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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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다솜(미디어 활동가),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대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지난 6월 23일 서울에 유엔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 Office-Seoul)가 문을 열었다. 유엔인권사무소의 기원은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3월 21일, 유엔인권이사회는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침해관련 조사를 위해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DPRK)를 구성하였고, 이후 1년간의 조사활동을 통해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유엔인권이사회에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에 따라 유엔인권이사회는 2014년 3월, 결의안을 채택하며, 북한인권조사위원회 권고사항에 대한 후속조치의 조속한 이행과 현장사무소 설치를 요청하였다. 이후 유엔인권최고대표실과 한국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서울에 유엔인권사무소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유엔인권사무소는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현황 및 자료 수집, 관련 시민사회와의 참여와 협력 등 중장기적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언론을 통하여 유엔인권사무소의 개소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이 드러났다. 북한의 경우는 이 사무소 설치에 거세게 반발 하며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그리고 한국 내 일부 진보단체는 개소 즈음한 기자회견을 통해 “체제대결을 부추기고 남북관계를 파탄 내는 북한인권사무소는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사무소 설치를 통해 한반도의 갈등과 긴장이 더욱 격화돼 보다 심각한 인권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에 보수 쪽 북한인권단체들은 “유엔(북한)인권사무소의 서울 개소를 환영하며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한다”고 지지의 뜻을 밝히는 성명을 연달아 발표하였다. 그리고 일부 진보언론에서는 “이 (유엔인권)사무소가 상징성 외에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 어떤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며 “현실적으로 탈북자 인터뷰와 정리, 선전 외에는 북한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수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유엔인권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유엔인권최고대표인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여기서부터는 개인적 입장임을 전제로 이야기하면, 필자가 소속한 단체도 유엔인권메커니즘을 적극 활용하기에, 단체 내부에 유엔인권사무소 개소에 따른 입장(?)을 개인적으로 물었는데, 대부분 시큰둥하거나 입장 표명에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국제연대활동을 하는 몇 분의 활동가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했더니 단체 내부입장과 비슷하거나 부정적인 경우가 더 많았다. 아마도 인권사무소가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미지수인 상황에서의 신중한 입장이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예측도 해보지만, 솔직히 그간의 경험에 오는 여러 우려는 떨칠 수 없었다. 사실 종북프레임과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치는 한국 사회에서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고, 그 진위가 곡해될 여지가 많으며, 실제로 처벌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과 분단, 그리고 수 십 년 동안 남과 북의 정치체제를 비방하고 적대시하는 것이 상호체제 존립 근거가 된 특수한 정치적인 상황들이 존재하고, 이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인권으로만 접근하기에는 어떤 진일보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는 인식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류(?)의 논리와 해석이 틀렸다고 생각되지 않으며, 일리 있고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는 게 최선일까? 그리고 내심 ‘이러한 입장은 결과적으로 보수단체에서 주장하는 ‘북한인권에는 침묵하는’ 모습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하는 물음이 항상 존재했다. 한마디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물론 북한 인권 문제를 섣불리 이야기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 관련 여러 인권 사안이 터졌을 때 진보단체와 활동가들은 그에 상응하는 의견을 밝히고 입장을 표명한 기억이 있는가?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연평도에 포탄을 쏘았을 때, 장성택이라는 고위 관료가 공정한 재판과정 없이 자의적 처벌을 받았을 때 등 이런 주요한 순간순간에 소위 진보단체들이 적절하고, 일반 국민의 상식 수준에서의 부합하는 의견을 밝혔는지는 의문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종북프레임에 우리 스스로도 갇혀서 북한에 대한 여러 중요한 지점들에 대해 발언할 시점을 놓치고 또 이러한 모습에 역풍을 맞아 일반 국민들로부터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되지 않았나 싶다. 시민사회영역에서의 책임과 역할은 방관한 채 정치의 영역에 모든 것을 맡기려는 경향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북한에 인권문제가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여러 맥락을 잘 고려하여 현명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되 중요한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언급하고 요구해야 한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최대한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다른 국가들(이집트나 미얀마, 중국 등)에게 했던 것만큼이라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사회의 주장이 균형감을 찾고 힘이 실릴 것이다. 유엔인권사무소에도 탈북자들이 무조건 3~6개월 동안 국정원이 운영하는 기관에 감금되어 다양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현실, 국가보안법에 의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 및 기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상황에 대해 적극 어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유엔인권사무소도 한쪽으로 치우쳐진 정보로 인해 균형 잡힌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이상 북한 인권을 상대적이고 특수하게 바라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6 | 추천: 0
