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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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서동기(대학생),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농부), 이회림(○○경찰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대학 진학과 고등교육을 중심으로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어머니가 기형인 딸을 낳았을 때 어땠을지 상상해 보기도 했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었다 해도 나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고 결국 나를 원망하는 것으로 정신적인 혼란에 대처했을 것이다. 내가 며칠 만에 죽었다면 더 나았을지 모르겠다.” - 엘리슨 레퍼 -   그 많은 장애여성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부터 10년 전 2007년 한국에서 세계장애인한국대회가 열렸을 때 전 세계 장애여성과 많은 한국의 장애여성을 만났다. 한국의 장애여성들은 얼마 전 유엔 회원국 82개국이 공식 서명한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 장애여성 관련 단독 조항을 마련할 만큼 전 세계 장애여성운동을 이끌고 쟁쟁한 전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국제적인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온 나라의 석학들과 지적 논쟁에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 장애 여성들을 정작 대학에서는 왜 그렇게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 95년 장애인특별전형제도 이후 미흡하게나마 장애인 고등교육의 기회가 늘어나고 교육환경도 개선되었다. 그러나 그 ‘장애인’에게서 여전히 장애여성은 소수 중에 소수이고 약자 중에 약자일 뿐이다. 2001년에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장애여성 박지주씨가 학교상대 학습권 손배소에서 부분승소하고, 2002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장애여성의 고등교육 실태 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이렇다 할 정책도 대안도 없이 20여 년이 흘러 장애인대학생 중 겨우 1/10(추정치)만이 장애여성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여성비율이 교대 및 사범대를 들여다보아도 이 같은 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이번 정권이 장애인 교육 기회를 확대하겠다고 공약으로 밝히고 정권 차원에서 여성의 지위를 올린다고는 했지만 장애 여성의 고등 교육을 위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 상상 1. 일반 학교, 일반 학급에 일반 교사로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 선생님, 고3을 맡다.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원임용에서 장애인 고용률을 지키기 위해 올해 처음으로 장애인교원임용우대정책- 장애인의 교원임용우대정책은 2005년에 개정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하 직재법)에 따른 것이다. 개정된 이 법으로 국가 및 지자체 장은, 공안직군 공무원, 검사, 경찰·소방·경호 공무원 및 군인 등을 제외하고, 소속 공무원 정원의 2% 이상을 장애인을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제 23조) 이에 소속된 각급 기관의 장은 장애인을 최소 2% 채용해야 하며, 장애인 공무원 수가 해당정원의 2%가 안 될 경우에는 5%를 채용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이는 재정경제부가 지난 4월 28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일자리 창출을 위한 20대 중점과제 추진방안" 중에서 바로 교육부에서 내놓은 장애인 일자리 만들기 사업안이기도 했다. - 을 실시했다. 장애인 교원은 현재 전체 교원의 0.3%, 1500명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그리고 장애인 2% 의무고용을 하기 위해서 최소 5천명의 장애인 교원(전체 31만3,914명 중에서 6,287명)을 임용해야 한다. 각 학교 교무실에서, 각 지역 교육청에서 교사들은 특수교육대상자로서의 장애인이 아닌, 동료 교사로서의 장애인을 만나는 것이다. 물론 현재 교육대, 사범대 등 장애인 재학생이 185명(교육대 10명, 사범대 175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장 교무실이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안내견을 이용하는 장애여성을 만날 가능성은 적다. 많은 시·청각 장애인과 같은 감각 장애인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 장애인의 경우, 국가교원임용시험에 합격한다고 해도 지금까지는 같은 유형의 특수학교에 배치하거나 그 장애인 교사 출신 학교에 배정한다. 그리고 그 합격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성차별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물론 지금도 일하고 있는 휠체어 이용 장애여성도 있다. 물론 특수학교에 특수교사이긴 하지만. 변혁은 장애여성이 만들어 냈건만...... 장애인을 위한 대학 정책을 실시 한지 22년이 지났지만 대학가는 장애 여성의 수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2001년 학교를 상대로 학습권 소송을 했던 숭실대 박지주씨의 투쟁으로 2003년 대학 장애학생 교육복지 지원평가제가 2년마다 시행하게 되었고 결국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 등 특수교육법에서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타 설치를 명문화하는 시금석이 되었다. 뒤이어 올해에도 경남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의 석사과정에 재학하는 송정문 (34. 여. 마산시 내서읍, 경남 장애인 자립 생활센터 협의체 대표)씨가 최근 대학의 학교 법인을 상대로 2천 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숫자적으로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 장애인학생들보다 극소수에 해당하는 장애여성들이 두 번이나 소송을 제기했다는 일단의 사실만 보아도 장애여성의 교육 현실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낙후되어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반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운동의 선두에서 운동을 새로이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장애여성일진대 그 성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역시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대학 진학률이 현저하게 낮다는 것은 그만큼 초·중고등학교에서의 차별 역시 참혹함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저시력 학급을 오랫동안 운영해 온 서울의 여의도 고등학교의 경우 남녀 공학임에도 불구하고 여학생을 위한 화장실이 그나마 구색이라도 갖춰진 것은 불과 2~3년 전의 일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장애여성은 대학이나 심지어 야학을 다니는 것조차도 집안과 가족의 허락과 동의를 구해 내야만 가능하다. 교육에서 장애여성들은 여전히 1960년대 봉건적이고 권위적인 인식의 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사진 출처 - 필자 2013년 4월 연세대에 연세대 총여학생회가 게시한 성명서 자보 ‘장애여성 10명 중 0.5명만이 대학을 다니는 현실 이것은 크나큰 차별입니다.’   사회에 ‘능력’을 증명하는 것보다 사회로 하여금 장애를 인정하게 하는 일이 힘든 일인가? 장애여성이 ‘능력’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그 능력을 제대로 발현하고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95년도에 도입된 대학의 장애인특별전형제도는 도대체 어떤 기능을 했는지 의심스럽다. 2002년도의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원래의 고등 교육의 목표- 전문직 진출을 통한 계층이동의 기회 확대, 학문 후속 세대의 지속적인 배출 - 이렇게 크게 두 가지 기능 그 어느 것도 장애인에는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제 발표의 내용대로 대학 교육을 받은 장애 여성 중에서 전문 직종을 제대로 고용이 되어 중산층 진입을 위한 안정적인 기반을 구축한 장애 여성이 과연 얼마이며 학문 후속 세대로서 대학원 석박사 교수가 된 장애여성 교수는 아직 공식적으로 한 두명 밖에 없다. 