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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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다솜(미디어 활동가),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대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얼마 전 대표적인 인터넷언론사에서 기획한 모금행사에 약간의 돈을 보냈다. 기획의도도 좋고 기획기사의 주인공도 평소 알고 지내던 지역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모금기획이 종료되고 난 후 그 언론사로부터 문자 한통을 받았다. 모금에 참여한 사람들의 성의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자기네 언론사 대표의 특별강연에 무려 ‘무료’로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전에도 이런 내용의 문자가 심심찮게 올 때마다 그냥 넘겼지만 그날따라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대전사는 사람에게 서울에서 하는 강연행사에 무료로 초대한다는 발상이 약간은 웃기고 또 얼마간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울 사는 독자들은 지하철비용 2~3천 원에 다녀올 수 있는 무료 강연이지만 지방에 사는 독자들은 왕복 KTX기준으로 5만 원 이상의 비용과 적어도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 되는 행사를 어떻게 무료 초대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인터넷언론사인 만큼 스마트폰에서도 이 언론사의 기사를 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지방에 사는 독자로서의 소외감이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여성, 여행 등으로 자세히 분류 되어있는 기사 카테고리에 지역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의 기사를 읽어 보려면 PC로 접속하거나 스마트폰에서는 PC버전으로 들어가서 다시 깨알 같이 작은 글씨의 지역 면을 그야말로 조심스럽게 터치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다. 큰 카테고리에 ‘스타’를 배치하고 그 아래에 다양한 연예계 기사 카테고리를 배치한 것에 비하면, 스마트폰에서 접하는 이 언론사의 ‘지방’에 대한 정책은 차라리 거의 없음에 가깝게 느껴진다. 몇 달 전 모 신문에서 충남과 세종시를 담당했던 기자가 부서이동으로 인해 서울 본사로 떠났다. 지역 시민사회의 크고 작은 현장에 대해 훌륭한 기사를 썼던 기자인지라 지역 사람들의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난 사람이 있으니 곧 든 사람이 있을 줄 알았지만 6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그 자리에 신입이나 경력기자가 새로 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더구나 그 신문사는 그 기간에 정기 신입기자 채용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충남, 충북, 대전, 세종, 강원이 한 면에 실리는 그 신문의 지역 면에서 이제 충남과 세종의 기사, 특히 예전과 같은 현장밀착형 기사는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다. 신문사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에게 기자 충원 소식을 물어봤지만 몇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당장은 힘들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그 신문사의 사회부나, 정치부, 혹은 다른 부서에도 이렇게 기자 한 명이 비면 그냥 그대로 오랜 시간 내버려 두는지 궁금하다. 충남과 세종 담당 기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언론사의 사업방식을 지켜보는 지역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심정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까지 느껴진다. 앞서 얘기한 인터넷언론사와 나중에 언급한 신문사는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언론사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언론사도 그렇지만 서울권역에서 활동하는 진보적인 시민단체에서도 느끼는 답답함 중의 하나는 지역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이다. 사실상 서울 언론사, 서울 시민단체인데도 중앙언론사로 자칭하거나, 단체명에 서울이라는 지역명을 아예 붙이지 않아 마치 전국구 단체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변방이 없는 중앙이 있을 수는 없다. 변방이 있어야만 중앙이 인식되고 중앙의 존재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중앙’언론사가 되고 싶다면 변방에 신경 쓰고 투자하길 바란다. 그것이 올바른 진보이고 진정한 중앙언론사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버겁고 힘들다면 아예 ‘서울언론사’로 거듭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정론직필하는 제대로 된 언론사가 드물어서 그렇지 지역 언론사는 솔직히 차고 넘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3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그를 처음 만난 건 2007년 10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당시 민변을 포함한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버마(미얀마) 시위대에 대한 버마군부의 무차별 총격 및 유혈 강제진압에 대한 국제연대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고, 그 곳에서 버마(미얀마)의 참혹한 실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버마(미얀마)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내툰나잉(Nay Tun Naing)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NLD(아웅산 수찌 여사가 이끌던 미얀마 야당)지부 소속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버마(미얀마) 인권상황에 무지한 나를 포함한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진지하고 열정적 자세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고, 한국 시민단체들과 버마(미얀마) 단체들 간 연대체 결성 및 공동대응에 함께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와의 첫 번째 만남이자 연대활동이었습니다. 그는 난민입니다. 1990년 미얀마 총선 때 아웅산 수찌 여사의 NLD 활동을 했던 그는 1994년 미얀마에서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하였고, 이후 미등록(불법?)체류자격으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조국 미얀마의 민주화 투쟁을 위해 2001년 한국 정부에 난민신청을 하였고, 2003년에 어렵게 난민지위를 획득하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난민인정에 인색하기 그지없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버마(미얀마)인이 최초로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하여 난민인정이 된 것입니다. 이 일로 당시 민변 회원들과 인연을 맺었던 그는 나중에서야 “그때가 민변과의 첫 번째 인연이었고, 너무 고마웠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후 그는 고국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에 소위 ‘올인’을 하였습니다. 버마(미얀마) 민중들의 절박한 투쟁에도 버마(미얀마)는 여전히 군부 독재 지배하에 있습니다. 