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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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다솜(미디어 활동가),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대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벌써 20년 전 무렵의 일입니다.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지역의 통일 운동 단체에서 3년 넘게 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시작할 때는 특별히 통일 운동에 대해 거창한 사명의식 같은 건 없었고, 학교를 그만둔다는 정보(?)를 입수한 선배의 집요한 설득에 넘어가 시작한 이른바 첫 사회생활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윤이상 선생은 고향 통영 출신의 음악가로 고등학교 교가의 작곡가란 사실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선생이 현대음악계의 거장으로서 ‘동백림 사건’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당시의 나를 적잖이 흥분시켰습니다. 비교대상은 될 수 없었지만 같은 고향이란 점과 통일 운동의 끈으로 윤이상 선생님과 내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지역의 보잘것없는 활동가였던 저에게는 큰 위안이었고 자랑거리였습니다.   올해는 윤이상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선생은 생전 유럽 음악평론가들에 의해 ‘20세기의 중요 작곡가 56인’, ‘유럽에 현존하는 5대 작곡가’로 선정되었으며, 1995년에는 독일 자아브뤼겐 방송이 선정한 ‘20세기 100년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한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의 훌륭한 현대 음악가였습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음악가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그의 출신지 통영의 분위기는 조금 어색합니다. 물론 100주년을 맞는 9월에는 선생을 기리는 합창, 프린지, 다큐멘터리 상영 등의 다양한 행사가 통영에서 개최된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     하지만 윤이상 선생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2010년 선생의 생가터 옆인 통영시 도천동에 지어진 기념관의 이름은 여전히 ‘도천테마파크’입니다. 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에 당사자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는 아마 세계 최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통영시는 해외에 나가서는 윤이상 선생의 고향이란 점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활용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보수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선생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인 현 통영시의 비열한 꼼수가 바로 ‘윤이상’이 보이지 않는 윤이상기념관 ‘도천테마파크’인 것입니다.   이제는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하면서 한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윤이상 선생의 생가터도 통영시가 도로를 새로 개설한다면서 아예 없애려고 했습니다. 사실상 같은 터인 생가터 바로 옆 공방의 소반장 인간문화재 추용호 선생의 천막농성과 강제윤 시인을 비롯한 많은 시민의 반대가 없었더라면 선생의 생가터는 흔적도 찾지 못 할 뻔 한 것입니다. 추용호 소반장의 아버지는 고모부인 윤이상 선생 부친에게서 소반 제작기술을 배워 인간문화재까지 됐고 그 기술을 아들인 추 소반장에게 전승한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 바로 윤이상 선생의 생가터입니다.   이러한 공간을 없애버리고 70년대 초에 작성한 도시계획에 근거해 도로를 개설하려고 한 통영시의 행정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생가터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후에도 통영시는 공방을 이전하고 도로를 개설하면서 바로 옆의 윤 선생 생가터는 보존하겠다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통영시의회는 9월 11일 임시회에서 ‘도천테마파크' 명칭을 '윤이상 기념공원'으로 바꾸는 조례안을 심의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시의원 13명 중 8명이 윤이상 선생에게 부정적인 이념 논쟁을 주도한 자유한국당 소속이어서 과연 조례가 가결될 것인지 걱정스럽습니다.   1967년 독일에서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강제입국 당하고 2년간의 복역과 추방 이후 다시는 대한민국과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운명하신 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선생은 살아생전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올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습니다. 1994년, 그가 동백림사건으로 강제추방 된 지 25년 만에 서울, 광주, 부산에서 “윤이상 음악축제”가 열리고 윤이상 선생도 김영삼 문민정부에 기대를 걸고 입국을 허가해 달라는 서신을 보낸 것입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선생에게 과거에 대한 반성과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명예회복 차원에서 고국 입국을 준비했던 윤이상 선생은 당연히 각서를 거부하고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리고 일 년 후인 95년 11월 4일 “내 고향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독일”이란 비통한 말씀을 남기고, 고향 통영에서 가져온 한 줌의 흙과 함께 독일 베를린에 영원히 잠드시고 맙니다.   선생이 이 땅에 오신지 100년이 되는 올해 당신의 유골이나마 고향 땅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선생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고향의 푸른 바다와 당신 음악의 원천이라고 했던 밤배 선원들의 노동요를 무덤에서나마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선생이 한반도에서 당신의 노력으로 음악을 통한 평화적 남북 교류 사업이 이루어진다면 고국의 흙에 입 맞추며 조용히 하고자 한 말씀을 우리가 상기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충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2017-09-27 | hrights | 조회: 24 | 추천: 0
- 도의원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행정시장 직선제를 도입하라! 이현정/ 꽃씨네농작물 농부     최근에 제주시청에 민원 전화를 했다. 담당 직원의 답변은 이러했다. 여기는 제주도청 정책을 실행하는 곳이라, 도청 해당 과에 전화를 해 거기에 물어보라는 것이다. 황당하다. 육지 어느 시정이 이러할까. 시민이 시청에 문의 전화를 하는데, 도청에 다시 전화를 하라고 한다.   이번 9월 1일엔 서귀포시장 내정자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그런데 임기가 고작 10개월 남았다. 업무 파악, 내년 6월 지방선거 등을 고려하면 제대로 일하는 기간이 얼마나 될까. 대다수의 육지 분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보궐선거? 웬 인사청문회? 제주는 행정시장을 시민이 뽑지 않고, 도지사가 임명한다. 원희룡 지사가 임기 2년 중 1년 남은 전 서귀포시장을 도청에 갑자기 차출해 갔다. 내년 지방선거 대비라는 말도 많다. 결국 원지사가 도민과의 약속을 어겼다. 시장 임기 2년을 보장해 행정시 기능강화를 언급했지만, 결국 세 번째 서귀포시장을 임명할 예정이다. 서귀포 시민들은 화가 단단히 났다.   이게 제주의 현실이다. 2006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라 외교와 국방을 제외하곤 고도의 자치권을 갖는다(조세와 재정 핵심권한은 이양되지 않았음). 하지만 위와 같은 처지다. 그래서 올 6월에 제주행정체제개편위원회에서 발전적인 행정체제 권고안을 원지사에 제출했다. 주된 내용은 기존 2개 행정시에서 4개시로 바꾸는 것과 행정시장 직선제였다. 지난 5개월 동안 용역 연구하고, 14차례에 걸친 읍면동 설명회, 2차례의 도민선호도 조사를 실시했다. 도민 정치참여 욕구 충족, 정책선호 동일성, 경제 및 산업구조 유사성, 제주시 집중화 완화 및 지역균형발전 등을 고려했다.     사진 출처 - 제주의소리     그러나 결론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제주도정과 제주 국회의원들이 수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내년 개헌과 2019년 제주특별법 전면 개정이 있으니 지금은 유보하자는 것이다. 결국 시장 직선제나 기초자치단체 부활 등은 2022년이나 얘기하자고 한다.   그런데 이번엔 또 제주 도의원 비례대표를 축소한다고 했다가 사실상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 제주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오랫동안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논의해 원래는 지역구 두 석을 늘려 총 43석으로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지난 7월에 도지사, 도의회 의장, 제주 국회의원 3자회동에서 비례대표 2석 축소 추진을 합의했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오영훈 제주 국회의원이 이 사안의 제주특별법 개정을 위한 국회의원 20명 공동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3명의 동의를 받는 것에 그쳐 무산됐다.   결국 국회에서도 비례대표 축소는 올바른 정치개혁에 맞지 않다고 해준 것이다. 이건 매우 상식적인 일이다. 소수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거대 정당만이 기득권 정치를 펼치는 현 소선거구 제도는 건강한 지방자치와 분권에 역행하는 길이다. 득표는 50%밖에 되지 않는데 의석수는 90%나 된다는게 매우 비상식적인 행태다. 다양성과 참여를 기초로 한 건강한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제주 정치행정 지도자들이 이 씁쓸한 해프닝을 벌렸다.   제주는 특별자치도다. 즉 고도의 자치권을 갖는 지역이다. 특별법을 통해 이곳에서 더 건강한 민주주의를 시작해 한국 사회 곳곳에 퍼트릴 수 있다. 그 첫 걸음은 바로 자치와 분권을 확장하는 것이다.   첫째,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도의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 현재 도의원 41석 중 7석만이 비례대표라 17%밖에 되지 않는다. 거대 양당의 지역구 의원이 다수를 구성한다. 비례대표를 30%까지 늘려야 한다. 그래야지만이 제주 지역의 환경, 복지, 교육, 노동, 행정 등 여러 분야에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제주를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둘째, 행정시장 직선제가 절실하다. 시장을 시민이 선출하지 못하니 시민이 최우선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저 도지사 아래의 시장임에 불과하다. 행정시장의 자기결정권이 없다. 고로 앞서 언급한 제주행정체제개편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진짜 자치와 분권이 실현되는 제주특별자치도를 희망한다. 이것이 미래 제주의 희망이 아닐까.