허창영/ 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 우리사회의 여러 난맥상을 푸는데 중요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시민성 회복’이다. 여기서의 시민성은 윤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권리의식에 기초해 책임과 참여하는 자로서의 시민의 자세를 의미한다. 시민성을 상실한 시민들의 사회는 결국 ‘복종하는 국민’들만 존재하게 되고, 역으로 국가는 더욱 굳건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런 결핍으로 인해 도전보다는 안존을, 공적 이익보다는 사적 이익에 집착하는 개인들을 양산한다고 진단한다. 우리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한 이후 시민성을 갖추도록 하는데 소홀했다는 반성에서 나온 얘기이다. 이러한 지적에서 교육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교육 역시 성장하는 세대가 시민성을 갖도록 하기 위한 일정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시민으로의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답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다시 ‘어떻게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지금 한국사회의 교육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시민으로의 성장은 읽고, 듣고, 쓰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다양한 경험과 도전, 비판과 성찰, 대화와 토론, 공간에 대한 경계 허물기와 넘나들기 등 복합적인 상호 소통과 교류로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 공간, 관계에 갇힌 한국사회의 교육은 시민으로의 성장보다는 복종하는 국민을 강요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정답을 찾는 데만 급급한 우리의 교육에서 시민으로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새로운 교육체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용적 변화’만으로는 새로운 교육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새로운 내용을 가지고 접근한다고 해도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다시 얘기하면 교육의 전환은 틀을 뒤집거나 판을 새로 짜는 사고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 속에서 얘기되고 있는 것이 바로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상상이자 시도이다. 교육을 위해서는 온 마을이, 또는 도시 전체가 교육의 공간 또는 교육자로 서야 한다는 얘기이다. 사실 ‘마을이 학교다’라는 말은 이미 상식의 언어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아직도 학교 안에 굳게 갇혀 있다. 설령 지역사회에 문을 두드린다고 해도 지역사회 역시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교육은 그저 학교 또는 교육당국의 문제로만 치부되고 있고, 마을, 지역, 도시는 외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학교 안에 갇힌 교육을 지역을 향해 열고, 도시 안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올바르게 실현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기만 하다. 이런 왜곡된 구조 속에서 아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5월 16일 열린 <2015 세계인권도시포럼> ‘도시와 어린이·청소년 회의’가 ‘도시와 교육의 만남 :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상상’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의 반영이었다. 교육을 학교 안에 가두지 말고 도시와 교육의 만남을, 마을학교 또는 마을교육공동체, 혹은 교육적 도시에 대한 꿈을 꾸어 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야콥 헥트는 위로부터 전달받아 아래로 전달하는 ‘피라미드식 교육’을 벗어나 ‘모든 학생이 선생’이라는 전제 아래 서로의 장점들이 상호 소통하는 ‘네트워크식 교육’으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학교라는 울타리는 무의미해지고 학습공동체 또는 ‘커다란 학교’로서의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기관, 교육기관, 지역사회, 시민 등의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후스토 멘데즈는 교육이 어린이청소년과 인권의 맥락에서 기획되어야 하며, 교육과 도시의 만남을 통해 자율성에 기초한 책임 있는 시민, 참여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교육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안교육은 삶을 바꾸지만, 공교육은 국가를 바꾼다.”는 기조였다. 화두는 던져졌고, 방향에 대한 공감도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막막하다. 회의에 참가했던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올해부터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이날 회의에 패널로 참석했던 광주시청 참여혁신단장 역시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포럼이 끝나고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보자는 의사도 타진해왔다. 회의에 참석했던 시민사회 역시 의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나가기로 했다. 교육과 도시가 만나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다. 학생들이 닫힌 교문을 열고 지역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도시와 마을은 이러한 학생들에게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할 과제가 남았다. 비록 지금은 막연하지만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될 일이다. 아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하고, 시민으로 살도록 하기 위한 전환의 길목에 우리는 함께 서 있다. ※ 이 글은 ‘광주교육정책연구소’의 소식지 <교육정책 공감톡톡> 2015년 7월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6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프로리그나 국가대표 축구팀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역할은 어느 정도일까? 감독 하나만 바꾸면 꼴등하던 팀도 명문구단이 될 수 있을까? 혹시 감독교체 효과라는 건 사실 감독 교체가 주는 긴장감 때문에 선수들이 더 열심히 뛰었기 때문인 것이고, 감독의 역량 자체는 둘째 문제인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12년 전에는 사스 대응 모범국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국가가 12년 만에 메르스로 국제사회 민폐국이 된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예선탈락 뒤 홍명보 감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빗발쳤다. 결국 홍명보는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차범근이나 핌 베어벡 사례에서 보듯 큰 대회에서 성적만 나쁘면 재발하는 고질병인 '이게 다 감독 때문이야' 증세가 또 도졌다. 왜 현장 책임자만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감독인 슈틸리케가 보여주는 지도력과 위기관리능력을 보면서 현장 야전사령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메르스 대응을 위해 현장에서 뛰는 정부 조직을 축구팀에 비유해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내 눈에는 20여 년 전쯤 졸전을 펼치던 브라질 팀이 보인다. 