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가시

home > 인권연대세상읽기 > 목에가시

‘목에가시’는 현장을 살아가는 젊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한 젊은 칼럼 공간입니다.

‘목에가시’는 김아현(인권연대 연구원), 김형수(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서동기(대학생), 손상훈(교단자정센터 원장), 송채경화(한겨레21 기자), 이동화(아디 사무국장), 이상재(대전충남인권연대 사무국장), 이현정(꽃씨네농작물 농부), 이회림(○○경찰서), 허창영(광주교육청 조사구제팀장, 전임 간사)님이 돌아가며 매주 한 차례씩 글을 씁니다.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간사 07년 대선 승리를 향해 2년여를 넘게 준비해 온 고건 전 총리가 갑작스럽게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방송사에서는 벌써부터 최대 수혜자, 수혜 정당 등을 분석하면서 고건 지지자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하긴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만큼, 정치권과 국민들의 관심도가 꽤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높은 관심도 속에서 소외받는 예비 유권자들이 존재한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18세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아가는 60여 만 명의 청소년, 바로 그들이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겠지만, 06년 지방선거에서는 국내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외국인 중 영주권을 취득한 후 3년이 경과된 그들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졌다. 유럽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드문 일이며, 아시아 최초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공이다.’라는 맹목적 구호를 외치면서도 현실적 공간에서는 그들을 주변인으로 묶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한국 사회에서 18세가 갖는 국가적 의무는 꽤 많다. 세금도 내야하고, 노동의 의무도 갖고 있다. 그리고 남자의 경우 20대 청춘 시절 730일을 군대에서 보내야만 한다. 더불어 공무원에 임용될 수도 있고, 결혼도 할 수 있는 법령 체계를 충족시키는 나이이다. 그럼에도, 사회적 법령 체계에 순응해 가는 18세 그들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로는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가고 조작해가는 구조적이고 모순적인 폭력에 있다. 바로 18세 청소년은 정치적 선택에 따른 합리적 판단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아직 정치 판단력의 미숙아인 청소년들에게 국민, 주민 대표자들을 뽑을 수 있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논리에는 큰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 모든 공공기관, 사회 여론에서 청소년을 미래의 주인공이라고 쉴 새 없이 외쳐대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래라는 가상적 상황 속에 현실이라는 규율, 통제의 방식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은 미래의 주인공이니까 지금은 예쁘게, 착하게, 온실 속의 화초와 같게, 아무 비판의식 없이 잘(?) 자라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폭력인가. 진정으로 청소년들을 미래의 주인공으로 여긴다면, 지금부터 그들이 사회적 책임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기성세대들이 강조했듯이 만약 청소년들이 정치적 선택에 합리적 판단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들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주요한 미래 구성원으로 판단한다면 수업 교과목, 재량 활동, 특별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정치적 선택과 관련된 시민 행동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미래 사회의 주인공 형성은 복권과 같이 저속한 대박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합리적 판단력 부족과 관련, 정치권 및 우리 사회는 2~30대 젊은 유권자들의 투표율도 낮은데 굳이 18세 청소년들까지 투표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그거 알고 있는가? 실제로 06년 5.31 지방선거 때 처음으로 투표권이 부여된 19세 청소년들의 투표율이 약 38%로 20대 전체, 30대 초반 유권자들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선거에 관심이 없어 투표율이 낮을 것 같으므로 18세는 못주겠다는 논리대로 한다면 20대 전체, 30대 초반 유권자들에게도 똑같이 투표권을 주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선진국 대열에 끼고자 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여러 사회 현상을 OECD 국가들과 비교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러한 대세에 따라가고자 맹목적으로 쫓아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을 위한 복지 수준, 인권 신장에는 뒷전에 물러나 있다. 전 세계적으로 18세 청소년 투표권 현황을 살펴보더라도 약 140여 개의 국가에서 18세 이하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냥 뒷짐만 지고 있다. 05년도에 19세 투표권 하향 조정을 했지만 그것 또한 부족하다.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세계적 추세에 따라 가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결국 많은 것을 잃어가면서도 추진하는 무역 협상 등과 비교해보면 참 모순적이라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18세 청소년 투표권 부여는 바로 인권의 문제이다. 정치적 의사 표출이 자유스럽지 못하고, 마냥 정치 및 사회 판단력 미숙아로 낙인이 찍혀 청소년들은 사회적 행동에 여러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UN의 아동 권리에 관한 협약에 따르면 당사국 아동의 결사의 자유, 평화적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고 있지만, 한국의 청소년들은 그들의 의견을 표출할 평화적 집회 개최 또한 교육부, 학교의 탄압과 감시를 받아야만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8세 청소년 투표권 부여는 바로 청소년 인권 신장과 직결되는 문제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18세 청소년 투표권 현황을 살펴보더라도 약 140여 개의 국가에서 18세 이하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냥 뒷짐만 지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흥사단교육운동본부,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한국YMCA전국연맹, 대한YWCA연합회 등 40개의 단체가 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531지방선거참여를위한청소년운동본부를 발족하여 활동했었다. 19세 청소년들이 처음 맞이하는 선거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장기적으로 18세 청소년까지 투표권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상임대표로는 17~19세 등의 각 단체의 청소년 회원들이었다. 이러한 참여와 성장의 활동 결과를 통해 청소년운동본부는 현재 청소년 인권, 자치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07년 대선, 08년 총선과 관련, 지속적으로 청소년 선거참여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청소년들의 정치, 사회참여 확대가 미래를 더 밝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소위 기성세대들이 얘기하듯 미래의 주인공들을 잘 길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청소년들은 사회적 경험이 없으니까 그들이 정치적, 사회적 의견을 보유하지, 표출하지 않고 커주기 만을 바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미래에 독극물을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청소년들을 미래뿐 만이 아닌, 오늘의 주인공으로도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27 | 추천: 0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부자인 사람하고 가난한 사람하고 결혼하면 세상에 가난한 사람은 없어질텐데...” 어렸을 때 보았던 어떤 드라마의 주인공인 어린이의 말입니다. 같은 반 친구의 학용품을 허락 없이(?) 빌려 쓰던 달동네의 가난한 초등학생이 선생님에게 내뱉던 이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저는 당시 21살이던 지금의 정다운님(이름 불러주는 것을 좋아해서 실명을 거론했습니다)을 만나 5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안정된 초등교사로 ‘사’자 들어가는 사위도 볼 수 있는 딸이 무슨 데모하는 단체에서 일하는 5살이나 많은 사람하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장인, 장모님께서는 유학이라도 가라며 반대를 하셨지요. 그런데 가끔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오고 해서 그나마 위로를 삼았었는데 이제는 다 망해간다는 농사를 지으니 말씀은 못하셔도 얼마나 답답하고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 정다운님은 잘난 거 하나 없는 제가 최고랍니다. 제가 농사지으러 간다고 했을 때 두 말 않고 함께 했으며, 지금도 돈도 못 벌고 명예도 없고, 매일 땀 냄새 풍기며 노동일 하는 제가 최고랍니다. 결혼한 지 만5년 되었으니 한 10년 쯤 되면 그 콩깍지가 벗겨 질려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내가 교사라고 말하면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돈 걱정은 안 하겠네’하는 식의 표현을 합니다. 아내인 정다운님도 남편이 농부라 말하면 그 얼굴에서 놀람과 안쓰러운 표정을 읽는다고 합니다. 두 경우 다 경제적인 문제를 제일 먼저 떠 올리는 것 같습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굳이 변명을 찾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혹시 ‘벗’(백남룡.1988)이라는 북한 소설을 아십니까? 화려한 인민배우와 공장의 선반공인 두 부부가 신분과 생활의 차이로 인해 겪는 갈등과 사랑 얘기입니다. 요즘 여기 나오는 두 주인공이 우리부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농부인 필자의 차는 트럭... 승용차는 교사인 부인의 차입니다. 농촌으로 들어와 살면서 한해 두해가 갈수록 다툼이 늘어납니다. ‘동료, 친구다가는 대학원 가겠다’ ‘지금은 안 된다’고 다투고, ‘해외 연수라도 한 번 가고 싶다’ ‘안 된다’고 다투고, ‘새 옷 좀 사야겠다’ ‘다음에 사자’고 다투고... 남자와 여자는 생각이 다르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다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저희 부부는 큰 다툼도 작은 다툼도 관통하는 하나의 맥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과 돈의 씀씀이에 관한 것이지요. 교사인 정다운님은 주위에 선생님들 밖에 없습니다. 친구도 선배도 후배도 거의 다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선생님들은 대학원을 거의 다 다니고 요즘은 외국도 많이들 다니시더군요. 또 부부교사가 많다고 하는데 말은 안 해도 정다운님도 많이 부러워하고 있을 겁니다. 반대로 저는 주위에 농사꾼 밖에 없습니다. 온통 관심은 어려워만 가는 농촌, 농사 얘기뿐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저녁 먹고 나누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어울리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려야 되는 것인가요? 교사 부인과 농부 남편은 잘못된 조합인가요? 아닙니다. 지금은 아직 저희가 부족해서 일겁니다. 농부인 제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정다운님은 제게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입니다. 못난 저를 최고라 생각하는 마음이 고맙고, 정말 열심히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가끔 정다운님은 ‘내 남편이 교사가 아니라서 너무 좋아’라고 말합니다. 땀 흘리며 땅을 일구고 생명을 가꾸는 농부인 남편이 믿음직스러워 보이나 봅니다. 교사라서 못 보는 세상을 남편 때문에 보고, 농부라서 못 보는 세상을 아내 때문에 보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모재벌의 가계도가 뉴스에 보도된 것을 보았습니다. 정재계가 다 한 식구인- 마치 누가 일부러 그렇게 정략결혼이라도 시키는 것처럼. 에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꿈꿔 봅니다. 요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나오듯 연변 처녀가 재벌가의 며느리가 되는 것이 별일이 아닌 세상을- 달동네의 소년 가장이 말하듯 가난한 사람이 없어지는 세상을- 그러면 교사 부인과 농부 남편인 저희 부부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도 없어지겠죠?