2017-09-27 | hrights | 조회: 41 | 추천: 1
손상훈/ 교단자정센터 원장  개인이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 벌어질 때가 가끔 있다. 국가정보원이 간첩을 만들고 있다는 기막힌 사건을 접하면서 분노하다가도 또 쉽게 잊게 된다. 그러다 억울한 사람을 많이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좋은 기사와 실천에 댓글이나 후원금을 내기도 한다. 그러다 국정원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제압하려는 문건이 있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는 아주 소박한 댓글달기 실천조차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애써 외면하고 싶은 비겁한 마음이 일어났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루하루 생업에 종사하는 시민 누구나 생존에 대한 위협과 고뇌를 안고 산다. 그러다 최고의 정보기관이나 경찰, 검찰 같은 기관에 의해 표적이 되어 있다는 판단이 들면 더욱 움츠려 들었고 비겁함을 정당화하려 애썼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전환과 변화를 시작하는 마중물이 솟구쳐 오르길 기대한다. 내가 발 딛고 있는 봉사와 실천의 영역에서 소박하게 시작해야 한다. 국정원이 박원순을 갖가지 수단으로 색칠하고 생채기를 내려고 했던 것처럼 국정원과 조계종이 명진 스님에 대해 주지직 퇴출과 승려자격 박탈이라는 ‘제적’의 징계를 처분하여 불이익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명진 스님 제적 철회를 위한 원로모임’은 지난 7월 19일 국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명진 스님의 봉은사 주지 퇴출에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국정원 적폐청산 티에프팀에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고 한다. 또한, “불교계 인터넷언론 불교닷컴 등에 국정원 결탁 의혹을 지속적으로 거론해 온 조계종(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되레 역풍을 맞은 모양새”라는 지적이다. (출처: 불교포커스기사)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또한, 원로모임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명진 스님의 봉은사 주지 퇴출에는 국정원이 처음부터 개입하거나 배후에서 조종한 것이라는 의혹이 여러 관련자들에게 의해 제기됐다”며 “MB정권의 고위 인사와 언론사 간부 등의 증언에 따르면 국정원은 봉은사에서 명진 스님을 퇴출시키기 위한 전담팀을 운영하며 스님에 대한 사찰은 물론 정기적 보고서까지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자료로 지난 2013년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의 국회 기자회견 내용을 제시했다. 당시 진 의원은 “원세훈 국정원장이 ‘북한보다 더 다루기 힘든 문제가 국내 종북좌파’라고 한 이후 국정원은 여러 차례에 걸쳐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벌이는 단체들, 명진 스님 등 불교단체, 심지어 최문순 강원도지사까지 ‘국내 종북좌파’로 지목했다”고 밝힌바 있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불교계 시민사회단체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명진 스님의 징계 철회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 그리고 개인들은 최근 두 달 넘게 일인시위와 피켓시위 등을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매일 진행하고 있다. 총무원장의 적폐를 조사하고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주장이다. 불교계 내부 동력이 부족하니 이제 외부 시민사회가 더 앞장서는 모양새에 기운이 일고 있다는 평이다. 지난 몇 달 전 문경 봉암사에서 있었던 토론회에 이어 하안거 해제이후 이해 당사자인 조계종 승려들이 얼마나 결합될지 지켜 볼일이다. 오는 8월 22일 조계종의 명진 스님 승적박탈 조치 이후 결성된 시민사회 원로모임, 변호사, 노동자 모임 들이 시민사회 1천인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조계종의 조치가 시민사회 시각에서 받아들이기 어렵고 부당한 조치라는 이유라는 것이다. 또한 매주 목요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촛불법회를 열어 시민들과 함께 조계종 총무원장과 내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노력을 실천할 계획이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조계종의 잘못된 일에 대하여 시민사회가 함께 해야 할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서울광장에 1만 명의 불자를 동원하여 야당필패를 주장하며 선거에 개입하는 헌법파괴행위를 하였다. 둘째, 글 도둑질 논문표절의혹자인 조계종 승려를 동국대 총장에 추천하여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고 여전히 감싸고 있다. 이로 인해 수만 명의 동국대 학생, 교수 등 구성원들의 권익과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셋째, 도박수사와 검찰조사에 대한 영향력 의혹이다. 자승 원장은 현직 총무원장으로 검찰조사를 받은 총무원장으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장주승려의 자수와 주장으로 드러난 ‘은정재단 상습도박의혹사건’ 에 연루되어 검찰조사를 받은 과정에서 당시 검찰의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의심스럽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검찰이 종교계 고위직 인사를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비판이 깊다. 국정원의 조계종 개입 의혹과 더불어 검찰은 동국대 총장의 교비횡령사건에 대해 9개월이 되도록 여전히 기소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과 각을 세우고 있다는 재단법인 선학원이사장의 여직원 성추행사건도 7개월이 지나서야 이사장을 기소하였다. 그러나 동국대 총장은 기소하지 않고 있다. 검찰이 변화해야 한다는 수 만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조계종 적폐청산을 도울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국회에서 만든 법과 예산편성으로 조성된 수백억 원의 문화재관련 예산이 조계종 사찰과 총무원에 지원된다. 문화재청과 문체부 예산 등 여러 가지 명목으로 지금까지 집행되거나 새로 만들어지는 예산에 대해서 정기적으로 감사원 감사를 받도록 철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시민단체가 주장해 법원에서 위법하다고 결정한 과거 문화재 입장료 징수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일종의 통행세를 걷는 부당한 행위이다. 지리산 조계종 한 사찰에서 일어나는 오랜 불법행위를 방치해서는 민주사회가 요원하다. 국회는 2018년 예산을 편성할 때 조계종이 집행하는 예산에 대해 꼼꼼히 살피고, 예산 지원에 대해 어떻게 시민들을 설득할지 연구해야 한다. 세상을 반걸음 발전시키기 위해서 종교계 특히 조계종의 적폐척결은 이웃이 함께 만들어가는 품앗이 실천이다. 함께 평화를 일구는 시민 마을의 텃밭 가꾸기라 생각한다. 이제 검찰과 국정원이 시민을 두렵게 하거나 움츠려들게 하지 말고, 낱낱이 설명하고 밝혀주어야 한다. 국정원과 검찰 내부에서 눈 밝은 이들이 마중물을 일으켜주길 기대한다. 더 나아가 시민사회의 시각에서 종교계 적폐청산 활동, 조계종의 부정부패 추방이 확산되어 가길 바란다.  