당시 브라질팀은 뛰어난 개인기와 형편없는 조직력으로 욕먹는 팀이었다. 세대교체도 안 되고 동기부여도 안됐다. 축구의 기본인 패스도 안되니 경기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하지만 감독이 바뀌고 규율을 세우자 브라질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우승후보 면모를 금세 되찾았다. 메르스에 대처하는 한국 정부 조직은 어떨까? 축구대표팀에 빗댄다면 브라질이나 스페인까진 아니어도 월드컵 16강은 거뜬한 수준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공무원도 많고, 그걸 받쳐줄 교육 시스템과 채용 시스템, 업무지원 시스템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단점도 많다. 메르스에서 드러난 전문 인력과 공공병상 문제는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예산과 정부규모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이 글 참조/ 자작나무통신-공무원 숫자가 적어서 문제다). 더 심각하고도 근본적인 건 외람되게도 ‘감독’ 문제다. 그건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부처 고위급과 대화하면서 들은 충격적인 사태분석과 맞닿아 있다. 그 분이 진단하길 “지시를 못 받으니까 일을 못한다”고 했다. 그는 “권한은 내리고 책임은 올리라고 했는데 지금 정부는 정반대”라면서 “권한이 없으니까 청와대 눈치만 보는데 정작 청와대에선 지시가 내려오질 않는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슛을 때릴 기회가 와도 감독 지시만 기다려야 하는 축구팀인 셈이다 (여기를 참조/ 자작나무통신-세월호와 용기 있는 공무원 죽이기). 안타까운 건 메르스 대응에 실패한 건 초등학교 축구팀이 아니라 국가대표팀이었다. 우리는 축구대표팀 경기에서 똑같은 선수들로 경기를 하는데도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경기력을 보이는 사례를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지시랍시고 “열심히 해! 패스해! 잘 막아!”라는 하나마나한 고함만 지르다가, 실점하고 패배하고 나서는 “선수들이 내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심 끝에 국가대표팀을 해체하겠다)!”라고 폭탄선언하는 감독 책임도 상당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17일 오후 세종시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세월호도 그렇고 메르스에서도 정부에서 가장 큰 문제는 컨트롤타워가 제구실을 못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정부에 지역 상황을 보고하는 데 각 부처마다 따로 보고서를 요구한다. 보고서 작성과 전화 보고에 몇 시간씩 매달리느라 정작 급한 일이 뒤로 밀린다”고 말했다. “유언비어 단속이 아니라 신뢰를 쌓아야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 ”는 훈수까지 나온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컨트롤타워라며 만든 국민안전처는 ‘투명인간’이 돼 버렸다. 국민안전처 한 과장은 “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구성하지 않고 법에도 없는 ‘대책지원본부’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중대본을 구성했더라도 메르스 사태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답했다. 다른 정부부처 한 과장은 이에 대해 “안전처는 중앙-지방 공조체계 구축을 위한 마땅한 수단도 없다”면서 “더 중요한건 그럴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그렇다고 정부 공무원들이 마냥 놀았느냐 하면 절대 그건 아니다. 대책본부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은 “밥은 모두 도시락으로 때우고 잠은 3시간 정도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한 고위공무원이 “현장 공무원들끼리 ‘자가격리되면 좋겠다. 집에서 잠이라도 푹 잘 수 있잖아’라고 농담하는 얘길 하는 걸 들었다”고 전했다. 비록 경기에 패배하더라도,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리뛰고 저리뛰는 현장 수들의 땀과 눈물 자체는 인정해주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9 | 추천: 0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TV조선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건 언론이 아니라 사회악이야.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조선일보를 세무조사해서 없애는 거야.” “보수 정권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그 이상으로 휘두르고 있는데 진보 정권에서는 그걸 제대로 못 했어. 진보는 권력을 좀 더 확실히 이용할 줄 알아야 해.” 최근 진보 진영 지지자임을 자처하는 지인들을 만나서 들은 얘기다. 스스로 소위 ‘깨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하는 얘기 치고는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놀라운 의견들이었다. 이들의 감정은 격해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거였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부터 시작해 세월호 사건, 정윤회 문건, 성완종 리스트, 메르스 사태까지 정부의 무능을 질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중도·진보 진영이 선거 때마다 지는 이유를 이들은 종편의 횡포, 한쪽으로 쏠린 권력구도 등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찾았다. 결국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진보도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정권이 당신들이 싫어하는 보수 정권과 도대체 다를 게 무엇이냐”고 되물었지만 이 질문은 그저 메아리로 돌아왔다.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이 한참동안 이어졌지만 결론은 없었다. 진보 진영이 민주주의를 위한 명분이나 지나친 도덕주의에 집착해 권력을 계속해서 잃느니 이것들을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은 다음에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권위주의에 대한 대안을 또 다른 권위주의에서 찾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반박은 그저 ‘교과서적인 주장’으로 치부됐다. 답답한 표정을 짓자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몇 년 전엔 너와 똑같은 얘기를 했어. 그런데 계속 그런 모범답안 같은 주장만 하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한심하고 답답하지 않아?” 최근 또 다른 지인은 <한겨레>가 쓴 성남시 비판 기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왔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즉각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성남시가 정작 지역 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자 이 사실을 11시간 동안 숨겼다는 게 주요 기사 내용이었다. 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를 이유로 보수 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지인이 제기한 불만의 요점은 이거였다. “같은 진보끼리 이렇게 별 것 아닌 일로 비판해서 보수 세력이 더욱 판을 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면 어떡하나?” 