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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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다솜(미디어 활동가),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대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나만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가끔 지난 일이 갑자기 떠오를 때가 있다. 창피한 기억이면 나도 모르게 맘이 오그라들고 슬픈 장면이 떠오르면 주책없이 눈시울까지 붉어지기도 한다. 지난 기억이 생각날 때의 공통점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과의 연관성일 것이다. 11월 14일 광화문 집회 소식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접했을 때도 그랬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불현듯 생각났다. 중학교 때였다. 9시 뉴스는 거의 매일 대학생들의 집회, 시위장면을 보여주며 당장 나라가 망할 것 같은 어조로 비판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집회, 시위는 물론이고 대도시에서 학교를 다녔던 내 나이 또래가 대부분 맡아봤던 최루탄 냄새 역시 한 번도 접하지 못했다. 그러니 그 당시 대학생들의 데모질에 대한 내 의식 수준은 뉴스 진행자가 전하는 논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식당을 했던 어머니가 뉴스에 나오는 시위장면을 제대로 봤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늦은 저녁을 먹으며 TV에 나오는 시위장면을 보다가 나는 어김없이 쌍시옷으로 시작되는 남쪽 해안가 특유의 욕을 시위대에게 내뱉었다. 그때 물끄러미 TV를 보고 계시던 어머니께서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바로 그 말씀을 하셨다. “힘들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간 학생들이 저리 마이(많이) 길바닥에 나와서 데모를 하는 거는 아마도 무슨 이유가 안 있겄나?” 솔직히 그 당시 대학생들이 외쳤던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가 이후에도 내 머리에 제대로 이해되어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어머니의 말씀 이후 가끔 궁금하기는 했다. ‘왜’ 저 많은 형님들과 누나들은 경찰에게 잡히면 신세 망칠 게 뻔 한 데모질을 저렇게 허구한 날 하는 것일까? 1987년6월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주최의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에도 불구하고, 전국 18개 도시에서 가두시위 형태로 전개됐다. 서울 명동입구 도로 앞에서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경비중인 경찰병력이 도로를 완전 봉쇄하고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보도사진집 "그날 그거리") 사진 출처 - 뉴시스 민주노총과 전농을 비롯한 많은 시민 사회단체들이 12월 5일 2차 민중 총궐기 집회를 연다고 한다. 하지만 전농이 낸 집회신고에 대해서 경찰은 불법폭력 시위가 예상된다면서 집회금지통고서를 전달했다. 신고제인 집회에 경찰은 관심법이라도 있는 것인지 ‘예상’에 근거해 집회 금지를 통고한 것이다. 12월 5일 집회의 명칭은 <백남기 농민 쾌유기원·살인진압 규탄·공안탄압 중단·노동 개악 중단 민중 총궐기>라고 한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생명이 위태로운 한 농민의 쾌유를 빌고, 정권의 공안탄압과 노동 개악을 중단하라는 집회의 요구 내용은 사라지고 헌법이 보장한 ‘집회’ 그 자체의 불법성 여부만을 종편을 비롯한 보수 언론에서 단물이 빠질 때까지 씹어대고 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배달된 신문을 집어 든 사람들, 혹은 식당에서, 사우나에서 종편 뉴스를 보며 혀를 차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30년 전의 우리 어머니가 내게 했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이 추운 겨울날 저렇게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여 정부를 향해 외치는 분노의 내용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농민과 노동자와 청년들의 분노와 한숨의 장이 된 저 집회는 나와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일까?” 두 번째 기억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인 2007년, 고향에서 누나를 만났을 때였다. 그때 누나는 내게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고향의 정치적인 분위기를 생각할 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명박 후보도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굳이 박근혜 씨를 지지하는 이유를 누나에게 물었다. “저거 아부지가 대통령할 때 잘잘못을 옆에서 누구보다 자세히 봤고, 아부지가 그리 험하게 죽은 거를 겪었으니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정치를 제대로 안 하겄나 말이다.” 그때 나는 내 나름의 논리로 박근혜 씨가 후보가 되면 안 되는 이유를 누나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이명박 씨를 지지하라고 할 수도 없고 지리멸렬했던 당시 여권 후보는 씨도 먹히지 않을 분위기라서 내 말은 그다지 힘이 없었던 것 같다. 누나가 나름의 근거를 대며 지지했던 대통령 후보는 그로부터 5년 후에 그렇게 바라던 대통령이 되어서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누나의 그때 당시 지지 근거는 현재까지 상황을 볼 때 상당히 엇나가거나 틀린 바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오랜 세월 우리 사회가 어렵게 쌓아왔던 민주주의의 퇴적층은 국정화 교과서 추진과 같은 권위주의 통치방식으로 인해 급격하게 허물어지고 있다. 여러 가지 경제지표는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대응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로 인해 불안해하고 고통 받는 시민들은 오히려 공약으로 내밀었던 각종 복지정책 대부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심지어 시위 군중을 테러집단에 비유하는 대통령의 언사는 자기 아버지의 집권 말기 상황을 떠오르게까지 한다. 어머니에 관한 흐뭇하고 즐거운 기억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볼 때 30여 년 전 어느 늦은 저녁 밥상에서 TV 뉴스 속 데모 학생을 보고 하신 서늘한 말씀은 계속 생각날 것 같다. 정말 바라지 않았던 대통령이었음에도 현실화된 이상 누나가 2007년에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유가 현실화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집권 3년을 다 채워 가는 현재 나의 바람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어머니는 맞고 누나는 틀렸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셰리프라는 미국 사회심리학자가 꽤 흥미로운 실험을 1930년대에 한 적이 있다. 실험 참가자들을 몇 개 집단으로 나누어 벽 중앙에서 불빛 한 점을 볼 수 있는 어두운 방에 들어가게 했다. 이들은 불빛이 얼마나 멀리 움직이는지 보고해야 했다. 방 안이 너무 어두웠기 때문에 달리 거리를 측정할 방법은 없었다. 실험 대상자들은 불빛이 '객관적으로' 얼마나 움직였는지 의견일치를 봤다. 하지만 집단마다 결론이 다 달랐다. 사실 그 불빛은 실험 내내 제자리에 있었다(Babbie, 2007: 61). 근대 사회과학을 지배한 것은 개인의 인지적 사고에서 독립된 객관적 실체에 대한 믿음이었다. 셰리프의 실험에 참여한 각 집단은 특정한 망상에 합의했다. 그렇다고 실험 대상자들이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은 ‘창조된 실체’, 즉 사회적으로 구성된 실체였을 뿐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객관성’이란 관념은 과연 얼마나 객관적인가?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과학은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객관적’인 것이 올바르다고 간주한다. 주관적인 역사는 있는 사실을 무시하는, 역사가 아닌 ‘소설’ 혹은 역사왜곡일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저마다 생각하는 ‘올바른’ 역사는 다를지 모르지만 어쨌든 ‘올바른’ 역사는 있다는 게 ‘상식’이다. 