그 중에서 일반적인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농아인 장애여성은 미국 Ohio State University 교육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 모 씨가 유일하다. 교육 차별에서의 장애여성의 이중적인 차별, 가부장적인 관점으로 인한 장애남성보다 열악한 가족들의 지원, 거기서 빚어지는 차별의 장애여성 스스로의 사회화 과정이 이 구조적인 고통 이면의 근본적인 본질일지 모른다. 게다가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는 장애여성들은 사업에 나와서 장애인으로서의 차별을 직접적으로 받기 전까지는 자신을 ‘장애여성’으로 솔직히 인정하는 경우는 고학력, 고학벌 장애여성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맞춤 준비도, 지원체계도 어려운 것이다. 사회가 장애인에게 차별이나 혐오를 인정할 수 없는 ‘무장애’ 사회라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아직까지 장애여성이 아무렇게나 손쉽게 들어갈 수 있는 어학 학원 없는 실정에서 막막한 현실은 엄연히 존재한다. 문제는 중증 장애여성일경우에는 지원 받기 이전에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장애 여성들이 비교적 많이 진학하고 있는 특수교육과나 사회복지학과도 마찬가지이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난청 장애여성 한 명은 미국 대학에서 2명의 전문 문자 통역 속기사들의 지원을 받아 아주 고급 인력이 되어 돌아왔다. 그녀는 늘 당당하고 비장애인과의 사회적 교감이나 매너도 상당하다. 하지만 문자 통역 하나 없는 침묵의 직장 생활 속에서 얼마나 그 당당함을 유지하고 직장 동료하고 소속감을 만들 수 있을까? 여전히 장애 여성들은 ‘우리’에게 없다. 「비평이란 것이 반드시 ‘그러므로 이래야 한다’는 결론을 맺는 연역적 전개를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 -연역적으로 나가면 결국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비평은 싸우는 사람들, 즉 현 상태에 저항하고 현 상태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 (미셀 푸코 Michel Foucault, 이데올로기와 의식)
2017-08-09 | hrights | 조회: 85 | 추천: 1
이동화/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활동가 3년 전, 팔레스타인 국제연대단체인 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 자원 활동을 했을 때 만난 칼리드 다라그마(Kalid Daraghmah)씨는 이스라엘 정착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크게 흥분했다. “그들(이스라엘 정착촌 주민)은 우리 농장과 집으로 내려와서 나무를 자르고, 음식을 가져갔어. 심지어 내 집 근처 샘에서 가족들이 집안에 있는데도 옷을 벗고 수영을 했어.” “또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그들은 집에 불을 질렀고 밤에 떼를 지어 와서 우리 가족을 공격했어. 하지만 이스라엘 군인은 나와 두 아들을 체포했고 감옥에 집어넣었지.” 그가 이렇게 정착민들에게 공격을 받은 이유는 그의 집과 농장이 ‘말레 레보나’와 ‘엘리’라는 이스라엘 불법정착촌(국제법상 팔레스타인 내 이스라엘 정착촌은 모두 불법이다) 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팔레스타인 베들레헴부근 알 후산 마을에 거주하는 라지 사바틴(Raji Sabateen) 역시 비슷한 경험을 토로했다. 대대로 올리브 과수원을 하고 있던 라지 사바틴은 1984년부터 마을 부근에 ‘베타르 일리트(Beitar Illit)’라는 최대 규모의 정착촌이 건설되면서 본인의 과수원은 몰수되고 과수원 사이로 철조망이 쳐졌다. 그는 15년 동안 법원 소송을 거쳐 2007년 이스라엘 고등법원을 통해서 최종 ‘베타르 일리트’정착촌 내 과수원 땅과 농작물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았다. 팔레스타인 농부로는 최초의 법률적 승리였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베타르 일리트 정착민은 지속적으로 라지 사바틴 과수원의 올리브 나무를 훼손했고 농장에 불을 질렀다. 농장을 드나들 때도 정착민들은 농부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욕설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으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이스라엘 군을 철수했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대한 직접 또는 부분적인 관할권을 가지게 됐다. 이른바 “땅과 평화의 교환”이었다. 오슬로 협정으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는 이스라엘에 의해 8~10미터 높이의 거대한 분리장벽으로 외부와의 출입이 철저히 봉쇄되고 고립되어 있다. 문제는 정착촌은 이 철저하게 고립되고 봉쇄되어 있는 지역 내에서 건설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설된 정착촌은 이스라엘 이주정책에 의해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단순히 정착촌만 확장되는 것이 아니다. 정착촌을 보호하기 위해 정착민은 자체 무장을 하고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의 보호를 받는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 군사시설도 따라서 건설되고, 정착촌과 정착민이 이용하는 도로와 각종 시설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또다시 장벽과 철조망이 건설된다.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덩치를 키우면서 그렇지 않아도 사는 곳을 제한받고 통제받는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야금야금 잠식해왔다. 위의 칼리드 씨와 라지 씨처럼 갈등을 유발하고 폭력을 동반하면서 말이다. 웃기는 사실은 정착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종교적 유대인들도 있지만 다수가 러시아나 아프리카, 다른 국가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이주비용 지원과 값싼 주택비용 등 경제적 이유로 이주한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본인들의 거주지를 둘러싼 갈등을 접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갈등을 내재화 한다. 지난 6월 20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언론에서는 25년 만에 신규 정착촌 건설이라고 하였다. 사실 기존의 정착촌을 계속 넓혀왔기 때문에 25년 만에 처음이라는 발표조차 사실이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2016년 12월 23일 유엔 안보리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중단’ 결의안을 미국을 제외한 모든 이사국(14개국)의 만장일치로 채택한 이후 신규 건설이라는 점이다. 비단 12월 23일 결의안 이외에도 유엔 및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은 법적 정당성이 없으며 명백한 국제법 침해에 해당한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늘 그렇듯 국제사회의 외침을 개무시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나라는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국가이고 법치국가라고 선전한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인한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지속되는 분리장벽건설, 난민반환, 이스라엘의 무장침공 및 집단처벌, 행정구금, 물과 올리브나무와 같은 자원 약탈 등. 하지만 현재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은 암처럼 퍼져가는 이스라엘 불법정착촌이다. 불법정착촌으로 수십 년째 고통을 받고 있는 라지 씨는 역설적이게도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과의 평화적 공존을 바랬다. 하지만 정착민들은 팔레스타인 주민이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오늘도 스스로 무장한 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하고 있다. 이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 누구의 노력이 선행돼야 하는지는 명백하다. 누군가가 여기는 내 땅이라고 외치기 전에 그들은 서로 잘 지내고 있었다.
