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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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서동기(대학생),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농부), 이회림(○○경찰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 우리 삶을 바꿔줄 진짜 민주주의로 가자! 이현정/ 꽃씨네농작물 농부 불과 몇 달 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박근혜와 이재용이 피의자 신분으로 구치소에 갇혔다. 김기춘 등 그 부역자들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들이다. 촛불 혁명이다. 광장의 힘이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광장민주주의의 힘이다. 이로 인해 급작스럽게 장미 대선이 시작되었다. 정권교체다 시대교체다 말이 많다. 그러나 난 솔직히 우려된다. 과연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된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촛불 혁명으로 불리워지는 광장민주주의. 이제 일상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정권교체만으로는 어렵다. 지지율 1, 2위 후보들이 내놓는 정책과 주변 사람들을 보면 어려운 얘기다. 시민들의 힘, 광장의 힘이 모이는 민주주주의가 필요하다. 우리의 일상을 과거와는 다른 것으로 바꾸는 그런 민주주의 말이다. 요즘 유시민 작가가 많이 회자된다. 그가 지금 이 시대에 던지는 화두는 ‘국가와 민주주의’였다. 어려운 주제다. 그런데 방송에서 예능 형식으로 편하게 던져진다. 당연히 시청자들에겐 쉽게 다가온다. 그는 시민 권력이 중심이 되고, 각 권력의 제한, 분산, 상호견제 장치를 두는 민주주의 제도를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과연 시민 권력이 중심일까. 언제나 정치인 바라기다. 지금 대선 국면도 마찬가지다. 결국 시민들의 투표로 대통령이 선출되지만, 거기까지 일 뿐이다. 좀 더 한다면 광장에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갖는 것뿐이다. 우리에게 행복추구권, 평등권, 노동권 같은 기본권을 되찾아야 한다. 새로 만들자는 게 아니라, 헌법에 있는걸 재확인하고, 되찾으면 된다. 시민권력이 주인 노릇을 하자. 결국 일상 속에서 내 삶의 민주주의를 되찾자. 나와 가족, 우리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되찾자. 나와 우리의 평등을 얘기하자. 직업, 재산, 권력 그리고 피부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지 말자. 우리의 노동권을 얘기하자.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을 귀하게 여기고 대우해주자. 그리고 다른 이들의 비정규직 노동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함께 바꾸자. 위 얘기는 현행 헌법에서 모두 다루고 있다. 바쁜 일상에 이 헌법 정신을 모두 잊어버리고 살았을 뿐이다. 더불어 살면서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었다. 이제 우리가 직접 해보자. 헌법 읽기와 헌법정신 실천모임을 지역에서, 마을에서 만들자. 함께 떠들고 배우자. 그리고 나와 우리 주변부터 시민 권력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하나씩 하나씩 바꾸자. 필자도 낯선 곳 제주 중산간마을로 내려온 지 2년이 조금 지났다. 조금씩 적응을 해가고 있다. 요즘엔 콜라비*브로콜리 농사를 끝내고, 새로운 농산물을 심으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내가 사는 곳 주변에서도 위와 같은 모임을 시작해야겠다. 혹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제주 서쪽에 사는 분들에게 소개도 해주셨으면 한다. 이제 우리 삶을 바꿔줄 진짜 민주주의로 가자. 조금씩 하나씩 바꿔보자. 작은 곳에서 더 많은 것을 나누고 더 연대하는, 그래서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이 조화로운 행복한 마을과 지역을 꿈꾸자. 이게 87년 체제 이후의 새로운 진짜 민주주의였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독일 프리드리히 에버트의 말이 떠오른다. “민주주의자 없이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2 | 추천: 1
이동화/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활동가 미얀마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라킨주 북부지역, 그곳에는 로힝야(Rohingya)라고 불리는 민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며 미얀마 내 수많은 소수민족 중 하나이다. 슬프게도 이들을 설명하는 또 다른 수식어가 있는데, 그건 ‘세상에서 가장 박해를 받는 무국적 난민 소수민족’이라는 것이다. 로힝야 사람들은 미얀마의 군사독재시절부터 심각한 인권침해에 노출되었는데, 최근 미얀마 군에 의해서 수 백 명이 학살당하고도 7만 명 이상의 로힝야 사람들이 삶의 터전에서 내쫓긴 너무도 심각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5개월 전으로 거슬러간다. 2016년 10월 9일, 미얀마 라킨주 국경지역 초소가 괴한들에 의해 공격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미얀마 경찰 9명이 사망했다. 미얀마 정부는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사건의 배후를 로힝야 무장 세력으로 단정하고 대대적인 로힝야 토벌작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적개심을 품은 미얀마 군인들은 범인색출을 빌미로 마을에 침입하여 마을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아디가 올해 2월,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서 만난 피해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미얀마 군은 헬리콥터를 타고 마을 위에서 주민들을 조준사격하며 살해했고, 여성을 성폭행하면서 2살 난 아이를 땅에 내동댕이쳐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피해생존자 쏨쏠님. 사진 및 영상촬영은 본인의 동의하에 진행되었습니다. 사진 출처 - 아디 또한 마을의 건장한 청년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고문을 하거나 살해하였다. 가족 내 남자들이 군인에 의해 끌려간 이후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 피해생존자들은 실종된 가족들이 모두 살해 되었을 거라 여기고 있다. 법과 질서는 사라졌고 오직 폭력과 공포만이 가득했다. 피해증언자들은 하나같이 미얀마 군인들이 로힝야 사람들을 사람취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진행된 군사작전으로 로힝야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맨몸으로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 난민이 되었다. 최악의 인권탄압 사건을 맞아 국제인권단체와 국제사회는 미얀마 정부에게 즉각적인 군사작전 중지를 요구하며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미얀마 민간정부를 압박했지만, 미얀마 정부는 무책임하고 실망스러운 반응을 내놓았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미얀마 정부는 도리어 군사작전으로 인한 로힝야 주민의 피해를 인정하지 않고, 미얀마 라킨 주 내 로힝야 주민의 이동을 제한하며 외부로부터 접근도 막았다. 