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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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다솜(미디어 활동가),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대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손상훈/ 교단자정센터 원장 지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교계 인권운동의 대명사였던 J스님은 서울 조계사 대웅전 마당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성명과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 관계자들에 의해 조계사 밖으로 내 몰렸다. 당시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많았고 여전히 못 믿겠다고 하는 분도 있다. 최근 현대사를 연구하는 한 분도 스님의 행동을 처음 들었다고 믿기 어렵단다. 민주화 운동을 하는 영령들의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일반적인 승복이 아니라 검은 옷을 입겠다고 했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탁을 치면서 거리를 다니던 분이 한 일이라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시위 현장에서 약자의 편에 서던 이 스님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소외당하고 미래가 막막해 보이는 것, 승려라도 견디기 힘든 보상받고 싶은 심리,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부패한 종교권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전후에서 불교계 여러 종단의 총무원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거나 맡았던 이가 서로 ‘대통령 후보와 여당’에 잘 보이려고 경쟁하는 사례가 많았고 그 일부가 언론에 보도 되었다. J스님의 기자회견을 막은 총무원도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서로 지지하고 잘 보이려다 일어난 일이라는 지적이 더 설득력이 있다. 또한 조계종 한 교구본사 행사에서 주요한 직책을 맡은 승려이자 관계자는 신라시대 모 여왕이 다시 태어났다며, 박근혜 후보를 칭송해 언론에 보도 되었다. 총선을 앞두고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유력 후보들을 잇달아 찾아다닌 가운데,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 “종교인의 정치개입행위는 자제되고 근절되어야 마땅하다”며 “정교분리원칙에 따라 선거개입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은 자승스님이 새누리당 나경원 후보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나경원 후보 페이스북 화면 캡쳐.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차량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인사를 나눈 것 뿐”이라는 답변 역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승스님과 해당 후보자들과의 만남 과정, 이동 경로 등이 SNS를 통해 모두 공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진=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 페이스북 화면 캡쳐.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그러나 당시 조계종 총무원의 공식적인 입장은 선거 엄정 중립이다. 조계종은 대변인을 통해 여러 차례 승려 개인의 행동으로 조계종 전체의 뜻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미 지난 일이고 널리 알려진 일을 새삼 꺼내는 이유는 2017년 12월 20일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특히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도 종법에 명시되어 있어 2017년 10월에 개최되어 ‘부패한 종교권력’이 되고픈 극소수 권승들이 정치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역사를 보면, 국가권력을 짝사랑하거나 이권을 독점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시녀역할을 한 교훈은 많다. 멀리 고려 말의 부패한 불교계의 사례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1994년 ‘상무대 비리 사건’은 당시 서의현 조계종 총무원장과 신도회장 그리고 정치권이 맞물린 사건이다. 현재 불교계는 이런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른 목소리를 내는 불교계 인터넷 언론에 사찰 광고를 내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기고나 글을 게재하면 총무원 호법부에서 징계하겠다고 한다. 지난 해 동국대에서 한 학생이 50일 단식을 하고 만들어낸 조계종의 결단 가운데 청량한 조치는 아직 매우 미흡하다. 이사진은 모두 사퇴했지만 총무원장의 뜻에 거스르는 인사는 없어 보인다. 특히 학생들로부터 논문표절, 글 도둑질 의혹을 받고 있는 현 동국대 총장은 자신의 논문 표절을 심사할 재심위원회를 지난 해 3월 이후 구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1년 4개월 동안 늘어진 재심 때문에 학생회 회장단은 일본으로 가 대학과 일본 언론에 호소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수백억 원을 지원받는 종교단체로서 반복되는 국고보조금 횡령사건의 근절대책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또한, 동국대 총학생회 등 문제를 제기하는 학내 구성원에게 신뢰받는 조치를 해야 한다. 현 총장의 재심위원회를 구성하고 빠른 시일 내에 논문표절 의혹을 검증하여, 진실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지난 1994년의 ‘상무대비리’ 역사를 교훈 삼아 ‘부패한 종교권력’이 저지른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갈수록 집중되어 가는 총무원장의 권한에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무성하다. 중앙정부나 산하 공단의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거나, 적극 추천도 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인재를 추천하는 것이니 문제가 없다지만 자칫 내 사람 심기로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부패한 종교권력’을 구별하는 방법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종교 자체적으로 정한 ‘종헌 종법’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총무원장이나 유명 사찰의 주지 같은 종교계 지도자는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 정신을 유린하거나 파괴하는 애매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지난 총선 당시 나경원 후보나 박영선 후보 선거과정에서 총무원장이 전통시장에서 사진을 찍는 행동은 부적절한 행동이다.   조계종언론탄압대책위. 국회공청회 사진 출처 - 불교닷컴, 조계종언론탄압대책위 총무원장이 특정 후보의 선거를 돕는 이미지를 주는 것으로 해당 지역구 다른 후보에게 역차별을 주는 일은 신중했어야 했다. 또한, 1만여 명을 동원하여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한 집회에 내건 ‘총선필패’라는 현수막과 피켓도 마찬가지다. ‘조계종 한전부지 환수위’가 게시했다고 하나, 책임은 총무원장에게 있는 것이고, 민감한 총선선거기간에 조계종의 권익을 위한 무분별한 모습이었다는 혹독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행위가 쌓이고 사과와 참회, 행동의 수정이 없다면 결과적으로 ‘부패한 종교권력’이 되어 갈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조계종 총무원장은 반복되는 국고보조금 횡령사건, 동국대 총장의 글 도둑질 의혹, 부도덕한 동대 이사 파견, 불교 언론 탄압 등 시민사회 단체가 지적하는 사항에 ‘공식사과’를 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동국대 총장 인사에 개입한 행적을 사과하고, 사립학교법에 명시한 덕망 있는 이사를 추천해야 한다. 