2017-07-11 | hrights | 조회: 28 | 추천: 0
김지연/ 방송 작가 그녀는 한때 음악 PD를 꿈꿨다고 했고, 사람들 관리하며 신명나게 놀아보고 싶어 실제 지상파 라디오 PD 지원도 했었지만 떨어지고 말았다고 했다. 가장 감수성 예민하던 십대시절엔 H.O.T에 미쳐 콘서트와 공개방송은 모조리 휩쓸고 다녔다고 했고, 그 시절 통신에 써 제겼던 팬픽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모으기도 했었다고 했다. 공부 말고 하고 싶은 것은 전부 배울 수 있게 해준 엄마 덕에 장구, 단소, 통기타, 컴퓨터, 수영, 피아노 안 놀아 본 것 없이 골고루 다 놀아봤다는 그녀. 그녀는 이제 세상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3년전쯤 한 대중문화평론가가 <젊은 세대 읽기, 새로운 삶의 코드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모 일간지에 기고했던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만 알고 있던 그녀, 이효인을 처음 대면하게 된 건 석달쯤 전이었다. 제 1회 안티미스코리아 대회 참가를 계기로 힙합과 랩에 심취해 여성 힙합팀을 결성하고, 각종 여성주의 행사며 반전 집회 공연도 도맡아 하고 있었지만, 아직 삶을 관통할 그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듯 보였던, 그래서 방송국 PD 시험도 봤지만 떨어지고 난후 다시 또 무엇을 하면 좋을지 짐짓 고민스러워 보이기도 했던 예전 인터뷰 내용과는 달리, 그녀는 이제 무엇을 하며 살면 좋을지, 어떻게 하면 삶에 대한 문제의식들을 굳이 운동이라는 방식이 아니어도, 혹은 의식으로 통제하지 않더라도, 표나지 않게, 유쾌하게, 실천하며 살 수 있을지, 이미 터득한 모습이었다. 몇 번인가 자신의 음악을 교유할 팀을 만들고 해체하는 과정도 겪었고, 그 과정 속에서 홍대 앞 언더 밴드들과 섞여보려고도 했지만, 언더 그룹들만의 권력관계를 뚫고 들어가는 일조차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 인생의 일막을 접고, 드디어 동년배의 친구와 함께 ‘챕터투’라는 이름으로 보다 많은 대중을 향해 삶의 두 번째 막을 재개하고 나선 것이다. 키티 케이(본명 김미영·26)와 효인(본명 이효인·27). 여성 힙합듀오 ‘챕터투’의 멤버들. 사진 출처 - 한겨레 하여, 그녀들은 노래한다. 고시원 한 평에 몸을 구겨 넣어도 싸구려 술 한 잔과 이런 삶을 비웃지 않는 친구가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고. 그것이 완벽한 인생이라고. 그녀들은 또 노래한다. 계약직으로 착취당하며 인터넷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일자리가 없어 술집으로 흘러들어가 빠져 나오고 싶어도 정작 갈 곳 없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인터넷에 흘러 다니는 온갖 루머들에 파묻히는 인생에 대한 반성을. 물론 그녀들 앞에 장애는 무수하기만 하다. 당장, 야심차게 제작한 앨범을 들고 찾아간 방송사들에서 그녀들, 보기 좋게 한방 먹었다. 공중파 방송사 사전심의 생리에 맞을 리 만무한, 독립 레이블판 그녀들의 노래들, 결국 KBS 단 2곡, MBC 3곡, CBS 4곡, SBS 5곡만 이 겨우 심의를 통과하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고 말았던 것이다. 몰랐던 바 아니지만, 앞으로 그녀들이 겪어내고 부대껴야할 대상이 얼마나 저열할지, 그과정이 얼마나 지난할지 보여주는 단적인 대목이다. 부조리 하고 불합리하고 불편한 진실들을 외면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가. 그나마 SBS가 절반에 가까운 5곡을 통과시켜주다니, 상업방송의 파격이 차라리 존경스러울 다름이다. 병주고 약주는 방송과 정부의 엇박자는 더욱 코미디다. 얼마전 그녀들에게 낭보가 날아들었단다. 우리의 문화관광부가 챕터투를 12월의 우수음반으로 선정했다는. (물론, 문광부의 선정이 이들의 대중적 활동을 담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12월 우수 신인 음반으로 선정된 ´챕터 투´ ⓒ 문화관광부   바라건대 부디, 대한민국의 수많은 이효인과 수많은 챕터투들이 이 같은 현실과 잣대에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H.O.T처럼 동방신기처럼 수많은 팬클럽을 거느리지 않더라도, 세상은 온통 핑크빛으로만 가득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에게 세상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전해줄 수 있는, 그리하여 그 불편한 진실을 개선하는데 결정적 순간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저변과 저력을 확대하는데 유의미할 수 있는, 도무지 대체가 불가능한, 그녀들만 할 수 있는 노래를 하는, 일류 마이너 가수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30 | 추천: 0
연규련/ CJB청주방송 노조 상근활동가 “결혼 하셨어요?” [목에 가시] 필진들이 다 같이 만나는 자리였다. 처음 보는 얼굴도 있고, 알고 지내온 얼굴도 있고, 웹진에 올라오는 글을 보며 궁금했던 이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된다니 개인적으론 부끄러웠지만(난 소심한 사람이란 말입니다-_-) 한편으론 쿵짝쿵짝 방정맞을 정도로 가슴이 설레였다. 사무실과 가까운 식당에 둘러앉아 “제가 누구누굽니다” 소개를 하고 “아 그렇군요”, “이름이 그래서 여자분 인줄 알았어요”, “선생님이 일하시는 곳은 언제부터...”같은 말을 하며 안면을 익히던 중, 누군가 옆자리의 사람에게 물었다. “결혼 하셨어요?”, “여자친구 있으세요?” 질문을 받은 어떤 사람, 민주노동당의 무슨무슨 교육을 받았다던 그는 “그런 질문, 동성의 친구를 사귀는 사람들에겐 매우 곤란한 질문이라더군요” 라며 설명을 한다. 사귀는 사람의 성별을 질문하는 쪽에서 먼저 정하고 묻는 질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러고도 그 이후에 몇 번 더, 똑같은 질문이 다른 사람을 통해 반복됐다. “결혼하셨어요?” “남자친구는?”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통의 화제를 찾기 위해 또는 순전히 궁금해서라도 이런 저런 개인적인 질문을 한다. 나이, 결혼, 애인, 직장, 하는 일, 사는 곳, 전공을 물어볼 때도 있고, 결혼을 했다면 아이는 몇 명인지 묻기도 한다. 비슷하거나 공통의 관심사를 찾았을 때 어색한 만남은 금새 활기를 찾는다. 각자의 결혼과 직장과 육아문제에 대해 이야길 하며 고민도 나누고 정보도 얻는다. 그러면서 친해진다. 그렇다. 그러기 위해 위와 같은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당연하다, 나도 그런 질문을 매일 하며 산다. 지난 12월 15일 '목에 가시' 필진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것 말곤 도대체 시작할 말이 없는 걸까? 란 생각이 들었다. “저기...학번이...” 라거나 “결혼하셨어요?” 또는 “결혼 안하세요?” 라는 말 말고는 그 사람을 알만한 키워드가 정말 없는 걸까? 사람을 알아 가는데 나이와 학번과(나이랑 학번은 다른 경우가 많아서 이걸 설명할 땐 또 한나절 걸리기도 한다) 전공과 애인의 유무와 결혼은 언제 했고, 아이는 몇인지, 아이가 없다면 왜 없는지, 언제 낳을 계획인지...가 정말 중요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런 궁금증은 개인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시작된 것이기도 한데, 버릇이 없고, 예의범절을 모르며, 싸가지를 실종한지 오래된 “나”의 경우(이 얘긴 그런 질문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한 나에게 누군가 너는 그렇다며 해준 말이다) 결혼과 나이, 집안에 대한 모든 질문이 사생활의 영역이라 생각해 질문 받는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결혼한 사람들에게 반대로 “선생님, 이혼은 언제 하실 건가요?” “아이는 왜 낳으셨죠?” “제 나이가 궁금하신 이유는 사적인 겁니까, 공적인 겁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들은 기분나빠하지 않을까? 하지만 내 질문이 위의 것들과 무엇이 다른데?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도 참 지긋지긋하다. 텔레비전 광고를 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란 카피가 나오면 실컷 동감하며 흥분하고 떠들어 놓곤 광고가 끝나면 옆 사람에게 바로 눈을 돌려 자기한탄인지 푸념인지, 저주인지 모를 소리를 한다. “그런데 아무개 씨, 올해 몇이지?” 그들에겐 이십대만 청춘인걸까? 서른만 넘겼다하면 그가 누구이든 “벌써 그렇게 됐어? 아무개 씨도 이제 늙었구나” 라며 언제나 시든 꽃 취급을 한다. 호기심과 모험으로 좌충우돌했던 이십대를 지나 세상에 대한 적응력이 생기고, 일에 대한 자신감도 인간관계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도 생기는 삼십대 그리고 갈수록 몸도 마음도 넉넉해지는 사십대야말로 만개한 꽃 같은 인생의 황금기가 아닐까, 그런데 그런 황금기의 시작을 두고 ‘꺾어진 칠십’ 이런 허튼 소리만 세뇌시키다니 참 우습다. 지난 주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느라 정신이 없고 바쁘다며 저녁을 먹는 자리에 최근에 사귀었다는 동종업계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선배가 자리를 비운사이 동석한 그와 또 신상에 대한 지겨운 이야기들(-_-)을 나누다가 선배가 자기나이를 뻥 튀겨 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혹시 내가 나이를 잘못 알고 있었나 싶어 자리가 파한 다음 조심스레 물어보니 “이쪽은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전문분야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이 많은 사람이라야 무시를 당하지 않고 대접을 받는다” 고 “그래서 다섯 살이나 올려붙였다” 는 대답을 들었다. 나이를 속일 수 없는 경우라면 어떨까? 학교선생님인 친구 N은 학교운영에 대한 것이나, 학생복지와 관련된 예산에 대한 것들로 견해가 다른 선생님들과 부딪힐 때마다 “N선생이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본데” 라거나 “N선생 아직 미혼이지? 결혼을 아직 안했으니 저러지” 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 말은 뭘까, 나이도 어리고 결혼도 안했으니 너는 입을 닫고 ‘결혼한, 나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길 들어라 라는 말일까? 언제는 너도 늙었구나 라더니 이제는 어리다며, 결혼을 하지 않았다며 차이를 두다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라는 얘긴가? 그리고 학교운영이나 학생복지가 선생의 나이나 결혼과 무슨 상관이 있나? 나이 들어간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다는 것, 나를 닮은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 이런 여러 경험들을 통해 풍부한 감성과 역량을 지닌 인간이 되는 일은 멋진 것이다. 정말 정말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왜 개인을 판단하는 기준의 첫 번째 항목이 되어야 하는가? 왜 남을 비판할 때 쓰이는 무기로 둔갑해야 하는가? 아쉽다, 남들에겐 몰라도 내겐 아쉽고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첨언, 그래도 굳이 내게 나이와 결혼과 애인과 우리 부모님과 기타 등등에 대해 묻겠다면 좋다, 묻는 건 당신의 자유니까, 하지만 나는 답해주지 않겠으니 맞춰보시라, 당신의 오지랖으로