2017-08-18 | hrights | 조회: 20 | 추천: 1
대학 진학과 고등교육을 중심으로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어머니가 기형인 딸을 낳았을 때 어땠을지 상상해 보기도 했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었다 해도 나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고 결국 나를 원망하는 것으로 정신적인 혼란에 대처했을 것이다. 내가 며칠 만에 죽었다면 더 나았을지 모르겠다.” - 엘리슨 레퍼 -   그 많은 장애여성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부터 10년 전 2007년 한국에서 세계장애인한국대회가 열렸을 때 전 세계 장애여성과 많은 한국의 장애여성을 만났다. 한국의 장애여성들은 얼마 전 유엔 회원국 82개국이 공식 서명한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 장애여성 관련 단독 조항을 마련할 만큼 전 세계 장애여성운동을 이끌고 쟁쟁한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국제적인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온 나라의 석학들과 지적 논쟁에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 장애 여성들을 정작 대학에서는 왜 그렇게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 95년 장애인특별전형제도 이후 미흡하게나마 장애인 고등교육의 기회가 늘어나고 교육환경도 개선되었다. 그러나 그 ‘장애인’에게서 여전히 장애여성은 소수 중에 소수이고 약자 중에 약자일 뿐이다. 2001년에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장애여성 박지주씨가 학교상대 학습권 손배소에서 부분승소하고, 2002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장애여성의 고등교육 실태 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이렇다 할 정책도 대안도 없이 20여 년이 흘러 장애인대학생 중 겨우 1/10(추정치)만이 장애여성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여성비율이 교대 및 사범대를 들여다보아도 이 같은 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이번 정권이 장애인 교육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공약으로 밝히고 정권 차원에서 여성의 지위를 올린다고는 했지만 장애 여성의 고등 교육을 위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 상상 1. 일반 학교, 일반 학급에 일반 교사로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 선생님, 고3을 맡다.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원임용에서 장애인 고용률을 지키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장애인교원임용우대정책- 장애인의 교원임용우대정책은 2005년에 개정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하 직재법)에 따른 것이다. 개정된 이 법으로 국가 및 지자체 장은, 공안직군 공무원, 검사, 경찰·소방·경호 공무원 및 군인 등을 제외하고, 소속 공무원 정원의 2% 이상을 장애인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제 23조) 이에 소속된 각급 기관의 장은 장애인을 최소 2% 채용해야 하며, 장애인 공무원 수가 해당정원의 2%가 안 될 경우에는 5%를 채용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이는 재정경제부가 지난 4월 28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일자리 창출을 위한 20대 중점과제 추진방안" 중에서 바로 교육부에서 내놓은 장애인 일자리 만들기 사업안이기도 했다. - 을 실시했다. 장애인 교원은 현재 전체 교원의 0.3%, 1500명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그리고 장애인 2% 의무고용을 하기 위해서 최소 5천명의 장애인 교원(전체 31만3,914명 중에서 6,287명)을 임용해야 한다. 각 학교 교무실에서, 각 지역 교육청에서 교사들은 특수교육대상자로서의 장애인이 아닌, 동료 교사로서의 장애인을 만나는 것이다. 물론 현재 교육대, 사범대 등 장애인 재학생이 185명(교육대 10명, 사범대 175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장 교무실이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안내견을 이용하는 장애여성을 만날 가능성은 적다. 많은 시·청각 장애인과 같은 감각 장애인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 장애인의 경우, 국가교원임용시험에 합격한다고 해도 지금까지는 같은 유형의 특수학교에 배치하거나 그 장애인 교사 출신 학교에 배정한다. 그리고 그 합격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성차별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물론 지금도 일하고 있는 휠체어 이용 장애여성도 있다. 물론 특수학교에 특수교사이긴 하지만. 변혁은 장애여성이 만들어 냈건만...... 장애인을 위한 대학 정책을 실시 한지 22년이 지났지만 대학가는 장애 여성의 수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2001년 학교를 상대로 학습권 소송을 했던 숭실대 박지주씨의 투쟁으로 2003년 대학 장애학생 교육복지 지원평가제가 2년마다 시행하게 되었고 결국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 등 특수교육법에서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타 설치를 명문화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뒤이어 올해에도 경남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의 석사과정에 재학하는 송정문 (34. 여. 마산시 내서읍, 경남 장애인 자립 생활센터 협의체 대표)씨가 최근 대학의 학교 법인을 상대로 2천 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숫자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 장애인학생들보다 극소수에 해당하는 장애여성들이 두 번이나 소송을 제기했다는 일단의 사실만 보아도 장애여성의 교육 현실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낙후되어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반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운동의 선두에서 운동을 새로이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장애여성일진대 그 성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역시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대학 진학률이 현저하게 낮다는 것은 그만큼 초·중고등학교에서의 차별 역시 참혹함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저시력 학급을 오랫동안 운영해 온 서울의 여의도 고등학교의 경우 남녀 공학임에도 불구하고 여학생을 위한 화장실이 그나마 구색이라도 갖춰진 것은 불과 2~3년 전의 일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장애여성은 대학이나 심지어 야학을 다니는 것조차도 집안과 가족의 허락과 동의를 구해 내야만 가능하다. 교육에서 장애여성들은 여전히 1960년대 봉건적이고 권위적인 인식의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2013년 4월 연세대에 연세대 총여학생회가 게시한 성명서 자보 ‘장애여성 10명 중 0.5명만이 대학을 다니는 현실 이것은 크나큰 차별입니다.’   사회에 ‘능력’을 증명하는 것보다 사회로 하여금 장애를 인정하게 하는 일이 힘든 일인가? 장애여성이 ‘능력’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능력을 제대로 발현하고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95년도에 도입된 대학의 장애인특별전형제도는 도대체 어떤 기능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2002년도의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원래의 고등 교육의 목표- 전문직 진출을 통한 계층이동의 기회 확대, 학문 후속 세대의 지속적인 배출 - 이렇게 크게 두 가지 기능 그 어느 것도 장애인에는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제 발표의 내용대로 대학 교육을 받은 장애 여성 중에서 전문 직종을 제대로 고용이 되어 중산층 진입을 위한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한 장애 여성이 과연 얼마이며 학문 후속 세대로서 대학원 석박사 교수가 된 장애여성 교수는 아직 공식적으로 한 두명 밖에 없다. 