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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여기자로 살아간다는 것 (송채경화)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3:46
조회
884

송채경화/ 한겨레 정치부 기자


나는 직업 앞에 ‘여’자가 붙는 것을 싫어한다. 남성은 무표, 여성은 늘상 유표인 표현법에 대한 거부감이다. 그러나 이번 글엔 어쩔 수 없이 ‘여기자’라는 단어를 쓴다. 여성 기자로서 겪는 소회와 반성을 담은 까닭이다.

지난 4일 저녁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6층 회의실 앞에서 ‘뻗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날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공천위)는 4·11 총선 공천자 심의를 새벽까지 벌일 기세였다. 오후 5시께 회의실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다른 기자들과 잡담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에 통증이 몰려왔다. 날짜를 헤아려보니 생리통이 확실했다. 평소 생리통을 심하게 앓았기 때문에 급하게 진통제를 찾았지만 없었다. 일요일이라 주변 약국 문은 모두 닫힌 상태였다. 겨우 동료 여기자에게 진통제 한 알을 얻었지만 약효가 떨어지는 4시간 뒤의 일이 두려워 쉽게 먹을 수가 없었다.

보통 ‘뻗치기’는 말진(막내) 기자의 몫이기에 생리통으로 집에 간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었다. 그날도 4명의 팀원 가운데 말진인 나와 선배 기자 1명이 새벽까지 공천위 뻗치기를 해야했다. 저녁 7시께 먼저 퇴근하는 선배들에게 “생리통이 심하니 대신 남아줄 수 없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말하지 못 했다. 마침 퇴근하는 선배가 “혹시 저녁에 약속이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면, 난 이날 새벽 1시까지 아픈 배를 움켜쥐고 뻗치기를 해야했을 거다. 굳이 저녁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일찍 퇴근한 것은, 선배들이 ‘생리통’을 ‘여성으로서의 핸디캡’이라고 생각할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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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정치판에서 여기자들은 좀더 치열해질 것 을 요구받는다.
사진 출처 - 한겨레


불편한 마음으로 집에 오면서 더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3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면서 생리휴가를 써본 기억이 없다. 동료 여기자가 생휴를 써봤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 그동안 힘들 게 얻어낸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계속 마찬가지일 것이 아닌가. 이렇게 마음 먹었지만, 다음 날도 생휴 대신 출근을 했다. 하루하루 피말리는 정치부 생활 속에서 당당하게 “난 오늘 생휴를 쓰겠다”는 말이 차마 안 나왔다.

사실 이런 일들은 고충이랄 것까지도 없는 일상이다. 정치부 여기자로 생활을 하다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특히 정치부에서 남자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하다보면 ‘이건 아니다’싶은 일들을 자주 겪게 된다. 남자 정치인들의 ‘이대 계집애’나 ‘자연산’ 발언 등은 20년 전 얘기가 아닌 현재의 얘기다. 술 한 잔 들어가면 경계가 더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어떤 정치인은 노래방에 가서 여기자들에게 나이순으로 앉아보라는 제안(?)을 하기도 하고, 어떤 정치인은 여기자 한 명 한 명의 외모에 대한 품평을 하기도 한다. ‘사람 장사’라고 불리는 정치부 생활에서는 이런 일들을 적당히 웃어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때로는 정치부 ‘남기자’들이 고충을 토로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너무 여기자들에만 친절하다”는 것이다. 일부 중년 정치인들의 태도를 보면 그 불만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남기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여기자들에게만 얘기하는 정치인들이 가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한 마디 더 듣게 되는 것이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경우는 거의 못 본 데다, 여기자들은 그런 식의 친절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주로 ‘예쁜 여기자’들을 정치부로 보내는 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난해 7월 정치부로 옮기면서 한 선배가 진지하게 충고했다. “학연, 혈연, 지연 등을 최대한 동원해서 취재원을 만나야 한다. 권력을 가진 남자는 무조건 마초라고 보면 된다. 선을 지키되 너무 튀지 않게 적당히 조절해가며 관리해라.” 이런 한국 정치계의 현실속에서 나는 오늘도 ‘적당한 여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