중요한 건 5·16을 쿠데타로 보는게 올바른 역사인가, 아니면 불가피한 결단으로 보는게 올바른 역사인가 하는 차이 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 박근혜를 비롯한 새누리당 정권이 국정 교과서를 “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명명하는 밑바닥에는 자신들이 객관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으며, 절대다수 국민들은 틀린 역사를 배우고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이명박근혜 정권 교육부장관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치게 했다.). 이들은 끊임없이 '편향된 역사교과서'를 문제삼는다. 물론 그 편향이란 대부분 해석을 둘러싼 것이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박근혜가 말하는 객관성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객관성이 외치는 ‘누가 보아도 명백하다’는 얼피 견고해 보이는 차벽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단 한 사람 앞에서 무너진다. 결국 객관성이 객관적이려면 ‘사람의 눈’이 아닌 ‘사물의 눈’을 빌어야 한다(조용환, 1999: 26). 박근혜로서는 자기 관점이 객관적이란 걸 입증해 (온 우주가 나서서 국정교과서를 도와주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거기서부터 유체이탈은 시작된다. 바비(2007: 62)라는 학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과학이 객관적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실증주의자들의 믿음은 궁극적으로는 신앙적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심지어 객관적인 실체처럼 보이는 계급조차도 반드시 객관적이진 않다. 아벨만이란 학자가 한국 여성의 계급의식을 다룬 연구를 보면 이들은 자신이 현재 속한 객관적인 계급지위보다는 과거 자신이 속했던 친정의 계급 기반과 미래에 자기 자녀들이 갖기를 바라는 계급 지위에 더 영향을 받는다. 서울 빈민지역에서 전세로 얻은 세탁소를 운영하는 50대 후반 강 씨 부인은 객관적으로는 하류층일지 모르지만 본인은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한다. 자신이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고 친정 형제들이 중산층인데다 자녀들도 웬만큼 살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이 “때를 잘못 만났고” “남편을 잘못 만나서 평생 고생”을 하지만 강 씨 부인에게 중요한 건 객관적인 계급지위가 아니라 친정의 계급기반, 그리고 자녀들이 ‘객관적인’ 중산층이 됐다는 주관적인 계급의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올바르다는 것은 과연 누구에게 올바른 것인가? 비록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침몰하는 것 같은 암담함을 느낀다 하더라도 저들의 “올바른” 역사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가 또 다른 “올바른” 역사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더 나아가 “올바른” 역사라는게 과연 있기는 한걸까? 차라리 올바르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헤게모니를 놓고 투쟁하는 담론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객관성을 중시하는, 그러므로 올바른 역사를 지향하는 전통적인 역사서술은 보통 극좌에서 극우까지 1에서 10까지 단선으로 가정한 뒤 5에 위치한, 이른바 중립적인 균형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관념에 입각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다. 올바르게 쓴 역사책이 아니라 공정한 역사책이 이 세상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않을까?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역사에서 해석을 독점하는 단 한 권만 존재해야 할 이유 자체가 사라진다. 영국 역사학자 젠킨스(1999)가 강조하는 공정한 역사는 이런 식이다. 각자 입장 위에 1에서 10에 이르는 추를 맞춘다. 각자 정치적 성향이나 세계관에 따라 1에 위치할 수도 있고 10에 위치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각자 입장 위에서 1에서 10을 ‘공정’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무엇이 역사인가’ 혹은 ‘어떤 역사적 사실이 있었는가’라고 묻지 않고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고 묻는 이 이다. 객관적 실체 자체를 회의하는 관점은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너도 옳고 나도 옳은’ 양비양시론에 빠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개인 경험에 비춰본다면 ‘객관적인 역사’에서 ‘공정한 역사’로 세계관을 바꿨을 때 조금은 더 세계가 명쾌하게 보였다. 나와 다른 해석을 인정하고, 헤게모니를 가진 역사담론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인식론을 통해 세계를 바꿔 나갈 수 있는 희망의 근거를 발견했다. “지식이란 항상 권력과 연관되기 때문에 사회구성 안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쥔 사람들은 자기 이해에 부합되는 ‘지식’을 최대한 퍼뜨리고 정당화시키려 한다. 이 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 권력을 분석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이론적 상대주의에서 빠져 나올 수가 있다. 여러분은 상대주의적 관점을 통해 절망에 빠지기보다는,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재평가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곧 해방의 의미다. 반성을 통해서 여러분 또한 역사를 만들 수 있다(젠킨스, 1999: 87).” <참고문헌> 조용환(1999). 『질적 연구: 방법과 사례』. 교육과학사. 케이스 젠킨스.(1999).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최용찬 옮김. 혜안. 얼 바비(2007). 『사회조사방법론(제11판)』. 고성호 외 옮김, 센게이지러닝코리아.
2017-07-12 | hrights | 조회: 10 | 추천: 0
홍성준/ 약탈경제반대행동 사무국장   정부가 최고의 투기자본 오래 전, 지하철 9호선의 “혈세 낭비”문제로 투자은행 맥쿼리와 한창 싸울 때 일이다. 맥쿼리에서 사무실로 내방을 하겠다며 면담 요청이 들어왔다. 맥쿼리의 상무가 직접 자신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정치인을 상대로 해명을 한다고 했다. 결과는 충분히 예상이 되지만, 굳이 만남을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만났다. 그는 30년 간 장기간 투자를 하는 것 등의 이유를 들어서 자신들이 “투기자본”이 아니라고 했다. 즉, 자신들은 ‘단기간에 먹튀’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별로 설득력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항변에 대해서는 반박하기 어려웠다. 그는 “우리 맥쿼리의 (고)수익 모델을 두고 투기자본이라 한다면, 한국정부가 가장 큰 투기자본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맞다. 맥쿼리를 포함해서, 한국에서 이름을 날린 사모펀드 등 투기자본들의 금융사에 최대의 투자자는 정부이다. 정부가 혈세를 투입하고 직접 운영을 하는 국민연금과 모든 공적 연기금, 정부가 관리감독을 하는 시중 은행과 모든 금융기관은 경쟁적으로 사모펀드 등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 결과, 다른 투기자본들과 고수익을 함께 나누며 성장하는 자본(?)이 바로 대한민국의 정부이다. 최근, 국내 유수의 유통업체인 홈플러스를 7조 원에 인수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주요 투자자도 국민연금이다. 케이블 방송 C&M 사태에서 드러난 MBK파트너스 행태는 시민사회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인수가 2조 2천억 원 중 70%, 1조 5천억 원 이상을 C&M의 자산을 담보로 국민연금과 금융기관의 자금을 차입해서 C&M을 인수(이른바, 차입매수-LBO)했다. 그 결과, 천문학적인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고배당 등으로 C&M의 자산을 끊임없이 ‘약탈’했다. 