5.18 광주와 같이 스페인 내전의 학살과 인권의 역사를 담은 작품임을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였다. 동성애 운동과 여성 운동을 만나다.  이름도 지었으니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야 했으나 우리는 막막하기만 했다. 같은 해에 입학한 12명의 장애인 학생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우리 활동에 아니, 존재 자체에 회의적이다 못해 강렬히 거부했다. 단 한 명, 지금 광진구 구의원 후보로 나온, 풍물패를 하고 있던 김주현씨 만이 우리의 결의에 동참했다. 그리고 교육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수화를 쓰던 농아인 선배. 정. 희. 찬 그가 대학에서 제일 먼저 같은 장애인이 와서 반가워 해주었던 사람이었다. 대견해하거나 안쓰러워하지 않고 그는 몇 번이고 격하게 포옹해 주었다. 내가 수화를 잘 모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대다수의 비장애인들이 우리들의 존재에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가장 뜨거운 사람들은 대학 최초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던 동성애 인권동아리 ‘컴투게더’와 총여학생회 사람들이었다. 중앙도서관 앞에서 한창 천막 농성을 진행하던 컴투게더 사람들은 우리에게 농성하던 자리와 천막을 남겨 주었다. 장애가 없지만 우리와 거의 같은 현상으로 차별 받고 억압당하고 배제당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대학 오기 전까지 동성애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이성애자였지만 그들은 우리의 경호원이었고 활동 보조인이었고 대변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차별과 혐오를 벗겨내고 이겨내는 가장 빠르고 좋은 방법은 스스로 멋지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멋진 장애인, 좋은 장애인이 되는 것이라고, 내가 만난 멋진 게이 형들이 가르쳐 주었다.  그들의 가르침을 받아 장애인 두 명이 학생회관 아래에 서명판을 벌였지만, 경험도 없고 조직도 없는 우리들은 막막했고 서명 책상은 휑하기만 했다. 그렇게 뙤약볕 아래에서 고래고래 2~3시간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학생회관 3층에서 한 무리의 여성들이 무엇을 잔뜩 들고 내려왔다. 그들은 여학생회에서 나왔다면서 별다른 설명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우리 책상을 온갖 자보와 색상지로 꾸며 주면서 엄청난 김밥과 음료수를 안겨 주었다.  그들을 미리 만나거나 우리의 서명운동을 설명한 적이 없는데도 여학생회 사람들이 들고 온 색상지에는 이미 우리의 요구 사항들이 다 적혀 있었다. 그들은 3층에서 우리가 외치는 것을 다 듣고 정리했던 것이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일주일 동안 우리의 식사와 간식과 서명 자보를 챙겨 주었고 동아리방이 없던 우리에게 총여학생회 한켠을 열어주었다.
2018-06-05 | hrights | 조회: 137 | 추천: 2
서동기/ 대학생  지난 노동절 우연히 저녁 라디오 뉴스를 청취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난해 대선과 정권교체 이후 처음 맞이하는 노동절입니다. 하지만 촛불 이후 첫 번째 노동절 라디오 뉴스의 주된 보도들은 여느 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양대 노총의 집회와 행사로 인해 교통정체가 심하다는 소식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근로자의 날’을 맞이하여 노동이 제도에 의해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홀대받고 모욕 받지 않는 세상을 생각한다”는 메시지가 단신으로 간략하게 보도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절 소식에 세 배쯤 되는 분량으로 ‘대입수시개편안’에 관한 보도가 뉴스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라디오를 듣는 내내 왠지 모를 아쉬움과 함께 얼마 남지 않은 지방선거가 떠올랐습니다. 진보정당의 한 의원은 인터뷰에서 이번 지방선거를 ‘제2의 촛불’에 비유했습니다. 