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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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성은(서울신문 기자), 김태형(프리랜서 방송작가),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박용석(출판업),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사무국장 #1. 지난 9월 25일 아침 해도 뜨지 않은 새벽 6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에 살고 있는 와엘의 집으로 15명가량의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이 들이 닥쳤다. 군인들은 와엘과 가족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고함을 지르며 한쪽으로 모이라고 명령했다. 명령을 거부하면 죽음을 당할 수 있기에 집안에서 있던 와엘과 그의 아내 메이샤, 성인이 된 아들과 딸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거실로 모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인은 와엘의 아내인 메이샤를 다른 방으로 옮겨 수갑을 채우고 눈을 가렸다. 60세 고령의 메이샤는 평소 시력에 문제가 있기에 눈을 가리자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혔고 와엘과 자녀들은 목숨을 걸고 강력히 항의했다. 군인들은 메이샤의 눈은 풀어줬지만 그대로 메이샤를 끌고 갔다. 집 밖에는 커다란 군용차량 4대가 있었고, 수십 명의 추가 군인들이 집 근처를 경계하고 있었다. 와엘이 추후 알게 된 그녀의 체포이유는 ‘이스라엘 보안 위협’이었고, 그녀는 수십 년 동안 팔레스타인 지역 여성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이다. #2.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모함메드는 13살이고 밑으로 6명의 동생이 있다. 작년 10월 10일, 외할머니의 건강이 걱정된 모함메드의 엄마는 외할머디댁에 잠깐 방문한 사이 모함메드의 아빠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모함메드 집 근처의 집이 폭격을 받았고 그 집이 모함메드 외할머니 집이었다. 집안의 모든 이들은 사망했다. 그렇게 모함메드 가족들은 엄마를 잃었고, 모함메드와 동생들은 병원에 대피했다. 머지않아 병원역시 폭격을 받으면서 이들은 남쪽으로 피난을 갔고, 그 와중에 아빠와 헤어지게 됐다. 3일 동안 거리에서 아빠를 기다린 모함메드와 동생들은 병원근처의 임시텐트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모함메드와 동생들은 계속 지낼 곳을 찾아 이동해야 했다. 생후 1년도 되지 않는 막내, 그리고 어린 동생들을 위해 모함메드는 먹을 것과 물, 땔감을 찾아 매일 거리를 헤매면서, 무슨 일이건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3.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이 계속되면서 WCNSF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Wounded Child, No Surviving Family(WCNSF), 생존한 가족이 없는 부상당한 아이, 모함메드와 6명의 동생들과 같은 가자 지구의 아이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모함메드는 아빠의 생존을 희망하며 동생들과 살아가기 위해 매일매일 분투하지만. 공습의 폐허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다른 아이는 아빠와 엄마가 없는 이 현실이 지옥이라며 자신도 부모와 함께 죽었기를 바란다며 절규한다. UN은 이미 가자지구가 아이들의 공동묘지가 돼 버렸다고 했다.  #4. 얼마 전 하마스의 리더라는 신와르가 이스라엘 군에 의해 살해됐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환호 했고, 미국의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축하를 전했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했다. 한국의 언론 역시 신와르가 누구였고, 어떻게 죽었는지 상세히 전하며 10월 7일 이후 벌어지는 모든 사태의 원흉이 그였다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재차 전달해준다. 그리고 며칠 뒤 이스라엘 총리의 집이 드론 공격을 받았다며 언론은 비중 있게 다룬다. 이스라엘 총리집이 드론 공격받았기에 놀랄 만한 사건이고,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드론으로 암살당하자 안보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한다. 이 지독한 이중성과 위선이 그동안 세상의 정의였고 선악의 기준이었다. #5. 메이샤의 남편과 자녀들에게 이스라엘은 절대 면회를 허용하지 않는다. 메이샤의 가족들은 그녀가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세상에 소식을 전하고 있다. 또한 가자지구의 모함메드와 6명의 동생들 역시 아빠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으며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던진다. 이들이 이 고통스럽고 힘겨운 시간을 감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주변과 이웃의 관심과 도움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만들어낸 위선과 폭력은 긴 시간동안 이들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웠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 시간동안 서로를 돌보며 서로를 챙겼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체포하며 살해해도 이들은 존재로 저항한다. 팔레스타인은 그런 곳이다.
2024-10-23 | hrights | 조회: 337 | 추천: 14
김성은 / 서울신문 기자 어안이 벙벙했다.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청소년쉼터 출신인지를 두고 일종의 서열이 매겨진다는 경험담은 정말이지 예상 밖이었다. 청소년쉼터는 오갈 곳 없는 처지의 아이들에게 일시적이나마 먹고 잘 곳을 제공해주는 일종의 피난처다. 그런데 소년원에서 한솥밥을 먹는 아이들 사이에서조차 출신을 두고 나름의 비교 경쟁이 붙은 것이다. 보육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모두가 부모 없이 자란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화장실에서 태어났고, 누구는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식으로 태생에 따른 서열이 공공연히 매겨진다고 한다.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마저 끊임없이 서열을 매길 정도로 비교 문화는 이제 한국인의 의식 저변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상당수 한국인은 학창 시절 “몇 등이야?”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성인이 된 이후 연봉과 집값을 흔한 얘깃거리로 다룬다.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보긴 어렵다. 같은 무리 안에서 서열을 매기고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확인해 타인과 조금이라도 차이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물론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려는 심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비교하는 행동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다. 더 뛰어난 사람과의 ‘상향 비교’를 통해 자기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도 잘살아 보자‘는 상향 비교를 토대로 한국이 일궈낸 경제·사회적 성취는 적지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 3745달러를 기록했다. 1960년 158달러와 비교하면 200배가 넘게 불었다. 한국은 높은 교육 수준과 기술 혁신, 문화적 영향력에서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비교 의식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별난 면이 없지 않다. 해외의 한 연구에 따르면 쌀이 주식인 동양권에선 서로 논에 물을 터주며 돕고 살아야 하다 보니 서구권에 비해 집단주의가 더욱 발전했다고 한다. 무려 5000년이 넘는 쌀 문화 속에서 동양인들은 같은 집단 사람들과 더 많이 비교하는 의식 체계도 갖게 됐다고 한다. 특히나 한국은 초고속 경제 성장을 거치며 물질주의까지 합세해 비교 의식이 한층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흥미로운 건 대부분의 비교 대상이 주변 지인에 그친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학교 친구에서 어른이 된 이후에는 회사와 동네 사람들로 바뀔 뿐이다. 자신과 유사한 상황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해 위안으로 삼으려는 취지다. 그러다 보니 국제적인 비교에 있어선 상대적으로 무감각하다. 일부 한국인이 타인에게 사생활에 관한 질문을 거리낌 없이 던지는 건 한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만 서구에서 연봉, 집값 등과 같은 재산을 대놓고 물었다간 무례하다는 평가는 물론 ‘하류층’이란 시선까지 따라온다고 한다. 돈을 대놓고 언급하는 건 ‘저속하고 교양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이란 인식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주변 지인들과의 구별 짓기에는 집중하면서도 더 넓은 차원에서의 비교는 간과하는 셈이다. 이제는 자신이 속한 작은 세계만을 전부인 양 여기는 ‘우물 안 개구리’ 태도에서 벗어나 시야를 좀 더 넓혀보는 건 어떨까.