2017-08-09 | hrights | 조회: 49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충청남도 의회는 2012년 5월 <도민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를 당시 도의원 전원의 공동발의로 제정 공포했다. 충청남도는 2014년 도민인권선언문을 선포하였으며 2015년에는 인권조례의 구체성을 강화한 조례 개정에 이어 2016년 12월에 충남인권센터를 개소했다. 15개 시, 군 모두에서 인권조례를 제정하면서 충청남도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자치단체 차원의 인권제도화를 진행해 오고 있다. 하지만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이 한창이던 지난 2월, 충남기독교연합회 소속 목사 10여 명은 안희정 지사와 면담을 통해 인권조례와 도민인권선언문의 성적지향 차별금지를 문제 삼으며 공식적으로 인권조례 폐기를 요청했다. 이후 충남의 기독교계와 일부단체는 충남인권조례 폐지 청구 주민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실제 부여, 공주, 서천에서는 폐지청구가 접수되고 서산, 당진, 아산 등에서는 폐지 청구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지역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충북교육청은 지역 보수단체와 기독교계의 반대로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충북교육공동체권리선언> 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2016년 4월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타운홀 미팅 현장에 이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난입해서 행사를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2015년 대전에서는 <성평등기본조례>가 제정되었는데 지역 기독교계가 ‘성 소수자 보호 및 지원’에 대한 조항을 문제 삼으며 강력하게 반발하자 대전시 의회는 제정 한 달 만에 관련 내용을 삭제하고 조례명칭도 양성평등조례로 바꾸고 말았다. 박병철 시의원이 의원 발의한 <대전학생인권조례>는 2016년 4월 조례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반대세력들의 물리력 행사로 시작 10여 분 만에 취소되었으며 올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대전시 의회 교육상임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의결조차 하지 않고 두 차례 연속 유보하며 사실상 폐기처분 되고 말았다. 이렇게 충청지역만 살펴보아도 최근 2~3년간 지자체 차원에서 새롭게 추진하거나 이미 시행되고 있던 많은 인권정책과 조례들이 무산되거나 위협받는 중인데 이러한 현상은 비단 충청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닌 전국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동성애 반대’를 이유로 ‘인권’이란 문구만 들어가 있으면 무조건 반대하는 일부 보수단체와 기독교계의 움직임은 상당히 조직적이며 교인들을 앞세운 물리적 반대 행동 역시 갈수록 위력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에 반해 지역의 시민사회 특히 인권 분야의 시민사회 역량은 허약해서 새로운 인권조례 제정은 번번이 막히고 멀쩡한 조례와 인권 제도마저 폐기하려는 시도에 대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전의 사례에서 보듯이 비이성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 반인권세력들의 준동을 막거나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할 지역의 정치인들은 지방자치선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 때문인지 오히려 그들의 눈치를 보거나 부화뇌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황을 계속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그 지역사무소 또한 마찬가지다. 원래 지역 인권조례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표준조례를 만들었고 이를 지역에서 참고하여 인권조례를 제정할 것을 권고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서 인권조례와 인권 제도를 공격하며 인권 고유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차원의 대책과 강력한 항의, 비판의 목소리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지난 6월 인권조례 폐지움직임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이른 충청남도 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조례 폐지의 적합성에 대해 의견을 문의하고서야 ‘성소수자 차별금지 규정 때문에 인권조례를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발표한 것이 그나마 지역 인권조례 문제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거의 유일하게 드러난 움직임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 지역사무소 또한 기능적인 한계이기는 하겠지만, 인권교육과 진정, 상담 외에 주요 지역 인권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거나 반인권적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독교계를 앞세운 반인권세력들이 펼치는 지역 인권제도화에 대한 공격은 갈수록 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저지해야 할 지역 시민사회의 힘은 여전히 미약하고, 지역 정치권과 국가인권위원회도 별다른 대책이나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성적소수자는 물론이고 학생, 노동자, 외국인노동자, 여성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구제하는 지역 차원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데서 일련의 반인권적 사태가 가지는 심각성이 크다고 하겠다. 유엔 차원에서 ‘도시인권’이란 개념이 만들어 진 후 2005년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리라는 도시가 유엔이 선정하는 '인권도시'로 선언되었고 이후 10개가 넘는 도시가 추가로 인권도시로 선정되었다. 2015년 미국에서, 올해는 독일이 동성 간의 혼인을 합법화했다. 하지만 2017년 대한민국의 지역 곳곳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도 아닌 단순히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하지 말자는 문구 때문에 법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던 법도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곳곳에 쌓여있던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혹은 시민사회 차원에서 대안과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지역 인권 제도에 대한 공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파도는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데 이를 헤쳐 나갈 배에 제대로 된 선장도, 조타수도, 항해사도 없는 것이 2017년 현재 지역 인권이 처한 상황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6 | 추천: 0
신혜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6월 30일. 독일에서 두 번째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날 독일 하원은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독일은 23번째 동성 결혼 인정 국가가 됐다. 동독 출신 동성애자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나에게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만큼이나 중요한 사건"이라고 밝혔는데, 과장이 아니다. 기독교 전통이 강한 독일인만큼 놀라운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기독민주당에 당적을 둔 메르켈 총리는 동성결혼 합법화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온 바 있다. “결혼은 남녀 간 결합”이라 생각한다며 이번 표결에서도 반대표를 던졌다. 과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 국민들을 가르던 이념 장벽이 해소됐듯, 이번 동성결혼 합법화는 배제돼 있던 성소수자 국민들이 독일국민이라는 울타리 안에 통합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 CNN 14일부터 17일. 서울광장에서는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국민통합’ 대통령 시대에 열리는 첫 퀴어축제다. 올해 초 대선토론회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성소수자의 존재는 찬반 이슈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토론 대상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성소수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다른 후보들도 “동성 결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심상정 후보만 “성소수자의 존재는 찬성하고 반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외교, 경제 이슈도 아닌 성소수자 이슈가 논의되는 이유는 성소수자들의 존재 자체를 격렬하게 부정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은 이 세력의 눈치를 본다. 