비유를 곰곰이 생각하니 ‘촛불과 마찬가지로 이번 선거에서도 진보정당들은 시민들을 자신의 지지층으로 설득하는 데 실패하려나?’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촛불을 통해 탄핵과 정권교체를 만들어냈지만 여전히 시민들의 삶과 정치 속에서 진보정당들의 비중은 여전히 미약해보입니다. 촛불을 겪었지만 일반 시민들의 삶에서 진보정치의 가치와 비전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어떤 진보정당에 투자하고 주변의 관심을 권하는 것이 주저되기도 합니다. 사진출처 - Pixabay  X께 편지를 드리기 위해 여러 진보정당의 홈페이지와 SNS를 방문하고 열심히 톺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자신 있게 표를 던지고 싶은, 주변에도 적극 권하고 싶은 정당을 발견하는 것이 꽤나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저와 관심 있을 만한 이들,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진보정치에 과감하게 표를 던질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하지만 자신 있게 우리를 매력적인 가치와 비전으로 설득하거나, 설득하려는 정당과 후보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진보정당들의 소중한 가치와 지향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를 설득하고 투표를 통해 같은 뜻으로 이끌어내기에 너무나 큰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얼마 전 홍세화 선생님의 <공부>에 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변화를 위해 움직여야 하는 ‘운동(movement)’에 대해 열변을 토하신 부분이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 한 진보정당의 ‘언더그룹사건’과 관련한 진상조사도 맡고 계심을 알고 있었기에 해당 부분은 더욱 자조적, 절망적 장면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진보정치와 운동의 기본 강령으로 흔히 ‘조직, 학습, 선전홍보’를 꼽지만 치열하게 반성, 학습하지 않는데서 기인하는 내부의 문제와 설득하지 못함의 문제. ‘노동자는 하나다’와 같은 예전의 구호를 관성적으로 반복하는 모습. 다만 알량한 조직을 지키려고 하는 초라한 현재의 모습을 지적하신 부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촛불 이후 첫 번째 선거인 이번 선거가 진보정당에게 이전과 그리 달라 보이지는 않습니다. 정당의 중심 의제와 진보정치의 미래를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일반시민들이 적극 동참하도록 만드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단지 ‘선거를 치르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진보정치의 목표는 아닐 것입니다. 용기 있게 선거에 나서주신 후보님께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뿌연 하늘의 대기를 걷어내고, 일상의 적폐들을 제거하여, 여성과 노동자, 일반 민중들 모두가 행복할 비전을 제시하고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큰 희망과 힘이 진보정치에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촛불 이후의 촛불들’을 통해 수 없이 쌓여있는 일상의 적폐들을 밝혀내어 녹색의 정치, 여성의 정치, 노동자의 정치, 민중의 정치가 폭발하고 진지하게 논의되어 우리의 삶을 진실로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일상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손과 말이 닿는 데로 우리 진보정당의 비전들과 각 정당이 생각하는 가치와 비전을 끊임없이 알리고 설득하겠습니다. 소수정당에 대한 주류 정치의 배제와 수많은 차별 사례들을 굳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정교한 반성과 목표설정을 통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는 진보정치를 기대합니다. 후보님의 선전을 진심으로 기원하며 글을 줄입니다.