또한, 이웃 종교계 사립학교의 기준이라도 참고해 동국대를 정상화 시켜야 한다. 총무원장이 책임져야 할 일로 학생이나 평신도가 1년 넘게 집회와 시위를 하지 않도록 특별하고 시급한 조치를 촉구한다. 참고 ■ 상무대 비리란 대선 정치 자금 40억 원 유입…조계종 총무원장과 정치권력 유착 사례 1994년 조계종 종단개혁 계기 정부가 광주 민주화운동 명예회복사업으로 추진한 상무대 이전공사에서 공사 수주업체인 청우종합건설 회장 조기현 씨가 6백 99억 원의 선급금 중 233억 원을 유용했다는 사건이다. 이중 80억 원은 대구 동화사 대불 건립비로 시주하고 40억 원을 대선 직전 여권 고위층에 정치자금으로 헌납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노태우 정부 아래에서 안기부장, 참모총장을 역임한 실세와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에게 돈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1994년 2월 25일 민주당 정대철 의원이 국회 국방위에서 폭로한 이 주장에 따라 국회는 국정조사권을 발동, 조씨와 서의현 전 조계종 총무원장 등 10명과 청우종합건설 관계자와 대불 조성 당시 동화사 주지 등 불교계 인사 20명을 참고인으로 채택해 조사를 벌였으나 진상규명에는 실패했다. 검찰은 조씨가 동화사 시주금으로 80억 원, 법회비로 44억 원, 차입금 변제로 44억 원, 업무추진비로 34억 원, 개인빌라 구입에 20억 원을 쓰는 등 회사돈을 횡령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고 조씨는 이해 11월 1심에서 횡령죄로 징역3년을 선고 받았다. 상무대 비리는 종단 권력자와 신도가 돈을 매개로 연계되는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결국 부정한 고리가 종단개혁의 단초를 제공했다. 정부 관급공사를 확보하기 위해 권력자의 힘이 필요했던 건설업자와 종단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종단 최고위층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정치권은 종교단체를 통해 들어오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긴 비자금을 받는 대신, 민원을 들어주는 부패를 매개로한 연결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4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 가운데 적잖은 분들이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던 게 불행이라는 인식을 공유한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저 광대한 만주벌판이 지금도 우리 영토였을 텐데’ 하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고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지라고 배우는 게 아니다. 부동산 투기를 고대사까지 확장하라고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진짜로 고민해야 하는 건 오히려 ‘왜 고구려·백제가 아니라 신라였을까’ 하는 주제다. 헬조선 탈출 해법도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 지도를 펼쳐 보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고대사회는 농업생산력이 국력이던 시절이다. 농경지가 부족한 신라는 약소국의 숙명을 타고났다. 험준한 자연지형이 방어벽이 돼 주는 게 그나마 행운이었다. 초기에는 가야한테 치이고, 고구려 속국으로 전락한 적도 있었다. 7세기엔 날이면 날마다 외침에 시달리는 말 그대로 ‘헬 신라’였다. 그런데 어떻게 신라였을까. 고구려·백제의 분열과 당(唐)나라와 고구려의 갈등 같은 외부요인들 덕분에 어쩌다 보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온 것일까. 삼국은 모두 강력한 신분제 사회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민(人民)은 원래 고대사회에서 지배계급인 인(人)과 피지배계급인 민(民)이라는 완전히 다른 신분을 가리키던 용어다. 당시에 ‘민’이란 말 그대로 개·돼지나 다를바 없는 존재였다. 골품제라는 건 ‘인(人)’ 중에서도 많아봐야 수백 명에 불과했을 극소수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였다. 역사 시간에 배웠던 성골과 진골을 생각해보면 금수저도 이런 금수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신라에선 극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신분제를 조금은 완화하는 개혁 조치를 취했다. 가야 왕족 출신인 김유신이 태종 무열왕을 도와 신라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으로 활약했다는 점, 화랑 제도를 통해 특진이라도 할 수 있었던 이들이 존재했다는 점이 그런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은 김유신이 전장에서 무단이탈했다는 이유로 친아들인 원술을 내쳤다는 점이다. 그 정도 책임감이 있었기에 지배계급으로서 부하들에게 희생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신라는 지배집단이 단결해서 국가능력을 총동원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캐스트 외교를 통한 통일이라는 것도 손쉽게 폄하할 문제가 아니다. 신라로서는 고구려와 백제한테 고립돼 있었다.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외교는 필수다. 적어도 김춘추, 그러니까 태종 무열왕은 목숨을 걸고 직접 험난한 바다를 건너 당나라를 찾아가 동맹관계를 맺었다. 뒷날 신라는 국가의 명운을 걸고 당나라에 맞서 대규모 전쟁을 치렀고 승리했다. 국제관계에서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을 당시 신라 지배층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고구려나 백제는 당시 국제관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 했다. 물론 신라는 통일 이후 안정을 찾자 급속히 옛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신분제가 다시 공고해지며 활력을 잃어갔다. 그 결과 후고구려, 후백제, 고려가 차례로 등장해 결국 신라를 무너뜨렸다. 왜 고구려·백제가 아니라 신라였는지 생각해보면 왜 견훤이나 궁예가 아니라 왕건이었는지 납득이 간다. 결혼동맹을 통해 지배세력을 단일대오로 묶어냈고 신라를 전략적으로 우대함으로써 스스로 항복하도록 유도했다. 견훤은 군사령관으로선 정말이지 특출난 영웅이었고 전투에선 여러번 왕건을 패망 직전까지 몰아붙였지만 끝내 전쟁에서 이긴 건 왕건이었다. 신라와 고려를 되돌아보면 지배집단, 요즘말로 국가 엘리트들이 전략적인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위해 힘을 합하는지, 그리고 적절한 양보와 솔선수범을 통해 민중들의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 특히 국제관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외교에 힘을 쏟는 것은 국가의 생사를 가른다. 안으로는 '개·돼지' 피를 빨아먹는 것으로 호구지책을 삼고, 밖으로는 호구짓과 동네북으로 일관하는 21세기 한국 집권 집단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금수저들이여, 야망을 좀 가져봐라."
2017-07-12 | hrights | 조회: 29 | 추천: 0