둘 사이에 저널리즘에 대한 논쟁이 한참동안 이어졌지만 역시 결론은 없었다. ‘팩트’에 입각한 기사의 중요성과 언론이 대상에 따라 이중 잣대를 들이댔을 때의 문제점을 설명했지만 그를 설득시킬 수는 없었다. 그는 끝까지 <한겨레>에 대한 서운함을 표시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이 싫어서일까. 진보세력을 싸잡아 ‘종북’으로 몰아가는 종편 채널이 꼴보기 싫어서일까. 보수는 무능하고 진보는 유능하다고 믿기 때문일까. 물론 이들을 아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오죽 답답하면 저렇게 말할까 싶다. 결국 이들은 노동자와 서민들의 고통을 보듬어주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해주며 국민을 속이지 않는 정의로운 정부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바로 그들이 원하는 ‘진보적 가치’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 절차와 정당성을 지키지 못 한 채 권력만 마음껏 휘두르는 세력이 과연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까. ‘진보 세력’의 승리를 위해 원래의 목적이었던 ‘진보적 가치’를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4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 재보선 결과에 대해 사과하려고 마이크 앞에 서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누가 한때는 합리적이었던 나의 지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130석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진보적 가치’를 뿌리내리는 데 실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이들은 아직도 ‘안티 박근혜’ 구호 뒤에 숨어 ‘사회·경제적 대안 없음’이라는 자신들의 무능력함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그럼에도 나의 지인들을 포함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느낀다. 문제는 보수가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9 | 추천: 0
임아연/ 당진시대 취재팀장   최근 당진지역의 가장 큰 이슈는 매립지 관할권을 둘러싼 평택시와의 분쟁이다. 두 지방자치단체 해상 경계에 매립한 토지를 어느 지자체에 귀속시켜야 하는지를 두고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 문제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소송을 청구한 상태다. 충청남도 당진시와 경기도 평택시는 아산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정부는 10여 년 전부터 평택·당진항을 개발하면서 이곳 아산만에 제방을 쌓고 땅을 매립해 왔다. 1990년대 말, 당시에 매립한 토지를 등록하기 위해 평택지방항만청은 평택시에 토지등록을 신청했고, 이곳은 평택시로 등록됐다. 그러나 매립지는 해상경계상 충남도계 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당진시(당시 당진군)는 이에 반발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당진시는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소송을 내고 4년여 간의 지루한 법정 싸움을 이어간 끝에 해당 매립지가 당진시 관할이라는 것을 확인받았다. 헌법재판소는 관습적으로 수백 년간 지켜온 해상경계를 확정하면서 당진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후에 매립된 토지와 제방 등은 헌재 판결에 따라 자연스럽게 당진시에 등록돼 당진시가 관할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최근 평택시는 다시 이 문제를 두고 행정자치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에 관할권 청구 심판을 요청했다. 평택시는 2009년 개정된 지방자치법을 근거로, 2009년 이후에 매립된 토지에 대해서는 행정자치부 장관의 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해당 매립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택시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접근성·연접성·행정의 효율성 등을 근거로 평택시에서 관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행정자치부는 평택시의 주장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서 판결한 매립지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평택시 관할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대해 당진시는 땅을 빼앗긴 억울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당진시대 행정자치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여러 가지 오류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몰지각과 지역이 계속해서 소외되는 수도권 중심의 정부 정책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한 국가에는 그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영해·영공이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자치단체의 행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 간 경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자치부는 이 같은 경계를 무시하고, 단지 지리적인 연접성과 접근성, 편의성 등을 근거로 해당 매립지를 평택시에서 관할해야 한다고 결정 내렸다. 이는 지방자치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곧 간척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국 곳곳이 간척과 매립을 통해 지형 자체가 상당히 변했다. 이에 따라 당진시와 평택시 간의 분쟁과 같은 갈등이 일어날 곳이 너무나도 많다. 헌법재판소가 수백 년간 이어져온 관습법상의 경계를 이미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자치부 산하의 위원회가 법리적 판단을 무시한 결정을 내린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을 훼손한 것이다. 지역민들이 수도권 중심의 정부 정책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는 것은 단지 이번 사안 때문만은 아니다. 당진시는 ‘철탑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전국에서 가장 많은 송전철탑이 세워져 있다. 그로인한 지역민들의 건강상·재산상 피해는 상당하다. 몇 해 전부터 정부에서는 당진 송악부터 아산 탕정까지 이어지는 송전선로 추가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주민들은 더 이상의 송전탑 건설은 반대한다며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5.5km 구간만이라도 지중화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한국전력은 비용 문제로 이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평택시 고덕산단에 조성될 삼성전자 반도체 단지에 필요한 전기 공급에 대해서는 38km 전 구간을 지중화(해저터널 포함)할 예정이다. 특히 이 구간 송전을 위해 변환소를 새로 짓고 발열과 전력손실이 적은 직류 방식으로 송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이처럼 일관성 없는 지역 차별적인 정부 정책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수도권 규제 완화로 기업유치가 둔화돼 경제적 피해를 크게 입고 있는 것 역시 지역이다. 시대를 역행하는 수도권,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여전히 지역의 자치단체는 정부의 법과 예산에 손발이 묶여 지역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지역민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는 송전탑이나 화력발전소, 원자력발전소 등의 환경 유해 시설들을 지역에 건설함으로써 지역을 계속해서 소비한다. 이 같은 지역의 현실을 정부가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지역과 함께 가는 정책을 펼치길 바라는 건 이 정부에 대한 너무 큰 기대일까.
