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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전국완)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0:42
조회
229

전국완/ 신목중학교 교사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퇴행하듯 하는 세상일에 신경 쓰다 다시 병이 도질 것 같아서 뉴스고 신문이고 외면하고 산지도 꽤 되었다. 이렇게 눈과 귀를 틀어막고 사느라고 했지만, 너무도 엄청나고 황당한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니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세상 소식이 조금씩 새어들어 왔다. 용산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 동료교사들의 잇단 징계와 구속……. 그럼에도 나는 적당히 슬퍼하고, 적당히 분노하며 또 적당히 잊어버리며 오늘까지 살아왔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런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정말 돌아버리지 않고 내 밥벌이를 지키기 위해 ‘불편한 사건’들에 적당히 외면하며 살아왔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스스로를 힘없는 백성이라고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매주 열리는 교직원회의 시간,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 일방적인 전달시간도 더 이상 불편해하지 않는다. 매일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각종 공문에 대한 처리도 순순히 한다. 매일같이 강조되는 ‘방과 후 수업 강화’ 방침에도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 며칠 전까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홍보하던 ‘고교선택제’가 교육청의 한 마디 사과발표도 없이 ‘공문’ 한 장으로 하루아침에 ‘사실상 폐기’ 되었음에도 모멸감에 잠시 분개하다가는 그냥 넘어간다. 또 ‘학교의 자율’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포장된 교장의 교사초빙 및 유임권한 확대에도 그저 ‘학교가 무슨 사조직이냐?’고 몇 마디 궁시렁거리고는 끝이다. 얼마 전 ‘학업성취도 평가’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치러진 일제고사에도 별 저항 없이 순순히 응한다.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가족끼리 체험학습을 신청한 학생에게, 일제고사 당일엔 허가해 주지 말라는 교육청 지시를 전하며 ‘무단결석’임을 경고한다.

뭐라 따져볼라 치면 무슨 금과옥조나 되는 것처럼 ‘공문’을 들이대며 ‘공문=원칙’의 공식을 신봉하는, 그 어떤 고민이나 이견도 허용치 않는 학교 관리자들 앞에서 이제 그냥 손을 들고 싶어진다.

이렇게 살다보니 그동안 나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던 영혼이 거추장스러워진다. 말로는 교육의 주체라고 하지만, 모든 교육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현장교사로서 의견을 말할라치면 하는 족족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 모가지를 댕강 잘라버리는 이 황당무계한 시대에, 높으신 분들이 짜놓은 교육과정에 주어진 교과서대로 가르쳐서 특목고나 대학에 잘 보내는 것만이 교사가 할 일이 되어 버린 지금, 우리에게 무슨 영혼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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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ㆍ중ㆍ고교생들의 학업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가
지난 10월 13일 전국 1만1천496개 초ㆍ중ㆍ고교에서 실시됐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리고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교원 평가'를 통해 교사도 본격적으로 경쟁을 시킨단다. 우리 공교육의 왜곡과 실패, 사교육에 잠식당하게 된 원인이 교사들이 경쟁을 거부하고 ‘철밥통’을 차고 앉아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다. 이 정부 들어 더욱 가속이 붙어 내년쯤이면 이빨 뿐 아니라 손톱, 발톱 다 빠진 호랑이처럼 영혼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우리 교사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지금도 매년 이루어지는 학교평가에서 각 단위학교가 경쟁적으로 하고 있는 ‘실적 부풀리기’가 교사들 간에도 일어날 게 뻔하지 않을까? 나아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돌진하는 로봇이 되어가지는 않을까?

결국 로봇들이 가르치는 학교가 사교육을 이길 수는 있을까? 사교육을 이긴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로봇들이 가르친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 그 아이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일까?

보이지 않는 것보다는 보이는 것, 과정이나 방법보다는 결과, 경제적인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천박한 사고방식이 만연해 가고 있는 지금, 그 물길을 더욱 거세게 부추기는 일련의 교육정책들을 보며 내가 교사로서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점점 거추장스러워지는 영혼을 과감히 내던져 버려야 하는 것인지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해 본다.

이런 황당한 고민을 하는 지금, 먼 옛날 흐릿한 기억 속 서부영화 한 장면이 떠오른다. 백인들과 한바탕 추격전을 벌이던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달리다가 잠시 멈추고 자신이 내달려온 길을 한참동안 돌아보던 장면이 말이다. 그들이 멈춰 선 것은 미처 따라오지 못한 자신들의 영혼을 기다리는 것이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