2024-10-15 | hrights | 조회: 691 | 추천: 9
신종환 / 공무원 1995년 인류는 허블망원경을 통해 통상적인 장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빈 공간을 같은 위치에서 여러차례 관측한다. 대부분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여겼으나 관측 결과 아주 작은 관측 공간 안에서만 수천 개의 은하가 발견되고 이후 우주에 관한 천문학적 인식은 크게 전환되었다. 과학에서는 과감한 시도를 하고 나면 뒤따르는 발견으로 시도의 가치가 반증되고는 하지만 삶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오히려 시도를 지속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발견이고 의미이다. 브레히트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문구를 남겼고 지금은 시골에서 정신머리를 유지만 해도 훈장이 되는 시대다. 노조 아저씨들의 새로운 사업으로 젊은 노조의 패기로 민주노조의 모습을 보여 신규 조합원을 유치하자는 미친 소리를 꼭 참고 청년부에 남고, 돈이 없어 탈퇴하겠다는 친구에게 프렌차이즈 치킨 1.5마리 값 때문에 노조를 버리지 말라며 울고불고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게 패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콧날을 오똑히 세우며 퇴근해서는 한동훈을 적극지지 하는 아주머니와 함께 웃는 낯으로 욕하며 수 년째 이어지는 책모임을 준비한다. 서울에서 금천구청 휘하의 복지 부서와 연계된 금천구 가족센터에서 일하는 친구는 공무원과 연계된 조직 특유의 경직성, 낭비, 불통, 섬세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신이 원하는 노동이 아니라며 통화할 때마다 폭발한 백두산처럼 감정을 쏟아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흥군 문화재단에서 사람을 뽑는다며 다음 직장으로서 어떨지 내게 물었다. 나는 고흥군의 위치를 보고 잠시 말을 잊고, 고흥군 문화재단에서 작가들을 초청해 고흥군에서 잠시 머물게 하며 쓰게 한 글들을 보고 더 길게 말을 잊었다. 훌륭한 곳이겠지만 자본집약과 노동집약의 총본산 서울에서 상호 착취되는 과정에서 우러나는 문명의 편리함과 윤택함 속에 살던 친구가 고흥에 사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 의견을 말하니 자신도 인천의 덜 발전된 곳에 제법 살았다고 반박해서 더욱 말을 잇지 못하는데 친구는 적어도 거기가면 마음 맞는 또래는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것이 경기도민의 무지구나... 하며 처음 속초시 공무원 노조에 들어갔을 때를 떠올렸다. 청년부를 모집한다는 사내 메신저 쪽지를 보고 내 또래가 있을 거란 기대감에 청년부에 가입하러 갔더니 나보다 열다섯 살이 많은 조합원 형이 반색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고 나와 동갑인 친구는 부서 계장님에게 강제로 잡혀와 이제까지 누가 먼저 탈출할까 서로를 감시하고 있다. 김영민 작가는 어떤 글을 읽을 때 글쓴이가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은 보이지 않은 의도적 침묵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작가의 의도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무미건조한 지방의 삶을 돌이킬 때 잠시 떠올랐다 휘발되곤 하는 채 의미를 갖추지 못한 여러 의도들과 충동들을 떠올리면 명시된 것보다 명시되지 않은 수치 이하의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때때로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쓰다 보면 대체로 나를 둘러싼 세상을 보며 그들에게 혹독했을 환경을 염두하며 나도 모르게 온정적인 시선으로 분석하곤 하는데 그 온정적 시선과 미래에서 무이자 대출처럼 끌어오는 낙관을 스스로에게 종종 써먹는 것도 나의 미결된 기준 이하의 낱알들을 모아 동력으로 삼는 일로 느껴진다. 기다리면 무언가 변할까.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지는 별 변화는 내 안에서도 밖에서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아무런 바뀐 일이 없어도 여전히 무언가를 품고 존속하고 기다리는 것도 돌이키면 하나의 성과인 셈이다. 귀 기울임의 어떤 단계는 들리지 않는 것들에서 원래는 소리이고자 했을 것들을 스스로 울려보고 들어보는 것 같다. 거대한 적대도 시시한 적도 없이 옆 지자체장의 바지를 벗으라니 벗었다는 기가 막힌 해명을 회사에서 나누며 니체의 격언을 비둘기떼 가득한 광장에 빵조각처럼 뿌리며 어느 놈이 미끼를 물지 예의주시하는 스스로의 행태를 실은 그리 못나지만은 않은 것이라며 피고자 하고 했던 스스로를 추어올리며 먼지 같은 나날을 쓸어담아 먼 훗날 볼쏘시개처럼 타오르려니 믿어본다.
