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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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다솜(미디어 활동가),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대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임아연/ 당진시대 취재팀장   최근 당진지역의 가장 큰 이슈는 매립지 관할권을 둘러싼 평택시와의 분쟁이다. 두 지방자치단체 해상 경계에 매립한 토지를 어느 지자체에 귀속시켜야 하는지를 두고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 문제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소송을 청구한 상태다. 충청남도 당진시와 경기도 평택시는 아산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정부는 10여 년 전부터 평택·당진항을 개발하면서 이곳 아산만에 제방을 쌓고 땅을 매립해 왔다. 1990년대 말, 당시에 매립한 토지를 등록하기 위해 평택지방항만청은 평택시에 토지등록을 신청했고, 이곳은 평택시로 등록됐다. 그러나 매립지는 해상경계상 충남도계 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당진시(당시 당진군)는 이에 반발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당진시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소송을 내고 4년여 간의 지루한 법정 싸움을 이어간 끝에 해당 매립지가 당진시 관할이라는 것을 확인받았다. 헌법재판소는 관습적으로 수백 년간 지켜온 해상경계를 확정하면서 당진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후에 매립된 토지와 제방 등은 헌재 판결에 따라 자연스럽게 당진시에 등록돼 당진시가 관할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최근 평택시는 다시 이 문제를 두고 행정자치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에 관할권 청구 심판을 요청했다. 평택시는 2009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을 근거로, 2009년 이후에 매립된 토지에 대해서는 행정자치부 장관의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해당 매립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택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접근성·연접성·행정의 효율성 등을 근거로 평택시에서 관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행정자치부는 평택시의 주장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서 판결한 매립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평택시 관할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당진시는 땅을 빼앗긴 억울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당진시대 행정자치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여러 가지 오류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몰지각과 지역이 계속해서 소외되는 수도권 중심의 정부 정책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한 국가에는 그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영해·영공이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자치단체의 행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 간 경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자치부는 이 같은 경계를 무시하고, 단지 지리적인 연접성과 접근성, 편의성 등을 근거로 해당 매립지를 평택시에서 관할해야 한다고 결정 내렸다. 이는 지방자치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곧 간척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국 곳곳이 간척과 매립을 통해 지형 자체가 상당히 변했다. 이에 따라 당진시와 평택시 간의 분쟁과 같은 갈등이 일어날 곳이 너무나도 많다. 헌법재판소가 수백 년간 이어져온 관습법상의 경계를 이미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자치부 산하의 위원회가 법리적 판단을 무시한 결정을 내린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을 훼손한 것이다. 지역민들이 수도권 중심의 정부 정책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 것은 단지 이번 사안 때문만은 아니다. 당진시는 ‘철탑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송전철탑이 세워져 있다. 그로인한 지역민들의 건강상·재산상 피해는 상당하다. 몇 해 전부터 정부에서는 당진 송악부터 아산 탕정까지 이어지는 송전선로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은 더 이상의 송전탑 건설은 반대한다며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5.5km 구간만이라도 지중화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한국전력은 비용 문제로 이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평택시 고덕산단에 조성될 삼성전자 반도체 단지에 필요한 전기 공급에 대해서는 38km 전 구간을 지중화(해저터널 포함)할 예정이다. 특히 이 구간 송전을 위해 변환소를 새로 짓고 발열과 전력손실이 적은 직류 방식으로 송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이처럼 일관성 없는 지역 차별적인 정부 정책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수도권 규제 완화로 기업유치가 둔화돼 경제적 피해를 크게 입고 있는 것 역시 지역이다. 시대를 역행하는 수도권,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여전히 지역의 자치단체는 정부의 법과 예산에 손발이 묶여 지역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지역민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는 송전탑이나 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 등의 환경 유해 시설들을 지역에 건설함으로써 지역을 계속해서 소비한다. 이 같은 지역의 현실을 정부가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지역과 함께 가는 정책을 펼치길 바라는 건 이 정부에 대한 너무 큰 기대일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33 | 추천: 0