그 중에서 일반적인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농아인 장애여성은 미국 Ohio State University 교육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 모 씨가 유일하다. 교육 차별에서의 장애여성의 이중적인 차별, 가부장적인 관점으로 인한 장애남성보다 열악한 가족들의 지원, 거기서 빚어지는 차별의 장애여성 스스로의 사회화 과정이 이 구조적인 고통 이면의 근본적인 본질일지 모른다. 게다가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는 장애여성들은 사업에 나와서 장애인으로서의 차별을 직접적으로 받기 전까지는 자신을 ‘장애여성’으로 솔직히 인정하는 경우는 고학력, 고학벌 장애여성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맞춤 준비도, 지원체계도 어려운 것이다. 사회가 장애인에게 차별이나 혐오를 인정할 수 없는 ‘무장애’ 사회라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아직까지 장애여성이 아무렇게나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 어학 학원 없는 실정에서 막막한 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문제는 중증 장애여성일경우에는 지원 받기 이전에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장애 여성들이 비교적 많이 진학하고 있는 특수교육과나 사회복지학과도 마찬가지이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난청 장애여성 한 명은 미국 대학에서 2명의 전문 문자 통역 속기사들의 지원을 받아 아주 고급 인력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는 늘 당당하고 비장애인과의 사회적 교감이나 매너도 상당하다. 하지만 문자 통역 하나 없는 침묵의 직장 생활 속에서 얼마나 그 당당함을 유지하고 직장 동료하고 소속감을 만들 수 있을까? 여전히 장애 여성들은 ‘우리’에게 없다. 「비평이란 것이 반드시 ‘그러므로 이래야 한다’는 결론을 맺는 연역적 전개를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 -연역적으로 나가면 결국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비평은 싸우는 사람들, 즉 현 상태에 저항하고 현 상태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 (미셀 푸코 Michel Foucault, 이데올로기와 의식)
2017-08-09 | hrights | 조회: 36 | 추천: 1
이동화/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활동가 3년 전, 팔레스타인 국제연대단체인 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 자원 활동을 했을 때 만난 칼리드 다라그마(Kalid Daraghmah)씨는 이스라엘 정착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크게 흥분했다. “그들(이스라엘 정착촌 주민)은 우리 농장과 집으로 내려와서 나무를 자르고, 음식을 가져갔어. 심지어 내 집 근처 샘에서 가족들이 집안에 있는데도 옷을 벗고 수영을 했어.” “또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그들은 집에 불을 질렀고 밤에 떼를 지어 와서 우리 가족을 공격했어. 하지만 이스라엘 군인은 나와 두 아들을 체포했고 감옥에 집어넣었지.” 그가 이렇게 정착민들에게 공격을 받은 이유는 그의 집과 농장이 ‘말레 레보나’와 ‘엘리’라는 이스라엘 불법정착촌(국제법상 팔레스타인 내 이스라엘 정착촌은 모두 불법이다) 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 베들레헴부근 알 후산 마을에 거주하는 라지 사바틴(Raji Sabateen) 역시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다. 대대로 올리브 과수원을 하고 있던 라지 사바틴은 1984년부터 마을 부근에 ‘베타르 일리트(Beitar Illit)’라는 최대 규모의 정착촌이 건설되면서 본인의 과수원은 몰수되고 과수원 사이로 철조망이 쳐졌다. 그는 15년 동안 법원 소송을 거쳐 2007년 이스라엘 고등법원을 통해서 최종 ‘베타르 일리트’정착촌 내 과수원 땅과 농작물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다. 팔레스타인 농부로는 최초의 법률적 승리였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베타르 일리트 정착민은 지속적으로 라지 사바틴 과수원의 올리브 나무를 훼손했고 농장에 불을 질렀다. 농장을 드나들 때도 정착민들은 농부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욕설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이스라엘 군을 철수했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대한 직접 또는 부분적인 관할권을 가지게 됐다. 이른바 “땅과 평화의 교환”이었다. 오슬로 협정으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에 의해 8~10미터 높이의 거대한 분리장벽으로 외부와의 출입이 철저히 봉쇄되고 고립되어 있다. 문제는 정착촌은 이 철저하게 고립되고 봉쇄되어 있는 지역 내에서 건설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설된 정착촌은 이스라엘 이주정책에 의해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단순히 정착촌만 확장되는 것이 아니다. 정착촌을 보호하기 위해 정착민은 자체 무장을 하고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의 보호를 받는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 군사시설도 따라서 건설되고, 정착촌과 정착민이 이용하는 도로와 각종 시설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또다시 장벽과 철조망이 건설된다.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덩치를 키우면서 그렇지 않아도 사는 곳을 제한받고 통제받는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야금야금 잠식해왔다. 위의 칼리드 씨와 라지 씨처럼 갈등을 유발하고 폭력을 동반하면서 말이다. 웃기는 사실은 정착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종교적 유대인들도 있지만 다수가 러시아나 아프리카, 다른 국가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이주비용 지원과 값싼 주택비용 등 경제적 이유로 이주한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본인들의 거주지를 둘러싼 갈등을 접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갈등을 내재화 한다. 지난 6월 20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에서는 25년 만에 신규 정착촌 건설이라고 하였다. 사실 기존의 정착촌을 계속 넓혀왔기 때문에 25년 만에 처음이라는 발표조차 사실이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2016년 12월 23일 유엔 안보리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중단’ 결의안을 미국을 제외한 모든 이사국(14개국)의 만장일치로 채택한 이후 신규 건설이라는 점이다. 비단 12월 23일 결의안 이외에도 유엔 및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은 법적 정당성이 없으며 명백한 국제법 침해에 해당한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늘 그렇듯 국제사회의 외침을 개무시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나라는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국가이고 법치국가라고 선전한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인한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지속되는 분리장벽건설, 난민반환, 이스라엘의 무장침공 및 집단처벌, 행정구금, 물과 올리브나무와 같은 자원 약탈 등. 하지만 현재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은 암처럼 퍼져가는 이스라엘 불법정착촌이다. 불법정착촌으로 수십 년째 고통을 받고 있는 라지 씨는 역설적이게도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과의 평화적 공존을 바랬다. 하지만 정착민들은 팔레스타인 주민이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오늘도 스스로 무장한 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하고 있다. 이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 누구의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지는 명백하다. 누군가가 여기는 내 땅이라고 외치기 전에 그들은 서로 잘 지내고 있었다.
