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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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정한별 / 사회복지사   소설 「밤의 유서(요슈타인 가이더, 2021)」의 주인공 알버트는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할아버지인 자이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주치의인 마리안네로부터 ALS 진단을 받고, 사랑하는 아내 에이린과의 추억이 깃든 호숫가의 오두막집에 찾아간다. 알버트는 자신이 불치병에 고통 받으며 가족들의 짐이 되는 것보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때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떠나고자 한다.   오두막집은 사랑의 추억이 깃든 장소임과 동시에, 가족과의 추억이 서린 별장이기도 하다. 알버트는 오두막집에서 자신의 생을 정리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자신의 사랑과 잘못들을 마치 유서를 쓰듯, 오두막집에 두고 쓰던 방명록에 눌러 담는다. 이틀 동안의 방명록에 존재, 사랑, 이별, 죽음에 대한 마음을 담으며 결국 방명록을 태워버린다.   소설은 상당히 짧았다. 예상되는 전개, 뻔한 문구들이 많았던 책이었음에도 죽음이란 단어가 며칠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2021년 3월 23일 내가 사랑한 남자가 죽었다. 한 아내의 남편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 지금은 4명의 손자, 손녀들의 할아버지인 그가 죽었다. 그는 죽음을 온전히 몸으로 받아들였다. 고통을 유일한 친구로 삼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의연하게 하루하루를 살았다.   먼저 걷는 일이 힘겨워졌다. 뼈밖에 없던 다리가 어떤 날은 코끼리처럼 퉁퉁 붓기도 했다. 홀쭉했던 배엔 물이 차기도 했다. 걷기 힘든 다리를 끌고서도 그는 성당을 찾았다. 기도도 건강해야 하지 않겠냐고, 집에서도 기도는 할 수 있지 않냐고 잔소리를 하면 그는 성당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천천히 걸어서 돌아오면 된다며, 지팡이를 짚고 나설 채비를 하곤 했다.   먹는 일이 힘겨워졌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수는 점점 줄었고, 먹는 양도 점점 줄어갔다.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그였지만, 내가 집을 찾을 때면 항상 밥솥에는 밥이 가득했다. 혹여나 밥을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가족을 위해 밥솥 가득 밥을 하곤 했다.   걷는 일도, 먹는 일도 힘겨웠던 그가 끝까지 힘을 냈던 일은 성경을 쓰는 일이었다. 그에게 어떤 마음으로 성경을 쓰는 건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그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아 묻는 일이 무서웠다.   걷는 일도, 먹는 일도 힘겨웠던 그가 누워서 잘 수 없게 되었다.   통증이 심해 눕지 못하고 앉아서 졸기만 하는 그를 보는 일이 점점 힘겨워졌다. 그러다 요구르트 한 병을 마시는 일도 힘겨워졌다. 요구르트 한 병을 마시는 일이 힘겨워도 그는 아들과 손녀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여주고자 동영상을 촬영하는 그를 보며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고통을 친구 삼아 하루를 살아가는 줄 알았던 그가 병원에 가자고 했다. 숨을 쉬는 일이 힘들다고 했다. 병원에 간 지 3일 만에 그는 비로소 그가 자랐던 마을에 돌아갔다. 내내 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던 동네로 돌아갔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내를 묻었던 손으로 아들도 묻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대신 아들이 자라난 마을 뒷산에 묫자리를 준비했다.   그는 감은 눈을 다시 뜨지 못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막걸리 한잔이 마시고 싶다고 했다. 아직 할 일이 많다고도 했다. 집에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남기고, 2021년 3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출처 - 저자 아버진 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가족과 함께 하고자 했다. 하루라도 더 가족들을 보고 싶어했다. 보고싶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내내 보고 싶다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육체는 고통에 침식당하면서도 정신만은 지키고자 노력했고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되려 부담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좋은 날이나 나쁜 날이나 항상 함께 하는 사랑의 의미’였다. 그는 마지막까지 죽음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몸소 가르쳐줬다.   “한때 우리는 좋은 날이나 나쁜 날이나 항상 함께하겠다고 서약한 적이 있다. ··· 어쩌면 그 나쁜 날 중에서도 무언가 좋은 점을 발견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소설 「밤의 유서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너무나 간단한 명제이며, 너무도 당연한 이치이기에 그 어떤 감흥도 없는 죽음. 나도 죽고, 너도 죽고, 우리도 모두 죽는다는 사실 자체엔 감정이 깃들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본질이 실존이 되는 순간, 죽어있던 죽음이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죽음이 갖고 있는 역설은 여기에 있다.   희망보다 절망이, 생명보다 죽음이 가득 찼던 2022년이 모두 지나갔다. 2022년의 마지막 금요일 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가슴에 묻은 부모, 형제, 가족들이 전쟁기념관 앞에 모였다. 2023년의 마지막 금요일 밤에는 길거리가 아닌, 각자의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 할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출처 - 저자 지인
2023-01-03 | hrights | 조회: 344 | 추천: 3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내심 팔레스타인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2005년 팔레스타인에 처음 방문한 이후 짧게는 2주, 길게는 몇 달간 체류한 경험도 있고, 아디라는 단체를 하면서 팔레스타인 사업을 추진하였기에 나름 현지의 경험과 인프라가 적지 않다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최근 팔레스타인 친구 K의 소식을 듣고 이 모든 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친구 K와의 인연의 시작은 팔레스타인을 처음 방문했던 2005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K는 대학 졸업 후 해외 대학의 장학생으로 선발될 정도로 유능했지만, 이스라엘의 신원 조회에 걸려 유학을 포기해야 했던 지역 인재였다. 그해 팔레스타인 옆 나라인 요르단에서 아랍어를 공부했던 나와 한국의 활동가, 다큐멘터리 감독은 2달간 팔레스타인 소식을 기록하는 촬영을 기획했는데 이때 도움을 주었던 이가 K였다. 국내 지인의 소개로 연결된 K는 일면식도 없는 3인의 한국인들이 팔레스타인 소식을 알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집도 내어주며 2달간의 일정들을 마련해 주었다. 덕분에 현지 일정은 순조로웠고, 지금은 들어갈 수도 없는 가자 지구도 방문할 수 있었다. 그 이후 K와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2014년 여름 2달간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에서 체류할 때에도 K는 힘들 때 도움을 주는 해결사였고, 이후 2016년부터 아디에서 팔레스타인 관련 다양한 조사 활동, 평화여행, 여성지원 사업을 할 때도 K는 내가 가장 먼저 연락하고 조언을 구하는 친구였다. 반면 K와의 소통이 원활하지만은 않았다. 이는 K뿐만 아니라 다른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소통할 때도 생기는 일인데, 약속했던 일정이 취소되거나 연락이 끊기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연락이 닿을 때까지 집요하게 연락도 했지만, 활동 경험이 쌓이면서 현지의 활동 문화가 한국과 많이 다르고 현지 통신시설이 열악하기에 나중에는 그러려니 했다. 올해 2022년 10월 현지 방문 때도 그러했다. 