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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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신종환(공무원), 윤요왕(재)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장), 이동화(아디 활동가), 이승은(경찰관), 이원영(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정한별(사회복지사) 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홍세화 / 직장인  기록적인 장마와 우려하던 태풍이 지나간 요즘,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 몸을 감싸는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완연한 가을이 다가옴을 알려주고, 2022년을 마무리해야 하는 때도 머지않았음을 함께 상기시킨다. 시간의 흐름이 야속한 것은 당연지사지만, 이번엔 약간 불안하기까지 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서울에서 현재 내가 머무는 전셋집의 계약이 내년 1월에 만료되기 때문. 연장할 수야 있겠지만,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운 시대에 집주인께서 전세금 인상 얘기를 꺼내시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새로운 집을 알아봐야 하나, 이 가격에 이만한 조건의 집은 이제 찾기도 어려울 텐데... 전세자금 대출은 같은 조건으로 계속 지원받을 수 있을까, 월세를 알아봐야 하나...’ 와 같은 걱정들이 머릿속을 맴돌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음은 조급해져만 갔다.  얼마 전, 현 정권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던 종합부동산세 기준 완화가 발표된 것을 보고 조금 들여다보았다. 자세한 내용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단 하나. ‘종부세 내는 사람들 부럽다.’였다. 적어도 그들은 당장 살 집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하는 사람들은 아닐 텐데, 그 와중에 세제 개편으로 인해 부를 더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니 그저 부럽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순간, 이러한 나의 모습에 흠칫 놀랐다. 예전 농촌에 살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적어도 ‘빈익빈 부익부를 가속하는 세제개편이다!’와 같은 비판적인 사고로 현 사안을 바라봤을 텐데, 이제는 그런 모습이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현재 나의 초라한 처지와 대비되는 듯한 그들의 삶을 부러워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나를 무력하게 만든 걸 보고는 당장의 삶을 살아나가는 데 급급해질 뿐이었다. 이대로 사고하고 사유하는 능력이 마비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까지 생각하게 됐다.  일전에도 밝힌 적 있지만 지금 서울에서 내가 사는 집은 반지하이다. 8월의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침수피해로 인명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정부는 주거목적용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발표한 적 있다. 그때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서울에서의 다음 거처는 어디로, 어떻게 구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서울에 집이 없는 지방 출신 대학 동기들도 저마다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양질의 일자리 대부분이 서울에 있다 보니 어떻게든 서울에 머물려고 하지만 나날이 치솟는 임대료에 다들 근심이 가득했다. 방 한 칸, 햇빛 한 줌에 임대료가 껑충 뛰어오르니 삶의 질은 잠시 뒤로 미루고 나처럼 반지하나, 매우 비좁은 원룸에서 사는 친구들도 꽤 많았다.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75명으로 인구절벽 가속화가 점차 심화하는 상황 속에서, 마지막 희망은 1990년대생들이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막상 이러한 이야기를 접하는 90년대생들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건국 이래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고 불리는 우리와 같은 세대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둘 셋씩 낳으며 가정을 꾸리는 상상을 감히 할 수나 있을까? 라는 생각인 것이다. 인터넷상에서도 이러한 기사를 두고 ‘둥지 없는 새들이 어디에 알을 낳을 수 있느냐’와 같은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괴산에 있는 나의 본가에는 엄마 아빠께서 어딘가에 구해오신 새집들이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처음 새집을 둘 때만 하더라도 과연 새들이 올까 생각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제비, 곤줄박이 등과 같은 새들이 찾아와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낳아 기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현재의 청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마련해준다면 그 이후엔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는 것까지의 과정이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2022-09-28 | hrights | 조회: 297 | 추천: 2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총장  아버지는 20년이 넘는 연남동 회사 택시 운전사이다. 벌이가 좋은 야간 운행도 못 하는 70대 고령이시다. 손님 호출을 받는 각종 앱을 쓰기는 하지만 초기화라도 되면 주변 젊은 기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필자는 아버지로부터 그 흔한 카카오톡 한 줄도 받은 적이 없다. 당연히 기본 PC 사용은 아예 근처에 오지도 않으신다. 그런데 젊은 기사님들이 우리 아버지를 노조 위원장으로 선출할 만큼 부러워하고 존중한다. 회사 새 차가 나오면 제일 빨리 받는 사람이기에 구성원들의 부러움을 받으시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회사에서 수동 변속기로 택시 운행이 가능한 유일한 분이셔서 존경을 받으신다. 수동 변속기 자동차는 자동 변속기 자동차에 비해 잔고장이 적고 연비도 좋고 가격조차 착하다는 장점이 있다. 요즘 아버지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주로 하는 유튜브의 세계에는 입문하셨으나 줌이나 메타버스는 여전히 생경하시다. 그리고 변속기가 필요 없는 자율주행 전기 자동차 시대가 되면 지금처럼 주변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두려움이 크시다. 2030년쯤이면 내연 기관 생산이 전면 중단되니 수동 변속기가 달린 차도 멸종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희귀한 기술과 경험도 사라지고 타인의 부러움과 존경도 사그라질 것이다. 전기차가 내연 기관차만큼 싸지거나 아버지께서 회사를 떠나시면, 하루하루 바쁘게 변화하는 새 문물을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필요할 때 손쉽게 그 사용법을 익히거나 배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균적인 사람들에 비하여 지적 발달이 느리거나 신체의 운용이 어려운 사람들을 이른바 장애인이라 일컫는다. 그들의 발달의 문제가 그들의 장애 때문인가? 사회와 기술이 인간의 발달과 상관없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발달하기 때문인가?  이제 우리는 평균 수명이 백 세를 넘어가는 사회에 직면했으니 이 세상의 모든 비장애인은 반드시 장애를 경험하고 장애인의 삶을 누려보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인구 소멸 시대에 접어들었으니 비장애인 인구수는 줄겠으나 장애인 인구는 상대적으로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고, 모든 비장애인 가구에서 장애를 가진 가족을 만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지금처럼 장애와 장애인에 대하여 존중과 인권을 필수적으로 교육하고 구체화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불안해지고 서로를 혐오하는 게 일상인 삶을 살지도 모른다. 