2017-08-09 | hrights | 조회: 14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충청남도 의회는 2012년 5월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를 당시 도의원 전원의 공동발의로 제정 공포했다. 충청남도는 2014년 도민인권선언문을 선포하였으며 2015년에는 인권조례의 구체성을 강화한 조례 개정에 이어 2016년 12월에 충남인권센터를 개소했다. 15개 시, 군 모두에서 인권조례를 제정하면서 충청남도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자치단체 차원의 인권제도화를 진행해 오고 있다. 하지만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 2월, 충남기독교연합회 소속 목사 10여 명은 안희정 지사와 면담을 통해 인권조례와 도민인권선언문의 성적지향 차별금지를 문제 삼으며 공식적으로 인권조례 폐기를 요청했다. 이후 충남의 기독교계와 일부단체는 충남인권조례 폐지 청구 주민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실제 부여, 공주, 서천에서는 폐지청구가 접수되고 서산, 당진, 아산 등에서는 폐지 청구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지역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충북교육청은 지역 보수단체와 기독교계의 반대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충북교육공동체권리선언> 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2016년 4월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타운홀 미팅 현장에 이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난입해서 행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015년 대전에서는 <성평등기본조례>가 제정되었는데 지역 기독교계가 ‘성 소수자 보호 및 지원’에 대한 조항을 문제 삼으며 강력하게 반발하자 대전시 의회는 제정 한 달 만에 관련 내용을 삭제하고 조례명칭도 양성평등조례로 바꾸고 말았다. 박병철 시의원이 의원 발의한 <대전학생인권조례>는 2016년 4월 조례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반대세력들의 물리력 행사로 시작 10여 분 만에 취소되었으며 올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대전시 의회 교육상임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결조차 하지 않고 두 차례 연속 유보하며 사실상 폐기처분 되고 말았다. 이렇게 충청지역만 살펴보아도 최근 2~3년간 지자체 차원에서 새롭게 추진하거나 이미 시행되고 있던 많은 인권정책과 조례들이 무산되거나 위협받는 중인데 이러한 현상은 비단 충청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 전국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동성애 반대’를 이유로 ‘인권’이란 문구만 들어가 있으면 무조건 반대하는 일부 보수단체와 기독교계의 움직임은 상당히 조직적이며 교인들을 앞세운 물리적 반대 행동 역시 갈수록 위력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에 반해 지역의 시민사회 특히 인권 분야의 시민사회 역량은 허약해서 새로운 인권조례 제정은 번번이 막히고 멀쩡한 조례와 인권 제도마저 폐기하려는 시도에 대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전의 사례에서 보듯이 비이성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 반인권세력들의 준동을 막거나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할 지역의 정치인들은 지방자치선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 때문인지 오히려 그들의 눈치를 보거나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황을 계속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그 지역사무소 또한 마찬가지다. 원래 지역 인권조례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표준조례를 만들었고 이를 지역에서 참고하여 인권조례를 제정할 것을 권고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인권조례와 인권 제도를 공격하며 인권 고유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차원의 대책과 강력한 항의, 비판의 목소리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지난 6월 인권조례 폐지움직임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이른 충청남도 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조례 폐지의 적합성에 대해 의견을 문의하고서야 ‘성소수자 차별금지 규정 때문에 인권조례를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발표한 것이 그나마 지역 인권조례 문제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거의 유일하게 드러난 움직임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지역사무소 또한 기능적인 한계이기는 하겠지만, 인권교육과 진정, 상담 외에 주요 지역 인권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거나 반인권적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독교계를 앞세운 반인권세력들이 펼치는 지역 인권제도화에 대한 공격은 갈수록 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저지해야 할 지역 시민사회의 힘은 여전히 미약하고, 지역 정치권과 국가인권위원회도 별다른 대책이나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적소수자는 물론이고 학생, 노동자, 외국인노동자, 여성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구제하는 지역 차원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데서 일련의 반인권적 사태가 가지는 심각성이 크다고 하겠다. 유엔 차원에서 ‘도시인권’이란 개념이 만들어 진 후 2005년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리라는 도시가 유엔이 선정하는 '인권도시'로 선언되었고 이후 10개가 넘는 도시가 추가로 인권도시로 선정되었다. 2015년 미국에서, 올해는 독일이 동성 간의 혼인을 합법화했다. 하지만 2017년 대한민국의 지역 곳곳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도 아닌 단순히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하지 말자는 문구 때문에 법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던 법도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곳곳에 쌓여있던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혹은 시민사회 차원에서 대안과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지역 인권 제도에 대한 공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파도는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데 이를 헤쳐 나갈 배에 제대로 된 선장도, 조타수도, 항해사도 없는 것이 2017년 현재 지역 인권이 처한 상황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18 | 추천: 0
신혜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6월 30일. 독일에서 두 번째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날 독일 하원은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독일은 23번째 동성 결혼 인정 국가가 됐다. 동독 출신 동성애자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나에게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만큼이나 중요한 사건"이라고 밝혔는데, 과장이 아니다. 기독교 전통이 강한 독일인만큼 놀라운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기독민주당에 당적을 둔 메르켈 총리는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온 바 있다. “결혼은 남녀 간 결합”이라 생각한다며 이번 표결에서도 반대표를 던졌다. 과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 국민들을 가르던 이념 장벽이 해소됐듯, 이번 동성결혼 합법화는 배제돼 있던 성소수자 국민들이 독일국민이라는 울타리 안에 통합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 CNN 14일부터 17일. 서울광장에서는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국민통합’ 대통령 시대에 열리는 첫 퀴어축제다. 올해 초 대선토론회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성소수자의 존재는 찬반 이슈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토론 대상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성소수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다른 후보들도 “동성 결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심상정 후보만 “성소수자의 존재는 찬성하고 반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외교, 경제 이슈도 아닌 성소수자 이슈가 논의되는 이유는 성소수자들의 존재 자체를 격렬하게 부정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은 이 세력의 눈치를 본다. 