소수를 ‘타자화’ 시켜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는 셈법이다. 정당성 없는 집단은 ‘타자화’ 전략에 기생한다. 타인과 우리를 가르는 손쉬운 방법으로 존재의 당위성을 획득하는 식이다. 국가도 종종 이런 식으로 자기 존재를 합리화한다. 주변국들을 ‘적국’으로 매도하며 악의적 선동을 일삼는 식으로 국민 통합을 다져온 국가들은 현대사에 널렸다. 독일 나치가 그랬고, ‘악의 축’을 외치던 미국이 그랬으며 ‘주적’ 논란이 계속되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계를 주축으로 한 보수단체들이 ‘성소수자 반대’ 만으로 ‘보수 결집’을 시도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기독교계 또한 ‘타자화’를 겪은 적이 있다. 초창기 기독교는 이단 취급을 받았다. 당시 기득권 세력은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보했다. 한국 기독교는 자신들이 걸어온 ‘고난의 길’, 즉 ‘다수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억압받는 소수가 되는 길’을 되돌려주고 있다. 한국 정치는 타자화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정치인들이 장악해왔다. 토론회에 성소수자 이슈를 끌어들인 홍준표 전 지사는 대선 유세 기간 내내 타자화를 통해 세를 구축해왔다. ‘좌파 세력에게 정권을 넘길 수 없다’고 호소하며 ‘좌파’라는 타자를 생산해 낸 게 대표적이다. 메카시즘에서 비롯한 ‘좌파 사냥’은 한국 정치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한 번 타자화된 대상은 ‘우리’ 안에 포섭되지 못한 채 적대시됐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통령 등 인권변호사 출신 한국 정치인들이 성소수자 혐오에 기대는 행태는 그래서 더욱 실망스럽다. 국민통합은 ‘타자’가 사라질 때만 가능하다. ‘2등 국민’을 생산하며 이룬 통합은 반쪽뿐인 통합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차별들, 장애인/비장애인, 정규직/비정규직, 남성/여성은 이러한 타자화의 변주들이다. 한국 기독교계와 한국 정치인들은 각자 타자화 돼 온 자신들의 과거를 돌아 볼 일이다. 철학자 니체는 ‘타인은 나의 지옥’이라며 타인에게서 찾는 단점은 사실 내가 가진 단점의 투영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한국에서 이 명언은 재해석 될 필요가 있다. ‘타인’을 생성하는 순간은 내 인식적 편협함이 드러나는 순간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타자화 현상은 타자가 사라져야 해결되는 게 아니라 내가 인식을 바꿔야 끝나는 문제다. 한국의 베를린 장벽은 언제쯤 무너질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48 | 추천: 0
- 제주 오라관광단지 개발 인허가 절차 중단을 환영한다. 추후 완전 불허를 기대한다. 이현정/ 꽃씨네농작물 농부 6월 초에 일주일동안 일본을 다녀왔다. 이에시마(家島) 커뮤니티 활동을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제주의 한 방송국 시민자문단으로 동행했고, 제주의 지속가능한 미래 모습을 담은 해외 사례 촬영이었다. 이에시마는 일본 섬 속의 섬이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차로 1시간 40여분 서쪽으로 가면 히메지시가 나오고, 거기서 다시 배를 30여분 타고 들어간다. 인구는 5,500여명 규모이다. 외부에서는 이 섬에 들어갈 때 자동차, 오토바이 등 교통수단을 가져갈 수 없다. 모두 섬 안에 있는 교통수단을 활용해야 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생업에 종사하는 주민들, 지역 NPO 활동가와 회원들, 관광조합장, 여행객들, 행사 자원봉사자들과 외지 참여자들, 그리고 공공기관장까지. 사는 모습은 다 달랐지만, 이에시마 지역을 사랑한다는 게 크게 느껴졌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어업이 기간산업이었고, 100여년 전부터는 채석업도 이어져오고 있다. 반가웠던건 이 채석업 사업권이 지역 주민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대기업이나 특정 이익집단에 특권이 집중되어 있어 막상 지역 자원의 혜택이 주민들에게 크게 돌아가지 않는다. 제주도 마찬가지다. 제주 바람을 이용하는 풍력발전소 경우에도 외부 업체에 수익이 들어간다. 과거 제주 중산간 마을목장도 중요한 자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대다수가 골프장 등 대규모 개발업체에 팔렸다. 이에시마 항구 모습 사진 출처 - 필자 이에시마 지역 주민들은 알고 있었다. 100여 년 동안 채석업으로 주민들이 먹고 살았지만, 이제 몇 십 년 후면 이 자원은 유한하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부터 환경 보전을 고려하여 적정량을 채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어업과 채석업 지역 기간산업에서 관광업을 새로운 산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이에시마가 지닌 섬의 향기다. 이에시마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 지역에 자부심이 높고 친절한 사람들, 신선하고 맛있는 생선 요리들을 여행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십오 년 전부터 본격적인 커뮤니티 활동이 이어졌다. 마을만들기 연수회, 탐색되는 섬 프로젝트, 주민이 참여하는 이에시마 종합진흥계획, 마을사업 기금 설립 및 운영, 빈집 게스트하우스 프로젝트, 특산품 개발과 지역 공익사업 등이 펼쳐졌다. 그러면서 2007년에 주민들이 NPO법인 ‘이에시마’를 만들었다. 이 NPO는 어패류 특산품을 판매하고, 그 수익으로 마을만들기 활동을 전개하였다. 물론 이 커뮤니티활동 과정에서 주민들만이 아닌 외부 조력자들이 있었다. 바로 스튜디오-L 커뮤니티 디자인팀이었다.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야마자키 료 대표가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현재는 공익 커뮤니티 활동 규모가 작아졌다. 스튜디오-L팀이 몇 년의 활동을 마치고 떠난 후, NPO 등 주민들이 자립하는 과정에서 과도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에시마 사람들은 섬의 향기를 간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에시마 자연 환경을 잘 보전하고 활용해 주민들이 직접 관광업을 키워가고 있다. 이제 제주로 시선을 돌려보자. 어제 제주도청이 의미 있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몇 년 동안 논란이 컸었던 제주오라관광단지 개발사업 인허가 절차를 중단한다는 것이다. 제주도의회가 환경영향평가 마지막 심사를 하였고, 그 결과 도의회가 철저하고 투명한 검증을 도청에 요구하였다. 필자가 작년에 이 공간에서도 오라관광단지 개발 문제점을 쓴 적이 있다. 오라관광단지 개발은 제주시 북쪽 한라산국립공원과 붙어있는 아래쪽(해발 350~580미터)에 약 108만 평의 대규모 관광단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2021년까지 대규모 호텔과 콘도, 컨벤션과 골프장, 면세점과 백화점, 테마파크와 카지노 건설 등 6조 2800억 원의 역대 최대 규모다. 마라도 12배 크기에 상주활동 6만 명이라는 결국 중국인 상주 거대도시의 출현이다. 자연 파괴는 물론이고, 지금도 심각한 제주 지하수 상수도와 하수 처리 문제, 엄청난 쓰레기 처리와 교통 혼란, 대기질과 소음 오염, 거대한 부동산 폭등과 영세업자 상권 파괴, 중산간 고도 완화 파괴, 중국인 대규모 저가 관광과 환경 파괴 문제, 국제 투기자본의 전형적인 결과 출현 등이 자명하다. 개발 반대 활동 사진 출처 - 헤드라인제주 이제 이 사업은 모든 행정의 인허가 절차가 중단되었고, 장기간 유보되는 상황을 맞았다. 아직 완전한 사업 불허는 아니다. 제주도가 자본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선 자본검증, 후 절차진행을 하겠다고 한다. 실제 사업자인 중국계 거대 자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추진업체가 자본금 950억 원의 국내 기업 (주)JCC인데, 어떻게 이 업체가 6조원이 넘는 대규모 사업을 펼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주)JCC의 지분 100%를 보유한 곳이 버진아일랜드 국적의 투자회사 ‘하오싱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Haoxing Investment Ltd)’라 한다. 결국 이곳이 몸통인데, 국내 업체 사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심장이 없는 외국 투기 자본은 지속가능한 제주 그림이 아니라, 돈 되는 곳에 큰 빨대를 꽂는 것에 불과하다. 결국 제주를 재앙으로 몰아가는 길이다. 결과적으로 이 대규모 개발사업은 불허되어야만 한다. 작년에 제주도에 1,6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여기저기서 자랑스럽게 밝힌다. 궁금하다. 실제 1,600만 명일까? 가족 만나려고, 또 일 때문에 온 사람들도 꽤 되는데 수치를 너무 높였다. 그리고 400만 명 외국 관광객 시대를 말하는데, 대부분 중국 국적이거나 화교계 사람들이다. 이번에 사드 여파로 한 국가에 편향된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또 질 낮은 저가 단체여행의 적나라한 현실도 나타났다. 이러한 상상을 해본다. 1,000여만 명이 딱 한 번 찾는 제주가 아니라, 100만 명이 열 번 오고 싶은 제주는 어떨까? 대규모 저가 단체여행으로 많이 찾아오는 제주가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곳에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제주 섬의 향기를 맡으러 오게 하면 어떨까? 그러려면 제주가 먼저 바뀌어야겠다. 대규모 개발 관광사업이 핵심이 아니라, 섬의 향기를 보여줄 아름다운 자연 환경, 이 땅에서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선보이자. 더불어 제주 도민들이 함께 협력하고, 그 관광업의 혜택도 누릴 수 있게 해주자. 살고 있는 도민들의 행복이 우선시되어야 관광업도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도 도민들의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느린 속도로 가더라도 말이다. 이게 지속가능한 아름다운 제주를 만드는 길 아닐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57 | 추천: 1