타인의 소수성을 공격하고 차별하여 나의 그림자로 삼지 않으면 내가 먼저 쬘 수 있는 햇빛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번져갈지 모르는 것이다.  이른바 장애인 시민권 확보를 위한 이동권 투쟁에서 유례없이 정치권에서 터져 나온 장애인 관련 ‘민폐이론’ 이나 그로 말미암아 촉발된 지하철 대중들의 장애인 당사자의 공격은 단순한 혐오나 차별을 넘어 혐오 범죄, 증오 범죄로 확산할 여지를 충분히 보여 주고 있다. 이는 그간의 인권교육의 한계를 보여 준 동시에 희망을 보여 준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간의 장애인에 대한 인권을 ‘배려와 사랑’이나 ‘이해나 인식 개선’이란 이름을 붙여 도덕 교육과 사회 교육 시간에 교육한 것이 과연 어떤 효과가 있었는가? 지금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장애인 인권교육을 통해서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중간에 장애인 가지는 것이, 내 손자녀가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이 가치 있고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학생들에게 만들어 주고 있는가?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장애인과 한마을에서 이웃과 친구로서 살아야 하고 장애인의 삶의 경험이 비장애인들이 누리고 있는 삶의 경험과 별반 차이가 없도록 우리 사회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정말 그렇다면 왜 학교에서는 아니 왜 유독 장애인 인권에만 사랑과 배려 이해 인식 개선이란 말 따위를 붙이는가? 그런 감정과 개인의 가치관을 투영하는 말들과 표현들 장애인 인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 실천의 책임과 검증을 은폐할 뿐이다.  학교에서 장애인 인권 교육을 진행했으면 학교 교장이 특수학급을 유치하는 실천을 해야 하며 담임이 보다 다양한 중증 장애인 학생을 위한 통합 교육을 하려고 서로 담임을 맡으려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비장애인 학생들이 어렵고 힘들어도 장애인 학생과 같은 반, 같은 학교 학생으로서 같이 공부하려는 모습으로 누구나 특수교육이 필요하면 특수학급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학교 현장의 인권교육이 이런 구체적인 실천을 위하여 구성원들에게 충분한 연습과 훈련을 하게 하고 있는가? 세상에 어느 학교도 장애인 학생을 배려해서 입학을 시키거나 담임을 맡지 않는다.  우리가 장애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불안해하며 장애인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이유가 이런 변화와 방향을 개인의 책임과 문제로 돌리도록 ‘선택 압력’을 받기 때문은 아닌가? 이 왜곡된 ‘선택 압력’을 줄여서 안전과 안정을 확보하고 각 개인 고유의 경험과 기술을 실시간 바뀌는 기술과 환경에 서로 연결하여 상호 간의 존경과 존중을 만드는 것이 바로 ‘교육’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  과거 누군가의 삶을 고리타분한 꼰대가 아니라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레트로’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 ‘평생 교육’ 일 것이다. 우리가 장애인의 삶과 문제를 지역사회와 함께 공유하는 이유는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알 수 없는 사회 변화와 발전의 ‘선택 압력’으로부터 각 개인들을 상호 보호하는 사회 보험이자, 공동체의 신뢰이기 때문이다. 이에 평생 교육도 장애인과 같은 다양한 사람들과 소수자들이 다 함께 어울려 소통하면서 각자가 존경과 존중을 받을 만한 필요한 교육을, 공공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순식간에 변하는 사회와 기술에 같이 가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어느 누가 한순간에 어느 위치에서 어느 관계에서 소수자로 되어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란 말도 소수자란 존재도 시의적절한 지원을 제대로 잘하기 위한 분류일 뿐이다. 아버지에게도 메타버스를 즐겁게 배울 수 있는 평생 교육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수동 변속기 운전 방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것을 가르칠 수 있는 평생 교육도 역시 중요하다. 자동 변속기의 개발과 확산이 소아마비를 가진 장애인 때문에 촉발되었고 발달장애인을 위해 초기 개발되었던 운영체계가 윈도우 개발의 계기가 되었으며 스마트폰 영상 통화의 발명이 수어를 쓰는 농아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처럼, 평생 교육은 우월한 사람들이 모자란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삶들을 존경과 존중으로 연결하고 소통하기 위함이다. 전기나 인터넷을 어떤 사람을 선택해서 공급하거나 따로 주거나 하면 차별이라고 하듯이 어떤 교육 기관이나 교육 전문가 담당자들이 장애를 이유로 어떤 사람을 선택하지 않거나 따로 대우한다면 차별이자 사회적 보험 사기이며 우리 공동의 인프라를 스스로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 언론들은 특히 장애인 문제에 대하여 가족들에게 온정주의가 가득하다. 감동과 극복의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장애인의 출생과 양육까지 온통 혈연 가족들의 책임으로 세뇌하니, 세뇌된 책임은 가족의, 부모의 권리로 착각한다. 과연 이런 세뇌로부터 학교는 자유로운가? 장애인의 죽음도 다른 사람과 동등하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적어도 학교라면, 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학교를 결석하고 수술을 자행하는 부모에게 그것은 아동 학대, 장애인 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자가 교육도 학교에서 배우는 또래문화도 중요하다고 말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수업시간에 장애가 차이이자 다양성이라고 가르쳐봐야 그게 설득이 되겠는가?  아무리 국가지원이 늘어도 같은 아동과 당사자의 살해사건에 장애가 있든 없든 동등하게 포함하지 않으면 절대 이런 사건은 줄지 않을 것이다. 인권이 이런 억울한 차별에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이제 학교 교육도 ‘장애인을 죽이지 마라, 부끄러워하지 말라, 우리가 함께 하겠다’고 실천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2022-09-22 | hrights | 조회: 268 | 추천: 3
정한별/ 사회복지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최근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 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수백 명의 사람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 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드라마는 이상하리만치 인기가 많았다. 여기저기서 드라마 속의 ‘우영우’ 캐릭터가 사랑스럽다느니, 귀엽다느니, 자폐성 장애를 알게 되었다느니... 그런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다. ‘우영우 신드롬’이라는 이야기까지 들려오니, 뒤늦게 드라마를 본 나도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우영우라는 변호사가 다양한 사건을 변호하고,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자폐가 있는 딸을 혼자서 기른 아빠, 우영우와 학창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친구, 있는 그대로의 우영우를 사랑하는 같은 로펌의 송무팀 직원, 우영우를 이해하고 챙겨주는 봄날의 햇살 같은 직장동료, 편견을 걷어내고 우영우의 능력을 본 직장상사까지. 드라마는 제목을 잘 못 지었다. 정작 이상한 것은 ‘우영우’가 아니라, ‘우영우’ 주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폐성 장애는 매우 독특한 장애 유형이다.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장애의 정의는 일반적으로 「장애인복지법」을 따른다. 이 법에 정의된 자폐성 장애인은 “소아기 자폐증, 비전형적 자폐증에 따른 언어·신체표현·자기조절·사회적응 기능 및 능력의 장애로 인하여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의미한다.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정의 규정처럼 자폐성 장애로 인한 모습 역시 매우 다양하다. 