2017-07-11 | hrights | 조회: 30 | 추천: 0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 신(新) ‘이불을 꿰매면서’ -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 “이불 홑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의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 달라 물 달라 옷 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한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 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면서 나는 성실한 모범 근로자였다. 노조를 만들면서 저들의 칭찬과 모범 표창이 고양이 꼬리에 매단 방울소리임을 근로자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보살핌이 허울좋은 솜사탕임을 똑똑히 깨달았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 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다.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 낸다. 노동자는 이윤을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 홑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엄청난 고통의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희망찬 ‘혁명’의 시대였던 지난 80년대, 노동자 시인 박노해는 ‘이불을 꿰매면서’라는 시를 통해 비참한 남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가, 집에 와서도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아내(여성 노동자)의 삶을 노래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자신도 노동자인 박노해는 어느 날 이불을 꿰매면서 여성들이 가정 밖 현실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가사나 육아노동으로 가정에서까지 ‘착취’받는다는 것을 간파하고, 여성의 ‘가정에서의 해방’까지도 노래한 것이죠. ‘인간해방’을 목소리 높여 노래하던 혁명의 시대로부터 20여년이 흘러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불을 꿰매는’ 남편을 찾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성 노동자에게 드리워진 깊은 고통이자 굴레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가정에선 누군가 늘 절망을 맛봐야 할 것입니다. 집안일을 해보거나, 아이를 키워 본 사람들은 압니다. 심지어 바깥 직장에서의 노동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설거지를 하다보면 참 허리가 아픕니다. 반찬을 만드는 일에는 보통 정성(공부까지 포함해)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잡채를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목이 저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집안일은,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게 말해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저만 해도 함께 일하는 아내와 가사 및 육아 노동에서의 공정한 분담을 수없이 많이 약속했건만, 번번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똑같이 일하고 들어왔는데, ‘여성들이 더 많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한다면’ 이는 분명 불공정하고 불의한 일입니다! 만약에 남성들이 그런 ‘부당한’ 처지였다면, 그 가열찬 투쟁의지로 아마도 단박에 이런 모순을 분쇄하고, 평등세상을 이뤘을 것입니다. 그것도 가정에서부터. <아름다운가게>에 다니는 아내를 위해 도시락 반찬을 마련하면서, 그 예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온갖 가사 일과 노동일까지 하시면서, 3남 1녀의 도시락을 챙기시던 어머님을 떠올립니다. 이 땅의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가정에서 ‘착취’를 당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그 모진세월을 감내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말 좀 했다가는 바로 ‘못된 여자’가 되고 말았지요. 요즘, 세상이 별로 희망적이지 않다고 하고 웃을 일이 없다고들 합니다. 국민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앗아간 수없이 많은 일들을 떠올리며, 그 절망들을 걷어내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일에 매진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하지만, 그 다짐은 가정에서부터 실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일로 지친 아내(여성 노동자)를 가정에서까지 불공정한 가사 및 육아분담으로 더 힘들게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 지원한 애니메이션 <별별 이야기>의 6가지 주제 중에서 맞벌이를 하면서도 가사노동 전부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의 일상에 대한 스케치 “그 여자네 집”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아내들(여성 노동자들)에겐 그것이 조금이라도 웃음이, 희망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감히 이런 다짐을 ‘신(新) 이불을 꿰매면서’라고 불러봅니다. ‘신 설거지를 하며’ ‘신 화장실 청소를 하며’ ‘신 아가를 키우면서’ ‘신 앉아서 쉬를 보면서...’ 뭐든지 다 좋습니다. 그렇게 ‘이불을 꿰매면서’는 더 많이, 더 넓게 부활해야 합니다. 얼마 전 저는 ‘앉아서 일보는(쉬하는) 사람’이라고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전부터 이런 ‘재밌는’ 실천을 해오던 수없이 많은 이들이 있었는데, 시작한지 몇 달 밖에 안 된 제가 소개 돼 어색한 마음은 지금까지도 여전합니다. 남성들이 앉아서 쉬하는 것, 함께 사는 여성들은 대찬성입니다. 그것 하나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남성들이 서서 쉬를 하면 좌변기에서는 수없이 많은 파편들이 사방으로 튄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다 입증됐습니다. 청결과 위생을 생각해서도, 자기 다음에 이용하는 이가 혹시라도 불쾌하고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라도 어서 그렇게 해야겠습니다. 한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원래 ‘좌변기(坐便機)’가 앉아서 일을 보는 기구라는 뜻이지 않느냐. 자기도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면서 웃더라고요. 참 기쁜 일! 입니다. 남성들에겐 조그만 실천이 가정에는, 여성에게는 큰 웃음이 되고, 큰 희망이 될 수도 있는 법이죠. 또 하나, 화제가 되고 있는 일이 있습니다. 여성들은 수영장 등 스포츠시설에 똑같이 한 달 치 돈을 내고도 월경기간에는 짧게는 3-4일, 길게는 1주일동안 이용을 못하는 경우가 ‘피치 못하게’ 발생합니다. 그럼에도 어떤 수영장에서도 조금이라도 환불을 해주거나 기간을 연장해주는 곳이 없습니다. 도저히 입수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을 수영장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성 수영 강사의 경우, 월경기간에는 입수해서 지도를 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한 달 치 내고 몇일 그냥 빠져도 어쩔 수 없다’는 셈인 것이죠. 생리를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가임기 여성의 삶의 조건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이해한다면, 기간을 연장해주거나 환불해주는 문제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다행히 한 포털 사이트에서 긴급히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그런 경우는 환불이나 기간! 을 연장해주어야 한다’는 답이 90%가 넘었습니다. 제발이지, 이제는 여성들이 가정에서, 사회에서 쓸데없이 고통 받고 억울한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여성들에겐 그것이 남성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절실할 것이고, 그래서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이 희망 중의 중요한 하나일 것입니다. 앞으로 개통하게 될 9호선에서는 여성 화장실이 남성 화장실보다 더 넓어서 여성 화장실에서 줄을 서야 하는 여성들의 고통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야 합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적용하는 것이 정말 좋은 사회 아닐까요? 남성들이 사회적으로 절망하고 있다면, 여성들은 사회적 절망과 함께 남성 때문에 한 번 더 절망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절망을 치유하는 일은 녀남 모두 힘을 합쳐 우리 시민들이 해나가야 하지만, 남성 때문에 생긴 여성의 절망은 남성의 변화를 통해서만이 치유가 가능합니다. 우리 모두 다시 이불을 꿰맵시다. ‘신(新) 이불을 꿰매면서’를 목 놓아 부릅시다. 추신 - 저 역시 오늘도 아내보다 가사와 육아일을 덜 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미안해서 반찬을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역시 만만치 않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습니다. 그동안 주방에서 여성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필자는 희망제작소에서 사회창안팀장으로 일하는 안진걸 님입니다. 이 글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 희망칼럼에도 올라갑니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64 | 추천: 0