방문 첫날 라말라에서 K와 반가운 재회를 했고, K에게 아디의 여성 지원센터 졸업식 참석을 요청했다. K가 거주하는 라말라와 여성 지원센터가 위치한 나블루스는 차로 약 1시간의 거리였기에 K는 흔쾌히 졸업식 참석에 응했고, 그때 K와 K 가족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주기로 했다. 이후 나블루스에서 여성지원센터의 사업을 모니터링하는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이스라엘은 나블루스를 봉쇄했고 졸업식은 연기됐다.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K에게 연락을 했는데, 닿지 않았고 문자를 남겨도 답신이 없었다. 그러려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국으로의 귀국 시간이 다가오면서 조급한 마음에 계속 연락을 해봐도 응답은 없었다. 결국 K와 K 가족에게 줄 선물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또 나름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K의 소식은 잊혔다. 사진 1. 2022년 10월 14일,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외곽 베이트다잔 이스라엘 검문소, 나블루스 봉쇄로 검문소 통과가 강화되자 길게 늘어선 팔레스타인 차량들_사진 출처 김양균 ZDNet 기자 한국으로 돌아온 지 2달이 조금 안된 12월 9일, 나는 K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친구여, 잘 지내지? 나는 2달간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됐고, 어제 풀려났어” 그의 황당한 문자에 바로 연락을 취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내 다급한 질문에 그는 “너와 만난 후 그다음 날, 나는 예루살렘에 업무차 방문했고 돌아오는 길에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체포됐어. 그리고 정확히 2달 후인 어젯밤 12시에 풀려났어. 체포될 때 어떤 혐의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수감 기간 동안에도 어떤 심문이나 조사를 받지 않았어. 재판도 없었어.” 그의 황당한 답변에 궁금증은 산더미처럼 쌓였지만 불현듯 ‘아. 행정구금이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스라엘에는 영장이나 형사소송 절차 없이 임의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짧게는 2주 길게는 수년 동안 구금하는 ‘행정구금’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K가 이 경우에 해당됐다. 이스라엘 인권단체인 하모케드(HaMoked)의 지난 10월 2일 발표에 따르면 올해에만 이스라엘은 행정구금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1500명을 체포했고, 현재도 800명이 재판 없이 구금되었으며, 이는 2008년 이후 최대 숫자라고 하였다. K는 “그래도 다행인 게 (구금됐을 때)고문을 받지는 않았어. 감사할 일이지. 그리고 저번에 연락 못 하고 졸업식에 못 가서 미안해.”라고 했다. 나 역시 “그때 가져갔던 너와 너의 가족 선물은 (너의 허락 없이) 주변에 나눠줬어. 다음에 갈 때 선물 두 배로 줄게. 아내분과 아이들에게 꼭 전해줘. 나도 미안해”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내심 연락이 닿지 않아 원망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점령 상태인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깨달으며 ‘팔레스타인이 이런 곳이지.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는 것이 점령이었지’하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의 자만을 반성하게 됐다.
2022-12-14 | hrights | 조회: 327 | 추천: 8
신종환 / 공무원   대학생 시절은 무언가를 배우고 이해한다는 사실에 취했었다. 삶의 원동력은 여러 곳에서 흘러왔었고 세상은 총천연색이었으며 새로운 앎과 깨달음이 주는 일상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방향으로 마음을 이끌었지 ‘무엇을 더 하지 못할 때는 어떡할까’에 대한 공간을 많이 남기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면 당시의 심취된 마음은 무언가를 이해할 때 느끼는 절반의 감정과 그 감정을 느낌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역시 미래에 대한 구체적이지 않은 결의로 한없이 유예시키는 안정감이 절반씩 혼합된 것이었던 것 같다. 월급생활자가 되고 나서는 무언가를 알고 이해하는 것은 점점 어렵고 알고 있는 것을 잊지 않는 일에 할애할 시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생활 속 작은 투쟁이 되었다.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과거를 반추하는 일에 겨울 때면 DC코믹스의 그래픽노블을 영화화한 ‘와치맨’의 대사가 떠오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는 어두워지지만 과거는 밝고 또렷해진다’. 향수가 여러 형태로 나타날 때면 그 까닭은 지금 여기의 문제를 직면하기보다는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이 더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동시에 그 충동에 휩쓸리지 않는 데 애를 먹는 자신을 보게 한다. 한 때 열풍이 불었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혁명’에서 선생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무살 나이에 무정부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바보지만 서른이 넘어서 무정부주의자인 사람은 더더욱 어리석다’고. 편히 배척했던 이런 문장들은 과거에 보이지 않게 각자를 추동해주던 동력의 공급은 중지되고 두껍고 차가운 현실이 목전에 다가와 스스로도 모르는 채 피동적으로 마음이 전환될 것이란 은유임을 종종 느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부지런히 캐내고 보듬은 낙관적인 면을 알리거나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지나치던 것들에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이 의미없는 데이터 낭비는 무슨 짓인가 싶다. 그러나 드러나는 훌륭한 사람들에 비해 분명 완전 연소하지 않아도 훌륭함을 잊지 않고 또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란 생각에 키보드를 두들긴다. 여러분, ‘양심과 지성에 자꾸 구멍이 난다고 벗어던지지 맙시다. 그것을 기워서 어떻게든 입어보려는 노력만큼이 저의 영역인만큼 우리의 영역이에요!’ 이어 소개할 책에 따르면 맹자는 번제물로 끌려는 소의 울음에 번제물 양으로 바꾸라는 왕의 태도에 말했다고 한다니까요! ‘그것이 바로 인을 행하는 기술입니다.’라고 했어요! 김영민 교수의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지지부진함과 그 지지부진함에 계속 머물러 있으려는 태도에 대한 저자의 응원을 낄 수 있는 책이다. 책은 ‘논어’를 재료로 고전 읽기에 대한 훈련의 부분을 소개한다. 저자는 우선 서두에서 고전을 전가의 보도처럼 대하는 태도를 비판함으로써 고전의 독해는 여러 맥락을 알고 적용해야 하는 콘텍스트적 독해임을 강조한다. 논어의 경우 공자가 이루고자 했던 가치들은 그 시대 안에서 창안되고 해석되고 추구되던 것이었으므로, 그대로 지금으로 옮기는 적용하려는 시도는 헛되다는 것을 짐작키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고전을 다시 읽는 것은 그들이 바라던 것이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해보고 변화된 지점에서는 어떤 방향성과 지향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곱씹다 보면서 생기는 차이와 공통점에서 삶의 보편성을 체득할 수 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보편성, 이것에서 저것을 발견할 수 있는 훈련된 능력을 우리는 지혜라 부른다. 저자는 이 책을 시작으로 여러 권에 걸쳐 독자와 고전 읽기를 시도하고자 하나 아직 공자와 논어에 관해서는 저자의 다음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이 책은 고전 같이 읽기의 시작이므로 책 내부에서 서로 연결되지 않고 나열되는 여러 구절과 에피소드는 논어 자체 보다는 고전이란, 나아가 텍스트 읽기란 이처럼 시간적, 당시 화자 내지는 저자가 처한 상황과 그 상황에서의 지향성을 염두하며 읽고 또 그 감각을 연마하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기도 함에 대한 안내판이다. 