2017-07-12 | hrights | 조회: 8 | 추천: 0
이현정/ 저지리 문화예술창고 <탐라표류기> 부대표   메르스 사태가 커져간다. 사람들이 크게 불안해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21세기의 풍경이 아니다. 마치 조선시대 역병 시대에 사는 듯하다. 사실 그 시대만도 못하다. 당시에는 동네에 금줄을 치고, 왕래를 막기라도 했다. 초기 대응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금도 비공개로 처리한다. 그리고는 괴담을 퍼트리는 자는 사법처리하겠다고 국민들을 협박한다. 박근혜 정부, 뭐 항상 이런 패턴이다. 세월호 사건도 결국 사고에서 사태로 키운 건 정부의 무능력과 강압통치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정치는 없다. 오로지 ‘통치’ 뿐이다. 국민들에게는 가만히 있으란다. 그리고 입법기관인 국회에도 나서지 말란다. 사법부는 정당 해산까지 시켰다. 그리고 대통령은 항상 유체이탈 화법이다. 세월호 사건 당시 7시간이나 잠적해놓고, 왜 못 구하냐고 따지기만 한다. 역시 장기 독재집권자 딸이다. 그리고 그 경험에서 나온 작품들이 있다. 바로 대통령 곁에는 공안*안보*문고리 세력들이 득실거린다. 대선 이전 ‘준비된 여성대통령’을 강조하던데, 도대체 무엇을 준비한 정권인지 알 길이 없다. 아, 그들만의 ‘영구적이고 지속가능한’ 통치를 준비한 것일지도. 메르스 사태가 커지면서 반대로 묻힌 것들이 많다. 굵직한 사건들마저 덮어준 꼴이 되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 메르스 사태가 약간 진정되면, 박근혜 정권을 살려주는 계기가 된다고. 많은 곳에서 메르스를 언급하고 있으니, 우리가 지금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살펴보자. 단상 하나. 황교안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다. 바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메르스 사태 확산 속에서 유야무야 박근혜의 임명 강행이 이어질 전망으로 보인다. 현재 국민적 관심도가 낮은 상태에서 야당도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런데 황교안 총리 임명 저지가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수상한 병역 면제, 세금 상습 체납, 지나친 개신교 보수주의, 불법 전관예우, 불법 변호사 수임료 등이 문제만이 아니다. 총리 절대 불가 이유는 바로 기춘대원군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즉 박근혜 정부 후반부는 공안 통치의 정점을 달리게 된다. 황교안은 근대현사 속에서 친일-친미-반공의 연결점인 김창룡, 노덕술, 이후락, 김기춘의 또 다른 아이콘이다. 이들이 벌렸던 일들을 봐라. 반민특위 해체, 국회 프락치 사건, 전쟁 후 시민 학살(부역자 처벌), 간첩 대량 ‘생산’, 각종 내란음모*국가보안법 처벌, 초원복집 사건, 민주 시민*학생*노동자 공안 처벌, 유신 헌법, 91년 유서 대필 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최근엔 정당 해산까지. 이런 공안 통치 역사를 이어가는 황교안이 국무총리가 되겠다고? 또 얼마나 많은 시민들과 야당 정치인들을 잡아 가두게 될까. 또 시민들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옥죌까. 그래서 우리는 황교안 총리 임명을 꼭 막아야 한다. 그들의 민주주의 법치는 국민을 향한 게 아니다. 오로지 공안 통치의 법치만을 따질뿐. 단상 둘. 박근혜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 사태와 세월호 시행령 문제이다. 국회에서 여야 절대 다수 합의로 통과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했다.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의 활동을 옥죄려는 정부 시행령과 이를 바꾸려는 야당의 문제제기와 기타 정부 시행령에 대해서 국회는 기존 통보 권한에서 수정변경 요구 권한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삼권 분립의 헌법에 위배된다며 묵살했다. 현재 청와대, 새누리당, 그리고 야당 등은 큰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총론을 다루는 국회에서 각론을 행하는 대통령 시행령과의 관계는 총론 국회법이 상위에 존재한다. 이러함에도 현 정부는 입법기관인 국회마저도 무시하는 형국이니, 힘없는 일반 시민들은 설 자리도 없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정부의 세월호 시행령은 문제가 심각하다. 결국 도둑이 도둑을 잡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무력화시키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유가족과 국민들이 진실을 밝혀달라고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라, 그리고 괴담 유포자들을 처벌하겠다고 외친다. 지금의 메르스 사태를 대하는 태도와 똑같다. 역시 진정한 반성이 없는 귀머거리 정권이다. 단상 셋. 박근혜 대선*새누리당 불법정치자금 사건이다. 이는 성완종 리스트 프레임이 아니다. 분명코 박근혜 현직 대통령과 측근들, 그리고 새누리당 지도부의 불법정치자금 사건이 본질이다. 그런데 검찰과 보수 언론은 성완종 리스트 프레임으로만 짜맞춰가고 있다. 수사과정을 보면 뻔히 보인다. 이완구, 홍준표 만이 표적이다.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끝내려고 한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잠잠하다. 결국 홍문종, 서병수, 유정복,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의 친박 핵심 6인에게는 검찰이 서면질의서와 자료제출요청서를 보낸 게 전부다. 박근혜가 아직 살아있는 권력임을 증명한다. 물론 질의 내용도 해명성 답변만 가능한 것들이 즐비하다. 더불어 6명에 대한 계좌 추적도 하지 않았다. 검찰이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한 해괴망측한 해고를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단상 넷. 우리가 또 잊지 말아야 할 단상들이 떠오른다. 헌법재판소에 이어 오늘 결국 대법원 판결로 전교조는 합법노조 지위를 잃게 되었다. 억울하게 해직 당한 조합원 9명 때문에 6만여 명의 조합원이 있는 전교조가 불법노조가 되는 현실이다. 또한 박근혜 정부 비판 전단지를 뿌린 시민들이 검찰과 강력계에 의해 잡혀가고 있다. 허위사실 유포죄도 아닌 건물침입죄 명목 하에, 그리고 강력계가 나서는 형국이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수백 만 원의 벌금과 구속 형벌을 내리고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치명적이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더 치명적인 것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독선 통치다. 그러기에 더더욱 황교안 총리 임명을 막아야 하고, 세월호 시행령을 바꿔야만 한다. 단순히 총리 임명과 세월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민주주의와 삶의 질을 높여가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고 기억하자. 또 기록하고 널리 알리자. 그리고 실천하자.