이현정/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간사 얼마 전 일이다. 청소년 회원 한 명이 지금 전쟁 상황도 아닌데 왜 지금 미국의 ‘종전선언’이 언급되느냐고 물었다. 의아해 했을 만도 하다. 소극적 평화의 개념이겠지만, 지금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전쟁을 끝낸다는 선언이라니... 그런데 이 청소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또한 앞 청소년과 같이 한국전쟁이 끝난 지 50여년이나 흘렀는데, 지금의 한국전쟁 종전선언 발표를 의아해 했을 것이라 본다. 이렇듯 한국사회는 현재 환경, 노동, 교육, 심지어 부동산광풍 까지 여러 의제 속에서 허덕거리며 흘러가고 있으며, 이러한 가운데 ‘통일’이라는 것은 주변 생활과는 동떨어진 개념이다 보니 아직도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는 ‘정전협정’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아온 것이다. 관련하여 어떤 이들은 국민들의 ‘안보 불감증’이 높아져 매우 위험하다고 외치는데, 사실 국민들을 분열시킴으로써 오히려 그들이 국민들의 안보, 즉 안전보장을 더욱 위험하게 부추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지난 7월, 10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 이후 대한민국 언론, 여론 등에서는 남북관계, 통일 분야에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있다. 그만큼 국민의 관심도가 높다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러 사건의 발생 원인, 향후 전망, 해결방법 등에 대해서는 모두 제 각각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입장도 다양하였다. 그러면서 역설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한국사회에서 ‘통일 인식’의 점유율이 점차 높아져 갔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인이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서 서울지역 대학생 1,224명을 대상으로 ‘통일의식 설문조사’를 펼쳐봤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다소 내용이 길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사회 대학생 신분의 구성원들은 통일에 대해 어떠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지 인권연대 회원분들에게 그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해본다.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사업은 지속되어야... - 서울지역 대학생 1.224명을 대상으로 한 통일의식 설문조사에서 나타나 - 통일에 가장 저해가 되는 국가는 미국, 북핵 문제는 미국의 강경책 때문 - 전시작전통제권은 환수해야 하며, 미국의 해외주둔군재배치(GPR)는 동북아 평화 위협 - 북한 수해돕기 모금운동은 잘한 일이며, 남북한 모두 핵을 가져선 안돼 - 북한 핵실험은 자국의 안보(32.4%)와 미국과의 대화를 촉구(25.8%)하기 위한 것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흥민통)에서는 대학생의 통일·동북아 인식 및 관련 현안 인식을 파악하고자 2004년부터 ‘대학생 통일의식조사’를 실시해 왔다. 이 조사는 매년 동일한 설문과 현안문제에 대한 설문으로 이루어지는데, 동일한 설문은 대학생 통일의식의 흐름과 변화를 파악하기 위함이며, 현안문제 설문은 주요 여론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조사결과 결과 대다수가 통일을 바라고 있으며(응답자의 78.3%), 북한을 협력적인 대상(40.1%)이라기보다는 다소 위협적인 대상(45.0%)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북핵 실험이 북한에 대한 인식을 다소 부정적으로 변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역설적이게도 한반도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통일에 대한 당위성 인식을 높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통일에 가장 저해가 되는 나라로는 미국(51.4%)을 지목했으며(북한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25.2%), 북한 핵문제 발생의 주요원인도 미국의 대북 강경책(50.7%)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의 해외주둔군 재배치 계획(GPR)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할 것이라고(50.1%) 보았으며, 전시작전권도 회수 되어야 한다(52.7%)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학생들이 전반적으로 기성세대와는 달리,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있어서 미국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의존적인 동맹관계 보다는 자주적, 또는 동등한 관계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학생들이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은 지속되어야 한다(66.1%)고 생각하고 있으며, 수해를 입은 북한을 돕기 위한 모금도 필요한 운동이었다고(73.9%) 평가했다. 이는 대학생들이 정치, 군사적 문제를 다른 여타 분야와 밀접하게 연관지어 사고하던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났으며,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조사는 서울소재 대학생 1,224명을 대상으로 11월 20일부터 24일까지 면접원에 의한 직접 설문조사를 통해 이루어 졌으며, 통계 분석은 전문 통계분석기관인 ‘리서치 플러스’를 통해 이루어 졌다. 총 16문항에 대해 남녀, 병역복무 여부, 전공, 학년 등으로 구분하여 조사하였다. 이들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요 설문조사 결과는 아래와 같다. 1. 한반도 통일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대답한 학생은 78.3%였고, 통일이 되면 안 된다고 응답한 학생은 9.6%였다. 기타 통일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대답한 학생은 11.9%였다.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은 78.3%로 2004년( 71.7%), 2005년(68.6%)보다 다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통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학생의 비율은 9.6%로 2004년(18.9%), 2005년(18.2%)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이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 핵 실험 등으로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었으나, 역설적으로 남과 북의 평화정착과 통일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2. 북한이 우리에게 어떠한 대상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위협적인 대상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45.0%, 협력적인 대상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40.1%, 모르겠다고 대답한 학생은 14.7%인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을 위협 대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5%로 2004년(42.5%), 2005년(31.0%)에 비해 다소 증가하였으며, 협력 대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0.1%로 2004년(44.7%), 2005년(51.5%)보다 다소 줄어들었다. 이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핵 실험 등으로 위기감이 고조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3.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는 군사적 긴장완화(35.0%), 정치적 신뢰구축(33.1%), 민간교류 확대(18.5%), 경제협력(11.8%) 순으로 조사되었다. 4. 대북 경제지원과 화해협력 정책이 북한의 변화와 한반도 평화에 기여를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대답이 50.4%로 기여를 했다는 응답(43.4%)보다 높게 조사되었다. 이는 기여를 했다는 응답이 더 많았던 2004년, 2005년과는 다른 결과이다. 2004년의 경우 기여를 했다고 응답한 비율과 기여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각각 48.8%와 46.9%, 2005년의 경우에는 각각 51.7%, 39.6%였다. 남북간 화해, 협력 분위기가 높았던 2005년과는 달리 올해는 북핵 위기로 긴장관계가 고조되었기 때문에 경제지원 및 화해협력 정책의 효과에 대한 확신감이 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5. 