가령 신에 대한 부분에서 저자는 공자와 묵자의 시대의 문제성에 반한 그들의 의견을 되짚으며 그 시대 속 그들의 한계성과 급진성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묵자는 신에게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갈구하라고 말함으로서 피동적으로 신이 주는 대로 받아들임을 타파코자 하였다, 반면 공자와 맹자는 신이란 없다고 말하나, 신에 대한 예는 계속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가 있든 없든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바람과 기도에서 묵자는 주체적인 면을 부각해 강조한 것이고 공자는 예가 가리키는 목적 그 자체보다도 목적을 위해 수반되는 올바른 과정이 우리를 더 이롭게 함에 주목했다. 어느쪽이든 당시의 민중이 봉착한 한계를 타파하려 한 것이고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는 단초를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재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책은 더 많은 내용들을 담지만 그 내용들은 개별적 함의를 짚기보다는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을 여러 각도에서 짚어볼 가치가 있다고 알리는 예시들의 모음집으로 느껴진다. 노나라의 제신으로 있다 제사 고기가 본인에게 이르지 않아 떠났다는 부분에서도 저자는 현실에 비근한 예시를 들어 독자에게 납득 가능한 상황을 다각으로 제시하는데 비중을 둔다. 책의 마치는 말에서 책의 내용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한겨레에 기고한 글들의 모음이라는 문장도 이 책이 저자가 고전이라는 무의미해 보이는 텍스트의 유의미한 콘텍스트를 읽자는 취지를 매차례 권유했던 기록으로 읽히게 한다. 이뤄지지 못한 바람들은 어떻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져야 할까. 지난 공무원노조 속초시지부 청년 영화 모임에서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에 대해 ‘무엇이고자 싶었으나 무엇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온정’이라고 썼다. 앞선 책의 시선들이 발화되지 못한 것들은 발화되과자 했던 것으로 재발견 했듯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선도 비실현을 실현의 가능성으로 다시 보고자 했다. 이 책의 시선도 앞선 영화의 시선이 담은 고만고만한 미처 발화되지 못한 것들을 향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앞으로의 나날에서 나와 당신 스스로를 긍정하는 단초를 발견하고 뿌리 내리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출처 - 작성자
2022-12-07 | hrights | 조회: 224 | 추천: 2
이승은 / 경찰관   ”저,,, 기훈이랑 다시 만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 시선은 더 이상 신경 안 쓰고 싶네요..“ ”덕수랑 저랑 다시 전처럼 만나면 안되나요? 함께 보내던 시간들이 그리워요.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지간에요“ 위의 말들은 어떤 상황에서 나온 말일까요? 기훈이와 덕수라는 성소수자 커플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런 사연 ? 언뜻 봐서는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기훈이는 학교폭력의 피해자, 덕수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입니다. 덕수와 다른 아이들 네 명이 기훈이를 청소도구함에 억지로 밀어 넣으면서 폭행을 하였고,이 사건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회부되어 가해자 전원에 대해 2호(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조치가 내려졌습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이후 한 달 남짓 흐른 후,덕수와 교육청 wee센터 특별교육장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동안 학교생활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그리고 기훈이를 우연히라도 마주친 적이 있다면 어떻게 서로 반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출처 : pngtree   ”기훈이가 요새 자꾸 저한테 말을 걸어요.그저께는 우리반에 와서 제가 입고 있던 점퍼를 빌려달라길래 거절 못 하고 줬더니 그걸 입고 교내를 돌아다니고요..어제는 점심 시간에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있는 데 갑자기 뛰어 들와와서 제 옆에서 같이 축구를 하고 있고..우리는 절대 다시 만나면 안 되는 사이라서 반도 분반되었는데 말이죠.   덕수의 말만 듣고 섣불리 판단 할 수 없어 나중에 기훈이에게 따로 물어서 확인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이 끝난 후 덕수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데려다 주는 길에 기훈이와의 일에 대해서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아까 네가 한 말,기훈이가 요즘 너한테 자꾸 다가온다는 거,, 너 솔직히 그럴 때 마다 기분이 어때?“ “솔직히 이해가 안돼요. 기훈이가 다가올 때마다 도망갈 수도 모른 척 무시할 수도 없고요. 다른 애들이 제가 걔한테 접근하는 걸로 오해하고 선생님들께 신고할까봐 겁이나기도 해요.” “그럼 넌 기훈이를 피하고만 싶어? 아니면 다시 예전처럼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니?” 조수석에 앉아 정면만 응시하고 있던 덕수가 고개를 떨구며 말합니다. “사실,예전처럼 다시 친하게 지내면 좋죠..그 사건 전에는 기훈이가 매일 아침 저희집에 절 데리러 와서 함께 등교하고 그랬거든요. 담치기도 같이 하고 그랬는데...” ‘담치기’라는 단어를 내밷을 때 살짝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 모습을 보면서 덕수가 기훈이와 보낸 시간들을 은근히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너 기훈이랑 화해하고 싶지? 그런거지? 내가 도와줄게. 솔직히 말해 볼래?” 제 말이 떨어지자마자 덕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합니다. “에이~참.. 맞아요. 다시 예전처럼 지내면 제일 좋겠는데 어쩌죠? ” “기훈이가 피해자이니 기훈이의 결정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니? 기훈이에게 의사를 물어본 후에 교육청 담당자에게도 물어볼게.“ “오~! 진짜요? 헤헤~” 덕수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발랄하게 당부의 말까지 남깁니다. “샘~그거 진짜 꼭 알아봐 주세요. 샘 제 전화번호 알죠? 부탁 좀 드릴게요~샘~” “알았다 좀 기다려보렴 ,, 으이구~~”   곧장 기훈이를 만나 덕수의 말이 모두 사실인 것을 확인한 후 지체없이 교육청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교육청에서는 피해학생이 원하면 접근금지 처분은 무시해도 괜찮지만 이후 덕수가 다시 기훈이를 괴롭히게 되면 가중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뒤따랐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방과 후,   덕수와 기훈이는 저와 학생부장 선생님 앞에서 악수를 하며 화해를 하였고 오랜 만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함께 하교하였습니다. 보통의 경우, 학교폭력으로 인해 2호 조치 결정이 내려지면 기훈이와 덕수처럼 피해자와 가해자가 적극적으로 화해를 원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둘의 사연은 최초 신고가 이루어진 직후부터 학폭위 개최와 화해에 이르기까지 피해회복이 빨랐던 매우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자주 일어 나는 일이 아니기에 2호 처분을 더이상 준수하지 않아도 괜찮은지에 대해 현장 선생님들도 정확히 모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위의 사례처럼 학폭위를 개최한 교육청 담당자에게 문의해 보면 명확한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기훈이와 덕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학교ㆍ경찰ㆍ그리고 피해학생이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화해의 골든타임을 놓치지않고 따스한 악수로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22-11-23 | hrights | 조회: 276 | 추천: 3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얼마 전 방금 전화를 하나 받았다. 장애인의 학부모가 진학 상담을 하는데 교사가 왜 우리학교에 오려 하느냐? 우리는 가르치기 어렵다고 전화로 장애인 학생의 입학과 지도를 일방적으로 거부했다는 이야기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 사건이 2022년 지금도 쏟아 진다. 