더하여, 동종 업계 최저임금 강요와 열악한 근무환경 제공, 끊임없는 해고와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또, 방송가입자에게는 자신들의 과도한 수익을 위해 수탈적이고 불법적인 영업을 하였다. 위탁계약을 맺은 협력업체들에게 수수료 단가를 일방적으로 조정하거나, 협력업체에게 고객 요금의 대납을 요구하는 등으로 불이익을 주는 이른바, “슈퍼 갑질”,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수시로 저질렀던 것이다. 그에 따라, 매번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았으며,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조사와 시정조치를 한 바 있다. 즉, MBK파트너스가 C&M를 장악한 후, C&M의 모든 이해관계자는 그들에게 가공할 약탈을 당한 것이다. MBK파트너스는 C&M 뿐 아니라 한미캐피탈, HK저축은행 등 국내 금융기관들과 중국, 일본, 대만의 기업들도 공격적으로 인수를 하였는데, 국민연금과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투자로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MBK파트너스는 여전히 승승장구 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뿐일까? 아니다. 이랜드,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서 일어난 해고와 노동권 약화, 그리고 광범위한 ‘약탈’이 일어나는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 되었다. 국민연금만이 아니다. 퇴역군인들의 노후를 위한 군인공제회는 앞서 거론한 맥쿼리와 투자약정을 맺고 주요 국가기간 시설에서 세금을 ‘약탈’해서 성장해왔다. 국민연금과 연기금들은 국민들의 노후를 위해서 무자비한 수익창출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오히려, 소득저하와 인구감소로 납부액이 줄어들자 국민연금과 공적 연기금의 지급률을 무조건 낮추고 있다. 이를 두고 모두들 “연금개혁”이라고 말한다. 실상은 말이 좋아 개혁이지, 복지란 미명으로 자행되는 ‘사기’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유니슨캐피탈, 보고인베스트먼트, MBK파트너스 등 사모펀드들로 구성된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들이다. 이들이 국민연금의 실제 주인이다. 매년 수 조원의 운용보수를 챙기고 있다. 이들은 자신과 자신들과 같은 사모펀드 등에 지금과 같은 거액의 투자를 계속하고 있고, 그들(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에서는 지금과 같은 약탈이 멈추지 않는다. 요즘 논쟁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도 정부는 국민연금을 걷는 일만 맡고, 그 운용은 (사모펀드들이) ‘독립적’으로 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옳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다. 세계의 주요 국가는 천문학적인 공적 연기금(한국의 경우 국민연금은 500조 원으로 세계 3위)을 쌓아 놓고, 고수익을 위해 투기자본으로써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국민연금과 공적 연기금을 ‘폐지’하고, 본래의 “부과식 연금”으로 되돌아가거나, 전적으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부조에 기반을 한 복지체계를 만들지 않는다면, 전지구적 ‘약탈’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불안한 노후를 걱정하는 납부자를 상대로 “연금개혁”이란 사기극도 계속될 것이다. 홈플러스 노동조합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MBK파트너스 사무실 앞에서 연 확대간부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MBK에 노조와의 대화와 고용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흡혈자본은 세계경제의 동력 지난 2월, 내가 속했던 단체는 공동대표의 부적절한 금품수수 사건으로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당했다. 그날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을 말하거나 행동해도 언론은 외면했고, 공개 토론장에서는 적들에게 모욕도 당하고, 어떤 연대단체에게는 조롱도 당했다. 결국, 조직을 해체하고 새롭게 재구성해야 했다. 회원들과 연대단체 동지들과의 오랜 숙의 속에서 찾아낸 것은 단순히 2월에 일어난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이념을 전면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과거 단기간에 고수익을 내고 먹튀를 하는 자본의 행태보다는, 보다 장기적인 약탈 행위에 대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의 주요한 동력은 무엇인가? 시장에서의 약자에 대한 ‘상위 포식자의 무자비한 약탈’이라고 본다. 때로 이것을 성장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그 상위 포식자란 누구인가?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거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 ‘각국의 금융회사들’과, 거기에 투자하는 각국의 부유한 크고 작은 ‘자산가 계급(property classes)’인 것이다. 이들이 주도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약탈적 자본주의(predatory capitalism)”라고 정의하였다. 이것을 바로 세계경제의 동력으로 지목하고, 이것을 동시에 “약탈경제”로 명명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새로운 유형의 ‘생산적 경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베블렌, 케인스, 마르크스, 갈브레이스 같은 위대한 경제학자들이 “아무런 생산적 기여를 하지 않으면서 약탈에 의존하는 자산가 계급, 유한계급이 자본주의의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다”고 한 그들의 비판에서도 이것의 정체를 찾을 수 있다. 앞에서 국민연금과 사모펀드의 약탈 문제를 단순히 어떤 사건과 특정 행위가 아닌 구조적인 경제 문제로 거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지 특정 기업과 노동자를 공격했던 어떤 사건의 문제가 아닌, 약탈의 빨대를 꽂아 두고 계속해서 성장하는 자본을 “국민경제” 속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 예시를 든 것이다. 우리단체 이름을 정할 때 일이다. 출범 준비회의에 참석했던 연대단체 젊은 여성 동지는 “약탈이란 말이 너무 ‘Old’합니다. ‘흡혈귀’, ‘흡혈자본’란 말이 이것들의 실체에 더 정확한 표현이고, 감성적으로도 젊은 사람들에게 맞을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런 갑론을박(甲論乙駁) 속에서 단체의 영문 이름은 Vampire Capital Hunter가 출현한 것이다. 사실, 나는 준비회의 상에서 “약탈경제”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조금 당황했다. 그것은 고구려(高句麗)나 유목국가의 경제를 지칭하는 “역사 용어”였기 때문이다. 차차 생각해보니, 그 둘의 범주는 다르지만, 유사한 개념의 말이라는 것에 결국 동의하게 되었다. 예속된 하호(下戶)들이 멀리서 쌀과 식량, 생선과 소금 등 져다가 바친 것을, 아무런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앉아서 받아먹은 고구려 1만여 명의 “좌식자(坐食者)”나 오늘날의 자산계급이나 결국은 같다. 그리고 시민운동이란 ‘전문가와 엘리트를 통한 대의’가 아닌 궁극적으로 시민들의 “직접 행동”이어야 하니, 약탈경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행동을 강조해 단체 이름에 “행동”이 들어갔다. 좋은 이름이라 자평한다. 그렇게 지난 8월 31일 우리단체는 출범했다. 하지만 고민이다. 여전히 개별 피해자들과 함께, 특정 (약탈)자본의 범죄행위를 찾아 고발하고, 응징하는 것이 나의 주요 임무이다. 가야할 방향은 명확히 찾았지만, 가야할 길이 너무 먼 것이다. 그렇다고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옛 성인도 “성자천지도(誠者天之道)이고, 성지자인지도(誠之者人之道)라” 했지 않았는가!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진실로 옳다면,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가면 되니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7 | 추천: 0