2024-10-08 | hrights | 조회: 305 | 추천: 5
김태형 / 프리랜서 방송작가 칼럼을 통한 인권연대 여러분과의 첫 만남, 영광입니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설렘도, 두려움도 함께하는, 조금은 이중적인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영화 ‘라디오 스타’ 박중훈의 첫 오프닝은 첫울음, 첫 만남, 첫 데이트, 첫 키스로 시작합니다. 상상만 해도 설렘 가득한 이야기지만 사실 절반의 감정은 두려움일 것입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뒤흔들지만 제가 경험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누군가는 잘 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는 18년차 방송작가입니다. 29살이라는, 업계에서는 많이... 늦은 나이에 이 일을 시작했고 마흔 후반의 나이에도 잘(?) 버티고 있습니다. 처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곳은 진주MBC였고 6년 정도를 지역 MBC에서 일하다가 서울 방송국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2년여 있었던 진주 MBC에서는 진주, 창원 MBC의 통폐합 시도로 시끄러운 때였고 지금 직무정지 중인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대전MBC 사장으로 있을 때 그곳의 시사 작가로 있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TV조선에서 잠시 일하다가 SBS에서 토론 프로그램에 들어갔고 이곳에서 운이 좋아서 지상파 처음으로 낮 시사프로그램을 런칭하기도 했습니다. 이후가 순탄한 것은 아닙니다. 외주 방송국 을의, 병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고 KBS 아침 방송에서 일하다가 얼마 전, 새로운 사장이 오면서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한 번에 실업자가 되기도 했습니다(문화예술인 실업급여 못 받았습니다. 그건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여러 방송국과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지금은 지역의 안전을 강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과 시사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 추억과 같은 명함들 방송작가가 경험한 ‘레거시 방송 VS 유튜브’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방송국에서는 테이프로 편집하던 시절부터 파일로 편집하던 지금까지 일상을 함께했던 작가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유튜브 방송 작가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 어떤 분들은 질문합니다. 레거시 미디어, 흔히 말하는 방송국은 위기이고 유튜브가 대세 아니냐고 묻습니다. 뉴미디어시대, 유튜브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제가 경험한대로 말씀드리면 “지금은 맞고 내일은 다르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추석연휴 스픽스에서는 김진애 전 의원이 진행하고 ‘MBC 백분토론’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를 모셔서 방송장악과 뉴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분들의 고견을 제가 각색하거나 인용하기에는 부담스럽지만 제가 얻은 답변은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브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브 차이점은 이런 것입니다. (레거시 미디어, 지금부터는 방송국이라고 하겠습니다.) 방송국은 방송작가가 필요하지만 유튜브에서는 방송작가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 유튜브 방송 시작하기 전 뉴스토마토에서 ‘김건희 여사 총선 개입 의혹’에 대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방송국이었다면 심각한 고민에 빠졌을 것입니다. 패널을 어떻게 교체해야하는 건지,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지, 기본적인 질문은 어떻게 가야하는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회의가 진행되고 방송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유튜브 방송은 달랐습니다. 진행자인 최경영 앵커(전 KBS 기자)님에게 기사를 전달했을 뿐이었지만 1시간 20분 가까운 생방송을 문제없이 마무리했습니다. 전 이 방송을 준비 하면서 유튜브에는 방송작가가 필요 없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럴까? 방송국이 문제일까? 절차의 문제입니다. (모든 방송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가 경험한 방송국은) 방송국은 예상답안을 미리 준비합니다. 작가가 패널과 통화를 하고 어떤 답변을 할지 예상을 합니다. 그 답변에 따라 진보, 보수 패널의 입장을 붙이기도 하고 매끄러운 진행에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방송국은 시간 안에 기승전결 마무리를 중시합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답변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예상 답변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유튜브 방송은 자율성이 강조됩니다. 그리고 심의라는 절차가 거의 없습니다. 내부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방송국의 심의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심의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완전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한 개그맨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KBS 개그콘서트가 맥을 못 추고 TVN 코미디빅리그가 잘 되는 이유는 심의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TVN이 유튜브 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레거시 미디어라고 하는 방송국 보다 유튜브가 심플하고 발전적인 시스템을 가진 건지 모릅니다. 하지만 선을 넘는 발언이나 가짜뉴스가 독일 수 있습니다.  작가의 입장에서 유튜브가 좋은 점도 있습니다.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겁니다. 시사 유튜브에서는 정치적 색을 가지고 있고 중도는 유튜브에서 성장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섭외 패널은 진보 혹은 보수,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작가가 섭외할 때 방송국 보다는 어려움이 덜합니다. 과거 한 방송국 토론 프로그램을 할 때 모시기 힘든 진보 패널이 하기로 했지만 보수 패널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밤을 새면서 섭외를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유튜브 환경은 유연하고 비슷한 성향의 패널을 섭외하기 때문에 섭외의 어려움이 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레거시미디어의 해는 지는 것인가? 유튜브로 대체되는 것인가? 두 곳에서 일해 봤던 방송작가로 말씀드리면 “함께 하면 살고 각자의 길을 가면 둘 다 무너질 것이다”입니다. 유튜브는 독자 생존이 불가합니다. 여러분들이 즐겨 찾는 유튜브 방송을 보면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유튜브 패널 분들이 정보를 얻는 곳이 어디일까요? 레거시 미디어입니다. MBC, JTBC, SBS, 한겨레, 오마이뉴스, 경향신문, 프레시안, 노컷, 뉴스토마토, 서울의 소리... 이런 언론사가 없다면 어떨까요? 지금의 패널 절반은 지금의 K사나 Y사와 비슷한 말을 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Y사 24시간 생방송을 틀어놓고 원고를 쓸 때가 있었습니다. 원고를 쓰다가 속보가 나오고 특종이 나오면 다른 언론사를 찾아보면서 원고를 업데이트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Y사 방송을 보지 않습니다. 도움이 되는 뉴스가 없습니다. 이제는 다른 언론사를 찾아서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물론, 내부를 통해서 주변인을 통해서 정보를 얻어서 유튜브 방송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시사평론가가 말하길 아침에 이슈가 터지면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방송을 다니면서 서로 정보를 얻고 저녁이 되면 완벽한 평론을 한다는 농담도 합니다. 그 사이 서로의 의견도 교환하지만 언론의 보도도 꼼꼼히 챙깁니다.  레거시 미디어가 위기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유튜브가 대세라는 말이 아니라 유튜브도 위기라는 말입니다. 레거시 미디어라고 말하는 방송국, 신문사의 취재력이 없다면 유튜브 생태계는 위기에 처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 방송사 중에 열심히 취재를 하는 곳도 있지만 자본으로 본다면 다양한 취재를 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취재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브가 상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람 ‘인’ 자가 서로를 받들고 있듯이 방송환경에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해 보고요. 언론장악은 그래서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모두가 진실을 알고 공유하기 위해서 막아야 합니다.