문제는 이런 교사가 이런 교사의 말들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1982년에도, 장애인들이 특수교육대상자로서 다른 국민과 마찬가지로 의무교육으로 명시적으로 법으로 규정한 1994년에도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 등 특수교육법이 제정된 2008년에도,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 UN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2016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의무교육 책임이 있는 교육 공무원 교사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여 교육청을 제끼고 특수교육대상자를 자의적으로 임의로 배치여부를 일방적으로 학부모에게 통보하는 이런 악의적인 차별이 버젓이 작금의 교육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출처 : pixabay> 헌법 10조에도 강력하게 보장해 놓은 장애인 교육권 보장이 늘 버거운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장애인 학생을 교육기본법인 초중등교육법에 명확하게 ‘학생’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장애인 학생을 위한 관련 법에 다른 교육법에 비하여 처벌 조항을 강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예비군 훈련을 방해해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교육 방해가 아니라 교육에 가까이 오는 것을 막아도 대중들이 인지할 수 있는 실효적인 집행체계가 없다. 또한 장애인 학생의 입장에서는 시간과 타이밍에서 처절하게 약자의 싸움이다. 당장 몇 달 뒤에 학교에 진학을 해야 하는데 인권위 진정하거나 법적으로 고소 고발해서 다퉈보기엔 학생으로서의 시간이 너무 한정적이다. 법원 판결을 받을 즈음이면 이미 졸업을 하거나 다른 학교로 가버려서 개인적으로 소를 제기하는 것은 피해자로서의 법적 소송의 이익이 없다. 또한 그런 학교와 교사를 관리감독하는 교육청을 상대할지 직접적인 그런 차별 발언과 행위를 그 교사를 상대할지, 그 교사의 상급자인 교장을 상대할지도 불분명하다. 지금 현재 차별 피해를 구제받을 가장 빠른 방법은 언론에 공개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구제를 신청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강도 높은 방법을 택하면 차별을 구제받아 원하는 학교에 들어 가더라도 위계적인 위치에서 장애인 학생들은 늘 불이익과 보복의 두려움을 안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 다른 선진국처럼 평소에 이런 학교와 교사를 모니터링하고 실제적인 차별 행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공익 소송을 진행하는 기구가 아직 없다. 대학을 제외한 그 어느 교육 기관에서 장애인 학생이 차별을 이유로 학교와 교육청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거나 제대로 승리한 적이 없다. 있다고 해봐야 상징적인 행정소송이나 이미 입학한 이후의 지원 미비와 차별에 대한 것 뿐이다. 이렇듯 아무리 중한 장애라도 이미 교육 현장에 진입한 학생들은 학교 밖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많은 장애인 대학생들이 이른바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으로 대학을 들어오지만 본인 스스로 ‘특수교육’ 대상자임을 거부하거나 오히려 그들이 앞장서서 다른 장애인의 학교 진입을 막고 차별하는 행위가 벌어진다. 자원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별 구조가 우리끼리의 갈등을 부추긴다. 결국 우리들끼리 살아 남는자 만이 교육받을 수 있다는 느낌이 있다. 학교와 학력을 위한 교육을 위한 군사 문화의 잔재로써의 교육은 강하지만 개인과 그 행복을 위한 교육은 없다.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국가에 대한 경례등이 그러하다. 그래서 장애인 학생의 인권을 보조해야 할 특수교사조차도 장애인 학생들이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도 하는 경우가 있다. 교육 현장에서의 장애인 차별은 근본적으로 비장애인 학생에 대한 막대한 협박이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차별행위이다. 장애를 이유로 어떤 학생을 배제한다는 것은 비장애인 학생이 장애를 가진 순간 교사가, 학교가 장애인 학생을 퇴출시키겠다는 뜻이고 국가가 장애를 이유로 교육을 의무 교육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비장애인 학생들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방법과 경험을 배울 기회를 의도적으로 박탈하겠다는 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법률과 제도가 버젓이 강력하게 있음에도 지난 반세기 동안 교육현장에서 동일한 차별과 배제가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것은 그 법률이 그런 장애인 교육 차별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지 못할 뿐더러 피해 예방 효과가 없다는 것이고 그 예방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은 그런 차별 행위에 대하여 의미있게 법의 효능이 수용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상상할 수 없는 전주교대의 장애인 학생 입학 거부를 모의하기 위한 입시 성적 조작도 그래서 벌어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교육 사회의 개인의 저주와 불행이라는 장애의 해석은 모든 정보를 차단한다. 이미 많은 정보와 제도가 있음에도 장애인들은 그 정보를 접한적이 없다고 하고 제공한 측은 알려주었다고 한다.인터넷에서 한번만 검색해보면 당장 내용증명을 보내고 변호사를 선임해서 고소 고발장을 제출할 일이건만 대부분 부모들은 그렇게 대응하지 않는다. 특히 교육차별은 장애인에게 있어 정서적 물리적 학대 행위에 준하지만 교육청 역시 학대처럼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출처 : 매일경제> 법은 존재는 하지만 전달과 입력은 되지 않고 활용되거나 집행되지 않는다. 학생을 고르지 않고 어떤 학생도 만나면 분석하고 존중해서 제대로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것이 교사의 전문성이고 정체성일텐데 왜 자기가 장애인 학생을 맡아야 하냐고 따지고 드는 담임에게 자기는 발달장애밖에 '관리' 하지 않는다는 특수교사에게 우리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가능하다면 장애인 진단을 받는 즉시 각 장애인 가정에 공익 전담 전담 변호사 한명씩 다 붙여 주고 싶다. 가능하다면 함정 모니터링을 통해 기획 소송이나 기획 진정이라도 하고 싶다. 전국에 초중고 학교에 (민족사관고 등과 같은 사립학교 포함 ) 장애인 부모인척 상담 전화해서 입학 차별하는 곳은 죄다 녹취록 풀고 고발해 버리고 싶다. 장애인 학생에 대한 차별이 그 죄질이 나쁜 이유는 장애인 부모에게 그 차별이 통한다는 것을 피의자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비장애인 의무교육 대상자에게는 그런 말 한마디도 못하면서, 바장애인 부모에게는 국민신문고 민원 하나조차 무서워 하면서 장애인 부모는 그런 말 쉬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한마다에 부모와 학생들이 싸우지 못하고 절망하면서 무너지는 걸 아니까 그런 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심지어 올해 유아특수교사 임용선발 시험에서 조차 여성 비장애인 학생이 남성 장애인 학생 당사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교사가 의사소통 기술을 중재하는 것을 올바른 지도라고 정답으로 서술하기를 강요하는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 작금의 한국사회이다. 사전에 인권적인 문제를 제기한 전공 교수의 강한 문제제기에도 그런 성역할 고정 차별이며 스토킹을 조장하면서 교사의 감정과 호불호에 따라 통합 교육을 하는 것을 올바른 특수교육이라고 주관식으로 쓰지 않으면 임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우리나라이다. 억장이 무너지지만 물러서면 안된다 포기하면 된다. 차별을 요령껏 피해면서 교육청 게시판의 문의를 남기시라. 입학 거부 하는 글을 남기면 공식 증거가 남는 것이다. 대부분 대놓고 그런 대답 학교는 못 남긴다. 학교는 장애인 학생에 대해 장애를 이유로 된다 안된다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장애인 부모님들 장애인 학생들,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들을 두 팔로 보호하며 함께 싸워줄 우리가 있다. 우리 동네 친구에게, 우리반 친구에게 왜 딴 학교로 전학가라 그래요? 누군데 그래요? 막 같이 화를 내줄 같은 학생들, 그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장애인이든 아니든 누구든지 걱정하지 말고 순풍순풍 낳아라 길러라 국가가 교육청이 사회가 이웃들이 책임지고 다양한 사람을 위한 교육으로 지원할께 교육할께 하는 세상을 만들자. 우리 이제, 차별 따위에 굴복하지 말자.