임아연/ 당진시대 취재팀장   한 사람을 만났다. 25살 여성인 A는 얼마 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졸업식에서 학생대표로 졸업연설을 맡았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친구와 단둘이 미국여행을 했을 정도로 당찬 사람이다. 교육 여건이 그리 좋지 않은 당진이라는 소도시에서 살면서 서울대까지 갔으니 중고등학생 때 꽤 공부도 잘하고 똘똘한 학생으로 주목받았을 것이다. 대학에선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무대에도 올랐고, 장애인·다문화가정을 돕는 여러 가지 봉사활동도 했다. A는 장애인이다. 그는 선천적인 뇌성마비로 인해 걷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A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고 그에 대해 얘기하다 그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밝히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감탄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걷지 못해 휠체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이 학교생활도 잘하고, 여행도 많이 하고, 연극 무대에 올랐으며, 봉사활동까지 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법하다. 그러나 A에겐 보통의 사람들처럼 그런 일들을 하는 게 비장애인보다는 조금 더 번거롭고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라고 했다. A는 말했다. “비장애인들은 계단을 자유롭게 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장애인들은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기 때문에 신체적 결함이 장애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경사로를 설치해 장애인들도 갈 수 있도록 만든다면, 신체적 결함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아요. 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은 그들이 불쌍하니까 도와줘야 하고, 배려해줘야 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해요. 보통의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장애인들도 할 수 있게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 그래서 더 이상 장애가 장애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라고 생각해요.” A와 대화를 나누면서 든 생각. 나는 지금 한국사회가 신체 멀쩡한 사람들까지도 ‘사회적 장애인’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여성의 사회참여와 권익이 향상됐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거나 출산 이후의 재취업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일할 능력이 있는 수많은 청년들이 취업을 하지 못해 연애·결혼·출산에 이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 그리고 꿈과 희망까지도 포기한다는 ‘7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보통의 삶을 살아 갈 수 없게 만드는 사회, 결국 사람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단지 신체적 결함만을 장애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까. 사진 출처 - 국민일보 그런 한국을 두고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헬(Hell, 지옥)과 조선의 합성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다. 침체가 십 수 년 째 지속되면서, 처음엔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도 이젠 무기력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했던 희망마저,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사회에선 사치인 것만 같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6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얼마 전 대표적인 인터넷언론사에서 기획한 모금행사에 약간의 돈을 보냈다. 기획의도도 좋고 기획기사의 주인공도 평소 알고 지내던 지역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모금기획이 종료되고 난 후 그 언론사로부터 문자 한통을 받았다. 모금에 참여한 사람들의 성의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자기네 언론사 대표의 특별강연에 무려 ‘무료’로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전에도 이런 내용의 문자가 심심찮게 올 때마다 그냥 넘겼지만 그날따라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대전사는 사람에게 서울에서 하는 강연행사에 무료로 초대한다는 발상이 약간은 웃기고 또 얼마간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울 사는 독자들은 지하철비용 2~3천 원에 다녀올 수 있는 무료 강연이지만 지방에 사는 독자들은 왕복 KTX기준으로 5만 원 이상의 비용과 적어도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 되는 행사를 어떻게 무료 초대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인터넷언론사인 만큼 스마트폰에서도 이 언론사의 기사를 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지방에 사는 독자로서의 소외감이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여성, 여행 등으로 자세히 분류 되어있는 기사 카테고리에 지역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의 기사를 읽어 보려면 PC로 접속하거나 스마트폰에서는 PC버전으로 들어가서 다시 깨알 같이 작은 글씨의 지역 면을 그야말로 조심스럽게 터치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 큰 카테고리에 ‘스타’를 배치하고 그 아래에 다양한 연예계 기사 카테고리를 배치한 것에 비하면, 스마트폰에서 접하는 이 언론사의 ‘지방’에 대한 정책은 차라리 거의 없음에 가깝게 느껴진다. 몇 달 전 모 신문에서 충남과 세종시를 담당했던 기자가 부서이동으로 인해 서울 본사로 떠났다. 지역 시민사회의 크고 작은 현장에 대해 훌륭한 기사를 썼던 기자인지라 지역 사람들의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난 사람이 있으니 곧 든 사람이 있을 줄 알았지만 6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그 자리에 신입이나 경력기자가 새로 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더구나 그 신문사는 그 기간에 정기 신입기자 채용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충남, 충북, 대전, 세종, 강원이 한 면에 실리는 그 신문의 지역 면에서 이제 충남과 세종의 기사, 특히 예전과 같은 현장밀착형 기사는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다. 신문사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에게 기자 충원 소식을 물어봤지만 몇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당장은 힘들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그 신문사의 사회부나, 정치부, 혹은 다른 부서에도 이렇게 기자 한 명이 비면 그냥 그대로 오랜 시간 내버려 두는지 궁금하다. 충남과 세종 담당 기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언론사의 사업방식을 지켜보는 지역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심정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까지 느껴진다. 앞서 얘기한 인터넷언론사와 나중에 언급한 신문사는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언론사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언론사도 그렇지만 서울권역에서 활동하는 진보적인 시민단체에서도 느끼는 답답함 중의 하나는 지역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이다. 사실상 서울 언론사, 서울 시민단체인데도 중앙언론사로 자칭하거나, 단체명에 서울이라는 지역명을 아예 붙이지 않아 마치 전국구 단체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변방이 없는 중앙이 있을 수는 없다. 변방이 있어야만 중앙이 인식되고 중앙의 존재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중앙’언론사가 되고 싶다면 변방에 신경 쓰고 투자하길 바란다. 