이동화/ 아디 사무국장   사람들에게 저를 소개할 때 셀림이라고 합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찾아간 바그다드에서 동네 아이들이 저를 보고 “셀림, 셀림”이라 불렀을 때부터였고, 뜻은 아랍어로 건강한 청년, 한국어로는 돌쇠나 마당쇠 정도일 것입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서 저를 셀림이라고 소개하며 힘들었지만 즐겁게 반전, 반점령 활동, 그리고 아랍어 공부를 하였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운이 좋게 민변이라는 훌륭한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민변에서 국제연대 및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조금씩 셀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주저했습니다. 아무래도 국내인권상황을 중심으로 활동했기에 마음속으로 현장에 대한 부채감이 더 쌓여갔기 때문이겠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의 부담이 커져갔습니다. 사진 출처 - 필자 꽤나 긴 시간 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활동가의 삶과 가장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였습니다. 그리고 2년 전 다시 팔레스타인에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그곳 친구들을 만나면서 고민했던 것들이 서서히 풀렸습니다. 그곳도 현장이고, 한국도 현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생존 그 자체도 녹록치 않지만 본인들의 존엄성과 권리를 위해 저항하며 싸우는 모든 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현장이었습니다. 반드시 팔레스타인이고 이라크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시아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그들과 함께 할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했고, 현장의 현실을 한국에 알리고 한국에서 사람들을 조직하고 활동을 진행할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주변에 함께 할 사람을 찾으려 할 때 아디가 곁에 있었습니다. 우연과 인연이 만나는 순간이었지요. 저는 20대 때 학생운동을 했고,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을 다녀오면서 현장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30대에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민변에서 국제연대활동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40대 초반인 지금 3명의 아디 활동가분들과, 한국에서 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이 지켜지는 세상을 꿈꾸는 여러분들과 함께 10년의 활동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조금 천천히 갈지라도 현장과 주변의 활동가들과 함께 긴 호흡으로 꾸준히 가보려 합니다. 이 공간을 빌어 아디의 시작을 알립니다. 감사합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7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인권이 ‘지역’과 만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인권의 보편성에 관한 것이다. 대한민국 내에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지역에 있건 차별 없이 헌법적 권리와 인권을 보장받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대상이 청소년이라 해도 보장받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2016년 대전지역 청소년들의 인권보장은 자동차로 불과 1~2시간 거리에 있는 서울, 경기, 충북, 전북, 광주지역의 그것과는 현격히 차이 나게 낮은 수준을 보인다. 30분~1시간이나 이른 등교 시간, 자율이 아닌 강제 야간학습,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행해지는 체벌, 수준별 이동수업이라고 포장되는 차별 수업, 매 학기 언제나 치러지는 일제고사 시험, 초등학교까지만 지원되는 무상급식 등 대전지역에서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청소년들의 삶은 적어도 인권적 기준에서는 다른 지역과 비교를 해도, 절대적 기준을 들이대도 문제투성이다. 대전지역이 이렇게 청소년 인권에 대한 문제점들이 끊임없이 나열되는 청소년 인권침해 지역이 된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첫 번째 지적되는 문제점은 학생 인권에 무관심한 대전의 교육행정이다. 대전은 대구와 울산, 경북과 함께 교육감 직선제 이후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이 한 번도 당선된 적이 없는 광역도시이다. 대전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부산, 경남, 인천 등의 지역은 2014년 지방자치 선거를 통해 첫 진보교육감을 배출했지만, 대전은 진보교육감을 자처하는 후보가 두 명이나 출마하는 바람에 보수적인 성향의 설동호(前 한밭대 총장) 씨가 비교적 낮은 득표율인 31.42%를 득표하고도 무난하게 당선됐다. 이것은 특정 개인의 당선 여부를 떠나 인권 개념 자체가 가진 진보적인 성격을 고려했을 때 보수성향 교육감의 연이은 당선은 매우 아쉽고 지역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책임성도 느껴지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보수적 성향의 교육감이 연이어 펼치는 지역 교육행정은 학생 인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반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거의 100% 수용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2011년 무상급식 도입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대부분 무상급식을 도입했던 다른 시도 교육청과 달리 당시 김신호 교육감은 끝까지 무상급식에 대한 반대 소신을 굽히지 않다가, 마지못해 초등학교 일부 학년에 대한 무상급식을 전국에서 맨 나중에 도입했다. 이 밖에도 전교조 등에서 성적을 통한 학생들의 줄 세우기와 무한 경쟁을 유발하고 불필요한 선행학습과 사교육을 부추길 우려를 들어 일관되게 반대를 주장하고 있는 일제고사는 매 학기 치러졌지만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 규정에 의해 한 학기에 한 차례 이상 의무적으로 시행되는 학생 대상의 인권교육은 접하기 힘든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의원입법으로 제정하려고 했던 대전학생인권조례는 지난 4월 25일 공청회에서 현 교육감 지지 세력과 개신교, 보수단체 세력들이 물리력으로 행사 자체를 저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학생인권조례와 함께 교육현장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혁신학교 또한 대전에서는 거의 무풍지대이다. 경기도의 경우 관내 2,250개의 초, 중, 고등학교 중에서 혁신학교는 2015년 3월 현재 356개로 15.8%에 이른다. 하지만 대전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민선 자치 이후 이제껏 대전시의 교육행정에 학생 인권을 기준으로 한 변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전지역의 학생 인권침해가 심각해진 두 번째 원인은 시민사회와 학부모의 무관심을 지적할 수 있겠다. 대전은 올해 박병철 시의원의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가 있기 전까지는 교육청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의와 시도가 없었던 지역이다. 서울과 전북, 충북, 경남 등의 지역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시민들이 제정운동을 하고 시민발의 형태를 취하는 지역 교육 개혁 운동의 한 형태로 발전했지만, 대전은 그러한 시도가 없었다. 참교육 운동을 앞장서 펼쳐왔던 전교조의 활동이 유독 대전에서는 조직력이나 활동력에서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교조 외에도 대전지역 내에서 지방권력 감시, 환경, 노동, 통일운동 등이 나름 활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고려한다면 교육과 학생 인권에 대한 지역 시민사회의 이러한 무기력은 아쉽기만 할 뿐이다. 사진 출처 - 굿모닝충청 학생 인권에 관심이 없고 쟁점이 되지 않는 지역 분위기와 맞물려서 대전지역의 학부모 성향 역시 자녀들의 성적에만 관심이 있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다. 매 학기 시행 여부를 놓고 교육시민단체와 힘겨루기를 하는 일제고사 시행도 대전지역 대부분의 학부모는 문제 제기는 고사하고 시험일정이 발표되면 시험 준비에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형편이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비유가 될 수 있겠지만, 보수적인 교육행정 때문에 학부모의 성향이 그렇게 굳어 버린 것인지, 원래부터 대전지역의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성적 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대전지역 학부모 분위기에서 학생 인권이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기에는 무리라는 것은 대체로 지역사회의 일치된 의견일 것이다. 