2022-11-17 | hrights | 조회: 250 | 추천: 2
정한별 / 사회복지사 둘째가 첫째의 발을 밟았다. "야, 미안해 해야지! 미안해 해!!" "미안...해..."   이번엔 첫째가 둘째의 그림을 망가뜨렸다. "으....언니.....으앙... 언니가 망가뜨렸어" 첫째는 변명을 늘어놓고는 엄마의 핀잔에 결국 사과를 한다.   이번엔 셋째가 둘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너.... 미안해 해... 미안해 해!!"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는 셋째는 웃으며 도망가 버린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 첫째는 둘째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자신이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 둘째는 사과를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이에 반해, 둘째는 자신이 사과를 받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첫째에게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사과를 요구할 수 없다. 둘째는 부모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행동을 한다. 첫째에게 사과를 요구하지 않던 둘째는 셋째에게는 사과를 요구한다. 사과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둘째는 셋째를 붙잡고 사과를 요구한다. 묘하다. ‘미안해’라는 사과의 말을 듣고 싶어 사과를 요구하는 아이, 누군가에겐 사과를 요구할 수조차 없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다가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사과를 요구하는 아이. 도대체 '미안해'라는 고작 세글자가 갖는 힘이 무엇일까? 세치 혀 끝에서 나오는 이 세글자가 뭐길래. 누군가는 사과를 요구하고, 어떤 이는 사과를 거부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과를 받고자 다른 사람의 힘까지 빌리려고 하는 것일까? 사과를 하는 일에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인정이다. 자신이 어떤 일을 했고, 자신이 한 일로 인해 발생한 일이 어떤 것인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반성의 마음이다. 자신이 한 일이 가져온 결과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비롯된 반성. 반성 끝에 다시는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마음. 이 두가지가 사과를 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사과의 진정성은 사과를 하는 사람의 태도에 묻어난다. <출처 : 씨원뉴스> “10.29 참사”가 일어난 직후 정부는 "참사"라는 표현, "희생자"라는 표현 대신, "사고"와 "사망자" 라는 표현을 쓰게 했다. 애도의 의미로 검은색 리본을 사용하되, "근조"라는 글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국가적으로 애도기간을 정해 추모를 하되, 참사의 이유는 따지지 말라며 침묵을 강요했다. 국민에게 참사의 이유를 찾지 말라는 동안, 정부는 참사의 이유를 꼬리에서 찾았다. 참사가 일어나기 4시간 전부터 112 신고전화에 참사 우려 신고가 접수되었다는 내용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침묵을 깨고, 지난 11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10.29 참사에 대해 사과를 했다. 서울 조계사에서 진행된 '이태원 참사 희생영가 추모 위령법회'에서 대통령은 "슬픔과 아픔이 깊은 만큼 책임 있게 사고를 수습하고, 무엇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큰 책임이 저와 정부에 있음을 잘 안다"라고 말했다. 그는 11월 4일까지 5일 연속으로 합동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책임 있게 사고를 수습하고, 책임이 대통령과 정부에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대통령은 지난 11월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에서 무려 30분간 경찰을 질타했다. 그는 "엄연히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책임)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 이라며 분노했다. 용산경찰서장,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정보계장, 서울경창청 상황관리관, 용산구청장, 용산소방서장은 "10.29 참사"의 피의자로 입건됐다. 서울시의 책임자, 행정안전부의 책임자,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자는 대통령이 말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과는 실제로 힘이 크다. 법적으로 사과는 피고인에게 처해 질 형량을 줄이기도 한다. 어떤 판결문의 양형 이유에는,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는 점을 참작해 형을 정하였다는 표현이 나오곤 한다. 형사 처벌이 필요한 죄를 저질렀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다는 것이 형사 처벌의 정도를 정하는 데 고려가 되는 것이다. 사과에는 사과를 기다리는 이의 인생이 걸려 있기도 하다. 어떤 이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평생을 기다리기도 한다. 10.29 참사의 희생자들은 책임 있는 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사과를 요구할 힘조차 없는 희생자를 위해 깨어있는 시민들이 연대해야 할 때이다. 사과의 부재를 연대의 존재로 메워야 한다.