적어도 현실에서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운영 우’와 비슷한 자폐성 장애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 옆집의 자폐성 장애인  은미(가명)씨는 자신의 아이를 외딴 섬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아이가 가진 장애를 먼저 알렸고, 새 학기가 되면 같은 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파티를 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교우관계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지만, 아이는 그런대로 학교에 잘 다녔다.  그러나,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하자 괴롭힘은 시작되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이해의 대상이었던 자폐가, 중학교에선 놀림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엄마가 지켜줄 수 없는 사회, 낯선 사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자폐를 가진 아이가 당당히 살 수 있도록 십 수년간 지속했던 노력들이 손에 쥔 모래처럼 빠져 나가버렸다. 아이를 지켜줄 거라 생각했던 학교 역시 학교의 안위만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자폐성장애가 있음에도 교내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역량이 있다고 인정되었던 아이는, 그 어떤 말도 믿을 수 없는 그저 자폐성 장애인이 되었다. 아이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다.  형진(가명)씨의 손끝엔 굳은살이 많이 있었다. 손등과 팔, 그리고 다리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많았다. 불안할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고, 손과 팔다리를 긁어대는 통에,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가 생겨나곤 했다. 형진씨는 세탁기를 잘 돌렸다. 집에 돌아오면, 세탁기에 자신이 입었던 옷을 모두 넣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일을 좋아했다.  그는 사람을 쳐다보고, 맨살을 쓰다듬는 일 자체를 좋아했다. 처음 나와 만난 날에도, 갑자기 내 손목을 쓰다듬고는 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초등학생 여자아이의 다리에 아주 잠깐 손을 댔다(만졌다고 할 수 없을 정도). 피해자의 부모는 형진씨를 신고했고 경찰 조사에서 수사관이 물었다. 수사관: “다리 만졌죠?” 형 진: “다리 만졌죠” 수사관: “모두 인정 하시는 거죠?” 형 진: “모두 인정 하시는 거죠”  수사관에게 형진씨의 반향어 1) 에 대해 설명했다. 수사관은 어차피 CCTV에 모두 찍혀 있어, 그런 건 상관없다고 했다. 경찰은 사건을 송치했고, 검사는 형진씨를 기소했다.  재판과정 중에 피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는 형진씨를 이해해주었다. 법원 역시 형진씨의 의사무능력을 인정했다. 다만, 법원은 치료감호 처분을 통해, 자폐성 장애가 있는 형진씨를 사회로부터 격리한 후 치료할 것을 제안했다. 법원은 ‘자폐증은 사회와 격리가 필요하며, 치료를 해야 하는 질병’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형진씨를 진료한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과 발달장애인지원센터 2) 등 다양한 발달 장애 관련 기관의 지원 덕에 형진씨는 치료감호 처분 대신 지역사회에서 전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출처 - pixabay 우영우 변호사의 이상한 지인들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가 직장 생활을 하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우영우 변호사의 능력이나, 우영우 개인의 특성 덕분만은 아니다. 초점화된 ‘우영우’라는 캐릭터 옆에 존재하고 있던 현실에서 보기 드문 ‘이상한 지인들’의 공이 크다. ‘장애’라는 인식을 넘어 우영우라는 사람을 바라보던, 아버지, 친구, 직장동료 그리고 직장상사가 자폐성 장애인 우영우가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흔히 발달장애인(한국에선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합쳐 발달장애인이라 부른다)은 혼자서 살 수 없다고 한다. 자립해서 살 수 없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누구도 혼자서만은 살 수 없다. 혼자서 살 필요도 없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우리 동네에 있는 사람, 우리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살고 있고, 함께 살아야만 한다. 서로 돕고 이해하고, 양보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발달장애인을 조금만 더 이해하고, 양보하며, 돕는다면 발달장애인도 시설이 아닌 동네에서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도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남을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 봐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 속 우영우의 지인들처럼... 1) 타인의 말을 의미를 알지 못한 채로 그대로 메아리처럼 되받아서 따라 하는 말이다. 언어발달 과정에서 생후 9개월경부터 영아는 주변 사람의 말을 의식적으로 그대로 모방한다. 반향어는 영아의 어휘발달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반향어는 자폐증(autism)의 전형적인 한 증후이기도 하다.(교육심리학용어사전) 2) 2015년 시행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발달장애인에 대한 권리보장 및 통합적인 지원을 위하여 설치된 발달장애인 전문기관
2022-09-14 | hrights | 조회: 394 | 추천: 6
신종환 / 공무원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은 고용인들에게 당신들 피고용인은 사람이 아니라 숫자라고 말한다. 토요일 퇴근 후 헬스장에서 마주친 주민센터 동료는 내게 다음 주부터 힘들어질 예정이라며 푸념을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그는 다음 주부터 주민센터에 지역 코로나지원금 현금 지급 대상인 거지새끼들이 온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공무원이 적지 않아서 그의 단어 선정과 기분 자체는 놀랍지 않지만 당연히 내가 그 어조에 동조할 거라 생각하는 그의 생각은 조금 놀라웠다. 몇 년 전이었다면 그래도 거지새끼라는 말은 그렇다고 타박을 했을까 싶지만 나는 순간 당황했다가 고생하시라며 너스레를 떨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저 친구 처음에는 안 저랬는데? 나는 왜 뭐라고 안했지? 어떤 기분이었더라? 전에는 어땠지? 해소되지 못할 퇴사 욕구만 남고 질문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쉽게 이해하는 나를 문득 느꼈다. 수년이라는 세월 동안 어떻게 저 직장인들은 한결같은 고충과 퇴사 욕구와 퇴근이라는 한정적인 주제만을 외칠 수 있는지. 시간의 풍화작용을 버티지 못한 내 모습. 이를테면 나를 둘러싼 것들은 모두 작거나 큰 고통이고 머릿속은 그에 대한 회피방안 뿐이었다. 죽을 만큼 우울하지는 않지만 협소해진 생각을 보며 자살하는 사람들은 현실에 상상력이 완전히 포섭되었을 때 죽는다던 문구가 생각났다.(<철학 듣는 밤>, 김준산, 김형섭 지음. 프리렉 출판사) 과 서무 회계 담당자의 일상은 절반 정도는 짱구의 하루와 같다.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는 가고 사람들은 나를 못 말려 하니 과반은 맞지만 나는 짱구처럼 대단하지도 않고 천재도 아니고 다음엔 무엇을 할지 염두 하지 않으니 나머지는 틀렸다. 출처: 저작권 없음. 변수를 줄이고자 초과근무가 허용하는 가장 이른 시간 04시에 쏟아지는 졸음 반과 조용한 사무실을 만끽하며 일을 한다. 대여섯 건의 지출과 서너건의 제출문서, 그리고 승진을 위한 교육...교육.... 갑자기 이 모든 게 쏟아지는 까닭은 쉬이 지휘부가 회식을 잡는 까닭이요, 제출기한이 다가온 까닭이요, 아직 나의 업무가 완료되지 않은 까닭입니다. 로또 번호 하나에 퇴직과 로또 번호 하나에 주식과 로또 번호 하나에 아른거리는 자취방과 로또 번호 하나에 남은 대학 졸업과 로또 번호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나는 번호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명예퇴직, 의원 면직, 정년퇴직 공로연수, 이런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정시출퇴근이 멀 듯이. 라는 잡념을 두르고하며 일을 하다 해가 뜰 것 같아 사무실 블라인드를 열고 창문을 열고 뭉텅이로 온 일간지를 정리하고 있자니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내 동공도 활짝 열린다. 의원 의전을 위해 수원으로 가는 계장님은 이렇게 일찍 나올 일이 무엇이 있냐는 말을 멋있게 던지고는 수원을 향해 당당히 간다. 