통일에 가장 방해가 되는 나라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는 미국(51.4%), 북한 (25.2%), 중국·일본(각 9.6%), 남한(2.9%), 러시아(0.9%) 순으로 응답하였다. 미국은 2004년 이래로 가장 통일에 저해가 되는 국가로 나타났으며(2004년 60.2%, 2005년 50.9%), 북한은 미국 다음으로 통일에 저해가 되는 국가로 조사되었다.(2004년 19.1%, 2005년 22.5%) 통일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학생이나 북한을 위협적인 대상이라고 보는 학생들도 미국이 통일에 가장 저해가 되는 국가라고 응답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6. 통일 후 예상되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경제력 차이(52.8%), 사상의 차이(31.0%)로 인한 혼란을 선택한 학생들이 많았다. 이밖에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10.2%), 생활습관 차이(4.7%), 언어 이질화(1.0%) 순이었다. 7.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조성하는데 있어서 한미동맹과 자주외교 중 어느 것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의에 대해서는 ‘한미동맹과 자주외교의 균형’이라고 대답한 응답이 47.8%로 가장 많았다. 한편 자주외교가 더 중요하다는 답변은 28.0%로 한미동맹이 더 중요하다는 답변(23.9%)보다 높았다. 8. 북한 핵문제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이라고 말한 응답자가 50.7%로 가장 많았고, 북한의 무력도발 의도(24.0%), 한국의 적극적인 중재노력 부재(11.0%), 동북아 군사대국화(8.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9.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가장 큰 이유를 묻는 질의에 대해서는 ‘자국의 안보를 위해서’라고 응답한 학생이 32.4%로 가장 많았고, ‘미국에 대한 대화 촉구’라고 대답한 학생이 25.8%, ‘미국을 위협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 학생이 23.0%였다. 그리고 ‘한국을 위협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한 학생은 7.4%로 가장 낮았다. 10. 북한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의에 대해서는 지속되어야 한다는 답변이 66.1%로 축소시키거나(19.2%) 중단시켜야 한다(6.9%)는 답변보다 월등히 높게 나왔다. 이는 북한 핵실험으로 군사적 긴장관계가 고조되었고, 이에 따라 대북협력 정책에 대한 회의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경제협력 및 민간 교류는 지속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저변에 확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답변이다. 11.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질의에 대해서는 환수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52.7%로 환수하면 안 된다는 응답자(24.7%)보다 많았다. 모르겠다고 응답한 학생도 22.4%나 되었다. 북한의 위협대상으로 보고, 통일에 가장 저해가 되는 나라로 북한을 지목한 학생들도 환수해야 한다는 응답이 더 많았다. 12. 미국의 해외미군재배치계획(GPR)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동북아 평화를 위협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대답이 50.1%로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답변(20.7%)보다 높게 나왔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이 한반도 통일에 가장 저해가 되는 국가라고 응답(50.9%)한 것과 매우 밀접하다. 13. 올 여름 큰 수해를 입은 북한을 돕기 위한 모금활동에 대해서는 필요한 운동이었다는 답변이 73.9%로 높게 나타났다. 필요없는 운동이었다는 답변은 16.1%에 머물렀다. 이는 대다수 대학생들이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북한의 상황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14. 북한 핵실험으로 고조되었던 갈등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선언으로 대화국면으로 접어들었는데, 이러한 대화국면 조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나라는 어디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중국(29.7%)과 한국(23.6%)을 선택한 학생이 많았다. 다음으로 미국(20.8%), 북한(18.7%) 순으로 나타났다. 15.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는 남북은 물론 외국의 핵우산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답변이 54.0%로 가장 많았다. 남북 모두 핵을 가져서는 안 되지만 핵우산은 필요하다는 답변은 19.6%, 남북한 모두 핵을 가져야 한다는 답변은 19.0%였다. 남한만 또는 북한만 핵을 가져야 한다는 답변은 매우 적었다.(각각 4.7%, 2.1%) 16. 통일,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경로에 대해서는 언론(73.5%), 인터넷(56.8%), 학교수업(12.4%), 도서·논문(11.1%), 가족·친지(6.9%), 사회·시민단체(6.1%), 친구·선배(6.0%) 순으로 응답하였다.(1, 2순위 복수응답) 종합적으로 이번 대학생 통일의식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북한을 위협적인 대상으로 보는 학생들이 예년에 비해 증가(2004년 42.5%, 2005년 31.0%, 2006년 45%)했고, 대북 경제지원과 화해·협력정책이 한반도 평화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증가(2004년 46.9%, 2005년 39.6%, 2006년 50.4%)했다. 이는 북한이 미사일 실험과 핵실험이 대학생들의 대북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변하게 하고, 화해·협력정책의 효과에 대해 회의감을 들도록 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은 더욱 높아졌다.(2004년 71.7%, 2005년 68.6%, 2006년 78.3%) 통일이 되면 안 된다고 대답한 학생은 극소수(9.6%)였다. 이는 북한의 미사일, 핵실험이 역설적이게도 대학생들에게 한반도 문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통일에 대한 당위성 인식을 높인 것으로 분석된다. 기존에 통일이 안 되었으면 좋겠다던가, 통일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에게 남과 북의 삶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한반도(한민족)는 공동체라는 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다. 한편 미국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에 가장 저해가 되는 나라로 미국(51.4%)을 지목했으며(북한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25.2%), 북한 핵문제 발생의 주요원인도 미국의 대북 강경책(50.7%)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의 해외주둔군 재배치 계획(GPR)은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할 것이라고(50.1%) 보았으며, 전시작전권도 회수 되어야 한다(52.7%)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학생들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있어서 미국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의존적인 동맹관계 보다는 자주적, 또는 동등한 관계를 바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라. 북한 핵실험으로 대북 경제협력과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회의감이 생기기는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학생들이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은 지속되어야 한다(66.1%)고 생각하고 있으며, 수해를 입은 북한을 돕기 위한 모금도 필요한 운동이었다고(73.9%) 평가했다. 이는 대학생들이 정치, 군사적 문제를 다른 여타 분야와 밀접하게 연관지어 사고하던 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났으며, 교류·협력과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 통일에 대한 찬반 여부, 북한에 대한 인식(협력-위협 대상)을 기준으로 교차분석(cross checking)한 결과 ‘통일에 찬성-북한은 협력대상’, ‘통일에 반대-북한은 위협대상’이라는 인식 차가 다른 문항에서도 상관관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전 조사와 다른 점은 ‘통일에 반대-북한은 위협대상’이라고 응답한 학생들도 미국의 존재(통일에 가장 저해가 되는 국가로 미국을 선택),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북한 핵문제의 원인은 미국의 강경정책,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찬성, 미국의 해외미군재배치 계획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할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통일에 반대-북한은 위협대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인식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44 | 추천: 0