2024-09-25 | hrights | 조회: 289 | 추천: 8
이원영 /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거대한 공공부지 개발에 반발하는 시민들 한가위 연휴 첫날, 은평혁신파크 농성장을 찾았다. 9월 중순에 접어들었지만, 낮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고 농성장은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3호선, 6호선 지하철 구파발역에서 가까운 은평혁신파크는 축구장 15개 크기(11만㎡)로 서울시가 소유한 땅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 넓은 땅에 60층 높이로 대규모 복합 개발을 추진하겠다며 건물 철거작업에 돌입했다. 은평지역 시민단체와 서울지역 노동, 시민단체들은 ‘공공의 공간으로서 혁신파크를 지키는 시민모임’을 결성해 지난 7월부터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시가 2025년 공사에 들어가 2030년 준공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밑그림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 철거작업에 돌입하자 혁신파크 시민모임은 혁신파크 입구에 급하게 농성장을 차렸다. 사진: 오마이뉴스 도박장에 반대했던 긴 농성장의 추억 마사회에 맞서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영업을 저지하기 위해 경마도박장 앞에서 5년 동안 농성을 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하고 길거리에서 농성장을 차린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를 잘 알기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자는 마음으로 은평혁신파크로 향했다. 드넓은 혁신파크 부지에는 그늘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반려견과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큰길 쪽 한 편 건물은 대충 봐도 철거공사가 한창임을 느낄 수 있었다. 혁신파크에는 지금도 은평세무서, 시설관리공단 등 공공기관이 여전히 크고 작은 건물에서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는 중이라고 한다. 사전 예고도 없이 방문했지만, 농성장을 지키던 은평지역 시민단체 활동가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원한 커피를 사서 1시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해가 조금씩 기울면서 농성장 안으로도 뜨거운 열기가 쏟아졌다. 역시 농성은 날씨와의 전쟁임을 실감했다. 선풍기 바람이 불고 있지만, 얼굴에는 땀이 송송 맺혔다. 추석 때도 농성장은 번갈아 가면서 유지할 계획이란다. 시민단체들이 당번을 정해서 농성장에서 잠도 자고 있단다. 아직은 농성이 오래되지 않아선지 지친 표정은 별로 없어 보였다. 소수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개발 관행 공공의 땅을 개발할 때 가장 기본은 시민들의 의견수렴이다. 그런데 서울시 행정은 불도저식이다. 초고층 개발에 목숨을 건다. 반대하는 시민들이 있어도 깡그리 뭉갠다. 이런 개발 프레임이 횡행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갈 길이 험난하다. 지키는 것도 힘들고 접는 것도 어려운 길거리 농성장을 시민들이 차린 것은 막가파식 개발을 막고자 하는 아우성이자 몸부림이다. 혁신파크 시민모임은 공공의 공간이므로 많은 시민이 참여해 이용하는 방안을 결정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활용방안이 결정되지 않았는데 건물 철거부터 하는 것은 매우 상식 밖이라는 주장도 있다. 결국, 이렇게 가면 공간의 주인인 시민들이 아니라 소수 건설업자, 개발 마피아 집단이 천문학적인 개발 이익을 독점하는 악습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힘겹게 농성투쟁을 해봐서 느낀 것이 많다. 시민들의 작은 참여와 연대도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뭐 할지 아직 결정도 안 했는데 철거하고 있다고요. 미친놈들이네요. 고생하세요” 농성장 앞을 지나는 연세 많아 보이는 동네 주민이 거칠게 한마디를 보탠다.
2024-09-19 | hrights | 조회: 278 | 추천: 9
윤요왕 / 춘천별빛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언젠가부터 거의 TV를 보지 않는다. 폰이나 테블릿으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해서 보다보니 일방적인 방송사의 송출에 접근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 알고리즘에 의해 법정드라마 한편이 자꾸 보라고 올라온다. ‘유어 아너'(Your Honor)라는 자본과 권력에 대항하다 결국 고결한 명예(Honor)를 저버리고 자식을 살리기위해 굴복하게 된다는 씁쓸한 결말의 드라마였다. 원작이 이스라엘 드라마 'Kvodo'라고 하는데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을 반영한 것처럼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무소불위 부당한 권력의 부조리는 비슷한 듯 하다. 자본권력이 청와대에서부터 법원, 검찰, 경찰 등 국가권력과 손잡을 때 얼마나 국가와 국민을 기만하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최근 들려오는 ‘검찰공화국’이라는 현실에 길을 잃은 듯 깜깜하고 두려운 하루하루에 어느시대를 살고있는지 국민들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나마 감시하고 대항하는 정치권력의 수평을 국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투표로 증명해 냈다. 그러나, 국민들의 고단하고 힘든 일상의 현실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아파도 병원을 가기 힘든, 상상조차 되지 않던 후진국이 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 곳곳에서 마을마다 ‘바위틈에 피어나는 꽃순’처럼 여전히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이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하루아침에 정책과 예산이 없어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대항하는 연대의 다급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드라마에 제목인 ‘명예’<Honor>는 어디에서 오는가? 국가의 명예, 권력의 명예가 한낱 그들의 잇속만 차리는 것으로 만연될 때 국민들은 얼마나 서글픈 백성이 되겠는가 말이다. 작년부터 교육부의 작은학교 공모사업인 ‘참 좋은 우리학교’ 심사를 하고 있다. 전국의 작은학교를 들여다보며 감동도 배움도 얻게 되는 것이라 힘겨운 발품을 팔아 다니고 있다. 공모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탈락되는 학교들이 있지만, 현장을 다녀보면 참으로 많은 선생님들이 교육을 지키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많게는 100여명에서 적게는 20-30명의 작은학교의 선생님들은 도시의 큰 학교에 비해 고민하고 신경쓰고 교육활동하는 업무량이 3~4배는 많은 것 같다. 어느 학교 초임 여자선생님은 반 여자아이들과 목욕탕도 다닌다고 하고, 어느 선생님은 다문화가정 아이집에 수시로 가정방문을 통해 아이의 일상을 돌보기도 한다고 한다.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작은 시골마을의 작은 학교에서 이렇게 애쓰는 참선생님들을 우리사회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의 리그에 낄 자리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국가의 명예는 국민들의 품격으로 증명되지 않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이웃을 돌아보고 건강한 아이들을 키워내며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이름없는 시민들이 있음에 희망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지난주 우리마을이 농림부 ‘행복농촌 콘테스트’ 본선에 올라 경진대회에 다녀왔다. 작은학교만큼이나 어렵고 작은학교의 원인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힘든 현실의 농촌마을이 있다. 사회인프라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고령화와 복지사각지대는 점점 더 가속화되어 암울하기만 한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우리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 기대고 바라는 수혜의 대상이 아니라 마을과 이웃을 돌보고 농(農)을 지키는 주체적인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키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현장심사를 갔던 한 학교의 선생님이 아이들을 얘기하면서 눈물을 왈콱 쏟아냈다. 이어 나이 지긋한 교장선생님도 울먹울먹...그 눈물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어떤 말이나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누가 뭐래도 내 마음속의 참 좋은 학교였다. 우리가 존경해야 할 ‘명예’는 그 진한 ‘눈물’에 있음을 드라마를 보는 내내 오버랩되었다. 정치도 권력도 아닌 감동의 눈물을 보며 내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한 하루였다.