음....그에게 화가 나는 자 그에게 돌을 던지자는 생각으로 실제 투석을 갈음하고 업무의 마무리와 아침을 맞이한다. 앞서 말했듯 하루 업무는 짱구가 운전하는 타임머신 같아서 정신 차려보면 퇴근 시간이 되어 있다. 오늘은 노조에서 내가 담당하는 영화모임이 있는 날이라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극장으로 가서 좌석을 예매하고 동료들을 기다린다. 보기로 한 영화는 이정재 배우의 입봉작인 ‘헌트’이고 상영시간은 18:22. 모이기로 한 시간은 18:15 지금은 18:13... 공무원에게 기한과 정시란 대체로 허용되는 가장 늦은 시간이거나 자기가 정한 시간이다. 18:15이 되니 사람 대신 카톡이 답지한다. “주사님 죄송해요 을지연습 때문에 일이 늦어서 오늘은 초근해야 할 것 같아요”와 이와 유사한 카톡이 일곱. 을지연습이 국가의 안보에 이바지하는 목적을 이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임의 목표치인 12명은 덕분에 이루지 못했다. 영화를 보며 이정재와 정우성도 나처럼 하루가 정신없고 자기 시간 없어서 어리둥절한가 싶은 생각이 들게 영화는 내 하루처럼 복잡미묘하게 끝났다. 복잡하게 꼬인 승진심사의 소식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내 속을 치킨에 돌돌 말아 먹어가며 뒤풀이를 시작하려는 순간, 처음 온 주사님이 이번 영화의 이런 점이 재미있었고 다음에는 이런 영화를 보고 싶다고 묻지 않았는데도 말을 한다. 어떤 제안을 해도 침묵을 일관하는 윌슨같은 회원들의 태도를 긍정이라 해석하던 나날에 자발적 의견을 들으니 약간의 울음을 삼키며 속으로 ‘이 사람을 보라!’를 연발했다. 마침 9월에 같이 볼 영화가 마땅치 않던 차에 그는 예전에 개봉한 ‘위대한 쇼맨’을 같이 보고 얘기를 나눴으면 한다고 했다. 가만있던 동기는 돌연 자기는 이런 영화를 보고 싶다며 리스트를 보여주었다. 가뭄 끝에 비를 보는 농민은 이슬비에 울었을까. 내가 내적으로 오열했으니 그도 울었을 것이다. 새로운 멤버 덕인지 영화에 대한 의견도 전보다 활발하게 오갔고 다음 달 고정 참석 다섯 명을 확보하고 귀갓길에 한동안 잊었던 생산적이라고 기억되던 감각들을 새삼 느꼈다. 퇴행을 간신히 막는 날을 넘어서 모두 다시 이것저것 해볼 날은 올까? 그런 생각을 하기에 지금이 최적은 아니지만 하다 보면 다시 실마리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사람들은 폐허에서 울지만 거기서 다시 밥을 먹는다지. 들뢰즈 선생님, 여기가 로도스인지는 이제 까먹었지만 뛰어는 보겠습니다. 누군가 뛰고 있는 저를 기다릴지도 모를테지요.
2022-09-02 | hrights | 조회: 289 | 추천: 2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8월 9일 오후 1시 39분(현지시각 오전 7시 39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에 있는 아디의 ‘팔레스타인 여성지원센터’ 활동가가 긴급하게 연락을 해왔다. “수십 대의 이스라엘 군용차와 군인들이 (나블루스)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와서 건물을 봉쇄하고 폭탄을 발사했다. 건물에 연기가 자욱하고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주변에 몰려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군인들은 총으로 위협하며 발사했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의 사진이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다급한 목소리에서 현지의 심각성이 그대로 전달됐다.  지난 8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 동안 이스라엘은 전투기를 동원하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습했다. 2021년 5월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낳은 가자지구 침공 이후 최대 규모인 이번 공습으로 49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망했고 이 중 17명은 4세부터 18세 사이의 아동과 청소년이라고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발표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8월 9일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나블루스를 공격하여 1명이 사망하고 32명의 주민들이 부상당했으며(현지 활동가는 이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8월 2일 서안지구 북부도시 제닌에서도 이스라엘군인의 발포로 17세 팔레스타인 청소년이 사망했다고 지역 언론은 전했다. 사진 출처 - 폭격의 피해를 받은 건물 사진, 센터 활동가 촬영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공격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이스라엘 테러를 모의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이슬라믹 지하드(Islamic Jihad) 그룹의 수뇌부들을 무력화하기 위함이고 이슬라믹 지하드 그룹의 구체적인 테러행위에 대한 응징이 아닌 ‘테러행위에 대한 선제조치(Pre-emptive)’라고 했다. 하지만 수십 명의 아이를 포함한 민간인이 사망한 이번 공격은 명백하게 국제법을 위반한 범죄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양측(?)’간의 무력사용 자제를 촉구하거나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했다. 언론 역시 이스라엘의 공습과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사실을 전하면서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보복 미사일 공격을 비슷한 수준으로 다루며 이번 공격을 ‘양측(?)간의 무력분쟁’으로 설명했다.  현지 활동경험을 바탕으로 한 팔레스타인의 실제 현실과 언론 보도가 만들어내는 팔레스타인 현실 사이의 가장 큰 괴리는 어떤 언론도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하의 식민지라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서구 외신의 기사를 앵무새처럼 따라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OPT(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ies) 즉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된 팔레스타인 지역들’이라고 한다. 현실 속 서안지구는 이스라엘 국방부가 관할하는 지역이고 동예루살렘은 아예 이스라엘 땅이라고 법제화하였으며 특히 가자지구는 모든 육로가 한국의 휴전선보다 더한 콘크리트 장벽으로 막혀있고, 바닷길과 하늘길도 막혀있는 감옥상태의 지역이다.  이러한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바탕으로 한 점령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언제든 필요할 때 점령지를 공격한다. 2007년 이후 이스라엘의 공격 패턴도 반복된다. 먼저 이스라엘이 테러와 안보를 빌미로 가자지구를 공격하면 가자지구 무장세력(하마스)은 보복 로켓 공격을 한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공격을 확대하며 전투기와 최신식 전차와 군사 장비를 동원하여 가자지구를 폭격한다. 동시에 서안지구의 각 도시들도 공격받는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시위를 하고 체포된다. 무수한 희생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높아질때 이집트가 중재자로 나서며 ‘양측(?)은 휴전을 선포하고 결국 이스라엘의 공격은 잠시 중단된다.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군사점령은 계속됨)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와 언론은 죄 없는 민간인의 희생을 내세우며 ‘양측’간의 무력충돌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다시 8월 9일 오후 5시(현지시각 오전 11시) 아침의 공격으로 당일 예정된 아디와의 온라인 회의가 연기될 거라 예상했지만 현지 활동가들은 회의를 개최했다. 놀란 마음에 센터 활동가들의 안부를 묻자 “우린 괜찮아. (그리고) 놀라지 않았어. 이런 거 일상이야”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또 현지의 피해 상황을 물으며 “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공격하는 거야?”라고 묻자 센터 활동가는 “이스라엘이 우리를 공격하는 데 이유가 필요할까? 우리는 점령되었고 설령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유를 들어본 적 없어. 우리가 테러리스트라는 이유 외엔”이라고 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제서야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 군사점령하에 지내고 있고 가끔 내가 기억 못 하고 있을 뿐이란 걸 깨달았다.
