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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졸업한다. (장윤미)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17-07-12 10:40
조회
210

장윤미/ 국민대 학생


 

대학을 졸업한다.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다 서울엘 왔고 휴학도 했고 전과하느라 놓친 이수학점을 위해 한 학기를 더 다녔다. 드디어 졸업한다. (사실 아직 기말시험을 보지 않은 터라 약간 불안은 하다만) 어쨌든 어떻게든 이번엔 졸업해야 한다. 하긴 요즘은 대학을 졸업해도 졸업한 게 아니라더라. 기본 1년은 취업준비생으로 살아야 한단다.

대학생활 남은 건 빚뿐이라, 라고 말하기는 싫다. 빚지는 대학생 얘기야 이미 흔하지 않은가. 대학생활이야 후회는 없지만 그에 비해 감당해야 할 등록금이 너무 크니까, 대학생활마저 그만한 값어치를 했나 하고 따져보게 된다. 그래도, 내게 대학생활은 소중한 시절이었다.

2년 전, 제 때 대학 들어가고 휴학 없이 4년을 깔끔하게 다니고 졸업한 내 친구는, 취업이 안 되니 영어공부를 한답시고 상경을 했다. 만날 때마다, 소화도 안 되고 잘 체한다고 말했었다. 취업 때문에 심적 부담이 크구나 싶었지 내 일 같진 않았다. 사실 오만했다. 그게 ‘나는 잘 취업할 거니까’가 아니라, ‘취업에 목매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규정하는 88만원 세대 담론에 휩쓸리기도 싫었고, 내몰리듯 대학 왔고 거기에 목매어서 다시 수능을 친 스스로에게도 속상한데, 떠밀리듯 취업 준비하고 싶진 않았다. 살아가는 게 게임하듯 스테이지가 있는 게 싫었다. 학생으로 살아가다 직장인이 되고 다음 단계는 결혼, 이런 뻔 한 시나리오 말이다. 영어공부를 하고 싶었지 토익준비를 하고 싶진 않았고, 기업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땐 엄마와 싸워도 당당했고 내 소신에 대해 떵떵대며 말했다. 시각을 더 넓히자 싶어 내가 못 보는 것들을 쫓아서 여기저기 쏘다니고 사람들과 일을 꾸미며 살았다. 그게 결국은 내 취업에까지 도움이 될 거라고도 믿었다, 솔직히 그랬다. 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사는 게 결국은 더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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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지난 5월 2일 보라매 공원에서
'등록금 인하와 청년실업 해결을 촉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 출처 - 오마이뉴스


이제 졸업한다. 지금 내 심정이 어떠냐 하면, 사실 갈팡질팡하는 내가 좀 속상하다. 후회는 없지만, 한편으론 내가 다른 방식으로 맹목적이었다는 생각도 한다. 이미 먹어버린 빨간 약을 어쩔 수는 없고 그렇다고 자신감은 떨어지고. 믿었던 것들이 흔들리고 자꾸만 편하고 안정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새록새록 자란다. 자기 합리화 해버리고 싶고 그래서 자책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확신은 없더라도 내가 좀 더 믿고 끌리는 쪽으로 살다보면 뭐든 확신할 수 있을 거라고, 적어도 나를 배반하며 살진 말자고 생각했건만. 살아가는 거 어차피 ‘불안’한 거라면 나는 안정에 반대되는 뻔한 ‘불안’말고 다른 질감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리라 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뻔하게 불안해진다. 불안하고 불안해하다 늙고 병들어서 힘들지 않기 위해 지금 이러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문제야 사회를 탓하고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일이라고 외치고 싶지만, 또 그건 아주 허무해지는 일이다. 쉽게 허무해지지 않는 사람이야 사회운동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만큼의 뚝심도 사회제도를 바꾸는 일에 대한 큰 열정도 없는 것 같다. 정말 현실적인 일에 부딪치면 어디 원망도 누구 탓도 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니까 당장 몇 달 후면 학자금 대출 상환이 시작되는데 말이다. 자꾸 그걸 외면하려고만 하다보면 생각과 현실과의 괴리만 커지고 더 무기력해지는 법이다. 차라리 몸을 굴려 알바라도 해서 돈을 버는 게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 내 삶에 후회해? 또 그건 아니다. 대학 졸업 앞에서, 지금 이 문턱을 어떻게 넘느냐가 내겐 너무 절실하다. 어정쩡하게 흘러가다 보면 서른이 되었을 때 지금과 똑같은 불안으로 고민할 게 뻔하니까. 아마 그땐 결혼 문제가 더해지려나. 십 년이 지나도 지금과 같은 불안을 느끼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현실적으로 닥친 이 문턱을 어떻게 넘느냐가 절박한 내 문제다.

빚은 천 만 원이 넘고 당장 원금상환은 시작될 거고, 이러다가 안락한 집하나 못 갖고 살 건데, 나는 자꾸 칭얼대고 탓 하고 서글퍼지기만 하다만, 그렇다고 모두가 말하는 그런 현실적인 어른이 되기는 싫고, 무력한 청춘도 되기 싫은데, 그렇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라고 되뇌일 수밖에.

아주 좋아하는 말이 있다. “타인의 행복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부디 너의 행복을 거머쥘 수 있도록 보람찬 나날이 되어야 해. 꼭.” 처음 서울에 와서 사회에 비판적인 시선도 갖고 인생에 대한 고민도 많을 때 아주 많은 힘이 됐던 말이다. 오랜만에 되뇌어 본다. 그때와는 또 다르게, 더 영리하고 지혜로운 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