2024-09-11 | hrights | 조회: 246 | 추천: 3
김형수 / 장애인학생지원네크워크 사무국장  지난 7월 큰 물이 들 때 경남 사천으로 인권교육을 가야 했다. 학교장들의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하는 대면 교육으로 몇 달 전부터 그곳 특수교육지원센터가 무척 많이 애쓴 중요한 행사였다. 운전으로는 왕복 12시간이었다. 수해라도 나면 제때 도착할지 기약할 수 없었다. 일정을 맞추더라도 정작 강의할 체력이 남아 있을지, 무사히 다시 돌아올지도 알 수 없어 고속 버스도 위험했다. 기차는 없었다. 다행인지 사천 공항은 가까웠다. 김포 공항에서 뜨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진에어 항공사라는데 그곳까지 장애인 승객이 어떻게 이용했는지 경험과 정보가 없다. 더구나 대한항공의 자회사임에도 진에어는 과거에 나와 같은 목발을 사용하는 장애인 승객을 차별한 사례도 있었다. 공항에도 억수와 같은 비가 쏟아져 목발로 가는데 애써 입은 양복과 셔츠를 어떻게 뽀송하게 지킬지도 알 수 없다. 휠체어 서비스를 요청하고 출발 시간 오후 4시 20분 보다 3시간 먼저 김포공항 진에어 데스크 앞에 도착해야 한다. 비장애인 손님은 한시간이면 넘쳐나게 충분한 시간인데 나 혼자 가려면 남들보다 3시간을 더 써야 한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어떤 웃지 못할 차별과 사건들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3시간 전에 가서 항공사 접수처에 도착하려면 그 1시간 전 박터지는 김포공항 장애인주차구역에 도착해야 한다. 자칫하면 주차만 2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폼나는 노트북은 언감생심이다. 2kg도 넘지 않는 노트북 가방도 두 손을 모두 목발질에 써야 하는 내게는 20kg 캐리어보다 더 무겁고 번거롭다. 휠체어 서비스는 주차구역에서는 불가하다. 비상 체력은 남겨둬야 한다. 시설에 살지 않고 혼자서 직업 활동을 하는 뇌병변장애인의 삶은 늘 시간과의 양자물리적 전쟁이다. 그래서 동트기도 전인 새벽 4시에 잠을 깼다. 이제 샤워하고 옷을 챙겨 입고 짐을 챙겨 두어야 한다. 장애가 만드는 경직은 남들보다 2~3배는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일어나다 침대에서 떨어지면 아니된다. 옷을 다 갖추고 출발 준비를 하더라도 정장에 맞는 양말을 신을려면 현관문 신발장 앞에서 10분 넘게 걸릴 지도 모른다. 공항 지붕이 있는 횡단보도 30미터를 가는 동안 이 양복도 홀딱 젖어 버릴지 모른다. 나같이 양쪽 어깨 목발로 넓게 휘저으며 오랫동안 보행한 뇌병변장애인에게 비가 오는데 무작정 긴 장대 우산을 내미는 사람들, 무게를 덜기 위해 엉덩이 허리가방만 메고 공항 주차장 횡단보도 잎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저 멀리서 빈카트 이용하라면서 내 앞으로 가져오는 사람들의 당황스러운 마음들은 어찌할 것인가? 최근에 서울시가 장애인의 탈시설지원조례를 폐지하고 공공돌봄을 책임지던 서울사회서비스원도 문을 닫겠다 했다. 그러면서 오세훈 시장은 점진적으로 장애인 활동지원 중개기관은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자 주말 서비스 이용을 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을 공지 내렸다. 내가 국가의 장애인 활동지원 급여를 거부하고 개인적으로 시급 2만오천원 + 특별 수당을 주면서 활동지원사를 고용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의 인권과 생존을 정치인 입맛에 따라, 전문가의 탁상 공론에 따라 아무렇지도 않게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줬다 뺏는 그 폭력성 때문이었다. 물론 나처럼 혼자 비행기 타고 출장간다면 신청할 수 있는 활동지원 점수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장애인의 손발과 지역 사회 활동을 사회적으로 구체적으로 책임져서 비장애인과 동등한 시민권과 사회권을 보장하겠다고 해놓고서, 주말에는 먹지도 씻지도 돌아다니지도 말라는 뜻인가? 더구나 이렇게 알량한 활동지원을 받을려면 그 내용들을 일일이 수기로 써서 감독 기관의 검열을 받아야 한다. 비장애인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손발이 하는 일상활동과 신변처리들을 일일이 공공기관에 보고 하고 검열 받는가? 이제 중증 장애인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도 없이 받아 주는 시설로 강제 이주라도 하라는 말인가? 서울시에 따로 장애인 보호구역이라도 만들려는 것인가? 내가 1박 2일 강의를 하면서 버는 돈은 70만원이 채 안된다. 