이현정/ 저지리 문화예술창고 <탐라표류기> 부대표   메르스 사태가 커져간다. 사람들이 크게 불안해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21세기의 풍경이 아니다. 마치 조선시대 역병 시대에 사는 듯하다. 사실 그 시대만도 못하다. 당시에는 동네에 금줄을 치고, 왕래를 막기라도 했다. 초기 대응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금도 비공개로 처리한다. 그리고는 괴담을 퍼트리는 자는 사법처리하겠다고 국민들을 협박한다. 박근혜 정부, 뭐 항상 이런 패턴이다. 세월호 사건도 결국 사고에서 사태로 키운 건 정부의 무능력과 강압통치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정치는 없다. 오로지 ‘통치’ 뿐이다. 국민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란다. 그리고 입법기관인 국회에도 나서지 말란다. 사법부는 정당 해산까지 시켰다. 그리고 대통령은 항상 유체이탈 화법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7시간이나 잠적해놓고, 왜 못 구하냐고 따지기만 한다. 역시 장기 독재집권자 딸이다. 그리고 그 경험에서 나온 작품들이 있다. 바로 대통령 곁에는 공안*안보*문고리 세력들이 득실거린다. 대선 이전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강조하던데, 도대체 무엇을 준비한 정권인지 알 길이 없다. 아, 그들만의 ‘영구적이고 지속가능한’ 통치를 준비한 것일지도. 메르스 사태가 커지면서 반대로 묻힌 것들이 많다. 굵직한 사건들마저 덮어준 꼴이 되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 메르스 사태가 약간 진정되면, 박근혜 정권을 살려주는 계기가 된다고. 많은 곳에서 메르스를 언급하고 있으니, 우리가 지금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살펴보자. 단상 하나. 황교안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다. 바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메르스 사태 확산 속에서 유야무야 박근혜의 임명 강행이 이어질 전망으로 보인다. 현재 국민적 관심도가 낮은 상태에서 야당도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런데 황교안 총리 임명 저지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수상한 병역 면제, 세금 상습 체납, 지나친 개신교 보수주의, 불법 전관예우, 불법 변호사 수임료 등이 문제만이 아니다. 총리 절대 불가 이유는 바로 기춘대원군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즉 박근혜 정부 후반부는 공안 통치의 정점을 달리게 된다. 황교안은 근대현사 속에서 친일-친미-반공의 연결점인 김창룡, 노덕술, 이후락, 김기춘의 또 다른 아이콘이다. 이들이 벌렸던 일들을 봐라. 반민특위 해체, 국회 프락치 사건, 전쟁 후 시민 학살(부역자 처벌), 간첩 대량 ‘생산’, 각종 내란음모*국가보안법 처벌, 초원복집 사건, 민주 시민*학생*노동자 공안 처벌, 유신 헌법, 91년 유서 대필 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최근엔 정당 해산까지. 이런 공안 통치 역사를 이어가는 황교안이 국무총리가 되겠다고? 또 얼마나 많은 시민들과 야당 정치인들을 잡아 가두게 될까. 또 시민들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옥죌까. 그래서 우리는 황교안 총리 임명을 꼭 막아야 한다. 그들의 민주주의 법치는 국민을 향한 게 아니다. 오로지 공안 통치의 법치만을 따질뿐. 단상 둘. 박근혜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 사태와 세월호 시행령 문제이다. 국회에서 여야 절대 다수 합의로 통과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했다.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의 활동을 옥죄려는 정부 시행령과 이를 바꾸려는 야당의 문제제기와 기타 정부 시행령에 대해서 국회는 기존 통보 권한에서 수정변경 요구 권한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삼권 분립의 헌법에 위배된다며 묵살했다. 현재 청와대, 새누리당, 그리고 야당 등은 큰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총론을 다루는 국회에서 각론을 행하는 대통령 시행령과의 관계는 총론 국회법이 상위에 존재한다. 이러함에도 현 정부는 입법기관인 국회마저도 무시하는 형국이니, 힘없는 일반 시민들은 설 자리도 없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정부의 세월호 시행령은 문제가 심각하다. 결국 도둑이 도둑을 잡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무력화시키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유가족과 국민들이 진실을 밝혀달라고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라, 그리고 괴담 유포자들을 처벌하겠다고 외친다. 지금의 메르스 사태를 대하는 태도와 똑같다. 역시 진정한 반성이 없는 귀머거리 정권이다. 단상 셋. 박근혜 대선*새누리당 불법정치자금 사건이다. 이는 성완종 리스트 프레임이 아니다. 분명코 박근혜 현직 대통령과 측근들, 그리고 새누리당 지도부의 불법정치자금 사건이 본질이다. 그런데 검찰과 보수 언론은 성완종 리스트 프레임으로만 짜맞춰가고 있다. 수사과정을 보면 뻔히 보인다. 이완구, 홍준표 만이 표적이다.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끝내려고 한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잠잠하다. 결국 홍문종, 서병수, 유정복,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의 친박 핵심 6인에게는 검찰이 서면질의서와 자료제출요청서를 보낸 게 전부다. 박근혜가 아직 살아있는 권력임을 증명한다. 물론 질의 내용도 해명성 답변만 가능한 것들이 즐비하다. 더불어 6명에 대한 계좌 추적도 하지 않았다. 검찰이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해괴망측한 해고를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상 넷. 우리가 또 잊지 말아야 할 단상들이 떠오른다. 헌법재판소에 이어 오늘 결국 대법원 판결로 전교조는 합법노조 지위를 잃게 되었다. 억울하게 해직 당한 조합원 9명 때문에 6만여 명의 조합원이 있는 전교조가 불법노조가 되는 현실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 비판 전단지를 뿌린 시민들이 검찰과 강력계에 의해 잡혀가고 있다. 허위사실 유포죄도 아닌 건물침입죄 명목 하에, 그리고 강력계가 나서는 형국이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수백 만 원의 벌금과 구속 형벌을 내리고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치명적이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더 치명적인 것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독선 통치다. 그러기에 더더욱 황교안 총리 임명을 막아야 하고, 세월호 시행령을 바꿔야만 한다. 단순히 총리 임명과 세월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민주주의와 삶의 질을 높여가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고 기억하자. 또 기록하고 널리 알리자. 그리고 실천하자.