2022-11-09 | hrights | 조회: 580 | 추천: 7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팔레스타인 올리브 수확 체험활동을 조직한 싸이드(가명)가 일은 하지 않고 자꾸 이야기한다. “이곳 올리브 농장이 이스라엘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팔레스타인)에 와서 현실을 봐야 한다. 이스라엘 어쩌고저쩌고 팔레스타인 어쩌고저쩌고…” 듣기 싫은 건 아니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올리브를 하나라도 더 따고 싶은데 자꾸 싸이드의 설명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다. 설명이 멈추자 다시 사람들이 올리브를 딴다. 따다 보니 재미도 있고 올리브를 담은 통이 차는 모습에 보람도 느낀다. 탄력받아서 나무 위로 올라가 올리브를 따고 있는데 또 싸이드가 “올해에도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농부를 공격해서 어쩌고저쩌고…” 일장 연설을 한다. 아 놔, 그래서 싸이드와 17년 지기인 나는 “싸이드,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일 좀 해. 올리브 따란 말이야!” 싸이드는 나를 보면 씨익 웃으며 “내 입은 말하고 있지만 내 손은 올리브를 따고 있어”라고 말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팔레스타인 올리브 농장 주인 아들은 웃으면서 “한국 사람, 올리브 진짜 잘 딴다. 여기서 계속 있어라”라고 치켜세워준다. 올리브를 수확하는 모습(출처 - 작성자)   팔레스타인은 요즘 한참 올리브 수확 철이다. 팔레스타인 농부들은 첫 비가 내리는 10월부터 11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올리브를 수확하여 기름도 짜고 비누도 만들어서 판다. 올리브 수확을 통해 전체 팔레스타인의 10~15%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매년 올리브 수확 철에 팔레스타인 농부는 위기에 직면한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안에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한(이를 이스라엘 정착촌이라 명명하고 국제법상 불법임) 이스라엘 정착민과 군인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올리브 나무를 공격하고 훼손한다. 특히 수확 철에 공격이 집중된다. 그렇기에 싸이드와 같은 현지 활동가들은 외국 활동가들과 팔레스타인 내 자원활동가들을 불러모아 이스라엘 공격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농부들을 지키고 실재 수확에도 도움이 되는 ‘올리브 수확 체험활동’을 십수 년 전부터 조직하였다. 그리고 3년 만에 다시 팔레스타인에 방문한 나는 지난 10월 10일에 아씨라 마을 올리브 수확 체험활동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 활동에는 나를 포함한 한국인 2명, 영국인 2명, 몬테네그로, 프랑스 출신 여성 활동가 5명, 현지 대학생 6~7명 정도가 함께 했다.   올리브 수확 체험활동에 참여한 국제활동가들과 현지 자원활동가들(출처 - 작성자)   싸이드와의 웃음 섞인 오전 디스전을 여러 차례 하고 나자, 농장 가족들이 노지에서 직접 끓인 ‘샤이’(홍차)와 커피, 짭조름한 양념이 입혀진 동그라한 빵들(호브스), 물과 음료수를 점심으로 내어주셨다. 2시간도 제대로 일하지 않았는데 내어준 음식에 살짝 미안함이 생긴다. 싸이드는 사람들을 삥 둘러앉게 해서 또 연설을 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표해서 여기에 참석한 국제활동가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또 어쩌고저쩌고...” 속으로 ‘이야기하는 건 좋은데 나에게 소감 이야기하란 소리만 말아라’ 하고 있는데 싸이드가 “이제부터 각국 활동가들의 소감을 들어봅시다. 먼저 제일 멀리서 온 한국 친구들부터 박수 (짝짝짝)” ‘아 쫌 ㅠㅠ’   괴로운 점심 식사가 끝나고 팔레스타인 자원활동가들과 일부 국제활동가들은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춘다. 나와 농장 주인집 아들들은 계속 올리브를 땄다. 두 시간쯤 지나니 싸이드가 돌아가자고 한다. 아쉬웠다. 해질 때까지 일해야 하는데. 헤어지면서 농장주 아들들과 힘찬 포옹을 하고 서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나는 생존으로 저항하는 이들에게 경의를, 그는 미친 듯이 일(?)만 하는 한국인(물론 다 그렇지는 않지만)에 감탄을 담은 듯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를 태운 버스는 마을 인근의 이스라엘 정착촌이 보이는 곳에 우리를 내려주고, 참가자들은 이스라엘 정착촌을 멀찍이 쳐다보았다. 가까운 듯 먼 듯싶었다. 그다음 날 10월 11일, 나블루스 내 데이 샤라프 (Deir Sharaf) 지역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의해 사망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나블루스로 통하는 모든 도로는 봉쇄됐다고 현지인들이 전했다. 인구 15만 명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중북부 최대 도시는 하루아침에 고립된 것이다. 나블루스 밖에 거주하던 여성지원센터 활동가는 출근하지 못했고 내부의 사람들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출장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여성지원센터의 교육참가자 졸업식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역 언론은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사망 사건을 보도했다. 긴장감이 높아졌고 봉쇄된 검문소를 전전하다가 이스라엘 군인들이 쏜 최루탄을 몇 번 경험하기도 했다. 10월 16일 출장 일정은 하루 앞당겨 마무리됐고 현지 운전사의 놀라운 기지와 정보력 덕분에 평소보다 2배의 시간이 걸렸지만, 무사히 나블루스를 빠져나와 다음날 이스라엘 공항으로 이동했다. 나블루스 데이 샤라프에서 북부지역으로 연결된 도로, 이스라엘군이 도로를 흙으로 막은 모습(출처 - 작성자)   이후 한국에 돌아온 10월 25일, 나블루스 시내로 이스라엘 군인들이 난입하여 4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 당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외부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과의 충돌이라 보도되지만 애초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나블루스에 난입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을 사건이다. 현실은 이스라엘 군인 1명이 사망하면 15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단 처벌을 받는다. 현실은 있는 그대로 드러나지 않고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2022-10-26 | hrights | 조회: 273 | 추천: 8
신종환 / 공무원  좋은 공직자는 어떤 사람일까? 1차 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을 준비하면서 공무원 5대 신조에서 국가에 헌신하고 시민에게 정직과 봉사하고 어쩌고 하던 말은 이제 날리다 만 먼지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충성하고 정직하고 창의적이며 적극적이고 청렴하다. 뭐예요 그런 거 한 번에 다 넣지 말아요. 그런 사람은 생텍쥐베리가 어린왕자를 위해 그려준 상자 안에도 없을 거다. 아니면 영영 잠든 모습으로만 보이거나. 민원인들, 그리고 기관과 연관된 사람들이 좋아하던 동료 내지 선배들을 떠올려 보면 좋은 공직자란 공감 능력 있고 융통성 있는 사람 정도로 이해된다. 그럼 공직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배양하기를 지향하고 있나?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주인공을 위해 다방면으로 도와주려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처럼 배척하지는 않아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권장하는 장면은 아직 보지 못했다.  작년 여름 즈음에 적극행정을 권장하기 위한 시청 교육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강사로 오신 분은 고위공직자로 여러 사업을 추진·성공시켰고 그의 대표적 성공 사업으로는 순천만 생태공원과 국제정원박람회가 있었다. 거대한 사업이었던 만큼 그는 전 세계를 종횡하며 순천만을 어떻게 변모시킬지를 고민했고,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인 찰스 젱스에게 생태공원의 전반적 설계를 부탁했다. 