정부의 조직적 방해와 탄압으로 인해 로힝야 주민들의 정확한 피해 규모는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해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2017년 2월 유엔은 로힝야 인권침해 보고서를 제출했고, 3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이양희 유엔인권보고관이 로힝야 사람들의 인권참상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한 3월 16일에는 미얀마 로힝야족 문제해결을 위한 자문위원회 수장인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이 미얀마 양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로힝야족에 대한 ‘범죄’에 대한 독립적이고 공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서 만난 로힝야 피해생존자들의 실상은 절망적이었다. 순식간에 7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피난 와서 캠프촌을 생성하였기에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다. 로힝야 사람들이 다시 돌아갈 마을도 집도 사라졌다. 당장의 죽음의 공포는 막막한 생존의 공포로 바뀌었다. 긴급구호가 절실하지만 도움의 손길은 보이지 않았다. 아디가 만난 피해생존자들도 공포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이야기했지만 현재의 어려움도 많이 토로했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미얀마 군에 의한 군사작전은 중지됐지만 인권탄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얀마 정부는 여전히 사건자체를 부인하며 로힝야 주민들을 미얀마국민으로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 인접국인 방글라데시조차 난민의 유입을 꺼려하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버마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아웅산 수치여사는 해당사건에 침묵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와 국제사회가 계속 침묵한다면 철저하게 고립된 로힝야 사람들의 어려움은 계속될 것이다. “제발 우리를 기억해 달라” 피해생존자 중 한 명이 증언 말미에 던진 덤덤하지만 처절한 외침이 가슴에 울린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3 | 추천: 1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 뭍에서 살기 전까지는 경남 남해안의 섬에서만 살았습니다. 집안 사정 때문에 한 곳에서만 산 것이 아니라 세 군데 섬을 옮겨 다녔는데 그중에서 다섯 살 무렵에 살았던 두 번째 섬에 관한 희미한 기억입니다. 그 섬은 다른 두 곳의 섬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작았는데 전국지도는 물론이고 경남의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작았습니다. 가구 수는 우리 집을 포함해서 달랑 두 가구였습니다. 집이 한 채 더 있기는 했는데 그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라서 꼬마들의 놀이터 역할을 했습니다. 그 섬에 살았던 총인구수는 우리 집에 3명,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이들이 많았던 이웃집에 6~7명으로 섬에 사는 모든 사람 수가 10여 명 정도밖에 되질 않았습니다. 섬이 작다 보니 전기는 당연히 들어오지 않았고, 가끔 식수도 모자라서 이웃한 큰 섬에서 커다란 통에 물을 실어오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1970년대, 크기도 작고 거주하는 사람도 적었던 그 섬에 학교가 있었습니다. 이웃집의 자녀 2명만 국민(초등)학교에 다니는 연령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그 섬에 있었던 겁니다. 희미한 기억 속의 그때 그 학교 교실은 3-4평 정도 크기였고 정식학생은 2명뿐이었지만 취학연령이 되지 않은 저와 이웃집 아이들도 교실 뒤편에서 수업을 같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수업내용은 이해되지 않았고 지루하기도 했겠지만, 저와 이웃집 꼬마들은 오전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앉아있었습니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수업이 마치면 선생님께서 꼬마들에게 누런색 종이 포장지에 담겨있던 건빵을 나눠 주셨기 때문입니다. 두 명만 수업을 듣는 삭막한 수업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선생님의 시도와 군것질할 작은 점방 하나 없는 섬에서, 단것에 굶주려 있던 꼬마들의 이해관계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진 풍경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몇 년 후 뭍에서 학교에 다닐 때 저를 알아본 그때 그 선생님과 반갑게 해후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저의 유년시절 기억을 불러내온 계기는 최근에 지역 언론을 통해 접한 기사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충남교육청은 충남 보령시의 작은 섬 녹도의 분교가 2006년 학생 수 감소로 폐쇄된 이후 10년 만에 순회교육 학습장 형식으로 다시 열기로 했다고 합니다. 녹도에 사는 올해 초등학교 유일한 입학생이자 재학생인 류찬희 군을 위해 충남교육청에서 어려운 결정을 해준 것인데 폐교됐던 지역에서 학교 교육이 다시 시작된 것은 전국 최초의 일이라고 합니다. 녹도의 주민들은 마을잔치를 열어 10년 만에 재개된 마을에서의 공교육을 환영했다고 합니다. 교육은 물론이거니와 세상 모든 것이 효율성과 경제성만을 따지는 세태에 보기 드문 풍경이라 기사를 읽는 내내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이민철 청파초등학교장이 지난 3일 호도분교 녹도학습장에서 류찬희군(오른쪽)과 옆 섬마을 호도분교 고가은양의 입학허가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충남교육청 이 기사를 읽고 나서 생각의 끈은 지난 연말연시에 있었던 대전의 변두리 학교인 기성초등학교 길헌분교의 통폐합 논란에까지 닿았습니다. 길헌분교는 전교생이 22명에 불과한 소규모 학교입니다. 지난 연말 대전교육청은 학생 수가 적어서 두 학년씩 같이 수업을 진행하고, 조리실이 따로 없어 급식도 본교에서 가져다 먹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길헌분교를 폐쇄하고 본교와의 통합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길헌분교 학부모 18명 전원은 대전교육청이 통폐합 기준인 학부모 75% 이상의 동의를 얻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폐합을 추진한다면서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학부모들은 도심의 큰 학교가 싫어서 일부러 길헌분교에 아이를 보낸 분도 있고 통합되면 먼 기성초등학교까지 통학의 어려움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은 무시하고 무리하게 통폐합하는 것이 교육부로부터 지원받는 인센티브 30억 원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주장했습니다. 학부모와 지역 시민단체가 통합반대운동을 펼친 결과, 지난 1월 대전시의회 교육위원회에서 기성초 길헌분교장 통폐합을 다룬 대전시립학교 설치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은 학부모와 주민의 의견수렴 부족 등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부결됐습니다. 한 명의 학생을 위해 10년 만에 폐교를 되살린 충남교육청과 학생, 학부모 모두가 반대하지만 22명의 학생을 강제로 본교와 통폐합하려고 한 대전교육청의 정책추진은 많이 다릅니다. 