그러나 그 70만원을 벌기 위해 내가 지역 사회와 국가를 향해 쓰는 돈은 숙박비, 교통비 30만원에 개인 활동지원사 인건비,숙박 수당, 야간 특별 수당까지 붙이면 40~50만원이 넘어갈 것이다  즉 통화 회전율에 따른 경제 효과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내 적자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아무리 장애인 시설 앞에 안전을 내세워도 그건 시설 관리자에 따른 구속 영장도 없는 감금이며 아무리 장애인 시설 앞에 인권을 붙여도 시설 설립자와 운영자들은 장애인과 함께 시설에 들어와서 살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장애인들을 이윤으로 보지 않는다 말해도 장애인 거주자에게 시설 재산권에 대한 지분이나 결정권을 내어주지 않는다. 장애인들은 서울에서 우리와 함께 사는 시민, 특히 원주민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구인 광고를 낸다. 그렇게 활동지원일을 하겠다는 어떤 분을 만났다. 기존 활동지원사 교육과 실습이 교육하는 기관의 전문성 따라 얼마나 격차가 큰지 실감한다. 길고양이 밥을 주기 위헤 지원 했다는 그 분과 실습 프로그램을 짜고 있는데 혼자 사는 장애인을 위한 식사 지원과 가사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하루 종일 같이 식사하고 함께 청소하고 있다. 장애인과 활동지원사가 어떤 활동과 어떤 작업을 수행해야 할 때, 어떻게 협동해야 하고 어떻게 지원해야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하고 심지어 어떤 언어를 써야 하며 어떤 눈빛까지 가져하는지 의견을 나눈다. 장애인을 지원할 때 어떻게 신체 접촉을 해야 하는지 재활운동 보조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신체 모형도로 시연하고 제 몸을 아낌없이 실험 실습 기자재로 제공하였다. 오랜만에 내 몸은 블랙홀에 잠시 들어갔다 온 것처럼 온 몸이 찢어 질 것 같고 한 두 시간 몽둥이 찜질을 당한 것 같다. 당장이라도 몸살이 날 것 같지만 그분이 더이상 나를 만지면서 다치면 어떡하냐며 보내셨던 안쓰러운 눈빛은 사라지셨다. 그 대신에 나의 뇌병변 장애의 경직을 자신의 중력과 힘으로 어떻게 지원하면 되는지 배우셨다. 내가 자폐인과 잘 통했던 이유가 그 분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이 몸을 만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인데 코로나 시대 대상포진과 코로나 감염을 겪고 혼자서 화장실도 가기 힘들었던 그 경험 때문에 이제 그 금기를 내려 놓았다. 좋은 활동 지원을 만들려면 멋지게 그 지원을 받는 방법도 터득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막연한 도움 같은 것을 정말 싫어했다. 그들의 지원은 대부분 무례하고 일방적이고 모욕적이며 폭력적이고 심지어 나를 위험에 노출했다. 특히 뇌병변 장애에 대한 기본 이해는 찾아 보기 어려웠다. 대상 포진의 통증을 장애로 만든 통증과 구별도 못할 만큼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것 신체 조절 능력이 지구별에서 움직이는게 아니라 지구 중력보다 몇 배의 금성별에서 움직이는 것과 비슷하다 것을 깨닫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깨닫고 통달하고 전문적인 지원을 하게 만들 것인가? 그 손쉬운 장애 체험- (필자는 장애인 생활 체험이라 한다)-도 실질적인 뇌병변 체험이나 지적 자폐성 체험은 만들어 내지 못했다.  왜 집안의 모든 구멍이 있는 물건에 끈 고리가 달려있는지 넘어질 모든 위치에 의자나 책상이 놓여 있는지, 왜 곳곳에 위험한 가위가 있는지 왜 과일이나 반찬등을 날날이 소분하는게 중요한지 왜 일부 그릇을 제외하고 모든 용기는 금속이고 플라스틱인지 일일이 설명해 준다      내일부터 기관 방문이나 외부 강연 활동을 수행하는데 길거리에서 차별적인 시선이나 모욕을 받았을 때 어떻게 응대할 것인지 이용자가 빛이 나야할 때는 어떤 의전과 호칭을 써야 하는지 -(이 분이 명언을 남기셨다. 아이유의 매니저처럼 지원하겠다 하셨다.) 활동지원사가 더 존중받아야 할 때는 어찌해야 하는지, 사무총장이라고 부를 때와 형수 형이라고 부를 때와 형수 오빠라고 심지어 이용자라고 부를 때 나와 활동지원의 관계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석되는가에 대한 논의가 깊었다. 다른 이를 상담할 때 꼬박 꼬박 사무총장이라고 호칭하고, 나는 저를 수행하는 활동지원사 선생님이라 호칭했음에도, 그 비싼 비용을 지급함에도 그 비싼 고급 노동이 '마냥 저냥 좋은 일하시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활동지원의 마지막 실습 금요일은 양말 신기기와 구두 신기기에 도전한다. 미션은 비장애인들이 걸리는 시간 만큼은 너무 최고 레벨이고 그 시간 두배 안에 끝내기. 아마도 내 발과 발목은 거덜 날 것 같지만 그 이쁜 것 별로 없는 찍찍이 신발하고는 안녕할 수 있겠지.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자, 인권 운동을 하려는 자 모두 활동지원부터 해보시라. 진정한 인권 운동 현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당히 그 소득 역시 상당히 뿌듯할 것이다.