2022-08-24 | hrights | 조회: 342 | 추천: 6
이회림/ 경찰관  A, B 두 중학생들 사이에 1대 16의 학교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인 ‘기훈이(가명)’는 아파트 복도에 몰려온 16명의 아이들이 현관문을 발로 차며 위협하는 소리에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직접 경찰에 신고할 용기를 내지 못해 다급히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를 알렸고 친구가 대신 112로 신고했다. 출동 경찰이 작성한 112신고처리표의 사건개요란에는 “친구 집 앞에 10명 이상이 찾아와 벨을 계속 누른다. 친구를 대신해 신고한다”라고만 간단히 적혀 있었다.  반면에 종결란은 16명 아이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 전화번호로 꽉 차 있었다. 도합 서른명 넘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니만큼 A4사이즈의 보고서 한 장이 매우 무겁게 느껴졌다.  먼저 피해자 기훈이의 학교폭력 담당교사에게 전화를 건다. 수업중이라 받지 않아 문자로 자초지종을 보내 놓고 학생부장 교사에게도 전화한다.  역시 받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교감선생님에게 연락하니 다행히 바로 받으신다. 신고 내용에 대해 알리고 학생과 면담이 가능한지 학부형과 학생에게 의사를 물어달라고 요청한다. 학교측에서 면담 준비를 하는 동안 제복을 챙겨들고 학교 정문에 들어섰다. 곧 점심시간이 시작이라 점심을 먹고 바로 상담실로 오겠다는 기훈이를 기다렸다. (*기훈이는 제복 경찰과 만나는 모습을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해서 사복차림으로 만나기로 하였다.)  기훈이를 기다리는 동안 B학교 담당 SPO(학교전담경찰관)에게 전화를 건다. 나의 좋은 동료인 김경사는 이미 주동자인 ‘덕수’ 학부형과의 면담을 통해 신고처리표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저간의 사정을 샅샅이 파악하고 있었다. 김경사를 통해 기훈이가 초등학교 시절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피해자이고 덕수는 그런 기훈이를 보호해주던 유일한 친구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덕수조차 기훈이를 따돌리는 식으로 상처를 준 일이 한 번 있었다고 한다. 이때 덕수 어머니의 주선으로 여러번 사과를 받긴 했으나 기훈이의 마음속은 배신감과 피해의식으로 단단히 응어리졌고 서로 다른 중학교로 배정을 받은 후로는 어쩌다가 한번씩 안부를 묻는 정도로만 연락을 하였다고 한다.  기훈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112신고사건처리표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덕수가 기훈이에게 전화를 걸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하소연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 도중, “너는 내 편이냐? 그쪽(여자친구)편이냐?” 라고 캐묻고 “줄을 서라” 고 말하며 무리하게 선택을 강요하는 일이 일어났다. 애초에 덕수에 대한 신뢰가 없던 기훈이는 이를 오랜만에 전화 온 동네친구의 한심한 넋두리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한다.  그래서 휴대폰의 녹음 기능을 켜 녹취를 하였고 통화가 끝난 후, 둘 간의 대화 내용을 고스란히 유튜브에 업로딩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덕수의 어머니를 겨냥한 욕설을 해당 유튜브에 댓글로 단 후 주변 친구들에게 링크를 전달해버렸다. 이런 행위를 한 이유에 대해 물으니 “다른 아이들이 덕수의 실체를 알았으면 해서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덕수의 친구들인 15명의 아이들은 애초에 기훈이가 먼저 학교폭력에 해당하는 행위를 저질렀기때문에 응징받아 마땅하고 자신들의 분노는 순수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친구의 명예가 훼손되고 친구의 어머니까지 모욕당한 것이 사실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16명이 1명에게 집단으로 몰려가 고함치며 문을 발로 차고 위협하는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진심을 담아 자발적으로 하는 사과는 장려되어야 함에 틀림없지만, 사과를 하지 않는 경우라도, 당사자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단죄하듯 우루르 몰려가 위력을 과시하며 사과를 강요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보복심에 기인하고 또한 인격권 침해에 해당되는 행위일뿐이다.  이제는 양쪽 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상황. 이대로 학폭위나 형사고소 절차로 들어가면 각자의 위법행위에 책임지는 조치를 받는 것이 불가피하다. 즉,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로 남을 결과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김경사와 나는 여기서부터 고민이 깊어졌다. 그래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깊이 들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양쪽 다 서로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깊이 뉘우치고 있고 사과를 통해 해결하고 싶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더이상 학폭위나 형사 고소등의 절차를 밟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치셨다.  우리는 경찰서에서 주관하는 ‘회복적경찰활동’ 제도를 활용하여 공식적인 ‘사과와 화해의 절차를 가지는 것을 제안하였고 양쪽 아이들과 부모님들 모두 이에 동의하였다. ‘회복적경찰활동’이란, 상담전문기관, 경찰, 그리고 가·피해자 학부형, 학생들이 경찰서의 상담실 등에 모여 사전모임, 본모임, 모니터링의 3단계를 거쳐 ‘약속이행문’을 작성하는 절차로 끝나는 회복적 대화 모임을 말하는데 피해자의 피해회복과 관계 개선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한다.  3시간 동안의 회복적 대화모임이 끝난 후, 아이들과 학부형들을 경찰서 정문 앞까지 배웅하면서 기훈이의 심하게 말린 어깨를 보게 되었다.  ‘서로 사과하고 잘 끝났으니 그만 어깨 좀 펴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기훈이의 등을 한 번 탁! 치며 말했다. 곁에 있던 어머니께서 살며시 웃으시지만 기훈이는 약간 놀라며 멋쩍어 할 뿐이다. 곧 다시 위축된 어깨로 걸어가는 기훈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초등학교때 둘 사이에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마음이 씁쓸해졌다.