몇 달여 사이에 공교롭게도 이웃한 두 교육청에서 소규모 학교에 대해서 전혀 상반된 모습이 나온 것이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1970년대와 40년이 훌쩍 지나버린 현재를 비교해보면 각종 경제발전 수치에서 대한민국은 비약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커진 빈부 격차와 소득 격차, 그리고 도농 간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실질적 차이는 발전의 과실을 어떤 특정세력과 지역만이 가져간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대한민국의 섬에 사는 주민들에게 1970년대에는 가능했던 학생 한두 명도 학교를 갈 수 있게 책임지는 공교육이 2017년에는 가능하지 않다면 그런 발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31조는 교육권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민은 자녀에게 의무교육을 받게 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자녀가 의무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라면 국민이 어디에 거주하고 있더라도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녹도로 이사 온 류찬희 군은 섬에 학교가 없어 이웃 섬마을 학교인 청파초 호도분교로 매일 배를 타고 통학해야 할 처지였다고 합니다. 마땅한 통학수단이 없자 찬희 부모님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지난해 충남교육청에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은 함께 해야 하며, 의무교육 대상자인 찬희를 국가가 책임져 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에 충남교육청은 재정적 어려움과 효율성 보다는 한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행정이 평등한 교육의 출발선이라며 어려운 논의 끝에 녹도에도 학습장을 여는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한 명의 초등학교 입학생을 위해 10년 만에 학습장을 연 충남교육청의 결정이 22명의 초등학생과 그 학부모 모두가 반대하는데도 폐교를 추진한 대전교육청의 교육행정보다 훨씬 인권적이고 헌법 가치에 충실한 교육행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3 | 추천: 1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설 연휴를 마치고 첫 출근날. 점심을 먹으려고 모인 여성 동료들 사이에서 명절 스트레스에 대한 얘기가 쏟아졌다. 명절 내내 설거지 하느라고 허리가 휠 것 같았다거나, 열심히 일하는데 낮잠 자고 있는 남자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얘기는 지겹게도 반복된다. 누구네 시댁은 시골인데 남자들에게만 밥상을 차려주고 여자들은 비좁은 부엌에서 따로 밥을 먹는다더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시대가 바뀌어도 시댁 풍경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나는 예외였다. 가까운 곳에 사는 시어머니는 설 음식을 간단하게 준비할 테니 굳이 전날에 와서 도와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설날 아침을 먹은 뒤에는 시아주버니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점심에는 남편이 설거지를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설에는 잔심부름 외에 공식적인 주방 일에서 해방됐다. 이런 얘기를 하니 여성 동료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감탄사가 나왔다. 시댁이 남녀평등을 실천하는 훌륭한 가정으로 비쳐진다는 것에 대해 괜히 우쭐해졌다. 그때 동료 한 명이 이런 얘기를 했다. “명절 음식은 결국 시어머니 혼자 다 했겠네.” 아뿔싸. 그랬다. ‘시어머니의 노동’을 잊고 있었다. 묵묵하게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해 차례 음식을 준비한 것은 다름 아닌 시어머니였다. 아들들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쉴 틈 없이 남은 음식을 정리하고 자식들 집에 싸 보낼 음식을 분류했다. 나조차도 그런 시어머니의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우쭐했던 마음이 급격하게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단지 며느리 한 명을 주방 일에서 해방시켰다고 남녀평등이 실천된 것은 아니다. 뒷감당은 결국 여성인 시어머니의 몫이었다. 시어머니는 대학을 졸업한 뒤 교편을 잡다가 결혼과 동시에 전업 주부가 되었다. 시어머니의 노동으로 시아버지는 직장에 전념할 수 있었고 세 명의 자식은 잘 자랐다.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그런 시어머니의 노동을 지금껏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시어머니는 원래부터가 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손맛이 깃든 요리를 하고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보람을 느끼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런데 만약 그런 시어머니에게도 ‘아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든 집안일을 감당해주고 아이를 키워주고 바깥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교사 일을 계속 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적성에 맞는 새로운 일을 찾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에게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 옆에 ‘아내’가 있었다면. 우리는 왜 지금까지 그런 상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까? 사진 출처 - 한겨레 호주의 저널리스트이자 정치평론가인 애너벨 크랩이 쓴 책 <아내 가뭄>은 이렇게 말한다. “여자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고. 여성의 사회 진출은 늘었지만 여전히 리더로서의 여성이 부족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주당 70시간 근무가 성공의 열쇠가 되는 직업군에서 아내가 있다는 것이 어째서 지랄 맞게 유용한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따라서 (아내를 가질 확률은 현저히 낮고 그 자신이 아내가 될 확률은 월등히 높은) 여성들이 이러한 회사의 높은 자리에 오르는 빈도가 남성들 근처에도 못 미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시대에는 오로지 여성이 아내의 역할을 강요당했다. 그러나 맞벌이 시대인 지금은 서로가 서로의 아내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은 여전히 지독히도 힘들다. <아내 가뭄>에는 워킹맘들이 겪는 어려움뿐 아니라 워킹대디들이 집안일을 위해 직장의 양해를 구할 때 부딪치는 장벽도 다루고 있다. 육아와 가사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남성을 사회가 ‘사회적 패자’ 취급을 하는 것, 전업주부 남편이 받는 차별과 사회적 폭력 등도 함께 다룬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남성만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집안일을 아내에게 맡긴 채 야근을 하는 남자에게 “역시 남자가 일을 더 잘하지”라고 말하는 것, 칼퇴근을 하고 어린이집으로 달려가는 여자를 두고 “역시 여자는 이래서 안 돼”라고 생각하는 일 따위를 그만 둬야 한다. 남자에게도 육아와 집안일을 위해 일찍 퇴근할 수 있는 권리를, ‘아내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그래야 함께 살 수 있다. 여자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62 | 추천: 1