그것이 올바른 진보이고 진정한 중앙언론사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버겁고 힘들다면 아예 ‘서울언론사’로 거듭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정론직필하는 제대로 된 언론사가 드물어서 그렇지 지역 언론사는 솔직히 차고 넘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6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그를 처음 만난 건 2007년 10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당시 민변을 포함한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버마(미얀마) 시위대에 대한 버마군부의 무차별 총격 및 유혈 강제진압에 대한 국제연대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고, 그 곳에서 버마(미얀마)의 참혹한 실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버마(미얀마)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내툰나잉(Nay Tun Naing)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NLD(아웅산 수찌 여사가 이끌던 미얀마 야당)지부 소속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버마(미얀마) 인권상황에 무지한 나를 포함한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진지하고 열정적 자세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고, 한국 시민단체들과 버마(미얀마) 단체들 간 연대체 결성 및 공동대응에 함께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와의 첫 번째 만남이자 연대활동이었습니다. 그는 난민입니다. 1990년 미얀마 총선 때 아웅산 수찌 여사의 NLD 활동을 했던 그는 1994년 미얀마에서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하였고, 이후 미등록(불법?)체류자격으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조국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을 위해 2001년 한국 정부에 난민신청을 하였고, 2003년에 어렵게 난민지위를 획득하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난민인정에 인색하기 그지없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버마(미얀마)인이 최초로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하여 난민인정이 된 것입니다. 이 일로 당시 민변 회원들과 인연을 맺었던 그는 나중에서야 “그때가 민변과의 첫 번째 인연이었고, 너무 고마웠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고국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에 소위 ‘올인’을 하였습니다. 버마(미얀마) 민중들의 절박한 투쟁에도 버마(미얀마)는 여전히 군부 독재 지배하에 있습니다. 버마(미얀마)의 민주화를 원했던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버마 상황에 의해 일회일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내툰나잉을 포함한 버마(미얀마)출신 활동가들은 매주 한국 주재 버마(미얀마)대사관 앞에서는 시위를 개최하는 등 고국의 민주화를 위한 끊임없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그들과 때때로 함께 하였으나 여전히 자신들의 상황에 묻혀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는 뒤로 밀렸습니다. 하지만 버마(미얀마)에서 나쁜 소식이 있거나, 한국에서 미얀마 관련 행사가 있거나 캠페인을 할 때면, 나를 포함한 국제연대 활동가는 항상 내툰나잉을 찾았습니다. 그는 매번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성심성의껏 응답을 해 주었고, 한번쯤 귀찮은 내색을 보일만도 했지만 그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일을 본 적이 없었고, 그 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2007년 1월 2일 진행된 1차 Free Burma Campaign에 함께했던 내툰나잉(Nay Tun Naing)씨의 모습 2013년 민변 내에 아시아인권을 위한 내부 팀이 만들어지고 처음으로 연락한 사람이 내툰나잉이었습니다. “법률가 단체인 민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라는 내 질문에 그는 ‘2008년 미얀마 헌법’에 대한 활동을 제안하였습니다. ‘2008년 미얀마 헌법’은 군부에게 지방의회와 국회의원 1/4명의 지명권을 보장하고 있고, 아웅산 수찌 여사의 대통령 출마를 불허하는 조항을 가진, 한마디로 한국의 유신헌법처럼 군부의 권력을 보장하는 반인권적인 헌법이었습니다. 이후 ‘2008년 미얀마 헌법’ 개정을 위해 민변은 2013년 사전답사를 다녀왔고, 2014년 2월 한국에서 미얀마 법률가 2인을 초청하여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였으며, 2014년 7월 아시아인권팀 10명은 현지방문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 모든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내툰나잉의 헌신적인 노력과 도움이었습니다. 현지 방문 시, 누구와 만나야하는지, 어디에서 머무를지 다 조직해주었고, 미얀마 법률가 초청 시에도 내툰나잉은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2008년 미얀마 헌법’은 개정되지 않았습니다. 민변, 버마(미얀마)와 관련된 여러 활동을 함께 하며 내툰나잉과 개인적으로 가까워졌고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얀마 2번째 방문 이후 어느 자리에서 내툰나잉은 “올해(2015년)에는 미얀마에 다시 돌아가려 해. 돌아가서 NLD 선거에 도움을 주고 싶어”라고 말했습니다. 미얀마는 여전히 군부독재 정권이지만 최근 해외의 민주화투쟁 활동가에게 준법서약서를 작성하면 입국이 허락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내툰나잉은 준법서약서 작성을 거부하고 여전히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내심 놀랐지만, 만약 돌아간다면 21년만의 귀국이니 무척이나 뜻 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연인도 버마(미얀마)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고국을 그리워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그가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길 희망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그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심장질환이라고 합니다. 멍하니 아무생각이 들지 않다가 장례식장에서 그의 영정사진을 보고서야 실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척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그토록 그리던 고국에 다시 돌아가려 했던 그였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동지, 친구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 그였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장에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툰나잉에게 항상 부탁만 하였고 그는 한 번도 내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구나’, ‘항상 내가 필요할 때만 연락을 했구나’ 그에게 많이 미안하고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오늘도 우리의 이야기를 말하며 연대를 외칩니다. 1990년도와 2000년도 초, 무서우리만큼 무관심한 한국사회 속에서, 그는 자신의 나라의 민주주의를 외치며 한국의 시민사회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다행히 그 손을 붙잡았지만 붙잡은 내 손이 이기적일 때가 더 많았기에 부끄럽습니다. 어쩌면 일상의 무게에 눌려 다시 입으로만 국제연대를 외칠지도 모르지만 그가 보인 열정과 진심은 한동안 큰 울림으로 남을 것입니다. 열정과 진지, 미소와 따뜻함을 지녔던 내툰나잉을 기억하며, 먼 곳에서나마 고국과 고향,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7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팔을 걷어붙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임금피크제를 도입 하지 않으면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덤빈다. 