2018-05-25 | hrights | 조회: 85 | 추천: 3
손상훈/ 종교투명성센터 운영위원, 전 교단자정센터 원장  지혜로운 딸들이 함께 총무원장도 직접 뽑고, 대표 목사님도 직접 뽑는 그 날이 오기를 소원하며.  사랑하는 딸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란다. 아버지세대에는 익숙한 민주영령(민족민주열사), 친박단체 어르신들은 호국영령에 버금가지 않을까 하는 김동수 열사, 조성만 열사 같은 이름을 말이다. 지난해 인권시민단체 회원 가입을 권유했을 때 경쾌하게 대답했던 얼굴과 다른 딸의 모습에 속으로 많이 놀랐다. 사랑하는 딸은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고, 다큐도 제작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초등학생 때 보고 싶은 동영상 못 보게 하는 미흡한 아버지를 향한 얼굴이 떠올랐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욕구에서 일어난 표정. 복잡했고 원망어리기도 하고 화난 얼굴이기도 한, 뭔가 부탁하기라도 하는 그런 애뜻하고도 복잡한 속내가 드러나는 어린아이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2018년 5월을 살아가는 23살. 96년생 사랑하는 딸은 무심하게 처음 들어보는데 그 분이 누군데 하면서 딴청을 부리며 제 할 일을 한다. 섭섭했다.  여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50대여서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딸에게 소외당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억측이 들어서인지 모를일이다. 그래도 다시 차분하게 '딸아, 딸들아 일어나라, 많은 이의 행복을 위해, 함께 걸어가자'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 여고생에 의해 처음으로 발의된 스승의 날 즈음에 참으로 난감하다. 민주영령, 처음 들어보고 그 분이 누구셔. 갑자기 멍해졌다. 아니 앞이 캄캄해졌다. 그동안 뭐하며 살았길래 딸도 모르는 짝사랑을 했는지. 이십여 년 아니 삼십 여년의 활동 가운데 가족과 진심으로 공유한 일이 얼마나 되는지 세워보았다. 참으로 몇 건 되지 않았다. 내 삶의 50여년의 교훈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내 종교자유인권을 탄압했던 학교 교목이셨던 성경선생님은 도박으로 구속되셨고, 내 모교에서는 학생강제예배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조계종립종합대학인 동국대는 여전히 선택할 수 없는 종교의무강요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례를 바꿔서 헌법과 법률을 개정해야 사립학교의 강제종교교육은 중단될 수 있다. 이천오백년전 이 땅에 부처님, 예수님이 살아오신다면 통탄할 일이다. 아니 지금도 교훈으로 살아계신 예수님과 부처님이 회초리를 들 대 사건이다. 인류의 스승들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존엄하다'고 가르침을 주었지만 오늘 현실을 살아가는 종교계(특히 불교계)는 인권감수성이 낙제점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에게 딸이 있다면, 진정으로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스스로 일어나 외쳐야 한다. '아버지 저는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낳아주고 길러주셨지만 아버지를 아끼는 많은 이의 사랑을 저버렸음을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조계종 승려이신 아 사랑하는 아버지 부디 공직을 사퇴하시고 공개반성(불교용어로 참회)을 하시길 간절하게 원합니다'. 상상해보았다. 내 딸이 나를 섭섭하게 만든 심정으로.  연등회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 살아온 조상들이 전통문화로 이어온 아름다운 축제이다. 지난 5월12일 서울에서 열린 연등회에서 수만 명이 모인 행사에서 조계종 설정총무원장은 아무런 해명과 반성도 없이 입바른 가르침만 메아리하고 말았다. 지난 5월1일 방영된 엠비시 피디수첩에 알려진 설정원장의 부조리, 부정부패, 은처의혹에 대해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파렴치'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이다. 어찌 조계종 총무원장을 상대로 이런 비판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을까. 곱씹어 보았다. 결론은 내 탓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종교계 시민사회(특히 불교계 시민사회)가 시민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리사회의 민주인권 확대를 소홀하게 한 결과라는 뼈아픈 성찰과 반성이 공명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들과 함께 긴급 행동할 아버지, 어버이들이 민주영령의 뜻을 이어받고 교훈을 벗 삼아 실천할 때라는 결론이다. 부처님우시는 날. 서울 인사동 사진 출처 - 불교닷컴  어떤 독설과 비판으로도 전환시키기 어려운 조계종 적폐청산의 현실 앞에 이제 깨어나야 한다. 최근 신도 상습 성폭행으로 구속된 서울 모 교회 목사, 엄청난 공금을 맘대로 요리한 인천의 모 신부님처럼. 재벌승려, 조계종은처승려, 성추행의혹 조계종 교육원장 승려 이런 말이 다시는 회자되지 않도록 이제 한국종교계 최고위급 직업종교인들을 절복시켜야 할 때이다. 