문제는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다는 데서 대전지역 학생 인권침해 문제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대전지역의 학생 인권침해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면 애거사 크리스티의 유명한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이 떠오른다. 유럽횡단 열차를 배경으로 열차 안이라는 밀실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과 용의자로 의심받는 12명의 승객을 소재로 다룬 추리소설의 걸작에서 왜 대전의 학생 인권이 뜬금없이 생각났을까? 적어도 학생 인권과 관련해서는 다른 지역과 소통하지 않은 밀실과 같다는 점에서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의 주 무대인 기차 안이 주는 막연한 답답한 분위기와 대전의 학생 인권 관련 분위기는 많이 맞닿아 있다. 또 하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에서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은 누구였던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대전 지역의 학생 인권침해가 심각해진 원인과 책임을 묻는다면 이는 아마도 대전지역의 학생을 둘러싼 모두가 원인 제공자고 책임주체가 아닐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36 | 추천: 0
제주 에너지 민주주의 운동은 미래 한국의 모델이다 이현정/ 꽃씨네농작물 대표   에너지 민주주의. 생소한 말이다. 최근에 부쩍 많이 등장한다. 관련 책도 나왔고, 주장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에서도 그렇다. 말 그대로 에너지와 민주주의의 결합어다. 에너지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시민(주민)들의 참여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이 왜 나왔을까? 결국 누군가는 뺏기고, 또 누군가는 혜택을 누리는 게 과연 정의로운가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작년 11월 11일, 무슨 날이었을까. 아, 특정 과자 날이기도 하지만, 이 날은 에너지 민주주의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날이었다. 바로 영덕 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의 날이었다. 이틀 동안의 투표 결과는 91.7%의 압도적인 반대였다. 물론 현재 정부와 영덕군은 투표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주민투표법상 효력을 발휘하는 전체 유권자의 1/3 투표율에 부족하다는 이유다(당시 투표율 32.5%). 그러나 투표인명부 기준으로는 60%, 부재자를 제외한 총 유권자 대비로는 41%를 기록할 정도로 영덕 주민들의 투표율은 매우 높았다. 당시 영덕 지역사회는 투표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영덕의 미래는 우리의 손으로”라는 목소리를 냈다.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주도적으로 인식하고, 공유하고, 여기에 투표로써 의사표현을 하였다. 핵발전소라는 에너지 문제가 동반되었기에 결국 에너지 민주주의 운동의 확장이었다. 민간주도 주민투표의 특성상 부재자를 제외한다면, 실제 투표율도 41%라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최근에는 핵발전소 유치 무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에너지 기업 이익 추구에만 집중된 작금의 현실에서 거주민의 당연한 권리를 되찾아가는 영덕 시민사회에 경의를 표한다. 영덕 핵발전소 주민 찬반투표 사진 출처 - 뉴시스 우린 또 하나의 위대한 저항을 기억하고 있다. 바로 밀양 할매, 할배들의 초고압 송전탑 반대 투쟁이었다. 7년 동안 주민 2명이 스스로 생명을 던졌고, 수백 명이 입건까지 될 정도로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결국 2년 전, 공권력의 강제 행정대집행으로 송전탑은 끝내 건설되었다. 하지만 이후 한전이 신울진-신경기 765㎸ 송전선로 사업을 포기하였고, 야간 행정대집행 제한 법안도 만들어졌다. 더불어 지금도 주민들은 한전 합의금 수령을 거부하면서 끝까지 싸우고 있다. 밀양 할매와 할배들, 그리고 함께한 연대한 분들을 존경한다. 이런 반면에, 우리는 최근 매우 나쁜 소식을 접했다. 이명박 정부가 해외자원개발, 4대강 공사에 에너지 공기업들을 무분별하게 동원해 부채가 급증했다.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로써 국민들의 빚이 또 쌓여간다. 결국 축소와 폐업을 한다는데, 그렇게되면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에너지 분야 또한 민영화 수순을 밟거나 일부 대기업에 특혜를 줄 수도 있다. 잘못은 이명박 패거리들이 저질러 놓았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을 처지다. 이렇듯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의 투명한 정보공개와 시민(주민) 참여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에너지 정책과 산업은 전문적이고 큰 자본이 들어가다 보니 엘리트들이 밀실에서 추진한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에너지 민주주의 운동은 중요하다. 더불어 이 운동은 과정뿐만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간다. 예를 들면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는 핵발전소를 없애지 않는 한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 대안으로 지역 분산형 에너지를 준비해야 한다. 필요한 지역별로 풍력과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만드는 것을 확대해야 한다. 결국 자기 동네가 쓸 것은 지역에서 만들어 쓰는 게 가장 최우선 과제이다. 이제 제주도로 눈을 한 번 돌려보자. 왜냐고?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체제의 미래 축소판이 어찌 보면 이 곳 제주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분단된 섬나라다. 제주도와 다르지 않다. 현재 제주도는 풍력과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작년에 9.3%를 차지하면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육지는 보통 4~5% 정도다. 또한 추가적으로 화력과 핵발전소 건설이 아니라, 지역분산형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이 제주도 모델이 결국 몇 년 뒤 육지 모습이기에 제주의 에너지 민주주의 운동의 확장이 매우 중요하다. 그럼 제주도가 잘하고 있는지 한 번 보자. 제주도정은 현재 카본프리아일랜드2030 정책을 펼치고 있다. 즉 2030년에는 탄소가 없는 섬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그 내용이 달라진다. 2008년, 2012년 발표 때와 2015년이 다르다. 2012년 발표 때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100%로 채우겠다더니, 작년 발표 때는 약하게 궤도를 수정했다. 중요한 에너지 정책이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다. 기술적으로 너무 무리한 목표 설정이었다. 또한 예산 확보도 제대로 안 되면서 장밋빛 선전만 앞세웠다. 최근엔 제주 풍력, 즉 바람에너지 공유화에 대한 주장도 있다. 현재는 에너지 개발이익이 에너지 기업에 크게 돌아간다. 제주도민의 이익은 없다. 해당 마을 주민들에게 약간의 보상금이 주어지고 있지만, 전체 도민을 위한 것은 아니다. 또한 에너지 기업이 중산간 지역이나 바다에 무분별한 막개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제주에너지공사가 이처럼 하니 풍력발전 개발대행회사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결국 풍력과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 확장과 제주에 부는 바람은 제주의 공동 자산이 되어야 한다. 제주 풍력발전단지 사진 출처 - 시사제주 결국 제주에서 에너지 민주주의 운동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앞서 봤듯이 제주는 우리나라 에너지 체제의 하나의 축소판이자 미래 모습이다. 정보 공개를 바탕으로 한 시민(주민) 참여가 에너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또한 우리 지역 에너지 자원 이익은 지역에 환원돼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확장되어야 한다. 제주에서 부는 바람은 제주도의 공동 자산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4 | 추천: 0