대통령이 느닷없이 노동개혁만이 살 길이요라며 외치고, 곧이어 정부와 집권당이 똘똘 뭉쳐 노동개혁을 외친다. 그런데 노동개혁의 핵심이 임금피크제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인건비를 절약해 청년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한다. 기획재정부 장관이란 분은 올해 안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는 공공기관은 내년 임금 인상 때 불이익을 받는다고 엄포를 놓는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특정 연령이나 호봉에 도달하면 그 뒤로는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공공기관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절약하는 인건비로 신규 채용을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임금피크제만 도입하면 청년실업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호도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가령 지방공기업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독려하는 행자부 공기업과 관계자는 “정년을 연장하는 기관은 정년 연장으로 인해 줄어드는 퇴직자 수만큼 신규채용 목표를 설정해야 하며, 이미 정년이 60세 이상인 기관은 정년이 1년 남은 재직자 수만큼 신규채용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목표설정은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냉정하게 말해 정부의 태도는 정책이 아니라 마술 혹은 자기최면에 빠져 버렸다. 생각해보면 냉정한 진단에 근거한 처방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희망에 근거해 도입한 정책이 결국 원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남아있는 사례는 숱하게 많다. 식량안보를 명분으로 내걸고 시작했던 새만금사업은 지금은 세계적인 제조업 물류 관광 레저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사업이 돼 버렸다. 심지어 4대강사업은 원래 취지가 하도 바뀌어서 지금은 왜 시작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공공부문 인사제도에 대해 말한다면 성과평가제도가 딱 그런 사례가 아닐까 싶다. 개개인의 성과를 평가해 급여에 차등을 두면 공공부문 성과가 늘어날 거라며 시작했지만 그 제도 덕분에 성과가 늘어났는지는 모르겠고 조직 내 위화감과 갈등의 원천이 된건 알겠다. 임금피크제를 통한 정책효과가 정부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는 반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준 국회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장이 6월에 쓴 임금피크제 관련 보고서에서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 보고서는 “임금피크제는 마법의 열쇠가 아니다”면서 “전체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전면도입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다소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강조하는 것과 무척이나 다른 맥락이다. 특히 임금피크제가 정년연장과 맞물려 등장했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더라도 인건비 절감효과가 과연 얼마나 될지 미지수이고, 따라서 청년일자리 창출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라는 지적은 진지하게 새겨들어야 할 지적으로 보인다. 4개월 만에 손잡은 노사정 지난 8월 2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 개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위원회 4자 대표자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이들은 지난 4월 8일 협상 결렬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해당 공공기관 노조에서 임금하락을 이유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반대하는데 그걸 어떻게 설득할지도 미지수다.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정부에선 가이드라인이나 정부시책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그럴수록 현장에선 충돌만 거세진다. 거기다 정부가 자꾸 '반드시 언제까지 달성하겠다'는 방식 역시 지난해 공무원연금개혁 얘기가 나오고 나서 마감시한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기억을 떠올려보면 무척이나 식상해 보인다. 임금피크제는 2003년 신용보증기금이 처음 도입했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은 2만 2231곳(도입률 9.9%)이다. 100인 이상 사업장은 16.9% 300인 이상 사업장은 23.2%에 이른다. 반면 임금피크제 도입할 계획을 가진 사업장은 5.6%에 불과하다. 지방공기업 중에서는 광주도시공사, 송파구시설관리공단, 경기도시공사 등 세 곳뿐이다. 왜 이렇게 임금피크제 도입이 제대로 안되는지, 단순히 '노조 반발'이 아니라 뭔가 기존 제도와 상충되기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보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임금피크제를 강조하는 의도 역시 불순해 보인다. 임금피크제를 우선 도입하겠다는 대상은 주로 공공부문 정규직이다. 지금처럼 노동시장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선 그나마 처우와 급여가 좋은 편에 속하는 이른바 상층노동부문이다. 노조 조직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대중들의 질시와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들의 처우를 낮추는 개혁은 노동시장 양극화에 기대 대중의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그럼으로써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정부가 진솔하게 대답해주길 바란다(물론 그럴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겠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7 | 추천: 0
임아연/ 당진시대 취재팀장   휴가철이 지나고 있다. 7월 말부터 8월 초중순까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기에 휴가를 보낸다. 학생들 방학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작 휴가는 휴가가 아니다. 휴가철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도로는 주차장이 되기 일쑤고, 휴양지·피서지·관광지마다 사람들로 넘쳐나 쉼이 아닌 피로가 몰려온다. 휴가(休暇)라는 말이 무색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가장 덥고, 가장 추울 때 방학을 하는데, 차라리 그 시기에 학교에서 제공되는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또는 따뜻한 온풍기 아래서 공부하게 하고, 가장 나가 놀기 좋은 봄·가을에 방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봄볕과 가을볕이 완연할 땐 외려 시험 기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혹은 자주 시험을 망쳤다. 7~8월은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장 더운 때다. 게다가 비가 자주 와서 날씨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휴가 혹은 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좋지 않은 시기다. 2~3주 사이에 우리나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휴가를 보내다 보니, 한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관광지마다 ‘한 철 장사’를 하느라 물가는 폭등한다. 한국의 휴가는 여러모로 비효율적이다. 사진 출처 - 당진시대 지역에서 일을 하다 보니 휴가라는 문화가 특히 직장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산업화의 산물이라는 것이 더욱 명확하게 보인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하는 때와 쉬는 때를 크게 구분 짓지 않는다. 