버마(미얀마)의 민주화를 원했던 한국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버마 상황에 의해 일회일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내툰나잉을 포함한 버마(미얀마)출신 활동가들은 매주 한국 주재 버마(미얀마)대사관 앞에서는 시위를 개최하는 등 고국의 민주화를 위한 끊임없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그들과 때때로 함께 하였으나 여전히 자신들의 상황에 묻혀 다른 나라의 인권문제는 뒤로 밀렸습니다. 하지만 버마(미얀마)에서 나쁜 소식이 있거나, 한국에서 미얀마 관련 행사가 있거나 캠페인을 할 때면, 나를 포함한 국제연대 활동가는 항상 내툰나잉을 찾았습니다. 그는 매번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성심성의껏 응답을 해 주었고, 한번쯤 귀찮은 내색을 보일만도 했지만 그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일을 본 적이 없었고, 그 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2007년 1월 2일 진행된 1차 Free Burma Campaign에 함께했던 내툰나잉(Nay Tun Naing)씨의 모습 2013년 민변 내에 아시아인권을 위한 내부 팀이 만들어지고 처음으로 연락한 사람이 내툰나잉이었습니다. “법률가 단체인 민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라는 내 질문에 그는 ‘2008년 미얀마 헌법’에 대한 활동을 제안하였습니다. ‘2008년 미얀마 헌법’은 군부에게 지방의회와 국회의원 1/4명의 지명권을 보장하고 있고, 아웅산 수찌 여사의 대통령 출마를 불허하는 조항을 가진, 한마디로 한국의 유신헌법처럼 군부의 권력을 보장하는 반인권적인 헌법이었습니다. 이후 ‘2008년 미얀마 헌법’ 개정을 위해 민변은 2013년 사전답사를 다녀왔고, 2014년 2월 한국에서 미얀마 법률가 2인을 초청하여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였으며, 2014년 7월 아시아인권팀 10명은 현지방문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 모든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내툰나잉의 헌신적인 노력과 도움이었습니다. 현지 방문 시, 누구와 만나야하는지, 어디에서 머무를지 다 조직해주었고, 미얀마 법률가 초청 시에도 내툰나잉은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2008년 미얀마 헌법’은 개정되지 않았습니다. 민변, 버마(미얀마)와 관련된 여러 활동을 함께 하며 내툰나잉과 개인적으로 가까워졌고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얀마 2번째 방문 이후 어느 자리에서 내툰나잉은 “올해(2015년)에는 미얀마에 다시 돌아가려 해. 돌아가서 NLD 선거에 도움을 주고 싶어”라고 말했습니다. 미얀마는 여전히 군부독재 정권이지만 최근 해외의 민주화투쟁 활동가에게 준법서약서를 작성하면 입국이 허락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내툰나잉은 준법서약서 작성을 거부하고 여전히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내심 놀랐지만, 만약 돌아간다면 21년만의 귀국이니 무척이나 뜻 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연인도 버마(미얀마)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얼마나 고국을 그리워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그가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길 희망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그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심장질환이라고 합니다. 멍하니 아무생각이 들지 않다가 장례식장에서 그의 영정사진을 보고서야 실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척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그토록 그리던 고국에 다시 돌아가려 했던 그였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 동지, 친구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 그였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장례식장에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툰나잉에게 항상 부탁만 하였고 그는 한 번도 내 부탁을 거절한 적이 없었구나’, ‘항상 내가 필요할 때만 연락을 했구나’ 그에게 많이 미안하고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오늘도 우리의 이야기를 말하며 연대를 외칩니다. 1990년도와 2000년도 초, 무서우리만큼 무관심한 한국사회 속에서, 그는 자신의 나라의 민주주의를 외치며 한국의 시민사회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다행히 그 손을 붙잡았지만 붙잡은 내 손이 이기적일 때가 더 많았기에 부끄럽습니다. 어쩌면 일상의 무게에 눌려 다시 입으로만 국제연대를 외칠지도 모르지만 그가 보인 열정과 진심은 한동안 큰 울림으로 남을 것입니다. 열정과 진지, 미소와 따뜻함을 지녔던 내툰나잉을 기억하며, 먼 곳에서나마 고국과 고향,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팔을 걷어붙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임금피크제를 도입 하지 않으면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덤빈다. 대통령이 느닷없이 노동개혁만이 살 길이요라며 외치고, 곧이어 정부와 집권당이 똘똘 뭉쳐 노동개혁을 외친다. 그런데 노동개혁의 핵심이 임금피크제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인건비를 절약해 청년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한다. 기획재정부 장관이란 분은 올해 안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는 공공기관은 내년 임금 인상 때 불이익을 받는다고 엄포를 놓는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특정 연령이나 호봉에 도달하면 그 뒤로는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공공기관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절약하는 인건비로 신규 채용을 확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임금피크제만 도입하면 청년실업 문제가 다 해결될 것처럼 호도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가령 지방공기업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독려하는 행자부 공기업과 관계자는 “정년을 연장하는 기관은 정년 연장으로 인해 줄어드는 퇴직자 수만큼 신규채용 목표를 설정해야 하며, 이미 정년이 60세 이상인 기관은 정년이 1년 남은 재직자 수만큼 신규채용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목표설정은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 냉정하게 말해 정부의 태도는 정책이 아니라 마술 혹은 자기최면에 빠져 버렸다. 생각해보면 냉정한 진단에 근거한 처방이 아니라 자기가 믿고 싶은 희망에 근거해 도입한 정책이 결국 원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남아있는 사례는 숱하게 많다. 식량안보를 명분으로 내걸고 시작했던 새만금사업은 지금은 세계적인 제조업 물류 관광 레저 중심도시를 지향하는 사업이 돼 버렸다. 심지어 4대강사업은 원래 취지가 하도 바뀌어서 지금은 왜 시작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공공부문 인사제도에 대해 말한다면 성과평가제도가 딱 그런 사례가 아닐까 싶다. 개개인의 성과를 평가해 급여에 차등을 두면 공공부문 성과가 늘어날 거라며 시작했지만 그 제도 덕분에 성과가 늘어났는지는 모르겠고 조직 내 위화감과 갈등의 원천이 된건 알겠다. 