2024-08-28 | hrights | 조회: 274 | 추천: 3
정한별 / 사회복지사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의거해 판단한다. 평생 차별받지 않아 본 사람들은, 평생 괴롭힘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평생 가난에 힘들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세상이 아름답기만 하다. 내내 차별받았던 사람들은, 괴롭힘에 시달리고, 가난에 허덕였던 사람들은 똑같은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질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마다 보이는 풍경이 다른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의 삶을 다양한 방법을 통해 들여다 보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 노력한다.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중요하다. 사람들의 관심이 반드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니다. 관심이 제도와 연결되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있다. 존엄과 관련된 것들이 그렇다.   많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아동학대는 100년 전에도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다. 1930년 8월 15일 조선일보는 ‘아동학대방지령 실시문제’라는 사설에서, 아동학대방지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오랜 관심의 대상인 아동학대 문제가 제도로 연결되고 극적인 사회의 변화를 낳은 일은 관심에 비해 오래지 않았다. 2000년 아동복지법이 전부개정 되면서 아동학대에 대한 제도가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동학대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당시 전국의 광역단위에 17개소의 기관이 운영되었다. 민간에서 운영되어 아동학대에 대한 조사부터 지원까지 모든 업무를 맡아 하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2020년 4월 그 역할이 대대적으로 변경되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갖고 있던 ‘학대조사권’ 규정이 삭제되고, 아동학대 조사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경찰’에서 주로 담당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아동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지원에 집중하는 구조로 개편하게 되었다. 광역단위에 설치되어 전국에 17개소에 불과했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현재 전국에 94개소(지역 각 17인 근무)⑴가 설치되어 있다.   노인학대에 대한 관심은 2004년 노인복지법의 개정을 이끌어 냈다. 2004년 전국 광역단위에 17개소의 노인보호전문기관이 설치되었다. 노인학대를 담당하는 노인보호전문기관은 노인학대에 대한 조사부터 지원까지 노인학대와 관련된 전반적인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노인보호전문기관은 전국에 39개소(지역 각 9인 근무)⑵가 설치·운영되고 있다.   장애인학대에 대한 관심 역시 적지 않다. 2005년 광주 인화원 성폭행 사건(영화 ‘도가니’의 모티프 사건), 2014년 신안 염전 노예 사건 등 심각한 장애인학대 사건이 이슈가 되었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가해자에게 분노했고, 피해자에게 연민을 가졌다. 최근에는 발달장애자녀를 돌보던 가족이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장애인학대는 그 사회적 관심에 비해 다소 늦게 지원체계가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2012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장애인학대의 정의, 학대신고 관련 규정, 금지행위 등이 정해졌다. 장애인학대에 대한 지원체계가 현재의 모습으로 구조화 된 것은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2015년 장애인복지법이 한 번 더 개정되면서 장애인학대를 조사하고 지원하는 전문기관인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설치근거 규정이 마련되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2017년 광역단위에 총 18개소(중앙기관 1개소 포함)가 설치되었고, 2024년 현재 전국에 20개소(중앙 1개소, 경기와 충북을 제외한 광역시도 당 1개소)밖에 없다. 게다가 가장 인원이 적은 기관은 직원이 5명에 불과하다. 장애인학대를 지원하는 또 다른 체계인 학대피해장애인쉼터 역시 전국에 23개소에 불과하며, 피해장애아동을 지원하는 장애아동쉼터는 고작 8개소이다.   이러한 환경이다 보니 가장 많은 피해는 학대 피해를 당한 장애인들이 겪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성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가 접수된 뒤 현장조사의 원칙(72시간 이내 조사)이 지켜진 비율은 48.9%에 불과하였다. 조사가 지연된 끝에 ‘비학대 사례’로 종결된 경우는 74건⑶에 달했다.   학대피해장애인을 지원하는 종사자들의 어려움도 극심하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직원의 퇴사율은 2021년 29.9%, 22년 53.8%, 23년 29.7%로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⑷ 지역의 기관들이 담당해야 하는 사례 수는 많고, 관할 하는 지역은 넓은 데에 비해 기관의 수는 부족하며, 각 기관의 직원이 고작 6~7명이 태반인 상황이다 보니 신속하고 적극적인 피해장애인 지원이 어려워 민원마저 자주 발생하는 아주 총체적 난국인 것이 현재 장애인학대 지원체계의 현실이다.   제22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여러 국회의원들이 장애인학대 지원체계 개편을 골자로 하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학대피해장애인의 피해회복 지원을 위한 위원회의 설치,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장애인학대 예방과 방지에 관한 사항 포함, 장애인학대 예방의 날 지정, 학대신고의무자 범위 확대,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설치 확대 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내용의 적절성을 하나하나 따질 것 없이, 장애인학대를 위한 제도개선의 움직임은 반갑기 그지 없다.   한여름 나무 위에서 울어대는 매미는 땅 위에서 2주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 2주도 번식을 위한 구애활동(울음)으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 2주 동안의 삶을 위해 매미는 땅 밑에서 7년을 기다린다. 장애인학대 지원체계의 개편이 매미의 삶을 닮지 않기를 바랐는데, 벌써 장애인학대 지원체계 중 하나인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출범한 지 7년이 지나버렸다. 7년이나 지났으니, 나무 위로 올라가 실컷 울어도 되지 않을까. 2024년은 장애인학대 지원체계의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⑴“장애인학대 대응체계 개선 및 강화를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24. 8. 19. ⑵ “장애인학대 대응체계 개선 및 강화를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24. 8. 19. ⑶ “장애인학대 ‘72시간 안 조사’ 원칙 절반 이상 안 지켜져”, 2020. 10. 4. 한겨레  ⑷ “장애인학대 대응체계 개선 및 강화를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24. 8. 19.    