해가 중천에 뜨기 전 이른 아침 시간에 일하고, 뜨거운 한낮에는 반주로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낮잠을 잔다. 혹은 사회생활을 하든, 개인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해가 기울어지면 다시 밖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온다. 게다가 한창 모를 심을 때와 수확기 이외엔 비교적 한가하다. 농한기에 경로당에 모인 노인들은 윷을 놀거나 장기를 둔다. 일과 쉼은 자연의 주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뤘다. 그러나 산업화로 인해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휴식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고용주들은 근로자들의 휴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과 근로시간 단축 투쟁을 벌인 후에야, 휴가도 노동자들의 권리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산업화가 본격화된 1960년대 이후 휴가문화가 조금씩 이식되기 시작했다. 월차휴가나 연차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사용자와 동료들의 눈치를 볼 때가 많았다. 휴가자의 업무를 대체할 인력이 없고, 기존 근로자들이 업무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근로자들이 동시에, 대신 최소한의 기간 동안만 휴가를 가는 독특한 휴가문화가 만들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휴가기간은 물론 휴가지역도 한정될 수밖에 없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산업화의 산물이 여전히 이어져 내려왔다.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 여가 문화가 확대됐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행문화는 여전히 최대한 많은 곳을 ‘찍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사진을 찍고 빨리 장소를 옮겨가는 여행 아닌 관광이다. 지난해 독일을 여행하다 어느 명소에 가게 됐다. 한적한 나무 그늘 밑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전망 좋은 곳에서 오래도록 친구와 대화 나누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휴식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국인을 실은 버스와 중국인들을 실은 버스가 연이어 도착하면서 뷰포인트(일명 포토존)에서 부랴부랴 사진을 찍고 바쁘게 또 다른 곳을 향하는 모습을 봤다. 대조되는 두 장면을 한 장소에서 보면서 이제 우리에게도 노동의 가치만큼 쉼의 가치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다. 휴가조차 스트레스가 되고, 일이 되는 사회는 너무 피곤하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7 | 추천: 0
이현정/ 저지리 문화예술창고 <탐라표류기> 부대표   ‘이명박근혜’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의 나쁜 정책과 부정 권력의 연속성을 비꼬는 말이다. 역시 최근에 환경문제에서도 또 드러났다. 바로 이 정부가 내놓은 ‘산악관광 활성화 대책’ 계획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산악관광이라 쓰고, 환경파괴와 대기업 정책이라 읽는다. 이명박도 대운하가 어려워지니 그럴싸하게 포장한 4대강 사업으로 30조 원 세금도 날리고, 심각한 환경파괴를 가져왔다. 지금 이 정부가 하는 짓도 똑같다. 강으로 향했던 삽이 단지 산으로 간 것이다. 휴양시설 확충, 관광사업 확대, 일자리 창출 등 언급하는 내용이 4대강 사업 시작과 영 똑같다. 이제 그 약발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저들은 또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러니 막아야 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제주도. 이곳 또한 환경파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자들 대다수는 제주를 청정의 섬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제주 또한 크게 신음하고 있다. 국제자유도시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제주는 현재 곳곳에서 환경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한 번 들여다보자. 지금 제주도정의 최고 비전은 국제자유도시 건설이다. 그런데 이 국제자유도시가 뭐냐. 바로 사람, 상품, 자본을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다. 자본의 무서운 폐부를. 자본은 심장이 없기에 결국 단기간에 최대 수익을 내는 것에만 집중한다. 지금 제주 환경파괴의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먼저 지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제주는 국제자유도시 1차 계획을 마쳤다. 제주를 홍콩, 싱가포르처럼 금융, 자본, 물류 항구를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이후 2012년부터 2021년까지 2차 계획을 진행 중이다. 이 계획의 핵심은 외국자본 유입을 크게 확대하는 것이었다. 마치 마카오와 같이. 그러면서 랜드마크적 복합리조트를 제주 곳곳에, 특히 개발되지 않은 중산간 지역에 세우게 된다. 여기에 우근민 전 도지사는 외국인이 5억 원 이상을 제주에 투자하면 영구적 영주권까지 주는 매우 파격적인 특혜까지 제공하였다. 이른바 부동산이민투자제도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법인이 50억 원 이상 투자하면 각종 세금 감면과 국공유재산 무상사용까지 해주는 투자진흥지구제도까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희룡 도정은 버젓이 이것이 ‘제주의 환경자원을 활용한 창조경제 구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결국 중국 및 동남아 화교자본의 부동산 투기꾼들이 모였다. 이러면서 그들은 보다 큰 땅을 원했고, 보전 지역인 중산간 지역 곳곳에 분양형 콘도와 카지노를 짓고 있다. 울창한 숲이었던 이곳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무서운 것은 바로 카지노 사업이다. 기존 총 8곳의 카지노는 호텔 부대시설로 밀폐형 작은 규모였는데, 이제는 대규모 카지노를 운영하기 위해 숙박시설이 들어서는 것이다. 자본 입맛에 맞는 카지노 운영규모는 매우 커졌다. 드림타워, 신화역사공원, 이호랜드까지 카지노 설을립 준비 중이다. 결국 투자진흥의 결과가 제주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외국, 특히 중국의 투기로 이어지면서 제주도의 환경파괴는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다. 이로 인해 토지 잠식과 난개발이 커져가고 있다. 도 행정은 외국인 토지소유가 제주도의 1%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한라산 등 개발제한구역이 많기에 1% 소유는 매우 심각하다. 도 행정이 매우 기만적이다. 현재 제주도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유명한 관광지인 송악산의 경우, 화산지대라서 지반이 약해 계속 무너져가고 있는데 중국자본 휴양지 공사로 30미터를 더 파겠다고 했다. 이곳이 절대보전지역인 오름임에도 이것을 해제시키고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에 다행히 재검토에 들어가긴 했으나 안심할 것은 못 된다. 남원읍 위미지역 공동장의 경우, 중국 자본이 단기 수익을 위해 싸고 넓은 땅인 중산간 지역을 개발하였고, 분양이 되지 않아 유령 마을이 되어 환경파괴 흔적만 고스란히 남아있는 형국이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해발 500m 중산간지역에서 아덴힐리조트 개발이 한창이다. 이 사업은 오름과 산방산 등 제주 천혜의 자연환경과 경관을 훼손하고 있다는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중국 투기자본에는 어둠이 많다. 중국 관광객이 폭증했지만, 결국 제주 내에 있는 중국업체들만 살찌웠다. 도민들에게 돌아간 것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제주에서 중국인 여행객 80여 퍼센트가 이렇게 운영된다. 저가로 많이 데려온 후에 중국업체 쇼핑센터로 데려가니 경제적 낙수효과는 크지 않다. 제주도정은 일자리 창출, 경기부양 효과, 건설업 소득증대 효과를 강조하지만, 매우 비현실적이다. 일용직 증대만 늘어났고, 오히려 투자진흥지구제도로 취득세, 소득세 등 감면 혜택이 더 크다. 경기부양 효과를 언급하지만, 하와이에서 원주민들이 일본 자본에 쫓겨나듯이 주민들이 중국 자본에 밀려날 수 있다. 