2022-08-12 | hrights | 조회: 594 | 추천: 6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활동가 김형수  어느 학교에서 장애인 학생이 학급에서 놀림을 받아 학교를 나오지 않으니 인권교육을 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처음에는 늘상 일어나는 장애인 차별이나 혐오로 생각하고 학교를 방문했으나 교사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학생은 부모가 학급 내 사건을 빌미로 이미 한달 넘게 장기 결석 중이란 것을 알게되었다. 비장애인 학생은 3일만 연속 결석해도 결석 사유를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것인데 장애인 학생의 경우는 왜 그러지 않고 인권교육부터 의뢰했을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미 학기초에 학생에게서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 정황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담임 선생님과 특수교사는 왜 이 사안을 장애인 학대와 아동 학대로 즉시 신고하지 않았을까? 왜 교장 교감은 왜 인권교육만 하라고 닦달했을까? 학대 경험이 있는 학생이 한달 넘게 결석해서 특수교육대상자가 적절한 의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왜 해당 교육청의 장애인 학생 인권지원단은 왜 움직이지 않고 나에게 개인적으로 인권교육을 의뢰했을까?  최근 부모와 함께 사망한 조유나씨(10세) 관련 기사와 몇 년간 폭증한 부모에 의한 장애인 살인 사건을 다루는 우리나라 사회 시각과 언론의 태도를 보면 같은 ‘사람’의 죽음에도 차별과 경중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조유나 피해자 죽음 원인이 그게 무엇이든 존비속의 살인 사건은 도덕적 윤리적 법적 비판을 피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언론과 대중들은 동기가 무엇이든,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은 부모를 연일 비판하고 심지어 체험학습을 보낸 학교와 교사들에게까지 행정 당국은 책임과 각성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허나, 코로나 시대의 수십건 부모의 장애인 살해 사건을 대하는 언론과 사회의 피드백은 같은 가족 간의 살인 사건임에도 위와 같은 극악한 학대 사건으로 다루지 않는다. 출처-픽사베이  미디어는 아무도 부모의 가난과 고통과 양육의 어려움이 크더라도 ‘오죽했으면’이라 말하지 않는다. 비장애인을 키우는 부모가 어떤 상황에 놓이든지, 그런 살의를 잠시 떠올리거나 입밖으로 드러내거나 SNS에 개인적으로 넋두리 하는 것조차 비난받음을 넘어 당장 신고하라며 고민없이 단호하다. 그런데 장애인 죽음에는 가해자들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하여 TV와 기사들은 너무나도 공공연히 공개적으로 실행하지 못한 가해자 경험과 서사를 대중들에게 표현하고 공감한다. 장애인 자녀가 당신들보다 하루만 먼저 사망하길 바란다는 비장애인 당사자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문장도 제목으로 뽑고 많은 장애인 부모들의 인터뷰에서도 가해자 입장과 같은 경험에 공명했음도 가감없이 실어준다. 아니 가해자의 가치와 가해자의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부모로부터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장애인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피해자를 대변해야 할 인권 활동가나 장애인 당사자도 가해자들이 부모들이면 명확하게 ‘범죄’로 정의하기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채감을 가진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하는 추모제까지 열면서 정치인과 교사, 사회복지사, 치료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그 곳에 모여 연일 국가의 책임을 성토한다. 물론 정부의 정책과 지원은 이런 살인을 막기 위해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그 사회 안전망의 구축만으로는 이런 살인 사건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장애인의 죽음에 가해자의 입장만을 대변하면 그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방조를 계속해서 사회에 퍼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언론과 대중들, 장애인을 키우는 장애인 부모와 장애인 단체들의 입장과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과연 이런 죽음을 막을지는 회의적이다. 무엇보다 이런 인권유린에 민감해야 할 인권 단체와 활동가들의 어쩔 수 없는 침묵은 오싹하기까지 하다. 다른 나라들도 정책과 지원이 충분해도 장애가 있는 가족 살해 후 자살이라는 범죄는 일어난다. 우리 언론들은 특히 장애인 문제에 대하여 가족들에게 온정주의가 가득하다. 감동과 극복의 이데올로기와 맞닿아 장애인의 출생과 양육까지 온통 혈연 가족들의 책임으로 세뇌하니, 세뇌된 책임은 가족의, 부모의 권리로 착각한다.  장애인 등록과 치료, 교육, 취업, 결혼, 시설입소까지도 부모가 결정하는 법적 권한이 어느 나라보다 강한 나라다. 그만큼 부모의 권력이 세다는 뜻이다. 장애인을 양육하는 부모가 인권적이거나 정답이라서가 아니라 그동안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정치 작업의 결과이다. 장애인을 힘모아서 잘 키워보자는 기사의 분석과 대안은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죄다 장애인을 키우기 두렵고 어렵고 힘들다는 구체화된 낙인된 이야기 뿐이다. SNS에 넘쳐나는 장애인 부모들의 슬픔과 가해자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말들이 장애인을 가족으로 맞이할 후대 부모들에게 세상의 어떤 역경과 차별도 견딜 힘을 줄지, 종국에는 장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절망을 전염시킬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하다 못해 지역 공동체가 인권단체들이 장애인부모들을 상대로 생명의 전화라도 열어보면 어떨까? 잘못된 권력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학대와 폭력을 감시하고 장애인 가정의 고립을 막을 수 있는 활동과 정책을 고민해 보면 어떨까? 아무리 국가지원이 늘어도 같은 아동과 당사자의 살해사건에 장애가 있든 없든 동등하게 포함시키지 않으면 절대 이런 사건은 줄지 않을 것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온전히 자유로운 상주가 되는 장례식조차 제대로 구하기 힘든 대한 민국에는 죽음에도 장애인 차별이 있다. 인권이 이런 억울한 차별에 더 이상 침묵 해서는 아니된다. - 본 원고는 은평시민신문에 기고된 원고를 대폭 수정 보완 했음을 밝힙니다.