이동화/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팀장   시리아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2011년 3월 ‘쟈스민 혁명’, ‘아랍의 봄’으로 불리었던 중동지역에서의 민중봉기는 시리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시리아를 독재했던 알 아사드 정권, 그 독재정권을 향해 시리아 민중은 거리로 나와 독재정권의 퇴진을 외치며 다른 중동지역 국가처럼 정권교체를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독재정권은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하였고,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으며, 체포, 고문, 감금, 살해 등의 방식으로 잔혹하게 탄압하였습니다. 계속되는 탄압에 시리아내 민병대와 주변 국가들의 군벌들, 다양한 세력의 군사조직이 반군이라는 깃발아래 모여 독재정권의 정부군과 전쟁을 벌였고, 시리아 각 지역에서 일진일퇴하며 내전은 심화되었습니다. 거기에 잔혹한 민간인 학살과 테러를 자행하는 IS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며 시리아를 둘러싼 전쟁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됩니다. 이후 정부군을 러시아와 이란이 지원하고, 터키와 주변 아랍국가, 나아가 미국이 반군세력을 지원하면서 시리아 내전은 국제전 양상을 띄게 되며 시리아인들에게 시리아는 죽음의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2016년 12월 30일 러시아와 터키의 중재로 정부군과 반군은 휴전에 돌입하였지만 여전히 정부군측의 공습과 산발적 교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6년 10월 21일 유엔인권이사회 발표에 따르면 650만 명의 시리아 내부난민(Internally displaced)이 있고, 480만 명의 해외난민이 세계 각지를 떠돌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인접국인 터키에 270만 명, 레바논에 100만명 그리고 요르단에 66만명이 머무르고 있고, 수십만명이 유럽과 인근 아랍국가들, 아시아, 한국, 일본, 미국 등으로 목숨을 건 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2011년 시리아 사태가 발생했을 때 시리아 인구가 2300만 명이고 유엔이 발표한 난민수가 1130만명이니 전체 인구의 절반이 난민입니다. 재앙입니다. 또한 시리아인권관측소(Syrian Observatory for Human Rights)는 2016년 12월 현재 시리아 내전으로 사망한 인원이 31만 2001명에 이르며, 그 중 민간인 희생자는 9만 명, 어린이는 1만 6천명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유엔시리아 특사인 스테판 데 미스투라씨는 2016년 4월 한 외교지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시리아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40만명이 넘었을 거라고 전했고, 2016년 2월 민간단체인 시리아정책연구센터는 희생자를 47만명으로 추산하였습니다. 지구 한편에서 지옥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을 때 한국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2016년 2월 영국에서 개최된 시리아 공여국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1200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하며,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 인도주의 외교를 브랜드화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시리아 사태 이후 한국 정부는 시리아 난민신청자 중 668명에게 인도적 체류 자격을 부여하고 3명을 난민으로 인정하였다고 발표하며 ‘인류애 귀감’이라고 자체 평가를 하였습니다. 참으로 낯 뜨거운 발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겠지만 2015년 하반기 시리아 출신, 주로 알레포 출신의 시리아 난민들은 무려 8개월 동안 인천공항 송환대기실에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채 사실상 구금 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국내 뉴스뿐만 아니라 CNN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다행이 국내 난민지원 단체와 법률가 단체에 의해 현재 난민인정 소송을 진행하면서 구금은 풀린 상황이지요. 또한 정부가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인도적 체류허가란 것도 난민지위와는 달리 추방만 되지 않을 뿐 6개월마다 비자연장심사를 거쳐야 하고 건강보험 등의 혜택은 받을 수 없으며 단순노무직외의 직장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또한 2015년 12월 31일 기준 한국의 난민인정율은 3.8%이고 가족결합과 행정소송 승소건을 제외하면 1.9%에 불과합니다. 어디 나가서 난민관련해서 인류애를 이야기할 수 없는 최저 수준입니다. 또한 정부가 밝힌 인도적 지원도 일본의 지원금액의 1/10수준이고,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와 비교했을 때도 한참 떨어지는 금액입니다. 물론 2012년부터 한국 정부가 약속한 금액은 꾸준히 늘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점이지만 시리아에 인도적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매년 약속한 금액이 제대로 다 납부되었는지,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유엔직원의 인터뷰에 따르면 미국 및 유럽, 아랍 국가, 한국 등이 약속한 금액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아서 시리아 난민 지원사업이 매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국제사회에서 생색내기용 약속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지요. 사진 출처 - 쿠르디와 옴란 돌아와서, 시리아의 전쟁과 난민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나 2015년 지중해 연안에서 잠이든 듯이 하늘나라로 간 쿠르디, 알레포 폭격에서 구조되어 얼굴이 피칠갑이고 먼지투성이였던 옴란의 모습은 전세계 많은 이들의 분노와 슬픔을 자아냈습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시리아 전쟁의 해결책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전세계의 수많은 개인들은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국가의 경우 안타깝고 무기력해서만은 안 됩니다. 전쟁을 막기위한 외교적 정치적 방법을 찾아보고 시리아 난민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수용할 방법을 찾고 관련 자원들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이 한국 정부가 스스로 밝힌 국제사회의 중견국(?)으로서의 자세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시리아는 한국에서 수천 킬로 떨어진 먼 국가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도 1950년 전쟁을 겪었고 그 폐허 속에서 여기까지 성장하였습니다. 한국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전쟁당시와 전쟁이후에 국제사회의 도움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정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약속한 인도주의 약속을 지키고 이 돈이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개인들이 할 수 없는 영역의 일들을 해야 하고 그것이 정부의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21세기 최대의 재앙을 막기 위해 외교적 수사속에서 면피하려는 모습을 버리고 유엔 회원국으로서, 인권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의 중요한 역할자로서 의무를 다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정부의 의무이행을 위해 한국의 시민사회도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안타까움고 무기력함을 넘어 고통으로 눈물흘리는 이들의 곁을 지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5 | 추천: 1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지난 11월의 어느 주말에 있었던 일이다. 