임금피크제를 통한 정책효과가 정부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는 반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준 국회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장이 6월에 쓴 임금피크제 관련 보고서에서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 보고서는 “임금피크제는 마법의 열쇠가 아니다”면서 “전체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전면도입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다소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강조하는 것과 무척이나 다른 맥락이다. 특히 임금피크제가 정년연장과 맞물려 등장했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더라도 인건비 절감효과가 과연 얼마나 될지 미지수이고, 따라서 청년일자리 창출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미지수라는 지적은 진지하게 새겨들어야 할 지적으로 보인다. 4개월 만에 손잡은 노사정 지난 8월 2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 개혁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위원회 4자 대표자회의가 열리기에 앞서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동만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이들은 지난 4월 8일 협상 결렬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해당 공공기관 노조에서 임금하락을 이유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반대하는데 그걸 어떻게 설득할지도 미지수다.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정부에선 가이드라인이나 정부시책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그럴수록 현장에선 충돌만 거세진다. 거기다 정부가 자꾸 '반드시 언제까지 달성하겠다'는 방식 역시 지난해 공무원연금개혁 얘기가 나오고 나서 마감시한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기억을 떠올려보면 무척이나 식상해 보인다. 임금피크제는 2003년 신용보증기금이 처음 도입했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은 2만 2231곳(도입률 9.9%)이다. 100인 이상 사업장은 16.9% 300인 이상 사업장은 23.2%에 이른다. 반면 임금피크제 도입할 계획을 가진 사업장은 5.6%에 불과하다. 지방공기업 중에서는 광주도시공사, 송파구시설관리공단, 경기도시공사 등 세 곳뿐이다. 왜 이렇게 임금피크제 도입이 제대로 안되는지, 단순히 '노조 반발'이 아니라 뭔가 기존 제도와 상충되기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보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임금피크제를 강조하는 의도 역시 불순해 보인다. 임금피크제를 우선 도입하겠다는 대상은 주로 공공부문 정규직이다. 지금처럼 노동시장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선 그나마 처우와 급여가 좋은 편에 속하는 이른바 상층노동부문이다. 노조 조직률도 상대적으로 높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대중들의 질시와 부러움의 대상이다. 이들의 처우를 낮추는 개혁은 노동시장 양극화에 기대 대중의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그럼으로써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정부가 진솔하게 대답해주길 바란다(물론 그럴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겠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4 | 추천: 0
임아연/ 당진시대 취재팀장   휴가철이 지나고 있다. 7월 말부터 8월 초중순까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기에 휴가를 보낸다. 학생들 방학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작 휴가는 휴가가 아니다. 휴가철에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도로는 주차장이 되기 일쑤고, 휴양지·피서지·관광지마다 사람들로 넘쳐나 쉼이 아닌 피로가 몰려온다. 휴가(休暇)라는 말이 무색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가장 덥고, 가장 추울 때 방학을 하는데, 차라리 그 시기에 학교에서 제공되는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또는 따뜻한 온풍기 아래서 공부하게 하고, 가장 나가 놀기 좋은 봄·가을에 방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봄볕과 가을볕이 완연할 땐 외려 시험 기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혹은 자주 시험을 망쳤다. 7~8월은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장 더운 때다. 게다가 비가 자주 와서 날씨를 가늠하기도 어렵다. 휴가 혹은 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좋지 않은 시기다. 2~3주 사이에 우리나라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휴가를 보내다 보니, 한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관광지마다 ‘한 철 장사’를 하느라 물가는 폭등한다. 한국의 휴가는 여러모로 비효율적이다. 사진 출처 - 당진시대 지역에서 일을 하다 보니 휴가라는 문화가 특히 직장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산업화의 산물이라는 것이 더욱 명확하게 보인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일하는 때와 쉬는 때를 크게 구분 짓지 않는다. 해가 중천에 뜨기 전 이른 아침 시간에 일하고, 뜨거운 한낮에는 반주로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낮잠을 잔다. 혹은 사회생활을 하든, 개인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해가 기울어지면 다시 밖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어두워지면 집에 들어온다. 게다가 한창 모를 심을 때와 수확기 이외엔 비교적 한가하다. 농한기에 경로당에 모인 노인들은 윷을 놀거나 장기를 둔다. 일과 쉼은 자연의 주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뤘다. 그러나 산업화로 인해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휴식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고용주들은 근로자들의 휴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과 근로시간 단축 투쟁을 벌인 후에야, 휴가도 노동자들의 권리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도 산업화가 본격화된 1960년대 이후 휴가문화가 조금씩 이식되기 시작했다. 월차휴가나 연차휴가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사용자와 동료들의 눈치를 볼 때가 많았다. 휴가자의 업무를 대체할 인력이 없고, 기존 근로자들이 업무를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근로자들이 동시에, 대신 최소한의 기간 동안만 휴가를 가는 독특한 휴가문화가 만들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휴가기간은 물론 휴가지역도 한정될 수밖에 없어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로운 휴가를 보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산업화의 산물이 여전히 이어져 내려왔다.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 여가 문화가 확대됐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행문화는 여전히 최대한 많은 곳을 ‘찍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사진을 찍고 빨리 장소를 옮겨가는 여행 아닌 관광이다. 지난해 독일을 여행하다 어느 명소에 가게 됐다. 한적한 나무 그늘 밑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전망 좋은 곳에서 오래도록 친구와 대화 나누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휴식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국인을 실은 버스와 중국인들을 실은 버스가 연이어 도착하면서 뷰포인트(일명 포토존)에서 부랴부랴 사진을 찍고 바쁘게 또 다른 곳을 향하는 모습을 봤다. 대조되는 두 장면을 한 장소에서 보면서 이제 우리에게도 노동의 가치만큼 쉼의 가치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다. 휴가조차 스트레스가 되고, 일이 되는 사회는 너무 피곤하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5 | 추천: 0