2022-07-27 | hrights | 조회: 458 | 추천: 1
정한별/ 사회복지사  부모란 무엇인가?  최근의 다양한 논의는 차치하고 단순하게 사전적 의미는 아이를 낳아준 남자인 아버지, 여자인 어머니를 이르는 말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를 고민했던 날은 사실 없었다. 오랜 기간 연애를 했고, 그냥 자연스레 결혼을 했다. 결혼이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했던 것도 아니었다. 직업은 있었지만, 모아놓은 돈은 없었다. 부모는 있었지만, 집을 사줄 부모는 없었다.  그냥 결혼을 했던 만큼, 부모의 의미나 역할을 고민해보지도 않았다.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 양육은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고민해 본 일도 없었다. 막연히 신혼 생활을 6개월 정도 하고 난 뒤, 준비를 해서 1년 내로 아이를 갖자는 계획을 세웠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될 거라 생각했다. 아이를 갖기 위한 준비를 하자고 이야길 하자마자 아이가 생겼다. 그렇게 부부는 부모가 되었다.  아이는 다소 작았지만, 건강했다. 여느 아이들만큼만 자주 아프고, 잠투정이 심하고, 예민하였다. 딱 그 정도였다. 부부는 넉넉지 않았지만, 일정한 소득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싼 분유, 조금이라도 더 싼 기저귀가 어디에 있는지 찾느라 전화길 손에 놓기 힘든 정도, 기저귀에 붙어 있는 마일리지 쿠폰 하나를 잃어버리면 하루가 찝찝한 정도의 평범한 부모였다.  부모의 역할, 부모의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결혼 전의 일상을 포기했고, 포기한 일상만큼 아이로 인한 기쁨과 행복이 보상으로 채워지는 지극히 보통의 가족이었다. 일상의 변화로 아이의 엄마는 10년 가까이 일했던 직장을 관뒀다. 그냥 딱 그 정도였다. 부침이 있어도 그 부침이 부모의 역할과 부모의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진 않았다. 나아가 부모 이전의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지도 않았다.  고민은 각자가 마주한 삶의 위치에서 일어난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3에게 고민은 대학입시가 되고, 직장을 구하는 일이 어려운 실업자에겐 취업이, 몸이 아픈 부모를 부양하는 자식에겐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어려운 부모에겐 아이가 고민이 된다. 저마다 고민의 깊이는 삶의 무게에 비례한다고 했던가. 사진 출처 -  freepik  2019년 8월, 발달장애가 있는 9살짜리 여자아이가 죽었다.  아이는 말이 늦었고, 3세 이전부터 자폐증상이 보였다. 어려서부터 치료시설과 전문병원을 두루 다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반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특수학교에 다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아이의 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상처가 늘어갔다. 툭하면 소리를 지르고 집을 뛰쳐나가는 등의 행동으로 경찰서에서 인계되는 일도 잦았다.  아이의 아빠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2019년 초 불의의 사고로 가족이 죽었고, 그 충격에 아빠에게 공황장애가 생겼다. 공황장애로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가정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다.  아이의 엄마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아이의 자폐증을 알고 난 이후부터 엄마는 그 누구도 만나는 일 없이 아이를 돌봤다. 아이에 대한 양육 부담과 경제적 부담으로 엄마는 우울증에 걸렸다.  2019년 8월 아이의 엄마는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없으면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고 아이의 아빠에게도 부담이 되겠다는 생각에 아이를 먼저 보낸 뒤 자신은 아이의 뒤를 따르고자 했다. 그날 오후, 먼저 떠난 아이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의 엄마에겐 징역형이 선고되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피고인 아이의 진료를 맡아왔던 정신과 의사입니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정성과 애정으로만 아이를 키우기에 너무 벅찬 현실입니다. 세상 밖으로 나가보면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이 따라다녔고, 제대로 된 시설이나 훈련 프로그램을 갖춘 교육기관은 손에 꼽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학교를 짓는다고 하면 동네 땅값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주민의 반대가 거세고, 그런 자녀를 둔 부모만이 고스란히 그 짐을 지고 가야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임을 이런 아동을 치료하면서 늘 안타깝께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아이의 죽음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비극일지 모릅니다. 한 부모에게, 한 가족에게만 발달장애 자녀를 책임지우는 것은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1)   2022년 6월 3일 경기, 두 명의 발달장애 자녀를 홀로 돌보던 아버지 극단적 선택 2022년 5월 30일 경남, 발달장애자녀의 어머니 투신 2022년 5월 23일 서울, 6세 발달장애 아들을 안고 어머니 투신. 2022년 5월 23일 인천, 어머니가 중증장애 딸 살해 후 극단적 선택. 2022년 5월 17일 전남, 조카에게 폭행당한 발달장애인 사망. 2022년 3월 2일 시흥, 발달장애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 2022년 3월 2일 수원, 어머니 8세 발달장애 아들, 입학식 날 살해 2021년 11월 전남, 아버지가 발달장애 자녀와 노모를 살해 2021년 5월 충북,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극단적 선택 2021년 2월과 4월 서울,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극단적 선택 2020년 6월 광주, 발달장애 자녀와 어머니가 극단적 선택 2020년 4월 서울, 4개월 된 발달장애 자녀 살해 2020년 3월 제주, 어머니가 발달장애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 <발달장애인가정 사건 관련 언론 보도>  많다.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정말 너무너무 많다.  과연 이들의 죽음 앞에서, 감히 온전히 부모의 책임만을 물을 수 있는가! 부모는 죗값을 받겠다고 한다.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한 아이를 살해한, 결코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는 죗값을 받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우리 사회는 죗값을 받겠는가!  부모란 무엇인가? 부모의 역할과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이 질문에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신의 존재를 던져 답을 하고 있다.    이젠 국가의 차례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역할과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국가는 답하라. 제발, 제발, 답해 달라.    국가는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마련하라!  국가는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를 마련하라! 1) 위의 ‘발달장애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 사건(2019고합365)‘ 피해아동 담당 의사의 피고인을 위한 탄원서 중 발췌
2022-07-13 | hrights | 조회: 860 | 추천: 13