촛불집회에 가고 싶다는 중학교 2학년 딸아이를 데리고 부부가 함께 서울 광화문에 다녀왔다. 딸아이도 그랬겠지만, 꽤 오랫동안 집회에 나가봤던 우리 부부조차도 그렇게 많은 집회 군중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박근혜 정부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 분노해서 거리에 나왔음에도 대개의 시민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수많은 사람을 확인한 안도감인지, 아니면 흥겨운 집회 분위기에서 오는 승리감인지 모를 밝은 표정들 일색이었다. 버스를 타고 자정이 넘어 집에 도착했지만, 그냥 자기에는 집회에서의 흥분이 잘 가시지 않았다. 치과 진료차 집에 오셨다가 막내 아이를 봐주고 계시던 장모님도 고생했다며 가볍게 맥주 한잔을 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가 광화문 광장에 있었던 세월호 농성장에까지 이르렀을 즈음 아내가 장모님께 조금은 느닷없는 질문을 했다. “엄마, 엄마는 아직도 죽은 언니와 오빠가 자주 생각나?”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가의 아픈 가족사를 꺼내야만 한다. 아내가 아주 어렸을 때 처가에 불이 나서 아내의 오빠와 언니가 저세상으로 가는 슬픈 일이 있었다고 한다. 가족에게는 엄청나게 큰 사고였지만 당시에 아내는 너무 어려 기억이 전혀 없어서 그런지 연애 시절에도 나에게 비교적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 준 사건이었다. 그날도 장모님은 세월호 사고 희생자 부모들의 이야기 끝에 나온 아내의 그 질문을 덤덤하게 듣고 있었다. 장모님은 대답하셨다. “그럼 항상 생각하지. 성당 갈 때마다 너희 부부와 손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먼저 간 그 아이들을 위해서도 늘 기도한단다.” 40여 년이 흐른 세월 속에서도 먼저 간 처남과 처형을 위해 항상 기도하신다는 말씀이 무겁게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또 장모님은 말씀하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길로 못 다녔어. 아이들을 먼저 보낸 것이 늘 죄스럽고 부끄러워서 작은 골목길로만 다녔어…….” 장모님의 뜻밖의 말씀에 아내도 나도 한동안 다음 대화를 이을 수가 없었다. 아내는 처음 듣는 얘기에 장모님이 안타까웠던지 그런 생각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끝에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했다. 장모님은 참 밝고 활동적인 분이시다. 트로트 가요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가사를 적어 외워서 부르는 노래가 꽤 있으며, 지역 합창단과 성당 활동도 열심히 하시고 동네일도 거의 꿰뚫고 있으시다. 그런 분의 내면에 우리 부부로서는 도저히 짐작도 못 할 슬픔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자리 잡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어머니’라는 존재가 자식에게 얼마나 커다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지난 11월 26일 서울 을지로에서 세월호 고래와 함께 광화문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한편 이제 2년이 지났을 뿐인 세월호 사고 희생자 부모들의 마음은 장모님의 그것과 비교해 얼마나 힘들었고 또 아팠을까를 짐작해본다. 혹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심리상태도 그 사고에 대해 부모로서 아이들을 먼저 보낸 ‘부끄러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에 대한 ‘부끄러움’은 희생자 부모의 것이 아니라 당시 각종 부조리로 사고를 일으켰던 선박회사와 구조를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못하고, 이제껏 진상조사를 위한 어떠한 적극적인 조치도 하지 않는 정부 당국의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연말을 넘어 새해로 넘어가고 있는 촛불집회의 기운이 세월호 진상규명에도 미치기를 염원한다. 11월 어느 주말 밤 시골 장모님께서 얘기해 준 ‘부끄러움’의 사연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또 한 가지 시선을 깨닫게 해 주었다. 부조리한 대한민국 현대사에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떳떳하게 세상을 활보하며 다니고 그것과 상관없는 대다수의 민중은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느꼈어야 했던 시간이 상당수였다. 이번만큼은 촛불집회에서 많은 사람이 외치고 있는 각종 구호처럼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닿는다. 그래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위정자들에게 제대로 된 ‘부끄러움’을 알게 해 주었으면 싶다. “당신들은 큰길에 나설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하고 말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3 | 추천: 0
신혜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2012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구호로 내건 박근혜 대선 후보는 TV토론회에서 보여준 부족한 말주변과 공약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그는 과감한 복지정책을 하되 증세는 없다는 모순된 주장을 펼쳤다)을 뒤로 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2016년, 국민의 80%는 그의 하야를 지지하고 있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최악의 비리 대통령으로 남게 될 판이다. 박 대통령의 실패를 ‘여성의 실패’로 해석하고 싶지 않은 시민들은 박 대통령의 여성성을 아예 제거해버리는 전략을 택했다. 그가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의 이미지를 내세워 당선됐고, 군사독재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승리했기 때문에 여성이지만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식의 논리다. 물론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현실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 해석이다. 한국사회에서 박 대통령은 여전히 여성으로 인지되기 때문에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이다. 그가 박정희의 딸이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실책과 잇단 비리 연루 의혹에 “암탉이 울어서 나라가 망한다” “박근혜가 아니라 박지만이 대통령을 해야 했다”며 그의 여성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이 이 명백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한국 사회에서 박 대통령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평생 “미쓰 박”으로 호명될 운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여성성을 부인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한가지다. 소수자 개인을 오로지 소수자라는 한 가지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일반화의 오류가 그것이다. 작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성급한 일반화는 ‘소수자가 악마일리 없다’는 소수자의 순수성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비롯된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는 늘 순수한 피해자일 것을 강요받았다. 