소수를 ‘타자화’ 시켜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는 셈법이다. 정당성 없는 집단은 ‘타자화’ 전략에 기생한다. 타인과 우리를 가르는 손쉬운 방법으로 존재의 당위성을 획득하는 식이다. 국가도 종종 이런 식으로 자기 존재를 합리화한다. 주변국들을 ‘적국’으로 매도하며 악의적 선동을 일삼는 식으로 국민 통합을 다져온 국가들은 현대사에 널렸다. 독일 나치가 그랬고, ‘악의 축’을 외치던 미국이 그랬으며 ‘주적’ 논란이 계속되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계를 주축으로 한 보수단체들이 ‘성소수자 반대’ 만으로 ‘보수 결집’을 시도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기독교계 또한 ‘타자화’를 겪은 적이 있다. 초창기 기독교는 이단 취급을 받았다. 당시 기득권 세력은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보했다. 한국 기독교는 자신들이 걸어온 ‘고난의 길’, 즉 ‘다수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억압받는 소수가 되는 길’을 되돌려주고 있다. 한국 정치는 타자화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정치인들이 장악해왔다. 토론회에 성소수자 이슈를 끌어들인 홍준표 전 지사는 대선 유세 기간 내내 타자화를 통해 세를 구축해왔다. ‘좌파 세력에게 정권을 넘길 수 없다’고 호소하며 ‘좌파’라는 타자를 생산해 낸 게 대표적이다. 메카시즘에서 비롯한 ‘좌파 사냥’은 한국 정치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한 번 타자화된 대상은 ‘우리’ 안에 포섭되지 못한 채 적대시됐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통령 등 인권변호사 출신 한국 정치인들이 성소수자 혐오에 기대는 행태는 그래서 더욱 실망스럽다. 국민통합은 ‘타자’가 사라질 때만 가능하다. ‘2등 국민’을 생산하며 이룬 통합은 반쪽뿐인 통합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들, 장애인/비장애인,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은 이러한 타자화의 변주들이다. 한국 기독교계와 한국 정치인들은 각자 타자화 돼 온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 볼 일이다. 철학자 니체는 ‘타인은 나의 지옥’이라며 타인에게서 찾는 단점은 사실 내가 가진 단점의 투영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한국에서 이 명언은 재해석 될 필요가 있다. ‘타인’을 생성하는 순간은 내 인식적 편협함이 드러나는 순간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타자화 현상은 타자가 사라져야 해결되는 게 아니라 내가 인식을 바꿔야 끝나는 문제다. 한국의 베를린 장벽은 언제쯤 무너질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11 | 추천: 0
- 제주 오라관광단지 개발 인허가 절차 중단을 환영한다. 추후 완전 불허를 기대한다. 이현정/ 꽃씨네농작물 농부 6월 초에 일주일동안 일본을 다녀왔다. 이에시마(家島) 커뮤니티 활동을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제주의 한 방송국 시민자문단으로 동행했고, 제주의 지속가능한 미래 모습을 담은 해외 사례 촬영이었다. 이에시마는 일본 섬 속의 섬이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차로 1시간 40여분 서쪽으로 가면 히메지시가 나오고, 거기서 다시 배를 30여분 타고 들어간다. 인구는 5,500여명 규모이다. 외부에서는 이 섬에 들어갈 때 자동차, 오토바이 등 교통수단을 가져갈 수 없다. 모두 섬 안에 있는 교통수단을 활용해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생업에 종사하는 주민들, 지역 NPO 활동가와 회원들, 관광조합장, 여행객들, 행사 자원봉사자들과 외지 참여자들, 그리고 공공기관장까지. 사는 모습은 다 달랐지만, 이에시마 지역을 사랑한다는 게 크게 느껴졌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어업이 기간산업이었고, 100여년 전부터는 채석업도 이어져오고 있다. 반가웠던건 이 채석업 사업권이 지역 주민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대기업이나 특정 이익집단에 특권이 집중되어 있어 막상 지역 자원의 혜택이 주민들에게 크게 돌아가지 않는다. 제주도 마찬가지다. 제주 바람을 이용하는 풍력발전소 경우에도 외부 업체에 수익이 들어간다. 과거 제주 중산간 마을목장도 중요한 자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대다수가 골프장 등 대규모 개발업체에 팔렸다. 이에시마 항구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이에시마 지역 주민들은 알고 있었다. 100여 년 동안 채석업으로 주민들이 먹고 살았지만, 이제 몇 십 년 후면 이 자원은 유한하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부터 환경 보전을 고려하여 적정량을 채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업과 채석업 지역 기간산업에서 관광업을 새로운 산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에시마가 지닌 섬의 향기다. 이에시마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 지역에 자부심이 높고 친절한 사람들, 신선하고 맛있는 생선 요리들을 여행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십오 년 전부터 본격적인 커뮤니티 활동이 이어졌다. 마을만들기 연수회, 탐색되는 섬 프로젝트, 주민이 참여하는 이에시마 종합진흥계획, 마을사업 기금 설립 및 운영, 빈집 게스트하우스 프로젝트, 특산품 개발과 지역 공익사업 등이 펼쳐졌다. 그러면서 2007년에 주민들이 NPO법인 ‘이에시마’를 만들었다. 이 NPO는 어패류 특산품을 판매하고, 그 수익으로 마을만들기 활동을 전개하였다. 물론 이 커뮤니티활동 과정에서 주민들만이 아닌 외부 조력자들이 있었다. 바로 스튜디오-L 커뮤니티 디자인팀이었다.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야마자키 료 대표가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현재는 공익 커뮤니티 활동 규모가 작아졌다. 스튜디오-L팀이 몇 년의 활동을 마치고 떠난 후, NPO 등 주민들이 자립하는 과정에서 과도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에시마 사람들은 섬의 향기를 간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에시마 자연 환경을 잘 보전하고 활용해 주민들이 직접 관광업을 키워가고 있다. 이제 제주로 시선을 돌려보자. 어제 제주도청이 의미 있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몇 년 동안 논란이 컸었던 제주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 인허가 절차를 중단한다는 것이다. 제주도의회가 환경영향평가 마지막 심사를 하였고, 그 결과 도의회가 철저하고 투명한 검증을 도청에 요구하였다. 필자가 작년에 이 공간에서도 오라관광단지 개발 문제점을 쓴 적이 있다. 오라관광단지 개발은 제주시 북쪽 한라산국립공원과 붙어있는 아래쪽(해발 350~580미터)에 약 108만 평의 대규모 관광단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2021년까지 대규모 호텔과 콘도, 컨벤션과 골프장, 면세점과 백화점, 테마파크와 카지노 건설 등 6조 2800억 원의 역대 최대 규모다. 마라도 12배 크기에 상주활동 6만 명이라는 결국 중국인 상주 거대도시의 출현이다. 자연 파괴는 물론이고, 지금도 심각한 제주 지하수 상수도와 하수 처리 문제, 엄청난 쓰레기 처리와 교통 혼란, 대기질과 소음 오염, 거대한 부동산 폭등과 영세업자 상권 파괴, 중산간 고도 완화 파괴, 중국인 대규모 저가 관광과 환경 파괴 문제, 국제 투기자본의 전형적인 결과 출현 등이 자명하다. 개발 반대 활동 사진 출처 - 헤드라인제주 이제 이 사업은 모든 행정의 인허가 절차가 중단되었고, 장기간 유보되는 상황을 맞았다. 아직 완전한 사업 불허는 아니다. 제주도가 자본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선 자본검증, 후 절차진행을 하겠다고 한다. 실제 사업자인 중국계 거대 자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추진업체가 자본금 950억 원의 국내 기업 (주)JCC인데, 어떻게 이 업체가 6조원이 넘는 대규모 사업을 펼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주)JCC의 지분 100%를 보유한 곳이 버진아일랜드 국적의 투자회사 ‘하오싱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Haoxing Investment Ltd)’라 한다. 결국 이곳이 몸통인데, 국내 업체 사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심장이 없는 외국 투기 자본은 지속가능한 제주 그림이 아니라, 돈 되는 곳에 큰 빨대를 꽂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제주를 재앙으로 몰아가는 길이다. 결과적으로 이 대규모 개발사업은 불허되어야만 한다. 작년에 제주도에 1,6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여기저기서 자랑스럽게 밝힌다. 궁금하다. 실제 1,600만 명일까? 