2024-08-20 | hrights | 조회: 425 | 추천: 2
이동화 /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사진. 팔레스타인 인권단체에서 찍은 벽화 “To exist is to Resist”, 출처: 사단법인 아디 지난 8월 10일 새벽,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 북부 가자 시티의 알 타비인(al-Tabin) 초등학교를 공습하여, 최소 100명이 사망했다. 이 학교는 가자 지구 내 다른 학교들처럼 전쟁이후 피란민들의 대피소로 사용하고 있다. 현지 언론사인 알 자지라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학교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이스라엘 군이 이 일대 물 공급을 차단해 피해를 더욱 키웠고, 희생자의 다수는 여성과 아동, 노인들이라고 전했다.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지만 이스라엘군은 공식발표를 통해 “이 학교는 하마스의 지휘본부로 사용되었으며 (이스라엘군은)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했다.   8월에만 벌써 다섯 번째이다. 8월 1일 가자 시티의 다랄 알 마그라비(Dalal al-Maghrabi) 학교를 이스라엘은 공습하여 팔레스타인인 15명이 사망했고 29명이 부상당했다. 3일에는 하마마와 알 후다 (Hamama and al-Huda) 학교가 피격되어 17명이 사망하고 60명이 부상당했다. 4일과 8일에는 나세르와 핫산 살레메(Nasser and Hassan Salameh) 학교와 아둘 파타 하무다와 아즈 자흐라(Abdul Fattah Hamouda and az-Zahra) 학교를 이스라엘군이 공습하여 각각 30명의 사망자와 19명의 부상자 그리고 17명의 사망자와 16명의 실종,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이스라엘은 공격받은 학교들이 하마스와 연관되었기에 폭격했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내놓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에는 전쟁 중에도 지켜야할 원칙이 있고 법이 있다. 학교와 병원을 공격하는 것은 이 원칙과 법에 어긋난다. 특히 피난민이 거주하는 피난시설을 공격하는 것은 명백한 전쟁범죄이고 집단학살이다. 이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이 집단학살에 해당될 수 있음을 지적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 역시 이스라엘의 총리를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군은 여전히 200만 명의 가자 지구 주민들 대상으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폭격을 할 것이고 하마스 때문이라며 학살을 정당화 할 것이다. 2024년 7월 중순, 가자 지구에서 여성인권활동을 20년째 하고 있는 여성활동가 파티마는 아디와의 온라인 회의에서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이야기했다. “작년 10월 13일 이스라엘의 강제대피령으로 뿔뿔이 흩어진 활동가들을 여기(가자 지구 칸 유니스 지역)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사무실을 다시 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사무실 임대료도 엄청 비싸다. 이스라엘은 여기도 폭격 받을 수 있지만 (그녀들의 이전 사무실은 작년 10월에 폭격 받아 파괴됐음)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다.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팔레스타인)여성과 아이들이 너무 많다. 일단 그들을 위해 심리지원 활동부터 시작하려 한다.”  파티마는 벌써 3번에 걸쳐 강제이주를 당했고, 현장의 여성 활동가들 역시 이스라엘의 강제대피령에 따라 가자 지구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이스라엘의 폭탄 때문에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지내고 있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자 사무실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챙긴다. 팔레스타인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글귀가 있다. “존재하는 것이 저항하는 것이다!(To exit is to resist!)“ 그들은 존재 자체로 저항하고 있으며 76년간의 이스라엘의 점령기간 중 가장 심각한 폭력상황인 지금에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이 존재하는 이상 이스라엘의 전쟁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2024-08-16 | hrights | 조회: 337 | 추천: 5
신종환 / 공무원 인권연대에 글을 기고할 기간이 다가오는데 글감이 생각나지 않으면 대단히 복잡한 기분들이 날 둘러싼다. 더군다나 나의 글쓰기는 직장생활과 서울이 아닌 변방에 산다는 이유를 든든한 핑계삼아 공부를 미루기는 오래되었고 어중간한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섞인 기분에 단편적인 일상의 감흥을 얼기설기 엮어 동네 회사인의 생각 파편들에서 근거 없는 어떤 사회적 징후를 캐내서 의견으로 만드는 일의 변주가 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이런 글을 계속 써나가는 건 이런 자잘한 생각 조각을 굳이 글로 쓰는 사람이 인권연대에는 별로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옳은 길의 당위를 체화한 사람들의 글은 체화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닿지 않고, 옳은 길로 가야할 까닭은 잊은 사람들은 체화된 사람들의 글을 배척함을 당당하게 전시하므로. 사실 인권연대에 올라오는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옳은 길에 대한 물음을 내려놓은 사람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감흥들을 계속 엮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글은 써야 하고, 없는 생각을 만드는 것보다 쉬운 것은 전에 있던 생각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것이기에 낯설면서도 익숙한 생각들을 다시 꺼내보는 차원에서 최근의 부정적인 현황들을 되짚거나 10년 전 즈음 썼던 글들을 다시 훑어보곤 하는데, 오늘은 그 글들의 구체적인 의견이 아니라 그간 예전의 나를 살폈던 과정을 엮었다. 예전을 읽다보면 한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진 몸적 특징과 그 사람을 둘러싼 것들의 집합체라는 걸 강하게 느낀다. 스스로에게 맞는 방향을 찾고자 했지만 그 시도가 성공하지 못한 나날들에서 오는 방황, 그래도 그 나날들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글귀가 쌓여서 만든 어떤 무게감들을 품은 나는 과거에서 애써 쌓아온 의식적 관성이 사그라든 지금의 나와는 다른 타인이었다. 타인이 된 나와 지금을 비교하면서 길을 걷는 것과 길을 생각하는 것의 낙차를 조금은 짚어볼 수 있었다. 신체적 체감과 생각의 연관성 등에 대해 현대 학자들의 과학적으로 접근한 것과 과거의 학자들, 그리고 사제이자 신학자였던 로마노 과르디니의 맥락이 상통하는 건 역시 행위로 투신한다는 행위가 주는 공통적 영향을 각자의 형태로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생각들은 대부분 부유하기 마련이고 나아가 어느 것이 내가 기워낸 생각인지 외부로부터 여과되지 않고 유입된 의견인지, 그로 인한 생각의 외피를 쓴 감정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고, 그런 불안한 부유에서는 작은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의미를 찾지 못해 더욱 커지게 되어 실제로 더욱 고통받게 된다. 돌이켜보면 내가 공황약을 먹게 된 시점도 내적으로 품고 있던 스스로의 가치를 상실하고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지 못한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타인과 함께 한다는 관념을 어떤 식으로든 행동으로 옮겨 스스로의 일상에 그만큼 공간을 내어주면, 타인이라는 창이 내게 스며서 새롭게 의미를 떠올릴 풍경을 보여준다. 이는 관념적 실천과 신체적 실천에서 비슷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예순즈음에 회의감에 젖어있던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순례길에서 느낀 신체적 각성을 비행청소년들에게도 전달하려고 했고, 노동가수 박준이 그의 노래 ‘옆을 쳐다봐’에서 옆에 타인이 있다는 걸 인지하면(물론 옆의 존재가 한사람의 인격적 대우를 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인지하기 까지는 여러 지적⦁정서적 작업이 필요하지만)대자적 각성을 할거라고 예측하는 점에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길의 목적지까지 있는 현실적인 제약과는 별개로 길에 서있을 때 보이는 풍경과 거기서 비롯되는 실감을 통해 개인적 한계과 동시에 작은 변화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묵묵히 하던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로마노 과르디니가 말한 건강한 성년이라고 이해되고, 김준산 작가가 강조한 몸의 정화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러지 못할 수는 있지만 내일은 어제아는 달리 미뤄둔 공부를 하고 하지 않았던 일들을 다시 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오늘의 다독임을 받을 내일의 내가 우연히도 스스로를 가꾸고, 마음에 다시금 타인을 들일 공간을 만들어낼지도 모르니까. 세상의 추이와는 별개로, 세상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있고, 길은 우리에게 언제나 힘을 준다고 서로에게 상기하는 일은 늘 필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2024-08-07 | hrights | 조회: 313 | 추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