이동화/ 아디(Asian Dignity Initiative,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활동가   다음달 6월이면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이하 아디)에서 상근한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다른 단체와 마찬가지로 아디도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기에 사람들을 만날 때 부지런히 단체와 활동을 소개하고 후원을 요청한다. “아디는 아시아 분쟁지역에서의 피해자와 현지 활동가를 지원하는 활동을 합니다. 어쩌고저쩌고” 그럴때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상대방이 갸우뚱하는 느낌을 받는다. ‘뭔 소린지는 알겠는데 정확히 무슨 활동을 하는지는 모르겠다’는 그런 느낌?^^ 그리고 그 분들 중 일부는 순수한 취지로 “이런 활동(아시아연대)을 왜 하세요? 무슨 이유(계기)때문이에요?” 라고 묻거나, 일부는 “아시아 연대가 의미 있는지는 알겠는데, 한국에도 필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게 우리랑 무슨(어떤) 상관이에요?”라는 질문을 한다. 한국의 사회문제가 아닌 아시아의 인권과 평화를 위한 연대를 한다는 것이 많이 낯설고 그 필요성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연하고 충분히 이해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질문들에 답을 하고자 한다. 먼저 개인적 이야기를 풀자면, 국제연대 활동을 처음 접한 건 2003년 이라크 전쟁 때였다. 당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은 일방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했고 그 부당한 전쟁에 한국정부가 참전하였다. 한국군의 파병결정은 많은 국민들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이 전쟁반대 파병반대를 외쳤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로 이라크에 직접 방문했을 때 나는 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사진과 글, 영상과 자료를 통해서만 접했던 이라크와 이라크인 들을 실제로 만났던 순간이다. 그 지역의 요르단 사람과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만나 그들의 어려움과 문제를 알게 되고 공감했다. 소위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국제연대 활동가가 된 이유였다. 이라크 바그다드 알마시텔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사진 출처 - 필자 ‘아시아 연대활동’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낯설고 무겁게 여긴다. 쉽사리 함께 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관점을 바꿔서, 아시아 연대활동을 ‘활동’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으면 어떨까? 아시아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 어쩌면 가족일수도 있고 친구일수도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 나눴던 그런 ‘사람’ 말이다. 아시아 연대를 생각지 말고 그 ‘사람’과의 연대라고 상상해 보자. 그 사람이 한밤 중 폭탄이 떨어져 온 가족이 죽고 자기만 살아남은 전쟁의 공포 속에 두려움에 떤다면? 본인이 믿는 종교와 신념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살해 위협을 받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아시아 연대활동은 내가 잘 알고 있는 ‘그들’과의 연대이다. 왜인지, 어떤 이유인지 중요치 않다. 앞서 받았던 질문 중 “한국에도 해결해야할 사안이 많다”라는 이야기는 너무 당연하고 맞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혹시나 그 문장속에 한국인 우선이라는 폐쇄성과 배타성이 담겨 있다면 그건 동의하기 어렵다. 한국내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여성, 노동, 환경, 장애, 아동, 빈민, 교육 등등)에 대해서 어느 운동이 우선순위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운동은 자신의 영역이 항상 시급하고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연대활동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의 어려움에 대해 순위를 매기는 건 비겁하고 운동의 원칙에도 맞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영역에서 서로 연대하고 배려하며 함께 해야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시아의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 정도로 성장하고 정치와 사회, 문화가 현재의 위치까지 오게 된 데에는 외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518광주민주화항쟁에서 함께 했던 국제인권단체와 외국인 저널리스트의 노력, 군사정권시기에 한국의 양심수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던 많은 국제사회의 도움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시민사회는 여전히 한국의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수준에서 국제연대를 이해하고 있다. 또한, 요즘 한국내에서 이민자와 이주노동자,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차별들이 커지고 있다. 노동, 여성, 환경, 민주주의 등 지키고 개선해야 할 사회적 가치들이 위협을 받는 이 현상은 한 국가 차원을 넘어선 많은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들이다. 사회문제는 갈수로 세계화 되는데 그에 대한 저항이 한 국가 내에서만 이뤄진다면, 그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아시아 연대활동은 한국사회와 많은 연관이 있고 이제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6 | 추천: 0
10년, 인권교육에게 보내는 일기 같은 반성문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아빠가 담배를 비벼 끄고는 새 담배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슈나이더 씨의 말을 들으며 계속 머리를 흔들었다. “슈나이더 씨, 평화를 믿지 마세요.”」 한스 페터 리히터(Hans Peter Richter)의 『그 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중에서』   # 인권교육가는 인권적인 사람인가?, 인권의 전문가인가? 교육의 전문가인가? 글쓴이가 인권교육이란 이름을 걸고 강의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5년 즈음부터이다. 특수교육 등 장애인 교육법 시행으로 학교 현장에서 장애인 통합을 위해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인권교육을 시작하였고 장애인 활동보조인교육에서 비장애인 대중들에게 장애인 인권을 알렸다. 그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렇게 10년 넘게 심한 장애인 당사자로서 ‘인권’이란 이름으로 교육을 했지만 그동안 세상은, 사람들은 과연 인권적인 세상으로 인권적인 사람들로 변화하였는가? 보수 정권을 지나면서 인권은 정책도, 예산도, 인식도 모든 것이 퇴행하고 인권교육은 인성교육이란 이름으로 왜곡되기도 했지만 장애인 분야에서 인권 교육은 매일매일 터지는 학대와 착취, 시설비리등으로 양적으로는 많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소식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 도가니(2011)로 환기된 사회적 인식에도, -당시 사건 피해자가 다른 시설로 간 이후에도 최근에 다시 폭행을 당하는 등 또다시 인권침해가 불거졌다- 장애인 시설, 기관에서의 성범죄는 더 창궐하고 더 잔인해진 것만 같고 사람들은 인권침해와 차별을 더욱 은폐하고 교묘해졌다. 그렇게 인권교육은 오히려 처벌하고 단죄해야 할 인권의 문제를,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단순히 인권교육으로만 무마하려는 것은 아닌가? 개인의 인격의 문제로만 풀어내려는 것은 아닌가? 장애인 인권교육이 반대로 장애인 인권을 저해한 것은 아닌가? 그러나 장애인 인권교육을 통해서 그동안 비장애인들이 외진 곳까지 찾아가야만 겨우 만날 수 있는 장애인들을 이제 우리는 지역 사회에서 주민으로 직장 동료로 만나고 갈등하고 심지어 경쟁한다. 과거에는 차별 혹은 무시를 당할 기회조차도 없었던 장애인들의 인권적인 등장이 많아졌다. 또한 그 장애인이, 사적이든 공적이든 당사자가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며 큰 소리로 외치며 차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가장 큰 저항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권유린의 소식이 많이 들린다고 해서 무작정 슬퍼하거나 절망할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사회에게 장애와 장애인에 대하여 더 많이 더 크게 더 자세히 시시콜콜 모조리 다 이야기해야 한다. 