다솜/ 미디어 활동가   이 시대 청년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년작)을 떠올렸다. 40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청년들이 살아가던 모습은 어땠을지 다시 한 번 제대로 관찰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청년들의 삶은, 과연 지금과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달랐을까. 우선 <바보들의 행진>은 입영을 앞둔 청년들이 신체검사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겨우 속옷만 하나 걸친 벌거벗은 몸이 화면을 메운다. 가진 거라곤 맨몸뚱이밖에 없는 청년들의 이미지다. 이어서 장면은 청년들이 서둘러 미팅을 조직하는 모습으로 전환된다. “꿈에서 아직 덜 깬 아이들은 내일이면 모든 게 끝날 듯 짝짓기에 몰두했”다던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라는 곡이 저절로 생각난다. 혐오감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경찰이 긴 머리를 단속하던 권위주의 시대, 병태와 영철은 혐오스러운 장발을 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경찰서에 끌려간다. 둘은 경찰의 훈계를 듣고 있는 와중에도 혹여나 미팅 시간에 지각이라도 할까 벌벌 떤다. 그러던 두 사람이 경찰의 감시를 피해 도망간 곳은 ‘낙궁’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미팅의 성지다. 즐거울 락에 집 궁이라는 한자를 떠올리게 하는 ‘낙궁’은 상실감과 우울이 청년들을 잠식한 시대, 유일한 즐거움은 연애가 아니었을까 하는 궁금증마저 심어준다. 그도 그럴 것이, 술집에서 그야말로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버린 주인공이 읊조리는 대사가 바로 “내 힘으로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어요”, “우리는 쪼다예요” 같은 자조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 씨네21 사귈 듯 말 듯 끊임없이 친구와 연인 사이의 긴장을 넘나드는 병태와 영자의 모습은 연애를 할 야성도, 돈도, 여유도 없어 ‘썸 탄다’는 말이 유행어가 되어버린 작금의 현실과 기묘하게 겹쳐진다. 결혼을 꿈꾸는 영자에게 병태는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고, 그런 병태에게 영자는 철학과 나와서 어떻게 돈을 버냐고 묻는다. 그리고 둘은 “이 다음에 우리들의 시대가 왔을 때” 결혼을 할 거라며 깔깔 웃는다. 영자에게 키스하려다 거절 당한 병태는 “지금 키스하는 놈들 다 뒈져라!”라고 외치며 거리를 질주한다. 이 장면은 “몽땅 망해라”라고 연애에 빠진 사람들에게 엿을 날리는 10cm의 ‘봄이 좋냐’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파서일까. 여자로 태어난 걸 후회한다는 대사를 들으면서는 얼마 전 강남역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사건이 떠오르고, 영자가 병태와 데이트하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장면에서는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삶을 마감한 청년이 떠오른다. 피를 팔아 돈을 버는 영화 속 청년들을 보면서는 가진 거라곤 몸밖에 없는 청년들이 가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인지, 질문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스크린 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청년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이고 이 시대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내 친구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해피엔딩을 제시하지 않는다. 가진 건 몸뚱이 뿐인 청년들. 앞으로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청년들.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그 시대 특유의 잿빛 분위기에 가위눌려 오직 빨리 취하는 것이 목적인 음주를 하는 청년들을 보며 가슴이 아려온다. 그런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는 종착지는 결국 군대와 자살이다. <바보들의 행진>에 등장하는 청년들은 모두 대학생이다. 대학이 취업학원이 되어버린 시대, 그렇게 취업준비를 열심히 하고도 일자리를 얻기가 어려워 많은 이들이 무력감에 빠져버린 요즘을 생각한다. 자식이 짊어진 짐과 함께 미숙련 저임금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는 부모들을 생각한다. 그런 잔혹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대학생이 될 기회조차 박탈당한 청년들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살아 숨 쉴 기회마저도 빼앗겨 일찍이 스러져가버린 더운 목숨들을 생각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1 | 추천: 0
신혜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누군가를 당신의 종으로 만들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줘라.” 이 오래된 격언은 우리가 살고 있는 금융자본주의의 핵심을 찌른다. 주거, 의료, 교육 등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빚을 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두고, 남은 삶은 평생 그 빚을 갚으며 살도록 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탓에 개인은 사회의 명령에 복종하며 자유를 반납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투항한다. 단지 빚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이렇게나 고분고분해진다. 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자신의 영화에서 등록금 대출을 갚기 위해 질 낮은 일터에서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 미국 청년들의 현실을 풍자했다. 한국인들의 삶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계부채가 1200조에 육박하고, 빚쟁이 신세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청년 채무자가 2만 명에 이른다. 보장률이 50%에 못 미치는 의료보험체계,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대학 등록금, 월급 한 푼 안 쓰고 모아도 내 집 마련에 30년이 넘게 걸리는 주거비 부담이 이런 현실을 만들었다. 세상에 살면서 아프지 않고, 교육받지 않아도 괜찮고, 집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살기 위해 빚을 졌다지만, 사실상 한국인들은 빚을 갚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지난 달 9일, 20대 국회 입성을 앞둔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의원을 만났다. 서민금융전문가로 알려진 그는 지난 10년간 서민들을 빚의 굴레로 모는 ‘약탈적 금융사회’를 고발해왔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는 사회가 바로 제 의원이 말하는 약탈적 금융사회다. 복지가 필요한 계층에게 저금리 대출을 해주면서 ‘서민금융’이라고 포장하는 정부 금융정책이 대표적이다. 생활비가 없어서 이자를 못 내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대출을 해주는 건 결국 서민들 빚만 늘리는 정책이라는 얘기다.