신종환/ 공무원  인권연대에 기고하는 글은 전반적으로 나의 직업 혹은 직업에서 파생된 감정에 대한 글들이었다. 처음 칼럼을 권유 받았을 때 ‘공무원’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이 비춰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몇 년간의 공직생활 이후 나의 정체성에서 공직에서의 책무와 책무에서 비롯된 부정적 감정 이외에는 전부 소거되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소거, 유능하고 책임감 있고 지향점이 있는 동료들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소거’라는 말이 공직을 표현할 수 있는 정확한 말이었던 것 같다. 말의 테두리를 상사와 동료와 민원인에 맞게 절지하고 언급할 수 있는 생활의 범위와 권하고픈 도서와 그 묘사를 지자체의 테두리 안에서 통용되는 범위 안에서 제한하다보니, 정착하고 나면 자신의 뇌를 용해한다던 멍게와 어떤 점에서는 비슷해졌다. 새로 생긴 가게, 편의점에 출시된 신메뉴는 읊어도 어느 순간 글은 어렵게도 나왔고 나온 글도 부끄러웠다. 어떤 글인지 알 수 없기에.  소거의 나날에 제동을 걸은 건 고통이었다.  마감에 임박해 글거리를 생각하자니 소거되지 않은 나날이 떠오른다. 머리에는 남아있어도 글로 옮기기 다소 어려운 순간들도.  한 부서의 예산과 회계를 맡고 나서 머리 속에 있던 철학자들과 그 구절들을 잊었다. 정신과 약을 먹고부터는 어느때보다 제2차대전 5년간의 수용소 생활에서 포로들의 고통을 목도한 루이 알튀세르의 고통만이 학문의 진리라는 말이 늘 머리에서 맴돌았다.(<철학 듣는 밤>, 김준산, 김형섭 지음. 프리렉 출판사)  정신과에 가기까지는 누구의 아픔도 생각 할 수 없었다. 듣고 보더라도 그 아픔은 얼마나 하찮고 가소로워 보였는지. 나는 자기 전에 죽고 싶었고 눈을 뜨기 전에 죽었으면 했고 전화벨 소리와 메일 수신 알림, 누군가 나를 부를 때는 심장이 쳐맞는 것 같았다.  결혼한 계기가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인생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궁금했다는 그로테스크한 선배의 대답이 바로 이해가 되고 소행성과 충돌한다는 멜랑콜리아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부정맥이 멎고 잘 때도 일어날 때도 덜 죽고 싶을 때, 숨을 몇 차례 돌리고 나면 맘 속에서 나간 사람들이 다시 들어왔다. 작은 연대도 아쉬웠기에 그들의 겪은 상상 이상의 시간들보다는 도와준 손길이 부각된 글. 추앙받아 마땅하기에 당신들의 잃은 동료들에 대한 묘사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 다시 형언키 어려운 일터로 가야 했던 글. 그 간극이 이랬다는 건 겪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다. 말은 경험의 재구성인데 나는 그만큼 아프지 않았으니.  나무는 외연을 확장할 때마다 테가 생긴다고 했던가. 그 동안 느꼈던 감정들 중 고통들은 다소 자기 회귀적이었고 발원지를 향할 때조차 이를 연대하는 스스로의 비중이 높았으니 테의 확장이라고 하긴 어렵겠다. 그럼 테의 확장은 무엇일까. 알 수 없지만 어느새 부끄러움보다는 말의 모습을 띠지 못해 짐작만 할 수 있는 당신들의 모습에 닿기 위해 먼저 나를 드러내려는 태도를 그렇게 불러도 될까. 좀더 자세히는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의 비명과 불면, 그리고 그 흔한 고통을 먼저 드러내보려는 나의 태도를 그렇게 불러도 될까.  먼저 나의 부끄러운 테두리를 드러내본다. 고통이 잦아든 뒤에 들리지도 보이지 않던 당신들의 고통에 나를 비춰볼 수 있었으니. 이 꾸진 고백이 ‘같이 비를 맞는다’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과 비슷한 맥락에 있기를 바라고 또 그런 태도에 당분간 불어올 험한 세월을 서로 견딜 마중이 되기를 바라며.
2022-07-06 | hrights | 조회: 428 | 추천: 2
이동화/ 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미얀마에서 군부쿠데타가 발발한지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2016년부터 6년째 미얀마 중부도시 메이크틸라에서 ‘평화도서관’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사단법인 아디는 쿠데타 이후 변화된 삶에 대해 미얀마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먼저 대학생인 코코툰(가명)은 쿠데타 이후 ‘온라인 교육’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는 “쿠데타 이후 미얀마내 대부분의 물가가 올랐고 특히 모바일 데이터 비용이 두배로 올랐다. 비싼 통신요금때문에 온라인 교육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하며 “하지만 군부세력이 운영하는 마이텔 통신사(Mytel Telecommunication Company)는 데이터 요금을 그대로 유지하며 돈을 벌고 있죠”라며 분노했다. 또한 그는 “쿠데타 이후 유능한 미얀마 젊은 브레인들은 업종에 상관없이 외국으로 나가려고 계획하고 있죠. 미얀마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라고 하며 인재유출을 우려했다. 7살 남아를 키우고 있는 엄마 묘이(가명)는 “쿠데타 이후 은행이 문을 닫아 생활비를 인출할 수 없었고, 높은 수수료(7%)를 내며 중국상인들에게 돈을 빌렸어요. 그리고 외국기업들이 미얀마를 떠나면서 미얀마 화폐가 폭락했어요. 사람들의 수입은 줄고 물가는 계속 올라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어요. 쿠데타 이전에 기름값이 400~450 짯(미얀마 화폐)였는데 지금은 거의 2700~2800 짯으로 7배이상 뛰어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라고 이야기 하며 악화된 미얀마 경제에 대해 증언했다. 사진. 메이크틸라 학교의 선생님들, 등교거부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연행된 모습. 출처: 아디  최근들어 한국의 시골 면단위에 해당하는 미얀마의 타운쉽(Township)에는 도둑과 절도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메이크틸라 타운쉽에 거주하는 민 라잉(가명)은 “내가 거주하는 타운쉽뿐만 아니라 인근 타운쉽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절도 사건이 발생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굶주리고 일이 없기 때문이죠. 주변사람들도 쿠데타 이후 내부치안이 엉망진창되었다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우리는 군부세력이 야간 군사작전을 했다는 소식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어요. 군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죠”라고 하며 불안한 치안상황을 걱정했다.  쿠데타 발생이후 미얀마 전역에서 벌어졌던 반대 시위는 한층 수그러 들었다. 이에 대해 도서관 매니저는 “미얀마 내부에는 오랫동안 활동해온 군부 끄나플과 정보요원이 많고 그들은 끊임없이 군부에 저항세력의 정보를 넘겨 군부는 밤시간을 이용해서 체포하고 공격하고 있어요. 그리고 1년 넘게 지속해온 군부의 무차별 체포와 잔혹한 고문, 살해때문에 쿠데타 초기처럼 비폭력평화시위를 이어가기는 불가능하죠. 그래서 지금은 양곤이나 만달레이와 같은 대도시에서 산발적 게릴라 시위를 하거나 미얀마 소수민족과 국경쪽의 무장세력에 합류하여 직접 저항을 하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도서관의 매니저 역시 지난 2021년 10월 도서관에 난입한 군인들에 의해 8일간 군사시설에서 조사를 받고 구금된 적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는 아웅린(가명)은 “여전히 20~30%의 학부모와 교사들은 CDM(시민불복종운동)차원으로 등교를 거부하고 있지요. 그리고 군부에서는 2021년 등교거부에 참가한 학생들의 학교등록을 막고 있어요. 등록이 거부된 아이들은 배울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못하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하며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전해온 모든 미얀마 사람들은 미얀마 쿠데타 이후, 지금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쿠데타 이후 붕괴된 정치와 경제, 삶의 기반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며 미얀마 사람들은 높은 물가와 불안한 치안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군부의 총칼을 피해 국경으로 피신하거나 사람들의 삶속으로 스며들었다. 일부 미얀마 사람들은 내부의 갈등(친군부세력과 저항세력)과 내전도 우려하고 있다. 독재의 어둠속에서 미얀마 사람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 고된 삶을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명확한 것은 다수의 미얀마 인들의 가슴속에 군부쿠데타와 독재세력에 대한 분노가 조금도 사그러들지 않았고, 언젠가는 한국이 그랬듯이 군부독재에서 해방되는 삶을 꿈꾸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 내일이 올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 날을 얻어내기 위해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2-06-22 | hrights | 조회: 381 | 추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