2017-07-12 | hrights | 조회: 32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오는 7월부터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다고 한다. 단순한 법의 이름만으로는 무슨 의도로 만든 법인지 짐작하기 힘든 이 법의 목적은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 법을 초안한 사람들은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이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꼴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 바로 떠오르기 때문에 이런 법을 만들었겠지만, 평범한 필부에 지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국가보안법 7조의 반국가단체의 찬양, 고무죄 만큼이나 모호하고 어렵기만 하다.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그것이 단순 교육을 통해 ‘육성’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하물며 그렇게 육성된 인성이 무려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놀랍기까지 하다. 궁금해서 인터넷 사전으로 찾아본 인성의 사전적 의미는 ①사람의 성품, ②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사고(思考)와 태도 및 행동의 특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성(人性)을 사람의 성품이라고 하던,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의 특성이라고 하던, 이 정의에 따른다면 한 사람의 인성이란 적어도 단시일 내에 규정되거나 길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 법의 시행에 맞춰 이미 ‘인성평가 자가진단표’란 것을 만들어 이번 학기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성을 진단하고 있다고 한다. 그 진단 항목 중의 몇 가지를 보면 “나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태극기, 무궁화 등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질문지에 전혀 아니다’에서 ‘매우 그렇다’까지 1점에서 5점까지 학생 스스로 매겨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학생의 인성을 진단하고 지도한단다. 이러한 질문지로 개인의 인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더구나 대학입시에서 인성·적성을 반영하고 수시모집에서 ‘인성면접’을 실시하는 대학이 생긴다는 마당에 자가진단표에서 1-2점을 선택하는 모험과 장난(?)을 할 학생이 얼마나 될까?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교육현장에 문제가 생기면 땜질식 처방이후에 시간이 흘러 사안 자체가 흐지부지 해지길 기다리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 관료들의 문제해결 특징이었다. 난데없는 인성교육진흥법 실시도 연이은 학생자살사건과 어린이집의 유아 폭행사건이후 일부 보수단체와 정치권의 주장으로 현실화 되었다. OECD국가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대한민국의 학생자살률과 어린이집의 유아보호에 대한 불안을 인성교육강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교육 관료와 정치권의 해법 또한 그동안 늘 해오던 임기응변식 처리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교육정책이 바뀔 때마다 당사자인 학생은 혼란과 부담감만 더해졌고 혜택은 오히려 교육과 관련된 시장(市場)에서 가져갔다. 당장 이 법안의 통과에 따라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해야 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교육 업체가 ‘인성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교육부 인증을 따기 위해 경쟁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논술시험이 부활하면 논술학원이, 영어교육이 강화되면 영어학원이, 방과후 수업이 실시되면 방과후프로그램 전문기업이 돈을 버는 것과 똑같은 교육부와 사교육시장의 사이좋은 행진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하루 10시간 이상씩 공부에만 매달리는 과도한 입시경쟁체제와 그렇게 공부해도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미래와 사회구조 앞에 놓여 있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학생들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놔두고 사교육시장에 의존하는 껍데기뿐인 인성교육을 외치는 정치인과 교육 관료들을 지켜보는 심정은 갑갑하기만 하다. 정말로 학생들의 인성(人性)을 키우고 싶다면 타인의 아픔과 처지에 공감하는 것을 힘들게 하고, 배우고 느낀 것에 대한 실천을 가로막는 현 교육체제 전반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성찰이 진정성 있는 것이라면 현재 시행하려고 하는 ‘인성교육진흥법’과 같은 내용과 방식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인성은 그따위 교육방식으로 길러지지도 측정되지도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참된 인성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9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최근 3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 호치민, 껀터, 다낭, 호이안 도시를 다녀왔다. 민변 아시아인권팀에서는 올해 7월 말부터 6박 7일 동안 베트남 평화기행을 준비 중인데, 이를 위한 사전답사로 다녀오게 된 것이다. 5월초 한국 같으면 계절의 여왕이겠지만, 베트남은 예상대로 덥고 습했다. 거기에 계시는 현지 분들은 우기가 시작되어서 날씨가 서늘한 편이라고 하는데, 맙소사 개인적으로 베트남은 월남전, 신흥 관광지, 동남아경제 성장국 등의 이미지를 가진 국가였는데, 민변 아시아인권팀은 작년 말부터 베트남 전쟁 시 있었던 수많은 전쟁범죄, 그중에서도 한국 군인에 의한 전쟁범죄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였고, 여러 법률적 쟁점을 연구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올해 베트남에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한국 군인에 의한 베트남양민학살 사건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소수의 언론인과 용기 있는 활동가들에 의해 한국 사회에 그 실체가 드러났고, 당시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까지 크게 반향과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악(?)한 베트콩으로부터 선(?)한 베트남정부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이미지는 그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다. 3박 5일이라는 짧은 일정동안 가야할 곳도 많고 만나야할 사람들도 많았다. 가장 먼저 방문하고 만난 곳은 전쟁증적박물관(War Remnant Museum)이었다. 그곳에는 베트남 전쟁관련 사진과 자료, 실재 전쟁 시 사용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네이팜탄 폭격으로 울부짖는 소녀사진, 베트콩 장교를 노상에서 권총으로 사살하는 사진, 미군의 미라이 학살보도 사진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 참전군인에 대한 자료도 볼 수 있었다. 