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은행 문턱을 낮춰 돈을 빌려주는 건 정책이 아닙니다. 돈을 안 빌려도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정책이죠." 제 의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가 국회 입성 후 첫 과제로 내세운 법안은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이다.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사고팔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다. 여기서 채권은 ‘돈을 받아낼 권리’와 같다. 현행법상 채권은 엄연히 소멸시효가 있지만 채무자가 빚을 갚을 의사를 표현하거나 채권자가 소송을 걸면 빚이 되살아날 수 있다. 이런 탓에 은행은 받아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부실 채권을 대부업체에게 헐값에 팔아넘기고, 대부업체는 악독한 채권추심(빚 독촉)을 통해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아내 이윤을 남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는 채무자의 인권보호에 대한 인식이 낮아 방문추심도 흔하게 이뤄진다. 아이들 앞에서 채권 추심을 당하고, 직장에 찾아온 대부업체 직원 탓에 망신을 당하는 등 인권침해가 속출하는 이유다. 제윤경 의원(사진 맨 오른쪽)이 참여한 ‘주빌리은행’ 출범식. 사진 출처 - 쥬빌리은행 페이스북 주빌리 은행은 채권시장에서 거래되는 부실채권을 매입해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곳이다. 제 의원은 “주빌리은행은 ‘부실채권 시장의 민낯’을 국민들에게 폭로하는 계기가 됐다.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통념에 국민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2013년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수상작인 소설 <청춘파산>은 집안 사정으로 20대부터 빚을 지게 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 빚 독촉을 피하느라 주거지를 옮겨가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주인공의 삶이 공간의 이동과 함께 전개된다. 심사위원들은 이 소설이 “21세기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고 평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소설이 작가의 경험담이란 점이다. 빚을 받기 위해 집에 찾아와 문신한 팔뚝을 내보이던 ‘빚쟁이’들과의 만남까지도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빚에 좇기며 살아온 작가의 20대는 한 편의 살아있는 소설이었다. 현대판 구보씨는 고시원 총무로,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로, 학원 시간 강사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빚을 피해 조용히 숨을 몰아쉴 뿐이다. “산다는 건 좋은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가수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에 갈수록 공감하기 어려워진다. 사회권에 대한 인식이 약한 한국사회에서 산다는 건 곧 빚을 지는 일이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마이너스 인생이다. 나에게 돈을 빌려주고 종으로 부리려는 세력이 있는 것만 같다. 노예가 어떻게 감히 인권을 말할까. 다만 주인에게 종속돼 살아갈 뿐이다. 빚더미 사회에서 인권을 찾기는 그래서 어렵다. 이제 빚 권하는 사회에 맞서 시민권을 되찾는 운동을 할 때다. 20대 국회는 부디 한국 국민들의 잃어버린 시민권을 되찾는 데 힘이 돼 주길 바란다. ‘죽은 채권 부활 금지법’은 좋은 출발점이 될 거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7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우리는 어떤 사람을 언급할 때 직책을 붙이는 걸 당연시한다. 그냥 이름 석자만 붙이는 건 뭔가 예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직책을 붙이는 것은 대단히 정치적이다. 제대로 붙이면 핵심을 꿰뚫을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지만 반대 사례도 흔하다. 성완종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과 성완종 전 의원은 같은 인물이지만 어떤 직책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완종 게이트'는 천지차이로 성격이 달라진다. 그런 이유로 나는 기본적으로 이름만 표기하는 걸 좋아한다. 사람은 자기 이름으로 평가받는 것이지 직책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 정종섭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다. 세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직책을 붙인다면 그는 교수였고, 장관이었고, 국회의원 당선자다. 각 직책은 꽤나 다른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가 장관으로 취임할 당시부터 퇴임할 때까지 행정자치부 출입 기자였던 덕분에 그를 나름대로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부터 나는 정종섭이라는 인물을 생각할 때면 항상 머리에 떠오르는 낱말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산림(山林)이고 다른 하나는 곡학아세(曲學阿世)다. 역사용어와 고사성어가 떠오른 건 아마도 그가 아버지한테서 한학을 배웠고 개인전을 열 정도로 서예에 조예가 깊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정종섭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에서 헌법을 가르쳤다. 지방재정이나 지방행정에 문외한이다. 행자부에선 전례가 없는 장관 이력이었다. 이 때문에 박근혜가 개헌을 하기 위해 정종섭을 장관으로 임명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다. 실명을 밝힐 수 없는 한 로스쿨 교수가 정종섭 '교수'를 평한 게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헌법학을 전공한 그 분은 이렇게 말했다. "참여정부까진 '진보'인양 하고 다니더니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보수'로 확 돌아섰다. 한 자리 하려는 욕심이 대단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종섭 '교수'는 책임총리제, 특별검사제, 예산법률주의 등을 주창했던 분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있고 나서 안전행정부는 행정자치부와 인사혁신처, 국민안전처로 쪼개졌다. 정종섭은 마지막 안전행정부 장관이자 첫 행정자치부 장관이었다. 인사청문회에서 그가 1985년 군법무관으로 입대해 군복무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군대 갔다 온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수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얄궂게도 그는 참여정부 당시 인사청문회 도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2014년 여름쯤 만난 한 학자는 "정 교수를 얼마전에 만났는데 '현재 인사청문회 제도가 너무 엄격하다. 제도 만드는데 참여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했다. 어쨌든 그는 장관이 됐다. 하급직원들 사이에선 인기가 괜찮았다. 하급직들 신경을 많이 써주려 했다. 회의를 줄여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줬다. 실국장들 브리핑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도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대외적으로는 여러 차례 문제를 드러냈다. 국회에서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하는 바람에 주민세 인상 문제가 물 건너간 것은 작은 사례일 뿐이다(참고로, 나는 주민세 인상 지지한다). 대표작은 2015년 8월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만찬 건배사로 '총선 필승'을 외친 게 아닐까 싶다(그 후로 한동안 '총선 필승'은 내 단골 건배사가 됐다. 