2017-07-12 | hrights | 조회: 6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오는 7월부터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다고 한다. 단순한 법의 이름만으로는 무슨 의도로 만든 법인지 짐작하기 힘든 이 법의 목적은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 법을 초안한 사람들은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이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꼴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 바로 떠오르기 때문에 이런 법을 만들었겠지만, 평범한 필부에 지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국가보안법 7조의 반국가단체의 찬양, 고무죄 만큼이나 모호하고 어렵기만 하다.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그것이 단순 교육을 통해 ‘육성’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하물며 그렇게 육성된 인성이 무려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놀랍기까지 하다. 궁금해서 인터넷 사전으로 찾아본 인성의 사전적 의미는 ①사람의 성품, ②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사고(思考)와 태도 및 행동의 특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성(人性)을 사람의 성품이라고 하던,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의 특성이라고 하던, 이 정의에 따른다면 한 사람의 인성이란 적어도 단시일 내에 규정되거나 길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는 이 법의 시행에 맞춰 이미 ‘인성평가 자가진단표’란 것을 만들어 이번 학기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성을 진단하고 있다고 한다. 그 진단 항목 중의 몇 가지를 보면 “나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태극기, 무궁화 등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질문지에 전혀 아니다’에서 ‘매우 그렇다’까지 1점에서 5점까지 학생 스스로 매겨서 나온 결과를 토대로 학생의 인성을 진단하고 지도한단다. 이러한 질문지로 개인의 인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더구나 대학입시에서 인성·적성을 반영하고 수시모집에서 ‘인성면접’을 실시하는 대학이 생긴다는 마당에 자가진단표에서 1-2점을 선택하는 모험과 장난(?)을 할 학생이 얼마나 될까? 사진 출처 - 경향신문 교육현장에 문제가 생기면 땜질식 처방이후에 시간이 흘러 사안 자체가 흐지부지 해지길 기다리는 것이 우리나라 교육 관료들의 문제해결 특징이었다. 난데없는 인성교육진흥법 실시도 연이은 학생자살사건과 어린이집의 유아 폭행사건이후 일부 보수단체와 정치권의 주장으로 현실화 되었다. OECD국가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높은 대한민국의 학생자살률과 어린이집의 유아보호에 대한 불안을 인성교육강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교육 관료와 정치권의 해법 또한 그동안 늘 해오던 임기응변식 처리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크고 작은 교육정책이 바뀔 때마다 당사자인 학생은 혼란과 부담감만 더해졌고 혜택은 오히려 교육과 관련된 시장(市場)에서 가져갔다. 당장 이 법안의 통과에 따라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해야 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사교육 업체가 ‘인성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교육부 인증을 따기 위해 경쟁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논술시험이 부활하면 논술학원이, 영어교육이 강화되면 영어학원이, 방과후 수업이 실시되면 방과후프로그램 전문기업이 돈을 버는 것과 똑같은 교육부와 사교육시장의 사이좋은 행진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하루 10시간 이상씩 공부에만 매달리는 과도한 입시경쟁체제와 그렇게 공부해도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는 불안한 미래와 사회구조 앞에 놓여 있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학생들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놔두고 사교육시장에 의존하는 껍데기뿐인 인성교육을 외치는 정치인과 교육 관료들을 지켜보는 심정은 갑갑하기만 하다. 정말로 학생들의 인성(人性)을 키우고 싶다면 타인의 아픔과 처지에 공감하는 것을 힘들게 하고, 배우고 느낀 것에 대한 실천을 가로막는 현 교육체제 전반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성찰이 진정성 있는 것이라면 현재 시행하려고 하는 ‘인성교육진흥법’과 같은 내용과 방식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인성은 그따위 교육방식으로 길러지지도 측정되지도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참된 인성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9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최근 3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 호치민, 껀터, 다낭, 호이안 도시를 다녀왔다. 민변 아시아인권팀에서는 올해 7월 말부터 6박 7일 동안 베트남 평화기행을 준비 중인데, 이를 위한 사전답사로 다녀오게 된 것이다. 5월초 한국 같으면 계절의 여왕이겠지만, 베트남은 예상대로 덥고 습했다. 거기에 계시는 현지 분들은 우기가 시작되어서 날씨가 서늘한 편이라고 하는데, 맙소사 개인적으로 베트남은 월남전, 신흥 관광지, 동남아경제 성장국 등의 이미지를 가진 국가였는데, 민변 아시아인권팀은 작년 말부터 베트남 전쟁 시 있었던 수많은 전쟁범죄, 그중에서도 한국 군인에 의한 전쟁범죄에 관심을 쏟기 시작하였고, 여러 법률적 쟁점을 연구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올해 베트남에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한국 군인에 의한 베트남양민학살 사건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소수의 언론인과 용기 있는 활동가들에 의해 한국 사회에 그 실체가 드러났고, 당시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까지 크게 반향과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악(?)한 베트콩으로부터 선(?)한 베트남정부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이미지는 그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다. 3박 5일이라는 짧은 일정동안 가야할 곳도 많고 만나야할 사람들도 많았다. 가장 먼저 방문하고 만난 곳은 전쟁증적박물관(War Remnant Museum)이었다. 그곳에는 베트남 전쟁관련 사진과 자료, 실재 전쟁 시 사용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네이팜탄 폭격으로 울부짖는 소녀사진, 베트콩 장교를 노상에서 권총으로 사살하는 사진, 미군의 미라이 학살보도 사진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 참전군인에 대한 자료도 볼 수 있었다. 그 자료속의 한국군인은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 미국의 용병으로 가혹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 자주 들었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의 무용담이 베트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떠했을까 섬뜩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을 비교해 놓은 표를 보고선 ‘왜 한국인은 베트남 전을 통해 경제성장을 했다는 것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여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한국에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박물관장인 후인 응 옥 번 님을 만나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분은 베트남 전쟁만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베트남 독립을 위한 전쟁은 19세기부터 시작되었고 당시 프랑스와의 전쟁, 그리고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미국과 연합국과의 전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전쟁, 이 오랜 기간 베트남인들이 어떻게 저항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러면서 평화를 위한 기억, 평화를 위한 노력이 현재에도 필요하다고 이야기 하며, 최근 한국 방문 시에 경험했던 베트남 고엽제피해군인들의 행사방해와 집회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쟁증적박물관에 한국인에 의한 전시를 꽤나 바랬는데, 당일 박물관에는 일본인 사진작가에 의한 특별전시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후 방문 시에는 박물관 측에서 한국 참가자들과 베트남 전쟁의 여러 피해자들과의 미팅을 주선해 준다는 제안을 해 주었다. 