그 자료속의 한국군인은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 미국의 용병으로 가혹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의 무용담이 베트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떠했을까 섬뜩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을 비교해 놓은 표를 보고선 ‘왜 한국인은 베트남 전을 통해 경제성장을 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여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박물관장인 후인 응 옥 번 님을 만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분은 베트남 전쟁만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베트남 독립을 위한 전쟁은 19세기부터 시작되었고 당시 프랑스와의 전쟁, 그리고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미국과 연합국과의 전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전쟁, 이 오랜 기간 베트남인들이 어떻게 저항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러면서 평화를 위한 기억, 평화를 위한 노력이 현재에도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며, 최근 한국 방문 시에 경험했던 베트남 고엽제피해군인들의 행사방해와 집회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쟁증적박물관에 한국인에 의한 전시를 꽤나 바랬는데, 당일 박물관에는 일본인 사진작가에 의한 특별전시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후 방문 시에는 박물관 측에서 한국 참가자들과 베트남 전쟁의 여러 피해자들과의 미팅을 주선해 준다는 제안을 해 주었다. 다음으로 껀터에 있는 인민위원회를 방문하여 베트남 여성들 중 한국인과 결혼하였다가 이혼 또는 여러 사유로 인하여 다시 베트남으로 귀환하신 분들의 현실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뤘으면 하고, 다음 일정으로 미라이(학살) 박물관에 방문하였다. 미라이 학살은 이미 언론을 통하여 많이 알려진 사건이지만 간략히 이야기하면, 1968년 3월 16일 남베트남 미라이(베트남어 손 미)지역에서 미군에 의해 민간인 347명에서 504명까지의 대량학살이 발생하였고 상당수는 여성과 아동이었으며 사건에 가담한 미군 26명 중 1인만이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건이다. 개인적으로 너무 놀랐던 것은 박물관 옆에 학살 시점의 논두렁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는데 그 발자국들에게서 당시의 긴박함과 공포, 다급함, 애처로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발자국, 그 옆의 자전거 바퀴자국, 그리고 그 뒤를 쫓고 학살 했을 군화 발자국까지... 순간 멈춰서 넋을 놓았다. 미라이(학살)박물관 옆에 보존되어 있는 마을 논두렁길 사진 출처 - 필자 마지막 일정으로 한국의 진보언론과 자료를 통해 공개된 한국군 증오비(위령비)를 찾고 피해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사전 한국에서의 자료는 한국어 또는 영어로 적혀 있고, 베트남 자료가 있다 하더라도 이해를 할 수 없어 증오비로 알려진 사진, 자료, 원문 자료를 잔뜩 들고 찾아 나섰지만 생각보다는 그 위치를 찾기 너무 어려웠다. 마치 서울 서초구 서초동까지 나와 있는 주소와 관련 사진만으로 서초동 아주 작은 마을에 깊숙이 위치한 묘비를 하나 찾아가는 식이었다. 수십 번의 질문과 시행착오 끝에 정말 운이 좋게 꾸이보마을의 위령비를 찾았고, 그 위령비 인근에 거주하시는 할아버님을 통해 퐁니마을의 위령비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령비에 적혀진 피해자들의 이름, 주소, 나이를 보았는데, 아직 이름도 짓지 못한 1살짜리 아이가 올려진 모습을 보고 다시 넋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에 쫓기듯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방문 전에 전쟁범죄라는 활자를 통해 건조하게 베트남을 접근하였고, 방문했을 때 여러 일정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었지만, 현지에서 느꼈던 충격과 참혹함은 기존의 내 기억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한국 전쟁이라는 트라우마를 사회구성원 전체가 나눠지고 있는 한국에서 성장한 나이지만, 사실 전쟁을 자기방식대로 기억하고 파악하고 있는 내면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피해자라는 입장에 서 있다가 갑자가 가해자임이 밝혀지는 순간 그 사실을 부인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본다. 비단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법률가단체의 관점에서 베트남 전쟁을 접근하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7월 방문도 진행하겠지만, 답사를 통해 여러 문제의식과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그리고 답사기간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은 ‘잊어서는 안 되겠다. 잊지 않기 위한 방문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노태우가 대통령이던 시절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도시생활이란 걸 처음 해봤다. 학교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갑자기 뭔가 목구멍을 콱 막아 버렸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오감은 지금도 당시 느꼈던 짧지만 강력했던 고통을 기억한다. 최루탄은 그렇게 내게 호환마마보다도 무서운 첫인상을 남겼다. 대학생이 되고 보니 최루탄이란 걸 더 가까이 자주 겪게 됐다. 자꾸 접하다 보면 무뎌진다. 전경들이 집어던지는 사과처럼 생긴 ‘사과탄’은 무경험자에겐 상당한 고통을 주지만 나중에는 던지면 던지나 보다 하는 정도로 존재감이 사라진다. 총처럼 생긴 물건으로 쏘아대던 최루탄도 직접 맞는 게 겁날 뿐 최루탄으로선 별 감흥이 없어진다. 정말 무서운 건 ‘지랄탄’이다. 이른바 페퍼포크라고 부르던 최루탄 발사 차량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늘 높이 쏘아대는 지랄탄이 땅에 떨어지며 ‘미친X 널뛰기 하듯’ 요동을 치며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진한 연기로 뒤덮어 버리면 말 그대로 ‘죽음’ 같은 고통에 몸부림친다. 지랄탄이 가장 고통스러운 조건이 있다. 덥고 바람이 없는 날, 지랄탄은 말 그대로 살인무기나 다름없다. 안개 낀 날, 이슬비 내리는 날은 지랄탄이 흩어지질 않기 때문에 고통이 극대화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지랄탄이 고여 있는 웅덩이에 발을 좀 담그고 나면 무좀이 없어질 정도다. 지랄탄을 막기 위한 다양한 대책도 선배들한테 전수받았다. 마스크 안쪽에 화장지를 덧대는 건 기본이다. 눈 밑에 치약을 발라놓는 방법도 있다. 지랄탄이 지나가고 나면 대개 너도나도 담배를 피우며 담배연기를 눈에 불어 주는 건 지랄탄 대응으론 어떨지 몰라도 동지애를 키우는 데는 특효약이다. 군대에 입대하고 신병교육 훈련 과정 가운데 하나가 화생방 훈련이다. 방송이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눈물 콧물 흘리며 군가를 부르는 모습은 꽤나 대단한 추억꺼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솔직히 말한다면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을 할 때 많이 실망했다. 기대(?)를 충족하기에 군대 최루탄은 지랄탄보다 턱없이 약했다. 지난 4월 19일 광화문 세월호 집회 모습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최루탄에 면역이 생겨버린, ‘쫘장면 먹고 좌전거타는’ 좌경학생들을 위해 경찰이 내놓은 신상품이 있다는 걸 풍문으로 들었다. 이름하여 ‘칙칙이’. 직접 맞아보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분무기로 물 뿌리듯이 최루액을 뿌리는데, 조금 지나니 피부에 수포가 생기고 가렵고 상당히 괴로웠다. 처음엔 광주에서만 사용하는 걸로 들었던 칙칙이는 금세 전국 공통 시위진압장비가 됐다. 칙칙이로 인한 피해사례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난 어느 날 경찰에서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거짓말처럼 시위현장에서 최루탄이 사라졌다. 칙칙이도 모습을 감췄다. 물론 가끔 경찰이 최루탄을 사용했다는 논란이 일어난 적은 있었지만 꽤나 예외적인 일로 느껴졌다. 주말에 서울시내 전체가 최루탄으로 뒤덮이는 풍경은 이제 상상도 잘 안 되는 아주 오랜 얘기처럼 느껴지게 됐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발전하는 줄 알았다. 