윤요왕/ 강원도 춘천의 농사꾼 추수가 끝난 앞뜰의 너른 논바닥위로는 아침마다 하얗고 굵은 서리발이 겨울을 재촉하고 있다. 한 포기에 500원도 되지 않는 배추가 그마저도 팔리지 못하고 매서운 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암담한 농촌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한미 FTA 반대 집회가자는 농민단체의 차량방송이 아침부터 울려 퍼진다.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에는 올해도 힘들 것 같다. 겨울 공부방 준비로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데 흥겨운 음악소리에 이어 마을회관으로 모이라는 이장님의 방송소리. 회의 안건은 올 봄부터 우리 동네로 들어온다며 시끄러웠던 해양수산부의 ‘무선 송수신탑’(위성항법보정시스템) 문제. 1만여평의 부지에 100m나 되는 무선 안테나를 세우는 정부사업이다. 길도 없는 동네 한가운데의 얕은 야산을 지난겨울 아무도 모르게 서울의 땅주인에게 매입하고 길을 팔라며 동네를 들쑤시며 돌아다녀 알게 된 것이 올 2월. 동네회의를 통해 반대를 결의하고 현수막을 걸고 반대서명을 하고 우리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 고생 꽤나 했었다. 예정부지로 통하는 길도 없고 강제수용도 할 수 없는 사업이니 길만 팔지 않고 버티면 못 들어오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잠잠하다가 이번 동네 할아버지 한 분 앞으로 온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제목의 공문에는 강제로 도로부지를 매입하겠다는 것이다. 법률적으로 싸워볼 수는 있지만 이기기는 힘들다는 변호사님들의 대답에 긴 한숨만 나온다. 받을 것 좀 많이 받고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들의 의견도 나오고 그것 들어오면 동네 망친다며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오고 분분하다.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 본다. 원래 산 넘어 옆 동네에 땅을 매입하고 장비들까지 들여왔다가 절대농지인지 몰라 포기했다는 사업. 그런데 이상하다. 정부가 절대농지인지도 모르고 부지를 매입했다? 또 토지도 강제수용 할 수 있는 정부의 공익사업인데 절   사진 출처 - 해양수산부 대농지라 안 된다? 그 마을 주민대책위원장님도 오셔서 이 사업은 강제수용 안 되는 사업이니 길만 내주지 말라고 하셨다. 1년 만에 무소불위 국가권력의 핵심인 ‘공익사업’이 된 이유는 뭐지? 해양수산부 관계자를 만나 왜 우리 마을이어야 하는지 물었다. 지금 부지는 동네 한가운데고 길도 없고 민가도 너무 가까우니 꼭 세워야 한다면 국유지에 민가도 없는 그런 곳으로 하지 왜 우리 동네여야 하느냐고. 그런데 관계자는 춘천에 꼭 세워야 하며 전파가 어쩌고 하면서 99가지 조건이 맞아야 하는데 춘천에 우리 마을 밖에 없다고 한다. 하하하! 99가지 조건이 맞는 부지가 춘천에 딱 두 군데 있다는 얘기. 그런데 한군데는 비교적 젊은이가 많아 반대가 심하고 한군데는 노인들이라 괜찮다? 부합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 한 가지는 마을주민이었구나! 몇 년 전에 강원도 횡성의 송전탑 문제로 싸웠던 적이 있었다. 울진에서 서울까지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송전탑을 세우는데 가까운 직선거리를 두고 온 백두대간을 파헤치며 빙 돌아 송전탑을 건설하는 이유가 비교적 만만한 산골, 시골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었다. 물론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정말 99가지 조건이 맞는 유일한 곳이 우리 동네 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주민들과의 충분한 협의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혹시 동네주민의 구성이 대부분 노인이어서 반대가 적을 것이다 라는 등의 이유가 국가사업을 결정하는데 우선 순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된다. 가만 두어도 시름에 겨워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농촌이다. 힘없다고 늙었다고 무시하고 괄시하지 마라. 올 겨울은 ‘아이들 공부방’ 투 잡(TWO JOBS)에 ‘송신탑 반대’ 쓰리 잡(THREE JOBS)으로 보내야 될 것 같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57 | 추천: 0
김지연/ 방송 작가 때때로 낯선 전화를 받게 될 때가 있다. 모 대학 신방과에 재학 중인 방송 일에 관심 있는 학생인데, 방송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듣고 싶다는…. 혹은 방송작가가 되기 위해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엘 다니고 있는데, 도무지 자리가 나질 않는다는…. 아무 일이라도 좋으니 방송 일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함께 일했던 게스트, 진행자, 동료 작가들의 소개로 어찌 어찌 연락이 닿게 된, 미래 어느 때든 어떤 방식으로든 방송일을 하고야 말겠다며 벼르고 있는 예비 인력들의 하소연이다. 환타지를 이용한 방송사들의 상술 대중들에게 직업공간으로서의 방송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유명 인사들과 화려한 연예인들이 연일 드나드는 그 공간에서 그들과 교유하며, 일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다면 분명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을 터이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방송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현실이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는 나중 문제일 뿐 아니라, 실제 일을 해보기 전에 이 같은 현실을 알아채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타 직업공간들에 비해 접근자체가 쉽지 않은 방송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그야말로 환타지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어쩌면 그래서 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방송에 대한 이 같은 환타지적 인식은 방송인력, 특히 작가를 포함한 비정규직 인력들에게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반대로 방송사들에겐 확실하고 안정적인 수익창출 시스템을 보장해준다. 거대 방송사들이 모여 있는 서울엔 KBS, MBC, SBS 등 방송 3사를 비롯해 작가협회, 영상원 등에서 운영하는 방송아카데미들만 대여섯 곳이 넘는다. 이들 아카데미에서는 방송작가, PD, 엔지니어, 카메라맨, 아나운서 등 분야별로 6개월에 각각 100명에서 50명 가까이 되는 수강생들을 모집한다. 작가 만해도 한 아카데미에서 6개월에 100명, 1년이면 200명을 배출한다. 대여섯 곳만 추산하더라도 1년에 1,000명이 넘는 예비인력들이 배출되는 것이다. 6개월에 200만원을 웃도는 수강료는 사립대학 등록금 수준이다.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일부 아카데미들에선 수강 신청 경쟁률만도 5:1을 넘어서, 돈 내고 다니는 학원임에도 별도의 면접이나 글쓰기 따위의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그나마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웃지 못할 광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아카데미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 방송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이들 학습기관들이 수강생들의 일자리를 보장해주거나, 그러겠다는 의무감 따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방송사로선, 수강생들의 지적 욕망, 혹은 방송이라는 준거집단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이들의 열정을 이용한 그야말로 포기할 수 없는 확실한 수익사업인 셈이다. 사진 출처 - 쿠키뉴스 환타지에 가려진 방송 비정규직의 이면 (모든 일이 마찬가지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넘치는 공급은 방송사에게 사람 선택의 폭은 넓혀주고, 작가를 비롯한 비정규직 인력들의 평균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심각히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부여한다. 자연히 방송작가들은 객관적 노동환경보다 내부경쟁 논리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방송사 조직 논리에 발목 잡히는 수순으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인력의 역량과,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논리는 걷어내고 구조에 대한 얘기만 하자.) 사정이 이렇다보니, 무늬만 프리랜서인 방송작가를 비롯한 방송 비정규직들이 각자 처한 노동환경에 대해 갖게 되는 문제의식들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2001년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산 모 방송사에서 작가, 리포터, DJ를 비롯한 일련의 방송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서서 관심을 모았던 적이 있다. 서울에 모여 있는 방송사들에 비해 자체제작프로그램이 상대적으로 적고, 인력규모도 적다보니, 지방방송사들의 노동환경은 당연히 수도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 원고작업은 물론 청취자 선물포장, 차심부름까지 온갖 잡일을 다 해가며 한 달 꼬박 일해 봐야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교통비 정도로 만족해야하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작가들의 노조결성 움직임이 지방으로부터 태동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논란을 통해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 낸 것이 그나마 성과라면 성과였을 뿐, 이 문제제기가 현실적인 동력으로까지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필자가 함께 일하던 PD에게 넌지시 지역방송사 작가들의 동향을 전하자, 고민도 필요 없다는 듯 단박에 내놓는 답변이란 이런 것이었다. “회사가 굳이 피곤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노조소속 작가들을 고용하겠느냐는…. 돈 안줘도 일하겠다는 사람들 줄서있다는….” 돈 안줘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넘친다? 