수조 원 대의 예산의 증감(나는 2억 원의 야구 보조금 문서의 최종 처리 버튼을 누르며 심장이 멎을 뻔했다), 주요 공사단계에서 급변하는 기후 등의 다사다난함(야구대회 간 악천후로 몽골 텐트 두 동이 날아갔을 때, 나의 의식도 거의 날아갈 뻔했다)을 겪으면서 최종적으로 생태공원 조성과 국제정원박람회는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무용담 같은 그의 교육 중간 즈음부터 나는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생태공원과 박람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못 하겠지만 그래도 저런 얘기 들으면 이 자리 누군가는 업무에 대한 열의가 생길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던 차에 그의 다음 ppt가 눈에 들어왔다. 5년을 넘어가는 사업에 대한 검찰 조사와 조사 후에는 건설업체와의 민사 소송. 그는 조사 결과는 무죄로 끝났고 인건비와 관련된 민간 사업자와의 민사 소송 또한 자신이 승소했노라고 했고 이런 몇 가지 과정을 견뎌낸다면 성공적인 적극행정 공무원이 될 수 있다며 교육을 마무리했다. 이 교육은 뭐지... 거대한 재미없는 농담인가? 적극행정은 타고난 사람들만의 영역임을 강조하는 건가?  물론 그 정도 크기의 정책을 다루지 않아도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하라는 그의 메시지 자체는 어느 정도 이해되고 좋은 취지가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직업만 바꾸면 그건 그냥 보상이 없는 대기업 임원이 아닌가.... 공직자로서 우리의 차이점은 뭐지.... 대기업에는 미처 입사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9급 시험 통과하면 우리가 되는건가.... 아니면 태생적으로 존버정신이 강한 사람들이 있어 공무원의 길을 가도록 정해진 것인가...  강사가 말한 자신이 해낸 사업, 퇴직이 임박한 과장님들이 무용담처럼 얘기해줬던 과거의 고충들... 규모의 차이를 생략하고 동일선상에 놓아보면 ‘비록 개고생했지만 마다하지 않고 이 자리까지 와서 퇴임한다네’라는 내용의 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주변에는 그들의 가던 길을 가다가 사망하거나 병가휴직 중이거나 그도 아니면 이런저런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공직에 대한 인식에서 사기업과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점은 몸담은 노조의 요구사항에서도 느낄 수 있다. 급여인상, 퇴직금 인상, 처우 개선, 점심 여건 보장 등 노조의 요구는 급여 개선과 근무여건 개선이 주를 이룬다. 성과급 폐지 등의 주장도 없지는 않지만 명목상 제안사항에 자리를 차지하는 데에 그친다. 봉사자로서의 정체성은 주목받지 못하고 임금노동자로서의 비중이 나날이 늘어간다. 봉사자로서의 보람은 어디서 찾아낼 수 있고 어떻게 보존되고 배양될 수 있을까.  임용되어 주민센터 복지 민원대에서 뵈었던 민원인 중 몇 분을 기억한다. 장애인 증빙을 위해 병원에 가야 했지만 병원 방문 및 설명이 어려워 주말에 차로 모시고 갔던 어르신, 배우자의 기초연금을 위해 방문 했지만 배우자의 치매 등으로 인해 결국 신청하지 못한 어르신. 첫 번째 어르신과는 병원 진료 대기시간 동안 얘기를 하면서 이 어르신이 신학교를 갔다가 피치 못한 사정으로 그만두고 일하다 장애를 얻어 혼자 사셨다는 걸 알았고 어르신이 고집스레 사주신 바나나 우유를 받아 마셨다. 두 번째 어르신은 어느 날 선물이라며 비타500처럼 보이는 포장 박스를 주셔서 열어 보았더니 양주가 나와서 짧게 적은 편지와 함께 문 앞에 돌려 드렸다. 그러고 한번 점심을 얻어먹으며 다음에는 술을 마시자는 그 분의 말씀에서 사람에 대한 갈증과 고마움이 섞인 감정을 느꼈다. 그 기억들은 내가 때려치우고 싶을 때마다 그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처럼 ‘내가 때려치우면 당신들은 혼자 남기에 나는 때려치우지 않소’라고 되뇔 마음속 움막이 되었다. 하지만 간혹 술자리에 그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나를 착한 미친놈이라고 했다.  우리가 직장인이고 잘리지는 않지만 박봉이라는 것이 우리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라면 시민을 홀대함으로써 생기는 상황을 어떻게 막을까. 공무원이란 말이 담아야 하는 추상적 온기는 어떻게 보존되고 배양될 수 있을까. 우리는 불가하다는 통보와 소극적이라는 민원으로 서로 맞설 수밖에 없는 것인가. 엊그제 한 것 같은데 다시 돌아온 올해 신규직원들에게 노동조합 교육을 할 생각을 하며 답 없는 고민을 한다. 출처- 작성자
2022-10-19 | hrights | 조회: 526 | 추천: 3
주윤아 / 교사    딸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주문하려고 종업원을 부르려는 순간 망설였다. ‘아줌마’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은데, 그럼 뭐라고 불러야 적절할까?’ 사실 이런 식의 고민을 이번만 한 건 아니어서 얼마 전부턴 ‘사장님’으로 종종 부르기도 했다. 실제 주인이 아니더라도 존중받는 느낌에 기분도 좋아지고 계속 듣다 보면 주인의식? 비슷한 마음도 우러나지 않을까 혼자 오버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장님’으로 부를 때도 입에서 겉도는 느낌이고, 종업원 여럿이 돌아다니거나 진짜 사장님이 계산대에 있거나 하는 등의 상황도 있고 어쨌든 이 단어도 썩 내키지는 않는다. 어떤 표현이 더 좋을지 이야기하는데 딸이 이런 질문도 했다. 길거리나 식당 출입문에 ‘주방 이모님 구함’이라는 공고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진짜 구직 조건에 ‘중년(’님‘을 붙인 것을 통해)’ 즈음의 연령대와 ‘여성(이모라는 구체적 단어 적시를 통해)’이라는 성별을 특정한 것인지, 아니면 의례적으로 쓰는 표현인 건지 궁금했단다.   출처 : 27일 신촌역 인근 한 식당에 구인공고가 붙어 있다. 2022.9.27/뉴스1 김예원 기자©news1    요즘의 대학가에서도 ‘이모(라는 단어가 들어간) 식당’이라는 간판도 적지 않고, 단골 학생들이 자연스레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식당에서의 이 호칭은 사전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마치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유구한 전통처럼 보인다.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에게 가족 관계 호칭(이모 외에 고모, 엄마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을 사용하며 그 식당 안의 모두가 갑자기 가족이 되어 버리는 이 풍경을 외국인이 본다면 어쩌면 이모(친족)가 일하시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물론 친근함을 전하는 익숙한 표현일 뿐이라며 유난스럽다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상대가 원치 않는(손님뿐 아니라 종업원도 불쾌해하는) 종류의 호칭 사용*으로 인해 갈등이 불거진 사건들이 잊을만하면 보도되고 있고, 성 고정관념도 강화하며, 그들의 노동을 제대로 정의(평가)도 하지 못하는 단어라면 분명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출처 : 2018.7.9.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호칭 논란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또 다른 단어 중 하나로 '아줌마'가 있는데,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결혼한 여성을 의미하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이르는 표현인데다 '나이 든(늙었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며) 여자'를 지칭하는 말로 확장되면서 누구든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되어버렸다. 공사 현장 등에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김 씨’, ‘이 씨’처럼 성으로만 부르거나 ‘삼촌’, ‘아재’ 등으로 무명씨로 뭉뚱그려 하대까지 하는 상황도 비슷한 예일 것이다. 학교에서도 교직원들이 청소 노동자를 공공연하게 ‘여사님’으로 호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언젠가 학생들까지 이렇게 부르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마찬가지로 급식 노동자에겐 ‘아줌마’, 경비 노동자는 ‘아저씨’,‘할아버지’로 부르는 경우도 많다 보니, 성 역할 고정관념 없이 직무 특성을 반영한 적절한 호칭이 절실하다.  어휘력이 떨어지는 건지, 창의력이 부족한 건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땅한 호칭이 생각나지 않아 집에 와서 검색 등으로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다. 