인권은 인권적 성찰과 인권적 공감과 인권적 실천의 반복적인 과정 그 자체이다. 바위로 계란을 쳐서 바위를 깨뜨리는 결과 아니라 바위에 던져진 계란의 흔적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저 차별과 반인권의 바위를 깨드려야 하는 것을 깨닫고 무엇인가를 던지게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늘 스스로에게 물어 본다. 이런 원칙을 스스로 잘 지키고 있는가? 나는 장애인이자 남성으로서 이성애자로서, 비장애인이나 여성이나 동성애자 성소수자의 문제와 고통 차별을 공감하며 실천하고 있는가? 사적이든 공적이든 누구랑 있든, 혼자 있든 항상 매 순간 인권의 스위치를 켜고 행동하고 있는가? 그것을 끌어내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늘 반성하고 질문 하면서도 지레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 어떤 교육이 장애인 당사자에게 자부심을 주는가? 사진 출처 - 필자 인권침해와 차별을 구조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교육으로 방지하고 구제할 수 있는가?있다면 어떤 교육이, 어떤 교육가가 그런 교육을 할 수 있는가? 작금의 장애관련 인권교육이 그것에 충실한가? 남성들이 여성학을 열심히 공부만 한다고 해서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는가? 가사 분담과 육아를 공동으로 잘 실천할 수 있는가? 그리고 여성들이 여성학을 공부하고 페미니즘을 알면 자신이 여성인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하고 도리어 남성이 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여성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는가?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장애는 예방되어야 하고 고통이자 불행이라고 하면서, 장애인을 존중하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장애인을 공포의 존재로 만들고 있지 않는가? 과연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자고 90년대부터 시작한 ‘장애인인식개선’ 이라 이름붙인 운동이나 교육들이 실제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 시켰는가? 그리고 비장애인들의 ‘인식’만 개선되면 인식이 개선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사랑과 배려의 마음으로 고용을 늘리고 지역 사회에 특수학교와 생활이용시설을 유치했는가? 인권이란 단어에 대한 거부감과 이념의 알레르기 반응으로 대신 쓰기 시작한 장애이해교육은 진실로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을까? 그리고 그렇게 이해가 증진되면 장애인의 억압과 차별은 사라질 수 있을까? 넘쳐나는 장애관련 정보들이 오히려 효과적인 차별과 혐오의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가? 명문대학을 다니고 있는 장애인 대학생의 인권과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의 인권은 동일한 것일까? 대학생들이 시설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반성하면서 탈시설을 실천하거나 시설로 들어가 변화시키려 하는가? 장애체험교육은 장애로 인한 고통을 체험하는 것인가? 아니면 장애로 인한 차별과 부조리를 경험하는 것인가? 다시 묻는다.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장애인 당사자가 바라보면 장애인으로서 자부심이 생기는가? 아니면 자신의 장애를 부정하고 비장애인으로 환생하기를 꿈꾸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에게 장애인 자녀를 낳는 것도 장애인 부모가 되는 것도 생물학적으로는 슬프지만 사회적으로는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깨닫게 할 수 있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고용할 수 있는 힘과 가치를 주고 있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에게 장애인과 같이 연애하는 법을, 가족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하는가? 지금의 장애인 인권교육은 비장애인이 시간이 흘러 여러 가지 일로 장애를 가지게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들이며 나름 즐겁게 살 수 있는 힘과 길을 만들어 주고 있는가? 다시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권’변호사가 이제 대통령이 되었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하겠다고 취임사에서 밝혔다. 아직 당신의 입에서 ‘인권’은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후보시절에는 동성애자들의 존재를 부정했고, 그의 지지자들은 정권교체를 이유로 인권에게 나중이라고 외쳤다. 그래 원래 정치는 그렇다.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은 늘 그랬고 인권적인 사람이라던 문재인은 정치인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은 원래 그렇다. 핵심은 우리다. 인권을 신념으로, 인권을 직업으로, 인권을 활동으로 하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가? 그에 대한 기대가 연예인의 팬클럽처럼 치솟는 지금, 그런 지지자들의 여론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기사 토씨 하나하나 민감한 그들에게, 그들은 인권의 기준으로, 인권의 원칙으로 인권감수성, 장애 감수성을 민감하게 가지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부터 인권활동가는 신발끈을 조여야 한다. 주먹을 높이 들고 깃발을 올려야 한다. 그게 인권 대통령을 만드는 길이다. 나중은 없다. 양보도 없다. 모든 사람에게 인권으로 자부심을 가지도록. 사진 출처 - 필자 덧붙임) 2007년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 일명 NAP, 2007~2011)수립 이후 공공기관에서의 인권교육이 의무화되었다. 그러나 포괄적인 인권교육은 국가 정책이나 지침으로 의무화되거나 국가인권위원회법 안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작 국회를 통과한 인권교육 관련법은 2014년 유승민 의원이 발의하고 스스로 폐기한 이후 단 하나도 없다. 단지 세월호 참사 핑계로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과 같은 국가주의와 가부장주의를 강요하며 만들어진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이 오히려 교육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기관과 단체에서는 법정의무교육이란 이름으로 인권과 관련한 여러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물기도 하고 법적인 기관 평가에 반영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직장내성희롱예방교육,개인정보보호교육,성매매,성폭력예방교육 등이 공통적인 교육이고 기관의 특성에 따라 받아야 할 추가 교육 등이 관련 법이나 시행령에 규정되어 있다. 장애인식개 교육과 종사자인권교육과 같은 장애인 인권교육은 장애인 복지법, 발달장애인법, 장애인차별금지법, 특수교육법 등에 개별 명시되어 있지만 그 강제성이나 실효성은 낮은편이다. 과태료와 같은 처벌조항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인권교육은 모든 인권교육의 길로 향해 있어야 한다. 장애인 인권교육을 하면 할수록 다른 인권들도 함께 실천되어야 한다. 다른 인권교육이 잘 수행된다면 장애인 인권도 자연스럽게 따라와야 한다. 사진 출처 - 필자 「교육의 목적은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에 있지 않다.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 것인가를 가르치는 데 있다.」 (삐디이)
2017-07-12 | hrights | 조회: 58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선거가 끝났습니다. 인수위 기간이 없는 선거라 그런지 하루 만에 주요 내각과 대통령비서실장의 인선이 발표되고 그 밖의 내각 세평도 언론과 주변 사람들에게 들을 수 있습니다. 후보 면면과 서로 누구를 찍었는지에 대한 후일담도 만나는 사람마다 한창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1번, 5번을 찍었다고 하며 저는 누구를 찍었는지 물어봅니다. 저는 5번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각종 선거에서 아내와 투표하는 후보가 항상 같았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서로 달랐습니다. 아내의 선택도 합리적이라 생각되어서 서로 지지 후보를 가지고 다투는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왜 5번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을까요? 저는 선거 초반에 이미 이번 대선은 정의당에 투표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간 지역 문제를 처리하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아쉬움과 그에 비해 정의당이 보여준 남다른 헌신과 진정성이었습니다. 