장애인들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남루하고 비극적인지 어필함으로써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여성들은 미혼모나 소녀가장 등 절박한 상황에 한해 사회적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나아가 ‘보통 사람만큼의 제도적 혜택’ 혹은 ‘자존감’을 요구하는 순간은 늘 문제가 된다. 우리 사회 ‘일반 남성’이 선망하는 직종에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고용할당제를 도입한다고 하면, 당장 ‘특권’ ‘역차별’이란 반발이 튀어나올 확률이 크다. 이런 제도의 특혜를 보는 이들은 우리 상상 속에 있는 ‘비참한 소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은 평등으로 가는 길을 저해한다. 현실에 ‘순수한 피해자’는 없다. 단지 공동체 내에서 오랜 기간 억압받아온 소수자적 특성을 지닌 개인들이 존재할 뿐이다. 소수자라고 늘 인권해방에 앞장서거나, 올바른 삶을 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소수자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한 사회에서 소수자를 배려하는 제도를 만드는 건 그들이 공동체 안에서 배제 돼 온 과거 맥락을 이해하고 반성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런 혜택을 받는 소수자가 특권계층인지, 부도덕한 사람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잘 배운 엘리트 여성이 여성비례대표 할당제로 국회의원이 되고, ‘최초의 여성’이란 홍보 문구로 대선후보로서 우위를 점하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박 대통령의 당선은 국내 여성주의 운동에서 의미 있는 첫 걸음이었다. ‘악한 소수자’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박 대통령은 수많은 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사고 있다. 특권계층의 이익을 대변했고, 심지어 여성 고용에 무지할뿐더러 여성들이 주로 종사하는 서비스 업종에 대한 고용불안도 가중시켰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두 가지 가능성을 한국 사회에 제시했다. 첫째는 여성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여성도 부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 이전 수많은 전 세계 남성 대통령들이 그러했듯이 박 대통령 또한 부패의 길을 걸었다. 이 때 비리와 부패는 명백하게 박 대통령 개인의 속성이다. 단지 박 대통령은 무수히 많은 여성들 중, ‘권력이 있고 부패한 여성’이었을 뿐이다. 미국 드라마 <굿와이프>에는 소수자적 특성을 가진 변호사들이 등장한다. 장애를 가진 변호사, 임신한 여성 변호사, 어린 여성 변호사 등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악덕하고, 자신들의 소수자성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데 능하다. 미국에서 대히트를 친 이 드라마는 악의적으로 소수자를 묘사한 게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을 꼬집고 있다. 소수자는 소수자라는 특성만으로 한 사회 내에서 배제돼 온 맥락이 있다. 그들에게 ‘순수성’과 ‘당사자성’이라는 무고한 짐을 지울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박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받지 않을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다음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남겨 둘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부패한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 ‘부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 소수자들에게는 더 다양한 역할이 필요하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9 | 추천: 0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정치인들이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지난주 ‘탄핵 동참’에서 입장을 바꿔 ‘박근혜 대통령의 4월 퇴진’ 당론에 동의했다가 유탄을 맞았다. 탄핵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의 핸드폰 번호가 공개적으로 나돌았고 이들은 국민들의 항의 문자와 전화 세례를 받았다. 하루 4~5천통의 항의 메시지가 쏟아져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한다. 결국 새누리당 비박계뿐 아니라 일부 친박계 일부에서도 탄핵에 동참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치인들은 오로지 선거 때에만 국민 눈치를 본다’는 통설이 깨지고 있다. 한국은 매일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의 피의자 대통령이 됐다. 그런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국민들의 촛불시위는 11월12일 100만 명, 11월26일 190만 명, 12월3일에는 사상 최대인 230만 명을 기록했다. 12월9일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30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때로 정치학자들은 시위가 많고 격렬할수록 그 나라 민주주의의 후진성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이상적인 민주주의 사회라면 시민들이 시위에 나서기 이전에 정치인들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 시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맞는 지적이다. 국민의 손으로 뽑힌 정치인이 국민의 요구를 ‘대의’하지 않는 한국 정치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기에 더해 시위는 그 자체로 ‘목소리’일 뿐이지 그 목소리가 실제로 정책을 만들지는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 요구를 정책으로 실현시키는 권한을 갖는 것은 결국 정부와 국회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230만 명의 촛불시위는 대단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서글프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시위는 그 나라 정치권의 후진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나라 시민들의 건강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폭력 시위가 아닌 평화 시위여서가 아니다.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요구를 담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행위 자체가 그 나라의 역동성과 발전 가능성에 대한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촛불시위처럼 시민들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압박으로 작용해 정책이 실현되도록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마이클 무어가 2015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를 보면, 대학등록금이 무료인 슬로베니아의 사례가 나온다. 슬로베니아에서 한때 등록금을 올리려고 하자 학생들이 데모에 나섰고 결국 등록금 인상은 폐지됐다. 마이클 무어는 이런 슬로베니아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전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 대학의 캠퍼스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영상에 담긴 미국 대학의 모습은 이렇다. 