다음으로 껀터에 있는 인민위원회를 방문하여 베트남 여성들 중 한국인과 결혼하였다가 이혼 또는 여러 사유로 인하여 다시 베트남으로 귀환하신 분들의 현실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뤘으면 하고, 다음 일정으로 미라이(학살) 박물관에 방문하였다. 미라이 학살은 이미 언론을 통하여 많이 알려진 사건이지만 간략히 이야기하면, 1968년 3월 16일 남베트남 미라이(베트남어 손 미)지역에서 미군에 의해 민간인 347명에서 504명까지의 대량학살이 발생하였고 상당수는 여성과 아동이었으며 사건에 가담한 미군 26명 중 1인만이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건이다. 개인적으로 너무 놀랐던 것은 박물관 옆에 학살 시점의 논두렁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는데 그 발자국들에게서 당시의 긴박함과 공포, 다급함, 애처로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발자국, 그 옆의 자전거 바퀴자국, 그리고 그 뒤를 쫓고 학살 했을 군화 발자국까지... 순간 멈춰서 넋을 놓았다. 미라이(학살)박물관 옆에 보존되어 있는 마을 논두렁길 사진 출처 - 필자 마지막 일정으로 한국의 진보언론과 자료를 통해 공개된 한국군 증오비(위령비)를 찾고 피해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사전 한국에서의 자료는 한국어 또는 영어로 적혀 있고, 베트남 자료가 있다 하더라도 이해를 할 수 없어 증오비로 알려진 사진, 자료, 원문 자료를 잔뜩 들고 찾아 나섰지만 생각보다는 그 위치를 찾기 너무 어려웠다. 마치 서울 서초구 서초동까지 나와 있는 주소와 관련 사진만으로 서초동 아주 작은 마을에 깊숙이 위치한 묘비를 하나 찾아가는 식이었다. 수십 번의 질문과 시행착오 끝에 정말 운이 좋게 꾸이보마을의 위령비를 찾았고, 그 위령비 인근에 거주하시는 할아버님을 통해 퐁니마을의 위령비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령비에 적혀진 피해자들의 이름, 주소, 나이를 보았는데, 아직 이름도 짓지 못한 1살짜리 아이가 올려진 모습을 보고 다시 넋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에 쫓기듯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방문 전에 전쟁범죄라는 활자를 통해 건조하게 베트남을 접근하였고, 방문했을 때 여러 일정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여유가 없었지만, 현지에서 느꼈던 충격과 참혹함은 기존의 내 기억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한국 전쟁이라는 트라우마를 사회구성원 전체가 나눠지고 있는 한국에서 성장한 나이지만, 사실 전쟁을 자기방식대로 기억하고 파악하고 있는 내면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피해자라는 입장에 서 있다가 갑자가 가해자임이 밝혀지는 순간 그 사실을 부인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본다. 비단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법률가단체의 관점에서 베트남 전쟁을 접근하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7월 방문도 진행하겠지만, 답사를 통해 여러 문제의식과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그리고 답사기간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은 ‘잊어서는 안 되겠다. 잊지 않기 위한 방문이 되어야겠다.’는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7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노태우가 대통령이던 시절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도시생활이란 걸 처음 해봤다. 학교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갑자기 뭔가 목구멍을 콱 막아 버렸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오감은 지금도 당시 느꼈던 짧지만 강력했던 고통을 기억한다. 최루탄은 그렇게 내게 호환마마보다도 무서운 첫인상을 남겼다. 대학생이 되고 보니 최루탄이란 걸 더 가까이 자주 겪게 됐다. 자꾸 접하다 보면 무뎌진다. 전경들이 집어던지는 사과처럼 생긴 ‘사과탄’은 무경험자에겐 상당한 고통을 주지만 나중에는 던지면 던지나 보다 하는 정도로 존재감이 사라진다. 총처럼 생긴 물건으로 쏘아대던 최루탄도 직접 맞는 게 겁날 뿐 최루탄으로선 별 감흥이 없어진다. 정말 무서운 건 ‘지랄탄’이다. 이른바 페퍼포크라고 부르던 최루탄 발사 차량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하늘 높이 쏘아대는 지랄탄이 땅에 떨어지며 ‘미친X 널뛰기 하듯’ 요동을 치며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진한 연기로 뒤덮어 버리면 말 그대로 ‘죽음’ 같은 고통에 몸부림친다. 지랄탄이 가장 고통스러운 조건이 있다. 덥고 바람이 없는 날, 지랄탄은 말 그대로 살인무기나 다름없다. 안개 낀 날, 이슬비 내리는 날은 지랄탄이 흩어지질 않기 때문에 고통이 극대화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지랄탄이 고여 있는 웅덩이에 발을 좀 담그고 나면 무좀이 없어질 정도다. 지랄탄을 막기 위한 다양한 대책도 선배들한테 전수받았다. 마스크 안쪽에 화장지를 덧대는 건 기본이다. 눈 밑에 치약을 발라놓는 방법도 있다. 지랄탄이 지나가고 나면 대개 너도나도 담배를 피우며 담배연기를 눈에 불어 주는 건 지랄탄 대응으론 어떨지 몰라도 동지애를 키우는 데는 특효약이다. 군대에 입대하고 신병교육 훈련 과정 가운데 하나가 화생방 훈련이다. 방송이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눈물 콧물 흘리며 군가를 부르는 모습은 꽤나 대단한 추억꺼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솔직히 말한다면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을 할 때 많이 실망했다. 기대(?)를 충족하기에 군대 최루탄은 지랄탄보다 턱없이 약했다. 지난 4월 19일 광화문 세월호 집회 모습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최루탄에 면역이 생겨버린, ‘쫘장면 먹고 좌전거타는’ 좌경학생들을 위해 경찰이 내놓은 신상품이 있다는 걸 풍문으로 들었다. 이름하여 ‘칙칙이’. 직접 맞아보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분무기로 물 뿌리듯이 최루액을 뿌리는데, 조금 지나니 피부에 수포가 생기고 가렵고 상당히 괴로웠다. 처음엔 광주에서만 사용하는 걸로 들었던 칙칙이는 금세 전국 공통 시위진압장비가 됐다. 칙칙이로 인한 피해사례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난 어느 날 경찰에서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거짓말처럼 시위현장에서 최루탄이 사라졌다. 칙칙이도 모습을 감췄다. 물론 가끔 경찰이 최루탄을 사용했다는 논란이 일어난 적은 있었지만 꽤나 예외적인 일로 느껴졌다. 주말에 서울시내 전체가 최루탄으로 뒤덮이는 풍경은 이제 상상도 잘 안 되는 아주 오랜 얘기처럼 느껴지게 됐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발전하는 줄 알았다. 최루탄이 돌아왔다는 신호는 어쩌면 2011년 국회 본회의장이었던 것 같다. 