최루탄이 돌아왔다는 신호는 어쩌면 2011년 국회 본회의장이었던 것 같다. 한미FTA를 국회가 인준할 때 국회의원 한 명이 이에 항의해 본회의장 단상에 최루탄을 뿌렸다. 본회의장이 매캐한 연기로 뒤덮였다. 최루탄이 다시 세상에 등장했다. 무척이나 기괴한 장면이었다. 그즈음이었나. 시위현장에서 칙칙이를 사용하는 게 눈에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전직 국회의원 모임 헌정회가 2011년 11월 23일 김선동(민주노동당 의원)을 국회에서 추방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서에서 쓴 표현이 지금도 기억난다. “살상무기에 해당하는 최루탄을 투척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서도 방임될 수 없는 엄중한 범죄행위”란다. 그랬구나. 경찰이 수십 년간 살상무기를 썼던 거구나. 의원들은 그동안 뭘 했지? 4월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였다. 경찰은 칙칙이뿐 아니라 최루액 물대포까지 유족들에게 뿌려댔다. 호흡곤란과 구토, 현기증을 호소하는 피해가 속출했다고 한다. 최루탄이 없어질 때 세상이 발전한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하지만 세상에 자동으로 이뤄지는 진보는 없다. 그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얻은 교훈이다. 때로, 세상은 아주 더러운 방식으로 퇴화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4 | 추천: 0
허창영/ 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   세월호 참사 1주기는 참혹했다. 수많은 생명을 수장시키고 일부는 아직 시신도 찾지 못한 무능력한 국가, 그리고 그 국가가 이 지경이 되도록 가만 놔둔 또 다른 가해자인 시민들이 ‘집단기억상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발악했지만, 국가는 그마저 마구잡이로 짓밟았다. 선장이 탈출한 배에서 선원들은 앞 다퉈 빠져나갔고, 남겨진 사람들은 출구를 찾지 못했다. 수장이 자리를 비운 대한민국에서 공권력은 광기를 부렸고, 슬퍼하고 애도할 자유마저 뺏긴 시민들은 집단패닉상태다. 대한민국의 2015년 4월은 2014년 4월 세월호의 재현이다. 목소리 없는 자들이 목소리를 찾기 위해 광장을 찾았지만 거기에서 보여준 경찰의 대응은 공권력이 아닌 폭력이었다. 유족들과 만나 함께 슬퍼하고 애도하려는 시민들을 향해 경찰은 차벽과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 캡사이신, 방패로 대응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기본권, 아니 대한민국 헌법에 버젓이 규정되어 있는 정당한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해 국가는 불법 차벽과 폭력으로 무력화시켰다. 그래놓고 그 공권력은 말한다. “끝까지 추적해 전원 처벌할” 것이라고. 경찰의 대응은 이미 법의 테두리를 벗어났다. 공권력이라고 해서 언제든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여야만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고 결정한 차벽을 법적 근거도 없이 둘러쳤고, 시위대를 토끼 몰듯이 유인했다. 시위대는 헌법이 보장한 정당한 권리를 광장의 시민으로서 행사했을 뿐이다. 공권력이 이미 불법을 자행했고, 중무장한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맞서 그깟 몸싸움 좀 했다고, 물병 몇 개, 혹은 돌멩이 몇 개 던졌다고 폭력 운운하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다. 학생인권이 강조된 이후 교권침해 문제가 단골로 등장한다. 학생인권 때문에 교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주장도 말이 되지 않지만, 더 황당한 주장도 간혹 나온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이나 지도에 대해 합리적 근거 없이 거부하거나 반항하는 것은 교권침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학생이 수업시간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교사가 학생의 뺨을 때렸고 화가 난 학생이 ‘왜 그러느냐?’며 대들었다고 치자, 이 학생의 행위는 교권침해일까? 학생이 혹시 규정을 위반했다고 해도 이를 지도하는 내용과 방식은 역시 규정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정당하다. 그렇지 않고 부당한 방식으로 학생을 지도했으면서 이에 대한 저항이나 일부 불손한 반응을 교권침해라고 하는 것은 낯간지러운 얘기다. 부당한 지도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경찰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세월호 참사 범국민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물대포와 최루액을 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지금 경찰의 모습이 딱 이 모양이다. 경찰장비 사용기준 12조 1항에는 “최루액 발사는 1m 이상 먼 거리에서 해야 하고 얼굴에 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13조 3항에는 “물대포를 사람에게 직접 직선으로 쏘면 안 된다”고 명시했다. 헌법재판소는 “경찰차벽으로 시위를 가리고 시민들을 통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세월호 1주기 집회현장에서 경찰은 이를 적나라하게 위반했다. 이날 보여준 경찰의 모습은 그저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였을 뿐이다. 그리고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였으므로 그 자체가 폭력과 광기일 뿐이다. 그런데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에게 법치 운운하며 ‘폭력시위’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폭력에는 눈 감은 채 대항하는 폭력만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고민이 생긴다. 부당한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도 과연 폭력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어떤 종류의 폭력에도 반대한다는 논리는 어쩌면 부당한 폭력, 진짜 나쁜 폭력을 물타기하는 것일지 모른다. 다시 말하면 모든 폭력은 나쁘다는 말은 오히려 지배집단의 폭력을 상대적으로 희석하는 억압의 언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체가 또 다른 폭력인 셈이다. 간디로 대변되는 비폭력 평화주의가 갖는 주장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또는 권력의 부당한 폭력, 정당성을 결여한 폭력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등장하는 폭력까지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에 ‘폭력은 안 된다’고 강요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반폭력’ 또는 ‘대항폭력’ 개념이 여기에서 출발한다. 물론 그렇다고 폭력이 갖는 위험성조차 묵인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폭력은 상대적인 것이니 결국 모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물리적인 힘을 행사했다고 해서 모두 폭력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1주기 집회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행위는 폭력이 아니다.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가진 공권력의 무차별적 폭력에 대항하는 일종의 자기방어이자 저항이었다. 맨몸으로 부딪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발악이었다. 이를 두고 폭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정당한 공권력이라면 광장에 선 유족과 시위대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1 | 추천: 0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친구에게 들은 얘기다. 