끝으로 민주영령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김동수 열사상, 조성만 열사상 등 '종교계시민사회인권단체'들이 공동으로 심사하여 20대 청춘들에게 소중한 상을 주는 준비모임을 발의해 본다. 1980년5월27일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산화하신 김동수 열사는 당시 대불련(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전국 대학생 불교동아리연합조직.1963년 창립) 전남지부장으로 당시 부처님오신날 봉축 연등회 행사를 준비하다 '학생수습대책위원'으로 시신을 수습하고 안치하는 일을 하셨다. 지금 동국대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미동추. 미래를 여는 동국추진위원회'소속 학생들이 김동수 열사의 교훈을 벗 삼는 실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딸들이 '종교계 적폐청산(성폭행, 성추행, 부정부패, 은처의혹, 사립학교 갑질, 총장의 논물표절, 교비횡령 등)을 위해 소박한 실천에 함께 해주시길 요청한다. 지난 5.10.목. 개최된 촛불법회와 행진 모습 사진 출처 - 불교닷컴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는 오는 5월17일(목).저녁7시 서울 종각역 보신각에서 촛불법회를 개최한다. 성평등불교연대 토론회  또한, 성평등불교연대라는 불교계 시민단체는 5월26일 마야페스티벌을 벌인다. 여러 이웃종교 학자분들의 토론회와 저녁7시 노래와 춤 등 문화예술행사도 개최한다고 한다. 더 이상 굶어죽는 오누이가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오누이의 기도가 '관세음보살의 서원'이 되었다고 하고, 그래서 불교계에서 '관세음보살'을 말로 표현하는 기도를 한다. 앞으로 태어나고 자랄 이 땅의 딸들이 행복하길 온 마음으로 절실하게 발원해 본다.
2018-05-16 | hrights | 조회: 224 | 추천: 6
이회림/ 00경찰서  5월의 어느 날 아침입니다. 지하철역을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반겨주는 할머니의 웃는 얼굴. 오늘은 다홍색 꽃이 수놓인 니트를 입으셨네요. 입술을 살며시 움직이며 생글생글 소리 없이 웃고 계시지만 항상 같은 표정입니다. 할머니는 어깨에 작은 검정색 크로스백을 메고 있는데 그 안에는 오늘 만나게 될 고객들을 위한 준비물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저 할머니는 왜 매일 저렇게 서서 처음 보는 할아버지들을 기다려야만 하는지,, 마음이 아파오는 것도 잠시 뿐, 저는 출근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할머니를 지나치면 노숙인들이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금은방 처마 밑에 드문드문 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떤 노숙인이 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외칩니다.  “야! ㅂㅈ야!”  생전 처음 들어 보는 황당한 호칭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봅니다. 아까 그 할머니와 같은 연배로 보이는 깡마른 할아버지가 저를 쳐다보며 웃습니다. 쓰러지듯이 앉은 모습으로 아래 위로 훑어 보던 그 시선... 손녀뻘 되는 사람에게도 저런 눈빛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거북할 뿐 아니라 괴이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힐끗 쳐다보고는 인상 한 번 찌푸리고 모두 제 갈길을 갑니다.  ‘방금 쳐다보고 간 아저씨한테 목격자 진술 부탁드리고 저 할배를 모욕죄로 현행범 체포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스쳤다가 사라집니다. 형벌보다는 치료가 더 시급한 할아버지라는 생각에 한숨만 새어 나옵니다.  출근길에 그 노숙인 할아버지를 보니 작년 늦여름부터 추석 연휴 전까지 구청 직원들과 함께 노숙인 자활 지원 활동을 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파출소의 ‘ㅌ공원’ 담벼락에는 일 년 내내 매일 20~30명의 노숙인들이 술판을 벌입니다. 그 중 5~6명 정도가 담 아래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하는 식으로 상주하는 노숙인들이고 나머지는 공원 뒷 문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점심 식사 한 끼를 먹기 위해 잠시 들렸다 갈 뿐인 비 상주 노숙인들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저는 추석이 시작되기 직전 약 2개월 간 구청 ‘자활주거팀’ 직원들과 함께 매일 오전 10시 경 ‘ㅌ공원’의 담벼락으로 갔습니다. 구청 직원들은 노숙인들이 노숙생활을 접고 인근 쪽방촌으로 들어 갈 수 있도록 설득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저는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그 모습을 지켜보거나 사진으로 남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매일 그렇게 노숙인들과 마주하다보니, 어느새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순간이 왔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노숙인들은 한 가족이 전부 노숙생활을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70대 노모가 40대 후반의 두 형제와 함께 담 밑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노모는 길거리에 버려진 종이와 페트병 등을 주워 근처 고물상에 갖다 파는 식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반면에 두 형제는 늘 담벼락 밑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거나 대낮부터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경찰들 뭐하냐, 저것들 좀 안 치우고!’ 