드넓은 잔디밭에 학생들이 한가롭게 거닐거나 열심히 책을 보고 있다. 최고수준의 등록금에 허덕이는 나라의 대학치고 지나치게 평화로운 모습이다. 슬로베니아의 대학생 데모 영상과 평화로운 미국의 대학 캠퍼스 영상을 대조하면서 무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필요한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세월호 7시간'을 밝히자는 의미로 오후 7시에 맞춰 소등을 하고 있다. 소등 전(왼쪽)과 후. 사진 출처 - 한겨레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한국에서 촛불시위가 가지는 의미는 적지 않다. 우선 시민들의 목소리가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정치권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변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정부와 권력자들이 시위나 집회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놓은 탓에 ‘시위=극렬 좌파’라는 인식이 여전히 깔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식 속에서도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고 함께 분노했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다른 소수자들과도 연대했다. 사람들은 다시 세월호를 얘기하기 시작했고, 여성의 목소리, 청소년의 목소리, 장애인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촛불시위는 또한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갈 아이들에게 시민들의 함성을 직접 보여주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경험의 장을 제공했다. 여기에 더해 국민의 요구가 실제로 관철된다면, 이 성공의 경험은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자산이 될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사람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시위를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단지 불편함만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국민들에게 필요한 건 거리에 섰던 기억을 되살려, 다른 이들이 거리에 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쯤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일터에서 부당함을 느꼈을 때, 자신의 힘이 미약하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과의 연대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일이다. 그러다보면 결국 정치권도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든지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이것이 ‘대의 기구’로서의 국회의 역할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촛불은 ‘현재’이면서 동시에 ‘미래’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6 | 추천: 0
이동화/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팀장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거의 한달 이상 온 나라가 분노하고 있다. 사람들의 분노는 기존의 다른 권력형 비리 때와는 확연히 달랐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사람들은 박근혜 하야와 퇴진을 외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당선이후 최저(最低)인 한 자리 숫자이고,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지지를 받고 있다. 사실상 박근혜 맹신도를 제외하고는 일반 국민들의 마음에서 박근혜 씨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닌 범법자일 뿐이다. 백만의 촛불이 광화문을 밝혔던 11월 12일, 그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하고 싶었지만 예정되어 있는 해외 출장 때문에 백만의 촛불 파도타기와 그 함성을 인터넷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단체 활동가들과 11월 19일 집회에 함께 참여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곧바로 전체 회원들에게 11월 19일 집회 참여 문자를 보냈고 예상치 못한 문자를 받게 되었다. 주요내용은 이러했다. “아디의 회원인데, 아디 정관에 이러한 (집회참여) 활동도 포함되어 있는지? 사조직이 아니기에 단체 설립목적에 맞게 활동해야 한다. 나 역시 박근혜 정부에 분노하지만 아디를 통해 이러한(집회참여) 정치적인 활동을 하고자 회원이 된 건 아니다” 사실 기존에 활동했던 단체에서 정치적 활동 때문에 제약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차라리 더 열심히 하지 못해서 질책을 받은 적이 많았기에 받는 순간 약간 당황했다. 그리고 19일 집회가 정치적 행동인가? 하는 불편한 궁금증도 있었다. 하지만 아디와 같은 회원기반 단체에서 회원들의 의견은 무척 소중하기에 다시 찬찬히 문자를 보았다. 그러면서 과연 무엇이 정치적 행동(?)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일반시민들이 시민단체에 가입하는 동기는 대체로 단체의 미션 또는 활동에 동의하기 때문인데 설립된 지 1년도 안된 아디의 경우는 활동보다는 미션이나 가치에 좀 더 끌려서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짐작컨대 문자를 주신 회원 분은 아디를 기존의 국제구호단체와 같이 국제적으로 선한 활동을 하는 단체라고 이해하며 회원가입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반(?)적 시민사이에서 떠올릴 수 있는 구호단체나 개발단체들의 정치적 행동의 수준은 어떠할까? 개인적 판단이지만 국내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큰 국제단체나 구호, 개발단체들의 정치적 행동은 거의 없다. 특히 국내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해 단체들이 의견을 내거나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없다. 물론 내가 잘 모르는 단체 내부의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것이 합리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침몰 사건과 백남기 어르신 사망사건과 같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그 단체의 미션과 가치에도 부합되지 않을 것이다. 군사독재시절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낸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무시무시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요즘도 사람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쉽지 않다. 군사독재시절 누군가 막걸리 마시고 대통령 욕했다고 평생 간첩누명 쓰고 살아가야 했다면, 지금은 정권에 반대되는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면 종북이나 좌파빨갱이로 치부된다. 시민사회는 정치적 활동에 대한 활기를 많이 상실했고, 정부의 지원금이나 기업의 후원금에 목매는 국제구호, 개발단체의 경우 정치적 행동은 절대적 금지사항이다. 돌아가서 회원분의 문자는 ‘무슨 정치적 행동이야? 때려쳐!’라는 뉘앙스라기보다 ‘절차에 따라 행동해야 해!’라는 애정담긴 걱정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 문자를 계기로 아디 활동가들과 회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정치적 활동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그리고 이 고민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디가 아시아 인권과 평화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인권과 평화가 어떤 특정국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차원에 지켜져야 함은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정치적 범위를 가지고 있을 회원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다가갈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더 이상 당위(當爲)적 접근이 아닌 진정성과 설득력으로 말이다. 그 고민의 해결책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박근혜 퇴진을 위한 집회에는 나가야겠다. 좀 덜 정치적(?) 단체 문자로 보다 많은 회원들에게 전달해야겠다. 박근혜 당신은 끝이야!!!
