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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전국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3:40
조회
269

전국완/ 중학교 교사



‘북한이 남침을 못하는 이유가 남한의 중학생 아이들이 두려워서’라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가 그냥 우스갯소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무서워져 있었던 것이다.

요즘 연속적으로 터지는 아이들의 자살소식을 접하며 나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돌아보면 하마터면 그런 일이 내 반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내가 맡았던 학급에서도 거의 매해 일어났던 ‘왕따’ 사건들, 그리고 폭행사건, 이런 저런 사유로 가출했다 돌아 온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이런 사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그 정도도 심각해지고 있음을 학교 현장에 있는 우리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이 무서워지고 있음을.

시험 때가 되면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못 이겨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고는 급기야 피를 보는 일이 빈번해지고, 소풍 때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친구가 미워서 교실 컴퓨터 책상유리를 깨 친구 목에 들이대는 일이 생기고, 아래학년 아이들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교실에서 친구가 집단폭행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걸 보면서도 말리거나 선생님을 부르러 갈 생각을 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고…….

물론 교실붕괴 및 학교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 급속도로 그 강도나 빈도수가 심각한 수준으로, 위험수위에 와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 있는 우리 교사들이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호소해 왔고, 수많은 지표들을 통해 아이들이 지쳐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단발성 처방이 내려졌다가는 여론이 잠잠해지면 묻혀버리는 식으로 대응해오다가 사태는 결국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몇 가지 짚어 보았다.

그 하나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과 진정한 해결의지의 결여이다. 최근 빈번해진 자살사건, 폭력사건이 드러나고 나서야 어른들은 학교와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늉을 하고 있다. 기실 아이들은 오랫동안 힘들다고 소리치고 있었고,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조여 오는 현실에서 아이들은 이렇게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망가져가는 이유를 우리 어른들 대부분은 알고 있다. 아이들의 이상증세는 개발과 성장, 물질만을 향해 치달리던 와중에 내팽개쳐진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들의 결핍에서 온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섭취했어야 할 많은 영양소들 - 소통의 기쁨, 사랑과 존중, 이해와 배려, 공동체의식 등 - 을 우리는 제대로 먹이지 못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의 자리에 ‘돈’을 올려놓은 지 이미 오래고, 그것을 위해선 어떤 방법도 용인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정말 아이들을 치료하고 싶다면, 비뚤어진 이 사회의 시스템을 뜯어고치려는 진정어린 고민과 노력이 혁명처럼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연전의 ‘쇠고기 파동’때 들불처럼 번졌던 촛불집회나 월드컵 응원을 생각하면 가능할 법도 한데…….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별의별 선정적인 문투로 호들갑을 떨던 언론도 어느새 아이들의 이야기 대신 한나라당의 당권경쟁을 톱뉴스로 올려놓고 있고, 이런 언론에 길들여진 탓도 있겠지만 대중의 관심도 식어가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의 문제가 심각한 건 알지만 실상 내 아이의 일이 아니고, 이 시스템 안에서 기득해 누리고 있는 크고 작은 권력들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진단과 처방이 나오면서 ‘강제전출’이니 ‘형사처벌’이니, 급기야 ‘스쿨 폴리스’까지 등장하고 있다. 들여다보면 내실 없는 멘트였음을 당국자들도 다 인정한다. 이런 ‘제스츄어’로는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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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의 한 장면
사진 출처 - KT&G 상상마당


두 번째는 아이들은 죽어나가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는 죽고 없는데, 부모는 담임 멱살 잡아 흔들고, 학교 관리자는 ‘매뉴얼대로 지도했다’는 황당한 멘트로 대응하고, 교육청 당국자는 화살 맞을까 전전긍긍하고. 정당들은 당권경쟁에 바쁘고, 이 정부는 정권이후 대비에 여념이 없으시고…….

그 누구도 이 사태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이고 함께 성찰할 일이지만, 이런 논리 뒤에 숨어서 그 누구도 실질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하긴 이 정부 들어서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이 다반사다 보니, 아이들 몇 명 죽는 건 별 일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가장 엄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이 나라 교육의 수장은 왜 아무 말도 없는가. 현장 교사의 의견이나 생각 같은 것은 아예 안중에도 없이 그저 자신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본과 시장의 원리만을 들이대면서 매해 수백억 씩 들여서 일제고사를 보고, 이 결과를 학교평가에 반영하고, 교사를 ABC로 등급화하고, 학교를 등급화해 사교육을 번창케 하면서 학교황폐화에 속도를 가했던 장본인인데 말이다.

나름대로는 교직과 학생들을 사랑한다고 자부해왔지만, 나도 이제 점점 학교가, 아이들이 버거워지고 있다. 지금 같은 극도의 경쟁시스템에서 시험을 운운하며 수업을 하는 것도 숨 막히고, 일찌감치 포기해 버린 아이들의 초점 없는 눈을 대하는 것도 힘들다. 그리고 더욱 힘든 것은 자기모멸감에 빠진 채 기계적으로 출퇴근하는 동료들을 보는 것, 그리고 나도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새해 첫날 아침에 몇 명의 아이들에게서 새해 인사문자를 받았다. 학기말 일에 치이고, 아이들에 치여, ‘어서 빨리 방학이 되었으면’ 하는 절절한 바람에 방학 하자마자 아이들을 잊고 살다가 이런 인사를 받으니 고맙고 미안했다. 뭉클 하는 마음에 정성껏 답장을 보냈더니, 또 답장이 온다. 그래서 또 답장을 해 줬더니 또 다른 아이가 문자를 보내온다. 아마 자기들끼리 담임한테 온 답장을 자랑이라도 했는지……. 이렇게 한 시간여 동안 문자를 주고받았다. 예쁜 아이들이다. 한 아이, 한 아이 보면 다 이런 모양으로, 저런 모양으로 다 예쁘다. 한 해 동안 교육의 이름으로 이 아이들에게 내뱉은 험악한 말들, 충분히 기다려주지 못했던 점... 반성한다. 개학해서 이 아이들을 만나면 좀 더 환한 얼굴로 이야기해 줘야겠다. 그래도 나에게 너희들이 희망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