하며 항의를 하기 일쑤였고 공원 주변이 항상 노숙인들로 가득해서 냄새가 나 견딜 수 가 없다는 주변 상인들의 민원도 극심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찰이 개입할 수 있는 질서 파괴 행위가 목전에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런 민원이 들어오면 잘 달래서 돌려 보내는 정도로 그쳤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노숙인이라해도 사람을 향해 물건 가리키듯이 ‘저것’ 이라고 지칭하거나 ‘치워’라고 함부로 말하는 것에는 울컥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노숙인 형제와 얘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사실은 노숙인 두 형제 중 큰 형이 인근 건물에 상가를 임대하고 있었고 무려 전직 기타리스트라는 것이었습니다. 재산도 있는 사람이 노숙생활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묻자, 그저 답답해서라 고만 간단히 대답하였지만 눈빛에서는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마침 함께 지원 나간 순찰요원 김 순경이 대학에서 드럼을 전공하고 왔기에 기타리스트 노숙인과 서로 말이 잘 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심성 착한 김 순경은 갑자기 그 노숙인의 손을 덥석 잡더니, “아저씨. 얼른 노숙생활 청산하시고 같이 밴드해요. 제가 드럼치고 아저씨가 기타 잡으시면 되겠네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숙인과 매일 얼굴 마주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던 저는 노숙인들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엄두를 내지 못하였는데, 그 날 처음 노숙인을 만난 김 순경은 맨 손으로 그의 두 손을 잡고 진심으로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  저는 저보다 까마득한 후배인 김 순경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겉으로는 소통하는 척, 위하는 척 했지만 손 한 번 따스하게 잡아줄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 한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 그 기타리스트 노숙인 아저씨는 쪽방촌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답답해서 닫힌 공간이 싫다던 아저씨의 고집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은 구청 직원들의 노력뿐만아니라 김 순경의 온기가 더해져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기타리스트 아저씨의 쪽방에 작은 화분을 사서 들고 가 나름 조촐한 집들이 선물을 드렸고 아저씨는 자신의 한 평 남짓한 방을 보여주며 함박웃음을 지으셨습니다.  그 아저씨는 그 뒤로 겨울을 쪽방에서 무탈하게 보내셨지만 봄이 오니 다시 그 공원 담벼락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70대 노모는 쪽방에 방을 두고 공원으로 마실 나오는 식으로 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어느 할아버지 노숙인이 저를 향해 말 같지도 않은 단어를 내 뱉으셔서 모욕을 느꼈지만 그건 잠시 뿐, 마음속에 측은지심이 올라와 할아버지를 탓하지 않게 된 것은 모두 제가 경찰살이를 통해 길거리에서 배운 미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김 순경처럼 착한 심성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그런 맑은 후배들이 주변에 많이 있어 매일 그들로부터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최근에 읽은 책에서 아래와 같은 구절이 마음에 와 닿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소년이 거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배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스티븐슨-  우울하고 힘겹게만 보이는 타인들의 삶을 매일 스쳐지나가지만 그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느끼고 배우고 또 두고두고 기억하게 되는 것은 결국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굉장한 특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놈의 경찰살이 힘겨워도 계속하게 되는가 봅니다.  자~ 이제 사무실 앞에 다 왔습니다. 5월 아침, 출근길에 참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늘도 길거리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파이팅!!
2018-05-09 | hrights | 조회: 151 | 추천: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