주어는 없다). 정종섭 '장관'은 당시 새누리당 연찬회에 초대받지도 않았다. 제 발로 찾아갔다. 그것도 비서실에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며 수행비서 없이 혼자서 찾아갔다고 들었다. 공식 해명은 '의원들이 건배사를 시켜서 당황해서...'였지만 다른 증언도 있다. '뒤풀이 자리에서 지역구별로 있는 자리에 자기가 먼저 와서는 건배사를 제창했다.' 보도가 나오고 일요일 아침 8시쯤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11시에 기자회견 준비해라"고 시켰다. 덕분에 대변인은 기자들 원성에 시달렸다. 그날 기자회견에서 나는 '국회의원 출마 의지'를 재차 물었다. 그는 그때 분명히 대답했다. 자신은 국회의원 출마할 생각 없다고. 물론 그 말을 믿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지난 2015년 11월 8일 긴급 브리핑을 갖고 장관직 사의를 표명하고 있는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정종섭 '장관'은 2015년 11월 8일 장관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발전과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다하겠다고 했다. 총선 출마 질문에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말대로라면 그는 꽤나 성급하게 20대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었다. 류성걸을 경선에서 제치고 대구 동구 갑 선거구에서 공천을 받았다. 무소속 류성걸 후보를 꺾고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류성걸과 경북고 동기동창이다. 그는 경선 당시부터 '진실한 친박' 이른바 '진박'으로 자신을 알렸다. 그는 자타공인 '진박'이다. 정종섭은 아마 자신이 조선 시대 '산림'같은 존재처럼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본다. 정치권은 날이면 날마다 욕만 먹는 존재이고, 정부 관료들은 무능하다, 이런 때 국가를 운영할 역량은 오히려 자신 같은 이에게 더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산림이란 학식과 덕은 높지만, 과거에 응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해 존경을 받는 선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산림은 특히 조선 후기 공론을 좌지우지하면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검소하게 살자' '공부 열심히 하자' '바르게 살자'는 평론가 정치로 경세치용(經世致用)이 될 턱이 없다. 대표적 산림인 김집이 대동법 시행을 반대하며 김육과 치열한 논쟁을 벌인 건 유명한 일화다. 조선 시대 산림은 재야에서 고고한 척이라도 했지만 정종섭 '의원'은 친박 돌격대로 마음을 굳힌 듯하다. 그는 24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청문회 활성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의회독재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위헌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그는 2005년 4월 국회 공청회에선 "국정운영 중심은 대통령에서 국회로 전환돼야 한다"며 상시 청문회를 지지했다. 그는 교수 시절 '헌법학 원론'에서는 정부시행령에 대한 국회 통제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썼으면서도 지난해 6월 국회법 개정안 논란에선 침묵을 지켰다. 내 눈에 비친 정종섭은 산림에서 발탁된 선비가 아니다. 그는 ‘사기(史記)’에 나오는, "학문을 굽혀 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한다"는 '곡학아세'하는 사람일뿐이다. 그러고 보면 그는 정치인의 기본 자질 가운데 하나인 '권력의지' 하나만큼은 확실한 분인 듯싶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7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이라크를 처음 방문했을 때, 전쟁으로 온 나라가 황폐화되고 삶의 조건이 붕괴되었던 그곳에서 만났던 이라크인 살람은 자신들의 고통이 한국에 전해지길 바랐다. 그리고 한국의 군대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2004년 이스라엘의 점령 하에 있던 팔레스타인, 그 곳의 칼리드도 자신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국 사람들이 알기를 바랐다. 이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변한 것은 많지 않다. 여전히 이라크도 시리아도 팔레스타인의 상황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했던 기억과 경험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되어 국제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2007년 1월부터 민변이라는 법률가 단체에서 국제연대 활동가로 지내고 있다. 민변에서 처음 시작했을 때 30대 초반이었는데 지금은 40대 초반이다. 30대의 대부분을 민변에서 보냈다. 되돌아보면 한미 FTA 반대, 광우병 촛불집회, 4대강 공사 반대 활동, 용산참사, 나꼼수 표현의 자유 억압, 제주강정마을 기지반대, 세월호 사태 등 보수정권 하에서 기본적 인권이 후퇴되었던 한국 상황에서 많은 이슈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강구하였다. 여전히 한국 인권상황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 한다. 충분히 공감한다. 국내에서의 국제연대 활동은 주로 한국의 이슈를 알리고 이에 대한 연대를 요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다른 국가에서 벌어지는 이슈에 대해 한국에서 활동하고자 할 때 주위에서 ‘국내 상황도 안 좋은데’ 라는 반응도 있고, ‘국내에서 해야 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라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이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했는데 주변 어르신 한 분은 우리보고 종북이라고 북한으로 가라고 했다. 황당하였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비단 국제연대 활동뿐만 아니라 전체 운동이 편협하게 해석되는 건 다반사이니깐. 사진 출처 - 충북일보 사실 국내의 많은 분들은 국제연대라고 하면 대단히 거창하거나 하기 어려운(영어가 가능해야 하는) 활동이라 생각한다.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국제연대 활동에 관심이 없거나 그 주제가 공감할 수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대한 국내 반전 운동, 2009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시의 한국 시민사회의 연대활동은 충분히 우리 안에서 제대로 된 사실 전달만 있다면 그 사안에 공감하고 무엇인가를 연대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해 주었다. 문제는 그 현장과 한국의 시민사회를 이을 수 있는 계기이다. 이제 곧 민변에서의 국제연대 활동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주변에서 무슨 안 좋은 일 있냐고 한다. 무슨 일 없다. 아니 무슨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민변에서의 일이 아니라, 그 이전 이라크에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졌던 일 때문이다. 주위의 몇몇 좋은 사람들과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려 한다. 아시아(사람들이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이 아시아인줄 몰랐다고들 한다.)의 상시 분쟁과 인권침해지역의 활동가를 발굴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며, 현장과 한국의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활동을 해 보려 한다. 주변에서 걱정이 많다. 모아둔 돈은 있냐고, 단체 재정은 어찌할 거냐고, 솔직히 그건 나도 걱정이다. 돈을 많이 벌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고, 가정도 있는데... 그래도 하고 싶고 해야 할 일을 할 생각이다. 