이현정/ 저지리 문화예술창고 <탐라표류기> 부대표   ‘이명박근혜’라는 표현이 자주 쓰인다. 이명박과 박근혜 대통령의 나쁜 정책과 부정 권력의 연속성을 비꼬는 말이다. 역시 최근에 환경문제에서도 또 드러났다. 바로 이 정부가 내놓은 ‘산악관광 활성화 대책’ 계획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산악관광이라 쓰고, 환경파괴와 대기업 정책이라 읽는다. 이명박도 대운하가 어려워지니 그럴싸하게 포장한 4대강 사업으로 30조 원 세금도 날리고, 심각한 환경파괴를 가져왔다. 지금 이 정부가 하는 짓도 똑같다. 강으로 향했던 삽이 단지 산으로 간 것이다. 휴양시설 확충, 관광사업 확대, 일자리 창출 등 언급하는 내용이 4대강 사업 시작과 영 똑같다. 이제 그 약발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저들은 또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러니 막아야 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제주도. 이곳 또한 환경파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독자들 대다수는 제주를 청정의 섬으로 인식할 것이다. 그러나 제주 또한 크게 신음하고 있다. 국제자유도시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제주는 현재 곳곳에서 환경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한 번 들여다보자. 지금 제주도정의 최고 비전은 국제자유도시 건설이다. 그런데 이 국제자유도시가 뭐냐. 바로 사람, 상품, 자본을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다. 자본의 무서운 폐부를. 자본은 심장이 없기에 결국 단기간에 최대 수익을 내는 것에만 집중한다. 지금 제주 환경파괴의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먼저 지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제주는 국제자유도시 1차 계획을 마쳤다. 제주를 홍콩, 싱가포르처럼 금융, 자본, 물류 항구를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이후 2012년부터 2021년까지 2차 계획을 진행 중이다. 이 계획의 핵심은 외국자본 유입을 크게 확대하는 것이었다. 마치 마카오와 같이. 그러면서 랜드마크적 복합리조트를 제주 곳곳에, 특히 개발되지 않은 중산간 지역에 세우게 된다. 여기에 우근민 전 도지사는 외국인이 5억 원 이상을 제주에 투자하면 영구적 영주권까지 주는 매우 파격적인 특혜까지 제공하였다. 이른바 부동산이민투자제도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법인이 50억 원 이상 투자하면 각종 세금 감면과 국공유재산 무상사용까지 해주는 투자진흥지구제도까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희룡 도정은 버젓이 이것이 ‘제주의 환경자원을 활용한 창조경제 구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결국 중국 및 동남아 화교자본의 부동산 투기꾼들이 모였다. 이러면서 그들은 보다 큰 땅을 원했고, 보전 지역인 중산간 지역 곳곳에 분양형 콘도와 카지노를 짓고 있다. 울창한 숲이었던 이곳이 파괴되어가고 있다. 무서운 것은 바로 카지노 사업이다. 기존 총 8곳의 카지노는 호텔 부대시설로 밀폐형 작은 규모였는데, 이제는 대규모 카지노를 운영하기 위해 숙박시설이 들어서는 것이다. 자본 입맛에 맞는 카지노 운영규모는 매우 커졌다. 드림타워, 신화역사공원, 이호랜드까지 카지노 설을립 준비 중이다. 결국 투자진흥의 결과가 제주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외국, 특히 중국의 투기로 이어지면서 제주도의 환경파괴는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다. 이로 인해 토지 잠식과 난개발이 커져가고 있다. 도 행정은 외국인 토지소유가 제주도의 1%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한라산 등 개발제한구역이 많기에 1% 소유는 매우 심각하다. 도 행정이 매우 기만적이다. 현재 제주도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 유명한 관광지인 송악산의 경우, 화산지대라서 지반이 약해 계속 무너져가고 있는데 중국자본 휴양지 공사로 30미터를 더 파겠다고 했다. 이곳이 절대보전지역인 오름임에도 이것을 해제시키고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에 다행히 재검토에 들어가긴 했으나 안심할 것은 못 된다. 남원읍 위미지역 공동장의 경우, 중국 자본이 단기 수익을 위해 싸고 넓은 땅인 중산간 지역을 개발하였고, 분양이 되지 않아 유령 마을이 되어 환경파괴 흔적만 고스란히 남아있는 형국이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해발 500m 중산간지역에서 아덴힐리조트 개발이 한창이다. 이 사업은 오름과 산방산 등 제주 천혜의 자연환경과 경관을 훼손하고 있다는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중국 투기자본에는 어둠이 많다. 중국 관광객이 폭증했지만, 결국 제주 내에 있는 중국업체들만 살찌웠다. 도민들에게 돌아간 것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제주에서 중국인 여행객 80여 퍼센트가 이렇게 운영된다. 저가로 많이 데려온 후에 중국업체 쇼핑센터로 데려가니 경제적 낙수효과는 크지 않다. 제주도정은 일자리 창출, 경기부양 효과, 건설업 소득증대 효과를 강조하지만, 매우 비현실적이다. 일용직 증대만 늘어났고, 오히려 투자진흥지구제도로 취득세, 소득세 등 감면 혜택이 더 크다. 경기부양 효과를 언급하지만, 하와이에서 원주민들이 일본 자본에 쫓겨나듯이 주민들이 중국 자본에 밀려날 수 있다. 현재 제주에 종합개발업체가 약 800여 곳인데, 공룡처럼 많아져서 부동산 거품이 사라지면 모두 공멸할 우려도 있다. 다행인 것은 최근에 반가운 판결이 나왔다. 서귀포 예래동 유원지 건설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결국 주민 공공복리에 기초한 유원지 개발계획이 필요하다는 점.. (중략) 이미 공사 중인 유원지를 제외하고도 공사가 진척되지 않은 유원지 사업에 대해서도 공익성이 확보된 유원지 계획이 다시 이뤄져야 한다.”고 원인 무효 판결을 내렸다. 현재 한라산 바로 밑의 산록도로 위쪽으로는 처음 개발되는 애월읍 상가리 관광단지 건설에도 제동을 걸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되었다. 필자는 며칠 전 저지리 동네주민들과 함께 표선읍 가시리 마을을 답사하였다. 그곳이 지난 몇 년 동안 마을사업을 어떻게 이끌어왔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 살펴보고자였다. 마을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마을이 운영할 수 있는 공동소유 토지가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주변 마을 목장들이 골프장 등 개발사업에 모두 부득이하게 팔려갔다면, 이곳 가시리는 3명의 역대 이장들이 대법원 재판까지 가면서 약 220만 평의 마을공동목장을 지켜냈다. 재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을 오름 한 곳을 파는 아픔까지 겪으면서 주민들이 마을목장을 꿋꿋이 지켜냈다. 현재 가시리 마을은 이러한 공간으로 조랑말체험공원, 유채꽃 플라자 등의 다양한 마을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쳐가고 있다. 물론 사업 수익은 고스란히 마을에 바로 들어가는 구조이다. 여기에 환경까지 지켜가면서 말이다. 반면에 박근혜 정부는 환경파괴를 시도하고, 원희룡 도정은 환경 보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산악관광이라는 거짓 포장으로 산을 파괴하려고 한다. 막아야 한다.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지리산, 한라산 등 아름다운 국립공원들이 계속 파괴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현재 제주도 환경파괴는 위에서 살펴봤듯이 더 심각한 수준이다. 원희룡 도정이 재검토를 하겠다고 하지만 대책을 내놓는 게 없다. 제주도정이 몇 가지 과제를 바로 실천해야 할 때이다. 첫째로 국제자유도시 비전을 수정해야 한다. 이는 환경파괴와 투기자본 유입만 늘어날 뿐이다. 오히려 세계환경수도로 비전을 바꿔야 한다. 둘째로 기존 투자진흥지구와 부동산투자이민제도를 없애야 한다. 셋째로 도민들에게 혜택이 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필요하다. 생태관광 확대만이 환경 보전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것이다.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 슬로건이 부끄럽지 않은 제주도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많은 것을 잃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한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2 | 추천: 0