대전지역의 주택 보급률이 2015년 기준 100%를 넘은 상황인데도 더불어 민주당 소속의 권선택 대전시장은 도시의 허파 구실을 하는 월평공원 녹지를 개발해 수천 가구의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환경단체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최근에 심해진 미세먼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도심 속 녹지의 가치는 훨씬 더 중요해졌는데도 불구하고 대전시는 요지부동으로 아파트 분양을 위한 과정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 개발문제에 대해 환경단체 외에 지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반대를 하는 정당은 정의당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비단 월평공원 난개발 문제뿐만이 아니라 지역의 각종 갈등 사안에 대한 시의회 다수 정당이며 시장 소속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일회성 의정활동과 관심 부족을 접할 때마다 대전의 원외 정당인 정의당의 지속적인 관심과 활동은 많은 부분에서 비교되었습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로 꼽았던 ‘을지로위원회’ 활동도 지역에서는 위원장만 있었지 구체적인 활동은 볼 수 없었습니다. 대전학생인권조례는 개신교와 일부 극우단체의 터무니없는 공세 속에 대전시의회 교육상임위원회에서 눈치 보기만 하다가 3개월 사이에 결국 보류만 두 번을 해버려 사실상 안 자체가 폐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웃한 충남도의회가 보수적인 자유한국당 일색인 것에 비해 의회와 상임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 황망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의당은 학생인권조례안 자체뿐만 아니라 개신교계의 동성애혐오 공세에 대해서도 당 차원에서 대응해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정의당과 당원들은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캠페인과 리본 만들기, 지난겨울 동안 벌어졌던 촛불 항쟁에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하고 노동운동의 현장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누군가는 국정운영을 하는 대통령선거에 당의 지역 활동을 투표근거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국정운영만 그럴듯하고 정작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의 지역 활동은 미비하거나 태만하다면 그것도 비정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국정운영의 지역화란 측면에서 지역에서의 당 활동도 충분히 대통령선택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출처 - 청소년이 직접 뽑는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 운동본부 블로그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 진보정당에 투표하자고 했고, 또 누군가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며 거대 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언제나 그랬듯이 진보정당의 양보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래’라는 추상적인 가치보다는 정의당의 과거 활동을 보고 대한민국의 현재를 위해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한국의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가 제1야당에게는 5년마다 타 먹는 정기적금도 아닐 터인데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정권교체를 위해 자당 후보에게 양보하라는 꾸준한 염치없음도 귀에 담지 않았습니다. 한국YMCA전국연맹에서 19세 미만 청소년 5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투표결과에서 심상정 후보는 1만 8,629표(36.02%)를 얻어 문재인 대통령과 불과 3% 차이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오늘의 분투가 계속 이어진다면 진보정당의 미래도 밝으리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당원은 아니지만, 그간 부족한 선거자금으로 헌신적인 선거운동을 벌여왔던 정의당 당원들과 안보와 경제, 복지, 인권 등에 있어 진보의 가치를 제대로 각인시켜준 심상정 후보에게 고마움의 뜻을 전합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8 | 추천: 1
신혜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재학생 연 10억 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부양의무제는 기초생활수급자를 거르는 기준 중 하나다. 수급권자가 되려면 자신의 부양의무자(자녀 및 그들의 배우자)가 부양능력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만일 부양의무자 중 한 명이라도 소득과 재산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수급권이 박탈된다. 이 제도 때문에 2010년 기준으로 117만 명이 기초생활수급자 심사에서 탈락했다. 연락이 두절된 자녀를 둔 노인들이 주로 피해를 봤다. 일부러 부양책임을 미루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부양의무자 소득인정액 기준이 너무 낮은 탓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남을 돌볼 처지가 아닌 형제가 경제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가난한 가족들이 ‘연대책임’을 지기 일쑤였다. 워낙 문제가 많은 제도다 보니, 부양의무제 폐지는 선거 단골공약이 된 지 오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물론 그가 내세웠던 다른 공약들(기초연금, 반값등록금 등)과 마찬가지로 실천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번 대선에 나선 후보들도 각기 부양의무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상황은 고무적이다. 문재인, 심상정, 유승민 후보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겠다고 확답했고, 안철수, 홍준표 후보는 단계적 도입을 내걸었다. 대선 후보들이 하나같이 부양의무제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시민단체 연합인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행동’이 각 후보에게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문 후보는 국민적 동의와 재원 확보, 도덕적 해이를 이유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 후보도 정부 지원으로 인해 가족들이 노인을 부양하는 경우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내며 부양의무자 범위 축소 및 부양능력 기준 완화 등 우회로를 제안했다. 홍 후보는 ‘효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다’고 유보적 의견을 드러냈다. 즉각적인 폐지를 말하는 후보는 없었다. 부양의무제 폐지 공약을 명확히 밝히고 당선된 후보자도 이미 공약을 뒤엎은 전례가 있다. 누가 당선되든 부양의무제 폐지는 매우 느린 걸음으로 진척될 게 뻔하다. 작년 1월, 4월 총선을 앞두고 장애인 단체와 빈민 단체가 모여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당’을 만들었다. 사진 출처 - 비마이너 후보들의 미적지근한 입장에 반해, 부양의무제 폐지는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다. 타당성, 민주성, 정의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자. 여기서 타당성은 경제에서 말하는 효율성과는 다른 개념이다. 효율성이 비용 대비 효용을 측정한 수치인 반면, 타당성은 ‘사안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비용 투입 여부를 검토한다. 효율성은 이윤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서 활용하기 적합하다.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쓰기 적합한 지표는 아니다. 예컨대 한정된 예산을 교육 예산에 투입할지, 토목 사업에 투입할지 결정할 때는 효율성이 아니라 타당성을 따져야 한다. 교육과 토목 사업을 ‘일자리 창출 효과’, ‘세수 증대’ 등 항목으로 나눠 경쟁시킬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단기적 효용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해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부분에 예산을 투입하도록 하는 게 타당성이다. 부양의무제 폐지는 타당성이 있는 공약이다. 작년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가별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 추산치 비중에서 한국은 10.4%로, 35개 회원국 중 34위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사회복지 지출 비중이 적은 국가는 멕시코뿐이다. OECD 평균은 21%였다. 복지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출 여력도 있다. 한국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0%에 불과해 일본(245%)과 미국(123%)에 비하면 한참 낮다. OECD를 비롯한 국제기관들이 한국에 재정 확대를 조언하는 배경이다. 당장 올해 추가경정예산으로 배정된 금액이 11조다. 일부 후보들은 복지 공약만 보면 ‘포퓰리즘’을 연발한다. 그 뜻을 해석하면 이렇다. ‘우매한 군중들을 선동해 도입한 제도이니, 복지 정책은 정당성이 없다.’ 