작가들 처지에 대한 이해도 깊고, 작가들과의 동료의식도 비교적 두터웠던 시사프로그램 PD의 이 솔직한 발언은 방송 비정규직에 대한 방송사의 인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던 것이다. 더욱이 대한민국 방송 비정규직 90%가 집중돼 있는 수도권 인력들은 이 같은 지역방송 비정규직들의 움직임에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그 현실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는데, 이런 배경에는 수백, 수천 만원의 원고료를 벌어들이는 상위 5% 미만의 작가들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작가인력 내부의 심각한 양극화 문제도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요컨대, 이것이 바로 방송이라는 직업공간에 대한 막연한 환타지와 거품이 만들어낸 악순환 구조의 실체일진대, 이런 현실을 과연 노동환경을 포함해 직업적 경쟁력까지 확보한, 수많은 사람들이 몸담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직업공간이라고 말 하고, 권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방송공간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동시에 자아실현도 할 수 있게 되기를 꿈꾸는 예비 방송인력들이 물어오는 질문들 앞에서 내가 난감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17-07-11 | hrights | 조회: 46 | 추천: 0
연규련/ CJB청주방송 노조 상근활동가 작년 추석은 조합에 들어와 처음 맞는 명절이었다. 추석상품 판매에 정신이 없다가 연휴 전날인가..경비실과 청소용역 아주머니들 추석선물을 사러 근처 마트에 갔다. ‘그래도 명절인데...’ 하는 생각에 열세 개에 한 세트라는 배 다섯 박스를 카트에 싣고 퇴근시간에 늦을까봐 끙끙거리며 콜밴 주차장으로 향했다.   사진 출처 - 이데일리  ‘콜밴 타고 회사까지 길어야 5분, 30분은 남겠구나.’ 싶었는데 명절 코앞이라 그런지 줄이 길었다. 드디어 내 차례! 배 박스를 트렁크로 옮겨 싣던 기사양반, ‘이게 다 몇 박스야?’하더니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다. 기본요금만 내면 되는 거리라 살짝 미안했지만 내색치 않고 어디까지 가는데요 하니 대뜸 “이 천원엔 못가요” 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냐? 그럼 어떻게 간단 말이냐” 반문하는 내게 그 분, “삼천 원은 더 줘야”한단다. 뭬야? ㅂAㅂ;; 따지기 좋아하는 성미가 밀고 올라온다. 어쩔까 두 번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지하 2층, 서비스 센터로 카트를 밀고 달려갔다. 사정설명을 하고, 외워두었던 콜밴 번호판을 줄줄 읊으니 담당직원이 여기저기로 전화를 한다. 그러길 몇 번, 하지만 신통한 답을 못 들었는지 “아, 그래요.”만 반복하다 푸들거리며 서 있는 내게 “안 그래도 이런 일이 자주 있었어요. 다음부터 시정할 테니 이번엔 손님이 요금을 부담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도 쌀사서 집에 가져갈 때마다 천 원씩 더 내거든요.”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아~ 갑자기 가슴 속에서 뜨거운 뚝배기가 끓는 것만 같다. 뿌글뿌글 속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서비스센터 앞에서 두 번째 실랑이가 벌어졌다. “규정대로 하면 원래 요금이 얼마인 거죠?” “이천 원이요” “그런데 왜 나보고 더 내라고 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어느 고객이 불편하지 않겠어요. 애초부터 합리적인 요금을 정하던지, 아니면 명절 같은 특수기간엔 이러이러한 예외가 있을 수 있다 공지판 이라도 세우던지 해야 하는 거 아니예욧! 자기들은 아무것도 안하면서 지금 나보고 그 돈을 내라는 거예욧!!!”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있을 때 고객관리팀장이 다가왔다. 그런데 그는...앗!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전 직장에서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 가끔 사무실 식구들과 술도 한잔하곤 했던 그 사람이 자기가 잘 말해 볼 테니 같이 가보자며 소매를 잡아끌자 화가 한풀 누그러진다. ‘아 또 이렇게 넘어가는 군, 아는 사람이라고 봐주면 안 되는데 난 역시 너무 물러...’ 다시 콜밴들이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으로 올라가며 회사의 안일한 대응과 관련된 모두의 뻔뻔함에 대해 항의하자 그 역시 이런 일이 한 두 번은 아니었단다. 쳇, 쳇, 쳇, 개선하지도 않으면서 한 뼘 도움도 안 되는 같은 얘기의 반복...다른 기사와 기본요금에 천원을 더 붙여 움직이기로 흥정을 끝내자마자, 아까의 그 기사가 눈에서 레이저를 뿜으며 지나갔다. “새파랗게 젊은 X이...전화를 해대고...이 바쁜 통에 사람을 오라 가라 하게 만들고...어디서..XX이야” “뭐라구요? 아저씨, 지금 저한테 욕하셨어요?” 전쟁이 날 것 같은 순간이었다. 말리는 사람들과 싸울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섞이려는 순간, 갑자기 흰색 와이셔츠에 타이를 맨 남자가 등장했다. “무슨 일이야? 손님 앞에서 뭐하는 거야?” 갑자기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와이셔츠씨 에게로 향했다. 나를 따라왔던 고객관리팀장에게 대충의 상황을 들은 와이셔츠씨는 갑자기 전화를 걸라며 소리쳤다. “당장 전화해서 오늘부터 콜밴 빼!” ‘어? 저 사람 누구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호통 치는 소리에 놀란 몇몇이 와이셔츠 앞에서 무슨 무슨 설명을 하기도 하고, 나와 싸움직전까지 갔던 기사도 그게 아니라며 해명의 제스츄어를 취할 쯤, 난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지 못한 채 어리벙벙한 얼굴로 회사로 향하고 있었다. 문을 닫아주던 또 다른 직원한명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점장님이세요. 아까부터 다 지켜보고 계셨나 봐요. 어쨌든 한두 번 있던 일은 아니거든요. 죄송합니다, 손님”이라고 했다. 회사로 가는 차안, 앞자리에 기사는 “밥벌어먹기 정말 어렵네요, 우린 개인사업자 형식으로 들어와 있는 거라 요금 조정도 마음대로 못해요. 명절 대목 때 아니면 언제 돈 벌어요. 기름 값도 안 나오지”라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회사로 돌아와 퇴근 직전인 사람들에게 부랴부랴 선물을 나눠주고는 사무실에 올라가 고객관리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됐어요?” “30분전에 콜밴 다 뺐어요.” “어떡해..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면 어떡해요? ㅠ_ㅠ 내가 원한 게 이런 건 아니잖아요. 사과하고 공지판이나 하나 세우면 되지 누가 다 내쫒으래요. 그리고, 아까 그 사람 정말 점장 맞아요?” “네, 점장님 맞아요.” “그럼, 나 그 사람이랑 연결 좀 해줘요. 내가 직접 얘기할게요.” “우리도 피해가 막심해요. 갑자기 콜밴을 빼는 바람에 발 묶인 고객들 항의도 빗발치고 다른 콜밴 업체들도 아무도 안 들어오려고 하고 있거든요.” 아~!!! 일이 일파만파로 커져버렸다. 갑자기 후회가 몰려왔다. ‘참을걸, 그냥 달라는 대로 주고 명절떡값이라 생각할걸’ 하는 생각이 끝도 없이 솟아올랐다. 가시방석 같은 명절이 지나갔다. 연휴 내내 전화하고 물어보고, 사정을 해도 난 와이셔츠 씨와 통화할 수 없었다. 후회는 자책과 함께 떠날 줄을 몰랐다. 그래도 명절인데 하며 과일박스를 챙겨들던 마음은 명절인데 그 사람들은 전부 어디 가서 벌이를 하나, 한두 명도 아니고 다 같이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났으니 떡값도 집에 가져가지 못했겠네, 노동조합 간사라면서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라는 자책으로 이어졌다. 내 하소연을 듣던 친구들이 나대신 와이셔츠를 욕해줬지만,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위로받을수록 움츠러들기만 했다. 그리곤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반복해서 생각할 뿐이었다. 어디부터 잘못됐을까?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한순간도 거짓 없이 정의롭기만 했었나? 와이셔츠가 미웠다. 부드럽게 풀 수도 있었을 텐데, 상식적으로만 행동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태를 만든 그가 너무 얄미웠다.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다 갑자기, 알았다. 사실은 내게도 나보다 더 큰 권력을 이용해 그 기사를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소비자와 개인이라는 이름으로는 통하지 않았겠지만 서비스 센터와 고객관리팀을 통해서 너는 옳지 않다고, 그러니 내게 사과해야 마땅하다고, 나는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고 당신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거라고, 그러니 너는 틀렸고, 나는 맞았다고 이야기 하고 싶었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부끄러웠다. 정당하다는 방패 뒤에 숨어서 나는 내 권력을 행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차분했었다면, 조금만 더 생각을 하고 말했었다면 고객센터로 달려갈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합의를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여자라서, 어리기 때문에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앞뒤 안 재고 화부터 낸 그때의 내 자신이 보여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내 눈에 들보는 보지도 못하면서 맨 날 사회정의가 어쩌고 하던 자신이 창피스러웠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6개월쯤 지난 뒤에 민주노총 산하에 육밴연대라는 콜밴 연합조직이 생겼다는 거다. 사업장엔 운임요금표가 그려진 게시판도 세워졌다. 이 같은 소식은 친절하신 고객관리팀장님께서 전해주셨다. 아마도 내가 후회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테지. 물론, 그 사건 이후로 가장 위로가 됐던 말이었다. 잊지 못할 기억, 추석 때마다 나는 한동안 괴로울 것 같다.