이상재/ 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초등학교 다닐 적 이맘때 여름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남해의 작은 섬에 있는 외가댁에서 며칠씩 놀다 오곤 했다. 그때를 기억하면 오가는 여객선에서 마주하는 섬, 바다, 하늘은 언제나 설레고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불러내온 기억 중의 하나는 여객선이 지나는 섬마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 아저씨다. 그분의 누런색 집배원 가죽가방에는 신문, 각종 고지서는 물론이고 아마 해안보초를 서는 군인들의 연애편지까지 담겼을 것이다. 내가 특별히 그 집배원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이 다리를 심하게 저는 장애인이셨기 때문이다. 한쪽으로 둘러맨 집배원 가방이 휘청거릴 정도로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섬 이곳저곳을 다니는 모습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몇 달 전에 새로 이사한 사무실은 20층이 넘는 건물이다. 당연히 입주해 있는 각종 사무실도 이전 건물보다 훨씬 많다. 택배 물량도 많기 때문인지 1층 주차장에는 택배 차량의 주차와 이동을 원활하게 하려고 따로 지정 주차구역을 만들어 놨다. 승강기에서 만나는 택배 기사들의 모습은 언제나 비슷하다. 연신 땀을 훔치며 자신의 키보다 높이 쌓아올린 화물을 이동 수레에 싣고 열심히 운송장을 살피는 모습들 말이다. 얼마 전에는 한 택배 기사가 자신이 일하는 회사는 택배 업무 외에 물류작업까지 떠맡으면서 오전 6시부터 네 시간 이상의 무임금 추가노동에 힘들어한다는 사연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이런 사연 외에도 택배와 관련된 언론 기사는 과중한 노동시간, 불합리한 요금구조, 불친절 등이 주를 이룬다. 해가 갈수록 택배 물량은 늘어나는 데 비해 택배 회사의 화물처리량은 한계가 있다 보니 이를 택배 노동자들의 과다노동, 건당 택배 비용저하 등으로 대체하는 악순환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택배 화물은 하루, 적어도 이틀이면 도착한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턴가 택배 회사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비스개선이라는 명목으로 배달 속도경쟁이 붙으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책 같은 경우 오전 일찍 주문하면 오후에 받아보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된다. 이렇게 빨리 화물을 받을 수 있지만, 우체국 우편요금체계인 빠른 등기, 익일특급과 같이 빠르게 보낼수록 요금을 더 내는 일은 없다. 택배 회사에서는 좀 더 선진화된 배송시스템 때문에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택배 노동자의 고강도 노동은 애써 감추어 버린다. 언젠가 중고사이트에서 책을 주문하고 토요일이라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택배가 도착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배송조회를 해보니 배송 절차가 금요일에 멈추어 있었다. 그 택배 회사는 우체국이었는데 우체국은 토요일 배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주 5일제 노동자인 나는 그동안 타인의 주 6일제 근무를 너무나 당연히 수용하고 있었다(우정사업본부는 지난 6월 토요일 택배를 재개하겠다고 밝혔으나 노동조합에서는 1,000여 명의 인력을 감축한 상태에서 토요일 택배를 재개하는 것은 집배원 모두를 죽이는 정책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 사진 출처 - 참세상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체제는 속도를 그 기본조건으로 하는 것 같다. 인터넷, 배달음식, 교통수단, 택배에서부터 심지어 아이들의 공부까지 선행학습이란 기묘한 이름으로 속도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내가 받는 질 좋은 서비스가 누군가의 고통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 서비스는 부당하다. 불의하다. 택배, 인터넷, 음식배달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열악해지는 것만큼 빨라진 서비스라면 이제 그러한 속도에 의문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빨라지는 속도만큼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이 소외되는 사회라면 그것은 위험한 속도경쟁이 아닐까? 다시 기억을 옛날로 돌려본다. 검게 그을린 얼굴의 집배원 아저씨가 외가가 있는 섬에서 내린다. 언제나처럼 휘청대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마을회관에 들른 다음 이집 저집에 들러 우편물을 전한다.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온 우편물은 옆집에다 맡기고 늦은 점심을 국수로 때우는 집에서 국수도 한 그릇 얻어먹는다. 술판이 벌어진 가게 앞에서는 막걸리 한 잔을 걸치며 마지막 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여객선을 기다린다. 혹시 우리가 꿈꾸는 노동의 모습이 이런 것은 아니었는지 묻게 된다. 속도가 아니고 말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54 | 추천: 0
이동화/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   지난 6월 23일 서울에 유엔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 Office-Seoul)가 문을 열었다. 유엔인권사무소의 기원은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3월 21일, 유엔인권이사회는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침해관련 조사를 위해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mmission of Inquiry on human rights in DPRK)를 구성하였고, 이후 1년간의 조사활동을 통해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유엔인권이사회에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에 따라 유엔인권이사회는 2014년 3월, 결의안을 채택하며, 북한인권조사위원회 권고사항에 대한 후속조치의 조속한 이행과 현장사무소 설치를 요청하였다. 이후 유엔인권최고대표실과 한국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서울에 유엔인권사무소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유엔인권사무소는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현황 및 자료 수집, 관련 시민사회와의 참여와 협력 등 중장기적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언론을 통하여 유엔인권사무소의 개소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이 드러났다. 