가족 만나려고, 또 일 때문에 온 사람들도 꽤 되는데 수치를 너무 높였다. 그리고 400만 명 외국 관광객 시대를 말하는데, 대부분 중국 국적이거나 화교계 사람들이다. 이번에 사드 여파로 한 국가에 편향된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또 질 낮은 저가 단체여행의 적나라한 현실도 나타났다. 이러한 상상을 해본다. 1,000여만 명이 딱 한 번 찾는 제주가 아니라, 100만 명이 열 번 오고 싶은 제주는 어떨까? 대규모 저가 단체여행으로 많이 찾아오는 제주가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곳에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제주 섬의 향기를 맡으러 오게 하면 어떨까? 그러려면 제주가 먼저 바뀌어야겠다. 대규모 개발 관광사업이 핵심이 아니라, 섬의 향기를 보여줄 아름다운 자연 환경, 이 땅에서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선보이자. 더불어 제주 도민들이 함께 협력하고, 그 관광업의 혜택도 누릴 수 있게 해주자. 살고 있는 도민들의 행복이 우선시되어야 관광업도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도 도민들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느린 속도로 가더라도 말이다. 이게 지속가능한 아름다운 제주를 만드는 길 아닐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11 | 추천: 1
이동화/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활동가   다음달 6월이면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이하 아디)에서 상근한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다른 단체와 마찬가지로 아디도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기에 사람들을 만날 때 부지런히 단체와 활동을 소개하고 후원을 요청한다. “아디는 아시아 분쟁지역에서의 피해자와 현지 활동가를 지원하는 활동을 합니다. 어쩌고저쩌고” 그럴때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상대방이 갸우뚱하는 느낌을 받는다. ‘뭔 소린지는 알겠는데 정확히 무슨 활동을 하는지는 모르겠다’는 그런 느낌?^^ 그리고 그 분들 중 일부는 순수한 취지로 “이런 활동(아시아연대)을 왜 하세요? 무슨 이유(계기)때문이에요?” 라고 묻거나, 일부는 “아시아 연대가 의미 있는지는 알겠는데, 한국에도 필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게 우리랑 무슨(어떤) 상관이에요?”라는 질문을 한다. 한국의 사회문제가 아닌 아시아의 인권과 평화를 위한 연대를 한다는 것이 많이 낯설고 그 필요성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연하고 충분히 이해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질문들에 답을 하고자 한다. 먼저 개인적 이야기를 풀자면, 국제연대 활동을 처음 접한 건 2003년 이라크 전쟁 때였다. 당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했고 그 부당한 전쟁에 한국정부가 참전하였다. 한국군의 파병결정은 많은 국민들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이 전쟁반대 파병반대를 외쳤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이라크에 직접 방문했을 때 나는 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사진과 글, 영상과 자료를 통해서만 접했던 이라크와 이라크인 들을 실제로 만났던 순간이다. 그 지역의 요르단 사람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만나 그들의 어려움과 문제를 알게 되고 공감했다. 소위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국제연대 활동가가 된 이유였다. 이라크 바그다드 알마시텔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사진 출처 - 필자 ‘아시아 연대활동’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낯설고 무겁게 여긴다. 쉽사리 함께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관점을 바꿔서, 아시아 연대활동을 ‘활동’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으면 어떨까? 아시아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 어쩌면 가족일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 나눴던 그런 ‘사람’ 말이다. 아시아 연대를 생각지 말고 그 ‘사람’과의 연대라고 상상해 보자. 그 사람이 한밤 중 폭탄이 떨어져 온 가족이 죽고 자기만 살아남은 전쟁의 공포 속에 두려움에 떤다면? 본인이 믿는 종교와 신념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살해 위협을 받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아시아 연대활동은 내가 잘 알고 있는 ‘그들’과의 연대이다. 왜인지, 어떤 이유인지 중요치 않다. 앞서 받았던 질문 중 “한국에도 해결해야할 사안이 많다”라는 이야기는 너무 당연하고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혹시나 그 문장속에 한국인 우선이라는 폐쇄성과 배타성이 담겨 있다면 그건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내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여성, 노동, 환경, 장애, 아동, 빈민, 교육 등등)에 대해서 어느 운동이 우선순위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운동은 자신의 영역이 항상 시급하고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연대활동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의 어려움에 대해 순위를 매기는 건 비겁하고 운동의 원칙에도 맞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연대하고 배려하며 함께 해야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시아의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 정도로 성장하고 정치와 사회, 문화가 현재의 위치까지 오게 된 데에는 외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518광주민주화항쟁에서 함께 했던 국제인권단체와 외국인 저널리스트의 노력, 군사정권시기에 한국의 양심수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던 많은 국제사회의 도움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시민사회는 여전히 한국의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수준에서 국제연대를 이해하고 있다. 또한, 요즘 한국내에서 이민자와 이주노동자,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차별들이 커지고 있다. 노동, 여성, 환경, 민주주의 등 지키고 개선해야 할 사회적 가치들이 위협을 받는 이 현상은 한 국가 차원을 넘어선 많은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들이다. 사회문제는 갈수로 세계화 되는데 그에 대한 저항이 한 국가 내에서만 이뤄진다면, 그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아시아 연대활동은 한국사회와 많은 연관이 있고 이제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9 | 추천: 0
10년, 인권교육에게 보내는 일기 같은 반성문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아빠가 담배를 비벼 끄고는 새 담배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슈나이더 씨의 말을 들으며 계속 머리를 흔들었다. “슈나이더 씨, 평화를 믿지 마세요.”」 한스 페터 리히터(Hans Peter Richter)의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중에서』   # 인권교육가는 인권적인 사람인가?, 인권의 전문가인가? 교육의 전문가인가? 글쓴이가 인권교육이란 이름을 걸고 강의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5년 즈음부터이다. 특수교육 등 장애인 교육법 시행으로 학교 현장에서 장애인 통합을 위해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인권교육을 시작하였고 장애인 활동보조인교육에서 비장애인 대중들에게 장애인 인권을 알렸다. 그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렇게 10년 넘게 심한 장애인 당사자로서 ‘인권’이란 이름으로 교육을 했지만 그동안 세상은, 사람들은 과연 인권적인 세상으로 인권적인 사람들로 변화하였는가? 보수 정권을 지나면서 인권은 정책도, 예산도, 인식도 모든 것이 퇴행하고 인권교육은 인성교육이란 이름으로 왜곡되기도 했지만 장애인 분야에서 인권 교육은 매일매일 터지는 학대와 착취, 시설비리등으로 양적으로는 많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소식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 도가니(2011)로 환기된 사회적 인식에도, -당시 사건 피해자가 다른 시설로 간 이후에도 최근에 다시 폭행을 당하는 등 또다시 인권침해가 불거졌다- 장애인 시설, 기관에서의 성범죄는 더 창궐하고 더 잔인해진 것만 같고 사람들은 인권침해와 차별을 더욱 은폐하고 교묘해졌다. 