2017-06-27 | hrights | 조회: 64 | 추천: 0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   차량이 계급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탄 차량이 당신의 신분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집에 이어서 계급을 나타내는 징표가 하나 더 있는 셈입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고급차량을 보며)당신, 참 잘 사셨군요’와 같은 광고 문구는 ‘인간성’과 ‘진정성’을 대신해 인간에 대한 평가 척도를 차지한 ‘차량’과 ‘집’에 대한 가치를 가장 잘 표현한(하지만 가장 잘 못된!) 광고일 것입니다. 광고만 문제가 아니겠죠. 우리나라 국민 상당수가 ‘차량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낸다’는 데 동의하고 있으며 ‘작은 차나 경차’를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작은 차나 경차를 탄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작은 차나 경차를 타고 다니다 겪은 봉변이나 해프닝 등을 이야기 합니다. 접촉사고 났을 시, 큰 차에서 내린 상대방이 ‘차도 안 좋은 게...’라는 말을 했다든지, 사업관계로 사람을 만났는데 작은 차를 탔다는 이유로 비우호적인 대접을 받았다든지, 호텔 같은 곳을 갔더니 차량 주차를 아예 못하게 했다든지... 엄연히 손님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이 얼마나 ‘반인간적’이고 ‘인간에 대한 무례’한 상황인가요. 어떻게 차량이 계급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차량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차량은 그냥 운송수단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사람이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한 차량을 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차량이 계급이고 신분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작금의 현실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잘못된 문화를 개선하고, 예산절감과 에너지 절약, 대기오염문제와 지구온난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고위공무원들이 오히려 잘못된 문화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데 앞장서고, 연비가 가장 낮은 초대형차량을 주로 타고 다니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의 전용 관용차량은 대부분 에쿠스, 체어맨 류의 초대형차량입니다.   고위공직자 전용차량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최고급 차량인 현대자동차 '에쿠스' 사진 출처 - 현대자동차  고위공직자들의 행태를 보면 차량이 계급이 돼있는 현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장·차관급 고위공직자들에겐 기사 딸린 전용차량이 지급되고 있는데, 장관급들은 차관급보다 ‘더 큰 차’를 ‘전용차량’으로 배정받아 타고 다닙니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차는 배기량이 3500CC가 넘고 차값만 5천만 원, 1년 운영비만 1천만 원이 든다는 에쿠스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차량 중에서 가장 연비가 낮은 차량이지요. 또 고위공직자 전용차량의 색깔은 모두 검은 색입니다. 검고 큰 차로 자신의 권위와 신분을 드러내겠다는 것은 매우 반민주적이고 반문화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민들은 정말 힘겹게 살아가는 이 때, 자기 돈도 아니고 국민세금으로 자기 신분을 과시하고 계급 서열을 나타내는데 사용하고 있는 현실이 슬픔과 동시에 분노를 자아냅니다. 차관이하의 직원들은 당연히 알아서 차관보다 작은 차를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는 수십 년 동안의 불문율입니다. 고위공직자뿐만 아닙니다. 일반 기업들에서도 직급에 따라 차량 크기가 다 다릅니다. 사장이 제일 큰 차면, 상무·전무들이 다음 크기의 차량을, 부장·과장이 또 그보다 더 작은 차를... 차량이 계급이고 신분인 잘못된 문화가 공공영역뿐만 아니라 생활세계에도 완강히 남아 있는 것이죠. 자전거 탄 대법원장, 경차타고 다니는 전직 대통령, 걸어서 출근하는 장관, 친환경차로 바꾸고 있는 내각, 작은 차 타는 CEO... 이런 이야기들이 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언제쯤일까요. 사람은 그 사람의 집이나 차량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간성과 성품, 살아온 역사와 삶의 진정성 등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자명한 진실이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에 때론 깊이 실망하게 됩니다. 생활세계에 뿌리박힌 이러한 잘못된 관념 외에도 사람들이 작은 차나 경차를 타지 않는 데는 별다른 메리트가 없다는 점도 작용할 것입니다. 작은 차나 경차에 대한 우대혜택이 약간 있긴 하지만,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작은 차나 경차가 연비가 아주 좋다거나, 승차감이 좋다거나 하는 얘기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이 경차보다는 큰 차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기에 그만큼 경차 기술이 향상되지 않았다는 게 교통관련 시민단체들의 지적입니다.   한국산 경차 마티즈 사진 출처 - GM대우 마티즈 홈페이지  지난 달 <희망제작소>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플러스>에서 조사한 결과(500명 전화조사)를 보면, 국민 69%가 “경차나 소형차에 대한 우대혜택을 확대해야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또한 국민 70%가량이 “정부영역에서부터 경차사용 비율을 30%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는 모범을 보여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관용차는 혈세로 굴러 간다’는 시민사회 일각의 캠페인에 대해 행자부에서 발표한 대책에 ‘앞으로 행정부 소속 관용차량 중 일반 업무용 승용차의 경우 20%까지 경차비율을 확대하겠다’는 전향적인 의견이 있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그 보다 더 많은 비율을 경차를 사용할 것을 주문한 것이죠. 현재 중앙정부의 전체 관용차(5만8천여 대)에서 승용차량 중 경차 비율은 총 9794대 대비 67대로 0.68%에 불과합니다. 국민들에게는 경차를 권유하면서, 관용차량부터 경차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소형차의 비율도 25%에 불과합니다. 전국의 지방정부의 사정도 이와 비슷합니다. 또 한국 사회 전체 차량현황을 보면, 극심한 에너지난과 환경파괴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경차 보급률은 4.9%로(2006년 6월말 기준. 전체 차량 대수 1566만2593대 중 경차는 76만여 대. 출처 : 건교부) 매우 저조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동차 선진국인 일본(26%), 이탈리아(45%), 프랑스(39%)와 비교해 보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인 것이죠. 정부는 이와 같은 국민들의 의견을 고려하고, ‘예산 절감, 에너지 절약, 대기오염 방지’를 위한 실천 중의 하나로 전체 공공영역에서의 관용차량 중 소형차나 경차비율을 더 확대할 것을 추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현재 많은 국민들이 ‘소형차나 경차’를 이용할 ‘메리트’를 못 느끼고 있는 실정에서, 우리 국민들이 ‘소형차나 경차’ 이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적절한 우대책·유인책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자동차 회사들도 소비자들의 폭넓은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더 나은 경차’ 개발에도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차량이 그 사람의 신분이나 계급을 나타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서글픈 일입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큰 차는 대기오염과 에너지 낭비의 주범 중의 하나로 지적받아야 마땅합니다. 사람간의 계급차이도 서러운데, 이제 사람이 사는 집과 사람이 타는 차량까지 서열을 매겨 계급차이를 더 공고하게 만드는 지금의 현실은 혁파되어야 할 것입니다. 공공영역과 생활세계 모두에서 작은 차나 경차가 존중받고(제발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 나아가 자전거나 도보를 최대한 이용하는 그런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인 교통·차량문화가 어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청주시청이 관용 자전거를 도입했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 여럿은 소형차를 운행합니다. 행자부도 경차비율을 늘리기로 했고... 바로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변해나갔으면 합니다. 이것이 최근 저의 간절한 희망사항 중의 하나입니다.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 희망칼럼 코너에도 함께 올라갑니다.
2017-06-22 | hrights | 조회: 43 | 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