보수언론은 복지 공약을 ‘매표행위’로 단정 짓고 ‘표’퓰리즘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정치는 자원의 분배과정이다. ‘1인 1표’로 작동하는 정치체제를 이용해 대다수 중, 저소득층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펴는 건 민주주의의 본래 뜻에 맞는 일이다. 포퓰리즘은 ‘민중주의’라는 뜻으로, 데모크라시와 어원상 의미가 같다. 소수 부자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펴는 정부는 민주적이지 않다. 한국이 꼭 그렇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14년 OECD 자료를 분석해보니 한국은 조세정책을 통한 빈곤율 완화 효과가 2.4%포인트에 그쳤다. 프랑스(26.8), 독일(23.5)과 10배 정도 차이가 난다. 한국 빈곤율은 세금을 거두기 전 17.3%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았지만, 세금을 걷은 후에는 14.9%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국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부양의무제 폐지 없이 민주주의를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보건복지부가 만든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 홍보 리플렛. 박근혜 정부는 맞춤형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부양의무제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고 홍보했다. 사진 출처 - 보건복지부 부양의무제 폐지는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자에게 합당한 몫을 나눠주는 것’이 정의라고 말했다. 세계시민사회 차원에서 보면 모든 인간이 천부적 인권을 보장받는 것이 정의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모든 국민이 시민권을 보장받는 게 정의다. 영국 사회학자 마셜은 ‘사회에서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권리’를 뜻하는 ‘사회적 시민권’을 현대 사회의 시민권으로 규정했다. 현대 국가는 사회적 시민권을 지키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한다. 한국에서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IMF 금융위기라는 충격 이후 ‘최소한의 경제 안전망’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생긴 복지제도다. 당시 뉴스에는 중산층 가족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는 모습이 드물지 않게 등장했다. 오갈 곳이 없어 길거리에 텐트를 친 4인 가족에게 시민권은 없었다. 이를 지키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생겼다. 2016년 기준으로 정부가 책정한 4인 가족 최저생계비는 170만 원. ‘정의’를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나마도 지키려면 부양의무자 기준을 피해가야 한다. 부양의무자 폐지는 한국 사회 복지논쟁의 축약본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최하위 사회안전망의 구멍을 메우자는 논의다. 이에 대해 ‘세금 낭비’, ‘포퓰리즘’, ‘부정 수급 등 도덕적 해이 우려’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양의무제 폐지를 말하는 대선 후보들 역시 이런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단계적 추진’을 말한다. 세 가지 비판은 각기 타당성, 민주성, 정의 측면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에 대해 ‘예산을 줄일 방법이 있다’, ‘소득심사를 통해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 ‘부정수급을 감시해 공정하게 하겠다’는 논리로 맞서는 건 프레임에 휘말리는 꼴이다.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부양의무제 폐지를 시작으로 모든 복지 공약에서 이 같은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돈이 들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돈 되는 사업만 하는 건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대다수 국민을 위한 일이고,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게 정치다’, ‘지금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건 117만 명의 수급권 박탈자들이다’라고 정면 대응하는 걸 권한다. 연 10억 원. 큰돈이 맞지만, 한 국가 국민의 인권과 바꾸기에는 적은 돈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5 | 추천: 1
손상훈/ 교단자정센터 원장 불교 총무원장을 만나면 득표에 도움이 될까. 현재는 아니다. 오히려 만나는 횟수만큼 표가 떨어질 것이다. 만약 오차범위 내 접전이라면 더 그렇다. 사회과학적인 세밀한 분석은 아니다. 시민의 한사람으로 상식의 잣대로 지켜봐온 감이다. 조계종 사찰에서 거의 매년 수십억 원의 국고보조금 횡령 사건이 일어나고, 생떼를 써 가며 대기업에 보상비를 요구하는 조계종 총무원 언저리에 대선후보가 찾아가는 것을 좋아할 불교신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부정부패를 일상화하고, 종교권력의 상위 1%가 자기 밥그릇을 챙겨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극소수 종교 세력의 분리수거가 필요하다. 특히 국고보조금을 자기 지갑처럼 사용하거나 도박 등 유흥비로 탕진하는 종교지도자에게 대법원의 양형기준도 바꾸고 검찰의 종교비리 조사도 더 엄정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왜 불교계의 국고보조금 횡령사건은 거의 매년 일어나는데 대부분 불구속 수사이고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될까. 또한 2013년 경주지청은 총무원장과 같이 도박을 했다고 자수를 했는데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고 검찰은 스스로 궁색해졌을까. 현재 진행 중인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의 반복적인 성추행 사건 등 종교계에 반복되는 부끄러운 일이 근절되려면 검찰의 엄정한 잣대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조사결과가 나와야 한다. 교비횡령으로 C대학 총장은 입건되었는데, 같은 사안인 동국대 총장의 교비횡령 사건은 6개월이나 만지작거리고 있는 성남지청의 모습을 대선후보에게 묻고 싶다. 지난 3월30일. 성남지청 앞에서, 동대총장 사퇴를 주장하며 50일 단식한 김건중 전 동국대부총학생회장이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왼쪽에서 네 번째) 사진 출처 - 불교닷컴 건강한 정신을 갉아 먹는 부패한 극소수 종교권력에 대해 어떻게 분리수거해 나갈 것인지, 고액의 정치 후원금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종교관련 사건에 대해 검찰과 재판부가 엄정한 기준과 절차를 가지고 국민들을 납득시키게 할 것인지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해 보고 싶다. 그래서 상상해 보고 질문해 본다.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종교계를 향해 내는 공약이 하나도 없는 선거는 불가능할까. 아니 언제 가능할까.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같은 특정종교행사에 대권후보들이 참석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것은 어떨까. 교회나 성당에 방문하지 않는 것도 포함해서. 만약 종교시설에 가지 않는다면 그 시간에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을 만나고 이들을 위한 예산확보 방안이나 공약을 세우는 일이 더 늘어난다면 어떨까. 부활절이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는 의미가 더 기분 좋아질 것 같다. 특히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국민들은 더 행복해 질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교 총무원장 앞으로, 전통문화예산을 명분삼아 먼저 만나러 가는 후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또한, 국회의원의 경우 정치후원금의 늘리기에는 도움이 될 것이기에 신도가 많은 대형 사찰이나 총무원장을 만나러 갈 것이다. 그러나 지난 총선 직전에 서울광장에서 조계종이 든 피켓과 현수막을 꼭 기억하고 만나길 바란다. 불교인터넷언론을 탄압하고, 광고를 끊게 만들어 생존을 위협하는 조계종 총무원에 대해 꼭 기억하고 총무원장을 만나길 당부한다. 그리고 기록하고 평가해야 한다. 조계종한전부지 환수위원회의 더민주 총선필패. 피켓 사진 출처 - 불교포커스 최근 조계종 총무원 안팎 핵심 관계자들은 유력한 대선 후보 캠프에 양다리로 인적관계를 만드는데 많은 애정을 쏟고 있고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그룹에 모두 인간관계를 만들었고 누가 당선되더라도 조계종이 원하는 공약은 챙겨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이런 조계종 총무원과 중앙종회 등 소위 중앙종무기관들의 태평성대를 깨는 주장과 발언을 조계종 선원수좌회와 적명스님이 하고 있다. 승려대회를 열자고도 한다. 1994년처럼 아래로부터 ‘혁명’을 하자는 뜻으로 이해된다. 찻잔속의 태풍이 될지 실패한 민란이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5 | 추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