십여 년 전부터 국립국어원에서 관련 연구가 있었고, 문제 해결을 위해 식당 노동자 호칭 공모 대회 등을 통해 ‘차림사’라는 새 호칭을 선정하여 발표하고, 국립국어원의 한 관계자는 직원의 지위나 성별과 상관없이 ‘종업원님’이라고 부르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강산이 한번 바뀌도록 사용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실효성은 없어 보인다. 차라리 일부 식당들처럼 종업원들의 명찰(이름이나 닉네임)을 보고 부르거나, 적잖이 사용하는 ‘여기요, 저기요(서양의 ‘excuse me’의 의미와 유사한)‘ 등을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말의 힘은 매우 강하며 대중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 새 언어로 선택되어 바뀌기도 한다. 욕설을 일상으로 사용하는 무리와 자주 어울리거나 혐오를 목적으로 조직된 모임에 속해 있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저도 모르게 차별과 혐오의 언행이 반복되어 일상이 되다가 곧 나의 정체성이 돼버린다. 수년 혹은 수십 년간 사용하던 말이나 습관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결심한다고 하루아침에 존중과 배려의 언어가 절로 나오지는 않는다. 내가 차별과 혐오로부터 보호받길 원하듯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인식이 갖추어져야 지혜로운 단어를 선택하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능력도 생길 것이다. 요즘 ‘미망인’이나 ‘정상인’이라는 용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이가 부쩍 줄어든 것처럼 식당에서 ‘아줌마’라고 부르는 풍경이 기묘해질 그날을 위해 익숙한 단어와 헤어질 결심을 하자!  에필로그 : 이 글을 작성한 후에도 중년 남성이 식당 아르바이트생에게 ‘아가씨’라 불러 갈등을 겪은 사건 보도와 ‘사실 식당 (여)종업원들은 호칭보다 반말과 성추행 등이 더 괴롭다’라는 내용을 다룬 기사들을 연이어 접하며 고구마 백 개 먹은 듯한 또 다른 답답함이 밀려온다. *대민 업무를 주로 하는 관공서와 식당과 같은 서비스·판매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손님의 호칭에 대한 불쾌감을 묻는 질문에는 ‘아저씨·아주머니(아줌마)’ 등으로 부르는 경우 절반 가까이(46.6%) ‘불쾌하다’고 응답했다. ‘아가씨·총각’으로 부르는 경우 역시 불쾌하다는 응답이 35.4%였다.  출처 : 화성시여성가족청소년재단 양성평등 이슈레터(2021년 11월 셋째주)
2022-10-12 | hrights | 조회: 445 | 추천: 6
이회림 / 경찰관 당신은 멋진 어른인가요? #멋진어른되기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학교전담경찰관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이하 '학폭위‘)에 ’경찰위원‘으로 출석하여 가해·피해 학생 대상 조치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가해자, 피해자, 선생님, 목격자, 심리전문가 등,, 학폭위 사안 심의를 하다 보면 이렇게 많은 사람의 진술을 모두 듣고 즉석에서 질문을 해야 하기에 저녁 6시를 훌쩍 넘겨 심의하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아무래도 수사가 아닌지라 객관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가 · 피해 학생이 서로의 상반된 진술만을 주장하거나 당사자인 학생들보다 학부형들끼리 감정의 골이 깊어 양측의 화해가 극심히 힘든 경우에 심의는 이렇게 무한정 길어지기도 합니다. 어느 사안이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심한 경우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였다는 학생들이 종종 있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개선을 해야 근본적인 대책이 되고 치유가 되는 것인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았고 말입니다.  학교폭력이 근본적으로 사라지고 나아가서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가 근절될 수 있는 뭔가 새로운 예방책이 없을까? 기존의 예방 활동 이외에 뭔가 근본적인, 즉 작금의 분위기를 점진적으로 혹은 확 바꿔버릴 수 있는 그런 묘책이 과연 뭘까 하는 생각을 줄곧 하면서 학생들을 만나고 또 학폭위에 참석하는 날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청소년참여정책자문단  각 경찰서 여성청소년계 학교전담경찰관들은 관내 청소년들의 신청을 받아 청소년참여정책자문단(이하 '청참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 1기로 시작하여 현재 2기에 접어든 파릇파릇한 조직인데 아직은 뇌가 말랑말랑한 초, 중, 고 청소년들과 학교전담경찰관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아동, 청소년 대상 이슈에 대해 토의, 토론하거나 범죄예방 홍보 활동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하루는 2021년 청참단 단원이었던 A고 여학생 ‘지민(가명)’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작년에 함께 찍은 학교폭력예방 홍보 유투브 영상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지민이가 저를 가리켜 '멋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 이르러, 무언가 잊고 있었던 것이 갑자기 생각난 듯이 반가웠습니다.  ‘맞아, '멋있다'는 표현, 나는 내 직업 덕분에 지민이에게 '멋진 사람.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었지.. 내가 학생들에게 했던 말과 행동은 굳이 경찰이 아니어도 응당 어른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었음에도 지민이는 멋있다고 감탄했었고…’  결국 누구든 청소년들에게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자 하는 어른이라면, 이렇게 '멋'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찬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즉 경찰이 아니어도 아이들에게 멋진 사람이 되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른들 모두 그냥 어른 말고 '멋진 어른' 한번 되어 봅시다~ 하는 마음으로 '멋진어른되기프로젝트 캠페인‘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출처-pixabay  멋진어른되기프로젝트 캠페인  '멋프 캠페인'의 중심 플랫폼은 카카오 채널 '멋진 어른되기프로젝트' 입니다. 카카오톡에서 돋보기 아이콘을 누르고 '멋진 어른'을 치면 바로 입장 할 수 있습니다. '멋프' 카카오채널에 들어가면, 캠페인 1호 영상을 만날 수 있는데 넷플릭스 인기드라마 '지금우리학교'에서 학교폭력 피해 학생으로 등장한 철수와 은지를 전면에 내세운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 둘은 '지금우리학교'의 주변 인물일 뿐이지만 '멋프' 캠페인에서는 주인공으로 등극했습니다. 캐리 커쳐 작가에게 콘티를 보내고 작품을 기다리는 동안 뒤에 이어 붙일 타이포그라피에 들어갈 문구를 만들고 최종 편집 작업은 제가 직접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경찰청 성별영향평가를 거쳐 '수정권고사항없음'으로 최종 통지를 받아 마음 편히 SNS등을 통해 전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멋프 캠페인'은 '청참단' 회원들과 함께 계속해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낼 것이고 누구나 멋진 어른이 되고자 하는 이는 멋프 채널을 통해 배달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혹시 주변에 힘들어 보이는 아이들이 보이면 모른척 하지 않고 '멋진어른수칙'대로 한번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자~이 글을 읽으신 어른 여러분들, 이제 카카오톡을 열고 돋보기 아이콘을 눌러 ‘멋진어른’ 네 글자를 넣어주십시오. 온갖 쇼핑채널이 난무하는 카카오톡채널 생태계에서 유일무이한 신선한 채널이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멋진 어른들의 관심 하나하나가 모여 커다란 힘을 발휘하고 내 주변을 변화시키는 데 분명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채널추가를 하신 후에는 반드시 청참단 청소년들이 직접 출연한 캠페인 영상들을 끝까지 보아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신비스러워하는 MZ세대 청소년들이 용기 내서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까요. 부디 관심을 보여주세요. 멋진 어른님들!!
2022-10-05 | hrights | 조회: 245 | 추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