북한의 경우는 이 사무소 설치에 거세게 반발 하며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그리고 한국 내 일부 진보단체는 개소 즈음한 기자회견을 통해 “체제대결을 부추기고 남북관계를 파탄 내는 북한인권사무소는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사무소 설치를 통해 한반도의 갈등과 긴장이 더욱 격화돼 보다 심각한 인권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에 보수 쪽 북한인권단체들은 “유엔(북한)인권사무소의 서울 개소를 환영하며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한다”고 지지의 뜻을 밝히는 성명을 연달아 발표하였다. 그리고 일부 진보언론에서는 “이 (유엔인권)사무소가 상징성 외에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 어떤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며 “현실적으로 탈북자 인터뷰와 정리, 선전 외에는 북한 인권상황 개선을 위한 수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유엔인권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유엔인권최고대표인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출처 - 민중의소리 여기서부터는 개인적 입장임을 전제로 이야기하면, 필자가 소속한 단체도 유엔인권메커니즘을 적극 활용하기에, 단체 내부에 유엔인권사무소 개소에 따른 입장(?)을 개인적으로 물었는데, 대부분 시큰둥하거나 입장 표명에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국제연대활동을 하는 몇 분의 활동가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했더니 단체 내부입장과 비슷하거나 부정적인 경우가 더 많았다. 아마도 인권사무소가 실질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미지수인 상황에서의 신중한 입장이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예측도 해보지만, 솔직히 그간의 경험에 오는 여러 우려는 떨칠 수 없었다. 사실 종북프레임과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치는 한국 사회에서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고, 그 진위가 곡해될 여지가 많으며, 실제로 처벌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과 분단, 그리고 수 십 년 동안 남과 북의 정치체제를 비방하고 적대시하는 것이 상호체제 존립 근거가 된 특수한 정치적인 상황들이 존재하고, 이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인권으로만 접근하기에는 어떤 진일보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는 인식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류(?)의 논리와 해석이 틀렸다고 생각되지 않으며, 일리 있고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는 게 최선일까? 그리고 내심 ‘이러한 입장은 결과적으로 보수단체에서 주장하는 ‘북한인권에는 침묵하는’ 모습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하는 물음이 항상 존재했다. 한마디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물론 북한 인권 문제를 섣불리 이야기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 관련 여러 인권 사안이 터졌을 때 진보단체와 활동가들은 그에 상응하는 의견을 밝히고 입장을 표명한 기억이 있는가?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연평도에 포탄을 쏘았을 때, 장성택이라는 고위 관료가 공정한 재판과정 없이 자의적 처벌을 받았을 때 등 이런 주요한 순간순간에 소위 진보단체들이 적절하고, 일반 국민의 상식 수준에서의 부합하는 의견을 밝혔는지는 의문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종북프레임에 우리 스스로도 갇혀서 북한에 대한 여러 중요한 지점들에 대해 발언할 시점을 놓치고 또 이러한 모습에 역풍을 맞아 일반 국민들로부터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되지 않았나 싶다. 시민사회영역에서의 책임과 역할은 방관한 채 정치의 영역에 모든 것을 맡기려는 경향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북한에 인권문제가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여러 맥락을 잘 고려하여 현명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되 중요한 인권침해 사례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언급하고 요구해야 한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최대한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다른 국가들(이집트나 미얀마, 중국 등)에게 했던 것만큼이라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사회의 주장이 균형감을 찾고 힘이 실릴 것이다. 유엔인권사무소에도 탈북자들이 무조건 3~6개월 동안 국정원이 운영하는 기관에 감금되어 다양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현실, 국가보안법에 의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 및 기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상황에 대해 적극 어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유엔인권사무소도 한쪽으로 치우쳐진 정보로 인해 균형 잡힌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이상 북한 인권을 상대적이고 특수하게 바라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8 | 추천: 0
허창영/ 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 우리사회의 여러 난맥상을 푸는데 중요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시민성 회복’이다. 여기서의 시민성은 윤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권리의식에 기초해 책임과 참여하는 자로서의 시민의 자세를 의미한다. 시민성을 상실한 시민들의 사회는 결국 ‘복종하는 국민’들만 존재하게 되고, 역으로 국가는 더욱 굳건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이런 결핍으로 인해 도전보다는 안존을, 공적 이익보다는 사적 이익에 집착하는 개인들을 양산한다고 진단한다. 우리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한 이후 시민성을 갖추도록 하는데 소홀했다는 반성에서 나온 얘기이다. 이러한 지적에서 교육 또한 예외일 수 없다. 교육 역시 성장하는 세대가 시민성을 갖도록 하기 위한 일정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궁극적으로는 ‘시민으로의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답에는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다시 ‘어떻게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할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지금 한국사회의 교육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시민으로의 성장은 읽고, 듣고, 쓰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다양한 경험과 도전, 비판과 성찰, 대화와 토론, 공간에 대한 경계 허물기와 넘나들기 등 복합적인 상호 소통과 교류로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 공간, 관계에 갇힌 한국사회의 교육은 시민으로의 성장보다는 복종하는 국민을 강요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정답을 찾는 데만 급급한 우리의 교육에서 시민으로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새로운 교육체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용적 변화’만으로는 새로운 교육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새로운 내용을 가지고 접근한다고 해도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다시 얘기하면 교육의 전환은 틀을 뒤집거나 판을 새로 짜는 사고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 속에서 얘기되고 있는 것이 바로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상상이자 시도이다. 