그렇게 인권교육은 오히려 처벌하고 단죄해야 할 인권의 문제를,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단순히 인권교육으로만 무마하려는 것은 아닌가? 개인의 인격의 문제로만 풀어내려는 것은 아닌가? 장애인 인권교육이 반대로 장애인 인권을 저해한 것은 아닌가? 그러나 장애인 인권교육을 통해서 그동안 비장애인들이 외진 곳까지 찾아가야만 겨우 만날 수 있는 장애인들을 이제 우리는 지역 사회에서 주민으로 직장 동료로 만나고 갈등하고 심지어 경쟁한다. 과거에는 차별 혹은 무시를 당할 기회조차도 없었던 장애인들의 인권적인 등장이 많아졌다. 또한 그 장애인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당사자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며 큰 소리로 외치며 차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가장 큰 저항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권유린의 소식이 많이 들린다고 해서 무작정 슬퍼하거나 절망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회에게 장애와 장애인에 대하여 더 많이 더 크게 더 자세히 시시콜콜 모조리 다 이야기해야 한다. 인권은 인권적 성찰과 인권적 공감과 인권적 실천의 반복적인 과정 그 자체이다. 바위로 계란을 쳐서 바위를 깨뜨리는 결과 아니라 바위에 던져진 계란의 흔적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저 차별과 반인권의 바위를 깨드려야 하는 것을 깨닫고 무엇인가를 던지게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늘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이런 원칙을 스스로 잘 지키고 있는가? 나는 장애인이자 남성으로서 이성애자로서, 비장애인이나 여성이나 동성애자 성소수자의 문제와 고통 차별을 공감하며 실천하고 있는가? 사적이든 공적이든 누구랑 있든, 혼자 있든 항상 매 순간 인권의 스위치를 켜고 행동하고 있는가? 그것을 끌어내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늘 반성하고 질문 하면서도 지레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 어떤 교육이 장애인 당사자에게 자부심을 주는가? 사진 출처 - 필자 인권침해와 차별을 구조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교육으로 방지하고 구제할 수 있는가?있다면 어떤 교육이, 어떤 교육가가 그런 교육을 할 수 있는가? 작금의 장애관련 인권교육이 그것에 충실한가? 남성들이 여성학을 열심히 공부만 한다고 해서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가사 분담과 육아를 공동으로 잘 실천할 수 있는가? 그리고 여성들이 여성학을 공부하고 페미니즘을 알면 자신이 여성인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하고 도리어 남성이 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여성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는가?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장애는 예방되어야 하고 고통이자 불행이라고 하면서, 장애인을 존중하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장애인을 공포의 존재로 만들고 있지 않는가? 과연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자고 90년대부터 시작한 ‘장애인인식개선’ 이라 이름붙인 운동이나 교육들이 실제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 시켰는가? 그리고 비장애인들의 ‘인식’만 개선되면 인식이 개선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사랑과 배려의 마음으로 고용을 늘리고 지역 사회에 특수학교와 생활이용시설을 유치했는가? 인권이란 단어에 대한 거부감과 이념의 알레르기 반응으로 대신 쓰기 시작한 장애이해교육은 진실로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을까? 그리고 그렇게 이해가 증진되면 장애인의 억압과 차별은 사라질 수 있을까? 넘쳐나는 장애관련 정보들이 오히려 효과적인 차별과 혐오의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가? 명문대학을 다니고 있는 장애인 대학생의 인권과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의 인권은 동일한 것일까? 대학생들이 시설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반성하면서 탈시설을 실천하거나 시설로 들어가 변화시키려 하는가? 장애체험교육은 장애로 인한 고통을 체험하는 것인가? 아니면 장애로 인한 차별과 부조리를 경험하는 것인가? 다시 묻는다.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장애인 당사자가 바라보면 장애인으로서 자부심이 생기는가? 아니면 자신의 장애를 부정하고 비장애인으로 환생하기를 꿈꾸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에게 장애인 자녀를 낳는 것도 장애인 부모가 되는 것도 생물학적으로는 슬프지만 사회적으로는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깨닫게 할 수 있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고용할 수 있는 힘과 가치를 주고 있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에게 장애인과 같이 연애하는 법을, 가족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하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이 시간이 흘러 여러 가지 일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들이며 나름 즐겁게 살 수 있는 힘과 길을 만들어 주고 있는가? 다시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권’변호사가 이제 대통령이 되었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고 취임사에서 밝혔다. 아직 당신의 입에서 ‘인권’은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후보시절에는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부정했고, 그의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를 이유로 인권에게 나중이라고 외쳤다. 그래 원래 정치는 그렇다.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은 늘 그랬고 인권적인 사람이라던 문재인은 정치인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은 원래 그렇다. 핵심은 우리다. 인권을 신념으로, 인권을 직업으로, 인권을 활동으로 하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가? 그에 대한 기대가 연예인의 팬클럽처럼 치솟는 지금, 그런 지지자들의 여론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기사 토씨 하나하나 민감한 그들에게, 그들은 인권의 기준으로, 인권의 원칙으로 인권감수성, 장애 감수성을 민감하게 가지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부터 인권활동가는 신발끈을 조여야 한다. 주먹을 높이 들고 깃발을 올려야 한다. 그게 인권 대통령을 만드는 길이다. 나중은 없다. 양보도 없다. 모든 사람에게 인권으로 자부심을 가지도록. 사진 출처 - 필자 덧붙임) 2007년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 일명 NAP, 2007~2011)수립 이후 공공기관에서의 인권교육이 의무화되었다. 그러나 포괄적인 인권교육은 국가 정책이나 지침으로 의무화되거나 국가인권위원회법 안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작 국회를 통과한 인권교육 관련법은 2014년 유승민 의원이 발의하고 스스로 폐기한 이후 단 하나도 없다. 단지 세월호 참사 핑계로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과 같은 국가주의와 가부장주의를 강요하며 만들어진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이 오히려 교육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기관과 단체에서는 법정의무교육이란 이름으로 인권과 관련한 여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기도 하고 법적인 기관 평가에 반영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직장내성희롱예방교육,개인정보보호교육,성매매,성폭력예방교육 등이 공통적인 교육이고 기관의 특성에 따라 받아야 할 추가 교육 등이 관련 법이나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다. 장애인식개 교육과 종사자인권교육과 같은 장애인 인권교육은 장애인 복지법, 발달장애인법, 장애인차별금지법, 특수교육법 등에 개별 명시되어 있지만 그 강제성이나 실효성은 낮은편이다. 과태료와 같은 처벌조항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인권교육은 모든 인권교육의 길로 향해 있어야 한다. 장애인 인권교육을 하면 할수록 다른 인권들도 함께 실천되어야 한다. 다른 인권교육이 잘 수행된다면 장애인 인권도 자연스럽게 따라와야 한다. 사진 출처 - 필자 「교육의 목적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에 있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 것인가를 가르치는 데 있다.」 (삐디이)
2017-07-12 | hrights | 조회: 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