2017-07-12 | hrights | 조회: 39 | 추천: 0
제주를 죽이는 오라관광단지 대규모 개발을 당장 중단하라! 이현정/ 꽃씨네농작물 대표 이게 나라냐. 뭐 어디서부터 글을 써내려가야 할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구호로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던 박근혜. 이 자가 진짜 자기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로 만들어버렸다. 박근혜의 정치 인생과 초기 국정 운영을 보면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물론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국정농단 국기문란 헌정유린 국민기만 국가파괴. 이런 시국이다. 말 그대로 국가 비상사태다.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위임된 대통령이 결국 권력을 사유화시켰다. 그런데도 아직 거짓 해명과 술수뿐이다. 진실은 없고, 뉴스 보도 후 구차한 해명밖에 없다. 심지어 관계자들은 황제조사 중이고, 대통령은 조사도 피하려고 한다. 역대 최대 1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광장에 나왔어도, 역시 박근혜는 ‘나몰랑’이다. 결국 해결의 시작은 박근혜 퇴진부터다. 안 내려온다면 국민이 끄집어 내려야겠다. 이후 모든 관계자 추가 진상조사와 엄중한 처벌이다. 헌정 유린의 시대, 필자가 살고 있는 제주의 환경도 심각하게 유린 받고 있다. 박근혜와 국가 재앙의 시대, 제주 재앙도 다가오고 있다. 얼마 전 제주에서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공중파에서 <제주 바다의 비밀>이 방영되었다. 국민과 제주도민이 똑똑히 보았다. 똥물이 된 제주 바다를. 바로 제주 상하수도본부가 운영하는 도두하수처리장에서 연중 200일 이상 기준치 이상의 오폐수를 방류해 왔다. 실수가 아니다. 오물을 바다로 그대로 내보내기 위해 바다 바닥에 커다란 배출관까지 연결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처리할 수 있는 하수 용량이 한계를 넘었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제주도정은 이를 무시했고, 제주 100만 명에만 열을 올렸다. 결국 준비는 안 되었는데, 인구 유입 치적에만 몰두하였다. 제주바다 오폐수 무단 방류 사진 출처 - MBC시사매거진 이 뿐만이 아니다. 대규모 개발사업과 외국 투기자본 유입으로 제주 환경과 사회적 문제는 극에 달하였다. 말 그대로 제주 곳곳이 신음하고 있다. 그럼에도 원희룡 도정은 성장 위주의 제주국제자유도시 건설에 목을 매고 있다. 얼마 전 필자가 한 토론회의 사회를 보았다. ‘원희룡 도정 2년, 출구는 있는가?’란 주제로 제주의 쓰레기, 교통, 주거 문제를 다뤘다. 출연했던 패널 모두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원희룡 도지사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강행한다고 비판하였다. 제주의 환경수용력이 한계가 있음에도 브레이크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도지사 재선과 대통령 선거까지 욕심을 내면서. 이러한 제주 환경 유린의 시대에 거대한 괴물이 등장했다. 바로 제주오라관광단지 대규모 개발사업이다. 제주시 북쪽 한라산국립공원 바로 아래에 약 108만 평의 대규모 관광단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2021년까지 대규모 호텔과 콘도, 컨벤션과 골프장, 면세점과 백화점, 테마파크와 카지노 건설 등 6조 2800억 원의 역대 최대 규모다. 마라도 12배 크기와 상주활동 6만 명이라는 결국 중국인 상주 거대도시의 출현이다. 제주오라관광단지 사업 조감도 사진 출처 - 한국일보 결과적으로 환경과 사회적으로 제주도 전체를 재앙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일이다. 제주오라관광단지는 한라산국립공원 바로 아래에 위치한다. 한라산과 제주 곳곳의 생명이 파괴된다. 제주 스스로 세계자연유산인 한라산을 자랑하지만, 더 죽이는 꼴이 된다. 지금도 심각한 제주 지하수 상수도와 하수 처리 문제, 엄청난 쓰레기 처리와 교통 혼란, 대기질과 소음 오염, 거대한 부동산 폭등과 영세업자 상권 파괴, 중산간 고도 완화 파괴, 중국인 대규모 저가 관광과 환경 파괴 문제, 국제 투기자본의 전형적인 결과 출현 등이 자명하다. 이러함에도 제주도가 사업자에게 유리한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보통 이러한 대규모 사업은 환경영향평가 등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10개월여 만에 인허가 절차 조사를 마쳤다. 개발고도도 3층에서 5층으로 완화했다. 여기에 평가 심의도 매우 빠르게 진행해주고, 환경영향평가 의결 사안 중 일부를 권고 사안으로 내려주기도 했다. 이러한 지나친 특혜와 의혹에 제주 시민사회는 적극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고, 여론도 매우 좋지 않다. 그래서인지 지난 6일 제주도가 사업자에게 환경영향평가서 보완을 요구했다. 하지만 도정은 여전히 실제 사업자인 중국계 거대 자본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조세 회피처인 버진아일랜드에 세워진 정체불명의 회사다. 현재 추진업체가 자본금 950억 원의 국내 기업 (주)JCC인데, 어떻게 이 업체가 6조원이 넘는 대규모 사업을 펼칠 수 있겠는가. 결국 살펴보니 이 (주)JCC의 지분 100%를 보유한 곳이 버진아일랜드 국적의 투자회사 ‘하오싱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Haoxing Investment Ltd)’였다. 결국 이곳이 몸통인데, 국내 업체를 바지 사장으로 내세우고, 이 대규모 사업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것이다. 심장이 없는 외국 투기 자본은 지속가능한 제주 그림이 아니라, 돈 되는 곳에 큰 빨대를 꽂는 것밖에 없다. 결국 제주를 재앙으로 몰아가는 길이다. 국가 재앙의 시대. 헌정유린 범죄 몸통인 박근혜는 오늘도 거짓과 해명뿐이다. 지금의 모든 이슈는 박근혜-최순실게이트 블랙홀에 빠졌다. 다양한 뉴스들, 지역 이야기들도 그대로 묻혔다. 그래도 우리는 현재 박근혜 퇴진뿐 아니라, 그 이후 정의로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고민하고 있다. 이처럼 건강한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제주오라관광단지 대규모 개발을 꼭 저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주도의 환경과 사회를 더 죽이는 거대한 재앙이 된다. 거기에 국제투기자본 실체도 없고, 각종 특혜와 의혹이 난무하다. 제주도정은 ‘청정과 공존의 제주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걸맞게 지금이라도 제주오라관광단지 인허가 절차를 당장 중단하라. 속도전 개발을 멈춰라. 그리고 그 자본의 실체를 검증하고, 도민 정책토론에 나서라. 더불어 지속가능한 제주를 위해 환경자원총량제를 신속히 추진하길 바란다. 이것이 ‘건강한 제주의 다음’이 되어야 한다. 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는 노암 촘스키의 말이 떠오른다. 더 이상 제주의 개발을 거대 자본에만 맡기지 말자. 오직 도민과 함께 가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