그는 몇 년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끼어든 택시와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택시의 잘못으로 인한 사고가 명백한 상황이었지만 친구는 택시 기사와의 대화 과정에서 “저도 조금 더 조심을 했어야 하는데 죄송하다”고 했다. 이 사고로 앞니가 빠지고 양쪽 팔에 금이 가는 피해를 입은 친구는 병원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지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조언을 들었다. 첫째는 “꼭 입원을 하라”는 것과 둘째는 “절대 사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입원을 하지 않으면 보험금이 나오지 않으며, 사과를 하는 순간 잘못이 인정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얘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 보험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보험사 직원은 친구에게 “혹시 사고 현장에서 기사에게 사과를 했었느냐”고 물었고, 친구는 자신은 사과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어느새 함부로 사과조차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손해를 보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따져보기 이전에 무조건 ‘나는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우겨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산다. 사과는 잘못이 명백하게 밝혀지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뒤에 하는 사과에 과연 진심이 담겨 있을까. 그런 사과는 기껏해야 자신의 잘못에 대해 조금이나마 선처를 바라는 생각에서 하는 하나의 ‘쇼잉’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을 접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청와대사진기자단 사과를 하지 말라고 하는 이들의 주된 논리는 ‘잘못을 인정하면 법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쓴 책 <쿨하게 사과하라>를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2008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 의사인 굽타 박사는 환자의 아홉 번째 갈비뼈에서 떼어내야할 조직을 여덟번째 갈비뼈에서 떼어내는 의료실수를 저질렀다. 굽타 박사는 법적 소송으로 가기 전 환자에게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사건 초기 변호사를 고용했던 피해자는 결국 의사를 고소하지 않고 8천만원의 배상금을 받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한다. 정식으로 고소했을 경우 수억, 수십억의 배상금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피해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이 이야기는 당시 <뉴욕 타임스>의 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책은 이것이 단순히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수년간 조사한 결과 병원 측이 의료사고에서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한 사례가 37건이었는데 그중 환자가 소송을 진행한 것은 딱 한 건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이 병원뿐 아니라 하버드, 스탠퍼드, 미시간, 버지니아 등 미국 주요 대학 병원들은 의료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잘못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환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는 ‘진실 말하기’ 프로그램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해외의 이런 움직임과 달리 우리나라는 어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수 신해철씨 사망 사건에서 해당 병원은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아 국민적 공분을 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사과를 하지 말라는 조언이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곳은 정치권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좀체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과에 인색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세월호 참사 때도 뒤늦은 사과로 세월호 희생자들의 마음을 무너지게 하더니, 지난해 말에 터진 ‘비선 실세 파동’에 대해서도 “‘국민 여러분께 허탈함을 드린데 대해’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다”며 그 뜻이 모호한 사과를 내밀었다. 최근에 터진 ‘성완종 게이트’에 대해서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완종 게이트’에 연루된 정치인 명단이 가리키는 것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지만 그가 과연 이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포함해 정치인들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각종 파문에 지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4 | 추천: 0
손상훈/ 소셜리서치멘토르 기획국장   최근 불교계 언론과 시민단체 일부에서 조계종 천년고찰 P사 관련 고등법원 판결문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면서 추가 검찰조사 촉구 등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3년 ‘장주승려’가 자수서에 언급한 16명 관련자에 대한 검찰조사를 다시 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2월 부산고등법원은 판결문에서, J승려가 필리핀에 120여 회 원정도박을 하고, 심지어 해외 도피 중에도 도박을 했다고 밝혔다. 아래는 불교계 한 인터넷 언론의 기사이다. 부산고등지법 창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윤종구)는 지난 2월 4일 표충사 前 주지 J스님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검사의 항소심 구형도 기각하고 1심과 동일한 징역7년과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판결 이유’를 통해 J스님이 “피고인은 승려임에도 과거 약 10년 동안 약 120회에 걸쳐 필리핀을 출입하면서 그곳에 있는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였고 그에 든 경비 상당부분을 이 사건 횡령·배임금으로 충당하였다”고 밝혔다. 법원은 또 “피고가 이 사건으로 필리핀으로 도피하던 중에도 그곳에 있는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고 있었으므로 이 사건에서 단순히 횡령 배임금액만으로 가장 중요한 양형판단의 근거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아니한 점 등의 불리한 양형요소 또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양형요소가 인정된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법원은 J스님이 1998년 1월 경부터 2012년 8월 경까지 총 227회에 걸쳐 필리핀 태국 홍콩 중국 등에 여행을 다녔고, 그 가운데 120여 차례에 걸쳐 필리핀을 출입하면서 카지노에서 도박을 했다는 점을 판결 이유에 인용했다. 부산중앙지법 창원1형사부 J스님 항소심 판결문 일부 사진 출처 - 불교닷컴 이 기사가 보도되고 난 후 ‘장주승려 자수사건’에 대한 불교계 시민단체의 활동을 곱씹어 보았다. 지난 2013년 8월 참여불교재가연대 전문기관 교단자정센터는 장주스님이나 종상스님 등 도박장개설과 상습도박 의혹 승려들의 철저한 검찰수사를 촉구 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관련 승려 양측 모두 무혐의 처분하였다. 