한미FTA를 국회가 인준할 때 국회의원 한 명이 이에 항의해 본회의장 단상에 최루탄을 뿌렸다. 본회의장이 매캐한 연기로 뒤덮였다. 최루탄이 다시 세상에 등장했다. 무척이나 기괴한 장면이었다. 그즈음이었나. 시위현장에서 칙칙이를 사용하는 게 눈에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전직 국회의원 모임 헌정회가 2011년 11월 23일 김선동(민주노동당 의원)을 국회에서 추방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서에서 쓴 표현이 지금도 기억난다. “살상무기에 해당하는 최루탄을 투척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서도 방임될 수 없는 엄중한 범죄행위”란다. 그랬구나. 경찰이 수십 년간 살상무기를 썼던 거구나. 의원들은 그동안 뭘 했지? 4월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였다. 경찰은 칙칙이뿐 아니라 최루액 물대포까지 유족들에게 뿌려댔다. 호흡곤란과 구토, 현기증을 호소하는 피해가 속출했다고 한다. 최루탄이 없어질 때 세상이 발전한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하지만 세상에 자동으로 이뤄지는 진보는 없다. 그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얻은 교훈이다. 때로, 세상은 아주 더러운 방식으로 퇴화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8 | 추천: 0
허창영/ 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   세월호 참사 1주기는 참혹했다. 수많은 생명을 수장시키고 일부는 아직 시신도 찾지 못한 무능력한 국가, 그리고 그 국가가 이 지경이 되도록 가만 놔둔 또 다른 가해자인 시민들이 ‘집단기억상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발악했지만, 국가는 그마저 마구잡이로 짓밟았다. 선장이 탈출한 배에서 선원들은 앞 다퉈 빠져나갔고, 남겨진 사람들은 출구를 찾지 못했다. 수장이 자리를 비운 대한민국에서 공권력은 광기를 부렸고, 슬퍼하고 애도할 자유마저 뺏긴 시민들은 집단패닉상태다. 대한민국의 2015년 4월은 2014년 4월 세월호의 재현이다. 목소리 없는 자들이 목소리를 찾기 위해 광장을 찾았지만 거기에서 보여준 경찰의 대응은 공권력이 아닌 폭력이었다. 유족들과 만나 함께 슬퍼하고 애도하려는 시민들을 향해 경찰은 차벽과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 캡사이신, 방패로 대응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의 기본권, 아니 대한민국 헌법에 버젓이 규정되어 있는 정당한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해 국가는 불법 차벽과 폭력으로 무력화시켰다. 그래놓고 그 공권력은 말한다. “끝까지 추적해 전원 처벌할” 것이라고. 경찰의 대응은 이미 법의 테두리를 벗어났다. 공권력이라고 해서 언제든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여야만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고 결정한 차벽을 법적 근거도 없이 둘러쳤고, 시위대를 토끼 몰듯이 유인했다. 시위대는 헌법이 보장한 정당한 권리를 광장의 시민으로서 행사했을 뿐이다. 공권력이 이미 불법을 자행했고, 중무장한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맞서 그깟 몸싸움 좀 했다고, 물병 몇 개, 혹은 돌멩이 몇 개 던졌다고 폭력 운운하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다. 학생인권이 강조된 이후 교권침해 문제가 단골로 등장한다. 학생인권 때문에 교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주장도 말이 되지 않지만, 더 황당한 주장도 간혹 나온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이나 지도에 대해 합리적 근거 없이 거부하거나 반항하는 것은 교권침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학생이 수업시간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교사가 학생의 뺨을 때렸고 화가 난 학생이 ‘왜 그러느냐?’며 대들었다고 치자, 이 학생의 행위는 교권침해일까? 학생이 혹시 규정을 위반했다고 해도 이를 지도하는 내용과 방식은 역시 규정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정당하다. 그렇지 않고 부당한 방식으로 학생을 지도했으면서 이에 대한 저항이나 일부 불손한 반응을 교권침해라고 하는 것은 낯간지러운 얘기다. 부당한 지도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경찰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세월호 참사 범국민 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물대포와 최루액을 쏘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지금 경찰의 모습이 딱 이 모양이다. 경찰장비 사용기준 12조 1항에는 “최루액 발사는 1m 이상 먼 거리에서 해야 하고 얼굴에 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13조 3항에는 “물대포를 사람에게 직접 직선으로 쏘면 안 된다”고 명시했다. 헌법재판소는 “경찰차벽으로 시위를 가리고 시민들을 통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세월호 1주기 집회현장에서 경찰은 이를 적나라하게 위반했다. 이날 보여준 경찰의 모습은 그저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였을 뿐이다. 그리고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였으므로 그 자체가 폭력과 광기일 뿐이다. 그런데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에게 법치 운운하며 ‘폭력시위’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폭력에는 눈 감은 채 대항하는 폭력만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고민이 생긴다. 부당한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도 과연 폭력이라고 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어떤 종류의 폭력에도 반대한다는 논리는 어쩌면 부당한 폭력, 진짜 나쁜 폭력을 물타기하는 것일지 모른다. 다시 말하면 모든 폭력은 나쁘다는 말은 오히려 지배집단의 폭력을 상대적으로 희석하는 억압의 언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체가 또 다른 폭력인 셈이다. 간디로 대변되는 비폭력 평화주의가 갖는 주장은 분명 의미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또는 권력의 부당한 폭력, 정당성을 결여한 폭력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등장하는 폭력까지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에 ‘폭력은 안 된다’고 강요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반폭력’ 또는 ‘대항폭력’ 개념이 여기에서 출발한다. 물론 그렇다고 폭력이 갖는 위험성조차 묵인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폭력은 상대적인 것이니 결국 모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물리적인 힘을 행사했다고 해서 모두 폭력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1주기 집회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행위는 폭력이 아니다.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가진 공권력의 무차별적 폭력에 대항하는 일종의 자기방어이자 저항이었다. 맨몸으로 부딪히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발악이었다. 이를 두고 폭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정당한 공권력이라면 광장에 선 유족과 시위대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6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