더 힘들고 더 열악한 곳에서 치열하게 지내고 있는 그들을 생각하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활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제 아시아 곳곳의 사람들과의 연대를 위한 국제연대 활동을 시작하려 한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사람 때문에 시작한 운동이다. 다시 그들을 바라보고 한 걸음 나아가는,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4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기억 하나 2004년쯤이었을 거다. 지역의 한 선배가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적이 있었다. 그 선배의 선거사무소 개소식 자리에 갔었는데 오랜 시민단체 경력 때문인지 전국에서 온 축하 손님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런저런 식순 끝에 당시에 꽤 지명도가 있었던 교수 한 분이 축하 인사말을 했다.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의 노무현 정부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가벼운 질책성 내용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당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일어나서 그 교수에게 거칠게 항의를 했다. 자기가 속한 당을 비판하지 말라는 거였다. 전반적인 축하 인사말 끝에 나온 짧은 비판이었지만 그 사람에게는 거슬렸던 것이다. 식장은 한참을 술렁거렸고 순식간에 개소식 분위기는 차가워지고 말았다. 기억 둘 올해 4.13총선 기간 동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호남 민심을 붙잡기 위해 광주, 전남지역을 방문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등을 돌린 호남 민심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문 전 대표와 동행한 인터넷신문의 생방송을 잠시 시청했다. 문재인 대표에게 기자가 질문했다.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상당한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데…….” 그 순간 문재인 대표를 둘러싸고 있던 지지자 중의 한 사람이 화를 내며 기자에게 항의했다.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무슨 지지를 받고 있단 말입니까? 그거 다 종편에서 조작질한 거예요, 질문 똑바로 해요.” 당황한 기자는 질문을 바꿔서 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의 그 선배는 당내 경선에서 떨어졌고 종편의 조작질이라고 주장하던 호남 민심은 실제로 국민의당 압승의 결과를 보여줬다. 2000년 이후 한국 정치현장에서 정치 지도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이른바 무슨 무슨 ‘빠’라는 명칭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듣게 된다. ‘노빠’ ‘문빠’ ‘안빠’ 등 어감도 그렇지만 실제 이 단어를 사용하는 맥락도 긍정적인 것보다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자들을 일컫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위에서 예로 든 사례처럼 ‘빠’들의 특징은 맹목적인 지지이다. 지지하는 정치인의 무오류를 주장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한 약간의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다. 지지 정치인의 조그마한 정치적 행보는 유치할 정도로 크게 의미를 두어 해석하는 반면, 라이벌 정치인이나 반대정당은 폄하하고 깎아내린다. 특히 선거가 다가오면 이러한 움직임은 훨씬 심해지는데 지난 4.13총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문재인과 안철수로 대표되는 거물 야당 정치인을 두고 양쪽의 ‘빠’들이 펼치는 SNS상의 네거티브 공세는 극에 달했다.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을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보다는 서로 상대진영의 대표 정치인들이 이런 저런 흠결이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날 선 공격만이 가열됐던 선거기간이었다. 그 여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아마도 내년 대선 때까지는 날로 더 치열해질 것 같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현실에서의 선거는 무엇일까? 선거는 상대 후보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투표행위를 하게 해야 성공하는 정치행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내 공약을 모르는 사람들을 알게 만들어야 하며, 기존에 지지하던 사람들에게도 계속해서 그 지지를 확인해야 한다. 당선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고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나를 지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표의 확장성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지지자 외에 무관심층과 반대편의 지지까지 끌어오기 위해서는 후보인 나와 지지자들이 표를 끌어올 수 있는 확장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빠’는 그 확장성에서 심각한 결함이 있다.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만을 거듭 확인하면서 중도층이나 반대편에서 표를 끌어올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없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나 당에 대한 조금의 부정적인 의견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반대편에 지지를 물어볼 의사도 없는 것이다. 표를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해봤자 자기와 같은 지지자들로만 연결되어 있는 SNS상에서 서로 격려하고 ‘좋아요’를 누르며 현실 선거에서의 표 확장성과는 의미가 없는 행위들만 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빠’가 아니라 포용력 있는 ‘지지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정말로 지지하는 후보가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원한다면 좋아하는 정치인에 대한 감성팔이를 하고 있는 시간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제대로 된 언론 기사 한 대목이라도 단체 대화방이나 문자로 보내려고 노력하기를 권유한다. 다른 당 특히 같은 야당 정치인 흠집 내기는 제발 그만하고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이나 정책을 알리는 것이 지지후보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저 정치인은 저래서 안돼라고 욕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집권하면 세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야 사람들이 더 호응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는 속성상 성인군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인의 비판과 비난은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판하면 왜 그런 비판과 욕을 얻어먹는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이명박, 박근혜의 10년은 4대강과 세월호, 그리고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점철된 민중잔혹사로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그 잔인한 세월을 끝내고 싶은 현실적인 방안의 한편을 끼적거려 보았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5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