현재 제주에 종합개발업체가 약 800여 곳인데, 공룡처럼 많아져서 부동산 거품이 사라지면 모두 공멸할 우려도 있다. 다행인 것은 최근에 반가운 판결이 나왔다. 서귀포 예래동 유원지 건설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결국 주민 공공복리에 기초한 유원지 개발계획이 필요하다는 점.. (중략) 이미 공사 중인 유원지를 제외하고도 공사가 진척되지 않은 유원지 사업에 대해서도 공익성이 확보된 유원지 계획이 다시 이뤄져야 한다.”고 원인 무효 판결을 내렸다. 현재 한라산 바로 밑의 산록도로 위쪽으로는 처음 개발되는 애월읍 상가리 관광단지 건설에도 제동을 걸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필자는 며칠 전 저지리 동네주민들과 함께 표선읍 가시리 마을을 답사하였다. 그곳이 지난 몇 년 동안 마을사업을 어떻게 이끌어왔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 살펴보고자였다. 마을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마을이 운영할 수 있는 공동소유 토지가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주변 마을 목장들이 골프장 등 개발사업에 모두 부득이하게 팔려갔다면, 이곳 가시리는 3명의 역대 이장들이 대법원 재판까지 가면서 약 220만 평의 마을공동목장을 지켜냈다. 재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을 오름 한 곳을 파는 아픔까지 겪으면서 주민들이 마을목장을 꿋꿋이 지켜냈다. 현재 가시리 마을은 이러한 공간으로 조랑말체험공원, 유채꽃 플라자 등의 다양한 마을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쳐가고 있다. 물론 사업 수익은 고스란히 마을에 바로 들어가는 구조이다. 여기에 환경까지 지켜가면서 말이다. 반면에 박근혜 정부는 환경파괴를 시도하고, 원희룡 도정은 환경 보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산악관광이라는 거짓 포장으로 산을 파괴하려고 한다. 막아야 한다.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지리산, 한라산 등 아름다운 국립공원들이 계속 파괴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현재 제주도 환경파괴는 위에서 살펴봤듯이 더 심각한 수준이다. 원희룡 도정이 재검토를 하겠다고 하지만 대책을 내놓는 게 없다. 제주도정이 몇 가지 과제를 바로 실천해야 할 때이다. 첫째로 국제자유도시 비전을 수정해야 한다. 이는 환경파괴와 투기자본 유입만 늘어날 뿐이다. 오히려 세계환경수도로 비전을 바꿔야 한다. 둘째로 기존 투자진흥지구와 부동산투자이민제도를 없애야 한다. 셋째로 도민들에게 혜택이 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필요하다. 생태관광 확대만이 환경 보전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것이다.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 슬로건이 부끄럽지 않은 제주도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많은 것을 잃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6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초등학교 다닐 적 이맘때 여름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남해의 작은 섬에 있는 외가댁에서 며칠씩 놀다 오곤 했다. 그때를 기억하면 오가는 여객선에서 마주하는 섬, 바다, 하늘은 언제나 설레고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불러내온 기억 중의 하나는 여객선이 지나는 섬마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 아저씨다. 그분의 누런색 집배원 가죽가방에는 신문, 각종 고지서는 물론이고 아마 해안보초를 서는 군인들의 연애편지까지 담겼을 것이다. 내가 특별히 그 집배원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이 다리를 심하게 저는 장애인이셨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둘러맨 집배원 가방이 휘청거릴 정도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섬 이곳저곳을 다니는 모습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몇 달 전에 새로 이사한 사무실은 20층이 넘는 건물이다. 당연히 입주해 있는 각종 사무실도 이전 건물보다 훨씬 많다. 택배 물량도 많기 때문인지 1층 주차장에는 택배 차량의 주차와 이동을 원활하게 하려고 따로 지정 주차구역을 만들어 놨다. 승강기에서 만나는 택배 기사들의 모습은 언제나 비슷하다. 연신 땀을 훔치며 자신의 키보다 높이 쌓아올린 화물을 이동 수레에 싣고 열심히 운송장을 살피는 모습들 말이다. 얼마 전에는 한 택배 기사가 자신이 일하는 회사는 택배 업무 외에 물류작업까지 떠맡으면서 오전 6시부터 네 시간 이상의 무임금 추가노동에 힘들어한다는 사연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이런 사연 외에도 택배와 관련된 언론 기사는 과중한 노동시간, 불합리한 요금구조, 불친절 등이 주를 이룬다. 해가 갈수록 택배 물량은 늘어나는 데 비해 택배 회사의 화물처리량은 한계가 있다 보니 이를 택배 노동자들의 과다노동, 건당 택배 비용저하 등으로 대체하는 악순환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택배 화물은 하루, 적어도 이틀이면 도착한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턴가 택배 회사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비스개선이라는 명목으로 배달 속도경쟁이 붙으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책 같은 경우 오전 일찍 주문하면 오후에 받아보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된다. 이렇게 빨리 화물을 받을 수 있지만, 우체국 우편요금체계인 빠른 등기, 익일특급과 같이 빠르게 보낼수록 요금을 더 내는 일은 없다. 택배 회사에서는 좀 더 선진화된 배송시스템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택배 노동자의 고강도 노동은 애써 감추어 버린다. 언젠가 중고사이트에서 책을 주문하고 토요일이라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택배가 도착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배송조회를 해보니 배송 절차가 금요일에 멈추어 있었다. 그 택배 회사는 우체국이었는데 우체국은 토요일 배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주 5일제 노동자인 나는 그동안 타인의 주 6일제 근무를 너무나 당연히 수용하고 있었다(우정사업본부는 지난 6월 토요일 택배를 재개하겠다고 밝혔으나 노동조합에서는 1,000여 명의 인력을 감축한 상태에서 토요일 택배를 재개하는 것은 집배원 모두를 죽이는 정책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 사진 출처 - 참세상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체제는 속도를 그 기본조건으로 하는 것 같다. 인터넷, 배달음식, 교통수단, 택배에서부터 심지어 아이들의 공부까지 선행학습이란 기묘한 이름으로 속도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내가 받는 질 좋은 서비스가 누군가의 고통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서비스는 부당하다. 불의하다. 택배, 인터넷, 음식배달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열악해지는 것만큼 빨라진 서비스라면 이제 그러한 속도에 의문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빨라지는 속도만큼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이 소외되는 사회라면 그것은 위험한 속도경쟁이 아닐까? 다시 기억을 옛날로 돌려본다. 검게 그을린 얼굴의 집배원 아저씨가 외가가 있는 섬에서 내린다. 언제나처럼 휘청대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마을회관에 들른 다음 이집 저집에 들러 우편물을 전한다.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온 우편물은 옆집에다 맡기고 늦은 점심을 국수로 때우는 집에서 국수도 한 그릇 얻어먹는다. 술판이 벌어진 가게 앞에서는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며 마지막 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여객선을 기다린다. 혹시 우리가 꿈꾸는 노동의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속도가 아니고 말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6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