교육을 위해서는 온 마을이, 또는 도시 전체가 교육의 공간 또는 교육자로 서야 한다는 얘기이다. 사실 ‘마을이 학교다’라는 말은 이미 상식의 언어이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아직도 학교 안에 굳게 갇혀 있다. 설령 지역사회에 문을 두드린다고 해도 지역사회 역시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교육은 그저 학교 또는 교육당국의 문제로만 치부되고 있고, 마을, 지역, 도시는 외면하고 있는 형국이다. 학교 안에 갇힌 교육을 지역을 향해 열고, 도시 안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올바르게 실현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기만 하다. 이런 왜곡된 구조 속에서 아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5월 16일 열린 <2015 세계인권도시포럼> ‘도시와 어린이·청소년 회의’가 ‘도시와 교육의 만남 :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상상’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의 반영이었다. 교육을 학교 안에 가두지 말고 도시와 교육의 만남을, 마을학교 또는 마을교육공동체, 혹은 교육적 도시에 대한 꿈을 꾸어 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야콥 헥트는 위로부터 전달받아 아래로 전달하는 ‘피라미드식 교육’을 벗어나 ‘모든 학생이 선생’이라는 전제 아래 서로의 장점들이 상호 소통하는 ‘네트워크식 교육’으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학교라는 울타리는 무의미해지고 학습공동체 또는 ‘커다란 학교’로서의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기관, 교육기관, 지역사회, 시민 등의 네트워크가 촘촘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후스토 멘데즈는 교육이 어린이청소년과 인권의 맥락에서 기획되어야 하며, 교육과 도시의 만남을 통해 자율성에 기초한 책임 있는 시민, 참여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교육이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대안교육은 삶을 바꾸지만, 공교육은 국가를 바꾼다.”는 기조였다. 화두는 던져졌고, 방향에 대한 공감도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막막하다. 회의에 참가했던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올해부터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이날 회의에 패널로 참석했던 광주시청 참여혁신단장 역시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포럼이 끝나고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보자는 의사도 타진해왔다. 회의에 참석했던 시민사회 역시 의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나가기로 했다. 교육과 도시가 만나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다. 학생들이 닫힌 교문을 열고 지역으로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도시와 마을은 이러한 학생들에게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할 과제가 남았다. 비록 지금은 막연하지만 차근차근 풀어나가면 될 일이다. 아이들이 시민으로 성장하고, 시민으로 살도록 하기 위한 전환의 길목에 우리는 함께 서 있다. ※ 이 글은 ‘광주교육정책연구소’의 소식지 <교육정책 공감톡톡> 2015년 7월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3 | 추천: 0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 프로리그나 국가대표 축구팀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역할은 어느 정도일까? 감독 하나만 바꾸면 꼴등하던 팀도 명문구단이 될 수 있을까? 혹시 감독교체 효과라는 건 사실 감독 교체가 주는 긴장감 때문에 선수들이 더 열심히 뛰었기 때문인 것이고, 감독의 역량 자체는 둘째 문제인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12년 전에는 사스 대응 모범국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국가가 12년 만에 메르스로 국제사회 민폐국이 된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예선탈락 뒤 홍명보 감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빗발쳤다. 결국 홍명보는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차범근이나 핌 베어벡 사례에서 보듯 큰 대회에서 성적만 나쁘면 재발하는 고질병인 '이게 다 감독 때문이야' 증세가 또 도졌다. 왜 현장 책임자만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감독인 슈틸리케가 보여주는 지도력과 위기관리능력을 보면서 현장 야전사령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메르스 대응을 위해 현장에서 뛰는 정부 조직을 축구팀에 비유해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내 눈에는 20여 년 전쯤 졸전을 펼치던 브라질 팀이 보인다. 당시 브라질팀은 뛰어난 개인기와 형편없는 조직력으로 욕먹는 팀이었다. 세대교체도 안 되고 동기부여도 안됐다. 축구의 기본인 패스도 안되니 경기가 제대로 될 턱이 없다. 하지만 감독이 바뀌고 규율을 세우자 브라질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우승후보 면모를 금세 되찾았다. 메르스에 대처하는 한국 정부 조직은 어떨까? 축구대표팀에 빗댄다면 브라질이나 스페인까진 아니어도 월드컵 16강은 거뜬한 수준이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공무원도 많고, 그걸 받쳐줄 교육 시스템과 채용 시스템, 업무지원 시스템도 두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단점도 많다. 메르스에서 드러난 전문 인력과 공공병상 문제는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예산과 정부규모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점을 잘 드러낸다(이 글 참조/ 자작나무통신-공무원 숫자가 적어서 문제다). 더 심각하고도 근본적인 건 외람되게도 ‘감독’ 문제다. 그건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부처 고위급과 대화하면서 들은 충격적인 사태분석과 맞닿아 있다. 그 분이 진단하길 “지시를 못 받으니까 일을 못한다”고 했다. 그는 “권한은 내리고 책임은 올리라고 했는데 지금 정부는 정반대”라면서 “권한이 없으니까 청와대 눈치만 보는데 정작 청와대에선 지시가 내려오질 않는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슛을 때릴 기회가 와도 감독 지시만 기다려야 하는 축구팀인 셈이다 (여기를 참조/ 자작나무통신-세월호와 용기 있는 공무원 죽이기). 안타까운 건 메르스 대응에 실패한 건 초등학교 축구팀이 아니라 국가대표팀이었다. 우리는 축구대표팀 경기에서 똑같은 선수들로 경기를 하는데도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천차만별인 경기력을 보이는 사례를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지시랍시고 “열심히 해! 패스해! 잘 막아!”라는 하나마나한 고함만 지르다가, 실점하고 패배하고 나서는 “선수들이 내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심 끝에 국가대표팀을 해체하겠다)!”