조계종 고위층과 관련된 16명과 문제를 제기한 장주승려 모두 자유롭게 된 것이다. 교단자정센터 김종규 원장이 포항지청에서 기자회견하려하자, 2013년 당시 불국사 신도들은 자정센터를 비판했었다. 사진 출처 - 불교저널 그런 가운데 영남 P사 J스님 도박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필리핀 등 해외 원정도박을 한 조계종 고위층 승려들에 대한 검찰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는 시사점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또한, 불교계 일각에서 현 검찰총장이 종교가 같다는 이유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소문에 불과하고, 확인되지 않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검찰총장 내정자로 되기 전후에 일어난 소문이었기 때문에 ‘전관예우’ 등 부정적이거나 탈법적인 사항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불교계 시민단체 일각의 의견이다. 소위 ‘장주승려 자수서에 이름 올린 16명’에 대해 검찰수사를 촉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시작되면서 새로운 단체가 지난 3월 31일 창립했다. ‘바른불교재가모임(상임대표 우희종, 서울대 교수)’이다. 이 단체 창립행사에서 축사를 한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해 조계종 종무원조합이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소를 제기하는 등 법적공방이 시작되었다. 팟캐스트를 통해 조계종 총무원 핵심인사를 비판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조계종에서 하고 산하 조직이 대리전의 총대를 맡았다는 것이다. 현 제도권 일부 승려들의 권력싸움에 동국대학교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문제제기를 회피하고 5월 ‘부처님오신날’의 책임과 부채를 모면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의견도 있다. 새로운 불교계 시민사회 진용,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약칭, 불씨넷)는 정웅기 운영위원장의 후임으로 유정희(지원, 전북불교시민네트워크) 님을 추대했다. 최근 불씨넷은 마곡사 주지 선거에 연루된 현 주지 부정부패사안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했다. 또한, 지난 3월 31일 ‘바른불교재가모임’ 창립으로 참여불교재가연대와 산하 전문기관 자정센터가 불교계 부정부패 사건의 짐을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단체마다 ‘사명과 비젼’이 오래되거나 각 단체 상황에 맞지 않고, 젊은 인재들을 양성도 하지 못한 결과, 불교시민단체들은 현 조계종 권력에 아무런 위협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총무원 2중대 역할을 하는 시민단체 인사도 있다”며, 단체 내부 정비에만 더 집중해야 한다는 단체 내부의 지적도 있다. 부패한 일부 승려가 고급승용차, 사설사암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을 막는 ‘승려 검소한 생활하기 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재가불자들이 도박중독치유센터 만들어 상습도박을 예방하고, 치유해야 하는 활동에 시민단체가 앞장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만 3천여 명의 조계종 승려가운데 500여 명이 ‘종교권력 해바라기’ 승려이며, 승려의 개인자산이 국민 일인당 평균 소득을 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건의도 있다. 조계종에서 제정 한 선원청규 같은 잣대가 더 공론화 되고 지킬 수 있는 강제조항을 만들며, 승려들이 포살법회 내용을 더 채우고 피부로 와 닿는 실천을 해야 한다. 여러 불교시민단체가 내부의 우환을 극복하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좋은 에너지를 얼마나 사회에 제안할지 주목해 봐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5 | 추천: 0
임아연/ 당진시대 기자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0여 년이 지났다. 1995년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돼 지방자치의 틀을 갖추고 실질적으로 시작됐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지방자치에 대한 논의는 계속돼 왔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제1공화국인 1952년부터 제2공화국이 끝나는 1961년 5.16군사정변까지 이어지다 30년 가까이 중단됐다. 그러다 1980년대 말 지방자치법 제정 및 개정으로 다시 부활해 1991년도에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 의회를 구성하고 1995년 6월 지자체장 선거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지방자치 시대를 맞은 것이다. 그 시간을 거치면서 지금은 비교적 지방자치가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게 인식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관선 정치에 비해 비교적 행정의 투명성이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형식적인 틀은 갖추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많다.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조례는 상위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시행 가능하고, 지자체가 국가 재정에 의존하는 부분도 상당하다. 자녀가 부모에게서 따로 떨어져 나와 살면서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에 대해 완전한 독립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법과 제도의 한계가 있는 것보다 사람들의 인식은 더욱 심각하다. 광역시장이나 도지사에 대한 인식은 높아도 정작 자신이 살고 있는 구청장은 누구인지, 지역구 의원은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조차 정부의 정책과 문제점은 잘 알고 있지만 기초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나마 대부분의 정보가 생산되는 서울시의 경우는 조금 나은 편이다. 서울시 이외의 다른 지역(흔히 지방이라고 부르는, 지방이란 말은 서울 이외의 어떤 곳을 지칭하는 것으로 상당히 중앙집권적인 표현이다) 광역자치단체와 의회는 시민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쉽게 말해 대전이나 대구, 광주, 또는 각 도에 사는 사람들이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책은 알고 있지만 정작 내 지역의 정책은 알지 못한다. 지역민과 현장의 이야기를 담는 경남도민일보의 ‘몰비춤’, 제민일보의 칭찬캠페인 ‘WeLove’ 프로젝트, 경남신문의 ‘기자살롱’ 블로그.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 출처 - 미디어스 이는 한국사회 언론의 구조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조선일보·한겨레 등과 같이 전체적인 국가 정책에 대해 다루며 전국으로 배포되는 전국지와 부산일보·대전일보 등과 같은 광역지, 그리고 시·군·구의 소식을 다루는 지역신문의 비중이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차이가 크다. 지난해 취재차 독일에 갔을 때, 독일시민들이 접하는 전국지와 지역신문의 비중이 한국과는 정반대라는 얘길 듣고 상당히 놀랐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전국지를 읽는 것처럼 대부분의 독일사람들은 지역신문을 읽는다. 그나마 당진과 해남, 홍성 등 몇몇 시·군에서는 지역신문이 상당히 잘 정착돼 있어 사람들이 지역의 현안과 이슈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큰 편이다. 그러나 도시화에 따라 영상매체에 익숙한 젊은 인구의 유입 등으로 이주민 비율이 높아지면서 도시의 인구성장에 비해 신문 구독자 비율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선진적인 행정은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진다는 건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지만 한국사회에선 아직 요원한 것 같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방자치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건 여전히 서울로 서울로, 중앙으로 중앙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관심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가와 정부를 바꾸는 일만큼 내 지역과 공동체를 바꾸는 일도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22 | 추천: 0
