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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 수 없는 감옥 (이광열)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3:43
조회
311

이광열/ 구속노동자후원회 상임활동가



올 겨울 어느 때보다 매서운 한파와 폭설이 엄습해온다. 변변한 월동 대책이 없는 서민들은 추운 겨울이 두렵기만 하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신길동 도시 재개발구역도 예외는 아니다. 엊그제는 부엌의 수도관이 얼어붙더니 오늘은 방안에 있던 산세베리아-몇 년째 애지중지 키워 온-가 매서운 웃풍 탓에 얼어 죽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심난하지만 그래도 구속노동자들이 있는 ‘감옥보다는 낫다’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지난 2월 6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양심수 강의석 씨를 면회하고 돌아 왔다. 그는 ‘군대는 없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이 때문에 ‘공익 근무’마저도 거부한 채 감옥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그를 ‘몽상가’ 또는 ‘철없는 이상주의자’라고 부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지금 감옥 안에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절실한 요구를 내걸고 13일째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추운 날 감옥에서 일체의 음식을 끊은 채 물과 소금만으로 버틴다는 건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벌이는 사투다.

접견실에서 만난 그의 표정엔 핏기가 거의 없었다. 나를 보자 웃으며 손을 들어 보였다. 그는 손에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검지 부분이 잘려나가 있었다. 그 안으로 흰 목장갑이 드러나 보였다. 왜 그런 거냐고 물으니, 거실 안이 너무 추워서 책을 볼 때도 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이 얼 지경이라 책장을 넘기기 위해 검지 부분을 잘랐다는 것이다. 온도계로 실내 온도를 재봤더니 아주 추울 때는 8℃, 평상시에는 10℃ 정도 나온다고 했다. 그런 방에서 운동 시간(평일 1시간, 토요일 격주 30분)을 제외하고는 하루 23시간 이상 갇혀 지내야 한다. 대부분의 교도소(구치소)들이 30년 이상 된 낡은 건물이라 웃풍이 심하고, 바닥은 난방이 되지 않는 마룻바닥으로 되어 있다. 이런 곳에서 겨울을 나야하는 재소자들의 처지는 눈물겹다. ‘동상에 걸려서 고생 한다’는 구속노동자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한국에서 가장 큰 시설인 서울구치소는 그래도 바닥에 전자 매트를 깔아 놓아 다른 곳보다는 나은 편이다. 시설과 직원에 따르면 서울구치소는 심야 전기를 이용해 밤 11시부터 다음 날 6시까지 전자매트를 가동해서 바닥온도를 25℃에 맞춰 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재소자들한테서) 춥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다”며 의아해 한다.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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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 7인실 내부 모습
사진 출처 - 네이버


문제는 웃풍이다. 재소자들이 생활하는 거실엔 식구통 같이 뚫려진 구멍들이 많아 열을 빼앗기고, 헐거운 창문 틈에서 찬바람이 밀려든다. 게다가 ‘자살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촘촘한 쇠철망을 창틀에 설치해 놓아서 햇빛이 제대로 투과하지 못한다. 그러니 바닥 난방이 된다 해도 열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소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서울구치소는 1회용 ‘핫 팩’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개에 1,400원이나 하는데다 한 번밖에 쓸 수가 없다. 강의석 씨는 추위를 이겨내느라 매일 그걸 사서 썼는데, 한 달에 42,000원, 웬만한 가정집 가스비에 해당하는 돈이 들어갔다고 한다.

난방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감옥에 가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보안을 이유로 밤에도 불을 켜 놓기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법무시설기준규칙’에는 인공조명과 관련해서 낮에는 300LUX이상, 밤에는 별도의 취침등을 설치해서 60LUX이하로 낮추도록 돼 있는데, 대부분의 교도소(구치소)들이 이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 형광등 램프 두 개 가운데 하나를 꺼 주는 게 고작이다. 강의석 씨는 도무지잠을 이룰 수 없어 까만색 칠한 종이로 전등을 가려 버린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규율 위반’이라며 10여명의 교도관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를 징벌조사방으로 끌고 갔었다.

하루 종일 거실 안에 갇혀 있는 재소자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일인데, 안전사고를 우려해 책상도 의자도 지급되지 않는다. 종이 박스로 짠 상이 지급되긴 하지만, 쓸모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래 생활한 사람들은 허리에 이상이 올 수밖에 없다. 강의석 씨도 허리가 아파 구치소 의료과에 다녀왔다. 의사는 엉뚱하게도 그에게 “살을 빼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런 재소자들이 SOFA(한미 행정협정)에 따라 같은 소내에 설치된 ‘미군 범죄자’ 사동을 바라볼 때마다 울화통을 터뜨리는 건 당연하다. 그 곳엔 침대와 냉장고, 샤워시설, 헬스시설까지 설치되어 있고 음식도 외부에서 조달해다 먹는다. 가끔 고위급 정·재계 인사들이 구속되면 이곳에서 생활할 때도 있다고 한다.(구치소에선 이런 사실을 부인한다) ‘SOFA 사동’과 한국인 재소자들이 생활하는 사동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이런 차별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SOFA 사동’이 미국 내 다른 구금 시설의 환경 수준과 비교해 특별히 나은 것도 아닐 것이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에 근접한 경제대국이란 소리를 들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감옥의 사정은 20년 전에 비해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추운 겨울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재소자들은 생명 유지를 걱정해야 한다. 이런 곳에서 정부가 말하는 ‘교정 행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리 없다.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사람을 가둬 놓고 가축처럼 사육하는 행정 시스템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

강의석 씨가 단식을 계속하자, 서울구치소는 온갖 협박과 꼼수로 투쟁을 멈추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단호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라!” 이것은 강의석 뿐만 아니라 전국 감옥에 수감 돼 있는 모든 재소자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하루 빨리 그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져, 단식을 중단하고 밥을 먹게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지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