라고 폭탄선언하는 감독 책임도 상당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월 17일 오후 세종시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사진 출처 - 서울신문 세월호도 그렇고 메르스에서도 정부에서 가장 큰 문제는 컨트롤타워가 제구실을 못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 증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정부에 지역 상황을 보고하는 데 각 부처마다 따로 보고서를 요구한다. 보고서 작성과 전화 보고에 몇 시간씩 매달리느라 정작 급한 일이 뒤로 밀린다”고 말했다. “유언비어 단속이 아니라 신뢰를 쌓아야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 ”는 훈수까지 나온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컨트롤타워라며 만든 국민안전처는 ‘투명인간’이 돼 버렸다. 국민안전처 한 과장은 “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구성하지 않고 법에도 없는 ‘대책지원본부’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중대본을 구성했더라도 메르스 사태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답했다. 다른 정부부처 한 과장은 이에 대해 “안전처는 중앙-지방 공조체계 구축을 위한 마땅한 수단도 없다”면서 “더 중요한건 그럴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그렇다고 정부 공무원들이 마냥 놀았느냐 하면 절대 그건 아니다. 대책본부에서 일하는 한 공무원은 “밥은 모두 도시락으로 때우고 잠은 3시간 정도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한 고위공무원이 “현장 공무원들끼리 ‘자가격리되면 좋겠다. 집에서 잠이라도 푹 잘 수 있잖아’라고 농담하는 얘길 하는 걸 들었다”고 전했다. 비록 경기에 패배하더라도,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리뛰고 저리뛰는 현장 수들의 땀과 눈물 자체는 인정해주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35 | 추천: 0
송채경화/ 한겨레21 기자 “TV조선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그건 언론이 아니라 사회악이야.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게 조선일보를 세무조사해서 없애는 거야.” “보수 정권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그 이상으로 휘두르고 있는데 진보 정권에서는 그걸 제대로 못 했어. 진보는 권력을 좀 더 확실히 이용할 줄 알아야 해.” 최근 진보 진영 지지자임을 자처하는 지인들을 만나서 들은 얘기다. 스스로 소위 ‘깨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하는 얘기 치고는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놀라운 의견들이었다. 이들의 감정은 격해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거였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부터 시작해 세월호 사건, 정윤회 문건, 성완종 리스트, 메르스 사태까지 정부의 무능을 질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중도·진보 진영이 선거 때마다 지는 이유를 이들은 종편의 횡포, 한쪽으로 쏠린 권력구도 등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찾았다. 결국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진보도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정권이 당신들이 싫어하는 보수 정권과 도대체 다를 게 무엇이냐”고 되물었지만 이 질문은 그저 메아리로 돌아왔다.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이 한참동안 이어졌지만 결론은 없었다. 진보 진영이 민주주의를 위한 명분이나 지나친 도덕주의에 집착해 권력을 계속해서 잃느니 이것들을 어느 정도 포기하더라도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고, 그래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은 다음에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권위주의에 대한 대안을 또 다른 권위주의에서 찾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반박은 그저 ‘교과서적인 주장’으로 치부됐다. 답답한 표정을 짓자 상대방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몇 년 전엔 너와 똑같은 얘기를 했어. 그런데 계속 그런 모범답안 같은 주장만 하기엔 지금 상황이 너무 한심하고 답답하지 않아?” 최근 또 다른 지인은 <한겨레>가 쓴 성남시 비판 기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해왔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즉각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성남시가 정작 지역 내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자 이 사실을 11시간 동안 숨겼다는 게 주요 기사 내용이었다. 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인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를 이유로 보수 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지인이 제기한 불만의 요점은 이거였다. “같은 진보끼리 이렇게 별 것 아닌 일로 비판해서 보수 세력이 더욱 판을 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하면 어떡하나?” 둘 사이에 저널리즘에 대한 논쟁이 한참동안 이어졌지만 역시 결론은 없었다. ‘팩트’에 입각한 기사의 중요성과 언론이 대상에 따라 이중 잣대를 들이댔을 때의 문제점을 설명했지만 그를 설득시킬 수는 없었다. 그는 끝까지 <한겨레>에 대한 서운함을 표시했다.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진보 세력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이 싫어서일까. 진보세력을 싸잡아 ‘종북’으로 몰아가는 종편 채널이 꼴보기 싫어서일까. 보수는 무능하고 진보는 유능하다고 믿기 때문일까. 물론 이들을 아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오죽 답답하면 저렇게 말할까 싶다. 결국 이들은 노동자와 서민들의 고통을 보듬어주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해주며 국민을 속이지 않는 정의로운 정부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바로 그들이 원하는 ‘진보적 가치’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 절차와 정당성을 지키지 못 한 채 권력만 마음껏 휘두르는 세력이 과연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까. ‘진보 세력’의 승리를 위해 원래의 목적이었던 ‘진보적 가치’를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4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 재보선 결과에 대해 사과하려고 마이크 앞에 서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누가 한때는 합리적이었던 나의 지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130석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진보적 가치’를 뿌리내리는 데 실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이들은 아직도 ‘안티 박근혜’ 구호 뒤에 숨어 ‘사회·경제적 대안 없음’이라는 자신들의 무능력함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그럼에도 나의 지인들을 포함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느낀다. 문제는 보수가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2017-07-12 | hrights | 조회: 41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