이현정/ 저지리 문화예술창고 <탐라표류기> 부대표   두 달 전 아내와 딸과 함께 서울을 떠나 제주 시골로 이사하였다. 바람 많은 곳 제주로 훌러덩 날아왔다. 아, 지금 살고 있는 동네 이름은 한경면 저지리다. 제주 서쪽의 중산간마을이다. 제주가 고향이라서 제주로 온 것은 아니다. 육지가 고향인 놈이 서른아홉에 제주로 온 것은 나이 사십이 되기 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서 였다. 그리고 바쁘게 살아가는 서울보다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작년 2월 경,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제주로 이사하면 어때?” 아내가 바로 답했다. “그럴까?” 결국 우린 대화를 시작한지 30분도 안 돼 제주행을 무모하게 결정했다. 어떻게 보면 이 글은 개인적인 글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면 매번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만 글로 담다보니 이번 글은 조금 쑥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금 새롭게 시작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라 필자와 마을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저지리 마을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들이 생겨나기를 바라는 마음에 써보기도 한다. 사실 이 마을에 우리 부부만 내려온 것은 아니다. 저지리 문화예술창고 <탐라표류기> 빈집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자 하는 문화예술가, 사회활동가 청년 8명이 함께 모였다. 1년여 전에 먼저 내려온 친구 부부, 서귀포에서 여기로 들어온 부부, 우리처럼 서울에서 작년 연말에 일을 그만두고 내려온 친구 등 여러 청년들이 모였다. 각자, 그리고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 마을 활동들을 펼쳐가고자 한다. 서로 지인 관계이지만, 살아온 결이 다르다보니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논쟁도 치열하다. 저지리 마을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한경면 주민들이 사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다. 제주에서는 보통 중산간마을이라 한다. 제주의 중산간마을은 매우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해방 이후 4.3사건 당시 제주 일대의 중산간마을 95% 정도가 불에 탔다. 그리고 대한민국 군인, 경찰의 비호를 받은 서북청년회로부터 어린이, 부녀자까지 엄청난 학살을 당했다. 이곳 저지리 마을도 4.3 때 불타 버렸고, 한국전쟁 전후로는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당시 불에 타지 않았던 성읍 중산간마을이 이제는 민속마을 문화재로 보존되는 아이러니한 현실도 존재한다. 저지리로 이사 온 후 마을 이장, 청년회장 등 마을일을 하시는 분들을 자주 만났다. 우리 이주 청년들이 마을과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만날 때마다 느끼지만 저지리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았다. 특히 이곳은 마을 구성원 중 50대가 가장 많으며, 40대도 매우 많은 젊은 농촌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제주 중산간마을 중에서 유일하게 중학교가 있기도 하다. 저지리에는 가장 아름다운 숲길로도 선정되었던 저지오름과 마을 곳곳에 곶자왈(화산지대 천연 숲길)이 자리한다. 그렇다보니 해안가도 아닌 이 중산간마을에 올레길이 있다(13코스 종점, 14코스와 14-1코스 시작점). 더불어 문화예술인마을, 도립 현대미술관, 필자가 활동하는 탐라표류기 등 문화예술활동도 잘 준비된 곳이다. 저지리 환상숲 곶자왈 사진 출처 - 인터넷 결국 필자가 이장님과 얘기한 것 중에 하나가 ‘마을주민 해설사 양성’ 활동이었다. 마을의 이 좋은 생태환경을 보고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마을 주민들이 직접 해설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마을 탄생의 이야기부터 생태환경 모습 등 마을 스토리를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공부하고, 방문객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이렇게 되면 잘 돌보지 않았던 마을의 주변 생태환경도 함께 보존하자는 마음도 커나갈 것이라 본다. 더욱이 체험 프로그램 계발, 마을 농산물 및 생산품 판매, 숙박 등으로 마을 주민들의 복지 향상에도 기여하고자 한다. 다행히 필자가 KYC(한국청년연합)에서 시민 대상 평화*인권 안내해설사 ‘평화길라잡이’ 활동을 10여 년을 해온 터라 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최근에는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181시간 교육도, 제주참여환경연대 생태문화해설사 교육도 신청하였다. 여기에서부터 마을 분들과 작은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시작해볼까 준비 중이다. 저지리 마을공동체라디오도 준비하고 있다. 제주에 개인별 팟캐스트 방송은 많지만, 마을방송국으로는 처음이 아닐까 싶다. 탐라표류기 문화예술창고에 작은 라디오 부스도 설치하였다. 4월에는 라디오를 함께 하고자 하는 주민들을 모집하고, 5월부터 교육과 방송 제작 등을 함께 하려고 한다. 중앙 언론에서만 다루는 거대한 뉴스가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자신의 이야기, 마을의 이야기들을 직접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활동이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 개인의 삶과 마을살이가 보다 풍요로워지는 마을방송국을 꿈꿔본다. 안타깝게도 라디오 주파수가 통신법상 승인이 나지 않아 인터넷으로만 송출이 된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을 극복해 제주와 육지 곳곳에 저지리 마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필자가 우선적으로 하고자 하는 위 활동들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가져갈 것인가가 핵심일 수 있겠다. 당연히 필자도 어려움 속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겠다. 아무래도 위 활동에서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가족 생계를 위해서는 다른 소득 활동을 하면서 흔들리면 안 되겠다. 장기적으로는 마을 분들과 ‘커뮤니티 비즈니스’ 차원으로 발전시켜 저지리 마을의 공유 자원을 키우고 주민들과 나누고 싶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릴게 있다. 저지리 마을에 어떠한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분들이 계신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셨으면 한다(wepeace07@daum.net). 제주 지역 한 마을과 자매결연을 고민하는 육지의 마을과 기업, 생태관광을 꿈꾸는 곳, 감귤, 딸기, 제주 로컬푸드 농산물 직거래를 원하는 곳,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지리와 함께 하고자 하는 분이 계시다면 연락을 주시라.
2017-07-12 | hrights | 조회: 27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